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 十門和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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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원효 스님 지음(元曉撰)
『십문론十門論』이란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 이미 원음圓音에 의해 중생 등을……(알맹이 없는 유有의 주장이) 1) 비처럼 몰아치고 헛된 공의 논쟁 2)은 구름처럼 어지럽다. 어떤 사람은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나만이 그렇다고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니, 이러한 논쟁은 끝이 없다. 큰……(공空을 싫어하고 유有를 좋아하니) 3) 산을 (오르면서) 골짜기로 들어가고, 유有를 증오하고 공空을 떠받드니 나무를 버리고 숲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유하면 청색과 남색은 같은 바탕이고 얼음과 물은 근원이 같다고 할 것이다. 거울은 수많은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4) 갈라진다.……원융하게 통(하도록)하여 서술하니, 그 제명題名이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다. 5)

1. 공과 유(空有)6)
(진실로 유有라고 하지만) 7) 여기에서 인정하는 유有는 공空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앞의 설명과 같다 하더라도 증익집增益執 8)은 아니다. 유有라고 인정해도 실제로 유有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인정하는 유有는 유有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뒤의 설명과 같다 하더라도 손감집損減執 9)은 아니다.
앞에서 실제로 유有라고 한 것은 공空과 다르지 않은 유이며, 뒤에서 유有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공空과 다른 유有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有와 공空) 둘 다 허용하더라도 서로 어긋난다고 할 수는 없다. 또 부정이 아니기 때문에 다 인정한다면, 긍정이 아니기 때문에 둘 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부정은 긍정과 다른 것이 아니다. 유有와 공空이 다르지 않은 것도 이와 같다. 둘 다 허용하지 않더라도 본래의 명제를 잃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구四句 10)를 다 갖추고 있어 모든 오류로부터 벗어났다고 하겠다. 11)
비록 논리를 세워 모든 반박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말이 감추고 있는 뜻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유有라고 말하면서 공空과 다르지 않다고 하니 여기에서 인용한 설명은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유有가 실재한다면 무無와 다르다. 소의 뿔이 토끼의 뿔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공空과 다르지 않다면 결코 유有는 아니다.

001_0838_a_01L[十門和諍論]

001_0838_a_02L十門和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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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8_a_04L1)元曉撰

001_0838_a_05L
2) [1] 十門論者如來在世已賴圓音衆生
001_0838_a_06L等…………雨驟空空之論雲奔或言
001_0838_a_07L我是言他不是或說我然說他不然
001_0838_a_08L遂成河漢矣木…………山而投廻谷
001_0838_a_09L憎有愛空猶捨樹以赴長林譬如靑藍
001_0838_a_10L共體氷水同源鏡納萬形水分……
001_0838_a_11L……通融聊爲序述名曰十門和諍論

001_0838_a_12L[空和有]
3) [2] [1] 此所許有不異於空故雖如前而
001_0838_a_13L非增益假許是有實非墮有此所許
001_0838_a_14L非不墮有故雖如後而非損減
001_0838_a_15L說實是有者是不異空之有後說不墮
001_0838_a_16L有者不墮異空之有是故俱許而不相
001_0838_a_17L由非不然故得俱許而亦非然
001_0838_a_18L俱不許此之非然不異於然喩如其
001_0838_a_19L不異於空是故雖俱不許而亦不失
001_0838_a_20L本宗是故四句並立而離諸過失也
001_0838_a_21L雖設徵言離諸妨難言下之旨彌不
001_0838_a_22L可見如言其有不異於空此所引喩
001_0838_a_23L本所未解何者若實是有則異於無
001_0838_a_24L喩如牛角不同兎角若不異空定非

001_0838_b_01L이것은 토끼 뿔이 공空과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지금 유有가 공空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세간에 그러한 유례가 없으니, 그것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겠는가. 설사 유有가 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동유同喩 12)로써 입증한다고 하여도 앞의 비량比量 13) 때문에 부정과不定過 14)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대가 절묘한 방법으로 모든 공방을 세워 언설이 의지意旨에 미치지 않는다고 곧바로 반박하지만 인용한 비유는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소뿔은 있는 것이 아니고 토끼 뿔도 없는 것이 아니니, 그대가 취하는 것은 다만 명칭과 언어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에 의거하여 언어가 끊어진 법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가리키는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달인 것처럼, 그대는 지금 바로 말에 따라 뜻을 취함으로써 말로써 할 수 있는 설명을 끌어와 말을 떠난 법을 반박하고 있다. 마치 손가락 끝을 보고 달이 아니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반박이 정교할수록 이치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2.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15)(遍計所執相和依他起相)
그러나 지금 다시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여 ‘언어를 떠난 것’을 비유로 설명하겠다. ‘허공이 일체의 길고 짧은 등의 색色과 굽히고 펴는 등의 업業을 모두 수용하는데, 이때 모든 색과 색업을 제거하면 (사라진) 물체만큼의 허공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1장丈의 나무를 제거한 곳에는 1장丈에 해당하는 허공이 나타나고, 1척尺의 나무를 제거한 곳에는 1척尺에 해당하는 허공이 드러난다. 구부림을 없앨 때 구부리는 것만큼의 허공이 나타나고, 편 것을 치울 때 편 것만큼의 허공이 나타난다. 16) (색과 색업을 제거하고) 나타나는 허공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것 같지만 언설을 떠난 사事 17)(事法)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공한 사법事法은 응하는 바를 따라 이전과 같이 장단長短 등의 색色을 수용한다.
그러나 그 수용된 색은 허공과 다르다. 그것은 범부의 삿된 상념과 분별로 취한 것이기 때문에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 18)의 제법諸法에 비유한다. 이는 비록 있는 것이 아니지만 공空과 다르다고 분별하기 때문이다. 또 (색을) 수용하는 사법事法이 공空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모든 범부가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타기상依他起相 19) 제법諸法에 비유한다. 이는 실제로 유有이지만 공空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자성自性은 의지하는 것 없이 독자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의타기상依他起相에 의거하여 변계소집遍計所執이 시설되는 것이다.

