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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범천소문경(持心梵天所問經) 제1권
일명 장엄불법제의(莊嚴佛法諸義) 또는 불설등어제법경(佛說等御諸法經)이라고도 한다. -
010_0379_a_01L持心梵天所問經卷第一
一名莊嚴佛法諸義,又名佛說等御諸法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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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西晉) 월지(月氏) 축법호(竺法護)한역
최봉수 번역 - 010_0379_a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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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망보살광품(明網菩薩光品) - 010_0379_a_03L明網菩薩光品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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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010_0379_a_04L聞如是:
- 한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에 있는 가린죽원(加隣竹園)에서 큰 비구 승단과 함께하셨으니, 6만 4천 명의 비구와 7만 2천 명의 보살과 함께 지내셨다. 모두가 위대한 성인으로서 신통에 이미 통달하였고, 총지(總持)를 깊이 얻었으며, 변재(辯才)가 걸림이 없고 삼매에 이미 깊이 들었다. 지혜에 있어 걸림이 없고 모든 법의 자연스런 행상에 대하여 환히 깨달았으며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 010_0379_a_05L一時,佛遊王舍城加鄰竹園中,與大比丘衆俱,比丘六萬四千,菩薩七萬二千——一切大聖,神通已達,逮得摠持,辯才無閡,三昧已定,慧無所畏,曉了諸法自然之行,得不起法忍——
- 그 이름은, 박수(溥首) 동진(童眞)ㆍ보사(寶事) 동진ㆍ보인수(寶印手) 동진ㆍ보수(寶首) 동진ㆍ공장(空藏) 동진ㆍ발의전법륜(發意轉法輪) 동진ㆍ명망(明網) 동진ㆍ제제음개(除諸陰蓋) 동진ㆍ일체시(一切施) 동진ㆍ승장(勝藏) 동진ㆍ연화행(蓮華行) 동진ㆍ사자(師子) 동진ㆍ월광(月光) 동진ㆍ존의(尊意) 동진ㆍ자엄(自嚴) 동진이다.
- 010_0379_a_10L其名曰:溥首童眞、寶事童眞、寶印手童眞、寶首童眞、空藏童眞、發意轉法輪童眞、明網童眞、除諸陰蓋童眞、一切施童眞、勝藏童眞、蓮華行童眞、師子童眞、月光童眞、尊意童眞、自嚴童眞。
- 또한 현호(賢護) 등 열여섯의 보살[正士]이 있었는데, 이들은 곧 현호ㆍ보사(寶事) ㆍ은시(恩施)ㆍ제천(帝天)ㆍ수천(水天)ㆍ현력(賢力)ㆍ상의(上意)ㆍ지의(持意)ㆍ증의(增意)ㆍ선건(善建)ㆍ불허견(不虛見)ㆍ불치원(不置遠)ㆍ불손의(不損意)ㆍ선도(善導)ㆍ일장(日藏)ㆍ지지(持地)이니, 이와 같은 부류가 7만 2천 명 있었던 것이다.
- 010_0379_a_15L賢護之等十六正士:賢護、寶事、恩施、帝天、水天、賢力、上意、持意、增意、善建、不虛見、不置遠、不損意、善導、日藏、持地,如是之類,七萬二千。
- 또한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천제석(天帝釋)과 제석(帝釋)을 따르는 무리들과 도리천(忉利天)의 여러 천신과 염천(焰天)과 도솔천[忉利諸天]과 불교락천(不憍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도 있었고, 또한 여러 범천(梵天) 등과 범신천(梵身天)과 남은 여러 천 및 다른 용과 귀신ㆍ건달바[揵沓和]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摩睺勒]와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 010_0379_a_18L四大天王、天帝釋、帝釋翼從,忉利諸天,焰天、兜術天、不憍樂天、他化自在天;諸梵天等,梵身天、及餘諸天,幷龍、鬼神、揵沓和、阿須倫、迦留羅、眞陁羅、摩睺勒、人與非人、悉來集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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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79_b_02L그때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 무리의 권속들에 둘러싸인 채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그때 명망(明網)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단정히 꿇어앉고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부처님 발에 대면서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이윽고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 두루 온갖 꽃비를 내리어 그 모임 위에 흩뿌리며 세존께 말씀드렸다.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여,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그러하니, 만일 듣는 이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감히 제가 진술하는 것을 허락해주시옵소서.” - 010_0379_b_02L彼時世尊、與無央數百千之衆眷屬圍繞而爲說法。於是明網菩薩,卽從坐起偏袒右肩,長跪叉手,稽首佛足,尋時感動三千大千世界,普雨雜花散衆會上,白世尊曰:“惟問正覺!愚癡所趣;若哀聽者,乃敢自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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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뜻대로 질문하라. 여러 현혹된 자를 위하여 여래ㆍ지진(至眞)은 마땅히 해설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겠다.” - 010_0379_b_08L佛告明網:“恣所欲問,諸眩惑者,如來、至眞當爲解說,悅可爾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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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명망보살은 들어주시겠다는 허락을 받고는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위의를 갖추신 모습에서 나오는 빛은 널리 비추어 감당하기 어려우니, 태양의 광명보다 억백천 배를 초월하십니다. 자태와 안색의 위엄은 이를 데가 없으며, 위로 지극하고 아래로 궁극적이어서 능히 이를 감당할 수가 없으며, 준수하고 굳세게 닦으신 바는 능히 헤아리거나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만일 어떤 중생이 지진(至眞)의 용모와 몸을 보고 그 행상을 사유하고 관찰한다면, 그것은 모두 위대한 성인이신 부처님의 위신력이 닿은 까닭이니, 문득 영원한 안식을 일으키고 그것에 이르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010_0379_b_09L明網菩薩得聽所啓,卽白佛言:“唯然,世尊!如來儀像光曜難當,超於日明億百千倍,姿顏威嚴而不可逮,極上窮下無能諦瞻,遵建所修莫能計量,又我自念:‘其有得見至眞容體,思察所行,皆佛大聖威神所接,有所興發輒到永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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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명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네가 말한 그대로이다. 여래의 몸을 본다면 반드시 뜻하는 서원을 얻을 것이며, 바라는 것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만일 질문하는 바가 있어도 역시 그와 같다.” - 010_0379_b_16L世尊告曰:“明網菩薩!誠如所云,見如來身,必獲志願不失所僥,若有所問,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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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중우(衆祐)에게는 ‘고요한 언사[寂然言事]’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면 여래를 보고 그 형색을 관찰하여 안근이 명철(明哲)해진다. 그리고 일찍이 어두웠던 것이 없어진다. 또 여래에게는 ‘두려움 없는 변재[辯才無畏]’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여래에게 변재가 전개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질문하게 된다. - 010_0379_b_18L則謂明網:“衆祐有光,名曰寂然言事,假使衆生値斯光明見如來者,觀察形色眼根明徹,未曾晦冥。又如來光,名辯才無畏,設値斯光,堪問如來諮難所趣。
- 010_0379_c_02L 또한 여래에게는 ‘선한 덕의 모음[積善德]’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전륜성왕이 덕을 행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청정한 요지[淸淨了]’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제석천신으로 태어나는 것을 획득하게 되는 원인과 일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위엄 있게 불타는 등불을 얻음[逮威然錠]’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범천의 일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 010_0379_b_22L又如來光,名積善德,設値斯光,能啓問佛轉輪聖王諸所德行。又如來光,名淸淨了,設値斯光,能啓問佛獲致帝釋所因生事。又如來光,名逮威然錠,設値斯光,能啓問佛生梵天事。
- 또한 여래에게는 ‘애욕과 티끌의 문을 벗어남[脫欲塵門]’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성문승(聲聞乘)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오로지 담담한 행을 준수함[專一遵澹泊行]’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연각승(緣覺乘)에 대하여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일체지를 간직하고 찬탄하고 용납함[一切慧持讚容]’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대승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부처님의 지혜에 대하여 질문하게 된다.
- 010_0379_c_04L又如來光,名脫欲塵門,設値斯光,能啓問佛聲聞之乘。又如來光,名曰專一遵澹泊行,設値斯光,能啓問佛緣覺之乘。又如來光,名一切慧持讚容,設値斯光,能啓問佛大乘之慧正覺佛慧。
- 또한 여래에게는 ‘다른 걸음을 옮길수록 즐겁게 간직함[樂持異步]’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여래가 노닐며 거닐고 경행할 때 보호하는 안온한 광명이니, 만일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목숨이 다하면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장엄된 일체의 청정한 영락[嚴一切淸淨瓔珞]’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여래가 성에 들어와서 이 광명을 놓아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모두가 안온함을 얻게 되며, 그때에 그 성의 대중은 보배 영락으로 자연히 장엄한다.
- 010_0379_c_09L又如來光,名曰樂持異步,設値斯光,如來遊步經行普獲安隱,壽終之後得生天上。又如來光,名嚴一切淸淨瓔珞,如來入城若放光明,設値斯光一切獲安,應時彼城衆寶瓔珞自然莊嚴。
- 또한 여래에게는 ‘부수고 제외함[壞除]’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여래는 이 광명으로써 능히 한량없고 이루 다 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다. 요점을 말하면, 다시 명망아, 여래에게는 ‘안온함을 쌓음[積安]’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지옥의 부류들이 이 광명을 만나면 온갖 고뇌와 근심이 자연히 쉬고 그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초월적인 사랑[超慈]’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금수(禽獸)의 부류가 이 광명을 만나면 서로 악의를 일으켜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게 된다.
- 010_0379_c_14L又如來光名壞除,假使如來演斯光者,感動無量不可稱限諸佛世界。擧要言之,復次,明網!如來光明,名曰積安,若地獄類値斯光者,衆惱苦患自然休止。又如來光,名曰超慈,若禽獸類値斯光者,未曾興惡轉相危害。
- 또한 여래에게는 ‘만들어진 것을 제도함[濟所造]’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아귀(餓鬼)와 아수라[儔倫]가 이 광명을 만나면 다시는 배고파하거나 목말라하지 않는다. 또한 여래에게는 ‘더러움을 떠남[離垢]’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눈먼 이가 이 광명을 만나면 눈을 뜨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귀로 들음[耳聞]’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귀먹은 자는 들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뜻이 있음[有志]’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산란한 자는 정상 상태가 된다.
- 010_0379_c_20L又如來光,名曰濟所造,餓鬼儔倫値斯光者,不復飢渴。又如來光,名曰離垢,假使盲者値斯光明,逮得眼目。又如來光,名曰耳聞,値斯光者聾者得聽。又如來光,名曰有志,設値斯光,亂者得正。
- 010_0380_a_02L 또한 여래에게는 ‘즐거운 등불[樂錠]’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자연히 악한 것을 고치고 열 가지 선한 것이 확립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벗어남의 문[脫門]’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삿된 견해를 지닌 자는 바른 견해를 획득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천상으로 나아감[趣天]’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아끼고 탐착하는 부류가 은혜로운 보시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극심한 고뇌가 없음[無熱惱]’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죄악을 범한 자들이 모두 금기와 계율을 받들어 간직하게 된다.
- 010_0380_a_02L又如來光,名曰樂錠,設値斯光,自然改惡修立十善。又如來光,名曰脫門,値斯光明,令邪見者逮獲正見。又如來光,名曰趣天,値斯光者,令慳貪類好喜惠施。又如來光,名無熱惱,設値斯光,其犯惡者奉持禁戒。
- 또한 여래에게는 ‘지키는 마음[持心]’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성냄과 원한을 지닌 자는 인욕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은근함[慇懃]’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게으르고 나태한 자는 정진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바른 정[正定]’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방일하는 자가 선정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뚜렷하게 비춤[顯曜]’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여러 지혜가 모자란 자는 영리함과 지혜를 얻게 된다.
- 010_0380_a_08L又如來光,名曰持心,諸瞋恨者,逮得忍辱。又如來光,名曰慇懃,其懈怠者,逮得精進。又如來光,名曰正定,其放逸者,獲致禪定。又如來光,名曰顯曜,諸惡智者,逮得黠慧。
- 또한 여래에게는 ‘맑고 깨끗함[淸澄]’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여우처럼 의심이 많은 자는 돈독한 믿음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모두 간직함[總持]’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아는 것이 적은 자는 많이 들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준수할 만한 구절의 흔적[遵句跡]’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자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 할 줄 알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소멸하고 제거함[滅除]’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탐착심을 지니고 음탕한 자들이 연정을 느끼는 상태를 멸하고 제거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안락(安樂)’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진에심(瞋恚心)을 가진 자는 분노하고 해치려는 뜻이 없게 된다.
- 010_0380_a_13L又如來光,名曰淸澄,其狐疑者,逮得篤信。又如來光,名曰摠持,其少智者,令得博聞。又如來光,名遵句迹,其無慚愧逮得知羞恥。又如來光,名曰滅除,其貪婬者洒釋情態。又如來光,名曰安樂,使瞋恚者,無有怒害。
- 또한 여래에게는 ‘밝게 빛남[照曜]’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어리석은 성향을 지닌 자가 우둔함과 어두움을 제거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두루 존재함[普存]’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등분(等分)하는 자는 등분을 빠짐없이 버리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두루 형체를 지닌 몸을 보여줌[普現色身]’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면 모든 여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습을 보게 되고, 계산할 수 없이 많은 백천 가지 형상을 보게 된다.”
- 010_0380_a_18L又如來光,名曰照曜,令癡行者,除去愚冥。又如來光,名曰普存,令等分行悉捨等分。又如來光,名曰普現色身,假使衆生値斯光明,見諸如來無央數色,不可計數百千形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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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80_b_02L부처님께서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나는 너를 위하여 대략적으로 요점만 든 것이다. 만일 1겁 또는 1겁이 넘도록 여래의 광명에 대해서 물은 것을 강설한다거나 경의 법을 논하고 천명한다고 해도 여래의 광명과 광명의 명호에 대해서 능히 다할 수 없다.” - 010_0380_a_23L佛告明網:“今吾爲汝粗擧其要耳,假使一劫,若復過劫,咨嗟講說如來光明,論闡經法,不能究盡如來光明光明名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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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보살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여래의 몸은 한량없고, 높고 높은 덕은 불가사의하고,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방편으로 경의 법을 부연하셨습니다. 저는 과거에서부터 일찍이 이러한 것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가피를 입었습니다. 만일 어떤 보살이 있어 이러한 광명의 명호를 듣고 환희하고 즐거이 믿는 자는 모두 반드시 여래의 몸과 같은 것을 얻어 우뚝 솟은 덕을 구족할 것입니다. - 010_0380_b_04L明網菩薩白世尊曰:“至未曾有,天中之天!如來之身不可限量,巍巍之德不可思議,隨宜方便敷演經法,昔所未聞,今乃被蒙。其有菩薩聞說斯光名號歡喜而信樂者,皆當逮得如如來身,巍巍具足。
- 또한 세존께서 연설하신 여래 부처님께서 소유하신 광명 중 ‘권하여 교화함[勸化]’이라는 광명의 이름을 듣고서 다른 방위의 다른 국토에서 노닐고 있는 보살 대사들이 서로 돌아가며 끌고 나아가게 하십시오. 서로 끌고 나아가서 빠짐없이 이 인계(忍界:娑婆世界)에 와서 모이게 하십시오.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 보살이 여래께 와서 경에 대해 의심나는 것을 여쭙게 하시고 그것에 대해 강설해 주십시오.”
- 010_0380_b_09L又聞世尊演出如來佛所有光,名曰勸化,諸所遊在他方異國菩薩大士轉相誘進,相誘進已盡令來會於斯忍界,其有菩薩欲所諮啓,便詣如來講問經疑。”
- 그때 세존께서는 명망보살이 여쭙는 청을 받아들이시어 곧 그와 같은 모습의 광명을 몸에서 방출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와 한계를 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셨다. 또한 그 광명은 셀 수 없는 억천의 보살들을 부르고 청하여 인계를 찾아 모이게 하였다.
- 010_0380_b_13L爾時,世尊見明網菩薩所可諮請,卽如其像放身光明,普照無量佛土不可稱限諸佛世界。又其光明,招請無數億千菩薩,尋會忍界。
- 그때 동방으로 7만 2천의 여러 부처님 세계를 지나가면 한 국토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청정(淸淨)이었고, 부처님의 명호는 일월여래(日月如來)였다. 당시 그 부처님 국토에는 한 범천이 있었는데, 이름이 지심(持心)이었다. 그는 보살 대사로서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머물렀다. 성스러운 지혜를 갖추고 신족(神足)의 힘으로 스스로 오락을 즐겼다.
