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卷第九

ABC_IT_K1071_T_009
032_0715_a_01L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제9권
032_0715_a_01L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卷第九


혜립 언종 한역
김영률 번역
032_0715_a_02L沙門慧立本 釋
彦悰 箋


9. 현경 원년 3월에 자은사비(慈恩寺碑)의 완성을 감사하 는 데서부터 같은 해 3년 1월 거가(車駕)를 따라 서경 (西京)으로 돌아올 때까지
032_0715_a_03L起顯慶元年三月謝慈恩寺碑終三年正月隨車駕還西京

현경 원년(656) 봄 3월 계해(癸亥)에 어제(御製) 대자은사(大慈恩寺) 비문이 완성되었다.
이때 예부상서(禮部尙書)1) 허경종(許敬宗)이 사신을 보내서 비문을 법사에게 전해 주었다. 홍로사(鴻臚寺)2)에서도 역시 절에다 편지를 보냈다.
032_0715_a_05L顯慶元年春三月癸亥 御製大慈恩寺碑文訖時禮部尚書許敬宗遣使送碑文與法師鴻臚寺又有符下
갑자일(甲子日)에 법사는 절의 대중을 거느리고 조정에 나아가 다음과 같이 진사(陳謝)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홍로사에서 내리신 부(符)를 접하고, 엎드려 칙지(勅旨)를 받듭니다. 친히 성스러운 붓[聖筆]을 들어서 대자은사를 위해 지으신 비문이 완성되었다 하시니, 폐하의 은택[叡澤]이 곁에 임하시고 폐하의 말씀[宸詞]이 굽어 비추시어 현문(玄門)은 더욱 높아지고 저희 승려들에게도 영광이 더합니다. 두터운 은택의 땅[厚地]에 살고 있는 몸이 부끄러울 뿐이며 층층의 하늘[層穹]을 짊어지기에 힘이 모자랄 뿐입니다.
032_0715_a_09L甲子法師率寺衆詣闕陳謝曰沙門玄奘言被鴻臚寺符伏奉勅旨親紆 聖筆爲大慈恩寺所製碑文已成睿澤傍臨 宸詞曲照玄門益峻梵侶增榮跼厚地而懷慚負層穹而寡力
현장은 듣기에 조화(造化)의 공은 이미 만물에 전파되어 교화를 이루었고, 성인(聖人)의 도(道)도 역시 말로 인해서 물정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괘(卦)를 그리고 문(文)을 짓는 것은 부질없이 형기(形器)를 이야기하는 일이고, 효(爻)를 늘어놓고 상(象)을 나누는 것도 천지를 초월하지는 못하는 일입니다.
032_0715_a_14L玄奘聞造化之功旣播物而成教聖人之道亦因辭以見情則畫卦垂文空談於形器設爻分象未踰於寰域
희황(羲皇)의 덕은 일찍이 전고(前古)에 칭송이 높았고 희후(姬后)3)의 풍교(風敎) 또한 홀로 후대에 우뚝 합니다. 이 어찌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이를 시행하여 성공하게 하고, 8정(正)을 밝혀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를 밝혀서 말씀[言]으로 세우고 3명(三明)을 증명하여 풍속[俗]을 인도하시니, 이치[理]는 천지의 밖까지 다하시고 마음[情]은 해와 달의 밖에까지 미쳤습니다. 그 우열을 비교해 본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욱 왕성하다 하겠습니다.
032_0715_a_17L羲皇之德尚見稱於前姬后之風亦獨高於後代豈若開物成務闡八正以摛章詮道立言三明而導俗理窮天地之表情該日月之外較其優劣斯爲盛矣
032_0715_b_01L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폐하께서는 금륜(金輪)의 운(運)을 타고 나셨고 옥력(玉曆)4)에서 딱 맞는 때를 타고 나신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교화는 4주(洲)에 넘쳐나고 인(仁)은 9유(有)5)에 미치시며, 도(道)는 장차 성스럽게[聖] 될 기미를 품으셨고 공(功)은 이렇게 신령스럽고[神] 무성합니다. 많은 재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것[生知]이며 옛 제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率由]6)은 타고난 지극한 정성[天至]7) 때문입니다.
032_0715_a_21L伏惟皇帝陛下金輪在運玉曆乘時化溢四洲仁覃九有道包將聖功茂迺神縱多能於生知資率由於天至
처음에는 황후께서 남기신 경대[奩鏡]을 보며 슬퍼하셨지만 곧 절을 창건하시고, 갑자기 수승한 당번[勝幢]을 세우시고 또다시 문율(文律)을 펴셨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여 하늘 꽃[天華] 봉우리가 피어나고 폐하께서 지으신 글[睿藻)8)이 파도처럼 솟구쳐 오른다면, 붓으로 그린 바다[筆海]를 삼켜 용궁(龍宮)을 잉태하시고 글로 채운 숲[詞林]을 덮어서 학수(鶴樹)를 감싸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8장(藏)을 갖추시고 밖으로는 6경(經)을 밝히실 것입니다.
032_0715_b_02L始悲匳鏡卽創招提俄樹勝幢更敷文律若乃天華穎發睿藻波騰呑筆海而孕龍掩詞林而包鶴樹內該八藏外覈六經
심오[奧]하면서도 능히 전범[典]이 되시고 넓으면서도 세밀하시어, 참으로 급원(給園)의 남긴 발자취는 보배로운 생각[寶思]에 맡기어 더욱 높이셨으며 내원(奈苑)의 남긴 향기는 옥구슬처럼 아름다운 문장[瓊章]을 빌려서 어둡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몽경(夢境)을 억양(抑揚)하여 미도(迷途)를 밝게 비추시고, 4천(天)을 모범의 본보기로 하여 삼계(三界)를 통할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현장의 언행은 취할 것이 없습니다.
032_0715_b_07L奧而能典宏而且密固使給園遺寶思而彌高奈苑餘芬假瓊章而不豈直抑揚夢境照晢迷塗諒以鎔範四天牢籠三界者矣玄奘言行無
외람되이 승려의 무리에 끼어서 자주 성은의 보살핌[恩顧]을 받았으니 항상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간곡하고 정성스러운 글을 지어주신 것과 왕성한 상법(像法)9)의 시절을 만난 것이 한편 부끄러우면서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참으로 여러 감회가 교차하며 송구하고 놀라운 정성을 감당할 수 없어 삼가 조당(朝堂)에 나아가 표를 받들어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032_0715_b_12L猥預緇徒亟叨恩顧每謂多幸忝曲城之造欣逢像法之盛且慚且實用交懷無任竦戴之誠謹詣朝奉表陳謝
을축일(乙丑日)에 법사는 또 주상(主上)이 문명(文明)을 하늘에서 타고나셨기 때문에 용하고 재주가 많아서, 그 글재주[文]가 위(魏) 나라 군주였던 조조(曹操)10)나 조비(曹丕)11)에 견줄 뿐만 아니고, 글씨[書]는 한나라 군주[漢主]12)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법사는 비문의 문장이 대단한 성문(聖文)인 것을 보고는, 다시 그 글씨도 신필(神筆)로 얻고자 하였다. 그래서 조정으로 나아가 황제께 직접 글씨를 써주기를 청하여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032_0715_b_15L乙丑法師又惟主上文明天縱聖而多能非直文麗魏君亦乃書邁漢主法師以見碑是聖文其書亦望神筆因詣闕請皇帝自書表曰
“사문 현장 등은 아뢰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사물(事物)에 순응하여 상(象)을 드리우고 신성한 작용[神用]으로 널리 갖추며, 때에 따라 교화를 펼치어 성스러운 가르침의 공[聖功]을 다 마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와 달[日月]이 둘 다 밝아야 비로소 경천(經天)의 운행을 다할 수 있고, 풀과 나무[卉木]가 함께 빼어나야 바야흐로 아름다운 땅[麗地]의 덕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032_0715_b_19L沙門玄奘等言竊以應物垂象神用溥該隨時設教聖功畢盡是知日月雙朗始極經天之運卉木俱秀方窮麗地之德
032_0715_c_01L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폐하께서는 지혜는 만물을 두루하시고 인자함은 삼계(三界)를 적십니다. 일찍이 밝은 교화[景化]를 융성하게 펼치셨고, 다시 그윽한 가르침의 바람[玄風]을 널리 열었습니다.
주(周) 나라 목왕(穆王)이 도를 좋아하여 부질없이 요지(瑤池)13)의 노래나 읊었던 것을 오히려 비루하게 여기시고, 후한(後漢)의 명제(明帝)가 법을 숭앙하여 한갓 백마사(白馬寺)를 창건하고 마침내 천문(天文)을 내려 멀리로 유지(幽旨)를 펼쳤던 일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셨습니다.
032_0715_b_22L伏惟皇帝陛下智周萬物仁霑三界旣隆景化復闡玄風鄙姬穆之好道空賞瑤池之詠篾漢明之崇法徒開白馬之祠遂乃俯降天文遠揚幽旨
그리하여 비석[豊琬]14)에 새겨 길이 왕성한 법칙[茂則]을 드리웠으니, 이는 6영(英)15)의 소리를 내는 것과 같고 5위(緯)16)가 아름답게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극한 마음을 펼치시어 속된 풍속을 감동시키고 큰 서원을 넓혀 시절을 바로잡으셨으니, 이 어찌 유독 진여(眞如)를 그윽이 도우며[幽贊] 심오한 도리[玄賾]를 드러내 선양[顯揚]하신 것뿐이겠습니까.
032_0715_c_03L用彫豐琬長垂茂則同六英之發音若五緯之摛曜敷至懷而感俗弘大誓以匡時豈獨幽贊眞如顯揚玄賾者也
옥 같이 아름다운 문장[玉藻]을 여기에다 펼치시어 아름다운 석판[翠版]에 새긴다 하셨으나, 아직 은 갈고리처럼 아름다운 글씨[銀鉤]17)를 쓰지 않으셨기에 단심을 담은 글자[丹字]를 넣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마치 규범이 되는 기악(夔樂)18)이 이미 갖추어졌기에 마을의 아무 곡조[里曲]에나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용향(龍鄕)19)에 이미 낮이 왔는데 어찌 횃불을 살라 밝힐 수 있겠습니까.
032_0715_c_06L雖玉藻斯暢翠版將刊而銀鉤未書丹字猶韞然則夔樂已簨匪里曲之堪預龍鄕旣晝何爝火之能明
백아(伯牙)20)와 사광(師曠)21)이 음율(音律)을 다스리고 희씨(羲氏)와 화씨(和氏)22)가 역(曆)을 총괄하지 않았다면, 누가 법고(法鼓)의 큰 소리를 울렸겠으며 누가 혜일(慧日)이 광채를 뿜도록 도울 수 있었겠습니까. 감히 이런 뜻으로 외람된 줄 알면서도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032_0715_c_09L非夫曠撫律羲和摠馭焉得揚法鼓之大音裨慧日之沖彩敢緣斯義冒用干祈
엎드려 바라옵건대 이 글을 써 주시어 아름다움을 갖춘 신필(神筆)로 새기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속을 초월한 신묘한 발자취로 이전의 제왕들을 능가하시고 감로를 내리시는[垂露] 기이한 교화는 이후에 오실 어떤 성인보다 뛰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황금처럼 옥처럼 아름다운 음성[金聲玉振]으로 미혹된 무리들을 깨우치시고, 봉황새가 날아오르듯 용이 서리고 있는듯[鳳翥龍蟠] 눈먼 무리의 눈을 뜨게 하신다면, 이 일이 어찌 다만 불교를 융성케 하는 데에만 그치겠습니까.
