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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악당사고집(龍岳堂私藁集)

1. 저자
용악 혜견龍岳慧堅(1830~1908) 자는 말저바라밀末底波羅密(matiparamita)이라 했는데, 이는 이름을 범어로 풀이한 것이다. 당명은 송경당頌經堂, 속성은 김金, 본관은 김해. 신암信庵에게서 머리를 깎고, 풍명豊溟에게 계를 받고, 영담永潭의 법을 이었다.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출하여 삼보 사찰에 나누어 봉안하게 하였다.
2. 서지 사항
발행지 미상, ❴1902년❵ 발행. 필사본. 1권 1책. 복사본이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3. 구성과 내용
발행지 미상, ❴1902년❵ 발행. 필사본. 1권 1책. 복사본이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시와 문의 순서로 편집되어 있다. 시는 224편 250여 수가 되는데, 체제로 분류됨이 없이 혼합되어 있으므로, 저자가 보관한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경自警〉이라는 글에 “나의 1천 생각 1만 생각 등등의 일을 사고私藁 중에 기록하니 백 세 뒤 제자들은 내 말에 따라 실행하라.” 라고 함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개행>시에서 스님들과의 수답이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대사의 시는 교리를 떠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심회를 읊는 시에서도 수선修禪의 심경을 토로함이 많으니, 철저히 교리에 의거한 행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음오절주필唫五絶走筆〉에서 “부처나 조사도 나지 않은 곳이요, 본성과 형상이 항시 존재하는 때라.(佛祖無生處, 性相常存時.)”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붓 가는 대로 쓴 시에서도 부처나 조사를 놓지 않으면서 본성을 항시 보존하려 노력하였던 것이다. 〈영시오언詠詩五言〉에서는 “법 안에는 너와 내가 없고, 진리 위에는 친하고 성긂이 없다.(法中無彼此, 理上絶親疎.)”라고 했듯이 일상적 시의 창작에도 교리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개행>문이 15편인데, 이 역시 사찰과 연관된 기記이거나 모연募緣의 글로 일관하고 있다. 당시 나라에서 하사한 희사금 등의 목록이 〈자상처분사송기自上處分賜送記〉에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