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 栢庵淨土讃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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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讃 서序
나는 본래 소식蘇軾의 글을 읽고 중국에 예로부터 정토사淨土寺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토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며칠을 교외에 머물고 있을 때 호가 태고太古인 한 늙은 스님이 책을 한 권 들고 와 보여 주었는데, 이 책은 곧 태고의 돌아가신 스승인 백암栢庵이 지은 정토시淨土詩였다. 지난날에 잘 알지 못하였던 것이 책을 펼치자 명료하게 되어 남은 한이 없었다. 또 백암이 평소 극락의 경계에서 유유히 노닐면서 자득하다가 여력이 생기면 문장에 재능을 사용한 경지도 알 수 있었다.
아, 백암과 이별한 지 어느덧 16년이 되고 백암께서 입적하신지 벌써 5개월이 되었는데, 남기신 말씀이 세상에 남아 있어 능히 사람의 이목을 비추니, 옛말에 이른바 ‘죽어도 썩지 않는다’1)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로다. 비록 그러하나 말이 있음은 말이 없음만 못한데, 백암께서는 어찌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고 백여 편의 시를 남겨놓았던 것일까. 장차 누설한 잘못으로 대방가大方家의 웃음을 크게 받지는 않겠는가? 이는 아마도 몽매한 무리를 안타까이 여겨 그분이 깨우친 바를 사람들에게 미루어주고자 한 것이리라. 도리어 나도 특별히 느끼는 바가 있으니, 호계虎溪의 웃음2)을 이제는 다시 얻을 수 없음이여!
대사의 제자가 스승의 유고에 서문을 부탁하니, 내 비록 글 솜씨는 없으나 어찌 한 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미 대사가 말을 남긴 것에 의문을 표했지만, 나도 일부러 말해주는 것을 면할 수 없도다. 어찌 시詩를 구하여 그 의미를 얻지 못하기를 바라겠는가. 이에 말한다.
경진庚辰년(1700) 동짓달 하순에 촌장거사寸丈居士 최내심崔乃心 쓰다.

아, 이 정토찬淨土讚은 곧 내 방외의 벗인 백암대사栢庵大師께서

008_0511_b_01L[栢庵淨土讃]

008_0511_b_02L1)栢庵淨土讃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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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讀蘇子書知中國古有淨土寺殊不
008_0511_b_05L知淨土之義果何謂也郊居累日有一
008_0511_b_06L老釋號太古手持一册子來示余
008_0511_b_07L其先師栢庵師所作淨土詩也夙昔所
008_0511_b_08L未曉者便開卷瞭然無遺恨可見栢
008_0511_b_09L庵平日優游自得於極樂之界而有餘
008_0511_b_10L力用才文章境也嗟未與栢庵別居然
008_0511_b_11L二八年栢庵之寂倐爾五箇月遺詞
008_0511_b_12L在人間猶能照人耳目古所謂死而不
008_0511_b_13L朽者此耶雖然有言不若無言何栢
008_0511_b_14L庵之不憚煩而有此百餘篇詩乎無將
008_0511_b_15L漏洩之過甚見㗛於大方家乎豈其愍
008_0511_b_16L惻羣蒙欲推其所得於人乎顧余別有
008_0511_b_17L感焉虎溪之㗛今不可復得而師之
008_0511_b_18L弟子求余序遺詞余雖不文烏得無
008_0511_b_19L旣已疑師之有言而不免故有言
008_0511_b_20L幾求其詩而不得於是乎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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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龍日南至下浣寸丈居士崔乃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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玆淨土讃者乃余方外友栢庵大師

