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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596_a_01L아비담오법행경(阿毘曇五法行經)
안세고(安世高) 한역
고법힐가(苦法黠可)란 고법(苦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黠]이고, 습법힐가(習法黠可)란 습법(習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이며, 진법힐가(盡法黠可)란 진법(盡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이고, 도법힐가(道法黠可)란 도법(道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이다.
고법(苦法)이란 형체를 지닌 만물은 모두 다 쇠하고 늙고 죽는 것을 말하니, 이것이 고(苦)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이 항상 보존되고 유지된다고 말하며 즐거움으로 여긴다. 이치를 밝혀 구하려는 지혜로운 이[黠可者]는 그것들이 괴로움[苦]이라는 것을 알아 다시는 생사(生死)의 길로 향하지 않는다. 이를 고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다.
습법(習法)이란 탐욕[欲]에 물들고[習], 얻음[得]에 물들고, 음란[婬]에 물들고, 성냄[怒]에 물들고 어리석음[癡]에 물들고, 좋은 것[好]에 물들고 아름다운 것[美]에 물드는 것을 말한다. 이치를 밝혀 구하려는 지혜로운 이는 이와 같은 것을 습(習)으로 여겨 습으로부터 멸진[盡]을 얻어 곧 욕구하지 않게 된다. 이를 습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다.
진법(盡法)이란 사람이나 사물이 모여 들면 반드시 흩어져 없어지게 되는 데, 모여 들었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고 잃었다고 해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진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다.
도법(道法)이란 도를 행하여 도를 얻고, 선업(善業)을 지으면 천상에 올라가고 악업(惡業)을 지으면 악도(惡道)에 들어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치를 밝혀 구하려는 지혜로운 이는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는 것을 안다. 이를 도법의 이치를 밝혀 구하는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다.
지혜로운 이와 깨달음을 구하는 이는 근본을 안다. 알지 못한다면 이는 괴로움[苦]이다. 괴로움이 첫 번째 의미라면 괴로움을 아는 것이 두 번째 의미이다. 습(習)이 첫 번째 의미라면 습을 아는 것이 두 번째 의미이다. 진(盡)이 첫 번째 의미라면 진을 아는 것이 두 번째 의미이다. 도(道)가 첫 번째 의미라면 도를 아는 것이 두 번째 의미이다.
이 여덟 가지 의미 이외에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이 있다. 본래 쌓아 익혀온 생인연(生因緣)이 다하여 그치면 마음대로 요도(要道)의 처소에서 감수(感受)하고 관(觀)하는 일을 다할[盡:滅) 수 있다.
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은 어떤 인연으로 진(盡)을 얻는가? 진은 고로부터 비롯되며, 고로부터 진을 얻을 수 있다. 진(盡)을 원인[因]으로 하면 공(空)을 얻을 수 있고, 공을 얻으면 내 몸이 아님[非我身]을 알 수 있다. 이 네 가지 의미는 고제(苦諦)를 따른 것이다.
고(苦)란 무엇인가? 생사 과정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고이다. 반드시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또한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하고 싶은 것이란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들이고, 또한 하고 싶지 않은 것이란 인간의 마음이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이 괴로움이다. 탐(貪)은 습(習)으로부터 비롯된다. 비상(非常)을 따라 마음[意]이 멸(滅)을 구해야 한다. 고(苦)는 습(習)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법(法)이란 무엇인가? 인연(因緣)이 이것을 짓나니, 이를 얻는 것을 법이라 한다. 마땅히 인식하고[識] 나면 인식이 물러나며 그러면 마음[意]도 마땅히 끊어진다. 사제(四諦) 가운데 고제(苦諦)와 습제(習諦)로부터 도(道)를 보면[見] 그것이 습(習)으로부터 일어남을 알 수 있고, 습을 보면 그 고(苦)를 알 수 있으며, 진제(盡諦)를 보면 비상(非常)을 알 수 있다.
가(可)란 무엇인가? 도(道)를 좋아하여 도를 잊지 않는 것이다. 항상 도를 구하는 것이 도라고 여기는 것을 가라고 한다.
힐(黠)이란 무엇인가? 항상 도를 묻는 것이 힐이다. 물은 후에는 받아들일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이 힐이다.
습(習)도 이와 같고 진멸(盡滅)도 이와 같으며, 도(道)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고(苦)는 죄(罪)이고 법(法)은 번뇌[結]를 행함이다. 힐(黠)은 삼십칠품경(三十七品經)이다. 가(可)는 행(行)이고 행이란 도를 행함을 말한다. 습(習)도 이와 같고, 진(盡)도 이와 같고 도(道)도 이와 같아서 모두 증상(增上)되어 간다.
첫 번째는 고(苦)이다. 고는 무엇인가? 모든 악에 대해 마음[意]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고이다. 이미 고(苦)를 인식하여 탐욕을 부리지 않는 자가 도를 행하여 도를 떠나지 않는 것이 가(可)이다. 고(苦)의 발생에는 바탕[本]이 있다. 고(苦)란 어떠한 것인가? 본래 만물(萬物)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만물은 존재하지도 않고 다함도 없다. 다함이 없으므로 사람들에게 근심이 없으며, 근심이 없으므로 사람들에게는 고(苦)가 없다.
두 번째는 습(習)인데 습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애착[受]을 따르는 것이 습이다. 애착을 끊으면 습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떤 행을 해야 애착을 끊을 수 있는가? 만물은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한다. 그러므로 인연을 끊으면 다시는 생하지 않는다. 인연을 끊게 되면 마음 속[意]으로 도(道)를 생각하게 된다. 마음속으로 도를 생각하게 되면 마음이 두 생각[兩念]을 내지 않고 도에 생각을 두게 된다. 이것이 습이다.
세 번째는 진(盡)이다. 고법(苦法)인 만물이 무너지면 근심하게[憂] 되고, 근심하게 되면 늙게 되며, 늙으면 병들고 수척해져 죽게 되는데, 이를 외진고법(外盡苦法)이라 한다. 외진(外盡)이 고법이 되는 까닭은 자신의 죄가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가 아직 제거되지 않은 까닭은 생사가 아직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사가 아직 멸하지 않은 까닭은 한 마음[意]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음이 아닌 까닭은 선기(禪棄)1)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기에 빠지지 못한 까닭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받아들여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외진(外盡)이라 한다. 내진(內盡)이란 무엇인가? 마음[意]을 꼭 잘 지키는 것이다. 그 한 마음[一意]을 잘 지키면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번뇌[結]를 멸할 수 있다. 번뇌가 멸하면 죄가 다 없어진다. 죄가 다하면 진(盡)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내진(內盡)이라 한다.
