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達摩多羅禪經卷下

ABC_IT_K1003_T_002
030_0270_c_01L
달마다라선경 하권
030_0270_c_01L達摩多羅禪經卷下


동진 천축 불타발타라 한역
홍승균 번역
030_0270_c_02L東晉三藏佛陁跋陁羅譯


9. 수행방편도부정관퇴분(修行方便道不淨觀退分)
030_0270_c_03L修行方便道不淨觀退分第九

내 능력이 가능한 대로
이미 안반념(安般念)을 설했으니
부정관(不淨觀)의 수행에 대해
차례로 분별하리라.
030_0270_c_04L如我力所能
已說安般念
修行不淨觀
次第應分別

부정(不淨)의 방편관(方便觀)과
사유념(思惟念)의 물러나 줄어듦과
밝은 지혜를 아는 모양을
지금 내가 설하리라.
030_0270_c_06L不淨方便觀
思惟念退減
明智所知相
是今我當說

처음 방편을 수행할 때에
몸의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라.
이 깨끗함의 뒤에 있는 가죽과 살을 열어
그 일어나는 모양을 관하라.
030_0270_c_07L修行初方便
自於身少分
背淨開皮色
觀其所起相

비록 잠시 가죽과 살을 허물었다 하더라도
방편을 힘쓰지 않으면
정상(淨想)이 다시 생기리니
이름하여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030_0270_c_08L雖蹔壞皮色
不力勤方便
淨想還復生
說名修行退

응하는 바를 일으키지 못하고
거듭 가죽과 살을 허문다 하더라도
정상(淨想)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또한 이름하여 수행퇴라 한다.
030_0270_c_10L不能起所應
重令皮色壞
淨想仍不除
亦名修行退

수행에 애욕(愛欲)이 늘어나면
마땅히 무덤 사이를 찾아가서
저 부정상(不淨相)을 취하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서 앉아라.
030_0270_c_11L修行愛欲增
應往至冢間
取彼不淨相
還來本處坐

눈으로 본 온갖 시체들처럼
내 몸 또한 그런 것이니
일심(一心)으로 속을 관찰하면
저 무덤에서 본 모양과 같다.
030_0270_c_12L所見諸死屍
我身亦復然
一心內觀察
如彼冢間相

저것이 나의 증거가 되니
이로 해서 진실을 얻게 된다.
이미 진실한 모양을 얻으면
다시는 삿된 생각[邪想]이 일지 않는다.
030_0270_c_14L彼爲我作證
由是得眞實
已得眞實相
不復起邪想

이와 같이 방편으로 수행을 해도
혜안(慧眼)이 오히려 청정해지지 않으면
이것이 전도(顚倒)와
무지(無智)와 어리석음[癡冥]의 취(聚)임을 알아야 하리라.
030_0270_c_15L如是方便修
慧眼猶不淨
當知是顚倒
無智癡冥聚

만약에 발가락을 인연해서
혼란하여 마음이 머물지 못하면
마땅히 위에다 마음을 묶어 두고
관찰을 하여 승진(升進)을 구해야 한다.
030_0270_c_16L若於足指緣
闇亂心不住
當於上繫念
觀察求升進

위의 괴색처(壞色處)에 대해서도
마음이 다시 어지럽게 달리면
마땅히 힘써 정진하고
방편으로 퇴과(退過)를 여의어
030_0270_c_18L於上壞色處
其心復馳亂
當力勤精進
方便離退過

저 번뇌에 염착(染着)이 되어서
해탈에 이르지 못하게 하지 말라.
스스로 방편에 열심히 정진하면
신속히 열반에 이르게 되리라.
030_0270_c_19L勿爲煩惱染
令不至解脫
自勉勤方便
疾得到涅槃

몸의 괴상(壞相)에서
마음을 묶어 흩어짐이 없게 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닦아 익혀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030_0270_c_20L自於身壞相
繫念無分散
日夜勤修習
莫令煩惱起

수행에 의한 미묘한 생각은
세존께서 이를 설하신 바이다.
언제나 그 생각을 수호한다면
이것이 끝내 퇴하여 줄어들지 않으리라.
030_0270_c_22L修行微妙想
世尊之所說
常能守護想
是終不退減
030_0271_a_01L
내신(內身)을 관찰함이 구족하면
그 생각이 이미 견고하리라.
다음에는 마땅히 외연(外緣)을 관해서
차츰 익혀서 증광(增廣)토록 하라.
030_0271_a_01L具足觀內身
其念已堅固
次應觀外緣
漸習令增廣

외연에 대하여 이미 두루 충실하면
견고한 삼마제(三摩提)가 되리라.
오래지 않아
차례로 모든 번뇌가 멸진됨을 알아야 하리라.
030_0271_a_02L於外已周滿
堅固三摩提
當知是不久
次第盡諸漏

만약 임금에게 기갑(器甲)이 없다면
그 안족(安足)함에 있어서 견고하지 않고
원수의 적을 막으려 한다 해도
반드시 그로부터 해를 입고 말리라.
030_0271_a_04L如王無器甲
安足不堅固
而欲禦怨敵
必爲彼所害

자신의 몸을 수행함에 있어서
어리석어 결정하지 못하고
그 외연(外緣)을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수행에서 퇴전하리라.
030_0271_a_05L 修行於自身
愚癡未決定
而欲觀外緣
是必於行退

내 이미 비구가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의 후퇴함을 설했노라.
그런데 그 외에도 퇴과(退過)가 있으니
지금 설하는 것을 잘 들어라.
030_0271_a_06L我已說比丘
無黠故修退
更有餘退過
今當說善聽

수행의 후퇴는
어리석음[癡冥]에 빠져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혹은 성한 번뇌의 업행(業行)으로
막히고 가려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71_a_08L當知修行退
沒在癡冥故
或爲盛煩惱
業行所障蔽

어떤 사람은 색욕(色欲)으로 인해
번뇌를 일으켜서 후퇴하니
저 곱고 예쁜 자색으로 해서
어리석음과 애욕이 정념(正念)을 가리는 것이다.
030_0271_a_09L有人因色欲
而起煩惱退
於彼美豔色
癡愛覆正念

무늬가 광택을 발하는
갖가지 좋은 의복들과
영락으로 장엄(莊嚴)된 도구들과
금은 등 갖가지 미묘한 보물
전에 속세에서 즐기던 이런 것들이
수행을 하면서도 생각이 나
이것으로 인해 욕상(欲想)이 동하면
반드시 물러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71_a_10L種種上衣服
文彩發光澤
瓔珞莊嚴具
金銀衆妙寶
於先俗所樂
修行還顧戀
因此動欲想
當知是必退

형상(形相)의 단엄(端嚴)함을 헤아려
곳곳에서 모습이 훌륭한
모든 몸의 지절(肢節)에 탐착하고
망상(妄想)으로 탐욕을 일으킨다.
신체의 여러 지절들이
가늘고 매끄러우며 부드러운 촉감 등
전에 경험한 이들을 생각하니
욕망의 불길이 다시 일어난다.
030_0271_a_13L形相計端嚴
處處著姿好
一切身肢節
妄想起貪欲
身體諸肢節
細滑柔軟觸
憶此本所更
欲火還復熾

울기도 하고 웃으면서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눈을 흘기고
화려한 의복은 구슬들로 치장했고
비단 꽃무늬 꾸미개로 꾸미니
눈앞에 알랑거리는 고운 자태가
수행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와 같은 모습들을 떠올린다면
욕망이 일어서 퇴전시킨다.
030_0271_a_16L或泣或言笑
歌儛相顧眄
綵服貫珠環
文繡莊嚴具
來去若容止
流轉行者心
顧念是威儀
欲起令退轉

어떤 사람이 그 정욕(情欲)이 깊어서
오로지 4종(種)에만 있지 않고
어리석어 번뇌를 증상하니
형체를 보게 되면 음란이 일어난다.
이것은 지극히 악한 욕망이니
급히 수행을 퇴전시킨다.
030_0271_a_18L有人情欲深
不專在四種
愚癡增煩惱
遇形起婬亂
是則極惡欲
疾令修行退

이런 모든 애욕들 때문에
미혹되고 산란하여 정념(正念)을 잃게 된다.
모양과 생각이 명료하면
끝내 퇴전하지 않는다.
030_0271_a_20L由是諸愛欲
迷亂失正念
相與想明了
是終不退轉

자신의 몸 안을 자세히 관하고
다음에 바깥을 잘 관찰하라.
넓은 경계가 차서 가득한데
주위를 둘러 험한 기슭을 본다.
그 구경처(究竟處)를 알지 못하면
수행이 급히 퇴몰(退沒)한다.
030_0271_a_22L諦自見內身
次外善觀察
境界廣增滿
周帀見嶮岸
不識究竟處
修行疾退沒
030_0271_b_01L
몸에 대해 깊이 애착하면
두렵고 이상해서 나아가지 못한다.
수행에 의심과 두려움이 생기면
반드시 급하게 퇴감(退減)하리라.
030_0271_b_01L於身染愛著
怖畏不能進
修行生疑怖
是必疾退減

의심과 공포를 여의고자 한다면
몸에 대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해도
마음이 아직도 어지럽게 달리면
수행하는 자가
반드시 다시 퇴전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030_0271_b_02L若欲離疑怖
於身修厭患
厭患想已生
其心猶馳亂
當知修行者
是必復還退

여러 수행들의
부정방편(不淨方便)의 퇴전을 이미 말했다.
그런데 승도(勝道)에 있어서도
퇴전함이 역시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030_0271_b_04L已說諸修行
不淨方便退
若於勝道中
退亦如前說
方便不淨退分竟

10. 수행방편부정관주분(修行方便不淨觀住分)
030_0271_b_06L修行方便不淨觀住分第十

내가 이미 부정퇴감분(不淨退減分)을
대략 분별했노라.
지금 저 주과상(住過相)에 대해
이를 마땅히 차례로 말하리라.
030_0271_b_07L我已略分別
不淨退減分
如其住過相
今當次第說

수행을 해도 번뇌의 업은
증장하여 안에 충만하고
지혜의 도법(度法)을 깨치지 못하면
어리석음[愚癡]에 얽혀 머물게 된다.
030_0271_b_09L修行煩惱業
增長內充滿
不曉知度法
愚癡縛令住

스스로 몸의 작은 부분에 대해
청정의 배후에 있는 가죽과 살을 허물었으나
승진(升進)의 법을 알지 못하면
번뇌가 증장하기 때문에 머물게 된다.
030_0271_b_10L自於身少分
背淨壞皮色
不知升進法
煩惱增故住

혹은 차츰차츰 승진하여
온몸의 괴상(壞相)을 본다고 해도
능히 외연(外緣)을 구하지 않으면
즐겨 내신(內身)을 관찰함에 머물게 된다.
030_0271_b_11L或有漸升進
遍身見壞相
不能求外緣
樂觀內身住

그리고 만약 밖의 경계에 대해
수행하여 마음이 승진을 즐기고
가고자 하면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
방편에 머물지 않도록 하라.
030_0271_b_13L若於外境界
修行心樂進
欲去應隨去
方便勿令住

아직 구경처를 보지 못하고
중도에서 문득 중지하고 만다면
어리석음[癡冥]에 머물러 얽매이리니
마치 나무에 매인 코끼리와 같다.
030_0271_b_14L未見究竟處
而便中路止
癡冥住所縛
猶如象繫樹

골상(骨想)이 견고한 모습[堅相]이 있어서
그 몸이 조밀하여 틈이 없다.
다음에 중상(衆想)을 행하지 않고
또한 승진도 구하지 않으며
030_0271_b_15L骨想有堅相
其體密無間
不次行衆想
亦不求升進

그리고 염리심(厭離心)이 없으면
또한 능히 결정하지 못한다.
수행하여 부정(不淨)의 기특한 도를
성취한다 해도
030_0271_b_17L又無厭離心
亦不能決定
修行雖成就
不淨奇特道

뛰어나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몸을 유연하게 하지 못한다.
몸을 유연하게 하지 못한다면
유각(流覺)이 생기지 않으리니
유각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를 수행주(修行住)라 말한다.
030_0271_b_18L不能起勝想
令其身柔軟
若不柔軟身
流覺則不生
不能生流覺
是說修行住
不淨觀方便道住分竟

11. 수행방편도부정관승진분(修行方便道不淨觀升進分)
030_0271_b_21L修行方便道不淨觀升進分第十一
030_0271_c_01L
부정관(不淨觀)의
방편도의 주과(住過)를 이미 설했다.
그런데 승도(勝道)에서
머무름[住]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정관의 승진법(升進法)을
지금 차례로 말하리라.
먼저 총상(總相)을 생각하고
부정의 연(緣)에 생각을 묶어라.
다음으로 몸의 작은 부분에 머물러서
자상(自相)을 바르게 관찰하라.
자재와 외연의
두 가지로 한량없음을 설하노라.
030_0271_b_22L已說不淨觀
方便道住過
若於勝道中
住應如前說
今當次第說
不淨升進法
先摠相思惟
繫念不淨緣
次住身少分
正觀察自相
自在及外緣
二種說無量

수행자는 내신(內身)의
삼마제(三摩提)에 자재하여
바른 방편을 열심히 익히고
구경처에 두루 가득하면
030_0271_c_03L行者於內身
自在三摩提
勤習正方便
周滿究竟處

외연의 한량없는 것의
경계에 널리 두루하리라.
그런데 저 정수(正受)에 대해
수(數)가 자재하지 못하고
030_0271_c_05L外緣無量者
境界普周遍
而於彼正受
不能數自在

스스로 내신을 관하여
이 또한 한량이 없다고 설하고
030_0271_c_06L又自觀內身
是亦說無量

자신이 처한 곳에 대해서
갖가지로 색(色)들이 많다고 한다.
근련(筋連)과 육단(肉段)이
그 수가 각각 5백이고
제뢰(提賴)와 건대(揵大)
이들이 모두 여섯 가지가 있다.제뢰는 과일과 같고, 건대는 종기와 같은데 모두 뱃속에 있다.
030_0271_c_07L謂於自身處
種種衆多色
筋連與肉段
其數各五百
提賴與揵大
是皆有六種提賴似果揵大似癰盡在腹內

36가지 종류의 물체와
320개의 뼈가 있으며
관절을 분해하면 9백이 된다.
9만[十千] 종류의 맥(脈)은
기운을 베풀어 여러 맛을
3만 6천 갈래 길로 통하게 한다.
몸에 있는 모든 모공(毛孔)들은
그 수가 99만 개이다.
몸 안에 침식하여 살아가는 벌레의
지게문은 8만[十千]이 있다.
안의 혈과 밖의 정기
이 둘은 함께 화합하여
030_0271_c_10L三十六種物
三百二十骨
節解九百分
九十千種脈
宣氣通諸味
三萬六千道
身中諸毛孔
九十九萬數
身內侵食虫
戶有八十千
內血外精氣
是二共和合

먼저 가라라(迦羅邏)를 얻으니
신근(身根)과 명근(明根)이다.
이 몸에서 부정이 일어나는 것은
가라라로부터 나온다.
030_0271_c_14L先得迦羅邏
身根與命根
是身不淨起
出自迦羅邏

번뇌가 업을 일으키니
우혹(愚惑)이 낙착(樂着)을 낳고
두 가지의 무거운 번뇌인
갈애(渴愛)와 성냄[瞋恚]의 어리석은 마음[癡冥心] 때문에
030_0271_c_16L結業之所起
愚惑生樂著
二種重煩惱
愛恚癡冥心

이른바 처음에 생명을 받을 때는
전도된 두 생각을 일으켜
안으로는 애(愛)를 일으키고
밖으로는 성냄을 일으킨다.
030_0271_c_17L謂初受生時
興二顚倒想
於內生愛欲
於外起瞋恚

남자는 이와 같은 생각이 있고
여자는 위의 것을 어긴다.
030_0271_c_18L男有如是想
女則上相違
030_0272_a_01L
청정하지 못함을 가라라라 하니
가라라가 포(泡)를 일으키고
포를 따라 육단(肉段)이 생기고
차츰 자라서 지절(支節)을 이룬다.
태(胎)에서 나오면 영아(嬰兒)라 하니
차츰 변하여 동자(童子)가 된다.
이처럼 자꾸 증장하여
장성하면 중년(中年)이라고 한다.
해가 가면 얼굴이 마르고 여위어서
하루가 다르게 늙어서 쇠하고
의식이 멸하여 목숨이 끝이 나서
몸이 허물어지고 백골(白骨)이 나타난다.
퍼렇고 허물어지며 마디마디 떨어지고
부서지고 사라져서 모두 마멸한다.
이와 같이 열다섯 가지를
수행하여 자상(自相)을 관하라.
030_0271_c_19L不淨迦羅邏
迦羅邏起泡
從泡生肉段
漸厚成攴節
出胎名嬰兒
轉次爲童子
如是漸增長
盛壯謂中年
年逝形枯悴
朽耄日衰老
識滅壽命終
身壞白骨現
靑毀節節離
消碎盡磨滅
如是十五種
修行觀自相

처음에는 가라라로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쇠하고 늙어서 죽으니
이레가 지나면 점차 헐어 변해서
드디어 재처럼 다해서 없어진다.
030_0272_a_02L始從迦羅邏
次第衰老死
七日漸毀變
乃至灰滅盡

일찍이 숙세(宿世)의 수행이
먼저 가라라로부터 시작한다.
출생해서 늙어가고 죽는 것을
차례로 자세히 관찰하라.
030_0272_a_03L宿世曾修行
先從迦羅邏
出生至老死
次第諦觀察

백골의 푸르고 붉은 모습과
지절(肢節)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백골이 부서지고 마르며
썩어 문드러져 모두 마멸한다.
030_0272_a_04L白骨靑赤相
肢節皆離散
骨瑣及羸朽
腐壞盡磨滅

저 모든 수행하는 자들은
부정념(不淨念)을 사유함에 있어서
인(因)에 따라 관찰하기도 하고
과(果)의 방편으로 배우기도 한다.
깊고 묘한 지혜를 성취하여
이 모양의 뜻을 요달해야 한다.
030_0272_a_06L彼諸修行者
思惟不淨念
有從因觀察
或果方便學
成就深妙慧
能了是相義

가라라에서부터
나아가 모든 부분과
4대(大)를 이루는
5정근(情根)을 관찰하면
030_0272_a_08L觀察迦羅邏
乃至一切分
四大和合淨
造色五情根

한량없는 극미한 종(種)의
모든 것들이 이로부터 일어난다.
마땅히 다시 죽은 뒤의 모습을 차례차례
관찰해야 한다.
030_0272_a_09L無量極微種
一切從彼起
當復更觀察
死後次第相

날이 갈수록 자꾸 변하면서
이레가 되는 날에 이르면
다시는 오고 가는 일도 없고
웃음도 말도 보는 것도 없다.
얼굴 모습이 모두 없어지니
위의의 자태를 버리고 떠난다.
030_0272_a_10L日日漸變異
乃至於七日
無復有來去
視瞻笑語言
容止悉已滅
捨離威儀姿

죽은 시체가 점점 변하여
색깔이 날로 허물어간다.
푸르죽죽한 여러 부정한 것들이
이와 같이 차례로 나타난다.
030_0272_a_12L死屍漸漸異
其色日毀變
靑等諸不淨
如是次第現

부풀어 오르고 고름이 짓물러서
넘쳐흐르는 냄새가 지독하여
갖가지 벌레들이 우글거리니
보기만 해도 색욕(色欲)이 떨어진다.
030_0272_a_14L胮脹膿爛潰
流漫極臭處
種種諸虫出
見已離色欲

본래 집착하던 것을 관찰하니
이미 허물어져 먹음이 다함없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니
전구(全具)의 욕망을 능히 멸한다.위에 말한 단정(端正)이 그 근본이 아니므로 또한 당연히 전구(全具)라고 말해야 한다.
030_0272_a_15L觀察本所著
已壞食不盡
離散在處處
能滅全具欲上言端正非其本亦應言全具

