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추파집(秋波集) / 秋波集後叙

ABC_BJ_H0216_T_005

010_0081_b_07L
추파집 후서
임제臨濟 32세손인 추파秋波 유 공宥公은 나와 절친하였다. 일찍이 같은 산에 살면서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곤 하였는데, 학문이 해박하고 이해가 깊어서 내가 참으로 공경하고 어려워하였다. 갑자기 서둘러 떠나니 늘그막에 좋은 친구를 잃었도다. 그가 돌아가고 채 10년이 안 되어 그의 문인 관식慣拭이 탑과 비석과 영정과 문집을 만들고, 또 나에게 책 뒤에 붙일 문장을 청하였다. 이에 옛날 서로 가깝게 지내던 생각을 하니 슬프고 또 그리워서 감히 굳이 사양하지는 못하고 그 소매에서 꺼낸 초본을 근거로 글을 쓴다.
우리 선조대왕 때에 부휴浮休 존자 수 공修公이 계셨다. 부휴의 문하에서 벽암碧巖 성 공性公이 나오시고, 벽암의 문하에서 모운慕雲 언 공言公이 나왔다. 그 아래로 보광葆光 민 공旻公·회당晦堂 정 공定公·한암寒巖 안 공岸公이 나왔는데, 추파 스님은 한암의 고제高弟이다. 추파 스님은 처음에는 용담龍潭 관 공冠公을 부지런히 모셨는데, 하루는 용담 스님이 손을 잡고 권하셨다고 한다.
“너는 선철先哲이 투자投子143) 스님 계신 곳에 세 번 오르고 동산洞山144) 스님께 아홉 번 찾아갔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화엄경』을 보면 선재善財 동자가 참례한 55선지식이 선재 동자의 스승 아닌 분이 없다. 너는 지체하지 말고 떠나 두루 참례하는 것이 좋겠다.”
추파 스님은 그 말씀을 따라 여러 산을 두루 다니면서 유명한 스승의 문을 두드리고, 마지막에 한암의 문중에 들어가 법을 잇고 의발을 전해 받았다. 스님은 종사宗師로서 거의 30년 동안 찾아오는 납자들을 가르치고 깨우쳤으나 뜻은 언설(言筌)145)의 밖에 있었기에 항상 강의에만 빠져 살며 선정의 업(定業)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을 개탄하였다. 문집에 있는 ≺임종게≻를 보면 마침내 그가 연국蓮國에 왕생하였음을 알 수 있으리라.
숙종 무술년(1718) 5월 20일에

010_0081_b_07L秋波集後叙

010_0081_b_08L
臨濟下三十二世秋波宥公與愚有好
010_0081_b_09L於同山㞐或經路遇穩接打話則學博
010_0081_b_10L解邃愚敬畏之摯遽然貪程失老境之
010_0081_b_11L勝友其歸也未十載門人慣拭成塔碣
010_0081_b_12L像集了又請足一言卷尾於愚於是念
010_0081_b_13L昔相誼悲且羨不敢膠讓謹據其袖來草
010_0081_b_14L而書之曰我宣廟朝有尊者浮休修公
010_0081_b_15L休門出碧巖性公巖門出慕雲言公
010_0081_b_16L下有葆光旻公晦堂定公寒巖岸公
010_0081_b_17L波即寒巖之高弟也波始於龍潭冠公
010_0081_b_18L事之潭公一日執手而勉之曰而不聞
010_0081_b_19L先哲之三登投子九到洞山乎華嚴善財
010_0081_b_20L所叅五十五善知識莫非善財之師也
010_0081_b_21L行矣勿滯遍叅可矣波公服其言
010_0081_b_22L流諸山叅扣名師而末頭投寒巖之門
010_0081_b_23L承法受衣波爲宗師者殆卅餘稔提誨
010_0081_b_24L方來衲子而志在言筌之表恒嘅汨於講
010_0081_b_25L未專定業觀其臨終之偈
居然可
010_0081_b_26L知其往生蓮國也肅廟戊戌五月二十日

010_0081_c_01L광주廣州 묵동墨洞에서 태어났다. 완산完山 이씨李氏로 선세先世는 명망 있는 집안이었다. 영조 갑오년(1774) 5월 13일에 돌아가셨다. 그 글을 모아 보니 예스럽고 튼튼하며 여유롭고 고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해 보려고 하였기에 종이가 귀해졌다. 스님의 성정을 여러 해를 모신 자라 해도 나만큼 알지는 못하리니, 나는 타고난 성품이 ‘곧고 공손(直愻)’하셨다는 두 글자를 꼭 말하리라.
성상 4년 경자 9월에 가야운인伽倻雲人 유기有璣가 지識하다.


010_0081_c_01L生于廣州墨洞完山李氏先世望族還源
010_0081_c_02L當英廟甲午五月十三日也其集文古健
010_0081_c_03L閒雅人多求覽紙已貴矣至於公之性
010_0081_c_04L雖多年執侍者莫愚所知如也愚則
010_0081_c_05L必曰所禀直愻二字也

010_0081_c_06L
聖上四年庚子菊秋伽倻雲人有璣識
  1. 143)투자投子 : 당나라 서주舒州에 있는 투자산投子山의 의청 선사義靑禪師를 말한다.
  2. 144)동산洞山 : 중국 강서성江西省 서주부瑞州府 고안현高安縣에 있는 산 이름인데, 여기서는 이 산에서 선풍을 크게 떨친 양개良价(807~869) 스님을 가리킨다.
  3. 145)언전言筌 : 고기를 잡는 통발(筌)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목적을 위한 방편方便이라는 뜻이다. 통발이 물고기가 아니듯이 언설言說은 진리를 말할 것이로되 결국 진리는 아니므로, 진리를 구하려면 언설을 잊어야 한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것이나 고기를 얻고는 통발을 잊어야 하고,……말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얻고는 말을 잊어야 한다.”는 구절이 『장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