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괄허집(括虛集) / 括虛大師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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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허집括虛集
괄허 취여括虛取如
괄허 대사 유고 문집 서문
허太虛로 말미암아 하늘이 생겨나고, 하늘로 말미암아 사람의 본성과 마음이 생겨났으니,1) 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이치로서 그 바탕은 비어 있음(虛)일 따름이다.비움은 곧 고요함이니 고요하면서 움직이고, 비움은 곧 통함이니 통하면서 변화한다.비었으나 채움이 있고 비었으나 실질이 있으니, 본성과 마음이 허령불매虛靈不昧2)한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 경지를 함께할 수 있겠는가?3)
해동海東 영남의 상산尙山(경상북도 상주)에 괄허 대사括虛大師가 있었으니, 그의 시는 허공을 걷는 신선다운 표현(步虛之詞)4)이 있고, 그의 문장은 허공을 뚫는 근거 없는 설(鑿虛之說)이 없다.이를 미루어 보아, 그가 텅 비어 어둡지 아니한 본성과 마음을 능히 보존하여 오로지 허무적멸虛無寂滅5)만을 숭상하지 않았음을 알겠으니, 시방十方의 허공을 포괄하였다(括虛)고 스스로 이른 것6)은 빈말이 아니로다.
괄허 대사는 양반(簪纓)7)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출가하여 의발衣鉢을 전해 받았다.옛날 서산西山이 법조法祖가 되는데8) 또한 그 호가 청허淸虛이다.지금의 혜운惠雲은 대사의 법손法孫으로 그 또한 채우고 비움을 아는 이로다.가령 이들이 모두 성현을 만났다면 찼어도 빈 듯하며9) 마음을 비워 타인을 수용하는 군자다운 선비10)가 되지 않았을 줄 어찌 알겠는가? 우리들(儒者) 가운데 좋은 사람들이 불가에 귀의한 이가 많았으니 아쉬운 일이로다.
혜운이 괄허 대사의 원고를 가지고 장차 판에 새겨 오래 전하고자 하니, 혜운의 본성과 마음 역시 텅 비어 어둡지 아니하도다.아쉬운 것은 내 마음을 비우지 않고 내 오른쪽 자리를 비게 한 것이다.태허의 의미를 논하여 돌려보내며 이를 써서 혜운 스님에게 주노라.
무자년(1888) 봄 3월 하순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겸兼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 겸兼 경연 참찬관經筵參賛官 춘추관 수찬관春秋館修撰官 예문관 직제학㙯文館直提學 상서원정尙瑞院正 규장각 검교 직제학奎章閣檢校直提學 겸兼 시강원 보덕侍講院輔德

010_0302_b_01L[括虛集]

010_0302_b_02L1)括虛大師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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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太虛有天由天有人之性與心天人
010_0302_b_05L一理則其本虛而已虛則靜靜而動
010_0302_b_06L虛則通通而變虛而有盈虛而有實
010_0302_b_07L非性與心之虛靈不昧者孰能與於此
010_0302_b_08L海之東嶺之南商山有括虛師
010_0302_b_09L詩有步虛之詞其文無鑿虛之說推以
010_0302_b_10L知其能存虛靈不昧之性與心不專尙
010_0302_b_11L乎虛無寂滅而自謂括十方之虛者
010_0302_b_12L不虛矣括虛糸出簮纓身受衣鉢
010_0302_b_13L之西山其法祖而亦號淸虛今之惠
010_0302_b_14L其法孫而能識盈虛者也使斯人
010_0302_b_15L皆遇聖賢則安知不爲實若虛虛受人
010_0302_b_16L之君子儒乎吾輩好人多爲佛氏引去
010_0302_b_17L悲夫雲以括虛稿將鋟梓而壽其傳
010_0302_b_18L之性與心亦虛靈不昧恨不虛吾心
010_0302_b_19L悲夫雲以括虛稿將鋟梓而壽其傳
010_0302_b_20L之性與心亦虛靈不昧恨不虛吾心
010_0302_b_21L虛吾席右叩論太虛而歸之於是乎書
010_0302_b_22L屬之雲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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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戊子春三月下澣資憲大夫知中
010_0302_b_24L樞府事兼承政院都承旨兼經筵叅賛
010_0302_b_25L官春秋館修撰官㙯文館直提學尙瑞
010_0302_b_26L院正奎章閣檢校直提學兼侍講院輔

010_0302_c_01L안동安東 김성근金聲根11) 해사海士가 서문을 쓰다.

