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문헌

귀원정종歸源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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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원정종歸源正宗
[표지]
귀원정종歸源正宗*
백용성白龍城 선술選述

신규탁** 옮김



귀원정종歸源正宗



목차
0001_0004_b_01L머리말

귀원정종 상권

1. 불교는 인간의 도리를 섬기지 않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2. 유교의 삼강오상을 불교에 견준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3. 불교는 선하기만 하여 혼란을 초래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4. 불교의 경전은 유교만 못하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5. 승려는 부처를 팔아 법의 밑천을 삼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6. 인과는 믿기 어렵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7. 선조의 업이 자손에게 미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8. 귀천이 대물림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9. 하늘의 내린 명령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10. 태극설을 끌어들인 힐난에 대한 반론
11. 태극의 이치는 의심할 수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2. 유·불 동이의 힐난에 대한 반론
13. 불교는 허무적멸의 도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14. 불교는 정신과 혼백을 본성으로 여긴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5. 불교는 일상 떠난 것에 집착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6. 본성과 천명을 수긍해야 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7. 인종이 소멸할 것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18. 어떤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
19. 윤회가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20. 수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21. 후생의 몸을 받는 것에 대한 힐난에 대한 반론
22. 태에 들어가는 순간을 설명해 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23. 유정이 몇 종이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
24.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25. 세계가 일어난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26. 세계가 일어난 시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
27. 중생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28. 업의 과보가 어떻게 시작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29. 교화행의 우열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30. 몇 가지 질문을 뽑아 거기에 변론하는 장

귀원정종 하권

31. 부처님의 출생에 즈음한 다섯 가지 상서
32. 부처님 탄생 시의 신이함
33. 귀한 지위를 버리고 도를 닦음 : 유아독존에 대한 변론
34. 부처님 상호와 광명
35. 부처님의 34종의 상서
36. 부처님께서 마군을 굴복시킴
37. 기독교의 십계와 불교의 가르침 대비
38.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성불의 원인
39. 부처님이 살생을 금한 것은 평등한 자애임
40. 부처님의 십계로 삼업을 모두 포섭
41. 부처님의 신통묘용은 마음을 벗어나지 않음
42. 모든 하늘의 수행 차례
43. 지옥도 마음이 짓는 것
44. 문답을 통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변론
45. 천지창조설 비판
46.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설 비판
47.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었다는 설 비판
48. 「요한복음」에 대한 변론
49. 문답을 통한 증명
50. 다섯 가지 쇠퇴 현상
51. 본원으로 돌아감을 밝힘
52. 불교 경전의 심천을 밝힘
53. 성문에 대해 밝힘
54. 연각에 대해 밝힘
55. 불보살의 수행차제를 밝힘
56. 중생심 밖에 부처가 없음을 밝힘
57. 사종 법계를 밝힘
58. 모든 것을 마음으로 회통
59. 지관과 정혜를 밝힘
60. 선종의 핵심을 밝힘
61. 간화법의 핵심을 밝힘
62. 간화의 절요를 인용
63. 궁극의 과보를 변론하여 밝힘
64. 치우침과 원만함에 대한 변론
65. 선종 오가 종풍을 변론

발문
머리말(緖言)
或이問曰歸源正宗은何爲以作也오?
어떤 사람이 묻는다.
“왜 『귀원정종歸源正宗』을 지었는가?”
曰宋神宗年間에江左道學이倡於伊川昆季야和之者十有餘家라做出二百十七種見解야痛排佛敎며西敎之流가以排佛로爲己能야毁言이載路야罔有紀極이라. 然이나佛之道本絶人我며不碍是非故로成就忍力야未嘗與之辨明니以故로世俗이全昧야未識佛道之爲何如고但將冊子上語야毁之謗之故로佛日이日暗고法輪이不轉이라. 余不忍坐視其然야依排辨論也ㅣ로라.
대답한다.
“중국 송나라 신종 연간(1067~1085년), 강좌江左(중국의 강동지역)에서 정명도와 정이천의 두 형제에 의해 도학道學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한 자들이 10여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217종의 견해를 만들어 불교를 통렬하게 배척하였다.
(또 근자에 들어서는) 서교西敎(기독교를 지칭)의 무리들은 불교를 배척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삼았으니, 헐뜯는 말들이 거리마다 넘쳐 끝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도는 본래 나다 남이다 하는 분별이 없으며 시비에도 구애되지 않아 인내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과 더불어 변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두워서 불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책자에 있는 말만 가지고 헐뜯고 비방했다. 그리하여 불일佛日이 날로 어두워지고 법륜法輪이 구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차마 그런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저들의 배척에 대꾸하여 변론하는 것이다.”
彼曰古云可言不言은大人心이요難忍能忍은君子志라니不如忍之爲德이니라.
그가 말했다.
“옛말에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대인의 마음이요, 참기 힘들지만 능히 참아 내는 것이 군자의 뜻이다’라고 했으니, (대꾸하느니 차라리) 참아서 덕스러워지는 것만 못하다.”
余曰善타然이나衆生苦海가無量이니若非佛力이면誰能濟之리오慈眼視衆生이면福德海無量이니라. 吾所以爲此者는爲度生而然也요非人我而爲然也이니라. 汝能除去儒敎西敎之經史典籍에所載毁佛之言句乎아若然者컨余亦休却호리라. 自古及今에吾佛之家에셔一無先排外敎고但隨辨而已이니라.
내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중생의 고해가 한량없으니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누가 그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면 바다 같은 복덕이 한량없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지, 나와 남을 나누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유교나 서교의 경전이나 역사책에 실린 불교를 비방하는 말들을 없앨 수 있겠는가? 만약 없앤다면 나 역시 그만두겠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불교 집안에서 먼저 남의 종교를 배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그들의 비방을) 따라 변론했을 뿐이다.
盖他敎는但度人而未能免永劫輪回언이와佛慈는深廣사度人天三有胎卵濕化十二類生니其不曰絶對的眞慈乎아? 此歸源正宗之所以作也이니라.
대개, 여타의 종교는 그저 사람만을 제도할 뿐이고, 또 영겁의 윤회를 면하게는 못하지만, 부처님의 자비는 깊고도 넓어서 인간계와 천상계의 삼유三有와 태·난·습·화의 열두 부류의 중생을 제도한다. 그러니 이것을 어찌 절대적인 참된 자비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귀원정종』을 짓게 된 이유이다.”
中部寺洞二十八統六戶
경성 중부 사동 28통 6호에서

