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 蓮潭大師林下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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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연담대사임하록 서蓮潭大師林下錄序
『외서外書』1)에 “책 속 은밀한 곳을 뒤져 보아라. 얼마나 많은 빼어난 선비들2)이 그 안에 있는가.”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연담 대사가 지은 『임하록林下錄』에서 충성과 절의가 넘치는 대장부의 면모를 보았다. 여기 이 연담 대사는 불가 사람이다. 불가의 가르침은 임금과 어버이를 등지고 인의仁義를 외면하는 것으로 학문의 도리와 법칙을 삼으며, 오직 그 마음을 살펴 본성을 깨달아 아미판각阿彌板脚과 왕사성두王舍城頭3)를 이루는 것으로 묘법妙法을 삼는다. 그러므로 아주 교묘하게 꾸며서 말로 표현하고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은 『능엄경』에서 말한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충의忠義 위에 덧씌운 쓸데없는 껍데기로만 본다.
연담 대사가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4)에 이런 시를 붙였다.

生長明朝老事淸           명明에서 나고 자란 몸 늙어서는 청淸을 섬겼으니
嗟君大義未分明           안타깝지만 그대는 대의가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구려
一寸丹心當不變           오로지 한결같은 진실한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터
首陽山色古今靑           수양산首陽山5) 산빛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푸르다오6)

아,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서도 이렇게 개탄하면서 기롱하고 풍자하는 존화양이의 뜻이 있구나. 더 이상 『춘추春秋』를 읽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7) 총림의 빼어난 말씀으로 어쩌면 나를 이렇게 감동시키는가. 참으로 아깝다. 이 사람이 어찌하여 우리 유가의 문에 서지 않고, 도리어 불가의 세계에 몸을 던졌을까.
세상에 떠도는 글 가운데 간혹 이런 말이 있다.
“충성스럽고 의리 있는 선비는 전단나무 아래에서 시를 읊으면서 남에게 강개한 속뜻을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세상에서 불교를 배척하는 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중의 무리들을 없애고 그들의 책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그런데 만약 진실로 그 말대로 하였다면 세상에 이렇게 진기한 말이 있다는 것을 누군들 알 수 있었겠는가. 이다지도 뛰어난 좋은 사람을 하마터면 잃을 뻔하였구나.
대사는 서산 대사西山大師의 법파法派라고 한다. 임진년(1592)에 섬나라 왜구가 쳐들어와 전쟁을 일으켰을 때, 서산 대사 같은 스님은 의병을 모아서 왕실을 호위하였고,

010_0213_c_01L[蓮潭大師林下錄]

010_0213_c_02L1)蓮潭大師林下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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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213_c_04L
外書曰試看書林隱處幾多俊逸儒流
010_0213_c_05L余於蓮師所著林下錄得一忠義男子
010_0213_c_06L今夫蓮師釋者也釋之敎背君親
010_0213_c_07L外仁義爲道則惟其觀心見性到得阿
010_0213_c_08L彌板脚王舍城頭爲妙法極工而發於
010_0213_c_09L言著于文者不過爲楞嚴中糟粕徒
010_0213_c_10L其忠義上弁髦而其題明覺師語錄詩
010_0213_c_11L生長明朝老事淸嗟君大義未分明
010_0213_c_12L一寸丹心當不變首陽山色古今靑
010_0213_c_13L數十百載之下慨然有譏諷尊攘之
010_0213_c_14L今之世不復讀一部春秋胡爲起余
010_0213_c_15L於叢林一絶語也惜哉斯人何不立脚
010_0213_c_16L於道義之門迺反超形於空寂之界
010_0213_c_17L場中文字或聞有忠義之士栴檀下吟
010_0213_c_18L不圖見慷慨之意世之斥佛者之言
010_0213_c_19L廢其徒焚其書而復可苟如其言
010_0213_c_20L孰知有此等奇語幾失了此箇好人矣
010_0213_c_21L吾聞此師西山之法派也當壬辰島夷
010_0213_c_22L之猖獗有若西山募義旅而衛王室涉
010_0213_c_23L{底}嘉慶四年全羅道靈岩美黃寺開刊本(東國
010_0213_c_24L大學校所藏)