말라서 썩어빠진 뼈를 보니
다시는 윤기 나는 모습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칠어지니
곱고 부드러운 것에 대한 욕망을 여의게 된다.
흙먼지처럼 썩어서 부서지니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030_0272_a_17L自見枯朽骨
無復滋潤相
久故極麤澀
能離細滑欲
腐碎若塵塺
磨滅無所有

이와 같은 모양을 성취하면
유형(有形)의 욕망을 멀리 여의게 된다.유형(有形)이 굳이 이 중생(衆生)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5욕(欲)과 5괴(壞)를
병에 따라서 대처하라.
진실의 모양을 서로 대하여
수행하여 바르게 관찰하라.
030_0272_a_19L成就如是相
遠離有形欲有形不必患是衆生
五欲亦五壞
隨病而對治
相對眞實相
修行正觀察

색(色)이 변하거나 흩어져서
위의(威儀)와 모습이 소멸해 버리고
여위어 썩고 부서져 마멸하니
이를 이름하여 다섯 가지 괴(壞)라 한다.
030_0272_a_22L色變若離散
威儀容止滅
羸朽及磨碎
是名五種壞

이것은 곧 자신 중에 있다.
한량없는 모든 경계는
수행하여 바르게 생각하면
모두 자재함을 얻을 수 있으리라.
030_0272_a_23L此則自身中
無量諸境界
修行正憶念
悉能得自在
030_0272_b_01L
한량없는 두 가지를 이미 설했고,
자재(自在)와 경계,
수행하여 자재하지 않음도
또한 이미 분별해 설했노라.
030_0272_b_01L已說二無量
自在及境界
修行不自在
亦已分別說

이와 같은 부정념에서
문(聞)ㆍ사(思)ㆍ수(修)의 지혜를
바르게 관찰하여 혜안(慧眼)을 여니
이것을 설하여 세 가지가 있다 한다.
030_0272_b_03L於是不淨念
聞思與修慧正觀開慧眼
是說有三種

생각을 지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때로 다시 생각하지 않으며 머물고
개해(開解)와 사유(思惟)를 함께하되
혹 때로는 개해를 하지 않는다.해(解)는 곧 개(開)이다.
030_0272_b_04L作想有二種
時復不想住
俱開解思惟
或時非開解解卽開也

셋째는 성(性)은 번뇌[垢]가 없어
번뇌를 여읜 청정함에 머무름은
생각하지 않고 개해(開解)하지 않음이니
이 지혜로부터 수선(修禪)을 일으키고
030_0272_b_05L第三性無垢
離垢淸淨住
不想不開解
是慧修禪起

몸에 고요하게 머무는 즐거움을 일으킨다.
나머지 둘은 불가능하다.
마음 또한 적정(寂靜)하여 즐거우니
이것을 이름하여 수혜(修慧)라 한다.
030_0272_b_07L起身寂止樂
餘二則不能
心亦寂靜樂
是名爲修慧

몸을 윤택하게 하여 유연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적정의 모양이니
둘이 모두 유연하지 않으면
적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030_0272_b_08L滋潤身柔軟
此則寂靜相
二俱不柔軟
當知非寂靜

저 둘이 적정하지 않고
하나는 곧 안온함에 머물면
이를 말하여 색유(色有) 가운데서
수선하여 일으킨 지혜라 한다.
030_0272_b_09L彼二不寂靜
一則安隱住
是說色有中
修禪所起慧

부정관(不淨觀)의 한 가지 지혜는
10지(地)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근본과 그리고 이르지 못함과
욕(欲)과 중간(中間)을 또한 설하노라.
030_0272_b_11L不淨觀一智
依止十地起
根本及未至
亦說欲中間

한 계(界)에 의지하여 머무르는 몸은
욕(欲)과 색(色)에 경계(境界)하여
화생(化生)은 목숨을 마치고 나면
즉시 멸하여 부정함이 없다.
030_0272_b_12L依住一界身
境界於欲色
化生旣命終
卽滅無不淨

몸이 청정하여 남은 더러움이 없으니
염환(厭患)을 능히 일으키지 않고
다만 저들의 생멸하고
바뀌는 무상한 모양을 관찰할 뿐이다.
030_0272_b_13L身淨無餘穢
不能起厭患
唯觀彼生滅
變易無常相

그러나 포태(胞胎)하여 태어난 몸은
죽은 시체의 형체가 있으니
몸에 대하여 깨끗한 상(想)이 일어나면
부정관(不淨觀)을 대치한다.
030_0272_b_15L胞胎所生身
則有死屍形
於身起淨想
不淨觀對治

구하지 않으면 탐욕을 그치어서
사유하여 싫어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또 정대치(淨對治)가 있으니
싫어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다.
030_0272_b_16L不求止貪欲
思惟習厭患
更有淨對治
不作厭患想

방편으로 청정한 해탈을 해서
지혜로운 자는 혜안을 연다.
이른바 부정(不淨)한 인연에서
백골의 유광(流光)이 나온다고 한다.
030_0272_b_17L方便淨解脫
智者開慧眼
謂於不淨緣
白骨流光出

이로부터 차례로
푸른색의 미묘한 보배 나무를 일으킨다.
붉고 누르고 선명하게 흰
가지와 잎과 꽃이 또 그러하다.
030_0272_b_19L從是次第起
靑色妙寶樹
黃赤若鮮白
枝葉花亦然

훌륭한 옷에는 갖가지 미묘한 색깔의
구슬과 영락(瓔珞)이 있다.
이를 이름하여 곧
수행정해방편상(修行淨解方便相)이라 한다.
030_0272_b_20L上服珠瓔珞
種種微妙色
是則名修行
淨解方便相

저들 부정한 몸
곳곳에서 장엄함이 드러나고
계급을 차례로 올라가니
삼매는 지혜의 등(燈)을 태우고
030_0272_b_21L於彼不淨身
處處莊嚴現
階級次第上
三昧然慧燈

저 한 몸으로부터 나와서
전체에 높이 널리 두루해진다.
모든 나머지 몸에서 일어나는
장엄함 역시 이와 같다.
030_0272_b_23L從彼一身出
高廣普周遍
一切餘身起
莊嚴亦如是
030_0272_c_01L
이는 곧 청정한 해탈이니
방편의 부정관(不淨觀)이다.
만일 이렇게 잠깐 사이에
이 뛰어난 관(觀)을 닦아 익히면
이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름이니
모든 보시를 받을 만하다.
세존께서 칭찬하고 찬탄하신 바이니
삼계의 좋은 복전(福田)이 되리라.
030_0272_c_01L此則淨解脫
方便不淨觀
若能須臾頃
修習此勝觀
是則順佛教
堪受一切施
世尊所稱歎
三界良福田

나머지 모든 모양을 설하면
공덕이 또한 그러하여라.
백골과 푸르게 어혈되었다는 상을
성취하면 마음이 번뇌를 떠난다.
이 같은 부정념으로 인하여
방편으로 모든 지위를 뛰어넘는다.
030_0272_c_04L說餘一切相
功德亦復然
白骨靑瘀想
成就心厭離
因是不淨念
方便度諸地


이른바 저 몸의 염지(念止)와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와 법념처(法念處)는
난래(煖來)와 정인(頂忍)과
세간의 제일법(第一法)과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와
나아가 누진(漏盡)의 지혜가 된다.
이런 방편으로 인해
모든 공덕의 지위를 뛰어넘는다.
030_0272_c_06L所謂身念止
受心法念處
煖來及頂忍
世間第一法
見道及修道
乃至漏盡智
因是方便度
一切功德地

처음의 신념관(身念觀)으로부터
나아가 구경처에 이르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부정념(不淨念)은
일체의 모든 종자라고 말씀하셨다.
030_0272_c_09L從初身念觀
乃至究竟處
佛說不淨念
一切諸種子

세존께서는 저 탐욕은
이입(利入)이 깊어서 밑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정수(正受)는 대치(對治)의 약이니
마땅히 염리상(厭離想)을 닦는다면
모든 나머지의 번뇌는
당장 모두 다스릴 수 있다.
내가 이미 부정(不淨) 방편의
승진법을 설했노라.
나머지 승도(勝道)의 승진이 있음도
모양과 수행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030_0272_c_10L世尊說貪欲
利入深無底
正受對治藥
當修厭離想
一切餘煩惱
悉能須臾治
我已說不淨
方便升進法
餘有勝道進
相行如前說
不淨念升進分第十一竟

12. 수행방편도부정결정분(修行方便道不淨決定分)
030_0272_c_15L修行方便道不淨決定分第十二

부정념의 승진분의
모양과 뜻을 내가 이미 설했노라.
이제는 마땅히 부정념의 결정분을
수행하는 것을 설하리라.
030_0272_c_16L不淨升進分
相義我已說
今當說修行
不淨決定分

악계(惡戒)에 묶이지 않고
또한 업(業)의 번뇌도 없어서
마음은 해탈을 등지지 않고
기뻐서 마음이 항상 즐거우리라.
030_0272_c_18L不爲惡戒縛
亦非業煩惱
心不背解脫
歡喜常志樂

이와 같이 수순하여 살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가 멸한다.
030_0272_c_19L如是隨順生
麤澀四大滅

유연하고 고요하게 머무는 즐거움이 있으면
그 가운데서 삼매가 일어나리라.
정(定)으로부터 지혜가 생겨나
수행하여 싫어하고 미워하게 된다.
030_0272_c_20L柔軟寂止樂
三昧於中起
從定生智慧
修行能厭患

싫어하는 생각으로 이미 수행하면
즉시 유애(有愛)를 여읠 수 있게 된다.
사유하여 유애를 여의면
해탈의 진실한 지혜[實智]가 생기니
030_0272_c_21L厭想已修起
則能離有愛
思惟離有愛
解脫實智生

해탈의 지혜가 이미 생기면
계박(繫縛)에서 해탈한다.
이로부터 무위(無爲)를 얻으면
마침내 3유(有)를 여읜다.
이를 수행해서
결정분을 성취한다고 이름한다.
030_0272_c_22L已生解脫智
於縛得解脫
從是得無爲
究竟離三有
是說名修行
成就決定分
030_0273_a_01L
천왕(天王)에 다섯 위상(威相)이 있으니
상을 관하여 번뇌를 허물고
번뇌의 허물이 차츰 쇠해 엷어지고
이로 하여 멸(滅)을 구경(究竟)한다.
030_0273_a_01L天王五威相
觀相壞煩惱
漏過漸衰薄
由是究竟滅

인왕(人王)에 다섯 모양이 있으니
수왕(獸王)의 모양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지위의 모양이 명료한 것을
이름하여 결정(決定)이라 한다.
030_0273_a_03L人王有五相
獸王相亦然
諸地相明了
說名爲決定

몸을 움직여 사방을 돌아보며
위엄을 돋우어 큰소리를 지르고
마음대로 혼자서 누비고 있음이
사자왕의 위엄 있는 모양이다.
030_0273_a_04L動身四顧視
奮威暢大音
自在獨遊步
師子王威相

이와 같은 열다섯 모양에서
수행하여 결정을 일으키고
능히 저 지위 가운데의
모든 번뇌를 멸하게 한다.
030_0273_a_05L於此十五相
修行生決定
能令彼地中
一切諸垢滅

삼마제에 생각을 매어 두면
모든 번뇌의 결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오로(惡露)와 같은 부정의 생각은
염리(厭離)의 마음을 능히 일어나게 한다.
030_0273_a_07L繫念三摩提
出諸煩惱縛
惡露不淨想
能生厭離心

푸르게 어혈된 여러 모습들을
수행해서 잘 결정하라.
다시 나머지 세 가지 상(想)이 있으니
명상(明想)과 관상(觀想),
세 번째는 공상(空想)이라 한다.
적멸(寂滅)의 지혜를 닦고 익혀
030_0273_a_08L靑瘀等諸想
修行善決了
更有餘三想
明想及觀想
第三說空想
修習寂滅慧

색(色)과 자신을 깨끗이 하면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바르게 관찰함에 따라서 멸하게 된다.
030_0273_a_10L淨色及自身
所起諸煩惱
貪欲瞋恚癡
從是正觀滅

이 같은 하나하나의 생각들은
각각 세 가지 상의 권속들로 하여
능히 탐욕 등과 결박과
사(使)와 뇌전(惱纏)을 제거한다.
030_0273_a_11L此一一諸想
各三想眷屬
能除貪欲等
結縛使惱纏

이와 같은 모든 생각들을
분명히 살펴서 잘 관찰하면
이를 이름하여 수행하는 자가
부정상(不淨想)을 결정한다고 한다.
030_0273_a_13L是諸一切想
明審善觀察
是名修行者
決定不淨想

세월이 오래 흘러 썩은 백골에는
거칠고 여윈 모습이 나타나고
흙먼지처럼 부서져 버리니
모든 것들이 마멸해 버린다.
030_0273_a_14L久故朽白骨
疏瘠羸相現
破碎若塵塺音昧
一切悉磨滅

아래로부터 차례로 일어나는
방편을 가지고 소의(所依)를 허물고
청정한 지혜가 설하는 바가
수행의 결정상이다.
030_0273_a_16L從下次第起
方便壞所依
淨慧之所說
修行決定相

한량없는 깊고 묘한 종(種)이
모두가 널리 두루하고
저 결정(決定)의 진실이
금시조(金翅鳥)처럼 생겨난다.
030_0273_a_17L無量深妙種
一切普周遍
彼決定眞實
生如金翅鳥

다음에 청정한 지위를 일으키어
평탄(平坦)하고 지극하게 장엄한다.
030_0273_a_18L次起淸淨地
平坦極莊嚴

저 용맹한 보배의 사자(師子)와
우왕(牛王)과 용상(龍象)
이런 모든 일찍이 없던 부류가
곳곳에서 결정상(決定相)을 이룬다.
030_0273_a_19L勇猛寶師子
牛王若龍象
此諸未曾類
處處決定相

처음에 부정을 인하여 생기고
또한 부정에 따라서 자라니
처음에 가라라(迦羅邏)로부터 일어나서
부정한 가운데에 머문다.
030_0273_a_20L始因不淨生
亦從不淨長
初起迦羅邏
住於不淨中

저 이레 동안의 머무는 것을 관찰하여
생각을 잠시도 멈추지 말고
수행하여 잘 명료해지면
이를 곧 결정이라 한다.
030_0273_a_22L觀彼七日住
念頃不蹔停
修行善明了
是則說決定

이 같은 모든 부분들의
모양과 뜻을 모두 능히 알고
저 진실을 분명히 본다면
생각생각에 나고 멸함이 있으며
030_0273_a_23L如是一切分
悉能知相義
明見彼眞實
念念有生滅
030_0273_b_01L
모든 골상(骨想)을 익힘으로써
수행의 각의(覺意)가 생기리라.
능히 각지(覺支)의 생각을 일으킴을
이름하여 결정이라 말한다.
030_0273_b_01L因習諸骨想
修行覺意生
能起覺攴想
說名爲決定

저 모든 수행하는 자들은
생각을 분별함에 세 종류가 있다.
처음으로 익혀 행하는 자도 있고
이미 조금 익혀 행한 자도 있으며
오랫동안 수습한 자도 있으니
이들은 모두 결정에 가까운 것이다.
030_0273_b_03L彼諸修行者
分別三種想
或有始習行
或已少習行
或有久修習
是悉近決定

그런데 저들 지혜의 힘에 따라서
그 취향(趣向)함에 차별이 있다.
초업(初業)이 처음으로 일어나고
적게 익히는 마음이 머물고 나서
오래 배우면 능히 인연을 일으키니
이를 말하여 세 가지 수행이라 한다.
030_0273_b_05L隨彼智慧力
趣向有差別
初業者始起
少習心已住
久學能趣緣
是說三種修

초업을 이름하여 시종(始種)이라 하고
두 번째는 장양(長養)이라고 하며
마지막은 사리(捨離)라고 하니
이를 이름하여 결정이라 한다.
030_0273_b_07L初業名始種
第二爲長養
最後能捨離
說名爲決定

부정에 두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공(共)이거나 비공(非共)이다.
저 앞의 세 권속들과 같이
이것은 모두 부정(不淨)을 여읜다.
030_0273_b_08L不淨有二種
或共或非共
如前三眷屬
是離共不淨

문(聞)ㆍ사(思)ㆍ수(修) 지혜의
세 가지 종류의 부정념(不淨念)은
이와 같은 모든 종류에서
수행을 하여 아주 명료하게
잘 분별해서 욕망을 여의는 것을
이름하여 결정이라 한다.
030_0273_b_09L聞思與修慧
三種不淨念
於此一切種
修行諦明了
善分別離欲
是說名決定
不淨決定分第十二竟

13. 수행관계(修行觀界)
030_0273_b_12L修行觀界第十三

안반(安般)과 부정념의
물러나고 머무름과 승진(升進)과
결정의 진실한 모양을
이미 모두 분별해 설했다.
계방편(界方便)을 수행하는
넓고 개략적인 차별된 모양의
깊고 깊은 미묘한 뜻을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030_0273_b_13L安般不淨念
退住與升進
決定眞實相
悉已分別說
修行界方便
廣略差別相
甚深微妙義
今當次第說

먼저 안반과 부정념을
닦아 익히고
그런 뒤에 모든 계(界)를 관찰하면
안락하여 속히 구경에 이르게 된다.
스스로 방편으로 뛰어넘어
이것을 성취하기 어려워 고통스러우면
030_0273_b_16L有因先修習
安般不淨念
然後觀諸界
安樂速究竟
自以方便度
此苦難成就

이마 위와 두 눈썹 사이에
생각을 묶어서 흩어지지 않게 하라.
적지(寂止)에서 윤택이 생기니
삼마제가 증장하며
030_0273_b_18L頂上兩眉間
繫念令不亂
寂止潤澤生
三摩提增長

의지하는 바가 이미 유연하니
삼매에 안착하여 움직이지 않게 된다.
흩어진 부정심을
지혜로운 자는 모두 조복시켜야 한다.
030_0273_b_19L所依已柔軟
三昧安不動
擾亂不淨心
智者悉調伏

이미 마음을 조복시키고 나면
수행하는 곳에 편안히 머물러라.
이곳에서 밝은 상(想)을 일으키면
모든 몸이 나뉘어 나타난다.
030_0273_b_21L已隨調伏心
安住修行處
是處起明想
一切身分現

처음 털 하나로부터 시작하되
그 모양을 집중하여 관찰하라.
털 하나에서 자상(自相)을 보고
그런 다음에 모든 털들을 보라.
030_0273_b_22L初從一髮始
如其相憶念
於一見自相
然後摠衆髮
030_0273_c_01L
다음의 36물(物)의
자상 역시 모두 그렇게 하라.
부처님께서는 36물
각각에 머물러 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030_0273_b_23L次第三十六
自相摠亦然
佛說三十六
各各有住處

때로 저 모든 계(界)의
모이고 합친 것을 안으로 관찰하되
마치 저 눈 밝은 사람이
곳간을 열고 오곡을 보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030_0273_c_02L或時彼諸界
合聚內觀察
猶如明眼人
開倉見五穀

가끔 다시 역(逆)과 순(順)과
초월(超越)과 차제(次第)로 관한다.
030_0273_c_03L時復有逆順
超越次第觀

일계(一界)가 그 밑에 깔려 있고
나머지 종류는 모두 그 위에 있다.
차례로 서로 이어 연결이 되었으니
하나하나 그 모양들을 보라.
잡색(雜色)이나 잡색이 아니거나
전체를 두루 관찰하여
030_0273_c_04L一界藉其下
餘種悉處上
次第相連持
一一知其相
雜色不雜色
周滿悉觀察

마음이 머물러 한 곳에 있으면
그 경계가 시방에 두루하여
곳곳마다 편안히 있게 되니
이를 의지하여 열심히 닦아 익혀라.
030_0273_c_06L止心在一處
境界遍十方
處處安置已
依是勤修習

하나의 털을 백으로 나누어서
사유하여 바르게 생각하라.
그리고 다시 그 하나 중에서
다섯 가지 경계를 분별하라.
030_0273_c_07L一髮爲百分
思惟正憶念
復於一分中
分別五種界

