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寶積經論卷第四 釋文函第二卷

ABC_IT_K0552_T_004
015_0212_a_01L대보적경론 제4권문함(文函) 제2권을 풀이한다.
015_0212_a_01L大寶積經論卷第四 釋文函第二卷


보리류지 한역
이병욱 번역
하혜정 개역
015_0212_a_02L 後魏北印度三藏菩提流支 譯



“가섭아, 미래의 비구는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 중에서 외도를 향하는 것이 ‘개’와 같은 것이고, 색(色) 등의 다섯 종류의 경계가 ‘흙덩이’ 같은 것이고, ‘던진다[擲]는 것’은 예컨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을 두려워하는 것이니, 모든 경계를 두려워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저 사람은 경계를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워하는 인(因)을 증험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종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므로 그저 경계만을 쫓을 뿐이다.
015_0212_a_03L迦葉有當來比丘如犬逐塊是中向外道如犬者色等五種境界如塊擲者如畏色聲香味觸示現畏諸境彼畏境界不證知畏因故示現有四種相故唯逐境界
‘비고 한가로운 곳에 머문다’고 한 것은 뛰어난 경계를 더욱 얻고자 하여서 비고 한가로운 곳을 취하는 것이니, 저 사람은 혼자 있고 도반이 없는 곳에 머물고 저 잡된 물든 것을 제거하고 둘이 없는 곳에 영원히 머문다. 몸은 다섯 가지 욕심[五欲]에서 벗어났지만 마음은 다섯 가지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니, 이런 사람은 어느 때엔가는 어쩌다 좋은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을 생각하여 탐내는 마음이 생겨 은미하게 집착하며 안[內]을 관찰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경계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참기 때문에 그는 알지 못한다.
015_0212_a_08L住空閑處者欲轉得勝境界取空閑處彼住獨無等侶除彼雜染永住無二以身離五欲而心不捨是人有時或念好聲香味觸貪心微著而不觀內不知不覺憶念諸境界忍故彼不知
어떻게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저 사람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므로 뒷날 성읍과 취락과 왕의 도시 등에 와서 사람의 무리 중에 있을 때에 또한 좋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의 다섯 가지 욕심에 묶이게 되므로 청정한 경계에서 다시 물러나게 된다. 만약 비고 한가로운 곳에서 죽는다면 세속의 계율을 지켰으므로 문득 하늘에 태어남을 얻는다. 위의 하늘에서도 다섯 가지 욕심에 애착하여 묶이면 다시 하늘에서 죽더라도 또한 네 가지 악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015_0212_a_13L云何當得離色聲香味觸彼以不知不覺後時來入城邑聚落王都等在人衆中還復爲好色聲香味觸五欲所故還復退若空閑處死者持俗戒便得生天有爲上天五欲所愛縛彼從天上滅亦不離四惡道
015_0212_b_01L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아수라의 세계이다. 하늘에서 태어났다가 떨어지면 모두 탐욕의 행에 의지하기 때문에 흑붕(黑朋)이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견해와 행동에 의지하므로 백붕(白朋)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인무아(人無我)를 보기 때문에 저러한 대치로 두 종류의 흑과 백의 붕(朋)을 풀이하여 성립시키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행을 닦고 난 다음에 산란한 마음이 있으면 거두어 취하게 하고 이미 거두어 들였으면 해탈을 얻게 한다.
015_0212_a_19L何等爲四所謂地獄餓鬼畜生阿修羅道天中生盡依貪欲行故黑朋應知依見行故說白朋應知以見人無我故彼對治釋成二種黑白朋等應知如是修諸行有散心令使攝取已攝者令得解
이 중에서 경전[修多羅]에서 구절의 비유가 있으니 선정의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서 그것을 해탈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방편인 사마타를 말하여 모든 번뇌의 사마타(舍摩他) 등의 모습을 취하고 버려서 잘못되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목구멍의 비유와 사람을 묶는 비유 등을 분명히 말한 것이다.
015_0212_b_03L是中修多羅句喩以不入定心爲得解脫故說諸方便舍摩他取捨諸煩惱舍摩他等相錯心治故顯說咽喉喩及縛人喩等
그 이유는 한결같은 마음인 선정의 마음 중에 해탈의 방편을 말하여 보고 닦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번뇌 중에서 방편을 말하여 번뇌를 없애게 하기 때문이고, 저것은 몸이란 견해를 장애하여 삼매를 사랑하고 즐거워하게 하기 때문이고, 예컨대 목구멍과 사람을 묶는 비유로 알게 하기 때문이고, 진리를 증득할 때 출세간의 지혜로 어렵게 하기 때문이니, 몸이 있다는 견해는 목구멍에 병이 든 것과 같은 줄을 알아야 한다.
015_0212_b_06L以一心定心中說解脫方便示現見修相煩惱中說方便令滅故彼障身見愛樂三昧故咽喉及縛喩等識故證諦時以出世閒智作令難故身見如咽喉處病應
이와 같이 행을 행하고서 막는 등의 법이 있는 것을 막으므로 두 종류의 공(空)을 말하여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비유한다. 첫째는 세간과 외도의 경서와 모든 논 등을 독송하는 것이고, 둘째는 좋은 옷과 좋은 발우를 많이 쌓아 두는 것이니, 업에 의지하고 몸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015_0212_b_11L如是行行已防有防等法故說二種空喩不淨心一者讀誦世閒外道經書諸論等二者多畜好衣鉢依業及依身故
이 두 가지 법이 두 종류의 묶임을 얻게 한다. 순서대로 첫째는 견해에 묶이는 것이고, 둘째는 이로운 공양과 명성과 소문 등에 묶이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묶이게 하는 것이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을 생기게 하지 않고 장애를 짓게 하니, 두 종류의 법을 얻게 될 것이다. 첫째는 성스러운 종자라는 무리들[朋]이고, 둘째는 모든 단월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015_0212_b_14L此諸二法能令得二種縛如次一見縛二利養名聞等縛然此二種能縛以未生善法爲令不生作當得二種法一者聖種朋二者親近諸檀越
이것이 이미 생긴 착한 법을 없애고 더러움에 물듦을 짓는 까닭에 두 종류의 더러움을 얻게 한다. 첫째는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감내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단월과 선지식 등을 탐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선근의 법을 영원히 끊고 뿌리 뽑으므로 두 종류의 비와 우박의 무너뜨리는 법을 얻게 한다. 첫째는 바른 법을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고, 둘째는 계를 깨뜨리고도 믿음 있는 사람의 보시를 받는 것이다.
015_0212_b_18L已生善法能滅及作污染令得二種垢一者忍諸煩惱垢者貪諸檀越知識等永斷拔諸善根法故令助得二種雨雹壞法一者毀謗正法二者破戒受人信施
015_0212_c_01L 현재의 법 중에 저것을 다스릴 수 없으므로 두 종류의 부스럼을 얻게 한다. 첫째는 다른 사람이 허물 보기를 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죄를 스스로 덮는 것이다. 현재의 법 중에 고통스럽고 악한 행동 때문에 두 종류의 선근을 태우는 법을 얻게 한다. 첫째는 더러움이 있는 몸과 마음으로 가사를 받아서 입는 것이고, 둘째는 저 계를 지켜 공덕 있는 사람에게 예배와 공양 등을 받는 것 등이다.
015_0212_b_22L現法中彼不可治故令得二種癰瘡一者求見他過二者自覆諸罪現法中苦惡行故令得二種燒法一者有垢身心受著袈裟二者受他持戒有功德人所禮拜供養等
미래를 비유한 것은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여 선근이 생기지 못하는 까닭이니, 두 종류의 병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얻게 한다. 첫째는 증상만을 품어서 마음을 스스로 조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이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무너뜨리니 보살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성문의 계율에 의지하는 것도 미래에 점차가 있을 것이니 알아야 한다.
015_0212_c_05L未來喩者爲得不得不能生故令得二種不可治病一者懷增上慢而自伏心二者壞他發大乘心謗菩薩故依聲聞戒未來更有漸次應知
‘가섭아, 스스로 안을 관찰해야 한다’는 말은 이와 같으니, 중간에 누가 간사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탐욕과 번뇌 등을 조복하는 까닭에 증상계행(增上戒行)과 다문(多聞)의 비유를 말하고, 싫어하고 후회하는 뜻이 생기는 까닭에 증상심계행(增上心戒行)과 목구멍의 비유를 밝혔다. 사람을 묶는 비유는 인무아와 법무아 때문에 지혜와 계행을 늘린다는 뜻이다.
015_0212_c_09L迦葉當自觀內者如是乃中有誰黠慧調伏貪惱等故說增上戒行多聞喩生厭悔意故明增上心戒行咽喉喩及繫縛人喩者以人無我及法無我故增上智戒行

【문】만약 탐욕과 번뇌 등을 조복하여 마음의 계행을 늘린다는 것이 경에서 말한 것이라면 무슨 까닭에 여기서는 계행을 늘리는 것을 말합니까?
015_0212_c_13L若以調伏貪惱等增上心戒行經所說者何故此中說增上戒行
【답】탐욕과 번뇌의 행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니, 죄는 대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그러므로 탐욕과 번뇌 등을 조복하는 것이 계행을 늘리는 것이다.
015_0212_c_15L答曰能發起貪惱行故罪多因貪瞋癡等相發起是故說調伏貪惱等是增上戒行

【문】어찌하여 탐욕과 번뇌 등이 죄를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015_0212_c_17L云何貪惱等令能發起罪
【답】두 종류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니, 저 사람이 참회할 수 없거나 혹은 저 사람이 참회를 하더라도 참회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예컨대 여러 사문과 바라문이 번뇌의 인(因)을 알지 못하므로 색 등의 경계를 두려워하여 한가하고 빈 곳에 머무르지만 자기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 잘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에 탐욕과 번뇌와 아만의 경계를 일으키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탐욕 등을 생각하고 보는 것과 같다.
015_0212_c_18L答曰二種相故如彼不能懺悔如彼懺悔而不成懺悔喩若有諸沙門及婆羅門不知煩惱因故怖畏色等境界閑空處自心發起不善思惟故亦起貪惱我慢境界或餘處念見貪等
015_0213_a_01L 따라가는 것이 마치 개가 흙덩어리를 따르는 것과 같으니, 흙덩어리로 때리는 까닭에 흙덩어리만을 따른다. 이와 같이 탐욕 등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취락 등의 모든 것을 가까이하는 일을 현전에서 생각하다면 이것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의(義)에 수순하기 때문에 제거한다고 말하고 제거해서 마친다.
015_0212_c_23L逐如犬逐土塊以塊打故唯逐塊是不除貪等故若以聚落等所有親近事作現念是名未除順義故名除及以除竟