모든 중생에게 막대한 은혜를 입히시어 참으로 태평성대를 기리게 될 것이고, 종사(宗社)는 무궁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032_0715_c_12L伏乞成茲具美勒以 神筆淩雲之妙邁迹前王垂露之奇騰芬後聖金聲玉振卽悟群迷鳳翥龍蟠將開衆瞽豈止克隆像教懷生霑莫大之恩實亦聿贊明時宗社享無彊之福
타고난 자질이 어리석고 비천한 제가 어쩌다 잘못 불가[緇林]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본래부터 저는 세상일과 연루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또 많은 율행(律行)도 어겼습니다. 그렇게 외람되게 폐하의 말씀[宸詞]을 더럽히고도 과분한 칭찬만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놀라고 두려워서 차마 얼굴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날마다 정성을 다하여서[翹誠] 티끌과 더러움이 가득 찬 마음에 감히 다시 얼음처럼 맑고 불처럼 뜨거운 뜻[氷火]을 품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올린 표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032_0715_c_17L玄奘稟識愚謬齒緇林本慚窺涉多虧律行辱宸詞過蒙襃美雖驚惕之甚措顏無地而慊懇之勤翹誠有日重敢塵更懷冰火表奏不納
032_0716_a_01L경인일(景寅日)에 법사는 다시 청하는 글을 다음과 같이 올렸다.
“지난 1일에는 폐하께서 지으신 문장[天藻]을 받들고 그 기쁨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아직 폐하의 신령스런 글월[神翰]을 허락받지 못했으나, 하지만 기대하는 정성스런 마음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영화로움에 오르는[攀榮]의 기이한 나무[奇樹]는 반드시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여야 향기를 풍기고, 궤보(跪寶)의 옥구슬 같은 봉우리[玉岑] 또한 짙어져야만[渥] 광채를 낸다고 하였습니다.
032_0715_c_21L景寅法師又請曰昨一日蒙齎天藻喜戴不勝允神翰翹丹尚擁竊以攀榮奇樹含笑而芬芳跪寶玉岑亦舒渥而貽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규범을 제정[提衡]하여 순수를 지키시고 교화를 드리우시어[垂拱] 크게 편안하게 하시며, 고귀한 사상이 섬세하고 아름다우시며[睿思綺毫] 그 밖에도 굽어보면 너무나 많은 재주를 가지고 계십니다.
홍범(鴻範)은 솟아오르는 낙수(洛水)23)에서 빛났고 초성(草聖)24)은 못가에 임해서야[臨池]25) 왕성해졌습니다.
현장은 앞서는 삼가 성은을 입어 또 약화(若華)26)를 금경(金鏡)에 받들었으며, 뒤에는 감히 은택을 바라서 계영(桂影)27)을 은 갈고리처럼 아름다운 글귀[銀鉤]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032_0716_a_02L伏惟陛下提衡執粹垂拱大寧睿思綺毫俯凝多藝鴻範光於涌洛草聖茂於臨池玄奘肅荷前恩奉若華於金鏡冒希後澤佇桂影於銀鉤
이 일이 어찌 벽(璧)을 합쳐 서로 맞물리게만[相循] 하고 빛을 꿰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일이겠습니까. 역시 폐하의 글씨[天翰]가 아니면 해와 달처럼 빛나는 글을 실을 수 없습니다. 오직 아름다워야만 희미(希微)한 궤범을 널리 펼 수 있겠습니다. 마음은 달려가서 머리를 숙입니다.
감히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쌓이는 미진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이렇게 청을 올립니다.”
032_0716_a_06L豈直合璧相循聯輝是仰亦恐非天翰無以懸日月之文唯 麗則可以攄希微之軌馳魂俛首非所敢望不勝積慊昧死陳請
이렇게 표를 올려 아뢰자 황제는 마침내 친히 쓴 신필(神筆)을 내려 주었다. 법사는 황제의 허락을 받자 기쁘고 경사스러움을 이기지 못해 이렇게 감사의 표를 올렸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엎드려 칙지(勅旨)를 받들어 보니, 폐하의 신필을 내리시어 어제(御製) 대자은사 비문을 새길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032_0716_a_10L表奏 帝方運神筆法師旣蒙 帝許不勝喜慶謝曰沙門玄奘言伏奉勅旨許降 宸筆自勒 御製大慈恩寺碑文
옥새(玉璽)가 여기에 이르러 자비로우신 윤음[綸慈]을 외람되게 받았으니, 그저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뿐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현장이 듣기로는, 활이 강해지는 것은 당기는 힘[彀]에 달렸기에 날다람쥐 따위가 그 기계를 움직일 수가 없고, 큰 종은 소리를 숨기므로 짜서 엮은 대자리[織筵)를 가지고는 그런 울림을 내지 못합니다.
032_0716_a_14L璽誥爰臻綸慈猥集祇荷慚惕罔知攸措玄奘聞强弩在彀鼠不足動其機鴻鍾匿音纖莛無以發其響
말하자면 해가 뜨고 달이 비추어야 드디어 그림자가 불문[空門]28)에까지 돌아 드리우고, 비가 흠뻑 내리고 구름이 피어올라야 감동[感]이 멀리 절집[玄寺]까지 비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원한다고 마음대로 도모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032_0716_a_17L不謂日臨月照遂迴景於空雨潤雲蒸乃照感於玄寺是所願豈所圖焉
엎드려 생각하오니, 폐하께서는 날개를 밟고 중요한 자리[樞]에 오르시고 부절(符節)을 잡고 천운(天運)을 이으셨으며, 헌원(軒轅)29)의 뒤를 쫓고 전욱(顓頊)30)을 능가하시며 하(夏)를 잉태하고 은(殷)을 삼키셨습니다. 온갖 신묘함[衆妙]을 통달하시어 시절을 교화하시고 많은 능력을 발휘하시어 세속을 밝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9역(域) 안은 이미 어진 풍습에 젖어 있고 사천(四天)도 역시 깊은 교화에 젖어 있습니다.
032_0716_a_19L伏惟陛下履翼乘樞握符纘運追軒邁頊孕夏呑殷演衆妙以陶時摠多能而景俗九域之內旣沐仁風四天之表亦霑玄化
032_0716_b_01L그러나 중생을 제도하는 방법[津梁]31)은 지극한 성인[至聖]이 아니면 능히 그 근원을 밝힐 수 없고, 눈에 띄지 않게 은근하게 도움을 주는[幽贊] 기술[工]은 극에 이른 사람[至人]이 아니면 어찌 그 자취를 남길 수 있겠습니까. 비록 조상 그리는 정[追遠]32)을 극진하게 하여 하늘의 마음을 절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천지신명의 도움[冥祐]을 기원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폐하께서 성은[宸睠]으로 돌보시어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말씀[英詞]을 내리셨으니 이미 희대의 진기한 보배보다도 더욱 뛰어나시며, 신비한 발자취[秘跡]를 여시었으니 장차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絶價] 보배마저도 넘어서게 되실 것입니다.
032_0716_a_23L然則津梁之法非至聖無足闡其源幽贊之工非至人何以敷其迹雖追遠所極自動天情而冥祐可祈卽迴 宸睠英詞曲被已超希代之珍秘迹行開將踰絕價之寶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겠지만 특히 저희 불자[梵徒]들은 경사스럽고 기쁨이 배나 더합니다. 천상[鈞天]33)의 크나큰 즐거움을 꿈꾸는 일도 이에 비한다면 기이한 것이 아니고 윤왕(輪王)의 계주(髻珠)34)를 얻는 일도 이에 비한다면 무슨 귀한 것이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마땅히 좋은 돌[貞石]에다 새기시어 복의 뜰[福庭]에 심으시옵소서. 그리하면 보잘것없는 저 미혹한 중생들도 마침내는 귀와 눈이 열릴 것입니다.
032_0716_b_04L在群品靡弗欣戴然彼梵徒倍增慶夢鈞天之廣樂疋此非奇得輪王之髻珠儔茲豈貴庶當刊以貞石用樹福庭蠢彼迷生方開耳目
그렇게 법의 횃불을 융성하게 하시어 미래에 전하시어 그 보배로운 글자를 바라보고 은갈고리처럼 아름다운 글자[銀鉤]를 우러르는 자들이 그 날 바로 모두 보리(菩提)를 발하게 하시고, 주문(遒文)35)을 외우며 지극히 깊은 이치를 탐구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반야(般若)를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겁성(劫城)은 결국 티끌로 끝나더라도 밝고 밝은 아름다움은 영원히 존재하고, 푸른 바다[碧海]가 뽕나무밭[桑田]으로 변한다 해도 왕성하고 아름다운 가르침[風敎]은 썩지 않을 것입니다.
032_0716_b_08L盛乎法傳諸未來使夫瞻寶字而仰銀鉤發菩提於此日諷遒文而探至賾般若於斯地劫城窮芥昭昭之羙恒遷海還桑藹藹之風無朽
현장은 평범한 자질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행업(行業) 닦기를 부끄러워하였고, 이미 중이 된 다음에는 현묘한 길[玄猷]을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인도[迦維]에 갈 수 있었던 것도 본디 황제 폐하의 교화[皇化]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며, 이렇게 번역을 하게 된 것도 또 조정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032_0716_b_12L玄奘出自凡品夙慚行業旣蒙落飾思闡玄往涉迦維本憑皇化迨茲翻譯復承 朝獎
그리하여 정관(貞觀)36) 연간에 외람되이 크나큰 자비[洪慈]를 입었고, 영휘(永徽)37) 이래로도 다시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두 주상 폐하께서는 신필(神筆)을 내리시어 황공하게도 칭찬을 해 주셨으니, 두 왕조의 황제께서 쓰신 글[聖藻]로 지극한 영광을 드리워 주셨습니다.
032_0716_b_15L而貞觀之際濫沐洪慈永徽以來更叨殊遇二主神筆猥賜襃揚兩朝聖藻極垂榮飾
어리석고 용렬한 저 자신을 돌이켜보자니 실로 삼가고 두려운 마음뿐이라, 죄업을 갚아야 한다는[輪報]38) 간절한 마음을 밤이나 낮이나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가 큰 골짜기보다도 깊으니 떨어지는 물방울로써야 어찌 능히 보답할 수가 있겠습니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저 높은 언덕[崇丘]보다 두터우시니 가느다란 티끌로써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오직 모든 지혜의 힘[慧力]에 의지하여 무한[無方]하게 운용하며, 밝은 복[景祚]를 원침(園寢)39)에서 빌려서 융성한 기틀[隆基]을 7백(百)에 도울 뿐입니다.
