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추파집(秋波集) / 秋波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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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집秋波集 권2
편지(書)
청천 신유한47)에게 올리는 편지
선생의 문장은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명성이 자자하니 글 짓는 사람이면 누군들 선생의 문하에 들어 그 문채를 잇고 싶지 않겠습니까? 소승은 특히나 세상 밖에 버려진 물건이라 선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어려서 또한 문단을 섭렵하면서 대략이나마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늘 한번 질정을 받기를 원하면서도 뵈올 길이 없던 차에 선생께서 오천烏川에 부임하셔서 공무를 쉬는 휴일에 오어사吾魚寺48)에 오르셨을 적에 제가 구경삼아 선생께 갔던 적이 있습니다. 무시하지 않으시고 다가와 가르침을 주시며, 역대 문장의 변천에 대해 자세히 논하셨습니다. 옛 사람도 하지 않았던 말씀을 많이 들어 마음속 깊이 의심했던 내용들을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때로 저의 보잘것없는 생각을 늘어놓아도 지나칠 정도로 크게 칭찬을 해 주셨으니, 선생께서 어른의 입장에서 이끌어 주심에 후생은 참으로 의혹과 감동이 엇갈렸습니다.
그 사이 벌써 여섯 해가 지났으나 생생하게 그리는 마음 잠시라도 멈춘 날이 있었겠습니까? 이번에 제가 거처하는 작은 암자의 수리를 막 마쳤는데 지문志文이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의 한 말씀을 얻어 벽 위에 걸어 둔다면 산속의 보배가 될 뿐 아니라 날마다 모실 청정한 규범이 될 것을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부디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청천 신 공에게 답하는 편지
내려 주신 답글을 받으니 과분하게 아껴 주시는 영광이 큽니다. 시키신 일은 잘 알았습니다. 옛날 기록 가운데 숭정崇禎 경술년이라고 한 것은 당시에 기록하는 자의 오류였는데 제가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그대로 베껴서 올렸습니다. 소홀하고 경솔하였던 책임을

010_0063_b_02L秋波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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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3_b_05L上申靑泉維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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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之文名動靑丘及于異域今之
010_0063_b_07L操觚者孰不欲登先生之門以承其風
010_0063_b_08L采乎山人特方外棄物無可見知於士
010_0063_b_09L君子而少也亦涉獵於文苑粗有所得
010_0063_b_10L每願一質而未有路當先生莅政烏川
010_0063_b_11L暇日公旆登吾魚山人以遊觀適到
010_0063_b_12L先生不鄙夷而進之敎細論歷代文章
010_0063_b_13L之變多聞古人所未發之言得破吾心
010_0063_b_14L所深疑之旨時陳陋見過蒙奬詡先生
010_0063_b_15L長者之援引後生固也而疑感交至
010_0063_b_16L間已六載耿慕何可少弭今所居小庵
010_0063_b_17L纔得重修不可無志文若得先生一言
010_0063_b_18L揭諸壁上則不但爲山中之寶無異日
010_0063_b_19L侍淸範幸望俯諒焉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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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3_b_21L答上申靑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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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承下覆書過蒙寵眷榮光大矣
010_0063_b_23L敎謹悉舊錄中崇禎庚戌者當時記者
010_0063_b_24L之誤山人不及詳察而謄呈踈率之責

010_0063_c_01L어찌 피하겠습니까? 나이 팔순의 시골 노인네가 “내가 젊은 시절 창건할 때의 역사에도 참여하였는데 그 해가 경술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노인이 죽은 지가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이로 미루어 볼 때 창건한 해는 의심할 것 없이 강희康熙 경술년입니다. 옛 기록에 숭정이라고 한 것은 필경 ‘기원 후紀元後’라는 세 글자가 빠져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다시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단성 수령 채응일 공에게 올리는 편지
합하께서 부임하신(下車)49) 이래로 치덕이 사방에 미쳐 백성들이 관리를 만날 일 없이 산 지가 벌써 여섯 해나 되었습니다. 오고五袴50)의 노래와 기맥歧麥51)의 칭송이 사람들 입에서 전하니 산속에서 솔잎 먹고 사는 무리들이라도 그 교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한번 모습을 뵙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특이한 모습의 천한 자취를 돌아보니 감히 공문空門 밖으로 불쑥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저하며 감행하지 못한 지가 오래입니다.
합하의 넉넉한 자비와 인애가 중들에게까지 미치어 구봉龜峯과 방외方外의 사귐을 갖고 무척 아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구봉은 법가의 곤제昆弟입니다. 합하께서 구봉을 아끼셨다면 구봉이 이미 세상을 떴다고 그 아우를 어찌 아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산인이 감히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합하께 알아 달라고 하는 것은 또 제가 어려서 희암希庵 선생의 문하에 예를 올리고 많은 가르침을 받을 때에 합하를 초당에서 모신 적이 있었고, 기유년에 선생께서 명을 받들어 영남에 오셨을 때에 역사(傳舍)에서 배알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어느새 25년이 되었으니 합하께서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재가在家 시절에는 합하와 가깝게 지낸 친구이고 산에 들어와서도 합하께서 아끼던 사람의 아우이니 합하께서 제가 여기 있는 것을 모르신다 하여도

010_0063_c_01L烏可逃哉曾有村翁年八十者曰余以
010_0063_c_02L少時亦預創建時役其年庚戌云云
010_0063_c_03L而其翁之沒僅十年以此推之初建
010_0063_c_04L果是康熙庚戌無疑舊錄言崇禎云者
010_0063_c_05L必是落紀元後三字而然爾更望留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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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3_c_08L上丹城宰蔡公膺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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閤下下車以來德及四境民不見吏者
010_0063_c_10L今已六載五袴之謠歧麥之頌傳播
010_0063_c_11L人口雖山間茹松之徒亦與被其化矣
010_0063_c_12L思欲一望顏範而顧以異形賤蹤不敢
010_0063_c_13L搪揬於空門之外以此趑趄未敢者久
010_0063_c_14L仄聞閤下慈仁有餘又推及於釋
010_0063_c_15L以龜峯爲方外交頗甚愛之云
010_0063_c_16L峯即法家昆弟也閤下旣愛龜峯則豈
010_0063_c_17L以龜峰已沒不愛爲其弟者乎此山人
010_0063_c_18L之不敢自隱而求知於閤下者也且山
010_0063_c_19L人少也摳衣於希庵先生之門受敎已
010_0063_c_20L得陪閤下於草堂之上歲己酉先生
010_0063_c_21L奉命來嶺南時一拜於傳舍㞐然今
010_0063_c_22L已廿有五載閤下其或記之否山人在
010_0063_c_23L與閤下有親知之舊在山又爲閤下
010_0063_c_24L所愛人之弟則閤下雖不知山人之在

010_0064_a_01L어떻게 묵묵히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여기에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합하께서 여기에 오신 것도 이상한 일이며, 6년 동안 한 번도 찾아뵙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 합하의 수레(五馬)52)가 서울로 돌아가려 하니 이제 이생에서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혼자 절절합니다. 제가 스스로 모든 인연을 다 끊었다고 말하면서 애오라지 다시 이러고 있습니다.
지금 율사栗寺의 중이 찾아와 기문記文을 청하기에 사양하다 못해 아무렇게나 지었습니다. 이 글을 수령께 올린다고 하는데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합하께서 제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감히 합하를 이토록 잊지 못하는데 합하께서 어떻게 제가 공문으로 도망쳤다고 하여 영원히 버리시겠습니까? 비천한 초고에 대략 점을 찍거나 삭제를 하여 그 손때 묻은 글(手澤)을 보여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이음죽의 편지에 올리는 답장
홀로 외진 산중에 앉아 쓸쓸하고 무료하게 살던 차에 그저께 어떤 사람이 정곡역正谷驛53)에서 찾아와 편지를 전했습니다. 봉투를 뜯고 보니 바로 합하께서 금년 2월 22일에 보내신 편지였습니다. 두 번 세 번 읽고 어루만지느라 종이가 해지고 먹물이 지워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옛적 합하께서 한죽寒竹에 계실 때에 제가 여러 차례 보살핌을 받았기에 황공한 생각을 아직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가의 행렬이 북으로 돌아간 후로는 서울 소식이 세상 밖까지는 미치지 않는 까닭에 수레(冠蓋)54)가 어디로 향하셨는지 여태 알지 못해 한 번도 편지를 쓰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수백 리 밖 대방가大方家의 넉넉한 손길이 먼저 궁벽한 산골짜기 노승에게 편지를 보내 주실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편지에서 불상을 태우고(燒佛)55) 고기를 먹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런 일은 단하丹霞나 지공誌公56) 같은 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어찌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금강산에 유람 가기로 한 약속은 마음에 새겨두고 있습니다만

010_0064_a_01L而山人何可嘿嘿而止乎山人之住
010_0064_a_02L異事也閤下之來此異事也六年
010_0064_a_03L之間未得一拜亦異事也而今瓜期
010_0064_a_04L已滿五馬將北從此此生無以更際
010_0064_a_05L悵懷自切山人自謂斷盡諸緣而聊復
010_0064_a_06L如是爾今栗寺僧以記文來請山人
010_0064_a_07L辭不獲已妄有所搆聞將以登覽於
010_0064_a_08L縣大夫云可愧而若以此閤下知于此
010_0064_a_09L有山人幸矣山人之不敢忘閤下如斯
010_0064_a_10L則閤下豈直以山人之逃空而永棄之乎
010_0064_a_11L鄙草略加點删以視其手澤千萬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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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4_a_13L奉答李陰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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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坐窮山悄然無聊再昨有人自正
010_0064_a_15L谷來傳書封啓視則乃閤下今二月二
010_0064_a_16L十二日所賜札也再三吟翫不知紙弊
010_0064_a_17L而墨渝昔閤下在寒竹時山人屢蒙眷
010_0064_a_18L惶感一念尙蘊胸次而官斾歸北
010_0064_a_19L京師消息不及於方外尙未知冠
010_0064_a_20L盖之何方一未修書以此爲恨誰知數
010_0064_a_21L百里外大方手滋先及於窮崖一枯禪
010_0064_a_22L益令人愧忸書中燒佛食肉之
010_0064_a_23L此丹霞誌公之所能爲豈以此狀可致
010_0064_a_24L行耶金剛遊賞之約銘在心腑而但

010_0064_b_01L나이가 오십으로 달려가니 기력이 딸려서 먼 여행을 감당하지 못할 텐데 어쩌겠습니까? 저는 구름 따라 정처 없이 떠돌다가 올해는 산음山陰57) 지곡사智谷寺58)에 머물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느 시내에서 발우를 씻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산천이 멀어서 성대한 모습과 좋은 말씀을 다시 받들 길이 없으니 세상 밖에서 마음을 재처럼 식히는 처지이지만 어찌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지난봄에 민 참의閔參議 영감께서 합하의 말씀으로 인하여 저를 방문하셨는데 때마침 외출 중이라 맞아서 인사드리지 못하였으니 더욱 마음이 언짢고 아쉽습니다. 문구文句는 선사先師가 손수 쓰신 필적이니 등사가 끝나면 도로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산음께 올리는 편지
매각梅閣59)에서 정사를 보시면서 어떻게 이 산승을 기억하여 안부를 물어 주시고, 또 고맙게도 좋은 글까지 주셨습니까? 너무 감동스럽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를 세밀하게 읽어 보니 공무 보시는 정황이 아름답고 넉넉하심을 알겠습니다. 기쁘면서 또 난감하게도 합하께서는 중에게 마음을 두시어 정사의 득실과 경계할 법령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데서 나온 것이며, 백성을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려는 것입니다.
지금 합하의 다스림은 황패와 공수(黃龔)60)를 본받아 관아에는 송사의 분쟁이 없고 감옥에는 매인 죄수가 없으며 떠돌이 백성들이 모두 모여들어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하니 정령政令에 무슨 실책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합하의 이 마음이면 충분히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두리번두리번 어쩌다 실책이라도 있을까 두려워하시니 산에 사는 백성은 그저 기쁘게 축원하여 마지않습니다.
신산음께 답하는 편지
지난달 관개冠蓋가 남쪽으로 찾아오시어 높은 논의를 들으니 실로 감동스럽고 행복하였습니다. 다만 공거公車가 급하게 돌아가시어 미처 다 쏟아놓지 못하였으니 아쉽고 미흡한 사사로운 마음이

010_0064_b_01L年邁五十氣疲力耗不堪遠行奈何
010_0064_b_02L山人雲遊無定今年住山陰智谷明年
010_0064_b_03L又未知洗鉢何溪耳山川迢遞盛儀大
010_0064_b_04L無路再攀雖物外死灰之心寧不
010_0064_b_05L愴然耶頃春閔叅議令監因閤下之言
010_0064_b_06L過訪山人而適出外未及延拜尤切
010_0064_b_07L慊悵文句乃先師手迹謄畢還下擲
010_0064_b_08L伏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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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4_b_10L奉申山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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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閣上視事之際何以記此山僧而垂
010_0064_b_12L又惠以佳墨乎至感細讀來書
010_0064_b_13L政候佳裕喜又不堪閤下惟心於空門
010_0064_b_14L問以政事得失令有所警是出於
010_0064_b_15L下問之不耻而欲使民無一夫不獲也
010_0064_b_16L今閤下治效黃龔公庭無訟爭圜墻
010_0064_b_17L無囚縶流民咸集頌聲多作政令有
010_0064_b_18L何所失哉然而閤下是心足以有濟矣
010_0064_b_19L日瞿瞿然猶恐有所失則山之民
010_0064_b_20L庶乎欣祝不已

010_0064_b_21L

010_0064_b_22L答申山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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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月中冠盖南顧得聆高論實有感
010_0064_b_24L但公車速歸未及究吐私心悵缺

010_0064_c_01L지금까지도 무엇인가를 잃은 듯합니다.
어제 또 먼저 내려 주신 안부 편지에 자세하게 하신 말씀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계등지溪藤紙61)와 몇 가지 물건까지 내려 주시니 저로서는 더욱 받기 난감하였습니다. 감동하고 당황한 마음을 말로 어찌 다 하겠습니까?
저는 명교名敎에서 버려진 사람이 된 뒤에 스스로 깊은 산속에 숨어 살면서 여생을 마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령(明府)62)께서 과분하게도 저를 여러 차례 불러 주시니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더더욱 깊어집니다. 어찌 너덜너덜한 가사를 걸친 중으로 하여금 금헌琴軒63)을 더럽히려 하십니까?
이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솔직하게 드리는 말씀이며 감히 어르신 앞에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수령께서 세상 밖을 흐르는 물길을 허물하지 마시고 그대로 두어 주신다면 아마도 산림 속에서 한가하게 노닐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 삼가 몸을 아끼시며 백성을 다스리시기를 받들어 축원합니다.
이 상사에게 주는 편지
어제 외출하였다가 산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대의 지팡이가 이미 산문을 지난 다음이었으니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저물녘에 비가 크게 내렸는데 비에 젖는 근심을 면했는지요? 돌아가신 뒤에 정양靜養은 어떠하신지요? 그리워하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저는 바위 동굴에 우두커니 앉아 있노라면 허다한 번뇌들이 이를 따라 점점 사라집니다. 이렇게 마친다면 임하林下의 즐거움은 충분할 것입니다.
손 진사에게 올리는 편지
지난해 제가 양주梁州에 가서 저물녘 서숙書塾에 들어가 풍채를 뵈었을 때에 대아大雅께서 한눈에 알아봐 주셔서 감동이 막심하였습니다. 쌀 한 말의 후의도 어찌 잊겠습니까? 돌아온 후로 한 해가 지났는데 형제(塤箎)64)들도 서로 잘 따르며 기거가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비록 산속에 살긴 하나 산속의 그윽한 맛이라곤 전혀 없고 교외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세상 근심이 끊이지 않으니 부끄럽고 탄식할 뿐입니다.