다음에 저 공계(空界) 위의
식상(識相)에서 분별하여 관찰하고
次於空界上
識相別觀察

수행을 하여 번뇌가 없음을 보면
청정한 묘상(妙相)이 생기리라.
비유컨대 마치 물 위의 거품이
가림 없이 투명한 것과 같아
030_0273_c_09L修行見無垢
淸淨妙相生
譬如水上泡
明淨無障翳

이곳에서 모든 경계를 관찰하면
각각 그 자상(自相)을 보리라.
물은 습(濕)하고 땅은 견고하고 강하며
바람은 움직이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며
허공은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을
분별하여 아는 것이 곧 식상(識相)이다.
030_0273_c_11L是處觀諸界
各各見自相
水濕地堅强
風動火燒熱
虛空無障礙
別知是識相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녹색과
파리(頗梨)보배의 색깔 등
이와 같은 여러 색깔들에서
수행을 구족하여 관찰하라.
030_0273_c_13L靑黃赤白綠
及與頗梨色
於此衆雜色
修行具足觀

허공의 견고한 모양은
너무나 넓어서 두루 변만하고
저지하기 어려움이 금강과 같으니
금강의 지혜가 능히 허물어뜨린다.
저 위의 만다라(曼茶羅)에서
숙상(熟相)이 있어 나타나니
030_0273_c_14L虛空堅固相
彌廣周遍住
難沮喩金剛
金剛慧能壞
於上曼荼羅
則有熟相現

비유컨대 마치 치성한 불길이
저 견고함을 허무는 것과 같다.
030_0273_c_16L譬如火熾然
能破彼堅固

혹 관찰함에 의심하고 괴이하다고 여겨
그 마음이 크게 두려워진다.
밝은 자는 능히 결정하나니
모든 공덕을 증익하리라.
030_0273_c_17L或見生疑怪
其心大恐怖
明者能決定
增益諸功德

허공계(虛空界)가 허물어지고 나면
승진의 모양을 능히 일으켜야 한다.
흘러내리듯 녹고 허물어지고
다시 흙먼지처럼 부서져 버리니
수행하여 진실을 보면
해탈의 모양이 생기리라.
030_0273_c_18L已壞虛空界
能起升進相
融壞若流注
復碎如塵塺
修行見眞實
則生解脫相

허공계가 이미 허물어지면
위의 모든 경계 역시 그러하다.
이는 곧 괴상(壞相) 위에서
나머지 괴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030_0273_c_20L空界旣已壞
上諸界亦然
是則壞相上
有餘壞相起

만약 다시 나머지 한 종(種)도
위에서 모든 경계를 본다면
차례로 널리 두루 변만하리니
함께 허물어지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030_0273_c_22L若復餘一種
於上觀諸界
次第普周遍
俱壞如前說

서른여섯[六六] 종(種)과
십팔(六三)과 여덟(四二),
이와 같은 62가지를 관찰하라.
세존께서 대략 계(界)를 설하셨다.
030_0273_c_23L觀察六六種
六三及四二
如是六十二
世尊略說界
030_0274_a_01L
색(色)을 허무는 데 세 가지가 있으니
찰나와 세(世)와 극미(極微)이다.
무색(無色)은 두 가지뿐이니
무위(無爲)에는 괴상(壞相)이 없다.
030_0274_a_01L色壞有三種
剎那世極微
無色唯二種
無爲無壞相

계부정념(界不淨念)을 수행하면
능히 탐욕을 버리게 된다.
계방편관(界方便觀)에 따르는 것이
나의 교만을 다스리는 약이다.
030_0274_a_03L修界不淨念
則能捨貪欲
順界方便觀
是治我慢藥

계사무량(界四無量)을 관찰하면
성냄의 독을 없애게 된다.무상(無常)하여 잠시인 것을 찰나(刹那)라 한다.
030_0274_a_04L觀界四無量
除滅瞋恚毒一無常頃名剎那

아난(阿難)이 말하기를
마땅히 5념처(念處)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
030_0274_a_05L阿難說是言
當修五念處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제6념(念)이 있느니라.
030_0274_a_06L世尊告之曰
更有第六念

털과 머리털, 손톱ㆍ발톱과 이와 뼈와
근육과 두껍고 얇은 피부와
지방과 골수와 뇌(腦)와 막(膜)과
비장과 콩팥, 심장과 폐와 간과
자궁(胞)ㆍ위(胃)ㆍ대장ㆍ소장과
똥ㆍ오줌ㆍ고름ㆍ콧물ㆍ침과
때 묻고 더러운 모든 피와 눈물과
누렇고 흰 가래침 등
서른여섯의 부정한 것들에서
030_0274_a_07L髮毛爪齒骨
筋肉厚薄皮
肪髓腦膜
脾腎心肝肺
胞胃大小腸
屎尿膿涕唾
垢污諸血淚
黃白及痰癊
三十六不淨

3종계(種界)를 관찰하라.
이 가운데 습한 모양은 물이고
불은 뜨겁고 땅은 견고하고 강하다.
모든 형색이 있는 곳에
안팎으로 나부끼어 움직이는 모양이 있다.
030_0274_a_10L觀察三種界
是中濕相水
火熱地堅强
諸有形色處
內外飄動相

들숨과 날숨, 그리고 언어의
통리(通利) 등은 회전한다.
모든 것을 다 말하면 다섯이니
이 모양을 이름하여 풍계(風界)라 한다.
030_0274_a_11L出入息語言
通利等廻轉
一切摠說五
是相名風界

눈ㆍ귀ㆍ코ㆍ혀ㆍ몸과
모공(毛孔)과 인후(咽喉)가 공하며
산골, 바위, 집 가운데
안팎이 아무런 장애가 없으니
이와 같은 모든 종류를
이름하여 공계(空界)라 한다.
030_0274_a_13L眼耳鼻舌身
毛孔咽喉空
山巖室宅中
內外無障㝵
如是一切種
悉名爲空界

저 모든 여섯 가지 근에서
생기는 모든 식(識)의 종류는
이와 같이 많아서 한량이 없으니
모두 이름하여 식계(識界)라 한다.
030_0274_a_15L於彼六情根
所生諸識種
如是多無量
摠說名識界

부처님께서는 6계(界)에
내[我]가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030_0274_a_16L佛言應當知
六界非有我

음계(陰界)의 모양을 관찰하지 않으면
나[我]와 내 것[我所]을 헤아리게 된다.
모든 안팎의 경계는
이곳에서 뜻이 회전한다.
030_0274_a_17L不觀陰界相
計我及我所
一切內外界
是處意廻轉

이 뜻이 행하는 곳에 따라
3수(受)와 18종(種)과
6촉(觸)과 4처(處)는
세존께서 이를 설하셨다.
030_0274_a_18L從是意行處
三受十八種
六觸及四處
世尊之所說

애욕과 교만의 모든 번뇌는
모두 이 가운데서 일어난다.
이 몸은 여러 미세함이 합해진 것이니
허망하고 비어서 주인이 없으며
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닌데
미혹해서 진실이라 생각한다.
030_0274_a_19L愛慢諸煩惱
悉於是中起
是身衆微合
虛妄空無主
非我非衆生
迷惑計眞實

부처님께서 라후라(羅睺羅)에게
계(界)가 모두 무상하다고 관하면
이와 같은 여섯 가지 계는
6처(處)를 좇아 일어나니
030_0274_a_21L佛告羅睺羅
觀界悉無常
如是六種界
說從六處起

여섯 교묘한 방편을 수습하여
여섯 때[時]에 각각 하나를 관하라고 설하셨다.
색처(色處)는 모두 구족하지만
무색(無色)은 단지 식계(識界)뿐이다.
030_0274_a_23L修習六巧便
六時各觀一
色處悉具足
無色唯識界
030_0274_b_01L
저 종류가 의지하는 곳과
상행지(相行地)의 경계
대치(對治)와 소치(所治)와
여실한 분(分)과 수(數)를 알라.
030_0274_b_01L彼種所依處
相行地境界
對治與所治
如實知分數

몸 안에 있는 모든 계의 종류는
다시 스스로 고뇌를 일으킨다.
비유컨대 마치 독사를 길러
끝내 그것으로부터 해를 입는 것과 같다.
030_0274_b_02L身中諸界種
還自生苦惱
譬如養毒蛇
終爲彼所害

4대(大)가 물질을 만들어 내어
곧 만들어진 물질과 함께 머물고
화합하여 서로 섞이니
도리어 4대가 허물어진다.
030_0274_b_04L四大生造色
卽共造色住
和合相間錯
還爲四大壞

부정의 방편의 관찰은
먼저 만들어진 물질에서 일어나며
안반(安般)의 방편념(方便念)은
마땅히 4대로부터 비롯된다.
030_0274_b_05L不淨方便觀
先於造色起
安般方便念
要從四大始

만약 저 수행하는 자가
두 가지 방편을 증광하고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을
화합하여 동등하게 관찰하면
030_0274_b_06L若彼修行者
增廣二方便
四大及造色
和合等觀察

비로소 근본처(根本處)에 들어가게 되리니
그것이 먼저 만들어진 물질을 허물고
들어간 다음에
인(因)하는 4대의 허물어짐을 관찰하면
030_0274_b_08L始入根本處
彼先壞造色
入已然後觀
所因四大壞

정혜(定慧)가 점차 늘어나고
염처(念處)를 갖추어 성취하게 된다.
화합하여 전부 관찰하면
모두가 다 적멸(寂滅)이다.
030_0274_b_09L定慧漸增廣
念處具成就
和合摠觀察
一切悉寂滅

저 36물(物)의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허물어져 마멸한다.
이 3상(想)과 10상(想)을
수행하여 염리(厭離)를 증장하라.
030_0274_b_10L彼三十六物
臭穢壞磨滅
此三與十想
修行增厭離

부처님께서는 이 근본이
능히 모든 악에 미친다고 말씀하셨다.
佛說是根本
能及一切惡

49종(種)의 법이
삼매 가운데서 일어난다.
수행하여 자세히 관찰하면
자신과 욕계(欲界)가
한량없는 부정(不淨)의 종류로서
악하고 더러움이 모두 가득 차 있다.
030_0274_b_12L四十九種法
三昧於中起
修行諦觀察
自身及欲界
無量不淨種
穢惡悉充滿

온갖 고통에 핍박받아서
성대한 불길이 몹시 심하다.
덧없는 변괴(變壞)의 모양을
보고 나니 염리가 생긴다.
030_0274_b_14L衆苦所逼迫
盛火極熾然
無常變壞相
見已生厭離

색계의 서로 비슷한 종류의
미묘한 모양이 나타나니
깊이 즐겨서 출리(出離)를 구하여
번뇌를 싫어하는 생각을 증진하면
030_0274_b_16L色界相似種
微妙相顯現
深樂求出離
增進厭患想

깨달음이 있고 또한 관이 있어
욕망을 여의고 즐거움이 생기니
적연하게 초선(初禪)에 들어가면
안팎이 모두 청정하다.
030_0274_b_17L有覺亦有觀
離欲生喜樂
寂然入初禪
內外悉淸淨

소의(所依)와 경계(境界)가
단련된 진금(眞金)의 모양 같으며
스스로 몸이 범세계(梵世界)에 처해서
그 속에서 지극히 기쁘고 즐겁다.
030_0274_b_18L所依及境界
如練眞金像
自身處梵世
於中極娛樂

또한 5지상(支相)의
몸과 경계가 나타남을 본다.
제2선에서는 각관(覺觀)을 멸한다.
안이 청정하여 마음은 한 곳에 있게 되고
030_0274_b_20L又見五攴相
身及境界現
第二滅覺觀
內淨心一處

정(定)에 따라 즐거움이 생기니
4지(支)가 몸 안에 나타난다.
소의(所依)와 경계가
비유컨대 진짜 산호(珊瑚)와 같다.
030_0274_b_21L從定生喜樂
四攴身內現
所依及境界
譬如眞珊瑚

제3선에서는 기쁨을 여의니
평정[行捨]과 염(念)과 혜제(慧除)와
몸에 즐거움을 받음과 삼매의
5지(支)의 모양이 명료하다.
030_0274_b_22L第三處離喜
行捨念慧除
身受樂三昧
五攴相明了
030_0274_c_01L
의지하는 바의 푸른 유리(琉璃)보배는
청정하고 매우 미묘하며
소신(少身)을 연(緣)함이 한량없고
모든 근(根)이 차례로 일어난다.
030_0274_c_01L所依靑琉璃
淸淨甚微妙
緣少身無量
諸相次第起

제4선에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끊으니
근심과 기쁨이 이미 먼저 멸한다.
불고불락(不苦不樂)과 사(捨)와
염정(念淨)과 삼마제의
030_0274_c_02L第四斷苦樂
憂喜先已滅
不苦不樂捨
念淨三摩提

이와 같은 4지(支)의 모양은
몸과 경계를 나타낸다.
날숨과 들숨이 멸하여
의지함이 지극히 순백하다.
030_0274_c_03L如是四攴相
現身及境界
出息入息滅
所依極淳白

색(色)을 지나서 유대(有對)를 멸하면
이를 말하여 공처(空處)에 든다 한다.
공상(空相)을 지나면 식(識)이 정(定)하고
식(識)을 지나면 무소유(無所有)이다.
030_0274_c_05L過色滅有對
是說入空處
過空相識定
過識無所有

이 무소유를 지나면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다.
모든 계상(界相)을 잘 알면
맛 들지 않고 매이지도 않으며
030_0274_c_06L過是無所有
非想非非想
善知諸界相
不味亦不縛

청정한 네 가지 범행(梵行)이
높고 넓어서 한량이 없다.
자비가 널리 두루 편만하니
희사(喜捨)가 또한 그러하다.
030_0274_c_07L淸淨四梵行
高廣無有量
慈悲普周遍
喜捨亦復然

근본 네 가지 선(禪) 중에서
다섯 신통(神通)을 닦아 일으켜라.
삼매가 현재 눈앞에 있을 때
마음을 묶어서 자신을 관한다.
030_0274_c_09L根本四禪中
修起五神通
三昧現在前
繫心觀自身

가볍고 연한 생각을 지어서
점차 들어 움직이지 않으면
경계가 눈앞에 있으니
땅을 여읨이 호마(胡麻)와 같다.
차츰 나아감이 보리[大麥]와 같으니
다음 차례는 높아져 4지(指)와 같다.
030_0274_c_10L作輕及軟想
漸擧不令動
境界現在前
離地如胡麻
稍進如大麥
轉次高四指

이 상(床)에서 저 상에 이르기까지
차츰 능히 뜻대로 할 수 있다.
날아다니고 변화를 부리는 것이
자재로워서 장애가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수행하는 자의
미묘한 신통력이라고 한다.
030_0274_c_12L此牀至彼牀
漸漸能隨意
飛行及變化
自在無障㝵
是名修行者
微妙神通力

마음을 자신에게 묶어 두어서
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외부의 음성을 자세히 취하면
진실한 그대로를 모두 듣게 된다.
030_0274_c_14L繫心於自身
禪定現在前
諦取外音聲
如其實皆聞

마음을 자신에게 묶어 두어서
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관하면
일심(一心)으로 모두 다 알게 된다.
030_0274_c_15L繫心於自身
禪定現在前
觀他心所念
一切皆悉知

마음을 자신에게 묶어 두어서
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스스로 이 삶의
태(胎)에서부터 중음(中陰)에까지 관하고
차츰 전신(前身)의 일을 보면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모든 바뀌어 온 과정들을
여실하게 생각하여 알게 된다.
030_0274_c_17L繫心於自身
禪定現在前
自憶念此生
從胎及中陰
漸見前身事
乃至百千劫
一切諸所更
如實憶念知

마음을 자신에게 묶어 두어서
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중생 종류의
생사와 형색(形色)을 관찰하라.
그 업과 과보와
중음(中陰)과 5도(道)의 생(生)에 따라
030_0274_c_19L繫心於自身
禪定現在前
觀察衆生類
生死及形色
隨其業果報
中陰五道生

수행하면 천안(天眼)이 깨끗하여
모든 것이 여실하게 보이리라.
근본의 여러 지위들 중에서
남은 공덕이 한량없다.
수행하여 마음이 자재로우면
모든 것이 다 구족되리니
030_0274_c_21L修行天眼淨
一切如實見
根本諸地中
無量餘功德
修行心自在
一切悉具足
030_0275_a_01L
이른바 여덟 가지 배사(背捨)와
승처(勝處)와 일체의 입(入)이다.
배사의 모양에 다섯이 있으니
부정상(不淨相)과 정상(淨相)과
색상(色相)과 번뇌, 그리고 식(識)으로
이 다섯 가지 모양을 대강 설하리라.
030_0274_c_23L所謂八背捨
勝處一切入
背捨相有五
不淨與淨相
色相煩惱識
略說是五相

승처(勝處)는 먼저 자신부터이니
내색(內色)과 외소색(外少色)의
좋은 것이든 추한 것이든 하나이니
밖으로 많은 둘이 또한 그러하다.
030_0275_a_02L勝處先自身
內色外少色
若好若醜一
外多二亦然

안으로는 색상(色想)이 있지 않은데
밖으로 적고 많은 색을 보게 되니
두 가지는 모두 좋고 추함이다.
이것이 앞의 4승처(勝處)이다.
030_0275_a_04L內無有色想
外觀少多色
二俱若好醜
是前四勝處

뒤의 네 가지는 안은 무색(無色)이요
밖은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희다.
모든 입(入)은 4대(大)와
4색(色)과 공(空)과 식(識)이다.
외부와 내신(內身)을 관하면
하나의 모양으로 차별이 없다.
030_0275_a_05L後四內無色
外靑黃赤白
一切入四大
四色與空識
觀外及內身
一相無差別

모든 변(辯)의 미묘한 원지(願智)와
무쟁(無諍)삼마제와

역(逆)과 순(順) 그리고 초월의
한량없는 삼매의 문(門)을
030_0275_a_07L諸辯妙願智
無諍三摩提
逆順與超越
無量三昧門

밝은 지혜로 결정하여 관하고
다섯 가지의 충만함을 구족한다.
030_0275_a_08L明智決定觀
具足五種滿

첫째는 몸으로, 둘째는 경계로 해서
정상(定相)이 널리 두루하다.
셋째는 억념(憶念)이 가득하여
즐겨 염사(厭捨)를 수행한다.
넷째는 여러 지(地)가 가득하니
10처(處)의 모양이 명료하다.
3승(乘)의 근(根)이 구족한 것을
다섯째 만(滿)이라 말한다.
030_0275_a_09L一身二境界
定相普周遍
第三憶念滿
修行喜厭捨
第四諸地滿
十處相明了
三乘根具足
是說第五滿

계방편(界方便)을 성취하여
오래된 어리석음[癡冥]을 멸하면
마음이 깨끗해져서
허공과 같이 때가 없게 된다.
030_0275_a_12L界方便成就
久遠癡冥滅
能令意淸淨
無垢如虛空