귀원정종歸源正宗 상권
1. 불교는 인간의 도리를 섬기지 않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不事人道難)
或이問曰沙門釋子不知三綱五常之如何고但宴寂深山야以取自娛而不事人道니於世에何益也ㅣ리오?
어떤 사람이 묻는다.
“사문인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삼강과 오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깊은 산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자신의 편안함만 취하고 인간의 도리를 섬기지 않으니,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答曰你誠不知聖人設敎之大體ㅣ로다. 吾佛世尊이能空一切相相像也사成萬法智야隨緣度生시니譬如一月이在天에影含衆水ㅣ라豈有取捨於山野哉ㅣ리오? 聖人之心이若有取捨ㅣ면則是乃天降雨에必擇地而下也ㅣ니라.
대답한다.
“그대는 성인께서 가르침을 만든 ‘근본(大體)’을 정말 모르는구나.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는 능히 모든 모양모양이란 형상을 말한다.을 비우고 만법의 지혜를 완성하여 인연에 따라 중생을 제도하셨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달이 하늘에 있지만 영상이 온갖 물에 어리는 것과 같다. 어찌 산과 들 가운데 어느 것은 취하고 어느 것은 버리겠는가? 성인의 마음에 만약 버리고 취함이 있다면, 이는 마치 하늘이 비를 내리면서 땅을 가려 내린다는 꼴이다.
佛說三歸五戒 시니三歸者曰歸依佛이오曰歸依法이오曰歸依僧也ㅣ라. 佛也者覺也ㅣ니以覺自心故로名爲佛이오以可軌持故로名爲法이오以心性이和合不二故로名爲僧이오以心性이圓淨故로名爲戒也ㅣ니普天下之人民이各其歸依乎自家之三寶自佛自法自僧也最淸淨本命元辰則箇箇爲正眞無邪之大人也ㅣ리라.
부처님께서 삼귀의와 오계를 설하셨다. 삼귀의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고, 법에 귀의하는 것이고,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다. 부처님이란 ‘깨달음(覺)’이니, 제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고, 법칙으로 삼아 지킬 만하기 때문에 법이라 하고, 심성이 화합하여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승가라 한다. 심성이 원만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계戒라고도 한다. 온 천하의 인민들이 각각 자신 속에 간직된 삼보인자신의 부처, 자신의 법, 자신의 승가 가장 청정하고 근본 생명이며 새해 첫날과 같은 것에 귀의한다면, 저마다 바르고 참되며 삿됨이 없는 대인이 되리라.
又五戎者一曰不殺生이니此仁之本也ㅣ오二曰不偸盜ㅣ니此義之本也ㅣ오三曰不邪淫이니此禮之本也ㅣ오四曰不妄語ㅣ니此信之本也ㅣ오五曰不飮酒ㅣ니此智之本也ㅣ니五者ㅣ備而五常之道ㅣ恒然不眛야在於心目之間과行用之中矣라.
0001_0008_b_01L또 오계는 첫째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인仁의 근본이요, 둘째는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의義의 근본이요, 셋째는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예禮의 근본이요, 넷째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신信의 근본이요,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지智의 근본이다. 오계가 갖춰지면 오상五常의 도가 항상하여 어둡지 않아 마음속과 행동하는 가운데 언제나 있게 된다.
以此로可以修身이며以此로可以齊家며以此로可以治國이며以此로可以平天下ㅣ니然則豈可謂沙門야爲不知三綱五常之道乎ㅣ리오? 但沙門이宴寂深山야超然自得者惟以道爲懷者也ㅣ니라.
이것(오계)으로 제 자신을 닦을 수 있고, 이것으로 집안을 바로잡을 수 있고,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이것으로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사문이 삼강과 오상의 도를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사문이 깊은 산에 고요히 지내면서 초연히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오로지 도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다.
噫라! 道在一箇則一箇重고道在天下則天下重니不可謂無益於世也ㅣ니라. 古來神僧道士ㅣ有補於家國者ㅣ多矣ㅣ니子其思之라
아! 도가 한 사람에게 있으면 한 사람이 귀중해지고, 도가 천하 사람에게 있으면 천하 사람이 귀중해지니, (불교가) 세상에 이익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예로부터 (불교의) 신통한 승려와 (도교의) 도사들 중에는 나라를 도운 분들이 많았으니, 그대는 그것을 생각해 보라.”
2. 유교의 삼강오상을 불교에 견준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綱常配佛難)
問曰三綱五常은儒家聖哲之所立也ㅣ어子何以配於佛之說乎아?
묻는다.
“삼강과 오상은 유교의 성인과 철인께서 세운 것인데, 그대는 왜 부처의 말에 그것을 짝짓는가?”
答曰休道休道라. 人人脚下에淸風拂이오箇箇面前에明月白이로다. 夫綱常者貫古來今에凡爲人者ㅣ皆固有之常分也ㅣ니彼堯舜孔子ㅣ豈有所作爲於其間哉ㅣ리오? 試觀今之海內海外東西列强之諸國니皆有綱常之道야敎導之며守行之니孔子ㅣ何嘗往化於其國耶아? 藥不必扁鵲之方이라愈病則一이오書不必孔丘之文이라爲敎則一이니라. 吾佛無上之大道直指人人固有之本心야使之見性成佛케니三綱五常은卽固有之常分也ㅣ오見性成佛은卽本有之竗用也ㅣ니若將箇人之所無야而別授於人이면則此邪也ㅣ오非正也ㅣ니라. 那自性本有之竗用이圓理ㅣ照然야箇箇是固有天然的事也ㅣ어而一切衆生이多有迷昧故로十方國土에聖人이間生샤廣爲說法시니實發明此事而已也ㅣ시니라.
0001_0009_a_01L대답한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모든 사람의 발 아래 맑은 바람이 나부끼고, 모든 사람의 면전에 밝은 달이 훤하다. 대저 삼강오상이란 예나 이제나 무릇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진 ‘변함없는 몫(常分)’이다. 저 요임금이나 순임금이나 공자가 어찌 그 사이에서 만들어 낸 것이겠는가? 시험 삼아 바다 안과 바다 밖 동서 열강의 여러 나라를 살펴보니, 모두 삼강오상의 도가 있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인도하며 그것을 지켜 행하고 있다. 공자가 어찌 일찍이 그 나라로 가서 교화하였겠는가? 약藥이 꼭 편작의 처방일 필요는 없으니 병을 치료함에는 똑같으며, 문장이 꼭 공자의 문장일 필요는 없으니 가르침이 됨에는 똑같다. 우리 부처님의 위없는 대도는 사람마다 참으로 간직한 본심을 곧장 가리켜서 그들로 하여금 성품을 깨쳐 부처가 되게 한다. 삼강오상은 곧 본래 간직된 ‘변함없는 몫(常分)’이고, 본성을 깨쳐 부처가 되는 것은 곧 본래 간직된 ‘오묘한 작용(妙用)’이다. 만약 저마다에게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준다면, 이는 삿된 것이지 바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성 속에 본래 간직된 ‘오묘한 작용’이 원만한 이치가 비치어 저마다가 본래 간직한 본래의 현상이지만, 일체중생이 대부분 이를 미혹했기 때문에 시방국토에 성인께서 간간이 출생하시어 널리 법을 설하셨으니, (이 모두는 다) 실로 이 일을 밝게 드러낸 것일 뿐이다.”
3. 불교는 선하기만 하여 혼란을 초래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徒善返亂難)
問曰子ㅣ以佛之五戒로配對於五常이나然이나以其徒善而返亂故로不可治於世也ㅣ니라.
묻는다.
“그대는 불교의 오계를 (유교의) 오상에 배대하였다. 하지만 불교는 그저 선하기만 하여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
答曰你何以少見으로妄起狐疑也오? 你能學通經律論三藏否아? 佛之所說이略八億四千萬卷經也ㅣ라言言이斬釘截鐵이며句句ㅣ利刃當陽이라能殺能活며能縱能奪며或撫背而誘之며或嚬申而吼之야乃至三千威儀와八萬細行이淨如氷玉며又於沙門主持常法의小小威儀와些些軌則에도一有不順叢林規範者ㅣ면隨過之輕重야或有滅擯出界者며或有隨其覆藏日數而治之者며有罪而覆藏其狀綻露則計其日數之多少如法治之也或有衆中懺謝而免罪者니豈曰徒善而返亂哉아?
0001_0009_b_01L대답한다.
“그대는 왜 좁은 소견으로 여우 같은 의심을 함부로 일으키는가? 그대는 경·율·논 삼장을 능히 배워서 통달했는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약 8억 4천만 권에 달한다. 하시는 말씀마다 (중생들의 몸에 박힌) 못을 자르고 쇠를 절단하며, 구절구절 햇살 아래 번쩍이는 예리한 칼날과 같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풀어 주기도 하고 잡아들이기도 하며, 혹은 등을 쓰다듬어 달래기도 하며, 혹은 으르렁거려 포효하기도 하여, 나아가 3천 가지 위의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이 마치 얼음이나 옥처럼 깨끗하다. 또 사문이 (사원에) 머물며 지켜야 하는 일상 법도의 소소한 위의와 자잘한 궤칙 속에는 총림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과오의 경중에 따라 승적을 박탈해 절에서 내쫓는 경우도 있고, 범죄 사실을 감춘 날짜에 따라 죄를 다스리는 경우도 있고,죄가 있는데 감추고 있다가 그 사실이 탄로 나면 그 날짜가 어느 정도인지 계산해 법대로 다스린다. 혹은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뉘우치고 용서를 빌어 죄를 면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그저 선하기만 하여 도리어 혼란을 초래한다고 하는가.”
4. 불교의 경전은 유교만 못하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多煩不如小實難)
問曰聖人이制七經之本시衆事備焉이어今云釋氏之八億四千萬卷經은寔非一箇人의所能堪任也ㅣ니余以爲多煩이不如少實也ㅣ라노라.
묻는다.
“성인께서 칠경(사서와 삼경)의 근본을 제정하시니 여기에 온갖 일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약 8억 4천만 권에 달한다’고 하니, 참으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불교의 경전은 너무 많아서 적더라도 실속 있는 (유교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答曰夫佛者爲天人之導師오四生之慈父也ㅣ라. 普觀衆生이同稟而迷시고嘆曰奇哉라. 一切衆生이具有如來智慧德相이언마는但以妄想執著으로而不證得이라시고向生死海中사駕無底鐵船시고登獅子座사先說華巖사統萬法明一心시고又觀衆生의根性이萬差사遂入三眼國中三句也사東說西說사隨機演唱시니三世因果와無量遠劫之事와幷大小乘性相體用本末이群經에具載니雖恒沙ㅣ라도猶不足以喩其多也ㅣ니如析旃檀에片片旃檀이로다.
대답한다.
“부처님은 하늘과 인간의 도사導師이시고,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이시다. 중생이 똑같이 (불성을) 부여받고도 미혹한 것을 널리 관찰하시고, ‘기이하구나! 모든 중생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완전히 갖추었건만 다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하질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 생사의 바다 가운데로 향하시어 바닥 없는 철선을 타시고 사자좌에 오르시어 먼저 『화엄경』을 설해 ‘만법을 통괄하고 일심을 밝히는’ 대의를 말씀하셨다.
또 중생의 근성이 천차만별인 것을 관찰해 마침내 삼안국삼구 속으로 들어가셔서 이렇게도 설명하시고 저렇게도 설명하시어 근기 따라 널리 말씀하셨다. 삼세의 인과와 한량없이 아득한 겁 이전의 본사本事 및 대승·소승의 성과 상, 체와 용, 본과 말이 수많은 경에 빠짐없이 실렸다. 비록 항하강의 모래알 수로도 그 많음을 비유하기에 오히려 부족하니, 마치 전단향나무를 쪼개면 조각마다 전단향인 것과 같다고 하겠다.
於是에聾騃盡醒고枯槁悉潤야大地含生과諸天龍神과地獄諸趣가各得其所ㅣ로吾佛願力이猶在시고悲心이尙熏사碎金剛之勝體사爲舍利之遺骨야與法寶로常住於世야普令衆生으로深心歸依야各得景福케시니豈與他論으로同爲較例乎아? 螢燄이何齊於日馭之光이며蚊觜로寧盡乎滄溟之底ㅣ리오? 儒家所論天下者不出於現今約約所發見者六部中에亞細亞洲內幾箇國而論道者도亦不過五倫三綱而已라漏管窺天이오掩耳偸鈴이로다.
0001_0010_a_01L이에 귀머거리와 벙어리들도 모두 깨닫고 메마른 나무들도 모두 물이 올라 대지의 모든 생명체와 모든 하늘의 용과 신들, 지옥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중생들도 그 마땅함을 얻게 되었다. 그러고도 우리 부처님의 원력은 여전히 남으셨고 또 자비심은 더욱 자욱하셔서, 금강석 같은 ‘진리의 몸(勝體)’을 부셔 ‘사리’로 유골을 남겨, 법보와 함께 세상에 항상 머무시어 모든 중생에게 깊은 마음으로 귀의하여 저마다 큰 복을 얻게 하셨다. 어찌 다른 이론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반딧불이 어찌 태양의 광명과 같을 수 있겠으며, 모기 부리로 어찌 깊은 바닷물을 밑바닥 낼 수 있겠는가?
유교에서 말하는 천하는 오늘날 몇 개 발견된 6부部 중의 아세아주 안에 있는 몇 개 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며, (유교에서) 설명하는 도道도 역시 오륜과 삼강에 불과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는 격이요,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격이다.
文殊大士云사覺海性이證圓고圓證覺이元竗ㅣ로다. 元明이照야生所고所가立照性이亡나니迷妄야有虛空고依空야立世界로다. 想證야成國土고知覺은乃衆生이니라. 空이生大覺中니如海一漚發이니라. 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로다. 漚滅면空本無어니況復諸三有아시니推此觀之컨儒家所論天下者不足可論이로다. 華嚴淸凉國師ㅣ云호往復이無際나動靜은一源이라含衆竗而有餘고超言思而逈出者其惟法界歟뎌.
(『능엄경』 권6에서) 문수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바다 같은 깨달음의 성품이 맑고 원만하며, 원만하고 청정한 깨달음이 본래부터 오묘하도다. 본래부터의 밝음이 비추어 경계(所)를 낳으니, 경계가 생기면 비추는 성품은 사라진다. 미혹한 망상 때문에 허공이 존재하고, 허공에 의지하여 세계가 성립된다. ‘맑은 생각’은 국토가 되고, ‘지각하는 작용’은 곧 중생이 된다. 허공이 ‘완전한 깨달음(大覺)’에서 생겨나는 것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난 것과 같다. 먼지처럼 많은 유루有漏의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지해 생겨난다. 물거품이 사라지면 허공도 본래 없으니, 하물며 다시 저 삼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로 미루어 살펴보건대 유교에서 말하는 천하는 가히 논의하기에 부족하다.
화엄종주 청량 국사께서 (『화엄경청량소』의 서문에서) 말씀하셨다.
‘가고 옴이 끝이 없지만, 움직임과 고요함은 근원이 같으니, 온갖 오묘함을 머금고도 여유가 있고, 언어와 사유를 초월해 아득히 벗어났으니, 이것은 오직 법계뿐이구나.’
又云我世尊이十身初滿에正覺始成사乘願行以彌綸시고渾虛空而爲體性시니富有萬德이오蕩無纖塵이로다. 湛智海之澄波ㅣ虛含萬像이오皎性空之滿月이頓落百川이로다. 不起樹王사七處於法界시고無違後際사暢九會於初成이로다. 盡宏廊之幽宗이오被難思之海會로다. 圓音이落落에該十刹而頓周ㅣ오. 主伴이重重에極十方而齊唱이라니以此觀之컨儒家所謂道行而化被者ㅣ烏得與比論哉아.
0001_0010_b_01L또 말씀하셨다.
‘우리 세존께서 십신十身을 처음 다 갖추시어, 마침내 정각을 이루시자, 원행願行에 의지하여 널리 다스리고, 허공을 뒤섞어 체성體性을 삼으셨으니, 풍부하게 만 가지 덕을 갖추시고, 깨끗이 쓸어버려 작은 번뇌 하나 없으셨다. 고요한 ‘바다 같은 지혜’의 맑은 물결이 만 가지 형상을 티 없이 머금고, 밝은 ‘허공 같은 본성’의 둥근 달이 백 개의 시냇물에 단박에 비치었다. 보리수 밑에서 일어나지도 않으신 채 법계에 칠처七處를 펼치셨으며, 뒷이야기와 어긋남이 없이 처음 성도한 자리에서 구회九會를 펼치셨도다. 크고도 넓은 ‘깊은 종지’를 모조리 드러내시어, 무수하게 많은 법회의 온 중생을 지도하시니, 원음圓音이 널리 퍼져 시방의 국토에 두루하며, 부처님과 대중이 거듭되어 모든 시방세계가 일제히 노래하였다.’
이것으로 살펴보건대, 유교에서 말하는 도道의 실천과 교화의 범위가 어찌 불교와 비교해 논할 수 있겠는가?”
5. 승려는 부처를 팔아 법의 밑천을 삼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賣佛資法難)
問曰沙門釋子者ㅣ遁處伽藍야賣佛資法고釣費許多信施며多不修道고虛度一生光陰니兩家有損이라何成化門이리오? 不如廢之已也ㅣ니라.
묻는다.
“사문 석자라는 자들은 가람에 은둔하여 부처를 팔아 법의 밑천을 삼고, 수많은 신자들의 보시를 낚아채어 쓰면서, 도를 전혀 닦지 않고 일생을 헛되게 보낸다. 친가와 외가 양쪽에 모두 손해가 있으니 어떻게 교화의 문이 되겠는가? 없애느니만 못하다.”
答曰如子之言인誠未達理也ㅣ라自孔氏卒後로迄今二千四百六十餘年에道大德盛이如孔子者ㅣ爲幾人矣ㅣ며扶網陳常야爲人師者ㅣ抑幾人乎아普天下之民衆이箇箇爲賢人君子則必不有智愚之差와聖凡之異名也ㅣ리라. 蒭草之中에有蔘芝之靈藥고土石之中에有金玉之珍寶고禽獸之中에有麟鳳之瑞祥니圓覺經에云譬如大海가不讓小流어든乃至蚊蝱과及阿修羅飮其水者ㅣ皆得充滿이라시니吾之佛道圓融無礙야無有彼此며無有親疏며無有貴賤며無有賢愚야四姓이入道에同一平等니豈可以金玉之故로棄諸土石乎아? 利者易達고鈍者多滯而已니라.
대답한다.
“그대와 같이 말한다면 참으로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공자가 죽은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2천460여 년이 되는데, 도가 크고 덕이 성대하기가 공자만 했던 사람이 몇이나 되며, 삼강을 돕고 오상을 펼쳐 인간의 스승이 된 자가 또 몇 사람이나 되는가? 온 천하의 민중들 하나하나가 현인군자가 되었다면,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도 절대로 없고,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다른 명칭도 없어야 할 것이다. 잡초 속에 산삼이나 영지 같은 영약이 있고, 흙더미 돌무더기 속에 금이나 옥 같은 진귀한 보배가 있으며, 날짐승 들짐승 속에 기린이나 봉황 같은 상서로운 동물이 있는 법이다.
『원각경』에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큰 바다는 작은 개울을 마다하지 않으며, 모기나 깔다귀 나아가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그 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배불러지는 것과 같다.’
우리 부처님의 도는 원융무애하여 이것과 저것이 없으며, 친근함과 소원함도 없으며,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현명하고 어리석음도 없다. 사성四姓의 어느 계급에 속한 사람도 도에 들어오면 동일하고 평등하다. 그러니 어찌 금이나 옥 때문에 모든 흙이나 돌을 버릴 수 있겠는가? 영리한 자는 쉽게 통달하고 아둔한 자는 많이 막힐 뿐이다.
孔子ㅣ曰朝聞道면夕死라도可矣라야날張無盡이論此云孔子ㅣ以仁義忠信으로爲道耶아? 則孔子固有仁義忠信矣ㅣ오以生久視로爲道耶아? 則夕死ㅣ可矣라시니是ㅣ果求聞何道哉오. 豈非大覺慈尊의識心見性無上菩提之道也ㅣ리오? 孔子도尙尊其道어而今之學孔子者ㅣ未讀百十卷之書고先以排佛로爲急務니哀哉라. 今에略擧爲沙門者ㅣ必有不壞成佛之因緣야爲子言之리라.
0001_0011_a_01L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는데, 장무진(장상영 거사)이 이를 논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인·의·충·신으로 도를 삼으셨을까? 아니다. 공자께서는 인·의·충·신을 참으로 이미 가지고 계셨다. (공자께서는) 오래오래 사는 것으로써 도를 삼았던 것일까? 아니다.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는 과연 어떤 도를 들으시려 하셨던 것일까? (그것이) 어찌 대각자존께서 말씀하신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는 위없는 보리의 도가 아니겠는가? 공자께서도 오히려 그 도를 존중했는데 요즘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들은 백 권은커녕 열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우선 불교를 배척하는 일로 자신의 급선무를 삼으니, 슬프구나.’
이제 사문에게는 반드시 파괴되지 않는 성불의 인연이 있음을 간략히 제시하여, 그대를 위해 말하리라.
凡爲佛子者ㅣ各有結緣之道니或有聞道而發心者며或有聞道而修之者며或有聞道而悟之者며或有聞道而謗之者며或有聞道而背之者니其所譽讚毁謗者가皆得無量之利益나니라. 何以故오如人이手過糞器면則其臭穢ㅣ卒難除ㅣ오衣涵香籠면則其餘薰이尙自振이니라.
무릇 불자에게는 저마다 인연을 맺는 도가 있다. 도를 듣고서 발심하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닦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깨닫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비방하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등지는 자도 있다. 그렇지만 칭찬하거나 찬양하거나 헐뜯거나 비방하거나 한 자들이 모두 한량없는 이익을 얻는다. 무엇 때문인가? 마치 사람이 손으로 분뇨 그릇을 만지면 그 악취를 단박에 없애기 어렵지만, 옷에 향주머니를 넣어 두면 그 남은 향기가 오히려 저절로 진동하는 것과 같다.
佛云사因緣所作業은百千劫不無야因緣會遇時에果報를還自受라시니爲佛子者正當以時禮敬於諸佛며或誦琅函之玉軸며若値宗師上堂說法면時聞諸佛玄竗之法門야有漸次修進者며有暫時思惟者며有如風過耳者니此等般若種子를深植于心王心田이라가因緣會遇時에皆發生般若之道芽야成就無上之正覺야廣度無數之人天리니豈可曰不成化門而兩家有損乎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으로 지어진 업은 10만 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만날 때에 과보를 도리어 제 스스로 받는다’고 하셨다. 이미 불자가 되었으면 마땅히 때에 맞추어 모든 부처님께 예경해야 하며, 혹은 ‘낭함의 옥축(불경)’을 염송해야 할 것이다. 만약 종사께서 상당하여 설법하는 경우를 만나면, 수시로 모든 부처님의 현묘한 법문을 들어 점차로 닦아 나아가는 자도 있고, 잠시 생각해 보는 자도 있고, 바람이 귀에 스치는 것처럼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등등으로 반야의 종자를 심왕의 마음 밭에 깊이 심어 두었다가, 인연을 만났을 때 모두 반야의 싹을 틔워 위없는 정각을 성취하여 무수한 인간 세계와 하늘 세계의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 그러니 어찌 교화의 문이 되지 못하고, (친가와 외가) 양쪽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6. 인과는 믿기 어렵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因果難信難)
問曰釋氏之所說因果眞虛遠而難信이로다. 何者오? 現今目前之事도猶未可知어而況於過現未三世之事乎아? 孔子ㅣ曰積善之家에必有餘慶이오積惡之家에必有餘殃이라시니誠哉라此言이여不如佛之妄誕이로다.
묻는다.
“석가모니가 설한 인과법은 참으로 허황되고 아득해 믿기 어렵다. 왜 그런가? 지금 눈앞의 일도 오히려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과거·현재·미래라는 삼세의 일이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악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야말로 진실하다. 불교의 허망한 거짓말과는 전혀 다르구나.”
答曰你之所引善惡이皆是因果也ㅣ라. 然이나不可以執著也ㅣ니聽吾一言라瞽叟頑父로有何積善이관感得如舜之聖子乎아? 又堯舜은天下之聖人也ㅣ어有何積惡야堯有丹朱不肖之子며舜有尙均不賢之兒耶아? 自古及今으로天下에有如是者甚衆이라不可一一枚擧ㅣ나然이나今以世之所共聞者로言之리라. 孔子有何不善관困於陳蔡之間者ㅣ爲七日矣ㅣ며顔淵은以何報故로致早喪乎ㅣ며閔子蹇은以何怨故로得嚚母乎아? 以此論之컨積善之家에有餘慶고積惡之家에有餘殃者ㅣ意在何處오?
대답한다.
“그대가 인용한 선악이 모두 인과법이다. 하지만 그것을 집착해서는 안 된다. 내 말을 한번 들어 봐라. 고수는 완악한 아버지였는데, 무슨 선을 쌓았기에 순임금과 같은 성인 아들을 두게 되었고, 또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하의 성인이신데 어떤 악을 쌓았기에 요임금에게는 단주라는 못난 자식이 있고, 순임금에게는 상균이라는 현명하지 못한 아들이 있었던 것인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이와 같은 사례가 너무도 많아 일일이 거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들 아는 사실로써 이를 말해 보겠다. 공자께서는 어떤 선하지 못함이 있었기에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욕을 치른 것이 7일이나 되었으며, 안연은 어떤 과보로 요절했으며, 민자건은 어떤 원한을 맺었기에 패악한 어머니를 만났을까? 이로써 논해 보자면 ‘선을 쌓은 집안에는 남은 경사가 있고, 악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고 말한 뜻은 어디에 있는가?
就乎吾佛設敎之意야觀之컨人人箇箇ㅣ皆是自作自受ㅣ오非天人之所能與奪也ㅣ니라. 古云호欲識前生因인今生受者ㅣ是ㅣ오欲識未來果今生作者ㅣ是라니故로或有今生에造業야而今生受報者며或有二三生后에受報者며或有卽因卽果者니如是造業受報ㅣ各有不同也ㅣ니라.
0001_0012_a_01L우리 부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뜻에 입각해서 이를 살펴보면, 사람마다 저마다 모두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지, 하늘이나 다른 사람이 능히 주거나 빼앗는 것이 아니다. 옛말에 ‘전생의 원인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다. 미래의 과보를 알고 싶은가?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금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고, 혹은 2생이나 3생 뒤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원인을 짓자마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것이 각각 같지 않음이 있다.
若專以所修業緣으로言之컨或有初分修善而中分作惡者며或有中分修善而末分作惡者며或有初中作惡而末分修善者며或有純修善業者며或有純修惡業者며或有善勝惡劣者며或有惡勝善劣者며或有善惡均修者며或有善惡雜修者나니因以如是樹緣으로善惡諸趣와隨業陞沈을亦不可一定也ㅣ니如堯子之不肖와舜子之不賢과孔丘之遭困과顔淵之中夭와子蹇之惡母가皆由宿世業緣之所致也ㅣ니라.
만약 오로지 닦은 업연業緣만 가지고 말해 본다면, 혹은 초년에는 선을 닦다가 중년에 악을 짓는 경우도 있고, 혹은 중년에 선을 닦다가 말년에 악을 짓는 경우도 있고, 혹은 초년과 중년에 악을 짓다가 말년에 선을 닦는 경우도 있고, 혹은 순전히 선업만 닦는 경우도 있고, 순전히 악업만 닦는 경우도 있다. 혹은 선이 수승하고 악이 하열한 경우도 있고, 혹은 악이 수승하고 선이 하열한 경우도 있고, 혹은 선과 악을 고르게 닦은 경우도 있고, 혹은 선과 악을 뒤섞어 닦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심은 업연으로 인하여 다양한 선한 갈래와 악한 갈래, 업을 따라서 (다양한 갈래에) 떴다 가라앉는 것 또한 일정하지 않다. 요임금의 아들이 못나고, 순임금의 아들이 현명하지 못하고, 공자가 곤욕을 당하고, 안연이 중간에 요절하고, 민자건이 악한 어머니를 만났던 것은 모두 숙세의 업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馬勝이云諸法이從緣生며亦從因緣滅나니我佛大沙門이常作如是說이라시니所謂因果者如影隨形며如響應聲야善惡이隨緣야莫逃難越이니此是獅子王의決定之說也ㅣ니라. 父母之善惡業緣도其所報應을子孫이猶不能代受어든何況於祖先之積善積惡乎아.
마승이 말하기를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생기며 또 인연 따라 소멸한다. 우리 부처님 대사문께서는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고 하였다. 이른바 인과란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듯,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듯 하여, 선과 악이 인연을 따르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것이 사자 임금(부처님)께서 하신 분명하신 말씀이다. 부모가 지은 선악의 업연도 그 대갚음을 자손이 오히려 대신 받을 수 없는데, 하물며 선조가 쌓은 선과 악에 대해서는 말해서 무엇하랴.”
7. 선조의 업이 자손에게 미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積善引證難)
問曰子之言이謬矣로다. 今에有人이或行犯逆者면一門이遭戮에禍連於子孫니此豈非積惡之餘殃이며有人이或作勳勞者면天下戴名에榮及於後裔나니此豈非積善之餘慶耶아?
0001_0012_b_01L묻는다.
“그대가 한 말은 잘못되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혹 범죄나 역적질을 행하면 한 가문이 죽임을 당하여 그 화가 자손에게까지 이어지니, 이것이 어찌 악을 쌓아 후손에게 남겨지는 재앙이 아니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혹 공로를 세우면 천하 사람들이 이름을 받들어 영화가 후손에게까지 미치니, 이것이 어찌 선을 쌓아 경사가 후손에게 미친 것이 아니겠는가?”
答曰敎有同業與別業니同業者國王이與人民으로爲同業故로同生于一國고父母ㅣ與子女로爲同業故로同居于一家며乃至禽獸魚鼈과蟻蜂蠅蚊이라도亦各有部屬야區分이各異나니故로國家有難면人民이塗炭고國家有治면人民이以寗며父母有慶면子女ㅣ歡喜고父母有患면子女ㅣ憂愁나니此卽以宿世業緣과同業所生故로然也ㅣ니라.
대답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동업과 별업이 있다. 동업이란 국왕이 인민과 같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한 나라에 함께 태어나고, 부모가 자녀와 같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한집에 함께 살고, 나아가 날짐승·들짐승·물고기·자라와 개미·벌·파리·모기 등도 역시 각각 집단이 있어 구분이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국가에 재난이 있으면 온 인민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가 잘 다스려지면 온 인민이 편안하며, 부모에게 경사가 있으면 자녀가 환희하고, 부모에게 재난이 있으면 자녀가 근심한다. 이것은 곧 숙세의 업연과 동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又所謂別業者는如一國이騷擾에或一方이安妥며或一縣이見災에他郡은無事며或十人이投入死地에兩三이得免니此卽是同業中別業也ㅣ니라. 如是衆生受報之差別을不可以筆盡也ㅣ니汝但思之라. 還有明白耶아無아? 你所言禍門榮孫者ㅣ亦是同業之所感也ㅣ니라.
또 소위 별업이란 온 나라가 소란스러워도 간혹 한 지방은 안전하며, 혹은 같은 현이 재앙을 만났어도 다른 군은 무사하며, 혹은 열 사람이 똑같이 사지에 던져졌어도 두세 사람은 그 재앙을 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곧 동업 속에 들어 있는 별업이다.
이와 같이 중생이 과보를 받는 차별은 붓으로 이루 다 쓸 수 없다. 그대는 부디 생각해 보라. 명백한지 아닌지. 그대가 말한 한 가문이 화를 당하고 자손이 영화로운 일도 역시 동업으로 감응한 것이다.”
8. 귀천이 대물림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多分貴賤難)
問曰余以所聞컨富貴之家에多産富之兒고貧賤之家에恒出貧賤之子나니其理ㅣ何哉오? 莫非是善惡之所招也歟아?
묻는다.
“내가 듣기로는 부귀한 집안에는 부귀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빈천한 집안에는 항상 빈천한 자식이 나온다 하니, 그 이치가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부모가 쌓은) 선악에서 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答曰布施濟衆은福之所從이오慳貪自利禍之所伏이라. 己之所種을他不能奪며人之所受를吾不能與也ㅣ니故로隨其善惡業之所修야隨緣隨生나니是以로福厚者應生於富之家고福淺者當出乎貧賤之家理之常然이라不足疑也ㅣ니라.
대답한다.
“보시하여 중생을 구제하면 복이 따라오고, 인색하고 탐하여 제 이익만 챙기면 재앙이 잠복하게 된다. 자기가 심은 것을 남이 빼앗을 수 없고, 남이 받을 것을 내가 함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악의 업을 어떻게 닦았는가에 따라, 연에 따라 생명을 받게 된다. 이런 까닭에 복이 두터운 자는 응당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고, 복이 얕은 자는 당연히 빈천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이치가 항상 그런 것이다. 의심할 것이 못된다.
佛云사貧窮에布施難이라시니貧窮而能作善者ㅣ幾多乎아. 富之人은散財施穀야以救恤窮乏며或修補伽藍며或供養三寶나니如是因緣이皆修福之事也ㅣ라作如是行者는當生此家나니라. 前所謂福家所生同業之人은本因前業而作聚者ㅣ나然이나中有窮賤者니如奴婢雇傭이是也ㅣ라. 此等之人은惟植前緣이오不修前福故로今雖幸生一家나乃得是果니玆亦同業中別業也ㅣ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빈궁하면 보시하기 어렵다’고 하셨으니, 빈궁한데도 선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귀한 사람은 재물을 나누어 주고 곡식을 베풀어 궁핍한 자들을 구휼하며, 혹은 가람을 보수하기도 하며, 혹은 삼보께 공양하기도 한다. 이런 인연이 모두 복을 닦는 일이다. 이렇게 선행을 지은 자는 당연히 이런 집안에 태어나게 된다. 앞에서 소위 복된 집안에 태어날 동업을 지은 사람들은, 본래 전생의 업으로 인하여 같은 무리를 이루었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도 빈천한 자가 있다. 예컨대 노비나 일꾼이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전생의 인연만 심고 전생의 복은 닦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비록 다행히 같은 집안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에 이런 과보를 얻은 것이다. 이것 역시 동업 가운데 별업이다.
然이나夫人이若不善修福緣야以資來生고忘却前緣而反恣惡業則必當輪墜也ㅣ니라. 福長不久라終歸貧寒나니福盡墮落은理之常然이라富貧賤과同業別業을何足疑哉아?
그러나 대저 사람이 만약 복된 인연을 잘 닦아 내생의 밑천으로 삼지 않고, 전생의 인연을 망각하고서 도리어 방자하게 악업을 지으면, 반드시 응당 악도로 떨어진다. 복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 결국은 가난하고 외롭게 되고 만다. 복이 다 되면 떨어지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다. 부귀와 빈천, 동업과 별업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9. 하늘의 내린 명령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天之所命難)
問曰古云天生萬民의必授其職이라니由此觀之컨人之富貧賤과生活作業이都係於天之所命也故로天下에有四民焉니士農工商이是也라善於商者不善於農고善於工者不善於士야四者ㅣ各守其職而不相踐越나니其爲天之所命而然也ㅣ不亦明乎아?
0001_0013_b_01L묻는다.
“옛말에 ‘하늘은 온 백성을 낳을 때에 반드시 그에게 직분을 수여한다’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사람의 부귀빈천과 생활 직업이 모두 하늘의 명령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천하에 네 종의 백성이 있으니, 사·농·공·상이 그것이다. 상업을 잘하는 자는 농업을 잘하지 못하고, 공업을 잘하는 자는 벼슬아치 노릇을 잘하지 못하니, 네 백성이 각각 그 직분을 지키면서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은 하늘의 명령이라서 그런 것임이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答曰你云天生萬民이라니與天主耶蘇之道로是同是別가? 若言同인則孔氏之道ㅣ與天主耶蘇之敎로不必別立也ㅣ오? 若言不同인則其義가安在오? 你事天者乎아違天者乎아?
대답한다.
“그대가 말하기를, ‘하늘이 온 백성을 낳는다’고 한 말은 천주교의 예수 가르침과 같은가, 다른가? 만약 같다면 공자의 도와 천주 예수의 가르침을 따로 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다르다면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하늘을 섬기는 자인가, 하늘을 어기는 자인가?”
曰孔氏之道禮義廉恥와孝悌忠信이上行下化야以極人倫나니此天地之常經이며古今不易之大典也ㅣ라. 子ㅣ何以比於天主耶蘇之敎乎아?
묻는다.
“공자의 도는 예의염치와 효제충신이니, 위로는 몸소 실천하고 아래로는 남을 교화하여 인륜을 완성하는 것이니, 이는 천지의 변함없는 날줄이며 고금에 변함없는 위대한 법도이다. 그대가 무엇 때문에 (공자의 가르침을) 천주교의 예수 가르침에 비교하는가?”
余曰耶蘇謂天造萬物이라고孔氏云天生萬民이라니以理言之컨豈曰不同이리오?
내가 말한다.
“예수는 ‘하늘이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하고, 공자는 ‘하늘이 온 백성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이치로 말한다면 어찌 같지 않다고 하겠는가?”
曰夫子說正說理사敎民以禮며導民以善야不令蒼生으로惑於忘誕야陷於異端커시彼耶蘇之立敎也與儒道로異야不知道在自己心性고卽使人人으로信天父며呼救主며守戒傳道면則死後에當生天堂야得永生不之福樂이오若不爾者卽死䧟地獄야受無量苦라야以此禍福之妄說로誣民而惑世니其爲不同이懸隔天壤이라. 何與論哉ㅣ리오?
(상대방이) 말한다.
“공부자께서는 바른 것을 설하고 이치를 설하시어, 예로 백성을 가르치고 선으로 백성을 이끌어, 뭇 백성들이 거짓말에 속아 이단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셨다. 그러나 저 예수가 세운 가르침은 유교나 도교와 다르다. (저들은) 도가 자기 심성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곧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天父)를 믿고 (그를) 구세주라 부르게 하고 있다. 율법을 지키고 기독교를 전파하면 죽은 뒤에 마땅히 천당에 태어나 영생불멸의 복락을 얻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죽어 지옥에 빠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하여, 이런 화복의 허망한 이야기로 혹세무민하고 있다.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니 어찌 더불어 비교하는가?”
余曰然다聞之言니其理不同을槪可見矣ㅣ로다. 然이나曰天生萬民에地以載之면是天地ㅣ則象民之父母也ㅣ라. 子歸父所理亦當然也ㅣ어你云耶蘇ㅣ妄立生天陷地之說야誘惑民生이라니莫非是欲敎耶蘇야令不事天者乎아! 若爾則據孔氏之道以言之라도是誘人之令子야使陷於不道也ㅣ니道倫常이而今安在오?註曰欲敎耶蘇令不事天則天命之性率性之道安在己逆天者綱常之道亦必無矣
0001_0014_a_01L내가 말한다.
“그렇다. 그대 말을 들으니 그 이치가 다르다는 것을 대개는 알겠다. 그러나 이미 ‘하늘이 온 백성을 낳고 땅이 그들을 싣고 있다’고 말했으니, 이는 하늘과 땅이 곧 수많은 백성의 부모라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 계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치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그대는 말하기를, ‘예수가 (사람을) 하늘에 태어나게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게도 한다는 설을 허망하게 만들어 백성을 유혹한다’고 하니, 이는 그대가 예수를 가르쳐 하늘을 섬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공씨孔氏의 도에 의거하여 언급하더라도, 이는 사람들을 유혹해 아들이 되게 하여, 도가 아닌 것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말한 인륜의 강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예수를 가르쳐 하늘을 섬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면, ‘하늘이 명령한 것이 성이고, 성에 따르는 것이 도이다’라는 (『중용』의 가르침은) 어디에 있는가? 이미 하늘을 거스른 자이니, 강상의 도 역시 반드시 없을 것이다.
吾復問汝노라. 天在那裏야生彼萬民고?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는다.
“하늘이 어디에 있으면서 저 만백성을 낳았는가?”
彼指頭上曰蒼蒼空復空이여無聲亦無臭ㅣ니라.
그가 머리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푸르고 푸르며, 텅 비고 텅 비었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曰然則空是天也아?
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허공이 하늘인가?”
我更問汝노니空是頑空이라. 空本無知ㅣ如土木瓦石之類어니如何生民이리오? 若空彼蒼天이是能生民인必也人人從天下生矣ㅣ리라. 何不聞人이生于天야脚踏虛空而降者耶아?
내 다시 너에게 묻겠다.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허공에는 본래 ‘지각 작용(知)’이 없으니 이는 마치 흙이나 나무나 기왓장이나 돌덩이 등과 같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백성을 낳겠는가? 만약 허공의 저 푸른 하늘이 백성을 낳았다면, 반드시 모든 사람이 하늘에서 하생下生했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 사람이 하늘에서 하생할 때에 허공을 밟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가?”
彼曰天者理也ㅣ니理應群機야發生萬物나니라.
그가 말한다.
“하늘이란 ‘이치(理)’이다. 이치가 수많은 ‘기틀(機)’에 응하여 만물을 발생시킨다.”
余云理非一二也ㅣ라諸理之中에何者爲天고?
내가 말한다.
“이치는 하나둘이 아니다. 여러 이치 가운데 무엇이 하늘인가?”
彼云理惟一耳라. 何言多也오?
그가 말한다.
“이치는 오직 하나뿐이다. 왜 많다고 하는가?”
余曰水有濕之理고火有熱之理며風有動之理고地有載之理니如是諸般萬理를具不能擧也ㅣ라指甚麽야爲天乎아? 若以火理로爲天인火中에應生萬民이오若以土理로爲天인地中에常生萬民리니以理言之컨一切가皆生萬物야사始得다. 若指空爲天이면何不於空中에生民乎아?
내가 말한다.
“물에는 축축함이라는 이치가 있고, 불에는 따뜻함이라는 이치가 있고, 바람에는 움직임이라는 이치가 있고, 땅에는 (만물을) 싣는 이치가 있다. 이처럼 여러 갈래의 수많은 이치를 다 거론할 수 없다. 어느 것을 지목해 하늘이라 하는가? 만약 불의 이치로써 하늘을 삼는다면 불 속에서 응당 만백성이 태어나야 할 것이요, 만약 흙의 이치로써 하늘을 삼는다면 흙 속에서 응당 만백성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일체가 모두 만물을 낳아야만 될 것이다. 만약 허공을 가리켜 하늘이라 한다면 왜 공중에서는 만백성이 태어나지 않는가?”
彼曰太極之理가是天也ㅣ니라.註曰或恐有人稱太極爲天預備防難也
그가 말한다.
“‘태극이라는 이(太極之理)’가 바로 하늘이다.”혹 어떤 이들 중에 태극을 하늘로 칭할 것 같아, ‘방난防難(상대의 비판을 차단)’을 미리 준비한다.
余曰吾常聞太極之說니太極이生陰陽兩儀어던其淸而上浮者를謂之天이오其濁而下凝者를謂之地也ㅣ라. 於是에兩儀ㅣ生后에天地開焉고天地開而四象이生焉고四象이生八卦고八卦ㅣ生六十四卦云云니由此觀之컨太極은乃能生之主ㅣ오自兩儀로及於六十四卦皆爲所生之物也ㅣ로다. 然則所謂太極之理를謂之天者已於理에相違언이와且以萬物一太極之說로推之컨則亦有可通之理也ㅣ로다.
0001_0014_b_01L내가 말한다.
“내 평소 태극太極의 학설을 들으니, ‘태극이 음과 양 둘을 낳았는데, (그중) 맑아서 위로 뜬 것을 하늘이라 하고, 탁하여 아래로 응결된 것을 땅이라 한다. 이렇게 (음과 양) 둘이 생긴 뒤에 하늘과 땅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열리자 (少陽·老陽·少陰·老陰의) 사상四象이 생기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가 육십사괘를 낳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건대, 태극이 (만물을) 낳는 주체이고, 음과 양에서 육십사괘까지는 모두 (태극에서) 생겨난 물건이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하기를 ‘태극이라는 이치가 바로 하늘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이치에 위배된다. 그런데 ‘만물은 저마다 동일한 태극을 갖추고 있다’는 학설로 추론해 본다면 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다.”
然이나我更問汝노라. 所謂太極云者는一也아多耶아? 是知耶아是無知耶아? 是遍耶아是不遍耶아? 你將一太極之理야謂爲天니若言太極이惟一이면如何能生萬民이리오? 夫陰陽이和合然後에萬物이發生니你云一理가生民者於理에不當이오.
그렇다면 내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이른바 태극이라 하는 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그것은 지각 작용(知)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대가 ‘동일한 태극’이라는 이치를 가지고, 이것을 하늘이라 하였다. 만약 ‘태극은 오직 하나이다’라고 말한다면, (하나인 태극이) 어떻게 만백성을 낳을 수 있겠는가? 대저 음과 양이 화합한 뒤에 만물이 발생하니, 그대가 말한 ‘하나의 이理가 만백성을 낳는다’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若言多則太極之體가無有定處로다. 然則頭頭物物花花草草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有知至於飛禽走獸와昆蟲魚鼈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無知一切無情草木土石之類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遍인風氣虛空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不遍인必有定處리니世界無數人民이何所從生乎아?
만약 ‘태극은 여럿이다’라고 말한다면, 태극의 본체는 일정한 처소가 없는 꼴이다. 그렇다면 두두 물물과 온갖 꽃, 온갖 풀 역시 모두 만백성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태극에) 지각 작용(知)이 있다고 말한다면, 심지어는 날아가는 새와 달리는 짐승과 곤충과 물고기, 자라까지도 역시 만백성을 낳아야 한다. 만약 (태극에) 지각 작용이 없다고 말한다면, 일체의 무정물인 풀·나무·흙·돌 등의 종류까지도 역시 만백성을 낳아야 한다. 만약 (태극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바람 기운이나 허공까지도 역시 모두 백성을 낳아야 한다. 만약 (태극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반드시 일정한 처소가 있어야 하는데, 세상의 무수한 인민이 어디로부터 태어나는가?
若言天理公然에以待陰陽交而後에生民者現自世界人種으로至於蟲魚히一切有識含靈이一日一夜에陰陽相交者ㅣ數如塵沙리니應當一合一生며百合百生며萬合萬生이可也어而今不爾者何오?
만약 ‘하늘의 이치(天理)’는 공편하여 음과 양이 서로 어우러지길 기다린 뒤에 만백성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현재 세상의 인간에서부터 곤충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식을 가지고 있고 생명체들이 하루 밤낮 암수가 서로 짝짓기 한 횟수는 (항하강의) 고운 모래알 숫자만큼 많을 것이다. 응당 한 번 짝짓기 하면 한 생명이 태어나고, 백 번 짝짓기 하면 백 생명이 태어나고, 만 번 짝짓기 하면 만 생명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若言太極之理가如潮水之出入야其氣가流溢則人民이生인天地間生靈이每於日夜에不分時刻고無有隔斷야生者ㅣ無數야亦如塵沙리니你所謂天生萬民之說을分明指示看라.
만약 태극의 이치는 조수가 들고 나는 것과 같아서 그 기운이 넘쳐흐르면 만백성이 태어난다고 말한다면, 하늘과 땅 사이의 생명체들은 매일 밤낮으로 시간에 관계없이 잠시도 끊어짐이 없어, 태어나는 자가 무수하여 또한 (항하강의) 고운 모래알 수처럼 많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말한 ‘하늘이 만백성을 낳는다’는 주장을 분명히 지시해 보라.”
10. 태극설을 끌어들인 힐난에 대한 반론(引太極難)
客이良久에復起曰易에云太極이生兩儀고兩儀ㅣ生四象고四象이生八卦고八卦ㅣ定吉凶고吉凶이生大業이라니此理之至道也ㅣ라. 子雖答話簡辨을演如河沙라도皆是異端之道也ㅣ니라.
손님이 한참 잠자코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말한다.
“『주역』 (「계사전」)에서 말하기를, ‘태극이 (음과 양)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가 길흉을 결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고 하였다. 이는 이치의 지극한 도이다. 그대가 비록 대답과 변론으로 연설하기를 항하강의 모래알 수처럼 한다 해도, 이것은 모두 이단의 도이다.”
答曰吾聞說니太極이生兩儀며兩儀ㅣ生而於是乎三才ㅣ成焉고萬物이發生니天行四時之道며人有五常之義를於斯에足見深意로다. 然則所謂太極은從何而出고?
대답한다.
“내가 그대의 말을 들어 보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생기자 여기에서 (하늘·땅·사람의) 삼재三才가 성립되고 만물이 발생하니, 하늘에는 네 계절의 도가 운행되고 사람에게는 오상의 의리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 깊은 뜻은 충분히 알겠다마는 이른바 태극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曰從無極而出이니라.
(손님이) 대답한다.
“무극에서 나왔다.”
余曰無極은曾從何出고?
내가 말한다.
“무극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曰無極은空寂야無有出處ㅣ니라.
(손님이) 대답한다.
“무극은 공적하여 출처가 없다.”
余曰無出處是以虛無自然으로爲宗이라卽無因者也ㅣ니如無其因이면如樹無根야枝幹花果ㅣ終不自立리니太極兩儀四象은從何能立乎아?
내가 말한다.
“이미 출처가 없다면 이는 허무자연으로 근원을 삼는 것이니, 이것은 ‘무인無因’인 것이다. 만일 그 원인이 없다면, 마치 나무에 뿌리가 없어서 가지·줄기·꽃·열매가 끝내 스스로 성립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태극과 양의와 사상이 무엇에 근거하여 성립할 수 있겠는가?”
曰無極而太極이오太極而無極이니其體不二야充塞乎天地之間이어니何可論喋於其間乎아?
0001_0015_b_01L(손님이) 대답한다.
“무극이면서 태극이고, 태극이면서 무극이다. (무극과 태극은) 그 본체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데, 어찌 그 사이에 있는 것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있겠는가?”
余曰余亦學焉而未至者也ㅣ라博問先知야欲釋吾心之滯碍耳니라. 復問노니太極之名을其誰先立也오太極이能生三才라니盖太極이自立其名耶아?
내가 말한다.
“나 역시 (도를) 배우는 사람일 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먼저 안 사람들에게 널리 물어, 내 마음에 막히고 걸린 것들을 풀어 버리고자 한다. 다시 묻노니, 태극이라는 이름은 누가 가장 먼저 세웠는가? 또 ‘태극이 삼재를 낳았다’고 했다. 대저 태극 스스로가 그 이름을 세운 것인가?”
曰伏羲氏ㅣ始先天八卦시고周文王이變作後天八卦시니孔子以作周易사發揮此道也ㅣ시니라.
(손님이) 말한다.
“복희씨가 처음으로 ‘선천 팔괘’를 그리시고, 주나라 문왕이 이를 변용해 ‘후천 팔괘’를 만드시자, 공자께서 이를 사용하여 『주역』을 지으시어, 이 도를 널리 발휘하셨다.”
余曰然則是人이生太極也ㅣ오非太極이能生三才與萬物也ㅣ로다.
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이는 사람이 태극을 낳은 것이지, 태극이 삼재와 만물을 낳은 것은 아니다.”
曰聖人이將本有之太極사但發明而已也ㅣ시니라.
(손님이) 말한다.
“성인께서 본래 존재했던 태극을 가져다가, 다만 (그 설명을) 까발려 밝혔을 뿐이다.”
余曰然則吾ㅣ知之矣ㅣ라. 子道聖人이發明太極이라니故悉케라. 聖人은爲能發明之主ㅣ오太極은爲所發明之物이라. 是能所가已分矣ㅣ오. 若道三才與萬物이卽太極이오太極이卽三才與萬物이라면則是能所가絶對者也ㅣ어旣有能所인儒之所說萬物一太極之理安在오? 若道萬物이各具一太極이라면如何人與禽獸와一切蠢動含靈이豈有智愚之差別乎ㅣ며若道其所受稟氣也ㅣ有淸濁而然歟則太極與天地其有邪乎ㅣ며若道太極與無極이體本不二야而能生萬物이라면則太極은爲能生因者니當其生緣之時야是有知而生緣耶아? 抑無知而生緣耶아? 若言有知而生緣인如人이一念心生야起種種分別緣起之時에當了了分明야一一自照ㅣ可也ㅣ오.
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알겠다. (그대는) ‘성인께서 태극을 까발려 밝혔다’고 말하니, 알겠도다. 성인은 까발려 밝힌 주체가 되고, 태극은 까발려 밝혀진 물건이 된다. 이는 ‘능’과 ‘소’가 이미 나뉜 것이다. 만약 (그대가) ‘삼재와 만물이 태극과 상즉해 있고, 태극이 삼재와 만물과 상즉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능’과 ‘소’의 상대가 끊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능’과 ‘소’가 있다면, 유교에서 말하는 ‘만물 속에 동일하게 태극이 갖추어져 있다’는 이치가 어찌 성립될 수 있겠는가? 만약 ‘만물이 각각 동일하게 태극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찌 사람과 날짐승과 들짐승 등 일체의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들에게 지혜롭고 어리석은 차별은 왜 존재하는가? 만약 ‘(하늘로부터) 받아 타고난 기운에 맑고 탁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태극과 천지는 그야말로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태극과 무극은 본체가 서로 다르지 않아 능히 만물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태극은 능히 낳은 원인자가 된다. 그렇다면 그 연을 낳는 때에, 지각 작용이 있으면서 연을 낳는 것인가? 아니면 지각 작용이 없으면서 연을 낳는 것인가? 만약 ‘지각이 있으면서 연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예컨대 사람이 한 생각이 마음에서 생겨 갖가지 분별을 일으켜 연기할 때에, 응당 또렷또렷하고 분명하여 낱낱이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又三才與萬物이爲太極之所生緣起則普土生靈과以及無情히亦皆自能發明太極之理矣어何假伏羲文王孔子之口也ㅣ며若言無知而生綠인是與無情으로等이니那山河草木은何不生三才與萬物耶아? 不知太極이從何而出고妄立名相야爲三才之始와萬物之祖云니足見鄙矣ㅣ로다.
0001_0016_a_01L또 삼재와 만물이 태극에서 생겨나 연기한 것이라면, 온 대지의 생명체와 나아가 무정물까지도 역시 모두 저절로 태극의 이치를 까발려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복희씨와 문왕과 공자의 입을 빌렸는가? 만약 ‘지각 작용이 없으면서 연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무정물과 같다. 그렇다면 저 산과 강과 풀과 나무들은 왜 삼재와 만물을 낳지 못하는가? 그대는 태극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알지 못하고, 이름과 모양을 망령스럽게 수립하여 삼재의 시초와 만물의 원조를 운운하니, 그 비루함을 충분히 알겠다.
夫天地與我同根이며萬物이與我一體어妄說天生萬民이라며一切衆生이隨業隨生이어妄說天授民職이라며又爲人之折挫야不知自語之相違고妄云天則理也라며又問到何理爲天之說야妄謂太極之理야爲天이라니尤甚可恥也ㅣ로다. 謂太極이生兩儀輕淸而上浮者ㅣ爲天고重濁而下凝者ㅣ爲地라니輕淸且浮者ㅣ爲天이어니又以太極之理로爲天者意在甚處오?
대저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거늘, (그대들은) ‘하늘이 만백성을 낳는다’고 망령스럽게 말한다. 또 일체중생이 업에 따라 태어나거늘, (그대들은) ‘하늘이 만백성에게 직분을 수여한다’고 망령스럽게 말한다. 그러다가 또 남에게 좌절당하고도 자신의 말이 서로 모순된 줄도 모르고, ‘하늘(天)이 곧 이치(理)이다’라고 망령스럽게 말한다. 또 ‘어떤 이치(理)가 하늘(天)이냐’는 질문에 부딪히자, ‘태극의 이치가 하늘이다’라고 망령스럽게 말하니, 더욱 심히 부끄러워할 만하다. 그대는 말하기를, ‘태극이 양의를 낳고, 가볍고 맑아 위로 뜨는 것은 하늘이 되며, 무겁고 탁하여 아래로 엉긴 것은 땅이 된다’고 하였다. 이미 가볍고 맑아 뜨는 것이 하늘이 된다고 하였는데, 다시 ‘태극의 이치’가 하늘(天)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空生大覺中이如海一發이로다. 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어何心外에妄立名相며又覺性外에別立太極야爲萬法之因니是非覺性之正因이라卽邪因也ㅣ로다.
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서 생기는 것이 마치 바다에 물거품 하나 일어나는 것과 같다. 유루의 중생이 사는 미세한 먼지처럼 많은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지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어찌 마음 밖에 이름과 모양을 망령스럽게 세우는가? 또 ‘깨달음의 성품(覺性)’ 밖에 별도로 태극을 세워 만법의 원인으로 삼으니, 이는 ‘깨달음의 성품’을 ‘바른 원인(正因)’으로 삼는 것이 아니니, 곧 ‘사인邪因’이다.
又不知諸法이本空無着며境似浮雲聚散고但執事相야以三綱五常으로爲道니是常見也ㅣ오死後에以魂飛魄散야永歸寂로爲理니是斷見也ㅣ라. 斷常이非道라豈知無上大涅槃이圓明常寂照也ㅣ리오?
또한 모든 법이 본래 공하여 집착할 것이 없으며 경계가 뜬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과 같음을 알지 못하고서, ‘현상의 모양(事相)’만을 그저 집착해서 삼강과 오상을 ‘도道’라고 하니, 이는 ‘상견常見’이고, 사후에는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져 적멸의 상태로 아주 돌아가는 것을 ‘이理’라고 하니, 이는 ‘단견斷見’이다. ‘단견’과 ‘상견’은 도가 아니니, 위없는 완전한 열반(大涅槃)이 원만하고 밝고 항상하고 고요하고 비추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11. 태극의 이치는 의심할 수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太極無疑難)
客이曰子ㅣ毁斥聖人之道를若甚니其於太極之理에徹底無疑乎아?
손님이 말한다.
“그대가 성인의 도를 헐뜯고 배척하는 것이 심한 듯하다. 그대는 태극의 이치에 철저하여 의심이 없는가?”
答曰平等性中에無彼此고大圓鏡上에絶親疎라니你無以取捨憎愛之心으로論道也ㅣ어다. 自唐宋以來로斥佛之徒ㅣ正不知佛敎之大體고簸兩片皮야口裡膠生토록東說西說며胡言漢語니甚可愚痴者也ㅣ로다. 而今에孤陋儒生과及至童稚男女히未嘗聞一法談며亦未嘗閱一卷經이라不能曉得佛法之大意고但將冊子上諸儒之矯言飾辭야遞相傳受야先以斥佛로爲大務야以要世間之名利니愚哉라. 榮辱毁譽ㅣ自有報隨니豈必在於排佛乎아? 不覺令人口吐也ㅣ로다.
대답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속에는 이것과 저것이 없고, 대원경지大圓鏡智 위에는 가깝고 소원함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대는 취하고 버리거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고, 도를 논하라. 당·송 이후로 불교를 배척하는 무리가 참으로 불교의 분명한 본체를 알지 못하고 두 조각의 입술을 나불거리며 입안에 아교가 생기도록 이리저리 이 말 저 말 하니 참으로 가히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도 고루한 유생들과 나아가 어린애들에 이르기까지 한마디의 (불교) 법담도 들어 보지 못하고 또 한 권의 경전도 읽어 보지 못하여 불법의 분명한 뜻을 능히 밝히지도 못했으면서도, 그저 (당·송에서 만들어진) 책자에 실린 여러 유생들의 교묘한 말과 번드레한 문장만 가지고, 서로서로 전수하며 앞을 다투어 불교를 배척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큰 임무를 삼아,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바란다. 어리석구나! 영광과 치욕, 비방과 칭찬은 (저마다의) 과보에 따라 스스로 있는 것이지, 어찌 불교를 배척한다고 반드시 있겠는가?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하는구나!
至以事上涇渭로論之라도人人對酬之際에尋彼此之直曲야分是非之如何ㅣ어嗟夫라! 兄弟야! 何不嘗醍醐之上味고但聞人而據呼曰苦哉苦哉오? 自古及今으로國王大臣과碩儒老師ㅣ頗有知覺者면竟歸於三寶야懺悔求道니是ㅣ求名而然耶아求利而然耶아? 若非通達人士ㅣ欲了平生之一大事者면則不爾也ㅣ리라. 兄弟아! 莫學糊塗라如聞言而謗佛인是ㅣ何異於一犬이吠影에百犬이吠聲者也ㅣ리오?
0001_0017_a_01L사안의 경위로 논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대꾸하고 응수할 때는 피차의 곡직을 살펴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아! 형제여. 어찌 ‘제호’의 최상의 맛을 맛보지도 않고, 그저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 말에 의거하여 ‘쓰다, 쓰다’라고 소리치는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왕과 대신과 학문이 높은 유학자와 원로 스승들 중에 자못 지각이 있는 자라면, 마침내는 삼보에 귀의하여 참회하고 도를 구하였다. 이렇게 한 것이 명예를 구하느라 그런 것인가? 이익을 얻으려고 그런 것인가? 만약 통달한 선비가 평생의 ‘일대사인연’을 마치고 싶었던 것이 아닐 것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형제여! 호도하는 남의 말을 배우지 마소서. 만약 남의 말만 듣고 불교를 비방한다면, 이것은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자 백 마리 개가 그 소리를 따라 짖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大抵儒與道之玄竗不越三玄니周易에爲眞玄이오老子爲虛玄이오莊子爲談玄이라니라. 淸凉華巖玄譚에云易有太極이生兩儀고兩儀ㅣ生四象고四象이生八卦고八卦ㅣ定吉凶고吉凶이生大業者ㅣ라며, 注에云夫有必始於無故로太極이生兩儀也ㅣ니太極者無稱之稱이라. 不可得而名일取其有之所極야況之太極者也ㅣ라.
대저 유교와 도교의 현묘함은 삼현三玄을 넘지 않는다. 『주역』은 진현眞玄이고, 『노자』는 허현虛玄이고, 『장자』는 담현談玄이라 한다. 청량 국사의 『화엄경수소현담』에 이르기를, ‘『주역』에서 이르기를,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가 길흉을 결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고 했고, (그 『소초』에서) 주를 달아 이르기를, ‘대저 유有는 반드시 무無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태극이 양의를 낳으니, 태극이란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어 부득이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무어라 이름을 불일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을 취하여, 그것을 ‘태극’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했다.
孔氏云太極은謂天地未分之前에混而爲一이니卽是太初太易也ㅣ라고老子云道生一이라니卽此太極이라. 謂混元分에卽有天地故로云太極이生兩儀라니卽老子一生二也ㅣ오不言天地者指其物體야與四象으로相對故로云兩儀ㅣ니謂兩體容儀也ㅣ니라.
공자는 이르기를, ‘태극이란 하늘과 땅이 나뉘기 전에 혼융하여 하나가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니, 이것이 태초太初 또는 태역太易이다’라고 하였다. 노자는 이르기를, ‘도가 하나를 낳는다’고 하였으니, 즉 하나가 태극이다. 이를테면 혼융한 원기元氣가 쪼개져서 하늘과 땅이 있게 되기 때문에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고 한 것이다. 즉 노자가 ‘하나가 둘을 낳는다’고만 말하고, 하늘과 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물체를 지목하여 사상과 서로 대비했기 때문에 ‘양의’라고만 말한 것이니, 이를테면 각각의 체(『주역』의 ‘태극’과 『노자』의 ‘도’)가 양의를 머금은 것이다.
若准列子有太易太初太始太素니太易者未見氣也ㅣ오太初者氣之始也ㅣ오太始者는形之始也ㅣ오太素者는質之始也ㅣ라며彼注云質은性也ㅣ라고又釋에太易은指周易太極이니此太初ㅣ오非太易이便成太極야在初라며若准易鉤命訣說컨有五運니前四同列子고第五에名太極則太極이非初라.
만약 『열자』에 의할 것 같으면, ‘태역·태초·태시·태소가 있으니, ‘태역’은 기운이 나타나기 이전이고, ‘태초’는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태시’는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태소’는 질료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장담의 『열자』) 주석에서 ‘질료는 성질을 뜻한다’고 하였다. 또 (청량 국사께서) 해석하기를, ‘태역은 『주역』의 태극을 가리키니, 이는 ‘태초’이지 ‘태역’이 곧바로 태극을 이루어서 처음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만약 『역구명결』에 준해서 설명하면, 오운五運이 있으니, 앞의 네 가지는 『열자』와 같고, 다섯 번째를 ‘태극’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즉 ‘태극’은 첫머리는 아니다.
釋與列子로大同니라. 運은卽運數오易은謂改易이니元氣始散을謂之太初ㅣ오氣形之端을謂之太始ㅣ오形變有質을謂之太素오質形이已具를謂之太極이니雖小異同이나皆是元氣가生天地耳라.
0001_0017_b_01L(청량 국사의) 해석과 『열자』의 설명은 완전히 같다. ‘운運’은 곧 ‘운수’를 뜻하고, ‘역易’은 ‘바뀐다’는 뜻이니, 원기元氣가 흩어지기 시작한 것을 ‘태초’라 하고, 원기의 실마리를 ‘태시’라 하고, 모양으로 변하여 질료가 생긴 것을 ‘태소’라 하고, 질료와 모양이 모두 갖춰진 것을 ‘태극’이라 한다. 비록 (각 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모두 ‘원기’가 천지를 낳는다는 것이다.
言兩儀가生四象等者孔氏云謂木金水火가稟天地而有故로云兩儀가生四象이오土則分王四時며又地之別故로唯云四象이라며四象이生八卦者謂震木离火兌金坎水各主一時라고又巽同震木고乾同兌金고加之以坤艮之土야爲八卦也라며八卦定吉凶者八卦ㅣ旣立에爻衆이相推야有吉凶故ㅣ며吉凶이生大業者萬事各有吉凶야廣大悉備故로能生天下大事業也ㅣ라니라.
‘양의가 사상을 낳는다’고 말한 것 등에 대해서, 공안국이 말하기를, ‘말하자면 ‘목’·‘금’·‘수’·‘화’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생기기 때문에 양의가 사상을 낳는다고 하였다. 토는 곧 사계절을 나누어 주관하되 ‘지’와는 다르기 때문에 오직 사상만 거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는 것은, ‘진목震木·이화离火·태금兌金·감수坎水가 각각 한 계절을 주관하고, 또 손巽은 진목震木과 같고, 건乾은 태금兌金과 같고, 여기에다 곤坤과 간艮의 토土를 더하여 팔괘가 된다’고 한다.
‘팔괘가 길흉을 결정한다’고 한 것은, ‘팔괘가 성립되고 나면 효상爻象이 서로 미루어서 길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는 것은, ‘만사에 각기 길흉이 있어 넓고 크게 다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위대한 사업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又易에云一陰一陽之謂ㅣ道ㅣ오陰陽不測之謂ㅣ神이라니一陰一陽之謂道者注에云道者何오無之稱也ㅣ니라. 無不通也ㅣ며無不由也況之曰道ㅣ오寂然無體야不可爲象이라. 必有之用이極而無之功이顯故로至乎神無方而易無體야而道를可見故로窮變以盡神며因神以明道나니陰陽이雖殊나無一待之라在陰에爲無陰이라陰이以之生며在陽에爲無陽이라陽이以之成故로曰一陰一陽ㅣ謂道라니라.
또 『주역』에서 이르기를,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음과 양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는 구절에 대해, (왕필의)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란 무엇인가? 무無를 두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통하지 못하는 게 없고, 그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게 없기 때문에, 이를 비유해서 도라고 했지만, 고요하고 본체가 없어서 ‘상象’을 그릴 수 없다. 반드시 유有의 작용이 극도에 이르러야, 무의 공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神’이 일정한 방위가 없어지고 ‘역易’이 본체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러야만 ‘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끝까지 궁구해야만 ‘신’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신’으로 인해서 ‘도’를 밝힐 수 있다. 음과 양이 비록 다르긴 하지만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음의 상태에서는 무음無陰이어서 음이 이로써 생하며, 양의 상태에서는 무양無陽이어서 양이 이로써 성립한다. 그래서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일러 도라고 한다.’
孔氏疏에云一은謂無也ㅣ니無陰無陽이라사乃謂之道ㅣ니라. 一이得無名者無是虛無니虛無不可分別야唯一而已故로以一로爲無也ㅣ니若有境則有彼此相形야有二有三야不得爲一故로在陰之時에而不見爲陽之力야自然而有陰陽며自然而無所營爲니此則道之謂也ㅣ라. 故로云之謂道ㅣ라니以數로言之면謂之一이오以體로言之면謂之無ㅣ오以物得開通을謂之道ㅣ오以微妙不測을謂之神이오以應機變化를謂之易이라니總而言之컨皆虛無之謂也ㅣ로다. 聖人이以事名之에隨其義理야以立名號나니라.
0001_0018_a_01L공안국의 소에 말하였다.
‘‘하나’는 ‘무’를 말하는데, 음도 없고 양도 없어야 비로소 이를 일러 ‘도’라 한다. ‘하나’가 ‘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이때의 ‘무’는 ‘허무’이니, ‘허무’는 쪼개어 나눌 수 없어 오직 ‘하나’일 뿐이어서, 그러므로 ‘하나’를 ‘무’라고 한 것이다. 만약 경계가 있으면 이것과 저것이라는 형상이 있게 되어, 둘이 있고, 셋이 있어,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음의 상태로 있을 때에 양이 될 만한 힘은 보이지 않지만, 자연 음과 양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자연 경영하거나 작위할 것이 없으니, 이것은 곧 ‘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이것을 일러 도라 한다’고 했다. 수數로서 말하면 이것을 일러 ‘하나’라고 하고, 체體로서 말하면 이것을 일러 ‘무’라고 하고, 만물이 개벽되어 유통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일러 ‘도’라고 하고, 미묘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을 일러 ‘신’이라고 하고, 기틀에 응하여 변화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일러 ‘역’이라 한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이 모두는 허무를 일컫는 것이다. 성인께서 현상을 사용하여 그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그 의미와 이치에 따라 이름이나 호칭을 세운 것이다.’
淸凉國師ㅣ摠破以上諸異論야云以太極으로爲因인卽是邪因이오若謂一陰一陽之謂道란것은卽計陰陽變易야能生萬物이라이니亦是邪因이오若計一爲虛無自然이면則亦無因이니라. 所以로無因邪因이乃成大過라謂自然虛空等生이應常生이라故ㅣ니若自然生이應常生云할진則人이自然而生야應常生人이오不待父母等이니衆生菩提도亦自然生면則一切果報를不由修得이니라. 此正顯無因之過오若以虛空으로爲因인亦邪因過見上張ㅣ니皆以不知三界가由乎我心고但從痴有愛야流轉無極야迷正因緣故로異計紛然니安知因緣性空과眞如妙有ㅣ리오니라.
청량 국사께서 이상의 여러 다양한 이론들을 통틀어 논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극으로 원인을 삼는다면 곧 이는 ‘사인邪因’이다. 이를테면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것은, 곧 음과 양이 변화하여 능히 만물을 낳는다고 여긴 것이니, 이것 역시 ‘사인邪因’이다. 만약 ‘하나는 허무 자연이다’라고 여긴다면, 역시 ‘무인無因’이다. 그러므로 ‘무인’과 ‘사인’이 모두 큰 오류가 된다. 이를테면 (저들은) ‘자연’이나 ‘허공’ 등이 생기는 것이, 응당 항상 생기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저절로 생겨 응당 언제나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즉 인간이 저절로 생겨 응당 언제나 사람을 낳으니, 부모 등의 인연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중생과 깨달음 역시 저절로 생긴다면, 즉 일체의 과보는 닦아서 얻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무인’의 오류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만약 허공으로 원인을 삼는다면, 역시 ‘사인’의 오류를 범한다.이 점은 윗부분을 보라.
모두들 삼계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그저 어리석음으로부터 애착을 일으켜 끝없이 유전하면서 바른 인연을 미혹했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이 분분하니, 인연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과 진여의 묘유를 어찌 알겠는가?”
12. 유·불 동이의 힐난에 대한 반론(佛儒同異難)
問曰釋氏之道ㅣ與儒道諸道로有同異有深淺也無아?
묻는다.
“불교의 도가 유교 등 여러 가르침과 비교하여 같고 다른 점도 있고, 또 깊고 얕음도 있는가?”
答曰古云盡世界風流오渾天地歌舞라며又涵虛ㅣ云호通天下一道也ㅣ며工變化一氣也ㅣ며均萬物一理也ㅣ라니라. 然이나佛於孔老與西天九十六種外道之說과天下異唱과一切世出世法에悉皆通達無碍故로號曰天人師大丈夫ㅣ라니라. 他諸方異唱과幷遍世界多種外道不得無碍야各有所欠야而不知聲聞緣覺之階級과菩薩所行之次第ㅣ온況於大覺無上之道乎아?
대답한다.
“옛말에 ‘온 세상에 흘러넘치는 게 풍류요, 온 천지를 휘젓는 것이 가무이다’라고 하였다. 또 함허 선사가 말하기를, ‘천하를 관통하는 것은 ‘하나의 도’이고, 변화시켜 만드는 것은 ‘하나의 기운’이고, 만물을 가지런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이치’이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공자나 노자 및 인도의 96종 외도의 학설과 천하 이단들의 주장과 일체 세간 출세간법을 모두 다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호를 천인사 대장부라고 한다. 저 여러 지역의 이단들의 주장과 온 세계에 가득한 여러 종류의 외도들은 무애를 얻지 못하여,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성문과 연각의 계급과 보살이 실천해야 할 차제도 모르는데, 하물며 대각인 위없는 도이겠는가?
列子書에云吳太子嚭學孔子者ㅣ也라. 問於孔子曰夫子聖人歟아? 對曰丘博識强記라非聖人也ㅣ니라. 又問曰三王이聖人歟아? 對曰三王은善用智勇이라聖은非丘의所知로라.
『열자』라는 책에서 말하였다.
오나라의 태자인 비嚭는 공자에게 배운 사람인데, 그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는 박식하고 기억을 잘하지만 성인은 아닙니다.’
태자가 또 물었다.
‘삼왕三王은 성인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삼왕은 지혜와 용기를 잘 사용하였지만, 성인이신지는 저의 아는 바가 아닙니다.’
又問曰五帝聖人歟아? 對曰五帝善用仁信이라聖은非丘의所知로라. 又問曰三皇은聖人歟아? 對曰三皇은善用時政이라聖은非丘의所知로라.
태자가 또 물었다.
‘오제五帝는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오제께서 인과 신을 잘 사용하였지만, 성인이신지는 저의 아는 바가 아닙니다.’
태자가 또 물었다.
‘삼황三皇은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삼황은 농사 때에 맞추어 정치를 잘 하셨지만, 성인이신지는 저의 아는 바가 아닙니다.’
太宰嚭ㅣ駭曰然則孰爲聖者歟아? 孔子ㅣ有間에動容而對曰西方에有大聖人者焉니不治而不亂며不言而自信며不化而自行야蕩蕩乎民無能名焉이라며出史記吳太宰嚭傳又列子與破邪論等處具載焉
태자인 비가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조금 있다가 자세를 고치고 대답했다.
‘서방에 큰 성인이 계시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혼란스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실천해서, 크고 드넓어 백성들이 뭐라 이름을 붙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사기』 「오태재비전」에 나온다. 또 『열자』와 『홍명집』, 『파사론』 등의 곳곳에 모두 실려 있다.
吳主孫權이問于闞澤曰孔子老子를得與佛로比對以否아? 闞澤曰遠則遠矣니이다. 所以然者孔老設敎에法天制用이라不敢違天이오諸佛은設敎에天法奉行이라不敢違佛이라니就此數論에足可以觀孔老之未堪與佛로比對也ㅣ明矣ㅣ로다.
0001_0019_a_01L또 오나라의 군주 손권이 상서 감택闞澤에게 물었다.
‘공자와 노자를 부처님과 비교할 수 있는가?’
감택이 말하였다.
‘멀어도 너무 멉니다. 그 이유는 공자와 노자가 가르침을 만들 때에, 하늘을 본받아 용도를 제정했기 때문에, 감히 하늘을 위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은 가르침을 만들 때에, 하늘이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봉행하여 감히 부처님을 어기지 못합니다.’
이런 여러 논들에 따르면, 공자와 노자는 감히 부처님과 비교할 것이 못됨이 명백함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又淸凉國師ㅣ曰佛法之淺淺이已勝外道之深深이로다. 然이나西方外道明說三世며多信因果야知厭生死고欣求涅槃이로但眞源이小差야致去道懸遠이어況孔老二道以修身俟死로爲正命고不知輪回三途之爲苦야惟齊生死며一枯榮야但以生死自天이오枯榮任分이라天乃自然之理ㅣ오分乃稟之虛無ㅣ라며聚散氣로爲死生고歸無物로爲至道나니方之佛聖컨不合同年이로다. 略辨釋道儒之殊야以擧十條之異노라.
또 청량 국사가 말하였다.
‘불법 중에서 얕은 것 중에서도 가장 얕은 것이 외도들이 말하는 심오한 것 중에서 가장 심오한 것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서방의 외도들은 삼세를 분명하게 설명하며, 대부분 인과를 믿어서, 생사의 윤회를 싫어할 줄 알고 흔쾌히 열반을 구하였다. 다만 참된 근원을 설정함에 약간 차이가 벌어져, 가는 길이 아득히 멀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공자와 노자의 두 도는 자신을 수양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바른 생활(正命)을 삼고, 삼악도에 윤회하는 것이 고통임을 알지 못하고서, 오로지 삶과 죽음에 초연하고 쇠락과 번영에 한결같이 했을 뿐이다. 그저 삶과 죽음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고, 쇠락과 번영은 저마다의 분수에 맡겨진 것이니, 하늘이란 스스로 그러한 이치이고, 분수는 바로 허무 대도에서 받은 것이라 여겼으며, 기운의 모이고 흩어짐으로 생사를 삼고, 한 물건도 없는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지극한 도로 여긴다. 이들을 성인이신 부처님과 비교한다면 같은 나이라고도 할 수 없다. 불교와 도교나 유교의 차이를 간략히 논변하여, ‘열 가지의 차이점’을 거론하겠다.
一은始와無始가別니謂釋은立生因緣야無定無初ㅣ라고儒與道有太初元始야爲物之先나니太初爲萬物之先이라物自造化라고因緣은爲萬法之本이라興이由人이라며,
첫째, 시작이 있느냐 없느냐가 다르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는 생멸의 인연을 세워 정해진 것이 없고 시초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태초와 시원이 있어 만물의 시작이 된다고 주장한다. 태초가 만물의 시초이니 만물은 조화로부터 나온다고 하며,저들 유교와 도교 인연은 만법의 근본이니 흥성과 쇠멸이 사람으로 말미암는다.우리 불교
二氣와非氣가異니謂釋은以心으로爲法本야憑對憑緣이라고儒與道以氣變으로爲神야無爲自化라니自化則無修無習야棄智絶聰고憑緣則必假修成야萬行이會本이라며,
둘째, 기氣냐 기가 아니냐가 다르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는 마음을 법의 근본으로 삼아 상대에 의거하고 인연에 의거한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기의 변화를 신神으로 삼아 인위적인 조작도 없고 자생자화自生自化한다고 한다. 자생자화한다면 닦을 필요도 없고 익힐 필요도 없어서 지혜를 버리고 총명함을 끊고,저들 유교와 도교 인연에 의거한다면 반드시 수행에 의지해서 완성되니 만 가지 수행이 근본과 부합한다.우리 불교
三은三世와無三世가異니釋은以稟質色心이靈爽相續야隨緣起滅야三世에遷流라고儒與道以聚氣로爲生고散氣로爲死며死則歸夫天地야不續不存이라니旣止一身이라寧知三世리오?