네 번째는 도(道)인데 도는 무엇인가? 고(苦)는 도(道)에 대한 마음을 내게하는 데, 이를 팔종(八種)이라 한다. 팔종이란 무엇인가? 이는 안반수의(安般守意)에서 말하는 팔행(八行)2)의 의미와 같다. 생사에 떨어지지 않고 단지 도에 빠지며, 이미 도에 빠지면 앞의 세 가지 것[三事]을 끊게 된다. 세 가지 것이란 무엇인가? 고(苦)ㆍ습(習)ㆍ진(盡)이다. 이미 고ㆍ습ㆍ진을 끊고 나면 선정[定]에 든다. 이미 선정에 들어 나아가게 되면 도를 얻게 된다. 도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고가 멸하여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을 얻는다고 한다.
다섯 가지 법행(法行)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색(色)이고, 둘째는 의(意)이며, 셋째는 소념(所念)이고, 넷째는 별리의행(別離意行)이며, 다섯째는 무위(無爲)이다.
색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색(色) 모두는 사행(四行)에 있으며 또한 사행으로부터 비롯된다. 사행이란 무엇인가? 지종(地種)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이다. 또한 사행으로부터 비롯되는 색은 무엇인가?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과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觸)과 일부분[一處]의 불갱(不更:無表色)이다.
의(意)란 무엇인가? 이른바 의심식(意心識)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육식신(六識身)이다. 육식(六識)이란 무엇인가?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심식(心識)이다.
소념법(所念去)이란 무엇인가? 가령 소념법은 의(意)와 함께 상응한다. 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통(痛)ㆍ상(想)ㆍ행(行)ㆍ양(痒)ㆍ의념(意念)ㆍ욕(欲)ㆍ의(意)ㆍ정(定)ㆍ힐(黠)ㆍ신(信)ㆍ진(進)ㆍ계(計)ㆍ염(念)ㆍ탐(貪)ㆍ불탐(不貪)ㆍ선본(善本)ㆍ악본(惡本)ㆍ불분별본(不分別本)ㆍ일체의 결박(結縛)ㆍ사(使)3)ㆍ노(勞)ㆍ종기(從起)ㆍ소힐(所黠)ㆍ소견(所見)ㆍ소요(所要)가 있으며, 이와 같은 법은 마음[意]과 함께 상응하므로 이를 의소념법(意所念法)이라 한다.
별리의행(別離意行)이란 무엇인가? 의(意)와는 따로 떨어져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득(得)ㆍ불사상정(不思想政)ㆍ진정(盡政)ㆍ불사상염상(不思想念想)과 하배(下輩)의 고득(苦得)ㆍ처득(處得)ㆍ종득(種得)ㆍ입득(入得)과 생(生)ㆍ노(老)ㆍ지(止)ㆍ비상(非常)ㆍ명자(名字)ㆍ절구(絶具)ㆍ여응(如應)이 있으며, 또한 그 밖의 이와 같은 법은 의행(意行)과는 분별되므로 분별의행(分別意行)이라고 한다.
무위(無爲)란 무엇인가? 공(空)ㆍ멸(滅)ㆍ미리멸(未離滅)이니, 결코 감수(感受)되지 않는다.
지종(地種)이란 무엇인가? 견고함[堅]이다. 수종(水種)이란 무엇인가? 축축함[濕]이다. 화종(火種)이란 무엇인가? 뜨거움[熱]이다. 풍종(風種)이란 무엇인가 ? 일어남[起]이다.
안근(眼根)이란 무엇인가? 안식(眼識)이 같이 붙어 작용을 일으키는 색(色)을 말한다. 이근(耳根)이란 무엇인가? 이식(耳識)이 같이 붙어 작용을 일으키는 색을 말한다. 비근(鼻根)이란 무엇인가? 비식(鼻識)이 같이 붙어 작용을 일으키는 색을 말한다. 설근(舌根)이란 무엇인가? 설식(舌識)이 같이 붙어 작용을 일으키는 색을 말한다. 신근(身根)이란 무엇인가? 신식(身識)이 같이 붙어 작용을 일으키는 색을 말한다.
색(色)이란 무엇인가? 가령 색에는 단정(端正)하거나 단정하지 못한 색과 그 중간 정도의 색이 있다. 그 양상을 생각하면 먼저 하나의 식이 작용한다. 눈[眼]이 색(色)을 인식하고 다시 심식(心識)이 색을 인식하여 두 가지 식이 번갈아 인식한다. 두 가지 식[兩識]이란 무엇인가? 안식(眼識)과 심식(心識)이다.
소리[聲]란 무엇인가? 사행(四行:四大)을 감수[受]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소리와 사행을 감수함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 소리가 있고, 사행을 감수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근본적인 소리와 사행을 감수함으로부터 비롯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감수할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먼저 하나의 식(識)이 소리를 인식하니 이식(耳識)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다시 심식(心識)이 곧 이 소리를 인식한다. 두 가지 식이 번갈아 인식한다. 이식(耳識)과 심식(心識)이다.
향(香)이란 무엇인가? 뿌리의 향ㆍ줄기의 향ㆍ꽃의 향ㆍ열매의 향ㆍ향기의 향[香香]ㆍ취향(臭香) 등의 항과 여러 모든 종류의 향[所香]이 있다. 이를 항이라 한다. 먼저 하나의 식이 작용하니, 그 하나의 식은 비식(鼻識)임을 알 수 있다. 다시 심식(心識)이 곧 이 향을 인식한다. 두 가지 식이 번갈아 인식한다. 비식과 심식이다.
맛[味]이란 무엇인가? 신맛[酢味]ㆍ단맛ㆍ소금맛ㆍ쓴맛ㆍ짠맛ㆍ매운맛ㆍ떫은맛이 있고 또한 씹어서 느낄 수 있는 맛이 있다. 먼저 하나의 식이 작용하니, 그것은 설식(舌識)임을 알 수 있다. 설식 다음에는 다시 심식이 곧 맛을 인식한다. 두 가지 식이 번갈아 인식한다. 설식과 심식이다.
세활(細滑)이란 또 무엇인가? 매끄러움ㆍ거침ㆍ가벼움ㆍ무거움ㆍ차가움ㆍ뜨거움ㆍ배고픔ㆍ갈증남이다. 먼저 하나의 식이 작용하니, 신식(身識)임을 알 수 있다. 신식 다음에는 다시 심식이 한 곳[一處]의 즐거움[樂]을 인식한다. 두 가지 식이 번갈아 인식한다.