이와 같은 모든 공덕
모든 것을 다 구경(究竟)하리라.
030_0275_a_13L如是諸功德
一切悉究竟
觀界第十三竟

14. 수행사무량삼매(修行四無量三昧)
030_0275_a_15L修行四無量三昧第十四
030_0275_b_01L
수행을 하는 자가 만약 널리 자심(慈心)을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그 마음을 소연(所緣)에 묶고 이를 점차 익혀 한량없는 과악(過惡)을 없애서 마음이 다투는 바 없고 또한 원한으로 맺음이 없으며 성냄이 없고 청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친(親)ㆍ중(中)ㆍ원(怨)의 3종(種) 9품(品)의 한량없는 무수한 중생들이 시방이 다하도록 그 3분(分)의 경계에 편안하게 머무름에 있어서 순일하게 행함을 즐기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다만 국토(國土) 세계만 제외하고 저 중생들의 세계에서 이를 두루하여 전체가 인연이 된다면 성취하여 노닐 것이다.
그리고 수행하는 자가 자심(慈心)의 방편을 닦고자 한다면 먼저 이를 평등한 마음으로 사유하여 모든 중생들을 인연하여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해서 성냄을 멸하여 없애고 자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총관자무량삼매(總觀慈無量三昧)라고 하는 것이다.
030_0275_a_16L修行者若欲廣修慈心先當繫心所漸習令無量滅除過惡心不諍競亦無怨結無恚淸淨謂於親怨三九品衆生無量無數安處十方三分際淳一樂行唯除國土世界衆生世界周普摠緣成就遊行者慈方便先等心思惟摠緣一切衆生令心堅固滅除瞋恚而起慈心是名摠觀慈無量三昧
그런데 이와 같은 총관(總觀)으로도 오히려 성냄에 얽매인다고 한다면, 그런 자는 마땅히 그 상친(上親)에 대하여 별상(別相)의 자심을 닦고 다음으로 중친(中親)ㆍ하친(下親)ㆍ중인(中人) 및 원가(怨家)에 대하여 차례로 9품의 자심을 닦아 익혀 차츰 성냄의 마음을 여의고 애념(愛念)을 일으켜 갖가지 낙구(樂具)로 더불어 이를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즐거움을 함께한 다음에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법의 요익(饒益)한 마음을 일으켜 광대자(廣大慈)ㆍ극원자(極遠慈)ㆍ무량자(無量慈)의 세 가지 자심을 닦아야 한다. 성냄을 없애 인애(仁愛)의 마음에 머물게 하고, 그 상응하는 공덕과 선근에 따라 모든 불법을 허여(許與)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법락(法樂)과 더불어 갖가지 자심을 닦게 하는 것이다. 먼저 출가의 즐거움을 주고, 다음으로 선정(禪定)과 정수(正受)의 즐거움을 주며, 다음으로 보리의 즐거움을 주고, 다음으로 적멸의 즐거움을 준다.
030_0275_b_02L如是摠觀猶爲瞋恚所縛者當於上親修別相慈次於中親下親中人怨家次第修習九品慈心漸離瞋恚心生愛念與種種樂與是樂已然後於一切衆生起法饒益心修三種慈廣大慈極遠慈量慈捨除瞋㝵住仁愛心隨其所應功德善根一切佛法皆悉與之謂與種種法樂修種種慈先與出家樂次與禪定正受樂次與菩提樂次與寂滅樂
저 수행하는 자가 본래 일찍이 고친 것이거나 아직 고치지 않은 것과 갖가지 낙구(樂具), 자득(自得)과 타득(他得)의 청정한 선근, 나아가 위없는 적멸(寂滅) 구경의 무위(無爲)에 이르기까지 그 수행하는 자의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따라서 한량없는 법락(法樂) 등을 앞에 있는 중생에게 준다.
그리고 이처럼 즐거운 생각[樂想]이 일어난 다음 하나하나 관찰하여 이들이 서로 스스로 깨달아 곧 결정(決定)을 얻는다면,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상(像)을 따라서 이를 나타내는 것과 같다. 자삼매(慈三昧)의 거울 또한 즐거운 일로 인해 갖가지 즐거운 모양을 모두 앞에 나타내어 보일 것이다.
030_0275_b_12L彼修行者本曾所更及所未種種樂具自得他得淸淨善根至無上寂滅究竟無爲隨其修行所想念無量法樂等與衆生相現在樂想起已一一觀察以相自證便得決定猶如明鏡因物像現慈三昧鏡亦因樂事種種樂相悉現在前
혹시 그 수행이 성냄으로 하여 교란을 당할 경우 이와 같이 생각하라.
‘내가 본래 이와 같은 성냄으로 해서 많은 살해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죄역(罪逆)을 일으켜서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큰 지옥에서 다시 고통의 독을 받고, 혹은 벌ㆍ전갈ㆍ지네ㆍ독사ㆍ악룡(惡龍)ㆍ해귀(害鬼)ㆍ나찰(羅刹)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갖가지 독과 해(害)의 종류를 만들었으니, 지금 이를 제거하여 없애지 않는다면 또다시 그와 같은 고통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030_0275_b_18L或時修行爲瞋恚所亂作是思惟我從本由是瞋恚多所殺害興諸罪逆於惡道於大地獄還受苦毒或作蜂蜈蚣毒蛇惡龍害鬼羅剎如是種種毒害之類今不除滅復見燒迫
030_0275_c_01L이와 같은 방편이 능히 저 성냄을 중지시킬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하라.
‘욕을 하는 자나 받는 자나너와 나를 구별할 것 없이 다 같이 덧없는 것들이어서 잠시 잠깐도 머물러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둘이 모두 지나가 버리어서 그 악성(惡聲) 또한 이미 사라져 버렸거늘 나중에 일어난 두 사람이 까닭 없이 서로 다툰다. 그러나 지금 이들 두 사람 또한 순간순간 사라져 버려서 허망하여 아무런 실상이 없는데, 대체 누가 욕을 하고 누가 욕을 먹는단 말이며 왜 이처럼 거꾸로 되어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허공과 더불어 서로 싸우면서 이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근(耳根)이 허망으로부터 전도(顚倒)되어서 번뇌의 업이 일어난 것이며, 저 사람의 설근(舌根) 또한 이와 같다. 모두가 인연을 따라서 생멸하는 것인데, 대체 누가 욕을 하고 누가 이를 듣는단 말인가.’
030_0275_b_23L是方便能止瞋恚又復思惟罵者彼我無常須臾不住二俱過去聲已滅後起二人無故共諍又今二人念念卽滅虛妄無實誰罵誰受何爲顚倒與空共鬪計我耳根從虛妄顚倒煩惱業起彼人舌根亦復如是緣生滅誰罵誰聞
수행하여 이와 같이 사유할 때 성냄의 결박이 풀어져 능히 자심을 닦아서 번뇌의 때를 여의고 청정해질 수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자심을 닦는 자가 4념처(念處)에서 능히 결정을 얻어서 닦아 익혀서 증광하며, 한량없는 법문의 뛰어나고 묘한 도과(道果)를 성취하면 다시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세 가지의 방편 대자(大慈)이다. 만약 이미 욕망을 여의었으면 다시 정묘(淨妙)하게 욕망을 여읜 자심을 닦아야 한다. 깊은 마음의 요익함이 증광하고 한량없는 진실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이 공덕으로 인해 원하는 구경열반(究竟涅槃)을 구족할 것이다.
030_0275_c_07L修行如是思惟時瞋恚縛解能修慈心離垢淸淨如佛修慈者於四念處能得決定修習增廣成就無量法門勝妙道果不復退還是則三種方便大慈若已離欲修淨妙離欲慈心深心饒益增廣無得眞實果因此功德具足所願究竟涅槃
그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께서는 자심은 두려움이 없으며, 자심은 모든 공덕의 어머니이며, 자심은 모든 공덕의 부싯돌이며, 자심은 능히 모든 흉폭한 악을 소멸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수행하여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욕망을 여읜 대자(大慈)를 닦아야 한다. 비심(悲心)이 한량없으니, 마치 자심의 경계가 원가(怨家)ㆍ친인(親人)ㆍ중인(中人)인 것처럼 비심 또한 이와 같이 차례로 익혀서 닦는 것이다.
곧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을 자심(慈心)이라 하고 요익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것을 비심(悲心)이라 한다”고 하셨다.
030_0275_c_14L所以者何一切諸佛說慈爲無畏慈爲一切功德之母慈爲一切功德鑽燧慈能消滅凶暴諸惡是故修行當勤方便修離欲大慈悲無量如慈境界怨親中人悲亦如是第修習如佛言曰饒益衆生說名慈除不饒益說名悲心
030_0276_a_01L만약 먼저 중생에게 요익의 마음을 일으켜 갖가지 낙구(樂具)를 가지고 이를 모두 그들에게 베풀어 준 다음에 중생들을 본다면 오직 그 즐거움을 받는 것만을 볼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자심이라 한다.
만약 먼저 중생들이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그 요익하지 않은 것을 제거할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 중생들이 요익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것을 본다. 이들이 요익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고 나서갖가지 낙(樂)이 아닌 것과 낙을 받는 것을 이름하여 비심이라 한다. 정상(淨相)을 보는 것이 자심이고 허공상(虛空想)을 보는 것이 비심이며, 낙행(樂行)이 자심이고 고행(苦行)이 비심이니, 이것이 곧 그 차별이다.
수행을 하는 자가 여러 중생들이 흉포하여 성내고 다투어 해치고 죽이면서 서로 핍박을 하는데도 이를 도와주고 보호하는 자가 없는 것을 보면, 비심이 일어나서 이를 도와주고 보호하여 줄 것이다. 또 중생들이 그들의 몸ㆍ목ㆍ귀ㆍ코 등이 잘려 그 지체(肢體)가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데도 이를 능히 구해주는 자가 없는 것을 본다면 수행하는 자는 그 비심(悲心)이 일어날 것이다.
030_0275_c_20L若先於衆生起饒益心以種種樂具悉施與之後觀衆生唯見受樂是名慈心若先觀衆生受無量苦起除不饒益心後見衆生除不饒益除不饒益已種種樂非與樂也是名悲心見淨相是慈見虛空相是悲樂行是慈苦行是悲是則差別謂修行者見諸衆生兇暴諍怒殘賊殺害共相逼迫無有覆如是見已而起悲心爲作覆護見衆生斬截身肢體苦痛無無能救者修行見已而起悲心
또 수행을 하는 자가 비심에 머무를 때에 5취(趣)의 중생들이 그 고통이 치열하여 한량없는 핍박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깊이 비심이 일어나서 이를 구호하여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와 같이 비심을 수행하여 한량없는 선근(善根)이 생길 때에 한량없는 공덕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이와 같은 중생들이 이처럼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도 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지극히 악독하여 전혀 선근이 없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큰 비심[大悲]은 본래 모든 부처님께서 익혀서 닦은 것으로서 이를 말미암아서 모든 지혜의 바다를 그 궁극까지 관철하는 것이다. 만약 수행을 하는 자가 이를 능히 구족하게 익혀서 닦는다면 오래지 않아서 기필코 이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란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30_0276_a_08L修行住悲心時見五趣衆生苦痛熾無量燒迫深起悲心興救護想是修行悲無量善根生時無量功德相現若見此衆生受無量苦而不起是則極惡無善根人如是大悲一切諸佛本所修習由是究竟一切智海行者若能具足修習當知不久必到是處
030_0276_b_01L희무량(喜無量)이란 자심의 경계에서 수행함으로써 여섯 사념(思念) 등의 모든 선한 공덕과 한량없는 불법과 자신이 성취한 지계(持戒)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 등 모든 공덕으로 중생을 요익하게 하여 자락(自樂)과 타락(他樂)을 다하여 모두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들이 저 법락(法樂)을 얻는 것을 보면 마음에 환희를 느낀다. 마음이 환희를 느끼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지면 한결같이 기뻐하게 되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즐겁구나, 영원히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리라.’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기뻐할 때에 그 낙상(樂相)을 보고 미묘하여 밝고 깨끗해진다. 이와 같은 모양을 성취하는 것을 희무량삼매(喜無量三昧)라고 이름한다.부처님께서는 희(喜) 등, 나아가 식처(識處)를 닦아 모은다고 말씀하셨다.
030_0276_a_16L喜無量者謂修行於慈境界以六思念等諸善功德無量佛法及自身成就戒定智慧一切功德饒益衆生樂他樂盡皆與之見一切衆生得法樂已其心歡喜其心歡喜則憂慼滅憂慼滅已一向欣悅踊躍歡喜念言快哉永使安樂於一切衆生歡喜時有樂相輕微明淨成就此相名爲喜無量三昧如佛說修集喜等乃至識處
사무량(捨無量)이란 원수나 친한 이를 버려 동등하게 중품을 인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중생들에 대하여 어떤 차별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심과 비심, 기쁨 등을 여의고 오직 중생행(衆生行)만을 지어서 경계에 가깝고 모양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세존께서 사(捨)를 설함에 있어서 갖가지의 사(捨)가 각자 그 모양이 있으니, 사무량은 그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 평등하고 청정하여 고락상(苦樂相)을 여읜 것을 일러 사상(捨相)과 비슷한 상(相)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사무량삼매(捨無量三昧)라고 한다.
세존께서는 사무량과 나아가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수행에 대하여 설하셨다. 이미 네 가지 무량한 모양들에 대하여 이를 대강 설하였으니, 여타의 갖가지 깊고 깊은 모양들에 대해서는 수행하는 자가 마땅히 이를 차례로 닦아서 익혀야 한다.
030_0276_b_02L捨無量者捨怨親已等緣中品此唯是衆生無有差別離慈悲喜唯作衆生行近境界近相是故世尊說捨種捨各自有相捨無量不與彼同平等淸淨離苦樂相捨相似相現名捨無量三昧世尊說修捨無量至無所有處已略說四無量相餘種種甚深相行者應次第修習