0001_0019_b_01L셋째, 삼세를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을 받는 것이 신령하고 분명하게 상속해서,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삼세를 옮겨 가며 흐른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기가 모이면 태어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고 하며, 죽으면 저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 이어지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미 한 몸에만 그치니, 어찌 삼세를 알겠는가?
四習과非習이別니釋은以善惡이由業며愚智가習生니故로積劫熏修면靈識이玄妙ㅣ라고儒與道以善惡이由分이오愚智自天이라稟純和則至聖至神고稟渾濁則爲愚爲暗이라며縱言愼習이나止在一身니豈說積功이能資他世 ㅣ리오?
넷째, 훈습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선과 악이 업으로 말미암으며,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훈습으로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오랜 겁에 훈습하여 닦으면 신령한 식이 현묘해진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선과 악이 분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하늘에서 나온다고 한다. 순수함과 온화함을 타고나면 성스러워지기도 하고 신령스러워지기도 하지만, 혼탁함을 타고나면 우매해지기도 하고 맹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비록 습관을 조심하라고 말은 하지만 그저 한 몸에 그칠 뿐이니, 공덕을 쌓으면 능히 다음 세상에 좋은 데에 태어나는 밑천이 되는 사실을 어찌 말했겠는가?
五稟緣과稟氣가異니釋은以森萬衆이幷由緣生이라고儒與道以富吉凶이皆由氣命이라니稟氣者不可改易이오稟緣者則可增修ㅣ니라.
다섯째, 인연을 받느냐 기를 받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부귀와 길흉이 모두 기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명령 받은 것이라고 한다. 받은 기는 고칠 수가 없고,저들 유교와 도교 받은 인연은 점점 닦을 수 있다.우리 불교
六은內와非內가別니釋은以天地萬物이內識으로變生이라고儒與道以人物蠕飛ㅣ皆由天地라니所變이在我면可變染令淨이어니와所變이在天이면則彼任高低ㅣ로다.
여섯째, 안에서 생기느냐 아니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천지만물이 내부의 식이 변화하여 생겼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사람이건 벌레건 모두 천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변화되어 만들어진 것이 나에게 있으면 오염된 것을 변화시켜 깨끗하게 할 수 있지만,우리 불교 변화되어 만들어진 것이 하늘에 있으면 그것의 높고 낮음에 맡겨야 한다.저들 유교와 도교
七은緣과非緣이別니釋은以四相遷流와浮虛變이皆由緣力이오非曰自然이라고儒與道以日化月移와趣新更故ㅣ力負自爾ㅣ오非由我心이라며,
일곱째, 인연법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생·주·이·멸의) 사상이 변질되어 가고 허망하게 변화하여 소멸하는 것이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지, 저절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해가 변하고 달이 옮겨 가면서 새로워졌다가 다시 헌것으로 되는 것이 타고난 힘으로 저절로 그런 것이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八은天과非天이別니儒與道以禍福吉凶으로派流爲二니, 一者天이오, 二者地ㅣ라. 地而所爲를可得閑絶故로謀未兆나而散脆이微고天之所爲를不可遁避故로受而喜之며忘而復之니是以로安乎天者棄於人고絶於聖者從乎道라니斯老氏之旨오, 釋은以果報因緣이宗源이斯二니, 一者苦集이오, 二者滅道라. 滅道者不住不染며離斷離常야高出空有之巓며逈超生死之外고苦集者는因心廻轉며逐業高低야往來六趣之中며留連三有之內니是以로厭乎苦者斷乎集고忻乎者修於道니此釋氏之旨也ㅣ니라. 二家之理ㅣ皎若掌中니戶則千門이라殊歸異貫이어니較言於一이면其可得乎아?
0001_0020_a_01L여덟째, 천명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화복과 길흉이 흘러나온 원천을 두 곳이라 하였으니, 하나는 하늘이요 둘은 땅이다. 땅이 하는 것은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짐이 생기기 전에 계획을 세워 재앙을 없애 버린다. 하지만 하늘이 하는 것은 피하거나 숨을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되 이를 기꺼이 하여 잊어버려 이를 회복한다. 이런 까닭에 ‘천명에 안주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성스러움마저 끊어 버린 자는 도를 따른다’고 했으니, 이것은 노자의 종지이다.
불교에서는 과보와 인연을 으뜸이 되는 근원 두 가지라 하였으니, 하나는 ‘고·집’이요 둘은 ‘멸·도’이다. ‘멸·도’는 머물지도 않고 오염되지도 않으며, 단견을 떠나고 상견을 떠나, 공과 유의 산마루를 훌쩍 벗어나, 생사의 윤회 밖을 멀리 초월하는 것이다. ‘고·집’이란 마음으로 인해 윤회하며 업의 높고 낮음에 따라, 육도 속에 왕래하면서 삼유 속에 계속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를 싫어하는 자는 ‘집’을 끊고, ‘멸’을 좋아하는 자는 ‘도’를 닦으니, 이것은 석가의 종지이다. 두 집안의 이치가 명백하기가 손바닥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들어가는 문호는 수천 가지여서 귀착점이 다르고 한결같지 않아서, 한 가지를 비교해서 말해 본들 가당키나 하겠는가?
九染과非染이別니老以仁毁於道니絶仁이면而道ㅣ自停이라不在於爲也ㅣ며欲은害於性니去欲이면而性이自得이라不在於修也ㅣ며利累於生니屛利면而生이自成이라不在於益也ㅣ며禮出於亂니棄禮면而亂이自除라不在於作也ㅣ며理由於道니有道ㅣ면而理ㅣ自至라不在於聖也ㅣ며得은在於時니時來면而位ㅣ自成이라不在於事也ㅣ니라. 是以로不求而自得며不爲而自成나니爲之者必敗고求之者必失이라니此老君之敎也ㅣ오. 釋은以善으로爲福道之本이라修善而受福人天고不善으로爲惡道之根이라. 積不善而沈倫三惡며慈爲無害之徑이오欲爲生死之源이라. 絶欲而生死ㅣ必除고修慈而壽命이遠이니是以로爲善者必得고不爲善者는必失며離欲者必超고不離欲者는必陷이라니此釋迦之敎也ㅣ니라. 敎方旣辨에異乃皎然이라譬彼寒溫에理難倂合이로다.
0001_0020_b_01L아홉째, 오염되느냐 아니냐가 다르다.
도교에서는 ‘인’은 도를 망가트리니 ‘인’을 끊어 버리면 ‘도’가 저절로 머무니 인위적으로 조작할 필요가 없으며, 욕망은 본성을 해치니 욕망을 제거하면 본성은 저절로 얻어지니 닦을 필요가 없으며, 잇속은 삶에 누가 되니 잇속을 막으면 삶이 저절로 이루어지니 보탤 필요가 없으며, 예절은 혼란을 낳으니 예절을 버리면 혼란이 저절로 제거되니 조작할 필요가 없으며, 이치는 도에서 비롯되니 도가 있으면 이치는 저절로 따라오니 성인을 귀하게 여길 필요가 없으며, (지위를) 얻는 것은 시운에 달렸으니 때가 오면 지위는 저절로 이루어지니, 일삼을 필요가 없다. 이런 까닭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인위적으로 하는 자는 반드시 패하고, 구하려는 자는 반드시 잃는다고 하니, 이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불교에서는 선을 복된 길의 근본으로 여기니 선을 닦으면 인간 세상이나 하늘 세상에 태어나는 복을 받고, 불선을 악한 길의 근본으로 여기니 불선을 쌓으면 삼악도에 빠진다. 자비는 손해가 사라지는 지름길이고 욕망은 생사윤회의 근원이니, 욕망을 끊으면 생사가 반드시 제거되고 자비를 닦으면 수명이 길어진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얻고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잃으며, 욕망을 떨쳐 버린 자는 반드시 (생사윤회를) 벗어나고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생사윤회에)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다. 교화의 방편은 이미 논변하였으니, 그 차이가 너무나 명백하다. 비유하자면 저 시원함과 따뜻함과 같아서 참으로 서로 합치기 어렵다.
十은歸와異歸가別니釋은以生死苦也ㅣ라從妄想而形며貪愛垢也ㅣ라因無明而起니因無明而起可剪可除ㅣ오從妄想而生은可搴可拔이로다. 搴拔은由乎性假고除剪은由乎體妄니知體妄者息妄而證涅槃고達性假者棄假而歸寂滅니라. 於是에控御一乘고浮航六度야越生死苦海며出火宅樊籠야逈登般若之臺며妙入涅槃之苑이로다. 湛然常樂야與虛空而幷存고嶷爾圓明야混境智而雙寂나니此釋敎之所歸也ㅣ오.
열째, 귀결처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생사는 괴로움이니 망상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며, 탐애는 번뇌이니 무명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무명으로 인해 일어난 것은 잘라 낼 수 있고 제거할 수 있으며, 망상으로부터 생겨난 것은 솎아 낼 수 있고 뽑아 버릴 수 있다. 뽑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본성이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고,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은 본체가 허망하기 때문이다. 본체가 허망한 줄 아는 자는 망상을 쉬어 열반을 증득하고, 성품이 거짓된 줄 통달하는 자는 거짓을 버리고 적멸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일승의 고삐를 잡고 육도에 배를 띄워 생사의 고해를 건너가며, 화택의 울타리를 벗어나 반야의 대에 높이 올라 열반의 동산으로 오묘하게 들어간다. 맑고 맑아 영원하고 즐거워 허공처럼 어디에나 존재하고, 높고 우뚝하여 꽉 차고 밝아 경계와 지혜를 모두 포용하면서도 이 둘의 자취를 없애니, 이것은 불교의 귀결처이다.
老以生與死命也ㅣ라悉是道之所爲ㅣ오聖與不肖性也ㅣ라但是天之所與ㅣ로다. 天與不可逃ㅣ오道爲不可捍이니知天道를不可逃捍者則能安處生死야而守全性情니情性이全而天不壞며生死處而道不虧ㅣ라道不虧則悅惡之慮가消고天不壞則喜怒之心이滅이로다. 於是에出囂塵之域야遊道德之鄕이로다. 理孤劭於寰中며神獨凝於方外로다. 澹然玄寂而累害ㅣ不能干며泊爾無爲而邪氣ㅣ不能襲야可以生며可以盡年이라니此老敎之所歸也ㅣ니라. 所歸ㅣ旣異고發復殊니相去ㅣ渺然에千里非遠이로다.
0001_0021_a_01L도교에서는 살고 죽는 것은 운명이니 이는 모두 도가 하는 것이고, 성스럽냐 못났냐는 타고난 본성이니 그저 이는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하늘이 부여한 것은 피할 수 없고 도가 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늘과 도는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는 능히 생사에 편안히 처하면서 성정을 지켜 온전하게 할 수 있으니, 성정이 온전하여 하늘이 파괴되지 않으며 생사에 처하여 도가 훼손되지 않는다. 도가 훼손되지 않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하늘이 파괴되지 않으면 기뻐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시끄럽고 흙먼지 자욱한 세상을 벗어나 도덕의 마을에 노닐게 된다. 도리는 세상의 가운데 있으면서도 홀로 아름답고, 정신은 세상 밖에서 홀로 엉긴다. 맑고 맑아 아득하고 고요하여 겹치는 재앙도 그를 간섭하지 못하며, 담박하여 하는 일이 없어 삿된 기운이 엄습하지 못하니, 가히 장생할 수 있고, 명대로 살 수 있다 하니, 이것은 도교의 귀결처이다. 귀결처가 이미 서로 다르고 출발점 또한 다르니, (불교와의) 서로 떨어짐이 아득하여 천 리보다도 더 멀다.
此上十異를卽兾審思야愼之深衷라多以大乘因緣으로以破外宗玄妙어든況乎眞空妙有와事理圓融과染淨該와一多無礙와重重交暎과念念圓融者哉아. 無得求一時之小名야混三敎之一致며習邪見之毒種야爲地獄之深因고開無明之源며遏種習之路호誡之誡之야傳授之人을善湏揀擇也라.
이상의 열 가지의 차이를 깊이 헤아려 마음 깊이 삼가기 바란다. 대부분은 대승의 인연법으로 다른 종교의 현묘함을 논파하였지만, 하물며 ‘진공묘유’와 ‘이사원융(事理圓融)’과 ‘염정해라’와 ‘일다무애’와 ‘중중교영’과 ‘염념원융’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한때의 작은 명성을 구하여 삼교가 일치한다고 혼동하여, 사견의 독한 종자를 익혀 지옥에 떨어질 깊은 원인을 만들거나, 무명의 근원을 열어 수행의 씨 뿌리는 길을 막는 일이 없도록 하라. 삼가하고 삼가하여, 전수할 사람을 반드시 잘 가려야 한다.”
13. 불교는 허무적멸의 도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虛無寂難)
問曰朱子云虛無寂之道ㅣ其高過於大學儒書이나而無實이라니所以然者釋氏云寂滅이라고老氏云虛無라니若虛無寂則是徒尙其體故로云其高ㅣ過於大學云이오孔子ㅣ云寂然不動이나感而遂通이라시니自此로三綱五常之道와治國平天下之術이燦然興於世야化及萬方이어佛與老虛無寂滅로爲宗니則有其體나而無其用故로云無實也ㅣ라노라.
0001_0021_b_01L묻는다.
“주자가 말하기를, (도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허무와 적멸의 도는 높기가 『대학』유교의 책보다 더하나 실다움이 없다’고 하였다. 왜 그런가? 석가는 ‘적멸’이라 했고, 노자는 ‘허무’라 했으니, 만약 ‘허무’하고 ‘적멸’하다면 이는 본체만 헛되이 숭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높음이 『대학』보다 더하다’고 했다. 공자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하면 마침내 통한다’고 했으니, 이로부터 삼강오상의 도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술법이 세상에 찬란하게 일어나 교화가 만방에 미쳤다. 그런데 부처와 노자는 ‘허무’와 ‘적멸’을 으뜸으로 삼으니, 곧 그 본체는 있지만 그 작용이 없기 때문에, ‘실다움이 없다’고 했다.”
答曰吾佛之道古今에至正無僞之道ㅣ오生靈之大本이로而人이多有當面蹉過니是可歎也ㅣ로다. 佛之寂云者는是寂滅其妄心之謂也ㅣ오非無有其眞心妙用之謂也ㅣ니라. 佛云사되眞性甚深極微妙야隨緣成就一切事法이라시고又維摩詰이云不起寂證고而現諸威儀라시니豈有體而無用耶아?
대답한다.
“우리 부처님의 도는 고금에 지극히 바르고 거짓이 없는 도여서,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큰 근본이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얼굴을 마주하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니, 이는 탄식할 일이다. 부처님께서 ‘적멸’을 말씀하신 것은 그 허망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소멸시키라는 말씀이지, 그 진심의 오묘한 작용이 없다는 말씀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참된 성품은 깊고 깊어 매우 미묘하여, 인연 따라 일체의 ‘현상적 존재(事法)’를 성취시킨다’고 하셨고, 또 유마힐이 말하기를, ‘적멸의 체험에서 떠나지 않고 온갖 위의를 드러낸다’고 하니, 어찌 본체만 있고 작용이 없는 것이겠는가?
朱子之所解卽吾家之所謂外道斷之見解也ㅣ라安知吾家에有不傳之妙也ㅣ며又如何顯得自心之明妙受用과究竟安樂과如實淸淨와解脫變化之妙旨리오? 旣不知他道之大意深淺과取捨如何고將人之所不取야論斥之며誹謗之니是欲欺人而自欺耳ㅣ라. 儒家所論者知太極이生兩儀與萬物이오不知自心이能生太極與萬物이로다.
주자가 이해한 바는 곧 우리 불가에서 말하는 외도들의 단멸견해이다. (주자가) 어찌 우리 집안에 전하지 않은 오묘함이 있음을 알았겠으며, 또 어떻게 자기 마음속의 밝고 오묘한 수용과 구경의 안락과 여실한 청정함과 해탈하여 변화하는 오묘한 뜻을 들춰내어 얻었겠는가? 이미 다른 종교의 대의가 깊은지 얕은지, 무엇을 취하고 버렸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취하지 않는 바를 가지고 이를 논란하여 배척하고 이를 헐뜯고 비방하니, 이는 남을 속이려다가 스스로 속는 짓이다. 유가에서 논한 바는 그저 태극이 양의와 만물을 낳는다는 것만을 알 뿐, 자기 마음이 태극과 만물을 낳는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經에云三界ㅣ唯心이오萬法이唯識이라며又云若人이發眞歸源면十方虛空이悉皆消殞이라니但世人이不知者如以其煩惱黑雲之所覆故로淨慧白日이不能現也ㅣ로다. 然이나人性은本淨이라如摩尼寶珠ㅣ置在泥之中야經百千歲라도終不能染汚也ㅣ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계는 오직 마음이오, 만법이 오직 식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만약 사람이 진심을 일으켜 근원으로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모두 소멸한다’고 하였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번뇌라는 먹구름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청정한 지혜의 밝은 태양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다. 마치 마니보주가 흙탕물에 놓인 것 같아, 백천 세를 지난다 해도 끝내 오염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圭山禪師ㅣ云淸潭水底에影像이昭昭고虛隙日光에纖埃ㅣ了了라며又古云弘鍾이待扣에小扣小鳴며大扣大鳴이라며又如明鏡이當臺에胡來胡現고漢來漢現이라니豈綱常道治ㅣ獨在於汝而缺於他乎아? 佛이說法四十九年之中에或說人敎儒家所行盡載人敎시며或說仙敎如楞巖十種仙等也시며或說天敎시며或說聲聞敎시며或說緣覺敎시며或說菩薩乘시며或說一佛乘시며或說三世因果와六道輪回시니如是者有萬種差別야皆純金打就也ㅣ니라.
0001_0022_a_01L규봉 종밀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맑고 고요한 물 밑에 영상이 소소하고, 빈틈으로 햇살이 비치면 가는 먼지들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또 옛말에 ‘커다란 종이 쳐 주기를 기다렸다가, 작게 치면 작게 울리고 크게 치면 크게 울린다’고 하였으며, 또 ‘밝은 거울이 거울 대에 걸린 것 같아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를 비추고, 한나라 사람이 오면 한나라 사람을 비춘다’고 하였으니, 어찌 강상의 도와 다스림이 유독 그대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없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설법하신 49년 동안에 인교유가에서 행하는 바는 모조리 인교에 실려 있다.를 설하시기도 하고, 선교『능엄경』에 수록된 열 가지 신선 등이다.를 설하시기도 하고, 천교를 설하시기도 하고, 성문교를 설하시기도 하고, 연각교를 설하시기도 하고, 보살승을 설하시기도 하고, 일불승을 설하시기도 하며, 삼세인과와 육도윤회를 설하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하신 것이 만 가지 차별이 있지만 모두 순금을 두드려 그렇게 하신 것이다.
朱子ㅣ以佛은知寂之體ㅣ오不知倫常之道用이라며又孔氏之道普天蒙益이오而釋氏之道於世無益이라니朱子其自誤者乎져欲觀其天而漏乎管이로다. 豈未見人而言色며不由鏡而說容乎아? 論道於二乘之所棄며譏毁於沙彌之所恥야自將誤解야以謗三界人天之大聖니今雖趍於一時愚昧之所戴나何不畏於萬代聰明之所誅아? 可勝嘆哉로다.
주자는 말하기를, ‘부처는 적멸이라는 본체만 알고 오륜 오상의 도의 작용은 몰랐다’고 하며, 또 ‘공자의 도는 온 천하에게 이익을 주지만 석가의 도는 세상에 이로움이 없다’고 하였다. 주자야말로 그 스스로 오류를 범한 자이다. (넓은) 하늘을 보려면서 대롱 구멍으로 보는구나. 어찌 남을 만나 보지도 못했으면서 그 사람의 모습을 말하고,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용모를 설하는가? (우리 불교의 하열한) 성문승이나 연각승도 폐기하는 것을 가지고 도라 논하고, (출가 초년생인) 사미조차도 부끄러워하는 것을 꾸짖고 헐뜯었구나. 제 스스로 오해한 것을 가지고 삼계의 모든 인간과 하늘의 큰 성인을 비방하니, 지금 비록 일시적으로 우매한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많기는 하지만, 어찌 만대의 총명한 이들에게 꾸지람 받는 것이 두렵지 아니한가? 너무도 탄식할 만하다.
魚龍은以水로爲命되而不知水爲命根이며世人은以佛法大海로爲命호而不知佛法이爲世人之本命이로다. 佛者覺也ㅣ라謂箇箇人人의無上淸淨本地風光大圓覺也ㅣ니從本以來로昭昭靈靈야不曾生不曾滅며名不得狀不得者也ㅣ라. 故로涵虛云此性이貫古今야圍六合며主於三才야王於萬法이라니라. 佛說六乘之法시니所謂一佛乘과菩薩乘과緣覺乘과聲聞乘과天乘과人乘이是也ㅣ라. 於是에六道衆生이獲得甘露之大法야隨機宿習야大千世界에蒙益이無量이어儒家所謂道化于天下如海之一와地之微塵也라而反非之니是猶坐井而觀天曰天小也ㅣ로다.
0001_0022_b_01L물고기와 용은 물로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물이 생명의 근본이 됨을 알지 못하며, 세상 사람들은 불법이라는 큰 바다로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불법이 이 세상 사람들의 근본적인 생명임을 알지 못한다. 부처란 깨달음을 뜻하니, 이를테면 낱낱의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위없이 청정한 본지풍광이며 대원각이다. 본래부터 소소영영하여 일찍이 생긴 적도 없고 일찍이 소멸한 적도 없으며, 이름도 붙일 수도 없고 형상도 그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함허 선사가 말하기를, ‘이 본성이 고금을 관통하여 육합을 에워싸며, 삼재의 주인이 되어 만법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육승六乘의 법을 설하였으니, 이른바 일불승·보살승·연각승·성문승·천승·인승이 그것이다. 이에 육도의 중생들이 감로의 위대한 법을 획득하였고, 모든 근기들이 과거에 익힌 습관을 따라 삼천대천세계에 입힌 이익이 한량없었다. 유가에서 소위 천하에 도의 교화를 펼쳤다는 것은 마치 바다의 물거품 하나와 땅의 미세 먼지와 같은데, 도리어 불교를 힐난하니, 이는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작다고 하는 꼴이다.
佛有四部弟子니曰比丘比丘尼ㅣ오淸信士淸信女也ㅣ라. 比丘比丘尼者剃除鬚髮고棄斷愛欲而受佛戒訓야惟道爲務나니小根之人은煩惱之稠林를不可一時據拔故로向寂靜處야隨緣純習이나此是暫時行履之處며又如應病與藥야隨勢從機를不可一定也ㅣ니라.
부처님에게는 네 부류의 제자가 있으니,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이다. 비구와 비구니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고 애욕을 버리고 부처님의 계율과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도에만 힘쓴다. 근기가 얕은 사람은 번뇌의 숲을 일시에 뽑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고요하고 편안한 곳으로 가서 인연 따라 (전에) 익혔던 습성을 순화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잠시 밟고 지나가는 것이며, 마치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아서, 상황에 따르고 근기를 쫓는 것으로 일정할 수는 없다.
比丘布敎之宗主也ㅣ라. 普天地人民이因比丘야而知佛法之大小本末과深淺終始야去惡而從善며離輪廻出生死야轉凡作聖니此布敎之饒利也ㅣ오. 至有比丘成立道德之日야上以報四重恩며下以濟三途苦니此於世出世間에洪度無碍之公益也ㅣ오.
비구는 포교의 으뜸이다. 온 천지의 인민이 비구로 인하여 불법의 크고 작음, 근본과 지말, 깊고 얕음, 시작과 끝을 알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며 윤회를 떠나고 생사를 벗어나 범부를 뒤집어 성인을 만든다. 이는 포교의 풍부한 이익이다. 마침내 비구가 도덕을 완성하는 날이 되면, 위로는 네 가지 중한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 삼도三途의 고통을 제도한다. 이는 세간과 출세간을 널리 제도하면서 장애가 없는 공공의 이익이다.
淸信士淸信女者謂在家二衆이니世間에不出男女二衆故로周天匝地에人民生靈이苟有會得言語者면俱受菩薩大戒야守而行之倫常人事威儀道德俱在此戒內者也야處乎人事며謹修人敎야先修其身而齊其家며後治邦國而平天下니淸信之義ㅣ意在斯焉이니라.
청신사와 청신녀는 이를테면 재가의 두 대중이니, 세간을 벗어나지 않는 남자와 여자의 두 대중 때문이다. 온 세상의 인민과 생명체 중에 말을 이해하는 자가 진실로 있기만 하면 ‘보살대계’를 함께 받아, 이를 지키고 실천하여,윤상·인사·위의·도덕이 모두 이 계 안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을 열심히 닦아,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제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그런 뒤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편안하게 하니, 청신사와 청신녀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佛子修身之法이有三니曰殺盜淫이是也ㅣ오修口之法이有四니曰綺語妄語兩舌惡口가是也ㅣ오修意之法이有三니曰曰貪嗔痴ㅣ是也ㅣ라. 身不殺生者是知天地萬物과負識含靈之本源이니箇彼飛禽走獸魚鼈昆蟲一切蠢動이因一念之差야受報萬般이나其本源覺性은則與我와無別이어以殺而食者盖不達其本故也ㅣ니라. 古云天地도與我同根이오萬物도與我一體라며,
0001_0023_a_01L불자가 신업을 닦는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살생·도둑질·음행이 그것이다. 구업을 닦는 법에 네 가지가 있으니, 꾸미는 말·거짓말·이간질·욕설이 그것이다. 의업을 닦는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이것이다.
몸으로 살생하지 않는 것은, 천지 만물과 식을 갖춘 생명체의 본원을 아는 것이다. 낱낱의 저 날아다니는 새들과 달리는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와 곤충 등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단지 한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만 가지로 다른 과보를 받았지만, 그 본원인 깨달음의 성품은 나와 차이가 없으며, 그것들을 살생하여 먹는 것은 분명 그 본원을 몰랐기 때문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라고 하였다.
昔에涵虛禪師ㅣ未曾出家之時에有釋曰海月者ㅣ來讀論語於涵虛라가至博施濟衆은堯舜도其猶病諸라야註云仁者以天地萬物로爲一己之言야置卷而問涵虛曰孟子仁者乎잇가? 曰然다. 鷄豚狗彘도萬物乎잇가? 曰然다. 曰仁者以天地萬物로爲一己라니此眞稱理之談也ㅣ라. 孟子ㅣ苟爲仁者오? 而鷄豚狗彘ㅣ又爲萬物이면則何以云鷄豚狗彘之畜을無失其時면七十者ㅣ可以食肉矣乎아?
옛날에 함허 선사가 아직 출가하기 전에 해월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함허에게 『논어』를 배웠다. ‘널리 베풀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은 요·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아파했다’는 구절과, 그 주석에 이르기를, ‘어진 자는 천지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고 한 구절에 이르러 책을 내려놓고, 함허에게 물었다.
‘맹자는 어진 자입니까?’
함허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
해월이 여쭈었다.
‘닭·돼지·개·멧돼지도 만물입니까?’
함허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
해월이 여쭈었다.
‘어진 자는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이치에 걸맞은 말씀입니다. 맹자가 참으로 어진 자이고 닭·돼지·개·멧돼지가 또한 만물인데, 즉 어찌하여 이르기를, ‘닭·돼지·개·멧돼지를 기를 경우 그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 일흔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고 말했습니까?’
師ㅣ於是에辭窮而未能答야考諸經傳호而無有殺生稱理之論이오博問先知호而無有釋然決疑者ㅣ라. 常蘊此疑야久未能決이러니一日에遊於三角山이라가到僧伽寺야與一老禪으로夜話할禪이云佛有十重大戒니第一不殺生이라야涵虛ㅣ於是에釋然心服야而自謂此眞仁人之行也ㅣ오而深體乎仁道之語也ㅣ로다. 從此로不疑於儒釋之間이라고而遂有詩云,
함허 선사가 여기에서 말이 궁해져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러 경과 전적을 연구하였지만, 살생이 이치에 맞는다는 주장은 없었다. 선배들에게 널리 물었지만 시원하게 의심을 풀어 주는 자가 없었다. 항상 이 의심을 품고서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다가, 하루는 삼각산을 노닐다가 승가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 나이 많은 선사와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사가 이르기를, ‘불교에 ‘십중대계’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불살생입니다’라고 하자, 함허 선사가 이에 (의심이) 풀려 진심으로 굴복하였다. 그리고서는 스스로 이르기를,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어진 사람의 행동이요, 어진 도를 깊이 체득한 말씀이다. 지금부터는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의심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마침내 시를 한 수 지었다.
素聞經史程朱毁고未識浮屠是與非야返復潛思年已遠이러니始知眞實却歸依로다고,
0001_0023_b_01L평소 경전과 역사책에서 정자·주자의 비방만 듣고
불교가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했네.
반복해서 깊이 생각한 지 세월이 오래되었는데
비로소 진실임을 알고 당장 불법에 귀의하노라.
又云巢知風고穴知雨며蜘蛛有布網之巧고蜣蜋은有轉圜之能이라. 物皆如是야同稟靈明니至於好生惡死之情야亦何獨異於人哉리오. 故로此不殺은修仁之本이라而衆仁이從之也ㅣ라고華嚴經崗字卷十地品에云호性不偸盜者는菩薩이於自資財에常知止足이오於他에慈恕야不欲侵損며若物屬他어든起他物想야終不於此에而生盜心며乃至草葉이라도不與어든不取니何況其餘資生之具ㅣ리오고,
또 이르기를, ‘새들은 태풍이 불 것을 미리 알고, 굴속에 사는 동물들은 비가 올 것을 미리 알며, 거미는 그물을 치는 솜씨가 있고, 쇠똥구리는 굴리는 능력이 있다. 만물이 이와 같아, 신령하고 밝은 능력을 똑같이 타고나는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에 이르러 또한 어찌 유독 사람과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이 불살생은 인을 닦는 근본이니, 온갖 어짊이 이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화엄경수소연의초』(강자권) 「십지품」에서 이르기를, ‘성품에는 도둑질함이 없다는 것은, 보살은 자신의 재물에 항상 만족할 줄 알아, 남을 가엾이 여기고 용서하여 빼앗거나 해를 주려 하지 않는다. 만약 물건이 남의 손에 들어가면 남의 물건이라 생각하여, 끝내 훔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나아가 풀잎조차도 주지 않으면 갖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그 나머지 삶에 필요한 물품들이겠는가?’라고 했다.
又云호性不邪媱은菩薩이於自妻에知足이오不求他妻며於他妻妾과他所護女에尙不生貪染之心이온何況從事며況於非道ㅣ리오니故로不殺不盜不淫은修身之本也ㅣ오不妄語綺語兩舌惡口修口之本也ㅣ오不貪嗔痴者修意之本也ㅣ니此是萬善由起之源也ㅣ라. 以此로可以自修ㅣ오推己之餘야以普及乎天下萬代而無窮者也ㅣ니라.
또 이르기를, ‘성품에는 삿된 음행이 없다는 것은, 보살은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여 남의 아내를 구하지 않는다. 남의 아내나 첩과 남이 보호하는 여인에게도 오히려 탐욕에 물든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일을 벌이며, 그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므로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신업을 닦는 근본이며, 꾸미는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고 욕하지 않는 것은 구업을 닦는 근본이며,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은 것은 의업을 닦는 근본이다. 이것이 바로 만 가지 선이 말미암아 일어나는 근원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닦을 수 있고,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도 행하여, 널리 천하 만대에 미쳐 다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14. 불교는 정신과 혼백을 본성으로 여긴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精魂爲性難)
問曰孟子ㅣ論至楊朱墨翟之道也에朱子ㅣ註其文而引異見王이與一佛子論性之事야以明之니其意甚詳이라. 吾爲說之리라.
묻는다.
“맹자가 (『맹자』 「등문공」에서) 양주와 묵적을 논평한 대목이 있는데, 주자가 그 대목을 주석함에, 이견왕異見王이 어떤 불자와 더불어 인간의 본성을 논했던 사례를 인용하여 이것을 설명했다. 그 의미가 너무도 상세하기에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말해 보겠다.
昔에印度南天笁國異見王이問婆提尊者曰何者是佛이니잇고? 尊者對曰性是佛이니다. 王曰師ㅣ見性否아? 曰我見佛性호라.
0001_0024_a_01L(『종경록』에 의하면) 옛날에 인도 남천축국의 이견왕이 바라제 존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본성이 부처입니다.’
왕이 말했다.
‘스님은 본성을 보았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저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王曰性在何處오? 曰性在作用이니라. 王曰是何用作이완我今不見고? 曰今現作用호王自不見이로다.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본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본성은 작용에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것은 어떤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존자가 말했다.
‘지금 작용이 드러나는데도 왕께서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王曰於我에有否아? 曰王若作用이면無有不是ㅣ오王若不用인體亦難見이니라. 王曰若當用時야幾處出現고? 尊者曰若出現時에當有其八이니라.
왕이 말했다.
‘나에게도 있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왕께서 만약 작용하실 경우 이것 아닌 것이 없지만, 왕께서 만약 작용하시지 않으시면 (본성의) 체體 또한 보기 어렵습니다.’
왕이 말했다.
‘만약 작용할 경우에는 몇 곳에 출현합니까?’
존자가 말했다.
‘만약 출현할 때에 항상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王曰其八出現을當爲我說라. 尊者云在胎曰身이오處世曰人이오在眼曰見이오在耳曰聞이오在鼻辨香이오在舌談論이오在手執捉이오在足運奔이니徧現면俱該沙界고收攝면在一微塵이니識者知是佛性하고不識者喚作精魂이라야朱子評曰釋氏之病은錯認精神魂魄야爲性者也ㅣ로다니如是則釋氏其於心性道理에恐是未瑩也ㅣ라노라.
왕이 말했다.
‘그 여덟 가지의 출현을 나에게 설명해 보시오.’
존자가 말했다.
‘태에 있으면 몸이라 하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라 하며,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코에 있으면 향기를 구별하고, 혀에 있으면 말을 하며, 손에 있으면 붙잡고, 발에 있으면 움직여 달립니다. 펼쳐 드러내면 항하사 세계를 모두 갖추고, 거둬들이면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도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자는 이것이 불성임을 알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는 이것을 정신 또는 혼백이라 합니다.’
주자가 이를 평하여 말하기를, ‘석가의 오류는 정신과 혼백을 오인하여 본성으로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니 아마도 석가는 심성의 도리에 밝지 못한 것 같다.”
答曰朱子以未見其理故로言失於道也ㅣ로다. 然이나問你노라. 孔氏之道以何로爲性고?
대답한다.
“주자가 이치(理)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를 잃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묻겠다. 공자의 도에서는 무엇을 본성이라고 하는가?”
彼曰孔氏之道以喜怒哀樂未發之前을謂之理ㅣ오謂之性이며喜怒哀樂已發之後를謂之氣ㅣ오謂之用也ㅣ니라.
그가 말한다.
“공자의 도는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발현되기 이전을 이치(理)라 하며, 그것을 본성(性)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발현된 이후를 기氣라 하며, 그것을 작용(用)이라 한다.”
余笑曰儒家之論性理ㅣ返不及釋氏二乘之見解也ㅣ로다. 二乘之道ㅣ有苦集滅道四者焉니卽淸凉所謂滅道者不住不染며離斷離常야高出空有之巓며逈超生死之外者性也ㅣ며理也ㅣ오. 苦集者因心廻轉야逐業高低야往來六趣之中며留連三有之內나니是以로壓乎苦者는斷於集고乎滅者修於道云者進修之謂也ㅣ며靈苗將發야六通이無碍者道之用也ㅣ오. 體攝二百五十戒야圓成三千威儀와八萬細行者道之行也ㅣ니라.
0001_0024_b_01L나는 웃으며 말한다.
“유교에서 ‘본성의 이치(性理)’를 논하는 것이 도리어 불교의 이승二乘에 속한 자들의 견해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이승의 가르침에 고·집·멸·도의 사성제四聖諦가 있으니, 곧 청량 국사가, ‘멸·도란 머물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고, 단견을 떠나고 상견을 떠나고, 공과 유의 꼭대기를 완전히 벗어나고, 생사의 밖으로 멀리 초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이것이 본성(性)이며 이치(理)이다. 또 ‘고·집이란 마음의 윤회로 인하여 업의 높고 낮음에 따라 육도 속을 왕래하며, 삼유三有 속에 계속 머문다. 그러므로 고를 싫어하는 자는 집을 끊고, 멸을 좋아하는 자는 도를 닦는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닦아 나아감을 말한다. ‘장차 신령한 싹을 틔워서 여섯 가지 신통이 걸림이 없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도의 작용’이고, ‘몸으로 이백오십계를 받고 3천 가지 위의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을 원만히 완성한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도의 실천’이다.
儒家所云喜怒哀樂未發之前을謂之性인當知라. 卽此四念心未發之前은是曰無思也ㅣ며曰空也ㅣ로다. 以空且無思로爲極則之性理則至於草木瓦石이라도皆爲無思空慮니亦能通達性理者也ㅣ로다. 又喜怒哀樂은是妄識所現者也ㅣ어卽以此로爲氣用니是認賊爲自家眷屬也로다. 你所謂喜怒哀樂은卽吾家所謂六七之麤識也ㅣ며當其未發之前을謂之性也理也者卽吾家所謂第八湛識所現之處也ㅣ어而不知第八湛識이是根本無明이며亦是無記空識也로다.
유가에서는 이르기를,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발현되기 이전을 이치(理)라 한다’고 했는데, 마땅히 알라. 곧 이런 네 가지 감정이 발생하기 전은 바로 ‘아무 생각 없는 상태(無思)’이며, ‘공空’하다. ‘공’과 ‘아무 생각 없는 상태(無思)’를 궁극적 준칙이 되는 ‘본성의 이치(性理)’라고 생각한다면, 저 풀과 나무와 기왓장과 돌들까지도 모두 아무 생각도 없고 헤아림도 없으니, 그것들도 역시 능히 ‘본성의 이치(性理)’를 통달했겠구려!
또,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은 허망한 식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이) 이것을 가지고 ‘기운의 작용(氣用)’이라고 하니, 이는 도둑을 오인해 자기 집안의 권속으로 여기는 꼴이다. 그대가 말한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은 곧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육식과 칠식에 해당하는 거친 식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 등이) 발현되기 이전을 본성(性)이라 하고 이치(理)라 한 것은, 곧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제8의 맑은 식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제8의 맑은 식이 바로 근본무명이며, 또한 이것이 무기공식인 줄을 모르는구나.
孔子曰夫易은無思也ㅣ며無爲也ㅣ라니是知케라. 儒家所論性理者ㅣ卽不出乎第八卽無記空識也一切善惡此識含藏故亦名含藏種子識이로다. 而不知其理義之繇從與所歸고但執此爲極則無上이라니旣於自家所論性理之學에도猶如暗夜中行야黑白을不辨커何況是非於他道乎아? 釋氏之一小乘學人이라도能高出空有之巓야不著於斯者ㅣ已遠矣ㅣ라. 況大乘菩薩乎며尤況一佛乘乎아?
공자가 이르기를, ‘대저 역易은 생각함이 없고 작위가 없다’고 하였다. 이로서 알 수 있겠다. 유가에서 말하는 ‘본성의 이치(性理)’는 곧 제8함장종자식즉 ‘무기공식’이다. 일체 선악을 이 식이 함장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렇게도 이름한다.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 이치의 의미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집착하여 ‘이것이 궁극의 법칙이고 최고다’라고 한다. 이미 자기 집안에서 말하는 ‘본성의 이치(性理)’에 대한 학문조차도 마치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처럼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남의 도에 대해서 시시비비하는가?
불교 중 한 학파인 소승의 학인도 능히 ‘공’과 ‘유’의 꼭대기를 완전히 벗어나, 그런 것들에 집착하지 않은 지가 이미 한참 되었다. 그런데 하물며 대승의 보살승이겠으며, 더욱 하물며 일불승이겠는가?
又明暗有無是代謝者也ㅣ라. 然而汝以空無思로爲性理며以喜怒哀樂으로爲氣用니是以頑空頑有로爲道者也ㅣ로다. 旣認如彼로以爲性며如彼로以爲用인則是邪性이오亦邪用也ㅣ며又不偏不倚無過無不及之謂中庸云者도以汝論之컨亦是妄立也ㅣ니라. 何故오一事正則萬事正고一事不正則萬事不正也ㅣ니라.註自成譬喩明兩家論性深淺
0001_0025_a_01L또 밝음과 어둠, 있음과 없음은 서로서로 교대된다. 그런데도 그대는 ‘공’하고 ‘아무 생각 없는 상태(無思)’를 ‘본성의 이치(性理)’로 삼고,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을 ‘기운의 작용(氣用)’으로 삼으니, 이는 ‘완공’과 ‘완유’로 도를 삼는 것이다. 이렇게 오인하여 그와 같은 것을 ‘본성(性)’이라 하고, 그와 같은 것을 ‘작용(用)’이라고 한다면, 이는 삿된 본성이고 삿된 작용이다.
또, (『중용』에서) ‘치우치지 않고 쏠리지도 않으며, 지나침이 없고 모자람도 없는 것을 중용이라 한다’고 한 것도 그대가 말한 대로라면, 역시 망령되게 수립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이 바르면 만 가지 일이 바르게 되고, 한 가지 일이 바르지 못하면 만 가지 일이 바르지 못하게 된다.자신이 세운 비유를 가지고 불교와 유교에서 논하는 본성의 깊고 얕음을 밝혔다.
縱汝將性理之說야譬之於水曰恰如大海야千波竸起者用也ㅣ며氣也ㅣ오. 風息波靜야水體澄湛者理也ㅣ며性也컨吾復問汝노라. 千波竸起者喩喜怒哀樂已發之時也ㅣ오水體澄湛者喩喜怒哀樂未發之時也ㅣ로다. 然則以何로爲水性고?
설사 그대가 성리性理의 설을 가지고, 이를 물에 비유하여 이르기를, ‘흡사 큰 바다와 같아서 온갖 물결이 다퉈 일어나는 것은 ‘작용(用)’이고 ‘기운(氣)’이며, 바람이 멈춰 물결이 고요해져서 물의 바탕이 맑고 담담한 것은 ‘이치(理)’이고 ‘본성(性)’이다’라고 한다면,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온갖 물결이 다퉈 일어나는 것은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이미 발생한 때를 비유한 것이고, 물의 바탕이 맑고 담담한 것은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때를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의 본성은 무엇인가?”
曰以儒家論性理로推察컨水體澄湛者卽水性也ㅣ니라.
그가 말한다.
“유가에서 논하는 성리性理의 학설로 미루어 예측하면, 물의 바탕이 맑고 담담한 것이 곧 물의 본성이다.”
余曰嗟乎라仁者야. 水性도尙且不知어든況於人性乎아?
내가 말한다.
“딱하구나! 그대여. 물의 본성도 아직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본성이겠는가?”
曰水之性相體用을可得聞乎아?
그가 말한다.
“물의 본성과 모양, 그리고 본체와 작용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曰然다. 水渟不觸之時에難見其性이니吾當就次第야而辨明之리라. 風息浪靜야處乎澄湛者水之體也ㅣ오水色이蒼蒼然黑㓒㓒者水之相也ㅣ오因風而起波며活動而流下者水之用也ㅣ오水外無波며波外無水者水之體用이無二者也ㅣ니라. 水性은是濕也ㅣ니凡有觸處면便以潤濕으로爲義나니靜也濕며動也濕며流也濕며波也濕며淸也濕며濁也濕야惟以此濕性으로通貫體用과動靜淸濁故로云然也ㅣ니라.
0001_0025_b_01L내가 말한다.
“그렇다. 물이 정지해 있거나 그것을 만지지 않았을 때에는 그 본성을 알기 어려우니, 내가 마땅히 차례차례로 그것을 가려 밝히겠다. 바람이 자고 물결이 고요해 맑고 담담해지는 것은 물의 바탕이고, 물빛이 푸르거나 시커먼 것이 물의 모양이며, 바람으로 인해 물결을 일으키고 활발히 움직이며 아래로 흐르는 것은 물의 작용이다. 물을 떠나 따로 물결이 없으며, 물결을 떠나 따로 물이 없는 것은 물의 바탕과 작용이 둘이 아닌 것이다. 물의 본성은 즉 축축함이다.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곧바로 축축하게 적신다는 것이 (물의) ‘속성(義)’이니, 고요해도 축축하고, 움직여도 축축하며, 흘러도 축축하고, 물결쳐도 축축하며, 맑아도 축축하고, 탁해도 축축하다. 오직 이 축축한 성질이 바탕과 작용, 움직임과 고요함, 맑음과 탁함을 관통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又譬如一燈컨火之全身曰體ㅣ오火之圓尖曰形이오火之光色曰相이오火之照燭曰用이오火之ㅣ熱也曰性이니於其觸着에便以燒로爲義者也ㅣ니라. 然이나如人이將手出水면則水乾之時에其濕性은輒向甚處去ㅣ며又人이以口吹火면則火之時에其熱性은復向甚處去오? 儒家所論性理者是性相相對之性이로猶未能臻이온況性相絶對之性乎아?
또 하나의 등불에 비유하자면, 불이라는 전체 몸이 바탕이고, 불꽃의 둥글고 뾰족함이 형태이며, 불꽃의 광채와 빛깔이 모양이고, 불의 비춤이 작용이며, 불의 뜨거움이 본성이다. 그것에 닿기만 하면 태우는 것이 (불의) ‘속성(義)’이다.
그러나 사람이 손으로 물을 제거하면, 즉 물이 말랐을 때에는 그 축축한 성질은 갑자기 어느 곳으로 가는가? 또 사람이 입으로 불을 불면, 즉 불이 꺼졌을 때에는 그 뜨거운 성질은 또 어느 곳으로 가는가? 유가에서 논하는 성리性理는, 즉 ‘성품과 모양’이라는 상대적인 성품에도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성품과 모양’의 상대성조차 끊어진 성품이겠는가?
昔에異見王이生大邪見야偏滯於一隅故로婆提尊者ㅣ以性相體用本末不二之鉗鎚로頓放異見王面前야一印印破也ㅣ니라. 大手宗師ㅣ隨機接人之時에殺活縱奪을臨時應變니豈以一時權用之方便으로而論道也ㅣ리오? 朱子世辨이라安知吾家의神鋒之藏笑裡와鬼箭之落風前也ㅣ리오?
옛날에 이견왕이 큰 사견을 일으켜 한 귀퉁이에 치우쳐 머물렀던 까닭에 바라제 존자께서 성품과 모양, 바탕과 작용, 근본과 지말이 둘이 아니라는 집게와 쇠망치를 사용하여, 이견왕의 면전을 대뜸 내질러 하나의 도장을 찍어 버렸다. 훌륭한 솜씨를 갖춘 종사는 상대의 근기를 따라 남을 지도할 때에 죽였다 살렸다 풀어 주었다 잡아들였다 때맞춰 적절히 변용한다. 어찌 한때에 임시적으로 사용한 방편을 가지고 도를 논하리오. 주자는 ‘세지변총’이니, 어찌 우리 불교의 소위 신비한 칼끝이 웃음 속에 숨어 있고, 귀신의 화살이 바람 앞에 떨어지는 도리를 알겠는가?
維摩詰이曰法은離見聞覺如라며玄沙云學道之人은不識眞야爲從前錯認神이라니如是等話ㅣ數如塵沙라豈以精魂으로爲佛性耶아? 古云圓同太虛야無欠無餘언마는良由取捨야所以不如라며又云六塵을不惡면還同正覺이라니豈可偏滯於一隅耶아?
유마힐은 이르기를, ‘법은 보고 듣고 촉각하고 알음알이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했으며, 현사 사비 선사는 이르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여’를 알지 못하여, 여전히 잘못 알고 ‘정신’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는 그 수가 고운 모래알처럼 많다. 어찌 ‘정신’과 ‘혼백’을 가지고 ‘불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신심명』에) 이르기를, ‘원만함이 태허와 같아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참으로 취하고 버림으로 인해 그런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육진六塵을 싫어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같아진다’고 하였다. 어찌 한 귀퉁이에 치우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朱子ㅣ以聰明意識과計較思量으로杜撰是非니不知量也ㅣ로다. 余嘗閱明道集할朱子有云釋氏之病은錯認精神魂魄야爲性니果能見性인不可謂之妄見이오旣曰妄見인不可言性空也라此等立言이未瑩이라恐亦是見得이未分明也ㅣ라니,
0001_0026_a_01L주자는 총명한 의식과 이리저리 따지는 생각으로 제멋대로 시시비비를 일삼았으니, 진리(量)를 모른다. 내 일찍이 『명도집』을 열람한 적이 있는데, 주자가 이르기를, ‘석가의 병은 정신과 혼백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으로 오인한 것이다. 과연 본성을 보았다면 ‘망견妄見’이라 해서는 안 된다. 이미 ‘망견’이라고 했다면 본성이 공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런 등등의 주장이 아직 석연치가 않으니, 아마도 역시 알아차림이 아직 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한 것이 있다.
評曰圓覺經에云以思惟心으로測度如來圓覺境界如取螢火야燒須彌山이라며, 法華經에云如恒沙之菩薩과滿世間之鶖子ㅣ盡思共度量야도不能測佛智라며六祖釋云不能測佛智者病在度量也又云諸法眞實相은不可以言宣이라니豈以精神魂魄으로爲性爲心耶아? 佛云見見之時에見非是見이라시니豈不分明乎아? 不知他道則已也可矣어期欲說之야以露自昧니可謂舜犬妾婦也ㅣ로다.
(내가) 이를 평하여 말하노니, 『원각경』에서 이르기를, ‘사유하는 마음으로 여래가 원만히 깨달은 경계를 헤아리는 것은 마치 반딧불을 가지고 수미산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했으며, 『법화경』에서 이르기를,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보살과 세간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사리불이 끝까지 생각하고 함께 헤아린다 해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다.육조가 해석하여 이르기를,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하지 못하는 것은 그 병이 잘못 헤아리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모든 법의 진실한 모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어찌 ‘정신’과 ‘혼백’으로 ‘본성’을 삼고 ‘마음’을 삼았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보는 작용을 볼 때에는 보는 성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어찌 분명하지 않다는 것인가? 다른 도를 모른다면 그만두는 것이 옳겠지만, 기필코 설명하려다 자신의 우매함만 드러냈으니, 가히 ‘(아는 사람에게는 짖지 않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짖는) 순임금 집의 개와 같은 년(舜犬妾婦)’이라 하겠다.”
15. 불교는 일상 떠난 것에 집착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日用別執難)
問曰朱子曰切病近世學者호니不知聖門實學之根本次第고而溺於佛老之說야妄意天地萬物人倫日用之外에別有一物야空虛之妙를不可測度이라야其心이懸懸僥倖一見此物로以爲極致야未嘗不墜於此者라니豈不達佛理而妄斥之耶아?
묻는다.
“주자가 이르기를, ‘요즈음 학자들의 병통을 제거하노니, (요즈음 학자들은) 성스런 유가 문중의 ‘실학實學’의 근본 순서를 알지 못하고, 부처와 노자의 학설에 빠져, 천지 만물과 인륜의 일상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어 공하고 텅 빈 오묘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망령스레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아득하여 요행히 이 물건을 한번 보는 것으로 극치를 삼으니, 여기에 떨어지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하였다. (주자의 이 말씀이) 어찌 불교의 이치를 알지도 못하고서 멋대로 배척한 것이겠는가?”
答曰朱子ㅣ自語相違而不知脚下堆塵三尺이로다. 有時에云釋氏ㅣ錯認精神魂魄야爲性이라며有時에云釋氏ㅣ立天地萬物外에別有一物야空虛之妙를不可測度이라니不知커라是誠何心耶아? 旣曰釋氏ㅣ錯認精魂야爲性인何又曰天地萬物之外에別有一物云乎ㅣ며旣曰天地萬物外에別有一物云인何復曰錯認精魂야爲性乎아? 恕己旣昏이라何暇論及乎他哉ㅣ리오?
0001_0026_b_01L대답한다.
“주자는 자신의 말이 서로 모순되는데도 제 발 밑에 쌓인 먼지가 석 자나 되는 줄도 몰랐다. 어떤 때는 이르기를, ‘불교도는 잘못 오인하여 ‘정신’과 ‘혼백’을 가지고 ‘본성’이라고 한다’고 하고, 어떤 때는 이르기를, ‘불교도는 천지 만물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어 공하고 텅 빈 오묘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모르겠구나! 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인가? 이미 이르기를, ‘불교도는 정신과 혼백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이라 했다’고 말하고서는, 왜 또 이르기를, ‘천지 만물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다’고 운운했을까? 또 이미 ‘천지 만물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다고 한다’고 말해 놓고는, 왜 다시 ‘정신과 혼백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이라 한다’고 말했을까? 자신 살피는 것도 이미 어두우니, 어느 겨를에 남까지 논한단 말인가?
佛云사以根本智로達理고以後得智로達事라시니, 何錯認精魂爲性이며, 天地萬物人倫日用之外에別有一物이라니, 法華經에云是法이住法位야世間相이常住라며, 六祖云離世菩提면恰似求免角이라며, 殊云譬如高原陸地에不生蓮花고卑濕汚泥에乃生此花라며, 佛云色則是空이오空則是色이라며, 冶父云若人이識得家中寶면啼鳥山花一樣春이라며, 誌公云坐臥不知元是道고恁忙忙受苦辛이라며, 佛云孝順父母며師承三寶며孝順至道之法이니孝名이爲戒ㅣ며亦名制止라시며, 六祖云心平면何勞持戒ㅣ며行直면何用修禪이리오. 恩則親養父母ㅣ오義則上下相憐이오讓則尊卑和睦이오忍則衆惡無喧이니라. 若能鑽木出火면游泥에定生紅蓮리라. 苦口的是良藥이오逆耳必是忠言이오改過면必生智慧ㅣ오護短이면內心非賢이니라. 日用에常行饒益이니成道非由施錢이라시니吾佛之道ㅣ豈天地萬物人倫日用行事之外에別有一物耶아? 窺管之見이其謬甚矣ㅣ로다.
0001_0027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근본지로 이장理障을 통달하고 후득지로 사장事障을 통달한다’고 하셨으니, 어찌 정신과 영혼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으로 삼은 것이겠는가?
‘천지 만물과 인륜의 일용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다’고 했으니,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이 법이 법의 지위에 머물기 때문에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고 하였고, 육조 대사가 이르기를, ‘세간을 떠나 보리를 찾는 것은 흡사 토끼의 뿔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며, 문수보살이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높은 언덕 마른 땅에는 연꽃이 피어나지 않고, 낮고 습하며 더러운 진흙에 이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고 하셨으며, 야보가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제집 안의 보물을 알아차리면, 지저귀는 새와 산에 핀 꽃이 다 같은 봄소식이다’라고 송하였고, 지공 화상은 이르기를, ‘앉고 눕는 이것이 원래 도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허둥지둥 고통을 받는구나’라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범망경』에서) 이르시기를, ‘부모에게 효순하며 삼보를 스승으로 받들어라. 효순은 도에 이르는 길이니, 효를 이름하여 계戒라고도 하고 또한 제지制止이다’라고 하였고, 육조 대사가 이르기를, ‘마음이 평등하면 어찌 수고롭게 계를 지키며, 행실이 곧으면 무슨 참선을 닦을 필요가 있으랴. 은혜로우면 양친 부모를 봉양할 것이요, 의로우면 상하가 서로 사랑할 것이요, 사양하면 위아래가 화목할 것이요, 참으면 온갖 악이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나무토막을 비벼 불을 피울 수 있으면, 진흙 속에서 반드시 붉은 연꽃이 필 것이다. 입에 쓴 것이 바로 좋은 약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반드시 충성스런 말이다. 잘못을 고치면 반드시 지혜가 생기고, 단점을 가리면 속마음이 어질어지지 못한다. 일상 속에서 항상 두루 이롭게 행하라. 도를 이루는 것은 돈 베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우리 부처님 도가 어찌 천지 만물과 인륜의 일용 행사 밖에 따로 한 물건을 두는 것이겠는가? (가는) 대롱으로 (드넓은 하늘을) 보는 견해야말로 그 오류가 심각하도다.”
16. 본성과 천명을 수긍해야 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自肯性命難)
問子思曰天命之謂性이오率性之謂道ㅣ라니佛老以何로爲道爲性也ㅣ오?
묻는다.
“자사子思는 (『중용』에서) 이르기를, ‘천명을 일러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고 하였다. 부처와 노자는 무엇으로 도를 삼고, (무엇으로) 본성을 삼았는가?”
答曰敎有方內之道며敎有方外之道니方內之道는不出天地之範圍內故로天之所爲를不可遁避니卽如孔氏之道ㅣ是也ㅣ니라. 涵虛曰儒家所謂天命之謂性과萬殊之一本者語其性也ㅣ오. 其曰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야以具衆理而應萬事者語其心也ㅣ오. 其曰人心은惟危고道心은惟微라惟精惟一야允執厥中者語其道也ㅣ오. 居二氣之間者惟氣耳ㅣ니可以暴其氣乎아爲萬物之靈者는惟心耳니可以汨於其心乎아? 專一氣而群邪莫能殄고修一心而衆欲이莫能攻也ㅣ라고,
대답한다.
“가르침에는 세간의 도도 있고, 가르침에는 출세간의 도도 있다. 세간의 도는 천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이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니, 곧 공자의 도가 그것이다.
함허 선사가 (『유석질의론』에서) 이르기를, ‘유가에서 말한 ‘천명을 일러 본성이라 한다’는 것과 ‘온갖 다양한 것들의 근본’이라는 것은 그 본성(性)을 말한 것이다. 그들이 말한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허령불매하여, 온갖 이치를 빠짐없이 갖추고 만사에 응한다’는 것은 그 마음(心)을 말한 것이다. 그들이 말한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의 마음은 미미하기만 하다. 오로지 정밀하게 하고 오로지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심을 잡아라’라는 것은 그 도道를 말한 것이다. (음양의) 두 기운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오직 기氣일 뿐인데, 그 기를 난폭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만물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은 오직 마음(心)일 뿐인데, 그 마음을 침몰시켜서야 되겠는가? 한 기운(一氣)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모든 삿됨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한 마음(一心)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온갖 욕심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又云老曰谷神不死라以玄牝로爲天地之根者謂其性也ㅣ오. 其曰道之爲物이惟恍惟惚며窈兮冥兮호其中有精者는謂其心也ㅣ오. 其曰抱一專氣며知止不殆며不爲而成야絶聖棄智者謂其道也ㅣ라니此二敎急於心身而爲天下萬世之道也ㅣ로다. 然이나其所謂性은天命之性耳라非若佛之謂圓滿大覺之性也ㅣ오. 其所謂心은肉團生之心耳라非若佛之謂眞如淸淨之心也ㅣ오. 其所謂道率性之道耳라非若佛之謂脫生死免輪回之妙道也ㅣ니此是釋氏方外之道也ㅣ니라. 然이나方外之道必攝於方內ㅣ어니와方內之道必不攝於方外나니何者오? 大海能攝百川이어니와百川은不能攝大海也ㅣ니라.
0001_0027_b_01L(함허 선사가) 또 이르기를, ‘노자에 말한 ‘곡신은 죽지 않는다. 현빈으로 천지의 근본을 삼는다’는 것은 그 본성(性)을 말한 것이다. 그가 말한 ‘도는 황홀하고 황홀하며 그윽하고 아득하되 그 가운데 정기精氣가 있다’는 것은 그 마음(心)을 말한 것이다. 그가 말한 ‘하나를 품어 기운을 오로지하며, 그칠 줄 알아 위태롭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완성되며, 성스러움도 끊고 지혜를 버린다’는 것은 그 도道를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유교와 도교의 두 가르침은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에 다급하여 그것을 천하 만세의 도로 삼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말한 본성(性)은 하늘이 내려 준 본성(性)이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원만한 대각의 본성’과는 다르다. 저들이 말하는 마음(心)은 육단심으로 생주이멸하는 마음일 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여의 청정한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말한 도는 본성을 따르는 것을 두고 도라고 한 것일 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생사를 벗어나 윤회를 면하는 오묘한 도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출세간의 도이다.
그런데 출세간의 도는 반드시 세간을 끌어안지만, 세간의 도는 절대로 출세간을 끌어안지 못한다. 왜 그런가? 큰 바다는 온갖 시냇물을 끌어안을 수 있지만, 온갖 시내는 큰 바다를 끌어안지 못한다.
余觀諸道컨但有世法이오未有出世之法이로吾佛之道處乎方外야摠攝世出世法而圓備矣ㅣ니라. 所謂大覺性者經에云覺海性이澄圓며圓澄覺이元妙라니虛空도猶不能比其形이어니天地ㅣ豈能覆載之리오? 故로曰空生大覺中이如海一發이라시니其所謂至虛無極而體性이常住며至靈無竭而妙用이恒沙라體性이常住故로亘塵劫而不變며妙用이恒沙故로運造化而無窮이니라. 其曰大者는離覺所覺야絶諸對待之謂也ㅣ오. 其曰覺者自覺覺他야圓滿無碍之謂也ㅣ며, 所謂眞如淸淨心者大覺性上에妙用眞知ㅣ周亙法界야與覺性으로等야湛然常寂야大用이無方이니其曰眞如者는不妄不變之謂也ㅣ오. 其曰淸淨者不染六塵之謂也ㅣ니라.
내가 여러 (학파의) 도를 관찰해 보니, 거기에는 다만 세간법만 있고 출세간법은 없지만, 우리 부처님의 도는 세상 밖에 처하면서도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포섭하여 원만히 구비하였다. 이를테면 ‘대각성大覺性’이라는 것은 (『능엄경』이라는) 경에 이르기를, ‘바다 같은 깨달음의 성품이 맑고 원만하여, 원만하고 맑은 깨달음이 원래 오묘하도다’라고 하였으니, 허공으로도 오히려 그 모습을 비유할 수 없는데, 하늘과 땅이 어찌 그것을 덮고 실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말하자면, 지극하게 비어 있고 다함이 없되 ‘바탕이 되는 본성(體性)’은 항상 머물러 있으며, 지극하게 신령하고 마르지 않되 ‘오묘한 작용(妙用)’은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다. 체성體性이 항상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영원토록 불변하며, 묘용妙用이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기 때문에 조화가 무궁하다. 여기서 ‘대大’라고 말한 것은 깨닫는 주체와 깨달은 내용을 떠나 모든 상대를 끊었다는 말이고, 여기서 ‘각覺’이라고 말한 것은 저도 깨닫고 남도 깨우쳐 원만하고 걸림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한 ‘진여의 청정한 마음’이란, 대각의 성품 위에서 오묘하게 작용하는 진여가 법계에 두루하여, 깨달음의 성품과 더불어 평등하고 맑으면서 항상 고요하여, 큰 작용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여기에서 말한 ‘진여’란, 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여기에서 말한 ‘청정’란 육진에 물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永嘉所謂心鏡이明鑑無碍야廓然瑩徹周沙界ㅣ로다. 萬像森影現中이오一圓光이非內外者ㅣ是也ㅣ니佛之所以竪窮三際며橫遍十方이로다. 明透日月며德勝乾坤이라功超造化며量越太虛야而爲三界大師와四生慈父시니以盡得諸有而無遺故也ㅣ니라. 其所謂世間聖賢者ㅣ誰得與比肩哉ㅣ리오?
0001_0028_a_01L영가 선사가 말한 ‘마음 거울이 밝게 비춤에 걸림이 없으니, 텅 비고 밝게 사무쳐 항하사의 세계에 두루한다. 삼라만상이 그 가운데 나타난 그림자요, 한 알의 둥근 광명은 안도 밖도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부처님께서 이것으로써 시간적으로 삼제三際를 다하고, 공간적으로 시방에 미치셨다. 밝기는 해와 달을 뛰어넘고, 덕스럽기는 하늘과 땅보다 더하다. 그 공능은 조화를 초월하고, 그 분량은 태허를 초월했다. 그리하여 삼계의 큰 스승이 되시고 사생四生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셨다. 왜냐하면 모든 유有를 획득하여 남김없이 없앴기 때문이다. 소위 세간의 성현이란 자가 누구인들 (우리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佛敎之所謂出世者非蛻其形骸고入於混茫之謂也ㅣ라. 如有過量之人이不歷階梯고便登佛地者如睡夢覺며如蓮花開며如披雲見日月며非新非舊라獨露堂堂야無有形氣身心之足累며亦無有生死輪廻之可討ㅣ니玆其所以出世之道也ㅣ니라. 鳴呼라. 生靈之同出一源也에具有如是智慧德相이로而區爲形質야背馳不返야陷於見見識識之中이如木之犧樽에靑黃이變其狀며若土之陶鈞에大小ㅣ易其形며又如挹海貯於衆器야泥之混之며攪之動之면其渾濁也ㅣ極矣며其失性也ㅣ甚矣ㅣ로다.此是淸性이오非濕之本性也ㅣ니라 由其失性야而溺於混濁故로業海波騰에三途沸야輪回不息而生死ㅣ無窮니得不爲其傷心乎아?
불교에서 말하는 출세간이란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혼돈의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고정관념을 벗어난 어떤 사람이 계단이나 사다리를 밟지 않고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오른 자는, 잠자던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고, 연꽃이 피어난 것과 같으며, 구름을 헤치고 해와 달이 나타나는 것과 같고, 새로운 것도 아니고 옛것도 아니다. 홀로 드러나 당당하여 족히 얽매일 형체도 기운도 몸도 마음도 없고, 가히 제거해야 할 생사와 윤회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길이 되는 이유이다.
오호라! 생령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함께 나와 이와 같은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으나, 형질에 가로막혀 (근원을) 등지고 내달려 돌아오질 않고 온갖 견해와 온갖 알음알이 속에 빠지는 것이, 마치 나무로 희준犧樽이라는 술동이를 만듦에 청색, 황색으로 그 형상이 변하는 것과 같고, 찰흙을 물레 위에 돌리면 제각기 크거나 작게 그 형태를 바꾸는 것과 같으며, 또 바닷물을 퍼다 여러 그릇에 담아 거기에 진흙을 넣고, 그것을 뒤섞으며 그것을 휘젓고 그것을 흔들면 그 혼탁함이 극치에 이르러 그 본성을 심하게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이 비유는 밝은 본성을 말한 것이지, 축축한 본성을 말한 것이 아니다. 본성을 잃어 혼탁에 빠지기 때문에, 바다 같은 업이 바다처럼 솟구치고, 삼악도가 오래도록 들끓어 윤회가 쉬지 않아 생사가 끝이 없으니, 상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大凡情之所使也에背眞流蕩而紛擾不停며吸塵爲相而渾濁不淨나니紛擾不停故로生滅이相續며渾濁不淨故로物欲이交蔽야物欲之感에苦惱ㅣ繼之고生滅之感에生死ㅣ應之故로以情爲敎者其輪回之道也ㅣ오以性爲敎者는其出生死之道也ㅣ니라.
0001_0028_b_01L대개 무릇 ‘허망한 생각(情)’에 휘둘리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참을 등지고 방탕에 빠져 어지럽게 요동치며 멈추지 않고, 들이마신 먼지로 모양을 삼아서 혼탁하고 더럽다. 어지럽게 요동치며 멈추지 않기 때문에 생멸이 상속하며, 혼탁하여 맑아지지 않기 때문에 물욕이 자꾸 뒤덮는다. 물욕이 움직이면 고통이 따르고, 생멸이 움직이면 생사가 생긴다. 그러므로 ‘허망한 생각(情)’으로 가르침을 삼는 것은 윤회에 빠지는 길이고, ‘본성(性)’으로 가르침을 삼는 것은 생사를 벗어나는 길이다.
故로覺皇이不忍坐視其然사以大慈悲誓願力故로脫舍郍珍御之服시고着釋迦獘垢之衣야作不請友샤入諸世間야普以先覺으로開導迷倫사되以種種神通과種種智慧와種種威光과種種方便과種種言辭와種種法門으로說因說果며說罪說福시며說善惡說報應시며說天堂說地獄시며說佛刹說世界시며說權說實시며說漸說頓사直示之巧示之시며單示之複示之사皆欲含靈으로返妄歸眞야直至菩提妙莊嚴域케시니, 故로爲其敎也에通幽通冥며透天透地야廣及于大千而人之向化ㅣ若偃風之草니有衆魔怨이나而不壅蔽者以其誠也ㅣ니라.
그래서 깨달음의 황제이신 부처님께서 그런 것을 차마 좌시할 수 없으셨다. 대자비와 서원의 힘 때문에, 사나의 보배로 장식된 곤룡포를 벗으시고, 석가의 낡고 더러운 옷을 입고서, 초대받지 않은 벗이 되어 모든 세간에 들어가시어, 널리 먼저 ‘깨달음(覺)’으로 혼미한 무리를 깨우치고 인도하셨다.
갖가지 신통과 갖가지 지혜와 갖가지 위엄스런 광명과 갖가지 방편과 갖가지 말씀과 갖가지 법문으로, 인을 설하시고 과를 설하시며 죄를 설하시고 복을 설하시며 선악을 설하시고 보응을 설하시며 천당을 설하시고 지옥을 설하시며 부처님 나라를 설하시고 세계를 설하시며 권교를 설하시고 실교를 설하시며 점교를 설하시고 돈교를 설하시어, 곧장 보여 주기도 하시고 교묘하게 보여 주기도 하시며 한번만 지시하기도 하시고 반복해 지시하기도 하셨다. 그것이 모두 생명체들이 망정을 돌이켜 진여로 돌아가, 곧장 보리의 오묘하고 장엄한 땅에 도달하게 하려고 그러신 것이다.
따라서 그 가르침은 아득한 곳까지 통하기도 하고 어두운 곳까지 통하기도 하며, 하늘을 투과하기도 하고 땅을 투과하기도 한다.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미쳐서 사람들이 (그 가르침으로) 향하고 따름이 바람에 자빠지는 풀과 같았다. 무리 중에는 마구니들의 원망이 있었지만 막지 못했던 것은 그 진실함 때문이었다.
孔老法天制用故로其所修者云天心也며其所率者云天性也ㅣ어니와諸佛設敎諸天이奉行故로所明者는眞如淸淨心이오所率者는圓滿大覺性이오. 所達者는出生死妙道ㅣ니此是諸天人衆이奉之明之며率之達之護之者也ㅣ어而其事天者ㅣ返背之니豈可以謂合得天心乎ㅣ며又毁謗之니其可以謂率得天性乎아? 旣不合且率於天心天性則將何以爲道者哉ㅣ리오?
공자와 노자는 하늘을 본받아 작용을 제작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닦는 것은 말하자면 천심天心이고, 그들이 따르는 것은 말하자면 천성天性이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가르침은 모든 하늘까지도 받들어 행하기 때문에, 밝힌 것은 진여의 청정한 마음이고, 따르는 것은 원만한 대각의 성품이며, 통달한 것은 생사를 벗어나는 오묘한 도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하늘과 인간의 무리가 받들어 밝히는 것이며, 따르고 통달하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 하늘을 섬긴다는 자들이 오히려 이를 등지니, 어찌 천심天心에 합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이를 헐뜯고 비방하니, 그것을 천성天性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천심과 천성에 합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도를 삼으려는 자들인가?”
17. 인종이 소멸할 것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人種絶難)
問曰若世人이悉遵佛敎爲僧이면則男女生之道ㅣ滅絶야不幾多年에人種이將無有孑遺矣ㅣ오且惟修一身而已니誰爲君主者ㅣ며誰爲臣民者哉ㅣ리오?
묻는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조리 불교를 받들어 승려가 된다면, 남녀가 자식을 낳는 이치가 완전히 끊어져, 몇 해 안 가 인종이 얼마 안 남게 될 것이다. 또한 오직 제 한 몸만 수양할 뿐이니, 누가 군주가 되고 누가 신민이 되겠는가?”
答曰於前에不云乎아? 佛有四部弟子니曰比丘比丘尼와與淸信士淸信女也ㅣ라. 所謂比丘比丘尼者乃法海中一區分示派也ㅣ라. 掌諸佛法야以傳天下後世야燈燈相續者也며又了知無常世間이種種虛幻야無一可樂일專心欲究此一段大事因緣故로靜居安禪야但以悟로爲則니卽所謂到彼岸之經路也ㅣ오.
대답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불교에는 사부四部의 제자가 있으니, 말하자면 비구·비구니와 청신사·청신녀이다. 소위 비구와 비구니는 바다 같은 법 가운데 한 구역을 종파로 나누어 가진다. 모든 불법을 관장하여 천하 후세에 전하여, 등불에서 등불로 서로 이어 주는 자들이다. 또 무상한 세간이란 갖가지로 헛되고 환상과 같아서 좋아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분명히 알아, 온 마음을 다해 이 한 덩어리의 일대사인연을 마치려는 자들이다. 따라서 조용한 곳에 살면서 참선하여 오직 깨달음으로서 법칙을 삼으니, 즉 이것은 저 언덕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淸信士淸信女者는是在家二衆이라. 皆相與嫁娶야生養男女며承事父母며奉祀祖先며置治業며處身公私에事君以忠며事親以孝며惟義是從며惟理是踐며惟禮是行며惟信是守며惟仁斯存야心輪於平等公正之上야能以慈而與樂며能以悲而拔苦며能以喜而慶彼德며能以捨而棄難捨호而當事佛以勤며奉持大士의菩薩大戒淸淨律儀며修習禪定야淨治心垢며常以智慧로觀照야於癡暗면自然心鏡이朗徹야如蓮花不着水니,
청신사·청신녀는 재가의 두 대중이다. 그들은 모두 서로 시집가고 장가들어 아들딸을 낳아 기르고 부모를 받들어 섬기며, 받들어 제사하고 먼저 가신 분을 사당에 모시며, 생산 도구를 갖추고 생업을 경영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할 경우,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하고 부모를 섬기되 효성으로 하며, 오로지 의를 따르고 오로지 이理를 실천하며 오로지 예를 실천하고 오로지 믿음을 지키며 오로지 인을 보존한다.
언제나 평등하고 공정한 상태에서 마음을 움직여, 아끼는 마음으로 남과 함께 즐거워하고, 가여운 마음으로 남의 고통을 덜어 주며, 덩달아 기뻐하는 마음으로 남의 공덕을 축하해 주고, 평등한 마음으로 버리기 어려운 것들을 버린다. 부처님을 섬길 때에는 부지런히 하고, 보살의 청정한 율의보살 대계를 받들어 지키며, 선정을 닦아 익혀 마음의 때를 깨끗이 다스리고, 항상 지혜로 관조하여 어리석음의 어둠을 소멸시키면 자연히 마음의 거울이 밑까지 밝아져, 연꽃에 물이 묻지 않는 것처럼 된다.
故로宋朝參政李漢老ㅣ致大慧禪師書云自到城中으로着衣喫飯며抱子弄孫야色色仍舊호旣無拘滯之情며亦不作奇持之想이라며華巖會上에無量阿僧祇菩薩衆海ㅣ皆不剃髮고處俗利生者也ㅣ니라. 文殊ㅣ引蓮花之不染야以譬處世시니如大富者와波門居士ㅣ來趣道場者와三界諸天과八部聖神이雲集道場者ㅣ皆是在家而有妻有子者也ㅣ며,
그러므로 송나라 때 참정 이한로는 대혜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르기를, ‘성으로 돌아와 옷 입고 밥 먹으며 아이를 안고 손자와 장난치니, 일마다 예전 그대로지만, 이미 구애되거나 막히는 어리석음이 없으며, 또한 기이하거나 특별하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화엄회상의 바다처럼 수많은 한량없는 아승기 보살 대중이 모두 삭발하지 않고 세속에서 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들이었다. 문수보살이 연꽃이 오염되지 않는 것을 인용하여, 세속에 살아가는 것을 비유하였다. 도량에 모여든, 큰 부자인 장자長者와 바라문 출신의 거사들과, 삼계의 모든 하늘과 팔부의 성스런 신중들은 모두 재가하면서 처자식이 있는 자들이었다.
佛法이自東傳以後로迄于至今히或王或臣과或士或庶와無數人衆이歸敬三寶야親受佛戒야以作信男信女니於是에有見性達道야入生出死에得大自在者니如寵道原·傅大士·李通玄·蛇腹聖者尹弼·浮雪·白蘋·李眞樂等人이며有深入法門야善於智度者니如楊衒之·裴休·李翺·王常侍·張拙·范粹·黃庭堅·張商英·盧航·楊公·趙王隨·呂洞賓歸依于黃龍心禪師也等人이며,
불법이 동쪽으로 전해진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왕이나 신하나 선비나 서민 등 무수한 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계를 몸소 받고 신남·신녀가 되었다.
그들 중에는 견성하여 도를 통달하여, 생사의 출입에 대자유를 얻은 자도 있었으니, 예를 들면 방도원·부 대사·이통현·사복성자 윤필·부설·백빈·이진락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또 법문에 깊이 들어가 지혜바라밀에 뛰어난 자들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양현지·배휴·이고·왕상시·장졸·범문수·황정견·장상영·노항·양문공·조왕수·여동빈황룡 조심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有通達大義야歸宿法庭者니如孫思邈·崔孤雲·陶潛·蘇軾·白居易·邵康節有詩云求名少日投宣聖死當年親釋迦先能了盈世間事然後方言世出世柳子厚·王勃·社甫·張九成·楊傑·金正喜·李建昌·金月窓·等人과又王臣夫人과男女童幼와使役雇傭等無數人이며·又持戒生天며上昇內院者와與發願淨土야精修十善며稱號彌陁야往生極樂者無數人等을不可以筆勝記也니於傳燈錄辨正錄普林淨土寶鑑佛袒源流通載諸處俱載然而或騰或漏不可一盡其數如林也 莫不處於世間야或事君而治民며或居林而修道야有富而受欲樂者也ㅣ니라. 卽不論如何人物고皆可以入於此箇門中야而作佛子也ㅣ니何愁永絶生產乎아?
0001_0030_a_01L또 대의에 통달하여 절에 들어와 머문 자도 있었으니, 예를 들면 손사막·최고운·도잠·소식·백거이·소강절이런 시가 있다. ‘명예를 구하던 젊은 날에는 공자에게 투신하다가, 죽음이 두려운 올해에는 석가를 가까이하네. 먼저 세속의 일을 제대로 완수하고, 그런 뒤에 비로소 출세간을 말할 수 있네.’·유자후·왕발·두보·장구성·양걸·김정희·이건창·김월창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또 왕이나 대신의 부인과, 남녀의 어린아이들, 노역자와 일꾼 등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있으며, 또 계율을 지켜 하늘에 태어나기도 하며, 위로 도솔천 내원궁에 오른 자와, 더불어 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여 십선十善을 정밀히 닦으며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극락에 왕생한 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붓으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이다.『전등록』·『변정록』·『보림정토보감』·『불조원류』·『불조통재』 등 여러 곳에 모두 실려 있다. 그러나 늘리기도 하고 누락시키기도 하여, 그 숫자를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숲과 같다. 이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세속에 살면서 혹은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다스리며, 혹은 산속에 거처하면서 도를 닦으면서도 부귀를 소유하고 욕락을 누리지 않았던 자가 없었다. 즉 어떤 사람이건 논할 것 없이, 모두 불법 문중으로 들어와 불자가 될 수 있으니, 애 낳는 것이 영원히 끊어질까를 근심하리오?”
18. 어떤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何法度生難)
問曰釋氏ㅣ示現世間사饒益衆生이라니用何法度耶아?
묻는다.
“석가가 세간에 나타나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 법을 사용해 중생을 제도하였는가?”
答曰佛이觀三界衆生의苦海無量시고以大悲願力으로誕降王宮사示現八相成道사隨機演說시니十類衆生이隨根獲益홈이譬如大海야其深廣이難思어든大小魚族之諸類ㅣ馳遂浮遊야飮噉無時호海水無有增減者也ㅣ니라.
대답한다.
