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十住斷結經卷第二

ABC_IT_K0382_T_002
012_0353_c_01L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 제2권
012_0353_c_01L十住斷結經卷第二


요진 축불념 한역
송성수 번역
012_0353_c_02L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5. 요공품(了空品)
012_0353_c_03L了空品第五

그때에 최승(最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수성(修成) 보살은 5주(住) 가운데서 그 지(地)를 청정하게 하나이까?”
012_0353_c_04L爾時最勝菩薩復白佛言云何修成菩薩於五住中當淨其地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수성 보살[大士]은 언제나 집안에 사는 것과 재물을 모으는 일을 멀리 여의고, 또한 자주 두미(頭彌)나 음촌(淫村)을 친근하지 말아야 하며, 착한 공덕을 닦고 증오[憎]와 질투[嫉]를 없애려고 생각하며, 세속의 모임이나 세간의 인연을 멀리 여의고, 화합을 생각하여 성냄이나 다툼을 멀리 여의어야 하며, 말을 할 때는 입을 단속하여 피차(彼此)를 어지럽게 함이 없어야 하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면서 높은 체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012_0353_c_06L佛告最勝修成大士常當遠離居家財業亦莫親近頻頭彌淫材修善功德念除憎遠離俗會世閒因緣當念和合遠離忿諍言當護口無亂彼此常當自卑不懷貢高
비록 재주가 많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무명을 끊어 없애고 5음을 소멸시키며,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일들을 쉬고 진로(塵勞)를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또한 다시 62소견[見]과 함께 어울리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고 또한 낮추지도 않으며, 세간의 여덟 가지 일[事]을 넘어서며, 높낮이[高下]가 없고 언제나 공순(恭順)할 줄 알고 모든 고뇌를 버리며, 어리석고 어두운 일을 행하지 않고 잠[睡眠]에서 깨어나며, 모든 두려움을 건너 죄(罪)와 함께하거나 모든 마음의 때[心垢]와도 함께하지 않느니라.
012_0353_c_11L雖多伎術不輕篾人除無明消滅五陰息老病死諸所作不興塵勞亦復不與六十二見而共和同不自稱譽亦不自卑過世八事無有高下常知恭順去諸苦惱行癡冥覺寤眠睡度諸恐懼不與罪俱及諸心垢
5음을 끊고 이에 생사의 신마(身魔)ㆍ죄마(罪魔)ㆍ사마(死魔)ㆍ천마(天魔)에 이르기까지 사유하고 억제하여 그것과 인연을 짓지 않고 들은 것과 같은 지혜로 곧 능히 건립하며, 마땅히 이와 같은 행을 해야 하는데도 아무것도 없나니 진리[諦]로 지혜의 뜻[慧意]에 들어가서 배우되 만족해 함이 없고 탐하거나 그리워하는 바도 없고, 또한 열심히 하거나 싫어함[適莫]도 없으며, 기꺼이 여쭙고 받으면서 마음에 즐거움을 품고 몸은 가뿐하면서 뜻은 안정되며, 그 뜻은 온화하고 청아하여 번거롭거나 심란함이 없느니라.
012_0353_c_17L斷於五陰乃至生死身魔罪魔死魔天魔思惟抑制不造彼如所聞慧輒能建立應如斯行而無所有諦入慧意學無厭足無所貪慕亦無適莫歡喜啓受心懷悅豫輕志定其意和雅而無煩憒
012_0354_a_01L배우는 법의 근본과 말하는 법은 끝이 없고, 마음은 언제나 도에 나아가 금계의 법[禁法]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바르고 참된[正直] 것을 좋아해 좇고 삿된 부분[邪分]에는 처하지 않으며, 오직 미묘한 지혜만을 좋아하고 모든 도무극을 분별하고 보살의 대승경전과 전적[經籍]을 체득하며, 선권방편으로 앞의 것에 따라 알맞게 하고 마음은 다시 자세히 살펴 신통을 환히 알며, 언제나 생멸이 없는 법을 듣고 싶어 하고, 12인연을 환히 알아 무상(無常)함을 통달하여 알며, 고제(苦諦)를 펴 연설하고 역시 나[吾我]라는 것이 없고 공정(空定)을 알아 무상(無相)을 분별하느니라.
012_0353_c_22L所學法本說法無窮心常趣道禁法自守從正眞不處邪部唯好妙慧分別種種諸度無極逮得菩薩大乘經籍權方便隨前應適心復察解了無神常欲聽聞無生滅法了十二緣達知無常暢演苦諦亦無吾我解知空定分別無想
깊이 무원(無願)을 체달하여 생사가 괴로움임을 깨달아 알고 공덕을 성취하여 들은 바를 힘써 붙잡으며, 3보를 탐하여 그리워하고 또한 세속을 알지만 다시 도법(道法)을 알고자 하며, 충성스런 마음으로 가까이 하여 동무[伴侶]를 삼고, 널리 모든 법에 들어가 가난함을 제거하고자 하며 바른 도를 달게 받아들이고 그 지혜 없는 이를 교화하여 다 같이 공훈의 업을 성취하게 하고, 그 근본을 분명히 알아 온갖 악(惡)을 피하려고 생각하며, 몸을 정숙하게 하며 지혜를 통달하고 겸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며, 안온한 행에 처하여 또한 원한을 품지 않고 가장 미묘하고 끝없는 행을 알려고 하느니라.
012_0354_a_07L深體無願曉生死苦就功德所聞勤執貪慕三寶亦欲知俗復知道法忠心附近以爲伴侶入諸法欲除貧匱甘受正道其無智者化令成就同功勳業明識其本念避衆惡約身智達兼利衆生處安隱行亦不懷恨欲了最妙無極之行
또 최승아, 수성(修成) 보살이 모든 부처님 법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위없는 도의 요의(道要)를 이루게 되느냐? 들은 것과 같은 지혜로 곧 능히 이루어 마치고 들어갈 바에 때를 따르되 역시 차례를 뛰어넘지 않으며, 그 음향을 들은 후에야 바르게 조정되어 깊이 관(觀)에 들어가서 마음이 행할 바를 알며, 몸을 제어하여 제도되기를 구하여 중생을 건지고, 무상(無常)을 헤아리지 않으나 또한 집착하는 바도 없으며, 인연으로 시설할 수 있는 바의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과 과거ㆍ미래ㆍ현재를 더듬어 살피고 공덕의 업을 이루어 선정(禪定)을 분별하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으로 자신을 보호하여 스스로를 지키고 탐욕을 따르지 않고 삼매(三昧)에 노닐면서 정수(正受)를 닦느니라.
012_0354_a_13L最勝修成菩薩念諸佛法云何得成無上道要如所聞慧便能成辦入隨時亦不越次聽彼音響然後調深入於觀知心所行御身求度而濟衆生不計無常亦無所著探察因緣所可施設我人壽命去來現在功德業分別禪定空無想願護已自不隨貪欲遊於三昧而修正受
012_0354_b_01L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수성 보살은 백천의 정(定)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느니라. 보살은 처소마다 두루하여 이르지 않는 데가 없되 오직 무색계(無色界)의 천상과 광음천(光音天)에 나기를 원하지 않고, 또한 영원히 멸진정(滅盡定) 중에 들지 않으며, 본제(本際)를 모두 알아 사유하고 붙잡아 가지며, 또한 본래부터 없음[本無]을 분명히 알고 취하거나 증득하지 않느니라. 그렇게 하는 까닭은 모두가 중생들의 더러운 때[垢]가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012_0354_a_21L最勝修成菩薩入百千定不以爲菩薩同處靡所不到唯不願生無色天上及光音天亦不永入滅盡定悉知本際思惟執持亦了本無而不取證所以然者皆由衆生垢未除
그 중생을 알고 나[吾我]가 없음을 이해하며, 대자(大慈)를 익혀 행하고 불쌍히 여김[悲哀]을 버리지 않으며, 널리 온갖 생사의 재난에 들어가 탐착과 모든 영화로운 것과 더러움을 멀리 여의고, 모든 법을 범한 이를 가르치며 또한 그릇된 일을 하지 않게 하며, 권방편(權方便)을 행하여 교화하되 방향이 없고 앞의 중생을 따르되 마음에 애욕이 있으면 오로(惡露)를 관하여 부정(不淨)의 행을 닦게 하나니, 그런 뒤에야 보살은 비로소 취하고 다 증득하느니라.
012_0354_b_04L知其衆生解無吾我習行大慈不捨悲哀普入一切生死之難遠離貪著諸所榮冀教諸犯法亦不爲非權方便教化無方隨前衆生心在愛使觀惡露修不淨行然後菩薩乃取盡證
비록 멸도를 나타낸다 하더라도 또한 영원히 멸하지 않나니 수성 보살은 제도할 바가 끝이 없고 또한 다할 수도 없는지라 저마다 그의 처소를 얻어 마음에 한(恨)이 없게 하며, 위의와 예절의 금도를 잃지 않고 출입에는 편안하고 자상하여 급작스러움[卒暴]이 없느니라. 곧 다툼이 없으려 하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현성은 잠자코[黙然] 계시는 것이니, 오직 고요하고 언설(言說)이 없어야 하느니라.
012_0354_b_09L雖現滅度亦不永滅修成菩所度無窮亦不可盡各得其所使心無恨不失威儀禮節之禁出入安祥無有卒暴夫欲無諍莫若自守聖默然唯當寂靜而無言說
언설이 없다고 함은 이에 청정하면서 허무(虛無)하고 담연(澹然)한 것을 말하며, 또한 모나고 둥글거나 과한(科限)은 다름이 없는 것이요, 현성은 잠자코 계신다 함은 스스로 몸과 입을 지키고 마음으로는 말하는 이를 관하나 그와 똑같이 처하지 않나니 몸이 동요하지 않으려 하면 마음이 변하거나 바뀜이 없고 또한 바라는 것도 없으며 다시 생각하는 바도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수성 보살의 행이니라.
012_0354_b_13L夫無言乃謂淸淨虛無澹然亦無方圓科限之異賢聖默然者自護身口心觀者勿與同處身欲不動心無變易無悕望復無所想是謂修成大士之
색(色)에 미혹되지 않으려 한다면 그 마음을 바로 해야 하며, 그 마음을 바로 함으로써 곧 영원히 고요한 무위(無爲)에 도달하게 되느니라. 만일 고요하지 않고 자기만을 돕고 기른다면 스스로 칭찬할 수도 없고 또한 남을 천히 여기지 않음이 없으며, 높고 낮음이 없으면 법을 순종한다 할 수 있나니 하는 일이 상실하지도 않고 또한 상실하는 것도 없으며 본래부터 공하고 없는 줄을 알면 곧 얻거나 잃을 것이 없고 평등하게 삼세를 관하면서 또한 차별이나 특이함이 없느니라.
012_0354_b_18L欲不色惑當正其心以正其心便爲達至永寂無爲若不寂靜將養已無得自稱亦莫不仁無高下者可謂順法所爲不失亦無所失解本無空便無所得失等觀三世亦無差特
012_0354_c_01L눈의 빛깔[眼色]과 식(識)은 머무르는 바도 없고 귀의 소리[耳聲]와 식ㆍ몸의 세활[身細滑]과 식ㆍ뜻의 법[意法]과 식에도 모두 주인[主]이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바도 없고 또한 나[吾我]도 없으며 모든 법의 행(行)에는 모두 다 아소(我所)가 없느니라. 아(我)라고 함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 변하고 바뀌기 때문이며 그대로 진리를 살피면 내가 없음을 아나니, 내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慧]이니라.
012_0354_b_22L眼色及識無所止住耳聲識鼻香識舌味識身細滑識意法識悉無有主亦無所住亦無吾我觀諸法行悉無我所我者變易從本淨故如爾審諦知無吾我無吾我者是謂爲慧
있는 바[所有]를 분명히 알면 마치 아무것도 없는[無所有] 것과 같고 또한 모두 다 공하고 고요하여 근본이나 지말이 청정하며 마음은 언제나 모든 법의 근본을 여의지 않고 아홉 중생의 거처를 사유하여 멀리 여의나니, 그렇게 되는 까닭은 수레바퀴 돌 듯하고 빠지고 빙빙 돌고 내닫느니라. 아홉 가지 처소의 중생의 무리는 몸이 다르고[身異] 모든 하늘과 사람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012_0354_c_04L明了所有如無所有亦悉空寂本末淸淨心常不離諸法之本思惟遠離九衆生居所以然者輪轉沒溺周迴馳趣不免九處衆生之類身異想異諸天及人
또 최승아, 혹 어떤 중생은 몸은 한 종류가 아니면서도 하나의 생각[一想]을 성취함이 있나니 범신천(梵身天)을 말한다. 맨 처음에 출현하여 몸이 세간으로 내려와 단맛[甘味]을 탐착함으로써 점차로 하늘의 위신을 잃게 되었느니라.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하나로 다르지 않으면서도 여러 가지[若干] 생각이 있나니 광음천(光音天)을 말하는데, 공덕과 의용(儀容)과 위신(威神)이 특수하니라. 혹은 어떤 중생은 하나의 몸에다 하나의 생각이 있으니 변정천(遍淨天)을 말하며, 마땅한 데에 나아가고 오직 행이 지극히 미묘할 뿐이니라.
012_0354_c_09L復次最勝或有衆生身非一種成就一想謂梵身天最初出現降形世閒貪著甘味漸失天威復有衆生一身不異有若干想謂光音天功德儀容威神殊特或有衆生一身一想謂遍淨天進趣宜則唯行極妙
다시 어떤 중생은 뜻이 한량없어 허공이라는 생각에 이르며 마음은 유(有)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멸(滅)에 나아가지도 않나니, 이것은 바로 공입천(空入天)을 말한다. 다시 어떤 중생은 뜻이 식이라는 생각[識想]에 매여 있어 형체를 버리고 다시는 부리거나 생각하지 않고 희망하거나 구하지 않나니, 곧 식입천(識入天)을 말한다. 다시 어떤 중생은 탐하거나 구하는 바도 없고 시비(是非)를 없애버려 마음속이 충족하며 모든 맛의 집착[味着]에 대하여 생각을 일으키는 바가 없나니, 이것은 또한 불용입천(不用入天)을 말한다. 다시 어떤 중생은 큰 서원을 세워서 무위(無爲)를 구하고 무색계를 관하면서 형질이 없나니, 이를테면 무위(無爲)ㆍ무작(無作)ㆍ무조자(無造者)인 열반이니라.
012_0354_c_14L復有衆生意至無量虛空之念心不著有亦不趣滅是則名曰空入天也復有衆生意繫識想遺去形體不復役思有悕望求斯則名曰識入天也復有衆生無所貪求消除是非內心充足於諸味著無所興想是亦名曰不用入天復有衆生建立弘誓求于無爲觀無色界而無形質謂爲泥洹無爲無作亦無造者
012_0355_a_01L그 뜻하는 원[志願]이 정밀하여 반드시 거기에 나게 되어서 8만 4천 겁수(劫數) 동안 살다가 수명을 마친 뒤에는 혼신[神]은 옮아가게 되어서 5도(道)로 나아가되 태어나야 할 곳에 중음(中陰)으로서 곧 가고 그의 혼을 맞이할 태실(胎室)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012_0354_c_23L精其志願會得生彼壽八萬四千劫數之期竟彼壽已當遷轉趣於五道應所生處中陰便迎其魂神將詣胎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진실한 멸도가 아님을 알고 어리석은 마음이 왕성하게 일어나 곧 성을 내게 되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발하면서 죄를 심으니 재앙이 깊어지느니라. 성인의 언교를 배반하여 ‘헛되어 진실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세간 사람을 미혹하게 하고 진실하지 않은 것으로 속이며, ‘오래고 먼 옛적부터 고행(苦行)을 겪었으므로 열반에 머물러 있었고 반드시 그러하여 의심이 없다’라거나 ‘나는 이제 어찌하여 다시금 생사(生死)를 겪게 되었는가? 나는 이제 비로소 열반도 없고 또한 신통과 도를 얻는 사람도 없음을 알겠도다’라고 말하나니,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혼신은 악도(惡道)로 나아가며, 이로 말미암아 현인과 성인을 비방하느니라.
012_0355_a_03L然後乃知非眞滅度癡心隆盛便興恚怒心念口發種罪深殃背聖言教虛辭不眞惑世人權詐不實乃從久遠經歷苦行停至泥洹必然無疑我今云何更涉生死吾今乃信知無泥洹亦無神通得道之人思念之頃神趣惡道由誹謗賢聖之人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수성 보살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등정각을 이루고자 하면 언제나 마음에서는 아홉 중생의 사는 곳[九衆生居]을 버리고 여의며 온갖 중생의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에 바라는 바가 없고 짓는 바의 인연은 모두가 다 피할 것을 생각하며, 또한 세속 사이의 기억을 생각하지 말고 여러 가지의 생각들을 녹여 없애느니라.
