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法界無差別論一卷

ABC_IT_K0639_T_001
017_0790_c_01L대승법계무차별론(大乘法界無差別論)


견혜보살(堅慧菩薩) 지음
제운반야(提雲般若) 한역
송성수 번역


법계는 생멸하거나 늙고 병들고 죽음이 없고
쌓임[蘊]의 과환[過]도 없는지라
이러함을 말미암아 수승한 보리심을 내나니
이 때문에 나 이제 머리 조아려 예경하네.

유정(有情)들의 보리심이 구족하여
능히 성자(聖者)와 자연을 내는 것은
일체 선한 법의 의지하는 곳이어서
마치 땅ㆍ바다와 종자 같기 때문이라

저 종자가 모태(母胎) 속에 들어 있어
유모(乳母)가 공동으로 기르는 것처럼
신심과 수승한 지혜의 보리 근본도
큰 선정과 큰 자비로써 키우는 것이네.

성품의 청정함과 깨닫는 마음의 항상 때 없음이
마치 큰 보배와 큰 허공 같고
수미산[蘇迷盧]이 뭇 산을 초월한 것 같아서
일체 청정하 법 보배의 나는 곳이라

탐욕ㆍ진심ㆍ우치를 다 끊어버려
번뇌의 허물에 끌림이 되지 않고
항하 모래의 기능(技能)보다도 뛰어나서
만법의 원만한 광명이 비추어 통하나니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의 바라밀을
성취하신 이가 응공(應供)ㆍ시방존(十方尊)이시고
처음 닦기 시작할 때 곧 보리심이어서
과덕(果德)이 원만하신 이를 정각(正覺)이라 하네.

저 체(體)가 능히 법계의 모양을 함축함으로써
지혜의 광명이 밝고 깨끗하여 하자가 없고
보리의 마음 법이 상상할 수 없음으로써
모든 부처님 여래가 다 찬탄하시네.

처음이 없는 때로부터 조작한 것이 아니고
거리낌도 없고 끝나는 것도 없고
≺공≻하여 형상 없는 지혜로써 분명히 아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 여래의 경계이시라

저 성품이 일체 법의 의지하는 것이어서
단견[斷]ㆍ상견[常]의 두 가지 견을 아주 여의고
법신(法身)의 경계가 바로 저 중생의 경계이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본래 차별이 없음을 설하셨네.

부정과 또는 청정과 청정하지 않음과
지극히 청정한 그 차례를 알아 둘지니
부정은 곧 중생이고 그 다음은 보살이고
최후의 지극히 청정함은 여래이시라

진구(塵垢)에 더럽힌 성품의 밝지 않음이
마치 구름 덩어리가 햇빛을 막은 것 같으므로
번뇌의 구름 그물을 다 해탈하고 나면
햇빛 광명의 비춤이 온 허공에 가득하네.

치성한 겁화(劫火)가 공중을 사르더라도
허공은 본래 타지는 모양이 없듯이
법의 성품도 그러하여 사르지 않고
늙고 병들고 죽는 불로써 파괴할 수 없나니

일체 세간의 생멸하는 법이
죄다 허공을 벗어나지 않는지라
이와 같이 함이 없는 법계 가운데
모든 근(根)이 이것을 의지하여 생멸하네.

마치 등불이 밝음과 따뜻함과 빛으로 화합된 것이어서
이 세 가지 법을 떠나신 다시 등불이 없듯이
부처님의 법도 그 체(體)와 함께 한 것이어서
이 법을 대한 이외엔 별다른 체가 없는지라

객진(客塵) 번뇌의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저 청정한 체와 더불어 먼저 떠났기 때문이니
≺공≻하여 때 없는 법이 상응하지 않고는
끊어버릴 수 없어 언제나 따라다니기 마련이네.

마치 연꽃이 피어나면 잎이 덮는 것과 같고
깨끗한 금(金) 성품이 더러움 속에 묻히는 것과 같고
또는 원만한 달빛이 라후(羅睺)에 먹히는 것과 같아서
세간을 비출 수 없음은 번뇌에 덮였기 때문이네.