001_0838_b_01L是有喩如兎角無異於空今說是有
001_0838_b_02L而不異空世間無類如何得成設有
001_0838_b_03L同喩立不異空由前比量成不定過
001_0838_b_04L汝雖巧便設諸妨難直難言說不
001_0838_b_05L反意旨所引譬喩皆不得成何以故
001_0838_b_06L牛角非有兎角不無故如汝所取
001_0838_b_07L是名言故我寄言說以示絕言之法
001_0838_b_08L如寄手指以示離指之月汝今直尒
001_0838_b_09L如言取義引可言喩難離言法但看
001_0838_b_10L指端責其非月故責難彌精失理彌
001_0838_b_11L遠矣
[遍計所執相和依他起相]
然今更引聖說離言之喩喩知虛
001_0838_b_12L空容受一切長短等色屈申等業
001_0838_b_13L時除遣諸色色業無色虛空相似顯現
001_0838_b_14L謂除丈木處卽丈空顯除尺木處
001_0838_b_15L尺空顯除屈屈顯除申申顯等當知
001_0838_b_16L卽此顯現之空似長似短離言之事
001_0838_b_17L如是空事隨其所應前時容受長短等
001_0838_b_18L然所容受色異於虛空凡夫邪想
001_0838_b_19L分別所取故喩遍計所執諸法雖無所
001_0838_b_20L有而計異空故能容受事不異虛空
001_0838_b_21L非諸凡夫分別所了故喩依他起相諸
001_0838_b_22L雖實是有而不異空故又彼遍計
001_0838_b_23L所執自性非無所依獨自成立依他起
001_0838_b_24L相爲所依止遍計所執方得施設喩如

001_0838_c_01L허공과 같이 언설을 떠난 사법事法이 그 응하는 바를 따라서 모든 색을 수용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보살이 망상분별을 떠나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을 제거할 때 언설을 떠난 법을 관조할 수 있다. 이때 제법의 언설을 떠난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모든 색상色相을 제거할 때, 그 제거한 곳을 따라 색을 여읜 허공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비량比量의 도리에 의해 제법이 모두 허공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금고경金鼓經』 20)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 것과 같다.

만일 그것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일체 제불과 보살의 행상도 집착일 것이다. 왜 그러할까. 일체 성인은 행법行法과 비행법非行法 21)을 실천하면서 함께 지혜행智慧行을 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 따라서 오음五陰은 유有가 아니므로 인연을 따라 생하는 것이 아니며, 오음은 유有가 아님도 아니니 성인의 경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어가 미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혜도경慧度經』(『반야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비록 생사의 길이 멀고 중생성衆生性의 부류가 많다고 하지만 생사의 한계와 중생성의 한계는 허공과 같이 끝이 없다. 22)

『중관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열반의 실제와 세간의 실제, 이 두 가지의 실제가 다르다고는 털끝만큼도 인정할 수 없다. 23)

『유가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일 모든 유정이 불타가 설한 깊은 공성과 상응하는 경전의 은밀한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에서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사법事法이 없으며, 무생무멸無生無滅이다.”라고 설하거나 “일체법은 모두 허공과 같고 몽환과 같다.”고 설하는 말을 듣고서,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이 경전을 비방하며 불설佛說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살은 그들을 위하여 이치대로 (여래가 설한 밀의의 깊은 의취를) 회통하고 여실하게 화회和會하여 저 유정들을 모두 포섭하고 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 경에서는 일체제법이 모두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언설言說로 이루어진 제법의 자성自性이 모두 없다.”고 설한 것이다.

001_0838_c_01L虛空離言之事隨其所應 〈卷上第九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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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受諸色菩薩若離妄想分別除遣遍
001_0838_c_03L計所執相時便得現照離言之法尒時
001_0838_c_04L諸法離言相顯喩如除遣諸色相時
001_0838_c_05L其除處離色空顯由如是等比量道理
001_0838_c_06L應知諸法皆等虛空如金鼓經言
001_0838_c_07L言其異者一切諸佛菩薩行相則是執
001_0838_c_08L何以故一切聖人於行非行法中同
001_0838_c_09L智慧行是故不異是故五陰非有
001_0838_c_10L從因緣生非不有五陰不過聖境界故
001_0838_c_11L非言語之所能及慧度經言雖生死道
001_0838_c_12L衆生性多而生死邊如虛空衆生
001_0838_c_13L性邊亦如虛空中觀論云涅槃之實際
001_0838_c_14L及與世間際如是二際者無毫氂許異
001_0838_c_15L瑜伽論云若諸有情於佛所說甚深空
001_0838_c_16L性相應經典不解密意於是經中
001_0838_c_17L一切法皆無自性皆無有事無生無滅
001_0838_c_18L說一切法皆等虛空皆如幻夢彼聞
001_0838_c_19L是已心生驚怖誹謗此典言非佛說
001_0838_c_20L菩薩爲彼如理會通如實和會攝彼
001_0838_c_21L有情爲彼說言此經不說一切諸法
001_0838_c_22L無所有但說諸法所言自性都無所有
001_0838_c_23L撰者名補入{編}{底}誓幢和上塔碑所載
001_0838_c_24L以下{底}海印寺寺刊藏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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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일체 언설로 이루어진 사법事法이 있어 그것에 의지하여 모든 언설이 전전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설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자성’은 제일의제第一義諦에서 보면 자성이 아니다. 비유하면 허공중에 많은 색色과 색업色業이 있는데 (허공이) 모든 색과 색업을 다 수용하고 있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허공중에는 현재 가고 오고 굽히고 펴는 등(색과 색업)의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고 하자, 만일 이때 이 모든 것(색과 색업)을 제거하면, 오직 형체가 없는 청정한 허공의 모습만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체와 행위가 사라지고 나타난) 허공과 같은 ‘언설을 떠난 사법事法’에 다양한 언설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망상 분별과 희론에 따른 집착이 있어서 마치 (허공중의) 색업色業과 유사하게 전전해서 일어난다. 또 이와 같이 일체 언설의 망상 분별과 희론에 따른 집착은 마치 색업과 유사하여, 이들은 모두 허공과 같은 ‘언설을 떠난 사법事法’에 의해 수용된다.
이때 보살은 뛰어난 성지(妙聖智)로 일체 언설이 일으킨 잘못된 상념과 분별 그리고 희론에 따른 집착을 제거하고, 또 보살 최승성자最勝聖者는 제법의 ‘언설을 떠난 사事’를 증득한다. 오직 일체 언설의 자성이 있다고 하지만, (본래의) 자성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마치 허공의 청정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24) 그러나 또한 이것을 지나 나머지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니 다시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25)