【문】무슨 까닭에 흑붕(黑朋) 중에서는 탐욕을 조복하는 것은 말하고 번뇌를 조복하는 것은 말하지 않으며, 백붕(白朋) 중에서는 번뇌를 조복하는 것을 말하고 탐욕을 조복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015_0213_a_04L何故黑朋中說貪調伏不說於惱白朋中說惱調伏不說於貪
【답】둘 다 욕계 중에 있기 때문이다. 유여(有餘)를 조복함과 유여를 조복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유여를 조복하고 유여를 조복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다’고 한 것은 만약 비고 한가로운 곳에서 목숨을 마치면 이와 같은 것이 아직 조복되지 않은 것인 까닭이다. 계에 머무는 사람도 무너지니 증상계(增上戒)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물며 다시 계에 머물지 않는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015_0213_a_05L答曰二俱欲界中故示現有餘調餘不調示現有餘調有餘不調者在空閑處而命終如是未調故住戒者亦壞成增上戒故況復不住戒者
비유하면 말이 길을 내려가는데 혹 착각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은 증상계를 행하는 사람이다. 모든 염(念)을 착각하므로 어지럽다고 말한다. 비유하면 목구멍의 병이 명근(命根)을 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인무아에 의지해서 증상지(增上智)를 이룬다. 몸이란 견해로 법의 명근을 끊을 수 있으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묶인 곳에 따라 해탈을 구하는 것과 같다.
015_0213_a_09L如馬下道或錯如是行者行增上戒以錯諸念亦名亂如咽喉病能斷命如是依人無我行增上智以身見能斷法命根如有人隨所縛處而求解脫
이와 같이 법무아에 의지해서 증상지를 행한다. 성품에 벗어난 망념을 따르는 중에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이 세 가지 계를 닦는 중에 여덟 가지 계와 서로 어긋나는 법이 있고 여덟 가지 깨끗하지 않은 마음에 수순하는 것이 있다. 세간과 외도의 경서와 모든 논 등을 독송하는 것과 좋은 의복과 발우가 많은 것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015_0213_a_14L如是依法無我行增上智隨所性脫妄念中令計心此三修戒中八種戒相違法有八種隨順不淨心讀誦世閒外道經書諸論等多好衣鉢等無所用故
예컨대 공연히 제멋대로 물들이는 것과 같으니 제멋대로 물들이는 것은 묶임[縛]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점차로 두 종류의 묶임을 말하니, 첫째는 견해에 의한 묶임이고, 둘째는 명성과 소문과 이익 된 공양에 의한 묶임이다. 묶이는 것이 원인이 되므로 이렇게 점차로 말한다. 견해에 묶이므로 성스러운 종자의 붕(朋)을 증오하고 비방하며, 이익 된 공양과 명성과 소문 때문에 재가인을 가까이한다.
015_0213_a_18L如空橫染橫染是縛故漸次說二種縛一者見縛二者名聞利養縛於縛作因故說此漸次以見縛故憎謗聖種朋以利養名聞親近白衣
015_0213_b_01L 예컨대 더러운 장애의 원인이므로 점차로 두 종류의 더러움을 말한다. 첫째는 성스러운 종자의 붕을 증오하고 원망해서 모든 번뇌를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둘째는 재가인[白衣]을 가까이하는 까닭에 모든 단월과 선지식 등을 탐한다. 이 더러움은 비가 내리고 우박이 치는 원인과 같은 것이므로 다음으로 비와 우박을 말한다.
015_0213_a_22L如垢障因故漸次說二種垢一憎怨謗聖朋忍受諸煩惱親近白衣故貪諸檀越知識等是垢如雨雹因故次說雨雹
모든 번뇌를 참고 받아들이므로 바른 법을 헐뜯고 비방하며, 모든 단월을 탐하여 계를 깨뜨리는 인연을 가까이하므로 계를 깨뜨리고서도 믿음 있는 사람의 보시를 받는다. 비와 우박의 원인이기 때문에 다음에 부스럼이 있다. 바른 법을 헐뜯고 비방하며 계를 깨뜨리고서 믿음 있는 사람의 보시를 받기 때문이고, 모든 죄를 스스로 덮기 때문이고, 부스럼의 원인을 태우기 때문이므로, 다음에 태우는 법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허물 보기를 구하니 “더러움이 있는 몸과 마음으로 가사를 받아 입는다”고 말한다.
015_0213_b_02L忍受諸煩惱毀謗正法貪諸檀越以親近破戒緣故說破戒受人信施於雨雹因故次有癰瘡以毀謗正法及破戒受人信施故自覆諸罪故燒煮癰瘡因故次說燒法求見他過說有垢身心受著袈裟
죄를 스스로 덮기 때문에 계를 지키는 공덕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예배와 공양 등을 받는다. 태우는 것이 병의 원인을 이루기 때문에 다음에 병을 치료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더러움이 있는 몸과 마음으로 가사를 받아서 입고 증상만을 품는다고 말하였다. 계의 마음을 모으기 때문이고 계를 지키는 공덕 있는 다른 사람에게 예배와 공양 등을 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무너뜨린다.
015_0213_b_08L以自覆罪故受他持戒有功德人所禮拜供養等於燒成病因故次說不可治病故言有垢身心受著袈裟而懷增上慢而集戒心故受他持戒有功德人所作禮拜供養等故壞他住發大乘心
이것에 짝하므로 백붕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두 사람 중에 처음 사람은 견행인(見行人)이고 두 번째 사람은 탐애행인(貪愛行人)이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3_b_13L對此故說白朋應此二人中初是見行人第二貪愛行人應知