010_0302_c_01L安東金聲根海士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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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태허太虛로 말미암아~마음이 생겨났으니 : 태극은 우주 만물의 원시적 형태로서 기氣의 본체本體를 말한다. 장재張載(1020~1077)는 “태허로 말미암아 하늘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기화氣化로 말미암아 도道라는 이름이 생긴다. 태허와 기화가 합하여 성性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성과 지각이 합하여 마음(心)이라는 이름이 생긴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 有性之名。 合性與知覺。 有心之名。)”라고 하여 우주의 본체를 태허라고 정의하였다.
  2. 2)‌허령불매虛靈不昧 : 물들지 않는 본래의 마음을 묘사한 말로, 우리 마음이 거울같이 맑고 신령스럽기 그지없어 무엇이든 뚜렷이 비추어 밝게 살핀다는 뜻이다. 『大學章句』 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에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衆理를 갖추고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다만 기품氣稟에 구애되고 인욕人慾에 가려지면 때로 어두울 경우가 있으나, 그 본체의 밝음은 일찍이 그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마땅히 그 발하는 바를 인하여 마침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하여야 한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但爲氣稟所拘。 人欲所蔽。 則有時而昏。 然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 以復其初也。)”라고 하였다.
  3. 3)‌누가 이~수 있겠는가 : 비슷한 표현이 『周易』에 나온다. 『周易』 「繫辭傳 上」에 “역易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일단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게 된다. 천하의 지극히 신령스러운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가 있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라는 표현이 있다.
  4. 4)‌허공을 걷는 신선다운 표현(步虛之詞) : ≺步虛詞≻는 악부 가사 중의 곡명인데, 본래는 도가道家의 곡으로, 가볍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신선 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중국에서 유래하여 북주北周 유신庾信 등의 작품이 있고, 조선의 문인 가운데에는 이달李達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작품이 유명하다.
  5. 5)‌허무적멸虛無寂滅 : 허무는 본래 ‘도道의 본체는 허무하다’는 노자老子의 사상을 담은 표현. 적멸은 생사를 초월한 열반涅槃의 세계로, 불교의 사상을 담은 표현.
  6. 6)‌시방十方의 허공을~이른 것 : 「괄허설」 참고.(pp.374~376)
  7. 7)‌양반(簪纓) : 잠영簪纓은 높은 벼슬아치들이 잠영을 쓴 데서 유래하여, 양반이나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 또는 그 지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8. 8)‌서산西山이 법조法祖가 되는데 : 괄허 취여는 환암幻庵 장로에게서 선지禪旨를, 환응喚應 선사에게서 의발을 전수받았다.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의 10세손이 된다.
  9. 9)‌찼어도 빈 듯하며(實若虛) : 학식이 있어도 없는 듯하고, 학식이 찼어도 빈 듯하다는 뜻이다. 안연顔淵의 겸허한 덕성德性을 일컬은 것이다. 『論語』 「泰伯」에서 증자曾子가 안연에 대해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 물어보고, 박학다식하면서도 천학과문한 자에게 물어보고,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찼어도 빈 것처럼 하고, 누가 덤벼들어도 따지지 않는 이런 태도를 옛날에 우리 벗은 지니고 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라고 평하였다.
  10. 10)‌군자다운 선비(君子儒) : 『論語』 「雍也」에서 공자가 제자 자하子夏에게 “너는 군자다운 유자가 될 것이요, 소인과 같은 유자는 되지 말 것이다.(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
  11. 11)‌김성근金聲根(1835~1919) : 구한말의 문신·서예가.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중원仲遠, 호는 해사海士. 1862년(철종 1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조참판과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1894년(고종 31) 동학혁명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1901년(광무 5) 홍문관 학사를 지냈으며, 1902년 탁지부 대신이 되었다. 서예에 뛰어났으며 필체는 미남궁체米南宮體였다. 1910년(융희 4) 한일합병 때는 일본 정부로부터 상금을 받았고, 사후에는 관직이 추서되기도 하였다. 금정산 범어사, 해남 대흥사, 팔공산 동화사 등지의 현판에 글씨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