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毘達磨發智論卷第二

ABC_IT_K0944_T_002
024_0927_b_01L아비달마발지론 제2권
024_0927_b_01L阿毘達磨發智論卷第二

가다연니자지음
현장한역
024_0927_b_02L尊者迦多衍尼子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4) 애경(愛敬)납식
024_0927_b_04L雜薀第一中愛敬納息第四

애(愛)와 양경(養敬)과 힘[力]과 멸(滅)과
열반과 온(蘊)과 구경(究竟)과
취(取)와 변지(遍智)와 세 가지 귀의[三歸]를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024_0927_b_05L愛養敬力滅
涅槃薀究竟
取遍知三歸
此章願具說

【문】무엇을 애라고 하는가?1)
【답】모든 애ㆍ등애(等愛)ㆍ희(喜)ㆍ등희(等喜)ㆍ낙(樂)ㆍ등락(等樂), 이것을 애라고 한다.
024_0927_b_07L云何愛
諸——愛等愛等喜等樂是謂愛
【문】무엇을 경(敬)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경이 있으며, 경의 성질[敬性]이 있으며, 자재(自在)가 있으며, 자재의 성질이 있으며, 자재자에 대해 두려움의 전전함이 있는 것, 이것을 경이라고 한다.
024_0927_b_09L云何敬
諸——有敬有敬性自在有自在性於自在者有怖畏轉是謂敬
【문】그렇다면 무엇을 애경(愛敬)이라고 하는가?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불(佛)ㆍ법(法)ㆍ승(僧)ㆍ친교(親敎)ㆍ궤범(軌範), 그리고 지혜가 있어 존중해야 할 여타의 뛰어난 같은 범행자(梵行者)에 대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으로 기뻐하고, 공경하며 머무는 것 처럼, 만약 여기서 이러한 애와 경이 있으면 이것을 애경이라고 한다.
024_0927_b_11L云何愛敬
如有一類——於佛親教軌範及餘隨一有智尊重同梵行者——愛樂心悅恭敬而住若於是處有愛及敬是謂愛敬
【문】무엇을 공양(供養)이라고 하는가?2)
【답】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재(財)공양이며, 둘째는 법(法)공양이다.
024_0927_b_14L云何供養
此有二種一財供養二法供養
【문】무엇을 공경(恭敬)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공경이 있으며, 공경의 성질이 있으며, 자재(自在)가 있으며, 자재의 성질이 있으며, 자재자에 대해 두려움의 전전함이 있는 것, 이것을 공경이라고 한다.
024_0927_b_15L何恭敬
諸——有恭敬有恭敬性有自有自在性於自在者有怖畏轉謂恭敬
【문】그렇다면 무엇을 공양공경이라고 하는가?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불ㆍ법ㆍ승ㆍ친교ㆍ궤범, 그리고 지혜가 있어 존중해야 할 여타의 뛰어난 범행자에 대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으로 기뻐하고, 공경하며 머무는 것처럼, 만약 여기서 이러한 공양과 공경이 있으면 이것을 공양공경이라고 한다.
024_0927_b_18L云何供養恭敬
如有一類——於佛親教軌範及餘隨一有智同梵行者——施設供養恭敬而住若於是處有供養及恭敬是謂供養恭敬
【문】무엇을 신력(身力)이라고 하는가?3)
【답】몸의 모든 부분이 용맹하고 강건하며, 가볍고 민첩하여 능히 변통하는 바가 있는 것, 이것을 신력이라고 한다.
024_0927_b_21L云何身力
諸身勇猛强健輕捷有所辦是謂身力
024_0927_c_01L【문】무엇을 신열(身劣)이라고 하는가?
【답】몸의 모든 부분이 용맹하지 않고 강건하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민첩하지 않아 능히 변통하는 바가 없는 것, 이것을 신열이라고 한다.
024_0927_c_01L云何身劣
諸身不勇不猛不强不健不輕不捷無所能辦是謂身劣
【문】신력과 신열은 몇 가지 처(處)에 포섭되며, 몇 가지 식(識)에 의해 인식되는가?
【답】하나의 처에 포섭되니, 말하자면 촉처(觸處)이다. 그리고 두 가지 식에 의해 인식되니, 말하자면 신식(身識)과 의식(意識)이다. 마치 힘센 사람[力士]이 서로의 힘을 겨룰 때, 손목을 교차하면 서로의 힘의 강약을 아는 것과 같다. 또한 강자가 약자를 잡을 때 힘이 세고 약함을 서로 아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024_0927_c_03L身力身劣幾處攝識識
一處攝觸處二識識身識及意識二力士相扠撲時手腕纔交互知强弱又如强者執弱者時力之勝相知亦爾
【문】무엇을 택멸(擇滅)이라고 하는가?4)
【답】모든 멸[諸滅:유위제법의 소멸]로서 바로 계박됨을 버리는 것[離繫]이다.
024_0927_c_07L云何擇滅
諸滅是離繫
【문】무엇을 비택멸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멸로서 계박됨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024_0927_c_08L云何非擇
諸滅非離繫
【문】무엇을 무상멸(無常滅)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행[諸行]이 흩어지고[散] 허물어지며[壞], 깨트려지고[破] 몰(沒)하고, 망(亡)하고 물러나는[退] 것, 이것을 무상멸이라고 한다.
024_0927_c_09L云何無常滅
行散壞破沒亡退是謂無常滅
【문】비택멸과 무상멸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비택멸이란 택력(擇力:사제를 간택하는 무루지의 힘을 말함)에 의하지 아니하고 역병이나 염병ㆍ횡재(橫災)ㆍ근심ㆍ고달픔ㆍ여러 가지 마구니의 일[魔事], 그리고 행세(行世)의 괴로움과 법을 해탈하였으나 탐욕의 조복이나 끊고 넘어섬[斷越]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말하며, 무상멸이란 모든 행이 흩어지고 허물어지며, 깨트려지고 몰하고, 망하고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두 가지 멸의 차별이다.
024_0927_c_10L非擇無常滅何差別
非擇滅者不由擇力解脫疫癘災撗愁惱種種魔事行世苦法非於貪欲調伏斷越無常滅者諸行散壞破沒亡退是謂二滅差別如契經說有二涅槃界有餘依涅槃界及無餘依涅槃界
【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두 가지 열반계가 있으니, 말하자면 유여의열반계(有餘依涅槃界)와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유여의열반계라고 하는가?5)
【답】만약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유루는 영원히 다하였어도 수명이 여전히 남아 있고, 대종(大種)의 조색(造色)이 상속하여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며, 오근신(五根身)에 의해 마음이 상속ㆍ전전할 경우, 이는 여타의 의지처가 남아 있기 때문에 모든 결(結)이 영원히 다하고 촉증을 획득하였을지라도 유여의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24_0927_c_17L云何有餘依涅槃界
若阿羅漢諸漏永盡壽命猶存大種造色相續未斷依五根身心相續轉有餘依故諸結永盡得獲觸證名有餘依涅槃界
【문】무엇을 무여의열반이라고 하는가?
【답】즉 만약 아라한으로서 모든 유루가 영원히 다하였으며, 수명이 이미 멸하고, 대종조색의 상속이 이미 끊어지고, 오근신에 의해 마음이 다시 상속ㆍ전전하지 않을 경우, 이는 여타의 의지처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결이 영원히 다하였으므로 무여의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24_0927_c_21L云何無餘依涅槃界
卽阿羅漢諸漏永盡壽命已滅大種造色相續已斷依五根身心不復轉無餘依故諸結永盡名無餘依涅槃界
024_0928_a_01L【문】열반을 학(學)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학(無學)이라고 해야 하는가,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열반은 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열반에 학이 있으며, 무학이 있으며, 비학비무학이 있다. 무엇이 학이냐 하면, 유학이 모든 결을 끊고 촉증(觸證)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무학이냐 하면, 무학이 모든 결을 끊고 촉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비학비무학이냐 하면, 유루의 이생이 모든 결을 끊고 촉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유부종의[此義]에 따른다면, 열반은 다만 비학비무학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024_0928_a_02L涅槃當言學耶無學耶非學非無學耶
涅槃應言非學非無學有作是說涅槃——有學有無學非學非無學云何學謂學得諸結斷得獲觸證云何無學謂無學得諸結得獲觸證云何非學非無學謂有漏得諸結斷得獲觸證於此義中槃但應言非學非無學
【문】그럼에도 그대는 열반에 학이 있으며, 무학이 있으며, 비학비무학이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답】그렇다.(분별론자의 대답)
024_0928_a_09L而汝說涅槃——有學有無學有非學非無學
【문】그대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먼저 세속도로써 욕탐과 진애를 영원히 끊어서 비학비무학의 이계득(離繫得)을 획득하였을지라도 그는 사제에 대해 아직 현관(現觀)을 획득하지 못하였으며, 현관을 수습하고 현관을 획득한 이후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다면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또한 그대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먼저 세속도로써 욕탐과 진애를 영원히 끊어서 비학비무학의 이계득을 획득하면 후에 불환과를 증득할 때, 그러한 이계가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지금 전전하여 학을 성취한다고 하면 이전의 것도 바로 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학의 본질[體]은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불환과를 증득하지도 못했고 아직 학도 획득하지 않았는데, 이미 학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정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024_0928_a_11L汝何所欲諸先以世俗道永斷欲貪瞋恚得非學非無學離繫得彼於四諦未得現觀修習現觀得現觀已證不還果轉成學耶
如是何所諸先以世俗道永斷欲貪瞋恚得非學非無學離繫得後證不還果時卽彼離繫應轉成學若彼今時轉成學者先應是學體常住故未證不還未有學得已名爲學不應正理
024_0928_b_01L【문】그대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라한향(向)의 학이 모든 결을 끊고 아라한과(果)를 증득하면 그는 전전하여 무학을 성취하는가?
【답】그렇다.
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라한향의 학이 모든 결을 끊고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 바로 그는 결을 끊고 전전하여 무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만약 그가 지금 무학을 성취한다고 하면 이전의 것도 바로 무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무학의 본질은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라한과를 증득하지도 못했고 무학의 득(得)도 없는데, 이미 무학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정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024_0928_a_19L何所欲阿羅漢向學諸結斷證阿羅漢果彼轉成無學耶
如是汝何所阿羅漢向學諸結斷證阿羅漢果卽彼結斷應轉成無學若彼今時成無學者先應是無學體常住故證阿羅漢果無學得已名無學應正理
【문】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아라한의 무학의 결이 끊어진 자가 아라한과를 물러날 때, 그가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024_0928_b_03L汝何所欲諸阿羅漢無學結退阿羅漢果時彼轉成學耶
【답】그렇다.
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아라한의 무학의 결이 끊어져 아라한과를 물러날 때, 바로 그러한 결의 단이 전전하여 학을 성취하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지금 전전하여 학을 성취한다고 하면 이전의 것도 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본질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라한과를 물러나지도 않았고 학의 득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미 학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정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024_0928_b_04L何所欲諸阿羅漢無學結斷退阿羅漢果時卽彼結斷應轉成學彼今時轉成學者先應是學體常住未退阿羅漢果無有學得已名爲不應正理
그리고 열반은 이전에는 바로 비학비무학이다가 후에 전전하여 학이 되고, 이전에는 바로 학이다가 후에 전전하여 무학이 되며, 이전에는 바로 무학이다가 다시 전전하여 학이 되는 것이 아니다.
024_0928_b_09L復次涅槃不應——先是非學非無學後轉成學先是學後轉成無學先是無學復轉成學
또한 열반에 학이 있고 무학이 있고, 비학비무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와 같다면 이분(二分:常ㆍ無常)을 이루게 되고 모든 법이 결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응당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결정적으로 설명하시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역시 열반에 학이 있고 무학의 성질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열반은 항상 바로 비학비무학이기 때문에 모든 법이 결정적이며, 뒤죽박죽됨이 없다. 항상 자성에 머물며 자성을 버리지 않아 열반은 상주하고 변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열반을 비학비무학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024_0928_b_11L涅槃不應——有無學非學非無學若如是者應成二分諸法不決定故應有雜亂是則不應施設諸法性相決定佛亦不說涅槃——有學有無學性以涅槃恒是非學非無學諸法決定無有雜亂恒住自性不捨自性涅槃常住無有變易是故涅槃但應言非學非無學
【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그는 무학의 계온(戒蘊)ㆍ정온(定蘊)ㆍ혜온(慧蘊)ㆍ해탈온(解脫蘊)ㆍ해탈지견온(解脫智見蘊)을 성취하였다.”고 하였다. 무엇을 무학의 계온이라고 하는가?6)
【답】무학의 신율의(身律儀)ㆍ어율의(語律儀)ㆍ명청정(命淸淨)이다.
024_0928_b_19L如契經說彼成就無學戒薀定薀解脫薀解脫智見薀云何無學戒
無學身律儀語律儀命淸淨
【문】무엇을 무학의 정온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세 가지 삼마지(三摩地)로서, 공(空)ㆍ무원(無願)ㆍ무상(無相)을 말한다.
024_0928_b_22L云何無學定薀
無學三三摩地無願無相
024_0928_c_01L【문】무엇을 무학의 혜온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정견지(正見智)이다.
024_0928_c_01L云何無學慧薀
無學正見智
【문】무엇을 무학의 해탈온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마음이 이미 승해(勝解)하였고, 지금 승해하며, 미래에 승해하는 것이다.
024_0928_c_02L云何無學解脫薀
無學作意相應心——已勝解今勝解當勝解
【문】무엇을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라고 하는가?
【답】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024_0928_c_03L何無學解脫智見薀
盡智無生智
【문】무학의 혜온과 해탈지견온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무학의 고지(苦智)ㆍ집지(集智)는 바로 무학의 혜온이며, 무학의 멸지(滅智)ㆍ도지(道智)는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다. 또한 무학의 고ㆍ집ㆍ멸지는 바로 무학의 혜온이며, 무학의 도지는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다. 또한 무학의 고ㆍ집ㆍ도지는 무학의 혜온이며, 무학의 멸지는 무학의 해탈지견온이다. 이것을 무학의 혜온과 해탈지견온의 차별이라고 한다.
024_0928_c_04L無學慧薀與解脫智見薀有何差別
無學苦集智是無學慧薀無學滅道智是無學解脫智見薀復次無學苦集滅智是無學慧薀無學道智無學解脫智見薀復次無學苦集道是無學慧薀無學滅智是無學解脫智見薀是謂差別
【문】세존께서 “비구들은 잘 알아야 한다. 오로지 구경(究竟)은 하나이며, 또 다른 구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셨는데, 어떠한 법을 구경이라 하는가?7)
024_0928_c_11L如世尊說苾芻當知唯一究竟無別究竟此中何法名究竟耶
【답】세존께서는 어떤 때에는 도(道)에 대해 구경이란 말씀을 하셨고, 어떤 때에는 단(斷)에 대해 구경이란 말씀을 하셨다. 즉 출세(出世)의 원인과 결과는 다 같이 구경이기 때문이다. 도에 대해 구경이란 말을 함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024_0928_c_13L世尊或時於道說究竟或時於斷說究竟聲究竟聲者如世尊說

