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가산고(伽山藁) / 月荷上人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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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고伽山藁
월하 상인 유집 서
나는 대사를 뵌 적이 없어 대사가 어떤 분인지 모른다. 그의 시를 읽어 보고 그의 뜻을 살피고서야 비로소 그를 8할이나 9할 정도 알게 되었으니, 거의 마음은 유자儒者이면서 불자佛子의 자취를 보인 분이셨다. 내가 남몰래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고족 제자인 희겸喜謙 선사가 그의 행장을 가지고 찾아왔다. 아울러 그의 시문에 덧붙일 서문을 부탁하였는데, 시가 무려 500여 수에 달하고 문장 역시 각각 문체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솥단지 안의 음식을 모두 먹어 보았더니, 그 맛이 모조리 기가 막혔다.
대사의 속성은 권씨權氏이고, 법명은 계오戒悟이며, 그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가 달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기에 월하月荷라는 호를 덧붙이게 되었다. 태어나던 날 저녁에는 천태산天台山이 세 차례나 울었으니, 그 산은 곧 동해의 거령巨靈1)이었다. 바닷가 노인들 사이에 “이 산이 울면 우리 마을에 복된 일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날 밤 과연 대사가 태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다들 “이것이 그 징조다.”라고들 하였다.
대사는 성품이 총명하고 재주가 민첩하였다. 일곱 살부터 글을 배웠는데 하루에 오륙십 줄씩 암송하였고, 여러 책을 읽으면서 재차 물어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법이 없었으며, 구류백가九流百家2)에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열한 살에 머리를 깎고 출가해 침허枕虛 법사에게서 계를 받고 그의 의발을 이어받았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예스러워 작가의 법도가 있고, 시 역시 우아하여 나물과 죽순의 기미3)가 없었다. 총령葱嶺에 깊이 깃들어 살면서 세속의 업을 구하지 않았지만, 그가 함께 노닐었던 자들은 모두 한 시대의 선량選良들이었고, 창려昌黎가 태전太顚 선사에게 그리하고4) 도령陶令이 혜원慧遠 법사에게 그리했던 것처럼5) 교류를 허락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간혹 그에게서 한마디 말이나 글자 하나라도 얻으면 단산丹山6)에 떨어진 봉황의 깃털처럼, 창해滄海에 남겨진 구슬7)처럼 애지중지하였으며, 또한 썩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불교를 좋아하니, 그 청정하고 속되지 않음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사 같은 분이야 어찌 속되지 않은 정도에 그칠 뿐이겠는가! 한번 그 얼굴을 뵙고 삼소三笑의 모임8)을 쫓아다니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는데, 마침 동경東京9)에 부임하여

010_0758_b_01L[伽山藳]

010_0758_b_02L1)月荷上人遺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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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未見師不知師爲何許人讀其詩
010_0758_b_05L觀其志始得其八九分殆是心儒而跡
010_0758_b_06L佛者余竊異之高足謙禪持其狀來
010_0758_b_07L仍請弁其詩文詩凡五百餘首
010_0758_b_08L亦具各體盡得全鼎之味儘奇矣
010_0758_b_09L俗姓權法名戒悟其娠也母夢月入
010_0758_b_10L懷中仍以月荷爲號降胎之夕天台
010_0758_b_11L山三鳴山即東海上巨靈也老於海者
010_0758_b_12L有言曰此山鳴鄕有吉事是夜師果
010_0758_b_13L生焉咸曰此其徵乎師性悟才敏
010_0758_b_14L歲學書日誦五六十行讀數卷更不
010_0758_b_15L煩師九流百家無不涉獵十一歲祝
010_0758_b_16L受戒於枕虛法師以傳其衣鉢
010_0758_b_17L文也簡古有作者法詩亦典雅無蔬
010_0758_b_18L筍氣深棲葱嶺不求塵業而其與之
010_0758_b_19L遊者皆一時之選莫不以昌黎之太顚
010_0758_b_20L陶令之遠公許之或得其片言隻字
010_0758_b_21L若丹山之落羽滄海之遺珠亦足以
010_0758_b_22L不朽矣余性喜浮屠喜其淸淨不俗也
010_0758_b_23L而如師者奚止不俗而已恨不一識其
010_0758_b_24L以追三笑之會而適任東京得見

