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 無量壽經宗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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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원효 스님 지음(釋元曉撰)

무릇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Sukhāvatī-vyūha)의 종지를 밝히려고 함에 있어서, 간략하게 네 부문으로 분석하여 서술한다. 첫째, 이 경전의 가르침에 관한 대체적인 뜻을 서술하고, 둘째, 이 경전의 근본사상을 탐구하며, 셋째, 수행하는 사람을 들어 분석하여 해석하고, 넷째, 이 경전의 문장을 해석한다.

제1장 『불설무량수경』의 가르침에 관한 전체적인 뜻을 서술함(述敎之大意)
모든 것이 한낱 꿈이로다

(첫째, 이 경전의) 대의大意는 무엇인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마음의 본성은 원융·회통하여 걸림이 없다. 얼마나 큰가 하면 허공처럼 크고, 얼마나 깊은가 하면 큰 바다처럼 깊다. 허공과 같으므로 그 본체가 평등하여 이것이다 저것이다 가릴 것이 없는데, 어찌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이 있겠는가. 그리고 큰 바다와 같으므로 그 본성이 매끄럽고 윤활하여 인연을 잘 따라 거스름이 없는데, 어찌 움직일 때와 멈출 때가 없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육진1)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오탁2)의 악세에 빠져서 헤매고, 고해의 물결에 잠겨 길이 떠돌아다니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선근을 이어받아 사류3)를 끊어 되돌아오지 않고, 피안에 이르러 영원히 고요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움직임도 고요함도 모두 한낱 커다란 꿈이로구나!

공덕을 쌓아야 깨닫는다

깨달음의 경지로 이것을 말하면, 차안도 없고 피안도 없구나! 예토와 정토가 본디 한마음이므로 생사와 열반4)은 마침내 둘이 아닐세! 그러나 근원으로 돌아가 대각大覺을 이루는 것은 공덕을 쌓아야만 얻을 수 있다. 물결을 따라 떠다니면서 긴 꿈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는 단박에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드리운 자취는 먼 것이 있고 가까운 것이 있으며,5) 베푸신 가르침은 혹은 칭찬하고 혹은 폄하한 것6)이 있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오악7)을 훈계하시고, 선善을 권장하며, 아미타여래8)께서 안양국토安養國土9)에 머물면서 세 무리의 중생(三輩)10)을 인도하여 왕생하게 한 것에 이르기까지, 이들 방편(權)의 자취(迹)는 모두 진술할 수 없다.


001_0553_c_01L[無量壽經宗要]

001_0553_c_02L1)無量壽經宗要

001_0553_c_03L

001_0553_c_04L釋元曉2)

001_0553_c_05L
3)原夫經旨欲明 [1] 略啓四門分別初述
001_0553_c_06L敎之大意次簡經之宗致三者擧人分
001_0553_c_07L四者就文解釋

001_0553_c_08L[初述敎之大意]
言大意者然夫衆生心性融通無礙
001_0553_c_09L泰若虗空湛猶巨海若虗空故其體
001_0553_c_10L平等無別相而可得何有淨穢之處
001_0553_c_11L猶巨海故其性潤滑能隨緣而不逆
001_0553_c_12L豈無動靜之時爾乃或因塵風淪五濁
001_0553_c_13L而隨轉沈苦浪而長流或承善根
001_0553_c_14L四流而不還至彼岸而永寂若斯動寂
001_0553_c_15L皆是大夢以覺言之無此無彼穢土
001_0553_c_16L淨國本來一心生死涅槃終無二際
001_0553_c_17L然歸原大覺積功乃得隨流長夢
001_0553_c_18L可頓開所以聖人垂迹有遐有邇
001_0553_c_19L設言敎或褒或貶至如牟尼世尊
001_0553_c_20L此娑婆誡五惡而勸善彌陀如來
001_0553_c_21L彼安養引三輩而導生斯等權迹
001_0553_c_22L{底}續藏經第一編三十二套三冊 {甲}新修大藏
001_0553_c_23L經第三十七卷(寶永八年刊大谷大學藏本) 「無」
001_0553_c_24L上有「兩卷」{甲}
「撰」{甲}作「選」疑誤植{編}
001_0553_c_25L「原夫經旨欲明」作「將申兩卷經旨」{甲}

001_0554_a_01L
불국정토는 극락이다

이제 이 경전은 보살을 위한 가르침을 담은 격언이며, 불국토의 인과에 관한 참다운 경전이다. 원행願行의 비밀과 심오함을 밝히고, 과덕果德의 영원함을 나타낸 것이다. 열여덟 가지 원정11)은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12)를 초월하여 그야말로 절정이며, 오근13)과 상호14)는 육욕천15)을 얻어도 이어받을 수 없다. 보배로운 향기와 진리의 맛으로 몸과 마음을 기르니, 어떤 사람인들 아침에 굶주리고 저녁에 목마른 괴로움이 있겠는가!
구슬로 꾸민 숲의 향기로운 바람은, 따뜻해야 할 때는 따뜻하고 시원해야 할 때는 시원하여 언제나 알맞으므로, 본디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무더위와 같은 괴로움이 없다. 여러 신선들이 함께 모여 때때로 8종의 공덕을 갖춘 연못16)에서 목욕하며, 이로 말미암아 싫어할 만한 호호백발에 주름진 얼굴의 늙음에 치우침을 멀리 여의고, 좋은 벗들이 서로 몰려와서, 멀리 시방十方의 불국정토에서 노닌다. 위무하기 어려운 근심 걱정을 멀리 보내 버린다.

어째서 『불설무량수경』이라 부르는가?

하물며 다시 진리의 메아리를 듣고 무상無相에 들어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무생無生17)을 깨달음이랴! 무생을 깨달으니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고, 무상無相에 들어가니 실상이 아닌 것이 없구나! 지극한 청정과 지극한 즐거움은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끝이 없고 막힘이 없는데,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다만 진리를 말씀할 수 있는 다섯 분18) 가운데에서, 부처님이 우두머리이며, 의보와 정보의 두 가지 안에서 가장 오래 사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불설무량수경』이라고 부른다.

어째서 상·하 두 권인가?

(이 경전을) 한 권으로 개설하면 마음을 열기에 구족하지 못할 것이며, 또 그것을 세 권으로 하면 두 손바닥에 놓을 때 한 권이 남는다. 이제 『불설무량수경』은 상권이 있고 하권이 있어서,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으므로, 손바닥 위의 보배로 삼기에 알맞다.
그리고 이것을 일러 상권이라고 하므로, 『불설무량수경』 상권이라고 부른다.

제2장 『불설무량수경』의 근본사상은 무엇인가?(簡經之宗致)
둘째, 이 경전의 근본사상은 무엇인가? 이 경전은 바로 정토의 인과로 『불설무량수경』의 종체를 삼고, 중생을 통섭하여 왕생하는 것으로 의치를 삼는다.
통틀어 드러내면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에서 분석하면, 먼저 과덕을 밝히고, 그 다음에 인행을 나타낸다.

제1절 과덕을 밝힌다(明果德)
과덕 안에 대략 네 부문이 있다. 첫째, 청정한 문과 청정하지 못한 문이며, 둘째, 유색문과 무색문이고, 셋째, 공과문과 불공과문이며, 넷째, 유루문과 무루문이다.

1. 청정한 문과 청정하지 못한 문(淨不淨門者)
첫째, 청정한 문과 청정하지 못한 문19)을 밝히려고 하는데, 이것을 줄여서 서술하면 네 가지 상대로서 그 계위가 내려가는 것을 나타낸다.

001_0554_a_01L可具陳矣今此經者蓋是菩薩藏敎之
001_0554_a_02L格言佛土因果之眞典也明願行之密
001_0554_a_03L現果德之長遠十八圓淨越三界
001_0554_a_04L而迢絕五根相好侔六天而不嗣
001_0554_a_05L [1] 法味遂養身心誰有朝餓夜渴之苦
001_0554_a_06L玉林芳風溫涼常適本無冬寒夏熱之
001_0554_a_07L羣仙共會時浴八德蓮池由是長
001_0554_a_08L偏可厭之皓皺勝侶相從 [2] 遊十方
001_0554_a_09L佛土於玆遠送以難1) [2] [3] 之憂勞況復
001_0554_a_10L聞法響入無相見佛光悟無生悟無生
001_0554_a_11L無所不生入無相故無所不相
001_0554_a_12L淨極樂非心意之所度無際無限
001_0554_a_13L言說之能盡但以能說五人之中佛爲
001_0554_a_14L上首依正二報之內長命爲主故言
001_0554_a_15L佛說無量壽經設其一軸不足開心
001_0554_a_16L若至其三有餘兩掌今此經者有上
001_0554_a_17L有下無缺無餘適爲掌珍言之卷上
001_0554_a_18L言噵佛說無量壽經卷上

001_0554_a_19L[第二簡經之宗致]
第二簡宗致者此經正以淨土因果
001_0554_a_20L其宗體攝物往生以爲意致總標雖然
001_0554_a_21L於中分別者先明果德後顯因行
第一明果德

001_0554_a_22L德之內略有四門一淨不淨門二色
001_0554_a_23L無色門三共不共門四漏無漏門

001_0554_a_24L一明淨不淨門者
略以四對顯其階降

001_0554_b_01L이를테면 첫째, 원인과 결과의 상대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한결같음과 한결같지 않음의 상대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순수함과 잡스러움의 상대이기 때문이며, 넷째는 정정취와 정정취가 아닌 중생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1) 원인과 결과의 상대문

‘(첫째,) 원인과 결과의 상대문’이란 다음과 같다. 금강유정20) 이하의 보살이 머무는 곳을 과보토라고 부르고 정토라고 부르지 않는데, 아직 고성제의 과보로서의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부처님이 사시는 곳만을 정토라고 부르는데, 모든 근심 걱정을 남김없이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뜻을 근거로 하여, 『인왕경』에서 “삼현21)과 십성22)은 과보에 머무르며 오로지 부처님 혼자만 정토에 사시네. 모든 중생은 잠시 동안 이 보토에 머물다가 금강위의 근원에 오르면 정토에서 사느니라.”23)라고 하였다.

2) 한결같은 것과 한결같지 않은 것의 상대문

‘둘째, 한결같은 것24)과 한결같지 않은 것의 상대문’이란 다음과 같다. 이를테면 팔지 이상의 보살이 머무는 곳을 정토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한결같이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를 벗어났기 때문이고, 또 한결같음의 사구(한결같은 청정·한결같은 안락·한결같은 잃지 않음·한결같은 자재)의 의의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칠지 이하의 모든 보살이 머무는 곳은 아직 정토라고 부르지 않는데, 그것은 한결같이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원력을 타고서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를 벗어난 이도 한결같음의 사구를 구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구라는 것은, 한결같은 청정·한결같은 안락·한결같은 잃지 않음·한결같은 자재를 가리킨다. 칠지 이하의 보살이 관찰행(ⓢ vipaśyanā)에서 나올 때, 어떤 경우에는 과보로서의 무기의 마음이 일어나고 제7 말나식의 사혹25)이 바로 그때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한결같은 청정이 아니며, 한결같은 잃지 않음이 아니나, 팔지 이상의 보살은 이와 같지 않다. 이런 뜻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섭대승론석』에서 다음과 같이 논술한다. “ 출출세出出世 선법의 공능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문·연각 이승의 선을 출세라고 부르며, 팔지 이상으로부터 내지 불지에 이르기까지를 출출세라고 부른다. 출세의 법은 세간의 법을 대치하는 것이며, 출출세의 법은 출세의 법을 대치하는 것이다. 그 공능은 4연으로 상을 삼는다. 이 출출세 선법의 공능에서 이 정토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므로, 집제를 가지고 원인으로 삼지 않는다.(자세한 내용은 논서와 같다)”26)

3) 순수함과 잡스러움의 상대문

‘셋째, 순수함과 잡스러움의 상대문’이란 다음과 같다.

001_0554_b_01L謂因與果相對故一向與不一向相對
001_0554_b_02L純與雜相對故正定與非正定相對
001_0554_b_03L所言因與果相對門者謂金剛以還
001_0554_b_04L菩薩所住名果報土不名淨土未離
001_0554_b_05L苦諦之果 [4] 患故唯佛所居乃名淨土
001_0554_b_06L一切勞患無餘滅故依此義故仁王
001_0554_b_07L經云三賢十聖住果報唯佛一人居淨
001_0554_b_08L一切衆生2) [3] [5] 住報登金剛源 [6] 居淨
001_0554_b_09L第二一向與不一向相對門者謂八
001_0554_b_10L地以上菩薩住處得名淨土以一向出
001_0554_b_11L三界事故亦具四句一向義故七地以
001_0554_b_12L還一切住處未名淨士以非一向出三
001_0554_b_13L界故或乘願力出三界者一向四句不
001_0554_b_14L具足故3)一向淨 [4] 一向樂一向無失
001_0554_b_15L一向自在七地以還出觀之時或時生
001_0554_b_16L起報無記心末那四惑4) [5] [7] 時現行
001_0554_b_17L非一向淨非一向無失八地以上卽不
001_0554_b_18L如是依此義故攝大乘云出出世善
001_0554_b_19L功能所生起釋曰二乘善名出世
001_0554_b_20L從八地以上乃至佛地名出出世
001_0554_b_21L世法 [8] 世法對治出出世法爲出世
001_0554_b_22L法對治功能以四緣爲相從出出世善
001_0554_b_23L法功能生起此淨土故不以集諦爲因
001_0554_b_24L乃至廣說故第三純與雜相對門者

001_0554_c_01L범부와 성문·연각의 이승이 섞여 사는 곳은 청정한 세계라 부를 수 없고, 오직 대지大地27)에 들어간 보살이 태어나는 곳이라야 비로소 청정한 세계라 할 수 있는데, 저곳은 온전하게 거룩하지 못하고 이곳은 온전하게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뜻에 의하여 『유가사지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세계의 무량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청정한 세계이며, 둘째는 청정하지 못한 세계이다. 청정한 세계 가운데에는 나락가那落迦28)·방생·아귀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욕계·색계·무색계도 없다. 온전히 거룩한 보살만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세계이므로 청정한 세계라고 부른다. 벌써 제3지에 들어간 보살은 원력으로 말미암아 저곳에서 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생이나 이생이 아닌 성문과 독각, 또는 이생의 보살은 저 청정한 세계에 태어나는 일이 없다.”29) 이 『유가사지론』에서의 ‘제3지’는 보살 십지에서의 환희지30)이니, 일곱 가지 보살지31)의 관점으로는 제3 정승의락지32)이기 때문에 ‘제3지’라고 한 것이다. 13계위33)를 섭수하여 일곱 가지 보살지를 세우는데34) 자세한 것은 저 논서에서 서술하는 것과 같다.

4) 정정취와 정정취가 아닌 중생의 상대문

‘넷째, 정정취와 정정취가 아닌 중생의 상대문’이란 다음과 같다. 정정취·사정취·부정취의 세 부류 중생35)이 사는 괴로움의 세계를 예토라 하고, 오직 정정취만 사는 세계를 정토라 부르는데, 그 가운데에 사향사과36)의 성문이 있고, 또 네 가지 의심을 품은 범부가 있지만, 오로지 사정취나 부정취의 중생은 없을 뿐이다.

이제 이 『불설무량수경』에서 말씀하는 무량수국은 곧 제4문에 대하여 말씀하는 정토이다. 왜냐하면 대승과 소승을 두루 포용하고, 범부와 성인을 아울러 인도하여 저 거룩한 곳에 함께 태어나서 다 같이 대도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래 글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붓다가 될 수 있더라도 이 세계 안의 사람과 천신들이 정정취에 머물러 반드시 멸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37) 또 “내가 붓다가 될 수 있더라도 이 나라 안의 성문의 수를 헤아릴 수 있고 삼천대천세계38)의 중생과 연각을 100⨉1,000겁에 걸쳐서라도 모두 헤아려 그 수를 알 수 있다면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39)고 하였고

001_0554_c_01L夫二乘雜居之處不得名爲淸淨世界
001_0554_c_02L唯入大地菩薩生處乃得名爲淸淨世
001_0554_c_03L彼非純淨此純淨故依此義故
001_0554_c_04L伽論言世界無量有其二種謂淨不
001_0554_c_05L淸淨世界中無那落迦傍生餓鬼
001_0554_c_06L亦無欲界色無色界純菩薩衆於中止
001_0554_c_07L是故說名淸淨世界已入第三地菩
001_0554_c_08L由願力故於彼受生無有異生及
001_0554_c_09L非異生聲聞獨覺若非 [9] 異生菩薩得生
001_0554_c_10L於彼解云此第三地是歡喜地以就
001_0554_c_11L七種菩薩地門第三淨勝意樂地故
001_0554_c_12L十三位立七種地具如彼論之所說故
001_0554_c_13L第四正定與非正定相對門者三聚衆
001_0554_c_14L生苦生之地是爲穢土唯正定聚所居
001_0554_c_15L之處名爲淨土於中亦有四果聲聞
001_0554_c_16L乃至復有四疑凡夫唯無邪定及不定
001_0554_c_17L聚耳今此經說無量壽國就第四門說
001_0554_c_18L爲淨土所以然者爲欲普容大小兼引
001_0554_c_19L凡聖並生勝處同趣大道故如下文
001_0554_c_20L設我得佛國中人民不住正定聚
001_0554_c_21L必至滅度者不取正覺又言設我得
001_0554_c_22L國中聲聞有能計量知其數者
001_0554_c_23L「慰」作「▼(((尸*火)+又)/心)」{甲}「蹔」作「暫」{甲}「一向淨」
001_0554_c_24L無{甲}
「於」作「于」{甲}

001_0555_a_01L또한 『불설관무량수경』에서도 “저 나라에 태어나면 곧 아라한과를 얻으리라. 그리고 널리 말씀하신다.”40)라고 하였다.

『왕생론往生論』에서 말하기를 “여자 그리고 장애인, 성문·연각, 이승의 종성은 그곳에 태어나지 못한다.”41)라고 한다. ‘이승’이란 결정된 종성인 성문·연각의 이승을 말하며, 결정되지 않은 근성의 성문이 아니다. 이것을 가리기 위하여 ‘성문·연각의 이승의 종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뜻으로 말미암아 (『무량수경』에서 성문승이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여자 그리고 장애인’이란 것은, 이를테면 저곳에 태어날 때에는, 여자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여자와 장애인이 그곳에 가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빈비사라왕의 왕비인) 위제희韋提希도 왕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미타고음성왕다라니경』에서 “아미타불의 아버지는 월상 전륜성왕이라고 부르고, 어머니는 수승묘안이라고 부른다.”42)라 한다. (나아가 자세히 말한 것은, 『왕생론』에서 정토에 여인이 없다고 말한 것과 어긋난다.) 이것은 화신불이 사는 화토를 말하는 것이며, 저 논서(『왕생론』)에서 말하는 것은 수용토43)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네 가지 상대문으로 나누어 해설한 정토는 다 여래의 원행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저 세계에 왕생하는 사람의 자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예토의 기세계가 오로지 중생의 공업44)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틀어 청정한 국토라고 부르는 것이다.

2. 유색문과 무색문(明有色無色門者)
다음에 ‘제2의 유색문과 무색문을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 해설한 네 가지 상대문 가운데에서 처음의 제1문은 자수용토45)를 나타낸 것이며, 뒤의 세 가지 상대문은 타수용토46)를 서술한 것이다. 뒤의 세 가지 상대문에 형색이 있음은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앞의 자수용토에 대해서는 논사에 따라서 학설이 다르다.