그러나 맑은 못 물에 묘한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고
금산(金山)이 진흙 찌꺼기에 더럽히지 않음과 같고
청정한 공중에 별ㆍ달이 가득한 것과 같기도 하여
해탈의 지혜가 원만함으로써 그 때를 제거할 수 있으며

마치 아침 햇빛이 세간을 비추매
많은 광명이 두루 찬란한 것과 같고
땅 곡식과 바다 보배의 가득함과 같기도 하여
생사를 벗어나 중생들을 길러낼 수 있다네.

항상 생사에 처해 지혜와 자비를 내어서
항상[常]하고 무상함에 집착하지 않으시니
선정과 다라니의 청정한 물이고
모니왕(牟尼王)의 거름이고 선한 곡식의 종자이라

이것이 곧 법의 몸이신 여래이고
또는 성제(聖帝)의 진실한 열반이니
마치 물이 차가움과 더불어 떠나지 않듯이
불과(佛果)와 열반도 역시 그러하시네.

결과와 원인과 제 성품과
다른 이름과 또는 차별과
다른 모양과 더럽히지 않는 성품을
역시 항상 화합하는 것이라 하네.

있고 없는 뜻과 하나의 성품 등
대략 열두 가지가 있음을 설함이니
보리심(菩提心)의 이름에 대한
그 차례를 알아 두어야 하네.