012_0355_a_10L如是最勝修成菩薩欲成無上正眞之道等正覺者當思惟心念去離九衆生居一切衆生我人壽命無所悕望所作因緣皆悉避之亦莫思惟俗閒之念消除一切衆念之想
수성 보살은 다시 열다섯 가지 특수한 마음으로 이전의 법[向法]과 다음의 법[次法]에 대하여 그 도(道)를 이루는 데로 나아가되 첫째 법으로부터 고법인(苦法忍)에 들어가고 더욱 선근(善根)을 늘려 무루(無漏)의 행을 같이하며, 5주(住)로부터 여래가 되기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다 선근을 갖추되 욕애(欲愛)를 사유해도 5주 보살은 욕애를 끊어 없애고 불선근(不善根)을 소멸시키며, 욕계(欲界)에 머물 때는 인(忍)과 고혜(苦慧)를 잡아서 괴로움의 근본을 사유하거니와 무형계(無形界) 중의 무색(無色)의 몸으로는 괴로움의 근본을 사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보살은 무형계에서는 욕계의 법을 제거하지 못하고 불선근이 더욱 불어나서 90가지의 일[事]이 있으며, 무루의 지혜 약에도 역시 90가지가 있느니라.
012_0355_a_15L修成菩薩復於十五殊特之心向法次法進成其道從第一法入苦法忍增於善根同無漏行於五住至得如來悉具善根思惟欲五住菩薩斷除欲愛滅不善根住于欲界執忍苦慧思惟苦本無形界中無色之身不得思惟苦之無本故菩薩不於無形除欲界法增不善根有九十事無漏慧藥亦有九十
012_0355_b_01L열 가지 요긴한 법[要法]으로써 불선근과 욕계의 음욕의 미세한 때[垢]를 대치하고, 나머지 80가지 법으로써 80가지 불선근의 근본을 끊어 없애며, 비록 이것으로 다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점차로 미세하게 하느니라. 진(盡)ㆍ도(道)의 성제(聖諦)에는 또한 무루와 합하는 법이 있고 또한 유루(有漏)와 합하는 법이 있기도 하느니라. 수성 보살은 5주 중에서 오직 유루와 합하는 법만을 끊을 뿐이요 무루와 합하는 법을 끊지 못하며, 유위의 성품[有爲性]에도 역시 합하는 법이 있고 무위의 성품에도 역시 합하는 법이 있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오직 유위만을 끊을 뿐이요 아직 무위와 상응하면서 합하는 법은 제거하지 못하느니라.
012_0355_a_23L十要法對不善根及欲界淫微細之餘八十法斷除八十不善根本非斯盡轉轉使微盡道聖諦亦有無漏合法亦有有漏合法修成菩薩於五住中唯斷有漏合法不斷無漏合於有爲性亦有合法於無爲性亦有合法爾時菩薩唯斷有爲未除無爲相應合法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수성 보살은 다시 5분법성(分法性)을 수행하여 사유하고 분별하여 둘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계의 몸[戒身]을 보호하고 목숨을 청정히 하여 탐함이 없고 흠과 더러움이 이미 제거되면 뭇 정(定)이 벌써 성립되나니 이것을 바로 최승아, 정의 몸[定身]이라 하느니라.
012_0355_b_08L如是最勝修成菩薩復當修行五分法性思惟分別了知無戒身護命淸淨無貪瑕穢已除衆定已成是謂最勝名曰定身
모든 관(觀)을 분별하면 약간의 생각도 없고 또한 다시 생각이나 집착에 대한 기억도 일으키지 않으며, 하나도 없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지혜 몸[慧身]이라 하고 삼세에서 해탈하여 더러워진 바도 없으면서 또한 두려워하거나 물러나는 마음을 품지 않기 때문에 해탈의 몸[解脫身]이라 하며, 이미 아홉째 해탈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해탈지견의 몸[解脫知見身]이라 하느니라. 유위의 연(緣)의 것은 바로 해탈의 몸이거니와 무위의 연의 것은 해탈지견과 지혜의 몸이니 유루와 무루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이것이 바로 최승아, 수성 보살이 곧 색의 연이 다하는 법을 익히고 배운 것이요 색의 연이 다한 것이 아닌 법은 아직 끊어 없애지 못한 것이니라.
012_0355_b_11L分別諸觀無若干想亦復不起想著之念了無一故曰慧身三世解脫無所沾亦不恐畏懷退轉心是謂名曰解脫之身已能成辦第九解脫故曰解脫知見之身有爲緣者是解脫身爲緣者解脫見慧身有漏無漏亦復如是是謂最勝修成菩薩便能習學色緣盡法未能斷除非色緣盡
어떤 것이 보살의 색의 연이 다한 법이고 색의 연이 다한 것이 아닌가? 색의 연이 다한 것은 만일 눈이면 빛깔을 보고 곧 안식(眼識)을 내어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의 법을 분별하며 뜻을 일으켜 염착하고 끝난 뒤에도 여의지 않는 것이니 수성 보살은 곧 지혜를 붙잡아 막으면서 나지 않게 하며, 더러운 악[穢惡]과 부정(不淨)한 행을 제거하느니라.
012_0355_b_19L云何菩薩色緣盡法非色緣盡色緣盡者若眼見色便生眼識分別是非善惡之法興意染著終已不離修成菩薩便當執智御使不生除去穢惡不淨之行
012_0355_c_01L색의 연이 다하지 아니한 것은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고 안식이 생기거나 시비ㆍ선악의 행을 분별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그의 경계로 껴잡아 지니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제 비유를 인용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겠다.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할 수 있느니라.
012_0355_c_01L非色緣盡非智所及不生眼識分別是非善惡之行所以然者非彼境界之所攝持今當引喩用自覺寤大智之人以譬得解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피로가 심하여 잠을 잘 적에는 신식(神識)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형상이 동요하지 않는데 접촉하거나 흔든 이가 없으면 눈은 빛깔을 보지 못하고 신식이 내닫지도 않으며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나니, 눈이 이미 안에 존재하고 있고 바깥의 물질에 즐겁게 놀고 있다 하여도 그 때에는 담연(澹然)하여 눈은 공(功)을 더하지도 않고 식(識)은 흩어져 떨어지지 않으며, 알맞게 나타나는 빛깔도 홀연히 스쳐가기만 하고 또한 물러서 거리끼거나 막히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그 까닭은 있는 바가 없는 데에 작용하는지라 성품이 스스로 공(空)하기 때문이니라.
012_0355_c_04L猶如有人疲極睡眠神識安靜形不動搖無觸擾者目不見色識不流馳不興想念眼旣內存外色遊逸當時澹然目不加功識不散落應現之色忽然便過亦不停住有所滯㝵所以者何用無所有性自空故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수성 보살은 언제나 사유하여 미묘한 관(觀)을 분별하고 색의 연이 다한 것이 아닌 법을 끊어 없애고 또한 함께하지 않으며 다시 시설하지도 않나니, 색의 연이 다한 것이 아님을 배워서 분명히 알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성공이나 실패도 없느니라. 다시 현성(賢聖)의 8정(正)을 수행하여 8사(邪)를 제거하고 삼매와 백천의 정의(定意)를 성취하여야 하나니, 5사(邪)인 마음의 법[心法]에서 세 가지의 사(邪)는 마음이 보는 것이 아니며 염(念)ㆍ정(定)ㆍ방편(方便)은 모든 지(地)에 있느니라.
012_0355_c_10L如是最勝修成菩薩常當思惟分別妙觀斷除非色緣盡之法亦不與俱復不施設當學了知非色緣盡非有非無亦無成敗復當修行賢聖八正除於八邪成就三昧百千定意五邪心法三邪非心見念定方便斯在諸地
초선(初禪) 이후에는 곧 삿된 뜻[邪志]이 있고 사견(私見)의 뒤바뀐 것은 6식(識)에 있지 않거니와 네 가지의 사(邪)는 모두 다 6식신(識身) 가운데 있어 함께 서로 연결하여 버리거나 여의지 않나니 그러므로 사견은 식에 공통하지는 않으며, 다섯 가지 식으로 비록 결정한다 하더라도 방편의 힘은 없고 의식(意識)의 지혜를 알아야 방편의 힘이 있느니라.
012_0355_c_16L初禪以還便有邪志見顚倒不在六識四邪盡在六識身共相連綴不相去離所以邪見不通識者五識雖決無方便力意識慧了有方便力
중선(中禪) 이상에는 역시 삿된 뜻은 없고 다만 사견만이 있어 서른여섯 가지 법[三十六法]과 함께 서로 받아들이느니라. 초선에 든 이후로는 오직 삿된 뜻만 있어 18법과 함께 서로 받아들여 5식음(識陰) 가운데로 들어갈 뿐이며, 비록 삿된 뜻이 있더라도 스스로는 서로 알지 못하고 중간선(中間禪) 안에서는 비록 사견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상응하지 않느니라.
012_0355_c_20L中禪以上亦無邪志有邪見與三十六法共相受入初禪以還唯有邪志與十八法而相受入五識陰中雖有邪志自不相知中閒禪內雖有邪見自不相應
012_0356_a_01L발의(發意) 보살이 4주에 이르러서 고지(苦智)와 인욕의 지혜를 행하여 사견을 소멸시키고 삿된 뜻을 멀리 여의며, 수성(修成) 보살은 6주(住)를 향해 나아가서 현묘하게 통달한 지혜[玄通智]를 행하여 삼계의 인연을 끊고서야 비로소 진제(眞際)에 상응한 것이니,우선 부지런히 힘써 빠르게 내닫는[奔逸] 앙화(殃禍)의 병을 끊어야 하느니라.
012_0356_a_01L發意菩薩至于四住行於苦智忍辱之慧消滅邪見遠離邪志修成菩薩進向六住行玄通智斷三界緣乃應眞際先當精勤斷於奔逸殃禍之病
어리석음과 망설임으로 5사(邪)를 일으켜 지어 삼계에 두루 펴 비거나 이지러진 곳[空缺處]이 없고, 18결(結)의 근본으로 8백 법을 내며 고(苦)가 있고 습(習)은 없으나 역시 함께 상응하고 습은 있고 고가 없으나 역시 함께 상응하는 것이니 어리석음[癡]과 애(愛)는 똑같이 공하나 함께 서로 생기느니라.
012_0356_a_05L愚癡猶豫興造五邪遍布三界無空缺處十八結本生八百法有苦無習亦與相應有習無苦亦與相應癡愛同空而共相生
고의 문[苦門] 가운데서 무명의 번뇌가 제거되거니와 습제(習諦)에서 무명은 소멸하거나 다하지 않아서 도리어 고(苦)를 내고 애(愛) 또한 제거되지 않으며, 불수(佛樹) 아래 앉아 뭇 의심을 결단하고 바르게 부처의 도에 머물면 다른 뜻에 파괴되지 않느니라. 정각(正覺)의 위없는 도를 이루게 되는 때에야 셀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게 되고 연의 집착[緣着]과 모든 일어나거나 없어지는 법[起滅法]을 알게 되지만, 이것도 또한 공하고 고요하여서 볼 수 없느니라.
012_0356_a_09L於苦門中無明結除習諦無明而不消盡還生於苦愛亦不除坐佛樹下決衆疑心正住佛道不懷異意得成正覺無上道時與無央數不可稱計衆生之類普使濟度解知緣著諸起滅法斯亦空寂而不可見
5주(住) 보살이 색의 연이 다한 것이 아닌 법과 공한 성품의 법을 얻은 때에는 모든 티끌과 때의 병이 또한 모두 소멸되고 언제나 다섯 가지 법으로써 애착을 제어하느니라. 6식(識)에 통한 병은 두루 삼계에 있으므로 그 근본을 뽑아내어 더 자라지 않게 하며, 성냄[瞋恚]의 다섯 가지 약(藥)이 6식신(識身)에 갖추어져 있되 상류(上流)까지는 미치지 않고 유독 이 세계에만 있게 하느니라.
012_0356_a_14L五住菩薩得非色緣盡空性法時諸塵垢病亦皆消滅常以五法制御愛著六識病普在三界拔其根本使不增瞋恚五藥具六識身不及上流獨在斯界
012_0356_b_01L만(慢)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하나의 의식신(意識身)은 세 곳[三處]에 있어 그 뿌리가 깊게 박혀 있으므로 움직이기 어렵다. 사견(邪見)의 네 가지 약(藥)도 하나의 의식신으로 그 또한 세 곳에 있어 끊임없이 왕래하며, 원(願)과 의(疑) 등 네 가지 행과 의식신도 또한 세 곳에 있어 간탐[慳]과 질투[嫉]를 사유하나니, 그러므로 세 곳에 있지 않으면 수면(睡眠)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러니 마땅히 멀리 여의어 뒤섞이지 말고 뭇 번뇌를 버려 어리석거나 어둡지 않기를 생각해야 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니 같이 처하지 않아야 하며, 언제나 생각에 일체지의 마음을 세우고 슬기롭게 진리를 따르면 마치 허공과 같아서 막힘이 없느니라.
012_0356_a_19L慢有五法一意識身而在三處根深難動邪見四藥一意識身在三處往來不息願疑四行及意識復在三處慳嫉思惟不在三處睡眠覺寤當念遠離不與雜錯去衆煩惱不爲癡冥求脫恐懼不與同處念建立一切智心隨諦黠慧如審無
우리[吾]가 없으면 곧 나[我]가 없으며 아견(我見)이 제거되기 때문에 고혜(苦慧)라 하고, 모든 존재[所有]를 수습하여도 존재하는 바가 없고, 모두 본말이 없고 또한 머무른 데도 없으며, 애착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습혜(習慧)라 하느니라. 습의 집착은 닳아 없어지는 법임을 알고 바르고 참된 법요[正眞要]를 배워 본제(本際)가 없으면 모두 다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진혜(盡慧)라 하고, 뭇 마음을 통달하여 비추어 밝은 것이 마치 구름이 사라지듯 하고 현묘하게 통하여 밝게 사무쳐서 티끌과 때[塵垢]가 없다. 최승아, 이것을 바로 보살의 도혜(道慧)라 하느니라.
012_0356_b_03L如無有吾則無有我除去我見故曰苦慧習諸所有皆無所有悉無本末亦無住處不染愛著故曰習慧知習著爲磨滅法學正眞要知無本悉爲消滅故曰盡慧達照衆心朗如雲消玄通明徹無有塵垢是謂菩薩道慧
곧 잘 관찰하여 5음을 깨달아 알고 4대의 근본을 알며 6쇠의 병을 이해하고 4제(諦)를 분별하고 12인연을 통달하며 삼세에 널리 연설하여 모든 번뇌[使]가 일어나는 바를 분별하고 5음의 모든 나고 없어짐을 깨달아 알며 모든 법의 오고감이 있는 것과 티끌과 때가 있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다시 나고 늙고 죽음이 있는 것을 보지도 않느니라. 그렇게 한 까닭은 그 본래 성품[本性]을 말미암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인연(因緣)이 소멸함으로써 모든 집착이나 단견을 여의고 모든 법의 때가 다하여 거리낌이 없으며 언교가 이미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는 것이 마치 허깨비와 같고 꿈속에서 보는 것과 같고 파초와 아지랑이와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으며 거울 속의 형상이나 물 속의 거품과 같으니라.
012_0356_b_09L便能觀察爲曉五陰四大本解六衰病分別四諦暢十二廣演三世分別一切諸使所興了五陰諸所生滅不見諸法有來往有塵垢者亦復不見有生老死以然者由其本性不可得故因緣以滅離諸著斷諸法垢盡無有罣㝵教已定亦不動搖猶如幻化夢中所芭蕉野馬呼聲之響鏡中之像水中泡沫
색상(色相)과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을 관하되 색(色)은 그와 같아서 진실로 생기는 바가 없음을 알고 이 법을 분명히 알면서 모두 청정하다고 관하며 공하여 아무것도 없으면 이것이 5음인 줄 깨달아 알고, 아ㆍ인ㆍ수명은 실로 허깨비와 같으며 식(識)도 역시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고 움직이거나 옮기는 그 처소가 있음을 보지 않느니라.
012_0356_b_18L觀於色相我人壽命解色如是諦無所生觀了此法而悉淸淨無所有曉是五陰我人壽命實如幻識亦無形而不可見不見動轉有其處所
012_0356_c_01L다시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의 업(業)을 깨달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것을 아는 이라야 비로소 5음과 모든 법의 지혜의 뜻과 또한 일어나거나 없어짐이 없는 것과 가장자리[邊際]를 통달하며, 생기는 바의 지ㆍ수ㆍ화ㆍ풍도 더하거나 덜함을 보지도 않으며 법계(法界)에 대하여도 역시 굳세거나 부드러움이 없다고 관하고 물의 성품[水性]을 궁구하여 찾아도 물에는 적시는 것이 없으며, 화계(火界)를 사유하여도 다시 뜨겁다고 보지 않고 바람의 경계를 알되 벌여 퍼지거나 동요하는 것을 보지 못하느니라.