032_0716_b_18L顧循愚劣實懷兢懼輸報之誠不忘昏曉但以恩深巨壑豈滴水之能酬施厚崧丘匪纖塵之可謝唯當憑諸慧力運以無方資景祚於園寢助隆基於七百
지극한 공경과 송구함을 감당하지 못하여 삼가 내급사신(內給事臣) 왕군덕(王君德)에게 부쳐서 표문을 받들어 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아룁니다. 경솔하게 위엄(威嚴)을 범한 죄, 엎드려 깊이 두려울 뿐입니다.”
032_0716_b_22L不任竦戴之至謹附內給事臣王君德奉表陳謝以聞輕犯威嚴伏深戰慄
032_0716_c_01L여름 4월 8일에 대제(大帝)가 비석에 새길 글을 쓰고 아울러 조각까지 마친 뒤에 절로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법사는 성스러운 자애[聖慈]를 입는 것에 가책을 느껴 감히 앉은 채로 비석이 오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곧 자은사의 대중들과 경성(京城)의 승니(僧尼)들을 거느리고, 각기 당개(幢蓋)와 보장(寶帳)과 번화(幡花) 등을 들고서 함께 방림문(芳林門)까지 나아가 맞이하였다.
032_0716_c_01L夏四月八日 大帝書碑幷匠鐫訖將欲送法師慚荷 聖慈不敢空然待送乃率慈恩徒衆及京城僧尼各營幢寶帳幡花共至芳林門迎
황제는 또 조칙을 내려 태상(太常)40) 9부(部)의 음악과 장안(長安)현과 만년(萬年)현 두 현(縣)의 합창대를 파견하여 함께 절까지 가져다주도록 했다. 당(幢)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이라 해도 창공에 불쑥 솟아날 만큼 높았고 번(幡) 가운데 극히 짧은 것이라 해도 오히려 하늘 높이 휘날릴 정도였는데, 이렇게 무려 3백여 가지나 되었다.
합창대는 백여 대의 수레에 나누어 타고 7일 저녁에 성 서쪽 안복문(安福門) 거리에 모였다. 그런데 그날 밤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8일에는 길을 떠날 수가 없었으므로 황제는 조칙을 보내서 쉬도록 하고, 이에 법사만 안으로 들게 하였다.
032_0716_c_05L勅又遣大常九部樂長安萬年二縣音聲共送幢最卑者上出雲霓幡極短者猶摩霄漢凡三百餘事音聲車百餘乘至七日冥集城西安福門街其夜雨八日路不堪行 勅遣且停仍迎法師入內
10일이 되자 하늘이 개고 맑았다. 황제는 조칙을 내려 전과 같이 대열을 베풀어 진열하게 하고, 14일 아침에 드디어 당번(幢幡) 등을 차례로 진열한 채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방림문에서 자은사에 이르는 30리 길을 찬란한 당번으로 가득 메웠다.
032_0716_c_11L至十日天景晴麗勅遣依前陳設十四日旦方乃引發幢幡等次第陳列從芳林門至慈恩寺三十里閒爛然盈滿
황제는 안복문의 누각에 올라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매우 기뻐하였다. 경도(京都)의 선남선녀들로서 이를 지켜본 자가 백여 만 명이나 되었다.
15일에는 승려 7명을 득도(得度)하게 하고 2천 명의 승려에게 재를 베풀었으며, 불전(佛殿) 앞에서 9부(部)의 음악을 연주하고는 날이 저물어서야 흩어졌다.
032_0716_c_14L帝登安福門樓望之甚悅京都士女觀者百餘萬人至十五日度僧七人設二千僧齋陳九部樂等於佛殿前日晚方散
16일에 법사는 다시 승려들과 더불어 조당(朝堂)에 나아가 비(碑)가 절에 도착한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문(表文)을 올렸다.
“사문 현장 등은 아뢰옵니다. 금월 14일에 엎드려 칙지(勅旨)를 받들었습니다. 전하께서 친히 쓰신 대자은사비(大慈恩寺碑)를 보내주시고 아울러 구부(九部)의 음악을 공양하여 주셨습니다. 요임금의 태평한 해[堯日]을 고루 나누어 비추어 먼저 지혜의 등불[慧炬]41)을 더욱 빛나게 해시고, 순임금의 잔잔한 바다[舜海]로 물결을 통하여 법의 흐름[法流]을 풍족하게 넓혀 주셨습니다.
032_0716_c_18L至十六日法師又與徒衆詣朝堂陳謝碑至寺表曰沙門玄奘等言今月十四日伏奉勅旨送御書大慈恩寺碑幷設九部樂供養堯日分照先增慧炬之輝海通波更足法流之廣
032_0717_a_01L풍비(豊碑)42)가 바위처럼 우뚝 서고 천문(天文)이 밝게 빛나니, 아름다운 노을이 영산(靈山)을 비추는 형상이 마치 아름다운 무늬[縟宿]가 신선들이 사는 산길[仙嶠]에 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모름지기 승려나 속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다 천둥이 치고 구름이 일어나 우러러 받들어 놀라워하기는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032_0716_c_23L豐碣巖待文景燭狀綵霞之映靈山疑縟宿之臨仙嶠凡在緇素電激雲奔瞻奉驚得未曾有
생각해 보면 8괘(卦)43)에서 문(文)이 나왔고 6효(爻)에서 「계사(繫辭)」가 나왔으며, 새의 발자국을 보고 법을 만들고 죽은 기린을 슬퍼하며 전법(典法)을 폈습니다. 성인(聖人)의 능사(能事)를 여기에서 다 보았다 하겠습니다. 법도(法度)로써 전범(典範)을 드리우고 때를 따라 교훈을 세우시며, 생령(生靈)을 잘 다스려서 거센 바람을 다스리셨습니다.
032_0717_a_03L竊以八卦垂文六爻發觀鳥制法泣麟敷典 聖人能事畢見於茲將以軌物垂範隨時立訓陶鑄生靈抑揚風烈
그래서 진 시황(秦始皇)은 이 일을 오직 돌에 새겨 아름다움을 봉선(封禪)44)에 밝히고, 위후(魏后)는 한갓 비(碑)에 새겨 이 공을 대향(大饗)45)에 기록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제목(題目)만 보고도 여러 왕을 높이 우러르는 것 같은데, 이것이 어찌 직접 폐하의 아름다운 문장[叡藻]을 받아 허리 굽혀 신선이 지은 듯한 글월[仙翰]을 열어 보는 것과 같겠습니까.
032_0717_a_06L然則秦皇刻石獨昭美於封禪魏后刊碑徒紀功於大饗猶稱題目高視百王豈若親紆睿藻俯開仙翰
편종을 연주하여[金奏]46) 소(韶)47)를 울리고 은 갈고리처럼 아름다운 글귀[銀鉤]는 자취를 빛나게 합니다. 용궁(龍宮)을 다 뒤져서 3현(玄)48)을 뛰어넘고 봉전(鳳篆)49)을 앞질러서 팔체(八體)50)를 다하셨으며, 춘파(春波)를 드날리며 생각을 달리고 추로(秋露)를 적시어 기묘함을 나타내셨습니다. 1승(乘)의 오묘한 이치[妙理]를 넓혀서 6도(度)의 심오한 진리를 찬탄하셨고 교화로 삼천대천세계를 다스려서 명성이 백억(百億)의 밖에까지 퍼졌습니다.
032_0717_a_09L金奏發韻銀鉤絢迹探龍宮而架三玄軼鳳篆而窮八體揚春波而騁思滴秋露以摽奇弘一乘之妙理贊六度之幽賾化摠三千之域聲騰百億之外
내원(奈苑)의 은미한 말씀[微言]51)이 폐하의 하늘에서 내린 듯한 문장[天詞]을 빌려서 다시 나타났고, 죽림(竹林)52)의 개사(開士)53)는 폐하의 신령한 글씨[神筆]덕분에 더욱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범지(梵志)로 하여금 마음으로 귀의케 하여 의심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교훈을 공경하게 했으며, 마왕 파순(波旬)으로 하여금 생각을 고쳐 사산(邪山)을 허물고 도(道)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이 어찌 속세[塵門]의 선비가 처음으로 미혹을 깨닫고 몽매한 사람이 행(行)하여 고제(苦際)54)를 초월하게 하는 단순한 일일 뿐이겠습니까.
032_0717_a_13L奈苑微言天詞而更顯竹林開士託神筆而彌因使梵志歸心截疑網而祇訓旬革慮偃邪山而侚道豈止塵門之士始悟迷方滯夢之賓行超苦際
불교가 동으로 전래된 지 6백 년이 되었는데도 널리 밝혀서 융성케 하는 일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한(漢) 나라의 명제(明帝)55)께서는 마음에 느낀 바가 있으시어 부의(傅毅)56)에게 계책을 물으셨고, 오주(吳主) 손권은 불교의 종지(宗旨)에 귀의하신 후에도 오히려 의심나는 것을 감택(闞澤)57)에게 상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뒤로 내려오면서부터는 거론할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032_0717_a_17L教東漸年垂六百弘闡之盛未若於至如漢明通感尚咨謀於傅毅主歸宗猶考疑於闞澤自斯已降足稱者
황제께서는 인연에 따라 사물을 교화하시니 홀로 밝은 천운(天運)을 받드셨으니, 선(善)을 행하면 반드시 응보(應報)가 있듯이 나라의 기틀이 매우 높고 융성해졌습니다. 금륜(金輪)의 왕과 같이 신묘한 공적[神功]은 헤아리기 어려우며, 보관(寶冠)을 쓴 제왕과 같이 아름다운 복록이 영원할 것입니다.
032_0717_a_21L隨緣化物獨推昭運爲善必應克峻昌基若金輪之王神功不測同寶冠之帝休祚方永
032_0717_b_01L저희 현장 등은 어쩌다 잘못 조정의 은혜[朝恩]를 입었고 요행히 도량[玄肆]58)에 올라서, 자비의 구름[慈雲]이 거듭 펼쳐지고 법고[法鼓]가 다시 울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명(明)의 교화는 이미 융성하고 8정도(正道)의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곧은 절개를 갖지도 못했고 간절한 정성을 갖지도 못했는데, 그런데도 폐하의 장려하고 인도하시는 은택을 입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를 만큼 큰 은택을 입었으니 깊은 계곡에 엎드려 숨을 만큼이나 부끄럽습니다. 우러러 두렵고 송구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이에 삼가 조정에 나아가 감사한 마음을 아뢰옵니다.”
032_0717_a_23L玄奘等謬忝朝恩幸登玄肆屬慈雲重布法鼓再三明之化旣隆八正之門長闢而顧非貞懇虛蒙獎導仰層旻而荷澤俯浚谷以懷慚無任竦戴之誠謹詣闕陳謝以聞
그리고 마침내 비(碑)가 도착했다. 유사(有司)는 불전(佛殿) 앞 동북쪽 귀퉁이에 별도로 비각을 짓고 거기에 비석을 안치했다. 그 건물은 대들보가 2중으로 되었으며 문 위의 차양[門楣]과 용마루[棟梁]에는 화려한 구름 문양을 넣었으니, 금빛 꽃[金花]은 아래를 비추고 보배로 만든 풍경[寶鐸]은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귀신같은 솜씨로 만든[仙掌] 노반(露盤)59)도 영탑(靈塔)과 동일하게 만들어졌다.
