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盧至長者因緣經

ABC_IT_K0859_T_001
020_1218_a_01L노지장자인연경(盧至長者因緣經)
020_1218_a_01L盧至長者因緣經


실역인명(失譯人名)
권영대 번역
020_1218_a_02L失譯人今附東晉錄


간탐에 집착하면 사람과 하늘이 천히 여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보시한다. 왜냐하면 내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노지(盧至)라는 큰 장자가 있었는데, 그 집은 부자여서 재산이 한량없고 창고가 가득 넘쳐 마치 비사문(毘沙門)과 같았으니, 옛적 좋은 복밭[福田]에서 보시의 인을 닦았으므로 그 과보를 얻었다. 그러나 보시할 때에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던 까닭으로 부자이긴 하였지만 뜻이 항상 옹졸하였으며, 입은 옷은 때 묻고 비린내 나서 깨끗하지 못하였으며, 먹는 것은 잡곡인 피ㆍ가라지ㆍ명아주ㆍ콩 등 나물로서 주림을 채웠으며, 초ㆍ장ㆍ물[空水]로서 목마름을 면하였으며, 썩고 묵은 수레를 타고 풀잎을 엮어서 이엉을 하였다. 자기의 재물은 다 아끼고 인색하였고 고달프게 일하고 부지런히 수호하였으며 관리하기에 지치어 마치 종과 같았으므로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때 라후라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020_1218_a_03L若著慳貪人天所賤是以智者應當布施所以者何我昔曾聞有大長者名曰盧至其家巨富財產無量倉庫盈溢如毘沙門由其往昔於勝福田修布施因故獲其報然其施時不能至心以是之故雖復富有意常下劣所著衣裳垢膩不淨所可食者雜穀稗莠藜藿草菜以充其飢酢漿空水用療其渴乘朽故車編草草葉用以爲蓋於己財物皆生慳悋勞神役思勤加守護營理疲苦猶如奴僕爲一切人之所嗤笑爾時羅睺羅卽說偈言

보시하는 인(因) 같지 않으면
받는 과(果) 각각 다르다.
참된 보시 정성이 두터우면
얻는 과보 마음대로다.
020_1218_a_16L所施因不同
受果各有異
信施志誠濃
獲報恣心意

만약 은중함을 품지 않은
보시는 깨끗한 과보 없나니
노지가 비록 큰 부자였으나
업신여김과 비웃음 받았다.
020_1218_a_18L若不懷殷重
徒施無淨報
盧至雖巨富
輕賤致嗤笑
020_1218_b_02L
또 어느 때 명절[節會]이어서 성안에 집을 장엄하고 채색과 그림을 장식하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았으며, 유리로 장식하고 곳곳에 꽃관을 달았으며, 향수로 땅을 씻고 온갖 꽃을 뿌렸으며, 창문과 대문에는 꽃으로 장식하였다.
모든 사람은 다 갖가지 재주와 음악과 노래와 춤으로 즐겼는데 즐겁기가 마치 천궁(天宮) 같았다. 모든 문 속에는 금병(金甁)에다가 향수를 가득 채웠으며, 거리마다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온갖 꽃을 뿌렸으며 향수로 땅을 씻었다.
020_1218_a_19L又於一時城中節會莊嚴屋宅塗飾彩畫懸繒幡蓋琉璃裝飾處處周遍懸諸華冠香水灑地嚴衆名華窗牖門戶以華裝挍各各皆有種種伎樂歌舞嬉戲歡娛受樂如諸天宮諸門之中皆以金甁盛滿香水諸里巷中懸繒幡蓋散衆名花香水灑地
그때 노지는 모든 인민들이 온갖 모양으로 함께 모여 춤추며 한껏 즐기는 것을 보고 곧 생각하기를 ‘종들과 거지 같은 하천한 사람들도 다 옷을 빌어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구나. 나는 의복과 영락과 재보가 충분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가’ 하고 곧 집으로 달려가서 열쇠로 창고문을 열어서 5전을 내고는 도로 문을 잠그고 생각하기를, ‘내가 집안에서 먹는다면 어머니ㆍ아내 등의 권속들에게 다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먹는다면 집 주인이나 거지가 달라고 할 것이다’ 하였다.
020_1218_b_05L盧至爾時見諸人民種種會同戲舞盡歡便生念言奴婢乞人下賤之者皆假借衣服食美飮食我今衣服瓔珞財寶自足我今何爲而不自樂疾走歸自取鑰匙開庫藏門取五錢已閉鎖門卽自思念我今若於家中食母妻眷屬不可周遍若至他家有主人及以乞者來從我索
그리하여 곧 2전으로 찐보리 가루를 사고 2전으로 술을 샀으며, 1전으로 파를 사고는 웃옷의 앞자락에 소금을 싸고 집에서 나와 성 밖의 나무 밑으로 향하였다. 나무 밑에 이르니 까마귀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서 머무르면 까마귀가 와서 쪼아 먹겠구나” 하고 무덤사이로 가서 보니 개들이 많았다. 다시 피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술에 소금을 넣고 찐보리 가루를 타서 파를 먹으니 술을 전에 먹지 않았던 탓으로 곧 매우 취하였다. 그는 매우 취해서 지껄이되 “온 나라가 실컷 즐기는데 왜 나 혼자만이 즐기지 않으랴” 하고 곧 일어나서 춤추면서 소리 높여 노래하였다.
020_1218_b_13L於是卽用兩錢買麨兩錢沽酒一錢買蔥自家中衣衿裹鹽齎出城外趣於樹下旣至樹下見有多烏若此停止烏來摶撮卽詣塚閒見有諸狗復更逃避至空靜處酒中著鹽和麨食蔥先不飮酒卽時大醉旣大醉已而作是言擧國卽時大作歡樂我今何爲獨不歡樂卽便起舞揚聲而歌歌辭曰