- 010_0380_b_17L於時東方去是七萬二千諸佛世界,國名淸淨,佛號月明如來,其佛之土而有梵天,名曰持心,菩薩大士而不退轉,聖慧神足力自娛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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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그 광명을 만났는데 나아가기를 권하므로 곧 스스로 일월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의 처소를 찾아와서 머리를 발에 대고 예를 올린 뒤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인계에 가서 능인(能仁)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받들고 친견하고자 합니다.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공양하고 모시고서 질문하고 싶은 것을 여쭙고 배우고자 합니다. 인계의 성스럽고 존귀한 분께서도 저희들을 보고자 하십니다.” - 010_0380_b_21L時彼光明適勸進已,則自往詣月明如來、至眞、等正覺所,稽首禮足,而白佛言:“唯然,世尊!欲至忍界奉見能仁如來、至眞、等正覺,稽首供侍諮受所問,忍界聖尊欲得見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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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80_c_02L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거라, 범천아.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알아라. 셀 수 없이 많은 수억의 여러 보살 대중들과 함께 인계를 방문하도록 하라.” - 010_0380_c_02L其佛告曰:“便往,梵天!宜知是時,與無數億諸菩薩衆,尋至忍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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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인계에 간다 하더라도 너는 마땅히 이 열 가지의 의도와 성품의 행[十志性行]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좋게 들리는 것과 나쁘게 들리는 것,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을 마땅히 수용하는 것이 첫째이다. 그런 것에 대해 슬픔과 애절함으로 행하는 것이 둘째이다. 하천한 자와 중간인 자와 높은 자에 대하여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셋째이다. 자신을 가벼이 여기는 경우나 자신을 공경하는 경우에 한마음으로 향하는 것이 넷째이다. 타인의 모자라는 점을 꼬집지 않고 그 허물을 밝혀내지 않는 것이 다섯째이다. - 010_0380_c_04L又謂:“梵天!雖至忍界,卽當奉行十志性行。何謂爲十?當受言,無言善聞惡聞善與不善,一;而行悲哀,二;而等治療下賤中上,三;若輕易恭敬則一心向,四;不見他闕不求瑕穢,五。
- 여러 가지 승(乘)에 대해서 일미(一味)로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여섯째이다. 악취(惡趣)에 관한 소리를 듣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일곱째이다. 여러 보살들에 대하여 중우(衆祐)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여덟째이다. 다섯 가지가 탁한 세상[五濁世]에 대해 부처님 국토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홉째이다. 여래ㆍ정등각을 친견하듯이 하는 것이 열 번째이다. 이것이 곧 열 가지 일이다.”
- 010_0380_c_09L等以一味於若干乘,六;而恐畏惡惡趣之聲,七;於諸菩薩興衆祐想,八;於五濁世佛之國土想,九;如見如來等正覺,十;是爲十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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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의도와 성품의 행을 부수지 말고 그 국토에서 유행할 수 있어야 한다.” - 010_0380_c_12L佛言:“梵天!懷此志性可遊彼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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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지심 범천이 그 정등각자께 말씀드렸다.
“저는 감히 부처님의 면전에서 사자후(師子吼)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인연이 되는 행에 있어서 특기할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 의도와 성품의 행을 청정하게 닦고자 합니다. 그리고 동등하게 선정의 뜻을 확립하고 그 세계에서 유행하겠습니다.” - 010_0380_c_13L於是持心白其正覺:“我於佛前,不敢發音爲師子吼,不於緣行現奇特相,唯欲淨修志性之行,等立定意乃遊彼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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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월명부처님 국토에 있던 여러 남은 보살들이 찬송하며 말씀드렸다.
“저희는 훌륭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세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경하할 만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곳 중생의 근심과 어려움과 노고가 모인 것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 010_0380_c_16L時月明佛諸餘菩薩,而歎頌曰:“吾得善利!唯然,世尊!爲獲嘉慶不生彼界,衆生患難勞集乃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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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세존께서 여러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족성자야, 그러한 말은 하지 마라. 왜냐하면 나의 국토에서 백천 겁 동안을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다 해도 인계에서 아침부터 식사할 때까지 해치려는 마음을 행하지 않은 것만 못하니, 그것이 더 수승(殊勝)한 것이다.” - 010_0380_c_19L月明世尊告諸菩薩:“諸族姓子!勿作斯言。所以者何?於吾之土設百千劫淨修梵行,不如忍界從且至食不行害心,斯爲殊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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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국토에 있던 1만 2천 보살이 함께 서원을 세워 말씀드렸다.
“저희들도 마땅히 청정한 의도와 성품을 구족하고, 각자 또는 함께 간직하면서 범천 대사를 호위하며, 능인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 010_0380_c_22L於時彼土萬二千菩薩,俱誓願曰:“吾當具足淸淨志性,各共侍衛梵天大士,造覲能仁如來、至眞、等正覺。”
- 010_0381_a_02L그리하여 지심 범천은 1만 2천 보살과 함께 용맹한 장부가 오른팔을 굽혔다 펴는 정도의 짧은 시간에 그 부처님 국토에서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인계에 나타나서 능인부처님을 받들고 친견하였다. 그리고 땅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린 뒤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 010_0381_a_02L持心梵天卽與萬二千菩薩,如勇猛士屈申右臂斯須之頃,於其佛土忽然不現,則立忍界奉見能仁,稽首于地,退住一面。
-
그때 세존께서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지심 범천을 보았는가?”
대답하였다.
“이미 보았습니다.” - 010_0381_a_06L於是,世尊告明網曰:“汝乃睹見持心梵天乎?”對曰:“已見。”
-
위대한 성인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이 지심이라는 자는 방편을 환하게 요달하였고, 질문하는 바가 그윽한 곳에 머물고 있다. 존귀한 법을 분별하고, 변재가 훌륭하고 미묘하니, 이름이 나 있는 최상의 보살 대중들 가운데서도 최상인 자이다. 자애로움과 애절함과 지극한 정성으로 도의 이익을 권하고 교화하여 그가 노닐고 거주하는 곳마다 즐거워할 만한 것이 많은 자이다.” - 010_0381_a_07L大聖卽言:“斯持心者,曉了方便諮啓幽滯,分別尊法辯才善妙,名冠開士衆會之最,慈哀至誠道利勸化,遊居所在多所悅可。”
- 그때 지심은 1만 2천 보살과 함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각자의 위신력으로 변화로 자리를 만든 다음에 스스로 그 위로 갔다. 지심 범천은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씀드렸다.
- 010_0381_a_11L於時,持心、萬二千菩薩,稽首禮畢繞佛三帀,各以神力則化作座,自處其上。持心梵天叉手白佛,以頌讚曰:
-
그 미묘한 음성이
통하고 도달한 곳에는
위덕(威德)이 흐르고 천명되니
시방에 두루 들립니다. -
010_0381_a_13L其妙音聲,
所在通達,
威德流闡,
聞于十方。
-
소리가 들리는 국토마다
가장 뛰어나신 분들을 뵙게 되니
위대한 성인의 행상에 대해
그 모든 분께 여쭈옵니다. -
010_0381_a_15L在所國土,
見諸最勝,
一切咨嗟,
大聖之行!
-
저는 다른 국토에 거처하오니
그곳은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그 세계는 악취(惡趣)의 이름조차
있지 않은 곳이옵니다. -
010_0381_a_16L我處異土,
淸淨無垢,
其界無有,
惡趣之名。
-
그런 곳을 버리고 떠난 뒤
이러한 부처님 국토를 찾아
제례[濟]를 닦고자 하고 매우 애절히 여기어
그런 까닭에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
010_0381_a_17L尋而捨離,
如斯佛土,
修濟大哀,
故來到此。
-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는
터럭만큼도 손상되는 바가 없으니
어떤 여래이시건
모두 빠짐없이 평등합니다. -
010_0381_a_19L佛之聖慧,
無有損耗,
一切如來,
皆悉平等。
-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
악을 항복받는 의도와 성품[志性]으로
여러 부처님 국토를
이와 같이 보호하려 합니다. -
010_0381_a_20L來今往古,
降伏志性,
將護如是,
諸佛國土。
-
설령 저에게 크게 다른 행상이 있다 하여도
일체가 청정하고
장엄되어 있으며 수습하고 계율을 지키고
항상 범행(梵行)을 준수합니다. -
010_0381_a_21L恢設異行,
一切淸淨,
嚴修至戒,
常遵梵行。
-
저에게 해치려는 뜻을 품은 자가 있으면
오히려 자비로 보답하오니
마음과 의지가 이와 같아서
수승하고 특이한 것입니다. -
010_0381_a_23L其懷害者,
報之以慈,
心意如是,
而有殊特。
-
세 종류의 업을
능히 청정하게 함으로써
몸과 입과 마음의 뜻을
장차 순응하고 보호할 것입니다. -
010_0381_a_24L以能淸淨,
三品之業,
而順將護,
身口心意。
-
010_0381_b_02L
3악취(惡趣)의 근심과 힘듦
그리고 괴로움과 여러 번뇌는
현재에 법을 위하는 까닭에
모두 그것으로 멸진합니다. -
010_0381_b_02L三趣之患,
勤苦諸惱,
現在爲法,
皆以滅盡。
-
만일 여러 보살이
이 인계에 태어난다면
이들은 위험과 두려움을
결코 품지 않습니다. -
010_0381_b_04L若諸菩薩,
其生於斯,
此等未曾,
懷貯危懼。
-
지은 바 업이
악취에 이른다 하여도
위로 아래로 도의 발[道足]을 나타내시어
모두 단멸하고 제거합니다. -
010_0381_b_05L所造之業,
至於惡趣,
上下道足,
皆已斷除。
-
그 보살의 마음에
설사 근심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해도
장차 이 바른 법을
제어하고 옹호합니다. -
010_0381_b_06L其有菩薩,
心設患厭,
將御擁護,
于斯正法。
-
이들은 나중 세상의
거처하는 곳마다
그 뜻을 잃지 않으며
지혜를 떠나지 않습니다. -
010_0381_b_08L此等後世,
所處之地,
不失其志,
不離智慧。
-
그들의 욕구는 온갖 결박을
단절하고 자르고자 하는 것이니
가령 티끌과 때를
깨끗이 제거하려는 욕구가 있다면
부처님 국토의 법을
마땅히 장차 보호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고
여러 신통과 지혜를 얻습니다. -
010_0381_b_09L其欲斷截,
衆結之縛,
假使淨除,
塵垢之欲,
則當將護,
佛土之法,
則便超越,
至諸通慧。
-
설령 다른 부처님 국토에서
셀 수 없는 억 겁 동안을
바른 법을 파악하고 간직하고
그리고 강설한다 하여도
인계(忍界)에서 경을 설하되
식사하는 시간까지만 설하여도
이것이 더 수승하나니
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일입니다. -
010_0381_b_12L設異佛土,
無數億劫,
執持正法,
若講說者,
不如忍界,
說經至食,
是爲殊勝,
則第一尊。
-
저도 역시
미묘하고 즐거운 세계를 보고
또한 다시
안락한 국토를 성찰합니다. -
010_0381_b_14L吾亦睹見,
妙樂世界,
及復省察,
安樂佛土。
-
이 가운데는 고뇌가 없으며
온갖 근심에 관련된 소리조차 없으며
설령 그곳에서 선행을 지어도
총족되지 않는 것이 본성입니다. -
010_0381_b_16L彼無苦惱,
衆患音聲,
設若修善,
不足爲性。
-
설령 집안에 있는 온갖 티끌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어리석고 흉악하고 해치려는 뜻을 지닌 자는
참는 것조차 대단한 일인데 -
010_0381_b_17L假使蠲除,
衆塵堂室,
愚兇害人,
常忍所加。
-
마땅히 이 경의 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교화하여
높은 도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그에게 머리 숙입니다. -
010_0381_b_18L當以經法,
勸化他人,
令至上道,
此乃甚難,
當稽首彼。
-
위없이 존귀한 분께서는
불쌍함과 애절함으로 행하시어
힘들고 괴로운 법을 벗어나게 하시니
이것은 일찍이 없었던
여래의 행상이라
마음에 독을 품은 자도
법으로써 열어 교화하시니
설령 어떤 모임에 있다 하더라도
인도하는 스승이 되십니다. -
010_0381_b_20L無上之尊,
行于愍哀,
脫勤苦法,
斯未曾有,
如來所行,
心懷毒者,
開化以法,
設入衆會,
則爲導師。
-
시방세계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보살은
법을 듣되 큰 바다와 같이
걸림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그 보살을 위하여
이러한 부처님 도를 설하십니다. -
010_0381_b_23L是菩薩者,
十方聞名,
於法無㝵,
猶如巨海,
故爲彼說,
斯佛之道。
-
010_0381_c_02L
제석천과 범천과
호세천(護世天)과
여러 천신과 용신과
아수라와 건달바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모두 와서
이곳에 모여
경의 의미를 구하고자 하니
뜻하는 바에 따라서 해설해 주십시오. -
010_0381_c_02L帝釋梵天,
及護世者,
諸天龍神,
須倫眞陁,
無數悉來,
等集于斯,
欲求經義,
從志解說。
-
비구와 비구니와
청신사와 청신녀 등
모두가 두루
이 모임에 와서 청합니다. -
010_0381_c_05L比丘丘尼,
淸信士女,
普皆來臻,
於此衆會。
-
원하오니 이 대중들에게 부처님께서
두루 경의 의미를 강설해 주십시오.
만일 듣는 바가 있는 자는
가는 곳이 길하고 좋을 것입니다. -
010_0381_c_06L願佛爲普,
講說經法,
若有聞者,
所趣吉祥。
-
가령 뜻으로 원하고
믿음이 훌륭하다면
인도하는 스승이시여
성문의 무리이든 연각이든
능인께서는 빠짐없이 요지하시어
뜻에 따라 교화하고 다스리십니다.
오직 이 무리를 위하여
일체의 의혹을 결정지어 주십시오. -
010_0381_c_07L假使志願,
信好導師,
聲聞之衆,
及與緣覺,
能仁悉了,
隨志化治,
惟爲斯黨,
決一切疑。
-
지금 저희는 나아가시길 권하오니
법의 왕에게 질문하오며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부처님의 도를 뜻으로 구하오니
부처님의 말씀 위에 확립되어
단절되는 일이 없으며
자비의 마음을 닦음으로써
한량없는 보배로 삼습니다. -
010_0381_c_10L今吾勸進,
諮啓法王,
爲衆生故,
志求佛道,
其立佛言,
而不斷絕,
以修慈心,
爲無量寶。
-
가령 시방세계에 계신
부처님의 명성과 덕망을 들은 자는
용맹하게 정진하고
한량없는 지혜를 얻습니다. -
010_0381_c_13L假使十方,
聞佛名德,
勇猛逮得,
無量之慧。
-
그러므로 이들을 위하여
비할 데 없는 행을 설하십시오.
그 행은 중생의 아는 바와
뜻의 흔적을 따르는 것이니
이는 여러 성문 제자들의
경지도 아니고
일체의 연각이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
010_0381_c_14L當爲斯等,
說無比行,
隨其衆生,
所知志迹,
非諸聲聞,
弟子之地,
一切緣覺,
所不能及。
-
저희들은 즐거이 믿는 까닭에
가장 수승하게 건널 수 있지만
그러나 세존의 지혜는
불가사의하옵니다. -
010_0381_c_17L余等信樂,
最勝所度,
世尊之慧,
不可思議。
-
비루한 저희들은 귀의하오며
세간을 인도하는 스승께
그 의미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자 지금 원하오니
위대한 성인이시여,
설령 싫으신 바가 있고
마음에 악함과 수고로움과 근심이 있다 해도
오직 부처님의 요긴한 도를
해설해 주십시오. -
010_0381_c_18L鄙自歸命,
於世導師,
今願諮問,
大聖此義,
假使有厭,
心惡勞患,
唯爲解說,
佛之要道。
-
2. 사법품(四法品) - 010_0381_c_21L四法品第二
-
010_0382_a_02L
그때 지심 범천은 이 게송을 설하며 부처님을 찬탄하고 난 뒤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어떻게 해야 보살의 의도와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하여 그 뜻에 나태하거나 싫어함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말한 것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그 언사에 고뇌와 뜨거움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지은 덕의 근본이 여러 중생을 넘어서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의 위의가 안온하고 길상하여 졸속으로 갑작스럽게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청정하고 깨끗한 법을 늘리고 더하는 것이 많겠습니까? - 010_0381_c_22L於是,持心梵天說此偈讚佛已,長跪叉手,前白佛言:“何謂菩薩志性堅强意不懈厭?何謂菩薩所言柔和辭無惱熱?何謂菩薩所造德本超諸衆生?何謂菩薩威儀安詳而不卒暴?何謂菩薩於淸淨白法多所長益?
- 어떻게 해야 보살이 국토와 대지에서 노닐고 거닐어 궁극에까지 이르게 됩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중생들에게 권화(勸化)와 방편(方便)을 행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그들을 잘 분별하고 교화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능히 도의 마음을 보호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오로지 중생에게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잡스런 행동이 없도록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열심히 선의 근본을 구하고 법을 논의하며 머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생각하는 것을 환하게 요달하며 믿음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괴롭고 수고로운 부분에 대해서 열어서 교화할 수 있겠습니까?
- 010_0382_a_05L何謂菩薩所至土地遊步究縛?何謂菩薩在於衆生行㩲方便?何謂菩薩於彼等倫分別教化?何謂菩薩能護道心?何謂菩薩專在衆生心不憒亂?何謂菩薩務求善本存在法議?何謂菩薩曉了所念而不捨信?何謂菩薩於諸塵勞部分開化?
-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여러 대중의 모임에 참여하여서 권화와 방편을 행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법을 크게 천명하고 보시하고 유포하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과보와 상응하는 힘을 알며, 덕의 근본을 잃어버린 자를 알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중생의 일어나지 않는 지혜와 6바라밀[度無極]에 대해서 환히 깨닫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선정에 존재하는 방편을 창달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여러 부처님의 법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여러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위배되거나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010_0382_a_12L何謂菩薩所入衆會能行㩲便?何謂菩薩恢闡法施流演剖判?何謂菩薩知報應力失德本者?何謂菩薩曉於衆生不起之慧六度無極?何謂菩薩暢達方便存於禪定?何謂菩薩於諸佛法而不退轉?何謂菩薩未常違疑諸佛言教?”
