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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론(百字論)

1. 개요
별칭으로『백자론(百子論)』이라고도 한다. 5언 4구의 게송 5수를 해석한 것으로서 그 자수가 1백자이므로『백자론』이라 하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존재의 무자성(無自性)을 설하고 있다. 특히 승거(僧佉) 즉 수론(數論) 학파와 비사사(毘舍師)의 주장을 비판하고, 모든 법의 비일(非一)ㆍ비이(非異), 인중(因中) 비유과(非有果)ㆍ비무과(非無果) 및 비유(非有)ㆍ비무(非無)를 강조한 논서이다.
2. 성립과 한역
보리유지(菩提流支)가 508년에서 535년 사이에 번역하였는데, 북위(北魏)시대에는 낙양(洛陽)에서, 동위(東魏)시대에는 업도(鄴都)에서 번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주석서와 이역본은 없다.
4. 구성과 내용
크게 나누어 게송과 장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게송은 권말에 묶어서 싣고 있다. 첫머리에 귀경게가 있고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이유로 이 논을 짓는가? 아견(我見) 등과 일체 제법에 자상(自相)이 있다고 하는 주장을 논파하기 위함이다. 일체법은 하나가 아니다. 승거는 일체법이 하나의 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오직 주장일 뿐 마땅히 하나일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은 다른 것이 아니다. 비사사는 제법의 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異)의 뜻이 성립한다고 말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상은 차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은 곧 각각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네가 주장하는바 요지는 곧 무너지게 된다.
무엇이 유상(有相)인가? 외부가 나타나고 보임에 있어서 제법이 각각 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有)의 뜻이 성립한다고 하지만, 네가 유를 세우는 것은 상이 있음에 기인하는 것인가, 상이 없음에 기인하는 것인가? 이 둘은 모두 허물이 있다. 만약 상을 드러냄이 있기 때문에 유라면, 상을 드러내는 것도 곧 유가 되므로, 그 유는 다시 유가 된다. 2유(有)는 함께 성립할 수 없다. 만약 무에 기인한다고 하면 처음의 주장이 곧 무너지게 된다. 유도 무도 모두 인이 아니므로, 유의 의미는 곧 무너지게 된다. 이와 같이 차례로 20구를 해석하는데, 주석을 끝내면서 20구를 모아서 싣고 있다.
일부 학자는 첫머리에 있는 귀경게가 후대 사람의 것이라는 점과, 제18절 끝 부분에 인용되어 있는 “지경(智鏡)과 같이 일체법의 공을 본다. 식에 소취(所取)가 없기 때문에 심식이 멸하고 종자가 멸한다.”라는 경문이『능가경』등에 나타나 있는 유식 사상이라는 점, 또 한역에는 빠져 있지만 서장 역 제12절에 인용되어 있는『승론』의 6구의(句義)가 경론에 인용된 것은 비교적 후세의 것이라는 이유로 이 논서의 장행이 제바의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귀경게는 한역에만 있기 때문에 이것이 꼭 주석자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오히려 논의 체제를 장엄하기 위하여 제바의 제자, 혹은 후대의 중관 학자에 의해 첨부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능가경』등에 있는 사상이 이 논서의 인용 경문에 들어 있다고 해도, 제바의 저작으로 간주되는 『광백론(廣百論)』「제6 파변품(破邊品)」의 마지막 부분과 이에 해당하는『사백관론(四百觀論)』제350송에 이와 동일한 사상적 내용을 담고 있는 “식은 제유(諸有)의 종자라고 한다. 경(境)은 이 식의 소행(所行)이다. 경이 무아임을 볼 때, 제유의 종자는 모두 소멸한다.”라는 게송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경문을 가지고 본 논서의 주석자가 제바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서장 역에만 있는『승론』의 6구의와 같은 것도 제바가 이를 알지 못했음이 입증되지 않는 한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
이 논서의 제10절로부터 제18절까지의 내용은『백론(百論)』의「파신품(破神品)」으로부터「파상품(破常品)」에 이르기까지의 8품과 서로 일치할 뿐 아니라, 각 항의 순서도 서로 상응한다. 더욱이 본 논서의 끝 부분인 제20, 제21절의 내용은『사백관론』및『광백론』의 마지막 장「파공품(破空品)」과 동일하다. 따라서 제바의 주저인『사백관론』의 사상을 요약한 것이『백론』이며, 다시 이를 더욱 간략히 한 강요서가 곧『백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용수가 자신의 주저인『중론(中論)』에 대하여 그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십이문론(十二門論)』을 저술했던 것과 같다. 이 논서는 매우 짧지만 이를 통해서 제바의 주저인『사백관론』의 중심 사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