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966_T_001
- 028_0737_c_01L성실론(成實論) 제1권
- 028_0737_c_01L成實論卷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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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발마(訶梨跋摩) 지음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
028_0737_c_02L訶梨跋摩造
姚秦三藏鳩摩羅什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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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취(發趣)
1. 불보론(佛寶論)
1) 구족품(具足品) - 028_0737_c_04L發聚中佛寶論初具足品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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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배 드려야 할
저절로 바른 지혜 지니신 이[自然正智者]요
일체지(一切智)며 응공(應供)이요 큰 스승[大師]이신
세간을 이익되게 하신 이께 예배하고
다음에는 참되고 깨끗한 가르침[法]과
거룩하신 제자들께 예배드리나이다. -
028_0737_c_05L前禮所應禮,
自然正智者,
一切智應供,
大師利世閒,
亦禮眞淨法,
及聖弟子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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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하여
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나니
수다라(修多羅)에 따르면서도
진실한 법 모양[法相]에 어김이 없고
또한 적정(寂靜)에 잘 드는 것이므로
그 이름 바른 지혜의 이론(正智論)이라 한다. -
028_0737_c_07L今欲解佛語,
饒益於世閒,
論應修多羅,
不違實法相,
亦入善寂中,
是名正智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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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그 성질은 본래 깨끗하고 밝건만
연기나 구름이나 먼지와 안개 따위의
다섯 가지 가림으로 보이지 않듯, -
028_0737_c_09L譬如天日月,
其性本明淨,
煙雲塵霧等,
五翳則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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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된 논리로 바른 경문 덮으면
그 이치 분명하게 비추지 못하나니
바른 이치를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삿된 지혜의 문은 열리게 된다. -
028_0737_c_11L 邪論覆正經,
其義不明照,
正義不明故,
邪智門則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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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짓고 저버림과 나쁜 명성과
후회와 게으름을 피우는 따위의
이 손실(損失)과 번뇌의 어지러운 마음은
다 삿된 지혜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
028_0737_c_12L 罪負惡名聞,
心悔疲倦等,
此衰惱亂心,
皆由邪智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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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에 누구라도 이러한 죄악 등의
손실과 번뇌를 제거하려거든
바른 논리를 찾기 위하여
깊은 지혜 지닌 사람 가까이 해야 한다. -
028_0737_c_13L若人欲除此,
罪負等衰惱,
爲求正論故,
當近深智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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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지혜 지닌 친근하는 것
이것이 바른 논(正論)의 근본이 되며
이 바른 논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복과 수승함을 내게 되느니라. -
028_0737_c_15L 親近深智者,
是正論根本,
因此正論故,
能生福勝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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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영리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천 가지 삿된 논설을 왼다손 쳐도
대중에게서 변재와 명성의
이익 얻지 못하나 -
028_0737_c_16L 雖有利智人,
誦百千邪論,
於衆不能得,
辯才名聞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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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법이 제일임을 알고서
설명하면 쾌락의 과보 또한 얻으리니
법이 오래 머무르기 바라는 것이요
명성을 위함이 아닌 까닭이니라. -
028_0737_c_17L知佛法第一,
說亦得樂果,
欲令法久住,
不爲名聞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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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다른 논설 널리 익히고
지혜로운 분의 뜻을 두루 알고서
이 성실론(成實論)을 지으려는 것이니
부처님[一切智]만이 알고 계시리. -
028_0737_c_19L 廣習諸異論,
遍知智者意,
欲造斯實論,
唯一切智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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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비구(比丘)들의 각기 다른 이론
갖가지를 부처님은 다 허락하셨으니
그러기에 3장 중의 진실한 이치를
나도 바르게 논의하려 하네. -
028_0737_c_20L 諸比丘異論,
種種佛皆聽,
故我欲正論,
三藏中實義。
- 이로부터 논설하겠다.
- 028_0737_c_21L於是說論。
- 028_0738_a_02L【문】나는 지금 그대가 성실론(成實論)을 설명하겠다는 줄을 알았거니와, 그대는 먼저 예배해야할 분에게 예배드린다 하니 이른바 부처님이다. 무엇 때문에 부처라 하며, 무슨 공덕을 이루었기에 예배해야 한다는 것인가.
- 028_0737_c_22L問曰:我今知汝說成實論。汝先言:前禮所應禮,所謂爲佛。何故名佛?成何功德故應禮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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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부처라 함은, 자연인(自然人)으로서 일체종지(一切種智)로 온갖 법의 모양[自相]의 차별을 아는 이로써, 온갖 착하지 못함을 여의고 온갖 착함을 쌓아 항상 구하면서 모든 중생에게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부처라 한다.
교화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을 법이라 하고, 이 법을 수행하는 이를 승가[僧]라 한다.
이와 같은 삼보(寶)에 대하여 예배드려야 할 이유를 나는 지금 설명하려 한다.
부처님은 다섯 가지를 구비하셨기 때문에 세간의 하늘과 사람에게 공경을 받는다. - 028_0738_a_03L答曰:佛名自然人,以一切種智知一切法自相差別,離一切不善、集一切善,常求利益一切衆生,故名爲佛。教化所說是名爲法,行此法者名之爲僧。如是三寶應禮因緣,我今當說。佛五品具足故,爲世閒天人所敬。
- 【문】그 밖의 성인(聖人)들에게도 역시 이 다섯 가지 공덕은 있다. 부처와는 무엇이 다른가.
- 028_0738_a_09L問曰:諸餘聖人亦復有此五品功德,與佛何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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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부처님의 다섯 가지 법은 구족하고 청정하시다. 왜냐하면, 몸 등의 모든 업(業)은 그릇됨이 없으므로 계행(戒行)이 구족하시다. 또 부처님은 오히려 그릇 금계(禁戒)를 무너뜨리는 일이 없거든, 하물며 일부러 범하겠는가. 또 오랫동안 자비(慈悲)를 쌓았으므로 모진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경전에서 부처님은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이 나면서부터 자비를 익혔다면 악행을 일으키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하심과 같다. - 028_0738_a_10L答曰:佛五品法具足淸淨。所以者何?身等諸業無錯謬故,戒品具足。又佛尚不誤毀禁戒,況當故犯。又久集慈悲,惡心不發,如經中說佛語阿難:若人從生習慈,能起惡不?不也。世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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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오랫동안 착한 성품을 쌓았기 때문에 스스로 지킨 것이오, 명성을 두려워해서 금계를 가지신 것이 아니다. 또 한량없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오랫동안 계행을 닦아서 3독(毒)의 뿌리를 뽑은지라 영원히 남은 습기(習氣)가 없으시니, 이러한 일들의 인연 때문에 계율이 구족하다.
선정(禪定)이 구족하다. 부처님은 이 선정을 의지하여서 일체지를 얻으셨으며, 이 때문에 선정이 구족하심을 알게 된다. 마치 등잔에 기름이 많고 심지가 크기 때문에 광명도 큰 것과 같다. 또 부처님의 선정은 견고해서 마치 칠로 나무를 칠한 것과 같거니와 다른 사람의 선정은 꽃 위에 뿌린 물이 오래 머무르지 못한 것과 같다. - 028_0738_a_15L佛久集善性,不爲自守、怖畏名聞而持禁戒。又於無量佛所久修戒行,拔三毒根永無餘習。以是等緣戒品具足。定品具足者,佛依此定得一切智,以此故知定品具足。如酥油多、燈炷大故,光明亦大。又佛定堅固如漆漆木;餘人樿定如花上水,不得久住。
- 또 부처님의 선정은 한량없는 겁(劫)으로부터 차례차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능히 구족할 수 있었고, 또 여래의 선정은 어떠한 사람에게나 어떠한 곳에서나 어떠한 설법을 듣는 등의 여러 인연을 기다리지 아니하셨거니와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 028_0738_a_22L又佛樿定於無量劫次第漸成,故能具足。又如來定不待衆緣,若人若處若說法等;餘人不爾。
- 028_0738_b_02L또 여래의 선정은 항상 깊이 닦아 익힌 것이라 마치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며, 부처님은 선정에 들되 마음과 힘을 쓰지 아니한다. 또, 마치 사람이 자기의 가정에서는 자유롭게 말을 하고 뜻대로 편안하여서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이 선정에 머무시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삼매(三昧)중에 계신다고 말한다.
- 028_0738_b_02L又如來定常深修習,如人自字恒憶不忘。佛入禪定不加心力。又譬如人自於住處,乃自語言安隱無難。佛處定中亦復如是,故言如來常在三昧。
- 또 선정을 무너뜨리는 큰 기쁨[大喜] 등의 법을 부처님은 다 잘 끊으셨다. 또 선정의 과보로서 자유로운 신통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므로 여의통(如意通)을 부려서 잠깐 사이에 십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마음대로 통과하면서 온갖 하실 일을 뜻대로 성취하시며, 모든 변화(變化)하는 법에도 자유롭고 걸림이 없어서 마음이 온갖 법에 두루하거니와 그 밖의 중생으로서는 따를만한 이가 없다.
- 028_0738_b_06L又壞樿定大喜等法,佛悉善斷。又定果報得自在神通最勝第一,以如意通於一念頃能過十方無量世界,一切所爲隨意卽辦,於諸變化自在無㝵,心能普周一切諸法,其餘衆生莫能及者。
- 또 부처님은 거룩한 해탈법[自在法]을 성취하셨으므로 즐길만한 것 안에서는 즐겁지 않은 생각을 내고, 즐겁지 않은 것에서는 즐겁다는 생각을 내며, 즐거움과 즐겁지도 않은 것에서는 평등한 생각을 내신다.
- 028_0738_b_11L又佛成就聖自在法,於可樂中生不樂想,於不樂中能生樂想,於樂不樂能生捨想。
- 【문】즐겁지 아니한 것에서는 평등한 생각을 낼 수 있되 어떻게 그 중에서 즐거운 생각을 낼 수 있는가.
- 028_0738_b_13L問曰:於不樂中可生捨想,云何於中能生樂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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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마음을 잘 닦으셨으므로 나쁜 소리 등의 즐겁지 않은 것에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밖에 하늘눈[天眼]과 하늘귀[天耳]와 남의 속아는 지혜[他心智]와 전생의 일을 아는 신통[宿命通]에도 걸림이 없음은 역시 선정의 힘 때문이며, 신통에 걸림이 없음은 역시 선정의 힘 때문이며, 신통에 걸림이 없음은 모든 선정에 통달하고 밝게 알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중생으로서는 그 이름마저 듣지 못하나 오직 여래만이 들고 나기에 걸림이 없다.
또 부처님의 선정은 힘[力]이라 말하며 열 가지 힘[十力] 중에서 설명함과 같거니와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선정이 구족하다. - 028_0738_b_15L答曰:善修心故,於惡口等不樂法中不以爲㝵,於餘神通天眼、天耳、知他心、智宿命通中亦無所㝵,以定力故神通無㝵。於諸禪定通達明了,其餘衆生不聞其名,唯有如來出入無㝵。又佛禪定名之爲力,如十力中說,餘人無有,是故如來定品具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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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38_c_02L지혜가 구족하다. 두 가지 무명이 있으니, 첫째 선정을 장애함이요, 둘째 번뇌를 일으킴이다. 여래는 두 가지를 다 끊으셨고 서로 어김을 끊었기 때문에 지혜가 구족하다.
또 자연한 법을 얻었으므로 남에게서 듣지 않으며, 말씀을 잘하고 이치를 잘 알아서 변재가 끝이 없고, 지혜가 그지없다. 또 다른 중생으로서는 구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기술을 오직 부처님만은 모두 알아서 모자람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지혜가 구족하다. - 028_0738_b_21L慧品具足者,有二種無明,一障禪定、二起煩惱,如來悉斷,斷相違故慧品具足。又得自然法,不從他聞,巧於言辭、善知義趣、辯才無竭、智慧無盡。又餘衆生於諸技術不能具足,唯佛盡知無有減少,是故如來慧品具足。
- 또 지혜가 적은 다른 사람의 언론에는 허물이 없을 수 없으나 부처님의 설법은 이치에 잘 맞기 때문에 오직 여래의 말씀만은 실수가 없다. 그러므로 알아라, 여래는 지혜가 구족하다.
- 028_0738_c_04L又佛所說法善於義趣,餘小智人有所言說不能無過,唯有如來所言無失,故知如來慧品具足。
- 또 한량없는 공덕은 이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에 두루 갖출 수 있다. 또 미묘한 법을 연설하는데 그릇됨이 없음은 마치 부정관(不淨觀)으로 음욕 등을 깨뜨림과 같다. 또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위품도 뛰어나시니, 이러한 인연으로 지혜가 구족하다.
- 028_0738_c_07L又無量功德成此智慧,故能具足。又說微妙法無有錯謬,如不淨觀破婬欲等。又智慧勝故威儀亦勝。以是等緣慧品具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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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解脫)이 구족하다. 두 가지 무명에서 마음이 다 해탈하여 남은 버릇이 없고 영구히 물러나지 아니하시니 이런 일들을 해탈이 구족하다 한다.
해탈지견(解脫知見)이 구족하다. 온갖 번뇌를 끊는 도 가운데서 생각생각마다 다 아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손에 도끼를 쥐고 나무를 자를 적에 그 곁에 있는 슬기로운 사람은 그 나무덩치가 조금씩 끊어져 가는 것을 앎과 같이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번뇌를 끊는 지혜가 생각생각마다 다하여짐을 다 분별해서 아신다. - 028_0738_c_10L解脫品具足者,於二無明心俱解脫,無有餘習永不退轉,如是等名解脫具足。解脫知見具足者,能於一切斷結道中念念悉知,如人伐木手執斤斧,邊有智者知柯微盡。佛亦如是,於斷結智念念所盡悉分別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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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생이 깊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아서 그에 맞도록 설법하시어 해탈을 얻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중생들의 온갖 해탈의 도중에서 알고 보심이 구족하다.
또 부처님 세존은 때를 알아서 설법하시나니 마치 침부로 범지(鈂扶盧梵志)와 같다. 또 여래는 모든 법의 차별을 잘 알므로 당연히 그 사람을 위해서는 그에 해당한 설법을 하시나니 마치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차익(車匿)을 위해서는 당연히 이유무경(離有無經)을 설법해야 한다”고 하심과 같다. 그러므로 여래는 해탈을 잘 아신다. - 028_0738_c_16L又知衆生深心所念,如應說法令得解脫。是故能於衆生一切解脫道中知見具足。又佛世尊知時說法,如䤟扶盧梵志等也。又如來善知諸法差別,應爲是人說如是法,如佛語阿難:應爲車匿說離有無經。是故如來善知解脫。
- 또 좋은 방편으로 중생의 번뇌를 끊어 주심은 마치 난타(難陀)를 위해서는 음욕으로써 음욕을 끊게 하심과 같다. 또 미리 중생의 믿음들의 근기가 성숙되었는가를 아신 다음에야 설법하셨음은 마치 라후라(羅睺羅)의 경우와도 같다.
- 028_0738_c_22L又善方便斷衆生垢,如爲難陁以欲斷欲。又先知衆生信等根熟,然後說法,如羅睺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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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39_a_02L또 어떤 중생은 업보가 장애가 되어서 해탈을 얻지 못하면 부처님은 그것을 끊게 한 연후에야 설법하신다. 또 어떤 중생은 때를 기다리다가 번뇌가 끊어졌으니 부부경(夫婦經)에서의 말씀과 같다.
또 어떤 중생은 사람을 기다리다가 번뇌가 끊어졌으니 마치 사리불(舍利弗)이 아열기(阿說嗜)를 기다림과 같고, 또 어떤 중생은 처(處)를 기다리다가 번뇌가 끊어졌으니 마치 불가사왕(弗迦沙王)과 같으며, 또 어떤 중생은 동반자를 기다리다가 번뇌가 끊어졌으니 소를 치는 난타(難陀)가 아유타(阿由陀) 마을의 사람을 기다림과 같고, 또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참 몸[眞身]을 기다리고 또는 변화한 몸[化身]을 기다리다가 번뇌가 끊어지게 되었으니 부처님은 모두 따로따로 알아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어 해탈을 얻게 한다. - 028_0739_a_02L又有衆生爲業報障不得解脫,佛能令盡,然後說法。又有衆生待時漏盡,如『夫婦經』說。又有衆生待人漏盡,如舍利弗待阿說嗜。又有衆生待處漏盡,如弗迦沙王。又有衆生待伴漏盡,如放牛難陁待阿由陁村人等。又有衆生待佛眞身、又待化身而得漏盡,佛悉別知而爲說法,令得解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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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여러 가지로 좋은 법을 말씀하고 온갖 해탈을 장애하는 법을 부수기 때문에 해탈의 지견이 구족하다고 한다. 또 부처님은 법을 잘 아시므로 이치에 틀리거나 과보가 없는 일은 말씀하지 아니하신다. 또 부처님은 순서있게 해탈의 도를 말씀하시므로 마치 산수(算數)에 나타남과 같아서 이해하기가 쉽다.