-
그때 세존께서 지심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능히 여래에게 이와 같은 일에 대해 질문하고 있구나. 잘 듣고 잘 들어라. 그리고 그것을 잘 생각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길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지심 범천은 가르침을 받아 귀 기울였다. - 010_0382_a_18L佛告持心梵天:“善哉!善哉!乃能諮問如來如斯之議。諦聽!諦聽!善思念之。”“甚哉!世尊!願樂欲聞。”持心梵天受教而聽。
-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 그 의도와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하여 그 뜻에 나태하거나 싫어함이 없게 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정진함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며, 끝나고 시작하는 것을 꿈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에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a_22L佛告梵天:“菩薩有四事法,志性堅强而不懈厭。何謂爲四?愍哀衆生、不厭精進、終始如夢、平等佛慧,是爲四。
- 010_0382_b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이로 인해 말한 것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그 언사에 고뇌와 뜨거움이 없게 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보살은 오로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여러 법을 분별하며, 보살은 오로지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할 일체 모든 취(趣)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보살은 오로지 대승(大乘)을 찬양하며, 보살은 오로지 청정한 업을 강설하고 깨끗한 업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02L復有四事,所言柔和辭無惱熱。何謂爲四?菩薩專一以一人故分別諸法、菩薩專一不樂一切諸趣所生、菩薩專一讚揚大乘、菩薩專一講說淸淨不失淨業,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지은 덕의 근본이 여러 중생을 넘어선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많이 듣는 것이며, 보시하는 것이며, 출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06L又有四事,所造德本超諸衆生。何等四?禁戒、博聞、布施、捨家,是爲四。
-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그것으로 위의가 안온하고 길상하여 졸속하거나 난폭하지 않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익이 없음이며, 명예가 없음이며, 명성이 없음이며, 고뇌가 없음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08L又有四事,威儀安詳而不卒暴。何等四?無利、無譽、無名、無苦,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청정한 법에서 공덕의 근본을 늘리고 더하는 것이 많아진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수행과 신앙을 구족하도록 권하는 것이며, 설령 보시를 하더라도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며, 법을 증장하게 하고 수호하는 것이며,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지혜의 땅에서 널리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10L又有四事,於淸淨法多所長益功德之本。何等四?具足行信勸於他人、假使布施不望其報、將養護法、爲諸菩薩廣說慧地,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국토와 대지에서 노닐고 거닐어 궁극에까지 이른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덕의 근본을 일으키는 것이며, 여러 가지 과오와 허물을 버리는 것이며, 권화와 도움을 환하게 아는 것이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13L又有四事,所至土地遊步究縛。何等四?興起德本、棄諸瑕穢、曉了勸助、慇懃精進,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중생들에 대하여 권화와 방편을 행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중생에 수순하고 따르는 것이며, 덕의 근본으로 권하고 교화하는 것이며, 과오를 후회하고 죄를 제거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일을 해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16L又有四事,在於衆生行㩲方便。何等爲四?順從衆生、勸化德本、悔過罪舋、解說佛事,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그들을 잘 분별하고 교화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사람들을 매우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자신의 안락을 포기하는 것이며, 인욕하고 안온하게 있는 것이며, 겸손하여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18L又有四事,於彼等倫分別教化。何等四?愍傷人物、習己安隱、忍辱安詳、謙不憍慢,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능히 도의 마음을 보호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뜻으로 항상 부처님을 억념(憶念)하는 것이며, 일체 덕의 근본이 항상 도의 마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 선한 벗을 가까이 익히는 것이며, 대승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21L又有四事,能護道心。何等四?意常念佛一切德本、至於道心、習近善友、咨嗟大乘,是爲四。
- 010_0382_c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오로지 중생에게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잡스런 행동이 없도록 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성문의 마음을 떠나는 것이며, 연각(緣覺)의 마음을 떠나는 것이며, 법을 구함에 싫어함이 없는 것이며, 법을 들은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b_23L又有四事,專在衆生心不憒亂。何等爲四?不爲聲聞心、若緣覺心、求法無厭、如所聞法爲他人說,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열심히 선의 근본을 구하고 법을 논의하며 머물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일체의 괴롭고 수고로운 병을 제거하여 치유하니, 의왕(醫王)과 같은 것이며, 덕의 근본에 순응하여 위배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것이며, 여러 가지 도에 관해 논의하고 생각하여 온갖 많은 괴로움을 멸하는 것이며, 열반[泥洹]에 대해 사의(思議)하려는 의도를 지니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03L又有四事,務求善本存在法議。何等四?除去一切塵勞之病猶如醫王、順於德本而不違失、諸議道想滅群黎苦、志泥洹議,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환히 요달하여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불기인(不起忍)을 일으키는 것이며, 불멸인(不滅忍)을 초월하는 것이며, 연기와 과보의 인(忍)을 얻는 것이며, 무소주(無所住)의 인을 얻는 것이니 왜냐하면 다른 마음이 상속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07L又有四事,曉了所念而不捨信。何等四?興不起忍超不滅忍、忍緣起報、忍無所住、亦無異心汲汲之事,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괴롭고 수고로운 부분에 대해서 열어서 교화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사의[議]에 순응하여 억념하는 것이며, 앞으로 금기와 계율을 보호하는 것이며, 여러 법의 힘을 환히 아는 것이며, 홀로 떨어져 거처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10L又有四事,於諸塵勞部分開化。何謂四?所念順議、將護禁戒、曉諸法力、樂處燕居,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여러 대중의 모임에 들어가서 권화와 방편을 행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법에 뜻을 두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이에게 공경을 받더라도 교만하지 않는 것이며, 선한 덕을 구하고 찾되 스스로에게 베풀지는 않는 것이며, 지은 바 덕의 근본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기를 권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12L又有四事,所入衆會能行㩲便。何等四?志樂法議不求他短、而行恭敬無有憍慢、求索善德不爲己施、所造德本勸施他人,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법을 크게 천명하고 보시하고 유포하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바른 법을 수호하는 것이며, 스스로와 남을 교화하여 지혜에 들어가는 것이며, 보살[正士]의 업을 닦는 것이며, 번뇌와 수고로움과 분노와 원한의 결박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16L又有四事,恢闡法施流演剖判。何等四?將護正法、化己及彼使入智慧、修正士業、示現塵勞瞋恨之結,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과보와 상응하는 힘을 알며 덕의 근본을 잃어버린 자를 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타인의 결점과 모자라는 점을 끝내 보지 않는 것이며, 여러 성내고 화내는 사람에 대해서 항상 자애로운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며, 상응하는 과보를 천명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법에 관련된 일에서 항상 도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19L又有四事,知報應力失德本者。何等四?終不睹見他人瑕闕、奉行慈心攝諸瞋怒、顯揚報應、於諸法事常念道心,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중생에 대해 일어나지 않는 지혜와 육바라밀에 대해서 환히 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보시로써 사람들의 무리를 위하는 것이며, 아울러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며, 네 가지 은혜를 잘 알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며, 심오한 법을 선호하고 즐겨서 경전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2_c_22L又有四事,曉於衆生不起之慧六度無極。何等四?則以布施如爲黨、幷化他人、曉了四恩化於衆生、好喜深法順於經典,是爲四。
- 010_0383_a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선정에 존재하는 방편을 창달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마음의 일을 분별하고 죄와 복이 가는 곳을 분별하는 것이며, 정진의 힘을 덕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며, 지혜와 방편을 잘 닦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3_a_02L又有四,事暢達方便存於禪定。何等四?分別心事罪福所趣、勤力德本、不捨衆生、修行㩲慧,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부처님 법에 대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장차 한량없는 생사의 근심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이며, 한량없이 자애로운 마음을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이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혜를 환히 알고 요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3_a_05L又有四事,於諸佛法而不退轉。何等四?將護無量生死之患、供養奉侍無數諸佛、而常遵修無限慈心、曉了無際諸佛之慧,是爲四。
-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여러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위배하거나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본래의 지혜로부터 물러서지 않는 것이며, 말한 것과 행동이 상응하는 것이며, 무거운 탐욕을 버리는 것이며, 건립하는 것이 있다면 본성에 거처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 010_0383_a_09L又有四事,未曾違疑諸佛言教。何等四?不釋本慧、言行相應、捐棄重貪、若建立者處於本性,是爲四。”
- 세존께서 이러한 네 가지의 일에 대해 전하고 설하셨을 때 항하(恒河)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수의 여러 천자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5천 명의 사람들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이 여러 보살들은 각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서 이 모임에 온 이들로서, 세존을 공양하였으니 주변의 삼천대천세계가 두루 빠짐없이 꽃이 무릎까지 쌓였다.
- 010_0383_a_11L世尊發遣說四事時,二江河沙諸天子等,皆發無上正眞道意,五千人得不起法忍。此諸菩薩,各從無數佛國來會者,供養世尊,三千大千世界皆悉周遍,華至于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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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별법언품(分別法言品) - 010_0383_a_16L分別法言品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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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명망보살이 지심 범천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미묘하고 존귀한 사의(思議)에 순응하며 환히 요달한 보살 방편의 지취(旨趣)를 질문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이를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보살이 질문한 일입니까?” - 010_0383_a_17L於是,明網菩薩謂持心梵天曰:“仁者乃問順妙尊議,曉了菩薩方便之趣?佛分別說。何謂菩薩有所問事而應順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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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한 바에 순응하여 지심이 답하였다.
“나에게 동등하게 그 일에 대해 질문한다면 이것이 사의에 순응하는 질문입니다. 타인이 행하는 것을 부릴 만하여도 그것을 동등하게 질문하면 그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법의 형상에 대해 동등하게 질문한다면 그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 010_0383_a_21L持心答曰:“等於吾我而問事者,爲順議問;等問他人行之所操,爲應順也;等問法像,爲應順也。
- 010_0383_b_02L또한 명망이여, 나라고 헤아리지 않고 동등하게 하며, 남이라고 헤아리지 않고 동등하게 하며, 법이라고 헤아리지 않고 동등하게 하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기하는 것으로 질문하고,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으로 질문하고, 거처하는 곳에 대해 질문한다면 그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질문이 있어도 법에는 일어나는 것이 없고 멸진하는 것도 없고 거처하는 장소의 행상도 없으니,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면 이것은 더럽고 수고스러운 욕심에 불과합니다. 만일 싸움과 다툼과 뒤바뀐 것에 대해 질문하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 010_0383_a_23L又,明網!不計吾等,不計他等,不計法等,是爲應順也。其問起生,其問滅盡,若問處所,爲應順也。設有問者,法無所起及與滅盡,處所之行,爲應順也。若問他人塵勞之欲,若有問鬪諍顚倒,爲應順也。
- 생사에 대해서 질문하고 생사를 건너는 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무위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럽고 수고스러운 것을 질문한 것이 아니고, 전도된 것을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나고 죽는 것을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생사로부터 건너는 것을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열반에 관한 질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법(諸法)을 관찰해 보면 그것은 고요한 것도 아니고 애욕과 더러움과 뒤바뀜과 생사와 무위를 제거하는 것도 아니니, 그것이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010_0383_b_06L其問生死,問度生死,問於無爲,爲應順也。其不問塵勞,亦不顚倒,亦不生死,亦不度生死,亦無泥洹,爲應順也。所以者何?察諸法者亦不寂然,不除欲垢顚倒生死無爲,爲應順也。
- 또한 그 질문에 획득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설령 다시 질문이 있고 증득하는 바가 있고 약속된 바가 있고 제거하고 단절하는 바가 있고 행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또한 획득하고 수용하고 증득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며, 온갖 상념으로 약속하는 일이 없을 때 집착하는 바도 없고, 단절하고 제거하는 생각도 없고, 행하고 보는 것도 없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 010_0383_b_10L其問所獲,爲應順也。設復有問有所造證,若有約時有所除斷,若有所行,爲應順也。若有不問所得受證,衆想之念不以約時,而無所著,無斷除想,亦無行見,爲應順也。
- 일체를 위하는 까닭에 이 질문을 일으켰을 뿐 마음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고 자신의 의도도 질문에 있지 않으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어떤 질문이 온갖 덕과 선에 대한 것이라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하거나 덕스럽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속의 일이고 저것은 세간을 제도하는 것이며, 이것은 죄 되는 일이고 저것은 죄의 업이 아니며, 이것은 여러 가지 번뇌이고 이것은 있는 것이고 저것은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두 가지 일을 만들어서 질문하는 자는 이 일체를 헤아렸지만 순응하는 것이 못 됩니다. 두 가지 일이 없으니 두 가지 질문을 보지 않는 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 010_0383_b_15L爲一切故而發是問,心無所著,志不存問,爲應順也。其有而問斯衆德善,爲如應順,斯不善德爲不如應。斯爲俗事,斯爲度世,斯爲罪事,斯無罪業,斯爲諸漏,斯爲所有,斯無所有,其有作是二事問者,計此一切,爲不應順也。其不二事、不見二問,爲應順也。
- 010_0383_c_02L 어떤 사람이 여러 부처님을 약간 본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며, 법을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며, 성스러운 대중을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약간 헤아리고 국토를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도(道)와 승(乘)을 약간 헤아리고 생각하지 않음을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에는 소속된 것이 없으니 그 약간조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로 사의하여 질문해야 하니,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일체 법은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면서도 또한 일체 법은 그렇게 순응함이 없는 것입니다.”
- 010_0383_b_22L其有若干視諸佛者,爲如應順。計法若干,爲如應順。聖衆若干,爲如應順。衆生若干、國土若干,爲如應順。道乘若干、不想若干,爲如應順。法無所屬,無有若干,而問一議,爲如應順。一切法如應,一切法無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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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범천에게 질문하였다.
“어찌하여 일체의 제법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면서 또한 일체의 제법은 순응함이 없는 것입니까?” - 010_0383_c_04L又問梵天:“何謂一切諸法如爲應順?一切諸法爲不應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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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하였다.
“일체의 제법을 능히 분별하는 자는 제법이란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령 마음이라는 법이 있고 그 마음이 정진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법을 헤아리되 제법의 모습은 고요하고 공성(空性)이고 무소유라고 헤아린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법을 흔쾌히 즐기지 않는 자가 또한 순응하는 자입니다. 오로지 한결같이 마땅히 지어야만 할 업을 짓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지은 바가 있고 그와 같이 행하는 자라면 이것이 또한 순응하는 것입니다.” - 010_0383_c_06L答曰:“能分別者,一切諸法諸法如應。假使心法其心精進,彼不應順;計一切法諸法相寂,空無所有,爲應順也。其不欣樂寂然法者,爲應順也。此專精業所當造者,斯在憍慢,斯有所作,如斯行者,亦復如應。”
-
다시 질문하였다.
“어떤 것을 일컬어 제법에 관찰되는 바가 있다고 합니까?”
“이미 성품이 고요하고 애욕의 끝을 떠났으면 이것을 제법을 관찰한 것이라고 합니다.” - 010_0383_c_11L又問:“何謂諸法有所觀察?”答曰:“己性寂然離欲之際,爲觀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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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그와 같이 순응하지 않는 것을 요해할 부류는 적겠습니다. 애욕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도에 대한 사의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010_0383_c_13L又問:“梵天!少有是類了不應者,不離於欲而順道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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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하였다.
“명망이여, 많은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가 애욕의 끝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도를 사의하는 법에 대해 그렇게 순응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이미 들어간 자도 있고 앞으로 마땅히 들어갈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혜의 법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얻은 바도 없고, 또한 이미 들어간 사람도 없고, 앞으로 들어갈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크게 불쌍히 여기시는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010_0383_c_14L答曰:“明網!多族姓子、族姓女不離欲際,而順如應道議之法。令已入者,甫當入者,則於其人不入智法,亦無所得,亦無有人,亦無當入。所以者何?大哀世尊不有云乎?
- 만일 부처님께서 그렇게 설하신 법을 듣고 수행하고 정진한다면 그것이 곧 마땅히 설한 대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곳의 땅으로도 돌아가지 않으며, 존재하거나 얻을 수 있는 어떤 취(趣)로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또한 다시는 생사도 없으며, 열반에도 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생사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열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환히 아셨기 때문입니다.”
- 010_0383_c_19L其聞於佛所說法者,若行精進,便當如說而奉行之,終不復歸於土地處,所有所獲致。其不歸趣,無復生死,不至泥洹。所以者何?世尊所了無有生死,亦無泥洹。”
-
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부처님께서는 생사의 업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닙니까?”
답하였다.
“세존께서 정녕 어찌 다시 ‘나는 생사를 제도한다.’고 스스로 설하셨겠습니까?” - 010_0383_c_23L又問:“梵天!佛者不度生死業,而說法乎?”答曰:“世尊寧復自說,吾度生死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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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84_a_02L명망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족성자여. 그 때문에 부처님 세존께서는 생사를 버리지도 않으시며 열반을 구하지도 않으십니다. 만일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생각을 가진 자라면 그는 제도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생사가 없으니, 무엇이 제도되겠습니까? 그리하여 열반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찌하여 생사와 열반이 평등하지 않겠습니까?”
범천이 답하였다.
