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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3_a_02L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2권(大乘起信論疏記會本 卷二)
마명보살이 논을 지음(馬鳴菩薩造論)
양나라 천축삼장 진제가 한역함(梁天竺三藏眞諦譯)
해동사문 원효가 소를 지음【『별기』를 병기하였다.】(唐海東沙門元曉疏【幷別記】)
(나) 각각 해석함소 이 아래는 위에서 (법을) 세운 것을 각각 해석하는 것이다. 따로 두 문(진여ㆍ생멸)을 해석하며 곧 둘로 나누겠다. 진여문에도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처음에는 진여를 해석하고 뒤에는 진여의 상을 해석한 것이다. 또한 처음은 전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뒤에는 각각 해석한 것이다. 또 처음 글은 설명할 수 없음을 밝혔으니 이理가 말을 끊었음을 나타냈고, 뒤의 글은 설명할 수 있음을 밝혔으니 (이理가) 말을 끊지 않았음을 나타냈다.
별기 처음의 글 중에서 “언설상을 여의었으며 명자상을 여의었으며”라고 하며, 이어서 “진여라 말한 것도……말에 의하여 말을 버리는 것”이라 하고, 뒤의 글에서는 “언설에 의하여 분별함에 있어 두 가지 뜻이 있으니……여실공如實空1)과 여실불공如實不空2)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뒤의 글에서 또한 “일체의 (중생이 망심이 있음으로 해서 생각할 때마다) 분별하여 다 (진여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3)라고 하였으니, 일체의 언설도 또한 상응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理가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또 처음 글 중에 ‘말에 의하여 말을 버린다’라는 말에 의해서야 그 이理가 말을 끊었음을 나타낼 수 있으니, 이것은 또한 이理가 언설상을 여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말로써 이理가 실로 말을 끊었음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자종상위自宗相違4)의 허물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는 말을 끊었다는 말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이理는 실제로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만약 말을 끊는다는 말이 또한 끊음을 말한다면 이는 자어상위自語相違5)의 허물에 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는 말을 끊었다는 말도 끊어졌다고 하면서 말로써 그 말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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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3_a_02L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二
001_0743_a_03L
001_0743_a_04L馬鳴菩薩造論
001_0743_a_05L梁天竺三藏眞諦譯
001_0743_a_06L1)海東沙門元曉疏幷別
記
001_0743_a_07L以下釋上別立。別釋二門。卽爲二分。
001_0743_a_08L眞如門中亦有二意。初釋眞如。後
001_0743_a_09L釋如相。又復初是總釋。後是別解。
001_0743_a_10L又初文明不可說。顯理絶言。後文明
001_0743_a_11L可得說。顯不絶言。
001_0743_a_12L別
記初文中言離言說相離名字相。
001_0743_a_13L乃至言眞如者因言遣言。後文中
001_0743_a_14L言依言說分別有二種義。謂如實
001_0743_a_15L空如實不空。然後文亦說一切分
001_0743_a_16L別皆不相應。當知一切言說亦不相
001_0743_a_17L應。此卽顯理離言絶慮。又初文中
001_0743_a_18L要依因言遣言之言。乃得顯其理
001_0743_a_19L之絶言。此亦顯理不離言說相。若
001_0743_a_20L言得說理實絶言者。則墮自宗相
001_0743_a_21L違過。先以絶言之言不絶而理實
001_0743_a_22L絶言故。若使絶言之言亦言絶者。
001_0743_a_23L則墮自語相違過。先以絶言之言
001_0743_a_24L亦絶而言得說言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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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3_b_01L소
문 이理는 실제로 말한다면 말을 끊은 것인가, 끊지 않은 것인가?만약 말을 끊지 않은 것이라면 정체지正體智는 말을 끊은 것이므로 곧 이理에 어긋나며, 만약 실로 말을 끊은 것이라면 후득지後得智는 말을 지니므로 곧 이에 거슬리는 것이다. 또 만약 말을 끊지 않은 것이라면 『기신론』의 초단初段의 글6)이 바로 부질없는 말이 되며, 만약 실로 말을 끊은 것이라면 『기신론』의 후단後段의 글7)이 한갓 헛된 설명이 될 것이니 이는 마치 허공을 금은金銀 등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해 그러므로 이理는 말을 끊은 것이 아니며 끊지 않은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런 뜻에 의하므로 이理는 말을 끊기도 하며 말을 끊지 않기도 하는 것이니, 이렇다면 저 질문이 합당하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다.
별기 이와 같은 말들이 합당치 않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합당한 바가 없으며, 합당한 바가 없기 때문에 합당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다. 진여문 중에서의 끊음과 끊지 않음의 뜻을 이미 이같이 말하였고, 생멸문 중에서도 이 설명과 같다.우선 방론傍論을 그치고 다시 본문을 해석하겠다.
㉮ 진여문
ㄱ. 진여를 해석함
논 심진여란 바로 일법계一法界의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인 체體이니, 이른바 심성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지만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망념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니, 만약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법이 본래부터 언설상을 여의었으며 명자상을 여의었으며8) 심연상心緣相을 여의어서9) 결국 평등하게 되고,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파괴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일심뿐인 것이니, 그러므로 진여라 이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언설은 임시적인 이름일 뿐 실체가 없는 것이요, 다만 망념을 따른 것이어서 (그 실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 처음 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간략히 표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세히 해석하는 것이며, 셋째는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ㄱ) 간략히 표시함
간략히 표시하는 중에 “바로 일법계”라고 한 것은 진여문이 의지하는 체를 든 것이니, 일심이 바로 일법계이기 때문이다. -
001_0743_b_01L問。理實而言。爲絶爲不絶。若不絶
001_0743_b_02L言者。正體離言。卽2)違 [4] 於理。若實絶
001_0743_b_03L言。後智帶言。卽倒於理。又若不絶。
001_0743_b_04L則初段論文斯爲漫語。若實絶言。則
001_0743_b_05L後段論文徒爲虛設。如說虛空爲金
001_0743_b_06L銀等。解云。是故當知。理非絶言。非
001_0743_b_07L不絶言。以是義故。理亦絶言。亦不
001_0743_b_08L言絶。是則彼難無所不3)當。 [5]
001_0743_b_09L別
記如是等言。無所不當。故無所當。
001_0743_b_10L由無所當。故無所不當也。眞如門
001_0743_b_11L中絶不絶義。旣如是說。生滅門中
001_0743_b_12L亦同此說。
001_0743_b_13L且止傍論。還釋本文。
001_0743_b_14L心眞如者。卽是一法界大總相法門體。
001_0743_b_15L所謂心性不生不滅。一切諸法唯依妄
001_0743_b_16L念而有差別。若離心念。則無一切境界
001_0743_b_17L之相。是故一切法從本已來。離言說相。
001_0743_b_18L離名字相。離心緣相。畢竟平等。無有
001_0743_b_19L變異。不可破壞。唯是一心。故名眞如。
001_0743_b_20L以一切言說。假名無實。但隨妄念。不
001_0743_b_21L可得故。
001_0743_b_22L初文有三。一者略標。二者廣釋。其
001_0743_b_23L第三者往復除疑。略標中言卽是一
001_0743_b_24L法界者。是擧眞如門所依之體。一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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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3_c_01L이 일법계가 진여ㆍ생멸의 두 문을 통틀어 포괄하지만 지금은 별상의 문을 취하지 않고, 이 중에 다만 총상법문만을 취하였다. 그러나 총상에 사품四品10)이 있으며 이 사품 중에서 삼무성三無性11)이 나타내는 진여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대총상”이라고 한 것이다. 궤범으로서 참된 이해를 내기 때문에 “법”이라 이름하며, 통틀어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문”이라 이름한다. 이는 일법계 전체가 생멸문이 되는 것과 같이 이처럼 일법계 전체가 진여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체”라고 하는 것이다.
ㄴ) 자세히 해석함
이 아래는 자세히 해석하는 것이니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여의 체를 나타냈으며, 둘째는 진여의 이름을 해석하였다.
(ㄱ) 진여의 체를 나타냄
처음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성眞實性12)으로 진여를 나타내며, 둘째는 분별성分別性13)에 대하여 진여의 절상絶相을 밝히며, 셋째는 의타성依他性에 나아가 진여의 이언離言을 나타내는 것이다.
㉠ 진실성으로 진여를 나타냄
처음 중에 “심성心性”이라고 한 것은 진여문에 의하여 그 심성을 논하는 것이니, 심성이 평등하여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제三際를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심성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지만”이라고 말한다.
㉡ 분별성에 대하여 진여의 절상을 밝힘
두 번째 중에 두 구절이 있으니, 처음에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망념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니”라고 한 것은 변계소집상徧計所執相을 든 것이요, 다음에 “만약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상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변계소집상에 대하여 무상성無相性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마치 공화空華14)가 오직 눈병에 의해서만 그 꽃의 모양이 있으니, 눈병이 없어지면 곧 꽃의 모양도 없어지고 오직 공성空性만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 중의 도리도 또한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의타성에 나아가 진여의 이언을 나타냄
세 번째에 세 구절이 있으니, 먼저는 의타성법依他性法에 의하여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을 밝혔고, 다음은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뜻에 의하여 평등진여를 나타냈으며, 마지막에는 평등하여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까닭을 해석하였다.
A. 의타성법에 의해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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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3_c_01L卽是一法界故。此一法界通攝二門
001_0743_c_02L而今不取別相之門。於中但取總相
001_0743_c_03L法門。然於總相有四品中。說三無性
001_0743_c_04L所顯眞如。故言大總相。軌生眞解。
001_0743_c_05L故名爲法。通入涅槃。故名爲門。如
001_0743_c_06L一法界擧體作生滅門。如是擧體爲
001_0743_c_07L眞如門。爲顯是義。故言體也。此下
001_0743_c_08L廣釋。於中有二。一者顯眞如體。二
001_0743_c_09L者釋眞如名。初中有三。一者當眞實
001_0743_c_10L性以顯眞如。二者對分別性而明眞
001_0743_c_11L如絶相。三者就依他性以顯眞如離
001_0743_c_12L言。初中言心性者。約眞如門論其心
001_0743_c_13L性。心性平等。遠離三際。故言心性不
001_0743_c_14L生不滅也。等二中有二句。初言一切
001_0743_c_15L諸法唯依妄念而有差別者。是擧徧
001_0743_c_16L計所執之相。次言若離心念卽無一
001_0743_c_17L切境界相者。對所執相顯無相性。猶
001_0743_c_18L如空華。唯依眼病而有華相。若離眼
001_0743_c_19L病。卽無華相。唯有空性。當知此中
001_0743_c_20L道理亦爾。第三中有三句。先約依他
001_0743_c_21L性法以明離言絶慮。次依離絶之義
001_0743_c_22L以顯平等眞如。後釋平等離絶所以。
001_0743_c_23L「海」上有「唐」{甲}。「違」作「通」{甲}。「當」
001_0743_c_24L作「審」{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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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4_a_01L처음에 “그러므로 일체의 법이”라고 한 것은 연을 따라 의타기법依他起法을 내는 것을 말하며, “언설상을 여의었으며”라는 것은 음성으로 말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명자상을 여의었으며”라는 것은 명구名句로 설명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며, “심연상을 여의어서”라는 것은 명언의 분별15)로 반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허공에 새의 자취가 차별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니, 새의 모양을 따라서 허공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나타나는 모양이 실로 차별이 있지만 볼 만한 모양의 차별을 여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의타기법依他起法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니, 모든 훈습熏習을 따라서 차별이 나타나지만 말할 만한 본성의 차별을 떠난 것이다.
B.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뜻에 의해 평등진여를 나타냄
이미 말할 만하고 반연할 만한 차별을 떠났다면 바로 이것은 평등한 진여의 도리이므로, “결국 평등하게 되고” 이어서 “그러므로 진여라 이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진여의 평등을 밝힌 것이다.
C. 평등하여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까닭을 해석함
“왜냐하면 일체의” 이하는 그 까닭을 풀이한 것이다. 진여가 평등하여 말을 여읜 까닭은 모든 언설이 오직 임시로 지은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성實性에 있어서는 끊어 버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 저 언설이 단지 망념에 따라 생긴 것이므로 진지眞智에 있어서는 여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에 연유하기 때문에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 실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진여의) 체를 나타내는 글을 마친다.
(ㄴ) 진여의 이름을 해석함
논 진여라 말한 것도 상相이 없으니 이는 언설의 궁극은 말에 의하여 말을 버리는 것임을 이르는 것이다. 이 진여의 체는 버릴 만한 것이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다 참이기 때문이며, 또한 주장할 만한 것이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체의 법은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진여라고 이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소 (진여라는) 이름을 풀이하는 중에 또한 세 부분이 있다.
㉠ 이름을 세운 뜻을 나타냄
첫째는 이름을 세운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른바 말에 의하여 말을 버리는 것은 마치 소리로써 소리를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
㉡ 바로 이름을 풀이함
다음에는 바로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니, “이 진여의 체는 버릴 만한 것이 없으니”라는 것은 진여의 체라 하여 속법俗法을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
001_0744_a_01L初中言是故一切法者。謂從緣生依
001_0744_a_02L他起法。離言說相者。非如音聲之所
001_0744_a_03L說故。離名字相者。非如名句之所詮
001_0744_a_04L故。離心緣相者。名言分別所不能緣
001_0744_a_05L故。如虛空中鳥迹差別。謂隨鳥形空
001_0744_a_06L相顯現。顯現之相實有差別。而離可
001_0744_a_07L見之相差別。依他起法當知亦爾。隨
001_0744_a_08L諸熏習差別顯現。而離可言之性差
001_0744_a_09L別。旣離可言可緣差別。卽是平等眞
001_0744_a_10L如道理。故言畢竟平等。乃至故名眞
001_0744_a_11L如。此是第二顯眞如平等。以一切下。
001_0744_a_12L釋其所以。所以眞如平等離言者。以
001_0744_a_13L諸言說唯是假名。故於實性不得不
001_0744_a_14L絶。又彼言說但隨妄念。故於眞智不
001_0744_a_15L可不離。由是道理故說離絶。故言乃
001_0744_a_16L至不可得故。顯體文竟。
001_0744_a_17L言眞如者亦無有相。謂言說之極。因言
001_0744_a_18L遣言。此眞如體無有可遣。以一切法悉
001_0744_a_19L皆眞故。亦無可立。以一切法皆同如故。
001_0744_a_20L當知一切法不可說不可念。故名爲眞
001_0744_a_21L如。
001_0744_a_22L釋名中亦三。初標立名之意。所謂因
001_0744_a_23L言遣言。猶如以聲止聲也。次正釋名。
001_0744_a_24L此眞如體無有可遣者。非以眞體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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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4_b_01L“일체의 법이 모두 다 참이기 때문이며”라는 것은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일체의 모든 법이 허망한 언설을 여읜 것을 뜻하며, 그러므로 다 참된 것(眞)이다. ‘다 참’이라는 것은 차별을 파괴함이 없이 바로 평등이라는 뜻이며, 이처럼 평등하기 때문에 따로 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법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 이름을 맺음
“알아야 한다.(當知)” 이하는 세 번째 이름을 맺은 것이다. 이상으로 바로 진여를 나타낸 것을 마친다.
ㄷ)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함
논
문 만약 이와 같은 뜻이라면 모든 중생이 어떻게 수순隨順16)하여야 (정관正觀17)에) 들어갈 수 있는가?
답 만약 일체의 법이 설명되기는 하나 설명할 수도 설명할 만한 것도 없으며, 생각되기는 하나 역시 생각할 수도 생각할 만한 것도 없는 줄 안다면 이를 수순이라고 하며, 만약 생각을 여읜다면 (정관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소 문답하여 의심하고 묻는 중에 “어떻게 수순하여야”라고 한 것은 방편을 물은 것이며, “(정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것은 정관을 물은 것이다.답에서 차례로 이 두 가지 물음에 답하였다. 처음 중에 “설명되기는 하나”, “생각되기는 하나”라고 한 것은 법이 없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이는 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소견(惡取空見)을 떠났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도 설명할 만한 것도 없으며”, “생각할 수도 생각할 만한 것도 없는 줄”이라는 것은 법이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유有에 집착하는 소견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중도관中道觀18)을 따르는 것이므로 ‘수순’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두 번째에 “생각을 여읜다면”이라는 것은 분별하는 생각을 여의는 것이며, “(정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관지觀智19)에 들어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ㄴ. 진여의 상을 해석함
ㄱ)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나타냄
ㄴ) 수에 의하여 장을 엶
ㄷ) 장에 의하여 각각 해석함
논 다시 이 진여란 언설에 의하여 분별함에 있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여실공이니 필경에는 실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여실불공이니 그 자체에 번뇌 없는 본성의 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 두 번째는 진여의 상을 밝혔으니, 글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나타내었고, 둘째는 수에 의하여 장章을 열었으며, 셋째는 장에 의하여 각각 해석하였다. -
001_0744_b_01L俗法故。以一切法悉皆眞故者。依他
001_0744_b_02L性一切諸法。離假言說。故悉是眞。
001_0744_b_03L悉是眞者。不壞差別卽是平等。是平
001_0744_b_04L等故。無別可立。故言一切皆同如故。
001_0744_b_05L當知以下。第三結名。直顯眞如竟在
001_0744_b_06L於前。
001_0744_b_07L問曰。若如是義者。諸衆生等。云何隨
001_0744_b_08L順而能得入。答曰。若知一切法雖說無
001_0744_b_09L有能說可說。雖念亦無能念可念。是名
001_0744_b_10L隨順。若離於念。名爲得入。
001_0744_b_11L往復疑問中。言云何隨順者。是問方
001_0744_b_12L便。而能得入者。是問正觀。答中次
001_0744_b_13L第答此二問。初中言雖說雖念者。明
001_0744_b_14L法非無。以離惡取空見故。無有能說
001_0744_b_15L可說等者。顯法非有。離執著有見故。
001_0744_b_16L能如是知。順中道觀。故名隨順。第
001_0744_b_17L二中言離於念者。離分別念。名得入
001_0744_b_18L者。顯入觀智也。
001_0744_b_19L復次此眞如者。依言說分別。有二種義。
001_0744_b_20L云何爲二。一者如實空。以能究竟顯實
001_0744_b_21L故。二者如實不空。以有自體具足無漏
001_0744_b_22L性功德故。
001_0744_b_23L第二明眞如相。在文有三。一者擧數
001_0744_b_24L總標。二者依數開章。三者依章別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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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4_c_01L각각 해석하는 중에 두 가지가 있다.
(ㄱ) 공을 해석함
논 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부터 일체의 염법染法20)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는 일체법의 차별상을 여읨을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허망한 심념心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여의 자성은 유를 특징(相)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무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비유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비무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유와 무를 함께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일一을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이異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비일을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일과 이를 함께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체의 중생이 망심妄心21)이 있음으로 해서 생각할 때마다 분별하여 다 진여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공이라 말하지만, 만약 망심을 떠나면 실로 공이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소 먼저 공을 밝힌 중에 바로 세 구절이 있으니, 간략히 설명하는 것과 자세히 풀이하는 것, 세 번째는 총결하는 것이다.
㉠ 간략히 설명함
처음에 “일체의 염법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니”라고 한 것은 진여는 능能ㆍ소所의 분별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체법의 차별상을 여읨을”이라는 것은 소취상所取相22)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허망한 심념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능취견能取見23)을 여의었기 때문이니, 곧 여읜다는 뜻을 가지고 공을 풀이한 것이다.
㉡ 자세히 풀이함
자세히 풀이하는 중에 절사구絶四句를 밝혔다. 사구가 많으나 그 요점은 두 가지가 있으니, 유ㆍ무 등과 일ㆍ이 등이다. 이 두 가지의 네 구절을 가지고 모든 허망된 집착을 포괄하였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의하여 진공眞空을 나타내었다.