총명하며 교만한 자 그 누구도
구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는 도를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아무 것도 조복하지 못한 채 죽게 되리라.
024_0928_c_15L一類聰慢者
不能知究竟
彼不證道故
不調伏而死

단에 대해 구경이란 말을 함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024_0928_c_17L究竟聲如世尊說

이미 구경에 이른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으며, 의심이나 후회도 없다.
존재의 화살을 영원히 뽑아버렸기에
그는 마지막 몸으로 머물 것이리라.
024_0928_c_18L已到究竟者
無怖無疑悔
永拔有箭故
彼住後邊身

이것이 바로 최상의 구경으로서
무상적정(無上寂靜)의 자취이며
청정불사(淸淨不死)의 자취로
모든 상[諸相]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024_0928_c_20L此是最究竟
無上寂靜迹
淸淨不死迹
諸相皆盡故
024_0929_a_01L
또한 계경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수목련(數目連)이라고 하는 어떤 한 범지(梵志)가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청하여 묻기를, “교답마(喬答摩:Gotama)여, 존자가 모든 비구들을 교수하고 교계(敎誡)할 때, 그들은 가르침을 받고 나서 모두 최극(最極) 구경의 열반계를 증득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결정된 것이 아니며, 어떤 이는 증득하지만 어떤 이는 그러하지 못한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024_0928_c_21L契經說有一梵志名數目連來詣佛所請問佛曰喬答摩尊教授教誡諸苾芻等彼受教已皆能證得最極究竟涅槃界不世尊告曰此事不定一類能證一類不能
계경에서 설명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외도는 비록 모든 취(取)를 단지(斷知)하였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를 단지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아어취(我語取)는 아니다.”고 하셨다.
024_0929_a_03L如契經說佛告苾芻有諸外道雖同施設斷知諸取而彼不能具足施設但施設斷知——欲取見取戒取非我語取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8) 어떤 이는 주장하기를, “이것은 세존께서 성급하고 경솔하게[率爾] 설법하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주장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세존의 설법은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며, 혹은 사소한 것에 근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주장하기를, “이 말은 그것의 일부를 끊은 자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도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생 중에서도 역시 아어취의 일부를 끊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024_0929_a_07L此有何義有作是說此是世尊率爾說法彼不應作是說所以者何世尊說法非全無因或少因故復有說者此言顯彼少分斷者彼不應作是說所以者何異生亦有能斷少分我語取
그런데 불세존께서는 천인(天人) 등 무량한 대중을 위해 널리 법의 요지를 설명함에 있어, 전도됨이 없이 열어보여 듣는 그들 존재에 따라 이해하게 하셨다. 그런데 모든 외도 중에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온(蘊)ㆍ계(界)ㆍ처(處)ㆍ개(蓋)ㆍ염주(念住), 나아가 각지(覺支) 등의 이름을 훔쳐 들은 이가 있었는데, 혹은 갖추어 듣기도 하고 혹은 갖추어 듣지 않기도 하였다. 이들 외도 중에 욕취의 이름을 얻어 들은 자가 문득 “나도 역시 욕취를 단지(斷知)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라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견취의 이름을 얻어 들은 자가 있으면 “나도 역시 견취의 단지에 대해 시설한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만약 계취의 이름을 얻어 들은 자가 있으면 “나도 역시 계취의 단지에 대해 설명한다.”라고 말한다.
024_0929_a_12L然佛世尊爲天人等無量大衆廣說法要無倒開示令隨類解有諸外道——竊聞佛說薀念住乃至覺支等名或有具足或不具足是諸外道——若有得聞欲取名者便作是言我亦施設斷知欲取若有得聞見取名者便作是言我亦施設斷知見取若有得聞戒取名者便作是言我亦施設斷知戒取
024_0929_b_01L혹은 많은 비구가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어떤 외도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 “교답마께서 여러 제자들을 위해 법요(法要)를 널리 설명하시면서 ‘너희 비구들이여, 마땅히 5개(蓋)를 끊어라. 이같은 5개는 능히 마음을 염오하게 하며, 지혜의 힘을 약하게 하며, 각분(覺分)을 훼손시키며, 열반을 장애한다. 그리고 마땅히 4념주에 마음을 잘 머물게 하며, 7각지를 삼가 수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들 역시 제자들을 위해 능히 이러한 법요를 설명한다. 그러니 교답마께서 설명하신 법요와 내가 설명한 법요에 어떠한 차별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너희들은 오로지 그에게만 귀의할 것인가?”
024_0929_a_20L如多苾芻集在一有諸外道來作是言如喬答摩爲諸弟子宣說法要謂作是說汝等苾應斷五蓋如是五蓋能染污心慧力劣損害覺分障礙涅槃於四念應善住心於七覺支應勤修習我等亦能爲諸弟子說此法要則喬答摩所說法要與我何別而今汝等獨歸彼
그러나 이 외도는 일찍이 5개의 명상(名相)조차 능숙히 알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4념주에 머물 것이며, 7각지를 닦아 깨달아 통달[了達]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부처님의 말씀을 훔쳐 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취(取)를 끊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할 것이다.
024_0929_b_05L然彼外道尚不能識五蓋名相況能了達——住四念住修七覺支然竊佛語作是說施設斷取應知亦然
또한 외도 마건지가(摩健地迦)가 자신에게 여러 병이 있으며, 찰나에 머묾이 없고(무상을 말함), 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배를 두드리면서 말하기를, “지금 나의 몸에는 어떠한 병도 없다. 즉 이것이 바로 구경의 열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그는 일찍이 병 없음의 명상조차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구경의 열반을 깨달아 통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취(取)를 끊는 것에 대해 시설한다고 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할 것이다.
024_0929_b_07L如外道摩健地迦不了自身衆病所集那不住苦非我來詣佛所鼓腹而吾今此身旣無諸病應知卽是究竟涅槃彼尚不知無病名相況能了達究竟涅槃然竊佛語故作是說設斷取應知亦然
【문】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외도는 다만 세 가지 취를 단지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있어도 아어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가?
【답】그는 긴긴 밤에 진실의 아(我)와 유정(有情)ㆍ명자(命者)ㆍ생자(生者)ㆍ능양육자(能養育者)ㆍ보특가라(補特伽羅)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진실의 아 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어찌 아어취를 끊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는가?
024_0929_b_13L何緣外道但有施設斷知三取我語取
彼於長夜執有眞實我及有情命者生者能養育者補特伽羅彼旣執有眞實我等寧肯施設斷我語取
【문】마찬가지로 모든 취를 단지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뜻이 있는가?
【답】이는 불세존께서 그들의 언설에 따른 것이다. 즉 세존께서 “그들 모든 외도는 실유인 유정의 단괴(斷壞)를 말한다.”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그렇지만 승의에 따르면 실재의 유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들의 말에 따라 이렇게 설명한 것일 뿐이다. 이것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어떠한 과실도 없는 것이다.
024_0929_b_17L說同施設斷知諸取斯有何義
是佛世尊隨彼言如世尊說彼諸外道施設實有——有情斷壞然依勝義無實有情但隨彼而作是說此亦如是故無有過
【문】계경에서 “두 가지 변지(遍知)가 있다. 지변지(智遍知)와 단변지(斷遍知)이다.”고 설명하였다. 무엇이 지변지인가?9)
【답】모든 지(智)ㆍ견(見)ㆍ명(明)ㆍ각(覺)ㆍ현관(現觀), 이것을 지변지라고 한다.
024_0929_b_21L契經說有二遍知智遍知及斷遍知云何智遍知
諸智見明覺現觀謂智遍知
024_0929_c_01L【문】무엇이 단변지인가?
024_0929_c_01L云何斷遍知
【답】모든 탐(貪)을 영원히 끊고, 진(瞋)ㆍ치(癡)를 영원히 끊고,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는 것, 이것을 단변지라고 한다.
024_0929_c_02L諸貪永斷瞋癡永斷一切煩惱永斷是謂斷遍知
세존께서는 어떤 때에는 지(智)에 대해 변지의 말씀을 하시고, 어느 때에는 단(斷)에 대해 변지의 말씀을 하셨다. 지에 대해 변지의 말을 설명함이란, 게송[伽他:gāth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24_0929_c_03L世尊或時於說遍知聲或時於說遍知遍知聲者如伽他說

