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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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_0857_b_01L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제10권
013_0857_b_01L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十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이라고도 한다. 관정부(灌頂部)에서 따로 추려내었다.
013_0857_b_02L一名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대당 신룡 원년(705년) 5월 23일에 천축 사문 반라밀제(般剌蜜帝)가 광주(廣州) 제지도량(制止道場)에서 역출하였는데, 보살계제자(菩薩戒弟子) 전정간대부동중서문하평장사(前正諫大夫同中書門下平章事) 청하방융(淸河房融)이 필수(筆授)하고, 오장국(烏長國) 사문 미가석가(彌伽釋迦)가 역어(譯語)했다.
013_0857_b_03L 大唐神龍元年龍集乙巳五月己夘
朔二十三日辛丑中天竺沙門般剌蜜
帝於廣州制止道場譯出
菩薩戒弟子前正諫大夫同中書門下
平章事淸河房融筆授



반랄밀제 한역
현성주 번역
013_0857_b_08L 烏長國沙門彌伽釋迦譯語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제(三摩提)를 닦아서 상음(想陰)이 다 사라지면, 평소에도 꿈과 생각이 소멸하여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깨달음의 밝음이 맑게 개인 하늘처럼 비고 고요하여, 거칠고 무거운 앞 경계의 그림자 모양이 없어지느니라. 세상의 대지와 산과 강들을 보아도 거울이 밝게 비치듯 와도 와서 붙는 일이 없고 가도 간 흔적이 없다. 빈 그대로 받아들여 비춰 응해서 전혀 묵은 습기[陳習]도 없고, 오직 하나의 정교한 진실뿐이니라. 여기에 생멸의 근원이 열려 드러남으로, 시방의 12류 중생들이 종류마다 생기는 곳을 죄다 보게 되느니라. 비록 아직은 각 생명이 유래한 시초[各命由緖; 識陰]를 통하지 못했을지라도, 같이 태어나는 공동의 터[同生基]가 마치 아지랑이가 번들거리듯 맑게 흔들리면서 뜬 감관[浮根塵]이 짜이는 구경의 주요 원천[究竟樞穴]을 보느니라. 이를 행음의 보금자리[行陰區宇]라고 한다.
만일 이 맑게 흔들려 번들거리는 근원의 성품이 그 성품[性] 그대로 원래 고요한 자리[元澄; 識陰]에 들어가서 단번에 원래의 습기를 가라앉히면, 마치 파도가 사라져서 고요한 물로 화한 것과 같은 상태를 행음(行陰)이 다 사라진 경계라고 하며, 이 경계에 든 사람은 능히 중생탁(衆生濁)을 초월하느니라. 그 행음(行陰)에 가린 까닭을 살펴보면, 깊이 숨은 망상[幽隱妄想]이 근본이니라.
013_0857_b_09L 阿難彼善男子修三摩提想陰盡者是人平常夢想銷滅寤寐恒一覺明虛靜猶如晴空無復麤重前塵影事觀諸世閒大地河山如鏡鑑明來無所粘過無蹤迹虛受照應了罔陳習唯一精眞生滅根元從此披露見諸十方十二衆生畢殫其類雖未通其各命由緖見同生基猶如野馬熠熠淸擾爲浮根塵究竟樞穴此則名爲行陰區宇若此淸擾熠熠元性性入元澄一澄元習如波瀾滅化爲澄水名行陰盡是人則能超衆生濁觀其所由幽隱妄想以爲其本
013_0857_c_01L아난아, 잘 알아야 한다. 바른 지견을 얻고 사마타(奢摩他)에 든 선남자들은밝음을 굳히고 마음을 바로잡아 열 가지 하늘 마가 그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비로소 정교하게 연마하여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이때 태어나는 근본 종류 가운데 태어나는 근원이 드러난 행자가 저 깊고 맑고 원만하게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원만한 근원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두 가지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二無因論]에 떨어지느니라.
013_0857_b_22L阿難當知是得正知奢摩他中諸善男子凝明正心十類天魔不得其便方得精硏窮生類本於本類中生元露者觀彼幽淸圓擾動元於圓元中起計度者是人墜入二無因論
첫째는 이 사람은 근본[本]을 보고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은 이미 생겨나는 틀이 완전히 무너진 경계를 얻었으니, 눈 감관의 8백 공덕에 의지하여 8만 겁 안에 있는 중생들이 업의 흐름을 따라 굽이돌며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나는 모양을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지 중생이 그 곳에서 윤회하는 모양만 볼 뿐, 8만 겁을 떠나서는 아득하여 본 일이 없으니 ‘이 세간의 시방 중생은 8만 겁 동안 원인 없이 저절로 있다’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헤아리기 때문에 두루 아는 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013_0857_c_05L一者是人見本無因何以故是人旣得生機全破乘于眼根八百功德見八萬劫所有衆生業流灣環死此生彼見衆生輪迴其處八萬劫外冥無所便作是解此等世閒十方衆生萬劫來無因自有由此計度亡正遍墮落外道惑菩提性
둘째는 이 사람은 끝[末]을 보고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사람은 태어나는 데서 이미 그 근본을 보았으니, 사람은 사람을 낳는 줄 알고, 새는 새를 낳고 까마귀는 본래 검고 고니는 본래 희며, 사람과 하늘[天]은 서서 다니고 축생은 기어 다니며, 흰 것은 씻어서 희어진 것이 아니고, 검은 것은 물들여 검어진 것이 아니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만 겁 동안 더 이상 달리 바뀌는 일이 없으니, 이제 이 형상을 다할지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본래 보리를 본 적이 없는데, 어찌 다시 보리를 이루는 일이 있겠는가. 마땅히 현재[今日]의 일체 물상은 다 본래 원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생각 때문에 두루 아는 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첫 번째 외도가 내세운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無因論]’라고 한다.
013_0857_c_12L二者是人見末無因何以故是人於生旣見其根知人生人悟鳥生鳥烏從來黑鵠從來白人天本豎畜生本橫白非洗成黑非染造從八萬劫無復改移今盡此形亦復如是而我本來不見菩提云何更有成菩提事當知今日一切物象皆本無因由此計度亡正遍知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一外道立無因論
아난아, 이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은 밝음을 굳히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항상 원만한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두루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논리[四徧常論]에 떨어지느니라.
