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법화종요(法華宗要) / 法華宗要

ABC_BJ_H0006_T_001

001_0487_c_01L
법화종요法華宗要
법화종요法華宗要
원효 대사 찬 元曉師撰

이 경을 해석하는 데 대략 여섯 문으로 나누어 열고자 한다. 처음은 대의를 서술하고, 다음은 경의 종지를 가리고, 셋째는 경문의 작용(詮用)을 밝히고,1) 넷째는 제목을 풀이하고, 다섯째는 교설의 섭수를 드러내고,2) 여섯째는 경문의 뜻을 풀이한다.

제1편 대의를 서술함(述大意者)
첫째, 대의를 서술한다. 『묘법연화경』은 삼세제불이 세상에 출현하는 큰 뜻이며, 구도九道3) 사생四生4)이 모두 한 도에 들어가는 큰 문이다. 문장이 교묘하고 뜻이 깊으니 오묘함은 궁극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 말씀이 두루하고 이치가 크니 법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문장과 말씀이 교묘하고 두루함은 꽃이 피어 열매를 품은 듯하고,5) 뜻과 이치가 깊고 큰 것은 진실하면서 방편을 함께하였다. 이치가 깊고 크다는 것은 둘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요,6) 말씀이 교묘하고 두루하다는 것은 방편을 열어 진실을 보임이다. 방편을 연다는 것은 문밖의 세 수레7)는 방편이고, 중도의 보배성이 화작이며,8)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것은 처음이 아니고, 쌍림 사이에 멸도에 든 것이 끝이 아님을9) 연 것이다. 진실을 보인다는 것은 사생이 나란히 나의 아들이고,10) 이승二乘이 다 성불할 것이며, 산수로 그 수명을 헤아릴 수 없음이요, 겁화로도 그 국토를 태울 수 없음을 보인 것이니, 이를 경문과 말씀이 교묘하다고 한다. ‘둘도 없다’란 오직 일대사인연11)으로 열어서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서 위없고 다름이 없음을 알아서 증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름이 없다’란 세 가지가 평등하여12) 모든 승(諸乘), 모든 몸(諸身)이 모두 한가지로 같고, 세간과 열반이 두 경계를 영원히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를 뜻과 이치가 깊고 묘하다고 한다.

001_0487_c_01L[法華宗要]

001_0487_c_02L1)法華宗要

001_0487_c_03L

001_0487_c_04L元曉師撰

001_0487_c_05L
將欲解釋此經略開六門分別初述大
001_0487_c_06L次辨經宗三明詮用四釋題名五顯敎
001_0487_c_07L六消文義 [1]

001_0487_c_08L初述大意者
妙法蓮華經者斯乃十方
001_0487_c_09L三世諸佛出世之大意九道四生2) [1]
001_0487_c_10L一道之弘門也文巧義深無妙不極
001_0487_c_11L敷理泰無法不宣文辭巧敷3) [2] 而含
001_0487_c_12L義理深泰實而帶權理深泰者
001_0487_c_13L二無別也辭巧敷者開權示實也開權
001_0487_c_14L開門外三車是權中途寶城是化
001_0487_c_15L下成道非始林間滅度非終示質 [2]
001_0487_c_16L4) [3] 生並是吾子二乘皆當作佛5) [4]
001_0487_c_17L不足量共 [3] 刧火不能燒其6) [5] 是謂文
001_0487_c_18L辭之巧妙也言無二者唯一大事
001_0487_c_19L佛知見開示悟入無上無異令知令證故
001_0487_c_20L言無別者三種平等諸乘諸身皆同一
001_0487_c_21L世間涅槃永離二際故是謂義理之
001_0487_c_22L{底}新修大藏經第三十四卷(弘安六年相承二
001_0487_c_23L和寺藏本){甲}東文選第八十三卷所載法華經宗
001_0487_c_24L要序
「滅」作「咸」{甲}「花」作「華」{甲}
001_0487_c_25L作「四」{甲}
「算」作「塵」{甲}「立」作「土」{甲}

001_0488_a_01L이는 곧 문장의 이치가 다 묘하여 그윽하지 않음이 없으며, 곧 거친 법13)를 여의었으므로 이에 묘법妙法이라 부르는 것이다.

방편의 꽃이 열리어 펼쳐지면 진실의 열매가 크게 드러나니14) 물듦이 없는 아름다움을 연꽃을 빌어 비유하였다. 그러나 묘한 법은 교묘하게 끊어졌으니15) 무엇을 삼승이라 하고 무엇을 일승이라고 하며, 지극히 오래되어 지극히 아득하니16) 누가 짧고 누가 길다 하겠는가. 이곳은 황홀하여 들어오기가 쉽지 않고, 아들들이 철없이 노느라 나오기가 매우 어려웠다.17) 이에 여래가 녹야원18)에서 양의 수레로 꾀어내어 상대가 있는 추한 몸을 나타내서19) 방편으로 인도하였으며, 영축산에서 백우를 타고20) 한량없는 긴 수명을21) 드러냈다.
이에 곧 하나를 빌어서 셋을 파하고,22) 셋이 제거되어 하나도 버렸으며,23) 긴 것을 빌어서 짧은 것을 물리치니24) 수명이 짧은 것을 쉬어서 긴 것도 잊어버리게 되었다.25)
이 법은 보여 줄 수도 없으니 말과 글의 모습이 적멸하였고, 텅 비어 걸릴 것이 없고 고요하여 의지할 것을 떠났으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서 억지로 ‘묘법연화’라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자리를 나누어 듣게 되는 자는 장차 전륜왕·제석·범천왕26)의 자리를 받으며,27) 한 구절이라도 귀에 스친28) 사람도 나란히 위없는 보리의 수기29)를 얻을 것인데, 하물며 받아 지니고 연설하는 복이야30) 어찌 헤아려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큰 뜻을 들어 제목으로 하였으므로 “묘법연화경”이라고 한 것이다.

제2편 『법화경』의 종지를 밝힘(辨經宗者)
둘째, 경의 종지를 밝힌다. 이 경은 바로 광대하고 매우 심오한 일승실상一乘實相31)을 드러내고자 하는 종지로 한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비록 그렇지만 이를 나누어 보면, 일승실상은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타는 사람(能乘人)32)과 타는 법(所乘法)33)이다.

제1장 타는 사람(能乘人)
이 경에서 설하는 일승인은 삼승을 닦는 사람, 네 종류의 성문,34) 삼계에 있는 네 가지로 태어나는 중생들이 모두 (일불승을) 타는 일불승 사람이다. 이들은 다 부처의 아들이 되며 모두 보살이니, 모두 불성이 있어서 부처의 지위를 이을 것이기 때문이요, 나아가 무성유정無性有情35) 또한 모두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운경寶雲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발심하여 곧 이렇게 생각한다.

001_0488_a_01L深妙也斯則文理1) [6] 妙無非玄則離
001_0488_a_02L麁之軌乃稱妙法2) [7] 開敷實菓泰彰
001_0488_a_03L無染之美假楡蓮花然妙法妙絶何三
001_0488_a_04L何一3) [8] 至冥誰短誰長4)▣▣總 [9]
001_0488_a_05L入之不易諸子瀾漫出之良難5) [10]
001_0488_a_06L來引之6) [11] 7) [12] 於鹿苑示有8) [13]
001_0488_a_07L9) [14] 駕白牛於鷲岳顯無限之長命
001_0488_a_08L10)迺▣ [15] 一以破三11) [16] 而一捨
001_0488_a_09L12) [17] 13) [18] 短息而14) [19] 15) [20] 是法不
001_0488_a_10L可示言辭相寂滅16) [21] 然靡據17) [22] 焉離寄
001_0488_a_11L不知何以言之稱强18) [23] 妙法蓮19) [24]
001_0488_a_12L以分坐令聞之者 20) [25] 受輪王釋梵之座
001_0488_a_13L21) [26] 耳一句之人並得無上菩提之記
001_0488_a_14L況乎受持演說之福豈可思議所量乎
001_0488_a_15L擧是大意以標題目故言妙法蓮
001_0488_a_16L*花經也

001_0488_a_17L第二辨經宗者
此經正以廣大甚深
001_0488_a_18L乘實相爲所詮宗總說雖然於中分別
001_0488_a_19L一乘實相略說有二謂能乘人及所
001_0488_a_20L乘法
[能乘人]
此經所說一乘人者三乘行人
001_0488_a_21L種聲聞三界所有四生衆生並是能乘
001_0488_a_22L一佛乘人皆爲佛子悉是菩薩以皆
001_0488_a_23L有佛性當紹佛位故乃至無性有情
001_0488_a_24L皆當作佛故如寶雲經言菩薩發心便

001_0488_b_01L‘일체의 세계 가운데 지혜가 거의 없는 중생으로 어리석고 어두워 열반의 소질이 없어서 신심을 내지 않는 자와 일체 제불보살이 포기한 자, 이와 같은 중생을 내가 다 조복하며 나아가 도량에 앉아 아뇩보리를 얻게 하리라.’ 이와 같은 마음을 낼 때 마군의 궁전이 진동한다.” 또, “보살이 성불할 때 갖가지 원이 이루어진다.”36)고 말씀하셨다.
『법화경』의 「방편품」에서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만 보살을 교화한다.”37)고 하셨고, 「비유품」에서는, “일체중생이 다 내 아들이다.”38)라고 하셨기 때문이요, 또 “모든 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니 불자가 도를 행하면 내세에는 부처가 된다.”39)고 하셨다. 이는 곧 한 중생도 불자 아님이 없음이니 이러한 까닭에 넓고 크다고 하였으며, 이 중생계가 곧 열반계이니 이런 까닭으로 매우 깊다는 것이다. 이는 논에서 “삼계의 모습은 중생계가 곧 열반계임을 말하는 것이니, 중생계를 떠나서 여래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40)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이를 (일불승을) 타는 일불승인이라 한다.

제2장 타는 법(所乘法)
이 일승의 사람이 타는 법은 간략히 말하면 네 종류의 ‘일一’이 있다. 즉 일승의 이치, 일승의 가르침, 일승의 원인, 일승의 결과이다.

1. 일승의 이치(一乘理者)
‘일승의 이치’란 일법계를 말하며, 또한 법신法身이라 하고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한다.
『살차니건자경』에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만약 삼승이 성품에 차별이 없다면 어째서 여래께서는 삼승법을 설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와 여래가 삼승을 설한 것은 지위의 차별41)을 보인 것이지 승법(乘)의 차별42)을 보인 것이 아니며, 사람 (수준의) 차별을 설한 것이지 승법의 차별은 아니다.43) 모든 부처와 여래가 삼승을 설한 것은 적은 공덕을 보여서 많은 공덕을 알게 하는 것이니,44) 불법에는 승법의 차별이 없다. 법계의 법성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45)
『금광명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법계는 분별이 없으니46) 이러한 까닭으로 다른 승법47)이 없으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삼승을 분별48)하여 설하였다.”49)라고 하였다. 또 이 경(『법화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 여래가 저 법의 구경 실상50)을 잘 안다.”51)고 하였다.

001_0488_b_01L作是念一切世界少智衆生愚癡瘖瘂
001_0488_b_02L無涅槃分不生信心者▣▣ [4] 菩薩之所
001_0488_b_03L棄捨如是衆生我皆調伏乃至坐於道
001_0488_b_04L得阿耨菩提發此心時魔宮震動
001_0488_b_05L菩薩成佛衆願滿足方便品說
001_0488_b_06L世諸佛但敎化菩薩譬喩品云一切衆
001_0488_b_07L生皆是吾子故又言諸法從本來當自
001_0488_b_08L寂滅相佛子▣道已來世得作佛
001_0488_b_09L則無一衆生而非佛子所以廣大此衆
001_0488_b_10L生界卽涅槃界是故甚深如論說言
001_0488_b_11L界相者謂衆生界卽涅槃界不離衆生
001_0488_b_12L有如來藏故是謂能乘一佛乘人也

001_0488_b_13L[所乘法]
此一乘人所乘之法略而說之有四種
001_0488_b_14L謂一乘理及一乘致一乘之因一乘
001_0488_b_15L之果
一乘理者
謂一法界亦名法身
001_0488_b_16L名如來藏如薩遮尼撻子經云文殊師
001_0488_b_17L利白佛言若無三乘差別性者何故如
001_0488_b_18L來說三乘法佛言諸佛如來說三乘者
001_0488_b_19L示地差別非乘差別說人差別非乘
001_0488_b_20L差別諸佛如來說三乘者示小功德知
001_0488_b_21L多功德而佛法中無乘差別何以故
001_0488_b_22L法界法無差別故金光明經言法界無
001_0488_b_23L分別是故無異乘爲度衆生故分別說
001_0488_b_24L三乘又此經言諸佛如來能知彼法

001_0488_c_01L논에서는 이를 해석하여, “실상이란 여래장을 말하는데 법신의 체는 변하지 않는 상이기 때문이다.”52라고 하였다. 또 그 아래의 글에서 “같다는 것은 모든 부처52)여래의 법신 성품은 범부와 성문과 벽지불 등과 같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 법신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53)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여래의 법신과 여래장 성품은 일체중생이 평등하게 가지고 있어서 일체를 움직여서 본래의 근원으로 같이 돌아가니,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다른 승법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이 일승의 성품이 된다고 말하고 이 같은 것을 일승의 이치라고 한다.

2. 일승의 가르침(一乘敎者)
일승의 가르침이란 시방 삼세 모든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고부터 열반에 들 때까지 그 사이에 설한 온갖 언설의 가르침으로, 일체지一切智의 경지54)에 이르게 하지 않음이 없다. 이런 까닭에 모두 일승의 가르침이라 한다.
「방편품」에서 “이 모든 부처님이 또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는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의 말씀으로 중생을 위하여 온갖 법을 펴서 설하셨다. 이 법은 모두 일불승을 위한 까닭에 이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마침내 모두 일체종지55)를 얻는다.”56)고 하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시방 삼세에 두루 통하여 헤아릴 수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에 광대한 것이며, 한 말씀이나 한 글귀가 모두 불승佛乘이 되어 한 모양(一相)57) 한 맛(一味)58)59)이므로 깊고 깊은 것이다. 이와 같아서 일불승의 가르침이라 한다.

3. 일승의 원인(一乘因者)
일승의 원인은 전체적으로 설하면 둘이 있다.

001_0488_c_01L竟實相論釋此云實相者謂如來藏
001_0488_c_02L法身之體不變相故又下文言同者
001_0488_c_03L示諸佛如來法身之性同諸凡夫聲聞辟
001_0488_c_04L支佛等法身平等無有差別故案云
001_0488_c_05L來法身如來藏性一切衆生平等所有
001_0488_c_06L能運一切同歸本原由是道理無有異
001_0488_c_07L故說此法爲一乘性如是名爲一乘
001_0488_c_08L理也
一乘敎者
十方三世一切諸佛
001_0488_c_09L初成道乃至涅槃其間所說一切言敎
001_0488_c_10L莫不令至一切智地是故皆名爲一乘
001_0488_c_11L如方便品言是諸佛亦以無量無數
001_0488_c_12L方便種種因緣譬楡言辭而爲衆生演
001_0488_c_13L說諸法是法皆爲一佛乘故是諸衆生
001_0488_c_14L從佛聞法究竟皆得一切種智故是敎
001_0488_c_15L遍通十方三世無量無邊所以廣大
001_0488_c_16L一言一句皆爲佛乘一相一味是故甚
001_0488_c_17L如是名爲一乘敎也
一乘因者
總說
001_0488_c_18L「滅」作「咸」{甲}「華」作「花」{甲}「久」作
001_0488_c_19L「人」{甲}
「▣▣總」作「處怳惚」{甲}「是」上
001_0488_c_20L有「於」{甲}
▣作「以」{甲}▣作「羊」{甲}
001_0488_c_21L▣作「待」{甲}
「麁」作「危」{甲}「迺▣」作「乃
001_0488_c_22L偕」{甲}
「除」下有「而」{甲}▣作「修」{甲}
001_0488_c_23L▣作「斥」{甲}
▣作「修」{甲}「忘」作「亡」{甲}
001_0488_c_24L
「蕩」作「儻」{甲}「肅」作「簫」{甲}「稱」「號」
001_0488_c_25L{甲}
「花」作「華」次同{甲}「當」作「尙」{甲}
001_0488_c_26L
「逕」作「經」{甲}

001_0489_a_01L첫째 성품의 원인60)이고, 둘째 작용의 원인61)이다.