“부처님께서는 삼계 중생들의 고해가 한량없음을 관찰하시고, 대비의 원력으로 왕궁에 탄생하시어 팔상으로 도 이룸을 보이시어 근기 따라 연설하시니, 열 부류 중생이 근기 따라 이익을 얻음이 비유하자면 마치 큰 바다와 같다. 그 깊고 넓음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크고 작은 물고기 종족의 모든 부류가 달리고 쫓고 뜨고 노닐면서 시도 때도 없이 마시고 먹지만, 바닷물은 늘고 줆이 없는 것과 같다.
佛이隨機說法사類各不同니如華巖之統萬法明一心과圓覺之直指大光明藏과楞巖之大定과金剛之三空과阿含之四諦와幷天敎之生天과仙敎之十種과人敎之綱常等世出世間의萬種差別之法이無法不具也ㅣ니라. 今에但將一篇因緣야爲汝說之리라.
부처님께서 근기를 따라 법을 설하시되 부류가 각각 달랐으니, 예컨대 『화엄경』에서는 ‘만법을 통합하여 일심임’을 설하셨고, 『원각경』에서는 ‘대광명장’을 곧바로 지목하셨고, 『능엄경』에서는 ‘큰 선정’을 설하셨고, 『금강경』에서는 ‘세 가지의 공함’을 설하셨고, 『아함경』에서는 ‘사성제’를 설하셨다. 그리고 천교天敎에서는 하늘 나라에 태어나는 도를 설하셨고, 선교仙敎에서는 10종 수행을 설하셨고, 인교人敎에서는 강상의 윤리 등을 설하셨다. 그리하여 세간 출세간의 만 가지로 차별되는 법들이 거기에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그 가운데 한 종류의 인연만 가지고 그대에게 설명하겠다.
維摩詰이言호此土衆生이剛强難化故로佛이爲說剛强之語야以調伏之사言사是地獄이며是畜生이며是諸難處ㅣ며是愚人生處ㅣ며是身邪行이며是身邪行報ㅣ며是口邪行이며是口邪行報ㅣ며是意邪行이오是意邪行報ㅣ며是殺生이며是殺生報ㅣ며是不與取ㅣ며是不與取報ㅣ며是邪淫이며是邪淫報ㅣ며是妄語ㅣ며是妄語報ㅣ며是兩舌이며是兩舌報ㅣ며是無義語며是無義語報ㅣ며是貪嫉이며是貪嫉報ㅣ며是嗔惱며是嗔惱報ㅣ며是邪見이며是邪見報ㅣ며是慳吝이며是慳吝報ㅣ며是毁戒ㅣ며是毁戒報ㅣ며是嗔恚ㅣ며是嗔報ㅣ며是懈怠ㅣ며是懈怠報ㅣ며是亂意며是亂意報ㅣ며是愚痴ㅣ며是愚痴報ㅣ며是結戒ㅣ며是結戒報ㅣ며是持戒ㅣ며是犯戒ㅣ며是應作이며是不應作이며是障碍ㅣ며是不障碍ㅣ며是得罪ㅣ며是離罪ㅣ며是淨이며是垢ㅣ며是有漏ㅣ며是無漏ㅣ며是邪道ㅣ며是正道ㅣ며是有爲ㅣ며是無爲ㅣ며是世間이며是涅槃이라시니,
0001_0030_b_01L유마힐이 말했다.
‘이 국토의 중생들이 굳세고 강하여 교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굳세고 강한 말씀을 설하여 그들을 조복하시려고, 이것이 지옥이고 이것이 축생이며 이것이 여러 험난한 세계이고 이것이 어리석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며, 이것이 몸으로 짓는 삿된 행이고 이것이 몸으로 짓는 삿된 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입으로 짓는 삿된 행이고 이것이 입으로 짓는 삿된 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뜻으로 짓는 삿된 행이고 이것이 뜻으로 짓는 삿된 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살생이고 이것이 살생의 과보이며, 이것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고 이것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진 과보이며, 이것이 삿된 음행이고 이것이 삿된 음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거짓말이고 이것이 거짓말을 한 과보이며, 이것이 이간질이고 이것이 이간질을 한 과보이며, 이것이 의롭지 못한 말이고 이것이 의롭지 못한 말의 과보이며, 이것이 탐욕과 질투이고 이것이 탐욕과 질투의 과보이며, 이것이 성냄과 고뇌이고 이것이 성냄과 고뇌의 과보이며, 이것이 삿된 견해이고 이것이 삿된 견해의 과보이며, 이것이 인색함이고 이것이 인색함의 과보이며, 이것이 파계이고 이것이 파계의 과보이며, 이것이 성냄이고 이것이 성냄의 과보이며, 이것이 나태함이고 이것이 나태함의 과보이며, 이것이 산만함이고 이것이 산만함의 과보이며, 이것이 어리석음이고 이것이 어리석음의 과보이며, 이것이 계를 받는 것이고 이것이 계를 받은 과보이며, 이것이 계를 지키는 것이고 이것이 계를 범하는 것이며, 이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이것이 장애이고 이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죄를 얻는 것이고 이것이 죄를 벗어나는 것이며, 이것이 깨끗한 것이고 이것이 더러운 것이며, 이것이 번뇌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번뇌가 없는 것이며, 이것이 삿된 도이고 이것이 바른 도이며, 이것이 유위이고 이것이 무위이며, 이것이 세간이고 이것이 열반이라 하셨다.
以難化之人이心如猿故로以若干種法으로制御其心야사乃可調伏이니譬如衆馬悷不調어든加諸楚毒야乃至徹骨然後에調伏니如是剛强難化衆生故로以一切苦切之言으로사乃可入律이라시니,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수천 종류의 법으로 그 마음을 제어해야만 비로소 조복시킬 수 있다. 비유하자면 여러 말들이 거칠고 사나워 통제가 안 되면 온갖 혹독한 매질을 가하여 마침내 아픔이 뼈에 스민 뒤에야 조복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굳세고 강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이 있기 때문에, 온갖 쓰디쓴 말씀을 하셔야만 질서에 들어올 수 있었다.’
此一期接引下根之方便이라. 若接中上之根인卽不如是也ㅣ니라. 君아當深信佛之正道야莫謗世尊라佛是汝心이라謗佛者謗汝自心이니라. 佛言사我如醫王야知病設藥이어든服與不服은非醫咎也ㅣ라시고又云사如來者如語者며實語者며不語者며不異語者라시니라.
0001_0031_a_01L따라서 이것은 한 시기에 하근기를 만나 인도하던 방편이다. 만약 중근기 또는 상근기를 만나셨다면 이렇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대여! 부처님의 바른 도를 마땅히 깊이 믿어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부처님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은 너 자신의 마음을 비방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의사 임금처럼 병을 알고 약을 베풀지만, 복용하고 복용하지 않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또 이르시기를, ‘여래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이며 진실하게 말하는 자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이며 다르게 말하지 않는 자이다’라고 하셨다.”
19. 윤회가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永無受生難)
問曰夫人死也如木之成灰야不重爲木이라永無受生之道어佛有輪回六趣之說니末審커라. 魂魄이已散에何物이受生고?
묻는다.
“대저 사람이 죽는 것이, 마치 나무가 타서 재가 되면 다시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 영원히 다시 태어날 길이 없는 법인데,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설이 있다. 모르겠구나, 혼백이 이미 흩어졌는데 어떤 물건이 생을 받는가?”
答曰汝ㅣ生時에有何物야而受胎오?
대답한다.
“그대는 태어날 때 어떤 물건이 있어 태를 받았는가?”
曰生則自然生이오死則自然滅이니라.
그가 말한다.
“태어남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저절로 소멸하는 것이다.”
余曰你云生則自然生이라니則汝不因父母而生耶ㅣ며死則自然死라니則汝不因老病而死耶아?
내가 말한다.
“그대가 말하기를, ‘태어남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너는 부모를 빌리지 않고 태어났는가? 또 말하기를, ‘죽음이란 저절로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대는 늙거나 병들지 않고도 죽는가?”
曰天所命者를人必受之故로吾ㅣ以爲稟天地之氣而生也ㅣ라노라.
그가 말한다.
“하늘이 명한 것을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천지의 기운을 품받아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余曰已稟天地之氣而生也則汝不因父母交接而生耶아?
내가 말한다.
“천지의 기운을 품받아 태어났다면, 그대는 부모의 교접 없이도 태어났는가?”
曰因父母交接而生也ㅣ니라.
그가 말한다.
“부모의 교접으로 인해 태어났다.”
余曰旣因父母而生인則道稟父母之氣分은可也ㅣ어이와你所謂稟天地之氣理義不當이로다.
내가 말한다.
“부모 때문에 태어났다면, ‘부모의 기운을 쪼개 받았다’고 해야 옳은데, 그대가 말한 ‘천지의 기운을 품받았다’는 것은 이치가 옳지 않다.”
曰父母則同天地也ㅣ니라.
그가 말한다.
“부모는 천지와 같다.”
余曰如子之言컨則當乾坤이始開而萬物未起之時야人種이從甚處出生乎아?
내가 말한다.
“그대 말대로라면,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만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인간이란 종자는 어디에서 출생하였는가?”
曰吾聞之니上古之人은自然化生云이러라.
0001_0031_b_01L그가 말한다.
“내가 듣기로는, 상고 시대의 사람은 자연에서 화생한 것이라고 한다.”
余曰旣云自然化生인則從那裡而化生耶아? 從土而化生耶아? 從石而化生耶아? 從水而化生耶아? 從火而化生耶아? 從木而化生耶아? 從金而化生耶아? 從空而化生耶아? 從上而化降耶아? 從下而化昇耶아?
내가 말한다.
“자연에서 화생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것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흙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돌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물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불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나무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쇠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허공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위에서 변화해서 내려왔는가? 아래에서 변화해서 올라왔는가?”
曰吾嘗聞之니高扶梁三姓人은於濟州島漢山頭無岳石窟中에從地湧出고檀君은於太白山檀木下에降生고慶州金氏之祖金閼智於慶州林間에有一金函而有人自化라니如是等異迹이於天下에想必多數矣리라.
그가 말한다.
“내가 일찍이 듣기로는, 고·부·양 씨 세 성을 가진 사람들은 제주도 한라산 꼭대기에 있는 무악석굴 속에서 땅에서 솟았다고 하고, 단군은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강생하였다고 하고,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경주 숲속에 황금상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속의 어떤 사람이 스스로 변화했다고 한다. 이런 등등의 기이한 자취가 천하에 생각건대 분명 다수이다.”
余曰土石卵等類가云能自化於人인而今不爾者何也오? 若曰人이因稟土石木卵之氣而生이라며若稟空而氣生이라면是非關於父母天地之氣也로다. 言至於斯에足見語論之相左와事理之相違니可謂邪法은久難扶持로다.
내가 말한다.
“흙·돌·알 등의 종류가 스스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인가? 만약 사람이 흙·돌·나무·알의 기운을 품받아서 태어났다고 하고, 만약 허공을 품받아서 기운으로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는 부모나 천지의 기운과 관련 없다는 것이다. 말이 여기에 이르면, 말과 논리가 서로 반대되고 사事와 이理가 서로 위배됨을 족히 알 수 있다. 참으로 삿된 법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吾復問汝노라. 凡人이始受胎之時에何物이以能成人也오?
내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보통 사람이 처음 수태할 때에 어떤 물건이 사람을 이루는가?”
曰父精母血이合聚而漸成此身이니라.
그가 말한다.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혈액이 합쳐져서 차츰 이 몸을 이룬다.”
余曰若汝之父精母血이合成人身인必當人人에隨其陰陽之交運而隨生이어今却不然者何也오?
내가 말한다.
“만약 그대의 아버지 정기와 어머니 혈액이 합하여 사람의 몸을 이룬다면, 반드시 사람사람에 음양이 교접할 때마다 태어나야 마땅하다. 지금 도리어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曰於是時也에若母之月水가失度ㅣ어나或男之精白이値寒커나以如是因緣으로不能受胎也ㅣ니라.
그가 말한다.
“그때에 어머니가 월수가 때를 놓쳤거나 남자의 정자가 차거나, 이와 같은 인연으로 수태하지 못하는 것이다.”
曰然則男精이溫和고女水가調經者胡不受胎오?
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남자의 정자가 온화하고 여자의 월수가 조리에 맞는데도 어찌하여 수태되지 않는가?”
曰到這裡야是聖人之當知ㅣ오非我輩之所能測也ㅣ니라.
그가 말한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성인이라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우리 같은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余曰未知入胎受生之道ㅣ어니況論死後化去之理乎아? 上古神聖降化事蹟이於諸釋典과許多經에詳明紀載나煩難提ㅣ로다. 然이나但取一二簡意야爲說之호리라. 夫世界肇判而后에當人壽八萬四千歲時야福力殊勝이如色界天으로同一無異라. 有光音天人이飛遊四方이라가仍住於此야因食地味而身重야不能復上야爲人種之始니라.
0001_0032_a_01L내가 말한다.
“태에 들어가 목숨을 받는 도리도 아직 모르는데, 하물며 죽은 후에 변화하여 떠나는 이치를 논하겠는가? 상고시대에 신령스런 성인이 내려와 교화했다는 사적이 여러 불교 전적과 허다한 경문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지만, 문장이 번다하여 일일이 들추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두 가지 간단한 뜻만 취하여 그대에게 설명하겠다.
대저 세계가 처음 갈라진 후, 그때의 사람 수명은 8만 4천 세여서, 수승한 복덕의 힘이 색계천과 동일하여 차이가 없었다. 광음천의 어떤 사람이 사방을 날아 노닐다가 이곳에 머물러, 지미地味를 먹자 몸이 무거워져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없어 인간 종족의 시조가 되었다.
轉轉而降으로人壽減而福力이損며間有桑田碧海之變辻故로人種이終而復生야至於穴居而野處며人性이貪毒야殺害ㅣ繼生니於是에或佛或菩薩과或天或漢이垂大悲願力사降迹人間실或有不因父母而自化者며有因父母而生之者니如寒山拾得誌公檀君高扶梁首露王如是人等은不因父母而自化者也ㅣ며, 如靈山當時佛菩薩諸位聖者는或因或化而生之者ㅣ며, 如頂上王은頂化而道詵圓鑑惠可如是人等은不干其父고假母胎而生之者也ㅣ니, 皆以聖賢而愍衆生之故로爲降世間사開發民智也ㅣ시니라. 又如伏羲神農少昊顓頊如是人等도亦皆借母腹而生者也ㅣ니라.
점점 세월이 내려오면서 사람의 수명이 감소하고 복덕의 힘이 줄어들었으며, 그 사이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 종족이 끊어졌다가는 다시 태어나, 굴에 살기도 하고 들판에서 살기도 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의 성품이 탐욕스럽고 독해져 살해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이에 혹은 부처님이나 혹은 보살님이나, 혹은 천신이나 혹은 나한이 대비의 원력을 드리워 인간의 몸으로 자취를 나타내셨다. 부모를 말미암지 않고 스스로 화생한 자도 있고, 혹은 부모를 말미암아 태어난 자도 있었다. 예컨대 한산·습득·지공·단군·고부양·수로왕 같은 사람들은, 부모를 말미암지 않고 화생한 자들이다. 영산회상 당시의 불보살과 여러 지위의 성자들은 혹은 부모를 말미암기도 하고 혹은 화생한 자들이다.
예컨대 정상왕은 정수리에서 화현했고, 도선·원감·혜가 이런 사람들은 그 아버지와 상관없이 그저 모태만 빌려 태어난 자들이다. 모두 성현으로서 중생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세간에 내려와 백성들의 지혜를 개발해 주신 것이었다.
또 예컨대, 복희·신농·소호·전욱 이런 사람들도 역시 모두 어머니의 배만 빌려서 태어난 자들이다.”
20. 수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受胎理由問)
問曰人之受胎理由를其可得聞歟아?
묻는다.
“사람이 잉태되는 이유를 들려줄 수 있겠는가?”
答曰可다. 汝若知受胎生來之因緣이면必不疑於命終死去之事矣ㅣ리라. 夫人之受胎也에誰有父母精血之凝合이나然이나卽其受胎者之神識이與父母之神識으로三緣이和合然後에사方可成胎니라.
대답한다.
“있다. 그대가 만약 수태되어 태어나게 되는 인연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목숨이 끝나 죽어서 가는 일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저 사람이 수태되려면 누구나 부모의 정기와 혈액이 엉겨 합쳐져야만 한다. 그러나 수태되는 자의 신식神識이 부모의 신식과 이 세 가지 연이 화합한 뒤에야 비로소 태를 이룰 수 있다.
本事經에云佛告比丘사當知라三因三緣이能感後有後有者後身也受胎也니라. 云何爲三因고所謂無明을未斷故며貪愛를未棄故며造業을未息故로能感後有니라. 所以然者何오? 業爲良由이오識爲種子오愛爲漑灌也三緣者父母己也라시고, 瑜珈論云호爾時에父母貪愛俱極야最後各出一滴濃厚精血야和合住母胎中니猶如熟乳凝結야依阿賴耶神識야便成受胎云云也ㅣ니라.
『본사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길, 마땅히 알라. 세 가지 인과 세 가지 연이 후유後有후유란 후신이고, 잉태되는 것이다.를 초래한다. 무엇이 세 가지 인인가? 이른바 무명을 끊지 못했기 때문에, 탐애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업을 짓기를 쉬지 못했기 때문에 후유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업은 좋은 밭이 되고, 식은 종자가 되며, 애욕은 물 대어 줌이 된다세 가지 연은 아버지·어머니·자기이다.’고 했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그때 아버지·어머니의 탐애가 함께 극치에 다달아 최후에 각자 한 방울의 진한 정기와 혈액을 배출하여 화합되어 어머니의 태에 착상하니, 마치 숙성된 우유가 응결한 것과 같다. 아뢰야식 신식이 거기에 의탁하여 곧바로 수태된다’고 운운하였다.
大抵父母之精血은猶水土之氣分也ㅣ니雖有父母精血이相合이나非火大의所持면不能生成이오非風大의所持면不能成熟며亦不能回轉며亦不能通覈也ㅣ니라. 然이나通而言之컨成熟增은風火之造化也ㅣ오潤濕凝結은水土之所持也ㅣ오骨格之堅强은金氣之助因也ㅣ니라. 神識所應에四大護從이如雲從龍風從虎야自然交會ㅣ오非是强爲也ㅣ니라.
대저 부모의 정기와 혈액은 마치 물과 흙의 기운으로 나뉘어진 것 같다. 비록 부모의 정기와 혈액이 서로 합하더라도 화대가 지탱시켜 주지 않으면 생성될 수 없으며, 풍대가 지탱시켜 주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고, 몸을 돌릴 수도 없고 배 속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통틀어서 말해 보면, 성숙시키고 증장시키는 것은 풍과 화의 조화이고, 축축하게 적시고 응결시키는 것은 수와 토가 지탱시켜 주는 것이고, 골격이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것은 금의 기운이 보조 원인이 된다. 신식에 응한 것을 사대가 보호하여 따름이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호랑이를 따르는 것과 같아 자연히 사귀어 모이는 것이지, 강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寶積經에云是諸衆生이托胎在母腹中야三十八箇七日에有二十九種業風의所吹야次第成就니第一七日은狀如酪漿고第二七日은狀如凝酪고第三七日은狀如藥杵고第四七日은狀如鞋援고第五七日은分頭臂䏶고第六七日은肘脨相現고第七七日은手足掌現고第八七日은二十指現고第九七日은九孔方現고第十七日은聲音具足고第十一七日은九孔開通고第十二七日은生腸節孔고第十三七日은生飢渴想고第十四七日은生萬觔고第十五七日은生八萬脈고第十六七日은通出入息고第十七七日은食道漸寬고第十八第十九七日은六根具足고第二十七日은偏生骨節고第二十一七日二十二七日二十三七日은生血肉皮고第二十四七日二十五七日은血肉皮고第二十六七日은生毛髮爪고第二十七七日은分善惡相고第二十八七日은妄生八想고第二十九第三十七日은黑白隨業고第三十一로至第三十六七日은身相具足고第三十七七日은念欲出生고第三十八七日로滿十箇月야넌向母門야倒卓而坐라니라.
0001_0033_a_01L『보적경』에 이르기를, ‘이 모든 중생들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탁태하여 38주를 지내는 동안 29종의 업풍이 불어와 차례로 성취되어 간다. 제1주에는 간장 같은 상태이고, 제2주에는 엉긴 우유와 같은 상태이며, 제3주에는 약을 찧을 때 쓰는 절구공이 같은 상태이고, 제4주에는 가죽신을 만들 때 틀 같은 상태이며, 제5주에는 머리와 두 팔 두 다리가 나뉘고, 제6주에는 팔꿈치와 무릎의 모습이 나타나며, 제7주에는 손바닥과 발바닥이 나타나고, 제8주에는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이 나타나며, 제9주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비로소 나타나고, 제10주에는 소리를 내고 듣는 것이 갖추어지며, 제11주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개통되고, 제12주에는 창자의 마디와 구멍이 생기며, 제13주에는 배고프다거나 목마르다는 생각을 하고, 제14주에는 만 개의 힘줄이 생기며, 제15주에는 팔만 개의 맥이 생기고, 제16주에는 들숨과 날숨이 통하며, 제17주에는 식도가 점점 넓어지고, 제18주와 19주에는 육근이 완전히 갖춰지고, 제20주에는 온몸에 뼈마디가 생기며, 제21주와 제22주와 제23주에는 피·살·피부가 생기고, 제24주와 제25주에는 피·살·피부가 자라며, 제26주에는 털·머리카락·손발톱이 생기고, 제27주에는 좋고 나쁜 모양을 분별하며, 제28주에는 허망하게 여덟 가지 생각을 일으키고, 제29주와 제30주에는 흑업과 백업을 따르며, 제31주에서 제36주까지는 신체의 상호가 완전히 갖춰지고, 제37주에는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제38주에서 만 10개월이 되면 어머니의 산문을 향해 거꾸로 앉는다’고 하였다.
大凡形體之端正과皮膚之鮮潔과骨骼之淸秀都在於善業之所感이니於三十八箇七日間에有二十九種善業風之所成者也ㅣ오. 骨骼이偏邪고形貌不正等者於三十八箇七日間에有二十九種惡業風之所就者也ㅣ니라.二十九種風名狀詳于胞胎經也 法苑珠林에云三十八箇七日에在母腹中야隨其本行야自然風起나니宿行善者便有香風이可其身意야骨節端正야莫不敬愛고本行惡者則起臭風야不可心意야吹其骨節야偏邪瘻曲야使不端正야人所不喜云니라.
0001_0033_b_01L대개 형체의 단정함과 피부의 고움과 골격의 수려함은 모두 선업이 초래한 것이며, 38주 사이에 29종의 선업의 바람이 불어 이룬 것이다. 골격이 비틀어지고 형체나 모양이 바르지 못한 것 등은 38주 사이에 29종의 악업의 바람이 불어 이루어진 것이다.29종의 바람 이름과 형상은 『포태경』에 상세히 나온다.
『법원주림』에서는 ‘38주 동안 어머니 배 속에서 지내는 동안, 전생에 한 행에 따라 저절로 바람이 일어난다. 전생에 선을 행한 자에게는 곧 향기 바람이 일어 그 몸과 뜻을 적합하게 하여 골격과 마디가 단정해서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생에 악을 행한 자에게는 곧 악취의 바람이 불어 그 마음과 뜻에 적합하지 않게 하여 그 골격과 마디를 흔들어 비틀고 구부려 단정하지 못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汝之身本은卽汝父母之精血一滴而已也ㅣ니此一滴精血은則非從天地而來며亦非從虛空木石等處而來者ㅣ라. 卽汝父母愛極之所感也ㅣ며亦汝神識之愛極而感蒙其精血者也ㅣ니라. 是父母己三愛之身은卽同心之所發者ㅣ나然이나汝之靈識은非天人之所能與奮也ㅣ라. 汝但隨汝之所作業而輪回六趣라가而報緣遷謝之日에其所捨者惟一滴精血所成就之身也ㅣ니라. 此身에有地水火風四大焉니風火二大先去上升고地水二大仍滯在身이나而其氣未散얀惟冷醜團團的一箇塊兒耳니라.
그대의 몸뚱이의 근본은 곧 그대 부모 정기와 혈액 한 방울일 뿐이다. 이 한 방울의 정기와 혈액은 천지에서 온 것도 아니고, 또한 허공이나 나무나 돌 등에서 온 것도 아니다. 곧 그대의 부모의 애욕이 극에 달해 초래한 것이며, 또한 너의 신식의 애욕이 극에 달해 그 정기와 혈액을 받아들인 것이다. 부와 모와 자식, 이 세 가지 애욕은 다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너의 신령한 식은 하늘이나 사람이 능히 주거나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다만 지은 업을 따라 육도를 윤회하다가, 과보의 연이 다하는 날에 그대가 버리는 것은, 오직 한 방울의 정기와 혈액으로 이루었던 몸뚱이일 뿐이다. 이 몸뚱이에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있으니, 풍·화 2대가 먼저 떠나 위로 올라가고, 지·수 2대는 몸뚱이에 남아 있게 된다. 그렇지만 기운이 아직 흩어지지는 않았지만, 오직 차갑고 추하여 단단한 하나의 흙덩어리일 뿐이다.”
21. 후생의 몸을 받는 것에 대한 힐난에 대한 반론(報謝受身難)
問曰凡人이報緣遷謝之時에中陰神識은如何受身고?
묻는다.
“무릇, 사람이 과보의 인연이 다해 옮겨 갈 때 중음의 신식은 어떻게 몸을 받는가?”
答曰寶積經에云此神識이從衆生身內야移於彼時에有取有受而住니猶如密蜂이取諸花味야而捨其花고更移別花호或捨惡花고移至好花야坐花上已에樂着彼花야取彼香味라시니惡花者喩惡道也ㅣ오好花者喩善道也ㅣ니라. 又寶積經에云彼識欲移ㅣ猶如睡人이夢見諸事나然이나此識이不咽喉及諸孔而出니其識도亦復如是야不求諸孔이니라.
0001_0034_a_01L대답한다.
“『보적경』에서 이르기를, ‘이 신식이 중생의 몸 안에서 저쪽으로 옮겨 갈 때에, 취함이 있고 받음이 있어서 머문다. 마치 꿀벌이 꽃에서 맛을 취하고는 그 꽃을 버리고 다시 다른 꽃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혹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 가, 꽃 위에 앉아 그 꽃을 좋아해 집착하면서 그 꽃의 향기로운 맛을 취한다’고 하였다. 나쁜 꽃은 나쁜 세계를 비유하고, 좋은 꽃은 좋은 세계를 비유한다.
또 『보적경』에서 이르기를, ‘저 식이 옮겨 가려 하는 것이, 마치 잠자는 사람이 꿈에 온갖 일들을 보지만 이 식이 목구멍이나 다른 어떤 구멍으로 나가지는 않는 것과 같다. 이 식 또한 그와 같아 어떤 구멍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復問諸卵은不破면其識은云何移徙인고?
또 묻는다.
“모든 알들은 깨지지 않으면 그 식이 어떻게 옮겨 가는가?”
佛言사譬如以瞻婆花로薰麻善熟然後에壓油而言되此是瞻婆花油나然이나彼花香은不從麻邊에求孔而入이라. 因彼花麻ㅣ二和合故로其香이從徙나니此識移卵도亦復如是니라.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자면 첨바화를 마麻에 김을 쐬여 그것을 잘 숙성시킨 뒤에 기름을 짜고는 말하기를 이것이 ‘첨바화 기름’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 꽃향기는 마에서 구멍을 찾아 거기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저 꽃과 마 두 가지가 화합했기 때문에 그 향기가 옮겨지는 것이다. 이 식이 알로 옮겨 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하셨다.”
復問此識이移徙에善不善業이其事ㅣ云何오?
또 묻는다.
“이 식이 옮겨 갈 때 선업과 불선업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佛言사猶如種子를擲眞地內야生芽莖葉과乃至花果히或赤或白며或性剛柔니皆業力成熟故ㅣ니라. 又護童眞이問佛호識이捨此身고隨善惡業야遷受餘報이其事如何니닛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종자를 땅속에 심어,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생기며 나아가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혹은 붉기도 하고 혹은 희기도 하며, 혹은 본성이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것과 같다. 이는 모두 업력이 성숙시켰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또 현호 동진이 부처님께 묻기를, ‘식이 이 몸뚱이를 버리고 선업 또는 악업을 따라 변화하여 다른 과보를 받는 일은 어떻게 일어납니까?’라고 하였다.
佛言譬如風大ㅣ出深山谷야入占蔔林면其風이便香고經於糞穢면其風이便臭고若風香臭가俱至면則風香臭ㅣ幷兼이되盛者ㅣ先顯니風大ㅣ無形고香臭도無質이나然이나風持香臭하야遷之於遠니此身이捨識에持善惡業야遷受餘報도亦復如是라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바람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치자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그 바람이 곧 향기로워지고, 더러운 똥을 스치면 그 바람에서 곧 냄새가 난다. 만약 바람이 향기롭거나 냄새 고약한 것을 함께 쏘이면, 바람에 향기와 악취가 둘 다 있지만 더 성한 것이 먼저 드러난다. 바람은 형체가 없고 향기와 악취도 형질이 없지만, 바람은 향기와 악취를 품고 멀리까지 옮긴다. 이 몸이 식을 버림에, 선하고 악한 업을 지니고 옮겨 가 다른 과보를 받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하셨다.”
22. 태에 들어가는 순간을 설명해 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入胎形容難)
問曰此陰을已捨고彼陰을未受之時에中陰亦名中有의入胎形容이如何오?
묻는다.
“이 오음五陰을 이미 버리고 저 오음을 아직 받지 않았을 때, 중음中陰중유中有라고도 한다.이 태에 들어가는 모양이 어떠한가?”
答曰余觀毘婆論니云中陰이入胎之時에母最後血餘一滴과父最後精餘一滴이和合戊就호由其中有ㅣ於父於母에愛二心이展轉現起야若男中有면於母에起愛고於父에起恚야作如是念되若彼丈夫ㅣ離此處者면我當與女人으로交會리라야作是念已에顚倒想이生야見彼丈夫遠此處고尋自見與女人으로和合야父母交會精血出時에便謂父精을是自所有고見已에生喜야而便迷悶니以迷悶故로中有麄重고麄重已에便入母胎니自見己身이在母右脇야向背坐고若女中有면於父에起愛고於母에起恚도亦復如是야在母左脇야向腹坐니諸有情類ㅣ多起如是顚倒想已에而入母胎云爾니라.
대답한다.
“내가 『비바사론』을 보니 이르기를, ‘중음이 태에 들어갈 때에, 어머니의 최후의 남은 혈액 한 방울과 아버지의 최후 정기 한 방울이 만나 어우러지면, 이때에 중유가 아버지에게 또는 어머니에게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두 마음을 점점 더 일으켜 나아간다. 만약 남자의 중유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리고는 저 남자가 이곳을 떠나면 내가 저 여인과 사랑을 나누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전도된 생각이 일어나, 그 남자가 이곳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아 자신이 여인과 화합한다고 여겨, 부모가 교회하여 정기와 혈액이 흐르면 대뜸 아버지 정기를 자기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여기고 나서는 흥분하여 곧바로 미혹해진다. 미혹해졌기 때문에 중유가 거칠고 무거워진다. 거칠고 무거워진 다음에는 곧바로 어머니 태에 들어가게 된다. 자기 몸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 자리한 것을 몸소 보고, 등 쪽을 향해 웅크리고 앉는다. 만약 여자 중음이면, 아버지에게 애욕을 일으키고 어머니에게 미움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 자리하고 배 쪽을 향해 웅크리고 앉는다. 모든 유정의 부류들이 대부분 이처럼 전도된 생각을 일으켜 어머니의 태로 들어간다’고 운운하셨다.”
23. 유정이 몇 종이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有情幾種問)
問曰世界有情之類ㅣ有幾種差別乎아?
묻는다.
“세계의 유정은 몇 종류로 차별이 있는가?”
答曰生因이差別無量이나然이나佛이摠束十二類야明之시니一曰卵生이오. 二曰胎生이오. 三曰濕生이오. 四曰化生이오. 五曰有色이오. 六曰無色이오. 七曰有想이오. 八曰無想이오. 九曰非有色이오. 十曰非無色이오. 十一曰非有想이오. 十二曰非無想이라시니라.
대답한다.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이 한량없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모두 열두 종류로 묶어서 설명하셨다. 첫째는 난생이고, 둘째는 태생이며, 셋째는 습생이고, 넷째는 화생이며, 다섯째는 유색이고, 여섯째는 무색이며, 일곱째는 유상이고, 여덟째는 무상이며, 아홉째는 비유색이고, 열째는 비무색이며, 열한째는 비유상이고, 열두째는 비무상이다.”
24.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生因差別問)
問曰其生因之差別을可得聞乎아?
묻는다.
“그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을 들어 볼 수 있겠는가?”
答曰楞嚴經에云迷本圓明迷眞야是生虛妄>나니起妄妄性無體>야非有所依라니라.
대답한다.
“『능엄경』에서 이르기를, ‘본래의 원만한 밝음을 미혹하여,진여를 미혹함 이것이 허망을 낳으니,망상을 일으킴 허망한 성품은 실체가 없어 의지할 데가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1) 난생卵生
佛告阿難사由因世界에虛妄指體想也輪廻動顚倒故로想體輕擧故名動轉倒也和合氣成卵以氣交合也八萬四千八萬四千煩惱感變也飛沈亂想想多飛沈니如是故로有卵卵惟想生也羯邏蘿이梵語此云凝滑也胎卵未分之相也流轉國土야魚鳥龜蛇ㅣ其類充塞想多飛沈故感魚鳥飛沈之類也想變爲情故胎生在下也이라시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계에 허망하게체상을 가리킨다. 윤회하는 움직이는 전도 때문에,망상의 실체가 가볍게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전도’라 한다. 기운과 화합하여알은 기운이 교합한다. 8만 4천 가지8만 4천 번뇌가 감응하여 변한다. 날며 잠기는 어지러운 생각을생각은 뜨고 가라앉음이 많다. 이룬다. 그리하여 알로 낳는알은 생각만으로 생긴다. 갈라람범어다. 중국말로는 응활凝滑이라 한다. 태와 난으로 나뉘기 전 모습이다.이 국토에 흘러 다녀 물고기·새·거북이·뱀과 같은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생각은 뜨거나 가라앉음이 많기 때문에 물고기·새 등의 날거나 가라앉는 종류를 초래한다. 생각이 변해 유정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태생이다.
(2) 태생胎生
由因世界에雜染輪廻欲顚倒故로胎因情有雜染卽情也情生於愛故名欲顚倒和合滋成胎以情交故名和合滋成八萬四千橫竪亂想情有偏正故名橫竪나니如是故로有胎遏蒲曇此云皰卽胎卵漸分之相流轉國土야人畜龍仙이其類充塞情有橫竪亂想故感人畜橫竪之類이라시니라.
세계에 추잡함으로 윤회하는 욕애의 전도 때문에,태는 정으로 인해 존재한다. 뒤섞이고 물듦이 곧 정이다. 정은 애에서 생기기 때문에 ‘욕애의 전도’라 한다. 물기와 화합하여태는 정을 주고받음으로써 생긴다. 따라서 물기와 화합하여 이룬다고 하였다. 8만 4천 가지 서서 다니고 기어 다니는 어지러운 생각을생각에 치우치고 바름이 있기 때문에 기어 다니고 서서 다닌다고 하였다. 이룬다. 그리하여 태로 낳는 알포담중국말로는 포皰라 한다. 태와 난이 점차 분리되는 모양이다.이 국토에 유전하여, 사람·짐승·용·신선과 같은 종류가 가득 차 나타난다.정에 가로로 눕고 세로로 서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있기 때문에 바로 서는 인간과 기어 다니는 축생의 부류를 초래하게 된다.
(3) 습생濕生
由因世界에執著輪廻趣顚倒故濕以合感執著卽合也合由愛滯觸境超附名趣顚倒로和合煖成濕以陽氣生名和合煖八萬四千飜覆亂想所趣無定名飜覆亂想故感蠢蝡飜覆之類也나니如是故로有濕相蔽尸ㅣ蔽尸云軟肉濕生初相也流轉國土야含蠢蝡動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
세계에 집착하여 윤회하는 가서 붙는 전도 때문에,습은 합함으로 인해 초래된다. 집착이 곧 합함이다. 애정이 접촉한 경계에 머물면 달려가 붙기 때문에 합한다. 따라서 ‘가서 붙는 전도’라 한다. 따뜻함과 화합하여,습은 양기로 인해 생긴다. 따라서 따뜻함과 화합한다고 하였다. 8만 4천 가지 엎어지며 자빠지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룬다.취향하는 바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번복하는 어지러운 생각’이라 한다. 따라서 꿈틀거리고 번복하는 부류를 초래하게 된다. 그리하여 습기로 나는 폐시폐시는 부드러운 살이란 뜻이다. 습기에서 생겨난 처음 모습이다.가 국토에 유전하여 우물거리며 쭈물거리며 꿈틀거리는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
(4) 화생化生
由因世界에變易輪廻假轉倒故로化以離應變易卽離也離此托彼故名假轉倒和合觸成八萬四千新故亂想觸類而變名和合觸成轉故趣新名新故亂想故感報亦爾也니如是故로有化生羯南云硬肉이流轉國土야轉蛻飛行如蟲爲蝶則轉行爲飛如雀爲蛤則蛻飛爲潛凡以不同形相禪皆轉蛻也이其類充塞自下皆稱羯南者諸類通稱也이라시니라.
세계에 변해 바뀌어서 윤회하는 가전도 때문에,화는 벗어남으로 인해 상응한다. 변역이 곧 벗어남이다. 이것을 벗어나 저것에 의탁하기 때문에 ‘가전도’라 한다. 건드림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새롭고 묵은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접촉한 부류로 변하기 때문에 접촉과 화합하여 이룬다고 하였다. 옛것을 바꿔 새것으로 향하는 것을 ‘새롭고 묵은 어지러운 생각’이라 한다. 따라서 감득하는 과보 역시 그렇다. 그리하여 변화하여 생겨난 갈남단단한 살이란 뜻이다.이 국토에 유전하여 허물을 벗고 날아다니는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경우는 기어 다니던 것을 바꿔 날아다니는 것이다. 참새가 대합이 되는 경우는 날아다니던 것을 버리고 잠수하는 것이다. 무릇 다른 형상으로 바뀌는 것은 다 허물을 벗는 것이다. 종류가 꽉 차게 된다.여기에서부터 모두 ‘갈남’이라 칭한 것은 모든 부류의 통칭이다.
(5) 유색有色
由因世界에留碍輪廻障顚倒故眞性融湛本非留碍亦非光耀由迷滯故成留也和合著成八萬四千精耀亂想昧却其性妄合明著粘湛發光以成精耀休爲三光咎爲慧孛一切精明神物皆精耀也其想已結戈精耀故但有色而已涅槃經云八十神皆因留想元成其精耀此雖至精至神亦未離乎乘彼輪轉顚倒相也나니如是故로有有色羯南이流轉國土야休咎精明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
세계에 걸려 윤회하는 장전도 때문에,참된 성품은 원융하고 맑아서 본래 걸리는 것이 아니고 정밀하게 빛나는 것도 아니다. 미혹하여 머물기 때문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나타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정미롭고 빛나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그 성품을 망각해 버리고는 제멋대로 밝고 분명함과 합한다. 그리하여 맑은 것에 들러붙어 빛을 발함으로써 정밀한 빛을 이룬다. 그 가운데 길한 것은 해·달·별의 세 가지 빛이 되고, 흉한 것은 살별과 혜성이 되니, 일체의 정밀하게 빛나는 신비한 물체들이 모두 정밀하게 빛나는 것들이다. 그 생각이 이미 맺혀 정밀한 빛을 이루었기 때문에 단지 빛깔만 있을 뿐이다. 『열반경』에서 ‘80종류의 신이 모두 걸림이 있는 생각의 근원을 원인으로 하여 그 정밀한 빛을 이룬다’고 하였다. 그것이 비록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신비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은 저 바퀴가 구르는 전도된 형상의 수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빛깔 있는 갈남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길하고 흉한 정미롭고 밝은 종류가 꽉 차게 된다.
(6) 무색無色
由因世界에消散輪廻厭有著空身歸無名消散輪廻也惑顚倒故迷漏無聞名惑顚倒로和合暗成八萬四千陰隱亂想則依晦昧空故和合暗成而名陰隱亂想卽無色外道類也나니如是故로有無色南이此有想無色而不無業體故亦稱南也流轉國土야空散消沈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又有惑業昏重形色消磨體合空昧識附陰隱亦空散消沈之類也
세계에 흩어지고 스러져 윤회하는유를 싫어하고 공을 집착해 몸을 소멸시켜 무로 돌아가기에 ‘없애고 흩어 버리며 윤회한다’고 하였다. 혹전도 때문에,미혹의 번뇌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기에 ‘혹전도’라 한다. 어두움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가만히 숨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즉 캄캄하고 어두운 허공에 의지하기 때문에 ‘어두움과 화합하여 이룬다’고 하고, ‘그늘지고 은폐된 어지러운 생각들’이라 한 것이다. 곧 무색계의 외도들 종류다. 그리하여 빛깔이 없는 갈남이것은 생각도 없고 빛깔도 없지만 업의 실체가 없지 않기 때문에 또한 ‘갈남’이라 칭한다.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허공에 흩어지며 스러져 숨는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또 미혹의 업이 어둡고 무거운데 형태와 빛깔을 소멸시켜 몸을 허공과 합하고 혼매한 식을 은폐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 역시 허공에 흩어지고 소멸시켜 가라앉는 부류이다.
(7) 유상有想
由因世界에岡象輪廻影顚倒故로和合憶成八萬四千潛結亂想니如是故로有有想南이流轉國土야神鬼精靈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虛妄失眞邪着影像無所托陰從憶想生於罔象中潛結貌形其神不明而幽爲鬼精不全而散爲靈無有實色但有想相也
세계에 헛꼴로 윤회하는 영전도 때문에 생각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가만히 엉기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이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녀 귀신과 허깨비와 정령의 종류가 꽉 차게 된다.허망이 진실을 잃고는 멋대로 그림자에 붙는다. 그리고는 의탁할 음이 없자 기억으로부터 생각을 일으켜 형상이 없는데도 마음속으로 모양과 형상을 그려 낸다. 그 신이 밝지 못해 어두우면 귀신이 되고, 정이 온전하지 못해 흩어지면 영이 된다. 진실한 빛깔이 없고 생각하는 상태만 있는 것이다.
(8) 무상無想
由因世界에愚鈍輪廻痴顚倒故로和合頑成八萬四千枯槁亂想니如是故로有無想羯南이流轉國土야精神이化爲木土金石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不了諦理固守愚惑愚鈍之極則痴頑無知精神化爲土木金石無復情想卽枯槁也如劫毘之石燕昭墓之木鄭人緩之栢皆精神之化也
세계에 우둔하게 윤회하는 치전도 때문에 미혹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메마르고 빳빳한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이 없는 갈남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정신이 변화하여 흙이 되며, 나무가 되며 쇠가 되며 돌이 되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진리와 이치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혹함을 굳게 지켜서 그 우둔함이 극에 달하면, 어리석고 미련하고 지혜가 없어서 그 정신이 흙이나 나무나 쇠나 돌로 변해 다시는 느낌과 생각이 없게 된다. 그것이 곧 ‘메마르고 딱딱하다’는 것이다. 겁비라의 돌과 연나라의 소왕 묘의 나무와 정나라 사람 완이 잣나무가 된 것이 모두 정신이 변화한 것이다.
(9) 비유색非有色
由因世界에相待輪廻僞顚倒故로和合染成八萬四千因依亂想니如是故로有非有色想나有色南이流轉國土야諸水母等이以蝦爲目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水母之類以水沫爲體以蝦爲目本非有色待物成色不能自用待物有用迷失天眞邪著浮僞彼此異質染緣相合故曰因依也
세계에 기대어 윤회하는 위전도 때문에 물듦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의지하고 기대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색이나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색이 있는 갈남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해파리 같은 것이 새우의 눈을 빌려 보는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해파리 종류는 물거품으로 몸을 삼고 새우로 눈을 삼는다. 본래 색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물을 상대하면 색을 이루고, 스스로 작용할 수 없지만 사물을 상대하면 작용이 있다. 천연의 진실을 미혹해 잃어버리고 들뜨고 거짓된 것에 멋대로 집착하여 이것과 저것으로 형질이 달라지고 인연에 물들어 서로 합하기 때문에 ‘기대고 의지한다’고 하였다.
(10) 비무색非無色
由因世界에相引輪廻性顚倒故로和合呪成八萬四千呼召亂想니如是故로有非無色想이나無色南이流轉國土야呪誼厭生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邪業相引使性情顚倒而乘呪托識不由生理妄隨呼召卽世間邪術呪誼精魁厭物物因而有生者不由生理則本目無色感成質非其無色也
세계에 끌어내어 윤회하는 성전도 때문에, 주문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불러내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색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색이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녀 주문과 저주로 생겨나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삿된 업으로 서로를 이끌어 성정을 전도시키면 주문에 의지하고 식에 의탁해 생리를 따르지 않고 망령되게 부르는 소리에 따르게 된다. 곧 세간에서 사특한 술수로 주문과 저주를 걸거나 도깨비가 사물에 의탁하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생리를 따르지 않는다. 본래 스스로 색이 없는 것이지만 감응하고 나면 형질을 이루니, 색이 없는 것도 아니다.
(11) 비유상非有想
由因世界에合妄輪廻岡顚倒故로和合異成八萬四千廻互亂想니如是故로有非有想이有想南이流轉國土야彼蒲盧等이異質相成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二妄이相合性情罔昧異質相成生理廻互如彼蒲盧本爲桑蟲非有蜂想而成蜂想也
세계에 허망과 합하여 윤회하는 망전도 때문에, 다른 종류와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돌고 도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녀, 저 나나니 같은 것들이 딴 것으로 변화시키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두 가지 허망함이 서로 합해서 성정이 어두우면 서로 다른 형질이 되고 생리가 서로 바뀌게 된다. 마치 저 나나니벌이 본래는 뽕나무 벌레였고, 자신이 벌이라는 생각이 없다가 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12) 비무상非無想
由因世界에寃害輪廻殺顚倒故로和合怪成八萬四千食父母想니如是故로有非無想이나無想南이流轉國土야如土梟等이附塊爲兒며及破鏡鳥ㅣ以毒樹果로抱爲其子니子成면父母皆遭其食이니其類充塞이라시라.怨害相酬傷殺相反生理怪誕棄倫義故感土鳬之類因土塊毒果成形非無鳥想而本無想 是名衆生의十二種類니라.
세계의 원한으로 해치며 윤회하는 살전도 때문에, 괴이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부모를 잡아먹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닌다. 올빼미가 흙덩이를 끌어안아 새끼를 만들며, 파경이가 독한 나무 열매를 품어 제 새끼를 까는 것같이, 새끼가 자라서는 부모 모두 잡아먹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원한으로 서로 보복하고 서로 배반해 죽이면서 생리가 괴상하고 윤리와 의리를 끊기 때문에 그 과보로 올빼미 종류가 된다. 흙덩이와 독이 있는 열매로 인해 형체가 이루어지고, 자신이 새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이를 중생의 열두 종류라 한다.’
佛告阿難사如是衆生이一一類中에亦各各具十二顚倒니猶如揑目에亂華發生야顚倒妙圓眞淨明心야具足如斯虛妄亂想이라시니라.
부처님께서 또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처럼 중생들이 각 종류마다 열두 가지 전도를 갖추고 있다. 마치 눈을 비비면 어지러운 꽃이 발생하는 것 같아, ‘오묘하고 원만하고 참되고 청정한 밝은 마음’을 전도하여 이처럼 허망한 어지러운 생각들을 갖추게 된다’고 하셨다.”
25. 세계가 일어난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世界原因問)
問曰世界起始原因을可得聞乎아?
묻는다.
“세계가 시작된 원인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答曰余嘗讀楞嚴經할有富樓那ㅣ問天中天사世尊아若復世間一切根眼耳鼻舌身意六根等也色聲香味觸法六塵色受想行識五陰十二處十八界等이皆如來藏如來藏者出纒法身藏如來者在纒法身淸淨本然컨云何로忽生山河大地며諸有爲相이儒家所謂三才萬物也次第遷流야終而復始니잇고言淸淨則宜無諸相言本然則宜無遷流又如來說云地水火風이本性圓融야周遍法界야湛然常住라시니世尊아若地性이遍인云何容水며水性이周인火則不生리니復云何明水火二性이俱虛空야不相陵滅이니잇고?
대답한다.
“내가 일찍이 『능엄경』을 읽은 적이 있는데, 부루나가 천중천께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또 세간의 일체 근根안·이·비·설·신·의 등의 육근과 진塵색·성·향·미·촉·법의 육진과 음陰색·수·상·행·식의 오음과 처處십이처와 계界십팔계 등이 모두 여래장如來藏여래장이란 번뇌를 벗어난 법신이고, 장여래藏如來란 번뇌 속에 있는 법신의 청정한 본래 그러함이라면 어찌 갑자기 산과 강과 대지가 생겼으며, 어찌 모든 유위의 모양이유가에서 말하는 천·지·인 삼재 만물 차례로 흘러나와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까?청정하다고 말하려면 여러 모양이 없어야 하고, 본래 그러함이라고 말하려면 변함이 없어야 한다.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수·화·풍은 본성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하고 담담하게 상주한다’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하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겠습니까? 물의 성품이 두루하다면 불은 생기지 못할 것입니다. 또다시 물과 불이라는 두 성품이 허공에 모두 두루하여 서로가 서로를 능멸하지 않음을 어찌 밝힐 수 있겠습니까?
世尊아, 地性은障고空性은虛通커니云何二俱周遍法界니엇고? 而我不知是義攸往노니唯願如來宣流大慈사開我迷雲소셔. 及諸大衆과作是語已고五體投地야欽渴如來의無上慈誨옵더니,彼意以性相相違理事相實常情疑滯故爲致問庶護決通
세존이시여, 흙의 성품은 장애하는 것이고, 허공의 성품은 텅 비어 통하는 것인데, 어떻게 두 가지가 함께 법계에 두루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뜻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여래께서 대자비를 널리 베풀어 저와 나아가 여러 대중들의 미혹 구름을 걷어 주소서’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오체를 땅에 던지며 여래의 위없는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갈구하였다.그의 생각에 (부처님 말씀은) 성품과 모양이 서로 어긋나고, 이치와 현상이 서로 장애되며, 실로 상식적 마음으로는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드려 널리 보호하여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 것이다.
佛告富樓那사如汝所說야淸淨本然인云何忽生山河大地오니汝常不聞가? 如來宣說호되性覺이妙明며本覺이明妙라니라.能性一切曰性覺性覺之妙顯乎明卽自體而出現於萬法者也性之所本曰本覺本覺之明藏乎妙卽自用而反冥於一眞者也了斯二義則體用一覺物我一妙無諸相之異矣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말대로 본래 청정인데, 왜 갑자기 산하대지가 생겼냐고 했는데, 그대는 항상 듣지 않았더냐? 여래가 널리 설하기를, 성각性覺은 오묘하면서 밝고, 본각本覺은 밝으면서 오묘하다 하였다’고 하셨다.모든 것의 성품이 되어 주기 때문에 ‘성각’이라 한다. ‘성각’의 오묘함은 밝음에서 드러나니, 즉 자신의 체體에 즉하여 만법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성품의 근본을 ‘본각’이라 한다. ‘본각’의 밝음은 오묘함에 감춰져 있으니, 즉 자신의 용用에 즉하여 하나인 진여로 돌아가 완전하게 계합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치를 깨달으면 체와 용이 같은 깨침이고, 만물과 내가 같은 오묘함이라서, 어떤 형상의 차이도 없다.
富樓那言호唯然이다, 世尊아, 我常聞佛宣說斯義로이다. 佛言汝稱覺明은爲復性覺性也本自明也을稱名爲覺가爲覺不明을稱爲明覺가?爲此性本自明靈然不昧故稱之爲覺耶爲復性自不明用心覺之故稱爲明覺本自明者眞覺也用心覺之者妄覺也 富樓那言호若此不明을名爲覺者인則無所明이니다.以性明爲覺不以不明爲覺故曰若此不明則無所明也
0001_0038_a_01L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그런 이치를 널리 설하시는 것을 항상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깨달음은 밝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성품깨달음의 성품의 밝음본래 스스로의 밝음을 지칭하여 깨달음이라고 한 것인가, 아니면 밝지 못함을 깨닫는 것을 지칭하여 밝은 깨달음이라 한 것인가?’라고 하셨다.이 성품은 본래 스스로 밝고 신령스러워 어둡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음이라 칭한 것인가, 아니면 성품이 스스로 밝지 못한데 마음을 써서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밝은 깨달음이라 칭한 것인가? 본래 스스로 밝다는 것은 참된 깨달음이고, 마음을 써서 그것을 깨닫는 것은 망령된 깨달음이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밝지 못한 것을 깨달음이라 한다면 밝힐 대상이 없게 됩니다’라고 했다.성품의 밝음을 깨달음이라 칭하는 것이지 밝지 않음을 깨달음이라 칭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이 밝지 않다면 밝혀야 할 대상도 없다.
佛言若無所明면則無明覺리라.明覺者能妄也明覺之妄由所明起所者境也有所면境也非覺非性覺妙明本覺明妙也이오無所면非明이니照了諸相故無所非明終非妙明明妙之眞也無明이면又非覺湛性이니라.若果非明不得謂之覺湛明性當知有所無所是明非明皆爲妄度終非妙明明妙之眞也 性覺이必明야前云性覺妙明此云性覺必明者湛然寂照曰妙明强生了知曰必明妙明則眞必明則妄也謂業相也妄爲明覺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대상이 없다면 밝은 깨달음도 없을 것이다.밝은 깨달음이란 주체의 허망함이다. 밝은 깨달음이라는 허망함은 밝히는 대상으로 인해 일어난다. 대상이란 경계이다. 대상경계를 말한다.이 있다면 깨달음이 아니고,(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은) 성각의 미묘한 밝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본각의 밝은 오묘함을 말한다. 대상 경계가 없다면 밝음이 아니니,모든 형상을 비추어 알아차리기 때문에 대상 경계가 없으면 밝음이 아니어서, 결코 오묘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오묘한 진여는 아니다. 밝음이 없다면 또 깨달음의 담연한 성품이 아니다.만약 과연 밝음이 아니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라 할 수 없다. 마땅히 알라. 대상이 있다느니 대상이 없다느니, 밝음이니 밝지 않음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망령된 헤아림이다. 끝내 오묘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오묘한 진여는 아니다. 성각性覺을 기필코 밝히면앞에서는 ‘성각은 오묘하면서 밝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성각은 반드시 밝다’고 하였다. 담연하면서 고요히 비추는 것을 ‘오묘하면서 밝다’고 하고, 억지로 확실한 앎을 일으키는 것을 ‘기필코 밝힘’이라고 한다. 오묘하면서 밝다고 하는 것은 진실이고, 기필코 밝히려 들면 허망하다. 이것은 업상業相이라 한다. 망령되게 밝은 깨달음이 되고 만다.
覺非所明이어眞覺本無能所因明立所니因必明故妄見有所所妄이旣立면生汝能妄야無同異中에熾然成異니라.能所旣立心境互分故無同異中熾然成異卽轉相也 異彼所異야以彼熾然之異爲異轉相也因異立同며同異發明야復因異相立同因此復立無同無異야又因其有同有異故復立無同無異也如是擾亂야相待生勞야勞久發塵야自相渾濁니一眞體中本無是事皆由能所對待妄立以擾發情塵遂使妙明斯渾妙湛斯濁晦昧空色自此兆卽現相也上三屬根本煩惱下起六卽枝葉也由是야引起塵勞煩惱니라.由三細而引起也染汚爲塵擾動爲勞憂煎爲煩迷亂爲惱卽智及相屬執取計名四之摠相自下世界相續衆生相續卽業相也業果相續卽業繫苦相
깨달음은 밝힐 대상이 아닌데참된 깨달음에는 본래 주체와 대상이 없다. 밝음을 인하여 (밝힐) 대상을 세우니,기필코 밝히려고 하기 때문에 밝힐 대상이 있다고 허망한 견해를 일으킨다. 망령된 대상이 성립되고 나면 너라는 망령된 주체가 생겨,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치열하게 ‘다름’을 이루게 된다.주체와 대상이 성립되고 나면 마음과 경계가 서로 나뉘기 때문에,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왕성하게 ‘다름’을 이루게 되니, 즉 전상轉相이다. 저 ‘다름’과 다르면저 왕성한 다름으로 다름을 삼는다. 전상이다. 그 ‘다름’을 바탕으로 ‘같음’을 세워 같음과 다름이 분명하게 드러나,다시 ‘다름’이라는 형상으로 인하여 ‘같음’을 세운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을 세운다.또 다시 같음이 있고 다름이 있어서,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혼란스러워져서 서로 대대待對해 가면서 수고로움이 생기고, 수고로움이 오래되다 보면 번뇌를 일으켜 (진여의) 본모습이 혼탁해지고,하나의 참된 본체 가운데는 본래 이런 일이 없다. 이는 모두 주체와 대상이 서로 대대待對하여 망령되게 수립됨으로 말미암아 정과 진이 어지럽게 일어나 결국 오묘한 밝음을 이렇게 어둡게 하고 오묘한 맑음을 이렇게 흐리게 한 것이다. 캄캄한 어둠과 허공과 색이 이로부터 시작된다.즉 현상現相이다. 위의 세 가지는 근본 번뇌에 속하고, 이하에서 일어나는 육추六麤는 곧 지말 번뇌이다. 이로 말미암아 무수한 번뇌를 이끌어 일으킨다.삼세三細로 말미암아 (이하의 육추가) 발생된다. 오염은 티끌이 되고, 요란한 움직임은 애씀이 되고, 근심으로 애태우는 것은 번민이 되고, 헷갈리고 혼란스러운 것은 고뇌가 된다. 이것은 곧 지상·상속상·집취상·계명자상의 네 가지 거친 번뇌의 총상總相이다. 이하는 세계가 상속하고 중생이 상속하는 것으로 즉 기업상起業相이다. 업의 과보가 상속되는 것은 즉 업계고상業繫苦相이다.
起爲世界고妄覺動則勞擾發塵故起爲世界業相也靜成虛空니妄覺伏則頑然冥漠故靜成虛空卽轉相也虛空爲同이오法界一空日同世界爲異니情器萬殊日異彼無同異ㅣ眞有爲法이니라.此乃於同異中熾然成異故曰彼無同異眞有爲法此摠明此下別明也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망령된 깨달음이 움직이면 소란스럽게 티끌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일어나면 세계가 된다’고 하였다. 곧 업상業相이다. 고요하면 허공을 이루며,망령된 깨달음이 잠복하면 멍청하며 어둡고 막막하다. 따라서 ‘고요하면 허공을 이룬다’고 하였다. 곧 전상轉相이다. 허공은 같음이 되고법계가 한결같이 공한 것을 ‘같음’이라고 한다. 세계는 다름이 되니,중생세간과 기세간이 만 가지로 다른 것을 두고 ‘다름’이라 한다. 저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된 유위법이다.”이것이 바로 ‘같음’과 ‘다름’ 가운데서 치열하게 다름을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 같음, 다름이 없는 것이 참된 유위법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상은 (세계의 시초와 중생의 시초를)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이하는 구별해 밝힌 것이다.
26. 세계가 일어난 시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世界起始)
覺의明과空의昧가相待成搖故로有風輪이執持世界니라. 因空生搖야堅明立碍니彼金寶者明覺이立堅故로有金輪이保持國土니라. 堅覺寶成며搖明風出야風金이相摩故로有火光이爲變化性나니라. 寶明이生潤며火光이上蒸故로有水輪이含十方界니라. 火騰水降야交發立堅야濕爲巨海고乾爲洲潬니以是義故로彼大海中에火光이常起고彼洲潬中에江河常注니라. 水勢劣火야結爲高山니山石이擊則成燄고融則成水며土勢劣水야抽爲草木니是故로林藪이遇燒면成土고因絞야成水나니라. 交妄發生야遞相爲種나니以是因緣으로世界相續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움이 서로 대대待對하여 요동하기 때문에 풍륜風輪이 있게 되어 세계를 지탱한다. 허공이 요동함으로 인해 밝음이 굳어져 장애를 이룬다. 저 보배 금속들은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금륜金輪이 있게 되어 국토를 보호하고 지탱한다. 깨달음이 굳어져 보배가 형성되고 밝음을 뒤흔들어 바람이 일어나 바람과 금속이 서로 마찰하기 때문에 불빛이 있어 변화시키는 성품이 된다. 보배의 밝음이 축축함을 낳으면 불빛이 증기를 위로 올려 보내기 때문에 수륜이 있게 되어 시방세계를 머금게 된다.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오며 서로서로를 굳어지게 하는 작용을 일으켜, 축축한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메마른 곳은 대륙이 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저 큰 바다 한가운데서 불빛이 항상 일어나고 저 대륙 한가운데서 강과 시내가 항상 흐른다. 물의 세력이 불보다 약하면 맺혀서 높은 산이 된다. 산의 돌들이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고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다. 흙의 세력이 물보다 약하면 뻗어 나와 풀과 나무가 된다. 이런 까닭에 숲과 늪이 타 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되는 것이다. 상호 관계하면서 망령됨이 발생해 서로에게 종자가 되니, 이런 인연으로 세계가 상속한다.
大抵最淸淨大圓覺性은本無無極太極之名며亦無三才與萬物之相야通是一眞法界大光明藏而已也ㅣ라. 無明無暗며無大無小며無凡無聖야無色受想行識며亦無無色受想行識者며無眼耳鼻舌身意며亦無無眼耳鼻舌身意者며無色聲香味觸法며亦無無色聲香味觸法者야不生不滅며不增不減며無任麽說者며亦無無任麽說者니正所謂恁麽也不得며不恁麽也不得며恁麽不恁麽摠不得者也ㅣ니라.
대저 가장 청정하고 크고 완전한 ‘각성覺性’에는 본래 무극과 태극이라는 명칭도 없고, 또한 (천·지·인) 삼재三才와 만물의 형상이 없으니, 전체가 바로 하나의 참된 법계이고 대광명장일 뿐이다. 밝음도 없고 어둠도 없으며, 큼도 없고 작음도 없으며,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다. 색·수·상·행·식도 없고 색·수·상·행·식이 없음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안·이·비·설·신·의가 없음도 없으며,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색·성·향·미·촉·법이 없음도 없다. 그래서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이렇다고 설명할 것이 없고 이렇다고 설명할 것이 없음도 없다.
然이나於奈何他不得處에飜身一擲면一生能事了畢리니可謂孤輪獨照江山靜니自笑一聲天地驚이로다. 然이나世界衆生之原因을略陳管見야葛藤少許리라. 自三才로以至於萬物虛空히共是一源也ㅣ라. 原因於最淸淨大覺性海야强生了知야忽起妄明故로由此야迷本源覺性妙明明妙元眞者也ㅣ니라. 强生了知之妄而必明故로於是乎空覺이遂分니空是頑空이오覺是妄覺也ㅣ라.
0001_0039_a_01L바로 이것을 두고 소위 ‘이래도 안 되고, 이러지 않아도 안 되고, 이러건 이러지 않건 모두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자리에서 몸을 한번 크게 뒤집어야 일생에 해야 할 일을 끝마칠 것이니, 이래야만 가히 “오롯한 달이 홀로 비추어 강산이 고요하니, 절로 터지는 한바탕 웃음소리에 천지가 놀란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와 중생이 생기게 된 원인을 간략한 관견이나마 진술해야, 언어로 설명하는 행위를 약간이나마 허용할 수 있다.
삼재三才로부터 만물과 허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바로 하나의 근원이다. 가장 청정하고 크고 완전한 ‘각성’의 바다를 원인으로 하여, 억지로 ‘확실한 앎’을 일으켜 홀연히 허망한 밝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본원인 각성의 오묘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오묘한 근본 진여를 미혹하게 된다. ‘확실한 앎’이라는 허망함을 억지로 일으켜, 기필코 밝히려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허공과 깨달음이 나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허공은 완공頑空이고 깨달음은 망령된 깨달음이다.
根器二界ㅣ遂因迷頑妄想安立故로妄想이凝結則成無情國土고妄識이知覺則成有情衆生이니라. 又妄覺이動則勞擾發塵故로起爲世界고妄覺이伏則頑然冥漠故로靜成虛空니此正是世界衆生의迷本源覺性之原因也ㅣ니라. 大覺性海中에本絶空有언마由迷風飄鼓야妄發空漚故로云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라니라.
(중생의) ‘육근六根’과 (육근이 대상으로 삼는) ‘경계(器)’의 두 세계는 마침내 미혹하고 무지한 망상으로 인하여 수립된 것이기 때문에, 망상이 응결하면 무정의 국토를 이루고, 망식이 지각 작용을 일으켜 유정의 중생을 이룬다. 또 망령된 깨달음이 요동하면 요란하게 티끌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망령된 깨달음이 잠복하면 흐리멍텅하게 캄캄하고 막막하기 때문에 그것이 고요하면 허공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와 중생이 본래 근원인 깨달음의 성품을 미혹하는 원인이다. 커다란 성품 바다에는 본래 공과 유가 끊어졌지만, 미혹의 바람이 휘몰아침으로 인해 공한 거품을 망령되게 발생시킨다. 그래서 ‘먼지처럼 수많은 유루의 국토가 모두가 공을 의지해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戒環이云萬法이自五行으로變化고五行은由妄覺야發生故로世界起始ㅣ肇於覺明야而依乎風金水火야以生成萬物也ㅣ라니라. 覺明이發識야爲一六水며由妄明야遂有昧空故로空味結已야爲五十土며明六水와昧五土ㅣ相待야妄知搖動故로生三八木男女而爲木爲風야成風輪니厚二十六萬由旬由旬梵語也以東方里數計之則大由旬爲八十里中由旬爲六十里小由旬爲四十里也이오廣則無邊니라. 何者오? 覺性이無邊故로虛空도亦無邊며虛空이無邊故로風輪도亦無邊也ㅣ니라.
0001_0039_b_01L(『능엄경』의 이 부분을 주석한 송나라) 계환 스님이 말하기를, ‘만법이 오행五行으로부터 변화하고, 오행은 망령된 깨달음을 말미암아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기원은 ‘깨달음이라는 밝음’에서 시작하여 풍·금·수·화를 의지하여 만물을 생성한다’고 하였다. ‘깨달음이라는 밝음’이 식을 일으켜 1·6 수水가 되며, ‘망령된 밝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어두운 공’이 생기기 때문에 ‘어두운 공’이 응결되고 나서는 5·10 토土가 되며, 밝은 6 수水와 어두운 5 토土가 서로 대대待對하여 망령된 앎이 요동하기 때문에 3·8 목木의 남녀를 낳아 나무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여 풍륜을 이루는데, 그 두께가 26만 유순이고유순은 범어다. 동방의 단위인 리里로 계산하면 대유순은 80리고, 중유순은 60리고, 소유순은 40리이다. 넓이는 끝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깨달음의 성품이 끝이 없기 때문에 허공 또한 끝이 없으며, 허공이 끝이 없기 때문에 풍륜 역시 끝이 없는 것이다.
問노니何故로世界ㅣ爲最下風輪의所持오?
묻는다.
“무슨 까닭으로 풍륜風輪이 세계를 가장 아래쪽에서 지탱하는가?”
曰前에不云乎아? 覺明이發識이어던妄識이搖動故로云動轉이是風也ㅣ니라. 然則非但世界만爲風輪之所持라以至於蠢動含識히皆由風力之所持也ㅣ니라. 而若曰人이非風力의所持라면則當無有屈身運手動作之理리니餘例可知也ㅣ니라.
대답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깨달음이라는 밝음’이 식識을 일으키면 ‘허망한 식’이 요동하기 때문에 ‘동전動轉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풍이다. 그렇다면 단지 세계만 풍륜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굼틀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람의 힘으로 지탱된다. 만약 ‘사람은 풍력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마땅히 몸을 굽히고 손을 움직이며 동작할 이치도 없어야 한다. 나머지는 이 예로 알 수 있다.
又因空昧十土와搖風三木야生堅明四九金니其金輪厚三洛沙二萬由旬이오廣則無邊니라. 又因搖風八木과堅明九金야生變化二七火며又因寶明四金과火光七火야生一六水니其水輪厚六十萬由旬이오廣則無邊야含十方니라. 又因火騰二火와水降七火야生空昧五十土니其土輪厚四十八萬由旬이오廣則無邊니라.
또 허공의 어둠인 10 토土와 요동치는 바람과 3 목木으로 인하여 단단한 밝음인 4·9 금金이 생기는데, 그 금륜의 두께는 3낙사洛沙 2만 유순이고 너비는 끝이 없다. 또 요동치는 바람인 8 목木과 견고한 밝음인 9 금金으로 인하여 2·7 화火로 변화가 일어난다. 또 보배로운 밝음인 4 금金과 불빛인 7 화火로 인하여 1·6 수水가 생기는데, 그 수륜의 두께는 60만 유순이고 너비는 끝이 없어 시방세계를 머금는다. 또 불과 함께 올라가는 2 화火와 물과 함께 내려오는 7 화火로 인하여 허공의 어둠인 5·10 토土가 생기는데, 그 토륜의 두께는 48만 유순이고 너비는 끝이 없다.
以戒環意로觀之컨明昧相傾야不覺心動故로成風고因空昧의動念며覺明의堅執야而立礙感金니大地ㅣ最下에依金輪而起也ㅣ니라. 因堅覺과妄搖ㅣ觸起煩惱야而感火니內外二界ㅣ革生爲熟며化有爲無ㅣ皆火大의所變也ㅣ니라.
(이 대목을 주석한) 계환 스님의 뜻으로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밝음과 어둠이 서로에게 기대어, 깨닫지 못한 마음이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을 이루며, 허공의 어둠이 생각을 움직이고 깨달음의 밝음이 집착을 견고하게 하여, 장애를 만들어 금을 만든다. 금륜에 의지해서 대지가 맨 밑에 생긴다. ‘견고한 깨달음’과 ‘망령된 요동’이 서로 부딪쳐 번뇌를 일으킴으로 인해 화를 만든다. 안팎의 두 세계가 엎치락뒤치락 성숙하면서 유로 변화하고 무가 되는 것이 모두 화대火大가 변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由堅覺야生識고而蒸以煩惱야積情發愛야而感水也ㅣ니世界ㅣ居大海內故로曰含十方界ㅣ라니라. 妄覺이煩起며妄識이橫流야交結立礙야而感土也ㅣ니地性이堅礙故로曰立堅이라시니其高爲山이오其深爲海ㅣ皆土也ㅣ니라. 水阜曰洲ㅣ오沙汀曰潬이니諸皆肇於妄覺야感於五行故曰交妄發生야遞相爲種也ㅣ니라. 土水ㅣ生木고木土ㅣ生金고金木이生火고火金이生水고水火生土云云니라.
0001_0040_a_01L‘견고한 깨달음’이 식을 낳고 번뇌로 이를 뜨겁게 하여 망정妄情을 쌓고 애愛를 일으키기 때문에 수가 만들어진다. 세계가 큰 바다 안에 있기 때문에 ‘시방세계를 머금는다’고 하였다. ‘망령된 깨달음’이 번다하게 일어나고 ‘망령된 식’이 이리저리 흐르면서 교대로 맺혀 장애를 만들면 토가 만들어지니, 땅의 성품이 견고하고 장애가 되기 때문에 ‘견고함이 성립된다’고 하였다. 그 가운데 높은 것은 산이 되고, 그 가운데 깊은 것은 바다가 되는데, 그것이 모두 토이다. 물가의 언덕을 주洲라 하고, 모래섬을 단潬이라 한다. 모든 것이 망령된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오행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교대로 망령됨이 발생해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된다’고 한 것이다. 토와 수가 목을 낳고, 목과 토가 금을 낳고, 금과 목이 화를 낳고, 화와 금이 수를 낳고, 수와 화가 토를 낳고, 운운.’
又云호土由水火之所生이若子受父母氣分故로海中에火起고潬中에水注也ㅣ니라. 五行은以我剋으로爲妻니夫劣然後에陰陽和而生子故로水劣火야爲山고土劣水야爲木니焰融은明水火氣分고燒絞明土水氣分也ㅣ니此世界相續之由也ㅣ니라.
또 말하였다.
‘토가 수와 화로 인해 생기는 것이 자식이 부모의 기운을 받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바다 한가운데서 불이 일어나고 대륙 한가운데 물이 흐른다’고 한 것이다. 오행에서는 내가 능한 것으로 아내를 삼고, 남편의 세력이 약해진 뒤에야 음양이 화합하여 자식을 낳는다. 따라서 물의 세력이 불보다 약하면 산이 되고, 흙의 세력이 물보다 약하면 나무가 되는 것이다. (산의 돌들이) 불꽃이 튀고 녹는 것은 물과 불의 기운을 밝힌 것이고, (숲과 늪이) 타고 쥐어 짜이는 것은 물과 흙의 기운을 밝힌 것이다. 이것이 세계가 상속하는 유래이다.’
默庵이云此下五輪은卽起世界之最初深隱者ㅣ라. 不可以現在橫列四方之五行으로爲例也ㅣ라며又云若華嚴之能持風輪과所持香海云云則越此金火二輪而言이니以香海卽此水輪이오花上輪圍山은卽此土輪云爾니라. 橫列五行者는大同周易先後天八卦故로不錄노라.
한편 조선의 묵암 최눌 스님이 이르기를, ‘이 아래에 나오는 오륜은 세계를 발생시킨 최초의 깊고도 은밀한 내용이어서, 현재 가로 늘어놓는 오행의 설로 예를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화엄경소』에서 말한 능히 지탱하는 풍륜과 그것에 의해 지탱되는 향수해 운운하는 것은 이곳에서 말하는 금과 화 2륜을 뛰어넘어서 한 말이다. 향수해는 즉 이곳에서 말하는 수륜이고, 꽃 위에 펼쳐진 윤산輪山들은 즉 이곳에서 말하는 토륜土輪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로로 늘어놓는 오행설에 대해서는 『주역』에서 말한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와 거의 같기 때문에 더 이상 기록하지 않겠다.”
27. 중생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衆生起始問)
問曰世界相續之理已聞命이어니와願聞衆生起始之緣起노라.
묻는다.
“세계가 상속하는 이치는 이미 들어 간직했는데, 중생이 시작된 연기도 듣고 싶다.”
答曰旣會得世界原因이면則便明衆生相續리라. 然이나有問에不可無答일說葛藤一上리라. 佛告富樓那사明妄은指堅明明覺搖明之妄無他特覺明妄爲咎耳非他라覺明이爲咎니所妄이旣立면明理不踰할眞明妙理本無能所元一圓融淸淨寶覺由所妄旣立遂成隔礙故明理不踰也以是因緣으로聽不出聲며見不超色야色香味觸六妄이成就나니由是로分開見聞覺知야同業은相纒고合離成化니라.以明理不踰故聽見六根於是妄局色香六塵於是妄染覺知六識於是妄分根識塵三爲業性故發起妄業於是同業相纒合離成化此六道四生之始也同業卽胎卵類因父母己三者業同故相纒而有生合離卽濕化類不因父母但由已業或合濕而成形卽蠢動也或離異而托化如天獄鬼等類也
대답한다.
“세계의 원인을 이미 이해했다면 곧 중생이 상속하는 이치도 알 것이다. 하지만 질문이 있는데 답이 없을 수 없으니,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겠다.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밝음의 망령됨은견고한 밝음을 가리킨다. ‘밝은 깨달음’과 ‘요동치는 깨달음’ 모두 망령됨에 있어서는 다를 게 없다. 특별한 것은 ‘깨달음은 밝다’고 여긴 망상이 저지른 잘못일 뿐이다. 다른 것이 아니니, 깨달음의 밝음이 저지른 잘못이다. 망령된 대상 경계가 성립되고 나면 ‘밝은 이치’가 이를 뛰어넘지 못한다.참된 밝음의 오묘한 이치는 본래 능소가 없어, 근원적이며 하나이며 원융하며 청정하며 보배로운 깨달음이다. 망령된 대상 경계가 이미 성립되었기 때문에 간격과 장애가 생긴다. 그래서 ‘밝은 이치’가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런 인연으로 들음은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봄은 빛깔을 뛰어넘지 못하며, (나아가) 빛깔·향기·맛·감촉 등의 여섯 가지 망령됨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보고·듣고·느끼고·앎이 나뉘어져 같은 업끼리 서로 얽히거나 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변화하게 된다.‘밝은 이치’가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보고 듣는 여섯 가지 감관이 이에 망령되게 자리를 잡고, 빛깔과 향기 등의 여섯 가지 티끌이 이에 망령되게 오염시키고, 느끼고 아는 여섯 가지 식이 이에 망령되게 분별한다. 이 여섯 감관과 여섯 대상과 여섯 식이라는 세 가지가 업의 성품이 되기 때문에 망령된 업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같은 업끼리 서로 얽히거나 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변화를 이루니, 이것이 육도사생六道四生의 시초이다. ‘같은 업’이란 곧 태생과 난생을 말한다. 그들은 아버지·어머니·나라는 세 사람의 업이 같기 때문에 서로 얽혀서 태어나게 된다. ‘합하거나 떨어진다’는 것은 곧 습생과 화생 종류를 말한다. 그들은 부모를 원인으로 삼지 않고 다만 자신의 업으로 인해 태어난다. 어떤 것들은 습기와 합해 형상을 이루니 즉 꿈틀거리는 벌레 종류이고, 어떤 것들은 기존의 몸을 떠나 다른 것에 의탁해 나타나니 즉 하늘·지옥·귀신 등의 종류이다.
見明야色發고明見想成나니異見은成憎고同想은成愛야流愛爲種며納想爲胎야交遘發生며吸引同業故로有因緣이生羯羅藍과遏蒲曇等니胎卵濕化ㅣ隨其所應야卵惟想生고胎因情有고濕以合感고化以離應니情想合離ㅣ更相變易야所有受業이逐其飛沈니以是因緣으로衆生이相續니라.
‘견해(見)’가 밝으면 빛깔이 발생하고, ‘견해(見)’를 밝히려 하면 ‘생각’이 성립된다. ‘견해(見)’가 다르면 증오를 낳고, ‘생각’이 같으면 사랑을 낳는다. 흘러넘치는 사랑이 종자가 되며, 받아들인 ‘생각’이 태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발생하며, 같은 업끼리 끌어들인다. 따라서 이런 인연으로 ‘갈라람’과 ‘알포담’ 등이 생기게 된다. 태생·난생·습생·화생은 그들이 응하는 바를 따르니, 난생은 오직 생각만으로 생겨나고, 태생은 욕정으로 인해 존재하며, 습생은 합하여 생겨나고, 화생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 감응한다. 그렇게 욕정과 생각과 합함과 떨어져 감응함으로 서로 변화하고 바뀌면서 받아야 할 업 또한 그것을 좇아 떴다 가라앉았다 하니, 이런 인연으로 중생이 상속한다’고 하셨다.
妄見所明야而顯發妄色할曰見明야色發이니此由心야生境也ㅣ오. 因明起見고而因見生想할曰明見想成니此由境야生情也ㅣ며, 見異면則境違할故로成憎고想同則心順故로成愛니라. 三愛交注曰流ㅣ오三想相投曰納이라愛爲輪回根本일故로流愛爲種고想爲傳命之媒故로納想成體胎니藉交遘而發生며由同業而吸引니此受生托質之始也ㅣ니라.
0001_0041_a_01L‘밝혀야 할 대상(所明)’이 있다는 망령된 견해를 발동시켜 ‘망령된 색色’을 발현시키기 때문에, ‘견해(見)를 밝히려 하면 색色이 발생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경계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밝음으로 인하여 견해(見)를 일으키고, 견해로 인하여 생각을 내기 때문에, ‘견해를 밝히려 하면 생각이 성립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경계로부터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견해가 다르면 경계가 어긋나기 때문에 증오를 이루고, 생각이 같으면 마음이 순종하기 때문에 사랑을 이룬다. 셋의 사랑이 얽히고설켜 쏟아지기에 ‘흘러넘친다’고 하였고, 셋의 생각이 서로 투합하기에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사랑은 윤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흘러넘치는 사랑이 종자가 되고, 생각은 생명을 전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생각이 태가 되는 것이다. 서로 어우러짐을 바탕으로 발생하며 같은 업으로 말미암아 끌어들이니, 이것이 생명을 받아 형질에 의탁하는 시초이다.
胎中五位ㅣ七日一變나니羯羅藍은此云凝滑이니初七日之相也ㅣ오. 遏蒲曇은云皰니二七日之相也ㅣ오. 敞尸云軟肉이니三七日之相也ㅣ오. 羯南은云硬肉이니四七日之相也ㅣ오. 鉢羅奢佉云形位니五七日之相也ㅣ니라.
태에서는 다섯 층위가 있어, 7일마다 한 번씩 변화한다. ‘갈라람’은 한자로 응활凝滑이니 제1주의 상태다. ‘알포담’은 한자로 포皰라 하니 제2주의 상태다. ‘폐시’는 한자로 연육軟肉이라 하니 제3주의 상태이다. ‘갈남’은 한자로 경육硬肉이니 제4주의 상태이다. ‘발라사가’는 한자로 형위形位라 하니 제5주의 상태이다.
四生之類卵은應於想고胎應於情고濕은應於合고化應於離故로曰隨其所應也ㅣ니라. 亂思曰想이오. 結愛曰情이오. 氣附曰合이니合濕而生也ㅣ오. 形遁曰離니離此生彼也ㅣ라. 情想合離有生이皆具니此以多分으로言耳니라.
사생의 종류 가운데 난생은 생각으로 짝짓기 하고, 태생은 욕정으로 짝짓기 하고, 습생은 합함으로 짝짓기 하고, 화생은 떨어져서도 짝짓기 하기 때문에, ‘그들이 응하는 바를 따른다’고 하였다. 어지러운 생각(亂思)을 ‘생각(想)’이라 하고, 사랑에 얽히는 것을 ‘욕정’이라 한다. 기운이 붙는 것을 ‘합함’이라 하니 습기와 합하여 생기는 것이다. 형체를 숨기는 것을 ‘떨어짐’이라 하니, 여기서 떠나 저기에 생기는 것이다. 욕정·생각·합함·떨어짐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모두가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는 두드러진 부분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卵生이居首者想念初動커던情愛後起며又兼胎濕化故也ㅣ니라. 此文論想은乃內分染想이오非外分淨想이며論化乃轉蛻業化ㅣ오非意生妙化也ㅣ니라.佛有隨意生妙化身故云也情想合離更相變易者或情變爲想며合變爲離야無定業也ㅣ오. 卵易爲胎며濕易爲化야無定質也ㅣ니라. 故로所隨業報ㅣ或升或沈야無定趣也ㅣ니此衆生相續之由也ㅣ니라.