설사 제석천왕도
오늘의 즐거움
나를 미치지 못하는데
더구나 비사문이냐.
020_1218_b_22L縱令帝釋
今日歡樂
尚不及我
況毘沙門
020_1218_c_02L
또 말하기를 “나 오늘 명절에 술 마시니 얼씨구 즐겁기 비사문을 뛰어 넘고 제석천보다 낫구나”라고 하였다.
석제환인과 무수한 하늘들이 기원(祗園)에 가려는 도중인데, 보니 이 노지가 술에 취하여서 춤추면서 “제석천보다 낫구나” 하고 노래하였다.
제석은 생각하였다.
‘이 간탐한 사람이 으슥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는 나를 모욕[罵辱]하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오늘 부처님 처소에 가지 말고 먼저 저 사람을 골려 주리라[惱].’
020_1218_b_24L復作是言我今節慶際縱酒大歡樂踰過毘沙門亦勝天帝釋釋提桓因與無數天衆欲至祇桓於其道邊此盧至旣醉且舞而歌言勝於帝帝釋默念此慳貪人屛處飮酒辱於我復作是念我於今者莫至佛先惱於彼
곧 몸을 변화하여 노지와 똑같게 하고는 그의 집으로 가서 부모ㆍ종ㆍ하인 등 권속들을 모으고 어머니 앞에 앉아서 아뢰었다.
“저의 사랑스러운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의 앞뒤에 큰 간탐 귀신[慳鬼]이 있어서 저를 따라다니면서 저로 하여금 아까워서 먹지 못하게 하였으며, 부모님에게나 권속들에게 돈과 재물을 주지 못한 것도 다 간탐 귀신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밖에 나가서 한 도인을 만났는데 저에게 좋은 주문을 주어서 간탐 귀신을 떨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 간탐 귀신이 설사 다시 온다 하더라도 결코 거듭 저를 뇌란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오나 그 간탐 귀신이 저와 꼭 닮았으니 혹 와서 모든 문지기들이 아프게 몽둥이로 친다면 반드시 ‘내가 노지다’ 하고 거짓으로 이름을 댈 것입니다. 온 집안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020_1218_c_08L釋提桓因卽變己身如盧至卽到其家聚集父母僕使於母前坐而白母言聽我愛語於前後有大慳鬼隨逐於我所以使我惜不噉食不與父母及以眷屬錢財寶物皆由慳鬼今日出行値一道與我好呪得除慳鬼若彼慳鬼復更來終不重能惱亂於我然此慳與我相似設當來者諸守門人當打棒其必詐稱我是盧至一切家莫信其語
020_1219_a_02L그는 창고를 활짝 열어 재물을 내어서는 좋은 음식을 만들고 어머니ㆍ아내ㆍ권속들 모두를 배불려 주었다. 밥 먹기를 끝내고 그는 문지기에게 말했다.
“빨리 문을 닫아라. 설령 간탐 귀신이 오더라도 내가 영락을 나누어 주고 옷을 골고루 주고 모든 기악을 연주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문을 열어라.”
즉시 창고를 열어서 제일 좋은 영락은 먼저 어머니에게 주고 다음은 아내에게 주고 집안의 남녀에게 다들 고루 나누어 주었으며, 그 외에 온 손님에게도 영락과 옷과 밥을 주고는 온갖 기악을 연주하였다. 온 권속들은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발랐으며 혹침수향을 피웠다.
020_1218_c_18L大開庫藏出諸財物好飮食與其母妻及以眷屬悉令充飮食已竟語守門者急速閉門鬼儻來待我分付瓔珞遍賜衣服諸伎樂然後開門卽時大開庫藏妙瓔珞先用與母次者與婦舍內男盡皆遍與其外來客亦與瓔珞及以衣食作衆伎樂其家眷屬衆香塗燒黑沈水
이때에 제석은 한 손에는 어머니를 잡고 한 손에는 아내를 이끌며 기뻐서 음악에 맞추어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사위성 사람들은 모두 노지 장자가 간탐 귀신을 때었다는 말을 듣고 온통 몰려와서 구경하였다.
노지는 술에서 깨어나 성으로 돌아와서 곧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문을 꽉 메운 것들 보았으며, 또한 집안으로부터 노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껏 놀랐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이 나 때문에 화가 나서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크게 군사들을 모아 내 집에 와서 나를 벌주려는 것이 아닌가. 사위성의 사람들이 명절이라고 내 집에 몰려왔는가. 모든 하늘들이 나에게 더욱 이익되게 하려고 내 집에 와서 이렇게 풍악을 연주하는가. 집사람들이 내 창고를 깨뜨려 밥을 지어 먹는가.’
020_1219_a_03L于時帝釋一手捉母手攜婦歡樂起舞歡娛嬉戲不可具舍衛城人皆聞盧至長者慳鬼得一切集會盡來觀之盧至醉醒來入城卽歸己家見諸人衆充塞其復聞家中歌舞之聲極大驚愕是思惟將非是王以瞋我故將諸群臣大集兵衆來至我家欲誅於我是舍衛城人因作節會盡入我家是諸天欲增益我來至我家作斯伎爲是家人破我庫藏而自噉食
이러한 생각을 하고는 빨리 문으로 달려가서 큰소리로 집사람을 불렀다.
그때 집사람들은 풍악 소리의 시끄러움 때문에 도무지 듣는 이가 없었는데, 제석이 그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부르니 너희들은 음악을 멈추어라. 아마 간탐 귀신이 돌아왔나 보다.”
사람들은 귀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곧 문을 활짝 열고 피하여 달아났다.
그때 노지는 달려서 집으로 들어와 제석이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바로 가운데 자리에 앉고 어머니는 오른쪽에 부인은 왼쪽에 앉았으며, 장엄한 옷과 좋은 영락을 입고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술 마시며, 노는데 얼굴빛도 유쾌하게 벌려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020_1219_a_13L惟是已疾走衝門高聲大叫喚其家時其家人音樂聲亂都無聞者帝釋聞喚聲語衆人言誰打門喚汝等且止音樂或能是彼慳鬼還來人聞有卽大開門一切走避時彼盧至來入屋見於帝釋眷屬圍遶正處中母處其右婦處其左莊嚴衣服好瓔珞鼓樂絃歌飮酒慶會容色熙羅列而坐
020_1219_b_02L노지는 깜짝 놀라며 제석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인데 내 집에 들어와서 방일함이 이와 같으냐?”
제석은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집사람들 스스로가 나를 아느니라.”
권속들은 곧 노지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노지는 대답하였다.