“나고 죽지도 않으며 또한 열반도 없는 것입니다.” - 010_0384_a_02L答曰:“不也!故族姓子!佛世尊者,不捨生死,不求泥洹。設有生死泥洹之想,則不度二;彼無生死,何所度者不得泥洹?所以者何?不等生死至泥洹乎!”梵天答曰:“亦不生死,亦無泥洹也。”
-
그때 세존께서 지심 범천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범천아. 설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그렇게 설해야 하고, 나아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성취해야 한다.” - 010_0384_a_07L於是世尊,讚持心梵天曰:“善哉!善哉!梵天!欲有所說當作斯說,乃爲是說。”
-
이렇게 순응하는 것에 관하여 설할 때에 2천 명의 비구가 번뇌가 다하였으며 마음으로 그 뜻을 이해하였다.
“범천아, 또한 생사를 얻을 수 없고 열반도 없다. 여래께서 나고 죽는 일을 보이며 말한다고 하여도 윤회하는 자도 없고 멸도(滅度)하는 자도 없고 슬퍼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범천아, ‘멸도한 자가 있다’고 누군가 사의한다고 하여도 실제로 그 사람에게는 생사의 법도 없고 열반의 법도 없는 것이다.” - 010_0384_a_09L說是應順語時,二千比丘漏盡意解。“梵天!不復得於生死,亦無泥洹。如來說言:“示有生死,無周旋者,亦無滅度,亦無所憂,亦不見人。有滅度者,設使梵天!入此議者,則於其人無生死法,無泥洹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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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대중의 모임 가운데 있던 5백의 비구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개인적인 견해에 사로잡혀 떠나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보는 바로는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것이 있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마땅히 멸도를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고 하시니, 이 도를 구하고 배우려고 의도했던 것이 다 공허한 것인가? 그렇다면 안정되게 지혜를 성취하겠는가!” - 010_0384_a_15L於是衆會,五百比丘,卽從坐起私竊而去,而說此言:“吾等見中淨修梵行,心自念言:‘當得滅度,而無有人得滅度者,空復志求學斯道乎?安成慧耶!’”
-
그때 명망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법이 생기하는 것을 욕구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생사의 어려움을 초월하고 건넌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그 사람은 열반을 보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 010_0384_a_19L於是,明網菩薩前白佛言:“唯然,世尊!假使欲令法起生者,則於其人佛不興出,彼不超度生死之難也。天中天!求見泥洹故。
-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열반이란 일체의 상념을 제거하는 것이며, 또한 상속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신통과 지혜에 있어서 수승하고 특이한 것입니다. 만일 이들을 해석한 비구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인 것이 됩니다.
- 010_0384_a_23L唯天中天!所謂泥洹蠲除一切衆想之念,亦不汲汲,於諸通慧爲殊異也,若所釋是等比丘卽爲自欺也。
- 010_0384_b_02L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 바른 법과 율에서 출가하여 외도의 사견에 떨어진 자가 있으니, 그가 열반의 장소를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하면 삼 풀[麻]에서 기름이 나오는 것과 같으며, 낙(酪)에서 소(酥) 및 제호(醍醐)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제법을 멸진하고, ‘세존께서는 빠짐없이 영원히 멸도시키시니 그는 영원히 멸도한다’고 한다면, 저는 곧 그를 매우 교만한 자라고 일컫겠습니다.
- 010_0384_b_03L天中天!於正法律而行出家,墮外邪見,而以志睹泥洹之處。譬如麻油酪酥醍醐,然卽滅盡諸法,世尊永悉滅度,其永滅度,吾則謂之爲甚慢矣。
-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수행자에게는 닦은 바가 없으며, 평등함에 이른 자에게는 마침내 일으킬 만한 법을 만들어 세우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멸진에 대해서도 역시 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평등함이 없는 것입니다.”
- 010_0384_b_07L唯天中天!其修行者則無所修,逮平等者,終不造立所起之法,及與滅盡亦無有求,欲得法者亦無平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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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명망보살이 지심 범천에게 말하였다.
“범천이여, 이것이 설해질 때 5백의 비구가 설해지는 법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개인적인 견해에 사로잡혀 허망하게 떠나갔습니다. 이들 부류의 의지의 움직임에 대해서 알아서 어찌 그들로 하여금 법에 들어가도록 하지 않습니까? 즐거이 믿는 자가 있다면 그것으로써 여러 견해의 그물에서 제도하여 해탈시키시오.” - 010_0384_b_09L於是,明網菩薩謂持心梵天:“梵天說此,五百比丘聞所說法,卽從坐起私竊亡去,知斯等類意之所趣,何不入法?其有信樂,若以度脫於諸見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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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이 답하였다.
“족성자여, 그대가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의 국토를 노닐며 지내 왔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만한 수의 겁 동안을 구하고 찾는다 하여도 떠남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아서 형상적인 법에는 또한 해탈이 없습니다. 비유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허공을 두려워하여 버리고 도망가는데 머무는 곳, 이르는 장소마다 허공을 떠나지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비구들 역시 그러합니다. 도달하고 행하는 그 한계를 측정할 수가 없다 해도 공성(空性)의 모습이 자연스러우며, 무상(無想)의 모습 역시 자연스러우며, 무원(無願)의 모습 역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010_0384_b_13L持心答曰:“族姓子!汝往遊至江河沙等諸佛國土,劫數求索不能得離,如是像法亦無有脫。譬如癡子畏於虛空,而馳逬走在所至趣,不能離空。此比丘等亦復如是,正使達行不可稱限,空相自然,無想之相亦復自然,無願之相亦復自然。
- 또한 비유하면 허공을 구하려는 두 번째 사람과 같습니다. 여덟 방향으로 그리고 위와 아래로 허공을 얻으려고 하여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한다.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하여 욕구하는 대로 노닐고 나아가고자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지만, 그 사람은 입으로 스스로 허공을 말할 뿐이지 허공을 알지 못합니다. 말하는 것처럼 그 몸이 허공에서 나아가면서도 허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 010_0384_b_20L猶如復有第二士夫,求於虛空,八方上下欲得於空,心自念言:‘我欲得空,我欲得空。’所欲遊至,口自說空而不知空,言與其身行於空中而不睹空。
- 010_0384_c_02L이와 같이 족성자여, 이 여러 비구도 멸도를 구하고 열반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멸도를 구하지만 이해하여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멸도(滅度)를 얻었다고 말하는 자는 단지 거짓된 명칭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허공과 같으니, 만일 허공에서 다니고 허공에서 노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역시 공허한 것입니다. 그 열반이란 임시로 짐짓 만든 말일 뿐입니다.”
- 010_0384_b_24L如是,族姓子!斯諸比丘求於滅度,行於泥洹而求滅度,不解所入。所以者何?所謂言曰得滅度者,但假號耳。猶如虛空,若有行空經遊虛空,所言亦空,其泥洹者假託言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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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5백 비구는 이렇게 설하는 말을 듣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으로 해탈하고 신통력(神通力)을 얻었다. 그리고는 각자 찬송하여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온갖 법이 모두 빠짐없이 멸도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멸도를 구하고자 하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위대한 성인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범부가 아닙니다. 유학(有學)도 아니고 무학(無學)도 아닙니다. 나고 죽는 것에도 있지 않고, 열반에도 있지 않으니, 멸도가 없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또한 여러 신통과 지혜에 있어서 저희들은 이미 존재하던 도와 지혜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처님의 법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 010_0384_c_06L於是五百比丘聞說是語,漏盡意解逮得神通,各歎頌曰:“唯然,世尊!一切諸法皆悉滅度,假使有人求滅度者,則於其人佛不興世,我等,大聖!非爲凡夫亦無所學,亦無不學,不生死不泥洹,無滅度法。所以者何?又諸通慧,我等已離所有道慧,興諸佛法。”
-
그때 존자 사리불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미 만들고 확립하여 이 지혜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까?”
“저희들은 이미 더럽고 피로한 것을 만들고 그것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짓는 것은 없습니다.” - 010_0384_c_12L於是,尊者舍利弗謂諸比丘曰:“仁等已得造立,入於斯慧自獲利耶?”答曰:“吾等已入造於塵勞,而無所作。”
-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설합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설령 더럽고 피로한 것을 단절했다 하더라도 문득 애욕의 티끌에 들어가게 되니 멸도를 욕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저희들은 이미 들어가는 것을 얻었다고 말할 뿐입니다. 더럽고 피로한 것을 만들었지만 짓는 것은 없습니다.” - 010_0384_c_15L又問:“何故說此?”諸比丘曰:“唯舍利弗!設斷塵勞便入欲塵,不欲滅度,由是之故,吾等說言已得入矣,造於塵勞而無所作。”
-
사리불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족성자여, 마땅히 이러한 것을 질문하니 그대들이 서 있는 곳은 중우(衆祐)의 땅입니다.” - 010_0384_c_19L舍利弗言:“善哉!善哉!族姓子!當咨嗟之,諸仁所立衆祐之地。”
-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세존께서도 오히려 중우의 땅을 정화하지 못하시는데 어찌 하물며 저희들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겠습니까?” - 010_0384_c_20L諸比丘曰:“唯舍利弗!仁者世尊亦復是卿不淨衆祐,何況我等至淸淨乎?”
-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법계가 본래 빠짐없이 청정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 010_0384_c_22L又問:“此言何謂?”諸比丘曰:“佛知諸法界本悉淸淨。”
-
010_0385_a_02L이때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누구를 일컬어 세간의 중우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법으로 미혹해지지 않는 자이고, 세간의 법으로 수치스러워지지 않는 자이다.” - 010_0384_c_23L於是持心梵天白世尊曰:“唯然,世尊!何謂世之衆祐?”佛告梵天:“不爲世法之所迷惑,不恥世法。”
-
다시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중우의 일을 마침내 정화합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법에 있어 취착하지 않는 자이니라.” - 010_0385_a_03L又問:“世尊!云何淨畢衆祐之事乎?”答曰:“若於諸法無所受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누가 세간의 복전입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도를 잃지 않는 자이니라.” - 010_0385_a_05L又問:“誰爲世閒之福田乎?”答曰:“若有不失佛道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중생의 좋은 벗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 010_0385_a_06L又問:“何謂衆生之善友?”答曰:“不捨一切群黎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누가 여래에게 다시 보답합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요청을 거스르거나 의심하지 않는 자이니라.” - 010_0385_a_07L又問:“誰於如來有反復乎?”答曰:“其不違疑佛教命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여래를 받들고 섬긴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어남이 없는 궁극적 존재에 대해 환히 요해(了解)하기 때문이다.” - 010_0385_a_09L又問:“何謂奉事如來乎?”答曰:“其曉了解不起際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여래의 행에 친근히 하는 것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비록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금기와 계율을 훼손하지 않는 까닭이다.” - 010_0385_a_10L又問:“何謂親近如來行乎?”答曰:“寧失身命不毀禁戒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여래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설령 나아가는 자라고 하더라도 장차 여러 감관을 잘 보살피기 때문이다.” - 010_0385_a_12L又問:“何謂恭敬於如來者乎?”答曰:“設使行者將養諸根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서 큰 재산을 지닌 부유한 자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7보를 가득 채우고 구족했기 때문이다.” - 010_0385_a_13L又問:“何謂世閒大財富乎?”答曰:“七寶滿具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서 만족함을 아는 자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세간을 건너는 지혜를 이미 획득했기 때문이다.” - 010_0385_a_14L又問:“何謂於世知厭足者乎?”答曰:“其已逮得度世智慧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환히 요달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삼계 중에서 원하는 바가 결코 없기 때문이다.” - 010_0385_a_16L又問:“何謂曉了乎?”答曰:“其於三界悉無所願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 간언하는 비유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결박을 휴식시키기 때문이다.” - 010_0385_a_17L又問:“何謂諫喩於世乎?”答曰:“其有休息一切結縛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 처하여도 안온하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탐착이 없고 재물에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a_19L又問:“何謂處世而安隱乎?”答曰:“其不貪者無受財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탐착하지 않는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수행에 장애[陰蓋]가 없기 때문이다.” - 010_0385_a_20L又問:“何謂不貪乎?”答曰:“無有陰蓋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여의었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입처(入處)를 버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 010_0385_a_21L又問:“何謂離於陰蓋乎?”答曰:“捨於六入亦無所釋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이미 지나갔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도와 지혜를 통달하고 요해했기 때문이다.” - 010_0385_a_23L又問:“何謂己過乎?”答曰:“曉了道慧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보시의 주인이 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의 무리들을 권하고 교화하여 여러 신통과 지혜의 마음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 010_0385_a_24L又問:“何謂菩薩爲布施主乎?”答曰:“勸化一切衆生之類,入諸通慧心故。”
-
010_0385_b_02L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금기와 계율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2L又問:“何謂禁戒乎?”答曰:“不捨道心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인욕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멸진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3L又問:“何謂爲忍乎?”答曰:“見心滅盡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정진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을 구하여도 얻을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4L又問:“何謂精進乎?”答曰:“若求於心不得處所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한마음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휴식하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6L又問:“何謂一心乎?”答曰:“心休息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지혜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법에서 음성이 없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7L又問:“何謂智慧乎?”答曰:“於一切法無音聲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자비를 행하는 자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여러 가지 생각과 행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8L又問:“何謂菩薩行慈者乎?”答曰:“不隨一切諸想行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슬퍼함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법에 관한 상념이 없기 때문이다.” - 010_0385_b_09L又問:“何謂菩薩行哀者乎?”答曰:“無諸法念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기쁨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자아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10L又問:“何謂菩薩行喜者乎?”答曰:“不計吾我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능히 평정[護]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남과 자기에 관해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12L又問:“何謂菩薩行護者乎?”答曰:“不計彼我想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믿음에 넓고도 확고하며 독실하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청정하고 순백한 모든 법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13L又問:“何謂菩薩博立篤信乎?”答曰:“不捨諸法淸白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널리 듣고서 공(空)에 안주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음성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14L又問:“何謂菩薩博聞住空者乎?”答曰:“不猗一切音聲故。”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스스로에게 부끄러움[慚]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안의 법을 환히 알고 요달하여 제거하기 때문이다.” - 010_0385_b_16L又問:“何謂爲慚?”答曰:“曉了內法蠲除故也。”
-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남에게 부끄러움[愧]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밖의 일을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 010_0385_b_17L又問:“何謂爲愧?”答曰:“不習外事故也。”
-
다시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합니까?” - 010_0385_b_18L又問:“世尊!何謂菩薩普無不入?”
-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 於是世尊以頌答曰:
-
그 몸이 청정하여
온갖 악한 짓을 범하지 않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청정하여
항상 지극한 정성으로 말하고
아울러 의지가 청정하여
항상 자비의 마음을 실천하면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b_19L其身淸淨,
不犯衆惡,
口言淸淨,
常說至誠,
秉意淸淨,
常行慈心,
斯謂菩薩,
普無不入。
-
자비로운 행을 준수하고 수행하고
오염된 티끌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애련하게 여기는 행이 있어서
분노하거나 해치려는 바가 없네. -
010_0385_b_22L遵修慈行,
不猗染塵,
專於哀行,
無有恚害。
-
어짊과 평정함을 더하고
어리석음도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b_23L加以仁護,
無有愚癡,
斯謂菩薩,
普無不入。
-
010_0385_c_02L
취락(聚落)에서 노닐어도 그러하고
한가하게 거주해도 그러하며
도시나 마을 등 복잡한 곳이나
대중의 모임에서도 차이 없다네. -
010_0385_c_02L若遊聚落,
閑居亦然,
縣邑燕處,
衆會無差。
-
일찍이 위의와 예절을
위배하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03L未曾違失,
威儀禮節,
斯謂菩薩,
普無不入。
-
여러 부처님의 바른 법을
빠짐없이 두루 모두 믿고
자아가 없음을 설하는 경전을
또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네. -
010_0385_c_04L皆悉遍信,
諸佛正法,
又常樂憙,
無我之典。
-
기쁨에 찬 성스러운 대중에게는
논의하는 바가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06L悅喜聖衆,
無所有議,
斯謂菩薩,
普無不入。
-
색에 대한 애욕을 벗어 던졌으나
그 행하는 바를 알 수 없으며
진에(瞋恚)와 분노를 건넜으나
역시 건넌 바가 없네. -
010_0385_c_07L脫於色欲,
不知所行,
度於瞋怒,
亦無所度。
-
온갖 행상이 돌아갈 곳을
환히 아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08L曉了衆行,
之所歸趣,
斯謂菩薩,
普無不入。
-
애욕의 세계에 대해서도
만들어 집착하는 것이 없고
형태 있는 세계에 대해서도
역시 안주하여 확립하는 일이 없네. -
010_0385_c_10L亦不造著,
於欲之界,
亦不住立,
於形之界。
-
형태 없는 세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모두 역시 그러하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11L不著無形,
皆亦如是,
斯謂菩薩,
普無不入。
-
제법이 모두 빠짐없이 공(空)이니
그것을 믿고 즐거워하네.