008_0511_c_01L새로 읊은 것이다. 태고太古 노선사가 소매를 열어 나에게 보여주니, 이는 대개 백암이 갑자기 입적하여 비밀한 가르침을 다시 받들어 받기 어려움을 애석히 여기고, 남기신 시편에 그리움을 부쳐 오래도록 전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이에 책을 음미한 즉 백암 노스님의 음성과 모습과 기운이 완연히 여기에 있는 듯하였다. 나는 백암이 불도佛道에 있어 의심 덩어리(疑團)를 이미 깨뜨리고 정안正眼을 바야흐로 여신 분임을 알았다. 이는 이른바 서쪽 하늘의 청정세계를 눈앞에 분명히 둔 채, 발을 들어 이를 밟고 몸을 세워 거처하신 것이다. 또 중생의 어리석음과 절집의 황폐해짐을 안타까이 여기고 잡초를 뽑아 어지러운 길을 가리켜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려 한 것이다. 이에 정토淨土라는 한 조각 땅을 잡아 불가에서 널리 구제하는 자비로운 배로 삼아서,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초학자에게 물가 학의 어지러움(水鶴之紛)3)과 어로불분(魚魯之件)4)의 근심을 없게 하였다. 문자상으로는 미묘한 뜻을 얻었고 오묘한 비결을 간략히 모아놓았으며, 또한 첫 번 째 등각로等覺路5)에서 무량계無量界6) 피안彼岸에 바로 올랐으니, 곧 백암이 선문禪門에 끼친 공로는 길 안내자(伻)와 같을진저. 진실로 백암의 정토시는 열자列子의 화서華胥나 장자莊生의 건덕建德7)과 달라서 영원토록 불교의 참된 종지가 될 것이다.
죽음과 삶, 계심과 안 계심에 대한 감회는 내가 백암 노스님을 위해서 말하기는 부족하지만 느꺼워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처연해지니 어찌 이에 한 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임오壬午년(1702) 중양일重陽日에 소치자笑癡子 강덕수姜德秀 쓰다.

태고太古 노스님께서 방장산方丈山에서 우리 산문으로 발길을 옮기셨으니, 스님과 나의 만남은 이로써 두 번째에 이른다.

008_0511_c_01L所詠新者而太古老禪以其啓袖示余
008_0511_c_02L盖惜其師之遽已圓寂而密傳內敎
008_0511_c_03L難承受寓慕于遺篇欲壽其傳也
008_0511_c_04L於是玩而味之則栢老之聲容氣宇
008_0511_c_05L在是矣余知栢老之於其道疑團已破
008_0511_c_06L正眼方開夫所謂西天淸淨世界的在
008_0511_c_07L阿睹中了了擧足斯蹈設身以處
008_0511_c_08L慨衆生之昏矇憫祗園之荒蕪思有以
008_0511_c_09L發蔀而指迷靡有不至乃把淨土一片
008_0511_c_10L爲自家普濟之慈航欲使入定之初
008_0511_c_11L無憂乎水鶴之紛魚魯之件字得
008_0511_c_12L其微旨約會其妙訣亦從第一等覺路
008_0511_c_13L直登無量界彼岸則栢老之有勞于禪
008_0511_c_14L門者其如伻哉信乎栢老之淨土
008_0511_c_15L諸異乎列子之算胥莊生之建德
008_0511_c_16L其永爲笁學之眞宗也至於死生之憾
008_0511_c_17L存沒之懷不足爲師言而感念昔自不
008_0511_c_18L覺其悽然則亦豈無一言於斯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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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在壬午重陽日笑癡子姜德秀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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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古老宿自方丈踵余門至再舊識也
008_0511_c_24L{1}{底}大正十五年泰安寺映月和尙藏板筆寫本(松
008_0511_c_25L廣寺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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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기 전에 두 손을 마주잡고 말하기를 “저희 선사先師 백암栢庵 대화상께서 남기신 백운百韻의 정토찬淨土讚은 대사께서 평생의 지혜와 서원을 기술하여 바야흐로 뒤에 오는 자들에게 미혹한 길을 가리켜 보이신 것으로, 담긴 뜻 또한 깊습니다. 이를 장차 판에 새겨 오래도록 전하고자 합니다. 주인장께서는 우리 스승과 평소 교분이 있었으니 어찌 한 마디 말씀으로 서문을 써 주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웃으며 말하기를 “글쎄올시다. 한 사람의 미덕을 선양하려면 반드시 당대의 위대한 인물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물며 불가의 묘리를 어찌 저같은 선비가 명료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고사하는 말이 더욱 깊을수록 간청하는 말이 더욱 정성스러웠으니, 스승을 위한 정성이 대개 지금을 천시하지 않은 것이었다.8) 게다가 백암 노스님과는 내 일찍이 산수에서 함께 노닌 인연이 있어 더욱 떠나심에 대한 느낌이 사무쳤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정토는 곧 불경에서 말한 서방정토로다. 그런데 선가禪家에는 별도로 자재自在로운 청정법계가 있어 이미 무량 광대한 세계를 밝히고 있으니, 선문禪門의 길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피안에 올라야만 한다. 이때 비로소 정토에 왕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넘실거리는 고통의 바다에서 그 돌아갈 곳을 아는 이 드물도다. 깊이 생각건대 백암 노스님께서 크고 크신 지혜와 서원을 발하여 노래에 담아낸 것은, 장차 이를 구도자의 나침반으로 삼아서 금색계金色界9)로 훨쩍 뛰어올라 함께 부처님의 미묘한 비결을 받들고자 하려 한 것이니, 그 뜻이 또한 넓도다. 애석하도다. 하늘이 세월을 빌려주지 않아 갑자기 입적하셨으니, 덧없는 세상에 어찌 한 마디 탄식을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백암 노스님께서 어찌 생사를 벗어나 극락세계에 활보하면서 왕사성王舍城의 둥근 달을 낭랑하게 읊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찬讚이 선림禪林에 영원히 유통 전승되는 것은 진실로 내 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나, 이미 그 정성에 감동하여 그분을 추모하였으니 쓸모없는 탄식을 덧붙인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그 사이 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며 사례하였다. 이에 쓴다.
숭정崇禎 갑신甲申 후 임오壬午년(1702) 중양일重陽日 취몽헌醉夢軒 주인 양천경梁天卿