1) 성품의 원인

성품의 원인이란 일체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불성이 삼신三身의 과62)를 이루는데 작용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상불경보살품」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노라. 그대들은 다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63)라고 한 것과 같다. 『논』에서 이 말씀을 해석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음을 보인 것”64)이라고 하였다. 또한 “결정성65)과 증상만66) 두 종성의 성문은 근기가 미숙하므로 부처님이 수기를 주지 않고,67) 보살이 수기를 준다.68) 보살이 수기를 준다는 것은 방편으로 발심하도록 하기 위한 까닭이다.”69)라고 하였다. 이 경의 뜻에 의지하여 말하면, 적멸에 나아간 이승과 무성유정70)도 다 불성이 있어서 마땅히 부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작용의 원인

작용의 원인이란 성인이나 범부, 내도內道나 외도外道,71) 도분道分이나 복분福分72)의 온갖 선근의 사람들이 함께 무상보리에 이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래의 경문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으니, “혹은 어떤 사람이 예배하고, 혹은 다만 합장하거나, 내지 한 손을 들거나 혹은 다시 조금 고개를 숙이거나,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에서 탑묘73)에 들어가 한 번 ‘나무불’이라고 부른다면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74)고 하는 등 널리 설하였다.75) 『본업경』에서는 “범부와 성인의 온갖 선은 유루과76)를 받지 않고 오로지 상주의 과77)를 받는다.”78)고 하였다. 『대비경』에서는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유三有79)의 과보를 즐거이 집착하면서80) 부처의 복전81)에서 보시와 모든 다른 선근을 행하고서 원컨대 나는 세세에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 선근으로 열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사람이 비록 즐겨 열반을 구하지 않더라도, 부처님 처소에서 온갖 선근을 심었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열반에 들어간다고 내가 설하였다.”82)고 하였다. 『니건자경』 「일승품」에서 “부처님이 문수보살에게 말씀하기를, 나의 불국토에 있는 승가와 니건자83) 등은 모두 여래의 주지住持시키는 힘 때문에 방편으로 이 모든 외도를 나타내 보였다. 선남자들이 비록 갖가지 다른 배움의 모습을 행하지만 다 같은 불법의 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요 그 밖에 다른 건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84)라고 하였다.


3) 일승의 원인을 맺음

살펴보건대, 이 같은 경문에 의하면 마땅히 알라.

001_0489_a_01L有二一者性因二者作因言性因者
001_0489_a_02L切衆生 [5] 有佛性爲三身果而作因故
001_0489_a_03L常不輕菩薩品云我不輕汝汝等皆當
001_0489_a_04L作佛論釋此言示諸衆生皆有佛性故
001_0489_a_05L又言決定增上慢二種聲聞根未熟故
001_0489_a_06L佛不與授記菩薩與授記菩薩與授記
001_0489_a_07L方便令發心故當知依此經意而說
001_0489_a_08L趣寂二乘無性有情皆有佛性悉當作佛
001_0489_a_09L言作因者若聖若凡內道外道道分福
001_0489_a_10L分一切善根莫不同至無上菩提如下
001_0489_a_11L文言或有人禮拜或復但合掌乃至
001_0489_a_12L擧一手或復少傾頭若人散亂心入於
001_0489_a_13L塔廟中一稱▣ [6] 無佛皆已成佛道乃至廣
001_0489_a_14L本乘 [7] 經言凡聖一切善不受有漏果
001_0489_a_15L唯受常住之果大悲經言佛告阿難
001_0489_a_16L若人樂着三有果報於佛福田若行布
001_0489_a_17L施諸餘善根願我世世莫入涅槃以此
001_0489_a_18L善根不入涅槃無有是處是人雖不樂
001_0489_a_19L求涅槃然於佛所種諸善根我說是人
001_0489_a_20L必入涅槃尼健子經一乘品言佛語文
001_0489_a_21L我佛國▣ [8] 所有僧伽尼乾子等皆是
001_0489_a_22L如來住持力故方便示現此諸外道
001_0489_a_23L男子等雖行種種諸異學相皆同佛法
001_0489_a_24L一橋梁度更無餘度故[一乘因者]案云依此等

001_0489_b_01L불법의 오승五乘85)의 모든 선근이나 외도의 갖가지 다른 선근, 이런 일체가 모두 일승이다. 모두 불성에 의지할 뿐 다른 본체가 없기 때문이다. 『법화론』에서는 이 뜻을 드러내기를, “무엇을 체와 법이라 하는가. 이치에 두 가지 체가 없음을 말한다. 두 가지 체가 없다는 것은 무량승이 다 일승이기 때문이다.”86)라고 하였다. 아래 경문에서, “그대들이 수행한 것이 보살도다라고 한 것은 (먼저) 보리심을 낸87) 사람이 (중간에) 물러났다가88) 다시 보리심을 낸 것을 말하니,89) 앞에 닦은 선근이 멸하지 않다가 한가지로 뒤의 과(後得果)90)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91)라고 한 것은 종자의 위없는 뜻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발심한 선근만을 말했을 뿐이고, 나머지 선근이 불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앞에서 인용한 경문과 어긋나지 않는다. 이 같은 까닭으로 범부나 성인이나 온갖 중생, 내도, 외도, 온갖 선근이 모두 불성에서 나와서 함께 본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은 본래 오직 부처만이 끝까지 알 수 있으니 이런 뜻으로 광대하고 깊고 깊다고 한다. 이것을 일승의 원인이라고 한다.

4. 일승의 과(一乘果者)
일승과란 간략히 설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본유과本有果92)와 시기과始起果93)이다.


1) 본유과本有果

본유과란 법신불의 보리94)를 말한 것이다. 「여래수량품」에서, “여래는 여실히 삼계의 모습을 알고 보느니, 태어나고 죽는 것이나 물러나고 나오는 것도 없고,95) 또한 세상에 사는 것도 멸도하는 것도 없어서, 진실하지도 않고 허망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96)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경문은 한 법계에 나아가 하나의 과의 체體를 드러낸 것으로, 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고, 체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허망하지도 않다. 진리의 도리(眞諦)97)도 아니기 때문에 같지도 않고, 세속의 도리(俗諦)98)도 아니기 때문에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다. 『본업경』에서는 “과체는 원만하여 갖추지 않은 덕이 없고 두루하지 않은 이치가 없어서, 이름도 없고 모습도 없으니 일체법으로 얻을 수 없으며 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가 없는 것도 아니다.”99) 등으로 자세히 설하였다. 또 말하기를, “두 가지 체 밖에 홀로 존재할 뿐 둘이 없기 때문이다.”100)라고 하였으니 이는 법신불의 보리의 과체를 밝힌 것이다.


2) 시기과始起果

시기과란 다른 두 불신佛身101)을 말한다. 『법화론』에서 “보신불報身佛의 보리는

001_0489_b_01L當知佛法五乘諸善及與外道種種
001_0489_b_02L異善如是一切皆是一乘皆依佛性無
001_0489_b_03L異體故如法花論顯此義云何體法者
001_0489_b_04L謂理無二體無二體者謂無量乘皆是
001_0489_b_05L一乘故而下文言汝等所行是菩薩道
001_0489_b_06L謂發菩提心退已還發者前所修行
001_0489_b_07L善根不滅同後得果故者爲顯種子無
001_0489_b_08L上義故旦約發心善根而說非謂餘善
001_0489_b_09L不得佛果是故▣ [9] 違前所引文由是言
001_0489_b_10L若凡若聖一切衆生內道外道一切
001_0489_b_11L善根皆出佛性同歸本原如是本來唯
001_0489_b_12L佛所窮以是義故廣大甚深如是名爲
001_0489_b_13L一乘因也
一乘果者
略說有二種謂本
001_0489_b_14L有果及始起果本有果者謂法佛菩提
001_0489_b_15L如壽量品云如來如實知見三界之相
001_0489_b_16L無有生死若退若出亦無在世及滅度
001_0489_b_17L非實非虛非如非異案云此文就
001_0489_b_18L一法界顯一果體非有體故非實非無
001_0489_b_19L體故非虛非眞諦故非如非俗諦故非
001_0489_b_20L如本乘 [10] 經云果體圓滿無德不備
001_0489_b_21L無理不周無名無相非一切法可得
001_0489_b_22L有體非無體乃至廣說又言二體之
001_0489_b_23L外獨在無二故是明法佛菩提果體
001_0489_b_24L起果者
謂餘二身如論說言報佛菩提

001_0489_c_01L십지행十地行이 만족되어 영원한 열반을 증득했기 때문이니, 경에서 말씀하기를, ‘내가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102)이기 때문이다.’”103)라고 설한 것과 같다. 응·화신의 보리란 응해서 나타낼 곳을 따라 나타내 보임이다. 곧 석가족의 궁전을 나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었고, 시방에 분신한 제불과 함께함을 말하니, 「보탑품」에서 자세히 밝힌 것과 같다.104)


3) 총설

총괄적으로 말하면, 온갖 중생이 다 만행을 닦으면 다 같이 이 같은 불신의 보리과를 얻으니 이를 일승의 일승과라고 한다. 「방편품」에서 “사라불이여 마땅히 알라. 내가 본래 서원을 세워서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똑같아 다름이 없게 하고자 하였으니, 내가 옛적에 소원한 것이 이제야 만족되어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불도에 들어가게 하였다.”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경문은 여래의 소원이 만족되었음을 바로 밝힌 것이다. 왜냐하면 삼세의 온갖 중생을 두루 교화하여 마땅한 대로 같이 다 불도를 얻게 했기 때문이다. 『보운경』에서 “비유하면 기름 그릇이 이미 가득 채워졌다면 다시 한 방울을 떨어뜨리더라도 끝내 더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의 성불에 갖가지 원이 다 만족되는 것 또한 이와 같아서 다시 한 티끌의 원도 줄어듦이 없다.”105)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대운밀장경』에서는 “대운밀장보살이 세존께 말하였다. ‘오직 원하옵니다. 여래께서는 미래세의 박복한 중생을 위해 심진대해수조삼매深進大海水潮三昧를 설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런 말을 하지 말거라.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기가 어렵고 이 『대운경』을 듣기 또한 어려우니라. 어찌 치우쳐 미래 중생만을 위하겠느냐. 나는 마땅히 두루 삼세 중생을 위하여 널리 열어 분별하리라.’”106)고 하였다.

『화엄경』에서는 “여래가 법륜을 굴리시는 것은 삼세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107)고 하였다. 이 같은 글에 의하면, 모든 부처님은 처음 정각을 이루고 일념 사이에 삼세의 온갖 중생을 두루 교화하여 무상보리를 이루지 않음이 하나도 없으니 옛적에 세운 소원이 이미 만족되었기 때문이다.

001_0489_c_01L十地行滿足得常涅槃證故如經言
001_0489_c_02L我實成佛已來無量無邊百千萬億那
001_0489_c_03L由他刧故應化菩提者隨所應見而爲
001_0489_c_04L示現謂出釋宮樹下成道及與十方分
001_0489_c_05L身諸佛如寶塔品之所廣明總而言之
001_0489_c_06L一切衆生皆修萬行同得如是 ▣ [11] 菩提
001_0489_c_07L是謂一乘一乘果也如方便品云
001_0489_c_08L舍利弗當知我本立誓願欲令一切衆
001_0489_c_09L如我等無異如我昔所願今者已滿足
001_0489_c_10L化一切衆生皆令入佛道案云此文正
001_0489_c_11L明如來所願滿足所以然者遍化三世
001_0489_c_12L一切衆生如應皆令得佛道故如寶雲
001_0489_c_13L經云譬如油鉢若已平滿更投一渧終
001_0489_c_14L不復受菩薩成佛衆願滿足亦復如是
001_0489_c_15L更無減少一塵之願大雲密藏藏經 [12]
001_0489_c_16L大雲密藏菩薩曰言世尊 [13] [14] 唯願如來
001_0489_c_17L未來世薄福衆生演說如是深進大海
001_0489_c_18L水潮三昧佛言善男子莫作是言
001_0489_c_19L以故佛出世難此大雲經聞者亦難
001_0489_c_20L何偏爲未來之吾當遍爲三世衆生廣
001_0489_c_21L [15] 分別花嚴經云如來轉法輪於三
001_0489_c_22L世無不至依此等文當知諸佛初成正
001_0489_c_23L一念之頂 [16] 遍化三世一切衆生無一
001_0489_c_24L不成無上菩提如昔所願已滿足故

001_0490_a_01L설사 한 사람이라도 보리를 이루지 못하였다면 옛적에 세운 소원이 곧 만족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록 진실로 다 제도하더라도 끝이 없고 비록 진실로 끝이 없어도 다 제도되지 않음이 없으니, 무한한 지혜의 힘으로 무한한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의 아래 글에서는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은 지금도 오히려 다하지 않아서 다시 위에서 말한 수의 배가 된다.”108)고 하였다.
논에서 이것을 해석하여 말하였다.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지금도 오히려 만족하지 않았다.’109)는 본래 서원이기 때문이니, 중생계가 다하지 않아서 서원도 다하지 않았으므로 서원이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요, 보리가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루어진 수명이 다시 위에서 말한 수의 배가 된다.’는 여래의 영원한 수명을 방편으로 보여 준 것으로, 위의 수량보다 많이 지나쳐 세어서 알 수 없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110) 이 논의 뜻으로는 지금 제도하여 중생이 다하지 않은 것을 들어 이와 같은 때에는 본원이 아직 만족하지 않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요, 보리가 이미 만족되었는데 그 본원이 만족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아니며, 또한 본원이 만족되지 않았는데 불법이 이미 만족되었다고 설하는 것도 아니다.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온갖 중생이 보리를 이루지 못했으니 불법이 만족하지 않고 본원도 만족하지 않았다.”111) 이런 까닭에 서원과 더불어 보리가 만족하지 않음이 같으니, 만족하면 같이 만족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것을 일승의 과라 한다.

5. 합설合說
합해서 말하면, 이치·가르침·원인·결과의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은 서로 호응하여 함께한 사람을 옮기어 살바야薩婆若112)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를 설하여 일승법이라 한다. 마치 네 마리 말이 상호 응하여 함께 하나로 움직이기 때문에 네 마리 말을 일승一乘이라 하는 것과 같다. 일승법 가운데 도리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치·가르침·원인은 중생을 움직여 살바야에 이르게 한다는 이 일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구경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결과는 어째서 셋과 함께 중생을 옮긴다고 하는가.
여기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미래세 불과佛果의 힘이 있으므로 중생을 도와주어 선심을 내게 하니, 이와 같이 전전하여 불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열반경』에서는 “현재세의 번뇌의 인연으로 능히 선근을 끊더라도,

001_0490_a_01L有一人不成菩提如昔所願卽不滿故
001_0490_a_02L雖實皆度而無盡際雖實無際而無不
001_0490_a_03L以無限智力度無限衆生故而此經
001_0490_a_04L下文言我本行菩薩道所成壽命今猶
001_0490_a_05L未盡復倍上數論釋此云我本行菩薩
001_0490_a_06L道今猶未滿者以本願故衆生界未盡
001_0490_a_07L願非究竟故言未滿非謂菩提不滿足
001_0490_a_08L所成壽命復位上數者示現如來常
001_0490_a_09L命方便顯多過上數量不可數知故
001_0490_a_10L論意者爲明約今衆生未盡▣如是時
001_0490_a_11L本願未滿非謂菩提已滿而其本願未
001_0490_a_12L滿亦非本願未滿而說佛法已足
001_0490_a_13L花嚴經云一切衆生未成菩提佛法未
001_0490_a_14L本滿未滿是故當知願與菩提不滿
001_0490_a_15L等則已滿則等滿如是名爲一乘果也

001_0490_a_16L合而言之
理敎因果如是四法更互相
001_0490_a_17L應共運一人到薩婆若故說此四名一
001_0490_a_18L乘法猶如四馬更互相應共作一運故
001_0490_a_19L說四馬名爲一乘當知此中道理亦爾
001_0490_a_20L理敎及因共運衆生到薩婆若此事
001_0490_a_21L可爾果旣到究竟之處云何與三共運
001_0490_a_22L衆生解云此有四義一者由未來世有
001_0490_a_23L佛果力冥資衆生令生善心如是展轉
001_0490_a_24L令至佛地如涅槃經云以現在世煩惱

001_0490_b_01L미래세 불성의 힘의 인연으로 다시 선근이 생기게 한다.”113)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 당래의 과보불이 모든 응신ㆍ화신을 나타내어 지금의 중생을 교화해서 증진을 얻게 한다. 『본승경』에서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이룰 과를 보니 제불이 마정 설법114)하여 몸과 마음의 특별한 수행이 불가사의하다.”115)고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 경 여섯 곳에서 수기를 주는데,116) 장차 아뇩보리를 이룰 것이라 기별하였다. 이 수기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경책하고 나아가 수행하니 장차 이룰 과가 그(중생)에 속하고 그를 옮기므로, 아래 경문에 “모든 아들들에게 각각 똑같은 하나의 큰 수레를 주었다.”117)고 하였다.
넷째, 이 경에서 설한 일체종지는 ▣를 다하지 않음이 없고 덕을 갖추지 않음이 없어서 온갖 중생이 모두 이 불과에 이르게 된다. 중생들이 이 경전과 그 가르침에 연하여 발심하고 뛰어난 정진으로 사십심118)을 지나 신통으로 유희119)하면서 사생의 중생120)들을 교화한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불과의 수레를 타고, 수레마다 능히 인행의 지위에 있는 중생을 옮긴다고 하였다. 아래의 게송에서 “모든 아들이 이때 뛸 듯이 기뻐서 이 보배의 수레121)를 타고 사방에 유희하였다.”122)고 한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뜻으로 말미암아 불과佛果의 수레가 나머지 세 법과 함께한 사람을 옮기며, 사람마다 네 가지 법의 인연이 화합하여 온갖 치우침을 멀리 여의어서 무너뜨릴 수 없으니 이것을 제외하고 다 이보다 더 나아가고 늘어난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광대하고 깊은 구경의 일승의 진실한 실상이라고 한다. 가르침의 종지를 약술하면 이와 같다.

