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944_T_002
- 024_0927_b_01L아비달마발지론 제2권
- 024_0927_b_01L阿毘達磨發智論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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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연니자지음
현장한역 -
024_0927_b_02L尊者迦多衍尼子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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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애경(愛敬)납식 - 024_0927_b_04L雜薀第一中愛敬納息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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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愛)와 양경(養敬)과 힘[力]과 멸(滅)과
열반과 온(蘊)과 구경(究竟)과
취(取)와 변지(遍智)와 세 가지 귀의[三歸]를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
024_0927_b_05L愛養敬力滅,
涅槃薀究竟,
取遍知三歸,
此章願具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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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애라고 하는가?1)
【답】모든 애ㆍ등애(等愛)ㆍ희(喜)ㆍ등희(等喜)ㆍ낙(樂)ㆍ등락(等樂), 이것을 애라고 한다. -
024_0927_b_07L云何愛?
答:諸——愛、等愛、喜、等喜、樂、等樂,是謂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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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경(敬)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경이 있으며, 경의 성질[敬性]이 있으며, 자재(自在)가 있으며, 자재의 성질이 있으며, 자재자에 대해 두려움의 전전함이 있는 것, 이것을 경이라고 한다. -
024_0927_b_09L云何敬?
答:諸——有敬、有敬性,有自在、有自在性,於自在者有怖畏轉,是謂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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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렇다면 무엇을 애경(愛敬)이라고 하는가?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불(佛)ㆍ법(法)ㆍ승(僧)ㆍ친교(親敎)ㆍ궤범(軌範), 그리고 지혜가 있어 존중해야 할 여타의 뛰어난 같은 범행자(梵行者)에 대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으로 기뻐하고, 공경하며 머무는 것 처럼, 만약 여기서 이러한 애와 경이 있으면 이것을 애경이라고 한다. -
024_0927_b_11L云何愛敬?
荅:如有一類——於佛、法、僧、親教軌範,及餘隨一有智、尊重、同梵行者——愛樂心悅,恭敬而住,若於是處,有愛及敬,是謂愛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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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공양(供養)이라고 하는가?2)
【답】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재(財)공양이며, 둘째는 법(法)공양이다. -
024_0927_b_14L云何供養?
答:此有二種:一財供養,二法供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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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공경(恭敬)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공경이 있으며, 공경의 성질이 있으며, 자재(自在)가 있으며, 자재의 성질이 있으며, 자재자에 대해 두려움의 전전함이 있는 것, 이것을 공경이라고 한다. -
024_0927_b_15L云何恭敬?
答:諸——有恭敬、有恭敬性,有自在、有自在性,於自在者有怖畏轉,是謂恭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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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렇다면 무엇을 공양공경이라고 하는가?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불ㆍ법ㆍ승ㆍ친교ㆍ궤범, 그리고 지혜가 있어 존중해야 할 여타의 뛰어난 범행자에 대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으로 기뻐하고, 공경하며 머무는 것처럼, 만약 여기서 이러한 공양과 공경이 있으면 이것을 공양공경이라고 한다. -
024_0927_b_18L云何供養恭敬?
答:如有一類——於佛、法、僧、親教軌範,及餘隨一有智、尊重、同梵行者——施設供養,恭敬而住;若於是處有供養及恭敬,是謂供養恭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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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신력(身力)이라고 하는가?3)
【답】몸의 모든 부분이 용맹하고 강건하며, 가볍고 민첩하여 능히 변통하는 바가 있는 것, 이것을 신력이라고 한다. -
024_0927_b_21L云何身力?
答:諸身勇猛、强健、輕捷,能有所辦,是謂身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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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27_c_01L【문】무엇을 신열(身劣)이라고 하는가?
【답】몸의 모든 부분이 용맹하지 않고 강건하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민첩하지 않아 능히 변통하는 바가 없는 것, 이것을 신열이라고 한다. -
024_0927_c_01L云何身劣?
答:諸身不勇,不猛,不强,不健,不輕,不捷,無所能辦,是謂身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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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력과 신열은 몇 가지 처(處)에 포섭되며, 몇 가지 식(識)에 의해 인식되는가?
【답】하나의 처에 포섭되니, 말하자면 촉처(觸處)이다. 그리고 두 가지 식에 의해 인식되니, 말하자면 신식(身識)과 의식(意識)이다. 마치 힘센 사람[力士]이 서로의 힘을 겨룰 때, 손목을 교차하면 서로의 힘의 강약을 아는 것과 같다. 또한 강자가 약자를 잡을 때 힘이 세고 약함을 서로 아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
024_0927_c_03L身力、身劣,幾處攝?幾識識?
答:一處攝,謂:觸處。二識識,謂:身識及意識。如:二力士相扠撲時,手腕纔交,互知强弱。又如:强者執弱者時,力之勝劣,相知亦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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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택멸(擇滅)이라고 하는가?4)
【답】모든 멸[諸滅:유위제법의 소멸]로서 바로 계박됨을 버리는 것[離繫]이다. -
024_0927_c_07L云何擇滅?
答:諸滅是離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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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비택멸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멸로서 계박됨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
024_0927_c_08L云何非擇滅?
答:諸滅非離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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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무상멸(無常滅)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행[諸行]이 흩어지고[散] 허물어지며[壞], 깨트려지고[破] 몰(沒)하고, 망(亡)하고 물러나는[退] 것, 이것을 무상멸이라고 한다. -
024_0927_c_09L云何無常滅?
答:諸行散壞、破沒、亡退,是謂無常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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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비택멸과 무상멸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비택멸이란 택력(擇力:사제를 간택하는 무루지의 힘을 말함)에 의하지 아니하고 역병이나 염병ㆍ횡재(橫災)ㆍ근심ㆍ고달픔ㆍ여러 가지 마구니의 일[魔事], 그리고 행세(行世)의 괴로움과 법을 해탈하였으나 탐욕의 조복이나 끊고 넘어섬[斷越]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말하며, 무상멸이란 모든 행이 흩어지고 허물어지며, 깨트려지고 몰하고, 망하고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두 가지 멸의 차별이다. -
024_0927_c_10L非擇滅、無常滅,何差別?
答:非擇滅者:不由擇力解脫疫癘、災撗、愁惱種種魔事行世苦法,非於貪欲調伏、斷越。無常滅者:諸行散壞、破沒、亡退。是謂二滅差別。如契經說:“有二涅槃界,謂:有餘依涅槃界,及無餘依涅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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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두 가지 열반계가 있으니, 말하자면 유여의열반계(有餘依涅槃界)와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유여의열반계라고 하는가?5)
【답】만약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유루는 영원히 다하였어도 수명이 여전히 남아 있고, 대종(大種)의 조색(造色)이 상속하여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며, 오근신(五根身)에 의해 마음이 상속ㆍ전전할 경우, 이는 여타의 의지처가 남아 있기 때문에 모든 결(結)이 영원히 다하고 촉증을 획득하였을지라도 유여의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024_0927_c_17L云何有餘依涅槃界?
答:若阿羅漢諸漏永盡。壽命猶存。大種造色,相續未斷。依五根身,心相續轉。有餘依故,諸結永盡。得獲觸證。名有餘依涅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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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무여의열반이라고 하는가?
【답】즉 만약 아라한으로서 모든 유루가 영원히 다하였으며, 수명이 이미 멸하고, 대종조색의 상속이 이미 끊어지고, 오근신에 의해 마음이 다시 상속ㆍ전전하지 않을 경우, 이는 여타의 의지처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결이 영원히 다하였으므로 무여의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024_0927_c_21L云何無餘依涅槃界?
答:卽阿羅漢諸漏永盡,壽命已滅。大種造色,相續已斷。依五根身,心不復轉。無餘依故,諸結永盡。名無餘依涅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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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28_a_01L【문】열반을 학(學)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학(無學)이라고 해야 하는가,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열반은 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열반에 학이 있으며, 무학이 있으며, 비학비무학이 있다. 무엇이 학이냐 하면, 유학이 모든 결을 끊고 촉증(觸證)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무학이냐 하면, 무학이 모든 결을 끊고 촉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비학비무학이냐 하면, 유루의 이생이 모든 결을 끊고 촉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유부종의[此義]에 따른다면, 열반은 다만 비학비무학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
024_0928_a_02L涅槃當言:學耶?無學耶?非學非無學耶?
答:涅槃應言“非學非無學”。有作是說:涅槃——有學,有無學,有非學非無學。云何學?謂學得諸結斷,得獲觸證。云何無學?謂無學得諸結斷,得獲觸證。云何非學非無學?謂有漏得諸結斷,得獲觸證。於此義中,涅槃但應言“非學非無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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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럼에도 그대는 열반에 학이 있으며, 무학이 있으며, 비학비무학이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답】그렇다.(분별론자의 대답) -
024_0928_a_09L而汝說:“涅槃——有學,有無學,有非學非無學”耶?
答: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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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대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먼저 세속도로써 욕탐과 진애를 영원히 끊어서 비학비무학의 이계득(離繫得)을 획득하였을지라도 그는 사제에 대해 아직 현관(現觀)을 획득하지 못하였으며, 현관을 수습하고 현관을 획득한 이후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다면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또한 그대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먼저 세속도로써 욕탐과 진애를 영원히 끊어서 비학비무학의 이계득을 획득하면 후에 불환과를 증득할 때, 그러한 이계가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지금 전전하여 학을 성취한다고 하면 이전의 것도 바로 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학의 본질[體]은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불환과를 증득하지도 못했고 아직 학도 획득하지 않았는데, 이미 학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정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
024_0928_a_11L汝何所欲?諸先以世俗道,永斷欲貪瞋恚得,非學非無學離繫得,彼於四諦未得現觀,修習現觀,得現觀已,證不還果,轉成學耶?
答:如是。又!何所欲?“諸先以世俗道,永斷欲貪瞋恚得,非學非無學離繫得,後證不還果時,卽彼離繫,應轉成學。”若彼今時轉成學者,先應是學,體常住故。未證不還果,未有“學得”,已名爲學,不應正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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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28_b_01L【문】그대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라한향(向)의 학이 모든 결을 끊고 아라한과(果)를 증득하면 그는 전전하여 무학을 성취하는가?
【답】그렇다.
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라한향의 학이 모든 결을 끊고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 바로 그는 결을 끊고 전전하여 무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만약 그가 지금 무학을 성취한다고 하면 이전의 것도 바로 무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무학의 본질은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라한과를 증득하지도 못했고 무학의 득(得)도 없는데, 이미 무학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정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
024_0928_a_19L汝何所欲?阿羅漢向,學諸結斷,證阿羅漢果,彼轉成無學耶?
答:如是。又!汝何所欲?“阿羅漢向,學諸結斷,證阿羅漢果時,卽彼結斷,應轉成無學。”若彼今時成無學者,先應是無學,體常住故。未證阿羅漢果,無“無學得”,已名無學,不應正理。
- 【문】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아라한의 무학의 결이 끊어진 자가 아라한과를 물러날 때, 그가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 024_0928_b_03L汝何所欲?諸阿羅漢,無學結斷,退阿羅漢果時,彼轉成學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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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그렇다.
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아라한의 무학의 결이 끊어져 아라한과를 물러날 때, 바로 그러한 결의 단이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지금 전전하여 학을 성취한다고 하면 이전의 것도 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본질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라한과를 물러나지도 않았고 학의 득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미 학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정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 024_0928_b_04L答:如是。又!何所欲?“諸阿羅漢,無學結斷,退阿羅漢果時,卽彼結斷,應轉成學。”若彼今時,轉成學者,先應是學,體常住故。未退阿羅漢果。無有“學得”,已名爲學,不應正理。
- 그리고 열반은 이전에는 바로 비학비무학이다가 후에 전전하여 학이 되고, 이전에는 바로 학이다가 후에 전전하여 무학이 되며, 이전에는 바로 무학이다가 다시 전전하여 학이 되는 것이 아니다.