【문】‘네 종류의 사문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점차로 나타내 보이는가?
015_0213_b_15L有四種沙門者以何漸次示現
【답】예컨대 저 사람은 계법을 어긴 근심이 있어서, 혹 친근히 하거나 혹 사람을 버리고 얻는 근심이 있고, 혹 사람의 공덕을 얻고 나서 모든 것이 생각 중에 장애가 되거나 혹 장애가 되지 않기도 한다. 저것은 이 중에서 사람의 근심에 세 종류가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세 종류의 사람에 의지하므로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3_b_16L 如彼違戒法患或親近或捨人患或得人功德已所有於念中成或非障者彼示現是中人患有三依三種人故說應知
형상과 복장의 모습[形服相]의 사문은 마음과 행동이 모두 무너진 사문이다. 악을 기뻐하는 것에 의지하기 때문에 의지한다는 의미를 말한다. 속이는 사문[誑詐]과 명성과 소문[名聞]의 사문은 행은 성취하지만 마음은 무너지는 사문이다. 두 종류에 의지하니, 대(大)를 희욕(喜欲)하고 희욕하는 마음이 있다[有喜欲]. 이 중에서 악을 기뻐하고 마음을 두어 하고자 하는 자는 설사 사문이라고 말하더라도 사문이 아니다.
015_0213_b_19L 形服相沙門心行俱壞依喜惡故說依義誑詐沙門及名聞沙門行成就而壞心二種喜欲大及有喜欲是中喜欲惡若言沙門而非沙門
015_0213_c_01L 큰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모든 덕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자기가 가진 덕을 그들이 넘어선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유희욕은 설사 덕이 있더라도 덕 등과 함께 마음을 낸다는 것이다. 처음의 것에 두 종류의 행을 무너뜨리는 것이 있다. 첫째는 유여(有餘)이고, 둘째는 무여(無餘)이다.
015_0213_b_23L 怖大者若有諸德而自意過有自德恒作是念喜欲者若有德而與德等生心初者有二種壞行一者有餘二者無餘
유여는 네 가지 사문에 의지해서 말하니 알아야 한다. 계를 받는 유루에 의지하고 또 깨끗하지 않은 의업을 행하는 것에 의지한다. 이 세 가지 잘 조복하지 않은 것 등에 나아가서 순서대로 나타내 보이겠다.
015_0213_c_03L餘者依四沙門故說應知依於受戒有漏乃至行不淨意業就此三不善調伏等如次示現
걸식에 의지하므로 깨끗하지 않은 명(命)을 말하고, 받아쓰는 것에 의지하므로 아끼는 일로 받아쓰고 쌓아 두고 보관하는 일 등을 말한다. 업 닦는 것에 의지하므로 깨끗하지 못한 명을 말하고, 받아쓰는 것에 의지하므로 게으른 것을 말한다.
015_0213_c_06L依乞食故說不淨依受用故說慳事受用畜聚𧂐宿依修業故說不淨命依受用故慳事受用畜𧂐宿等依修業故說懈
무여는 계를 깨뜨리기 때문이고, 근본이 되는 계를 깨뜨리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악한 법 때문이고, 저것을 덮어 가리기 때문이며, 두 번째 행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행과 명과 계와 받아쓰는 것과 도를 닦는 것에 의지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행을 성취한다’고 한 것은 행을 의지하기 때문이고, ‘경계를 성취한다’고 한 것은 명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위의를 성취한다’고 한 것은 물드는 마음의 네 가지 행 때문이다.
015_0213_c_10L無餘者以破戒故教犯根本戒故壞心者以惡法故及覆藏彼故第二成就行故依行命戒受用及修道應是中成就行者依行故成就境界依命故成就威儀者以染心四行
‘계에 의지한다’는 것은 수용하는 것이 거칠고 먹기에 껄끄러우므로 조금 바라는 것이다. ‘네 가지 성스러운 종자의 성품’이라 한 것은 수용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모든 도인과 속인 등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말한 때문이고, 도를 닦는 것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조금 말하기 때문에 고요함을 즐겨하고 논에 의지해서 말하고 위로하여 깨우쳐 주는 등의 일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3_c_15L依戒者受用麤澀食故少欲四聖種性者依受用故言不親近諸道俗等故依修道故少言少語故樂寂靜依論說慰喩等應知
‘비록 이와 같은 등의 법을 행하지만 모두 속이는 것이어서 착하고 깨끗한 마음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마음을 무너뜨리기 때문이고, 수행에 의지해서 행하기 때문에 속이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아견이 있다’고 한 것은 인무아에 의지하지만 아견의 행을 행하는 것을 없애지 않기 때문이다. 공법 중에 두렵고 어렵다는 생각을 내니 비유하면 깊은 구덩이에 임하는 것과 같다.
015_0213_c_18L雖行如是等法皆爲誑詐不爲善淨心者以壞心故依修行行故誑詐應知常有我見者依人無我不滅我見行行故於空法中而生怖畏難如臨深坑
015_0214_a_01L 법무아에 의지해서 공을 분별하지 못하고 저 말하는 사람도 원수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 번째 행을 성취해서 염(念)에 수순하고 머무르는 것은 그침에 의지하고 행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수순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머무는 것’은 계를 지키는 것이고, ‘염하는 것’은 많이 듣는 것이니, 저것을 염하므로 모든 일에 수순할 수 있는 것이다.
015_0213_c_22L依法無我不分別空及彼說者生怨家等想三者成就行順住念依止及依行順諸法應知是中住者持戒念者多念彼故得順諸事
‘그침에 의지한다’는 것은 비고 한가로운 곳에 앉는다는 말인데, 비고 한가로운 곳에 앉으므로 모든 공덕에 수순한다. ‘모든 법에 수순한다’는 것은 조금에 만족을 알고[少知足], 조금 바라는 것[少欲] 등이다. 친한 사람의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니, 친한 사람 중에서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모든 염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은 싫어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214_a_03L依止者空閑處以空閑坐故順諸功德隨順諸法少知足少欲等違心於親親中應是中不滅諸念者示現有厭離欲
저것을 대치하므로 활활 타오르는 등의 욕심을 없애고, 세 가지 보리이므로 세 가지 보리를 없애며, 도의 행과(行果)이므로 네 번째 사람이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한다. 아홉 종류를 성취하는 세력을 알아야 한다.
015_0214_a_06L彼對治故滅熾然等欲三菩提故三菩提以道行果故第四人二俱成以九種成就勢應知
첫째는 항상 행하는 세력이고, 둘째는 많이 듣는 세력이며, 셋째는 욕망하는 세력이고, 넷째는 고요히 생각하는 세력이며, 다섯째는 바로 보는 세력이고, 여섯째는 증득하는 세력이며, 일곱째는 없애는 세력이고, 여덟째는 닦는 세력이며, 아홉째는 바로 증득하는 세력이다.
015_0214_a_09L常行勢多聞勢欲勢寂靜思惟勢見勢證勢滅勢修勢正證
‘몸과 목숨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항상 행하는 세력이라 이름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공 등의 법을 즐겨 듣고 마음으로 기뻐한다’고 한 것은 두 번째의 많이 듣는 세력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공이라는 견해를 기뻐하지 않고 다시 열반을 기뻐하여 범행을 닦는 것도 아니니, 어찌 하물며 삼계를 바라고 구하겠는가?
015_0214_a_12L不求身命者以不惜身命故是名常行勢應知樂聞空等法意喜者第二多聞勢亦不喜空見等復不喜涅槃修諸梵行何況悕求三界
모든 보는 법을 바라고 구하지 않으며 또한 법을 없애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 과(果)와 저 도(道)로 열반을 얻으려는 뜻 때문이니, 세 번째의 욕망하는 세력을 말한다. ‘항상 법에 의지하고 문자와 구절과 문장에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은 모든 번뇌에 대해 안으로 해탈을 구하고 밖을 향하여 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015_0214_a_15L不悕求諸見法亦應滅法故彼果彼道得涅槃意故說第三欲勢常依止於法不依止文字章句者諸煩惱求內解不向外逃走
법에 의지하므로 선정 해탈의 생각과 마음과 세간의 지혜 등인 네 번째의 고요히 생각하는 세력을 구한다. ‘모든 번뇌에 대해 항상 해탈을 구하고 바깥을 향하여 하나의 법도 보기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본래의 성품은 더러움이 없어 필경에 청정하고 스스로 의지하며 다른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품이 물들지 않았으므로 출세간법을 배우는 것이 있어 안에서 스스로 보아 아는 것이다.
015_0214_a_19L以依止法故求禪解脫思心世閒智等第四寂靜思惟勢於一切煩惱常求解脫不向外求一法本來性無垢畢竟淸淨而自依止亦不依他者性不染故有學出世閒法自內知見
015_0214_b_01L 다섯 번째의 바른 견해의 세력은 바른 법의 몸으로도 오히려 부처님을 보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색신(色身)으로 보겠는가라는 말이다. 삼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진실한 삼보는 또한 출세간의 지혜로 분별하고 염(念)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5_0214_b_01L第五正見勢以正法身尚不見佛何況色身者以不見三寶故眞實三寶亦以出世閒智分別念故
여섯 번째의 증득하는 세력은 공의 근심을 벗어나도 오히려 법을 보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음성과 언어에 탐하여 집착하겠는가? 제거해야 될 것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의 없애는 세력은 닦는 것과 닦아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닦기 때문이다.
015_0214_b_04L第六證勢以空患離上不見法何況貪著音聲言說以滅除所應除者故第七滅勢無所修應修者以修
여덟 번째의 닦는 세력은 생사에 나지 않고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법이 본래 고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속박이 있는 것도 보지 않고 해탈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간을 버리지 않고 열반도 증득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세간의 원인을 없애기 때문에 열반을 얻고 그렇기 때문에 세간에 태어나지 않고 열반을 구하지 않는다. 죽음과 수명을 바라고 구하지 않으며, 해탈을 구하지 않고 속박을 구하지 않는다.
015_0214_b_07L第八修勢不生生死不著涅槃一切法本來寂滅不見有縛不求解是故不捨世閒不證涅槃者以滅世閒因故及以得涅槃故不生世閒不求涅槃不悕求死及壽命不求解不求縛
이미 없어졌기 때문이고 나머지가 있기 때문에 행하지 않고 또한 없애지 않는다. 이 중에서 성품이 다해 없어지고 생기는 것이 없는 지혜 등에 포함되는 모든 무학법(無學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아홉 번째의 바른 증득을 하는 세력이라 한다. 저 세 종류의 모든 사문이 사문의 이름을 세웠는데 저 이름은 의미가 없고 사문의 본래 의미와는 비슷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 보인다. 명성에 공격당하는 것이니 이것을 빈궁의 비유라고 말한다.
015_0214_b_12L已滅故及有餘分故不行亦不滅是中性滅盡無生智等所攝諸無學法應知是名第九正證勢所有彼三種沙門立沙門名彼名無義不相似示現以名所伐故說貧窮喩
어떤 것이 명성에 공격당하는 것인가? 다른 사문의 이름난 형상과 복장 때문에 믿음 있는 이의 보시와 이익 된 공양을 망령되이 받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진실하지 못한 행을 하는 사문과 식지(識知)가 진실한 행의 사문에게 아만을 일으키고 계를 지키는 식지에게 계를 지키는 듯이 전도되게 말하기 때문이다.
015_0214_b_16L云何以名所伐異沙門名形服故妄受信施利養自此已後非眞實行沙門及識知起我慢眞實行沙門故幷持戒識知顚倒說似如持戒故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와 수혜(修慧) 등에서 저 아만에 의지하므로 두 번째 비유를 말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물에서 표류하다 빠졌는데, 물이 부족하여 목말라 죽은 것과 같다. 이것은 문혜가 있기 때문에 아만을 내는 것을 말한다. 약사(藥師)는 사혜가 있기 때문에 삼마발제에 즐겨 집착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015_0214_b_20L聞思修等智依彼慢故說二喩譬如有人漂沒大水渴乏而死此喩示現以有聞慧故生我慢藥師喩以有思慧故著三摩拔提
015_0214_c_01L 범부는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이지만 이익 된 공양과 공경에 즐겨 집착하기 때문이고, 유학(有學)은 후회함을 일으켜 삼마발제를 닦는 자이지만 수혜의 삿된 행 때문에 바른 행을 행하는 중에 아만을 일으키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그러므로 나머지 세 가지 비유를 말한다. 처음은 병든 사람의 비유이고, 둘째는 보배의 비유이며, 셋째는 죽은 사람의 비유이다.
015_0214_c_01L凡夫離欲者樂著利養恭敬故有學者起悔修三摩拔提者修慧邪行故示現行正行中起我慢說餘三喩初名病人喩第二者寶第三者死人喩
계에 의지해서 저 아만을 일으키는 까닭에 네 종류의 계를 깨뜨리는 비구가 스스로 계를 잘 지키는 비유를 나타내 보인다. 이 중에서 처음은 가짜로 계를 받는 것이고, 둘째는 율을 잘 지켜서 분명히 이해하는 것에 게으른 것을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행이 저것과 비슷하기에 계의 장애를 깨뜨리는 것이 무너진 때문에 계를 무너뜨리고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열두 가지 두타(頭陀)18)를 모두 받아들이는 공덕을 말한다. 이것이 계를 지키는 것을 임시로 부르는 이름이다.
015_0214_c_05L依戒起彼慢故現有四種破戒比丘自善持戒等喩是中初者假受戒第二者說不善持律明了懈怠三者以行似彼故於破戒障壞故說壞障戒第四者說具受十二頭陁功德是假名持戒
이 중에서 처음은 견해의 근심으로 계를 없애고 깨뜨리는 것을 대치하는 것에 대한 장애이다. 이것을 계를 깨뜨린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계를 깨뜨리기 때문에 저 중에 한 가지도 간직할 수 없다. 열반 중에 공포를 내어 계를 깨뜨리는 장애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수행하여 대치한다.
015_0214_c_10L是中初見患滅破戒對治障故名爲破戒應知有者以破戒故不可持彼中一於涅槃中生恐怖不能滅破戒障故修行對治
두 번째는 아만 때문에 해탈을 얻은 모습을 내어 저것을 대치하므로 계를 지키는 모든 진실한 공덕을 말한다. 그러나 계를 깨뜨리는 악에 의해 드러난 것과 도를 닦는 행에 의해 드러난 것이 있다. 이 중에서 처음 계를 지키는 것은 안의 입(入)을 말하는 것이지 바깥의 입(入)을 말하는 것은 아닌 때문이다.
015_0214_c_14L第二以我慢故生得解脫對治彼故說諸眞實持戒功德破戒惡所顯及修道行所顯是中初持戒者說內入非外入故
두 번째 물드는 업을 지었지만 지음이 없는 것이다. 착함은 지음이 없는 것이니 몸 등으로 짓는 것이 아니고 물드는 업은 지음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착함을 행하지만 행도 없고 행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잡되고 물드는 것과 잡되고 물들지 않는 것에 의지하며, 걸식에 의지하지만 행하는 것도 없고 행하지 않는 것도 없다. 잡되고 물드는 것과 잡되고 물들지 않는 것에 의지하여 수용하므로 이름도 없고 색도 없는 무여열반이라 이름한다. 그 이유는 생각이 없지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모습 없는 행 중에서 모든 생각을 염(念)하는 것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015_0214_c_17L第二說作染業無作善無作非是身等作染業亦無非作是能作善無行無非行雜染不雜染依乞食無所行亦無不依雜染不雜染受用故無名無色無餘涅槃無想無非想無相行中離念一切想故
015_0215_a_01L 생각 없는 계를 염하는데 멸하는 것도 없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무학의 행은 열반에서는 유여이기 때문이고 번뇌는 무여이기 때문이다.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니 기쁨과 걱정을 벗어나는 것을 항상 행하기 때문이고, 염을 버리고 함께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015_0214_c_23L及念無想戒無滅無非無學行於涅槃有餘故煩惱無餘無取無捨常行離喜憂故及捨念同生有故
취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없다. 그 이유는 또한 저 사람은 처음의 경계에서 걱정과 기쁨을 취하지 않고, 취하고 버리는 것에 염이 함께 생기기 때문이다. 중생도 없고 중생이란 이름도 없어야 그래야 무심(無心)에 이른다. 무심은 해석에 의지한 것이니 이는 이미 없어졌지만 기(記)할 수 있는 것에 따르는 것을 비유하였다. ‘기(記)하는 것에 따르고 장소에 따른다’고 한 것은 세간도 없고 세간이 아닌 것도 없는 것이니, 기세간(器世間)의 잡됨과 잡되지 않은 것을 의지해서 사람의 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015_0215_a_03L無可取無可捨還彼初境不取憂喜及取捨念同生故無衆生無衆生名乃至無心無心名依解釋喩旣滅隨所能記及隨所記隨所無世閒無非世閒依器世閒雜不雜行人行故
‘의지함도 없고 의지함이 아닌 것도 없다’고 한 것은 잡되고 물드는 것과 잡되고 물들지 않는 것에 의지하고 6식(識)이란 촌락과 밭의 경계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계로 스스로 높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계를 비방하고 낮추지 않는다’고 한 것은 친근한 집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 사람의 계를 기억하여 분별하지 않고, 스스로 나는 계를 지켰고 이와 같이 계를 간직했다고 분별하지 않으며, 저 성품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015_0215_a_08L言無依止無非依止雜染及不雜染依六識村田境界故言不以戒自高不謗下他戒依親近家故亦不憶想分別彼戒不分別我是持戒我有如是持戒不分別彼性
무루도 세간에서 함께 없애야 할 것이지만 찾으면 분명하게 드러나므로 함께 하지 않는다[不共]고 말한다. ‘그러나 저것은 예컨대 삼계의 과보는 아니고 삼계의 원인도 아니다’라고 한 이 두 구절에서 이 이름을 점차 나타내 보인 것이다. 계에 의지해서 모든 법에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으므로, 잘 배운 사문과 잘 배우지 않은 사문의 차별된 일을 말한다.