010_0064_c_01L至今如有所失昨又辱賜之問縷縷所
010_0064_c_02L有足感發人者而溪藤數物之貺
010_0064_c_03L此尤山人所不可堪承者也區區感悚
010_0064_c_04L何可勝言山人旣爲名敎中棄人自期
010_0064_c_05L歛迹深林以終餘年而明府過遇山
010_0064_c_06L屢命寵招俯仰愧怍益有入深之意
010_0064_c_07L豈可令鶉衲有凂於琴軒哉是固山人
010_0064_c_08L誠實語非敢自誣於長者之前也伏惟
010_0064_c_09L明府澤流方外不咎而置之則庶得
010_0064_c_10L優游於煙霞之間自餘奉祝愼嗇字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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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4_c_12L與李上舍書

010_0064_c_13L
昨出外還山則笻已過門矣歎尙何及
010_0064_c_14L薄暮雨大下其免淋漓之患耶歸後靜
010_0064_c_15L何似馳慕源源山人塊坐巖穴
010_0064_c_16L多煩惱從此稍袪以此而終則林下
010_0064_c_17L之樂足矣

010_0064_c_18L

010_0064_c_19L奉孫進士書

010_0064_c_20L
前年山人作梁州之行暮入書塾獲覩
010_0064_c_21L風采大雅一見而賜知感莫甚焉
010_0064_c_22L斗米厚意其又何忘歸來後歲一換
010_0064_c_23L未知塤箎相隨起居佳吉山人雖
010_0064_c_24L處林泉了無林泉幽味與野居相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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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께서는 문원(藝苑)을 익혀 일찍이 사마에 오르시고 문장이 일세에 중히 여김을 받아 유림儒林의 종사宗師가 되셨으니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시어 우리의 일을 온전하게 해 주십시오. 마침 영정靈井의 스님을 만났기에 바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역암 스님께 답하는 편지
멀리 떨어져 지내며 고결한 풍모를 우러러 그리는 마음이 정말 절실하였는데 이즈음에 편지가 도착하니 옛 친구의 얼굴을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 모시는 여가에 강경하는 일도 편안하고 즐거우시다니 더욱 기쁩니다.
저는 구차하게 추한 형상이나 지키고 살기에 사람들도 저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저 궁벽한 골짜기에 숨어 살면서 세상에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간혹 스님 같은 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안부를 물어 주시니, 이는 저를 불쌍히 여긴 것이나 더욱 저의 모자람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 남들 보기에 몹시 부끄럽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이후로는 저의 허물을 지적하여 책망해 주시고 세상 이야기는 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응 스님께 답하는 편지
한번 만나고자 고심하던 차에 이렇게 편지를 받으니 만난 것과 진배없습니다. 강단에 오르면 얇은 얼음을 디딘 듯해야 하고 초학을 대할 때에는 그 둔함을 탓하지 말고 가르쳐 이끌어서 깨달아 알게 해야 합니다. 학문의 성취는 낮은 데로부터 높은 데로 올라가는 것이니 이것을 아는 자라면 그 스승 노릇이 수고롭지 않을 것입니다.
이 늙은이의 학식은 스승이 될 정도가 못 되니 누가 나를 따르며 묻겠습니까? 혹시라도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할 뿐입니다.
혜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
스님은 꽃다운 나이에 자립하시어 창법唱法하는 황령 도량黃嶺道場에서 우리 화상의 도끼날(鈯斧)을 잡으셨으니, 우리 동방의 종지가 이로부터 거듭 떨쳐 일어났음을 알겠습니다.

010_0065_a_01L世慮不絕愧歎大雅習工藝苑早登司
010_0065_a_02L文重一世爲儒林師宗幸須汲汲
010_0065_a_03L勉進以全吾事焉適逢靈井僧忙此
010_0065_a_04L修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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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65_a_06L答櫟庵丈室書

010_0065_a_07L
逖違淸範政切瞻想書及此際如對
010_0065_a_08L故人顏面仍審侍餘講徒淸樂益用
010_0065_a_09L欣抃弟苟持醜狀人莫我好只將歛
010_0065_a_10L迹窮峽不立于世而間有如公者
010_0065_a_11L及存亡是欲恤我而尤彰吾短于人
010_0065_a_12L愧甚幸公從今以後但指其尤而責之
010_0065_a_13L莫用流俗之言是企

010_0065_a_14L

010_0065_a_15L答幻應丈室書

010_0065_a_16L
苦思一見今得書足爲次面旣登壇
010_0065_a_17L如履薄對初機莫嫌其鈍誘而導之
010_0065_a_18L使有曉解焉夫學之成自卑而高
010_0065_a_19L此者其爲師也不勞矣老友學無可
010_0065_a_20L人誰從我問或有從則行是而已

010_0065_a_21L

010_0065_a_22L與惠庵丈兄書

010_0065_a_23L
公竗年自立拈我和尙鈯斧于唱法黃
010_0065_a_24L嶺道場知吾東方宗旨從此重振也

010_0065_b_01L스님의 명성이 일찍부터 세상에 드러나 혹시라도 아침 일찍 핀 꽃이 쉽게 시들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래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법을 향한 성실함과 공부에 전념하는 근면함이 남들보다 뛰어나니 어찌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법석을 열었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더욱이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결국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 법반法伴이 많지 않다고 하던데 입실入室 초기에는 다 그렇게 적막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흉년을 만났기 때문이지 어찌 스님의 교화가 넓지 않아서이겠습니까? 앞으로 집 밖에 나막신이 가득한 곳은 반드시 스님이 계시는 곳일 것입니다. 못이 깊으면 고기가 많이 모인다는 말이 헛말이 아닙니다. 스님께서는 그저 힘쓰십시오.
성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
스님께서는 타고난 자질이 순박한데다 공부도 또 근면하시어 화상께서는 항상 저에게 “붕새(鵬)이며 살아 있는 고인古人이니 진실로 벗할 만하다. 너는 함께 수행(琢磨)하며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부터는 형제(昆仲)처럼 의탁하며 배운 것을 반드시 함께 공부하고 먹을 때에도 반드시 한 그릇을 썼습니다. 불행히도 저의 은사께서 병이 들어서 결국 두 자리로 갈라져 삼대를 잃은 쑥(如蓬失麻)65)과 같이 되었으니 한탄을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화상의 가르침이 귀에 생생하고 우리 형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공부가 더욱 진척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낮밤으로 업으로 삼는 것이라곤 그저 약이나 달이고 죽이나 끓이는 일이라 일전에 공부했던 것조차 갈수록 아득해집니다. 진실로 경전 공부는 박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으니 너무나 서글픕니다. 혹시라도 신명이 도와서 병이 회복된다면 지난날 놀이를 다시 잇겠지만 세상의 일이란 게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또한 어찌 꼭 그런다 하겠습니까? 그저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월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수팽·김수대 두 사촌 아우에게 주는 편지

010_0065_b_01L公之名早著於世恐或朝華之易凋
010_0065_b_02L而所可恃者其向法之誠專工之勤
010_0065_b_03L卓出乎人則其何有始而無終也聞開
010_0065_b_04L法之言然後尤覺有志者事竟成耳
010_0065_b_05L頃有人來言法伴不多是入室之初
010_0065_b_06L一寂寞事而寔年荒之致豈公之化不
010_0065_b_07L愽哉異日屐滿戶外者必公之居也
010_0065_b_08L淵深則魚聚此非虛語惟公勉之

010_0065_b_09L

010_0065_b_10L與聖巖丈兄書

010_0065_b_11L
公天資醇朴工夫又勤和尙常謂我曰
010_0065_b_12L鵬也今之古人也眞可與友汝宜共
010_0065_b_13L與琢磨毋相違也自聞是言托爲昆
010_0065_b_14L學必同課食必同器弟不幸有師
010_0065_b_15L遂分兩席如蓬失麻歎何可勝
010_0065_b_16L尙之誨在耳吾兄之儀在目欲忘而難
010_0065_b_17L未諦春和所工益進乎弟日夕所
010_0065_b_18L只煮藥煎粥耳日前所課轉益茫
010_0065_b_19L固知經工非薄福者所可爲也
010_0065_b_20L倘得神佑病若回春則更續前遊
010_0065_b_21L而世故多端亦安可必耶只希勉進
010_0065_b_22L毋負光陰

010_0065_b_23L

010_0065_b_24L與金壽彭壽大兩從弟書

010_0065_c_01L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잘 지내는가? 집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자의 사업은 부모 모시고 임금 섬기는 일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비 나이 8세가 되면 비로소 배움에 나아가는 것이다. 배운 뒤에라야 사람이 되며 사람이 되어야 부모 모시고 임금 섬기는 일을 온당하게 할 수 있다.
너희 두 사람은 온화하고 순박하여 선인의 유업(緖業)을 잇기에 충분하니 이는 가상하다. 걱정되는 것은 공부인데, 대개 공부는 근면에 달려 있다. 옛날 현인과 군자와 문장과 재주로 이름을 후세에 드리운 사람 중 근면함으로 얻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너희 두 사람은 나이가 벌써 15세나 되었는데도 배움에 성취가 없으니 스스로 두려워할 일이 아닌가? 나는 열 살 전에 수십 수백 권의 글을 다 배웠는데도 조금도 알려지지 못한 채 산속에서 참선하는 중이 되었다. 하물며 너희들 나이에 배움이 열 권도 되지 않아서야 쓰겠느냐? 자식이 배움을 성취하기를 부모는 바라고 있는데 부모의 바람을 저버린다면 불초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놀며 지내지 말고 스스로 나아가기를 힘써 선비의 업을 이룩하도록 하여라.
남양 스님께 답하는 편지
스님이 흰 구름 속으로 들어간 뒤로 흰 구름이 아득하여 소식 왕래가 어려우니, 옛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구름을 헤치고 편지 한 통이 왔기에 보내신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모두가 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두 번 세 번을 읽고 나니 맑고 시원한 마음을 말로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기쁘게도 법미法味를 건강하게 유지하시어 후진을 잘 이끌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쪽에 떨어져 살기에 원근에 일가붙이가 없어 심히 외롭습니다. 은사 스님만을 의지하는데 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처지라 살아갈 방도라곤 언덕의 소나무와 흐르는 시냇물뿐입니다. 그러니 가까운 친구가 방문하여도 예를 갖춰 대접할 길이 없습니다. 선가禪家에서는 담박함을 종지로 삼는다고는 하나 맞이하고 배웅하는 사이에 항상 부끄러움이 남습니다. 인사人事를 사절하고 곧장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것만 못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번거로울 듯싶어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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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家後連得好在否居家能不廢工夫
010_0065_c_02L男子事業在事親事君而已故士
010_0065_c_03L年至八歲始就學學而後成人
010_0065_c_04L人而事親事君無不宜也汝兩人溫醇
010_0065_c_05L足紹先人緖業是則可尙所可惧者學
010_0065_c_06L盖學在於勤古之賢人君子文章
010_0065_c_07L才譽之士名垂後世者孰不以勤而得
010_0065_c_08L今汝二人年已十五學無所成
010_0065_c_09L不自惧耶俺十歲前學盡數十百卷文
010_0065_c_10L猶蔑蔑無聞爲林下一枯禪況以汝之
010_0065_c_11L學不滿十卷耶子之成學父母望
010_0065_c_12L若負父母之望則是爲不肖子也
010_0065_c_13L勿爲浪遊勉强自進以成士子業

010_0065_c_14L

010_0065_c_15L答南陽丈兄書

010_0065_c_16L
自公之入白雲白雲渺渺信息難通
010_0065_c_17L每思故人心緖脉脉一封書披雲而來
010_0065_c_18L開緘所寄皆出於情看至再三淸爽
010_0065_c_19L不可言喜審法味保重善提後進也
010_0065_c_20L弟落在南天無遠近族親甚踽踽
010_0065_c_21L恩師是依俱是客棲活計唯岸松澗流
010_0065_c_22L而已親朋來訪無路禮接禪家雖以
010_0065_c_23L澹泊爲宗送迎間常有餘愧不若謝
010_0065_c_24L絕人事直入千峯萬峰裏獨居也餘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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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
스님께서 동래(萊州)로 떠나신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지만 아무 소식도 없으니 과연 지금은 어느 산에 기탁하고 계신지, 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강좌江左에 많은 학인이 있다는데 지금 스님의 강석講席 아래에는 얼마나 됩니까? 울적한 마음이 참으로 깊습니다. 저는 예전의 게으름은 고치지 못한 채 귀밑머리만 달라져서 염라대왕이 두려울 뿐입니다.
가까이 자리를 할 기회를 얻는다면 우울한 생각을 깰 수 있을 터인데, 구름 덮인 산이 만 겹으로 막혔으니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칠漆을 가지고 스님 계시는 곳으로 간다는 사람이 있기에 생각을 간략하게 펼쳤습니다.
태관 대사에게 답하는 편지
봄 사이에 두 번이나 편지를 받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어 아주 감동스럽고 또 기쁩니다. 배움에 있어서의 병은 대부분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게을러지는 데서 나옵니다. 스님만은 여러 사람들 밖에 탁월하여 이 병에 매이지 않으시니 지조가 굳고 강한 사람이 아니면 참으로 이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덕을 세우는 것(立德)이 으뜸이고 말을 세우는 것(立言)은 그 다음이니 지금 급한 임무는 덕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편지에 듣자니 스님께서 또한 그리하고 계신다니 총림에 인재 있는 것이 더더욱 경사입니다.
저는 병과 게으름으로 공부를 덮은 지가 오래입니다. 어쩌다 경전의 가르침을 펼쳐 보아도 멍하니 막힌 듯합니다. 세상일이 스스로 정하는 것인데 여러 현사들 사이에 버림을 받았다고 슬퍼하고 한탄한들 어쩌겠습니까? 실타래처럼 많은 회포는 조만간에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기암 스님께 답하는 편지
스님이 오셔서 제 마음이 적적하지 않았는데 스님이 가시고 나니 제 마음이 다시 외로워졌습니다. 매일 난간에 기대어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다가 오늘 스님의 편지를 보고서야 스님이

010_0066_a_01L煩不盡布

010_0066_a_02L

010_0066_a_03L奉聖巖丈室書

010_0066_a_04L
兄去萊州已數載了無消息果未知
010_0066_a_05L今寄何山又得何㨾江左多學人講下
010_0066_a_06L今致幾許慰愫良深弟昔慵無改而鬢
010_0066_a_07L毛有變閻老子可怕耳如得接席
010_0066_a_08L破欝思而雲山萬阻胡可得乎此人
010_0066_a_09L持漆向公居故略布所思

010_0066_a_10L

010_0066_a_11L答兌慣大師書

010_0066_a_12L
一春中兩得書知爲學勤勤深感且欣
010_0066_a_13L大抵爲學之病多出於先勇而後懶
010_0066_a_14L兄卓出衆人外不爲此病所拘非志操
010_0066_a_15L堅强者固如是乎然立德爲上立言
010_0066_a_16L次之則今之所急務無過於德而今
010_0066_a_17L聞兄亦能之益賀叢林之有人也弟以
010_0066_a_18L病懶廢工久矣雖或披閱經敎茫然如
010_0066_a_19L世事自期見棄於諸賢間悼歎奈
010_0066_a_20L縷縷餘懷以待早晏間

010_0066_a_21L

010_0066_a_22L答機巖丈室書

010_0066_a_23L
公之來我心不寂公之去我心復孤
010_0066_a_24L日倚欄以俟跫音今見公書始知公

010_0066_b_01L부모님 병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눈먼 봉사처럼 앞이 깜깜해집니다. 좌우를 둘러보면 방에 가득한 여러 도반들이 누구 하나 저에게 유익하지 않은 이가 없으나 생사를 걸고 서로를 돌봐 줄 사람은 스님 한 사람뿐입니다. 서로 떨어져 지낸 지 오래이니 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편지를 보낸 뒤의 병간호는 근간 좀 차도가 있으신지요? 병구완에 효도를 다하시어 빨리 신령의 감응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경계하고 채찍질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게으른 습성이 기세를 부려서 일상의 공부가 늘 잠과 한 덩어리가 되어 버렸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나머지 할 말은 다하지 않겠습니다.
구봉 스님께 드리는 편지
저와 스님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고 날짜만 스님이 저보다 사흘 뒤입니다. 참으로 흔치 않은 일이지요. 동갑에다 같이 법유法乳를 빤 것이 6, 7년이 되었으니 법에 있어서는 형제입니다. 하물며 함께 살기까지 하였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별 뒤에 다시 만나지 못한 지가 지금 10여 년이 되었으니 꽃 피는 아침이나 달 뜨는 저녁이면 어찌 그립지 않겠습니까? 늘 스님과 함께 진지한 공부를 하고 함께 휴양지에도 가고 싶으나 일이란 게 사람과는 맞지 않아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한탄스럽습니다. 스님의 지금 정황은 어떠신지요? 생활은 전에 비해 또 어떠신지요?
저는 양식은 소나무에 붙어 얻어먹고 일이라곤 잠에 붙어서 살 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저와 함께 잘 지낼 뿐이고 나머지는 다 저를 싫어하여 갈라지니 어찌합니까? 가는 인편이 있어 한마디를 부칩니다. 스님께서 잘 살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응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
도림道林의 성대한 법회도 근래에는 열리지 않고 역질 기운이 사납게 사방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부모님을 뵈러 먼저 고향에 돌아가신 뒤에 안安 스님은 천태天台로 향하고 연演 스님도 월출月出로 돌아갔습니다. 나머지 다른 도반들은 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가면서

