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唐三藏聖教序

ABC_IT_K0571_T_001
016_0001_a_01L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1)
016_0001_a_01L大唐三藏聖教序


태종문황제제太宗文皇帝製
016_0001_a_02L御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016_0001_a_03L蓋聞二儀有像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苞乎陰陽而易識者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以其無形也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16_0001_a_09L故知像顯可徵雖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方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大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釐無滅無生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運百福而長今妙道凝玄遵之莫知其際法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愚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哉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騰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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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16_0001_a_19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世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眞遷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光麗象開圖空端四八之相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途遺訓遐宣導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所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乘乍沿時而隆替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7)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016_0001_b_06L有玄奘法師者法門之領袖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苞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超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凝心內境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析理廣彼前聞截僞續眞開茲後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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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016_0001_b_14L是以翹心淨土往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飛途閒失地驚砂夕起空外迷天萬里山川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躡霜雪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周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教雙林八水味道飡風鹿菀鷲峯瞻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賢探賾妙門精z窮奧業一乘五律之道馳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海爰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文凡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016_0001_c_03L引慈雲於西極澍法雨於東垂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焰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臻彼岸是知惡因業墜善以緣昇墜之端惟人所託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16_0001_c_07L譬夫桂生高嶺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葉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則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識不緣慶而求慶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황태자신치술성기(皇太子臣治述聖記)8)
016_0001_c_14L皇太子臣治述 聖記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016_0001_c_15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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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016_0001_c_21L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身經塵劫而不朽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9)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0)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016_0002_a_04L晨鐘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林於鹿菀排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1)가 중국의 중심12)에 흐르는 팔천(八川)13)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 : 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016_0002_a_07L伏惟皇帝陛下 上玄資福垂拱而治八荒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骨石室歸貝葉之文澤及昆蟲金流梵說之偈遂使阿耨達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016_0002_a_12L竊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奧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燭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於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摠成乎實豈與湯武挍其優劣堯舜比其聖德者哉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4)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5)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 : 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016_0002_a_18L玄奘法師者夙懷聰立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世凝情定室匿迹幽巖拪息三巡遊十地超六塵之境獨步迦維會一乘之旨隨機化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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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 : 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16)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17) 이것은 법상(法相)18)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달・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016_0002_a_22L以中華之無尋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頻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有七載備通釋典利物爲心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勅於弘福寺翻譯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竭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明自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所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皇福臻同二儀之固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 : 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16_0002_b_09L伏見御製衆經論序照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足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016_0002_b_12L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제1권
016_0002_b_12L顯揚聖教論卷第一


무착(無着) 지음
현장(玄奘) 한역
016_0002_b_13L無著菩薩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제1 섭사품(攝事品) ①
016_0002_b_15L攝事品第一

잘 가셨으며1) 훌륭하게 설법하시는 승묘한 3신불(身佛)2)
두려움 없고,3) 번뇌 없으며[無流],4) 증득되는 교법과5)
상승(上乘)이며 진실한, 성인6)의 제자에게
저는 지금 지극한 정성으로 먼저 찬탄 예경하옵니다.7)
016_0002_b_16L善逝善說妙三身
無畏無流證教法
上乘眞實牟尼子
我今至誠先讚禮

다음으로 크게 자비하신 분8)에게 공경히 큰절 올립니다.
장차 일체종지(一切種智)9)인 법왕의 자리를 이으시고10)
의지할 데 없는 세간의 귀의처가 되시며
널리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말씀한 분이시네.11)
016_0002_b_18L稽首次敬大慈尊
將紹種智法王位
無依世閒所歸趣
宣說瑜伽師地者

예전에 나 무착(無着)은 그 분에게 들었으므로
지금 『유가사지론』의 요긴한 뜻을 골라서 종합하나니
성인의 가르침과 자비심을 현양(顯揚)하기 위해12)
글은 간략하고 뜻은 두루하여 알기 쉽게 함이네.
016_0002_b_20L昔我無著從彼聞
今當錯綜地中要
顯揚聖教慈悲故
文約義周而易曉

「섭사품(攝事品) 」, 「섭정의품(攝淨義品) 」, 「성선교품(成善巧品) 」,
「성무상품(成無常品) 」, 「성고품(成苦品) 」, 「성공품(成空品) 」,
「성무성품(成無性品) 」,「성현관품(成現觀品) 」, 「성유가품(成瑜伽品) 」,
「성부사의품(成不思議品) 」,「섭승결택품(攝勝決擇品) 」의 11품이네.
016_0002_b_22L攝事淨義成善巧
無常苦空與無性
現觀瑜伽不思議
攝勝決擇十一品
016_0002_c_01L
일체(一切), 세계[界], 잡염,
진리[諦], 의지(依止), 각분(覺分),
보특가라(補特伽羅), 증과[果],
모든 공덕의 9가지 사실[事]이네.13)
016_0002_c_01L一切界雜染
諦依止覺分
補特伽羅果
諸功德九事

논하여 말한다. ‘일체’라는14) 것은,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보살장(菩薩藏)15)을 총섭함을 말한다.16)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게송에서17) 말한다.
016_0002_c_03L論曰一切者有五法摠攝菩薩藏等爲五頌曰



심법(心法), 심소유법(心所有法), 색법(色法),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무위법(無爲法)이네.
016_0002_c_05L心心所有色
不相應無爲

논하여 말한다. ‘심법[心法]’이란18) 심(心), 의(意), 식(識)의 차별된 명칭을 말한다.19)
무엇이 식(識)20)인가?
식에 여덟 종류가 있다. 아뢰야식, 안식, 이식, 비식, 설식, 몸의 인식과 뜻[意:제7 말나식]과 의식(意識)을 말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21)이란 전생에 지어서 증장된 업과 번뇌를 조건[緣]으로 하고 아득한 옛적부터의 희론의 훈습을 원인으로 하여 생기(生起)된 일체종자의 이숙식(異熟識)22)을 자체로 삼는다. 이 식은 능히 색근(色根)23)과 근소의처(根所依處)24) 및 희론의 훈습을 집수(執受)25)하고 요별한다.26) 언제나 한 부류로 생멸하며,27) 잘 알 수 없다.28) 또한 능히 외부의 기세계(器世界)29)를 간직하고[執持] 분별한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과 상응한다.30) 한결같이 무부무기(無覆無記)31)이다. 전식(轉識) 등에게 의지처의 원인이 되고,32) 염오ㆍ청정의 전식과 수(受) 심소 등과 더불어 함께 전전(展轉)한다. 염오가 있는 전식 등을 능히 증장함을 업(業)으로 삼고, 청정한 전식 등을 능히 손감(損減)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33)
이 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박가범34)께서 “무명에 덮이고 애욕[愛結]35)에 묶이어, 어리석은 범부는 식이 있는 몸을 받게 된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이 말은 이숙(異熟)의 아뢰야식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저 다섯 가지의36) 종자이다. 이것을 곧 유취(有取)37)의 식이라고 이름한다”고 말씀하셨다.
016_0002_c_06L論曰心者謂心識差別名也等爲識識有八種謂阿賴耶識眼身識意及意識阿賴耶識者謂先世所作增長業惱爲緣無始時來戲論熏習爲因生一切種子異熟識爲體此識能執受了別色根所依處及戲論熏習於一切時一類生滅不可了知又能執持了別外器世界與不苦不樂受等相應一向無覆無記與轉識等作所依因與染淨轉識受等俱轉能增長有染轉識等爲業及能損減淸淨轉識等爲業云何知有此識如薄伽梵說無明所覆愛結所繫愚夫感得有識之身此言顯有異熟阿賴耶識又說如五種子此則名爲有取之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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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아타나식은 매우 심오하고 미세하며, 일체종자식은 폭포의 흐름과 같도다. 나는 범부와 어리석은 무리38)에게는 열어 보이지 않나니, 그들이 분별하고 집착해서 자아39)로 삼을까 두렵기 때문이니라”40)고 말씀하셨다.
‘안식(眼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41) 안근에 의지하여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展轉)한다. 빛깔ㆍ형태[色]42)의 경계를 반연하여 분별[了別]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박가범께서 “내부의 안처(眼處)43)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색처(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作意)44)가 바로 생기한다.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의 안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또한 “눈과 빛깔ㆍ형태를 연(緣)으로 하여 안식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나아가 신식까지도 그렇게 알아야 한다.45) 이 중에서 차이는 각각 자신의 감관에 의지하고 각각 자신의 경계를 반연하여 각각 다르게 분별한다는 점이다. 모두 인용한다면 앞에서 말한 두 경전과 같다.46)
‘의(意)’47)는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며, 돌이켜 그 식을 반연한다.48) 아치(我癡), 아애, 나ㆍ나의 것이라는 집착, 아만과 상응한다.49) 혹은 반대로 그것이 상응한다.50) 어느 때나 자신만만하고 뽐내는 것을 행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평등히 행하여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분별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박가범께서 “내부의 의처(意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법처(法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가 바로 일어난다.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 의(意)라는 식51)이 생겨나게 된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016_0002_c_22L此言顯有一切種子阿賴耶識又說阿陁那識甚深細一切種子如暴流我於凡愚不開演恐彼分別執爲我眼識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於眼根與彼俱轉緣色境界了別爲如薄伽梵說內眼處不壞外色處現前及彼所生作意正起如是所生眼識得生又說緣眼及色眼識得生如是應知乃至身識此中差別者各依自根各緣自境各別了別一切應引如前二經意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還緣彼識我癡我愛我我所執我慢相應或翻彼相應於一切時恃擧爲行平等行與彼俱轉了別爲性如薄伽梵說內意處不壞外法處現前及彼所生作意正起如是所生意識得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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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의근(意根)52)에 의지하며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한다. 일체의 공법(共法)과 불공법(不共法)을 반연하여 대상으로 삼아서53) 분별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심소유법(心所有法)’54)은 어떤 법이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심왕(心王)55)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상응함을 말한다.56)
그것은 또한 어떠한가? 변행심소(遍行心所)57)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작의(作意)이고,58) 둘째는 촉(觸)이며, 셋째는 수(受)이고, 넷째는 상(想)이며, 다섯째는 사(思)이다.
별경심소(別境心所)59)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욕(欲)이고, 둘째는 승해(勝解)이며, 셋째는 염(念)이고, 넷째는 등지(等持)이며, 다섯째는 혜(慧)이다.
선심소(善心所)60)는 열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信)이고, 둘째는 참(慙)이며, 셋째는 괴(愧)이고, 넷째는 무탐(無貪)이며, 다섯째는 무진(無瞋)이고, 여섯째는 무치(無癡)이며, 일곱째는 정진(精進)이고, 여덟째는 경안(輕安)이며, 아홉째는 불방일(不放逸)이고, 열째는 사(捨)이며, 열 한째는 불해(不害)이다.
번뇌심소61)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탐(貪)이고, 둘째는 진(瞋)이며, 셋째는 만(慢)이고, 넷째는 무명(無明)이며, 다섯째는 견(見)이고, 여섯째는 의(疑)이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62)는 스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忿)이고, 둘째는 한(恨)이며, 셋째는 부(覆)이고, 넷째는 뇌(惱)이며, 다섯째는 의(疑)이고, 여섯째는 간(慳)이며, 일곱째는 광(誑)이고, 여덟째는 첨(諂)이며, 아홉째는 교(憍)이고, 열째는 해(害)이다. 열한째는 무참(無慙)이고, 열두째는 무괴(無愧)이며, 열셋째는 혼침(惛沈)이고, 열넷째는 도거(掉擧)이며, 열다섯째는 불신(不信)이고, 열여섯째는 해태(懈怠)이며, 열일곱째는 방일(放逸)이고, 열여덟째는 실념(失念)이며, 열아홉째는 심란(心亂)이고, 스무째는 부정지(不正知)이다.
부정심소(不定心所)63)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오작(惡作)64)이고, 둘째는 수면(睡眠)이며, 셋째는 심(尋)이고, 넷째는 사(伺)이다.
작의(作意)65) 심소는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바이고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함께 전전하여 상응한다. 심왕을 움직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심왕을 이끄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66) 이것이 심왕과 더불어 하나의 대상을 같이 반연하기 때문에 화합이라 말한다. 화합하지 않음이 아니다. 경전에서 “만약 이것에 대해서 작의하면 곧 이것에 대해서 분별하며, 만약 이것에 대해서 분별하면 곧 이것에 대해서 작의한다. 그러므로 이 둘67)은 항상 화합하며, 화합하지 않음이 아니다. 이 두 법은 서로 떨어져 다른 것이라고 시설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이와 같이 말하기를 “심왕과 심소의 작용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한다. 또한 “그것이 생겨남으로써 의식의 일깨움[作意]이 바로 일어나고,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의 안식 등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촉(觸)68) 심소는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을 말한다.69) 분별70)을 체성으로 삼고, 수(受) 심소의 의지처인71)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촉신(觸身)72)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눈과 빛깔ㆍ형태를 연(緣)으로 삼아서 능히 안식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이 모여서 화합함으로써 능히 촉이 있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촉은 수(受)의 연(緣)이 된다”고 말한다.
수(受)73) 심소는 받아들임을 체성으로 삼고, 애착[愛]의 조건[緣]이 되는 것을74)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수신(受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수는 애착의 조건이 된다”고 말한다.
상(想)75) 심소는 명칭ㆍ문구ㆍ문자의 훈습을 연으로 삼아서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상응한다. 모습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말과 논의를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상신(想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그 표상지은 바와 같이 말과 언의(言議)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사(思)76) 심소는 심왕으로 하여금 이득, 손해, 이득도 손해도 아닌 것을 조작하게 함을 말한다. 의업(意業)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화합하기도 하고, 혹은 따로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따라서 주기도 하고, 혹은 탐애하기도 하며, 혹은 성내기도 하고, 혹은 놓아버리기도 하며, 혹은 심구[尋]와 사찰[伺] 심소를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다시 신업과 어업(語業)을 일으키기도 하며, 혹은 염오(染汚)가 되기도 하고, 혹은 청정행이 되기도 하여 선, 불선, 선도 불선도 아닌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사신(思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마땅히 알라. 나는 말하노니, 지금의 여섯 가지 촉처(觸處)는 곧 전생의 사(思)가 지은 것이기 때문에 업(業)이다”라고 말한다.
욕(欲)77) 심소는 좋아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희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근(勤) 심소의 의지처인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욕은 온갖 법의 근본이 된다”고 말한 바와 같다.
승해(勝解)78) 심소는 결정된 대상에 대해서 그 상응하는 바대로 결정적으로 이해함을 체성으로 삼고, 이끌어 전전할 수 없음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우리들은 지금 마음에 ‘이 내부의 6처(處)는 반드시 결정코 무아이다’라고 승해를 일으킨다”고 말한 바와 같다.
염(念)79) 심소는 자주 익힌 대상에 대해서 심왕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등지(等持)의 의지처인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모든 염(念)이 수념(隨念)ㆍ별념(別念) 및 억념(憶念)과 더불어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 법이며 마음에 분명히 기억하는 것을 성품으로 삼는다”고 말한 바와 같다.
등지(等持)80) 심소는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오로지 하나의 반연에만 머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심왕으로 하여금 산란되지 않게 하여 지혜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모두 심왕으로 하여금 머물게 하여 등주(等住)ㆍ안주(安住)ㆍ근주(近住) 및 정주(定住)와 더불어 어지럽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거두어 고요히 그쳐서 등지의 마음이 하나의 반연에 머무는 성품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혜(慧)81) 심소는 곧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간택(簡擇)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진리에 계합함, 진리에 계합하지 않음, 진리에 계합함도 아니고 계합하지 않음도 아닌 것으로써 소지(所知)82)에 깨달아 들어감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온갖 법을 간택(簡擇)하되, 아주 잘 간택하고, 법을 지극히 간택하며, 두루 알고, 가까이 알며, 지혜롭게 알고, 통달하고 자세히 살피며, 총명하고 슬기롭게 깨달아 밝은 지혜로써 비발사나(毗鉢舍那)83)를 행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신(信)84) 심소는 실체 있고 덕 있으며 능력 있는 것에 대해서 심왕으로 청정하게 인가(忍可)함을 체성으로 삼는다.85) 불신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능히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얻어 원만해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들을 이롭게 함을 업으로 삼고, 능히 선도(善道)에 나아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청정한 믿음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래에 대해서 견고한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한 바와 같다.
참(慙)86) 심소는 자기 증상(增上)과 법 증상에87) 의지해서 허물과 악을 부끄러워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무참(無慙)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88) 참(慙)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스스로 부끄러워 할 바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괴(愧)89) 심소는 세간 증상(增上)90)에 의지해서 허물과 악을 부끄러워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무괴(無愧)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괴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남부끄러워 할 바에 대해서는 남부끄러워 해야한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무탐(無貪)91) 심소는 윤회의 존재[有]92)와 유구(有具)93)에 대해서 싫어해서 떠나고, 고집하지 않으며, 감추지 않고, 애착하지 않으며, 집착이 없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탐욕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탐욕이 없음을 업으로 삼는다. 경에서 “탐냄이 없는 착한 뿌리라” 고 말한 바와 같다.
무진(無瞋)94) 심소는 모든 유정에 대하여 마음에서 훼손하려는 것이 없고 사랑하고 연민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성냄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진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진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3_a_16L意識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於意根與彼俱轉緣一切共不共法爲境了別爲性心所有法者謂若法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心俱轉相應彼復云何謂遍行有五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別境有一欲二勝解三念四等持五慧有十一一信二慚三愧四無貪五無六無癡七精進八輕安九不放逸十捨十一不害煩惱有六一貪二瞋三慢四無明五見六疑隨煩惱有二一忿二恨三覆四惱五嫉六慳八諂九憍十害十一無慚十二無十三惛沈十四掉擧十五不信六懈怠十七放逸十八失念十九心二十不正知不定有四一惡作睡眠三尋四伺作意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心所起與心俱轉相應動心爲體心爲業由此與心同緣一境故說和非不和合如經中說若於此作意卽於此了別若於此了別卽於此作是故此二恒和合非不和合此二法不可施設離別殊異復如是說心法行不可思議又說由彼所生意正起如是所生眼等識生觸者謂三事和合分別爲體受依爲如經說有六觸身又說眼色爲緣能起眼識如是三法聚集合故能有所觸又說觸爲受緣受者謂領納爲愛緣爲業如經說有六受身又說受爲愛緣想者謂名句文身熏習爲緣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與心俱轉相應取相爲體發言議爲業如經說有六想身又說如其所想而起言議思者謂令心造作得失俱非意業爲或爲和合或爲別離或爲隨與爲貪愛或爲瞋恚或爲棄捨或起尋或復爲起身語二業或爲染污爲淸淨行善不善非二爲業如經說有六思身又說當知我說今六觸處卽前世思所造故業欲者謂於所樂境希望爲體勤依爲如經說欲爲一切諸法根本勝解者謂於決定境如其所應印解爲體不可引轉爲業如經說我等今心生勝解是內六處必定無我念者謂於串習境令心明記不忘爲等持所依爲業如經說諸念與隨念別念及憶不忘不失法心明記爲性等持者謂於所觀境專住一緣爲體令心不散智依爲業如經說諸令心與等住安住近住及定住不亂不攝寂止等持心住一緣性慧者謂卽於所觀境簡擇爲體如理不如理非如理非不如理悟入所知爲如經說簡擇諸法最極簡擇極簡擇法遍了近了黠了通達審察聰睿覺明慧行毘鉢舍那信者謂於有體有德有能心淨忍可爲體斷不信障爲業能得菩提資糧圓滿爲業利益自他爲業能趣善道爲業增長淨信爲業如經說於如來起堅固信慚者謂依自增上及法增上羞恥過惡爲體斷無慚障爲業如前乃至增長慚爲業如經說慚於所慚乃至廣說愧者謂依世增上羞恥過惡爲體無愧障爲業如前乃至增長愧爲業如經說愧於所愧乃至廣說無貪者謂於有有具厭離無執不藏不愛無著爲體能斷貪障爲業如前乃至增長無貪爲業如經說無貪善根無瞋者謂於諸有情心無損害慈愍爲體能斷瞋障爲業如前乃至增長無瞋爲業如經說無瞋善根

무치(無癡)95) 심소는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어리석음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으며,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치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치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정진(精進)96) 심소는 마음이 용맹하여 게으름이 없으며, 스스로 가볍고 천하게 하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해태(懈怠)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정진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정진을 일으켜서 힘이 있음ㆍ부지런함ㆍ용감함ㆍ견고하고 용맹스러움에 머물러서 선(善)의 멍에를97) 버리지 않는다”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4_b_02L無癡者謂正了眞實爲體能斷癡障爲業如前乃至增長無癡爲業如經無癡善根精進者謂心勇無惰自輕賤爲體斷懈怠障爲業如前乃至增長精進爲業如經說起精進住有勢有勤有勇堅猛不捨善軛

경안(輕安)98) 심소는 추중(麤重)99)을 멀리 여의어서 몸과 마음이 조화되고 가뿐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추중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능히 경안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뜻[意]에 알맞고 기쁘게 되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4_b_08L輕安者謂遠離麤重身心調暢爲體斷麤重障爲業如前乃至能增長輕安爲業如經說適悅於意身及心安