010_0214_a_01L또 멀리 바다를 건너가 왜적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의 순수한 충성과 훌륭한 공훈은 나라를 중흥시킨 다른 여러 신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며, 대승大乘의 사문沙門에 있어서도 그 아름다운 이름을 홀로 드날렸다. 그런즉 지금 연담 대사의 이러한 의리는 서산 대사에게서 전해 받은 이심전심의 의발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남긴 약간 편의 시와 문장은 승방의 법상에서 방할棒喝하던 여가에 혹 어쩌다 나온 것들이다. 기운이 움직이면 자기의 뜻을 말하고 뜻을 말할 때에는 마음속 생각을 자세히 펼치어 그윽하고 깊숙한 경계를 끝까지 궁구하였으니, 허공꽃과 밝은 달의 그림자는 어디에 있으며 적수赤水에서 잃어버린 현주玄珠8)의 형상은 어디에 있는가.
대사는 자신의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옛사람이 지은 글의 본뜻을 얻으려 하였으니, 대사의 이러한 생각은 「자서自序」의 말에 드러난다.
“좋아하는 것이 남들과 같지 않다면, 그것은 곧 편벽한 마음이거나 아니면 완고한 마음일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하였다.
“도의 현묘한 이치야 물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문자가 아니고는 달리 증험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하동자河東子9)의 말을 빌린 말도 있다.
“언제나 나라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되, 오직 문자로써 해야 한다.”
이것이 아마도 연담 대사가 세상살이를 개탄하면서 부도에 숨은 까닭이 아니었을까.
그의 학문은 편벽되거나 고루하지 않고 그의 말은 충성과 의리에서 나온 것이니, 그렇기에 대사는 혜근惠勤10)과 더불어 사대부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대사의 경지는 몽수蒙叟11)가 우리의 유가를 헐뜯고 비방하면서 지나치게 세상을 속여 광적인 지경에까지 몰고 간 것과는 결코 같지 않은 것이다.
옥서玉署12)에 있던 내가 이곳 바닷가 한구석의 고을 수령 자리를 맡아 오게 되었는데, 땅이 궁벽하고 풍속이 비루하여 함께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무를 보고 남는 시간이면 두륜산頭崙山으로 들어가곤 하였던 것이다. 그곳에 스님 한 분이 있었는데, 호를 학추學湫라고 하였다. 골격은 야위고 말랐으나 기상이 매우 빼어났기에,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불도의 법맥을 잇는 문인門人인 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경전과 대장경에 두루 통달하였고 시문詩文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는데, 그런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서문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이 연담 스님은 나의 스승이십니다. 스승님께서 지으신 『임하록』을 간행하여 세상에 전하려고 합니다.”
이에 나는 바로 붓을 잡고 써 내려갔다.
“내가 지금 이 서문을 짓는 것은, 옛날 한창려韓昌黎13)가 태전太顚14)을 한번 만나 보고는 문득 불교를 배척하던 원래의 마음을 잊었다는 것이나, 소문충공蘇文忠公15)이 만년에 요 도사(寥士)16)와 뜻이 맞자 스스로 참선하는 고제高弟가 되었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그대 대사네 불교의 가르침 안에도 나름대로 충성스럽고 의로운 부분이 있음을 매우 좋게 여겨서, 이 서문을 쓰는 것이다.”