010_0066_b_01L以親患不歸如盲失相環顧左右滿
010_0066_b_02L堂諸侶無非益我而死生相顧者
010_0066_b_03L公一人暌離已久我懷當如何未委
010_0066_b_04L書後侍病近有勿藥之漸否望須盡孝
010_0066_b_05L於湯灸之間遄膺神感弟旣無警策者
010_0066_b_06L則懶習得勢日用工夫常與睡眠
010_0066_b_07L成一團奈何餘不究所言

010_0066_b_08L

010_0066_b_09L與九峯丈室書

010_0066_b_10L
我與兄生同年月而日則兄後於我三
010_0066_b_11L固難得之同年而又同吮法乳者六
010_0066_b_12L七年則於法爲昆仲矣況活計同淸者
010_0066_b_13L相別後不得復合今已十餘年
010_0066_b_14L朝月夕寧無所思每欲與兄同做眞工
010_0066_b_15L同到休歇之地而事與人違志不得成
010_0066_b_16L可歎兄之動靜今何如生涯比前
010_0066_b_17L何如弟粮付於松事付於睡此二者
010_0066_b_18L與我爲好餘皆厭我分也奈何因便寄
010_0066_b_19L幸兄詳照

010_0066_b_20L

010_0066_b_21L與應巖丈兄書

010_0066_b_22L
道林盛會近所未有而癘氛肆虐
010_0066_b_23L圍四方兄以覲親先歸故山而安向
010_0066_b_24L天台演歸月出其餘諸友各散四出

010_0066_c_01L다들 시기가 안정된 후에나 다시 모이자 기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아갈 곳이 없어서 노스님(法老)의 수발을 들다가 그 해 겨울 두류산으로 따라 들어와 늘 여러 스님들의 말씀만 믿고 우두커니 기다린 지가 오래입니다.
작년에는 안 스님이 돌아가셨고 올해에는 연 스님도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애석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옛적 스님(仁明)과 함께 살 때에 늘 연 스님과 안 스님을 지목하여 “천성이 인자하고 타고난 재주가 고매하니 후일 종주宗主가 될 사람은 반드시 이 두 사람이며, 사람들에게 후덕하게 베푸니 또한 반드시 장수를 누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진 사람이 어려서 이렇게 요절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또 연 스님은 풍암楓巖 노스님의 고제高弟이니 스님과는 형제가 됩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서로 따르며 교류한 사이가 아닙니까? 두 스님의 상을 당하고부터는 호산湖山의 총림이 적막해졌습니다. 특히 슬픈 일은 안 스님의 모친은 금년에 70세가 넘으셨고 연 스님의 은사는 나이가 또 60이 되셨다는 겁니다. 다들 이미 노쇠한 나이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니 그 마음이 또 어떻겠습니까? 말을 하려면 마음이 내려앉는 듯하여 차라리 아무 말도 않는 게 낫겠습니다.
스님께 위로 양친이 계시다면 두 분 다 연로하셨을 테고 은사 스님 연세도 벌써 80이시니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불안한 마음을 알겠습니다. 스님께서는 부모님(庭闈)66)께 효도를 잘하시고 그 여가에 또 부지런히 사람을 맞아서 선사先師의 법석이 크게 광채를 발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빕니다. 저는 사람 세상에는 영 생각이 없고 정토의 업을 일으키고 싶습니다만 무한한 번뇌가 서로 방해하는 일이 심히 많아서 뜻만 있을 뿐 이루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설파 화상께 올리는 편지
요행히도 전생의 인연으로 자애로운 모습을 받들고 그윽한 가르침을 받아 나쁜 습기를 고쳤으니

010_0066_c_01L皆以時氣寧淨後再會爲期而弟無可
010_0066_c_02L歸者侍法老巾瓶其年冬隨入頭流
010_0066_c_03L每以諸兄之言佇待者久矣去年安兄
010_0066_c_04L長逝今年演兄又逝可哀可惜奈奈
010_0066_c_05L何何昔與仁明同居時每指演與安而
010_0066_c_06L言曰天性仁慈禀材高邁可以作他
010_0066_c_07L日宗主者必此二人也德厚施於人
010_0066_c_08L亦必能享其遐年誰知以仁者少者而
010_0066_c_09L若是夭折耶又演也爲楓巖老之高弟
010_0066_c_10L則與君爲昆仲而況自幼相從之交乎
010_0066_c_11L自二公之喪湖山叢林將寂寞矣
010_0066_c_12L可悲者安之母年今七十餘演之師
010_0066_c_13L年又六十皆以衰年中失此所愛
010_0066_c_14L懷當復如何欲道則殞心不如不言之
010_0066_c_15L爲愈也若吾兄上有兩親俱已老矣
010_0066_c_16L恩室之年又已八十則其轉仄不安
010_0066_c_17L可知矣望兄善孝庭闈取其暇又勤
010_0066_c_18L於接人使先師法席大有光彩焉
010_0066_c_19L禱至禱弟永無人世之念將欲提撕淨
010_0066_c_20L土之業無限煩惱交害甚衆恐或有
010_0066_c_21L志而無成也

010_0066_c_22L

010_0066_c_23L上雪坡和尙書

010_0066_c_24L
幸以夙緣得奉慈儀承玄誨革其舊染

010_0067_a_01L기쁨과 감동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찌는 듯한 더위에 법후法候 안녕하신지요? 간절하게 우러러 그립니다.
법비(法雨)가 뿌리는 곳에는 모든 풀들이 다 싹을 내는데 풀 하나만 그 비를 맞지 못한다면 어찌 비의 허물이겠습니까? 허물은 풀에 있는 것입니다. 풀이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그 은택을 입고 봄빛을 보게 될 것이니 그저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교화하고 제도하시는 몸을 천 번 만 번 아끼시기를 빕니다.
용암 화상께 답하는 편지
석장(虎錫)67)을 서봉사棲鳳寺로 향하실 때에 국태사國泰寺에 왕림하시어 무설헌無說軒에서 가르침을 받게 되었으니 후생에게는 실로 지극한 행운이었습니다. 그 뒤에 한번 달려가 인사드리고 싶었으나 그로부터 지연된 것이 이제 한 해가 되었습니다. 늘상 마음으로 한탄하던 차에 근자에 먼저 가르침을 내려 주시고 은혜로운 물건까지 내려 주시니 송구스럽고 감동스럽습니다. 교화하시는 정황이 좋다고 하시니 더욱 간절히 기쁜 마음으로 경하드립니다.
저는 용렬한데도 망령되이 주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참으로 모모嫫母68)의 추함이 남김없이 드러난 줄 알겠으나 형세가 호랑이를 탄 것 같으니 어떻게 해야 내려갈 수 있겠습니까?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대중들을 대하시는 일이 진승珍勝하시기를 받들어 기원합니다.
척전 대사께 드리는 편지
교목喬木의 잎이 기수祇樹69) 덤불 속으로 날아들었다면 향리의 옛일은 생각하지 말고 흰 구름을 집 삼아 머물러야 합니다. 서교西敎를 연구하여 옛 현인들이 도달한 자리에 이른다면 출가한 일이 성공한 것이니 어찌 속세의 덧없는 영화에 비하겠습니까? 금어金魚70)를 차고 붉은 도포를 입는 고관 자리는 사람들이 영광스럽고 귀중하게 여기는 일이지만 성공과 패배가 서로 좇기 때문에 안위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옛사람들도 “벼슬 바다에 바람 불고 파도친다.”는 말을 하였던 것이니 스님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공경대부의 자제들이 영락零落하여 공문空門에 들어오는 자가 정말 한 둘이 아닙니다. 어디 스님 하나뿐이겠습니까?

010_0067_a_01L欣感何量未審蒸炎法候安寧伏切景
010_0067_a_02L法雨灑處羣卉皆萌而獨有一草
010_0067_a_03L未得其沾豈雨之過過在於草草若
010_0067_a_04L不死必將得蒙其澤以見春光但竢
010_0067_a_05L時而已只祝化度萬嗇

010_0067_a_06L

010_0067_a_07L答龍巖和尙書

010_0067_a_08L
虎錫向棲鳳時枉顧國泰承誨於無說
010_0067_a_09L實後生之至幸其後一欲趍拜
010_0067_a_10L爾遲延歲今一周矣每深伏悵玆者
010_0067_a_11L先垂俯敎兼惠之物悚悚感感伏審化
010_0067_a_12L度邵吉尤切喜賀泓宥碌碌無似
010_0067_a_13L處主席固知嫫母之醜已露無餘
010_0067_a_14L勢猶騎虎何以下之忸怩不已奉祝
010_0067_a_15L對衆珍勝

010_0067_a_16L

010_0067_a_17L與陟顚大師書

010_0067_a_18L
喬木之葉旣飛入祗樹叢中勿思鄕井
010_0067_a_19L故事宜以白雲爲栖止硏究西敎
010_0067_a_20L古賢所到則於出世事成功豈塵間浮
010_0067_a_21L榮之可比哉金魚朱袍雖人所榮貴
010_0067_a_22L成敗相隨安危不定古人稱之曰
010_0067_a_23L海風波君其思之當今公卿之子
010_0067_a_24L落入空門者固非一二豈獨君耶

010_0067_b_01L
순학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스님이 강동으로 돌아가 강단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법석을 열어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말을 들은 지 5, 6년이 되었다. 간혹 스님 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끝내 한마디 안부를 서로 묻는 일이 없었으니 몹시 괴이한 일이다.
사람이 짐승보다 귀하다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속세에서는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도리를 아는 것이며, 승단에서는 스승이 스승답고 제자가 제자다우며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다운 도리를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귀하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스님이 여러 해 나를 따르며 배운 것이 많았기에 돌아갈 때에는 법을 잇기를 바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덕이 엷어서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누차 물리쳤음에도 스님은 끝내 나를 버려두지 않고 게송을 지어 올렸고 책冊을 청하여 떠났는데 이것은 스님이 마음에 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지금 스님이 떠나고 3개월 동안 해송海松에게 배움을 청하여 법을 잇겠다고 하였다가 또 버렸고, 게다가 본래 수업하던 곳에 붙었다가 다시 떠나가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스님의 타고난 본심이겠는가?
나의 책자가 지금 스님 수중에 있으니 그곳 사람들도 스님을 괴이하게 여기고 나도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지금 사람을 보내 그 책을 가져오려 하니 스님은 마음을 쏟아 생각해 보고 보낼 만하면 보내고 가지고 있을 만하면 가지고 있도록 하여 뭇 의심들을 끊도록 하라.
설봉에게 답하는 편지
초봄에 고귀한 발걸음으로 누추한 거처에 왕림해 주시어 맑은 기상을 받들고 자비로운 법어를 들어 세속의 생각을 온통 잊었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얻은 것이 많다 싶었습니다. 발길을 돌리신 뒤에 가슴속에 더럽고 인색함이 점차 생겨나니 어떻게 합니까? 대개 세간의 일은 일찍이 배워 터득했고 익숙히 생각했던 것이어서 물리쳐 버리려 해도 모르는 사이에 타협하게 됩니다. 중이 공안公案에 전념하여 바닥까지 끌어가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노장老長께서는 사람을 접하신 지 오래이시라

010_0067_b_01L與順學丈室書

010_0067_b_02L
聞師歸江東登壇竪拂開法化人者
010_0067_b_03L已五六年人或有自師邊來而終無一
010_0067_b_04L語相問甚可恠也人之能貴於禽獸者
010_0067_b_05L在俗則知君君臣臣父父子子之道
010_0067_b_06L在僧則知師師生生兄兄弟弟之道
010_0067_b_07L誰云人貴哉師數年從我所學頗
010_0067_b_08L故歸時願爲嗣法顧我德凉不可
010_0067_b_09L爲人師故屢次却之師終不肯捨我
010_0067_b_10L述偈以呈請册而去是師之心有所在
010_0067_b_11L而然也今師之去也三月請益於海松
010_0067_b_12L願爲嗣復棄之又附於本受業處
010_0067_b_13L欲離去是豈師天賦之本心哉吾之册
010_0067_b_14L今在師手則彼處諸人應恠師而
010_0067_b_15L又恠我矣今送人欲取其册師留神
010_0067_b_16L思之可送則送之可留則留之以絕
010_0067_b_17L衆疑

010_0067_b_18L

010_0067_b_19L答雪峯書

010_0067_b_20L
高躅春初枉屈陋居得奉淸範聽慈
010_0067_b_21L悲法語渾忘塵想自以爲所得多矣
010_0067_b_22L旋笻後胸中鄙吝漸生奈何盖世間事
010_0067_b_23L曾習得熟思欲抵去而不覺打合衲子
010_0067_b_24L若無專提底公案則何以屏除耶長老

010_0067_c_01L이런 방편이 있으실 터인데 과연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나중에 한번 꼭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유삼가에게 감사드리는 편지
제가 우두커니 빈산에 앉아서 생각지도 않게 대군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접때 읍인邑人이 편지 한 통을 전하러 산중으로 찾아왔습니다. 열어 보니 바로 수령께서 내리신 것이어서 읽으면서 말로 할 수 없는 감탄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선선한 가을바람에 고을을 다스리는 생활(琴候)이 좋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니 기쁘고 위로 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한번 방문하라는 명은 감히 즐겁게 따르지 않겠습니까마는 마침 병과 자질구레한 일들이 걸려서 달려 나갈 수 없겠습니다. 몹시 황송합니다. 합하께서는 자만이라 허물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삼가고 절제하시기를 엎드려 기원합니다.
허농묵에게 답하는 편지
접때 댁으로 찾아갔을 때에도 후하게 내려 주셨는데 오늘 또 가르침을 받아 보니 말씀이 매우 정중하여 참으로 황송하고 감격하였습니다. 스스로 대군자의 넓은 도량이 있지 않고서야 그 누가 산인을 불쌍히 여겨 돌아보겠습니까? 서늘한 가을에 정양靜養하시며 잘 지내신다 하니 기쁘고 기쁩니다.
저는 성품이 본디 방자하고 게을러서 매일 하는 일 없이 날만 보내고 있습니다. 산문山門의 일이란 게 그저 그것뿐이라 그 밖에 다시 더 드릴 말씀이 뭐 있겠습니까? 편지 중에 나귀 몰고 등산을 하자는 말씀이 있기에 미리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법화경』 강경 요청에 답하는 편지
연사蓮社는 방장산方丈山의 유명한 강법처講法處여서 실로 나처럼 용렬한 사람이 기웃거릴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메추라기를 봉황인 줄 알고 이렇게 편지로 청하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010_0067_c_01L接人已久應有此箇方便果布施否
010_0067_c_02L後必一叩而承誨矣

010_0067_c_03L

010_0067_c_04L奉謝柳三嘉書

010_0067_c_05L
山人塊坐空山不意見憐於大君子
010_0067_c_06L者邑人以一書傳致山中啓之則乃
010_0067_c_07L明府所賜也吟讀感歎不知所諭
010_0067_c_08L伏審秋風琴候佳勝者乎欣慰區區耳
010_0067_c_09L一訪之命敢不樂從適有病冗爲礙
010_0067_c_10L未克趍進殊甚惶悚伏望閤下勿以
010_0067_c_11L自慢爲過小垂容赦則幸甚伏祈爲國
010_0067_c_12L愼節