유동(儒童)은 현자로서 적정(寂靜)하여
능히 모든 세간을 이익되게 한다.
지(智)가 있어,
애탐이 괴로움을 낳는 것을 변지한다.
024_0929_c_05L儒童賢寂靜
能益諸世間
有智能遍知
貪愛生衆苦

지가 있는 자는 말하면 작(作)하고,
작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지자는 말이 있어도
작함이 없는 자를 변지할 것이리라.
024_0929_c_07L有智言應作
不作不應言
智者應遍知
有言無作者

단에 대해 변지의 말을 함이란, 계경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을 위해 소변지(所遍知)의 법과 변지의 자성(自性)과 능변지자(能遍知者)를 설명하겠다. 소변지의 법이란 5취온을 말하며, 변지의 자성이란 탐의 영단(永斷), 진ㆍ치의 영단, 모든 번뇌의 영단을 말한다. 능변지자란, 말하자면 아라한의 모든 누[諸漏]가 영원히 다한 것, 여래 사후의 유무 등을 주장하지 않는 불응기(不應記)의 법이다.
024_0929_c_08L遍知聲者如契經說佛告苾當爲汝說所遍知法遍知自性遍知者所遍知法謂五取薀遍知自謂貪永斷瞋癡永斷一切煩惱永能遍知者謂阿羅漢諸漏永盡如來死後有……等不應記法
【문】모든 부처[佛]에 귀의한다 함은 무엇에 귀의하는 것인가?10)
【답】만약 법이 실유하여 현재존재[現有]로서 상(想)ㆍ등상(等想)이 있으며, 시설ㆍ언설하는 것이면 불타(佛陀, Buddha)라고 하며, 그것이 소유한 무학을 성취시키는 보리법(菩提法)에 귀의함을 귀의불이라고 한다.
024_0929_c_14L諸歸依佛者何所歸依
若法實有現有等想施設言說名爲佛陁依彼所有無學成菩提法名歸依佛
【문】모든 법(法)에 귀의한다 함은 무엇에 귀의하는 것인가?
【답】만약 법이 실유하여 현재존재로서 상ㆍ등상이 있으며, 시설ㆍ언설하는 것이라면 이름하여 달마(達磨, dharma)라고 하며, 이와 같은 애진이멸(愛盡離滅)의 열반에 귀의함을 귀의법이라고 한다.
024_0929_c_17L諸歸依法者何所歸依
若法實有現有等想施設言說名爲達磨依如是愛盡離滅涅槃名歸依法
【문】모든 승(僧)에 귀의한다 함이란 무엇에 귀의하는 것인가?
【답】만약 법이 실유하여 현재존재로서 상ㆍ등상이 있으며, 시설ㆍ언설하는 것이라면 승가(僧伽, samgha)라고 하며, 그가 소유한 학ㆍ무학을 성취시키는 승가의 법에 귀의함을 귀의승이라고 한다.
024_0929_c_20L諸歸依僧者何所歸依
若法實有現有等想施設言說名爲僧伽依彼所有學無學成僧伽法名歸依僧
024_0930_a_01L
5) 무참(無慚)납식
024_0930_a_01L雜薀第一中無慚納息第五

흑(黑)과 백(白)과 두 가지 근(根)과 마음[心]과11)
도회(掉悔)와 혼(惛)과 수(睡)와 꿈[夢]과
개(蓋)와 무명(無明)과 불공(不共)을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024_0930_a_02L黑白二根心
掉悔惛睡夢
蓋無明不共
此章願具說

【문】무엇이 무참인가?12)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慙]이 없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慙]이 없으며, 수치스러움도 없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羞]도 없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羞]도 없다. 또한 공경도 없으며, 공경하는 성질도 없으며, 자재(自在)를 희구함도 없으며, 자재를 희구하는 성질도 없으며, 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轉]도 없는 것, 이것을 무참이라고 한다.
024_0930_a_04L云何無慚
諸無慚無所慚無異慚無羞無所羞無異羞無敬無敬性自在無自在性於自在者無怖畏轉是謂無慚
【문】무엇이 무괴인가?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愧]이 없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愧]이 없으며, 수치스러움도 없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恥]도 없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恥]도 없다. 또한 모든 죄에 대해 두려움[畏怖]도 없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이것을 무괴라고 한다.
024_0930_a_08L云何無愧
諸無愧無所愧無異愧無恥無所恥無異恥於諸罪中不怖不畏不見怖畏是謂無愧
【문】무참과 무괴에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이 없는 이것을 무참이라 하고, 모든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것을 무괴라고 한다. 양자 사이에는 이와 같은 차별이 있다.
024_0930_a_11L無慚無愧有何差別
於自在者無怖畏轉無慚於諸罪中不見怖畏是無愧如是差別
【문】무엇이 참(慙)인가?13)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慙]이 있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慙]이 있다. 수치스러움이 있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羞]이 있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羞]도 있다. 또한 공경이 있으며, 공경하는 성질이 있으며, 자재(自在)를 희구함도 있고, 자재를 희구하는 성질도 있으며, 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轉]이 있다. 이것을 참이라고 한다.
024_0930_a_14L云何慚
諸有慚有所慚有異慚有所羞有異羞有敬有敬性有自有自在性於自在者有怖畏轉謂慚
【문】무엇이 괴(愧)인가?
【답】모든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부끄러워할 만한 것[所愧]이 있으며, 달리 부끄러워함[異愧]이 있다. 수치스러워함이 있고,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所恥]이 있으며, 달리 수치스러워함[異恥]도 있다. 또한 모든 죄에 대해 두려움[畏怖]도 있으며, 깊이 두려워하는 것을 본다. 이것을 괴라고 한다.
024_0930_a_18L云何愧
諸有愧有所愧有異愧有所恥有異恥於諸罪中有怖深見怖畏是謂愧
【문】참과 괴에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자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속이 있는 이것을 참이라 하고, 모든 죄에 대해 깊이 두려워하는 것 이것을 괴라고 한다. 양자 사이에는 이와 같은 차별이 있다.
024_0930_a_21L愧何差別
於自在者有怖畏轉是慚於諸罪中深見怖畏是愧如是差別
024_0930_b_01L【문】무엇을 증상(增上)의 불선근이라고 하는가?14)
【답】모든 불선근이 선근을 끊을 때, 그리고 욕염(欲染)을 떠날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이다.
024_0930_a_23L云何增上不善根
諸不善根能斷善根及離欲染時最初所捨
【문】무엇을 미구행(微俱行)의 불선근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불선근이 욕염을 떠날 때 최후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그것을 버림에 따라 이욕염(離欲染)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24_0930_b_02L云何微俱行不善根
諸不善根離欲染時最後所捨由捨彼故名離欲染
【문】무엇을 욕계의 증상 선근이라고 하는가?15)
【답】보살이 정성이생에 들 때 획득하는 욕계 현관변(現觀邊)의 세속지와, 여래가 진지를 얻을 때 획득하는 욕계의 무탐ㆍ무진ㆍ무치의 선근이다.
024_0930_b_04L云何欲界增上善根
菩薩入正性離生所得欲界現觀邊世俗智及如來得盡智時所得欲界無貪無瞋無癡善根
【문】무엇을 욕계의 미구행 선근이라고 하는가?
【답】선근이 끊어질 때 최후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그것을 버림에 따라 단선근(斷善根)이라고 하는 것이다.
024_0930_b_08L云何微俱行善根
斷善根時最後所捨由捨彼故名斷善根
【문】모든 마음이 과거의 것이면 그 마음은 변괴한 것인가?16)
【답】모든 마음이 과거의 것이면 그 마음은 모두 변괴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변괴한 것으로서, 그러한 마음 중에 과거 아닌 것이 있다. 말하자면 미래ㆍ현재의 탐진(貪瞋)과 상응하는 마음이다. 즉 세존께서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흉악한 도적이 톱으로 너희들 몸이나 팔 다리를 자르려 해도 너희들은 그것에 대해 마음을 변괴하지 말라. 또한 입을 지켜 악언(惡言)을 내뱉지 말라. 만약 마음이 변괴하고 악언을 내뱉으면 스스로 구하는 바에 깊은 장애가 되리라”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또한 세존께서 “너희 비구들이여, 뛰어난 욕탐의 대상[妙欲境:색성향미촉의 다섯 가지 대상]에 대해 변괴의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024_0930_b_09L諸心過去彼心變壞耶
諸心過去彼心皆變壞有心變壞彼心非過去未來現在貪瞋相應心如世尊說汝等苾芻設被惡賊鋸解汝身或諸支節汝等於彼心勿變壞亦當護口勿出惡言若心變壞及出惡言於自所求深爲障礙世尊說汝等苾芻於妙欲境不應發起變壞之心
【문】모든 마음이 염착(染著)한 것이면 그 마음은 변괴한 것인가?
【답】모든 마음이 염착한 것이면 그 마음은 모두 변괴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변괴한 것으로서, 그러한 마음 중에 염착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말하자면 과거의 탐과 상응하지 않는 마음 및 미래ㆍ현재의 진(瞋)과 상응하는 마음이다. 즉 세존께서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원수나 도적이 …(이하 생략)… 스스로 구하는 바에 깊은 장애가 되리라”라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024_0930_b_17L諸心染著彼心變壞耶
諸心染著彼心皆變壞有心變壞彼心非染著去貪不相應心及未來現在瞋相應如世尊說汝等苾芻設被怨賊……廣說乃至……於自所求深爲障礙
【문】무엇이 도거(掉擧)인가?17)
【답】모든 마음의 적정되지 않고, 지식(止息)되지 않으며, 가벼이 움직이는 것이 도거이다. 마음이 조급하고 망령스럽게 움직이는 성질[躁動性]을 도거라고 한다.
024_0930_b_22L云何掉擧
諸心不寂靜不止息掉擧心躁動性是謂掉擧
024_0930_c_01L【문】무엇이 악작(惡作)인가?
【답】모든 마음의 횃불로 지질 듯한 원망[懊變]이 악작이다. 마음이 지난 일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는 성질[追悔性]을 악작이라고 한다.
024_0930_c_01L云何惡
諸心燋灼懊變惡作心追悔性是謂惡作
【문】모든 마음에 도거가 있으면 그 마음은 악작과 상응하는가?
【답】네 구(句)로 분별할 수 있다. 마음에 도거가 있으면서 악작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악작이 없는 마음에 조급하고 망령스럽게 움직이는 성질, 즉 조동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악작이 있으면서 도거와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이 없으면서 지난 일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는 성질, 즉 추회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도거가 있으면서 역시 악작과 상응하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에 추회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도거도 없으면서 역시 악작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의 상(相)을 제외한 것이다.
024_0930_c_03L諸心有掉擧彼心惡作相應耶
應作四句有心有掉擧非惡作相應無惡作心有躁動性有心有惡作非掉擧相應無染污心有追悔性有心有掉擧亦惡作相應染污心有追悔性有心無掉擧亦非惡作相應除前相
【문】무엇이 혼침(沈)인가?18)
【답】모든 몸의 무거운 성질[重性], 마음의 무거운 성질, 몸이 부드럽지 못하고 마음이 부드럽지 못한 것, 몸이 어릿하고 몽롱한 것, 마음이 어릿하고 몽롱한 것, 몸이 어지럽고 답답한 것, 마음이 어지럽고 답답한 것, 마음의 혼미하고 무거운 성질[重性], 이것을 혼침이라고 한다.
024_0930_c_09L云何惛沈
諸身重性心重性身不調柔心不調柔身𧄼瞢心𧄼瞢身憒悶心憒悶心惛重性是謂惛沈
【문】무엇이 수면(睡眠)인가?
【답】모든 마음이 넋이 나가 혼미한 채 전전하는 것이다. 마음이 어둡고 오식과의 상응이 간략한 성질[昧性]을 수면이라고 한다.
024_0930_c_12L云何睡眠
諸心睡眠惛微而轉昧略性是謂睡眠
【문】모든 마음에 혼침이 있으면 그 마음은 수면과 상응하는가?
【답】네 구(句)로 분별할 수 있다. 마음에 혼침이 있으면서 수면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면이 없는 마음에 혼침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수면이 있으면서 혼침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이 없으면서 수면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혼침이 있으면서 역시 수면과 상응하는 경우가 있다. 염오심으로서 수면성이 있는 것이다. 마음에 혼침이 없으면서 역시 수면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의 상을 제외한 것이다.
024_0930_c_14L諸心有惛沈彼心睡眠相應耶
應作四句有心有惛非睡眠相應無睡眠心有惛沈有心有睡眠非惛沈相應無染污心有睡眠性有心有惛沈亦睡眠相應染污心有睡眠性有心無惛亦非睡眠相應除前相
024_0931_a_01L【문】수면을 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불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19)
【답】수면은 혹은 선이고, 혹은 불선이며,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선인가? 말하자면 선심의 수면으로, 혼미한 채 전전하는 마음의 어둡고 간략한 성질, 즉 매략성(昧性)이다. 무엇이 불선인가? 말하자면 불선심의 수면으로, 혼미한 채 전전하는 마음의 매략성이다. 무엇이 무기인가? 말하자면 무기심의 수면으로, 혼미한 채 전전하는 마음의 매략성이다.
024_0930_c_20L睡眠當言——善耶不善耶無記耶
睡眠應言——或善或不善或無記云何善謂善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云何不善謂不善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云何無記謂無記心睡眠惛微而轉心昧略性
【문】꿈속에서는 복(福)이 증장한다고 해야 한는가, 비복(非福)이 증장한다고 해야 하는가, 비복비비복(非福非非福)이 증장한다고 해야 하는가?
【답】꿈속에서는 혹은 복이 증장하고, 혹은 비복이 증장하며, 혹은 비복비비복이 증장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복이 증장한다고 함이란 꿈속에서 보시하고 복업을 짓고, 여덟 가지 재계(齋戒)를 수지하고, 혹은 그 밖의 뛰어난 복의 상속 전전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복이 증장한다고 함은 꿈속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않는 것을 취하며, 욕사행(欲邪行)하며, 고의로 거짓말하고, 여러 가지 술을 마시며, 혹은 그 밖의 두드러진 비복의 상속 전전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복비비복이 증장한다고 함이란 꿈속에 비복비비복의 상속 전전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024_0931_a_03L夢中當言——福增長耶非福增長耶非福非非福增長耶
夢中應言——或福增長或非福增長或非福非非福增長福增長者如有夢中布施作福受持齋戒或餘——隨一福相續轉非福增長者如有夢中害生命不與取邪行故妄語飮諸酒或餘——隨一非福相續轉非福非非福增長者如有夢中非福非非福相續轉
【문】그렇다면 꿈이란 어떠한 법을 말하는가?
【답】잠잘 때에 심ㆍ심소법이 소연상에 전전함이다. 그가 깨어난 이후 기억한 것에 따라 남을 위해 ‘나는 이미 꿈에서 이러이러한 것을 보았다.’고 설명하는 이것을 꿈이라고 한다.
024_0931_a_12L夢名何法
諸睡眠時心心所法於所緣轉彼覺隨憶能爲他說我已夢見如是是事是謂夢
【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5개(蓋)가 있다.”고 하였다. 5개가 모든 개[諸蓋]를 포섭한다고 해야 하는가, 모든 개가 5개를 포섭한다고 해야 하는가?20)
024_0931_a_15L如契經說有五蓋爲五蓋攝諸蓋諸蓋攝五蓋
【답】모든 개는 5개를 포섭하여도 5개는 모든 개를 포섭하지 못한다. 어째서 포섭하지 못하는가 하면 무명개(無明蓋) 때문이다. 세존께서도 설명하였다.
024_0931_a_17L諸蓋攝五蓋非五蓋攝諸蓋不攝何等無明蓋如世尊說