012_0356_b_22L復當曉了非常苦空非身之其知是者乃達五陰諸法慧義亦無起滅邊際所生地水火風不見增觀於法界亦無剛柔究尋水性則無有水有所潤漬思惟火界復不見了風境界不見施張有動搖者
4대를 분별하여 나고 없어지고 더하고 덜함이 일어난다고 보지 않고 곧 말로 헤아리는 지혜[言數慧]와 넓은 지혜[廣慧]와 깊은 지혜[深慧]와 견줄 데 없는 지혜[無比慧]를 깨달아 아나니, 이를테면 눈이 빛깔을 보면 곧 식의 생각[識想]을 내지만 법계로써 관하면 역시 눈으로 보는 것이 없어 모두 다 텅 비고 고요한 것을 아느니라.
012_0356_c_04L別四大不見有起生滅增減便能曉知言數之慧廣慧深慧無比之慧眼見色便生識想以法界觀亦無眼視悉知虛寂
다시 법계에서 귀로 듣는 소리를 관찰하면 또한 다시 소리가 어디서부터 온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황홀하게 저절로 생겼다가 다시 저절로 소멸하며,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세활(細滑)과 뜻의 법에도 집착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나니 흥하거나 쇠한 것이 없으며, 완전하게 다 갖추어 중생의 성행(性行)과 지조(志操)를 관찰하되 일어나지도 않고 모두 다 평등하여 따로 여읠 수도 없고 약간의 생각도 없으며, 공하여 차이도 없으니 또한 헤아릴 수도 없고, 열반과 법신은 평등하기 허공과 같으며, 법계와 진제(眞際)도 허공과 같으니라.
012_0356_c_08L復於法界觀耳聽聲復不見聲所從來恍惚自生而復自鼻香舌味細滑意法不著不斷無有興衰悉具足觀衆生性行志操不起皆悉平等不可別離無若干想無有異亦不可量泥洹法身等如虛法界眞際斯同虛空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수성 보살은 다시 눈이 공(空)하여야 내가 없다고 관하고 내가 있지 않는 것도 아닌 것과 내가 없다[無我]는 이것도 모두 다 공하느니라. 내가 공함을 아는 것은 모든 쇠(衰)와 입(入)에 있으면 실마리를 보지 못하고 진실로 6쇠는 집착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다고 헤아리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6쇠의 법에 대하여 일어나거나 소멸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눈과 색이 쇠하면 뭇 어지러움[衆亂]의 근본이 되나니, 설령 눈으로 본다 하여도 옮아가지 않으면 곧 6쇠는 청정하여 하자가 없고 큰 과증(果證)을 이루어 다시는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거니와 쇠(衰)에서 청정하지 않으면 도의 성품[道性]이 손상되느니라.
012_0356_c_14L如是最勝成大士復觀眼空而無吾我非不有我及無我是亦悉空解我空者諸衰入不見端緖諦計六衰不著不是謂菩薩於六衰法而無起滅色爲衰衆亂之首設能視而不轉者則六衰淨而無瑕穢成大果證無復憂畏於衰不淨則損道性
012_0357_a_01L보살은 큰 서원으로 큰 자비를 행하여 널리 온갖 중생을 덮고, 그들을 위하여 괴로움을 받으나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가깝거나 멀거나 험하거나 두려운 재난이 없고 반드시 중생을 제도해야 될 때는 도(道)도 즐기지 않으며, 부지런히 보시의 덕을 권하고 행하여 착한 공덕을 닦나니, 이것이 바로 수성 보살이 법을 사유하면서 관하되 5음과 6쇠는 모두 다 처소가 없으며 또한 모양[形兆]과 진지(進止)에 나아갈 바도 없는 것이니라.
012_0356_c_21L菩薩弘誓行大慈悲普覆一切爲其受苦不以爲痛無有近遠嶮恐之難要度衆生而不樂道勸行施德修善功德是曰修成菩薩思惟觀法五陰六衰悉無處所亦無形兆進止所趣
또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로써 5음을 분별하고 나고 없어지는 것은 더함도 있고 덜함도 있으나 모두 다 형상이 없으며, 나는 괴로움[生苦]ㆍ늙는 괴로움[老苦]ㆍ병든 괴로움[病苦]ㆍ죽는 괴로움[死苦]과 근심하고 슬퍼하고 번뇌하는 괴로움[憂悲惱苦]ㆍ원수나 미워하는 이끼리 서로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ㆍ사랑하는 이끼리 서로 이별하는 괴로움[恩愛離苦]ㆍ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所欲不得]도 또한 괴로운 것이니,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5음이 성한 괴로움[五盛陰苦]이니라. 최승아, 이것을 바로 괴로움을 안다[知苦]고 하느니라.
012_0357_a_03L復以苦習盡道分別五陰生者滅者有增有減而悉無形生苦老苦病苦死苦憂悲惱苦怨憎會苦恩愛離苦所欲不得亦復是苦取要言之五盛陰苦是謂最勝名曰知苦
근원을 찾아 살피면 괴로움의 가지들이 생기는 것은 습(習) 때문이니 애욕을 탐착하여 그것을 사랑하고 보배롭게 여겨 요술인줄 알지 못해서이거니와 알게 되면 멀리 여의게 되기 때문에 익힘을 안다[知習]고 하며, 모든 때[垢]가 영원히 없어지면 다시는 새로 짓지 않으며, 원하고 바라는 것이다 마쳤기 때문에 다시는 생기지 않으며 물질로 나타난 것은 이내 소멸하여 머무르지 않으며 익힘[習]은 언제나 고요한 것임을 환히 알면 이것을 바로 다함을 안다[知盡]고 하며, 8정도를 이해하되 또한 체성(體性)이나 친하거나 성기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머무는 처소가 없고 변화가 무궁하여 다할 수 없으며, 더러운 티끌을 쓸어 없애고 어두움을 환히 비추고 형상도 없고 소리나 존재나 멸망[存亡]도 없는 바탕이, 모든 미혹한 이를 인도하는 우두머리가 되어 무위의 길[無爲路]에 들어가기 때문에 도를 안다고 하느니라.
012_0357_a_08L尋察根原由苦枝儻所生爲習貪著愛欲翫之寶之莫知爲幻知而遠之故曰知習諸垢永除更不造新願欲畢故使不復生色現尋滅不令停滯了習常寂是謂知盡解八正道亦無體性親疏近遠住止之處變化無窮而不可極蕩除塵穢照曜愚冥無形無聲存亡之體爲諸迷惑導引之首入無爲路故曰知道
보살이 4제를 분별하나 역시 증득을 취하지 않음은 모든 중생을 보호하면서 생사에 있고자 함이니, 그 진리의 모양은 모습이 없고 형상도 없어서 볼 수도 없고 여여하게 근본을 자세히 살피면 곧 법성에 상응하느니라. 세속의 언교는 임시로 부르는 이름이 있고 그 실제의 이름 자체는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물들거나 집착하는 바도 없고 거룩한 진리[聖諦]의 마음을 얻으면 있고 없고를 생각하지 않으며, 근본을 자세히 살펴 알면 모든 물질은 두루 다 평등하여 또한 높거나 낮은 것이 없고 약간의 마음도 없나니, 이것을 바로 거룩한 진리를 분별한다 하느니라.
012_0357_a_16L菩薩分別四諦亦不取證欲護一切在生死者眞諦之相無相無形而不可見審解如本則應法性世俗言教假號有名其實字體不生不滅無所染著得聖諦心不念有無審解本者一切諸色普悉平等亦無高下生若干心是則名曰分別聖諦
012_0357_b_01L보살의 거룩한 진리는 그 실제로 하나[一]만 있고 둘이 없으며, 집착도 없고 지극히 진실하여 바라는 바도 없으며, 색(色)을 구하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색이 없는[無色] 것을 구하려고 생각지도 않으며, 생각이나 생각이 없는 데서 평등하여 둘이 없나니, 이것을 바로 진리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012_0357_a_23L菩薩聖諦其實有一而無有二無著至眞無所悕望亦不想求色亦不想求無色想無想平等無二是則名曰眞諦之
이미 자세한 진리와 사실대로의 진리 모양을 얻게 된 이는 곧 5음의 모양을 환히 알며, 5음에서 생기는 괴롭고 독한 모양은 바로 번뇌의 모양이니 보살은 다시 사유하여 백천 가지 괴로움을 소멸하되 모두가 공하고 없어 닳아 없어지는 법으로 돌아가느니라.
012_0357_b_04L已獲審諦如實諦相者便能曉了五陰之相五陰所生苦毒之相是煩惱相菩薩復當思惟滅於百千之苦皆歸空無磨滅之法
기억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고제(苦諦)라 하고, 5음이 나고 생기게 되는 곳을 널리 통달하여 애착을 제거하는 것을 바로 습제(習諦)라 하며, 만일 마음이 내달으면서 모든 생각이나 구하는 것이 많되 그 뜻[意]을 분별하여 역시 탐하거나 사모하지 않으며 삼세의 어리석은 마음과 처소를 같이하지도 않고 또한 그 가운데 머물러서 요행(僥倖)이 있지도 않으며 진로(塵勞)를 모두 다 버리면 이것을 진제(盡諦)라 하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를 이루고자 한 이는 고ㆍ습ㆍ진을 분명히 알아 사악한 의심을 끊느니라.
이와 같으니라. 최승아, 수성 보살은 5주 가운데서 그 지(地)를 청정하게 하느니라.”
012_0357_b_07L不起念故名曰苦諦演暢五陰所出生處除去愛著是曰習諦若心流馳多諸想求分別其意亦不貪慕不與三世愚心同處亦不住中而有僥倖悉去塵勞是爲盡諦欲成無上正眞道者了苦習盡斷邪疑心如是最勝修成菩薩於五住中當淨其地

6. 근문품(根門品)
012_0357_b_14L根門品第六

그때에 최승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상위(上位) 보살은 6주(住)의 지위에서 그 행(行)을 청정하게 하나이까?”
012_0357_b_15L爾時最勝菩薩復白佛言云何上位菩薩於六住地而淨其行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상위 보살은 언제나 6도무극을 수행하여 존재에 대해 연모함 없기에 본래의 과보와 서원을 이룬다. 성문(聲聞)의 마음을 버리고 국토를 청정히 하려 하며 연각(緣覺)에 대한 뜻이 없고 하는 일은 크고 넓어 소인배의 마음이 되지 않느니라.
구걸하는 이를 보면 먼저 스스로 탐욕을 없애고 곧 그 사람에게 나아가 배부르고 만족함을 얻게 하며 지니고 있는 진기하고 미묘한 물건을 먼저 그 사람에게 주겠다 생각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 나라는 것[吾我]을 멀리 여의고 항상 있다고 헤아리는 마음을 버리나니 그 지혜는 한량없고 또한 다함이 없느니라.
012_0357_b_17L佛告最勝上位菩薩常當修行六度無極不慕所有成本果誓去聲聞心欲淨國土無緣覺意所爲弘廣不爲小心見乞索者先自除貪尋赴前人使得飽滿所有珍奇殊妙之物念先給人不懷悔意遠離吾我去計常心其智無量亦無窮盡
012_0357_c_01L깊고 미묘한 법을 듣고 취하려 하면 몸[身]과 입[口]과 뜻[意]을 깨끗이 하여 온갖 계율을 범하지 않고 언제나 모든 계율 지닌 사람을 옹호하려 하느니라.
상위 보살은 마음이 항상 인자하여 중생에게 상해(傷害)를 끼치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살생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살생을 가르치지 않으며, 어떤 이가 살생한 것을 보면 권하여 선(善)을 닦게 하며, 남의 물건은 터럭만큼도 훔치지 않고 가령 범하는 이가 있으면 고치고 뉘우치도록 가르치느니라.
012_0357_c_01L願欲聽採深妙之法淨身口意不犯一切戒常欲擁護諸持戒上位菩薩心恒慈仁不懷傷害加于衆生身自不殺不教他殺見有殺者勸使修善不盜人物如毫釐許有犯者教令改悔
또 언제나 마음을 오로지 하여 음행[淫泆]을 범하지 않고 만일 범한 이를 보면 청정한 행을 닦게 하며, 언제나 지성으로 행하고 처음부터 이간질로 하여 피차(彼此)를 이별하지 않게 하고, 다투는 이가 있으면 화해시켜 흩어지게 하며, 충언(忠言)과 간유(諫喩)로 널리 선을 행하게 하고 끝내 욕설하여 남을 성내게 하지 않으며, 성내는 이를 보면 인욕을 행하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참괴(慚愧)하는 마음이 있으며, 말을 할 때는 입을 수호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온갖 사람에 대하여 평등하게 생각하고 미워하거나 시샘하지 말고 교만을 없애며, 중생을 향하여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고 매양 자신이 극복하고 책망하면서 상위에 이르기를 바라느니라.
012_0357_c_06L又常專心不犯淫若見犯者使修淨行常行至誠初不兩舌離別彼此有諍訟者和解令忠言諫喩普令行善終不罵詈使人恚怒見瞋恚者念行忍辱不爲惡口有慚愧心所言護口不妄言說一切人思惟平等不念憎嫉除其憍不生恚想向于衆生每自剋責願欲上及
지금 인욕을 행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추악하고 비루해지나니 언제나 마음을 바로 하여 후학(後學)을 가벼이 여기지 않느니라. 즐거운 마음을 품고 도법(道法)에 있는 이면 그 마음이 청정하여 진로(塵勞)가 없나니 깊고 미묘하여 견줄 데 없는 법을 좋아하며, 네 가지의 두려울 바 없음[無所畏]으로 외학(外學)을 항복받고 청정한 업을 닦아 그보다 위로 뛰어날 수 있게 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도(道)에 있어 인자한 일을 좇고 받들며, 만일 사문이나 이학(異學)이나 범지(梵志)를 보면 곧 스승처럼 섬기고 힘써 그 처소를 얻게 하나니, 그렇게 하는 까닭은 부처님께서 도 이룬 것을 말미암아 일체지를 이룸으로써 마음이 언제나 부드럽고 행이 졸렬하거나 난폭하지 않으며, 만일 다른 이의 잘못을 보면 보호하고 자기는 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누실(漏失)하였을지라도 그릇된 법의 행이 있지 않으며, 또한 성문이나 연각의 마음이 없고 모든 범한 바에서도 범한 바를 보지도 않나니, 살고 있는 데서마다 또한 어리석거나 어둡지 않기 때문이니라.
012_0357_c_14L今不行忍後致醜陋常正其心不輕後學懷抱悅心在道法者心淸淨無有塵勞愛樂深妙無比之四無所畏降伏外學使修淨業能出其上至心在道遵奉慈仁若見沙異學梵志便能師事務令得所以然者由成佛道成一切智心常柔軟不行卒暴若見他非護己不爲不漏失有非法行亦無聲聞緣覺之於諸所犯不見所犯所生之處亦不愚闇
012_0358_a_01L언제나 부지런히 힘써 행하되 게으르지 않고, 삿된 부류와 함께하되 같이 두루 접하지 않으며, 설령 폐악(弊惡)하여 보답이 없는 이를 본다 하여도 어떤 일을 함께 하지는 않되 말은 은밀하여 다정하게 하고, 계율을 받들어 완전히 갖춰 일찍이 이지러지지 않으며, 지혜 있는 사람과 법을 깊이 이해하는 이를 가까이하고 또한 어기고 거스르거나 고달파하는 뜻이 있지 않으며, 청정한 계율을 돈독히 믿고 닦는 바가 진실하여 바르고 사악한 부류들에게 물들지 않으며, 삼가 그 법을 지키되 상응하는 대로 행하느니라.