010_0067_c_13L

010_0067_c_14L答許聾默書

010_0067_c_15L
曩扣高門旣受厚賜今又受敎辭甚
010_0067_c_16L鄭重誠切惶感自非大君子弘度
010_0067_c_17L誰向山人眷眷耶伏審秋凉靜養佳慶
010_0067_c_18L伏伏喜喜山人性素放懶每無用度日
010_0067_c_19L山門事業只是而已此外更復何言
010_0067_c_20L書中有策驢登山之語預切欣企

010_0067_c_21L

010_0067_c_22L答法華請書

010_0067_c_23L
蓮社乃方丈有名講法處實非如我碌
010_0067_c_24L碌所可跂足而今僉賢視鷃爲鳳

010_0068_a_01L설사 여러분의 뜻에 따르고 싶어도 여러 곳에서 웃음을 사면 어쩌겠습니까? 부디 다시 눈 밝은 주법主法 장로를 맞이하여 경계境界와 사람이 걸맞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재청에 답함
지난번 인편이 떠나고 오늘 또 사람이 와서 부지런히 청하며 오라고 하니 혹시 여러분의 노여움이라도 사면 어쩔까 두렵습니다. 사람 일을 점검해 보면 온갖 훼방이 따라 생기는데 나같이 용렬하고 나약한 사람에게 어쩌자고 권하는지요? 그저 두터운 정의에 감동하여 발우를 씻도록 감히 허락합니다.
강좌 우인에게 드리는 편지
조용히 생각해 보면 산방에서 이별을 한탄하고 싶지는 않으나 낙수洛水 강가에서 합장하고 배웅한 생각이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세상 정을 끊어 버리기가 이다지도 어려운지요? 근자에 듣자 하니 병석瓶錫이 근처 율곡栗谷에 머무르고 계시다 하던데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섭섭하게 어찌 한번 들러 주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편지조차 주시지 않으셨는지 의아합니다.
영우嶺右71)의 풍속은 강좌江左에 비해 어떻습니까? 순박한 아름다움은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만 경전 공부에 뜻을 둔다면 이곳도 살 만합니다. 부디 척박하다 싫어하지 마시고 속을 든든히 채워서 돌아갈 생각만 하십시오. 한가한 틈을 내어 한번 찾아 가겠습니다.
서序
응서 상인이 북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말을 청하기에 그 이름을 풀어서 쓰다
상서로운 별(慶星)이 나오고 상서로운 구름(卿雲)72)이 찬란한 것은 순임금의 길조가 아니겠으며, 기린 발자국(麟趾)73)과 봉황 울음(鳳鳴)74)은 주 문왕의 상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상서가 으뜸이고 사물의 상서는 그 다음이다.

010_0068_a_01L此書請愧甚縱欲副賢意奈諸方取笑
010_0068_a_02L幸更邀明眼主法長老使境與人稱
010_0068_a_03L如何如何

010_0068_a_04L

010_0068_a_05L答再請

010_0068_a_06L
前便去了今又有人勤請欲麾則或
010_0068_a_07L恐逢賢之怒奈何點撿人事百毁隨生
010_0068_a_08L如余庸懦烏乎勉歟只感厚誼敢許
010_0068_a_09L洗鉢

010_0068_a_10L

010_0068_a_11L與江左友人書

010_0068_a_12L
靜念山房不欲歎別離而洛水邊
010_0068_a_13L送一念迄今不昧世情之勦絕至此難
010_0068_a_14L頃聞瓶錫近住栗谷果爾耶若爾
010_0068_a_15L何惜一投笻耶吾訝其不存書也嶺右
010_0068_a_16L風俗比江左何如想醇美有不及
010_0068_a_17L有志經工此亦可住也望勿以澆薄爲
010_0068_a_18L惟思實腹而歸焉吾將乘閒一進討

010_0068_a_19L

010_0068_a_20L

010_0068_a_21L應瑞上人北歸請余贈語余演其名
010_0068_a_22L以塞

010_0068_a_23L
慶星出卿雲爛非虞之瑞乎麟之趾
010_0068_a_24L鳳之鳴非周之瑞乎然而人瑞爲上

010_0068_b_01L서로 화합하는 백공百工75)이야말로 순임금의 으뜸가는 상서上瑞였고, 진진振振한 공자公子76)와 애애藹藹한 길사吉土77)야말로 주 문왕의 으뜸가는 상서였다. 사람의 상서가 있은 뒤라야 하늘이 사물의 상서로써 거기에 응하는 것이다.
응서應瑞 상인은 상문桑門의 상서라고 할 수 있다. 상인은 북쪽 사람으로 풍계豊溪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고 스님이 남쪽으로 올 때에 상인도 따라서 수천 리 밖으로 내려왔다. 음식을 드실 때에는 꼭 맛을 보고 앉으실 때에는 꼭 자리를 펴 드리면서 그 기거를 굽어보고 우러르면서 순하게 받들었고 한번도 거스르는 법이 없이 기쁘게 따랐다.
그대가 스승을 공경하는 것을 보니 그 부모에게도 효도하리라는 것을 알겠다. 그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그 스승을 어떻게 이처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에는 부모와 스승에 대한 것보다 큰 것이 없으니, 이 사랑을 넓혀서 중생에게 미치고 곤충과 초목에게 미치는 것이 바로 대자대비이다.
자비가 크다면 어찌 부처(能仁氏)가 아니겠는가? 상인이 참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상서로운 빛이 정수리 위에서 일어나고 하늘꽃(天花)이 어지러이 뜰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무릇 정성의 감동에는 사물이 어쩌다 응하지만 효도가 지극한 자에게는 하늘이 반드시 응하니,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이나 반드시 얻을 수 없는 물건이라 해도 그 뜻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듣기에 괴이하고 허탄하여 이치를 벗어난 것 같겠지만 이 역시 이치이다. 그러므로 눈 속에 죽순이 올라오고 얼음 속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것이 거짓일 수 없다. 내가 사람들과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말을 했었다.
“하늘이 효자에게는 그 응함이 몹시 빠르고 사랑함이 몹시 철저하며, 불효자에게는 또한 반드시 아주 밝게 감시하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
지금 상인이 북으로 돌아가며 나에게 한마디 해 달라고 하는데 말이 더 이상 무슨 상서가 되겠느냐? 돌아가 덕을 쌓기에 더욱 힘쓰라(無孤).78) 나는 그대의 뜻을 상서롭게 여기노라.
농묵재서

010_0068_b_01L物瑞次之相和之百工乃虞之上瑞也
010_0068_b_02L振振之公子藹藹之吉土乃周之上瑞
010_0068_b_03L有人瑞然後天以物瑞斯應之矣
010_0068_b_04L應瑞上人可謂桑門之瑞也上人北人
010_0068_b_05L師事豊溪公公之南也上人隨而來數
010_0068_b_06L千里之外食必嘗席必設其起居俯
010_0068_b_07L仰順承焉一未有忤愉如也翼如也
010_0068_b_08L吾見爾之敬於師知其亦孝於親也
010_0068_b_09L不能愛其親者愛其師何能若是耶
010_0068_b_10L愛莫大於親師以是愛而廣之及於衆
010_0068_b_11L及於昆蟲草木乃大慈大悲也
010_0068_b_12L悲之大豈非能仁氏乎上人苟能爾
010_0068_b_13L則將見祥光起於頂上天花紛然落
010_0068_b_14L於庭矣凡誠之所感物或有應而至
010_0068_b_15L於孝之至者天必應之事之必不然
010_0068_b_16L物之必不得者猶能遂其志聞之恠誕
010_0068_b_17L似是理外而是亦理也故雪笋氷魚
010_0068_b_18L不可誣也余嘗與人語此而曰天之於
010_0068_b_19L孝子其應甚捷其愛甚周其於不孝
010_0068_b_20L亦必監之甚昭豈不畏哉今上人
010_0068_b_21L北歸要余贈言言復何爲瑞乎歸而
010_0068_b_22L益勉無孤余瑞汝之志

010_0068_b_23L

010_0068_b_24L聾默齋序

010_0068_c_01L
정자와 재실의 이름은 지명에서 취하기도 하고 자기 몸에서 취하기도 합니다. 형주荊州의 악양루岳陽樓79) 같은 것은 그 지명에서 취했고 저주滁州의 취옹정醉翁亭80)은 그 사람에게서 취한 것입니다.
지금 선생은 오도동吾道洞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면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서 편안하게 세상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무릇 소리의 아름답고 추한 것들을 선생은 안 들리는 척 모두 듣지 않고, 남들은 다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선생은 또 침묵합니다. 항상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음을 스스로 기뻐하기에 그 재실에도 ‘농묵聾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기에게서 취하여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접때 선생을 산속에서 만났을 때에 얼핏 그 풍도가 고매함을 알아보긴 하였지만 선생의 귀먹고 말 못함(聾默)이 격정에서 나온 것인지 진정으로 이를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제 그 당에 올라 그 편액을 보고 또 선생을 종일 마주 대한 뒤에야 과연 선생의 마음 씀이 진실로 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불자(浮屠)이기에 불자의 말로 말해 본다면 남순 동자南詢童子는 듣지 않고서 듣고(不聞聞), 관음보살은 말하지 않고서 말하였습니다(無說說). 듣지 않았는데 어찌 들었다고 할 수 있으며, 들었는데 어찌 듣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 말했다고 할 수 있으며, 말했는데 어찌 말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생은 듣지 않고 듣는 것입니까, 말하지 않고 말하는 것입니까? 들으면서 듣지 않는 것입니까,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깊어지고자 하는 것입니까?
세상에는 진짜 귀먹고 진짜 말 못하여 어리석음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 사실은 귀먹지도 말을 안 하지도 않으면서 다투어 내세워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은 이 두 종류의 사람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술에 취한 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갑자기 듣고 말하는 것이 다 없어지지만 취한 자가 정신이 들면 문장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선생도 듣는 때가 있고 말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선생의 성이 허許81)이고 세상에서 숨어 이름을 버리고 살기에 향당에서는 또한 기산옹箕山翁이라고들 부르는 것이겠지요.

010_0068_c_01L
亭齋之名或取諸地或取諸己若荆
010_0068_c_02L之岳陽取其地滁之醉翁取其人也
010_0068_c_03L今先生卜居吾道洞築室而居隱几闔
010_0068_c_04L恬然忘於世凡聲之美者惡者
010_0068_c_05L生矓然皆無聞也其於言語也人皆好
010_0068_c_06L辯焉先生又默如也恒以不聞不言
010_0068_c_07L自怡而命其齋曰聾默盖取諸己而名
010_0068_c_08L者也曩者一見先生於山中粗識其風
010_0068_c_09L度高邁第未知先生之聾默出於激乎
010_0068_c_10L其眞以是樂乎今昇其堂見其扁
010_0068_c_11L與先生相對終日然後果識先生之用
010_0068_c_12L心固如是也然余浮屠者請以浮屠之
010_0068_c_13L言言之南詢童子不聞聞觀音菩薩無
010_0068_c_14L說說不聞則其可謂聞乎聞則其可謂
010_0068_c_15L不聞乎無說則其可謂說乎說則其可
010_0068_c_16L謂無說乎今先生不聞而聞乎無說而
010_0068_c_17L說乎聞而不聞乎說而無說乎并與
010_0068_c_18L不聞無說而欲冥焉乎世固有眞聾眞
010_0068_c_19L而癡獃不分者矣亦固有不聾不默
010_0068_c_20L而爭辨相尙者矣先生其諸異乎二者
010_0068_c_21L夫醉者昏倒蘧然聞說俱無然而
010_0068_c_22L醉翁醒能述文先生亦有聞之之時乎
010_0068_c_23L亦有說之之時乎先生姓許以隱逸
010_0068_c_24L名於世故鄕黨亦稱箕山翁云

010_0069_a_01L
현 대사의 승문족보와 계첩에 서하다
임오년 여름에 내가 아림娥林82)을 경유하여 천령天嶺83) 법화사法華寺84)에 이르렀을 때 우리 현 스님께서는 그곳에 머물고 계셨는데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나에게 주며 말하였다.
“나무에 길고 짧고 크고 작고 곧고 구부러진 차이가 있지만 봄이 되면 꽃과 잎이 함께 싹 트고 색과 모양이 같은 것은 그 뿌리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도 늙고 젊고 똑똑하고 어리석고 현명하고 모자라는 차별이 있으나 기쁨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슬퍼하거나 축하하는 것이 같은 것은 그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예를 제정할 때에 백성들에게 조칙을 내려 소목昭穆을 밝히고 친소親踈를 펼치어 먼 조상으로부터 먼 후손까지 그 친속親屬들로 하여금 화목을 숭상하고 길흉을 묻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인이 인정人情에 따라 자연히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근세에 이 도가 무너져서 사람들은 사사로이 자기 욕심대로 하면서 예에는 어두워졌으니, 가까운 친족이라도 사는 곳이 멀면 장년長年이 되도록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길 가는 사람들처럼 어쩌다 길에서 만나도 안부도 묻지 못하고 어쩌다 문 앞까지 찾아와도 맞아들일 줄을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거의 금수나 다름없으니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승문僧門의 무리들이 의리로 맺어진 사이이긴 하나 3년과 기년朞年의 복服을 입으니 하늘이 낸 친속과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동문同門에서 난 도반들이 평생 서로 보지도 못하고 심하게는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내가 이를 개탄하여 분명히 밝혀서 여러분에게 고하고자 하나 내가 성인이 아니니 어떤 사람이 기꺼이 따르겠습니까? 우선 우리 승문의 원근 지파를 물어서 하나의 계보로 만들어 그려서 여러 사람들이 그 조상과 후손, 숙부와 조카, 형과 아우의 관계를 알도록 하였습니다. 또 계契를 만들어 1년에 한 번 만나 서로의 얼굴과 사는 곳을 알도록 하여 낯선 행인처럼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길흉의 대소사가 있을 때에도 슬퍼하거나 축하해 준다면 후진들에게 큰 경책警策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부디 나를 위해 글로 써 주기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 내가 산속으로 들어온 후로

010_0069_a_01L眩師僧門族譜及設契帖序

010_0069_a_02L
壬午夏余由娥林至天嶺之法華時
010_0069_a_03L吾兄眩公住此手持一册授余曰
010_0069_a_04L雖有長短大小枝梧輪囷之異方春花
010_0069_a_05L葉同抽色貌相同者由其根一也
010_0069_a_06L之族雖有老少智愚賢不肖之殊當休
010_0069_a_07L戚之至臨慶是同者由其本一也
010_0069_a_08L聖人制禮以詔于人明昭穆叙親踈
010_0069_a_09L自高曾至雲仍使其支屬敦睦是尙
010_0069_a_10L吉凶是問此聖人因人情之自然而爲
010_0069_a_11L之者也近世此道寢壞人私其欲
010_0069_a_12L於禮雖近族若所居相遠則長年不
010_0069_a_13L相見便似路人或逢於路而不知問
010_0069_a_14L或臨其門而不知延幾乎禽獸可勝
010_0069_a_15L歎哉我僧門之族雖以義結而爲之
010_0069_a_16L服三年朞年則是同天屬也今同門之
010_0069_a_17L或至於一世不相見甚者又不知
010_0069_a_18L余慨之欲申明以告于人吾非聖
010_0069_a_19L人誰肯從姑詢吾僧門之遠近枝派
010_0069_a_20L圖成一譜使諸人知其祖孫叔侄昆仲
010_0069_a_21L之誼又設契以一年一會識其顏
010_0069_a_22L其居使不至如路人至於吉凶之際
010_0069_a_23L又有以臨慶則其於後進大有警矣
010_0069_a_24L幸爲我文以辯之余曰自吾入嶺

010_0069_b_01L30년 동안 총림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스님에게서 보고서야 비로소 스님의 뜻이 유속流俗을 벗어나 우뚝함을 알았습니다. 또 성인의 도는 언제나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때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동하여 글을 쓴다.
추 첨지가 논을 바치기에 쓰다
거제巨濟 양정리陽亭里에 사는 첨지 추태종秋泰宗은 그 아우 태순泰淳이 후사(後券)를 남기지 않고 죽자 그 아우의 수전水田인 볍씨 24말을 심을 수 있는 땅을 산청山淸 국태사國泰寺 심적암深寂庵에 바쳤다. 대개 추모의 정이 깊어 그 제사가 끊어질까 걱정하며 오래도록 제사를 받게 하고자 현복玄福을 닦은 것이다. 아! 삼대三代 때에는 교화의 아름다움으로 풍속이 순박하여 자식은 그 효도를 다하고 아우는 그 공경을 다하였으니, 상하가 서로 예와 악으로 숭상하고 강기綱紀의 대체大體가 찬연하게 순서를 갖고 있었다. 말법 시대에 이르자 풍속이 날로 천박하게 변하여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친형제라 하여도 재물과 이익을 다투어 인을 이지러뜨리고 의를 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추 군처럼 아우의 재물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삼보에 바쳐 오래도록 향유하게 하고 욕심을 줄여 우애의 도리를 다하는 자가 요즘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계봉鷄峰 원愿은 바로 그의 아들이다. 그 아비를 공경히 따르고 또 그 숙부를 생각하여 이 일을 도와 이루었으니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암자는 연이어 몇 해 동안 고쳐 짓느라고 모아 놓은 비용이 다 고갈되어 거의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 계봉이 또 낡은 절을 보수할 뜻을 가져서 다른 곳에 주지 않고 여기에 주니 이 역시 시급한 일을 아는 것이다. 어찌 친속에게 효도하는 것뿐이겠는가? 또한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잘한 이익이나 다투는 소인배들에게 이 노인네 부자를 보여 준다면 어떻겠는가?