무명개에 가리우고[覆]
애결(愛結)에 계박되고
우지(愚智)가 함께 하여
이와 같은 유식신(有識身)을 초래하여 획득하는 것이다.
024_0931_a_18L無明蓋所覆
愛結所繫縛
愚智俱感得
如是有識身

【문】그렇다면 모든 개(蓋), 그것은 부(覆)인가?
【답】네 구로 분별할 수 있다. 개이면서 부 아닌 경우가 있는데, 과거ㆍ미래의 5개이다. 부이면서 개 아닌 경우가 있는데, 5개를 제외한 여타의 모든 번뇌가 현재 나타나는 것이다. 개이면서 역시 부인 경우가 있는데, 5개가 유일하게 현재 나타나는 것이다. 개도 아니면서 부도 아닌 경우가 있는데, 말하자면 앞의 것을 제외한 것이다.
024_0931_a_20L諸蓋彼覆耶
應作四句有蓋非覆過去未來五蓋有覆非蓋除五諸餘煩惱現在前有蓋亦覆蓋隨一現在前有非蓋非覆除前相
024_0931_b_01L【문】모든 욕계계(欲界繫)의 무명수면(無明隨眠), 그것은 모두 불선인가?21)
【답】모든 불선의 무명수면은 욕계계이지만, 욕계계의 무명수면에는 불선 아닌 것도 있다. 욕계계의 유신견과 변집견에 상응하는 무명이다.
024_0931_b_01L諸欲界繫無明隨眠彼一切不善耶
諸不善無明隨眠皆欲界繫有欲界繫無明隨眠非不善欲界繫有身見邊執見相應無明
【문】모든 색ㆍ무색계 계(繫)의 무명수면, 그것은 모두 무기인가?
【답】모든 색ㆍ무색계 계의 무명수면은 모두 무기이지만, 무기의 무명수면에는 색ㆍ무색계의 계 아닌 것이 있다. 욕계계의 유신견과 변집견에 상응하는 무명이다.
024_0931_b_05L諸色無色界繫無明隨眠彼一切無記耶
諸色無色界繫無明隨眠皆是無記有無記無明隨眠非色無色界繫欲界繫有身見邊執見相應無明
【문】모든 견고ㆍ집소단(見苦集所斷)의 무명수면, 그것은 모두 변행(遍行)인가?
【답】모든 변행의 무명수면은 모두 견고소단ㆍ견집소단이지만, 견고소단ㆍ견집집소단의 무명수면에는 변행 아닌 것이 있다. 견고소단ㆍ견집소단인 비변행수면과 상응하는 무명이다.
024_0931_b_09L諸見苦集所斷無明隨眠彼皆是遍行耶
諸是遍行無明隨眠皆見苦集所斷有見苦集所斷無明隨眠非遍行見苦集所斷非遍行隨眠相應無明
【문】모든 견멸ㆍ도소단(見滅道所斷)의 무명수면, 그것은 모두 비변행인가?
【답】모든 견멸ㆍ도소단의 무명수면은 모두 비변행이지만, 비변행의 무명수면에는 견멸ㆍ도소단 아닌 것이 있다. 이를테면 견고ㆍ집소단인 비변행수면과 상응하는 무명이다.
024_0931_b_13L諸見滅道所斷無明隨眠彼皆非遍行耶
諸見滅道所斷無明隨眠非遍行有非遍行無明隨眠非見滅道所斷見苦集所斷非遍行隨眠相應無明
【문】무엇이 불공무명(不共無明)의 수면인가?
【답】모든 무명으로, 고(苦)에 대해 알지 못하고[不了], 집ㆍ멸ㆍ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024_0931_b_18L云何不共無明隨眠
諸無明——於苦不了於集道不了
【문】무엇이 불공도거전(不共掉擧纏)인가?
【답】불공도거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024_0931_b_20L云何不共掉擧
無不共掉擧纏