어떤 논사가 서술한다. 자수용신은 멀리 형색을 여읜 법성의 정토를 그가 사는 곳으로 삼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얻을 수 없다고 서술한다. 저 『보살영락본업경』에서 “불자여, 불과의 본체는 아주 원만하여 덕을 갖추지 않음이 없고 진리는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중도의 제일의제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청정한 국토는 끝도 없고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모든 법을 얻을 것이 없으며, 그 본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널리 말씀하신다.)”47)라고 했고,

001_0555_a_01L取正覺乃至廣說又觀經中說生彼
001_0555_a_02L國已得羅漢果等乃至廣說故論說云
001_0555_a_03L女人及根缺二乘種不生者是說決定
001_0555_a_04L種性二乘非謂不定根性聲聞爲簡此
001_0555_a_05L名二乘種由是義故不相違也
001_0555_a_06L言女人及根缺者謂生彼時非女非根
001_0555_a_07L缺耳非此女等不得往生如韋提希而
001_0555_a_08L得生故然鼓音王陀羅尼經云阿彌陀
001_0555_a_09L父名月上轉輪聖王其母名曰殊勝
001_0555_a_10L玅眼等乃至廣說者是說化佛所居化
001_0555_a_11L論所說者是受用土由是道理
001_0555_a_12L不相違上來四門所說淨土皆是如
001_0555_a_13L來願行所成非生彼者自力所1) [6] )不
001_0555_a_14L如穢土外器世界唯由衆生共業所成
001_0555_a_15L是故通名淸淨土也

001_0555_a_16L次第二明有色無色門者
如前所說四
001_0555_a_17L種門中初一門顯自受用土後三門說
001_0555_a_18L他受用土三門有色不待言論自受
001_0555_a_19L用土說者不同2) [7] [10] 說者自受用身
001_0555_a_20L遠離色形法性淨土爲所住處是故都
001_0555_a_21L無色相可得如本業經說佛子果體圓
001_0555_a_22L滿 3)無德 [8] [11] 不備理無不周居中道第一
001_0555_a_23L義諦淸淨國土無極無名無相非一
001_0555_a_24L切法可得非有體非無體乃至廣說

001_0555_b_01L또 『대승기신론』에서 “거룩하신 모든 부처님은, 법신이면서 동시에 지혜덩어리(智身)48)이며, 제일의제第一義諦49)이기 때문이다. 세속제世俗諦50)의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시작施作을 떠났다. 다만 모든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 소질이나 능력에 따라서 거룩한 붓다의 모습을 바라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나 소질에 알맞은 형태로 이익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대승, 그 작용의 위대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거룩한 부처님께서 인류를 구제하는 작용에는 그것을 감수하는 사람들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논술한다. 첫째, 아직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성문·연각의 마음에 응현하여 감수되는 불신이며, 이것을 거룩한 부처님의 응신應身이라고 한다. 둘째, 대승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의 결의를 일으킨 계위로부터 깨달음의 계위에 이르기까지의 보살의 마음에 응현하여 감수되는 불신이며, 이것을 거룩한 부처님의 보신報身이라고 한다.”51)라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글을 근거로 하여 볼 수 있는 색상은 다 타수용신이니, 자수용신 가운데에는 형색도 없고 형상도 없다고 말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논사는 말하기를, 자수용신에는 장애가 없는 미묘한 색이 있고, 그 의지하는 국토에는 색·성·향·미·촉·법 육경의 수승한 경계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는 『대살차니건자소설경』의 게송에서 “구담瞿曇의 법성신은 미묘한 색신이므로 늘 담연하다. 그리고 청정하며 늘 적멸하여 그 모습이 허공과 같다. 이와 같은 법성신은 중생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52)라고 했고,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여래께서 보리를 이루실 때, 모든 중생과 같은 몸을 얻고, 모든 법과 같은 몸을 얻으며, 내지 모든 행계와 같은 몸을 얻고, 고요한 열반의 세계와 같은 몸을 얻느니라. 부처님의 아들딸들이여, 여래께서 얻은 몸을 따라 음성과 걸림이 없는 마음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청정한 무량을 다 갖추었느니라.”53)라고 했으며, 또 『섭대승론석』에서 “정토에서는 온갖 두려움을 여읜다. 육근이 수용하는 법을 모두 갖추었다. 오로지 수용하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것만은 아니며, 가장 훌륭하여 똑같은 것이 없다. 이 여래의 복덕과 지혜는 원만한 행行으로 감득한 것이니, 여래의 거룩한 과보가 여기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하다.”54)라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글들을 근거로 하여, 원만한 인으로 감득하는 것이 자수용신이고, 이는 육진을 의지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논사는 말하기를, 두 논사의 학설이 모두 도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똑같이 경과 논에 있어서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여래의 법문은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001_0555_b_01L起信論云諸佛如來唯是法身智相之
001_0555_b_02L第一義諦無有世諦境界離於施
001_0555_b_03L但隨衆生見聞皆得益故說爲用
001_0555_b_04L此用有二種一者凡夫二乘心所見者
001_0555_b_05L名爲應身二者諸菩薩從初發意乃至
001_0555_b_06L菩薩究竟地心所見者名爲報身
001_0555_b_07L此等文當知所見有色相等皆得他受
001_0555_b_08L用身說自受用中無色無相也或有
001_0555_b_09L說者自受用身有無障礙微玅之色
001_0555_b_10L其所依土具有六塵殊勝境界如薩遮
001_0555_b_11L尼乾子經云瞿曇法性身玅色常湛然
001_0555_b_12L如是法性身衆生等無邊華嚴經云
001_0555_b_13L如來正覺成菩提時得一切衆生等身
001_0555_b_14L得一切法等身乃至得一切行界等身
001_0555_b_15L得寂靜涅槃界等身佛子隨如來所得
001_0555_b_16L當知音聲及無礙心亦復如是
001_0555_b_17L來具足如是三種淸淨無量攝大乘云
001_0555_b_18L若淨土中無諸怖畏六根所受用法
001_0555_b_19L悉具有又非唯是有一切所受用具
001_0555_b_20L最勝無等是如來福德智慧行圓滿因 [12]
001_0555_b_21L如來勝報依止處是故最勝依此等
001_0555_b_22L當知圓滿因之所感自受用身
001_0555_b_23L止六塵也或有說者二師所說皆有
001_0555_b_24L道理等有經論不可違故如來法門

001_0555_c_01L그 이유는 무엇인가. 보신불의 국토에 대략 두 가지 문이 있는데, 첫째는 바른 실상인 근원으로 돌아오는 문의 관점에서 보면 앞의 논사의 학설과 같고, 또 다시 성품을 따라서 공덕을 이루는 문의 관점에서 보면 뒤의 논사의 학설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논사들이 인용한 경전과 논서도 그 글을 따르는 학설이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제2의 색이 있고 색이 없는 문이다.

3. 공과문(밖의 국토)과 불공과문(안의 국토)(明共不共門者)
‘셋째, 공과문과 불공과문을 밝힌다’는 것은, 총체적으로 해석하면 국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안의 국토(불공과)이고, 둘째는 밖의 국토(공과)이다. 밖의 국토는 공과共果55)를 말하고 안의 국토는 불공과不共果56)를 가리킨다.

1) 불공과문(안의 국토)

안의 국토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중생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五陰)를 정보의 국토로 삼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국토라 부른다. 둘째는 세간을 벗어난 성인의 지혜를 진실한 지혜의 국토(實智土)57)라고 부른다. 이것은 후득지58)를 머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근본지根本智59)에 의하여 전도를 여의기 때문이다. 『보살영락본업경』에서 “국토는 모든 현인과 성인이 사는 곳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과 현인과 성인이 각각 스스로 과보의 국토60)에 산다. 범부인 중생은 오음五陰에 살면서, 그것을 정보의 국토로 삼는데, 산림과 대지는 함께 소유하므로 의보의 국토라고 부른다. 초지初地의 성인에게도 또한 두 가지 국토가 있다. 첫째는 진실한 지혜의 국토이니, 이것은 이전의 지혜가 이후의 지혜에 머물며 국토로 삼는다. 둘째는 정토와 예토를 변화시켜 무량한 겁을 지나서 응현하는 국토이다. 그리고 무구지의 국토 또한 이와 같다. 모든 중생으로부터 무구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토가 아닌데, 그것은 과보의 국토에서 살기 때문이다.”61)라고 한 것과 같다.

2) 공과문(밖의 국토)

총체적으로 해설하면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서 분별하면 정보의 국토가 불공과의 뜻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설이 없는데, 의보의 국토가 공과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다르다.


001_0555_c_01L無障礙故所以然者報佛身土略有
001_0555_c_02L二門若就4) [9] [13] 相歸源之門如初師說
001_0555_c_03L若依從性成德之門如後師說所引經
001_0555_c_04L隨門而說故不相違此是第二色
001_0555_c_05L無色門也

001_0555_c_06L次第三明共不共門者
通相而言
001_0555_c_07L有二種一者內土二者外土言外土
001_0555_c_08L是共果言內土者是不共果內土
001_0555_c_09L之中亦有二種一者衆生五陰爲正
001_0555_c_10L報土人所依住故名爲土二者出世
001_0555_c_11L聖智名實智土以能住持後得智故
001_0555_c_12L依根本智離顚倒故如本業經云
001_0555_c_13L名一切賢聖所居之處是故一切衆生
001_0555_c_14L賢聖各自居果報之土若凡夫衆生住
001_0555_c_15L五陰中爲正報之土山林大地共有
001_0555_c_16L爲依報之土初地聖人亦有二土
001_0555_c_17L實智土前智住後智爲土二變化淨穢
001_0555_c_18L逕劫數量應現之土乃至無垢地土
001_0555_c_19L亦復如是一切衆生乃至無垢地
001_0555_c_20L非淨土住果報故總說雖然於中分
001_0555_c_21L別者正報之土不共果義更無異說
001_0555_c_22L依報之土爲共果者諸說不同或有
001_0555_c_23L「辦」作「辨」{甲}「自」作「有」{甲}「德無」
001_0555_c_24L作「無德」{甲}
「正」疑「遣」{編}

001_0556_a_01L
어떤 논사62)가 말하기를 “산·강 등과 같은 것은 극미極微63)가 집합하여 이루어지고, 하나의 실체가 있어서 많은 원인이 함께 감응한 것이 아니다. 다만 유정의 다른 식들이 각각 변현시킨 것이지만, 같은 곳에 함께 있어도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 마치 여러 개의 등불을 함께 켜는 것과 같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원인의 종류가 같으면 나타나는 결과의 내용도 같으며, 처소도 다름이 없는 것을 가정적으로 같다고 하지만, 사실은 각각 다른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정토 또한 그와 같아서, 다른 식이 변화한 것인데, 모든 법계에 두루 존재하여 처소가 같으므로 공상共相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공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의 국토가 있는데, 식을 따라서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곧 마음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유식의 이치는 아니다.”64)라고 했다. 『해심밀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내가 말하는 식의 소연은 오직 식의 나타남이기 때문이다.”65)라고 하고, 『대승유식론』에서 “업이 식에 훈습熏習66)하여, 업의 과보가 밖에 생겨난다고 집착한다. 무슨 원인이 그곳에 훈습하는가? 그 가운데에서는 업의 과보를 말하지 않는다.”67)라고 말한 것과 같다.68)

또한 어떤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토에 의지하는 과보는 식을 여읜 것이 아니더라도, 식과는 다른 것이며, 국토의 실상은 하나이다. 그것은 저 다른 식으로 말미암아 함께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네 가지 미진69)을 모아서 하나의 기둥을 이루는 것과 같으니, 하나의 기둥의 실상은 네 가지 미진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네 가지 미진을 따른다고 네 가지 기둥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의 도리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 자수용토에 대하여 서술하면, 붓다와 다른 모든 붓다가 한 국토를 함께 공유하는데, 이는 마치 법신을 모든 붓다가 함께 의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타수용토에 대해서 논술하면,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평등하게 함께 공유하는데, 이는 마치 왕과 신하가 한 나라를 함께 공유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두 가지 수용토 또한 별체가 아닌데, 이는 마치 관행70)하는 사람은 돌을 보고 옥으로 삼고, 지혜가 열리지 않은 사람은 이것을 돌로만 보는 것과 같다. 이 돌과 옥은 서로 다르지만, 그렇다고 체가 다른 것은 아니듯이, 자수용토와 타수용토, 두 국토가 같은 곳임을 마땅히 그렇게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고, 『해심밀경』에서는 “‘여래의 소행과 여래의 경계, 이 두 가지는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의 소행이란 이를테면 모든 종류의 여래가 함께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하고 무량한 공덕으로 장엄하는 청정한 불국토이다.

001_0556_a_01L說者如山河等非是極微合成實有
001_0556_a_02L一體多因共感直是有情異成 [14] 各變
001_0556_a_03L同處相似不相障礙如衆燈明如多
001_0556_a_04L因所夢因類是同果相相似處所無
001_0556_a_05L假名爲共實各有異諸佛淨土
001_0556_a_06L知亦爾若別識變皆遍法界同處相
001_0556_a_07L說名爲共實非共也若有一土
001_0556_a_08L隨識別者卽成心外非唯識理如解
001_0556_a_09L深密經云我說識所緣唯識所現故
001_0556_a_10L唯識論云業熏習識內執果生於外
001_0556_a_11L何因熏習處於中不說果或有說者
001_0556_a_12L淨土依果雖不離識而識是別土相
001_0556_a_13L是一由彼別識共所成故如攬四塵
001_0556_a_14L成一柱一柱之相不離四微非隨四
001_0556_a_15L成四柱故當知此中道理亦爾於中
001_0556_a_16L若就自受用土佛與諸佛共有一土
001_0556_a_17L如法身諸佛共依故若論他受用土相
001_0556_a_18L佛與諸菩薩等共有如王與臣共有
001_0556_a_19L一國故又二受用土亦非別體如觀
001_0556_a_20L行者觀石爲玉無通慧者猶見是石
001_0556_a_21L石玉相異而非別體二土同處當知
001_0556_a_22L亦爾如解深密經云如來所行如來境
001_0556_a_23L此何差別佛言如來所行謂一切種
001_0556_a_24L如來共有無量功德衆莊嚴淸淨佛土

001_0556_b_01L여래의 경계란 이를테면 모든 것에 오계의 차별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유정계, 둘째는 세계, 셋째는 법계, 넷째는 조복계, 다섯째는 조복방편계이다. 이러한 것을 두 가지 차별이라고 말한다.’”71)라고 하였다. 이것은 자수용토는 모든 부처님이 공유한 것으로 각각 다른 것이 아님을 말한다.

『유가사지론』에서는 “현상과 같은 모든 사물은 불공분별72)을 원인으로 삼기도 하고, 또 공분별을 원인으로 삼기도 하다. (불공분별이 일어난 것을 근거로 하면, 분별이 없는 사람은 그 또한 따라서 소멸한다.) 공분별이 일어난 것이라면, 분별은 없다고 하더라도, 남의 분별에 맡겨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남의 분별은 마땅히 그 결과가 없어야 하고, 그것은 소멸하지 않더라도, 청정함을 얻은 사람은 그 일 가운데에서 정견이 청정하다. 비유하면 아주 많은 관행을 닦은 사람은 그 하나의 일 가운데에서 정심지定心智에 관한 여러 가지 수승한 이해로 말미암아 갖가지 다른 견해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그 또한 이와 같다.”73)고 하였다. 이것은, 의보는 식을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공과共果가 식을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고 집착하면, 나의 과보는 없어지더라도, 타인의 과보는 오히려 남아 있으므로, 바로 타인의 과보는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 글을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섭대승론석』에서 “() 또한 이와 같이 정토는 한결같이 청정하고, 한결같이 즐거우며, 한결같이 잃음이 없고, 한결같이 자재하다. 언제나 잡염되거나 더러움이 없으므로 ‘한결같이 청정하다’고 한다. 다만 미묘한 즐거움만을 받을 뿐,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도 없으므로 ‘한결같이 즐겁다’고 말하며, 오직 진실하게 착한 것만 있을 뿐, 악한 것도 없고 선도 악도 아닌 무기도 없으므로 ‘한결같이 잃음이 없다’고 한다. 또한 모든 일을 밖의 인연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고 다 자기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한결같이 자재하다’고 말한다. 또한 위대한 청정에 의지하여 한결같은 청정을 말하고, 위대한 즐거움에 의지하여 한결같은 즐거움을 말하며, 위대한 상주에 의지하여 한결같은 잃지 않음을 말하고, 위대한 자아에 의지하여 한결같은 자재를 말한다.”74)라고 하였다. 여기서 처음의 ‘또한(復次)’은 타수용의 뜻을 나타내고, 다음의 ‘또한’은 자수용의 뜻을 나타낸다. 그 뜻은 비록 같지 않지만 다른 국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본 논서(『섭대승론석』)에서 오직 하나의 학설만을 주장하지만, 거기서 말한 저 타수용토와 자수용토의 두 국토 또한 별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001_0556_b_01L如來境界謂一切種五界差別所謂
001_0556_b_02L有情界世界法界調伏界調伏方便
001_0556_b_03L解云此說自受用土諸佛共有
001_0556_b_04L各別也瑜伽論云相等諸物或由不
001_0556_b_05L共分別爲因或復由共分別爲因若共
001_0556_b_06L分別之所起者分別雖無由他分別所
001_0556_b_07L住持故而不永滅若不爾者他之分
001_0556_b_08L別應無其果彼雖不滅得淸淨者
001_0556_b_09L彼事中正見淸淨譬如衆多修觀行者
001_0556_b_10L於一事中由定心故種種異見可得
001_0556_b_11L彼亦如是解云此說依報不隨識別
001_0556_b_12L若執共果隨識異者我果雖滅他果猶
001_0556_b_13L卽他分別不應無異故彼不能通
001_0556_b_14L此文也攝大乘論云復次受用如是淨
001_0556_b_15L一向淨一向樂一向無失一向自
001_0556_b_16L釋曰恒無雜穢故言一向淨但受
001_0556_b_17L妙樂無苦無捨故言一向樂唯是實
001_0556_b_18L無惡無記故言一向無失一切事
001_0556_b_19L悉不觀餘緣皆由自心成故言一向自
001_0556_b_20L復次依大淨說一向淨依大樂說
001_0556_b_21L一向樂依大常說一向無失依大我說
001_0556_b_22L一向自在解云此中初復次顯他受
001_0556_b_23L用義後復次顯自受用義義雖不同
001_0556_b_24L而無別土所以本論唯作一說故知

001_0556_c_01L
그렇다면 이와 같은 두 학설은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말에만 집착하면 논리는 성립하지 않지만, 깊은 뜻으로 이것을 회통한다면 모두 도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제3의 공과문과 불공과문의 해석이다.

4. 유루문과 무루문(漏無漏門)
‘넷째, 유루문과 무루문을 밝히는 것’에 대략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모든 법에 관한 유루와 무루의 의미를 드러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정토에 대하여 유루와 무루의 모습을 밝힌다.