010_0069_b_01L以來三十年遍遊叢林未聞有是事
010_0069_b_02L今於吾兄而見之始知兄之志卓出流
010_0069_b_03L又知聖人之道常存在乎人而不在
010_0069_b_04L乎時感而書之

010_0069_b_05L

010_0069_b_06L秋僉知納田序

010_0069_b_07L
巨濟陽亭里僉知秋君泰宗以其弟泰
010_0069_b_08L死無後券其弟之水田可種稻二
010_0069_b_09L十四斗地納于山淸國泰寺深寂庵
010_0069_b_10L追悼深而恐其祀絕欲令久享齋薦
010_0069_b_11L而修玄福也三代之時化美俗淳
010_0069_b_12L子致其孝弟致其悌上下相尙以禮樂
010_0069_b_13L綱紀大體燦然有倫及至末代風移
010_0069_b_14L俗變日趍於薄雖親兄弟同父母
010_0069_b_15L爭貨角利虧仁傷義者如秋君不以
010_0069_b_16L弟之物爲己有納諸三寶俾圖久享
010_0069_b_17L其簡欲而能盡友道者今世有幾人乎
010_0069_b_18L鷄峰愿即其胤也敬順其父又思其
010_0069_b_19L叔父贊成是事可謂是父之子也
010_0069_b_20L庵經連年修造之餘儲用磬竭幾不可
010_0069_b_21L復振今鷄峯又有補弊之志不納于他
010_0069_b_22L而于此是亦知其緩急者也奚但孝於
010_0069_b_23L亦敬於佛矣若使區區爭利之輩
010_0069_b_24L視此老父子當如何哉

010_0069_c_01L
도연 대사를 보내며 쓰다
연 스님은 강진 사람으로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순수합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도를 닦는 사람이 되어 세상과 섞이기를 좋아하지 않고 매일 경전을 읽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친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멀리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설사 멀리 가더라도 부지런히 부모님을 찾아뵙곤 했으니 사람들이 다 그 효성을 칭찬하였습니다. 내가 소문만 듣고 만나 보지는 못했는데 신유년 겨울에 내가 순창淳昌에 갔을 때에 스님도 모임에 와서 함께 용담龍潭 스님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경학經學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데도 스스로 거만하지 않고 동학同學들을 볼 때에도 반드시 공경스럽게 대하였습니다.
내가 그 대중 사이에 공경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그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은 나보다 두 살이 위이시고 또 나와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라 정의가 자못 밀접합니다. 이제 부모님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신다니 그 이별이 애석하고 또 마음에 감동이 있기에 이 글을 써서 스님을 전별합니다.
홍 대사에게 보내는 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하고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뜻이라고 합니다. 뜻이란 정신을 쏟거나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뜻의 뿌리가 깊으면 하늘도 진실로 뺏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에는 장가를 든다면 음려화陰麗華85) 같은 아내를 얻고 싶기도 하고 일생 동안 조사祖師가 되기를 꾀하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크고 작음은 다르지만 적극적인 기운이 이르면 하늘도 과연 뺏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에 우리의 뜻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똑같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만물 중에 신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사는 어린 나이에 우리 용담龍潭 화상을 따라 곁에서 모시는 10여 년 동안에 한번도 소홀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 끝이 처음과 똑같았으니 이는 스승을 모시는 뜻이 돈독하였기 때문입니다. 16세에 가르침을 청하여 내가 계몽한 후로 또 30년이 지났는데 다시 옷을 걷어붙이고 나를 따른 지도 어언 7년이 되었습니다. 이는 배움을 향한 뜻이 크기 때문입니다.

010_0069_c_01L送道演大師序

010_0069_c_02L
演公康津人天資溫純少年又爲空門
010_0069_c_03L道人不與世好日以經卷爲事業
010_0069_c_04L家親在堂故未嘗遠遊雖遠亦勤歸
010_0069_c_05L人皆稱其孝余聞而未之見也
010_0069_c_06L酉冬余遊淳昌公亦會焉俱受業於龍
010_0069_c_07L潭門下竊觀其經學在人之上不自
010_0069_c_08L爲傲視學子輩亦必敬待之吾見其
010_0069_c_09L敬於衆固知其孝於親也公年長吾二
010_0069_c_10L又與我結爲兄弟情義頗密今爲
010_0069_c_11L親歸故山余惜其別又有感於懷者
010_0069_c_12L寫此以餞公

010_0069_c_13L

010_0069_c_14L贈洪師序

010_0069_c_15L
萬物之靈者曰人人之所貴曰志志者
010_0069_c_16L神識注定之謂也志之爲根也若深
010_0069_c_17L固不可奪然人之志有若娶妻當得陰
010_0069_c_18L麗華者有若一生須掛祖師圖者大小
010_0069_c_19L雖不同陽氣所到天果不能奪而卒
010_0069_c_20L就吾之志則同此豈非人之所貴萬物
010_0069_c_21L之靈者歟師幼年從我龍潭和尙
010_0069_c_22L側十餘年未嘗有惰容其終如始
010_0069_c_23L事師之志篤也十六請敎我啓其蒙後
010_0069_c_24L又三十更隨我褰衣凡七年是向學之

010_0070_a_01L근식根識이 노둔하였다면 1, 2년이면 그만두었을 테니 총림의 여러 도반들 중 누가 대사의 이름을 알기나 했겠습니까? 대사가 대사다운 것이 또 어찌 여기에만 머물 수 있겠습니까? 대사가 다시 갈고 닦기를 힘써 참선으로 포단을 뚫고 칠통漆桶을 때려 부셔서 우리 본래의 면목을 밝힌다면 대사의 뜻을 거의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려서 역사서를 읽을 때에 무휼無恤이 가슴 속에서 죽간을 꺼낸 대목86)에 이르면 언제나 책을 덮고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제 대사가 돌아가신 스님께서 10년 전에 보낸 시를 들고 와서 나에게 보이니, 그 정중하게 지킨 뜻이 아름답다 하겠습니다. 이런 뜻이라면 어찌 칠통을 부수지 못할까 걱정하겠습니까? 내가 돌아가신 스님께서 남긴 게송을 보니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처연한 마음에 옷깃을 적시게 됩니다. 마침내 그 감동을 뜻에 담고 또 대사께서 힘써야 할 것을 써서 보입니다.
영 스님(관식의 초명)에게 주는 서
처음 내가 회계會稽에 살 때에 노선생 한 분이 영진정사影眞精舍로 나를 방문하였는데, 두꺼운 눈썹과 흰 수염의 기풍과 거동이 진짜 학사였다. 그의 옆에 어린 아들이 서 있었는데, 나이는 약 11, 12세 정도 되었고 모습이 그림 같으며 피부가 옥이나 눈처럼 하얀 것이 그 집안 아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사外史를 읽을 때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질문을 하였으며 말수가 적고 응대에 질서가 있는 것이 그 업을 이을 만하였다.
6, 7년 후 내가 심적암深寂庵에 들어갔을 때에 단정한 어린 사미 하나가 가생賈生의 『치안책治安策』87)을 읽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온화하고 단아하였다. 전에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물어 알게 되었고, 또 그 선대인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말에 애도하였다. 아! 세상의 도리가 변천하여 영욕이 서로 이어지는구나. 전에는 관리의 자제였던 자가 지금은 공문空門 사람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대가 비록 세업世業은 잃었으나 마침내 성스러운 가르침에 정신을 쏟아 말 밖의 뜻에 계합하였으니, 힘써 학업에 정진하고 큰 걸음으로 향상하여

010_0070_a_01L志大也若以根識魯鈍一年二年而止
010_0070_a_02L叢林諸伴侶夫孰知師之名師之爲師
010_0070_a_03L又何能至是耶倘師復勉强砥勵
010_0070_a_04L坐破蒲團打破漆桶發明吾本來面目
010_0070_a_05L則師之志庶可就矣余少讀史至無
010_0070_a_06L恤出簡懷中未甞不掩卷感歎今師手
010_0070_a_07L持先和尙十年前所寄詩以示余其謹
010_0070_a_08L守之志可嘉矣以此志何憂乎打破漆
010_0070_a_09L桶哉余覩先師留偈讀未畢凄然沾
010_0070_a_10L遂志其感又道師之所宜勉者
010_0070_a_11L而示之

010_0070_a_12L

010_0070_a_13L酬榮師序 慣拭初名

010_0070_a_14L
始余居會稽有老先生訪余於影眞精
010_0070_a_15L其厖眉皓鬚風儀眞學士也幼子
010_0070_a_16L立側年約十一二貌如畵肌膚玉雪
010_0070_a_17L可念稱其家兒也讀外史有疑必質
010_0070_a_18L小言語應對有序可世其業者也後六
010_0070_a_19L七年余投深寂有端正小沙彌讀賈
010_0070_a_20L生治安策其音韻和雅問知其曾所見
010_0070_a_21L而又悼其先大人之已沒也嗚呼世道
010_0070_a_22L遷變榮辱相尋安知向之簮纓之子
010_0070_a_23L今爲空門者哉爾雖失世業果能潜神
010_0070_a_24L聖誥契詮外之旨孜孜進業高步向上

010_0070_b_01L우리 부처님(瞿曇氏)께서 설산에서 하셨던 일처럼 할 수 있다면 이는 반드시 하늘이 그대를 더러운 곳에서 해탈하여 열반에 머물게 하시려는 것이리라.
내가 그렇게 그대를 보고 돌아온 후에 다시 몇 해가 지났는데 그대가 책궤를 메고 나를 따르겠다니 뜻을 도에 두고 산업産業에 두지 않는 것이로다. 내가 전에 생각한 것이 제대로 맞는구나.
대체로 그 타고난 기품이 총명하고 우아하지만 병이 하나 있으니 기질이 나약하여 혹 나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할까 걱정일 따름이다. 옛 철인들이 자신을 경책하는 길에는 혹은 활시위를 차고(佩弦)88) 혹은 가죽을 차기도(佩韋)89) 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완성하였다. 후인이지만 고인을 따라 행하면 후인이 고인보다 나을지 또 어찌 알겠는가? 선비로서 출가하여 속인들과 섞이는 것을 즐기면서 성인과 현인의 도를 행하지 않는다면 너의 선대인도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다. 나도 너와 같은 부류인 까닭에 너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깊고 또 너를 더욱 아끼니,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너를 대하지 않으리라.
마곡사 체주 대사가 돌아가면서 나에게 게를 요구하기에 드디어 보낸다
성품은 진실로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할 때에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에게 현명하거나 불초한 차이가 있는 것은 그 성품을 따를 수 있고 없음에 말미암을 따름이다.
내가 보기에 주 상인은 용모가 단정하고 마음이 인자하니 자신에게 있는 것을 보충하여 본래 있는 성품을 계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품은 자신에게 있으나 자기 홀로 계발할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간혹 채찍질을 해 주어야 한다.
그대에게 물어보니 그대를 채찍질해 주는 사람은 청암靑巖 노스님과 화월 공華月公이라고 하였다. 그대가 따르는 스승이 이 두 분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대가 가진 힘이 분명 작지 않으리라. 나는 그대의 어짊으로 인하여 두 분도 어질 것을 알겠다.
화월은 내가 지금 함께 다니고 있기에 그 어짊을 알고 있지만 청암 노스님은 아직 만나 보지 못하였다.

010_0070_b_01L如吾瞿曇氏雪山故事則是必天使爾
010_0070_b_02L蟬蛻乎塵腥夷猶乎泥洹吾以是望汝
010_0070_b_03L而歸後又數年爾皷篋從我志存道
010_0070_b_04L而不在産我之能料於前者信也盖其
010_0070_b_05L禀聰敏雅詳但有一病焉氣懦而質弱
010_0070_b_06L或恐不能副吾望耳觀古哲人警身之
010_0070_b_07L或佩弦或佩韋惕惕以自成雖後
010_0070_b_08L之人能循古而行之則又安知後之不
010_0070_b_09L如古耶以士子而被緇甘與庸俗爲伍
010_0070_b_10L不行聖人賢人之道則爾之先大人
010_0070_b_11L不瞑目矣吾亦爾輩故憐汝之深
010_0070_b_12L加愛汝不以衆人之待待汝

010_0070_b_13L

010_0070_b_14L麻谷寺軆珠大師將歸索余偈遂贈
010_0070_b_15L

010_0070_b_16L
性固天之所命也天之命人也孰與
010_0070_b_17L孰不與然人或有賢不肖由其性之能
010_0070_b_18L率與否耳余見珠上人貌端而心仁
010_0070_b_19L知其有補於我發其本有之性也性雖
010_0070_b_20L我有不唯我獨發人或策之問汝策
010_0070_b_21L汝者靑巖老耶華月公耶聞是二公
010_0070_b_22L汝之所從師則於汝有力必不細
010_0070_b_23L因汝之仁知二公之亦仁華月吾今與
010_0070_b_24L之遊已知其仁矣靑巖老吾未及見

010_0070_c_01L그대가 돌아가서 이렇게 나의 말을 고하도록 하라.
“어지십니다, 노인이시여. 지극한 법을 잘 잡으시어 사람들을 잘 가르치셨습니다.”
인 대사에게 보내는 서
인 대사는 진주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나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공문에 들어와 계봉鷄峯 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화상이 주는 가르침을 한번 들으면 바로 이해하였으며 이해한 것은 절대 잊지 않았기에 모두들 화상이 인재를 얻었다고 하였다. 나도 기이하게 여기며 이 아이가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후 10여 년 동안 고향에 남아서 분주하게 지내며 공부할 겨를이 없어서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구나.
전에 내가 속가에서 살던 시절에 문 밖에 소나무 몇 그루를 심었는데 처음에 잡아당겨 곧게 해 주었더니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큰 건물의 기둥과 들보로 쓸 수 있을 만큼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촌아이들이 꺾거나 휘거나 칼질을 하거나 낫질을 하거나 하는 침해를 받아서 결국 비뚤어져 그 성품을 잃고 말았다. 내가 그것을 보고 탄식하였는데 지금 인 공이 그와 비슷한 상황인 것을 보게 되니, 그 한탄과 애석함이 어찌 저 소나무에 견줄 정도뿐이겠는가?
그러나 함께 대경大經을 토론해 보니 그 이해하는 정도가 오래도록 공부를 놓지 않은 사람과 서로 비길 정도가 되는구나. 의리가 얽혀 어려운 곳에 이르면 더욱 잘 이해하며 스스로 탁월한 뜻을 세우고 있으니, 이는 남들이 미치기 어려운 경지이며 또한 공이 늦었다고 스스로 멈추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붕 대사에게 보내는 서
비늘 있는 것 가운데 으뜸은 용이고, 단단한 껍질 갑옷 입은 것 가운데 맏이는 거북이며, 날개 단 것 가운데 최고는 붕새이다. 구름을 타고 변화하여 큰 비를 퍼붓기에 곤경鯤鯨과 교악鮫鰐은 그 바람을 내고, 건곤을 본받아(象乾法坤)90) 신령하여 모르는 것이 없기에 하해蝦蠏와 원별黿鼈은 그 제도를 받으며, 날개를 치고 발을 뻗어 회오리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에 올라가기에