013_0857_c_21L阿難是三摩中諸善男子凝明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圓常中起計度者是人墜入四遍常論
013_0858_a_01L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과 경계의 본질에서 두 곳이 원인이 없는 이치를 추궁하여 닦고, 2만 겁 가운데 시방 중생이 소유한 생멸은 모두 다 순환하여 잠깐도 흩어지거나 잃지 않음을 알고는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013_0858_a_02L一者是人窮心境性二處無因修習能知二萬劫中十方衆生所有生滅咸皆循環不曾散失計以爲常
둘째는 이 사람이 4대(大)의 근원을 추궁하여 네 성질이 항상 머무는 이치를 닦고, 4만 겁 가운데 시방 중생이 소유한 생멸이 모두 다 자체가 항일(恒一)하여 잠깐도 흩어지거나 잃지 않음을 알고는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013_0858_a_05L二者是人窮四大元四性常住修習能知四萬劫中十方衆生所有生滅咸皆體恒不曾散失計以爲常
셋째는 이 사람이 여섯 감관[6根; 6識의 뜻]과 7식과 8식[執受; 8식]을 끝까지 추궁하여,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본원의 유래한 곳은 성품이 영원히 항일하므로 그대로 닦아서, 8만 겁 가운데 일체중생이 순환하여 잃지 않음을 본래 영원히 머무는 진리로 알고, 잃지 않는 성품을 추궁하며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013_0858_a_07L三者是人窮盡六根末那執受心意識中本元由處性常恒故修習能知八萬劫中一切衆生循環不失本來常住窮不失性計以爲常
넷째는 이 사람은 ‘상음[想]의 근원이 다 없어졌으니, 생(生)의 이치는 더 이상 흐르거나 멈추거나 옮기거나 구르는 일이 없다. 생멸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제 이미 영원히 멸했으니, 이치 가운데 자연히 생멸이 아닌 법을 성취한 것이리라’고 헤아리는 마음으로 인하여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영원하다는 생각 때문에 두루 아는 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두 번째 외도가 내세우는 원만한 영원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라고 한다.
013_0858_a_11L四者是人旣盡想元生理更無流止運轉生滅想心今已永滅理中自然成不生滅因心所度計以爲常由此計常亡正遍知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二外道立圓常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은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자타(自他)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소견의 한 편은 영원하지 않고 한 편은 영원하다는 논리’에 떨어지느니라.
013_0858_a_16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自他中起計度者是人墜入四顚倒見一分無常一分常論
첫째는 이 사람이 묘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원만함을 관찰하고는 고요한 경계[湛然]를 구경의 신비한 나[究竟神我]로 여기고, 여기서 생각하기를 ‘나는 시방에 두루 밝음을 굳혀서 흔들리지 않으나, 일체중생은 나의 마음 가운데서 저절로 생겼다가 저절로 죽을 뿐이니, 나의 심성(心性)은 영원하고 저 생하고 멸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013_0858_a_20L一者是人觀妙明心遍十方界湛然以爲究竟神我從是則計我遍十方凝明不動一切衆生於我心中自生自死則我心性名之爲常彼生滅者眞無常性
013_0858_b_01L둘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은 관찰하지 않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시방국토만을 두루 관찰하여, 겁이 무너지는 곳을 보고는 끝까지 영원하지 않는 종류[種性]라 하고, 겁이 무너지지 않는 곳을 보고는 끝까지 영원한 경지라고 하느니라.
013_0858_b_01L二者是人不觀其心遍觀十方恒沙國土見劫壞處名爲究竟無常種性劫不壞處名究竟常
셋째는 이 사람이 따로 관찰하기를 ‘나의 마음은 정밀하고 미세함이 마치 미세한 티끌과 같아서, 시방에 흐르고 굴러도 성품은 옮기거나 바뀌지 않는 가운데 이 몸을 생기게 하고 멸하게 한다’고 하여, 그 무너지지 않는 본질을 나의 성품의 영원이라 하고, 일체 생사는 나에게서 흘러나왔으니 영원하지 않는 성질이라고 하느니라.
013_0858_b_04L三者是人別觀我心精細微密猶如微塵流轉十方性無移改能令此身卽生卽滅其不壞性名我性常一切死生從我流出名無常性
넷째는 이 사람은 상음(想陰)이 다 사라졌음을 알고 행음(行陰)의 흐름을 보면서, 행음이 항상 흐르는 상태를 영원한 본질로 생각하고,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과 상음(想陰)은 이제 이미 멸하여 없으니 영원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이렇게 한 편은 영원하지 않고 한 편은 영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세 번째 외도가 내세운 한 편이 영원하다는 논리’라고 한다.
013_0858_b_08L四者是人知想陰盡見行陰流行陰常流計爲常性色受想等今已滅盡名爲無常由此計度一分無常一分常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三外道一分常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나뉘어진 자리[分位]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한계가 있다는 논리[有邊論]’에 떨어지느니라.
013_0858_b_12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分位中生計度者是人墜入四有邊論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으로 태어나는 근원의 흐르는 작용이 쉬지 않는다고 헤아려서, 과거와 미래를 한계 있는 경계[有邊]로 생각하고, 현재 상속하는 마음을 한계 없는 경계[無邊]로 생각하느니라.
013_0858_b_16L一者是人心計生元流用不息計過未者名爲有邊計相續心名爲無邊
둘째는 이 사람이 8만 겁을 보면 중생들이 보이지만, 8만 겁 이전은 적막하여 듣거나 본적이 없으니, 듣거나 본적이 없는 곳을 한계 없는 경계라 하고, 중생이 있는 곳을 한계 있는 경계라고 하느니라.
013_0858_b_18L二者是人觀八萬劫則見衆生八萬劫前寂無聞見無聞見處名爲無邊有衆生處名爲有邊
셋째는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두루 알아서 한계 없는 성품을 얻었으니, 저 모든 사람은 내가 두루 아는 경계에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조금도 저들의 아는 성품을 알지 못하는 것은, 저들은 한계 없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단지 한계 있는 성질만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013_0858_b_20L三者是人計我遍知得無邊性彼一切人現我知中我曾不知彼之知性名彼不得無邊之心但有邊性
013_0858_c_01L넷째는 이 사람이 행음(行陰)의 공한 이치를 추궁한 소견으로 마음의 길을 따라 일체중생의 한 몸을 깊이 따져보고,모두 다 반은 생하고 반은 멸한다고 생각하여, 그 세계의 일체 소유(所有)도 절반은 한계 있는 경계로, 절반은 한계 없는 경계로 밝히느니라.
이렇게 한계 있는 경계와 한계 없는 경계를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네 번째 외도가 내세운 네 가지 한계 있는 논리[有邊論]’라고 한다.
013_0858_b_23L四者是人窮行陰空以其所見心路籌度一切衆生一身之中計其咸皆半生半滅明其世界一切所有一半有邊一半無邊由此計度有邊無邊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四外道立有邊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지견(知見)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소견으로 죽지 않는 뜻을 교란(矯亂)하여 두루 헤아리는 헛된 논리’에 떨어지니라.