008_0512_a_01L語未卒叉手云吾先師栢庵大和尙
008_0512_a_02L淨土讃百韻盖述其平生慧願而指眎
008_0512_a_03L迷塗於方來者意亦深矣將付剞劂氏
008_0512_a_04L壽其傳主人於吾師固爲素盍一言以
008_0512_a_05L引之余笑曰踈矣哉揚人之美必待
008_0512_a_06L當世偉人況空門之妙豈吾儒所能說
008_0512_a_07L到了辭愈苦請益勤其爲師之誠
008_0512_a_08L不淺今而於栢老余曾有烟霞之契
008_0512_a_09L且切存沒之感乃言曰淨土即釋經所
008_0512_a_10L謂西方淨土而禪家別有箇淸淨法界
008_0512_a_11L自在旣明無量廣大者求入禪門路
008_0512_a_12L必光登彼岸始可謂徃生淨土而滔滔
008_0512_a_13L苦海人鮮能識其歸宿惟栢老發大
008_0512_a_14L慧願形諸所詠將以爲求道者指南
008_0512_a_15L而欲使之超昇金色界共承黃面妙訣
008_0512_a_16L其意亦普矣惜其天不假年遽尓圓寂
008_0512_a_17L於浮世堪可一嘻而以佛語則栢老
008_0512_a_18L無寧離生脫死 步於極樂界中朗咏
008_0512_a_19L王舍一輪月耶是讃其永流傳於禪林
008_0512_a_20L固不待余言而旣感其誠悼其人
008_0512_a_21L寓稊稗之歎於其間老宿又手而謝
008_0512_a_22L於是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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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甲申後壬午重陽日醉夢軒主
008_0512_a_24L人梁天卿
  1. 1)죽어도 썩지 않는다(死而不朽) : 몸은 죽어도 업적 등은 길이 남아 전하는 것. 『춘추좌전春秋左傳 ‧ 양공襄公 24년』에 “목숙(穆叔, 숙손표叔孫豹)이 진나라에 가니 범선자范宣子가 맞이하여 묻기를 ‘옛 사람의 말에 죽어도 썩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목숙이 답하기를 “내가 듣건대 최상은 덕을 세우는 것이요, 그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요, 그 다음은 말을 남겨 놓는 것인데, 이 세 등급의 사람은 죽은지가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썩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오. 穆叔如晉 范宣子逆之 問焉曰 古人有言曰 死而不朽 何謂也 …… 穆叔曰 豹聞之 大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라고 하였다. 『좌전左傳 · 양공襄公 24년』
  2. 2)호계虎溪의 웃음 :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 335~417. 중국 동진 때 스님)은 일찍이 30년 동안이나 산문 밖으로 나가는 호계의 다리를 건너지 않은 채 굳은 마음으로 염불결사를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옛 친구인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의 방문을 받고 두 사람이 돌아갈 때에 이들을 전송하면서 그만 호계의 다리를 지나가고 말았다. 혜원은 이 일을 두 벗에게 말하고 세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것을 세상에서 호계삼소라 하는데, 종교가 다른 이들 사이의 경계 없는 화합과 만남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3. 