15. 수행관음(修行觀陰)
030_0276_b_10L修行觀陰第十五

만약 수행을 하는 자가 오랫동안 공덕을 쌓아서 일찍이 선정을 익히면 열어 보임을 들어서 그 본연(本緣)을 일으키고, 곧 능히 사유하여 5음을 관찰해서 깊은 법을 요달할 것이다. 생사를 멸하여 없앰이 마치 저 대풍(大風)이 두꺼운 구름을 흩어서 날려버리는 것과 같으며, 또한 모든 마(魔)가 즐기는 법을 끊어서 5음의 뜻을 관찰할 것이다.
이제 이를 설하겠다. 수행을 하는 자가 안으로 스스로 사유하여 번뇌의 바다를 도탈하고자 이욕(離欲)을 일으키면 윤택함이 생겨서 자신이 쾌락해지고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를 멸하고 수순한 4대가 생길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산란한 뜻을 섭수하여 능히 구경(究竟)에 이르러 지혜를 성취할 것이다.
030_0276_b_11L若修行者久積功德曾習禪定少聞開示發其本緣卽能思惟觀察五陰了達深法滅除生死猶如大風飄散重雲亦斷一切魔所樂法觀五陰義今當說修行者內自思惟欲渡煩惱起離欲生潤澤自身快樂麤澀四大滅隨順四大生攝諸亂意能趣究成就智慧
030_0276_c_01L만약 근본적으로 관하는 곳이 견고하고 밝고 맑으면 능히 삼매를 일으켜서 모든 흩어진 생각들을 여의고 번뇌를 멸하여 없앨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미묘한 모양들이 모두 나타날 것이니, 마치 청정하고 미묘한 유리와도 같고 깨끗한 물의 포말과도 같을 것이다. 수행을 하는 자가 이와 같이 밝고 맑으며 티 없는 모양을 보면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이를 지켜 지니어서 마음이 방일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처럼 방일하지 않으면 숙상(熟相)이 일어날 것이다. 숙상이 일어나면 괴상(壞相)이 나타나고, 괴상이 나타나면 오직 법상(法想)만이 일어나서모든 것이 적멸할 것이다.
030_0276_b_19L若根本觀處堅固明淨能起三昧離諸亂想滅除煩惱諸微妙相於是悉現如淨妙瑠璃如水淨行者見此明淨無垢相起善念守心不放逸旣不放逸則熟相起相起已壞相現壞相現已唯起法想一切寂滅
이와 같이 법상을 수행하여 이를 구족하게 성취하면 증상된 염리(厭離)를 얻게 된다. 마음이 견고하고 정진하여서 움직이지 않으며, 심심삼매(甚深三昧)와 견고삼매(堅固三昧)와 부동삼매(不動三昧)를 얻게 된다. 수행하여 이들 삼매에 머물면 능히 다섯 가지의 밝고 깨끗한 삼매를 일으켜서 다섯 세계[道]를 두루 비출 것이니, 월광삼매(月光三昧)ㆍ일광삼매(日光三昧)ㆍ정유리삼매(淨琉璃三昧)ㆍ연금광삼매(鍊金光三昧)ㆍ무구파리삼매(無垢頗璃三昧)이다. 이 다섯 가지 밝고 깨끗한 삼매로 인하여 다시 광요삼매(光耀三昧)ㆍ변광요삼매(遍光耀三昧)ㆍ무량광요삼매(無量光耀三昧)가 생겨날 것이다.
030_0276_c_02L如是修行法相具足成就得增上厭離意堅固精進不可動轉得甚深三昧堅固三昧不動三昧行住是三昧能起五種明淨三昧照五道月光三昧日光三昧淨瑠璃三昧練金光三昧無垢頗梨三昧此五種明淨三昧復生光耀三昧光耀三昧無量光耀三昧
또 수행을 하는 자가 다섯 가지의 괴상(壞相)으로 인하여 능히 모든 연(緣)을 허무니, 첫째는 천(穿)이고, 둘째는 박(剝)이며, 셋째는 열(裂)이고, 넷째는 괴(壞)이며, 다섯째는 멸(滅)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괴상으로 해서 모든 법을 허문다. 다섯 가지의 삼매를 수행하여 경계를 멸하고 모두 청정해지면 차례로 다시 다섯 가지의 삼매의 모습이 생기니, 사자왕삼매(師子王三昧)ㆍ용왕삼매(龍王三昧)ㆍ금시조왕삼매(金翅鳥王三昧)ㆍ우왕삼매(牛王三昧)ㆍ상왕삼매(象王三昧)이다. 마음에 방일함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웅장한 모습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행하여 이러한 수왕삼매(獸王三昧)에 머물면 각각 그 종류에 따라서 모두를 섭수하게 된다.
030_0276_c_09L復次修行者因五種壞相能壞諸緣一曰穿二曰剝三曰裂四曰壞五曰以是五壞相壞一切法修行五種三昧壞境界悉淸淨已次復生五種三昧相師子王三昧龍王三昧金翅鳥王三昧牛王三昧象王三昧心無放逸故起此雄相修行住此獸王三各隨其類一切悉攝
또 삼매의 힘으로 남녀의 10상(相)을 일으켜 종류에 따라 모든 중생을 섭수하고 여기에 모두 나타난다. 만약 능히 이런 모든 삼매의 모양을 분별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곧 이름하여 모든 법에 자재한 공덕이라고 한다.
또한 수행을 하는 자가 밝고 깨끗한 경계에서 음류(陰流)를 관찰한다면 그것이 한 곳으로부터 나와서 나뉘어져 둘로 갈라질 것이며, 이렇게 관찰하고 나면 다시 합쳐져서 하나가 된다. 그 하나하나의 흐름 가운데서 다시 다섯 가지의 모양이 보이는데, 그 모양마다 각각 서로 달라서 경계가 벌려지고 이처럼 경계가 벌려진 다음에는 다시 합쳐져서 하나가 된다.
030_0276_c_17L又三昧力女十相起隨類相攝一切衆生於是悉現若能分別此諸三昧相而不恐是則名曰於一切諸法自在功德復次修行者於明淨境界觀察陰流從一處出分爲二分如是觀已還合爲一一一流中復見五相相各別異列境界布列境界已還合爲一
030_0277_a_01L그 색(色)은 취말(聚沫)과 같고, 수(受)는 수포(水泡)와 같고, 상(想)은 불꽃과 같다고 관하고, 행(行)은 파초(芭蕉)와 같고, 식(識)은 허깨비[幻]과 같다고 관한다. 이것이 다섯 가지의 허망하고 속이는 모양인 것이다. 수행하여 이와 같이 관찰하면 그 몸이 안온하여 유연하고 쾌락할 것이다.
030_0277_a_01L色如聚沫受如水泡觀想如炎行如芭蕉識如幻是五虛妄欺誑之相修行如是觀已其身安隱柔軟快樂
다시 그 흐름이 일어나는 곳을 관하면 무구상(無垢相)이 나타나서 마치 물의 깨끗한 포말과 같으니, 이것이 점점 증장하여 그 몸에 가득 찬다. 그리하여 수행하는 마음이 방일하지 않고 전념(專念)하여 받아 지닐 것이다. 이처럼 받아 지니고 나면 깨끗한 모양이 증광하여 두루 온몸을 가리어 덮을 것이니, 그것이 마치 투명하고 청정한 포말과 같아서 모든 허물과 악(惡)을 여의고 다시 뛰어나고 묘한 지혜가 생겨서 드디어 이 모양을 허물 것이다.
이 모양이 이미 허물어지면 그 흐름이 아래로 흘러서 한량없이 멀리 흘러갈 것이니, 그것이 마치 저 청정한 파리(頗梨)와 같아서 경계를 매우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경계를 지극히 잘 알고 나면 그것을 따라 섭환(攝還)하여 만다라(曼茶羅)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상(異相)이 있어서 그 본처(本處)에 가득 찬 다음에 이것이 흘러서 저 한량없는 시방세계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하여 시방세계에 이른 다음에 각각 자상(自相)에 머물 것이다.
030_0277_a_04L復觀流所起處無垢相現如水淨泡漸漸增長滿其身修行心不放逸專念受持持已淨相增廣周遍覆身如明淨泡離諸過惡更勝妙智生乃壞是相是相旣彼流流下遠注無量如淨頗梨知境界極知境界已從彼攝還成曼荼更有異相充滿本處然後流至十方無量世界至十方已各住自相
이때에 수행하여 저 한량없는 색종(色種)을 분명히 보는데, 마치 저 산과 물의 떠다니며 쌓여 모인 물거품과 같으며, 모든 수상(受相)이 큰 비의 빗방울과 같고, 갖가지 모든 상(想)이 마치 봄철의 아지랑이와 같고 행은 파초와 같아서 견실함이 없으며, 6식(識)의 종(種)을 관찰하면 마치 환화(幻化)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갖가지의 허망함은 다만 어리석은 사람을 속일 뿐인 것이니, 이것을 수행하여 음(陰)의 자상(自相)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030_0277_a_12L時修行明見無量色種猶如山水漂積聚沫一切受相如大雨渧泡種種諸想如春時焰行如芭蕉無有堅實觀六識種猶如幻化如是種種虛妄但欺誑愚夫是名修行觀陰自相
030_0277_b_01L이처럼 음의 자상을 관찰하고 나서 다시 그 지혜로써 스스로 자신을 비추어서 전념하여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그 주위를 두루 둘러 치성한 상[熾然相]이 일어나며 몸은 그 안에 처하여 갖가지 꽃들과 깨끗하고 묘한 보물들이 두루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면 온갖 보물들의 여러 공덕의 모양들이 미묘하고 장엄할 것이다.
수행하여 이와 같은 여러 모양들을 보고 나면 그 혜안이 널리 열려서 스스로 그 몸을 돌아보면서 두루 관찰할 것이다. 이처럼 관찰을 하고 나서 다시 밖으로 음상(陰相)을 관하여 성대한 불길이 치열하여 곧 염심(厭心)이 생겨서 용맹하게 정진하여저 끝없는 생사의 고해(苦海)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여 5음의 치성한 상이 싫어지고 나면 이욕상(離欲相)ㆍ해탈상(解脫相)ㆍ열반상(涅槃相) 등 모든 공덕의 모양들이 차례로 일어나서 나타날 것이다.
030_0277_a_17L陰自相已復以智慧自照其身專念觀察觀察時見周帀熾然相起身處其內有種種雜華淨妙珍寶周帀遶又自見身種種雜寶諸功德相妙莊嚴修行見是諸相已慧眼開廣自顧其身周遍觀察觀察已復外觀陰相盛火熾然卽生厭心勇猛精進欲度生死無邊苦海修行於五陰熾然相厭離已離欲相解脫相涅槃相切功德相次第起現
또 수행을 하는 자는 7처(處)의 관(觀)을 갖추어서 5음(陰)의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본다. 다시 갈애[愛]로 인하여 생기는 5음을 관하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를 여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진제(眞諦) 중에서 방편으로써 종자의 지혜를 일으킨다. 7처(處)에서 세 가지 관(觀)의 이치를 잘 닦아 자상관(自相觀)을 이루어서 결정의 견고함을 이룰 것이며, 그런 다음에 번뇌 없는 식지(息止)의 수혜(修慧)를 얻을 것이다. 이 지혜가 일어나면 경계가 평정(平正)하고 순일해서 잡스러움이 없을 것이다.
또 뛰어나고 묘하며 번뇌 없는 사혜(思慧)를 얻고 결정(決定)하여 5음의 흥하고 쇠함과 생각마다 마멸(磨滅)함을 관하면 진실상(眞實相)을 볼 것이니, 비유컨대 마치 독이 든 밥을 먹은 자가 반드시 죽는 것과 같아서 수행하여 5음의 3상(相)이 서로 섞인 것을 보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030_0277_b_04L復次修行者具七處觀觀五陰復觀因愛生五陰厭患出離如是於眞諦中便種子慧生於是七處善修三種觀義自相觀成成就決定堅固已後得無垢息止修慧是慧起已境界平正淳一無雜復次得勝妙無垢思慧決定觀五陰興衰念念磨滅見眞實相譬如毒飯食者必死修行觀五陰三相所雜亦復如是
한 생각이 생기면 한 생각이 괴로운 것이다. 곧 한 생각을 할 때에 또한 생기고 또한 머물고 또한 멸하는 것이니, 저 생각이 생길 때에 곧 저 괴로움과 더불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이 곧 허물어지는 것이다. 수행하여 5음의 이와 같은 생멸을 관하면 허위이며 무상한 과악(過惡)을 파괴할 것이다. 곧 무상행(無常行)ㆍ고행(苦行)ㆍ공적행(空寂行)ㆍ무아행(無我行)을 일으키는 것은 천루법(穿漏法)ㆍ부실법(不實法)ㆍ속후법(速朽法)ㆍ파괴법(破壞法)이다. 이와 같은 것이 그 무상(無常)의 뜻이다. 마치 수다라(修多羅)와 같아서 자세한 설명은 1백 구(句)에까지 이를 것이다.
수행을 다하고 이와 같은 여러 모양들을 행하여 모든 법의 진실을 알면 곧 해탈을 얻게 될 것이다. 성현 지위의 삼매의 상행(想行)으로써 이와 같은 비상(非常)의 모양을 관하면 곧 깊은 우염(憂厭)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하여 유위(有爲)의 과환(過患)을 보고 3유(有)가 즐겁지 않을 것이다.
030_0277_b_13L一念生一念苦卽一念時亦生亦住亦滅彼念生時卽與苦俱生是故一念一念卽壞行觀五陰如是生滅破壞虛僞無常過惡卽起無常行苦行空寂行無我穿漏法不實法速朽法破壞法是無常義如修多羅廣說乃至百句修行盡行如是諸相知諸法眞實便得解脫以賢聖地三昧想行觀此非常相便起深憂厭見有爲過患不樂三有
030_0277_c_01L또 수행하는 자가 만약 생기면 멸하지 않는다고 보고, 만약 멸하면 생기지 않는다고 본다면 이와 같은 경우에는 성행(聖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요컨대 그 일심(一心)이나 일상(一相)이 바르게 해탈을 지향한 다음이라야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성행을 결정한다. 성행이 이미 일어나면 일체법의 상(相)이 적멸하여 남는 것이 없다. 어리석음과 갈애와 번뇌 그리고 모든 죄구(罪垢)는 전(轉)하니, 그 고음(苦陰)이 모두 제거되어 멸한다. 이처럼 제거되어 멸하고 나면 그 마음이 조복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5음을 보면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는 것이다. 제행(諸行)이 무상함을 통해서 고음(苦陰)을 관찰하며, 고음을 관찰하면 8고(苦)에 핍박이 있으며, 8고의 모양에서 8행(行)을 성취한다.
030_0277_b_23L復次修行者若觀生則非滅觀滅則非生如是則不生聖行要一心一相正向解脫然後智生是決定聖聖行旣起一切法相寂滅無餘愛煩惱及諸罪垢能轉苦陰者皆悉除滅滅已其心調伏是見五陰無我亦無我所以無常諸行觀察苦陰觀察苦陰有八苦逼迫於八苦相成就八行
이른바 병(病)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찌르는 것과 같고 죽이는 것과 같으며, 무상(無常)이고 고(苦)이며, 공(空)이고 무아(無我)이다. 이 중 네 가지는 성행(聖行)이고 네 가지는 성행이 아니다. 고음에서 결정하여 진실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4제(諦), 16성행(聖行) 이것이 곧 난법(煖法)을 수행하는 처음 모양이며, 진제(眞諦)의 경지에서 진실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고음(苦陰)을 관찰하면 마치 철환(鐵丸)을 녹이는 것과 같아서 역시 아무런 견고함이 없다. 그러므로 열반을 지향하여 생사를 등지는 것이니, 유(有)가 귀함이 없고 생(生)이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사냥꾼들에게 둘러싸인 짐승들이 그 두려움이 급박해서 용감하게 내달리어 그 포위망을 탈출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수행하여 생사의 뜨거운 불길이 크게 고통스럽게 포위하여 핍박하는 것을 보고는 염지(厭智)의 힘을 통해서 아무런 장애 없이 이를 뛰어넘는 것이다.
030_0277_c_07L謂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無我四是聖行四非聖行於苦陰決定觀其眞實如是四諦十六聖行是則修行煖法初相於眞諦地得眞實慧觀察苦陰如燒鐵丸亦無堅固向涅槃生死不貴有不樂生譬如群獸獵師圍逼以怖急力故超勇奔出修行如見生死熾然大苦圍迫以厭智力超出無㝵
또 수행을 하는 자가 사혜(思慧)가 생길 때에 난법(煖法)의 종(種)이 일어나며, 식지(息止)의 수혜가 생길 때에 난종(煖種)이 증장하는데, 난종의 자지(自地)에 이르러서 난상(煖相)이 만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지의 수혜(修慧)가 생길 때에 정법(頂法)의 종이 일어나고, 난법이 생길 때에 정종(頂種)이 증장하며, 정종의 자지에 이르러서 정상(頂相)이 만족하는 것이다. 난법이 생길 때에 인법(忍法)의 종이 일어나고, 정법이 생길 때에 인종(忍種)이 증장하며, 인종의 자지(自地)에 이르러서 인상(忍相)이 만족하는 것이다.
030_0277_c_16L復次修行者思慧生時法種起息止修慧生時煖種增長煖自地煖相滿足息止修慧生時法種起煖法生時頂種增長到頂自頂相滿足煖法生時忍法種起法生時忍種增長到忍自地忍相滿
030_0278_a_01L또 5음에서 기뻐하는 것을 난법이라고 한다. 난법으로 5음을 관하고, 3보(寶)에서 기뻐하는 것을 정법(頂法)이라고 한다. 정법으로 18계(界)를 관하고, 4제(諦)에서 기뻐하는 것을 인법(忍法)이라고 이름하며,인법에서 12입(入)을 관한다. 세 가지를 관할 때 저 선근을 따라서 한 차례 증상(增上)하기 때문에 차별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다하고 진제를 관하는데, 다만 인(忍)만이 진실에서 관하여 증상하며, 난법은 상(想)이 증상하며, 정법은 신(信)ㆍ관(觀)ㆍ희(喜)가 증상하며, 인법은 지혜가 증상한다.
030_0277_c_22L復次於五陰悅可名爲煖法煖法觀五陰於三寶悅可名爲頂法頂法觀十八界於四諦悅可名爲忍法法觀十二入俱觀三種隨彼善根一增上故說有差別是一切盡觀眞但忍於眞實觀增煖法想增頂法信觀喜增忍法智慧增
또 수행에는 세 가지의 인연이 있으니 상하와 모든 방위의 세 가지 선근을 말하는데, 이 세 가지의 인연은 각각 한 차례 증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열(悅)을 가본(可本)에는 설(設)이라 하였다.
030_0278_a_05L復次修行有三種緣謂上諸方三種善根此三緣各一增上故說悅可本云出設
또 세 가지의 수행이 있다. 난(煖)은 염리에 의지하고 정(頂)은 관희(觀喜)에 의지하고 인(忍)은 평등사(平等捨)에 의지하는데, 역시 저 선근에 의하여 한 차례 증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니, 마땅히 한 가지를 수행하여 이를 다하면 세 법을 성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30_0278_a_07L復次種修煖依厭離頂依觀喜忍依平等亦隨彼善根一增上故說當知一種修盡成就三法
또 수행하는 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비유컨대 마치 저 다섯 사람의 원적(怨賊)이 칼을 뽑아들고 항상 따라다니면서 언제나 해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후의 5음(陰)이 서로 돌아가면서 삶아대고 핍박하는 것이 역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아비삼마야(阿鼻三磨耶)이는 곧 견도(見道)를 일컬는다.를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달마마나사가라(達磨摩那斯伽羅)를 지어서 언제나 진실한 이치를 관해서 성행(聖行)의 칼로써 음(陰)의 적(賊)을 끊어 제거하여야 한다. 용렬한 사나이처럼 몽둥이도 잡아보지 못한 채 그들로부터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성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바른 관찰을 열심히 닦아야 할 것이다.”
법의 즐거움을 나타내려는 까닭이며, 후세를 위하여 큰 밝음을 지으려는 까닭이며,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잘라버리려는 까닭이며, 중생들을 요익하려는 까닭이다. 하물며 범부가 공(空)하여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서 스스로 방일(放逸)하여 열심히 닦아 익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5음(陰)을 관하는 것을 마친다.
030_0278_a_10L復次修行當知譬如有人有五怨賊拔刀隨逐常欲加害前後五陰轉相煎逼亦復如是佛言欲求阿鼻三磨此是見道名也當作達磨摩那斯伽邏常觀眞實義以聖行刀斷除陰賊莫如劣不能執杖爲彼所害乃至一切賢皆應勤修如是正觀爲現法樂故爲後世作大明故斷一切苦本故益衆生故況於凡夫空無所得而自放逸不勤修習觀五陰竟
달마마나사가라의 달마는 법이요, 세간의 제일법(第一法)을 이르는 말이며, 마나사가라는 일경심(一經心)을 이르는 말이니, 역자(譯者)가 그 뜻을 사유하여 말한 것이다.
030_0278_a_21L達磨摩那斯伽邏達磨世間第一法也摩那斯伽邏謂一經譯者義言思惟