015_0215_a_13L無漏亦有世閒共可滅尋卽顯故說不共然彼若三界非果非求三界是二句示現是名以漸次依於戒有順不順諸法故說善學不善學沙門差別事
어떤 사람이 잘 배우지 않은 사문인가? 이 중에 세 종류가 있으니 알아야 한다. 형색과 복장은 사문인 것 같지만 사문의 계를 아끼지 않는다면 그는 형색과 복장만 같을 뿐이다. 같지 않은 점은 형색과 명(命)으로 수용하는 것과 명과 계에 대한 견해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은 것이다. 이 중에서 형색에 처한 것과 복장에 처한 것이므로 행색과 복장으로 처한 것이 비슷하다고 한다.
015_0215_a_17L何者不善學沙門是中有三種應知形服相似沙門不惜沙門唯形服同不同者形命受用與命戒見心不相似等是中形處及服處名形服處相似
015_0215_b_01L 이 중에서 복장에 처한 것은 저 승가리인 가사는 동등하므로 복장은 같다고 한다. 형색에 처하는 것은 머리를 자르고 발우를 가지고 다니므로 행색이 같다고 한다. 깨끗하지 않은 몸 등의 업을 행하므로 행이 같지 않다고 하고, 깨끗하지 않은 명(命)이므로 명이 같지 않다고 하며, 아끼기 때문에 수용하는 것 중에서 비슷하지 않고, 게으르기 때문에 쓰고 행하는 것이 같지 않으며, 계를 깨뜨리기 때문에 계를 간직하는 것 중에서 같지 않은 것이다.
015_0215_a_21L是中服處者以彼僧伽梨等故名服同形處者以剃鬚髮執持鉢故名爲形同以不淨身等業行故名行不相似不淨命故命不相似慳故於受用中不相似懈怠故用行不相似破戒故於持戒中不相
악한 법이므로 견해에서 비슷하지 않고, 조복하지 않고 모든 근(根)을 숨기지 않으므로 마음에서 비슷하지 않다. 두 가지 위의에서 속이는 사문은 걸식을 사용하고 정진을 사용하는 것 등이니 알아야 한다. 증상심(增上心)과 증상혜(增上慧)도 마찬가지이다. 저 행과 마음이 비슷하지 않으니 용(用)을 성취하는 뜻은 동등하기 때문이다.
015_0215_b_04L以惡法故於見不相似不調不伏不隱諸根故於心不相似二威儀誑詐沙門者乞資用精進用等應知上心增上慧同彼行及心不相似就用意等故
증상계는 같으니 한 마음으로 편안히 상세하게 하기 때문이고 내지 잡되고 혼란한 것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심과 증상행은 같으니 말을 적게 하기 때문이고, 증상지와 증상행은 같으니 속이는 등의 저 행과 마음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 가지 명성과 소문의 사문은 명성과 소문만을 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5_b_08L增上戒同一心安詳故乃至不樂雜亂故增上心行同少言少語故增上智行同誑詐等彼行心不同故三名聞沙門者唯求名聞應
사마타(舍摩他)의 몫은 같고 비파사나(毗婆舍那)의 몫도 같으며, 저 둘을 닦는 몫도 같고, 또한 저 두 가지 돕는 행은 같지만 마음의 성품은 같지 않다. 이 중에서 계이기 때문이고 계의 몫이기 때문에 사마타의 몫은 같다. 계는 삼매의 원인이기 때문이고 많이 들은 것이기 때문에 비파사나의 몫은 같다.
015_0215_b_12L舍摩他分同毘婆舍那分同彼二分修同還彼二助行同心性不同中以戒故有戒分故舍摩他分同是三昧因故以多聞故於毘婆舍那分同
들어서 무루지를 받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비고 한가로운 아란야(阿蘭若)에 머물기 때문에 저 두 가지를 닦는 몫도 비슷하다. 비고 한가로운 곳에서 머무는 것이 닦는 원인이므로 조금 바라는[少欲] 등의 저 두 가지 조도행(助道行)은 같다. 저 조금 바라는 등은 익히는 것을 돕는 행[助習行] 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마음은 비슷하지 않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5_b_16L聞能領得無漏智故以住空閑阿蘭若故彼二修分相似同於空閑處住修因故少欲等彼二助道行同彼少欲等是助習行等故親近他故心不相似應知
어떤 사문이 잘 배운 사문인가? 네 종류의 모습이 있으니 알아야 한다. 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이기 때문이며, 증득하기 때문이고, 다 이르기 때문이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고, 현재의 법 중에서 싫어하고 후회하는 행을 얻기 때문이며, 공(空) 등이 사문의 뜻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고, 미래에 태어나 교화를 몸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행의 세력이라 하니 알아야 한다.
015_0215_b_20L何者善學沙門有四種相應知行故心故證故及盡至故以不惜身命故於現法中得厭悔行空等沙門意喜故未來生教化身行故是名行勢應知
015_0215_c_01L 진여의 행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법무아(法無我)를 믿는 뜻이기 때문이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고, 공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어야 할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저것에서 거짓 이름[假名]의 성품과 모습을 벗어난다. 바르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요의(了義)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필요한 의미에서 바라고 구하기 때문이다. 번뇌 중에서 해탈을 구하고 밖을 향하여 달리지 않으니, 소리의 성품을 따르는 것만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음의 세력이라 이름하니 알아야 한다.
015_0215_c_01L以依眞如行故信法無我意故不喜涅槃故及不喜空故所應得及所能得彼亦離假名性相不正執故常依了義不依文字悕求所須義故於煩惱中而求解不向外逃走不如隨聲性故是名心勢應知
모든 법의 근본이 영원히 청정하여 물들지 않는 것이 진여법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형상과 다른 형상을 짓고 돕지만 다른 지혜의 성품을 인연하지 않으니 물들지 않고 증득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모든 과보 등이 다하여 견해에서 해탈하니 거짓 이름의 성품과 모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증득하는 세력이라 말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5_0215_c_07L見一切法體永淸淨不染以眞如法故作助己形及他不緣他智性不染證故是中諸報等盡見解不見假名性相故是名證勢應知
모든 중생의 자성은 멸하기 때문이고, 모든 번뇌의 물듦 등을 잘 닦는 대치를 더 이상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멸도(滅度)를 취하지 않고 진여는 끊지 않기 때문에 일이 아닌 것은 관찰하지 않는다. 이것을 다 이른 세력[盡至勢]이라 하니 알아야 한다.
015_0215_c_10L一切衆生自性滅故不行善修一切煩惱染等對治故不取滅度眞如不斷故及不觀非事是名盡至勢應知
이 중에서 가난한 사람의 비유와 잘 배우지 않은 사문은 세 종류의 모습이 되므로, 이름이 의미만 같지 못한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음을 무너뜨리고 행을 성취하며, 마음을 성취하고 행을 무너뜨리며, 또한 마음도 무너뜨리고 행도 무너뜨린다. 이 중에서 마음을 무너뜨리고 행을 성취하는 데 세 종류가 있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5_0215_c_13L是中貧人喩與不善學沙門以三種相故於名不如義應知壞心成就行成就心而壞行亦壞心及壞行是中壞心成就行有三種應知
듣는 주체와 듣는 대상에서 마음이 족함을 알게 되는 것이고, 저것을 말할 수 있는 중에서 족함을 알게 되는 것이며, 세간의 삼매를 얻은 까닭에 저 공덕을 얻어 그것을 즐거워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강물에 표류하여 떨어지는 비유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행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오직 듣는 등의 일만 있을 뿐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5_0215_c_17L能聞及所聞心爲知足能說彼中而爲知足世閒三昧故及得彼功德以爲樂著是中漂墮河喩說壞心成就行唯有聞等事應知
015_0216_a_01L 의사의 비유 또한 저 일을 말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요술쟁이의 비유는 저 세간의 삼매를 얻어 저 일만을 즐겨 집착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니 보배 구슬의 비유는 마음을 성취하고 행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알아야 한다. 죽음의 비유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행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알아야 한다. 장자의 자식 비유는 마음을 성취하고 행을 성취하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한 모습의 의미이기 때문에 잘 배운 사문을 알아야 한다.
015_0215_c_21L醫師喩還彼唯有說事應知幻喩得彼世閒三昧唯樂著彼事應知摩尼寶喩成就心而壞行應知死喩說壞心及壞行應知長者子喩成就心及成就行應知以一相義故善學沙門應知
계를 깨뜨린 비구도 계를 잘 지킨 것 같아 보이는 데에 네 종류가 있다. 어떤 점차(漸次)가 있는가? 진실한 사문으로 진실한 행 받는 것을 보이고, 계와 같은 모습이 거짓 이름의 계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을 나타내 보이고, 거짓 이름의 계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거짓 이름의 계를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015_0216_a_03L說有四種破戒比丘似善持戒有何漸次以眞實沙示受眞實行以示現如戒相似住假名戒示現假名戒示現假名戒何
거짓 이름의 계에 머무는 행에 네 종류가 있으니 알아야 한다. 저것은 다시 아만 등으로 몸을 무너뜨리므로 거짓 이름의 계에 머무는 행이라 한다. 첫 번째는 여섯 종류의 계를 성취시키니 두 종류의 장애가 계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여섯 종류의 행인가? 분수에 따라 계를 지키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015_0216_a_07L住假名戒行有四種應知彼復以我慢等壞身故名爲住假名戒行者成就六種戒以二種障壞戒何者六種行分戒持成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19)에서 말한 것에 의지해서 행이 성취된다. 행이 성취되면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성취되고 미세한 죄 중에서 두려움을 보게 되어 계를 받아들여서 수행한다. 모든 계의 행 중에 두 종류의 장애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015_0216_a_10L依波羅提木叉所說而行成就行成就壞境界成就微罪中而見怖畏受而修行於諸戒中有二種障何者二種
몸이란 견해가 치성해서 계 중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과 명령을 통해서 아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저 두 가지 근심을 버리는 것이니 몸이란 견해가 치성한 곳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율사이기 때문에 모든 계를 범하는 데에서 계를 잘 일으킨다. 그러나 세간의 깨끗함과 동등하기 때문에 모든 이익 된 공양에 움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몸이란 견해를 함께 내는 것이다.
015_0216_a_13L身見熾盛令戒中起及命知第二捨彼二患離身見熾然處故以律師故於諸犯戒善能發起然以等世閒淨故諸利養不能動同生身見
세 번째는 이 같은 법은 세간의 깨끗한 계를 얻고 다시 함께 몸이란 견해를 내어서 법무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생긴다는 말을 들으면 겁을 먹고 게을러지는 것이다. 네 번째는 모든 함께 하는 근심을 벗어난다. 그러나 삿된 법무아를 믿기 때문에 아만의 계를 무너뜨리지만 네 종류의 바르지 못한 계에 머물러 비방하는 법의 계를 아는 것이다. 저 모습과 저 무루를 알아야 한다.
015_0216_a_17L第三此同法得世間淨戒復同生身見不解法無我聞生恐怖懈怠第四離一切與患然以信邪法無我故壞我慢戒住四種不正覺知謗等法戒彼相彼無漏應知
015_0216_b_01L어떤 것이 비방하는 등의 법인가? 첫째는 ‘거짓 이름의 계에 머문다’고 한 것은 또한 아(我)가 있음을 보고 또한 “나의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나도 없고 나의 것도 없다”고 말한다. ‘계를 범하는 것을 행한다’고 한 것은 짓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지음도 없고 짓지 않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행을 하는 것, 저것도 행이 아니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지은 것도 없고 지은 자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015_0216_a_21L何者謗等法初住假名戒者亦見有亦言有我所對治彼故言無我無我所故所作犯戒者是名不作對治彼故言無作無非作故作行彼亦非對治彼故言無有所作亦無作者
행을 자세히 잘 살펴보면 또한 행이 아니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행도 없고 행 아닌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망념의 행은 행이 아닌 것이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행하는 것이 없고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거짓 이름의 계에 머무르는 행이다. 몸이란 견해의 붕(朋)인 번뇌를 수순하고 또한 이름을 보고 색을 보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이름도 없고 색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하였다.
015_0216_b_04L安詳行亦名非行對治彼故言無行無非行故妄念行者是名非行對治彼故言無有所行亦無不行故第二住假名戒行身見朋煩惱隨順亦見名及見色對治彼故言無名無色故
미래에 생각이 생기는 것이 결정코 있고 저 생각이 있다고 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생각도 없고 생각 아닌 것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저 치연한 번뇌를 없앤다’고 한 것은 불멸(不滅)이라 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멸도 없고 멸이 아닌 것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인무아와 취하고 버리는 사람에 집착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취함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015_0216_b_09L未來生想定有及彼想對治彼言無想無非想故彼熾然滅使者亦名不滅對治彼故言無滅無非滅執人無我及捨取人對治彼故無取無捨故
또한 저 중생의 무아에 대한 집착 중에서 또한 취할 수 있고 또한 취할 수 없다고 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취할 만한 것도 없고 버릴 만한 것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색 등으로 중생의 모습을 집착하지 않고서 저것에 대해 취함이 좋다고 말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중생도 없고 중생의 이름도 없다”라고 말한다.
015_0216_b_13L還彼衆生無我執中亦可取亦不可取對治彼故言無可取無可捨故不以色等執衆生相彼說取善哉對治彼故言無衆生無衆生
언어 또한 저것을 취함이 좋은 분별이라고 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몸도 없고 몸의 이름도 없으며 입도 없고 입의 이름도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저 분별이 마음이고 저 분별을 취함이 좋다고 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마음도 없고 마음이라는 분별의 이름도 없다”고 말한다.
015_0216_b_17L語亦說彼取善哉分別對治彼故言無身無身名無口無口名故彼分別是心及彼取分別善哉對治彼故言無心無心分別名
015_0216_c_01L세 번째 계에 머무르는 행은 위로 세간에 태어나고 또한 아래로 향해서 버리므로 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며, 저것을 대치하므로 “세간도 없고 세간 아닌 것도 없다”고 말한다. 삼매에 의지하고 또한 탐욕 아닌 것에 의지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의지함도 없고 의지함이 아닌 것도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계를 거두어 취하고 다른 사람의 계를 헐뜯지 않으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계로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계를 헐뜯고 낮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015_0216_b_20L第三住戒行者上生世閒亦向捨下故非世閒對治彼言無世閒無非世閒依三昧亦依不貪欲對治彼故言無依止無非依攝取自戒不毀他戒對治彼故不以戒自高不毀下他戒
네 번째 거짓 이름의 계에 머무는 것은 말하기를 “나는 계를 지킬 수 있다”고 하는 분별의 생각을 내는 것이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또한 계를 분별하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뛰어난 성품의 염 등으로 계를 분별하고 생각하니 저것을 대치하므로 “계를 분별하지 않고 이 계를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이 비방하는 법이다.
015_0216_c_02L第四住假名戒言我是能持戒生分別念對治彼故言亦不分別戒故勝性念等戒分別念對治彼故言不分別戒及不念此戒故是名謗法
무루의 계 중에서 모두 없애 다할 수 있으니, 이것을 모든 성인이 계를 지켜 무루가 충분한 구절이라 한다. ‘집착하는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출세간이기 때문이고, 삼계에 이르지 않으니 이치로는 모든 번뇌에 수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의지하는 것을 벗어나니 번뇌를 대치하여 삼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에서 또한 깨끗하여 뛰어난 점을 나타내 보인다. 저 사람이 계를 지키기 때문에 모든 게송을 말하니 알아야 한다.
015_0216_c_06L無漏戒中盡能滅盡是名諸聖持戒無漏足句無所著者出世閒故不至三界理不順一切煩惱故離一切依止對治離三界是故於有還淨示現勝彼持戒故說諸偈應知