012_0358_a_01L常行精勤不爲懈怠不與邪部而共周接設見弊惡無返復者與從事言談密款奉戒完具未曾缺近智慧人解深法者亦不違遠有疲厭意篤信淨戒所修眞正不爲邪部之所染污愼守其法如所應行
모든 중생이 그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고 법률을 관장하고 수호하며 청정히 하여 하자가 없으며, 행한 바가 견고하여 본래 마음이 결단코 마치며, 능히 말함에 그릇됨이 없고 언구에 하자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런 까닭에 이것을 말미암아 바른 일을 행하고 삿된 도[邪道]를 품지 않나니 그는 계율을 완전하게 갖추므로 다시는 미혹되지 않으며, 연설한 바의 음향은 듣기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모든 부처님 정각(正覺)의 도움을 받으며, 자기 마음대로 즐기되 또한 구하는 바가 없고, 언제나 그쳐 만족할 줄 알고 탐하거나 그리는 바가 없으며, 그 마음이 순숙하여 뭇 악이 이미 제거되었고 몸과 뜻이 담연(澹然)하니 기뻐하거나 즐기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012_0358_a_06L切衆生歌歎其德掌護法律淸淨無所行堅固本心決了無能說非言有瑕疵所以然者斯由行正不懷邪其戒完具不復迷惑所演音響莫不宣聞諸佛正覺之所扶持任己娛樂亦無所求常知止足無所貪慕心純熟衆惡已除身意澹然無所欣
언제나 한가로이 살기를 좋아하나 마음으로 친근하는 것이 없고, 어수선한 데에 있어도 갖춰 분별하여 도법(道法)을 알며, 외도(外道)를 좇아 자문받거나 하는 바가 없고 근신(謹愼)하니 위의가 일찍이 예법을 잃지 않았느니라. 비단으로 된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본래의 서원대로 사는지라 덕이 미칠 수 있는 이가 없으며,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마음과 뜻을 어지럽히지 않고, 이미 도력이 있으면서 덕업을 바르게 지니며 닦는 바의 계율을 순종하여 실없이 희롱하지 않으므로 하늘과 사람들이 호위하여 구경(究竟)을 이루게 하느니라.
012_0358_a_14L常好閑居無心親近在於亂憒具能分別備悉道法不從外道有所諮謹愼威儀未曾失禮不以好服而爲綺雅誓如本願德無能逮不以甘而亂心意己有道力制持德業修順戒不妄調戲天人衛護使成究
인자함을 행하되 널리 중생들을 생각하고 또 가엾이 여김[悲哀]을 닦되 무릇 진로(塵勞)를 참아내며, 받들어 좇아 수호하되 게으르지 않게 하며, 평등한 마음을 행하여 선악이 둘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언제나 살피고 관하여 분명히 알되 손실되게 하지 않으며, 심식(心識)이 뭇 생각에 내닫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 악(惡)을 기억하지 않되 남의 잘못을 전하지도 않느니라.
012_0358_a_20L行慈普念衆生之類又修悲哀忍衆塵勞遵奉守護使不懈怠行平等心善惡無二爲一切任荷負重擔察觀了不爲損耗不聽心識馳騁衆不念其惡不傳人非
012_0358_b_01L모든 뜻을 수호하여 다 껴잡아 견고히 하되 그것을 따라 항시 보시할 것을 생각하며, 모든 중생들을 양육하고 인욕을 행하되 다른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며, 정진하기를 뜻하고 원하되 끝내 회전(廻轉)하지 않으며, 선(禪)을 생각하여 고요하되 안온한 정(定)을 얻으며, 지혜를 좇고 받들되 뭇 이치를 널리 보며, 연설한 바가 바다와 같되 역시 만족해 함이 없나니, 때문에 널리 견문(見聞)을 닦고 계율과 요긴한 법을 배우느니라.
012_0358_b_01L護一切意㧾攝牢固不興其意隨所思惟念恒布養育一切衆生之類使行忍辱不起異心志願精進終不迴轉禪思寂寞得安隱定奉遵智慧博攬衆義演如海亦無厭足故修廣聞學戒要
착한 벗을 따라 모든 법을 통달하려 하며, 언제나 나쁜 스승을 여의고 모든 삿된 학문[邪學]을 멀리 하느니라. 삿된 학문이란 참되고 바른 도[眞正道]가 아닌 것이니, 몸의 모습[相]에 의지하거나 문식(文飾)을 탐하거나 집착함이 없고, 만물은 모두 무상한 데로 돌아가는 줄 아느니라. 그의 계율의 공덕은 청정하여 마치 자금(紫金)과 같고, 베푸는 뜻이 청정하여 또한 뉘우침이 없으며, 마음과 뜻이 맑아 끝내 허식(虛飾)이 없고, 배우는 바가 미묘하여 또한 번거롭지 않으며, 그 뜻은 산뜻하고 밝아 때나 혼탁함[垢濁]이 없고, 본래의 행이 청정하여 마음에 초조하지 않느니라.
012_0358_b_07L隨逐善友欲達諸法常離惡師遠諸邪學夫邪學者非眞正道無猗身相貪著文飾知諸萬物皆歸無常戒功德淨如紫金所施意淨亦無悔心意淸淨終無虛飾所學微妙亦不煩憒其意鮮明無有垢濁本行淸淨心不燋燃
비록 미혹된 곳에 있어도 음욕을 따르지 않고, 뜻이 어지럽지 않아 언제나 한결같이 안정되어 있으며 모든 결박(結縛)을 쉬니 영원히 일어나거나 없앨 것이 없고, 끝내 잘못하지 않고 고요하게 환히 사무치며, 계율이 갖추어져 이지러지지 않으니 새거나 없어지는 바가 없고, 그 본래의 요의[本要]에 따르되 또한 빠뜨리거나 버리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의 정근(定根)으로써 모두 분별하고 평등한 마음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며, 일체지로부터 해탈문에 들어가고 모든 삼매에 노닐어 다 눈앞에 나타나느니라.
012_0358_b_13L雖在迷惑不隨淫欲不懷亂常若一定息諸結縛永無起終不誤失靜寂通徹戒具不缺無所漏失隨其本要亦不遺捨諸佛定根而悉分別用平等心度諸衆生一切智入解脫門遊諸三昧悉現在
몸과 목숨을 탐내지 않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이 있지 않으며, 아ㆍ인ㆍ수명에 집착하여 헤아리지 않고, 또한 명(名)ㆍ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사유하지 않으며, 몸과 입의 4대에 의지하여 물질을 만들지도 않느니라. 그 진리는 생각하여 본래와 같이 사실대로 알며, 만들어진 물질은 하나요 둘이 없음을 분별하느니라.
012_0358_b_19L不貪身命不有一切亂想之念計我人壽命之著亦不思惟名色痛想行識不猗身口四大造色其眞諦想實解如本分別造色一無有二
012_0358_c_01L다시 눈의 빛깔[眼色]ㆍ귀의 소리[耳聲]ㆍ코의 냄새[鼻香]ㆍ혀의 맛[舌味]ㆍ몸의 느낌[身更]ㆍ마음의 법[心法]은 두루 다 청정하되 한 모양[一相]도 모양이 없어 헷갈리거나 당황하지 아니하며, 진실로 모든 법을 관하여 공의 행[空行]을 넘어서며, 생각도 없고 원(願)도 없고 또한 형상도 없으며, 삼계를 건너되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해탈하거나 해탈하지 않는 것도 없고 또한 얽매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다시 기억을 내지도 않고 또한 내는 것을 보지도 않나니, 그렇게 하는 까닭은 모든 법은 도무지 생기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012_0358_b_22L當思惟眼色耳聲鼻香舌味身更心普皆淸淨一相無相而不迷荒觀諸法以過空行無想無願亦無形度於三界不染不著無解不解亦無繫縛復不生念亦不見生所以然一切諸法都無所生
언제나 인자하고 가엾이 여겨 살생이나 도둑질을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중생을 기르면서 살아가게 하려 하며, 또한 망령되이 다른 이의 재보(財寶)를 취하지도 않고 베풀어주기를 좋아하느니라. 삿된 음행[邪淫]을 생각하지도 않고 색(色)을 멀리 여의며, 처음부터 속임수가 없고 다른 사람을 헐뜯지 않으며, 말할 때는 충실하고 신의 있게 하고 남의 착한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며, 마음이 헷갈리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012_0358_c_05L常當慈愍不念殺盜育養一切欲令生活亦不妄取他人財寶好憙恩施不念邪淫遠離於色初無欺詐謗讒於人所說忠信受人善諫心不迷荒
모든 노인[耆年]을 보면 한결같이 존경하고, 돌아다니는 곳마다 어진 마음을 더하며, 저마다 얻는 바에 여한이 있지 않게 하고, 넓고도 크게 포용하되 바른 가르침[正敎]으로써 보이며, 생각은 평등하여 율법(律法)에 상응하고 어떠한 무리에게라도 또한 억울하게 하거나 함부로 하지 않으며, 온갖 행(行)이 구비됨으로써 더 나아갈 데가 없고, 구경(究竟)을 연설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며, 널리 온갖 것을 위하여 덮개[覆蓋]를 열어버리느니라.
상위(上位) 보살은 법의 큰 주인[大主]이어서 널리 삼승의 끝없는 가르침을 연설하며, 덕은 수미산(須彌山)보다 뛰어나고 지혜는 강물이나 바다보다 많고 넓으며, 도(道)는 허공보다 뛰어나서 비유할 수도 없느니라.
012_0358_c_09L見諸耆年恒念尊敬所遊之方加以仁心各使得所不令有恨寬弘包容示以正教以平等應於律法一切之類亦無抂衆行以備無所復進演說究竟度諸衆生廣爲一切發去覆蓋上位菩薩法之大主普演三乘無極之訓過須彌慧超江海道踰虛空無以爲
최승아, 모든 사람들은 어리석고 게으르고 방일하고 미혹하여 법교(法敎)를 따르지 않으므로 다시 생사의 고통을 겪으면서 물러나 못쓰게 되고, 헷갈리어 음개(陰蓋)에 얽히어서 3취(趣)를 면하지 못하게 되나니, 이 때문에 여래는 그 모든 미치지 못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어 모든 법의 근본을 좇게 하고 모두 다 하나의 법[一法]을 위하여 익히거나 집착하는 모든 것을 끊게 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012_0358_c_17L最勝當知用一切人愚癡懈怠逸迷惑不順法教復當逕歷涉生死退廢迷荒纏緜陰蓋不免三趣故如來愍諸不及爲遵一切諸法之悉爲一法斷諸習著
012_0359_a_01L22가지의 병(病)은 갱락(更樂)의 근본이지만 이 모든 법도 역시 법이 있는 것도 없고 법이 아닌 것도 없으며 또한 언교도 없어서 도무지 설명할 바도 없나니 그렇게 되는 까닭은 그 없는 법[無法]은 곧 생기는 바도 없고 또한 소멸할 바도 없기 때문이며,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도 설하는 바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012_0358_c_21L二十二病更樂之本此諸法者亦無有法亦無非亦無言教都無所說所以然者無法者則無所生亦無所滅爲人說不見所說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상위(上位) 보살은 갱락이 생기는 바와 갱락이 소멸하는 바를 분별하고 사유하느니라. 보살은 그것을 관하여 갱락을 대치(對治)함이 있나니 여섯 가지 갱락으로 더불어 근본을 삼는 데서도 역시 그것을 알아야 하고, 여섯 가지 근본을 삼지 않는 데서도 역시 그것을 알아야 하며, 일곱 가지 갱락은 함께 서로 받아들이느니라.
또 보살은 사유하고 관찰하여 광어(廣語)의 갱락을 환히 알아서 세 가지의 갱락으로 근본을 짓는지라 지류(枝流)의 일곱 가지 갱락에는 조금의 분한[分]만이 있느니라.
012_0359_a_02L如是最勝上位菩薩分別思惟更樂所起更樂所滅菩薩觀彼有對更樂與六更樂而爲根本亦當知之不爲六根本亦當知之與七更樂共相受入復次菩薩思惟觀了廣語更樂與三更樂而作根本枝流七更少有其分
또 최승아, 보살은 다시 명(明)의 갱락과 스스로 상응할 때 그 밖의 네 가지 갱락을 함께 서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유하여야 하고, 또한 염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사유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은 무명(無明) 갱락이 세 가지 갱락과 스스로 상응할 때에는 다시 열한 가지 갱락과는 그 분한이 조금 있되 또한 염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사유해야 하느니라.
012_0359_a_08L復次最勝菩薩當復思惟明更樂自相應時於餘四更共相受入亦當思惟不興染著復次菩薩無明更樂與三更樂自相應時與十一更樂少有其分亦當思惟不興染著
또 최승아, 명도 아니고 무명도 아닌[非明非無明] 갱락과 스스로 상응할 때에는 그 밖의 열한 갱락에는 그 분한이 조금만 있느니라.
또 보살은 애욕(愛欲)의 갱락과 스스로 상응할 때에는 열한 갱락에는 조금만 그 분한이 있으며 가령 성냄[恚怒]의 갱락이 서로 포섭하여 지닐 적에도 열한 갱락에는 조금만 그 분한[分]이 있느니라.
012_0359_a_13L復次最勝非明非無明更樂自相應時餘十一更樂少有其分次菩薩愛欲更樂自相應時十一更樂少有其分假使恚怒更樂自相攝十一更樂少有其分
또 낙통(樂痛)의 갱락은 다시 열둘의 갱락과 조금 그 분한이 있고, 고통(苦痛)의 갱락은 열한 갱락과 조금 그 분한이 있으며, 무고통무락통(無苦痛無樂痛)의 갱락은 역시 열셋의 갱락과 조금 그 분한이 있느니라.
또 보살은 안식(眼識)의 갱락이 스스로 상응할 때에는 여덟 갱락과 조금 그 분한이 있고, 귀ㆍ코ㆍ혀ㆍ몸에서도 역시 눈의 갱락과 같아서 차이가 없으며, 색상(色想)의 갱락은 다섯 갱락으로 체(體)를 삼고 곧 일곱 갱락과 서로 함께 이어지느니라.
012_0359_a_17L復次樂痛更樂復與十二更樂少有其分苦痛更樂十一更樂少有其分無苦無樂痛更樂亦與十三更樂少有其分復次菩薩眼識更樂自相應時與八更樂少有其分耳鼻舌身亦如眼更而無有異色想更樂與五更樂爲體便與七更共相牽連
012_0359_b_01L다시 소리[聲]의 갱락은 세 갱락으로 체를 삼고 그 때에는 열한 갱락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냄새[香]의 갱락은 두 갱락으로 체를 삼고 그때에 아홉 갱락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간혹 맛[味]의 갱락은 네 갱락으로 체를 삼되 이때에 곧 열한 갱락과 서로 이어지느니라. 또 세활(細滑)은 세 갱락으로 체를 삼되 곧 열세 갱락과 서로 이어지며, 간혹 법(法)의 갱락이 스물두 갱락과 함께 서로 체를 삼되 그 때에는 모든 갱락과 서로 이어지느니라.
012_0359_b_01L若復聲更與三更樂爲體爾時便與十一更樂而共相連若使香更與二更樂爲體爾時便與九更而共相連或時味更與四更爲是時便與十一更而相牽連若使細滑與三更爲體便與十三更共相牽連或時法更與二十二更共相爲爾時與一切諸更而相牽連
상위(上位) 보살은 언제나 갱락(更樂)의 흥성과 쇠망과 일어나고 소멸하는 곳을 사유하여 낱낱이 분별하되 더하거나 덜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곧 모든 티끌[塵]과 욕결(欲結)을 소멸시키고 결을 소멸시킴으로써 마음도 역시 항상하다[常]고 헤아리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다시 아ㆍ인ㆍ수명과 생기고 소멸하고 집착하고 단멸하는 것을 보지도 않느니라.
012_0359_b_08L上位菩薩常當思惟更樂興衰起滅之處一一分別令不增減便能消滅諸塵欲結以能滅結心亦不著計常之想亦復不見我人壽命生滅著斷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6주 보살은 진실한 마음으로써 있다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공(空)을 자세히 아는 이이니, 모든 갱락(更樂)에 대하여 하나[一]임을 분명히 분별하느니라.
보살은 간혹 때로는 갱락을 대치하면서 한 가지 근(根)으로 체(體)를 삼을 줄도 알아야 하나니, 이 때에는 따로 여덟 가지 근(根)과 서로 이어지느니라.
012_0359_b_12L如是最勝六住菩薩以眞諦心不念有無審解空者於諸更樂了別爲一菩薩當知或時有對更樂與一根爲體時別與八根相與牽連
상위 보살은 다시 사유하면서 뜻을 오로지 앞에다 두어 낱낱이 분별하되 마음은 염착하지 않아야 하며, 보살은 다시 광어(廣語) 갱락(更樂)이 5근(根)으로 체를 삼는 줄 관찰해야 하느니라. 그때에 따로 여덟 가지 근과 서로 함께 이어지며, 또한 끝내 염착하지 않는 줄 사유해야 하느니라.
보살은 마땅히 명(明)의 갱락은 세 갱락으로 체를 삼음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그때에 따로 아홉 가지 근과 서로 함께 이어지고, 또 무명(無明)의 갱락이 스스로 체가 될 때에는 역시 여섯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명도 아니고 무명도 아닌 갱락이 스스로 체가 될 때에는 열한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느니라.