불방일(不放逸)100) 심소는 무탐ㆍ무진ㆍ무치ㆍ정진을 모두 포섭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이것에 의지해서 능히 악ㆍ불선법을 끊고, 그것의 대치(對治)인 선법을 능히 닦아서 방일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능히 불방일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온갖 한량없는 선법(善法)의 생겨남이 모두 다 불방일의 선근에 의지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4_b_11L不放逸者謂摠攝無貪無瞋無癡進爲體依此能斷惡不善法及能修彼對治善法斷放逸障爲業如前乃至增長不放逸爲業如經說所有無量善法生起一切皆依不放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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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捨)101) 심소는 무탐ㆍ무진ㆍ무치ㆍ정진을 모두 포섭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이것에 의지해서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얻고, 마음의 정직을 얻으며,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동요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으며,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사(捨)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불방일로 말미암아 염오법(染汚法)을 없애고, 그 사(捨)로 인하여 이미 없애버린 불염오법에 머문다. 경전에서 “탐욕과 근심의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사(捨)에 의지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불해(不害)102) 심소는 온갖 유정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슬퍼하고 측은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해(害)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불해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불해로 인하여 그 밝고 지혜로움을 알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탐(貪)103) 심소는 5취온(取薀)104)에 대해서 애착하거나 즐기거나 숨기거나 돌보거나 보존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俱生起]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分別起]이다. 능히 무탐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보리의 자량을 얻어서 원만해짐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에게 손해끼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능히 악도(惡道)에 나아감을 업으로 삼으며, 탐욕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탐애가 있는 모든 이는 탐욕에 항복되고 가리운 바가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016_0004_b_16L捨者謂摠攝無貪無瞋無癡精進爲依此捨故得心平等得心正直無發動斷發動障爲業如前乃至增長捨爲業由不放逸除遣染法由彼捨故於已除遣不染污住如經說除貪憂心依止捨不害者謂由不惱害諸有情故悲哀惻愴愍物爲體能斷害障爲業如前乃至增長不害爲業如經說由不害知彼聰睿乃至廣說貪者謂於五取薀愛樂覆藏保著爲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貪爲業障得菩提資糧圓滿爲業損害自他爲業能趣惡道爲業增長貪欲爲業如經說有貪愛者爲貪所伏蔽

진(瞋)105) 심소는 유정에 대해서 손해끼침을 일으키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능히 무진(無瞋)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106) 성냄[瞋恚]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진에(瞋恚) 심소가 있는 모든 이는 성냄에 굴복되고 가리운 바가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만(慢)107) 심소는 남과 비교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거나 자기가 동등하다거나 자기가 열등하다고 여겨서 마음으로 하여금 믿거나 뽐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거만하지 않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거만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세 가지의 거만의 종류가 있다. 내가 뛰어나다는 거만의 종류, 내가 동등하다는 거만108)의 종류, 내가 열등하다는 거만109)의 종류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4_c_08L瞋者謂於有情欲興損害爲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瞋爲業如前乃至增長瞋恚爲業如經說諸有瞋恚者爲瞋所伏蔽慢者謂以他方己計我爲勝我等我劣令心恃擧爲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慢爲業如前乃至增長慢爲業如經說三種慢類我勝慢類我等慢類我劣慢類
016_0005_a_01L
무명(無明)110) 심소는 진실을 바르게 알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바르게 아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명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어리석음이 있는 모든 이들은 무명에 항복되고 가리운 바가 된다”고 말한 바와 같다.
견(見)111) 심소는 다섯 가지 견해를 체성으로 삼는다.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112)이니, 오취온에 대해서 나ㆍ내것으로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무아에 대해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살가야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이와 같은 지견(知見)은 세 가지 결박 번뇌[結]를 영원히 끊나니 신견(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疑)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둘째는 변집견(邊執見)113)이니, 오취온에 대해서 단멸함ㆍ상주함을 집착하고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무상(無常)에 대한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변집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가다연나(迦多衍那)114)여, 일체 세간은 두 가지에 의지하나니, 혹은 있음과 혹은 없음이니라”고 말한 바와 같다.
셋째는 사견(邪見)115)이니, 원인을 부정하고116) 결과를 부정하며,117) 혹은 작용[功用]을 부정하고,118) 혹은 참다운 존재[事]를 부정하여119)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난다. 능히 정견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사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삿된 견해가 있는 이는 집착하는 것이 모두 뒤바뀐 것이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넷째는 견취(見取)120)이니, 앞에서 말한 세 가지 견해와 견해의 의지처인 온(薀)에 대해서 가장 수승하고 첫째가는 것이라고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난다. 괴로움ㆍ부정(不淨)에 대한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견취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스스로 견해에 취착한 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굳게 머물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다섯째는 계금취(戒禁取)121)이니, 앞에서 말한 여러 견해와 견해의 의지처인 온(薀)에 대해서 청정ㆍ해탈ㆍ벗어난 것이라고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난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를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계금취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취(取)는 결박 번뇌[結]에 계박된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4_c_16L無明者謂不正了眞實爲體或是俱或分別起能障正了爲業如前乃至增長無明爲業如經說諸有愚癡無明所伏蔽見者謂五見爲體一薩迦耶見謂於五取薀計我我所染污慧爲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我無顚倒解爲業如前乃至增長薩迦耶見爲業如經說如是知見永斷三結謂身見戒禁取二邊執見謂於五取薀計斷常染污慧爲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常無顚倒解爲業如前乃至增長邊執見爲業如經說迦多衍那一切世閒依止二種或有或無三邪見謂謗因謗果或謗功用或壞實事染污慧爲體唯分別起能障正見爲業如前乃至增長邪見爲業經說有邪見者所執皆倒乃至廣說四見取謂於前三見及見所依薀最勝上及與第一染污慧爲體唯分別起能障苦及不淨無顚倒解爲業如前乃至增長見取爲業如經說自所見取執堅住乃至廣說五戒禁謂於前諸見及見所依薀計爲淸解脫出離染污慧爲體唯分別起能障如前無顚倒解爲業如前乃至增長戒禁取爲業如經說取結所繫

의(疑)122) 심소는 모든 진리에 대해서 유예(猶豫)하여 결단하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며, 의심 없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의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유예하는 것이 의심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016_0005_a_20L疑者謂於諸諦猶豫不決爲體唯分別起能障無疑爲業如前乃至增長疑爲業如經說猶豫者疑
016_0005_b_01L
분(忿)123) 심소는 현재의 거스르는 조건[緣]에 대해서 마음으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성냄 없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나아가 분노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한(恨)124) 심소는 과거의 거슬렀던 조건[緣]에 대해서 원한을 맺어서 버리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고, 성냄 없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나아가 한(恨)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부(覆)125) 심소는 범한 허물에 대해서 다른 이가 충고하고 가르쳐주거나 혹은 충고하고 가르쳐주지 않거나간에 지은 악을 비밀로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허물을 드러내고 뉘우치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숨김[覆]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뇌(惱)126) 심소는 범한 허물에 대해서 만약 다른 이가 충고하고 가르쳐주면 곧 추악한 말을 하고 마음이 과격하여 참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착한 벗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열뇌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질(嫉)127) 심소는 다른 이가 지닌 공덕과 명예와 존경 받는 것과 공양 받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질투하여 좋아하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인자함을 장해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질투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간(慳)128) 심소는 쌓아두고 아끼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탐욕 없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나아가 인색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광(誑)129) 심소는 남을 미혹시키고 산란되게 하기 위해서 진실하지 않은 일을 나타내고 마음에 속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사랑하고 공경함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속임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첨(諂)130) 심소는 남을 속이기 위해서 거짓으로 공손하고 순종함을 보이며 마음이 굴곡됨을 체성으로 삼는다. 사랑하고 공경함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아첨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분노[忿], 원한[恨], 숨김[覆], 열뇌[惱], 질투[嫉], 인색[慳], 속임[誑], 아첨[諂]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교(憍)131) 심소는 잠깐 세상에서 흥성하는 등의 일을 얻게 되어 마음에 믿고 높이 뽐내어서 꺼리는 바가 없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싫어하여 떠나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교만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바르게 듣는 것이 없는 어리석은 범부는 어린 시절에 병이 없거나 수명 등이 잠시 머무는 것을 보고는 널리 교만과 방일을 일으키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해(害)132) 심소는 유정을 핍박하고 괴롭히며, 슬퍼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가엾게 보지 않고 측은히 여기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해치지 않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해침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해치는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다른 이를 손해끼치고 괴롭힌다”고 말한 바와 같다.
무참(無慙)133) 심소는 자기와 법의 두 가지 증상(增上)에 대해서 허물ㆍ악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134) 체성으로 삼는다. 참(慙)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무참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부끄러워할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참은 악ㆍ불선법을 일으키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무괴(無愧)135) 심소는 세간 증상(增上)에 대해서 허물ㆍ악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136) 체성으로 삼는다. 괴(愧)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무괴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부끄러워할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괴는 악ㆍ불선법을 일으키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혼침(惛沈)137) 심소는 신체의 추중(麤重)에 의지하여 달게 집착하고, 나아가지 않으며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에 마음으로 하여금 침몰하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비발사나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혼침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이 사람은 몸ㆍ생각의 혼침을 일으킨다”고 말한 바와 같다.
도거(掉擧)138) 심소는 바르지 못한 심구(尋求)에 의지하거나, 혹은 이전에 경험했거나 보았거나 희락(戱樂) 등의 일을 추억하여 마음이 고요하게 쉬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사마타(奢摩他)139)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들뜸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그대는 흔들려서 동요하고, 또한 다시 높이 들뜬다”고 말한 바와 같다.
불신(不信)140) 심소는 참다운 존재ㆍ덕ㆍ능력이 있음에 대하여 마음이 청정하게 믿지 않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믿음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불신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만일 누구라도 청정하지 못한 믿음에 머물지 않으면 마음이 온갖 선법(善法)에서 끝까지 물러남이 없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해태(懈怠)141) 심소는 수면(睡眠)과 편히 기대거나 눕는 즐거움에 탐착하기 때문에 (수도에) 나아가기를 겁내고, 스스로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마음에 힘쓰고 가다듬지 않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바른 정진을 일으키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해태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만약 게으름이 있으면 반드시 바른 정진에서 물러나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방일(放逸)142) 심소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해태(懈怠)를 총섭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이것에 의지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악ㆍ불선법을 바르게 억제하지 못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닦아 익히지 못하여, 방일하지 않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방일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릇 방일은 생사의 발자취이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실념(失念)143) 심소는 오랫동안 지은 바와 말한 바와 생각했던 바의 법이나 의미에 대해서 잡염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망각[失念]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실념이란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심란(心亂)144) 심소는 닦아야 할 선(善)에 대해서 마음에 기뻐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의지(依止)로 삼음으로써 외부 반연에 치달리고 흩어지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등지(等持)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마음 산란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만약 5욕(欲)에 대해서 그 마음이 산란되면 유전(流轉)하여 쉬지 않으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부정지(不正知)145) 심소는 몸ㆍ말ㆍ의지의 행동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함에 머물러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바르게 아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바르게 알지 못함[不正知]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실념(失念)이 있는 이는 부정지에 머물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오작(惡作)146) 심소는 이미 지었거나 아직 짓지 못한 선ㆍ불선의 일에 대해서 염오이거나 염오가 아니거나 섭섭하게 여겨서 후회하고 변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사마타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뉘우침[惡作]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만약 따라 후회하는 마음을 품으면 곧 편안하지 못하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수면(睡眠)147) 심소는 마음을 대략적으로 거두어서 자유롭게 전전(展轉)하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비발사나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수면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수면의 맛에 탐착함이 마치 큰 고기에 삼킨 바가 된 것과 같다”고 말한 바와 같다.
심(尋)148) 심소는 어느 때는 사(思) 심소로 인하여 법에 대해서 짓고, 어느 때는 혜(慧) 심소로 인하여 법에 대해서 추구하여 외부 대상에 산란되게 행하며 마음으로 하여금 두드러지게 전전(展轉)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마음의 내적인 청정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심구(尋求)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사(伺)149) 심소는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이며,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고, 심구(尋求)한 법에 상응하며, 외부 대상에 대략적으로 행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미세하게 전전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나머지는 심(尋)와 같이 말하며150), 사찰(伺察)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이것이 심왕과 더불어 하나의 대상을 같이 반연하기 때문에 화합이라 말하며, 화합하지 않음이 아니다. 박가범께서 “만일 이것에 대해서 사찰(伺察)하면 곧 이것에 대해서 요별하고, 만일 이것에 대해서 요별하면 곧 이것에 대해서 사찰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항상 화합하며, 화합하지 않음이 아니다. 이 두 법은 서로 떨어져서 별개라거나 아주 다르다고 시설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기를 “심왕법과 심소법의 작용은 불가사의하다”라고 하셨다. 이 두 『아급마(阿笈摩)』151)가 있음을 증거해보면, 박가범께서 “심구[尋]와 사찰[伺]에 의지함으로 인하여 언설을 일으킨다. 심구와 사찰이 없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
모든 심소법 중에서 생략하여 말하지 않은 것은 그 상응하는 바와 같이 자세하게 말해질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식(識)과 심소법이 불가사의한 것처럼, 이 모든 심소법이 전전하여 서로 배대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색법(色法)은152) 열다섯 종류가 있으니 지대(地大), 수대(水大), 화대(火大), 풍대(風大),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색경(色境), 성경(聲境), 향경(香境), 미경(味境), 촉경(觸境)의 일부분 및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이다.
지대(地大)에153)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내부이고, 둘째는 외부이다. ‘내부’라는 것은 몸 안의 눈[眼根] 등 각각 다른 다섯 감관[五根]과 그 거처의 의지처로서, 견고하고 굳은 것에 해당되며 집수(執受)가 있는 성질이다.154)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머리카락ㆍ털ㆍ손톱ㆍ이[齒]ㆍ때[垢]ㆍ피부ㆍ힘줄ㆍ뼈ㆍ맥 등의 온갖 부정한 사물이다. 이것이 내부 지대의 체성이며, 형단(形段)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는다. ‘외부’라는 것은 몸 밖의 빛깔ㆍ형태 등 각각 다른 다섯 가지 대상의 의지처로서, 견고하고 굳은 것에 해당되며 집수가 아닌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자갈ㆍ돌ㆍ산ㆍ언덕ㆍ나무ㆍ숲ㆍ벽돌 등이다. 수재(水災) 등이 일어나면 그것은 파괴되어 소멸되며, 이것이 외부 지대의 체성이다. 형단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고, 의지하고 지니는 것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으며, 파괴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고, 다스림과 자양(資養)함을 업으로 삼는다.
수대(水大)155) 역시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내부이고, 둘째는 외부이다. ‘내부’라는 것은 몸 안의 눈 등 각각 다른 다섯 감관과 그 거처의 의지처로서, 습윤(濕潤)한 것에 해당되며 집수(執受)가 있는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콧물ㆍ눈물ㆍ침ㆍ땀ㆍ기름ㆍ골수 ㆍ담 등의 온갖 부정한 사물이다. 이것이 내부 수대의 체성이고, 윤택함과 모으는 것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는다. ‘외부’라는 것은 몸 밖의 빛깔과 형태 등 각각 다른 다섯 가지 대상의 의지처로서, 습윤한 것에 해당되며 집수가 아닌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샘[泉]ㆍ시내ㆍ못ㆍ강물ㆍ바닷물 등이다. 화재(火災) 등이 일어나면 그것은 말라 없어지며, 이것이 외부 수대의 체성이다. 의지하고 지니는 것으로 수용함으로 업으로 삼고, 변하고 파괴되는 것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으며, 다스림과 자양함을 업으로 삼는다.
화대(火大)156) 역시 두 종류가 있나니 첫째는 내부이고, 둘째는 외부이다. ‘내부’라는 것은 몸 안의 눈 등 각각 다른 다섯 감관과 그 거처의 의지처로서, 따뜻함ㆍ열(熱)에 해당되며 집수가 있는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능히 유정으로 하여금 두루 따뜻하게 하고 열을 증가시키며, 또한 마시거나 먹은 것을 능히 소화시키는 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이다. 이것이 내부 화대의 체성이고, 성숙과 화합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는다. ‘외부’라는 것은 몸 밖의 빛깔ㆍ형태 등 각각 다른 다섯 가지 대상의 의지처로서, 따뜻함ㆍ열에 해당되며 집수가 아닌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촌락과 성읍 등이 불에 타서 육지와 물가에까지 번지고 나아가 먼 허공에 이르게 되면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꺼지게 된다. 혹은 나무를 뚫거나 돌을 쳐서 여러 가지로 불을 구하는데, 이 불이 생겼다가도 오래지 않아 시들어 재가 되나니, 이것이 외부 화대의 체성이다. 변하고 파괴되는 것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고, 다스림과 자양함을 업으로 삼는다.
풍대(風大)157) 역시 두 종류가 있나니 첫째는 내부이고, 둘째는 외부이다. ‘내부’라는 것은 몸 안의 눈 등 각각 다른 다섯 감관과 그 거처의 의지처로서, 가볍게 움직임에 해당되며 집수가 있는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나니, 이른바 위ㆍ아래와 옆으로 다니는 무리의 들숨과 날숨 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이다. 이것이 내부 풍대의 체성이고, 발동하여 일을 짓는 것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는다. ‘외부’라는 것은 몸 밖의 빛깔ㆍ형태 등 각각 다른 다섯 가지 대상의 의지처로서, 가볍게 움직임에 해당되고 집수가 아닌 성질이다. 또한 더욱더 적집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산과 벼랑을 부수고 숲과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 등인데, 그것이 흩어지거나 무너지면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고요해진다. 만약 바람을 구하려는 사람은 옷을 움직이거나 부채를 흔드는데, 그것이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으면 반연이 없으므로 멈추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외부 풍대의 체성이고, 의지(依持)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고, 변하고 파괴되는 것으로 수용함을 업으로 삼으며, 다스림과 자양함을 업으로 삼는다.
안근(眼根)은158) 일체종자식인 아뢰야식이 집수(執受)하는 바이고, 4대(大)로 이루어진 물질을 경계로 삼으며, 빛깔ㆍ형태를 반연하는 식(識)159)의 의지처인 청정한 물질[淨色]160)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色薀)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음[無見有對]의 성질이다.
안근과 같이 이러한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도 역시 그러하다. 이 중에서 차이는 각각 자기 대상에만 작용하고 자기 대상만 반연하는 식의 의지처라는 점이다.
색경(色境)은161) 눈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안식의 인식대상[所緣]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빛깔[顯色]162)ㆍ형태[形色]163)ㆍ표색(表色)164)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있고 장애함이 있는 것[有見有對]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미묘함, 미묘하지 않음, 미묘하지도 않고 미묘하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푸른 것, 누른 것, 붉은 것, 흰 것, 이와 같은 따위의 빛깔, 긴 것, 짧은 것, 모난 것, 둥근 것, 거친 것, 미세한 것, 높은 것, 낮은 것, 반듯한 것, 반듯하지 않은 것, 연기, 구름, 먼지, 안개, 광선, 그림자, 밝음, 어둠, 공일현색(空一顯色)165)이나 그 영상의 빛깔이다. 이것을 색경이라고 이름한다.
성경(聲境)은 귀가 작용하는 경계이고, 이식(耳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뜻에 맞는 것[可意], 뜻에 맞지 않는 것, 뜻에 맞지도 않고 맞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166) 혹은 손 등이 서로 부딪쳐서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심구[尋]와 사찰[伺]에 의해서 거문고 등의 줄을 퉁기거나 가죽으로 된 북을 치기도 하고, 혹은 세속에 의하거나 혹은 목숨을 기르기 위해서거나 혹은 법과 뜻을 펴기 위해서 말을 하거나, 혹은 벼랑과 골짜기에 의해서 메아리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자상(自相)이거나 분별이거나 메아리 소리를 성경이라고 이름한다.
향경(香境)은 코가 작용하는 경계이고, 비식(鼻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냄새 맡을 수 있는 사물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좋은 냄새, 나쁜 냄새,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냄새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뿌리ㆍ줄기ㆍ껍질ㆍ잎새ㆍ꽃ㆍ열매ㆍ연기ㆍ가루 등의 냄새인데, 본래적인 것이거나 화합에 의해서거나 변하여 달라짐에 의해서거나 이것을 향경이라고 이름한다.
미경(味境)은 혀가 작용하는 경계이고, 설식(舌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맛볼 수 있는 사물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단 것, 달지 않은 것, 달지도 않고 달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소유(酥油)ㆍ사탕ㆍ석밀(石蜜)167)ㆍ익은 과일 등의 맛인데, 본래적인 것이거나 화합에 의해서거나 변하여 달라짐에 의해서거나 이것을 미경이라고 이름한다.
촉경(觸境)의 일부분은168) 몸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신식(身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사물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미묘함, 미묘하지 않음, 미묘하지도 않고 미묘하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깔깔함, 미끄러움, 가벼움, 무거움, 따뜻함, 빠름, 유연함, 차가움, 굶주림, 목마름, 배부름, 답답함, 강함, 약함, 가려움, 병듦, 늙음, 죽음, 피곤함, 쉼, 끈끈함, 날램이고, 혹은 광택을 반연함, 혹은 광택이 나지 않음, 혹은 견실(堅實)을 반연함, 혹은 견실하지 않음, 혹은 잡아서 묵는 것을 반연함, 혹은 더욱 모임을 반연함, 혹은 어김을 반연함, 혹은 순조로움을 반연함이며, 본래적인 것이거나 화합에 의해서거나 변하여 달라짐에 의해서거나 이것을 촉감[觸]의 일부분이라고 이름한다.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169)은 어느 때든지 의식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색온에 포섭되며,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없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율의(律儀)인 색법, 율의가 아닌 색법, 3마지(摩地)가 행하는 경계의 색법이다.
율의인 색법170)이란 무엇인가? 신업ㆍ어업을 방어하고 보호함을 말한다. 그것이 심왕법ㆍ심소법을 더욱더 짓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현행하지 않는 법에 의해서 물질의 성질을 건립한다.
율의가 아닌 색법171)이란 무엇인가? 신업ㆍ어업을 방어하거나 보호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것이 심왕법ㆍ심소법을 더욱더 짓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현행하는 법에 의해서 물질의 성질을 건립한다.
삼마지가 행하는 경계의 색법172)이란 무엇인가? 하품ㆍ중품ㆍ상품의 삼마지가 함께 전전하여 심왕법ㆍ심소법에 상응함으로 말미암아, 그 반연하는 바 영상인 물질의 성질과 그 짓는 바를 일으켜서 물질의 성질을 성취한다. 이것을 법처소섭색이라고 이름한다.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173)은 여러 유위법[行]174)이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심왕법과 심소법 및 색법의 분위(分位)에서 임시로 시설한175) 성품이며, 심왕법 등과 하나라거나 다르다고 시설할 수 없다. 그것을 다시 구별하면 스물 네 가지가 있나니 득(得),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무상천(無想天), 명근(命根), 중동분(衆同分), 생(生), 노(老), 주(住), 무상(無常), 명신(名身), 구신(句身), 문신(文身), 이생성(異生性), 유전(流轉), 정이(定異), 상응(相應), 차제(次第), 세속(勢速), 시(時), 방(方), 수(數), 화합, 불화합(不和合)이다. 또한 그밖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득(得)176)이란, 이것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유위법[行]의 종자에 포섭되는 상속차별(相續差別)177)의 성품이고, 둘째는 자재함이 생기(生起)하는 상속차별이며, 셋째는 자상(自相)이 생기하는 상속차별이다.
무상정(無想定)178)은 이미 변정천(遍淨天)의 욕망은 여의었으나 아직 그 위의 경지[上地]179)의 욕망을 여의지 못했으며, 표상[想]을 관찰하되 병과 같고 부스럼과 같으며 화살과 같다고 하며, 오직 무상천은 고요하고 미묘하다고 하며, 무상천을 향하여 벗어남의 생각을 일으키고180) 이전의 방편을 작의(作意)하기 때문에, 심왕법과 심소법을 항상 현행하지 않고 멸하는 성품이다.
멸진정(滅盡定)181)은 이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욕망을 여의고, 혹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들어가거나, 혹은 다시 위의 경지로 나아가거나, 혹은 무상정에 들어가거나, 혹은 위로 나아가 잠깐 표상작용을 쉬고 이전의 방편을 작의함을 일으킴으로써 반연하는 바를 그치고, 항상 여러 심왕법과 심소법을 현행하지 않고, 그리고 일부분의 심왕법과 심소법을 항상 현행함이 멸하는 성품이다.
무상천(無想天)182)은 먼저 여기에서 무상정을 얻고 이것으로 인하여 다음에 무상유정천처(無想有頂天處)에 나게 되어, 항상 여러 심왕법과 심소법을 현행하지 않고 멸하는 성품이다.
명근(命根)183)은 이전의 업에 이끌려진 이숙(異熟)으로서 6처(處)에 머무는 시간이 결정적인 성품이다.
중동분(衆同分)184)온갖 유정들이 서로 비슷한 성품을 말한다.
이생성(異生性)185)은 이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어리석은 범부의 이생성이고, 둘째는 들음이 없는 이생성이다. 어리석은 범부의 이생성이란 아득한 옛적부터 유정의 몸안에 있는 어리석은 범부의 성품을 말한다. 들음이 없는 이생성이란 여래법 이외의 모든 삿된 도의 성품을 말한다.
생(生)186)이란 모든 유위법[行]의 자상이 일어나는 성품을 말한다.
노(老)187)는 모든 행이 전후(前後)로 변하여 달라지는 성품을 말한다.
주(住)188)는 모든 행이 생기(生起)할 때 상속하여 단멸되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무상(無常)189)은 모든 행의 자상이 생기한 후에 소멸하고 파괴되는 성품을 말한다.
명신(名身)190)은 모든 행(行) 등의 법을 설명하는 자체와 표상의 명칭이 가립된 성질이다.
구신(句身)191)은 여러 명칭을 모아서 잡염ㆍ청정의 뜻을 나타내는 언설의 의지처의 성질이다.
문신(文身)192)은 앞의 두 가지가 의지할 바인 글자의 성질이다.
유전(流轉)193)은 모든 행의 원인ㆍ결과가 상속하여 단멸되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정이(定異)194)는 모든 행의 원인ㆍ결과가 각각 다른 성품을 말한다.
상응(相應)195)은 모든 행의 원인ㆍ결과가 서로 칭합(稱合)하는 성품을 말한다.
세속(勢速)196)은 모든 행이 유전(流轉)함이 빠른 성품을 말한다.
차제(次第)197)는 모든 행이 하나하나 차례로 유전하는 성품을 말한다.
시(時)198)는 모든 행이 전전(展轉)하는 것이 새롭게 새롭게 생멸하는 성품을 말한다.
방(方)199)은 모든 색법의 행(行)이 두루하는 한계의 성품을 말한다.
수(數)200)는 모든 행 등이 각기 다르고 상속하는 체상(體相)이 유전하는 성품을 말한다.
화합(和合)201)은 모든 행이 연(緣)에 따라 모이는 것을 말한다.
불화합(不和合)202)은 모든 행이 연(緣)에 어기는 성품을 말한다.
무위법(無爲法)203)이란, 이것에는 여덟 종류가 있으니 허공(虛空), 비택멸(非擇滅), 택멸(擇滅), 부동(不動), 상수멸(想受滅), 선법진여(善法眞如), 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 무기진여(無記眞如)이다.
허공(虛空)204) 무위는 모든 심왕법과 심소법이 외부 색법을 반연하는 바가 다스려진 경계의 성품이다.
비택멸(非擇滅)205) 무위는 원인과 조건[緣]이 모이지 않고, 그 중간에 모든 행(行)이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으며, 계박을 여의지 않은 성품이다.
택멸(擇滅)206) 무위는 지혜 방편으로 말미암아 유루(有漏)의 모든 행(行)이 궁극적으로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으며, 계박을 여읜 성품이다.
부동(不動)207) 무위는 변정천(遍淨天)의 욕망을 여의고 제4 정려를 증득하여, 그 중간에 괴로움과 즐거움의 계박을 여읜 성품이다.
상수멸(想受滅)208) 무위는 무소유처의 욕망을 여의고 멸진정에 들어가며, 그 중간에 항상 심왕법과 심소법이 현행하지 않고, 일부분의 심왕법과 심소법이 항상 현행함이 멸하며, 계박을 여읜 성품이다.
선법진여, 불선법진여, 무기법진여는 선법, 불선법, 무기법 가운데 청정한 경계의 성품을 말한다.209)
또한 다음에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210)에 다시 세 가지 양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증익(增益)의 양상이고,211) 둘째는 증익이 일어나는 바의 양상이며,212) 셋째는 법성의 양상이다.213) 증익의 양상이란 모든 법 중에서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214)을 말한다. 증익이 일어나는 바의 양상이란 모든 법 중에서 그 상응하는 바대로의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215)을 말한다. 법성의 양상이란 모든 법 중에서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216)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일체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세계[界]’에 관하여 말하겠다.217)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05_a_23L忿者謂於現在違緣令心憤發爲體能障無瞋爲業乃至增長忿爲業恨者謂於過去違緣結怨不捨爲體能障無瞋爲業乃至增長恨爲業覆者謂於過犯若他諌誨若不諌誨秘所作惡爲體能障發露悔過爲業乃至增長覆爲業惱者謂於過犯若他諌誨便發麤言心暴不忍爲體能障善友爲業乃至增長惱爲業嫉者謂於他所有功德名譽恭敬利養心妒不悅爲體能障慈仁爲業乃至增長嫉爲業慳者積聚悋著爲體能障無貪爲業乃至增長慳爲業誑者謂爲惑亂他現不實事心詭爲能障愛敬爲業乃至增長誑爲業諂者謂爲欺彼故詐現恭順心曲爲體能障愛敬爲業乃至增長諂爲業如經說忿恨覆惱嫉慳誑諂憍者謂暫獲世閒興盛等事心恃高無所忌憚爲體能障厭離爲業至增長憍爲業如經說無正聞愚夫見少年無病壽命等暫住而廣生憍乃至廣說害者謂逼惱有情無悲無愍無哀無無惻爲體能障不害爲業乃至增長害爲業如經說諸有害者必損惱他無慚者謂於自及法二種增上不恥過惡爲體能障慚爲業乃至增長無慚爲業如經說不慚所慚無慚生起惡不善法乃至廣說無愧者謂於世增上不恥過惡爲體能障愧爲業至增長無愧爲業如經說不愧所愧無愧生起惡不善法乃至廣說惛沈者謂依身麤重甘執不進以爲樂故令心沈沒爲體能障毘鉢舍那爲業乃至增長惛沈爲業如經說此人生起身意惛沈掉擧者謂依不正尋求或復追念曾所經見戲樂等事心不靜息爲體能障奢摩他爲業至增長掉擧爲業如經說汝爲掉動亦復高擧乃至廣說不信者謂於有體有德有能心不淨信爲體障信爲業乃至增長不信爲如經說若人不住不淨信心終無退失所有善法乃至廣說懈怠者謂耽著睡眠倚臥樂故怖畏升進自輕蔑故心不勉勵爲體能障發起正勤爲業乃至增長懈怠爲業如經說若有懈怠必退正勤乃至廣說放逸者謂摠貪懈怠爲體由依此故心不制正惡不善法及不修習彼對治法障不放逸爲業乃至增長放逸爲業如經說夫放逸者是生死迹乃至廣說失念者謂於久所作所說所思若法若義染污不記爲體障不忘念爲業乃至增長失念爲業如經說謂失念無所能爲乃至廣說心亂者謂於所修善心不喜樂爲依止故馳散外緣爲體能障等持爲業乃至增長心亂爲業如經說若於五欲其心散亂流轉不息乃至廣說不正知者謂於身意行不正了染污慧爲體能障正知爲業乃至增長不正知爲業如經說有失念者不正知乃至廣說惡作者謂於已作未作不善事若染不染悵怏追變爲體能障奢摩他爲業乃至增長惡作爲業如經說若懷追悔則不安隱乃至廣說睡眠者謂略攝於心不自在轉爲體能障毘鉢舍那爲業乃至增長睡眠爲業如經說貪著睡眠味如大魚所吞尋者謂或時由思於法造作或時由於法推求散行外境令心麤轉爲障心內淨爲業乃至增長尋爲業伺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與心俱轉相應於所尋法略行外境令心細轉爲體餘如尋說乃至增長伺爲業由此與心同緣一境故說和合非不和合如薄伽梵說若於此伺察卽於此了別若於此了別於此伺察是故此二恒和合非不和此之二法不可施設離別殊異如是說心心法行不可思議證有此二阿笈摩者如薄伽梵說由依尋伺發起言說非無尋伺諸心法中略不說者如其所應廣說應知如識與心法不可思議是諸心法展轉相望應知亦爾色者有十五種謂地觸一分及法處所攝色地有二種一內二外內謂各別身內眼等五根及彼居處之所依止堅鞕所攝有執受性復有增上積集所謂髮毛爪齒塵垢皮肉筋骨脈等諸不淨物是內地體形段受用爲業外謂各別身外色等五境之所依止堅鞕所攝非執受性復有增上積集所謂礫石丘山樹林甎等水等災起彼尋壞滅是外地體形段受用爲業依持受用爲業破壞受用爲業對治資養爲業水亦二種一內二外內謂各別身內眼等五根及彼居處之所依止濕潤所攝有執受性復有增上積集所謂痰等諸不淨物是內水體潤澤聚集受用爲業外謂各別身外色等五境之所依止濕潤所攝非執受性復有增上積集所謂泉源溪沼巨壑洪流等火等災起彼尋消是外水體依持受用爲業變壞受用爲業對治資養爲業火亦二種二外內謂各別身內眼等五根及彼居處之所依止煖熱所攝有執受復有增上積集所謂能令有情遍溫增熱又能消化凡所飮噉諸如是等是內火體成熟和合受用爲業謂各別身外色等五境之所依止熱所攝非執受性復有增上積集謂炎燎村城蔓延洲渚乃至空迥依故滅或鑽木擊石種種求火此火生已不久灰燼是外火體變壞受用爲業對治資養爲業風亦二種一內二外內謂各別身內#眼等五根及彼居處之所依止輕動所攝有執受性復有增上積集所謂上下撗行入出氣息諸如是等是內風體發動作事受用爲業外謂各別身外色等五境之所依止輕動所攝非執受性復有增上積集所謂摧破山崖偃伏林木彼旣散壞無依故靜若求風者衣搖扇其不動搖無緣故息諸如是等是外風體依持受用爲業變壞受用爲業對治資養爲業眼謂一切種子阿賴耶識之所執受四大所造色爲境界緣色境識之所依止淨色爲體色薀所攝無見有對如眼如是身亦爾此中差別者謂各行自境緣自境識之所依止色謂眼所行境眼識所緣四大所造若顯色若形色若表色爲體色薀所有見有對此復三種謂妙不妙及俱相違彼復云何謂靑如是等顯色正及不光影明闇若空一顯色若彼影像之色是名爲色聲謂耳所行境耳識所緣四大所造可聞音爲體色薀所攝無見有對復三種謂可意不可意及俱相違因手等相擊出聲或由尋伺扣絃拊或依世俗或爲養命或宣暢法義而起言說或依託崖谷而發響聲是若自相若分別若響音是名爲聲香謂鼻所行境鼻識所緣四大所造可嗅物爲體色薀所攝無見有對此復三種謂好香惡香及俱非香復云何所謂根煙末等若俱生若和合若變異是名爲香味謂舌所行境舌識所緣四大所造可嘗物爲體色薀所攝無見有對性此復三種謂甘不甘及俱相違彼復云何所謂酥沙糖石蜜熟果等味若俱生若和合若變異是名爲味一分謂身所行境身識所緣四大所可觸物爲體色薀所攝無見有對此復三種謂妙不妙及俱相違復云何所謂歰緣光澤或不光澤或緣堅實或不堅實#或緣執縛或緣增聚或緣乖違緣和順若俱生若和合若變異是名觸一分法處所攝色謂一切時意所行境薀所攝無見無對此復三種謂律儀不律儀色及三摩地所行境色儀色云何謂防護身語業者由彼增上造作心心法故依彼不現行法立色性不律儀色云何謂不防護身語業者由彼增上造作心心法故彼現行法建立色性三摩地所行境色云何謂由下上三摩地俱轉應心心法故起彼所緣影像色性彼所作成就色性是名法處所攝色心不相應行者謂諸行與心不相應於心心法及色法分位假施設性不可施設與心等法若一若異彼復差別有二十四種謂得無想定滅盡定無想天命根衆同分無常句身文身異生性流轉定異相應次第勢速和合不和合復有諸餘如是種類差別應知得者此復三種一諸行種子所攝相續差別性二自在生起相續差別性三自相生相續差別性無想定者謂已離遍淨欲未離上地欲觀想如病如癰唯無想天寂靜微妙由於無想天起出離想作意前方便故不恒現行心法滅性滅盡定者謂已離無所有處欲或入非想非非想處定或復上進或入無想定或復上進由起暫息想作意前方便故止息所緣不恒現行諸心心法及恒行一分諸心法滅性無想天者謂先於此閒得無想定由此後生無想有情天處不恒現行諸心心法滅性命根者謂先業所引異熟六處住時決定性衆同分謂諸有情互相似性異生性者有二種一愚夫異生性二無聞異生愚夫異生性者謂無始世來有情身中愚夫之性無聞異生性者謂如來法外諸邪道性生者謂諸行自相發起性老者謂諸行前後變異性住謂諸行生時相續不斷性無常者謂諸行自相生後滅壞性名身者詮諸行等法自體想號假立性句身謂聚集諸名顯染淨義言說所依文身者謂前二所依字性流轉者謂諸行因果相續不斷性定異者諸行因果各異性相應者謂諸行因果相稱性勢速者謂諸行流轉迅疾次第者謂諸行一一次第流轉性時者謂諸行展轉新新生滅性方者謂諸色行遍分齊性數者謂諸行等各別相續體相流轉性和合者謂諸行緣會性不和合者謂諸行緣乖性無爲者此有八種謂虛空非擇滅擇不動想受滅善法眞如不善法眞無記法眞如虛空者謂諸心心法所緣外色對治境界性非擇滅者因緣不會於其中閒諸行不起滅非離繫性擇滅者謂由慧方便有漏諸行畢竟不起滅而是離繫性不動謂離遍淨欲得第四靜慮於其中苦樂離繫性想受滅者謂離無所有處欲入滅盡定於其中閒不恒現行心心法及恒行一分心心法滅離繫性不善無記法眞如者謂於不善無記法中淸淨境界性復次如是五法復有三相應知一增益相二增益所起相三法性相增益相者謂諸法中遍計所執自性增益所起相者謂諸法中如其所應依他起自性法性相者謂諸法中圓成實自性如是已說一切界今當說頌曰