제3편 경문의 작용(能詮之用)
셋째, 경문의 작용이란 「법사품」에서 “온갖 보살의 아뇩보리는 모두 이 경에 속하니, 방편의 문을 열어서 진실의 모습을 보인다.”123)고 한 것과 같으니, 이 경문은 바로 이 경의 뛰어난 작용을 밝힌 것이다. 작용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여는 것(開)과 보이는 것(示)이다. 여는 것이란 삼승 방편의 문을 여는 것이요, 보이는 것이란 일승 진실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비록 이와 같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는 여는 것(開)이고, 다음은 보이는 것(示)이며, 셋째는 열고 보이는 작용을 합하여 밝히는 것이다.


001_0490_b_01L因緣能斷善根未來佛性力因緣故還
001_0490_b_02L生善根故二者當果報佛現諸應化
001_0490_b_03L今衆生令得增進如本乘經云自見己
001_0490_b_04L身當果諸佛摩頂說法身心別行不可
001_0490_b_05L思議故三者此經六處授記記當得成
001_0490_b_06L阿耨菩提由得此記𥮵心進修當果屬
001_0490_b_07L彼▣得運彼故下文言各賜諸子等一
001_0490_b_08L大車四者此經中說一切種智無▣不
001_0490_b_09L無德不備一切衆生同到此果
001_0490_b_10L生緣此能詮所詮發心勝進逕四十心
001_0490_b_11L遊戱神通化四生類故說衆生乘於果
001_0490_b_12L乘乘能運因地衆生如下頌諸子是時
001_0490_b_13L歡喜踊躍乘是寶車遊於四方由方是
001_0490_b_14L四義當知果乘與餘三法共運一人
001_0490_b_15L人四法因緣和合遠離諸邊不可破壞
001_0490_b_16L除此更無若過若增如是名爲廣大甚
001_0490_b_17L深究竟一乘眞實相也所詮之宗略述
001_0490_b_18L如是

001_0490_b_19L第三明能詮用者
如法師品云一切菩
001_0490_b_20L薩阿耨菩提皆屬此經開方便門示眞
001_0490_b_21L實相此文正明是經勝用用有二種
001_0490_b_22L開及示開者開於三乘方便之門示者
001_0490_b_23L示於一乘眞實之相總說雖然於中有
001_0490_b_24L先開次示第三合明開示之用
[能開之用]

001_0490_c_01L
제1장 여는 작용(能開之用)
먼저 ‘여는 뜻’을 밝히는 데 곧 두 가지가 있다. 열리는 문(所開之門)과 능히 여는 작용(能開之用)을 말한다.

1. 열리는 문(所開之門)
열리는 문은 곧 삼승교三乘敎인데, 이를 방편이라 하고 대략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부처님의 방편지에서 설한 가르침으로 의주석依主釋124)이라 이름 붙여 방편교라 한다.
둘째, 곧 삼승교로 세 가지 근기에 교묘하게 맞춘 것이니 지업석持業釋125)이라 이름 붙여 방편교라 한다.
셋째, 일승의 가르침을 위하여 먼저 방편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뒤에 일승의 정교正敎를 설하는데, 뒤의 정교에 대비하여 방편이라 이름한다.
넷째, 일승의 진리에서 권權으로 방편을 설하니 진실의 설이 아니다. 이 방편의 뜻을 진실에 대비하여 방편이라고 한다.
이 네 가지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방편이라 한다.

이것(방편)을 문門이라 한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나온다는 뜻(出義)이다. 모든 아들126)이 이 문을 의지하여 삼계三界를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들어간다는 뜻(入義)이다. 또한 이 가르침을 의지하여 일승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에는 두 가지 이름이 있다. 만약 부처님의 문, 사람의 문이라고 하면 문이 부처님이나 사람이 아니다. 만약 판자문·대나무문이라고 하면 문이 곧 판자이고 대나무이다. 지금 삼승교를 방편문이라 한 것은 판자문·대나무문과 같아서 문은 곧 방편이니, 이런 까닭에 방편문이라 한다.

2. 여는 작용(能開之用)
방편문을 연다는 것에서, 방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만약 나오는 뜻을 바라보고 삼승을 설할 때에는 열어서 닫지 않음이며, 그 들어간다는 뜻을 바라보고 삼승을 설할 때에는 닫고서 열지 않음이니, 비록 삼계에서 나왔지만 아직 일승에 들어가지 못하였기127) 때문이다. 이제 일승의 가르침을 설하면서 삼승이 방편이라고 한 것은 비로소 방편문을 열어서 일승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경문에서, “마땅히 알라. 모든 부처님은 방편력 때문에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을 설한다.”128)고 한 것과 같으니, 이것은 바로 방편의 문을 연 것을 말한 것이다. 모든 나머지 말씀도 이런 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장 보이는 작용(明示之用)
다음으로 보이는 작용을 밝힌다. 여기에 또한 둘이 있다. 먼저 보여지는 것(所示)129)을 밝히고, 다음에는 능히 보이는 것(能示)130)을 밝힌다.

1. 보여지는 것(所示)
보여지는 진실한 모습(眞實相)은 앞서 말한 것과 같다. 일승의 사람과 법은 법상이 상주하고 도리가 구경이므로 천마131) 외도들이 파괴할 수 없고,

001_0490_c_01L明開義卽有二種謂所開之門及能開
001_0490_c_02L之用
所開之門
卽三乘敎此名方便
001_0490_c_03L有四義一者佛方便智之所說敎依主
001_0490_c_04L立名名方便敎二者卽三乘敎巧順三
001_0490_c_05L持乘作名名方便敎三者爲一乘敎
001_0490_c_06L作前方便因是後說一乘正敎對後正
001_0490_c_07L敎名爲方便四者於一乘理權說方便
001_0490_c_08L非眞實說是方便義對眞實說名爲方
001_0490_c_09L便依此四義故名方便此名爲門
001_0490_c_10L其二義一者出義諸子依此出三界故
001_0490_c_11L二者入義又依此敎入一乘故然門有
001_0490_c_12L二名若言佛門人門則門非佛人
001_0490_c_13L言板門竹門則門是板竹今三乘敎名
001_0490_c_14L方便門者同板竹門門卽方便是故名
001_0490_c_15L爲方便門也
方便門方便有其二義
001_0490_c_16L若望出義說三乘時開而不閉望其入
001_0490_c_17L義說三之時閉而不開雖出三界未入
001_0490_c_18L一乘故今說一乘敎言三是方便
001_0490_c_19L開方便門令入一乘故如下文言當知
001_0490_c_20L諸佛方便力故於一佛乘分別說三
001_0490_c_21L言正開方便之門諸餘言語例此可知

001_0490_c_22L次明示用
於中亦二先明所示次明能
001_0490_c_23L
所示
之眞實相謂如前說一乘人
001_0490_c_24L法相常住道理究竟天魔外道所

001_0491_a_01L삼세 모든 부처님이 능히 바꿀 수 없으니 이런 뜻으로 진실한 모습이라고 한다. 삼승도 아니고 일승도 아니며, 사람도 없고 법도 없어서 모두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 진실의 구경 일승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갖가지 얻음이 있다는 것은 도道도 없고 과果도 없으며, 움직임도 없고 나옴도 없으므로 앞에서와 같이 삼승도 아니고 이 일승임을 알라. 능히 타는 사람과 태우는 법의 상도 사구四句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얻음이 있는데 어째서 이것이 진실한 모습이라고 하는가.
이 말은 그렇지 않다. 만약 삼승도 아니고 일승이라면 사구四句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얻음이 있어서 구경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얻음이 있는 것은 그르다고 하고 얻음이 없는 것은 옳다고 하는 것이니 또한 사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얻음이 있어서 또한 바른 관이 아니다.
만약 말에 의지하여 얻을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말과 같이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취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구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 또한 말에 의지하여 말하기를 가령 일승을 가설하더라도 말과 같이 일승을 취하지 않으므로 일승 또한 사구를 벗어난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라. 말을 따르는 것은 모두 그릇되며 말대로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설이 다름이 없다는 것을.

만일 말을 취하지 않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면 저 삼승교 또한 마땅히 진실일 것이다.
통괄적인 뜻으로는 모두 허락되지만, 개별적인 뜻이 있다. 삼승교 아래에는 도무지 삼승의 이치가 없지만, 일승교 아래에는 일승의 이치가 없지 않다. 삼승은 방편이고, 일승은 진실이다. 비록 일승의 이치가 없지 않으나 일승의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까닭에 또한 얻을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여 준 진실은 그 모습이 이와 같다.

2. 능히 보임(能示)
능히 보이는 작용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열어서 보임이다. 앞에서와 같이 삼승을 연 것, 이것이 방편이라고 할 때, 곧 일승이 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문을 열 때 곧 안의 물건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둘째는 여는 것과 달리 보임이다. 앞에서 삼승이 방편임을 열어 보인 것과 별도로 일승을 설하여 이를 듣고서 일승의 뜻을 깨닫기 때문이다. 손으로 ▣하면 비로소 안에 물건이 보이는 것과 같다. 아래 경문에서

001_0491_a_01L不能破三世諸佛所不能易以是義故
001_0491_a_02L名眞實相而非三非一無人無法
001_0491_a_03L無所得如是正觀乃名眞實究竟一乘
001_0491_a_04L所以然者諸有所得無道無果不動不
001_0491_a_05L故知如前非三是一能乘所乘人法
001_0491_a_06L之相下出四句是有所得云何說此爲
001_0491_a_07L眞實相解云此言不然所以者何
001_0491_a_08L言非三是一不出四句故是有所得非究
001_0491_a_09L竟者是則有得爲非無得爲是亦入四
001_0491_a_10L句故是有所得亦非正觀若言寄言說
001_0491_a_11L無所得而非如言取於無得是故無得不
001_0491_a_12L入四句者他亦寄言瑕說一乘而非如
001_0491_a_13L言取於一乘所以一乘亦出四句是故
001_0491_a_14L當知遂言俱非不如言取二說無異
001_0491_a_15L若不取言皆爲實者彼三乘敎亦應是
001_0491_a_16L通義皆許而有別義以三乘敎
001_0491_a_17L下都無三理一乘敎下不無一理故
001_0491_a_18L是權一乘是實雖不無一而非有一
001_0491_a_19L是故亦非有所得也所示眞實其相如
001_0491_a_20L
能示
▣用有其二種一者則開之示
001_0491_a_21L如前開三是方便時卽知一乘是眞實
001_0491_a_22L如開門時卽見內物二者異開之示
001_0491_a_23L異前開三別說一乘聞之得悟一乘義
001_0491_a_24L如以手▣方見內物如下文言

001_0491_b_01L“모든 부처님이 오로지 일대사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한다.”132)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말은 진실의 모습을 보임이다.

제3장 열어서 보이는 작용을 합해서 밝힘(合明開示用者)
셋째, 열어서 보임의 작용을 합하여 밝힌다. 한 번 열어 보임 속에는 네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첫째는 앞의 셋을 사용하여 하나가 되는 작용이다. 앞의 삼승의 가르침이 곧 일승의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셋을 가지고 하나를 이루는 것으로, 저 삼승의 사람을 이끌어 같이 일승과에 이르기 때문이다.
셋째는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감이니, 옛적에 설한 삼승의 인·과를 모아 본래 일승의 이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넷째는 셋을 파하고 하나를 세움이니, 저들이 집착하는 삼승의 개별적인 취지133)를 파해서 함께 돌아가는 일승의 뜻을 세우기 때문이다.
이 경에는 이와 같은 네 종류의 뛰어난 작용을 갖추고 있으므로 방편문을 열어서 진실의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셋을 사용하여 하나가 되고, 삼승의 사람을 이끌어 일승과에 이르게 한다는 이 두 가지는 알지 못하는데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방편품」에서 “부처님이 무수한 방편으로 제법을 연설하였으니 이 법은 모두 일불승이기 때문이다.”134)라고 하였다. 이 경문은 바로 셋을 사용하여 하나가 된다는 증거이다. 또 “이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구경에 다 일체종지를 얻게 된다.”135)고 하였다. 이 말은 삼승의 사람을 이끌어 일승과에 이르게 한다는 증거이다.

삼승의 인과를 모아서 본래의 일승에 돌아간다고 한 것은 삼승이 다 진실이 아니므로 일승의 진실에 돌아간다는 것인가. 오직 이승이 진실이 아니므로 일승의 진실에 돌아간다는 것인가. 만약 뒤의 것이라면 어째서 경에서는 “나에게 방편력이 있어서 삼승법을 열어 보인다.”136)고 하였는가. 만약 앞의 것이라면 어째서 다시 “오직 이 한 가지 일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진실이 아니다.”137)라고 하였는가.
혹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삼승은 다 진실이 아니니 앞의 글에 말한 것과 같다. 그런데 하나는 진실이고 둘은 진실이 아니라고 하면138) 셋 중에 하나와 셋이 없는 하나가 모두 불승139)이다. 통괄적으로 말하면 이것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개회開會를 사용하지 않았다. 별도로 말하면 진실이 아니다.140) 이런 뜻으로 두 글은 어긋나지 않는다.

혹시 어떤 사람이 오직 둘만이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뒤의 글과 같기 때문이다.

001_0491_b_01L佛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如是
001_0491_b_02L等言是示眞實相也
第三合明開示用
001_0491_b_03L
一開示中合有四義一者用前三爲
001_0491_b_04L一用前三乘之敎卽爲一乘敎故二者
001_0491_b_05L將三致一將彼三乘之人同致一乘果
001_0491_b_06L三者會三歸一會昔所說三乘因果
001_0491_b_07L還歸於本一乘理故四者破三立一
001_0491_b_08L彼所執三乘別趣以立同歸一乘義故
001_0491_b_09L此經貝有如是四種勝用故言開方便
001_0491_b_10L門示眞實相用三爲一將三致一
001_0491_b_11L二未知以何爲證答方便品言佛以無
001_0491_b_12L數方便演說諸法是法皆爲一佛乘故
001_0491_b_13L此文正是用三爲一之證也又言是諸
001_0491_b_14L衆生從佛聞法究竟皆得一切種智
001_0491_b_15L言正是將三致一之證也會三因果
001_0491_b_16L歸本一者爲當三皆非實故歸於一實
001_0491_b_17L爲當唯二非實故歸於一實耶若如
001_0491_b_18L後者何故經言我有方便力開示三乘
001_0491_b_19L若如前者云何復言唯是一事實
001_0491_b_20L餘二則非眞或有說者三皆非實
001_0491_b_21L如前文說而言一實二非眞者三中之
001_0491_b_22L一與無三之一俱是佛乘通說是實
001_0491_b_23L餘二不用開別言非實由是義故二文
001_0491_b_24L不違或有說者唯二非實如後文故

001_0491_c_01L그런데 삼승이 모두 방편이라고 말한다면 하나의 진실한 중에 둘의 진실하지 않음을 더하여 합해서 셋이라고 한 것이니 이 셋은 진실이 아니다. 마치 사람 손에 실지로 과자가 하나 있는데 방편으로 셋이 있다고 말하면 셋은 진실이 아니니 세 개의 과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살펴보면 하나의 과자는 진실이고, 둘은 방편이니 하나의 과자만 있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일불승을 열어서 셋으로 나눈다.”고 하였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한 말의 쌀을 나누어 세 더미로 만들면 세 더미를 모아서 하나로 돌아간다고도 말할 수 있고, 두 덩어리를 모아서 하나로 돌아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셋을 모으고 둘을 모으는 것이 하나의 뜻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141) 혹 어떤 이는 말한다. 앞뒤 두 글은 각기 다른 뜻이 있어서 하나로 회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삼승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별교이고, 둘째는 통교이다. 별교 삼승은 셋이 다 진실이 아니고 모두 방편이다. 저 교설에서 삼아승지겁 동안 오직 사바라밀을 닦고 백겁 동안 상호의 업을 닦으며 최후의 몸에 선정과 지혜를 닦아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무상정각을 이룬다고 설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과가 불승이니 이런 까닭에 불승 또한 방편이다. 만약 통교에서 설하는 삼승142)을 논하면 불승은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저 교설에서 십지 중에 육바라밀을 갖추어 닦아서 온갖 수행이 원만해져 살바야에 이르니 이 살바야의 과는 삼세와 더불어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이러한 인과는 궁극에는 진실이어서 이것이 불승이다. 어찌 방편이겠는가. 이런 까닭에 두 글의 뜻이 다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내가 방편력이 있어서 삼승법을 열어 보인다.’고 한 것은 별교에서 설한 삼승을 밝힌 것이요, ‘오직 한 가지 사실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통교에 대해서 설한 삼승에 대한 것이다. 그 나머지 글은 다 이렇게 통할 것이다.