심식의 일부분인 불갱색(不更色)이란 무엇인가? 색법(色法)에 식(識)과 상(想)이 들러붙는 것과 같다. 이는 무엇인가? 가령 몸[身]이 선한 것이든 선하지 못한 것이든 불갱(不更:無表ㆍ無作)함이다. 항상 하나의 식만 작용하니, 심식(心識)임을 알 수 있다. 안식(眼識)이란 무엇인가? 안근(眼根)을 서로 의지하여 색(色)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식(耳識)이란 무엇인가 ? 이근(耳根)을 서로 의지하여 소리[聲]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비식(鼻識)이란 무엇인가 ? 비근(鼻根)을 서로 의지하여 냄새[香]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설식(舌識)이란 무엇인가? 설근(舌根)을 서로 의지하여 맛[味]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신식(身識)이란 무엇인가? 신근(身根)을 서로 의지하여 낙착(樂著)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심식이란 무엇인가? 심근(心根)을 서로 의지하여 법(法)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통(痛)이란 무엇인가? 낙(樂)이니 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적은 것[少]ㆍ많은 것[多]ㆍ한량이 없는 것[無有量]이다.
상(想)이란 무엇인가? 경계에 대하여 사유하는 것이다.
행(行)이란 무엇인가? 짓는 것을 말하며 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선한 것[善]ㆍ악한 것[惡]ㆍ복이나 재앙을 분별하지 않는 것[不分別福殃度)이다.
원락(願樂)이란 무엇인가? 세 가지4)가 모여 성립하는 것으로 이에도 세 가지가 있다. 선락(善樂)ㆍ악락(惡樂)ㆍ불선불악락(不善不惡樂)이다. 의념(意念)이란 무엇인가? 의념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선(善)ㆍ악(惡)ㆍ불분별(不分別:無記)이다.
욕(欲)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작용하고자[欲作]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인가? 마음[意]을 쓰는 것을 말한다.
의(意)란 무엇인가? 염두함[念]이다.
사유(思惟)란 무엇인가 ? 전일한 마음[一意]이다.
힐(黠)이란 무엇인가 ? 법을 관하는 것[觀法]이다.
신(信)이란 무엇인가 ?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可意]이다.
진(進)이란 무엇인가 ? 생각[念]을 관(觀)하는 것이다.
계(計)란 무엇인가 ? 생각한 바를 구하려고 바람[望]이나 염원(念願)을 늘리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을 계(計)라 이름한다.
분별념(分別念)이란 무엇인가? 관찰대상[所觀]을 관찰함[觀]을 따르되 , 끊이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이를 염(念)이라 이름한다.
계(計)와 념(念)은 무엇인가? 마음[意]이 조대(粗大)한 것을 계(計)라 하고, 마음이 은미한 것을 염(念)이라 한다. 계와 염은 다르다.
탐(貪)이란 무엇인가? 선법(善法)을 따르지 않고 믿지 않으며, 지성을 다해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실천하지 않는 것을 탐(貪)이라 한다.
불탐(不貪)이란 무엇인가? 선법을 따라 믿고 지성을 다해 행하는 것이다. 마땅히 행하는 것을 불탐이라 한다.
선본(善本)이란 무엇인가? 세 가지 선본이 있다. 탐욕(貪欲)이 없는 선본과 성냄이 없는 선본과 어리석음이 없는 선본이다. 이를 선본이라 한다.
불선본(不善本)이란 무엇인가? 불선본에 세 가지 있다. 탐욕이 불선본이고 성냄이 불선본이며 어리석음이 불선본이다. 이를 불선본이라 한다.
불분별본(不分別本)이란 무엇인가? 다섯 가지가 있다. 불분별애(不分別愛)ㆍ불분별교만(不分別憍慢)ㆍ불분별치(不分別經)ㆍ불분별의(不分別疑)ㆍ불분별행(不分別行)이다. 이를 불분별본이라 한다.
결(結)이란 무엇인가? 아홉 가지 결이 있다. 첫째는 지념결(拂念結)이고, 둘째는 증결(憎結)이며, 셋째는 교만결(憍慢結)이고, 넷째는 치결(癡結)이며, 다섯째는 사결(邪結)이고, 여섯째는 실원결(失願結)이며, 일곱째는 의결(疑結)이고, 여덟 째는 질결(嫉結)이며, 아홉째는 간결(結)이다.
지념결(持念結)이란 무엇인가? 삼계(三界) 안에서 탐하는 것이다.
증결(憎結)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분노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교만결(憍慢結)이란 무엇인가? 교만결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교만(憍慢)이고, 둘째는 교(憍)이며, 셋째는 자만(自慢)이고, 넷째는 자계만(自計漫)이며, 다섯째는 기만(欺慢)이고, 여섯째는 불여만(不如慢)이며, 일곱째는 사만(邪慢)이다.
교만이란 무엇인가? 자기보다 못한 이에게 자신이 뛰어나다고 하고 자기와 같은 정도의 사람과는 동등하다고 여긴다. 이런 교만함으로부터 스스로 헤아리는 마음[計意]을 일으켜 의식이 그런 마음[意]과 합하는 것을 교만이라 한다.
만(慢)이란 무엇인가? 같은 또래의 무리들 가운데 뛰어나다고 여기고 뛰어난 이들 가운데서는 자신이 그들과 동등하다고 여긴다.
이런 교만함으로부터 또한 스스로 헤아리기를 자기가 뛰어난 이들 가운데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을 자만(自慢)이라고 한다. 또한 말하는 이가 교만하고 오만하여[憍慢慢] 그런 모든 것에 합치되면 이를 자만이라고 한다.
자계만(自計慢)이란 무엇인가? 오음(五隆) 자체를 나의 몸[我身]이라 헤아려 스스로 생각한다. 이런 교만함[慢慢]으로부터 스스로 안다는 생각을 내 그런 마음을 일으켜 그런 생각에 합치하는 것을 자계만이라 한다.
기만(欺慢)이란 무엇인가? 아직 얻지 못했는데 얻었다고 헤아리고[計], 아직 알지 못했는데 안다고 헤아리고, 아직 다하지[盡] 못했는데 다하였다고 헤아린다. 이런 교만함으로부터 스스로 헤아리는 마음으로 관(觀)하고 그런 마음을 일으켜 그런 의도에 합치하는 것을 기만이라 한다.