010_0758_c_01L그의 시와 문장을 보고 그의 유고에 서문까지 덧붙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월하 법사 화상 찬

月在天          달은 하늘에 있고
蓮在水          연꽃은 물에 있지만
以心觀心         마음으로 마음을 관찰하면
色相一理         빛깔과 모양이 하나의 이치
我聞如是         나는 이와 같이 들었네
悟即如來         깨달으면 곧 여래라고10)
師去道存         대사께선 가셨어도 도는 남았으니
水流花開         강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어남이로다

기유년(1849) 2월에 동경 윤東京尹 노하옹老荷翁 화산花山 권직權溭11) 쓰다.


010_0758_c_01L其詩與文而弁其卷亦幸矣遂爲之書
010_0758_c_02L月荷法師畫像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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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在天蓮在水以心觀心色相一理
010_0758_c_04L我聞如是悟即如來師去道存水流
010_0758_c_05L花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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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仲春東京尹老荷翁花山權溭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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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거령巨靈 : 전설 속 신神 이름. 먼 옛날에 황하黃河가 화산華山에 막혀 흐르지 못하자, 화산을 쪼개 그 사이로 강이 흐르게 했다고 한다.
  2. 2)구류백가九流百家 : 9종의 학파와 그 학파 속에서 견해의 차이를 보였던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총칭하는 말이다. 『漢書』 「藝文志」에 따르면 유가儒家의 유파에 52가家, 도가道家의 유파에 37가, 음양가陰陽家의 유파에 21가, 법가法家의 유파에 12가, 명가名家의 유파에 10가, 묵가墨家의 유파에 6가, 종횡가縱橫家의 유파에 12가, 잡가雜家의 유파에 20가, 농가農家의 유파에 9가가 있었다고 한다.
  3. 3)나물과 죽순의 기미(蔬筍氣) : 승려들의 시문에 나타나는 특유의 표현과 느낌을 말한다.
  4. 4)창려昌黎가 태전太顚 선사에게 그리하고 : 창려는 한유韓愈의 봉호이다. 당나라 때 대표적 배불론자排佛論者였던 한유는 원화 14년(819)에 「論佛骨表」를 상소하였다가 헌종憲宗의 미움을 사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태전을 만나 깊이 교류하였다.
  5. 5)도령陶令이 혜원慧遠 법사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 도령陶令은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별칭이다. 도연명이 낙향하였을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주지 혜원이 유유민劉遺民, 뇌차종雷次宗, 주속지周續之, 종병宗炳 등 18인의 명사와 백련사白蓮社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함께 불법을 닦았다. 그 당시 도연명에게도 참여를 권했는데, 신념이 달랐던 도연명은 술을 즐긴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가 후에 혜원과 방외의 벗으로 교류하였다.
  6. 6)단산丹山 : 봉황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산. 단혈丹穴이라고도 한다.
  7. 7)창해滄海에 남겨진 구슬 :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 버린 훌륭한 인재를 보물에 비유한 말이다.
  8. 8)삼소三笑의 모임 : 유자와 불자가 방외의 벗이 되어 함께 어우러진 모임을 여산의 백련사白蓮社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동림사東林寺로 들어가는 길목에 호계虎溪를 건너는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일찍이 혜원慧遠이 그 다리를 건너 산문을 나서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이 동림사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던 날,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전송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 다리를 지나치고 말았다. 혜원이 이 사실을 실토하고, 세 사람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9. 9)동경東京 : 경주慶州.
  10. 10)깨달으면 곧 여래라고(悟即如來) : 중의적 표현이다. ‘오悟’는 ‘계오戒悟’ 즉 월하 대사를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계오가 곧 여래라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11. 11)권직權溭(1792~?) :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심景深. 1827년(순조 27)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34년(순조 34)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고, 1835년(헌종 1) 1월에는 도당회권都堂會圈 30인에 선발되었다. 1836년(헌종 2) 원릉元陵과 화령전華寧殿의 작헌례酌獻禮에 대축大祝으로 참여하여 가자加資되었다. 1844년(헌종 10) 3월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 문집 『團和齋集』 6권 5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