만약 별교 삼승인과가 모두 방편이므로 일승에 돌아간다면, 일승의 원인에 돌아가는가, 일승의 과에 돌아가는가?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을 설하므로

001_0491_c_01L而說三乘皆方便者於一實中加二非
001_0491_c_02L實合說爲三是三非實如人手內實有
001_0491_c_03L一菓方便言三三非是實無三菓故
001_0491_c_04L而論之一菓是實二是方便有一菓
001_0491_c_05L如智度論云於一佛乘開爲三分
001_0491_c_06L如人分一斗米以爲三聚亦得言會三聚
001_0491_c_07L歸一亦得言會二聚歸會三會二猶是
001_0491_c_08L一義不相違也或有說者前後二文各
001_0491_c_09L有異意不可一會所以然者三乘之敎
001_0491_c_10L有其二種一者別敎二通敎別敎三
001_0491_c_11L乘三皆非實皆是方便以彼敎說三僧
001_0491_c_12L祗刧唯修四度百刧之中修相好業
001_0491_c_13L後身中修於定惠菩提樹下成無上覺
001_0491_c_14L如是因果以爲佛乘是故佛乘亦是方
001_0491_c_15L便若論通敎所說三乘佛乘是實
001_0491_c_16L餘二非眞以彼敎說於十地中具修六
001_0491_c_17L度萬行圓滿致薩婆若此薩婆若果不
001_0491_c_18L與三世合如是因果究竟眞實此爲佛
001_0491_c_19L豈是方便是故當知二文意異
001_0491_c_20L有方便力開示三乘法者是顯別敎所
001_0491_c_21L說三乘也唯是一事實餘二則非眞者
001_0491_c_22L是對通敎所說三乘其餘諸文皆作是
001_0491_c_23L若說別敎三乘因果皆是方便故
001_0491_c_24L歸一者爲歸一因爲歸一果於一

001_0492_a_01L그 근본을 따라 인으로 돌아가고 과로 돌아간다. 이 뜻은 어떠한가? 성문과 연각이 인이든 과이든 모두 일불승 인에서 나누어 둘이 되었으니, 저 경에서 말씀하기를, “성문과 연각의 지혜와 끊음143)이 다 보살의 무생법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이 두 가지가 다 일불승의 원인으로 돌아가고, 일불승의 원인으로 돌아가므로 마침내 일불승의 과에 이르게 된다. 저 교에서 설하기를, “불승의 인과 과는 불지의 화신의 작은 부분으로 나뉜다.”144)고 하였다. 저 경에서 “내가 실로 성불한 이래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다.”145)라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라. 저 설의 불승의 인·과는 똑같이 일승의 과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만일 보살이 저 교설에 의지하므로 보리수 아래의 부처님을 보고 발심수행하면 이런 원행은 일승의 인에 돌아가니 저 이승과 같이 아직 과果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통괄하여 말하면 4구가 된다. 첫째, 방편의 인으로 진실의 인에 돌아가니 보살의 인과 이승의 인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방편의 과로 진실의 과에 돌아가니 보리수 아래서 무상각을 이룸을 말한다. 셋째, 방편인으로 진실의 과에 돌아가니 보리수 아래 부처님 앞의 보살행을 말한다. 넷째, 방편과로 진실인에 돌아감이니 이승인의 무학과를 말한다. 총체적으로 이와 같이 4구를 섭수하여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간다고 설한다.

방편교 중에 인승·천승이 있는데, 어째서 이 둘은 모아 돌아가지 않고 오직 저 삼승만 모아 돌아가는가.
삼승을 모아 돌아간다는 말에 또한 이 두 가지가 포함된다. 왜냐하면 법화의 교설에서 설하는 삼승에는 둘이 있다. 첫째는 삼거에 비유되니 「비유품」에 나온다. 둘째 삼초三草146)에 비유되니 「약초유품」에 나온다. 이 뜻은 어떤가.
인승·천승·이승이 합하여 소승이 되니 소약초와 같고, 성문 연각은 중승이니 중약초와 같고, 저 별교에 의지하여 발심한 보살은 대승이 되니 대약초와 같다. 이 삼승을 모으면 곧 오승五乘147)을 섭수하게 된다. 그런데 저 인승ㆍ천승은 인으로 회통되지만 과로는 회통하지 못한다.

001_0492_a_01L佛乘分別說三故隨其本歸因歸果
001_0492_a_02L義▣何聲聞緣覺若因若果皆於一因分
001_0492_a_03L別爲二如經說言聲聞緣覺若智若斷
001_0492_a_04L皆是菩薩無生法忍當知此二皆婦一
001_0492_a_05L歸一因故終致一果彼敎中說
001_0492_a_06L乘因果分別佛地化身少分如經說言
001_0492_a_07L我實成佛已來百千萬億那由他刧故
001_0492_a_08L當知彼說佛乘因果同歸於此一乘果內
001_0492_a_09L若有菩薩依彼敎故望樹下佛發心修行
001_0492_a_10L如是願行歸於一因同彼二乘未至果
001_0492_a_11L通而言之應作四句一以方便因
001_0492_a_12L歸眞實因謂菩薩因及二乘因二以方
001_0492_a_13L便果歸眞實果謂於樹下成無上覺
001_0492_a_14L以方便因歸眞實果謂樹下佛前菩薩
001_0492_a_15L四以方便果歸眞實因謂二乘人之
001_0492_a_16L無學果總攝如是四句以說會三歸一
001_0492_a_17L方便敎中有人天乘何故不會此二
001_0492_a_18L唯會彼三會三之言亦攝此二
001_0492_a_19L以然者法花敎中說三乘有二一者
001_0492_a_20L三車所譬出喩品二者三草所呪
001_0492_a_21L藥草品此義云何人天二乘合爲小乘
001_0492_a_22L如小藥草聲聞緣覺名爲中乘如中藥
001_0492_a_23L依彼別敎發心菩薩說名爲大乘
001_0492_a_24L如大藥草會此三乘卽攝五乘然彼人

001_0492_b_01L과는 무기無記148)로 일승인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인因의 선법에는 두 가지 능력이 있다. 보인報因149)의 공능 또한 회통하지 못하니150) 받음의 다함151)이 있기 때문이다. 등류인等流因152)의 작용은 이제 회통되니 받음의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인因의 뜻을 모아 제1구에 들어간다.

삼승을 모아 일승에 돌아간다는 그 뜻은 이미 드러났으나 삼승을 파하여 일승을 세운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뜻을 알려면 자세함과 간략함이 있다.
간략히 말하면, 삼승의 네 가지 것153)을 파해야 한다. 삼교三敎, 삼인三人, 삼인三因, 삼과三果를 파해야 한다.154) 첫째, 삼교가 결정적으로 방편이 아니라는 집착이다. 둘째, 삼승인三乘人이 결정적으로 취향하는 곳이 다르다는 집착이다. 셋째, 삼승三乘의 인因이 감응하는 것이 다르다는 집착이다. 넷째, 삼승의 과가 궁극에 이르는 것이 다르다는 집착이다. 이 네 가지 집착되는 상을 파하고 그 네 가지 집착하는 견해를 버리니 이런 까닭에 일승의 진실을 건립한다. 이른바 일승교를 세우므로 삼교를 파하고, 일승인을 세우므로 삼승인을 파하고, 일승인一乘因을 세우므로 삼승인三乘因을 파하며, 일승과를 세우므로 삼승과를 파하니, 일승의 이성理性을 세우고 통괄적으로 네 가지 삼승의 것을 파한다고 한다. 이 네 가지 일승의 것이 다 같이 일승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약설은 이와 같다.
자세히 논하면 열 가지 범부와 성인155)의 집착을 파하기 위한 까닭에 일곱 가지의 비유156)와 세 가지 평등157)을 설하였다. 이 뜻은 저 제6문에 이르러 풀이한다.158)
셋째 경문의 작용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제4편 제목 해석(釋題名者)
넷째, 경의 제목을 해석한다. 범음梵音 전체를 다 밝히자면 마땅히 ‘살달마분다리수다라薩達摩分陀利修多羅’159)라고 해야 하고, 이곳에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한다.

제1장 묘법妙法
묘법妙法이란 대략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교묘하고, 둘째 뛰어나게 묘하며(勝妙), 셋째 미묘하고, 넷째 절묘하다.160)
교묘巧妙하다고 한 것은 이 경이 방편의 문을 교묘하게 열었고, 삼승에 집착한 견해를 교묘하게 멸하며, 진실한 모습을 교묘하게 보이고, 일승의 지혜를 교묘하게 생기게 하였다. 이 네 가지 뜻으로 진실한 궤범을 지었으므로 묘법이라고 하였다.
뛰어나게 묘하다고 한 것은 이 경이 온갖 불법을 잘 펴고, 온갖 신통력을 잘 보이며, 온갖 비밀법장을 잘 드러내고,

001_0492_b_01L天會因而不會果果是無記不作一因
001_0492_b_02L彼因善法有二功能報因功能亦不
001_0492_b_03L會之有受盡故等流因用是今所會
001_0492_b_04L無受盡故會此因義入第一句會三
001_0492_b_05L歸一其義已顯破三立一云何可知
001_0492_b_06L欲知此義有廣有略略而言之破四種
001_0492_b_07L一執三敎定非方便二執三人定是
001_0492_b_08L別趣三執三因別感四執三果別極
001_0492_b_09L此四種所執之相遣其四種能執之見
001_0492_b_10L是故建立一乘眞實謂立一敎故則破
001_0492_b_11L三敎立一人故則破三人立一因故則
001_0492_b_12L破三因立一果故則破三果立一理性
001_0492_b_13L通破四三以四一皆同一乘理故略說
001_0492_b_14L如是廣而論之爲破十種凡聖執故
001_0492_b_15L七種譬及三平等此義至彼第六門釋
001_0492_b_16L第三明詮用竟也

001_0492_b_17L第四釋題名者
具存梵音應云薩達摩
001_0492_b_18L分陀利修多羅此云妙法蓮華經
言妙
001_0492_b_19L法者
略有四義一者巧妙二者勝妙
001_0492_b_20L三者微妙四者絶妙言巧妙者此經
001_0492_b_21L巧開方便之門巧滅執三之見巧示眞
001_0492_b_22L實之相巧生已一之惠以是四義而作
001_0492_b_23L眞軌故言妙法言勝妙者此經能宣一
001_0492_b_24L切佛法能示一切神力能顯一切祕

001_0492_c_01L온갖 깊은 일을 잘 설하였다. 이 네 가지 뜻이 가장 뛰어나게 묘하므로 묘법이라 하였다. 「신력품」에서, “요약해서 말하면, 여래의 온갖 지닌 법과 여래의 온갖 자재한 신통력과 여래의 온갖 비밀의 법장과 여래의 온갖 매우 깊은 일을 다 이 경에서 펴 보이고 드러내 보이고 드러내 설하셨다.”161)고 한 것과 같으므로 묘법이라 한다.
미묘微妙하다고 한 것은 이 경에서 설하는 일승의 과는 묘한 덕이 원만하지 않음이 없고, 잡다한 오염이 청정하지 않음이 없으며, 의리가 다하지 않음이 없고, 세간을 제도하지 않음이 없다. 이 네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미묘한 법이라고 한다. 「비유품」에서, “이 (일불)승은 미묘하고 청정함이 제일이니 모든 세간을 벗어나 가장 위가 된다.”162)고 한 것과 같으므로 묘법이라 한다.
절묘絶妙하다고 한 것은 이 경에서 설한 일승의 법상法相이 광대하고, 매우 깊으며, 말을 여의고, 생각도 끊어졌으니, 이 네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절묘한 법이 되는 것이다. 「방편품」에서 “이 법은 가히 보일 수가 없으니 말로 표현되는 모습이 그윽히 끊어져서 다른 모든 중생들은 능히 알지 못하리라.”163)고 하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뜻 가운데에서 교묘하고 뛰어나게 묘한 법은 능전能詮의 작용에 해당하여 이름 붙인 것이며, 미묘하고 절묘한 뜻은 소전所詮의 종지를 따라서 이름 붙였다. 합쳐서 말하면 모두 이와 같은 뜻을 품고 있다. 교묘하고 승묘하고 미묘하고 절묘한 열여섯 가지164) 지극히 묘한 뜻은 시방삼세에 둘도 없는 법문(軌)이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묘법이라 한다. 묘법의 이름을 대략 해석하면 이와 같다.

제2장 연화蓮華
연화의 비유에는 별석(別)이 있고, 통석(通)이 있다.

1. 통석通釋
통석이란, 이 꽃은 반드시 꽃(華)·꽃술(鬚)·꽃받침(臺)·열매(實)의 네 가지를 갖추고 이들을 합하여 특히 아름답고 미묘함을 이루었다. 이 경에서 네 가지 묘한 뜻을 갖추어 한 경을 이룬 것을 비유하므로 ‘묘법妙法’165)이라고 한다.

2. 별석別釋
별석으로 말하면 곧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연꽃의 부류 네 종류 가운데 분타리分陀利166)는 백련화白蓮花이다. 선명한 하얀색이 분명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드러나니, 이 경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방편을 열어 진실을 드러내는 교묘함을 비유하였다.

001_0492_c_01L能說一切深事以此四義最爲勝妙
001_0492_c_02L故名妙法如神力品云以要言之
001_0492_c_03L來一切所有之法如來一切自在神力
001_0492_c_04L如來一切秘密之藏如來一切甚深之
001_0492_c_05L皆於此經宣示顯示顯說故言妙法
001_0492_c_06L言微妙者此經所說一乘之果無妙德
001_0492_c_07L而不圓無雜染而不淨無義理而不窮
001_0492_c_08L無世間而不度以是四義故名微妙之
001_0492_c_09L如譬喩品云是乘微妙淸淨第一
001_0492_c_10L諸世間爲無有上故言妙法言絶妙者
001_0492_c_11L此經所說一乘法相廣大甚深離言絶
001_0492_c_12L以是四義故爲絶妙之法如方便品
001_0492_c_13L是法不可示言辭相寂滅諸餘衆生
001_0492_c_14L類無有能得解故此四中義巧妙勝妙
001_0492_c_15L之法當能詮用立名微妙絶妙之義從
001_0492_c_16L所詮宗作目合而言之具含如是
001_0492_c_17L勝微絶十有六種極妙之義十方三世無
001_0492_c_18L二之軌以是義故名爲妙法妙法之名
001_0492_c_19L略釋如是
蓮花之喩
有別有通
通者

001_0492_c_20L華必具華鬚臺實四種合成殊爲美妙
001_0492_c_21L喩於此經具四妙義合成一經故名妙
001_0492_c_22L
別而言之
卽有四義一者蓮花之
001_0492_c_23L有四種中分陀利者是白蓮花鮮白
001_0492_c_24L分明花開實顯喩於此經了了分明開

001_0493_a_01L
둘째, 이 꽃에 보통 세 가지 이름이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을 때 굴마라屈摩羅라고 하고, 떨어지려 할 때는 가마라迦摩羅라고 하며, 이미 피어 시들지 않은 시기에 화려하게 피어 무성한 것을 분타리分陀利라 한다. 이 경은 큰 근기가 바로 나와 왕성할 때 펴서(宣) 보이고(示) 드러내어(顯) 설하는(說) 뛰어나게 묘함을 비유하였다.
셋째, 이 꽃은 바로 흙탕물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원만한 향기와 청결한 갖가지 아름다움이 갖추어져 있다. 이 경에서 설한 불승이 번뇌탁을 벗어나 생사의 바다를 여의고 갖가지 덕이 원만한 미묘함을 비유하였다.
넷째, 이 꽃은 바로 꽃잎이 넓고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물방울이 붙지 않고 때에 물들지 않는다. 이 경에서 설한 일승법문은 광대하고 도리가 매우 깊어서 말을 여의고 생각이 끊어진 절묘함을 비유하였다.
이 네 가지 뜻은 같은 묘법이 있으므로 이 비유에 의하여 제목의 이름을 세운 것이다.