6) 상(相)납식
024_0931_b_21L雜薀第一中 相納息第六

2ㆍ3〈법의 能所〉상(相)의 같음과 다름[同異],
늙음과 죽음과 무상과 강함,
한 찰나의 삼상(三相)을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024_0931_b_22L二三相同異
老死無常强
三相一剎那
此章願具說
024_0931_c_01L
【문】색법 (色法)의 생 (生)ㆍ주(住)ㆍ노(老)ㆍ무상(無常)은 색이라고 해야 하는가, 색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22)
【답】색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01L色法——生無常當言色耶非色耶
應言非色
【문】비색법(非色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색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색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색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03L非色法——生無常言非色耶色耶
應言非色
【문】유견법(有見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견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견이라 고해야하는가?
【답】무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04L有見法——無常當言有見耶無見耶
應言無見
【문】무견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견이라고 해야 하는가, 유견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06L無見法——生無常當言無見耶有見耶
應言無見
【문】유대법(有對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대라고 해야 하는가, 무대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07L有對法——無常當言有對耶無對耶
應言無對
【문】무대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대라고 해야 하는가, 유대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09L無對法——生無常當言無對耶有對耶
應言無對
【문】유루법(有漏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루라고 해야 하는가, 무루라고 해야 하는가?
【답】유루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10L有漏法——無常當言有漏耶無漏耶
應言有漏
【문】무루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마땅히 무루라고 해야 하는가, 유루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루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12L無漏法——生無常當言無漏耶有漏耶
應言無漏
【문】유위법(有爲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유위라고 해야 하는가, 무위라고 해야 하는가?
【답】유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13L有爲法——無常當言有爲耶無爲耶
應言有爲
【문】무위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위라고 해야 하는가, 유위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위법에는 생ㆍ주ㆍ노ㆍ무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15L無爲法——生無常當言無爲耶有爲耶
應言無爲法無生住老無常
【문】과거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과거라고 해야 하는가, 미래 혹은 현재라고 해야 하는가?
【답】과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17L過去法——生無常當言過去耶未來現在耶
應言過去
【문】미래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미래라고 해야 하는가, 과거 혹은 현재라고 해야 하는가?
【답】미래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18L來法——生無常當言未來耶過去現在耶
應言未來
【문】현재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현재라고 해야 하는가, 과거 혹은 미래라고 해야 하는가?
【답】현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20L現在法——生無常當言現在耶過去未來耶
言現在
【문】선법 (善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불선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답】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22L善法——生無常當言善耶不善無記耶
應言善
【문】불선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불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선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답】불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1_c_23L不善法——生無常當言不善耶無記耶
應言不善
024_0932_a_01L【문】무기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선 혹은 불선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02L無記法——生無常當言無記耶不善耶
應言無記
【문】욕계 계법(擊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욕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색ㆍ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욕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03L欲界繫——法生住老無常當言欲界繫耶無色界繫耶
應言欲界繫
【문】색계 계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욕ㆍ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색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05L色界繫——法生住老無常當言色界繫耶無色界繫
應言色界繫
【문】무색계 계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욕ㆍ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07L無色界繫——法生住老無常當言無色界繫耶色界繫
應言無色界繫
【문】학법(學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학 혹은 비학비무학라고 해야 하는가?
【답】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09L學法——生當言學耶無學非學非無學耶
應言學
【문】무학법(無學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학 혹은 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11L無學法——生無常當言無學耶非學非無學耶
應言無學
【문】비학비무학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학 혹은 무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비학비무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12L非學非無學法——生無常當言非學非無學耶無學耶
應言非學非無學
【문】견소단법(見所斷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견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소단(修所斷) 혹은 부단(不斷)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견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15L見所斷法——生無常言見所斷耶修所斷不斷耶
應言見所斷
【문】수소단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수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견소단 혹은 부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수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17L修所斷法——生無常當言修所斷耶見所斷不斷耶
應言修所斷
【문】부단법의 생ㆍ주ㆍ노ㆍ무상은 부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견소단 혹은 수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부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2_a_19L不斷法——生無常當言不斷修所斷耶
應言不斷
【문】무엇을 노(老)라고 하는가?23)
【답】모든 행의 향(向)ㆍ배(背)ㆍ숙(熟)ㆍ변(變)하는 상, 이것을 노라고 한다.24)
024_0932_a_20L云何老
諸行向背熟變相是謂老
【문】무엇을 사(死)라고 하는가?
【답】이러저러한 유정이 이러저러한 유정의 중동분(衆同分:유정으로서의 보편성)으로부터 이전(移轉)하고 괴몰(壞沒)하며, 목숨[壽]과 체온[煖]과 명근(命根: 생명을 유지 상속시키는 실체)을 버리며, 모든 온[諸蘊]을 파기하고, 신체가 죽어 없어지는 것, 이것을 사라고 한다.
024_0932_a_21L云何死
彼彼有情從彼彼有情衆同分移轉壞沒捨壽命根滅棄諸身殞喪是謂死
024_0932_b_01L【문】무엇을 무상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행이 산괴(散壞)하며, 깨어지고 몰하며[破沒], 망하여 물러나는 것 [亡退], 이것을 무상이라고 한다.
024_0932_b_01L云何無常
諸行散壞破沒亡退是謂無常
【문】사, 즉 죽음과 무상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모든 죽음은 바로 무상이지만, 무상이면서 죽음 아닌 것이 있다. 말하자면 죽음을 제외한 여타의 행 (行)의 멸이다.
024_0932_b_02L無常何差別
諸死是無常有無常非死除死餘行滅
【문】업(業)의 힘이 강한가, 무상의 힘이 강한가?
【답】업의 힘이 강하며, 무상의 힘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떤 이는 “무상의 힘이 강하며, 업의 힘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이러한 업 역시 무상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유부종의[此義]에 따르면 업의 힘이 강하며, 무상의 힘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업은 능히 삼세의 행(行)을 멸하지만 무상은 오로지 현재의 행만을 멸하기 때문이다.
024_0932_b_04L業力强耶無常力强耶
業力强非無常力有作是說無常力强非業力所以者何業亦無常故於此義中業力强非無常力所以者業能滅三世行無常唯滅現在行故
【문】세존께서 “세 가지 유위의 유위상이 있어 유위의 기(起)도 역시 알 수 있으며, 진(盡)과 주이(住異)도 역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1찰나 중의 그 무엇을 기라고 하는가?25)
【답】생(生)이다.
024_0932_b_08L如世尊說有三有爲之有爲相有爲之起亦可了知盡及住異亦可了知一剎那中云何起
【문】무엇을 진이라고 하는가?
【답】무상이다.
024_0932_b_11L云何盡
【문】무엇을 주이라고 하는가?
【답】노(老)이다.
云何住異

7) 무의(無義)납식
024_0932_b_12L雜薀第一中無義納息第七

아무런 뜻없음[無義]과 염(念)과 무상(無相),
누진(漏盡)과 법륜(法輪)을 아는 것,
다욕(多欲)과 지족(知足)과 만(滿)과 양(養)을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024_0932_b_13L無義念無相
知法輪漏盡
多欲足滿養
此章願具說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4_0932_b_15L如世尊說

여타의 많은 고행을 열심히 닦는다 해도
어떤 의미도 갖추지 못한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한 행위로는 조금의 이익과 안락도 얻지 못하니
이것은 마치 땅 위에 배를 띄워 노를 젓는 것과 같다.
024_0932_b_16L修諸餘苦行
當知無義俱
彼不獲利安
如陸揮舩棹

【문】어떠한 이유에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셨던 것인가? 여타의 고행을 닦는 것에는 어떠한 의의도 없는 것[無義]인가?26)
【답】그러한 고행은 죽음으로 나아가며, 죽음에 가까우며,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이와 같은 고행은 능히 죽음을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024_0932_b_18L何故世尊作如是說修餘苦行無義俱耶
彼行趣死近死至死非如是苦行能超越死故