이는 『광백론廣百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또한 세간에서 집착하는 모든 법이 다 진실이 아님을 나타내며, 외도들이 집착한 것도 다 같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다음 게송에서 말한다. ‘유有와 비유非有와 구俱와 비非는 일一과 비일非一과 쌍雙과 민泯에 차례대로 배속시켜야 할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참되지 아니함을 안다.’ 이를 풀이하여 말한다. 일체 세간의 색色 등의 구의句義24)는 언설言說로 나타내는 것이고 심혜心慧25)로 아는 것인데, 정집情執이 같지 아니하여 대략 네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비유非有와 구허俱許와 구비俱非이다. 이를 차례대로 네 가지 사집邪執에 배속시킨다면 -
001_0744_c_01L別解中卽有二。
001_0744_c_02L所言空者。從本已來一切染法不相應
001_0744_c_03L故。謂離一切法差別之相。以無虛妄心
001_0744_c_04L念故。當知眞如自性。非有相。非無相。
001_0744_c_05L非非有相。非非無相。非有無俱相。非
001_0744_c_06L一相。非異相。非非一相。非非異相。非
001_0744_c_07L一異俱相。乃至總說。依一切衆生以有
001_0744_c_08L妄心。念念分別。皆不相應。故說爲空。
001_0744_c_09L若離妄心。實無可空故。
001_0744_c_10L先明空中。卽有三句。略明。廣釋。第
001_0744_c_11L三總結。初中言一切染法不相應者。
001_0744_c_12L能所分別不相應故。離一切法差別
001_0744_c_13L相者。離所取相故。以無虛妄心念故
001_0744_c_14L者。離能取見故。卽以離義而釋空也。
001_0744_c_15L廣釋之中。明絶四句。四句雖多。其
001_0744_c_16L要有二。謂有無等及一異等。以此二
001_0744_c_17L四句攝諸妄執。故對此二以顯眞空。
001_0744_c_18L如廣百論云。復次爲顯世間所執諸
001_0744_c_19L法皆非眞實。及顯外道所執不同。
001_0744_c_20L故說頌曰。有非有俱非。一非一雙泯。
001_0744_c_21L隨次應配屬。智者達非眞。釋曰。一
001_0744_c_22L切世間色等句義。言說所表。心慧所
001_0744_c_23L知。情執不同。略有四種。謂有。非有。
001_0744_c_24L俱許。俱非。隨次如應配四邪執。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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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5_a_01L일一과 비일非一과 쌍허雙許와 쌍비雙非가 이에 해당한다.수론외도數論外道26)가 유有 등의 성性이 모든 법과 같은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은 바로 유구有句에 해당한다. 이러한 집착은 참이 아니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청靑 등의 색이 색성色性과 같은 것이라면 마땅히 색성과 같이 그 청 등의 체가 다 같아야 할 것이며, 오악五樂27) 등의 소리가 소리의 본성과 같은 것이라면 마땅히 소리의 본성과 같이 그 오악의 체가 다 같아야 할 것이며, 눈(眼) 등의 모든 근根(감각기관)이 근의 본성과 같은 것이라면 마땅히 근의 본성과 같이 그 눈의 체가 다 같아야 할 것이니, 하나하나의 근은 모든 경계를 취하여야 하며 하나하나의 경계가 모든 근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28) 또한 일체의 법이 유성有性과 같은 것이라면 마땅히 유성과 같이 그 체가 모두 같아야 할 것이다.승론외도勝論外道29)가 유 등의 본성이 모든 법과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비유구非有句에 해당하니, 이것도 참이 아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만약 청 등의 색이 색의 본성과 다르다면 마땅히 소리 등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소리 등도 그러할 것이다(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30) 또한 일체법이 유의 본성과 다른 것이라면 마땅히 토끼뿔처럼 그 체가 본래 없어야 될 것이다.”라고 하며 이밖에도 자세히 논파하였다.
(또 말하기를) “무참외도無慙外道31)가 유 등의 본성이 저 모든 법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집착하는 것은 역유역비유구亦有亦非有句에 해당하니, 이것도 참이 아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만약 유 등의 본성이 색 등과 같은 것이라면 수론의 잘못과 같은 것이고, 색 등과 다른 것이라면 승론의 잘못과 같다. 같음과 다름(一異)의 두 가지가 성상性相은 서로 어긋나는데도 무참외도는 그 체가 같다고 하니, 이는 이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같은 것은 마땅히 같은 것이 아니어야 하니 이는 곧 다른 것이므로 다른 것과 같으며, 다른 것은 마땅히 다른 것이 아니어야 하니 이는 곧 같은 것이므로 같은 것과 같다.”라고 하며 이밖에도 자세히 논파하였다.32)
(또 말하기를) “사명외도邪命外道33)가 유 등의 성이 저 모든 법과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고 집착하는 것은 비유비비유구非有非非有句에 해당하니, 이 또한 참이 아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네가 여기서 주장한 같음과 다름이 아니라는 것은 다만 가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두루 나타내기 위한 것인가? 만일 두루 나타내는 것이라면 마땅히 둘 다 부정하는 것이 아닐 것이요, 만일 다만 가리는 것이라면 마땅히 집착할 바가 없을 것이다. -
001_0745_a_01L一。非一。雙許。雙非。數論外道執有
001_0745_a_02L等性與諸法一。卽當有句。此執非眞。
001_0745_a_03L所以者何。若靑等色與色性一。應如
001_0745_a_04L色性其體皆同。五樂等聲與聲性一。
001_0745_a_05L應如聲性其體皆同。眼等諸根與根
001_0745_a_06L性一。應如根性其體皆同。應一一根
001_0745_a_07L取一切境。應一一境對一切根。又一
001_0745_a_08L切法與有性一。應如有性其體皆同
001_0745_a_09L也。勝論外道說有等性與諸法非一。
001_0745_a_10L當非有句。此亦非眞。所以者何。若靑
001_0745_a_11L等色與色性異。應如聲等非眼所行。
001_0745_a_12L聲等亦爾。又一切法異有性者。應如
001_0745_a_13L1)免 [6] [7] 角其體本無。乃至廣破。無慙外
001_0745_a_14L道執有等性與彼諸法亦一亦異。當
001_0745_a_15L於亦有亦非有句。此亦非眞。所以者
001_0745_a_16L何。若有性等 [8] 與色等一。同數論過。與
001_0745_a_17L色等異。同勝論失。一異二種性相相
001_0745_a_18L違。而言體同。理不成立。一應非一。
001_0745_a_19L以卽異故如異。異應非異。以卽一故
001_0745_a_20L如一。乃至廣破。邪命外道執有性等
001_0745_a_21L與彼諸法非一非異。當於非有非非
001_0745_a_22L有句。此亦非眞。所以者何。汝此所
001_0745_a_23L說非一異者。爲俱 [9] 是遮。爲偏 [10] 有表。若
001_0745_a_24L偏有表。應不雙非。若俱 [11] 是遮。應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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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5_b_01L가리기도 하고 또 나타내기도 하는 것은 이치가 서로 어긋나며, 가리는 것도 없고 나타내는 것도 없는 것은 그 말이 희론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며 이밖에도 자세히 논파하였다.
(또 말하기를) “또 이와 같이 세간에 네 가지 비방의 말을 일으켰으니, 유有와 비유非有와 쌍허雙許와 쌍비雙非를 말하며 이는 차례대로 증익增益ㆍ손감損減ㆍ상위相違ㆍ희론戱論이니, 그러므로 세간에서 집착하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것이다.”34)라고 하였다.
이제 이 『기신론』의 글에서 “유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는 처음 구절을 버리는 것이고, “무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는 두 번째 구절을 버리는 것이고, “비유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비무를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란 네 번째 구절을 버린 것이고, “유와 무를 함께 특징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란 세 번째 구절을 버린 것이다. 둘(세 번째와 네 번째)의 차례가 앞뒤로 바뀐 것은 『기신론』을 쓴 사람의 의도에 따른 것이며, 모두 도리가 있으니 서로 방해가 되지 아니한다. 같고(一) 다름(異)의 사구四句는 (유무구有無句에)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다.
㉢ 총결함
“이리하여” 아래는 세 번째로 총결하는 것이니, 이 중에 두 구절이 있다. 여기서부터35) “공이라 (말하지만)”까지는 순결順結이고, “만약 망심을 떠나면” 아래는 반결反結이다.
(ㄴ) 불공을 해석함
논 불공이라 말하는 것은 이미 법체가 공하여 허망함이 없음을 나타냈기 때문에 바로 이는 진심眞心이며, 이 진심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고 정법淨法이 만족하기 때문에 불공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또한 취할 만한 상이 없으니, 망념을 여읜 경계는 오직 증득함으로써만 상응하기 때문이다.
소 불공을 풀이하는 중에 또한 세 구절이 있다.
㉠ 공문을 표시함
처음은 공문空門을 표시한 것이니, “이미 법체가 공하여 허망함이 없음을 나타냈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다.
㉡ 불공을 나타냄
다음은 불공을 나타내는 것이니, “바로 이는 진심이며……불공이라 이름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 공과 불공이 차이가 없음을 밝힘
“또한 취할 만한 상이 없으니” 아래는 세 번째 공과 불공, 그 둘의 차이가 없음을 밝혔다. 불공이라고 말했지만 상이 없기 때문에 불공이 공과 다르지 않으며, 분별하여 반연하는 바를 여읜 경계는 오직 무분별지로 증득함으로써만 상응하기 때문이다.
㉯ 생멸문
소 이 아래는 두 번째 생멸문을 풀이한 것이니,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
001_0745_b_01L所執。有遮有表。理互相違。無遮無
001_0745_b_02L表。言成戱論。乃至廣破。如是世間
001_0745_b_03L起四種謗。謂有。非有。雙許。雙非。
001_0745_b_04L如次增益。損減。相違。戱論。是故世
001_0745_b_05L間所執非實。今此文中。非有相。是
001_0745_b_06L遣初句。非無相者。遣第二句。非非
001_0745_b_07L有相非非無相者。遣第四句。非有無
001_0745_b_08L俱者。遣第三句。二句前後。隨論者
001_0745_b_09L意。皆有道理。不相傷也。一異四句。
001_0745_b_10L準釋可知。乃至以下。第三總結。於
001_0745_b_11L中二句。從此以下。乃至曰爲空。是
001_0745_b_12L順結也。若離以下。是反結也。
001_0745_b_13L所言不空者。已顯法體空無妄故。卽是
001_0745_b_14L眞心。常恒不變。淨法滿足。則名不空。
001_0745_b_15L亦無有相可取。以離念境界。唯證相應
001_0745_b_16L故。
001_0745_b_17L釋不空中。亦有三句。初牒空門。謂
001_0745_b_18L言已顯法體空無妄故。次顯不空。卽
001_0745_b_19L是眞心乃至則名不空故。亦無有相
001_0745_b_20L以下。第三明空不空無二差別。雖曰
001_0745_b_21L不空。而無有相。是故不空不異於空。
001_0745_b_22L以離分別所緣境界。唯無分別所證
001_0745_b_23L相應故也。
001_0745_b_24L此下第二釋生滅門。於中有二。初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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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5_c_01L처음은 바로 자세히 풀이한 것이며, “다시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아래는 말에 의하여 거듭 나타내는 것이다.
ㄱ. 바로 자세히 풀이함
처음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위의 입의분 중의 “이 심생멸”36)을 해석한 것이며, 둘째 “다음 생멸인연이라는 것은”37) 아래는 위 (입의분 중)의 “생멸인연”을 해석한 것이며, 셋째 “다시 생멸상(을 분별한다는 것은)”38)의 아래는 위 (입의분 중)의 “생멸상”을 해석한 것이다.
ㄱ) 심생멸
처음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체라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밝혔고, 둘째는 뜻에 의하여 하나씩 풀이하였다.
논 심생멸이란 여래장에 의하므로 생멸심이 있는 것이니, 이른바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생멸과 화합하여,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것을 이름하여 알라야식(阿黎耶識)39)이라고 하는 것이다.
(ㄱ) 체라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밝힘
소 처음 중에 세 구절이 있으니, 첫째는 체를 나타냈고, 둘째는 상을 분별하였으며, 셋째는 이름을 세웠다.
㉠ 체를 나타냄
처음 중에 “여래장에 의하므로 생멸심이 있는 것이니”라고 한 것은 (체라는 측면에서) 자성청정심을 여래장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무명의 바람이 움직임에 의하여 생멸을 일으키므로 생멸이 여래장에 의지한다고 말한 것이다.
별기 그러나 불생멸심이 생멸심과 심체心體가 둘이 아니며 다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마음을 취하여 둘(불생멸심과 생멸심)이 되는 것이므로, 이를 “(여래장에) 의하므로”라고 말할 뿐이다. 이는 마치 움직이지 아니하는 바닷물이 바람에 불리어 움직이는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니, 동動ㆍ정靜은 다르지만 바닷물의 체는 하나이므로, 정수靜水에 의하여 동수動水가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중의 도리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소 이는 『사권능가경』에서 “여래장이 무시악습無始惡習에 훈습된 것을 식장識藏(장식)이라 이름한다.”40)라고 하고, 또 “찰나刹那41)란 식장이라 이름한다.”42)라고 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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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5_c_01L廣釋。復次有四種熏習以下。因言重
001_0745_c_02L顯。初中有三。一者釋上立義分中是
001_0745_c_03L心生滅。二者復次生滅因緣以下。釋
001_0745_c_04L上生滅因緣。三者復次生滅相以下。
001_0745_c_05L釋上生滅相。初中有二。一者就體總
001_0745_c_06L明。二者依義別解。
001_0745_c_07L心生滅者。依如來藏故有生滅心。所謂
001_0745_c_08L不生不滅。與生滅和合。非一非異。名
001_0745_c_09L爲阿黎耶識。
001_0745_c_10L初中三句。一者標體。二者辯相。三
001_0745_c_11L者立名。初中言依如來藏故有生滅
001_0745_c_12L心者。自性淸淨心。名爲如來藏。因
001_0745_c_13L無明風動作生滅。故說生滅依如來
001_0745_c_14L藏。
001_0745_c_15L別
記然不生滅心與生滅心。心體無
001_0745_c_16L二。但將二義取心爲二以說依耳。
001_0745_c_17L如不動水。爲風所吹而作動水。動
001_0745_c_18L靜雖異。水體是一。而得說言依靜
001_0745_c_19L水故有其動水。當知此中道理亦
001_0745_c_20L爾。
001_0745_c_21L如四卷經言。如來藏爲無始惡習所
001_0745_c_22L熏。名爲識藏。又言刹那者名爲識藏
001_0745_c_23L故。
001_0745_c_24L「免」作「兎」{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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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6_a_01L별기 이 『기신론』에서 생멸심이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식장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소의所依인 여래장과 능의能依인 생멸심을 통틀어 취하여, 합해서 심생멸문을 삼기 때문에, “심생멸이란 여래장에 의하므로 생멸심이 있는 것이니”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여래장을 버리고 생멸심을 취하여 생멸문을 삼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랫글에서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43)라고 한 것과 같으니, 두 가지 뜻이 모두 생멸문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상을 분별함
소 “이른바” 아래는 두 번째로 상을 분별하는 것이다. “불생불멸”이란 위에서의 여래장을 말하며, 이 생멸하지 않는 마음이 움직여서 생멸을 일으켜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않음을 “(생멸)과 화합하여”라고 이름하니, 이는 아랫글에서 “마치 큰 바다의 물이 바람에 의하여 물결이 움직일 때, 물의 특징(水相)과 바람의 특징(風相)이 서로 떨어지지 않지만”44)이라고 하고 이어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이 중에서 바닷물의 움직임은 바람의 특징이요, 움직일 때의 젖어 있는 것은 물의 특징이다. 바닷물 전체가 움직이므로 바닷물이 바람의 특징을 여의지 않았고, 움직이는 것마다 젖어 있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결이 물의 특징을 여의지 않는다. 마음도 이와 같아서 생멸하지 않는 마음 전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이 생멸상을 여의지 않고, 생멸의 상이 영묘한 알음알이(神解)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생멸이 심상心相을 여의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서로 여의지 않기 때문에 ‘(생멸)과 화합하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별기 마음의 생멸은 무명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생멸의 마음은 본각에서 이루어져 두 가지 체가 없으며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않기 때문에 화합이 되는 것이다.
소 이는 생멸하지 않는 마음이 생멸과 화합하는 것이지 생멸이 생멸하지 않는 마음과 화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것”이란 생멸하지 않는 마음이 그 전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생멸하지 않는)이 생멸과 다르지 않은 것이요, 늘 불생불멸을 잃지 않기 때문에 생멸이 그 불생멸심과 같지 않은 것이다. 또 만약 같은 것이라면 생멸식상生滅識相이 다 없어질 때 심신心神의 체도 또한 따라서 없어지게 되니 이는 단변斷邊45)에 떨어질 것이고, 만약 다른 것이라면 무명의 바람에 의하여 훈습되어 움직일 때 -
001_0746_a_01L別
記當知此云有生滅心。正謂識藏。
001_0746_a_02L今通取所依如來藏與能依生滅
001_0746_a_03L心。合爲心生滅門。故言心生滅者
001_0746_a_04L依如來藏故有生滅心。非棄如來
001_0746_a_05L藏而取生滅心爲生滅門也。如下
001_0746_a_06L文云此識有二種義。故知二義皆
001_0746_a_07L在生滅門也。
001_0746_a_08L所謂以下。第二辯相。不生不滅者。
001_0746_a_09L是上如來藏。不生滅心動作生滅。不
001_0746_a_10L相捨離。名與和合。如下文言。如大
001_0746_a_11L海水因風波動。水相風相不相捨離。
001_0746_a_12L乃至廣說。此中水之動是風相。動之
001_0746_a_13L溼是水相。水擧體動。故水不離風相。
001_0746_a_14L無動非溼。故動不離水相。心亦如是。
001_0746_a_15L不生滅心擧體動。故心不離生滅相。
001_0746_a_16L生滅之相莫非神解。故生滅不離心
001_0746_a_17L相。如是不相離。故名與和合別記云。
心之生滅。
001_0746_a_18L依無明成。生滅之心。從本覺成。
而無二體。不相捨離。故爲和合此是不生滅
001_0746_a_19L心與生滅和合。非謂生滅與不生滅
001_0746_a_20L和合也。非一非異者。不生滅心擧體
001_0746_a_21L而動。故心與生滅非異。而恒不失不
001_0746_a_22L生滅性。故生滅與心非一。又若是一
001_0746_a_23L者。生滅識相滅盡之時。心神之體亦
001_0746_a_24L應隨滅墮於斷邊。若是異者。依無
-
001_0746_b_01L정심靜心의 체가 연을 따르지 않게 되니 이는 상변常邊46)에 떨어질 것이다. 이 두 변을 여의었기 때문에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것이다.
별기 두 가지 뜻이 있지만 심체가 둘이 없으니, 여기서는 두 가지 뜻(각과 불각)이 합해져서 둘이 아닌 심체를 알라야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소 이것은 『사권능가경』에서 “비유하자면 흙덩이와 티끌이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닌 것과 같으니, 금과 장엄구(금으로 장식한 물건)47)도 이와 같다. 만약 흙덩이와 티끌이 다른 것이라면 흙덩이는 저 티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나, 실로 저 티끌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다른 것이 아니고, 만약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흙덩이와 티끌이 차이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전식轉識48)과 장식의 진상眞相이 만약 다르다면 장식은 인이 아닐 것이고, 만약 다르지 않다면 전식이 없어질 때 장식도 없어져야 할 것이지만 자진상自眞相은 실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진상식自眞相識49)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만 업상業相이 없어지는 것이다.”50)라고 한 것과 같다.이제 이 『기신론』의 저자가 바로 저 (『능가경』의) 글을 풀이하였기 때문에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이 중에서 업식業識이란 무명의 힘에 의하여 불각심不覺心이 움직이기 때문에 업식이라 이름하며, 또 동심動心에 의하여 굴러서 능견能見을 이루기 때문에 전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알라야식 자리에 있다.
별기 알라야식 내에 생멸하는 견상見相을 전식이라 이름하고 이 중 체를 장식이라 이름한다.
소 이것은 『십권능가경』에서 “여래장 곧 알라야식이 칠식七識과 함께 생겨나는 것을 전멸상轉滅相이라 한다.”51)는 말과 같다. 따라서 전상轉相이 알라야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권능가경』에서의) ‘자진상’이라는 것은 『십권능가경』에서는 “자상自相”52)이라 하였다. 본각심本覺心이 허망한 연緣에 의뢰하지 않고 본성이 스스로 신해神解함을 자진상이라 하는 것이며, 이는 불일의문不一義門53)에 의하여 말한 것이다. 또 무명의 바람에 따라서 생멸을 일으킬 때 신해한 성질이 본심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또한 자진상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니, 이는 불이의문不異義門54)에 의하여 말한 것이다.