010_0214_a_01L遠海而緩賊勢其純忠美功並列於
010_0214_a_02L中興諸臣專美於大乘沙門則今此蓮
010_0214_a_03L若箇義理厥有傳心之衣鉢也歟
010_0214_a_04L且其若干詩文或出於曲盠牀上捧喝
010_0214_a_05L之餘氣動而言志言志而暢懷窮乎幽
010_0214_a_06L迫於境空花寶月景在何處赤水玄珠
010_0214_a_07L象在何地已從自家性情想得古人筆
010_0214_a_08L至若自序所謂好而不與人同非僻
010_0214_a_09L則固又曰道之玄機妙旨非文字所可
010_0214_a_10L摸寫而亦非文字不足徵也又因河東
010_0214_a_11L子之言每思報國惟以文字此非蓮
010_0214_a_12L師所以慨世營逐隱於浮屠者耶其學
010_0214_a_13L之不爲僻固其言之出乎忠義則可與
010_0214_a_14L惠勤列於士大夫之間而非若蒙叟之
010_0214_a_15L詆訾吾道矯之過歸於狂矣余自玉
010_0214_a_16L署來守海隅地僻俗陋無可與語
010_0214_a_17L墨之暇適入頭崙山有一浮屠號曰
010_0214_a_18L學湫骨癯氣秀不問可知爲道家門人
010_0214_a_19L頗通經藏善談詩文云是蓮師吾師也
010_0214_a_20L所著林下錄將刊傳于世要余弁卷之
010_0214_a_21L余迺把筆而語曰今爲是書非韓昌
010_0214_a_22L黎之一見太顚便忘焚骨初心蘇文忠
010_0214_a_23L之晩契寥師自附叅禪高弟深愛爾師
010_0214_a_24L之釋敎中自有忠義地而序此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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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17) 6월 하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前 행行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 지제교知製敎 겸 경연經筵 검토관檢討官 춘추관春秋館 기사관記事官 안책安策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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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在赤龍季夏下澣通訓大夫前行
010_0214_b_02L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
010_0214_b_03L秋館記事官安筞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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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외서外書』 : 『聖歎外書』를 말한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문예 평론가 김인서金人瑞(1608~1661)가 『水滸傳』의 서문과 비평을 적은 책이다.
  2. 2)빼어난 선비들(俊逸儒流) :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서 지내는 뛰어난 인물들. 여기서는 바로 연담 대사를 가리킨다.
  3. 3)아미판각阿彌板脚과 왕사성두王舍城頭 : 아미판각은 아미타불국阿彌陀佛國에 이르는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뜻하고, 왕사성두는 부처님이 왕사성에서 성불成佛하여 중생을 교화한 것을 뜻한다.
  4. 4)『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 청나라 때 스님인 명각明覺의 어록. 명각 선사의 자字는 감박憨璞, 법명은 성총性聰이다. 명나라 말기에 나서 자랐고, 청나라의 세조世祖를 섬겨 명각이라는 호를 받았다.
  5. 5)수양산首陽山 : 중국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에 있으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어 죽은 곳이다.
  6. 6)신하가 된 사람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 고금의 의리인데, 명각 선사는 명나라 때 태어나서 자랐으면서 청나라 세조를 섬겨 법호를 받았으니, 곧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저버리고 오랑캐의 황제를 섬긴 것으로, 충의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시이다.
  7. 7)『春秋』의 의리는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으로, 중화 사상의 근간이 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명각 선사가 청나라 황제를 섬긴 일이 『春秋』의 의리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8. 8)적수赤水에서 잃어버린 현주玄珠 : 『莊子』 「天地」에 나오는 우언으로, 고대에 황제黃帝가 적수 북쪽에 놀러 나가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다가 현주를 잃어버렸다. 슬기로운 명지明知에게 찾으라고 하여도 찾지 못하고, 시력이 좋은 이주離朱에게 찾으라고 명해도 찾지 못하였는데, 무심無心한 상망象罔에게 찾도록 명하자 찾았다고 한다. 무위無爲의 정치를 행하려면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비유인데, 여기서는 연담 대사가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였다는 말로 쓰였다.
  9. 9)하동자河東子 : 북송 때의 문인으로, 자는 중도仲途이다. 사륙문四六文의 유행에 반대하여 고체古體로의 복귀를 제창한 고문운동의 선구자이다. 저서에 『河東集』이 있다.
  10. 10)혜근惠勤 : 송나라 임제종의 승려이다.
  11. 11)몽수蒙叟 : 장자莊子를 말한다.
  12. 12)옥서玉署 : 홍문관弘文館을 말한다.
  13. 13)한창려韓昌黎 : 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한유韓愈를 말한다.
  14. 14)태전太顚 :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趙州刺史로 있을 때에 교유하던 스님이다. 「與孟簡尙書書」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15. 15)소문충공蘇文忠公 : 송나라 때의 문인인 소식蘇軾을 말한다.
  16. 16)요 도사(寥士) : 송나라 때의 승려 도잠道潛을 말한다. 별호를 참료자參寥子라고 하였다. 시를 잘 지었으며, 소식蘇軾·진관秦觀과 시로써 벗을 삼았다.
  17. 17)병진년(赤龍) : 서기 1796년이다. 연담 스님이 입적한 해가 1799년이니, 이 서문은 스님의 생전에 준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1. 1){底}嘉慶四年全羅道靈岩美黃寺開刊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