세계는 욕계, 색계 등과
그리고 삼천세계를 말한다.
016_0008_c_16L界謂欲色等
及與三千界
016_0009_a_01L
논하여 말한다. ‘세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욕계 등 삼계이고, 둘째는 삼천세계이다. 욕계 등 삼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욕계이니, 아직 욕망 경지의 온갖 번뇌를 여의지 못한 여러 온(蘊)의 차별을 말한다. 둘째는 색계이니, 이미 욕망 경지의 온갖 번뇌를 여읜 여러 온의 차별을 말한다. 셋째는 무색계이니, 물질ㆍ욕망 경지의 온갖 번뇌를 여읜 여러 온의 차별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삼계는 또한 다섯 가지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양상의 차별이고, 둘째는 추중(麤重)의 차별이며, 셋째는 방위ㆍ처소의 차별이고, 넷째는 수용의 차별이며, 다섯째는 임지(任持)218)의 차별이다. ‘양상의 차별’이란 다음과 같다. 욕계 중에서는 형색이 다양한 양상이고, 곱거나 깨끗하지 못한 양상이며, 갖가지 혼잡된 양상이다. 색계 중에서는 형색이 적은 양상이고, 곱고 깨끗한 양상이며, 갖가지 혼잡이 아닌 양상이다. 무색계 중에서는 비록 업으로 생긴 형색은 없지만 정(定)으로 생긴 형색이 있으며,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없는 것[無見無對]이다.
또한 욕계에는 괴로움의 느낌과 상응하는 양상이 있고, 성냄과 상응하는 양상이 있으며, 많은 수번뇌와 상응하는 양상이 있다.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괴로움의 느낌과 상응하지 않는 양상이 있고, 성냄과 상응하지 않는 양상이 있으며, 적은 수번뇌와 상응하는 양상이 있다.
‘추중의 차별’이란 다음과 같다. 욕계에서는 추중이 거칠고 손해입히는 것이며,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추중이 미세하며 손해입히는 것이 아니다.
‘방위ㆍ처소의 차별’이란 다음과 같다. 욕계는 아래의 방위에 있고, 색계는 위의 방위에 있으며, 무색계는 방위ㆍ처소가 없다.
‘수용의 차별’이란 다음과 같다. 욕계는 외부의 경계를 수용하고, 색계와 무색계는 내부의 경계를 수용한다.
‘임지(任持)의 차별’은 다음과 같다. 욕계에 매인 여러 온(蘊)은 4식(食)219)에 의지하여 머물고, 색계ㆍ무색계에 매인 여러 온은 3식(食)220)에 의지하여 머문다.
‘삼천세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소천세계(小千世界)221)이고, 둘째는 중천세계222)이며, 셋째는 대천세계223)이다. 하나의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을 1세계224)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1천의 세계 중에는 1천의 해와 달이 있고, 1천의 소미로산왕(蘇迷盧山王)225)이 있으며, 1천의 남섬부주(南贍部洲)226)가 있고, 1천의 동비제하주(東毘提訶洲)227)가 있으며, 1천의 서구다니주(西瞿陀尼洲)228)가 있고, 1천의 북구로주(北拘盧洲)229)가 있으며, 1천의 4대왕중천(大王衆天)230)이 있고, 1천의 삼십삼천(三十三天)231)이 있으며, 1천의 야마천(夜摩天)232)이 있고, 1천의 도사다천(覩史多天)233)이 있으며, 1천의 낙변화천(樂變化天)234)이 있고, 1천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235)이 있으며, 1천의 범세천(梵世天)236)이 있으니, 그것들을 합하여 첫번째인 소천세계라고 이름한다. 다시 1천의 소천세계를 두번째인 중천세계(中千世界)라고 하고, 다시 1천의 중천세계를 세번째인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이름한다.237)
무슨 인연으로 소천세계를 낮고 작은 것이라고 부르는가?238)
비유하면 마치 훌륭한 소[牛]에서 두 뿔을 잘라낸 것과 같아서 결함이 있기 때문에 낮고 작음이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이 범세천(梵世天) 이하는 그 안에 있는 소천세계가 위의 경지만 못하기 때문에 낮고 작음이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은 삼천세계는 3재(災)에 파괴되나니 화재, 수재, 풍재를 말한다.239) 재난에 다시 세 가지가 있다. 삼재의 정점은 제2 정려(靜慮), 제3정려, 제4 정려를 말한다.240) 그 제4정려의 여러 하늘은 본래부터 머물고 있는 궁전과 더불어 함께 생겨나고 함께 소멸된다.241) 또한 중간에 세 가지가 일어나는 겁이 있으니 이른바 기근ㆍ전염병ㆍ도병(刀兵)이다.242)
20중겁(中劫)243) 동안에 세간이 정식으로 파괴되고, 20중겁 동안에 파괴된 후 그 상태로 머물며, 20중겁 동안에 세간이 정식으로 형성되고, 20중겁 동안에 형성된 후 그대로 머문다.244) 이와 같이 합해서 80중겁이 있으며 이름하여 대겁(大劫)이라 한다.
비유하면 하늘에서 마치 수레바퀴만한 비가 내리는데, 끊임없이 허공으로부터 부어진다. 이와 같이 동방의 끝없는 세계가 끊임없이 혹은 형성되고, 혹은 파괴되며, 혹은 정식으로 파괴되고 혹은 파괴된 후에 머물기도 하며, 혹은 정식으로 형성된 후에 머문다. 이와 같이 나아가 시방세계가 그러하다.
이상과 같이 ‘세계’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제 ‘잡염’에 관하여 말하겠다.245)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08_c_17L論曰界有二種一欲等三界二三千世界欲等三界者一欲界謂未離欲雜衆煩惱諸薀差別二色界謂已離欲地雜衆煩惱諸薀差別三無色謂離色欲地雜衆煩惱諸薀差別如是三界復有五種差別應知一相差別二麤重差別三方處差別四受用差別五任持差別相差別者謂欲界中色多相不鮮淨相種種雜相界中色少相鮮淨相非種種雜相色界中雖無業所生色而有定所生無見無對又欲界中有苦受相應瞋恚相應相多隨煩惱相應相無色界中有苦受不相應相瞋恚不相應相少隨煩惱相應相麤重差別謂欲界中麤重麤而損害色無色界中麤重細而不損害方處差別者謂欲界居下方色界居上方無色界無方處受用差別者謂欲界受用外門境界無色界受用內門境界持差別者謂欲廛諸薀依四食住無色廛諸薀依三食住三千世界者一小千世界二中千世界三大千世謂一日月之所照臨名一世界是千世界中有千日千蘇迷盧山千南贍部洲千東毘提訶洲千西瞿陁尼洲千北拘盧洲千四大王衆千三十三天千夜摩天千睹史多千樂變化天千他化自在天千梵世合名第一小千世界復千小千世界名爲第二中千世界復千中千世界名爲第三大千世界何因緣故小千世界名爲卑小猶如特牛斷去兩角以缺減故名爲卑小如是梵世已下其中所有千世界不如上地名卑小如是三千世界三災所壞謂火風災復有三種三災之頂第二第三第四靜慮彼第四靜慮諸天法爾與所居宮俱起俱滅復有中三劫起所謂飢饉疫病刀兵二十中劫世閒正壞二十中劫壞已而住十中劫世閒正成二十中劫成已而如是合有八十中劫名爲大劫如天雨滴猶車軸無有閒斷從空而如是東方無邊世界無有閒斷或壞或有正壞或壞已住或有正或成已住如是乃至十方世界如是已說界雜染今當說頌曰