별기 ‘자진自眞’이란 이름은 불생멸에만 치우치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소 이 중에 자세한 것은 『별기』에서 말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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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6_b_01L明風熏動之時。靜心之體不應隨緣。
001_0746_b_02L卽墮常邊。離此二邊。故非一非異。
001_0746_b_03L別記云。雖有二義。心體無二。此
合二義不二之心。名爲棃耶識也如四卷經
001_0746_b_04L云。譬如泥團微塵非異非不異。金
001_0746_b_05L莊嚴具亦如是。若泥團微塵異者。非
001_0746_b_06L彼所成。而實彼成。是故非異。若不
001_0746_b_07L異者。泥團微塵應無差別。如是轉識
001_0746_b_08L藏識眞相若異者。藏識非因。若不異
001_0746_b_09L者。轉識滅。藏識亦應滅。而自眞相實
001_0746_b_10L不滅。是故非自眞相識滅。但業相滅。
001_0746_b_11L今此論主正釋彼文。故言非一非異。
001_0746_b_12L此中業識者。因無明力不覺心動。故
001_0746_b_13L名業識。又依動心轉成能見。故名轉
001_0746_b_14L識。此二皆在梨耶識位。別記云。梨耶識
內生滅見相。名
001_0746_b_15L爲轉識。於中
體。名爲藏識如十卷經言。如來藏卽阿
001_0746_b_16L梨耶識。共七識生。名轉滅相。故知
001_0746_b_17L轉相在梨耶識。自眞相者。十卷經云
001_0746_b_18L中眞名 [12] 自相。本覺之心。不藉妄緣
001_0746_b_19L性自神解。名自眞相。是約不一義門
001_0746_b_20L說也。又隨無明風作生滅時。神解之
001_0746_b_21L性與本不異。故亦得名爲自眞相。是
001_0746_b_22L依不異義門說也。別記云。當知自眞
名。不偏在不生滅於中
001_0746_b_23L委悉。如別記說也。
001_0746_b_24L別
記問。如瑜伽論等。說阿梨耶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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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6_c_01L별기
문 『유가사지론』 등과 같은 데서는 알라야식이 이숙식異熟識55)으로서 한결같이 생멸만 한다고 말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 『기신론』에서는 이 알라야식이 불생멸과 생멸의 두 가지 뜻을 갖추어 함유하고 있다고 말하는가?
답 각각 설명하는 바가 있어서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 미세한 마음에 대략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만약 업번뇌業煩惱에 의하여 감응되는 뜻으로 본다면 무無를 조작하여 유有가 되게 하므로 한결같이 생멸하기만 할 것이며, 만약 근본무명根本無明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뜻으로 논한다면 정靜을 훈습하여 동動하게 하는 것이므로 동정動靜이 일체가 될 것이다. 저 『유가사지론』에서 논한 것들은 『해심밀경』56)에 의하여 일一이거나 상常이라고 하는 견해들57)을 제거하기 위하여, 업번뇌에 감응되는 뜻의 문에 의하기 때문에 이 알라야식이 한결같이 생멸하기만 하여 심왕心王ㆍ심소법心所法58)이 차별되어 전변한다고 말한 것이다.59)이제 이 『기신론』에서는 『능가경』에 의하여 진과 속을 별체로 보는 집착을 다스리기 위하여, 무명에 의하여 동하여지는 뜻의 문에 의하기 때문에 불생멸이 생멸과 화합하여 다르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60) 그러나 이 무명에 의하여 움직여진 상相도 바로 저 업번뇌에 의하여 감응되는 것이기 때문에 두 뜻(불생불멸과 생멸심)이 다르지만 알라야식의 체는 둘이 없는 것이다.
문 심체心體가 상주하고 심상心相은 생멸하지만, 체와 상이 떨어지지 아니하여 합해서 일식一識이 된다고 해야 되는가, 심체는 상주하기도 하고 또한 곧 심체는 생멸하기도 한다고 해야 되는가?
답 만일 (묻는) 뜻을 체득한 사람이라면 두 뜻을 모두 인정할 것이니, 어째서인가? 만약 그 상주를 논한다면 다른 것을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체라 하고, 그 무상無常을 논한다면 다른 것을 따라서 생멸하는 것을 상相이라 하는 것이니, 체는 상常이요, 상相은 무상無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멸이라고 하는 것은 생이 아닌 생이요, 멸이 아닌 멸이므로 생멸이라 이름하며, 이는 심의 생이며 심의 멸이기 때문에 생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심체가 생멸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바닷물이 움직이는 것을 물결이라 이름하지만, -
001_0746_c_01L是異熟識。一向生滅。何故此論乃
001_0746_c_02L說此識具含二義。答。各有所述。不
001_0746_c_03L相違背。何者。此微細心略有二義。
001_0746_c_04L若其爲業煩惱所感義邊。辨無令
001_0746_c_05L有。一向生滅。若論根本無明所
001_0746_c_06L1)動 [7] 義邊。熏靜令動。動靜一體。彼
001_0746_c_07L所論等。依深密經。爲除是一是常
001_0746_c_08L之見。約業煩惱所感義門。故說此
001_0746_c_09L識一向生滅。心心數法差別而轉。
001_0746_c_10L今此論者。依楞伽經。爲治眞俗別
001_0746_c_11L體之執。就其無明所動義門。故說
001_0746_c_12L不生滅與生滅和合不異。然此無
001_0746_c_13L明所動之相。亦卽爲彼業感所感。
001_0746_c_14L故二意雖異。識體無二也。問。爲
001_0746_c_15L當心體常住。心相生滅。體相不離
001_0746_c_16L合爲一識。爲當心體常住。亦卽心
001_0746_c_17L體生滅耶。答。若得意者。二義俱
001_0746_c_18L許。何者。若論其常住。不隨他成。
001_0746_c_19L曰體。論其無常。隨他生滅。曰相。
001_0746_c_20L得言體常。相是無常。然言生滅者。
001_0746_c_21L非生之生非滅之滅。故名生滅。是
001_0746_c_22L心之生心之滅。故乃名生滅。故得
001_0746_c_23L言心體生滅。如似水之動名爲波。
001_0746_c_24L「動」作「感」{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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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7_a_01L끝내 이 물결의 움직임이 바닷물의 움직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음과 같은 것이다. 이 중의 도리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설사 심체는 움직이지 않으나 다만 무명상無明相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범부를 전변시켜 성인을 이루는 이치가 없을 것이니, 그것은 무명상은 한결같이 멸하기만 하고 심체는 본래 범부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만약 심체가 생멸한다면 진심眞心이 다 없어질 것이니, 왜냐하면 생멸할 때에는 상주함이 없기 때문이다. 또 만일 심체는 본래 고요한 것이나 연을 따라 움직인다면 생사가 시작이 있을 것이니, 이는 큰 잘못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고요한 때에는 생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만일 마음이 연을 따라 변하여 생멸을 일으킨다고 한다면 또한 일심一心이 연을 따라 변하여 다심多心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힐난61)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뜻62)이 성립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 이 뜻이 방해됨이 없으니 이제 뒤의 것으로부터 답할 것이다.마치 상심常心이 무명의 연을 따라서 변하여 무상심無常心을 일으키지만, 그 상성常性은 항상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함과 같으니, 이처럼 일심이 무명의 연을 따라 변하여 많은 중생심을 일으키지만 그 일심은 항상 스스로 둘이 없는 것이다. 이는 『대반열반경』에서 “한 가지 맛의 약이 그 옮겨가는 곳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름이 있으나, 이 약의 참된 맛은 산에 머물러 있다.”63)라고 한 것과 같으니,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또 본래 고요한 것이 연을 따라 움직인다고 하지만 생사에 시작이 있다는 과오는 없으니,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는 동정動靜이 모두 시작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논에서 “앞서는 과보果報였던 것이 뒤에서는 도리어 원인을 이루어서 항상 전전하는 인과因果가 다 시작이 없기 때문”64)이라 한 것과 같으니, 이 중의 도리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또 심체가 생멸하지만 항상 심체는 상주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심체가 둘도 아니면서 하나도 아닌 성질이며, -
001_0747_a_01L終不可說是動非水之動。當知此
001_0747_a_02L中道理亦爾。設使心體不動但無
001_0747_a_03L明相動者。則無轉凡成聖之理。以無
001_0747_a_04L明相一向滅故。心體本來不作凡
001_0747_a_05L故。難曰。若使心體生滅。則眞心
001_0747_a_06L有盡。以生滅時無常住故。又若心
001_0747_a_07L體本靜而隨緣動。則生死有始。是
001_0747_a_08L爲大過。以本靜時無生死故。又若
001_0747_a_09L心隨緣變作生滅。亦可一心隨緣
001_0747_a_10L變作多心。是三難不能得離。故知
001_0747_a_11L此義不可立也。解云。此義無妨。
001_0747_a_12L今從後而答。如說常心隨無明緣
001_0747_a_13L變作無常之心。而其常性恒自不
001_0747_a_14L變。如是一心隨無明緣變作多衆
001_0747_a_15L生心。而其一心常自無二。如涅槃
001_0747_a_16L經云。一味之藥。隨其流處有種種
001_0747_a_17L異。是藥眞味停留在山。正謂此也。
001_0747_a_18L又雖曰本靜隨緣而動。而無生死
001_0747_a_19L有始之過。以如是展轉動靜皆無
001_0747_a_20L始故。如論說云。先是果報。後反
001_0747_a_21L成因。而恒展轉因果。皆無始故。
001_0747_a_22L當知此中道理亦爾。又雖心體生
001_0747_a_23L滅。而恒心體常住。以不一不異故。
001_0747_a_24L所謂心體不二而無一性。動靜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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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7_b_01L동정이 같지도 않으면서 다른 것도 없는 성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바닷물이 상속문相續門65)에 의하더라도 곧 유동流動함이 있고, 생멸문에 의하더라도 항상 움직이지 않음과 같으니,66) 항상되는 것도 아니고 단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요, 이른바 (메아리가) 건너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67) 이 중의 도리도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설정한 세 가지 힐난이 해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 이름을 세움
소 세 번째는 이름을 세운 것이니, “이름하여 알라야식이라고 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불생멸이 생멸과 화합하여 같은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므로 이를 모두 알라야식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이름을 번역하고 뜻을 풀이한 것은 『능가경종요楞伽經宗要』68)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이상으로 체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밝히는 것을 마친다.
(ㄴ) 뜻에 의하여 각각 풀이함
이 아래는 두 번째로 뜻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풀이하는 것이니, 이 중에 세 부분이 있다. 첫째는 뜻을 열어 전체적으로 나타내어 간략히 공능功能을 밝혔고, 둘째는 뜻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풀이하여 자세히 체상體相을 나타냈으며, 셋째는 동이同異를 밝혔다.
논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69) 일체법을 포괄하며, 일체법을 낼 수 있는 것이다.
㉠ 간략히 공능을 밝힘
소 처음에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일체법을 포괄하며, 일체법을 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포괄할 수 있다는 뜻은 앞에서70)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위에서는 진여ㆍ생멸 두 문이 각각 일체법을 포괄한다고 하였고, 이제 여기서는 하나의 식識이 두 뜻을 함유하기 때문에 이 하나의 식이 일체법을 포괄한다고 밝히고, 두 뜻이 각각 일체법을 포괄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두 뜻은 오직 생멸문 내에서만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두 뜻이 각각 일체법을 포섭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위의 두 문門에서는 다만 ‘섭의攝義’만을 말하였으니, 왜냐하면 진여문에는 ‘생의生義’가 없기 때문이며, 이제는 이 식에서 또한 ‘생의’를 말하였으니 생멸문 중에는 ‘생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불각의不覺義가 본각本覺을 훈습하기 때문에 모든 염법染法을 내며, 또 본각이 불각을 훈습하기 때문에 모든 정법淨法을 내는 것이니, 이 두 뜻에 의하여 일체법을 다 내기 때문에, -
001_0747_b_01L一而無異性。故如水依相續門則
001_0747_b_02L有流動。依生滅門而恒不動。以不
001_0747_b_03L常不斷故。所謂不度亦不滅故。當
001_0747_b_04L知此中道理亦爾。是故所設三難
001_0747_b_05L無不消也。
001_0747_b_06L第三立名。名爲阿梨耶識者。不生滅
001_0747_b_07L與生滅和合。非一非異。故總名爲阿
001_0747_b_08L梨耶識。翻名釋義。是如楞伽宗要中
001_0747_b_09L說。就體總明竟在於前。
001_0747_b_10L此下第二依義別解。此中有三。一開
001_0747_b_11L義總標。略明功能。二依義別釋。廣顯
001_0747_b_12L體相。三明同異。
001_0747_b_13L此識有二種義。能攝一切法。生一切法。
001_0747_b_14L初中言此識有二種義能攝一切法生
001_0747_b_15L一切法者。能攝之義如前廣說。然上
001_0747_b_16L說二門各攝一切。今此明一識含有
001_0747_b_17L二義。故此一識能攝一切。不言二
001_0747_b_18L義各攝一切。以此二義唯在生滅門
001_0747_b_19L內說故。如是二義不能各攝一切法
001_0747_b_20L故。又上二門但說攝義。以眞如門無
001_0747_b_21L能生義故。今於此識亦說生義。生
001_0747_b_22L滅門中有能生義故。此義云何。由
001_0747_b_23L不覺義熏本覺故生諸染法。又由本
001_0747_b_24L覺熏不覺故生諸淨法。依此二義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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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7_c_01L‘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일체법을 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며, 이 문장은 곧 아래에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71) 이하의 글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일심의 뜻은 넓어서 이 문을 총괄하며, 이 식의 뜻은 좁아서 생멸문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식의 두 가지 뜻이 이미 한쪽의 문에 있기 때문에, 문은 넓고 뜻(義)은 좁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경(『능가경』)을 인용하여 뜻을 풀이한 것은 『별기』와 같다.
별기
문위에서는 일심에 두 가지 문이 있다고 하고, 여기서는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하니, 저 심과 이 식이 무슨 차별이 있는가?
해 위에서는 이체理體에 나아가 일심이라 이름하였으니, 일심의 체가 절상絶相72)과 수연隨緣73)이라는 두 가지 뜻의 문을 포함하기 때문에 일심에 두 가지 문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경본(『능가경』)에서 “적멸이라는 것은 일심이라 이름하고, 일심이란 여래장이라 이름한다.”74)라고 한 것과 같으니, 뜻은 위에서75) 말한 것과 같다. 이제 여기서 식이란, 다만 일심의 수연문隨緣門 내에 이理ㆍ사事가 둘이 아니고 오직 하나의 신려神慮인 점에서 일식一識이라고 이름한 것이니, 이 알라야식의 체에 각과 불각의 두 뜻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라고 한 것이다. 이리하여 심은 넓고 식은 좁은 것이니 심이 이문 내의 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문은 넓고 뜻(각의와 불각의)은 좁으니 생멸문이 두 뜻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사권능가경』에서 “(칠식의 파도를) 여의지도 않고 (칠식의 파도로) 전변하지도 않는 것을 여래장식장이라 이름한다. 칠식은 유전하여 멸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저것(알라야식)을 원인으로 하고 (저것을) 반연하는 여러 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문ㆍ연각의 수행 경계가 아니다.”76)라고 하고, 『십권능가경』에서 “여래장식은 알라야식 중에 있지 아니한 것이니, 그러므로 칠식은 생과 멸이 있지만 여래장식은 생멸하지 아니한다. 어째서인가? 저 칠식은 (장식이) 모든 경계를 염관함에 의하여 생기기 때문이며, -
001_0747_c_01L生一切。故言識有二義生一切法。此
001_0747_c_02L文卽起下有四種熏習以下文也。當
001_0747_c_03L知一心義寬。總攝二門。此識義狹。
001_0747_c_04L在生滅門。此識二義旣在一門。故
001_0747_c_05L知門寬而義狹也。引經釋義如別記
001_0747_c_06L也。
001_0747_c_07L別
記問。上言一心有二種門。今云此
001_0747_c_08L識有二種義。彼心此識。有何差別。
001_0747_c_09L解云。上就理體。名爲一心。體含
001_0747_c_10L絶相隨緣二義門。故言一心有二
001_0747_c_11L種門。如經本言。寂滅者名爲一心。
001_0747_c_12L一心者名如來藏。義如上說。今此
001_0747_c_13L中識者。但就一心隨緣門內。理事
001_0747_c_14L無二。唯一神慮。名爲一識。體含
001_0747_c_15L覺與不覺二義。故言此識有二種
001_0747_c_16L義。是故心寬識狹。以心含二門識
001_0747_c_17L故。又門寬義狹。以生滅門含二義
001_0747_c_18L故。如四卷經云。不離不轉名如來
001_0747_c_19L藏識藏。七識流轉不滅。所以者何。
001_0747_c_20L彼因攀緣諸識生故。非聲聞緣覺
001_0747_c_21L修行境界。十卷經云。如來藏識不
001_0747_c_22L在阿梨耶識中。是故七種識有生
001_0747_c_23L有滅。如來藏識不生不滅。何以故。
001_0747_c_24L彼七種識依諸境界念觀而生。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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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8_a_01L이 같은 칠식의 경계는 모든 성문, 벽지불 및 외도의 수행자들이 알 수 없는 것이다.”77)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두 가지 글이 똑같이 이 알라야식의 생멸하지 않는 뜻을 밝힌 것이니, 왜인가? 경계의 바람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장식의 바다 중에 칠식의 파도가 전전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칠식은 생멸이 있는 것이며, 한편 여래장이란 바로 장식이니, (장식이 칠식의 파도를) 여의지도 않고 (칠식의 파도로) 전변하지도 않지만, 그 체는 전변하지 않기 때문에 여래장은 생멸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권능가경』에서) ‘(칠식의 파도를) 여의지도 않고 (칠식의 파도로) 전변하지도 않는 것을 여래장식장이라 이름한다.’ 등이라고 말하였다.『십권능가경』의 의도는 칠식은 파도이지 바다가 아니지만 (파도의) 모양은 알라야식78) 바다 중에 있기 때문에 생멸이 있고, 여래장이란 바다이지 파도가 아니므로 (생멸하는) 알라야식 바다 중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생멸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여래장은 알라야식 중에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칠식은 생멸이 있지만 여래장은 바로 (불생멸의) 알라야식79)이기 때문에 ‘(생멸하는 알라야식에) 있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만약 여래장이 생멸하는 알라야식에 있지 않다면 바로 아래에서 ‘그러므로 팔종식은 생멸이 있지만’이라고 말해야 할 터인데, 어째서 다만 ‘그러므로 칠식은 생과 멸이 있지만’이라고만 말했겠는가? 이것은 이 『사권능가경』과 『십권능가경』의 글이 본래의 산스크리트 문의 원본은 같지만 다만 번역자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 달라진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또 『사권능가경』에서 “알라야식을 여래장이라고 이름하니, 무명ㆍ칠식과 함께하지만 무상無常의 허물을 여의어 자성自性이 청정한 것이요, 나머지 칠식은 찰나찰나 유전하여 생멸법生滅法이다.”80)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말은 앞서와 같이 알라야의 본각ㆍ불생멸의 뜻을 밝힌 것이다. 또 『사권능가경』에서 “찰나란 식장이라 이름하는 (여래장이)……”81)라고 하고 『십권능가경』에서 “알라야식(이란) 여래장(이라고도 이름하고) 칠종식과 함께 생하니 이를 전멸상轉滅相이라 한다.”82)라고 한 말들은 알라야의 생멸ㆍ불각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
001_0748_a_01L七識境界。一切聲聞辟支佛外道
001_0748_a_02L修行者不能覺知。此之二文。同明
001_0748_a_03L此識不生滅義。何者。欲明境界風
001_0748_a_04L所動故。藏海中七識浪轉。是故七
001_0748_a_05L識有生有滅。如來藏者。卽是藏識。
001_0748_a_06L雖不離轉。而體不轉。故如來藏不
001_0748_a_07L生不滅。故言不離不轉名如來藏
001_0748_a_08L識等。十卷意者。欲明七識是浪非
001_0748_a_09L海。相在梨耶識海中。故有生滅。
001_0748_a_10L如來藏者是海非浪。不在阿梨耶
001_0748_a_11L識中。 [13] 是 [14] 是故七識有生有滅等。以如
001_0748_a_12L來藏卽是阿梨耶識。故言不在。若
001_0748_a_13L使如來藏不在生滅梨耶識中者。卽
001_0748_a_14L應下云是故八種識有生有滅。何
001_0748_a_15L故但言是故七識有生滅耶。當知
001_0748_a_16L此二經文其本是一。但翻譯者異。
001_0748_a_17L故致使語有不同耳。又四卷經云。
001_0748_a_18L阿梨耶識名如來藏。而與無明七
001_0748_a_19L識共俱。離無常過。自性淸淨。餘
001_0748_a_20L七識者。念念不住。是生滅法。如
001_0748_a_21L是等文。同明梨耶本覺不生滅義。
001_0748_a_22L又四卷經云。刹那者名爲識藏。十
001_0748_a_23L卷云。如來藏阿梨耶識。共七種
001_0748_a_24L識生。名轉滅相。如是等文。是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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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8_b_01L여기에서 이제 『기신론』의 저자가 저 경(『능가경』)의 종요宗要를 총괄하였기 때문에 이 알라야식에 두 가지의 뜻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 자세히 체상을 나타냄
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각의 뜻이고, 둘째는 불각의 뜻이다.
