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伽耶山頂經

ABC_IT_K0225_T_001
011_0435_a_01L대승가야산정경(大乘伽耶山頂經)
011_0435_a_01L大乘伽耶山頂經


대당(大唐) 천축 보리류지(菩提流志) 한역
김철수 번역
011_0435_a_02L大唐天竺三藏菩提流志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1_0435_a_03L如是我聞
어느 때 세존[婆伽婆]께서는 가야성(伽耶城)의 산꼭대기에 있는 정사(精舍)에서 큰 비구 대중 천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과거에 모두 장발 범지(長髮梵志)였으나, 모두 아라한이 되어 온갖 번뇌[漏]가 이미 다하였고, 해야 할 일을 다했으며, 온갖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체득(逮得)하였으며, 모든 번뇌의 결박을 다하였고, 바른 지혜로 해탈하여 마음이 자재함을 얻어 피안에 이르렀다. 또한 한량없는 보살마하살 무리들과 함께 계셨다.
011_0435_a_04L一時婆伽婆住伽耶城山頂精舍與大比丘衆一千人俱其先悉是長髮梵志皆阿羅漢諸漏已盡所作已辦捨諸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正知解脫心得自在到於彼岸復與無量諸菩薩摩訶薩衆俱
그때 세존께서는 정각을 이루셨던 날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고요히, 그리고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삼매에 드시어 법계를 관찰하시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셨다.
011_0435_a_09L爾時世尊得成正覺其日未久寂然宴坐入于三昧觀察法界作是念言
‘나는 이미 보리(菩提)를 증득하였고, 이미 성스러운 지혜를 얻었으며, 이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했고, 이미 모든 무거운 짐을 버렸으며, 이미 생사의 광야를 벗어났고, 이미 무명(無明)을 버리고 떠나 지혜의 밝음[智明]을 획득했으며, 이미 독화살을 뽑았고, 이미 갈애를 다했으며, 이미 법계를 증득하였고, 이미 법고(法鼓)를 쳐 울렸으며, 이미 법의 소라를 불었고, 이미 법의 당기[幢]를 세웠으며, 이미 생사의 눈[眼]을 버리고 떠나 법안(法眼)으로 설했으며, 이미 악도(惡道)를 닫아 버리고 갖가지 선도(善道)를 열었으며, 이미 밭[田]이 아닌 것을 버리고 온갖 복 밭[福田]을 나타내 보였느니라.
011_0435_a_11L我已證菩提已得聖智慧已辦所應已捨諸重擔已出生死曠野已捨離無明獲於智明已拔毒箭已盡渴已證法界已擊法鼓已吹法螺建法幢已捨離生死眼說於法眼閉惡道開衆善道已捨非田示諸福
내가 지금 이와 같은 법을 세밀히 관찰하건대 누가 현재 증험할 수 있으며, 이미 증험했으며, 장래에 증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들은 몸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인가?
011_0435_a_18L我今審觀如是之法誰能現證當證爲身證耶爲心證乎
만일 몸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몸은 우둔하고 헤아림[覺]도 없고 생각함[思]도 없으니, 마치 풀이나 나무, 담장이나 벽, 기와나 돌과 같으며, 4대(大)로부터 비롯되어 부모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무상(無常)하고 무너지고 흩어져 멸하는 법이니, 반드시 바르고[塗] 씻고 옷 입고 음식을 먹는 등의 조건[緣]을 가탁하여 존립할 수 있느니라.
011_0435_a_19L若身證身是頑鈍無覺無思猶如草木瓦石從於四大父母所生無常敗壞散滅之法必假塗食等緣而得存立
011_0435_b_02L만일 마음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이란 마술사가 변화해 낸 것[幻化]과 같아 모습이나 형태가 없고, 의지할 처소도 없고, 수용해 받아들일 바도 없느니라.
011_0435_b_02L若心證者心如幻化無相無所依處無所容受
또 보리란 세간에 수순(隨順)하여 명자(名字)를 세운 것이니, 음향(音響)도 없고 형색(形色)도 없으며, 실체를 이룸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가거나 옴도 없으며, 나가거나 들어옴도 없어 삼계(三界)를 초월하여 처소가 없으며, 보거나 들을 수도 없고 기억하거나 생각할 수도 없으며, 반연한 처소를 떠나고 희론(戱論)의 경계가 아니며, 들어갈 바도 없고 문자도 없으며, 동요함도 없고 안립할 수도 없느니라.