012_0359_b_16L上位菩薩復當思惟專意在前一一分別心不染菩薩復當觀察廣語更樂與五根爲體爾時別與八根共相牽連亦當思惟竟不染著菩薩復當思念明更樂與三更樂爲體爾時別與九根共相牽連復次無明更樂自爲體時與六根共相連綴非明非無明更樂自作體時與十一根而共牽連
012_0359_c_01L애욕의 갱락도 또한 네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고 성냄의 갱락도 다시 네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낙통(樂痛)의 갱락은 두 가지 근으로 체를 삼되 아홉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고통(苦痛)의 갱락은 두 가지 근으로 체를 삼되 다시 여섯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고통도 없고 낙통도 없는[無苦痛無樂痛] 갱락은 한 가지 근으로 체를 삼나니 그때에 다시 무근(無根)과 함께 서로 죽어지느니라.
012_0359_c_01L愛欲更樂亦與四根共相牽連恚更樂復與四根共相牽連樂痛更樂與二根爲體與九根共相牽連苦痛更樂二根爲體復與六根共相牽連無苦無樂痛更樂與一根爲體爾時復與無根共相牽連
또 보살은 눈[眼]의 갱락이 스스로 체(體)가 될 때에는 아홉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고 귀ㆍ코ㆍ혀ㆍ몸도 역시 그와 같으며, 뜻[意]의 갱락은 다섯 가지 근으로 체를 삼나니 이 때에는 여덟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느니라. 색(色)의 갱락은 두 가지 근으로 체를 삼으면서 곧 다섯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고, 성(聲)의 갱락은 세 가지 근으로 체를 삼나니 그 때에는 곧 여덟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느니라.
012_0359_c_07L復次菩薩眼更樂自爲體時與九根共相牽連耳鼻舌身亦復如是意更樂與五根爲體是時與八根共相牽連色更樂與二根爲體便與五根共相牽連聲更樂與三根爲體爾時便與八根共相牽連
또 보살은 역시 사유해야 하나니 냄새[香]의 갱락은 여섯 갱락으로 체를 삼나니 그 때에는 곧 아홉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고, 가령 맛[味]의 갱락이면 두 가지 근으로 체를 삼나니 이때에는 곧 열한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며, 혹은 때로 세활(細滑)의 갱락은 한 가지 근으로 체를 삼기도 하나니 곧 여덟 가지 근과 함께 서로 이어지느니라.
012_0359_c_12L復次菩薩亦當思惟香更樂與六更樂爲爾時便與九根共相牽連設味更樂與二根爲體是時便與十一根共相牽連或時細滑更樂與一根爲體便與八根共相牽連
012_0360_a_01L보살은 다시 관하면서 알아야 하나니, 법(法)의 갱락은 열아홉 가지 근으로 체를 삼고 곧 열세 가지 갱락과 함께 서로 이어지느니라. 가령 보살이 사유하고 헤아리면서 탐착을 제거하고 갱락을 짓지 않으면, 곧 온갖 소원이 충만하여지고 금빛 광명의 상호로써 몸을 장엄하며 번쩍거리는 빛이 비추어서 두루하지 않음이 없고, 모든 법은 죄가 공하고 고요한 줄 깊이 이해하며, 법의 근본은 역시 법이 없으면서 또한 법이 아닌 것도 없는 줄 깨달아 아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 법이 없다면 곧 생기는 바도 없고 또한 멸하는 바도 없으며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되 설하는 바를 보지도 못하고 진실이 아닌 법은 거짓으로 붙인 이름이요 말뿐이기 때문이니라.
012_0359_c_17L菩薩復當觀知法更樂與十九根爲體便與十三更樂共相牽連假使菩薩思惟挍計去貪著不造更樂便能充滿一切諸以金色光相好嚴身光曜普照靡不周遍深解諸法悉爲空寂曉知法本亦無有法亦無非法所以者何無法者則無所生亦無所滅而爲說法不見所說非眞實法假號言耳
안으로는 여섯 수(受)가 있고 밖으로는 여섯 입(入)이 있으며, 5음의 모든 종류와 온갖 입(入)은 모두 텅 비고 고요하여 다 거짓 이름이요 장구(章句)와 일체법(一切法)이라고 분별하지만 진실한 이치로써 관찰하면 역시 5음은 없고 4대의 모든 종류와 스물두 갱락의 근본은 아주 없다[斷滅]는 것도 없으며 또한 이것은 상(常)이라거나 무상(無常)이라는 것도 없으며 또한 견고한 것도 없나니 이것을 바로 ‘모든 법은 말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012_0360_a_02L有六受外有六入五陰諸種及一切斯皆虛寂皆悉假號分別章句及一切法以眞諦觀亦無五陰四大諸及二十二更樂之本無有斷滅無是常非常亦無堅固是謂名曰諸法無言
모든 법은 근본과 지말이 청정하며, 모두가 공(空)하고 모두가 고요하여 그 이름도 없으며, 온갖 법성과 명호는 모두가 또한 자연(自然)이고 전혀 아무것도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도 역시 그와 같나니, 처소가 없는 법을 두루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
012_0360_a_08L一切諸法本末淸淨皆空皆寂無有其名一切法性及與名號亦自然悉無所有是諸佛教亦復如普當修習無處所法
무엇을 ‘처소가 없는 법을 닦아 익혀야 한다’라고 말하는가? 이를테면 담박(憺怕)함을 익히면 다 생기는 바가 없고 욕심이 없음[無欲]을 닦으면 진실한 이치의 법을 행하며, 본래 없음[本無]을 익히고 배우면 법계를 거닐고 또한 본제(本際)를 익혀 다 공인 줄 분명히 알며, 모든 법은 다 머무르는 바가 없고 익히고 행할 바도 없으면 행(行)도 행하지 아니할 것도 없느니라.
012_0360_a_11L何謂修習無處所法謂習憺怕悉無所生修於無欲行眞諦法習學本無而行法界習本際了知悉空一切諸法皆無所無所習行無行不行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6주 보살은 모든 법이 공임을 알고, 다시 위의와 예절을 닦아 익히며, 미래[當來]를 취하지 않고 이미 과거를 버렸으며 현재를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또한 내 것[我所]도 없고 받아 취할 바도 없으며, 또한 주인도 있지 않고 다시 옷을 입은 이도 없으니 볼 수도 없으며, 구경에 공(空)이기 때문에 다하는 것도 없고 설령 문자가 있다 하여도 역시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이니라.
012_0360_a_15L如是最勝住菩薩解諸法空復當修習威儀禮不取當來已捨過去不念現在無我所無所受取亦不有主復無被服不可睹見爲究竟空故無有盡有文字亦假號耳
012_0360_b_01L그 다함이 없다면[無盡] 곧 생기는 바가 없고, 그것은 본래 청정한지라 뜻[志意]이 담박하며, 또한 출생(出生)하는 것도 없는지라 당연히 생기는 바나 생기는 바 없는 것도 여의어야 하고, 이미 익히고 배운 바도 역시 소리나 메아리가 없으며, 나아갈 데를 보지 못하고 또한 물러날 것도 없으며, 가장자리를 미루어 찾아도 곧 그 밑도 없고 또한 밑이 없지도 않으며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바로 ‘본래 공[本空]임을 통달한다’라고 말하느니라.
012_0360_a_20L其無盡者則無所以其本淨志意憺怕亦無出生離所生及無所生已所習學亦無聲不見進趣亦無退者推尋邊幅則無有底亦不無底不起不滅是則名曰達於本空
평등(平等)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했으나 역시 생각이나 기억이 없으며, 가까운 것도 없고 먼 것도 없고 또한 발자국도 없나니, 이것을 바로 익힌다[習]고 하느니라. 익힌다고 말하는 것은 법률(法律)에 들어가서 모든 법은 임시로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요 또한 오고 가는 것이나 돌아다니는 곳도 없으며,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항상하여 법계에 머무르므로 그가 이와 같은 법을 능히 받들어 행한다면 이것을 익힌다고 하느니라.
012_0360_b_02L講宣平等亦無想念近無遠亦無足迹是謂爲習所言習入於法律一切諸法假有號耳無來往周旋之處無得無失無聞無是謂常在住於法界其能奉行如是法者是名爲習
어떤 것이 법(法)인가? 말한 바 법이라 함은 법은 법을 기억하지도 않고 또한 헐어 무너뜨리지도 않으며, 다시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바라는 것도 없으며, 설령 바라는 것이 없다 하여도 역시 갚으려고 생각지도 않느니라. 만일 갚을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곧 온갖 바라는 생각의 누(累)가 제거되며, 장차 올 세상을 거스르지도 않고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도 않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이면 곧 완전히 삼세에서 평등할 수 있느니라. 삼세가 평등하게 되면 곧 언설(言說)도 없고 머물러 일부러 중생을 제도할 필요도 없느니라.
012_0360_b_07L云何爲法所言法法不念法亦不毀敗復不恐難無有悕望設無悕望亦不想報若不念報則除一切望想之累不遲當來不住現在不憶過去如是行者便能具足等於三世三世等者則無言說用住故而度衆生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는 출현하여 이런 언교를 연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저 언덕[彼岸]에 건너갈 수 있게 하거니와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법성은 언제나 머물러 법계는 자연(自然)이며 또한 변하거나 바뀌지 않거나 법계가 머무른다고 함은 바로 적연(寂然)함을 말하는데 다시 무엇 때문에 법계가 자연인가? 나[吾我]가 없기 때문에 자연이라 하느니라.
012_0360_b_13L最勝當知如來出現演此言教使衆生類得度彼岸佛無佛法性常住法界自然亦不變法界住者是謂寂然復以何故法界自然以無吾我故曰自然
간혹 보살은 이 내 것[我所]을 헤아리면서 스스로 몸과 뜻으로 오로지 집착하는 바가 있다고 여기어 5음의 형상을 받아 인연(因緣)을 보며 이름을 임시로 붙여서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근본과 지말과 4대의 모든 입(入)을 관찰하기도 하느니라.
012_0360_b_17L或時薩計是我所自謂有身意所專著五陰形觀見因緣名色思想周旋處言辭往來依猗識知名號假設心中稱量觀察本末四大諸入
012_0360_c_01L이때에 보살은 다시 ‘나는 반드시 권하고 나아가게 하여 제도하며, 반드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병을 버리고 도(道)의 가르침을 닦고 익혀 세 가지 해탈문에 들어가게 하여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또 다시 ‘중생들로 하여금 평등하게 도의 자취[道迹]에 이르게 하리라’라고 하고, 아라한이 되어 4과(果)를 얻어 증험하고 혹은 다시 ‘의지(意止)ㆍ의단(意斷)ㆍ신족(神足)ㆍ근(根)ㆍ역(力)ㆍ7각(覺)ㆍ8도(道)ㆍ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 4제와 진여가 진로(塵勞)를 소멸시킨다’라고 생각하기도 하나니, 이런 생각이 있으면서 안으로 중생에 대하여 권속을 삼는다면 곧 법계에 대하여 결감(缺減)이 있느니라.
012_0360_b_21L是時薩復作是念我當勸進度三界人使捐捨淫怒癡病修習道教入三脫若復思惟使衆生等到於道迹成羅漢得四果證或復思念意止意神足根力七覺八道空無想願諦眞如滅於塵勞有是思想內於衆生爲眷屬者則於法界而有缺減
6주 보살은 이것을 멀리 여읨으로써 연각이나 성문의 마음과 함께하지 않고 보살의 업과 대승의 서원을 행하며 크고 넓은 일산[蓋]과 넓고 큰 뜻을 펴는 것이니, 마음에서 스스로 ‘만일 내가 부처가 되려고 하여 도혜(道慧)를 힘써 구한다면 백천 가지 행에 대하여 줄어지지 않게 하리라. 나는 보시하여 간탐과 인색함을 버리고 법재(法財)를 베풀며 금계를 청정하게 하여 더러운 흠을 끊어 없애고 행을 삼가하고 지키며 인욕을 세우고 성냄을 베어 버리며 몸의 행은 부드럽고 온화해야 하고, 또 정진(精進)을 닦을 때는 게으름의 때[垢]를 보호하고 부지런히 힘써 좇고 닦으면서 처음부터 버리지 않아야 하며, 또 아무도 없는 조용한 데에 살면서 정수(正受)를 닦을 때는 뜻이 어지럽거나 옮아가지 않고 한 마음[一心]을 체득하며 삼매(三昧)에서 일어나면 그 뜻을 받들어 행하고 여섯 가지 도무극으로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느니라.
012_0360_c_05L住菩薩以是遠離不與緣覺聲聞之行菩薩業大乘之誓發大弘蓋曠大之意心自念言若我作佛務求道於百千行使不耗減我當布施捨乎慳悋施以法財淨其禁戒斷除瑕穢謹愼守行建立忍辱刈去瞋恚體行柔和若修精進護懈怠垢勤力遵修初不棄捨若處閑居修於正受不亂轉逮得一心從三昧起奉行其六度無極開化衆生
부처님의 도를 구하여 도과(道果)를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6주로 말미암아 등정각을 이루고 뭇 악마를 항복시키며, 위없는 법을 굴려 인민들을 제도 해탈시키며, 부처님의 영원한 적멸[永寂]로써 멸도해야 하므로 거룩한 지혜[聖慧]를 궁구하여 다하고 주지(住地)를 배우고 다스려 여래의 10력(力)의 업과 열여덟 가지 수승하고 특수한 법[十八殊勝不共法]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을 널리 통하고 변재를 분별하고 통달하여 막힘이 없으며, 또한 색(色)과 무색(無色)을 생각하거나 구하지 않고 탐내거나 그리워하는 바도 없으며, 그 앞 사람에 상응하게 5음을 분별하되 일으키거나 없애는 바도 없고 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은 바로 고뇌의 모양이니 이 공(空)을 이해하게 되는 이것이 바로 고제(苦諦)이니라.
012_0360_c_15L以求佛道成道果要由六住成等正覺降伏衆轉無上法度脫人民以佛永寂而滅度之究盡聖慧學治住地宣暢如來十力之業十八殊勝不共之法無所畏分別辯才通達無㝵亦不想於色無色無所貪慕應這前人分別五陰無所起滅生老死苦是惱之相識解空者是謂苦諦
012_0361_a_01L5음의 연(緣)으로 좇아 일어난 바를 깨달아 알고 보는 바의 만물에는 모두가 생각이나 구하는 것이 있으므로 따로따로 그 뜻을 환히 알지만 시비(是非)가 없으며, 비록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영원히 잊지는 않나니 이것이 바로 습제(習諦)이니라.
012_0360_c_23L曉知五陰所從緣起所見萬物皆有想求別了其意而無是非雖不求者亦不永忘謂習諦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과 함께하지만 그러나 진세를 같이하지[同塵] 않고 또한 그 안에 머물러서 요행의 마음이 있지 않으며, 모두 다 소멸하지만 그러나 아무것도 없음을 아나니 이것이 바로 진제(盡諦)이니라.
012_0361_a_03L不與去來今現在事而俱同亦不住中有僥倖心悉知消滅而無所有是謂盡諦
도(道)에 이르고자 하면 고(苦)ㆍ습(習)ㆍ진(盡)을 분명히 알고 84가지 성인이 존중한 바 신령하게 통달하는 지혜로써 연의 계박[緣縛]과 망설임[猶豫]과 번뇌의 그물[結網]을 제거하나니 이것도 바로 진제(盡諦)이니라.
012_0361_a_05L欲致道者了苦習以八十四聖所尊重神達之智去緣縛猶豫結網是謂盡諦
4제에서 온갖 나타나는 바의 선ㆍ악과 고ㆍ락을 분별하고 마음으로 세간을 알며 근본과 지말을 모두 환히 알지만 구하지도 않으며, 비록 구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 증득을 취하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도제(道諦)를 행하는 것이니라.
몸이 공하고 고요히 사라져서 일어나지 않음을 분명히 이해하고 또한 재앙이나 허물이 없으며 또한 죄(罪)를 제거하지도 않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다시 끊어지거나 파괴도 없으며 몸과 몸이 아닌 것도 없고 시설이나 조작이 있는 것도 보지 않으며 피차(彼此)에 있지도 않고 또한 중간도 없느니라.
012_0361_a_07L分別四諦一切所現善惡苦樂心知世閒了本末不以爲求雖不求望不取其是謂菩薩行於道諦解了身空寂滅不起亦無殃舋亦不除罪無取無捨復無斷壞無身不身不見施設有造作者不在彼此亦無中閒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상위(上位) 보살은 언제나 사유하되 스물두 갱락(更樂)의 근본과 서로 관련되는 재앙을 제거하여야 비로소 보살의 업(業)을 잘 닦아 익히고 숭앙할 수 있나니 최승아, 이것이 바로 상위 보살이 6주 가운데서 그 행(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
012_0361_a_13L如是上位菩薩常當思惟除二十二更樂之本相連之殃乃能修習崇菩薩是謂最勝上位菩薩於六住中而淨其行

7. 광수품(廣受品)
012_0361_a_17L廣受品第七

그때에 최승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아비바제(阿毘婆帝:不退轉) 보살이 7주지(住地)에서 그 행을 청정하게 하나이까?”