소 두 번째 자세히 해석하는 중에 세 가지가 있다.
A. 수를 물어 문제를 제기함
처음에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라는 것은 수를 물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B.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함
다음에 “각의 뜻이고 불각의 뜻”이라고 한 것은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한 것이다.
C. 각각 풀이함
“(각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所言)” 이하는 세 번째로 각각 풀이한 것이니, 앞서는 각의 뜻을 풀이하고 뒤에서는 불각을 풀이하였다.
A) 각의 뜻을 풀이함
각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간략히 하고 뒤는 자세히 풀었다.
논 각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심체가 망념을 여읜 것을 말함이다. 망념을 여읜 상相이란 허공계虛空界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어 법계가 하나인 모습(法界一相)이며 바로 여래의 평등한 법신이니, 이 법신에 의하여 본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본각의 뜻이란 시각始覺의 뜻에 대하여 말한 것이니 시각이란 바로 본각과 같기 때문이며, 시각의 뜻은 본각에 의하기 때문에 불각이 있으며 불각에 의하므로 시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A) 간략히 풀이함
소 간략히 풀이하는 중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본각이요 뒤에는 시각이다.
Ⓐ 본각을 밝힘
본각을 밝히는 중에도 두 구절이 있으니, 먼저는 본각의 체를 밝혔고 뒤에서는 본각의 뜻을 풀이하였다.
a. 본각의 체를 밝힘
처음 중에 “심체가 망념을 여읜 것을 말함이다.”라고 한 것은 망념을 여읜 것을 말하며, 이는 불각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허공계와 같아서”라는 것은 다만 어두움이 없을 뿐 아니라 지혜의 광명이 법계에 두루 비쳐 평등하여 둘이 없는 것이다. 이는 아랫글에서 “대지혜광명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 법계를 두루 비치는 뜻이 있기 때문”83)이라는 말과 같다.
b. 본각의 뜻을 풀이함
“어째서인가?” 이하는 두 번째로 뜻을 풀이한 것이니, 이는 시각에 대하여 본각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본각을 밝힘을 마친다.
Ⓑ 시각을 풀이함
다음은 시각을 풀이하였으니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또한 본각을 상대하여 불각이 일어나는 뜻을 나타냈고, 뒤에서는 불각에 대하여 시각의 뜻을 풀이하였다. 이 중의 대의는 시각은 불각에 의지하고 -
001_0748_b_01L梨耶生滅不覺之義。此今論主總
001_0748_b_02L括彼經始終之意。故言噵此識有
001_0748_b_03L二種義也。
001_0748_b_04L云何爲二。一者覺義。二者不覺義。
001_0748_b_05L第二廣中有三。初言云何爲二者。問
001_0748_b_06L數發起。次言覺義不覺義者。依數列
001_0748_b_07L名。所言以下。第三別解。先釋覺義。
001_0748_b_08L後解不覺。覺中有二。先略。後廣。
001_0748_b_09L所言覺義者。謂心體離念。離念相者。
001_0748_b_10L等虛空界。無所不徧。法界一相。卽是
001_0748_b_11L如來平等法身。依此法身說名本覺。何
001_0748_b_12L以故。本覺義者。對始覺義說。以始覺
001_0748_b_13L者。卽同本覺。始覺義者。依本覺故而
001_0748_b_14L有不覺。依不覺故說有始覺。
001_0748_b_15L略中亦二。先本。後始。明本覺中。亦
001_0748_b_16L有二句。先明本覺體。後釋本覺義。
001_0748_b_17L初中言心體離念者。謂離妄念。顯無
001_0748_b_18L不覺也。等虛空界者。非唯無闇。有慧
001_0748_b_19L光明徧照法界平等無二。如下文云。
001_0748_b_20L有大智慧光明義故。徧照法界義故。
001_0748_b_21L何以故下。第二釋義。是對始覺釋本
001_0748_b_22L覺義。明本覺竟。次釋始覺。於中有
001_0748_b_23L二。先顯亦對本覺不覺起義。後對不
001_0748_b_24L覺釋始覺義。此中大意。欲明始覺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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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48_c_01L불각은 본각에 의지하며 본각은 시각에 의지하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미 서로 의지하는 것이라면 자성이 없는 것이다. 자성이 없다면 각이 있지 않을 것이요, 각이 있지 않은 것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이다. 상대하여서 이루어진다면 각이 없지 않을 것이요, 각이 없지 않기 때문에 ‘각’이라 말하는 것이지 자성이 있어서 ‘각’이라 하는 것은 아니다.이상으로 이각二覺을 간략히 밝히는 것을 마친다.
별기 ‘각의 뜻’이라 하는 것은 곧 두 가지가 있으니, 본각과 시각을 말한다. 본각이란 이 심성이 불각상을 여읜 것을 말하니, 이 각조覺照의 성질을 본각이라 하는 것이다. 이는 아랫글에서 “이른바 자체에 대지혜광명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84)라고 한 것과 같다. 시각이란 바로 이 심체가 무명의 연을 따라 움직여서 망념을 일으키지만, 본각의 훈습의 힘에 의하여 차츰 각의 작용이 있으며 구경에 가서는 다시 본각과 같아지는 것이니, 이를 시각이라 말하는 것이다.
‘불각의 뜻’을 말하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근본불각根本不覺이며, 둘째는 지말불각枝末不覺이다. 근본불각이란 알라야식 내의 근본무명을 불각이라 이름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아랫글에서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 불각하여 일어나서”85)라고 한 말과 같기 때문이다. 지말불각이라고 하는 것은 무명에서 일어난 일체의 염법을 모두 불각이라 이름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아랫글에서 “일체의 염법이 모두 불각상이기 때문이다.”86)라고 한 말과 같다. 만약 식상識相의 차별로 근본이 지말과 다름을 간별하는 문에 의한다면 알라야식 중에 오직 본각과 본불각本不覺이 있을 뿐이며, 만약 식체識體가 둘이 없어 지말을 포괄하여 근본에 돌아가게 하는 문에 의한다면 저 시각과 지말불각도 또한 알라야식 내의 뜻이다. -
001_0748_c_01L於不覺。不覺待於本覺。本覺待於始
001_0748_c_02L覺。旣互相待。則無自性。無自性者。
001_0748_c_03L則非有覺。非有覺者。由互相待。相
001_0748_c_04L待而成。則非無覺。非無覺故。說名
001_0748_c_05L爲覺。非有自性名爲覺也。略明二覺
001_0748_c_06L竟在於前。
001_0748_c_07L別
記言覺義者。卽有二種。謂本覺。
001_0748_c_08L始覺。言本覺者。謂此心性離不覺
001_0748_c_09L相。是覺照性。名爲本覺。如下文
001_0748_c_10L云所謂自體有大智慧光明義故。言
001_0748_c_11L始覺者。卽此心體隨無明緣。動
001_0748_c_12L作妄念。而以本覺熏習力故。稍有
001_0748_c_13L覺用。乃至究竟。還同本覺。是名
001_0748_c_14L始覺。言不覺義。亦有二種。一者
001_0748_c_15L根本不覺。二者枝末不覺。根本不
001_0748_c_16L覺者。謂梨耶識內根本無明。名爲
001_0748_c_17L不覺。如下文云依阿梨耶識說有
001_0748_c_18L無明不覺而起故。言枝末不覺者。
001_0748_c_19L謂無明所起一切染法。皆名不覺。
001_0748_c_20L如下文云一切染法皆是不覺相故。
001_0748_c_21L若依識相差別簡本異末義門。則
001_0748_c_22L梨耶識中唯有本覺及本不覺。若
001_0748_c_23L就識體無二攝末歸本義門。則彼
001_0748_c_24L始覺及末不覺亦是梨耶識內之義。
-
001_0749_a_01L그리하여 위에서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종류의 뜻을 통틀어 다 포함한 것이며, 따라서 아래에서 해석하는 중에 본각과 시각의 두 각과 두 불각의 뜻을 모두 든 것이다.
문 심체가 다만 불각이 없기 때문에 본각이라 해야 하는가, 심체에 각조의 작용이 있음을 본각이라 이름해야 하는가? 만약 다만 불각이 없음을 본각이라고 하는 것이라면 또한 각조가 없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이는 불각일 것이고, 만일 각조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본각이라 하는 것이라면 이 각이 번뇌를 끊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번뇌를 끊지 못했다면 각조의 작용이 없는 것이요, 만약 번뇌를 끊음이 있다면 범부가 없을 것이다.
답 비단 어두움(불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87) 또한 명조明照(즉 각조)의 작용도 있는 것이니, 이 각조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또한 번뇌를 끊음도 있는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만약 먼저 미혹했다가 뒤에 깨닫는 것을 각이라고 하는 입장에 선다면 시각에 각이 있는 것이지 본각에는 각이 없을 것이다. 만약 본래 미혹하지 않음을 각이라 하는 입장에 선다면 본각은 각이고 시각은 각이 아닐 것이다. 번뇌를 끊는 뜻도 또한 이와 같아서, 앞서는 번뇌가 있었으나 뒤에 번뇌가 없어진 것을 끊음이라 한다면 시각은 끊음이 있고 본각은 끊음이 없으며, 본래부터 번뇌를 여읜 것을 끊음이라 한다면 본각은 끊은 것이고 시각은 끊은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런 뜻88)에 의한다면 본래 끊었기 때문에 본래 범부가 없는 것이니, 이는 아랫글에서 “일체의 중생은 본래 열반ㆍ보리의 법에 상주하여 들어가 있으니”89)라고 한 말과 같다. 그러나 본각이 있기 때문에 본래 범부가 없다고 말하지만, 시각이 아직 있지 않기 때문에 본래 범부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잘못이 없는 것이다. 만약 네가 본각이 있기 때문에 본래 범부가 없다고 말한다면 끝내 시각이 없을 것이니, 무슨 시각 작용을 할 범부가 있겠는가? 그 범부도 또한 끝내 시각이 없다면 본각이 없는 것이니, 무슨 본각에 의하여 범부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
001_0749_a_01L故上云此識有二義者。通含如是
001_0749_a_02L二種之意。故下釋中通擧本始二
001_0749_a_03L覺及二不覺義也。問。爲當心體只
001_0749_a_04L無不覺。故名本覺。爲當心體有覺
001_0749_a_05L照用。名爲本覺。若言只無不覺名
001_0749_a_06L本覺者。可亦無覺照故是不覺。若
001_0749_a_07L言有覺照故名本覺者。未知此覺
001_0749_a_08L爲斷惑不。若不斷惑。則無照用。
001_0749_a_09L如其有斷。則無凡夫。答。非但無
001_0749_a_10L闇。亦有明照。以有照故。亦有斷
001_0749_a_11L惑。此義云何。若就先眠後覺名爲
001_0749_a_12L覺者。始覺有覺。本覺中無。若論
001_0749_a_13L本來不眠名爲覺者。本覺是覺。始
001_0749_a_14L覺則非覺。斷義亦爾。先有後無名
001_0749_a_15L爲斷者。始覺有斷。本覺無斷。本
001_0749_a_16L來離惑名爲斷者。本覺是斷。始覺
001_0749_a_17L非斷。若依是義。本來斷故。本來
001_0749_a_18L無凡。如下文云一切衆生本來常
001_0749_a_19L住入於涅槃菩提之法。然雖曰有
001_0749_a_20L本覺故本來無凡。而未有始覺故
001_0749_a_21L本來有凡。是故無過。若汝言由有
001_0749_a_22L本覺本來無凡。則終無始覺望何
001_0749_a_23L有凡者。他亦終無始覺則無本覺。
001_0749_a_24L依何本覺以說無凡。當知由有本
-
001_0749_b_01L본각이 있기 때문에 본래 불각이 없고, 불각이 없기 때문에 끝내 시각이 없는 것이며, 시각이 없기 때문에 본래 본각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본각이 없음에 이른 것은 그 비롯됨이 본각이 있기 때문이요,90) 본각이 있는 것은 시각이 있기 때문이며 시각이 있는 것은 불각이 있기 때문이며 불각이 있는 것은 본각에 의하기 때문이다. 이는 윗글의 “본각의 뜻이란 시각의 뜻에 대하여 말한 것이니, 시각이란 바로 본각과 같기 때문이며, 시각의 뜻은 본각에 의하기 때문에 불각이 있으며, 불각에 의하므로 시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91)라는 말과 같다.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서로 의지하니, 바로 모든 법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있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님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문 이 본각성本覺性이 통틀어 염ㆍ정의 인성因性이 되어야 하는가, 다만 모든 정법의 본성이기만 해야 하는가? 만약 다만 정법의 인이라고만 말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경(『능가경』)에서 “여래장은 선ㆍ불선의 인이라”92)하여 이밖에도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만약 통틀어 염정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기신론』에서) “성공덕을 구족한다.”라고만 말하고, ‘성염환性染患을 구족한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는가?
답 이 이理는 통틀어 염ㆍ정과 함께 성性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오직 ‘성공덕을 구족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이理가 정성淨性을 여의었기 때문에 연을 따라 모든 염법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염성染性을 여의었기 때문에 연을 따라 모든 정법淨法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염ㆍ정법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통틀어 염ㆍ정의 본성이 되는 것이며, 염ㆍ정성染淨性을 여의었기 때문에 오직 성공덕이 되는 것이니, 어째서 염ㆍ정성을 여의어야만 모든 공덕을 이루게 되는가? 염ㆍ정성을 집착하는 것은 모두 망상이기 때문이다.
(B) 자세히 풀이함
소 이 아래는 두 번째로 본각과 시각의 두 각을 자세히 풀이하였으니, 이 중 먼저 시각을 풀이하였고 뒤에서는 본각을 자세히 풀었다.
Ⓐ 시각을 풀이함
처음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전체적으로 ‘만滿’과 ‘불만不滿’의 뜻을 나타냈고, -
001_0749_b_01L覺故本無不覺。無不覺故終無始
001_0749_b_02L覺。無始覺故本無本覺。至於無本
001_0749_b_03L覺者源由有本覺。有本覺者由有
001_0749_b_04L始覺。有始覺者由有不覺。有不覺
001_0749_b_05L者由依本覺。如下 [15] 文云。本覺義者
001_0749_b_06L對始覺義說。以始覺者卽同本覺。
001_0749_b_07L始覺義者。依本覺故而有不覺。依
001_0749_b_08L不覺故說有始覺。當知如是展轉
001_0749_b_09L相依。卽顯諸法非無而非有。非有
001_0749_b_10L而非無也。問。此本覺性。爲當通
001_0749_b_11L爲染淨因性。爲當但是諸淨法性。
001_0749_b_12L若言但是淨法因者。何故經云如
001_0749_b_13L來之藏是善不善因。乃至廣說。若
001_0749_b_14L通作染淨者。何故唯說具足性功
001_0749_b_15L德。不說具足性染患耶。答。此理
001_0749_b_16L通與染淨作性。是故唯說具性功
001_0749_b_17L德。是義云何。以理離淨性。故能
001_0749_b_18L隨緣作諸染法。又離染性。故能隨
001_0749_b_19L緣作諸淨法。以能作染淨法。故通
001_0749_b_20L爲染淨性。由離染淨性。故唯是性
001_0749_b_21L功德。何以得離染淨性乃成諸功
001_0749_b_22L德。取著染淨性皆是妄想故。
001_0749_b_23L此下第二廣釋二覺。於中先釋始覺。
001_0749_b_24L後廣本覺。初中有三。一者總標滿不
-
001_0749_c_01L둘째는 따로 시각의 차별을 풀이하였고, 셋째는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음을 전체적으로 밝혔다.
a. 전체적으로 ‘만’과 ‘불만’의 뜻을 나타냄
논 또 심원心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究竟覺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심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구경각이 아닌 것이다.
소 전체적으로 표시하는 중에 “심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라고 한 것은 불지佛地93)에 있는 것이요, “심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구경각이 아닌 것이다.”라는 것은 금강유정金剛喩定94) 이하이다.
b. 따로 시각의 차별을 풀이함
논 이 뜻이 무엇인가? 범부 정도의 사람은 먼저의 생각에 악이 일어난 것을 알기 때문에 뒤에 일어나는 생각을 그치게 하여 그 (악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는 또한 각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바로 불각이기 때문이다. 이승二乘의 관지觀智와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95) 정도의 사람 등은 생각의 이상異相을 깨달아 생각에 이상이 없으니, 이는 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著相96)을 버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상사각相似覺이라 이름한다. 법신보살法身菩薩97) 정도의 사람 등은 생각의 주상住相을 깨달아 생각에 주상이 없으니, 이는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분각隨分覺이라 이름한다. 보살지菩薩地가 다한 정도의 사람은 방편을 만족시켜서 일념一念이 상응하고 마음의 처음 일어나는 상相을 깨달아 마음에 초상初相이 없으니, 이는 미세념微細念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며, 심성心性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하니, 이를 구경각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 무념無念을 볼 수 있다면 곧 불지佛智에 향함이 된다.”98)고 말하였다.
소 다음 따로 풀이하는 중에 사상四相99)에 의하여 설명하였으니, 이 중에서 먼저 사상四相을 밝히고, 다음에 글을 풀이하겠다.
a) 사상을 밝힘
문 이 중에 사상이 동시에 있다고 해야 하는가, 전후의 순서가 있다고 해야 하는가? 이는 어째서 의심하는 것인가? 만약 동시라고 한다면 반대로 『기신론』에서는 사상이 깨달을 때에는 차별됨을 말하였고, 만약 전후의 순서가 있는 것이라면 반대로 아래에서100) 사상이 동시에 있다고 말하였다.