- 024_0928_b_09L復次!涅槃不應——先是非學非無學後轉成學,先是學後轉成無學,先是無學復轉成學。
- 또한 열반에 학이 있고 무학이 있고, 비학비무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와 같다면 이분(二分:常ㆍ無常)을 이루게 되고 모든 법이 결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응당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결정적으로 설명하시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역시 열반에 학이 있고 무학의 성질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열반은 항상 바로 비학비무학이기 때문에 모든 법이 결정적이며, 뒤죽박죽됨이 없다. 항상 자성에 머물며 자성을 버리지 않아 열반은 상주하고 변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열반을 비학비무학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 024_0928_b_11L又!涅槃不應——有“學”,有“無學”,有“非學非無學”。若如是者,應成二分。諸法不決定故。應有雜亂。是則不應施設諸法性相決定。佛亦不說涅槃——有學、有無學性。以涅槃恒是“非學非無學”,諸法決定,無有雜亂,恒住自性,不捨自性;涅槃常住,無有變易。是故涅槃但應言:“非學非無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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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그는 무학의 계온(戒蘊)ㆍ정온(定蘊)ㆍ혜온(慧蘊)ㆍ해탈온(解脫蘊)ㆍ해탈지견온(解脫智見蘊)을 성취하였다.”고 하였다. 무엇을 무학의 계온이라고 하는가?6)
【답】무학의 신율의(身律儀)ㆍ어율의(語律儀)ㆍ명청정(命淸淨)이다. -
024_0928_b_19L如契經說:“彼成就無學戒薀、定薀、慧薀、解脫薀、解脫智見薀。”云何無學戒薀?
答:無學身律儀、語律儀、命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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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무학의 정온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세 가지 삼마지(三摩地)로서, 공(空)ㆍ무원(無願)ㆍ무상(無相)을 말한다. -
024_0928_b_22L云何無學定薀?
答:無學三三摩地。謂:空、無願、無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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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28_c_01L【문】무엇을 무학의 혜온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정견지(正見智)이다. -
024_0928_c_01L云何無學慧薀?
答:無學正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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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무학의 해탈온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마음이 이미 승해(勝解)하였고, 지금 승해하며, 미래에 승해하는 것이다. -
024_0928_c_02L云何無學解脫薀?
答:無學作意相應心——已勝解、今勝解、當勝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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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라고 하는가?
【답】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
024_0928_c_03L云何無學解脫智見薀?
答:盡智、無生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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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학의 혜온과 해탈지견온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무학의 고지(苦智)ㆍ집지(集智)는 바로 무학의 혜온이며, 무학의 멸지(滅智)ㆍ도지(道智)는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다. 또한 무학의 고ㆍ집ㆍ멸지는 바로 무학의 혜온이며, 무학의 도지는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다. 또한 무학의 고ㆍ집ㆍ도지는 무학의 혜온이며, 무학의 멸지는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다. 이것을 무학의 혜온과 해탈지견온의 차별이라고 한다. -
024_0928_c_04L無學慧薀與解脫智見薀,有何差別?
答:無學苦集智,是無學慧薀;無學滅道智,是無學解脫智見薀。復次!無學苦集滅智,是無學慧薀;無學道智,是無學解脫智見薀。復次!無學苦集道智,是無學慧薀;無學滅智,是無學解脫智見薀。是謂差別。
- 【문】세존께서 “비구들은 잘 알아야 한다. 오로지 구경(究竟)은 하나이며, 또 다른 구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셨는데, 어떠한 법을 구경이라 하는가?7)
- 024_0928_c_11L如世尊說:“苾芻!當知唯一究竟,無別究竟。”此中何法名究竟耶?
- 【답】세존께서는 어떤 때에는 도(道)에 대해 구경이란 말씀을 하셨고, 어떤 때에는 단(斷)에 대해 구경이란 말씀을 하셨다. 즉 출세(出世)의 원인과 결과는 다 같이 구경이기 때문이다. 도에 대해 구경이란 말을 함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 024_0928_c_13L答:世尊或時於道,說究竟聲;或時於斷,說究竟聲。於“道”說“究竟”聲者:如世尊說:
-
총명하며 교만한 자 그 누구도
구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는 도를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아무 것도 조복하지 못한 채 죽게 되리라. -
024_0928_c_15L一類聰慢者,
不能知究竟,
彼不證道故,
不調伏而死。
-
단에 대해 구경이란 말을 함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 024_0928_c_17L於“斷”說“究竟聲”者,如世尊說:
-
이미 구경에 이른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으며, 의심이나 후회도 없다.
존재의 화살을 영원히 뽑아버렸기에
그는 마지막 몸으로 머물 것이리라. -
024_0928_c_18L已到究竟者,
無怖無疑悔,
永拔有箭故,
彼住後邊身。
-
이것이 바로 최상의 구경으로서
무상적정(無上寂靜)의 자취이며
청정불사(淸淨不死)의 자취로
모든 상[諸相]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
024_0928_c_20L此是最究竟,
無上寂靜迹,
淸淨不死迹,
諸相皆盡故。
-
024_0929_a_01L
또한 계경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수목련(數目連)이라고 하는 어떤 한 범지(梵志)가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청하여 묻기를, “교답마(喬答摩:Gotama)여, 존자가 모든 비구들을 교수하고 교계(敎誡)할 때, 그들은 가르침을 받고 나서 모두 최극(最極) 구경의 열반계를 증득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결정된 것이 아니며, 어떤 이는 증득하지만 어떤 이는 그러하지 못한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 024_0928_c_21L又!契經說:有一梵志名數目連來詣佛所,請問佛曰:‘喬答摩尊!教授教誡諸苾芻等,彼受教已,皆能證得最極究竟涅槃界不?’世尊告曰:‘此事不定;一類能證,一類不能。’
- 계경에서 설명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외도는 비록 모든 취(取)를 단지(斷知)하였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를 단지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아어취(我語取)는 아니다.”고 하셨다.
- 024_0929_a_03L如契經說:佛告苾芻:‘有諸外道,雖同施設斷知諸取,而彼不能具足施設。謂:但施設斷知——欲取、見取、戒取,非我語取。’
-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8) 어떤 이는 주장하기를, “이것은 세존께서 성급하고 경솔하게[率爾] 설법하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주장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세존의 설법은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며, 혹은 사소한 것에 근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주장하기를, “이 말은 그것의 일부를 끊은 자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도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생 중에서도 역시 아어취의 일부를 끊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 024_0929_a_07L此有何義?有作是說:此是世尊率爾說法。彼不應作是說。所以者何?世尊說法,非全無因,或少因故。復有說者:此言顯彼少分斷者。彼不應作是說。所以者何?異生亦有“能斷少分我語取”故。
- 그런데 불세존께서는 천인(天人) 등 무량한 대중을 위해 널리 법의 요지를 설명함에 있어, 전도됨이 없이 열어보여 듣는 그들 존재에 따라 이해하게 하셨다. 그런데 모든 외도 중에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온(蘊)ㆍ계(界)ㆍ처(處)ㆍ개(蓋)ㆍ염주(念住), 나아가 각지(覺支) 등의 이름을 훔쳐 들은 이가 있었는데, 혹은 갖추어 듣기도 하고 혹은 갖추어 듣지 않기도 하였다. 이들 외도 중에 욕취의 이름을 얻어 들은 자가 문득 “나도 역시 욕취를 단지(斷知)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라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견취의 이름을 얻어 들은 자가 있으면 “나도 역시 견취의 단지에 대해 시설한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만약 계취의 이름을 얻어 들은 자가 있으면 “나도 역시 계취의 단지에 대해 설명한다.”라고 말한다.
- 024_0929_a_12L然佛世尊爲天人等無量大衆廣說法要,無倒開示,令隨類解。有諸外道——竊聞佛說薀、界、處、蓋,念住乃至覺支等名,或有具足,或不具足。是諸外道——若有得聞欲取名者,便作是言:“我亦施設斷知欲取。”若有得聞見取名者,便作是言:“我亦施設斷知見取。”若有得聞戒取名者,便作是言:“我亦施設斷知戒取。”
- 024_0929_b_01L혹은 많은 비구가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어떤 외도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 “교답마께서 여러 제자들을 위해 법요(法要)를 널리 설명하시면서 ‘너희 비구들이여, 마땅히 5개(蓋)를 끊어라. 이같은 5개는 능히 마음을 염오하게 하며, 지혜의 힘을 약하게 하며, 각분(覺分)을 훼손시키며, 열반을 장애한다. 그리고 마땅히 4념주에 마음을 잘 머물게 하며, 7각지를 삼가 수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들 역시 제자들을 위해 능히 이러한 법요를 설명한다. 그러니 교답마께서 설명하신 법요와 내가 설명한 법요에 어떠한 차별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너희들은 오로지 그에게만 귀의할 것인가?”
- 024_0929_a_20L如多苾芻集在一處,有諸外道來作是言:“如喬答摩爲諸弟子宣說法要,謂作是說:‘汝等苾芻,應斷五蓋,如是五蓋,能染污心,令慧力劣,損害覺分,障礙涅槃;於四念住,應善住心;於七覺支,應勤修習。’我等亦能爲諸弟子說此法要。則喬答摩所說法要與我何別?而今汝等獨歸彼耶?”
- 그러나 이 외도는 일찍이 5개의 명상(名相)조차 능숙히 알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4념주에 머물 것이며, 7각지를 닦아 깨달아 통달[了達]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부처님의 말씀을 훔쳐 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취(取)를 끊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할 것이다.
- 024_0929_b_05L然彼外道,尚不能識五蓋名相,況能了達——住四念住、修七覺支?然竊佛語,故作是說。施設斷取,應知亦然。
- 또한 외도 마건지가(摩健地迦)가 자신에게 여러 병이 있으며, 찰나에 머묾이 없고(무상을 말함), 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배를 두드리면서 말하기를, “지금 나의 몸에는 어떠한 병도 없다. 즉 이것이 바로 구경의 열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그는 일찍이 병 없음의 명상조차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구경의 열반을 깨달아 통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취(取)를 끊는 것에 대해 시설한다고 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할 것이다.
- 024_0929_b_07L又!如外道摩健地迦,不了自身衆病所集,剎那不住苦、空、非我,來詣佛所,鼓腹而言:“吾今此身旣無諸病,應知卽是究竟涅槃。”彼尚不知無病名相,況能了達究竟涅槃?然竊佛語,故作是說。施設斷取,應知亦然。
-
【문】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외도는 다만 세 가지 취를 단지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있어도 아어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가?
【답】그는 긴긴 밤에 진실의 아(我)와 유정(有情)ㆍ명자(命者)ㆍ생자(生者)ㆍ능양육자(能養育者)ㆍ보특가라(補特伽羅)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진실의 아 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어찌 아어취를 끊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는가? -
024_0929_b_13L何緣外道但有施設斷知三取,非“我語取”?
答:彼於長夜執有眞實我,及有情、命者、生者、能養育者補特伽羅。彼旣執有眞實我等,寧肯施設斷我語取。
-
【문】마찬가지로 모든 취를 단지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뜻이 있는가?
【답】이는 불세존께서 그들의 언설에 따른 것이다. 즉 세존께서 “그들 모든 외도는 실유인 유정의 단괴(斷壞)를 말한다.”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그렇지만 승의에 따르면 실재의 유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들의 말에 따라 이렇게 설명한 것일 뿐이다. 이것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어떠한 과실도 없는 것이다. -
024_0929_b_17L說同施設斷知諸取,斯有何義?
答:是佛世尊,隨彼言說。如世尊說:“彼諸外道,施設實有——有情斷壞。”然依勝義,無實有情;但隨彼言,而作是說。此亦如是,故無有過。
-
【문】계경에서 “두 가지 변지(遍知)가 있다. 지변지(智遍知)와 단변지(斷遍知)이다.”고 설명하였다. 무엇이 지변지인가?9)
【답】모든 지(智)ㆍ견(見)ㆍ명(明)ㆍ각(覺)ㆍ현관(現觀), 이것을 지변지라고 한다. -
024_0929_b_21L如契經說:有二遍知,謂:智遍知,及斷遍知。云何智遍知?