1) 총체적으로 해석함

‘첫째, 총체적으로 보는 부문’이란 다음과 같다. 『유가사지론』에서 “유루와 무루에 각각 다섯 가지 문이 있다. 유루에 다섯 가지가 있는 것은 첫째 일을 말미암기 때문이며, 둘째 수면 때문이며, 셋째 상응하기 때문이며, 넷째 소연하기 때문이며, 다섯째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루에 다섯 가지가 있는 것은 첫째는 모든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며, 둘째는 수면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고, 셋째는 단멸시켜 버렸기 때문이며, 넷째는 견도위에서 끊어야 할 번뇌75)를 대치하여 자성을 해탈하였기 때문이고, 다섯째는 수도위에서 끊어야 할 번뇌76)를 대치하여 자성을 상속하면서 해탈하기 때문이다.”77)라고 하였는데, 자세한 것은 모두 『유가사지론』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이제 네 가지 구절을 만들어 간략하게 그 양상을 나타낸다. 첫째, 어떤 법은 한결같이 유루이다. 이를테면 모든 더러운 마음과 심소법 등은 ‘상응하는 뜻’으로 인해 유루이기 때문이며, 다섯 가지 무루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법은 한결같이 무루이다. 이를테면 견도見道의 때에 마음과 심소법 등은 자성을 해탈하는 뜻이 있기 때문이며, 다섯 가지 유루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어떤 법은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과보로서의 무기심과 심소법 등은 수면에 얽매이기도 하기 때문이고, 또한 모든 얽매임을 여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루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고제이므로 업의 번뇌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법은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아주 심오한 법이 헤아림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2) 개별적으로 해석함

다음에 개별적으로 밝히는 내용 또한 두 부문이 있다.

001_0556_c_01L二土亦非別體也問如是二說何得
001_0556_c_02L何失答曰如若言取但不成立以義
001_0556_c_03L會之皆有道理此是第三共不共門
001_0556_c_04L

001_0556_c_05L次第四明漏無漏門者
略有二句
001_0556_c_06L者通就諸法顯漏無漏義二者別約淨
001_0556_c_07L明漏無漏相初通門者瑜伽論說
001_0556_c_08L有漏無漏各有五門有漏五者一由
001_0556_c_09L事故二隨眠故三相應故四所緣故
001_0556_c_10L五生起故無漏五者一離諸纏故
001_0556_c_11L隨眠斷故三是斷滅故四見所斷之對
001_0556_c_12L自性相續 [15] 解脫故五修所斷之對治
001_0556_c_13L自性相續解脫故於中委悉如彼廣說
001_0556_c_14L今作四句略顯其相一者有法一向
001_0556_c_15L有漏謂諸染汚心心所法等由相應義
001_0556_c_16L是有漏故而無五種無漏相故二者有
001_0556_c_17L法一向無漏謂見道時心心所法等
001_0556_c_18L由有自性解脫義故而無五種有漏相
001_0556_c_19L三者有法亦有漏亦無漏謂報無
001_0556_c_20L記心心所法等隨眠所縛故諸纏所離
001_0556_c_21L雖復無漏而是苦諦由業煩惱所
001_0556_c_22L生起故四者有法非有漏1)非無漏 [10]
001_0556_c_23L甚深法不墮數故次別明中亦有二門
001_0556_c_24L「非無漏」無{甲}

001_0557_a_01L첫째는 분제가 있는 부문이고, 둘째는 장애가 없는 부문이다.

(1) 분제分際가 있는 문

‘분제가 있는 부문’이란 다음과 같다. 만일 부처님이 사시는 정토인 경우에는 이 네 가지 구절 가운데에서 오직 2구만이 있다. 사물이 있고 마음이 있는 문에 의거하면, 곧 한결같이 무루이다. 자성이 상속하여 해탈하기 때문이고, 5종의 유루의 모양을 멀리 여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물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문에 나아가면, 그것은 곧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기 때문이며, 현상(ⓢ lakṣaṇa, 相)도 여의고, 본체(ⓢ svabhāva, 性)도 여의었기 때문이다. 또한 보살의 경우에도 2구가 있으니, 이것은 저 논서의 (여량지如量智와 여리지如理智의) 이지二智와 같은 것에 나타난 정토이므로, 한결같은 무루이고 도제에 포함된다. 『섭대승론석』에서 말하기를 “보살과 여래의 유식의 지혜는 형상도 없고 공용도 없기 때문에 청정이라고 서술하며, 모든 장애를 여의어서 후퇴함이 없기 때문에 자재라고 서술한다. 이 유식의 지혜는 정토의 본체가 되므로 고제를 가지고 체로 삼지 않는다.”78)라고 하고 내지 자세하게 설한 것과 같다.

‘본식이 변한 부문’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무루이니, 욕계·색계·무색계 삼계의 유루로 지은 바가 아니고 무루의 세계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루이다. 또한 무명주지가 반연이 되어 나온 것이므로 과보토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루이다. 비록 무루이지만 세간이다. 그래서 이것은 무작의 사제문(無作四諦門)79) 안에서 고제의 과보에 포함된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에서 “삼현과 십성은 과보에 머무느니라.”80)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구경일승보성론』에서 “무루계 가운데에 의지하여 세 가지 의생신이 있다. 그것은 저 무루의 선근으로 인하여 지어진 것이므로 세간이라 부르고, 또한 유루의 모든 업의 번뇌로 지어진 세간의 법을 떠났으므로 또한 열반으로도 부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승만사자후일승대방광방편경勝鬘師子吼一乘大方廣方便經』81)에서 ‘세존이시여, 유위의 세간이 있고 무위의 세간이 있으며, 유위의 열반이 있고 무위의 열반이 있습니다.’82)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서술하는 ‘의생신’이란 바로 아리야식이 변한 정보인 것이다. 정보가 이미 그러하므로 의보 또한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다 같이 아리야식인 본식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001_0557_a_01L一有分際門二無障礙門有分際門者
001_0557_a_02L若就諸佛所居淨土於四句中唯有二
001_0557_a_03L依有色有心門卽一向是無漏
001_0557_a_04L性相續解脫義故遠離五種有漏相故
001_0557_a_05L若就非色非心門者卽非有漏亦非無
001_0557_a_06L非有非無故離相離性故若就菩
001_0557_a_07L亦有二句恰論二智所顯淨土
001_0557_a_08L向無漏道諦所攝如攝論說菩薩及
001_0557_a_09L如來唯識智無相無功用故言淸淨
001_0557_a_10L離一切障無有退失故言自在此唯
001_0557_a_11L識智爲淨土體故不以苦諦爲體
001_0557_a_12L至廣說故若就本識所變之門亦是無
001_0557_a_13L以非三界有漏所起樂無漏界
001_0557_a_14L是無漏無明住地爲緣出故名果報土
001_0557_a_15L故是有漏雖亦無漏而是世間故於無
001_0557_a_16L作四諦門內苦諦果報之所攝也如經
001_0557_a_17L三賢十聖住果報故寶性論云
001_0557_a_18L無漏界中有三種意生身應知彼因無
001_0557_a_19L漏善根所作名爲世間以離有漏諸業
001_0557_a_20L煩惱所作世間法故亦名涅槃依此義
001_0557_a_21L勝鬘經言世尊有有爲世間有無
001_0557_a_22L爲世間有有爲涅槃有無爲涅槃
001_0557_a_23L此中說意生身乃是梨耶所變正報
001_0557_a_24L報旣爾依報亦然同是本識所變作故

001_0557_b_01L그러나 아리야식이 변해서 된 국토와 두 지혜로 나타난 정토는 고성제와 도성제의 이제에 포섭된다고 하더라도, 그 별체는 없는 것이며, 다만 뜻을 따라서 다르게 포섭된 것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분별이 갖는 예토를, 청정을 얻은 이는 그것을 청정하다고 보는 것과 같다. 정토와 예토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별체가 없는 것처럼, 이 가운데의 두 가지 뜻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분제가 있는 문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2) 장애가 없는 문

다음에 장애가 없는 문에 대하여 논설하면 또한 네 구절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는 여러 부처님의 몸과 국토가 다 유루인데, 이것은 모든 유루를 여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전(『제법무행경』)에서 “모든 부처님은 탐·진·치 삼독과 욕루·유루·견루·무명루 사루四漏83)의 모든 번뇌 가운데에 안주하시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84)라고 하고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둘째는 범부의 몸과 국토가 또한 무루인데, 이것은 모든 유루의 성질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경전(『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 “색은 유루도 없고 얽매임도 없으며, 수·상·행·식도 유루도 없고 얽매임도 없다.”85)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모든 범부와 성인의 예토와 정토가 또한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니, 앞의 두 문을 서로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모든 범부와 성인의 정토와 예토가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다. 그것은 얽매는 성품도 없고 해탈의 성품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경전(『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색은 얽매이는 성품도 없고 해탈하는 성품도 없으며, 수·상·행·식도 얽매이는 성품도 없고 해탈하는 성품도 없다.”86)라고 하고 내지 자세히 설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4의 유루와 무루에 관한 부문이다. 위의 네 부문을 합하여 첫째 단인 정토의 과보로 삼는다. 이것으로 끝을 맺는다.

제2절 인행을 나타낸다(明因行)
다음에 ‘둘째로 정토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란 다음과 같다. 정토의 원인에는 두 길이 있다. 첫째, 성판인成辦因87)이며, 둘째, 왕생인이다.

1. 성판인(一成辦因)
‘성판인’에 대해서는 논사들의 학설이 같지 않다.
어떤 논사는 “본래 무루의 진리의 종자를 3무수겁에 걸쳐 수행하여 널리 증장시킨다. 이것이 정토를 변현시키는 생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가사지론』에서 “나락가那落迦에 태어나더라도 세 가지 무루근의 종자가 성취된다.”88)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으로 미루어 무루의 정토를 성취하는 종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001_0557_b_01L然此梨耶所變之土及與二智所現淨
001_0557_b_02L雖爲苦道二諦所攝而無別體隨義
001_0557_b_03L異攝耳如他分別所持穢土得淸淨者
001_0557_b_04L卽見爲淨淨穢雖異而無別體當知
001_0557_b_05L此中二義亦爾此約有分際門說也
001_0557_b_06L就無障礙門說者應作四句一者諸佛
001_0557_b_07L身土皆是有漏不離一切諸漏故
001_0557_b_08L經說言諸佛安住三毒四漏等一切煩
001_0557_b_09L惱中得阿耨菩提乃至廣說故二者
001_0557_b_10L凡夫身土皆是無漏以離一切諸漏性
001_0557_b_11L如經說言色無漏無繫受想行識
001_0557_b_12L無漏無繫乃至廣說故三者一切凡聖
001_0557_b_13L穢土淨土亦是有漏亦是無漏以前
001_0557_b_14L二門不相離故四者一切凡聖穢土淨
001_0557_b_15L非有漏非無漏以無縛性及脫性故
001_0557_b_16L如經說言色無縛無脫受想行識無縛
001_0557_b_17L無脫乃至廣說故此是第四有漏無漏
001_0557_b_18L門也上來四門合爲第一淨土果竟

001_0557_b_19L[第二明因行]
次第二明淨土因者淨土之因有其二
001_0557_b_20L
一成辦因
二往生因1) [11] 因者
001_0557_b_21L者不同或有說者本來無漏法爾種子
001_0557_b_22L三無數劫修令增廣爲此淨土變現生
001_0557_b_23L如瑜伽論說生那落迦三無漏根
001_0557_b_24L種子成就以此准知亦有無漏淨土種

001_0557_c_01L
또한 어떤 논사는 “두 가지 지혜로 훈습하여 새로운 종자를 태어나게 함으로써, 저 정토의 생인을 만든다.”고 말한다. 『섭대승론석』에서 “이 출출세 선법의 공능에서 이 정토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므로, 집제를 가지고 인으로 삼지 않는다. 이 구절은 인의 원정을 밝히는 것이다. 무엇을 출출세의 선법이라고 하는가? 무분별지와 무분별후득지가 생겨나는 선근을 출출세의 선법이라고 부른다.”89)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며 바로 뒤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미 생겨난 것이라면, 마땅히 그것은 새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두 학설은,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가?
이것은 모두 다 성전에 의한 것이므로, 어느 학설이 진실하지 않겠는가! 그 가운데에서 자세한 것은 모두 『능가경료간楞伽經料簡』90)에서 서술한 것과 같다.

2. 왕생인(往生因)
다음은 ‘왕생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무릇 여러 가지로 서술한 왕생의 원인은, 바로 정보의 장엄만을 감득하는 것이 아니며, 더불어 의보의 정토도 감득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여래 본원의 힘을 이어 받들기 때문에, 그 감득을 따라서 수용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업의 원인에 의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성판인과 구별하여 왕생의 원인이라고 서술한다.
이 왕생의 원인에 대한 해석은 경장과 논장에 따라 같지 않다. 『불설관무량수경』에 의하면 16관법91)을 말한다. 『왕생론往生論』 가운데에서는 오문행92)을 서술한다. 이제 이 『불설무량수경』에 의하면 상배·중배·하배, 삼배에 관한 원인93)이 있다고 말한다.

1) 삼배인

(1) 상배인

상배上輩의 원인에 5구句가 있다고 말한다.94) 첫째는 집을 떠나 욕심을 버리고 사문이 된다. 이것은 정인을 일으키는 방편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는 보리심을 일으킨다. 이것은 정인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는 한결같이 오로지 무량수불을 생각한다. 이것은 관법을 닦음을 밝히는 것이다. 넷째는 여러 가지 공덕을 닦는다. 이것은 선행을 일으킴을 밝히는 것이다. 이 관법과 선행은 모든 업을 돕는다. 다섯째는 저 불국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 마지막의 이 한 가지는 원이며, 앞의 네 가지는 행이므로, 행行과 원願이 화합하여 그 불국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2) 중배인

중배中輩의 원인에도 4구句가 있다고 말한다.95) 첫째는 사문沙門이 될 수는 없더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일으켜야 한다. 이것은 정인正因96)을 밝힌 것이다. 둘째는 오로지 부처님을 생각한다. 셋째는 조금이라도 선을 닦는 것이며, 이 관법과 선행이 모든 업을 돕는다. 넷째는 저 불국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

001_0557_c_01L或有說者二智所熏新生種子
001_0557_c_02L彼淨土而作生因如攝論說從出出世
001_0557_c_03L善法功能生起淨土何者爲出出世善
001_0557_c_04L無分別智無分別後得所生善根
001_0557_c_05L爲出出世善法是本有卽非所生旣是
001_0557_c_06L所生當知新成問如是二說何者爲
001_0557_c_07L答皆依聖典有何不實於中委悉
001_0557_c_08L如楞伽經料簡中說
次明往生因者

001_0557_c_09L諸所說往生之因非直能感正報莊嚴
001_0557_c_10L亦得感具依報淨土但承如來本願力
001_0557_c_11L隨感受用非自業因力之所成2) [12]
001_0557_c_12L是故說3) [13] 往生因此因之相經論不
001_0557_c_13L若依觀經說十六觀往生論中說五
001_0557_c_14L門行今依此經說三輩因上輩之因
001_0557_c_15L說有五句一者捨家棄欲而作沙門
001_0557_c_16L顯發起正因方便二者發菩提心是明
001_0557_c_17L正因三者專念彼佛是明修觀四者
001_0557_c_18L作諸功德是明起行此觀及行爲助滿
001_0557_c_19L五者願生彼國此一是願前四是
001_0557_c_20L行願和合乃得生故中輩之中
001_0557_c_21L有四句一者雖不能作沙門當發無上
001_0557_c_22L菩提之心是明正因二者專念彼佛
001_0557_c_23L三者多少修善此觀及行爲助滿業
001_0557_c_24L「辦」作「辨」{甲}上同「爲」作「無」{甲}

001_0558_a_01L앞의 세 가지 행과 이 원이 화합하여 원인이 된다.

(3) 하배인

하배下輩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으며, 이 두 사람 가운데에 각각 3句가 있다.97) 첫 번째 사람에 대한 3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많은 공덕을 지을 수는 없더라도 무상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는 정인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는 그렇지 않으면 십념으로 오로지 부처님을 생각한다. 이는 만업을 돕는 것이다. 셋째는 저 불국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 이 원과 앞의 행이 화합하여 원인이 된다. 이는 부정성의 사람에 관한 것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 사람에 대한 3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아주 깊은 법을 듣고 환희하여 믿고 좋아한다. 이것은 발심과 정인을 아울러 나타내는 것으로서, 다만 앞의 사람과 다른 것은 그 깊은 믿음을 들었을 뿐이다. 둘째는 일념이라도 저 부처님을 생각한다. 이는 만업을 돕는 것이다. 앞의 사람은 깊은 믿음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십념을 필요로 하지만, 이 사람은 깊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십념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셋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저 불국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 이 원과 앞의 행이 화합하여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보살종성의 사람에 관한 것을 밝힌 것이다. 『불설무량수경』에서 이상과 같이 말한다.

2) 정인正因과 조인助因

이제 이 글은 줄여서 그 생상을 논변한다. 그 가운데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정인을 밝히고, 다음에 조인을 밝힌다.

(1) 정인

경에서 말씀하는 정인은 보리심을 가리킨다. 무상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세간의 부귀와 쾌락, 성문과 연각 이승의 열반을 돌아보지 않고, 한결같이 법신·보신·화신 삼신의 보리를 지원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무상보리심이라고 부른다. 총체적으로는 그렇게 나타낼 수 있으나, 분석적으로 보면 그 가운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따라서 하는 발심이며,98) 둘째, 이치를 따라서 하는 발심이다.

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따라서 하는 발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따라서 하는 발심이란, 번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것을 다 끊기를 발원하는 것이며, 선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것을 다 닦기를 발원하는 것이고, 중생이 끝이 없이 많지만 이것을 다 제도하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세 가지 일을 기어코 이룩하기를 발원한다. 그 첫 번째는 여래의 단덕99)의 정인이며, 다음은 여래의 지덕100)의 정인이고, 세 번째는 은덕101)의 정인102)이다. 이 세 가지 공덕을 합하여 무상보리의 과보가 되는 것이며,

001_0558_a_01L者願生彼國前行此願和合爲因也
001_0558_a_02L下輩之內說二種人二人之中各有
001_0558_a_03L三句初人三者一者假使不能作諸功
001_0558_a_04L當發無上菩提之心是明正因
001_0558_a_05L者乃至十念專念彼佛是助滿業
001_0558_a_06L者願生彼國此願前行和合爲因是明
001_0558_a_07L不定性人也第二人中有三句者一者
001_0558_a_08L聞甚深法歡喜信樂此句兼顯發心正
001_0558_a_09L但爲異前人擧其深信耳二者乃至
001_0558_a_10L一念念於彼佛是助滿業爲顯前人無
001_0558_a_11L深信故必須十念此人有深信故
001_0558_a_12L必具足十念三者以至誠心願生彼國
001_0558_a_13L此願前行和合爲因此就菩薩種性人
001_0558_a_14L經說如是今此文略辨其生相
001_0558_a_15L中有二先明正因後顯助因經所言
001_0558_a_16L正因謂菩提心言發無上菩提心者
001_0558_a_17L不顧世間富樂及與二乘涅槃一向志
001_0558_a_18L願三身菩提是名無上菩提之心總標
001_0558_a_19L雖然於中有二一者隨事發心二者
001_0558_a_20L順理發心言隨事者煩惱無數願悉
001_0558_a_21L斷之善法無量願悉修之衆生無邊
001_0558_a_22L願悉度之於此三事決定期願初是
001_0558_a_23L如來斷德正因次是如來智德正因
001_0558_a_24L三心者恩德正因三德合爲無上菩提

001_0558_b_01L바로 이 세 가지 마음이 통틀어 무상보리의 원인이 된다. 원인과 결과는 다를지라도 넓이와 길이의 양은 같고, 평등하여 빠짐이 없으며, 포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경전(『대반열반경』)에서 “발심과 구경, 이 둘은 다르지 않지만, 이와 같은 두 마음 가운데에서 앞의 마음은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는 아직 제도하지 아니하고, 먼저 남을 제도한다. 그러므로 나는 초발심에 예경드린다.”103)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 마음의 과보는 보리라고 하더라도 ‘이 마음의 꽃인 과보(華報)’104)는 정토에 있다. 왜냐하면 보리심의 양은 광대하여 끝이 없고 그 길이가 한량이 없기 때문이고, 광대하고 그지없는 의보의 정토와 그 길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정보의 수명을 감득할 수 있는 것은 보리심이 아니고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보리심을 정토에 왕생하는 정인으로 삼는다고 해설한다. 이것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따라서 하는 발심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② 이치를 따라서 하는 발심

‘이치를 따라서 하는 발심’이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다 환영이요 꿈과 같아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말을 여의고 생각이 끊어진 경계임을 믿고 이해한다. 이러한 믿음과 이해를 의지해서, 넓고 큰 마음을 일으켜 번뇌와 선법이 있음을 보지 못하더라도, 끊어야 할 것과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두 끊어 버리고 모두 닦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무원삼매105)를 어기지 않으며, 무량한 유정을 다 건지기를 원하더라도 제도하는 주체와 제도를 받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삼매106)와 무상삼매107)를 따를 수 있다. 저 『금강반야바라밀경』에서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지만, 실제로는 한 중생도 제도한 일이 없느니라. 그리고 널리 말씀하신다.”108)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발심은 불가사의한 것이므로, 이것은 이치를 따라서 하는 발심의 모양을 밝힌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따라서 하는 발심은 물러날 수 있으므로 부정성인이라고는 해도 또한 발심은 할 수 있다. 이치를 따라서 하는 발심은 물러서는 일이 없으므로 보살성품의 사람이라야만 바로 발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발심은 공덕이 끝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겁이 다하도록 저 모든 공덕을 연설하시더라도, 오히려 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인의 내용에 관하여 줄여서 이와 같이 서술한다.