032_0717_b_06L碑至有司於佛殿前東北角別造碑屋安之其舍複拱重櫨楣綺棟金花下照寶鐸上暉仙掌露一同靈塔
황제는 해서(楷書)와 예서(隸書), 그리고 초서(草書)와 행서(行書)를 다 잘 썼는데 특히 비백서체(飛白書體)60)에 뛰어났다. 이 비석의 글씨는 행서로 썼으나 또 비백법의 필체로 쓴 것이었다. 현경(顯慶)61) 원년(元年)이라는 네 글자는 모두 신묘(神妙)함을 다하였다.
이 비석을 보러오는 사람이 매일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 문무(文武) 3품(品) 이상의 관리들도 표(表)를 올려 탁본하기를 청했으므로 허락하였다.
032_0717_b_09L大帝善揩尤精飛白其碑作行書又用飛白勢作顯慶元年四字竝窮神妙觀者日數千人文武三品已上表乞摸打許之
중국에서 결승(結繩)62)을 사용하던 시대가 끝나고 문자(文字)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전(二篆)63)은 형체가 달라졌고 해서와 초서의 형세도 달라졌다.
현침(懸針)64)이나 수로(垂露)65), 운기(雲氣)나 언파(偃波)66), 명석(銘石)이나 장정(章程), 팔분(八分)67)이나 행예(行隸) 같은 서체는 옛사람들도 각기 서로의 장단점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잘하기는 불가능했다.
032_0717_b_13L自結繩息用字代興二篆形殊草勢異懸鍼垂雲氣偃波銘石章程八分行隸人互有短長不能兼美
한(漢) 원제(元帝)는 사서(史書)를 잘했다고 하며 위 무제(魏武帝)는 초서와 행서에 뛰어났고, 종요(鍾繇)68)는 명석(銘石)과 장정(章程)과 행압(行押)의 세 가지 서체에 다 통달했다 한다. 왕차중(王次仲)69)은 팔분(八分)에 오묘하게 정통하였으며, 등소(鄧邵)와 장홍(張弘)은 비백(飛白)에 이름을 날렸고 백영(伯英)70)과 자옥(子玉)71)은 초성(草聖)이라 일컬어졌다.
오직 중랑(中郞)72)과 우군(右軍)73)은 여러 가지를 겸하여 잘했다고는 하나, 역시 다 통달하지는 못했다.
032_0717_b_16L至如漢元稱善史書魏武工於草鍾繇閑於三王仲妙於八分鄧邵張弘發譽於飛白伯英子玉流名於草聖唯中郞右軍稍兼衆美亦不能盡也
그래서 위문휴(韋文休)는 중랑과 우군 2왕[二王]74)의 글씨를 보고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능통하다고 하지만 아직 글씨를 아는 것은 아니다.”
032_0717_b_20L故韋文休見二王書曰二王自可稱能未是知書也
032_0717_c_01L그러므로 만약 타고난 필봉이 빼어나고 왕성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옛 현인(賢人)의 여러 서체에 통달하고 전대 선철(先哲)의 능란한 필체를 다하고, 부드러운 봄빛처럼 우아하고 글자를 창화(唱和)하기 어려운 것으로 말한다면, 진실로 그런 분은 우리 황제뿐이다.
032_0717_b_22L若其天鋒秀拔頵鬱遒健古賢之衆體盡先哲之多能爲毫翰之陽春文字之寡和者信歸之於我皇矣
법사는 어려서부터 듣고 익히기에 힘쓰고 또 나중에는 서방으로 가서 능산(凌山)과 설령(雪嶺)을 건넜던 탓인지, 드디어 냉병(冷病)에 걸리고 말았다. 한 번 발작하면 심장이 꽉 막혀서 멈추는 것 같았는데, 이런 심한 고통을 자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수년 동안을 약으로 다스려서 겨우 안정을 얻고 있었는데, 그런데 금년 여름 5월에 더위 때문에 서늘한 곳을 찾았다가 마침내 이전의 병이 재발하여 거의 고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도속(道俗)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중서(中書)가 황제께 아뢰었다.
032_0717_c_02L法師少因聽習及往西方涉淩雪嶺遂得冷病發卽封心屢經困數年已來馮藥防禦得定今夏五因熱追涼遂動舊疾幾將不濟俗憂懼中書聞奏
그러자 황제는 칙명으로 공봉상의상약봉어(供奉上醫尙藥奉御) 장효장(蔣孝璋)과 침의상관(針醫上官) 종(琮)을 보내서 간병을 전담하게 하고, 또 내고(內庫)에 명령을 내려서 필요한 약은 모두 보내도록 하였다. 북문(北門)의 사신은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들러서 병세를 살펴 소식을 통보하도록 했으며, 또한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내국(內局)의 전문가를 보내서 편안하게 보살피도록 하였다.
황제가 법사를 보배처럼 아끼는 마음이 이와 같았다. 자애로운 아버지가 외아들을 대하는 것과 같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032_0717_c_06L勅遣供奉上醫尚藥奉御蔣孝璋鍼醫上官琮專看所須藥皆令內送北門使者日有數般遣伺氣候報消息乃至眠寢處所皆遣內局上手安置其珍惜如是雖慈父之於一所不過也
효장(孝璋) 등이 밤낮으로 법사 곁을 떠나지 않으며 의약을 제공하였더니, 간병한 지 5일 만에 위중한 상황은 넘기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였다. 법사는 이런 성은(聖恩)을 입게 되자 다음 날 표문을 올려 감사하는 마음을 아뢰었다.
032_0717_c_12L孝璋等給侍醫藥晝夜不離經五日方損內外情安法師旣荷聖恩翊日進表謝曰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은 스스로 몸을 다스리는 데에 서툴러서 냉병이 더욱 발동하여 거의 죽게 되어 운명을 마치는 듯했었는데, 폐하[天恩]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좋은 의원[良醫]을 보내주셨으므로 침을 맞고 약을 먹은 덕분에 즉시 병세가 호전되었습니다.
끊어지려는 목숨을 잡아 머물게 하시고 막 사라지려는 영혼을 돌이키게 하시어, 거듭 창성한 시대를 보게 하시니 다시 영명하신 다스림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단지 고칠 수 없는 중병을 영영 끊어서 기맥(肌脈)을 순조롭게 하는 일일 뿐이겠습니까.
032_0717_c_14L沙門玄奘言奘拙自營衛冷疹增動幾至緜篤辭昭運天恩矜憫降以良醫鍼藥纔卽蒙瘳愈駐頹齡於欲盡反營魄於將消重睹昌時復遵明導豈止膏肓永絕腠理恒調而已
돌이켜 보면 폐하께서는 용렬한 이 사람을 위로하시기 위해 특별한 은혜를 너무나 자주 내려 주셨습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는 두터운데 이 목숨은 가벼우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지혜의 힘[慧力]에 의지하여 깊은 복[冥祉]으로 보답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현장은 아직 몸이 허하고 고달파서 감히 조정에 나아가 감사한 마음을 아뢰지 못합니다. 지극히 공경하고 송구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삼가 제자 대승광(大乘光)을 보내 표(表)를 받들어 아룁니다.”
032_0717_c_19L顧循庸菲荷殊澤施厚命輕罔知輸報唯憑慧庶詶冥祉玄奘猶自虛惙未堪詣闕陳謝無任悚戴之至謹遣弟子大乘光奉表以聞
032_0718_a_01L황제는 이 표문을 보고 급사(給事) 왕군덕(王君德)을 보내어 법사에게 이렇게 위문했다.
“약을 처음 먹기 시작하면 당연히 기력이 허해지는 법이니, 아무쪼록 법사는 스스로 잘 섭생을 하시오. 의당 마음 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032_0717_c_23L帝覽表遣給事王君德慰問法師曰旣新服藥後氣力固當虛劣請法師善自攝衛未宜卽用心力
법사는 또다시 황제의 위문[聖問]을 받고는 기쁘고 황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또 표문을 올려 감사를 아뢰었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은 쌓인 업[業累] 때문에 질병의 고통을 불러왔고, 호흡이 곤란하여 태평한 시대와 거의 단절할 뻔 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홀연히 황제 황후(皇帝皇后) 폐하께서 자비심을 내리시어 성명(性命)을 근심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032_0718_a_03L法師又蒙聖問不勝喜懼之至又表謝曰沙門玄奘言玄奘業累所嬰致招疾苦呼吸之頃幾隔明時忽蒙皇帝皇后降慈悲之念垂性命之憂
폐하께서 보내신 사절[天使]이 자주 찾아와서 열 번이나 위문[十慰]하였으며, 용한 약[神藥]의 빠른 효과는 마치 알약 한 알[一丸]에 바로 살아난 것 같습니다. 폐하의 성스러운 자비[聖慈]에 흠뻑 목욕하였더니 그 깊던 통증이 사라지고, 의사의 치료를 받고 나니 마침내 병은 나아졌습니다.
하늘[上帝]의 부름을 받고 이미 떠났어야 할 이 영혼[魂]이, 장차 요절하게 되었던 목숨이 거듭 넓은 치화(治化)를 받게 될 줄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습니까? 한 발 물러나 생각해 보아도, 어리석은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칠 뿐, 황공한 마음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이 은택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이 한미한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사례할 길이 없습니다.
032_0718_a_07L天使頻臨有逾十慰神藥俯救若遇一丸飮沐聖慈已祛沈痛蒙荷醫療得痊除豈期已逝之魂見招於上帝夭之壽重稟於洪鑪退省庸微何以當此撫膺愧越言不足宣荷殊澤而詎勝粉微軀而靡謝
그저 바라기는 예경과 송경[禮誦]에 이 몸과 마음을 더욱 다하여 바침으로써 분수 넘치는 성은(聖恩)에 보답하여 무궁한 잘못을 조금이나마 덜까 합니다. 극심한 감격을 감당할 수 없어 삼가 표문을 올려 감사를 아룁니다. 기쁨과 송구함이 교차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글로 또 폐하의 귀와 눈[聽覽]을 더럽히게 되니, 엎드려 생각건대 황송하기만 더할 뿐입니다.”
032_0718_a_13L方冀勖茲禮誦罄此身心以答不次之恩少塞無窮之責無任感戴之極謹附表謝聞喜懼兼幷罔知攸措塵黷聽覽伏增惶悚
그런데 지난 날 정관(貞觀) 11년(637)에 다음과 같은 조칙이 있었다.
“노자(老子)는 짐(朕)의 조종(祖宗)이시다. 그 명위(名位)와 칭호는 마땅히 부처보다 앞에 있어야 한다.”