答:諸智見明覺現觀,是謂智遍知。
- 024_0929_c_01L【문】무엇이 단변지인가?
- 024_0929_c_01L云何斷遍知?
- 【답】모든 탐(貪)을 영원히 끊고, 진(瞋)ㆍ치(癡)를 영원히 끊고,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는 것, 이것을 단변지라고 한다.
- 024_0929_c_02L答:諸貪永斷,瞋癡永斷,一切煩惱永斷。是謂斷遍知。
- 세존께서는 어떤 때에는 지(智)에 대해 변지의 말씀을 하시고, 어느 때에는 단(斷)에 대해 변지의 말씀을 하셨다. 지에 대해 변지의 말을 설명함이란, 게송[伽他:gāth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 024_0929_c_03L世尊或時於“智”,說遍知聲;或時於“斷”,說遍知聲。於“智”說“遍知”聲者:如伽他說:
-
유동(儒童)은 현자로서 적정(寂靜)하여
능히 모든 세간을 이익되게 한다.
지(智)가 있어,
애탐이 괴로움을 낳는 것을 변지한다. -
024_0929_c_05L儒童賢寂靜,
能益諸世間,
有智能遍知,
貪愛生衆苦。
-
지가 있는 자는 말하면 작(作)하고,
작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지자는 말이 있어도
작함이 없는 자를 변지할 것이리라. -
024_0929_c_07L有智言應作,
不作不應言,
智者應遍知,
有言無作者。
-
단에 대해 변지의 말을 함이란, 계경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을 위해 소변지(所遍知)의 법과 변지의 자성(自性)과 능변지자(能遍知者)를 설명하겠다. 소변지의 법이란 5취온을 말하며, 변지의 자성이란 탐의 영단(永斷), 진ㆍ치의 영단, 모든 번뇌의 영단을 말한다. 능변지자란, 말하자면 아라한의 모든 누[諸漏]가 영원히 다한 것, 여래 사후의 유무 등을 주장하지 않는 불응기(不應記)의 법이다. - 024_0929_c_08L於“斷”說“遍知”聲者:如契經說:佛告苾芻,當爲汝說,所遍知法,遍知自性,能遍知者。所遍知法:謂五取薀。遍知自性:謂貪永斷,瞋癡永斷,一切煩惱永斷。能遍知者:謂阿羅漢諸漏永盡。不執“如來死後有”……等不應記法。
-
【문】모든 부처[佛]에 귀의한다 함은 무엇에 귀의하는 것인가?10)
【답】만약 법이 실유하여 현재존재[現有]로서 상(想)ㆍ등상(等想)이 있으며, 시설ㆍ언설하는 것이면 불타(佛陀, Buddha)라고 하며, 그것이 소유한 무학을 성취시키는 보리법(菩提法)에 귀의함을 귀의불이라고 한다. -
024_0929_c_14L諸歸依佛者,何所歸依?
答:若法實有、現有,想、等想,施設言說,名爲佛陁。歸依彼所有無學成菩提法,名歸依佛。
-
【문】모든 법(法)에 귀의한다 함은 무엇에 귀의하는 것인가?
【답】만약 법이 실유하여 현재존재로서 상ㆍ등상이 있으며, 시설ㆍ언설하는 것이라면 이름하여 달마(達磨, dharma)라고 하며, 이와 같은 애진이멸(愛盡離滅)의 열반에 귀의함을 귀의법이라고 한다. -
024_0929_c_17L諸歸依法者,何所歸依?
答:若法實有、現有,想、等想,施設言說,名爲達磨。歸依如是愛盡離滅涅槃,名歸依法。
-
【문】모든 승(僧)에 귀의한다 함이란 무엇에 귀의하는 것인가?
【답】만약 법이 실유하여 현재존재로서 상ㆍ등상이 있으며, 시설ㆍ언설하는 것이라면 승가(僧伽, samgha)라고 하며, 그가 소유한 학ㆍ무학을 성취시키는 승가의 법에 귀의함을 귀의승이라고 한다. -
024_0929_c_20L諸歸依僧者,何所歸依?
答:若法實有、現有,想、等想,施設言說,名爲僧伽。歸依彼所有學、無學成僧伽法,名歸依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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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0_a_01L
5) 무참(無慚)납식 - 024_0930_a_01L雜薀第一中無慚納息第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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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黑)과 백(白)과 두 가지 근(根)과 마음[心]과11)
도회(掉悔)와 혼(惛)과 수(睡)와 꿈[夢]과
개(蓋)와 무명(無明)과 불공(不共)을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
024_0930_a_02L黑白二根心,
掉悔惛睡夢,
蓋無明不共,
此章願具說。
-
【문】무엇이 무참인가?12)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慙]이 없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慙]이 없으며, 수치스러움도 없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羞]도 없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羞]도 없다. 또한 공경도 없으며, 공경하는 성질도 없으며, 자재(自在)를 희구함도 없으며, 자재를 희구하는 성질도 없으며, 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轉]도 없는 것, 이것을 무참이라고 한다. -
024_0930_a_04L云何無慚?
答:諸無慚、無所慚、無異慚、無羞、無所羞、無異羞、無敬、無敬性、無自在、無自在性。於自在者,無怖畏轉,是謂無慚。
-
【문】무엇이 무괴인가?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愧]이 없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愧]이 없으며, 수치스러움도 없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恥]도 없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恥]도 없다. 또한 모든 죄에 대해 두려움[畏怖]도 없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이것을 무괴라고 한다. -
024_0930_a_08L云何無愧?
答:諸無愧、無所愧、無異愧、無恥、無所恥、無異恥、於諸罪中、不怖不畏,不見怖畏,是謂無愧。
-
【문】무참과 무괴에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이 없는 이것을 무참이라 하고, 모든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것을 무괴라고 한다. 양자 사이에는 이와 같은 차별이 있다. -
024_0930_a_11L無慚、無愧有何差別?
答:於自在者無怖畏轉,是無慚;於諸罪中不見怖畏,是無愧。如是差別。
-
【문】무엇이 참(慙)인가?13)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慙]이 있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慙]이 있다. 수치스러움이 있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羞]이 있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羞]도 있다. 또한 공경이 있으며, 공경하는 성질이 있으며, 자재(自在)를 희구함도 있고, 자재를 희구하는 성질도 있으며, 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轉]이 있다. 이것을 참이라고 한다. -
024_0930_a_14L云何慚?
答:諸有慚、有所慚、有異慚、有羞、有所羞、有異羞、有敬、有敬性、有自在、有自在性。於自在者有怖畏轉,是謂慚。
-
【문】무엇이 괴(愧)인가?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愧]이 있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愧]이 있다. 수치스러워함이 있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恥]이 있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恥]도 있다. 또한 모든 죄에 대해 두려움[畏怖]도 있으며, 깊이 두려워하는 것을 본다. 이것을 괴라고 한다. -
024_0930_a_18L云何愧?
答:諸有愧、有所愧、有異愧、有恥、有所恥、有異恥。於諸罪中有怖、有畏、深見怖畏,是謂愧。
-
【문】참과 괴에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이 있는 이것을 참이라 하고, 모든 죄에 대해 깊이 두려워하는 것 이것을 괴라고 한다. 양자 사이에는 이와 같은 차별이 있다. -
024_0930_a_21L慚、愧何差別?
答:於自在者,有怖畏轉,是慚。於諸罪中深見怖畏,是愧。如是差別。
-
024_0930_b_01L【문】무엇을 증상(增上)의 불선근이라고 하는가?14)
【답】모든 불선근이 선근을 끊을 때, 그리고 욕염(欲染)을 떠날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이다. -
024_0930_a_23L云何增上不善根?
答:諸不善根,能斷善根,及離欲染時,最初所捨。
-
【문】무엇을 미구행(微俱行)의 불선근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불선근이 욕염을 떠날 때 최후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그것을 버림에 따라 이욕염(離欲染)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024_0930_b_02L云何微俱行不善根?
答:諸不善根,離欲染時,最後所捨。由捨彼故,名離欲染。
-
【문】무엇을 욕계의 증상 선근이라고 하는가?15)
【답】보살이 정성이생에 들 때 획득하는 욕계 현관변(現觀邊)의 세속지와, 여래가 진지를 얻을 때 획득하는 욕계의 무탐ㆍ무진ㆍ무치의 선근이다. -
024_0930_b_04L云何欲界增上善根?
答:菩薩入正性離生時,所得欲界現觀邊世俗智,及如來得盡智時,所得欲界無貪、無瞋、無癡善根。
-
【문】무엇을 욕계의 미구행 선근이라고 하는가?
【답】선근이 끊어질 때 최후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그것을 버림에 따라 단선근(斷善根)이라고 하는 것이다. -
024_0930_b_08L云何微俱行善根?
答:斷善根時,最後所捨。由捨彼故,名斷善根。
-
【문】모든 마음이 과거의 것이면 그 마음은 변괴한 것인가?16)
【답】모든 마음이 과거의 것이면 그 마음은 모두 변괴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변괴한 것으로서, 그러한 마음 중에 과거 아닌 것이 있다. 말하자면 미래ㆍ현재의 탐진(貪瞋)과 상응하는 마음이다. 즉 세존께서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흉악한 도적이 톱으로 너희들 몸이나 팔 다리를 자르려 해도 너희들은 그것에 대해 마음을 변괴하지 말라. 또한 입을 지켜 악언(惡言)을 내뱉지 말라. 만약 마음이 변괴하고 악언을 내뱉으면 스스로 구하는 바에 깊은 장애가 되리라”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또한 세존께서 “너희 비구들이여, 뛰어난 욕탐의 대상[妙欲境:색성향미촉의 다섯 가지 대상]에 대해 변괴의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
024_0930_b_09L諸心過去,彼心變壞耶?
答:諸心過去,彼心皆變壞。有心變壞,彼心非過去。謂:未來、現在,貪瞋相應心。如世尊說:“汝等苾芻!設被惡賊,鋸解汝身,或諸支節;汝等於彼,心勿變壞,亦當護口,勿出惡言。若心變壞,及出惡言,於自所求,深爲障礙。”又!世尊說:“汝等苾芻,於妙欲境不應發起變壞之心。”
-
【문】모든 마음이 염착(染著)한 것이면 그 마음은 변괴한 것인가?
【답】모든 마음이 염착한 것이면 그 마음은 모두 변괴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변괴한 것으로서, 그러한 마음 중에 염착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말하자면 과거의 탐과 상응하지 않는 마음 및 미래ㆍ현재의 진(瞋)과 상응하는 마음이다. 즉 세존께서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원수나 도적이 …(이하 생략)… 스스로 구하는 바에 깊은 장애가 되리라”라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
024_0930_b_17L諸心染著,彼心變壞耶?
答:諸心染著,彼心皆變壞。有心變壞,彼心非染著。謂:過去貪不相應心,及未來、現在瞋相應心。如世尊說:“汝等苾芻!設被怨賊……廣說乃至……於自所求,深爲障礙。”
-
【문】무엇이 도거(掉擧)인가?17)
【답】모든 마음의 적정되지 않고, 지식(止息)되지 않으며, 가벼이 움직이는 것이 도거이다. 마음이 조급하고 망령스럽게 움직이는 성질[躁動性]을 도거라고 한다. -
024_0930_b_22L云何掉擧?
答:諸心不寂靜、不止息、輕躁、掉擧。心躁動性,是謂掉擧。
-
024_0930_c_01L【문】무엇이 악작(惡作)인가?
【답】모든 마음의 횃불로 지질 듯한 원망[懊變]이 악작이다. 마음이 지난 일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는 성질[追悔性]을 악작이라고 한다. -
024_0930_c_01L云何惡作?
答:諸心燋灼、懊變、惡作。心追悔性,是謂惡作。
-
【문】모든 마음에 도거가 있으면 그 마음은 악작과 상응하는가?