024_0932_c_01L【문】또한 세존께서는 “결가부좌하고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른 원(願)으로써, 생각을 얼굴에 머물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생각을 얼굴에 머물게 하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27)
【답】관행(觀行)을 닦는 자가 미간에 생각을 고정시켜 사람이 죽어 푸르죽죽하게 피고름이 엉킨 것[靑瘀]을 관찰하고, 혹은 시체가 부어 가죽자루처럼 된 모양[膖脹]을 관찰하고, 혹은 고름으로 썩어 문드러진 모양[膿爛]을 관찰하고, 혹은 파괴된 모양을 관찰하고, 혹은 고름과 같은 부패한 색깔[異赤]을 관찰하고, 혹은 짐승이나 조류, 구더기 등에게 먹히는 모양을 관찰하고, 혹은 뼈마디가 분리되는 것을 관찰하고, 혹은 백골을 관찰하고, 혹은 해골이 부서지는 것[骨銷]을 관찰하는 것, 이것을 생각을 얼굴에 머물게 한다고 하는 것이다.
024_0932_b_21L世尊說結跏趺端身正願住對面念云何名住對面念
修觀行者念眉閒或觀靑淤或觀胮脹或觀膿或觀破壞或觀異赤或觀被食觀分離或觀白骨或觀骨瑣此等名爲住對面念
【문】또한 세존께서 “대목건련(大目乾連)이여, 저사(底沙)범천은 제6무상주(無相住)를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제6무상주라고 하는가?28)
【답】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을 제6무상주라고 한다. 왜냐 하면, 이 두 가지 무상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안립(安立)할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고법지인(苦法智忍) 혹은 고법지, …(이하 생략)…혹은 도류지인(道類智忍)의 이러한 무상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안립할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제6무상주라고 하는 것이다.
024_0932_c_04L世尊說大目乾連沙梵天不說第六無相住者耶云何名第六無相住者
隨信行隨法行名爲第六無相住者所以者此二無相不可安立不可施設在在彼若苦法智忍若苦法智……廣說乃至……若道類智忍以此無相不可安不可施設在此在彼故名第六無相住者
【문】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려 교진나(憍陳那) 등의 비구가 법을 보았을 때, 지신(地神)ㆍ약차(藥叉:yaksa)는소리를 높여 널리 말하기를, ‘세존은 지금 바라니사(婆羅■斯)의 선인의 사슴동산에 있으면서 법륜을 세 번 굴렸으며, 12상(相)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그 지신은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고, 비구가 법을 본 것을 정지견(正智見)이 있어서 아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29)
【답】그렇지 않다.
024_0932_c_12L如契經說佛轉法輪憍陳那……等苾芻見法地神藥叉擧聲遍告世尊今在婆羅痆斯仙人鹿苑三轉法輪具十二相爲彼地神有正智見佛轉法苾芻見法
【문】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안 것인가?
【답】세존을 믿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께서 세속심을 일으켜 ‘내가 법륜을 굴릴 때, 비구가 법을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는 것이고, 혹은 부처님께서 다른 이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법륜을 굴릴 때, 비구가 법을 보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대덕 천선(天仙)에게서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교진나 존자 등이 세속심을 일으켜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릴 때, 우리들은 법을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는 것이다. 혹은 그 존자가 다른 이에게 말한 것을 지신이 듣고 알았던 것이다.
024_0932_c_17L彼云何知
世尊故謂佛起世俗心——我轉法輪芻見法由是彼知或佛告他——我轉法苾芻見法彼得聞或從大德天仙所聞或彼尊者憍陳那等起世俗心——佛轉法輪我等見法由是彼知彼告他地神得聞
024_0933_a_01L【문】또한 계경에서 설명하기를, “어떤 여러 비구가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漏]를 이미 다하였을 때, 33천(天)이 선법(善法)강당에 자꾸자꾸 모여들면서 말하였다. ‘모처에 어떤 존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어떤 제자가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 올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성도를 닦아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무루심과 지혜의 해탈을 증득하였으며, 현법(現法) 중에 스스로 달통 증득하고, 구족(具足)하여 머문다. 또한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으며, 범행을 이미 닦았으며, 지은 바를 이미 변별하여 더 이상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모든 천들[諸天]에게 올바른 지견(知見)이 있어 모든 비구가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를 다하였다고 아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30)
【답】그렇지 않다.
024_0932_c_23L契經說有諸苾芻得阿羅漢諸漏已盡三十三天數數雲集善法堂中稱說某處有某尊或彼弟子剃除鬚髮被服袈裟信出家勤修聖道諸漏已盡證得無慧解脫於現法中能自通達具足住自了知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受後有爲彼諸天有正智見知諸苾芻得阿羅漢諸漏盡不
【문】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답】세존을 믿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께서 세속심을 일으켜 ‘이들 여러 비구는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는 것이다. 혹은 부처님께서 다른 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들 여러 비구는 아라한을 증득하고 모든 번뇌를 다하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대덕 전선에게서 ‘그들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알았던 것이다. 혹은 그 존자가 세속심을 일으켜 ‘나는 이미 번뇌를 다하고 아라한을 증득했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는 것이다. 혹은 그가 다른 이에게 말한 것을 모든 천들이 들어 아는 것이다.
024_0933_a_09L彼云何知
信世尊故佛起世俗心——是諸苾芻得阿羅漢諸漏已由是彼知或佛告他——是諸苾芻得阿羅漢諸漏已盡彼得聞或從大德天仙所聞或彼尊者起世俗心——已漏盡得阿羅漢由是彼知或彼告諸天得聞
【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마갈타(摩揚陀)의 여러 보좌신하들은 혹은 화법조복(化法調伏)하고, 혹은 법수법행(法隨法行)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이 화법조복하였다 함은 무엇을 말하며, 법수법행하였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31)
【답】만약 하늘[天] 중에 있으면서 법을 본 자이면 화법조복하였다고 말하며, 사람들 중에 있으면서 법을 보았다면 법수법행하였다고 말한다. 또한 계를 수지 하지 않고서 법을 본 자를 화법조복하였다고 하며, 계를 수지하고서 법을 본 자를 법수법행하였다고 한다.
024_0933_a_15L如契經說摩揭陁國諸輔佐臣或是化法調伏或是法隨法云何彼名化法調伏云何彼名法隨法行
若在天中而見法者化法調伏若在人中而見法者名法隨法行復次若不受持戒而見法者名化法調伏若受持戒而見法者法隨法行
【문】무엇을 다욕(多欲)이라고 하는가?32)
【답】모든 것을 욕망하고, 이미 욕망하였고, 앞으로 욕망할 것, 이것을 다욕이라고 한다.
024_0933_a_22L云何多欲
諸欲已欲是謂多欲
【문】무엇을 불희족(不喜足)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것에 만족하지 않고[不喜], 평등히 만족하지 않고, 두루 만족하지 않고, 이미 만족하지 않았고, 장차 만족하지 않을 것, 이것을 불희족이라고 한다.
024_0933_a_23L云何不喜足
諸不喜不等喜不遍喜不已喜不當喜是謂不喜足
024_0933_b_01L【문】다욕과 불희족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아직 얻지 못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바라고 구하고 찾고 사모하고 방편을 강구하는 것, 이것을 다욕이라고 한다. 이미 획득한 참으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다시 바라고 다시 욕망하며 다시 즐기며 다시 구하는 것, 이것을 불희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024_0933_b_02L多欲不喜足何差別
於未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諸希尋索思慕便是謂多欲於已得可愛色聲香味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復希復欲復樂復求是謂不喜足是差別
【문】무엇을 소욕(少欲)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것에 대해 욕망하지 않고, 이미 욕망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욕망하지 않을 것, 이것을 소욕이라고 한다.
024_0933_b_08L云何少欲
諸不欲不已欲不當欲是謂少欲
【문】무엇을 희족(喜足)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것에 만족하고, 평등하게 만족하고, 두루 만족하고, 이미 만족하였으며, 앞으로 만족할 것, 이것을 희족이라고 한다.
024_0933_b_09L云何喜足
諸喜等喜遍喜已喜是謂喜足
【문】소욕과 희족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아직 얻지 못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바라지 않고, 구하지 않고, 찾지 않고, 사모하지 않고, 방편을 강구하지 않는 것, 이것을 소욕이라고 한다. 이미 획득 한 참으로 애착할 만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의복ㆍ음식ㆍ평상이나 침상ㆍ의약, 그리고 여타의 물건에 대해 다시는 바라지 않고, 다시는 욕망하지 않으며, 다시 는 즐기지 않으며, 다시는 구하지 않는 것, 이것을 희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024_0933_b_11L少欲喜足何差別
未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醫藥及餘資具諸不希不求不尋不索不思慕不方便是謂少欲於已得可愛色聲香味觸衣服飮食牀座醫藥及餘資具諸不復希不復欲復樂不復求是謂喜足如是差別
【문】무엇을 난만(難滿)이라고 하는가?33)
【답】거듭 먹고 거듭 씹으며, 많이 먹고 많이 씹으며, 크게 먹고 크게 씹으면서 적어서 그치지 않는 것, 이것을 난만이라고 한다.
024_0933_b_17L何難滿
諸重食重噉多食多噉大噉非少能濟是謂難滿
【문】무엇을 난양(難養)이라고 하는가?
【답】재물을 탐하고 지극히 탐하며, 먹을 것을 탐하고 지극히 탐하며, 즐겨 좋아하고 지극히 즐겨 좋아하며, 씹는 것을 좋아하고, 맛보는 것을 좋아하고, 선택하여 먹고 선택하여 씹으며, 나아가 그침이 없는 것, 이것을 난양이라고 한다.
024_0933_b_19L云何難
諸饕餮極饕餮極耽極嗜好咀嚼好嘗啜選擇而食選擇而噉非趣能濟是謂難養
【문】난만과 난양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앞에서 설명한 것, 그러한 차별이 있다.
024_0933_b_22L難滿難養有何差別
卽前所說是謂差別
024_0933_c_01L【문】무엇을 이만(易滿)이라고 하는가?
【답】거듭 먹지 않고 거듭 씹지 않으며, 많이 먹지 않고 많이 씹지 않으며, 크게 먹지 않고 크게 씹지 않으며, 적지만 바로 그치는 것, 이것을 이만이라고 한다.
024_0933_b_23L云何易滿
諸不重食不重噉不多食不多不大食不大噉少便能濟是謂易滿
【문】무엇을 이양(易養)이라고 하는가?
【답】재물을 탐하지 않고 지극히 탐하지 않으며, 먹을 것을 탐하지 않고 지극히 탐하지 않으며, 즐겨 좋아하지 않고 지극히 즐겨 좋아하지 않으며, 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맛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가리지 않고 먹고 가리지 않고 씹으며, 나아가 얻으면 바로 그치는 것, 이것을 이양이라고 한다.
024_0933_c_03L云何易養
諸不饕餮不極饕餮不耽不極耽不嗜不極嗜不好咀嚼好嘗啜不選擇而食不選擇而噉得便濟是謂易養
【문】이만과 이양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앞에서 설명한 것, 그러한 차별이 있다.
024_0933_c_06L易滿易養有何差
卽前所說是謂差別