011_0435_b_03L又菩提者於世閒而立名字無音響無形色成實無相狀無來無去不出不入於三界無有處所不可見聞不可憶離攀緣處非戲論境無所入無文不可動搖不可安立
일체의 언어의 길이 끊어지니 현재 증험한다든가 이미 증험했다든가 장래에 증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직 명자일 뿐이니 허망하게 분별한 것에 불과하며, 생겨나고 일어남도 없고 체성(體性)도 없어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애착할 수도 없느니라. 이 가운데는 진실로 이미 정각을 이루었다거나 현재 정각을 이룬다거나 앞으로 장래에 이룰 것이라거나 하는 것은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증득함도 없고 이루어짐도 없을 수 있다면 정각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느니라. 왜냐하면 보리라는 것은 일체의 변동하는 모습을 떠나기 때문이니라.’
011_0435_b_08L絕於一切語言之道而言現證已證當證但惟名字虛妄分別無生無起無有體性可取不可說不可愛著是中實無已成正覺現成正覺及當成者若能如是無證無成乃得名爲成正覺耳以故菩提者離於一切變動相故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서 생각하신 바를 알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리가 이와 같은 모습이라면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보리심을 일으켜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011_0435_b_14L爾時文殊師利菩薩摩訶薩知佛所而作是言世尊若菩提如是相者諸善男子善女人發菩提心應云何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문수사리여, 보리의 모습[相]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느니라.”
011_0435_b_18L佛言文殊師利如菩提相應如是
문수사리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리의 모습입니까?”
011_0435_b_19L文殊師利菩薩言世尊何者是菩提相
011_0435_c_02L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문수사리여, 보리의 모습은 홀로 삼계를 초월하느니라. 비록 세속을 따라 명자(名字)가 존재하더라도 본래는 일체의 음성과 언설을 멀리 여의느니라. 모든 보살 무리가 보리를 향해 나아가더라도 초발심으로부터 나아갈 것이 따로 없느니라.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모든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일으켜 나아간다[發趣]는 마음을 멀리 여의고 보리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보살이 나갈 것이 없는 바에 일으켜 나아가는 것이 곧 보리의 도(道)를 향해 나아감이니라.
011_0435_b_20L佛言文殊師利菩提相者獨超三界雖隨世俗而有名字遠離一切音聲言說諸菩薩衆發趣菩提從初發心則無所趣是故文殊師利諸善男子善女人應以遠離發趣之心而住菩提文殊師利若諸菩薩能發趣於無所趣者是則趣向菩提之道
문수사리여, 자성이 없음[無自性]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처소가 없는 곳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법계의 성품[法界性]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일체의 법 가운데 집착함이 없는 것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실제(實際)의 차별 없음[無差別]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예컨대 거울에 비친 모습이나 빛 속의 그림자나 물속의 달이나 뜨겁게 타오를 때의 불꽃과 같은 것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라.”
011_0435_c_03L文殊師利趣於無自性是趣向菩提趣於無處所是趣向菩提趣於法界性是趣向菩提趣於一切法中無所執著是趣向菩提趣於實際無差別是趣向菩提趣於如鏡中像如光中如水中月如熱時焰是趣向菩提
그때 그 대중 가운데 정월위광(淨月威光)이라는 천자가 있었다. 그는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大士)시여, 모든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어떤 행(行)을 닦고 어떤 곳을 의지하여 닦습니까?”
011_0435_c_09L爾時衆中有天子名淨月威光白文殊師利菩薩言大士諸菩薩摩訶薩修習何行依何處修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천자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대비행(大悲行)을 닦고 일체 중생의 처소를 의지해 닦습니다.”
011_0435_c_12L文殊師利菩薩天子諸菩薩摩訶薩修大悲行於一切衆生處修
정월(淨月) 천자가 다시 물었다.
“보살의 대비(大悲)는 어떤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5_c_14L淨月天子又問言菩薩大悲依何心起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보살의 대비는 아첨하거나 속임이 없는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5_c_15L文殊師利菩薩菩薩大悲依無諂誑心起
또다시 물었다.
“아첨하거나 속임이 없는 마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5_c_16L又問言無諂誑心依何而起
답하였다.
“아첨하거나 속임이 없는 마음은 일체 중생의 평등한 마음을 의지해 일어납니다.”