3. 유성과 무성(有性無性)26)
……또 27) 저 『열반경』에서는 “중생의 불성佛性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제불은 평등하여 허공과 같아, 일체 중생이 다함께 (동일한 불성을) 가지고 있다.” 28)고 설한다. 다시 (『열반경』) 아래의 글에서는 “일체중생은 똑같이 불성佛性이 있다. 동일한 일승一乘이고, 일인一因이고, 일과一果이고, 동일한 감로甘露이니, 일체가 장래에 상常·낙樂·아我·정淨 29)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미一味이다.” 30)라고 설한다.
이 경문에 의하면 “불성佛性이 없는 일분一分의 중생이 있다.”는 주장은 대승의 평등법성平等法性이라는 진리에 어긋난다. 동체대비同體大悲는 바다와 같은 일미인 것이다.

또 만약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경우,

확실히 무성유정(無性)은 있다.
일체 계界의 차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화성火性 가운데 수성水性이 없는 것과 같다.

상대방 역시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001_0839_a_01L雖有一切所言說事依止彼故諸言說
001_0839_a_02L然彼所說可說自性據第一義非其
001_0839_a_03L自性譬知空中有衆多色色業可得容
001_0839_a_04L受一切諸色色業謂虛空中現有種種
001_0839_a_05L若往若來屈申等事若於尒時諸色色
001_0839_a_06L業皆悉除遣卽於尒時唯無色性淸淨
001_0839_a_07L虛空相似 [3] 顯現如是卽於相似虛空離
001_0839_a_08L言說事有其種種言說所作邪想分別
001_0839_a_09L隨戱論着似色業轉又卽如是一切言
001_0839_a_10L說邪想分別隨戱論着似衆色業皆是
001_0839_a_11L似空離言說事之所容受若時菩薩
001_0839_a_12L以妙聖智除遣一切言說所起邪想分
001_0839_a_13L別隨戱論着尒時菩薩㝡勝聖者
001_0839_a_14L得諸法離言說事唯有一切言說自性
001_0839_a_15L非性所顯喩如虛空淸淨相顯亦非過
001_0839_a_16L此有餘自性應更尋思故) [4] 〈卷上第十張〉 [5]

001_0839_a_17L[有性和無性]
又彼經言衆生佛性不一不二諸佛平
001_0839_a_18L等猶知虛空一切衆生同共有之又下
001_0839_a_19L文云一切衆生同有佛性皆同一乘一
001_0839_a_20L因一果同一甘露一切當得常樂我淨
001_0839_a_21L是故一味依此經文若立一分無佛性
001_0839_a_22L則違大乘平等法性同體大悲如海
001_0839_a_23L一味又若立言定有無性一切界差別
001_0839_a_24L可得故如火性中無水性者他亦立云

001_0839_b_01L
확실히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
일미평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물질이 다 대종성大種性 31)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서로 상충되는) 결정상위決定相違의 과실 32)이 된다.

또 만약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경우,

무성유정은 있다.
본래부터 그러하기 때문이다.

상대방 역시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무성유정은 없다.
본래부터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결정상위의 과실이 된다.

무성유정(無性)이 있다는데 집착하는 논사가 회통하여 말한다.
경에서 “중생은 모두 마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일체의 유성有性과 무성無性, 이미 얻었거나(未得) 얻지 못한(已得) 모든 유정有情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있으면 장래에 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여러 경우) 가운데 ‘불성은 있지만 아직 그것을 얻지 못한 유정’을 취하여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만일 ‘마음이 있는 일체는 장래에 (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미 보리를 얻은 사람도 장차 다시 (보리를) 얻어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마음이 있는 일체가 앞으로 (보리를) 얻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 ‘허공과 같아 일체중생은 똑같이 (불성이) 있다.’고 하는 말은 이치로서의 본성(理性)을 말하는 것이지 행으로서의 본성(行性)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 (『열반경』에서) “일인一因이고, 일과一果이고, 내지 일체가 장래에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얻을 것이다.”라고 설한 것은 부분적인 일체(少分一切)에 의거한 것이지 전체를 가리키는 일체(一切一切)에 의거해서 설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모든 글들이 다 잘 통할 수 있다.