제5편 교설의 섭수(敎攝)
다섯째, 교설이 속하는 곳(門)을 밝힌다.

() 이 『법화경』은 어떤 교문에 속하는가? 요의了義 법문인가, 불요의不了義167) 법문인가?

제1장 불요의 법문(不了義法門)
어떤 설에는 이 경이 불요의 법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불교를 크게 나누면 세 가지 법륜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상이 있는 법륜(有相法輪)으로, 오직 성문승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사제의 법상에 의하여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 『아함경』 등과 같다.
둘째, 상이 없는 법륜(無相法輪)으로, 오직 보살승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법의 공성에 의하여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 『반야경』 등과 같다.
셋째, 상이 없는 최상의 법륜(無相無上法輪)으로, 널리 삼승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제법이 공하고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지하여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최상의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 『해심밀경』 등과 같다.
이 가운데에 앞의 둘은 요달하지 못한 법문이고, 셋째 법륜은 진실로 요달한 법문이다. 그런데 이 『법화경』은 둘째 법륜에 속하니, 게송에서 “모든 법은 본래부터

001_0493_a_01L權顯實之巧妙也二者此花凡有三名
001_0493_a_02L未敷之時名屈摩羅將落之時名迦摩
001_0493_a_03L已敷未衰處中之時開榮勝盛稱分
001_0493_a_04L陀利喩於此經大機正發之盛時宣示
001_0493_a_05L顯說之勝妙也三者此花非直出離泥
001_0493_a_06L亦乃圓之香潔衆美具足喩於此經
001_0493_a_07L所說佛乘出煩惱濁離生死海衆德圓滿
001_0493_a_08L之微妙也四者此花非直荷廣禍深
001_0493_a_09L亦乃不着水渧不染塵垢喩於此經所
001_0493_a_10L說一乘法門廣大道理甚深離言絶慮之
001_0493_a_11L絶妙也由是四義有同妙法故寄是喩
001_0493_a_12L以立題名也

001_0493_a_13L第五明敎攝門者
是法華經何敎所攝
001_0493_a_14L爲是了義 爲不了義
[不了義法門]
有說此經是不了
001_0493_a_15L所以然者大分佛敎有三法輪
001_0493_a_16L者有相法輪唯爲發趣聲聞乘者依四
001_0493_a_17L諦相轉法輪故如阿含經等二者無相
001_0493_a_18L法輪唯爲發趣菩薩乘者依法空性轉
001_0493_a_19L法輪故如般若經等三者無相無上法
001_0493_a_20L普爲發趣三乘者依諸法空

001_0493_a_21L
無自性性而轉法輪無上無容故如解
001_0493_a_22L深密經等此中前二是不了義第三法
001_0493_a_23L輪是眞了義是義具如初論廣說此法
001_0493_a_24L華經是第二攝如偈說言諸法從本來

001_0493_b_01L항상 스스로 적멸의 모습이니, 불자가 이 도를 행하여 마치면 내세에 성불하리라.”168)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둘째 상이 없는 법륜에 속함을 알아야 한다.

이미 둘째 법륜에 속한다면 불요의不了義 법문인데, 이 뜻은 곧 두 가지 경문으로 증명된다. 첫째 곧 『해심밀경』에서는 “한결같이 적정으로만 나아가는 성문종성의 보특가라補特伽羅169)는 비록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갖가지 용맹스런 가행과 방편의 교화도법을 받았더라도 끝내 도량에 앉아서 무상 정등의 보리를 증득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저들은 본래 오직 열등한 종성이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갖가지 고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170)라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 자세히 설하였다.
둘째 『대법론』에서는 “중생이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衆生意樂樂樂)171)이란 부정종성자가 열등한 좋아하는 마음을 버렸기 때문에 대성문에게 장차 성불하리라 수기를 주는 것과 같다. 또한 일승을 설하고 다시 제2가 없다.”172)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저 경(『해심밀경』)이 이미 구경의 진실한 요의설로서 성문은 영원히 성불할 수 없다고 설하였으니, 『법화경』에서 모든 성문이 마땅히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한 것은 방편의 말일 뿐 불요의설173)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아비달마잡집론』에서는 이는 중생의 좋아하는 바에 따라 설한 것일 뿐 진실한 도리를 곧바로 설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수다라란 글로써 뛰어나고, 아비달마는 이치로 뛰어나니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증거가 있으므로 법화일승의 교설은 결코 구경의 요의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제2장 요의 법문了義法門
어떤 설에는 『법화경』이 구경요의究竟了義의 법문이라고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 한평생 설한 교문敎門을 대략 포섭하면 삼종법륜三種法輪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셋이라 하는가. 첫째는 근본법륜根本法輪174)이고, 둘째는 지말법륜枝末法輪175)이며, 셋째는 섭말귀본법륜攝末歸本法輪176)이다.
(첫째) 근본법륜이란 부처님이 처음 도를 이루고 화엄법회에서 보살들을 위하여 일승의 원인, 일승의 결과를 널리 열었으니 이를 근본의 가르침이라 한다.

001_0493_b_01L常自寂滅相佛子行道已來世得作佛
001_0493_b_02L是故當知第二無相法輪所攝旣屬
001_0493_b_03L第二是不了義此義卽以二文爲證
001_0493_b_04L一者卽彼解深密經云一向趣寂聲聞
001_0493_b_05L種性補特伽羅雖蒙諸佛施設種種勇
001_0493_b_06L猛加行方便化道終不能令當坐道場
001_0493_b_07L證得無上正等菩提何以故由彼本來
001_0493_b_08L唯有下劣種性故一向慈悲薄弱故
001_0493_b_09L向怖畏衆苦故乃至廣說二者對法論
001_0493_b_10L衆生意樂樂樂者如爲不定種性
001_0493_b_11L者捨離下劣意樂故記大聲聞當得作
001_0493_b_12L又說一乘更無第二案云彼經旣
001_0493_b_13L是究竟眞實了義說說言聲聞永不成
001_0493_b_14L是知法花說諸聲聞當得作佛是方
001_0493_b_15L便語不了義說是故阿毘達磨▣云
001_0493_b_16L隨衆生意樂而說非是直說眞實道理
001_0493_b_17L修多羅者以文爲勝阿毘達磨以理爲
001_0493_b_18L由有如是二種明證當知法花一乘
001_0493_b_19L之敎定非究竟了義說也
[了義法門]
或有說者
001_0493_b_20L花經是究竟了義所以然者如來一代
001_0493_b_21L所說敎門略攝不出三種法輪何者爲
001_0493_b_22L一者根本法輪二枝末法輪三者
001_0493_b_23L攝末歸本法輪根本法輪者謂佛初成
001_0493_b_24L道花嚴之會▣爲菩薩廣開一因一果法

001_0493_c_01L
(둘째) 다만 박복하고 둔한 근기들은 깊은 일승의 원인, 일승의 결과를 듣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일불승을 셋으로 나누어 설하니, 이를 지말의 가르침이라 한다.
(셋째) 사십여 년 삼승의 가르침을 설하여 그 마음을 도야하고 단련하여 지금 법화의 법회에 이르러 비로소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가니 곧 섭말귀본의 가르침이라 한다. 「신해품」에서 “장자가 사자좌에 앉으니 권속들이 둘러싸고 보물을 나열해 놓았다.”177)고 한 것은 곧 화엄의 근본 가르침178)을 가리킨 것이다. “아들을 불렀으나 얻을 수 없었으므로 비밀히 두 사람을 보내고, 보배의 옷을 벗고 나서 떨어지고 때 묻은 옷을 입었다.”179)는 것은 일승을 숨기고 삼승을 설한180) 지말의 가르침을 말한다. 부유한 장자가 다 하열한 것을 알고 그 마음을 항복받아 큰 지혜181)를 가르쳤다182)는 것은 섭말귀본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런 ▣는 여러 법문의 곳곳에 글이 있다. 이 중에서 처음과 마지막의 두 가르침은 똑같이 구경의 요의설이고, 둘째의 가르침은 일승에서 삼승을 설한 것으로 모두 방편의 불요의설임을 알아야 한다. 이 뜻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명확한 증거가 둘이 있다. 첫째는 경이고 두 번째는 논서이다.

경에서는 대략 세 곳의 경문을 인용한다.
첫째, 「안락행품」에서는 “이 『법화경』은 중생들을 능히 일체지에 이르게 하되, 일체세간에서는 적이 많고 믿기 어려워 일찍이 설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 설하니 이는 모든 여래의 제일 교설이다. 모든 교설 중에서 가장 뜻이 깊으니 나중에야 주는 것이 저 강력한 왕이 오래 명주明珠183)를 간직하다가 이제 주는 것과 같다.”184)고 한 것과 같다.
둘째, 「화성유품」에서는 “이 모든 부처님은 방편으로 분별하여 삼승을 설하였으나 오직 일불승에 있을 뿐이나 쉬게 하려고185) 이승을 설하신다.”186)고 하였다.
셋째, 『승만경』에서는 “아라한과 벽지불이 네 가지 지혜의 구경187)에 들어 쉴 곳을 얻음은 또한 여래의 방편이니 남음이 있고 불요의설이다.”188)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경문들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논서에서는 대략 세 곳의 글을 인용한다.

001_0493_c_01L謂根本之敎也但薄福鈍根之流深
001_0493_c_02L不堪聞一因一果故於一佛乘分別說
001_0493_c_03L謂枝末之敎也四十餘年說三乘之
001_0493_c_04L敎陶練其心今至法花之會始得會三
001_0493_c_05L歸一卽攝末婦本敎也如信解品明
001_0493_c_06L長者居師子坐眷屬圍遶羅列寶物
001_0493_c_07L指花嚴根本敎也喚子不得故密遣二
001_0493_c_08L脫珍御服着弊垢衣謂隱一說三枝
001_0493_c_09L末敎也如富長者知悉下劣▣ [17] 伏其心
001_0493_c_10L乃敎大智謂攝末歸本敎也是▣諸門
001_0493_c_11L處處有文當知此中初後二敎同是究
001_0493_c_12L竟了義之說第二敎者於一說三
001_0493_c_13L是方便不了義說爲成此義明證有二
001_0493_c_14L一者修多羅二者阿毘達磨修多羅者
001_0493_c_15L略引三文一者如安樂行品云此法花
001_0493_c_16L能令衆生至一切智一切世間多怨
001_0493_c_17L難信先所未說而今說之是諸如來第
001_0493_c_18L一之說於諸說中最爲甚深末後賜與
001_0493_c_19L如彼强力王久護明珠今乃與之二者
001_0493_c_20L化城品云是諸佛方便分別說三乘
001_0493_c_21L有一佛乘▣ [18] 處故說二三者勝鬘經云
001_0493_c_22L阿羅漢辟支佛四智究竟得蘇息處
001_0493_c_23L是如來是方便有餘不了義說如是等
001_0493_c_24L文不可具陳阿毘達磨者略引三處文

001_0494_a_01L
(첫째,) 『법화론』에서는 “결정성과 증상만의 두 종류 성문은 근기가 미숙하므로 부처님이 수기를 주지 않고,189) 보살은 수기를 주신다. 보살이 수기를 주는 것은 방편으로 발심하게 하기 때문이다.”190)라고 하였다.
둘째, 『대지도론』에서 설하기를, “ 아라한이 선세의 인연으로 받은 몸은 반드시 멸하는데 어디에 머물러 있다가 불도를 구족하겠는가. 아라한을 얻을 때 삼계의 모든 번뇌의 인연이 다하므로 다시 삼계에 나지 않는다. 청정한 불국토가 있어 삼계를 벗어나 있고 내지는 번뇌의 이름이 없으니, 이 국토의 부처님 있는 곳에서 『법화경』을 듣고 불도를 구족한다.”191)고 한다.
셋째, 『보성론』에서는 “ 천제闡提192)는 열반성이 없어서 영원히 열반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데, 이 뜻은 무엇인가. 대승을 비방한 업인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까닭이다. 이것은 어떤 뜻을 밝힌 것인가. 대승심을 비방하고 대승심을 구하지 않는 자들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량한 시간이 걸리므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저들도 사실은 청정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193)라고 하였다.
이런 글들에 의하면, 여러 교설에서 이승이 결단코 성불할 수 없다고 하거나 성품이 없는 유정들이라고 한 것은 다 방편의 불요의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일승만 있고 두 번째는 없으므로 일체중생이 모두 마땅히 성불한다고 설한다면 이와 같은 경전은 진실로 요의설이다.

만일 처음 논사의 뜻을 세운다면(불요의설) 뒤의 스님이 인용한 글(요의설)과는 어떻게 화회하겠는가?
저 논사가 통설(通)하기를, ‘모든 일승의 가르침에서 설한 글들은 모두 저 부정성을 옹호하기 위한 것으로 다 방편이다.’라고 하였으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법화론』과 『보성론』 또한 뒤의 방편의 교의를 진술하기 위한 것이요. 『대지도론』에서 설한 아라한이 정토에 태어난다는 것은 부정종성의 성문의 경우를 든 것이다. 이런 도리로 또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만약 뒤의 논사의 뜻을 세운다면 먼저 인용한 증거는 어떻게 회통하는가?
저 논사가 통설(通)하기를, 『해심밀경』에서 끝내 도량에 앉아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001_0494_a_01L法花論云決定增上慢二種聲聞根未
001_0494_a_02L熟故佛不與授記菩薩與授記菩薩與
001_0494_a_03L記者方便令發心故二者智度論說
001_0494_a_04L問阿羅漢先世因緣之所受身必應當
001_0494_a_05L住在何處而具足佛道答得阿羅漢
001_0494_a_06L三界諸漏因緣盡故更不復生三界
001_0494_a_07L有淨佛立 [19] 出於三界乃至無有煩惱之
001_0494_a_08L於是國立 [20] 佛所聞法花經具足佛道
001_0494_a_09L三者寶性論云問說闡提無涅槃性常
001_0494_a_10L不入涅槃者此義云何爲欲示顯謗大
001_0494_a_11L乘因故此明何義爲欲廻轉誹謗大乘
001_0494_a_12L心不求大乘心依無量時故作是說
001_0494_a_13L以彼實有淸淨性故依是等文當知諸
001_0494_a_14L敎說有二乘定不成佛及說無性有情
001_0494_a_15L等言皆是方便不了義說若說一乘更
001_0494_a_16L無第二一切衆生皆當作佛如是經典
001_0494_a_17L是眞了義若立初師義者後師所引
001_0494_a_18L文云何和會彼師通曰諸一乘敎所說
001_0494_a_19L諸文皆爲護彼不定性者皆是方便
001_0494_a_20L故不相違法花論文及寶性論亦爲述
001_0494_a_21L後方便敎意智度論文說阿羅漢生淨
001_0494_a_22L土者是約不定種性聲聞由是道理亦
001_0494_a_23L不相違若立後師義者前所引證
001_0494_a_24L云何得通彼師通云深密經說終不能

001_0494_b_01L결정적으로 무여열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영원히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않고는 곧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한결같이 적정에 나아간다고 설한 것이다.
그런데 성문이 무여열반에 들어갈 때에는 혹은 팔만 겁을 머물고 혹은 육만 사만 이만 겁을 머물고 그 후에 발심하여 곧 대승에 들어가 정토에 태어나서 불도를 구족하는 것이다. 만약 부정종성인이라면 오로지 유여열반에 머물러 경지에 의지하여 대승에 들어가니, 『유가사지론』에 분명히 설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 경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대법론』의 글에서 일승교를 방편이라고 설한 것은 이는 삼승 방편교의 뜻이요, 구경의 도리를 설한 것이 아니다. 저 삼승에 집착한 사람이 15유루가 무루라고 한 것은 거친 가르침의 경계에 입각해서 말한 것으로 구경의 진실한 도리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이 『대법론』에서 혹은 방편교라고 말한 글도 이 도리로 말미암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두 논사가 통설한 것은 한 가지로 근거에서는 서로 어긋나니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나은 설인가?
이것이 다 경론인데 어떤 진실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왜냐하면 한결같이 적정에 나아가는 자를 옹호하는 뜻으로는 곧 처음 논사가 회통시킨 것이 진실이고, 부정종성의 사람을 옹호하는 뜻으로는 곧 뒤의 논사가 설한 것이 진실이 되니 모두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각각 화회하고 회통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도리에 맞추어 승부를 판정하면, 저 논사(처음 논사)는 뜻이 좁고 짧다. 그는 부처님의 ▣이 일체에 두루하다고 하지 않다고 설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승은 결국 단멸이라고 설하기 때문이다. 둘째 논사는 뜻이 넓고 또한 길어서 앞의 짧고 좁은 것과 상반되어 그 뜻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짧고 좁은 뜻을 넓고 긴 글에 회통시킨 것이다. 글이 ▣▣를 해치므로 넓고 긴 뜻을 써서 짧고 좁은 글을 수용한 것이다. 글이 좁으면 뜻에 해를 입지 않으니 곧 쉽게 회통할 수 있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뒤의 설이 수승하다.