불여만(不如慢)이란 무엇인가? 차이가 커서 같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조금만 차이가 난다고 헤아리고, 권세든 업이든 어떤 것이든 죄이든 병이든 열 배, 백배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이와 같이 헤아려 오히려 자신과 같지 못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교만으로부터 스스로 헤아리고 인식하여[見] 마음[意]을 내 그런 마음을 일으켜 그런 생각에 합치하여 스스로 행위하는 것을 불여만이라고 한다.
사만(邪慢)이란 무엇인가? 어질지 못한 자[不賢者]가 스스로 어질다고 여긴다. 이러한 교만함으로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헤아려 마음을 내 그런 마음을 일으켜 그런 생각에 합치하는 것을 사만이라고 한다. 이들을 일곱 가지 만(慢)이라고 하며 이러한 만을 교만결(憍慢結)이라 한다.
치결(癡結)이란 무엇인가? 삼계 안에 있는 모든 어리석음을 치결이라 한다.
사결(邪結)이란 무엇인가? 사결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을 사결이라 한다. 첫째는 신사(身邪)이고 둘째는 변사(邊邪)이며 , 셋째는 사사(邪邪)이다.
신사란 무엇인가? 이 몸을 나의 몸[我身]이라고 여기는 것을 신사라고 한다.
변사란 무엇인가? 첫째는 단멸(斷滅)의 견해이고, 둘째는 상재(常在)의 견해이니 이를 변사라고 한다.
사사란 무엇인가? 사사는 근본적인 것에 대해 쟁론하여 복(福)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 가지 사(邪)이다.
실원결(失願結)이란 무엇인가? 근본을 잃어 공덕을 받아들이지 않고,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을 실원결이라 한다. 이 두 가지 잃는 것을 실원결이라 한다.
도결(盜結)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도(盜)를 도결이라 한다. 첫째는 수도(受盜)이고, 둘째는 계도(戒盜)이다. 수도(受盜)란 무엇인가? 오음(五陰)에 대해서 최상이어서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욕구를 일으키고 마음[意]을 내어 좋다고 여기고 수용하는 것을 수도5)라고 한다.
도계(盜戒)란 무엇인가? 오음(五陰)을 청정함[淨]ㆍ벗어남[離]ㆍ해탈[解]ㆍ출요[出要]라고 여김으로써 수용한다. 그에 따라 사람에 대해 마음을 내고 좋다고 받아들이고 소원하는 것을 도계라고 한다.
이 두 가지 도(盜)를 도결(盜結)이라 한다.
의결(疑結)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諦]를 의심하는 것을 의결이라 한다.
질결(嫉結)이란 무엇인가? 마음[意]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질결이다.
간결(慳結)이란 무엇인가?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간결이라 한다.
이상이 일체 결(結)에 관한 것이다.
박(縛)이란 무엇인가? 매이는 것을 박이라 하고 매임이라 한다.
사(使)란 무엇인가? 사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욕사(欲使)이고, 둘째는 불가사(不可使)이며 , 셋째는 욕세간사(欲世間使)이고, 넷째는 교만사(憍慢使)이며, 다섯째는 치사(癡使)이고, 여섯째는 사사(邪使)이며 , 일곱째는 의사(疑使)이다.
욕사란 무엇인가? 욕사에는 다섯 가지 사(使)가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욕계(欲界)에 매인6) 고견(苦見)에서 끊어야 할 탐욕[欲], 욕계에 매인 습견(習見)에서 끊어야 할 탐욕, 욕계에 매인 진견(盡見)에서 끊어야 할 탐욕, 욕계에 매인 도견(道見)에서 끊어야 할 탐욕, 욕계에 매인 사유견(思惟見)에서 끊어야 할 탐욕이다. 이것을 다섯 가지 사라 한다. 욕사(欲使)라고 한다.
불가사란 무엇인가? 다섯 가지 사를 불가사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고견(苦見)에서 끊을 수 없는 것[不可斷], 습견(習見)에서 끊을 수 없는 것, 진견(盡見)에서 끊을 수 없는 것, 도견(道見)에서 끊을 수 없는 것, 사유견(思惟見)에서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사를 불가사라 한다.
세간욕가사(世間欲可使)란 무엇인가? 열 가지 사[十使]를 세간욕가사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색계(色界)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욕(欲), 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욕, 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욕, 색계에 매인 견행도(見行道)에서 끊어야 할 욕, 색계의 원인[因]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욕, 무색계(無色界:無有色)의 원인[因]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욕, 무색계의 원인[因]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욕(欲), 무색계의 원인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욕, 무색계의 원인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욕, 무색계의 원인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욕이다. 이 열 가지 사[十使]를 욕세간사(欲世間使)라 한다.
교만사(憍慢使)란 무엇인가? 교만사에는 열다섯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열다섯 가지인가?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교만, 욕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교만, 욕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교만, 욕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교만, 욕계에 매인 사유견(思惟見)에서 끊어야할 교만,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교만, 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교만, 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교만, 색계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교만,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교만, 무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교만, 무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교만, 무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교만, 무색계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교만이다. 이 열다섯 가지 사(使)를 교만사(憍慢使)라 한다.
치사(癡使)란 무엇인가? 열다섯 가지 사(使)를 치사라고 한다. 무엇이 열다섯 가지인가?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癡], 욕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욕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욕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욕계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색계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무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무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무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 무색계에 매인 사유(思惟)에서 끊어야 할 어리석음이다. 이 열 다섯 가지 사를 치사(癡使)라고 한다.
사사(邪使)란 무엇인가? 서른여섯 가지 사가 사사이다. 무엇이 서른여섯 가지인가? 욕계에 매인 열두 가지 사(使), 색계에 매인 열두 가지 사, 무색계에 매인 열두 가지 사를 서른여섯 가지 사라고 한다. 욕계에 매인 열두 가지 사는 무엇인가?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할 신사(身邪),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요사(要邪),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욕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욕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욕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할 견도(見盜), 욕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욕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욕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할 견도(見盜),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계도(戒盜), 욕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계도(戒盜)이다. 이를 열두 가지 사로서 욕계에 매인 사라 한다.
색계에 매인 열두 가지 사는 무엇인가?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할 신사(身邪),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요사(要邪),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할 견도(見盜), 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할 사사(邪邪), 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할 견도(見盜),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계도(戒盜), 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계도(戒盜)이다. 이를 열두 가지 사로서 색계에 매인 사라 한다.
무색계(無色界)에 매인 열두 가지 사는 무엇인가?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신사(身邪),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요사(要邪),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무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무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무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사사(邪邪),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무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무색계에 매인 견진(見盡)7)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무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견도(見盜),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계도(戒盜), 무색계에 매인 견도(見適)에서 끊어야 할 계도(戒盜)이다. 이를 열두 가지 사로서 무색계에 매인 사라 한다.