011_0435_c_17L答言無諂誑心依於一切衆生平等心起
“일체 중생의 평등한 마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5_c_18L又問於一切衆生平等心依何而起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非一非異] 법성(法性)에 들어가는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5_c_19L答言依於入非一非異法性心起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법성에 들어가는 마음은 무엇을 의지해 일어납니까?”
011_0435_c_20L又問入非一非異法性心依何而起
“깊은 신심(信心)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5_c_21L答言依深信心起
“깊은 신심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又問深信心依何而起
“보리심(菩提心)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5_c_22L答言菩提心起
“보리심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又問菩提心依何而起
“6바라밀(波羅蜜)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5_c_23L依六波羅蜜起
“6바라밀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5_c_24L又問六波羅蜜依何而起
“방편의 지혜를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答言依方便慧起
011_0436_a_02L“방편의 지혜는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6_a_02L又問方便慧依何而起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答言依不放逸起
“방일하지 않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6_a_03L又問不放逸依何而起
“세 가지 깨끗한 행[三淨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6_a_04L答言依三種淨行
“세 가지 깨끗한 행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又問三種淨行依何而起
“열 가지 선업도[十善業道]를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6_a_05L答言十善業道起
“열 가지 선업도는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6_a_06L又問十善業道依何而
“깨끗한 계[淨戒]를 간직하는 것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答言依持淨戒起
“깨끗한 계를 간직하는 것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6_a_07L又問持淨戒依何而起
“이치에 맞는 사유(思惟)를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答言依如理思惟起
“이치에 맞는 사유는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6_a_08L又問理思惟依何而起
“마음을 관찰함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答言依觀察心起
“마음을 관찰함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011_0436_a_09L觀察心依何而起
“기억해 간직하여 잊어버리지 않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011_0436_a_10L答言從憶持不忘起
그때 정월위광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시여, 모든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는 무릇 몇 가지가 있어서 인(因)이나 과(果)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011_0436_a_11L爾時淨月威光天子復問文殊師利菩薩言大士諸菩薩發菩提心凡有幾種於因於果而得成就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011_0436_a_13L文殊師利菩薩言
“천자시여, 모든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는 무릇 네 가지가 있어 인이나 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초발심(初發心)이고, 둘째는 해행주발심(解行住發心)이고, 셋째는 불퇴전발심(不退轉發心)이고, 넷째는 일생보처발심(一生補處發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초발심이 해행주(解行住)의 인(因)이 되고, 해행주발심이 불퇴전의 인이 되며, 불퇴전발심이 일생보처의 인이 되고, 일생보처발심이 일체지(一切智)의 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011_0436_a_14L天子諸菩薩發菩提心凡有四種於因於果而得成就何等爲四一者初發心二者解行住發心三者不退轉發心四者一生補處發應知初發心爲解行住因解行住發心爲不退轉因不退轉發心爲一生補處因一生補處發心爲一切智因
또한 천자시여,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초발심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해행주발심은 싹이 점차 자라나는 것과 같으며, 불퇴전발심은 가지나 잎, 그리고 꽃과 과일이 점차 생겨나는 것과 같고, 일생보처발심은 열매가 성숙하는 것과 같습니다.
011_0436_a_20L復次天子應知初發心如田中下種解行住發心如牙漸增長不退轉發心如枝果次第出生一生補處發心如果實成熟
011_0436_b_02L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초발심)은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먼저 목재를 모으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해행주발심)은 목재를 얻은 다음에 각각 별도로 깨끗이 잘 다듬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불퇴전발심)은 그 장인이 수레를 만드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일생보처발심)은 그 수레로 무거운 짐을 멀리 이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011_0436_a_24L復次天子第一發心如造車人先集於材第二發心如得材已各別治淨第三發心如彼匠人造車成就第四發心如以其車引重致遠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초승달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닷새에서 이레 정도 된 달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열흘 정도 된 달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열나흘 달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지니신 지혜는 비유하면 밝은 달이 열닷새에 이른 것과 같아 일체의 광색(光色)이 다 원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011_0436_b_05L復次天子第一發心猶如初月第二發心如五日夜至七夜月第三發心如十日夜月第四發心如十四日夜應知如來所有智慧譬如明月至十五夜一切光色悉皆圓滿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성문지(聲聞地)를 넘어서고, 두 번째 발심은 벽지불지를 넘어서며, 세 번째 발심은 부정지(不定地)를 넘어서고, 네 번째 발심은 결정지(決定地)에 머뭅니다.