≪해석≫ 이것이 논의 체(體)이다. 그 가운데 보리심의 과(果)를 먼저 보이고 다음에 공능(功能)이 저 원인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밝힘이다. 원인이 이미 일어나고 나면 곧 제 성품이 상모(相貌)의 다른 이름과 차별을 시설하여 몸 받는 곳을 따라 더럽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화합하는 것이라 한다. 별다른 선한 법의 상응하는 것이 없이 번뇌 속에 머무는 것을 없는 뜻이라 한다. 속박에 벗어나서 청정한 것을 있는 뜻이라 하고, 또는 하나의 성품이라 함이니, 모두가 열반이기 때문이다. 열두 가지 뜻을 차례로 알아 들지라.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보리심의 과인가 하면,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적멸한 열반이 그것이고 또는 그 밖의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미세한 습기(習氣)까지도 죄다 이미 끊었기 때문이며, 나는 것이 없다는 말은 뜻으로 이룩되는 모든 쌓임[蘊]이 본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늙음이 없다는 말은, 적멸한 공능(功能)이 수승함을 더하여 끝까지에 이르기 때문이고, 병이 없다는 말은, 일체 번뇌의 습기장(習氣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다 아주 끊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다는 말은 부사의한 변역(變易)이 끝내 다하지 않기 때문이고, 쌓임이 없다는 말은 처음이 없는 무명(無明)의 머무는 자리를 죄다 끊었기 때문이다. 과환이 없다는 말은 일체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다 과실이 없기 때문이고, 또는 일체의 공능을 초월했기 때문이라, 저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보리심을 따르게 되는가 하면, 가장 수승한 방편과 물러서지 않는 원인으로 능히 열반의 과를 열반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법계의 성품이 법의 몸에 전의(轉依)하는 그것이 열반의 경계다. 이 때문에 나 이제 저 부사의한 보리의 마음에 엎드려 예경하는 바이니, 원인과 결과의 증장(增長)함이 점점 밝고도 왕성하여 초승달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보리심의 종자란 것은, 일체 세간의 선한 법 곡식이 생겨나 그 의지(依持)하는 처소가 큰 땅과 같기 때문이다. 일체 성자(聖者)들의 법 보배의 나오는 처소가 큰 바다와 같기 때문이며, 일체 부처님들의 도 나무[道樹]의 따라 나는 그 차례의 원인이 종자와 같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리심의 결과인 것이다.
다시 무엇으로써 저 원인의 상응하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마치 전륜왕(轉輪王)의 아들과 같음이다. 이른바 청정한 마음이란 것은, 곧 보리심의 종자이며, 수승한 지혜란 것은, 곧 수승한 반야(般若)가 능히 일체를 요달하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어머니라 한다. 삼마지(三摩地)란 것은 선정으로써 태(胎)를 삼음이니, 일체 선한 법이 그 속에 편히 머물러 안락한 것으로써 체(體)를 삼음이다. 대비(大悲)란 것은,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심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생사 속에서도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는 일체 갖가지의 지혜를 원만히 하여 보리심을 길러내어서 유모(乳母)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저 화합으로 인한 보리의 마음이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 들지니, 그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번뇌의 더러운 모양이 그것이고, 둘째는 청정한 법의 제 성품의 모양이 그 속에 더러워지는 것이다. 저 제 성품은 청정하여 항상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지만, 객진(客塵) 번뇌가 덮고 막아서 그 더러움에 물들게 되나니, 마치 불[火]의 제 성품이야 청정하지만, 재[灰]ㆍ진흙ㆍ구름ㆍ먼지 따위의 막히고 가리는 것과 같다. 또는 불과 보배구슬과 허공과 물의 제 성품이 더럽지 않음으로써 만약 재 따위를 떠난다면 불 내지 물의 제 성품이 다 청정하게 되는 것과 같음이다. 일체 중생들도 그러하여 제 성품의 마음이 다 똑같이 청정함으로써 탐욕 따위 번뇌에의 더럽힘이 되기는 하지만, 만약 탐욕 따위를 떠난다면 그 마음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
도 어떻게 청정한 법의 모양이 역시 다 청정한 것인줄을 아는가 하면, 제 성품의 청정함이 곧 일체 청정한 법의 의지하는 곳이고, 일체 청정한 법도 그것을 따라 나는지라, 마치 수미산[蘇迷盧山]에서 출생하는 보배와 같기 때문이다. 보리의 마음도 그러하여 일체 기예(技藝)를 다 원만히 할 수 있고, 네 가지 큰 바라밀다(波羅蜜多)를 얻게 되느니라. 이 때문에 보리의 마음을 여래의 법 몸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경 가운데 설한바, “세존이시여, 여래의 법신이 바로 상(常)바라밀이고, 낙(樂)바라밀이고, 아(我)바라밀이고, 정(淨)바라밀이옵니다”라고 설한 것과 같음이다. 또 저 여래의 법신도 번뇌 때문에 번뇌를 따라 더럽히게 되는지라, 제 성품의 청정한 마음이란, 이 다른 이름으로 설하는 것이니, 경 가운데 설한 바, “사리불(舍利弗)이여, 이 선한 법은 여실히 진여의 법계 제 성품과 청정한 마음의 상응한 법체(法體)인지라, 나 이 제 성품과 청정한 마음을 의지하여 중생들을 위해, 이 때문에 부사의한 것을 설하노라고 하신 말씀과 같음이다.