013_0858_c_05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知見中生計度者是人墜入四種顚倒不死矯亂遍計虛論
첫째는 이 사람이 변화의 근원을 관찰하여 옮겨 흐르는 곳을 보고는 변한다고 하며, 상속(相續)하는 곳을 보고는 한결같다고 하며, 보이는 곳을 보고는 생(生)이라 하며, 보는 곳이 보이지 않으면 멸(滅)이라 하며, 상속의 원인에서 그 성질이 끊어지지 않는 곳을 불어난다[增]고 하며, 상속하는 가운데 사이[中]가 여읜 곳을 줄어든다[減]고 하며, 각각 생기는 곳을 있다[有]고 하며, 서로 서로 없어지는 곳을 없다[無]고 한다. 이치로는 전체를 다 관찰하면서 마음을 쓸 때는 별도로 보고, 법을 구하는 사람이 와서 그 뜻을 물으면 ‘나는 이제 생기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불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고 답하여, 언제든지 모두 그 말을 어지럽히면서 앞사람에게 글귀[章句]를 잃게 하느니라.
013_0858_c_09L一者是人觀變化元見遷流處名之爲變見相續處名之爲恒見所見處名之爲生不見見處名之爲滅相續之因性不斷處名之爲增正相續中中所離處名之爲減各各生處名之爲有互互亡處名之爲無以理都觀用心別見有求法人來問其義答言我今亦生亦滅亦有亦無亦增亦減於一切時皆亂其語令彼前人遺失章句
둘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이 서로 서로 없어지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여 무(無)로 인해서 증득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로 답하여 무(無)라고 말할 뿐, 무(無)라는 말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느니라.
013_0858_c_18L二者是人諦觀其心互互無處因無得證有人來問唯答一字但言其無除無之餘無所言說
셋째는 이 사람은 그 마음이 각각 있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여 유(有)로 인해서 증득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로 답하여 이것[是]이라고 말할 뿐 이것이란 말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느니라.
013_0858_c_21L三者是人諦觀其心各各有處因有得證有人來問唯答一字但言其是除是之餘無所言說
013_0859_a_01L넷째는 이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함께 보다가 그 경계가 갈라지므로 그 마음도 어지러워져서,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있기도 한 것이 곧 없기도 한 것이며, 없기도 한 가운데 있기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여 일체를 교란(矯亂)하여 따질 수 없게 하느니라.
이렇게 허무(虛無)한 교란을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해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다섯 번째 네 가지 뒤바뀐 소견으로 죽지 않는 뜻을 교란하여 두루 헤아리는 헛된 논리’라고 한다.
013_0858_c_23L四者是人有無俱見其境枝故其心亦亂有人來問答言亦有卽是亦無亦無之中不是亦有一切矯亂無容窮詰由此計度矯亂虛無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五外道四顚倒性不死矯亂遍計虛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끝없이 흐르는 경계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모양이 있다고 마음을 내는 뒤바뀜’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스스로 몸을 굳게 지켜서 색(色)이 바로 나라 하기도 하며, 혹은 나는 원만하게 국토를 두루 머금었다고 보고 나는 색을 소유[有]했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저 앞의 인연이 나를 따라 회복된다고 하여 색은 나에게 속했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또 나는 행음(行陰)의 상속을 따른다 하여 나는 색 안에 있다고 하기도 하면서, 모두 헤아려 말하기를 ‘죽은 뒤에 상이 있다’고 하므로, 이와 같이 순환하여 열여섯 모양이 있게 되느니라.
이로부터 혹은 번뇌는 끝까지 번뇌이고 보리는 끝까지 보리이니, 두 성품이 나란히 달려도 각기 서로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 모양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여섯 번째 외도가 내세운 5음(陰) 가운데서 죽은 뒤에 모양이 있다고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013_0859_a_06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無盡流生計度者是人墜入死後有相發心顚倒或自固身云色是我或見我圓含遍國土云我有色或彼前緣隨我迴復云色屬我或復我依行中相續云我在色皆計度言死後有相如是循環有十六相從此惑計畢竟煩惱畢竟菩提兩性竝驅各不相觸由此計度死後有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六外道立五陰中死後有相心顚倒論
013_0859_b_01L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먼저 멸한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과 상음(想陰)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마음을 낸 뒤바뀜’에 떨어지느니라.
그 색음(色陰)이 멸한 자리를 보고 형체는 원인 할 곳이 없다고 하며, 그 상음(想陰)이 멸한 자리를 보고 마음에 얽매인 경계가 없다고 하며, 그 수음(受陰)이 멸한 자리를 알고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연결될 수 없다고 하면서 ‘음(陰)의 성질이 소멸하여 흩어져버렸으니, 비록 태어나는 이치가 있더라도수음[受]과 상음[想]이 없음으로 초목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앞에 있는 이 몸[質]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죽은 뒤에 어찌 더 이상 온갖 모양이 있으랴’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곰곰이 따져서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하므로, 이와 같이 순화하여 여덟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견해가 있게 되느니라. 이로부터 혹은 열반의 원인과 결과도 일체 공하여 이름만 있을 뿐, 구경에는 아무것도 없다[斷滅]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일곱 번째 외도가 내세운 5음(陰) 가운데서 죽은 뒤에 모양이 없다고 마음을 낸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013_0859_a_18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先除滅色受想中生計度者是人墜入死後無相發心顚倒見其色滅形無所因觀其想滅心無所繫知其受滅無後連綴陰性銷散縱有生理而無受想與草木同此質現前猶不可得死後云何更有諸相因之勘挍死後相無如是循環有八無相從此或計涅槃因果一切皆空徒有名字究竟斷滅由此計度死後無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七外道立五陰中死後無相心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행음(行陰)이 있는 가운데서 수음(受陰)과 상음(想陰)의 멸한 경계를 겸하여 쌍으로 있고 없는 모양을 헤아려 자체의 모양을 파하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함께 부정[俱非]하는 뒤바뀜을 일으킨 논리’에 떨어지느니라.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과 상음(想陰) 가운데서 있는 것을 보아도 있는 것이 아니며, 행음(行陰)이 흘러 옮기는 속에서 없는 것을 보아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이와 같이 순환하여 음의 경계[陰界]를 추궁하여 다하고 여덟 가지 함께 부정하는 모양[八俱非相]을 한 연[一緣; 四陰의 한 연씩]마다 따라 얻고는, 다 죽은 뒤에 유상(有相)이며, 무상(無相)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온갖 행(行)의 성질이 옮겨 달라진다고 헤아리기 때문에, 마음에 통하여 깨달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유무(有無)를 함께 부정하면서 허와 실을 종잡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 함께 부정하는 경계를 헤아림에 따라 뒤의 경계는 어리둥절하여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잃어버리느니라. 이를 ‘여덟 번째 외도가 세운 5음(陰)가운데서 죽은 뒤에 함께 부정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013_0859_b_08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行存中兼受想滅雙計有無自體相破是人墜入死後俱非起顚倒論色受想中見有非有行遷流內觀無不無如是循環窮盡陰界八俱非相隨得一緣皆言死後有相無相又計諸行性遷訛故心發通悟有無俱非虛實失措由此計度死後俱非後際昏瞢無可道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八外道立五陰中死後俱非心顚倒論