001_0494_b_01L令當坐道場證得無上正等菩提者
001_0494_b_02L明決定當入無餘永不能令不入無餘直
001_0494_b_03L證無上正等菩提是故說爲一向趣寂
001_0494_b_04L然彼聲聞入無餘時住八萬刧或住六
001_0494_b_05L萬四萬二萬然後起心卽入大生於淨
001_0494_b_06L土具足佛道若論不定種性人者唯住
001_0494_b_07L有餘依地入大如瑜伽論分明說故
001_0494_b_08L故彼經亦不相違對法論文說一乘敎
001_0494_b_09L爲方便者是述三乘權敎之意而非究
001_0494_b_10L竟道理之說如彼執三乘者說云十五
001_0494_b_11L有漏▣無記者是約麁相境界而說
001_0494_b_12L非是究竟眞實道理是故當知彼對法
001_0494_b_13L論或有述於方便敎文由是道理不相
001_0494_b_14L違也二師所通一據相違何者爲
001_0494_b_15L何者爲勝皆是經論有何不實
001_0494_b_16L所以然者爲護一向趣寂者意則如初
001_0494_b_17L師所通爲實爲護不定種姓人意則如
001_0494_b_18L後師所說爲實皆當物機各得和通故
001_0494_b_19L若就道理判其勝負者彼師義狹而且
001_0494_b_20L彼說佛▣不遍一切故又說二▣竟
001_0494_b_21L斷滅故第二師義寬而復長返前短狹
001_0494_b_22L其義可知斯則以短狹義會寬長文
001_0494_b_23L傷▣▣會用寬長義容短狹文文狹則
001_0494_b_24L無傷義則易會由是道理後說爲勝

001_0494_c_01L이런 까닭에 이 『법화경』은 곧 구경의 요의교설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이 뜻에 의하여 모든 글을 회통시키면 모든 글의 상위相違는 모두 잘 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요의 구경의 교설의 속에는 방편 불요의 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해심밀경』에서 말하기를, “일체 성문·연각·보살은 똑같이 모두 한가지로 이 묘하고 청정한 도를 함께하고, 모두 똑같이 한가지로 구경의 청정한 진여를 함께한다.”194)고 한 것과 같다. 이 도리로 말미암아 경의 종지를 삼았으니, 이런 까닭에 이 경이 진실한 요의설이다.
그런데 이 경에서 적정으로 나아가는 성문은 끝내 도량에 앉을 수 없다고 설하였으니 이와 같은 글들은 방편설로서 결정 이승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에 방편 불요의설을 지은 것이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무릇 사람 성품 등의 설을 저 논사가 불요의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두 글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또 이 『법화경』에서 설하기를 “쉬어 가게 하기 위하여 보배성을 화작하여 다시 쉬고 나서는 마침내 불과로 인도한다.”195)고 하였으니 이런 도리에 의지하여 일승을 설함으로써 이 경을 구경의 요의로 삼은 것이다.
이 경에 또한 불요의의 말이 있는데, ▣ 바로 말해서 오직 ▣▣ (일승이) 있을 뿐 이승도 없고 삼승도 없다고 하였다. 이 글은 ▣▣ 결단코 ▣▣ (일승의) 설이요, 적정에 나아가는 이승의 행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실은 적정으로 나아가는 이승의 행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방편으로 하는 말이 없다고 한 것이요,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대법론』에서 방편이라고 설한 것 또한 도리가 있다.

법화종요

홍안 6년(1283) 8월 17일 상승相承196)하다.

001_0494_c_01L故當知此法花經乃是究竟了義之敎也
001_0494_c_02L今依是義以通諸文諸文相違皆得善通
001_0494_c_03L所以然者以諸了義究竟敎內不無方
001_0494_c_04L便不了之言如解深密經中說言
001_0494_c_05L切聲聞緣覺菩薩同皆共一此妙淸淨道
001_0494_c_06L皆同是一究竟淸淨如▣是道理爲彼
001_0494_c_07L經宗所以彼經是眞了義而彼經說寂
001_0494_c_08L趣聲聞終不能得坐於道場如是等文
001_0494_c_09L是方便說爲護決定二乘意故作是方
001_0494_c_10L便不了義說由是道理夫人性等說彼
001_0494_c_11L以爲不了義說如是二文不相違也
001_0494_c_12L此法花經中說言爲▣▣) [21] 化作寶城
001_0494_c_13L更止息已終引佛果依是道理以說一
001_0494_c_14L是爲經究竟了義此經亦有不了義
001_0494_c_15L語▣直說言唯有▣▣無二無三是文爲
001_0494_c_16L▣▣定▣▣說無趣寂二乘之行而實
001_0494_c_17L不無趣寂二乘之行是故說無是方便
001_0494_c_18L由是道理對法論說爲方便者亦有
001_0494_c_19L道理也