이것이 서른여섯 가지 사(使)가 되며, 서른여섯 가지 사사(邪使)라 한다.
의사(疑使)란 무엇인가? 열두 가지 사(使)를 의사라 한다.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욕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의(疑), 욕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의혹, 욕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끓어야 할 의혹, 욕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의혹, 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의혹, 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의혹, 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의혹, 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의혹, 무색계에 매인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의혹, 무색계에 매인 견습(見習)에서 끊어야 할 의혹, 무색계에 매인 견진(見盡)에서 끊어야 할 의혹, 무색계에 매인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의혹이다. 이를 열두 가지 의사(疑使)라 한다.
노(勞)8)에는 진(塵)이 있고 진뇌(塵腦)가 있다. 어떤 때는 진만 있고 뇌(腦)가 없다. 진(塵)을 제외한 나머지가 의념(意念)을 어지럽히는 법인데, 이것은 뇌이지 진은 아니다.
종기(從起)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睡)이고, 둘째는 명(瞑)이며, 셋째는 낙(樂)이고, 넷째는 의(疑)이며, 다섯째는 의(猗)이고, 여섯째는 자태(姿態)이며, 일곱째는 불괴(不愧)이고, 여덟째는 불참(不慚)이다. 따라서 종기(從起)를 여덟이라고 말한다.
소힐(所黠)이란 무엇인가? 열 가지 힐(黠)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법힐(法黠)이고, 둘째는 비힐(比黠)이며, 셋째는 지인심힐(知人心黠)이고, 넷째는 교힐(巧黠)이며, 다섯째는 고힐(苦黠)이고, 여섯째는 습힐(習黠)이며, 일곱째는 멸힐(滅黠)이고, 여덟째는 도힐(道黠)이며, 아홉째는 진힐(盡黠)이고, 열째는 무위힐(無爲黠)이다.
법힐(法黠)이란 무엇인가? 생사(生死:行)가 욕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아는 결박이 없는 지혜[無有結黠:無漏智]이고, 생사가 욕계의 근본임을 아는 무유결힐이며, 생사가 욕계에서 멸한다는 것을 아는 무유결힐이고, 생사가 욕계에서 무너지게 하는 것이 도행(道行)임을 아는 무유결힐이다. 또한 법힐과 법힐의 자리[法池]를 아는 무유결힐이다. 이를 법힐이라 한다.
비힐(比黠)이란 무엇인가? 색계와 무색계에서 행(行)을 아는 무유결힐(無有結黠)이고, 색계와 무색계에서 행의 근본 원인[本]을 아는 무유결힐이며, 색계와 무색계에서 행의 멸[行滅]을 아는 무유결힐이고, 색계와 무색계에서 행을 끊는 도(道)를 아는 무유결힐이다. 또한 비힐과 비힐의 자리[比地]에 대해 아는 무유결힐이다. 이를 비힐이라 한다.
지인심힐(知人心黠)이란 무엇인가? 지혜로움을 행해서 얻은 지혜의 복이며 지혜로움의 합(合)이다. 이미 얻은 다음에는 버리지 않고 항상 염두하여 잊어버리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대중들을 위하여 은혜로운 인식행을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의념(意念)을 잘 알므로 이를 지인심힐이라 한다.
교힐(巧黠)이란 무엇인가? 세간에서 행해지는 지혜[黠]이다. 이를 교힐이라 한다.
고힐(苦黠)이란 무엇인가 ? 오음(五陰)을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이라고 받아들여 그렇게 생각하는 무유결힐(無有結黠)이다. 이를 고힐이라 한다.
습힐(習黠)이란 무엇인가? 세간의 근본 원인이 본래 모여[集] 인연을 낳는다고 생각[思念] 하는 무유결힐이다. 이를 습힐이라 한다.
멸힐(滅黠)이란 무엇인가? 멸하여 없어진 상태를 지혜로 삼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박이 없는 지혜[不結黠]이다. 이를 멸힐이라 한다.
도힐(道黠)이란 무엇인가? 도(道)를 도로 여겨 응당 그렇게 받아들이고 간주하여[受觀] 욕계로 부터 벗어나려고 생각하는 무유결힐(無有結黠)이다. 이를 도힐이라 한다.
진힐(盡黠)이란 무엇민가? 이미 고(苦)가 다했음을 인식하고, 이미 습(習)을 버리고, 진(盡)을 이미 증득하고, 도(道)를 이미 행하여 이로부터, 힐(頡)ㆍ견(見)ㆍ지(知)ㆍ의(意)가 합당함을 얻는다. 이를 진힐이라 한다.
무위힐(無爲黠)이란 무엇인가? 고(苦)를 이미 경험했으므로 다시는 경험할 것이 없고 습(習)을 이미 마쳤으므로 다시는 마칠 것이 없으며, 진(盡)을 이미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증득할 것이 없고, 도(道)를 이미 행했으므로 다시는 행할 것이 없으니 이로부터 힐ㆍ견ㆍ지ㆍ의가 합당함을 얻는다. 이를 무위힐이라 한다.
따라서 소힐(所黠)이라 말한다.
모든 견[所有見]이란 무엇인가? 모든 힐전(黠見)이 견(見)이다. 어떤 경우에는 견(見)이지만 힐(黠)이 아닌 때도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여덟 가지 갱자가(更者可)이다. 여덟 가지 갱자가란 무엇인가? 고법힐가(苦法黠可)ㆍ고비힐가(苦譬黠可)ㆍ습법힐가(習法黠可)ㆍ습비힐가(習譬黠可)ㆍ진법힐가(盡法黠可)ㆍ진비힐가(盡譬黠可)ㆍ도법힐가(道法黠可)ㆍ도비힐가(道譬黠可)이다. 따라서 소견(所見)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것을 얻으면 힐(黠)이고, 얻지 못했을 때에는 비힐(非黠)이다. 팔갱가(八更可)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따라서 소갱(所更)이라 말한다.
덕(德)이란 무엇인가 ? 법을 얻는 것을 덕이라 한다.
무유사상사유(無有思想思惟)란 무엇인가? 친상(天上)의 한 곳[一處]을 일체정(一切淨)이라 하는데, 무유욕천(無有欲天) 앞에 있다. 사상(思想)을 벗어나 의법(意法)과 염법(念法)이 멸하여 따르지 않으니[不隨] 이를 불사상사유(不思想思惟)라고 한다.
