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청주집(淸珠集) / 淸珠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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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집淸珠集
고령산 보광사 정원사주 환공당 석치조 편찬
청주집 서(淸珠集序)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유교와 불교가 다른가?” 하고 물었더니 “다르다.”고 하였다.
유자후柳子厚1)가 “부도浮圖(불교)의 말씀이 밝은 지혜로 미루어 근원으로 돌아가서 타고난 고요함에 합하였다.”2)라고 말했던 것은 (불교가) 공자를 배척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대감大鑒의 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선性善이어서 갈고 김맬 필요가 없었다.”3)라고 말했던 것은 (불교가) 맹자를 배척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구담씨瞿曇氏4)의 참된 가르침과 비밀스러운 진리는 애초에 유가儒家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은 적이 없고, 그들의 엄숙한 몸가짐과 도에 임하는 돈독한 자세 역시 거의 유문儒門에 머물렀던 율사律師들이었다.5)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이 미소 지었던 종풍은 아득히 멀어지고, 한차례 몽둥이를 휘두르고 한차례 고함을 질렀던 선지禪旨도 어두워졌도다! 이에 언어를 의지해 문자를 세운 천칠백 공안이 만들어져 처방에 따라 비슷하게나마 사람들에게 설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지런히 마음을 쓸수록 법은 더욱 멀어졌고, 쏜살같이 세월이 흘러 어느새 정업淨業6)의 도가 희미해지고 마귀와 외도가 번갈아 들이닥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공문空門(불교)의 양구陽九7)로다.
석치조釋治兆는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결사의 깃발을 굳건히 세우고 30년 동안 하안거 결제를 하면서 뜻을 함께하는 승려 및 재가자들과 극락왕생할 날만을 힘써 생각해 온 자이다. 그가 선정의 희열을 즐기던 여가에 내전內典(불전)을 탐독하여 여러 집안의 아름다운 말씀들을 모으고, 한 사람에게만 전하며 비밀스럽게 부촉하신 뜻을 가려 뽑아 이를 엮어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책이 완성되자 맨발로 달려와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유자儒者의 무리이다. 불교 집안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데, 무슨 수로 이 책이 크고 작은 수행자들을 깨우치기에 충분한 점이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일단 읽어 보았더니, 그 말씀이 간결하면서도 의미가 풍성하고 뜻이 정밀하면서도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어 꼭 특별히 솜씨와 안목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저절로 골수를 훤히 볼 수 있었다. 지름길로 조사의 방으로 나아가 연등이 밝힌 길을 따라서 보배 뗏목을 타고 저 언덕에 올랐으니, 황홀한 것이 사자좌獅子座 아래에서 해조음(潮音)8)을 듣는 것 같았다. 이것이 큰 환희가 아니겠는가?
아, 현겁이 침몰하면서 상교象敎(불교)가 쇠퇴하여,

011_0734_b_01L[淸珠集]

011_0734_b_02L1)淸珠集序

011_0734_b_03L
011_0734_b_04L
執塗之人而問之曰儒與佛異乎
011_0734_b_05L柳子有 [1] 浮圖之說推離還源
011_0734_b_06L於生而靜者以爲不背孔子大鑒之道
011_0734_b_07L終始性善不假耘鋤者以爲不背孟子
011_0734_b_08L然則瞿曇氏之眞詮秘諦未始不與儒
011_0734_b_09L家相契其持身之嚴任道之篤殆亦
011_0734_b_10L儒門律師也拈花微笑宗風邈矣
011_0734_b_11L棒一喝禪旨晦矣於是依言語立文字
011_0734_b_12L而千七百公案作隨方媲儗對人演說
011_0734_b_13L意愈勤而法愈離駸駸至于淨業道微
011_0734_b_14L魔外交作誠空門之陽九也釋治兆
011_0734_b_15L竪幢於淨願之社結夏三十年同志緇
011_0734_b_16L勉思彙征禪悅之暇耽賾內典
011_0734_b_17L稡諸家摘抉單傳密付之義彙爲一書
011_0734_b_18L書成走白足請敍於余余儒者徒也
011_0734_b_19L不嫺釋氏家言將何以覷破是卷之有
011_0734_b_20L足警惺於大小修行人哉秪見其言簡
011_0734_b_21L而意賅旨精而包廣未必別具手眼
011_0734_b_22L已自洞見骨髓由蹊徑而造堂室蓮燈
011_0734_b_23L指路寶筏登岸恍然若叅猊座而聆
011_0734_b_24L潮音不其大歡喜歟賢刼淪而象