(2) 조인助因

다음은 조인에 대하여 밝힌다. 조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제 잠시 하배의 십념에 관하여 밝힌다. 이 『불설무량수경』 가운데에서 하배의 십념을 해설하는데,109)

001_0558_b_01L之果卽是三心總爲無上菩提之因
001_0558_b_02L因果雖異廣長量齊等無所遺無不
001_0558_b_03L苞故如經言發心畢竟二無別如是
001_0558_b_04L二心前心難自未得度先度他是故我
001_0558_b_05L禮初發心此心果報雖是菩提而其
001_0558_b_06L華報在於淨土所以然者菩提心量
001_0558_b_07L廣大無邊長遠無限故能感得廣大無
001_0558_b_08L際依報淨土長遠無量正報壽命除菩
001_0558_b_09L提心無能當彼故說此心爲彼正因
001_0558_b_10L是明隨事發心相也所言順理而發心
001_0558_b_11L信解諸法皆如幻夢非有非無
001_0558_b_12L言絕慮依此信解發廣大心雖不見
001_0558_b_13L有煩惱善法而不撥無可斷可修是故
001_0558_b_14L雖願悉斷悉修而不違於無願三昧
001_0558_b_15L願皆度無量有情而不存能度所度
001_0558_b_16L1)順隨 [14] 於空無相如經言如是滅度
001_0558_b_17L無量衆生實無衆生得滅度者乃至廣
001_0558_b_18L說故如是發心不可思議是明順理
001_0558_b_19L發心相也隨事發心有可退義不定
001_0558_b_20L性人亦得能發順理發心卽無退轉
001_0558_b_21L菩薩性人乃能得發如是發心功德
001_0558_b_22L無邊設使諸佛窮劫演說彼諸功德
001_0558_b_23L不能盡正因之相略說如是次明助因
001_0558_b_24L助因多種今且明其下輩十念此經中

001_0558_c_01L하나의 말 속에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현료의와 은밀의110)이다.

① 은밀의에 있어서의 십념

은밀의란, (앞에서 말한) 셋째, 순수함과 잡스러움의 상대문 중 순수한 정토의 과보를 바라보고,111) 하배의 십념의 공덕을 설한 것이다. 이것은 『미륵발문경』112)에서 “그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미타불의 공덕의 이익은 만일 십념을 상속해서 끊임없이 저 부처님을 생각할 수 있으면 곧바로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어떻게 저 부처님을 생각해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생각은 범부의 생각이 아니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아니며, 잡된 번뇌의 생각이 아니므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갖추면 곧바로 안양국토에 왕생하게 되리라. 무릇 여기에 십념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 모든 중생에게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이 생겨나게 하고, 모든 중생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을 훼방하지 않는 것이다. 그 선행을 베푸는 것을 훼방하면 끝내 왕생하지 못한다. 둘째, 모든 중생에게 깊은 대비심을 일으키게 하고, 잔인하게 해치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진리인 법을 보호하는 마음을 일으켜 신명을 아끼지 않도록 하고, 모든 법을 비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 인욕을 실천하는 일에 결정적인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마음을 심오하고 청정하게 지켜서 이양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 일체종지의 마음을 일으켜 날마다 늘 생각하게 하여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곱째, 모든 중생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아만의 마음을 버리고 겸허한 말씨를 쓰게 하는 것이다. 여덟째, 세속적인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홉째, 깨달으려는 의지를 가까이하여 여러 가지 선근의 인연을 깊이 일으키고, 시끄럽고 산란한 마음을 멀리 여의도록 하는 것이다. 열째, 정념으로 부처님을 관조하고 모든 감관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십념은 이미 범부의 경계가 아니다. 초지 이상의 보살이 십념을 갖출 수 있으며, 순수한 정토에서 하배의 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은밀의에 있어서의 십념이 된다.


001_0558_c_01L下輩十念一言之內含有二義
001_0558_c_02L顯了義及隱密義隱密義者望第三
001_0558_c_03L對純淨土果以說下輦十念功德此如
001_0558_c_04L彌勒發問經言 2) [15] [16] 時彌勒菩薩白佛言
001_0558_c_05L如佛所說阿彌陀佛功德利益若能十
001_0558_c_06L念相續不斷念彼佛者卽得往生當云
001_0558_c_07L何念佛言非凡夫念非不善念非雜
001_0558_c_08L結使念具足如是念卽得往生安養國
001_0558_c_09L凡有十念何等爲十一者於一切
001_0558_c_10L衆生常生慈心於一切衆生不毁其行
001_0558_c_11L若毁其行終不往生二者於一切衆生
001_0558_c_12L深起悲心除殘害意三者發護法心
001_0558_c_13L不惜身命於一切法不生誹謗四者
001_0558_c_14L於忍辱中生決定心五者深心淸淨
001_0558_c_15L染利養六者發一切種智心日日常念
001_0558_c_16L無有廢忘七者於一切衆生起尊重心
001_0558_c_17L除我慢意謙下言說八者於世談話
001_0558_c_18L不生味著心九者近於覺意深起種種
001_0558_c_19L善根因緣遠離憒鬧散亂之心十者正
001_0558_c_20L念觀佛除去諸根解云如是十念
001_0558_c_21L非凡夫當知初地以上菩薩乃能具足
001_0558_c_22L十念於純淨土爲下輩因是爲隱密
001_0558_c_23L「順隨」疑倒「彌」作「爾」{甲}
001_0558_c_24L
「不渡」作「得度」{甲}

001_0559_a_01L
② 현료의에 있어서의 십념

현료의의 십념의 상相은 넷째 상대문 중의 정토를 바라보고 설한 것이다.113) 『불설관무량수경』에서 “하품의 하생이란, 어떤 중생이 착하지 못한 업을 지어서 오역114)과 십악115) 같은 온갖 불선을 다 저지른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 선지식을 만나게 된다. 그를 위해 미묘한 법을 설하여 염불하도록 가르친다. 이 사람이 괴로움에 쫓기고 몰려서 염불을 하지 못하면, 무량수불을 칭념해야 함을 가르치며,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하면서, 십념을 구족하고 ‘나무아미타불’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아주 짧은 한순간에 80억 겁 동안 저지른 생사의 죄를 소멸하고, 목숨을 마칠 때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116)라고 하고 내지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떤 마음을 ‘지극한 마음’이라고 부르며, 어떤 것을 ‘십념의 상속’이라고 부르는가? 구마라집 삼장(什公)117)이 말하기를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광야에서 나쁜 도둑을 만난다. 그 도둑은 창을 휘두르고 칼을 빼어 들고 쫓아와 그를 죽이려고 한다. 그 사람은 재빨리 달아나다가, 건너야 할 큰 강을 하나 만났다. 그 강을 건너지 못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때 그는 오로지 그 강을 건널 방편만을 생각한다. 내가 강의 저쪽 언덕에 이르려면, 이 옷을 입은 채로 건너야 할까, 옷을 벗고 건너야 할까? 옷을 입은 채로 건넌다면 아마 강을 건널 수 없을 것이고, 옷을 벗고 건넌다면 아마 옷을 벗을 겨를이 없지 않은가! 오로지 이런 생각만 있을 뿐, 더욱 다른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 강을 꼭 건너야 한다는 생각, 바로 이것이 일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십념에는 다른 생각이 섞일 수가 없는데, 염불 수행자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의 이름만을 생각하든지 부처님의 상호만을 생각하든지, 한 치의 틈도 없이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면서 십념에 이르면, 이와 같은 지극한 마음을 십념이라고 부른다.”118)라고 하였다. 이것이 현료의에 있어서의 십념의 내용이다.

③ 총체적으로 매듭을 짓는다

이제 이 『불설무량수경』에서 설하는 십념은, 은밀문과 현료문의 두 가지 뜻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현료문의 십념에 관해서는 『불설관무량수경』에서의 뜻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불설관무량수경』에서는 오역죄는 제외하지 않고, 오직 대승의 방등을 비방하는 죄만을 제외하지만, 이 『불설무량수경』에서는 오역죄와 정법을 비방하는 것을 모두 제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로 위배되는 것을 어떻게 회통할 것인가?

001_0559_a_01L義之十念言顯了義十念相者望第四
001_0559_a_02L對淨土而說如觀經言下品下生者
001_0559_a_03L或有衆生作不善業五逆十惡具諸
001_0559_a_04L不善臨命終時遇善知識爲說玅法
001_0559_a_05L敎令念佛若不能念者應稱無量壽佛
001_0559_a_06L如是至心令聲不絕具足十念稱南
001_0559_a_07L無佛稱佛名故於念念中除八十億
001_0559_a_08L劫生死罪命終之後卽得往生乃至
001_0559_a_09L廣說以何等心名爲至心云何名爲十
001_0559_a_10L念相續者什公說言譬如有人於曠野
001_0559_a_11L値遇惡賊揮戈拔劒直來欲殺
001_0559_a_12L人勤走視渡一河1)不渡 [16] 首領難
001_0559_a_13L爾時但念渡河方便我至河岸
001_0559_a_14L著衣渡爲脫衣度若著衣衲恐不得
001_0559_a_15L若脫衣衲恐不得暇但有此念
001_0559_a_16L無他意當念2) [17] [17] 卽是一念此等十
001_0559_a_17L不雜餘念行者亦爾若念佛名
001_0559_a_18L念佛相等無間念佛乃至十念如是
001_0559_a_19L至心名爲十念此是顯了十念相也
001_0559_a_20L今此兩卷經說十念具此隱密顯了二
001_0559_a_21L然於其中顯了十念與觀經意
001_0559_a_22L有不同彼觀經中不除五逆唯除誹
001_0559_a_23L謗方等之罪今此兩卷經中說言除其
001_0559_a_24L五逆誹謗正法如是相違云何通者

001_0559_b_01L
이에 대하여 저 『불설관무량수경』에서는 그것에 관하여 말씀하기를, 오역죄를 지었을지라도, 대승의 가르침에 의하여 참회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이 『불설무량수경』에서는 참회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 것이므로, 이런 뜻에 의거해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인연에 대한 내용은 줄여서 말하면 이와 같다.
이로써 이제까지 말한 원인·결과의 두 가지 문을 합하여, 제2의 근본사상에 관한 분별을 마친다.

제3장 인물을 들어 분석한다(約人分別)
셋째, 인물을 들어 분별하는 가운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삼취중생에 대하여 분별하고, 둘째, 네 가지 의심을 품은 중생에 대하여 분별한다.

제1절 삼취중생에 대하여 분별한다(約三聚衆生分別)
첫째, 정정취·부정취·사정취의 삼취중생119)이란 저 『불설무량수경』 하권에서 “어떤 중생이 저 국토에 태어나면 모두 다 정정취에서 머무른다. 왜냐하면 저 부처님의 나라 안에는 사정취와 부정취가 없기 때문이다.”120) 라고 말한 것과 같다.

1. 삼취중생의 보편적인 정의(三聚衆生普遍定義)
이와 같은 삼취의 양상은 어떠한가? 이 의미는 구체적으로는 『구경일승보성론』에서 “간략히 말하면 모든 중생계에 세 가지 중생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유有를 구하는 중생이고, 둘째는 유有를 구하지 않는 중생이며, 셋째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구하지 않는 중생이다. 유有를 구하는 중생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해탈의 도를 비방하고, 열반의 본성을 부정하며, 언제나 세간에 안주하기를 구하면서도, 열반을 깨닫기를 구하지 않는다. 둘째는 불법 속에 살면서도 일천제一闡提121)와 같은 단계이니, 대승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설부증불감경』에서 ‘어떤 비구比丘 내지 우바이優婆夷가 하나라는 사견을 일으키거나 둘이라는 사견을 일으켜서 여러 부처님을 세존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122)라고 말한다. 유有를 구하지 않는 중생 또한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도를 구하는 방편이 없는 사람이고, 둘째는 도를 구하는 방편이 있는 사람이다. 또한 도를 구하는 방편이 없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여러 외도의 갖가지 삿된 계교이다. 둘째는 불법 속에 살면서도 외도와 똑같은 행을 하고, 불법을 믿더라도 전도된 것을 집착한다. 이를테면 독자부犢子部123) 등의 무리이다.”라고 하고 내지 자세히 설했다. (또 서술하기를) “도를 구하는 방편이 있는 사람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성문과 벽지불의 이승이다. 저 두 가지를 모두 다 구하지 않는 중생이란, 이를테면 제일가는 이근의 중생인 보살마하살을 가리킨다.

001_0559_b_01L彼經說其雖作五逆依大乘敎得懺悔
001_0559_b_02L此經中說不懺悔者由此義故
001_0559_b_03L相違也因緣之相略說如是上來所
001_0559_b_04L說因果二門合爲第二簡宗體竟

001_0559_b_05L第三約人分別
於中有二初約三聚衆
001_0559_b_06L生分別後就四疑衆生分別
初三聚者

001_0559_b_07L
如下經云其有衆生生彼國者皆悉
001_0559_b_08L住於正定之聚所以者何彼佛土中
001_0559_b_09L無諸邪聚及不定聚
如是三聚
其相
001_0559_b_10L云何此義具如寶性論說彼云略說
001_0559_b_11L一切衆生界中有三種衆生何等爲三
001_0559_b_12L一者求有二者遠離求有三者不求彼
001_0559_b_13L求有有二種一者謗解脫道無涅
001_0559_b_14L槃性常求住世間不求證涅槃二者
001_0559_b_15L於佛法中闡提同位謗大乘故是故
001_0559_b_16L不增不減經言若有比丘乃至優婆夷
001_0559_b_17L若起一見若起二見諸佛如來非彼
001_0559_b_18L世尊如是等人非我弟子遠離求有
001_0559_b_19L亦有二種一者無求道方便二者
001_0559_b_20L有求道方便無方便者亦有二種
001_0559_b_21L者多種外道種種邪計二者於佛法中
001_0559_b_22L同外道行雖信佛法而顚倒取如犢
001_0559_b_23L子等乃至廣說有方便者亦有二種
001_0559_b_24L所謂二乘不求彼二者所謂第一利根

001_0559_c_01L또 저 유有를 구하는 중생인 일천제와는 달리, 불법 속에 살면서도 일천제의 계위와 같다고 하므로, 이들을 사정취중생이라고 부른다. 또 유有를 구하지 않는 중생 속에 살면서도 세간을 벗어나려는 방편을 써서 도를 구하는 성문·벽지불과, 그리고 저 두 가지를 다 구하지 않는 평등도지의 보살마하살을 정정취중생이라고 부른다.”124)고 한 것과 같다.

이 논서에서는 성문·벽지불의 이승과 보살을 총체적으로 정정취라고 판별했는데, 이것은 아직 그 지위의 분제를 잘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계위에 이르러야 정정취에 들어가며, 어떤 뜻에 의하여 정정취라고 부르는가? 이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일천제(斷善根)로 타락하지 않는 것이며, 이러한 것을 정정취라고 부른다. 그 계위를 『유가사지론』에서 “정정취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본성에 안주하는 정정취이며, 둘째는 습성에 따른 정정취이다.”125)라고 설명한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해설하면, 다섯 가지 종성(五種種性)126)에서 보살종성의 사람은 아득한 옛적부터 오역죄를 짓지 않고 선근을 끊지 않은 사람이므로, 이들을 본성에 따른 정정취라고 부른다. 저 성문·벽지불 이승의 종성이나 부정성은 오역죄를 지을 수도 있고 선근을 끊기도 한다. 선근을 끊어 버릴 때는 사정취에 떨어지고, 선근을 계속해서 이어 온 뒤라도 아직 정정취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것은 부정취가 된다.

이미 정정취에 들어갔을 때에는 바로 3품으로 분별하여야 한다. 그가 본래 하품의 선근인데도 정정취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는 난법위煖法位127)에 이를지라도 여전히 부정취이며, 정법위頂法位128)에 들어가야 비로소 정정취가 된다.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정법위에서는 선법을 결코 끊지 않는다고 해설하기 때문이다. 그가 본래 중품의 선근으로 정정취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는 난법에 이르렀을 때 정정취라고 부른다. 또 본래 상품의 선근으로 정정취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처음에 들어갔을 때 바로 정정취가 될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이와 같이 제상에 하품의 선근에 안주하여 정정취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하품이며, 간극이 있다고 불러야 함을 알아야 한다.

001_0559_c_01L衆生諸菩薩等又彼求有衆生一闡提
001_0559_c_02L及佛法中同一闡提位名爲邪定
001_0559_c_03L聚衆生又遠離求有衆生中墮無方便
001_0559_c_04L求道衆生名爲不定聚衆生聲聞辟支
001_0559_c_05L及不求彼二名爲正定聚衆生論說
001_0559_c_06L如是此中總判二乘菩薩爲正定聚
001_0559_c_07L未分別位地分齊齊何等位入正定聚
001_0559_c_08L依何等義名正定聚決定不退墮斷善
001_0559_c_09L如是名爲正定聚義論其位而依瑜
001_0559_c_10L伽說正定聚有二種一者本性正定聚
001_0559_c_11L二者習成正定聚若依此而說五種種
001_0559_c_12L性中菩薩種性人從無始時來不作
001_0559_c_13L五逆及斷善根是名本性正定聚也
001_0559_c_14L二乘性及不定性得作五逆及斷善
001_0559_c_15L斷善根時墮邪定聚善根相續後
001_0559_c_16L末趣入爲不定聚已趣入時卽當分
001_0559_c_17L別三品若其本來下品善根而趣入者
001_0559_c_18L乃至燸法猶爲不定入頂法位方爲
001_0559_c_19L正定論說頂不斷善根故若其本來中
001_0559_c_20L品善根而趣入者至燸法時名爲正定
001_0559_c_21L若其本來上品善根而趣入者始趣入
001_0559_c_22L便作正定如瑜伽說若有安住下
001_0559_c_23L品善根而趣入者當知下品名有間隙
001_0559_c_24L「不渡」作「得度」{甲}「波」作「度」{甲}

001_0560_a_01L아직 간극이 없을 수 없으므로, 아직까지는 조금밖에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중품의 선근에 안주하여 정정취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중품의 선근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상품의 선근에 안주하여 정정취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상품이며, 간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미 간극이 있을 수 없고, 이미 아주 청정해졌다. 이것이 이미 정정취에 들어간 양상이다.”129)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저 논서(『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서 말하기를, “이 하품의 순해탈분의 선근을 근거로 하여, 박가범께서 ‘세간에서 상품의 정견을 갖추면 천생千生을 지나더라도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한다.”130)고 한다. 이 글은 본래 상품의 선근에 안주하다가 정정취에 들어온 사람은, 비로소 하품의 순해탈분의 선근에 들어갈 때에 물러나지 않음을 밝힌 것으로서, 그것은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또 저 논서(『유가사지론』)에서 말하기를, “때로는 하품에 안주하다 성숙한 사람은 오히려 악취에 떨어질 수 있지만, 혹은 중품이나 혹은 상품은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다.”131)라고 한다. 이 글은, 본래 하품의 선근에 안주하다가 정정취에 들어온 사람은 난법에 이르더라도 하품의 성숙한 계위에서 아직 불퇴不退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악취에 떨어지는 것을 밝혔다. 이것이 이승의 계위에 관한 분별이다.