또 ‘법이法爾 33)이기 때문에 무성유정(無性)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중생의 끝이 있게 된다. 34) 이것은 심각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앞에서 주장했던 ‘법이法爾이기 때문에 무성유정이 있다.’고 하는 입론立論이 오히려 오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정상위과決定相違過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상위과相違過로 성립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경우,

불은 습성濕性이 아니다.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불은 습성濕性이다.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정상위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오류는 없다. 화성火性은 뜨거운 성질이어서 실제로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성유정無性有情의 도리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만일 후자(유성론자)의 입장을 세운다면, 다음의 설을 어떻게 통하게 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현양론』 3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현재세에서만 반열반법般涅槃法이 아니라고 하는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001_0839_b_01L定皆有性一味性平等可得故如諸麁
001_0839_b_02L色聚悉有大種性則有決定相違過失
001_0839_b_03L又若立云定有無性由法尒故者
001_0839_b_04L亦立云定無無性由法尒故是亦決
001_0839_b_05L定相違過失執有無性論者通曰經言
001_0839_b_06L衆生悉有心者汎擧一切有性無性未得
001_0839_b_07L已得諸有情也凡其有心當得菩提者
001_0839_b_08L於中簡取有性未得之有心也設使一
001_0839_b_09L切有心皆當得者已得菩提者亦應當
001_0839_b_10L得耶故知非謂一切有心皆當得也
001_0839_b_11L言猶如虛空一切同有者是就理性
001_0839_b_12L說行性也又說一因一果乃至一切當
001_0839_b_13L得常樂我淨者是約少分一切非說一
001_0839_b_14L切一切如是諸文皆得善通又若立云
001_0839_b_15L由法尒故無無性者則衆生有盡是爲
001_0839_b_16L大過如前所立由法尒故有無性者
001_0839_b_17L則無是失故知是似決定相違而實不
001_0839_b_18L成相違過失如有立言火非濕性
001_0839_b_19L法尒故又有立言火是濕性由法尒
001_0839_b_20L此似決定相違而實無此過失
001_0839_b_21L火性是熱實非濕故無性有情道理
001_0839_b_22L亦尒若立後師義是說云何通
001_0839_b_23L顯揚論云云何唯現在世非般涅槃法
001_0839_b_24L不應理故謂不應言於現在世 [6] 雖非般

001_0839_c_01L현재세에 비록 반열반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머지 생生에서 다시 전성轉成하여 반열반법이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열반종성般涅槃種性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 이 생生에서 먼저 순해탈분順解脫分 36)의 선근을 쌓았다면, 왜 반열반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만일 이 생生에서 (순해탈분 선근을) 전혀 쌓지 않았다면 어떻게 후생에서 반열반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이런 이유로 반열반종성이 아닌 유정은 확실히 있다. 37)

『유가론』 중에도 위와 같은 설이 있다.

또 만일 일체중생이 앞으로 다 부처가 된다면, 중생이 비록 많다고 하지만 반드시 끝남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불하지 않을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부처의 이타利他 공덕도 모두 끝나게 된다. 38) 또 중생이 반드시 다함이 있다면 최후로 성불할 경우 교화해야 할 대상이 없게 될 것이다. 교화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이타행利他行을 할 수 없으니, 행이 없는 성불은 (있을 수 없으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일체중생이 앞으로 다 성불한다.’고 말하면서 ‘중생은 끝이 없다.’고 하니, 이것은 자어상위自語相違의 과실이 된다. 영원히 (중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한 부처가 한 회會에 백천만억百千萬億 중생을 제도하여 (그들이) 지금 열반에 들면, 중생계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점점 줄어듦이 있는데 끝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줄어드는데 끝남이 없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줄어듦이 없다면 멸도滅度 39)도 없어야 한다. 멸도가 있는데 줄어듦이 없다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진퇴(의 논리)는 성립될 수 없으니, 같은 유례類例(동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의미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회통한다.
저 신론新論 40)에서는 ‘전에는 무성無性(불성이 없음)이었지만 후에 전환하여 유성有性(불성이 있음)이 된다.’는 주장을 논파하고 있다. 저 『논』의 글에서 “현재세에 반열반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머지 생生에서 다시 전성轉成하여 반열반법이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건립하고자 하는 ‘본래 유성有性이었다.’는 주장은 앞서 없었던 것이 후에 전성轉成한 것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저 『논』에서 논파하는 데 빠져들지 않는다. 또 저 교의敎義가 무성無性을 주장하는 것은,

001_0839_c_01L涅槃法於餘生中復可轉爲般涅槃法
001_0839_c_02L何以故無般涅槃種性法故又若於此
001_0839_c_03L先已積集順解脫分善根何故不名
001_0839_c_04L般涅槃法若於此生都未積集云何後
001_0839_c_05L生能般涅槃是故〈卷上第十五張〉

001_0839_c_06L
定有非般涅槃種性有情瑜伽論中
001_0839_c_07L同此說又若一切皆當作佛則衆生雖
001_0839_c_08L多必有終盡以無不成佛者故是則諸
001_0839_c_09L佛利他功德亦盡又若衆生必有盡者
001_0839_c_10L㝡後成佛則無所化所化無故利他行
001_0839_c_11L行闕成佛不應道理又若說一切盡
001_0839_c_12L當作佛而言衆生無永盡者則爲自語
001_0839_c_13L相違過失以永無盡者永不成佛故
001_0839_c_14L如一佛一會能度百千萬億衆生今入
001_0839_c_15L涅槃於衆生界漸損以不若有漸損
001_0839_c_16L有終盡有損無盡不應理故若無損者
001_0839_c_17L則無滅度有滅無損不應理故如是進
001_0839_c_18L退終不可立無同類故其義不成
001_0839_c_19L皆有性論者通曰彼新論文正破執於
001_0839_c_20L先來無性而後轉成有性義者如彼文
001_0839_c_21L謂不應言於現在世雖非般涅槃法
001_0839_c_22L於餘生中可轉爲般涅槃法故今所立
001_0839_c_23L水來有性非謂先無而後轉成故不
001_0839_c_24L墮於彼論所破又彼敎意立無性者

001_0840_a_01L대승을 구하지 않는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무량시無量時 41)에 의거하여 이렇게 설한 것이다. 밀의密意 42)로 설한 것이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가 (이전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면서 “마음이 있는 일체가 앞으로 모두 (보리를) 얻는다고 했으니, 부처 또한 마음이 있으므로 또한 다시 (보리를) 얻어야 할 것이다.” 43)라고 하였는데, 이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저 경에서 스스로 (그것을) 간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 『열반경』에서 “중생도 이와 같아서, 모두 다 마음이 있다. 마음이 있는 모든 중생은 앞으로 보리를 얻을 것이다.” 44)라고 하였다. 부처는 중생이 아니니 어찌 뒤섞일 수 있겠는가.