【답】네 구(句)로 분별할 수 있다. 마음에 도거가 있으면서 악작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악작이 없는 마음에 조급하고 망령스럽게 움직이는 성질, 즉 조동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악작이 있으면서 도거와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이 없으면서 지난 일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는 성질, 즉 추회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도거가 있으면서 역시 악작과 상응하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에 추회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도거도 없으면서 역시 악작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의 상(相)을 제외한 것이다. -
024_0930_c_03L諸心有掉擧,彼心惡作相應耶?
答:應作四句。有心有掉擧,非惡作相應。謂:無惡作心有躁動性。有心有惡作,非掉擧相應。謂:無染污心有追悔性。有心有掉擧,亦惡作相應。謂:染污心有追悔性。有心無掉擧,亦非惡作相應。謂:除前相。
-
【문】무엇이 혼침(沈)인가?18)
【답】모든 몸의 무거운 성질[重性], 마음의 무거운 성질, 몸이 부드럽지 못하고 마음이 부드럽지 못한 것, 몸이 어릿하고 몽롱한 것, 마음이 어릿하고 몽롱한 것, 몸이 어지럽고 답답한 것, 마음이 어지럽고 답답한 것, 마음의 혼미하고 무거운 성질[重性], 이것을 혼침이라고 한다. -
024_0930_c_09L云何惛沈?
答:諸身重性、心重性、身不調柔、心不調柔、身𧄼瞢、心𧄼瞢、身憒悶心、憒悶,心惛重性,是謂惛沈。
-
【문】무엇이 수면(睡眠)인가?
【답】모든 마음이 넋이 나가 혼미한 채 전전하는 것이다. 마음이 어둡고 오식과의 상응이 간략한 성질[昧性]을 수면이라고 한다. -
024_0930_c_12L云何睡眠?
答:諸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是謂睡眠。
-
【문】모든 마음에 혼침이 있으면 그 마음은 수면과 상응하는가?
【답】네 구(句)로 분별할 수 있다. 마음에 혼침이 있으면서 수면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면이 없는 마음에 혼침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수면이 있으면서 혼침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이 없으면서 수면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혼침이 있으면서 역시 수면과 상응하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으로서 수면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혼침이 없으면서 역시 수면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의 상을 제외한 것이다. -
024_0930_c_14L諸心有惛沈,彼心睡眠相應耶?
答:應作四句。有心有惛沈,非睡眠相應。謂:無睡眠心有惛沈性。有心有睡眠,非惛沈相應。謂:無染污心有睡眠性。有心有惛沈,亦睡眠相應。謂:染污心有睡眠性。有心無惛沈,亦非睡眠相應。謂:除前相。
-
024_0931_a_01L【문】수면을 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불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19)
【답】수면은 혹은 선이고, 혹은 불선이며,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선인가? 말하자면 선심의 수면으로, 혼미한 채 전전하는 마음의 어둡고 간략한 성질, 즉 매략성(昧性)이다. 무엇이 불선인가? 말하자면 불선심의 수면으로, 혼미한 채 전전하는 마음의 매략성이다. 무엇이 무기인가? 말하자면 무기심의 수면으로, 혼미한 채 전전하는 마음의 매략성이다. -
024_0930_c_20L睡眠當言——善耶?不善耶?無記耶?
答:睡眠應言——或善,或不善,或無記。云何善?謂善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云何不善?謂不善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云何無記?謂無記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
-
【문】꿈속에서는 복(福)이 증장한다고 해야 한는가, 비복(非福)이 증장한다고 해야 하는가, 비복비비복(非福非非福)이 증장한다고 해야 하는가?
【답】꿈속에서는 혹은 복이 증장하고, 혹은 비복이 증장하며, 혹은 비복비비복이 증장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복이 증장한다고 함이란 꿈속에서 보시하고 복업을 짓고, 여덟 가지 재계(齋戒)를 수지하고, 혹은 그 밖의 뛰어난 복의 상속 전전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복이 증장한다고 함은 꿈속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않는 것을 취하며, 욕사행(欲邪行)하며, 고의로 거짓말하고, 여러 가지 술을 마시며, 혹은 그 밖의 두드러진 비복의 상속 전전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복비비복이 증장한다고 함이란 꿈속에 비복비비복의 상속 전전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
024_0931_a_03L夢中當言——福增長耶?非福增長耶?非福非非福增長耶?
答:夢中應言——或福增長,或非福增長,或非福非非福增長。福增長者:如有夢中布施、作福、受持齋戒,或餘——隨一福,相續轉。非福增長者:如有夢中害生命、不與取、欲邪行、故妄語、飮諸酒,或餘——隨一非福,相續轉。非福非非福增長者:如有夢中非福非非福相續轉。
-
【문】그렇다면 꿈이란 어떠한 법을 말하는가?
【답】잠잘 때에 심ㆍ심소법이 소연상에 전전함이다. 그가 깨어난 이후 기억한 것에 따라 남을 위해 ‘나는 이미 꿈에서 이러이러한 것을 보았다.’고 설명하는 이것을 꿈이라고 한다. -
024_0931_a_12L夢名何法?
答:諸睡眠時心、心所法於所緣轉。彼覺已,隨憶,能爲他說:“我已夢見如是、如是事。”是謂夢。
- 【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5개(蓋)가 있다.”고 하였다. 5개가 모든 개[諸蓋]를 포섭한다고 해야 하는가, 모든 개가 5개를 포섭한다고 해야 하는가?20)
- 024_0931_a_15L如契經說:“有五蓋。”爲五蓋攝諸蓋?爲諸蓋攝五蓋?
- 【답】모든 개는 5개를 포섭하여도 5개는 모든 개를 포섭하지 못한다. 어째서 포섭하지 못하는가 하면 무명개(無明蓋) 때문이다. 세존께서도 설명하였다.
- 024_0931_a_17L答:諸蓋攝五蓋,非五蓋攝諸蓋。不攝何等?謂:無明蓋。如世尊說:
-
무명개에 가리우고[覆]
애결(愛結)에 계박되고
우지(愚智)가 함께 하여
이와 같은 유식신(有識身)을 초래하여 획득하는 것이다. -
024_0931_a_18L無明蓋所覆,
愛結所繫縛,
愚智俱感得,
如是有識身。
-
【문】그렇다면 모든 개(蓋), 그것은 부(覆)인가?
【답】네 구로 분별할 수 있다. 개이면서 부 아닌 경우가 있는데, 과거ㆍ미래의 5개이다. 부이면서 개 아닌 경우가 있는데, 5개를 제외한 여타의 모든 번뇌가 현재 나타나는 것이다. 개이면서 역시 부인 경우가 있는데, 5개가 유일하게 현재 나타나는 것이다. 개도 아니면서 부도 아닌 경우가 있는데, 말하자면 앞의 것을 제외한 것이다. -
024_0931_a_20L諸蓋,彼覆耶?
答:應作四句:有蓋非覆。謂:過去、未來五蓋。有覆非蓋。謂:除五蓋,諸餘煩惱現在前。有蓋亦覆。謂:五蓋隨一現在前。有非蓋非覆。謂:除前相。
-
024_0931_b_01L【문】모든 욕계계(欲界繫)의 무명수면(無明隨眠), 그것은 모두 불선인가?21)
【답】모든 불선의 무명수면은 욕계계이지만, 욕계계의 무명수면에는 불선 아닌 것도 있다. 욕계계의 유신견과 변집견에 상응하는 무명이다. -
024_0931_b_01L諸欲界繫無明隨眠,彼一切不善耶?
答:諸不善無明隨眠,皆欲界繫。有欲界繫無明隨眠,非不善。謂:欲界繫有身見、邊執見相應無明。
-
【문】모든 색ㆍ무색계 계(繫)의 무명수면, 그것은 모두 무기인가?
【답】모든 색ㆍ무색계 계의 무명수면은 모두 무기이지만, 무기의 무명수면에는 색ㆍ무색계의 계 아닌 것이 있다. 욕계계의 유신견과 변집견에 상응하는 무명이다. -
024_0931_b_05L諸色、無色界繫無明隨眠,彼一切無記耶?
答:諸色、無色界繫無明隨眠,皆是無記。有無記無明隨眠。非色、無色界繫。謂:欲界繫有身見、邊執見相應無明。
-
【문】모든 견고ㆍ집소단(見苦集所斷)의 무명수면, 그것은 모두 변행(遍行)인가?
【답】모든 변행의 무명수면은 모두 견고소단ㆍ견집소단이지만, 견고소단ㆍ견집집소단의 무명수면에는 변행 아닌 것이 있다. 견고소단ㆍ견집소단인 비변행수면과 상응하는 무명이다. -
024_0931_b_09L諸見苦、集所斷無明隨眠,彼皆是遍行耶?
答:諸是遍行無明隨眠,皆見苦集所斷。有見苦、集所斷無明隨眠,非遍行。謂:見苦、集所斷非遍行隨眠相應無明。
-
【문】모든 견멸ㆍ도소단(見滅道所斷)의 무명수면, 그것은 모두 비변행인가?
【답】모든 견멸ㆍ도소단의 무명수면은 모두 비변행이지만, 비변행의 무명수면에는 견멸ㆍ도소단 아닌 것이 있다. 이를테면 견고ㆍ집소단인 비변행수면과 상응하는 무명이다. -
024_0931_b_13L諸見滅、道所斷無明隨眠,彼皆非遍行耶?
答:諸見滅、道所斷無明隨眠,皆非遍行。有非遍行無明隨眠,非見滅、道所斷。謂:見苦集所斷非遍行隨眠相應無明。
-
【문】무엇이 불공무명(不共無明)의 수면인가?
【답】모든 무명으로, 고(苦)에 대해 알지 못하고[不了], 집ㆍ멸ㆍ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
024_0931_b_18L云何不共無明隨眠?
答:諸無明——於苦不了,於集、滅、道不了。
-
【문】무엇이 불공도거전(不共掉擧纏)인가?
【답】불공도거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024_0931_b_20L云何不共掉擧纏?
答:無不共掉擧纏。
-
6) 상(相)납식 - 024_0931_b_21L雜薀第一中 相納息第六
-
2ㆍ3〈법의 能所〉상(相)의 같음과 다름[同異],
늙음과 죽음과 무상과 강함,
한 찰나의 삼상(三相)을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
024_0931_b_22L二三相同異,
老死無常强,
三相一剎那,
此章願具說。
-
024_0931_c_01L
【문】색법 (色法)의 생 (生)ㆍ주(住)ㆍ노(老)ㆍ무상(無常)은 색이라고 해야 하는가, 색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22)
【답】색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01L色法——生、住、老、無常,當言色耶?非色耶?
答:應言非色。
-
【문】비색법(非色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색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색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색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03L非色法——生、住、老、無常,當言非色耶?色耶?
答:應言非色。
-
【문】유견법(有見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견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견이라 고해야하는가?
【답】무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04L有見法——生、住、老、無常,當言有見耶?無見耶?
答:應言無見。
-
【문】무견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견이라고 해야 하는가, 유견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06L無見法——生、住、老、無常,當言無見耶?有見耶?
答:應言無見。
-
【문】유대법(有對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대라고 해야 하는가, 무대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07L有對法——生、住、老、無常,當言有對耶?無對耶?
答:應言無對。
-
【문】무대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대라고 해야 하는가, 유대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09L無對法——生、住、老、無常,當言無對耶?有對耶?
答:應言無對。
-
【문】유루법(有漏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루라고 해야 하는가, 무루라고 해야 하는가?
【답】유루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10L有漏法——生、住、老、無常,當言有漏耶?無漏耶?
答:應言有漏。
-
【문】무루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마땅히 무루라고 해야 하는가, 유루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루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12L無漏法——生、住、老、無常,當言無漏耶?有漏耶?
答:應言無漏。
-
【문】유위법(有爲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위라고 해야 하는가, 무위라고 해야 하는가?
【답】유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13L有爲法——生、住、老、無常,當言有爲耶?無爲耶?
答:應言有爲。
-
【문】무위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위라고 해야 하는가, 유위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위법에는 생ㆍ주ㆍ노ㆍ무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15L無爲法——生、住、老、無常,當言無爲耶?有爲耶?