번뇌, 업, 생의 성품을
잡염의 양상이라고 알아야 하네.
016_0009_b_19L煩惱業生性
雜染相應知
016_0009_c_01L
논하여 말한다. 잡염246)의 성품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뇌잡염이고, 둘째는 업잡염(業雜染)이며, 셋째는 생잡염(生雜染)이다. 번뇌잡염247)이란 모든 번뇌와 수번뇌(隨煩惱)248)를 말함이니, 그것들을 합하여 번뇌잡염이라 이름한다.
번뇌249)는 대략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이고, 둘째는 변집견(邊執見)이며, 셋째는 사견(邪見)이고, 넷째는 견취(見取)이며, 다섯째는 계금취(戒禁取)이고, 여섯째는 탐(貪)이며, 일곱째는 진(瞋)이고, 여덟째는 무명(無明)이며, 아홉째는 만(慢)이고, 열째는 의(疑)이다.250)
혹은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견소단(見所斷)251)이고, 둘째는 수소단(修所斷)252)이다.
혹은 다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욕계계(欲界繫)253)이고, 둘째는 색계계(色界繫)254)이며, 셋째는 무색계계(無色界繫)255)이다.
또한 일곱 가지 뒤바뀐 행[顚倒行]이 있다. 첫째는 삿된 이해의 행이고, 둘째는 이해하지 못하는 행이며, 셋째는 이해함도 아니고 이해하지 못함도 아닌 행이고, 넷째는 삿된 이해에 집착하는 행이며, 다섯째는 그것256)의 원인이고 의지처인 행257)이고, 여섯째는 그것의 두려움이 생겨난 바인 행258)이며, 일곱째는 자연히 일어나는 행이다.
‘삿된 이해의 행’이란 이른바 살가야견, 변집견, 견취이다. 소지사(所知事)에 대해서 삿된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행’이란 이른바 무명이다.259) ‘이해함도 아니고 이해하지 못함도 아닌 행’이란 이른바 의(疑)이다. ‘삿된 이해에 집착하는 행’이란 이른바 견취, 계금취 및 모든 악견[見]에서 일으켜진 탐(貪) 등이다.260) ‘그것의 원인이고 의지처인 행’이란 고제(苦諦)ㆍ집제(集諦)를 보아서 끊어야 할 바를 말한다. ‘그것의 두려움이 생겨난 바인 행’이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를 보아서 끊어야 할 바를 말한다. ‘자연히 일어나는 행’이란 수소단(修所斷)261)과 견소단(見所斷)262)을 말한다. 견소단에는 1백 12의 번뇌가 있고,263) 수소단에는 1백 28의 번뇌가 있다.264)
이와 같은 번뇌잡염에는 갖가지 뜻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갖가지 명칭을 세운다. 이른바 결박[結]265), 묶음[縛]266), 수면(隨眠)267), 수번뇌(隨煩惱)268), 얽음[纏]269), 사나운 흐름[暴流]270), 멍에[軛]271), 취착[取]272), 계박[繫]273), 덮음[盖]274), 그루터기[株杌]275), 때[垢]276), 불태움[燒]277), 해침[害]278), 화살[箭]279), 소유(所有)280), 악행281), 샘[漏]282), 결핍[匱]283), 열뇌(熱惱)284), 투쟁285), 활활 타오름[熾然]286), 빽빽한 숲[稠林]287), 거리낌[拘㝵]288)인 이와 같은 따위의 뜻과 명칭의 차이이다.
업잡염(業雜染)289)은 혹은 번뇌로 인하여 생겨난 바이고, 혹은 번뇌를 원인으로 하고 선법(善法)을 돕는 것을 조건[緣]으로 하여 생겨난 바이다. 그 상응하는 바와 같이 삼계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신업, 어업, 의업이다. 이것은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업(思業)290)이고, 둘째는 사(思)에 의해 일으켜진 업[思所起業]291)이다. 이 업을 구별하면 또한 여러 종류가 있다. 욕계에 포섭되는 것을 복업, 복이 아닌 업이라 이름한다. 색계와 무색계에 포섭되는 것을 부동업292)이라 이름한다. 또한 인업(引業)293)이 있으니, 짓고 증장하여 능히 갖가지 유정세간과 기세간의 결과 및 이숙(異熟)을 이끄는 것이다. 또한 생업(生業)이 있으니, 앞에서 이끌어진 것을 도와서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생잡염(生雜染)294)은 번뇌와 업으로 인하여 태어나고, 태어남을 인하여 괴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괴로움에는 또한 많은 종류가 있나니 태장(胎藏)에서 핍박받는 괴로움,295) 늙음ㆍ병듦ㆍ죽음의 괴로움, 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추중행(麤重行)296)과 더불어 생장하는 괴로움,297) 자주 죽고 태어나는 괴로움, 온갖 괴로움이 생겨나는 괴로움이다. 이것을 생이라 이름한다.
016_0009_b_20L論曰雜染性有三種一煩惱雜染業雜染三生雜染煩惱雜染者謂一切煩惱及隨煩惱合名煩惱雜染惱者略有十種一薩迦耶見二邊執三邪見四見取五戒禁取六貪八無明九慢十疑或復二種一見所斷二修所斷或復三種一欲界繫二色界繫三無色界繫復有七種顚倒行一邪解行二不解行三非解非不解行四執邪解行五彼因依處行六彼怖生行七任運起行邪解行者所謂薩迦耶見邊執見邪見於所知起邪執故不解行者所謂無明解非不解行者所謂疑也執邪解行所謂見取戒禁取及於諸見所起貪等彼因依處行者謂見苦集所斷彼怖生行者謂見滅道所斷任運起行者謂修所斷見所斷見所斷有百一十二煩惱修所斷有十六煩惱如是見修所斷合有一百二十八煩惱如是煩惱雜染種種義差別故立種種名謂結隨眠隨煩惱暴流株杌害箭所有惡行鬪諍熾然火稠林拘㝵如是等義名差別業雜染者謂或因煩惱所生或因煩惱緣助善法所生如其所應三界所攝身業語業意業此復二種一思思所起此業差別復有多種欲界所攝名福非福無色界所攝名爲不復有引業謂作及增長能引種種有情世閒及器世閒果及異熟復有生業謂前所引助令生故生雜染者謂因煩惱及業故生因生苦苦復多種謂胎藏所迫苦老病死苦怨憎會苦愛別離苦求不得苦與麤重行俱生長苦數死生苦生諸難苦是名爲生
顯揚聖教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 : 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이다.
  2. 2)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 무상해탈(無相解脫), 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원문에는 ‘척(隻)’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아 ‘형(夐)’으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
  8. 8)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9. 9)『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0. 10)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1. 11)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2. 12)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 13)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4. 14)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5. 15)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6. 16)원문에는 ‘치(夂)’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구(久)’로 번역하였다.
  17. 17)원문에는 ‘양(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양(揚)’으로 번역하였다.
  18. 18)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19. 1)‘잘 가신[善逝]’은 범어 sugata의 번역이며 호거(好去)ㆍ묘왕(妙往)이라고도 한다. 여래 10호(號) 중의 하나이다. 부처님은 인위(因位)로부터 과위(果位)에 가는 것을 잘 하신 분이며, 여실히 피안(彼岸)에 가서 다시는 업력으로는 생사의 고해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참고로 말하면 여래십호란 부처님에게 있는 공덕상을 일컫는 열 가지 명호(名號)이며 구체적으로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이다.
  20. 2)우선 불보(佛寶)로서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의 삼신불께 귀의함을 나타낸다. 위 문구에서 선서(善逝)는 화신불을, 선설(善說)은 보신불을, 묘(妙)는 법신불을 수식한다. 화신불(化身佛)로 오신 석가모니불은 사바세계에서 중도(中道) 수행의 모습을 보이고 열반 경지를 잘 증득해 보이셨으며, 45년간 교화하다가 반열반의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에 ‘선서(善逝)’라고 칭하였다. 또한 아미타불 등 타방현재불(他方現在佛)인 보신불(報身佛)은 각각 정토에서 교화하고 계시기 때문에 ‘선설(善說)’로 표현하였다. 법신불은 제불(諸佛)의 당체(當體)로서 5법(열반ㆍ진여ㆍ4智)을 체성으로 하는 등 온갖 공덕법으로 장엄되어 있으면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이므로 한마디로 ‘묘(妙)’라 칭한 것이다.
  21. 3)부처님이 갖추신 4무외(無畏)의 덕을 가리킨다. 부처님에게는 열 가지 지혜의 힘[十力]이 있으므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그러한 무소외(無所畏)로서 ①일체지자(一切智者)로서의 자신감 ②모든 번뇌를 극복했다는 자신감 ③수행에 장애되는 길을 설할 수 있는 자신감 ④괴로움을 멸하는 길을 설할 수 있는 자신감의 네 가지를 든다.
  22. 4)여기서 류(流)는 폭류(暴流)의 줄임말로서 번뇌를 의미한다. 이에 ①견류(見流:삼계의 見惑) ②욕류(欲流:욕계의 모든 번뇌 중에서 見惑 16과 修惑 3과 枝末惑 10을 합한 29惑을 총칭) ③유류(有流:욕계ㆍ무색계에 있는 모든 번뇌의 貪과 慢에 각각 5종으로 합하여 20에다가 疑의 8을 합한 28가지 번뇌 총칭) ④무명류(無明流유:삼계의 무명)의 네 가지가 있다. 유정들이 이것에 표류하여 쉬지 않으므로 류(流)라고 한다.
  23. 5)귀의의 대상으로서 법보(法寶)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경전에 설해진 교법은 단순히 이론이 아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라거나 “응병여약(應病與藥)의 처방약이다.”라고 말하듯이, 수행에 의해 증득되어야 하며, 올바르게 행한다면 증득될 수 있다. 본문에서 “두려움 없고, 번뇌 없으며”는 두 가지 차원 즉 ①수행 과정 ②증득의 경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①6바라밀 등 갖가지 보살행을 3아승기겁이라도 실천해야 할 때 ‘두려워하지 말고’ 해야 한다. 또한 자성청정심이므로 다만 청정심을 가리우고 있는 객진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②증득의 경지는 모든 두려움이 없으며,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상태이다.
  24. 6)모니(牟尼, muni)는 높고 뛰어난 성자라는 뜻이다. 적묵(寂黙:번뇌를 가라앉힘) 등으로 의역(意譯)된다. 여기서는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25. 7)먼저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를 찬탄하고 예경한다.
  26. 8)미륵보살을 가리킨다. ‘크게 자비하신 분[大慈尊]’이라 한 것은 미륵(彌勒)의 범어인 Maitreya가 자씨(慈氏)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27. 9)3지(智:一切智, 道種智, 一切種智)의 하나로서, 부처님이 지니는 지혜이다. 모든 존재에 대하여 평등의 처지에서 다시 차별의 양상을 세밀히 알아내는 지혜이다. 참고로 말하면 3지(智) 중에서 일체지(一切智)는 모든 존재에 관하여 해괄적(該括的)으로 아는 지혜이고, 도종지(道種智)는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도(道)의 종별(種別)을 다 아는 지혜이며, 일체종지는 모든 존재에 관해서 평등의 양상에 즉(卽)하여 차별의 양상을 다시 정세(精細)하게 아는 지혜이다. 『대품반야경』 제1권ㆍ제21권,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7ㆍ제84에 의하면 이상의 삼지는 각각 성문ㆍ연각, 보살, 부처님의 지혜라고 한다.
  28. 10)현재 도솔천에 계신 미륵보살이 당래불(當來佛)로서 장차 석가모니 부처님을 이어서 사바세계에 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불교계 특히 법상종(法相宗)에서는 당래불인 미륵보살이 인도의 유가행파(瑜伽行派) 성립에 관여했다고 믿어왔다. 무착(無着)이 선정에 들어 도솔천으로 가서 미륵보살에게서 유가유식(瑜伽唯識)의 가르침을 받고 세상에 전하에 되었다는 것이다.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彌勒上生經ㆍ彌勒下生經ㆍ彌勒大成佛經)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인도 바라내국의 바라문 집안에 태어나 석존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석존보다 먼저 입멸(入滅)하여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하늘에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있다. 석존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면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한다고 한다. 그때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도하고 3회 설법함으로써, 일찍이 석존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29. 11)법상종에서는 당래불(當來佛)인 미륵보살께서 지상에 내려와서 무착(無着) 등 대중에게 『유가사지론』의 핵심을 설하셨다고 말한다. 그 경위는 『바수반두법사전(婆藪槃豆法師傳)』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大正藏』 50, p.188下). 무착(無着)이 선정 중에 도솔천의 미륵존께 가서 대승 공관(空觀)과 유가유식(瑜伽唯識)의 교의를 가르침 받았으며, 아유타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전수받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많았으나 믿는 이가 별로 없자, 무착은 미륵존께서 직접 염부제(閻浮提)에 와서 대승의 유식교의를 해설해주기를 발원했다. 그의 간절한 발원을 들은 도솔천의 미륵존께서는 4개월 동안 밤마다 아유타국 설법당에 내려와서 『십칠지론(十七地論)』(『유가사지론』의 「본지분(本地分) 」) 을 설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역(漢譯) 대장경에 『유가사지론』의 저자에 관하여 ‘미륵보살설(彌勒菩薩說)’이라 하여 ‘~조(造)’가 아닌 ‘~설(說)’로 되어 있다.
  30. 12)이 저술의 제목을 『현양성교론』이라 한 까닭을 말한다. 여기서 ‘성인의 가르침[聖敎]’이란 미륵보살이 말씀하신 『유가사지론』을 가리키며, 이 논서가 100권의 분량으로 방대하므로 그 중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렸으므로 ‘현양(顯揚)’이라 이름한 것이다.
  31. 13)11품 중에서 제1 섭사품(攝事品)에서는 이들 9사(事)의 내용을 개별적으로 설명한다.
  32. 14)이하 9사(事) 중에서 ‘일체’에 관하여 심왕법ㆍ심소법ㆍ색법ㆍ불상응행법ㆍ무위법의 순서로 설명한다. 여기서 ‘일체’는 ‘일체법(一切法)’ 즉 현상계(또는 본질계를 포함)의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참고로 말하면 여기서의 ‘법’은 존재, 존재의 기본 요소를 의미한다. 인도 종교사상계에서는 일찍부터 모든 존재에 대한 분류법이 행해졌다. 이 세계 삼라만상의 일체 존재들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연구한 까닭은 보편적인 영원한 법칙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 문제는 곧 ‘일체란 무엇인가?’와 그것들은 ‘오직 무엇으로부터 생겨났는가?’라는 주제로 요약된다. 석존께서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였다. 단, 석존은 모든 존재를 인간의 인식을 중심으로 파악하여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말씀하였다. 『아함경』 등에서 말씀한 유위법(有爲法)ㆍ무위법(無爲法), 유루법(有漏法)ㆍ무루법(無漏法), 그리고 이른바 12처(處)ㆍ18계(界)ㆍ5온(蘊)의 교설도 이런 맥락에서 설해진 것이다.
  33. 15)석존의 교설 중에서 보살을 위해 설한 육바라밀 등의 교설을 보살장이라 부른다.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12권에 나오는 말이다.
  34. 16)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 아비달마불교에서는 일체법을 색법(色法, 11가지), 심왕법(心王法, 1가지), 심소법(心所法, 46가지),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14가지), 무위법(無爲法, 3가지)의 5위(位) 75법으로 분류해서 설명했다. 법상생기(法相生起)의 순서에 있어서 색본심말(色本心末)의 입장이다. 우리의 심식작용은 5근(根)ㆍ오경(5境)의 색법(色法)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고, 그것에 의탁해서 비로소 일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원리에 근거하여 심본색말(心本色末)의 입장에서 심왕법(8가지), 심소법(51가지), 색법(11가지), 불상응행법(24가지), 무위법(6가지)의 순서로 5위 100법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장(菩薩藏)을 총섭한다는 것은, 대승불교에서의 일체법에 대한 관찰은 일체유심조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순서로 말하기 때문이다.
  35. 17)무착보살이 지은 『현양성교론송』을 가리킨다. 인도불교에서는 대체로 먼저 『~송(頌)』을 짓고, 다음에 그에 대한 장행석(長行釋)을 저술하였다. 예를 들면 『구사론송(俱舍論頌)』이 먼저 있었고 다음에 『구사론』이 제작되었다. 따라서 ‘게송으로 말한다.’가 아니라 ‘게송에서 말한다.’로 번역해야 한다.
  36. 18)이하 5위법(位法) 중에서 첫 번째로 심왕법에 관하여 아뢰야식ㆍ오식ㆍ의(意)ㆍ의식의 순서로 설명한다. 본문에서 ‘심(心)’은 심법(心法) 즉 심왕법(心王法)의 준말로서, 우리의 정신구조에서 식별작용의 주체를 말한다. 이에 유식학에서는 8식(識)을 거론한다.
  37. 19)『아함경』 등에서는 인식의 주체로서 안식(眼識) 등의 6식을 말할 때도 있고 심(心)ㆍ의(意)ㆍ식(識)으로 설명할 때도 있다. 전자는 6경(境)과의 관계에서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면의 정신작용만을 가리킬 때이다. 유식학에서는 심왕법으로서 8식(識)을 거론한다. 유식학의 팔식과 『아함경』 등에서 말하는 심ㆍ의ㆍ식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심(心, citta)은 ‘집기(集起)’의 뜻이므로 제8 아뢰야식을 가리킨다. 제8식이 모든 종자를 저장하고(集), 그 종자가 성숙하여 현행되기(起) 때문이다. 의(意, manas)는 ‘사량’의 의미이므로 곧 제7 말나식이다. 제7식은 의식의 저변에서 항상 나ㆍ내것이라는 분별 사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식(識, vijñāna)은 ‘식별’의 뜻이므로 곧 6식에 해당된다. 6식은 6경을 식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심왕법을 말하면서 심ㆍ의ㆍ식으로 설명한 것은 『아함경』 등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38. 20)여기서의 식(識)은 범어 vijñāna의 번역어로서 ‘식별작용’ ‘식별작용을 지닌 주체ㆍ당체’를 의미한다. 안식(眼識) 등 팔식의 경우에 사용된다. 참고로 말하면 ‘유식(唯識)’이라 할 때의 식(識)의 범어는 vijñapti이다. 이것은 ‘나누어(분별하여) 알게 된 것’ 즉 대상이 실제 인식상황 속에서 객관적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로서, 활동태로서의 식 곧 ‘표상식(表象識)’이다.
  39. 21)정신세계의 가장 심층에서 작용하는 식으로서, 현대 서구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無意識)의 영역에 해당된다.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ㆍ이숙식ㆍ종자식ㆍ근본식ㆍ장식(藏識)ㆍ제8식 등으로 부르는데, 아뢰야식이란 명칭이 일반적이다. 아뢰야(阿賴耶)는 범어 ālaya의 음역어로서 저장ㆍ집착ㆍ무몰(無沒)이란 뜻이다.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제7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해탈에 이를 때까지는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기’ 때문에 아뢰야식이라 부른다. 참고로 말하면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 부르는 이유는, 아다나(ādāna)가 ‘유지, 보존’의 뜻이고, 이 식이 종자와 신체를 유지 보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종자식(種子識)이라 함은 능히 모든 종자를 저장 유지하여 잃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일체종자식이라고도 한다. 근본식(根本識)이라 함은 칠식이 윤회과정에서 이 식의 등류습기(等流習氣)로부터 전변 생기되며, 이후 종자를 매개로 상호인과의 관계에서 마치 파도와 바닷물의 관계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식(藏識)이라 함은 능히 모든 종자를 저장하고, 훈습을 받아들이며, 경험세계 속에서 그것을 발생한 아뢰야식이 원인으로서 내재되고, 말나식이 자아로 착각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40. 22)제8식을 이숙식(異熟識, vipāka-vijñāna)이라고도 부른다. 그 이유는 이 식이 선ㆍ악업 종자의 세력에 의해 초감(招感)된 총보(總報)의 양상으로서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을 띠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기성을 띠므로 아뢰야식은 선업이나 악업의 갖가지 종자를 모두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이숙(異熟, vipāka)이란 ‘과보[報]’라는 뜻인데, 선(善)이나 악의 업인(業因)에 의해 초래된 결과는 선ㆍ악이 아닌 무기(無記)이므로 이숙(異熟)이라 이름한다. 선업에 의해 낙과(樂果)가 초래되고, 악업에 의해 고과(苦果)가 오지만, 일단 결과가 초래된 뒤에는 그것은 무기성을 띠기 때문이다. 즉 결과는 새로운 출발이 된다.
  41. 23)승의근(勝義根)을 가리킨다. 5근(根: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을 색근(色根)과 소의근(所依根)으로 나누고, 전자를 승의근이라 하고, 후자를 부진근(扶塵根)이라 부른다. 승의근은 ‘뛰어난 의미의 감각기관’이란 뜻이다. 미세청정한 물질(rūpa-prasāda)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신경(神經)과 신경전달물질을 가리킨다. 감각기관(根, indriya)은 식을 일으키고 대상을 파지하는[發識取境] 기능을 하는데, 승의근은 ‘발식(發識’의 역할을 한다.
  42. 24)부진근(扶塵根)을 말한다. 감관 중에서 안구ㆍ귀 등 눈에 보이는 기관이다. 부진근이라 이름한 것은, 그 체(體)가 구체적으로 드러난[麤顯] 4진(塵)으로 이루어진 신체적인 감관으로서 승의근을 부호조성(扶護助成)하는 작용을 가졌기 때문이다.
  43. 25)여기서 집수(執受, upātta)는 ‘감수(感受)ㆍ유지작용’이란 뜻이다. ‘집(執)’은 섭(攝)ㆍ지(持)의 뜻이 있고, ‘수(受)’는 영(領)ㆍ각(覺)의 뜻이 있어서, 대상을 접촉하여 그것을 섭지(攝持)해서 잃어버리지 않으며,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지각하는 작용이다. 원래 집수의 범어인 upātta는 ‘받아들이다ㆍ얻다ㆍ잡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upā-√dā의 과거분사로서 ‘받아들여진 것ㆍ감수(感受)된 것ㆍ유지되는 것’이란 뜻인데, 바뀌어서 감각기관[五根] 또는 신체[有根身]를 가리키기도 한다. 감각기관ㆍ신체ㆍ종자가 아뢰야식에 의해서 그 기능이 ‘보존ㆍ유지된다’는 점에서 ‘집수’는 곧 신체와 종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식삼십송』에서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와 기세간의 요별을 갖네[不可知執受處了]”의 경우이다.