답 어떤 이의 설은, 이는 살바다종薩婆多宗101)의 사상에 의하여 -
001_0749_c_01L滿義。二者別解始覺差別。三者總明
001_0749_c_02L不異本覺。
001_0749_c_03L又以覺心源故。名究竟覺。不覺心源故。
001_0749_c_04L非究竟覺。
001_0749_c_05L總標中言覺心源故名究竟覺者。在
001_0749_c_06L於佛地。不覺心源故非究竟覺者。金
001_0749_c_07L剛已還也。
001_0749_c_08L此義云何。如凡夫人覺知前念起惡故。
001_0749_c_09L能止後念。令其不起。雖復名覺。卽是不
001_0749_c_10L覺故。如二乘觀智。初發意菩薩等。覺
001_0749_c_11L於念異。念無異相。以捨麤分別執著相
001_0749_c_12L故。名相似覺。如法身菩薩等。覺於念
001_0749_c_13L住。念無住相。以離分別麤念相故。名
001_0749_c_14L隨分覺。如菩薩地盡。滿足方便。一念
001_0749_c_15L相應覺心初起。心無初相。以遠離微細
001_0749_c_16L念故。得見心性。心卽常住。名究竟覺。
001_0749_c_17L是故脩多羅說。若有衆生能觀無念者。
001_0749_c_18L則爲向佛智故。
001_0749_c_19L次別解中。約四相說。此中先1)明 [8] 四
001_0749_c_20L相。然後消文。問。此中四相。爲當同
001_0749_c_21L時。爲是前後。此何所疑。若同時那。
001_0749_c_22L論說四相覺時差別。若前後那。下言
001_0749_c_23L四相俱時而有。或有說者。此依薩婆
001_0749_c_24L「明」作「時」{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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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0_a_01L사상의 체는 동시이지만 사상의 용은 전후라 하니, 작용이 전후이기 때문에 깨달을 때에 차별을 지으며 본체는 동시이므로 동시에 있는 것이라 한다고 하였다. 어떤 이의 설은 성실종成實宗102)의 전후사상前後四相(사상에 전후의 차별이 있음)에 의하면서도 동시에 있다고 하였으니, 본각에서 사상을 바라본다면 사상의 전후 차별이 없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동시에 있다고 한 것이요, 따라서 사상이 모두 자립함이 없다고 하였다. 어떤 이의 설은 이것은 대승비밀사상大乘秘密四相103)이니, 사상을 깨달을 때에는 전후가 심천深淺이 있으나 깨달은 사상은 동시에 있다고 하였다.이 뜻이 무엇인가? 저 심성이 본래 생멸상을 여의었으나 무명이 있어서 자기의 심성을 모르는 것이며, 심성을 어김에 의하여 적정을 여의기 때문에 동념動念의 사상을 일으켜 내는 것이니, 사상은 무명과 화합하는 힘에 의하여 심체로 하여금 생주이멸케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소승의 논의 중에 “마음이 미래에 있을 때는 아직 생멸을 하지 않다가 업력業力에 의하여 사상을 끌어서 심법心法으로 하여금 생주이멸하게 한다.”104)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승의 사상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경(『부증불감경』)에서 “곧 이 법신이 모든 번뇌에 의하여 요동하게 되어 생사에 왕래함을 중생이라 이름한다.”105)라고 한 말과 같으며, 이 논의 아랫글에서 “자성청정심도 무명의 바람에 의하여 움직일 때”106)라고 한 말도 바로 이를 이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설명하면 그러하나, 이 중에서 분별한다면 사상 안에 각각 차별이 있으니, 생삼生三, 주사住四, 이륙異六, 멸칠滅七을 말한다.생상生相이 셋이라는 것은, 첫째 업상業相을 말하니, 무명에 의하여 불각의 망념이 움직여 비록 생멸이 있지만 견분見分107)과 상분相分108)이 아직 나뉘지 않은 것이니, 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생상이 장차 곧 작용하려는 때에 이른 것과 같다. 둘째는 전상轉相이니, 동념動念에 의하여 다음에 능견能見을 이루는 것을 말함이니, 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생상이 막 작용하는 때에 이른 것과 같다. 셋째는 현상現相이니, 능견에 의하여 경상境相을 나타내는 것을 이름하니, -
001_0750_a_01L多宗四相。四體同時。四用前後。用
001_0750_a_02L前後故。覺時差別。體同時故。名俱
001_0750_a_03L時而有。或有說者。是依成實前後四
001_0750_a_04L相。而言俱時而有者。以本覺望四相。
001_0750_a_05L則無四相前後差別。故言俱時而有。
001_0750_a_06L皆無自立。或有說者。此是大乘秘密
001_0750_a_07L四相。覺四相時。前後淺深。所覺四
001_0750_a_08L相。俱時而有。是義云何。夫心性本來
001_0750_a_09L離生滅相。而有無明迷自心性。由違
001_0750_a_10L心性離於寂靜。故能生起動念四相。
001_0750_a_11L四相無明和合力故。能令心體生住
001_0750_a_12L異滅。如似小乘論義之中。心在未來
001_0750_a_13L未逕生滅。而由業力引於四相。能令
001_0750_a_14L心法生住異滅。大乘四相當知亦爾。
001_0750_a_15L如經言。卽此法身。爲諸煩惱之所漂
001_0750_a_16L動。往來生死。名爲衆生。此論下文
001_0750_a_17L云。自性淸淨心因無明風動。正謂此
001_0750_a_18L也。總說雖然。於中分別者。四相之
001_0750_a_19L內各有差別。謂生三。住四。異六。滅
001_0750_a_20L七。生相三者。一名業相。謂由無明
001_0750_a_21L不覺念動。雖有起滅。見相未分。猶
001_0750_a_22L如未來生相將至正用之時。二者轉
001_0750_a_23L相。謂依動念轉成能見。如未來生至
001_0750_a_24L正用時。三者現相。謂依能見現於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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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0_b_01L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생상이 현재시現在時에 이른 것과 같다. 무명이 이 삼상三相과 화합하여 일심의 체를 움직여 전상轉相을 따라 현상現相에 이르는 것이, 마치 소승의 미래장심未來藏心109)이 그 생상을 따라서 전전하여 현재에 이른 것과 같으며, 이제 대승 중에서 여래장심如來藏心이 생상을 따라 현재에 이르는 것 또한 그 뜻이 이와 같다. 이 셋은 모두 알라야식 자리에서 가지는 차별이며, 이 중에 자세한 말은 아래 문장에서 하겠다. 이를 매우 깊은 세 가지 생상이라 이름한다.
주상住相이 넷이라 함은, 이 무명이 생상과 화합함에 의하여 주상을 내는 마음에 아我와 아소我所110)가 없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네 가지의 주상을 일으켜 내는 것이니, 이른바 아치我癡와 아견我見과 아애我愛와 아만我慢111)이다. 이러한 네 가지가 생상에 의하여 능상能相인 심체心體를 일으켜, 주상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 안으로 반연하여 머물게 하기 때문에 주상이라 이름하며, 이 넷은 모두 제7식의 자리에 있다.
이상異相이 여섯이라 함은, 무명이 저 주상과 화합하여 계탁하는 바의 아我ㆍ아소我所가 공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의 이상異相을 일으키니, 이른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견見112)이다. 이는 『신론新論』113)에서 “번뇌의 자성이 오직 여섯 가지가 있다.”114)라고 한 말과 같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무명이 이 여섯 가지와 화합하여 능상能相인 주심住心을 이상異相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 밖으로 향하여 반연케 하기 때문에 이상이라 이름하니, 이 여섯은 생기식生起識115)의 자리에 있다.
멸상滅相이 일곱이라 함은 무명이 이상異相과 화합하여, 바깥 경계는 위違ㆍ순順의 성격을 떠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의 멸상을 일으키니, 이른바 신身ㆍ구口 일곱 가지의 악업116)이다. 이러한 악업이 이심異心을 없애 악취惡趣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에 멸상이라 이름하며, 이는 마치 소승의 멸상이 현재심現在心을 없애 과거에 들어가게 함과 같으니 대승의 멸상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사상의 일어남은 일심이 유전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다 근본무명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다. -
001_0750_b_01L相。如未來生至現在時。無明與此三
001_0750_b_02L相和合。動一心體隨轉至現。猶如小
001_0750_b_03L乘未來藏心。隨其生相轉至現在。今
001_0750_b_04L大乘中如來藏心隨生至現。義亦如
001_0750_b_05L是。此三皆是阿梨耶識位所有差別。
001_0750_b_06L於中委悉。下文當說。是名甚深三種
001_0750_b_07L生相。住相四者。由此無明與生和合。
001_0750_b_08L迷所生心無我我所。故能生起四種
001_0750_b_09L住相。所謂我癡我見我愛我慢。如是
001_0750_b_10L四種依生相起能相心體。令至住位
001_0750_b_11L內緣而住。故名住相。此四皆在第七
001_0750_b_12L識位。異相六者。無明與彼住相和合。
001_0750_b_13L不覺所計我我所空。由是能起六種
001_0750_b_14L異相。所謂貪瞋癡慢疑見。如新論云。
001_0750_b_15L煩惱自性唯有六種。此之謂也。無明
001_0750_b_16L與此六種和合。能相住心令至異位
001_0750_b_17L外向攀緣。故名異相。此六在於生起
001_0750_b_18L識位。滅相七者。無明與此異相和合。
001_0750_b_19L不覺外塵違順性離。由此發起七種
001_0750_b_20L滅相。所謂身口七支惡業。如是惡業。
001_0750_b_21L能滅異心令墮惡趣。故名滅相。猶如
001_0750_b_22L小乘滅相。滅現在心。令入過去。大
001_0750_b_23L乘滅相當知亦爾。由是義故。四相生
001_0750_b_24L起。一心流轉。一切皆因根本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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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0_c_01L이는 경(『승만경』)에서 “무명주지無明住地117)가 그 힘이 가장 크다.”118)라고 하고, 이 논(『기신론』)에서 “무명이 모든 염법을 내고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119)라고 한 말과 같다. 또 소상所相의 심120)은 일심에서 오는 것이며, 능상能相의 상121)은 무명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난 상이 그것이 이르는 곳에 따라서 그 작용에 차별이 있어서 경계의 별상을 취하는 것을 수법數法122)이라 이름하니, 이는 참으로 그 근본무명이 평등성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 소상所相의 심이 이르는 곳마다 총괄하는 주인이 되어 경계의 통상通相을 요달함을 심왕心王123)이라 말하니 그 본래의 일심이 모든 법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변분별론』124)에서 “오직 경계만을 아는 것을 심心이라 하고, 차별하는 것을 심법心法이라 한다.”125)라고 하고, 장항長行에서 이를 해석하여 “만약 경계의 통상을 요달한다면 이를 심心이라 하며, 경계의 별상을 취하는 것을 심법心法이라 한다.”126)라고 한 말과 같다. 『유가사지론』에서도 이 설과 똑같다.127) 이리하여 모든 외도가 흔히 심왕을 재주宰主니 짓는 자니 받는 자니라고 계탁하는데 이는 그것(심왕)이 자성이 없이 연을 따라 유전하는 것임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사상을 총괄하여 일념이라 하며, 이 일념ㆍ사상에 의하여 사위四位의 단계적인 강하를 밝혔다. 이는 본래 무명불각의 힘에 의하여 생상 등 여러 가지 몽념夢念128)을 일으켜 그 심원心源을 움직여 점차로 멸상滅相에 이르며, 오래도록 삼계에 잠들어 육취六趣에 유전하다가, 이제 본각의 부사의훈不思議熏129)에 의하여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찾는 마음을 일으켜 점점 본원으로 향하여 비로소 멸상 내지 생상을 쉬고 환하게 크게 깨달아 자심自心이 본래 동요한 바가 없음을 깨닫고, 이제는 고요한 바도 없으며 본래 평등하여 일여一如130)의 자리에 머물게 됨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니, 이는 경(『금광명경』)에서 말한 꿈에 하수河水를 건너는 비유와도 같은 것이다.131) 이 중에서 자세히 설명한 대의도 이와 같다.
b) 글을 풀이함
다음은 그 글을 해석하는 것이니, 사상에 의하여 사위四位를 분별하는 것이며, 사위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깨닫는 사람(能覺人)이요, -
001_0750_c_01L如經言無明住地其力最大。此論云
001_0750_c_02L當知無明力能生一切染法也。又所
001_0750_c_03L相之心。一心而來。能相之相。無明
001_0750_c_04L所起。所起之相。隨其所至。其用有
001_0750_c_05L差別。取塵別相。名爲數法。良由其
001_0750_c_06L根本無明違平等性故也。其所相心。
001_0750_c_07L隨所至處。每作總主。了塵通相。說
001_0750_c_08L名心王。由其本一心是諸法之總源
001_0750_c_09L故也。如中邊論云。唯塵智名心。差
001_0750_c_10L別名心法。長行釋云。若了塵通相名
001_0750_c_11L心。取塵別相名爲心法。瑜伽論中亦
001_0750_c_12L同是說。以是義故。諸外道等多於心
001_0750_c_13L王計爲宰主作者受者。由不能知其
001_0750_c_14L無自性隨緣流轉故也。總此四相名
001_0750_c_15L爲一念。約此一念四相。以明四位階
001_0750_c_16L降。欲明本依無明不覺之力。起生相
001_0750_c_17L等種種夢念。動其心源。轉至滅相。
001_0750_c_18L長眠三界。流轉六趣。今因本覺不思
001_0750_c_19L議熏。起厭樂心。漸向本源。始息滅
001_0750_c_20L相乃至生相。朗然大悟。覺了自心本
001_0750_c_21L無所動。今無所靜。本來平等。住一
001_0750_c_22L如牀。如經所說夢度河喩。此中應廣
001_0750_c_23L說大意如是。次消其文。約於四相以
001_0750_c_24L別四位。四位之中各有四義。一能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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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1_a_01L둘째는 깨달음의 대상(所覺相)이요, 셋째는 깨달음의 이익(覺利益)이요, 넷째는 깨달음의 범위(覺分齊)이다.
(a) 첫 번째 위:불각
처음의 위位에 “범부 정도의 사람”이라고 한 것은 깨닫는 사람이니, 지위가 십신十信132)에 있다. “먼저의 생각에 악이 일어난 것을 알기 때문에”라는 것은 깨달음의 대상을 나타냄이니 아직 십신에 들어가기 전에는 신身ㆍ구口의 일곱 가지 악업을 갖추어 일으켰다가 이제 신위信位에 들어가서는 일곱 가지 악업이 실로 나쁜 것임을 잘 알게 되기 때문에 ‘먼저의 생각에 악이 일어난 것을 알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며, 이는 멸상滅相을 깨달은 뜻을 밝힌 것이다. “뒤에 일어나는 생각을 그치게 하여 (그 악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는 것은 깨달음의 이익이니, 앞에서는 불각으로 인하여 일곱 가지 악념을 일으켰다가 이제는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멸상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각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바로 불각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깨달음의 범위를 밝힌 것이니, 멸상이 실로 나쁜 것임을 알았지만 멸상이 꿈이라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b) 두 번째 위:상사각
두 번째 위에 “이승의 관지와 초발의보살 정도의 사람”이라 한 것은 십해十解133) 이상의 삼현보살三賢菩薩134)이며, 십해의 초심初心을 발심주發心住라 한다. 이 발심주의 사람을 들어서 겸하여 후위後位까지 취하므로 초발의보살 등이라 말한 것이니 이는 깨닫는 사람을 밝혔다. “생각의 이상을 깨달아”라는 것은 깨달음의 대상을 밝힌 것이니, 앞서 말한 여섯 가지의 이상異相과 같으며 이는 내외를 분별하여 아我와 아소我所라고 계탁하는 것이다. 이 삼승인三乘人135)은 아我가 없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생각의 이상을 깨달았다고 한 것이다. 이는 소상所相인 심체가 무명에 의해 잠들게 되어 이상을 꿈꾸어서 모든 번뇌를 일으키다가 이제 점차 지혜와 상응하여 이상의 꿈으로부터 조금 깨닫게 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생각에 이상이 없으니”라는 것은 깨달음의 이익이니, 이미 이상의 꿈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저 여섯 가지 이상이 영구히 없어진 것이며 그러므로 생각에 이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추분별집착상을 버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상사각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깨달음의 범위이니,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를 분별하여 탐貪ㆍ진瞋 등을 일으킴을 -
001_0751_a_01L人。二所覺相。三覺利益。四覺分齊。
001_0751_a_02L初位中言如凡夫人者。是能覺人。位
001_0751_a_03L在十信也。覺知前念起惡者。顯所覺
001_0751_a_04L相。未入十信之前。具起七支惡業。
001_0751_a_05L今入信位。能知七支實爲不善。故言
001_0751_a_06L覺知前念起惡。此明覺於滅相義也。
001_0751_a_07L能止後念令不起者。是覺利益。前由
001_0751_a_08L不覺。起七支惡念。今旣覺故。能止
001_0751_a_09L滅相也。言雖復名覺卽是不覺者。明
001_0751_a_10L覺分齊。雖知滅相實是不善。而猶未
001_0751_a_11L覺滅相是夢也。第二位中言如二乘
001_0751_a_12L觀智初發意菩薩等者。十解以上三
001_0751_a_13L賢菩薩。十解初心。名發心住。擧此
001_0751_a_14L初人。兼取後位。故言初發意菩薩等。
001_0751_a_15L是明能覺人也。覺於念異者。明所覺
001_0751_a_16L相。如前所說六種異相。分別內外計
001_0751_a_17L我我所。此三乘人了知無我。以之故
001_0751_a_18L言覺於念異。欲明所相心體無明所
001_0751_a_19L眠。夢於異相。起諸煩惱。而今漸與
001_0751_a_20L智慧相應。從異相夢而得微覺也。念
001_0751_a_21L無異相者。是覺利益。旣能覺於異相
001_0751_a_22L之夢。故彼六種異相永滅。以之故言
001_0751_a_23L念無異相也。捨麤分別執著相故名
001_0751_a_24L相似覺者。是覺分齊。分別違順起貪
-
001_0751_b_01L추분별집착상이라 이름하며, 이러한 추한 집착상을 버리긴 했으나 아직 무분별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므로 상사각이라 하는 것이다.
(c) 세 번째 위:수분각
세 번째 위에 “법신보살” 등이라 한 것은 초지 이상 십지十地136)의 보살이니, 이는 깨닫는 사람이다. “생각의 주상을 깨달아”라는 것은 주상에서는 마음 밖에 경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인人ㆍ법法137)을 고집하여 안으로 반연하여 머무르다가 법신보살이 되어서는 이공二空138)을 통달하게 된 것이다. 이는 소상所相의 심체가 이미 이상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주상의 꿈에 잠들어 있다가, 이제 무분별지와 상응하여 주상의 꿈으로부터 깨닫게 되었음을 밝히려 하기 때문에 ‘생각의 주상을 깨달아’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는 깨달음의 대상이다. “생각에 주상이 없으니”라는 것은 네 가지 주상이 없어져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깨달음의 이익이다. “분별추념상을 여의었기 때문이며”라는 것은 인人ㆍ아我의 집착을 분별이라 한 것이니, 앞서의 이상의 추분별과 구별하기 위하여 ‘추麤’라 이름하지 않은 것이며, 법아집法我執을 추념이라 하였으니, 뒤에 생상의 미세념微細念139)과 다르기 때문에 추념이라 한 것이다. 비록 이미 무분별각無分別覺을 얻었지만 아직도 생상의 꿈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수분각이라 이름하니, 이는 깨달음의 범위이다.