答:應言無爲法。無生住老無常。
-
【문】과거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과거라고 해야 하는가, 미래 혹은 현재라고 해야 하는가?
【답】과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17L過去法——生、住、老、無常,當言過去耶?未來、現在耶?
答:應言過去。
-
【문】미래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미래라고 해야 하는가, 과거 혹은 현재라고 해야 하는가?
【답】미래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18L未來法——生、住、老、無常,當言未來耶?過去、現在耶?
答:應言未來。
-
【문】현재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현재라고 해야 하는가, 과거 혹은 미래라고 해야 하는가?
【답】현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20L現在法——生、住、老、無常,當言現在耶?過去、未來耶?
答:應言現在。
-
【문】선법 (善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불선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답】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22L善法——生、住、老、無常,當言善耶?不善、無記耶?
答:應言善。
-
【문】불선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불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선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답】불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1_c_23L不善法——生、住、老、無常,當言不善耶?善、無記耶?
答:應言不善。
-
024_0932_a_01L【문】무기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선 혹은 불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02L無記法——生、住、老、無常,當言無記耶善、不善耶?
答:應言無記。
-
【문】욕계 계법(擊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욕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색ㆍ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욕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03L欲界繫——法生住老無常,當言欲界繫耶?色、無色界繫耶?
答:應言欲界繫。
-
【문】색계 계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욕ㆍ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색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05L色界繫——法生住老無常,當言色界繫耶?欲、無色界繫耶?
答:應言色界繫。
-
【문】무색계 계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욕ㆍ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07L無色界繫——法生住老無常,當言無色界繫耶?欲、色界繫耶?
答:應言無色界繫。
-
【문】학법(學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학 혹은 비학비무학라고 해야 하는가?
【답】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09L學法——生、住、老、無常,當言學耶?無學,非學非無學耶?
答:應言學。
-
【문】무학법(無學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학 혹은 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11L無學法——生、住、老、無常,當言無學耶?學,非學非無學耶?
答:應言無學。
-
【문】비학비무학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학 혹은 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12L非學非無學法——生、住、老、無常,當言非學非無學耶?學、無學耶?
答:應言非學非無學。
-
【문】견소단법(見所斷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견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소단(修所斷) 혹은 부단(不斷)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견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15L見所斷法——生、住、老、無常,當言見所斷耶?修所斷、不斷耶?
答:應言見所斷。
-
【문】수소단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수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견소단 혹은 부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수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17L修所斷法——生、住、老、無常,當言修所斷耶?見所斷、不斷耶?
答:應言修所斷。
-
【문】부단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부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견소단 혹은 수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부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2_a_19L不斷法——生、住、老、無常當言不斷耶?見、修所斷耶?
答:應言不斷。
-
【문】무엇을 노(老)라고 하는가?23)
【답】모든 행의 향(向)ㆍ배(背)ㆍ숙(熟)ㆍ변(變)하는 상, 이것을 노라고 한다.24) -
024_0932_a_20L云何老?
答:諸行向背、熟變相,是謂老。
-
【문】무엇을 사(死)라고 하는가?
【답】이러저러한 유정이 이러저러한 유정의 중동분(衆同分:유정으로서의 보편성)으로부터 이전(移轉)하고 괴몰(壞沒)하며, 목숨[壽]과 체온[煖]과 명근(命根: 생명을 유지 상속시키는 실체)을 버리며, 모든 온[諸蘊]을 파기하고, 신체가 죽어 없어지는 것, 이것을 사라고 한다. -
024_0932_a_21L云何死?
答:彼彼有情,從彼彼有情衆同分,移轉壞沒,捨壽、煖、命根,滅棄諸薀,身殞喪。是謂死。
-
024_0932_b_01L【문】무엇을 무상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행이 산괴(散壞)하며, 깨어지고 몰하며[破沒], 망하여 물러나는 것 [亡退], 이것을 무상이라고 한다. -
024_0932_b_01L云何無常?
答:諸行散壞、破沒、亡退。是謂無常。
-
【문】사, 즉 죽음과 무상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모든 죽음은 바로 무상이지만, 무상이면서 죽음 아닌 것이 있다. 말하자면 죽음을 제외한 여타의 행 (行)의 멸이다. -
024_0932_b_02L死、無常何差別?
答:諸死是無常,有無常非死。謂:除死,餘行滅。
-
【문】업(業)의 힘이 강한가, 무상의 힘이 강한가?
【답】업의 힘이 강하며, 무상의 힘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떤 이는 “무상의 힘이 강하며, 업의 힘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이러한 업 역시 무상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유부종의[此義]에 따르면 업의 힘이 강하며, 무상의 힘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업은 능히 삼세의 행(行)을 멸하지만 무상은 오로지 현재의 행만을 멸하기 때문이다. -
024_0932_b_04L業力强耶?無常力强耶?
答:業力强,非無常力。有作是說:無常力强,非業力。所以者何?業亦無常故。於此義中:業力强,非無常力。所以者何?業能滅三世行,無常唯滅現在行故。
-
【문】세존께서 “세 가지 유위의 유위상이 있어 유위의 기(起)도 역시 알 수 있으며, 진(盡)과 주이(住異)도 역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1찰나 중의 그 무엇을 기라고 하는가?25)
【답】생(生)이다. -
024_0932_b_08L如世尊說:“有三有爲之有爲相。有爲之起,亦可了知。盡及住異,亦可了知。”一剎那中云何起?
答:生。
-
【문】무엇을 진이라고 하는가?
【답】무상이다. -
024_0932_b_11L云何盡?
答:無常。
-
【문】무엇을 주이라고 하는가?
【답】노(老)이다. -
云何住異?
答:老。
-
7) 무의(無義)납식 - 024_0932_b_12L雜薀第一中無義納息第七
-
아무런 뜻없음[無義]과 염(念)과 무상(無相),
누진(漏盡)과 법륜(法輪)을 아는 것,
다욕(多欲)과 지족(知足)과 만(滿)과 양(養)을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
024_0932_b_13L無義念無相,
知法輪漏盡,
多欲足滿養,
此章願具說。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024_0932_b_15L如世尊說:
-
여타의 많은 고행을 열심히 닦는다 해도
어떤 의미도 갖추지 못한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한 행위로는 조금의 이익과 안락도 얻지 못하니
이것은 마치 땅 위에 배를 띄워 노를 젓는 것과 같다. -
024_0932_b_16L修諸餘苦行,
當知無義俱,
彼不獲利安,
如陸揮舩棹。
-
【문】어떠한 이유에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셨던 것인가? 여타의 고행을 닦는 것에는 어떠한 의의도 없는 것[無義]인가?26)
【답】그러한 고행은 죽음으로 나아가며, 죽음에 가까우며,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이와 같은 고행은 능히 죽음을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024_0932_b_18L何故世尊作如是說?修餘苦行,無義俱耶?
答:彼行趣死、近死、至死,非如是苦行能超越死故。
-
024_0932_c_01L【문】또한 세존께서는 “결가부좌하고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른 원(願)으로써, 생각을 얼굴에 머물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생각을 얼굴에 머물게 하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27)
【답】관행(觀行)을 닦는 자가 미간에 생각을 고정시켜 사람이 죽어 푸르죽죽하게 피고름이 엉킨 것[靑瘀]을 관찰하고, 혹은 시체가 부어 가죽자루처럼 된 모양[膖脹]을 관찰하고, 혹은 고름으로 썩어 문드러진 모양[膿爛]을 관찰하고, 혹은 파괴된 모양을 관찰하고, 혹은 고름과 같은 부패한 색깔[異赤]을 관찰하고, 혹은 짐승이나 조류, 구더기 등에게 먹히는 모양을 관찰하고, 혹은 뼈마디가 분리되는 것을 관찰하고, 혹은 백골을 관찰하고, 혹은 해골이 부서지는 것[骨銷]을 관찰하는 것, 이것을 생각을 얼굴에 머물게 한다고 하는 것이다. -
024_0932_b_21L又!世尊說:“結跏趺坐,端身正願,住對面念。”云何名“住對面念”耶?
答:修觀行者:繫念眉閒,或觀靑淤,或觀胮脹,或觀膿爛,或觀破壞,或觀異赤,或觀被食,或觀分離,或觀白骨,或觀骨瑣,此等名爲住對面念。
-
【문】또한 세존께서 “대목건련(大目乾連)이여, 저사(底沙)범천은 제6무상주(無相住)를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제6무상주라고 하는가?28)
【답】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을 제6무상주라고 한다. 왜냐 하면, 이 두 가지 무상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안립(安立)할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고법지인(苦法智忍) 혹은 고법지, …(이하 생략)…혹은 도류지인(道類智忍)의 이러한 무상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안립할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제6무상주라고 하는 것이다. -
024_0932_c_04L又!世尊說:“大目乾連!底沙梵天不說第六無相住者耶?”云何名“第六無相住者”耶?
答:隨信行、隨法行,名爲第六無相住者。所以者何?此二無相不可安立,不可施設在此、在彼。若苦法智忍、若苦法智……廣說乃至……若道類智忍。以此無相不可安立,不可施設在此、在彼,故名第六無相住者。
-
【문】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려 교진나(憍陳那) 등의 비구가 법을 보았을 때, 지신(地神)ㆍ약차(藥叉:yaksa)는소리를 높여 널리 말하기를, ‘세존은 지금 바라니사(婆羅■斯)의 선인의 사슴동산에 있으면서 법륜을 세 번 굴렸으며, 12상(相)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그 지신은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고, 비구가 법을 본 것을 정지견(正智見)이 있어서 아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29)
【답】그렇지 않다. -
024_0932_c_12L如契經說:“佛轉法輪,憍陳那……等苾芻見法。地神、藥叉擧聲遍告:‘世尊今在婆羅痆斯仙人鹿苑三轉法輪,具十二相。’”爲彼地神有正智見,知“佛轉法輪、苾芻見法”不?
答:無。
-
【문】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안 것인가?
【답】세존을 믿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께서 세속심을 일으켜 ‘내가 법륜을 굴릴 때, 비구가 법을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는 것이고, 혹은 부처님께서 다른 이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법륜을 굴릴 때, 비구가 법을 보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대덕 천선(天仙)에게서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교진나 존자 등이 세속심을 일으켜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릴 때, 우리들은 법을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는 것이다. 혹은 그 존자가 다른 이에게 말한 것을 지신이 듣고 알았던 것이다. -
024_0932_c_17L彼云何知?
答:信世尊故。謂佛起世俗心——“我轉法輪,苾芻見法”,由是彼知。或佛告他——“我轉法輪,苾芻見法”故。彼得聞。或從大德天仙所聞。或彼尊者憍陳那等起世俗心——“佛轉法輪,我等見法”。由是彼知。或彼告他,地神得聞。
-
024_0933_a_01L【문】또한 계경에서 설명하기를, “어떤 여러 비구가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漏]를 이미 다하였을 때, 33천(天)이 선법(善法)강당에 자꾸자꾸 모여들면서 말하였다. ‘모처에 어떤 존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어떤 제자가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 올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성도를 닦아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무루심과 지혜의 해탈을 증득하였으며, 현법(現法) 중에 스스로 달통 증득하고, 구족(具足)하여 머문다. 또한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으며, 범행을 이미 닦았으며, 지은 바를 이미 변별하여 더 이상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모든 천들[諸天]에게 올바른 지견(知見)이 있어 모든 비구가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를 다하였다고 아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30)
【답】그렇지 않다. -
024_0932_c_23L又!契經說:“有諸苾芻得阿羅漢,諸漏已盡。三十三天數數雲集善法堂中,稱說:‘某處有某尊者,或彼弟子,剃除鬚髮,被服袈裟,正信出家,勤修聖道。諸漏已盡,證得無漏,心、慧解脫。於現法中,能自通達,證具足住。又!自了知: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受後有。’”爲彼諸天有正智見,知諸苾芻得阿羅漢,諸漏盡不?