난생을 첫머리에 둔 것은 상념이 최초로 움직이고 애정이 뒤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며, 또 태생·습생·화생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단에서 논한 ‘생각’은 바로 내부의 오염된 생각(染想)을 말한 것이지, 외부의 깨끗한 생각(淨想)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 문단에서 논한 ‘화생’은 바로 허물을 벗어 업으로 화생하는 것을 말한 것이지, 의지대로 태어나는 오묘한 화생을 말한 것은 아니다.부처님께서는 의지대로 오묘하게 화현하는 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욕정과 생각과 합함과 떨어짐이 서로 변화하고 바뀐다’는 것은 욕정이 변하여 생각이 되기도 하고, 합함이 변하여 떨어짐이 되기도 하여, 정해진 업이 없다는 것이다. 난생이 바뀌어 태생이 되기도 하고, 습생이 바뀌어 화생이 되기도 하여, 정해진 형질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따라야 할 업의 과보가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여 정해진 방향이 없으니, 이것이 중생이 상속하는 이유이다.”
28. 업의 과보가 어떻게 시작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業果起始問)
問曰業果起始와及相續之事를可得聞乎아?
묻는다.
“업과의 시작과 상속하는 일을 들어볼 수 있겠는가?”
答曰楞嚴經에云佛告富樓那사想愛同結야愛不能離면則諸世間에父母子孫이相生不斷나니是等은則以欲貪으로爲本이니라. 貪愛同滋야貪不能止면則諸世間에卵化濕胎ㅣ隨力强弱야遞相呑食나니是等은則以殺貪으로爲本이니라. 以人食羊면羊死爲人고人死爲羊야如是乃至十生之類ㅣ死死生生에互來相噉야惡業俱生호窮未來際니是等은則以盜貪으로爲本이니라.不與而取曰盜又陰取曰盜以人食羊不與取也羊死爲人互來相噉陰取曰盜以相噉皆盜貪也淫殺盜三爲業果根本也
대답한다.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고하시기를, ‘생각과 애욕이 함께 맺히어 애욕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모든 세간에 부모와 자손이 이어 생겨나 끊어지지 않는다. 이런 등등은 곧 욕정의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
탐욕과 애욕이 함께 번식하니, 탐욕을 멈추지 못하면 여러 세간에 난생·화생·습생·태생이 힘의 강약을 따라 서로를 잡아먹게 된다. 이런 등등은 곧 살해하는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 사람이 양을 먹으면 양이 죽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어 양이 된다. 이와 같이 나아가 열 가지 생명체 종류가 죽고 또 죽고 태어나고 또 태어나면서 서로서로를 잡아먹어 악업과 함께 태어나기를 미래가 다하도록 하니, 이런 등등은 곧 도둑질하는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걸 도둑질이라 한다. 또 몰래 가지는 것을 도둑질이라 하니, 사람이 양을 잡아먹는 것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고, 양이 죽어 사람이 되어 서로를 찾아가 서로 잡아먹는 것은 몰래 가지는 것이다. 세간에서 서로 잡아먹는 짓은 모두 도둑질이다. 음행·살생·도둑질 이 세 가지가 업과의 근본이다.
汝負我命며我還汝債야以是因緣으로經百千劫야常在生死며汝愛我心고我憐汝色할以是因緣으로經百千劫야常在纒縛니라. 唯殺盜媱三이爲根本以是因緣으로業果相續나니라. 佛이又告富樓那사如是三種顚倒相續은皆是覺明의明了知性이因了發相야從妄見야生니山河大地諸有爲相이次第遷流호因此虛妄야終而復始니라. 上所擧因緣이一一明白니皆唯心所生이라不同儒家天命之謂也ㅣ니라.
상대가 나에게 목숨을 빚지고 내가 상대에게 빚을 갚기에 이런 인연으로 10만 겁이 지나도록 항상 생사에 머물게 되며, 상대가 내 마음을 사랑하고 내가 상대의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인연으로 10만 겁이 지나도록 항상 결박에 머물게 된다. 오직 살생·도둑질·음행 이 세 가지가 근본이 되니, 이런 인연으로 업의 과보가 상속한다’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또 부루나에게 고하시기를, ‘이와 같은 세 가지 전도가 상속하는 것은 모두 ‘각인 밝음(覺明)’의 명료하게 아는 성품이, 더 명료하게 하려는 것이 원인이 되어 생각을 일으키고, 망령스런 견해를 따르기 때문에 생긴다. 산과 강과 대지를 비롯한 모든 유위의 물상들이 차례로 변화를 계속하는데, 이 모두는 허망함 때문에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위에서 거론한 인연들이 하나하나 명백하니, 모든 것이 오직 마음에서 생긴 것으로, 유가儒家에서 천명天命에서 모든 것이 생겼다는 말과는 다르다.”
29. 교화행의 우열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行化優劣問)
問曰佛儒之化行에優劣이如何오?
묻는다.
“교화의 실천은 불교와 유교 가운데 어느 것이 나은가?”
答曰夫孔氏之化被海內也에有名分上下며有强弱彼此니因此而世上이崢嶸컨던竸爭人我야是非ㅣ紛然나니故로涵虛云儒之謂聖人者ㅣ遵仁義而不能盡仁義며行道德而不能盡道德者也ㅣ로다. 堯舜은病博施며湯武有德며周公은雖聖이나征伐을未除며孔子ㅣ雖仁이나餼羊을未去니比佛之道德컨猶霄壤之不侔也ㅣ로다.
대답한다.
“공자의 교화는 사해四海 안에 한정하여 명분과 상하를 두었으며, 강자와 약자, 나와 남이 있다. 이로 인해 온 세상이 자기가 잘났다며 나와 너를 경쟁하여 시비가 분분해진다. 따라서 함허 선사께서 이르기를,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들은 인의를 좇았지만 인의를 다하지 못했고, 도덕을 행했지만 도덕을 다하지 못한 자들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널리 베풂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었고, 탕왕과 무왕도 덕에 부끄러움이 있었으며, 주공이 비록 성인이었다지만 정벌을 제거하지는 못하였고, 공자가 비록 어질었다지만 양고기를 제물로 쓰는 제도를 없애지 못했으니, 부처님의 도덕과 비교하면 오히려 하늘과 땅이 나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佛者施則普洽大千이오德則遍覆四生이라魔軍이雖暴이나伏之不以兵고歌王이雖怨이나報之不以直며央崛이欲殺이나而返爲救度며調達이欲害나而授記作佛니佛儒之分이乃若是也ㅣ며佛이於平等大圓覺海에行平等慈사以平等法으로接化衆生시니如春이行於萬國에體備群芳者也ㅣ로다.
부처님의 베풂은 대천세계를 널리 적셨고, 부처님의 덕은 사생을 두루 덮으셨다. 마의 군대가 비록 포악했지만 복종시키되 힘으로 하지 않았고, 가리왕이 비록 원한을 맺었지만 그에게 그대로 보복하지 않았으며, 앙굴마라가 부처님을 죽이려 하였지만 도리어 그를 제도하였고, 조달이 해치려 하였으나 부처가 되리라 수기를 주셨으니, 불교와 유교의 차이가 바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고 크고 완전한 깨달음의 바다에서 평등한 자비를 행하여 평등한 법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셨으니, 온 나라에 봄이 오니 갖가지 꽃향기를 몸에 두르는 것과 같은 분이셨다’고 했다.
佛云사是法이平等야無有高下라며又云사若有菩薩이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卽非菩薩이라시니法本如是라非强爲也ㅣ니라. 佛이觀法界衆生을如自己어시니豈有人我之我哉리오? 若以名分上下彼此親踈高低强弱으로欲修身而齊家며治國而平天下則不得也ㅣ리라. 何者오? 其修身也에增人我야仁義道德이不振고其齊家也에馳逐是非라適庶上下가仇怨고其治國也에分色賤胄이라. 賢愚文野가渾亡니豈可論及於天下리오?
0001_0042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가진다면 곧 보살이 아니다’라고 하시니, 법이 본래 이와 같은 것이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온 법계 중생을 당신처럼 보셨으니, 어찌 나다 남이다 하는 아상이 있었겠는가? 만약 명분과 상하, 피차와 친소, 고저와 강약으로 자신을 닦고 가정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 없다. 왜 그런가? 그렇게 자신을 닦으면 아상, 인상만 증장시켜 인의와 도덕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가정을 바로잡으면 시비만 추구하게 되어 적자와 서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원수가 된다. 그렇게 나라를 다스리면 복식의 색깔 따라 귀천이 나누어지기에 현자와 우자, 문인과 야인이 모두 망하니, 어디 천하까지 논할 것 있겠는가?
車之所以能轉能行者以其圓而不方며周而無缺故也ㅣ니라. 佛이以本分不二平等無私之大道로敎育生靈시니普天人民이孰不蒙益이리오? 箇箇ㅣ有丈夫之氣며物物이有活動之樂이라. 故로云平等性中에無彼此ㅣ오大圓鏡上에絶親疏라니라.
수레가 구를 수 있고 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나지 않고 둥글기 때문이며, 골고루 갖춰져 빠짐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본분本分 도리인 둘이 아니고, 평등하며, 사사로움이 없는 대도로써 중생들을 가르치고 기르시는데, 온 천하의 인민이 누가 그 이익을 입지 않겠는가? 저마다 장부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활동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평등성지 속에는 이것과 저것이 없고, 대원경지 위에서는 가깝고 소원함을 끊어 버렸다’라고 하셨다.
佛有十善法과四無量法과四攝法과四正勤法야以如是諸法으로方便導化衆生사되於明法律儀內에又用開遮사使一切로得自由케사勸而懲之시니於是에君臣이道合고人民이共和야自成淸平無爲世界也ㅣ니, 所以孔子ㅣ云西方에有大聖人니不治而不亂며不言而自信며不化而自行야蕩蕩乎民無能名焉이라시니, 有宋丞相張商英이論此云以孔子之聖으로도尙尊其道어던而今學孔子者未讀百十卷之書고先以排佛로爲急務者何也오니是言也ㅣ可以爲後人作點眼藥也ㅣ로다.
부처님께서는 십선법과 사무량법과 사섭법과 사정근법이 있어,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법으로 중생을 방편으로 이끌고 교화하시면서도, 밝은 법과 율의 안에서 또 개차법을 사용하여 일체 중생이 자유를 얻도록 권면하시기도 하고 징벌하시기도 하셨다. 이에 임금과 신하가 도에 합하고 인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저절로 맑고 평등한 무위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런 까닭에 공자도 이르기를, ‘서방에 큰 성인이 계시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혼란스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음직스레 행하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여, 크고 드넓어 백성들이 뭐라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고 하였다.
송나라의 승상 장상영이 이를 논하여 이르기를, ‘공자 같은 성인도 오히려 그 도를 존중했는데, 요즘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들은 백 권 아니 열 권의 책도 미처 읽지 않은 채, 무엇보다 불교 배척하는 일을 급선무로 삼는 것은 왜일까?’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가히 후학들의 눈을 열어 주는 약이 될 만하다.
又老子西昇經에云老子謂尹喜曰聞道乾竺에有古皇先生者니吾之師也ㅣ라. 不生不滅며善入無爲야綿綿若存며善入泥洹야返乎無名이니吾今昇就야亦返一源이라시니老子ㅣ知有釋伽ㅣ로다. 所以捨官西赴며返乎無名者涅槃之理ㅣ오返一源者不二之稱이라. 是眞如之體也故로遥尊釋伽야爲吾師也ㅣ니故로云道同則宵壤이一處라니라.
0001_0043_a_01L또 『노자서승경』에 이르기를, ‘노자가 윤희에게 ‘인도에 고황古皇 선생이란 분이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바로 나의 스승이시다. 그분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무위에 잘 들어가 면면하게 존재하는 듯하며, 열반에 잘 들어가 도리어 이름이 없다 하니, 내가 지금 위로 올라가는 것 역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라고 했다. 노자는 석가가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관직을 버리고 서쪽으로 달려갔으며, ‘이름 없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열반의 이치이고,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둘이 아님을 지칭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여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멀리서나마 석가를 존경하여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도가 같으면 하늘과 땅도 같은 자리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30. 몇 가지 질문을 뽑아 거기에 변론하는 장(摘取對辨章)
或이問曰迂叟司馬光也云호釋은但取其空이라取其無利慾心이라니是否아?
어떤 사람이 묻는다.
“우수迂叟사마광가 이르기를, ‘불교는 다만 그 공을 취하는 것일 뿐이니, 그 날카로운 욕심을 없애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答曰死水裡에不藏龍이니라.破取其空之意也 莫學閒言語야昧沒佛祖意어다會麽아取捨ㅣ元來로非道心이니라.
대답한다.
“썩은 물속에는 용이 살지 못한다.공에 집착하는 뜻을 논파한 것이다. 한가로운 말이나 배워 부처님과 조사의 뜻을 매몰시키지 말라. 알겠는가? 취하거나 버리는 것은 원래 도심이 아니다.”
或이問曰橫渠張子厚也云호浮屠必謂死生轉流를非得道면不免이라니是否아?
어떤 사람이 묻는다.
“횡거장자후가 이르기를, ‘불교에서는 꼭 생사윤회의 도를 얻지 못하면 면치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가?”
答曰眼若不睡면諸夢이自除고心若不異면萬法이無咎니라. 會麽아? 夢時에明明有六道러니覺後에空空無大千이니라.
대답한다.
“눈이 잠들지 않으면 온갖 꿈이 저절로 없어지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알겠는가? 꿈속에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육도윤회가 있었지만 깨치고 나면 공하고 공해 대천세계마저 없다.”
問曰橫渠云호自其說이熾傅中國으로雖英才間氣라도生則溺耳目恬習之事고則師世儒崇尙之言야遂冥然被驅야謂聖人은可不修而至며大道可不學而知故로未識聖人心야已謂不必求其跡이라며未見君子志야已謂不必事其이라니是否아?
묻는다.
“횡거가 이르기를, ‘그 말씀이 중국 땅으로 마구 전해지면서부터 영재英材나 간기間機들조차도 태어나면서부터 귀와 눈에 편안히 익힌 일에 빠지고, 자라서는 세속의 유생들이 숭상하는 말을 스승으로 삼아, 결국은 멀뚱히 거기에 내몰림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성인은 닦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이고, 대도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그 자취 따위는 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군자의 뜻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그 문장을 섬길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런가?”
答曰我王庫內에無如是刀子니所謂聖人은不修而至며大道不學而知其橫渠之自道也歟져.
0001_0043_b_01L대답한다.
“우리 임금님 창고에 그와 같은 칼은 없다. 이른바 ‘성인은 닦지 않아도 이르고, 대도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장횡거 자신이 하는 말일 뿐이다.”
又問曰明道ㅣ云호佛學은只以生死로恐動人이라니是否아?
또 묻는다.
“정명도가 이르기를, ‘불학佛學은 그저 생사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동요시킬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答曰程子之不論生死ㅣ正如小兒夜間에不敢說鬼니你還甘長劫輪回麽아?
대답한다.
“정명도가 생사를 논하지 못한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한밤중에 감히 귀신 이야기를 못하는 것과 똑같다. 그대는 장구한 세월의 윤회를 달갑게 여기려는가?”
又問曰朱子云호聖賢안以生死로爲本分事야無可懼故로不論死生이어佛은爲怕死生故로只管說不休라니是否아?
또 묻는다.
“주자가 이르기를, ‘성현께서는 생사를 본분사로 여겨 두려워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사를 논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처는 생사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오로지 그 이야기를 쉬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答曰聖人은謂孔子也原始及終야知死生之說이라니豈不論生死乎아? 以生死로爲本分事者可爲以蠻夷로攻蠻夷者也ㅣ로다. 程子ㅣ曾不閱釋典이면焉知以生死로爲本分事也ㅣ리오? 然이나但知本分이오不知新熏이면驢年이라사必出頭去ㅣ리니會麽아? 識氷池而專水ㅣ나借陽氣而鎔消고悟凡夫而卽佛이나資法力而熏修니氷消則水ㅣ流潤야方呈漑滌之功고妄盡則心이靈通야應現通光之用이어程子ㅣ但知以生死로爲本分事오而不知沈淪長劫니其自欺自蔽者歟져.
대답한다.
“성인이공자를 말한다. ‘근원을 깨어 종극을 돌이켜서 생사의 이론을 안다’고 하였으니, 어찌 생사를 논하지 않았겠는가? 생사를 본분사로 여겼다고 한 것은 오랑캐로 오랑캐를 공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이천이 불교 전적을 열람하지 않았다면 생사를 본분사로 여긴다는 말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본분’만 알고 ‘신훈’을 알지 못한다면 당나귀 해라야 머리를 내밀 것이니, 알겠는가? 얼음 연못이 전부 물임은 알지만, 따뜻한 기운을 빌려서 녹여야 하고, 범부가 곧 부처인 걸 깨달았더라도 법력을 힘입어 훈습하여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야 축축이 흘러 마침내 봇물을 대고 세탁하는 효과가 드러나고, 망상이 다해야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 시방삼세를 관통하는 진여 광명의 작용이 응현한다. 정이천은 생사를 본분사로 여길 줄만 알 뿐 장구한 겁의 윤회에 빠지는 것은 몰랐으니,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를 망친 자이다.”
又問曰伊川이云禪家之言性이猶太陽之下에置器耳라. 其間에方圓大小不同이어特欲傾此于彼耳로다. 然이나在太陽얀幾時動고又其學者ㅣ善遁이라若人이語以此理면必曰我無修無證이라니是否아?
0001_0044_a_01L또 묻는다.
“정이천이 이르기를,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성품은 마치 태양 아래에 그릇을 두는 것과 같아서, 그 사이에 모나고 둥글며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은데, 괜히 이것을 저기에다 부으려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태양 입장에서 언제 움직인 적이 있던가? 또 그것을 배우는 자들은 은둔하기를 잘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이치로 말하면 분명 나는 닦은 것도 없고 증득한 것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答曰欲識不招無間業인莫謗如來正法輪이어다. 屛山曰伊川의此語가出於徐鉉의誤讀首楞嚴經이니佛言사五陰之識이如頻伽甁盛空야以餉他方이나空無出入이라신거로遂爲禪學니豈知佛이以此로喩識情이虛妄야本無去來리오? 其如來藏妙眞如性은正如太陽이元無動靜야無修而修며無證而證이라. 但盡識情이면卽如來藏妙眞如性이니是非遁辭也ㅣ니라.
대답한다.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짓지 않으려거든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라. 이병산이 이르기를, ‘정이천의 이 말은 서현이 『수능엄경』을 잘못 읽은 데서 나왔다’고 했다. 『수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오음의 식이 빈가병에 허공을 담는 것과 같아서, 그것을 다른 곳으로 보낸다 해도 허공은 나오거나 들어감이 없다’고 하신 말씀으로 마침내 선학禪學을 삼았으니, 부처님께서 이것으로 알음알이(識情)가 허망하여 본래 오고 감이 없음을 비유했다는 걸 어찌 알았겠는가? 저 여래장의 오묘한 진여의 성품은 마치 태양이 움직임도 고요함도 없는 것과 똑같아, 닦음 없이 닦으며 증득함 없이 증득하는 것이다. 그저 알음알이를 다하기만 하면 곧 여래장의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니, 이는 말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又問曰程朱云釋氏以虛靈知覺之氣로爲心이라니是否아?
또 묻는다.
“정이천과 주자가 이르기를, ‘불교는 텅 비고도 지각 작용하는 기운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그런가?”
答曰行道에莫向山下路라果聞猿叫斷腸聲이로다. 會麽아? 神光이不昧야萬古徽猷니入此門來에莫存知解라.
대답한다.
“길을 가더라도 산 아랫길로는 향하지 말라. 결국 애끊는 원숭이 소리를 들으리라. 알겠는가? 신비로운 광명이 어둡지 않아 만고에 찬란하니, 이 문에 들어왔거든 알음알이를 품지 말라.”
귀원정종歸源正宗 하권
31. 부처님의 출생에 즈음한 다섯 가지 상서(佛之降神先現五種瑞)
釋迦譜에云되善慧菩薩이亦名護明菩薩功行이滿足사位登十地에生兜率天야一生補處시니爲迦葉佛左補處尊名聖善白이라. 爲諸天師야隨應說法이러니期運이將至에當下作佛할現五種瑞시니, 一者放大光明야普照三千大千世界ㅣ오. 二者大地가十八相으로動이오. 三者魔宮이隱蔽ㅣ오. 四者日月이無光이오. 五者八部ㅣ天龍等八部阿含經云東方天王名多羅咤此云治國主智度論云提須賴吒領乾闥婆及毗舍闍神將護弗婆提人不令侵害南方天王名毗瑠此云增長主智度論名毗樓勤叉領鳩槃茶及薛荔神將護閻浮提人西方天王名毗留博叉此云雜語主智度云毗樓博叉領一切諸龍及富單那將護瞿耶尼人北方天王名毗沙門此云多聞主領夜叉及刹將護㭗單越人 悉皆震動이러라.
『석가보』에서 이르기를, “선혜보살호명보살이라고도 한다.이 공덕과 수행이 만족하여 지위가 십지十地에 오르자 도솔천에 태어나 일생보처로 지내시니가섭불의 왼쪽에 앉아 보좌하는 존자 이름은 성선백聖善白으로, 모든 하늘의 스승이 되어 (그들의 부탁에) 응하여 법을 설하고 계셨다. (가섭부처님으로부터) 수기 받은 대로 운이 이르자 하생하여 부처가 되니, 다섯 종의 상서를 나타내셨다. 첫째는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고, 둘째는 대지가 18종으로 흔들렸으며, 셋째는 마귀의 궁전이 은폐되었고, 넷째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으며, 다섯째는 팔부가하늘과 용 등의 팔부를 말한다. 『아함경』에서는 ‘동방 천왕의 이름은 다라타이다’라고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치국주라고 한다. 『지도론』에서는 ‘제두뢰타라 하고, 건달바와 비사도를 거느린 신장이며 불바제 사람들이 침탈 당하지 않도록 보호한다’고 하였다. 남방 천왕의 이름은 비류이고 중국에서는 증장주라고 한다. 『지도론』에서는, ‘비루륵차라 하고, 구반다와 벽려를 거느린 신장이며 염부제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하였다. 서방 천왕의 이름은 비류박차이고 중국에서는 잡어주라고 한다. 『지도론』에서는, ‘비루박차라 하고, 일체 모든 용과 부단나를 거느린 신장이며 구야니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하였다. 북방 천왕의 이름은 비사문이고 중국에서는 다문주라고 한다. 야차와 나찰을 거느린 신장이며 울단월 사람들을 보호한다. 모두 진동하였다.
告諸天子사當知라. 我於無量劫來에惟此一生이正是度脫衆生之時라. 我當應下生閻浮提리라. 其諸天子ㅣ咸共議言호當使菩薩로現生何種고?
그때 모든 천자들에게 고하시기를, ‘마땅히 알라. 나는 한량없는 겁에서 오직 이 한번 일생 동안이 바로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킬 때이다. 나는 염부제에 하생하리라’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곳의 여러 천자들이 함께 모여 의논하기를, ‘보살님을 어떤 종족으로 태어나시게 할까?’라고 하였다.
或有說言호維提種摩竭國은其母ㅣ雖正이나其父不眞며拘薩大國은父母宗族이皆不眞正고和沙國土受他節度고維耶離國은喜諍不和고鏺樹國風은擧動이虛妄고餘國은邊地라佛之至尊이皆不應生이오. 唯有維羅衛國니乃三千大千世界之中이며人民이滋茂야植德本며其淨飯王과種族은第一性行이仁賢며夫人이貞良야猶天玉女ㅣ오護身口意야前五百歲에爲菩薩母니應可降神야受彼胞胎라야,
0001_0045_a_01L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유제종 마갈국은 그 어머니가 바르지만 그 아버지는 참되지 못하고, 구살대국은 부모의 종족이 모두 참되지도 바르지도 못하며, 화사국토는 다른 풍속을 가지고 있고, 유야리국은 논쟁하길 좋아해 화합하지 못하며, 발수국의 풍습은 거동이 허망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변두리이다. 모두 부처님 같은 지존께서 태어날 곳은 못된다. 오직 유라위국이 있으니, 바로 삼천대천세계의 중심이며 인민이 많고 덕의 근본을 심었다. 그 정반왕과 종족은 가장 성품과 행실이 어질고 현명하며, 그 부인은 정숙하고 어질어서 마치 하늘 나라 옥려와 같고, 신·구·의를 잘 호념하여 이전 5백세 시절에도 보살의 어머니가 되었던 분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강신하여 태에 들어야 좋다’고 하였다.
菩薩이於是에化乘白象며冠日之精고乘雲而下야降神大術胎中할從右脇入니夫人이夢感因悟야自知身重이라. 天獻飮食이自然而至야不復樂於人間之味며大聖이在胎나母無妨礙러라晨朝에爲色界天야說法시며日中에爲欲界天야說法시며晡時에爲鬼神說法사成熟利益無量衆生이러라.
이에 보살이 하얀 코끼리로 변화하여 태양의 정기를 머리에 두르고 구름을 타고 내려와 큰 기술로 태 속으로 강신하여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갔다. 부인께서 꿈속에서 점지 받으시고 그런 줄을 깨치시니 몸이 무겁다는 걸 절로 아셨다. 하늘이 바친 음식이 저절로 내려와서 다시는 인간의 음식을 즐기지 않았으며, 대성께서 태에 계셨으나 어머니에게는 조금도 방애가 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는 색계천을 위해 설법하시고, 한낮에는 욕계천을 위해 설법하시며, 저녁에는 귀신을 위해 설법하시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성숙시키고 이롭게 하셨다.
於是에兜率天衆이念言호大聖이已淨飯王宮中시니我等이亦當下生人間야菩薩이成佛커든我得聞法호리라고卽更於諸國王大臣과或婆羅門者居士等家니凡九十九億天子ㅣ라. 卽周昭王二十五年癸丑四月八日夜半也ㅣ러라.
이에 도솔천의 대중들이 대성께서 이미 정반왕의 궁중에 몸을 의지하셨으니, 우리 역시 인간 세계에 반드시 하생해서, 보살께서 성불하시면 우리가 법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으로 말하고는, 곧 여러 나라의 왕과 대신과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 등의 집안에 의탁하였으니, 그 수가 무려 99억 천자였다. 곧 주나라 소왕 25년(B.C. 1027) 계축 4월 8일 한밤중이었다.”라고 하였다.
32. 부처님 탄생시의 신이함(佛之出胎大光普照六種震動)
大聖이在胎에十月滿足야夫人이將諸綵女사遊藍毗園할攀無憂樹ㅣ러니忽出蓮華야大如車輪이라. 菩薩이化從夫人의右脇而生사墮彼華上야自行七步사周四方而各七步也擧其右手사指天指地시고作大獅子吼云사, 天上天下에惟我獨尊이라시니,
0001_0045_b_01L대성께서 태 속에서 만 10개월을 계셨는데, 부인이 여러 시녀들을 거느리고 람비 동산을 거니시다가 무우수를 잡으시자 홀연히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솟아올랐다. 보살이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화생하시어 그 연꽃 위에 떨어졌다. 스스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걸음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시고는 사자후 하시기를,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고 하셨다.
卽乾坤六種이振動이러라. 時에四天王이卽以天繒으로接太子身야置寶机上니帝釋天主執盖고大梵天主持拂야左右侍立고九龍이空中에吐淸水니一溫一涼이라. 灌太子身니三十二相에八十種好라. 放大光明사普照三千大千世界며天龍八部가滿虛空中야作天伎樂며雨妙香花와瓔珞과天衣니不可稱數며所感瑞應에有三十四煩不錄群生이普利며地獄이停酸니라.
그러자 곧 하늘과 땅이 여섯 종류로 진동하였다. 이때 사천왕이 곧 하늘 비단으로 태자의 몸을 감싸 보배 평상에 모셨고, 제석천왕은 일산을 펴 들었으며, 대범천왕은 불자拂子를 들고 좌우에 모시고 섰고, 아홉 마리 용이 공중에서 맑은 물을 토하였는데 하나는 따뜻한 물이고 하나는 차가운 물이었다. 그 물로 태자의 몸을 씻기자 삼십이상 팔십종호가 큰 광명을 놓아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다. 하늘과 용 등의 팔부가 허공 가득 나타나 하늘 나라 음악을 연주하면서 오묘한 향기의 꽃과 영락과 하늘 나라 옷들을 비처럼 흩뿌렸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어 상서로운 감응에서른네 가지가 있으나 문장이 번다하여 생략한다. 수많은 중생들이 널리 이익을 얻었으며, 지옥의 고통도 잠시 멈추었다.
同日에八大國王이皆生太子며諸釋種女ㅣ生五百男며國中居士者ㅣ亦悉生男니及八萬四千이러라.大聖居兜率天作諸天師敎化天衆時所集諸天主爲助佛揚化故降神受胎也 廐馬가生駒며宮中에五百伏藏이發現며又諸大商이採寶俱還니卽名太子야爲悉達이라니라.此云頓吉盖悉達因事得名也 于時에乾坤이六種으로振動며日有重輪며靈瑞非一이라.
같은 날에 여덟 큰 나라의 왕들이 모두 태자를 낳았으며, 여러 석가 종족 여인이 5백의 사내아이를 낳았으며, 그 나라의 거사와 장자들 역시 모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모두 8만 4천 명이었다.대성께서 도솔천에서 모든 하늘 나라 사람들의 스승이 되어 하늘 나라 대중들을 교화할 때 모였던 여러 천왕들이 부처님의 교화를 돕고자 강신하여 잉태되었다.
그날 마구간의 말이 망아지를 낳고, 궁궐에서 5백 개의 숨겨진 보물 창고가 발견되고, 또 여러 큰 상인들이 보물을 채집해 함께 돌아왔기에 곧 태자의 이름을 실달이라 하였다.중국말로 모두 함께 길해지다라는 뜻이다. 실달은 그날 있었던 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 하늘과 땅이 여섯 종류로 진동하고 해에 또 다른 테두리가 나타나는 등 신비한 상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卽支那國周昭王甲寅癸丑二十六年也四月八日也ㅣ러라. 昭王이見此고驚異非常야命太史官蘇少游야卜之得乾卦九五爻動이라. 奏曰乾是金人之位라住於西也ㅣ니西天에有大聖人이降生之瑞也ㅣ니다.
이날이 곧 중국 주나라 소왕 갑인년계축 26년 4월 8일이다. 소왕이 이를 보고 평소 같지 않은 기이함에 놀라 태사관 소소유에게 명하여 점을 치자 건괘 9·5효가 나왔다.
태사관이 아뢰기를, “건은 금인의 지위이니, 서쪽에 머무십니다. 서천에 큰 성인께서 강생하신 서상입니다.”라고 하였다.
昭王이問曰於此土에何如오? 對曰聖躬御世之時엔不來ㅣ오. 此千年之後에合有敎法이流傳此土리이다. 昭王이勑命所司야刻石記之야瘞於洛陽城南郊壇之下다.
0001_0046_a_01L소왕이 묻기를,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성상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동안에는 오시지 않습니다. 천년 뒤에 반드시 (그분의) 교법이 이 땅에 널리 전해 올 겁니다.”라고 하였다.
소왕이 담당자에게 명하여 돌에다 이를 새겨 낙양성 남쪽 사직단 밑에 묻어 두게 하였다.
33. 귀한 지위를 버리고 도를 닦음 : 유아독존에 대한 변론(捨修道辨眞我獨尊)
釋迦氏誕生以太子之로棄萬乘之尊榮고以大悲願力으로爲體사住世七十九年에廣設三百餘會사利樂群品시며攝伏群邪사度人無數시니能捨尊榮고而從平等者ㅣ其爲尤難乎져.
석가 씨는 귀한 태자로 태어났지만 만승을 다스릴 존귀와 영화를 버리시고 대비의 원력으로 몸을 삼아 세상에 머무신 지 79년 동안, 3백여 차례의 법회를 열어 중생들을 아주 즐겁게 하셨으며, 온갖 삿됨을 포섭하고 조복하여 제도한 사람이 셀 수 없으셨으니, 존귀와 영화를 버리고 평등을 따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或曰釋迦氏誕生之時에旣有唯我獨尊之說이어니有何平等之意ㅣ리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석가 씨가 탄생할 때에 이미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고 말했는데, 거기에 무슨 평등의 뜻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曰你眞不識聖意로다何者오? 我者是眞我之我ㅣ오非人我之我也ㅣ니直指乎一心之眞性이니라. 故로云絶名相이나貫古今고處一塵되圍六合며內含衆妙고外應群機며主於三才고王於萬法니蕩蕩乎其無比며巍巍乎其無倫이로다. 不曰神乎아? 昭昭於俯仰之間며隱隱於視聽之際로다. 不曰玄乎아? 先天地而無其始고後天地而無其終이라며, 又云호誰知王舍一輪月이萬古光明不滅고며, 又古人이云호纔降王宮示本然고周行七步又重宣이로다. 指天指地無人會獨振雷音大千이라니其義已顯이라你自不會ㅣ로다.
(나 용성은) 말하기를, “그대는 정말 성인의 뜻을 모르는구나. 왜 그런가? 여기서 ‘나’란 바로 ‘참 나’를 뜻하는 나이지 ‘남이니 나니’ 하는 그런 나가 아니다. 일심一心의 참된 성품을 곧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이름과 모습이 끊어졌지만 고금을 관통하고, 작은 티끌에 처하지만 상하와 사방을 에워싼다. 안으로 온갖 오묘함을 머금고 밖으로 수많은 근기에 응하며, 삼재의 주인이 되고 만법의 왕이 된다. 탕탕하구나! 그와 비교할 자 없으며, 우뚝하구나 그와 짝할 자가 없도다. 과연 신비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굽혔다 우러렀다 하는 사이에서 밝고도 밝으며, 보고 듣는 속에서 은밀하고도 은밀하구나! 그윽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지보다 앞에 있어 그 시작이 없고 천지보다 뒤에 있어 그 끝이 없도다!’라고 하셨다. 또 이르기를, ‘누가 왕사성의 오롯한 둥근 달을 알았으리오, 만고에 빛나는 광명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네’라고 하셨다.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왕궁에 내려오시자마자 본래의 그러함(本然)을 보이시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 거듭 선포하셨네.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켰건만 아는 사람 없기에 홀로 외치신 천둥소리 대천세계에 진동하네’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 뜻을 이미 드러냈는데도 그 자신만 모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4. 부처님 상호와 광명(聖身相好常光周身)
佛身에有三十二相과八十種好며詳見於佛祖通載與法數身色이紫金光聚라內外瑩徹야淨潔無瑕며頂佩日月며胷題卍字며常光周身야不假燈燭며眉間白毫에常光照耀니舒則一尺一寸이오. 收則如圓明珠며或有時에放白毫相光면則普照法界고或有時에周身放光면則光照法界塵沙國土야非凡情可擬也ㅣ며若擧足而行인隨其踏下야每涌金蓮而承之나然이나足去蓮花四寸而常浮시니라.
부처님 몸에는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있었으며,『역대불조통재』와 『삼장법수』에 상세하다. 피부 색깔이 자금 덩어리처럼 빛나 안팎이 환하게 밝고 정결하여 흠이 없었다. 정수리에는 해와 달을 두르고, 가슴에는 만卍 자가 있었으며, 항상 빛이 온몸을 에워싸 등불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미간에는 하얀 털에서 항상 빛이 비추었으니, 펴면 길이가 1척 1촌이고, 거두면 동그란 밝은 구슬 같았다. 어떤 때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으시면 법계를 널리 비추고, 어떤 때 온몸에서 빛을 놓으시면 광명이 법계에 펼쳐진 티끌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어, 범부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을 들어 걸으실 때면 발바닥 아래에서 금빛 연꽃이 솟아올라 떠받쳤으며, 지나가도 연꽃은 4촌 높이에 항상 떠 있었다.
35. 부처님의 34종 상서(佛之應世有三十四種瑞)
覺皇이應世에有三十四種之瑞며伏藏採寶發現俱還야國土ㅣ豊樂며纔誕而大光이普照야地獄이停酸커阿私陀仙人이騰空而來야見太子已고忽然悲泣이어, 王이大憂怖야問仙人言호, 子何不祥고?
깨달음의 황제(覺皇)께서 세상에 응현하실 때 34종의 상서가 계셨으며, 숨겨진 보물 창고가 발견되고, (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채굴하여 함께 돌아왔기에 국토가 풍요롭고 즐거웠으며, 태어나시자마자 큰 광명이 널리 비치어 지옥의 혹독한 고통도 잠시 멈추었다. 그러자 아사타 선인이 허공을 날아서 찾아와 태자를 보고는 갑자기 슬피 울었다.
이에 왕이 크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선인에게 묻기를, “내 아들에게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曰太子ㅣ具足三十二相과八十種好니在家면必爲轉輪聖王고出家면成等正覺야轉大法輪리니我今年已百二十歲라. 不久命終일不聞說法故로自悲耳로라.
0001_0047_a_01L선인이 대답하기를, “태자께서는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구족하셨으니, 궁에 머무시면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실 것이고, 출가하면 등정각을 성취해 큰 법륜을 굴리실 것입니다. 저는 올해 이미 120세이니, 오래지 않아 생명이 끝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절로 슬플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太子漸長에因王嚴駕야抱謁於大自在天廟니諸天主聖像이悉能起拜太子之足下어父王이驚嘆曰我子於諸天中에最尊最勝니宜字天中天이로다.
태자가 좀 자라시자 부왕이 수레를 장식하고 태자를 안고서 대자재천이 모셔진 사당에 인사를 올리려 하였다. 그러자 여러 천왕의 성스러운 상들이 모두 일어나 태자의 발아래에 절하였다. 부왕이 놀라며 감탄하여 이르기를, “나의 아들이 모든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존귀하고 가장 수승하니 아들의 자字를 마땅히 ‘하늘 중의 하늘’이라 해야겠다.”라고 하였다.
36. 부처님께서 마군을 굴복시킴(佛之降魔)
世尊이於閻浮樹下에觀樹思惟시니感天動地며演大光明야覆蔽魔宮니天魔波旬이恐怖야令彼四女로往詣太子야萬端妖媚호感之不動이러라. 波旬이復將八十億魔衆야故來惱壞할而作是言호若不起去면擲汝海中리라. 太子答言호汝先動我淨甁然後에사可能擲我ㅣ니라.
세존께서 염부수 아래에서 나무를 관하며 사유하시니, 하늘과 땅이 감동하여 큰 광명을 펼쳐 마군의 궁전을 덮어 버렸다. 그래서 하늘 마군 파순이 두려워 그의 네 딸에게 태자를 찾아가 만 가지 아리따운 용모로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지만, 유혹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파순이 다시 80억이나 되는 마군 무리를 거느리고 찾아와 괴롭히고 파괴하면서 말하기를, “일어나 떠나지 않으면 너를 바다 한가운데 던져 버리겠다.”라고 했다.
태자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먼저 나의 물병을 움직일 수 있어야만, 그런 뒤에야 나를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八十億衆이盡力호不能令甁小動이라乃至種種作威할若抱石者면不能勝擧고設能擧者라도復不能下며飛刀舞劒이停於空中며雷電雹雨ㅣ成五色花니群魔力盡야無復能爲也ㅣ러라.
80억 대중이 온 힘을 다했지만 물병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나아가 갖가지 위엄을 보였지만 돌을 끌어안아도 들어 올릴 수가 없었고, 설령 들었다 해도 다시 내려놓을 수 없었으며, 날아가던 칼과 춤추던 검이 공중에 정지하고, 우레·번개·우박·비가 오색의 꽃이 되자, 모든 마군들도 힘이 떨어져 다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非唯佛獨爲然也ㅣ라. 自卅三祖師로迄于今者에無數菩薩과無數祖師와無數羅漢과無數長者와無數居土와及至無數信女히苟或魔試ㅣ有逼이면卽待以道變야或鎭或逐며或降或度며乃至於一切畜生야도遇緣이면則以一句法門으로喩使脫殼遷道며有或使一切病者로得以癒痊而載於經傳者ㅣ不可勝記로此以吾家末邊之事故로不爲奇之며不爲道之나니라.
0001_0047_b_01L부처님 한 분만 그러셨던 것이 아니다. 서른세 분의 조사 스님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보살과, 무수한 조사와, 무수한 나한과, 무수한 장자와, 무수한 거사, 나아가 무수한 신녀에 이르기까지 마귀의 시험이 닥치면 곧 도道로 변화하여 마주하여 그들을 진압하거나 쫓아 버리거나 굴복시키거나 제도하셨다. 나아가 일체 축생에 이르기까지 인연을 만나면 ‘한 구절 법문(一句法門)’으로 가르쳐서 (번뇌의) 껍질을 벗겨 도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셨다.
혹은 모든 병든 이들을 치료하는 이야기는 경전과 전기류들 속에 실렸지만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우리 불교 집안에서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지 않은 일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기특한 것으로 치지도 않고 도道라 하지도 않는다.
然이나是等種種權用이皆出於自力이오. 非若耶蘇被魔鬼之所携야或殿上或山頂야도未能自除고斷食四十日야而誠祝天神야得其加護力也ㅣ니라.
그러나 이런 갖가지 권교의 작용은 모두 제 힘 속에서 나온 것으로, 저 예수가 마귀에게 사로잡혀 때로는 전각 위에서 때로는 산꼭대기에서 스스로 제압하지 못하자 40일 동안 단식하면서 천신天神에게 정성껏 빌어 그가 가호력을 얻었던 것과는 다르다.
37. 기독교의 십계와 불교의 가르침 대비(引外典十戒配內典設敎)
天主曰我耶和華天主之稱卽汝之神也ㅣ라니라.
其所命戒曰
천주天主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이니,천주天主를 말한다. 곧 너의 신이다.”라고 하였다.
그가 명한 계戒는 다음과 같다.
第一我外엔勿置他神라.又讚頌歌云我에셔勿置他神라
第二勿作偶像라.爲汝야勿作偶像며又天上地下水中之物에勿論某形고凡有相者를勿作偶像며勿作禮拜며又勿事之라大槪我耶和華汝之天怒여워天也니憎我者父之罪를傳之子孫而及於三四代고愛我者及守我命者恩施于子孫而及於數千世云耳
제1,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또 찬송가에서는 ‘나에게 다른 신을 두지 말라’라고도 한다.
제2, 우상을 만들지 말라.너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며, 또 하늘 위나 땅 아래나 물 가운데 있는 물건 어떤 모양을 막론하고 무릇 형상이 있는 어떤 것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예배하지 말며, 또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의 죄를 자손에게까지 묻고 3대, 4대까지 이르게 할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자와 나의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은혜를 자손에게까지 베풀고 수천 대에 이르게 하리라.
第三勿妄稱耶和華之名하라. 槪耶和華셔自己名號妄稱者를不爲無罪라시니라.
第四記臆安息日야善聖其日라. 六日之間에力工諸事고及第七日야汝之耶和華安息日也니使汝之子女奴婢六畜留客으로除廢事務라. 㮣六日之內에汝耶和華ㅣ創造萬物고至第七日而息也故로耶和華ㅣ福安息日야聖케셧니라.
0001_0048_a_01L제3,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자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가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제4,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선하고 성스럽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여호와가 편안히 쉬는 날이니, 너의 자녀와 노비와 여섯 가축과 잠시 머무는 나그네마저도 하는 일이 없게 하라. 엿새 동안 너의 여호와가 만물을 창조하고 제7일째 쉬었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축복하여 성스럽게 하셨다.
第五恭敬父母라然則汝之耶和華ㅣ使汝로久活於給汝之地云시니라.
第六勿殺人라.
第七勿姦淫라.
제5,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너의 여호와가 너에게 준 땅에서 너를 오래도록 살게 하리라.
제6, 살인하지 말라.
제7, 간음하지 말라.
第八勿偸盜라.
第九欲害汝隣며勿假作證據라.
第十勿貪隣家며又勿貪汝隣人婦ㅣ나奴婢牛馬나及諸所有라.
제8, 도둑질하지 말라.
제9, 너의 이웃을 해치려고 거짓으로 증거하지 말라.
제10,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의 부인과 노비와 소와 말 및 여러 소유물도 탐하지 말라.
恭聞釋迦氏之設敎也에曰人이因地而倒者因地而起니離地求起無有是處也ㅣ니라. 迷一心而起無邊煩惱者衆生也ㅣ오. 悟一心而起無邊妙用者는諸佛也ㅣ라迷悟雖殊ㅣ나. 而要由一心則離心求佛者도亦無有是處也ㅣ니라. 故로四祖云百千法門이同歸方寸이오河妙妙德이摠在心源이라며,
공경히 듣건대,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시설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땅으로 인해 넘어졌으면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하니, 땅을 떠나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일심을 미혹하여 끝없는 번뇌를 일으킨 자는 중생이요, 일심을 깨달아 끝없는 오묘한 작용을 일으키신 분은 모든 부처님이시다. 미혹하느냐 깨닫느냐는 비록 다르지만, 요는 일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즉 일심을 벗어나 부처가 되길 바라는 것 또한 옳지 않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4조 도신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천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귀결되고,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은 공덕이 모두 마음 근원에 있다.”라고 하였다.
普照云人性이本淨야在聖而不增며在凡而不減니, 故云호在聖智而不耀며隱凡心而不昧라니, 旣不增於聖인佛祖奚以異於人고? 而所以異於人者能自護心念이라며,
0001_0048_b_01L보조 국사께서는 이르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니 성인이라고 그것이 늘어나지도 않고 범부라고 그것이 줄지 않는다. 따라서 옛사람이 이르시기를, ‘성인의 지혜 속에 들었다고 해서 빛나는 것도 아니며 범부의 마음에 숨어 있어도 어둡지 않다. 이미 성인이라고 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부처님과 조사는 어째서 보통사람과 다르실까? 그분들이 보통사람과 다른 까닭은 능히 스스로 그 마음과 생각을 보호해 지키시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佛云사是法이平等야無有高下라며, 冶父云水不離波波是水라鏡水塵風不到時에應現無瑕照天地라며, 又達摩云衆生心外에別求佛求祖者皆是天魔外道라며, 圭山云鏡心이本淨며像色이元空이로다. 夢識이無初언만物境이成有라며, 佛云사譬如磨鏡에垢盡明現이라시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라고 하셨으며, 야보 스님은 말하기를, “물이 물결을 떠나 있지 않으니 물결이 바로 물이니, 거울에 먼지가 달라붙지 않았을 때, 물에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을 때는 티 없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천지를 비춘다.”라고 하였다.
또 달마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의 마음 밖에서 따로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하는 자는 모두 하늘 마군이고 외도이다.”라고 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이 말하기를, “거울은 본래 깨끗하고, (거울에 맺힌) 영상은 원래 공하다. 꿈 같은 제8아뢰야식은 초상初相이 없지만 대상 경계가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거울을 닦아 때가 사라지면 밝음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由此觀之컨衆生心性之外에求別有天而可尊이며別有天以可生者는是妄也ㅣ오非眞也ㅣ니라. 故로悟此心者는卽名天人師大丈夫ㅣ오. 迷此心者卽名衆生根愚凡夫也ㅣ니라. 圓覺에佛云有無上淸淨大多羅尼門야流出無邊法門海야敎授諸菩薩이라시니, 佛이以大慈悲로敎育無限人天衆이언만去佛漸遠야心外求道者ㅣ滔滔漫漫니可謂大明이不能破長夜之昏고慈母도不能保身後之子也ㅣ로다.
이를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중생의 심성 밖에 존중해야 할 하나님(天)이 따로 있고, 만물을 낳을 수 있는 하나님이 따로 있다는 것은 허망한 말이지 참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깨친 자를 곧 ‘하늘 세계와 인간 세계의 스승’이요 ‘대장부’라고 명명하고, 이 마음을 미혹한 자를 곧 ‘중생’이라 명명하고 ‘근기 어리석은 범부’라고 명명한다.
『원각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위없이 청정한 큰 다라니의 대문이 있는데, 거기에서 바다처럼 끝없는 법문을 흘려 내어 모든 보살을 가르친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 한량없는 사람 세계와 하늘 세계의 중생을 교육하셨건만, 부처님 시대와 거리가 점점 멀어져,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는 자들이 많아지니, 참으로 큰 밝음도 기나긴 밤의 어둠은 부수지 못하고, 자비로운 어미도 자신이 죽고 나서는 제 자식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夫道由心悟也ㅣ니豈在像不像이리오? 但得其本고不愁其末이니라. 佛云사一切有爲法이如夢幻泡影며如露亦如電이니應作如是觀이라며, 又云若以色見我커나以音聲求我면是人안行邪道라不能見如來ㅣ라시니, 大道豈在於偶像也ㅣ리오?
무릇 도는 마음 깨침에서 온다. 어찌 형상이 있고 없음과 관계가 있겠는가? 그저 그 근본을 얻을지언정, 그 지말을 근심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인위적인 법은 꿈결 같고, 환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다. 반드시 그렇게 관찰하라.”라고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물질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로 여래를 볼 수 없다.”라고 하셨으니, 대도大道가 어찌 우상에 있겠는가?
佛云是法이住法位야世間相이常住라며, 冶父云若人이識得家中寶면啼鳥山花一樣春이라니, 大道豈斥在於偶像哉아? 故로潙山이云以思無思之妙로返思靈焰之無窮면思盡還源에性相이常住고事理不二야眞佛이如라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라고 하셨으며, 야보 스님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제집 안의 보물을 알아차리면 우는 새와 산에 핀 꽃이 똑같이 봄 풍경일세.”라고 송하였으니, 대도大道가 어찌 우상 배척하는 것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산 영우 선사가 말하기를, “생각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생각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오묘한 생각으로, 다함없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사유하여, 생각이 사라져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는 성품도 형상도 상주하고, (그 자리는) 현상과 이치가 둘이 아니어서, 참된 부처가 여여하리라.”라고 하였다.
心聞이云旣無思底며復無淨底야直得一絲不挂라和自家本體都盧不見이니恁麽入囂塵이면敎誰染着이며恁麽入順逆이면敎誰嗔喜리오? 然後에打徹明暗兩頭야向不明不暗處야看大悲院有齋話면龍蛇渾雜凡聖交參可謂渾天地歌舞ㅣ오盡世界風流也ㅣ로다.
심문 분 선사는, “이미, 생각할 것도 없고, 다시 깨끗할 것도 없으면, 곧장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아, 제집 안의 본바탕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 뒤에 세속의 번뇌 속으로 들어간다면 누가 물들고 집착하겠으며, 이렇게 한 뒤에 역순의 경계로 들어간다면 누가 분노하고 기뻐하겠는가. 이런 다음에 밝음과 어둠 두 가지를 모두 타파하고서,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곳을 향하여 ‘대비원에 재齋가 들었다’는 화두를 들면,용과 뱀이 뒤섞이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 참여한다. ‘그대는 온 천지 어디에도 노래하고 춤추며 온 세계 어디라도 풍류 놀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리라.”라고 송하였다.
故로余以悟心則萬機ㅣ俱息고迷心則是非ㅣ紛然也ㅣ라노라. 佛家에聖像塑畵를不可以邪神偶像으로論之니何者오? 吾家之模範聖像也有眞言加持之妙力야惡魔邪鬼가恐怖야莫敢犯近며又有腹藏之法야以眞言梵書와及五甁等으로安佛腹內야以鎭邪氣나니切不得誤認而妄加論斤也ㅣ어다.
그러므로 말하노니, “마음을 깨치면 만 가지 마음 작용이 모두 쉬고, 마음을 미혹하면 시비가 분분하다.”라고 하겠다. 불가佛家에서 성인의 형상을 빚고 그리는 것을 두고, 삿된 신神이니 우상이니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우리 집안에서 법식에 맞추어 만든 성상聖像에는 진언으로 가지加持한 오묘한 힘이 존재하여, 악마나 삿된 귀신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하거나 범하지 못한다. 또 복장腹藏하는 법이 있어서 진언과 범서梵書와 다섯 종류의 병甁 등을 불상의 배 속에 안치하여 삿된 기운을 진압하니, 절대로 잘못 알고 함부로 논란하여 배척해서는 안 된다.
觀佛三昧經에云佛이昇忉利天上사旣久시니優塡王이不勝戀慕야鑄金爲像이러니聞佛當下고載金像야仰候世尊니猶如生佛이러라. 乃遙見佛足니步於虛空하실蹈雙蓮花사放大光明시며佛語像言사汝於來世에大作佛事리라. 吾滅度後에我諸弟子를付囑於汝노니若有衆生이造立形像야種種供養면是人이後世에必得念佛淸淨三昧라니, 造像之法이自此始焉이러라.
0001_0049_b_01L『관불삼매경』에서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도리천으로 올라가신 지 오래되자, 우전왕이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금으로 부처님 형상을 주조하였다. 언젠가는 부처님께서 내려오실 것이라고 듣고는, 금불상을 받들어 세존의 문후를 여쭈어 마치 살아계신 부처님같이 하였다. 이어 멀리 부처님 발을 바라보니 허공을 걸으시는데 두 송이 연꽃을 밟고 큰 광명을 놓으시며, 부처님께서 금불상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오는 세상에 크게 불사를 지을 것이다. 내가 멸도한 뒤, 나의 모든 제자들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만약 형상을 만들고 세워 갖가지로 공양하는 중생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후세에 반드시 부처님을 생각하는 청정한 삼매를 얻으리라’라고 하셨다.”라고 했다.
불상을 만드는 법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問上云心外에無佛可成이라고今云供養佛像야得念佛淸淨三昧라니何語相違耶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앞에서는 ‘마음 밖에 이뤄야 할 부처가 없다’고 하고는, 지금은 ‘불상을 공양하면 부처님을 생각하는 청정한 삼매를 얻는다’고 말을 하니, 왜 말이 서로 어긋나는가?”
曰諸法이從緣生며從緣滅니人이眼見聖像고心生恭敬야以獻供養며或生歡喜而讚誦이면則植此種於藏識中이라가其所結果之時에發得此三昧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모든 법이 인연을 따라 생기며 인연을 따라 멸한다. 사람이 눈으로 성스런 형상을 보고 마음에 공경을 일으켜 공양을 바치거나 혹은 환희심을 내어 찬송하면 이런 종자를 아뢰야식 속에 심어 두었다가, 그것이 열매 맺힐 때 이런 삼매를 발하게 된다.”라고 했다.
38.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성불의 원인(稱佛名號得成佛正因)
維佛은以大悲爲體시고以度生爲務시나니夫無緣者不能爲也故로不論尊卑上下貴賤고皆可稱呼며及至戱笑라도稱佛名號면畢竟得成佛正因이온況存心正念乎아?
오로지 부처님께서는 대비로 몸을 삼으시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업무를 삼으시지만, 대저 인연이 없는 자이면 (부처님도) 어찌하시지 못한다. 그러므로 존비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그 명호를 부를 수 있으며, 나아가 장난으로라도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마침내는 성불하는 바른 원인을 얻을 수 있는데, 하물며 마음에 새겨 두고 바르게 염하는 것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五蘊이本空며六塵이非有라不出不入며不定不亂야本絶四相이어니五蘊六塵上卷已見四相者我人衆生壽者相也豈可以高低等次로言論也ㅣ리오? 故로云光明寂照遍河沙라四聖聲身緣覺菩薩佛也六凡地獄餓鬼畜生天道人道修羅이共一家라며, 古云佛則是心이오心則是佛이라며, 又云心佛及衆生이是三無差別이라니, 故로生佛이生衆生也平等며大小ㅣ平等이어니豈分人天上下而論道哉ㅣ리오? 元因一圓融最淸淨無障碍法界야迷一念故로四聖六凡이分路니라.
0001_0050_a_01L오온五蘊이 본래 공하고, 육진六塵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안정되지도 않고 혼란하지도 않아, 애초에 네 가지 상相을 끊었으니,오온과 육진은 상권에서 이미 설명했다. 사상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다. 어찌 높고 낮음 등의 차이를 따지겠는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광명이 고요히 항하사 세계를 두루 비추니, 사성四聖성문·연각·보살·불과 육범六凡지옥·아귀·축생·천도·인도·수라이 모두 한 집안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라고 하셨다. 따라서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며, 대승과 소승이 평등하니, 어찌 인간과 하늘 상하를 나누어 도를 논하겠는가? 원래 하나이며, 원융하고 가장 청정한 무장애법계를 원인으로 하였지만, 한 생각 미혹한 까닭에 사성과 육범으로 갈라진 것이다.
修十善放生施食梵行實語直語軟語和合語不淨觀慈悲觀因緣觀者神識이上天야爲天主天民며修三歸歸依佛歸依法歸依僧也五戎者不殺盜淫妄酒神識이生人間되福業重者는爲人主며爲人臣며爲大富者고福業輕者爲下民而或貧或賤며或六根이不完며或疾病長苦고又罪業重者墮三惡道야歷劫受苦니其所受修報ㅣ各各有別也ㅣ니라.
십선十善방생·시식·범행·실어·직어·연어·화합어·부정관·자비관·인연관을 닦는 자는 신식神識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 임금이나 하늘 백성이 된다. 삼귀의三歸依귀의불·귀의법·귀의승와 오계五戎불살생·불투도·불사음·불망어·불음주를 닦는 자는 신식神識이 인간에 태어나는데, 복 받을 만한 업이 두터운 자는 사람의 왕이 되기도 하고 신하가 되기도 하며, 큰 부자가 되기도 하고, 복덕의 업이 가벼운 자는 낮은 백성이 되어 가난하거나 비천하거나 육근이 완전하지 못하거나 질병으로 오래 고생한다. 또 죄업이 무거운 자는 삼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을 거치며 고통을 받으니, 저마다 받는 것이 과보를 짓는 것에 따라 각각 차별이 있다.
故로佛敎比丘云사觀衆生을如佛如父母라云云也ㅣ시니라. 夫佛之同體大悲也孝順父母며普敬一切야以萬物로爲一已니何偏僻之有리오? 故로云圓同太虛야無欠無餘언만良由取捨야所以不如라니三界輪廻愛欲所纒이라旣無取捨면愛欲何從이며又無愛欲이면輪廻那有ㅣ리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중생을 부처님처럼 여기고 부모님처럼 여겨라.”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동체대비이다. 부모님에게 효순하며, 널리 일체 중생을 존경하여, 만물을 똑같이 자신으로 삼으셨으니, 어찌 편벽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원만함이 태허와 같아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결국은 (중생 스스로) 취하고 버림으로 인해 여여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삼계에 윤회하는 것은 애욕에 얽혔기 때문이니, 이미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애욕이 어찌 따라오겠는가? 또 애욕이 없다면 윤회가 어찌 있겠는가?
39. 부처님이 살생을 금한 것은 평등한 자애임(明佛之戒殺平等慈愛)
大哉라. 聖人之道여! 可謂賴及萬方이오化被草木이로다. 鳳凰은雖禽이나飢不啄有主之粟며麒麟은雖獸나行不踏有情之草온況聖人乎아? 法界有識含靈이本是平等性上이元因一念差야受報萬形이나然이나凡有血氣之屬의固有知覺好生惡死之心이아有何異於人哉리오?
0001_0050_b_01L위대하구나, 성인의 도여. 가히 만방의 의지처가 되고 초목까지 교화를 입히셨다고 하겠다. 봉황은 비록 새이지만 굶주려도 주인이 있는 곡식은 먹지 않고, 기린은 비록 짐승이지만 다니면서 살아 있는 풀은 밟지 않는다. 하물며 성인이시겠는가? 알음알이가 있는 법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본래 이 평등한 성품에서 애초 한 생각의 차이로 인해 만 가지 형상으로 과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부류에게 본래 있는 지각 작용과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야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若推過去컨經歷六道야受胎四生니羽族禽獸含識之類가莫非我之前身父母子孫也ㅣ라. 其殺而食之를奚可忍乎아? 故佛敕弟子사汝等이以慈心故로行放生業이니一切男子是我父오. 一切女人은是我母라我ㅣ於生生에無不從之受生故로六道衆生이皆是我父母어而殺而食者卽殺我父母며亦殺我故身이니라. 一切地水ㅣ是我先身이오一切火風이是我本體니故로常行放生라. 生生受生常住之法이라시니豈有揀擇而垂誡哉시리오?
과거를 미루어 보건대, 육도를 거치면서 사생의 태를 받았을 것이니, 날아다니는 새와 짐승을 비롯한 알음알이가 있는 모든 종류가 내 전생의 부모와 자손이 아닌 자가 없다. 그러니 그들을 죽여 먹는 짓을 어찌 차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들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생의 업을 행하라. 모든 남자가 바로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인이 바로 나의 어머니이니, 내가 수많은 생에 그들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 할 자가 없다. 그러므로 육도 중생이 모두 나의 아버지요 어머니이니, 그들을 죽이고 먹는 자는 곧 나의 부모를 죽이는 것이며, 또한 나의 전생 몸을 죽이는 것이다. 모든 흙과 물이 바로 나의 전생 몸이요, 모든 불과 바람이 바로 나의 본바탕이다. 그러니 항상 방생하라. 이것이 세세생생 태어나며 항상 머무는 법이다.”라고 하셨으니, 어찌 선택해 계명을 내리심이 있었겠는가.
華嚴經에金剛藏菩薩이云殺生之罪ㅣ能令衆生으로墮於地獄餓鬼畜生며若生人中이라도得二種報나니一者短命이오二者多病이라시니, 如是等說을不可一一歷擧야盡數而證之노라.
『화엄경』에서 금강장보살이 말하기를, “살생의 죄가 중생을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게 하며,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얻게 하니, 하나는 명이 짧은 것이고, 둘은 병이 많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등등의 말씀을 일일이 거론하여 모조리 다 증명할 수는 없다.
40. 부처님의 십계로 삼업을 모두 포섭(佛之十戒摠收三業)
佛說三歸十戒와幷大士四百戒와與比丘二百五十戒와及比丘尼五百戒와乃至三千威儀와八萬細行이나然이나今但取十戒야說明리라. 大抵衆生之造業修善之本은由乎身口意三業也ㅣ니意是根本이오身口乃枝末也ㅣ라. 佛就身業而誡之曰第一不殺生이오. 第二不偸盜오. 第三不邪淫이라며就口業而誡之曰第四不妄語오. 第五不綺語와飮酒오. 第六不惡口오. 第七不兩舌이라며, 就意業而誡之曰第八不貪欲이오. 第九不嗔恚ㅣ오. 第十不愚痴라시니,
0001_0051_a_01L부처님께서는 삼귀의, 십계, 아울러 보살 사백계, 비구 이백오십계, 비구니 오백계, 내지 3천 가지 위의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규범을 설하셨다. 하지만 이제 십계만 취하여 설명하겠다.
중생이 업을 짓고 선을 닦는 근본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三業에서 비롯된다. 뜻이 바로 근본이고, 몸과 입은 지말이다. 부처님께서 신업에 대해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불살생이요, 둘째는 불투도요, 셋째는 불사음이다.”라고 하셨으며, 구업에 대해 경계하시기를, “넷째 불망어요, 다섯째는 불기어와 불음주요, 여섯째는 불악구요, 일곱째는 불양설이다.”라고 하셨으며, 의업에 대해 경계하시기를, “여덟째는 불탐욕이요, 아홉째는 부진에요, 열째는 불우치이다.”라고 하셨다.
窃究造業之根由컨意因眼耳鼻舌身之媒引야造出十不善고又從十種不善이爲根源야而又作成四百戒로乃至八萬細行之枝流也ㅣ니然則此十戒摠持上下無盡戒行焉이로다.
업을 짓는 근원을 깊이 궁구해 보면 뜻이 눈·귀·코·혀·몸이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업을 만들고, 또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업이 근원이 되어 이로부터 또 사백계 내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규범이라는 지류를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십계는 상하의 다함없는 계행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다.
華嚴經에金剛藏菩薩이告解脫月菩薩사佛子아. 菩薩摩訶薩이已修初地고欲入第二地當起十種深心이니何等爲十고? 所謂正直心과柔軟心과堪能心과調伏心과寂靜心과純善心과不雜心과無顧戀心과廣心과大心이니菩薩이以此十心으로得入第二離垢地니라.
『화엄경』에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기를,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초지를 닦고 나서 제2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열 가지 깊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정직한 마음·부드러운 마음·감내하는 마음·조복하는 마음·고요한 마음·순수하고 착한 마음·잡되지 않은 마음·그리워하지 않는 마음·넓은 마음·큰 마음이다. 보살이 이 열 가지 마음으로 제2이구지에 들어가게 된다.
佛子아. 菩薩이住離垢地야性自遠離一切殺生이니不畜刀杖며不懷怨恨야有有愧며仁恕具足야於一切衆生有命之者에常行利益慈念之心이니是菩薩이尙不惡心으로惱諸衆生이온何況於他에起衆生想야故以重意로而行殺害리오?互見上卷卅三張也
불자야, 보살이 이구지에 머물면,
성품이 스스로 일체 살생을 멀리하여 칼과 몽둥이를 비축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아 스스로 뉘우치고 남들에게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어짊과 용서를 구족하여 생명이 있는 일체중생을 항상 이롭게 하고 자비롭게 생각하는 마음을 행한다. 이런 보살은 나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괴롭히지도 않는데, 어찌 하물며 타인에게 중생상을 일으키고 거기다 생각을 더해 살해하는 짓을 저지르겠는가.『귀원정종』 상권의 「13. 불교는 허무적멸의 도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에 수록된 내용과 비교할 것
性不偸盜니菩薩이於自資財에常知足며於他에慈恕야不欲侵損이니라. 若物屬他어든起他物想야終不於此에而生盜心며乃至草葉이라도不與어든不取니何況其餘資生之具녀.
성품이 도둑질하지 않나니, 보살은 자신의 재물에 항상 만족할 줄 안다.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기에 침탈하거나 손해를 끼치려 하지 않으며, 만약 물건이 타인의 손에 들어가면 타인의 물건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끝내 타인에게서 훔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아가 풀 한 포기 잎사귀 하나라도 주지 않으면 갖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그 나머지 삶에 필요한 물품들이겠는가.
◯性不邪媱이니菩薩이於自妻에知足이오. 不求他妻며於他妻妾과他所護女와親族媒定과及爲法所護에尙不生於貪染之心이온何況從事ㅣ며何況非道ㅣ리오.
0001_0051_b_01L◯성품이 삿된 음행을 하지 않나니, 보살은 자기 아내로 만족할 줄 알고, 타인의 아내를 구하지 않는다. 타인의 아내와 첩, 타인이 보호하는 여자와 친족, 결혼이 정해진 자와 나아가 법으로 보호하는 자에게 오히려 탐욕에 물든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그런 짓을 저지르겠으며, 어찌 하물며 도리에 맞지 않는 짓이겠는가.
◯性不妄語니菩薩이常作實語眞語時語論云知時語不起自身地身衰惱事故謂心事雖實而廻改見時或令自他而有衰惱今菩薩朝見言朝暮見言暮故曰知時乃至夢中이라도亦不忍作覆藏之語야無心欲作이온何況故犯이리오.
◯성품이 거짓말하지 않으니, 보살은 항상 실다운 말, 참된 말, 시점을 명기한 말을 하고,『십지론』에서 ‘시점을 명기한 말은 자신과 타인에게 손실과 고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기억하는 사건이 비록 사실이라 해도 목격한 시점을 바꾸거나 고쳐서 진술하면 자신과 타인에게 손실과 고뇌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이제 보살은 아침에 목격했으면 ‘아침’이라 말하고, 저녁에 목격했으면 ‘저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점을 명기한 말’이라 한다. 나아가 꿈속에서라도 차마 감추거나 숨기는 말을 하지 않고 짓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데, 어찌 하물며 일부러 범하겠는가.
◯性不兩舌이니菩薩이於諸衆生에無離間心며無惱害心이오不將此語야爲破彼故로而向彼說며不將彼語야而破此故로而向此說며未破者를不令破며已破者를不增長며不喜離間며不樂離間며不作離間의若實若不實이니라.
◯성품이 이간질하지 않으니,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이간질하는 마음이 없으며, 괴롭히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다. 이 말을 가져다 저 사람을 파괴하고자 저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며, 저 사람의 말을 가져다 이 사람을 파괴하고자 이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며, 아직 파괴하지 않은 자를 파괴시키지 않으며, 이미 파괴한 자를 증장시키지 않으며, 이간질을 기뻐하지 않으며, 이간질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이간질을 저지르지 않는다.
◯性不惡口니所謂毒害語와麄獷語와苦他語와令他嗔恨語와現前語와不現前語와鄙惡語와庸賤語와不可樂聞語와聞者不悅語瞋盆語와如火燒心語와寃結語와熱惱語와不可愛語와不可樂語와能壞自身他身語와如是等語를皆悉離捨고常作潤澤語와柔軟語와悅意語와可樂聞語와聞者喜悅語와善入人心語와風雅典則語와多人愛樂語와多人悅樂語와身心踊悅語ㅣ니라.
◯성품이 나쁜 말을 하지 않으니, 이른바 독한 말과 거친 말과, 타인을 괴롭히는 말과 타인을 분노케 하는 말과, 대놓고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과, 비루하고 더러운 말과 천박한 말과, 듣기 좋지 않은 말과 듣는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말과, 분노가 서린 말과 불같은 마음으로 내뱉는 말과, 원한 맺힌 말과 뜨거운 고뇌로 몰아넣는 말과, 사랑할 수 없는 말과 즐거워할 수 없는 말과, 자신과 타인을 파괴할 수 있는 말 등등 이와 같은 말들을 모조리 떠나고 버린다. 그리고 항상 윤택한 말과 부드러운 말과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과 듣기 좋은 말과 듣는 자가 기뻐하는 말과 사람 마음에 잘 받아들여지는 말과 억양이 아름답고 전거가 바른 말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말과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말과 몸과 마음에 기쁨이 용솟음치게 하는 말을 한다.
◯性不綺語니菩薩常樂思審語와時語와善知言說時依彼此語故名時語略說有三一敎化時語二敎授時語三敎誡時語實語와義語와法語와順道理語와巧調伏語와隨時籌量決定語니是菩薩이乃至戱笑라도尙恒思審이온何況故出散亂之語ㅣ리오?
◯성품이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니, 보살은 항상 자세히 생각해 본 말과 시기에 알맞은 말과말할 시점을 잘 알아 피차에 의지해 말하기 때문에 ‘시기에 알맞은 말’이라 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교화할 때에 하는 말, 둘째는 가르칠 때에 하는 말, 셋째는 훈계할 때에 하는 말 실다운 말과 의미 있는 말과 법다운 말과 도리에 합당한 말과 교묘하게 조복시키는 말과 때에 맞게 헤아려 결정하는 말을 좋아한다. 이 보살은 나아가 농담하는 자리에서조차 오히려 항상 생각하고 살피는데, 어찌 하물며 일부러 산란한 말을 내뱉겠는가.
◯性不貪欲이니菩薩이於他財物과他所資用에不生貪心며不顧不求ㅣ니라.
◯성품이 탐욕을 부리지 않나니, 보살은 타인의 재물과 타인 소유의 재물에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돌아보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性離瞋恚니菩薩이於一切衆生에恒起慈心과利益心과哀愍心과歡喜心과和潤心과攝受心야永捨瞋恨怨害熱惱고常思順行仁慈祐益이니라.
◯성품이 성내는 마음을 벗어나니, 보살은 일체중생에게 항상 사랑하는 마음, 이롭게 하려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 부드럽게 잘 어울려 주는 마음, 포섭해 거두어 주는 마음을 일으켜 영원히 분노의 원한과 복수하려는 마음과 뜨거운 번민을 버리고 항상 상대의 뜻에 맞춰 행동하려고 생각하고, 인자하게 도우며 이익을 주려고 한다.
△又離邪見이니菩薩이住於正道야不行占卜며不取惡戒며心見이正直야無諂無誑야於佛法僧에起決定信이니라.
△ 또 사견을 벗어나니, 보살은 바른 도에 머물러 점치는 짓을 하지 않으며, 나쁜 계율을 가지지 않으며, 마음의 견해가 바르고 곧아 아첨도 없고 속임도 없으며, 불·법·승에 확고한 믿음을 일으킨다.
△佛子아. 菩薩摩阿薩이如是護持十善業道야常無間斷이니라. 復作是念호一切衆生의墮惡趣者莫不皆以十不善業이로다. 是故로我當自修正行며亦勸於他야令修正行이니何以故오? 若自不能修行正行고令他修者無有是處ㅣ니라.
佛子아. 此菩薩摩訶薩이復作是念호十不善業道ㅣ是地獄畜生餓鬼受生因이오. 十善業道是人天으로乃至有頂處受生因이라시니라.
△ 불자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보호하고 지키면서 항상 끊어짐 없이 실천한다.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중생이 악취에 떨어지는 것은 모두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업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마땅히 스스로 바른 행을 닦고, 또한 타인에게도 권하여 바른 행을 닦게 해야겠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스스로 바른 행을 닦을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닦게 한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불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업의 길이 바로 지옥·축생·아귀에 태어나는 원인이고,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이 바로 인간과 하늘 내지 유정처에 태어나는 원인이구나’라고 하고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是十戒也ㅣ廣略如此니況其餘百千萬戒行乎아? 盖法有遠近니孔子其立五常也에觀天行四時之道사立仁義禮智信시니春木曰仁이오夏火曰禮ㅣ오. 秋金曰義ㅣ오. 冬水曰智ㅣ오. 四季土曰信이니, 此順天理而敎民故로遠也ㅣ오. 耶蘇所奉者不知其甚麽天인而自命令야別立十戒以敎民故로亦遠也ㅣ오.
이런 십계는 크게 줄여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그 나머지 백천만 가지 계행이겠는가?
대략 (성인의) 가르침에는 (내 몸으로부터) 먼 것도 있고 가까운 것도 있다. 공자는 오상을 세움에 있어, 하늘이 움직이는 네 계절의 도를 관찰하여 인·의·예·지·신을 세웠으니, 봄과 나무를 인이라 하고, 여름과 불을 예라 하고, 가을과 쇠를 의라 하고, 겨울과 물을 지라 하고, 네 계절과 대지를 신이라 한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를 따라 백성을 가르친 것이므로, 먼 것이다.
예수가 받드는 것이 어떤 하느님(天)인지 모르겠지만, 그 하느님(天)이 스스로 명령하여 따로 십계를 세워 백성을 가르치는가? 그래서 역시 먼 것이다.
佛은云三界唯心이오. 萬法唯識故로就一切衆生一心上야設戒시니何以故오? 世間所有善不善業이皆於一心上所從而起者ㅣ오. 而不出於身口意三業故로云近也ㅣ라노라.
0001_0052_b_01L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식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일체중생의 일심에 입각하여 계戒를 시설하셨다. 무엇 때문인가? 세간에 존재하는 선하고 선하지 못한 업들이 모두 일심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고, 신·구·의 삼업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내 몸으로부터) 가깝다고 한다.
夫心也者萬法之源이라從本以來로炳煥靈明야不曾生不曾滅ㅣ나니有何一物이過於此者乎아? 不論善不善고心外求道者雖是吾門中人이라도卽曰邪魔外道也ㅣ니라.
대저 마음은 만법의 근원이다. 아득한 과거부터 환하고 신령스럽고 밝아서 생긴 적도 없고 멸한 적도 없으니, 어떤 한 물건이 있어 이보다 나을 수 있겠는가? 선이건 불선이건 막론하고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우리 문중 사람이라 해도 곧 삿된 마귀요, 외도라 하겠다.
41. 부처님의 신통묘용은 마음을 벗어나지 않음(明佛之神通妙用不離方寸)
外敎는但執常見야不知理性之大體故로吾家性理寘之不說노라. 何者오? 古云問處高高에答處深이라니好好呵呵로다. 太湖三萬六千項에月在波心說向誰오.
불교 이외의 가르침은 상견常見에만 집착하여 이치와 성품의 분명한 바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집안에서 논하는 성품과 이치는 일단 접어 두고 설명하지 않겠다. 무엇 때문인가? 옛말에 “질문이 높고 높으면 대답도 깊고 깊은 법이다.”라고 하였다. 호호, 하하. 큰 호수 3만 6천 물결이고, 그 물결 가운데 달이 있으니 누구에게 말할까?
耶蘇ㅣ駈遂邪神야療治衆病으로以爲己能고有諸難事어든則禁食之며祈禱之면天使ㅣ夢報而祐導之며敎人以事天야上生於天堂으로爲究竟고, 又云凡人이死에則靈魂이不是上天이면便入地獄며其餘盡爲魔鬼라야嚴戒祭祀고不知度惡遷善야但忘却祖先니㦖哉憐哉로다.
예수는 삿된 신을 몰아내어 온갖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자기 능력을 삼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금식하고 기도하면 천사가 꿈에 나타나 그를 돕고 이끌었으며, 사람들에게 하느님(天)을 섬기라 가르쳐 천당에 태어나는 것으로 구경을 삼았다. 또 이르기를, “사람이 죽었을 때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면 곧바로 지옥에 들어가며, 그 나머지는 모조리 마귀가 된다.”라고 말하며, 엄격히 계를 지키고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악한 자를 선한 자로 제도할 줄은 모르고, 그저 제 조상을 버리니, 불쌍하고도 가엽구나.
大雄氏出世에以明心達道야普濟人天으로爲務先시고神通妙用으로次而遠之심은寔不爲要用也니라.
0001_0053_a_01L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마음을 밝혀 도를 깨쳐, 널리 인간과 하늘을 제도하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으시고 신통묘용을 그 다음으로 미루어 멀리하셨던 것은 그런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有天筑頻婆羅王이讚佛偈曰
天上天下에無如佛이오. 十方世界에亦無比라.
世間所有를我盡見호 一切無有如佛者라며
인도의 빈비사라왕은 부처님을 찬탄하여 게송으로 말하기를,