또 그가 다시 비판하면서, ‘만일 (일체중생) 모두가 부처가 되면 (중생이) 다함이 있다.’ 45)고 했는데, 이러한 비판은 도리어 스스로 세운 무성無性의 주장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대가 주장하는 대로 무성유정은 본래 법이종자法爾種子 46)를 구족하고 있어서 미래가 다하도록 종자가 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고자 하니, 그대의 뜻에 따라 대답하기 바란다. 이와 같은 종자는 일체가 다 앞으로 과果를 생한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과를 생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만일 과果를 생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과를 생하지 않기 때문에 종자가 아니다. 그러나 일체가 모두 장래에 과를 생한다고 말한다면 종자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마침내 없어질 것이다. 그것은 (일체 종자가) 과를 생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47)
만약 ‘일체 종자가 모두 과를 생한다 하더라도 종자가 무궁하기 때문에 끝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자어상위과自語相違過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하지만 중생이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중생 또한 끝남이 없다.’고 하는 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8)
다시 그대가 비판하기를, 멸滅이 있는데……없다면 49)……


001_0840_a_01L欲廻轉不求大乘之心依無量時而作
001_0840_a_02L是說由是密意故不相違彼救難云
001_0840_a_03L一切有心皆當得者佛亦有心亦應更
001_0840_a_04L得者是義不然以彼經中自簡別故
001_0840_a_05L彼云衆生亦尒悉皆有心凡有心者當
001_0840_a_06L得菩提佛非衆生何得相濫又彼難云
001_0840_a_07L若皆作佛必有盡者是難還着自無性
001_0840_a_08L何者如汝宗說無性有情本來具
001_0840_a_09L法尒種子窮未來際種子無盡
001_0840_a_10L今問汝隨汝意答如是種子當言一切
001_0840_a_11L皆當生果當言亦有不生果者若言亦
001_0840_a_12L有不生果者不生果故則非種子若言
001_0840_a_13L一切皆當生果者是則種子雖多必有
001_0840_a_14L終盡以無不生果者故若言雖一切種
001_0840_a_15L子皆當生果而種子無窮故無終盡
001_0840_a_16L無自語相違過者則應信受一切衆生
001_0840_a_17L皆當成佛而衆生無邊故無終盡又汝
001_0840_a_18L難云有滅無〈卷上第十六張〉 [7]

001_0840_a_19L
1)▣空之▣是▣▣▣▣▣▣▣▣▣▣
001_0840_a_20L▣▣▣▣▣▣之事是無若▣▣▣▣▣
001_0840_a_21L▣▣▣▣▣▣▣▣▣無因果是▣▣見
001_0840_a_22L▣▣▣▣▣▣▣▣▣▣▣▣▣▣所照
001_0840_a_23L者▣則▣無▣▣▣▣▣▣▣▣▣▣▣
001_0840_a_24L▣▣▣許者▣智▣▣▣▣▣▣▣▣▣

001_0840_b_01L

001_0840_b_01L▣▣▣▣▣▣▣▣有我者▣▣▣▣▣
001_0840_b_02L▣▣▣▣▣▣▣▣▣有▣有▣▣▣▣
001_0840_b_03L▣▣▣▣者▣▣▣▣▣▣▣▣之我不
001_0840_b_04L實▣▣▣▣而不實不▣人▣▣▣▣▣
001_0840_b_05L▣▣▣▣▣▣▣▣▣▣言於世及諸因
001_0840_b_06L▣▣▣▣▣▣▣▣▣者他亦於世俗諦
001_0840_b_07L因緣▣▣▣▣▣▣▣有人生若五蘊雖
001_0840_b_08L和合無人生者▣▣▣▣▣▣▣▣生齊
001_0840_b_09L有薰習種子因緣有生不生不▣▣▣▣
001_0840_b_10L▣▣所說諸難皆有道理有道▣故
001_0840_b_11L意無不▣▣▣▣▣無所不通是義云
001_0840_b_12L若對▣道所執▣▣是▣▣我則許
001_0840_b_13L有五蘊而無一我離蘊法▣無▣▣
001_0840_b_14L▣▣▣言無我無造無受者以因緣故
001_0840_b_15L諸法生又言▣▣▣▣如第二頭五蘊
001_0840_b_16L中我亦復如是若對二乘 ▣▣▣▣
001_0840_b_17L五蘊之法則許有一我而無五蘊
001_0840_b_18L眞我▣▣▣▣故如經言卽此法界
001_0840_b_19L轉五道說名衆生又言一▣衆生
001_0840_b_20L有佛性卽是我義我者卽是如來藏
001_0840_b_21L▣▣若對菩薩依甚深敎如言取義
001_0840_b_22L損減執則▣▣▣▣意是有如論說云
001_0840_b_23L又此假我是無常相是非▣▣▣安
001_0840_b_24L住相是變壞相乃至廣說故若對菩薩

001_0840_c_01L

001_0840_c_01L依▣▣▣如言▣義起▣並執則許人
001_0840_c_02L法皆無所有如▣▣▣無我無▣生乃
001_0840_c_03L▣▣者見者何況當有▣▣▣▣〈第三
001_0840_c_04L十一張〉