010_0070_c_01L汝歸以我之言告曰賢哉好將至
010_0070_c_02L法善誨人

010_0070_c_03L

010_0070_c_04L贈仁大師序

010_0070_c_05L
仁晋人少聦敏以家世零替入空門
010_0070_c_06L師鷄峯和尙和尙授之學一聞輒解
010_0070_c_07L解必不忘衆謂和尙有人矣余亦異之
010_0070_c_08L以爲是兒異日必大成其後十餘年
010_0070_c_09L家山奔走不暇學遂不振焉惜哉
010_0070_c_10L余家居於門外種數株松其始也抽
010_0070_c_11L而直數十年後可用爲大厦棟樑不幸
010_0070_c_12L爲村童所侵或撓或揉或刀或鎌
010_0070_c_13L離奇而不得其性余嘗覽是而替歎
010_0070_c_14L見仁公與此相類則其所嘆惜豈止與
010_0070_c_15L彼松比歟然與之討論大經其所解與
010_0070_c_16L久學而不廢者相頡頑 [7] 至於義理之盤
010_0070_c_17L根處尤善解自有卓立之志此人之
010_0070_c_18L所難及而亦公之不宜以晩而自止也

010_0070_c_19L

010_0070_c_20L贈鵬大師序

010_0070_c_21L
魁於鱗龍也胄於介龜也長於羽
010_0070_c_22L鵬也其椉雲變化大雨霶霈也鯤鯨
010_0070_c_23L鮫鰐下其風象乾法坤靈無不知也
010_0070_c_24L蝦蠏黿鼈受其制皷翔展跂搏扶搖

010_0071_a_01L연곡鳶鵠과 곤홍鵾鴻은 그 기세를 양보한다. 어찌하였기에 이 셋의 받음이 무리들 가운데 특별히 뛰어났을까?
듣자 하니 붕새는 한번 올라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만 리를 건너뛰어 사해四海와 오악五嶽을 한갓 흙덩어리(歷塊)91)처럼 본다 하니, 어쩌면 그렇게 빠를까?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한 게 한이로다.
대사는 진주 사람으로 웅주雄州에서 태어나 우뚝하게 뜻을 세워 매임이 없었다. 남들은 다 자기 이익을 탐해도 대사는 탐하지 않고 남들이 다 고향에 안주하여도 대사는 안주하지 않았다. 설사 탐내거나 안주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해도 학문에 있어서는 나이가 30이 지나면 세운 뜻을 멈추는데 대사는 또 멈추지 않았다. 고운孤雲을 찾아 가야산伽倻山으로 가고 요초瑤草를 캐러 방장산에 갔으며, 스승을 찾으면 천 리 길도 반드시 달려갔으며 도를 물으려면 추위도 더위도 꺼리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알고 난 다음에라야 멈추었고, 배우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배운 다음에라야 멈추었다. 그 기질의 받음이 또한 대중들과는 다르니 우리 불문의 으뜸이 되리라. 위성渭城에서 나를 따라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으며 갈수록 정성스럽게 섬겼으니, 내가 대사의 부탁에 어찌 글을 주지 않겠는가? 노래로써 보내노라.

大哉鵬兮     크구나, 붕새여.
前身是鯤     전신前身은 곤어(鯤)였다네.
鯤是魚子兮    곤어는 물고기이지만
化而翼如     변화하여 날개를 펴면
雲陞九萬     구름 타고 구만리를 올라가
而遌諸佛兮    여러 부처님을 만나겠구나.

묻노니 그러한가?
찰휘 대사에게 보내는 서
내가 거칠고 어두워 보고 아는 것이 없으니, 사람을 피해 숨어 살면서 궁벽한 골짜기를 소요하며 혼자 마음을 달래고 살았다. 금년 봄 풍계豊溪 형께서 천령天嶺의 법화정사法華精舍로 나를 찾아올 때에 상인도 따라와 『반야般若』와 『기신起信』 등의 경전을 배웠는데, 그 견해가 자못 깊어서 풍계의 법을 이을 만했다. 같은 해 가을에 돌아가기를 고하며 나에게 게를 청하니 나는 이렇게 말하노라.
“배워서 유명한 스님이 되는 일과 유람하다 유명한 산에 오르는 일은 어렵다네. 자네는 관북關北에 살면서도

010_0071_a_01L而上靑天也鳶鵠鵾鴻讓其勢何則
010_0071_a_02L是三者之禀特異乎衆也聞鵬之一擧
010_0071_a_03L瞬息萬里度四海五嶽視如歷塊
010_0071_a_04L何其快哉吾恨未見其物也師晋人
010_0071_a_05L生於雄州卓立不覊人皆嗜利師不
010_0071_a_06L人皆懷土師不懷人雖不嗜不懷
010_0071_a_07L就于學年過而立則止師又不止
010_0071_a_08L孤雲于伽倻採瑤草於方丈尋師則千
010_0071_a_09L里必趍問道則寒暑不憚有所不知
010_0071_a_10L知而後必已有所不學學而後必止
010_0071_a_11L其氣質之禀亦異乎衆將爲吾桑門之
010_0071_a_12L魁也從我於渭城久而不離事之愈
010_0071_a_13L吾於師有托曷不有贈贈之以歌
010_0071_a_14L大哉鵬兮前身是鯤鯤是魚子兮
010_0071_a_15L化而翼如雲陞九萬而遌諸佛兮試問
010_0071_a_16L其然

010_0071_a_17L

010_0071_a_18L贈察暉大師序

010_0071_a_19L
余以踈迃無所見知於人屏伏窮壑
010_0071_a_20L逍遙以自遣今年春豊溪兄訪余於天
010_0071_a_21L嶺之法華精舍上人亦從之學般若起
010_0071_a_22L信等經其見解頗深足以繼豊溪之法
010_0071_a_23L是年秋告歸請余以偈余曰學而得
010_0071_a_24L名師遊而登名山難矣爾居關北

010_0071_b_01L수천 리 밖까지 풍계를 찾아와 배우고 또 방장산과 봉래산을 차례로 유람하니 즐겁고 또 유쾌하다 하겠네. 방장산은 내가 사는 곳이지만 봉래산 같은 곳은 내가 오르고 싶어도 못 가 본 곳이니, 어느 날 그대가 앞장서고 나는 채찍을 잡아 보세나. 그대가 돌아가 봉래산에 오르거든 산신령에게 ‘영남에 사는 추파자秋波子가 올 것입니다’라고 고하도록 하시게.”
여산으로 가는 나운 장실을 보내는 서
납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고 행장은 학처럼 나풀거리며 헤어지고 만나는 일은 달처럼 본다. 물처럼 맛없음(無味)을 맛으로 삼으니 무슨 매임이 있겠으며, 학처럼 오고감이 어렵지 않으니 무슨 구속이 있겠으며, 달처럼 둥글고 이지러짐이 순환하니 무슨 연연할 것이 있겠는가?
중국에 여산이라는 유명한 산이 있는데 고승 원공遠公92)이 살았다고 한다. 대사가 지금 화림花林의 여산을 향하는데, 화림에 있는 여산과 중국에 있는 산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대사가 나아가서 정진을 멈추지 않는다면 구태여 원공만을 스스로 기필期必할 것이 있겠는가? 서방에 있는 정토를 극락이라고 부르며 그곳의 부처님 명호를 아미타라고 하는데, 십념十念으로 중생을 포섭하고 수승한 방편으로 중생의 무리를 교화한다고 한다. 대사가 명산에 은거하여 사람의 일(人事)을 사절하고 왕생에 전념하니 나 또한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놀랄 뿐이다.93) 대사의 뒤에 날리는 먼지를 따라 대사와 더불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대사는 들어 주겠는가?
수 대사에게 답하는 서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며 학은 구고九臯94)에 있고 봉황은 오동나무에 있다. 만물은 각기 머무르는 곳이 있으니, 진실로 제자리를 잃는다면 그 끝은 볼 것도 없다. 지줄대는 꾀꼬리가 언덕 모퉁이(丘隅)95)에 머무는데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하다면

010_0071_b_01L行數千里外從豊溪學又歷覽方丈蓬
010_0071_b_02L可謂樂且快矣方丈吾所留也
010_0071_b_03L蓬萊是吾願登而未果者一朝爾先吾
010_0071_b_04L着鞭爾歸登蓬萊告于山靈曰嶺之
010_0071_b_05L南有秋波子當來到

010_0071_b_06L

010_0071_b_07L送懶雲丈室之廬山序

010_0071_b_08L
衲子交契淡如水行裝翩如鶴離合
010_0071_b_09L視如月如水也無味爲味有何累也
010_0071_b_10L如鶴也來徃無難有何拘也如月也
010_0071_b_11L圓缺循環有何戀也曾聞中華有廬山
010_0071_b_12L名山也高僧遠公居之師今向花林之
010_0071_b_13L廬山山之在花林者與在中華者
010_0071_b_14L知孰勝而師若進進不已何必以遠
010_0071_b_15L公自期乎西方有淨土曰極樂有佛號
010_0071_b_16L阿彌陀以十念攝生勝方便敎化羣生
010_0071_b_17L師高遯名山謝絕人事專念徃生
010_0071_b_18L吾亦瞠若乎隨師後塵與師合而永不
010_0071_b_19L師肯否

010_0071_b_20L

010_0071_b_21L酬修大師序

010_0071_b_22L
雲從龍風從虎鶴于九臯鳳凰于梧
010_0071_b_23L萬物各有所止苟失其所其終也
010_0071_b_24L已矣綿蠻黃鳥止于丘隅以人而不

010_0071_c_01L무엇을 취하겠는가?
용파 공龍坡公은 남쪽 지방의 장백匠伯이신데 지금 우리 대사가 그 아래 있으면서 배움이 그 심오함을 얻었구나. 참으로 제자리를 얻었다 할 것이니 그 끝은 반드시 좋으리라.
내가 비 때문에 객지에 막혀 있자니 대사가 나에게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나는 대사가 제자리를 얻은 것을 갸륵히 여기고 용파龍坡가 사람을 얻은 것을 치하하노라.
혜 대사에게 보내는 서
승려(頭陀)들은 구름 곁 물가에 살면서 서강수西江水96)와 백수자栢樹子97)만을 업으로 삼는다. 그 시를 읊는 일 같은 것이야 어찌 본사本事가 되겠는가? 나는 평소에 글씨 쓰는 일에 게을러서 하지 않았고, 또 화려한 문사를 곱씹으며 두보를 흉내 내는 공부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자네가 객사에서 나를 만나 고인들이 시를 주고받던 아름다운 일을 들먹이며 나에게 요구하지만 내가 감히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조계曺溪의 하룻밤에 그 증도證道를 노래한 구절을 가상히 여겨 그저 몇 글자 써서 갚으며, 또한 절실하게 놀랍고 경이로운 뜻을 몰래 붙인다.
성 대사에게 주는 서
납자들의 사업은 도道에만 있다. 도는 슬픔과 기쁨을 끊었으니 어찌 그 헤어짐을 슬퍼하고 그 만남을 기뻐하겠는가? 그 헤어짐과 만남을 당하여 슬픔과 기쁨의 두 길에 집착하지 않고 우뚝하게 홀로 선다면 입을 닫은 유마 거사(毘耶)98)나 조용히 좌선한 마갈摩竭99)에 가까울 것이다.
슬프다! 지금 세상에 나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노라. 지금 그대가 나에게 시를 청하니, 과연 그 만남을 기뻐하는 것인지 그 헤어짐을 슬퍼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아니면 두 가지에 집착하지 않고 그 도를 묻는 것인가? 도는 말(言詮)을 끊었으나 또한 말 밖에 있을 수 없으니, 그대의 청함과 나의 줌이 진실로 무방하다. 이에 서를 쓰노라.

010_0071_c_01L如鳥奚所取哉龍坡公爲南中匠伯
010_0071_c_02L今吾師處其下學得其奧誠可謂得其
010_0071_c_03L而其終必善矣余滯雨客中師請
010_0071_c_04L余一言余嘉師之得其所而賀龍坡之
010_0071_c_05L得人

010_0071_c_06L

010_0071_c_07L贈慧大師序

010_0071_c_08L
頭陀輩傍雲濱水所業惟西江水栢樹
010_0071_c_09L若其吟詠豈本事哉余素慵於筆
010_0071_c_10L無所從事而亦不喜咀嚼華腴
010_0071_c_11L老杜工夫也今子遇我於逆旅以古人
010_0071_c_12L唱和美事索於余余何敢爲然曺溪
010_0071_c_13L一宿嘉其歌證道之句聊以數字酬之
010_0071_c_14L而亦窃附於切葸之義

010_0071_c_15L

010_0071_c_16L與性大師序

010_0071_c_17L
衲子輩事業只在道道絕悲喜則奚
010_0071_c_18L可以悲其別而喜其合乎當其離合也
010_0071_c_19L不着於悲喜兩途卓然獨立則杜口毘
010_0071_c_20L掩關摩竭其亦庶幾乎今之世
010_0071_c_21L吾未見其人也今子請余詩果未知喜
010_0071_c_22L其合耶悲其離耶抑將不着於二者
010_0071_c_23L而問其道耶道絕言詮而亦不外乎言
010_0071_c_24L則子之請余之贈信無妨矣於是

010_0072_a_01L
관 대사를 해인사로 보내며 주는 서
공명功名은 달팽이의 뿔(蝸角)100)과 같고 문장은 찌꺼기와 같다. 지금 공이 문학에 취미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우리 불가에서는 큰 병이다. 진실로 도를 사모함이 문장을 사모함과 같다면 도가 성취되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공은 그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을 게을리하고 게을리해야 할 것을 부지런히 하는구나. 내가 그 그릇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겨서 이별하면서 한마디를 주니 공은 취하도록 하라.
남해로 돌아가는 위총 상인을 보내는 서
금산錦山은 진실로 바다 가운데 신선의 영역이어서 오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총聦의 집은 그 아래에 있으며 총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총의 용모가 수려한 것은 그 산에서 얻었기 때문인가? 총의 뜻이 청정한 것은 그 물에서 얻었기 때문인가? 나는 그와 여러 해를 유람해 보아서 총의 사람됨을 잘 아노라.
대저 사람이 멀리 유람을 할 때에 가는 곳이 달라서 어떤 이는 산수를 배회하며 그 기운을 기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참됨을 찾고 대사를 방문하여 그 마음을 밝히기도 한다.
지금 총이 방장산에서 나를 따르는데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산수에 있다면 금산의 명승이 너의 집인데 무엇 하러 여기에 왔는가? 마음에 있다면 마음은 너에게 있는데 또 무엇 때문에 굳이 밖에서 찾는가? 혹시 이것을 몰라서 이것을 나에게 물으려는가? 나는 왜 굳이 멀리서 끌어다 비유를 하고 너는 왜 굳이 멀리서 구해 터득하려 하는가?
너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는가? 네가 우리 진인眞人의 지위를 알아서 공경하여 받든다면 총명한 지혜가 저절로 발하여 도에 드는 것이 스스로 깊어지리라. 이것이 진실로 엄격한 스승이며 좋은 스승이어서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이미 천지를 포괄하니 이른바 산수도 그 속에 있으리라.
그런 연후에 나를 네 집 북쪽의 금수산錦繡山에 데리고 가라. 세존대世尊臺에 올라 세존을 배알하고

010_0072_a_01L乎序

010_0072_a_02L

010_0072_a_03L贈寛大師送海印序

010_0072_a_04L
功名一蝸角文章一土苴今公於文學
010_0072_a_05L是爲吾家一大病苟慕道如慕文
010_0072_a_06L何憂道未成公倦其勤勤其倦吾惜
010_0072_a_07L其器不成臨歧寄一語公其取夫