答:無。
-
【문】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답】세존을 믿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께서 세속심을 일으켜 ‘이들 여러 비구는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는 것이다. 혹은 부처님께서 다른 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들 여러 비구는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를 다하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대덕 전선에게서 ‘그들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그 존자가 세속심을 일으켜 ‘나는 이미 번뇌를 다하고 아라한을 증득했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는 것이다. 혹은 그가 다른 이에게 말한 것을 모든 천들이 들어 아는 것이다. -
024_0933_a_09L彼云何知?
答:信世尊故。謂:佛起世俗心——“是諸苾芻得阿羅漢,諸漏已盡。”由是彼知。或佛告他——“是諸苾芻得阿羅漢,諸漏已盡”故。彼得聞。或從大德天仙所聞。或彼尊者起世俗心——“我已漏盡得阿羅漢。”由是彼知。或彼告他,諸天得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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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마갈타(摩揚陀)의 여러 보좌신하들은 혹은 화법조복(化法調伏)하고, 혹은 법수법행(法隨法行)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이 화법조복하였다 함은 무엇을 말하며, 법수법행하였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31)
【답】만약 하늘[天] 중에 있으면서 법을 본 자이면 화법조복하였다고 말하며, 사람들 중에 있으면서 법을 보았다면 법수법행하였다고 말한다. 또한 계를 수지 하지 않고서 법을 본 자를 화법조복하였다고 하며, 계를 수지하고서 법을 본 자를 법수법행하였다고 한다. -
024_0933_a_15L如契經說:“摩揭陁國諸輔佐臣,或是化法調伏,或是法隨法行。”云何彼名化法調伏?云何彼名法隨法行?
答:若在天中而見法者,名化法調伏;若在人中而見法者,名法隨法行。復次,若不受持戒而見法者,名化法調伏;若受持戒而見法者,名法隨法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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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다욕(多欲)이라고 하는가?32)
【답】모든 것을 욕망하고, 이미 욕망하였고, 앞으로 욕망할 것, 이것을 다욕이라고 한다. -
024_0933_a_22L云何多欲?
荅:諸欲、已欲、當欲,是謂多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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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불희족(不喜足)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것에 만족하지 않고[不喜], 평등히 만족하지 않고, 두루 만족하지 않고, 이미 만족하지 않았고, 장차 만족하지 않을 것, 이것을 불희족이라고 한다. -
024_0933_a_23L云何不喜足?
答:諸不喜、不等喜、不遍喜、不已喜、不當喜,是謂不喜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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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3_b_01L【문】다욕과 불희족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아직 얻지 못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바라고 구하고 찾고 사모하고 방편을 강구하는 것, 이것을 다욕이라고 한다. 이미 획득한 참으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다시 바라고 다시 욕망하며 다시 즐기며 다시 구하는 것, 이것을 불희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
024_0933_b_02L多欲、不喜足,何差別?
答:於未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諸希、求、尋索、思慕,方便,是謂多欲。於已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諸復希、復欲、復樂、復求,是謂不喜足。如是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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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소욕(少欲)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것에 대해 욕망하지 않고, 이미 욕망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욕망하지 않을 것, 이것을 소욕이라고 한다. -
024_0933_b_08L云何少欲?
答:諸不欲、不已欲、不當欲,是謂少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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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희족(喜足)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것에 만족하고, 평등하게 만족하고, 두루 만족하고, 이미 만족하였으며, 앞으로 만족할 것, 이것을 희족이라고 한다. -
024_0933_b_09L云何喜足?
答:諸喜、等喜、遍喜、已喜,當喜,是謂喜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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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욕과 희족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아직 얻지 못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바라지 않고, 구하지 않고, 찾지 않고, 사모하지 않고, 방편을 강구하지 않는 것, 이것을 소욕이라고 한다. 이미 획득 한 참으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다시는 바라지 않고, 다시는 욕망하지 않으며, 다시 는 즐기지 않으며, 다시는 구하지 않는 것, 이것을 희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
024_0933_b_11L少欲、喜足,何差別?
答:於未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諸不希、不求、不尋、不索、不思慕、不方便,是謂少欲。於已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諸不復希、不復欲、不復樂、不復求,是謂喜足。如是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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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난만(難滿)이라고 하는가?33)
【답】거듭 먹고 거듭 씹으며, 많이 먹고 많이 씹으며, 크게 먹고 크게 씹으면서 적어서 그치지 않는 것, 이것을 난만이라고 한다. -
024_0933_b_17L云何難滿?
答:諸重食、重噉、多食、多噉、大食、大噉,非少能濟,是謂難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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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난양(難養)이라고 하는가?
【답】재물을 탐하고 지극히 탐하며, 먹을 것을 탐하고 지극히 탐하며, 즐겨 좋아하고 지극히 즐겨 좋아하며, 씹는 것을 좋아하고, 맛보는 것을 좋아하고, 선택하여 먹고 선택하여 씹으며, 나아가 그침이 없는 것, 이것을 난양이라고 한다. -
024_0933_b_19L云何難養?
答:諸饕餮、極饕餮、耽、極耽、嗜、極嗜好咀嚼、好嘗啜、選擇而食、選擇而噉、非趣能濟,是謂難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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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난만과 난양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앞에서 설명한 것, 그러한 차별이 있다. -
024_0933_b_22L難滿、難養,有何差別?
答:卽前所說,是謂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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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3_c_01L【문】무엇을 이만(易滿)이라고 하는가?
【답】거듭 먹지 않고 거듭 씹지 않으며, 많이 먹지 않고 많이 씹지 않으며, 크게 먹지 않고 크게 씹지 않으며, 적지만 바로 그치는 것, 이것을 이만이라고 한다. -
024_0933_b_23L云何易滿?
答:諸不重食、不重噉、不多食、不多噉、不大食、不大噉、少便能濟,是謂易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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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이양(易養)이라고 하는가?
【답】재물을 탐하지 않고 지극히 탐하지 않으며, 먹을 것을 탐하지 않고 지극히 탐하지 않으며, 즐겨 좋아하지 않고 지극히 즐겨 좋아하지 않으며, 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맛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가리지 않고 먹고 가리지 않고 씹으며, 나아가 얻으면 바로 그치는 것, 이것을 이양이라고 한다. -
024_0933_c_03L云何易養?
答:諸不饕餮、不極饕餮、不耽、不極耽、不嗜、不極嗜、不好咀嚼、不好嘗啜、不選擇而食、不選擇而噉、趣得便濟,是謂易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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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만과 이양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앞에서 설명한 것, 그러한 차별이 있다. -
024_0933_c_06L易滿、易養,有何差別?
答:卽前所說,是謂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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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思)납식 - 024_0933_c_07L雜薀第一中思納息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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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思)와 심(尋)과 도(掉) 등의 차별
우지(愚知)와 만(慢)과 해(害)
큰[多] 것과 행(行)과 〈보호되는〉 근(根)과 〈범부의〉 성품과 사(邪)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
024_0933_c_08L思尋掉等別,
愚知憍慢害,
多行根性邪,
此章願具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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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사(思)라고 하는가?34)
【답】모든 사(思)ㆍ등사(等思)ㆍ증사(增思)ㆍ사성(思性)ㆍ사류(思類)ㆍ심행(心行)ㆍ의업(意業), 이것을 사라고 한다. -
024_0933_c_10L云何思?
答:諸思、等思、增思、思性,思類——心行、意業,是謂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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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여(慮)라고 하는가?
【답】모든 여(慮)ㆍ등려(等慮)ㆍ증려(增慮)ㆍ칭량(稱量)ㆍ주탁(籌度)ㆍ관찰, 이것을 여라고 한다. -
024_0933_c_12L云何慮?
答:諸慮、等慮、增慮、稱量,籌度,觀察,是謂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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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와 여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사는 업이고, 여는 혜(慧)이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
024_0933_c_13L思、慮,何差別?
答:思者業,慮者慧,是謂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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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심(尋)이라고 하는가?35)
【답】모든 마음의 심구(尋求)ㆍ변료(辨了)ㆍ현시(顯示)ㆍ추탁(推度)ㆍ구획(搆畫)ㆍ분별성(分別性)ㆍ분별류(分別類), 이것을 심이라고 한다. -
024_0933_c_14L云何尋?
答:諸心尋求、辯了、顯示、推度、搆畫、分別性、分別類,是謂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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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사(何)라고 하는가?
【답】모든 마음의 사찰(伺察)ㆍ수행(隨行)ㆍ수전(隨轉)ㆍ수류(隨流)ㆍ수속(隨屬), 이것을 사라고 한다. -
024_0933_c_16L云何伺?
答:諸心伺察、隨行、隨轉、隨流、隨屬,是謂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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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심과 사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심이라 하고,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사라고 한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
024_0933_c_18L尋、伺,何差別?
答:心麤性,名尋;心細性,名伺。是謂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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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도거(掉擧)라고 하는가?36)
【답】모든 마음에 고요함이 없고 지식(止息)됨이 없으며, 조급하고 망령스럽게 움직이는 마음의 조동성(操動性), 이것을 도거라고 한다. -
024_0933_c_19L云何掉擧?
答:諸心不寂靜、不止息,躁動、掉擧,心躁動性,是謂掉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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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심란(心亂)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마음이 산란되어 떠돌아다니며,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비일경성(非一境性), 이것을 심란이라고 한다. -
024_0933_c_21L云何心亂?
答:諸心散亂,流蕩不住,非一境性,是謂心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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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거와 심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고요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도거이며,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않음을 특정으로 하는 것이 심란이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
024_0933_c_22L掉擧、心亂,有何差別?
答:不寂靜相,名掉擧;非一境相,名心亂。是謂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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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4_a_01L【문】무엇을 무명(無明)이라고 하는가?37)
【답】삼계의 무지(無智)이다. -
024_0934_a_01L云何無明?
答:三界無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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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부정지(不正知)라고 하는가?
【답】비리(非理)가 인기한 혜(慧)이다. -
024_0934_a_02L云何不正知?
答:非理所引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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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대는 부정지를 비리가 인기한 혜라고 주장하는 것인가?(분별론자의 난문)
【답】그렇다. -
024_0934_a_03L汝說“不正知,是非理所引慧”耶?
答: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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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정지(正知)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실념부정지(失念不正知)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
024_0934_a_04L汝何所欲,諸有正知而妄語者,彼皆失念、不正知故,而妄語耶?
答: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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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망어하는 일은 없는가?
【답】그렇지 않다. 정지로서 망어하는 경우가 있다. 내 말을 들어 보라. 만약 부정지는 바로 비리가 인기한 혜라고 하면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즉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부정지는 바로 비리가 인기한 혜로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주장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
024_0934_a_06L又!何所欲?無“有正知,而妄語”耶?
答:不爾。應聽我語。若言:“不正知,是非理所引慧。諸有正知而妄語,彼皆失念不正知故,而妄語”者;則應說:“無有正知而妄語”。若不說:“無有正知而妄語”者;則不應言:“不正知,是非理所引慧;諸有正知而妄語,彼皆失念不正知故,而妄語。”作如是說,俱不應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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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힐문하여 말할 것이니라. 모든 무명은 모두 부정지와 상응하는 것인가?(응리론자인 논주의 재난)
【답】그렇다. -
024_0934_a_14L應詰彼言:諸無明皆不正知相應耶?
答: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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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도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무명으로 나아가고 무명에 얽매인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
024_0934_a_15L汝何所欲,諸有正知而妄語者,皆無明趣,無明所纏,失念不正知故而妄語耶?
答: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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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4_b_01L【문】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망어하는 일은 없는가?
【답】그렇지 않다. 내 말을 들어보라. 만약 모든 무명은 모두 부정지와 상응한다고 하면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은 모두 무명으로 나아가고 무명에 얽매인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즉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모든 무명은 모두 부정지와 상응한다고 하면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은 모두 무명으로 나아가고 무명에 얽매인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주장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
024_0934_a_17L又!何所欲無有正知而妄語耶?