  44. 26)아뢰야식이 능히 신체[有根身]와 종자를 유지 보존[執受]하고, 또한 그것들을 대상으로 해서 인식작용을 함을 말한다. 아뢰야식의 인식대상은 종자ㆍ신체ㆍ기세간(器世間)이며, 이 식이 심층식(深層識)이지만 어디까지나 식(識)이므로 요별작용을 한다. 다만 그 작용이 매우 미세하여 범부는 감지(感知)하기 어렵다.
  45. 27)아뢰야식은 체성이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으로서 한 부류로 이어지고, 그 안에 저장된 업종자의 세력에 의해서 그 흐름이 상속하여 단절되지 않는다. 이것을 견주성(堅住性)이라 하며, 이 식이 능훈식(能熏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네 가지 속성(堅住性ㆍ無記性ㆍ可熏性ㆍ和合性) 중의 하나이다.
  46. 28)여기서 ‘잘 알 수 없다[不可了知]’는 것은 구체적으로 아뢰야식의 작용[行相]과 대상[所緣]을 명석하게 지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후 세친(世親) 논사의 『유식삼십송』에서는 이 부분을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의 요별을 갖네[不可知執受處了]”로 설명한다. 아뢰야식은 심층심리로서, 그 인식작용이 일반인들이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미세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웬만큼 총명한 사람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미세(微細)하다’고 표현된다. 그리고 아뢰야식의 대상은 종자ㆍ신체ㆍ자연계[器世間, 處]인데, 종자는 ‘특수한 정신적인 힘[功能差別]’이므로 말할 것도 없고, 신체[有根身]의 경우도 알기 어렵다. 여기서 근(根)은 미세하고 투명한 물질인 승의근(勝義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측량하기 어려우므로, 심층식인 아뢰야식이 자연계를 대상으로 하여 끊임없이 미세한 인식작용을 하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감지되기 어렵다.
  47. 29)범어 bhājana-loka의 번역으로서 기세간(器世間)ㆍ기계(器界)ㆍ기(器)라고도 하며 처(處, pratiṣṭhā)라고도 한다. 자연계 안에서 유정(有情)들이 살아가는 것을 하나의 그릇에 비유해서 기세간이라고 한다.
  48. 30)아뢰야식의 체성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므로 오직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즉 사수(捨受)와 상응한다. 본문에서 ‘등(等)’이라 한 것은, 삼성 외에 심소 중에서 5변행심소(遍行心所:觸ㆍ作意ㆍ受ㆍ想ㆍ思)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49. 31)아뢰야식의 체성은 무부무기(無覆無記)이다. 선(善)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것을 무기라고 한다. 선 등으로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기에는 무부무기와 유부무기가 있다. 무부무기는 정무기(淨無記)라고도 하듯이 순수한 무기를 뜻한다. 성도(聖道)를 덮어 가리거나 방해하거나 마음을 부정(不淨)하게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이 아뢰야식의 체성은 무부무기성이므로 선(善)ㆍ불선 등 갖가지 종자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50. 32)아뢰야식이 근본식으로서 7식의 의지처가 됨을 가리킨다. 8식을 존재구조면에서 전식(轉識)과 근본식(根本識)으로 나눈다. 안식 등 7식을 전식이라 하고, 아뢰야식을 근본식이라 한다. 전식은 ‘전변생기(轉變生起)된 식’ 즉 윤회의 주체인 아뢰야식의 등류습기(等流習氣)로부터 전변 생기된 식이란 뜻이다. 또한 근본식이란 칠식의 근본이 되는 식이란 뜻이다. 전식(7식)과 근본식(아뢰야식)의 관계는 파도와 바닷물로 비유된다. 마치 파도가 바닷물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듯이, 전식은 그 생기의 원인인 근본식에 의지한다. 전식과 근본식은 다음과 같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①식의 구기성(俱起性)이다. 오식이 작용할 때는 항상 의식ㆍ말나식ㆍ아뢰야식이 함께 생기한다. ②8식은 종자를 매개로 해서 상호인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7식의 인식 결과가 근본식에 종자로 저장되고, 7식의 작용은 근본식에 저장된 종자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51. 33)아뢰야식에는 선업ㆍ악업의 갖가지 종자가 저장되어 있으며, 근본식이므로 7전식(轉識)의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악업 종자의 세력에 의해서 7전식의 염오성을 증장하기도 하고 청정성을 손감하기도 한다.
  52. 34)박가범(薄伽梵)은 산스끄리뜨어 Bhagavat의 음역어로서 바가바(婆伽婆)ㆍ바가범(婆伽梵)이라고도 한다. 세존ㆍ중우(衆祐)라고도 의역(意譯)한다. 박가범에는 유덕(有德)ㆍ자재ㆍ길상ㆍ존귀ㆍ치성(熾盛)ㆍ단엄(端嚴)ㆍ명칭 등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신역(新譯)에서는 의역하지 않았다. 현장의 5종불번설(種不飜說) 가운데 하나이다.
  53. 35)결(結, bandhana 또는 saṁyojana)은 번뇌의 이명(異名)이며 결사(結使)라고도 한다. 번뇌가 유정(有情)을 미혹의 경계에 결박함을 나타낸다. 애결(愛結)은 9결(結:愛ㆍ恚ㆍ慢ㆍ無明ㆍ見ㆍ取ㆍ疑ㆍ嫉ㆍ慳) 중의 하나로서 애(愛)를 탐하는 번뇌이다. 사랑을 탐하면 사람을 속박하게 되므로 결(結)이라 한다.
  54. 36)5온(蘊:色ㆍ受ㆍ想ㆍ行ㆍ識)을 가리킨다. 아뢰야식에는 일체법의 종자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55. 37)유취(有取)는 ‘윤회존재[有]에 취착함[取]’이란 뜻이다. 이 식에 온갖 업종자가 저장되어 그 과보로 생사세계에 윤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면 부파불교의 상좌부(上座部)나 분별론자들은 윤회의 주체로서 유분식(有分識)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분(分)은 원인이란 뜻이다. 3유(有: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존재)에 나게 하는 근본원인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다.
  56. 38)아공법유설(我空法有說)을 주장하는 부파교단을 가리킨다.
  57. 39)아뜨만(ātman)을 가리킨다. 아뜨만은 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을 띠는 인격적 실체를 가리킨다.
  58. 40)『해심밀경(解深密經)』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大正藏』 16, p.692下), “阿陀那識甚深細 一切種子如瀑流 我於凡愚不開演 恐彼分別執爲我”. 아뢰야식에 관한 경전상의 유명한 게송이다.
  59. 41)아뢰야식의 등류종자(等流種子)로부터 전변생기(轉變生起)함을 말한다. 안식~말나식의 칠식을 전식(轉識)이라 이름한다. 그 이유는 중유(中有:죽는 순간의 존재인 死有로부터 태어나는 순간의 존재인 生有까지의 존재)의 상태에서는 칠식이 아뢰야식에 등류습기(等流習氣)의 상태로 저장되어 있으며, 새로운 생을 받았을 때 이 습기로부터 전변 생기하기 때문이다.
  60. 42)여기서의 ‘색(色)’은 ‘물질’이란 뜻이 아니고, 안식의 대상으로서의 색경(色境)이다. 색(色, rūpa)에는 색법으로서의 ‘물질’이란 뜻도 있고, 안식의 대상인 색경(色境)으로서의 ‘빛깔ㆍ형태’의 의미도 있다. 그런데 색경을 ‘빛깔’로만 번역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색경에는 빛깔[顯色]과 형태[形色]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구분이 필요한 경우 번거롭더라도 ‘빛깔ㆍ형태’로 번역하기로 한다.
  61. 43)12(處) 가운데 안근처(眼根處)를 가리킨다. 십이처설의 안근에는 감관으로서의 안근(眼根)뿐만 아니라 안식(眼識)도 포함하는 용어이다.
  62. 44)5변행심소(遍行心所) 중의 작의(作意) 심소를 가리킨다.
  63. 45)이식(耳識)부터 신식(身識)까지는 안식에 대한 설명과 같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식의 경우 “이식(耳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이근에 의지하여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한다. 소리의 경계를 반연하여 분별함을 체성으로 삼는다”가 생략된 것이다
  64. 46)이식부터 신식까지 감관과 경계를 모두 말한다면 앞의 안식의 경우와 같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식의 경우는 “박가범께서 ‘내부의 이처(耳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성처(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가 바로 생기한다.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의 이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또한 ‘귀와 소리를 연(緣)으로 하여 이식이 생겨난다’고 말한다”는 내용이 생략된 것이다.
  65. 47)제7 말나식을 가리킨다. 말나식(末那識)은 의식의 저변에서 작용하며, 나ㆍ내것이라는 작용을 일으키는 심층적 자아의식이다. 말나(末那)는 범어 manas의 음역으로서 사량(思量)이란 뜻이다. 사량작용이 강한 것이 이 식의 특성이므로 말나식이라 이름한다.
  66. 48)의(意) 즉 제7 말나식의 의지처[所依]와 인식대상[所緣]을 밝히는 내용이다. 전식(轉識)인 말나식은 근본식인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며, 동시에 아뢰야식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을 자아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나ㆍ내것’이라는, 본능과도 같은 집요한 자아의식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의식이 없을 때도 의식의 저변에서는 이런 자아의식이 작동된다. 이렇게 강하고 집요한 자기 집착심을 갖게 되는 근본원인은, 바로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고 또한 인식대상으로 함으로써 자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아(自我, ātman)란 ‘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을 띠는 인격적 실체를 말한다. 그런데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끊임없이 그 흐름이 상속된다. 그 안에 저장된 업종자의 세력 때문이다. 그러한 아뢰야식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말나식의 측면에서 볼 때, 아뢰야식은 ‘항상되고[常] 유일한 것[一]’으로 착각된다. 또한 아뢰야식은 근본식으로서 칠식을 비롯해서 모든 현상적 존재가 그것을 의지처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주재’한 것으로 오인된다. 말나식의 측면에서는 아뢰야식이 그런 속성을 띠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자아로 착각하여 ‘나’ ‘내것’이라는 자아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이긴 하지만, 악업의 종자도 저장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가아(假我)의 속성이지 진아(眞我)가 아니다.
  67. 49)말나식은 아치(我痴)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의 네 가지 근본번뇌와 상응한다. 말나식은 대상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왜곡되게 인식하는 ‘이기성(利己性)의 제2 능변식(能變識)’이다.
  68. 50)심왕과 심소는 서로 상응관계에 있다.
  69. 51)원래 인도 유식논서에서 이 식의 명칭은 ‘의(意)라 이름하는 식’(manonāma-vijñāna)인데, 중국에서 불전을 번역할 때 의역(意譯)하면 ‘의식(意識)’이 되어 제6 의식과 명칭이 혼동되므로 음역어를 사용해서 ‘말나식’으로 부른 것이다. 또는 본문과 같이 ‘의(意)’라 하기도 한다.
  70. 52)6식은 식별작용을 하므로 모두 의지처로서의 감관[所依根]을 갖는다. 안식에 있어서 안근이 있음과 마찬가지로 의식에 있어서도 의근을 거론한다. 그런데 이 의근(意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비달마불교 시대에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말나식 이론 성립의 한 계기가 되었다. 설일체유부 등에서는 의근이란 ‘찰나 생멸하는 식의 흐름 속에서 전찰나의 6식(無間滅意)’을 의미했다. 유식학파에서는 제7 말나식이 있음으로 해서 의근이 있게 되고, 이 의근을 의지하여 의식이 생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71. 53)의식의 대상은 법경(法境)으로서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온갖 존재[法]를 대상으로 한다. 외부의 감각대상뿐만 아니라 감관을 초월한 대상이나 내면의 정신세계도 인식대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것과 공통되는 것을 공법(共法)이라 하고, 다른 것과 공통되지 않은 것을 불공법(不共法)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산하대지(山河大地) 같은 것은 공법이고, 자기의 신체ㆍ정신과 같은 것은 불공법이다. 좀 더 구분하면 산하대지 같은 것은 공중(共中)의 공(共)이고, 자기의 가옥ㆍ정원과 같은 것은 공통되면서 실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에 한해서 수용하므로 공중불공(共中不共)이다. 또한 개인의 신체와 같은 것은 불공이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수용하는 것이므로 불공중공(不共中共)이며, 개인의 정신 같은 것은 불공중불공(不共中不共)이다.
  72. 54)이하 5위법(位法) 중에서 심소법에 관하여 변행심소 5가지, 별경심소 5가지, 선심소 11가지, 번뇌심소 6가지, 수번뇌심소 20가지, 부정심소 4가지를 설명한다. 심소유법을 흔히 줄여서 심소법(心所法), 심소(心所)라고 부른다. ‘심리작용’을 의미한다. ‘심소(心所)’에서 ‘소(所)’는 ‘소유(所有)’의 준말이며, 심왕에 종속되어 늘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정신세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식별작용 이외에 갖가지 심리작용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유식논사들은 인간의 정신현상을 분석 해명하는 데 아비달마교학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정신세계를 식별작용의 주체[心王]와 그에 수반되는 심리작용[心所]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심왕(心王, citta)은 정신작용의 주체로서 구체적으로 8식(識)을 말한다. 심소(心所, caitta)는 심왕에 종속된 심리작용이다. 유식학에서는 모두 51가지 심소를 거론한다.
  73. 55)정신작용의 주체라는 뜻으로 심왕이라 이름한다. 구체적으로 8식(識)을 가리킨다.
  74. 56)심왕과 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相應, samprayukta)하여 함께 생기[俱起]한다. ‘상응’이라 함은 심왕과 심소가 의지처[所依]ㆍ인식대상[所緣]ㆍ시간을 같이 하여 작용함을 말한다. 즉 동일한 감각기관에 의지하여(所依), 동일 대상을(所緣) 동일한 순간에(時) 인식한다. 심소는 비록 심왕과 자체를 달리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왕에 종속된 요소로서 심왕에 수반되어 작용한다. 둘은 마치 국왕과 신하의 관계와 같다. 8식과 51심소의 상응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뢰야식에는 5변행심소가 상응한다. 말나식에는 5변행심소, 4번뇌심소, 수번뇌심소 중의 혼침ㆍ도거(掉擧)ㆍ불신ㆍ해태(懈怠)ㆍ방일ㆍ실념(失念)ㆍ산란ㆍ부정지(不正知), 별경심소 중의 혜(慧) 심소의 18심소가 상응한다. 의식에는 모든 심소가 상응할 수 있다. 오식에는 5변행심소, 5별경심소, 선심소 11, 번뇌심소 중의 탐ㆍ진ㆍ치, 수번뇌심소 중의 무참ㆍ무괴ㆍ도거ㆍ혼침ㆍ불신ㆍ해태ㆍ방일ㆍ실념ㆍ산란ㆍ부정지 심소 등 34심소가 상응한다. 심왕과 심소의 작용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심왕은 대상에 대하여 오직 전체적인 모습[總相]을 취하고, 심소는 (總相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모습들[別相]까지 취한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또한 심소는 대상에 대하여 고(苦)ㆍ락(樂)ㆍ사(捨) 등의 감정을 일으키고, 대상을 선택하며, 선ㆍ악 등의 업을 짓게 한다.
  75. 57)변행심소(遍行心所, sarvatraga-caitta)는 팔식에 언제나 상응하여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며, 구체적으로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를 말한다. ‘변행(遍行)’이라 이름하는 이유는, 이들 심소가 선ㆍ악ㆍ무기의 삼성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一切性], 삼계구지(三界九地) 어디에서나 작용하고[一切地], 유심(有心)ㆍ무심(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며[一切時], 언제나 변행의 5심소는 함께 일어나기[一切俱] 때문이다.
  76. 58)『유가사지론』이나 『현양성교론』은 초기 유식논서이므로 5변행심소를 말할 때 작의가 먼저 열거된다. 『아함경』 등에서 예를 들면 “내부의 안처(眼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색처(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作意)가 바로 생기한다” 등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후 세친(世親)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도 작의가 먼저 열거되다가, 『유식삼십송』 부터는 촉(觸)을 먼저 든다.
  77. 59)별경심소(別境心所, viniyata-caitta)라고 이름하는 이유는, 대상이 ‘특별한 것’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다섯 가지 심소의 대상은 특별한 것이지 모든 것은 아니다. 대상 인식과 관련하여 ‘지향성’의 속성을 띤다. 대상에 따라 하나 둘 내지 다섯 가지가 구기(俱起)한다.
  78. 60)선심소(善心所, kuśala-caitta)는 심왕(心王)의 적절한 순간에 생기(生起)하는 보편적으로 착한 심소들이다. 이에 신(信)ㆍ참(慙)ㆍ괴(愧) 등 11가지 심소가 있다.
  79. 61)번뇌심소(煩惱心所, kleśa-caitta)는 보편적으로 악한 심리작용으로서 심왕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하여 생사윤회의 고해(苦海)에 잠기게 한다. 이에 탐(貪)ㆍ진(瞋)ㆍ치(痴)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의 여섯 가지가 있다.
  80. 62)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upakleśa-caitta)는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같은 부류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심소이다. 이에 분(忿)ㆍ한(恨) 등 20가지가 있다. 수번뇌심소는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근본번뇌심소에 의해 이끌려지는데, 탐(貪)ㆍ진(瞋)ㆍ치(痴)의 근본번뇌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진다. 수행에서 3독심(毒心)을 끊으라고 경책(警策)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 분(忿)ㆍ한(恨)ㆍ질(嫉)ㆍ뇌(惱)ㆍ해(害)의 심소는 진(瞋)의 심소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지고, 간(慳)ㆍ교(憍)는 탐(貪)을, 부(覆)ㆍ광(誑)ㆍ첨(諂)은 탐(貪)ㆍ진(瞋)을, 방일(放逸)ㆍ해태(懈怠)는 탐ㆍ진ㆍ치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진다. 특히 진(瞋)의 심소에서 이끌려지는 번뇌가 많음을 알 수 있다.
  81. 63)부정심소(不定心所, aniyata-caitta)는 그 체성(體性)이 선(善)도 아니고 염오(染汚)도 아니며, 선ㆍ악ㆍ무기 3성(性)의 모든 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심소라고 부른다. 이에 회(悔) 등 네 가지가 있다.
  82. 64)‘악작’이 아니라 ‘오작’으로 읽어야 한다. ‘지은 바를 싫어함’. 회(悔)라고도 하듯이 후회ㆍ뉘우침의 뜻이기 때문이다.
  83. 65)작의(作意, manasikāra) 심소는 심왕ㆍ심소를 일깨워서 대상에 인도하고 주의하게 하는 작용(힘ㆍ능력)이다. 이른바 식의 ‘지향성(指向性)’은 이것에 근거한다. 참고로 말하면 작의(作意)란 ‘경각(警覺)’이란 뜻이다. 이 경각에는 종자경각과 현행경각이 있다. 종자경각(種子警覺)은 작의의 종자가 다른 심왕ㆍ심소의 종자를 경각하여 현행시키는 것을 말한다. 현행경각(現行警覺)은 작의가 현행하여 다른 심왕ㆍ심소의 현행을 경각시켜서 인식대상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84. 66)작의 심소는 능히 심왕을 경각(警覺)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하고, 인식대상[所緣境] 쪽으로 심왕을 이끄는 것을 업으로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체성[體]은 직접적인 작용을, 업용[業]은 간접적인 작용을 가리킨다. 이하 심소의 해설에 있어서 모두 이 체성과 업의 두 작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85. 67)심왕과 작의 심소를 가리킨다.
  86. 68)촉(觸, sparśa) 심소는 “근경식삼사화합촉(根境識三事和合觸)”, 즉 감관ㆍ대상ㆍ식의 세 요소가 화합하는 곳에서 생기(生起)하는 심리작용이다. 하나의 인식이 성립됨에 있어서 최초의 순간이다. 심왕ㆍ심소로 하여금 대상에 접촉하게 하며, 수(受)ㆍ상(想)ㆍ사(思) 등의 의지처[所依]가 된다. 그런데 ‘촉’의 정확한 의미는 ‘부딪침’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3능변식(能變識)의 틀 안에서 인식하므로 일종의 ‘부딪침’의 현상이 있게 된다.
  87. 69)세 가지는 감각기관[根]ㆍ대상[境]ㆍ식(識)을 가리킨다. 이 셋이 각각 별도로 있어서는 어떤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며, 셋이 화합하여 비로소 각자의 작용을 현현할 수 있고, 뛰어난 작용을 일으켜서 촉 심소를 생겨나게 한다. 촉은 셋의 화합을 강화해서 대상에 접촉하게 한다. 촉 심소가 없으면 심왕ㆍ심소가 화합해서 하나의 대상에 접촉하지 못한다. 즉 촉 심소는 셋의 화합을 원인으로 하면서, 셋의 화합을 결과로 한다. 이처럼 원인ㆍ결과의 양 측면에서 촉을 세 가지의 화합이라고 말한다.
  88. 70)여기서 ‘분별’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량분별에서의 분별이 아니라 ‘상사(相似)’라는 의미이다. 분별 즉 상사라 함은, 세 가지(根ㆍ境ㆍ識)의 화함된 상태와 비슷하게 되고, 셋의 화합으로써 촉을 생겨나게 한 것과 비슷하게 수(受) 등을 일으키는 의지처가 되는 작용을 가리킨다.