010_0072_a_08L

010_0072_a_09L送位聦上人歸南海序

010_0072_a_10L
錦山固海中仙區人莫不願登聦之家
010_0072_a_11L在其下而聦生焉聦之貌秀其得於
010_0072_a_12L山耶聦之志淸其得於水耶吾與之
010_0072_a_13L遊數載知聦之爲人也深矣夫人之遠
010_0072_a_14L所趣有異或倘徉山水以養其氣
010_0072_a_15L或尋眞訪師以明其心今聦從我于方
010_0072_a_16L志果安在在山水耶則錦山之勝
010_0072_a_17L爾家焉何用來斯在心耶則心在爾
010_0072_a_18L又何必索外其或不知是而欲問是於
010_0072_a_19L我耶我何必遠引以諭爾何必遠求以
010_0072_a_20L爾名爲誰爾若知吾眞人之位
010_0072_a_21L敬奉之聦慧自發造道自深是固嚴
010_0072_a_22L師也良師也不出戶庭固已範圍天
010_0072_a_23L則所謂山水亦具在是中矣夫然後
010_0072_a_24L携我于爾家之北錦繡山中登世尊臺

010_0072_b_01L네가 터득한 것을 질정하고 돌아가리라.
오 수좌에게 주는 서
천지는 여관과 같고 헤어지고 만남은 부평초와 같다. 부평초와 같은 헤어지고 만남으로 여관과 같은 천지에 사는데, 헤어진다고 무슨 슬플 것이 있으며 만난다고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내 나이 열여덟에 이 산을 유람할 때 대사와 사귀어 자못 가깝게 지내다가 그해에 헤어져 떠났으니, 이것이 첫 번째 헤어짐과 만남이었다. 그 후 30년 만에 이 산을 지나며 다시 만나 옛날의 유람을 계속하노라. 반나절은 백운대白雲臺 위를 방황하고 밤에는 바위 아래서 놀았는데, 백운대 위의 구름과 바위 아래의 물을 마주 앉아 물끄러미 쳐다보자니 여러 경계가 다 공하구나. 내 몸이 구름과 물인지 구름과 물이 내 몸인지, 대사가 나인지 내가 대사인지 알 수가 없구나. 천지가 과연 여관과 같고 헤어지고 만남이 과연 부평초와 같구나. 이에 부평초의 자취를 적어 여관에 사는 옛 친구에게 주노라.
양산사陽山寺에 닿으니 가을바람이 쓸쓸한데 홀연 오심자悟心子를 만났기에 함께 물속에 비친 하늘을 마주하였노라.
영원사 만일회 서
여래께서 화생化生하시어 무수한 방편을 두었지만 정토에 태어나도록 권하는 하나의 문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귀함과 천함, 똑똑함과 어리석음, 늙음과 젊음,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의 성호를 밤낮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히 잡고 지킨다면 목숨이 끝날 때에는 저 부처님이 맞아 인도하셔서 바로 왕생을 얻고 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얻을 것입니다. 그 근성根性의 영리하고 둔함에 따라 결국에는 함께 정각正覺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경전에서는 따로 염불念佛을 하나의 문으로 개설하여 자세히 밝히고 수지受持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위로 여러 조사로부터 문득 마음의 요체要諦를 밝히고 나면 이 문을 존숭하였으니,

010_0072_b_01L拜世尊質汝所得而歸

010_0072_b_02L

010_0072_b_03L與悟首座序

010_0072_b_04L
天地一逆旅也離合一浮萍也以浮
010_0072_b_05L萍之離合處逆旅之天地離何戚
010_0072_b_06L何驩乎余年十八遊此山與師交
010_0072_b_07L相密是年分袂而去是一頓離合也
010_0072_b_08L後三十年又過是山重握手而續舊遊
010_0072_b_09L半日彷徨於白雲臺上夜遊巖下臺上
010_0072_b_10L巖下水對坐瞪然諸境俱空不知
010_0072_b_11L我身是雲水耶雲水是我身耶師是我
010_0072_b_12L我是師耶天地果一逆旅離合果
010_0072_b_13L一浮萍乃述浮萍之蹤贈逆旅中故人
010_0072_b_14L行到陽山寺秋風已颯然忽逢悟心子
010_0072_b_15L共對水中天

010_0072_b_16L

010_0072_b_17L靈源萬日會序

010_0072_b_18L
如來化生方便有無數唯勸生淨土一
010_0072_b_19L門爲最要勿論貴賤智愚老少男女
010_0072_b_20L誠心執持西方極樂世界阿彌陀佛聖號
010_0072_b_21L晝夜誠勤至命終時則彼佛接引
010_0072_b_22L得徃生得不退地隨其根性利鈍
010_0072_b_23L竟同成正覺故諸經別開念佛一門
010_0072_b_24L廣讃勸持從上諸祖頓明心要尊崇

010_0072_c_01L실로 일체 중생이 생사를 벗어나 불과를 증득하는 제일 긴요한 문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의 결사結社는 기한을 정해 놓고 모여서 동시에 염불하는 것이므로 다 함께 정토에 태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그 시작은 진조晋朝의 고승 원 법사遠法師101)가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발징發徵102) 화상이 이 모임을 처음 열어서 다 아름다운 징험이 있었고, 그 후에도 아간 비자阿干婢子103)의 수승한 일이 있었습니다. 진실로 법에는 고금이 따로 없는 줄 알겠습니다. 결단코 왕생하겠다는 원을 가지고 그 일에 힘쓴다면 지금이라고 옛날 원 공이나 발징 대사의 징험이 없으리라고 어찌 알겠습니까?
아! 근세의 우리 불도들은 다 그 가야 할 곳을 모릅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만 달리는(高騖)104) 병이 있어서 참구參究를 숭상하지만 염불은 경시합니다. 강경하는 사람은 문자에 얽매여서 사람을 얻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면서 또한 이 문을 소홀히 합니다. 이것은 말세의 큰 병입니다. 그렇기에 백화白花·문곡文谷·환암喚庵 등 여러 장로들은 강도講徒를 사절하고 오래도록 심요心要를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창唱 법려法侶가 원 공과 발징 등 여러 공의 일을 이어서 개설하니 대중들이 다 기뻐하며 응하였습니다. 마침내 방장산의 영원암靈源庵에서 모임을 결성하여 만일萬日의 기한을 세웠으니 이는 우리 동방의 우담발화(優曇花)가 나타난 것입니다. 옛날의 원 공과 발징 두 공은 지금과는 서로 머리와 꼬리가 되지만 그 일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두 공이 살던 시절에는 국가에서 불법을 귀하고 중하게 여겨서 왕과 신료와 선비와 백성들이 다 공경하고 숭상할 줄을 알았기에 그 일을 하기가 쉬웠습니다. 오늘날에는 불도佛道가 쇠퇴하고 무너져서 불문의 자손이라 하여도 모양만 그렇지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이런 수승한 모임을 만들었는데 내가 마음으로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자리 끝에라도 참석하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몇 해를 좀 기다려서 강의 빚(講債)이 마무리되면 개꼬리(狗尾)라도 되고 싶으나 과연 그 담비(貂)의 끝자리를 허락해 주실는지요?105) 모임을 개설한 여러 스님의 공적 같은 것은 연담蓮潭과 취은翠隱 스님이 쓴 두 편의 서序 안에 다 실려 있으니 여기서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이 일을 축하하며 글을 씁니다.

010_0072_c_01L此門實可謂一切衆生之出生死證佛
010_0072_c_02L果之第一緊要也中華有結社設會剋
010_0072_c_03L念佛同時俱生淨土之事非一二
010_0072_c_04L其始則晋朝高僧遠法師爲之至吾海
010_0072_c_05L新羅發徵和尙創開斯會咸有嘉
010_0072_c_06L其後又有阿干婢子之勝事固知法
010_0072_c_07L無古今若有決定徃生之願黽勉其事
010_0072_c_08L則又安知今不有昔日遠公徵師之驗歟
010_0072_c_09L嗚呼近世吾徒皆昧其歸趣禪者有
010_0072_c_10L高騖之病或尙叅究而輕視念佛
010_0072_c_11L者拘於文字以得人爲務而亦忽於此
010_0072_c_12L是爲末世大病爰有白花文谷喚庵
010_0072_c_13L諸長老謝講徒久硏心要去年秋唱
010_0072_c_14L法侶繼設遠徵諸公之事衆皆懽應
010_0072_c_15L遂結會於方丈之靈源庵立期萬日
010_0072_c_16L吾東之優曇花一現耳古之遠徵二公
010_0072_c_17L與今相爲首尾其事同轍然二公之時
010_0072_c_18L國家貴重佛法王臣士庶皆知敬尙故
010_0072_c_19L易有是事至於今日佛道衰弊雖空
010_0072_c_20L門子貌是而心非處此世有此勝會
010_0072_c_21L余心異之恨未叅其席末也徐待數年
010_0072_c_22L以了講債欲作狗尾果未知許其貂末
010_0072_c_23L若設會諸師功蹟已盡載於蓮潭翠
010_0072_c_24L隱二序中玆不贅但慶其事而識之

010_0073_a_01L
파산으로 가는 열 대사를 보내는 서
공자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라고 하였는데, 유학자건 불교도이건 이 말을 완미玩味하여 잘 알아서 행하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미천薇川 박씨朴氏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그 뜻을 배움에 두었고 산업에 두지 않았다. 기묘년에 나를 따라 6년 동안 게으름을 피우는 때가 없었는데, 오늘 나에게 다른 곳에 가서 선지식을 참례하고 싶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그 기쁨(悅乎)을 안다는 말이며, 또한 그의 이름(悅)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혜암惠庵은 나와 곤중昆仲의 사이인데 그 학식이 정미하고 오묘하여 잘 이끌어 줄 것이다. 네가 지금 가면 정성스럽게 배움을 청하여 뱃속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너라. 내가 자세하게 시험해 볼 것이다.
강진 안 대사를 보내는 서
천태산天台山은 옛날에 선인仙人이 살던 곳이다. 절경이 많으나 나는 아직 한번도 그 정상에 올라서 그 바람과 구름을 감상하지 못한 것을 깊이 통탄하고 있었다.
지금 안 공安公이 천태산으로부터 와서 나와 형과 아우 사이로 잘 지내고 있다. 공의 도골道骨이 맑고 수려하여 대중들 가운데 특별히 다름을 보니, 이는 필시 이 산의 뛰어남이 여러 산들과 달라서 그 기운이 모인 것이리라.
공의 사람됨은 온화하고 순정하여 기쁨과 노여움이 안색에 드러나지 않는다. 또 후덕한 사랑을 실천하여 벗들 사이에 베푸니 진실로 남방의 덕 있는 사람이라 할 만하며 내가 공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문장의 박학함과 시서의 공부야 무슨 귀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역병의 기세가 맹렬하여 원근에 쫙 깔렸는데 공의 집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산에는 스승이 병상에 누워 계시니 공은 돌아가야 하리라. 이에 한마디를 고하노라.
“공은 돌아가서 부모님께 잘 효도하고 스승을 잘 시봉하면서 남는 힘이 있거든 예전에 배운 것을 잊지 말도록 하여라.

010_0073_a_01L送悅大師之波山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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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學而時習之不亦悅乎爲儒爲釋
010_0073_a_03L玩味此語能知而行之者其幾人乎
010_0073_a_04L薇川朴氏子竗年出家其志在學
010_0073_a_05L在產己卯從我六載無怠時今日求我
010_0073_a_06L適他方願叅知識是所謂知其悅乎之
010_0073_a_07L而亦不負渠之名也惠庵吾昆仲
010_0073_a_08L其學解精竗善提携爾之今行也
010_0073_a_09L諄諄請益實腹而歸吾將試之眉睫
010_0073_a_10L間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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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73_a_12L送康津安大師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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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台山古仙人所居也多有絕觀
010_0073_a_14L余尙未得一登其顚賞其風煙深有以
010_0073_a_15L病焉今安公自天台而來與我爲兄弟
010_0073_a_16L余觀公之道骨淸秀特異於衆
010_0073_a_17L必此山之勝異於羣山而有以鍾之也
010_0073_a_18L公之爲人溫粹喜怒不形於色又以篤
010_0073_a_19L愛之行施之朋友間誠可謂南方有德
010_0073_a_20L者也余之所敬慕者此若文學之多
010_0073_a_21L詩書之工安足貴哉今厲氣大肆
010_0073_a_22L近彌網公家有親在堂山有師臥床
010_0073_a_23L公宜歸矣以一語告之曰公歸可以善
010_0073_a_24L孝親善奉師有餘力不忘舊所學

010_0073_b_01L내가 후일에 지팡이를 짚고 남쪽으로 가면 먼저 공을 보고 그 다음에 산을 보리라.”