001_0840_c_05L崔凡述復元如下 『二室之理是實不無聖智所
001_0840_c_06L照者亦可二惑所執人法之事是妄非有非聖所照
001_0840_c_07L若齊許者即無俗智撥無因果是大邪見若言雖無
001_0840_c_08L所執實法而有假法聖智所照者是則雖無所執實
001_0840_c_09L我而有假我聖智所照若齊許者聖智不出三法蘊
001_0840_c_10L處界內我在何法若言實有假法實無假我者是則
001_0840_c_11L實有我空而無法空若二空齊有卽人法等無若言
001_0840_c_12L如所執法實無所有故有法空而由法執名言薰習
001_0840_c_13L所生之法不實而有有而不實不廢法空者是即人
001_0840_c_14L執名言薰習所生之我不實而有有而不實不廢人
001_0840_c_15L空因待薰習果非薰生不應道理故若言於世俗諦
001_0840_c_16L因緣道理四緣和合有法生者他亦於世俗諦因緣
001_0840_c_17L道理五蘊和合即有人生若五蘊雖和合無人生者
001_0840_c_18L則四緣雖和亦無法生齊有薰習種子因緣果有生
001_0840_c_19L不生不應道理故通曰所設諸難皆有道理有道理
001_0840_c_20L故悉無不許無不許故無所不通是義云何若對外
001_0840_c_21L道所執是一是常是我則許有五蘊而無一我離蘊
001_0840_c_22L法外無神我故如經言無我無造無受者以因緣故
001_0840_c_23L諸法生又言如第三手如第二頭五蘊中我亦復如
001_0840_c_24L是若對二乘所執三世五蘊之法則許有一我而無
001_0840_c_25L五蘊離眞我外無五蘊故如經言即此法界流轉五
001_0840_c_26L道說名衆生又言一切衆生皆有佛性即是我義我
001_0840_c_27L者即是如來藏義故若對菩薩依甚深敎如言取義
001_0840_c_28L起損減執則許我法皆悉是有如論説云又此假我
001_0840_c_29L是無常相是非有相是安住相是變壞相乃至廣說
001_0840_c_30L故若對菩薩依法相敎如言取義起増益執則許人
001_0840_c_31L法皆無所有如經言尙無我無衆生乃至智者見者
001_0840_c_32L何況當有色受想行』
  1. 1)알맹이 없는 유有의 주장이 : 이 역문은 역자가 아래의 글 “헛된 공의 논쟁은 구름처럼 어지럽다.”에 대응하여 추정, 복원한 해석이다. 우취雨驟와 운분雲奔이 서로 대가 되고, 공공지론空空之論에 짝이 되는 글은 허유지설虛有之說, 즉 ‘알맹이 없는 주장’ 정도가 아닐까 한다.
  2. 2)원문의 ‘공공지론空空之論’을 ‘헛된 공의 논쟁’으로 번역하였다.
  3. 3)공空을 싫어하고 유有를 좋아하니 : “유有를 증오하고 공空을 떠받드니 나무를 버리고 숲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역문에 대응하여 결락된 부분을 추정, 복원한 것이다. 원문으로 환원하면 “憎空愛有。 如登山’而投廻谷。”이 된다.
  4. 4)이는 앞 구절의 ‘鏡納萬形’에 맞추어 ‘水分一源’으로 추정한 것이다.
  5. 5)『십문론十門論』이란 여래가~제명題名이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다 : 이는 서당화상탑비편誓幢和上塔碑片에 남아 있는 글이다. 완본이 아닌 『十門和諍論』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편자가 『十門和諍論』의 첫머리에 잔편 비문 중 십문화쟁과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하여 실은 것으로 보인다.
  6. 6)공空과 유有 : 현존하는 『十門和諍論』의 이 부분은 ‘공空과 유有의 화쟁’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므로, 제목을 이와 같이 붙였다.
  7. 7)진실로 유有라고 하지만 : ‘유有’ 자는 앞 문장이 끝나는 부분으로서 전후 문맥으로 볼 때 ‘說實是’가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說實是有’가 되어야 뒷 문장과 의미가 통한다.
  8. 8)증익집增益執 : 제법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는 치우친 생각.
  9. 9)손감집損減執 : 제법은 공무空無하여 아무것도 없다고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10. 10)사구四句 : 사구분별四句分別. 사구四句로 모든 것을 해석 분별하는 논리형식. 예를 들어 유有와 무無로 제법을 판별할 때, 제1구 유有(정립), 제2구 무無(반정립), 제3구 역유역무亦有亦無(긍정종합), 제4구 비유비무非有非無(부정종합)라는 사구의 형식을 사용한다.
  11. 11)이 글은 공空과 유有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공空과 유有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有라고 하여도 증익집增益執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공空이라고 하여도 손감집損減執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글이다.
  12. 12)동유同喩 : 증명되어야 할 것과 같은 종류로 이유 개념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 인명 삼지작법의 제3지, 예를 들면 ‘소리는 무상하다.’,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유하면 병과 같다.’라고 할 때, 병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라는 이유 개념과 같기 때문에 동유同喩라고 한다.
  13. 13)비량比量 : 하나의 사상事象에 의하여 다른 사상事象을 바르게 추측하여 아는 것. 연기를 보고 그곳에 불이 있다고 아는 것과 같다.
  14. 14)부정과不定過 : 인명因明에서 인因의 과실인 14과過 중의 한 가지. 인因은 반드시 삼상三相, 곧 변시종법성遍是宗法性, 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 이품변무성異品遍無性을 갖추어야 성립된다. 제1상은 갖추어져 있으나 제2상이나 제3상이 갖추어지지 않을 경우,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오류를 말한다. 이러한 오류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15. 15)이곳이 단락으로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변계소집과 의타기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이 공과 유라는 주제의 연장으로 공과 유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러한 해석이 삼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변계소집과 의타기상’이라는 소제小題를 달았다.