“내가 노지이다.”
온 집사람들은 다 한꺼번에 제석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노지요, 우리의 주인이다.”
020_1219_a_22L盧至愕然驚問釋言是誰耶來我家中放逸如是釋微笑今日家人自識於我其家眷屬問盧至汝爲是誰盧至答曰我是盧擧家盡皆同聲指釋而作是言是盧至我之家主
노지는 곧 다시 집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당신이 노지와 닮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귀신이다.”
노지는 다시 말하였다.
“나는 귀신이 아니다. 내가 바로 노지다. 너희들은 지금 똑똑히 관찰해라.”
다시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은 제 형이고 아우는 제 아우입니다. 아내는 제가 경애하는 아내요, 자식은 제가 잊지 못하는[所念] 자식이며, 모든 종과 하인은 다 나의 소유입니다.”
020_1219_b_04L盧至尋復問家人我今是誰家人答言汝之雖認似盧至鬼盧至復言我非是鬼我是盧汝等今者宜好觀察顧語母言是我母兄是我兄弟是我弟妻者是我所敬之妻子者是我所念之子切僕從盡是我有
다시 제석을 가리키며 집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는 다른 사람이다. 얼굴 모양은 나와 같지만 변화하여 내 모양을 만든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살림을 모으고 돈과 재물을 창고에 모았는데, 이 어떤 허깨비가 내 재물을 흩었느냐?”
그때에 그 집사람들은 다들 믿지 않았다.
제석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아주 닮지 않았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저 귀신의 모양이 너를 꼭 닮았구나.”
020_1219_b_10L復指帝釋語家人此是餘人顏貌似我幻化作我從小來產業積聚錢財庫藏是誰幻散我財物時其家人咸皆不信問母言今我兩人極相似不母答言鬼形貌甚似於汝
어머니는 다시 제석에게 말하였다.
“네가 효도와 순종으로 나를 받들어 섬기는 것을 보니 네가 진실로 내가 낳은 아들이며, 저것이 참으로 귀신인줄을 알겠구나. 만약 너희 두 사람이 다 나에게 효도하였던들 내가 가리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너는 효순하고 저 사람은 패역하였다. 그 때문에 나는 네가 정녕 내 아들임을 알았노라.”
다시 며느리를 향하여 말했다.
“저 사람이 너희 남편인데 어찌하여 지금 너는 서로 붙어 안지[鳴捉] 않는가?”
부인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괴상하여라. 왜 사라져 없어지지 않았는가. 결코 그를 위해 부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인은 다시 제석에게 말했다.
“주인[大家]이여, 나는 차라리 지금 당신 곁에서 죽을지언정 결코 저 귀신 옆에서는 살지 않겠습니다.”
020_1219_b_15L母復語釋觀汝孝奉事於我眞實知汝我所生子實是鬼若汝二人俱孝順我我不能以汝孝順彼人悖逆故我定知汝是我子迴語婦言彼是汝夫汝今何爲不相鳴捉其婦羞赧而作是言何不滅去終不爲其而作婦也語釋言大家我今寧在爾邊而死不在彼鬼邊而生
020_1219_c_02L제석은 집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확실히 내가 노지임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앞에 저 귀신을 들여보냈느냐?”
그때 집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즉시 노지의 발을 거꾸로 끌고 몽둥이로 쳐서 문밖의 거리로 내쫓았다.
그는 목 놓아 크게 울면서 말하였다.
“괴상하다. 지금 내 몸뚱이와 얼굴이 본래와 다른가. 무엇 때문에 집 사람들이 이렇게 버리는가.”
020_1219_b_23L釋語家人爾定知我是盧至者何爲前彼鬼使入耶其家人聞此語已卽時倒曳盧至之牽挽打棒驅令出門到里巷中聲大哭唱言怪哉我於今者身形面爲異於本何故家人見棄如是
다시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 내 몸뚱이가 본래와 같지 않습니까? 지금의 내 얼굴이 본래의 얼굴이 아닙니까? 말씨나 행동이나 길고 짧은 모양이 다릅니까, 같습니까?”
곁의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은 본래와 같고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지금 누구입니까? 변화해서 된 다른 사람은 아닌가요? 이름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020_1219_c_05L語左右我今此身如本身不今我之如本面不言語行來長短相貌異不異傍人語言汝故如本與先不復語人言我今是誰將非化作他異人不竟爲字誰我今爲在何處
또 다시 길게 탄식하였다.
“이상하고 괴이하구나. 나는 지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때 노지는 흡사 미친 사람 같았다. 나머지 친한 이웃사람과 집 사람 아닌 이들이 와서 위로하고 달래었다.
“당신은 신중하고 두려워 말라. 당신은 곧 노지이며 지금 당신은 왕사성의 시장에 있으며 우리는 당신의 친한 이웃사람으로 일부러 와서 보는 것이니, 당신은 뜻을 굳세게 하여서 방법과 꾀를 만들어서 스스로가 밝혀야 하오.”
020_1219_c_10L長歎曰奇哉怪哉我於今者知何所盧至爾時如似顚狂其餘親里家人者咸來慰喩汝愼莫懼汝是盧汝於今者在舍衛城中市上我等是汝親里故來看汝汝好强意當作方計以自分明
노지는 그때야 마음이 조금 안정되어 눈물을 닦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노지입니까?”
여러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정말 노지입니다.”
노지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모두가 나를 위하여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우리 모두는 당신을 위하여 정말로 당신이 노지라고 증명할 수 있소.”
노지가 말하였다.
“당신들이 만약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인연을 들어보시오.”
020_1219_c_16L盧至爾時聞是語已意用小安抆淚而言更問餘人我爲實是盧至以不餘人答言汝實是盧盧至語衆人言汝等皆能爲我證衆人皆言我等諸人皆爲汝證是盧至盧至答言汝等若爾聽我廣說因緣