(d) 네 번째 위:구경각
네 번째 위에 “보살지가 다한 정도의 사람”이란 무구지無垢地140)를 말하는 것이니, 이는 전체적으로 든 것이다. 아래 두 구절은 따로 이도二道를 밝혔다. “방편을 만족시켜서”라는 것은 방편도方便道141)이며, “일념이 상응하고”라는 것은 무간도無間道142)이다. 이는 『대법론』에서 “구경도究竟道143)란 금강유정을 말하며, 여기에 두 종류가 있으니 방편도섭方便道攝과 무간도섭無間道攝144)이다.”145)라고 한 말과 같으니, 이는 깨닫는 사람을 밝힌 것이다.“마음의 처음 일어나는 상을 깨달아”라는 것은 깨달음의 대상을 밝힌 것이니, 마음이 처음 일어난다는 것은 무명에 의하여 생상이 있어 심체를 미혹하여 생각을 움직이게 하다가, 이제 본각을 떠나서는 불각이 없으며 -
001_0751_b_01L瞋等。是名麤分別執著相。雖捨如是
001_0751_b_02L麤執著想。而猶未得無分別覺。故名
001_0751_b_03L相似覺也。第三位中法身菩薩等者。
001_0751_b_04L初地以上十地菩薩。是能覺人也。覺
001_0751_b_05L於念住者。住相之中。雖不能計心外
001_0751_b_06L有塵。而執人法內緣而住。法身菩薩
001_0751_b_07L通達二空。欲明所相心體前覺異相。
001_0751_b_08L而猶眠於住相之夢。今與無分別智
001_0751_b_09L相應。從住相夢而得覺悟。故言覺於
001_0751_b_10L念住。是所覺相也。念無住相者。四
001_0751_b_11L種住相滅而不起。是覺利益也。以離
001_0751_b_12L分別麤念相者。人我執。名分別。簡
001_0751_b_13L前異相之麤分別。故不名麤。法我執。
001_0751_b_14L名爲麤念。異後生相之微細念。故名
001_0751_b_15L麤念。雖復已得無分別覺。而猶眠於
001_0751_b_16L生相之夢。故名隨分覺。是覺分齊也。
001_0751_b_17L第四位中如菩薩盡地者。謂無垢地。
001_0751_b_18L此是總擧。下之二句。別明二道。滿
001_0751_b_19L足方便者。是方便道。一念相應者。
001_0751_b_20L是無間道。如對法論云。究竟道者。
001_0751_b_21L謂金剛喩定。此有二種。謂方便道攝。
001_0751_b_22L無間道攝。是明能覺人也。覺心初起
001_0751_b_23L者。是明所覺相。心初起者。依無明
001_0751_b_24L有生相。迷心體令動念。今乃證知離
-
001_0751_c_01L바로 동념動念이 정심靜心임을 증득하여 알기 때문에,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방향을 모를 때에는 동쪽을 서쪽이라고 하다가 방향을 알았을 때 서쪽이 곧 동쪽임을 아는 것과 같으니, 이 중에 있는 각의 뜻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마음에 초상이 없으니”라는 것은 깨달음의 이익을 밝힌 것이니, 본래 불각에 의하여 마음이 원래 일어난 것인데, 이제는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바가 없으니, 그러므로 마음에 초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앞의 세 가지 지위에서는 여읜 바가 있기는 하나 그 동념이 여전히 일어나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에 주상 등이 없다고 말하였고 이제 구경위究竟位에서는 동념이 모두 없어지고 오직 일심만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초상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미세념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며” 이하는 깨달음의 범위를 밝힌 것이니 이 중에 두 구절이 있다. 첫째는 바로 깨달음의 범위를 밝혔고, “그러므로” 이하는 경전을 인용하여 이론이 성립됨을 증명하였다. 업상의 동하는 생각은 생각들 중에서도 가장 미세하므로 미세념이라 하였으며, 이 상이 모두 없어져서 영구히 남는 바가 없기 때문에 멀리 여의었다고 말하였다. 멀리 여의었을 때가 바로 불지佛地에 있는 것이니, 앞의 세 자리에서는 심원心源에 아직 이르지 못하여 생상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여전히 무상無常하였으나, 이제 이 구경위의 자리에 와서는 무명이 영구히 없어지고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 다시는 동념을 일으킴이 없게 되었으므로 “심성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하니”라고 말하며, 다시 나아갈 바가 없는 것을 구경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아직 심원에 이르지 못하여 몽념이 다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없애려고 피안彼岸에 이르기를 바랐으나, 이제는 이미 심성을 보아서 몽상이 다 없어지고 자심이 본래 유전함이 없는 줄 깨달아 이제 고요히 쉬는 것도 없어지고 항상 스스로 일심이 일여一如의 자리에 머무르기 때문에 ‘심성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하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아니하므로, 이런 도리에 의하여 구경각이라 이름한다. 이는 바로 깨달음의 범위를 밝힌 것이다.
별기
문 만약 시각이 본각과 같아서 생멸을 여의었다고 말한다면 -
001_0751_c_01L本覺無不覺。卽動念是靜心。故言覺
001_0751_c_02L心初起。如迷方時謂東爲西。悟時乃
001_0751_c_03L知西卽是東。當知此中覺義亦爾也。
001_0751_c_04L心無初相者。是明覺利益。本由不覺。
001_0751_c_05L有心元起。今旣覺故。心無所起。故
001_0751_c_06L言心無初相。前三位中雖有所離。而
001_0751_c_07L其動念猶起未盡。故言念無住相等。
001_0751_c_08L今究竟位。動念都盡。唯一心在。故
001_0751_c_09L言心無初相也。遠離以下。明覺分齊。
001_0751_c_10L於中二句。初正明覺分齊。是故以下。
001_0751_c_11L引經證成。業相動念。念中最細。名
001_0751_c_12L微細念。此相都盡。永無所餘。故言
001_0751_c_13L遠離。遠離之時。正在佛地。前來三
001_0751_c_14L位。未至心源。生相未盡。心猶無常
001_0751_c_15L今至此位。無明永盡。歸一心源。更
001_0751_c_16L無起動。故言得見心性。心卽常住。
001_0751_c_17L更無所進。名究竟覺。又復未至心源。
001_0751_c_18L夢念未盡。欲滅此動望到彼岸。而
001_0751_c_19L今旣見心性。夢想都盡。覺知自心本
001_0751_c_20L無流轉。今無靜息。常自一心。住一
001_0751_c_21L如牀。故言得見心性。心卽常住。如
001_0751_c_22L是始覺不異本覺。由是道理名究竟
001_0751_c_23L覺。此是正明覺分齊也。
001_0751_c_24L別
記問。若言始覺同於本覺離生滅
-
001_0752_a_01L이 말이 어떻게 통할 것인가? 『섭대승론』에서는 “본(법신)은 이미 상주하지만, 말(응신과 화신)이 본을 의지해서 상속하여 항상 있다.”146)라고 하고 이어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답 두 논서(『기신론』과 『섭대승론』)에서 나타내려는 뜻이 다르므로 이치가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니, 왜인가? 이 (『기신론』) 논주의 뜻은 본래 불각에 의하여 정심靜心을 동요시키지만 이제 불각을 그쳐서 다시 본래의 고요함에 돌아가게 됨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상주’라고 하였다. 한편 저 『섭대승론』의 뜻은 법신은 본래 상주하여 움직이지 않지만 저 법신에 의하여 복福ㆍ혜慧의 두 가지 행동을 일으켜 만덕萬德의 과보를 감득할 수 있게 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미 인연에 의하여 일어났기 때문에 생멸을 여의지 않으며,147) 그러므로 ‘상속’이라 말하였다. 뜻을 갖추어서 설명하자면 비로소 만덕을 이루는 것에는 두 뜻을 갖추어야 한다.148) 앞의 뜻(『기신론』의 뜻)에 의하므로 상주하며 뒤의 뜻(『섭대승론』의 뜻)에 의하므로 생멸하는 것이니 생멸과 상주가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하나의 생각이 미혹하여 삼세를 두루하지만 일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하나하나의 털구멍이 모두 시방十方에 두루함과 같으니, 비록 시방에 두루하지만 한 털구멍도 더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리하여 부처와 부처가 이처럼 장애가 없는 것이니, 어찌 그 사이에 치우치게 집착하는 것을 용납하겠는가? 이는 『화엄경』의 게송에서 “모니牟尼가 삼세를 초월하셨으나 상호相好149)는 구족하시네. 무소주無所住에 머무르시어 법계가 다 청정하네. 인연 때문에 법이 생기고 인연 때문에 법이 없어지네. 이와 같이 여래를 볼 줄 알면 구경에 치혹癡惑을 멀리 여의리.”150)라고 한 것과 같다. 이제 두 논주가 각각 하나의 뜻을 서술하였으니 어찌 서로 방해됨이 있겠는가?
소 인용하여 증명하는 중에 “무념을 볼 수 있다면 곧 불지佛智에 향함이 된다.”라고 한 것은 인지因地에 있을 때 비록 미세념은 아직 여의지 못했으나 무념의 도리를 잘 보는 것이니, 이 잘 보는 것이 불지佛地에 향함이 된다고 하는 것이며, 이로써 불지에는 망념이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는 인因을 들어 과果를 증명한 것이다. -
001_0752_a_01L者。此說云何通。如攝論云。本旣
001_0752_a_02L常住。末依於本。相續恒在。乃至
001_0752_a_03L廣說。答。二意異故。理不相違。何
001_0752_a_04L者。此論主意。欲顯本由不覺動於
001_0752_a_05L靜心。今息不覺還歸本靜。故成常
001_0752_a_06L住。彼攝論意。欲明法身本來常住
001_0752_a_07L不動。依彼法身起福慧二行。能感
001_0752_a_08L萬德報果。旣爲因緣所起。是故不
001_0752_a_09L離生滅。故說相續。具義而說。始
001_0752_a_10L成萬德。要具二義。依前義故常住。
001_0752_a_11L依後義故生滅。生滅常住不相妨
001_0752_a_12L礙。以一一念迷徧三世不過一念
001_0752_a_13L故。如似一一毛孔皆徧十方。雖徧
001_0752_a_14L十方不增毛孔。佛佛如是無障無
001_0752_a_15L礙。豈容偏執於其間哉。如華嚴經
001_0752_a_16L偈云。牟尼離三世。相好悉具足。
001_0752_a_17L住於無所住。法界悉淸淨。因緣故
001_0752_a_18L法生。因緣故法滅。如是觀如來。
001_0752_a_19L究竟離癡惑。今二論主。各述一義。
001_0752_a_20L有何相妨耶。
001_0752_a_21L引證中。言能觀無念者則爲向佛智故
001_0752_a_22L者。在因地時。雖未離念。而能觀於
001_0752_a_23L無念道理。說此能觀爲向佛地。以是
001_0752_a_24L證知佛地無念。此是擧因而證果也。
-
001_0752_b_01L만일 인과를 통틀어 설명한 글을 인용하여 증명한다면, 『금고경』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즉, “모든 복도伏道151)에 의하여 기사심起事心152)이 멸하고, 법단도法斷道153)에 의하여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依根本心)154)이 멸하며, 승발도勝拔道155)에 의하여 근본심根本心156)이 다 없어진다.”157)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복도’는 30심三十心을 말하며, 기사심起事心이 멸한다는 것은 『기신론』 중의 추분별집착상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 바로 이상異相이 멸하는 것이다. ‘법단도’는 법신의 자리에 있는 것이며,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 멸하며’라는 것은 이 『기신론』 중의 분별추념상을 버린다는 말과 같으니 이는 바로 주상住相이 멸하는 것이다. ‘승발도’란 금강유정이며 ‘근본심이 다 없어진다’는 것은 『기신론』 중의 미세념을 멀리 여읜다는 말과 같으니 이는 생상生相이 다 없어진 것을 말한다. 이상으로 시각의 차별을 하나씩 밝혔다.
c.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음을 전체적으로 밝힘
논 또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알 만한 초상初相이 없는 것이며, 그런데도 초상을 안다고 하는 것은 곧 무념無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 중생을 깨달았다고 이름하지 못하는 것은 본래부터 생각마다 상속하여 아직 망념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니, 이를 무시무명無始無明이라 한다. 만약 망념이 없게 되면 심상心相의 생주이멸을 알게 되니 무념과 같아지기 때문이며 실로 시각의 차별이 없어지게 되니, 왜냐하면 사상四相이 동시에 있어서 모두 자립함이 없으며 본래 평등하여 각과 같기 때문이다.
소 세 번째는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음을 전체적으로 밝혔으니,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경각상究竟覺相을 거듭 밝혔고, 둘째는 바로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음을 밝혔다.
a) 구경각상을 거듭 밝힘
처음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바로 구경상究竟相을 나타냈고, 둘째는 각이 아닌 것을 들어서 각인 것을 나타냈으며, 셋째는 경계에 대하여 지혜가 만족함158)을 자세히 나타내었다.
(a) 바로 구경상을 나타냄
처음에 “또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이라 함은 위에서의 “마음의 처음 일어나는 상을 깨달아”라는 말을 나타낸 것이지, 깨달았을 때 초상이 있음을 안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알 만한 초상이 없는 것이며”라고 말한 것인데, 그러면서도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상을 깨달았다고 한 것은 -
001_0752_b_01L若引通說因果文證者。金鼓經言。依
001_0752_b_02L諸伏道起事心滅。依法斷道依根本
001_0752_b_03L心滅。依勝拔道根本心盡。此言諸伏
001_0752_b_04L道者。謂三十心。起事心滅者。猶此
001_0752_b_05L論中捨麤分別執著想。卽是異相滅
001_0752_b_06L也。法斷道者。在法身位。位根本心滅
001_0752_b_07L者。猶此中說捨分別麤念相。卽是住
001_0752_b_08L相滅也。勝拔道者。金剛喩定。根本
001_0752_b_09L心盡者。猶此中說遠離微細念。是謂
001_0752_b_10L生相盡也。上來別明始覺差別。
001_0752_b_11L又心起者。無有初相可知。而言知初相
001_0752_b_12L者。卽謂無念。是故一切衆生不名爲覺。
001_0752_b_13L以從本來念念相續。未曾離念。故說無
001_0752_b_14L始無明。若得無念者。則知心相生住異
001_0752_b_15L滅。以無念等故。而實無有始覺之異。
001_0752_b_16L以四相俱時而有。皆無自立。本來平等。
001_0752_b_17L同一覺故。
001_0752_b_18L第三總明始覺不異本覺。此中有二。
001_0752_b_19L一者重明究竟覺相。二者正明不異
001_0752_b_20L本覺。初中有三。一者直顯究竟相。
001_0752_b_21L二者擧非覺顯是覺。三者對境廣顯
001_0752_b_22L智滿。初中言又心起者者。牒上覺心
001_0752_b_23L初起之言。非謂覺時知有初相。故言
001_0752_b_24L無有初相可知。而說覺心初起相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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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2_c_01L마치 방향을 알았을 때 서쪽이 동쪽인 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이 여래가 마음을 깨달았을 때 처음의 동상動相이 바로 본래 고요한 것인 줄 아는 것이기 때문에 “곧 무념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b) 각이 아닌 것을 들어서 각인 것을 나타냄
“그러므로” 이하는 각이 아닌 것을 들어서 각인 것을 나타낸 것이니, 앞서 말한 것처럼 망념이 없는 것이 바로 각이므로 망념이 있는 것은 각이라 이름할 수 없다. 이것은 곧 금강심金剛心159) 이하의 일체 중생이 아직 무시무명의 망념을 여의지 못한 것이며, 그런 뜻에서 각이라고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는 사상의 꿈의 차별에 대하기 때문에 점차 깨닫는 것(漸覺)160)이라 말했지만 이제는 무명의 잠이 차이가 없는 점에 의하여 불각이라 말하니, 이는 『인왕경仁王經』161)에서 “처음 복인伏忍162)으로부터 정삼매頂三味에 이르기까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비추는 것은 견見이라 이름하지 못하니 이른바 견이란 살바야薩婆若163)이기 때문이다.”164)라고 말한 것과 같다.
(c) 경계에 대하여 지혜를 나타냄
“만약 망념이 없게 되면” 이하는 경계에 대하여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니, 만약 심원心源에 이르러 무념을 얻으면 곧 일체 중생은 일심이 동요하여 사상으로 차별된 것임을 두루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심상心相의 생주이멸을 알게 되니”라고 하였다. 다음에 “무념과 같아지기 때문이며”라는 것은 위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의심을 두어 말하기를 “부처는 무념을 얻고 중생은 망념이 있어 유ㆍ무가 현격하게 구별되는데, 어떻게 무념이 유념을 알 수 있느냐?”라고 하니, 이러한 의심을 짓기 때문에 이 의심을 제거하여 “중생의 유념이 본래 무념이니, 무념을 얻어서 저것과 평등하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념과 같아지기 때문이며’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이미 무념과 평등하게 되었기 때문에 모든 생각의 사상四相을 두루 알게 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b)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음을 밝힘
이 아래는 두 번째 바로 차별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비로소 망념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하나 실은 사상이 본래 일어남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니 무슨 불각을 기다려 시각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실로 시각의 차별이 없어지게 되니”라고 하였으며, 아래는 이 뜻을 해석한 것이다.
별기 사상의 일어남이 뜻으로는 전후가 있으나 본래부터 동시에 서로 의지하는 것이다.
소 사상이 동시에 있으니 이는 일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일심을 떠난 밖에는 따로 자체가 없기 때문에 -
001_0752_c_01L如覺方時知西是東。如是如來覺心
001_0752_c_02L之時。知初動相卽本來靜。是故說言
001_0752_c_03L卽謂無念也。是故以下。擧非顯是。
001_0752_c_04L如前所說無念是覺。是故有念不得
001_0752_c_05L名覺。是卽金剛心以還一切衆生未
001_0752_c_06L離無始無明之念。依是義故不得名
001_0752_c_07L覺。然前對四相之夢差別。故說漸覺。
001_0752_c_08L今約無明之眠無異。故說不覺。如仁
001_0752_c_09L王經言。始從伏忍至頂三昧。照第一
001_0752_c_10L義諦。不名爲見。所謂見者。是薩婆
001_0752_c_11L若故。若得以下。對境顯智。若至心
001_0752_c_12L原得於無念。卽能徧知一切衆生一
001_0752_c_13L心動轉四相差別。故言卽知心相生
001_0752_c_14L住異滅。次言以無念等故者。釋成上
001_0752_c_15L義。此中有疑云。佛得無念。衆生有
001_0752_c_16L念。有無隔別。云何無念能知有念。
001_0752_c_17L作如是疑。故遣之云。衆生有念本來
001_0752_c_18L無念。得無念與彼平等。故言以無念
001_0752_c_19L等故。是明旣得平等無念。故能徧知
001_0752_c_20L諸念四相也。此下第二正明無異。雖
001_0752_c_21L曰始得無念之覺。而覺四相本來無
001_0752_c_22L起。待何不覺而有始覺。故言實無始
001_0752_c_23L覺之異。下釋此義別記云。以四相生起。義
有前後。而從本已來。同
001_0752_c_24L時相
依。四相俱有爲心所成。離一心外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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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3_a_01L“동시에 있어서 모두 자립함이 없으며 모두 자립함이 없기 때문에 본래 평등하여 각과 같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별기 마치 바닷물의 움직임을 파도라고 말하지만 파도는 자체가 없기 때문에 파도의 움직임은 없는 것이고, 바닷물은 자체가 있으므로 바닷물의 움직임이 있는 것과 같이, 마음과 사상도 그 뜻이 또한 이와 같다. 이런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권능가경』에서 “대혜야, 칠식은 유전하지 않아서 고락苦樂을 받지 않으니 열반의 인因이 아니나, 여래장이란 고락을 받기를 인과 함께하여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한다.”165)라고 말하고, 또 『부인경夫人經』(『승만경』)에서 “이 육식과 심법지心法智166)의 이 칠법七法167)이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않아서 여러 고통을 심지 않으니,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전제前際168)가 없으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법이며, 모든 고통을 심으며,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있습니다.”169)라고 하고 또 “생사란 이 두 법이 바로 여래장이니, 세간에서 쓰는 말에 따라 사死가 있고 생生이 있는 것이지 여래장에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170)라고 하니 이 두 경이 똑같이 여래장이 생사에 유전하나 생사의 근본이 자체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자체가 없기 때문에 따로 유전함이 없으며, 상相이 이미 유전함이 없다면, 체體가 무엇에 의하여 움직이겠는가? 그러므로 여래장에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이러한 뜻에 의하므로 사상이 오직 일심이며, 불각이 바로 본각과 같은 것이니, 그러므로 ‘본래 평등하여 각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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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3_a_01L別自體。故言俱時而有皆無自立。皆
001_0753_a_02L無自立故本來平等。同一本覺也。
001_0753_a_03L別
記猶如海水之動。說名爲波。波無
001_0753_a_04L自體。故無波之動。水有自體。故
001_0753_a_05L有水之動。心與四相義亦如是。爲
001_0753_a_06L顯是義。故四卷經云。大慧。七識
001_0753_a_07L不流轉。不受苦樂。非涅槃因。如
001_0753_a_08L來藏者。受苦樂。與因俱。若生若
001_0753_a_09L滅。又夫人經云。於此六識及心法
001_0753_a_10L智。此七法刹那不住。不種衆苦。
001_0753_a_11L不得厭苦樂求涅槃。世尊。如來藏
001_0753_a_12L者。無前際。不起不滅法。種諸苦。
001_0753_a_13L得厭苦樂求涅槃。又云。生死者。
001_0753_a_14L此二法是如來藏。世間言說故有
001_0753_a_15L死有生。非如來藏有生有死。此二
001_0753_a_16L經意同明卽如來藏流轉生死。生
001_0753_a_17L死根本無自體。無自體故無別流
001_0753_a_18L轉。相旣無轉。體何由動。故言非
001_0753_a_19L如來藏有生有死。由是義故。四相
001_0753_a_20L唯是一心。不覺卽同本覺。故言本
001_0753_a_21L來平等同一覺也。
001_0753_a_22L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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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753_b_01L
- 1)여실공如實空 : 진여의 자체 내용을 표현하는 말. 진여의 체성은 온갖 사상을 초월하여 절대적인 것이므로 일체의 언설ㆍ사려를 부정해 버렸다는 뜻으로 공이라 한다. 이 공이란 뜻이 진여의 진실한 내용을 표시하므로 여실한 공이라 한다.
- 2)여실불공如實不空 : 여실은 진여의 다른 이름이니, 여실불공이란 진여는 참으로 실재實在이며 그 자체에는 온갖 무루 청정한 공능을 구비한 것이란 뜻이다.