3)물가 학의 어지러움(水鶴之紛) : ①두보의 시 ≺영회고적詠懷古跡 5수≻ 중 ‘촉주규오행삼협蜀主窺吳幸三峽’에 “고묘의 삼나무와 소나무에 물가 학(水鶴)이 둥지를 틀고 …… 무후의 사당은 오래도록 인가 가까이 있도다. 蜀主窺吳幸三峽 崩年亦在永安宮 翠華想像空山裏 玉殿虛無野寺中 古廟杉松巢水鶴 歲時伏臘走村翁 武侯祠屋長鄰近 一體君臣祭祀同”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오래도록 방치해 둔 것을 슬퍼한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정토찬≻의 이 구절은 배우는 이들에게 정토교의 종지를 제시하는 지침서가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비유로 보인다. ②물가 학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산만하게 찍혀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4. 4)어로불분(魚魯之件) : 어魚자를 쓰려다 노魯자를 쓴다는 말. 글자를 잘못 옮겨 적음을 말한다.
  5. 5)등각等覺 : ①바르고 원만한 부처의 깨달음. ②부처의 깨달음과 거의 같은 깨달음이라는 뜻. 보살의 수행 과정 가운데 십지十地 다음의 단계. 바르고 원만한 부처의 깨달음인 묘각妙覺의 앞 단계.
  6. 6)무량계無量界 : 아미타불의 진실한 보토報土. 48원 가운데 광명 무량하기를 서원한 본원에 응하여 성취한 정토. 이 정토는 한량없는 광명이 가득찬 국토라는 뜻에서 이름한 것이다. 피안彼岸과 같은 의미다.
  7. 7)화서華胥 ~ 건덕建德 : 모두 고대 우언寓言 속에 나오는 이상향. 화서는 『열자列子 ‧ 황제黃帝』에 “황제黃帝가 낮잠이 들어 꿈속에서 화서씨華胥氏 나라에 가 놀았다. 그 나라는 우두머리가 없이 자연 그대로일 뿐이고 그 백성은 욕심이 없이 자연 그대로일 뿐이었다”라고 하였고, 건덕은 『장자莊子 ‧ 산목山木』에 “남월南越에 한 고을이 있는데 그 이름은 건덕국이다. 그곳의 백성은 어리석으면서 소박하고 사사로운 욕심이 적으며 생산할 줄만 알고 저장할 줄은 모른다”라고 하였다. 한국불교전서 원문에는 ‘算胥’로 되어 있으나 ‘華胥’로 정정하여 해석한다.
  8. 8)옛것일수록 고귀하게 여기고 요즘 것일수록 천시하는 것을 ‘귀고천금貴古淺今’이라 한다. 본문의 ‘不淺今’은 이에 따라 스승을 위하는 정성이 옛날보다 못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9. 9)금색계金色界 :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극락세계. 아미타불이 법장비구法藏比丘였을 때 세운 사십팔원四十八願의 실개금색원悉皆金色願은 정토의 중생을 차별 없이 모두 황금색으로 하겠다는 맹세다. 16관觀 중 제13관(잡상관雜想觀)은, 극락에는 1장丈 6척尺 되는 불상이 연못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아미타불은 신통력으로 큰 몸이나 작은 몸으로 나타나는데 그 몸은 모두 금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 1){1}{底}大正十五年泰安寺映月和尙藏板筆寫本(松廣寺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