만약 부정취종성의 사람이라면 바로 대승을 향하여 들어갈 때, 종성의 계위에 이르러야 반드시 정정취가 된다. 『대승기신론』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수행을 하고, 어떻게 믿음을 성취하여 발심을 잘할 수 있는가? 부정취不定聚 중생이 선근을 훈습한 힘에 의해서, 업의 과보를 믿고 능히 십선十善을 일으킨다. 태어나고 죽는 고통을 싫어하고, 최상의 보리를 구하고자 한다.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어 직접 모시고 공양하여 수행하는 신심으로 1만 겁을 지나서 신심이 성취된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가르침으로 발심한다. 혹은 대자비로써 능히 스스로 발심하거나, 혹은 정법이 소멸하려고 함에 호법의 인연으로써 능히 스스로 발심한다. 이와 같이 신심을 성취하여 발심한 사람이 정정취에 들어가서 궁극적으로 퇴전하지 않으면, 여래의 집안에 안주하는 정인正因과 상응한다고 이름한다.”132)라고 하였는데

001_0560_a_01L未能無間未善淸淨若有安住中品善
001_0560_a_02L根而趣入者當知中品若有安住上品
001_0560_a_03L善根而趣入者當知上品名無間隙
001_0560_a_04L已能無間已善淸淨如是爲已趣入
001_0560_a_05L又彼論云依此下品順解脫分善
001_0560_a_06L婆伽梵說若具世間上品正見
001_0560_a_07L歷千生不墮惡道此文正明本來安住
001_0560_a_08L上品善根而趣入者始入下品順解脫
001_0560_a_09L分善之時便得不退無間隙故又彼
001_0560_a_10L論說若時安住下成熟者猶往惡趣
001_0560_a_11L若中若上不往惡趣此文正明本來安
001_0560_a_12L住下品善根而趣入者雖至燸法下成
001_0560_a_13L熟位未得不退故往惡趣是約二乘
001_0560_a_14L位地分別若是不定種性人直向大乘
001_0560_a_15L而趣入時至種性位方爲正定如起
001_0560_a_16L信論說依何等人修何等行得信成
001_0560_a_17L堪能發心所謂依不定聚衆生
001_0560_a_18L熏習善根力故信業果報能起十善
001_0560_a_19L厭生死苦欲求無上菩提得値遇佛
001_0560_a_20L親承供養修行信心逕一萬劫信心
001_0560_a_21L成就故諸佛菩薩敎令發心或以大悲
001_0560_a_22L能自發心或因正法欲滅以護法
001_0560_a_23L因緣能自發心如是信心成就得發
001_0560_a_24L心者入正定聚畢竟不退名住如來

001_0560_b_01L여기에서 ‘여래의 집안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미 습종성의 계위에 들어간 것이라고 이름한다. 그것은 바로 십해의 초발심에 머문다. 이상 서술한 것은 모두 다 습종성의 정정취를 밝힌다.

본래 보살종성인 사람이 바로 대승을 향하여 들어간다면, 처음에 들어갈 때부터 영원히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위를 얻을 것이다. 그래서 업력으로 말미암아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말하면 십신의 계위에 들어가면 곧 불퇴전위를 얻을 것이므로 앞에서 말한 부정성의 사람과는 다르다. 이와 같은 학설들은 모두 다 예토에 대한 해석이다.

저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결정된 정성의 성문과 벽지불의 이승은 바로 왕생하지 못한다. 부정성 가운데의 3품에 해당하는 사람이 대승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면 모두 다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저 세계에 태어날 때에 바로 정정취에 들어가는데, 그것은 외연의 힘으로 말미암아 주지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삼취의 중생에 대하여 간략하게 뜻을 분별하여 서술하면 이와 같다.

제2절 중생이 품은 네 가지 의심에 관한 분별(明有四疑惑衆生)
다음에 중생이 품은 네 가지 의심에 관한 것을 밝힌다. 이 중에서 첫째는 의심하는 대상을 밝히고, 둘째는 의심의 양상을 밝힌다.

1. 의심하는 대상은 무엇인가?(所疑境界如何)
‘의심하는 대상’이란 아래 『불설무량수경』의 글에서 “어떤 중생이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서 온갖 공덕을 닦아 저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지혜·사의할 수 없는 지혜(不思議智)·칭량할 수 없는 지혜(不可稱智)·대승의 넓은 지혜·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를 모르기 때문에 이 모든 지혜를 의심하여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죄와 복을 믿고, 선의 근본을 닦고 익히면서 저 불국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중생들은 저 부처님의 궁전에 태어나서 500년 동안 살더라도 삼보三寶에 관한 것을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곳을 변지邊地라 말한다.”133)고 널리 자세하게 설한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부처님의 지혜’는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 아래의 ‘사의할 수 없는 지혜’·‘칭량할 수 없는 지혜’·‘대승의 넓은 지혜’·‘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의 네 문구는 따로 네 가지 지혜(四智)134)를 나타낸다.

1) 성소작지에 대한 의심이다

‘사의할 수 없는 지혜(不思議智)’란 성소작지를 가리킨다. 이 지혜는 불가사의한 일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처님의 키는) 불과 여섯 자이지만 그 정수리를 볼 수 없으며, 털구멍만큼도 보태지 않는 양量이지만 시방세계에 두루 존재한다. 일념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헤아릴 수 없는 겁에 걸쳐 지은 중죄를 길이 소멸한다.

001_0560_b_01L種中正因相應此言名住如來種者
001_0560_b_02L名已入習種性位卽是十解初發心住
001_0560_b_03L上來所說皆明習成之正定聚若其本
001_0560_b_04L來菩薩種性直向大乘而趣入者始趣
001_0560_b_05L入時永得不退不由業力墮於惡趣
001_0560_b_06L依此而言入十信位便得不退不同
001_0560_b_07L前說不定性人如是等說皆就穢土
001_0560_b_08L若就得生彼淨土者定性二乘卽不往
001_0560_b_09L不定性中三品之人發大乘心者
001_0560_b_10L皆得生彼生彼之時卽入正定由外
001_0560_b_11L緣力所住持故三聚分別略義如是

001_0560_b_12L次明有四疑惑衆生
於中先明所疑境
001_0560_b_13L然後顯其疑惑之相
所疑境者
001_0560_b_14L
文言若有衆生以疑惑心修諸功德
001_0560_b_15L願生彼國不了佛智不思議智不可
001_0560_b_16L稱智大乘廣智無等無倫最上勝智
001_0560_b_17L於此諸智疑惑不信然猶信罪福
001_0560_b_18L習善本願生彼國此諸衆生生彼宮
001_0560_b_19L殿五百歲中不聞三寶故說邊地
001_0560_b_20L至廣說此言佛智是總標句下之四
001_0560_b_21L別顯四智不思議智者是成所作
001_0560_b_22L此智能作不思議事謂如不過丈六
001_0560_b_23L之身而無能見頂者不增毛孔之量
001_0560_b_24L而遍十方世界一念稱名永滅多劫重

001_0560_c_01L십념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면 중생세계 외부의 수승한 과보를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범부의 낮은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으므로 ‘사의할 수 없는 지혜’라고 부른다.

2) 묘관찰지에 대한 의심이다

‘칭량할 수 없는 지혜(不可稱智)’란 묘관찰지를 가리킨다. 이 지혜는 이루 다 칭량할 수 없는 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모든 현상계의 법은 모두 다 환영과 같고 꿈과 같으므로,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어 버린 것이다. 말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이루 다 칭량할 수 없으므로 ‘칭량할 수 없는 지혜’라고 부른다.

3) 평등성지에 대한 의심이다

‘대승의 넓은 지혜(大乘廣智)’란 평등성지를 가리킨다. 이 지혜는 널리 제도하고 소승으로 향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아無我에서 노니므로 내가 아닌 것이 없고, 내가 아닌 것이 없으므로 평등하게 통섭하지 않는 것이 없다. 동체의 지혜의 힘으로 가없는 유정을 두루 다 싣고 모두 무상보리에 함께 이르게 하므로 ‘대승의 넓은 지혜’라고 부른다.

4) 대원경지에 대한 의심이다

‘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란 바로 여래의 대원경지를 가리킨다. 이것은 처음으로 본식인 아리야식을 전변하여 방정하게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경계를 뚜렷이 비추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대원경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대원경지라는 한 지혜 속에 다섯 가지 수승한 것이 있다. 저 해탈신과 같은 것은 성문과 벽지불의 이승과 함께 얻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대원경지는 바로 법신이기 때문에, 저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등無等이라 부른다. 이것이 첫째 뛰어남이다.
앞의 성소작지·묘관찰지·평등성지의 세 가지 지혜는 보살이 점차로 닦아 얻는 것이지만, 이 대원경지는 오로지 부처님만이 문득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다른 동류가 없으므로 견줄 수 없는 무륜無倫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둘째 뛰어남이다. 사의할 수 없는 지혜를 뛰어넘기 때문에 가장 으뜸(最)이 되고, 칭량할 수 없는 지혜를 뛰어넘기 때문에 가장 위(上)가 되며, 대승의 넓은 지혜보다 더욱 너그럽기 때문에 가장 수승함(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셋째·넷째·다섯째 뛰어남이다. 그러므로 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네 가지 의심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경계를 나타낸 것이다.

2. 의심의 양상은 어떠한가?(疑惑相何)
다음은 네 가지 의심의 양상을 밝힌다. 이를테면 한 성품이 정직하지 않으므로 삿되게 총명하고 잘난 체하는 아만으로 도심이 엷은 사람은, 네 가지 지혜를 분명히 알지 못하여 네 가지 의심을 일으킨다.

1) 성소작지에 대한 의심의 양상

첫째, 성소작지가 만드는 일을 의심한다. 이를테면 경전에서, “십념으로 염불하면 저 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135)는 말씀을 듣고,

001_0560_c_01L十念念德能生界外勝報如是等事
001_0560_c_02L非下智所測是故名爲不思議智不可
001_0560_c_03L稱智者是妙觀察智此智觀察不可稱
001_0560_c_04L謂一切法皆如幻夢非有非無
001_0560_c_05L言絕慮非逐言者所能稱量是故名爲
001_0560_c_06L不可稱智大乘廣智者是平等性智
001_0560_c_07L此智廣度不向小乘謂遊無我故無不
001_0560_c_08L無不我故無不等攝以此同體智
001_0560_c_09L普載無邊有情皆令同至無上菩提
001_0560_c_10L是故名爲大乘廣智無等無倫最上勝
001_0560_c_11L智者正是如來大圓鏡智始轉本識
001_0560_c_12L方歸心原一切種境無不圓照是故
001_0560_c_13L名爲大圓鏡智此一智中有五殊勝
001_0560_c_14L如解脫身二乘同得如是鏡智正是
001_0560_c_15L法身非彼所共故名無等是一勝也
001_0560_c_16L如前三智菩薩漸得大圓鏡智唯佛
001_0560_c_17L頓證更無餘類故名無倫是二勝也
001_0560_c_18L過於不思議智爲最踰於不可稱智爲
001_0560_c_19L寬於大乘廣智爲勝是爲第三四五
001_0560_c_20L勝也是故名爲無等無倫最上勝智
001_0560_c_21L顯四疑所迷境也
次明四種疑惑相者

001_0560_c_22L
謂如有一性非質直邪聰我慢薄道心
001_0560_c_23L不了四智而起四疑一者疑成作
001_0560_c_24L事智所作之事謂聞經說十念念佛

001_0561_a_01L그 까닭을 알지 못하므로 의심이 생겨서 이와 같이 말한다. “부처님의 경전에서 선업과 악업의 길과 죄와 복은 아주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 무거운 사람을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은 이치에 어긋남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일생 동안 악업을 짓지 않을 수 없는데, 십념만으로 모든 죄를 소멸할 수 있으며, 저 국토에 왕생할 수 있고, 정정취에 들어가서 영원히 축생·아귀·지옥의 삼도를 여의고 마침내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온갖 번뇌를 일으켜서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에 얽매이고 묶여 있는데, 두 바퀴의 번뇌(二輪煩惱)136)를 끊지도 않고, 바로 십념만으로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 밖으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그릇된 생각과 의심을 다스리기 위해서, 사의할 수 없는 지혜(不思議智)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에 큰 힘이 있음을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멀리 있는 것으로 삼고,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있는 것으로 삼으며,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삼고, 가벼운 것을 무거운 것으로 삼는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사량의 경계가 아니므로 바로 우러러 믿어야 한다. 경전의 말씀은 스스로의 얕은 의식으로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생겨나도록 하려면, 마땅히 현상으로 비유를 들어야 한다. 비유를 들면 1천 년 동안 쌓은 섶은 그 높이가 1백 리나 되지만, 콩알만 한 불로 하루에 다 태워 버릴 수 있다. 그때에 과연 1천 년 동안 쌓은 섶을 어떻게 하루에 다 태워 버릴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비유를 들면 하체장애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부지런히 기어서 반드시 여러 날 걸려야 1유순由旬을 갈 수 있지만, 그가 남의 배를 타고 바람의 힘에 의지하면 하루 동안에 1천 리를 갈 수 있다. 이때에 하체장애인의 몸으로 어떻게 하루 동안에 1천 리를 갈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간의 뱃사공 몸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이 생각을 끊어 버린 일을 할 수 있거늘, 하물며 여래 법왕의 힘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할 수 없겠는가!
이것이 첫째 성소작지에 대한 의심을 대치하는 것이다.

2) 묘관찰지에 대한 의심의 양상

두 번째 의심이란, 이를테면 묘관찰지가 관찰하는 대상인 경계에 대하여, 마치 경전 속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여 말하기를, 모든 존재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두 극단을 멀리 벗어난 것이며, 그렇다고 중도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 미묘한 관찰을 하신다고 말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 까닭을 알지 못하므로 의심이 생겨서 말하기를 “지금 물건을 저울질할 때 나타는 것과 같다. 물건이 무거우면 저울대가 내려가고,

001_0561_a_01L得生彼國由不了故生疑而言如佛
001_0561_a_02L經說善惡業道罪福無極重者先牽
001_0561_a_03L理數無差如何一生無惡不造但以十
001_0561_a_04L能滅諸罪便得生彼入正定聚
001_0561_a_05L離三途畢竟不退耶又無始來起諸
001_0561_a_06L煩惱繫屬三界而相纏縛如何不斷二
001_0561_a_07L輪煩惱直以十念出三界外耶爲治如
001_0561_a_08L是邪思惟疑是故說名不思議智欲顯
001_0561_a_09L佛智有大勢力故能以近爲遠以遠爲
001_0561_a_10L以重爲輕以輕爲重雖實有是事
001_0561_a_11L而非思量境所以直應仰信經說不可
001_0561_a_12L以自淺識思惟若欲生信應以事況
001_0561_a_13L如千年積薪其高百里豆許火燒
001_0561_a_14L日都盡可言千年積之薪如何一日盡
001_0561_a_15L又如 1) [18] 自力勤行要逕多日
001_0561_a_16L至一由旬若寄他舩因風䑺勢一日
001_0561_a_17L之間能至千里可言2) [19] 者之身云何
001_0561_a_18L一日至千里耶世閒舩師之身尙作如
001_0561_a_19L是絕慮之事何況如來法王之勢而不
001_0561_a_20L能作不思議事耶是爲對治第一疑也
001_0561_a_21L第二疑者謂疑妙觀察智所觀之境
001_0561_a_22L同經中歎佛智云妙觀察諸法非有非
001_0561_a_23L遠離二邊而不著中由不了故
001_0561_a_24L疑而言如今現見稱物之時物重卽低

001_0561_b_01L물건이 가벼우면 저울대가 반드시 올라간다. 그런데 가벼워도 저울대가 올라가지 않고, 무거워도 저울대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말로만 있고, 이치의 뜻으로는 없는 것이므로, 인연으로 생겨나는 법도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라면 곧 유有에 떨어지고, 유有가 아니라면 그것은 곧 무無에 해당한다. 그런데 없는 것이 아니면서 있는 것을 얻을 수도 없고, 있는 것이 아니면서 없는 것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무거운데도 저울대가 내려가지 않고, 가벼운데도 저울대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말만 있는 것이고 실제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이 칭량하는 것은 바로 여러 극단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를테면 의타에 집착하면 실유이며 공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증익의 극단137)에 떨어지고, 또 연생에 집착하면 공이며 유有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손감의 극단138)에 떨어진다. 또 이를테면 속제는 유有이고 진제는 공空이라 계량計量하는 것은 두 극단을 다 짊어진 것이므로 상위론139)에 떨어진다. 또 이를테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라고 계량하는 것은, 한 중도에 집착하는 것이므로 우치론에 떨어진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대지도론』에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우치론이다.”140)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릇된 칭량의 집착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므로, 칭량할 수 없는 지혜(不可稱智)를 안립한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는 아주 심오하여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어 버려 칭량을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말과 같이 뜻을 취한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어째서 아주 심오하고 보기 어려운 법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모든 존재는 아주 심오하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제일 심오하고 아주 보기 어려운 법이란, 이를테면 자성은 모든 희론을 끊어 버리고, 언어의 길을 넘어선다. 모든 존재의 자성은 희론을 모두 끊어 버리고, 언어의 길을 넘어선다. 그렇지만 또한 그것은 언설을 의지로 삼기 때문에, 방정하게 취할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아주 심오하고 보기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141)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이 두 번째 (묘관찰지에 대한) 의심을 다스리는 것이다.