멸사유(滅思惟)란 무엇인가? 스물여섯 번째 천상(天上)의 이름을 불욕(不欲)이라 하는데 그 가운데 도를 얻는 이는 먼저 행(行)을 벗어나 의법과 염법이 멸하게 된다. 이를 멸사유라 한다. 불사상(不思想)이란 무엇인가? 사상이 없는 사람이 천상에 화생(化生)하여 먼저 마음[意]도 또한 천상에 떨어질 때 마음이 제거되는데, 이 사이에는 그로부터 마치 의병과 염법이 멸한 것과 같은 상태다. 이를 불사상이라 한다.
염근(念根)이란 무엇인가? 삼계 중의 수명[命]이다.
회(會)란 무엇인가? 인간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처득(處得)9)란 무엇인가? 함께 군현(郡縣)을 이루는 것이다.
종득(種得)이란 무엇인가 ? 오음(五陰)이다.
입득(入得)이란 무엇인가 ? 이른바 내(內:根)와 외(外:境)가 입(入:處)을 얻는 것이니 이를 입득이라 한다.
생(生)이란 무엇인가 ? 음(陰)을 얻는 것이다.
노(老)란 무엇민가? 음(陰)이 익어가는[熟] 것이다.
지(止)란 무엇인가? 숙명의 행(行)이 다가오는 것[來望]이다.
비상(非常)이란 무엇인가? 이미 생긴 것이 다시 없어지는 것이다.
명자(名宇)란 무엇인가? 인식하여 분별하는 것[知分別]이다.
절(絶)이란 무엇인가 ? 글자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정용(政用)이란 무엇인가 ? 글자가 모이는 것이다.
공(空)이란 무엇인가? 허공은 그 안에 존재하는 바가 없고[無所有], 집착할 바도 없으며(無所著), 색이라는 것도 없다[無所色]. 이를 공이라 한다.
진상미리(盡尙未離)란 무엇인가? 이미 멸해 없어진 것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고 다시 집착할 바가 없는 것이다.[아직 번뇌를 다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진(盡)이란 무엇인가 ? 세간을 초월한[度] 무위(無爲)이다.
이것이 오법(五法)ㆍ오행(五行)인데 모두 말하였다.
- 030_0596_a_01L阿毘曇五法行經後漢安息三藏安世高 譯苦法黠可苦法黠,習法黠可習法黠,盡法黠可盡法黠,道法黠可道法黠。苦法者,謂形體萬物皆當衰老死亡,是爲苦。癡人謂可常保持,是爲樂黠。可知是爲苦,便不復向生死,是爲苦法黠可習法、者謂#習欲習,得習婬習,怒習癡習,好習美,黠可者如是。爲習從習,得盡便不,欲是爲習法,黠可盡法者,謂人物會,當消散滅盡。便得亦不,喜失、亦不,憂是爲盡,法黠可道。法者行道,得道作善上,天作惡入惡。道黠可,者知去惡就善是爲道法黠可黠者覺可者知本不知是,爲苦苦爲一意知。爲苦是爲二意習爲一意知爲習是爲二意盡爲、一、意、知爲,盡是爲二意道,爲一意知爲道是爲二意此八意在外非常苦空非身本習生因緣盡止如意要道處受觀盡苦、空、非身。何緣得盡?盡從苦來,從苦得盡,因盡便得空,得空便知非我,身是四意,爲隨苦諦。何等爲苦一切在生死皆爲苦會欲亦不欲。會欲,謂人諸所欲得#亦不欲,謂人意諸所不欲。是皆爲苦。貪從習出,隨非常意求滅,苦從習得。何等爲法?謂因緣作是得是,是爲法。當爲識已識,爲卻意當爲斷。從四諦中苦諦,習諦爲證,有道見苦,知從習起,見習知苦,見盡諦知非常。何等爲可?謂憙道不忘道,常求道,以道爲可。何等爲黠?常問道爲黠。已問能受能行,是爲黠。習亦如是,盡滅亦如是,道亦如是。苦爲罪法爲行結,黠爲三十七品經,可爲行,行者爲行道。如是爲習,如是爲盡,如是爲道,皆爲增上。第一爲苦。何等爲苦?一切惡不可意爲苦。已識苦不欲者,便行道,不離爲可。苦生有本,苦爲何等?本從萬物,萬物無有,亦不盡,已不盡,人亦不憂,已不憂,人亦無有苦。第二爲習。何等爲習?意隨愛爲習,斷愛無有習。持何等行爲斷愛?萬物皆從因緣生,斷因緣不復生。當那得斷因緣?持意念道,已持意念道,意不得兩念,便在道,是爲習。第三爲盡。苦法爲萬物以敗便得憂,已得憂便老,已老便得病、瘦、死,是名爲外盡苦法。何以故?爲外盡苦法,爲自罪未除。何以故?爲自罪未除,爲生死未滅。何以故?生死未滅,爲非一意。何以故?非一意爲不墮禪棄故。何以故?不墮禪棄不受行如佛語。是名爲外盡。內盡爲何等?意墮守,已墮守,餘意不得生,已餘意不得生,便滅結,已滅結,便罪盡,已罪盡,便盡無有。是名爲內盡。第四爲道。何等爲道?苦可意道,名爲八種。何等爲八種?如是安般守意說八行意,不墮生死,但有墮道,已墮道,便斷上頭三事。何等三事?苦、習、盡。已斷苦、習、盡,便定,已定所向,便得道。何等爲得道?已苦滅,不復生是爲得。有五法行。何等五?一者色#二者意。三者所念#四者別離意行#五者無爲。色爲何等?所色一切在四行,亦從四行所。四行爲何等?地種、水種、火種、風種,亦從四行因。所色爲何等?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細滑,亦一處不更。意爲何等?所意心識。是爲何等?六識身。六識爲何等?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心識。所念法爲何等?若所念法意共俱。是爲何等?痛、想、行、痒、念欲,是意定黠。信、進、計、念、貪、不貪、善本、惡本、不分別本,一切結縛便勞,從起所黠,所見所要亦所有。