012_0361_a_18L爾時最勝菩薩復白佛言云何阿毘婆帝菩薩於七住地而淨其行
012_0361_b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언제나 7주 가운데서 반드시 보시의 노고[施勞]에 보답하며 끝내 그 원(願)을 이루고 헤아리거나 집착을 버리고 내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비록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제도함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다시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과 단멸(斷滅)과 항상하다고 헤아리는[計常] 것과 열여덟 본지(本持)와 모든 입(入)의 성품도 보지 않느니라. 모든 쇠(衰)와 입(入)의 뒤바뀐 생각을 멀리 여의고 또한 삼계에 나기를 원치 않으며 언제나 불(佛)ㆍ법(法)ㆍ승[衆]에 의지하여 계(戒)와 염천(念天)과 보시와 공ㆍ무상ㆍ무원에 친근하여 좇고자 하며, 또한 다시 도(道)에 드는 이가 있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012_0361_a_20L佛告最勝菩薩常當於七住中必報施勞終果其願去離計著不見有我雖度衆生不見有度亦復不見我人壽命斷滅計常十八本持諸入之性遠諸衰入顚倒之想亦不願求欲生三界常欲親附依佛法衆戒念天施空無想願亦復不見有入道者
비록 공ㆍ무상ㆍ무원의 증득이 있어 알았다 하더라도 처(處)하지 않고 그 경계에 들지도 않으며, 지혜는 무원(無願)보다 뛰어나고,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고, 온갖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도 다시 자신은 중생을 가엾이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으며, 모든 법은 공(空)하여 주인도 없고 또한 들어갈 바도 없으며 인도하고 어거하는[導御] 이가 되고자 높은 체하지 않고, 생기는 바의 인[所生忍]과 보응(報應)의 과보도 없으며, 하나의 도[一道]로써 가르쳐 주어 명색(名色)에 의지하지 않고 영원히 삿된 업[邪業]을 여의고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구하는 생각은 멸하여 회전(廻轉)하지 않는 줄 알며 스스로 그의 뜻을 다루어 지혜에 거리끼는 바가 없으며 영원히 3도(塗)를 버리고 욕심에 물들지 않느니라.
012_0361_b_04L雖知有空無想之證知而不處不入其境慧過無願身口意淨悲念一切衆生之類復不自念哀愍衆生等視諸法斯空無主亦無所入欲爲導御勿爲貢高無所生忍報應之果一道教授不猗名色永離邪業而無所著求想知滅而不迴轉自調其意慧無所㝵永去三塗不染於欲
보살이 말하는 바 알맞게 건립하는 때는 나고 들고 나아가고 물러가되 의용(儀容)을 잃지 않고 온갖 허망한 생각과 탐내거나 구하는 뜻을 영원히 내지 않으며, 모든 받아 취하는 바는 자세히 살펴 안온하게 하며 흩어진 것을 시설하는 데에는 착오가 없고, 또한 마음에 이기거나 진다는 뜻을 품지 않으며, 언제나 고요한 법을 사유하나니 그 고요하다고 하는 것을 바로 퇴전하지 않는 법[不退轉法]이라 하느니라.
012_0361_b_12L菩薩所說建立應時出入進退不失儀容一切妄想貪求之意永不生念諸所受取審諦安詳散所施設無有錯誤亦無此心懷勝負意常當思惟寂然之法其寂然者斯乃名曰不退轉法
모든 부처님께서 가상하다고 찬탄하셔서 이름을 주셔야 비로소 나는 바가 없는 지혜라 일컬을 수 있느니라. 왜냐하면 일체법에서는 또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 그 마음이 없다면 곧 남[生]이 없고 이것이 바로 견고하여 퇴전하지 않는 자리[堅固不退轉地]이니라.
012_0361_b_17L諸佛嘉歎而授名號乃得稱爲無所生慧所以者何於一切法亦無有心其無心者則無所生無所生者是則堅固不退轉地
012_0361_c_01L또 처음 뜻을 낸[發意] 보살의 마음은 그 뜻이 견고하여 언제나 큰 서원의 마음을 수호하나니 마치 금강(金剛)과 같아서 무너뜨릴 수 없으며 한량없는 생사의 재난에 놀며 온갖 지닌 것을 보시하되 바라는 바가 없고,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에게 복덕을 가(加)하면서 ‘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부처님의 무위(無爲)로써 멸도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012_0361_b_20L又初發意菩薩心者牢固其志常當守護弘誓之心猶若金剛不可沮壞遊於無量生死之難一切所有施無悕望常有等心加於衆生我皆當度一切萌類以佛無爲而滅度之
비록 중생을 제도하였다 하더라도 역시 제도한 사람이 없고 무위에 이른 이는 온갖 법이 나는 바가 없음을 알며, 모든 법을 분별하여 분명히 깨달아 알고는 언제나 정진을 더하여 빠뜨리는 바가 없고 그 지혜로 두루 들어가서 도달하지 못하는 바 없으며 온갖 지혜를 두루 갖추어 미묘한 문[妙門]에 분명히 들어가고, 모든 사랑하고 중히 여기는 데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으며, 탐욕과 인색함이 없어 모든 망녕된 소견을 끊느니라.
012_0361_c_02L雖度衆生亦無有人至無爲者解一切法斯無所生分別曉了一切諸法常加精進無所遺漏其慧普入靡所不達具一切智了入妙門諸所愛重無有增減以無貪悋斷諸妄見
아유월치(阿惟越致)는 비록 삼계에 있다 하더라도 뭇 생각[衆想]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만일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면 곧 가장자리에 있게 되며 가장자리에 있는 이는 나[吾我]를 헤아리고 그 보시한 것에 기대어 서원이 온갖 것에 미치면 복(福)을 입혀 전하고 돕게 되느니라. 이렇게 보시한 이는 곧 세 가지 장애[碍]의 아(我)ㆍ인(人)ㆍ상(想)의 보시가 있음으로써 생사에 유전하는 세간에 얽매여 있게 되고 끝내 세간을 건너는 도(道)는 얻을 수 없느니라.
012_0361_c_07L阿惟越致雖在三界不起衆想若起想著便在邊際在邊際者計於吾我猗其所施願及一切蒙勸助福作是施者便有三㝵我人想施流轉生死纏緜在俗終不能得度世之道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에 보살이 만일 보시를 할 적에는 나에 집착하지 않고 받는 이가 취하는 바가 있다고도 보지 않으며, 설령 보시하는 바가 있다 하여도 일찍이 바라는 생각이나 보응을 구하는 일이 있지 않나니, 보살은 보시하는 것으로써 온갖 중생에게 권하고 도와 그로써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느니라.
012_0361_c_12L最勝當知於是菩薩若惠施時不著吾我不見受者而有所取設有所施未曾望想而求報應菩薩所施勸助一切用求無上正眞之道
삼세가 평등하여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고 하나의 법신[一法身]임을 분명히 알면 생사에 처하지도 않고 멸도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온갖 것을 교화하되 다 머무르는 바가 없고 심성이 부드럽고 온화하느니라. 모든 재액을 불쌍히 여기며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선지식(善知識)을 친근히 하여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을 묻고 받으며, 경적(經籍)을 익히고 구하여 그로써 의심의 결[疑結]을 깨치고 자주 집 버리기를 생각하고 살림살이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상호(相好)를 분명히 알면 형상 없음[無形]에 도달하고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면 분명하게 알고 바르게 아느니라.
012_0361_c_16L平等三世無去來今了一法身不處生死不止滅度教化一切悉無所住柔和心性愍哀諸厄等心廣濟一切衆生親善知識咨承未及習求經籍用寤疑結數念捨家不慕居業解了相好達之無形等觀諸法明悉解正
012_0362_a_01L어디서부터 나는 바가 없어도 일품(一品)임을 널리 펴 말하고, 뭇 생각을 제거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며, 모든 사견(邪見)을 버리고 진로(塵勞)의 더러움을 없애며 고요히 자세하게 살피면 그 마음이 조화(調和)로우며, 뜻은 해칠 것을 품지도 않고 염오(染汚)를 따르지 않느니라. 만일 이 자리[地]에 들어서 그 처소에 있게 된 이면 그제야 불퇴전라고 이름하느니라.
012_0361_c_22L無所從生宣暢一品蠲除衆念去諸亂想捨諸邪見滅塵勞穢寂然審諦其心調和志不懷害不隨染污若入此地在其處者乃當名曰號不退轉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중에 들어가서 항상 신통으로써 그들을 깨우쳐 교화하고, 모든 부처님 국토[佛土]는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줄 알며, 두루 알면서 구경(究竟)의 처소에 이르고 완전하게 중생의 근원을 깨달아 알며, 그 좋아하는 바를 따라 그들을 위하여 나타내 보이느니라.
012_0362_a_03L一心入衆恒以神通而開化之解諸佛土空無所有普悉逮致究竟之處具足曉了衆生根源隨其所好而爲示現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7주(住) 보살은 용맹정진하면 여환삼매(如幻三昧)가 언제나 현재전하여 그 중생들의 마음과 뜻이 나아가는 바에 따라 제도하고 해탈시키느니라. 혹은 5도(道)에 들어가 따라다니면서 구호하기도 하고, 본원(本願)을 버리지 않고 그의 본래의 서원을 따르면 용이하게 성취할 수 있고, 갖가지를 식별하여 언사로 말하는 바는 곧 변재가 되며, 앞의 음향에 보답하면 곧 그를 위한 설법이 되고, 먼저 통달하여 명근(命根)이 나아갈 바를 환히 알며, 도(道)를 이루기까지 불수(佛樹) 아래에 앉아 도량을 장엄하여 공훈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모든 부처님 법을 통달하여 두루 다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012_0362_a_06L最勝當知七住菩薩精進勇猛如幻三昧常現在前隨彼衆生心意所趣而度脫之或入五道逐而救護不捨本願從其本誓輒得成就識別種種言辭所說尋以辯才報前音響則爲說法先達了知命根所趣至欲成道坐佛樹下莊嚴道場功勳具足通諸佛法靡不周悉
보살은 항상 물러나는 것과 물러나지 않은 것을 사유하여야 하고 극히 미묘한 법으로 모든 관(觀)을 다 통달하며, 그 가장자리를 알지만 그러나 처소가 없느니라.
또한 마지막도 없고 또한 나는 것도 없느니라. 보살은 물러나지 않는 지혜 인[不退智忍]을 사유하여 모든 법이 모이고 흩어지고 굳고 강한 것을 분명히 알며, 영원히 불퇴지인에서 멸도하게 하느니라.
012_0362_a_13L菩薩恒當思惟退不退轉極妙之法悉達諸觀了其邊際而無處所亦無有終亦無有生菩薩思惟不退智忍明知諸法聚散堅强永使滅度不退智忍
비록 방일(放逸)에 처해도 모든 법을 환히 알면서 불퇴지인에서 빨리 달아남이 없고, 다시 모든 법에 있을 때는 5음이 일어남과 일어나는 바가 없는 것을 아느니라.
불퇴인(不退忍)은 온갖 법에는 음성이 없음을 아나니, 이른바 메아리도 없고 또한 갔다 돌아오는[往還] 것도 없느니라. 불퇴지(不退智)는 모든 법에 존재하면서 온갖 미묘함을 완전히 갖추고 6도무극으로 허공에 두루하나 이지러지거나 줄어듦이 없는 것이니라.
012_0362_a_17L雖處放逸了於諸法而無馳騁不退智忍復在諸法解知五陰起無所起不退忍者解一切法無有音聲所謂無響亦無往還不退智者存於諸法具足衆妙六度無極周遍虛空而無缺減
012_0362_b_01L불퇴인이란 비록 모든 법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하더라도 서고 앉고 눕고 잠잘 적에 상응하거나 상응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법성은 항상 머물러 있고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으며 또한 소굴이 없어 그 처소가 있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모든 법에 대하여 존귀함도 없고 비천함도 없으며 높음도 없고 낮음도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에 대하여 아주 없다거나 항상 있다고 헤아리는 마음을 버리고 여읜 것이니라.
012_0362_a_23L不退忍者雖在諸法無來無去立坐臥寐無應不應不退智者法性常住住無所住亦無窠窟有其處所不退忍者悉於諸法無尊無卑無高無下不退智者於一切法捨離斷滅計有常心
불퇴인이란 모두가 온갖 괴로움을 말미암아 두려움을 내는 것이므로 본래부터 공[本空]이요 또한 처소가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에서 모든 덮개[覆蓋]를 버리고 두루한 것이 허공과 같아 여섯 가지 일[事]을 버리고 없애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다시 모든 법에서 티끌과 때[塵垢]를 소멸시키고 기억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은 응(應)하거나 응하지 않음이 없고 또한 합하거나 흩어짐도 없으며, 비록 모든 법에 노닌다 하더라도 진로(塵勞)를 제거하여 영원히 남은 것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012_0362_b_05L不退忍者皆由衆苦而生恐懼當知本空亦無處所不退智者於一切法去諸覆蓋普遍如空捨除六事不退忍者復於諸法消化塵垢不念不忘不退智者一切諸法無應不應亦無合散雖遊諸法蠲除塵勞永使無餘
불퇴인이란 인(因)을 좇아 그 지혜를 행하되 익히는 바가 없으며, 다 아는 것이 없고 또한 모르는 것도 없으며, 생각[思]도 없고 소견[見]도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모든 법은 움직이는 것이 없고 능히 흔드는 것도 없으며, 담박하고 고요하여 또한 생각이나 기억[想念]도 없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모든 법은 마멸되지만 물러나는 것도 없고 모두가 다 소멸하고 다하여 더듬을 수도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의 근본과 지말은 머무는 것이 없고 성품은 스스로 공(空)과 같은 것이니라.
012_0362_b_11L不退忍者因從其慧行無所習悉無知者亦無不知無思無見不退智者諸法無動無能搖者澹泊寂然亦無想念不退忍者諸法磨滅無有退轉皆悉滅盡不可摸則不退智者於一切法本末無住性自如空
불퇴인이란 모든 법은 다 그윽하여 드러나지 않거나 고요한 자리[幽隱靜漠之地]에 있고 이르는 데마다 걸림이 없으며 또한 환난도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법계의 성품으로 머물러 언제나 때에 따라 모든 법을 일으키고 드러내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모든 법은 다 공하고 고요하여 기억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집착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도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모든 법을 태우고 실어서 저 언덕[彼岸]으로 건너가게 하고 그것[彼]과 이것[此]과 제도[度]가 있고 제도가 없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012_0362_b_16L不退忍者一切諸法皆在幽隱靜漠之地所至無㝵亦無患難不退智者法界性住常以隨時興顯諸法不退忍者一切諸法悉爲空寂不念不捨無著不著不退智者乘載諸法令度彼岸不見彼此有度無度
012_0362_c_01L불퇴인이란 모든 법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모든 입(入)과 근심 걱정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며, 불퇴지란 모든 법을 섭수하여 취하나[攝取] 얻을 수 없고 뜻은 깊고 미묘한 데에 있으면서 6도(度)의 법을 얻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모든 법을 헤아려 더러운 때[垢穢]를 여읨으로써 근본이나 지말에 하자가 없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을 평등하게 받들어 닦고 또한 옮아감이 있지 않는 것이니라.
012_0362_b_22L不退忍者不念諸法生老病死諸入憂惱不退智者攝取諸法而不可得志在深妙獲六度法不退忍者計於諸法以離垢穢本末無瑕不退智者於一切法奉修平等亦不有轉
불퇴인이란 모든 법의 종성(種性)이나 짓는 바를 보지도 않고 하나[一]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에 대하여 구하는 바도 없고 근심이나 걱정도 품지 않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또한 모든 법은 같이 서로 일어나지만 그 중간에 쉬거나 게으름을 품거나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며, 불퇴지란 근본이 없어서 나가는 것도 없고 물러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약간도 없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니라.
012_0362_c_04L不退忍者不見諸法種性所造了知爲一不退智者於一切法亦無所求不懷憂慼不退忍者亦由諸法共相發起無有中息而懷懈怠墮在邊際不退智者曉了本無無進無退亦無若干
불퇴인이란 모든 법이 돌아가는 바의 음향을 끊어 없애고 모두가 다 텅 빈 공이어서 형상과 모습을 보지 못하며 본래부터 없는 법성은 저절로 그러함을 버리지 않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에서 거리낌이 없어서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또한 나는 바[所生]도 없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모든 더러운 악[穢惡]을 버리고 매우 청정함을 행하는 것이며, 불퇴지란 모든 법을 널리 펴면서 온갖 지혜를 조정(調定)하고 속박과 집착[縛着]을 항복받아 도의 마음[道心]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니라.