8) 사(思)납식
024_0933_c_07L雜薀第一中思納息第八

사(思)와 심(尋)과 도(掉) 등의 차별
우지(愚知)와 만(慢)과 해(害)
큰[多] 것과 행(行)과 〈보호되는〉 근(根)과 〈범부의〉 성품과 사(邪)
원한다면 이 장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024_0933_c_08L思尋掉等別
愚知憍慢害
多行根性邪
此章願具說

【문】무엇을 사(思)라고 하는가?34)
【답】모든 사(思)ㆍ등사(等思)ㆍ증사(增思)ㆍ사성(思性)ㆍ사류(思類)ㆍ심행(心行)ㆍ의업(意業), 이것을 사라고 한다.
024_0933_c_10L云何思
諸思等思增思思性思類——心行意業是謂思
【문】무엇을 여(慮)라고 하는가?
【답】모든 여(慮)ㆍ등려(等慮)ㆍ증려(增慮)ㆍ칭량(稱量)ㆍ주탁(籌度)ㆍ관찰, 이것을 여라고 한다.
024_0933_c_12L云何慮
諸慮增慮稱量籌度觀察是謂慮
【문】사와 여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사는 업이고, 여는 혜(慧)이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024_0933_c_13L何差別
思者業慮者慧是謂差別
【문】무엇을 심(尋)이라고 하는가?35)
【답】모든 마음의 심구(尋求)ㆍ변료(辨了)ㆍ현시(顯示)ㆍ추탁(推度)ㆍ구획(搆畫)ㆍ분별성(分別性)ㆍ분별류(分別類), 이것을 심이라고 한다.
024_0933_c_14L云何尋
諸心尋求辯了顯示推度搆畫分別性分別類是謂尋
【문】무엇을 사(何)라고 하는가?
【답】모든 마음의 사찰(伺察)ㆍ수행(隨行)ㆍ수전(隨轉)ㆍ수류(隨流)ㆍ수속(隨屬), 이것을 사라고 한다.
024_0933_c_16L云何伺
諸心伺察隨行隨轉隨流隨屬謂伺
【문】심과 사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심이라 하고,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사라고 한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024_0933_c_18L何差別
心麤性名尋細性名伺是謂差別
【문】무엇을 도거(掉擧)라고 하는가?36)
【답】모든 마음에 고요함이 없고 지식(止息)됨이 없으며, 조급하고 망령스럽게 움직이는 마음의 조동성(操動性), 이것을 도거라고 한다.
024_0933_c_19L云何掉擧
心不寂靜不止息躁動掉擧心躁動是謂掉擧
【문】무엇을 심란(心亂)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마음이 산란되어 떠돌아다니며,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비일경성(非一境性), 이것을 심란이라고 한다.
024_0933_c_21L云何心亂
諸心散亂流蕩不住非一境性是謂心亂
【문】도거와 심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고요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도거이며,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않음을 특정으로 하는 것이 심란이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024_0933_c_22L掉擧心亂有何差別
不寂靜相名掉擧非一境相名心亂是謂差別
024_0934_a_01L【문】무엇을 무명(無明)이라고 하는가?37)
【답】삼계의 무지(無智)이다.
024_0934_a_01L云何無明
三界無智
【문】무엇을 부정지(不正知)라고 하는가?
【답】비리(非理)가 인기한 혜(慧)이다.
024_0934_a_02L云何不正知
非理所引慧
【문】그대는 부정지를 비리가 인기한 혜라고 주장하는 것인가?(분별론자의 난문)
【답】그렇다.
024_0934_a_03L汝說不正知是非理所引慧
如是
【문】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정지(正知)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실념부정지(失念不正知)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024_0934_a_04L汝何所欲諸有正知而妄語者彼皆失念不正知故妄語耶
如是
【문】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망어하는 일은 없는가?
【답】그렇지 않다. 정지로서 망어하는 경우가 있다. 내 말을 들어 보라. 만약 부정지는 바로 비리가 인기한 혜라고 하면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즉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부정지는 바로 비리가 인기한 혜로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주장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024_0934_a_06L何所欲有正知妄語
不爾應聽我語若言不正是非理所引慧諸有正知而妄語彼皆失念不正知故而妄語則應無有正知而妄語若不說無有正知而妄語則不應言不正知是非理所引慧諸有正知而妄語彼皆失念不正知故而妄語作如是說俱不應理
【문】힐문하여 말할 것이니라. 모든 무명은 모두 부정지와 상응하는 것인가?(응리론자인 논주의 재난)
【답】그렇다.
024_0934_a_14L應詰彼言諸無明皆不正知相應耶
如是
【문】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도 망어하는 것, 그것은 모두 무명으로 나아가고 무명에 얽매인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024_0934_a_15L汝何所欲諸有正知而妄語者皆無明趣無明所纏失念不正知故而妄語耶
如是
024_0934_b_01L【문】또한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망어하는 일은 없는가?
【답】그렇지 않다. 내 말을 들어보라. 만약 모든 무명은 모두 부정지와 상응한다고 하면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은 모두 무명으로 나아가고 무명에 얽매인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즉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정지로서 망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모든 무명은 모두 부정지와 상응한다고 하면서, 모든 정지를 가졌으면서 망어하는 것은 모두 무명으로 나아가고 무명에 얽매인 실념부정지이기 때문에 망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주장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024_0934_a_17L何所欲無有正知而妄語耶
不爾應聽我若言一切無明皆不正知相應諸有正知而妄語皆無明趣無明所纏不正知故而妄語則應說無有正知而妄語若不說無有正知而妄語者則不應言一切無明皆不正知相應諸有正知而妄語皆無明趣明所纏失念不正知故而妄語作如是亦俱不應理
【문】무엇을 교(憍)라고 하는가?38)
【답】모든 방자함ㆍ침혹함[醉]ㆍ지극한 침혹ㆍ번민[悶]ㆍ지극한 번민ㆍ마음의 거만ㆍ방종함[傲逸]ㆍ마음의 자취(自取), 이것을 교라고 한다.
024_0934_b_03L云何憍
諸憍極悶心傲逸心自取是謂憍
【문】무엇을 만(慢)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만ㆍ과거의 만[已慢]ㆍ미래의 만[當慢]ㆍ마음의 거시(擧恃)ㆍ마음의 자취(自取),이것을 만이라고 한다.
024_0934_b_04L何慢
諸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是謂慢
【문】교와 만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다른 것에 견주어 자신의 법에 염착하는 마음의 거만, 방종함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교라면, 다른 것에 견주어 스스로 거시하는 것을 특정으로 하는 것이 만이다. 이것이 둘의 차별이다.
024_0934_b_06L何差別
若不方他染著自法心傲逸相名憍若方於他自擧恃相名慢是謂差別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고(苦)를 바로 고라고 본다.’ 혹은 ‘집(集)을 바로 집으로 본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은 것인가?39)
024_0934_b_08L若起增上慢——我見苦是苦見集是集此何所
【답】어떤 한 존재가 선사(善士)를 가까이 해 정법을 청문하여 참답게 작의하는 것[如理作意]과 같다. 즉 이러한 인연에 따라 제순인(諦順忍:煖頂忍의 忍位를 말함)을 획득하여 고현관변(苦現觀邊)에 이른 자는 고에 대해 바로 고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顯了)하며, 집현관변에 이른 자는 집에 대해 바로 집이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한다. 그는 이러한 인(忍)과 작의를 지님에 따라, 혹은 출정과 입정 중간의 부작의에 따르기 때문에 견(見)과 의(疑)가 나타나지 않는다. 설사 나타난다 할지라도 느끼지[覺] 않으며, 바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고를 바로 고라고 보며, 집을 바로 집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고를 소연으로 삼고, 혹은 집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024_0934_b_10L如有一類親近善士聽聞正法如理作意由此因緣得諦順忍——苦現觀邊者於苦忍樂顯了是苦集現觀邊者於集忍樂顯了是集彼由此忍作意持故或由中閒不作意故見疑不行設行不覺便作是念於苦是苦於集見是集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苦或卽緣集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멸(滅)을 바로 멸이라고 본다.’ 혹은 ‘도(道)를 바로 도라고 본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은 것인가?
024_0934_b_18L若起增上慢——我見滅是滅見道是道此何所緣
024_0934_c_01L【답】어떤 한 존재가 선사를 가까이 해 정법을 청문하여 참답게 작의하는 것과 같다. 즉 이러한 인연에 따라 제순인을 획득하여 멸현관변(滅現觀邊)에 이른 자는 멸에 대해 바로 멸이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하며, 도현관변에 이른 자는 도에 대해 바로 도라고 인가하고 즐거이 현료한다. 그는 이러한 인과 작의를 지님에 따라, 혹은 중간의 부작의에 따르기 때문에 견(見)과 의(疑)를 행하지 않는다. 설사 행해진다 할지라도 느끼지 않으며, 바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멸을 바로 멸이라고 보며, 도를 바로 도라고 본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그의 심ㆍ섭소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024_0934_b_19L如有一親近善士聽聞正法如理作意此因緣得諦順忍——滅現觀邊者於滅忍樂顯了是滅道現觀邊者於道忍顯了是道彼由此忍作意持故由中閒不作意故見疑不行設行不便作是念於滅見是滅於道見是道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彼心心所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이미 생이 다하였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이것은 ‘바로 도(道)이다. 이것은 바로 행(行)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를 닦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다.’고 생각하여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생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024_0934_c_05L若起增上慢——我生已盡此何所緣
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已證滅已修道我生已盡由此起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此卽緣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범행을 이미 수립하였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이를테면 어떤 한 존재가 ‘이것은 바로 도이고, 이것은 바로 행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를 닦았으니, 나는 범행을 이미 수립하였다.’고 생각하며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그의 섬ㆍ심소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024_0934_c_10L若起增上慢——我梵行已此何所緣
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行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集已證滅已修道我梵行已立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彼心心所法
【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지은 바를 이미 변별하였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생각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도이고, 이것은 바로 행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를 닦았으니, 나는 이미 수면을 끊고, 이미 번뇌를 해쳤으며, 이미 결(結)을 드러내고, 누(漏)를 다하여 행한 것을 이미 변별하였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그의 심ㆍ심소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024_0934_c_15L若起增上慢——我所作已辦此何所緣
如有一類作是念言此是道此是我依此道此行——已遍知苦已永斷已證滅已修道我已斷隨眠已害煩惱已吐結已盡漏所作已辦由此起慢已慢當慢心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彼心心所法
024_0935_a_01L【문】만약 증상만을 일으켜 ‘나는 더 이상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 것인가?
【답】이를테면 어떤 한 존재가 생각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도이고, 이것은 바로 행이다. 나는 이러한 도와 이러한 행에 의해 이미 고를 널리 알고, 이미 집을 영원히 끊었으며, 이미 멸을 작증하고, 이미 도들 닦았으니,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수립되었으며, 행한 것을 이미 변별하여 더 이상 후유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하니, 이는 바로 유(有)들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024_0934_c_22L若起增上慢——我不受後有此何所緣
如有一作是念言此是道此是行我依此此行——已遍知苦已永斷集已證滅已修道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不受後有由此起慢已慢當慢擧恃心自取名增上慢此卽緣有
【문】무엇을 스스로 비속하다 하여 만을 일으킨다고 하는가?40)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다른 이가 자신의 종족ㆍ종성ㆍ가족ㆍ흑ㆍ백 등의 인종[類]ㆍ재산ㆍ지위ㆍ기예, 그리고 발이나 집 등에 비해 뛰어난 것을 보고, 생각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보다 조금 뛰어나다. 나는 그보다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이보다 백천 배나 더 열등해지면, 이에 따라 만ㆍ과거의 만ㆍ미래의 만을 일으켜 마음이 거시하고 마음이 자취해지니, 이것을 스스로 비속하다 하여 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024_0935_a_05L何自謂卑而起慢耶
如有一類他勝己——種姓族類財位技藝及田宅作是念言彼少勝我我少劣彼劣於他多百千倍由此起慢已慢心擧恃心自取是名自謂卑而起
【문】계경에서 설명하기를, “만약 욕심(欲尋)ㆍ에섬(恚尋)ㆍ해심(害尋)을 일으킨다면, 혹은 스스로를 해치고, 혹은 남을 해치며, 혹은 양자 모두를 해친다.”고 하였다. 욕심으로 스스로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41)
【답】어떤 한 존재가 있어 탐전(食纏)을 일으키기 때문에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고단하며, 몽이 타고 마음이 타며, 몸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우며, 몸이 마르고 마음이 마르는 것, 또한 이러한 인연에 따라 기나긴 밤 비애(非愛)ㆍ비락(非樂)ㆍ비희(非喜)ㆍ비열(非悅)의 이숙과를 받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a_11L如契經說若起欲尋恚尋害尋自害或害他或俱害云何欲尋自害
如有一類起貪纏故身勞心勞燒心燒身熱心熱身燋心燋復由此當受長夜——非愛非樂非憙非悅諸異熟果如是自害
【문】욕심으로 남을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탐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아내를 바라보니, 그의 남편이 이를 보고 마음에 분을 품고 한을 맺으며, 근심하여 어지럽혀지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남을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a_16L云何欲尋害他
如有一類起貪纏故觀視他妻彼夫見已心生瞋忿結恨愁惱如是害他
【문】욕심으로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탐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아내를 욕되게 겁탈하니, 그의 남편이 이를 알고 마침내 그의 아내를, 그리고 그 사람을 몽둥이로 치고 묶어 죽여서 재보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나와 남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a_18L云何欲尋俱害
如有一類起貪纏污奪他妻彼夫覺已遂於其妻及於其人——打斷命或奪財寶如是俱
024_0935_b_01L【문】에심으로 스스로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진전(瞋纏)을 일으키기 때문에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고단하며, 몸이 타고 마음이 타며, 몸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우며, 몸이 마르고 마음이 마르는 것, 또한 이러한 인연에 따라 기나긴 밤 비애ㆍ비락ㆍ비희ㆍ비열의 이숙과를 받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a_22L云何恚尋自害
如有一類起瞋纏故身勞心勞身燒心燒身熱心熱身燋心燋復由此緣當受長夜——非愛非樂非憙非悅諸異熟果如是自害