3) 평등성지에 대한 의심의 양상

세 번째 의심이란, 이를테면 평등성지가 빠짐없이 두루 다 제도한다는 뜻을 의심하는 것이다. 경전에서 모든 중생이 모두 다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릇 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보리菩提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그 까닭을 알지 못하므로 의심이 생겨서 “여래와 중생에게 모두 다 불성이 있다면, 모든 유정을 모두 제도하여 무상보리를 얻게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곧 중생이 아무리 많더라도, 끝이 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 최후의 부처님은 이타의 공덕을 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화할 중생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될 수도 없고,

001_0561_b_01L物輕必擧若言輕而不擧重而不低
001_0561_b_02L是說者有言無義因緣生法當如亦
001_0561_b_03L若實非無便墮於有如其非有
001_0561_b_04L當於無若言非無而不得有非有而不
001_0561_b_05L墮無卽同重而不低輕而不擧故知是
001_0561_b_06L有言無實如是稱量卽墮諸邊
001_0561_b_07L執依他實有不空墮增益邊或執緣生
001_0561_b_08L空無所有墮損減邊或計俗有眞空
001_0561_b_09L負二邊墮相違論或計非有非無
001_0561_b_10L一中邊墮愚癡論如釋論 [18] 非有非
001_0561_b_11L是愚癡論故爲治此等邪稱量執
001_0561_b_12L是故安立不可稱智欲顯諸法甚深
001_0561_b_13L言絕慮不可尋思稱量如言取義
001_0561_b_14L瑜伽說云何甚深難見法謂一切法
001_0561_b_15L何以故第一甚深難見法者所謂諸法
001_0561_b_16L自性皆絕戲論過言語道然由言說
001_0561_b_17L爲依止故方乃可取可觀可覺是故諸
001_0561_b_18L法甚深難見是爲對治第二疑也第三
001_0561_b_19L疑者謂疑平等性智等齊度之意
001_0561_b_20L聞經說一切衆生悉皆有心凡有心
001_0561_b_21L當得菩提由不了故生疑而言
001_0561_b_22L如來衆生皆有佛性悉度一切有情
001_0561_b_23L令得無上菩提者是卽衆生雖多必有
001_0561_b_24L終盡其最後佛無利他德所化無故

001_0561_c_01L또 공덕이 모자라기 때문에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는데 공덕이 있다고 하면, 그것 또한 도리에 맞지 않다. 공덕이 모자라는데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그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릇된 계량을 하여, 대승을 비방하고, 평등하게 널리 제도하는 참뜻을 믿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협소한 편견으로 의심하는 집착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므로, 대승의 넓은 지혜(大乘廣智)를 안립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밝힌다. 나르지 않는 것이 없고 싣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열반에 들어가도록 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말씀하며, 또한 그 실어 나르는 것이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므로 넓은 지혜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허공은 끝이 없으므로, 중생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삼세도 끝이 없으므로, 삶과 죽음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중생이 비롯함도 없고 끝도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 또한 비롯함이 없고 끝이 없다.
모든 부처님 중에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이룬 분이 있다면 그 이전에는 부처님이 없었을 것이므로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도 없을 것이다. 성스러운 가르침이 없으므로 들을 수도 없을 것이며, 말이 없으면 익히고 닦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이 출현한다면, 원인이 없는데도 결과가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말만 있는 것이지 실제는 없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부처님은 비롯함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부처님은 비롯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한 부처님도 본래 범부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며, 모두 다 본래 범부이었더라도, 거꾸로 아무리 거슬러 가도 비롯함은 없을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생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끝이 없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뒤에 부처님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뒤에 모두 다 부처님이 된다고 하더라도,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성지는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 일이 없으므로, 끝이 있는 것이 아님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대승의 넓은 지혜를 안립한다. 이것이 세 번째 (평등성지에 대한) 의심을 다스리는 것이다.

4) 대원경지에 대한 의심의 양상

네 번째 의심이란, 대원경지가 모든 경계를 두루 다 비추어 환히 알 수 있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왜 그런 의심이 생기는가? “이를테면 허공은 끝없이 넓으므로, 그곳에 있는 세계도 한량없이 넓다. 세계가 한량없이 넓으므로, 그곳에 사는 모든 생명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든 생명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므로, 마음의 작용의 차별·근성·욕망·성품 등도 모두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다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점차로 닦고 익혀서 알 수 있는가,

001_0561_c_01L卽無成佛功德闕故無化有功不應
001_0561_c_02L道理闕功成佛亦無是處作是邪計
001_0561_c_03L誹謗大乘不信平等廣度之意爲治如
001_0561_c_04L是狹小疑執是故安立大乘廣智欲明
001_0561_c_05L佛智無所不運無所不載一切皆入無
001_0561_c_06L故言大乘其所運載無始無際
001_0561_c_07L名廣智所以然者虗空無邊故衆生
001_0561_c_08L無數量三世無際故生死無始終
001_0561_c_09L生旣無始終諸佛亦無始終若使諸佛
001_0561_c_10L有始成者其前無佛卽無聖敎無敎
001_0561_c_11L無聞無言無習而成佛者卽無因有
001_0561_c_12L但有言無實由是道理諸佛無始
001_0561_c_13L雖實無始而無一佛本不作凡雖皆本
001_0561_c_14L作凡而展轉無始以是准知衆生無終
001_0561_c_15L雖實無終而無一人後不作佛雖悉後
001_0561_c_16L作佛而展轉無終是故應信平等性智
001_0561_c_17L無所不度而非有限所以安立大乘廣
001_0561_c_18L是爲對治第三疑也第四疑者
001_0561_c_19L疑大圓鏡智遍照一切境義云何生疑
001_0561_c_20L謂作是言虗空無邊故世界亦無邊
001_0561_c_21L世界無邊故衆生亦無邊衆生無邊故
001_0561_c_22L心行差別根欲性等皆是無邊際
001_0561_c_23L何於此能得盡知爲當漸漸修習而知
001_0561_c_24L「躃」作「躄」{甲}上同

001_0562_a_01L그렇지 않으면 닦고 익히지 않고도 홀연히 문득 비추어 알 수 있는가? 닦고 익히지 않고도 문득 비추어 알 수 있다면, 모든 범부가 다 같이 문득 비추어 알 수 있으므로, 다 같이 닦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또 점차로 닦고 익혀서 드디어 점진적으로 다 알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은 모든 경계가 끝이 없는 것이 아닌데, 끝이 없으면서 다함이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앞으로 나아가든 뒤로 물러서든, 모두 다 성립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두루 다 비추어 다 알 수 있으므로 일체종지一切種智142)라고 부르는가?”143)라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두 관문에 대한 풀기 어려운 의심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므로, 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를 안립하여, 이와 같은 대원경지를 밝힌다. (성소작지·묘관찰지·평등성지의) 세 가지 지혜(三智)144)를 뛰어넘어 동류가 없고, 속제와 진제의 2제의 밖에 홀로 있어 둘이 없으며, 속제와 진제의 두 쪽에 모두 걸리도록 두 가지로 표현하지만 초연하여 걸림이 없으므로, 다만 우러러 믿어야 할 뿐이며, 비량比量145)할 수 없으므로, ‘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우러러 믿음을 일으킬 수 있는가? 비유를 들면 세계가 한량없이 넓어서 허공 밖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경계도 한량이 없지만 모두 다 한마음 안에 들어온다. 부처님의 지혜는 현상을 떠나서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와 지혜와 한마음이 혼연히 동체가 되어 둘이 아니다. 시각始覺146)이 바로 본각本覺147)과 같으므로, 한 경계도 지혜의 밖을 벗어나는 것이 없다.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경계를 멸진하지 않음이 없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지 않다. 그래서 무한한 지혜로써 끝없는 경계를 비춘다.

『대승기신론』에서 “이 모든 인식의 대상은 본래 한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의 본래 모습에 있어서는 망상·망념의 차별을 벗어난다. 다만 모든 생명들은 무명의 망념에 의해서 인식의 대상을 보기 때문에, 마음에 분별이 생겨 유한한 인식의 세계가 형성된다. 헛되이 망상·망념을 일으켜, 차별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므로, 제법의 본성에 어울리지 못하고, 마음의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통찰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거룩한 부처님은 망견·망상을 벗어나 버린 경지이므로, 보는 작용이 마음의 모든 것에 골고루 미친다. 그것이 마음의 진실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를테면 제법의 본성이다. 부처님의 지혜는 자체 위에 나타나, 모든 생명들의 모든 헛된 것들을 들여다보고, 그릇된 것을 그릇된 것으로 밝혀낸다. 이와 같이 거룩한 부처님에게는 지혜의 거룩한 작용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편이 있다. 모든 생명들의 의심이나 요구에 따르고, 또 그들이 알아야만 할 것에 따라서, 모든 부분에 걸쳐 적절하게 여러 가지 가르침의 의의(法義)를 펼쳐 보인다. 그러므로 일체종지라고 부른다.”148)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을 ‘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라고 하며, 보는 것이 없으므로

001_0562_a_01L爲當不修忽然頓照若不修習而頓照
001_0562_a_02L一切凡夫皆應等照等不修故
001_0562_a_03L異因故若便漸修終漸得盡知者
001_0562_a_04L一切境非無邊際無邊有盡不應理故
001_0562_a_05L如是進退皆不成立云何得普照
001_0562_a_06L一切種智爲治如是兩關疑難故安立
001_0562_a_07L無等無倫最上勝智欲明如是大圓鏡
001_0562_a_08L超過三智而無等類二諦之外
001_0562_a_09L在無二兩關二表迢然無關只應仰
001_0562_a_10L不可比量故名無等無倫最上勝智
001_0562_a_11L云何於此起仰信者譬如世界無邊
001_0562_a_12L出虗空之外如是萬境無限咸入一心
001_0562_a_13L之內佛智離相歸於心原智與一心
001_0562_a_14L渾同無二以始覺者卽同本覺故無
001_0562_a_15L一境出此智外由是道理無境不盡
001_0562_a_16L而非有限以無限智照無邊境故
001_0562_a_17L起信論云一切境界本來一心離於
001_0562_a_18L想念以衆生妄見境界故心有分齊
001_0562_a_19L以妄起想念不稱法性故不能決了
001_0562_a_20L諸佛如來離於相見無所不遍心眞實
001_0562_a_21L卽是諸法之性自體顯照一切妄法
001_0562_a_22L有大智用無量方便隨諸衆生所應得
001_0562_a_23L悉能開示一切法義是故得名一切
001_0562_a_24L種智是爲無等無倫最上勝智無所見

001_0562_b_01L보지 않는 것도 없다. 이와 같이 네 번째 (대원경지에 대한) 의심을 다스린다.

5) 의심을 풀고 왕생하라

그러나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말로만 뜻을 취하는 것과 같다. 끝이 있다거나 끝이 없다거나 하여, 모두 허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문門에 의하면, 거짓으로 끝이 없다는 뜻을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네 가지 의심을 해결하지 못하면, 저 불국정토에 태어나더라도 변지邊地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아직도 앞에서 말씀한 것과 같은 네 가지 지혜의 경지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는 겸손하기만 하고, 마음의 눈은 아직 열린 것이 아닌데, 우러러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한결같이 간절하게 믿으면, 이와 같은 사람들은 그가 닦은 품행에 따라서 저 불국정토에 왕생하되 변지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변지에 태어나는 이는 별도의 한 부류이며, (정토에 왕생하는 부류인) 구품에는 포함되지 않으므로, 허망한 의심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량수경종요』를 마친다.

001_0562_b_01L無所不見如是對治第四疑也
001_0562_b_02L若不得意如言取義有邊無邊皆不
001_0562_b_03L離過依非有邊門假說無邊義耳
001_0562_b_04L人不決如是四疑雖生彼國而在邊地
001_0562_b_05L如其有人雖未明解如前所說四智之
001_0562_b_06L而能自謙心眼未開仰惟如來
001_0562_b_07L向伏信如是等人隨其行品往生彼土
001_0562_b_08L不在邊地生著邊者別是一類非九
001_0562_b_09L品攝是故不應妄生疑惑也