다시 저 마음이 모든 중생들에게 열 가지 사업의 차별 없는 모양이 되나니, 이른바 조작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도 없고 나지도 않기 때문이고, 끝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거리낌이 없는 제 성품의 광경이기 때문이고, ≺공≻한 지혜로써 일체 법의 그 한 가지 맛과 모양이 성품 없는 것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다. 성품 없는 그것이 곧 모양 없는 것이어서 모든 감관의 경계를 여의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곧 성자(聖者)들의 행하는 바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일체 법의 의지하는 바 그 더럽고 깨끗한 모든 법의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이고, 상견[常]으로 보는 더러운 법을 아주 떠나서 상견이 없기 때문이다. 단견[斷]으로 보는 청정한 법을 아주 떠나서 단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 차별에 대략 세 가지 모양이 있으니, 이른 바 부정한 것이란, 곧 처음에 설명한 중생계(衆生界)가 그것이고,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는 것이란, 곧 다음에 설명한 보살이 그것이고, 지극히 청정한 것이란, 곧 최후에 설명한 여래가 그것이다. 경(經)에 설한 바, “사리불(舍利弗)이여, 곧 이 법계에 항하사보다 더 많은 그지없는 번뇌의 껍질에 둘러싸여서 처음이 없는 세간으로부터 항상 생사의 물결에 떠돌아다녀 오고 가고 나고 사라지면서 항상 그 중류(中流)에 처해 있는 것을 이르되 중생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곧 이 법계에 그지없이 생사를 싫어 여의면서도 열반에 머물지 않고, 일체 욕심 세계[欲界] 가운데 머물러서 열 가지 바라밀(波羅蜜)을 행하고 8만4천의 법문을 섭수하여 보리의 행을 행하는 그 때를 이르되 보살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곧 이 법계에 일체 번뇌를 해탈하고 일체 고뇌를 제도하고 일체 번뇌의 속박을 아주 떠나서 청정함을 증득해 가장 지극히 청정한 법성(法性) 가운데 머물러서 일체 중생들이 다 우러러 보게 되고, 일체 지혜에 머물러 큰 세력을 얻어서 장애도 없고 집착도 없어 일체 법 가운데에 자재한 힘을 얻으신 이를 여래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이라 하느니라. 이 때문에 사리불이여, 차별이 없는 중생계이고, 차별이 없는 법의 몸이라, 중생계가 곧 법의 몸이고, 법의 몸이 곧 중생계이니, 이는 두 가지 뜻의 문자(文字)차별이 없느니라”고 한 말씀과 같음이다.
이것이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부정한 때에 있어서 번뇌에 더럽히는 것은 마치 구름 덩어리가 밝은 햇빛을 덮어버리는 것과 같음이다. 제 성품의 청정한 마음도 본래 더러움이 없기 때문에 객진(客塵)번뇌를 이미 제거하고 나면, 햇빛의 밝은 광명이 온 허공에 두루 가득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거늘 어떻게 또 이 성품을 항상한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마치 겁화(劫火)가 허공을 사르지만, 허공의 경계는 함이 없어서 본래 태우는 모양이 없는 것과 같음이다. 법계의 함이 없음도 그러한 것이어서 늙고 병들고 죽는 불이 태우거나 무너뜨릴 수 없나니, 이 때문에 경(經)에 설하기를, “세존이시여, 세간에서 이른바 생사가 있다는 것은 여래장(如來藏)에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죽음이란, 낡은 모든 감관이 무너지는 것이고, 나는 것이란, 새로운 모든 감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함이 있는 경계의 모양을 여의고 항상 머물러 고요합니다. 이 여래장의 성품이 이미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고 발기(發起)할 수 없는데 어떻게 부처님 법과 더불어 상응할 수 있는가 하면, 마치 등(燈)의 그 밝음과 따뜻함과 빛이 다시 차별의 모양이 없는 것처럼 법과 법의 몸도 그러한 것이겠나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설하시기를, “사리불이여, 마치 등(燈)이 두 가지 법이 없고 공능(功能)이 다르지 않음은 그 등의 광명과 따뜻함과 빛이 서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보배 구슬의 광명과 형색이 서로 떠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여래가 설한 바 법의 몸도 법과 더불어 서로 떠나지 아니하나니, 이 때문에 지혜와 공능의 하는 일이 항하사보다 더 많은 것이 바로 여래의 법이니라”고 하신 말씀과 같음이다. 또 경에 설하기를, “세존이시여, 두 가지 여래장의 공하고 공하지 않는 지혜가 있으니, 그 두 가지가 어떤 것이냐 하면, 세존이시여, 이른바 공한 여래장이란 번뇌의 껍질과 더불어 화합하여 차별이 없으므로 해탈할 줄을 모르는 것이고, 공하지 않는 여래장이란, 항하사 겁을 지나도록 이탈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아서 부사의한 불법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를 이르되 여래의 법 몸이라 합니다”라고 설한 것과 같음이다. 왜냐하면 법 몸은 만덕(萬德)이 원만하고 공덕이 구족하거늘, 중생들이 무엇으로 인해 해탈하지 못하겠는가. 마치 연꽃이 삿된 소견의 그물 잎에 덮인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진금(眞金)이 의혹의 더러움 속에 떨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며, 가득한 달이 아만(我慢)의 라후(羅睺)에 먹힌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맑은 못 물이 탐욕의 진구(塵垢)에 흐려진 것과 같기 때문이며, 저 금산(金山)이 진심(瞋心)의 진흙에 더럽힌 것과 같기 때문이다. 크나 큰 허공이 우치(愚癡)의 구름 덩어리에 가린 것과 같기 때문이며, 햇빛이 미처 솟아나지 않을 때 무명(無明)의 머【문】자리에 막힌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대경[六處]의 큰 쌓임[蘊]이 태장(胎藏)속에 머무는 것도 기세간(器世間)의 모양이 이룩되지 못한 것과 같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두 가지 인연의 화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연꽃과 진금과 가득한 달과
못 물과 금산과 크나 큰 허공과
햇빛과 큰 땅과 구름과 같이
불성도 객진 번뇌에 더럽히네.

