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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대사유고(中觀大師遺稿)

1. 저자
중관 해안中觀海眼(1567~?) 다른 호는 철면鐵面, 속성은 오吳, 무안 사람. 서산 대사의 제자. 일찍이 집이 가난하여 외삼촌인 처영 대사處英大師에게서 배웠는데, 시부詩賦는 배우지 않아도 능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영남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총섭總攝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조선 불교의 법통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2. 서지 사항
발행지 미상, 1646년(인조 24) 개간. 목판본. 불분권 1책. 29.0×19.5cm. 서울대학교 소장본은 학소 거사鶴巢居士가 1912년에 귀정사歸政寺의 장판고藏板庫에 보관되어 있던 유고의 목판을 찍어 낸 후쇄본. 25.5×18.0cm. 서울대학교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여 『한국불교전서』에 수록.
3. 구성과 내용
발행지 미상, 1646년(인조 24) 개간. 목판본. 불분권 1책. 29.0×19.5cm. 서울대학교 소장본은 학소 거사鶴巢居士가 1912년에 귀정사歸政寺의 장판고藏板庫에 보관되어 있던 유고의 목판을 찍어 낸 후쇄본. 25.5×18.0cm. 서울대학교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여 『한국불교전서』에 수록.서문이 있으며, 유고 끝에 발문 겸 간단한 행장이 실려 있다. 시는 163수, 문은 제문 3편, 천소薦疏 2편, 낙성재소落成齋疏 2편, 첩문牒文 1편, 상량문 2편, 기記 2편, 발跋 1편, 서書 4편, 설說 4편으로 모두 21편이 수록되어 있다.<개행>시는 형식별로 배열되어 있는데 칠언절구가 101편으로 가장 많다. 황일호黃一皓, 박경신朴慶新, 심광세沈光世 등 당시 고을 수령들과의 교유시가 많으며, 당대의 스님들에게 준 시도 있고, 또 심회를 읊은 시도 많다.<개행>문 가운데 〈신삭계첩新削戒牒〉은 승려의 길에 들어서는 이에게 불제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엄연한 자세를 적은 것이고, 〈무가암기無可菴記〉는 암자를 왜 ‘무가無可’라고 짓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유가有可’는 속제俗諦, ‘무가無可’는 진제眞諦라는 논지를 편 글이다. 또 〈답도체부총융사서畣都體府摠戎使書〉에서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승려들을 지휘하는 책임자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함과 동시에 스님들이 산성을 쌓고 종이를 만들도록 하는 혹독한 부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응할 수 없음을 매우 간곡하게 쓴 진정서로 총융사의 양해를 바라는 편지이다. 이는 당시 억불정책 아래에서의 승려들에 대한 처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편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