032_0718_a_16L往貞觀十一年中有勅曰老子是朕祖宗名位稱號宜在佛先
이 당시 보광사의 대덕 법상(法常)과 총지사(總持寺) 대덕 보응(普應) 등 수백 명이 조당(朝堂)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쟁을 폈으나 아직 개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법사도 귀국한 이래 자주 내밀히 상주(上奏)하였으나 황제는 고려하겠다고 했을 뿐 실현되지 않고 있다가 문제(文帝)가 승하(昇遐)하였다.
032_0718_a_18L時普光寺大德法常摠持寺大德普應等數百人於朝堂陳諍未蒙改正法師還國來已頻內奏許有商量未果而文帝昇遐
032_0718_b_01L그 뒤 영휘(永徽) 6년(655)에 도교의 도사(道士)나 불교의 승려로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 가운데 그 사정이 불투명한 자는 속법(俗法)과 똑같이 추고(推考)하라는 조칙이 있었다. 그래서 변방의 관리들은 조칙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승려의 범죄에 대하여 대소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장형(杖刑)을 가하여 욕을 당하는 일이 매우 심했었다.
법사는 늘 그것을 근심하고 있었는데, 병으로 인해 일어날 수가 없게 되자 다시는 황제의 천안(天顔)을 뵐 수 없을 것을 염려하여 곧 사람을 보내어 앞의 두 가지 일이 국가를 위해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아뢰었다.
“지금 현장의 목숨은 조석(朝夕)에 달려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그 다음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서는[後言]을 들을 수 없을 듯하여, 삼가 계품(啓稟)하며 엎드려 있습니다. 그저 황송하고 두려움만 더할 뿐입니다.”
032_0718_a_22L永徽六年道士僧等犯罪情難知者可同俗法推勘邊遠官人不閑勅意事無大小動行枷杖虧辱爲甚法師每憂之因疾委頓慮更不見天顏乃附人陳前二事於國非便奘命垂旦夕恐不獲後言謹附啓聞伏枕惶懼
황제는 칙서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올린 일은 잘 들었소. 그러나 불교와 도교의 위치[名位]에 대해서는 지난 왕조[先朝]에서 처리한 일이므로, 평장(平章)75)과 상의를 하여야 하겠소. 그리고 승려와 속인[僧俗]을 같이 취급하는 건에 대해서는 칙명을 내려 즉시 없애도록 하겠소. 법사는 아무쪼록 안심하고 탕약을 복용하는 일에만 힘쓰기 바라오.”
032_0718_b_06L勅遣報云所陳之事聞之但佛道名 先朝處分事須平章其同俗卽遣停廢師宜安意强進湯藥
그리고 23일에 다음과 같이 조칙을 내렸다.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청허(淸虛)와 불교 경전[釋典]에서 주장하는 미묘(微妙)는 만물을 구제하는 진량(津梁)이어서 삼계(三界)가 우러러 따르는 바이다.
그런데 근래 말법(末法) 시대가 되면서 승려와 도사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법률을 위반하는 자가 많아졌다. 그래서 속법(俗法)에 의거하여 징계해 왔었다.
032_0718_b_09L二十三日降 勅曰道教淸虛釋典微庶物藉其津梁三界之所遵仰爲法末人澆多違制律權依俗法申懲誡
짐이 바라는 것은 악을 그치게 하고 선을 권장하는 데에 있지, 사람을 가볍게 여기라는 법이 아니다. 하지만 출가한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조례(條例)가 갖추어져 있어서 별도로 죄를 추문하고 있다.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전에 도사(道士)나 여도사(女道士)나 승니(僧尼)가 죄를 범한 자 중에서 속법에 의거하여 벌을 받은 자는 마땅히 석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법을 어긴 자가 있으면 반드시 제정한 조례에 따라야 할 것이다.”
032_0718_b_13L冀在止惡勸善非是以人輕但出家人等具有制條更別推科恐爲勞擾前令道士女道士尼有犯依俗法者宜停必有違犯宜依條
법사는 이러한 성은(聖恩)을 입고 표문을 받들어 조당에 올리면서 감사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엎드려 칙지(勅旨)를 보니, 승려들이 과오를 범했을 때에 속법을 따른다는 조례를 정지시키고 옛날대로 바로잡도록 환원하셨습니다. 분에 넘치는 은택이 홀연히 불도[緇徒]들에게 내려지고, 나무라지 않는 은혜가 또 도량[玄肆]을 적시었습니다.
양기(陽氣)를 쬐고 도(道)에 목욕하는 일이 실로 빛나고 화려하시니, 땅에다 몸을 구부리고 있어도 오직 두려움만 더할 뿐입니다. 생각하건대 법왕(法王)76)은 이미 가시고 상법의 교화[像化]77)만이 덧없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종지(宗旨)를 계승하는 계책은 여러 영명하신 황제[明后]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032_0718_b_17L法師旣荷茲聖澤奉表詣闕陳謝曰沙門玄奘言伏見勅旨尼等有過停依俗法之條還依舊格非分之澤忽委緇徒不訾之恩復霑玄肆晞陽沐道實用光華跼地偱躬唯增震惕竊以法王旣沒像化空傳崇紹之規諸明后
032_0718_c_01L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보위[寶圖]78)를 극진히 다스리시고 금륜(金輪)에 바르게 오르시어, 석교(釋敎)를 돌보시면서 항상 널리 천명할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현문(玄門)79)에 출가한 사람들을 다른 속인(俗人)들과는 달리 생각하셨습니다.
비록 마음이 5탁(濁)80)에 끌려 율행(律行)이 많이 모자란다 해도, 몸에 3의(衣)81)를 입었으면 복전(福田)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까다롭고 엄격했던 법망을 느슨하게 풀어서 관대하고 어진 법을 펼치셨으며, 부처님의 곧은 말씀[金口]82)을 믿으시고 여기에 회향(廻向)하셨습니다.
032_0718_b_23L伏惟皇帝陛下寶圖御極金輪乘正睠茲釋載懷宣闡以爲落飾玄門外異流雖情牽五濁律行多虧而體被三福田斯在削玉條之密網布以寬仁信金口之直詞允茲回向
이는 진실로 기쁨을 실어 하늘을 공경한 데[天祗] 대해 길조(吉兆)로써 응하신 것이니, 이 어찌 저희 불도[梵侶]들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데에 그칠 일이겠습니까?
거기에다 곧고 굳게[貞確]까지 해 주셨습니다. 만약 이런 관대한 용서를 거스르고 스스로 허물을 끼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곧 부처님의 지엄한 교지를 어기고 성주(聖主) 폐하의 깊은 자애(慈愛)를 훼손시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영명한 신령[明靈]이 있어서 틀림없이 저절로 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어찌 평장(平章)의 율(律)을 기다릴 것까지 있습니까? 마땅히 간악한 죄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032_0718_c_05L斯固天祇載應之以休徵豈止梵侶懷恩加之以貞礭若有背茲寬貸自貽伊咎則違大師之嚴旨虧 聖主之深慈凡在明靈自宜譴謫豈待平章之律方科奸妄之
현장은 용렬하고 우매한 자질로 외람되게 법류(法流)에 섞여들어, 매번 큰 은혜를 입게 되어 황공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듭 특별하신 장려(奬勵)를 받들게 되니 더더욱 두렵고 황공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제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어 대궐에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공경과 두려운 마음의 지극함을 감당할 수 없어 삼가 제자 대승광(大乘光)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게 하고 감사를 아룁니다.”
032_0718_c_10L玄奘庸昧猥廁法流每忝鴻恩以懷慚惕重祗殊獎彌復兢惶但以近嬰疾疹不獲隨例詣闕無任悚戴之至謹遣弟子大乘光奉表陳謝以聞自是僧徒得安禪誦矣
이로부터 승도(僧徒)들은 안심하고 참선과 독송에 전념할 수 있었다. 법사는 희비가 교차하여 자신도 모르게 눈물로 옷소매를 적시며,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다시 표문을 올려 감사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엎드려 은혜로운 칙명[恩勅]을 받들었습니다. 승려들을 속법(俗法)에 따라 추문(推問)하는 법률 조문을 없애 주셨으니 그 기쁜 마음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
032_0718_c_14L法師悲喜交集不覺淚霑衿袖不勝抃躍之至又重進表謝曰 沙門玄奘伏奉 恩勅除僧等依俗法推勘條章喜戴之心莫知准譬
032_0719_a_01L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법(正法)이 융성하거나 침체되는 일은 위에 계시는 인군께서 억누르느냐 선양하느냐에 달렸으며, 이륜(彝倫)이 두터워지고 엷어지는 것은 현묘한 풍교[玄風]에 따라서 흥하게도 되고 쇠퇴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국운[聖運]이 하늘의 도[璿曜]에 달려 있으니, 명황(明皇)83)께서는 순수를 잡으시어 도예(道藝)를 숭상하시고 현묘한 불교[玄]를 유가[儒]와 구별하셨습니다. 그렇게 불이(不二)84)의 관건(關鍵)을 여시고 유일(唯一)한 발자취를 넓히시어, 용궁(龍宮)을 봉각(蓬閣)에 본뜨시고 취괴(鷲壞)를 신고(神睾)에 이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범종(梵鍾) 소리가 집안[區宇]에 넘치게 하시어 복되고 선한[福善] 업을 여명(黎明)에 깨끗이 목욕시켰습니다. 이것은 법문(法門)의 아름다운 일일 뿐 아니라 온 천하에 다행한 일입니다.
032_0718_c_18L竊尋正法隆替隨君上所抑揚彝倫厚薄玄風以興缺自聖運在璿明皇執粹甄崇道藝區別玄儒開不二之鍵唯一之轍寫龍宮於蓬閣接鷲壤於神皐俾夫鍾梵之聲洋溢區宇福善之業濯沐黎萌寔法門之嘉會率土之幸甚
일찍이 승도(僧徒)가 정숙(整肅)하지 못하고 가르치고 단속하는 방법이 어긋났던 까닭에, 안으로는 불교를 훼손시키고 밖으로는 왕법(王法)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욕을 뒤집어쓰게 되어, 마침내 천(天威)에 저촉되어 속법(俗法)을 따르는 명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잘 다스려지기를 기약하면서 징계하려는 뜻을 두신 것이었으니, 저희 승려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아침저녁으로 부끄럽고 황공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마치 하늘이 임하시듯이 보고 알아주시어[聖鑑]85) 인자한 은택(恩澤)을 밝게 베푸시었습니다. 현묘(玄妙)를 깊이 기약하시어 작은 허물을 넓은 덕으로 덮어주시고,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내리시어 벌을 면하게 해주셨습니다.