번뇌가 공능(功能)을 덮으면
불사를 일으킬 수 없는지라
대략 아홉 가지 비유를 설하니
더러움과 깨끗함이 상반됨을 알아야 하네.

이것으로 말미암아 여래의 변신이 또한 그러하나니, 일체 객진 번뇌의 장애를 다 여의었기 때문에, 또는 제 성품의 공능을 구족했기 때문에 응공(應供)을 성취하게 되어 일체 중생들이 공동으로 수용(受用)하며 항상 적정(寂靜)하고 청량(淸凉)하고 부사의한 열반의 경계에 머물 것을 증득함이다. 이른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란, 그러한 것이고, 여래의 법신 이외에 따로 열반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이미 설한 바와 같이 중생의 경계일지라도 청정함을 얻을 적엔 곧 그것이 법의 몸이고, 법의 몸이 곧 열반의 경계이고, 열반의 경계가 곧 여래인 줄을 알아야 하리라. 경 가운데 설한 바, “세존이시여, 더 없는 등정각이란 곧 열반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열반의 경계가 바로 여래와 법신이 다르지 않음이니, 이는 곧 괴로움이 멸한 것이겠나이다”라고 설한 것과 같음이라, 이 대문에 경에 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파괴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괴로움의 멸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괴로움의 멸한 것이란, 처음도 없고 지음도 없고 나는 것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고 다하는 것도 없어서 다함을 여의었으니, 항상 머무르고 변동하지 않고 적정(寂靜)하고 제 성품이 청정하여 일체번뇌의 껍질을 깨뜨리고 항하사 겁을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부사의한 불법을 구족했으므로 이를 여래의 법신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여래장은 번뇌의 껍질을 벗지 못한 것을 여래장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곧 모든 부처님의 의한 지혜이오니,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일체 성문(聲聞)ㆍ연각(緣覺)으로선 볼 수 없는 것이어서 과거에 일찍 얻지 못했는데, 오직 여래께서 증득하고 또 일체 번뇌의 껍질을 깨뜨려 일체 괴로움의 멸하는 도를 수습(修習)하셨는지라, 이 때문에 물과 차가움의 다름이 없는 것처럼, 깨닫는 성품과 열반은 둘이 없고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은 일승(一乘)의 불성과 혹은 그 밖의 열반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하고, 또는 동일한 법계에 있어서 혹은 작은 열반, 혹은 중간 열반, 혹은 큰 열반을 말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니, 하(下)이건, 중(中)이건, 상(上)이건, 원인 가운데 결과를 얻는 것은 응당 동일한 것이겠나이다. 