010_0073_b_01L他日策杖而南先見公次見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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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波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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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7)신유한申維翰 : 1681~?.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문장가이다.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으로, 경상북도 고령 출신이다. 숙종 31년(170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9년 제술관製述官으로 통신사 홍치중洪致中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으며, 후에 벼슬이 봉상시첨정에 이르렀다. 문장으로 이름났으며, 특히 시가 뛰어났고 사詞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 『해유록海遊錄』·『청천집靑泉集』·『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등이 있다.
  2. 48)오어사吾魚寺 : 경북 포항시 오천읍烏川邑 운제산雲悌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3. 49)하거下車 : 주周 무왕武王이 은殷을 멸한 후, “부임하기도 전에 계의 후임으로 황제를 봉하였다.(未及下車, 而封黃帝之後於薊.)”는 말이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나온다. 후에는 관리가 임지에 도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4. 50)오고五袴 : 오고五絝라고도 쓴다. 『후한서』 「염범전廉範傳」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염범이) 건초 연간에 촉군 태수로 갔다.……옛 제도에서는 화재를 내거나 서로 은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밤에 일어나지 못하게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염범이 이 법령을 없애는 대신 저수지 관리를 엄격하게 하도록 하였더니, 백성들이 편리하다고 노래하였다. ‘염숙도여, 어찌 이리 늦게 왔는가? 불을 금하지 않아 백성이 편히 일어나게 하였네! 평생 저고리도 못 입었는데 이제는 바지가 다섯 벌이라네.’(建初中, 遷蜀郡太守.……舊制禁民夜作, 以防火災, 而更相隱蔽, 燒者日屬. 範乃毁削先令, 但嚴使儲水而已. 百姓爲便, 乃歌之曰. ‘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今五絝.’)” 이로 인하여 후에 오고라는 말은 지방 관리가 선정을 베푸는 것을 칭송하는 말이 되었다.
  5. 51)기맥歧麥 : 맥수양기麥穗兩岐, 즉 보리에 두 개의 이삭이 달리는 것을 풍년이 들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는데, 고을 백성들이 수령의 선정善政을 칭송하는 말이다. 『후한서』 「장감전張堪傳」에, 후한後漢의 장감張堪이 호노狐奴에서 전답을 개간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 주자 백성들이 “보리에 이삭이 두 개씩 달렸다.(麥穗兩岐)”고 좋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가 나온다.
  6. 52)오마五馬 : 한漢나라 때 태수가 타던 수레를 말 다섯 필이 끌었으므로, 태수의 가마라는 뜻으로 쓰인다. 『옥대신영玉台新詠』 「일출동남우행日出東南隅行」에 “수령께서 남쪽에서 오시니 다섯 마리 말이 서서 머뭇거리네.(使君從南來, 五馬立踟躕.)”라는 시구가 있다.
  7. 53)정곡역正谷驛 : 조선 시대 경상도 사근도沙斤道에 설치되었던 14개의 역 가운데 하나이다.
  8. 54)관개冠蓋 : 관원의 관복과 수레를 가리키는 말로, 관冠은 관모冠帽이고 개蓋는 수레 덮개이다. 벼슬, 고관을 뜻한다.
  9. 55)소불燒佛 : 단하소불丹霞燒佛. 선종의 공안公案으로 단하丹霞 대사가 목불木佛을 태운다는 공안이다. 진정으로 부처를 믿는 자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지만 우상을 부처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부처님의 혜명을 손상시킨다는 말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5에, “후에 혜림사에 있었는데 몹시 추운 날에 목불을 가져다 태워서 불을 쬐고 있었다. 주지가 꾸짖으며 ‘어째서 불상을 태우는가?’ 하니, 대사는 막대기로 불을 헤집으며 ‘태워서 사리를 찾으려고요’라고 대답했다. 주지가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나?’라고 물으니 대사는 ‘사리가 안 나오면 다시 양존을 갖다 태워야죠’라고 대답했다.”는 말이 있다.
  10. 56)지공誌公 : 양梁나라의 승려 보지寶誌로, 성은 송씨宋氏이고, 시호는 묘각妙覺이다. 아무 음식이나 수시로 먹었고 머리를 길게 길렀으며, 신통한 일을 많이 나타내었고 예언을 많이 하였다.
  11. 57)산음山陰 : 경상남도 산청의 옛 지명이다.
  12. 58)지곡사智谷寺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면 내리 지리산 웅석봉 아래에 있었던 절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에 헌종 2년(1836)에 세워진 ≺추파당대사탑비기秋波堂大師塔碑記≻가 있다.
  13. 59)매각梅閣 : 양梁나라 하손何遜의 동각관매東閣官梅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지방 수령의 별칭으로 쓴다. 하손은 양주楊州의 매화를 잊지 못하고 자청해서 그곳의 자사刺使로 부임하여 동각東閣 매화를 관상하며 종일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14. 60)황공黃龔 : 한漢나라 때의 순리循吏 황패黃霸와 공수龔遂를 합쳐서 부르는 것으로 정사의 치적이 높은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다. 공황龔黃이라고도 쓴다.
  15. 61)계등지溪藤紙 : 중국 절강성浙江省 섬계剡溪에서 나는 등藤으로 만든 종이를 말하는 것으로 섬계등剡溪藤 또는 섬계지剡溪紙라고 부른다.
  16. 62)명부明府 : ① 한위漢魏 이래로 군수郡守나 목윤牧尹의 존칭으로 쓰였다. 명부군明府君이라고도 한다. ② 한漢 때에 현령縣令을 명부라고 하였고, 당唐 이후에는 주로 현령을 칭하는 말로만 쓰였다.
  17. 63)금헌琴軒 : 수령이 정사 보는 당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인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그저 비파(琴)를 타고 노래만 부를 뿐 공당公堂에 내려간 적이 없는데도 고을이 잘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금당琴堂이라고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현察賢」에 나온다.
  18. 64)훈호塤箎 : 훈지塤篪라고도 쓴다. 훈塤과 지篪는 중국 고대의 악기로, 합주할 때에 소리가 서로 잘 화합한다. 그래서 훈호, 또는 훈지라는 말로 형제가 친밀하고 화목한 것을 비유하여 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형은 훈을 불고 동생은 지를 부네.(伯氏吹塤, 仲氏吹篪.)”라는 구절이 있다.
  19. 65)여봉실마如蓬失麻 : 삼대 잃은 쑥, 즉 의지가지없게 되었다는 뜻. 봉마蓬麻는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이 삼대 속에서 나면 붙잡지 않아도 곧다.(蓬生麻中, 不扶而直.)”고 한 데서 유래하여, 훌륭한 친구를 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20. 66)정위庭闈 : 부모님이 거처하는 내실을 가리킨다. 『문선文選』 「속석束晳」 ≺보망補亡≻의 “부모님 그리워 마음 편할 겨를이 없다.(眷戀庭闈, 心不遑安.)”는 시의 이선李善 주에, “정위는 부모가 거처하는 곳이다.(庭闈, 親之所居.)”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부모를 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21. 67)호석虎錫 : 해호석解虎錫을 말한다. 북제北齊의 승조僧稠 선사는 석장으로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는 것을 해결하고 갈라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속고승전續高僧傳』 권16 「승조전僧稠傳」의 기록에 의하면, 승조가 회주懷州 서쪽 왕옥산王屋山에서 선정을 닦고 있을 때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포효하는 소리에 바위가 진동하였다. 이에 석장으로 그 중간을 갈랐더니 각각 흩어져 가버렸다고 한다. 이 외에도 수대隋代의 담순曇詢 선사 역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속고승전』 권16 「담순전曇詢傳」에는 “또 산을 가다가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는 것을 마주쳤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순이 이에 석장을 집어 두 호랑이를 나누고 몸을 방패로 삼으며 말하였다. ‘숲 속에 함께 살면서 웬만하면 제발 각기 제 갈 길을 가거라.’ 그러자 호랑이는 고개를 떨구고 명령을 받아들여 숨을 들이쉬며 흩어졌다.(又山行値二虎相鬥, 累時不歇. 詢乃執錫分之, 以身爲翳, 語云, 同居林藪, 計無大乖, 幸各分路. 虎低頭受命, 便飮氣而散.)”는 기록이 있다.
  22. 68)모모嫫母 : 황제黃帝의 넷째 왕비인데, 심히 못생겼으나 마음씨는 매우 착했다고 한다. 추녀醜女의 뜻으로 쓰인다.
  23. 69)기수祇樹 : 중인도에 있던 기타 태자祇陀太子 소유의 수림樹林으로, 뒤에 여기에다 정사精舍를 지었으므로, 사찰의 뜻으로 쓰인다.
  24. 70)금어金魚 : 잉어 모양을 새긴 금으로 만든 부절符節로, 당唐나라 때 3품 이상의 관원이 찼다 하여 고관을 뜻한다.
  25. 71)영우嶺右 : 조선 시대 경상도 지방의 행정 구역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낙동강 서부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강우江右라고도 한다.
  26. 72)순舜 임금이 군신과 함께 태평을 노래한 「경운가卿雲歌」에 “오색구름이 찬란함이여, 얽히어 늘어졌도다. 해와 달이 빛남이여, 아침이요 또 아침이로다.(卿雲爛兮, 糾縵縵兮. 日月光華, 旦復旦兮.)”라고 한 데서 유래하여, 국가에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는 것을 표현할 때 경성慶星·경운卿雲이라는 말을 썼다. 『상서尙書』 권2 「운란雲爛」에 나온다.
  27. 73)인지麟趾 : 『시경詩經』 「인지지麟之趾」에서 주 문왕周文王의 후비后妃가 덕이 있어서 그 자손이 인후仁厚하다는 내용을 말한 것으로, 왕자王者의 상서祥瑞를 비유한다.
  28. 74)봉명鳳鳴 :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저 높은 산봉우리 봉황이 울고, 동쪽 산등성이 오동나무 서 있구나.(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兮, 于彼朝陽.)”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봉황은 태평 시대에만 출현하고, 또 봉황이 깃들여 사는 오동나무 역시 산등성이에는 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태평한 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29. 75)백공百工 : 백관百官을 말한다.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순舜이 “신하들이 기쁜 마음으로 일에 임하면 임금의 다스림이 흥기되어 백관의 일이 잘되리라.(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熙哉.)” 하자, 고요皐陶가 “원수가 밝으시면 신하들이 어질어 모든 일이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하였다.
  30. 76)진진振振한 공자公子 : 『시경』의 「인지지」에 “기린의 발꿈치여, 진진한 공자로다. 아, 이들이 바로 기린이로다.(麟之趾, 振振公子, 于嗟麟兮.)”라는 시가 있다. 이는 주周 문왕文王의 성덕으로 기린 같은 짐승도 발로 풀과 벌레도 밟지 않는 인덕仁德이 있으므로 그 자손인 공자들은 다 어질고 부드럽고 후중하여 신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31. 77)애애藹藹한 길사吉土 : 『시경』 「대아」 ≺권아≻에 “봉황이 훨훨 날아, 날개깃을 탁탁 치며, 앉을 자리에 앉는구나. 왕에게는 길사가 많으시니, 군자가 부리는지라, 천자께 사랑을 받는구나.(鳳凰于飛, 翽翽其羽, 亦集爰止. 藹藹王多吉士, 維君子使, 媚于天子.)”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 봉황의 바른 품성을, 재덕이 출중하고 정직하여 과감히 간쟁하는 선비에 비유하는 말이다.
  32. 78)무고無孤 : 『논어』 「이인里仁」에 “덕은 외롭지 않아서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고 하였으니, 여기서는 덕을 쌓아서 외롭지 않게 하라는 말로 보았다.
  33. 79)악양루岳陽樓 : 중국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陽市 서문 고성에 있는 누각으로, 오吳나라 노숙魯肅이 여기에 열병대閱兵台를 세웠다고 한다. 당唐 개원開元 4년(716)에 중서령中書令 장설張說이 유배 와서 파릉巴陵을 지키면서 옛 열병대의 기초 위에 이 누각을 올렸다. 3층으로 지어진 누각이 높고 웅장하여 누각에 올라 멀리 조망하면 8백 리 동정호가 한눈에 들어오므로 예로부터 명승으로 이름났다.
  34. 80)취옹정醉翁亭 : 중국 안휘성安徽省 저주시滁州市 성 서남쪽 낭야산瑯琊山 기슭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북송北宋 경력慶曆 6년(1046)에 구양수歐陽修가 저주 지사知事로 있으면서 승려 지산智仙에게 세우도록 명하여 놀이와 휴식 장소로 사용하였다.
  35. 81)허許 : 허유許由를 비유한다. 허유는 전설 중의 은사로 요堯 임금이 천하를 양위하려고 하였으나 받지 않고 영수潁水 남쪽 기산箕山 아래 은거하였다고 전한다. 『장자』 「소요유逍遙游」에 나온다.
  36. 82)아림娥林 : 경상남도 거창居昌의 옛 이름이다.
  37. 83)천령天嶺 : 경상남도 함양의 옛 이름이다.
  38. 84)법화사法華寺 : 경상남도 함양 휴천면에 있는 절 이름이다.
  39. 85)음려화陰麗華 : 한나라 광무제光武帝가 미천한 신분이었을 때, “관리가 된다면 집금오가 되어야 하고, 장가를 든다면 마땅히 음려화를 얻어야 한다.(仕官當作執金吾, 娶妻當得陰麗華.)”고 하였다. 훗날 그는 음씨를 아내로 얻었고,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양陽이 명제明帝가 되었다. 『후한서後漢書』 「음황후기陰皇后紀」에 나온다.
  40. 86)조양자趙襄子 무휼無恤의 고사이다. 진晉나라 대부 조간자趙簡子에게 백로伯魯와 무휼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조간자는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먼저 훈계가 될 만한 글을 쓴 죽간을 두 아들에게 주고, 얼마 후 두 아들에게 그 내용을 외게 하였다. 큰 아들인 백로는 글의 내용도 알지 못할뿐더러 죽간도 잃어버리고 갖고 있지 않았는데, 서자인 무휼은 그 내용을 잘 외고 있었을 뿐 아니라 소매 속에서 죽간을 꺼내 보였기에 무휼이 후계자가 되었다.
  41. 87)치안책治安策 : 한漢 가의賈誼의 『치안책』을 말한다.
  42. 88)패현佩弦 : 활시위는 항상 빡빡하게 묶여 있으므로, 성질이 느린 자가 이것을 차서 스스로 경계하였다.
  43. 89)패위佩韋 : 가죽의 성질은 부드럽고 질기므로, 성질이 급한 자가 이것을 차고 스스로 경계하였다.
  44. 90)상건법곤象乾法坤 : 『주역』 「계사」 상上에 “상을 만드는 것을 건이라 하고 법을 본받는 것을 곤이라 한다.(成象之謂乾, 效法之謂坤.)”고 하였다.
  45. 91)한漢나라 왕포王褒의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에 “명마인 설슬을 수레에 매고 명마인 승단을 곁말로 삼고, 이름난 마부 왕량이 고삐를 잡고 말 잘 모는 한나라 애후와 함께 말을 몰면, 종횡무진으로 치달아 언뜻 그림자가 옮겨가듯 하며 도읍을 지나고 국경을 넘는 데도 빠르기가 마치 흙덩이를 지나가는 것 같아서, 번개를 쫓고 질풍을 따라잡아 팔방의 끝까지 주류하여 만 리를 단숨에 달릴 것이다.(及至駕齧膝, 參乘旦, 王良執靶, 韓哀附輿, 縱騁馳騖, 忽如景靡, 過都越國, 蹶如歷塊, 追奔電, 逐遺風, 周流八極, 萬里一息.)”라고 하였다.
  46. 92)원공遠公 : 진晉나라 때 여산廬山에 숨어 살면서 백련사白蓮社를 짓고 제자들을 길렀던 혜원慧遠을 가리킨다.
  47. 93)『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에 “선생님께서는 천리마처럼 질주하여 먼지도 남기지 않으니, 저는 그저 뒤에서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놀랄 뿐입니다.(夫子奔逸絶塵, 而回瞠若乎後矣.)”라고 하였다. 상대방의 능력을 따라갈 수 없어 그저 경탄할 따름이라는 말이다.
  48. 94)구고九臯 : 깊은 못의 바닥, 심원深遠한 곳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우니 소리가 들판에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野.)”라고 하였다.
  49. 95)구우丘隅 : 언덕의 모퉁이. 『시경』 「소아」 ≺면만綿蠻≻에 “지줄대는 꾀꼬리는 구아에 머무는구나.(綿蠻黃鳥, 止于丘阿.)”라는 구절이 있다.
  50. 96)서강수西江水 : 만법을 융화하여 관통한다는 말이다. 『경덕전등록』 「거사방온居士龐蘊」에 “(방온이) 후에 강서에 가서 마조를 참견하고 여쭈었다. ‘만법과 짝이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가 한 모금에 서강물을 다 마신 다음에 말해 주겠다.’(後之江西, 參問馬祖云, 不與萬法爲侶者是什麽人. 祖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라는 구절이 있다. 너무 조급하여 한 번에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51. 97)백수자栢樹子 : 어떤 중이 조주趙州에게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조주는 “뜰 앞의 측백나무이다(庭前栢樹子).”라고 대답하였다.
  52. 98)비야毘耶 : 비야리성毘耶離城, 즉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살던 곳이다. 혹은 비야사毗耶師, 즉 율사律師의 뜻으로도 쓰인다.
  53. 99)마갈摩竭 : Magadha, 마갈제摩竭提, 마갈타摩竭陀, 마가타摩訶陀, 마가타摩伽陀라고도 쓴다. 번역하여 지감로持甘露, 선승善勝, 무뇌無惱, 무해無害라고 한다. 중인도에 있던 옛 왕국 이름이며 별 이름이기도 하다. 혹은 옛 선인仙人의 이름, 제석帝釋의 전신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54. 100)와각蝸角 : 지극히 작은 것을 비유한 말로, 『장자』 「칙양則陽」에 “달팽이 뿔에 나라가 있으니 왼쪽은 만이라 하고 오른쪽은 촉이라 하는데 날마다 싸움을 일삼는다.(有國於蝸, 角之左曰蠻, 右曰觸, 日尋干戈. )”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55. 101)원 법사遠法師 :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에서 백련사白蓮社를 창시하였던 혜원慧遠(334~416)을 말한다.
  56. 102)발징發徵 : ?~796. 신라의 승려로 경덕왕 17년(758) 원각사圓覺寺(지금의 건봉사乾鳳寺)에서 미타만일회彌陀萬日會를 만들고 염불 수행과 불경 연구에 전심하였다. 원성왕 12년(796)에 함께 연구에 정진하던 정신貞信·양순良順 등 31명과 함께 공중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57. 103)아간 비자阿干婢子 :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강주康州 미타사彌陀寺에서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계집종 욱면郁面이 뜰 마당에 말뚝을 세우고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말뚝에 매고 염불하여 서승西昇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삼국유사』 권5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에 나온다.
  58. 104)고무高騖 : 너무 높고 너무 먼 목표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은 『송사宋史』 「도학전일道學傳一」 ≺정호程顥≻편의 “배우는 자들이 낮고 가까운 것을 싫어하여 높고 먼 곳으로만 달려서 끝내 성취하지 못하는 것을 병으로 여긴다.(病學者厭卑近而騖高遠, 卒無成焉.)”는 구절에서 나왔다.
  59. 105)‘구미속초狗尾續貂’는 나쁜 것으로 좋은 것을 잇거나, 앞뒤가 서로 걸맞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주로 쓰인다. 송宋 주필대周必大의 ≺양정수송우미리유이장구차운楊廷秀送牛尾狸侑以長句次韻≻에 “공의 시는 담비 같아서 귀찮게 고칠 것이 없는데, 내가 개꼬리 같은 구절을 부질없이 붙였구나.(公詩如貂不煩削, 我續狗尾句空著.)”라고 한 데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