  89. 71)촉(觸)이 수(受)를 이끌어내는 것이 다른 심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3권ㆍ제55권, 『성유식론』 제3권 등에서는 촉이 수(受)ㆍ상(想)ㆍ사(思)의 의지처[所依]가 된다고 말한다.
  90. 72)육근ㆍ육경ㆍ육식의 세 요소의 화합에 의해 생기(生起)하는 안촉ㆍ이촉ㆍ비촉ㆍ설촉ㆍ신촉을 가리킨다. 이하 수(受)ㆍ상(想)ㆍ사(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본문에서의 신(身, kāya)은 ‘모임’이란 뜻으로서 말의 어미에 붙여서 복수(複數)를 나타낸다.
  91. 73)수(受, vedanā) 심소는 느낌ㆍ감수(感受) 작용(힘ㆍ능력)이다. 받아들이는 것[領納]을 체성으로 하고, 애착을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심왕으로 하여금 대상에 따라 수순(隨順)ㆍ거슬림[違逆]ㆍ수순도 아니고 거슬림도 아님[非順非違] 중 어느 하나를 취하도록 한다. 여기에 괴로움ㆍ즐거움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님[捨]의 3수(受)가 있다. 또는 5수(受)라 하여 고수(苦受), 낙수(樂受), 사수(捨受), 우수(憂受), 희수(喜受)를 들기도 한다.
  92. 74)12연기(緣起)에서 수(受)를 연(緣)으로 하여 애(愛)가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93. 75)상(想, saṃjñā) 심소는 ‘표상(表象) 작용’ ‘개념화 작용’을 말한다. 대상에 대하여 형상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갖가지 명칭을 붙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즉 ‘취상(取像)’ 즉 대경(對境)의 모습이나 언어로 표현되는 것 등을 마음에 잡아서 사취(寫取)ㆍ구화(構畵)하고 명칭을 붙이는(언어와 일치할 수 있는) 개념화 작업을 한다. 수(受) 다음에 일어난다.
  94. 76)사(思, cetanā) 심소는 ‘조작(造作)’의 의미로서 ‘의지(意志) 작용’을 말한다. 심왕을 작용하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선품(善品) 등에 대해서 심왕을 작용하게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심왕ㆍ심소로 하여금 대상에 대하여 선ㆍ악ㆍ무기 등의 마음 작업을 일으키게 하여 업도(業道)의 근원이 된다.
  95. 77)이하 여섯 가지 별경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욕(欲, chanda) 심소는 ‘욕구’ 즉 어느 사물, 특히 좋아하는 대상을 희구하는 욕구의 심리작용이다. 특히 선욕(善欲)은 바른 정진[正勤]의 작용을 일으키는 소의(所依)가 된다.
  96. 78)승해(勝解, adhimokṣa) 심소는 대경(對境) 특히 좋아하는 것을 확실하게 선택하는 심리작용이다. 인가(認可) 결정하는 지적인 작용이다. 이렇게 결정되지 않은 대상에는 승해 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교시(敎示)ㆍ도리ㆍ선정수증(禪定修證) 등을 선택 결정하고, 반대 입장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97. 79)염(念, smṛti) 심소는 ‘기억’ 즉 이전에 반복적으로 받아들인 대상을 심왕에 명기(明記)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심리작용이다. 능히 정(定, 等持, samādhi) 심소를 이끈다. 비록 예전에 받아들인 것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기억할 수 없는 것에는 염(念) 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98. 80)등지(等持, samādhi) 심소는 정(定)이라고도 하며, ‘집중’ 즉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켜서 하나에 머물고 산란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에 의해 결택지(決擇智)가 생겨날 수 있다.
  99. 81)혜(慧, mati) 심소는 ‘이해ㆍ분별 작용’ 즉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是非)를 판단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로써 의(疑) 번뇌가 단절된다.
  100. 82)소지(所知, jñeya)는 ‘알아야 할 대상’이란 뜻으로서 응지(應知)ㆍ경계ㆍ이염(爾焰)ㆍ지모(智母)ㆍ지경(智境) 등으로도 번역된다. 일체의 경계, 즉 지혜로 관조할 대상[所照之境]을 가리킨다. 5명(明) 등의 법이 능히 지혜를 내는 경계가 되므로 이렇게 말한다.
  101. 83)범어 vipaśyana의 번역으로서 관(觀)이라 한역 함. 보는 것. 관찰. 조용한 마음에 대상의 영상을 뚜렷이 비추어 나타내는 것.
  102. 84)이하 11가지 신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신(信, śraddhā) 심소는 ‘믿음’ 즉 모든 법의 참다운 도리와 삼보의 덕과 선근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기꺼이 원하는 심리작용이다. 염오의 심왕ㆍ심소를 다스려서 청정하게 한다.
  103. 85)참으로 존재함[實]과 덕(德) 및 공능(功能)을 깊이 인정하고 좋아하며 원하여 심왕을 청정히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참으로 존재함을 믿는다는 것은, 일체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에 대해서 깊이 믿어 인정하기 때문이다. 덕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삼보의 진실되고 청정한 덕을 깊이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능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善)에 대하여 힘이 있어서 능히 얻고 능히 성취한다고 깊이 믿어서 희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을 닦고 증득함을 즐기고 좋아한다.
  104. 86)참(慙, hrī) 심소는 자신과 법에 의지하여 현선(賢善)을 존경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심리작용이다.
  105. 87)자신과 법을 존귀하게 여기는 더욱 향상된 힘[增上力]을 의미한다.
  106. 88)앞에서 신(信)의 업(業)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 중에서 “능히 보리의 자량을 얻어 원만해짐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들을 이롭게 함을 업으로 삼고, 능히 착한 도에 나아감을 업으로 삼으며”를 가리킨다. 이하 심소의 설명에서 “여전내지(如前乃至)”는 이와 같다.
  107. 89)괴(愧, apatrapā) 심소는 자신의 죄과(罪過)에 대해 세간에서 꾸짖고 싫어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허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심리작용이다.
  108. 90)세간의 힘, 즉 세간에서 꾸짖고 싫어하는 증상력을 의미한다.
  109. 91)무탐(無貪, alobha) 심소는 애착심을 없애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110. 92)범어 bhava의 번역으로서 유정(有情)으로서의 존재, 생존, 윤회의 존재를 의미한다.
  111. 93)윤회하는 삶의 원인인 5취온(取蘊)을 가리킨다.
  112. 94)무진(無瞋, adveṣa) 심소는 성내는 마음을 없애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113. 95)무치(無痴, amoha) 심소는 모든 사리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114. 96)정진(精進, vīrya) 심소는 ‘정진’의 능력으로서 근(勤)이라고도 하며 부른다. 용맹스럽게 선행을 닦고 악행을 끊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해태(懈怠) 심소를 다스린다.
  115. 97)소[牛]에게 멍에를 씌움으로써 소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고 나아가며 충실히 일하게 한다. 선법(善法)도 역시 그러해서 수행자에게 멍에를 씌워 선품(善品)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반에 나아가게 하므로 이렇게 표현한다. 선행은 비록 실천하기 어렵지만 수행자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감당해나가야 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116. 98)경안(輕安, prasrabdhi) 심소는 ‘평안’ 즉 번뇌를 멀리하고 몸과 마음을 평안히 조절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욕계의 산심위(散心位)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색계ㆍ무색계의 정위(定位)에서만 생기(生起)한다.
  117. 99)번뇌에 속박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118. 100)불방일(不放逸, apramāda) 심소는 정근(精勤)ㆍ무탐ㆍ무진ㆍ무치(無痴) 심소의 힘으로 번뇌를 끊고 선행을 닦음에 있어서 선법(善法)을 획득하고 보존하게 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119. 101)사(捨, upekṣā) 심소는 ‘평정’ 즉 혼침이나 들뜸[掉擧]이 아닌 마음의 평정상태를 이루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행사(行捨)라고도 부른다.
  120. 102)불해(不害, ahiṁsā) 심소는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해와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진(無瞋) 심소를 체성으로 삼고, 해롭게 함을 다스리고 연민히 여겨 고통을 없애주고자 함을 업으로 삼는다.
  121. 103)이하 6가지 근본번뇌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탐(貪, rāga) 심소는 ‘탐욕’ 즉 애착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특히 윤회하는 삶과 그 원인인 5취온(取蘊), 나아가 열반에 대해서까지 애착심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고통을 자초한다.
  122. 104)취(取)는 번뇌의 이명(異名)이며, 번뇌는 온(蘊)을 낳으며, 또한 온마(蘊魔)라는 말도 있듯이 온은 번뇌를 낳으므로 온을 취온이라 한다. 그런데 5온(蘊)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에 통하고, 5취온(取蘊)은 유루뿐이다.
  123. 105)진(瞋, dveṣa) 심소는 ‘성냄’ 즉 고통과 그 원인에 대해 증오심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몸과 마음을 열뇌(熱惱)하게 하여 갖가지 악업을 짓게 만든다.
  124. 106)앞의 탐(貪)에 대한 설명에서 “보리의 자량을 얻어서 원만해짐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에게 손해끼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능히 악도에 나아감을 업으로 삼으며”의 문장을 가리킨다. 이하 번뇌심소에 대한 설명에서 “여전내지(如前乃至)”는 이와 같다.
  125. 107)만(慢, māna) 심소는 ‘거만’ 즉 자신을 높이고 남을 얕보며 나아가서는 덕이 높은 성자에게도 자신을 낮추려들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126. 108)만과만(慢過慢)이라 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127. 109)비열만(卑劣慢)이라 하여, 겸손하면서도 자만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128. 110)무명(無明, avidhyāㆍmoha) 심소는 ‘어리석음’, 특히 현상계[事]와 본질계[理]의 진리(연기ㆍ무아ㆍ중도 등)를 모르는 심리작용이며, 치(痴)라고도 한다. 여기서 의심ㆍ사견(邪見)ㆍ탐욕 등 여러 번뇌들이 생기된다.
  129. 111)견(見, dṛṣṭi) 심소는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악견(惡見)이라고도 부른다. 사성제 등의 진리를 오해하고 인과의 도리를 무시한다. 이것은 별경심소 중 혜(慧) 심소의 일부분인 염오성이 작용된 것이다. 악견은 작용의 차이에 따라 살가야견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130. 112)범어 satkāya-dṛṣṭi 또는 satkāya-darśana의 음역이며 유신견(有身見)ㆍ신견(身見)으로 의역된다.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임시적인 나[我] 특히 육신을 참다운 자아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또한 육신에 딸려 있는 온갖 소유도 고정된 소유주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나의 소유물[我所]이라고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131. 113)변집견(邊執見, antagrāhadṛṣṭi)은 편벽된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이며 변견(邊見)이라고도 한다. 특히 자아가 사후(死後)에도 상주한다고 생각하는 상견(常見)과, 사후에는 단절된다고 생각하는 단견(斷見)에 고집하는 견해를 말한다. 62견(見) 중에서 47견을 포함한다. 이 중에서 40가지(4遍常論ㆍ4一分常論ㆍ有想 16論ㆍ無想 8論ㆍ俱非 8論)는 상견이고, 나머지 7가지는 단견이다.
  132. 114)성(姓)이다.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Kātyāyanī-putra, 有部의 大論師)가 아니다.
  133. 115)사견(邪見, mithādṛṣṭi)은 인과(因果)의 도리를 무시하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온갖 망견(妄見)은 모두 정리(正理)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사견이라 한다. 이에는 2무인론(無因論)ㆍ4유변론(有邊論)ㆍ불사교란(不死矯亂)ㆍ5현열반(現涅槃)ㆍ자재천(自在天) 외도 등이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 책 제9권ㆍ제10권 참조.
  134. 116)보시(布施)나 탐착 등 모든 선악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함을 말한다.
  135. 117)선악업에 초감(招感)되는 이숙과(異熟果)가 없다고 부정함을 말한다.
  136. 118)세간ㆍ부모 등 모든 사회ㆍ국가를 부정함을 말한다.
  137. 119)세간의 참다운 아라한(阿羅漢)도 없다고 부정함을 말한다.
  138. 120)견취(見取, dṛṣṭiparāmarśa)는 견취견(見取見)의 준말이며, 모든 사견(邪見)을 고집하는 견해라는 뜻이다. 유신견ㆍ변견ㆍ사견 등을 일으키고 이를 잘못 고집하여 진실하고 수승한 견해라고 보는 망견(妄見)이다. 모든 투쟁의 의지처가 된다.
  139. 121)계금취(戒禁取, śīlavrataparāmarśa)는 계금취견의 준말로서 계금(戒禁)에 대하여 일어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곧 진정한 원인 아닌 것을 원인이라 하고, 도(道)가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잘못된 견해이다. 예를 들면 외도(外道) 중에 개나 소 등이 죽은 뒤엔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여 개나 소처럼 풀이나 변(便)을 먹으면서 이것이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고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던 경우이다. 또한 외도의 그릇된 계율뿐만 아니라, 불교 내부에서도 형식적인 계율을 지킴으로써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식(儀式)만이 옳다고 집착하는 견해도 이에 해당된다.
  140. 122)의(疑, vicikitsā) 심소는 ‘의심’하는 심리작용으로서 사성제 등의 진리를 의심하여 참으로 그러하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선(善)의 심소가 생기될 수 없다.
  141. 123)이하 20가지 수번뇌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분(忿, krodha) 심소는 ‘분노’ 즉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대상ㆍ경우에 대해 분노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로써 포악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성냄[瞋] 심소의 일부분[一分]이며 따로 체(體)가 없다.
  142. 124)한(恨, upanaha) 심소는 ‘원한’ 즉 분노하고 원한을 품어서 마음이 열뇌(熱惱)하게 되는 작용이다. 이것 역시 진(瞋) 심소의 일부분이다.
  143. 125)부(覆, mrakṣa) 심소는 ‘덮음’ ‘숨김’, 즉 자신의 죄과(罪過)가 드러나면 재산과 명예의 손실을 볼까 두려워 감추려 드는 심리작용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후회하며 열뇌(熱惱)하게 된다. 이것은 탐(貪) 심소와 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44. 126)뇌(惱, pradāsa) 심소는 ‘열뇌(熱惱)’ 즉 이전의 분노ㆍ원한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난폭한 말로 험담하는 등의 심리작용이다. 대부분 사납고 흉하며 비루한 구체적인 말을 하여, 타인에게 마치 지네가 쏘는 것처럼 대한다. 이것은 진(瞋) 심소의 일부분이다.
  145. 127)질(嫉, īrṣyā) 심소는 ‘질투’ 즉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지나치게 구하여 다른 사람의 영화를 참지 못하고 시기하는 심리작용이다. 이것 역시 진(瞋) 심소의 일부분이다.
  146. 128)간(慳, mātsarya) 심소는 ‘인색’ 즉 자신의 재산ㆍ가정ㆍ사회적 지위 나아가 수증과(修證果)를 지나치게 아까워해서 남에게 베풀지 않고 몰래 감추어두려는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탐(貪) 심소의 일부분이다.
  147. 129)광(誑, śaṭya) 심소는 ‘속임’ 즉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해 거짓으로 덕(德)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심리작용이다. 그리하여 정직하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된다. 교묘하게 꾸미는 사람은 마음에 다른 음모를 품고서 대부분 진실하지 못한 삿된 생계수단의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탐(貪) 심소와 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48. 130)첨(諂, māya) 심소는 ‘아첨’ 즉 자기 본심을 숨겨둔 채 남에게 거짓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위장하거나, 남에게 아첨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심리작용이다. 이것 역시 탐(貪) 심소와 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49. 131)교(憍, mada) 심소는 ‘방자함’ 즉 자신의 일이 잘 되면 그것에 도취되어 교만해지는 심리작용이며, 탐(貪) 심소의 일부분이다.
  150. 132)해(害, vihiṁsā) 심소는 ‘해침’ 즉 유정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갖지 못하고 손해를 입히며 괴롭히는 심리작용이며, 진(瞋) 심소의 일부분이다.
  151. 133)무참(無慙, āhrīkya) 심소는 참(慙)의 반대 심소로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현인(賢人)과 선법(善法)을 경시(輕視)하는 작용이다.
  152. 134)자신과 법을 돌아보지 않고 현인을 가볍게 여기며 선법을 거부함을 말한다.
  153. 135)무괴(無愧, anapatrāpya) 심소는 괴(愧)의 반대 심소로서, 남을 고려하지 않으며 나쁜 짓을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없고, 포악하거나 악덕인(惡德人)을 따르는 심리작용이다.
  154. 136)세간의 비판을 돌아보지 않고 포악함을 받들어 중히 여겨서 죄과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을 말한다.
  155. 137)혼침(惛沈, styāna) 심소는 ‘혼침’ 즉 심왕(心王)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서 자재하지 못하며 어둡고 답답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그리하여 경안(輕安)과 위빠사나(vipaśyanā, 觀)를 장애한다.
  156. 138)도거(掉擧, auddhatya) 심소는 ‘들뜸’ 즉 심왕을 들뜨게 하여 평온하고 적정(寂靜)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사(捨) 심소와 사마타(śamatha, 止)를 장애한다.
  157. 139)사마타(奢摩他)는 범어 śamatha의 음역이며 지(止)라고 의역한다.
  158. 140)불신(不信, aśraddhā) 심소는 신(信)의 반대 심소로서, 믿음을 장애하여 심왕을 오염시키는 작용이다. 그리하여 해태(懈怠) 심소가 생겨나게 된다.
  159. 141)해태(懈怠, kausīdya) 심소는 ‘게으름’의 심리작용으로서, 선품(善品)을 닦고 악품을 끊는 일에 대해서 게으른 것이다. 근(勤) 심소의 반대이다. 성불을 향한 정진을 장애한다. 이것은 해태ㆍ탐ㆍ진ㆍ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60. 142)방일(放逸, pramāda) 심소는 ‘방일’ 즉 선행을 하고 악행을 방지할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방탕하며 함부로 행동하려는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해태ㆍ탐ㆍ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61. 143)실념(失念, muṣitasṁṛtitā) 심소는 ‘망각’ 즉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심리작용으로서, 정념(正念)을 장애하고 심왕을 산란하게 한다. 이것은 염(念)ㆍ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62. 144)심란(心亂, vikṣepa) 심소는 ‘산란’ 즉 심왕으로 하여금 갖가지 대상을 향해 치달리게 하고 흩뜨리는 심리작용으로서, 바른 선정을 장애하고 악혜(惡慧)를 생겨나게 한다.
  163. 145)부정지(不正知, asamprajñānya) 심소는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심리작용으로서, 정지(正知)를 장애한다. 이것은 혜(慧)ㆍ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164. 146)이하 4가지 부정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작(惡作, kaukṛtya) 심소는 ‘뉘우침’ 즉 이전에 지은 업이나 또는 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고 미워하는 심리작용이다. 회(悔)라고도 이름한다.
  165. 147)수면(睡眠, middhaㆍnidrā) 심소는 수면을 취하게 하는 심소이다. 수면을 취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신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어둡고 용렬하게 하므로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
  166. 148)심(尋, vitarka) 심소는 ‘심구(尋求)’ 즉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대강 심구하는 심리작용이다,