011_0734_c_01L치조처럼 문빗장을 열어젖히고 보배를 세는 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구나! 치조는 몸가짐을 엄숙히 하고 도를 독실하게 믿어 스스로 문필가를 자처하면서 고덕들이 전하지 않은 비결을 수집해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마음도 진실로 또한 괴로운 것이다.
경오년(1870, 고종 7)8월에 기수루綺樹樓 주인 소하거사 조성하9)가 서문을 짓다.

맑은 구슬(淸珠)이란 파려玻瓈이다. 이 구슬을 탁한 물에 던지면 혼탁함이 모조리 제거되어 바닥까지 맑아지고, 이것을 진흙탕에 두면 진흙 위로 불쑥 솟아올라 탁월함을 홀로 간직한다. 또한 구슬의 본체는 비록 극도로 밝고 맑아 삼라만상을 비춤도 없고 삼라만상에 물듦도 없지만, 두 구슬을 가지고 서로 비추었다 하면 곧 광채가 서로 엇갈리면서 온 하늘에 휘황하고 온 대지에 찬란하다.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의 보광명지普光明智 역시 이와 같아서, 이 지혜가 비추는 곳에서는 탐욕과 분노와 번뇌가 그 자리에서 얼음 녹듯 사라지고 삿된 마귀와 외도들이 저절로 항복하게 되며, 스치는 곳과 간직하는 곳에서는 모조리 변화하여 한 몸이 되고 법계에 원만하게 융합하여 부처와 부처가 서로를 드러내게 된다. 보광명지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고요하면서 항상 비추어 한도 끝도 없고 다하여 사라짐도 없다. 또 수많은 빗방울이 큰 바다에 떨어지면 모두 한맛의 바닷물이 되는 것처럼, 일체중생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 역시 이와 같아서, 백천만 가지 생각이 모두 진여법계眞如法界의 보광명지인 것이다. 이에 이 염불법문이 최상승最上乘의 돈종頓宗으로서 단박에 초월하여 곧장 부처님의 지혜와 수승한 행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011_0734_c_01L敎替未嘗聞有啓扄鐍而數珍寶如
011_0734_c_02L治兆者焉治兆持身嚴而信道篤
011_0734_c_03L托於觚墨之間集古德不傳之秘欲化
011_0734_c_04L度一切衆生則此心良亦苦矣