013_0859_c_01L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뒤로 계속 없는 곳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7단멸론(斷滅論)’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몸[身; 欲界의 人天]을 단멸이라 생각하고, 혹은 욕심이 다한 곳[欲盡; 初禪天]을 단멸이라 하며, 혹은 괴로움이 다한 곳[苦盡; 二禪天]을 단멸이라 하고,혹은 지극히 즐거운 곳[極樂; 三禪天]을 단멸이라 하며, 혹은 지극히 평등한 곳[極捨; 四禪天과 無色界]을 단멸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순환하여 일곱 경계를 끝까지 추궁하여, 현재 눈앞에 소멸하여 멸하고 나면 더 이상 돌아오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斷滅]고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아홉 번째 외도가 세운 5음 가운데서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소견으로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013_0859_b_20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後後無生計度者是人墜入七斷滅論或計身滅或欲盡滅或苦盡滅或極樂滅或極捨滅如是循環窮盡七際現前銷滅滅已無復由此計度死後斷滅墮落外道惑菩提性是則名爲第九外道立五陰中死後斷滅心顚倒論
또 삼마제(三摩提)에 든 선남자들이 굳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마가 틈을 노릴 수 없는 경계에 들었으니,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추궁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저 깊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다가, 뒤로 계속 있는 곳에서 생각을 일으켜 헤아리면, 이 사람은 ‘다섯 열반(涅槃)의 논리’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욕계천[欲界]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正轉依]으로 삼는 것은 원만한 밝음을 보고 애착하여 사모하기 때문이며, 혹은 초선천[初禪](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성품에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이선천(二禪天)(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마음에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삼선천(三禪天)(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지극한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며, 혹은 사선천(四禪天)(을 바르게 굴려 의지할 곳으로 삼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없어서 생멸의 윤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뇌가 있는 하늘을 무위(無爲)의 경지로 잘못 알고, 다섯 곳의 안온함을 뛰어나게 깨끗한 의지처(勝淨依)로 여기고, 이렇게 순환하여 다섯 곳을 구경(究竟)으로 삼느니라.
이렇게 다섯 곳을 현재 그대로 열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느니라. 이를 ‘열 번째 외도가 세운 5음(陰) 가운데서 다섯 곳을 현재 그대로 열반이라는 소견으로 마음이 뒤바뀐 논리’라고 한다.
013_0859_c_06L又三摩中諸善男子堅凝正心魔不得便窮生類本觀彼幽淸常擾動元於後後有生計度者是人墜入五涅槃論或以欲界爲正轉依觀見圓明生愛慕故或以初禪性無憂故或以二禪心無苦故或以三禪極悅隨故以四禪苦樂二亡不受輪迴生滅性迷有漏天作無爲解五處安隱爲勝淨依如是循環五處究竟由此計度五現涅槃墮落外道惑菩提性則名爲第十外道立五陰中五現涅槃心顚倒論
013_0860_a_01L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禪那)의 미친 견해[狂解]는 모두 행음(行陰)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엇갈려 다투는 까닭에 이러한 깨달음이 나타나지만, 중생들은 완고하게 미혹하여 스스로 헤아리지 못해서, 이러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미혹을 견해[解]로 삼고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노라 하면서 대망어(大妄語)를 지어 무간지옥[無間獄]에 떨어지느니라.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을 간직해서 내가 열반한 뒤 말법(末法)에 전하여, 중생들이 두루 이 뜻을 깨달아서 마음의 마가 스스로 깊은 재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지키고 보호하여 삿된 견해를 소멸케 하여라. 또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한 뜻을 열어 깨닫도록 가르쳐서 더없이 높은 도에 헷갈린 길[枝岐]을 만나지 않게 하고, 마음에 조금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이 없게 하여, 부처님[大覺王]이 목적한 청정한 뜻을 이루도록 하여라.
013_0859_c_18L阿難如是十種禪那狂解皆是行陰用心交互故現斯悟衆生頑迷不自忖量逢此現前以迷爲解自言登聖大妄語成墮無閒獄汝等必須將如來心於我滅後傳示末法遍令衆生覺了斯義無令心魔自起深孽保持覆護消息邪見教其身心開覺眞義於無上道不遭枝岐勿令心祈得少爲足作大覺王淸淨摽指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제(三摩提)를 닦아서 행음(行陰)이 다 사라지면, 모든 세간의 본질[性]인 깊고 맑게 요동하는 공동의 생명 틀[同分生機]에서 문득 미세하게 잠긴 주요매듭[沈細綱紐]이 허물어지고, 또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업을 갚는 깊은 맥에서 감응(感應)이 멀리 끊어지니, 열반의 하늘에 장차 크게 깨달음이 밝으려는 조짐은 마치 나중에 우는 닭소리를 듣고 동쪽을 돌아보면 이미 정교한 빛깔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에 여섯 감관이 비고 고요하여 더 이상 치달음이 없고 안과 밖이 고요히 밝아서 들어가도 들어갈 곳이 없는데 이르러, 시방의 12류 중생이 생명을 받는 근원[元]과 유서[由]를 깊이 사무쳐서 유서(由緖)를 보고 근원을 잡으니, 온갖 종류가 생명을 불러들이지[召] 못한 가운데, 시방의 유정 경계[界]에 이미 동화[同]하는 능력을 얻게 되며, 정교한 색(色)이 잠기지 않고 그윽한 생명의 비밀[幽祕]이 열려 나타나느니라. 이를 식음(識陰)의 보금자리라고 한다.
만일 여러 종류들이 생명을 불러들이는 곳에서 이미 동화하는 능력을 얻은 가운데, 여섯 문[六門; 六根]을 소멸하고 합쳐 여는 능력을 성취하면, 보고 듣는 작용이 가깝게 통해서 서로 융통한 작용[互用]이 청정하여, 시방세계와 몸과 마음이 폐유리(吠瑠璃)와 같이 안과 밖이 밝게 사무친 상태를 식음(識陰)이 다 사라진 경계라고 하며, 이 경계에 이른 사람은 능히 명탁(命濁)을 초월하느니라. 그 식음(識陰)에 가린 까닭을 살펴보면, 있는 듯 하나 없는 모양이 허무한 뒤바뀐 망상[罔象虛無顚倒妄想]이 근본이니라.