또 부처님은 중생이 전생부터 심어온 선근(善根)의 차서를 알아서 설법하시며, 또 부처님은 직접 해탈을 얻어서 남에게 설법하는 것이요 남에게서 듣지 아니하신다. - 028_0739_a_09L又佛種種說妙法故,能破一切障。解脫法故,名解脫知見具足。又佛說法善於義趣,不說非義無果報事。又佛漸次說解脫道,猶如算數,見故易解。又佛知衆生宿植善根,次第說法。又佛現得解脫而爲人說,不從他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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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의 법은 여러 가지 기능을 구비한다. 마치 모든 약이 구비되어야 병을 낫게 하듯이 불법도 그와 같다. 여러 가지 대치하는 방편으로 모든 번뇌를 제거함은 마치 아홉 가지 생각[想] 등으로 크고 작은 온갖 번뇌가 도리어 해치지 못하도록 함과 같다. 그러므로 충분히 모든 번뇌를 끊는다.
또 더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되 혹은 부드러운 말씀으로 혹은 괴로운 말씀으로 하며, 혹은 부드러운 말씀과 괴로운 말씀을 겸하여 하기도 하시니, 이것이 여래께서 해탈지견이 구족하신 것이다. - 028_0739_a_15L又佛法具足多諸技能,如以衆藥具足療病。佛法亦爾,以衆治門除一切煩惱,如九想等大小諸結不能反害,故能具足破諸煩惱。又無上方便濟度衆生,或以軟語、或以苦言、或復兼以軟言苦言。是爲如來解脫知見具足。
- 2) 십력품(十力品)
- 028_0739_a_21L十力品第二
- 또 부처님은 열 가지 힘(十力)을 성취하셨으므로 지혜가 구족하다. 가고 오는 인연을 들어서 열 가지 힘을 설명하리라.
- 028_0739_a_22L復次,佛十力成就故智慧具足。以往反因緣故說十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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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39_b_02L처음에는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을 분명히 아는 힘[處非處力]이니, 이것은 인과(因果)에 대해 결정하는 지혜이다. 그러한 원인으로부터는 이와 같은 결과를 내고 저와 같은 결과를 내지 않는다고 아는 것으로서 착하지 못한 짓을 저지르면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받고 즐거운 과보를 받지 아니함과 같다.
옳은 곳에는 옳은 일이 있고 그른 곳에는 옳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첫째의 힘은 여러 가지 힘 가운데서 근본이다. - 028_0739_a_24L初處非處力,是因果中決定智也。知從是因生如是果、不生是果,如行不善必得苦報、不生樂報。是處名有是事,非處名無是事。是初力者,諸力之本。
- 【문】세간에서도 원인과 결과의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앎은 마치 보리에서는 보리가 나오고 벼 따위가 나오지 아니함과 같다.
- 028_0739_b_05L問曰:世閒亦知因果是處非處,如從麥生麥、不生稻等。
- 【답】도리에 계합하고 못함을 분명히 아는 힘은 여러 업(業)의 법을 아는 것이기 때문에 이 힘을 으뜸이며 매우 깊은 힘이라 하고, 여러 하늘과 세간 사람으로서는 따르지 못할 바다. 또 생성하는 법의 원인[因]의 순서와 반연[緣]의 과정을 꿰뚫어 아신다. 그러므로 힘을 미묘(微妙)하다 한다. 이른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업(業)과 여러 가지 느낌(受)의 법을 알고 곳을 알고 일을 알고 원인을 알고 과보를 아시나니, 그러므로 이 지혜를 힘이라 한다.
- 028_0739_b_07L答曰:處非處力,知業等法,故名此力甚深第一,諸天世人所不能及。又了知生法因、次第、緣、增上,是故此力名爲微妙。謂知去來現在諸業及諸受法,知處知事、知因知報,是故此智名之爲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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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世)의 곳과 일과 원인과 과보를 아시므로 매우 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이는 말하되 “과거와 미래에도 없는 법이다” 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에 대하여 힘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요, 또 법이 과거와 미래 세상에 있고 현재 모양은 없다 하더라도 부처님은 또한 현재에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 028_0739_b_12L以知三世處事因報,故名甚深。所以者何?或謂過去未來無法,故佛於此說言有力。又法在過去未來世中雖無現相,佛亦現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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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업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착함과 착하지 못함이다. 혹 착한 업을 짓고도 현재에 고통을 받는 이가 있음은 마치 계행을 지님으로 하여 모든 괴롬을 겪음과 같다. 혹 죄 되는 업을 짓고도 현재에 즐거움을 받는 이가 있음은 계행을 깨뜨리고 자유롭게 지냄과 같다.
혹 의심을 내면서 미래의 세상도 현재와 같으리라 생각하는 이가 있다. 그러므로 여래는 업에 따라서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 028_0739_b_15L復次,業有二種,若善、不善。或有善業而現受苦,如以持戒而受諸惱。或有罪業今現受樂,如爲破戒而得自在。或有生疑,謂未來世亦如現在。是故如來次業說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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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법은 네 가지이다. 현재는 괴롭다가 뒤에 즐거운 것과 현재는 즐겁다가 뒤에 괴로운 것이 있으며 현재도 즐겁고 뒤에도 즐거운 것과 현재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운 것이 있는데 부처님은 이러한 곳과 일과 원인과 과보를 다 환히 아신다. 곳이라 함은 받는 이를 말하고 일이라 함은 보시하는 물품을 말하며 원인이라 함은 보시하는 이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경전 중에서 “먼저 마음이 깨끗하고 보시할 때의 마음이 깨끗하며 보시한 뒤에 후회가 없으면 이러한 업은 결과를 얻나니, 이것을 과보라 한다”고 하셨음과 같다. - 028_0739_b_20L受法四種,有現苦後樂、現樂後苦、有現樂後樂、現苦後苦,佛悉了知處、事、因、報。處名受者,事名施物,因名施心,如經中說:先心歡喜,施時心淨,施已無悔。是業得果,名之爲報。
- 028_0739_c_02L오직 부처님만이 이 업의 분량과 혹은 결정되고 결정되지 아니함과 현재에 받을 과보와 내생에 받을 과보와 그 다음 생에 받을 것을 아시어 모자랄 것 없이 다 아시기 때문에 힘이라 한다.
- 028_0739_c_02L唯佛能知是業多少,若定不定、現報生報及後報等悉知無餘,故名爲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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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삼마발제(三摩跋提)에 대하여 때 묻음을 알고 머무름을 알고 더함을 알고 깨끗함을 아신다.
이 이치 중에서 선정이라 함은 네 가지 선과 네 가지 무형세계의 선정[定]을 말한 것이니 곧 형상 세계와 무형 세계의 업이 된다.
해탈이라 함은 여덟 가지 해탈이니 능히 이 업을 다한다. 이 선정과 무형세계 선정과 팔해탈을 삼매라 하며, 이 삼매의 작용(用)이 앞에 나타나게 됨을 삼마발제라 한다. - 028_0739_c_04L佛於諸禪、解脫、三昧、三摩跋提,知垢知住、知增知淨。於此義中,禪名四禪四無色定,卽是色界無色界業。解脫者謂八解脫,能盡是業。是禪無色定及八解脫名爲三昧,得是三昧用現在前名三摩跋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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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마발제는 네 가지로 분별한다. 때 묻음을 따름[隨垢]과 머무름을 따름[隨住]과 더함을 따름[隨增]과 깨끗함을 따름[隨淨] 등이다.
때 묻음을 알면 때 묻음을 따르는 선정이고 머무름을 알면 머무름을 따르는 선정이며 더함을 알면 더함을 따르는 선정이고 깨끗함을 알면 통달을 따르는 선정[隨達定]이다. 통달에 따르는 선정은 난위(煖位)와 정위(頂位)와 인위(忍位) 등의 네 가지 법이다. 부처님은 이들에 대하여도 모자랄 것 없이 다 아시나니, 그러므로 힘이라 한다. - 028_0739_c_09L三摩跋提分別四種,隨垢、隨住、隨增、隨淨,知垢者隨垢定,知住者隨住定,知增者隨增定,知淨者隨達定。隨達定者,煖、頂、忍等四法。是佛於此等悉知無餘,故名爲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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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중생이 여러 근기에 영리하고 우둔함을 환히 아신다. 믿음 등의 근기가 수승하면 영리하다는 것으로서 모든 부처님과 같으며 우둔하다 함은 미치지 못한다[不及]는 것으로서 마치 뱀잡이와 같다.
중간의 근기가 없음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한 근기는 끝이 있어서 마치 모든 부처와 같고 우둔함 역시 끝이 있어서 마치 뱀잡이와 같다 하거니와 중간은 끝이 없기 때문에 중간 근기는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 028_0739_c_14L佛了知衆生諸根利鈍。信等根勝故名爲利,如諸佛等。鈍名不及,如蛇奴等。無有中根,以不定故。利根有邊如諸佛,鈍亦有邊如蛇奴,中無邊故不說中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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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가지 도가 있으니, 신행(信行)과 법행(法行)이다.
또 두 가지 도란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이니, 이 두 가지 길과 다르기 때문에 중간이라 하고, 사람이 영리한가 우둔한가를 관찰하면 이 때문에 중간이 있게 된다. - 028_0739_c_18L復次有二種道,信行、法行。復有二道,難道、易道。異此二道,故名爲中。觀人利鈍,是故爲中。
- 또 좋아하는 바에 따라 근기에 차별이 있고, 믿음의 근본을 좋아하기 때문에 믿음이라 한다. 다분히 지혜 있는 사람은 모든 근기가 수승하나 좋아함을 따르기 때문에 화가리(和伽利)라 하며, 신근(信根)이 수승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근기를 빠짐없이 다 아시기 때문에 힘이라 한다.
- 028_0739_c_21L又隨所樂故根有差別。樂信根故名爲信。多有智慧人諸根皆勝,以所樂故名和伽利,信根爲勝。如是諸根悉知無餘,故名爲力。
- 028_0740_a_02L부처님은 중생이 저마다 좋아함이 있음을 다 아신다. 좋아하는 것을 욕망이라 한다. 사람이 식초(酢)를 좋아하면 식초를 욕망한다 함과 같다. 부처님은 좋아함을 따라 낱낱이 분별하여 아시나니 이른바 이 중생은 다섯 가지 욕락을 좋아하고 저 중생은 도 닦기를 좋아한다는 따위이다. 그렇게 아신 다음에 정도를 맞추어서 설법하시기 때문에 널리 온갖 중생을 제도하신다.
- 028_0739_c_24L佛知衆生各有所樂,樂名爲欲,如人樂酢則欲於酢。佛隨所樂,各各別知,謂是衆生樂於五欲、或樂修道。如是知已,隨宜說法故,能廣度一切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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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세간의 한량없는 중생의 성품을 아신다. 중생은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에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성품으로 변한다.
조달(調達)의 무리는 세세생생에 부처님을 비방하다가 악한 마음이 차차 깊어져서 어느새 성품으로 되어버렸다고 함과 같다. 착한 성품도 역시 그러하다. 어떤 중생은 성품에서부터 욕심을 일으키고 어떤 중생은 현재를 반연하여 욕심을 일으킨다. 여래는 그들의 좋아함과 성품을 다 아신다. 그러므로 힘이라 한다. - 028_0740_a_05L佛知世閒無量種性,衆生久習所樂則成其性。如調達等,世世謗佛,惡心轉深,便名爲性。善性亦然。或有衆生,從性起欲、或緣現起。如來善知所樂及性,故名爲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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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온갖 중생이 도착할 곳의 길을 아신다. 이 길로 가면 지옥에 가 나고 내지 천상에 날 것을 아시며, 이 길로 가면 열반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아신다. 이러한 업은 다 각자의 근기와 욕망과 성품으로부터 생긴다.
셈이 있는 업(有漏業)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 갈래 중에 나고, 샘이 없는 업(無漏業)이기 때문에 열반에 도달할 것을 아신다. - 028_0740_a_10L佛知一切所至處道,知行是道生地獄中乃至生天,知行是道得至涅槃。是業皆從根欲性生。有漏業故生五道中,無漏業故得至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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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는 오직 길만을 말하고 지금은 길의 결과를 말하며, 또 먼저는 모양의 모든 것[總相]을 설명하고 지금은 분별하여 설명하면서, 이와 같은 업을 지으면 지옥에 가고 이와 같은 업을 지으면 열반에 이르며, 지옥에 가는 자에게도 차별이 있어서 이러한 업은 당연히 활지옥(活地獄)에 떨어지고 저러한 업을 지으면 흑승지옥(黑繩地獄)에 떨어져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일곱 번째의 힘 중에서 세밀한 업을 아셨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는 분별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힘이라 한다. - 028_0740_a_14L先但說道,今說道果。又先摠相說,今分別說。有如是業趣於地獄,有如是業能到涅槃。趣地獄者亦有差別,是業當墮活地獄中,是業當墮黑繩地獄,是故佛於第七力中知細微業,餘人若知不能分別,故名爲力。
- 부처님은 그와 같이 전생의 업과(業果)를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전생을 아는 지혜의 힘(宿命智力)이라 한다. 또 부처님은 중생이 과거에 행해 온 길을 아시며, 그에 다 아신 다음에 그에 따라서 설법하셨으므로 전생에 대하여 아는 지혜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또 부처님은 과거에 태어난 곳이 혹은 형상이 있는 곳이었거나 혹은 형상이 없는 곳이었던가를 기억하며, 자신의 것도 스스로 알고 또한 중생의 것도 아시나니 그러므로 힘이라 한다.
- 028_0740_a_19L佛如是知過去業果,名宿命智力。又佛應知衆生先所行道,知已說法,故於宿命說有智力。又佛念過去一切生處,若在色處、若無色處,自知己身亦知衆生,故名爲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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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0_b_02L부처님의 천안지(天眼智)는 미래 세상의 세 가지 세계가 서로 이어갈 것을 보고 세 가지 업과 네 가지 받는 법을 알며, 또는 수기(授記)하는 말씀도 하여 뚫어지게 아시는 일이 걸림이 없기 때문에 힘이라 한다.
샘이 다한 힘(漏盡力)으로는 서로 이어가지 않는 법을 아신다. 중생은 목숨이 끝나면 혹은 계속되기도 하고 혹은 계속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힘은 모두가 온갖 중생이 이를 처소의 길[一切衆生至處道]을 아는 힘이 되며 통틀어서 열반의 길[涅槃道]이라 말한다. - 028_0740_a_24L佛天眼智,見未來世三有相續,知三種業、四種受法,亦爲記說,了知無㝵故名爲力。以漏盡力,知不相續衆生命終,或有相續、或不相續。是力皆爲一切衆生至處道力,摠說涅槃道。
- 이제 이 힘 가운데 널리 분별하여 부처님의 인(因)의 때 묻고 깨끗함을 말하기 때문에 열 가지 힘이 있다. 아홉 가지 힘을 얻으셨기 때문에 지혜가 성취되고, 열째 번의 힘을 얻으셨기 때문에 지혜가 성취되고, 열째 번의 힘을 얻으셨기 때문에 번뇌의 끊음을 성취한다. 지혜의 이룸과 번뇌의 끊음이 구족하기 때문에 세존이라 하고 하늘과 사람이 공경하는 바이다.
- 028_0740_b_06L今此力中廣分別說,佛因垢淨故有十力,得九力故則智成就,得第十力故則斷成就。智斷具足,故名世尊,天人所敬。
- 3) 사무외품(四無畏品)
- 028_0740_b_09L四無畏品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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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네 가지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예배 드려야 한다. 네 가지 두려움이 없다[無畏]함은 여래는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와 온갖 번뇌가 없음[一切漏盡]을 얻어서, 도를 장애[障道]하는 것과 고통을 끊는[盡苦] 길을 연설하셨다.