【문】에심으로 남을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진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목숨을 끊고 해치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남을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b_02L云何恚尋害他
如有一類起瞋纏斷害他命如是害他
【문】에심으로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진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의 목숨을 끊고 해치며, 또한 남에게 그 자신의 목숨을 단절당하고 해침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 이와 같은 것이 나와 남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b_04L云何恚尋俱
如有一類起瞋纏故斷害他命亦復被他斷害其命如是俱害
【문】해심으로 스스로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해전(害纏)을 일으키기 때문에 봄이 고단하고 마음이 고단하며, 몸이 타고 마음이 타며, 몸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우며, 몸이 마르고 마음이 마르는 것, 또한 이러한 인연에 따라 기나긴 밤 비애ㆍ비락ㆍ비희ㆍ비열의 이숙과를 받는 것, 이와 같은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b_06L云何害尋自害
如有一類起害纏故勞心勞身燒心燒身熱心熱身燋心復由此緣當受長夜——非愛非樂非悅諸異熟果如是自害
【문】해심으로 남을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해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을 때리고 묶는 것, 이와 같은 것이 납을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b_10L云何害尋害他
如有一類起害纏故於他如是害他
【문】해심으로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답】어떤 한 존재가 해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남을 때리고 묶으며, 또한 남에게 맞고 묶이는 것, 이와 같은 것이 나와 남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024_0935_b_12L云何害尋俱害
有一類起害纏故縛於他亦復被他之所打如是俱害
【문】지식[智]의 외연이 큰 것인가, 대상[境]의 외연이 큰 것인가?42)
【답】대상이 크며, 지식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지식 역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024_0935_b_14L智多耶境多耶
境多非智所以者智亦境故
【문】지식의 외연이 큰 것인가, 의식[識]의 외연이 큰 것인가?
【답】의식이 크며, 지식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모든 지식은 모든 의식과 상응해도 모든 의식은 모든 지식과 상응하지 않는다. 즉 인(忍)과 상응하는 의식은 지식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024_0935_b_16L智多耶識多耶
識多非智所以者何諸智皆識相應非諸識皆智相應忍相應識非智相應故
【문】유루행의 외연이 큰 것인가, 무루행이 큰 것인가?
【답】유루행이 크며, 무루행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유루행은 10처(處)와 2처의 일부를 포섭하지만 무루행은 오로지 2처 일부만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024_0935_b_18L有漏行多耶無漏行多耶
有漏行非無漏行所以者何有漏行攝十二處少分無漏行唯攝二處少分
【문】무엇을 행원만(行圓滿)이라고 하는가?43)
【답】무학의 신율의(身律儀)ㆍ어율의(語律儀)ㆍ명청정(命淸淨)이다.
024_0935_b_22L云何行圓滿
無學——身律儀語律命淸淨
【문】무엇을 호원만(護圓滿)이라고 하는가?
【답】무학의 근율의(根律儀)이다.
024_0935_b_23L云何護圓滿
無學——根律
024_0935_c_01L【문】무엇을 이생성(異生性)이라고 하는가?44)
【답】만약 성법(聖法)ㆍ성난(聖暖)ㆍ성견(聖見)ㆍ성인(聖忍)ㆍ성욕(聖欲)ㆍ성혜(聖慧)를 모두 획득하지 못하며, 과거에 획득하지 못하였고, 미래에 획득하지 못하는 것, 이것을 이생성이라고 한다.
024_0935_c_01L云何異生性
若於聖法聖暖聖忍聖欲聖慧諸非得已非得非得是謂異生性
【문】이러한 이생성은 선하다고 해야 하는가, 불선 혹은 무기라고 해야 하는가?
【답】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5_c_03L此異生性當言善不善耶無記耶
應言無記
【문】어째서 이생성을 선하다고 해서는 안 되는가?
【답】선법은 어떤 경우에는 가행(加行)으로 말미암아 획득되고, 혹은 여타의 다른 인연으로 말미암아 획득되지만 가행으로써 이생을 구하여 행위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근을 끊을 때는 선법을 모두 버리며, 선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이 바로 선성이라고 한다면 선근을 끊은 자는 이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024_0935_c_04L何故異生性非善耶
善法或由加行故或由餘緣故得無設加行求作異
【문】어째서 이생성을 불선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가?
【답】욕염을 떠날[離欲染] 때 불선을 모두 버리며 불선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을 바로 불선이라고 한다면, 모든 이생이 욕염을 떠날 경우 이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024_0935_c_07L斷善時善法皆捨得諸善法不成就性若異生性是善性者斷善根者應非異生何故異生性非不善耶
離欲染時不善皆捨得不善法不成就性若異生性是不善者諸異生離欲染應非異生
【문】이러한 이생은 욕계계(欲界繫)라고 해야 하는가, 색계계 혹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하는가?
【답】혹은 욕계계이고, 혹은 색계계 혹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5_c_12L此異生性當言欲界繫耶色界繫耶無色界繫耶
應言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
【문】어째서 이생성은 오로지 욕계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욕계에서 죽어 색계에 태어날 때는 욕계의 법을 모두 버리고 욕계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을 오로지 욕계계라고 한다면 모든 이생이 욕계에서 죽어 무색계에 태어날 경우 더 이상 이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024_0935_c_15L何故異生性非唯欲界繫耶
界沒生無色界時欲界法皆捨得欲界法不成就性若異生性唯欲界繫諸異生欲界沒生無色界應非異
【문】어째서 이생성은 오로지 색계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색계에서 죽어 무색계에 태어날 때는 색계의 법을 모두 버리고 색계법의 불성취성을 획득하는데, 만약 이생성을 오로지 색계계라고 한다면 모든 이생이 색계에서 죽어 무색계에 태어날 경우 더 이상 이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024_0935_c_19L何故異生性非唯色界繫耶
界沒生無色界時色界法皆捨得色界法不成就性若異生性唯色界繫諸異生色界沒生無色界應非異
024_0936_a_01L【문】어째서 이생성은 무색계의 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정성이생에 들 때 먼저 욕계의 고(苦)를 현관한 후에 색ㆍ무색계의 고를 함께 현관한다. 성도를 일으킬 때는 먼저 욕계의 본질[事]을 변별한 후에 색ㆍ무색계의 본질을 함께 변별한다. 그래서 이생성은 오로지 무색계의 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024_0935_c_23L何故異生性非唯無色界繫耶
入正性離生先現觀欲界苦後合現觀色無色界苦聖道起先辦欲界後合辦色無色界事是故異生性非唯無色界繫
【문】이러한 이생성은 견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소단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수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024_0936_a_04L此異生性當言見所斷耶修所斷耶
應言修所斷
【문】어째서 이생성을 견소단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견소단의 법은 모두 염오하지만 이생성은 불염오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제 일법이 바로 멸하고 고법지인이 바로 생겨나면, 그때 삼계의 이생성을 버리고 그것의 불성취성을 획득하지만, 그러나 그때는 아직 견소단법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024_0936_a_05L何故異生性非見所斷耶
見所斷法皆染污異生性不染污故
【문】이생성이란 어떠한 법인가?
【답】삼계의 불염오한 심불상응행이다.
024_0936_a_07L世第一法正滅苦法智忍正生爾時捨三界異生性得彼不成就性非於爾時見所斷法而有捨故異生性名何法
界不染污心不相應行
【문】모든 법으로서 사견(邪見)과 상응하는 것, 그 법은 사사유(邪思惟)와 상응하는가?45)
024_0936_a_11L諸法邪見相彼法邪思惟相應耶
【답】네구(句)로 분별할 수 있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해도 사사유와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사유와, 그리고 여타의 사사유와 상응하지 않는 사견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사유와 상응해도 사견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사유와 상응하는 사견과, 그리고 여타의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사유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고 사사유와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사유를 제외한, 그리고 사사유와 상응하는 사견을 제외한 여타의 다른 모든 사견ㆍ사사유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지도 않고 사사유와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사유와 사사유와 상응하지 않는 사견, 그리고 여타의 다른 모든 심ㆍ심소법과 색과 무위와 심불상응행이다.
024_0936_a_12L應作四句有法邪見相應非邪思惟邪見相應邪思惟及餘邪思惟不相應邪見相應法有法邪思惟相應非邪見邪思惟相應邪見及餘邪見不相應邪思惟相應法有法邪見相應亦邪思惟除邪見相應邪思惟及除邪思惟相應邪見諸餘邪見邪思惟相應法有法非邪見相應亦非邪思惟邪見不相應邪思惟邪思惟不相應邪見及諸餘心心所法無爲不相應行
【문】모든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는 것, 그 법은 사정진(邪精進)과 상응하는 것인가?
024_0936_a_23L諸法邪見相應彼法邪精進相應耶
024_0936_b_01L【답】네 구로 분별할 수 있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해도 사정진과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정진이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해도 사견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그리고 여타의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정진상응의 법이다. 법으로서 사견과 상응하고 사정진과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는 사정진을 제외한, 여타의 다른 사건상응의 법이다. 법무로서 사견과 상응하지도 않고 사정진과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견과 상응하지 않는 사정진과, 그리고 여타의 다른 모든 심ㆍ심소법과 색과 무위와 심불상응행이다.
사견이 사정진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견이 사념(邪念)ㆍ사정(邪定)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나아가 사견이 사정진ㆍ사념ㆍ사정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사유가 사정진ㆍ사념ㆍ사정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024_0936_b_01L應作四句有法邪見相非邪精進邪見相應邪精進法邪精進相應非邪見邪見及餘邪見不相應邪精進相應法有法邪見相應亦邪精進除邪見相應邪精進諸餘邪見相應法有法非邪見相應亦非邪精進邪見不相應邪精進及諸餘心心所法無爲心不相應行如以邪見對邪精進以邪見對邪念邪定亦爾如以邪見對邪精邪念邪定以邪思惟對邪精進邪定亦爾
【문】모든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하는 것, 그 법은 사념과 상응하는 것인가?
024_0936_b_12L諸法邪精進相應彼法邪念相應耶
【답】네 구로 분별할 수 있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해도 사념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념이다. 법으로서 사념과 상응해도 사정진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사정진이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하고 사념과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사정진과 사념에 상응하는 법이다. 법으로서 사정진과 상응하지도 않고 사념과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여타의 모든 심ㆍ심소법과 색과 무위와 심불상응행이다.
사정진이 사념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정진이 사정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 하다. 나아가 사정진이 사념ㆍ사정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념이 사정에 대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024_0936_b_13L應作四句有法邪精進相非邪念邪念有法邪念相應非邪精進邪精進有法邪精進相應邪念邪精進邪念相應法有法非邪精進相應亦非邪念諸餘心所法無爲心不相應行如以邪精進對邪念以邪精進對邪定亦爾以邪精進對邪念邪定以邪念對邪亦爾
說一切有部發智論卷第二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1)애(愛:preman)와 경(敬:gaurava)에 대한 것이다.
  2. 2)공양(pūjanā)과 공경(satkāra)에 대한 것이다.
  3. 3)신력(身力)과 신열(身劣)에 대한 것이다.
  4. 4)택멸(擇滅:pratisamkhyā-nirodha)과 비택멸(非擇滅:apratisamkhyā-nirodha)에 대한 것이다.
  5. 5)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대한 것이다.
  6. 6)무루오온(無漏五蘊)에 대한 것이다.
  7. 7)유일구경(唯一究竟)에 대한 것이다.
  8. 8)외도가 아어취(我語取)를 끊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9. 9)지변지(智遍知)ㆍ단변지(斷遍知)에 대한 것이다.
  10. 10)삼귀의(三歸依)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11. 11)흑(黑)은 무참(無慚)ㆍ무괴(無愧), 백(白)은 참ㆍ괴, 두 가지 근(根)과 마음[心]은 증상(增上)ㆍ미구행(微俱行)의 선(善)ㆍ불선(不善)을 말한다.
  12. 12)무참(無慙)과 무괴(無愧)에 대한 것이다.
  13. 13)참(慙)과 괴(愧)에 대한 것이다.
  14. 14)증상(增上) 불선근과 미구행(微俱行) 불선근에 대한 것이다.
  15. 15)욕계 증상 선근과 미구행 선근에 대한 것이다.
  16. 16)마음의 변괴(變壞)에 대한 것이다.
  17. 17)도거(掉擧)와 악작(惡作)에 대한 것이다.
  18. 18)혼침(惛沈)과 수면(睡眠)에 대한 것이다.
  19. 19)잠잘 때 꿈의 선악과 그 과보에 대한 것이다.
  20. 20)5개(蓋;欲貪蓋ㆍ瞋恚蓋ㆍ惛眠蓋ㆍ掉悔蓋ㆍ疑蓋)와 무명개(無明蓋)에 대한 것이다.
  21. 21)무명수면(無明隨眠)의 모든 상(相)에 대한 것이다.
  22. 22)유위법[所相]과 유위상[能相]의 같고 다름에 대한 것이다.
  23. 23)노(老:혹은 異)와 사(死), 또는 무상에 대한 것이다.
  24. 24)모든 행이 죽음의 문을 향하고, 젊음과 패기를 버리고, 여러 기관이 완숙되고, 근력이 쇠퇴 변이함을 말한다.
  25. 25)1찰나의 4상(혹은 3상)에 대한 것이다.
  26. 26)고행의 무의미함에 대한 것이다.
  27. 27)대면염주(對面念住)의 내용으로서의 부정관(不淨觀).
  28. 28)제6무상주(無相住)로서의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의 공덕에 대한 것이다.
  29. 29)여래의 초전법륜을 지신(地神)ㆍ약차가 아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30. 30)33천이 모든 비구의 해탈을 아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31. 31)화법조복(化法調伏)과 법수법행(法隨法行)에 대한 것이다.
  32. 32)다욕(多欲)과 불희족(不喜足), 소욕과 희족에 대한 것이다.
  33. 33)난만(難滿)과 난양(難養), 이만(易滿)과 이양(易養)에 대한 것이다.
  34. 34)사(思)와 여(慮:慧의 다른 이름)에 대한 것이다.
  35. 35)심(尋)과 사(伺)에 대한 것이다.
  36. 36)도거(掉擧)와 심란(心亂)에 대한 것이다.
  37. 37)무명(無明)과 부정지(不正知)에 대한 것이다.
  38. 38)교(憍)와 만(慢)에 대한 것이다.
  39. 39)증상만이 사제(四諦) 내지 진지(濜智) 무생지(無生智)를 소연으로 삼을 때, 그 소연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40. 40)비만(卑慢)에 대한 것이다.
  41. 41)욕(欲)ㆍ에(恚)ㆍ해(害)의 3악심(惡尋)에 대한 것이다.
  42. 42)지식[智]과 대상[境]ㆍ지식과 의식[識]ㆍ유루행과 무루행의 광ㆍ협에 대한 것이다.
  43. 43)행원만(行圓滿)과 호원만(護圓滿)에 대한 것이다.
  44. 44)이생성(異生性)에 대한 것이다.
  45. 45)사견(邪見) 등 8사지(邪支)의 상응관계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