032_0719_a_02L頃爲僧徒不整誨馭乖方使內虧佛教外犯王法一人獲罪擧衆蒙塵遂觸天威令依俗法所期淸肅志在懲誡僧等震懼夙夜慚惶而聖鑑天臨仁澤昭被篤深期於玄妙纖垢於含弘爰降殊恩釋茲嚴罰
꼭 그 사람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 법의 존귀함을 돌아보신 것으로, 마침내 그물에 들어간 고기를 다시 강에 놀게 하셨고 조롱 속에 갇힌 새를 하늘로 날아가게 하셨습니다. 법수(法水)86)가 섞이니 다시 맑아졌고 복전(福田)을 김매니 다시 옥토가 되었습니다. 이제 승려들은 폐하의 은혜를 입어서 각자 스스로 근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마음을 닦아 악을 없애고 천심(天心)을 보좌하며, 오로지 마음을 다해 예경(禮敬)하는 정성으로써 크나큰 은혜[鴻造]에 보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032_0719_a_07L其人之足惜顧斯法之可尊遂令入網之魚復游江漢觸籠之鳥還颺杳法水混而更淸福田鹵而還沃等各深荷戴人知自勉庶當勵情去以副天心專精禮念用荅鴻造
엎드려 생각하오니, 황제 황후께옵서는 나라를 밝고 융성하게 하신 공으로 길이 온갖 복록을 누리시고, 자비(慈悲)의 업(業)에 오르시어 만 년의 태평성대를 누리소서. 진역(震域)87)에는 늘 상서(祥瑞)가 깃들고 유성(維城)88)께서는 아름다움을 갖추시기를 바랍니다.
뛸 뜻이 기쁜 지극한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거듭하여 표문을 올려 감사를 아룁니다. 경솔하게 폐하의 면류(冕旒)를 더럽혔으니 더욱 황공하여 엎드릴 따름입니다.”
032_0719_a_12L惟皇帝皇后以紹隆之功永凝百福乘慈悲之業端拱萬春震域締祥城具美不勝舞躍感荷之至謹重附表陳謝以聞輕黷冕旒伏增惶恐
황제는 이 표문을 보고 법사의 병이 쾌유되었음을 알고, 사신을 보내서 법사를 맞아 입조(入朝)케 하였다. 그리고 응음전원(凝陰殿院)의 서각(西閣)에 머물게 하고 공양하였다. 여기서 법사는 경전을 번역을 하면서, 20일이나 혹은 30일 만에 한 번씩 바깥출입을 하였다.
032_0719_a_16L覽表知法師病愈遣使迎法師入置於凝陰殿院之西閣供養仍彼翻譯或經二旬三旬方乃一出
그 해 겨울 10월에, 중궁(中宮)89)의 출산을 맞게 되었다[在難]. 그래서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청하자 법사는 이렇게 아뢰었다.
“성체(聖體)는 반드시 편안하시고 아무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임(懷姙)되신 분은 남아입니다. 편안해진 뒤에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허락을 받았다.
032_0719_a_19L冬十月中宮在難歸依三寶請垂加祐法師啓曰聖體必安和無苦然所懷者是男安之後願聽出家當蒙勅許
032_0719_b_01L11월 5일에 황후는 법사에게 납가사(納袈裟) 한 벌과 잡물 등 수십 종류를 하사하였다. 그래서 법사는 다음과 같이 계사(啓辭)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하사하신 납가사와 잡물 등을 두 손으로 받들어 마주하니, 놀랍고 황송스러운 마음 어디에 비할지를 모르겠습니다.
032_0719_a_22L至十一月五日皇后施法師納袈裟一幷雜物等數十件法師啓謝曰沙門玄奘啓齎納幷雜物等捧對驚慚不知比喩
일찍이 금루(金縷)90)의 상복(上服)을 선현(先賢)으로부터 전해 받기도 하였고, 또 혹은 값을 헤아릴 수 없이 귀한 옷[無價衣]에 대해서도 여러 성전(聖典)에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신기함과 오묘함의 극치는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황후께서 하사하신 것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채색의 농담(濃淡)을 보면 그 뛰어나다는 화가 경군(敬君)91)도 그 교묘함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며, 촘촘한 바느질 솜씨는 눈 밝은 이루(離婁)92)라 해도 그 끝을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갑자기 연하(烟霞)가 방에 가득차고 몸은 난초(蘭草) 동산에 있는 것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스스로를 살펴보니 갑자기 큰 영광을 더한 것이었습니다.
032_0719_b_02L且金縷上服傳自先賢或無價衣諸聖典未有窮神盡妙目擊當如今之賜者也觀其均綵濃淡敬君不能逾其巧裁縫婉密離婁無以窺其便覺煙霞入室蘭囿在身旋俯自頓增榮價
옛날 진(秦) 나라 때에 도안(道安)이 진귀한 말을 전했다 해도 이러한 은혜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진(晋) 나라 때에는 지둔(支遁)93)이 예(禮)를 칭송했다 하지만 이러한 은택이 받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오직 현장처럼 용렬하고 박덕한 사람만이 홀로 이렇게 크나큰 은혜를 사사로이 훔치게 되니, 총애를 받은 저 자신을 돌아보니 두려운 마음에 땀만 더더욱 흐를 뿐입니다.
032_0719_b_08L昔道安言珍秦代未遇此恩支遁稱禮晉朝罕聞斯澤唯玄奘庸薄獨竊洪私顧竉偱躬彌深戰
엎드려 원하오니, 황제 황후께서는 많은 자손을 얻으시고 무궁한 복조(福祚)를 누리시면서, 오래도록 청명한 도[玉鏡]에 임하시어 길이 보위[寶圖]에서 다스리시면서 여러 중생들을 교화하고 기르시며 하늘과 더불어 무궁하소서. 부끄러운 마음 감당할 수 없어 삼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베풀어주신 은혜는 무거운데 말은 가벼워서 이루 다 아뢸 수가 없습니다.”
032_0719_b_11L伏願皇帝皇后富衆多之子孫享無疆之福祚長臨玉鏡永御寶圖覆育群生與天無極不任慚佩之至謹啓謝聞施重詞輕不能宣盡
5일 저녁 무렵 갑자기 한 마리의 붉은 참새가 날아와서 장막[御帳] 안에 앉았다. 이것을 보고 현장 법사는 기쁘고 경사스런 마음을 이기지 못해 표문을 올려 축하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이 듣건대, 흰 비둘기[白鳩]94)는 상서(祥瑞)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은제(殷帝)의 융흥(隆興)을 가져왔고, 붉은 참새[赤雀]95)는 부절(符節)을 드리는 것이니 주왕(周王)의 경사(慶事)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늘이 상서의 징조를 내림으로써 사람의 일[人事]을 밝힌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032_0719_b_14L五日申後忽有一赤雀飛來止於御帳玄奘不勝喜慶陳表賀曰沙門玄奘言玄奘聞白鳩彰瑞表殷帝之興赤雀呈符周王之慶是知穹昊降祥以明人事其來久矣
현장은 금일 신시(申時) 넘어 유(酉)96)시가 채 못 될 즈음에 현경전(顯慶殿)의 장막[庭惟] 안에서 새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그 새는 등과 날개가 모두 붉었고, 배와 다리까지도 붉었습니다.
새는 남쪽에서 날아와 휘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좌(御座)에 가서는 주위를 배회하면서 팔짝 팔짝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자태가 매우 의젓했으므로 저는 이 색다른 날짐승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황후께서 지금 잉태 중에 계시며, 아직 분만을 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지금 현장은 편안하게 잘 되기를 원하고 빌면서 매우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만약 내가 기도하는 대로 잘 될 것이라면 좋은 상[喜相]을 보여 달라.’
032_0719_b_19L玄奘今日申後酉前於顯慶殿庭帷內見有一雀背羽俱丹足咸赤從南飛來入帳止於御座徊踊躍貌甚從容見是異禽乃謂之皇后在孕未遂分誕玄奘深懷憂懼願乞平安若如所祈爲陳喜相
032_0719_c_01L그렇게 말하자 새가 둥글게 돌면서 발을 오므리며 편안한 자태를 보이는 것이 확연히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현장은 마음이 너무 기뻐서 손을 들어 붉은 참새를 부르면서 천천히 그 새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도 새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쓰다듬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이런 광경을 좌우의 사람들이 다 함께 보았습니다.
032_0719_c_01L雀乃回旋蹀足示平安之儀了然解人意玄奘深心歡喜擧手喚之又徐徐相乃至逼之不懼撫之不驚左右之人咸悉共見
현장은 그래서 3귀(歸)97)를 받고 그 우아한 뜻에 보답하려고 손이 미치지 않는 거리에서 새가 배회하는 것을 따랐는데, 새는 마침내 날아갔습니다.
엎드려 생각하면, 황제와 황후께서는 덕은 신명(神明)에 통하시고 은혜는 만백성에게 더하셨으며, 예(禮)와 악(樂)으로써 널리 화목하게 하시고 인(仁)과 의(義)는 깊고 원대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날개 달린 조류[羽族]들까지도 상서를 바치게 하셨으며, 신령한 새[神禽]까지도 천질(天質)을 본받게 하셨습니다.
자손은 드러나게 번영하시어 팔백(八百)이나 되게 융성하시며, 이미 지난 대(代)의 휴부(休符)가 되었고 또한 지금의 뛰어난 선물[靈貺]98)이십니다.
032_0719_c_05L玄奘因爲受三歸報其雅意未及執捉從其徘徊遂復飛伏惟皇帝皇后德通神明恩加兆禮和樂洽仁深義遠故使羽族呈神禽效質顯子孫之茂彰八百之旣爲曩代之休符亦是當今之靈
현장은 가벼운 자질을 갖고 태어났으나 행운(幸運)이 많아서 애초부터 상서(祥瑞)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쁘고 복된 일이 있었는데 감히 입을 닫고 침묵할 수 없어서, 간략히 대강의 일을 적어서 삼가 아룁니다.
그 우익(羽翼)의 위엄 있는 거동이나 양의 정기를 머금은[陽精] 순박한 아름다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대의 옛일들을 고찰해 보아도 이런 것이 출현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삼가 말씀을 올립니다.”
032_0719_c_11L玄奘輕生有幸肇屬嘉祥喜抃之不敢緘默略疏梗概謹以奏聞其羽翼之威儀陽精之淳偉歷代之稽古出見之方表所不知也謹言
표(表)를 올리고 나서 얼마 뒤에 다음과 같은 칙령(勅令)이 법사에게 전해졌다.
“황후의 출산은 이미 끝났고, 과연 사내아이가 탄생했소. 생김새가 단정하면서도 기이하고 특별하여, 신령스런 광택[神光]이 집안에 가득 차서 뜰에서부터 하늘까지 비추었소. 짐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내외(內外)가 기쁨으로 뛰고 있소. 법사에게 칙서를 내려 윤허한 일들은 절대 어기지 않겠으니 법사도 호념(護念)해 주시오.”
탄생한 왕자를 불광왕(佛光王)이라 불렀다.