이 네 가지 법 중에서 “만일 누가 와서 법답게 문의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두려워할 것이 없노라” 하셨다. - 028_0740_b_10L又佛成就四無所畏,是故應禮。四無畏者,如來得一切智、一切漏盡,能說障道及盡苦道。此四法中,若有人來如法難問,我無所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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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의 두려움이 없음은 온갖 것을 아는 지혜로서 역시 아홉 가지 힘에 해당하고, 두 번째를 이름하여 끊음이라 하나니 곧 열 번째의 힘에 해당하며 지혜와 끊음이 구족하기 때문에 여래는 스스로 자신의 공덕이 구비하고 나중의 두 가지 두려움 없음은 남으로 하여금 구비하게 한다.
부처님이 말씀한 장애라 함은 사실 법을 장애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착하지 못함이거나 혹은 착함에 샘이 있거나[有漏] 하여 해탈을 장애하기 때문에 장애의 법이라 하며, 이 장애를 여의게 되기 때문에 벗어나는 도[出道]라 말한다. - 028_0740_b_14L初無畏者是一切智,亦是九力。第二名斷,卽第十力。智斷具足故,如來自己功德具足。後二無畏,令他具足。佛說障㝵是實障法,所謂不善或善有漏,障解脫故名障㝵法,爲離障㝵故說出道。
- 【문】그대가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힘이 곧 두려움 없는 것이라 하면 힘과 두려움 없음과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 028_0740_b_19L問曰:如汝此中所說諸力卽是無畏,今力與無畏有何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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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0_c_02L【답】지혜를 힘이라 하고, 이 힘으로써 감수(堪受)하기 때문에 감수하는 바가 있어도 두려움 없음이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부끄러워(慚愧)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감수하는 바가 많지마는 여래의 감수함은 지혜로부터 생긴다.
또 지혜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므로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비록 지혜가 있어도 오히려 비겁하고 연약하기 때문이다.
또 지혜를 힘이라 말하며 능히 설명할 수 있는 그 지혜를 두려워할 것 없음이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비록 안다 하더라도 설명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028_0740_b_21L答曰:智名爲力。以此力故有所堪受,是名無畏。有愚癡人無慚愧故多所堪受,如來堪受從智慧生。又以智故不畏他人,故名無畏。所以者何?或雖有智猶怯弱故。又智名爲力,能說是智名無所畏。所以者何?有人雖知,不善說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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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능히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을 두려움 없음이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알기는 하면서도 남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지혜가 한량없기 때문에 힘이라 하고 변재가 한량없기 때문에 두려움 없다는 것이다. 또 말씀에 이치가 있기 때문에 힘이라 하고, 말씀하는 것이 자유롭기 때문에 두려움 없다는 것이다.
또 인(因)을 힘이라 하고, 과(果)를 두려움 없음이라 한다. 지혜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사람은 날 적부터 겁이 많고 연약하다가도 뒤에 조그마한 지혜를 얻으면 곧 두려움이 없어진다. 항차 세존은 오랜 전생으로부터 그 마음이 광대(廣大)하시고 그 위에 일체지를 얻으셨거늘 두려움이 있겠는가. - 028_0740_c_04L又能勝他人名爲無畏。所以者何?有人雖知,不勝他故。又智無盡故名爲力,辯才無盡故名無畏。復次說有義趣故名爲力,所說自在名曰無畏。又因名爲力,果名無畏,以從智中生無畏故。又人從生怯弱,後得少智便能無畏;何況世尊,從久遠來其心廣大,又得一切智,而當有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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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나 사람이 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인데, 부처님은 어느 한 사람에게 대하여도 이기지 못할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바가 없다.
또 논사(論師)라면 언사(言辭)도 좋아야 하고, 취지[義趣]도 좋아야만 두려울 것이 없는 법인데, 부처님이 곧 그 어른이시다. 온갖 것을 아는 지혜를 얻으셨기 때문에 말씀의 취지가 좋고 걸림없는 변재(辯才)를 얻으셨기 때문에 언사에 능하시다.
또 누구든지 모든 일에 대하여 힘이 부족하면 두려움이 생기는 법인데 여래는 일체지를 얻으셨기 때문에 모든 일에 대하여 힘있지 아니한 것이 없다. 온갖 경서와 온갖 논의(論議)에 모두 다 통달하여 명확하게 문답하신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 028_0740_c_12L復次有人,不能勝他故有所畏;無有一人佛不勝者,故無所畏。又有論者,善於言辭亦善義趣則無所畏,佛卽是也,得一切智故善於義趣,得無㝵辯故善言辭。或復有人於事無力而生怖畏。如來逮得一切智故,於一切事無不有力。一切經書、一切論議,皆悉通達明了問答,故無所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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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1_a_02L혹은 집안이나 혹은 성품 혹은 몸(色), 혹은 계(戒)와 다문지(多聞智) 등에 모자람이 있기 때문에 조롱하는 말을 듣지만 여래는 이런 일에 대하여 도무지 모자라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또 법다운 논리는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인데, 부처님이 바로 그 어른이시다.
아수라바라문(阿叔羅婆羅門)이 세존께 여쭈었다. “법다운 논리는 이기기 어렵고, 무너뜨리기 어렵나이다. 도에 순종하는 논리[順道論者]와 생각하는 논사[思量論者]와 인을 세우는 논리[有因論者]도 다 그러하나이다” 함과 같다. - 028_0740_c_20L復次人有短闕,若家若性、若色若戒、多聞智等,故致譏論。如來於此都無所闕,是故無畏。又如法論者不可破壞,佛卽是也。如阿叔羅婆羅門語世尊言:如法論者難勝難壞,順道論者、思量論者、有因論者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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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람이 네 가지 논법(論法)을 성취하면 역시 이기기 어렵고 무너뜨리기 어렵다. 첫째는 바른 주견[正執]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인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因非因)를 느껴야 하고, 셋째는 비유를 잘 알아야 하고, 넷째는 구비하셨으므로 모든 하늘과 인간으로서 이길 만한 이가 없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또 훌륭한 스승에게 묻지 않고 논의(論議)하면 실패당하기가 쉽다. 여래는 오랜 옛적부터 정광여래(錠光如來) 등 한량없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논의하는 방법을 닦아 익혔기 때문에 무너뜨릴 수가 없다. - 028_0741_a_03L復次若人成就四種論法亦難勝難壞,一者住於正報、二者受因非因、三者能受譬喩、四者住論法中。佛具此四,諸天世人無能勝者,故無所畏。復次不諮善師而論議者則易可壞。如來昔曾於錠光等無量佛所修集論法,故不可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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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두 가지 바른 이치를 말씀하셨다. 이른바 세속의 진리(世諦)와 으뜸가는 진리(第一義諦)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사람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범부는 지혜가 없으므로 함께 다투지도 못한다.
또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말다툼을 하지 아니하나니, 세상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부처님도 역시 있다고 말씀하고 세간에서 없다고 말하면 부처님도 역시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말다툼이 없고, 말다툼이 없기 때문에 무너뜨릴 수도 없다. - 028_0741_a_09L復次佛說二諦,所謂世諦、第一義諦,是故智者所不能壞。凡夫無智亦不與諍。又佛不與世閒共諍,世間謂有、佛亦說有,世閒謂無、佛亦說無,是故無諍,以其無諍故不可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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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논의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실한 논의요, 둘째는 아첨하는 논의이다. 여러 외도들은 아첨하는 논의가 많되 부처님은 진실한 논의가 되기 때문에 무너뜨릴 수 없다.
또 불법 중에는 행이 바르고 깨끗하기 때문에 논의하는 것도 깨끗하며, 행이 청정한 것을 고통 끊는 원인이라 한다. 모든 외도의 논의에는 비슷(相似)한 인은 있으나 바른 인(正因)이 없으므로 이길 수가 없다.
또 부처님의 경전은 청정하여 말씀하신 이치가 실지의 모양에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외도의 그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 028_0741_a_14L復次論有二種,一者眞實論、二諂曲論。諸外道等多諂曲論,佛眞實論故不可壞。又佛法中正行淨故論議亦淨,正行淸淨名盡苦因。諸外道論有相似因,無正因故不能得勝。又佛經淸淨,所說義趣不違實相,不同外道。
- 또 부처님이 말씀하신 도법은 다만 남의 말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요, 다 마음에서 스스로 안다. 경전의 말씀과 같다. 즉 부처님이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다만 나의 말만 믿지 말고 마땅히 스스로가 알고 보아서 자신이 증득하여 실천하여라”고 하셨다. 또 “모든 아첨하지 않는 자들이여, 너희는 오너라. 만일 내가 새벽에 너희를 위하여 법을 일러주면 저녁 무렵에 도를 얻도록 할 것이오, 저녁에 법을 일러주면 새벽에 도를 얻도록 하리라”고 하셨다.
- 028_0741_a_20L又佛所說道不但隨語,皆心自知,如經中說佛告比丘:汝等莫但信我語也,當自知見,自身證行。又言:汝來,諸無諂者,若我晨朝爲汝說法令夕得道,夕爲說法令晨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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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1_b_02L또 다시 만일 누구라도 법에 깨닫지 못한 데가 있거든 얼른 그치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설사 말을 하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나 부처님은 통달하지 못함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또 여래는 모든 걸림이 없는 지혜(無礙智)를 얻어서 온갖 법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 또 작은 지혜로는 큰 사람의 아는 것을 알지 못하나 큰 것으로는 작은 것을 안다. 부처님은 중생 중에서 가장 거룩하시므로 넉넉히 작은 논의도 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 - 028_0741_b_02L復次若人於法有所不達便止不言,設有所言亦必可壞。佛無不達故能無畏。又如來得諸無㝵智,於一切法無不通達,故無所畏。又小智不知大人所知,大能知小,佛於衆生最爲大故,能知小論,故無所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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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든 외도의 논의는 자기의 소견을 의지해서 일으키나 부처님은 그러한 소견이 모든 인연으로부터 생겼음을 알고 쌓임(集)을 알고 사라짐(滅)을 알고 맛(味)을 알고 허물(過)을 알고 벗어날(出) 줄을 아신다.
모든 외도들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논쟁을 일으키나 부처님은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온갖 법을 아시기 때문에 능히 모든 논리를 무너뜨릴지언정 모든 논리에 패배를 당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러한 일들을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畏]의 차별되는 이치라 한다. - 028_0741_b_07L又諸外道論因所見起,佛知是見從衆緣生,知集知滅、知味知過、知出,諸外道等不能盡知故生諍論。佛以一切種智知一切法故,能破壞一切諸論,不爲一切諸論所壞,故無所畏。如是等緣名力、無畏差別義也。
- 【문】부처님은 모든 법에 대하여 한 가지도 두려워할 일이 없으시다면, 무엇 때문에 네 가지 두려움 없는 것만을 말하는가.
- 028_0741_b_13L問曰:佛於諸法悉無所畏,何故但說四無畏耶?
- 【답】네 가지를 말하면 온갖 두려움 없음을 다 말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앞에 두 가지 두려움 없음은 스스로의 지혜와 번뇌 끊음을 말한 것이요 뒤에 두 가지 두려움 없음은 남을 위하여 도를 장애하는 법을 말하고 괴로움이 다하는 도법을 말한 것으로서 역시 지혜와 번뇌 끊음이라 하리니 스승과 제자가 다 같이 지혜와 번뇌 끊음을 구비하였으므로 통틀어 온갖 두려움 없음을 설명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 028_0741_b_15L答曰:說四則爲摠說一切無畏。所以者何?前二無畏自說智斷,後二無畏爲他說障道法、說盡苦道,亦名智斷。師及弟子智斷具足故,名摠說一切無畏。
- 【문】중생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은 일체지인(一切智人)이 아니다”라고 의심하는가.
- 028_0741_b_19L問曰:衆生何故疑佛非一切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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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부처님의 말씀한 바는 혹은 일체지인이 아닌 듯한 일도 있다. 마치 부처님이 묻기를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말씀하시는 그런 일들과 같다.
또 경전의 말씀과 같다. 즉 도시거나 읍이거나 부락에 당도하여 그 성명을 물으면 부처님은 “나는 일체지인이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이런 경전을 듣는 사람이 “부처님은 일체지인이 아니다”라고 의심한다. - 028_0741_b_20L答曰:佛所言說或有似非一切智人,如佛問言:汝從何來?有如是等。又如經中說:有人若至城邑聚落問其名字,我不說是一切智人。聞斯經者,疑佛非是一切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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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1_c_02L또 부처님의 말씀에는 탐착이 있는 듯도 하다. 경전의 말씀과 같다. 즉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잘 오너라, 비구야. 너는 네 몸에 큰 이익을 얻기 위하여 나의 법에 순종하면, 나는 기쁘게 여기리라” 하셨고, 진심을 내는 듯한 말씀도 있었으니 “조달(調達)아, 너는 죽은 사람이다. 침이나 먹을 사람이로구나” 하심과 같다. 또 난체[慢]한 듯한 말씀도 계셨으니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람 중의 사자[人中師子]이다.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였으므로 대중 가운데서 사자의 부르짖음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또 고집[見]하는 듯한 말씀도 계셨으니, “나의 법을 잘 간직하되, 기름 발우[油鉢] 받들듯 하라”고 하셨다.
또 조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대중을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揵連)에게도 허락한 일이 없거든, 더군다나 너에게 허락하겠느냐”고 하셨다.
지식이 적은 사람이 이런 말들을 들으면 이내 “여래는 모든 번뇌가 아직도 다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 028_0741_b_24L又佛所說似有貪著,如經中說佛言:善來比丘!汝於此身爲得大利,隨順我法我則歡喜。有似瞋語,如語調達:汝爲死人,是食唾人。又似慢語,自言:我是人中師子,成就十力、四無所畏,於大衆中能師子吼。又似見語,言:善持我法如擎油鉢。又語調達:我不以衆與舍利弗、目揵連等,況當與汝。有小智人聞斯等言,便謂如來諸漏未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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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이 “모든 욕심은 도를 장애하는 법이다”라고 설명하시는데, 어떤 사람은 욕망을 받으면서도 또한 도를 얻는 이가 있고, 또 비니(毘尼) 중에서 말씀한 차법(遮法)을 어떤 사람은 깨뜨리면서도 도를 얻게 되므로 지혜가 적은 사람은 “부처님은 장애되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의심한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닦으면서도 번뇌가 있으면 지혜가 적은 사람은 의심을 내되 “성인의 도를 닦아도 번뇌를 끊지 못한다. 이미 번뇌를 끊지 못하거니, 어떻게 고통을 여윌 수 있겠는가”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이 네 가지 법에서 두려움 없음을 말씀하셨다. - 028_0741_c_10L又佛說諸欲是障道法,有人雖受亦能得道。又比尼中所說遮法,有人毀壞亦能得道,小智疑佛不知障法。有人修道亦有結使,小智生疑,謂修聖道不能盡結,旣不盡結何能離苦?是故如來於此四法說無所畏。
- 【문】지금까지 의심하던 것을 장차 어떻게 끊어야 할 것인가.
- 028_0741_c_16L問曰:如向所疑當云何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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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부처님은 세속에 따라서 말씀하셨다. 세간에서도 알면서 묻는 이가 있으면 그를 허물하지 않는다.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세간에 계시므로 세속에 따라 물으신다. 또 세간에서도 마음에는 탐착이 없으면서 말로는 탐착이 있는 듯이 말하는 이가 있다. 그와 같은 일들은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그런 말씀을 나타내신다.
만일 누가 “욕심은 장애되는 법이 아니다”라 하면, 부처님은 “욕심은 실로 장애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욕심이 마음에 있으면 도를 닦지 못한다. 요컨대 먼저 욕심을 제거한 연후에야 도를 얻게 된다.” - 028_0741_c_17L答曰:佛隨俗語,世閒亦有知而問者,不以爲過。佛亦如是,在世閒故隨俗而問。又世閒亦有心無貪著而言似有貪有如是等,佛亦如是,利衆生故現有是言。若言欲非障法,如來說欲實是障法,若欲在心則無修道,要先除欲然後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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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2_a_02L만일 비록 차법을 범하여도 도를 얻는다 하면 진실한 차법(實遮法)을 범하면 반드시 도를 얻을 수 없으며, 만일 실죄(實罪)가 아니면 중대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도리어 허락하셨으니 차법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다.
만일 도를 닦아도 역시 번뇌가 있다 하면 성인의 도[聖道]는 능히 온갖 번뇌를 부수는 것인데 아직 구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 부수지 못한 것이니, 마치 타락(酥)의 성품은 능히 열병을 낫게 하지만 적게 먹었기 때문에 병이 다 낫지 않는 것과 같다. 도를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허물될 것이 없다.