16. 수행관입(修行觀入)
030_0278_a_23L修行觀入第十六
030_0278_b_01L
6입(入)이 각각 경계에서 지혜가 없는 중생을 속박하고, 탐욕의 마음 때문에 언제나 정상(淨想)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행을 하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모든 근(根)의 경계에서 법이 아닌 것을 방제(防制)하고 마음의 소연(所緣)을 거두어들여 이를 계박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6입을 바르게 관찰하면, 비유컨대 이는 마치 빈 마을과 같아서 나와 나의 것을 여읠 것이다. 부정(不定)의 뜻이 곧 입처(入處)의 뜻이고 견하(牽下)의 뜻이 곧 입처의 뜻이니, 장차 중생을 데리고 악도(惡道)에 들 것이다. 또 내입(內入)의 모양이 마치 철장(鐵鏘)을 태우는 것과 같고, 매우 날카로운 검(劍)과 같고 예리한 칼과 같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이 모양을 본다면 능히 이를 버리고 여의어라.”
030_0278_b_01L六入各於境界縛無智衆生貪欲心常起淨想修行當知於諸根境界防制非法攝心所緣繫令不動正觀六入譬如空村離我我所不定義入處義牽下義是入處義能將衆生入惡道又內入相如燒鐵鏘如極利劍亦如利刀佛言若觀此相則能捨離
또 밖에서 나쁜 도둑들이 들어와서 좋은 보물들을 겁탈하는 것을 본다고 할 때 이는 마치 수행하는 자가 정념(正念)을 버리고 모든 들어오는 문들을 개방해서 6경(境)이 마음대로 횡행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6경의 악한 도둑들이 정계(淨戒)를 겁탈하여 모든 공(功)을 잃게 함은 마치 새들이 양쪽 날개가 없이 허공을 날려고 하는 것과 같고, 사람이 두 발이 없으면서도 먼 길을 가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행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저 정계의 공덕을 허물기 때문에 지(止)와 관(觀)의 두 날갯죽지가 영원히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생사를 벗어나려고 하여도 이것이 끝내 불가능하니, 마치 깨진 병에 물을 담으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과 같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아서 삼매의 법수(法水)가 잠시 잠깐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다.
030_0278_b_08L復次觀外入惡賊劫善珍寶若修行捨正念開諸入門馳縱六境六境惡賊劫奪淨戒失諸功德如鳥無兩翼而欲飛空人無兩足而欲遠遊修行如是淨戒功德故觀兩翅永不復生出生死是終不能如破甁盛水須臾不住破戒比丘亦復如是三昧法水念頃不住
마치 천신의 덕병(德甁)을 잘 보호해서 이를 깨뜨리지 않으면 언제나 원하는 대로 다함이 없이 진보(珍寶)가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이, 수행을 하는 일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정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언제나 성스러운 공덕의 보배를 만들어 내지만, 조금이라도 그 덕병을 깨뜨리면 진보가 곧 소멸하여 버린다. 그러므로 만약 계병(戒甁)을 깨뜨리면 법보(法寶)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니, 이는 비유컨대 마치 사람이 그 코를 잘라버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즐거울 수 없는 것처럼, 파계를 한 비구도 역시 이와 같아서 안으로 자신을 살펴보면 그 마음이 스스로 즐겁지 못한 것이다.
030_0278_b_16L如天德甁守護不壞常出珍寶隨意無盡修行如是不毀淨戒則常出生聖功德寶輕壞德甁珍寶卽滅若破戒甁則永失法寶譬人截照鏡不自喜樂破戒比丘亦復如內省其身心不自悅
030_0278_c_01L그리고 백곡(百穀)과 약목(藥木)들이 땅을 의지하여 자라는 것처럼 모든 선한 공덕들도 모두 정계를 의지하여 생긴다. 마치 전단(栴檀)을 몸에 바르면 열뇌(熱惱)를 제거하듯이, 정계가 청량(淸凉)하여 능히 욕화(欲火)를 중지시킨다. 마치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닿는 곳마다 뜨거운데도 이를 식히듯이정계 또한 이와 같아서 번뇌의 불길 속에서 그 뜨거움을 식히는 것이다.
계율을 범한 비구는 스스로 생각할 때 그 죄가 깊어서 몸이 다하고 그 목숨이 끝나면 마침내 악도(惡道)에 들게 되어 그 마음이 항상 근심스럽고 후회를 하면서 죽음의 공포에서 떨지만, 정계를 지킨 사람은 마음이 언제나 기뻐서 살아서는 근심 걱정이 없고 죽어서는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030_0278_b_21L百穀藥木地而生諸善功德悉依淨戒如栴檀塗身能除熱惱淨戒淸涼能止欲火如如意寶珠隨所著處熱時淸涼戒如是於煩惱火中能息熾然犯戒比丘自惟罪深身逝命終必入惡道常憂悔死時恐怖淨戒之人心常歡生無憂悔死時安樂
정계가 사다리가 되어서 능히 깨달음의 경지[慧堂]에 오를 수 있으며, 정계가 장엄 도구가 되어 또한 잘 지키는 것이다. 계(界)가 사람을 이끌고 열반에 이르게 하며, 좋은 땅이 되어서 열 가지의 좋은 종자를 낳아서 기른다. 그리하여 교계사(敎誡師)가 때에 따라서 물을 대어주면 그 신근(信根)이 뿌리를 내려서 무루(無漏)의 음(陰)이 줄기가 되고, 4여의(如意)가 싹이 되고, 자심(慈心)이 나뭇가지가 되고,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함을 아는 것이 그 가지와 잎이 되고, 7각의(覺意)가 꽃이 되고, 해탈의 지혜가 열매가 되고, 적멸의 법이 감로가 될 것이다.
030_0278_c_05L淨戒爲梯升慧堂戒爲莊嚴具亦爲善戍衛能將人至於涅槃戒爲良地生十善種教誡師水隨時漑灌信根則生漏陰爲幹四如意爲芽慈心爲枝條少欲知足爲柯葉七覺意爲華解脫智爲果寂滅法爲甘露
계(戒)의 향기가 흘러나오면 모든 것이 두루 그 훈기를 쐬게 될 것이며, 성현(聖賢)의 조왕(鳥王)이 그 사이에서 머물 것이다. 그리고 비심(悲心)이 중음(重陰)이 되어서 청량한 그늘이 널리 덮을 것이며, 변재(辯才)를 가진 법사가 꿀벌왕[蜜蜂王]이 되어서 소리를 조화롭게 하며 서로 돌아보면서 일찍이 그 정미(精味)를 채취할 것이다. 그 나무가 곧고 길며 견고하고 정실(貞實)해서 허위와 첨곡(諂曲)과 부병(腐病)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공덕대수(功德大樹)라고 한다. 만약 모든 수행을 하는 자들이 열반을 추구하고 삼세의 고통을 멀리하여 해탈의 성(城)을 지향할 때에 점차로 모든 공덕을 일으켜 행하여 저 나무 아래에 쉬면서 법의 감로를 마시고 세 가지 갈애의 환란을 그치게 한다면, 그 몸이 안온하여져서 능히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030_0278_c_11L戒香流出切普熏賢聖鳥王拪宿其間悲爲重淸涼廣覆辯才法師爲蜜蜂王聲相顧嘗採精味其樹脩直堅固貞無有虛僞諂曲腐病是則名曰功德大樹諸修行者欲趣涅槃背三世向解脫城漸次發行諸善功德彼樹下飮法甘露止三渴患其身安能至涅槃
030_0279_a_01L또 계(戒)에는 많은 숫자가 있으니, 혹은 1ㆍ2ㆍ3ㆍ4의 계가 있기도 하고, 혹은 7의 계가 있기도 하고, 혹은 12의 계가 있기도 하고, 혹은 21의 계가 있기도 하다. 순간순간 잠시 잠깐의 사이로 말하면 한량없는 계의 종류들이 있는데, 도공(道共)ㆍ정공(定共)ㆍ구생계(俱生戒)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 및 심회전(心廻轉) 등이 있다. 이 모든 계를 보면 그 모양이 각각 서로 다르니, 혹은 순수하고 청정하여 때가 없기도 하고 혹은 가볍고 엷어서 밝고 깨끗하기도 하다.이와 같이 무구(無垢)한 계상(戒相)의 경계가 나타나면 수행하여 의(依)ㆍ연(緣)ㆍ염(念)의 3처(處)에서 계상을 관찰해야 한다. 만약 도향(塗香)ㆍ유연(柔軟)ㆍ진구(塵垢)를 여의어 기쁘고 즐거우며 밝고 맑고 깨끗해지면 그것이 의지한 바의 모양이다. 그 땅처럼 넓고 평탄하여 묘화(妙華)와 보배의 그릇과 장엄한 장식구 등 여러 보배들이 매끄럽고 윤택할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수행을 하는 경계 중의 모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030_0278_c_19L復次戒有衆多數或一或七或十二或二十一若念念須臾頃則有無量戒種道共定共俱生戒正語正命與心廻轉觀此諸戒其相各或淳淨無垢或輕薄明淨如是無垢戒相現於境界修行於依緣念三處觀察戒相若塗香柔軟離垢悅樂淨潔白是所依中相若其地平廣華寶器嚴飾之具衆寶滑澤是名修行境界中相
비유컨대 이는 마치 저 검정소[犛牛:야아크]가 그 꼬리를 보호함에 있어서 털끝 하나라도 나무에 붙어버리면 그 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그 털을 끊지 않듯이, 비구가 계를 보호함이 또한 이와 같아서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계라고 하더라도 이를 죽음으로써 지켜서 범하지 않으면 묘상(妙相)의 장엄한 몸이 모든 상호가 구족하여 마치 저 밝은 가을달이 허공에서 비추는 것과 같다.
삼매를 수행하여 이와 같은 청정한 모양을 보고 나면 그 뒤 목숨을 마칠 때까지 다시는 어떤 근심 걱정이나 후회가 없으며, 또한 그 열뇌(熱惱)가 없고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안열(安悅)과 환희가 용약(踊躍)하여 증장하고 적지(寂止)의 즐거움이 생기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가 소멸한다. 이와 같은 것들을 이름하여 억념(憶念)을 수행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030_0279_a_06L譬如犛牛護尾一毛著樹守樹而死不令毛斷比丘護戒亦復如是一微之戒守死不犯妙相嚴身衆好具足猶如秋月停照虛空修行三昧觀此淨相已乃至命終復憂悔亦無熱惱不復恐怖安悅歡踊躍增長生寂止樂麤澀四大滅如是等名修行憶念中相
또 세 가지 중에 다시 잡상(雜相)이 있어서 이것이 교란시켜서 장애를 일으켜 실념(失念)토록 하여 마음이 머물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선하지 않은 악업을 뉘우쳐서 죽더라도 범하지 않으니, 행여 꿈속에서라도 이를 범하는 일이 없이 계를 지키는 일을 증익해야 한다.
030_0279_a_13L復次三種中更有雜相嬈亂障㝵失念意不住請求悔過不善惡業守死不爲夢中無犯增益持戒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계는 꽃다발[花鬘]이며 바르는 향[塗香]이며 몸을 장엄하는 온갖 장신구이다.”
향기로운 바람이 한쪽 방향에서 오면 이는 세계의 향기요, 여러 방향에서 오면 계덕(戒德)의 향기인 것이다. 혹은 몸에 수족과 눈과 귀와 코와 혀가 없어서 모든 지절(肢節)을 온전하게 갖추어 있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몸이 진애(塵埃)에 매몰되기도 하고, 혹은 자신을 관찰하여 모든 진구(塵垢)를 여의고 목욕을 한 다음 몸에 향을 바르고 그 위에 이름 있는 좋은 옷을 입기도 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의(依)ㆍ연(緣)ㆍ억념(憶念)을 수행하여 시라(尸羅)의 갖가지 여러 상[雜相]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의(威儀)ㆍ정공(定共)ㆍ도공(道共)의 세 가지 계를 모두 이미 이 가운데서 설하였으니, 이 세 가지의 계는 다시 거기에 한량없는 여러 가지 깊고 묘한 모양들이 있다. 지혜가 밝은 자는 마땅히 이를 널리 풀어서 설하여야 할 것이다.
030_0279_a_16L佛說戒爲花鬘塗香莊嚴衆具香風一方來是世界香萬來是戒德香或身無手一切肢節悉不貌具或身沒塵埃或觀察自身離諸塵垢澡浴塗身衣上服是名修行於依緣憶念觀察尸羅種種雜相威儀定共道共三種悉已於中說此三種戒更有無量諸深妙相明智者當廣演說
030_0279_b_01L수행하여 이미 정계(淨戒)를 본 다음여러 들어가는 산을 깨뜨리고자 할 경우 마땅히 두 가지의 법을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른바 지(止)와 관(觀)이다. 먼저 악을 여읜 기쁨과 즐거움이 그 몸에 충만한 것을 관한다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가 멸하고 유순(柔順)한 4대가 생겨서 적지(寂止)의 즐거움을 일으켜 일심으로 흩어지지 않고 스스로 그 몸 안에서 마음을 들어가는 모양에다 묶어 두게 될 것이니, 마땅히 저 들어가는 모양이 일어나는 곳을 잘 수호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찰할 때에 희고 깨끗한 모양이 일어나면 비구가 이 모양을 보아 이를 잘 수호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비유컨대 이는 마치 새끼를 품는 닭이 그 알을 잘 보호하여 반드시 이를 성취시키는 것과 같다. 비구의 수행 또한 이와 같이 오로지 정밀하게 수호하면 성취를 얻을 것이니, 열두 가지 수과상(修果相)의 나타남이 분명할 것이다.
030_0279_b_01L修行已觀淨戒欲破諸入山者當修二法所謂先當觀離惡悅樂充滿其身澀四大滅柔順四大生趣寂止樂心不亂自於內身繫心於入相當善守護入相所起處觀察時白淨相起比丘見此相當善守護如佛所說如伏鷄善護其子必得成就比丘修亦復如是專精守護乃得成就二修果相現分明
이와 같이 수행하여 잘 수호할 때에 모든 방일함을 여의고 수과(修果)를 성취한다면 경계가 정묘(淨妙)해서 모든 번뇌의 염오를 여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밝음이 보주(寶珠)와 같고 또한 현수(懸水)와 같을 것이니, 경계가 광만(廣滿)한데 몸은 적은 부분에 처하여 두루 멀리 흐르다가 그런 뒤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시 돌아온 뒤에는 일상(一相)이 나타났다가 이것이 다시 나뉘어서 두 부분이 되고, 이것이 또 다시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만다라(曼茶羅)의 경계를 이루어서 평정(平正)에 편안하게 머물러 두루 여러 모양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이 마치 뭇 별들이 빛을 발산하면서 포열하는 것과 같다. 그런 다음에 허물어진다.
030_0279_b_10L修行善守護時諸放逸修果成就境界淨妙離諸垢明如寶珠亦如懸水境界廣滿處少分周遍遠流然後來還還已相現復分爲二分還合爲一成曼荼邏境界安住平正普現衆相猶如衆星光耀布列然後乃壞
허물어진 다음에 각각 흘러나왔다가 다시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다시 두루 멀리 흘러나와 제방(諸方)을 충만하고, 제방을 충만한 다음에는 다시 돌아와서 안온하게 굳게 머무른다. 이처럼 굳게 머무른 다음에는 숙상(熟相)이 나타나고, 숙상이 나타난 뒤에는 갖가지 여러 모양들이 두루 널리 넓어져 미묘한 기복(器服) 등 모든 기이하고 특이한 모양들이 모두 그 경계에 나타난다. 안으로는 공취(空聚)에 들고 밖으로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과 3세의 세 가지 법인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 등 모든 것이 나타나서 그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030_0279_b_16L壞已各各流還合爲一復周遍遠流充滿諸方充滿諸方已復還安隱堅住住已相現熟相現已有種種衆相周遍彌微妙器服諸奇特相悉現境界內入空聚外色觸及三世三種不善無記一切悉現觀其眞實
030_0279_c_01L또 외육입(外六入)은 도적과 같고 내육입(內六入)은 공취(空聚)와 같은데, 이들 내입과 외입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12입(入)의 여러 승묘(勝妙)한 모양들의넓음이 한량없으므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다라 중에서 이를 자세하게 설한 것이다.
030_0279_b_22L復次外六入如賊內六入如空聚亦說內外入爲此彼岸此十二入諸勝妙相增廣無量佛說修多羅中廣說
또 수행을 하는 자는 이 경계에서 숙상(熟相)이 일어나며,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허물어지는데, 그 사이에 단리상(斷離相)이 있고, 그 단리상이 매우 먼 곳에 흘러 한 곳에 머물게 된다. 마치 보병(寶甁)에 물을 담는 것과 같아서 물을 담은 뒤에 다시 이를 열면 점점 그것이 적멸(寂滅)하는 것을 보게 되며, 그것이 적멸한 다음에는 다시 여러 나머지의 일체 공덕의 모양들이 생기게 된다. 제입(諸入)의 문 중에는 언제나 여러 모양이 흘러나오며, 그것이 각각에서 흘러나온 뒤에는 다시 한 곳에서 만다라를 이루는데, 만다라 위에서는 다시 자상(自相)이 일어나고, 자상이 일어나면 다시 그것이 익으며, 익고 나면 오래지 않아서 적멸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수행을 다시 한결같고 순수하게 하기를 더하면 곧 거기서 청정하고 미묘한 선상(禪相)이 일어나며, 이처럼 선상이 일어나면 전과 마찬가지로 차례로 적멸하는 것이다.
030_0279_c_02L復次修行者於此境界熟相起起已復壞間間有斷離相斷離相流注極遠住一處如寶甁盛水然後還開漸見寂滅寂滅已復有諸餘一切功德相諸入門中常雜相流出各各出已復於一處成曼荼邏曼荼邏上復有自相起起已復熟熟已不久寂滅然後修行復加專精更現淸淨微妙禪相已如前次第寂滅
그리고 또 제입(諸入)의 가운데서 수행할 때에 다시 갖가지 묘상(妙相)이 있어서, 그 마음을 묶어 둔 곳에서 결정상(決定相)이 일어나는 것을 이름하여 계(髻) 가운데의 명주(明珠)라고 하는데, 삼매를 비유하는 것이다. 수행하여 스스로 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여러 보장(寶藏) 위에 보련화(寶蓮花)가 있음을 보며, 수행하여 스스로 그 몸이 연화(蓮花) 위에 있어 온갖 보물과 미묘한 꽃들이 장엄하고 꾸며서 둘러싸고 있음을 본다.
030_0279_c_11L復次修行於諸入中更有種種妙相於繫心處決定相起名髻中明珠喩三修行自觀身作二分衆寶藏上有寶蓮花修行自見身在蓮花上衆寶妙華莊嚴圍遶
또 세존께서 수다라에서 여섯 중생을 비유하여 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을 하는 자가 여기서 구족하게 관찰한다면, 이른바 눈은 개가 되어서 오색촌(五色村)을 뛰어다니고, 귀는 새가 되어서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오고, 코는 독사가 되어서 향기의 구멍을 찾고, 혀는 야간(夜干)이 되어서 죽은 시체의 다섯 가지 맛을 탐하고, 몸은 수수마라(輸收磨羅)가 되어서 언제나 촉해(觸海)에 들기를 즐기고, 마음은 원숭이가 되어서 언제나 3세의 법림(法林)에서 제멋대로 놀기를 즐거워할 것이다.
030_0279_c_16L復次如世尊修多羅說六衆生喩行者於此具足觀察所謂眼爲狗走逐五色村耳爲鳥隨空聲起鼻爲毒蛇隨逐香穴舌爲野干貪五味死屍身爲輸收磨羅常樂入觸海意爲猿猴常樂遊縱三世法林
030_0280_a_01L그러므로 이들 여섯 가지의 중생들을 한 곳에다 묶어 두어서 각기 즐거운 곳을 자재로이 놀 수 없게 하듯이, 저 수행을 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삼매의 정념으로 6근을 묶어 두어서 그 인연하는 바를 따라 자유로이 방종할 수 없도록 한 다음에야, 청정한 지혜로써 법의 진실을 볼 것이다.어리석은 범부는 6경 가운데 탐착하여 한량없는 악법(惡法)을 희망한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의 경계에 낙착(樂着)해서 스스로 장애를 일으켜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모두 제거하여 없애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하여 그 생사를 깨뜨리고 열반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모든 근(根)을 항복시켜 멀리 경계를 여의어야 할 것이다.
030_0279_c_21L若六種衆生繫著一處不能自在各遊所修行如是以三昧正念繫縛六根令自在馳散所緣然後以淸淨智觀法眞實癡冥凡夫六境中貪著悕望無量惡法如是正觀悉能除滅一切衆生樂著境界自起障㝵不至涅槃是故修行欲壞生死趣涅槃者當降伏諸根遠離境界