“하늘 위 하늘 아래에 부처님 같은 분 없고
시방 세계에도 또한 비교할 자 없어라
세간에 존재하는 것 내가 다 살펴보았지만
부처님 같은 분은 어디에도 없어라.”

라고 했다.
永嘉云호
六般神用이空不空이오. 一顆圓光이色非色이로다.
淨五眼得五力은唯證乃知라. 難可測이라며,
又云 三身四智體中圓이오八解六通이心地印이라며,
영가 대사가 이르기를,

“여섯 가지 신통 작용이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고
한 알의 둥근 빛이 색이면서도 색이 아니네
오안五眼을 깨끗이 하고 오력五力을 얻음은
오직 증득해야지 가히 추측하기는 어렵다.”

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삼신三身과 사지四智가 이 몸에 원만하고
팔해탈八解脫과 육신통六神通이 마음의 도장이다.”

라고 했다.
經에維摩詰이言호唯舍利佛아. 諸佛菩薩이有解脫니名不可思議라. 若菩薩이住是解脫者以須彌之高廣으로內芥子中하야도無所增減야須彌山王이本相如故고而四天王과忉利諸天이不覺不知己之所入이나唯應度者난乃見須彌入芥子中니是名不可思議解脫法門이니라.
『유마경』에서 유마힐이 말하기를, “사리불이여, 모든 불보살에게 해탈이 있으니, 그 이름이 불가사의입니다. 만약 보살이 이 해탈에 머문다면 높고 넓은 수미산을 겨자 속에 넣어도 늘거나 준 것이 없으니, 수미산왕이 본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천왕과 여러 도리천도 자신이 들어간 곳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오직 제도해야 할 자만은 수미산이 겨자에 들어간 것을 보니, 이것을 불가사의해탈법문이라 합니다.
又以四海水로入一毛孔호不嬈魚鼈鼉水性之屬而彼大海本性이如故며諸龍神阿修羅等이不覺不知己之所入며於此衆生도亦無所嬈니라. 又舍利弗아住不可思議解脫菩薩이斷取三千大千世界如陶家輪야著右掌中고擲過恒河沙世界之外라도其中衆生이不覺不知己之所往며, 又復還置本處야도都不使人으로有往來想而此世界ㅣ本相이如故니라.
또 사해의 물을 하나의 털구멍에 넣지만 물고기·자라·악어 등 물에 사는 족속들을 괴롭히진 않으니, 그 큰 바다가 본래 성품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용·신·아수라 등이 자신이 들어간 곳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이 중생들에게도 역시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해탈에 머무는 보살이 삼천대천세계를 끊어 내어 도공처럼 오른 손바닥에 놓고 돌리다가 항하사 세계 밖으로 던져 버리더라도 그 가운데 중생은 자신이 간 곳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다시 본래 자리에 내려놓아도 사람들에게 어딜 갔다 왔다는 생각이 전혀 없게 하니, 이 세계가 본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又舍利弗아. 或有衆生이樂久住世而可度者菩薩이卽延七日야以爲一劫야令彼衆生으로謂之一劫이라며或有衆生이不樂久住而可度者菩薩이卽促一劫야以爲七日야令彼衆生으로謂之七日이니라. 又舍利弗아住不可思議解脫菩薩이以一切佛土嚴飾之事로集在一國야示於衆生며, 又菩薩이以一切佛土衆生으로置之右掌고飛到十方야遍示一切而不動本處니라.
0001_0053_b_01L또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이 세상에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가 제도할 수 있는 자라면, 보살은 곧 7일을 늘려 1겁으로 만들고 그 중생이 이를 1겁으로 여기게 합니다. 혹 어떤 중생이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제도할 수 있는 자라면, 보살은 곧 1겁을 줄여 7일로 만들고 그 중생이 이를 7일로 여기게 합니다.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일체 불토의 아름다운 장식들을 한 나라에 모아 중생들에게 보여 주며, 또 보살은 일체 불토의 중생을 오른 손바닥에 올려놓고 날아서 시방에 도달하여 일체를 두루 보여 주지만 본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又舍利弗아. 十方衆生이供養諸佛之具를菩薩이於一毛孔에皆令得見며, 又十方國土에所有日月星宿를於一毛孔에普使見之니라. 又舍利弗아. 十方世界所有諸風을菩薩이悉能吸着口中호而身不損고外諸樹木도亦不摧折며, 又十方世界劫盡燒時에以一切火로內於腹中야도火事如故而不爲害며, 又於下方으로過恒河沙等諸佛世界야取一佛土야擧着上方으로過恒河沙無數世界를如持針縫야擧一棗葉而無所嬈ㅣ니라.
또 사리불이여, 시방 중생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도구를 보살이 하나의 털구멍에서 모두 볼 수 있게 하며, 또 시방 국토에 존재하는 해와 달과 별들을 하나의 털구멍에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합니다.
또 사리불이여, 시방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바람을 보살이 모조리 입속으로 빨아들일 수 있지만 몸이 손상되지 않고, 밖에 있는 모든 나무들 역시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습니다. 또 시방세계가 겁이 다하여 불타오를 때 모든 불길을 배 속에 받아들이는데, 불길이 예전 그대로지만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또 아래쪽으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여러 부처님세계 너머에서 불국토 하나를 집어다 위쪽으로 항하 모래알처럼 무수한 세계 너머에 올려놓지만 바늘로 대추나무 잎 하나를 드는 것과 같으며 번거로운 것도 없습니다.
又舍利弗아. 住不可思議解脫菩薩이能以神通으로現作佛身며或現辟支佛身며或現聲聞身며或現帝釋身며或現梵王身며或現世主身며或現轉輪聖王身고, 又十方世界所有衆聲上中下音을皆能變之야令作佛聲야演出無常苦空無我之音며及十方諸佛所說種種之法을皆於其中에普令得聞이니라. 舍利弗아. 我今略說菩薩不可思議解脫之力이니若廣說者窮劫不盡이라며,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신통으로 부처님 몸을 나타낼 수 있으며,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거나 성문의 몸을 나타내거나 제석의 몸을 나타내거나 범왕의 몸을 나타내거나 세주의 몸을 나타내거나 전륜성왕의 몸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또 시방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소리의 상·중·하음을 모두 변화시켜 무상·고·공·무아의 말씀을 널리 설하시는 부처님 음성으로 만들 수 있고, 아울러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갖가지 법을 모두 그 가운데에서 널리 들을 수 있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저는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해탈의 힘을 간략히 설한 것입니다. 만약 자세히 설한다면 겁이 다한다 해도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法華經云호佛이放眉間白毫相光사照于東方萬八千土야靡不周遍이라며或普照無量國土라며或有時에大地六種이震動며天魔驚怖니況世魔乎아卽使盲者로得見며聾者로得聞며啞者로能言며跛者로能行며傴者로能伸며病者로能痊며外此無數難測難料之事를不可盡說이나俱非佛之作爲而故行也라. 以佛之大慈悲威神力故로三界諸天과無量賢聖이常作圍繞야所行諸處에地方人民이皆獲如是靈瑞慶樂며畜生이得度며陵坎이悉平니如來廣大境界非凡情之所可擬者ㅣ니라. 佛有三明六通不可思議神妙力니於世出世間에如意行之호一無障碍不啻라欲說如來行인窮劫難可盡이로다.
0001_0054_a_01L『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미간의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아 동방을 비추자 1만 8천 국토에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라고 하였고, 혹은 한량없는 국토를 널리 비추기도 하셨다. 어떤 때에는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해 하늘의 마귀들마저 놀라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물며 이 세상의 마귀들이겠는가?
곧 맹인을 보게 하고 귀먹은 자가 듣게 하며 벙어리가 말할 수 있게 하고, 앉은뱅이가 걸을 수 있게 하며 곱사가 허리를 펴게 하고 병자를 낫게 하였으며, 이외에도 측량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려운 이들이 무수하여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부처님이 어떻게 하고자 고의로 행한 것은 아니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위신력 때문에 삼계의 모든 천신과 한량없는 현성이 항상 주위를 에워쌌기에 가시는 곳마다 그 지방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은 신령한 상서와 경사스런 행복을 획득하고, 축생이 제도되며 구릉과 구덩이가 모두 평탄해졌던 것이니, 여래의 광대한 경계는 범부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에게는 삼명과 육신통이라는 불가사의한 신기하고 오묘한 힘이 있어 세간과 출세간을 마음대로 다니시면서 하나도 장애가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래의 행을 설명하고자 하면 겁을 다해도 끝내기가 어렵다.
那耶蘇之所以祈禱于天主와天主之所以報會于耶蘇也若非欲免禍患이면卽是除魔伏神이니何乃區區之若是乎아. 且神通變化吾家之末邊이라. 亦是妖怪之事也ㅣ어但凡夫樂著乎玆而希望不已니甚矣라哀哉로다.
저 예수가 하느님(天主)에게 기도한 이유와 하느님이 예수에게 응답한 이유는 재앙을 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면, 곧 마귀를 제거하고자 신에게 복종했던 것이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구차스럽단 말인가? 또 신통변화는 우리 불교 집안에서 찌꺼기처럼 취급하는 것이고, 게다가 이것은 요상하고 괴상한 짓이다. 그런데도 범부는 이런 걸 좋아하고 집착해 희망하기를 그만두지 않으니, 너무도 슬프구나.
吾佛設敎之意直指一切衆生本覺性시고別無他般事也ㅣ시니라. 然而近日所謂耶蘇敎徒者ㅣ不知自道之宗致不識生天之戒法而但呼天主之爲道事也고以駈邪療病으로爲神爲理하며亦不知自心之攸往고遂物對境에說是語非며又以傳道爲名고多出人員야布敎四方이되不識他道之本末而妄加斤破니中有謗佛之聲이途路載滿일余愍哀其所爲야不得已略引佛菩薩所現神通于上고, 又粗取祖師行狀과與其神用于下而說之야使聞者見者로不至錯路고而直入本然自性之鄕國也ㅣ로다.
0001_0054_b_01L우리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시설하신 뜻은 일체중생에게 갖춰진 본각의 성품을 바로 지적하신 것이지, 특별히 다른 일은 없다. 그러나 근래에 소위 예수교도라는 자들이 자기 종교의 궁극도 모른 채하늘에 태어나는 계법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느님만 부르며 그것을 도라 여긴다. 삿됨을 좇아 병을 치료하는 것을 신기하고 기이하다고 하고 이치라 하며, 또한 자기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만물을 따라 경계를 대하며 옳다 말하고 그르다 말하며, 또한 전도사란 이름으로 많은 인원들을 배출하여 사방으로 포교하면서 다른 종교의 본말도 모른 채 함부로 배척하고 부정하는 짓을 일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처를 비방하는 소리가 거리마다 차고 넘친다.
내가 그들이 하는 짓이 하도 불쌍해 부득이 불보살께서 나타내신 신통을 위에 간략히 인용한 것이다. 이제 또 조사의 행장과 그 신통한 작용을 대략이나마 취하여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그리하여 이를 듣고 보는 자들이 샛길로 빠지지 않고 곧바로 본연의 자성이라는 고국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第四祖優波毱多吒利國人也ㅣ라. 十七에出家야二十證果고隨方行化至摩突羅國야得度者ㅣ甚衆이라. 由是로魔宮이震動고波旬이愁怖야遂竭魔力야以害正法커祖ㅣ遂入三昧야觀其所由ㅣ러니, 波旬이復伺便야密持纓絡야麽之頸이러니, 及祖出定야乃取人狗蛇三屍야化爲花鬘야耎言으로慰諭波旬曰汝與我纓絡니甚是珍妙라. 吾有花鬘야以相酬奉노라.
제4조 우바국다 존자는 타리국 사람이다. 1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과를 증득하고 여러 지방을 다니며 교화를 행하였는데, 마돌라국에 이르러 제도한 자가 매우 많았다. 이로 인해 마귀의 궁전이 진동하자 파순이 걱정스럽고 두려워 마귀의 모든 힘을 다해 정법을 해쳤다. 존자가 드디어 삼매에 들어가 그들이 그러는 까닭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파순이 다시 그 틈을 노려 몰래 영락을 가져다 목에 걸어 주었다. 선정에서 나온 조사는 사람·개·뱀의 세 시체를 가져다 꽃다발로 변화시키고는 부드러운 말로 파순을 위로하며 말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영락을 주었으니, 정말로 이건 진귀하고 오묘합니다. 나에게 꽃다발이 있으니, 이것을 보답으로 올립니다.”
波旬이大喜야引頸受之니卽變爲三種臭屍야蟲蛆壞爛이어波旬이厭惡야大生憂惱야盡己神力호不能移動야乃升六欲天야告諸天主며, 又詣梵王야求其解免彼各告言호, 十力弟子의所作神變이라. 我輩凡陋어니何能去之리오?
파순이 크게 기뻐하면서 목에다 걸자마자 곧 세 구의 냄새나는 시체로 변하였는데, 벌레와 구더기가 파먹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파순이 너무도 혐오스러워 크게 괴로워하며 자신의 신통력을 다했지만 이를 벗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육욕천六欲天으로 올라가 여러 천왕에게 부탁하고, 또 범왕을 찾아가 벗겨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 “십력十力을 갖춘 제자가 부린 신통변화이다. 우리는 평범하고 비루한 자들인데 어떻게 그것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波旬曰然則奈何오? 梵王曰汝可歸心면尊者ㅣ卽能斷除리라.
파순이 말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범왕이 말하였다.
“네가 마음으로 귀의하면 존자께서 곧 끊어 없앨 수 있다.”
波旬이卽下歸心이어師ㅣ解之시다. 師ㅣ臨滅에乃踊身虛空야現十八變而下化니라.
파순이 곧 내려와 마음으로 귀의하자 존자께서 그것을 풀어 주셨다. 존자는 멸도하시면서 그 몸이 허공으로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 변화를 보이고 나서 내려와 입적하셨다.
◯昔에馬鳴大師ㅣ於華氏國에轉法輪이러니忽有老人이坐前佧地어師謂衆曰此非庸流라當有異相이로다. 言訖不見이러라俄已오從地涌出一金色人야復化爲女子야右手指師而說偈曰
稽首長老尊노니 當受如來記사
今於此地上에 宣通第一義소셔.
0001_0055_a_01L◯옛날에 마명 대사가 화씨국에서 법륜을 굴리고 있는데 홀연히 어떤 노인이 나타나 앞에 앉더니 땅에 엎어졌다. 그러자 대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범상한 자가 아니다. 곧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사라지더니 잠시 후 땅에서 피부가 황금색인 한 사람이 솟아올랐다. 그가 다시 여자로 변해 오른손으로 대사를 가리키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장로 존자께 머리 조아립니다.
여래의 수기를 받으실 것이니
이제 이 땅에서
제일의를 널리 유통하소서.”
說偈已에瞥然不見니라. 師曰將有魔來야與吾校力리라. 有頃에風雨暴至고天地晦冥이어師曰魔來信矣라. 吾當除之리라시고,
게송을 설하고 나서는 별안간 사라졌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장차 마귀가 찾아와 나와 힘을 겨루리라.”
얼마 후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지가 캄캄해지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마귀가 온 게 분명하다. 내 마땅히 그를 물리치리라.”
卽指空中시니現大金龍이奮發威神야震動山嶽이라. 師儼然於坐니魔事隨滅더라. 經七日야有一小蟲이大若蟭螟이라. 潛形坐下어師以手取之示衆曰此乃魔之所變이니盜聽吾法耳라고, 乃放之令去魔不能動이어,
곧 공중을 가리키자 황금빛 커다란 용이 나타나 위신을 떨쳤다. 산악을 뒤흔들어도 대사께서 의젓하게 앉아 계시자 마귀의 짓도 따라서 사라졌다. 7일이 지나 크기가 초파리만 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자리 아래로 모습을 숨기자, 대사께서 손으로 집어 대중에게 보이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변한 것이다. 몰래 나의 법을 듣고 있구나.”
그리고는 가도록 풀어 주었는데 마귀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師曰汝盡神力면變化若何오?
대사께서 물었다.
“그대가 신통력을 다하면 어느 정도까지 변화할 수 있는가?”
曰我化巨海極爲小事니이다.
대답했다.
“제게는 큰 바다로 변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師曰汝化性海得否아?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성품의 바다로 변할 수 있겠는가?”
曰何謂性海니잇고我未嘗知로이다.
대답했다.
“무엇을 성품의 바다라 합니까?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師卽爲說性海云山河大地ㅣ皆依建立고三昧六通이由玆發現이니라. 魔聞說歸心야與其徒三千人으로俱求剃度어師乃召五百羅漢야與授具戎시니라.
대사께서 곧 성품의 바다를 설명해 주며 말씀하셨다.
“산과 강과 대지가 모두 그것을 의지해 건립하고, 삼매와 육신통이 이를 말미암아 드러난다.”
마귀가 설명을 듣고는 마음으로 귀의하여 그의 무리 3천 명과 함께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대사께서 오백나한을 초대하고 그들과 함께 구족계를 주셨다.
◯西域僧叫哈囉唎有大神通야能祛諸病며, 又如伏虎使風喚雨杖打用事之奇狀異蹟은恐煩不錄노라.
◯서역의 승려 규합라리는 큰 신통이 있어서 온갖 병을 물리쳤다. 또 호랑이를 굴복시키고, 바람을 부리고, 비를 부르고, 주장자로 때렸던 일 등의 기이한 현상과 행적들은 번다할까 싶어 기록하지 않는다.
42. 모든 하늘의 수행 차례(諸天修行次序各異)
或이問曰外道其敎人也에曰信天主며受洗禮고諷誦天德며堅持十戒고禮拜於聖殿며布敎於生民면死后에卽上天堂야得受永生而快樂萬般云커你釋氏之所以導化于民者ㅣ有箇甚麽오?
0001_0055_b_01L어떤 사람이 물었다.
“외도는 사람을 가르치면서 ‘하나님(天主)을 믿고 세례를 받으며, 하늘의 덕을 노래하고 십계를 굳건히 지키며, 성전에 예배하고 백성에게 포교하라. 그러면 죽은 뒤에 곧 천당에 올라가 영생을 받고 온갖 쾌락을 누리리라’고 말한다. 너희 불교가 백성을 교도하고 교화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答曰生天이雖樂이나福盡衰現야墮落惡趣가猶如人間니所以로吾世尊이不敎人以此也ㅣ오. 但使人人으로覺悟自性야入如來地야享自在無漏之福也ㅣ니라. 且不識커라. 你所道之天이在於那裡오.
용성이 대답했다.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 비록 즐겁지만, 복이 다하면 쇠락함이 나타나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인간과 똑같다. 이런 까닭에 우리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사람마다 자성을 깨달아서 여래의 땅에 들어가 자재하고 번뇌 없는 복을 누리게 하셨다. 그런데 모르겠다, 그대가 말하는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曰天是一耳라. 那有閒天이在耶아?
그 사람이 물었다.
“하늘은 하나뿐이다. 어찌 하늘에 층차가 있겠는가?”
曰莫以井中之見으로弄闊滄海之觀이어다. 你知라. 諸天이重重이오世界ㅣ無盡이니라. 吾今略引釋氏所說天道修行之次第야分明爲汝說之호리라.
용성이 대답했다.
“우물 속 견해로 창해처럼 드넓은 견해를 희롱하지 말라. 그대는 알라. 여러 하늘이 겹겹이고 그 세계가 다함이 없다. 내가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하늘에 태어나는 수행의 순서를 간략히 인용하여 분명하게 너에게 설명하겠다.”
1) 욕계의 육천(初界六天)
(1) 사왕천四王天
佛告阿難사諸世間人이不求常住야人人箇箇本具性常住之好果也 未能捨諸妻妾恩愛야도於邪婬中에心不流逸야澄瑩生明면命終之後에隣於日月니如是一類名四王天이니라.東方持國天王南方增天王西方廣目天王北方多聞天王也
未能離欲이나但能窒欲야使愛水로不流케면則湛性이澄瑩故로能生初天也ㅣ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기를, “모든 세계 사람들이 상주불멸을 구하지 않아,사람마다 모두 ‘성품’이라는 상주불멸하는 좋은 과보를 본래 구족하고 있다. 아직 모든 아내와 첩에 대한 은혜와 사랑까진 버리진 못했지만, 삿된 음행에 마음이 방탕하게 흐르지는 않아 그 청정함에서 밝음이 생기면 생명이 끝난 뒤에 해와 달을 이웃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사왕천이라 부른다.동방은 지국천왕, 남방은 증장천왕, 서방은 광목천왕, 북방은 다문천왕 아직 욕망을 여의지는 못했으나 단지 욕망을 막을 수는 있어서 애수愛水를 흐르지 않게 하면 맑은 성품이 맑고 밝을 것이기 때문에 초선천에 생천할 수 있다.
(2) 삼십삼천三十三天(도리천)
於己妻房에婬愛微薄며於淨居時에不得全味할命終之後에超日月明야居人間頂나니如是一類名忉利天이니라.
愛薄於前故로報居其上이니라日月은居須彌腰고利居頂니以澄瑩이增明故로能超之니라.
자기 아내 방에서도 음욕과 애욕이 거의 없지만 청정한 거처에서 지낼 때 완전한 맛을 얻지는 못하면, 생명이 끝난 뒤에 해와 달의 밝음을 초월하여 인간세계 꼭대기에 거처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도리천이라 부른다.예전보다 애욕이 옅어지기 때문에 그 과보로 그 위에 거처한다. 해와 달은 수미산 허리에 있고, 도리천은 꼭대기에 있다. 그 청정함이 더 밝아지기 때문에 능히 그것을 초월한다.
(3) 시분천時分天(야마천)
逢欲暫交고去無思憶며於人間事에動少靜多면命終之後에於虛空中에朗然安住야日月光明이上照不及이어든是諸人等이自有光明니如是一類名湏燄摩天이니라.
欲心不作故로動少靜多也ㅣ니라自此天으로始名空居天이니不須日月而常明야以蓮花開合으로分晝夜故로亦名時分天이니라.
욕정의 상대를 만나면 잠깐 성교를 하고 떠나면 그리움이나 기억이 남지 않으며, 인간 세상일에 동요가 적고 고요함이 많으면, 생명이 끝난 뒤에 허공 가운데 환하게 빛나며 안주하게 된다. 해와 달의 광명이 위로 비추어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광명이 빛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수염마천이라 한다.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동요가 적고 고요함이 많다. 이 하늘부터 시작해 공거천이라 부르니, 해와 달 없이도 항상 빛난다. 연꽃 봉우리가 열리고 닫히는 것으로 낮과 밤을 구분하기 때문에 또한 시분천이라고도 부른다.
(4) 도솔천兜率天(지족천知足天)
一切時靜이나應有觸來야未能違戾라命終之後에上昇精微고不接下界의諸人天境며乃至劫壞라도三災不及나니如是一類名兜率陁天이니라.
雖靜心이愈多나亦未免應觸니此能少欲이오未能無心也ㅣ니라. 此天에有內院外院니內院은有彌勒大聖故로三災不及고外院은但凡夫天故로三災至니此但約內院也ㅣ니라.
언제나 고요하지만 접촉하는 일이 있게 되면 그것까지 거절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생명이 끝난 뒤에 위로 올라가 정밀하고 미묘해져 아래 세계인 모든 인간이나 하늘과 접하지 않는다. 나아가 겁이 파괴되더라도 삼재가 미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도솔타천이라 부른다.고요한 마음이 더욱 많긴 하지만 역시 촉감에 대한 반응까지 면하지는 못했다. 이런 사람은 애욕을 줄이긴 했지만 아직 무심은 아니다. 이 하늘에 내원과 외원이 있다. 내원은 미륵대성께서 계시기 때문에 삼재가 미치지 못하고, 외원은 범부천일 뿐이기 때문에 삼재가 미친다. 여기서는 내원만 기준하여 말한 것이다.
(5) 화락천化樂天(낙변화천樂變化天)
我無欲心호應汝行事야於橫陳時에味如嚼蠟면命終之後에生越化地니如是一類名樂變化天이니라.
此無心而境自至할曰橫陳이니嚼蠟은言味甚薄也ㅣ라諸天이皆有報境호而此天은樂自變化야以受用이越於下天故로名越化ㅣ니라.
자신은 욕심이 없지만 상대가 하는 행위에 응해 주고, 무심하게 누워 있을 때 그 맛이 벌집을 씹는 것 같으면, 생명이 끝난 뒤에 초월하여 변화하는 땅에 태어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낙변화천이라 부른다.자신은 무심한데 경계가 스스로 다가오는 것을 ‘횡진’이라 한다. ‘벌집을 씹는다’는 것은 그 맛이 매우 담박함을 말한다. 모든 하늘에게 다 과보의 경계가 있지만 이 하늘은 즐거움이 스스로 변화한 것을 수용한다. 이것이 아래 하늘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초월하여 변화한다’고 하였다.
(6)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無世間心호同世行事야於行事交에了然超越면命終之後에能超出化無化境니如是一類名他化自在天이니라.
了然超越은言全無味也ㅣ라化卽第五天이오無化卽下天也ㅣ니라. 諸欲樂境이不勞自化고皆由他化야而自在受用名他化自在라니라.
0001_0057_a_01L세간의 마음이 없지만 세상 사람과 똑같이 일을 행하고 행하는 성교에서 확실히 초월하면, 생명이 끝난 뒤에 변화가 있고 변화가 없는 경계를 두루 초월해 벗어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타화자재천이라 부른다.‘확실히 초월한다’는 것은 완전히 맛이 없다는 것이다. ‘변화가 있다’는 것은 곧 제5천이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곧 그 아래의 하늘들이다. 모든 욕락의 경계가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하고, 모두 타인의 변화로 말미암아 자유자재로 받아서 사용하기에 타화자재라 한다.
阿難아. 如是六天이形雖出動이나心迹尙交니自此已還은名爲欲界니라.
雖出塵擾나未能絶欲故로通名欲界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여섯 하늘이 몸은 비록 동요를 벗어났지만 마음의 자취가 여전히 어우러지니, 이것 이하를 욕계라 부른다.비록 번뇌의 끄달림에서 벗어났으나 아직 욕망을 끊어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욕계라고 한다.
2) 색계 십팔천色界十八天
(1) 범중천梵衆天
阿難아. 世間一切所修心人이不假禪那야無有智慧나但能執身야不行欲며若行若坐에想念이俱無야愛染이不生면無留欲界니是人은應念야身爲梵侶니如是一類名梵衆天이니라.
不假禪那等者言雖非正修眞三摩地야無正智慧나但修六行伏欲야使愛染으로不生면則不留欲界야麁惑이不染고淨報ㅣ現前故로卽生梵世니初名梵衆은則衆庶而已ㅣ오. 次名梵輔乃大梵宰輔ㅣ니而終於大梵야其進이有序니라.
아난아, 세간에서 마음을 닦는 모든 사람이 선나를 의지하지 않아 지혜는 없지만 몸만큼은 잘 단속해 음욕을 행하지 않고, 걷건 앉건 생각도 기억도 모두 없어 애욕에 오염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욕계에 머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염원에 응하여 그 몸이 범천의 무리가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범중천이라 부른다.‘선나를 의지하지 않는다’ 등은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은 것이 아니라서 바른 지혜는 없지만 다만 욕심을 조복하는 여섯 가지 행을 닦아 애욕의 오염이 생겨나지 않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욕계에 머물지 않아 거친 미혹에 오염되지 않고, 청정한 과보가 앞에 나타난다. 따라서 곧 범천세계에 태어난다. 그 세계의 처음을 ‘범중’이라 한 것은 곧 대중이고 백성일 뿐이라는 뜻이다. 다음을 ‘범보’라 한 것은 바로 대범천의 재상으로서 보좌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마지막 대범천까지 나아감에 차례가 있다.
(2) 범보천梵輔天
欲習이旣除離欲心現야於諸威儀에愛樂隨順이니라. 是人應時야能行梵德나니如是一類名梵輔天이니라.
初天은但能執身야伏欲이어니와此天은兼修戒定故로行梵德也ㅣ니라.
애욕의 습기가 이미 제거되고 애욕을 벗어난 마음이 나타나면 모든 위의를 사랑하고 좋아하여 기꺼이 따르게 된다. 이런 사람은 때에 응하여 능히 범천의 덕을 행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범보천이라 부른다.제1천은 그저 몸가짐을 잘 단속해 욕망을 조복하지만 이 하늘은 계율과 선정을 아울러 닦기 때문에 범천의 덕을 행한다.
(3) 대범천大梵天
身心이妙圓야威儀ㅣ不缺고淸淨禁戒야加以明悟면是人은應時야能通梵衆야爲大梵天王니如是一類名大梵天이니라.
由前淨心威儀戒行야而進至於妙圓淸淨고又加以明悟超達면則盛德之至故로爲梵王니라.
몸과 마음이 오묘하고 원만하여 위의에 흠잡을 곳이 없고, 청정히 금계를 지키며 거기에 밝은 깨달음까지 더하면, 이런 사람은 때에 응하여 능히 범천의 무리들을 통솔하는 대범천왕이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대범천이라 부른다.앞의 청정한 마음과 위의와 계행을 말미암아 나아가 오묘하고 원만한 청정에 이르고, 또 밝은 깨달음을 더하여 초월하고 통달하면 성대한 덕이 극치에 이르기 때문에 범왕이 된다.
阿難아此三勝流一切苦惱의所不能逼이니雖非正修眞三摩地나淸淨心中에諸漏不動니名爲初禪이니라.
已離欲界八苦故曰苦惱不逼이오已離散動欲心故曰諸漏不動이라俱舍云此名離生喜樂地니謂離欲界雜惡고生得輕安也ㅣ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부류는 일체 고뇌가 핍박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는 것은 아니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서 모든 번뇌가 요동치지 않기에 이를 초선이라 부른다.이미 욕계의 팔고를 벗어났기 때문에 ‘고뇌가 핍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미 산만하고 동요하는 욕심을 벗어났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요동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구사론』에서는 이를 이생희락지라 하였으니, 욕계의 잡다한 악을 벗어나 가볍고 편안함이 생겨났음을 말한다.
(4) 소광천少光天
阿難아其次梵天은統攝梵人고滿梵行며澄心不動야寂湛生光니如是一類名少光天이니라.
此攝大梵之行야升進具戎定慧故로曰圓滿이니以圓滿故로能澄凝其心야不隨境動할而寂湛生光이나然이나此初能脫粘復湛이라其光이尙劣故로名少光이라니라.
아난아, 그 다음은 범천이 범천 사람들을 통솔하면서 범행을 원만하게 하고 맑은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면, 그 고요한 맑음에서 광명이 생긴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소광천이라 부른다.이것은 대범천의 행을 지키면서 더욱 나아가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구족하기 때문에 ‘원만하게 한다’고 하였다. 원만하게 함으로써 그 마음을 맑히고 집중할 수 있으며, 경계를 따라 동요하지 않기에 그 고요한 맑음에서 광명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은 끈적끈적한 집착을 처음으로 벗어나 맑음을 회복한 것이라서 그 광명이 아직은 하열하다. 따라서 소광이라 한다.
(5) 무량광천無量光天
光光이相然야照耀無盡야映十方界야遍成琉璃나니如是一類名無量光天이니라.
定力이轉明며妙光이迭發야境隨光淨야遍成琉璃니라.
광명과 광명이 서로 어우러져 찬란한 비춤이 다함이 없으면 온 시방세계를 비추어 두루 유리로 만든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무량광천이라 부른다.선정의 힘이 점점 밝아지면 오묘한 빛이 교대로 발생하고, 경계가 빛을 따라 청정해져 유리가 된다.
(6) 광음천光音天
吸持圓光야成就敎體야發化淸淨야應用無盡니如是一類名光音天이니라.
諸世界中에敎體不同니故로娑婆以字고香積은無字說이라但以衆香고此天은以圓光成音야而發宣化法故로名光音이라.
0001_0058_b_01L원만한 광명을 빨아들여 교체를 성취하면 발생하는 교화가 청정하여 그 응용이 끝이 없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광음천이라 부른다.여러 세계에서 그 교체가 같지 않다. 따라서 사바세계는 문자로 교체를 삼고, 향적세계에서는 문자의 설명 없이 다만 온갖 향기로써 교화한다. 이 하늘은 원만한 광명으로 소리를 만들어 교화의 법을 일으키고 퍼트리기 때문에 광음이라 한다.
阿難아此三勝流一切憂愁의所不能逼이니雖非正修眞三摩地나淸淨心中에漏已伏니名爲二禪이니라.
二禪은離憂고得極喜樂할故云憂愁不逼이라니라. 初禪은方得漏心不動고而未能伏이언니와此天은已伏麁漏면則業이漸劣고行이漸勝也ㅣ로다. 俱舍云此名定生喜樂地니謂有定水ㅣ潤業야憂愁不逼也ㅣ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부류는 일체 근심 걱정이 핍박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서 거친 번뇌를 이미 항복시켰기에 이를 이선이라 부른다.이선은 근심을 떠나고 극도의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따라서 ‘근심 걱정이 핍박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초선은 비로소 번뇌의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 조복하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하늘은 이미 거친 번뇌를 조복시켜 업이 점점 힘을 잃고 행이 점점 힘이 붙는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이것을 정생희락지라 하였으니, 선정의 물이 업을 씻어 근심 걱정이 핍박하지 못함을 말한다.
(7) 소정천小淨天
阿難아如是天人이圓光이成音고披音露妙야發成精行면通寂樂니如是一類名小淨天이니라.
由上圓光敎體야披露妙理야發成精行야離前喜動고而生淨樂나니是樂은非境이라. 乃出乎淨性야恬淡寂靜할名寂滅樂이라. 而淨力이猶劣야則能通而已오未能成也ㅣ니以猶劣故로名小淨이라니라.
아난아, 이처럼 하늘 나라 사람이 원만한 광명으로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로 오묘함을 드러내어 정밀한 행을 일으키고 완성하면 적멸의 즐거움에 통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소정천이라 부른다.위에서 말한 원만한 광명의 교체를 말미암아 오묘한 이치를 드러내어 정밀한 행을 일으키고 완성하면 앞서 있던 기쁨의 동요를 떠나 청정한 즐거움이 생긴다. 이 즐거움은 경계가 아니라 바로 청정한 성품에서 나와 편안하고 담담하고 고요한 것이기에 ‘적멸의 즐거움’이라 하였다. 청정의 힘이 하열하면 통할 수 있을 뿐이지 완성하지는 못한다. 아직은 (청정의 힘이) 하열하기 때문에 ‘소정’이라 한다.
(8) 무량정천無量淨天
淨空이現前이어든引發無際야身心輕安야成寂滅樂니如是一類名無量淨天이니라.
淨空者는離諸喜動야不緣物境之定相也ㅣ라. 由是充擴야使淨相無際야協乎妙性할故로身心輕安야而性樂成矣니小無際故로名無量淨이니라.
청정한 허공이 앞에 나타나고 점점 더 많아져 끝없이 펼쳐지면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한 적멸의 즐거움을 성취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무량정천이라 부른다.‘청정한 허공’은 모든 기쁨의 동요를 떠나 만물 경계를 반연하지 않는 선정의 모습이다. 이로 말미암아 채우고 확대하여 청정한 모습이 틈이 없게 하면 오묘한 성품을 돕는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성품의 즐거움이 이루어진다. (청정함이) 한계가 없기 때문에 ‘무량정’이라 한다.
(9) 변정천徧淨天
世界身心이一切圓淨야淨德成就야勝託이現前야歸寂滅樂나니如是一類名遍淨天이니라.
淨空無際故로世界身心이一切圓淨야淨德成就니則性樂이歸託於是矣리라. 以一切ㅣ圓淨故로名遍淨이라니라.
세계와 몸과 마음 일체가 원만하고 청정하여 청정한 덕이 성취되면 수승한 의탁이 앞에 나타나 적멸의 즐거움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변정천이라 부른다.청정한 허공이 한계가 없기 때문에 세계와 몸과 마음이 일체가 원만하고 청정하여 청정한 덕이 성취되면 곧 성품의 즐거움이 여기에 돌아와 의탁한다. 일체가 원만하고 청정하기 때문에 ‘변정’이라 한다.
阿難아此三勝流은具大隨順야身心이安隱야得無量樂나니雖非正修眞三摩地나安隱心中야歡喜畢具니名爲三禪이니라.
具精行性樂이名大隨順이니故로安隱無量也니라. 歡喜畢具者此名離喜妙樂地ㅣ니謂心雖離喜나而喜樂이自具也ㅣ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부류는 큰 수순을 구족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는다.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지만 편안한 마음 가운데 기쁨을 완전히 구족하기에 삼선이라 부른다.정밀한 행과 성품의 즐거움을 구족한 것을 ‘큰 수순’이라 한다. 따라서 편안함이 한량없다. ‘기쁨을 완전히 구족하는’ 이것을 이희묘락지라 하니, 마음이 비록 기쁨을 떠났지만 기쁨과 즐거움이 저절로 갖춰지는 것을 말한 것이다.
(10) 복생천福生天
四禪報境但有三天其第十三無想乃第十二廣果別開凡夫報境此四之上有五不還天乃聖賢別修靜慮資廣果業故而生與凡夫不同故又別列也
阿難아. 復次天人이不逼身心야苦因已盡이나樂非常住라. 久必壞生이어니와苦樂二心을俱時頓捨야麁重相滅고淨福性生如是一類名福生天이니라.
前雖逼苦已盡야得無量樂이나然이나樂不終樂이라壞苦必隨어니와此天은悟此故로苦樂頓捨니以捨苦樂할名麁重相滅이오捨念淸淨故로淨福性生이라니라.
사선의 과보로 받는 경계는 세 하늘만 있을 뿐이다. 제13 무상천은 제12 광과천에서 별도로 범부의 과보 경계를 열어 보인 것이다. 이 네 하늘 위에 있는 오불환천은 곧 성현이 별도로 정려를 닦는 것인데, 광과천의 업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생긴다. 범부와 같지 않기 때문에 또 별도로 열거한 것이다.
아난아, 다음으로 하늘 나라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핍박하지 않아 괴로움의 원인은 이미 다했지만 즐거움이 항상 머무는 것은 아니기에 오래되면 반드시 파괴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괴로움과 즐거움 두 마음을 동시에 단박에 버리면, 거칠고 무거운 모습이 소멸하고 깨끗하고 복된 성품이 생긴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복생천이라 부른다.앞에서 비록 핍박하던 괴로움이 이미 다하여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었지만 그 즐거움이 끝까지 즐거운 것은 아니기에 파괴되는 괴로움이 반드시 따른다. 이 하늘은 이것을 깨닫기 때문에 괴로움과 즐거움을 단박에 버린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기에 ‘거칠고 무거운 모습이 소멸한다’고 하였고, 버리는 생각이 청정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복된 성품이 생긴다’고 하였다.
(11) 복애천福愛天
捨心이圓融며勝愛ㅣ淸淨야福無遮中에得妙隨順야窮未來際나니如是一類名福愛天이니라.
苦樂二忘故로捨心圓融이오心無所累故로勝解淸淨이니繇是야福無遮礙而得妙隨順니라. 自有漏禪定으로而發無漏行야至於究竟故로曰窮未來際니라. 定福如此야爲可樂故로名福愛라니라.
버리는 마음이 원융하면 수승한 이해가 청정하여 복이 막힘이 없는 가운데 오묘한 수순을 얻어 미래제가 다하도록 누린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복애천이라 부른다.괴로움과 즐거움 두 가지 모두 잊기 때문에 버리는 마음이 원융해진다. 마음에 얽매인 바가 없기 때문에 수승한 이해가 청정해진다. 이로 인해 복이 막히거나 걸리는 일이 없어서 오묘한 수순을 얻는다. 유루의 선정으로부터 무루의 행을 일으켜 구경에 이르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누린다’고 하였다. 선정의 복이 이와 같아 좋아할 만하기 때문에 ‘복애’라 한다.
(12) 광과천廣果天
阿難아. 從是天中야有二歧路니若於先心無量淨光에福德이圓明야修證而住니如是一類名廣果天이니라.
從福愛야分二歧也라一은直往道니趣廣果고一은迂僻道니超無想니라. 若於先心에不帶異執고眞修禪定야使自無量光天으로至福愛히所修福德이圓明면而住此天나니定福이彌廣故로名廣果라니라.
아난아, 이 하늘부터 두 갈래 길이 있다. 만약 앞의 마음에서 한량없는 청정한 광명의 복덕이 원만하고 밝아지도록 닦고 증득해 머문다면, 이와 같은 한 부류를 광과천이라 부른다.복애천부터 두 갈래가 나뉜다. 하나는 곧장 가는 길이니 광과천으로 나아가고, 하나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니 무상천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만약 앞의 마음에서 다른 집착을 지니지 않고 선정을 참되게 닦아 무량광천에서 복애천에 이르기까지 닦았던 복덕이 원만하고 밝아지면 이 하늘에 머문다. 선정의 복이 크고 넓기 때문에 ‘광과’라고 한다.
(13) 무상천無想天
若於先心에雙厭苦樂야精硏捨心호相續不斷야圓窮捨道며身心이俱滅야心慮灰凝야經五百劫나니是人은旣以生滅로爲因고不能發明不生滅性야初半劫은滅고後半劫은生니如是人類名無想天이니라.
先心에雖能伏惑修禪이나而涉妄帶異야以有心으로爲生滅고以無想으로爲涅槃할於是에雙厭苦樂야專硏捨心야以趍無想야由物洎身며以至心想히一切를皆捨ㅣ名圓窮捨道ㅣ오心慮灰凝은卽無想定也ㅣ니라. 以是感報야生無想天니壽五百劫이니라俱舍에說初生此天而未全無想야經半劫始無ㅣ오. 及報將盡에復經半劫야有想然後에報謝라니라.
0001_0060_b_01L만약 앞의 마음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싫어하여 버리는 마음을 정밀히 연마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버리는 길을 원만히 궁구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소멸하고 마음의 생각이 재처럼 엉킨 채 5백 겁을 경과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이미 생멸로 인을 삼았기 때문에 생멸하지 않는 성품을 밝힐 수 없으며, 처음 태어났을 때 반 겁에 걸쳐 (생각이) 소멸하고 최후에 반 겁에 걸쳐 (생각이 다시) 생긴다. 이와 같은 부류를 무상천이라 한다.앞의 마음에 비록 미혹을 조복하고 선을 닦았지만 허망함과 교섭하고 이견을 지니기 때문에 마음이 있는 것을 생멸이라 여기고 생각이 없는 것을 열반으로 여긴다. 그래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둘 다 싫어하여 버리는 마음을 오로지 연마함으로써 생각이 없는 세계로 달려간다. 사물부터 시작해 몸에 이르고 마음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모두 버리는 것을 ‘버리는 도를 원만히 궁구한다’고 한다. ‘마음의 생각이 재처럼 응결하는’ 것이 곧 무상정이다. 이로써 과보를 감득하여 무상천에 태어나니, 수명은 5백 겁이다. 『구사론』에서 말하기를 ‘처음 이 하늘에 태어나면 아직은 무상이 완전하지 못하고 반 겁을 경과해야 비로소 (생각이) 없어진다. 과보가 장차 소진함에 이르러서도 다시 반 겁을 경과하면서 생각이 있게 된 뒤에 과보가 다한다’고 하였다.
阿難아. 此四勝이一切世間諸苦樂境의所不動이니雖非無爲眞不動地나有所得心에功用이純熟니名爲四禪이니라.
想念之心이麁曰尋이오細曰伺ㅣ니, 初禪二天은兼之고大梵은無尋唯伺ㅣ오, 二禪은無尋伺고有喜樂며, 三禪은離喜樂고有出入息니尋伺感火고喜樂은感水고出入息은感風이니라, 四禪은幷離之야不爲三災의所動니名不動地니라. 然이나彼器非眞常이며情具生滅이라. 雖非無爲眞境이나而有爲功用이至此야已純熟矣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수승한 부류는 일체 세간의 어떤 괴롭고 즐거운 경계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비록 무위의 참된 부동은 아니지만 얻은 바가 있는 마음에 공용이 순수하게 성숙한 것이기에 이를 사선四禪이라 부른다.생각하고 기억하는 마음이 거친 것을 심尋이라 하고, 미세한 것을 사伺라 한다. 초선의 이천二天은 이것을 겸하고, 대범천은 심은 없고 오직 사만 있다. 이선에서는 심사가 없고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삼선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을 벗어나고 들고나는 호흡만 있다. 심과 사는 불을 초래하고, 기쁨과 즐거움은 물을 초래하고, 들고나는 호흡은 바람을 초래한다. 사선에서는 그 모든 것을 벗어나 삼재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에 부동지라 부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세간이 참되지도 영원하지도 않으며, 유정 역시 생멸을 구족한 것이다. 비록 무위의 참된 경계는 아니지만 유위의 공용이 여기에 이르면 이미 순수하게 성숙한 것이다.
▹ 다섯 종의 불환천에 대한 총체적 서술(五不還天總敍)
阿難아. 此中에復有五不還天니於下界中에九品習氣를俱是滅盡며苦樂雙亡야下無卜居故로於捨心衆同分中에安立居處니라.
第三果人이聲聞有四果一須陀洹二斯陀舍三阿那舍四阿羅漢此則第三阿那舍也斷欲界惑盡고卽生此天야不復欲界受生故로名不還이오, 亦名五淨居니謂離欲淨身이所居也ㅣ니라. 習氣種子惑也ㅣ니與現行으로皆滅故로云俱盡이니此指欲界의無續生業也ㅣ니라. 苦樂雙亡은兼指四禪已下에無續業也故로云下無卜居라시니此五天은自四禪別立니通名捨念淸淨地故로曰捨心同分이라니라.
0001_0061_a_01L아난아, 이 가운데 다시 오불환천五不還天이 있다. 아래 세계에서 9품의 습기가 함께 소멸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이 쌍으로 없어지면 아래 세계에는 있을 만한 곳이 없게 된다. 따라서 버리는 마음을 함께 갖춘 대중 가운데 안정된 거처를 세운다.제3과를 얻은 사람은(성문에 사과가 있다. 첫째는 수다원, 둘째는 사다함, 셋째는 아나함, 넷째는 아라한이다. 이것은 곧 셋째 아나함이다.) 욕계의 미혹을 완전히 끊고 곧 이 하늘에 태어나 다시는 욕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불환’이라 한다. 또 오정거라고도 하니, 애욕을 벗어난 청정한 몸이 거처하는 곳임을 말한다. ‘습기’는 종자의 미혹이다. 현행과 더불어 모두 소멸하기 때문에 ‘함께 소멸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욕계에 다시 태어날 업이 없음을 가리킨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쌍으로 없어진다’는 것은 사선천 아래에는 상속하는 업이 없음을 아울러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있을 만한 곳이 없다’고 하였다. 이 다섯 하늘은 사선천과 따로 성립한다. (이 다섯 하늘을) 통틀어서 ‘사염청정지’라 부르기 때문에 ‘버리는 마음을 함께 갖췄다’고 하였다.
▹ 다섯 종의 불환천을 따로따로 나열함(別列五)
(14) 무번천無煩天
阿難아. 苦樂兩滅야鬪心不交나니如是一類名無煩天이니라.
前於苦樂에有捨有厭면則心與境이鬪야不能無煩이어니와唯心境兩釋면煩惱斯斷리라.
아난아, 괴로움과 즐거움이 둘 다 소멸하면 투쟁하는 마음이 오고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무번천이라 부른다.앞에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해 버림이 있고 싫어함이 있었다. 그러면 마음과 경계가 다투게 되어 번민이 없을 수 없다. 오직 마음과 경계 양쪽이 다 풀려야 번뇌가 여기에서 끊어진다.
(15) 무열천無熱天
機括獨行야硏交無地나니如是一類名無熱天이니라.
盛熱曰煩이오微煩曰熱이라. 上雖鬪心이不交나疑若猶有交地니方滅麁相야得無煩而已어니와此復增勝야心機無對야硏交無地야能緣影故로得無熱也ㅣ니라.
고동과 활줄이 따로 노는 것처럼 서로 부딪칠 여지가 없으면,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무열천이라 부른다.왕성한 번열을 번이라 하고 미미한 번열을 열이라 한다. 앞에서도 투쟁하는 마음이 오고 가지 않기는 하지만 여전히 오고 감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지이다. 따라서 바야흐로 거친 모습을 소멸하여 번민이 없음을 얻은 것일 뿐이다. 여기에서는 다시 더욱 수승해져 심기가 상대함이 없게 되고, 서로 부딪힐 여지가 없어 인연의 그림자를 멸할 수 있다. 따라서 열기마저 없어진다.
(16) 선견천善見天
十方世界에妙見이圓澄야更無塵像과一切沈垢나니如是一類名善見天이니라.
能滅緣影故로妙見이圓澄야而染心塵像과累性沈垢가於是에皆無也ㅣ니圓見十方故로名善見이라니라.
시방세계에 오묘한 견해가 원만하고 맑으면 육진의 형상과 침잠했던 모든 때들이 다시는 없게 되니,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선견천이라 한다.인연의 그림자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오묘한 견해가 원만하고 맑으면 오염된 마음에 드러났던 육진의 형상과 구속된 성품에 침잠했던 때가 여기에서 모두 없어진다. 시방을 원만하게 보기 때문에 선견이라 한다.
(17) 선현천善現天
精見이現前야陶鑄無碍나니如是一類名善見天이니라.
精見안智照也ㅣ라. 向滯塵垢야不能發化ㅣ러니今澄圓야猶如明鏡이隨緣顯現할名陶鑄無礙라니라.
정밀한 견해가 앞에 나타나면 무엇이건 걸림 없이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선현천이라 한다.정밀한 견해란 지혜의 비춤이다. 지난날에는 티끌과 때에 막혀 변화를 일으킬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미 맑고 원만하여 밝은 거울처럼 인연 따라 환희 드러난다. 따라서 ‘걸림 없이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18) 색구경천色究竟天
究竟群幾야窮色性야性入無邊際니如是一類名色究竟天이니라.
幾者色之微ㅣ오性者相之本이니未能究了면則扃於色相야自爲限碍ㅣ니어와此能究而窮之故로出乎形碍야入無邊際니名色究竟天이라니라.
온갖 기틀을 끝까지 밝히고 색의 성품을 궁구하면 그 성품이 끝이 없는 경지에 들어간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색구경천이라 한다.기틀이란 빛깔의 은미함이고, 성품이란 모양의 근본이다. 이를 확실히 연구하지 못했다면 빛깔과 모양에 국한되어 저절로 한계와 장애가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연구하여 이를 끝까지 밝혔기 때문에 형상의 장애를 벗어나 가장자리가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 이를 색구경천이라 한다.
阿難아此不還天은彼諸四禪四位天主ㅣ獨有欽聞고不能知見나니如今世間曠野深山과聖道場地ㅣ皆阿羅漢의所住持故로世間麁人의所不能見이니라.
下天안修有漏凡定고此天은修無漏聖業니麁細有異故로不能見이니라.
0001_0062_a_01L아난아, 이 불환천은 저 사선천의 네 천주들도 (그런 곳이 있다는 걸) 흠모하며 듣기만 하지 알거나 보지는 못한다. 마치 지금 세간의 광야와 깊은 산에 있는 성스러운 도량들은 모두 아라한이 머무시는 곳이기에 세간의 거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곳인 것과 같다.아래의 하늘들은 유루인 범부의 선정을 닦고, 이 하늘은 무루의 성업을 닦는다. 따라서 거칠고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
阿難아是十八天이獨行無交나今未盡形累니自此已還은名爲色界니라.
已離欲染故로獨行無交ㅣ오尙有色質故로未盡形累라니라.
아난아, 이 십팔천은 홀로 다니며 교류함이 없지만 지금 아직은 형체의 구속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이하를 색계라 한다.이미 욕망의 오염을 떠났기 때문에 ‘홀로 다니며 교류가 없다’고 하였고, 아직은 색질이 있기 때문에 ‘형체의 구속을 다하지 못했다’고 했다.
3) 무색계의 사천(無色界四天)
無業果色고有定果色니依正皆然이라滅身歸無定性聲聞의所居며或無想外道의別報며或捨念天人이雜處야其類不一호皆無色蘊니라.
업의 과보로 얻은 색은 없고, 선정의 과보로 얻은 색은 있다. 의보와 정보가 모두 그렇다. 몸을 소멸해 무로 돌아간 정성성문이 거처하는 곳이다. 혹 무상외도의 별보이기도 하고, 혹 생각을 버린 천인들이 뒤섞여 살기도 하여 그 부류가 일정하지 않지만 모두 색온이 없다.
▹ 첫째, 갈림길에서 초월하는 자들(分歧超出)
復次阿難아從是有頂色邊際中야其間에復有二種歧路니若於捨心에發明智慧야慧光이圓通야便出塵界야成阿羅漢야入菩薩乘나니如是一類名爲回心大阿羅漢이니라.
色究竟天이居有色頂야與無色隣할名色邊際라二岐一은出三界니卽此科也ㅣ오. 一은入無色이니卽次科也라四禪이皆依捨念야修定나니此言捨心은指有頂因心也ㅣ라. 因心에能發無漏智慧야斷盡塵惑야至於圓明면卽出三界야不住小果야入菩薩乘나니是名回心이니라.
0001_0062_b_01L다음으로 아난아, 이 꼭대기에 있는 색계 가장자리로부터 다시 두 갈림길이 있다. 만약 버리는 마음에 지혜를 밝게 드러내 지혜의 광명이 원만히 통하면 곧바로 티끌 세계를 벗어나 아라한을 이루고, 보살승에 들어간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회심한 대아라한이라 부른다.색구경천이 색계 꼭대기에 있어 무색계와 이웃하기 때문에 ‘색계 가장자리’라 하였다. ‘두 갈림길’의 하나는 삼계를 벗어나는 길이니 곧 이 대목이고, 또 하나는 무색계로 들어가는 길이니 곧 다음 대목이다. 사선천이 모두 ‘버리는 마음’은 꼭대기 하늘인 색구경천의 인심을 가리킨다. 그 인심에서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서 티끌처럼 미세한 미혹까지 완전히 끊어 원만한 밝음에 이르면 곧 삼계를 벗어나 작은 과보에 머물지 않고 보살승으로 들어간다. 이것을 회심이라 한다.
▹ 둘째, 선정을 따라 들어가는 자들(隨定趣入)
此有四天이皆依偏空야修進할初厭色歸空고二猒空依識고三은色空識等이都滅이어던而依識性고四依識性야以滅窮硏야而不得眞滅니是皆有爲增上善果라未出輪回야不成聖道ㅣ니라.
여기에 있는 네 하늘은 모두 치우친 공을 의지해 닦아 나아간다. 첫째는 색을 혐오해 공으로 돌아가고, 둘째는 공을 싫어해 식에 의지하며, 셋째는 색·공·식 등이 모두 소멸하지만 식의 성품에 의지하고, 넷째는 식의 성품에 의지하여 소멸을 끝까지 뒤져 보지만 참된 소멸을 얻지 못한다. 이는 모두 유위행으로 얻은 수승하고 훌륭한 과보일 뿐이다. 아직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성스러운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1) 공무변처천(空處天)
若在捨心야捨猒이成就야覺身爲礙야消碍入空니如是一類名爲空處니라.
此專依捨고不修智慧야猒己形礙야堅修空觀야滅身歸無ㅣ니卽猒色依空者也ㅣ라. 名空處定故로報生空處니라.
만약 ‘버리는 마음’에 머물다가 싫은 것을 버림을 성취하면, 몸이 장애가 된다고 느껴 장애를 소멸하고 공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공처라 부른다.이것은 오로지 ‘버림’에만 의지하고 지혜를 닦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형체가 장애가 된다고 싫어하여 공관을 견고히 닦아 몸을 소멸하고 무로 돌아간다. 곧 색을 싫어해 공에 의지하는 자이다. 공처정이라 하기 때문에 과보로 공처에 태어난다.
(2) 식무변처천(識處天)
諸愛旣消고無礙無滅야其中에唯有阿賴耶識고全於末那半分微細나니如是一類名爲識處ㅣ니라.
諸礙旣消而無면則不依於色이오無礙之無도亦滅면則不依於空이니唯留阿賴末那니卽猒空依識者也ㅣ라. 名識處定故로報生識處니라. 阿賴第八識이오末那第七識也ㅣ라. 身根이旣消야無復六識故로唯二者獨留호而末那所緣은色空識三이니此位猒色空야而依識면則色空麁緣이已無故로唯前半分微細也ㅣ니라.
0001_0063_a_01L모든 장애가 이미 소멸해 장애도 없고 소멸도 없으면 그 가운데 오직 아뢰야식만 있고 말나식은 반 정도만 온전히 미세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식처라 부른다.모든 장애가 이미 소멸해 없으면 색에 의지하지 않고, 장애가 없다는 그 없음마저 소멸하면 공에도 의지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오직 아뢰야식과 말나식만 남으니, 곧 공을 싫어해 식에 의지하는 자들이다. 식처정이라 하기 때문에 과보로 식처에 태어난다. 아뢰야식은 제8식이고, 말나식은 제7식이다. 신근이 이미 소멸해 다시는 육식이 없기 때문에 오직 두 가지만 남는다. 말나식이 인연하는 것은 색·공·식 세 가지이다. 이 위에서 색과 공을 싫어하여 식에 의지했다면 색과 공의 거친 인연이 이미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말나식이) ‘반쪽이고 미세하다’고 하였다.
(3)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空色이旣亡면識心이都滅야十方寂然야逈無攸往나니如是一類名無所有處ㅣ니라.
前位能亡空色호而未滅識心이어니와此則都滅故로十方이寂然야逈無所往니以寂無往故로名無所有ㅣ니라. 然이나此雖亡識心이나未亡識性이니今之行人이見性不深야多滯於此나니雖能洞了色空야灰滅心慮야逮無所有나而終於識性이幽幽綿綿에不能自脫나니生死窟穴이實存乎此니라.
공과 색이 이미 없어지고 식심마저 모두 소멸하면 시방이 고요하여 아득히 갈 곳이 없게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무소유처라 부른다.앞의 지위에서는 공과 색은 없앴지만 식심은 소멸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모두 소멸하기 때문에 ‘시방이 고요하여 아득히 갈 곳이 없다’고 하였다. 고요하여 감이 없기 때문에 ‘무소유’라 부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비록 식심은 없앴지만 식성은 없애지 못한 것이다. 요즘 수행하는 사람들이 성품을 봄이 깊지 못하여 대부분 여기에 정체한다. 비록 색과 공을 완전히 꿰뚫어 마음의 사려를 재처럼 소멸하고 무소유에 이르렀다 해도 결국은 식성이 은밀하게 면면히 이어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으니, 생사의 동굴이 실로 여기에 있다.
(4)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
識性이不動이어以滅窮硏야於無盡中에發宣盡性야如存不存며若盡非盡나니如是一類名爲非想非非想處니此等이窮空호不盡空理니라. 從不還天야聖道窮者如是一類名不廻心이니鈍阿羅漢이오若從無想諸外道天야窮空不歸야迷漏無聞면便入輪轉나니라.
識性者識心의幽本也ㅣ오. 不動者寂無攸往也ㅣ라. 旣不動고復窮硏使滅이나然이나依識滅之라竟非眞滅이니是强於無盡中에發明盡性所以似存不存며似盡不盡이니似存不存故로非想也ㅣ오. 似盡不盡니又非非想也ㅣ라. 此又幽幽綿綿至微之相也ㅣ니라. 綿微不脫故로云不盡空理라而聲聞이依此야以爲究竟야終成鈍果고外道依此야無所歸宿야終迷有漏也ㅣ니라. 修出世心호至此終極야麁業이已無고唯識性이爲滯니若奮然脫此면斯出三界矣ㅣ리라. 諸天行位皆是三摩漸次라不徒說示니其行相이相躡相資야同前聖位니但此示凡淺의升進耳어니와若深體之면亦可頓證也ㅣ리라.
0001_0064_a_01L식의 성품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멸을 궁구하고 연구함으로써 다함이 없는 가운데서 다한 성품을 널리 일으키면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다한 듯 다하지 않은 듯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비상비비상처라 부른다.
이와 같은 하늘들은 공을 궁구하였지만 공의 이치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불환천부터 성도가 끝났다면, 이와 같은 한 부류를 회심하지 못한 둔한 아라한이라 부른다. 만약 무상천부터 여러 외도의 하늘들이 공만 궁구해 돌이키지 않고 미혹하고 번뇌가 있는데도 배우지 않는다면, 곧바로 윤회로 들어가게 된다.‘식의 성품’이란 식심의 은밀한 근본이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고요하여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이미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다시 이를 궁구하고 연구해 소멸시키려 한다면, 그건 식을 의지해 소멸시키려는 것이지 끝내 참된 적멸은 아니다. 이는 억지로 다함이 없는 가운데서 ‘다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다한 듯 다하지 않은 듯하게 된다.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때문에 생각이 아니고, 다한 듯 다하지 않은 듯하기 때문에 또 생각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것은 또 은밀하게 면면히 이어지는 지극히 미세한 상이다. 면면히 이어지는 미세함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공의 이치를 다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성문은 이것을 의지해 구경으로 삼았다가 결국 둔한 과보를 이루고, 외도는 이것을 의지해 돌아가 쉴 곳이 없게 되어 결국 미혹하여 다시 번뇌가 있게 된다. 출세간의 마음을 닦는 것이 여기에 이르러 끝나는데, 거친 업은 이미 없어지고 오직 식의 성품만 정체하게 된다. 만약 분연히 이를 벗어난다면 이것이 바로 삼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여러 하늘의 수행지위가 모두 삼마지의 단계적 차례이다. 설명뿐 아니라 서로를 바탕으로 올라가는 그 행상이 앞에서 설명한 성위와 같다. 다만 여기서는 평범하고 천박한 이들이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것을 보여 준 것일 뿐이다. 만약 이것을 깊이 체득한다면 역시 단박에 증득할 수 있다.
▹ 범부와 성인을 통틀어서 변론하다(通辯凡聖)
阿難아是諸天上에各各天人안則是凡夫人業果酬答이라答盡면入輪이어니와彼之天王은卽是菩薩이遊三摩地야漸次增進야廻向聖倫所修行路니라.
아난아, 이 모든 각각의 천상에 있는 모든 천인들은 범부들이 업의 보답을 받은 것이기에 보답이 다하면 윤회로 들어온다. 하지만 저 천왕은 곧 보살이기에 삼마지에 노닐면서 점차 더욱 나아가 성인의 무리들이 닦는 길로 회향한다.
▹ 이름을 매듭지음(結名)
阿難아是四空天이身心滅盡야定性現前야無業果色니從此逮終히名無色界ㅣ니라.
身心이滅盡者는無色蘊과及麁識也ㅣ니라.
此皆不了妙覺明心야積妄發生할妄有三界며中間에妄隨七趣沈溺나니補特伽羅ㅣ各從其類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공한 하늘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멸하고 선정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 업의 과보로 주어진 색이 없으니, 여기서부터 끝까지를 무색계라 한다.‘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멸했다’는 것은 색온과 거친 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허망을 쌓아 발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망령된 삼계가 있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망령되게 칠취를 따라 침몰하면서 보특가라가 각기 그 부류를 따르게 되었다.
▹ 수라취修羅趣
復次阿難아是三界中에復有四種阿修羅類니若於鬼道에以護法力으로乘通入空此阿修羅從卵而生나니鬼趣所攝이오若於天中에降德貶墜야其所卜居ㅣ隣於日月此阿修羅從胎而出니人趣所攝이오. 有阿修羅王이執持世界야力洞無畏야能與梵王과及帝釋과四天으로爭權나니此阿修羅生大海心야沈水穴口야旦遊虛空고暮歸水宿나니此阿修羅因濕氣有라畜生趣攝이라시니,
0001_0064_b_01L또한 아난아, 이 삼계에 또 네 가지 아수라의 부류가 있다. 만약 귀신의 세계에서 법을 보호한 힘으로 신통을 힘입어 허공으로 들어갔다면, 이런 아수라는 알에서 태어나고, 귀신 세계에 포섭된다. 만약 하늘에서 덕이 줄어들어 아래로 떨어지고 그들이 터 잡고 사는 곳이 해와 달 근처라면, 이런 아수라는 태에서 출현하고, 인간 세계에 포섭된다. 아수라왕이 있는데, 그는 세계를 휘어잡을 만큼 힘이 세고 두려움이 없어서 능히 범왕이나 제석이나 사왕천과 권력을 다툴 수 있다. 이런 아수라는 큰 바다 중심에서 태어나 물속 깊은 동굴에 가라앉아 있다가 아침이면 솟아올라 허공을 노닐다가 저녁이면 물로 돌아가 잠든다. 이런 아수라는 습기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라서 축생세계에 포섭된다.”라고 하셨다.
大抵修十善四禪八定者受生天堂이어니와若不修此業이면則還從輪墮리니地獄餓鬼畜生諸惡道를未可一定也ㅣ니라. 如此等業은而人이自作自修以招報라非關天主之所能與授也ㅣ니라. 會麽아? 諸業이從心生滅나니不須向外馳求也어다. 故로祖師云觀心一法이摠攝諸行이라시며佛云사應觀法界性인一切唯心造라시니라.
대저 십선·사선·팔정을 닦는 자는 천당에 태어나지만 만약 이런 업을 닦지 않으면 다시 이로부터 윤회로 떨어지리니, 지옥·아귀·축생 등 여러 악도 가운데 어디라고 딱히 단정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등등의 업은 사람이 스스로 짓고 스스로 닦아 초래하는 과보이지, 천주가 줄 수 있는 것과는 상관없다. 알겠는가? 모든 업이 마음으로부터 생기고 소멸하니, 밖을 향해 치달리며 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관하는 이 하나의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라고 하셨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한다. 일체는 오직 마음이 만든다.”라고 하셨다.