구족하여 계를 지키는 사람은
더러움도 없고 소유도 없어라.
015_0216_c_11L具足持戒者
無垢無所有

처음 게송의 첫 번째 구절은 더러움을 벗어난 까닭에 성품의 청정함을 말하는 것이다. 탐욕 등의 유여를 벗어나고 나면 저것의 원인이 깨끗한 까닭에 계의 성품이 청정함을 얻고 원인 등과 깨끗한 것과 함께함을 나타내 보인다. 나머지 세 구절은 또한 저 계를 지키는 것에서 동반 등의 원인이 청정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서 계를 깨뜨리는 동반과 원인을 함께하는 모든 원인을 대치하기 때문이다.
015_0216_c_12L初偈第一句離垢故說性淸淨貪欲等有餘離已彼因淨故得戒性淨現同因等淨餘三句者還彼持戒現同伴等因淨是中破戒同伴及諸同因對治故
‘계에서 동반과 원인을 함께 하는 모든 것’은 세 종류의 차별이 있으니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계를 깨뜨리는 동반은 세 종류가 있다. 아만이 색 등과 함께하고 원인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뜻에 미혹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과 같은 것을 본다. 삼마발제를 함께 즐거워하고 굽혀서 동반과 함께 염을 취한다. ‘일을 함께 하는 염’은 거친 곳에서 몸을 같이 하여 즐거워하고 함께 있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게송의 의미이다.
015_0216_c_17L於戒同伴及諸同因者有三種差別應知是中破戒同伴有三種慢同色等依止因故迷惑意故見如愚癡同樂三摩拔提屈復同伴取念同事念者如鹿處同身樂愛喜是名第一偈義
015_0217_a_01L또한 저 계를 지키는 중에 모든 모습이 청정한 계에 의지한 것임을 밝혔으므로 두 번째 게송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고요하고 항상 하며 필경인 것이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 중에 네 종류의 성품이 있으니 근심을 함께하여 대치하기 때문이다.
015_0216_c_22L還彼持戒中一切明依淸淨戒故說第二偈應知滅常畢竟如是等是中有四種性同對治故
바라제목차와 계의 청정함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계를 받아들이는 데 청정하다. 나머지는 무루의 계가 청정한 것이니, 또한 저 계를 지키는 것에 모든 근심이 없고 청정한 것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세 번째 게송을 말한다.

몸과 목숨을 탐하지 않고 아끼지 않는다.
015_0217_a_02L說波羅提木叉戒淸淨應以不闕故於受戒禪淨餘者無漏戒淨還依彼持戒無諸患淨故說第三偈不貪惜身命

이와 같은 것 등에 다섯 종류의 근심이 있다. 무엇이 저 다섯 종류의 근심인가? 첫째는 이익 된 공양과 공경의 근심이니, 몸을 아끼기 때문이다. 둘째는 게으른 근심이니, 염을 계속 이어서 죽지 않는다고 하고 목숨을 즐거워하는 것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셋째는 원(願)을 일으켜 범행(梵行)을 지키는 근심이니, 모든 유(有)에 태어남을 바라고 구하기 때문이다.
015_0217_a_06L如是等有五種患何者彼五患一者利養恭敬患以惜身故二者懈怠患繼念莫死起樂命故三者起願持梵行患希求一切有生故
넷째는 계(戒)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근심이니, 바르게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지극한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함이니, 예컨대 모든 외도의 말은 바르지 않은 이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다섯 종류의 근심을 멀리 벗어나는 까닭에 청정하여 모든 근심이 없는 것을 풀이하여 성립시킨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번뇌가 없는 청정함에 의지하므로 네 번째 게송을 말한다.

계를 지키어 세간에 물들지 않는다.
015_0217_a_10L四者唯戒爲足患不正至故五者不出至患如諸外道說成不正理故遠離此五種患釋成淸淨無諸患應知依無煩惱淨故說第四偈持戒不染世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집제(集諦)에 포함되는 물드는 것에 의지해서 치성하게 물드는 것에 함께 이르러 욕심의 경계를 일으킨다. 두 가지 식(識)으로 모든 애착과 물드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세간의 법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세간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앞에 있는 것을 멸하고 다시 애착이 있으므로 멸한다.

속히 지혜의 광명을 얻으니
광명을 얻는 까닭에
견제(見諦)의 도 가운데 한다.
015_0217_a_15L世法不能染故依集諦所攝染同至熾染起欲處二識著諸愛染故言不依世法耳不依世者滅前復有愛故滅速得智慧明
以得光明故
於見諦道中

무소유(無所有)에도 장애가 없고, 무소유의 일에도 장애가 없다. 도를 닦아 무명(無明) 등과 나머지 번뇌에서 저것을 대치하므로 말하기를 “아(我)도 없고 저 모습도 없다”고 하였다. 자아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벗어났으므로 무학(無學)의 도에 의지하고 아만을 벗어나 청정하다. 다섯 번째 게송을 말한다.

이 언덕도 없고 저 언덕도 없으며
그리고 또한 중간도 없도다.
015_0217_a_19L無㝵無所有無㝵無所有事以修道無明等及餘對治彼故言無我無彼相離我他相故依無學道離我慢淸淨故說第五偈無此無彼岸
亦無有中閒
015_0217_b_01L
모습이 없는 행 중에서 안과 밖의 입(入)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고, 집착과 속박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번뇌를 없애고 치연하게 하는 것을 없애는 때문이다. 아첨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아만의 차별도 없으니 영원히 청정함에 의지하는 것을 밝힌다. 여섯 번째 게송을 말한다.

마음은 이름과 색에 집착하지 않고
유(有)에 대해 원을 일으키지 않는 까닭에
고요한 법을 벗어나지 않는다.
015_0217_b_01L無相行中不著內外入故無著縛無漏滅煩惱及使熾然滅故無諂及無漏無我慢差別明依永淨說第六偈心不著名色
於有不起願故
不離寂滅法

저것은 계를 지키기 부족하기 때문이고, 모든 근(根)을 조복하기 때문이며, 삼매 중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자아와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내지 유정(有頂)세간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만족을 알기 때문이고, 계를 지키는 것에 머물기 때문이며, 계를 말하는 중에 세간의 청정함에 의지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게송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모든 계를 지키는 것을 행하지만
그 마음을 스스로 높이지 않도다.
015_0217_b_07L彼者以持戒不足故諸根調伏故於三昧中不足故不生我我所乃至有頂世閒知足故住持戒故說於戒中永示現依世閒淨故說第七偈應知雖行持諸戒
其心不自高

계를 지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높고 낮은 생각을 내지 않으니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 성스러운 도를 구하는 것을 넘어서 있도다.
015_0217_b_13L示現以持戒故心不生高下無厭足故亦不以爲上
過是求聖道

계를 깨끗하게 지키는 자는 이 모습이니, 삼매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출세간의 도를 구하고 출세간의 청정함에 의지한다. 여덟 번째 게송을 말한다.
015_0217_b_15L淨持戒者此相以三昧不足故求出世閒道依出世閒淨故說第八偈

계를 최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계로써 만족하지 않는 까닭이며
또한 삼매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삼매를 즐겨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이 두 가지 일을 넘어서서
위에 있는 지혜를 닦도다.
015_0217_b_17L不以戒爲最
不以戒爲足故
亦不貴三昧
不樂著三昧故
過此二事已
修習上智慧

분별없음이 성스러운 성품이고, 분별없음이 증상지(增上智)를 닦아 거두어 취하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고 찬탄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나머지를 아는 사람은 찬탄할 일이기 때문이다. 유학과 무학과 유학 아닌 것과 무학 아닌 것의 청정함에 의지하므로 아홉 번째 게송을 말한다.
015_0217_b_20L無分別是聖性無分別是修攝取增上智諸佛所稱歎是故知餘者勝歎事故依有學無學非有學非無學淨說第九偈
015_0217_c_01L
마음은 몸이란 견해에서 해탈하고
몸이란 견해를 분별함이 있는 것을 멸하였네.
계의 청정함 배우는 것을 나타내 보이므로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없앴도다.
함께 태어난 몸이란 견해를 없앴으므로
무학의 계가 청정함을 나타내 보였으니
공(空)은 부처님의 경계인 줄 믿을지어다.
015_0217_c_01L心解脫身見
滅有分別身見
示現學戒淨故
滅除我我所
以滅同生身見故
示現無學戒淨
信空佛境界

공을 믿기 때문에 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닌 청정함의 일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청정함을 아끼고 집착함에 의지하므로 열 번째 게송을 말한다.

계에 의지해서 삼매를 얻으니
삼매로 지혜를 닦을 수 있어라.
015_0217_c_05L以信空故示現非學非無學淨事悋著淨故說第十偈依戒得三昧
三昧能修慧

8성도(聖道)20)의 계를 얻지 못한 것을 나타내 보이므로 계의 청정함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원인에 의지해서 지혜를 닦으니
청정한 지혜를 빨리 얻을지어다.
청정한 지혜를 얻었으므로
청정한 계를 구족하였네.
015_0217_c_08L示現未得八聖道戒故說不持戒淨依因所修慧
速得於淨智
以得淨智故
具足淸淨戒