그런데 중생들은 이리저리 내달리고
사유하고 생각한다네. -
010_0385_c_12L信樂諸法,
一切悉空,
然而衆生,
馳騁思想。
-
그런 까닭에
모든 번뇌를 멸진하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14L由是之故,
不盡諸漏,
斯謂菩薩,
普無不入。
-
방편을 환히 알아
연각승(緣覺乘)에 대해서도
음성으로 보여 주어
그것으로 그들을 교화하네. -
010_0385_c_15L方便曉了,
緣一覺乘,
示以音聲,
而教化之。
-
그러면서 부처님과 대승에 대하여
요달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16L於佛大乘,
靡不達了,
斯謂菩薩,
普無不入。
-
마땅히 이르는 곳마다
일체 것을 알고
인도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일찍이 위배하거나 잃어버리지 않았네. -
010_0385_c_18L一切皆知,
所當至處,
未曾違失,
導師之教。
-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행하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19L常行等心,
於諸憎愛,
斯謂菩薩,
普無不入。
-
일찍이 과거의 법을
상념하지 않고
미래와 현재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네. -
010_0385_c_20L未曾想念,
過去之法,
當來現在,
亦復如是。
-
일체의 노닐고 거주한 것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바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
010_0385_c_22L一切遊居,
無所猗著,
斯謂菩薩,
普無不入。
-
010_0386_a_02L
그때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무엇을 두고 보살이 세간법을 건넌다고 하며, 세간법에 처하지 않는다고 하며, 현재 세간법에 들어간다고 합니까? 그리고 세간법에 있어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킨다고 하며, 세간을 평등하게 보이고 드러낸다고 합니까? 또한 세간법에 인연하여 세간에서 노닐고 비록 세간에 처하더라도 세간의 법을 파괴하지 않고 도의 법을 잃지 않는다고 일컫습니까?” - 010_0385_c_23L於是,持心梵天白世尊曰:“何謂菩薩度於世法?不處世法,現入於世,度脫衆生;於世閒法,示現世閒平等世法;因緣遊世,雖處於世,不壞世法,不失道法。”
- 그러자 그때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게송으로 지심에게 대답하셨다.
- 於是,世尊尋時歎頌,答持心曰:
-
5음(陰)이 곧 세간이라고 나는 설하지만
세간에서 집착할 것이란 없네.
세간에 탐착하지 않으면서도
세간법을 버리지 않아야 하네. -
010_0386_a_05L吾說世五陰,
於世無所著,
以不貪著世,
不捨世閒法。
-
보살은 능히 그것을 요달하여
세간의 자연스러움을 이해하고 아네.
여러 음(陰)에는 근본이 없기에
세간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네. -
010_0386_a_07L菩薩能了彼,
解知世自然,
諸陰爲無本,
不著世閒法。
-
이익이 있든 이익이 없든
찬탄을 받든 비방을 받든
명성이 있든 명성이 없든
세간의 즐겁고 괴로운 법을 수치스러워하네. -
010_0386_a_08L有利若無利,
嗟歎若謗毀,
有名若無名,
恥世苦樂法。
-
그는 큰 지혜를 사용하여
비록 세간법에서 노닐지만
세간에서 탐착할 만한 것을 보지 않으니
도에 대한 뜻은 흔들리지 않네. -
010_0386_a_09L彼用大智慧,
雖遊於世法,
不見世所貪,
道意不可動。
-
이익을 얻어도 즐거워하지 않으며
포기하고 손해를 봐도 슬퍼하지 않으며
태산과 같이 굳건하게 머무니
능히 그를 동요시킬 자 없네. -
010_0386_a_11L得利不以悅,
棄捐亦不慼,
堅住如太山,
無能動搖者。
-
찬탄을 받거나 비방을 받아도
그 뜻은 항상 평등하며
명성이 있든 없든 괴롭든 즐겁든
평등한 마음에 굳건히 머문다네. -
010_0386_a_12L嗟歎若毀呰,
其志常平等,
名無名苦樂,
堅住於等心。
-
세간은 본래 전도(顚倒)됨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환히 알아서
세간에 집착하지 않으며
밝게 통달하고 홀로 노닐고 거니네. -
010_0386_a_13L曉知世自然,
因從顚倒興,
不生於世閒,
明達獨遊步。
-
만일 세간에 들어간다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 요달하니
그런 까닭에 속된 것을 따라 익히며
중생의 괴로움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네. -
010_0386_a_15L若入於世俗,
綜了所至處,
是故隨習俗,
度脫衆生苦。
-
용맹하니 비록 세간에서 노닐며
세간에 있다 해도 마치 연꽃과 같아
세속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법의 성품을 분별하고 요지하네. -
010_0386_a_16L勇猛雖遊世,
在俗如蓮花,
不破壞世俗,
分別了法性。
-
가령 세간에서 다니고 머문다 해도
세간의 법을 분별하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그 세간에서 노닐어
세간의 모습을 궁극적으로 알아낸다네. -
010_0386_a_17L假使行在世,
不分別世法,
故遊於彼閒,
究縛世俗相。
-
세간의 모습은 허공과 같으니
거처할 곳도 없는 공허한 모습이라.
이미 이것을 이해하고 요달하니
곧 세속에 집착하지 않는다네. -
010_0386_a_19L世相如虛空,
亦無處空相,
已能解了此,
則不著世俗。
-
지방의 풍속에 따라 아는 바가 있으니
그것에 수순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세간의 자연적 본성을 관통하고 통달하니
세속을 훼손시키거나 허물지 않네. -
010_0386_a_20L隨方俗所知,
順而化衆生,
貫達世自然,
不毀敗於俗。
-
5음(陰)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세간이 지니는 자연의 본성이니
그것을 환하게 알지 못하면
항상 세속에 의지한다네. -
010_0386_a_21L設無有五陰,
斯謂世自然,
其不曉了者,
常倚於世俗。
-
만일 여러 가지 음(陰)을 능히 버리어
일어나는 것도 존재하는 것도 없으면
비록 세간에 있다고 해도
속된 것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네. -
010_0386_a_23L若能捨諸陰,
不起無所有,
雖現於世閒,
於俗無所著。
-
세간의 법을 그렇게 요해하지 않으면
불타오르듯이 다투고 싸우며
속이고 허망하고 성실함이 없으며
항상 상대적 관점을 세워 머무네. -
010_0386_a_24L其不了世法,
熾然於諍訟,
斯虛妄無誠,
常立處二相。
-
010_0386_b_02L
나는 일찍이 세간 일에 간여치 않았노라 하고
다투고 싸우는 바도 없다고 하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도에 입각하시어
자연의 본성에 해당하는 법을 분별하시네. -
010_0386_b_02L吾未曾預世,
亦無所諍訟,
佛以是之故,
部分自然法。
-
법이란 다투는 바가 없는 것이라
여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는
세간의 평등함을 환히 아는 것이니
허무하지 않고 지극히 정성스럽네. -
010_0386_b_04L法者無所諍,
諸佛之所說,
通了世平等,
不虛無至誠。
-
이간질을 하든 참된 진리이든
그 모두를 가르치고 명령하는 것이니
가령 독(毒)의 해악으로 비유하자면
외도와 비교하여 다를 것이 없네. -
010_0386_b_06L兩舌若誠諦,
逮得於教命,
假使爲毒害,
與外道無異。
-
제법을 성실하게 판단해 보면
알맹이도 없고 허망함도 없어라.
그런 까닭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둘이 없는 법으로 세간을 제도한다 하시네. -
010_0386_b_07L諸法誠審者,
無實無有虛,
是故世尊說,
度世無二法。
-
내가 통달한 세간의 지혜는
곧 세속의 법이 되니
허망한 것도 없고 성실함도 없어라.
있다는 것은 세간의 죄악이라 보기에
세간의 광명이 되어
이에 큰 명성을 성취하여
부처님은 세간을 열고 요지하였으니
청정하여 허물과 티끌이 없네. -
010_0386_b_08L吾所達世惠,
斯爲方俗法,
則無虛無實,
見世之罪惡,
爲世之光明,
逮成大名聞,
佛所開了世,
淸淨無瑕穢。
-
만일 세속을 관찰하되
몸으로써 자연의 본성을 본다면
그것은 곧 등정각(等正覺)이
시방에 드러나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 -
010_0386_b_11L假有觀俗者,
身以睹自然,
則見等正覺,
現在十方者。
-
제법은 인연에 의한 것이므로
제법에는 자연의 본성이 없다고 알아서
만일 인연을 세밀히 분석한다면
법의 이치에 통달하는 것이라. -
010_0386_b_12L知諸法因緣,
諸法無自然,
若剖扸因緣,
則能綜理法。
-
그가 법을 이해하고 통달한다면
공성(空性)에 대해 환히 알게 되며
공성을 이해하고 식별한다면
인도하는 스승을 분별하리라. -
010_0386_b_14L其能解達法,
則能曉了空,
設能解識空,
則能別導師。
-
설령 세간을 분별하고 강설할 때
그 음성을 구한다고 하면
비록 세간의 일을 행한다 하여도
세간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네. -
010_0386_b_15L設分別講世,
而求於音聲,
雖行世閒事,
不與世閒俱。
-
만일 여러 견해에 떨어지거나
모든 것이 이것에 미치지 않으면
짐짓 이름으로 세간에 노닐어도
세속의 일에 집착하지 않네. -
010_0386_b_16L若墮於諸見,
一切不及此,
假名遊於世,
而不著俗事。
-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이러한 인(忍)을 즐거워하는 자가 있다면
부처님은 곧 그 사람을 위하여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법신을 드러내시네. -
010_0386_b_18L佛滅度之後,
其樂於忍者,
於彼佛現在,
導師之法身。
-
만일 이러한 법을 간직한다면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세간에 처해 있을 때에는
인도하는 스승이신 세존께서 아시네. -
010_0386_b_19L若持如此法,
則爲供養佛,
處世爲世尊,
導師之所知。
-
폐악무도(弊惡無道)한 악마 파순(波旬)이라도
만일 사람 사이에 머물면서
이 경을 자세히 설하는 이에겐
능히 그 기회를 얻지 못하네. -
010_0386_b_20L設弊魔波旬,
不能得其便,
若在於人閒,
廣說斯經者。
-
이러한 이는 큰 지혜를 가진 것이며
일체를 보시하는 시주이며
계율과 금기를 구족한 것이며
인도하는 스승이신 부처님을 밝게 아는 이라. -
010_0386_b_22L是黨大智慧,
主布施一切,
戒禁爲具足,
曉佛導師者。
-
그는 인욕의 힘으로 용맹스럽게 건너고
정진하면서 노닐고 거닐며
선정에 대하여 총명하게 통달하고 즐기고
세간을 분별하네. -
010_0386_b_23L斯度忍力勇,
遊步於精進,
聰達樂禪定,
分別於世閒。
-
010_0386_c_02L
부처님의 공하고 없는 법을 설하니
이러한 것들을 듣는다면
그 대장부는 다시 오래지 않아
도량에서 악마를 항복받으리. -
010_0386_b_24L說佛空無法,
其聞斯等類,
大士不復久,
處道場降魔。
-
4. 해제법품(解諸法品) - 010_0386_c_03L解諸法品第四
-
부처님께서 다시 지심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이미 세간의 경계를 건넜기에 세속을 보여 주고, 세속에 대해 습기[習]와 즐거움[樂]을 가르치며, 또한 세속의 즐거움을 건너고 세속을 멸진하고자 한다. 이것을 일컬어 세간의 5음(陰)이라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세간과 자아를 벗어나야 세간을 멸진하니, 5음을 구해야 한다’고 하며, 도(道)에서 노니는 자가 있다면 이름하여 ‘두 가지 어긋난 길을 걷는 자[二所慕之徑]’라고 한다. - 010_0386_c_04L佛復告持心梵天:“如來已度世閒境界,示世俗教習樂於俗,欲度於世樂滅方俗,是謂世閒之五陰也。其自念言:‘世我所度,滅盡於世。’求於五陰,遊於道者,則名曰二所慕之徑。
- 다시 범천아, 이렇게 5음이라 이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5음이란 세속의 말일 뿐이다. 여러 견해를 구하는 까닭에 세속을 버리기도 하고 수용하기도 하니, 그 보는 견해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멸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멸진을 향하는 도는 여러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속의 욕망을 멸하는 것이며 바른 도를 향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범천아, 부처님은 이에 대해 이르시길 ‘세간에는 삼자(三刺)의 문과 삼중(三重)의 부담이 있으니, 세간에서 풍속을 익히는 것과 세간을 멸진하는 것과 세간을 멸진하여 해탈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 010_0386_c_09L復次,梵天!所以名曰五陰者何?其五陰者方俗言耳,求諸見故捨受方俗,其所見者自然之想,斯則名曰爲滅盡也。滅盡向道不受諸見,則爲滅俗欲向正道。是故,梵天!佛說斯言,世有三刺之門及三重擔,習俗於世滅於世滅,盡於世閒而求度脫。”
-
그때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가령 여래께서 4제(諦)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진리란 무엇에 귀착됩니까?” - 010_0386_c_16L於是,持心梵天白世尊曰:“假使如來說四諦事,諦何所歸?”
-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이며, 집기에 대한 습제(習諦:集諦)라고 하지만, 그것이 성스러운 진리[聖諦]는 아니다. 이것이 멸진에 대한 진리[盡諦]이며, 멸진을 향하는 도에 대한 진리[向道之諦]라고 하지만, 그것도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온갖 괴로움이 곧 성스러운 진리라면 일체의 소ㆍ말ㆍ당나귀ㆍ개ㆍ돼지 등의 축생도 모두 마땅히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획득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 010_0386_c_18L佛告梵天:“是爲苦諦、習諦、斯非聖諦,是爲盡諦、向道之諦,斯非聖諦。所以者何?假使諸苦爲聖諦者,一切牛馬騾驢犬豕,畜生伴黨悉獲聖諦。
- 010_0387_a_02L 만일 온갖 갈애(渴愛)와 집착이 곧 성스러운 진리라면 5취(趣)에 태어나서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이 마땅히 성스러운 진리를 획득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만일 괴로움의 멸함이 성스러운 진리라면 일체의 중생이 단멸하는 일을 보거니와 그들은 모두 마땅히 멸함의 성스러운 진리를 지닌다고 해야 한다. 만일 도가 곧 진리라면 일체 유위(有爲)의 도에 의존하는 자도 모두 빠짐없이 마땅히 현성의 도라는 세력 있는 성스러운 진리를 획득한다고 해야 한다.
- 010_0386_c_22L若以諸習爲聖諦者,一切五趣所生群黎,當獲聖諦。若以苦盡爲聖諦者,一切衆生見斷滅事,便當悉除獲致聖諦。至由道諦一切有爲,悉當獲致賢聖之道,勢力聖諦。
- 이러한 까닭으로 범천아,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성스러운 진리로 관찰할 때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곧 괴로움이란 일어나는 일이 없다고 환히 아는 이것을 일컬어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며, 그 사람이 갈애와 집착을 행하는 것은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 멸진의 법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일컬어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일체의 제법이 평등하여 둘이 없이 모든 길에 동등하게 대한다면 이것이 슬기롭고 성스러운 진리인 것이다.”
- 010_0387_a_03L以是之故,梵天!觀察苦習盡道,以爲聖諦,其有曉了苦無所起,斯謂聖諦。其人行習者不爲聖諦,其滅盡法不起不滅,斯謂聖諦。假使平等一切諸法,而無有二等於徑路,斯賢聖諦。”
-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진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허위가 없다는 것인데 무엇을 일컬어 허위라고 하는가? 스스로 몸이 있다고 헤아리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혼이 있다고 집착하고 목숨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 집착하고 3유(有)에 의지한다. 소유한 것을 떠난다 해도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멸하는 것에 의지하고 생사를 수용하고 열반을 믿는다면 이것을 일컬어 허위라고 한다. - 010_0387_a_08L佛告梵天:“所以曰諦,無有虛者。何謂爲虛?自計有身,而念有人,而備有壽,而言有命。著於男女,猗於三有,離於所有,恃於所起,依於所滅,受於生死,怙於泥洹,是謂爲虛。
- 이 여러 가지 수용되는 것은 여러 가지 수용되는 것에 있어 의지하는 바가 없고, 또한 구하는 바도 없다. 이것을 일컬어 진리라고 한다. 괴로움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이것을 일컬어 허위라고 한다. 집기한 것을 멸하고자 한다면 이것도 역시 허위이다. ‘나는 마땅히 모두 증득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도 허위이다. 도를 수행한다고 하여도 이것 또한 허위이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교화하시기 위해 세운 여덟 가지 도의 품목이 있는데, 예를 들어 4의지(意止)라면 이것도 역시 허위라고 일컫는다.”
- 010_0387_a_13L此諸所受,於諸所受,無所依倚亦無所求,斯謂爲諦。欲除苦者則名曰虛,滅於習者斯亦爲虛,吾當盡證是亦爲虛,修行徑路亦復爲虛。所以者何?佛所教化八道品者,若四意止,斯亦謂虛。”
-
범천이 다시 질문하였다.
“무엇을 일컬어 부처님의 교화이며 마땅히 사유하는 바라고 하는 것입니까?” - 010_0387_a_18L又問:“何謂佛之所教所當思者?”
- “뜻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으니 일체의 제법도 그와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의 교화이며 마땅히 사유하는 바라고 하는 것이다. 4의지는 곧 머무는 바가 없으니, 여러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이처럼 일체의 생각에도 이미 머물지 않는다면 곧 궁극적인 진실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실에 머문다면 이것은 곧 머무는 바가 없는 것이며, 뜻에 거처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뜻에 머무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곧 실제가 아니니, 이름하여 허위라고 한다.
- 010_0387_a_19L答曰:“無意無念,一切諸法亦復如是,斯乃名曰佛之所教所當思者。爲四意止則無所住,不處諸想,已不住於一切想者,則住眞際。已住眞際,則無所住,意無所處;意有所住,則爲不實,名曰爲虛。
- 010_0387_b_02L그런 까닭에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실제도 없고 허위도 없는 것이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리고 관찰하는 것이 진리인데, 이른바 진리란 생겨나는 것도 없고 진리다운 것도 없는 것이다. 여래가 비록 출현하였다고 하나 일어난 바가 없으니 여래는 법의 성품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 또한 항상 진리로서 관찰하여 정해진 생사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스러운 진리에는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기 때문이다.”