001_0562_b_10L
1) [20] 量壽經宗要終

001_0562_b_11L「無」上有「兩卷」{甲}
  1. 1)육진 : 색·성·향·미·촉·법의 6경을 육진이라고도 말한다.
  2. 2)오탁 : 악세에서의 다섯 가지 더럽게 물든 현상. ① 겁탁劫濁(ⓢ kalpa-kaṣāya) : 시대의 추악함을 말한다. 시대가 추악하여 전쟁·역병·기근 등이 많이 일어나는 현상, 시대적인 환경사회의 추악함이다. ② 견탁見濁(ⓢ dṛṣṭi-kaṣāya) : 사상·도그마의 혼란을 말한다. 사상이 악화되어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현상, 정의롭지 못한 사상이 횡행하는 사회현상이다. ③ 번뇌탁煩惱濁(ⓢ kleṡa-kaṣāya) : 번뇌가 만연하는 현상을 말한다. 탐·진·치의 삼독이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인간의 비참한 현상, 악덕이 횡행하는 현상이다. ④ 중생탁衆生濁(ⓢ sattva-kaṣāya) : 중생의 과보가 쇠미하여 마음이 우둔하고 신체가 쇠약하며 고뇌가 많아진 현상을 말한다. 인간의 자질이 아주 저하하는 현상이다. ⑤ 명탁命濁(ⓢ āyuṣ-kaṣāya) : 중생의 수명이 점차로 저하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후에는 10세까지 떨어진다.
  3. 3)사류 : 사폭류를 줄여서 사류라고 하며, 네 가지 번뇌의 격심한 흐름을 말하며, 욕폭류·유폭류·견폭류·무명폭류를 가리킨다.
  4. 4)열반 : 열반涅槃(ⓢ nirvāṇa)은 범어를 음사한 것으로서 원래 nirvāṇa는 ‘사라져 버리는 것, 생명의 빛이 꺼져 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교사상을 드러내는 용어로 수용되면서 완전한 해탈을 의미하게 되었다. 한문경전에서는 열반涅槃, 열반나涅槃那, 니원泥洹이라고 음사하고,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원적圓寂, 무위無爲, 무생無生, 무작無作 등으로 번역한다. 탐욕(ⓢ rāga)·성냄(ⓢ dveṣa)·어리석음(ⓢ mohā)의 삼독三毒(ⓢ tri-viṣaṃ)을 소멸하여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의미한다.
  5. 5)먼 것이~것이 있으며 : 예컨대 이 땅에 그 자취를 드러낸 석가모니 부처님, 곧 정반왕의 아들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나 붓다가야에서 성불한 부처님께서, 개삼현일開三顯一의 가르침에 의해서 일승법一乘法을 밝혀 이승二乘이 성불할 수 있는 길을 밝힌 것이 ‘가까운 것’이다. 또한 이 자취를 드러낸 부처님을 초월하여 영원히 실재하는 구원실성久遠實成(먼 옛날 실제로 성불하였다는 뜻)의 본불本佛(영원한 부처님)을 설명한 것이 ‘먼 것’이다.
  6. 6)칭찬하고 혹은 폄하하는 것 : 예를 들어 방등시方等時(『維摩經』 등)에서 소승을 꾸짖고 대승을 찬탄한 것을 가리킨다.
  7. 7)오악 :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의 오계를 지키지 않고 깨뜨리면 오악이다.
  8. 8)아미타여래 : 아미타는 범어 아미타바(ⓢ Amitābha) 혹은 아미타유스(ⓢ Amitāyus)의 음사어로 아미타바는 ‘헤아릴 수 없는 빛’, 즉 무량광無量光이라는 뜻이고, 아미타유스는 ‘헤아릴 수 없는 수명’, 즉 무량수無量壽라는 뜻이다. 서방정토의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법을 이르시는 부처님을 말한다. 과거의 구원한 겁(ⓢ kalpa)에 세자재왕世自在王 부처님이 계실 때, 어느 국왕이 무상도심을 일으켰으며, 그 뒤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서 법장비구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 밑에서 수행하여 모든 부처님의 정토를 견학하고, 다섯 겁 동안 사유하여 특별히 빼어난 마흔여덟 가지 서원誓願을 일으켰다. 그 이래로 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이 성취되어 아미타 부처님이 되고, 이 세계에서 10만억의 국토를 지나 서방에 극락을 건립하고 지금도 법을 이르고 계시는 현재 부처님이라고 한다. 협시보살은 관세음과 대세지보살로서 함께 아미타삼존불이라고 부른다.
  9. 9)안양국토安養國土 : 아미타불의 정토인 극락세계를 안양국토라고도 부른다.
  10. 10)세 무리의 중생(三輩) :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중생을, 수행·왕생의 형태 등에 의해서 다음 세 부류로 분류한 것이다 ① 상품의 무리(上輩) :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무량수불을 칭념하면서 온갖 공덕을 닦으며,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중생이다. ② 중품의 무리(中輩) :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무량수불을 칭념하면서, 재계齋戒를 받들어 지니고 탑과 불상을 조성하며, 사문에게 공양하고 비단휘장을 걸고 등불을 켜며 꽃을 뿌리고 향을 태우면서,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중생이다. ③ 하품의 무리(下輩) :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뜻을 오로지하여 열 번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무량수불을 칭념하면서,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중생이다.
  11. 11)열여덟 가지의 원정 : 수용정토受用淨土에서 갖추고 있는 열여덟 가지 공덕을 가리키며, 그 전거는 진제眞諦(ⓢ Paramārtha)가 번역한 『攝大乘論釋』(T31, 264a25)에서 “論曰。如此淨土淸淨顯 色相圓淨·形貌·量·處·因·果·主·助·眷屬·持·業·利益·無怖畏·住處·路·乘·門·依止圓淨。 由前文句。 如此等圓淨皆得顯現。”이라고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2. 12)삼계 : 불교에서 세계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셋으로 구분한 것을 말한다. 첫째, 욕계는 다시 ① 사악취계, ② 인간계, ③ 육욕천으로 나뉘는데, 사악취계는 ① 지옥계(ⓢ Naraka), ② 아귀계(ⓢ Preta), ③ 축생계(ⓢ Tiryak), ④ 아수라계(ⓢ Asura)로 구성되고, 인간계는 ① 동승신주東勝身洲(ⓢ Pūrva-videha), ② 남섬부주南贍部洲(ⓢ Jambu-dvīpa), ③ 서우화주西牛貨洲(ⓢ Apara-godānīya), ④ 북울단월北鬱單越(ⓢ Uttara-kuru)로 구성되며, 육욕천은 ① 사천왕천, ② 삼십삼천(ⓢ Trāyastriṃśā devāḥ)의 지거천地居天과 ③ 야마천(ⓢ Yāmāḥ devāḥ), ④ 도솔천(ⓢ Tuṣita devāḥ), ⑤ 화락천(ⓢ Nirmāṇarataya devāḥ), ⑥ 타화자재천(ⓢ Paranimita vaśa vartina)의 정거천空居天으로 구성된다. 둘째, 색계는 다시 ① 초선천初禪天, ② 이선천二禪天, ③ 삼선천三禪天, ④ 사선천四禪天으로 나뉘는데, 초선천은 ① 범중천梵衆天(ⓢ Brahma-kāika), ② 범보천梵輔天(ⓢ Brahma-purohita), ③ 대범천大梵天(ⓢ Mahā-brahman)으로 구성되고, 이선천은 ① 소광천少光天, ② 무량광천無量光天, ③ 광음천光音天으로 구성되고, 삼선천은 ① 소정천少淨天, ② 무량정천無量淨天, ③ 변정천遍淨天으로 구성되며, 사선천은 ① 무운천無雲天, ② 복생천福生天, ③ 광과천廣果天, ④ 무상천無想天, ⑤ 무번천無煩天, ⑥ 무열천無熱天, ⑦ 선견천善見天, ⑧ 선현천善現天, ⑨ 색구경천色究竟天으로 구성된다. 셋째, 무색계는 다시 ①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②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③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④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으로 나뉜다. 욕계의 육욕천부터가 천계天界이다.
  13. 13)오근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 오근을 가리킨다.
  14. 14)상호 :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가리키며, 붓다의 색신이 갖추고 있는 거룩한 용모와 형상을 말한다.
  15. 15)육욕천 : 불교의 세계관에서, 천계 가운데 욕계에 속하는 여섯 가지 천계를 말한다.
  16. 16)8종의 공덕을 갖춘 연못(八功德池) : 여덟 가지 빼어난 공덕을 갖춘 물을 저장하고 있는 연못을 가리킨다. 여덟 가지 공덕이란, 달다(甘)·시원하다(冷)·부드럽다(輭)·가볍다(輕)·깨끗하다(淸淨)·악취가 없다(不臭)·마실 때 목을 해치지 않는다(飮時不損喉)·마시고 나서 배가 아프지 않다(飮已不損腹)와 같은 특질과 특효가 있는 물을 말한다.
  17. 17)무생無生 : 여기서 무생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의미한다.
  18. 18)진리를 말씀할~다섯 분 : 다섯 분이란 부처님, 부처님의 제자, 선인, 천선, 화인化人을 가리키며, 그 가운데에서 부처님이 으뜸이라는 의미이다.
  19. 19)『華嚴經探玄記』(T35, 158c2). 법장은 『華嚴經探玄記』 제3권 제2 「盧舍那佛品」의 네 번째에서 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원효가 여기서 서술한 내용을 그대로 문장만 바꿔서 기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 20)금강유정金剛喩定(ⓢ vajra-upama-samādhi) : 다이아몬드에 비견할 만큼 단단하고 예리하므로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10지의 보살이 최후의 번뇌의 종자를 단박에 끊고 불지佛地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는 선정이다.
  21. 21)삼현 : 십주·십행·십회향 세 계위를 합하여 삼현위라 부른다.
  22. 22)십성 : 불교에서는 십주·십행·십회향의 계위에 오른 수행자를 현인이라 부르며,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 십지의 계위에 오른 수행자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십지 보살은 성인이라고 부른다.
  23. 23)『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T8, 828a1).
  24. 24)한결같은 것(一向) : ⓢ śama-eka를 일향一向이라고 번역한 것으로서, ‘오로지, 일편단심으로, 일념으로’라는 부사적인 뜻으로 쓰는 단어이다. 여기서는 문장의 의미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 ‘한결같음’이라고 번역하였다.
  25. 25)사혹 : 아치·아견·아만·아애의 네 가지 번뇌와 상응하는 아집의 근본이 되므로 사량능변식 또는 집착식이라고 부른다.
  26. 26)『攝大乘論釋』(T31, 263b7).
  27. 27)대지大地 : 큰 지위라는 뜻. 보살의 수행계위 중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리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계위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출처에 따라 다르다. 십지 중 초지初地(환희지) 이후의 보살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제8지인 부동지 이후의 보살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원효의 글에 따르면 여기에서는 전자에 해당한다. 또한 “청정한 문과 청정하지 않은 문”은 법장法藏이 『華嚴經探玄記』 권3(T35, 158c2)에서 염정染淨을 지위地位와 법의 두 가지 측면에서 밝힌 것 가운데, 전자와 내용이 거의 같다. 법장은 여기에서 “唯入大地菩薩生處”를 “地上菩薩生處”라고 하였는데, 이는 또한 원효와 동일하게 ‘대지’를 초지 이후로 본 것이다.
  28. 28)나락가那落迦(ⓢ naraka) : 천·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육도 가운데에서 지옥을 원어 그대로 음사한 것이다.
  29. 29)『瑜伽師地論』(T30, 736c21).
  30. 30)환희지 : 보살 십지에서의 초지인 환희지(ⓢ pramuditā bhūmi, 歡喜地)를 『瑜伽師地論』과 대비하여 서술한 것이다. 『瑜伽師地論』에서 서술하는 보살 수행의 13단계 중 세 번째인 제3 극환희주를 가리키는 것이며, 일곱 가지 보살지(七種菩薩地門)에서의 제3 정승의락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31. 31)일곱 가지 보살지(七種菩薩地門) : 『瑜伽師地論』(T30, 564c28)에서 보살 수행의 과정을 인위로부터 과위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일곱 단계로 분류한 것으로서, 제1 종성지, 제2 승해행지, 제3 정승의락지, 제4 행정행지, 제5 결정지, 제6 결정행지, 제7 도구경지의 7지를 가리킨다. 이것을 보살의 십지에 배대하면, 제1종성지는 십해, 제2 승해행지는 십행·십회향, 제3 정승의락지는 십지 가운데의 제1환희지(ⓢ pramuditā-bhūmi), 제4 행정행지는 제2지~제7지, 제5 결정지는 제8 부동지(ⓢ acalā-bhūmi), 제6 결정행지는 제9 선혜지善慧地(ⓢ sādhumatī-bhūmi), 제7 도구경지는 제10 법운지法雲地(ⓢ dharmameghā-bhūmi)에 해당한다.
  32. 32)제3 정승의락지 : 일곱 가지 보살지 가운데 세 번째가 정승의락지이다.
  33. 33)13계위(十三位) : 『瑜伽師地論』(T30, 552c24)에서 서술하는 보살의 수행의 계위를 13단계로 분류하여 구별한 것으로서, 제1 종성주, 제2 승해행주, 제3 극환희주, 제4 증상계주, 제5 증상심주, 제6 각분상응증상혜주, 제7 제제상응증상혜주, 제8 연기유전지식상응증상혜주, 제9 유가행유공용무간결도운전무상주, 제10 무가행무공용무간결도운전무상주, 제11 무애해주, 제12 최상성만보살주, 제13 여래주의 13계위를 가리킨다.
  34. 34)13계위를 섭수하여~보살지를 세우는데 : 앞에 있는 주의 『瑜伽師地論』에서 서술하는 제1 종성주, 제2 승해행주, 제3 극환희주, 제4 증상계주, 제5 증상심주, 제6 각분상응증상혜주, 제7 제제상응증상혜주, 제8 연기유전지식상응증상혜주, 제9 유가행유공용무간결도운전무상주, 제10 무가행무공용무간결도운전무상주, 제11 무애해주, 제12 최상성만보살주, 제13 여래주의 13주를 7단계로 축소하여 분류한 것이다. 13주를 일곱 가지 보살지로 축소·분류하여 배대하면, 제1 종성지는 제1 종성주, 제2 승해행지는 제2 승해행주, 제3 정승의락지는 제3 극환희주, 제4 행정행지는 제4 증상계주·제5 증상심주·제6 각분상응증상혜주·제7 제제상응증상혜주·제8 연기유전지식상응증상혜주·제9 유가행유공용무간결도운전무상주, 제5 결정지는 제10 무가행무공용무간결도운전무상주, 제6 결정행지는 제11 무애해주, 제7 도구경지는 제12 최상성만보살주·제13 여래주에 해당한다.
  35. 35)세 부류 중생(삼취중생) : 정정취·사정취·부정취의 세 부류 중생을 가리킨다.
  36. 36)사향사과 : 깨달음의 성취 과정을 여덟 단계로 분류한 것이다. ① 예류향預流向(ⓢ Srota āpatti phala pratipannaka)은 삼계의 견혹見惑을 끊고 있는 견도 15심心 사이에 있는 계위, ② 예류과預流果(ⓢ Srota āpatti phala)는 견도 15심을 마친 뒤, 제16심, 곧 수도修道에 들어간 계위, ③ 일래향一來向(ⓢ Sakṛd āgāmi phala pratipanna) : 욕심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수행에 의하여 소멸되는 9종의 번뇌가 있는데, 그중 6종을 단멸시키는 계위, ④ 일래과一來果(ⓢ Sakṛd āgāmi phala) : 욕심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수행에 의하여 소멸되는 9종의 번뇌가 있는데, 그중 6종을 단멸시킨 사람이 얻은 계위, ⑤ 불환향不還向(ⓢ Anāgāmi phala pratipannaka)은 불환과로 향하고 있는 계위, ⑥ 불환과不還果(ⓢ Anāgāmi phala)는 이미 욕계의 모든 번뇌를 끊고 천상에 태어나 욕계에 되돌아오지 않는 계위, ⑦ 무학향無學向(ⓢ Aśaikṣa phala pratipannaka)은 무학과로 향하고 있는 계위, ⑧ 무학과無學果(ⓢ Aśaikṣa phala)는 이미 배울 것을 다 배워서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깨달음의 경지. 이론적 미혹(見惑)과 정의적 미혹(思惑)을 모두 끊은 사람을 말하며, 전자를 성취한 것을 혜해탈慧解脫, 후자를 성취한 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고 한다.
  37. 37)『佛說無量壽經』(T12, 268a11).
  38. 38)삼천대천세계(ⓢ tri-sāhasra-mahā-sāhasra-loka-dhātu) : 불교의 세계관에서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수미산須彌山(ⓢ Sumeru)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동승신주, 서울화주, 남섬부주, 북울단원 등의 사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둘레에 구산九山과 팔해八海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이고 이것을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고 부른다. 위로는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에서부터 아래로는 대지 밑의 풍륜風輪에까지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이 세계에는 해, 달, 수미산, 사천하四天下, 동방지국천왕(持國天王, ⓢ Dhṛtarāṣṭra)·남방증장천왕(增長天王, ⓢ Virūḍhaka)·서방광목천왕(廣目天王, ⓢ Virūpākṣa)·북방다문천왕(多聞天王, ⓢ Vaiśravaṇa)의 사천왕, 삼십삼천(ⓢ Trāyastriṃśā devāḥ), 야마천(ⓢ Yāmāḥ devāḥ), 도솔천(ⓢ Tuṣita devāḥ), 화락천化樂天(ⓢ Nirmāṇarataya devāḥ),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mitavaśavartina), 대범천大梵天(ⓢ Mahā-brahman), 범보천梵輔天(ⓢ Brahma-purohita), 범중천梵衆天(ⓢ Brahma-kāika)의 범세천을 포함한다. 이 하나의 소세계를 1천 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고 부른다. 이 소천세계를 1천 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라고 부른다. 이 중천세계를 1천 개 모은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부른다. 그 넓이 및 세계의 성成·괴壞는 모두가 제사선천第四禪天과 같다. 이 하나의 삼천대천세계를 한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로 한다.
  39. 39)『佛說無量壽經』(T12, 268a17).
  40. 40)『佛說觀無量壽經』(T12, 346b3).
  41. 41)『往生論』(T26, 231a14).
  42. 42)『阿彌陀鼓音聲王陀羅尼經』(T12, 352b23).
  43. 43)수용토 : 세 가지 불국토의 하나로서 나와 남이 모두 법락을 누릴 수 있는 불국토를 가리킨다. 보토가 이것에 해당하며, 자수용토와 타수용토의 두 가지 수용토가 있다.
  44. 44)공업 :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동일한 형태의 업을 가리키며, 산하대지나 자연과 같은 것을 말한다.
  45. 45)자수용토 : 부처님이 스스로 수용하는 불국정토를 가리키며, 자리의 수행을 완성하여 성불함으로써 수용하게 된 불국정토이고, 미래의 영원한 겁에 걸쳐 있는 대원경지에 의하여 나타나는 순수하고 청정한 불국정토를 말한다.
  46. 46)타수용토 : 타수용신이 머무는 정토를 가리키며, 십지 이상의 보살로 하여금 법락을 누리고, 더욱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타의 보토를 말한다. 부처님이 대자대비심으로 이타의 수행을 완성하였을 때, 십지의 보살을 수용하기 위하여 건립한 불국토이다.
  47. 47)『菩薩瓔珞本業經』(T24, 1020a20).
  48. 48)지혜덩어리(智相之身) : 여래가 갖추고 계신 것은 온통 지혜뿐이므로, 지혜덩어리 또는 지혜뭉치라는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지상지신(智相之身)이라고 부른다.
  49. 49)제일의제第一義諦(ⓢ paramārtha-satya) : 최고의 진리, 완전한 진리, 가장 뛰어난 진리를 가리키며, 가장 빼어난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 제일의제를 승의제勝義諦 또는 진제眞諦라고도 부르며, 속제 또는 세속제는 그와 반대되는 상대어이다.
  50. 50)세속제世俗諦(ⓢ loka-saṃvṛti-satya) : 진리는 본디 하나이지만 중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방편적으로 세속에서의 진리를 가위假立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입장에서 보는 진리를 세속제 또는 줄여서 세제라고 부른다.
  51. 51)『大乘起信論』(T32, 579b17).
  52. 52)『大薩遮尼乾子所說經』(T9, 359b5).
  53. 53)『大方廣佛華嚴經』(T9, 626c21).
  54. 54)『攝大乘論釋』(T31, 263c13).
  55. 55)공과共果 : 붓다가 갖추고 있는 공덕 가운데에서 다른 성자나 범부도 함께 누릴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을 공법共法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하나의 과보라고 하여 공과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산·강·나무·대지와 같이 자타가 공유하는 의보依報를 공과라고 한다.
  56. 56)불공과不共果 : 모든 중생, 현인 그리고 성인이 각자 자신의 과보의 국토에서 살게 되어 있으나, 오온으로 이루어진 육신과 같은 것은 불공과에 속하다. 왜냐하면 육신은 불공 가운데의 불공이며, 자기의 집이나 정원과 같은 것은 공법 가운데의 불공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57. 57)진실한 지혜의 국토(實智土) : 진실하고 불변하므로 영원하고 궁극적인 진실한 지혜를 실지實智라고 부르며, 그러한 세계를 실지토라고 한다. 실지토란 본디 세속지를 벗어난 성스럽고 청정한 국토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보살의 초지인 환희지가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
  58. 58)후득지 : 근본지보다 뒤에 얻을 수 있는 지혜. 근본지에 의하여 평등한 진리 그 자체를 깨달은 뒤에 평등에 입각한 현상계에서의 차별의 원리를 아는 지혜를 가리킨다. 중생제도를 위하여 작용하는 지혜. 여량지如量智·무분별후득지無分別後得智·후득청정세지라고도 부른다.
    根本智 ― 自受用智 ― 自覺
    後得智 ― 他受用智 ― 覺他
  59. 59)근본지根本智(ⓢ jñāna-sattva) : 궁극의 진리를 깨달은 지혜. 진실과 계합하여 계량·분별을 뛰어넘은 우주만유의 근본 바탕이 그대로 평등함을 깨달아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여리지如理智·정지正智·진지眞智·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라고도 부른다. 뒤에 후득지를 생겨나게 하는 지혜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른다.
  60. 60)과보의 국토 :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서 받게 되는 속박에 묶여 있는 몸과 마음 그리고 외계를 말한다.
  61. 61)『菩薩瓔珞本業經』(T24, 1015c29).
  62. 62)어떤 논사 : 이 논사는 『佛地經論』을 저술한 친광親光 논사를 가리킨다. 친광 논사는 중인도 마가다국의 날란다(ⓢ Nālanda) 사원에서 수학하였으며, 호법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佛地經論』의 사상은 철저하게 호법 계통의 유식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해석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청정법계·대원경지·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 등의 다섯 가지 법을 논술하여 대각의 경지를 통섭한 것이다. 대원경지·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의 사지품四智品이나 오성각별설에 대하여 독특한 해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원효가 서술하고 있는 『佛地經論』(T26, 294a21)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外物豈是極微合成。 實有體性。 多因共感。 但是有情異識各變。 同處相似。 不相障礙。 如衆燈明。 如多所夢。 因類是同。 果相相似。 處所無別。 假名爲共。 實各有異。 諸佛淨土。 亦復如是。 各別識變。 皆遍法界。 同處相似。 說名爲共。 如是淨土因相圓滿。”
  63. 63)극미極微 : 물질을 분해하여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불가분의 극소 상태에 이른 것을 가리키며, 현대의 물리학의 입장에서는 원자라고 볼 수 있다.
  64. 64)『佛地經論』 제1권(T26, 294a21)에서 말한 것과 약간 글자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동일하다.