  16. 16)원문의 ‘除屈屈顯 除申申顯’을 위와 같이 해석했다. 원문대로 해석하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굴屈과 현顯, 신申과 현顯 사이에 공空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17. 17)사事 : 일반적으로 일, 사물, 일어나는 일 등을 말하지만, 보편적인 법칙인 이理에 대해 연기하는 만유의 차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瑜伽師地論』 등 유식계 경론에서 사事란 법에 나타나는 구체적 사실을 말하고 있다. 『瑜伽師地論』은 일체 사事를, 심사心事, 심소유법사心所有法事, 색사色事, 심불상응행사心不相應行事, 무위사無爲事의 총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이것은 곧 오위백법五位百法의 오위五位를 事로 지칭하는 것이다. 또 잡염품사雜染品事, 청정품사淸淨品事 등으로 구체적인 법과 동일하게 사용한다. 이곳 『十門和諍論』의 언설사言說事(언설로 이루어진 사), 이언설사離言說事(언설을 떠난 사) 등은 모두 『유가사지론』 설로서 사법事法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 18)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 :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안질환자가 눈의 이상 때문에 나타나는 허공의 꽃이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19. 19)의타기상依他起相 : 현상제법은 독립적으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에 의해 가유로 생기한 환화幻化와 같은 존재임을 설명하는 말이다.
  20. 20)『금고경金鼓經』 : 『金光明最勝王經』을 말한다. 여기에 인용한 경전은 수隋의 사문 보귀寶貴가 편집한 『合部金光明經』이다. 이 경은 모두 8권 24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한 사람이 번역한 것이 아니고 담무참, 사나굴다, 진제 등 3인의 번역을 합한 것이다. 따라서 각 품마다 역자가 다르다. 이 인용문은 양의 진제가 번역한 제9장 「依空滿願品」 가운데 있는 내용이다. 이 품에서 특기할 것은 오음五陰을 법계라고 정의하지만, 오음은 불가설不可說이며 비오음非五陰 또한 불가설不可說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음이 법계라는 것은 단견斷見이며 오음을 떠났다는 것은 상견常見이기 때문에 단상斷常 이변二邊을 떠나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T16, 664a 참조.
  21. 21)비행법非行法 : 염불을 가리킨다. 염불은 자력으로 하는 수행이 아니라 아미타불 본원의 기능 그 자체라는 뜻으로 비행非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22. 22)구마라집鳩摩羅什 역譯, 『摩訶般若波羅蜜經』 권17 「夢行品」(T8, 349b7-8).
  23. 23)『中論』 권4(T30, 36a).
  24. 24)언설자성은 허공중의 색, 색업과 같기 때문에, 허공 가운데 색과 색업이 사라지고 청정한 허공이 드러나듯이 언설을 떠날 때 진실한 자성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25. 25)『瑜伽師地論』 권45 「菩薩地」(T30, 540c)를 인용한 것이다.
  26. 26)유성有性과 무성無性 : 이 단락에서 논의하는 내용은 모두가 성불할 종성을 지니고 있다는 유성有性의 견해와 어떤 부류는 성불할 종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무성無性의 견해를 다루고 있으므로, 제목을 이와 같이 붙였다.
  27. 27)이상 4장 8면이 결락됨. 이하는 유성有性과 무성無性에 관한 해석으로, 위의 공空과 유有를 다루는 문단에 연속된 문장이 아니다.
  28. 28)『涅槃經』 권32 「師子吼菩薩品」(T12, 538c). 이 문장의 앞에 사자후師子吼보살의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불성은 모두 공통된 것입니까, 각각 있는 것입니까? 만약 공통된 것이면 한 사람이 무상보리를 얻을 때 일체 중생이 또한 동시에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20인이 한 가지 원한을 갖고 있을 때, 만약 한 사람이 그것을 없애면 나머지 19인이 모두 공통으로 원한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불성도 이와 같다면, 한 사람이 그것을 얻을 때 나머지 또한 얻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각각 있는 것이면 무상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만약 각각 있다면 제불이 평등하다고 설해서도 안 되고, 또한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설해서도 안 됩니다.(世尊。 衆生佛性爲悉共有,。 爲各各有。 若共有者。 一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 一切衆生亦應同得。 世尊。 如二十人同有一怨。 若一人能除。 餘十九人皆亦同除。 佛性亦爾。 一人得時。 餘亦應得。 若各各有則是無常。 何以故。 可算數故。 然佛所說衆生佛性不一不二。 若各各有。 不應說言諸佛平等。 亦不應說佛性如空。 )” 본문에서는 사자후 보살의 이러한 질문에 의거하여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라고 답했고, “제불은 평등하여 허공과 같다.”고 답한 것이다.
  29. 29)상락아정常樂我淨 : 『涅槃經』의 설이다. 열반의 사덕으로 상락아정을 든다. 열반은 영원하고 안락하며 절대적이고 청정하다고 한다. 『涅槃經』은 초기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인 무상無常·무아無我·고苦에 부정不淨을 더한 네 가지 법을 전도로 보고 이것을 극복한 네 가지 덕을 상常·낙樂·아我·정淨이라고 한다.
