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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교보(東洋敎報)

   
                
《동양교보東洋敎報》는 일제 침략의 선발대로서 한국에 진출하였던 일본 불교 정토종파淨土宗派가 경성에 설치하였던 정토종淨土宗 교회 내의 동양교보사東洋敎報社에서 매월 1회씩(5일) 펴낸 신문이다. 《정토종한국개교지淨土宗韓國開敎誌》에 의하면 정토종은 1898년 12월에 정토종가개교소(가교회소)淨土宗假開敎所(假敎會所)를 경성에 설치한 이후 정토종은 그 포교의 범위를 부산, 인천, 개성, 평양 등지로 확대시켜 갔다.
그러므로 이 《동양교보》는 당시 정토종 경성 ‘가개교소’가 ‘개교원開敎院’으로 전환되면서(1900년) 교세 확장을 기하기 위해 발행한 신문이라고 여겨진다. 현재는 그 4호(광무 6년 7월 5일 발행)만 전하고 있어 창간시기를 정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4호 이후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발행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편집의 대강은 사설, 논설, 잡보雜報, 찬록纂錄, 명담, 광고, 사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행처는 동양교보사였고, 발행 겸 편집인 즉 사장은 일본인이 담당하였으며, 그 사원에는 한국인들도 포함되었다.
한편 편집된 내용들을 검토해 보면, 당시 정토종 교회에서는 한국인들이 일본인 및 일본불교에 대한 ‘의심’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상당한 것을 지적하고 나아가서는 그를 염려하면서 그러한 자세가 개화 및 선린 외교에 지장이 많다는 주장을 전파시켰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이 신문은 정토종 교회의 교세확장과 일본 및 일본불교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한국인에게 전파하려는 목적에서 간행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신문을 분석해 보면 당시 한국에 건너온 일본불교의 성격과 함께 당시 한국민들의 일본과 일본불교에 대한 인식의 편린 그리고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 및 원흥사元興寺의 동향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그 시기의 사정을 전하는 사료가 부족한 형편에 《동양교보》는 그 공백을 보충할 수 있는 자료라 하겠다.
그리고 정토종은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신문을 통한 포교활동을 강화한 결과 1920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신도 5,901명으로 당시 한국에 들어왔던 여타 종파보다 한국인에 대한 신도숫자가 제일 많았다. 특히 1900년에 가개교소假開敎所를 개교원으로 승격시켜 한국 개교본부로 활용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인에 대한 포교활동을 강화한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한 한국인에 대한 포교활동은 마침내 1906년에는 원흥사에 설치되었던 불교연구회 및 영진학교 등의 설립을 후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편 이 신문은 1910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원종圓宗》보다 그 간행의 시기가 8년경이나 앞선 국내 불교계 최초의 신문이라 하겠다. 물론 그 간행의 주체와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한국불교계가 온전한 주체로 간행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일반에게 알려진 불교계 신문으로서는 최초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