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함홍당집(涵弘堂集) / 涵弘堂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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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홍당집 서(涵弘堂集序)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금선씨金僊氏28)의 무리라는 자들이 ‘무릇 시나 문장에 능한 것은 우리 운수납자 집안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하열한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롭기 때문에 깨닫는 것이며, 깨달은 자는 남들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내전內典29)의 가타伽陀와 장행長行30) 등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文佛)을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과 선정禪定에 통달한 이들과 개사開士들의 손에서 나왔던 것이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어떤 글이 이렇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원통圓通의 오묘한 전적典籍도 심오한 저술이 아닐 것이며, 그것을 시나 문장으로 드러내서도 안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래 멸후 3천여 년이 흘렀고, 인도(身毒)31)에 서 2천 유순由旬32)이나 떨어져 말법시대인지라, 몽매하고 캄캄하며 바른 법륜이 능멸당하고 쇠퇴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문空門33)의 여러 납자들 가운데 글에 능한 자들이 드물어 그저 ‘시와 문장은 우리 집안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하며 헐뜯고만 있으니, 어찌 저들을 불법을 제대로 배우는 자들이라 하겠는가?”
나는 유학자이지만 때때로 방외方外(佛家나 道家)의 벗들과 어울리며 이 말을 거론해 보았으나 듣고는 다들 망연해하며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상인 야산野山이 소주韶州34)에서 그의 선사先師 함홍당의 유고를 소매에 넣고서 소나기를 무릅쓰고 대방산大舫山으로 나를 찾아와 보잘것없는 이에게 머리말을 부탁하였다. 나는 마침 더위를 먹어 침상에 엎드려 있다가 책을 손에 잡고 열람하게 되었는데, 그 시가 억지로 치장하지도 않고 투박하지도 않으면서 천연의 성품을 술술 풀어놓은 것이었다. 또한 대부분이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것인데, 그들 모두 당대의 대석학이었다. 이에 스님이 함부로 사람을 사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홀로 썼다면 그 시어가 어찌 이렇게 빼어날 수 있겠는가. 서序와 기記, 편지글(竿牘)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정법안장正法眼藏35)까지 갖추었으니, 진실로 말법시대에 희유한 일이었다. 그래서 상인 야산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스승이 바로 지혜롭게 깨달은 자가 아니겠으며, 금선씨의 가르침을 천명할 수 있는 자가 아니겠는가. 나는 시문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알겠고,

010_0968_c_01L涵弘堂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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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我聞爲金僊氏之徒者曰凡能乎
010_0968_c_04L詩若文非塢雲家本色之言也可不不
010_0968_c_05L何以故離劣想慧慧故覺覺者覺
010_0968_c_06L所以諸內典伽陀長行之屬皆出於
010_0968_c_07L文佛散聖通禪開士之手若之何辭之
010_0968_c_08L可已也夫然則非深造乎圓通之玅詮
010_0968_c_09L不可以發之爲詩文而今後如來三千
010_0968_c_10L餘歲去身毒二千由旬末法蒙晦
010_0968_c_11L輪凌替空門諸衲子罕有能於辭者
010_0968_c_12L徒訾曰詩文非吾家本色豈伊善學佛
010_0968_c_13L者耶余儒者也時因方外相從者
010_0968_c_14L似此語聞皆河漢之以上人野山自韶
010_0968_c_15L袖其先師涵弘堂遺稿冒暑雨
010_0968_c_16L余於大舫山中屬丁乙而弁語焉余方
010_0968_c_17L病暍伏枕仍手卷而閱之其爲詩
010_0968_c_18L雕不樸陶寫性天多與士大夫唱酬
010_0968_c_19L皆時之鴻碩於是知師之不妄交人
010_0968_c_20L獨韻語殊勝爾哉至若序記竿牘煞具
010_0968_c_21L眼藏誠像季希有也遂語上人曰
010_0968_c_22L師而非慧而覺者耶非能闡金僊氏之
010_0968_c_23L敎者耶余於詩文而知慧而覺於慧
010_0968_c_24L己卯年李秀瑩識記本(東國大學校所藏)

010_0969_a_01L지혜와 깨달음에서 금선씨의 가르침을 알겠구나. 그러나 문장이란 지혜로부터 드러나는 것이다. 지혜는 근본이요 문장이란 말단이니, 그대 스승의 전모는 진실로 문장 밖에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그대 스승을 알고 싶다면 또한 그 말단을 버리고 현묘한 뜻만 곧장 구해서도 안 된다. 내 말을 마땅하다고 여긴다면 그대 스승의 뛰어난 제자들은 서둘러 이를 판각하여 오래오래 보존해야 하리라.”
세차 기묘己卯(1879) 입추절立秋節에 금주金州 허훈許薰36)이 서문을 쓰다.

010_0969_a_01L而覺而知闡金僊氏之敎矣然文由慧
010_0969_a_02L根也端也而師之全固有
010_0969_a_03L在於文之外而欲知而師者又不可捨
010_0969_a_04L其端而徑求之玄玄也宜其而師之諸
010_0969_a_05L高足汲汲鋟之木壽永永刼者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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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己卯之立秋節金州許薰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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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8)금선씨金僊氏 : 과거칠불 중 한 분인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Kanakamuni-buddha)을 금선인金仙人이라 의역하였는데, 후대에는 흔히 부처님의 이칭으로 사용되었다. 금선씨는 불씨佛氏·석씨釋氏·부도씨浮屠氏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2. 29)내전內典 : 불경佛經을 불경이 아닌 책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3. 30)가타伽陀와 장행長行 : 가타는 gāthā의 음역으로 게偈·풍송諷誦·게송偈頌·조송造頌·송頌이라 의역된다. 가타는 운문, 장행은 산문을 말한다.
  4. 31)인도(身毒) : 신독身毒은 Sindhu의 음역으로 인도를 지칭한다. 신독申毒·신도信度·현두賢豆라고도 한다.
  5. 32)유순由旬 : 유사나踰闍那·유선나踰繕那·유연由延이라고도 한다. 거리를 재는 인도의 단위로서 전륜성왕이 행차 시에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 또는 멍에를 멘 황소가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라고 한다. 정확하게 측정한 단위가 아니어서 설이 많지만, 흔히 30리 또는 40리를 1유순이라 한다.
  6. 33)공문空門 : 공사상空思想을 표방하는 대승불교, 또는 불교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다.
  7. 34)소주韶州 : 의성義城을 가리키는 말이다. 의성의 옛 이름이 문소聞韶였다.
  8. 35)정법안장正法眼藏 : 선문禪門에서 올바른 세계의 견해, 깨달음의 진실을 말한다. 청정법안淸淨法眼이라고도 한다.
  9. 36)허훈許薰(1836~1907) : 조선 말기 유학자로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경상북도 선산군 임은林隱에서 출생하였다. 29세에 허전許傳의 집지문인執持門人이 되었는데, 허전은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황덕길黃德吉로 이어진 성호학파의 실학을 이은 인물이다. 『舫山集』이 남아 있다.
  1. 1)己卯年。李秀瑩識記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