여래는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1_c_23L若言雖犯遮法猶得道者,破實遮法必無得道,若非實罪,以重緣故,佛還自聽,非壞遮法。若言修道亦有結者,聖道能破一切結使,未具足故不能盡破。譬如酥性能破熱病,以服少故不能消盡。修道亦爾,是故無咎。如來成就四無所畏,是故應禮
- 4) 십호품(十號品)
- 028_0742_a_07L十號品第四
- 또 경전 중에서 여래의 열 가지 공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여래(如來)와 응공(應供)과 정변지(正遍知)와 명행족(明行足)과 선서(善逝)와 세간해(世間解)와 무상사(無上士)와 조어(調御)와 천인사(天人師)와 불세존(佛世尊)이다.
- 028_0742_a_08L復次,經中說如來等十種功德,謂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調御、天人師、佛、世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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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라 함은 여실(如實)한 도를 타고 와서 정각(正覺)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여래라 한다. 말씀이면 말씀마다 다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물으시되 “여래의 말씀한 바에 자못 두 가지가 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하심과 같다. 그러므로 여설(如說)이라 한다.
또 여래는 득도(得道)하신 밤부터 열반하신 밤까지 그 동안에 하신 말씀마다 다 진실하여 파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설이라 한다.
또 일체종지로 앞뒤의 끝을 아신 연후에야 말씀하기 때문에 말씀마다 다 진실하다. - 028_0742_a_11L如來者,乘如實道來成正覺,故曰如來。有所言說皆實不虛,如佛問阿難:如來所言頗有二不?不也。世尊!故名如說。復次如來從得道夜至涅槃夜,於其中閒所說皆實,不可破壞,故名如說。又以一切種智知前後際,然後說故,所言皆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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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든 부처님 세존은 기억하는 힘이 견고하여 잊혀지는 일이 없으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혹시 추측으로 말하고, 경서에 따라서 말하고 혹은 현재에 있는 것도 잘 보지 못하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 사람의 말하는 것은 맞을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다.
경전 중의 말씀에 “추측으로 아는 사람의 말은 혹 맞기도 하고 혹 틀리기도 한다”라고 함과 같다. 부처님은 모든 법에 대하여 현재에 아시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말씀마다 누구나 무너뜨릴 수 없는지라 진실한 말씀을 하는 이[實語者]라 한다.
또 부처님의 말씀은 다 진실한 이치만을 말씀하시므로 다른 사람의 진실하거나 진실치 못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무너뜨릴 수 없다. - 028_0742_a_18L又諸佛世尊憶念堅固無所忘失,有人或以比智而有所說、有隨經書、或有現在不能善見而有所說,是人所說若得若失。如經中說:比智者言或得或失。佛於諸法現知已說,是故所言皆不可壞。名實說者,又佛所說皆說實義,不如餘人有實不實,故不可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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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2_b_02L또 말씀마다 때에 맞추어 말씀하셨다. 경전 중에서 말씀한 “부처님은 중생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마음으로 즐겨함을 알아서 곧 도법을 말씀하신다”고 하심과 같다. 그러므로 ‘여설’이라 한다.
또 말씀해 주어야 할 사람이면 곧 그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셨으니, 긴숙가경(緊叔伽經)의 말씀과 같다.
또 말슴해 주어야할 법이면 곧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간략하고 자세한 음(陰)ㆍ입(入)ㆍ문(門)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신 것이 진실치 않은 것이 없다. - 028_0742_b_02L又所言應時,如經中說佛知衆生心喜心樂乃說道法,故名如說。又應爲說者卽爲說之,如『緊叔伽經』中說。又所應說法而爲說之,所謂若略若廣陰入門等,是故所說無非眞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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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가지 말하는 법이 있다. 첫째는 세속의 이치에 의지하는 것이요, 둘째는 으뜸가는 진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여래는 이 두 가지 진리에 의지하여 말씀하기 때문에 말씀마다 다 진실하다.
또 부처님은 세속의 이치 그것을 으뜸가는 진리라 말씀하지도 않고 으뜸가는 진리 그것을 세속의 이치라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므로 두 가지 말씀이 다 엇갈리지 아니한다.
또 여래는 막고[遮] 트는[開]데에 서로 엇갈리지 않는다. 하는 일에 따라서 막아야 할 일이면 그 일에 대하여 트지 않고 하는 일에 따라서 터야 할 일이면 그 일에 대하여는 막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말씀마다 서로 엇갈리지 않으셨다. - 028_0742_b_07L復次有二種語法,一依世諦、二依第一義諦。如來依此二諦說故所言皆實。又佛不說世諦是第一義諦、不說第一義諦是世諦、是故二言皆不相違。復次,如來若遮若開亦不相違。隨所爲事遮,不卽此事開;隨所爲事開,不卽此事遮,是故所言皆不相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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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 가지 말하는 법이 있다. 첫째는 고집[見]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요, 둘째는 난체[慢]하는 데로부터 나오는 것이요, 셋째는 붙인 이름[假名]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처님은 두 가지 말은 아주 없고, 세 번째의 말에도 청정하여 물들지[染]아니 하셨다.
또 네 가지 말하는 법이 있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이니 부처님은 이 네 가지에 대해서도 말씀마다 청정하여 마음에 탐착이 없다.
또 다섯 가지 말하는 법이 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와 함이 없음[無爲]과 말할 수 없음[不可說]이다. 이 다섯 가지 법에 대하여 부처님은 모두 통달하고 환히 아신 다음에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설’이라 하며, 여설이기 때문에 여래라 한다. - 028_0742_b_13L又有三種語法,一從見生、二從慢生、三從假名生。佛無二種語,於第三語淸淨無染。又有四種語法,見、聞、覺、知法。佛於此四,所言淸淨,心無貪著。又有五種語法,過去、未來、現在無爲及不可說。是五種法,佛悉通達,明了知已然後乃說,故名如說。能如說故,名爲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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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다하였기 때문에 이 법을 얻으며, 탐심과 진심과 치심 등은 그것이 거짓말의 근본인데 이 모든 번뇌를 끊으셨기 때문에 응공이라 한다.
또 여래는 응공의 법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번뇌를 끊는 법인데, 바른 지혜로부터 생긴다. 무상 등의 지혜로 바르게 법을 관찰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끊어지며, 그러므로 바른 지혜를 의지하여 응공의 법이 생긴다. - 028_0742_b_21L以煩惱盡故得此法,貪恚癡等是妄語根本,滅此諸結,是故應供。復次,如來說應供法,是滅結法由正智生,以無常等慧正觀法故諸煩惱盡,故因正智生應供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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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2_c_02L이 바른 지혜의 법은 명행(明行)으로부터 생긴다. 과거와 미래의 계속되지 않는 곳까지 잘 통달했기 때문에 바른 지혜(正智)라는 이름을 얻고, 보시 등의 바라밀을 다 실행하기 때문에 모든 지혜(明)와 행(行)이 만족(足)하다.
다른 사람들도 끝없는(無始) 생사 중에서 보시 등의 법을 시행하였으나 바른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선서(善逝)라 말하지 못한다. 부처님은 바른 도[正道]로 보시 등의 행위를 시행하였기 때문에 선서라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얻으면 여래는 자신의 공덕이 구족하여져서 바른 지혜를 얻기 때문에 세간의 온갖 마음의 생각을 알며, 생각한 바를 안 다음에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시기 때문에 무상(無上)이라 한다. - 028_0742_c_02L是正智法從明行生,前際後際及不相續善通達故,得名正智。盡行施等波羅蜜故,諸明行足;餘人亦於無始生死行施等法,無正行故,不名善逝。佛有正道行施等行,故名善逝。得此五法,如來自已功德具足。得正智故,能知世閒一切心念,知所念已而爲說法,故名無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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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調御)라 함은 조복(調伏)시켜야 할 사람이면 모조리 조복시키며, 이미 조복된 사람은 영구히 타락하지 않게 하신다.
조복되는 이란 하늘과 사람이 그들이니, 그러므로 천인사(天人師)라 한다. 혹 어떤 사람이 의심을 내기를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늘을 교화할 수 있을까” 하기도 하므로 그 때문에 “나는 바로 천인사이다”라고 말씀하신다. - 028_0742_c_10L調御所當調者無不調伏,已調伏者永不敗壞。所調伏者天人是也,故名天人師。或有生疑:云何?以生人而能化天,故言我是天人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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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라 함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법인 함이 있음[有爲]과 함이 없음(無爲)과 다함이 있음[有盡]과 다함이 없음[無盡]과 머트러운 것[麤]과 세밀한 것[細]이거나 간에 이 온갖 법을 도량에 앉았을 때에 무명의 졸음[睡]을 없애고 일체지를 얻어서 환하게 크게 깨쳤으므로 깨달은 이[覺者]라 부른다.
이와 같이 아홉 가지 공덕을 구족하여 3세와 십방의 세계 중에 높기 때문에 세존이라 부른다.
부처님은 열 가지 이름을 구족하기 때문에 자신도 두루 갖추고 남도 또한 두루 갖추게 하여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2_c_13L佛者,若過去未來現在諸法,有爲無爲、有盡無盡、若麤若細等一切諸法,坐道場時除無明睡,得一切智朗然大悟,故名覺者。如是九種功德具足,於三世十方世界中尊,故名世尊。佛十號具足故,自身具足、他亦具足,自利利人,是故應禮。
- 5) 삼불호품(三不護品)
- 028_0742_c_20L三不護品第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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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3_a_02L부처님의 몸과 입과 뜻의 업(業)은 단속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깨끗하지 못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없어 남으로 하여금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또 모든 사람들은 혹은 무기(無記)가 있더라도 깨끗하지 못한 몸과 입과 뜻의 업과 같아서 슬기로운 이에게 나무람을 듣지마는 부처님은 그러한 일도 없다. 왜냐하면 여래의 온갖 몸과 입과 뜻의 업은 다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허망한 생각(妄念)만이 있고 지혜가 적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업이 없다.
또 세간 사람은 갑자기 그릇된 말을 하는 수도 있으나 부처님은 그러한 일이 없다.
또 부처님은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를 잘 닦으며, 그러한 법들을 잘 닦기 때문에 온갖 착하지 못한 또는 착하지 못한 듯한 업은 모두 다 없어졌다. - 028_0742_c_21L佛身口意業不護。所以者何?佛無不淨身口意業欲令他人不見不知。又諸餘人或有無記,似如不淨身口意業,智者所呵。佛亦無也。所以者何?如來一切身口意業,皆由智慧正憶念起,若諸妄念少智之人無如是業。又世間人或卒誤語,佛無此等。又佛善修身戒心慧如是等法,以善修故,一切不善及似不善業皆悉除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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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존께서는 오랜 전생부터 착한 법을 닦아 행하셨고 금생에만 닦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업의 성품은 깨끗하여 단속할 것이 없다.
또 부처님이 항상 계행을 즐기신 것은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들을 무서워해서가 아니다.
또 부처님의 온갖 몸과 입과 뜻의 업은 모두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 착하지 못한 것이 없다. 때문에 단속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며, 깨끗하여 단속하지 않는 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예배드려야 한다.
또 부처님은 세 가지 염처[三念處]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3_a_07L復次世尊從久遠來修行善法,不適今也,是故諸業性淨不護。又佛常樂戒行,不以怖畏墮惡道等。又佛一切身口意業,皆爲利人故無不善,以無不善故不須護以淨,不護業是故應禮。又佛成就三念處故,所以應禮。
- 만일 설법하실 때에는 듣는 이가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더라도 기쁘게 여기지도 않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더라도 근심하지 않으며, 항상 평등한 마음을 행하신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탐심과 진심의 습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 028_0743_a_13L若說法時,聽者一心不以爲喜,若不一心不以爲憂,常行捨心。所以者何?佛貪恚習無有餘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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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든 법이 필경에는 ≺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근심할 것도 없고 기뻐할 것도 없다.
또 부처님은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잘 쌓았기 때문에 착하고 착하지 못한데 대하여 마음에 근심도 없고 기쁨도 없이 평등하게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
또 부처님은 중생 각자의 성품을 깊이 알기 때문에 착한 마음으로 듣더라도 근심하지 않으며, 성품이 그렇기 때문에 항상 평등한 마음을 갖는다.
또 부처님의 마음은 굳건하기가 마치 대지(大地)가 무거운 것을 들어낸다 하여 더 높아지지도 않고 무거운 것을 올려놓는다 하여 더 내려앉지도 아니함과 같거니와 그 밖의 범부의 그 마음은 마치 저울이 조금 더 보태면 바로 내려가고 조금 덜면 바로 올라감과 같다. - 028_0743_a_16L又知諸法畢竟空故,無憂無喜。又佛善集大悲心故,於善不善,心無憂喜等起大悲。又佛深知衆生各各性故,若善心聽不以爲喜,不善心聽不以爲憂,以性爾故常行捨心。又佛心堅固猶如大地,去重不高,若置重物亦復不下;餘凡夫人其心如稱,少增而下、少減而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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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3_b_02L또 부처님 세존을 대비자(大悲者)라 부른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이 다 같이 당연히 예배하고 공경하여야 한다.
또 깊은 선정의 즐거움을 버리고 남을 위하여 설법하시며 그 밖의 사람의 비심(悲心)은 이룩되는 바가 없되 세존의 대비심(大悲心)은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에 결과가 있다고 한다.
또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서야 더없는 도를 이루는 것이요, 다시 다른 반연이 없다. - 028_0743_a_23L又佛世尊名大悲者,是故天人皆應敬禮。又捨深禪定,樂爲人說法。餘人悲心無所成辦,世尊大悲能濟衆生,故名有果。又以大悲成無上道,更無餘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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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나라는 마음이 없다.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아는 것[少欲知足]으로 가장 으뜸을 삼으며 크게 불쌍히 여김 때문에 자기 자신을 칭찬한다.
또 부처님은 성품이 부드럽고 평화롭지마는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아주 간절한 말씀을 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큰 방편을 일으키어 갖은 고통을 겪으신다.
또 부처님은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세간에 머무르면서 마치 잠깐 동안도 견딜 수 없는 뜨거운 탄환[熱彈丸]과 같은 다섯 가지 쌓임의 몸을 받으셨다.
또 부처님 세존은 평등한 마음을 잘 닦으셨다. 그러나 그 평등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쓰셨으므로 존경을 받게 된다. - 028_0743_b_04L復次佛無我心,少欲知足最爲第一,以大悲故自歎己身。又佛性柔和,以大悲故有苦切言,起大方便受諸勤苦,爲度衆生。又佛以大悲度衆生故,住於世閒受五陰身,如熱鐵丸於須臾頃不可堪忍。又佛世尊善修捨心,捨此捨心常行大悲,故可尊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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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착한 사람이라 하지만, 착한 중에도 착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큰 이익을 얻고, 남도 이롭게 하시기 때문이며, 자신이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라 한다.
또 부처님은 중생의 참 선지식[眞善知識]이다. 경전 중의 말씀에 “나는 중생의 참 선지식이며,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며 이익을 주는 사람이라”고 하심과 같다.
또 부처님 세존은 정진 등의 모든 공덕의 무더기이다. 마치 화리(和利)가 백가지 글귀[句]로 부처님을 칭찬함과 같다. 이러한 공덕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3_b_11L又佛爲善人善中之善。所以者何?自得大利亦利他人,自利利人故名善人。又佛爲衆生眞善知識,如經中說:我是衆生眞善知識,是憐愍者、利益者等。又佛世尊有精進等諸功德聚,如和利以百句讚佛。有此功德,是故應禮。
- 또 부처님은 스스로 공덕을 말씀하셨다. 증일아함경의여래품[增一阿含如來品] 중에서 스스로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람 중의 사자이며, 사람 중의 꽃이며, 사람 중의 코끼리며, 사문(沙門) 중에 으뜸가는 사문이며, 바라문 중에도 역시 으뜸이며, 여러 성인 중의 왕[衆聖中王]이다. 행동에 실수가 없고, 괴롭고 즐거움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바로 내 몸이니라”고 하셨음을 알 것이다.
- 028_0743_b_17L又佛自說功德,如『增一阿含如來品』中自說:我是人中師子、人華人象,於沙門中第一沙門,婆羅門中亦是第一,衆聖中王。行無錯謬,不隨苦樂者,我身是也。
- 【문】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자신이 자신을 칭찬하셨을까.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다.
- 028_0743_b_22L問曰:佛以何故自讚其身?自讚身者是愚人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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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3_c_02L【답】세존은 명예와 이익을 구해서가 아니다. 다만 남을 위하여 스스로 그의 몸을 칭찬하셨을 뿐이다. 또 부처님은 나라는 마음이 없다.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칭찬하시므로 허물이 없다.