  167. 149)사(伺, vicāra) 심소는 ‘사찰(伺察)’ 즉 대상의 뜻과 이치를 세밀하게 분별하여 사찰한다. 이런 심(尋)과 사(伺)의 결과 몸과 마음의 평안 또는 불안이 있게 된다.
  168. 150)앞의 심(尋)의 심소에 관한 내용 중에서 “마음의 내적인 청정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를 가리킨다.
  169. 151)범어 āgama의 음역으로서 아함(阿含)ㆍ아가마(阿伽摩)라고도 한다. ‘전해져 온 것’ ‘전승된 가르침’ 즉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차례로 전승되어 온 교설 또는 성전이란 뜻이다. 석존께서 열반에 드신 후 100년~200년 경 각 부파교단에서 구전(口傳)된 석존의 교설을 집성하여 ‘아가마(āgama)’라고 총칭하였다. ‘전승의 사실이 명백한 경전’ ‘권위있는 경전’이란 의미를 지닌다. 북방불교에서는 4아함경, 즉 『장아함경』ㆍ『중아함경』ㆍ『잡아함경』ㆍ『증일아함경』이 있다.
  170. 152)이하 오위법 중에서 색법(色法)에 대하여 4대(大)ㆍ5근(根)ㆍ5경(境)ㆍ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의 순서로 설명한다.
  171. 153)이하 색법 중에서 먼저 능조(能造)로서 4대(大)에 관하여 설명한다. 지대는 사대의 하나로서 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풍대(風大)와 함께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견고성을 체성으로 하고, 능히 물체를 어느 기간 그 상태를 유지[保持]하고 저항하는 질애(質碍)의 작용이 있다. 어느 기간 그 상태를 유지하는 작용이 있다. 참고로 말하면, 모든 색법에 공통적으로 있는 원질(原質)의 사대를 ‘실(實)의 사대’라 하고, 우리 육안으로 보이는 땅ㆍ물ㆍ불ㆍ바람 등을 ‘가(假)의 사대’라고 한다. 여기서 대(大)는 대종(大種, mahābhūta)의 준말로서, ‘대(大)’는 ‘변(遍)’을, ‘종(種)’은 ‘의(依)’를 의미한다. ‘변의(遍依)’ 즉 일체 만물에 두루해서 그 미치는 힘이 클 뿐만 아니라 낱낱 극미(極微)가 모두 이 네 가지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나타낸다.
  172. 154)고락(苦樂)을 감각할 수 있는 신체 중에서 일어나고, 감수성이 있는 물질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남을 말한다.
  173. 155)습윤성(濕潤性)을 체성으로 하고, 물체를 섭인(攝引)하여 비산(飛散)하지 못하게 함을 작용으로 한다. 이 요소는 물질을 축축히 젖게 하는 힘이 있다.
  174. 156)온난성(溫暖性)을 체성으로 하여, 능히 물체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고 부패하지 않게 하는 작용이 있다.
  175. 157)유동성(流動性)ㆍ동력성(動力性)을 체성으로 하여, 능히 물체로 하여금 동요하게 하고 생장(生長)하게 작용이 있다.
  176. 158)5근(根)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근은 감각기관을 총칭한다. 근(根)의 범어인 indriya에는 승용(勝用)ㆍ증상(增上)ㆍ출생(出生)의 의미가 있다. 오근은 외계의 현상을 능히 취하여 내계의 심식을 발동시키는, 또한 증승(增勝)시키는 작용이 있으며, 이것을 발식취경(發識取境)이라 한다. 안근은 안식의 의지처[所依]가 되어 색경을견취(見取)하는 등, 오근은 오식의 소의근(所依根) 역할을 한다.
  177. 159)안식(眼識)을 가리킨다.
  178. 160)청정한 물질적 존재라는 뜻으로서, 감각기관을 이루는 승의근(勝義根)ㆍ부진근(扶塵根) 중에서 승의근을 가리킨다.
  179. 161)이하 5경(境)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경은 객관계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그 명칭은 오근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경(境, viṣaya)이란 경역분계(境域分界)라는 뜻으로서, 오근ㆍ오식이 반연하는 대상의 경역분계를 말한다.
  180. 162)현요(顯了)하게 보이는 색채라는 뜻이다. 이에 12종류를 드는데, 이 중에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을 4현색ㆍ4본색(本色)이라고도 하며, 운(雲)ㆍ연(煙)ㆍ진(塵)ㆍ무(霧)ㆍ영(影)ㆍ광(光)ㆍ명(明)ㆍ암(闇)의 8종은 4본색으로부터 변화된 것이다.
  181. 163)일정한 형량(形量)이 있어서 안근에 견취(見取)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의 8종이 있다.
  182. 164)남에게 표시할 수 있는 색법이란 뜻이다.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ㆍ취사(取捨)ㆍ굴신(屈伸) 등의 동작을 말한다.
  183. 165)4주(洲)의 하늘색을 말한다. 즉 북주(北洲)의 금색, 동주(東洲)의 은색, 남주(南洲)의 벽색(碧色), 서주(西洲)의 적색이다. 수미산의 사면 공중에 각각 한 가지씩 빛깔[顯色]이 되므로 공일현색(空一顯色)이라 부른다.
  184. 166)가의(可意)ㆍ불가의(不可意) 등의 분류는 성경(聲境)에만 해당된다. 소리는 다른 감각보다도 훨씬 더 강하게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화 등에서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185. 167)빙사탕(氷砂糖)을 말한다.
  186. 168)어째서 ‘일부분’이라고 하는가 하면, 촉(觸)에는 능조(能造)의 촉과 소조(所造)의 촉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는 지ㆍ수ㆍ화ㆍ풍의 4대(大)가 있고, 후자에는 깔깔함ㆍ매끄러움 등의 촉감이 있다. 소조의 촉경은 능조 4대의 은현(隱顯)에 의하여 차이가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지대ㆍ풍대의 세력이 성하여 추강(麤强)한 것이 깔깔함[澁]이고, 수대ㆍ화대의 세력이 성하여 유연한 것이 매끄러움[滑]이다.
  187. 169)5근(根)ㆍ5경(境)을 제외한, 제6 의식만의 대상인 법처(法處)에 포섭되는 색법을 말한다. 법처색(法處色)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말하면 유식학에서는 법처소섭색으로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든다. ①극략색(極略色:오근ㆍ오경의 물질을 분석해서 물질의 최소단위인 極微에 이른 것) ②극형색(極逈色:空界ㆍ明ㆍ暗 등 장애의 성질을 갖지 않는 물질의 極微) ③수소인색(受所引色:無表色)④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意識에 나타나는 오근ㆍ오경 등의 影像) ⑤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定所生色ㆍ定果色이라고도 함. 殊勝한 定에 의해 定 중에 나타나는 色ㆍ聲 등의 5境).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율의색(律儀色)ㆍ불율의색(不律儀色)ㆍ3마지소행경색(摩地所行境色)은 네 번째인 수소인색(受所引色)인 무표색에 포함된다. 무표(無表, avijñapti)라는 것은 일종의 세력이 있지만 다른 것에게 표시할 수 없는 잠재적인 세력을 말한다. 설일체유부에 의하면 우리가 신업ㆍ구업을 일으킬 때, 훗날 그 업의 과보를 초감(招感)할만한 원인을 동시에 자기 몸 안에 훈발(熏發)한다. 그 훈발된 원인은 형상이 없는 색법으로서, 남에게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무표색이라 불렀다. 그러나 유식학파에서는 이것을 맹리(猛利)한 사(思) 심소의 종자의 세력 위에 가립한 것이다. 사(思)의 현행은 찰나에 생ㆍ멸하지만 상속부단(相續不斷)하는 것이니, 이 종자가 계속하는 기간의 세력에 대해 무표색이라 하였다.
  188. 170)율의(律儀, saṁvara)는 옹호(擁護)ㆍ금계(禁戒)라는 뜻으로서, 몸으로 짓는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잘못을 막는 입장에서 불살(不殺)ㆍ부도(不盜)ㆍ불음(不婬)의 셋을 신율의(身律儀)라 하고, 불양설(不兩舌)ㆍ불악구(不惡口)ㆍ불망어(不妄語)ㆍ불기어(不綺語)의 넷을 어율의(語律儀)라고 한다. 그런데 율의색에는 별해탈(別解脫)ㆍ정공계(定共戒)ㆍ도공계(道共戒)의 세 가지가 있다. 별해탈율의란 5계ㆍ10계ㆍ250계 등의 계법 율의에 의해 신업ㆍ구업ㆍ의업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정공계란 따로 계조(戒條)를 지키지 않으나 정(定)에 의해 스스로 삼업을 다스리는 것이다. 도공계는 역시 따로 계조는 지키지 않으나 무루지(無漏智)가 현전했을 때 무루지의 힘에 의해 삼업이 스스로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189. 171)불율의를 악율의계(惡律儀戒)라고도 한다. 악사(惡師)ㆍ악우(惡友)의 교시에 의하거나 자신의 뜻에 의해 살생ㆍ도둑질 등의 악업을 자기의 신조(信條) 율의로 하여 어느 기간 또는 일생을 통해 고수하는 것을 말한다.
  190. 172)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ㆍ정소인색(定所引色)ㆍ정과색(定果色)이라고도 한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 자재한 정력(定力)으로써 금(金)ㆍ은(銀)ㆍ쌀 등을 변화로 만들어내어 다른 유정으로 하여금 이것을 수용하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191. 173)색심불상응행법(色心不相應行法, rūpa-citta-viprayukta-saṃskāra-dharma)의 줄인말이며 불상응행법이라고도 한다. 정신도 물질도 아니면서, 정신과 물질에 의거해서 발현되는 일종의 세력적 현상의 존재이다. 심왕법, 심소법, 색법이 아니므로 ‘불상응(不相應)’이라 하고, 불생불멸의 무위법이 아니므로 ‘행(行, saṃskāra)'이라고 한다.
  192. 174)행(行, saṃskāra)은 조작(造作)ㆍ천류(遷流)라는 뜻이며 유위법(有爲法), 변화하는 현상제법(現象諸法)을 가리킨다. 유위법은 연(緣)을 따라 모여 일어나고 만들어지며, 또한 항상 변화하여 생멸하기 때문이다.
  193. 175)불상응행법이 실유(實有)가 아님을 나타낸다.
  194. 176)득(得, prāpti)은 ‘성취’의 뜻으로서, 유정에게 어떤 법을 얻게 하는 세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짐승은 축생계로, 인간은 인류계로 확연한 경계선이 있어서 서로 혼란된 바가 없으며, 또한 같은 인간 세계로 태어나면서도 지혜의 현우(賢愚)와 재물의 빈부(貧富)의 차별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면, 전생에 자신의 업의 결과 즉 득(得) 세력이 초감(招感)한 바이다.
  195. 177)상속(相續)이란, 원인은 결과를 내고 결과는 또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내므로 이렇게 원인ㆍ결과가 차례로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상속차별’은 상속전변차별(相續轉變差別)의 뜻으로서, 업의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서 불변적으로 존속되는 것이 아니라 찰나마다 생멸하면서 이어지고 성숙되는 것을 의미한다.
  196. 178)무상정(無想定, asaṁjñā-samāpatti)은 외도의 선정이다. 인도의 어떤 외도들은 인생이 고통을 받게 되는 원인은 마음에 번뇌가 있기 때문이고, 이 번뇌를 멸하는 데는 심왕(心王), 심소(心所)의 생기(生起)를 정지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해서 이 정(定)을 닦았으며, 그 수정(修定)의 결과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난다. 불교의 성자는 깊은 구덩이[深坑]처럼 생각해서 이 선정에 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197. 179)변정천은 색계 제삼선천(第三禪天)에 속한다. 이 하늘의 상지(上地)는 제4선천에 속하는 아홉 하늘을 가리킨다.
  198. 180)무상정을 닦은 원인에 의해 무상천에 태어나게 된다.
  199. 181)멸진정(滅盡定, nirodha-samāpatti)은 느낌[受]과 표상[想]의 작용이 그친 정(定)이다. 불교의 성자가 심신도멸(心身都滅)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사모한 나머지 어떤 기간을 지식(止息)의 작의(作意)로써 심왕과 심소를 멸하는 정에 들어간다. 이 멸진정에 들어가면 일체의 심왕, 심소의 활동을 저지하여 생기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을 일으킨다.
  200. 182)무상천(無想天, asaṁjñā-deva)은 색계의 제4정려에 속한 하늘로서 무상유정천(無想有頂天)ㆍ소광천(少廣天)ㆍ복덕천(福德天)이라고도 한다. 무상정을 닦아서 그 힘에 의해 무상천에 태어나 500대겁(大劫)동안 6식(識)이 현기(現起)하지 않는다. 외도는 이것을 최고의 열반의 경지로 간주한다. 하지만 500대겁 후에 마치 오랜 수면에서 깨어나듯이 원래 욕계의 정신상태로 떨어진다고 한다. 설일체유부ㆍ경량부에서는 색계 제4선(禪)의 광과천(廣果天)의 일부로 본다.
  201. 183)명근(命根, jīvitendriya)은 수명[壽]의 뜻으로서, 유정으로 하여금 어느 기간까지 생활하게 하는 세력이다. 육체적 요소인 난기(煖氣)와 정신작용의 주체인 식(識)을 보존 유지하게 한다.
  202. 184)중동분(衆同分, nikāya-sabhāga)은 중(衆)은 중다(衆多)이고, 동(同)은 상사(相似)이며, 분(分)은 원인의 뜻이며 동분(同分)이라고도 한다. 2종 이상의 사물로 하여금 서로 유사하게 하는 보편적인 세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인류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비슷한 모습을 지니는 것은 이 중동분이 있기 때문이다.
  203. 185)이생성(異生性, pṛthag-janatva)에서 이생(異生)은 범부의 이명(異名)이다. 이생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범부가 되게 하는 본성이다.
  204. 186)생(生, jāti)은 생기(生起)의 뜻으로서, 유위법으로 하여금 미래에서 현재로 옮기게 하는 세력을 가리킨다.
  205. 187)노(老, jarā)는 색심(色心)의 제법(諸法)이 상속(相續) 변이(變異)하는 것을 말한다.
  206. 188)주(住, vivartasthāyin)는 안주(安住)의 뜻이다. 아직 변괴(變壞)가 시작되지 않은 단계이다.
  207. 189)무상(無常, anitya)은 색(色)ㆍ심(心)의 모든 현상이 한 순간에도 생멸 변화해서 상주하는 모습이 없는 것을 말한다.
  208. 190)명신(名身, nāma-kāya)은 명칭이란 뜻이다. 여기서 신(身, kāya)은 ‘신체’ ‘신근(身根)’의 뜻이 아니라 ‘모임’이란 뜻으로서 말의 어미에 붙여서 복수(複數)를 나타낸다.
  209. 191)구신(句身, pada)은 문구(文句)라는 뜻이다.
  210. 192)문신(文身, vyañjana)은 글자[字母]라는 뜻이다.
  211. 193)유전(流轉, pravṛtti)은 표류(漂流)하여 전전(展轉)함이란 뜻이다. 생사가 단절되지 않고 3계(界) 6도(道)를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을 말한다.
  212. 194)정이(定異)는 차별의 인과가 서로 차별된 자리에 있으나 혼란하지 않게 나누어진 자리를 말한다.
  213. 195)상응(相應, samprayukta)에서 상응이란 평등하게 화합한다는 뜻으로서, 법과 법이 서로 화합해서 떨어지지 않는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심왕과 심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214. 196)세속(勢速, java)은 신속이란 뜻이다. 변화 혹은 동작이 빠른 것을 말한다.
  215. 197)차제(次第, anukrama)는 순서ㆍ차례라는 뜻이다. 모든 유위법이 동시(同時)가 아니라 전후(前後)의 순서가 있는 상태에 대해 이름붙인 것이다.
  216. 198)시(時, kāla)는 시간, 즉 존재로 하여금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의 시간적 차별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217. 199)방(方, deśa)은 방위를 가리킨다.
  218. 200)수(數, saṁkhyā)는 숫자, 즉 존재하는 수량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219. 201)화합(和合, sāmagrī)은 화합, 즉 색심의 모든 법이 모여 화합해서 서로 여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220. 202)불화합(不和合, asāmagrī)은 수많은 인연이 화합해서 제법(諸法)이 발생하는 경우, 그 화합을 방해해서 제법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하는 성질, 능력을 말한다.
  221. 203)무위법(無爲法, asaṁskṛta-dharma)은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화의 유위력(有爲力)을 여읜 불생불멸(不生不滅)ㆍ상주절대(常住絶對)의 법을 말한다. 본래 열반(涅槃)의 이명(異名)이었는데, 후대에 열반 이외에 여러 가지 무위를 건립했다. 이들 여러 가지 무위법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여 법성에대해서 설명하는 방법에 따라서 임시로 이들 명칭을 건립한 것이다. 또한 『구사론(俱舍論)』 등 부파불교에서는 무위법이 유위법과 관계없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했으나, 대승에서 무위법은 일체법의 체성(體性)으로 설명된다.
  222. 204)여기서 허공(虛空)은 천공(天空)이란 뜻이 아니다. 진여가 번뇌장(煩惱障)ㆍ소지장(所知障)의 장애가 없음을 허공에 비유해서 허공무위라고 한다. 참고로 말하면 부파불교의 『구사론』에서 허공무위는 상주불변의 공간적 실재를 가리킨다.
  223. 205)비택멸(非擇滅, apratisaṁkhyā-nirodha)는 지혜의 힘에 의하지 않고[非擇] 얻은 멸(滅)이란 뜻으로서 진여자성을 가리킨다. 그것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지, 수행에 의해 비로소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비택멸무위라고 부른다.
  224. 206)‘택멸(擇滅, pratisaṁkhyā-nirodha)’에서 택(擇)은 간택(簡擇)의 뜻으로서 지혜의 작용이고, 멸(滅)은 적멸(寂滅)ㆍ열반을 가리킨다. 택력소득(擇力所得)의 멸(滅)의 준말로서 진여를 가리킨다. 무루(無漏)의 지혜력으로써 진리를 간택해서 번뇌의 계박(繫縛)을 벗어나면, 그곳에 나타나는 유선무루(唯善無漏)의 상주법이다.
  225. 207)색계 제3 정려(靜慮)의 번뇌를 여의고 제4 정려에 이를 때, 일체의 괴로움의 느낌[苦受]ㆍ즐거움의 느낌[樂受]을 여의고 오직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捨受]와 상응하므로 부동이라 이름하고, 이때 나타나는 진여를 부동무위라고 이름한다.
  226. 208)상(想)ㆍ수(受)의 심소(心所)가 생기하지 않는 멸진정에서 나타나는 진여를 말한다.
  227. 209)선(善)ㆍ불선ㆍ무기성의 모든 존재의 본성은 진여이다. 진여(眞如, tathatā)에서 진(眞)은 진실ㆍ불허망(不虛妄)한 것이고, 여(如)는 상주(常住)ㆍ일여(一如)ㆍ무변역법(無變易法)을 말한다.
  228. 210)심왕법, 심소법, 색법, 심불상응행법, 무위법을 가리킨다.
  229. 211)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 의해 존재하므로 불변(不變)ㆍ독존적(獨存的)인 실체가 없는 공(空)인데도, 범부들이 실유(實有)로 착각하여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230. 212)아집ㆍ법집의 증익(增益)의 양상이 일어나는 장(場), 곧 연기성(緣起性)을 가리킨다.
  231. 213)현상적인 모든 존재[法]의 참성품[性], 즉 진여를 가리킨다.
  232. 214)잘못된 견해. 그것에 의해 취해지고 있는 것.
  233. 215)다른 인연에 의존해 있는 상태. 인연화합에 의해 생기고 인연이 없어지면 함께 없어지는 것.
  234. 216)원만, 성취, 진실을 구족한 것. 진여와 같음.
  235. 217)이하 9사(事) 중에서 세계에 관하여 삼계ㆍ삼천세계의 순서로 설명한다.
  236. 218)범어 ādhāna의 번역으로서 ‘맡아 있는 것’이란 뜻이다.
  237. 219)4식(食)은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식물(食物)이란 뜻으로서 단식(段食), 촉식(觸食), 의사식(意思食), 식식(識食)을 말한다.
  238. 220)4식(食) 중에서 단식(段食)을 제외한 나머지 촉식(觸食)ㆍ사식(思食)ㆍ식식(識食)을 가리킨다. 단식(段食)은 욕계에 한해서 있으며, 그 외의 삼식은 삼계에 모두 있다.
  239. 221)1개의 수미산을 중심으로 구성된 1세계가 천 개인 것을 소천세계라고 부른다. 제이선천(第二禪天)의 양과 같다고 한다.
  240. 222)소천세계가 천 개인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라고 한다. 제3선천의 양과 같다.
  241. 223)중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을 대천세계라고 부른다. 또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ㆍ일대삼천세계(一大三千世界)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삼천대천세계는 대천세계가 삼천 개 있다는 뜻이 아니라, ‘소천ㆍ중천ㆍ대천의 세 가지 천(千)이 있는, 삼천의 대천세계’ 즉 대천세계의 뜻을 설명한 용어이다. 제4선천의 양과 같다. 석존의 교화가 미치는 범위라고 한다.
  242. 224)1세계는 소천세계, 중천세계, 대천세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이다. 1세계는 1개의 수미산을 중심으로 중생이 사는 기세간(器世間)을 말한다. 즉 지옥,아귀, 축생, 인사주(人四洲), 해와 달, 6욕천(欲天), 초선천(初禪天)까지를 1세계라고 한다.
  243. 225)범어 Sumeru-parvata의 신역(新譯)이며, 묘고산(妙高山)ㆍ묘광산(妙光山)ㆍ선적산(善積山) 등으로 의역(意譯)된다. 일반적으로 수미산(須彌山)이라는 구역(舊譯)이 사용된다. 이 산을 왕(王)이라 함은 산 중의 왕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9산팔해설(山八海說)에 의하면, 4주(洲) 세계의 중앙인 금륜(金輪) 위에 수미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물 위에 보이는 것이 8만 유순(由旬)이고 물 속에 잠긴 것이 8만 유순이며, 주위에 7산 8해가 있고 그 바깥에 철위산(鐵圍山)이 에워싸고 있어서 모두 9산 8해가 된다. 인간이 거주하는 4주(洲)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외해(外海) 중에 제7 지산(持山)의 외측(外側)과 철위산의 내측(內側)에 사대주가 있으며, 수미산의 동서남북 사면에 각각 전개되어 모두 수미산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244. 226)남염부제(南閻浮提)ㆍ염부제라고도 한다. 범어 Jambu-dvīpa의 음역(音譯)이다. 이 땅의 중앙에 있는 염부수(閻浮樹)라는 나무에서 그 명칭을 따왔다. 수미산 남쪽에 있는 대륙으로서, 인간이 사는 4주(洲)의 하나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동북 2주보다 떨어지지만, 제불(諸佛)이 출현하는 곳은 오직 이 남주 뿐이라고 한다.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으며, 그 모양이 수레와 같은 지형으로 염부수(閻浮樹)가 번성한 나라라는 뜻이다. 원래는 인도(印度)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후세에는 인간세계를 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인간세계, 이 세상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이 지상세계를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부른다.
  245. 227)4대주(大洲)의 하나로서, 수미산의 동쪽 함해(鹹海)에 있다. 비제하(毘提訶)는 범어 Videha의 음역어이며, 이곳을 동승신주(東勝身洲)라고 부르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勝身]라는 모먕이 반달처럼 생겼다.
  246. 228)4대주의 하나로서 수미산의 서쪽에 있다. 범어 Apara-godānīya의 음역어이다. 여기서는 소가 많으므로 시장에서 소가 금전처럼 쓰인다고 하며, 서우화주(西牛貨洲)라고도 부른다. 모양이 보름달처럼 생겼다.