17. 수행관십이인연(修行觀十二因緣)
030_0280_a_06L修行觀十二因緣第十七

이미 모든 대치(對治)와 소치(所治)를 설하였으므로 우치(愚癡)의 대치에 대하여 이를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모든 부처님들께서 연기(緣起)를 설하셨는데 그 어리석음[癡冥]을 멸하여 없애면 여실한 지혜가 생겨서 매우 깊고 미묘하여 수순한 공덕이 있을 것이니, 이를 지금 대강 설하여 모든 수행하는 공덕으로 하여금 이를 증익하도록 하겠다.
우치(愚癡)를 멸하여 없애고 연기를 관찰한다면 단(斷)과 상(常), 양편에 대한 모든 생각을 멀리 여의고, 인연이 화합해서 유위법(有爲法)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미혹하고 헤매는 외도에게 항복받아 제일(第一)의 공법(空法)에 수순하여 혜안(慧眼)이 밝고 맑아지면 무명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030_0280_a_07L已說諸對治及所治愚癡對治是應分別一切諸佛所說緣起滅除癡冥如實智有甚深微妙隨順功德今當略說令諸修行功德增益滅除愚癡觀察緣起遠離斷常二邊諸想知因緣和合有爲法生亦能降伏迷醉外牽令隨順第一空法慧眼明淨明悉滅
수행하여 연기를 보는 데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연박(連縛)이라 이름하고, 둘째는 유주(流注)라 이름하며, 셋째는 분단(分段)이라 이름하고, 넷째는 찰나(刹那)라고 이름한다. 또한 연박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생(生)이고, 둘째는 분(分)이며, 셋째는 취(聚)이고, 넷째는 생문(生門)이며, 다섯째는 찰나(刹那)이고, 여섯째는 성괴(成壞)이다.
생(生)이란 것은 사음(死陰)을 따라서 다음에 중음(中陰)이 일어나는 것이니, 중음 다음에 생음(生陰)이 일어난다. 그런데 중음의 중생들은 무명과 혼란과 어리석음으로 눈멀게 되어 업을 짓는 것이다. 중음의 중생들은 남녀가 화합하는 것을 본다. 무명을 증익시키기 때문에 전도된 생각이 생기게 되며, 혹은 해상(害想)이 생기기도 하고, 혹은 애상(愛想)이 생기기도 한다. 여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자는 해심(害心)이 생기는데, 그런 다음에야 그와 화합함을 스스로 보게 된다.
030_0280_a_15L修行觀緣起有四種一名連二名流注三名分段四名剎那縛有六種一曰生二曰分三曰趣四曰生門五曰剎那六曰成壞生者從死次起中陰中陰次起生陰中陰衆無明昏亂愚癡所盲造作有業陰衆生見男女和合無明增故生顚倒想或生害想或生愛想欲與女俱者於男生害心然後自見與彼和合
030_0280_b_01L이때에 욕심(欲心)이 미혹하여 헤매는 것을 이름하여 갈애[愛]가 몸을 일으킨다고 한다.화합하는 부정(不淨)을 기유(己有)라고 하는데, 이를 이름하여 만(慢)이 몸을 일으킨다고 한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인하여 증장함을 얻어서 몸으로 하여금 펴고 일어나도록 하면 이를 이름하여 먹는 것[食]이 몸을 일으킨다고 한다. 4대(大)는 가라라(迦羅邏)와 함께 생겨 보신(報身)을 얻으니, 이를 이름하여 4대가 몸을 일으킨다고 한다.
030_0280_b_01L爾時欲心迷醉是名愛起身見和合不淨謂爲己有是名慢起因母飮食而得增長令身敷起是名食起身四大與迦羅邏俱生得報身是名四大起身
결업(結業)과 방편으로 하여 2지(支)가 이미 경과하고 차례로 식종(識種)이 생기면 이를 이름하여 종자식(種子識)이라 한다. 처음에 가라라에 있을 때에 그 마음이 침몰하여 아는 바가 적어서 의식이 명리(明利)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생(生)이라고 한다. 가라라를 얻어 이미 명리를 알기 때문에 이름하여 식(識)이라 하고, 이를 이름하여 생(生)의 연박(連縛)이라 한다.
030_0280_b_05L結業爲方便二攴旣過次第識種生是名種子識始處迦羅邏時其心沈沒少所識知識不明利是名爲生得迦羅邏已識明利故是名爲識是名生連縛也
분단(分段)이란 것은 가라라로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포(皰)가 일어나고 육단(肉段)이 일어나며, 그 지절(肢節)이 두텁고 견고해져서 어린아이가 되고 동자가 되고 장성한 뒤 쇠퇴하여 늙어가는 일이 차례로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이름하여 분(分)의 연박이라 한다. 취(趣)라는 것은 두루 모든 취에 이르는 것으로 수행하여 이들 모든 취의 모양을 보게 되는 것을 이름하여 취(趣)의 연박이라 한다.
030_0280_b_09L段者從迦羅邏次起皰肉段堅厚嬰兒童子衰分老分次第生是名分連縛也趣者謂遍至諸趣行觀諸趣相是名趣連縛也
생문(生門)이란 4생(生)이 서로 연속하여 윤회를 하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인데, 이를 이름하여 생문의 연박이라 한다. 찰나(刹那)란 5음을 관찰하여 그것이 순간마다 서로 이어져서 그 생멸함이 끊어짐이 없음을 보는 것인데, 이것을 이름하여 찰나의 연박이라 한다. 성괴(成壞)란 모든 경계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겁수(劫數)의 시종(始終)인데, 이를 수행을 통해 관찰을 해서 그 일어나고 허물어지는 것이 서로 이어짐을 보는 것을 이름하여 성괴의 연박이라고 한다.
030_0280_b_13L生門者謂四生相續輪廻不絕是名生門連縛剎那者觀五陰念念相續生滅不是名剎那連縛也成壞者一切境界起滅劫數始終修行觀此成壞相名爲成壞連縛也是則修行觀緣起連縛也
030_0280_c_01L그리고 유주(流注)란 수행하여 찰나가 흘러서 달찰나(怛刹那)에 이르고 나아가 라바마후로투(羅婆摩候路妬)에 이르는 것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것을 이름하여 유주라고 한다. 가라라분의 유주는 7일이다. 그 포(皰)와 육단(肉段)이 견고하고 두터워지며, 나아가 노쇠해져서 늙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유주라 한다. 기분(起分)ㆍ주분(住分)ㆍ기연분(起緣分)ㆍ입분(入分)ㆍ출분(出分)ㆍ방편분(方便分)과 모든 정수(正受)는 선교방편[巧便]으로 유주하여 차례로 일어나고 다하는 것을 이름하여 유주라 한다. 모든 취(趣)의 회전이화륜(火輪)처럼 선회하는 것을 이름하여 유주라 한다. 이와 같은 모든 한량없는 유주는 곧 수행하면 그 연기의 유주를 보는 것이다.
분단(分段)이라는 것은 수행해서 분(分)으로부터 분에 이르기까지 관찰을 하기 때문에 분단이라고 말하는데,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연기(緣起)에서 이를 성취한다.
030_0280_b_19L流注者謂修行觀剎那流至怛剎那乃至羅婆摩睺路妒是名流注迦羅邏分流注七日肉段堅厚乃至衰老分是名流注起分住分緣分入分出分方便分一切正受便流注次第起盡名流注諸趣廻轉如旋火輪是名流注如是一切無量流是則修行觀緣起流注分段者行觀察從分至分故說分段能如是則於緣起成就
이른바 무명(無明)이 증상하면 이는 마치 소경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대흑명(大黑冥)이 그 광명을 멀리 여읜 것과 같다. 그리하여 혹 앞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혹 뒤를 보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는 편맹(偏盲)이며, 만일 앞과 뒤를 모두 보지 못한다면 이는 이구맹(二俱盲)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두 가지의 소경을 여읜다면 저 어리석음[癡冥]을 버리고 밝고 깨끗한 혜안(慧眼)을 얻는데, 이와 같은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와 불(佛)ㆍ법(法)ㆍ승(僧)의 3보를 모를 경우 이를 이름하여 열 가지의 어리석음[癡]이라 한다. 이 같은 열 가지의 어리석음을 멸하면 이를 이름하여 열 가지의 지혜라 한다.
030_0280_c_05L謂無明增上猶如盲人無有見相如大黑冥遠離光明或於前無見或於後無見是則偏盲若前後無見是二俱盲若離二盲捨癡冥得明淨慧眼如是苦集滅道佛法僧寶無知是名十種癡十種癡名爲十種慧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명이 첫 인(因)이 되어서 세 가지의 업을 심는다.”
만약 수행하면서 무명에 대한 과환(過患)을 모른다면 곧 세 가지의 업을 심는 것이다. 업이 일어나고 나서 이를 따라서 식(識)이 생기는데, 모든 식이 마치 저 허깨비[幻]와 같아서 갖가지의 종류를 모두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식으로부터 상속되어 명색(名色)이 일어나는데, 저 하나의 몸에서 두 가지의 모양이 있는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속이 비고 연약하며 습하고 문드러지는 물건과 같아서 그 안에 온갖 벌레들이 있어서 그 외부를 동요를 일으키는 것과 같으며, 또한 산누에와 같아서 그것이 처음에 고치의 막(膜)을 얽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 명색(名色)의 두 가지의 모양도 또한 이와 같다. 나아가 모든 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하여 명색의 두 가지 모양이라고 한다.
모든 근이 이미 열린 것을 6입(入)이라고 한다.
030_0280_c_11L佛說無明爲初因三種業若修行不知無明過患則種三種業業起已從是生識諸識如幻種種悉現從識相續起名色於彼一而有二相譬如虛軟沮爛之物有諸虫令外動搖亦如野蠶初作繭名色二相亦復如是乃至諸根未說爲名色二相諸根旣開名爲六
그러나 모든 근이 처음 열린 때에는 아직 아무것도 짓는 것이 없는데, 촉(觸)에서 어리석게 되어 그 적절하고 적절하지 않음을 알지 못함이 마치 빗방울이 몸에 떨어져서 물거품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저 정진(情塵)에 그 촉을 일으키는 것이 역시 이와 같다. 그리하여 외부의 가시가 자극하면 그것을 따라서 촉감이 일어나는데, 이는 또한 등잔불이 기름과 심지로 이루어진 것과 같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수행해서 이염촉상(爾炎觸相)을 관찰한다고 한다.
촉상(觸相)이 일어나고 나면 차례로 다시 수(受)가 생기는데, 비유컨대 마치 저 물의 거품에서 세 가지의 모양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만약 모든 근을 분별한다면 여기에는 다섯 가지의 수(受)가 있다.
030_0280_c_19L諸根始開未有所作於觸愚癡知適與不適如雨渧注水水則泡起情塵生觸亦復如是外刺刺身觸從中起亦如然燈油炷所成是名修行觀爾炎觸相觸相起已次第生受如水泡三種相現若分別諸根則有五受
030_0281_a_01L수가 일어나고 나면 다음에는 갈애(渴愛)가 생기는데, 비유컨대 이는 마치 혓바닥으로 저 꿀을 발라놓은 칼날을 핥는 것과 같다. 갈애의 모든 번뇌를 증상하는 것을 이름하여 취(取)라 하며, 취가 생긴 다음에는 유(有)가 생기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의 업(業)이 있다. 업은 미래의 과를 일으키므로 이를 이름하여 유(有)라 한다. 이미 생(生)을 심었는데 아직 받지 않은 것을 미래의 생이라고 하며, 이미 생(生)하고 나면 이것이 익게 되는데 이것을 일러 노사(老死)라고 하며 2지(支)라 한다. 미래의 생을 설할 때에 생상(生相)이 증상한다.
030_0281_a_02L受起已次生渴愛譬如舌舐蜜塗刀刃愛增諸煩惱名爲取取次生有三種業業起當來果故名爲有已種生而未受名爲未來生生已熟謂爲老死二攴說未來生時生相增
부처님께서 식분(識分)을 설하셨으니, 미래식(未來識)이 생길 때를 이름하여 생(生)이라고 하며, 명색(名色)ㆍ6입(入)ㆍ촉(觸)ㆍ수(受)를 이름하여 노사(老死)라 하고, 전세(前世)의 애(愛)ㆍ취(取)ㆍ유(有)는 능히 지금의 유를 모으기 때문에 이 생에서 과거가 되며, 애(愛)와 취(取)는 곧 번뇌의 분(分)이므로 이를 설하여 무명이라고 하였다. 유는 곧 행(行)인 것이다. 현재의 3지(支)가 내생(來生)과 과거의 2지(支)를 심는 생사의 바퀴를 굴리는 것이다. 저 중생들의 바퀴가 회전하는 것은 무명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여덟은 현재, 둘은 과거, 둘은 미래의 세계로 차별되므로 이와 같이 분별을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회전할 때에 모든 것이 다 열둘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30_0281_a_07L佛說識分未來識生時名爲生六入名爲老死前生愛能集今有故於此生爲過去愛取是煩惱分故說爲無明有則是行在三攴能種來生過去二枝轉生死彼衆生輪轉以無明覆故八現在二過去二未來世差別故如是分別當知轉時一切皆十二
또 그 외에 여분(餘分)의 인연이 있는데 지금 이를 설하겠다. 처음에 가라라로부터 시작해서 포와 육단이 생기고 그 지절이 단단하고 두터워진 다음 어린아이가 되고 소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쇠분(衰分)에 접어들어서 늙어 죽게 되는 이들 열 가지의 부분에서 그 연기를 관찰을 하는 것이다.
또 기(起)ㆍ주(住)ㆍ기연(起緣)ㆍ입(入)ㆍ출(出)ㆍ방편분(方便分), 나아가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연기를 본다. 또 이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나니, 저 안색(眼色)이 안식(眼識)을 일으킴을 말한다. 3사(事)가 화합하여 촉이 있으니 수(受)ㆍ상(想)ㆍ사(思)를 일으키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수행하여 다른 종류의 연기를 관찰한다고 한다.
030_0281_a_14L復次更有餘分因緣今當說從迦羅肉段堅厚肢節嬰兒童子壯年衰分老死分於是十種分觀察緣起復次於起住起緣入出方便分乃至餘一切分悉觀緣起復次是事起故是事起謂彼眼色能起眼識三事和觸生受是名修行異種觀緣
030_0281_b_01L또 수행하여 방편으로 제입(諸入)의 연기를 관하여 저 밝고 맑은 경계로써 스스로 향하여 제입문(諸入門)을 보는데, 이와 같이 보고 나면 각자 자상(自相)을 관하는 곳에서 모든 들고 나는 한량없는 적취(積聚)를 깨뜨리고 숙상(熟相)이 나타난다.그리하여 시방에 유주하면 지극한 지혜의 경계는 관찰함에 도달한다. 밝은 지혜로 승진하는 자는 수행하여 선교방편에 머문다. 이때에 문(聞)ㆍ사(思)ㆍ수(修)의 지혜와 숙상과 괴상(壞相)이 차례로 일어나는데, 나머지 모든 승진의 이치는 앞의 입처(入處)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수행을 하는 자가 먼저 내신(內身)을 허물면 다음에 외색(外色)을 봄을 이르는 것이니, 이는 마치 저 거울에다 비추어 보면 그 물상(物像)으로 인하여 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소의상(所依相)이 일어나면 또한 그 외상(外相)이 일어나는 것이다.
030_0281_a_22L復次修行方便觀諸入緣起以明淨境界自向觀諸入門如是見已觀自相處破諸入山無量積聚熟相現已流注十方極智境界到彼觀明智升進者修住巧便爾時聞修慧熟相壞相次第而起諸餘升進義如前入處說復次是事有故是事是事起故是事起謂修行者先壞內身次觀外色猶如照鏡因物像現如是所依相起外相亦起也
또 수행하여 부정(不淨)에서 연기를 관한다. 먼저 방편처(方便處)에서 그 생각을 묶어 둠이 견고해진 다음에 그 지절(肢節)에서 분해하여 연기를 보는 것이다. 명상(明相)이 일어나면 무명상(無明相)이 허물어지며 각골(脚骨)에 의하여 박골(腨骨)ㆍ비골(髀骨)ㆍ과골(跨骨)ㆍ견골(肩骨)ㆍ경골(頸骨)ㆍ두골(頭骨)이 있어서 시방세계에 충만하니, 유루업상(有漏業相)이 그 밑에서 두루 나타나 여러 가지 부정상(不淨相)이 계급에 따라서 차례로 일어나는 것이다.
030_0281_b_08L復次修行於諸不淨觀其緣起先於方便處繫念令堅固然後於肢節分觀其緣起起明相已無明相壞依腳有腨骨髀骨跨骨肩骨頸骨頭骨充滿十方有漏業相普現於下諸雜不淨相階級次第起
또 수행하여 네 가지 인(因)이 모든 고통을 일으킴을 관하니, 전전인(展轉因)과 인근인(隣近因)과 주보인(周普因)과 불공인(不共因)이다.
또 수행하여 과(果)는 생(生)의 인에 따르고, 생은 유(有)의 인에 따르고, 유는 취(取)의 인에 따르는 것을 관하니, 이와 같이 나아가 행(行)은 무명(無明)의 인에 따른다. 행(行)이 곧 과(果)이며, 또한 곧 인(因)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인을 따라서 그 과를 미루어 가면 다시 노사(老死)에 이르게 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만약 무명에서 인을 구한다고 한다면 필시 크게 두려워져서 단견(斷見)을 일으키게 될 것이니, 지혜가 없어 어둡고 여명(餘明)이 매우 희미하여 마치 반딧불과 같다. 그런데도 오히려 인을 다시 구하여 자신의 견(見)을 그치지 않는다면 오직 대흑암(大黑闇)과 함께할 뿐일 것이다.
030_0281_b_14L復次修行觀四因能生衆苦展轉因鄰近因周普因不共因復次修行觀果從生因生從有因有從取因如是乃至行從無明行是果亦是因從因推果還至老死亦如是若於無明求因必大恐怖起斷見無智闇冥餘明甚微猶如螢如是猶復求因不已自見唯與大黑闇俱
030_0281_c_01L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정사유(正思惟)하지 않음을 연유로 중생이 만약 이와 함께한다면 곧 생사를 굴러다니게 될 것이니, 저 무명이 얽어 묶고 있기 때문에 바퀴가 있어서 항상 굴러다닐 것이다. 그리하여 무명이 근본이 되고 그 나머지 지(支)들이 짓는 바에 의하여 각각의 유상(有相)이 나타날 것이니,모든 유지(有支)가 무명을 굴림[轉]이 가장 자재하고, 자재력(自在力)의 구르는 것은 마치 주인에게 소속된 종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짓지 않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구르지 않는 것이니 그 밖의 여지(餘支)도 모두 이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죽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점점사(漸漸死)와 돈사(頓死)와 행진사(行盡死)와 찰나사(刹那死)이다.”
030_0281_b_22L世尊說言由不正思惟衆生若與是俱則輪轉生死無明縛故輪常轉無明爲本餘攴所作各有相一切有攴輪無明最自在自在力所轉如奴屬其主是無故是不作滅故是不轉當知餘枝皆如是說有四種漸漸死頓死行盡死剎那死
또 세 가지의 무상(無常)을 설하였는데, 첫째는 찰나(刹那) 무상이고, 둘째는 분단(分段) 무상이고, 셋째는 종류(種類) 무상이다. 수행하여 이 무상을 요해한다면 네 가지 마(魔)를 멀리 여의고 무명을 깨뜨려 버릴 것이다. 밝은 상(相)이 나타나서 마치 밝고 맑은 등불처럼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것과 같다. 나아가 노사(老死)가 멸하여 밝은 상이 일어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리하여 무명의 모든 적취(積聚)를 파괴하고 나면 일상(一相)의 정묘(淨妙)한 경계를 성취해서 수행하는 자의 신체가 유연하고 광택이 날 것이다. 이처럼 광택이 나게 되면 몸이 매우 밝고 맑아져서 마치 거울의 영상과 같을 것이다.
030_0281_c_05L又說三種無常剎那無常分段無常種類無常修行了此無常遠離四魔破壞無明明相顯現如明淨燈能消衆冥乃至老死滅諸明相亦復如是破壞無明諸積聚已就一相淨妙境界行者身體柔軟光光澤已身極明淨如明鏡像
이와 같은 상(相)이 나타나서 그 밝고 맑음을 보고 나면 몸 안에 있는 온갖 물건들의 각각의 자상(自相)이 남김없이 드러나는데, 이와 같은 성취를 관하는 것을 이름하여 계(界)에서 득도(得度)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의 어리석음과 다섯 가지의 대치상(對治相)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계(界)이고, 둘째는 입(入)이며, 셋째는 음(陰)이고, 넷째는 비천(卑賤)이며, 다섯째는 구오(垢汚)인데,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의 어리석음이라 한다. 혹은 계(界)를 관하여 득도하기도 하고, 혹은 다시 음(陰)을 관하며 입(入)을 관하고 저 증가되는 공덕을 관하고 제일의(第一義)를 관하여 이로써 득도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의 대치라고 한다.
030_0281_c_12L如是相現明淨觀己身內衆物各各自相一切顯現如是觀成就名曰於界得何以故有五種癡五種對治相卑賤垢污是名五種癡或觀界得度或復觀陰觀入彼增功德觀第一義而得度者是名五種對治也
030_0282_a_01L또 수행을 하는 자가 쾌정유리삼매(快淨琉璃三昧)에 들어서 밝고 맑은 경계에서 연기지(緣起支)를 관한다. 이처럼 연기지를 관할 때에 곧 이견상(易見想)이 생기는데 그 설이 다음과 같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연기(緣起)는 보기가 쉽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12연기는 깊고 깊어서 그 밑이 없어 이를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다. 그런데 지금 네가 나의 저 3아승기겁의 깊고 미묘하여 얻기 어려운 과보를 허물어서 깨뜨리려고 하니,어찌하여 기뻐서 이와 같은 말을 하느냐? 이 심묘관(深妙觀)에 대하여 내가 지금 너를 제도하리니,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서 부처님의 경계를 보도록 하라. 부처님의 경계의 바다는 외도(外道)가 이리저리 흘러서 지혜가 없이 어둡고 음침해 양쪽이 어리석어 이염(爾炎)의 경계를 여의어서 능히 들어갈 수 없으니,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이 비록 조금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밑바닥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030_0281_c_19L復次修行者入快淨琉璃三昧於明淨境界觀緣起攴觀緣起枝時便生易見想如說阿難白佛言緣起易見佛告阿難十二緣起甚深無底難見難知汝欲毀壞我三阿僧祇劫甚深微妙難得之果云何欣悅而說是言是深妙觀我今當度汝當隨我觀佛境佛境界海浮漂外道無智闇冥二邊愚癡離爾炎境界所不能入聲聞支佛雖能少入不得其底
이때에 세존께서 말씀을 하시고 나서 즉시 저 깊고 미묘한 이염(爾炎)에 들어가 삼매의 자재한 정수(正受)에 머무르셨다. 그 정수의 경계에 세 사자왕(師子王)이 있는데, 사자왕의 위에는 각각 7보로 된 연못이 있고, 7보로 된 연못 가운데는 각각 7보로 된 연꽃이 피어 있으며, 7보의 연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이 앉아 계셨는데, 큰 광명을 방출하여 성문의 경계를 끝까지 하였다. 그리고 나서 여러 성문에 머물렀는데, 처음의 발심(發心)으로부터 그 최후의 몸에 이르기까지 심은 모든 선근(善根)과 모든 연기(緣起)가 빠짐없이 모두 나타났다.
030_0282_a_06L爾時世尊說是語已卽入甚深微妙爾炎住三昧自在正受正受境界有三師子王師子王上各有七寶池七寶池中各有七寶蓮華七寶蓮花上皆有坐佛放大光明極聲聞境界然後乃住諸聲聞從初發心至最後身所種善根及諸緣起一切悉現
이로부터 다시 세 사자왕이 일어났으며, 그 사자왕의 위에는 각각 7보로 된 연못이 있고, 7보로 된 연못 가운데는 각각 7보로 된 연꽃이 피어 있으며, 7보의 연꽃 위에는 각각 부처님이 앉아 계셨는데, 큰 광명을 방출하여 벽지불의 경계를 끝까지 하였다. 그리고 나서 여러 벽지불에 머물렀는데, 처음의 발심으로부터 나아가 구경(究竟)에 이르기까지 심은 선근과 모든 연기가 빠짐없이 모두 나타났다.
030_0282_a_13L從是復起三師子王師子王上各有七寶池七寶池中各有七寶蓮花七寶蓮花上皆有坐佛放大光明極辟支佛境界然後乃諸辟支佛從初發心乃至究竟所種善根及諸緣起一切悉現
이로부터 다시 한량없는 수의 사자왕이 일어났으며, 그 사자왕의 위에는 각각 7보로 된 연못이 있고, 7보로 된 연못 가운데는 각각 7보로 된 연꽃이 피어 있으며, 하나하나의 연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이 앉아 계셨는데, 널리 광명을 방출하여 보살의 경계를 끝까지 하였다. 그리고 나서 여러 보살들에게 머물렀는데, 처음의 발심으로부터 금강좌(金剛座)에 이르기까지 닦은 선근과 모든 공덕과 업(業)과 과(果)와 모든 연기가 다 나타났다.
030_0282_a_18L從是復起無量師子王師子王上各有七寶池七寶池中各有七寶蓮花一一花上皆有坐普放光明極菩薩境界然後乃住是諸菩薩從初發心至金剛坐所修善根一切功德若業若果及諸緣起切悉現
030_0282_b_01L이로부터 다시 한량없는 사자왕이 나타났으며,그 사자왕의 위에는 각각 7보로 된 연못이 있고, 7보로 된 연못 가운데는 각각 7보로 된 연꽃이 피어 있으며, 하나하나의 연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이 앉아 계셨는데, 부처님이 큰 광명을 방출하여 널리 불법을 비추어서 깊고 깊은 연기가 모두 나타났다.
030_0282_b_01L從是復起無量師子王師子王上各有七寶池七寶池中各有七寶蓮花一一花上皆有坐佛放大光普照佛法甚深緣起一切悉現
이때 부처님께서 그 신력(神力)으로 아난에게 부처님의 경계를 보이시고 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염 중에도 또 다시 한량없고 끝없는 여러 부처님의 경계가 있는데, 부처님의 지혜가 행하는 바가 이와 같이 매우 깊고 미묘한 경계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뻐서 보기가 쉽다고 말하는가? 이것은 너의 지혜가 얕아서 아직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보기가 쉽다고 말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염 경계에는 한량없는 모든 법들이 현재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허물어져서 모든 것이 공(空)하여져 청정하게 적멸(寂滅)한다.
030_0282_b_04L時佛以神力示阿難佛之境界已阿難言爾炎中更有無量無邊諸佛境界佛智所行如是甚深微妙境界云何欣悅而言易見汝智淺不及謂爲易見耳如上爾炎境界無量諸法現在前已然後乃壞一切皆空淸淨寂
적멸하고 나면 다시 뛰어나고 묘한 이염을 관하되 저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일으켜서 그것이 점점 광대하여져서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 찬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법보(法寶)ㆍ법신(法身)에 충만하고 법신의 광명이 변제(邊際)가 없으니, 이것이 불공(不共) 지혜가 행하는 경계인데 모든 불법의 깊고 깊은 연기가 모두 현재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허물어져서 모든 것이 공하여 청정하게 적멸해서 아무런 처소도 없게 되는데, 마치 허공이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보물을 손에 넣는 것을 이름하여 보물을 얻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그 과보를 닦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를 이름하여 결정상(決定相)이라고 한다.
아난이여, 여래의 경계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니, 지금 내가 너를 위하여 조금만 보여 주었을 뿐이다.”
030_0282_b_11L寂滅已復觀勝妙爾炎起佛法身漸漸廣大周滿十方無量法寶充滿法身法身光明無有邊際不共智慧所行境界一切佛法甚深緣起悉現在前然後乃壞一切皆空淸淨寂滅無有處所猶如虛空無所依止如寶入手名爲得寶修果如是名決定相阿難如來境界不可思議我今爲汝示少少耳
그러자 아난은 부처님의 경계를 보고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깊고 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이염의 경계는 실로 그 밑바닥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만일 부처님의 경계가 이와 같이 깊고 묘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차라리 저의 몸을 참깨[胡麻]처럼 부수어서 마땅히 먼저 불법의 피안(彼岸)을 구경(究竟)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030_0282_b_19L阿難見佛境界歡喜踊躍白佛言甚深世尊世尊爾炎境界得其底若我先知如來境界如是深妙者寧使我身碎如胡麻要當究竟佛法彼岸
030_0282_c_01L이상과 같은 모든 것을 이름하여 수행을 해서 연기의 분단(分段)을 관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찰나라고 하는 것은 3세(世)가 한 찰나요, 한 찰나가 3세인 것이다.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미래라 하고, 일어난 때를 현재라고 하며, 일어난 뒤에는 과거라고 한다. 한 찰나가 일어나면 곧 한 찰나가 고(苦)가 되니, 무상(無常)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중행(衆行)은 찰나가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시 그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도 없고 어디를 따라서 가는 것도 없으며, 또한 그 이르는 곳도 없고 비록 옮겨 간다고 해도 역시 아무 데도 가는 곳이 없고 가도 역시 모이고 쌓이는 것도 없다.
030_0282_b_23L如是一切名修行觀緣起分段剎那者三世一剎那一剎那三法未起名未來起時名現在已起名過去一剎那生卽一剎那苦與無常俱故當知衆行剎那頃不住亦無所從來去亦無所至雖轉亦無所去去亦無積聚
한 찰나가 일어나면 한 찰나가 멸한다. 찰나는 일념(一念)과 같고 일념은 찰나와 같다. 앞의 찰나가 모이면 이미 멸하고, 멸할 때에 그 뒤가 더불어 일어나는데, 수순하여 네 연(緣)이 구족하여 뒤의 찰나가 일어나는 것이다. 경계를 수행하면 한 찰나 사이에 한량없는 미진(微塵)이 있고, 한량없는 미진은 하나하나의 찰나마다 차례로 서로 이어져서 마치 구슬이 이어져 있는 것과 같다.
030_0282_c_06L一剎那起一剎那滅剎那如一念一念如剎那前剎那聚已滅滅時與後起隨順四緣具足後剎那修行境界觀一剎那間有無量微無量微塵一一剎那次第相續如連珠
비유컨대 활을 잘 쏘는 네 명의 사람이 함께 화살을 쏘았다고 할 때, 어떤 걸음이 빠른 자가 그 화살이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를 쫓아가서 아직 공중에 있는 그 화살을 낚아채어서 이를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신(地神)으로 말하면 그 빠르기가 이 사람보다도 더하고, 허공(虛空)의 신은 이 지신보다도 더 빠르며, 일월천(日月天)은 이 허공천보다도 더 빠르다. 이와 같이 건행천(健行天)은 그 빠르기가 저 일월보다도 배나 더한 것이다. 제행(諸行)의 무상함은 그 빠르기가 이들보다도 더해서 이를 도무지 비유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030_0282_c_11L譬如四善射人俱放四箭一人健行箭未至地能就空中接取四箭不令落地地神迅疾復過於是虛空神疾過於地神日月天疾過虛空天如是健行天疾倍過日月當知諸行無常迅過於是不可譬喩
수행하여 가라라의 이레 동안의 주분(住分)에 한량없는 찰나가 있음을 관하는 것과 같이 여타의 모든 부분도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을 하고 나면 모든 어리석음을 여의고 밝은 지혜가 증익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한량없음을 이름하여 수행하여 연기의 찰나를 관한다고 하는 것이다.
030_0282_c_16L如修行觀迦羅邏七日住分有無量剎那知餘一切分亦如是如是觀已離諸愚癡增益明慧如是無量名修行觀緣起剎那
또 수행하여 처음에 정수(正受)에 들어가는 것을 연박(連縛)이라 하고, 경계가 증장하는 것을 유주방편(流注方便)이라 하고, 경계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을 분단(分段)이라 하며, 경계가 점점 멸하는 것을 찰나라 한다.
030_0282_c_20L復次修行初入正受名爲連縛境界增長名爲流注方便境界安住名爲分段境界漸滅名爲剎那
030_0283_a_01L또 이미 네 가지의 차별상에서 연기를 관하는 것을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연기(緣起)를 설하셨으니,지금 마땅히 2지(支)는 종(種), 2지는 숙(熟), 2지는 기(起), 2지는 견소종(牽所種), 2지는 생장(生長), 2지는 성취(成就), 2지는 수(受), 2지는 작인(作人), 2지는 전(田), 2지는 기자(寄者), 2지는 소기(所寄), 2지는 수기자(受寄者)임을 설하겠다. 이를 이름하여 유지(有支)라 한다.
030_0282_c_23L復次已說四種別相觀緣起佛說摠緣起今當說二攴種二攴熟二攴起攴牽所種二攴生長二攴成就二攴受二攴作人二攴田二攴寄者二攴寄二攴受寄者是說名有攴
그런데 수행하여 연기를 관하면 5음(陰)이기도 하고 4음(陰)이기도 한데, 5음은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이고 4음은 무색계(無色界)이다. 무상(無常)과 공(空) 등의 제행(諸行)은 이 음에서 진실을 결정하고, 이처럼 진실을 이미 결정하면 그 결정상(決定相)이 현재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나며, 이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짓지 않는다. 비유컨대 부시와 부싯돌과 같아서 어떤 사람이 이것으로 방편을 쓰면 연기가 일어나고 그리하여 섶에 불이 붙어서 타는 것이다. 또한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있고, 태양이 있으면 빛이 있고, 등불이 있으면 불꽃이 있는 것과 같아서 모든 것이 그 연을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다.
030_0283_a_05L修行觀緣或五陰或四陰五陰欲色界四陰無色界無常空等諸行於陰決定眞實定眞實已決定相現在前是事有故是事有是事起故是事起是事無故是事無是滅故是不作譬如有鑽有有人方便煙火乃出因薪熾然如因樹有蔭因日有光因燈有焰從緣起
무명(無明)은 내가 능히 행(行)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으며, 행 또한 내가 무명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유지(有支)가 모두 이와 같이 곧 공법(空法)이고 적멸법(寂滅法)이며 무소유법(無所有法)으로서 짓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무명과 제행(諸行)이 화합하여 유루법(有漏法)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수(受)가 축(軸)이 되어서 유지의 바퀴를 굴려서 여러 결박(結縛)을 낳는데, 모든 결박 가운데서 애지(愛支)가 증상하고, 모든 결박 가운데서 취지(取支)가 증상하고, 모든 사(使) 가운데서 식지(識支)가 증상하고, 모든 전(纏) 가운데서 무명이 증상한다. 생(生)으로 향하면 결(結)이 증상하고, 생을 받으면 박(縛)이 증상하고, 모든 식이 표류하면 이사(利使)가 증상하고, 경계에서는 어리석음과 번뇌가 증상한다.
이와 같이 번뇌의 업의 박(縛)이 굴러서 과(果)를 낳는데, 바퀴가 있어 항상 굴러서 지혜가 없는 중생을 표류시킨다. 뜻을 따라 증상하기 때문에 차별이 있다고 말하고, 모든 분(分)에 결(結)ㆍ박(縛)ㆍ사(使)ㆍ전(纏)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030_0283_a_13L無明不言我能生行行亦不我從無明生當知一切有攴皆如是空法寂滅法無所有法作者不可得但有無明諸行和合有漏法生爲軸轉有攴輪生諸結縛諸結中愛攴增諸縛中取攴增諸使中識攴增諸纏中無明增向生結增受生縛增諸識漂利使增於境界愚癡煩惱增如是煩惱業縛能轉生果有輪常轉無智衆生隨義增故說有差別知諸分皆有結縛使纏
030_0283_b_01L수행하여 여섯 종류에서 12연기를 관한다.12지(支)에서 이를 뜻에 수순하여 설하면 이른바 안반념(安般念)은 업지(業支)와 유지(有支)를 관하는 것이다. 날숨과 들숨으로 하는 것이 곧 신행(身行)이며, 각관(覺觀)이 곧 구행(口行)이며, 상사(想思)가 곧 의행(意行)이다. 그러므로 안반념이 곧 저 대치(對治)인 것이다.
그리고 계방편관(界方便觀)은 식지(識支)와 생지(生支)를 관하는 것이다. 식(識)이 증상하기 때문에 태(胎)에 처하는데, 식이 모든 계에서 증상하는 것을 7식계(識界)라 한다. 그러므로 계방편관은 곧 저 대치인 것이다.
030_0283_a_23L復次修行六種觀十二緣起於十二攴隨順義說謂安般念觀業攴有攴出息入息是身行覺觀是口行想思是意行是故安般念是彼對治界方便觀識攴生攴識增上故處胎識於諸界增上說七識界是故界方便觀是彼對治
음방편관(陰方便觀)은 명색지(名色支)와 노사지(老死支)를 관하므로 음방편관이 곧 저 대치인 것이다. 모든 날숨과 들숨을 깨뜨리는 방편관은 6입지(入支)와 촉지(觸支)를 관하므로 입방편관(入方便觀)이 곧 저 대치인 것이다.
연기방편관(緣起方便觀)은 무명지(無明支)와 애지(愛支)를 관하므로 연기방편관이 곧 저 대치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受)와 무명은 곧 모든 번뇌의 근본이기 때문에 지혜가 곧 저 대치인 것이며, 애(愛)와 취(取)의 2지는 청정에 염착(染着)하였기 때문에 부정(不淨)이 곧 대치인 것이다.
030_0283_b_07L陰方便觀觀名色攴老死是故陰方便觀是彼對治破諸入出方便觀觀六入攴觸攴是故入方便觀是彼對治緣起方便觀觀無明攴受攴是故緣起方便觀是彼對治何以受及無明是諸煩惱根本是故智慧是彼對治取二攴染著淨故淨是對治
또 수행하여 12인연을 관함에 있어서 혹은 인(因)을 따라 도탈하기도 하고 혹은 과(果)를 따라 도탈하기도 하며, 혹은 무명과 행(行) 나아가 노사를 따르기도 하고, 혹은 식(識) 나아가 노사를 관하기도 한다. 혹은 3사(事)가 화합하여 촉(觸)이 생기는데, 촉은 수(受)를 생하고, 수는 애(愛)를 생하고 애는 취(取)를 생하고 나아가 노사에 이른다. 혹은 애와 취와 유로부터 노사를 생하고, 혹은 노사로부터 나아가 무명에 이르고, 혹은 노사 나아가 식에 이름을 관하는데, 『불성유경(佛城喩經)』에 설한 것과 같다.
030_0283_b_14L復次修行觀十二緣或時從因度時從果度或從無明行乃至老死觀識乃至老死或三事和合生觸生受受生愛愛生取乃至老死或從老死或從老死乃至無明或觀老死乃至識如『佛城喩經』說
또 수행하여 4념처(念處)에서 12지를 관하여 증상하니, 신념처(身念處)에서 6입지(入支)를 관하고, 수념처(受念處)에서 수지(受支)를 관하며, 심념처(心念處)에서 식지(識支)와 명색지(名色支)를 관하며, 법념처(法念處)에서 나머지의 지(支)를 통틀어서 본다. 이와 같은 뜻을 설하여 마쳤으니,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이를 찬탄한다.
030_0283_b_20L復次修行於四念處觀十二攴各增身念處觀六入攴受念處觀受攴心念處觀識名色攴法念處摠觀餘說此義已而說讚偈曰
030_0283_c_01L
방편 치지(治地)의 행으로
드디어 구경처(究竟處)에 이르고
위없는 법을 베푸는 주인
이를 설해 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노라.
030_0283_c_01L方便治地行
乃至究竟處
無上法施主
說是傳至今