032_0719_c_14L進已頃閒有 勅令使報法師皇后分難已訖果生男端正奇特神光滿自庭燭天朕歡喜無已內外舞必不違所許願 法師護念號爲佛光王
법사는 이렇게 축하의 말을 올렸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지극한 도[至道]는 펼친 만큼 거두는 법이라 천인(天人)을 인도하여 세자를 보게[載弄]99) 된 것이며, 깊이 기필하여[深期] 느끼었기에 현성(玄聖)께서 극기(克岐)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032_0719_c_19L法師進賀曰沙門玄奘言竊聞至道攸敷啓天人於載弄深期所感誕玄聖於克岐
032_0720_a_01L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와 황후께옵서는 마음은 3공(空)을 거울로 삼으시고 교화로 9유(有)100)를 양육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능히 천자의 면류를 드리워[垂旒]101) 2제(諦)102)를 여시고, 달리던 말[走馬]103)을 일승(乘)에 멈추게 하셨습니다.
난전(蘭殿)104)에서 처음으로 흠상(歆嘗)하실 때에 한없는[俱胝]105) 원(願)을 발하시고, 옥동자[琁柯]를 잉태하시자 문득 성을 넘어 출가할[踰城]106) 징조를 맺어 두셨습니다. 그리하여 10호(號)의 부처님이 강령(降靈)하여 널리 이 중생을 거두게 하시니, 온갖 신들이 이 좋은 일을 도와서 궁위(宮闈)107)를 엄숙하게 하셨습니다.
032_0719_c_21L伏惟皇帝皇后情鏡三空化孚九有故能闢垂旒於二諦卻走馬於一乘蘭殿初歆爰發俱胝之願琁柯在孕便結踰城之徵俾夫十號降靈弘茲攝受百神翼善肅此宮闈
그러므로 재앙이 깨끗하게 다스려져서 모두가 편안한 가운데 세자께서 탄생하시니, 7화(花)의 근엄함으로써 걸음을 이으시고 9룡(龍)108)이 낮아지도록 자질이 빛나십니다.
세자께서 현문(玄門)에 발자취를 두시면 도수(道樹)109)에 그늘이 사라질 것입니다.
032_0720_a_03L所以災厲克淸安和載誕七花儼以承步九龍低而濯質玄門佇迹道樹虛陰
비록 옛날의 제왕(帝王)을 본받아서 상서를 나타내고 하늘을 어루만져서 기적을 나타낸다 할지라도, 어찌 이 내려주신 은혜[感貺]에 비하고 이 영걸한 계책[英猷]110)에 짝할 수 있겠습니까?
온 나라가 노래 부르며 황제 폐하께 천우[納祐]가 내린 것을 기뻐하고, 이 사원(寺院)의 용감한 무리들은 전륜성왕[紺馬]이 와서 노니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032_0720_a_05L雖昔之履帝呈祥捫天表異寧足以方斯感貺疋此英猷率土詠歌喜 皇陛之納緇林勇銳欣紺馬之來遊
엎드려 원하오니, 앞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없으시어 특별히 법복(法服) 입은 승려들로 하여금 항상 그리워하는 마음[常戀]에 매이는 일이 없게 하시며, 한결같이 좋은 인(因)을 쌓으소서.
오직 제자(帝子)의 숭고하신 출처가 여기에 있사오니 법왕(法王)의 책임이 고상하고 더욱더 융성하시옵소서. 아울러 공덕이 무궁하여 영원히 중생을 구제하는 다리[津梁]가 되옵소서.
032_0720_a_08L伏願無替前思特令法服靡局常戀迥搆良且帝子之崇出處斯在法王之任高尚彌隆加以功德無邊津梁載遠
만약에 전하의 은택이 사라지지 않고 큰 서원이 바뀌지 않으신다면, 아마 사해(四海)의 재화(財貨)를 다한다 해도 이런 보시를 행하는[檀行] 일에 족히 비할 바가 못될 것이며, 10지(地)의 업을 다 기울인다 하여도 이러한 복의 터전[福基]에는 견주지 못할 것입니다.
032_0720_a_11L儻 聖澤無舛弘誓不移竊謂殫四海之資不足比斯檀行傾十地之業無以譬此福基
바라옵건대 황제와 황후께서는 백 가지 복[百福]이 빛처럼 모이시어 북극성(北極星)과 나란히 할 만큼 빛나시고, 만년(萬年) 동안 장수를 누리시어 종남산(終南山)과 같이 견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즐겁고 편안하게[娛樂] 명을 이어[延命] 다하시고, 먼 겁 이후에는 보살행을 실천하소서.
세자[儲君]께서는 재주와 덕이 뛰어나시어 황제의 훌륭하신 계책을 이으시고, 사랑을 많이 받으시면서 왕실을 도와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 때부터 영윤(英胤)하시어 아름다운 경사(慶事)가 날로 번창하시고, 높은 절개로 본지(本枝)111)에 오르시어 방진(芳塵)112)을 초좌(草座)113)에서 이으실 것입니다.
032_0720_a_14L當願 皇帝皇后百福凝華齊輝北極萬春表壽等固南罄娛樂於延齡踐薩云於遐劫儲君允茂綏紹 帝猷寵蕃惟宜亮王室襁褓英胤休祉日繁摽峻節於本枝嗣芳塵於草座
현장이 외람되게도 크나큰 운[丕運]을 만나 그림자를 금문(禁門)에 들여놓았습니다. 이것은 그 덕(德)이 경지에 올라서 귀(貴)하게 된 것이 아니고 총애를 받게 된 연유는 오직 폐하의 은혜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나라에 경사가 시작되고 정업(淨業)114)의 기초가 닦인 시절에 살고 있으니, 뛸 듯이 기쁜 마음은 이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입니다.
경하(慶賀)하는 지극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며 삼가 표문을 받들어 아뢰옵니다. 가벼이 천자의 위엄(威嚴)을 범하는 것 같아 엎드려 두려운 마음만 더합니다.”
032_0720_a_19L玄奘濫偶丕局影禁門貴匪德昇寵緣恩積幸屬國慶惟始淨業開基踊躍之懷塵粉無恨不勝喜賀之至謹奉表以 聞輕觸威嚴伏增戰越
032_0720_b_01L불광 세자가 탄생한 지 만 3일에 법사는 또 다음과 같이 표문을 올렸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은 듣기로는, 『주역(周易)』에서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일신(日新)의 뜻을 아름답게 여겼고, 『시경(詩經)』은 무궁한 자손[無疆子孫]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周) 나라가 복(福)을 누리며 긴 시간을 이어가고 한(漢) 나라가 수명이 오래 이어졌던 것은 바로 이러한 도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032_0720_a_23L佛光王生滿三日法師又進表曰沙門玄奘言奘聞『易』嘉日新之義『詩』羙無疆子孫所以周祚過期漢曆遐緬者斯道也
또 듣자하니, 용문(龍門)115)의 소용돌이치는 세찬 물결도 근원이 길어서 멀리 흘러가는 것이고, 계수(桂樹)116)가 우거지는 것도 뿌리가 깊어서 향기와 잎이 무성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운(皇運)은, 여러 성현(聖賢)께서 계속 이어오시던 규칙과 법[規矩]을 거듭하여 쌓으시고, 인의(仁義)를 심어서 모든 백성을 젖어들게 하신 지가 오래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두 황후께서는 대보(大寶)를 빛내시어 자손의 기틀을 세우셨으니, 진실로 뿌리가 깊고 근원이 장구(長久)하다고 하겠습니다.
032_0720_b_04L又聞龍門洄激資源長而流桂樹叢生藉根深而芳藹伏惟皇運累聖相承重規疊矩積植仁義浸潤黎元其來久也由是二后光膺大寶爲子孫基可謂根深源長矣
거기에다 폐하의 계책까지 받으셨으니 공업(功業)이 갈수록 창성해졌습니다. 순후하고 소박한 데로 돌아가시어 3황(皇)과 5제(帝)117)의 자취를 따르며, 예악(禮樂)을 제작하여 은(殷) 나라와 주(周) 나라의 궤도(軌度)를 달리셨습니다.
황제를 귀하게 섬기는 것을 믿지 않으시고 모든 백성을 구제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셨으니, 날도 채 밝기 전에 옷을 찾아 입으시고 해가 저물어도 저녁 드시는 것조차 잊으셨습니다.
그래서 폐하께서 단정히 앉아 계시자[端拱] 만 리 밖까지 맑아졌으니, 비록 주(周) 나라의 성왕(成王)이나 강왕(康王) 때처럼 융성한 시대라 하더라도 지금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032_0720_b_09L逮 陛下受圖功業逾盛淳反素邁三五之蹤製禮作樂逸殷周之軌不恃黃屋爲貴以濟兆庶爲未明求衣日昃忘食一人端拱里廓淸雖成康之隆未至於此
이렇기 때문에 상서로운 구름이 자욱하고 강과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으며, 천하는 풀이 바람 따라 눕듯이 순응하며 용향(龍鄕)은 교화(敎化)에 목욕하였습니다. 너무나 넓고도 높으신 덕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도(道)가 푸른 하늘[蒼穹]에 이르러 명신(明神)이 복을 내리시어, 2월의 길일(吉日)에 세자께서 탄생하셨습니다.
032_0720_b_13L是故卿雲紛郁江海無波日域遵風龍鄕沐化蕩蕩乎巍巍乎難得而備言矣旣而道格穹蒼明神降福令月嘉晨皇子載誕
그리하여 황실의 가지[天枝]를 무성하게 뻗고 옥(玉) 같은 꽃망울은 더욱 넓게 퍼지게 되었으니, 온 나라의 백성들이 기뻐하며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현장에게 있어서는 더욱 특별한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 마음[恒情]이 어찌 성후(聖后)의 평안만을 기뻐하는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여래(如來)를 이으실 분이 나심을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032_0720_b_17L天枝廣茂瓊萼增敷率土懷生莫不慶賴在於玄奘特百恒情豈直喜聖后之平安實亦欣如來之有嗣
엎드려 원하오니, 부디 앞서 칙서를 내려 윤허하셨던 약속을 어기지 마시고 세자의 출가를 허락하시어, 인왕(人王)의 자손에서 법왕(法王)의 아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법복(法服)을 입고 법명(法名)을 짓게 하시어, 삼보에 귀의[三歸] 함으로써 승려의 반열에 서게 하여 주십시오. 불교를 융성하게 이으시고 현풍(玄風)을 밝게 전파하여, 다시 선림(禪林)을 활짝 꽃피우시어 각원(覺苑)118)을 거듭 빛내게 하십시오.
032_0720_b_20L伏願不違前卽聽出家移人王之胤爲法王之披著法服制立法名授以三歸於僧數紹隆像化闡播玄風再秀禪重暉覺苑
032_0720_c_01L정안(淨眼)의 왕성하던 발자취를 따르고 월개(月蓋)119) 장자의 높은 발자취를 밟으시어, 2종(種)120)의 속박을 끊고 무등(無等)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색신(色身)의 미묘함은 저 산왕(山王)에 비유되고 세상을 비추는 광명(光明)의 장엄함은 일월(日月)보다 낫게 하십시오.