答:不爾。應聽我說:若言:“一切無明皆不正知相應。諸有正知而妄語,皆無明趣,無明所纏,失念、不正知故而妄語”者;則應說:“無有正知而妄語。”若不說:“無有正知而妄語者”;則不應言:“一切無明皆不正知相應。諸有正知而妄語,皆無明趣,無明所纏,失念、不正知故而妄語。”作如是說,亦俱不應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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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교(憍)라고 하는가?38)
【답】모든 방자함ㆍ침혹함[醉]ㆍ지극한 침혹ㆍ번민[悶]ㆍ지극한 번민ㆍ마음의 거만ㆍ방종함[傲逸]ㆍ마음의 자취(自取), 이것을 교라고 한다. -
024_0934_b_03L云何憍?
答:諸憍、醉、極醉、悶、極悶,心傲逸,心自取,是謂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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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만(慢)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만ㆍ과거의 만[已慢]ㆍ미래의 만[當慢]ㆍ마음의 거시(擧恃)ㆍ마음의 자취(自取),이것을 만이라고 한다. -
024_0934_b_04L云何慢?
答:諸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是謂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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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와 만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다른 것에 견주어 자신의 법에 염착하는 마음의 거만, 방종함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교라면, 다른 것에 견주어 스스로 거시하는 것을 특정으로 하는 것이 만이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
024_0934_b_06L憍、慢,何差別?
答:若不方他,染著自法,心傲逸相,名憍。若方於他,自擧恃相,名慢。是謂差別。
-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고(苦)를 바로 고라고 본다.’ 혹은 ‘집(集)을 바로 집으로 본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은 것인가?39)
- 024_0934_b_08L若起增上慢——我“見苦是苦”,或“見集是集”,此何所緣?
- 【답】어떤 한 존재가 선사(善士)를 가까이 해 정법을 청문하여 참답게 작의하는 것[如理作意]과 같다. 즉 이러한 인연에 따라 제순인(諦順忍:煖頂忍의 忍位를 말함)을 획득하여 고현관변(苦現觀邊)에 이른 자는 고에 대해 바로 고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顯了)하며, 집현관변에 이른 자는 집에 대해 바로 집이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한다. 그는 이러한 인(忍)과 작의를 지님에 따라, 혹은 출정과 입정 중간의 부작의에 따르기 때문에 견(見)과 의(疑)가 나타나지 않는다. 설사 나타난다 할지라도 느끼지[覺] 않으며, 바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고를 바로 고라고 보며, 집을 바로 집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고를 소연으로 삼고, 혹은 집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 024_0934_b_10L答:如有一類,親近善士,聽聞正法,如理作意。由此因緣,得諦順忍——苦現觀邊者:於苦忍樂,顯了是苦。集現觀邊者:於集忍樂,顯了是集。彼由此忍作意持故,或由中閒不作意故,見疑不行,設行不覺,便作是念:我“於苦,見是苦”,或“於集,見是集”。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苦,或卽緣集。
-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멸(滅)을 바로 멸이라고 본다.’ 혹은 ‘도(道)를 바로 도라고 본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은 것인가?
- 024_0934_b_18L若起增上慢——“我見滅是滅”,或“見道是道”,此何所緣?
- 024_0934_c_01L【답】어떤 한 존재가 선사를 가까이 해 정법을 청문하여 참답게 작의하는 것과 같다. 즉 이러한 인연에 따라 제순인을 획득하여 멸현관변(滅現觀邊)에 이른 자는 멸에 대해 바로 멸이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하며, 도현관변에 이른 자는 도에 대해 바로 도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한다. 그는 이러한 인과 작의를 지님에 따라, 혹은 중간의 부작의에 따르기 때문에 견(見)과 의(疑)를 행하지 않는다. 설사 행해진다 할지라도 느끼지 않으며, 바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멸을 바로 멸이라고 보며, 도를 바로 도라고 본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그의 심ㆍ섭소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 024_0934_b_19L答:如有一類,親近善士,聽聞正法,如理作意。由此因緣,得諦順忍——滅現觀邊者:於滅忍樂,顯了是滅。道現觀邊者:於道忍樂,顯了是道。彼由此忍作意持故,或由中閒不作意故,見疑不行,設行不覺,便作是念:我“於滅,見是滅”,或“於道,見是道”。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彼心、心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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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이미 생이 다하였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이것은 ‘바로 도(道)이다. 이것은 바로 행(行)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를 닦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다.’고 생각하여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생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
024_0934_c_05L若起增上慢——“我生已盡”,此何所緣?
答: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行;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集,已證滅,已修道;我生已盡。”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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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범행을 이미 수립하였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이를테면 어떤 한 존재가 ‘이것은 바로 도이고, 이것은 바로 행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를 닦았으니, 나는 범행을 이미 수립하였다.’고 생각하며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그의 섬ㆍ심소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
024_0934_c_10L若起增上慢——“我梵行已立”,此何所緣?
答: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行;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集,已證滅,已修道;我梵行已立。”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彼心、心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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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지은 바를 이미 변별하였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생각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도이고, 이것은 바로 행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를 닦았으니, 나는 이미 수면을 끊고, 이미 번뇌를 해쳤으며, 이미 결(結)을 드러내고, 누(漏)를 다하여 행한 것을 이미 변별하였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그의 심ㆍ심소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
024_0934_c_15L若起增上慢——“我所作已辦”,此何所緣?
答: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行;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集,已證滅,已修道;我已斷隨眠,已害煩惱,已吐結,已盡漏,所作已辦。”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彼心、心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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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5_a_01L【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더 이상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이를테면 어떤 한 존재가 생각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도이고, 이것은 바로 행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들 닦았으니,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수립되었으며, 행한 것을 이미 변별하여 더 이상 후유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니, 이는 바로 유(有)들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
024_0934_c_22L若起增上慢——“我不受後有”,此何所緣?
答: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行;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集,已證滅,已修道;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受後有。”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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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스스로 비속하다 하여 만을 일으킨다고 하는가?40)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다른 이가 자신의 종족ㆍ종성ㆍ가족ㆍ흑ㆍ백 등의 인종[類]ㆍ재산ㆍ지위ㆍ기예, 그리고 발이나 집 등에 비해 뛰어난 것을 보고, 생각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보다 조금 뛰어나다. 나는 그보다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이보다 백천 배나 더 열등해지면,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니, 이것을 스스로 비속하다 하여 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
024_0935_a_05L云何自謂卑而起慢耶?
答:如有一類,見他勝己——種姓、族類、財位、技藝,及田宅等,作是念言:“彼少勝我,我少劣彼。”然劣於他多百千倍。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是名“自謂卑而起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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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만약 욕심(欲尋)ㆍ에섬(恚尋)ㆍ해심(害尋)을 일으킨다면, 혹은 스스로를 해치고, 혹은 남을 해치며, 혹은 양자 모두를 해친다.”고 하였다. 욕심으로 스스로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41)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탐전(食纏)을 일으키기 때문에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고단하며, 몽이 타고 마음이 타며, 몸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우며, 몸이 마르고 마음이 마르는 것, 또한 이러한 인연에 따라 기나긴 밤 비애(非愛)ㆍ비락(非樂)ㆍ비희(非喜)ㆍ비열(非悅)의 이숙과를 받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a_11L如契經說:“若起欲尋、恚尋、害尋,或自害、或害他、或俱害。”云何欲尋自害?
答:如有一類,起貪纏故,身勞心勞、身燒心燒、身熱心熱、身燋心燋;復由此緣,當受長夜——非愛、非樂、非憙、非悅諸異熟果。如是自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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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욕심으로 남을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탐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아내를 바라보니, 그의 남편이 이를 보고 마음에 분을 품고 한을 맺으며, 근심하여 어지럽혀지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남을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a_16L云何欲尋害他?
答:如有一類,起貪纏故,觀視他妻;彼夫見已,心生瞋忿、結恨、愁惱。如是害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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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욕심으로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탐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아내를 욕되게 겁탈하니, 그의 남편이 이를 알고 마침내 그의 아내를, 그리고 그 사람을 몽둥이로 치고 묶어 죽여서 재보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나와 남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a_18L云何欲尋俱害?
答:如有一類,起貪纏故,污奪他妻;彼夫覺已,遂於其妻及於其人——打、縛、斷命,或奪財寶。如是俱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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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5_b_01L【문】에심으로 스스로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진전(瞋纏)을 일으키기 때문에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고단하며, 몸이 타고 마음이 타며, 몸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우며, 몸이 마르고 마음이 마르는 것, 또한 이러한 인연에 따라 기나긴 밤 비애ㆍ비락ㆍ비희ㆍ비열의 이숙과를 받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a_22L云何恚尋自害?
答:如有一類,起瞋纏故,身勞心勞、身燒心燒、身熱心熱、身燋心燋;復由此緣,當受長夜——非愛、非樂、非憙、非悅諸異熟果。如是自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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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심으로 남을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진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목숨을 끊고 해치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남을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b_02L云何恚尋害他?
答:如有一類,起瞋纏故,斷害他命。如是害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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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심으로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진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목숨을 끊고 해치며, 또한 남에게 그 자신의 목숨을 단절당하고 해침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나와 남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b_04L云何恚尋俱害?
答:如有一類,起瞋纏故,斷害他命;亦復被他斷害其命。如是俱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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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심으로 스스로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해전(害纏)을 일으키기 때문에 봄이 고단하고 마음이 고단하며, 몸이 타고 마음이 타며, 몸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우며, 몸이 마르고 마음이 마르는 것, 또한 이러한 인연에 따라 기나긴 밤 비애ㆍ비락ㆍ비희ㆍ비열의 이숙과를 받는 것, 이와 같은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b_06L云何害尋自害?
答:如有一類,起害纏故,身勞心勞、身燒心燒、身熱心熱、身燋心燋;復由此緣,當受長夜——非愛、非樂、非憙、非悅諸異熟果。如是自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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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심으로 남을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해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을 때리고 묶는 것, 이와 같은 것이 납을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b_10L云何害尋害他?
答:如有一類,起害纏故,打、縛於他。如是害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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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심으로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해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을 때리고 묶으며, 또한 남에게 맞고 묶이는 것, 이와 같은 것이 나와 남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
024_0935_b_12L云何害尋俱害?
答:如有一類,起害纏故,打、縛於他;亦復被他之所打、縛。如是俱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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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식[智]의 외연이 큰 것인가, 대상[境]의 외연이 큰 것인가?42)
【답】대상이 크며, 지식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지식 역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
024_0935_b_14L智多耶?境多耶?
答:境多,非智。所以者何?智亦境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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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식의 외연이 큰 것인가, 의식[識]의 외연이 큰 것인가?
【답】의식이 크며, 지식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모든 지식은 모든 의식과 상응해도 모든 의식은 모든 지식과 상응하지 않는다. 즉 인(忍)과 상응하는 의식은 지식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
024_0935_b_16L智多耶?識多耶?
答:識多,非智。所以者何?諸智皆識相應,非諸識皆智相應;忍相應識,非智相應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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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루행의 외연이 큰 것인가, 무루행이 큰 것인가?
【답】유루행이 크며, 무루행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유루행은 10처(處)와 2처의 일부를 포섭하지만 무루행은 오로지 2처 일부만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
024_0935_b_18L有漏行多耶?無漏行多耶?
答:有漏行多,非無漏行。所以者何?有漏行攝十處,二處少分,無漏行唯攝二處少分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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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행원만(行圓滿)이라고 하는가?43)
【답】무학의 신율의(身律儀)ㆍ어율의(語律儀)ㆍ명청정(命淸淨)이다. -
024_0935_b_22L云何行圓滿?
答:無學——身律儀、語律儀、命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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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엇을 호원만(護圓滿)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근율의(根律儀)이다. -
024_0935_b_23L云何護圓滿?
答:無學——根律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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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5_c_01L【문】무엇을 이생성(異生性)이라고 하는가?44)
【답】만약 성법(聖法)ㆍ성난(聖暖)ㆍ성견(聖見)ㆍ성인(聖忍)ㆍ성욕(聖欲)ㆍ성혜(聖慧)를 모두 획득하지 못하며, 과거에 획득하지 못하였고, 미래에 획득하지 못하는 것, 이것을 이생성이라고 한다. -
024_0935_c_01L云何異生性?