내가 그 뛰어난 들음에 따라
깊고 묘한 뜻을 엮어서 설하였노라.
구절들을 장엄하여 모아서
법이 오래오래 머물게 하고자 하노라.
030_0283_c_03L我從彼勝聞
撰說深妙義
章句莊嚴集
欲令法久住

부처님의 법이 깊어 바닥이 없으니
수행을 해도 그 끝이 없어라.
나의 적은 지혜의 힘을 가지고
한량없는 법을 선양하노라.
030_0283_c_04L 佛法深無底
修行亦無邊
以我少智力
宣揚無量法

이것이 깊어서 헤아릴 수가 없으니
마치 모기가 바닷물을 마심과 같아라.
오직 저 이미 도탈을 한 자만이
그런 다음에야 구경에 이르러라.
030_0283_c_05L是深非所測
如蚊嘗大海
唯彼已度者
然後乃究竟

62계(界)의 6종(種)이란 6정(情)ㆍ6진(塵)ㆍ6식(識)ㆍ6계(界)ㆍ6각(覺)이다.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일러 세 부정각(不淨覺)이라 하는데, 이것이 도리어 세 정각(淨覺)이다. 고(苦)ㆍ낙(樂)ㆍ불고불락(不苦不樂)ㆍ우(憂)ㆍ희(喜)ㆍ사(捨)가 여섯이다.
셋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이며, 또 색계ㆍ무색계ㆍ멸계(滅界)이다. 셋은 세법(世法)ㆍ연중상법(軟中上法)ㆍ선불선무기법(善不善無記法)이다. 학(學)ㆍ무학(無學)ㆍ비학(非學)ㆍ비무학(非無學)은 넷이다. 둘은 식(食)과 비식(非食), 누(漏)와 무루(無漏)이며, 의욕(依欲)과 의출요(依出要),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이다.
030_0283_c_07L六十二界六種六情六塵六識六界六覺謂貪癡三不淨覺反是三淨覺也不苦不樂無色界又色無色滅界三世法上法不善無記法無學非學非無學四二者食非食漏無漏依出要有爲無爲
서른여섯의 부정(不淨)을 차례로 말하면, 털과 머리털, 손톱과 발톱, 이빨, 얇은 살갗과 두꺼운 살갗, 힘줄과 살, 뼈와 골수, 비장, 신장, 심장, 간과 폐, 소장과 대장, 위(胃)와 포(胞), 오줌과 똥, 때와 오물, 눈물과 콧물, 침과 고름, 피, 누렇고 흰 가래와 피멍, 지방(脂肪)과 뇌(腦)와 막(膜)이다.
030_0283_c_14L三十六不淨次薄皮厚皮小腸大腸尿垢污黃白痰%(月*冊)腦
찰나의 수에 대하여 말하면, 120찰나를 1달찰나(怛刹那)라 하고, 60달찰나를 1라바(羅婆)라 하며, 30라바를 1마후로투(摩睺路妬)라 하고, 30마후로투를 1일(日) 1야(夜)라 한다. 그리고 한 해 중에 오직 2시(時) 2일(日)과 30마후로투의 밤과 낮이 같다.
030_0283_c_17L剎那數百二十剎那名一怛剎那十怛剎那名一羅婆三十羅婆名一摩睺路妒三十摩睺路妒名一日一夜一歲中唯二時二日三十摩睺路妒晝夜等
030_0284_a_01L8월 달을 이름하여 갈제(羯提)라 하고, 후반월(後半月)을 이름하여 백분(百分)이라 하는데, 갈제월(羯提月)의 백분(白分)의 8일과 폐사거월(陛舍佉月)의 백분의 8일이다. 2월을 이름하여 폐사거라 하고,후반월을 이름하여 백분이라 한다. 이것이 곧 2시 2일인데 그 밤과 낮이 각각 15마후로투이다. 이로부터 그 이후로는 저 라바가 흘러서 혹은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도 하고, 혹은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흐른다고 하는데 그 밤과 낮이 같아서 각각 30마후로투이다.
030_0283_c_22L謂羯提月白分八日八月名羯提後半月名爲白分陛舍佉月白分八日二月名陛舍佉後半月名白分此二時二日晝夜各十五摩睺路妒從是後羅婆流或晝減夜或夜減晝增名爲流晝夜等各三十摩睺路妒
갈제월(羯提月)의 백분(百分)의 8일과 폐사거월(陛舍佉月)의 백분의 8일인데, 갈제월이란 7월 16일에서 8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이 8월을 이름하여 후반월(後半月)이라 하고 이름하여 백분이라 하며, 폐사거월이란 1월 16일에서 2월 15일까지를 말하는데, 이 2월을 이름하여 후반월이라 하고 이름하여 백분이라 한다. 이것이 곧 2시(時) 2일(日)로서 그 밤과 낮이 각각 30마후로투인 것이다. 이로부터 그 이후로 라바가 흐른다고 하였는데, 혹은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도 하고, 혹은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흐른다≺流≻고 한 것이다.
030_0284_a_12L謂羯提月白分八日舍佉月白分八日羯提月者謂七月十六日至八月十五日是八月名後半月名白分陛舍佉月者正月十六至二月十五日是二月名後半月名白分此二時二日晝夜各三十摩睺路妒從是後羅婆流或晝減夜增或夜減晝增名爲流
達摩多羅禪經卷下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