001_0494_c_20L
法花宗要

001_0494_c_21L
弘安六年八月十七日相承之
  1. 1)경문의 작용(詮用)을 밝히고 : 이 경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경문이 어떠한 수승한 작용이 있는지 밝힌 것이다. 뒤에서는 능전용能詮用이라 하였다.
  2. 2)교설의 섭수를 드러내고 : 이 경이 어떤 교설에 속하는지를 가려본 것이다. 뒤에서는 명교섭문明敎攝文이라 하였다.
  3. 3)구도九道 : 불도에 들기 이전의 육취도六趣道(지옥·축생·아귀·수라·인·천)와 삼승도三乘道(성문·연각·보살)의 중생을 뜻한다.
  4. 4)사생四生 : 육취중생들이 태어나는 양태를 넷으로 나눈 것. 태로 태어나는 태생胎生, 알로 태어나는 난생卵生, 습기로 태어나는 습생濕生, 변화의 몸으로 태어나는 화생化生을 말한다.
  5. 5)꽃이 피어~품은 듯하고 : 『法華經』에서 묘법의 이치를 연꽃으로 비유한 것으로, 연꽃은 방편, 열매는 진실을 뜻한다. 연밥을 위해 연꽃이 피듯이(爲蓮故華), 일불승 진실을 위해 삼승의 방편을 열기 때문이다.
  6. 6)둘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요 : 진실한 이치에서는 일불승 진실이므로 둘이 없고, 진실에서는 이승도 삼승도 없으므로 다름도 없다는 것이다.
  7. 7)문밖의 세 수레 : 『法華經』 「譬喩品」 “화택삼거” 비유에서 부처(장자)가 삼계의 화택에 빠져 있는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불타는 집 밖에 세 수레를 준다고 한 것을 말한다. 곧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 이는 방편으로 삼승법을 펴서 육취의 중생을 제도한 것을 말한다.
  8. 8)중도의 보배성이 화작이며 : 「化城喩品」에서 인도자가 보배성까지 대중을 이끌고 갈 때, 지친 대중들을 위하여 중도에 보배성과 똑같은 성을 화작하여 방편으로 쉬도록 한 것을 말한다.
  9. 9)멸도에 든~끝이 아님을 : 「如來壽量品」에 의하면, 중생들은 여래가 가야성의 보리수 아래서 처음 정각을 이루고 전법륜하여 쌍림(꾸시나가라)에서 마지막으로 입멸에 들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방편으로 보인 것일 뿐, 실은 여래가 이미 구원겁 전에 성불한 이래로 법을 설해 오고 미래에도 설할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것이 처음이 아니고, 쌍림에서 열반에 든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10. 10)사생이 나란히 나의 아들이고 : 진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승, 삼승 등 온갖 제법이 다 일불승으로 이끌어 들어가기 위해 설한 것이요, 일불승一佛乘에서 방편으로 나누어 설한 것이므로, 이승인, 삼승인, 육취중생이나 사생四生의 중생 또한 다 불자佛子라고 하였다.
  11. 11)일대사인연 : 가장 중요하고 큰 일. 「方便品」에서 부처가 세상에 나오는 본 뜻을 밝힌 말. 곧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佛知見을 열어서(開) 보이고(示) 깨달아(悟) 들어가게(入) 하기 위함(일불승을 펴기 위함)이라고 한다.
  12. 12)세 가지가 평등하여 : 첫째, 교승이 평등(乘平等)하다는 것. 『法華經』은 성문에게도 수기를 주므로 오직 일불승(대승)만이 있고 이승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세간과 열반이 평등하다는 것. 「見寶塔品」에 의하면 다보여래가 성도한 후에 멸도하여 열반에 들어갔으므로 세간과 열반의 피차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몸이 평등하다는 것. 「見寶塔品」에서 다보여래가 이미 열반에 들었다가 다시 다보탑으로 출현하여 시현하였으므로, 자신, 타신, 법신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13. 13)거친 법 : 원문은 ‘麤之軌’. 거친 법도. 곧 실상을 밝힌 묘법에 상대하여, 방편을 밝힌 추법麤法을 말한다.
  14. 14)진실의 열매가 크게 드러나니 : 이는 연꽃이 피면서 연밥이 드러남(華開蓮現)을 비유한 것으로, 방편을 열어 진실을 드러냄(開權顯實)을 뜻한다.
  15. 15)묘하게 끊어졌으니 : 진실의 실상에서는 세간과 열반을 여의었고, 삼승이나 이승 모두 방편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16. 16)지극히 오래되어 지극히 아득하니 : 여래의 실상이 밝혀지면 여래가 구원겁 전에 성불하여 수명이 무량함을 비유한 것으로, 짧고 긴 것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7. 17)아들들이 철없이~매우 어려웠다 : 「譬喩品」 화택의 비유에서 불타는 집에 아들들이 있는데 놀이에 빠져 아버지가 그 위급함을 말해 줘도 나오지 않음을 비유한 것. 이는 삼계의 중생들이 오탁악세에서 오욕락에 빠져 생사고해에서 나오기 매우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18. 18)녹야원 : 원문에는 녹원鹿苑.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 왕사성 북쪽에 있다.
  19. 19)상대가 있는~몸을 나타내서 : 생사를 보인 열응신劣應身을 말한다. 원래 화택삼거의 비유에서는 방편으로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를 베풀어서 일불승의 크고 흰 소의 수레로 이끌어 들인 것인데, 천태학에서는 양의 수레와 사슴의 수레는 장교의 설법으로 녹야원에서 생사를 보인 열응신의 부처가 장교를 설하였다고 한다.
  20. 20)백우白牛를 타고 : 「譬喩品」 화택의 비유에서 장자가 아이들에게 바라던 세 수레를 주겠다고 하여 불타는 집에서 나오게 한 후, 모든 아들들에게 크고 훌륭한 대백우거를 각각 준 것으로 일불승으로 인도한 것을 말한다.
  21. 21)한량없는 긴 수명을 : 『法華經』을 설법한 장소인 영축산에서 「如來壽量品」에 이르러, 가야성에서 성불하고 전법륜한 후 입멸하신 부처님은 방편이고, 진실은 본래 구원겁 전에 성불한 이래로 상주하니 그 수명이 한량없다는 것이다.
  22. 22)하나를 빌어서 셋을 파하고 : 삼승의 방편을 열어서 일불승의 진실이 드러나면 이는 모두 일불승을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더 이상 삼승이 없어서 삼승을 파한다는 것이다.
  23. 23)셋이 제거되어 하나도 버렸으며 : 삼승이 파해져서 오직 일불승이므로 이제 모두 평등한 일불승만이 있다는 것.
  24. 24)긴 것을~것을 물리치니 : 「如來壽量品」에서 여래의 실상을 밝혀 중생들의 소견을 파한 것. 중생들은 부처가 가야성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고 구시나가라에서 입멸을 보였다고 알고 있는데, 실은 여래는 구원겁 전에 이미 성불하여 영원히 법을 설하고 있음을 밝혀서, 긴 수명의 여래를 드러내어 가야성에서 성불한 짧은 수명의 부처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응화한 것이라고 파한 것을 말한다.
  25. 25)수명이 짧은~잊어버리게 되었다 : 부처의 실상은 원래 구원겁 전에 성불한 이래로 멸도함이 없는 영원한 수명임을 알고 나면 짧은 수명의 부처는 방편으로 보인 것이 드러나므로, 짧은 수명의 부처가 진실한 부처라는 집착에서 벗어난다. 또한 여래의 실상을 알고 나면 원래부터 항상 영원하므로 수명이 짧다거나 긴 것이어야 한다는 집착도 잊어버리게 된다.
  26. 26)전륜성왕·제석·범천왕 : 원문은 ‘輪王釋梵’인데, 윤왕은 전륜성왕으로 고대 인도에서 유래한 이상적인 군주, 삼십이상과 칠보를 갖추고 정법으로 세계를 통치한다고 한다. 석은 제석천, 욕계 육천 중에 제2 도리천의 왕으로 수미산 정상에 있다. 범은 범천왕을 말한다.
  27. 27)전륜성왕·제석·범천왕의 자리를 받으며 : 「藥草喩品」에서 “일체 중생이 이 법을 듣는 이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이를 받아 여러 경지에 머무르되, 혹은 사람과 하늘과 전륜성왕과 제석천, 범천의 여러 왕이 되면 이는 작은 약초”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28. 28)한 구절이라도 귀에 스친 : 『妙法蓮華經』 「法師品」에서 『法華經』의 한 게송 한 구절이라도 듣고 나서 잠시라도 수희하는 자에게는 내가 다 아뇩보리의 수기를 준다고 한 것을 말한다.
  29. 29)보리의 수기 : 『法華經』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중생들은 장차 보살도를 갖추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불도를 이루리라고 부처님이 예언하신 것을 말한다.
  30. 30)받아 지니고 연설하는 복이야 : 「法師品」에서 중생들이 이 경의 한 게송이나 한 구절을 듣고 따라 기뻐하는 자에게 수기하여 아뇩보리를 얻을 것이라 하였고, 또한 이 경의 한 구절이라도 수지하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베껴쓰는 사람은 일찍이 십만억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일체 세간이 우러러 받들어 여래를 공양하듯 하고 마침내 미래세에 성불할 것이라고 한 것을 말한다.
  31. 31)일승실상一乘實相 : 곧 일불승 제법실상.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을 깨달은 일불승의 경지에서 알 수 있는 법계 제법의 진실한 모습, 부처님만이 아는 절대의 경지이다. 「方便品」에서는 이를 십여시十如是로 밝히고 있다.
  32. 32)타는 사람(能乘人) : 『法華經』에서 설한 법을 실천하여 일승에 이르는 사람.
  33. 33)타는 법(所乘法) : 일승에 이르게 하는 법. 일승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천하는 『法華經』의 교법.
  34. 34)네 종류의 성문(四種聲聞) : 『法華論』에 나오는 이승 성문의 네 종류. 첫째 결정성문決定聲聞, 둘째 상만성문上慢聲聞, 셋째는 퇴대성문退大聲聞, 넷째 응화성문應化聲聞이다. 『法華論』에서는 이 중에서 결정성문과 상만성문은 미숙하여 수기를 줄 수 없고, 퇴대성문과 응화성문에게 수기를 준다고 한다.
  35. 35)무성유정無性有情 : 중생의 성품을 다섯으로 본 중에 한 가지 종성. 인천승의 성품 무루지의 종자가 온전히 없어서 불과나 성문 연각은 되지 못하고 겨우 오계 십선계를 닦아서 인·천에 날 수 있는 종성. 오성은 이외에도 보살종성菩薩種姓·독각종성獨覺種姓·성문종성聲聞種姓·부정종성不定種姓·무성유정종성無性有情種姓이 있다.
  36. 36)『寶雲經』(T16, 218c).
  37. 37)『妙法蓮華經』 「方便品」(T9, 7b).
  38. 38)『妙法蓮華經』 「譬喩品」(T9, 12c).
  39. 39)『妙法蓮華經』 「方便品」(T9, 8b).
  40. 40)『妙法蓮華經憂波提舍』 권하 「譬喩品」(T26, 9b).
  41. 41)지위의 차별 : 성문위, 연각위, 보살위 등의 수행상의 계위를 말한다.
  42. 42)승법(乘)의 차별 : 원문은 승의 차별. 곧 성문승법, 연각승법, 보살승법으로, 성문에 들어가는 사제법, 연각에 들어가는 십이연기법, 보살에 들어가는 육바라밀법 등의 교법을 말한다.
  43. 43)승법의 차별이 아니다 : 여래가 중생에게 삼승을 베푼 것은 중생의 근기와 성품과 욕망이 다르므로, 불도에 들어오기까지 중생의 수준에 맞추어 성문·연각·보살의 지위를 각각 달리 설하였고,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의 승법은 일불승법에서 삼승법으로 나누어 설한 것일 뿐 교법 자체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4. 44)적은 공덕을~하는 것이니 : 적은 공덕은 삼승인을, 큰 공덕은 일불승인을 말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삼승의 인위因位에서 공덕을 갖추어 일불승의 과위果位를 이루기 때문이다.
  45. 45)『大薩遮尼乾子所說經』 권2 「一乘品」(T9, 325c-326a) 축약.
  46. 46)법계는 분별이 없으니 : 보통 십법계가 있어서 각각 육도·성문·연각·보살·불계라고 보지만, 사실은 원래 모두 하나의 일법계이기 때문이다.
  47. 47)다른 승법 : 원문은 異乘. 곧 일불승 이외의 이승, 삼승.
  48. 48)삼승을 분별 : 부처가 원래 일불승에서 삼승으로 나누어 설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49. 49)『合部金光明經』 권3 「陀羅尼最淨地品」(T16, 376c).
  50. 50)구경 실상 : 궁극의 참된 경지. 제불이 얻는 절대의 경지, 제불만이 아는 제법의 참다운 모습.
  51. 51)『妙法蓮華經』 「方便品」(T9, 5c). 원문에는 “佛與佛乃能究盡諸法實相。 ”
  52. 52)『妙法蓮華經優波提舍』 권하(T26, 6a), “如經舍利弗唯佛與佛說法。 諸佛如來。 能知彼法究竟實相故。 言實相者。 謂如來藏法身之體不變義故。 ” 참조.
  53. 53)『妙法蓮華經優波提舍』 권하(T26, 7b).
  54. 54)일체지一切智의 경지 : 일체 제법을 이해하는 경지. 일체지는 모든 것을 아는 부처님 지혜이고, 지地는 곧 그 지위를 뜻한다. 곧 부처님의 지위
  55. 55)일체종지 : 모든 것을 아는 부처님의 지혜.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의 지혜.
  56. 56)『妙法蓮華經』 「方便品」(T9, 7b).
  57. 57)한 모양(一相) : 하나의 모습. 곧 실상實相으로, 절대적 평등을 말한다.
  58. 58)한 맛(一味) : 부처님 가르침이 평등함을 비유한 것. 일체중생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일불승의 가르침을 편다는 것.
  59. 59)한 모양(一相) 한 맛(一味) : 「藥草喩品」에서 여래의 설법은 언제나 한 모양 한 맛으로 해탈상解脫相, 이상離相, 멸상滅相이니, 마침내 일체종지를 얻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해탈상이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이상은 일체 번뇌에서 벗어남이며, 멸상은 일체 생사에서 적멸을 얻음이다.
  60. 60)성품의 원인(性因) : 타고난 것, 본래 갖추고 있는 성품으로 불성을 말한다.
  61. 61)작용의 원인(作因) : 후천적인 행위 노력, 선근 공덕으로 불성을 발현하여 불도를 이루게 하는 작용.
  62. 62)삼신三身의 과 : 중생들은 연인불성·요인불성·정인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수행하면 불과佛果, 곧 삼신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불성이 성품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불과는 응신불·보신불·법신불의 삼신을 말한다.
  63. 63)『妙法蓮華經』 「常不輕菩薩品」(T9, 50c).
  64. 64)『妙法蓮華經優波提舍』 「譬喩品」(T26, 18b).
  65. 65)결정성 : 결정되어 있는 본성 또는 실체성. 유식의 오성각별성에서는 불종성(혹은 보살종성), 독각종성, 성문 종성은 삼승 각각을 실현함이 결정되어 있는 소질로서 결정성이라 한다. 이외에 부정종성은 삼승의 어느 하나에 한정되지 않고 무엇이 될 수 있는 소질이고, 무종성은 삼승의 어떤 소질도 결여되어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소질을 말한다.
  66. 66)증상만 : 아직 구경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말한다.
  67. 67)부처님이 수기를 주지 않고 : 「方便品」에서 부처님이 일불승 출세본회를 밝히려 하자, 오천의 증상만들이 자신들은 이미 열반을 얻었으므로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고 여겨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므로 수기를 받지 못한 것을 말한다. 결정성도 성문·연각을 얻고 여기에 안주하므로 수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68. 68)보살이 수기를 준다 : 보통 수기는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작불의 수기를 주지만, 보살이 방편으로 수기를 주어 방편으로 발심케 하는 경우를 말한다. 『法華論』에서는 상불경 보살을 들고 있다. 「常不輕菩薩品」에서 상불경 보살이 예배 찬탄하면서 “나는 당신을 가벼이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이 일종의 수기라고 본 것이다.
  69. 69)『妙法蓮華經優波提舍』 「譬喩品」(T26, 18b).
  70. 70)무성유정 : 인천승성人天乘性이라고 한다. 이들은 무루지의 종자가 없어서 생사윤회하면서 오계·십선을 닦아 인간·천상에 날 수 있으나, 성문·연각·불과를 이루지 못한다는 종성.
  71. 71)내도內道나 외도外道 : 내도는 불교에 귀의한 자, 외도는 불교 외의 신행자.
  72. 72)도분道分이나 복분福分 : 도분은 깨달음을 얻는 도지道支. 곧 사념처, 사정근 등 삼십칠조도법 등 열반에 이르는 도업道業을 말한다. 복분이란 복을 짓는 선업들. 곧 오계 십선의 법을 말한다.
  73. 73)탑묘 : 탑塔은 stūpa의 음사로 탑파塔婆의 준말, 묘廟는 그 번역으로 일종의 사당. 탑묘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거나 후대의 경전을 봉안한 건축물.
  74. 74)『妙法蓮華經』 「方便品」(T9, 9a).
  75. 75)어떤 사람이 예배하는 것은 천인의 업이고, 탑묘에 들어가 나무불을 하는 것은 인간의 업이지만, 『法華經』에서 부처님 출세본회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서 보여서 깨달아 들어가는 데 있다.”고 천명하였기 때문에, 이승·삼승·인승·천승 모두 불도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되어 불도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76. 76)유루과 : 탐·진·치 등 번뇌의 미혹으로 생긴 선업ㆍ악업의 과를 말한다.
  77. 77)상주의 과 : 『本業經』 원문에 나오는 상주의 부처님과를 뜻한다.
  78. 78)『菩薩瓔珞本業經』 「佛母品」(T24, 1019a).
  79. 79)삼유三有 : 욕유欲有·색유色有·무색유無色有를 말한다. 곧 삼계의 존재들로 육도 윤회전생의 중생들을 가리킨다.
  80. 80)삼유의 과보를 즐거이 집착하면서 : 아직 삼계에서 잘살기를 바라면서 보시 등 갖가지 선근을 짓는 경우를 말한다.
  81. 81)부처의 복전 : 부처가 될 선근공덕. 복전이란 삼보를 공양하고 선근공덕을 쌓는 일이 마치 농부가 밭에서 수확하는 것과 같이 복이 생긴다고 하여, 복을 얻을 원인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이나 일을 말한다. 삼보 등을 복전이라 한다.
  82. 82)『大悲經』(T12, 960a), “佛言。 如是如是。 阿難。 若有衆生。 樂著生死。 三有愛果。 於佛福田種善根者。 作如是言。 以此善根願我莫般涅槃。 阿難。 是人若不涅槃。 無有是處。 阿難。 是人雖不樂求涅槃。 然於佛所種諸善根。 我說是人必得涅槃。 盡涅槃際。”의 축약.
  83. 83)니건자 : 인도 나타족 출신의 니간타파 사람. 석가모니 당대에 육사외도 중의 하나로 자이나교의 창시자. 본명은 바르다마나(ⓢ Vardhamāna)이며,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에 승자勝者(ⓢ Jina), 대웅大雄(ⓢ Mahāvīra) 등으로 불렸다. 내세의 복락을 얻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고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4. 84)『大薩遮尼乾子所說經』 권2 「一乘品」(T9, 326b), “此諸外道善男子等。 雖行種種諸異學相。 皆同佛法。 一橋梁度。 更無餘濟故。”
  85. 85)오승五乘 : 삼승에 인승·천승을 합한 것. 법화의 개현開顯이 이루어지면 방편이 진실이 되므로 삼승이 곧 일불승이 된다. 또 인승·천승도 일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연 것이었기 때문에 진실이 되므로 모두 일승이라고 하였다.
  86. 86)『妙法蓮華經優波提舍』 권하 「方便品之餘」(T26, 6a).
  87. 87)보리심을 낸 : 무상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 대승의 도를 구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
  88. 88)(중간에) 물러났다가 : 대승의 도를 구하려는 마음에서 퇴전하는 것. 곧 중간에 소승에 떨어지는 일.
  89. 89)대승에 발심한 사람이 중간에 이승으로 퇴보했지만 다시 발심한 경우. 이는 앞에 발심한 선근이 이승으로 퇴보했더라도 멸하지 않고 이전에 대승을 닦은 선근으로 대승의 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90. 90)뒤의 과(後得果) : 퇴전한 이승이 수행을 하여 얻는 과가 그 이전의 대승을 닦은 선 공덕으로 대승의 과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말한다.
  91. 91)『妙法蓮華經優波提舍』 권하 「方便品之餘」(T26, 9a).
  92. 92)본유과本有果 : 본래의 보리과(깨달음인 것), 곧 본래가 부처인 법신부처의 불과를 말한다.
  93. 93)시기과始起果 : 수행을 통해 이룬 보리과, 곧 보살도를 통해 이룬 보신불의 불과를 말한다.
  94. 94)법신불의 보리(法佛菩提) : 법신불이 본래부터 갖춘 보리과.
  95. 95)물러나고 나오는 것도 없고 : 본유과에서는 실상보리를 얻은 실지實智이므로 분단생사ㆍ변역생사를 여의었기 때문에 다시 번뇌를 일으켜 생사의 세계로 물러남도 없고, 다시 무상無常의 과가 나옴도 없다는 것이다.