011_0734_c_05L
庚午仲秋綺樹樓主人少荷居士趙
011_0734_c_06L成夏敍

011_0734_c_07L
011_0734_c_0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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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淸珠者玻瓈也此珠投於濁水
011_0734_c_10L渾濁盡去徹底澄湛置之泥淖則湧
011_0734_c_11L出泥上卓然獨存且珠體雖極瑩澈
011_0734_c_12L萬象森羅無照無染惟將二珠相照
011_0734_c_13L則光彩交暎輝天鑑地無量壽如來普
011_0734_c_14L光明智亦復如是此智照處貪嗔煩
011_0734_c_15L當下氷消邪魔外道自然降伏
011_0734_c_16L過所存盡化同體圓融法界佛佛互
011_0734_c_17L普光明智亘古亘今常寂常照
011_0734_c_18L有邊際無有窮盡又如許多雨滴
011_0734_c_19L於大海皆爲一味海水一切衆生
011_0734_c_20L佛之念亦復如是百千萬念皆是眞
011_0734_c_21L如法界普光明智乃知此念佛法門
011_0734_c_22L上頓宗一超直入佛智勝行豈不快哉
011_0734_c_23L{底}同治九年治兆序記本(國立圖書舘所藏)
011_0734_c_24L{甲}續藏經第二編十五套一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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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에서 충성하고 효도하고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으로 기본을 삼고, 사랑하고 연민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것으로 일상의 행동을 삼으면서 때때로 생각 생각마다 아미타부처님의 보광명지로 비춘다면 진여가 아닌 일이 하나도 없고, 부처님 지혜가 아닌 상相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청신사淸信士 수십 명이 함께 원을 세우고 마음을 일으켜 염불하는 단체를 결성하고는 환공幻空 상인이 편집한 『청주집』을 발간하고 유포해 온 법계의 함식含識10)과 함께 일체종지一切種智11)를 원만히 성취하고자 하였다. 가히 진흙탕의 연꽃이 티끌 속에 있지만 티끌을 벗어난 것이라 하겠으니, 매우 희유한 일이로다.
만약 청정한 생각을 이어 가 한결같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사유가 집중되고 망상이 고요해져 주체와 대상 양쪽을 모두 잊게 된다면, 결국에는 이 생각으로 곧장 아미타불의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바다로 들어가 비로자나불의 화장세계華藏世界에 노닐면서 미래가 다하도록 한량없고 끝없이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킬 것이다.
이에 더불어 기뻐하면서 기꺼이 서문을 짓게 되었다.
상장上章 돈장敦牂12) 단양일端陽日13)에 법당산인 허주당 덕진이 공경히 예배하고(和南)14) 삼가 쓰다.

011_0735_a_01L現世以忠孝敬順爲基本慈憐惻隱爲
011_0735_a_02L1) [1] 時時念念以彌陀普光明智照
011_0735_a_03L則無一事非眞如無一相非佛智也
011_0735_a_04L今有信士數十人同願發心結社念佛
011_0735_a_05L將幻空上人所輯淸珠集刊印流布
011_0735_a_06L與法界含識同圓種智可謂淤泥蓮華
011_0735_a_07L居塵出塵甚爲希有若能淨念相繼
011_0735_a_08L一心不亂思專想寂能所兩忘則究
011_0735_a_09L竟此念直入於彌陀法性眞如海同遊
011_0735_a_10L於毘盧遮那華藏刹盡未來際度脫衆
011_0735_a_11L無量無邊是以隨喜樂爲之序