011_0436_b_10L復次天子第一發心超聲聞地第二發心超辟支佛地第三發心超不定第四發心住決定地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그 학인(學人)이 점차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배움이 오래되어 잘 계산하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학문이 성숙하여 온갖 논서를 깨달아 아는 것과 같습니다.
011_0436_b_13L復次天子第一發心譬如有人初學字母第二發心如彼學人漸解分析第三發心如學已久善筭數第四發心如學成熟了達諸論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보살이 인(因)에 머무르는 것이고, 두 번째 발심은 보살이 지혜에 머무르는 것이며, 세 번째 발심은 보살이 번뇌나 장애를 끊음[斷]에 머무는 것이고, 네 번째 발심은 보살이 과(果)에 머무는 것입니다.
011_0436_b_17L復次天子第一發心菩薩住因第二發心菩薩住智第三發心菩薩住斷第四發心菩薩住果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인에 섭수되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에 섭수되며, 세 번째 발심은 끊음[斷]에 섭수되고, 네 번째 발심은 과에 섭수됩니다.
011_0436_b_20L復次天子第一發心因所攝第二發心智所攝第三發心斷所攝第四發心果所攝
011_0436_c_02L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인으로부터 일어나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로부터 일어나며, 세 번째 발심은 끊음[斷]으로부터 일어나고, 네 번째 발심은 과로부터 일어납니다.
011_0436_b_23L復次天子第一發心從因而起第二發心從智而起第三發心從斷而起第四發心從果而起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인차별분(因差別分)이고, 두 번째 발심은 지차별분(智差別分)이며, 세 번째 발심은 단차별분(斷差別分)이며, 네 번째 발심은 과차별분(果差別分)입니다.
011_0436_c_03L復次天子第一發心因差別分第二發心智差別分第三發心斷差別分第四發心果差別分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갖가지 약재를 채집하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약재의 성품을 분별하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병에 따라 약을 맞추어 처방하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약을 복용하여 병을 제거해 치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011_0436_c_06L復次天子第一發心如採集衆藥二發心如分辯藥性第三發心如隨病合藥第四發心如服藥除愈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법왕(法王)의 가문에 태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발심은 법왕의 법을 배우는 것이며, 세 번째 발심은 배워서 잘 이해하는 것이고, 네 번째 발심은 배워서 자재함을 얻는 것입니다.”
011_0436_c_09L復次天子第一發心生法王家第二發心學法王法第三發心學得解了第四發心學得自在
그때 모임 가운데 결정광명(決定光明)이라는 천자가 있었는데, 그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빠른 도(道)입니까?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도를 행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게 됩니까?”
011_0436_c_12L爾時會中有天子名決定光明白文殊師利菩薩言大士何者是菩薩摩訶薩速疾道諸菩薩摩訶薩行此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011_0436_c_16L文殊師利菩薩言
“천자시여, 보살마하살의 빠른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도를 행하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방편도(方便道)이고, 둘째는 반야도(般若道)입니다. 방편도는 모든 선법(善法)을 섭수하는 것이고, 반야도는 제대로 헤아려 알아 간택하는 것입니다.
011_0436_c_17L天子菩薩摩訶薩速疾道有二種諸菩薩摩訶薩行此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爲二方便道二者般若道方便道者攝諸善法般若道者了知簡擇
011_0437_a_02L 방편도는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반야도는 모든 법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법이 화합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 반야도는 화합하지 않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인연(因緣)이 되는 것이고, 반야도는 적멸(寂滅)에 이르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온갖 법의 차별상(差別相)을 아는 것이고, 반야도는 법계에는 차별이 없다는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011_0436_c_21L方便道者不捨衆生般若道者能捨諸法便道者知法和合般若道者知不和方便道者能爲因緣般若道者能至寂滅方便道者能知諸法差別之般若道者能知法界無差別理
방편도는 모든 불국토를 갖추어 장엄하는 것이고, 반야도는 모든 불국토가 평등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중생의 근행(根行)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반야도는 근행(根行)이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도량에 가도록 하는 것이고, 반야도는 보살들로 하여금 깨달을 바가 없다는 것을 체득하게 합니다.