答:若於聖法、聖暖、聖見、聖忍、聖欲、聖慧,諸非得、已非得、當非得,是謂異生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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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러한 이생성은 선하다고 해야 하는가, 불선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5_c_03L此異生性,當言善耶?不善耶?無記耶?
答:應言無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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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째서 이생성을 선하다고 해서는 안 되는가?
【답】선법은 어떤 경우에는 가행(加行)으로 말미암아 획득되고, 혹은 여타의 다른 인연으로 말미암아 획득되지만 가행으로써 이생을 구하여 행위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근을 끊을 때는 선법을 모두 버리며, 선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이 바로 선성이라고 한다면 선근을 끊은 자는 이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
024_0935_c_04L何故異生性非善耶?
答:善法或由加行故得,或由餘緣故得。無設加行,求作異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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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째서 이생성을 불선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가?
【답】욕염을 떠날[離欲染] 때 불선을 모두 버리며 불선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을 바로 불선이라고 한다면, 모든 이생이 욕염을 떠날 경우 이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
024_0935_c_07L又!斷善時,善法皆捨,得諸善法不成就性;若異生性是善性者,斷善根者應非異生。何故異生性非不善耶?
答:離欲染時,不善皆捨,得不善法不成就性;若異生性是不善者,諸異生離欲染,應非異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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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러한 이생은 욕계계(欲界繫)라고 해야 하는가, 색계계 혹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혹은 욕계계이고, 혹은 색계계 혹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5_c_12L此異生性當言欲界繫耶?色界繫耶?無色界繫耶?
答:應言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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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째서 이생성은 오로지 욕계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욕계에서 죽어 색계에 태어날 때는 욕계의 법을 모두 버리고 욕계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을 오로지 욕계계라고 한다면 모든 이생이 욕계에서 죽어 무색계에 태어날 경우 더 이상 이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
024_0935_c_15L何故異生性非唯欲界繫耶?
答:欲界沒生無色界時,欲界法皆捨,得欲界法不成就性;若異生性唯欲界繫者,諸異生欲界沒生無色界,應非異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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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째서 이생성은 오로지 색계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색계에서 죽어 무색계에 태어날 때는 색계의 법을 모두 버리고 색계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을 오로지 색계계라고 한다면 모든 이생이 색계에서 죽어 무색계에 태어날 경우 더 이상 이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
024_0935_c_19L何故異生性非唯色界繫耶?
答:色界沒生無色界時,色界法皆捨,得色界法不成就性;若異生性唯色界繫者,諸異生色界沒生無色界,應非異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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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6_a_01L【문】어째서 이생성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정성이생에 들 때 먼저 욕계의 고(苦)를 현관한 후에 색ㆍ무색계의 고를 함께 현관한다. 성도를 일으킬 때는 먼저 욕계의 본질[事]을 변별한 후에 색ㆍ무색계의 본질을 함께 변별한다. 그래서 이생성은 오로지 무색계의 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024_0935_c_23L何故異生性非唯無色界繫耶?
答:入正性離生,先現觀欲界苦,後合現觀色、無色界苦。聖道起,先辦欲界事,後合辦色、無色界事。是故異生性非唯無色界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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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러한 이생성은 견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수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024_0936_a_04L此異生性當言見所斷耶?修所斷耶?
答:應言修所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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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째서 이생성을 견소단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견소단의 법은 모두 염오하지만 이생성은 불염오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제 일법이 바로 멸하고 고법지인이 바로 생겨나면, 그때 삼계의 이생성을 버리고 그것의 불성취성을 획득하지만, 그러나 그때는 아직 견소단법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
024_0936_a_05L何故異生性非見所斷耶?
答:見所斷法皆染污,異生性不染污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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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생성이란 어떠한 법인가?
【답】삼계의 불염오한 심불상응행이다. -
024_0936_a_07L又!世第一法正滅,苦法智忍正生。爾時,捨三界異生性,得彼不成就性;非於爾時見所斷法而有捨故。異生性名何法?
答:三界不染污心不相應行。
- 【문】모든 법으로서 사견(邪見)과 상응하는 것, 그 법은 사사유(邪思惟)와 상응하는가?45)
- 024_0936_a_11L諸法邪見相應,彼法邪思惟相應耶?
- 【답】네구(句)로 분별할 수 있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해도 사사유와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사유와, 그리고 여타의 사사유와 상응하지 않는 사견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사유와 상응해도 사견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사유와 상응하는 사견과, 그리고 여타의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사유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고 사사유와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사유를 제외한, 그리고 사사유와 상응하는 사견을 제외한 여타의 다른 모든 사견ㆍ사사유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지도 않고 사사유와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사유와 사사유와 상응하지 않는 사견, 그리고 여타의 다른 모든 심ㆍ심소법과 색과 무위와 심불상응행이다.
- 024_0936_a_12L答:應作四句:有法邪見相應,非邪思惟。謂:邪見相應邪思惟,及餘邪思惟不相應邪見相應法。有法邪思惟相應,非邪見。謂:邪思惟相應邪見,及餘邪見不相應邪思惟相應法。有法邪見相應,亦邪思惟。謂:除邪見相應邪思惟,及除邪思惟相應邪見,諸餘邪見、邪思惟相應法。有法非邪見相應,亦非邪思惟。謂:邪見不相應邪思惟,邪思惟不相應邪見,及諸餘心、心所法、色、無爲、心不相應行。
- 【문】모든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는 것, 그 법은 사정진(邪精進)과 상응하는 것인가?
- 024_0936_a_23L諸法邪見相應,彼法邪精進相應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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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0936_b_01L【답】네 구로 분별할 수 있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해도 사정진과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정진이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해도 사견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그리고 여타의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정진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고 사정진과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정진을 제외한, 여타의 다른 사건상응의 법이다. 법무로서 사견과 상응하지도 않고 사정진과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정진과, 그리고 여타의 다른 모든 심ㆍ심소법과 색과 무위와 심불상응행이다.
사견이 사정진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견이 사념(邪念)ㆍ사정(邪定)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나아가 사견이 사정진ㆍ사념ㆍ사정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사유가 사정진ㆍ사념ㆍ사정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 024_0936_b_01L答:應作四句:有法邪見相應,非邪精進。謂:邪見相應邪精進。有法邪精進相應,非邪見。謂:邪見及餘邪見不相應邪精進相應法。有法邪見相應,亦邪精進。謂:除邪見相應邪精進,諸餘邪見相應法。有法非邪見相應,亦非邪精進。謂:邪見不相應邪精進,及諸餘心、心所法、色、無爲、心不相應行。如以邪見對邪精進;以邪見對邪念、邪定,亦爾。如以邪見對邪精進、邪念、邪定;以邪思惟對邪精進、邪念、邪定,亦爾。
- 【문】모든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하는 것, 그 법은 사념과 상응하는 것인가?
- 024_0936_b_12L諸法邪精進相應,彼法邪念相應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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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네 구로 분별할 수 있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해도 사념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념이다. 법으로서 사념과 상응해도 사정진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사정진이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하고 사념과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사정진과 사념에 상응하는 법이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하지도 않고 사념과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여타의 모든 심ㆍ심소법과 색과 무위와 심불상응행이다.
사정진이 사념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정진이 사정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 하다. 나아가 사정진이 사념ㆍ사정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념이 사정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
024_0936_b_13L答:應作四句:有法邪精進相應,非邪念。謂:邪念。有法邪念相應,非邪精進。謂:邪精進。有法邪精進相應,亦邪念。謂:邪精進、邪念相應法。有法非邪精進相應,亦非邪念。謂:諸餘心、心所法、色、無爲、心不相應行。如以邪精進對邪念;以邪精進對邪定,亦爾。如以邪精進對邪念、邪定;以邪念對邪定,亦爾。
說一切有部發智論卷第二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 1)애(愛:preman)와 경(敬:gaurava)에 대한 것이다.
- 2)공양(pūjanā)과 공경(satkāra)에 대한 것이다.
- 3)신력(身力)과 신열(身劣)에 대한 것이다.
- 4)택멸(擇滅:pratisamkhyā-nirodha)과 비택멸(非擇滅:apratisamkhyā-nirodha)에 대한 것이다.
- 5)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대한 것이다.
- 6)무루오온(無漏五蘊)에 대한 것이다.
- 7)유일구경(唯一究竟)에 대한 것이다.
- 8)외도가 아어취(我語取)를 끊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 9)지변지(智遍知)ㆍ단변지(斷遍知)에 대한 것이다.
- 10)삼귀의(三歸依)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 11)흑(黑)은 무참(無慚)ㆍ무괴(無愧), 백(白)은 참ㆍ괴, 두 가지 근(根)과 마음[心]은 증상(增上)ㆍ미구행(微俱行)의 선(善)ㆍ불선(不善)을 말한다.
- 12)무참(無慙)과 무괴(無愧)에 대한 것이다.
- 13)참(慙)과 괴(愧)에 대한 것이다.
- 14)증상(增上) 불선근과 미구행(微俱行) 불선근에 대한 것이다.
- 15)욕계 증상 선근과 미구행 선근에 대한 것이다.
- 16)마음의 변괴(變壞)에 대한 것이다.
- 17)도거(掉擧)와 악작(惡作)에 대한 것이다.
- 18)혼침(惛沈)과 수면(睡眠)에 대한 것이다.
- 19)잠잘 때 꿈의 선악과 그 과보에 대한 것이다.
- 20)5개(蓋;欲貪蓋ㆍ瞋恚蓋ㆍ惛眠蓋ㆍ掉悔蓋ㆍ疑蓋)와 무명개(無明蓋)에 대한 것이다.
- 21)무명수면(無明隨眠)의 모든 상(相)에 대한 것이다.
- 22)유위법[所相]과 유위상[能相]의 같고 다름에 대한 것이다.
- 23)노(老:혹은 異)와 사(死), 또는 무상에 대한 것이다.
- 24)모든 행이 죽음의 문을 향하고, 젊음과 패기를 버리고, 여러 기관이 완숙되고, 근력이 쇠퇴 변이함을 말한다.
- 25)1찰나의 4상(혹은 3상)에 대한 것이다.
- 26)고행의 무의미함에 대한 것이다.
- 27)대면염주(對面念住)의 내용으로서의 부정관(不淨觀).
- 28)제6무상주(無相住)로서의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의 공덕에 대한 것이다.
- 29)여래의 초전법륜을 지신(地神)ㆍ약차가 아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 30)33천이 모든 비구의 해탈을 아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 31)화법조복(化法調伏)과 법수법행(法隨法行)에 대한 것이다.
- 32)다욕(多欲)과 불희족(不喜足), 소욕과 희족에 대한 것이다.
- 33)난만(難滿)과 난양(難養), 이만(易滿)과 이양(易養)에 대한 것이다.
- 34)사(思)와 여(慮:慧의 다른 이름)에 대한 것이다.
- 35)심(尋)과 사(伺)에 대한 것이다.
- 36)도거(掉擧)와 심란(心亂)에 대한 것이다.
- 37)무명(無明)과 부정지(不正知)에 대한 것이다.
- 38)교(憍)와 만(慢)에 대한 것이다.
- 39)증상만이 사제(四諦) 내지 진지(濜智) 무생지(無生智)를 소연으로 삼을 때, 그 소연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 40)비만(卑慢)에 대한 것이다.
- 41)욕(欲)ㆍ에(恚)ㆍ해(害)의 3악심(惡尋)에 대한 것이다.
- 42)지식[智]과 대상[境]ㆍ지식과 의식[識]ㆍ유루행과 무루행의 광ㆍ협에 대한 것이다.
- 43)행원만(行圓滿)과 호원만(護圓滿)에 대한 것이다.
- 44)이생성(異生性)에 대한 것이다.
- 45)사견(邪見) 등 8사지(邪支)의 상응관계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