012_0362_c_09L不退忍者斷除諸法所歸音響皆悉虛空不見相貌不捨本無法性自爾不退智者於一切法無有罣㝵無去無來無著無脫亦無所生不退忍者除諸穢惡行甚淸淨不退智者宣暢諸法調定衆智降伏縛著使興道心
불퇴인이란 모든 법의 경만(輕慢)한 무리와 나아가 은애(恩愛)와 보응의 인연을 다 제도하는 것이며, 불퇴지란 온갖 법은 명구(名句)를 여의면 그 이름은 본래부터 없나니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두루 모든 법으로 하여금 놓아버리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는 것이며, 불퇴지란 마음의 탐착을 버리고 마침내는 근본이나 지말도 역시 더하거나 덜함이 없는 것이요, 또 불퇴지란 법의 근본에서 특별히 뛰어나며 삼계에 독보적인 것이니라.
012_0362_c_15L不退忍者悉度諸法輕慢之輩乃至恩愛報應之緣不退智者一切諸法以離名句其名本無無得無失不退忍者普使諸法無放無取不沒不生不退智者去心貪著究竟本末亦無增減不退智者爲法根本出生殊勝獨步三界
012_0363_a_01L불퇴인이란 고의 근본[苦本]을 사유하여 물러나 찾고 분별하여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아는 것이며, 불퇴지란 근문(根門)과 의식(意識)의 인연을 분별하는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보살의 서원[要誓]은 끝내 틀리거나 어기지 않는 것이며, 불퇴지란 지금의 몸으로써 다시는 태분(胎分)을 받지 않고 항시 화생(化生)하게 된 것이니라.
불퇴인이란 음(陰)과 입(入)의 모든 종류와 일어나고 쇠퇴하는 지(持)ㆍ입(入)ㆍ음(陰)의 성품을 사유하는 것이며, 불퇴지란 몸 안을 분별하여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탐낼 만한 것이 없는 부정관(不淨觀)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012_0362_c_21L不退忍者思惟苦本退尋分別知所從來不退智者分別根門意識因緣不退忍者菩薩要誓終不差違不退智者不以今身更受胎分恒當化生不退忍者思惟陰入諸種興衰持入陰性不退智者分別身中起不淨觀從頭至足無可貪者
최승아, 보살은 언제나 사유하고 분별하여 분명히 아는 것이니라. 처음 보살을 배우려는 마음을 일으킨 이는 불퇴인(不退忍)으로써 일곱 가지의 근본[本]과 또한 나거나 없어지거나 집착하거나 아주 없다거나[斷] 하지 않는 이름을 관찰하여 분명히 알며, 7주 보살은 다시 현성(賢聖)의 여덟 가지 근본을 사유하되 모두 다 나거나 없어지거나 집착하거나 아주 없다거나 하는 것을 보지 않아야 하느니라.
012_0363_a_05L最勝菩薩常當思惟分別了知初發起學菩薩心者以不退忍觀了七本亦不生滅著斷之名七住菩薩復當思惟賢聖八本皆悉不見生滅著斷
설사 최승아, 생을 받는[受生] 바에 따라 거기에 있으면서도 헤아림은 있는 것이니 만일 색계에 나면 5지(地)와 십육ㆍ사ㆍ삼ㆍ이ㆍ일의 아래의 자리[下位]에 있는 이라 하여도 바로 일곱 가지의 근본이 있고 또한 무형계(無形界) 중에도 다시 열하나가 있다고 사유해야 하며 공적(空寂)함을 환히 아는 아유월치(阿惟越致)도 고인(苦忍)과 고지(苦智)와 습(習)ㆍ진(盡)ㆍ도(道)의 인(忍)과 현성의 지혜를 능히 이루어 마침으로써 역시 여덟 가지 현묘하게 통한 지혜[八玄通智]를 분별하면 52가지 무명의 번뇌[無明之漏]를 제거하느니라.
012_0363_a_09L設使最勝隨所受生在彼挍計若生色界五地十六四三二一在下位者正有七本亦當思惟無形界中復有十一了知空寂阿惟越致以能成辦苦忍苦智習盡道忍及賢聖智亦當分別八玄通忍除五十二無明之漏
7주 보살은 언제나 생각이 초선(初禪)에 의지하여 여섯 성지(聖智)를 행하고 세 삼매(三昧)와 세 범당(梵堂)을 닦아 희근(喜根)을 반연하며, 설령 중선(中禪)에 의지한다 하여도 증득을 취하지 않고 마땅히 일곱 가지의 지혜[智]를 닦으면서 각(覺)도 없으나 관(觀)이 있으면 마음의 작용[心行]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수호하느니라.
가령 보살이 그 2선(禪)을 인하여 여덟 가지의 지혜[慧]를 사유하면 각ㆍ관과 희(喜)와 공ㆍ무상ㆍ무원도 없고 또한 증득을 받아들이지도 않느니라.
만약 보살이 다시 3선(禪)을 생각한다면 열 가지 지혜와 각ㆍ관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공ㆍ무상ㆍ무원과 쾌락을 분별하여 스스로 즐기느니라.
012_0363_a_15L七住菩薩常念依初禪行六聖智修二三昧及三梵堂緣於喜根設依中禪而不取證修七智無覺有觀心行守護空無想假使菩薩因彼二禪思惟八慧覺觀喜空無想願亦不受證若復菩薩復念三禪分別十慧不念覺觀無想願快樂自娛
012_0363_b_01L이때에 보살은 4선(禪) 가운데서 다시 16가지 거룩한 지혜[聖智]를 분별하고 또한 각ㆍ관의 행과 세 범당 등도 없으며 그 뜻을 수호해서 새어 없어지지 않나니, 그는 이 보살장(菩薩藏)에 능히 들어가서 지인(智忍)을 행하고 창병(瘡病)이 없음을 알며 52가지 번뇌[漏]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모든 법을 분별하고 다음의 지위[次地]로 나아가게 되면 거룩한 지혜와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轉法]을 체득하느니라.
012_0363_a_22L是時菩薩於四禪復當分別十六聖智亦無覺觀行三梵堂等守護其意而不漏失其能入此菩薩寶藏行於智忍解無瘡病不爲五十二漏之所繫著分別諸法次地所趣逮得聖慧不退轉法
가령 보살이 16가지 매우 뛰어난 지혜를 수행하여 끝내 의심하거나 삿된 소견을 품지 않으면 곧 온갖 번뇌를 녹여 없앨 수 있고, 그의 마음이 굳고 강하여 겁내거나 나약하지 않으며, 뜻과 기억이 견고하면서 또한 흐리거나 망령되지도 않고 삼계에 독보적이어서 꺼리거나 어려운 바가 없으며, 뜻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아서 끝내 파리하거나 열등한 것이 없고 마음은 참괴(慚愧)하여 미치지 못함[不及]을 부끄럽게 여기며, 뜻은 밝게 비추어 통달하지 않음이 없고 지혜는 여(如)하면서도 현묘하고 밝아서 빛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012_0363_b_04L假使菩薩修行十六殊勝之智終不懷抱狐疑邪見則能消除一切衆結其心堅强而不怯弱意念牢固亦不昏妄獨步三界無所忌難志若金剛終無羸劣心常慚愧羞恥不及意能照鑑靡不通達智如玄明莫不蒙曜
변재와 언사는 끝내 걸린 것이 없고 총지(摠持)를 체득하여 일찍이 망실(忘失)하는 일이 없었으며 하는 일은 기필코 알아서 침음(沈吟)하지 않고 있는 데나 사는 데에서마다 문득 부처님 업[佛業]을 행하며, 짓는 일은 평등하여 뜻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말은 언제나 부드러워서 사람을 상하지 않으며 성질은 급작스럽지[卒暴] 않아서 자세히 살피고 안상하며 사람의 뜻을 알아 곧 그를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012_0363_b_10L辯才言辭終不有滯逮致㧾持未曾忽失所爲決了不懷沈吟所在遊居輒行佛業所造平等意無增減言常柔軟不傷於人性不卒暴審諦安詳知人志趣輒爲說法
5음을 분별하고 모든 입(入)을 분석하며 모든 법을 깨닫고 알아 갖추지 않음이 없고 멀리 삼세의 보응과 인연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을 알아 그들을 위하여 옳은 것[是處]ㆍ그른 것[非處]ㆍ선악ㆍ과보에 대하여 설법하며, 지혜의 마음이 심히 깊어서 또한 가장자리와 끝이 없고, 선권(善權)을 분명히 알아 때에 따라 알맞게 교화하며, 때를 알아서 가고 서고 나고 들고 거닐면서 옳고 그름의 여부[可否]를 식별하며, 위의와 예절은 처음부터 마땅함을 잃지 않고 놀고 사는 곳곳에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키느니라.
012_0363_b_15L分別五陰剖判諸入曉了諸法靡不備悉遙睹三世報應因緣知人心念而爲說法是處非處善惡果報慧心甚深亦無邊畔明解善權隨時適化知時進止出入行步識別可否威儀禮節初不失宜所可遊居興發無上正眞道意
012_0363_c_01L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 대사(大士)는 처해 있는 곳곳에서 사람에게 법을 설하고 제도하여 도과를 이루게 하고, 여러 가지 재난을 버리고 영원한 안락을 얻게 하며, 끝내 여덟 가지의 불한처(不閑處)에 나지 않고 노니는 국토 경계에서 자유자재하며, 그의 말한 바를 들으면 곧 제도 해탈될 수 있고 그 어떤 이라도 섬기거나 그의 언교를 받들면 곧 물러나지 않는 법을 체득하게 되며 공의 지혜[空慧]를 환히 깨닫되 어디서부터 나는 것도 없이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도를 이루느니라.
012_0363_b_21L如是最勝菩薩大士在在處處說法度人令成道果棄捨衆難使獲永安終不生於八不閑處所遊國界而得自在聞其所說輒得度脫其有承受奉其言教尋便逮致不退轉法曉了空慧無所從生便成無上正眞之道
보살은 언제나 보시의 선권방편을 행하며 또한 스스로 ‘나는 이제 색상(色相)을 능히 항복받았고 본래 나의 소원이 오늘에야 이루어졌구나’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조금도 마음을 내지 않고 따라서 취하고 증득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보살로서 물러남이 없다고 하느니라.
012_0363_c_04L菩薩常當施權方便亦不自念吾今以能降伏色想本我求願今日已果不生小心而隨取證是謂菩薩無有退轉
12인연의 법은 모두가 무명(無明)을 말미암아 곧 생사(生死)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분별하고 곧 그 생기는 바를 구하여도 볼 수가 없고 또한 살필 수도 없으며, 또한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있지 않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은 인연의 근본을 통달하여 행하는 바가 바른[正] 것이 있다거나 바른 것이 없다거나 그리고 상ㆍ중ㆍ하의 것이라거나 하는 것을 보지도 않고, 또한 다시 죄와 복의 보응이나 착하지 않은 행[不善行]을 짓는 것도 보지 않으며, 모든 법은 다 생겨나는 바[所生]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모든 법의 근본을 닦으면서 합하거나 흩어짐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바로 인연으로 일어나는 것이라 하느니라.
012_0363_c_07L分別十二因緣之法皆由無明便致生死尋其所生求不可見亦不可觀亦非有相亦非無相非不有相非不無相達知如斯因緣之本不見所行有正無正及上中下亦復不見罪福報應造不善行解了諸法悉無所生修諸法本不見合散是乃名曰因緣所起
가령 연(緣)이 없으면 곧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것이니 근심이 없다[無患]는 말은 무명(無明)과 행(行)이 소멸하면 노(老)ㆍ사(死)ㆍ우비(憂悲)ㆍ고뇌(苦惱)가 없다는 것이니라. 따로따로 열두 가지의 법을 통달하여 알되 온갖 인(因)이 있는 모든 법의 이름은 인과 연이 합하거나 흩어지되 나(我)도 아니고 나도 없으며 그[彼]도 아니고 그도 없으며, 또한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과 생(生)ㆍ노(老)ㆍ무상(無常)도 보지 않고 들어가는 바나 다시 들어감이 있지 않는 것도 보지 않으며, 식으로 들어가는[識入] 것은 모두 다 들어가는 바가 없는 줄 통달하여 아느니라. 이와 같이 들어가면 곧 온갖 물러나거나 물러나지 않는 법을 분명히 아나니 최승아, 이곳이 바로 물러남이 없는 대사[不退大士]이니라.
012_0363_c_14L假使無緣便無憂患言無患者無明行滅則無老死憂悲苦惱通達識知別十二法一切有因諸法名號因緣合散非我無我非彼無彼亦復不見我人壽命生老無常不見所入復非有入達知識入悉無所入如是入者則了一切退不退法是謂最勝不退大士
012_0364_a_01L만일 온갖 법을 완전히 갖추고자 하면 마땅히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을 분명히 알아야 하느니라. 비록 텅 비고 고요하다[虛寂] 하더라도 중생 때문에 증득을 취하지 않으며, 보살은 행이 청정하여 유위(有爲)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중생은 뿌리[根]가 깊어 유위를 다하지 못하며, 12인연은 바로 유위의 법인 줄 이해하고 보살은 인도하여 무위(無爲)를 알게 하느니라.
012_0363_c_22L若欲具足一切法者當了無常苦空非身雖知虛寂用衆生故而不取證菩薩行淨不著有爲衆生根深不盡有爲解十二緣斯有爲法菩薩導引使了無爲
보살이 비록 무위의 경계에 처하여 공ㆍ무상ㆍ무원의 법을 행한다 하더라도 무위에 머물러서 그 증득을 취하지도 않고 무상(無常)은 닳아 없어지는 법인 줄 분명히 알며, 공덕을 수행하되 고달픔을 품지 않고 그가 생(生)을 받는 여러 가지 괴로움의 근원을 관찰하며 중생을 보호하여 스스로 자세히 살피고 모든 법은 소멸하되 또한 구경(究竟)이 되지 않는 줄 관찰하며, 통(痛)ㆍ의(意)ㆍ법(法)을 찾되 처소가 없음을 관하며 생하는 바가 없음을 관하고, 생기는 바는 보지도 않으며, 중생을 생각하며 그 무거운 임무를 맡았다고 관하고 유루(有漏)와 무루(無漏)는 삼계에서 소멸하지 않는다고 관하며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을 행하며 그 후학(後學)을 가엾이 여기고 뜻은 집착이 없는 데에 두면서 제자나 연각의 도(道)를 버리지 않느니라.
012_0364_a_03L菩薩雖處無爲境界行空無想無願之法不住無爲而取其證了知無常爲磨滅法修行功德不懷疲極觀彼受生衆苦之元護彼衆生而自省察觀諸法滅亦不究竟觀痛意法尋無處所觀無所生不見所生觀念衆生爲彼重任觀漏無漏不滅三界行四等心愍彼後學意存無著不捨弟子緣覺之道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은 청정한 의지(意志)로 자세히 살피면서 사람들의 좋아하는 바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나타내 보이고, 중생에게 알맞고 끝내 손해가 없게 하여 온갖 원(願)을 얻으며, 공덕의 지혜로써 그 마음이 산뜻하고 눈으로 보게 되는 빛깔을 구하여도 마침내 없으며, 인욕을 익히고 행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그 욕설을 퍼붓고 성내면서 향하는 이가 있어도 오직 그 법만을 생각하며 안팎은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이해하며, 또한 의심을 일으켜 공(空)에 한정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의 몸과 다른 사람도 보지 않느니라.
012_0364_a_11L如是最勝菩薩淸淨意志審諦隨人所好而爲示現應適衆生終無有損得一切願以功德慧其心鮮潔眼所視色索之了無習行忍辱不興亂想其有罵詈瞋恚向者唯念其法解內外空而無所有亦不起疑而限於空不自見身及與他人
그 까닭이 무엇인가? 아유월치(阿惟越致)는 다른 이로부터 손과 발을 요구 받아도 기뻐하며 그에게 주고, 설령 또 머리를 요구한다 하여도 그 마음은 갑절 더 기뻐하며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도 않고 탐하거나 인색해 하지도 않으며, 아내나 아들을 구하는 이에게도 이내 베풀어 주되 마음이 변하거나 달라짐이 없기 때문이니라.
012_0364_a_18L所以者何阿惟越致從索手腳歡喜與之設復求頭其心倍悅不逆前人無所貪惜求妻子者卽持施與心無變異
012_0364_b_01L연설한 바 장구(章句)는 오직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만 힘쓸 뿐이요 몹시 은근히 남에게 금륜왕(金輪王)이나 제석(帝釋)ㆍ범천왕(梵天王)이 될 것을 권하지도 않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연설하고 마음을 내고 배움[學]을 일으켜 보살의 도[菩薩道]를 닦으며 신통으로 놀고 다니면서 시방의 부처님을 뵈옵고 모든 부처님 세존께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느니라. 바로 삼천대천의 불토에 보배가 가득 찼다 하여도 마음으로 끝내 생각하거나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온갖 있는 바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며 또한 다시 이것은 나의 것[我所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뜻이 청정하면 색(色)을 생각하고 구하지 않느니라.