- 010_0387_a_24L以是之故,當作斯觀,無實無虛乃爲聖諦。審者爲諦,所謂諦者,無所生無所諦。如來雖興爲無所起,如來不住於法性及與泥洹也,亦無生死常審諦定。所以者何?其聖諦者,無有生死,亦無泥洹。”
-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에 순응하는 바가 있을 때에는 이 4제(諦)를 증득할 것이니, 이름하여 바른 진리라고 한다.” - 010_0387_b_06L佛言:“梵天!若有順時證斯四諦,名曰正諦。”
-
다시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내세에 어떤 비구가 있으리니, 그는 능히 몸을 삼가지 못하고, 금기와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능히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정밀한 지혜를 갖추지 못하면서 버젓이 강설하기를, ‘발생하는 것이 괴로움의 진리이고, 여러 갈래로 나아가는 것을 일컬어 집제(集諦)라고 한다.’고 하며, 또 ‘이곳에서 달리고 뛰며 여러 중생이 생하는 장소인 3유(有)를 파괴하는 것과 마땅히 길을 구하여 행하는 것, 이것을 일컬어 두 가지 진리라고 하니, 그 행상에서 달리고 뛰어야 한다.’고 설한다. - 010_0387_b_08L佛告梵天:“將來之世當有比丘,不能愼身,不護禁戒,不能制心,不精智慧,而當講說,發生苦諦謂趣習諦,馳騁於斯,壞於三有諸所生處,又說當求行於徑路,是謂二諦馳騁其行。
-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나는 그를 이름하여 외도의 무리라고 하니,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며 나의 성문도 아니다. 그 뜻은 나쁜 길로 나아갔으며, 바른 진리를 파괴한 것이며, 스스로 방일한 것이다. 내가 도량에 있는 불수(佛樹) 아래 앉아 있을 때 참된 진리[誠諦]에 귀착하지 못하였으나 허망함이란 없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여러 법에서 또한 나아가는 바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여래의 법을 구하되 두 가지로 보아서는 안 된다.
- 010_0387_b_13L是等愚騃,吾則名之異學伴黨,非佛弟子,非我聲聞,志趣邪徑,破壞正諦,而自放逸。吾處道場佛樹下時,不歸誠諦,亦無虛妄,佛於諸法,亦無所趣。以是之故,求如來法勿觀二事。
-
또한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하물며 두 가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이시여.” - 010_0387_b_18L勿言有二,爲二問也?”白曰:“不敢也。天中天!”
-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도되고 미혹된 길이다. 능히 일체의 나아가는 바를 제거할 수 없다.” - 010_0387_b_19L答曰:“是爲顚倒迷惑之道,不能蠲除一切所趣。”
-
010_0387_c_02L이에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여래의 법에는 전도된 것이 없으며 또한 얻는 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성불(成佛)에 이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호칭을 ‘절대 평등한 깨달음의 지혜를 얻은 자[平等覺者]’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그렇게 일컬었던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범천아,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보이느냐? 내가 설한 법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실제의 것이냐, 허위인 것이냐?”
대답하였다.
“허위입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또한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것에 편안히 이르러 머무는 것입니다.” - 010_0387_b_20L於是持心白世尊曰:“如來之法而無顚倒,亦無所得。所以者何?如來逮成佛時,所號名曰平等覺者,爲何謂耶?”答曰:“於梵天意所察云何?佛所說法,爲有爲無?爲實爲虛?”答曰:“爲虛,天中天!無所有也,安住至聖。”
-
다시 질문하셨다.
“범천아, 그 허무한 법에는 머무는 바가 있다고 하느냐, 머무는 바가 없다고 하느냐?”
대답하였다.
“천존이시여, 그 허무한 것에는 머무는 것도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 010_0387_c_03L又問梵天:“其虛無法,爲有所住,爲無所住?”答曰:“天尊!其虛無者,亦無所住,亦無不住。”
-
다시 질문하셨다.
“범천아, 어찌하여 제법에는 머무는 것이 있지도 않고 머무는 것이 없지도 않은가?”
대성인(大聖人)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또한 어떻게 도를 얻는가?”
대답하였다.
“도를 얻는 것이란 없습니다.” - 010_0387_c_05L又問:“云何,梵天!而於諸法,亦不有住,亦不無住?”大聖報曰:“云何得道?”答曰:“彼無得道。”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가 나무 아래에 앉아 도량에서 머무를 때 애욕은 전도된 것일 뿐 본래 항상 청정한 것이며, 공이며, 저절로 본성이 없다고 환히 알았다. 그런데 환히 알았다는 것은 환히 안 바가 없는 것과 같고, 또한 환히 알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로 내가 환히 안 법과 체득한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은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수용하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고, 또한 자취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일체의 모든 성품을 초월함으로써 말도 없고 언사도 없고, 글자도 없고 구절도 없으며, 또한 말로 가르치는 것도 없다. 이와 같이 범천아, 제법은 허공과 같은데 제법을 얻으려고 할 수 있겠는가?” - 010_0387_c_08L告曰:“梵天!如來坐於樹下,處在道場,曉了欲塵,所處顚倒,本常淸淨,空無自然。所曉了者,如無所了,亦不不了。所以者何?以是之故,吾所了法,逮正覺者,無見無聞,無念無知,無受無著,亦無所趣,皆以超越一切諸性,無言無辭無字無句,亦無言教。如是,梵天!諸法如空,而爾欲得逮諸法乎?”
-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또한 다시 세존이시여, 위대한 성인이신 여러 부처님은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일찍이 없었던 일로서 성실한 진리의 법을 구족하셨습니다.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는 큰 자비[大哀]를 지니시고, 고요한 법을 분별하고 환히 깨달으시어 문자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하십니다. 그리고 여래께서 설하시는 법을 즐거이 믿는 자는 여러 덕의 근본을 세우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구족하였던 자입니다. 이 중생들은 여러 부처님에 대하여 죄 되는 것이나 허물이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세간이 빠짐없이 함께 그를 믿는다 해도 그의 뜻에는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 010_0387_c_16L答曰:“不也!天中天!又復,世尊!諸佛大聖甚不可及,至未曾有,具誠諦法。諸佛世尊至有大哀,分別曉了寂然之法,而以文字爲他人說,其有信樂如來說法,立諸德本具足所當,斯等衆生,則於諸佛無有罪咎。所以者何?一切世閒悉共信之志無所著。
- 010_0388_a_02L또한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세간의 사람들은 법을 믿는데 법은 곧 자아의 소유입니다. 세속에 의지하고 법에 집착하지만 법에는 실제도 없고 허위도 없으며,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세속의 사람들은 열반에 의지하고 기대지만 이것을 관찰해 보면 끝도 없고 처음도 없으며, 또한 열반도 없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선한 것과 덕스러운 것에 기댑니다. 그러나 선한 것도 없고 덕스러운 것도 없으며, 아울러 선하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안락한 것에 기댑니다. 그러나 괴로운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부처님에 기대고 부처님의 출현에 기댑니다. 그러나 역시 생하시는 일도 없고, 멸도하시는 일도 없습니다.
- 010_0387_c_22L又,天中天!世人信法,法是我所,倚俗著法。法無實無虛,無法非法,而世俗人依倚泥洹,於斯察之無有終始,亦無泥洹,俗倚善德,無有善德,亦無不善,俗倚安樂,無苦無樂,俗倚佛興,佛亦不生亦不滅度。
- 또한 다시 법이 있고 마땅히 세심하게 살피고 드러내고 선양하는 성스러운 대중이 있다고 설하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무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경전을 세간에서 가히 믿는다는 것은, 비유하면 물에서 불이 일어나고 불에서 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의 화합입니다.”
- 010_0388_a_05L又復說法,當得審諦顯揚聖衆,以無爲事而爲審諦,其經典者於世可信。譬如假喩從水生火、從火出水,悉因緣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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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티끌 같은 애욕이 곧 부처님의 도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고 요지해야 하니, 이는 인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번뇌와 괴로움을 깨닫고 요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이지만 그러면서도 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은 없다. 이미 설한 것이 있다 하더라고 그 형체를 보지는 못하고 또한 생각하는 바도 없다. 또한 두 가지를 만들지도 못하고 증득하는 바도 없고 멸도를 얻지도 못하고 고요함도 없는 것이다.” - 010_0388_a_08L佛言:“如是,覺了塵欲則成佛道所由因緣。所以者何?如來所因覺了塵勞,成正覺者無逮正覺,旣有所說而不見色,亦無所念,亦不造二,亦無所證,不得滅度,亦無寂然。”
-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와 같은 법을 환히 알고 믿는 자가 있다면 여러 견해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을 얻을 것이니, 이와 같은 이는 머리를 조아리고 귀의하고 예를 올릴 만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부처님 여래를 받들었으니 이미 여러 가지 행을 실천한 자입니다. 그리고 선한 벗들이 보고 섭수하고 보호하니, 그의 의지는 즐거우면서도 미묘합니다. 온갖 덕의 근본을 심고 나서 안온한 진리의 곳간을 얻은 자입니다.
- 010_0388_a_13L“唯然,世尊!若族姓子、族姓女,設有曉了信斯法者,則能蠲除一切諸見而得解脫,當爲稽首歸命作禮,奉若如來。於過去佛,已爲造行則爲善友,所見攝護志樂微妙,殖衆德本,已爲逮得安諦之藏。
- 온갖 법을 관람하고 간직하여 온갖 죄를 멸한 자입니다. 도의 업을 건립하여 귀한 종성을 성취한 자입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것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것을 다 간직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큰 보시를 삼는 자입니다. 집착과 번뇌를 내버렸으니, 곧 계율을 지키는 힘을 지닌 자입니다. 애욕을 없애는 힘을 지녔으니, 곧 인욕의 힘을 지닌 자입니다. 또한 불길한 것이 없고 화내는 일이 없고 용맹한 정진력을 지녔으니, 나태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선정의 힘으로 죄업을 내던지고 제거한 자입니다. 지혜의 힘으로 삿된 견해를 버리고 여읜 자입니다. 그리하여 일체의 모든 악마가 움직이고 흔드는 것이 불가능하며, 적과 원수가 능히 그를 이길 수 없으니, 끝내 속이고 미혹하게 할 수 없는 자입니다.
- 010_0388_a_18L攬持法府則滅衆罪,建立道業則致貴姓,摠持如來言教之宗則爲大施,放捨塵垢則護戒力,無愛欲力則致忍力,無疆恚勇爲精進力而無懈厭,爲禪定力棄除罪業,爲智慧力捨離邪見,一切諸魔莫能迴動,仇敵怨讎無能得勝,終不誑惑。
- 010_0388_b_02L 세간 사람들이 말한 것에 대해 지극한 정성으로 강설하는 자입니다. 제법이 본래 청정함을 환히 아니 진실한 자입니다. 또한 구경의 법을 설하니 그는 곧 여래가 섭수하고 보호하는 자이며, 즐겁고 어질고 온화하게 안온한 곳에서 노닐고 거주하는 자이며, 슬기롭고 성스러운 업으로 재물이 많고 부귀한 자이며, 슬기롭고 성스러운 행으로 만족함을 아는 자입니다. 훌륭하게 돌보고 오래 보살피며 은근히 공양하고 섬기니, 곧 마땅히 보고 믿어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뜻으로 벗어나려는 자를 격려하는 자입니다.
- 010_0388_a_24L於世閒人,所言至誠,講說曉了,諸法本淨則爲眞實,說究竟法則爲如來之所攝護則樂仁和,遊居安處則爲財富,於賢聖業則知止足,於賢聖行善見長養,慇懃供事則當見信度於彼岸,爲志脫者而勖勵之。
- 즐거이 해탈을 얻으려는 자를 열심히 제도하는 자입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자로 하여금 기대게 하는 자입니다. 무위를 즐기는 자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하는 자입니다. 도를 즐기는 자에게 넓고 큰 것을 갖추게 하는 자입니다. 초월하는 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그것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자입니다. 여러 방면의 의술에 있어서 의왕(醫王)인 자입니다. 일체의 병든 자에게 좋은 약을 지어 주는 자입니다. 지혜에 이르려는 자에게 힘을 지원해 주는 자입니다. 세력을 얻으려는 자를 즐겁게 하여 그것으로 자재함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따르지도 수용하지도 않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삼가거나 두려워하여 옷이나 털이 곤두서지 아니함이 없는 자입니다.
- 010_0388_b_07L樂得脫者卽令勉濟,無所依者而使憑附,樂無爲者從得泥曰,樂於道者爲具敷弘,慕超越者而爲示現,又諸方術則爲醫王,一切病者爲設良藥,致於智慧則爲力援,逮獲豪勢以爲歡樂得出自在,不依因人亦不從受,無有恐懼衣毛不豎。
- 또한 사자의 걸음과 같이 미묘한 수레를 얻은 자입니다. 천신이나 용과 같이 그 마음이 안온하고 조화로운 자입니다. 비유하면 잘 훈련된 코끼리와 같이 대중들 가운데서 머물고 노닙니다. 마치 신선과 같은 용맹함에 도달한 자입니다. 원한 맺힌 적들에게 항복받고 큰 모임에서 노니는 자입니다. 뜻이 강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결과적으로 뜻대로 하여도 무서워하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바른 진리를 설하되, 그 어떤 것에서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더럽고 수고스러운 법을 제거하여 보름달과 같은 자입니다. 지혜와 광명의 횃불이 멀리 비추는 것과 같은 자입니다. 해가 떠오를 때처럼 비추지 못하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온갖 어둠을 멸진하고 제거하는 것이 밝혀 놓은 등불과 같은 자입니다. 또한 여러 집착을 떠나되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이 없는 자입니다.
- 010_0388_b_14L如師子步致得妙乘,爲如神龍安和其心,猶如調象遊在衆中,若如神仙則致勇猛,降伏怨敵遊于大會,志强無懼意果自恣而無所畏。所說正諦悉無有難,蠲塵勞法如月盛滿,智慧光明如炬遠照,如日之昇無所不耀,滅除衆冥若如錠燎,離於諸著無有增減。
- 010_0388_c_02L 온갖 행을 지니되 땅과 같아서 중생들이 그를 우러르고 살아가는 것이 마치 좋은 밭에 백 가지 곡식을 윤택하게 심어 놓은 것과 같은 자입니다. 일체의 더러운 것을 세탁하는 것은 비유하면 물과 같은 자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멸진하고 제거하는 것이 마치 불과 같은 자입니다. 일체 법에 집착하는 것이 없으니 마치 바람과 같은 자입니다. 흔드는 것이 불가능하니 수미산과 같은 자입니다. 뜻과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한 것이 마치 금강 철위산과 같은 자입니다. 여러 외도와 이교도가 능히 당해내지 못하는 자입니다. 성문과 연각이 능히 미치지 못하는 자입니다.
- 010_0388_b_21L持行如地衆生仰活,猶若良田百穀滋殖,洗一切垢譬若如水,滅除諸想猶若如火,於一切法而無所著猶若如風,不可動搖如須彌山,志性堅强猶若金剛鐵圍之山,諸外異學莫能當者,聲聞緣覺無能及者。
- 법에 대해 동등한 맛이니 바닷물의 맛이 한맛[一味]인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곧 제도하는 스승이 되는 자입니다. 또한 일체의 더러움과 피로함의 갈증을 제거하는 자입니다. 경의 법을 사모하고 구하여 만족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그는 곧 지혜에 있어 흘러넘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그는 곧 성스러운 제왕이 되어 법륜을 굴리는 자입니다. 얼굴과 용모가 수승하고 기이한 것이 제석천과 같은 자이며, 마음으로 자재를 얻는 것이 범천과 같은 자입니다. 법을 연설하는 것이 하늘에서 벼락과 우레가 치는 것과 같은 자입니다. 감로의 법을 내리는 것이 때맞춰 내리는 비와 같은 자입니다.
- 010_0388_c_03L以法等味譬若如海,則爲度師,蠲除一切塵勞之渴,慕求經法未曾厭足,則於智慧而無充溢,則爲聖皇而轉法輪。顏貌姝特如天帝釋,心得自在有如梵天,演法雷震猶如天陰,爲雨甘露如澍洪澤。
- 또한 그는 5근(根)과 5력(力) 그리고 7각지(覺支:覺意)를 능히 더욱 늘릴 수 있는 자입니다. 그는 생사의 근심을 초월하여 건널 수 있는 자입니다.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에 문득 들어갈 수 있는 자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도에 접근해 도달할 수 있는 자입니다. 마땅히 널리 듣는 것을 획득하였으니, 필적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측량할 수 있는 한계를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한량이 없는 자입니다. 지혜와 변재에 있어서 동등한 반려가 없는 자입니다. 다라니(陀羅尼)를 얻었으며, 뜻과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한 자입니다. 의지가 총명하여 중생들의 성품을 보는 데에 도달한 자입니다.
- 010_0388_c_09L則得長益根力覺意,則得超度生死之患,便得進入於佛聖慧,則得逮近致佛正道,當獲博聞無有倫匹,以過於量悉無有量,智慧辯才而無等侶,逮得摠持志性堅强,意達聰明睹群生性。
- 두루 여러 법을 관찰하되, 그 의도가 결과적으로 선양되는 자입니다. 세간에 사는 사람에게 항상 자비와 불쌍하고 애절히 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 자입니다. 세속의 일을 초월하는 것을 이미 얻은 자입니다. 집착하는 바가 없이 행함이 비유하면 연꽃과 같은 자입니다. 세속 법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는 자입니다. 밝은 지혜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빠짐없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자입니다. 식견이 넓은 사람들이 깊이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온갖 지혜 있는 장부들이 항상 공경하고 순응하는 자입니다. 여러 천신과 세상 사람들이 빠짐없이 받들고 섬기는 자입니다. 선정의 사유에 든 여러 대중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는 자입니다. 슬기롭고 성스러운 여러 대중들이 모두 와서 으뜸으로 모시는 자입니다.