성스러운 지혜를 얻었으므로 뒤에 계의 청정함을 얻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이 게송을 말한다.
그때 8백 비구는 모든 번뇌를 받지 않고 마음이 해탈을 얻었다. 3만 2천의 사람이 티끌의 더러움을 멀리 벗어나서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다. 이 가르침 중에 이와 같은 등의 큰 이익이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또한 다시 현전에 곧 큰 과를 얻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015_0217_c_11L示現以得聖智故後得戒淸淨說此偈時八百比丘不受諸漏心得解脫萬二千人遠塵離垢得法眼淨示現此教誨中有如是等大利益亦復示現現卽得大果
교화하는 가르침에 대해 유학과 무학이 평등하게 얻기 때문에 5백 비구가 선정을 얻은 것이다. ‘이 깊은 법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고 한 것은 저 조복시키기 어려운 사람을 조복시키고 나서 믿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통달하지 못하는 사람을 깊은 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5_0217_c_16L於化者有學無學等得故及五百比丘得禪定者聞此深心不信解不能通達從座而起去示現彼難調伏能調伏已不能信不能通達入深法故
두 종류의 모습이 있어 모든 법을 통달할 수 없으니 믿지 않기 때문이고, 믿지만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지혜로 모든 의미를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게송의 깊고 깊은 뜻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보리는 깊고 깊다’고 한 것은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015_0217_c_20L有二種相不能通達諸法以不信故以信不樂故智慧不能通達諸義故是偈甚深者難知故諸佛如來菩提甚深者意難測量故
015_0218_a_01L 만약 저 사람이 모든 선근을 순수하게 심지 않았다면 악지식(惡知識)에 포함된다. 스스로 믿는 힘이 적어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악지식에 포함되기 때문이고, 모든 선근을 순수하게 심지 않았으니 믿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8_a_01L彼若不淳種諸善根惡知識所攝自信力少難得信受以惡知識所攝故不淳修諸善根以不信多故應知
“이때 세존께서 존자인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리를 드러낼 때 모든 성문이 여래이어서 교화하고 제도하는 뛰어난 의미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내지 거짓 이름과 진실의 차별을 알아야 한다.
015_0218_a_04L爾時世尊語尊者須菩提顯菩提時諸聲聞是如來作堪能化度勝義故是故乃至假名眞實差別應知
‘이때 세존께서 곧 두 비구를 변화하여 만들어 내었다’고 한 것은 여래의 방편으로 제도해야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 때문이고, 교화하는 것에 두 종류의 모습이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인 때문이며, 같이 입는 것을 믿고 같은 법의 일을 보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니, 저 모든 비구를 거두어 취한다.
015_0218_a_06L爾時世尊卽時化作二比丘示現如來方便應度故示現化者有二種相故示現信於同服及見同法事故彼諸比丘攝取
이미 바른 가르침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열반을 망령되이 집착하여 취하고, 아만을 내기 때문에 두려움을 내며, 믿기 때문에 여실한 열반에는 중생이 없다고 말한다. 만약 열반에 들어간다면 모든 탐욕 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다 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저것은 생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다만 멸하여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015_0218_a_10L爲已說正教誨故以妄執取涅槃生我慢故生怖畏信故說如實涅槃無有衆生若入涅槃者非諸貪欲等有故而有盡滅如不生故示現涅槃者唯滅不生
‘그대들은 기억하고 생각하지 말며 분별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안과 바깥의 입(入) 중에서 ‘이것이 자아[我]이고 나의 것[我所]이다’라고 한 순서대로이다. ‘곧 모든 법에 집착이 없다’고 한 것은 탐욕과 성냄이 본래부터 생김이 없기 때문이다. ‘벗어남이 없다’고 한 것은 미래에는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적멸(寂滅)이라 하는 것이다. 이 집착을 막으면 본래 적멸이 아니지만 적멸이 있다. 모든 계 등의 품, 저것도 머물지 않고 오지도 않는다.
015_0218_a_15L汝等莫作憶想莫作分別內外入中是我我所如次卽於諸法無著者以貪瞋本來無生故無離者未來不離故是名寂滅者防護此執本非寂滅而有寂滅所有戒等品亦不住不來
‘다시 멸하여 다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중생이란 이름이 영원히 고요하기 때문이다. ‘머물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고 한 것은 물들지 않기 때문이고, ‘다시 멸하여 다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품은 스스로 멸하여 다하기 때문에 저것도 나머지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본래 고요한 것이 아닌데 후에 고요함을 이룬다면 그대들은 이 모습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말하자면 열반은 저 일이 없기 때문이다.
015_0218_a_20L復不滅盡者以衆生名永寂滅故不住不來者以不染故不滅盡者性自滅盡故彼者亦無餘若本不寂滅已於後成寂滅汝等可捨離是相所謂涅槃無彼事故
015_0218_b_01L 말하기를 “나는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지 말 것이니 모습으로 열반을 향하므로 열반의 모습을 짓는다. 탐욕 등의 모습이기 때문에 열반의 모습으로 인식하지 말 것이니, 탐욕 등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저것의 모습을 이름한 것이니 또한 모습 없는 행 가운데의 방편으로서 번뇌가 없는 것을 베푼 것일 뿐이다. 그 다음 현재의 법에 방편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멸진정에 들어가고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혹 이것은 다시 다른 의미가 있다.
015_0218_b_01L言勿我入涅槃以相向涅槃故作涅槃相勿以貪欲等相故識爲涅槃相非貪欲等無故名爲涅槃是名彼者相無相行中方便設無漏已次後說現法樂行方便入滅盡定行起故或復此是異義
경에 말하기를 “만약 저 사람이 모든 선근을 순수하게 심지 않았다면 지혜와 공덕의 조도행(助道行)이 부족하고 적어지므로 번뇌를 늘리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의미는 아니다. ‘악지식에 포함되다’라고 한 것은 선지식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의미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믿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지혜를 벗어난 조도행이기 때문이다.
015_0218_b_07L經言彼若不淳種諸善根智慧功德助道行乏少故增上煩惱塵是義非惡知識所攝者以善知識所不攝故壞是義不能信解者智助道行故
깊고 깊은 경지를 믿을 수 있다는 이러한 의미를 믿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괄적인 것이다. ‘통달할 수 없다’고 한 것은 헤아려 알아 법의 근본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믿고 이해할 수 없으니 이미 진정한 지혜를 바르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5_0218_b_11L能信甚深處是義不能信解者是故㧾不能通達者不能測量知法體智住故復不能信解已不能正決眞智故
여래께서 교화하시고 제도하시는 일에 두 종류가 있으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교화하는 것은 아만을 함께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보여 나타내기 때문이며, 말한 것으로 가르침을 수순해서 행하기 때문이고, 가르침에서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을 얻기 때문이며, 바르고 깨끗한 가르침을 말하고 방편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015_0218_b_14L如來化度方便事有二種應知化者以我慢共體故示現同共事故所說能順行教故及得教誨有出世因故說正淨教方便教授
저것은 다시 네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들고 깨끗한 것 중에서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수순하는 것에 의지해서 말하기 때문에 번뇌의 원인을 주는 것을 벗어나서 청정한 법 중에서 가르친다. 공포의 원인을 버리기 때문에 현재의 법을 가르치고, 가장 즐거운 행의 방편을 봄으로 이 몸에 다시 아견이 있게 된다.
015_0218_b_18L彼復有四種相應知染淨中恐怖依順說故離授煩惱因於淨法中教授捨恐怖因故及教授現法見最樂行方便故此身復有我見
015_0218_c_01L 내가 바르게 증득했기 때문이고, 청정하고 물든 것 중에서 공(空)의 수순함에 의지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나는 미래에 이유 없이 공포와 물듦을 낸다”고 말한다. 물들기 때문에 세간의 행을 처음의 모습이라 말한다. ‘그대들은 기억하고 생각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라’고 한 것은 번뇌의 원인에 두 종류 거짓 이름의 성품이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아만과 집착과 번뇌의 분별 성품이기 때문이고, 저 공덕에 집착하는 근심이 분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두 번째 모습이라 이름한다.
015_0218_b_21L以我正證故依於淨染中順空教授故言我當無辜生怖染以染故世閒行是名初相汝等莫作憶想莫作分別者惱因示現有二種假名性慢執煩惱分別性故及執彼功德患勝分別故是名第二相
청정함도 간략히 말하면 두 종류가 있으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청정한 도의 행이고, 둘째는 열반의 청정함이다. 이 중에 두 종류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청정한 도의 행은 두려움의 원인이니 알아야 한다. ‘너희들 비구가 가지고 있는 계의 품, 저것은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다시 멸하여 다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헤아림이 진여 중에서 영원히 청정하기 때문이다. 앞의 것은 번뇌가 있으면 분별이 있음을 풀이하고, 번뇌를 벗어나면 분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015_0218_c_04L淨略有二種應知一者淨道行二者涅槃淨是中有二種相淨道行是怖畏因應知汝等比丘所有戒品彼不往來復不滅盡是眞如中永淨故前者釋有煩惱分及離煩惱分別亦不成
저 청정한 도의 행 중에서도 번뇌와 번뇌를 벗어남이 있으니, 저 사람이 분별하고서 청정한 도(道) 중에서 공포를 낸다. 두 종류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니, 청정한 열반의 원인 중에서 공포를 내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은 이 생각을 버리고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말하자면 열반과 다르지 않은 거짓 이름의 성품에 대해 생각으로 집착하기 때문이다.
015_0218_c_09L彼淨道行中煩惱及離煩惱彼分別已於淨道行中而生恐怖有二種相故於淨涅槃因中生恐怖應知汝等可捨離是所謂涅槃不異假名性想執故
‘생각에 따르지 말고, 생각 아닌 것에 따르지 말라’고 한 것은 열반에 대한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의 생각을 기억하고 짓기 때문에 다른 생각으로 인식하고 생각하지 말며 다른 생각으로 이름을 관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고요한 안의 마음에 대한 생각이다. ‘다시 생각으로 생각을 관찰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열반 중에서 두려움을 내지 않으니, 이것을 세 번째 생각이라 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8_c_13L隨於想莫隨非想者是名涅槃異想憶作心想故莫異想識想莫異想是名寂滅內心之想復莫以想觀想者此二無因故於涅槃中不生恐是名第三想應知
저 두 가지 원인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가장 위에 있는 행의 방편 등을 가르치는 것이니 알아야 한다. 저 두 가지 원인의 일을 버리고, 번뇌의 원인을 버리며, 청정한 법 중에서 두려움의 원인을 버리니, 이것을 네 번째 모습이라 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8_c_18L捨彼二因故授最上行諸方便等應知捨彼二因事及捨煩惱因於淨法中捨恐怖因是名第四相應知
이 중에서 여래의 교화하고 제도하는 방편을 알아야 한다. 이로부터 뒤로는 바른 지혜로 큰 이익을 주는 것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8_c_21L於中乃至如來化度方便應知自此已後說正智作大益應知
015_0219_a_01L여섯 가지 일에 의지하기 때문에 말한다. 첫째는 원인을 위한 일이고, 둘째는 일에 의지하는 것이며, 셋째는 메아리 울리는 음성의 일이고, 넷째는 고요히 사유하는 일이며, 다섯째는 가르치는 일이고, 여섯째는 법을 증득하고 법의 일에 수순하는 것인 때문이다. 말하기를 “그때 존자 수보리가 저 비구에게 묻기를 ‘너희들 비구는 과거에는 어느 곳에 이르렀고 현재에는 어디에서 좇아 나오는가?’ 비구가 대답하기를 ‘수보리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좇아 나오는 곳도 없고 가되 이르는 곳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015_0218_c_23L依六事故說一者爲因事者依事三者響音事四者寂靜思惟五者訓誨事六者證法及順法事爾時尊者須菩提問彼比丘言汝等比丘去至何所今何從來諸比丘言須菩提佛所說法無所從來無所至

【문】무슨 의미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첫 번째 원인을 즐거워하는 것에 의해서이다.
015_0219_a_06L有何義故作如是說初依樂因故

【문】무슨 의미이기 때문에 저곳은 가고 오는 것이 없는가?
【답】비유하면 세간과 같기 때문이다.
015_0219_a_07L以何義故彼處無有來往喩若世閒

【문】누가 그대의 스승인가?
【답】우리들의 스승은 앞서 와서 생긴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
015_0219_a_08L復問誰爲汝師答言我等師者若先來不生亦無有滅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두 번째 원인의 일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색신(色身)이 아닌 세존께 의지하기 때문에 저것은 생기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열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015_0219_a_09L有何義故作如是說依第二因事依非色身世尊彼無生亦無滅是涅槃性故

【문】너희들은 어떠하며, 누구에게 법을 들었는가?
【답】속박되지도 않고 해탈하지도 않았다.
015_0219_a_11L復問汝等云何從誰聞法答言不爲縛爲解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세 번째 메아리치는 음성인 원인의 일에 의해서이다. 중생을 위해서 법을 말하므로 저 사람은 속박되지 않았고 위와 같은 일들에서 생긴 애착을 대치하는 것에 의지하므로 해탈하는 것도 아니다. 저 사람은 이미 해탈을 얻었기 때문이다.
015_0219_a_13L有何義故作如是說第三依響音因事爲說法彼不爲縛依上等生愛對治故不爲解彼已得脫故

【문】너희들은 무슨 법을 익히고 행하는가?
【답】무명을 멸하려 하지도 않고 밝음을 생기게 하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015_0219_a_15L復問汝等習行何法答曰不爲滅無明爲生明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네 번째의 고요히 사유하는 일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무명을 멸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잡된 무명에 의지하지도 않기 때문이고, 모든 성인은 저 행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밝음을 생기게 하지도 않는다’고 한 것은 밝음이 이미 생겼기 때문이다.
015_0219_a_17L有何義故作如是說第四依寂靜思惟事故不爲滅無明故爲依雜無明諸聖聞有彼行故不爲生明者已生故