원인이 이미 차별이라면, 결과도 또한 차별이겠지만, 이 때문에 세존이시여, 하이건, 중이건, 상이건 할 것 없이 다 열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평등한 법이라든가, 평등한 지혜라든가, 평등한 해탈이라든가, 해탈 지견(知見)이란 것이 다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세존이시여, 열반의 경계가 동일한 맛이고, 평등한 맛이란 것은 곧 이른 바 해탈의 맛을 밝히는 것이겠나이다”라고 하였다.
017_0790_c_01L大乘法界無差別論一卷 一名如來藏論堅慧菩薩造大唐于闐三藏提雲般若譯法界不生亦不滅 無老病死無薀過由彼發勝菩提心 是故我今稽首禮有情菩提心具足 能生聖者及自然一切善法所依處 由如地海種子等彼種含在母胎中 亦如乳母共長養信心勝智菩提本 大定大悲育應知性淨覺心常無垢 猶如大寶太虛空如蘇迷盧超衆嶽 一切白法寶生處貪嗔癡等皆斷盡 不爲煩惱過所牽過於殑伽沙伎能 萬法圓滿光映徹淨我樂常波羅蜜 得成應供十方尊因時卽是菩提心 果滿德圓名正覺彼體能含法界相 智光朗徹淨無瑕菩提心法不思議 諸佛如來皆讚歎無始以來非造作 無有質㝵亦無終以空無相慧了知 諸佛如來之境界彼性一切法所依 遠離斷常二種見法身與彼衆生界 是故佛說本無差不淨及與淨非淨 極淨次第應當知初卽衆生次菩薩 最後如來極淸淨塵垢所污性不明 喩若重雲掩麗日煩惱雲網皆解脫 日輪光照滿虛空劫火熾盛在空中 太虛本無有燒相如是法性不被燒 老病死火無能壞一切世閒生滅法 皆悉不離於虛空如是無爲法界中 諸根依此而生滅如燈明煖色和合 離此三法更無燈如是佛法與體俱 離此法外無別體客塵煩惱性非有 與彼淨體先相離不空無垢法相應 無有斷脫常隨轉如蓮開已葉所蓋 如金性淨沒穢中亦如滿月羅睺呑 不能照世煩惱覆如淸池水妙華敷 金山埿滓無能污如淨空中星月滿 解慧圓照垢消除譬如旭日照世閒 千光晃耀普周遍如地如海穀寶滿 得脫生死養衆生恒處生死發智悲 常無常等無住著禪定摠持淸淨水 牟尼王雲善穀因斯卽法身是如來 亦名聖帝眞圓寂如水與冷不相離 佛果涅槃亦復然論攝頌曰果因及自性 異名與差別 異相不染性亦名常和合 有無義一性 略說有十二菩提心之名 應知其次第釋曰 此是論體其中先示菩提心果次明功能從彼因起因旣起已卽自性施設相貌異差別隨受身處不被污染故說爲常和合無別善法相應住煩惱中爲無義出纏淸淨名爲有義亦名一俱涅槃故十二種義次第應知中何者是菩提心果所謂諸佛寂滅涅槃是也亦非餘者何以故微細習悉已斷故言無生者意成諸薀本不生故言無老者寂滅功能增長殊至邊際故言無病者一切煩惱習障及所知障俱永斷故言無死者思議變易無終盡故言無薀者無始無明住地悉以斷故言無過者一切意業無過失故亦能超過一切諸功能故彼由何得從菩提心最勝方便不退失因而能證得涅槃果故何者名涅槃界所謂諸佛不可思議法界之性轉依法身是涅槃界也故我今頂禮彼不思議菩提之心果增長漸漸明盛如初月故復次菩提心種子者一切世閒善法穀生所依住處如大地故一切聖者法寶出處如大海故一切諸佛道樹之所從生次第之因如種子故此是菩提心之果也復次何以得知彼因相應如轉輪王言淨信者卽是菩提心種言勝智卽最勝般若能了一切名之爲母三摩地者以定爲胎一切善法安住其中安樂爲體言大悲者於諸衆生起大悲故於生死中不疲倦故及能圓滿一切種智養菩提心爲乳母故復次彼因和合菩提之心應知有二何者爲二一謂煩惱所染污相二謂白法自性之相於中染者彼自性淸常心不染而爲客塵煩惱覆障染猶如火等自性淸淨爲灰埿雲塵等障蔽譬如火與寶珠虛空及水自性不染若離灰等火等自性皆得淸淨一