  65. 65)『解深密經』(T16, 698b1). 이 문장은 유식을 건립하는 데 근본이 되는 중요한 문장이다. 식소연識所緣의 식識은 능연의 견분을 가리키며, 소연은 대상인 상분을 가리킨다. 유식소현唯識所現의 식은 능변의 자체분을 가리키며, 소현所現이란 상분相分·견분見分의 2분은 자체분에서 변현變現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관인 견분에 의하여 반연된 객관인 상분은 결코 마음 밖에 있다고 망상하는 실법實法이 아니며, 이것은 식의 자체분에서 변현된 마음속의 가법假法인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66. 66)훈습熏習(ⓢ vāsanā) : 훈습이란 이제까지 없었던 습성이, 반복하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습성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경험을 반복하면 습관성이 된다. 그 습관성을 외래적인 것으로 보고 훈습이라고 부른다. 향기를 의복에 배게 하여 냄새를 풍기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짓는 신身·어語·의意 세 가지 업의 세력을 사람의 마음에 심어 습관화시킨 것을 말한다.
  67. 67)『大乘唯識論』(T31, 71c1).
  68. 68)이상 제1논사와 관련된 글 전부는 『華嚴經探玄記』에서 공共·불공不共을 사구四句로 제시한 가운데, 두 번째인 불공문에서 말한 것과 문장에서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69. 69)네 가지 미진(四塵) : 원자·분자에 해당하는 극미가 집합하여 물질을 이룰 때, 미세하다고는 하더러도 지·수·화·풍의 사대와 성·향·미·촉의 사미로 성립하므로, 이 여덟 가지 요소 가운데에서 한 가지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70. 70)관행 : 위빠사나(ⓢ vipaśyanā)를 말한다. 보통 비발사나(毘鉢舍那)라고 음사하며, 관觀·혜慧·정견正見이라고 한역한다.
  71. 71)『解深密經』(T16, 710c17).
  72. 72)불공분별 : 공통성을 띠지 않고 특수성을 띠는 것을 불공不共이라고 하며, 서로 공통성을 띠는 것을 공共이라고 말한다. 범부나 성자에게는 갖추어져 있지 않고 오직 부처님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공덕을 불공분별이라고 해석한다.
  73. 73)『瑜伽師地論』(T30, 700c19).
  74. 74)『攝大乘論釋』(T31, 264a25).
  75. 75)견도위에서 끊어야 할 번뇌 : 견도소단見道所斷(ⓢ darśana-heya, dṛṣṭi-heya)이란, 견도위에서 단멸되는 번뇌로서, 이성에 의하여 교정될 수 있는 번뇌이다.
  76. 76)수도위에서 끊어야 할 번뇌 : 수도소단修道所斷(ⓢ bhāvanā-heya)이란, 수도위에서 단멸되는 번뇌이다.
  77. 77)『瑜伽師地論』(T30, 661bc).
  78. 78)『攝大乘論釋』(T31, 263b14).
  79. 79)무작의 사제문(無作四諦門) : 천태종의 학설로서, 작위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경지, 사성제는 미혹과 깨달음, 범부와 성인, 생사와 열반과 같은 대립하는 모순의 상대적인 현상 그대로가 모순이 아닌 중도의 실상을 나타내고 있는 하나의 도리로 보는 사제관이다.(智顗, 『維摩經玄疏』, T38, 562a)
  80. 80)『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T8, 828a1).
  81. 81)『勝鬘師子吼一乘大方廣方便經』(T12, 221b25).
  82. 82)『究竟一乘寶性論』(T31, 834b25).
  83. 83)사루四漏 : 사폭류를 사루(ⓢ catur-ogha)라고도 부르며, 네 가지 번뇌의 격심한 흐름을 말한다. 번뇌가 내심의 선의 성질을 씻어 흘러내리는 것이 폭포수의 흐름과 같기 때문에, 번뇌를 폭류에 비유한 것이며, 욕폭류·유폭류·견폭류·무명폭류의 네 가지를 가리킨다.
  84. 84)『諸法無行經』(T15, 757b6).
  85. 85)꼭 일치하는 출처를 찾기 어렵다. 다만 『大般若波羅蜜多經』(T7, 1083a4)에서 “오온은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고,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며,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고, 유계도 아니고 무계도 아니다.(五蘊非有爲。 非無爲。 非有漏。 非無漏。 非世間。 非出世間。 非有繫。 非離繫。)”라고 한 것이 맥락적으로 일치한다.
  86. 86)『摩訶般若波羅蜜經』(T8, 249b7).
  87. 87)성판인成辦因 : 사물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것을 성판成辦이라고 하며, 여기에서는 정토의 세계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는 근본원인을 가리킨다.
  88. 88)『瑜伽師地論』(T30, 615a27).
  89. 89)『攝大乘論釋』(T31, 263b7).
  90. 90)『능가경료간楞伽經料簡』 : 이 책은 원효의 저술 목록에는 들어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91. 91)16관법 : 『佛說觀無量壽經』에서 다음과 같이 16관법을 말한다. 아미타불의 거룩한 몸이나 정토의 장엄한 모습을 일념으로 생각하여 떠올리는 관법에 의하여 정토에 왕생한다는 믿음의 실천방법이다. ① 일상관 :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보고 극락이 서방에 있음을 관상한다. ② 수상관 : 이 세계가 물과 얼음처럼 아름다운 것과 같이 극락세계의 대지가 넓고 평탄하다고 관상한다. ③ 지상관 : 수상관에서 얻은 것을 근거로 하여 한층 더 분명하게 관상한다. ④ 보수관 : 극락에 있는 보배나무들의 미묘한 작용을 관상한다. ⑤ 보지관 : 극락에 있는 여덟 연못의 8공덕수의 묘용을 관상한다. ⑥ 보루관 : 극락세계의 500억에 달하는 보배로 된 누각을 관상한다. ⑦ 화좌관 : 아미타불의 칠보로 장식된 연화대를 관상한다. ⑧ 불상관 : 불상을 보고 아미타불의 거룩한 모습을 관상한다. ⑨ 진신관 : 아미타불의 진신을 관상하는 것으로서, 이 관법을 성취하면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가르친다. ⑩ 관음관 : 아미타불의 좌측 보처인 관세음보살을 관상한다. ⑪ 지세관 : 아미타불의 우측 보처인 대세지보살을 관상한다. ⑫ 보관 : 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마타불과 보살들, 그리고 그 불국정토를 관상한다. ⑬ 잡상관 : 위와 같이 진신부처님 또는 진신보살을 관상하려고 해도 근기가 모자란 중생을 위하여 1.8m의 아미타불 불상을 관상하는 수행법을 가르친다. 이때 관법을 잘 닦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大身·小身·眞佛·化佛 등을 섞어서 함께 관상하는 방편을 쓰기도 한다. ⑭ 상배관 : 중생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서 수행하는 방법으로 상근기의 중생이 닦는 관상이다. ⑮ 중배관 : 중생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수행하는 방법으로 중근기의 중생이 닦는 관상이다. ⑯ 하배관 : 중생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수행하는 방법으로 하근기의 중생이 닦는 관상이다. ①에서 ⑥까지의 보배 관법은 총체적이어서 빨리 성취할 수 있으므로 총관總觀이라고 부른다. ⑭에서 ⑯까지의 상·중·하 삼배에 속하는 중생의 관법은 일상적인 행위이므로, 중국의 선도善導는 이것을 산선散善이라 하고 ①에서 ⑬까지의 열세 가지 관법을 정선定善이라고 주장한다.
  92. 92)오문행 : 오념문의 관법을 가리키며, 오념문을 수행함으로써 다섯 가지 공덕의 과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無量壽經優波提舍』(T26, 233a5)에서는 첫째는 근문近門, 둘째는 대회중문大會衆門, 셋째는 댁문宅門, 넷째는 옥문屋門, 다섯째는 원림유희지문園林遊戱地門이라고 서술하고 있으나, 그 내용을 알기 쉽게 간추리면, 첫째 근문은 예배문, 둘째 대회중문은 찬탄문, 셋째 댁문은 작원문作願門, 넷째 옥문은 관찰문, 다섯째 원림유희지문은 회향문을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93. 93)『佛說無量壽經』(T12, 272b15).
  94. 94)『佛說無量壽經』(T12, 272b16).
  95. 95)『佛說無量壽經』(T12, 272b24).
  96. 96)정인正因 :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을 정인이라고 말하며, 그 직접적인 행위를 정행正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성심·심심深心·회향발원의 삼심을 정인으로 삼고, 정토교에서 정토의 경전을 읽고, 아미타불을 관상하며, 아미타불을 예배하고, 아미타불을 칭명하며, 아미타불을 찬탄·공양하는 것의 오정행을 정행으로 삼는다.
  97. 97)『佛說無量壽經』(T12, 272c4).
  98. 98)『攝大乘論釋』(T31, 257c4).
  99. 99)단덕 : 모든 번뇌와 혹업을 모두 다 끊어 버린 법신의 공덕을 말한다.
  100. 100)지덕 : 지혜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서, 우주와 인생의 근원으로부터 현상계의 삼라만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응신의 공덕을 말한다.
  101. 101)은덕 :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을 세우고 끝없는 은혜를 베푸는 화신의 공덕을 말한다.
  102. 102)『攝大乘論釋』(T31, 257c10).
  103. 103)『大般涅槃經』(T12, 838a4).
  104. 104)이 마음의 꽃인 과보(華報) : 내세의 과보보다 먼저 현세에서 받는 업보를 말한다. 이것은 식물이 열매를 맺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선한 업인으로 말미암아 내세에서 선도에 태어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먼저 부귀·장수 등의 과보를 받는 것이나, 악한 업인으로 말미암아 내세에서 악도에 떨어질 사람이 이 세상에서 병이 들거나 형벌을 받는 등의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105. 105)무원삼매 :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삼삼매의 하나이다. 무원(무작·무기)삼매란 상相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희원하여 구해야 할 것이 없다고 관조하는 수행을 가리킨다.
  106. 106)공삼매 : 삼삼매의 하나이다. 공삼매란 아我와 아소我所가 공이라고 관조하는 수행을 가리킨다.
  107. 107)무상삼매 : 삼삼매의 하나이다. 무상삼매란 모든 존재가 모두 다 공이기 때문에 차별해야 할 상相이 없다고 관조하는 수행을 가리킨다.
  108. 108)『金剛般若波羅蜜經』(T8, 749a9).
  109. 109)『佛說無量壽經』(T12, 272c4).
  110. 110)현료의와 은밀의 : 원효는 십념에 대하여 현료의와 은밀의라는 정의를 내려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다. 현료의란 분명하게 자기 밖의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그 내용이 드러나도록 표현하는 서술의 작법을 가리키며, 은밀의란 그와는 반대로 깊고 은밀하게 그 내용이 드러나도록 표현하는 서술의 작법을 가리킨다. 원효보살은, 여기에서 현료의를 죄업과 업장이 두터운 하품하생의 중생이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위급하고 두려우며 공포에 휩싸인 상태이므로 오로지 한마음으로 소리를 내어 아미타불의 이름을 십념으로 칭명하는 염불법이라고 해석하였다. 은밀의는 초지 이상의 보살이 연기의 이법을 제대로 알기 때문에 깊고 오묘한 이치를 근거로 하여 십념으로 관상하는 염불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불설관무량수경』의 십념을 현료의 뜻으로 해석하고, 『미륵발문경』의 십념을 은밀의 뜻으로 해석하며, 『불설무량수경』의 십념은 현료·은밀의 두 가지 뜻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원효보살은 정토사상을 전개함에 있어서, 『불설무량수경』을 가장 높은 위상에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자신의 정토관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111. 111)셋째,~바라보고 : 이것은 ‘제2장 제1절 1. 3) 순수함과 잡스러움의 상대문’과 관련된 글이다.
  112. 112)『미륵발문경』 : 『大寶積經』 「發勝志樂會」(706~713, 한역)의 이역본이다. 「發勝志樂會」보다 앞서 한역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지 않고, 여타 주석서에 인용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113. 113)넷째~설한 것이다 : 이것은 ‘제2장 제1절 1. 4) 정정취와 정정취가 아닌 중생의 상대문’과 관련된 글이다.
  114. 114)오역 : 불교에서 제일 무거운 중죄로 규정하는 다섯 가지 죄악. ① 어머니를 살해한 죄, ② 아버지를 살해한 죄, ③ 아라한을 살해한 죄, ④ 부처님의 몸에 상처를 입혀서 출혈을 하게 한 죄, ⑤ 불교교단의 화합을 깨뜨려서 분열시킨 죄.
  115. 115)십악 : 몸으로 짓는 살생·투도·사음, 말로 짓는 망어·악구·양설·기어, 마음으로 짓는 탐욕·진에·우치의 열 가지 불선을 저지르는 것을 십악이라고 말한다.
  116. 116)『佛說觀無量壽經』(T12, 346a12).
  117. 117)구마라집 삼장(什公) : 집공什公은 일반적으로 구마라집鳩摩羅什(ⓢ Kumarājīva, 344~413)를 가리키지만, 실제로 그와 관련된 경전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북위 정토종 스님 담란曇鸞(476~542?)의 저술인 『略論安樂淨土義』에 십념의 상속을 설명하면서 동일한 비유를 제시하였다. 다만 담란도 이 글의 전거를 밝히지는 않았으므로 정확한 전거는 알 수 없다.
  118. 118)『略論安樂淨土義』(T47, 3c8).
  119. 119)삼취중생 : ① 정정취正定聚(ⓢ niyata-rāṣi) : 모든 존재의 장래 운명을 세 가지로 분류(三聚)하여 놓은 것 가운데의 하나로, 틀림없이 부처님이 된다고 결정되어 있는 성자. 구사교학에서는 고법지인苦法智忍을 얻은 계위에 들어간 성자를 말하며, 대승에서는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물러남이 없이 꾸준히 진보하여 보살의 계위에 들어간 성자를 가리킨다. ② 사정취邪定聚(ⓢ mithyā-niyata-āṣi) : 깨달을 수 없는 중생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오무간업五無間業을 저지른 중생. 이것은 최악의 행위로 죽고 나면 바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③ 부정취不定聚(ⓢ aniyato-rāṣi) : 정正으로도 사邪로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중생이다.
  120. 120)『佛說無量壽經』(T12, 272b8).
  121. 121)일천제一闡提(ⓢ icchantika) : 단선근斷善根 또는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고 번역된다. 『大般涅槃經』에서는 무신無信·파계破戒·비법기非法器·불가치不可治·필사必死·초종焦種·무목無目·난치병難治病·생맹生盲·단선근·비방정법誹謗正法 등이라고 풀이한다.
  122. 122)『佛說不增不減經』(T16, 467c20).
  123. 123)독자부犢子部(ⓢ vātsīputrīya) :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유위의 삼세와 무위와 불가설의 오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중생에게는 실아實我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불교의 무아의 가르침에 어긋나므로, 이 학파를 불교 안의 외도 또는 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라 한다. 세존이 세상에 계실 때에 어느 외도가 불교에 귀의한 뒤에 실아설實我說을 세우고, 그 문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 오다가 불멸 200년경에 스스로를 일체유부一切有部라 부르고, 다시 100년 뒤에 일체유부에서 갈라진 일파를 독자부라 부른다. 이들은 아我를 세워서 중생에게 실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상은 불교의 무아의 진리에 위배되므로 불법 속의 외도라고 규정지었다.
  124. 124)『究竟一乘寶性論』(T31, 828c-829a).
  125. 125)『瑜伽師地論』(T30, 478c12).
  126. 126)다섯 가지 종성(五種種性) : 줄여서 오성이라고도 부르며, 유식학파의 한 계통인 법상종의 학설이며, 중생이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소질이나 능력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서, 이것은 영구하게 결정적으로 구별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학설. ① 보살정성 : 당연히 보살이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중생, ② 연각정성 : 홀로 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중생, ③ 성문정성 : 소승불교의 수행자가 될 소질을 가진 중생, ④ 부정성不定性 : 그 어느 것으로도 정하여져 있지 않은 중생, ⑤ 무종성無種性 : 절대로 구제를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중생. 이 가운데에서 앞의 셋은 각각 불과·벽지불과·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결정성決定性의 중생이라고 하며, 네 번째는 그것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중생, 다섯 번째는 영원히 미혹의 세계에 빠져서 고뇌를 면할 수 없는 중생이다. 다섯 가지 가운데에서 보살의 결정성과 부정성 가운데의 보살성을 섞은 중생이 불과를 얻어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楞伽經』 제2권이나 『解深密經』 제2권에 바탕을 두고 법상종이 그렇게 주장한다.
  127. 127)난법위煖法位(ⓢ uṣma-gata) : 줄여서 난위라고도 부르며, 사선근의 제1위이고, 불에 가까이하면 훈훈해지는 것과 같이, 번뇌를 태워서 소멸시키고, 견도의 무루지의 불에 가까이하면, 그 전조로서 유루의 선근이 생겨나는 계위. 사성제를 관하여 고苦·공空 등의 16행상을 닦는 계위, 사성제의 이치에 점차로 닮아 가는 지혜를 가리킨다.
  128. 128)정법위頂法位 : 줄여서 정위頂位라고도 부르며, 사선근의 제2위이고, 인위忍位에 들어가 후퇴하는 일이 없이 견도에 이를까, 또는 난위煖位로 되돌아와서 악취로 떨어질까 하면서 그 중간에 위치한 계위. 동요가 있으며, 불안정한 선근 가운데에서 최상의 선근을 생겨나게 하는 절정의 계위이며, 진보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 하면서 그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수행의 단계이고, 사성제·16행상을 닦는다. 이 계위에 이르면 퇴보하여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선근을 끊는 일이 없다.
  129. 129)『瑜伽師地論』(T30, 401b14).
  130. 130)『大乘阿毗達磨雜集論』(T31, 754a16).
  131. 131)『瑜伽師地論』(T30, 498a21).
  132. 132)『大乘起信論』(T32, 580b18).
  133. 133)『佛說無量壽經』(T12, 278a22).
  134. 134)네 가지 지혜(四智) : 전식득지에 의하여 유식의 이치를 꿰뚫고 들어가 얻을 수 있는 네 가지 지혜. ① 성소작지成所作智(ⓢ kṛtya-anuṣṭhāna-jñāna) : 해야 할 것을 모두 실행하여 완수한 지혜, 더럽게 물든 것 속에 있는 안·이·비·설·신, 전오식을 전변하여 이 지혜를 얻는다. 이 지혜에 의지하여 사람들을 구제함으로써 해야 할 일을 성취한다. ② 묘관찰지妙觀察智(ⓢ pratyavekṣā-jñāna) : 유루의 제6 의식을 전변하여 이 지혜를 얻는다. 희망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작용하는 지혜. 대상에 대하여 충분히 관찰하는 지혜. ③ 평등성지平等性智(ⓢ samatā-jñāna) : 자기와 타자와의 평등성을 이해하는 지혜, 자기와 타자와의 평등을 체현하는 지혜, 유루의 제7 말나식를 전변하여 이 지혜를 얻는다. 이 지혜에 의하여 모든 존재하는 현상 그리고 자기와 타인과는 평등이라는 것을 알고, 성스러운 자비심을 일으킨다. ④ 대원경지大圓鏡智(ⓢ ādarśa-jñāna) : 크고 둥근 거울에 모든 영상이 그대로 비추어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지혜를 가리킨다. 거울처럼 모든 실상을 비추어 드러내는 지혜. 거울처럼 청정무구한 마음. 제8 알라야식을 전변하여 얻는 청정한 지혜를 가리킨다.
  135. 135)『佛說無量壽經』(T12, 272c6).
  136. 136)두 바퀴의 번뇌(二輪煩惱) : 여기에서 서술하는 두 바퀴의 번뇌란 문맥상으로 추론할 때 상일주재常一主宰인 아뜨만(ⓢ ātman)이 존재한다고 집착하는 아집我執과, 존재하는 모든 법(ⓢ dharma)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법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37. 137)증익의 극단(ⓢ samāropa, 增益邊) : 인연에 따라서 생겨나는 법은 그 근본을 추구하면 본디 자성이 없는 공인데, 중생은 이러한 실상을 모르고, 자성에 집착하여 유라고 주장하는 사견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집착을 증집增執 또는 증익변이라고 부른다. 감손변의 상대어이다.
  138. 138)손감의 극단(ⓢ apāvada, 減損邊) : 인연에 따라서 생겨나는 법은 그 근본을 추구하면 본디 자성이 없는 공이지만, 인과의 공능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중생은 이러한 실상을 알아야 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악취공에 떨어져 공이라고 주장하는 사견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집착을 감집減執 또는 감손변이라고 부른다. 증익변의 상대어이다.
  139. 139)상위론 : 상위결정相違決定(ⓢ virudha-avyabhicārin)을 상위결정과 또는 상위론이라 부르며, 부정인不定因의 하나이다. 두 개의 이유명제가 상호간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주장명제를 정당하다고 결정하여 내세우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 소리는 무상이다. 소작성所作性이므로. 옹기와 같이. ⓑ 소리는 상주이다. 들리는 것이므로. 성성聲性과 같이. ⓐ의 논식과 ⓑ의 논식이 서로 모순이 되어 대립하고 있다. 어느 쪽도 상대의 주장을 논파할 수 없다.
  140. 140)『大智度論』(T25, 170c17).
  141. 141)『瑜伽師地論』(T30, 668b1).
  142. 142)일체종지一切種智(ⓢ sarvajña-jñāna) :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개별성을 완전하게 아는 지혜, 존재하는 모든 것을 구체적인 특수한 실상 그대로 아는 지혜.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알아 버린 사람의 지혜, 최고의 완전무결한 깨달음.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일체지지一切智智이지만, 뜻을 잘 살리려고 의역하여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부른다.
  143. 143)『大乘起信論』(T32, 581b17).
  144. 144)세 가지 지혜(三智) : 여기에서는 대원경지가 제일 수승하다는 것을 서술하려는 것이 목적이므로, 대원경지의 앞에 있는 세 가지 지혜인 성소작지·묘관찰지·평등성지의 세 가지 지혜를 뛰어넘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145. 145)비량比量(ⓢ anumāna) : 불교 논리학인 인명론에서 현량現量(ⓢ pratyakṣa)·비량·성교량聖敎量(ⓢ śabda)의 세 가지 인식 방법 중 하나. 여기에서는, 같음이 없고 견줄 수 없는 최상의 뛰어난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가 ‘추론할 수 없다’ 또는 논증할 수 없는 거룩하고 성스럽고 가장 완전한 지혜라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146. 146)시각始覺 : 번뇌의 망념을 깨뜨리고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실천수행에 의하여 깨달음의 지혜가 드러나는 최초의 단계이다. 이것은 시각의 제1보이다. 이로부터 수행이 진전하여 각의 작용이 차례로 완전하게 되며, 수행이 완성된 곳에서 시각은 본각과 합체·합일한다. 그러므로 시각이란 수행에 있어서 깨달음의 지혜의 진전을 말한다.
  147. 147)본각本覺 : 마음에 본디 구유하고 있는 지혜를 가리킨다. 법신이 마음의 본성이므로, 각도 본각이 된다. 법신이란 본각을 가리킨다.
  148. 148)『大乘起信論』(T32, 581b21).
  1. 1){底}續藏經。第一編三十二套三冊 {甲}新修大藏經第三十七卷(寶永八年刊大谷大學藏本) 「無」上有「兩卷」{甲}。
  2. 2)「撰」{甲}作「選」疑誤植{編}。
  3. 3)「原夫經旨欲明」作「將申兩卷經旨」{甲}。
  4. 1)「慰」作「▼(((尸*火)+又)/心)」{甲}。
  5. 2)「蹔」作「暫」{甲}。
  6. 3)「一向淨」無{甲}。
  7. 4)「於」作「于」{甲}。
  8. 1)「辦」作「辨」{甲}。
  9. 2)「自」作「有」{甲}。
  10. 3)「德無」作「無德」{甲}。
  11. 4)「正」疑「遣」{編}。
  12. 1)「非無漏」無{甲}。
  13. 1)「辦」作「辨」{甲}。
  14. 2)上同。
  15. 3)「爲」作「無」{甲}。
  16. 1)「順隨」疑倒。
  17. 2)「彌」作「爾」{甲}。
  18. 3)「不渡」作「得度」{甲}。
  19. 1)「不渡」作「得度」{甲}。
  20. 2)「波」作「度」{甲}。
  21. 1)「躃」作「躄」{甲}。
  22. 2)上同。
  23. 1)「無」上有「兩卷」{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