- 010_0388_c_14L偱觀諸法其志果暢,常行慈愍哀世閒人,已得超度世俗之事,行無所著猶如蓮華,不爲俗法之所染污,諸明智者悉愛敬之。諸博聞者多信從之,爲衆智士常所恭順,諸天世人悉奉事之,諸禪思衆稽首爲禮,諸賢聖衆咸來宗侍。
- 010_0389_a_02L 성문과 연각이 함께 흠모하고 축하하는 자입니다. 토지의 행상을 멀리 떠나는 것을 좋아하니,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 없고 이익을 탐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 위신이 우뚝 솟아 슬기롭고 성스러운 이의 자취를 밟는 자입니다. 단정하고 수승하고 단아하고 색이 좋은 용모가 미치기 어려운 자입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 궁극적으로 칭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는 상호를 갖추어 스스로 장엄하는 자입니다. 그는 능히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파악하고 간직하는 자입니다. 그는 여러 교법과 교훈과 귀감이 되는 것에 능히 순응하고 보호하는 자입니다. 슬기롭고 성스러운 대중들에게 중생 제도를 장려하는 자입니다. 여러 부처님의 바른 깨달음을 항상 보는 자입니다.
- 010_0388_c_20L聲聞緣覺所共欽嘉,則好遠離土地之行,則無諂飾不貪利養,威神巍巍履賢聖迹,端正殊雅色貌難及,威曜光光不可稱究,則以相好而自莊嚴,則能執持佛之言教,則能順護諸法訓典,亦能獎濟賢聖之衆,便常逮見諸佛正覺。
- 마땅히 여러 부처님의 눈을 속히 성취할 원인을 지닌 자입니다. 여러 부처님께서 보시고 기별[記]을 주게 되는 자입니다. 그는 마땅히 세 가지 인[三忍]을 획득하고 구족하는 자입니다. 마땅히 부처님의 나무 아래를 찾아가 앉을 자입니다. 능히 악마와 그 관속을 항복시킬 자입니다. 여러 신통과 지혜를 얻어 법륜을 굴리는 자입니다. 여러 부처님 일을 능히 일으키고 세우고 만들어서 깊은 법으로 나아가는 자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 010_0389_a_03L因當速成諸佛之眼,而爲諸佛所見授決,則當獲致具足三忍。尋當得坐於佛樹下,便能降伏魔及官屬,得諸通慧而轉法輪,則能興發造諸佛事,趣於深法不恐不畏不難不懅。
-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제가 1겁 또는 1겁 이상 그와 같은 바른 장부들에 대해서 묻고 드러내고 선양하여도 마지막까지 그 행한 바로 도달하게 되는 복덕의 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실로 여러 부처님의 도가 심오하고 미묘한 것은 그와 같으니 수용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보는 것이 불가능하고, 환히 알기 어렵고, 요지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것을 수용하고 간직하고 읊고 암송하고 읽으며, 또한 받들어 행한다면, 그리고 만일 능히 널리 펴고 두루 시행하게 하고 나누어 베풀며, 다른 사람에게 법을 설한다면, 대중들에게 제일가는 돈독한 믿음을 확립시킬 것입니다.”
- 010_0389_a_08L唯天中天!吾於一劫若復過劫,咨歎顯揚斯正士等,不能究竟得其邊際所行至德,諸佛之道深妙若茲,難受難解不可睹見難曉難了。若有受持而諷誦讀,便復奉行,若能廣演普分布者,於彼法說,則能立衆第一篤信。”
-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여러 바른 대장부에 대해 묻고 답한 것에는 그들의 지극히 진실한 덕이 능히 안온하게 궁극적으로 다 파악되어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궁극적으로 파악한 것은 능히 알지 못하고, 그것에도 능히 미치지 못한다. 여래는 걸림 없는 지혜로써 그 덕을 펴고 창달한다. 그리하여 그 궁극적인 내용을 모두 통달하고 요지한다. - 010_0389_a_14L佛告梵天:“仁所咨嗟諸正士者至眞之德,安能究盡?不能及知如佛所究。如來則以無閡之慧申暢其德,爾乃達了究盡之耳。
- 여래가 설한 구절과 의미와 취지와 의취(意趣)를 그 여러 바른 장부는 빠짐없이 마땅히 요달할 것이다. 그리고 두루 순종하여 거역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바가 지극히 정성스러워 미혹해 하지 않는다. 빠짐없이 바른 의미와 의도를 건립하여 아무 곳으로나 뛰고 달리지 않는다. 장엄하고 장식하는 일에 있어서 밝으니, 상응하는 언사에 있어서와 같다. 곧 여래가 자세히 말하고 가르치는 바와 같아서 비유하자면 위대한 성인이 정성스러운 진리의 법을 강설하는 것과 같다.
- 010_0389_a_18L如來所說句議旨趣,斯諸正士悉當了達,而普順從不爲逆亂,所爲至誠不爲迷惑,悉建正議志不馳騁,於嚴飾事曉如應辭,猶若如來所演言教,譬若大聖講誠諦法。
- 010_0389_b_02L또한 만일 여래가 법을 설하면 다시 이것을 초월하여 문장과 구절을 장엄하고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능히 존재하는 것에 순응하는 것도 없고, 거스르는 것도 없고, 제어하는 것도 없고, 통달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모두 깨닫거나 요달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통달하고 식별하고 불방일(不放逸)하다. 그리하여 장엄하고 장식하는 데 있어 언사로써 알게 된 바를 따르지 않는다. 만일 언사가 없다면 그것이 곧 여래가 설법하는 언사이다. 여래가 가히 강설하는 경이라는 것은 방편으로 법을 선양하는 것이다. 여래는 끝이 없는 슬픔을 일으켜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널리 진술한 것이다.”
- 010_0389_a_22L又若如來所說法者,復超於此嚴飾章句,不能究盡覺了所有,無循無逆無制無通,爾乃達識而不放逸在於嚴飾,不循言辭之所知也。設無言辭,則是如來說法之辭,如來所可講說經者方便宣法,如來加以興無極哀,而爲衆生敷陳經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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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능히 여래의 5력(力)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치료하는 것에 대해 분별하고 요지한다면 이것을 보살이라고 하니, 능히 여러 부처님의 일을 건립하고 만들 수 있다.” - 010_0389_b_06L佛告梵天:“假使菩薩能分別了如來五力所因療治,是爲菩薩,則能建立造諸佛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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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일컬어 여래께서 5력으로 치료한 것이라고 합니까?” - 010_0389_b_08L又問世尊:“何謂如來五力所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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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인께서 답하여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법에 관련된 언사가 있고,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설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잘 권하는 방편이 있고, 법을 밝게 드러내어 구절의 의미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도의 자취를 분별하여 큰 자비에 들어가는 것이 있다.”
부처님께서 다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여래가 5력으로 치료하는 것이라고 하니,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 등이 능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 010_0389_b_09L大聖答曰:“謂法言辭入如應說,善㩲方便光顯於法不失句義,分別道迹入於大哀。”佛言:“梵天!是爲如來五力所療,一切聲聞緣覺之等所不能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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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언사로써 여래께서는 가르침을 연설하십니까?” - 010_0389_b_13L又問世尊:“以何言辭如來演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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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가르침이 있다. 애욕에 더럽혀진 말이 있고, 전도된 말이 있다. 세속적인 말이 있고, 세속을 건넌 말이 있다. 유루(有漏)에 관한 말이 있고, 무루에 관한 말이 있다. 집착하는 것에 관한 말이 있고, 집착이 없는 것에 관한 말이 있다. 유죄의 말이 있고, 무죄의 말이 있다. 존재하는 것에 관한 말이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말이 있다. 자아와 인간과 수명(壽命)이라는 조작되어 증득된 언사가 있다. 생사윤회 또는 멸도에 관한 언사가 있다. - 010_0389_b_14L世尊告曰:“過去當來現在之教,欲塵之語顚倒之言,世俗度世,有漏無漏,所著無著,有罪無罪,所有無有,我人壽命逮造證辭,周旋生死滅度之辭。
- 범천아, 이것이 여러 가지 언설이요, 온갖 언사라는 것이다. 언사를 허깨비와 같이 관찰해야 하니,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사를 꿈과 같이 관찰해야 하니, 실제가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언사를 되돌아오는 메아리와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소리에 의존하고 대하는 까닭이다. 언사를 그림자와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인연이 화합한 존재가 드러난 까닭이다. 언사를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비치어서 나타나는 까닭이다. 언사를 흔적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도장을 찍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언사를 불꽃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전도된 채로 보는 까닭이다. 언사를 빈 것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존재하는 것이 다해 버린 까닭이다. 언사를 말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하니,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 010_0389_b_18L是爲,梵天!諸所言說斯衆辭者。觀辭如幻無所成故,觀辭如夢見無實故,觀辭如響報應緣對聲故,觀辭如影現緣合有故,觀辭如鏡像照現故,觀辭如形印之有故,觀辭如㷿顚倒見故,觀辭如空所有盡故,觀辭無言不可得故。”
-
010_0389_c_02L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이 제법의 언사를 환하게 안다면 이 보살은 제법의 언사를 강설할 수 있다. 또 제법에 대해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없으니, 기대는 것이 없기 때문에 걸림 없는 변재를 능히 얻게 된다. 걸림 없는 변재를 능히 얻게 됨으로써 그는 여러 걸림이 있는 대중을 위해 평등한 것을 밝게 드러낼 수 있다. 또한 똑같은 곳에서 경의 법을 강설해도 걸리는 일이 없다. 일체의 언사에 있어서 법의 성품을 부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언사에서 노닐지만 그것은 부서져야 할 것이기에 어느 것에도 기대는 일이 없다. - 010_0389_b_24L佛語梵天:“假使菩薩能曉了此諸法言辭,是菩薩者乃能講說諸法言辭。又於諸法無所依倚,以無所倚則能逮得無㝵辯才,以能逮得無㝵辯才,則能爲諸罣閡之衆顯曜平等,亦與同處講說經法而不質閡,於一切辭不壞法性,遊諸言辭及所破壞悉無所倚。
- 범천아, 설사 여래가 설한 것이라 하더라도 언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곧 법을 강설하는 것이 된다. 범천은 어느 곳에서 보살이 여래에 대하여 참된 진리의 일을 행하는 것인지와 그에 대해 선하게 권하는 방편에 대해 알고자 하였다. 범천아, 여래는 번뇌에 결박[結]과 한(恨)이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결박과 한에 더러움과 피로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보살은 마땅히 빠짐없이 그러한 거취를 환하게 알아야 한다.
- 010_0389_c_08L設使,梵天!如來所說,顯無言辭則爲講法。梵天!欲知何所菩薩而於如來行誠諦事?善㩲方便于斯?梵天!如來於塵而現結恨,又於結恨而現塵勞,菩薩悉當曉了彼趣。
- 범천아, 무엇을 여래가 더러움에서 결박과 한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느냐? 더러움과 피로함은 자연적으로 평등하여 차별이나 특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결박과 한에 더러움과 피로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결박과 한에 의지하여 은혜와 보시와 열반과 청정함을 행한다. 말하자면 여러 어리석은 자들은 온갖 번뇌가 지닌 근심을 환히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010_0389_c_13L何謂,梵天!如來於塵而現結恨?塵勞自然等無差特故,又於結恨而現塵勞,依於結恨而行惠施泥洹淸淨,謂諸愚戇不能曉了衆惱之患故。
- 또한 그 보살은 온갖 보시할 만한 일에 대해서 환히 안다. 그것은 나중 세상에서 큰 보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취가 없다. 거취가 없는 것은, 말하자면 무위의 금기(禁忌)이니 참된 열반이다. 그들에게는 모두 존재하는 것도 없으며, 해당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 010_0389_c_17L又彼菩薩,曉了所有布施之事,後世大寶故,則無所趣。無所趣者則曰無爲禁誡泥洹,悉無所有亦無所行故。
- 010_0390_a_02L인욕(忍辱)은 무위이니, 허위이며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정진(精進)도 무위이니, 뜻을 준수하고 닦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정(禪定)도 무위이니, 즐거워할 바가 없는 까닭이다. 지혜(智慧)도 무위이니, 모습을 잡고 얻은 까닭이다. 탐욕에 대해서는 탐욕을 떠나는 것이 본래의 실제이니 법의 성품에는 애욕이 없는 까닭이며, 진에(瞋恚)을 여의는 것이 본래의 실제이니 법의 성품에는 결박과 한이 없다고 헤아리는 까닭이다.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이 본래의 실제이니 법의 성품에는 어리석음이 없다고 헤아리는 까닭이다. 생사가 무위의 본래의 실제라는 것은 생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위라는 것은 생사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정성스러움을 허망함이라고 하는 것은 언사를 본 것에 불과하며, 허망함을 지극히 정성스러움이라고 한 것은 곧 교만함과 방자함에 이른 것이다.
- 010_0389_c_20L忍辱無爲虛無所有故,精進無爲遵修意故,禪思無爲無所悅故,智慧無爲逮得相故。於欲離欲之本際者法性無欲故,瞋恚本際計於法性無結恨故,愚癡本際計於法性無愚癡故,生死無爲之本際者則無所生,其無爲者不倚生死,至誠虛妄所見言辭,虛妄至誠則致慢恣。
- 다시 범천아, 여래는 차례대로 진실한 진리를 원인으로 하고, 그 인연을 따르기에 상주하는 것이 있다고 헤아린다. 또한 나의 자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을 배제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또한 삿된 견해를 가진 자임을 자처하기도 하고 돈독한 믿음이 없는 자임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것은 반대되는 업을 일으키고 만들어서 반대되고 되풀이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곧 믿음이 없는 것을 제거하고 소원을 빠짐없이 제거한다. 삿된 견해를 가진 자를 여래는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을 위하여 분별하고 설한다. 상응하는 것을 보는 자가 있으니 여래는 그를 위하여 참된 진리의 가르침을 설한다. 가령 중생이 버릴 점이 많고 손상된 자이면서 스스로 위대한 일을 하는 자라는 교만을 지니어 스스로를 높이면 여래가 곧 참된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그에게 강설하는 것이다.
- 010_0390_a_04L復次,梵天!如來次第而因眞諦,隨其因緣而計有常,知有吾我則爲蠲除非議之事,其邪見者而無篤信,興造反業令知反復,去於無信悉除所願。邪見身者如來悉知,便爲斯等分別說之,見所應者如來則爲說誠諦教。假使衆生棄捐貢高自大事者,如來則以已誠諦教而講說之。
- 범천아, 이것이 여래ㆍ지진(至眞)이 하는 일이니, 지진은 보살에게 그것에 관하여 말하고 가르친다. 그러면 마땅히 보살은 그 방편의 행을 깨달아 알게 되니, 만일 이 모든 설한 것으로 권화와 방편에 돌아가게 하면 여래를 만난 자는 문득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사악하지 않은 일에 대해 돈독하게 믿는 자는 곧 여러 색신의 과보와 상응하는 바를 보아 중생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문득 여래로 인하여 해탈을 얻게 된다.
- 010_0390_a_12L是爲,梵天!如來、至眞至眞言教,菩薩於彼則當曉了斯方便行。設使歸此一切所說㩲方便者,如來興者便得解脫。於非邪事而篤信者,則見諸色之所報應而起衆生,便因如來得解脫也。
- 만일 법신을 연설하면 문득 여래의 진실한 진리[眞諦]의 언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사악한 법에서 해탈하여 강한 믿음을 행하게 된다. 법으로 말미암아 문자를 공경하고 헤아리는 자는 중생의 무리이니, 그들을 위하여 그것을 설할 수 없다. 삿된 견해의 법에서 해탈하고 일찍이 이것을 믿은 적이 없으며, 또한 얻은 바도 없고 차별하는 것도 없다.
- 010_0390_a_17L若演法身便爲如來眞諦之辭,解脫邪法而行篤信,因法而度敬文字者,衆生之類不爲說此,解邪見法未曾信斯,亦無所得亦無差別。
- 010_0390_b_02L열반이 있다고 말하면 곧 잘못된 믿음이 된다. 전도된 더러움과 피로함에 거처하는 것은 무위이며 멸도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믿고 해탈을 얻는 것이다. 생하는 바가 없는 법은 여러 법을 부수지 않는다. 또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잘못된 믿음이 된다. 고요함에 들어가 건너려고 하지만 문득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잘못된 자는 곧 스스로 진실한 진리의 일에서 벗어난 것이다.
- 010_0390_a_21L言有泥洹則爲邪信;處於顚倒塵勞無爲無有滅度,斯則爲信而得解脫,無所生法不壞諸法。言有人者則爲邪信,入於寂然而欲度者便無有人,其邪信者卽自解脫眞諦之事。
- 그러므로 범천아, 이것에 있어서 보살이 진실한 진리의 언사가 권화(權化)이고 방편(方便)임을 능히 통효하여 알면1) 일체의 소리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한량없는 사람과 중생의 무리를 위하여 열어 주고 인도하고 이롭게 한다.