如是法意共俱,是名爲意所念法。別離意行爲何等?所別離意不共。是爲何等?得不思想政,盡政,不思想念想,下輩苦得處、得種、得入,生老止,非常名字絕具,如應亦餘如,是法分別意行,是名分別意行無爲何等?空滅未離,滅不須受。地種爲何等?堅者。水種何等?濕者。火種何等?熱者。風種何等?起者。眼根何等?眼識相著可色。耳根何等?耳識相著可色。鼻根何等?鼻識相著可色。舌根何等?舌識相著可色。身根何等?身根相著可色。色爲何等?若色端正、不端正,等色俱,中央色想,像上頭一識更眼識色,更爲心識更是色,兩識更知何等?兩眼識心識。聲爲何等?從受行出聲,亦不從受行出聲。從受行本聲,亦不從受行本受聲#若上頭一識#更知耳識已,更心識便知是聲,兩識更知耳識心識。香爲何等?若根香,若莖香,若花香,若實香,香香?臭香等香#所香,是名爲香。若上頭一識,一識更知鼻識已,更心識便知是香,兩識更知鼻識心識。味爲何等?若酢味、甜味、鹽味、苦味、醎味、辛味、澀味,亦所噉覺味。若上頭一識知舌識,舌識已更心識,便知是味,兩識更知舌識心識。細滑更爲何等?若滑,若麤,若輕,若重,若寒,若熱,若飢,若渴,爲上頭一識知身識身,識已更心識,便知是一處樂,爲兩識更知身識、心識,心識一處不更。色爲何等?若色法識想著。是爲何等?若身善者不善者不更,若常一識知心識。眼識爲何等?眼相依色因知。耳識爲何等?故耳根相依聲因知。鼻爲何等?鼻根相依香因知。舌識爲何等?舌根相依味因知。身識爲何等?身根相依樂著因知。心識爲何等?心根相依法因知。痛爲何等?爲樂。是亦爲三輩,少多無有量。想爲何等?所對。行爲何等?所作。是亦爲三輩,善惡不分別,福殃度願。樂爲何等?三會。是亦爲三輩,善樂惡樂,亦不善亦不惡,樂意念。何等爲意念?是亦爲三輩,善惡不分別。欲爲何等?欲作。是何等?意可。意爲何等?念。思惟何等?爲一意。黠爲何等?爲觀法。信爲何等?可意。進爲何等?觀念。計爲何等?所念使求增望念願。願是名爲計分別念爲何等所觀觀隨不絕相隨,是名爲念。計念爲何等?異意大爲計,意微爲念。計、念是爲異。貪爲何等?不隨善法,不信至誠,不行不應行,是名爲貪。不貪爲何等?隨善法,信至誠行應行,是名爲不貪。善本何等?有三善本:無有貪善本,無有瞋恚善本,無有愚癡善本,是名爲善本。不善本爲何等?不善本有三:貪爲不善本,瞋恚爲不善本,愚癡爲不善本,是名爲不善本。不分別本爲何等?有五不分別:愛不分別,憍慢不分別,癡不分別,疑不分別,行是名爲不分別本。結爲何等?有九結:一爲持念結,二爲憎結,三爲憍慢結,四爲癡結,五爲邪結,六爲失願結,七爲疑結,八爲嫉結,九爲慳結。持念結爲何等?三界中貪。增結爲何等?爲人閒不可息。憍慢結爲何等?憍慢結名爲七輩,何等七?一爲憍慢,二爲憍,三爲自慢,四爲自計慢,五爲欺慢,六爲不如慢,七爲邪慢。憍慢爲何等?不如者我爲勝,如者等,從是憍慢自計意起,意識合意,是名爲憍慢。慢爲何等?輩中勝,勝中等。從是所慢,亦自計,自計勝者勝,是名爲自慢。亦說者憍慢、慢,當爲一切合會,是名爲自慢。自計慢爲何等?爲五陰自身是我身,計自念,從是慢,慢自知意生,意起合意,是名爲自計慢。欺慢爲何等?未得計得,未知計知,未盡計盡,從是憍慢,自計意觀,意起合意,是名欺慢。不如慢爲何等?遠不如自計,少不如,若豪若業,若業若何,若罪若病,不及十倍、百倍,自計如是爲不如,從是憍慢,自計自見,意生意起,合念自爲,是名爲不如慢。邪慢爲何等?不賢者自計賢者,從是有憍慢,自念自計,意生意起合念,是名爲邪慢。是爲七慢,慢名爲憍慢結。癡結爲何等?三界中所有,癡是名爲。癡結。邪結爲何等?邪結有三輩,名爲邪結。一爲身邪,二爲邊邪,三爲邪邪。身邪爲何等?是身是我身,是名爲身邪。邊邪爲何等?一者斷滅,二者常在,是名爲邊邪。邪邪爲何等?邪邪爲諍本壞福是爲三邪失願結爲何等失本不受功挍恩是名失願結。是兩失,名爲失願結。盜結爲何等?兩盜名爲盜結。一爲受盜,二爲戒盜。受盜爲何等?爲五陰念尊大最無有極,從是所欲所意,所可所用,是名爲盜結。盜戒爲何等?從是淨,從是離,從是解,從是要出用,是故所人,所意,所可,所願,是名爲盜戒。是兩盜名爲盜結。疑結爲何等?爲疑四諦,是名爲疑結。嫉結爲何等?亂意爲嫉結。慳結爲何等?不能制意,是名爲慳結。故一切結。縛者爲何等?所結者名爲縛,故說縛。使者爲何等?使者爲七。何等爲七?一爲欲使。二爲不可使#三爲欲世閒使#四爲憍慢使#五爲癡使#六爲邪使。七爲疑使。欲使爲何等?欲使名爲五使。何等爲五者#欲從苦見斷欲著欲,從習見斷欲著欲,從盡見斷欲著欲,從道見斷欲著欲,從思惟見斷欲,是名爲五使,名爲欲使。不可使名爲何等?五使名爲不可使。何等爲五?從苦見不可斷,從習見不可斷,從盡見不可斷,從道見不可斷,從思惟見不可斷,是五使名爲不可使。世閒欲可使爲何等?十使名爲世閒可欲使。何等爲十?著色見苦斷欲,著色見習斷欲,著色見盡斷欲,著色見行道斷欲,從色因著思惟斷欲,從無有色因著見苦斷欲,從無有色因著見習斷欲,從無有色因著見盡斷欲,從無有色因著見道斷欲,從無有色因著思惟斷欲,是十使名爲欲世閒使。憍慢使爲何等?憍慢使有十五。何等爲十五?著欲見苦憍慢斷,著欲見習憍慢斷,著欲見盡憍慢斷,著欲見道憍慢斷,著欲思惟見憍慢斷,著色見苦憍慢斷,著色見習憍慢斷,著色見盡憍慢斷,著色見道憍慢斷,著色思惟憍慢斷,著無有色見苦憍慢斷,著無有色見習憍慢斷,著無有色見盡憍慢斷,著無有色見道憍慢斷,著無有色思惟憍慢斷,是十五使名爲憍慢使。癡使爲何等?十五使名爲癡使。何等爲十五?