어떤 나이 젊은 소년
나와 꼭 닮았네.
내가 사랑하던 부인과 함께
한 상에 나란히 앉았네.
020_1219_c_22L誰有年少人
與我極相似
共我所愛婦
同牀接膝坐

가까웠던 권속들
나를 때려 내쫓고
모두들 그 사람 좋아하니
그는 편안히 내 집에 있네.
020_1219_c_24L所親家眷屬
見打驅逐出
所親皆愛彼
安止我家中
020_1220_a_02L
주리고 추운 괴로움 참으며
알뜰히 모은 재물
그가 지금 멋대로 쓰기를
마치 비사문이
의식을 자재하듯 하는데
나는 한 푼이 없네.
020_1220_a_02L我忍飢寒苦
積聚諸錢財
彼今自在用
我無一毫分
猶如毘沙門
自恣於衣食

성안에 여러 사람들
제각기 괴상하다고
이 일이 어찌됨인가
다들 그렇게 말하네.
020_1220_a_04L城中諸人等
各各生疑怪
皆作如是言
此事當云何

그 중에 지혜로운 이
말하기를
어떤 매우 교활한 이
모양이 노지와 같았는데
020_1220_a_05L中有明智者
而作如是言
此閒淫狡人
形貌似盧至

노지의 간탐함을 알고
일부러 와서 골림이라
우리들 함께 증명하리니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된다.
020_1220_a_07L知其大慳貪
故來惱亂之
我等共證拔
不宜便棄捨