- 010_0390_b_03L是故,梵天!於斯菩薩,不能曉了眞諦言辭㩲方便者,於一切音無所恐畏,爲無量人衆生之類,開導利義。
- 그에 있어서 범천아, 여래ㆍ지진은 어떤 방편으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가? ‘보시하는 자는 큰 부귀함을 얻으며, 계율을 간직한 자는 천상에 태어나며, 인욕하는 자는 단정해지며, 정진하는 자는 밝음을 얻는다. 만일 선정에 드는 자는 희열에 도달하고 산란하지 않다. 지혜를 배운 자는 더러움과 피로함과 애욕에의 집착을 멸진하고 제거한다. 많이 들은 자는 빠르게 지혜를 얻고 열 가지 선을 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천상에 있게 되거나 인간에 머물게 된다. 자비와 기쁨과 평정을 실천하여 범천에 오르게 된다. 고요하고 담백한 것을 관찰하여 결과를 획득하고 유학(有學)의 경지에 도달하고, 나아가 무학(無學)의 경지와 연각(緣覺)의 경지와 청정한 부처님 중우(衆祐)의 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설한다. 그리하여 시현한 지혜는 그 끝이 없고 열반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대하여 일체의 괴로움을 멸진한다.”
- 010_0390_b_06L于彼,梵天!如來、至眞以何方便,爲衆生說法?其布施者得大富有,持戒生天,忍辱端正,精進獲明,若禪思者致悅不亂,學智慧者滅除塵勞愛欲之著,若博聞者疾逮智慧,行於十善乃得處天及在人閒,行慈悲喜護致昇梵天,觀察寂然澹泊獲果致逮學地,得不學地緣覺之地,淸淨衆祐佛之道地,所示現慧無有邊際,等於泥洹滅一切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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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나는 곧 그때 훌륭한 권화와 방편을 쓴 것이니, 여러 중생을 위하여 베풀고 알리고 드러내어 보인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이 상법(像法)이니, 여래는 일찍이 마음으로 온갖 생각을 품어서 나의 자아와 사람과 수명(壽命)을 헤아린 적이 없는 것이다. - 010_0390_b_15L佛言:“梵天!吾則應時善㩲方便,爲諸衆生布告顯示,如是像法,如來未曾心懷衆想,計吾我人壽命也。
- 여래가 행한 바는 또한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인색하고 탐착하는 것이 없고, 또한 베푸는 것도 없다. 또한 계율을 간직하는 것도 없고, 금기를 어기는 것도 없다. 또한 인욕하는 것도 없고, 화내는 것도 없다. 또한 정진하는 것도 없고, 게으른 것도 없다. 또한 선정에 드는 것도 없고, 그 뜻이 산란한 일도 없다. 또한 지혜도 없고 어리석은 일도 없다. 또한 도가 있다는 것도 없고, 멸도하는 것도 없다. 안락해 하는 것도 없고, 온갖 근심도 없다.”
- 010_0390_b_18L如來所行亦無所得,亦不慳貪亦無所施,亦不持戒亦不毀禁,亦不忍辱亦不瞋恚,亦不精進亦不懈怠,亦不禪定亦不亂意,亦不智慧亦不愚癡,亦無有道亦不滅度,亦無所安亦無衆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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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90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중생을 교화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고, 오로지 닦고 받들어 행하게 한다.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고 오로지 닦고 받들어 행하게 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마땅히 이 법에 들어가야 하니, 본래 의도한 서원과 같아야 한다. 혹은 예류과[預流果:道跡, 須陀洹)ㆍ일래과[一來果:往來, 斯陀含]ㆍ불환과(不還果:阿那含)ㆍ무착(無著:阿羅漢)과 연각(緣覺)에 이르기까지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성취하는 데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위(無爲)에 이르러 건너는 경우도 있다. - 010_0390_b_23L佛言:“梵天!教化衆生使令精勤專修奉行,所因精勤專修奉行,當入斯法如本志願,或有獲致道迹、往來、不還、無著至於緣覺,若復得入逮成無上正眞之道,至無爲度。
- 범천아, 이것은 여래ㆍ지진의 훌륭한 권화와 방편이니,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부연하고 진술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보살이 마땅히 중생을 위하는 훌륭한 권화와 방편이니, 큰 자비를 일으켜서 항상 바른 법으로 그런 것을 권장하고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 010_0390_c_05L是爲,梵天!如來、至眞善㩲方便,而爲衆生敷陳經典。彼又菩薩當爲衆生善㩲方便,興設大哀,常以正法而獎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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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일컬어 여래가 설한 것이라고 합니까?”
“법에는 눈이 없으니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으니, 벗어나는 일이란 없다. 왜냐하면 눈은 곧 공이니 나[我]가 있지도 않고, 또한 나의 소유[我所]도 없어 곧 모두가 본래 청정한 것이다.” - 010_0390_c_08L“何謂如來之所說者?”“法無有眼亦無有脫,耳鼻口身意亦復如是無有脫者。所以者何?眼者則空而無有吾亦無我所,則悉本淨,耳鼻口身意亦復如是,彼則爲空,便無有吾亦無我所,則悉本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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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이 일체는 모두 해탈의 범주에 돌아간다. 그리고 그 돌아가는 곳은 현혹되는 곳이 아니다.2)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이 여섯 가지가 또한 그러하다.
일체의 법은 모두 빠짐없이 공이고 무상(無想)이고 무원(無願)이며, 일어나는 것이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또한 머무는 것도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없다. 말하자면 뜻에 머무는 일이 없이 생하는 것이니, 본래 청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담백한 것이며, 고요한 것이다.” - 010_0390_c_13L佛言:“梵天!是爲一切悉歸脫門,有所歸趣爲之眩惑,色聲香味細滑法,其六事者亦復如是,一切諸法皆悉爲空,無想無願無起無滅,亦無有住亦不不住,所可謂者意不住生,本淨自然澹泊寂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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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는 일체의 문자로써 해탈의 범주를 연설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문구를 원만하게 제어함으로써 두루 문자에 수순하여 마음으로 마땅히 그것을 관찰하니, 그것이 진실한 진리의 가르침인 것이다. 여래는 일체의 분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탈에 이르게 한다. 감히 설하셨던 것은 모두 참된 진리의 구절들이다. 여래가 경을 설하면 티끌이나 수고스러운 것이 없다. 연설한 법은 모두 해탈에 들어가고3) 멸도로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여래가 설한 전적(典籍)이다.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이라고 한다.” - 010_0390_c_19L佛言:“梵天!如來一切悉以文字演爲脫門,或以等御癡騃之句,普順文字,心當觀之爲眞諦教,如來一切所可分別悉至解脫,敢可說者悉誠諦句。如來說經無有塵勞,所演法者皆無解脫歸滅度也,是爲如來所說典籍,斯謂菩薩所當學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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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91_a_02L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ㆍ지진은 어떤 방편에 입각하여 두루 큰 자비를 닦는 것이며, 중생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는 것인가?
여래는 곧 서른두 가지 일로써 일으키고 전달하니, 큰 자비를 더하여 중생을 제도한다. 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인가? - 010_0391_a_03L佛告梵天:“如來、至眞以何方便遍修大哀,而爲衆生講說法乎?如來則以三十二事有所發遣,而加大哀濟于衆生。何爲三十二?
- 첫째, 나의 자아란 없으니, 일체 법에서 중생의 부류로 하여금 몸이 없음을 이해하고 믿게 해야 한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둘째, 일체 법에서 중생은 사람이 있지도 않은데 반대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셋째, 일체의 제법에는 명근(命根)이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명근이 있다고 헤아린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넷째, 일체의 제법에는 수명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수명이 있다고 헤아린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 010_0391_a_06L無有吾我,於一切法令衆生類解信無身,如來於彼而興大哀一;於一切法衆生無受而反有人,如來於彼興發大哀二;一切諸法則無有命,而衆生反計有命,如來於彼興顯大哀三;一切諸法而無有壽,而衆生反計有壽,如來於彼興顯大哀四。
- 다섯째, 일체의 제법은 무소유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처소가 있다고 헤아린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여섯째, 일체의 제법은 도무지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의지하고 집착할 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곱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허무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즐길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덟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나[我]라는 자아가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나라는 자아가 있다고 헤아린다.
- 010_0391_a_13L一切諸法爲無所有,而衆生反計有處所,如來於彼興顯大哀五;一切諸法都無所依,而衆生反有所倚著六;一切諸法悉爲虛無,而衆生反志有所樂七;一切諸法悉無吾我,而衆生反計有吾我八。
- 아홉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주인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오로지 뜻으로 탐착하고 받아들인다. 열째, 일체의 제법은 수용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모습에 의지하고 기댄다. 열한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생겨난 일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생겨나는 것에 집착한다. 열두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생사에 탐착한다.
- 010_0391_a_19L一切諸法悉無有主,而衆生反專志貪受九;一切諸法悉無可受,而衆生反依倚形貌十;一切諸法悉無所生,而衆生反著於所生十一;一切諸法悉無有沒,而衆生反貪於生死。十二。
- 010_0391_b_02L열셋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애욕의 티끌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티끌과 더러움에 빠지고 잠긴다. 열넷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탐착과 욕심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오염되어 있다. 열다섯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성냄과 노여움을 떠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분노를 품고 원한에 맺힌다. 열여섯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어리석음을 떠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미혹하게 된다.
- 010_0391_a_24L一切諸法悉無欲塵,而衆生反沒溺塵垢十三;一切諸法悉無貪欲,而衆生反爲所染污十四;一切諸法悉無恚怒,而衆生反懷愶結恨十五;一切諸法悉無愚癡,而衆生反爲之迷惑十六。
- 열일곱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온 곳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나아가는 것을 즐기고 그것에 기댄다. 열여덟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가는 곳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끝과 처음이라는 것에 의지한다. 열아홉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짓고 행하는 것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열심히 수행할 것을 건립한다. 스무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방일함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방종하고 방자하게 뛰고 달린다.
- 010_0391_b_05L一切諸法悉無所從來,而衆生反樂倚所趣十七;一切諸法悉無所趣,而衆生反依于終始十八;一切諸法悉無造行,而衆生反務建所修十九;一切諸法悉無放逸,而衆生反馳騁縱恣二十。
- 스물한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공이며 청정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본 것에 머문다. 스물두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생각함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행하여 그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스물셋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바람이 없는 것[無願]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요행으로 얻는 것에 뜻을 둔다. 스물넷째, 이미 멀리 떠났는데도 몇 가지 일에 집착하는 바가 있는 자에게는 세속은 괴롭고 분노하는 곳이며 원한을 맺는 곳이어서 근심하고 싫어하는 것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원수 및 적과 함께하지 않으려고 하나 모이고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여러 참을 수 없는 곳에서 어질게 화합해야 한다.
- 010_0391_b_10L一切諸法悉爲空靜,而衆生反處於所見二十一;一切諸法悉爲無想而衆生反想,行爲上二十二;一切諸法悉無有願,而衆生反志于所僥二十三;已爲遠離若干種事,有所受者,世俗所怙瞋怒結恨,所獲患厭不與怨敵而集會也,及諸不忍處於仁和二十四。
- 스물다섯째, 전도된 것을 준수하고 닦으니 세간에서 익히는 것은 사악한 길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에게 능히 태어나야 할 곳을 포기하고 제거하게 해야 한다. 스물여섯째, 그는 길을 살피는 일 없이 나아가니 세속에서 의지하는 바인 재물과 이익에 의하여 괴롭게 된다. 그러면서도 뜻으로 모든 자산과 사업을 그리워한다. 그를 마땅히 억제하여 욕심내는 일이 없도록 하여 슬기롭고 성스러운 재화를 구족하게 하고, 믿음[信]ㆍ계율[戒]ㆍ부끄러움[慚愧]ㆍ들음[聞]ㆍ보시[施]ㆍ지혜(智慧)를 건립하여 이에 일곱 가지 재산을 구족하게 한다.
- 010_0391_b_17L遵修顚倒爲世所習遊於邪徑,則能棄除所生之處二十五;彼則無有審道所趣,則爲煩憒得于財利世俗所依,則而志慕一切資業,當以抑制諸無厭欲,卽使具足賢聖之貨,信戒慚愧聞施智慧,建立於此具足七財二十六。
- 010_0391_c_02L스물일곱째, 나는 중생을 은혜와 사랑의 노예라고 일컬으니, 중생들은 그것들이 견고하지도 요긴하지도 않은데 견고하고 요긴하다는 생각을 한다. 재산과 사업과 집과 거처와 처자가 있어 즐겁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편안한 것이 못된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은혜와 사랑의 노예라고 한 것이다. 중생들은 견고하지도 요긴하지도 않은데 견고하고 요긴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을 위하여 강설하니 상주하는 것이 있다고 헤아리는 자에게 무상함을 드러내어야 한다. 스물여덟째, 중생이란 재산과 이익과 사업을 구하지만 그것은 원수라고 나는 일컫는다. 그러나 중생들은 반대로 그것이 친한 벗이라고 하니, 나는 친한 벗의 행을 건립하고 드러내어 힘들고 괴로운 근심을 제거하고 궁극적인 멸도를 성취하게 한다.
- 010_0391_b_23L吾謂衆生爲恩愛傼,以無堅要爲堅要想,財業家居妻子之娛便無有安,所以謂之爲恩愛僕,衆生之類無有堅要爲堅固想,當爲講說計有常者,爲現無常二十七;吾謂衆生求財利業,則爲仇怨,而反謂之爲是親友,吾爲建立顯親友行,而爲蠲除勤苦之患,究竟滅度二十八。
- 스물아홉째, 중생이란 반대로 사악한 업으로 생계를 꾸려간다고 나는 일컫는다. 그리고 각각 몇 가지 말과 가르침에서 머문다. 이들을 위하여 마땅히 청정하고 미묘한 무업(無業)의 명령을 강설하고 분별하고 설법한다. 서른째, 중생이란 여러 가지 티끌과 더러움에 있으면서 오염된 것을 나타낸다고 나는 일컫는다. 집에서 거주하는 일에는 근심과 손해가 많고 힘든 사무도 많다. 이들을 위하여 삼계를 벗어나고 일제히 함께 건널 수 있도록 설법한다.
- 010_0391_c_07L吾謂衆生以反邪業,各各處於若干言教,當爲講說淸淨微妙無業之命,分別說法二十九;吾謂衆生爲諸塵垢而現污染,於家居事多有患害擾攘之務,而爲說法當令出去等度三界三十。
- 서른한째, 일체의 제법이 지어지는 곳에 거처하니, 그것은 탐욕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나고 머문다. 온갖 인연들이 거처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세워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곳에서 닦기를 게을리 한다. 그리하여 이들을 위하여 성스러운 해탈에 이르도록 설법하고 정진을 권하여 견고하고 긴요한 것으로 건너게 하고, 경의 법을 설하여 빠짐없이 안락함을 획득하게 한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다시 반대로 걸림 없는 지혜를 버린다. 서른두째, 하천한 성문과 연각에 대하여 가장 존귀한 멸도라고 뜻을 둔다. 그리하여 마땅히 이들을 위하여 미묘한 행을 드러내고 보여 주려 한다. 여래는 이로 인하여 중생에게서 큰 자비를 일으키고 천명하는 것이다.”
- 010_0391_c_12L處於所作一切諸法,因貪起住衆緣所處諸立之相,衆生於彼而修懈廢,當爲說法至聖解脫,勸令精進爲度堅要,而說經法悉使獲安,又加於是而復反捨無閡之慧三十一;最尊滅度志于下賤聲聞緣覺,當爲顯示微妙之行,如來因此則於衆生興闡大哀。”
-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이것이 서른두 가지 일이니 여래가 중생을 열어서 인도하고 수순하고 교화하며 큰 자비를 널리 펴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여래가 큰 자비를 행한다고 한다.” - 010_0391_c_19L佛告梵天:“是爲三十二事,如來開導順化衆生,敷弘大哀;斯爲如來謂行大哀。”
-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만일 보살로서 이러한 서른두 가지 일을 받들어 행하고 큰 자비를 합하고 모으는 자가 있다면 이러한 보살은 위대한 중생[大士]으로서 이름하여 큰 복전이며 큰 위신력을 지닌 자라고 한다. 그는 우뚝 솟은 것을 좋아하여 불퇴전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필요한 행을 만들어 세운다.” - 010_0391_c_21L佛告梵天:“若有菩薩奉行於斯三十二事,合集大哀,如是菩薩爲大士者,名大福田,爲大威神,樂於巍巍至不退轉,爲衆生故而造立行。”
- 010_0392_a_02L부처님께서 이러한 큰 자비에 관한 법문의 품을 설하셨을 때 3만 2천 사람이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마음을 일으켰고, 3만 2천의 보살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
010_0392_a_02L佛說此大哀法門品時,三萬二千人發無上正眞道意,三萬二千菩薩得不起法忍。
持心梵天所問經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 1)원문에는 “환히 알지 못하면[不能曉了]”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역본(異譯本)인 구마라집이 한역한 『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에는 ‘불(不)’자가 없다. 문맥상 없어야 하므로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 2)원문에는 “현혹되는 것이다[爲之眩惑]”로 되어 있지만 『사익범천소문경』에 의거하여 부정문으로 번역하였다.
- 3)원문에는 “해탈함이 없다[無解脫]”로 되어 있으나 『사익범천소문경』에 의거하여 “해탈로 들어간다[入解脫]”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