切衆生亦復如是自性之心同淸淨爲貪等煩惱之所染污若離貪等則心得淸淨復云何知白法之亦皆淸淨自性淸淨一切白法之所依止一切白法亦從彼生如蘇迷盧山出生寶故菩提之心亦復如是一切技藝皆得圓滿獲得四種大波羅蜜多是故說爲如來法身如經中說世尊如來法身是常波羅蜜樂波羅蜜我波羅蜜淨波羅蜜如來法爲煩惱隨煩惱之所染污自性淸淨心是異名說如經中說舍利弗善法如實眞如法界自性淸淨心相應法體我依此自性淸淨心爲衆生說爲不可思議復次彼心於諸衆生爲十種事無差別相所謂無作故無始不生故無終不滅故無㝵自性光明故以空智一切法一味相猶無性故無性卽無離諸根境界故是聖者所行諸佛境界故一切法所依染淨諸法所依止故遠離於常染法無常故遠離於斷白法不斷故此復差別略有三相言不淨者卽初說名爲衆生界淨不淨者卽次說名爲菩薩也極淸淨者說爲如來如經所說舍利弗卽此法過於恒沙無邊煩惱㲉所纏裏始世來常爲生死波浪漂流往來生滅恒處中流說名衆生舍利弗卽此法界無邊厭離生死不住涅槃一切欲界中住行十波羅蜜攝八萬四千法門行菩提行時名爲菩薩舍利弗卽此法界一切俱胝煩惱解脫度一切苦遠離一切煩惱隨眠纏垢證得淸淨最極淸淨法性中住一切衆生之所瞻仰住一切爾焰地得大勢力無障無著於一切法得自在力說名如來應正等覺是故舍利弗無別衆生界無別法身衆生界卽法身法身卽衆生界此無二義文字差別此復云何在不淨時煩惱所染猶如重雲掩覆麗日自性淸淨心無有染客塵煩惱旣除遣已日輪晃曜遍滿虛空旣有生老病死云何復說此性爲常猶如火劫燒太虛空空界無爲本無燒相法界無爲亦復如是老病死火無能燒壞是故經說世尊世閒言說有死有生非如來藏有生死也世尊死者舊諸根壞生者新諸根起世尊如來藏離有爲境界相常住寂此之藏性旣常住不變未能發起云何得與佛法相應猶如燈明及與煖色更無別相法與法身亦復如是如佛說言舍利弗譬如燈無二法能無異所爲光明及煖色等不相離或如寶珠光明形色如是如是利弗如來所說法身不相離法智慧功能所爲過殑伽沙如來之法如說世尊有二種如來藏不空智何者爲二世尊所謂空如來藏與煩惱㲉和合無別不了解脫不空者過恒河不離不脫不異不思議佛法成就說如來法身何故法身萬德圓滿德具足衆生因何不得解脫喩若蓮邪見羅網葉所覆故亦如眞金於疑惑不淨穢故猶如滿月我慢羅睺之所呑故如淸池水貪欲塵垢之所濁故喩彼金山爲嗔恚埿所塗染如太虛空愚癡之雲遍滿遮故日未出無明住地之所障故六處大胎藏中住如器世閒相未成故是無雨緣未合故蓮花金滿月 池水金山空 如日大地雲佛性客塵染 煩惱覆功能 佛事無由作略說九譬喩 染淨翻應知由此如來法身亦復如是一切煩惱客塵離障盡故自性功能具足故成應供一切衆生同共受用證得常住寂靜淸涼不思議涅槃界所謂說如來應正等覺非異如來法身外有涅槃又如所說衆生界得淸淨時應知卽是法身法身卽是涅槃界槃卽是如來如經中說世尊無上正等覺者卽是涅槃世尊涅槃界者是如來法身世尊法身之外無別如世尊如來者卽是法身此無有異卽是苦滅等是故經言世尊非壞法故名爲苦滅然苦滅者無始無作無生無起無滅無盡離盡常住不動寂靜自性淸淨破一切煩惱㲉過殑伽河沙不離不脫不思議佛法具足說如來法身世尊此是如來藏未脫煩惱㲉名如來藏世尊如來藏者諸如來空智世尊如來藏一切聲聞緣覺所不能見先未曾見昔未曾得唯有如來得證及破一切煩惱㲉習一切苦滅道是故如水與冷覺性與涅槃無二無別故或說一乘性欲或不涅槃又說同一法界或小涅槃或中涅槃或大涅槃不爾下中上中轉果應爲一也因旣差別果亦差是故言世尊無有下中上者得涅世尊平等法者平等智者平等解脫者解脫知見者證得涅槃是故世涅槃界一味等味所謂明解脫味大乘法界無差別論一卷此是國宋藏所謂法界無差別論雲般若譯者今按開元錄及賢首疏則彼丹本五言二十四頌者眞是提雲般若所譯而賢首疏所釋者又此論錄及疏中竝爲單譯而國宋兩本與彼丹本文雖有異義則無殊必是開元之後後代重譯但未知何代何人之譯此須待勘而二藏直以此爲提雲般若譯者錯也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