著欲見苦癡斷,著欲見習癡斷,著欲見盡癡斷,著欲見道癡斷,著欲思惟癡斷,著色見苦癡斷,著色見習癡斷,著色見盡癡斷,著色見道癡斷,著色思惟癡斷,著無有色見苦癡斷,著無有色見習癡斷,著無有色見盡癡斷,著無有色見道癡斷,著無有色思惟癡斷,是十五使名爲癡使。邪使爲何等?三十六使爲邪使。何等爲三十六?十二使著欲,十二使著色,十二使著無有色,是名爲三十六使。十二使著欲爲何等?著欲見苦斷身邪,著欲見苦斷要邪,著欲見苦斷邪邪,著欲見習斷邪邪,著欲見盡斷邪邪,著欲見道斷邪邪,著欲見苦斷見盜,著欲見習斷見盜,著欲見盡斷見盜,著欲見道斷見盜,著欲見苦斷戒盜,著欲見道斷戒盜,是名爲十二使著欲使。十二使著色爲何等?著色見苦斷身邪,著色見苦斷要邪,著色見苦斷邪邪,著色見習斷邪邪,著色見盡斷邪邪,著色見道斷邪邪,著色見苦斷見盜,著色見習斷見盜,著色見盡斷見盜,著色見道斷見盜,著色見苦斷戒盜,著色見道斷戒盜,是名爲十二使著色使。十二使著無有色爲何等?著無有色見苦斷身邪,著無有色見苦斷要邪,著無有色見苦斷邪邪,著無有色見習斷邪邪,著無有色見習斷邪邪,著無有色見道斷邪邪,著無有色見苦斷見盜,著無有色見習斷見盜,著無有色見盡斷見盜,著無有色見道斷見盜,著無有色見苦斷戒盜,著無有色見道斷戒盜,是名爲十二使著無有色,使是爲三十六使,名爲三十六邪使。疑使爲何等?十二使名爲疑使。何等十二?著欲見苦斷疑,著欲見習斷疑,著欲見盡斷疑,著欲見道斷疑,著色見苦斷疑,著色見習斷疑,著色見盡斷疑,著色見道斷疑,著無有色見苦斷疑,著無有色見習斷疑,著無有色見盡斷疑,著無有色見道斷疑,是名爲十二疑使。是爲塵,是爲塵腦。有時塵,無有腦者,除塵所餘亂意念法。是爲腦,非塵,從起爲八:一爲睡,二爲暝,三爲樂,四爲疑,五爲猗,六爲恣態,七爲不愧,八爲不慚。是故說從起八。所黠爲何等?十黠。何等爲十?一爲法黠,二爲比黠,三爲知人心黠,四爲巧黠,五爲苦黠,六爲習黠,七爲滅黠,八爲道黠,九爲盡黠,十爲無爲黠。法黠爲何等?在生死欲所無有結黠,在生死欲本所無有結黠,在生死欲滅無有結黠,在生死欲壞道行無有結黠,亦在法黠,亦在法地所無有結黠,是名爲法黠。比黠爲何等?在色無有色行無有結黠,在色無有色本無有結黠,在色無有色行滅無有結黠,在色無有色行斷爲道無有結黠,亦在比黠,亦在比地無有結黠,是名爲比黠。知人心黠爲何等?所黠行,所黠福,所黠合,已得不舍,常在前,常念不忘,爲人故,爲他衆故恩行,是故意念知,是名爲知人心黠。巧黠爲何等?世閒所行黠,是名巧黠。苦黠爲何等?受五陰非常、苦、空、非身,念所無有結黠,是名爲苦黠。習黠爲何等?世閒本,亦本習生因緣,思念無有結黠,是名爲習黠。滅黠爲何等?滅滅爲黠,最要念不結黠,是名爲滅黠。道黠爲何等?道爲道如應受觀者,欲出念無有結黠,是名爲道黠。盡黠爲何等?已識苦已,舍習盡已,有證道已行,從是黠見知意得應,是名爲盡黠。無爲黠爲何等?苦已更不復更,習已畢不復畢,盡已,有證不復用證,道已行不復行,從是所黠,所見,所知,所意得,是名爲無爲黠,故說所黠。所有見爲何等?所有黠見爲見。有時見非黠,爲何等?八更者可。八更者可爲何等?苦法黠可苦譬黠可,習法黠可習譬黠可,盡法黠可盡譬黠可,道法黠可道譬黠可,故說所見。若得是爲黠,不有時得,非黠八更可,如上說。故說所更。德爲何等?得法爲德。無有思想思惟爲何等?天上一處名爲一切淨,在有無有欲前,有思想出所意念法滅不隨,是名爲不思想思惟。滅思惟爲何等?二十六天上名爲不欲,中得道者,上頭行要,出所意念法滅倒,是名爲滅思惟。不思想爲何等?無有思想人化生天上,上頭意亦墮天上時,意除是中閒,乃從是若意念法滅倒,是名爲不思想。念根爲何等?三界中命。會爲何等?人同居得。處爲何等?同郡、縣。種得爲何等?爲五陰。入得爲何等?所內外得入,是名爲入得。生爲何等?得陰。老爲何等?陰熟。止行何等?宿命行來望。非常爲何等?已生復亡。名字爲何等?知分別。絕爲何等?字爲具。政用爲何等?字會。空爲何等?虛空無所有,無所著,無所色,是名爲空。盡尚未離爲何等?已盡不復更不復著。盡爲何等?度世無爲。是名爲五法五行,行說具。阿毘曇五法行經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선정(禪定)에 들어 치우친 마음을 내지 않고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2)팔정도(八正道)와 같은 뜻이다. 팔행(八行)은 직견(直見)ㆍ직치(直治)ㆍ직어(直語)ㆍ직업(直業)ㆍ직업치(直業治)ㆍ직정진(直精進)ㆍ직념(直念)ㆍ직정(直定)이다.
- 3)원문에는 ‘편(便)’으로 되어 있으나, 뒤에 풀이한 것에 의하면 ‘사(使)’가 타당하다.
- 4)근(根)ㆍ경(境)ㆍ식(識) 세 가지 것.
- 5)원문에는 ‘도결(盜結)’로 되어 있으나, 내용으로 볼 때 ‘수도(受盜)’가 타당하다.
- 6)원문에는 ‘자(者)’로 되어 있으나,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볼 때 ‘착(著)’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7)원문에는 ‘견습(見習)’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으로 볼 때 ‘견진(見盡)’이 타당하다.
- 8)원문에는 ‘노(勞)’가 없으나 앞에서 열거한 내용을 참고하여 첨가하였다.
- 9)원문에는 ‘득처(得處)’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