43. 지옥도 마음이 짓는 것(地獄原因不出唯心所作)
余觀外敎之說地獄니大有不明이로다. 試問노니地獄이在何而能陷人也ㅣ오. 或云無處라며或云在地下라며或云在地球之北이라니吾未知其所以로다. 又曰事我善者는賞之以天堂고背我惡者는罰之以地獄이라며又云於愛我者에蔭福千世고於惡我者에授罪及裔라니是豈仁者淳純兼善之辭와聖人慈悲普愛之說乎ㅣ리오? 設使些箇男子之惡口로戱嘲ㅣ라도卽不稱道也ㅣ리라.
0001_0065_a_01L내가 외도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지옥을 살펴보니, 분명하지 못한 점이 대단히 많다. 시험 삼아 묻겠다. 지옥이 어디에 있기에 사람을 함몰시킬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처소가 없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하에 있다.”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지구의 북쪽에 있다.”라고 하니, 나는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르겠다.
또 “나를 섬기는 착한 자는 천당으로써 상을 주고, 나를 등지는 나쁜 자는 지옥으로써 벌을 준다.”라고 하며, 또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세에 복을 드리우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 후손에게까지 벌을 주겠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후덕하고 순수하며 모두에게 선한 어진 자의 말씀이고, 자비롭고 널리 사랑하는 성인의 말씀이라 하겠는가. 설사 볼품없는 사내더러 추악한 입으로 희롱하고 조롱해 보라 해도 그렇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我覺皇之敎天堂地獄也曰只在人人의自己方寸中에建立也ㅣ로다. 何者오? 凡人이奉持三歸五戒며而行綱常者는是人은於世世生生에不失人身이오. 修行十善業者是人안生於六欲天고奉持戒律며依捨念處修定者是人안生四禪天며如是乃至色究竟天과及四無色天히隨一切衆生의自心功用야業感受報가自有差別이어焉有天主가在乎其間而能用私爲也ㅣ리오?
우리 각황께서 가르친 천당과 지옥은 “그저 사람마다 자기 마음 가운데 만든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보통 사람이 삼귀의와 오계를 받들어 지키고 강상의 도리를 행한다면, 이런 사람은 세세생생 사람의 몸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십선업을 닦았다면 그런 사람은 육욕천에 태어나고, 계율을 받들어 지키며 사념처四念處에 의지하여 선정을 닦았다면 그런 사람은 사선천四禪天에 태어나며, 이와 같이 나아가 색구경천과 사무색천에 이른다. 일체중생이 자기 마음의 공용을 따라 업에 감응하여 과보를 받아 저절로 차별이 있게 되는 것이니, 어찌 천주가 그 사이에서 사사롭게 수를 쓸 수 있겠는가?
古云호皮毛畜生도從此得이오作佛도也由他此與他指心也라니라. 調達이欲害나佛不爲怨시고而畢竟授記作佛시며殃崛이欲殺이나佛垂慈而救度시니聖人之心이豈有親疎야愛我者賞之以福고惡我者罰之以禍哉ㅣ리오? 覺皇이說地獄及衆生原因시니其言이甚明也ㅣ라. 余爲略引호리라.
옛말에 “가죽과 털축생도 이것으로부터 얻고, 부처가 되는 것도 그것을 말미암는다.”‘이것’과 ‘그것’은 마음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조달이 해치려 하였지만 부처님은 원망하지 않으시고 “필경에 부처가 되리라.”라고 수기하셨으며, 앙굴마라가 죽이려 하였지만 부처님은 자비심을 드리워 구제하셨다. 성인의 마음에 어찌 가깝고 먼 자가 있어 나를 사랑하는 자는 복으로 상을 주고 나를 싫어하는 자는 화로써 이를 벌주겠는가? 각황께서 지옥과 그곳 중생들의 원인을 설하셨으니, 그 말씀이 너무나 분명하다. 내가 간략히 인용하겠다.
阿難尊者ㅣ以地獄生起因緣으로白佛言사世尊아. 此道爲復本來自有ㅣ니잇가? 爲是衆生의妄習生起니잇가? 惟垂大慈사發開童蒙사令一切持戒衆生으로聞決定義옵고歡喜頂戴와謹潔無犯케옵소셔.
아난존자가 지옥이 생겨난 인연을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이 도는 본래부터 스스로 있었던 것입니까, 이 중생의 망령된 습기에서 발생한 것입니까? 오직 대자비를 드리워 어린아이 같은 몽매함을 깨우쳐 주시고, 계를 지키는 모든 중생들이 확실한 뜻을 듣고서 환희하여 정수리에 받들며 삼가고 청결히 하여 범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佛告阿難사快哉라此問이여令諸衆生으로不入邪見케니汝今諦聽라當爲汝說호리라. 阿難아一切衆生이實本眞淨이언만因彼妄見야有妄習이生나니因此야分開內分外分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기를, “훌륭하구나, 이 물음이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사견에 들어가지 않게 하니, 너는 이제 잘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아난아, 일체중생이 사실은 본래 참되고 청정하건만 저 망령된 견해로 말미암아 망령된 습기가 일어나게 되며, 이로 인하여 내분과 외분으로 나뉘게 된다.”라고 하셨다.
1) 안으로 쌓이는 번뇌(內分積情)
阿難아內分은卽是衆生의內分이니因諸愛染야發起妄情나니積情不休면能生愛水할是故로衆生이心憶珍羞면口中水出고心憶前人야或憐或恨면目中淚盈고貪求財寶야心發愛涎면擧體光潤고心著行媱면男女二根에自然流液나니라.心動於內曰爲內分情人之陰氣有欲者也故因諸愛染而起以陰積故能生愛水潤業潤生輪廻不斷職皆由此也 阿難아諸愛雖別이나流結是同니潤濕은不升할自然從墜나니此名內分이니라.
“아난아, 내분은 곧 이 중생의 내분이다. 모든 애욕의 오염으로 인하여 망정을 일으키니, 망정을 쌓기를 쉬지 않으면 능히 애욕의 물이 생긴다. 이런 까닭에 중생은 마음에 진수성찬을 떠올리면 입에서 침이 흐르고, 마음에 옛사람을 떠올려 그리워하거나 원망하면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재물과 보배를 탐욕스럽게 구하면 마음에서 애욕의 침이 솟아나 온몸이 번들번들 빛나고, 마음이 음행에 사로잡히면 남녀의 두 성기에서 자연히 액체가 흐르는 것이다.마음이 내부에서 발동하는 것을 정이라 하니, 내분에 해당한다. 정은 사람의 음기이고, 애욕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애욕은 오염으로 인해 일어나고 음이 쌓이기 때문에 애욕의 물이 생겨 업을 윤택하게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한다. 윤회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모두 이것 때문이다. 아난아, 모든 애욕이 비록 차별이 있지만 흐르는 결박은 이렇게 동일하다. 윤택하고 촉촉한 물은 올라가지 못하고 자연히 아래로 떨어지니, 이것을 내분이라 한다.”
2) 밖으로 드러나는 마음(外分發想)
阿難아外分은卽是衆生의外分이니因諸渴仰야發明虛想나니想積不休면能生勝氣할是故로衆生이心持禁戒면擧身輕淸고心持呪印면顧眄雄毅고心欲生天이면夢想飛擧고心存佛國면聖境이冥現고事善知識면自輕自命나니라. 阿難아諸想이雖別이나輕擧是同니飛動은不沈할自然超越나니此名外分이니라.
0001_0066_a_01L“아난아, 외분은 곧 이 중생의 외분이다. 여러 목마른 흠모로 인하여 허망한 생각이 빛을 발하니, 생각이 쌓이기를 쉬지 않으면 능히 수승한 기운이 생긴다. 이런 까닭에 중생이 마음에 금계를 지키면 온몸이 가볍고 맑으며, 마음에 주문과 인계를 지니면 응시하는 눈길이 웅장하고 굳세며, 늘 하늘에 태어났으면 하고 마음먹으면 꿈속에서 날아오르고, 늘 불국토에 마음을 두면 성스러운 경계가 아득히 나타나고, 선지식을 섬기면 자신의 생명도 스스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아난아, 모든 생각이 비록 차별이 있지만 가볍게 들리는 이것은 동일하다. 날아 움직이는 것은 가라앉지 않고 자연히 초월하니, 이를 외분이라 한다.
阿難아一切世間이生死相續야生從順習고死從變流나니臨命終時에未捨煖觸할一生善惡이俱時頓現야死逆生順이라二習이相交나니라.
아난아, 일체 세간에 생사가 상속하여 습기를 따름으로 인해 태어나고 변화의 흐름으로 인해 죽는다. 목숨이 끝날 무렵 따뜻한 감촉이 아직 남아 있을 때에 한평생 지은 선과 악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죽음을 거역하고 삶을 따르려는 두 가지 습기가 서로 뒤섞인다.
◯純想은卽飛야必生天上나니若飛心中에兼福兼慧며及與淨願면自然心開야見十方佛야一切淨土에隨願往生나니라.
◯순수한 생각은 곧 날아올라 반드시 천상에 태어난다. 만약 날아가는 마음 가운데 복을 겸비하고 혜를 겸비하며 청정한 서원까지 겸비한다면 자연히 마음이 열려 시방의 부처님을 보게 되고, 어떤 정토건 소원을 따라 왕생한다.
△情少想多輕擧ㅣ非遠야卽爲飛仙과大力鬼王과飛行夜叉와地行羅刹야遊於四天호所去無碍나니라. △其中에若有善願善心야護持我法호或護禁戒야隨持戒人며或護神呪야隨持呪者며或護禪定야保綏法忍면是等은親住如來座下나니라.
△ 욕정이 적고 생각이 많으면 가볍게 들리지만 멀리 가지는 못한다. 그는 곧 날아다니는 신선이나 큰 힘을 갖춘 귀신 왕이나 날아다니는 야차나 땅에서 다니는 나찰이 되어 사천하를 노닐고 가려는 곳에 장애가 없게 된다. △ 그 가운데 만약 착한 서원과 착한 마음이 있어서 나의 법을 잘 지키거나 금계를 잘 지키거나 계를 지키는 사람을 따르거나 신통한 주문을 보호하거나 주문을 지닌 자를 따르거나 선정을 보호하여 법인을 보호해 편안하게 지냈다면 이런 등등의 사람은 직접 여래의 좌석 아래에 머물게 된다.
△情想이均等면不飛不墜야生於人間호想明은斯聰고情幽斯鈍나니情多想少면流入橫生야重爲毛群고輕爲羽族며七情三想은沈下水輪야生於火際야受氣猛火야身爲餓鬼야常被焚燒며水能害己야無食無飮야經百千劫나니라.
0001_0066_b_01L△ 욕정과 생각이 균등하면 날아오르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아 인간으로 태어나는데 생각이 밝으면 총명하고, 욕정이 음침하면 아둔하게 된다.
욕정이 많고 생각이 적으면 축생으로 흘러드는데, 그 가운데서 무거운 자는 털 달린 무리가 되고, 가벼운 자는 날개 달린 종족이 된다.
욕정이 7할에 생각이 3할이면 수륜으로 가라앉아 불길 끝에 태어나서 맹렬한 불의 기운을 받아 몸이 아귀가 된다. 항상 불길에 타고 물도 자신을 해쳐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어 10만 겁을 지내야 한다.
△九情一想은下洞火輪야身入風火二交過地야輕生有間고重生無間二種地獄나니라.情業愈滯故獄報愈沈下洞火輪卽八熱獄也入風火二交過地謂超寒獄入熱獄也熱獄第八名五無間有間卽餘七也
△ 욕정이 9할이고 생각이 1할이면 아래로 화륜을 꿰뚫고 내려가 풍륜과 화륜이 교대로 지나가는 땅으로 몸이 들어가게 된다. 그 가운데 가벼운 자는 유간지옥에 태어나고, 무거운 자는 무간지옥에 태어난다.욕정의 업장이 더욱 정체되었기 때문에 지옥의 과보도 더욱 가라앉는다. ‘아래로 화륜을 뚫고 내려간다’는 것은 곧 팔열지옥을 말한다. ‘풍륜과 화륜이 교대로 지나가는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추운 지옥을 지나 뜨거운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뜨거운 지옥의 여덟 번째를 오무간이라 한다. ‘유간지옥’은 그 나머지 일곱 지옥이다.
△純情은卽沈야入阿鼻獄나니若沈心中에有謗大乘커나毁佛禁戒어나妄說法이어나虛貪信施어나濫膺恭敬며五逆十重은更生十方阿鼻地獄이니라.阿鼻此云無間謂受罪苦具身量劫數壽命五者皆無遮間名五無間獄此唯情業㝡重者墜人至劫壞乃出若以兼謗大乘等罪則此劫惟壞更入十方阿鼻無有出期以謗法毁戒令無窮人墜邪見故也 △循造惡業이雖則自招나衆同分中에兼有元地니라.元地者各隨元由也
△ 순전히 욕정뿐인 자는 곧 가라앉아 아비지옥에 들어간다. 만약 가라앉는 마음에 대승을 비방하거나 부처님의 금계를 훼손하거나 속이는 거짓말로 설법하거나 신자들의 보시를 헛되게 탐하거나 외람되게 공경을 받거나 오역죄 또는 십중죄를 저질렀다면, 다시 시방의 아비지옥에 태어난다.‘아비지옥’은 한자로 무간지옥이다. 받아야 할 죄, 고통을 주는 기구, 몸의 크기, 그곳에서 보내야 할 겁의 수효, 수명 이 다섯 가지가 모두 간격이 없으므로 오무간지옥이라 한다. 이곳은 오직 욕정의 업보가 가장 무거운 자만 떨어져 들어가고 겁이 파괴되어야 나오게 되는 곳이다. 만약 대승을 비방한 죄를 겸했다면 그런 자는 겁이 파괴된다 해도 다시 시방의 아비지옥에 들어가게 되어 벗어날 기약이 없다. 법을 비방하고 계율을 훼손해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삿된 견해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 지은 대로 따라오는 악업이 비록 스스로 초래한 것이긴 하지만 중동분 가운데 근원의 땅을 겸비하고 있다.‘근원의 땅’은 각자가 근본 이유를 따르는 것이다.
△阿難아此等이皆是彼諸衆生의自業所感이니造十習因야受六交報ㅣ니라.
△ 아난아, 이러한 등등이 모두 저 모든 중생들이 스스로 지은 업으로 초래한 것이니, 원인인 열 가지 습관을 지어 교대하는 여섯 가지 과보를 받는 것이다.
△云何十因고? 阿難아. 一者媱習交接이發於相磨니硏磨不休할如是故로有大猛火光이於中發動나니如人이以手로自相摩觸면煖相이現前야二習이相然故로有鐵床桐柱諸事니라.
△ 무엇이 열 가지 원인인가? 아난아, 첫째는 음욕의 습관이 서로를 접촉하여 서로 문지름을 발생시키고, 비비는 짓을 쉬지 않게 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크고 맹렬한 불빛이 있어 그 가운데서 발동하게 되니, 마치 사람이 손을 스스로 비비면 따뜻한 현상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태우기 때문에 (달궈진)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 등에서 온갖 고초를 당하는 일들이 있게 된다.
△二者는貪習交計ㅣ發於相吸나니吸攬不止할如是故로有積寒堅氷이於中에凍冽나니如人이以口로吸縮風氣면有冷觸이生니二習이相陵故로有吒吒波波羅羅靑赤白蓮寒氷等事니라.
△註云貪習이感水由愛心計著야吸取而發也ㅣ니라. 吸積風야爲寒고風結水야爲氷故로有寒積凍冽之境과吒吒寒氷之報니卽寒氷獄也라俱舍에云吒波羅等은忍寒聲也ㅣ오. 靑赤白蓮안寒氷色也ㅣ니라.
0001_0067_a_01L△ 둘째는 탐욕의 습관이 서로를 계량하여 서로 빨아들임을 발생시키고, 빨아들이는 짓을 쉬지 않게 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추위가 쌓인 견고한 얼음이 그 가운데 있어 얼어 터지게 되니, 마치 사람이 입으로 바람을 들이마시면 차가운 감촉이 생기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능멸하기 때문에 (추위에 떨며) ‘타타·파파·라라’ 하고 소리치고, 푸른 연꽃·붉은 연꽃·하얀 연꽃 같은 한빙지옥 등에서 여러 가지로 고초를 당하는 일들이 있게 된다.주에서 말하였다. 탐욕의 습관이 물을 초래한다는 것은 애욕의 마음이 계량하고 집착해 빨아들이고 취함으로써 (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빨아들임이 바람을 쌓아서 차가움이 되고, 바람이 물을 결속해 얼음이 되기 때문에 추위가 쌓여 얼어 터지는 경계와 ‘아야 아야’ 하고 소리치고 추위로 얼어붙는 과보가 있게 되니, 곧 한빙지옥이다. 『구사론』에서 ‘타타·파파·라라’ 등은 추위를 참는 소리이고, ‘푸른 연꽃·붉은 연꽃·하얀 연꽃’은 차가운 얼음의 색깔이라 하였다.
△三者慢習交陵이發於相恃나니由輕凌恃己而發也馳流不息할如是故로有騰逸奔波야積波爲水니如人이口舌이自相綿味면因而水發니二習이相鼓故로有血河灰河熱沙毒海融銅灌呑諸事니라.
△ 셋째는 교만한 습관이 서로를 능멸하여 서로 뽐냄을 발생시키고,상대를 경멸하고 자신을 뽐내는 데서 비롯된다. 과시하는 짓을 쉬지 않게 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높이 날아오르고 쏜살같이 달리는 파도가 있어 그 파도가 쌓여 물이 되니, 마치 사람이 입술에 혀를 대고 스스로 찬찬히 맛을 보면 그로 인해 물이 생기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격동시키기 때문에 피가 흐르는 강, 재가 흐르는 강, 뜨거운 모래사막, 독이 가득한 바다 등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구리를 녹여 들이붓고 마시게 하는 등 온갖 일들이 있게 된다.
△四者瞋習交衝이發於相忤나니忤結不息야心熱發火야鑄氣爲金할如是故로有刀山鐵橛劍樹劍輪斧鉞推鞫察訪며披究照明야善惡童子ㅣ手執文簿야辭辯諸事니라.
△ 넷째는 성내는 습관이 서로 충돌하여 서로 거역함을 발생시키고, 거역하는 관계 맺음을 쉬지 않으면 마음의 열기에서 발생한 불길이 기운을 녹여 쇠를 만들어 낸다. 이와 같기 때문에 칼들의 산, 쇠몽둥이, 칼들의 나무, 칼날의 수레, 큰 도끼, 작은 도끼가 있게 되고, 추국하고 조사하고 파헤치고 밝혀내고 선악동자가 손에 문서를 들고서 진술하는 등의 온갖 일들이 있게 된다.
△五者詐習交誘ㅣ發於相調나니引起不住할如是故로有繩木絞校나니如水浸田야草木이生長니二習이相延故로有杻械枷鎖鞭杖檛捧諸事니라.詐習이依姦智야起惡而漸滋蔓故로如水浸田야草木生長니由調相延故로感繩木延引之事니라. 讒賊은姦詐로敗正者也
△ 다섯째, 간사한 습관이 서로를 유혹하여 서로 어울림을 발생시키고, 끌어들이고 일으키는 짓을 멈추지 않게 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밧줄과 나무로 묶고 비틀게 되니, 마치 밭에 물을 대면 초목이 생장하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쇠고랑·수갑·항쇄·족쇄·채찍·곤장 등의 형구로 온갖 고초를 당하는 일들이 있게 된다.간사한 습관이 간사한 지혜를 의지하여 악을 일으키고 점점 무성하게 번지기 때문에 ‘밭에 물을 대면 초목이 생장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어울림을 말미암아 서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밧줄과 나무로 끌고 다니는 일을 초래한다. ‘중상모략꾼’이란 간사함으로 바른 도를 패망시키는 자를 말한다.
△六者誑習交欺ㅣ發於相罔나니誣罔不止야飛心造姦할如是故로有塵土屎尿穢汗不淨나니如塵이隨風야各無所見니二習이相加故로有沒溺騰擲飛墜漂淪諸事니라.誑者以狂言欺人也
△ 여섯째, 속이는 습관이 서로를 기만하여 서로 무고하는 일을 발생시키고, 거짓과 속임수를 멈추지 않게 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흙구덩이·똥·오줌·더러운 땀 등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 있게 되니, 마치 먼지가 바람에 날리면 각자 보이는 게 없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공격하기 때문에 묻어 버리고, 빠트리며, 휙 던지고, 날았다 떨어지며, 표류에 휩쓸리는 등 온갖 일들이 있게 된다.‘속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로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다.
△第七寃習者寃習交嫌이發於含恨나니如是故로有飛石投礰匣貯車檻甕盛囊撲나니如陰毒人이懷抱畜惡니二習이相呑故로有投擲擒捉擊射挽撮諸事니라.
△ 일곱째는 원한의 습관이다. 서로를 혐오하는 원한의 습관이 원한을 품는 일을 발생시킨다. 이와 같기 때문에 돌을 날리고, 바위를 던지며, 뒤주에 가두고, 수레에 가두며, 장독에 가두고, 부대에 넣고 때리는 일이 있게 되니, 마치 음흉하고 독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악독함을 쌓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잡아먹기 때문에 잡아서 던지고, 붙잡으며, 때리고, 쏘며, 잡아당기고, 움켜쥐는 등 온갖 일들이 있게 된다.
△第八者見習이交明야如薩迦耶見과戒禁取邪悟諸業이發於違拒야出生相反나니如是故로有王使主吏ㅣ證執文籍나니如行路人이來往相見니二習이相交故로有勘問야權詐考訊며推鞫察訪며披究照明야善惡童子手執文簿야辭辯諸事나니라.薩迦耶此云身見謂執身有我種種計著戒禁取非因計因如持狗戒爲生天因之類也니라.
△ 여덟째는 견해의 습관이 서로 분명하다 주장하는 것이다. 저 살가야견이나 계금취견 등 삿되게 깨달은 모든 업이 거역함을 발생시키고 상반됨을 낳는다. 이와 같기 때문에 왕의 관리와 주인의 아전이 증거를 잡아 문서로 기록하기를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오가며 서로를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둘의 이런 습관이 교차하기 때문에 따져 묻고, 회유하며, 고문하고, 추국하며, 조사하고, 파헤치며, 밝혀내고, 선악동자가 손에 문서를 들고서 모든 일을 진술하는 일 등이 있게 되는 것이다.살가야는 중국말로 신견身見이다. 몸에 자아가 있다고 고집하는 갖가지 잘못된 사고다. 계금취는 인이 아닌데 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계를 지키는 것을 하늘에 태어나는 인으로 여기는 부류이다.
△第九者枉習이交加야發於誣謗나니如是故로有合山合石碾磑耕磨이如讒賊人이逼枉良善니二習이相排故로有厭捺며搥按蹙漉야衡度諸事니라.
△ 아홉째는 왜곡하는 습관이 서로를 공격하여 근거 없는 비방을 발생시킨다. 이와 같기 때문에 산으로 뭉개고, 바위로 뭉개며, 연자와 맷돌로 갈고 부수는 일이 있게 된다. 마치 중상모략꾼이 선량한 사람을 핍박하고 무고하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를 배척하기 때문에 억압하여 찍어 누르고, 밀쳤다 잡아당기며, 재촉해 쥐어짜고,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등의 온갖 일들이 있게 된다.
△第十者訟習이交諠야發於藏覆나니如是故有鑑見照燭니如於日中에不能藏影이니라. 二習이相陳故로有惡友業鏡과火珠披露宿業야對驗諸事ㅣ라나니此下六交報受報之形容甚明然文煩不錄出首楞嚴經第八卷也 此是地獄之原因也ㅣ니라.
△ 열째는 쟁송하는 습관이 서로를 시끄럽게 하여 감추고 숨김을 발생시킨다. 이와 같기 때문에 거울에 비춰 보고 촛불로 비춰 보는 일이 있는 것이니, 마치 정오에는 그림자를 감출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의 이런 습관이 서로 패거리를 형성하기 때문에 나쁜 벗이 있는 것이고, 업을 비추는 거울과 불구슬로 묵은 업보를 파헤쳐 대질하고 증거를 밝히는 등의 온갖 일들이 있게 된다.”이 다음 여섯 가지 교보와 수보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분명하지만 문장이 번거로워 기록하지 않는다. 『능엄경』 권8에 나온다.
이상이 지옥의 원인이다.
地藏經에摩耶夫人이重白地藏菩薩言호, 云何로名爲無間地獄이니잇고?
『지장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야부인이 거듭 지장보살에게 묻는다.
‘왜 무간지옥이라 합니까?’
地藏이白言호聖母아. 諸有地獄이在大鐵圍山之內니其大地獄은有一十八所ㅣ오. 次有五百호名號各別며次有千百호名字各別커니와無間獄者其獄城周匝이八萬餘里ㅣ오. 其城이純鐵이오高一萬里ㅣ오城上에火聚少有空闕니其獄城中에諸獄이相連야名號各別며獨有一獄호名曰無間이니其獄周이萬八千里ㅣ오. 獄墻高ㅣ一千里ㅣ오悉是鐵圍고上火徹下고下火徹上며鐵虵鐵狗ㅣ吐火고馳逐獄墻之上야東西而走며獄中有床호徧滿萬里어던一人이受罪호自見其身니徧臥滿床고千萬人이受罪호亦各自見身이滿床上야衆業所感으로獲罪如是며,
0001_0068_a_01L지장보살이 아뢰었다.
‘성모시여, 모든 지옥은 대철위산 안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큰 지옥은 열여덟 곳이 있고, 그 다음으로 5백 곳이 있는데 그 이름이 각기 다르며, 그 다음으로 10만 곳이 있는데 역시 이름이 각기 다릅니다. 무간지옥은 그 감옥의 성의 둘레가 8만여 리이고, 그 성이 완전히 쇳덩어리며, 높이는 1만 리이고, 성 위에는 불덩어리가 타오르는데 빈틈이 거의 없습니다. 그 감옥의 성 가운데 모든 감옥이 줄줄이 이어져 있고 그 이름이 각기 다른데, 유독 한 감옥이 있으니 이름이 무간입니다. 그 감옥의 둘레는 1만 8천 리이고, 감옥 담장의 높이는 1천 리인데 모조리 쇠로 되어 있습니다. 꼭대기의 불길이 바닥까지 내려오고 바닥의 불길이 꼭대기까지 치솟으며, 쇳덩어리 뱀에 쇳덩어리 개가 불을 뿜고 뒤쫓으면서 감옥 담장 위에서 동서로 달립니다.
감옥 가운데는 만 리를 가득 채우는 평상이 있는데, 한 사람이 죄를 받아도 자신의 몸이 온 상을 꽉 채우며 누워 있는 것으로 보이고, 천만 명이 죄를 받아도 역시 각자 자기 몸이 온 상을 꽉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온갖 업으로 이와 같은 과보를 초래한 것입니다.
又諸罪人이備受衆苦니千百夜叉와及以惡鬼口牙如劒고眼如電고手復銅爪으로抽腸剉斬며復有夜叉ㅣ執大鐵戟야中罪人身며或中口鼻며或中腹背야抛空飜接야或置床上고復有鐵鷹이㗖罪人目며復有鐵虵繳罪人首며百肢節內에悉下釘며拔舌耕犁며拖拽罪人며洋銅灌口며熱鐵纒身야萬死萬生야業感如是야動經億劫야求出無期니此界壞時에寄他界며他界次壞야던轉寄他方며他方壞時에展轉相寄다가此界成後에還復而來리니無間罪報가其事ㅣ如此니이다.
또 모든 죄인들이 온갖 고통을 골고루 받는데, 입과 어금니가 칼과 같고 눈이 번갯불 같은 10만의 야차와 악귀들이 손과 구리 손톱으로 창자를 뽑아내 베고 자릅니다. 그러면 다시 야차가 큰 쇠창으로 죄인의 몸을 관통하는데, 입과 코를 관통하기도 하고 배와 등을 관통해 공중에 던졌다가 뒤집어 찌르기도 하고, 혹은 상 위에 내려놓기도 합니다. 다시 쇳덩어리 매가 죄인의 눈을 파먹고, 다시 쇳덩어리 뱀이 죄인의 목을 조르며, 온몸 마디마다 모조리 긴 못을 박고, 혀를 뽑아 쟁기로 갈며, 죄인을 질질 끌고 다니고, 녹인 구리를 입에다 들이부으며, 달궈진 쇠로 몸을 묶기에 만 번 죽었다가 만 번 살아나게 되니, 업으로 초래한 과보가 이와 같습니다.
동요하며 억겁의 세월을 보내면서 나가기를 바라지만 기약이 없으니, 이 세계가 파괴될 때에는 다른 세계에 기탁하여 태어나고, 다른 세계도 파괴되면 또 다른 세계로 굴러가 기탁하고, 다른 세계가 파괴될 때마다 이리저리 다른 세계에 기탁하다가 이 세계가 다시 만들어진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니, 무간죄의 과보로 받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又五事業感니故로稱無間니라. 何等爲五오? 一者日夜受罪야以至劫數토록無時間絶니故로稱無間이오. 二者一人도亦滿며多人도亦滿故로稱無間이오. 三者罪器杈棒과鷹虵狼犬碓磨鉅鑿剉斫鑊湯鐵鋼鐵繩鐵驢鐵馬와生革으로絡首며熱鐵로澆身며飢呑鐵丸고渴飮鐵汁며從年竟劫야數那由他토록苦楚相連야更無間斷할故稱無間이오. 四者不問男子女人과羗胡夷狄과老幼貴賤과或龍或神或天或鬼고罪行業感야悉同受之할故稱無間이오. 五者若墮此獄면從初入時야至百千劫토록一日一夜에萬死萬生야求一念間야도暫住不得리니除非業盡야方得受生고以此連綿할故로稱無間이니다.
0001_0068_b_01L또 다섯 가지 일을 업으로 감득하기 때문에 무간이라 칭합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밤낮으로 죗값을 받으면서 겁수에 이르도록 시간의 단절이 없습니다. 따라서 무간이라 부릅니다. 둘째, 한 사람만 있어도 감옥이 꽉 차고 많은 사람이 있어도 감옥이 꽉 찹니다. 따라서 무간이라 부릅니다. 셋째, 벌주는 도구인 차고·몽둥이·매·뱀·늑대·개·절구·맷돌·톱·끌·도끼·가마솥·쇠철망·쇠밧줄·무쇠 당나귀·무쇠 말·벌거벗은 피부에다 풀어 헤친 머리로 뜨거운 쇳물이 온몸에 이글거리고, 배고프면 쇠구슬을 삼키고 목마르면 쇳물을 마시면서 해를 보내고 겁을 보내는 세월이 나유타가 되도록 혹독한 고통이 이어지며 끊어질 틈이 없기 때문에 무간이라 부릅니다. 넷째, 남자·여자·남자아이·여자아이·서쪽 오랑캐·북쪽 오랑캐·동쪽 오랑캐·남쪽 오랑캐·노인·어린아이·귀한 자·천한 자를 묻지 않고, 혹은 용이나 신이나 하늘이나 귀신이었다 해도 죄를 지어 그 업으로 감득했기에 모조리 똑같이 받습니다. 따라서 무간이라 부릅니다. 다섯째, 만약 지옥에 떨어지면 처음 들어갈 때부터 10만 겁에 이르도록 하루 낮 하룻밤 사이에 만 번 죽었다 만 번 살아나면서 한 생각 할 틈이라도 잠시 멈추어 주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으며, 잘못을 제거하고 업이 다해야만 비로소 다른 삶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면면히 이어지기 때문에 무간이라 부릅니다.’
地藏菩薩이白聖母사, 無間地獄을粗說如是어니와若廣說地獄罪器等名과及諸苦事를一劫之中이라도永說不盡이니이다. 摩耶夫人이聞已시고愁憂合掌야頂禮而退라시니地獄報應之說과地獄二字와地獄處所群經에廣明니라.
지장보살이 다시 성모에게 아뢰었다.
‘무간지옥에 대해 대략 말씀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만약 지옥의 벌주는 도구 등의 이름과 나아가 고통 받는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1겁 동안 계속 설명한다 해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야부인이 듣고 나서 시름에 잠겨 합장하고는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났다.”
지옥의 응보에 관한 설명과 ‘지옥’ 두 글자와 지옥의 처소에 관한 설명은 여러 경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44. 문답을 통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변론(問答辨疑)
有客이固勸余以西敎어날余曰天下에無二道고聖人은無二心이어날各支一派야所以自殊로다. 余曾閱舊約書할其創世記에云第六日之間에上帝ㅣ造天地萬物이라니其所以能造者上帝가是有像耶아? 無像耶아?
어떤 손님이 나에게 굳이 서교西敎를 권하기에 내가 물었다.
“천하에 두 도가 없고, 성인은 두 마음이 없다. 각자 한 파로 갈림으로 인해 자기들 스스로 다르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나도 『구약』이란 책을 열람한 적이 있는데, 그 「창세기」에서 ‘6일 사이에 상제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셨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창조자라는 상제는 형상이 있는가, 형상이 없는가?”
彼曰天主卽聖神也라. 豈有像也ㅣ리오?
그가 대답했다.
“천주는 곧 성신이시다. 어찌 형상이 있겠는가.”
余曰聖神이無像이라면卽如虛空否아?
내가 물었다.
“성신이 형상이 없다면 곧 허공과 같은가?”
彼曰神而靈야不同虛空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신은 신령하시다. 허공과 같지 않다.”
余曰然則未造天地萬物時에唯聖神一而已乎아? 彼曰然다.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천지만물을 만들기 전에는 오직 성스러운 신 하나뿐이었는가?”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
余曰未有天地時에想必唯有混沌頑虛야一團圝無際리니聖神이在何處야而創造天地萬物耶아? 又所聖神者ㅣ能周徧天地乎아? 抑有空缺야而未乎아? 若有空缺之處則不可謂之眞身聖也리라.
내가 물었다.
“생각해 보면, 천지가 있기 전에는 오직 혼돈이라는 흐리멍덩한 허공만 있어 한 덩어리로 둥글고 끝이 없었을 게 분명한데, 성신이 어느 곳에 있으면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였는가? 또 소위 성신이란 자는 온 천지에 가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비거나 빠진 부분이 있어서 그렇지 못한가? 만약 비거나 빠진 부분이 있다면 그를 참된 몸의 성이라 할 수 없으리라.”
彼曰聖神虛靈야無不周徧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성신은 허허롭고 신령하여 두루 가득하지 않음이 없다.”
曰旣云聖神이虛靈야無不周徧이라면則至於天地萬物虛空히盡是聖神虛靈之體라然則天地淸風과頭頭物物이全是聖神周徧體中에出沒이如鳥飛虛空야縱橫이皆是라無非聖神所居之處어如何別求天堂이리오? 汝旣曰天主卽聖神이라豈有像乎아니若然者舊約創世記에云上帝曰宜造人호其像을象我儕라며又曰象上帝像야造男亦造女라니汝所謂無像之義安在오?
내가 물었다.
“이미 ‘성신이 허허롭고 신령하여 두루 가득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했으니, 천지만물과 허공까지도 모조리 성신의 허허롭고 신령한 몸이 된다. 그렇다면 천지의 맑은 바람과 두두물물 전체가 바로 성신의 두루 가득한 몸 가운데에서 출몰하는 것이다. 새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처럼 세로로 가건 가로로 가건 모두 그곳이라 성신이 머무는 곳 아님이 없는데, 어찌 따로 천당을 구하겠는가. 네가 이미 ‘천주는 곧 성신이니, 어찌 형상이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구약』 「창세기」에서 ‘상제께서 사람을 만들되 그 형상을 우리를 닮게 해야 마땅하다고 하셨다’라고 하였으며, 또 ‘상제의 형상을 본떠 남자를 만들고 또 여자를 만들었다’라고 하였으니, 네가 말한 ‘형상이 없다’는 뜻은 어디에 있는가?”
彼曰聖神은無像이나然이나於眞中에現相也ㅣ니라.
그가 대답했다.
“성신은 형상이 없다. 하지만 그 참됨 가운데서 형상을 나타낸다.”
余曰旣云聖神이虛靈야無不周偏이라면是如虛空야無有上下邊際어中眞中之中何馮立이리오?
내가 물었다.
“너는 이미 ‘성신은 허허롭고 신령하여 두루 가득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는 허공과 같아 위도 아래도 가도 끝도 없는 것인데, 가운데‘참됨 가운데’라 할 때의 가운데가 무엇을 의지해 성립하는가?”
彼曰有物則有中이라旣有天地虛空이어니何愁中不得立이리오?
그가 대답했다.
“물체가 있으면 가운데가 있는 것이다. 이미 천지허공이 있는데, 어찌 가운데가 성립하지 못할까를 걱정하는가?”
余曰你識虛空也否아?
내가 물었다.
“너는 허공을 아는가?”
彼曰有天有地오而中空無碍야氣無不周者ㅣ是虛空이니라. 然이나亦復有際니於空之外風塵之所不得過故로人若出此면則不爲生也ㅣ니라.
그가 대답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그 중간에 텅 비어 걸림이 없고 기운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허공이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끝이 있으니, 허공 밖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도 지나갈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사람이 만약 여기를 벗어나면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다.”
曰余知之矣로다. 你不知空氣中別有業氣다. 空氣無殊나業氣不同나니故로出乎業者는不得爲生也ㅣ니豈際此而已哉아? 譬如魚以水爲活나니養於溪者ㅣ入海而死者何也오? 溪海水無殊나而但業不同故ㅣ니라. 夫虛空者無上無下며亦無有中邊야不可思量일故로世界도亦如是며世界ㅣ亦如是일國土도亦如是며國土ㅣ亦如是天地도亦如是며天地ㅣ亦如是衆生도亦如是나니所以佛不盡道而略說者由此是也ㅣ니라.
0001_0069_b_01L내가 대답했다.
“나도 그건 안다. 너는 공기 중에 따로 업기가 있음을 모른다. 공기는 차이가 없지만 업기는 같지 않다. 따라서 업을 벗어난 자는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여기에서 끝날 뿐이겠는가? 비유하자면 물고기는 물로서 살아가는데, 계곡에서 길러진 것이 바다에 들어가면 죽는 것은 왜 그런가? 계곡이건 바다건 물임은 차이가 없다. 다만 업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허공이란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또 중간도 가도 없어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또한 이와 같으며, 세계가 또한 이와 같기에 국토 또한 이와 같으며, 국토가 또한 이와 같기에 천지 또한 이와 같으며, 천지가 또한 이와 같기에 중생도 또한 이와 같으니, 부처님께서 다함이 없는 도로써 간략히 설명하셨던 까닭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又問노니你云天堂이現在何所오?
또 내가 물었다.
“네가 말하는 천당은 현재 어느 곳에 있는가?”
彼以手指上曰天國이現在蒼空玄冥之上이니라.
그가 손으로 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천국은 현재 아득하고 캄캄한 창공 위에 있다.”
余曰天是那天고?
내가 물었다.
“그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
彼曰天是一耳라. 豈有多耶아?
그가 대답했다.
“하늘은 하나뿐이다. 어찌 많을 수 있겠는가?”
余又曰天名은是何오?
내가 또 물었다.
“그 하늘 이름은 무엇인가?”
彼曰天名是天이라. 汝何問爲오?
그가 대답했다.
“하늘의 이름이 바로 하늘이다. 너는 왜 그런 걸 묻는가?”
余曰問天堂則云玄冥之上이라야不知在那邊며問天名則云其號是天이라야不知有其名니無名之天을不足可論也ㅣ로다.天名은見十二章亦說見十五章也
내가 물었다.
“천당을 물으면 ‘아득하고 캄캄한 것 위’라 말하며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르고, 하늘의 이름을 물으면 ‘그 이름이 바로 하늘’이라고 말하여 그 이름이 있는지도 모르니, 이름이 없는 하늘은 논할 거리도 못된다.하늘의 이름은 하권 「55. 불보살의 수행차제를 밝힘」을 살펴보라. 또 「45. 천지창조설 비판」에서도 설명하였다.
吾復問汝노라. 聖神이能造萬物이라니其所謂聖神者是誰之所造歟아?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다.
‘성신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했는데, 그 성신이란 자는 누가 만든 것인가?”
彼曰聖神者古今尙存야無有生滅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성신께서는 고금에 항상 존재하여 생멸이 없다.”
余曰然則聖神이有靈覺耶아? 無靈覺耶아?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성신은 신령한 깨달음이 있는가, 신령한 깨달음이 없는가?”
彼曰有靈覺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신령한 깨달음이 있다.”
余曰所謂靈覺은是誰之造며又是何物고? 道道라.
내가 물었다.
“소위 신령한 깨달음은 누가 만든 것이며 또 그것은 어떤 물건인가? 말해 봐라, 말해 봐.”
彼曰本無所造ㅣ라.
그가 대답했다.
“본래 만들어진 바가 없다.”
余曰旣無所造這箇靈覺이空也아? 有也아? 必竟是箇甚麽物고? 可謂海月이澄無影커 游魚ㅣ獨自迷로다. 會麽아? 垂絲千尺從君弄이어니와不犯淸波意自殊ㅣ로다. 欲識此意須參吾道라.吾道者人人箇箇本來各自具足之道也而迷失故吾勸使之參宄也
0001_0070_a_01L내가 물었다.
“만들어진 것이 없다면 그런 신령한 깨달음은 공한 것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결국 그게 어떤 물건일까? 가히 ‘바다에 어린 달빛이 맑아 그림자 없건만 노니는 물고기가 제 스스로 헷갈린다’고 하겠다. 알겠는가? 드리운 천 척의 낚싯줄이야 그대 마음대로 희롱하라. 그러나 푸른 파도는 범하지 말라, 의도가 본래 다르니.”우리의 도는 사람사람마다 각각 본래 각자가 갖추고 있는 도이다. 그러나 이를 미혹하여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참구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45. 천지창조설 비판(創造天地萬物)
耶和華上帝ㅣ旣爲天地造化之主야一切權能이自由自在合造萬物이皆可稱意야令諸有情으로咸生喜悅야使享安樂커何故로此土에有荆棘沙礫야諸種穢惡이充滿며又禽獸魚族昆蟲之類互相噉呑야殺戮이無限야貽其怖畏니以若上帝之能力으로何以致此乎아?
여호와 상제가 이미 천지조화의 주인이 되어 일체 권능이 자유자재하다 하였고, 모두의 뜻에 맞아 만물을 합당하게 만들어 모든 유정이 함께 기뻐하며 안락을 누리게 하였다는데, 무엇 때문에 이 땅에는 가시덤불과 사막이 있고 온갖 종류의 더러움이 충만하며, 또 새·짐승·물고기·곤충 종류는 서로를 잡아먹고 살육이 끝이 없어 그들에게 공포를 남겼으니, 그런 상제의 능력으로 왜 이 지경을 만들었는가?
若道上帝ㅣ非無能權이로欲示世人의貴賤高下야而故造物이乃如是者是邪也오非正也로다. 何如物物이互相慈育야無有損害야淸平安妥也ㅣ리오? 余以爲邪虛不實이라노라.
만약 “상제가 권능이 없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귀천 고하를 보여 주고 싶어서 고의로 이와 같이 만물을 창조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사도지 정도가 아니다. 어찌 만물이 서로를 자비롭게 보살피고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어 맑고 평등하며 편안함만 하겠는가. 나는 이를 삿되고 허망하며 실답지 못하다 여긴다.
又天地未分前에無有相貌어날有何上帝ㅣ獨存於其間야能造天地萬物也ㅣ며三界諸天이重重疊居ㅣ어有何上帝가妄尊其己而自大乎아? 大梵天王은雖身心이妙圓이나天眼所見이惟及千世界오. 又有宿命이나有定限而不能達遠故로執妄說言호我能造化一切天地萬物이라야恃此高慢야輕蔑一切聖人나니是未達天地萬物이唯業因所生也니라.
0001_0070_b_01L또 하늘과 땅이 나뉘기 전에는 형상마저도 없었는데 어떤 상제가 홀로 그 사이에 존재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했단 말인가? 삼계의 모든 하늘이 겹겹이 층을 지어 거처하고 있는데, 어떤 상제가 있어 함부로 자신을 높인 나머지 스스로 위대하다 한단 말인가?
대범천왕이 비록 몸과 마음이 오묘하고 원만하다지만 천안으로 볼 수 있는 바가 오직 천 세계에 미칠 뿐이고, 또 숙명통이 있다지만 한계가 있어 아득한 과거까지는 통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망령됨을 고집해 “나는 일체 천지만물에 조화를 부릴 수 있다.”라고 말하여 이를 자랑하고 교만을 떨며 일체 성인들을 경멸하니, 이는 천지만물이 오직 업으로 생겨난 것임을 아직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今所謂上帝者說行이似是大梵天이나然이나大梵天王은受佛聖化야誠護佛法나니今稱耶和華不知佛法之如何니則非是大梵天也ㅣ오. 他化自在天王은威德이自在야卽是魔主나然이나亦受佛聖化故로爲護佛法나니由此觀之컨今稱耶和華者ㅣ又非是自在天也ㅣ오. 無想天은是外道之天也ㅣ라. 修無想定야得生此天니今稱耶和華無有修定之事니又非是無想天也ㅣ오. 欲界六天과色界十八天과於其中間에別有魔宮니縱廣이六千由旬이오. 宮牆이七重이라一切莊嚴이猶如下天이니라. 此魔眷之所處也ㅣ니今耶和華上帝恐是何天인지吾未知其所從由也ㅣ로다.
지금 말하는 상제란 자는 그 말과 행동이 대범천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범천왕은 부처님의 성스러운 교화를 받아 정성을 다해 불법을 보호하는 분인데 지금 칭하는 여호와는 불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곧 이는 대범천이 아니다. 타화자재천왕은 위덕이 자재하니, 곧 이는 마주이다. 그렇지만 역시 부처님의 성스러운 교화를 받았기 때문에 불법을 보호한다. 이를 근거하여 관찰해 보자면 지금 칭하는 여호와라는 자는 또 자재천도 아니다. 무상천이 외도의 하늘이긴 하지만 무상정을 닦아 이 하늘에 태어난 것이다. 지금 칭하는 여호와는 선정을 닦은 일도 없으니, 또 이 무상천도 아니다. 욕계 육천과 색계 십팔천의 그 중간에 따로 미궁이 있으니, 가로 세로가 6천 유순이고, 궁궐의 담장이 일곱 겹이며, 일체 장엄이 그 아래 하늘과 같은데, 이곳은 마귀의 권속들이 사는 곳이다. 지금 여호와 상제는 과연 어떤 하늘일까? 나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46.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설 비판(搏土造人)
或曰上帝ㅣ搏土爲人고噓氣入鼻야而成血氣之人이라니其所造之人의運手動足며眼見耳聞底一段孤明은是誰所造乎아?
어떤 이는 말하기를, “상제께서 흙을 뭉쳐 사람을 만들고 입김을 코로 불어 넣어 혈기가 있는 사람을 완성했다.”라고 하던데,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이 한 조각 오롯한 광명은 누가 만든 것인가?
若道上帝ㅣ能造人於一段孤明인上帝之朗朗孤明的一段靈光은是誰能造者오.互見十四章也又亞當夏娃로及至盡未來際生命之靈魂을皆能造作이라면是非天眞本然之性也로다. 凡有造作者畢竟敗壞야無有眞實나니若道敗壞其甚麽物而上天堂入地獄也ㅣ리오? 若道不敗壞聖神所造之言이謬矣로다.
0001_0071_a_01L만약 “상제가 한 조각 오롯한 광명에서 사람을 만들었다.”라고 말한다면 상제의 낭랑하고 오롯이 밝은 한 조각 신령한 광명을 만든 자는 누구인가?「44. 문답을 통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변론」과 비교해 보라. 또 아담과 하와 및 나아가 미래 끝까지의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 영혼을 모두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천진 본연의 성품은 아니다. 무릇 만든 자가 있는 것은 결국엔 파괴되어 진실이 없으니, 만약 파괴된다고 말한다면 그 어떤 물건이 천당으로 올라가고 지옥으로 들어가겠는가. 만약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성신이 만든 것이라는 말이 잘못이다.
夫覺道也要須識心達本이어今天主與耶蘇之敎但執於名相야以上下高低로爲道니余不以道之노라. 何者오? 聖神上帝와與其子耶蘇是能高之主오. 一切有情은是所低之物이로다. 道本平等야無有高下어若以是論道是魔道ㅣ오非正道也ㅣ니라. 何也오? 心是道오道是心이라若心外求道者盡是邪魔外道也ㅣ니라.
도를 깨달으려면 반드시 마음을 알고 근본을 통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천주와 예수의 가르침은 그저 이름과 모양에 집착해 위와 아래, 높고 낮음으로 도를 삼으니, 나는 이를 도라 여기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성신인 상제와 그 아들 예수는 바로 주체이고 높은 주인이며, 일체 유정은 바로 대상이고 낮은 만물이기 때문이다. 도는 본래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도를 논한다면 이는 마귀의 도이지, 바른 도가 아니다. 왜 그런가? 마음이 바로 도이고, 도가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한다면 그는 모조리 삿된 마귀이고, 외도이다.
佛言사若以色見我커나以音聲求我면是人은行邪道라不能見如來라며, 黃檗이云我此禪宗은從上相承以來로不曾敎人으로求知求解고秪云學道라나니早是接引之詞니라. 然이나道亦不可學이니情存學解면却成迷道리라. 道無方所니名大乘心이라시니所以로余云離心覔道恰似求免角이라노라. 吾佛敎意指一切衆生之本性야權立道名故로余以爲公正之大道也라노니何者오? 凡有心者必有此道라不同耶蘇之自味其心고外求天堂者也ㅣ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빛깔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면 이런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황벽은 “우리의 이 선종에서는 위로부터 서로 계승한 이래로 사람들에게 앎을 구하고 이해를 구하도록 가르친 적이 없다. 그저 ‘도를 배운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일찌감치 맞이해 이끄는 말일 뿐이다. 이처럼 도는 역시 배울 수 없으니, 정을 보존하고 이해를 배운다면 도리어 도를 미혹하게 된다. 도가 방소가 없는 것을 대승의 마음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나는 “마음을 떠나 도를 찾는 것은 토끼 뿔을 찾는 것과 흡사하다.”라고 말한다. 우리 불교의 뜻은 일체중생의 본성을 지목해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운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를 공정한 대도라 여긴다. 왜 그런가? 무릇 마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이 도가 있으니, 그 마음을 스스로 모르고 밖으로 천당을 구하는 예수와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復問노니耶和華가能搏土造人컨必知其靈魂所在之處리니於一身中에何處가是汝心所在之處오在內乎아? 在外乎아? 潛根乎아? 在臟乎아? 在隨合乎아? 在中間乎아? 此汝之靈魂이現今에在何處오是無著乎아?引楞嚴經七處徵心起問難也
0001_0071_b_01L또 물었다.
“여호와가 흙을 뭉쳐 사람을 만들었다면 반드시 그 영혼이 소재하는 곳을 알 것이다. 그러면 이 하나의 몸 가운데 어느 곳이 바로 네 마음이 머무는 곳인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감각기관에 잠재하는가? 장기에 있는가? 합하는 곳을 따라 있는가? 중간에 있는가? 이것이 너의 영혼이라면 현재 어느 곳에 있는가? 이는 집착이 없는 것인가?『능엄경』의 칠처징심을 인용하여 질문하고 따졌다.
彼曰一切人之靈魂이居在身內니縱觀汝之耳目口鼻라도亦在汝面이오我今觀此浮根四塵야도眼耳鼻舌外浮也假地水火風四塵以成者也 秪在我面이니如是靈魂이實居身內니라.
그가 대답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몸 안에 거주하고 있다. 너를 살펴보더라도 귀·눈·입·코 역시 너의 얼굴에 있고, 내가 지금 이 부근의 네 가지 티끌을눈·귀·코·혀는 떠 있는 것이다. 지·수·화·풍 네 가지 티끌로 성립된 것이다. 살펴봐도 나의 얼굴에 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몸 안에 실재로 거주한다.”
余問노라. 汝今에坐天主聖殿야觀仁王峰나니今在何所오?
내가 물었다.
“너는 이제 천주의 성전에 앉아 인왕봉을 한번 봐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彼曰此大重會堂은在京城고彼仁王峰은實在堂外니라.
그가 대답했다.
“이 거대한 교회당은 경성에 있고, 저 인왕봉은 교회당 밖에 실재한다.”
余問노니汝今堂中에先何所見고?
내가 물었다.
“지금 교회당 가운데 있는 너에게 먼저 무엇이 보이는가?”
彼曰我在堂中야先見君與大衆고如是外望야方矚京都與仁王峰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교회당 가운데 있는 나는 먼저 그대와 대중부터 본다. 이렇게 하고 밖을 관망해야 비로소 서울의 풍경과 인왕봉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余曰汝矚京都仁王峰은因何有見고?
내가 물었다.
“네 눈에 서울과 인왕봉의 모습이 보인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졌기에 볼 수 있는 것인가?”
彼曰此聖殿이戶牖開豁故로我在堂內야得遠瞻見나니라.
그가 대답했다.
“이 성전의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내가 교회당 안에 있으면서도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余曰如汝所言야身在聖殿커날戶牖開豁할遠矚京都與仁王峰이라니亦有衆人이在此堂야不見堂內고見堂外者否아?
내가 물었다.
“네 말대로 몸은 성전에 있지만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멀리 서울의 풍경과 인왕봉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교회당에 있으면서 교회당 안을 보지 않고도 교회당 밖을 보는 자가 또 여러 사람 있는가?”
彼曰而人이在堂內야不見堂內고見堂外境物은無有是處니라.
그가 대답했다.
“사람이 교회당 안에 있으면서 교회당 안을 보지 않고도 교회당 밖의 경계와 물상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余曰汝亦如是야汝之心靈이一切明了나니若汝의現前所明了心이實在身內컨爾時에先合了知身內리니頗有衆生이先見身中고後觀外物也아? 縱不能見心肝脾胃나爪生髮과筋轉脈搖誠合明了어如何不知오? 必不內知컨云何知外리오? 是故로應知라. 汝言覺了能知之心이住在身內이無有是處니라.
내가 물었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의 심령은 일체에 명료하다. 만약 너의 현재 명료해진 마음이 몸 안에 실재한다면, 이때 먼저 몸속부터 분명히 알아야 합당하다. 먼저 몸속을 보고 그런 다음에 바깥의 물상을 보는 중생이 혹시라도 있는가? 설령 심장·간장·비장·위장은 보지 못하더라도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힘줄이 꿈틀거리고 맥박이 뛰는 것쯤은 진실로 분명히 알아야 합당한데, 왜 모르는가? 속은 절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밖을 알 수 있는가?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속에 머물고 있다’는 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彼復思惟曰悟知我心이實居身外니라. 所以者何오譬如燈光을燃於室中면是燈이必能光照室內고從其室門야後及庭際리니一切衆生이不見身中고獨見身外이亦如燈光이居室外야不能照室이니是義必明야將無所感이니라.
0001_0072_a_01L△ 그가 다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마음이 실로 몸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겠다. 왜 그런가? 비유하면 방 안에 등불을 밝히면 그 등불의 빛이 반드시 방 안을 먼저 비추고, 그 방문을 통해 그 다음에 뜰까지 미치는 것과 같다. 일체중생이 몸속은 보지 못하고 오직 몸 밖만 본다는 것은 또한 등불이 방 밖에 있어 방 안을 비출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뜻이 너무도 명백하니, 앞으로는 미혹할 일이 없을 것이다.”
余曰今此聖殿諸人中에一人이食時에諸人飽不아?
내가 물었다.
“지금 이 성전의 모든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식사를 하면 모든 사람이 따라서 배가 부른가?”
彼曰衆人軀命이不同이어니云何一人이能令飽리오?
그가 대답했다.
“여러 사람의 몸과 생명이 같지 않은데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는가.”
余曰若汝의覺了知見之心이實在身外컨身心이相外야自不相干야則心의所知를身不能覺며覺在身際컨心不能知리라. 我今에示汝拳頭노니汝眼見時에心이分別否아?
내가 물었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몸 밖에 실재한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따로 있어서 저절로 서로 간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곧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달을 수 없고, 몸이 깨닫는 것을 마음은 알 수 없어야 한다. 내가 지금 너에게 주먹을 보이는데, 네가 눈으로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는가?”
彼曰如是見時에心必分別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이렇게 볼 때에 마음이 분명히 분별한다.”
余曰若相知者컨云何在外리오? 是故로應知라. 汝言覺了能知之心이住在身外이無有是處니라.
내가 물었다.
“만약 서로 안다면 어떻게 밖에 있다 하겠는가.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 밖에 머물고 있다’는 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彼復思惟云不見內故로不居身內고身心相知야不相離故로不在身外니我今思惟컨知在一處ㅣ니라.
△ 그가 다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속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몸속에 있는 것은 아니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 서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제 생각해 보니, 한곳에 있다는 걸 알겠다.”
余曰處今何在오?
내가 물었다.
“그곳은 지금 어디인가?”
彼曰此了知心이旣不知內고而能見外나니如我思唯컨潛伏根裏니라. 猶如有人이取琉璃야合其兩眼면雖有物合이나而不留礙며彼根이隨見야隨卽分別니然이나我覺了能知之心이不見內者爲在根故오. 分明矚外호無所障礙者潛根內故ㅣ니라.
그가 대답했다.
“이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몸속은 알지 못하지만 밖은 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감각기관 속에 잠재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를 가져다 그의 양쪽 눈에 대면 비록 물건과 합하긴 했지만 장애가 되지 않는 것처럼, 그 감각기관이 (마음을) 따라서 보고, (감각기관이) 따르면 (마음이) 곧 분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속을 보지 못하는 것은 감각기관에 있기 때문이고, 분명하게 밖을 보면서 장애가 없는 것은 감각기관 속에 잠재하기 때문이다.”
余曰如汝所言야潛根內者ㅣ猶如琉璃彼人이當以琉璃로籠眼할當見山河에見琉璃否아?
내가 물었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아는 마음이) 유리처럼 감각기관 속에 잠재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이 유리를 눈에 대고 산과 강을 볼 때에 유리도 보는가?”
彼曰如是니라. 是人이當以琉璃로籠眼할實見琉璃니라.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 그 사람이 유리를 눈에 댄다면 실제로 유리를 본다.”
余曰汝心이若同琉璃合者當見山河에何不見眼고? 若見眼者眼卽同境야不得成隨며若不能見인云何說言호此了知心이潛在根內이如琉璃合이리오? 是故로應知라. 汝言覺了能知之心이潛在根裏홈미無有是處ㅣ니라.
0001_0072_b_01L내가 물었다.
“네 마음이 만약 눈에 유리를 대는 것과 같다면 산과 강을 볼 때에 왜 눈을 보지 못하는가? 만약 눈을 본다면 눈이 곧 경계와 같아 ‘따른다’고 한 말이 성립될 수 없다. 만약 보지 못한다면 왜 ‘이 분명히 아는 마음이 감각기관 속에 잠재하는 것이 (눈에) 유리를 합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는가?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깨닫고 아는 마음이 감각기관 속에 잠재한다’는 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彼復曰我今에又作如是思惟호니是衆生身의腑藏은在中고竅穴은居外야有藏則喑고有竅則明나니今我對汝야開眼見明을名爲見外ㅣ오閉眼見暗을名爲見內ㅣ니是義云何오?
△ 그가 다시 대답했다.
“내가 지금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이 중생의 몸의 장기는 속에 있고, 구멍은 밖에 있다. 감춰진 것은 어둡고, 구멍이 있으면 밝다.’ 따라서 지금 내가 너를 마주해 눈을 뜨면 밝음이 보이는 것을 ‘밖을 보는 것’이라 하고, 눈을 감으면 어둠이 보이는 것을 ‘속을 보는 것’이라 하겠다. 이 생각은 어떤가?”
余曰汝當閉眼야見暗之時에此暗境界가爲與眼과對아爲不對眼가若與眼對暗在眼前이어니云何成內ㅣ리오? 若成內者居暗室中야無日月燈야此室暗中이皆汝焦腑오? 若不對者云何成見이리오? 若離外見면內對所成이라合眼見暗으로名爲身中인開眼見明에何不見面고若不見面이면內對不成리라.眼前之境名外見身內之境名內對前以對眼爲外不得成內今縱離外見而成內對卽是眼能反觀且合能反觀身中開應反觀己面若不爾者義不成矣
내가 물었다.
“네가 눈을 감아 어둠을 볼 때에 그 어두운 경계가 눈과 마주하는가, 눈과 마주하지 않는가? 만약 눈과 마주한다면 어둠이 눈앞에 있는 것이 되니, ‘속’이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만약 속이 된다면, 해도 달도 등불도 없이 캄캄한 방 안에 있을 때 그 방의 어둠 속이 모두 너의 장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마주하지 않는다면 ‘본다’는 말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만약 ‘밖으로 보이는 것을 떠나면 안으로 마주하는 대상이 성립한다’고 전제해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어둠을 ‘몸속’이라 부른다면, (다시 감았던) 눈을 떠 밝음을 볼 때에 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는가? 만약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마주한 것이다’라는 전제가 어떻게 성립하겠는가?눈앞의 경계를 ‘밖으로 보이는 것’이라 하고, 몸속의 경계를 ‘안으로 마주하는 것’이라 하였다. 앞에서 ‘눈과 마주한다면 밖이 되지 속이 될 수 없다’고 논파되었다. 그래서 지금 비록 ‘밖으로 보이는 것을 떠나면 안으로 마주하는 것이 성립한다’고 전제하였지만, 곧 이 주장은 ‘눈이 거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눈을 감을 때 몸속을 거꾸로 볼 수 있다면 눈을 뜰 때 자기 얼굴을 거꾸로 보아야 마땅한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見面若成인此了知心과及與眼根이乃在虛空리니何成在內리오? 若在虛空면自非汝體라爲應余今見汝面야도亦是汝身이라汝眼은已知커던身合非覺이로다. 必汝執言호身眼兩覺이라면應有二知리니卽汝一身이應成兩體리라. 是故應知라. 汝言見暗을名見內者라이無有是處ㅣ니라.
(자기) 얼굴을 보는 일이 만약 성립한다면 이 분명히 아는 마음과 눈이 결국 허공에 있는 것이 되니, ‘안에 있다’는 말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만약 허공에 있다면 저절로 너의 본체가 아닌 것이 된다. (만약 허공에 있는 것을 너의 본체라 한다면)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나 역시도 너의 몸이라 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너의 눈이 이미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해야 합당하다. 네가 굳이 고집해 ‘몸과 눈 둘 다 지각한다’고 말한다면 두 가지 앎이 있어야만 하니, 곧 너의 한 몸이 두 본체를 이루어야만 한다. 따라서 마땅히 알라. ‘어둠이 보이는 것이 속을 보는 것이다’라는 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彼又曰由心生故로種種法生고由法生故로種種心生이니我今思惟호思惟體가實我心性이라隨所言處야心則隨有나니亦非內外中間三處ㅣ니라.
0001_0073_a_01L△ 그가 또 대답했다.
“마음이 생김으로 인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법이 생김으로 인해 갖가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지금 생각하기에는, 사유하는 본체가 실로 나의 심성이다. (인연이) 합해진 곳을 따라서 마음도 따라 존재하는 것이지, 안이나 밖이나 중간 세 곳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다.”
余曰汝今說言호由法生故로種種心生야隨所合處야心隨有者是心이無體야則無所合이오若無有體호而能合者則十九界가因七塵야固有六塵而無七塵有十八界而無十九界然今取無起問難也 合이라是義가不然다. 若有體者인如汝以手로自其體ㅣ면汝所知心이爲復內出가爲從外入가若復內出인還見身中이오若從外來先合見面리라.
내가 물었다.
“네 말대로 ‘법이 생김으로 인해 갖가지 마음이 생기므로 합해진 곳을 따라서 마음도 따라 존재한다’고 하면, 이런 마음은 본체가 없어서 곧 합하는 곳도 없다. 만약 ‘본체가 없지만 능히 합하는 것’이라 한다면 곧 ‘제19계가 제7진으로 인해 합한다’는원래 육진만 있지 일곱 번째 진은 없고, 십팔계가 있지 열아홉 번째 계는 없다. 제기하지 않은 질문을 취하여 힐난한 것이다. 것이니, 그 뜻이 옳지 않다. 만약 ‘본체가 있는 것’이라 한다면, 가령 네가 손으로 네 몸을 찌를 때 너의 그 아는 마음이 다시 안에서 나오는가, 밖에서 들어오는가? 만약 다시 ‘안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역시나 네 몸속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고 한다면 먼저 얼굴부터 보아야 합당하다.”
彼曰見是其眼이오心知非眼일爲見非義ㅣ니라.彼意心但能知不可言見曾不悟能見在心徒眼不見也
그가 대답했다.
“보는 것은 그 눈이다. 마음이 아는 것은 눈이 아니다. 따라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그의 뜻은 ‘마음은 아는 작용만 하기 때문에 보는 작용을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보는 주체는 마음에 있지 눈만 가지고는 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余曰若眼能見인汝在室中야門이能見不아? 則諸已死에尙有眼存할應皆見物이로다. 若見物者云何名死ㅣ리오? 又汝覺了能知之心이若必有體爲復一體아? 爲有多體아? 今在汝身야爲復徧體아若一體者則汝以手로一支時에四支가應覺이니若覺者挃應無在리니若挃有所則汝一體ㅣ自不能成리라. 若多體者則成多人리니何體ㅣ爲汝오? 若體者同前所挃니라. 若不徧者當汝觸頭亦觸其足야던頭有所覺고足應無知리니今汝不然니是故로應知라. 隨所合處야心則隨有라이無有是處ㅣ니라.
내가 물었다.
“만약 눈이 보는 주체라면 네가 방 안에 있을 때 문이 볼 수 있는가? 네 말대로라면 모든 사람이 죽고 나서도 눈은 여전히 있으니, 다들 물상을 보아야 마땅하다. 만약 (시체가) 물상을 본다면 어떻게 죽었다 하겠는가? 또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만약 반드시 실체가 있다면 다시 본체가 하나라 하겠는가, 본체가 많다 하겠는가, 지금 너의 몸에 두루한 본체라 하겠는가? 만약 본체가 하나라면 네가 손으로 (사지 가운데) 하나를 찌를 때 사지가 이를 깨달아야만 한다. 만약 (사지가) 깨닫는다면 찔렸다고 느껴지는 곳이 없어야만 한다. 만약 찔렸다고 느껴지는 곳이 있다면 ‘하나의 본체’라는 너의 주장은 저절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본체가 많다면 곧 많은 사람이 되니, 어느 본체를 너라 하겠는가? 만약 온몸에 두루하다면 앞에서 손가락으로 찔렸던 예와 같아야 한다. 만약 두루하지 않다면, 네가 머리를 부딪치고 또 발까지 부딪혔을 때 머리에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발에는 지각되는 것이 없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너는 지금 그렇지 않다.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합해진 곳을 따라서 마음도 따라 존재한다’는 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彼曰如我思惟컨內라야도無所見고外라야도不相知니內無知故로在內不成고身心이相知할在外非義니今相知故며復內無見할當在中間이니라.