그때에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을 다 듣고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노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어떻소? 무엇을 하려 하오?”
노지는 곧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 모두가 나를 위하여 모이시오. 내일 왕의 처소에 함께 가야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다 같이 말했다.
“내일 당신을 왕의 처소로 보내겠소.”
이튿날이 되자 모두들 말했다.
“잘됐다. 오늘이 바로 그때다.”
020_1220_a_08L爾時諸人聞是語已皆悉同心咸言盧至汝今云何欲何所爲盧至卽時而作是言汝等諸人爲我集會明日當共至於王所衆人咸言明當送汝至於王所至明日已諸人言曰善哉善哉今正是時
노지는 말했다.
“나는 나의 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큰일인데, 당신들이 만약 나에게 돈을 빌려주시면 내가 성공만 하면 당신들에게 보상하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필요한 대로 당신에게 주겠소. 그런데 무엇이 필요하오?”
그때 노지가 말했다.
“지금 당신이 금 네 수(銖:무게의 단위)의 값이 나가는 2장의 첩(氎:가는 모직)을 나에게 주시오. 왕께 바치리다.”
모두들 웃으면서 생각하였다.
‘노지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4수(銖)를 말하다니 큰 보시구나.’
020_1220_a_14L盧至卽言此是大事我於己財不得自在汝等若能貸我錢財若我得者當償於汝諸人皆言隨所須欲當給於汝又問欲須何物爾時盧至長者而言今汝與我二張㲲來使直四銖金當上於王諸人皆作是念言盧至先來不曾有是言四銖乃是大施
020_1220_b_02L그리하여 노지는 곧 2장의 첩(氎)을 끼고 궁궐 문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공물을 바치려 합니다.”
그때 문지기는 깜짝 놀라 웃으며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이 사람이 문 앞에 와서 공물을 바치겠단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오늘 웬일일까?”
문지기는 곧 들어가서 왕께 합장하고 아뢰었다.
“처음 있는 일이옵니다. 노지가 지금 문에서 바칠 것이 있다 하옵니다.”
020_1220_a_21L盧至爾時卽挾二張㲲到於王門語通門者言我於今者欲有貢獻時守門人極驚笑言於三十年中未曾聞彼來至門中有所貢獻今日云何卒能如是時守門卽入白王合掌而言未曾有也至今者在於門中欲有所貢
왕은 마음이 침착하고 사리에 밝아서 성내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다만 스스로 생각하였다.
‘오늘은 명절이라 사람이 문에 이를 턱이 없고, 노지는 간탐하니까 역시 내 문 앞에 올 리가 없을 터이고 문지기가 나에게 농담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믿을 수가 없구나. 하지만 왕이란 마치 큰 바다가 작은 물이라고 돌려보내지 않듯이, 어찌 재물이 많고 적음을 헤아릴까보냐.’
왕은 곧 앞에 나오기를 허락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 노지는 품성이 인색해서 죽을 형편이 안 되고는 이렇게 안할 텐데.’
020_1220_b_04L王意沈不卒瞋喜但自思惟今日將不因於節會有諸人等來至門中盧至慳亦復不應來至我門守門之人不應於我而作調戲意爲云何我不能夫爲王者譬如大海不逆細流可計其財物多少王於爾時卽便聽王作是念而此盧至稟性慳悋不死到卒能如是
그때 노지는 곧 여러 사람들과 함께 왕에게 이르렀는데, 왕에게 바치려고 두 장의 첩을 내려고 손으로 첩을 잡아당겼으나 겨드랑이가 좁아져서 빼내지 못하였다. 곧 빙빙 돌면서 힘껏 잡아당기니 그제야 나왔는데, 나오기는 했으나 벌써 제석이 조화로 두 풀단으로 만들었다. 노지는 풀단을 보자 어찌나 부끄러웠든지 곧 땅에 주저앉았다.
왕은 이것을 보자 가엾은 마음이 생겨 그에게 말했다.
“비록 풀단이지만 괴로워할 것 없다. 할 말이 있다면 네 뜻대로 말하라.”
020_1220_b_12L卽時盧至共於衆往到王所欲出二㲲用奉於王手挽㲲其腋急挾挽不能得便自迴盡力痛挽方乃得出旣得出已釋卽化作兩束草顧見草束生大慚卽便坐地王見如是卽起慈愍而語之言縱令草束亦無所苦欲有所說隨汝意道
020_1220_c_02L노지는 서러움에 목메어 흐느끼면서 말했다.
“제가 이 풀을 보니 너무 부끄러워 몸뚱이를 땅에 빠뜨릴 수도 없고, 지금 제 몸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으니 어찌 말할 바를 알겠습니까?”
왕은 그 말을 듣고 불쌍한 마음이 나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지금 슬픔에 막혀 말을 하지 못하니 네가 그의 뜻을 알거든 대신 말하라.”
옆 사람은 왕께 대답하였다.
“노지가 오늘 와서 왕께 아뢸 것은 모습이 서로 똑같은 어떤 모르는 사람이 그의 집에 와서 노지라고 사칭하며, 집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따르게 하였고, 재물을 흩어 쓰고 모두 탕진하였으며, 집 사람들이 식별하지 못하고 그를 내쫓아서 그를 도리어 나그네[路人]처럼 되게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말을 못하였습니다.”
020_1220_b_19L盧至悲噎歔欷而言見此草羞慚之盛不能以身陷入于不知今者爲有此身爲無此身何所云王聞其言特生哀愍問傍人彼今哀塞不能得言汝等若知其當代道之傍人答王盧至今來白王者不知何人形貌相似至於其家詐稱盧至能使家人生其愛著用財物一切蕩盡使其家人都不識驅其令出返如路人以是之故心懊惱不能出言
왕은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실로 고뇌할 만하다. 자기의 재물을 다른 사람이 썼으니까. 하지만 내 마땅히 이치를 판단하여 그의 집과 재물을 도로 얻도록 하리라.”
왕은 다시 말하였다.
“세간의 사람이란 모습이 서로 같을지라도 그 마음은 똑같지 않은 법이며, 마음이 아무리 같더라도 그 몸의 으슥한 곳에 있는 은밀한 일은 서로 알지 못하게 반드시 조금은 다를 터이니 너는 근심하지 말라. 내 너를 위해서 자세히 검사하겠다.”
그때 이름이 숙구(宿舊)라는 한 신하가 곧 일어나 합장하고 왕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왕은 지혜롭고 자비하심은 마땅히 그러합니다.”
그때에 숙구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020_1220_c_06L王言若如此者應苦惱何以故自己財物爲他所用雖復如是我當斷理使其還得室家財物王復言曰世間之人雖形相似然其心意未必一等雖心相似然其形體隱屛之處有諸密事可不相知必有小異汝莫愁憂我今爲汝當細撿挍時有一臣名曰宿舊卽起合掌而白王言善哉大王王之智慧慈阿枉正應如是爾時宿舊卽說偈言

근심하고 괴롭고 두려운 자
왕께서 위하여 구호하시고
빈궁하고 곤액 만난 자
왕께선 으레 친구 되시네.
020_1220_c_15L憂苦怖畏者
王爲作救護
貧窮困厄者
王當作親友