【문】너희들의 스승은 누구인가?
【답】만약 얻음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면 바로 그 사람이니, 저 사람의 제자이다.
015_0219_a_20L復問汝等師是誰言若無得無知者是
015_0219_b_01L
【문】만약 아직 얻지 못했고 아직 증득하지 못했다면 무슨 의미이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다섯 번째의 가르치는 일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비구의 몸으로 변화시켜 저 사람에게 권하니, 그러므로 여섯 번째 법을 증득하는 것과 법행(法行)의 일에 수순하게 된다. 이는 열 가지 일에 의지하는데, 말하니 알아야 한다.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에 의지하고 견제행(見諦行)의 번뇌를 없애는 것과 수도행(修道行)의 번뇌를 멸하는 것과 고통을 멸하는 것에 의지한다. ‘존자에게 공양한다’고 한 것은 보시행을 행하여 범부의 경지를 넘어서고,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 머물며, 함께 얻어 해탈에 이르기 때문이다.
015_0219_a_21L彼第子若未得及未證者以何義故作如是說依第五訓誨事故所有化比丘身勸彼第六證法及順法行事依十事故說應知依有餘涅槃無餘涅槃滅見諦行煩惱滅修道行煩惱滅苦供養尊行布施行過凡夫地入住聖人地及同得至解脫故

【문】너희들은 누구와 함께 범행을 닦는가?
【답】예컨대 삼계에서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015_0219_b_05L復問汝等是誰同習梵行答言若於三界不行亦非不

【문】무슨 의미로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무여열반에 유여의 일이 있기 때문이고, 그때 모든 법을 같이 하는 사람이 함께 머물렀기 때문이다.
015_0219_b_07L有何義故作如是說無餘涅槃有餘事故爾時共諸同法者住故

【문】너희들은 언제 열반을 얻을 것인가?
【답】만약 여래께서 교화하신 사람이 열반에 들어간다면 우리들도 열반에 들어갈 것이다.
015_0219_b_08L問汝等幾何當得涅槃也答言如若如來所化人入涅槃者我等亦當得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유여열반에 의지하니 저것은 본래 멸(滅)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다른 힘이 법 본래의 업으로 응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며, 그때 나머지와 함께 머물기 때문이다.
015_0219_b_11L有何義故作如是說依有餘涅槃彼本起滅故他力相似法本業應故爾時共餘者住故

【문】너희들은 번뇌가 다했는가?
【답】모든 법이 필경에 모습을 다하였다.
015_0219_b_13L復問汝等煩惱盡答言一切諸法畢竟盡相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견제(見諦)에 대한 미혹을 멸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영원히 멸한다’고 한 것은 모든 취(趣)가 악처(惡處)이기 때문이다.
015_0219_b_14L有何義故作如是說以滅見諦惑故一切法永滅者諸趣惡處故

【문】너희들은 이미 자기의 이익을 얻었는가?
【답】자아가 없는 것과 나의 것이 없는 것을 알아서 끊었다.
015_0219_b_16L復問汝等已得己利耶答言知斷無我無我所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닦는다는 생각의 번뇌를 멸하기 때문이고, 함께 생긴 몸이란 견해를 멸하기 때문이다.
015_0219_b_17L有何義故作如是說依滅修想煩惱及滅同生身見故

【문】너희들은 마군을 깨뜨리는가?
【답】음(陰)의 마군을 얻을 수 없다.
015_0219_b_19L復問汝等破於魔耶答言陰魔不可得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고통을 멸하기 때문이고, 음의 마군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미래에 저것을 생기게 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중에서 모든 마군과 원수를 항복시키고 복종시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음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 마군도 없다.
015_0219_b_20L有何義故作如是說滅苦故及陰魔不可得故來生彼不可見故是故於中降伏一切魔怨應知以陰無故餘魔不行

【문】너희들은 여래를 받드는가?
【답】몸과 입과 마음으로 받들지 않는다.
015_0219_b_23L問汝等奉如來耶答言不以身口心
015_0219_c_01L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존자를 공경하는 데 몸 등으로 하지 않으니, 열반을 얻은 중에 친히 공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5_0219_c_02L有何義故作如是說恭敬尊者不以身等得涅槃中得親敬故

【문】너희들은 복전(福田)이 되는가?
【답】취하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다.
015_0219_c_03L復問汝等作福田耶答言無取無有作者

【문】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단월이 짓고 공경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지을 수 없으니, 견해의 움직임과 악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순서대로이다.
015_0219_c_04L等故作如是說檀越作敬不可取及不可作離見動惡等故如次

【문】너희들은 생사와 가고 오는 것을 끊었는가?
【답】항상 함도 없고 끊을 것도 없다.
015_0219_c_06L復問汝等斷於生死往來也答言無常無斷

【문】무슨 의미로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성인이 아닌 경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세간을 끊지 않고 조그마한 방편을 지어놓고 그것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열반이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끊지 않는 등의 일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5_0219_c_08L何義故作如是說過非聖人地故不斷世閒令作少方便非上者以有涅槃故此示現不斷等事故

【문】너희들은 성인의 경지를 수순해서 행하는가?
【답】유(有)를 취함을 떠나서 장애 없는 해탈을 얻는 것이다.
015_0219_c_10L復問汝等隨順聖人地行耶答言離一切取有得無礙解脫

【문】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성인의 경지에 머물기 때문이고, 모든 취함을 벗어나 해탈하였기 때문이며, 제멋대로 집착하지 않고 바르지 않게 취하는 것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015_0219_c_12L有何義故作如是住聖人地故離一切取解脫故橫執離不正取故

【문】너희들은 구경에 어떠한 곳에 의지해야 하는가?
【답】여래께서 사람을 교화하여 이르는 곳에 따르는 것이다.
015_0219_c_14L復問汝等究竟當依止何所答言隨於如來化人所至

【문】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가?
【답】해탈하여 여래께 함께 이르면 다른 뛰어난 모습이 없이 법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해탈하여 함께 이르는 것을 보이고 혹은 다시 마음으로 자재함을 얻는다. 모든 선남자야 이것이때에 따라 바른 수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존자를 위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바른 수기를 말씀해 주시어 큰 이익을 지을 수 있으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19_c_16L有何義故作如是說解脫同至如來無異勝相似法故示現解脫同或復以心得自在諸善男子是能隨時以能受於正記爲如是尊者故爲次說正記能作大利益應知

【문】어떤 것이 은밀한 말인가?
【답】둘이 아닌 모습의 지혜와 모든 은밀한 말은 모습이지만 둘이 아닌 말에 들어간다.
015_0219_c_20L何者密語不二相智及一切密語入相不二相
015_0220_a_01L
【문】어떤 것이 말한 구절이 처한 일인가?
【답】그러나 저 성품은 없기 때문이고, 말한 성품이 한 모습을 훈습해서 경계의 성품과 모습을 갖기 때문이다. 둘이 아니니 저 둘이 아닌 것 중에 집착을 낸다. 두 가지 모습은 물드는 것이고 두 가지를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말한다.
015_0219_c_22L何者是所說句處事然是彼性無故所說性熏一相境界性相有故不二彼不二中生執二相是染不執二故名淨
비록 말한 모든 구절의 처소에 일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저것도 거짓 이름으로 모습을 훈습함을 말하는 것이다. 경계의 성품이 없기 때문에 저 두 가지는 모습을 훈습하고, 경계의 성품이 있기 때문에 저것은 두 가지이다. 저 둘이 아닌 것에서 두 가지 모습을 집착하므로 물듦이 있고 집착하지 않고 다했으므로 청정하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이 저 은밀한 말에 들어간다. 이것이 두 가지 모습이니 알아야 한다.
015_0220_a_02L雖說所有說一切句處有事者彼亦假名言熏相境界性無故彼二熏相境界性有故彼二於彼不二執二相故有染不執盡故淨如是一切諸佛入彼密語是不二相應知
이 중에 ‘다섯 종류의 모습’이라고 한 것은 존귀한 곳과 저 가르치는 것 중에서 다섯 종류 과보의 일이 있고 다섯 종류 과보의 이익 된 일이 있다는 말이다. 간직하는 것을 성취한 까닭에 모든 은밀한 일을 말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20_a_06L是中五種相者於尊處及彼教授中有五種果事及有五種果益事成就持故說諸密事應知
다섯 종류의 모습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종류의 존귀한 것인가? 예컨대 생각 있음으로 저 성취함을 말하므로 존귀한 일을 성취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20_a_09L有五種相何者五種尊若有想說彼成就故成就尊事應知

【문】다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답】열반에서 저것을 영원히 증득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좇아 나오는 곳이 없고 가도 이르는 곳이 없다. 여섯 종류의 입멸(入滅)을 벗어났기 때문에 저 세계 중에는 평등함이 있으니, 비방하려 해도 비방할 수 없기 때문이고 분별하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015_0220_a_11L復有何義謂涅槃永證彼故佛所說法無所從來去無所至離六種入滅故彼界中諸有等謗不能謗及無分別覺故

【문】모든 법에 어떤 것이 저 존귀한 것이어서 법을 말할 수 있는가? 저것은 어떤 모습을 갖는가?
【답】앞에서부터 생기지 않았고 멸함도 없으니 법신은 나고 멸함이 없기 때문이다.
015_0220_a_14L一切諸法何者是彼尊而能說法彼有何相先來未生亦無有滅依法身無生滅故

【문】어떤 등등의 법을 말하는가?
【답】예컨대 속박되지 않고 해탈한 것도 아니다. 속박과 해탈은 성품과 모습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행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015_0220_a_16L說何等若不爲縛不爲解縛解者性相無爲令覺知諸行故

【문】몇 종류의 성품과 모습을 말하는가?
【답】무명을 끊어 멸하지 않고 밝음을 생기게 하지 않기 때문이고, 밝음과 무명의 거짓 이름의 성품을 보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015_0220_a_18L以幾種性相說斷滅無明不生明故明與無明假名不可得見覺故