  96. 96)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 중도실상에서는 세간을 떠나 있지도 않고 출세간의 진여도 아니므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하였다.
  97. 97)진리의 도리(眞諦) : 진제(ⓢ aramārtha), 승의제, 제일의제라고도 하며, 깨우친 사람들에게 알려진 진리.
  98. 98)세속의 도리(俗諦) : 세제, 세속제라고 하며, 세상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진 도리.
  99. 99)『菩薩瓔珞本業經』 「因果品」(T24, 1020a).
  100. 100)『菩薩瓔珞本業經』 「因果品」(T24, 1020a), “其一照相一合相一體相一覺相。 淨明無二。 佛子。 是果獨法圓滿常住。 一果體相有無量義。 ”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법신불의 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므로 둘이 아니요 홀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101. 101)시기과란 다른 두 불신佛身 : 시기과는 보신불과 응화신 두 불신의 보리를 말한다.
  102. 102)나유타겁 :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말한다. 겁(ⓢ kala)은 겁파의 약칭.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나유타(ⓢ Nayuta)는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으로, 아유다의 백 배 수천만 배라고도 한다.
  103. 103)『妙法蓮華經優波提舍』 권하(T26, 9b).
  104. 104)「見寶塔品」 제11에서 다보여래가 사중에게 모습을 나타낼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분신의 모든 부처님이 시방 세계에서 다 모여야 한다고 설한 것을 가리킨다.
  105. 105)『寶雲經』 권2(T16, 218c).
  106. 106)『大方等無想經』 권5 「大雲初分增長健度」(T12,1101a), “雲密藏菩薩白佛言。 世尊。 唯願如來。 爲未來世薄福德衆生。 演說如是。 深進大海水朝三昧。 佛言。 善男子。 汝今不應作如是言。 何以故。 佛出世難。 此大雲經。 聞者亦難。 若有書寫受持讀誦一句一字。 亦復難得。 云何偏爲未來之人。 吾當普爲三世衆生。 廣開分別。 ”
  107. 107)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역譯, 『大方廣佛華嚴經』 권35 「寶王如來性起品」(T9, 628a).
  108. 108)『妙法蓮華經』 「如來壽量品」(T9, 42c).
  109. 109)만족하지 않았다 : 성불하였으나,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겠다는 본래 서원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10. 110)『妙法蓮華經優波提舍』(T26, 19a).
  111. 111)『大方廣佛華嚴經』 권39(T9, 645c), “一切衆生未得菩提。 佛法未足。 大願未滿。 ”
  112. 112)살바야薩婆若 : ⓢ sarvaja. 부처님의 여실지如實智. 일체제법을 다 아는 온갖 지혜.
  113. 113)북량北涼 천축삼장天竺三藏 담무참曇無讖 역譯, 『大般涅槃經』 권35 「迦葉菩薩品」(T12, 571c).
  114. 114)마정 설법 : 마정은 부처님이 머리를 어루만져 주는 것. 마정하고, 수기하고, 설법함을 말한다.
  115. 115)『菩薩瓔珞本業經』 권하 「釋義品」(T24, 1018a).
  116. 116)여섯 곳에서 수기를 주는데 : 첫째 「譬喩品」에서 사리불에게 수기를 주고, 둘째는 「授記品」에서 사대존자(마하가섭, 수보리, 가전연, 목건련)에게 수기하였으며, 셋째는 「五百弟子授記品」에서 부루나, 아약교진여 등 오백제자에게 수기하였고, 넷째는 「授學無學人記品」에서 아난・라훌라 등 유학·무학 이천인에게 수기하였으며, 다섯째는 「法師品」에서 『법화경』을 실천하는 자에게 광범위한 수기를 주었고, 여섯째는 「勸持品」에서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 비구니에게 수기하였다.
  117. 117)『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2c).
  118. 118)사십심 : 보살수행 오십이계위 가운데 십신·십주·십행·십회향을 합해 사십심四十心이라 한다. 초발심부터 수행과 회향의 전 과정을 가리킨다.
  119. 119)신통으로 유희 : 불가사의한 능력을 신통이라 하고, 보살도를 펴면서 사방으로 자재하게 다니는 것을 유희한다고 한다.
  120. 120)사생 : 중생이 태어나는 것으로, 태와 알과 습기와 화현하여 나는 것 네 가지를 말한다.
  121. 121)보배의 수레 : 일불승 대백우거로 불도로 들어가는 보살도를 뜻한다.
  122. 122)『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4c).
  123. 123)『妙法蓮華經』 권4 「法師品」(T9, 31c).
  124. 124)의주석依主釋 : 육합석六合釋 중의 하나로. 한 단어에 두 가지 뜻이 있을 때 중심어에 의지하여 해석하거나, 앞 단어가 뒷 단어를 제한하는 뜻으로 해석하는 방법. 방편교에서 ‘교’가 중심어이다.
  125. 125)지업석持業釋 : 육합석 중의 하나로, 두 가지 뜻이 있을 때 앞의 말이 뒷말을 꾸미거나 체體·용用으로 되어 있는 것. 방편교方便敎(방편의 가르침)에서 방편方便은 용이고, 교敎는 체이다.
  126. 126)모든 아들 : 「方便品」 화택의 비유에서 불타는 집 안에 있는 장자의 아들들에게 세 수레를 주어 나오게 하였는데, 이 아들들은 삼계三界 육도六道의 중생을 뜻한다.
  127. 127)일승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 법화가 개회되기 이전을 말한 것으로, 이때는 방편이 일불승을 위해 연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28. 128)『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3c).
  129. 129)보여지는 것(所示) : 방편을 열어 보인 일승실상의 법을 말한다.
  130. 130)능히 보이는 것(能示) : 방편을 열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곧 삼승의 방편을 열면 일승 진실이 보인다.
  131. 131)천마 : 사마四魔 중의 하나로 타화자재천마를 말한다. 욕계 제6천으로, 욕계를 지배하여 높은 단계의 선정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므로 마군이라 한다.
  132. 132)『妙法蓮華經』 권2 「方便品」(T9, 7a).
  133. 133)개별적인 취지 : 삼승들은 사성제를 닦아서 성문취聲聞趣에 나아가고, 십이연기를 닦아서 연각취緣覺趣에 나아가며, 육바라밀을 닦아서 보살취菩薩趣에 나아가려는 것을 말한다.
  134. 134)『妙法蓮華經』 권2 「方便品」(T9, 7b).
  135. 135)『妙法蓮華經』 권2 「方便品」(T9, 7b).
  136. 136)『妙法蓮華經』 권2 「方便品」(T9, 8b).
  137. 137)『妙法蓮華經』 권2 「方便品」(T9, 8a).
  138. 138)하나는 진실이고~아니라고 하면 : 하나는 진실이라는 것은 삼승 중에 보살승만이 진실이고, 둘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성문승과 연각승의 이승은 진실이 아니라고 함이다.
  139. 139)모두 불승 : 셋 중에 하나인 보살승만이 진실이어서 일불승이고, 셋이 없는 하나란 삼승이 모두 방편이며, 진실은 일불승에 있으므로 모두 불승이라 하였다.
  140. 140)별도로 말하면 진실이 아니다 : 셋 중에 하나를 제외한 성문승, 연각승의 하나와, 셋이 없는 하나에서 성문·연각·보살승의 하나로 보아 둘은 개회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모두 방편으로 남게 되어 진실이 아니라고 했다.
  141. 141)“『大智度論』에서” 이하의 글은 길장吉藏의 『大乘玄論』(T45, 43c), 『法華遊意』(T34, 647c)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大智度論』의 인용문인 “於一佛乘開爲三分”은 그 근거가 불명확하다. 다만 “開爲三分”은 길장의 『法華義疏』(T34, 453a)의 “佛法不爾。 開爲三分。 而三分皆吉。 故經言上語。 又善中語又善後語又善。 三者大智度論云。 諸佛有三時利益。 一爲菩薩時則過去世益物。 二得佛時即現在世益物。 三滅度後未 來世益物。 序正謂現在益物。 流通即是未來益物也。 ” 가운데 밑줄 친 부분에서 보인다. 또 표원表員은 『華嚴經文義要決問答』 권3(『卍續藏』 제8책, 436b)에서 위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142. 142)통교에서 설하는 삼승 : 통교에서 성문승, 연각승 둘은 진실이 아니고, 보살승은 구경에는 불승에 나아가므로 진실이라는 것이다.
  143. 143)성문과 연각의 지혜와 끊음 : 장교(성문·연각)의 수다원향에서 팔인칠지八忍七智에서 생사의 번뇌를 끊고, 통교의 팔인지(견지와는 무간삼매로 같은 계위임)에서 생사의 번뇌를 끊어 무생법인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摩訶般若波羅蜜經』 「遍學品」(T8, 381b), “須菩提。 是八人若智若斷。 是菩薩無生法忍。 須陀洹若智若斷。 斯陀含若智若斷。 阿那含若智若斷。 阿羅漢若智若斷。 辟支佛若智若斷。 皆是菩薩無生忍。”; 지의智顗 설說, 『仁王護國般若經疏』 권제2(T33, 260b), “大品云。 阿羅漢若智若斷是菩薩無生法忍。”; 길장吉藏, 『仁王般若經疏』 권상1(T33, 318c), “大品經聲聞若智若斷皆是菩薩無生法忍。”
  144. 144)불승의 인과~부분으로 나뉜다 : 일불승의 인을 닦아 과로써 부처가 되므로, 일불승의 인因과 과果는 불지의 화신불 작은 부분들과 같다는 것이다.
  145. 145)『妙法蓮華經』 「如來壽量品」(T9, 42b).
  146. 146)삼초三草 : 「藥草喩品」에서 약초의 비유에 나오는 세 가지 약초. 원문에는 소초小草·중초中草·상초上草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상초를 대약초라 하였다. 이외에도 두 나무(二樹)가 더 있어서 약초이수藥草二樹라고도 한다(혹은 삼초이목). 이수는 지혜가 견고하고 최상승을 구하는 보살을 가리키는 소수小樹, 일불승보살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마하살을 가리키는 대수大樹가 있다.
  147. 147)오승五乘 : 인승, 천승에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을 합한 것.
  148. 148)무기無記 : 삼성의 하나로 일체법의 도덕적 성질을 삼성으로 보아 선도 악도 아닌 성질. 어떤 결과도 이끌어 오지 않는 중간성을 말한다.
  149. 149)보인報因 : 보는 과보. 과보를 받는 선업ㆍ악업의 원인.
  150. 150)회통하지 못하니 : 과로 회통되지 못함이니, 곧 일승과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
  151. 151)받음의 다함 : 인·천에서는 지은 선업·악업의 결과를 받으면 다 소진하여 다함이 있다는 것.
  152. 152)등류인等流因 : 등等은 비슷한 것. 같은 종류 두 가지가 비슷한 것. 류流는 유사하다는 것. 곧 등류인·등류과를 말한다. 인因이 선하면 과果도 선하듯이 같은 인과의 성이 동류同類인 것을 말한다.
  153. 153)삼승의 네 가지 것(四種三) : 곧 삼교三敎, 삼인三人, 삼인三因, 삼과三果.
  154. 154)삼승의 교설과 삼승의 사람과 삼승의 원인과 삼승의 과가 모두 일불승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 곧 부처님의 본 마음은 방편의 교敎·인人·인因·과果에 있지 않고, 일불승의 교敎·인人·인因·과果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천태대사는 『法華經』의 일불승의를 교일敎一·인일人一·행일行一·이일理一의 사일로 파악하였다.
  155. 155)열 가지 범부와 성인 : 육범六凡 사성四聖을 말한다. 곧 육도(지옥·축생·아귀·수라·인·천)의 중생과 네 성인(성문·연각·보살·불)을 말한다.
  156. 156)일곱 가지 비유 : 『法華經』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비유를 가리킨다. 곧 「比喩品」 제3 화택유火宅喩, 「信解品」 제4 장자궁자유長子窮子喩, 「藥草喩品」 제5 약초유藥草喩, 「化城喩品」 제7 화성유化城喩, 「五百弟子授記品」 제8 의주유衣珠喩, 「安樂行品」 제14 계주유髻珠喩, 「如來壽量品」 제16 의자유醫子喩를 말한다.
  157. 157)세 가지 평등 : 첫째는 『法華經』에서 이승·삼승에 모두 평등하게 수기를 주므로 승乘에서 평등하다는 것. 둘째는 법화에서는 생사가 곧 열반이므로 세간과 열반이 다르지 않고 평등하다는 것, 셋째는 법화에서는 중생즉부처이므로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고 평등하다는 것. 규기窺基, 『妙法蓮華經玄贊』 권5(T34, 734b) 참조.
  158. 158)여섯째 경문을 해석함(消文義)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159. 159)살달마분다리수다라薩達摩分陀利修多羅 : ⓢ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 범어 가운데 Sad(薩)는 묘妙이고, dharma(達磨)는 법法이고, puṇḍarīka(分多利加)는 연화蓮華이고, sūtra(修多羅)는 경經을 뜻한다.
  160. 160)절묘하다 : 천태 『法華玄義』에서는 법화에 적문·본문에 각각 십묘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적문십묘는 경묘境妙·지묘智妙·행묘行妙·위묘位妙·삼법묘三法妙·감응묘感應妙·신통묘神通妙·설법묘說法妙·권속묘眷屬妙·이익묘利益妙이다. 본문십묘는 본인묘本因妙·본과묘本果妙·본국토묘本國土妙·본열반묘本涅槃妙·본수명묘本壽命妙·본감응묘本感應妙·본신통묘本神通妙·본설법묘本說法妙·본권속묘本眷屬妙·본이익묘本利益妙이다.
  161. 161)『妙法蓮華經』 권6 「如來神力品」(T9, 52a).
  162. 162)『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5a).
  163. 163)『妙法蓮華經』 권2 「方便品」(T9, 5c).
  164. 164)열여섯 가지 : 교묘하고, 승묘하고, 미묘하고, 절묘한 묘법에 각각 네 가지 뜻이 있으므로, 열여섯 가지이다.
  165. 165)묘법妙法 : 이는 원문의 “故名妙法”을 따른 것이다. 다만 글의 전개상 “故名蓮華”가 더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166. 166)분타리分陀利 : ⓢ puṇḍaīka. 분타리화分陀利華라고 음역한다. 백련화白蓮花를 가리키는데, 보통 백련白蓮이라고 약칭한다.
  167. 167)불요의不了義 : 요의설은 구경의 진실을 분명하게 잘 설해 주고 있는 교설이다. 불요의는 방편설을 말한다.
  168. 168)『妙法蓮華經』 권1 「方便品」(T9, 8b).
  169. 169)보특가라補特伽羅 : ⓢ pudgala. 실체로서의 아我 또는 인人을 가리키며 윤회의 주체.
  170. 170)『解深密經』 권2 「無自性相品」(T16, 695a).
  171. 171)중생이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衆生意樂樂樂) : 이 논의 네 가지 의취(平等意趣·別時意趣·別義意趣·衆生意樂意趣) 중의 하나인 중생의락의취衆生意樂意趣를 말한다. 중생의락의취는 중생낙용의취라고도 한다. 중생들이 조금 이루고 거기에 만족하려는 마음을 없애기 위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설하는 것.
  172. 172)『大乘阿毘達磨雜集論』(일명 『對法論』) 권12 「決擇分中法品」(T31, 752b), “衆生意樂意樂者。……然彼衆生亦生天趣。 爲不定種性者。 捨離聲聞下劣意樂故。 記大聲聞當得作佛。 又說一乘更無第二。”
  173. 173)불요의설 : 원효는 『法華經』 「方便品」에서 이 법이 적멸의 모습이라고 한 구절을 들어서 불요의설이라 본 것으로, 『解深密經』에서 적정을 추구하는 성문은 성불할 수 없다고 했으므로 불요의설의 경증으로 삼았다.
  174. 174)근본법륜根本法輪 : 길장이 세운 삼전법륜의 하나. 화엄경의 설법을 가리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 후 처음으로 보살들을 위하여 자신의 깨달은 법을 그대로 설한 법문. 그러므로 이 경은 부처님 일대 설법의 근본이라고 하여 이같이 말한다.
  175. 175)지말법륜枝末法輪 : 근기가 둔한 중생들을 위하여 삼승을 설한 가르침. 삼전법륜의 하나로 화엄경은 성도 직후에 설한 가르침으로 둔한 근기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다음으로 40여 년 동안 근기에 맞추어 삼승을 설한 교법.
  176. 176)섭말귀본법륜攝末歸本法輪 : 삼승교는 근기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일불승을 셋으로 나누어 설법하였으므로, 삼승을 회통하여 일승의 도에 돌아가게 한 법화의 법문을 가리킨다.
  177. 177)『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6c).
  178. 178)화엄의 근본 가르침 : 「信解品」 장자궁자비유에서 궁자가 장자의 집 대문에 서서 그의 아버지를 보았는데 사자좌상의 보배궤 안에 발을 올려놓고, 많은 바라문 왕족 등 권속이 공경하여 둘러싸서 모시고, 천만금이나 나가는 진주 영락으로 그 몸을 치장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천태학의 오시에서는 이를 제1화엄시 설법으로 본다. 이때의 장자 모습은 승응신의 노사나불이 법신보살을 거느린 설법상을 나타내고, 보배로 장엄한 것은 사십지의 공덕으로 법신을 장엄한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179. 179)『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6c-17a).
  180. 180)일승을 숨기고 삼승을 설한 : 장자가 화려한 옷을 벗어 놓고 해지고 때 묻은 옷으로 갈아입고 똥 치는 그릇을 들고 궁자에게 가서 부지런히 일하라고 한 것을 말한다. 곧 장자가 노사나존특신盧舍那尊特身을 숨기고 장륙존불의 응신불로 나투어 이승ㆍ삼승을 편 것을 가리킨다.
  181. 181)큰 지혜 : 여기서는 일불승의 지혜. 천태학에서는 방등부ㆍ반야부를 거쳐 법화열반부의 설법을 가리킨다.
  182. 182)『妙法蓮華經』 권2 「譬喩品」(T9, 17b).
  183. 183)명주明珠 : 전륜성왕의 상투에 간직한 계명주로 전쟁에서 공이 가장 큰 장수에게 주는 보배구슬로 일불승을 의미한다.
  184. 184)『妙法蓮華經』 권5 「安樂行品」(T9, 39a).
  185. 185)쉬게 하려고 : 「化城喩品」 화성의 비유에서는 인도자가 보배성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때 멀고 험하여 피곤하고 지친 자들을 위하여 중간에 화성을 화작하여 쉬게 한 다음 끝내 보배성으로 인도한 것. 중간에 쉰 것은 이승ㆍ삼승의 방편이고 보배성이 일불승 진실이다.
  186. 186)『妙法蓮華經』 권3 「化城喩品」(T9, 27b).
  187. 187)네 가지 지혜의 구경 : 네 가지 지혜는 고지苦智·집지集智·멸지滅智·도지道智를 말한다. 이승들(성문·벽지불)은 이 네 가지 지혜가 원만하지 못하면 열반을 만족하지 못하므로, 네 가지 지혜의 구경으로 열반을 만족한다고 한다. 길장吉藏 찬撰, 『勝鬘寶窟』 권중(T37, 46c 이하) 참조.
  188. 188)『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一乘章」(T12, 219c). 아라한과 벽지불이 사지의 구경을 얻어 분단생사의 고난을 끊고 열반의 쉴 곳을 얻었지만, 이는 여래의 방편일 뿐 진실한 열반이 아니므로 불요의라고 하였다. 『勝鬘經』 원문은 다음과 같다. “言阿羅漢辟支佛。 觀察解脫四智究竟。 得蘇息處者。 亦是如來方便有餘不了義說。”
  189. 189)수기를 주지 않고 : 성문 결정성은 이승에 머물기 때문에 나올 수 없고, 증상만은 이승을 구경으로 생각하여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므로 불도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0. 190)『妙法蓮華經優波提舍』(T26, 18b).
  191. 191)『大智度論』 「釋畢定品」(T25, 714a).
  192. 192)천제闡提 : ⓢ Icchantika. 선근을 끊어서 성불하지 못하는 원인을 가지고 있는 일천제를 가리킨다. 일천제가一闡提迦, 단선근斷善根, 신불구족信不具足 등으로 부른다.
  193. 193)『究竟一乘寶性論』 권3 「一切衆生有如來藏品」(T31, 831b).
  194. 194)『解深密經』 권2 「無自性相品」(T16, 695a).
  195. 195)『妙法蓮華經』 권3 「化城喩品」 제7(T9, 26a).
  196. 196)이 본이 홍안 6년 일본 인화사仁和寺 소장본으로, 이곳에서 상승하였다는 것.
  1. 1){底}新修大藏經。第三十四卷(弘安六年相承二和寺藏本){甲}東文選第八十三卷所載法華經宗要序。
  2. 2)「滅」作「咸」{甲}。
  3. 3)「花」作「華」{甲}。
  4. 4)▣作「四」{甲}。
  5. 5)「算」作「塵」{甲}。
  6. 6)「立」作「土」{甲}。
  7. 1)「滅」作「咸」{甲}。
  8. 2)「華」作「花」{甲}。
  9. 3)「久」作「人」{甲}。
  10. 4)「▣▣總」作「處怳惚」{甲}。
  11. 5)「是」上有「於」{甲}。
  12. 6)▣作「以」{甲}。
  13. 7)▣作「羊」{甲}。
  14. 8)▣作「待」{甲}。
  15. 9)「麁」作「危」{甲}。
  16. 10)「迺▣」作「乃偕」{甲}。
  17. 11)「除」下有「而」{甲}。
  18. 12)▣作「修」{甲}。
  19. 13)▣作「斥」{甲}。
  20. 14)▣作「修」{甲}。
  21. 15)「忘」作「亡」{甲}。
  22. 16)「蕩」作「儻」{甲}。
  23. 17)「肅」作「簫」{甲}。
  24. 18)「稱」「號」{甲}。
  25. 19)「花」作「華」次同{甲}。
  26. 20)「當」作「尙」{甲}。
  27. 21)「逕」作「經」{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