바르고 참되게 선을 닦는 자
왕께서 함께 법 친구 되시고
모든 악함을 행하는 자에겐
왕께서 법갈퀴 되시네.
020_1220_c_17L正眞修善者
王共爲法朋
於諸惡行者
王爲作象鉤
020_1221_a_02L
그때 노지는 오체를 땅에 던져 왕께 아뢰었다.
“저의 집에 비밀하게 재보를 감춘 곳은 그가 끝내 알 수 없는 곳이며, 제 몸의 비밀한 것을 그가 어찌 알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저를 위해 가려 주시기 원합니다.”
왕은 사자를 보내어 가서 그 노지를 닮은 사람을 불러 빨리 오도록 하였다. 곧 불러와서 왕에게 이르러서 한 쪽에 섰는데 왕이 두 사람을 보니 분별할 수가 없었다. 왕은 자세히 살폈지만 처음 있는 일이란 생각이 났다.
‘나이ㆍ모습ㆍ몸의 크기ㆍ얼굴ㆍ웃음ㆍ말씨ㆍ얼굴빛이 모두 같아서 요술로 만든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구나. 이제 이 두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으나 분별할 수 없으니 나로 하여금 놀랍고 의아하게 하는구나.’
020_1220_c_18L爾時盧至五體投地而白王言我家密弆起擧財寶之處彼終不能而得知我身有密事何必能知唯願大王爲我撿挍王卽遣使往喚彼人似盧至者語令疾來卽便喚來卽至王所在一面立王形相二人不能分別諦觀之生未曾有想年紀相貌形體大小面目語笑顏色皆同如幻化所等無有異今此二人在我前立可分別使我驚疑
왕은 불려온 자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는 곧 스스로 개탄하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겠다. 나는 왕의 나라에 생장하였는데 어찌하여 왕이 알지 못하고 나더러 누구냐고 물으실까?”
왕은 조금 계면쩍어 무안해[慚赧] 하면서 ‘이 사람이 실로 노지이구나’ 하였다.
다시 앞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노지는 대답하였다.
“제가 바로 노지이고, 저 사람은 아닙니다.”
020_1221_a_05L王問喚來者言爲是誰便自慨歎而言我今徒爲此不如其死我今云何生長王國爲王識方問我言而名是誰王小慚此實盧至語前者言汝今復欲何所論道盧至答言我是盧至彼非是
왕은 말하였다.
“지금 너희 두 사람이 거울 속의 영상 같아서 모습이 한 가지니 어떻게 구별하겠느냐?”
노지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먼저 왕께로 왔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병들거나 재앙이나 급한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당하여 다 왕에게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실로 그러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조세를 받는 것은 바로 그 일을 위해서다.”
왕은 조금 생각한 뒤에 제석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묻겠다. 노지는 성품이 간탐한데 너는 주기를 좋아하니 그 성품이 각기 다르거늘 어찌하여 네가 노지라고 하는가?”
020_1221_a_11L王言汝今二人如鏡中像色貌一云何可別盧至白言以是事故先歸王若似有人病痛苦厄急難恐悉歸於王王言實爾我所以受人租賦正爲是事王小思惟語帝釋言我欲問汝盧至爲性慳貪汝好惠施其性各異汝今云何言是盧至
제석은 대답했다.
“왕께서 이제 마땅히 이렇게 자세히 물으셔야 하며, 실로 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오나 제가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니, 간탐하는 사람은 아귀 속에 떨어져 백ㆍ천ㆍ만년 동안 주리고 목마른 괴로움을 받으며, 고름ㆍ피ㆍ똥ㆍ오줌 등 더러움을 찾아 구하지만 끝내 털끝만큼도 얻지 못하며, 맑고 서늘한 샘물은 변하여 흐르는 불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간탐함에는 이러한 허물이 있다는 것을 듣고 그 인연을 두려워하여 악함을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곧 간탐함을 버렸더니 보시할 마음이 곧 생겼습니다.”
020_1221_a_17L帝釋答言王今應作如是細問實如王言雖爾我親自從佛教慳貪之者墮餓鬼中百千萬歲受飢渴苦求索膿血屎尿不淨終不能得如毛髮許淸冷河泉變成流火我聞慳貪有如是過畏怖因緣欲捨是惡以是事故卽便捨慳施心卽生
020_1221_b_02L왕은 말하였다.
“실로 이런 이치가 있다. 마치 때 묻은 옷을 잿물에 빨면 깨끗하듯이 번뇌란 마음의 때가 법을 듣자 곧 사라졌도다.”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을 어떻게 해서 하나는 노지요 하나는 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숙구가 대답하였다.
“그들의 집안의 비밀한 일을 물어서 같거나 다르면 그런 뒤엔 알 수 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 일이 복잡해서 자세하게 물을 수는 없다. 네가 말한 대로 하되 마땅히 이렇게 하리라.”