013_0860_a_04L阿難彼善男子修三摩提行陰盡者諸世閒性幽淸擾動同分生機倏然墮裂沈細綱紐補特伽羅酬業深脈感應懸絕於涅槃天將大明悟如雞後鳴瞻顧東方已有精色六根虛靜無復馳逸內外湛明入無所入深達十方十二種類受命元由觀由執元諸類不召於十方界已獲其同精色不沈發現幽秘此則名爲識陰區宇若於群召已獲同中銷磨六門合開成就見聞通鄰互用淸淨十方世界及與身心如吠琉璃內外明徹名識陰盡是人則能超越命濁觀其所由罔象虛無顚倒妄想以爲其本
013_0860_b_01L아난아, 잘 알아야 한다.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식음[識]에서 근원을 돌이켜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니 자기 몸에 따로 막혀 작용하는 감관을 합쳐 열고, 시방의 온갖 종류와 통하여 깨달아서 깨달아 아는 작용이 꼭 맞게 뚫려야만, 원만한 근원으로 들어갈 수 있느니라.
여기서 만일 돌아갈 곳에 영원한 진리의 원인[眞常因]을 세우고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원인을 세운 곳에 원인을 두는 집착에 떨어져서, 사비가라(娑毘迦羅)와 같이 명제(冥諦)로 돌아가 의지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여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첫 번째 소득(所得)이 있는 마음을 세우고 돌아간 결과[所歸果]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외도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0_a_18L阿難當知是善男子窮諸行空於識還元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能令己身根隔合開亦與十方諸類通覺覺知通㳷能入圓元若於所歸立眞常因生勝解者是人則墮因所因執娑毘迦羅所歸冥諦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一立所得心成所歸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外道種
아난아,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돌아갈 곳[識陰]을 자체(自體)로 보고 ‘온 허공세계의 12류 중생은 모두 나의 몸속에서 한 종류로 흘러나왔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할 수 없는 데서 할 수 있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마혜수라(摩醯首羅)와 같이 한없는 몸을 나타내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두 번째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세우고 할 수 있는 일의 결과[能事果]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나는 두루 원만하다는 대만천(大慢天)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0_b_04L阿難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所歸覽爲自體盡虛空界十二類內所有衆生皆我身中一類流出生勝解者是人則墮能非能執摩醯首羅現無邊身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二立能爲心成能事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大慢天我遍圓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돌아갈 곳에 돌아가 의지할 곳이라 하여, 스스로 의심하기를 ‘몸과 마음은 저기에서 흘러나왔으며, 시방의 허공도 다 저기에서 생겨났다’고 하면, 곧 모두 일으켜 떨쳐 흐르는 자리[都起所宣流地]를 영원히 머무는 진리의 몸[眞常身]으로 여겨 생멸이 없는 법으로 아느니라. 이것은 생멸 가운데 있으면서 미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常住]라고 생각한 것이니, 이미 생멸을 떠난 진리도 모를 뿐 아니라, 생멸 자체도 미혹한 것이니라. 이렇게 편안히 머물러 미혹에 잠겨 있으면서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져서 자재천(自在天)과 같이 생각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세 번째 의지하는 마음[因依心]을 세우고 허망한 헤아림의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뒤바뀐 원만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0_b_12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所歸有所歸依自疑身心從彼流出十方虛空咸其生起卽於都起所宣流地作眞常身無生滅解在生滅中早計常住旣惑不生亦迷生滅安住沈迷生勝解者是人則墮常非常執計自在天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三立因依心成妄計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倒圓種
013_0860_c_01L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아는 경계에서 아는 능력이 두루 원만한 까닭에아는 능력을 따라 견해를 세우면, ‘시방의 풀과 나무들도 다 유정(有情)으로서 사람과 다름이 없으니, 풀과 나무들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다시 시방의 풀과 나무가 되는 일을 가리지 않고 두루 안다’고 하느니라.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져서 파타(婆吒)나 선니(霰尼)와 같이 일체를 깨달았다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네 번째 원만하게 아는 마음을 헤아려 허망하고 그릇된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뒤바뀐 지견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0_b_22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所知知遍圓故因知立解十方草木皆稱有情與人無異草木爲人人死還成十方草樹無擇遍知生勝解者是人則墮知無知執婆咤霰尼執一切覺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四計圓知心成虛謬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倒知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하게 융통한 감관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서 이미 순조롭게 따르는 능력을 얻고는, 곧바로 ‘원만한 변화에서 일체가 발생한다’고 하여, 불의 요소에서 광명(光明)의 이치를 구하고, 물의 요소에서 맑은 이치를 즐기고, 바람의 요소에서 두루 흐르는 이치를 좋아하고, 흙[塵]의 요소에 성취하는 이치를 관찰하여, 각각 숭배하고 섬기면서, 이 여러 요소[群塵]가 일으켜 짓는 근본원인을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 여기는 견해를 세우면, 이 사람은 생멸이 없는 법[無生]을 생긴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모든 가섭파(迦葉波)와 바라문(婆羅門)들과 같이 열심히 마음을 닦고 몸을 부려 불을 숭배하고 물을 섬기며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다섯 번째 숭배하고 섬기는 일을 생각해서 집착하고 마음을 미혹하여 물체를 따르면서 허망하게 구하는 원인을 세우고 허망하게 바라는 결과를 찾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뒤바뀐 변화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0_c_08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融根互用中已得隨順便於圓化一切發生求火光明樂水淸淨愛風周流觀塵成就各各崇事以此群塵發作本因立常住解是人則墮生無生執諸迦葉波幷婆羅門勤心役身事火崇水求出生死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五計著崇事迷心從物立妄求因求妄冀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顚化種
