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극암집(克庵集) / 克庵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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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암집克庵集
극암집 서克庵集序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옛날 석가모니께서 세상에 나와 가르침을 펴실 때에 마음을 관찰하고 품성을 단련함을 위주로 하고 말없이 내면 관조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갖가지 방편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말을 다 하지 못하므로 탄식하고 감탄하는 것을 표현하여 게송을 덧붙였다. 선가禪家의 시詩와 문文은 실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혹자는 시문에 대해 서교西敎(불교)의 주변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이다. 문이라는 것은 도를 꿰는 도구이고 시는 성정에서 나온다. 문으로 도를 깨우치고 시로 성정에 도달하게 되니, 흐름을 따라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비법이 아니라 하겠는가. 이후로부터 큰스님들과 성문聲聞·연각緣覺1)의 주옥같은 시문들이 찬란하게 볼 만했으니 당나라 태전太顚2)과 무본無本,3) 송나라 비연秘演4)과 혜근慧懃,5) 우리 삼한의 『선가귀감禪家龜鑑』6)·『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7) 같은 것들이 어찌 불교를 배우는 데 해가 되겠는가.
달구達句(대구) 팔공산에 극암克庵 선사가 있다. 선사의 성은 서씨徐氏요 본관은 달성達城으로, 동고東皋8) 선생의 8세손이 된다. 선사는 양반 가문의 일원으로서 총명하고 지혜로움으로 세상에 쓰일 수 있었는데, 그것을 초개처럼 쉽게 여기고는 훌쩍 떠나서 물외物外를 소요逍遙하며 여래의 법문에 몸을 맡겼다. 왜 그랬을까. 보살의 후신으로서 초제招提9)의 인연이 미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번 삭발한 후에 위로는 서산西山10)과 영파影波11)의 의발을 받들고, 아래로는 혼원混元12)과 석응石應13)의 연원을 계발하여 『화엄경華嚴經』과 『원각경圓覺經』에 잠심潛心하였다. 그의 성품은 청아하였고 계행戒行은 탁월하였으니, 대체로 그 홀로 깨달은 묘유妙有14)는 외부인이 쉽게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선정하던 여가에

011_0564_c_01L[克庵集]

011_0564_c_02L1)克庵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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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我聞粤昔牟尼氏之出世立敎也
011_0564_c_05L以觀心鍊性爲主含默內照爲貴
011_0564_c_06L而種種方便不得無言言之不盡
011_0564_c_07L發於咨嗟詠歎之餘則賡之以偈禪家
011_0564_c_08L之有詩若文實權輿於此或者謂詩文
011_0564_c_09L卽西敎之傍門則誤矣文者貫道之器
011_0564_c_10L詩出於性情因文而悟道自詩而達
011_0564_c_11L豈非沿流泝源之妙法乎自玆以還
011_0564_c_12L諸大沙門聲聞緣覺之咳珠唾玉彬彬
011_0564_c_13L可觀如唐之太顚無本宋之秘演惠勤 [1]
011_0564_c_14L我東之龜鑑自警庸何傷於學佛哉
011_0564_c_15L句之八公有克庵師師之姓徐系出
011_0564_c_16L達城於東皋先生爲八世孫以師簮纓
011_0564_c_17L之族聦慧之才見需於世易若拾芥
011_0564_c_18L然而脫然舍去逍遙物外托身於如來
011_0564_c_19L法門何以故無乃菩薩後身未盡招提
011_0564_c_20L之前緣耶一自落紺上承西山影波之
011_0564_c_21L衣鉢下啓混元石應之淵源潜心於華
011_0564_c_22L嚴圓覺之篇性氣淸雅戒行卓越
011_0564_c_23L其獨悟之妙有非外人容易窺測禪定
011_0564_c_24L{底}甲辰白雲李華祥序記本(海南大興寺所藏)

011_0565_a_01L간간히 마음에 남아 있는 것들을 표현하여 시가와 문과 편지를 썼다. 간혹 어진 사대부들과 서로 시문을 주고받았으니, 그것을 모은 것이 몇 권이 된다. 또한 시문으로 세상에 유명해졌다.
이 해 중추에 내가 팔공산에 유람 갔다가 파계사把溪寺15) 미타암彌陀庵에서 선사를 만났다. 선사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얗고 몸이 맑게 야위어 날아갈 듯한 도인의 기상이 있었다. 선사는 나를 이끌어 주지 방으로 들어가서는 친구들을 언급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는 글 모은 것을 찾아 보여 주었다. 대체로 그 현묘한 부분은 의례히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고 왕왕 범문梵門(불문)을 초탈하여 맑고 고상하며 천연스러웠으니, 우리 유가의 문인이나 석사들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선사는 시에 대해 가히 능히 바르게 하고 능히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할 만하다. 이로써 보자면 선사의 시는 게송에 근본을 두고 성품을 단련하며 내면을 관조하는 오묘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그 문장의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그와의 사귐을 믿으며 나의 졸렬함을 잊고 서두를 더럽히게 되었으니 혹시 한번 웃을 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갑진년(1904) 추석에 진사 백운白雲 이화상李華祥16)이 서문을 쓰다.