012_0364_a_21L所說章句唯務無上正眞之道不大慇懃勸進於人作金輪王帝釋梵天爲一切人說微妙法發心起學爲菩薩道神通遊行見十方佛禮事供養諸佛世尊正使三千大千剎土滿其中寶心終不興想著之心一切所有視無所有亦復不念是我所有意悉淸淨不想色求
하나의 법신[一法身]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온갖 사람을 보되 마치 법계의 머무름[法界住]과 같이 하고, 도안(道眼)을 체득하면 신족을 빠짐없이 갖추며 혜안(慧眼)을 얻음으로써 곧 있는 것이란 도무지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점차로 그렇게 진제(眞際)ㆍ법성을 알며, 곧 불안(佛眼)으로 열여덟 가지 법의 근본을 얻고 법안(法眼)을 분별하고 통달하여 막힘이 없으며, 10력(力)을 완전히 갖추고 큰 서원을 가지면 곧 무위의 죽지 않는 경계에 이르느니라.
012_0364_b_05L用一法身不可見故視一切人如法界住逮得道眼神足備具以得慧眼便知所有都無所有漸解如爾眞際法性便獲佛眼十八法本分別法眼通達無㝵具足十力執持弘誓便至無爲不死之境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그가 닦는 바의 행은 일체지와 같고 머무를 바[所住]를 익히고 행하되 본디 머무르는 바가 없으며 이 머무름[住]은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고 배우되 또한 배움이 없는 줄 분명히 알며 보살은 언제나 공하고 고요한 법을 생각하고 모든 법을 수순하여 거스름이 없으며, 수순하면서도 편편하고 바른 데에 있지 않고 거스르면서도 가장자리를 따르지 않으며, 다시 삿된 것을 익혀 악마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또한 바로 요행(僥倖)한 대승도 배우지 않느니라.
012_0364_b_11L最勝當知其所修行如一切智習行所住故無所住解了此住住無所住學亦無學菩薩常念空寂之法諸法隨順而無返逆不以隨順而在平正不以返逆而隨邊際復不習邪墮於魔界亦不學正僥倖大乘
그 까닭이 무엇인가? 법의 견고한 요의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법을 버리지 않으면 잘못을 범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지라 다시 짓는 바가 없으며, 곧 마음을 오로지 하여 5음을 제압하여 지닐 수 있어 내닫지 않게 하며, 곧 악마의 경계를 건너 능히 중도(中道)로써 보살의 마음을 피곤하게 함이 없느니라.”
012_0364_b_16L所以然者不棄捨法牢固之要以不捨法則不犯非以自知者無所復作便能專心制持五陰使不流馳便度魔界無能中道弊菩薩心爾時最勝白世尊言云何不退轉菩薩住無所學亦無學
그때에 최승보살이 세존께 아뢰었다.
“어떻게 물러나지 않는 보살은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고 배우되 배우는 바가 없습니까?”
012_0364_b_22L佛告最勝七住菩薩住於三界不染三界亦無所習不習學者是謂爲內不求習者是謂爲外習於外不隨弟子觀無所學亦非緣所謂習者生死所學菩薩所修學無知習無所習學無所學
012_0364_c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7주 보살은 삼계에 머무르되 삼계에 물들지 않고 또한 익히는 바도 없느니라. 익히고 배우지 않는 것을 바로 안이라 하고 구하거나 익히지 않는 것을 바로 바깥이라 하느니라. 비록 바깥을 익힌다 하더라도 제자(弟子)를 따르지 않으면서 배울 바가 없음을 관하고 또한 배움을 반연하는 것도 아니니라. 이른바 익힘이란 생사(生死)에서 배우는 것이거니와 보살이 닦는 바는 배우되 아는 것이 없음을 말하나니, 익히되 익히는 바가 없고 배우되 배우는 바가 없느니라.
012_0364_c_04L習是名色習是因緣習謂我見習者是愛是我所亦非我所習者雖貪學習布習雖犯戒學習護戒復不於戒而自貢高習亦恚相學習忍辱習爲懈怠學習精進習爲亂想學習一意者無明學習智慧習無果報學習功習爲俗業學習於道習謂無脫學習得度
익힌다는 것은 바로 명색(名色)이요 익힌다는 것은 바로 인연이며 익힌다는 것은 아견(我見)을 말하고 익힌다는 것은 바로 아소(我所)이나 또한 아소가 아니며 익힌다는 것은 비록 탐하더라도 보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니라. 익힌다는 것은 비록 계율을 범해도 계율 지키는 것을 배워 익히는 것이고 다시 계율에 대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지도 않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성내는 모양에서 인욕을 배워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게으르되 정진을 배워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어지러운 생각에서 하나의 뜻[一意]을 배워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무명(無明)에서 지혜를 배워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과보(果報) 없는 데서 공덕을 배워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세속 일[俗業]에서 도(道)를 배워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는 것은 해탈이없는 데서 제도되는 것을 배워 익히는 것이니라.
012_0364_c_12L如是最勝七住菩薩習無所習學無所學至無極慧一切諸法不見得失亦無所入亦無不入不可以色計有所入痛想行識亦復如是從法數而至有極亦復不從非法之得至無極求一切智當如智住自念法言是我作作解了者爲一切菩薩欲求一切智者當從四大造色中求所以者何計身則㝵而受四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7주 보살은 익히되 익히는 바가 없고 배우되 배우는 바가 없느니라. 끝없는 지혜[無極慧]에 이르러 모든 법에서 얻거나 잃는 것을 보지 않고, 또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또한 들어가지 않는 바도 없으며, 색(色)으로써 들어가는 바가 있다고 헤아릴 수도 없고,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수(法數)로부터 지극함이 있는 데에 이르지도 않고 또한 다시 법수가 아닌 데서부터 극함이 없는 데에 이르지도 않고 일체지를 구하느니라. 반드시 지혜와 같이 머물러 스스로 법은 ‘이것은 내가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으면서도 분명히 아는 것이 일체지이니 보살이 일체지를 구하고자 하면 4대로 만든 물질 가운데서부터 구해야 하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몸을 헤아리면 곧 장애가 되어서 4생(生)을 받기 때문이니라.
012_0364_c_21L不計身者則離愛欲菩薩住者如智之住以過諸界住無所住不計有生不爲生母若見生者是皆非生知無生號無生慧作是等者是謂平等無極無限大乘之等
012_0365_a_01L몸을 헤아리지 않으면 곧 애욕(愛欲)을 여의는 것이니 보살로서 머무른다면 마치 초월함으로써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으며, 생(生)이 있다고 헤아리지 않고 어머니에게서 나지도 않으며, 만일 태어난다 하면 이것은 모두 태어난 것이 아니니라. 태어남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을 남이 없는 지혜라 하느니라. 이런 평등을 짓는 것을 바로 평등하다 하나니, 끝없고 한이 없는 대승의 평등이니라.”
012_0365_a_02L佛說是時一那術百千天子悉得無所從生法七萬二千人皆發無上平等道意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11나술(那術)의 백천의 천자들이 모두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바가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으며, 7만 2천 사람이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뜻[無上平等道意]을 내었다.
012_0365_a_04L爾時座上尊大聲聞長老迦葉舍利摩訶目揵連阿那律離越難頭婆分耨文陁尼弗空須菩提等五百羅漢卽從坐起齊整袈裟右膝著地悉以頭面著佛足下皆共同時擧聲悲號哽噎哀感以手揮淚前白佛言
그 때의 좌상(座上)의 높은 큰 성문으로서 장로 가섭(迦葉)ㆍ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ㆍ아나율(阿那律)ㆍ이월(離越)ㆍ난두바라(難頭婆羅)ㆍ분뇩문타니불(分耨文陁尼弗)ㆍ공수보리(空須菩提) 등 5백 나한(羅漢)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가지런히 매만지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모두 머리 조아려 부처님의 발 아래 대고 모두가 함께 동시에 큰 소리로 슬피 울고 흐느끼며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앞에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012_0365_a_10L我等見淺永斷聖種佛道深邃不蒙洗濯若有男子女人下至凡夫在三塗中欲求道者當發尊意至成作佛所以者何如佛今日以百千法爲吾等說不能成就發菩薩意私抱悔恨永無所及
“저희들은 소견이 얕아서 영원히 성인의 종성[聖種]을 끊었나이다. 부처님의 도(道)는 깊고 깊은데도 깨끗이 씻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남자나 여인이며 아래로 범부에 이르기까지 3도(塗) 가운데 있으면서 도를 구하려 하는 이면 마땅히 높은 뜻을 내어 부처님을 이루어야 하리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오늘 백천의 법으로써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한 것과 같아서 보살의 뜻을 내고서 사사로이 후회나 원한을 품고 성취하지도 못하고 영원히 미칠 수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012_0365_a_16L今雖得道稱爲羅漢六通淸徹德超三有故不如本百千萬劫作五逆罪入無擇獄冀望罪滅會有出期漸蒙解脫以至滅度便得發意成菩薩道今已根敗無益時遇所以然者以其燒燃菩薩種故器以穿漏不復容止成菩薩道
지금 비록 도를 얻어서 아라한이라 일컫고 여섯 가지 신통이 맑게 사무치며 덕은 3유(有)를 뛰어났다 하더라도 본래 백천만 겁 동안 5역죄(逆罪)를 지어 무택(無擇)지옥에 들어가서 죄가 소멸되기를 바라면 반드시 나오게 되는 기약이 있을 적에 점차로 해탈하여 멸도에 이르면서 곧 뜻을 일으켜 보살도를 이루게 되는 것보다 못하나이다. 지금은 이미 근성[根]이 무너져서 때를 만났사오나 이익이 없나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보살의 종성이 불타버렸기 때문이며, 그릇이 뚫어지고 비어서 다시는 보살이 되는 도를 받아들여 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012_0365_a_22L飛行蠕動有形之類一足二足至百千足皆悉依地而得生活食以甘美衣著軟細群鳥飛空繫命在地吾雖得道猶養四大我與鳥獸有何差別彼雖雜垢漸漸得免畜獸之形種德不息成大乘迹諸天及人皆蒙度脫自怨鄙陋不及上尊皆懷愁憂悔本所修
012_0365_b_01L날아다니거나 꿈틀거리는 형상 있는 무리로써 한 발 가진 것ㆍ두 발 가진 것ㆍ백천의 발을 가진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땅을 의지하여 살아가면서 단맛[甘味]을 먹고 부드러운 옷을 입으며 뭇 새들이 허공에 날아다니되 목숨은 땅에 매어 두고 있사옵니다. 저희도 비록 도를 얻었기는 하나 오히려 4대를 기르고 있으므로 저희나 날짐승이나 무슨 차별이 있겠나이까? 그들은 비록 때[垢]에 섞여 있다 하더라도 점점 짐승의 형상을 면하게 되어 덕(德)을 쉬지 않고 심어서 대승의 자취[跡]를 이루어 모든 하늘이나 사람으로서 모두 제도되고 해탈할 수 있겠거니와 저희들은 비루하여 상존(上尊)에 미치지 못할 것을 원망하오며 모두가 근심 걱정하면서 본래 수행했던 바를 후회하옵나이다.”
012_0365_b_06L彼會中千七百人未踐迹者先修聲聞緣覺之法畢志堅固發無上心卽於座上逮得無所從生法忍因其敷演六度大法宣暢四諦苦習盡道四恩四等訓誨一切令發道心
그때 그 모임 안에 있던 천칠백의 아직 자취를 밟지 못한 이로서 먼저 성문이나 연각의 법을 닦았던 이들은 마침내 뜻이 견고해지면서 위없는 마음[無上心]을 내었으므로 곧 자리 위에서 좇아난 바가 없는 법인을 체득하였으며, 그것을 인하여 6도의 큰 법을 알기 쉽게 연설하고 4제의 고ㆍ습ㆍ진ㆍ도를 널리 폈으며 4은(恩)과 4등(等)으로 온갖 중생을 가르치면서 도의 마음[道心]을 일으켰다.
012_0365_b_11L舍利弗承佛威神宣告來會諸菩薩等聽我曩昔在坏器時或從一住進至五住還復退墮而在初住復從初住至五六住如是經歷六十劫中竟復不能到不退轉所興卽悔亦不究竟
그때 사리불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모인 모든 보살 대중들에게 널리 말하였다.
“들어보십시오. 저는 옛날 아직 굽지 않은 그릇[坏器]과 같았을 적에 혹은 1주(住)로부터 나아가 5주까지 이르렀다가 도로 다시 떨어져 초주(初住)에 있기도 하였고, 다시 초주로부터 5주ㆍ6주까지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60겁(劫) 동안 지냈으나 끝내 물러나지 않음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니, 일으켰다가도 곧 뉘우쳤기에 역시 구경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012_0365_b_16L設當持心如淨戒者所願必得而不犯俗以智慧法靡不照明菩薩以住不退轉地亦復不計施與不施亦不見戒忍辱精進一心智慧亦復不從欲無色界法亦復不從身口意行於一切法皆無所著悉如幻化野馬影響所住本末而悉淸淨無有吾我壽命長短不見道俗是非名號亦不自念我當求是當不求是無憂喜想無緣無作亦無所生亦無所見亦無處所
012_0365_c_01L설령 마음을 지켜 청정하게 계율을 지닌 이로써 원한 바를 반드시 얻었고 세속을 범하지 않았으며, 지혜의 법으로써 밝게 비추지 않음이 없었다 하여도 보살은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러 역시 또 보시나 보시하지 않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또한 계율ㆍ인욕ㆍ정진ㆍ일심(一心)ㆍ지혜를 보지도 않으며, 또한 다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법을 좇지도 않고, 또한 몸ㆍ입ㆍ뜻의 행을 따르지도 않으며, 온갖 법에 대하여 모두 집착이 없어서 모두 다 요술ㆍ허깨비ㆍ아지랑이ㆍ그림자ㆍ메아리와 같이 여기고 머무른 바의 근본과 지말이 모두 다 청정하며, 나[吾我]와 수명의 장단(長短)도 없고 도속(道俗)이나 시비(是非)나 명호를 보지도 않으며, 또한 스스로 ‘나는 이것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근심이나 기쁘다는 생각도 없고 반연하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으며, 또한 나는 바[所生]도 없고 또한 보는 바도 없으며, 또한 처소도 없습니다.
012_0365_c_03L作是學者無欲怒癡無增減學不墮惡趣有退轉心欲成至佛當如是習亦不作罪亦不作福亦不有成亦不無成不想無想諸法悉等而無差特
이렇게 배우는 이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도 없고 더하거나 덜하는 배움[學]도 없으며, 악취(惡趣)에 떨어지거나 물러나는 마음도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되고자 하면 이와 같이 익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죄를 짓지도 않고 또한 복을 짓지도 않으며 또한 성취할 것이 없지도 않으며, 생각이나 생각이 없지도 않고 모든 법은 다 평등하여서 차이나 특별함이 없는 것입니다.”
012_0365_c_07L利弗說是語時復有無央數百千衆皆發無上正眞道意
그때 사리불이 이런 말을 할 적에 다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백천 중생들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내었다.
012_0365_c_09L爾時最勝前白佛言云何一切諸法皆如幻化野馬乎
그때에 최승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모든 법은 다 마치 요술ㆍ허깨비ㆍ아지랑이와 같다 하나이까?”
012_0365_c_11L佛告最勝譬若如化來不見來去無處所解知諸法亦復如是無所從來無所從去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허깨비는 와도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도 처소가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역시 그와 같아서 어디서 오는 데도 없고 어디로 가는 데도 없느니라. 성품은 저절로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모든 법은 짓는 것도 없고 또한 짓는 이도 없는 줄 알 것이니라.
여래의 몸은 첫째는 화신(化身)이요, 둘째는 법신(法身)이니라. 법신이란 볼 수도 없고 또한 형상도 없으며 화신은 이 허공과 같아서 형상이 없느니라.
012_0365_c_13L性自然住不見變易諸法無作亦無造者如來身者一爲化身二爲法身夫法身者不可睹見亦無形像化身如是虛空無形
이것이 바로 최승아, 아유월치가 닦아야 할 행의 근본[行本]이어서 모든 대중에 있으면서 사자처럼 외치고 공혜(空慧)를 행하므로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는 것이니, 그 공훈은 순숙(純熟)하고 모든 법은 청정하며 끝없이 깊고 미묘하여 불가사의하며 높이 뛰어나서 헤아리기 어렵느니라.
이와 같이 최승아, 불퇴(不退)의 대사(大士)는 7주 가운데서 그 행을 청정하게 하느니라.”
012_0365_c_16L是謂最勝阿惟越致所修行本在諸大衆能師子吼行於空慧無能逮者功勳純熟諸法淸淨無極深妙不可思議巍巍難量如是最勝不退大士於七住中而淨其行
十住斷結經卷第二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