013_0861_a_01L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뚜렷이 밝은데서 밝음이 텅 비었음을 헤아려 온갖 변화를 완전히 멸[非滅; 絶滅]하여, 영멸의(永滅依; 外道의 涅槃)로써 돌아가 의지할 곳을 삼고,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돌아갈 곳이 없는 데를 돌아가려는 집착에 떨어져서, 무상천(無想天)의 순야다(舜若多; 空性에 집착한 部類)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이를 ‘여섯 번째 원만하게 비어 없는 마음[圓虛無心]으로 공하여 없는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단멸(斷滅)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0_c_19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明計明中虛非滅群化以永滅依爲所歸依生勝解者是人則墮歸無歸執無相天中諸舜若多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六圓虛無心成空亡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斷滅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는 자리[圓常]에 몸을 굳혀 영원히 머물러서, 정밀한 원만함과 한 가지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탐하지 않아야 할 것을 탐내는 집착에 떨어져서, 아사타(阿斯陀)들과 같이 긴 수명을 구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일곱 번째 생명의 근원을 집착하여 견고한 허망의 원인[妄因]을 세우고 긴 수고로움의 결과로 향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涅槃城]을 등져서 허망하게 수명을 늘리는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1_a_03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常固身常住同于精圓長不傾逝生勝解者是人則墮貪非貪執諸阿斯陁求長命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七執著命元立固妄因趣長勞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妄延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생명이 서로 융통함을 관찰하고 문득 번뇌[塵勞]에 머물러서, 그것이 스러져 사라질까 염려하여, 곧 이 기회에 연화궁전에 앉아서 널리 일곱 가지 보배를 변화시키고, 보배로운 아가씨들을 많이 불려서, 마음껏 즐기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여기는 집착에 떨어져서, 타기(吒枳)와 가라(迦羅)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여덟 번째 삿된 사유의 원인[邪思因]을 일으켜 진로번뇌를 치성케 하는 결과[熾塵果]를 세운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천마(天魔)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1_a_10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觀命互通卻留塵勞恐其銷盡便於此際坐蓮花宮廣化七珍多增寶媛縱恣其心生勝解者是人則墮眞無眞執咤抧迦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八發邪思因立熾塵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天魔種
013_0861_b_01L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생명이 밝은 가운데서 정밀과 거칢[麤]을 분별하여 진실과 허위를 결단하고, 인과(因果)를 서로 갚는다 하여, 오직 감응(感應)만을 구하면, 청정한 도를 등지느니라. 이른바 고(苦)를 보고 집(集)을 끊으며, 멸(滅)을 증득하여 도를 닦아서, 멸(滅)에 머물러 이미 쉬어 버리고, 더 이상 닦아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에 떨어져서 얻은 법 없이 얻었다고 교만을 부리는[增上慢者] 무식한 비구[無聞僧]들과 벗이 되어,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아홉 번째 정밀하게 응하는 마음을 원만히 갖춰서 열반[寂]으로 향하는 결과를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공(空)에 얽매인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1_a_18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於命明中分別精麤疏決眞僞因果相酬唯求感應背淸淨道所謂見苦斷集證滅修道居滅已休更不前進生勝解者是人則墮定性聲聞諸無聞僧增上慢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九圓精應心成趣寂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纏空種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가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 융통하고 청정한 깨달음이 밝은 데서, 깊고 묘함을 밝히고 연마하여 곧 열반이라 주장하고 더 이상 닦아나가지 않으면서,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정성벽지(定性辟支)에 떨어져서 연각(緣覺)과 독각(獨覺)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열 번째 깨달음의 융통한 마음을 원만히 갖춰서 고요한 밝은 결과를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깨달음을 원만하게 밝히려고 하나 원만하게 밝히지 못하는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013_0861_b_04L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融淸淨覺明發硏深妙卽立涅槃而不前進生勝解者是人則墮定性辟支諸緣獨倫不迴心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十圓覺㳷心成湛明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覺圓明不化圓種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禪那)를 닦다가 중도에 미치는 것은 미혹을 의지한 탓이며,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 만족하게 증득했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다 이 식음(識陰)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엇갈려 다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자리에 나지만, 중생들은 완고하게 미혹하여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각기 애착해온 이전 습기로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멈춰 쉬면서, 장차 최후에 돌아갈 편안한 자리로 여기고 스스로 말하기를 ‘더없이 높은 보리를 만족하게 성취했노라’고 하며 대망어(大妄語)를 짓느니라. 그러다가 외도(外道)와 사마(邪魔)는 받은 업이 끝나면 무간지옥[無間獄]에 떨어지고,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더 이상 향상하지 못하느니라.
013_0861_b_12L阿難如是十種禪那中途成狂因依或未足中生滿足證皆是識陰用心交互故生斯位衆生頑迷不自忖量逢此現前各以所愛先習迷心而自休息將爲畢竟所歸寧地自言滿足無上菩提大妄語成外道邪魔所感業終墮無閒獄聲聞緣覺不成增進
013_0861_c_01L너희들은 명심해서[存心] 여래의 도를 간직하여 이 법문을 가지고, 내가 열반한 뒤 말법(末法)에 전해서, 널리 중생들에게 이 뜻을 깨달아 알게 하여 견마(見魔)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재앙을 짓지 않게 할 것이며, 잘 보호하여 가엾게 여겨 구제해서 삿된 인연을 소멸시키고,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에 들게 하고 처음부터 성취해서 갈림길을 만나지 않도록 하여라.지난 세상 항사겁(恒沙劫)의 미진(微塵) 여래께서도 이 법문을 의지하여 마음을 열고 더없이 높은 도를 얻으셨느니라.
식음(識陰)이 다 사라지면 현재 너의 모든 감관은 서로 융통하게 작용할 것이며, 서로 융통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보살의 금강간혜(金剛乾慧)에 들어가면, 뚜렷이 밝고 정밀한 마음이 그 속에서 일으키는 변화는 마치 깨끗한 유리 안에 보배의 달을 먹음은 듯 하리라. 이와 같이 10신(信)과 10주(住)와 10행(行)과 10회향(迴向)과 4가행심(加行心)과 보살이 행할 금강10지(地)를 뛰어넘어 등각(等覺)이 원만하게 밝은 가운데, 여래의 묘장엄해(妙莊嚴海)로 들어가서 보리를 원만하게 성취하여 얻을 법이 없는 경지로 돌아가느니라.
013_0861_b_19L汝等存心秉如來道將此法門於我滅後傳示末世普令衆生覺了斯義無令見魔自作沈孽保綏哀救消息邪緣令其身心入佛知見從始成就不遭歧路如是法門先過去世恒沙劫中微塵如來乘此心開得無上道識陰若盡則汝現前諸根互用從互用中能入菩薩金剛乾慧圓明精心於中發化如淨琉璃內含寶月如是乃超十信十住十行十迴向四加行菩薩所行金剛十地等覺圓明於如來妙莊嚴海圓滿菩提歸無所
이 법문은 바로 과거 부처님 세존께서 사마타(奢摩他)의 비바사나(毗婆舍那)에서 깨달음의 밝은 지혜로 분석하신 미세한 마의 일이니, 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났을 때 네가 잘 알아서 마음의 때를 씻고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면, 음마(陰魔)는 소멸하고 천마(天魔)는 꺾여 무너지고, 힘센 귀신은 넋을 잃고 달아나며, 이매망양(魑魅魍魎)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리라. 그러면 바로 보리로 나아가는데 모자란 일들이 없으니, 열등한 자[下劣; 二乘]들도 증진(增進)하여 대열반(大涅槃)에 마음이 미혹하거나 답답하지 않으리라.
만일 말세에 우둔한 중생들이 선나(禪那)도 모르고 설법할 줄도 모르면서 삼매(三昧)를 즐겨 닦을 때, 네가 그들이 삿된 마[邪]와 함께 어울릴 것을 염려한다면, 나의 불정다라니주(佛頂陀羅尼呪)를 권하여 일심으로 지니게 하여라. 만일 외우지 못할 경우에는 선당(禪堂)에 써 붙이거나 몸에 지니기만 해도, 일체 온갖 마가 흔들 수 없느니라. 너는 마땅히 시방 여래께서 끝까지 닦아 나아가도록 최후에 내리신 모범을 존중해야 하느니라.”
