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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론(破邪論)

1. 개요
이 논은 불교에 대한 도교의 여러 가지 비판을 반박한다.
2. 성립과 한역
중국 당(唐)나라 때 법림(法琳)이 626년에 종남산(終南山) 용전사(龍田寺)에서 저술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주석서와 이역본은 없다.
4. 구성과 내용
총 2권으로 구성된 이 논은 불교에 대한 도교의 여러 가지 비판을 반박한다. 이 불전이 제작된 경위는 당(唐) 고조(高祖) 무덕(武德) 4년에 태사령(太使令) 부혁(傅奕)이 왕에게 11개 조항으로 불교의 폐지를 건의한 데서 비롯한다. 이에 법림이 왕의 물음에 응해 부혁의 주장을 논파하고, 그 후 부혁이 다시 자신의 주장을 유포하고 사견(邪見)을 조장하자, 법림은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불전을 제작한다. 첫머리에 법림의 공덕을 찬양하는 오세남(虞世南)의 서문과 법림이 『파사론』을 지어 바치며 고조에게 쓴 편지가 있다. 여기서 법림은 도교 및 유교의 사상이 아직 생사의 근원에 이르지 못하고, 유(有)·무(無)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논하고, 부혁이 관청에서 시행하도록 인가하지도 않았는데 공공연히 불교를 비방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의 잘못된 견해를 논파하고 정법(正法)의 횃불을 밝히기 위해 『파사론』 2권을 지어 바친다고 말한다. 이어 법림은 노자의 『승현경(昇玄經)』과 『서승경(西昇經)』 등의 도교 경전에서 불교 경전의 글을 스승으로 삼아 존경한 것, 『주서이기(周書異記)』 등의 공서(孔書)에서도 불교 경전의 글을 칭찬한 일 등을 언급하면서, 부혁의 비판을 9항목으로 나누어 반박한다. 첫째, 부혁은 60세 이하의 스님은 집으로 돌려보내 군사를 강하게 하고 인구를 늘리자고 주장하지만, 『출가공덕경(出家功德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한 사람을 사문으로 받아들이는 공덕은 범천(梵天)에 보배탑을 세우는 것보다 나으므로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둘째, 부혁은 사문이 많으면 소모하는 재산도 많으므로 절은 각 주마다 하나만 남기고, 흙으로 탑을 세우고, 비구는 두 명씩만 있게 하자고 하지만,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많은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정성껏 절과 탑을 지었고, 부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므로 오히려 불교를 크게 장려하는 것이 옳다. 셋째, 부혁은 서역의 오랑캐는 사람의 형상에 짐승의 심보를 가지고 부처는 서역의 요사스러운 귀신이라고 하지만, 부처는 왕의 자손으로 세계의 중앙인 인도에서 태어났고, 여러 문헌에 따르면 서쪽 오랑캐란 결코 인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넷째, 부혁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충효와 도덕을 귀중히 여겨 평화로웠다고 주장하지만,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재난과 전쟁이 있었기에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그 밖에, 다섯째 도교가 불교보다 더욱 오래 되었으며, 여섯째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임금들이 오래 살고 신하들이 충효를 다하였으며, 일곱째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정권을 빼앗거나 반역하는 자가 없었으며, 여덟째 불교가 들어 와서 가정을 파괴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며, 아홉째 불교에는 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여러 사문들이 있었다고 하는 부혁의 주장을 하나하나 비판하여 반박하고, 불교를 적극 받들고 널리 홍포할 것을 왕에게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