020_1221_a_24L王言實有是理如似垢衣灰浣卽淨煩惱垢心聞法卽除王語諸臣如是二人云何得知一是盧一非盧至宿舊答言問其家中所有密事若有同異然後可知王言事猥多不得細問如汝所言應如是
두 사람은 떼어 각각 다른 곳에 두고 말하였다.
“너는 이제 안팎 친척의 나이ㆍ대소ㆍ명수ㆍ이름과 집안의 소유인 문짝 및 재물ㆍ모든 창고와 땅 위나 땅 밑의 온갖 물건들을 각기 기록하되 명확히 서류를 작성하여 정한 때에 속히 갖고 오라.”
두 사람은 각기 서류를 가지고 왔는데 온갖 소유와 은밀한 일과 필적까지 모두가 같았다.
020_1221_b_07L卽分二人各置異處而便問言今內外親屬年紀大小頭數名字中所有屋舍門戶及以財物一切庫地上地中種種諸物各自記之明作書疏時速持來而此二人各持書至一切所有隱密之事及以書迹悉皆一種
왕은 이 일을 보고 처음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정신과 생각을 다해서 갖가지로 헤아려 보았으나 분별할 수 없으니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반드시 사람 아닌 것의 소행이다.’
왕은 말했다.
“그 두 사람을 불러서 내 곁에 오게 하라.”
왕은 오래 보고는 사자에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를 불러오라.”
곧 그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오자마자 왕께 공손히 절하였다.
왕은 합장하고 말했다.
“나 또한 노인을 공경하오.”
020_1221_b_13L王見是事生未曾有想我今者盡其神思種種籌量不能分此非人事必是非人所爲王言喚此二人來到我邊王久看已語使人言喚其母來便卽喚來其母到已向王拜敬王合掌言我亦敬老
노모는 아뢰었다.
“왕께서는 만세토록 모든 원망과 해로움을 여의시고 복 닦으시기를 게을리 마십시오.”
왕은 명하여 자리를 펴게 하고 노모에게 앉게 하였다.
왕은 노모에게 말했다.
“이제 이 두 사람 중 누가 당신의 아들이고, 누가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제석은 가만히 어머니에게 말했다.
“다시는 전처럼 괴로움을 당하시지 않게 하십시오.”
어머니는 말했다.
“아들이여, 너는 근심치 말라.”
020_1221_b_18L老母白言願王萬歲離諸怨害修福不倦王勅敷座命老母坐王語母言今此二人誰是汝子誰非汝子帝釋密語母言莫復更使見苦如前母言子汝莫愁也
020_1221_c_02L노모는 공경히 왕께 아뢰었다.
“이 아이가 효도하여 갖가지로 공양하며 나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니 이 사람이 곧 내 아들입니다. 저 사람은 공순하지도 않고 효도하지도 않으며 항상 나에게 친애하는 마음이 없으니 내 아들이 아닌 줄로 압니다. 하오나 이 두 사람이 좋거나 추한 것은 알지만 말소리가 서로 같으니 나 역시 분별할 수 없습니다.”
020_1221_b_23L老母敬白王言此兒慈孝種種供養孝順於我此是我子彼不恭孝常於我所無親愛心知非我子而此二人雖知好醜言音相似我亦不能
왕은 다시 물었다.
“내가 다시 다른 것을 묻겠소. 당신이 이 아이를 어릴 때부터 길러왔고, 또한 목욕을 시켰으므로 몸을 보았을 터이니 으슥한 곳에 흠집이나 사마귀 같은 비밀한 일을 기억하는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예, 있습니다.”
제석은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노모의 말대로 만들어야겠다.’
제석은 그때 어머니가 왕에게 하는 말을 자세히 들었다.
020_1221_c_04L王復問言我欲更問餘事汝養此自小之時及以洗浴頗見身上屛之處瘡瘢黑子私密之事記識以母言有之帝釋思惟我今所作當同老母帝釋于時諦聽母語
어머니는 왕에게 말했다.
“내 아이는 왼쪽 갈비 밑에 팥알만한 흠집이 있습니다.”
제석은 생각하였다.
‘설령 흠집이 수미산만 하더라도 나는 만들겠거늘 하물며 작은 흠집이랴.’
곧 변화로 만들었다.
왕은 곧 생각하였다.
‘내가 일을 결단하여 반드시 결정짓겠다.’
왕은 말하였다.
“너희들은 각기 왼쪽 겨드랑을 벗고 높이 팔을 들어라.”
020_1221_c_08L母語王我兒左脅下有小豆許瘢帝釋念假使有瘢如須彌山我亦能作復小瘢卽便化作王卽念言我今斷必得決定王言汝等各脫左腋擧其臂
보니 두 흠집이 똑같았다. 왕과 신하들은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이와 같은 일은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 사람을 웃기고 사람을 두렵게 하며 사람을 의심나게 하니, 기이한 일이요 매우 두렵도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러한 일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을 데리고 기원(祇洹)에 가서 부처님 처소에 가면 반드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경사스런 모임의 즐거움을 폐하라.”
왕은 그때 게송을 말했다.
020_1221_c_13L旣擧臂已見兩瘢不異王及群臣大聲而笑而作是言如此之事未曾聞見能使人笑能使人怖能使人疑此爲奇事甚可怖畏王語群臣如此之事非我所了當將此二人到祇洹至于佛所必得決了廢我此閒慶會之樂王時卽說偈言