013_0861_c_09L此是過去先佛世尊奢摩他中毘婆舍那覺明分析微細魔事魔境現前汝能諳識心垢洗除不落邪見魔銷滅天魔摧碎大力鬼神褫魄逃魑魅魍魎無復出生直至菩提無諸少乏下劣增進於大涅槃心不迷悶若諸末世愚鈍衆生未識禪那不知說法樂修三昧汝恐同邪一心勸令持我佛頂陁羅尼呪若未能誦寫於禪堂或帶身上一切諸魔所不能動汝當恭欽十方如來究竟修進最後垂範
013_0862_a_01L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정중히 받들어 기억하여 잃지 않고, 대중가운데서 다시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5음(陰)의 모양 가운데 다섯 가지 허망이 본래 생각하는 마음[本想心]’이라고 하셨으나, 저희들은 평소에 여래로부터 자세한 가르침을 받들지 못했습니다.이 5음(陰)을 한꺼번[倂]에 없애야 합니까, 아니면 차례로 없애야 합니까. 또 이러한 다섯 겹은 어디까지를 경계로 정해야 하겠습니까.
부디 여래께서는 큰사랑을 베푸셔서 이 대중의 마음과 눈을 깨끗이 밝혀주시고, 말세(末世)의 일체중생에게도 장래의 안목이 되게 하옵소서.”
013_0861_c_20L阿難卽從坐起聞佛示誨頂禮欽奉憶持無失於大衆中重復白佛如佛所言五陰相中五種虛妄爲本想心我等平常未蒙如來微細開示又此五陰爲倂銷除爲次第盡如是五重詣何爲界唯願如來發宣大慈爲此大衆淸明心目以爲末世一切衆生作將來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정밀하고 진실하고 미묘하고 밝은 본각(本覺)은 원만하고 청정하여 생사와 온갖 티끌 번뇌와 때 번뇌와 내지 허공까지도 머문 일이 없으니, 모두 허망한 생각으로 발생하여 일어난 경계이니라. 원래 본각(本覺)이 묘하고 밝고 진실하고 정밀한데서, 허망하게 온갖 물질 세간이 발생했으니, 마치 연야다(演若多)가 제 머리를 미혹하고 그림자로 잘못 안 일과 같으니라.
망상이 원래 원인이 없는데, 허망한 생각 가운데 인연의 성질을 세우기도 하고, 인연을 미혹한 자는 자연이라고 하나, 저 허공의 본질도 실제는 오히려 환영(幻影)으로 생겼으니, 인연과 자연도 다 중생의 허망한 마음으로 헤아릴 뿐이니라.
아난아, 망(妄)이 일어난 곳을 안다면 망의 인연을 설하겠으나, 망이 원래 없다면 망의 인연을 설한다 해도 원래 아무것도 없는데, 더욱이 어찌 알지 못하고 자연으로 미루겠느냐.
그러므로 여래는 너에게 5음의 본 모양은 다 같이 망상이라고 밝힌 것이니라.
013_0862_a_05L佛告阿難精眞妙明本覺圓淨非留死生及諸塵垢乃至虛空皆因妄想之所生起斯元本覺妙明眞精妄以發生諸器世閒如演若多迷頭認影妄元無因於妄想中立因緣性迷因緣者稱爲自然彼虛空性猶實幻生因緣自然皆是衆生妄心計度阿難知妄所起說妄因緣若妄元無說妄因緣元無所有何況不知推自然者是故如來與汝發明五陰本因同是妄想
013_0862_b_01L너의 몸은 당초에 부모의 생각으로 생겨났으나, 네 마음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생각 가운데 와서 생명을 전할 수 없었으리라. 내가 앞서 ‘마음으로 신맛을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생기고, 높은 벼랑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발바닥이 시큼하다’고 말했듯이, 높은 벼랑이 있지도 않고 신 물건이 오지도 않았는데, 네 몸이 분명 허망과 통하는 종류가 아니라면, 어째서 신 이야기를 따라 입에서 침이 나오겠느냐. 그러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현재 너의 색신(色身)을 첫 번째 견고망상(堅固妄想)이라고 하느니라.
또 말한 바와 같이 높은데 오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너의 형체에 실제로 시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여기에 수음(受陰)이 생긴 까닭에 몸[色體]을 움직일 수 있게 하였으니, 네가 지금 현재 이익은 따르고 손해는 어기는 두 가지가 뚜렷이 달리는 작용을, 두 번째 허명망상(虛明妄想)이라고 하느니라.
네 생각으로 네 몸[色身]을 부리고 있는데, 몸은 생각의 종류가 아님에도,너의 몸은 무슨 이유로 생각의 부림을 따라 가지가지로 본뜨고[取像] 마음이 나면 몸[形]이 취해서 생각과 상응하여, 깨어 있는 동안은 생각하고 잠자는 동안은 꿈을 꾸겠느냐. 이렇게 너의 생각이 흔들리는 허망한 정[妄情]을 세 번째 융통망상(融通妄想)이라고 하느니라.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여 가만히 옮기는 가운데, 손톱이 자라고 털이 나고 기운이 스러지고 용모가 쭈그러지면서 밤낮으로 서로 바뀌고 있으나, 잠깐도 깨닫지 못하느니라.
013_0862_a_15L汝體先因父母想生心非想則不能來想中傳命如我先言心想醋味口中涎生心想登高足心酸起懸崖不有醋物未來汝體必非虛妄通倫口水如何因談醋出故當知汝現色身名爲堅固第一妄卽此所說臨高想心能令汝形眞受酸澀由因受生能動色體汝今現前順益違損二現驅馳名爲虛明第二妄想由汝念慮使汝色身身非念倫汝身何因隨念所使種種取像生形取與念相應寤卽想心寐爲諸則汝想念搖動妄情名爲融通第三妄想化理不住運運密移甲長髮生氣銷容皺日夜相代曾無覺悟
아난아, 이것이 만일 네가 아니라면 어째서 몸이 변하며, 만일 분명 진정한 너라면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냐. 이렇게 너의 모든 행음(行陰)이 생각마다 멈추지 않는 작용을 네 번째 유은망상(幽隱妄想)이라고 하느니라.
또 너의 정밀하고 밝고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곳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경지[恒常]라고 한다면, 몸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나오지 않아야 하며, 또 만일 참으로 정밀하고 진실한 경지[精眞]라면 망(妄)을 익히는 작용을 용납하지 않아야 하리라. 그런데 무슨 이유로 너희들은 예전에 본 기이한 물건을 여러 해가 지나서 기억하는지 잊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뒤에 홀연히 이전의 기이한 물건을 다시 보면, 분명하게 기억하여 조금도 잃지 않는 것이냐. 이 정교한 앎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생각마다 받아 훈습하는 작용을 어떻게 헤아리겠느냐.