또, 인연 때문에 스스로 칭찬함이 조금은 있으나 부처님의 공덕의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 중에 떨어지지 않나니,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 028_0743_b_23L答曰:世尊不求名利,但爲他故自歎己身。又佛無我心,爲利人故自歎無咎。又以因緣少多自讚,於佛功德不能說盡,是故不墮愚人相中,不自高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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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청정경(淸淨經) 중에서 사리불이 부처님 앞에 서서 부처님의 공덕을 칭찬함과 같다. 그러므로 예배드려야 한다.
또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아는 등의 한량없는 공덕이 다 부처님의 몸에 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온갖 공덕을 다 쌓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의 인연을 갖추었으므로 당연히 부처님께 공경하고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3_c_04L又如『淸淨經』中,舍利弗住於佛前讚佛功德,是故應禮。又少欲知足等無量功德皆在佛身。所以者何?佛集一切諸功德故。以是等緣應敬禮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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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보론(法寶論)
6) 삼선품(三善品) - 028_0743_c_08L法寶論初三善品第六
- 【문】그대가 “법보(法寶)에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지만, 어떠한 공덕이 이기 때문에 예배드려야 하는가.
- 028_0743_c_09L問曰:汝言應禮法,以何功德故應禮耶?
- 【답】부처님이 스스로가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연설한 법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진실하다. 이치가 진실하고 말도 진실하고 뛰어난 법이 구족하며 청정하고 부드러워서 맑은 행(梵行)에 순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 028_0743_c_11L答曰:佛自讚言:我所說法,初中後善,義善、語善。獨法具足,淸淨調柔、隨順梵行。
- 처음ㆍ중간ㆍ끝이 다 진실하다 함은 부처님의 법은 때마다 진실하지 아니함이 없음이다. 소년 시절ㆍ장년 시절ㆍ노년 시절의 세 가지 시절도 다 진실하며, 들어올 때와 다닐 때와 나갈 때에도 또한 진실하다는 것이다. 또 처음에는 죄악을 끊고 중간에는 복 받는 과보를 버리고 끝에 가서는 온갖 것을 다 놓아버린다. 이런 것을 세 가지 진실한 일이라 한다.
- 028_0743_c_13L初中後善者,佛法無時不善,於少壯老三時皆善,入時行時出時亦善。又初止惡、中捨福報、後一切捨,是名三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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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세 때에 항상 바른 법(正法)을 연설하셨다. 다른 외도(外道)들이 법답지 못한 말을 섞어서 말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또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까지 항상 슬기로운 이들의 좋아하고 즐겨하는 대상이 되셨다.
또 세 때에 온갖 법문이 매우 깊어서 다른 경서가 처음에는 머트럽고 중간에는 세밀하다가 끝맺음에는 아주 조잡한 것과는 같지 않다. 이러한 인연들 때문에 세 가지가 진실하다고 말한다. - 028_0743_c_16L又佛三時常說正法,不雜非法如餘外道。又初中後時常爲智者之所愛樂。又於三時一切甚深,不如餘經初麤、中細、後則微末。以是等緣故名三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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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 진실하다는 것은 불법의 이치에는 깊은 이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금생의 이익과 후생의 이익과, 또는 출세(出世)하는 도의 이익을 다 얻으므로 외도의 경서에서 천안(天眼)만을 더 얻고자 원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말도 진실하다는 것은 지방 풍속의 말을 따라서 능히 바른 진리를 보여 주므로 말도 진실하다고 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결과는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말을 하는 데는 능히 이치를 가리어야 하나니, 이것을 말도 진실하다고 한다. - 028_0743_c_20L義善者,佛法義有深利益,得今世利及後世利、出世道利,不如外典願增天眼。語善者,隨方俗語能示正義,故名語善。所以者何?言說之果所謂義也。是故諸所言,說能辯義理,是名語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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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4_a_02L또 불법은 말로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귀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지방의 사투리를 따라서 도를 얻도록 하나니, 말도 진실하다고 한다. 외도의 경서에서는 말만 귀하게 여기는데 만일 말을 실수하거나 음성을 잃으면 말하는 그 사람이 죄과를 당하게 되는 일과는 같지 아니하다.
또는 참 이치[眞諦]를 잘 설명하기 때문에 이치가 진실하다 하고, 세속 이치[世諦]를 잘 설명하기 때문에 말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 028_0744_a_02L復次佛法貴如說行、非但言說,是故隨方俗語能令得道,名爲語善;不如外典但貴語言,若失語言、若失音聲辭主得罪。復次善說眞諦故名義善,善說世諦故名語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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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법[獨法]이라 함은 부처님은 바른 법[正法]만을 말씀하고 실없는 말씀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시며, 또 옳은 법과 그른 법을 섞어서 말씀하지 아니한다.
또 뛰어난 법이란 완전한 열반[無餘涅槃]을 위하여 말씀할 뿐이며, 또 부처님만이 설명하실 수 있기에 뛰어난 법이라 한다. - 028_0744_a_06L獨法者,佛但說正法,不爲戲論說往古事,亦不雜說法及非法。又獨法者,但爲無餘涅槃故說。又獨佛能說,故曰獨法。
- 【문】성문(聲聞)에 속한 경전은 성문만이 말하고, 또 다른 경전은 천신들이 말한 것도 있다. 그대는 어찌하여 부처님 혼자만이 말씀하였다고 하는가.
- 028_0744_a_10L問曰:有聲聞部經但聲聞說,又有餘經諸天神說,汝何故言獨佛說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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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그 법의 근본이 다 부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모든 성문과 천신(天神)들은 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달한 것이다. 비니 중에서 말하기를 “불법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제자의 말이요, 변화(變化)의 말이요, 여러 천신의 말이라 한다”고 하였다. 간추려 말하자면 온갖 세간에 있는 착한 말은 다 부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법이라 한다.
구족하다 함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은 모자람이 없다. 울타가경(鬱陀伽經) 중에서 구족한 모습을 설명함과 같다. - 028_0744_a_12L答曰:是法根本皆從佛出,是諸聲聞及天神等皆傳佛語。如比尼中說:佛法名佛所說、弟子所說、變化所說、諸天所說。取要言之,一切世閒所有善語皆是佛說,故名獨法。具足者,佛所說法無所減少,如『鬱陁伽經』中說具足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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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의 법문은 다른 경문을 의지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화가라나경(和伽羅那經)은 다섯 가지의 경문을 의지한 연후에 만들어졌지마는 부처님의 경문은 그렇지 아니하여서 한 게송 중에 여러 가지 뜻이 다 갖추어졌다.
마치 “모든 죄악 짓지 말고/착한 일을 봉행하며/자기 뜻을 깨끗이 하면/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고 함과 같다. 그러므로 구족하다 한다.
청정하고 부드럽다 함은 두 가지가 깨끗하므로 청정하고 부드럽다 한다. 말이 깨끗하므로 청정하고 이치가 청정하므로 부드럽다 한다. - 028_0744_a_18L又佛法者,不待餘經而得成也。如和伽羅那經待五種經然後得成,佛法不爾,於一偈中其義具足,如說諸惡莫作、諸善奉行、自淨其意、是諸佛教,故名具足。淸淨調柔者,二種淸淨故,名淸淨調柔。語淸淨故名曰淸淨,義淸淨故名曰調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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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4_b_02L또 부처님은 이치[正義] 중에서는 이치에 따르는 말을 두었고 바른 말[正語] 중에서는 말에 따르는 이치를 두는 것을 허락하셨으니, 외도들이 경문에만 따라 취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또 불법 중에는 법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법도 또한 분별하여서 분명한 이치를 밝힌 경전[了義經]을 의지할 것이요 분명한 이치를 다 밝히지 아니한 경[不了義經]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을 깨끗한 법[淨法]이라 한다. 다만 경전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다. - 028_0744_a_24L又佛聽於正義中置隨義語,於正語中置隨語義,不如外道隨經而取。又佛法中依法不依人,法亦分別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是名淨法,非但隨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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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법에는 세 가지 법인(法印)이 있다. 일체무아(一切無我)와 유위(有爲)의 모든 법의 념념무상(念念無常)과 적멸열반[寂滅涅槃]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법인은 모든 논사들이 무너뜨릴 수 없고 진실하기 때문에 청정하고 고르고 부드럽다 한다.
맑은 행을 따른다 함은 여덟 가지 바른 성도[八直聖道]를 맑은 행[梵行]이라 하는 것이니 범(梵)은 열반이라는 뜻이며 이 도로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맑은 행이라 한다.
법보는 이러한 공덕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4_b_05L又佛法中有三法印,一切無我、有爲諸法念念無常、寂滅涅槃。是三法印,一切論者所不能壞,以眞實故,名淸淨調柔。隨梵行者,八直聖道名爲梵行。梵名涅槃,是道能到,故名梵行。法寶成就如是功德,是故應禮。
- 7) 중법품(衆法品)
- 028_0744_b_11L衆法品第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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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은 스스로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내 법은 능히 멸하여 능히 열반에 도달하고 능히 바른 지혜를 내고 능히 잘 거느려 인도[將導]한다” 하셨다.
능히 멸한다 함은 탐심과 진심 등의 모든 번뇌의 불을 멸하기 때문에 능히 멸한다고 한다. 마치 깨끗하지 못하다는 관[不淨觀]을 익혀서 음욕(婬欲)의 불을 끄는 것과 같고 인자한 마음을 익혀서 진심 등을 없애는 것과 같은 것이요, 외도가 단식(斷食)하는 등의 법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능히 멸한다고 한다.
능히 열반에 도달한다 함은 불법은 필경에는 반드시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요, 외도가 존재의 갈래[有分]중에 머물면서 선정 등에 집착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 028_0744_b_12L復次佛自讚言:我法能滅、能到涅槃、能生正智、能善將導。能滅者,滅貪恚等諸煩惱火,故曰能滅。如習不淨觀滅婬欲火,如習慈心滅瞋恚等,不如外道斷食等法,故名能滅。能到涅槃者,佛法究竟必至涅槃,不如外道住有分中著禪定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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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4_c_02L또 불법 중에서는 “함이 있는 온갖 법은 다 허물이 있고 칭찬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요, 바라문들이 범천의 세계를 칭찬하는 따위와는 같지 않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은 능히 열반에 도달한다고 한다.
능히 바른 지혜를 낸다 함은 부처님의 법이라면 모두가 열반을 목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바른 지혜를 낸다.
또 부처님의 법 가운데에 참다운 지혜의 열매가 들어 있음은 마치 듣는 지혜로부터 생각하는 지혜를 내고 생각하는 지혜로부터 닦는 지혜를 내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은 능히 바른 지혜를 낸다고 한다.
능히 잘 거느려서 인도한다 함은, 부처님의 법은 먼저 자기가 잘 성취하고, 다음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법 가운데 머물도록 한다. 그러므로 잘 인도한다는 것이다. - 028_0744_b_19L又佛法中說一切有爲皆有過患,無稱讚處,不如婆羅門讚梵世等,故名佛法能到涅槃。能生正智者,所有佛法皆爲涅槃,是故能生正智。又佛法中有眞智果,如從聞慧生思慧、從思慧生修慧,故名佛法能生正智。能善將導者,佛法先自善成,後令他人住正法中,故名善導。
- 또 다시 부처님의 법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을 잘한다는 것[善說]이요, 둘째는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는 것[現報]이요, 셋째는 시일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無時]이요, 넷째는 잘 거느린다는 것[能將]이요, 다섯째는 직접 맛본다는 것[來嘗]이요, 여섯째는 슬기로운 이는 스스로가 안다는 것[智者自知]이다.
- 028_0744_c_03L復次佛法有六:一曰善說、二曰現報、三曰無時、四曰能將、五曰來嘗、六曰智者自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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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말한다 함은, 부처님은 모든 법에 대하여 법의 참모습 그대로를 말씀하셨다. 만일 착하지 못한 모습이면 착하지 못한 모습이라 말씀하고, 착한 모습이면 착한 모습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잘 말씀한다고 한다.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 함은 부처님의 법에는 능히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 경전에서 말씀한 “이른 아침에 교화를 받으면 저녁에 도를 얻게 하고, 저녁에 법을 말씀하면 다음 날 아침에 이익을 얻도록 한다”라고 함과 같다.
또 현세의 과보라 함은, 현재사문인과경(現在沙門因果經) 중의 말씀에서 “현재에 공경과 명예와 선정과 신통 등의 이익을 얻는다”고 말씀함과 같다. - 028_0744_c_06L善說者,佛說諸法如法實相,若不善法說不善相、善說善相,故名善說。現報者,佛法能得現世果報,如經中說:晨朝受化令夕得道,夕爲說法令朝得利。又現報者,如說現在『沙門果經』中說:現得恭敬名聞、禪定神通等利。
- 또 불법에는 다 이치가 있기 때문에 공경하는 현세의 과보와 후세의 과보와 열반의 과보를 얻게 되지마는 여러 외도의 법에는 이치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과보와 후세의 과보조차도 얻지 못하거든 하물며 열반이겠는가. 그러므로 현세의 과보라 한다.
- 028_0744_c_12L復次佛法皆有義理,故能致得現報、後報及涅槃報;諸外道法無義理故,尚無現報及後世報,何況涅槃,故曰現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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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을 가리지 않는다 함은, 불법은 어떤 날짜와 달과 해(歲)와 별 등의 길하고 흉한 것을 가리지 아니하고 바로 수도(修道)할 수 있음이 있다. 아무 날ㆍ아무 달ㆍ아무 해에는 수도할 수 없다는 바라문의 법에 초봄에는 바라문이 불(火)을 받고 늦은 봄에는 찰리(刹利)가 불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러한 것과는 같지 않다.
또 혹 해가 돋기를 기다리고, 혹 해가 아직 돋기 전에 불에 공양하기도 하나니, 마치 다섯 가지 곡식을 맞추어서 심는 것을 보는 것 같다. 혹은 말하기를 “불법에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리라” 하기도 하지마는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때를 가리지 않는다 한다.
경전 중에서 말씀하시되 “불법은 수행(修行)하기가 용이 하나니, 거닐고 서고 앉고 눕거나 간에 수행을 얻지 못하는 때가 없다” 함과 같다. - 028_0744_c_15L無時者,佛法不待某日月歲星宿吉凶乃得修道、某日月歲不得修道,不如婆羅門法,初春婆羅門受火、春末剎利受火等,復有或待日出或日未出而供養火,如見五穀待時而種,或謂佛法亦當如是,故說無時。如經中說:佛法易行,行住坐臥無時不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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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5_a_02L능히 거느린다 함은 바른 행위[正行] 때문에 중생을 거느려서 해탈하는 곳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능히 거느린다는 것이다.
직접 맛본다 함은 불법은 응당 자신이 증득해야 하고 남만 따르지 아니해야 하나니, 부처님이 비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다만 내 말만을 믿지 말고 마땅히 스스로가 생각하면서 이 법은 행해야 하고 이 법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할 것이요, 외도가 그의 제자에게 말하기를 ‘이런 문답을 버리기를 마치 깨끗이 씻은 사람이 먼지나 흙을 좋아하지 아니함과 같이하고 귀머거리와 벙어리처럼 내 말만을 따르라’ 함 따위와는 같지 않다”고 함과 같다. 그러므로 직접 맛본다는 것이다. - 028_0744_c_22L能將者,以正行故能將衆生至解脫處,故名能將。來嘗者,佛法應當自身作證,不但隨他。如佛語比丘:汝等莫但信我語也,當自思惟是法可行、是不可行。不如外道語弟子言:捨是問答,如人淨洗不喜塵土,當如聾瘂但隨我語。故曰來嘗。
- 슬기로운 이는 스스로 안다 함은, 이 불법의 이익은 지혜 있는 사람이면 곧 믿고 이해한다. 단식(斷食)이나 하는 일들은 머트럽고 어리석은 사람이나 믿고 즐겨하는 것이요, 지혜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른 지혜는 번뇌를 부수므로 그런 법들은 슬기로운 이가 곧 이해한다. 아무리 맛난 음식으로 그 몸을 채우더라도, 마음으로 정진하면 탐심과 진심에는 물들지 않나니, 이러한 일들을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당장에 안다. 마치 사람이 병이 나으면 자신이 병의 떠나갔음을 아는 것과 같고 물맛이 차가운 줄은 마시는 자신이 아는 것과 같다.