011_0735_a_12L
歲上章敦牂端陽日法幢山人虛舟
011_0735_a_13L堂德眞和南謹書

011_0735_a_1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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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유자후柳子厚 : 당나라의 문인 유종원柳宗元(773~819)을 말한다. 자후子厚는 자이다. 호는 하동河東이며, 유주 자사柳州刺史를 지냈기에 유유주柳柳州라고도 한다.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古文 부흥 운동을 제창했던 문장가이자 정치가로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술로 『柳河東集』이 있다.
  2. 2)부도浮圖(불교)의 말씀이~고요함에 합하였다 : 부도浮圖는 ⓢ Buddha의 음역이다. 부처님이 가르친 반본환원返本還源이 공자가 추구하였던 ‘선천적인 고요함(生而靜)’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柳河東全集』 권6 「曹溪大鑒禪師碑」에 “공자께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돌아가신 후에 그분이 남기신 말씀으로 세상을 지탱하였는데, 거기에 다시 양주楊朱ㆍ묵적墨翟ㆍ황제黃帝ㆍ노자老子가 왕창 뒤섞여 그 법칙이 갈가리 찢기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뒤에 나와 밝은 지혜로 미루어 근원으로 돌아가 이른바 ‘선천적인 고요함(生而靜)’에 합하였던 것이다.(孔子無大位, 沒以餘言持世, 更楊墨黃老益雜, 其術分裂. 而吾浮圖說後出, 推離還源, 合所謂生而靜者.)”라고 하였다. ‘밝은 지혜로 미루어(推離)’에서 ‘이離’는 이괘離卦 즉 밝음을 뜻한다. 『周易』 「離卦 象」에 “밝음이 둘인 것이 이離가 되니, 대인이 이로써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춘다.(明兩作離, 大人以, 繼明, 照于四方.)”라고 하였다. ‘선천적인 고요함(生而靜)’은 『禮記』 「樂記」에서 인용한 말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한 것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고, 사물을 감지하면 움직이는 것은 본성의 욕구이다.(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라고 하였다.
  3. 3)대감大鑒의 도는~필요가 없었다 : 대감大鑒은 당나라 헌종이 육조 혜능慧能에게 내린 시호이다. 육조 혜능이 가르친 청정본연淸淨本然이 맹자가 가르친 성선설性善說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柳河東全集』 권6 「曹溪大鑒禪師碑」에 “그의 도는 무위無爲를 유有로 삼고, 텅 빈 것(空洞)을 실實로 삼고, 광대하면서도 방탕하지 않은 것을 귀착점으로 삼았다. 그는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타고난 성품이 선하다(性善)’는 것에서 시작해 ‘타고난 성품이 선하다’는 것으로 끝맺었으니, 갈고 김맬 필요도 없이 본래 그것은 고요한 것이었다.(其道以無爲爲有, 以空洞爲實, 以廣大不蕩爲歸. 其敎人, 始以性善, 終以性善, 不假耘鋤, 本其靜矣.)”라고 하였다.
  4. 4)구담씨瞿曇氏 : 부처님을 가리킨다. 구담瞿曇은 ⓢ Gotama의 음역으로, 석존釋尊의 성이다.
  5. 5)그들의 엄숙한~머물렀던 율사律師들이었다 : ‘그들’은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유생을 가리킨다. 진실한 유생은 승려와 외형만 다를 뿐 실제 행실에서는 불교의 율사와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전겸익錢謙益이 지은 「陽明近溪語要序」에서 인용한 것이다.
  6. 6)정업淨業 :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염불念佛 등 정토왕생의 원인이 되는 행동을 말한다.
  7. 7)양구陽九 : 엄청난 재앙을 뜻한다. 음양가에서 구九는 양陽의 극수極數로, 양만 있고 음이 없으므로 만물이 교섭을 할 수 없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고 한다.
  8. 8)해조음(潮音) : 부처님의 웅장한 음성을 파도 소리에 비유한 것이다.
  9. 9)조성하趙成夏(1845~1881) : 조선 말의 문신. 자는 순소舜韶, 시호는 문헌文獻. 병조판서 병준秉駿의 아들로 병구秉龜에게 입양되었으며, 신정왕후 조씨의 친정 조카이다. 평안도 관찰사ㆍ이조판서ㆍ의정부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金剛山記』가 있다.
  10. 10)함식含識 : ⓢ sattva의 의역어. ⓢ sattva는 살타薩埵로 음역하고, 유정有情ㆍ중생衆生 등으로도 의역한다. 심식心識을 지닌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로, 함령含靈이라 칭하기도 한다.
  11. 11)일체종지一切種智 : ⓢ sarvathā-jnāna. 부처님만이 가지는 완전한 지혜이다.
  12. 12)상장上章 돈장敦牂 : 고대의 간지干支이다. 상장은 경庚, 돈장은 오午에 해당하므로 즉 경오년(1870)이다.
  13. 13)단양일端陽日 : 단양端陽은 음력 5월 5일인 단오절端午節의 별칭이다.
  14. 14)공경히 예배하고(和南) : 화남和南은 ⓢ vandana의 음역이다. 아례我禮ㆍ귀례歸禮ㆍ경례敬禮ㆍ공경恭敬ㆍ도아度我ㆍ계수稽首 등으로도 의역한다. 윗사람에게 공경의 표시로 붙이는 표현이다.
  1. 1){底}同治九年治兆序記本(國立圖書舘所藏)。{甲}續藏經第二編十五套一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