013_0862_b_06L此若非汝云何體遷如必是眞何無覺則汝諸行念念不停名爲幽隱第四妄想又汝精明湛不搖處名恒常者於身不出見聞覺知若實精眞不容習妄何因汝等曾於昔年睹一奇物經歷年歲憶忘俱無於後忽然覆睹前異記憶宛然曾不遺失此精了湛不搖中念念受熏有何籌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고요한 경계도 진실이 아니니라. 마치 급하게 흐르는 물이 겉으로 보기엔 담담하여 조용한 듯 하나, 흐름이 빨라서 보이지 않을 뿐, 흐름이 없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이 만일 생각의 근원이 아니라면 어찌 생각의 습기[想習]를 받아들이겠느냐. 네 여섯 감관의 서로 융통한 작용이 합쳐 열리지 않는다면, 이 망상은 사라질 때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가운데를 꿰어 익히는 미세한 기미[中串習幾]이니라. 이것이 고요히 아는 속에 있는 듯한 모양이 허무한 상태[罔象虛無]를 다섯째 전도미세정상(顚倒微細精想)이라 하느니라.
013_0862_b_15L阿難當知此湛非眞如急流水望如恬靜流急不見非是無流若非想元寧受想習非汝六根互用合開之妄想無時得滅故汝現在見聞覺知中串習幾則湛了內罔象虛無五顚倒細微精想
013_0862_c_01L아난아, 이 5수음(受陰)은 다섯 망상으로 이뤄졌느니라.
너는 이제 원인의 경계[因界]가 얕은지 깊은지를 알고자 하였으니, 물질[色]과 공(空)은 색음(色陰)의 가장자리[邊際]이고, 닿음[觸]과 뗌[離]은 수음(受陰)의 가장자리이며, 기억[記]과 잊음[忘]은 상음(想陰)의 가장자리이고, 사라짐[滅]과 생김[生]은 행음(行陰)의 가장자리이며, 고요한 데 들어가서 고요함과 합함은 식음(識陰)으로 돌아가는 가장자리니라.이 5음(陰)은 원래 겹겹으로 겹쳐 생겼으니, 생기는 법[生]은 식음(識陰)을 근거로 있으나, 멸하는 법[滅]은 색음(色陰)으로부터 제거하느니라. 이치[理]로는 단번에 깨달아서 깨달음을 따라 모두 소멸할 수 있으나, 실제[事]로는 단번에 없애지 못하니 수행절차를 밟아 없애야 하느니라. 나는 이미 너에게 겁바라천(劫波羅天)수건의 매듭으로 밝혔는데, 무엇이 분명하지 않아서 다시 또 묻는 것이냐.
너는 마땅히 이 망상의 근원으로 마음을 열어 통하고 나서, 장래 말법(末法)의 수행자들에게 전하여 허망함을 알고 깊이 싫어하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나게 하며, 열반이 있음을 알고 3계(界)에 연연하지 않게 하여라.
013_0862_b_20L阿難是五受陰五妄想成汝今欲知因界淺深唯色與空是色邊際唯觸及離是受邊際唯記與忘是想邊際唯滅與生是行邊際湛入合湛歸識邊際此五陰元重疊生起生因識有滅從色除理則頓悟乘悟倂銷事非頓除因次第盡我已示汝劫波巾結何所不明再此詢問汝應將此妄想根元心得開通傳示將來末法之中諸修行者令識虛妄深厭自生知有涅槃不戀三界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시방에 두루 원만한 허공에 가득 찰만한 7보를 가지고, 티끌처럼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잠시도 헛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 보시한 인연으로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느냐.
013_0862_c_08L阿難若復有人遍滿十方所有虛空盈滿七寶持以奉上微塵諸佛承事供養心無虛度於意云何是人以此施佛因緣得福多不
아난이 답했다.
“허공도 다함이 없고 보배도 끝이 없다고 하셨으니, 옛날 어떤 중생은 부처님께 7전(錢)만을 보시하고도, 오히려 몸을 버린 뒤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는데, 더욱이 이 눈앞의 허공을 이미 다하고 부처님의 국토가 가득 차도록 모두 진보(珍寶)를 보시한 일이겠습니까. 겁이 끝나도록 말하거나 생각해도 오히려 따를 수 없는데, 이 복이 어찌 또 끝이 있겠습니까.
013_0862_c_12L阿難答言虛空無盡珍寶無邊昔有衆生施佛七錢捨身猶獲轉輪王位況復現前虛空旣窮佛土充遍皆施珍寶窮劫思議尚不能及是福云何更有邊際
013_0863_a_01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말씀에는 허망함이 없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몸에 네 가지 무거운 죄와 열 가지 바라이(波羅夷) 죄를 가득 짊어지고 순식간에 이곳 저 곳의 아비지옥(阿鼻地獄)을 겪어야 할 지경이거나, 심지어 시방의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끝까지 두루 다 겪어야 할 지경이라도, 일념(一念)으로 이 법문을 가지고 말겁(末劫) 가운데 배우지 못한 이들을 깨우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죄와 업장은 생각 따라 소멸해서, 그 받을 지옥고통의 원인은 변하여 안락한 국토가 되느니라. 따라서 얻는 복도 앞의 칠보로 보시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백배 천배 천만억 배이며, 이렇게 계속 계산[算數]하고 비유(譬喩)해도 따를 수 없느니라.아난아, 또 만일 어떤 중생이 능히 이 경을 외우고 이 주문을 지닌다면, 내가 아무리 겁이 끝나도록 오래 설할지라도 다 설할 수 없느니라. 내가 가르친 말[敎言]을 의지해서 가르친 대로 도를 행한다면, 바로 보리를 성취하여 더 이상 마의 업이 없어지느니라.
013_0862_c_16L佛告阿難諸佛如來語無虛妄若復有人身具四重十波羅夷瞬息卽經此方他方阿鼻地獄乃至窮盡十方無閒靡不經歷能以一念將此法門於末劫中開示未學是人罪障應念銷滅變其所受地獄苦因成安樂國得福超越前之施人百倍千倍千萬億倍如是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阿難若有衆生能誦此經能持此呪如我廣說窮劫不盡依我教言如教行道直成菩提無復魔業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자,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와 모든 세상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다른 곳에서 온 보살과 이승(二乘)과 성선동자(聖仙童子)와 처음 발심한 대력귀신(大力鬼神)들은 모두들 무척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013_0863_a_04L佛說此經已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一切世閒天人阿修羅及諸他方菩薩二乘聖仙童子幷初發心大力鬼神皆大歡喜作禮而去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十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