- 028_0745_a_05L智者自知者,是佛法利,智慧人乃能信解;斷食等麤,愚者信樂,智者不受,以正智慧能破煩惱,如是等法智者乃解。雖以甘膳充足其身,一心精進貪恚不染,如是等事智者現知,如人病愈自知得離,如水相冷飮者乃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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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혹시 말보다 지나치는 법이 있다. 마치 땅의 단단한 모습과 같다. 단단하면 어느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인가. 말로 대답할 수는 없다. 대[觸]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니, 나면서부터의 장님[生盲]에게 푸르다 누르다 붉다 희다를 말할 수 없음과 같다. 만일 사람이 불법의 맛을 알지 못하면 불법의 진실한 이치를 말해 줄 수가 없다. 적멸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불법은 자기가 깨쳐 알아야 되고 자기가 깨친 것을 남에게 재물을 주듯 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바라연경(婆羅延經) 중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나는 나 자신이 너의 의심을 끊을 수는 없다. 네가 능히 나의 법을 증득하면 네 의심이 스스로 끊어지리라”고 하심과 같다. - 028_0745_a_11L復次或有過語法,如地堅相。堅何等相?不得語答,觸乃可知,如生盲人不可語以靑黃赤白。若人不得佛法味者,不可語以佛法實義,以寂滅故。復次佛法可自證知,不可以己所證傳與他人,如財物等。如『波羅延經』中佛言:我不能自斷汝疑,能證我法汝疑自斷。
- 또 다시 이 법이 남의 몸에 전달될 때에도 불을 전해주는 것들을 보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범부의 어리석은 사람은 무명(無明)의 산에 막히고 덮혀서 이 법을 믿지 않는다. 아이라왈 사미(阿夷羅曰沙彌)로 인하여 큰 산에 대한 비유를 말씀함과 같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는 스스로 안다고 말한다.
- 028_0745_a_18L復次是法到他身時,不可得見如火傳等。又凡夫愚人爲無明山所障覆故不信是法,如因阿夷羅曰沙彌說大山喩,故言智者自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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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5_b_02L또 불법은 몹시 깊지마는 해설하여 보이면 얕은 것이니, 거짓을 끊어 없애고 하늘과 인간에게 유포한다.
몹시 깊다(甚深)함은 불법이 몹시 깊어서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흔히 현재의 결과만 보고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자재천(自在天) 등의 삿된 원인을 말하며, 열두 가지 인연이 깊기 때문에 알기 어렵고 세상 사람의 지혜는 얕으므로 불법 중에서 깊은 생각을 내지 않으면 여러 가지 인연의 법을 통달할 수 없다.
내지 작은 풀잎까지라도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면 그 모양은 차차 깊어지며, 부처님이 말씀함과 같아서 여러 가지 인연의 법은 그 일이 아주 깊으며, 애욕이 다하여 떠나 없앰과 열반의 자리도 또한 보기 어렵다. - 028_0745_a_22L復次佛法甚深、開示則淺,斷除虛僞,流布天人。甚深者,佛法甚深,以不知因故。世閒多見現果、不能知因,故說自在天等邪因。十二因緣深故難解,世閒智淺,於佛法中不生深想,不能通達衆因緣法。乃至小草以衆因緣思惟觀察,其相轉深。如佛所說:衆因緣法,是事甚深。愛盡離滅及涅槃處,是亦難見。
- 【문】만일 인연이 몹시 깊다면, 아난(阿難)은 무엇 때문에 얕다는 생각을 내었는가.
- 028_0745_b_07L問曰:若因緣甚深,阿難何故生淺想耶?
- 【답】어떤 논사는 말하기를, “그 말은 옳지 못하다. 아난은 그가 거룩한 제자로서 법 모양을 통달하였거니, 어떻게 인연의 법이 얕다 하였겠는가”고 한다. 또 만일 대강으로만 인연법을 관찰하면 그 때문에 얕다는 생각을 낸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잘 분별하여 번뇌의 업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028_0745_b_08L答曰:有論師言,是語不然。阿難是大弟子,通達法相,云何當言因緣法淺?又若以摠相觀因緣法,故生淺想。所以者何?是人不能善分別觀煩惱業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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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일 사람이 본래 배우던 일에 끝맺음을 얻게 되면 문득 얕다는 생각을 내게 된다. 마치 큰 지혜를 얻으면 첫머리 글을 도로 살피는 것과 같으리라.
혹 어떤 사람은 지혜가 성취되지 못하면 몹시 깊은 법에 대하여 곧 얕다는 생각을 내기도 한다. 또 부처님은 설법을 잘하시기 때문에 혹 어떤 사람은 도리어 얕다는 생각을 내기도 한다.
또 불법에는 모두가 ≺공≻이요, 이 ≺공≻은 몹시 깊되 부처님은 가지가지의 인연과 비유로 선시(宣示)하셨으니 뜻이 이해하기 쉬워서 어린아이라도 알게 되었음은 마치 수다야사미(須陀耶沙彌) 등의 일과 같다. - 028_0745_b_12L復次若人於本所學事得究竟,便生淺想,如得大智還觀初章。或復有人智慧未成,於甚深法則生淺想。又佛善說法故,或有衆生便生淺想。復次佛法皆空,是空甚深,佛以種種因緣譬喩宣示,義則易解,小兒亦知,如須陁耶沙彌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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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5_c_02L또 부처님의 법은 견고하여 모든 언어 가운데 가장 진실하므로 바라타(婆羅陀)와 나마연경(羅摩延經)등이 말만 있고 진실한 뜻이 있지 않은 것과는 같지 아니하며 노제 범지(盧提梵志)가 “세존이시여, 모든 비구들은 이익이 되는 법과 진실한 법 가운데서 정근(精勤)하고 수학(修學)하므로 이른바 번뇌가 다 끊어졌나이다” 하고 말함과 같다.
또 부처님의 법은 온 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바라문이 “바라문의 법은 다만 자기네만 도를 얻고 다른 사람은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또 부처님의 법은 높고 귀중하여서 모든 하늘의 임금들이 다섯 가지 욕락을 마음대로 즐기면서도 역시 다 와서 믿으며 받든다. 이러한 인연으로 당연히 법보에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5_b_19L復次佛法堅固,諸言說中最爲眞實,不如婆羅陁羅摩延經等但有語言、無有實義。如盧提梵志言:世尊!諸比丘等於利益法眞實法中精勤修學,所謂漏盡。復次佛法爲利益一切世閒故說,不如婆羅門言婆羅門法但自得道,餘人不得。又佛法尊重,諸天王等五欲自恣亦來信受。以是因緣故應禮法。
- 8) 십이부경품(十二部經品)
- 028_0745_c_04L十二部經品第八
- 또 부처님의 분류하면 열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다라(修多羅)요, 둘째는 기야(祇夜)요, 셋째는 화가라나(和伽羅那)요, 넷째는 가타(伽陀)요, 다섯째는 우타나(憂陀那)요, 여섯째는 니타나(尼陀那)요, 일곱째는 아파타나(阿波陀那)요, 여덟째는 이제왈다가(伊帝曰多伽)요, 아홉째는 사타가(闍陀伽)요, 열째는 비불략(鞞佛略)이요, 열한째는 아부다달마(阿浮多達磨)요, 열두째는 우파제사(憂波提舍)이다.
- 028_0745_c_05L復次佛法分別有十二種;一修多羅、二祇夜、三和伽羅那、四伽陁、五憂陁那、六尼陁那、七阿波陁那、八伊帝曰多伽、九闍陁伽、十鞞佛略、十一阿浮多達磨、十二憂波提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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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라는 바로 내려 새기는 말씀이다.
기야는 글귀로 수다라를 노래하는 것이니, 혹은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혹은 제자가 말씀하기도 한다. - 028_0745_c_10L修多羅者,直說語言。祇夜者,以偈頌修多羅,或佛自說、或弟子說。
- 【문】무슨 이유로 글귀로써 수다라를 밝히는가.
- 028_0745_c_12L問曰:何故以偈頌修多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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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치를 견고하게 하려함이니, 마치 노끈으로 꽃을 꿰면 차례로 견고해지는 것과 같다. 또 말씨[言辭]를 아름답게 꾸며서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하려함이니 마치 꽃을 뿌리기도 하고, 혹은 꽃다발로 단장[莊嚴]을 함과도 같다.
또 말뜻을 게송 가운데 넣으면, 간단하면서 이해하기가 쉽다. 어떤 중생은 곧게 내려 새기는 말을 좋아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게송으로 말씀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
또 먼저 바로 말씀으로 설법하신 다음에 게송으로 읊으면 뜻이 환하게 나타나서 믿음이 단단하여지게 된다. 또 말뜻을 게송 중에 넣으면 차서가 서로 어울려 붙어서 찬양하는 말을 하기가 편이하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읊으셨다. - 028_0745_c_13L答曰:欲令義理堅固,如以繩貫華次第堅固。又欲嚴飾言辭令人喜樂,如以散華或持貫華以爲莊嚴。又義入偈中則要略易解。或有衆生樂直言者、有樂偈說。又先直說法,後以偈頌,則義明了,令信堅固。又義入偈中,則次第相著,易可讚說,是故說偈。
- 혹은 말하기를 “불법에서는 게송을 짓지 아니해야 한다. 노래와 비슷하다” 하나, 그 일은 옳지 못하다. 으레 게송을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 스스로가 게송으로 모든 이치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경전에서 “세간의 온갖 아름다운 말씨는 모두 나의 법에서 나왔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게송에는 미묘한 말씀이 들어있다.
- 028_0745_c_19L或謂佛法不應造偈似如歌詠。此事不然,法應造偈。所以者何?佛自以偈說諸義故。又如經言:一切世閒微妙言辭皆出我法。是故偈頌有微妙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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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6_a_02L화가라나라 함은 모든 이치를 풀이한 경전을 화가라나라 한다. 만일 경전만 있고 대답도 없고 풀이도 없는 사무애경(四無礙經) 등과 같은 것이면 수다라라 하고, 문답(問答)이 있는 경전이면 화가라나라고 한다.
마치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어두운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어두운 데서 밝은 데로 들어가며 밝은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밝은 데서 밝은 데로 들어간다”고 설명한 것이 그것이다. 어두운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간다 함은 비천한 사람이 세 가지 악한 업을 짓고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일들과 같나니, 그러한 경전들을 화가라나라 한다. - 028_0745_c_23L和伽羅那者,諸解義經名和伽羅那。若有經無答無解,如四無㝵等經,名修多羅。有問答經,名和伽羅那。如說四種人,有從冥入冥、從冥入明、從明入冥、從明入明。從冥入冥者如貧賤人造三惡業墮惡道等。如是等經名和伽羅那。
- 【문】부처님은 무슨 이유로 대답도 없고 풀이도 없는 경전을 말씀하는가.
- 028_0746_a_07L問曰:佛何故說無答無解經?
- 【답】어떤 경전은 이치가 깊고 중하다. 그런 경전의 뜻은 아비담(阿毘曇) 중에서 따로 설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풀이를 하지 아니하셨다. 어떤 사람의 말에는 “부처님의 말씀하신 경전은 다 풀이가 있건만 법문을 결집하는 이가 깊은 뜻이 담긴 경전을 추려서 아비담 중에 두었으니, 마치 안으로 결박되고 바깥으로 결박된 사람은 밤새도록 그것을 풀려고 하므로 이 뜻은 당연히 번뇌[結使]의 무더기 중에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 028_0746_a_08L答曰:有經義理深重,是經義阿毘曇中當別說,是故不解。或有人言:佛所說經皆有義解,但集法者撰深義經置阿毘曇中。如因內結外結,人終夜解義,此義應在結使聚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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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라 함은 제2부에서 기야를 해설한 것이니, 기야는 게송이라는 말이다. 게송에는 두 종류가 있다. 1은 가타라 하고 2는 노가(路伽)라 한다. 노가에서 두 가지가 있으니 1은 번뇌를 따른 것이요, 2는 번뇌를 따르지 아니한 것이다. 번뇌를 따르지 아니한 것은 기야 중에 말씀한 것인데 그것을 가타라 한다.
이 두 가지 게송을 제외한 나머지의 게송이 아닌 경을 우타나라 한다. - 028_0746_a_12L伽陁者,第二部說祇夜。祇夜名偈,偈有二種:一名伽陁、二名路伽。路伽有二種:一順煩惱、二不順煩惱。不順煩惱者,祇夜中說,是名伽陁。除二種偈,餘非偈經名憂陁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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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타나라 함은 그 경전의 인연이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성현이 말씀하신 경전의 법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다. 이 모든 경전의 인연은 수다라 중에 있기도 하고 다른 곳에 있기도 하나니 그것을 니타나라 한다.
아파타나라 함은 본말(本末)의 차서에 따라 설법하신 것이 그것이니 경전에서 “지혜 있는 이의 말씀은 순서가 있고, 이치가 있고, 해설이 있어서 산란하지 않게 한다”함과 같다. 그것을 아파타나라 한다.
이제왈다가라 함은 곧 경전의 인연과 경전의 차서이다. 만일 이 두 가지 경전이 과거 세상에 있는 것이면, 이제왈다가라 한다.[진(秦)의 말에는 “이 일은 과거의 그와 같은 것”이라 하였다. - 028_0746_a_17L尼陁那者,是經因緣。所以者何?諸佛賢聖所說經法要有因緣,此諸經緣或在修多羅中或在餘處,是名尼陁那。阿波陁那者,本末次第說是也。如經中說:智者言說則有次第,有義有解不令散亂,是名阿波陁那。伊帝曰多伽者,是經因緣及經次第。若此二經在過去世,名伊帝曰多伽。秦言此事過去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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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6_b_02L사타가라 함은 현재의 일을 인연하여 과거의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래는 미래의 일도 말씀하셨으나, 그 일은 다 과거와 현재를 인연한 것이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아니하셨다.
비불략이라 함은 부처님의 자세한 설명(廣說)을 모은 경전을 비불략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고 말하기를 “모든 큰 성인은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즐겨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세간의 잡담을 싫어하고 대중을 즐겨하는 근본을 뽑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법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경전 중에서 도를 얻은 어떤 이가 2개월 동안을 경과한 다음에야 한 마디의 말을 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런 일을 끊기 위하여 자세히 설법하신 경전이 있고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말씀한다.
마치 여래의 두 가지 설법인 1은 자세하고 2는 간략하게 말씀한 것과 같다. 자세한 것은 간략한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 028_0746_b_02L闍陁伽者,因現在事說過去事。如來雖說未來世事,是事皆因過去現在故不別說。鞞佛略者,佛廣說經名鞞佛略。有人不信,謂諸大聖樂寂滅故,不憙憒鬧、厭世雜語,拔樂衆根故不樂廣說,如經中說:有得道人過二月已乃出一言。爲斷此故,說有廣經,饒益他故。如說如來二種說法:一廣、二略,廣勝略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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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타달마라 함은 미증유경(未曾有經)을 말한다. 겁(劫)이 끝날 무렵에 큰 변동이 일어나는 일이라든지 모든 하늘의 몸과 부피라든지 대지(大地)가 진동하는 일 등을 말함과 같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일들을 믿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이 미증유경을 말씀하신 것이니 현재에 지어 받는 업보와 모든 법의 세력은 생각하거나 의론으로 할 수 없기[不可思議] 때문이다. - 028_0746_b_11L阿浮陁達磨者,未曾有經。如說劫盡大變異事、諸天身量、大地震動。有人不信如是等事,是故說此未曾有經,現業果報諸法勢力不思議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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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제사라 함은 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 등 여러 거룩하고 지혜 있는 분들이 널리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고 말하기를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한다. 부처님은 이러한 것 때문에 논경(論經)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으며, 경전에 논(論)이 있는 까닭에 뜻을 해득하기가 용이하다.