011_0565_a_01L之暇間以所存乎中者發以爲詩歌若
011_0565_a_02L文若札翰或與賢士大夫迭相酬唱
011_0565_a_03L所著集爲幾局又以詩文鳴於世
011_0565_a_04L歲之中秋余遊公山遇師於把溪之彌
011_0565_a_05L陀庵鬚眉皓白淸癯瀅潔飄飄有道
011_0565_a_06L人氣象携入上方道舊故問暄凉
011_0565_a_07L討所集局而觀之蓋其玄妙處例是自
011_0565_a_08L家本色之呈露徃徃超脫梵門淡宕
011_0565_a_09L高夾 [2] 天然與吾儒家文人碩士相頡頑
011_0565_a_10L師之於詩可謂能正能變者也以是觀
011_0565_a_11L師之詩本於偈而鍊性內照之妙
011_0565_a_12L從可知矣於是乎悅其美而恃其交
011_0565_a_13L其拙而穢其頂倘無一粲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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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秋夕進士白雲李華祥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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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성문聲聞·연각緣覺 : 성문은 가르침을 듣는 자를 의미하는 ⓢ śrāvaka의 의역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원래의 뜻 그대로 재가·출가의 구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불제자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가르치는 음성을 듣고서 수행하는 사람을 성문이라 한다. 연각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 pacceka의 의역이며, 벽지불辟支佛 또는 독각獨覺이라고도 한다.
  2. 2)태전太顚(732~824) : 당나라 정원貞元 6년(790)에 조주潮州 영산靈山 축융봉에 은거하여 법을 전하자 많은 제자와 고명한 학자가 사방에서 모여들었고, 그곳 자사로 좌천된 한유韓愈와 교유하였다.
  3. 3)무본無本 :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779~843)가 승려였을 때 사용했던 법명이다.
  4. 4)비연秘演 : 송나라 구양수歐陽修와 친구였던 승려로서 『釋秘演詩集』을 남겼다.
  5. 5)혜근慧懃 : 송나라 때 임제종 승려로 자는 불감佛鑑이다. 어릴 때부터 광교 원심廣敎圓深을 사사했다. 나중에 오조 법연五祖法演을 참알參謁하고 그 법사法嗣가 되었다.
  6. 6)『선가귀감禪家龜鑑』 : 1564년(명종 19)에 휴정이 선종의 요긴한 지침을 모아서 지은 책이다.
  7. 7)『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보조 지눌普照知訥의 『誡初心學人文』, 신라 원효元曉의 『發心修行章』, 고려 야운野雲의 『自警文』 세 가지를 후세에 하나로 편찬한 책이다. 처음 출가 수행하는 사람을 경계하기 위해 가르치는 책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8. 8)동고東皋 : 서사선徐思選(1579~1650). 자는 정보精甫이며, 곽재겸郭再謙의 문하에 종유하였고,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9. 9)초제招提 : ⓢ catur-diśa의 음사. 사방四方이라 번역한다. 모든 수행승을 통틀어 일컫는 말인데, 대개 사찰의 의미로 사용한다.
  10. 10)서산西山 :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중종 15)~1604년(선조 37)]. 완산完山 최씨崔氏이며,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이다.
  11. 11)영파影波(1728~1812) : 법명은 성규聖奎, 영파는 법호이다. 함월涵月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이고 환성喚醒의 손자뻘 제자이다. 경북 영천 은해사에 주석하며 화엄의 종지를 드날렸고, 해남 두륜산 대둔사大芚寺의 13강사講師에 속한다. 대흥사에 부도가 남아 있다.
  12. 12)혼원混元(1853~1889) : 법명은 세환世煥, 자는 정규正圭, 속성은 두씨杜氏이다. 1912년 발행된 『混元集』이 전한다.
  13. 13)석응石應 : 법명은 달현達玄이다. 태백산 각화사 중창주이며 혼원 세환의 제자이다.
  14. 14)묘유妙有 : 만물이 실체가 없는 가운데 여여하게 존재하고 있는 모습.
  15. 15)파계사把溪寺 : 대구 팔공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동화사桐華寺의 말사.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戒寬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16. 16)이화상李華祥[1842(헌종 8)~1915] : 조선 말기의 유학자. 자는 재중載重이고, 호는 백운정白雲亭이다. 본관은 인천이며, 경상북도 대구 무태리無台里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이시채李時采로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배웠다.
  1. 1){底}甲辰白雲李華祥序記本(海南大興寺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