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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운대선사문집(野雲大禪師文集)

1. 저자
야운 시성野雲時聖(1710~1776) 속성은 김金, 본관은 광산光山. 14세에 출가하여 담휘曇輝 화상과 와운臥雲 대선사 그리고 환성 지안喚惺志安의 적손適孫인 영월影月 대선사에게 배웠다. 안동 학가산 광흥사光興寺와 예천 용문산 창기사昌基寺 등 주로 안동ㆍ문경ㆍ예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2. 서지 사항
발행지 미상, 1827년(순조 27) 간행. 3권 1책. 30.0×20.0cm. 재전再傳 제자인 영식永植이 간행.
3. 구성과 내용
발행지 미상, 1827년(순조 27) 간행. 3권 1책. 30.0×20.0cm. 재전再傳 제자인 영식永植이 간행.권1에는 시 30여 편, 권2에는 편지 1편, 잡저 3편, 서문 1편, 기 6편, 권3에는 제문 그리고 부록이 실려 있다. 작품의 양이 많지 않음은 유고 일부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서문을 쓴 여러 사람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문文보다 시詩가 뛰어나다고 하였다. 이오수李五秀는 〈운상인시집서雲上人詩集序〉에서, 인간은 곤궁한 뒤에야 시가 훌륭하게 된다는 송의 문장가 구양수歐陽脩의 말을 인용하여 대사의 시도 그러하다고 평가하였다.<개행>대사의 시가 뛰어남은, 첫째로 타고난 뛰어난 능력, 둘째로 깊은 수행, 셋째로 세상의 역경을 경험한 후에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출한 것에 기인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대사의 시는 쉬운 시어詩語가 사용되어 평이하고 이해하기 쉽다.<개행>1760년(영조 36)에 지은 〈광흥사대웅전불상개금탱화성기廣興寺大雄殿佛像開金幀畵成記〉는 조선 후기 불화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당시 불상금화佛像金畵, 영산회후불탱靈山會後佛幀, 삼장탱三藏幀, 시왕탱十王幀, 감로탱甘露幀 등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개행>대사가 남긴 시문이 많지 않아 진면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30여 편의 시를 통해서 대사의 뛰어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