  30. 30)『涅槃經』 권32 「師子吼菩薩品」(T12, 559a), “三者一味。 一切衆生同有佛性。 皆同一乘。 同一解脫。 一因。 一果。 同一甘露。 一切當得常樂我淨。 是名一味。 ”
  31. 31)대종성大種性 : 지地·수水·화火·풍風 사대의 성질.
  32. 32)결정상위決定相違의 과실 : 결정상위과決定相違過는 인명因明의 여섯 가지 부정과不定過의 하나로서, 입론자와 대론자가 각기 어긋나는 종宗을 세워 서로 대립하지만, 그 논법이 완전무결한 것. 그러나 이러한 인因은 결국에는 입론자의 종宗을 성립시키는 데 만족하지 못하므로 과過라 한다.
  33. 33)법이法爾 : 본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법으로서의 그 자체.
  34. 34)일체 중생에게 본래부터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마지막에는 모두 성불하게 되므로 중생은 끝나게 된다. 중생이 무진無盡인데 불성이 법이본유法爾本有라면 중생이 끝나게 되므로 법이본유라는 주장은 맞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는 법이본유가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35. 35)『顯揚聖敎論』 권20 「攝勝決擇品」(T31, 581a).
  36. 36)순해탈분順解脫分: 수도 계위 중 십지 이전의 삼현위를 말함. 해탈解脫은 열반涅槃을 가리키고, 분分은 인因을 뜻한다. 삼승의 삼현위는 열반에 순응하여 해탈하기 위한 인이 된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다. 유식의 수도 오위 중 자량위에 해당된다.
  37. 37)『顯揚聖敎論』 권20 「攝勝決擇品」(T31, 581a27-b4). 여기서는 현재에만 반열반할 수 없다는 설을 비판함으로써 무성유정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38. 38)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하면 마지막에는 중생이 없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중생은 다함이 없다는 가르침과 서로 어긋난다. 또 마지막 성불하는 사람은 교화할 대상이 없으니 이타행을 할 수 없다. 이타행 없이 성불한다는 것 또한 맞지 않는다.
  39. 39)멸도滅度 : 열반의 다른 말.
  40. 40)신론新論은 앞서 나온 『顯揚聖敎論』을 말한다. “謂不應言於現在生雖非般涅槃法。 於餘生中復可轉爲般涅槃法。 何以故。 無般涅槃種性法故。”
  41. 41)무량시無量時 : 전제前際와 후제後際에 다함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42. 42)밀의密義 : 불법의 오의奧義는 깊고 은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
  43. 43)마음이 있는~할 것이다 : 이는 앞부분에서 “무성유정(無性)이 있다는 데 집착하는 논사가 회통하여 말한다.”라고 한 단락 가운데, “만일 ‘마음이 있는 일체는 장래에 (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미 보리를 얻은 사람도 장차 다시 (보리를) 얻어야 할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44. 44)『大般涅槃經』 권27 「師子吼菩薩品」(T12, 524c7-9).
  45. 45)만일 모두가~다함이 있다 : 이는 앞부분에서 무성론자가 했던 “또 ‘법이法爾이기 때문에 무성유정(無性)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중생의 끝이 있게 된다.”는 비판을 말한다.
  46. 46)법이종자法爾種子 : 본래부터 있는 종자를 말한다.
  47. 47)이것은 일체 종자가 과를 생하기 때문에 종자가 아무리 많아도 마침내 모두 과가 되니 결국 종자가 다하게 된다는 말이다.
  48. 48)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하면 중생이 다 없어진다. 그러나 중생은 무변無邊이다. 이 두 명제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일체 종자가 과果를 생生하더라도 중생은 다함이 없다.’고 하는 상반된 주장이 자어상위과自語相違過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일체 중생이 성불한다는 주장과 중생이 끝이 없다는 상반된 두 주장 역시 배치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49. 49)멸滅이 있는데……없다면 : 이는 앞서 ‘유성론자에 대한 질문’ 가운데 제기된 내용이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다. “또 한 부처가 한 회會에 백천만억百千萬億 중생을 제도하여 (그들이) 지금 열반에 들면, 중생계가 점점 줄어드는가? 점점 줄어듦이 있으면 끝남이 있다. 줄어드는데 끝남이 없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줄어듦이 없다면 멸도滅度도 없어야 한다. 멸도(滅)가 있는데 줄어듦이 없다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1. 1)撰者名補入{編}。
  2. 2){底}誓幢和上塔碑所載。
  3. 3)以下{底}海印寺寺刊藏本。
  4. 1)崔凡述復元如下 『二室之理是實不無聖智所照者亦可二惑所執人法之事是妄非有非聖所照若齊許者即無俗智撥無因果是大邪見若言雖無所執實法而有假法聖智所照者是則雖無所執實我而有假我聖智所照若齊許者聖智不出三法蘊處界內我在何法若言實有假法實無假我者是則實有我空而無法空若二空齊有卽人法等無若言如所執法實無所有故有法空而由法執名言薰習所生之法不實而有有而不實不廢法空者是即人執名言薰習所生之我不實而有有而不實不廢人空因待薰習果非薰生不應道理故若言於世俗諦因緣道理四緣和合有法生者他亦於世俗諦因緣道理五蘊和合即有人生若五蘊雖和合無人生者則四緣雖和亦無法生齊有薰習種子因緣果有生不生不應道理故通曰所設諸難皆有道理有道理故悉無不許無不許故無所不通是義云何若對外道所執是一是常是我則許有五蘊而無一我離蘊法外無神我故如經言無我無造無受者以因緣故諸法生又言如第三手如第二頭五蘊中我亦復如是若對二乘所執三世五蘊之法則許有一我而無五蘊離眞我外無五蘊故如經言即此法界流轉五道說名衆生又言一切衆生皆有佛性即是我義我者即是如來藏義故若對菩薩依甚深敎如言取義起損減執則許我法皆悉是有如論説云又此假我是無常相是非有相是安住相是變壞相乃至廣說故若對菩薩依法相敎如言取義起増益執則許人法皆無所有如經言尙無我無衆生乃至智者見者何況當有色受想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