이 12부의 경전을 부처님의 법이라 한다. 법보는 이와 같은 공덕을 다 갖추었다. 그러므로 마땅히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6_b_14L憂波提舍者,摩訶迦栴延等諸大智人廣解佛語,有人不信謂非佛說,佛爲是故說有論經。經有論故,義則易解。是十二部經名爲佛法。法寶具足如是功德,是故應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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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승보론(僧寶論)
9) 청정품(淸淨品) - 028_0746_b_19L僧寶論初淸淨品第九
- 【문】그대는 먼저 승보에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 028_0746_b_20L問曰:汝先言應禮僧,何故應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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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6_c_02L【답】부처님은 여러 군데서 직접으로 승보를 칭찬하셨다. “이 승보는 계행이 청정하고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청정하다. 마땅히 청해 모셔야 하고, 마땅히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해야 한다. 더없는(無上) 복밭(福田)으로서 능히 보시하는 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계품이 청정하다 함은 부처님의 제자들은 계행을 가지는데 티가 없다. 작은 허물에 이르기까지 깊이 두려움을 품는다. - 028_0746_b_21L答曰:佛於處處自讚歎僧,是僧寶戒品淸淨,定品、慧品、解脫品、解脫知見品淸淨,應請、應禮、合掌、供養,無上福田、能益施者。戒品淸淨者,佛弟子衆持戒無瑕,乃至小罪深懷畏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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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의 제자는 복 받는 과보로 인간이나 천상에 나기를 위해서도 아니요, 또한 지옥에 떨어지는 따위도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계행을 지키고 착한 법만을 즐겨하기 때문에 청정하다 한다.
또 깨끗한 계행을 가지기에 기한을 정하지 아니한다. 바라문이 6개월 동안만 계행을 가지는 것과는 같지 않으며 오랫동안을 받아지녀서 마지막[究竟]에 이를 때까지 지속한다. 그러므로 청정하다 한다. - 028_0746_c_03L又佛弟子不爲福報生人天等,亦不怖畏墮地獄等,而勤持戒但樂善法,故名淸淨。又持淨戒不限時節,不如婆羅門六月持戒,長夜受持乃至究竟,故名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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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깨끗한 계행을 지니면 두 치우침[邊]을 여의는 것이니, 다섯 가지 욕심의 즐거움[樂]과 몸의 괴로움[苦]을 여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좋아하는 계행이라 하고, 이 계율을 지혜 있는 이의 좋아하는 바라고 한다.
또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계행도 청정하고 또 깊은 마음으로 악업을 참은 것이며 다만 계율만 지킨 것이 아니요, 후세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승보를 계행이 청정하다 한다. - 028_0746_c_07L又持淨戒離於二邊,離五欲樂亦離苦身,故名聖所愛戒,是戒名爲智者所愛。又心淨故戒亦淸淨。又深心止惡,不但守戒怖畏後世,故名僧寶戒品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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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이 청정하다 함은 만일 선정이면 참다운 지혜를 낸다. 그러므로 청정하다 한다.
지혜가 청정하다 함은 만일 지혜라면 번뇌를 끊는다. 그러므로 청정하다 한다.
해탈이 청정하다 함은 만일 모든 번뇌가 다할 수 있으면 막는 것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해탈이 청정하다는 것이다.
해탈의 지견이 청정하다 함은 모든 번뇌가 없어짐에 따라서 지혜를 얻는 것이니 “나는 생사가 끝났다”고 말한다. 번뇌가 끝나지 아니한 중에서는 나의 몸 받아날이일 다 끝났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을 해탈의 지견이 청정하다는 것이다.
마땅히 청해야 하고 예배해야 하고 공양해야 한다함은 이와 같은 공덕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청해 모시고 예배 공경하고 공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028_0746_c_12L定品淸淨者,若定能生眞智,故名淸淨。慧品淸淨者,若慧能盡煩惱,故名淸淨。解脫淸淨者,若得盡諸煩惱非但能遮,故名解脫淸淨。解脫知見淸淨者,於諸煩惱盡中得智,謂我生盡,非未盡煩惱中言我生盡,是名解脫知見淸淨。應請應禮應供養者,以能具足如是功德故,應求請禮敬供養。
- 복밭[福田]이라 함은 그 중에서 복을 심으면 과보를 받는 일이 한량이 없고, 열반에 이르기까지도 오히려 끝이 나지 아니한다. 시주를 이롭게 하고 능히 시주의 공덕을 더 늘어나도록 함은 마치 여덟 가지 공덕의 밭에 5곡(穀)이 무성하여 실패하지 않도록 함과 같이 승보의 복전도 또한 그렇다. 여덟 가지 공덕을 성취하기 위하여 시주의 심은 공덕을 더 늘어가도록 한다. 그러므로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6_c_20L福田者,於中殖福獲報無量,乃至涅槃猶不可盡。能益施者,能令施者功德增益。如八功德田滋茂五 穀不令敗壞,僧田亦爾,成就八功德故,能令施種功德增長。是故應禮。
- 10) 분별현성품(分別賢聖品)
- 028_0746_c_24L分別賢聖品第十
- 028_0747_a_02L【문】어떠한 법 때문에 승가[僧]라 하는가.
- 028_0747_a_02L問曰:以何法故名之爲僧?
- 【답】네 가지 행(行)과 네 가지 얻음[得]과 계행ㆍ선정ㆍ지혜 등의 공덕이 청정하기 때문에 승가라 한다.
- 028_0747_a_03L答曰:四行四得戒定慧等功德淸淨,故名爲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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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행이라 함은 수다원(須陀洹)의 행을 닦는 일과 사다함(斯陀含)의 행을 닦는 일과 아나함(阿那含)의 행을 닦는 일과 아라한(阿羅漢)의 행을 닦는 일이다.
네 가지 얻음이라 함은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이다. - 028_0747_a_04L四行者,行須陁洹、行斯陁含、行阿那含、行阿羅漢。四得者,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
- 수다원을 행하는데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믿음을 따르는 행[隨信行]이오, 둘째는 법을 따르는 행[隨法行”이오, 셋째는 형상 없음을 따르는 행[隨無相行]이다.
- 028_0747_a_07L行須陁洹有三種人:一隨信行、二隨法行、三隨無相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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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행[信行]이라 함은 만일 사람이 아직 ≺공≻함과 나 없음[無我]의 지혜는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부처님의 법을 믿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므로 믿음의 행이라 한다. 경전 중에서 “나는 이 일을 믿기 때문에 행한다. 만일 참 지혜를 얻으면 믿음만을 따라 행하는 것만이 아니리니, 경전 중에서 ‘짓지 않는 이와 믿지 않는 것을 아는 이를 으뜸가는 사람[上人]이라 한다’고 함과 같다. 그러므로 참 지혜를 얻지 못한 때를 “믿음을 따르는 행”이라 하는 줄 알아야 한다.
경전 중에서 “만일에 사람이 법을 조그마한 지혜로 관찰하면서 알고 즐기면[忍樂] 그것을 믿음의 행이라 하며 범부의 위치를 벗어났다 할지라도 아직 수다원의 과를 얻지 못하면 그 중간에는 죽게 되지 않나니, 그 동안을 믿음의 행이라 한다” 함과 같다. - 028_0747_a_08L信行者,若人未得空無我智,信佛法故隨佛語行,故名信行。如經中說:我於是事以信故行。若得眞智則不但隨信行,如經中說:知不作者、不信者等、是名上人。是故當知未得眞智名隨信行,如經中說:若人於法能以少慧觀忍樂者,是名信行。過凡夫地、未得須陁洹果,於其中閒不得命終,是名信行。
- 이 사람은 듣고 생각하는 지혜 중에 있으면서 바르게 모든 법을 관찰하여 마음에 알고 즐기며, 비록 ≺공≻하고 나 없음의 지혜를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세간의 아는 법[忍法]과 비슷한 마음을 내면 그때부터 범부의 지위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 까닭을 다음에 널리 설명하겠다.
- 028_0747_a_16L是人在聞思慧中正觀諸法,心忍欲樂,雖未得空無我智,能生世閒似忍法心,自此以來名過凡夫地。所以者何?後當廣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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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믿음 등의 다섯 가지 뿌리[五根]가 없으면 그 사람은 외범부(外凡夫) 중에 머무르나 이 사람이 차차로 익혀서 난법(煖法) 등의 닦는 지혜[修慧]를 얻으면 본래 쓰던 이름 그대로 역시 믿음의 행이라 하나니, 끝내 법의 행[法行]의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경은 “반드시 수다원의 과위를 얻는다”고 말해야 되고, “죽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믿음의 행을 하는 이는 아직도 앞이 멀기 때문이다. - 028_0747_a_20L若無信等五根,是人則住外凡夫中。是人漸習得煖法等修慧,仍本名故,亦名信行,以終不及法行人故。是經應言要必當得須陁洹果,不應言不得命終。所以者何?是信行者以尚遠故。
- 028_0747_b_02L마치 욱가 장자(郁伽長者)가 대중스님에게 공양을 올릴 적에 천신(天神)이 나타나서 “이 분은 아라한이다. 이 분은 아라한을 향하는 이다. 내지, 이 분은 수다원이요 이 분은 수다원을 향하는 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만일 아직 열다섯 가지 마음[十五心] 중에 있으면 나투어 보일 수 없다. 그러므로 알아라, 수다원을 행하는 이는 가까움도 있고, 멈도 있다. 이것을 믿음의 행이라 한다.
- 028_0747_b_02L如郁伽長者供養衆僧,天神示言:某是阿羅漢、某是行阿羅漢者,乃至某是須陁洹、某是行須陁洹者。若在十五心中,不可得示,當知行須陁洹者有近有遠,是名信行。
- 법의 행[法行]이라 함은 이 사람은 ≺공≻하고 나 없음의 지혜를 얻고서 난위(煖位)와 꼭대기 정위(頂位)와 인위(忍位)와 세제일위(世第一位)의 법 중에 있으면서 법에 순종하는 행을 닦나니, 곧 공과 나 없음 등이다. 이것을 “법의 행”이라 한다.
- 028_0747_b_06L法行者,是人得空無我智,在煖頂忍第一法中隨順法行。謂空無我等是名法行。
-
이 두 가지 행의 사람이 진리를 보는 도[見諦道]에 들어서 사라짐의 진리[滅諦]를 보기 때문에 형상 없음의 행[無相行]이라 한다.
이 세 가지 사람을 수다원을 행하는 사람이라 한다. 세속의 도[世俗道] 중에는 번뇌 끊는 일이 없기 때문에 행(行)한다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세 가지 과(果)에 대한 일은 다음에 말하겠다. - 028_0747_b_09L是二行人。入見諦道,見滅諦故名無相行。是三種人,名行須陁洹果者,世俗道中無斷結故,不得名爲行三果者。此事後當說。
- 수다원이라 함은 부처님이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몸에 대한 집착[身見]과 의심[疑]과 계율에 대한 고집[戒取]인 이 세 가지 번뇌를 끊으면 수다원이라 하며,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지혜를 얻으며 일곱 차례의 생사로 끝내게 된다”고 함과 같다.
- 028_0747_b_12L須沱洹者,如佛經說:若人斷三結,身見、疑、戒取、名須陁洹,不墮惡道,必得正智,極至七有。
- 【문】만일 수다원으로서 견제(見諦)에서 끊을 바 번뇌가 모두 다하여 한량없는 고통을 다 없앰은 마치 지유경(池喩經)의 말씀과 같거늘 무엇 때문에 세 가지 번뇌만을 끊는다고 하는가.
- 028_0747_b_14L問曰:若須陁洹見諦所斷煩惱都盡,滅無量苦,如『池喩經』說,何故但言斷三結耶?
- 【답】이 일은 다음에 널리 설명하려니와 몸에 대한 고집이 다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도 역시 다한다.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함은 다음의 업취(業聚) 가운데서 또한 널리 설명하겠다.
- 028_0747_b_17L答曰:此事後當廣說,謂身見盡故餘等亦盡。不墮惡道者,後業聚中亦當廣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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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보리(菩提)에 이른다 함은 이 사람이 법류(法流) 중에 들면서 반드시 열반에 이르는 것은 마치 항하(恒河)에 떠있는 나무토막이 여덟 가지 인연을 여의면 반드시 대해(大海)에 이르는 것과 같다.
일곱 차례의 생사로 끝낸다[極七有] 함은 이 사람이 일곱 차례를 세상에 태어나는 동안에 샘 없는 지혜가 성숙하게 됨은 마치 가라라(歌羅羅) 등이 7일 동안에 변화하여 이룩되는 것과 같다. 또 타락(酥) 등을 마시면 짧아도 7일이면 모진 병도 낫게 됨과 같다. - 028_0747_b_19L必至菩提者,是人入法流中必至涅槃。如木在恒河,離八因緣必到大海。極七有者,是人於七世中無漏智熟,如歌羅羅等七日變成;又如服酥等,極至七日堅病則消。
- 028_0747_c_02L또 친족(親族)이란 한계는 7대[世]까지에 그친 것과 같고, 또 칠보사(七步蛇)가 사람의 몸을 물었을 때는 사람은 네 가지 요소[四大]의 힘으로 일곱 걸음까지는 걸을 수 있으나 뱀의 독기 때문에 여덟 걸음은 걷지 못하는 것과 같다. 속임수법(欺誑)은 7대에까지 내려간다 함과 같고, 또 일곱 개의 해가 돋을 때에는 겁(劫)도 다 타버린다 함과 같다. 그와 같이 일곱 차례의 몸바꿈에서 샘 없는 지혜를 익히어 번뇌를 다 태워버리게 된다. 또 법은 일곱 차례의 생사가 있게 되나 어떤 수다원은 금생에 열반에 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2생(生)ㆍ3생에 들기도 하며 마지막이 7생까지이다. 그것을 수다원이라 한다.
- 028_0747_b_23L又如親族限至七世;又如七步蛇螫人身時,以四大力故得至七步,以毒力故不得至八;又欺誑法極至七世;又如七日出時則劫燒盡。如是七世集無漏慧燒煩惱盡。又法應七有,有須陁洹今世入涅槃,有第二第三極至第七,是名須陁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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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함을 행한다 함은 사유(思惟=修道)에서 끊을 바 번뇌가 9계단이 있는데, 만일 1계단에서부터 2계단의 번뇌를 끊고, 3계단, 4계단, 5계단까지 이르면 그것을 사다함을 행한다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의 “걸림없는 도[無礙道]로써 끊는다” 하나 그 일은 옳지 못하다. 부처님은 경전 중에서 “한량없는 마음으로써 끊느니라” 하셨으니 부가유경(斧柯喩經) 중에서 말씀함과 같다.
또 사다함을 행하는 이는 또한 가가(家家)라고도 한다. 이 사람은 두 차례나 혹은 세 차례를 왕래하기도 하고, 혹은 현생의 몸으로 열반에 들기도 한다. 그것을 사다함을 행하는 이라 한다. - 028_0747_c_07L行斯陁含者,思惟所斷結有九品,若斷一二至三四五,是名行斯陁含者。有人言:以一無㝵道斷。是事不然,佛經中說以無量心斷,如『斧柯喩』經中說。又行斯陁含者,亦名家家,是人或二或三往來,或於現身得入涅槃,是名行斯陁含者。
- 사다함이라 함은 한 차례만 인간에 와서 바로 열반에 들어간다. 이 사람은 사유에서 끊을 바 번뇌가 얇아지고 이 얇은 가운데 머물면 사다함(果)이라 한다. 이 사다함은 만엘 제7 계단과 제8 계단의 번뇌를 끊으면, 그 사람을 다 아나함을 행하는 사람이라 한다. 제8계단을 끊은 이를 일종(一種)이라 한다. 아나함을 행하는 이로서 금생에 바로 열반에 들기도 하나니, 욕심 세계의 아홉 가지 번뇌를 다 여의기 때문에 아나함이라 한다.
- 028_0747_c_13L斯陁含者,一來此閒便入涅槃。是人思惟所斷結薄,住是薄中,名斯陁含。是斯陁含,或今世入涅槃。行阿那含者,若斷第七第八品結,是人皆名行阿那含,斷第八品是名一種。行阿那含者,或有今世卽入涅槃。盡離欲界九品結故,名阿那含。
- 이 아나함은 여덟 가지 차별이 있으니, 이른바 중음(中陰)에서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생유(生有)에서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불행(不行)에서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행(行)에서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위로 아가니다(阿迦尼吒)에 이르러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무형 세계[無色處]에 이르러서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세상을 바꾸어서[轉世] 열반하는 이도 있으며, 현재의 몸[現身]으로 열반하는 이도 있다. 상과 중과 하의 근기를 따르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이 있는 것이다.
- 028_0747_c_20L是阿那含差別八種,所謂中陰滅者、有生有滅者、有不行滅者、有行滅者、有上行至阿迦尼咤滅者、有至無色處者、有轉世者、有現滅者,隨上中下根故有差別。
- 028_0748_a_02L중음에서 열반하는 이도 또한 세 가지가 있는데 상근과 중근과 하근이다. 어떤 아나함은 깊이 세간을 싫어했으나, 조그마한 장애가 있어서 현세에서 열반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은 중음의 몸으로 열반한다.