011_0437_a_03L便道者能具莊嚴諸佛國土般若道者能知諸佛國土平等方便道者能知衆生根行不同般若道者能知根行空無所有方便道者令諸菩薩詣於道場般若道者能令菩薩逮無所
천자시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빠른 도가 있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자량도(資糧道)이고, 둘째는 결택도(決擇道)입니다. 자량도란 보시를 비롯한 5바라밀을 말하고, 결택도란 반야바라밀을 말합니다. 유착도(有着道)와 무착도(無着道), 유루도(有漏道)와 무루도(無漏道)의 경우도 모두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011_0437_a_09L天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速疾云何爲二一者資糧道二者決擇資糧道者謂施等五波羅蜜決擇道者謂般若波羅蜜有著道無著道有漏道無漏道皆如是說
다시 두 가지 빠른 도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유량도(有量道)이고, 둘째는 무량도(無量道)입니다. 유량도란 유상위(有相位)를 말하고, 무량도란 무상위(無相位)를 말합니다.
011_0437_a_13L復有二種速疾道云何爲二一者有量道二者無量道有量道者謂有相位無量道者是無相位
다시 두 가지 빠른 도가 있으니, 이른바 지도(智道)와 단도(斷道)입니다. 지도란 초지(初地)로부터 제7지까지를 말하고, 단도란 8지로부터 제10지까지를 말합니다.”
011_0437_a_16L復有二種速疾道所謂智道及以斷道智道者謂從初地至第七地斷道者從於八地至第十地
그때 모임에는 용수지신(勇修智信)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그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시여, 보살마하살이 알고 있는 경계[義:인식의 대상]는 무엇이며, 보살마하살이 닦는 지혜[智:인식]는 무엇입니까?”
011_0437_a_18L爾時會中有菩薩名勇修智信白文殊師利菩薩言大士云何爲菩薩摩訶薩所知義云何爲菩薩摩訶薩所修智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선남자여, 경계는 화합함이 아니고 지혜는 화합함입니다.”
011_0437_a_22L文殊師利菩薩言善男子義非和合智是和合
용수지신보살이 물었다.
“대사시여, 무엇 때문에 경계는 화합함이 아니고 지혜는 화합함입니까?”
011_0437_a_23L勇修智信菩薩言以何因故義非和合智是和合
011_0437_b_02L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선남자여, 경계[義]는 무위(無爲)이고 무위이면 곧 경계가 아닙니다. 경계가 아닌 것 가운데는 어떤 법도 없으며, 화합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경계는 변하여 달라짐도 없고 이루어져 실체화됨도 없으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니, 모두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선남자여, 지혜[智]는 도(道)라고 이름하며, 도와 마음[心]이 화합하니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또한 선남자여, 지혜[智]는 오로지 화합하는 것이니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011_0437_a_24L殊師利菩薩言善男子義是無爲爲則非義非義中無有法若和合不和合義是無變異無成實不可取不可捨皆如是說善男子智名爲道道與心和合非不和合復次善男子智惟是和合非不和合
용수지신보살이 물었다.
“대사시여, 어떤 인연 때문에 지혜는 오직 화합하는 것이어서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까?”
011_0437_b_07L勇修智信菩薩言大士何因緣故惟是和合非不和合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선남자여, 지혜는 온(蘊)ㆍ처(處)ㆍ계(界)를 잘 관찰할 수 있으며, 연기법(緣起法)을 잘 관찰할 수 있으며, 처(處)와 비처(非處)를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오로지 화합하여 화합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011_0437_b_09L文殊師利菩薩善男子智善能觀察蘊善觀察緣起法善觀察處非處以是故惟和合非不和合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인지(因智)이고, 둘째는 과지(果智)이며, 셋째는 의지(義智)이고, 넷째는 방편지(方便智)이며, 다섯째는 반야지(般若智)이고, 여섯째는 섭지(攝智)이며, 일곱째는 바라밀지(波羅蜜智)이고, 여덟째는 대비지(大悲智)이며, 아홉째는 교화중생지(敎化衆生智)이고, 열째는 일체 법에 대해 집착이 없는 지혜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라고 합니다.