부처님은 태양 벌써 뜨시어
능히 세간을 구원하시네.
모든 죄악 벗겨 주시고
애욕의 바다 마르게 하네.
020_1221_c_19L佛日久已出
能救濟世閒
解脫諸過惡
乾竭愛欲海

얼굴은 둥근 달 같고
신통은 구족한 눈이어라.
삼계가 받들어 공양하고
일체 가운데 자재하시다.
020_1221_c_21L面如盛滿月
神通具足眼
三界悉敬養
一切中自在

크게 자비하신 그 분은
반드시 우리 의심 없애주시며
일체가 다 칭찬하기를
이 일 잘 되었도다.
020_1221_c_22L大悲者必能
除滅我等疑
一切皆稱讚
此事爲善哉
020_1222_a_02L
이 게송을 마치고 왕과 신하들은 각기 스스로 장엄하되 천관(天冠)ㆍ상복(上服)ㆍ주기(珠璣)ㆍ영락(瓔珞)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향과 꽃을 들고 각자 왕의 뒤를 따랐으며, 두 사람의 노지는 갖가지로 장엄한 두 코끼리 위에 태웠다.
그때 왕은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풍악을 울렸으며, 백천 만의 무리가 왕의 뒤를 따랐다. 기원에 이르러서는 다섯 가지 천관과 보배 일산ㆍ칼ㆍ가죽신 및 마니주를 버려두고 위용을 정제해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다.
020_1221_c_23L說是偈已王及群臣各自嚴飾天冠上服珠璣瓔珞莊挍其身執持香華各隨王後以二盧至置二象上種種莊嚴王自乘羽葆之車作倡伎樂百千萬種隨從王後往到祇洹捨王五種天冠寶蓋刀劍革屣及摩尼珠整其儀容往至佛所
그때 세존께서는 천룡팔부에게 둘러싸여 계셨는데, 왕과 대중들이 오체를 땅에 던져 부처님께 절하고 일어나서 합장하고 아뢰었다.
“저희들은 삼계에서 어리석음과 어둠에 덮여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뜻이 맑고 깨끗하십니다. 일체 중생은 백천 번뇌에 이글이글 타나 부처님만이 적정(寂靜)하시고 그것을 없애셨습니다. 일체 세간은 다 나고 죽음에 묶였으나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이 홀로 해탈을 얻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참된 벗이 되며 일체의 눈 어둔 이에게 부처님께서는 눈이 되어 주십니다. 저희들은 갖가지 인연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은 누가 노지며, 누가 이 노지가 아닙니까?”
020_1222_a_07L爾時世尊天龍八部四衆圍遶王及大衆五體投地爲佛作禮起已合掌而白佛言我及三界愚闇所覆不別眞僞唯佛意淸一切衆生爲百千煩惱之所熾然佛世尊寂靜除滅一切世閒皆爲生死所縛唯佛一人獨得解脫爲諸衆生作眞親友一切盲冥佛爲作眼等種種因緣不能分別如此二人是盧至誰非盧至將二盧至
두 노지를 데리고 부처님 앞에 앉자 일체 모든 사람들도 각기 잠자코 앉았다. 노지로 변화한 사람은 얼굴빛이 온화하고 즐거웠으며 갖가지 영락으로 그의 몸을 장엄한 채 잠자코 앉았으며, 진짜 노지는 얼굴빛이 초췌하고 때 묻은 더러운 옷을 입었으며 온몸에 흙을 묻히고 매우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크게 자비하시어 일체를 구원하십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구원하소서.”
020_1222_a_16L著於佛前一切諸人各默然坐化盧至者色怡悅種種嚴飾瓔珞其身默然而眞實盧至顏色憔悴著垢膩衣土坌身極生憂苦而作是言世尊大救濟一切願救濟我
020_1222_b_02L그때 제석은 그의 근심스럽고 초췌함을 보고 스스로 미소 지으셨다.
바사닉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러한 일들을 부처님께서는 증명해 아시옵니다. 일체 중생은 번뇌로 어둡습니다. 오직 부처님 세존께서만 지혜의 횃불을 가졌사오니 모든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소서. 마치 큰 의원처럼 또한 길잡이처럼 일체 중생에게 무외를 베푸시고, 또한 일체 중생에게 선근의 재물을 베푸옵소서. 또한 부처님께서는 번뇌[結使]를 꺾어 멸하셨으므로 큰 신선이라 불리옵니다.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지혜의 불로 저희의 번뇌와 의심그물의 빽빽한 숲을 태워 주소서. 세존이시여, 저희의 의심을 끊어 주소서. 이제 이 두 사람 중 누가 노지이고 누가 아닙니까?”
020_1222_a_21L爾時帝釋其愁悴而自微笑波斯匿王從坐而合掌問佛言於此事中佛能證知一切衆生爲煩惱所闇唯佛世尊於慧炬導諸衆生解脫之路如大醫亦如導者能施一切衆生無畏施一切衆生善根之財摧滅結使名大仙善哉世尊願以智火燒我煩惱疑網稠林唯願世尊斷我等疑此二人誰是誰非
그때에 세존께서는 좋은 몸매의 팔과 장엄한 손을 들어 제석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제석은 곧 노지의 몸뚱이를 없애고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와서 여의주로서 온갖 빛을 비추며 그의 몸에는 영락을 입고서 부처님께 합장하고 게송을 말하였다.
020_1222_b_07L爾時世尊擧相好臂莊嚴之手語帝釋言汝作何事釋卽滅盧至身相還復本形種種光以如意珠瓔珞其身合掌向佛說偈言

언제나 간탐에 조복되어
스스로 입고 먹지 못하다가
5전(錢)어치 술과 찐보리 가루에
소금 타서 마셨네.
020_1222_b_11L常爲慳所伏
不肯自衣食
以五錢酒麨
著鹽而飮之

마시자 곧 크게 취하여
노래하고 춤추며 킬킬대면서
저희들 여러 하늘을 욕하기에
내 이런 이유로
일부러 그를 골려주었네.
020_1222_b_13L飮已卽大醉
戲笑而歌舞
輕罵我諸天
以是因緣故
我故苦惱之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이 다 허물이 있다. 놓아 주어라.”
그때 노지는 제석에게 말했다.
“내가 천신만고하여 모았는데 모든 재물을 네가 다 써버리지 않았느냐?”
제석은 말했다.
“나는 너의 재산을 털끝만큼도 축내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노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집에 돌아가서 재물을 보아라.”
노지는 말했다.
“제가 가진 재물을 이미 다 써버렸는데 집에 돌아가서 무엇 하겠습니까?”
제석은 말하였다.
“나는 실로 너의 재물을 털끝만큼도 축내지 않았다.”
020_1222_b_14L佛語帝釋一切衆生皆有過罪宜應放捨爾時盧至語帝釋言我辛苦所一切錢財汝不用我財物儩耶釋言我不損汝一毫財物佛語盧至還歸汝家看其財物盧至言我所有財物皆已用盡用還家爲帝釋言實不損汝財毫氂之許
노지는 말했다.
“너는 믿지 못하지만, 참으로 부처님 말씀은 믿는다.”
부처님 말씀을 믿은 까닭에 그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으며, 그때에 천룡팔부와 사부대중은 이것을 보고 듣고는 4도과(道果)를 얻었으며 3업의 인연을 심었다.
모든 하늘들과 사부대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물러갔다.
020_1222_b_21L盧至言我不信汝正信佛語以信佛語故卽得須陁洹果天龍八部及以四衆見聞是已得四道果種三業因緣諸天四聞佛所說歡喜而去
盧至長者因緣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