【문】어째서 아직 얻지 못한 것과 아직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는가?
【답】바른 깨달음이 계속되지 않으면 저것도 없기 때문이다.
015_0220_a_20L爲誰說若未得及未正覺正覺不已彼無故
015_0220_b_01L
【문】어떤 것이 과보의 뛰어난 일을 성취하는 것인가?
【답】무여열반계(無餘涅槃界)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계에서 행하지 않으면 무여열반계의 자리에 의지한다. 청정한 진여만이 머무는 경지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였다. 유여열반계(有餘涅槃界)는 여래가 교화한 자가 열반의 진실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오직 성품의 열반이 있을 뿐이다.
015_0220_a_21L何者成就果勝事謂無餘涅槃界故若於三界不行依無餘涅槃界處唯淨眞如住處故作如是說有餘涅槃界若如來化者而入涅槃眞實處唯有性涅槃
모든 법이 세제(世諦)의 열반에 의지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스러운 도의 행을 가득 채우고 지을 것을 마쳤기 때문에 “나는 지을 것을 이미 마쳤다”고 말한다. 자아 있음에 대해서 자아와 나의 것이 없고 법무아를 증득함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 안의 원수를 정벌하니 안의 힘 때문이고, 모든 번뇌인 원수에 대해 법무아를 증득했기 때문이며, 영원히 멸하고, 말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였다.
015_0220_b_02L一切諸法依世諦涅槃故作如是說能滿聖道行所作已辦故言我作已於有我無我我所依證法無我故作如是說伐內怨以內力故諸煩惱怨以證法無我故永滅說故作如是
바깥의 원수를 징벌하지만 음(陰)의 마군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바깥의 음에 포함된다. 음이란 바깥의 원수가 소리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저것보다 뛰어나다’고 한 것은 분별의 생각을 벗어나서 음(陰)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과보 이익의 일을 성취한다’고 한 것은 이미 존자를 공경하는 일을 몸 등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015_0220_b_08L伐外怨不覺見陰魔故所有外陰所攝陰者外怨聲說應知勝彼者分別念陰性不覺故應知是中成就果利益事者已恭敬於尊非身等耳
법에 수순해서 행하기 때문이고, 믿음으로 보시하는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청정히 받기 때문이며, 복전을 요달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세간의 고통스런 바다를 건넌다. ‘세간을 건넌다’고 한 것은 법무아(法無我)여서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 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고, 복전의 경지에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며, 복전의 지위를 행하지만 법에 대한 교만을 취함을 버리기 때문이다. ‘법으로 교화한다’고 한 것은 불자가 되는 것을 말하니 여래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015_0220_b_11L以順行法故善淨受信施所施故了福田不取一切法故度世閒苦海度世閒者以法無我不斷及常故退於福田處故行福田地捨取法慢及法化者名成佛子依如來故
‘너희들은 어디로 가기에 가지만 이르는 곳이 없는가?’라고 한 것은 예컨대 여래가 교화하는 사람이 오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이와 같이 모든 비구와 문답하였는데 그때 8백 비구가 있어 모든 법을 집착된 견해로 받아들이지 않아 마음에서 해탈을 얻었으며, 3만 2천의 사람이 더러움을 멀리 벗어나 법안의 청정함을 얻었다’고 한 것은 이것은 바르게 수기를 주는 중에 이러한 큰 이익 된 일이 있다는 것이다.
015_0220_b_16L汝等何行去無所至者如如來所化者來故須菩提如是問答諸比丘有八百比丘不受諸法心得解脫萬二千人遠塵離垢得法眼淨正授記中有此大利益事
015_0220_c_01L 만약 유학이라면 무학의 경지를 얻고, 범부라면 성숙시켜 유학의 경지를 얻게 한다. “세존이시여, 이 보적(寶積)의 법문은 희유합니다. 대승의 선남자와 선여인과 함께 머물러 큰 이익을 줍니다”라고 말한 이후의 대목은 이 법문이 큰 이익 된 일을 말하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015_0220_b_21L若有學者得無學成熟凡夫得有學地世尊寶積法門是希有能與住大乘善男子善女人作大利益自此已後顯此法門說大利益事
이익이 있기 때문이고, 모든 보살이 성취하는 불법에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중도의 의미로 가르치는 것 등이니, 순서대로이다. ‘저 선남자 선여인이 얼마만 한 공덕을 얻었는가’라는 말은 보살장을 듣는 중에 가르침을 믿는 이익 된 일이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220_c_02L以有益故於諸菩薩成佛法及化衆生故以中道義訓誨等如次彼善男子善女人得幾功德者示現聞菩薩藏中有教誨信益事
“가섭아,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으면 이와 같은 등의 다섯 종류 모습을 나타내 보여 이로움 믿는 일을 나타낸다. 첫째는 세계에서 시간의 큰 덕을 간직하는 것이고, 둘째는 원인에서 물러나는 것을 자재하게 성취하는 것이며, 셋째는 몸을 전환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저곳 때문에 성취하여 법기(法器)가 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듣는 사람이 법기가 되기 때문이고, 몸을 버릴 때 청정한 업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015_0220_c_06L迦葉若有善男子善女人如是示現有五種相現利益信事一世界持時大德二自在成就退因故轉身故四彼處故成就說堪作器故五聽者作器故及捨身時得見淨業
여기에서 세계에서 ‘큰 것’이란 부처님과 저 성문과 모든 탑 등이다. ‘간직한다’고 한 것은 모든 보배로 가득 채운 세계의 의복 등이니 이때가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이기 때문이다.
015_0220_c_11L是中世界大者佛及彼聲聞幷諸塔等持者諸寶滿諸世界衣服等時無量阿僧祇劫故
이 중에서 다섯 종류의 모습이 있어 큰 자재함을 얻어 원인에서 물러나는 일을 알아야 한다. 한량 있는 것으로 한량없는 과보의 원인을 바라기 때문이고, 다함 있는 것으로 다함없는 법을 바라기 때문이며, 위의 얻음과 위의 약(藥)이 아니기 때문이고, 도(道)에서 저 행하는 성품을 돕고 알기 때문이며, 저것으로 끌어들여 취하기 때문이다.
015_0220_c_13L是中有五種相得大自在因退事應知以有量悕無量果因故以有盡無盡法故以非上得上樂故助知道彼行性故及以彼引取故
다시 다섯 종류의 모습이 있어 크게 자재하게 원인에서 물러나는 일을 성취하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미세한 악을 즐기는 원인이고, 둘째는 결정되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즐거운 원인이며, 셋째는 영원히 즐겁지 않은 원인이고, 넷째는 전도된 뜻으로 즐거움을 받는 원인이며, 다섯째는 고통스런 몸에 의지해서 즐거움을 받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015_0220_c_17L復有五種相令得成就大自在退因事應知一微惡樂因故二不定一向樂因故三不永樂因故四顚倒意受樂因故五依苦身受樂因故
015_0221_a_01L 이것을 저것이라고 하는 것은 최후에 여인의 몸을 받아 몸을 전환하기 때문이고, 저 땅과 저곳에서 공경하는 것이 성스러운 탑과 같기 때문이며, 저곳에서 법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저 법성(法性)을 따라 독송하고 수지하는 등이다”라고 한 것은 말하는 것이 법기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밝히기 때문이고, 저 사람이 목숨을 마쳤을 때 여래를 볼 수 있고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한 것을 얻어 몸을 버릴 때 견해가 청정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015_0220_c_20L是名彼者最後受女身轉身故及彼地處所敬如聖塔故彼處所以爲作器故隨彼法法所讀誦受持等者說者爲作器故彼人命終時得見如得身口意業淸淨捨身時得見淨
청정한 업을 얻었기 때문이고, 모든 근심 없이 목숨을 마칠 때 모든 고통 받는 것을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며, 걱정과 번뇌의 원인을 벗어나기 때문이고 걱정과 번뇌의 마음을 누르고 조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깜박여 식(識)으로 모든 뜻이 있는 것을 살펴 알기 때문이고, 움직이지 않은 채 손과 발을 움직여 위의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015_0221_a_03L及得淨業故無有諸患而令命終離諸苦受故及以離憂惱因故憂惱心不能降伏故不動眴諸目識諦知諸意有故不動搖手足成就威儀故
그리고 대변과 소변을 함부로 하지 않고 가슴에 땀이 나는 일이 없으니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고, 주먹을 쥐어 허공을 더듬지 않으니 모든 악한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자리에 따라 목숨 받는 것을 버린다’고 한 것은 몸을 조복하기 때문이다. ‘말과 음성을 바르게 한다’고 한 것은 모든 두려움과 어려움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말과 음성으로 교묘히 이롭게 한다’고 한 것은 껄끄럽고 추악한 말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015_0221_a_06L不失大小便胸分無汗以無畏故作捲不摸空無諸惡相故隨坐而捨受命者以身調伏故善正言音者離諸畏難故滑利言音者以離澀惡言故
‘말과 음성을 위에서 묘하게 한다’고 한 것은 위의 묘한 말로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 묘한 법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말과 음성을 사랑하고 즐거워한다’고 한 것은 모든 여래를 칭찬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하늘과 인간이 즐거워하는 것으로 말과 음성을 옹호하고 말과 음성을 부드럽게 한다’고 한 것은 법을 같이 하는 사람에게는 이치로 펴서 대답하기 때문이다. ‘말과 음성 말함을 등지지 않는다’고 한 것은 모든 망령됨이 없기 때문이다.
015_0221_a_11L上妙言音者以上妙言說諸佛如來妙法語故愛樂言音者讚歎說諸如來故天人所樂擁護言音及柔軟言音者同法者以理施答對故背說言音者以無諸妄故
‘말과 음성을 통쾌하게 말한다’고 한 것은 앞과 뒤의 말이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과 음성을 취할 만하다’고 한 것은 이치에 수순하는 말과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이 말과 음성을 옹호한다’고 한 것은 불법을 믿으면 모든 하늘이 옹호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이 말과 음성을 옹호하시는 것이다’라는 말은 모든 부처님께서 거두어 취하시기 때문이고, 성내지 않아 현재에 얻은 악을 참을 수 있기 때문이다.
015_0221_a_15L快說言音前後言不相違故可取言音者違順理語故天擁護言音者信佛法諸天擁護故諸佛所擁護言音者佛攝取故不瞋現得惡能忍故
‘한을 품지 않는다’고 한 것은 과거의 악을 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하고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모든 악을 덮어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과보를 마음에 품지 않는다’고 한 것은 걱정과 후회 등의 뜨거운 번뇌가 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허물과 근심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탐욕 등을 바라고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품지 않는다’고 한 것은 보호함을 바라고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015_0221_a_19L不恨能忍過去惡故不忿惱者不覆諸惡故不懷報者憂悔等熱不能燒故不計過患者不悕求貪欲等故不懷以不悕求保故
015_0221_b_01L ‘다른 모습이 없고 계법 중에 마음을 겁나게 하지 않고 약하게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다른 견해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게으르지 않고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정진한다’고 한 것은 고요한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겁내게 하지 않고 약하게 하지 않아 부처님 세계의 청정함을 취한다’고 한 것은 자기의 몸을 기뻐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간직한 것으로 위에 있는 묘한 부처님 세계를 취하기 때문이다.
015_0221_a_23L無有異相不怯弱心於戒法中者不取異見故常不放逸勤心精進者不亂寂靜心故以不怯弱心取佛世界淸淨者以不喜自身諸佛菩薩所持而取上妙佛世界故
‘아만과 증상만을 벗어난다’고 한 것은 모든 불법이 현전하는 기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만과 증상만을 벗어난다’고 한 것은 세간의 삼매와 삼마발제에 대해 미세하고 깊은 마음으로 분별하여 구하지 않고, 모든 불법이 현전하는 기운의 원인을 얻고도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의 삼매를 보살장(菩薩藏)으로 삼고, 가르침 중에서 바르게 믿고 이익 된 일을 얻기 때문이다.
015_0221_b_04L離慢及增上慢者得一切佛法現氣離慢及增上慢者世閒三昧三摩拔提微細深心分別以不求以用一切佛法現氣因得不以勝一切諸佛三昧爲菩薩藏得教誨中正信利益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동안 저러한 분별이 원래부터 차별되니, 믿어서 이익 되는 일이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 동안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5_0221_b_10L如是無量阿僧祇彼分別從本差信益轉無量無邊阿僧祇應知耳

이 『보적경론』을 짓고
내가 얻은 공덕이여,
용감한 뜻으로 청정하게 하였으므로
원컨대 세간에서 구경의 진리를 얻게 하소서.
015_0221_b_11L作此寶積論
我所得功德
以勇意淨故
願世得究竟

묘한 법의 『보적경』이여
더러움이 없는 큰 지혜의 광명이여,
이 논으로 가려진 장애를 제거하였으니
이 책을 만들고 베끼면 복을 얻을 것이로다.
015_0221_b_13L妙法寶積經
無垢大智明
此論除翳障
造寫所得福

모든 견해에 집착하면
지혜 없는 그물에 떨어지리니
장애 없는 부처님의 눈을
원컨대 세간에서 속히 얻게 하소서.
015_0221_b_14L所有著諸見
及墮無智網
無障㝵佛眼
願世速令得
大寶積經論卷第四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8)범어 dhūta의 음역이다. 진구번뇌(塵垢煩惱)를 버리는 것을 말한다. 고행의 하나로 두도(杜荼)ㆍ두다(杜多)ㆍ투다(投多)ㆍ투다(偸多)ㆍ진후다(塵吼多)라고도 쓴다. 의역하여 두수(抖擻)ㆍ두만정두수(抖萬釘斗藪)ㆍ수치(修治)ㆍ기제(棄除)ㆍ사태(沙汰)ㆍ완세(浣洗)ㆍ분탄(紛彈)ㆍ요진(搖振)이라고도 한다. 의식주 등에 대해 탐심과 집착을 버리고 신심을 수련한다는 뜻이다. 두타행(頭陀行)ㆍ두타사(頭陀事)ㆍ두타공덕(頭陀功德)이라고도 칭한다.
  2. 19)범어 prātimokśa 혹 pratimokśa, 파리어 pātimokkha 혹 pāṭimokkha의 음역이다. 바라제(波羅提)라고도 한다. 한역하여 별해탈(別解脫) 또는 목차계(木叉戒)라고 한다.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ㆍ망어(妄語)ㆍ기어(綺語)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 등 일곱 가지 업(業)을 방지하는 계이다.
  3. 20)범어 āryāṣṭāṅgika-mārga의 번역으로 여덟 가지 열반을 구하는 바른 길을 말한다. 8정도(正道)ㆍ8지정도(支正道)ㆍ8성도분(聖道分)ㆍ8도행(道行)ㆍ8직행(直行)ㆍ8정(正)ㆍ8도(道)ㆍ8지(支)ㆍ8법(法)ㆍ8로(路)라고도 한다. 37도품(道品) 가운데 불교의 실천 법문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으로, 여덟 가지 열반 해탈로 향하는 정확한 방법과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