011_0437_b_12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智何等爲十一者因智二者果智三者義智四者方便智五者般若智六者攝智七者波羅蜜智八者大悲智教化衆生智十者於一切法無所著智善男子如是名爲菩薩摩訶薩十種智
011_0437_c_02L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발기(發起)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발기(身發起)이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신업(身業)을 깨끗이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구발기(口發起)이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구업(口業)을 깨끗이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심발기(心發起)이니 일체 중생을 위해 의업(意業)을 깨끗이 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내발기(內發起)이니 일체 중생에 대해 취착(取着)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외발기(外發起)이니 일체 중생에 대해 평등한 행(行)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011_0437_b_19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發何等爲十一者身發起爲一切衆生淨治身業故二者口發起爲一切衆生淨治口業故三者心發起爲一切衆生淨治意業故四者內發起一切衆生無所取著故五者外發起於一切衆生行平等行故
여섯째는 지발기(智發起)이니 일체의 불지(佛智)를 닦아 익히기 때문이고, 일곱째는 국토발기(國土發起)이니 일체 불국찰토(佛國刹土)를 공덕으로 장엄하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교화중생발기(敎化衆生發起)이니 모든 번뇌 병에 대한 약을 잘 알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진실발기(眞實發起)이니 결정적인 취(聚)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고, 열째는 무위지만족발기(無爲智滿足發起)이니 일체 삼계에 대해 마음이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발기라고 합니다.
011_0437_c_03L六者智發修習一切佛智故七者國土發起示現一切佛剎功德莊嚴故八者化衆生發起知諸煩惱病藥故九者眞實發起能成就決定聚故十者爲智滿足發起於一切三界心無所著故善男子如是名爲菩薩摩訶薩十種發起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행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바라밀행이고, 둘째는 사물을 섭수(攝受)하는 행이며, 셋째는 반야행이고, 넷째는 방편행이며, 다섯째는 대비행이고, 여섯째는 혜(慧)를 구하는 자량행(資糧行)이며, 일곱째는 지(智)를 구하는 자량행이고, 여덟째는 청정한 신심행(信心行)이며, 아홉째는 온갖 진리[諦]에 들어가는 행이고, 열째는 분별이나 애증의 경계가 없는 행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행이라고 합니다.
011_0437_c_10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行何等爲十一者波羅蜜行二者攝物三者般若行四者方便行五者悲行六者求慧資糧行七者求智資糧行八者淸淨信心行九者入諸諦十者不分別愛憎境行善男子是名爲菩薩摩訶薩十種行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무진관(無盡觀)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무진관(身無盡觀)이고, 둘째는 사무진관(事無盡觀)이며, 셋째는 법무진관(法無盡觀)이고, 넷째는 애무진관(愛無盡觀)이며, 다섯째는 견무진관(見無盡觀)이고, 여섯째는 자량무진관(資糧無盡觀)이며, 일곱째는 취무진관(取無盡觀)이고, 여덟째는 무소집착무진관(無所執着無盡觀)이며, 아홉째는 상응무진관(相應無盡觀)이고, 열째는 도량식자성무진관(道場識自性無盡觀)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무진관이라고 합니다.
011_0437_c_17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無盡觀何等爲十一者身無盡觀二者事無盡觀三者法無盡觀四者愛無盡觀五者見無盡觀六者資糧無盡七者取無盡觀八者無所執著無盡觀九者相應無盡觀十者道場識自性無盡觀善男子如是名菩薩摩訶薩十種無盡觀
011_0438_a_02L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조복행(調伏行)이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간탐(慳貪)과 질투를 조복하는 행이니 베풀어 나누어 줌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고, 둘째는 파계(破戒)를 조복하는 행이니 세 가지 업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진에(瞋恚)를 조복하는 행이니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 익히기 때문이고, 넷째는 해태(懈怠)를 조복하는 행이니 법을 구하는 일에 권태로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선하지 않음[不善]을 조복하는 행이니 선해탈(禪解脫)의 신통(神通)을 얻기 때문입니다.
011_0438_a_02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調伏行何等爲十一者調伏慳嫉行施如雨故二者調伏破戒行三業淸淨故三者調伏瞋恚行修習慈心故四者調伏懈怠行求法無倦故五者調伏不善行得禪解脫神通故
여섯째는 무명을 조복하는 행이니 결정적인 선교혜(善巧慧)의 자량을 낳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모든 번뇌를 조복하는 행이니 일체지(一切智)를 두루 가득하게 하는 자량이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전도됨을 조복하는 행이니 진실하여 전도되지 않는 자량의 도를 낳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자재하지 못함[不自在]을 조복하는 행이니 때나 때가 아닌 때에 자재하기 때문이고, 열째는 나[我]에 대한 집착을 조복하는 행이니 모든 법이 무아임을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조복행이라 합니다.