- 3)『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44c).
- 4)자종상위自宗相違 : 인명론因明論의 종법宗法 9과九過 중 하나. 자교상위自敎相違라고도 한다. 자기가 속한 교파의 의견을 말할 때 도리어 여기에 상위하는 종宗을 세우는 것이다. 예컨대 승론勝論(ⓢ Vaiśeṣika)에서는 소리는 무상하다고 하는데, 그 파에 속하는 사람이 소리가 상주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여기서는 “이치는 말을 떠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말을 떠난 이치를 말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 5)자어상위自語相違 : 인명론의 종법 9과 중 하나. 자기의 언어에 모순이 있는 오류를 말한다. 예를 들면 “나의 어머니는 석녀石女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여기서는 “‘진여는 말을 끊었다’는 나의 말은 그 사실이 드러난 순간 없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또한 말로써 자기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자어상위의 과실에 빠진 것이다.
- 6)초단初段의 글 : 곧 이언진여離言眞如에 대한 말이다.
- 7)후단後段의 글 : 곧 의언진여依言眞如에 대한 말이다.
- 8)“언설상을 여의었으며”라고 한 것은 음성 따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요, “명자상을 여의었으며”라고 한 것은 명구名句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원효의 설명에 의한다.) 이 둘은 언설의 길이 끊어져 문혜聞慧(보고 듣고서 얻는 지혜)의 경계가 아니다.(법장의 설명에 의한다. 『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중[T44, 252b] 참조.)
- 9)심연상心緣相을 여의어서 : ‘심연’이란 마음을 일으켜 외경外境을 반연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외경을 반연한다는 것은 이미 명언名言으로 분별한다는 뜻이다. 법장은 의언분별依言分別이라 하였으니 같은 뜻이다. “심연상을 여의어서”란 명언의 분별로 반연할 수 없다는 뜻이며(원효의 설명에 의한다.) 심행처心行處가 멸하여 사혜思慧(고찰하여 얻는 지혜)의 경계가 아닌 것이다.(법장의 설명에 의한다.)
- 10)사품四品 : 각체상覺體相의 네 가지 대의大義다. 즉, 여실공경如實空鏡, 인훈습경因薰習鏡, 법출리경法出離鏡, 연훈습경緣薰習鏡을 말한다. 이 네 가지는 삼무성三無性이 나타내는 진여를 설명한다.
- 11)삼무성三無性 : 미迷ㆍ오悟의 모든 법을 유有의 관점에서 변계소집성ㆍ의타기성ㆍ원성실성의 삼성으로 나눔에 대하여 공空의 관점에서 삼무성을 세운다. ① 상무성相無性이란 변계소집성(분별성)의 것은 미정迷情의 앞에 나타나는 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니 노끈을 잘못 보아 뱀으로 여기지만 뱀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② 생무성生無性이란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성립되는 의타기성의 것은 일시적 가현假現한 모양에 불과하여 실성實性이 없으니 노끈은 삼(麻)과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노끈의 실체가 없는 것이다. ③ 승의무성勝義無性이란 진여는 원만 상주하는 것으로 만유의 근원인 원성실성(진실성), 곧 절대법이므로 아무런 모양도 없음을 말한다. 삼에서 노끈과 뱀의 모양을 인정하기 어려움에 비유한 것이다.
- 12)진실성眞實性 : 삼성三性 중 원성실성을 말한다.
- 13)분별성分別性 : 삼성 중 변계소집성을 말한다. 진제 역 『攝大乘論釋』 권5 「釋應知勝相」(T31, 181b) 참조.
- 14)공화空華 : 공중의 꽃이란 뜻.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지만 눈병이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이를 보는 일이 있다.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잘못 아는 것을 비유한다.
- 15)명언의 분별 : 명자名字와 언설言說의 분별이다.
- 16)수순隨順 : 먼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교계敎誡하여 신심을 일으키게 하고, 다음에 깊은 법문을 말하여 알기 쉽게 하는 것이다.
- 17)정관正觀 : 사관邪觀의 상대어. 관상觀想하려는 경계를 여실하게 관하는 것이니, 정견正見과 같다. 『觀無量壽佛經』(T12, 344a)에 “손 안의 것을 보듯이 모두 분명하게 아니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정관이라 하고, 이와 다르게 관한다면 사관이라 한다.(悉令明了如觀掌中。 作是觀者名爲正觀。 若他觀者名爲邪觀。)”라고 하였다.
- 18)중도관中道觀 : 중도는 편사偏邪한 미망迷妄을 여읜 법의 실리實理인 절대이성絶對理性을 말한다. 이 중도를 믿고 이것을 직접 체험하기 위한 실천 수행을 중도관이라 한다.
- 19)관지觀智 : 사리事理를 관견觀見하는 정지正智.
- 20)염법染法 : 정법淨法의 상대어. 번뇌와 수번뇌隨煩惱이니, 그 대상으로 반연하는 물物ㆍ심心의 제법, 악성惡性ㆍ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의 법을 말한다. 이것은 착하고 깨끗한 마음을 물들이는 것이므로 염법이라 한다.
- 21)망심妄心 : 진심眞心의 상대어.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이니, 무명 번뇌이다.
- 22)소취상所取相 : 인식 주관이 반연하는 대상이다.
- 23)능취견能取見 : 외경外境을 반연하는 인식 주체이다.
- 24)구의句義 : ⓢ padārtha. 원래는 말의 의미라는 뜻. 전轉하여 그 말에 상당하는 물物ㆍ인人을 의미하고 또 범주(승론의 六句義 등)ㆍ원칙ㆍ원리 등을 말한다.
- 25)심혜心慧 :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신계身戒에 대하여 심혜라 하니, 몸에 계戒를 지키고 마음에 혜慧를 닦는 것이다. ② 심수心數ㆍ심소心所와 같은 뜻이다. 여기서는 두 번째 뜻이다.
- 26)수론외도數論外道 : ⓢ Sāṃkhya. 인도 6파 철학의 하나. 카필라(ⓢ Kapila) 선인이 처음 주장하였다. 25제諦를 세워 본체 만법의 생기生起로부터 유정윤회有情輪廻의 시종始終과 해탈하는 일을 말하였다. 『金七十論』이 전하는데, 여기서 일체 만법은 인因과 과果이니 불과 뜨거운 것의 관계와 같이 인을 여의고 과가 없으며 과를 여의고 인이 없어서 차별할 수 없으므로 일一이라 주장한다.
- 27)오악五樂 : 다섯 가지 악기의 음악. 금슬琴瑟ㆍ생우笙竽ㆍ고鼓ㆍ종鍾ㆍ경죽磬竹 또는 고鼓ㆍ종鍾ㆍ탁鐸ㆍ경磬ㆍ도鞀를 말한다.
- 28)“하나하나의 근은 모든 경계를 취하여야 하며”란 안근眼根으로 색色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리(聲)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냄새(香)도 맡을 수 있어야 하며 맛(味)도 알 수 있어야 하고 촉각(觸)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하나의 경계로 모든 근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란 색경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안근뿐 아니라 이근耳根이나 비근鼻根, 설근舌根 또는 신근身根으로도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 29)승론외도勝論外道 : ⓢ Vaiśeṣika. 인도 6파 철학의 하나. 이異를 고집하는 학파. 일체 만법은 인因은 인이고 과果는 과여서 다르다고 주장한다.
- 30)청ㆍ황ㆍ적ㆍ백 등의 색이 색성과 다르다면 이는 소리나 냄새ㆍ맛 등과 같을 것이므로 그 청ㆍ황 등의 색은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 31)무참외도無慙外道 : 역일역이亦一亦異를 고집하는 학파. 일체법의 인과는 인이 없으면 과가 없고 인이 있으면 과가 있으므로 ‘일’이라 할 수 있고, 또 인은 인, 과는 과여서 다른 것이므로 ‘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등燈이 없으면 밝음이 없고 등이 있으면 밝음이 있으므로 같다고 할 수 있고, 등과 밝음과는 같은 곳을 점령한 것이 아니므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 32)여기에 생략된 부분을 『大乘廣百論釋論』 권8(T30, 235a)에 의하여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일一과 이異가 이미 성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유와 비유를 세우겠는가? 즉 일一과 이異는 상相은 다른데 체體가 같다고 말한다면 일체의 법은 모두 다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상異相이 이미 없으니 일상一相이 어떻게 있겠는가? 왜냐하면 일이一異의 두 상은 상대하여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一異既不成。 有非有焉立。 一異相異而言體同。 則一切法皆應無異。 異相既無。 一相何有。 一異二相相待立故。)”
- 33)사명외도邪命外道 : ⓢ Ajīvika. 비일비이非一非異를 고집하는 학파. 일체법의 인ㆍ과가 만일 인을 여의고서 과가 없을진댄 인이 없어지는 동시에 과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은 없어지고도 과는 있으므로 비일非一이고, 또 인과 과가 다르다면 인이 있어도 과는 없을 수 있고, 과가 있어도 인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터인즉 ‘비이非異’라고 주장한다.
- 34)『大乘廣百論釋論』 권8(T30, 234c~235b).
- 35)바로 위 논의 “일체의 중생이 망심이 있음으로 해서”부터이다.
- 36)『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1(H1, 739c).
- 37)『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9a).
- 38)『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4(H1, 765a).
- 39)알라야식(阿黎耶識) : ⓢ ālaya-vijñāna. 8식 또는 9식의 하나. 불교 유심론의 하나인 알라야연기(賴耶緣起)의 근본되는 식. 진제 등은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하고 현장은 장식藏識이라 번역한다. 앞의 것은 아阿를 짧은 음으로 읽어 ‘아’는 무無, ‘뢰야’는 멸진, 몰실沒失이라 번역하여 멸진ㆍ몰실하지 않는 식이라 하는 것이요, 뒤의 것은 아를 긴 음으로 읽어 가家, 주소住所, 저장소貯藏所의 뜻이 있으므로 장식이라 한 것이다. 『成唯識論』 권2(T31, 7c)에 의하면 ‘장藏’에 세 가지 뜻이 있다. ① 능장能藏은 만유를 내는 친인親因인 종자를 간직해 두는 식이란 뜻이다. ② 소장所藏은 8식 중 다른 7식에 의하여 염법의 종자를 훈습하여 간직하는 식이란 뜻이다. ③ 집장執藏은 제8식은 오래전부터 없어지지 않고 상주하므로 자아인 듯이 제7식에게 집착되는 식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주로 집장의 의미로 장식이라 하므로 아애집我愛執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이르면 알라야란 이름이 없어진다. 또 다른 이름으로 법상종에서는 불도 수행의 도정을 삼분하여 아뢰야ㆍ비파가毘播迦(ⓢ vipāka : 異熟)ㆍ아다나阿陀那(ⓢ ādāna : 我執)란 이름을 붙인다. ① 아뢰야는 제7말나末那(ⓢ manas : 意, 思量)가 제8식을 자아의 존재처럼 집착하는 자리에서의 제8식의 이름이다. ② 비파가는 이숙異熟이라 번역하니 선악의 업으로 인하여 받은 자리에서의 제8식의 이름이다. ③ 아다나는 부처님 지위에서의 제8식의 이름이다. 이미 자아의 집착이 없어지고 또 업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물질과 마음의 여러 법을 발현케 하는 종자와 오근을 집지執持ㆍ상속相續하는 자리의 제8식이므로 아다나라 한다. 이 식은 종자(이 식 속에 간직하는 깨끗하거나 더러운 세계를 발현할 수 있는 세력)ㆍ오근ㆍ기세간器世間을 소연所緣으로 하기 때문에 각자의 아뢰야로써 우주 만유를 전개하는 근본이라 한다. 『大乘起信論』에서의 알라야식은 유식의 알라야식과는 달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이에는 각의覺義와 불각의不覺義가 있다.
- 40)『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0b).
- 41)찰나刹那 : ⓢ kṣaṇa의 음사어. 일념一念으로 의역한다. 지극히 짧은 시간을 말하니, 『仁王經』 권상(T8, 826a)에 의하면 90찰나를 일념이라 하고 이 일념 중의 1찰나에 900번 생멸을 한다고 한다.
- 42)『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2b)에 “여래의 장은 선ㆍ불선의 인이니,……무시의 허망한 악습에 훈습된 것을 식장이라 이름한다.(如來之藏。 是善不善因。……爲無始虛僞惡習所薰。 名爲識藏。)”라고 하였다. 이 경의 이역본인 『大乘入楞伽經』 권5(T16, 621b)에 따르면, “오취온법은 심ㆍ의ㆍ의식의 습기가 인이 되어 증장되는데, 범우들은 여기에서 선ㆍ불선의 분별이 나오지만 성인들은 삼매를 현증하여 낙주하니 이것이 선무루법이다. 대혜야, 선ㆍ불선이란 8식을 말하니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곧 식장이라고 이름하는 여래장과 의와 의식 및 오식신이다. 저 오식신은 의식과 함께한다. 선ㆍ불선은 서로 전전 차별 상속 부단하여 체를 달리하여 생겨남(異體生)이 없으며 생하면 바로 멸하여 이것은 경境이 자심소연임을 모른다. 또한 선ㆍ불선법은 차례로 멸할 때 각각 식이 바로 생기는데 의식은 저 오식과 함께하며 여러 가지 차별형상을 취하여 찰나도 머물지 아니하니 이를 찰나법이라 한다. 식장이라고도 하는 여래장은 의, 의식 등의 여러 습기와 함께하니 이것이 찰나법이다. 무루습기는 찰나법이 아니다.(五取蘊法以心意意識習氣爲因而得增長。 凡愚於此而生分別謂善不善。 聖人現證三昧樂住。 是則名爲善無漏法。 復次大慧。 善不善者。 所謂八識。 何等爲八。 謂如來藏名藏識。 意及意識并五識身。 大慧。 彼五識身與意識俱。 善不善相展轉差別相續不斷。 無異體生生已即滅。 不了於境自心所現。 次第滅時別識生起。 意識與彼五識共俱。 取於種種差別形相。 剎那不住。 我說此等名剎那法。 大慧。 如來藏名藏識。 所與意等諸習氣俱。 是剎那法。 無漏習氣非剎那法。)”라고 하였다.
- 43)『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47b).
- 44)『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3b).
- 45)단변斷邊 : 단견斷見(ⓢ uccheda-dṛṣṭi)과 같다. 만유는 무상한 것이어서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서 공무空無에 돌아간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소견이다.
- 46)상변常邊 : 상견常見(ⓢ śāśvata-dṛṣṭi)과 같다. 사람은 죽으나 자아는 없어지지 않으며 오온은 과거나 미래에 상주 불변하여 간단間斷하는 일이 없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 47)금과 장엄구 : 원효가 본 『四卷楞伽經』(『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에는 “금장엄구金莊嚴具”로 되어 있으나, 『大乘入楞伽經』 권1(T16, 593b)에 “금과 장엄구(金與莊嚴具)”로 되어 있다.
- 48)전식轉識 : 능견상(능견식)을 말한다.
- 49)자진상식自眞相識 : 업식과 전식의 진상으로 이는 장식을 말한다. 원효는 이 자진상식을 알라야식으로 본다.
- 50)『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 51)『入楞伽經』 권7(T16, 557a).
- 52)『入楞伽經』 권2(T16, 522a).
- 53)불일의문不一義門 : 본각심이 망연妄緣에 의뢰하지 않아 진과 망이 구분되고 있으므로 자진상自眞相의 ‘불일의’이다.
- 54)불이의문不異義門 : 본각심이 무명에 훈습되어 생멸을 일으키면 이때는 진과 망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자진상의 ‘불이의’이다.
- 55)이숙식異熟識 : ⓢ vipāka-vijñāna. 알라야식의 다른 이름. 이숙이란 과果는 인因과 별류別類로 성숙된다는 뜻이다. 즉, 선악의 인에서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과를 낳는 것이다. 제8식을 이숙 또는 진이숙眞異熟이라 하고, 제8식으로부터 생긴 제6식의 이숙과異熟果인 부귀ㆍ현우賢愚ㆍ미추 등을 이숙생이라 한다. 유식에서 선악업의 과보로서의 제8식이 상속되는 기간 중의 제8식을 특히 이숙이라 한다.
- 56)『해심밀경解深密經』 : 당나라 현장 한역. 5권. 법상종의 근본 경전으로 8품에 나누어 유식의 깊은 뜻을 말한다. 특히 제2 「勝義諸相品」에서는 객관의 사상事相을 논술하고 제3 「心意識相品」에서는 주관의 정신 활동, 곧 알라야식에 대하여 논술하고 제4 「一切法相品」에서는 삼성三性을 논술하며 제5 「無自性相品」에서는 삼무자성三無自性과 삼시교三時敎를 말한다.
- 57)일一이거나 상常이라고 하는 견해들 : 정심淨心의 체는 무명으로 훈습되어도 수연隨緣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解深密經』에서는 이러한 상견常見을 타파하기 위하여 무無,즉 진여가 업번뇌에 감촉되어 유有로 일향생멸一向生滅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위의 상견을 극복한 것이다.
- 58)심왕心王ㆍ심소법心所法 : 심왕은 의식 작용의 본체로 객관 대상에 향하여 그 일반상(總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이다. 여기에 6식ㆍ8식ㆍ9식의 구별이 있다. 심소는 갖추어서는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 한다. 객관 대상을 인식할 때 그 일반상을 인식하는 심왕의 종속으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이다. 구사종에서는 46법, 유식종에서는 51법을 세운다.
- 59)생멸식에서는 심왕과 심소가 구분되어 전변해 나간다. 한편 『大乘起信論』에서 미세심인 제8식을 진망화합식이라 하여 심왕과 심소가 미분된 상태로 있다.
- 60)『大乘起信論』에서의 알라야식은 불생멸과 생멸의 화합식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진망화합식은 유식의 일향생멸식一向生滅識과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치료 목적이 다른 데서 강조점이 다르게 표현된 것일 뿐이다.
- 61)세 가지 힐난 : 진심이 다 없어짐(眞心有盡), 생사에 시작이 있음(生死有始), 일심이 다심을 일으킴(變作多心)을 말한다.
- 62)이 뜻 : ① 심체가 생멸함(心體生滅). ② 심체는 본래 고요한데 연을 따라 움직임(心體本靜而隨緣動). ③ 일심이 연을 따라 변하여 생멸을 일으킴(一心隨緣變作生滅).
- 63)남본 『大般涅槃經』 권8(T12, 649b).
- 64)『三無性論』 권상(T31, 871b).
- 65)상속문相續門 : 여기서는 생멸문의 상대가 되는 상속문의 본체를 뜻한다. 즉, 알라야식의 본체이다.
- 66)바닷물은 항상 상속하는 본체가 있지만 유동, 즉 물결이 일게 되며 또한 생멸하지만 바닷물의 본체는 증감이 없으므로 언제나 움직임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 67)“항상되는 것도 아니고”라 한 것은 유동함을 뜻하며 “단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 한 것은 움직임이 없음을 뜻한다. 부도不度는 불상不常과 같은 뜻이며, 불멸不滅은 부단不斷과 같은 뜻이다. 『合部金光明經』 권3(T16, 376c)에 “세간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비유하면 텅 빈 골짜기에 메아리가 건너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世間不一異。 譬如空谷響。 不度亦不滅。 唯佛能了知。)”라고 하였다.
- 68)『능가경종요楞伽經宗要』 : 원효 지음. 1권. 현존하지 않는다.
- 69)“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란 알라야식의 각의覺義와 불각의不覺義를 말한다.
- 70)『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1(H1, 740c).
- 71)『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4(H1, 767c).
- 72)절상絶相 : 불변의 진여를 말하니, 즉 진여문이다.
- 73)수연隨緣 : 물이 바람이란 연을 따라 물결이 일어남과 같이 진여가 무명의 훈습을 받아서 생멸을 일으킴을 이르니, 즉 생멸문이다.
- 74)『入楞伽經』 권1(T16, 519a).
- 75)『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1(H1, 741a).