0001_0073_b_01L△ 그가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 보니, (마음이) 몸 안에 있다고 하자니 (몸속을) 보는 일이 없고, 몸 밖에 있다고 하자니 (몸과 마음이) 서로 알지 못하게 된다. 몸속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몸 안에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서로를 알기 때문에 밖에 있다는 주장도 온당치 않다. 이제 (몸과 마음이) 서로 알기 때문에, 또 몸속을 보는 일도 없기 때문에, 마땅히 중간에 있어야 할 것이다.”
余曰汝言中間이라니中必不迷야非無所在ㅣ니今汝推中컨中何爲在오? 爲復在處아? 爲當在身가若在身者인在邊이면非中이오在中이면同內니라. 若在處者爲有所表아? 爲無所表아? 無表同無고表則無定니何以故오? 如人이以表로表爲中時에東看則成西오南看則成北야表體旣混니心應雜亂이로다.
내가 물었다.
“네가 ‘중간에 있다’고 말했으니, 그 중간만큼은 절대 헷갈리지 않아 머무는 곳이 없지 않으리라. 네가 지금 중간이라 추론했는데 그 중간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처소가 있다는 것인가, 몸에 있다는 것인가? 만약 몸에 있다면, 표면에 있으면 중간이 아니고, 중심에 있으면 속과 같다. 만약 처소가 있다고 한다면 표시할 곳이 있는가, 표시할 곳이 없는가? 표시할 곳이 없다면 없는 것과 같다. 표시할 곳이 있다면 안정됨이 없게 되니, 무엇 때문인가? 마치 사람이 표시로 중심을 표시할 때 동쪽에서 보면 곧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곧 북쪽이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표시 자체가 이미 혼란스러우니, 마음도 뒤섞여 혼란스러워야 할 것이다.”
彼曰我所說中은非此二種이니眼有分別고色塵은無知어던識生其中나니則爲心在이니라.
그가 대답했다.
“내가 말한 중간은 그런 두 가지 종류가 아니다. 눈은 분별이 있고 색진은 앎이 없는데, 식이 그 중간에서 생긴다. 그 중간이 곧 마음이 있는 곳이다.”
余曰汝心이若在根塵之中인此之心體ㅣ爲復兼二아? 爲不兼二아? 若兼二者物體雜亂리니物非體知成敵兩立리니云何爲中이리오? 不兼根則非知오不兼境則非不知니二義旣非어니中云何定이리오? 是故로應知라. 當在中間이라이無有是處ㅣ니라.
내가 물었다.
“너의 마음이 만약 감각기관과 대상의 중간에 있다면, 이런 마음의 본체는 다시 두 가지를 겸비하는가, 두 가지를 겸비하지 못하는가? 만약 두 가지를 겸비하는 것이라면 대상과 본체가 뒤섞여 혼란스러울 것이다. 대상은 앎이 있는 본체가 아니라서 서로 적이 되어 양립하는데, 어떻게 (겸비한) 중간이라 하겠는가? 감각기관을 겸비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앎이 아닌 게 되고, 경계를 겸비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모름이 아닌 게 된다. 두 가지 뜻이 이미 잘못인데, (겸비하지 않는) 중간을 어떻게 정하겠는가?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간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彼復曰此覺了知心이不在中間內外則以一切無著으로爲心이可乎아?
△ 그가 다시 대답했다.
“이 깨닫고 아는 마음은 이미 중간에도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일체에 집착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 하면 옳겠는가?”
余曰汝見覺知分別心性이俱無在者라나니世間虛空에水陸飛行諸所物象을名爲一切니汝不着者爲在아? 爲無아? 無則同於龜毛兎角커니云何不着리오? 有不着者不可名無ㅣ니라. 無相則無ㅣ오非無ㅣ면卽相이라. 相有則在이니云可無着이리오? 是故로應知라. 一切無着을名覺知心이라이無有是處ㅣ니라.
0001_0074_a_01L내가 물었다.
“네가 ‘보고 깨닫고 알고 분별하는 마음의 성품은 어디에도 존재함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세간과 허공 그 사이 물과 육지에서 날아다니고 걸어다니는 모든 만물을 ‘일체’라 하는데, 네가 집착하지 않는 자라고 한 그것은 존재하는가, 없는가? 없다면 거북이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은데 어떻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집착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없다’고 할 수 없다. 형상이 없으면 무이고, 무가 아니면 곧 형상이 있다. 형상이 있으면 존재인데, 어떻게 ‘집착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에 집착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아는 마음이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余今取覺皇與何難問答大義야以成辯惑也노라.
嗟夫라. 自上古及今에所以作舟車며制醫藥며習射藝며馳貿易며學士耕農며施行政法과電燈電話와火車輪船과留聲寫眞과及諸工巧와與其學問이皆出於人之心靈者也어及乎問着야罔然不知고妄言心靈은則天之所造而與者라니不覺ㅣ로라. 何不硏究其心靈야通達本源眞性之淸淨心體也오?
△ 내가 지금까지 각황과 아난께서 문답하신 대의를 취하여 그대의 의심을 다스려 주었다.
아, 상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배와 수레를 만들고, 의약을 제조하며, 활쏘기와 예술을 익히고, 왕래하며 무역하며, 배워서 선비가 되고, 밭을 갈아 농부가 되며, 시행하는 정치와 법, 전등과 전화, 화차와 윤선, 유성기와 사진기 및 온갖 정밀한 기술과 그 학문이 모두 사람의 심령에서 나온 것인데도 질문을 받으면 망연자실하여 알지 못한 채 ‘심령은 곧 하늘이 만들어서 인간에게 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 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왜 그 심령을 연구하여 본래 근원인 참된 성품의 청정한 심체를 통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若人이誠能透得這箇一事면我卽天이오天卽我며心則是佛이오佛則是心이니箇箇丈夫라. 誰是屈고不可自輕而退屈야誤却一生이니라. 佛者卽一切衆生身心之本體니若謗佛者是自謗其心이라於佛에何損哉ㅣ며若譽佛者是自譽其心이라於佛에何益哉ㅣ리오? 佛者但導迷倫야使覺自心者也ㅣ니라. 吾所以說明若此者人이不識自家珍고終日走紅塵야忙忙不知返故也ㅣ니라.
만약 사람이 진실로 이 한 가지 일을 통달할 수 있다면 내가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나이며,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니, 낱낱이 대장부인데 누가 비굴하게 살겠는가? 자신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거늘 물러서고 굴복하여 일생을 그르치고 마는구나.
부처님은 곧 일체중생의 몸과 마음의 본체이다. 만약 부처님을 비방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비방하는 것이니, 부처님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 만약 부처님을 찬양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찬양하는 것이니, 부처님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부처님은 다만 미혹한 인륜을 인도하여 자기 마음을 깨닫게 한 분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집 보배를 알아보지 못하고 종일 홍진 속을 달리며 허둥지둥 돌아올 줄 모르기 때문이다.
若耶和華造人而付靈魂이라니想汝도亦有疑矣ㅣ리라. 本有之靈魂을彼取而付之야以爲血氣之人乎아? 本無之靈魂을彼造而付之야以爲血氣之人乎아? 若曰本有之靈魂을取付以爲人인取將那裏所在靈魂而來乎ㅣ며若曰本無之靈魂을別新造成야却付以爲人인想必便知靈魂造化之原因과及其體性與相貌也ㅣ오. 又就此身야도亦決知靈魂之所處와及其體性相貌也ㅣ리라.若不知此ㅣ면其造人之說이是虛妄也ㅣ로다. 大凡天下之事ㅣ不出大理나니理其相違則何可爲至論也ㅣ리오? 爲問노라. 你莫著疑乎아. 你莫著疑乎아.
0001_0074_b_01L저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고 영혼을 붙여 주었다고 하니, 생각해 보면 너도 역시 의심이 될 것이다. 본래 있던 영혼을 그가 취하여 붙여 주었기에 혈기가 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가, 본래 없던 영혼을 그가 만들어서 붙여 주었기에 혈기가 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가? 만약 본래 있던 영혼을 가져다 붙여 주어 사람이 되었다면, 어느 곳에 있던 영혼을 가져왔다는 것인가? 만약 본래 없던 영혼을 따로 새롭게 만들어 붙여 주어서 사람이 되었다면, 생각건대 반드시 영혼 조화의 원인과 나아가 그 본체의 성품과 모양까지도 바로 알아야만 한다. 또 이 몸에 있어서도 역시 영혼의 소재처와 나아가 그 본체의 성품과 모양까지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만약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사람을 만들었다는 그 설명은 허망한 것이다.
무릇 천하의 일은 큰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법이다. 이치가 그것과 어긋난다면 어떻게 지극한 이론이 될 수 있겠는가. 묻겠으니, 너는 의심을 두지 말라. 너는 의심을 두지 말라.
經에佛告阿難사此大講堂이洞開東方야日輪이升天면則有明耀고中夜黑月에雲霧晦暝면則復昏暗고戶牖之隙에則復見通고牆宇之間에則復觀壅고分別之處에則復見緣고頑虛之中에徧是空性이오. 㭗悖之象은則紆昏塵이오澄濟歛며又觀淸淨나니阿難아. 汝咸看此諸變化相라. 吾今에各還本所因處리라.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대강당이 동쪽으로 활짝 트여서 태양이 하늘로 오르면 곧 환하게 밝고, 한밤중 그믐에다 구름과 안개까지 자욱하면 다시 캄캄해지며, 문과 창의 틈에서는 통함을 보고, 담장과 벽 사이에는 다시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서는 다시 반연을 보고, 흐리멍덩한 허공 가운데는 두루 이것이 공한 성품이며, 황사가 자욱한 현상은 혼탁한 먼지가 감도는 것이고, 맑게 개어 우기가 걷히면 또 청정함을 보게 되니, 아난아, 너는 이 여러 가지 변화하는 모습을 모두 관찰하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 원인이 되었던 곳으로 돌려보내리라.
云何本因고? 阿難아. 此諸變化ㅣ明還日輪나니何以故오? 無日이면不明할明因屬日니是故로還日나니라. 暗還黑月고通還戶牖고壅還牆宇고緣還分別고頑虛還空고㭗悖은還塵고淸明은還霽나니則諸世間一切所有가不出斯類니라. 汝見八種나니見精明性은當欲誰還고何以故오? 若還於明이면則不明時에無復見暗리라시니,餘七種各互見如此也
무엇이 본래 원인인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에서 밝음은 태양으로 돌려보내리라. 무엇 때문인가? 태양이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음의 원인은 태양에 속한다. 이런 까닭에 태양으로 돌려보낸다. 어둠은 그믐으로 돌려보내고, 통함은 문과 창으로 돌려보내며, 막힘은 담장과 벽으로 돌려보내고, 반연은 분별로 돌려보내며, 흐리멍덩함은 허공으로 돌려보내고, 자욱한 황사는 먼지로 돌려보내며, 청명함은 개임으로 돌려보내니, 즉 모든 세간의 일체 존재가 이러한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네가 이 여덟 종류를 보고 있으니, 보는 그 정밀하고 밝은 성품은 누구에게 돌려보내고 싶은가? 무엇 때문인가? 만약 밝음으로 돌려보낸다면 밝지 않을 때엔 다시 어둠을 보는 일이 없어야 하리라.”나머지 일곱 가지도 각각 이것과 호환해서 보라.라고 하셨다.
正當恁麽時야如何是汝之心靈고? 可憐騎牛客이여門外에恁他忙이로다. 願諸同胞仁兄弟아. 切須在意야自修心性면則五蘊堆頭에得無價寶藏리니豈非慶幸於永劫也ㅣ리오?
0001_0075_a_01L바로 이런 때를 당하여 어떤 것이 너의 심령인가? 가련하구나, 소를 탄 나그네여. 문밖에서 저렇게 정신없구나. 부디 모든 동포 형제들이여, 간절히 마음에 새겨 스스로 심성을 닦기 바란다. 그러면 곧 오온의 무더기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 창고를 얻으리니, 어찌 영겁에 경사가 아니겠는가.
47.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었다는 설 비판(食果被罪)
耶和華ㅣ旣博土爲亞當고謂無相助爲理者ㅣ라야取其一脇骨야成女而作夫婦야挈置埃及囿니此는耶和華上帝之所樹者也라其地에萬物이具足而當囿之中야有生命樹食之爲永生也고亦有別善惡樹食之辨善惡也니라. 命其人曰囿之菓實을任意可食호惟別善惡之樹食之日必死라니라.
여호와가 흙을 뭉쳐 아담을 만들고 나서 서로 도우며 다스릴 자가 없다고 여겨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어 부부가 되게 하고 에덴동산에 데려다 놓았으니, 이곳은 여호와 상제가 세운 곳이었다. 그 땅에는 만물이 구족하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의 나무그것을 먹으면 영생한다.가 있고 또 선악을 판별하는 나무그것을 먹으면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다.가 있었다. (여호와가) 그 사람에게 명하기를, “동산의 과일을 네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 하지만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를 먹는 날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하였다.
又云搏土爲走獸飛禽야率之至亞當前야以其所稱으로遂定物名云며又耶和華上帝ㅣ所造生物中에有蛇ㅣ勸其婦야而使食善惡菓曰上帝ㅣ恐汝食此菓之日에兩目이必明야能辨善惡야彷彿上帝故로誘汝恐陷死亡이라야날婦乃食之고而兼奉夫라며,
또 흙을 뭉쳐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들을 만들고는, 그들을 거느리고 아담 앞에 이르러 아담이 일컫는 대로 만물의 이름을 정하였다고 하였다. 또 여호와 상제가 만든 생물 가운데 뱀이 있었는데, 아담의 부인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권하면서 말하기를, “네가 이 과일을 먹는 날에는 두 눈이 반드시 밝아져서 선악을 판별하여 상제와 버금갈 것이다. 상제는 그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속인 것이다.”라고 했다.
부인은 결국 그것을 먹었고, 아울러 남편에게도 바쳤다고 한다.
又耶和華上帝曰人能別善惡야彷彿我儕니恐其擧手야亦折生命樹食之면而得永生일가야故遣其人야出埃田囿고東置와與焰劒야指揮莫定야以防範生命樹之途焉이라며又多瞋多怒야事我者便黨而祐之以福며排我者作戚而遺之以禍니悲夫라甚哉로다. 貪邪凡情도尙不爾也ㅣ리라.
또 여호와 상제는 이르기를 “사람이 선악을 판별할 수 있어 우리와 버금가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의 나무까지 꺾어 그것을 먹고 영생을 얻을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내쫓아 에덴동산에서 나가게 하고, 동쪽에 기로수와 염검을 두어 정착하지 못하도록 지휘함으로써 생명의 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고 한다. 또 성냄이 많고 노여움이 많아 “나를 섬기는 자는 곧 친구가 되어 복으로 그를 돕고, 나를 배척하는 자는 원수가 되어 화로써 그를 내쫓으리라.”라고 하였으니, 슬프구나, 심하도다. 탐욕스럽고 삿된 보통 범부들도 오히려 그렇게는 하지 않으리라.
原夫聖人안於法에平等故로於人에平等고於人에平等故로於食에平等며於食에平等故로於一切事에俱是平等이라. 至於利人야害己라도尙樂이어豈可善己而惡人也ㅣ리오?
원래 성인은 법에 평등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평등하고, 사람에게 평등하기 때문에 음식에 평등하며, 음식에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다 평등하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면 자기에게 해가 되더라도 오히려 즐거워하는 법인데, (성인이) 어찌 자신은 선하고 남은 악하다 할 수 있는가?
彼耶和華가旣是造土爲人인以何嫌故로使目瞑暗이며, 又以好意로挈置於福囿ㅣ어니何揀其所食이며, 又有明眼者ㅣ別善惡菓ㅣ어何故로恐喝其人야誘以死亡이며又有生命樹야食之者ㅣ可得永生커恐食此菓야遂出埃囿고設機而防範야使不能入케니是豈所謂聖人者之所爲乎아? 何其偏邪貪曲之甚也오? 又造走獸飛禽야爲人助理者以何로作獅虎豺狼와蛇蝎蚖蝮과蜈蚣蚰蜒과鴟梟鵰鷲와狐貍野干과鼬鼷等衆無數諸種毒惡之蟲야使之害人而亦相呑也오. 想或欲顯己能而然耶아? 抑亦欲惱諸類而爲然耶아?
저 여호와가 이미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선, 어떤 미움 때문에 눈을 캄캄하게 하였을까? 또 좋은 마음으로 복된 동산에 데려다 놓고선, 왜 그의 먹을거리를 제한했는가? 또 눈 밝은 자가 선악을 판별할 과일이 있는데, 무슨 까닭에 그 사람에게 공갈을 쳐 죽는다고 속였는가? 또 생명의 나무가 있어 그것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열매를 먹을까 두려워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장치를 설치해 지키면서 들어올 수 없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소위 성인이란 자가 할 짓인가? 어찌 그의 편벽되고 삿되고 탐욕스럽고 왜곡됨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또 달리는 짐승과 날아다니는 새를 만들어 사람이 돕고 다스릴 자로 삼았다는데, 어떤 이유로 사자·호랑이·승냥이·늑대·뱀·전갈·살무사·구렁이·지네·그리마·올빼미·독수리·여우·살쾡이·야간·족제비·생쥐 등등 여러 종류의 독하고 악한 짐승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사람을 해치게 하고 또 서로 잡아먹게 하였는가? 생각건대, 혹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또 모든 무리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凡一切生靈이皆隨業受生커날有誰ㅣ在於其間야使之能生而能滅也오, 其爲自未能造化而妄奪其功也ㅣ明矣로다. 不然이면其自謂聖人者ㅣ何弄巧若是也오. 又有蛇ㅣ哀憐其婦야勸使食菓야以明其目니其爲仁術이優於上帝耶和華者多矣라노라. 何故오? 上帝暗之고狡蛇明之로다.
무릇 모든 생명체는 다 업을 따라서 태어나는 것이니, 누가 있어 그 사이에서 그들을 태어나고 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스스로 창조하지도 못했으면서 망령되게 그 공을 탈취했음이 명백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스스로 성인이라 말하는 자가 어찌 희롱하는 솜씨가 이와 같단 말인가?
또 뱀이 있어 그 아내를 어여삐 여겨 과일을 먹도록 권해 그의 눈을 밝혀 주었다고 하니, 그 뱀의 어진 술수가 상제인 여호와보다 나은 점이 많다고 하겠다. 왜 그런가? 상제는 그들을 어둡게 하고 교활한 뱀은 그들을 밝게 하였다.
又耶和華上帝謂蛇曰爾旣爲此라較之六畜百獸에必更見詛리니爾必腹行야畢生토록食塵리라니爲問노라. 爲此已前에其蛇形이爲如何也런고是必見其景況動靜而資自言也ㅣ로다. 何也오? 蛇以誘罪로受此腹行之報ㅣ어니와若彼蚯蚓絲虵와田螺水蛭은因何罪故로受腹行報也오? 休撒謊라.
0001_0076_a_01L또 여호와 상제가 뱀에게 “네가 이미 이런 짓을 하였으니, 육축이나 온갖 짐승들과 비교해 반드시 더욱 저주받으리라. 너는 반드시 배로 기어 다니고 죽을 때까지 먼지를 먹으리라.”라고 말했다니, 묻겠다. 이렇게 하기 이전에는 그 뱀의 형태가 어떠했는가? 이는 분명 그 정황과 움직임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말이다. 왜 그런가? 뱀이 유혹한 죄로 이렇게 기어 다니는 과보를 받았다면, 저 지렁이·실뱀·논밭의 고둥·물속의 거머리 같은 것들은 무슨 죄로 인해 기어 다니는 과보를 받았는가? 잠꼬대 늘어놓는 짓 그만하라.
夫仁人者愛人如己라. 無有彼此나니故로有言호己所不欲을勿施於人이라며頭目身體를欣樂布施라나니, 耶和華之先禁善惡菓者恐其人別善惡야而彷彿我ㅣ오. 後逐于埃及田囿者以其人旣生智라恐彼折生命樹야食之而永生이니是豈聖人之仁德乎아? 凡俗厚情者之所不取也ㅣ로다.
어진 사람은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기에 피차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라고 하였고, “머리·눈·신체를 기쁘게 보시하라.”라는 말씀이 있다. 여호와가 먼저 선악과를 금했던 것은 ‘그 사람이 선악을 판별해 우리에게 버금가면 어쩌나’ 두려워한 것이고, 나중에 에덴동산에서 내쫓았던 것은 그 사람이 이미 지혜가 생겼기 때문에 그가 생명의 나무를 꺾어 그것을 먹고 영생할까 두려워한 것이니, 이것이 어찌 성인의 어진 덕이겠는가. 보통 속세에서 정이 도타운 자도 취하지 않는 바라 하겠다.
又聖人은惟以慈悲喜捨四無量心으로常加哀憐야仁恕爲本이어奈何爽嗔怒行偏邪야事我者福之佑之며排我者殃之禍之오? 吾今說此ㅣ非欲論他敎之邪正也ㅣ라. 急欲濟入水火之兄弟耳로라.
또 성인은 오직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으로 항상 사랑과 연민을 더하여 어짊과 용서를 근본으로 삼는 법인데, 잘하는 건 성질부리는 짓에 행실은 삿되고 치우쳐 “나를 섬기는 자는 복을 주고 도와주며, 나를 배척하는 자는 재앙을 내리고 화를 내린다.”라고 한단 말인가? 내가 이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남의 종교의 삿됨과 바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구덩이 불구덩이로 들어간 형제들을 급히 구제하려는 것일 뿐이다.
盖天地始創에善惡이未分이어耶和華ㅣ旣有權能야而造善人인宜其爲人父也ㅣ라. 當慈恕寬仁이니何更以善惡菓로試之야陷人于罪며又以此屑屑之罪로遺之盡未來際라니不爲已甚乎아?
천지가 처음 시작된 때는 선과 악이 아직 나뉘기 전이다. 여호와가 이미 권능을 가지고 있어 착한 사람을 만들었다면 마땅히 그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된다. 당연히 자비롭고 용서하고 관대하고 어질어야 하는데, 왜 다시 선악과로 그들을 시험하여 사람을 죄에 빠트렸는가? 또 이런 자잘한 죄로 그들을 추방해 미래가 다하도록 벌을 주었으니, 너무 심하다 하지 않겠는가?
48. 「요한복음」에 대한 변론(約翰道說辨論)
新約全書요한福音第一章에云大初에道가有니道가上帝와同在함道卽上帝시라此道가太初에上帝와同在야道로萬物이造바되엿스니造物이道가업시造것이一箇도無니라.
『신약전서』 「요한복음」 제1장에서 이르기를, “태초에 도가 있었으니, 말씀(道)이 상제와 함께함에 말씀(道)이 곧 상제시니라. 이 말씀(道)이 태초에 상제와 함께하여 도로써 만물을 창조하였으니, 창조된 만물이 말씀(道)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느니라.”라고 했다.
余聞之니涵虛禪師曰夫易之爲道에原於太極고而太極이又本乎無極니無極者湛寂虛明야包括十虛之謂也ㅣ니極乎無極之中야靈妙將發을謂之太極이니라. 太極者含畜一眞야充塞六合之謂也ㅣ오. 靈妙發矣에一氣盛矣를謂之太初ㅣ오. 氣之轉旋을謂之太始ㅣ오. 靈妙純眞을謂之太素ㅣ오. 二氣判而淸濁分을謂之兩儀ㅣ라니,
내가 들었으니, 함허 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무릇 『역』에서 도라 한 것은 태극에 근원을 둔 것이다. 태극은 또 무극을 근본으로 하니, 무극이란 맑고 고요하며 허허롭고 밝아 시방 허공을 포괄함을 말한다. 무극 가운데에서 극이 생겨 신령하고 오묘함이 발생하려 함을 일컬어 태극이라 한다. 태극이란 하나의 참됨을 함축하여 육합을 빈틈없이 꽉 채운 것을 말한다. 신령하고 오묘함이 발생함에 하나의 기운이 왕성한 것을 일컬어 태초라 하고, 기운이 구르며 도는 것을 일컬어 태시라 하며, 신령하고 오묘함이 순수하고 참된 것을 일컬어 태소라 하고, 둘로 기운이 갈라져 맑고 탁함으로 나뉜 것을 일컬어 양의라 한다.”라고 했다.
以此推觀則太初者天地未分之前에混沌一氣而已라. 到此田地야誰名上帝며誰是道者오. 然이나若眞是大道先天地而無始고後天地而無終니何特太初哉리오? 然이나約翰之說道ㅣ未有分明니但擧道名고不言道之所以也ㅣ로다. 不知커라. 彼所謂道以何로爲道耶오?
이로 미루어 관찰해 보면 태초는 천지가 아직 나뉘기 전 뒤섞인 하나의 기운일 뿐이다. 그 상황에서 누구를 상제라 하고, 누구를 말하는 자라 하겠는가? 이처럼 만약 진실로 그것이 대도라면 천지보다 앞서 시작이 없고 천지보다 뒤라서 끝이 없어야 한다. 어찌 특별히 태초에만 있겠는가? 이처럼 요한이 설명한 도를 정리해 보면 아직 분명하지 못하니, 그저 도라는 이름만 거론했을 뿐 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모르겠구나, 그가 말하는 도는 무엇을 도라 한 것일까?
順天命며說綱常며宗太極者孔氏之道也ㅣ라. 吾聞孔氏之道只有太極이生兩儀之說이오. 而未聞別有耶和華上帝야造立天地니是與儒道로不相同也ㅣ오. 人法地며地法天며天法道며道法自然者老氏之道也ㅣ라. 吾聞老氏以自然이오未聞有造니然則又與老道로遠不同也ㅣ오. 無上身法也根本智也後得智也正覺一圓融淸淨心者釋氏之道也ㅣ니라.
0001_0077_a_01L하늘의 명령에 순응하여 강상을 설하고 태극을 근원으로 삼는 것은 공자의 도이다. 내가 듣기로 공자의 도에는 ‘태극이 양의를 낳았다’는 말만 있지 ‘따로 여호와 상제가 있어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는 유도와 같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땅을 모범으로 삼고, 땅은 하늘을 모범으로 삼으며, 하늘은 도를 모범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모범으로 삼는다’는 것이 노자의 도이다. 내가 듣기로 노자는 자연이라 했지 ‘만들어 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또 노자의 도와도 거리가 멀고 같지 않은 것이다. 위없이법신 바르고근본지 보편한후득지 정각인 하나의 원융하고 청정한 마음은 석가의 도이다.
若道天地未成之前에以混沌一氣로爲上帝라면則所謂帝字在人之上曰人主오在天之上曰天帝니豈以混沌一氣로稱爲上帝哉리오? 若道上帝가無有相貌則是同虛空커니有何上帝之名乎며若道有相貌則當天地未分之前야豈獨上帝ㅣ有身形야而能造天地哉ㅣ리오?
“천지가 이루어지기 전의 뒤섞인 하나의 기운으로 상제를 삼는다.”라고 말한다 하자. 그렇다면 소위 ‘제帝’ 자는 사람 위에 있으면 인주라 하고 하늘 위에 있으면 천제라 할 때 쓰는 것이다. 어찌 뒤섞인 하나의 기운을 상제라 칭하겠는가? 만약 “상제는 모습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허공과 동일한데 무슨 상제라는 명칭이 있겠는가? 만약 “모습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천지가 나뉘기 이전에 어찌 유독 상제만 형체가 있어서 능히 천지를 만들었단 말인가?
又約翰之說이自語相違者ㅣ有二니何者오? 旣云太初에道가有호道가上帝와同在라니道와上帝와同在則是道與帝가是二오非一也ㅣ며, 又云道卽上帝라니然則道與上帝가是一이오非二也어, 乃云此道가太初에上帝와同在야道로萬物이造바라니首尾 ㅣ相違라無足可採로다. 若道上帝是能證之人이오道是所證之體故로道帝가同在라면有能所어니何成妙道也ㅣ리오? 所謂道之一字是有耶아? 是無耶아? 是不有耶아? 是不無耶아? 道道라. 雪月芦花가非同色이니라. 觀此已上所論數語면足可以見道意之㮣矣ㅣ로다. 吾不復以較而累毫也노라.
또 요한의 말을 정리해 보자면 자기가 한 말에 서로 위배되는 점이 두 가지 있으니, 무엇인가? 이미 “태초에 도(말씀)가 있었으니, 도(말씀)가 상제와 함께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와 ‘상제’가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도(말씀)가 태초에 상제와 함께하여 도로써 만물을 창조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처음과 끝이 서로 어긋나 채택하기에는 부족하다. 만약 “상제는 바로 증득하는 주체인 사람이고, 도는 바로 증득되는 대상인 체이기 때문에 도와 상제가 함께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미 능과 소가 있는데 어찌 오묘한 도가 되겠는가? 소위 ‘도’라는 한 글자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지 않은 것인가, 없지 않은 것인가? 말해 보라. 눈과 달과 부들 꽃은 같은 색이 아니다. 이상에서 논한 여러 말들을 살펴보면 개략적인 도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다시 비교해 터럭 하나를 보태는 짓은 내 하지 않겠다.
49. 문답을 통한 증명(問答發揮)
客이問余曰那天地未成已前에曾道如何오? 吾雖嘗聞製造之說이나正不知是義之的否ㅣ로다.
손님이 나에게 물었다.
“천지가 이루어지기 전에 있었던 도는 어떤 것인가? ‘(상제가) 제조하였다’는 말을 내 들은 적은 있지만 그 뜻이 맞는지 틀린지 정말 모르겠다.”
余曰好個此問이여吾今爲說호리라.世界起始上已略明也 夫心也ㅣ有生住異滅此言妄心고身也ㅣ有生老病死고世界也ㅣ有成住壞空니以此四相으로印證天地萬物則物物이各有壞空成住야無不皆然니故知라. 一物도元非上帝之所能造爲也ㅣ니라. 凡有相者畢竟成壞나니焉有一物이敢不壞야其誰能堅固哉리오? 或有一日而壞者며或有一年而壞者며或有十年而壞者며或有千萬劫而壞者니其壽夭長短은則不同이어니와終歸於壞則一也ㅣ니라. 若言有誰而能造諸有者是妄也ㅣ니不達業因故로異計紛紜耳니라.廣覽佛經博問先覺自然通明無有疑焉 欲識天地萬物究竟本末인其有諸經乎져.
내가 말했다.
“참 좋구나, 이 질문이여. 내가 이제 설명해 보겠다.세계의 기원은 앞에서 이미 간략히 설명했다. 마음에는 생주이멸이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망심을 말한다. 있고, 몸에는 생로병사가 있으며, 세계에는 성주괴공이 있으니, 이 사상으로 천지만물을 인증하면 물물에 각각 괴공성주가 있어 모두 이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알라. 한 물건도 원래 상제가 만든 것이 아니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결국에는 파괴되니, 감히 파괴되지 않을 물건이 하나라도 어찌 있겠으며, 그 누가 견고할 수 있겠는가. 혹은 하루 만에 파괴되는 자도 있고, 혹은 일 년 만에 파괴되는 자도 있으며, 혹은 십 년 만에 파괴되는 자도 있고, 혹은 천만 겁이 지나 파괴되는 자도 있으니, 그 장수하고 요절하며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은 같지 않지만 결국 파괴로 돌아간다는 점은 똑같다. 만약 ‘어떤 자가 있어 능히 모든 존재를 만든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니, 업의 원인을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계탁이 분분한 것일 뿐이다.널리 불경을 열람하고 두루 선각자들에게 물으면 자연히 통달하고 밝아져 의심이 없게 된다. 천지만물의 구경과 본말을 알고 싶다면 그것은 경전에 실려 있다.
夫佛은歷劫勤修야得海印大寂定三昧사朗徹萬法사無不周徧시니不可以異計로思惟也ㅣ니라. 余今에若說華藏之廣大刹則恐人不信受故로今略明此世界成住壞空과及諸天行狀호리라.
부처님은 오랜 겁을 거치면서 부지런히 수행해 해인대적정삼매를 얻으셨기에 만법을 훤히 꿰뚫어 두루 변재하지 않음이 없으신 분이니, 잘못된 계탁으로 사유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제 만약 온갖 꽃으로 장엄된 광대한 세계를 설명한다면 사람들이 믿어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따라서 이제 이 세계의 성주괴공과 모든 하늘의 행장을 간략히 밝히겠다.
今此娑婆世界ㅣ未成已前에有天地世界니約三世而言也 卽過去莊嚴劫世界니彼世界初成已久에有人種이彌滿고劫初時에南州人의壽命이八萬四千歲ㅣ오身이八丈이라. 每到百年에命減一年고身減一寸야凡過千年而命減十年고身減一尺나니如是轉減至十歲를名曰一劫이오. 又自十歲로經過百年이면命增一年고身增一寸야復過千年이면則命增十年고身增十尺나니如是轉至八萬四千歲를名曰一增劫이라나니라. 如是凡過十增劫十減劫每減一劫有小三灾 면有大三災起焉야天地가毁滅故로云劫火洞燃에大千이俱壞야唯一虛空而已라니라. 過此二十增減數야而此界成焉니名曰賢劫也ㅣ니라.
0001_0078_a_01L지금 이 사바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다른 천지 세계가 있었으니삼세를 의거해 말한 것이다. 곧 과거 장엄겁세계이다. 그 세계가 처음 만들어지고 나서 한참 후 사람이 있게 되어 그 세계에 가득하였다. 겁의 초기에는 남주 사람들의 수명이 8만 4천 세였고, 신장이 8장이었다. 하지만 백년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들고 신장이 1촌씩 줄어들어 천 년을 경과하자 수명이 10년 줄어들고 신장이 1척 줄어들게 되었다. 이와 같이 점점 감소하여 수명이 10세에 이르는 시간을 1감겁이라 한다. 또 10세로부터 백 년을 경과할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증가하고 신장이 1촌씩 증가하여 다시 천 년을 경과하자 수명이 10년 증가하고 신장이 10척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점점 늘어나 수명이 8만 4천 세에 이르는 시간을 1증겁이라 한다. 이와 같이 10증겁과 10감겁1감겁마다 소삼재가 있다.을 경과하면 대삼재가 일어나 천지가 괴멸된다. 따라서 ‘모조리 태워 버리는 겁화로 대천세계가 몽땅 파괴되어 오직 하나의 허공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20차례의 증감을 지나 이 세계가 이루어졌으니, 이름을 현겁이라 한다.”
問曰願聞此界成壞之事노라.
손님이 물었다.
“이 세계가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일에 대해 듣고 싶다.”
余曰自過去莊嚴劫世界ㅣ壞空之後로經百千萬歲時야起大重雲야徧覆虛空야注大洪雨니滴如車軸야經歷百千萬年야彼雨水聚가漸漸增長야乃至梵天而住야其水徧滿나니라. 然이나彼水聚가有四風輪이所持니一名爲住오二名安住ㅣ오三名不墮ㅣ오四名牢住ㅣ라.
내가 말했다.
“과거 장엄겁세계가 파괴되어 사라진 뒤 백천만 년이 지나 크고 두꺼운 구름이 일어나더니 온 허공을 뒤덮고 큰 폭우를 퍼부었는데, 그 물방울이 수레바퀴의 축만큼 굵었다. 그렇게 다시 백천만 년을 경과하자 그 쌓인 빗물이 점점 늘어나 범천까지 이르러 그 물이 두루 가득하게 되었다. 그 쌓인 물을 네 풍륜이 지탱하였으니, 첫째는 이름이 주이고, 둘째는 이름이 안주이며, 셋째는 이름이 불타이고, 넷째는 이름이 뇌주였다.
彼雨가斷已에其水가自退야下無量百千萬億由旬나니當爾之時야有大風이起야吹彼水聚야混亂不停면水中에自然生大沫聚니如熟酥乳라. 大風이吹沫야擲置虛空야從上造作梵天宮殿니微妙可愛라. 七寶로間成니所謂金銀琉璃玻瓈赤珠와硨磲碼碯等이是也ㅣ니라. 復更退下야至百千萬億由旬야如前四方風이起니名阿那毘羅라.
그 비가 그치고 나자 그 물은 저절로 물러나 한량없는 백천만억 유순을 내려왔다. 그때 큰 바람이 일어나 그 물에 불어 닥쳐 어지럽게 뒤섞기를 멈추지 않자 발효된 술이나 우유처럼 물에서 자연히 큰 거품무더기가 생겼다. 큰 바람이 그 거품을 불어 허공에 던져서 위에서부터 범천의 궁전을 만들었는데, 미묘하고 사랑스러웠다. 그 궁전은 칠보를 섞어 만들었으니, 이른바 금·은·유리·파려·적주·자거·마노 등이 그것이었다. 다시 아래로 백천만억 유순을 물러나 앞에서처럼 네 바람이 일어났는데, 그 이름이 아나비라였다.
由此大風이吹擲水沫야復成天宮며如是轉轉至夜摩界야而成天宮고復退下此界야湛然渟注나니彼水聚中에浮沫水上야厚가六十萬億由旬이오. 周闊이無量이라. 大風이吹沫야復造須彌山니四寶로所成이며復吹水上浮沫야爲三十三天니七寶로所成이오. 又吹水沫야於須彌山半腹之間四萬二千由旬에爲日月天子宮殿니皆七寶所成이오. 又吹水沫야於海水上高可萬由旬에造玻瓈宮殿니爲空居夜叉의所居ㅣ오. 又吹水沫야於須彌山四面各去山一千由旬大海之下에作阿修羅城니七寶로莊嚴이오. 又大風이吹水聚沫야造作餘大寶山고如是展轉吹水沫야過四大洲八萬小洲須彌山王과幷其餘一切大山之外에周匝安置니名大輪山也ㅣ니라.
이 큰 바람이 물거품을 불어 투척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천궁이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점점 야마계에 이르러 천궁을 만들었고, 다시 이 세계까지 내려와 잠잠히 고이게 되었다. 그 쌓인 물 위에는 물거품이 떠 있었는데, 그 두께가 60만억 유순이고 광활함이 한량없었다. 큰 바람이 그 거품을 불어 다시 수미산을 만들었는데 그건 네 가지 보배로 만들어졌고, 다시 물 위에 뜬 거품을 불어 삼십삼천을 만들었는데 그건 칠보로 만들어졌고, 또 물거품을 불어 수미산 중턱 4만 2천 유순에 일월천자의 궁전을 만들었는데 모두 칠보로 만들어졌다. 또 물거품을 불어 바다 위 1만 유순 높이에 파려궁전을 만들었으니 허공에 사는 야차의 거처이고, 또 물거품을 불어 수미산 사면에서 각각 1천 유순 떨어진 거리의 큰 바다 아래에 아수라성을 만들었으니 칠보로 장엄한 것이고, 또 큰 바람이 물거품 더미를 불어 나머지 대보산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이리저리 물거품을 불어 사대주와 8만 소주와 수미산왕 너머 그 나머지 일체 큰 산 밖에다 빙 둘러 안치하였으니, 그 이름이 대륜산이다.
其須彌山王은入海底ㅣ爲八萬四千由旬이오. 出海上者亦聳八萬四千由旬니라. 此須彌外에埃次로有七山八海야着雜間置야周匝圍繞하며至第八醎海中야建立四大部洲니須彌東有弗婆提고須彌西에有瞿耶尼고須彌北에有㭗單越고須彌南에有閻浮提니라.
그 수미산왕은 해저로 들어간 것이 8만 4천 유순이고, 해상으로 솟은 높이 역시 8만 4천 유순이다. 이 수미산 밖에는 차례로 일곱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뒤섞여 사이사이에 안치되어 수미산을 둘러 에워싸고 있다. 여덟 번째 소금바다에 이르러 그 가운데 사대부주를 건립하니 수미산 동쪽에는 불파제가 있고, 수미산 서쪽에는 구야니가 있고, 수미산 북쪽에는 울단월이 있고, 수미산 남쪽에는 염부제가 있다.
此須彌山이有三級니第一級은自海上으로至高一萬由旬야堅首天이住其中고第二級은高二萬由旬이니持鬘天이住其中고第三級은高三萬由旬이니常憍天이住其中고須彌山各去一萬由旬大海之下에有阿修羅王이住고須彌山半四萬二千由旬에有四天王이居其上고日月星宿이浮空而羅列며須彌山頂八萬四千由旬에有三十三天이居其上니帝釋天王이爲其主니라.
0001_0079_a_01L이 수미산에 3급이 있다. 제1급은 바다에서부터 높이 1만 유순까지로서 견수천이 그 가운데 머문다. 제2급은 높이 2만 유순까지로서 지발천이 그 가운데 머문다. 제3급은 높이 3만 유순까지로서 상교천이 그 가운데 머문다. 수미산 사면에서 각각 1만 유순 떨어진 큰 바다 아래에는 아수라왕이 머물고, 수미산 중턱 4만 2천 유순 높이에는 사천왕이 있어 그 위에 머물고 해와 달과 별들이 허공에 줄줄이 늘어서 있다. 수미산 꼭대기 8만 4천 유순 높이에는 삼십삼천이 있어 그 위에 거처하는데 제석천왕이 그들의 주인이다.
此上十六萬八千由旬에有夜摩天고復此上三十二萬六千由旬에有兜率天고又更一倍야有化樂天고又更一倍야有他化自在天고又更一倍야有梵衆天고又於梵衆下他化天上二中間에有魔王波旬宮殿고梵衆天以上으로又如下야倍倍增勝야有梵輔天과大梵天과小光天과無量光天과光音天과小淨天과無量淨天과徧淨天과福生天과福愛天과廣果天과無想天과不還天과無煩天과無熱天과善見天과善現天과色究竟天고此上에又有四天니通名無色界天이라. 第一空處天이오第二識處天이오第三有處天이오第四非想非非想處이니라. 如是諸天行狀은廣載群經이니而略出法苑珠林니라.
이 위로 16만 8천 유순에 야마천이 있고, 다시 이 위로 32만 6천 유순에 도솔천이 있으며, 또 다시 1배 위에 화락천이 있고, 또 다시 1배 위에 타화자재천이 있으며, 또 다시 1배 위에 범중천이 있고, 또 범중천 아래와 타화자재천 위 둘의 중간에 마왕 파순의 궁전이 있다. 범중천 위로도 아래에서와 같이 배로 증가한 높이에 범보천과 대범천과 소광천과 무량광천과 광음천과 소정천과 무량정천과 변정천과 복생천과 복애천과 광과천과 무상천과 불환천과 무번천과 무열천과 선견천과 선현천과 색구경천이 있다.
이 위에 또 네 하늘이 있으니, 통틀어 무색계천이라 부른다. 첫째는 공처천이고, 둘째는 식처천이며, 셋째는 무소유처천이고, 넷째는 비상비비상처천이다. 이와 같은 모든 하늘의 행장은 많은 경전에 널리 수록되어 있는데, 『법원주림』에서 간략히 뽑았다.
△大抵住劫이有二十增減而久住고壞劫도亦有二十增減而壞焉고空劫이又等二十番增減數야而空焉며成劫도亦等二十番增減數而成焉也ㅣ니라. 於住劫中二十增減에每減劫內에各有小三災니人壽三十歲時에有飢謹劫고人壽二十歲時에有疾病劫고人壽十歲時에有刀兵劫니라. 至住劫으로第二十減劫極下야有大三災起焉나니,
0001_0079_b_01L△ 주겁이 20증감겁을 거치면서 오래 머물고, 괴겁 또한 20증감겁을 거치면서 파괴되며, 공겁 또한 20증감겁의 시간만큼 공허하고, 성겁 역시 20증감겁의 시간 동안에 이루어진다. 주겁 20증감겁의 감겁마다 각각 소삼재가 있으니, 사람의 수명이 30세일 때에 기근겁이 있고, 사람의 수명이 20세일 때에 질병겁이 있으며, 사람의 수명이 10세일 때에 도병겁이 있다. 주겁 스무 번째 감겁 마지막에 이르러 대삼재가 일어난다.
本因經에云大三災時에有大黑風이吹使海水로兩披야取日宮殿야置須彌山半야安日道中니緣此로世間에有二日이出야河渠ㅣ竭고其後久久야大風이復取第三日出함大恒河가竭고四日이出에阿耨池가竭고五日이出에大海乾枯고六日이出에天下煙起고至七日이出야天下洞然야直至梵天云云니라.
『본인경』에서 말하기를, ‘대삼재가 일어날 시기에 거대한 검은 바람이 불어서 바닷물을 양쪽으로 헤치고 태양의 궁전을 가져다 수미산 중턱에 놓고 해가 지나는 길 가운데 안치한다. 이 인연으로 세간에 두 개의 태양이 출현하여 시내와 도랑이 말라붙는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큰 바람이 다시 세 번째 태양을 가져와 세 개의 태양이 출현하면 큰 항하가 마르고, 네 개의 태양이 출현하면 아뇩지가 마르고, 다섯 개의 태양이 출현하면 큰 바다가 바짝 마르고, 여섯 개의 태양이 출현하면 천하에 연기가 일어나고, 일곱 개 태양이 출현하면 천하가 온통 타 버리고 그 불길이 곧바로 범천까지 이른다’고 했다.
觀佛三昧經에云호更起大雲야漸降大雨니滴如車軸라是時에三千大千刹土에水徧其中야乃至梵天云云니라. 此七番火災와七番水災後에空中歘然飄擊風起며復從下方으로有大風輪이互相衝擊야天地掃蕩야唯一虛空而已니라. 復過空劫二十增減時量야復立世界니名星宿劫云며若火災起時에至光音天爲際라며若水災起時에至徧淨天야爲際고若風災起時에至果實天야爲際라니라.
『관불삼매경』에서 이르기를, ‘다시 큰 구름이 일어나 점점 큰비를 내리는데 물방울이 수레바퀴의 축만큼 굵었다. 이때 삼천대천세계에 물이 가득 차고 나아가 범천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였다.
이 일곱 번의 화재와 일곱 번의 수재 후에 공중에서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며, 다시 아래쪽에 있던 큰 풍륜이 서로 충돌하여 천지를 휩쓸어 버림으로써 오직 하나의 허공만 남는다. 다시 공겁 20증감의 시간을 경과하여 다시 세계가 만들어지니, 그 이름을 성수겁이라 한다. 화재가 일어날 때에는 광음천까지 이르러 끝나고, 수재가 일어날 때에는 변정천에 이르러 끝나고, 풍재가 일어날 때에는 과실천에 이르러 끝났다.”
問世界初成에人種이何始오?
손님이 물었다.
“세계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 인간이란 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答三災ㅣ極至於果實天고而此天已上에不爲三災所惱니라. 天地更始에了無所有며亦無日月이라. 地湧甘泉니味如蘇蜜이니라. 諸天이轉轉下生大梵天宮이러니時에光音天人이下來此界야各有身光며飛行自在라가見有地肥極爲香味라. 取食多者卽失神足야體重無光니天地ㅣ冥然大暗이러라. 以天人福力故로大黑風이吹彼海水야漂出日月야置須彌山邊야安日道中야遶須彌山而行云爾니라.
0001_0080_a_01L내가 대답했다.
“삼재가 미치는 극치는 과실천까지다. 이 하늘 이상은 삼재의 피해를 받지 않는다. 천지가 다시 시작할 때에는 존재하는 것이 전혀 없으며, 해와 달도 없었다. 그때 땅에서 달콤한 샘이 솟았는데, 그 맛이 꿀과 같았다. 모든 하늘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대범천궁에 태어났고, 이때 광음천인이 이 세계로 내려왔다. 그들은 각자 몸에서 빛이 났고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 지비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너무나 향기롭고 맛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곧 신족을 잃어 몸이 무거워지고 빛이 사라졌다. 그래서 천지가 캄캄해 크게 어두웠다. 하지만 천인들의 복력 때문에 검은 폭풍이 바닷물을 불어서 해와 달을 떠오르게 하여 수미산 둘레 태양의 길 가운데 안치해 수미산을 맴돌며 운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客이起立而問余曰如子之言인所謂不可說不可說不可說轉恒河沙微塵數世界海ㅣ由誰而造也ㅣ며由何而成焉고?
손님이 일어나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이른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으며 항하 모래알 수만큼 많고 고운 먼지 수만큼 많아 바다처럼 드넓은 세계가 누구로 인해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인해 이루어졌단 말인가?”
余應之曰汝又不達業因故로亦致此問이로다. 文殊云사迷妄有虛空이오依空立世界ㅣ라. 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라니此皆識心之所變也ㅣ니라.見上卷世界起始也 故云如人不干迷悟之人也이因地心地也而倒倒者迷一心而妄發空謳也라가因地而起起者悟一心而起無邊妙用也니地向汝道甚麽오.本無迷悟之圓明心地曾不令人悟曾不令人迷而人自倒自起也
내가 대답했다.
“네가 또 업인을 통달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역시나 이런 질문을 하는구나. 문수보살께서 말씀하시기를 ‘혼미한 망상으로 허공이 있고, 허공을 의지하여 세계를 세운다’고 하고, ‘번뇌에 휩싸인 먼지처럼 수많은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지해 생겨난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모두 식심이 변화한 것이다.상권 「26. 세계가 일어난 시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라. 따라서 말씀하시기를 ‘마치 사람이미혹과 깨달음에 간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땅으로심지를 뜻한다. 인해 넘어졌다가‘넘어졌다’는 것은 일심을 미혹해 함부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땅으로 인해 일어남과‘일어난다’는 것은 일심을 깨달아 가없는 오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같다’고 하였으니, 땅이 너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미혹도 깨달음도 본래 없는 원만하고 밝은 마음의 땅은 사람들을 깨닫게 한 적도 없고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넘어지고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다.
△彼又曰子謂初日月之始生야爲以天人之福力故ㅣ라니吾實不信노라.
그가 또 물었다.
“당신이 말하기를 ‘겁초에 해와 달이 처음 생긴 것이 천인들의 복력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정말 믿지 못하겠다.”
余曰天下에有一王者興焉이면則以其福運之故로海朝而山擁며江海漸廻山嶽聳來鳥祥而獸瑞鳳凰來遊麒麟出現며時和而歲豊고萬物皆樂이라가及乎福脫야一切를皆失나니祁周之將込山崩而川渴高麗之運盡水退而霧收也是誰使然也오. 世人之福도猶尙如此은況於天人乎아? 然이나無常이非惟라天豈久ㅣ리오? 吾今略引諸天之墜落야爲汝說之리라.
내가 말했다.
“천하에 왕다운 자가 한 사람 출현하면 그의 복이 이어지는 덕분에 바다가 조알하고 산들이 옹위하며강은 바다를 향해 차츰차츰 돌아가고 산은 산맥을 향해 우뚝우뚝 다가간다. 상서로운 새와 짐승이 출현하고봉황이 찾아와 노닐고 기린이 출현한다. 사계절이 조화롭고 한 해가 풍성하며 만물이 모두 즐겁다. 그러다가 복이 떨어지게 되면 일체를 모두 잃으니,성대하던 주나라가 쇠망하려 하자 산이 무너지고 시내가 말랐으며, 이어지던 고려 왕조가 다하자 강물이 물러나고 안개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것이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인가? 세상 사람의 복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천인이겠는가? 그렇지만 덧없음은 예외가 없으니, 하늘인들 어찌 장구하겠는가. 내가 이제 모든 하늘의 타락을 간략히 인용하여 너를 위해 설하겠다.
50. 다섯 가지 쇠퇴 현상(五衰相現)
因果經에云天人이身淨야不受塵垢며有大光明야心常歡悅야無不適意之事ㅣ로 猶爲欲火所煎야福盡之時에五衰相이現나니, 一者頭上에華萎며二者眼瞬고三者身上光滅고四者腋下汗出고五者自然離於本座ㅣ라니라.
『인과경』에서 이르기를, “천인은 몸이 깨끗하여 먼지나 때가 끼지 않으며, 큰 광명이 있어 마음이 항상 기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의 불길에 애가 타 복이 다할 때에는 다섯 가지 쇠퇴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첫째는 머리 위의 꽃이 시들고, 둘째는 눈을 깜빡거리며, 셋째는 몸의 광명이 사라지고, 넷째는 겨드랑이 아래로 땀이 흐르며, 다섯째는 자연히 본래 자리에서 떠난다.”라고 했다.
又云此諸天子ㅣ本修少善야得受天樂이라가果報將盡에生大苦惱할墮三惡道나니라. 本造善行은爲求樂報ㅣ라令得少樂이라가後復多苦니譬如飢人이噉雜毒食야初雖爲美나終成大患나니云何智者ㅣ貪樂此也ㅣ리오? 色無色界諸天이見壽命長고便謂常樂이러니旣見變壞고生大苦惱야卽起邪見야謗無因果라니以此事故로輪回三塗야備受諸苦나니三界之中에無有一樂이니라.
또 이르기를, “이 여러 천자들은 과거에 선을 조금 닦아 하늘 나라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과보가 장차 다하게 되면 큰 고뇌를 일으키기에 삼악도에 떨어진다. 과거에 선행을 지었던 것이 즐거운 과보를 얻기 위함이었기에 소소한 즐거움만 얻게 하다가 나중에는 다시 많은 괴로움을 얻게 한다. 비유하자면 굶주린 사람이 독이 섞인 음식을 먹으면 당장엔 비록 맛있지만 결국 큰 우환이 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지혜로운 자가 이런 것을 탐하고 즐거워하겠는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하늘들이 수명이 긴 것을 보고 곧 ‘영원하고 즐겁다’고 여기지만 변화하여 파괴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큰 고뇌가 생긴다. 그래서 곧 삿된 견해를 일으켜 ‘인과가 없다’고 비방한다. 이런 일 때문에 삼도에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빠짐없이 받는 것이니, 삼계 가운데에는 즐거움이라 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51. 본원으로 돌아감을 밝힘(明辨返本還源)
問曰返本還源者何謂也오?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근본으로 돌이키고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答曰衆生이迷眞逐妄야流浪生死海中이라가因善知識敎야還得本心本性也ㅣ니라. 然이나還鄕이盡是兒孫事ㅣ라祖父從來로不出門이로다.
용성이 대답했다.
“중생이 진실로 미혹하고 거짓을 쫓아 생사의 바다에 유랑하다가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인해 본래 마음의 본래 성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게 모조리 아들과 손자의 일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여태까지 문을 나선 적이 없다.”
問曰孔氏其返本還源否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공자는 본원으로 돌아갔는가?”
答曰孔氏立綱常正人倫며遏人欲存天理而已라其返本還源은余所不知也ㅣ로라.
0001_0081_a_01L용성이 대답했다.
“공자는 강상의 도덕을 수립하고 인륜을 바르게 하며, 인간의 욕심을 억누르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했을 뿐이다. 그가 본원으로 돌아갔는지 여부는 내가 모르는 바이다.”
問曰孔氏之敎以心性으로爲宗爲趣니其不曰返本還源乎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공자의 가르침은 마음의 성품으로 으뜸을 삼고 나아갈 바를 삼으니, 그것을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答孔氏之敎其所謂心者生滅之心이오. 其所謂性者天命之性이라非如來의大覺之性也ㅣ니라.已見上卷
용성이 대답했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그가 말한 마음은 생멸하는 마음이고, 그가 말한 성품은 하늘이 명한 성품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대각의 성품은 아니다.”상권에서 이미 설명했다.
問曰老氏其返本還源否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노자는 본원으로 돌아갔는가?”
答曰老宗自然니非返本還源也ㅣ니라.廣載上卷也
용성이 대답했다.
“노자는 자연을 으뜸으로 삼았으니, 본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상권에 자세히 실려 있다.
曰耶蘇其返本還源否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예수는 본원으로 돌아갔는가?”
余云耶蘇以生天爲宗니非返本還源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했다.
“예수는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으니, 본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曰仙其返本還源否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신선들은 본원으로 돌아갔는가?”
余云仙은以長生久視로爲宗니非返本還源也ㅣ니라.注見楞巖經十種仙
용성이 대답했다.
“신선은 오래 살면서 길게 보는 것으로 으뜸을 삼으니, 본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능엄경』에서 설한 열 가지 신선에 대한 설명을 보라.
問曰天是返本還源者乎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하늘은 본원으로 돌아간 자들인가?”
余云三界諸天은有惑漏니非返本還源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했다.
“삼계의 모든 하늘에게 미혹과 번뇌가 있으니, 본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曰然則孰爲返本還源者歟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본원으로 돌아간 자인가?”
余云其返本還源者는其唯釋氏乎뎌.
내가 말했다.
“본원으로 돌아간 자는 오직 석가뿐이시다.”
52. 불교 경전의 심천을 밝힘(辨明內典深淺)
經에云一切賢聖이皆以無爲法으로以有差別이라시니故로在聲聞야名爲四諦ㅣ오在緣覺야名爲十二緣이오在菩薩야名爲六度ㅣ오在佛야名爲一佛乘이니譬如大海深廣難思어든諸大小魚族之類가隨機飮噉無時호而大海無有增滅인달야佛法도亦然야一切賢聖이隨根修證야各得解脫호佛之覺海無有增滅也ㅣ니라. 至下別明호리라.
0001_0081_b_01L『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 현성이 모두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었다.”라고 하셨다. 따라서 성문 입장에서는 사성제라 하고, 연각 입장에서는 십이인연이라 하며, 보살 입장에서는 육바라밀이라 하고, 부처 입장에서는 일불승이라 한다. 비유하자면 큰 바다는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기 어렵기에 크고 작은 모든 어류들이 각자 생김새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마시더라도 큰 바다는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것과 같다. 불법 또한 마찬가지라 일체 현성이 근기를 따라 닦고 증득하여 각자 해탈을 얻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다는 늘거나 줄어듦이 없다. 아래에서 이를 구별하여 밝히겠다.
53. 성문에 대해 밝힘(略明四果聲聞)
須陀洹者唐言에逆流ㅣ며亦云入流ㅣ니斷三結及八十八使고入聖流之謂也ㅣ니라.八十八使竝三結者一功衆生之煩惱惑結廣載諸經也 斯陀含者此云一往來ㅣ니斷欲界六品修惑고從此命終야一往天上고一來人間야便得阿羅漢果故로名一來果也ㅣ니라.廣載諸經
수다원은 한문으로 역류이고, 또한 입류라고도 한다. 삼결三結 및 팔십팔사八十八使를 끊고, 성스러운 강물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팔십팔사와 삼결은 일체중생의 번뇌와 미혹의 결박이다. 자세한 것은 경전에 나온다.
사다함은 중국말로 일왕래다. 욕계의 수혹 가운데 6품을 끊고 이곳에서 수명이 끝났다면, 한 번 천상으로 갔다가 한 번 인간세계로 돌아와 곧바로 아라한과를 얻는다. 따라서 일래과라 한다.자세한 것은 경전에 나온다.
阿那含者此云不來ㅣ며亦云不還이니斷欲界九品修惑고命終에一往天上야更不還來下界故로名不來果也ㅣ니라.廣載諸經 阿羅漢者此云無諍이니無諍者無煩惱可斷며無貪嗔可離야情無違順며心境俱空야內外常寂故로是名阿羅漢이니라. 此四果人이滅三界之惑고證無漏之道나니,
아나함은 중국말로 불래이고, 또한 불환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9품 수혹을 끊고 수명이 끝났다면, 한번 천상으로 가서 다시는 아래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불래과라 한다.자세한 것은 경전에 나온다.
아라한은 중국말로 무쟁이라 한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끊어야 할 번뇌가 없고 떠나야 할 탐욕과 성냄이 없어서 거역하거나 순응하는 식정이 없고, 마음과 경계가 함께 공하여 안팎이 항상 고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아라한이라 한다. 이 네 가지 과를 성취한 사람은 삼계의 미혹을 멸하고 무루의 도를 증득한다.
所謂三界者三業所感이라摠二十八이니欲界有六이오色界有十八이오無色界有四니라. 具勝妙欲이名爲欲界ㅣ오形色超絶이名爲色界오根境兩忘이名爲無色界ㅣ니超出三界故로名出生死ㅣ니라. 修行之要가有四諦焉니一曰苦諦ㅣ오二曰集諦ㅣ오三曰滅諦ㅣ오四曰道諦ㅣ니盖苦諦是果ㅣ오集諦是因이라三界苦海가唯身口意三業에所集이니欲除苦果先斷集因이니라. 又滅諦是果ㅣ오道諦是因이니由修道因야斷苦果之集因고證寂滅之果也ㅣ니라. 因果倒置者使世人으로先知怖果而絶因也ㅣ니라.聲聞人行狀細細密密諸經廣載然此略之矣
0001_0082_a_01L이른바 삼계란 세 가지 업이 초래한 것으로서 모두 스물여덟 곳이 있으니, 욕계에 여섯 곳이 있고, 색계에 열여덟 곳이 있으며, 무색계에 네 곳이 있다. 수승하고 묘한 욕망을 구족한 곳을 욕계라 하고, 형태와 빛깔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난 곳을 색계라 하며, 감각기관과 경계가 양쪽 모두 사라진 곳을 무색계라 하고, 삼계를 훌쩍 벗어났기 때문에 생사를 벗어났다고 한다.
수행의 핵심은 사제에 있으니 첫째는 고제, 둘째는 집제, 셋째는 멸제, 넷째는 도제다. 여기에서 고제는 결과이고, 집제는 원인이다. 삼계의 고해는 오직 신·구·의 세 가지 업이 모인 것일 뿐이다. 따라서 결과인 고통을 제거하려면 먼저 원인인 모음을 끊어야 한다. 멸제는 결과이고, 도제는 원인이다. 원인인 도를 닦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운 결과의 원인인 모음을 끊고 적멸이라는 결과를 증득하게 된다.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배치한 것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두려운 결과를 알아 원인을 끊게 하려는 것이다.성문들의 수행 과정은 매우 세밀하다. 여러 경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간략히 요약했다.
54. 연각에 대해 밝힘(略明緣覺)
緣覺者根性猛利之人이不由師訓고能知內外二分니外分者觀彼草木榮枯고能知天地萬物이皆有壞空成住며內分者觀彼生老病死고能知心有生住異滅야覺悟十二因緣故로名緣覺也ㅣ니라.
연각이란 근성이 맹렬하고 예리한 사람이 스승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내분과 외분 두 가지를 능히 아는 것이다. 외분을 안다는 것은 저 풀과 나무가 무성해졌다가 시드는 것을 관찰하고 천지만물에 모두 파괴·공함·변화·소멸이 있다는 것을 알아 십이인연법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연각이라 한다.
所謂十二因緣者無明緣으로行고行緣으로識고識緣으로名色고名色緣으로六入고六入緣으로觸고觸緣으로受고受緣으로愛고愛緣으로取고取緣으로有고有緣으로生고生緣으로老死나니라. 復以無所得覺觀智慧로能斷十二因緣고證無漏之妙道故로名爲緣覺也ㅣ니라.
이른바 십이인연이란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육입이 있으며, 육입을 인연하여 촉이 있고, 촉을 인연하여 수가 있으며, 수를 인연하여 애가 있고, 애를 인연하여 취가 있으며, 취를 인연하여 유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노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얻는 바 없이 깨닫고 관찰하는 지혜로 능히 십이인연을 끊고 무루의 오묘한 도를 증득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연각이라 한다.
此十二因緣支가一一支中에各具五蘊니謂色受想行識이是也ㅣ라. 而人이於可愛境에由無知故로起貪着나니無知者是無明이오貪着者是行이오了別境者是識이오識具諸蘊是名色이오名色所依根이是六處ㅣ오六處和合이是觸이오能領觸者是受ㅣ오欣然受者是愛ㅣ오愛增廣者是取ㅣ오引後業者是有ㅣ오諸蘊起者是生이오諸蘊熟變者是老ㅣ오諸蘊이滅壞者是死ㅣ오意識相應不平等受者是憂ㅣ오哀泣者是悲ㅣ오五識相應等ㅣ不平受者是苦ㅣ오心樵悶者是惱ㅣ니無明이滅則行이滅고行이滅則識이滅고識이滅則名色이滅고名色이滅則六處ㅣ滅고六處ㅣ滅則觸이滅고觸이滅則受ㅣ滅고受ㅣ滅則愛ㅣ滅고愛ㅣ滅則取ㅣ滅고取ㅣ滅則有ㅣ滅고有ㅣ滅則生이滅고生이滅則老死憂悲苦惱ㅣ滅나니故로云諸法이從本來로常自寂滅相이니佛子行道已면來世得作佛이라시니라.此緣覺行狀細密廣載諸經也 此緣覺乘人이雖解了甚深이나然이나大悲方便이不具足故로位在菩薩下ㅣ니라.
0001_0082_b_01L이 십이인연 낱낱의 지마다 각각 오온을 구족하니, 말하자면 색·수·상·행·식이 그것이다. 사람은 사랑스러운 대상에 대해 무지로 인해 탐착을 일으킨다. 그 무지가 바로 ‘무명’이고, 탐착이 바로 ‘행’이다. 경계를 확실히 분별하는 것이 ‘식’이고, 식이 나머지 온들을 갖추는 것이 ‘명색’이며, 명색에서 의지처가 되는 근이 ‘육처’이고, (안팎의) 육처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며, 능히 접촉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이고,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애’이며, 애가 늘어나고 넓어지는 것이 ‘취’이고, 다음 업을 이끄는 것이 ‘유’이며, 모든 온이 일어나는 것이 ‘생’이고, 모든 온이 성숙하고 변화하는 것이 ‘노’이며, 모든 온이 소멸하고 파괴되는 것이 ‘사’이고, 의식과 상응한 것이 조화롭지 못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이며, 슬피 우는 것이 ‘비’이고, 오식과 상응한 것 등이 조화롭지 못하게 느껴지는 것이 ‘고’이며, 마음이 초조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뇌’이다.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며,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육처가 소멸하며, 육처가 소멸하면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면 수가 소멸하며, 수가 소멸하면 애가 소멸하고, 애가 소멸하면 취가 소멸하며, 취가 소멸하면 유가 소멸하고, 유가 소멸하면 생이 소멸하며, 생이 소멸하면 노·사·우·비·고·뇌가 소멸한다. 따라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니, 불자가 도를 행하고 나면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라고 하셨다.연각들의 수행 과정은 세밀하다. 여러 경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 연각승을 닦는 사람은 이해와 깨달음이 매우 깊긴 하지만 대비의 방편이 구족하지 못하다. 따라서 지위가 보살 아래에 있다.
55. 불보살의 수행차제를 밝힘(略明佛菩薩修行次第)
原夫佛菩薩所證境界가廣大無限야海墨書而難盡이라故로略取楞嚴야明之노라.
원래 불보살께서 증득하신 경계는 광대하고 무한하여 바닷물로 먹을 갈더라도 다 쓸 수가 없다. 따라서 『능엄경』에서 간략히 취하여 이를 설명하겠다.
1) 간혜지乾慧地
楞巖經에佛告阿難사善男子야欲愛乾枯煩惱障盡也야根과境이不偶면所知障盡也現前殘質이不復續生며報障不復續生也執心이虛明야純是智慧라慧性이明圓야瑩十方界나乾有其慧할名이乾慧地ㅣ니라.初入此位未與如來法流水接則乾有其慧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