  247. 229)북구로주(北拘盧洲)는 북쪽에 있는 인계(人界)로서 모양이 네모난 자리[座]처럼 생겼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이의 수명은 천세(千歲)이고, 옷과 음식물 등이 자연히 갖추어지므로 내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뛰어난 곳[勝處]ㆍ뛰어난 삶을 의미한다. 4주 중에서 중생ㆍ처소ㆍ재물ㆍ물품 등이 가장 수승하다고 한다.
  248. 230)일반적으로 4왕천(王天)이라고 부른다. 욕계 6천(天)의 하나로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다. 동방의 지국천(持國天), 남방의 증장천(增長天), 서방의 광목천(廣目天), 북방의 다문천(多聞天) 등 네 하늘을 말한다. 이 네 하늘의 왕들은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임금인 제석천왕을 섬기고, 8부(部) 귀신(鬼神)을 지배하며, 호법신(護法神)이므로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을 보호한다.
  249. 231)욕계의 6천 가운데 제2천인 도리천(忉利天, Trāyastriṃśa)을 가리킨다.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이다. 중앙에 선견성(善見城)이 있어서 이곳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살며, 사방에 각각 8성이 있어서 천인들이 살고 있다. 사방에 각각 8성이 있으므로 모두 32성이며, 여기에 제석천의 선견성을 더하여 33천이라 한다. 이 하늘의 1주야(晝夜:1일)는 인간의 백년에 해당되고, 수명은 1천세라고 한다. 이곳에 화생(化生)으로 처음 태어날 때는 인간의 6세 정도 아이와 같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저절로 의복이 입혀져 있다고 한다. 석존께서 이 하늘에 올라가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석달 동안 설법한 것으로 유명하다.
  250. 232)야마천(夜摩天, Suyāma-deva)은 염마천(焰摩天)이라고도 하며 욕계 6천 중에서 제3천이다. 이 하늘부터 공거천(空居天)이 된다. 시간을 따라 쾌락을 받으므로 시분천(時分天)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화생으로 태어날 때 인간의 7세 정도 아이와 같고, 용모가 원만하며, 의복이 저절로 마련된다고 한다. 수명은 2천세이고, 이 하늘의 1일은 인간의 2백년에 해당된다.
  251. 233)범어 Tuṣita-deva의 신역(新譯)으로서 욕계 6천 중 제4천이다. 구역(舊譯)은 도솔천(兜率天)이다. 희족천(喜足天)ㆍ지족천(知足天)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수명은 4천세이고, 이 하늘의 1일은 인간의 4백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곳에 외원(外院)과 내원(內院)이 있으며, 전자는 일반 천중(天衆)의 욕락처(欲樂處)이고 후자는 미륵보살의 정토이다. 미륵보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로서 이곳에 계시면서 천인들을 교화하며 장차 남섬부주에 하생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불도 사바세계에 오시기 전에 이 하늘에서 호명보살이란 명호로 계셨다. 어째서 이 하늘이 일생보처보살이 머무는 곳인가? 이 하늘은 아래로는 사왕천ㆍ도리천ㆍ야마천이 욕정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ㆍ타화자재천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서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에 만족한 마음을 내기 때문에, 다음에 성불할 보처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사바세계에 오시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계시다가 하생(下生)하여 성불한다고 전해진다.
  252. 234)범어 Nirmāṇarati-deva의 신역이며 욕계 6천 중 제5천이다. 구역(舊譯)은 화락천(化樂天)이다. 이 하늘에 나면 자기의 대경(對境)을 변화시켜서 오락(娛樂)의 경계로 삼게 되므로 그렇게 이름한다. 수명은 8천 세이고, 이 하늘의 1일은 인간의 8백 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이는 남녀의 무릎 위에서 화생(化生)하고, 그 신체 크기는 인간의 12세 정도 된다고 한다.
  253. 235)범어 Paranirmitavaśavarti-deva의 번역어이며 줄여서 타화천이라고도 한다. 욕계 6천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6천이다. 욕계천의 임금인 마왕(魔王) 파순(波旬)이 산다고 한다. 이 하늘은 타인이 변해 나타내는 즐거운 일들을 자유자재로 자기의 쾌락으로 삼기 때문에 타화자재천이라 부른다. 이곳에서는 아들을 낳으려는 생각만 내면 아들이 무릎 위에 나타난다고 한다. 수명은 1만 6천 세이고, 이곳의 1일은 인간의 1천6백 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254. 236)범어 Brahma-deva의 번역어이며, 일반적으로 범천(梵天)이란 준말이 많이 사용된다.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이다. 범(梵)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서, 이 하늘은 욕계의 음욕을 여의어서 항상 청정하고 고요하므로 범천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범중천(梵衆天)ㆍ범보천(梵輔天)ㆍ대범천(大梵天) 등 세 하늘이 있으며, 통칭하여 범천이라 한다.
  255. 237)삼천세계에 관하여 『아함경』에서도 말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18권ㆍ『잡아함경(雜阿含經)』 제16권 등에서 “천 개의 해와 달, 천 개의 수미산, 천 개의 4천하, 천 개의 욕계 여섯 하늘, 천 개의 범천을 소천세계라 이름한다. 천 개의 소천세계를 중천세계라 이름하고, 천 개의 중천세계를 삼천대천세계라 이름한다”고 말한다.
  256. 238)『구사론(俱舍論)』ㆍ『순정리론(順正理論)』에서 소천세계를 설명하기를 “소(小)는 비하(卑下)의 뜻이다. 상부세계를 제외하기 때문이다. 마치 뿔을 자른 소와 같다.”고 설명한다.
  257. 239)삼천세계는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을 되풀이한다. 주겁(住劫)의 최후에 유정(有情)이 모두 선인(善人)이 되어 1인(人)도 지옥에 태어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 괴겁(壞劫)의 최초이다. 이로부터 19겁 동안 그 세계에 생물이 머물지 않음을 유정괴(有情壞)라고 한다. 제20회의 1겁에 화재ㆍ수재ㆍ풍재가 있어서 기세간(器世間)을 파괴한다. 이것을 대삼재(大三災)라고 한다.
  258. 240)괴겁이 끝날 때 화재(火災)가 7회 반복하고, 제8회때 수재(水災)가 있기를 7회 이루어진다. 제8회때 화재를 7회 반복하고 제8회때 풍재가 있다. 그리하여 화재가 총 56회 있게 되고, 이로써 초선천(初禪天)이 파괴된다. 수재는 총 7회 있게 되며, 이로써 제2선천이 파괴된다. 풍재는 1회 있게 되며, 이로써 제3선천이 파괴된다.
  259. 241)기세간으로서의 제4선천 이상은 성(成)ㆍ괴(壞)의 침해를 받지 않고 다만 유정의 생(生)ㆍ멸(滅)만 있다.
  260. 242)주겁(住劫)에 도병재(刀兵災)ㆍ질병재(疾病災)ㆍ기근재(饑饉災)의 소삼재(小三災)가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주겁에 인수(人壽) 8만세(萬歲)로부터 백년마다 1세(歲)씩 감소하여 10세에 이르는 것을 1감(減)이라 한다. 그리고 인수 10세로부터 백년마다 1세씩 증가하여 8만세에 이르는 것을 1증(增)이라 한다. 이렇게 1증 1감의 소장(消長)의 되풀이가 20회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주겁은 20소겁(小劫)이 된다. 그런데 소삼재라 하여, 인수(人壽) 10세때마다 도병재가 7일간, 질병재가 7개월 7일간, 기근재가 7년 7개월 7일간 일어난다고 한다.
  261. 243)‘20소겁인 1중겁’이란 뜻이다. 중겁이 20번이라는 뜻이 아니다. 참고로 말하면 겁(劫)을 소겁(小劫)ㆍ중겁(中劫)ㆍ대겁(大劫)으로 나누는데, 1소겁은 1감(減) 1증(增)의 기간이고(약 1,590만년), 1중겁은 1소겁의 20배의 기간이며(약 3억 2천만년), 1대겁은 1중겁의 4배의 기간이다(약 12억 8천만년). 즉 1대겁은 80소겁이 된다. 그리고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에 각각 20소겁 즉 1중겁이 소요된다.
  262. 244)차례로 괴겁(壞劫), 공겁(空劫), 성겁(成劫), 주겁(住劫)을 가리키며, 각각 20소겁씩 모두 80소겁이 소요된다. 이중에서 괴겁은 파괴기이고, 뒤의 주겁은 유지기이다. 공겁은 소멸기로서, 만상(萬象)이 완전히 파괴되어 일물도 남지 않은 공허한 상태이다. 성겁은 형성기로서, 당시 현존한 다른 삼천계의 중생으로서 장래 이 세계에 생을 받을 이들의 공업력(共業力)에 의해 세계가 형성된다. 즉 공겁동안의 티끌 하나 없는 기간을 지나서 때가 되면, 장차 이곳에 태어날 유정들의 업의 미풍이 사방에서 불어온다. 이것을 풍륜(風輪)이라 하며, 유정의 공업력에 의해 생겨난 기체로서 두께 16억 유순(由旬)이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풍륜 위에 기체의 상층이 액체로 변한 수륜(水輪)이 형성되며, 두께는 11억 2만 유순이다. 또한 점차 수륜 위의 중앙에 업풍(業風) 원반의 강한 구심력에 의해 액체가 응결되어 고체로 변한 금륜(金輪)이 형성되는데, 두께가 3억 2만 유순이다. 금륜의 중앙에서 엄청난 구심력에 의해 산이 솟아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수미산이다. 점차 수미산을 에워싸고 산들이 솟아올라서 9산 8해(海)가 형성된다. 세계의 성립은 하(下)→상(上)으로 진행되고, 중생들이 이 세계에 생을 받는 것은 상→하로 이루어진다. 최초에 제이선천(第二禪天)에 태어나고(極光天인 光音天→無量光天→少光天), 점차 하생(下生)한다. 지옥에 처음으로 한 유정이 수생(受生)하는 때가 성겁의 최후이다. 성겁 다음에 주겁→괴겁→공겁..... 이런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263. 245)이하 9사(事) 중에서 세 번째로 잡염에 관하여 번뇌ㆍ업ㆍ생(生)의 세 가지 양상으로 설명한다.
  264. 246)잡염(雜染, saṃkleśa)은 ‘혼탁함과 청정하지 않은 것’ 즉 ‘유루(有漏)’라는 뜻이다. 선(善)ㆍ악ㆍ무기 삼성을 통해서 모든 유루법을 총칭한다. 이 잡염을 번뇌, 업, 생의 세 방면에서 설명한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 미혹에 생사세계에 매어 있게 된다.
  265. 247)일체의 번뇌 및 수번뇌(隨煩惱)를 가리킨다. 혹잡염(惑雜染)이라고도 한다. 견혹ㆍ사혹 등의 모든 번뇌는 중생의 심식을 오염시켜서 깨끗하지 못하게 하므로 이렇게 말한다. 또한 이것을 견소단(見所斷)ㆍ수소단(修所斷)의 두 가지, 혹은 욕계계ㆍ색계계ㆍ무색계계의 세 가지, 혹은 근본번뇌의 열 가지 등으로 나눈다.
  266. 248)근본번뇌(貪ㆍ瞋ㆍ痴ㆍ慢ㆍ疑ㆍ惡見)의 작용에 의해 동류(同類)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267. 249)번뇌(煩惱)는 범어 kleśa의 번역이다. 혹(惑)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며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다. 그 성 질은 불선(不善) 및 유부무기(有覆無記)이다.
  268. 250)이 열 가지 번뇌를 10본혹(本惑), 10사(使), 10번뇌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탐(貪)ㆍ진(瞋)ㆍ치(痴)ㆍ만(慢)ㆍ의(疑)의 다섯 가지는 추찰심구(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아니고 그 작용이 느리고 둔하므로 5둔사(鈍使)라고 부른다. 살가야견~계금취견의 다섯 가지는 추찰심구(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있고 그 작용이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5리사(利使)라고 한다.
  269. 251)견도(見道)에 의해서 끊어야 할 번뇌로서 견소단혹(見所斷惑)ㆍ견혹(見惑)ㆍ미리혹(迷理惑)ㆍ분별기혹(分別起惑)이라고도 한다. 보편적인 진리인 사성제의 이치에 미혹한 사상상(思想上)의 지적인 번뇌이다.
  270. 252)수도(修道)에 의해서 끊어야 할 번뇌로서 수소단혹(修所斷惑)ㆍ수혹(修惑)ㆍ미사혹(迷事惑)ㆍ구생기혹(俱生起惑)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인 개개의 사상(事象)에 미혹한, 즉 인간성에 바탕을 둔 정의적(情意的)인 번뇌이다.
  271. 253)욕계에 소속된 번뇌를 말한다. 욕계(欲繫)라고도 부른다. 욕계에서 일어나는 근본번뇌로는 36혹(惑)이 있으니, 견혹(見惑)의 32혹, 수혹(修惑)의 4혹이 그것이다.
  272. 254)색계에서 일어나는 번뇌이며 색계(色繫)라고도 한다.
  273. 255)무색계에서 일어나는 번뇌이며 무색계(無色繫)라고도 한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근본 번뇌로는 31혹이 있으니, 견혹의 28, 수혹의 3이 그것이다.
  274. 256)번뇌를 가리킨다.
  275. 257)고제(苦諦)와 집제(集諦)에 미혹한 것을 인의처(因依處)에 미혹하다고 말한다. 인은 인연을 말함이니, 고제와 집제는 유루법(有漏法)이기 때문에 번뇌를 증장하는 인연이 된다. 의처(依處)는 성품이 능히 수순하여 번뇌를 일으키는 데 의지처가 됨을 말한다.
  276. 258)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 미혹한 것을 그것의 두려움이 생겨난 바에 미혹하다고 말한다. 멸제와 도제는 무루법으로서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번뇌가 두려워하는 바이다.
  277. 259)미혹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해행이라 한다.
  278. 260)견취, 계금취, 탐, 진, 만 등 견도에 의해 끊어야 할 번뇌[見所斷惑]를 가리킨다.
  279. 261)수소단혹(修所斷惑)의 준말로서 ‘수도(修道)에 의해 끊어야 할 번뇌’라는 뜻이다. 수혹(修惑)이라고도 하는데, 구생기(俱生起) 번뇌 즉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생기되는 선천적인 번뇌이다. 참고로 말하면 혹(惑)은 마음의 미혹(迷惑), 곧 번뇌의 별명(別名)이다.
  280. 262)견소단혹(見所斷惑)의 준말로서 ‘견도(見道)에 의해 끊어야 할 번뇌’라는 뜻이다. 견혹(見惑)이라고도 하는데, 분별기(分別起) 번뇌 즉 사교(私敎) 등의 유도(誘導) 등에 의해서 또는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 일으키는 후천적인 번뇌이다.
  281. 263)유식학에서는 견혹으로서 112가지를 건립한다. 이 숫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산출된다. 일체 번뇌 중에서 탐(貪)ㆍ진(瞋)ㆍ치(痴)ㆍ만(慢)ㆍ의(疑)ㆍ유신견(有身見)ㆍ사견(邪見)ㆍ변견(邊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의 10가지를 본혹(本惑:근본번뇌)라고 하고, 그 나머지는 수혹(隨惑:지말번뇌)이라 이름한다. 여기서 탐ㆍ진ㆍ치ㆍ만ㆍ유신견ㆍ변견은 견소단(見所斷)과 수소단(修所斷)에 통하고, 의(疑)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은 오직 견소단이다. 견소단혹 즉 분별기번뇌는 욕계에서 10본혹(本惑)이 각각 4성제(聖諦)의 이치를 장애하므로 40가지이고,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진(瞋)의 번뇌가 없기 때문에 나머지 9가지 본혹이 역시 각각 사성제의 이치를 장애하여 9×4×2=72가지로서 모두 합하면 112가지가 된다. 
  282. 264)유식학에서는 수소단혹(修所斷惑) 즉 선천적인 구생기(俱生起) 번뇌로서 16가지를 건립한다. 욕계에서 6가지(본혹 10가지에서 疑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을 제외함)이고, 색계와 무색계에서 각각 5가지(앞의 6가지에서 다시 瞋을 제외함)가 있으므로 합하여 16가지가 된다. 본문에서 128가지라고 말한 것은 견혹(見惑) 112가지에다가 수혹(修惑) 16가지를 합한 것이다. 이들 번뇌가 수도(修道) 과정에서 모두 소멸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283. 265)능히 괴로움과 맺어지기 때문에 번뇌를 결(結)이라고 부른다. 이에 애결(愛結), 에결(恚結), 만결(慢結), 무명결(無明結), 견결(見結), 취결(取結), 의결(疑結), 질결(嫉結), 간결(慳結)의 9결을 든다. 또는 3결이라 하여 유신견결(有身見結)ㆍ계금취결(戒禁取結)ㆍ의결(疑結)을 말하기도 한다.
  284. 266)선행(善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번뇌를 박(縛)이라고 부른다. 이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3박을 든다.
  285. 267)세간의 모든 증상(增上)의 종자가 따르고[隨逐] [眠]하기 때문에 수면(隨眠)이라고 부른다. 이에 탐(貪)ㆍ진(瞋), 만(慢), 무명, 견(見), 의(疑)의 6수면을 들거나 이것을 세분하여 7수면, 10수면, 98수면을 든다.
  286. 268)전도되고 오염된 마음이기 때문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3수번뇌라고 한다.
  287. 269)자주 일어나서 나타나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무참(無慙), 무괴(無愧), 혼침, 수면(睡眠), 들뜸[掉擧], 뉘우침[惡作], 질투, 인색[慳悋]의 8전을 든다.
  288. 270)깊어서 건너기 어렵고,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이에 욕폭류(欲暴流), 유폭류(有暴流), 견폭류(見暴流), 무명폭류(無明暴流)의 5폭류를 든다.
  289. 271)액(軛)은 수레의 멍에를 뜻하는 한자로서 번뇌의 이명(異名)으로 사용된다. 번뇌가 중생으로 하여금 고뇌에 얽매이게 만드는 멍에와 같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
  290. 272)능히 자기 몸을 취착하여 상속해서 끊이지 않기 때문에 취(取)라고 부른다. 이에 욕취(欲取), 견취(見取), 계금취(戒禁取), 아어취(我語取)의 4취를 든다.
  291. 273)해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탐신계(貪身繫), 진신계(瞋身繫), 계금취신계(戒禁取身繫), 이것이 진실이라고 집착하는 것들의 계박[此實執取身繫]의 4계를 든다.
  292. 274)진실한 뜻을 덮기 때문에 개(蓋)라고 한다. 이에 탐욕, 성냄, 혼침과 수면, 도거(掉擧)와 오작(惡作), 의심의 5개를 든다.
  293. 275)좋은 곡식밭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주올(株杌)이라고 한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3주올이라고 한다.
  294. 276)번뇌가 마음을 더럽히는 때[垢]와 같다는 의미에서 번뇌의 이명으로 사용된다.
  295. 277)하고 싶어하는 바에 언제나 모자람이 있게 하고, 쌓아 모은 바의 모든 선근을 섶을 태우기 때문이다.
  296. 278)번뇌가 중생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을 비유한다.
  297. 279)화살이 멀리서 움직여 오는 것처럼 번뇌 망상도 항상 쉼이 없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98. 280)번뇌가 몸에 생사의 과보를 있게 됨을 비유한 것이다.
  299. 281)번뇌가 중생으로 하여금 악행을 하게 만드는 것을 비유한다.
  300. 282)범어 āsrava의 번역으로서 누설(漏泄)이란 뜻이다. 누진통(漏盡通)이란 용어에서 보듯이, 번뇌가 다해서 없는 것을 누진(漏盡)이라 하기도 한다. 누(漏)에는 유(流)와 주(住)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유(流)의 의미에는, 번뇌로 인하여 그 마음을 유동(流動)시켜서 6창문(瘡門)에서 항상 부정물(不淨物)을 흘러낸다는 뜻과, 또한 번뇌에 의해서 생사의 세계에서 유전(流轉)된다는 뜻이 있다. 주(住)의 의미에는,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에 머물게 한다는 뜻과, 업종자를 번뇌의 그릇에 담아서 저장해두면 후유(後有)를 낸다는 뜻이 있다. 3루(漏)라 하여 욕루(欲漏), 유루(有漏), 무명루(無明漏)를 들기도 한다.
  301. 283)궤(匱)는 핍(乏)의 뜻이다. 수용하는 데 만족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3궤라고 한다.
  302. 284)쇠퇴와 손해를 이끌기 때문이다.
  303. 285)송사와 다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304. 286)큰 열병(熱病)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305. 287)번뇌, 망견 따위의 상념(想念)이 심한 것이 마치 ‘빽빽한 숲’ ‘무성한 산림’과 같음을 비유한다.
  306. 288)중생들에게 갖가지 묘한 욕심의 대상에 즐거이 집착하게 하고,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증득하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에 번뇌를 구애(拘㝵)라고 부른다. 이에 그 몸을 돌아보고 그리워 함, 모든 욕심을 돌아보고 그리워 함, 즐거워하며 서로 뒤섞여 머무는 것,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결여됨, 아주 작은 선(善)을 얻고 문득 기쁘고 만족함을 내는 것의 5구애를 든다.
  307. 289)번뇌로부터 생긴 제2의 번뇌를 의미한다. 혹은 번뇌를 도와서 신업ㆍ어업ㆍ의업을 조작하는 의미의 업을 가리키기도 한다.
  308. 290)의지의 활동, 마음속의 작업을 말한다. 참고로 말하면 업(業의, karman)은 ‘조작(造作)’이란 뜻으로서 행위, 소작(所作), 의지에 의한 심신의 활동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업을 신업(身業)ㆍ어업(語業)ㆍ의업(意業)의 삼업으로 나누는데, 사업(思業)은 바로 의업을 가리킨다. 의지의 활동[意業]이 신체적 행동[身業]과 언어적 표현[語業]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신업ㆍ어업 이전에 마음으로 짓는 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309. 291)일반적으로 사이업(思已業)이라 말한다. 마음속으로 분별하고 생각함이 밖으로 나타나 언어와 신체 행동 등을 일으키게 한 것으로서, 삼업 중에서 신업과 어업을 가리킨다.
  310. 292)색계ㆍ무색계의 선업(善業)을 말한다. 이들 세계의 업은 정력(定力)에 의한 것으로서 초선업(初禪業)은 반드시 초선의 과보를 받고, 2선업(禪業)은 반드시 이선의 과보를 받아서, 업과 과보가 틀리지 않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311. 293)총체(總體)로서의 일생의 과보를 이끄는 업, 곧 인간계나 축생계 등에 태어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는 업을 말한다. 견인업(牽引業), 총보업, 인인(引因) 등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말하면 인간계 등에 태어난 자에게 개개의 구별을 갖게 하여 개체를 완성시키는 업을 만업(滿業), 별보업(別報業)이라 한다.
  312. 294)고잡염(苦雜染)이라고도 한다. 번뇌 및 업에 의해서 삼계에 태어나서 괴로움을 받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313. 295)생고(生苦)를 가리킨다. 태어날 때의 괴로움을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날 경우, 모태 속에서 10달 동안 있을 때도 갖가지 고통을 받으며, 신생아가 모태로부터 태어날 때 산모가 느끼는 고통보다 약 10배 정도의 괴로움을 받는다고 한다.
  314. 296)유루종자(有漏種子)의 작용을 말한다.
  315. 297)8고(苦) 중에서 5음성고(陰盛苦)ㆍ5취온고(取薀苦)를 가리킨다. 5온(蘊)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괴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