- 76)『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0b), 『入楞伽經』 권7(T16, 556c), 『大乘入楞伽經』 권5(T16, 619c) 참조. 이 구절을 『楞伽阿跋多羅寶經』(『四卷楞伽經』)에 따라 해석하면 “제4선에서 진제해탈에 들어간 수행자는 해탈상을 짓고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여래장이라 이름하는 식장(알라야식)을 전의시키지 않으면 칠식은 유전하여 멸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저것(알라야식)을 원인으로 하고 (저것을) 반연하는 여러 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문ㆍ연각의 수행 경계가 아니다.(第四禪。 善眞諦解脫修行者。 作解脫想不離。 不轉名如來藏識藏。 七識流轉不滅。 所以者何。 彼因攀緣諸識生故。 非聲聞緣覺修行境界。)”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원효는 산스크리트문의 원본은 동일하나 역자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다고 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 77)『入楞伽經』 권11(T16, 556c).
- 78)이 알라야식은 생멸하는 쪽의 알라야식을 뜻한다. 『楞伽經』에서는 알라야식을 때로는 생멸하지 않는 여래장과 동일한 뜻으로, 때로는 생멸식으로 보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알라야식에 각의와 불각의 두 가지 뜻이 있게 된 것이다.
- 79)여기서는 알라야식을 생멸하지 않는 여래장과 같은 뜻으로 보아, 이러한 알라야식은 결국 생멸하는 알라야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 80)『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0b).
- 81)『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2b).
- 82)『入楞伽經』 권7(T16, 556b).
- 83)『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5(H1, 771b).
- 84)『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5(H1, 771b).
- 85)『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5(H1, 759b).
- 86)『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5(H1, 758b).
- 87)“비단 어두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라는 것은 불각이 없음을 의미하니, 이 답에서는 위의 물음의 불각이 없음과 각조의 작용이 있음의 두 가지를 모두 본각의 요건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 88)“이러 뜻”이란 본래부터 번뇌를 여읜 것을 끊음이라 보는 것(本來離惑名爲斷者)을 말한다.
- 89)『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8b).
- 90)이를 자세히 풀이하면 위에서처럼 “본각이 있기 때문에 본래 불각이 없고, 불각이 없기 때문에 끝내 시각이 없는 것이며, 시각이 없기 때문에 본래 본각이 없다.”가 된다.
- 91)『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48b).
- 92) 『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0b).
- 93)불지佛地 : 통교通敎 십지의 제10지, 제9지 보살이 최후에 번뇌장ㆍ소지장所知障의 습기를 끊고 성도하는 지위. 유식에서는 제10지 보살이 금강유정金剛喩定을 해탈하면 불지에 이른다고 한다.
- 94)금강유정金剛喩定 : 금강이 견고하여 다른 것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선정을 말한다. 대승에서는 제10지 보살이 소지장과 번뇌장의 종자를 한꺼번에 끊고 불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드는 선정이다.
- 95)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 : 십신十信의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의 관법이 완성되어 진무루지眞無漏智를 내고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하는 지위인 초주初住, 즉 발심주發心住의 보살을 말한다.
- 96)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著相 : 역경계와 순경계를 분별하여 탐ㆍ진 등을 일으킴. 이것은 상사각에서 버리는 것이다.
- 97)법신보살 : 초지初地 이상 십지十地까지의 보살을 뜻한다.
- 98)『大方等大集經』 권19(T13, 131c)에 “……생각생각의 생멸이 없는 것이 불지이다.(……無念念滅即是佛智。)”라고 한 것을 참조.
- 99)사상四相 : 제법의 생멸변천을 나타내는 생주이멸生住異滅 등 사상을 말한다. 사유위상四有爲相이라고도 한다.
- 100)『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52b).
- 101)살바다종薩婆多宗 : 소승 20부의 하나. 설일체유부를 말한다. 이 부는 아공법유我空法有,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를 주장하며, 또 일체 만법을 5위 75법으로 분류한다. 『大毘婆沙論』, 『六足論』, 『發智論』 등은 모두 이 부의 교리를 서술한 것이며, 『俱舍論』도 주로 이 교리를 밝혔다.
- 102)성실종成實宗 : 인도 하리발마訶梨跋摩가 지은 『成實論』을 근본 성전으로 삼는 종파. 이 종의 교의는 소승 비담毘曇의 일파로부터 다시 한걸음 나아가 아공我空 밖의 법공法空을 말한다. 그 실천문에서는 이공관二空觀을 철저히 하고, 삼종심三種心을 멸하는 동시에 삼계를 여읜다고 하며, 향상수행의 과정을 27위로 나눈다.
- 103)대승비밀사상大乘秘密四相 : 『大乘起信論』에서 말하는 사상四相을 뜻한다. 즉, 심성은 본래 사상이 없으나 무명의 훈습력에 의하여 생ㆍ주ㆍ이ㆍ멸의 사상을 내는 것이므로 사상을 깨달을 때는 전후 차별이 있으나 깨달은 바의 사상은 동시에 있는 것이다. 비밀이라 함은 심오하여 잘 알기 어렵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 104)전거 미상.
- 105)『不增不減經』(T16, 467b).
- 106)『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3b).
- 107)견분見分 : 객관의 사물이 인식하기에 적합하도록 주관에 나타나는 영상인 상분相分을 인식하는 작용이다.
- 108)상분相分 : 심식이 인식 작용을 일으킬 때 그와 동시에 인지할 그림자를 마음 가운데 떠오르게 하여 대상을 삼는다. 이것을 상분이라 한다.
- 109)미래장심未來藏心 : 미래장심이란 아직 현재시에 이르지 않은 마음을 말한다. 미래장이란 독자부犢子部에서 우주 만유를 과거장ㆍ현재장ㆍ미래장ㆍ무위장ㆍ불가설장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 중 앞의 3장은 유위법의 집합에 속하여 삼세장ㆍ유위취有爲聚라 하고, 뒤의 2장은 비유위비무위취 또는 비이취非二聚라 한다.
- 110)아我와 아소我所 : ① 아(ⓢ ātman)란 주재主宰, 자아自我, 신체身體의 뜻이다. 자기의 자체, 곧 자기 주관의 중심으로 일반 불교에서는 이것을 나누어 실아實我ㆍ가아假我ㆍ진아眞我 3종으로 분별한다. 실아는 인도 재래의 외도가 주장하는 것으로 범부의 망정妄情에 스스로 존재한 아의 사상을 말한다. 이 아는 무상無常이 아니고 상주하여 독존하는 것으로 그 능동能動은 국왕ㆍ재상과 같이 자재한 것이다. 가아는 실제로 나라고 할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온이 화합하여 인과가 상속하는 몸이기 때문에 다른 것과 구별하여 아라고 이름한 것이다. 진아는 대승에서만 말하는 것으로 열반의 사덕인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 중 아덕我德을 말한다. 진眞으로써 성품을 삼는 뜻으로 진아라 한다. ② 아소란 아소유我所有의 약어로 자신을 아라 하며 자신 이외의 만물을 아소유라 말한다. 아의 정情이 있는 자는 자신 이외의 사물을 모두 나의 소유라 생각한다. 『注維摩詰經』 권5(T38, 376c) 참조.
- 111)① 아견我見은 신견身見이라고도 한다. 보통으로 ‘아’라 함은 오온이 화합한 것으로서 참으로 ‘아’라 할 것이 없는데 ‘아’가 있는 줄로 잘못 아는 견해이다. ② 아치我癡는 ‘아’의 진상을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의 도리에 미혹한 번뇌이다. ③ 아애我愛는 나라고 애착하는 번뇌이니 이른바 자애심自愛心이다. ④ 아만我慢은 나를 믿으며 스스로 높이는 교만이다.
- 112)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견見 : 유식학의 오위 백법五位百法 중 51심소유법五十一心所有法에서 근본번뇌에 해당하는 여섯 가지이다. ① 탐(ⓢ rāga)은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대하여 마음으로 애착케 하는 정신 작용, 탐욕이다. ② 진(ⓢ dveṣa)은 진에瞋恚이다.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심리 작용이다. ③ 치(ⓢ moha)는 고통의 근원과 모든 번뇌의 근본을 말하며 사물의 진상을 밝히 알지 못하므로 혼미함이 있다고 한다. ④ 만(ⓢ māna)은 자기의 용모ㆍ재력ㆍ지위 등을 믿고 다른 이에 대해서 높은 체 뽐내는 번뇌이다. ⑤ 의(ⓢ vicikitsā)는 미迷의 인과나 오悟의 인과의 도리에 대하여 유예猶豫하고 결정치 못하는 정신 작용이다. ⑥ 견(ⓢ dṛṣṭi)은 악견惡見을 말한다. 모든 법의 진리에 대하여 가지는 잘못된 견해이다.
- 113)『신론新論』 : 『瑜伽師地論』의 현장 역을 말한다.
- 114)『瑜伽師地論』 권55(T30, 603a), 같은 책 권8(T30, 313b) 참조.
- 115)생기식生起識 : 전육식前六識을 말한다. 이를 분별사식分別事識이라고도 하니, 육근六根에 의하여 그 대경對境인 육진六塵을 대하며 과거ㆍ현재ㆍ미래에 걸쳐 자타의 여러 가지 사상事相을 분별하고 사려하는 뜻으로 이렇게 이른다. 『楞伽經』에서는 알라야식을 제외한 나머지 말나末那 등의 칠식을 총칭하나, 『大乘起信論』에서는 전육식을 가리킨다. 『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참조.
- 116)신身ㆍ구口 일곱 가지의 악업 : 신삼구사身三口四를 말한다. ① 신삼身三은 살생, 투도偸盜(남의 것을 훔치는 것), 사음邪婬(자기 처첩이 아닌 다른 여자와 사음하는 것)이다. ② 구사口四는 망어妄語(거짓말), 기어綺語(교묘하게 꾸미는 말), 악구惡口(남을 성내게 할 만한 나쁜 말), 양설兩舌(두말하는 것)이다.
- 117)무명주지無明住地 : 오주지五住地의 하나. 근본무명을 말한다. 무명은 모든 번뇌의 소의所依, 소주所住가 되고 또 번뇌를 내는 근본이 되므로 주지라 한다.
- 118)『勝鬘經』(T12, 220a).
- 119)『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8b). 다만 논에는 ‘無明力’이 아니고 ‘無明’으로 되어 있다.
- 120)“소상所相의 심”은 사상四相이 소의所依로 하는 심을 말한다.
- 121)“능상能相의 상”은 사상을 말한다.
- 122)수법數法 : 심소유법心所有法 또는 심수법心數法이라고도 한다. 경계의 별상別相을 인식하는 작용이므로 능상지상能相之相이며, 소상지심所相之心의 세細에 비하여 추麤한 것이다.
- 123)심왕心王 : 이는 경계의 통상通相을 인식하는 작용이므로 소상지심所相之心이며, 능상지상能相之相의 추麤에 비하여 세細한 것이다.
- 124)『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 진제 한역. 2권. 이 논의 게송 부분은 미륵이 짓고, 장항(산문) 부분은 세친이 지었다. 현장 역 『辯中邊論』과 동본이역이다.
- 125)『中邊分別論』 권상(T31, 451c).
- 126)『中邊分別論』 권상(T31, 451c).
- 127)『瑜伽師地論』 권3(T30, 291b) 참조.
- 128)몽념夢念 : 실체가 없이 무명에 의하여 나타나는 허망한 생각이란 뜻이다.
- 129)부사의훈不思議熏 : 갖추어서는 불가사의훈不可思議熏이라 한다.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훈습할 수 없는 곳에 훈습을 하기 때문에 불가사의훈이라 한다. 『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에는 “부사의훈과 부사의변은 현식의 인이다.(不思議薰及不思議變。 是現識因。)”라고 하였다.
- 130)일여一如 : ‘일’은 절대 유일, ‘여’는 꼭 같다는 뜻이니 차별 없이 평등한 것이다.
- 131)『合部金光明經』 권1(T16, 364c)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에서 큰 강물에 자기 몸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손발을 허우적거려 흐름을 거슬러 오르고자 하여, 그 마음에 긴장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렀다. 꿈에서 깬 후에는 강물에 피안과 차안의 구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생사의 망상이 다 멸해 버리면 각覺이 청정하여지나 깨달음(覺)의 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譬如有人於臥寐中。 夢見大水流泛其身。 運手動足逆流而上。 以其心力不懈退故。 從於此岸得至彼岸。 夢既覺已。 不見有水彼此之岸。 生死妄想既滅盡已。 是覺清淨。 不爲無覺。)”라고 하였다.
- 132)십신十信 :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 52위 중 처음의 10위. 부처님의 교법을 믿어 의심이 없는 지위. 신심信心, 염심念心, 정진심精進心, 혜심慧心, 정심定心, 불퇴심不退心, 호법심護法心, 회향심廻向心, 계심戒心, 원심願心이다.
- 133)십해十解 : 십주十住와 같다.
- 134)삼현三賢 : 소승ㆍ대승에 따라 구별이 있다. ① 대승은 보살수행의 지위인 십주, 십행, 십회향위에 있는 보살을 말한다. ② 소승은 오정심위五停心位, 별상념주위別相念住位, 총상념주위總相念住位를 말한다. 이들은 성위聖位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위이다.
- 135)삼승인 : 성문ㆍ연각ㆍ보살을 말한다. 승乘은 물건을 실어 옮기는 것이니, 부처님의 교법이 중생을 실어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성문승인은 사제四諦의 법문을 듣고 이를 관하여 해탈을 얻는 이, 연각승인은 스승에게 가지 않고 12인연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 이, 보살승인은 육바라밀의 법문에 의하여 스스로 해탈하고 남을 해탈케 하여 부처를 이루는 이를 말한다.
- 136)십지十地 : 보살수행의 52계위 중 제41위로부터 제50위. 이 10위는 불지佛智를 생성하고 능히 주지住持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온갖 중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하는 것이 마치 대지大地가 만물을 싣고 이를 윤익潤益하게 함과 같으므로 지地라 이른다. 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발광지發光地, 염혜지染慧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 원행지遠行地,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
- 137)인人ㆍ법法 : 인아집人我執과 법아집法我執을 말한다.
- 138)이공二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즉, 인아집과 법아집을 깨친 것. 아공이란 것은 중생은 오온이 화합한 것이므로 아我라고 할 실체가 없다는 것이고, 법공이란 것은 오온의 자성自性도 공하다는 것이다.
- 139)미세념微細念 : 생상生相의 업상ㆍ전상ㆍ현상을 미세념이라 한다. 이는 마음의 극히 미세한 작용이므로 불지佛地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를 다 없애지 못한다.
- 140)무구지無垢地 : 보살 십지十地 중 제2지. 이구지離垢地라고도 한다. 혹은 보살계위 중 제51위인 등각보살等覺菩薩을 가리키기도 한다. 『四敎儀』 권9(T46, 752c)에 “여섯째, 등각위를 밝히는 것이니, 곧 등각성이다. 보살의 명칭의 측면에서는 등각불지라 하고, 불지의 측면에서는 금강심보살 또는 무구지보살이라고 한다.(六明等覺位。 即是等覺性。 若望菩薩名等覺佛地。 若望佛地。 名爲金剛心菩薩。 亦名無垢地菩薩。)”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두 번째 등각보살의 뜻이다.
- 141)방편도方便道 : 방편을 만족한 단계를 방편도라 한다. 여기서 방편이란 진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그 전에 닦는 가행을 말하므로 자량위資量位 30심(十住ㆍ十行ㆍ十廻向)을 지나 난煖ㆍ정頂ㆍ인忍ㆍ세제일법世第一法의 순결택분順決擇分을 닦은 가행위까지를 말한다.
- 142)무간도無間道 : 방편을 만족한 후 다시 노력 정진한 공이 현저하여 진지眞智를 발하고 번뇌를 모두 끊은 무루지無漏智의 자리를 말한다. 번뇌로 인해 간격間隔되지 않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한다. 구역에서는 무애도無礙道라고 한다.
- 143)구경도究竟道 : 이理의 지극함을 말함. 『대지도론』 권71(T25, 559b9)에서는 “究竟道者 所謂諸法實相 畢竟空”이라 하였다. 여기서는 금강유정을 말한다.
- 144)구경도 가운데 방편도라는 것은 제10지의 승진분勝進分 중에서 근본무명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대로 관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방편을 닦는 것이다. 이 방편이 성만한 최후의 일념이 바로 무간도이다. 『二障義』(H1, 805a) 참조.
- 145)『阿毘達磨雜集論』 권10(T31, 742b), 『阿毘達磨集論』 권5(T31, 685c).
- 146)세친 석ㆍ진제 역 『攝大乘論釋』 권15(T31, 269b).
- 147)만덕이 생멸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 148)“비로소 만덕을 이루는 것(始成萬德)”은 『大乘起信論』의 “본래의 고요함에 돌아가게 됨(還歸本靜)”과 『攝大乘論』의 “만덕의 과보를 감득할 수 있게 됨(能感萬德報果)”을 다 포함하고 있다.
- 149)상호相好 : ⓢ lakṣaṇa-vyañjana. 용모 또는 형상. ‘상’은 몸에 드러나게 잘생긴 부분이고 ‘호’는 상 중의 세상細相에 대하여 말한다. 이 상호가 모두 완전하여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것을 불신佛身이라 하니, 불신에는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있다.
- 150)60권본 『華嚴經』 권7(T9, 442b).
- 151)복도伏道 : 번뇌를 제복制伏하여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삼현보살은 번뇌를 제복할 수는 있으나 아주 끊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상異相은 멸한다.
- 152)기사심起事心 : 분별사식分別事識을 말한다.
- 153)법단도法斷道 : 멸도滅道ㆍ대치도對治道라고도 한다.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려 다시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계위로 십지보살이 주상住相을 멸하는 단계이다.
- 154)근본에 의지하는 마음(依根本心) : 제7식을 말한다.
- 155)승발도勝拔道 : 금강유정의 단계이며 생상生相이 다 없어진다.
- 156)근본심根本心 : 미세념, 즉 제8식을 말한다.
- 157)『合部金光明經』 권1(T16, 363b) 참조.
- 158)지혜가 만족함 : 불경계佛境界를 이른다.
- 159)금강심金剛心 : 금강유정과 같다.
- 160)점차 깨닫는 것(漸覺) : 상사각과 수분각을 말한다.
- 161)『인왕경仁王經』 : 2본이 있다. 구본은 구마라집 한역 『仁王般若波羅蜜經』 2권, 신본은 불공 한역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2권이다. 부처님이 16국왕으로 하여금 각각 그 나라를 보호하고 편안케 하기 위해서는 반야바라밀을 수지하여야 한다고 설한 경이다. 예부터 이 경과 『法華經』, 『金光明經』을 호국3부경이라 한다.
- 162)복인伏忍 : 『仁王經』에 나오는 5인忍의 하나. 번뇌를 끊지 못하였으나 관해觀解를 익혀 이를 굴복시키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지위. 곧 십주, 십행, 십회향의 삼현보살을 말한다.
- 163)살바야薩婆若 : ⓢ sarvajña의 음사어. 일체지一切智로 의역한다. 불과佛果에서 일체법을 중득하는 지혜이다.
- 164)『仁王般若波羅蜜經』 권하(T8, 832b6)에 “습인에서 정삼매까지는 모두 일체 번뇌를 조복시킨다고 이름하고, 무상의 믿음으로 일체 번뇌를 단멸시키고 해탈지가 생겨나 제일의제를 비추지만 ‘견’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른바 ‘견’이란 살바야이다.(從習忍至頂三昧。 皆名爲伏一切煩惱。 而無相信。 滅一切煩惱。 生解脫智。 照第一義諦。 不名爲見。 所謂見者是薩婆若。)”라고 하였다. 여기서 ‘습인’은 습종성이니, 곧 복인 가운데 하품에 해당하는 십주를 말하고, ‘정삼매’는 제10지를 말하며, ‘무상신(인)’은 초지를 말한다.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권하(T8, 842b) 참조.
- 165)『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2b).
- 166)심법지心法智 : 앞의 육식은 분별사식이며, 여기서 심법지란 육진경계에 대하여 염厭, 흔欣을 일으키는 혜慧의 심수, 즉 제7식을 말한다.
- 167)칠법七法 : 전칠식을 말한다.
- 168)전제前際 : 삼제三際의 하나. 곧 과거이다.
- 169)『勝鬘經』(T12, 222b).
- 170)『勝鬘經』(T12, 222b).
- 1)「海」上有「唐」{甲}。
- 2)「違」作「通」{甲}。
- 3)「當」作「審」{甲}。
- 1)「免」作「兎」{甲}。
- 1)「動」作「感」{甲}。
- 1)「明」作「時」{甲}。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은정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