- 028_0747_c_24L中陰滅者亦有三種,上、中、下根。有阿那含深厭世閒,有少障㝵不得現滅,是人則於中陰中滅。
- 현생(現生)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는데, 나면서 바로 열반하는 이와 수행을 하다가 열반하는 이와 수행을 하지 않고 열반하는 이가 있다. 나면서 바로 열반한다 함은 날 때에 깊이 존재[有]하기를 싫어하여 바로 열반에 든다. 그것을 나면서 열반한다는 것이니 근기가 영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모든 샘 없는 도가 자연히 나타나서 애써 수행을 하지 않고 열반에 든다. 그것을 수행하지 않고 열반한다는 것이니, 근기가 중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깊이 몸 받기를 두려워하여 부지런히 도를 수행하다가 열반에 든다. 그것을 수행하다가 열반한다고 하는 것이니, 근기가 우둔하기 때문이다.
- 028_0748_a_04L生亦三種,謂生滅者、行滅者、不行滅者。生滅者,生時深厭離有卽入涅槃,是名生滅,以根利故。或有生已諸無漏道自然在前,不加勤行而入涅槃,是不行滅,以根中故。或有生已深畏受身,勤修行道乃入涅槃,是名行滅,以根鈍故。
- 위로 올라서 열반하는 이도 또한 세 가지가 있다. 만일 같은 곳에서 죽어서 같은 곳에 태어나서 바로 열반에 들면 그를 영리한 근기라 하고, 두 군데 세 군데서 태어나면 그를 중간 근기라 하며, 여러 곳에서 죽어서 여러 곳에 태어나면 그를 우둔한 근기라 한다.
- 028_0748_a_10L上行滅者亦有三種,若從一處終至一處生,便入涅槃,是名利根;二三處生,是名中根;一切處終一切處生,是名鈍根。
- 초선천(初禪天)에서부터 광과천(廣果天)에 이르면 이것을 결정(決定)이라 한다. 광과천에서 마친 다음 만일 정거천(淨居天)에 나면 이 사람은 다시 무형 세계에는 가지 않나니, 지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일 무형 세계에 들면 이 사람은 마침내 정거천에는 나지 않나니, 선정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꾼다 함은 만일 전생에 수다원과와 사다함과를 얻었다가 뒤로 몸을 바꾸어서 아나함의 과를 얻으면, 그 사람은 형상 세계와 무형 세계에 들지 않는다. 현생에 열반하는 이는 제1의 영리한 근기로서 바로 현재의 몸으로 열반에 들게 된다.
- 028_0748_a_13L從初禪至廣果天是名決定。到廣果已若生淨居,是人不復到無色處,以樂慧故。若入無色處者,是人終不生淨居天,以樂定故。轉世者,若先世得須陁洹果、斯陁含果,後轉身得阿那含果,是人不入色無色界。現滅者,第一利根,卽於現身得入涅槃。
- 다시 두 가지 사람이 있다. 하나는 믿음의 해탈이라 하고, 둘째는 보아 얻음[見得]이라 한다. 이 두 사람은 근기의 차별 때문이다. 만일 우둔한 근기의 학인(學人)이 사유의 도에 있으면 믿음의 해탈이라 하고 영리하면 보아 얻음이라 한다. 만일 아나함이 여덟 가지 해탈을 갖추면 그것을 몸의 깨침[身證]이라 하나니, 이들을 다 아라한을 행하는 이라 한다. 번뇌 끊는 일이 똑같기 때문이다. 만일 온갖 번뇌를 다 끊어 없애면 아라한(阿羅漢)이라 부른다.
- 028_0748_a_20L復有二人,一名信解脫、二名見得,是二人者根差別故。若鈍根學人在思惟道名信解脫,利名見得。若阿那含具八解脫,是名身證。是等皆名行阿羅漢者,以斷結同故。若盡斷滅一切煩惱,名阿羅漢。
- 028_0748_b_02L아라한에는 아홉 종류가 있다. 잃어버리는 모습[退相]과 지키는 모습(守相)과 죽는 모습(死相)과 나아가는 모습(可進相)과 멈추는 모습(住相)과 무너뜨리지 못하는 모습(不壞相)과 지혜로 해탈하는 모습(慧解脫)과 함께 해탈하는 모습(俱解脫)과 잃어버리지 않는 모습(不退相)이다. 이 모든 아라한은 믿음의 뿌리들을 얻는 데로부터 차별이 있다.
- 028_0748_b_02L阿羅漢有九種,退相、守相、死相、可進相、住相、不壞相、慧解脫相、俱解脫相、不退相。是諸阿羅漢,以得信等根故有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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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둔근의 사람을 잃어버리는 모습이라 하고 삼매를 잃으며 삼매를 잃기 때문에 샘 없는 지혜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키는 모습이라 함은 근기가 조금 낫기 때문에 만일 삼매를 지키면 잃지 않거니와 지키지 아니하면 잃나니, 앞의 잃어버리는 모습은 아무리 수호해도 잃어버린다.
죽는 모습이라 함은 근기가 또 조금 나아서 모든 세상을 몹시 싫어하며 이 사람은 삼매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샘 없는 지혜가 앞에 나타나기 어렵다. 설사 얻더라도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죽음을 찾는 것이다. - 028_0748_b_06L最鈍根者是名退相,退失三昧,退三昧故無漏智慧不能現前。守相者,根小勝故,若護三昧則不退失、不護則退。前退相者,雖護亦退。死相者,根又小勝,深厭諸有,是人不能得三昧故,無漏智慧難得現前,設得喜失,故求死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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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는 모습이라 함은 혹시 삼매를 얻더라도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아니함을 멈추는 모습이라 한다. 앞의 세 종류는 잃어지는 삼매 중에 속하되 멈추는 모습은 멈추는 부분의 삼매에 속한다.
나아가는 모습이라 함은 만일 삼매를 얻으면 차차 깊어져서 원만해지는 것이니 이 사람은 증가하는 부분의 삼매에 속한다.
무너뜨리지 못하는 모습이라 함은 삼매를 얻은 다음에는 어떠한 인연으로도 능히 무너뜨리지 못한다. 이 사람은 통달하는 부분의 삼매에 멈추나니 지혜가 가장 영리하기 때문에 삼매에서 들고 멈추고 일어나는 모양을 잘 붙잡는다. 그러므로 무너뜨릴 수 없으니, 생각을 끊는 선정[滅盡定]을 의지한 때문이다. - 028_0748_b_12L住相者,若得三昧不進不退是名住相。前三種在退分三昧,住相者在住分三昧。可進相者,若得三昧,轉深增益,是人住在增分三昧。不壞相者,得三昧已,種種因緣不能敗壞,是人住在達分三昧,慧最利故,善取三昧入住起相,故不可壞,因滅盡定故。
- 두 가지 사람이 있다. 이 선정을 얻지 못한 이를 혜해탈(慧解脫)이라 하고, 이 선정을 얻은 이를 구해탈(俱解脫)이라 한다. 잃어지지 않는 모습이라 함은 얻어진 공덕을 모두 잃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경전 중에서 말씀하기를 부처님은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나의 제자가 나를 평상으로써 듣더라도 내가 먼저 얻은 것은 모두 잃어버리지 아니한다” 하심과 같다.
- 028_0748_b_19L有二人,不得此定名慧解脫,得此定者名俱解脫。不退相者,所得功德盡無退失。如經中說,佛語比丘:若我弟子以牀輿我,我先所得盡無退失。
- 이와 같은 아홉 가지를 배울 것 없는 이[無學人]라 한다. 먼저 열여덟 종류의 배우는 이[學人]와 아홉 종류의 배울 것 없는 이를 합한 이 27인을 온 세간의 복전이라 하며, 승가[僧] 중에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8_b_23L如是九種名無學人。先十八學人及九無學,是二十七人名爲一切世閒福田,僧中具足。是故應禮也。
- 028_0748_c_02L11) 복전품(福田品)
- 028_0748_c_02L福田品第十一
- 【문】무슨 일들 때문에 이 모든 성현(聖賢)을 복전이라 하는가.
- 028_0748_c_03L問曰:以何等故此諸賢聖名爲福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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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탐심과 진심 등의 모든 번뇌를 다 끊었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마치 가라지[稊]와 피[稗]를 없애버리지 아니하면 좋은 곡식의 움을 해친다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욕심없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크게 이로운 과보를 얻는다.
또 이 사람은 마음이 비었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왜냐하면 상(相)에 비었기 때문에 모든 탐욕과 진심 따위의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하여 악업을 짓지 않는다. - 028_0748_c_04L答曰:斷貪恚等諸煩惱盡故名福田,如說稊稗不去害善穀苗,是故施無欲人得報利大。又是人心空故名福田。所以者何?以空相故諸貪恚等煩惱不起、不生惡業。
- 또 모든 성현은 조작없는 법을 얻었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또 이 사람들의 얻은 선정은 모두가 청정하여 영원히 크고 작은 모든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또 근심과 즐거움을 다 버렸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 028_0748_c_09L又諸賢聖得不作法故名福田。又是人等所得禪定皆悉淸淨,永離大小諸煩惱故。又棄捨憂樂故名福田。又能斷除五種心縛,心得淸淨故名福田。
- 또 여덟 가지 공덕의 밭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또 일곱 가지 선정의 밑받침[定具]으로 잘 마음을 껴잡았기 때문이며, 또 일곱 가지 번뇌를 끊었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없으며, 또 계행 등의 일곱 가지 깨끗한 법을 구비하였기 때문이며, 또 욕심을 줄이고 넉넉한 줄을 아는 등의 여덟 가지 공덕 때문이며, 또 열반의 저 언덕을 건너고 또 건너기를 애써 구하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 028_0748_c_13L又成就八種功德田故。又以七定具善護心故,又能盡滅七種漏故,無諸漏失。又具足戒等七淨法故,又能成就少欲知足等八功德故,又能度彼岸及勤求度故名福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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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전 중에서 말씀하기를 “다만 발심(發心)하여 착한 법을 행하려고만 해도 오히려 이익이 많거든 더군다나 수행하는 일이겠느냐”라고 하셨다. 이 모든 성현은 항상 착한 법을 행하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또 경전 중에서 말씀하기를, “어느 시주의 집에서 어느 계행을 지닌 비구가 공양을 받은 다음에 한량없는 선정[無量定]에 들면 그 시주의 집은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대중 가운데서 한량없는 삼매[無量三昧]와 형상 없는 삼매[無相三昧]와 흔들리지 않는 삼매[無動三昧]에 들면 그 시주로 하여금 한량없는 과보를 얻게 한다”고 하셨다. 이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 028_0748_c_18L又經中說:但能發心欲行善法尚多利益,況修行耶。是諸賢聖常行善法,故名福田。又經中說:誰施主家有持戒比丘,受供養已入無量定,是施主家得無量福。衆中有入無量三昧、無相三昧、無動三昧,能令施主得無量報,故名福田。
- 028_0749_a_02L또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세 가지 일이 화합하기 때문에 큰 복을 얻는 것이니 첫째는 마음이 있고, 둘째는 물품을 보시하고, 셋째는 복전(福田)이다”고 하셨다. 여러 스님 중에는 공덕을 갖춘 이가 많으며, 공덕을 갖춘 이에게 신심을 내기가 쉽다.
- 028_0748_c_24L又經中說:三事和合故得大福,一曰有信、二曰施物、三曰福田。於衆僧中多功德人,功德人中信心易生。
- 또 대중의 처소에 시주하면 아홉 가지 인연을 갖추기 때문에 큰 과보를 얻는다. 또 대중에 보시하면 받는 이가 깨끗하기 때문에 보시하는 것도 반드시 깨끗하다.
- 028_0749_a_04L又施衆僧具九因緣故獲大果。又施衆僧,以受者淨故施必淸淨。
- 또 보시하는 데는 여덟 가지가 있다. 청정한 마음이 적고 보시하는 물품도 적으면서 파계(破戒)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이가 있고, 청정한 마음은 적으면서 보시하는 물품은 많은 것을 파계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이가 있고 청정한 마음도 적고 보시하는 물품도 적으면서 지계(持戒)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이가 있고, 청정한 마음은 적으나 보시하는 물품은 많은 것을 지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이가 있고, 청정한 마음이 많으면서 네 가지의 물품을 보시하는 것도 역시 그렇게 대중 가운데 보시하면 반드시 두 가지거나 세 가지는 성취하리라. 모든 착한 사람은 다 대중 스님을 의지하여 공덕을 많이 쌓은 연후에 뜻에 따라 보리(菩提)에 회향(回向)한다.
- 028_0749_a_06L又施有八種,有淸淨心少、施物亦少、施破戒人,有淸淨心少、所施物多、施破戒人,有淸淨心少、施物亦少、施持戒人,有淸淨心少、所施物多、施持戒人,有淸淨心多、施四種物亦爾。於僧中施、必當成就若二若三。一切善人皆因衆僧增益功德,然後隨意迴向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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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시를 받은 스님네와 보시한 물품도 모두가 해탈의 과보를 얻게 되어 나고 죽는 속에서 끝내 다할 수가 없으리라.
또 보시를 받은 스님네는 다 마음을 엄숙히 하며, 또 만일 한 사람에게만 신심을 내는 깨끗한 마음은 때로는 혹 무너질 수 있으나 대중 스님네에게 가지는 깨끗한 신심은 끝까지 무너지지 아니한다.
또 한 사람에게만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혹 넓지 못할 수 있으나, 대중 스님네를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인연이 한량없기 때문에 마음이 넓고 커진다.
또 모든 사람을 위하여 보시하되 스님네에게도 보시하면, 그 마음이 크기 때문에 과보도 크다. 이러한 인연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성현님네를 복전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예배드려야 한다. - 028_0749_a_13L又所施僧,此物皆當得解脫果,於生死中終不能盡。又所施衆僧皆爲嚴心。又若於一人生信淨心或時可壞,於衆僧中信心淸淨終不壞敗。又於一人生愛敬心或不能廣,於衆僧中生信敬心,緣無量故心則廣大。又施爲一切入僧數人,以心大故果報亦大。以是等緣諸賢聖人名爲福田,是故應禮。
- 12) 길상품(吉祥品)
- 028_0749_a_21L吉祥品第十二
- 이 삼보(三寶)는 공덕이 구족하기 때문에 경문의 첫머리에 설명한다. 또 이 삼보는 온 세간에서 첫째가는 상서이니 길상에게서 설명함과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네들의 이를 으뜸가는 상서라 한다.
- 028_0749_a_22L以是三寶功德具足,故經初說。又此三寶於一切世閒第一吉祥,如吉祥偈說:佛法及衆僧,是名最吉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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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749_b_02L다시 모든 경문에서 길상(吉祥)으로써 처음 배우는 이를 위하면 수명이 만세나 더하고 명예가 널리 퍼지리니 그것은 경문을 지은 사람이 바라는 마음이다. 아아(阿啊) 등의 글자를 경서의 첫머리에 놓는 것 같은 일은 그것이 상서로운 모양이 아니다.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리라. 만일 제일 으뜸가는 상서로운 이를 구하려면 삼보가 그의 대상이므로 당연히 귀의(歸依)해야 한다.
길상게(吉祥偈)에서 말함과 같다. - 028_0749_b_02L復有諸經以吉祥爲初,學者增壽萬歲、名聞流布,是作經者意也。如阿陁等字貫在經初,此非吉相,後當廣說。若求第一最吉祥者,三寶是也。應當歸依。如吉祥偈說:
-
모든 하늘이며 인간들 중에
더없이 높으신 길잡이로서
부처님이 크게 깨치신 이 이므로
그 이름 으뜸가는 상서라 하리. -
028_0749_b_07L諸天世人中,
無上尊導師,
佛爲大覺者,
是名最吉祥
-
어떠한 사람이 부처님에게
신심을 두어서 동요하지 않고
깨끗한 계율을 받들어 지니면
이것을 으뜸가는 상서라 하리. -
028_0749_b_09L。 若人於佛所,
安信心不動,
奉持淸淨戒,
是名最吉祥。
-
어리석은 사람을 멀리 여의고
슬기로운 사람을 친근하여서
공경할 이면 바로 공경하는
그것을 으뜸가는 상서라 하리. -
028_0749_b_10L 遠離愚癡人,
親近有智者,
可敬者則敬,
是爲最吉祥。
- 이러한 까닭으로 삼보님께 예배드려야 하리니, 으뜸가는 상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論)의 첫 머리에서 설명하는 바이다.
-
028_0749_b_11L是故應禮三寶,以最吉祥故。我經初說。
成實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