011_0438_a_08L六者調伏無明行生決定善巧慧資糧故七者調伏諸煩惱行圓滿一切智資糧故八者調伏顚倒行出生眞實不顚倒資糧道故九者調伏不自在行於時非時自在故十者調伏著我行觀察諸法無我故善男子如是名爲菩薩摩訶薩十種調伏行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적정지(寂靜地)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적정지(身寂靜地)이니 세 가지 몸의 불선업(不善業)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고, 둘째는 구적정지(口寂靜地)이니 네 가지 구업(口業)을 깨끗이 다스리기 때문이며, 셋째는 심적정지(心寂靜地)이니 세 가지 마음[意]의 악행을 영원히 버리기 때문이고, 넷째는 내적정지(內寂靜地)이니 자신의 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외적정지(外寂靜地)이니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011_0438_a_15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寂靜地何等爲十一者身寂靜地遠離三種身不善業故二者口寂靜地治四種口業故三者心寂靜地永捨三種意惡行故四者內寂靜地不執著自身故五者外寂靜地不執著一切諸法故
011_0438_b_02L 여섯째는 지자량(智資糧)적정지이니 집착함이 없이 도를 행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부자고(不自高)적정지이니 성스러운 지혜의 자성을 관찰하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구경변제신통(究竟邊際神通)적정지이니 반야바라밀을 낳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멸희론(滅戱論)적정지이니 일체의 중생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고, 열째는 불고변신심(不顧變身心)적정지이니 대자비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적정지라고 합니다.
011_0438_a_22L六者智資糧寂靜地不執著所行道故七者不自高寂靜地察聖智自性故八者究竟邊際神通寂靜地出生般若波羅蜜故九者戲論寂靜地不欺誑一切衆生故不顧戀身心寂靜地大悲教化衆生故善男子如是名爲菩薩摩訶薩十種寂靜地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여실하게 행하면 보리를 얻을 수 있으나 여실하게 행하지 못하면 얻을 수 없습니다. 여실한 행이란 그 말한 바대로 그렇게 행하는 것이고, 여실하지 못한 행이란 단지 언설만 존재할 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닦아 익히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011_0438_b_06L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如實行者能得菩提不如實行則不能得實行者如其所說則如是行不如實行者但有言說不能信受不能修習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도의 여실행[道如實行]이고, 둘째는 단(斷)의 여실행[斷如實行]입니다.
011_0438_b_10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二種如實行何等爲二一者道如實行二者斷如實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스로 자신을 조복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여실행입니다.
011_0438_b_13L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行何等爲二一者自調伏如實行二者教化衆生如實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공덕의 효용이 있는 지혜의 여실행이고, 둘째는 공덕의 효용이 없는 지혜의 여실행입니다.
011_0438_b_15L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行何等爲二一者有功用智如實行二者功用智如實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지위[地]를 잘 건립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모든 지위를 차별 없이 잘 관찰하는 여실행입니다.
011_0438_b_18L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行何等爲二一者建立諸地如實行二者善觀察諸地無差別如實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지위[地]의 과실(過失)을 멀리 여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모든 지위의 공덕을 잘 원만하게 하는 여실행입니다.
011_0438_b_21L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行何等爲二一者遠離諸地過失如實行二者善圓滿諸地功德如實行
011_0438_c_02L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성문(聲聞)과 벽지불지(辟支佛地)를 잘 설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보리(菩提)와 불퇴전법(不退轉法)을 잘 설하는 여실행입니다.
011_0438_b_24L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行何等爲二一者善說聲聞辟支佛地如實行二者說諸佛菩提不退轉法如實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이와 같은 한량없고 가없는 여실한 행법이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여실하게 행한다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합니다.”
011_0438_c_04L善男菩薩摩訶薩有如是等無量無邊如實行法若能如是如實行者當知是人不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諸菩薩摩訶薩應勤修學
그때 세존께서는 문수사리보살을 칭찬하시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시원스럽게 말을 잘 했다.”
011_0438_c_08L爾時世尊讚文殊師利菩薩言善哉善哉文殊師利快說此語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자 문수사리 보살마하살과 용수지신 보살마하살ㆍ정월위광 천자ㆍ결정광명 천자 및 그 모임에 참석했던 나머지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아수라(阿修羅) 등이 모두 매우 기뻐하며 믿음으로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011_0438_c_10L佛說此經已文殊師利菩薩摩訶薩勇修智信菩薩摩訶薩淨月威光天決定光明天子及餘衆會一切世阿修羅等皆大歡喜信受奉行
大乘伽耶山頂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