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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흥회월보(佛敎振興會月報)

   
《불교진흥회월보佛敎振興會月報》는 불교진흥회佛敎振興會의 본부가 발행소로, 이능화李能和가 편집 겸 발행인으로서 간행되었는데, 1915년 3월 15일에 창간되어 1915년 12월호인 통권 9호까지 발간되었다. 이 잡지는 이전 《해동불보海東佛報》를 계승하면서 창간되었다. 즉, 1914년 8월중에 발간이 중지되었던 《해동불보》의 명의를 불교진흥회보佛敎振興會報로 변경하여 불교진흥회에서 회비로 간행하기로 한 내용이 조선선교양종삼십본산주지회의소朝鮮禪敎兩宗三十本山住持會議所 제4회 정기총회(1915. 1)에서 결정되었다.
불교진흥회는 1914년 8월 10일 불교진흥회발기회의 개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그 발기를 주도한 대상들은 전국 각 본산의 주지들이었다. 1914년 11월 21일 각황사覺皇寺에서 불교진흥회 발기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 총회에서는 발기인 대표로 이회광李晦光을 선출하고, 불교진흥회 취지서 및 규칙을 제정하였으며, 일제 당국에 설립 허가원을 제출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불교진흥회의 조직의 인가가 동년 11월 25일부로 나왔기에, 12월 28일 임시회를 각황사에서 개최하였으며, 12월 30일에는 불교진흥회 설립 총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 총회는 1915년 1월 1일, 9일에도 지속되었는데, 그 총회에서는 세칙제정을 하였으며 간부진으로 진흥회 회주에 이회광을, 부회주는 30본산주지회의원 원장인 강대련姜大蓮을, 그리고 여타 간부진을 선출하여 그 명단을 당국에 보고하였다.
이러한 불교진흥회의 설립의 배경에서 불교진흥회월보가 간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교진흥회는 승려들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불교신도들도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이에 그 규칙에서도 ‘도속道俗이 일치一致하야 불교진흥佛敎振興할 방법을 연구 실행케 한다’고 정하였던 것이다. 특히 유의할 것은 그 포교의 방법으로 조선 전래의 방법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본불교의 ‘현행미규現行美規’를 채용한다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일본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잡지에는 일본불교의 영향 나아가서는 일제의 식민지 불교정책의 수용에 대한 불교계의 여러 인식을 전하는 자료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불교진흥회의 시행 규칙에는 회보간행에 대하여 ‘본회本會의 취지趣旨를 발표發表하고 일체一切 회중會中 사업事業을 게재揭載’한다고 그 목적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불교진흥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잡지가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하겠다. 이 회보간행은 불교진흥회 내의 재무부에서 담당하였다. 잡지의 편집의 원칙을 보면 논설論說, 교리敎理, 사전史傳, 학술學術, 문예文藝, 잡저雜著, 소설小說, 회록會錄, 관보초官報抄, 휘보彙報 등으로 되어 있다. 편집의 구성이 위와 같기에 이 잡지는 단순히 불교진흥회의 회 보의 성격에 머무르지 않고 불교 종합잡지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