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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탑공덕경서(造塔功德經序)

제목정보
대표서명 조탑공덕경서(造塔功德經序)
저자정보
저자 원측(圓測)
발행정보
간행시기 조선
형태정보
권사항 v12
확장정보
시작책_시작번호 v12_p0001a
시작책_끝번호 v12_p0001a
시작책_권수 1
시작책_단수 1
끝책_시작번호 v12_p0001a
끝책_끝번호 v12_p0001a
끝책_권수 1
끝책_단수 1

[서지해제]

1. 저자
원측圓測(613~696) 휘는 문아文雅, 자가 원측. 당唐에 유학하여 『구사론俱舍論』 등을 배우다가 현장玄奘이 인도 유학 후 645년 귀국하자 그가 번역한 『유가론瑜伽論』과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을 접하였다. 장안長安 서명사西明寺의 대덕大德이 되어 『성유식론소』와 『해심밀경소』 등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나당 전쟁 시기에는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에 은둔하였다가 서명사로 돌아와 『성유식론』을 강의하였다. 그 후 불타파리佛陀波利와 함께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을 번역하고, 지파가라地婆訶羅와 의정義淨이 불경을 번역할 때 증의證義로 참여하였다.
2. 서지 사항
송나라 『적사대장경』 제13책에 수록. 『고려대장경』 양함羊函에도 수록되어 있으며(K498), 『전당문全唐文』 권912에도 수록되어 있음.
3. 구성과 내용
송나라 『적사대장경』 제13책에 수록. 『고려대장경』 양함羊函에도 수록되어 있으며(K498), 『전당문全唐文』 권912에도 수록되어 있음.『조탑공덕경』의 서문으로, 총 253자이다. 당 고종 영륭永隆 원년(680) 11월 15일부터 12월 8일까지 황제의 명으로 지파가라와 원측 등 5인이 홍복사弘福寺에서 경전을 번역한 후 원측이 서문을 쓴 것이다.<개행>그 내용은 탑의 명칭과 모양, 의미를 서술한 부분과 탑을 세우는 공덕을 서술한 부분, 『조탑공덕경』이 번역된 과정을 서술한 부분, 그리고 이 경전을 회향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개행>먼저 탑은 범어를 번역한 것으로 분墳이라고 밝히고 네모나 원형 등의 모양이라고 하였다. 탑의 크기에 대한 경의 구절을 요약하여, 크면 대천세계와 같고 삼계를 덮으며 범천 세상보다 높지만, 작으면 암라과菴羅果나 대추나무 잎과 같으며, 바늘 끝에 비유된다고 하였다. 탑 내부에는 유령遺靈이나 법장法藏을 봉안한다고 하였다. 이는 경에서 탑에는 여래의 사리나 머리털, 치아, 수염, 손발톱 또는 12부 경, 아니면 하나의 4구게句偈 곧 연기법송緣起法頌을 봉안하라고 한 것을 요약한 것이다.<개행>탑을 세우는 공덕에 대해서는 위位는 삼과三果에 오르고 공훈은 사선四禪보다 나으며 높이 유정有頂의 궁에 오르고 재앙이 없는 곳에 이를 것이라고 하였고, 이것이 이 경전의 큰 뜻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이 경전이 온 세상에 퍼져 지혜의 등불이 삼계三界를 비추기를 회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