032_0720_c_01L追淨眼之茂迹踐月蓋之高蹤斷二種纏成無等覺色身微譬彼山王焰網莊嚴過於日月
세자께서 그렇게 되시면 자비의 구름[慈雲]은 대천(大千) 세계의 경계를 뒤덮고 지혜의 횃불[慧炬]은 백억(百億) 항하사의 주(洲)에서 드날리게 될 것입니다. 법고(法鼓)를 울려 천마(天魔)를 꺾고 승번(勝幡)을 휘날려 외도(外道)를 부수게 될 것이며, 흐르는 물줄기[沈流]를 뒤집히는 바다[倒海]까지 이으시고 횃불을 밝혀[燎火] 사산(邪山)을 없애 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번뇌의 깊은 물을 말리고 무명(無明)의 크나큰 껍질을 부수어, 천인사(天人師)121)가 되시고 조어사(調御士)가 되실 것입니다.
032_0720_c_03L後蔭慈雲於大千之境揚慧炬於百億之洲振法鼓而挫天魔麾勝幡而摧外道接沈流於倒海撲燎火於邪竭煩惱之深河碎無明之巨㲉天人師作調御士
그리하여 오직 바라건대, 묘당의 선령[先廟先靈]께서는 자손의 복[孫祉]에 의뢰하여 피안(彼岸)에 오르시고, 황제와 황후께서는 아드님의 복[子福]으로 인하여 만년(萬年) 수명을 누리소서. 그렇게 길이 영묘한 계획[靈圖]을 갖고 항상 구역(九域)을 막아 주소서.
세자께서 능히 이와 같이 하셔야만 비로소 큰 효도[大孝]라 일컬을 수 있으며 부모를 영화롭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석가(釋迦)께서 나라를 버리고 보리(菩提)에 정진하신 것은 다 이런 까닭에서입니다.
032_0720_c_08L唯願先廟先靈藉孫祉而升彼岸皇帝皇后因子福而享萬春永握靈常臨九域子能如此方名大孝曰榮親所以釋迦棄國而務菩提爲此也
어찌 세자를 동평왕[東平]122)처럼 자질구레한 선(善)이나 행하고 진사왕[陳思]123)처럼 그럭저럭 별 것 아닌 재주를 쓰면서, 날마다 잘한다느니 못한다느니 이치나 따지고 해마다 깊다느니 얕다느니 의논을 하도록 두시겠습니까?
삼가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발우를 받들면서, 앞으로 귀한 손님께서 오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리를 털고 길을 닦아 놓고 세자께서 출가하실[踰城] 행차를 기다리겠습니다.
경하하는 마음과 위로하는 마음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를 받들어서 아뢰옵니다. 경솔하게 폐하의 위신[宸威]을 범하게[犯觸] 되어 깊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032_0720_c_13L豈得以東平瑣瑣之善陳思庸庸之才竝日而論優劣同年而議深淺矣謹卽嚴衣捧鉢以望善來之拂座淸塗用佇逾城之駕不勝慶慰翹顒之至謹奉表以 聞輕觸宸威追深戰越
이렇게 해서 불광왕은 바로 삼귀(三歸)의 계를 받고 가사를 입게 되었다. 비록 보호하면서 양육하여야 하였지만, 불광왕의 처소 가까이에는 언제나 법사가 있었다.
032_0720_c_18L當卽受三歸服袈裟雖保養育所居常近於法師
12월 5일에 불광왕이 만 1개월이 되었을 때에, 황제는 조칙을 내려 불광왕을 위해서 7명을 득도(得度)케 하였다. 그리고 이어 법사에게 부탁하여 불광왕의 삭발을 하도록 하였다.
032_0720_c_19L十二月五滿月勅爲佛光王度七人仍請法師爲王剃髮
032_0721_a_01L이에 법사는 표를 올려 감사를 아뢰었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어제 폐하의 은혜로운 뜻[恩旨]을 받들었으니, 현장으로 하여금 불광왕을 위해 삭발하도록 하셨고 아울러 7명을 득도케 하셨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곧 왕의 번뇌를 없애는 것이고, 승려를 득도시킨 일은 곧 왕의 시위(侍衛)를 갖추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왕 파순(波旬)의 궁전을 진동시키고 정거천(淨居天)124)의 생각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032_0720_c_21L法師進表謝曰沙門玄奘言昨奉恩旨令玄奘爲佛光王剃幷勅度七人所剃之髮則王之煩惱落也所度之僧則王之侍衛具也是用震動波旬之殿踊躍淨居之懷
사홍서원[弘願]을 이미 널리 펴서 크나큰 복이 더욱 무성해졌으니, 이것이 어찌 비천한 소승의 손으로 하늘 같은 세자의 피부[天膚]에 잔재주를 부려서 모든 서인(庶人)들이 큰 경사에 입도(入道)하는 은혜를 입은 것이라 하겠습니까? 상하의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느라 희비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 보면, 보호하고 살피는 소중함은 처음에는 강보(襁褓)에 싸서 키우는데 있겠지만 해탈의 인(因)은 결국 삭발에서 비롯된다고 하겠습니다.
032_0721_a_02L弘願旣宣景福彌盛豈謂庸賤之手得效伎於天膚凡庶之人蒙入道於嘉會上下欣抃悲喜交集竊尋覆護之重在褓所先解脫之因落飾爲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와 황후께서는 도(道)를 형상 밖[象外]에서 모으셔서 복이 구중(區中)에 두루 적시게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광명은 묘문(妙門)을 열고 여기에서 덕의 근본을 닦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황계(皇階)에 하늘의 보우하심[天祐]을 간직하시고 옥좌(玉座)에 화목함을 이으시어, 백억(百億)의 천하에 임하시면서 천만세(千萬歲)의 기약을 다하십시오. 기특하게 뛰어나신 불광왕 세자[佛光奇子]께서 젖을 잘 드시도록 선신(善神)이 잘 다스리시고 제불(諸佛)께서 어루만져 주시고 있습니다. 영화롭고 슬기로운 모습을 더욱 더하여 화목하고 융성한 정사를 맡으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032_0721_a_07L伏惟皇帝皇后道凝象外福洽區所以光啓妙門聿修德本所願皇階納祐玉扆延和臨百億天下畢千萬歲期佛光奇子乳哺惟宜善神衛諸佛摩頂增華睿哲之姿允穆紹隆之寄
그리고 새로 득도한 승려들은 깊은 은택을 입었으니 마땅히 도업(道業)에 부지런하여 오로지 계행(戒行)에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칙을 내리시는 대로 따라서 마땅히 취초(取草)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격하는 지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문을 받들어 아뢰옵니다.”
032_0721_a_12L新度之僧荷澤旣深亦當翹勤道業專精戒行允副絲綸佇當取不勝感荷之至謹奉表以聞
그날 법사는 또 불광왕의 탄생 만 1개월을 거듭 축하하며 아울러 법복 등을 진상하여 올리고[進獻]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바람을 탄 매[迅羽]125)는 하루에도 몇 번 씩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달빛[月]을 받은 밝은 거울[明璣]은 보름이 지나면 저절로 둥글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물(靈物)의 자질을 타고나서 빛을 천중(天中)에 밝히는 자는 진실로 나중에는 그 아름다움을 발하여 그 미(美)를 새롭게 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032_0721_a_14L其日法師又重慶佛光王滿月幷進法服等奏曰沙門玄奘言竊聞搏風迅羽累日而沖空瀉月明璣逾旬而就滿是知稟靈物表亮釆天中者固以後發其姝惟新厥美者矣
생각하건대 불광왕께서는 최고의 선[上善]의 자질로서 상서로움이 서리었기에, 중화(中和)를 열어 덕을 기르실 것입니다. 불광왕께서 은미한 동산[微園]에 탄생하신 그 때부터 천사(天祠)가 움직여 돌보시니, 성스러운 기운[睿氣]은 마음을 맑게 하여 자고 일어나는 일에도 하늘의 보우함[天祐]이 있고 옥안(玉顔)은 빼어나시어 아침저녁으로 그 빛을 더하십니다.
032_0721_a_19L惟佛光王資上善以締祥闡中和而育德自微園降誕天祠動瞻睿氣淸衿寢興納祐玉顏秀表晨夕增華
032_0721_b_01L이는 황제와 황후께서 혜일(慧日)을 몸에 간직하시어 법류(法流)로써 생각을 깨끗이 닦으셨기 때문입니다. 두 분 폐하께서 이어받아 융성하게 일으키는 일을 반석(盤石)처럼 튼튼히 하시고 삭발하는 모습을 천인(天人)에게 보이지 않으셨다면, 그 누가 이 강보의 옷을 입으신 세자[褓衣]께 복을 빌어서 어떻게 젖을 드시는 일이 편안하여 재앙도 없고 재해(災害)도 없이 능히 높고 높게 하겠습니까?
032_0721_a_22L自非皇帝皇后慧日在躬法流濯想寄紹隆於磐石啓落飾於天人其孰能福此褓衣安茲乳無災無害克岐克嶷者哉
이제 혼백이 처음으로 두루 비추시니 만월(滿月)처럼 자태가 왕성하시며, 명협(蓂莢)126)의 가지는 다시 자라나서 연꽃이 어여쁘고 무성하게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자전(慈殿)127)께서는 마음이 안심이 되시고 백성들도 모두 기뻐하며, 7중의 불제자[七衆]들은 믿음으로 돌아가서 4문(門)128)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032_0721_b_02L今魄照初環滿月之姿盛矣蓂枝再長如蓮之目蒨兮所以紫殿慰懷黔首胥悅七衆歸怙四門佇鑑
그러니 구태여 날마다 뒷사람이 말해주기[後言] 찾고 학가(鶴駕)를 타고서 잘 다스려주기[善馭]만을 기다릴 것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현장은 다행히 은총을 입어서 폐하께서 그늘을 드리워 주시는 보호를 받았습니다. 사제(師弟)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은 감히 바랄 수도 없겠지만, 같은 승려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은 실로 간절하게 품고 있습니다.
032_0721_b_05L豈唯日索後言鶴驂待馭而已玄奘幸蒙恩寵許垂蔭庇師弟之望非所庶幾同梵之情實切懷抱
그래서 감히 『금자반야심경(金字般若心經)』 1권을 함(函) 속에 넣고, 또 『보은경변(報恩經變)』 1부, 그리고 가사 법복(袈裟法服) 1구와 향로(香爐), 보자(寶字), 향안(香案), 조병(藻缾), 경가(經架), 수주(數珠), 석장(錫杖), 조두(藻豆) 등을 각각 하나씩 진상하여 도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실 수 있도록 하면서 저의 기쁨을 표하려고 합니다.
032_0721_b_08L輒敢進金字『般若心經』一卷幷函『報恩經變』一部袈裟法服一香爐寶字香案藻缾經架數珠藻豆合各一以充道具以表私歡
원하건대 세자 어루만지기[載弄]를 반장(半璋)에 버금가게 하시고 삿된 것을 물리치시기를 봉시(蓬矢)129)에 대신하시어, 저 선신(善神)으로 하여금 기뻐서 뛰게 하시고 큰 서원(誓願)이 이로 인하여 견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경솔하게 함부로 받들어 구하였으니 진정 깊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032_0721_b_11L所冀簉載弄於半璋代辟邪於蓬矢俾夫善神見而踊躍弘誓因以堅固輕用干奉寔深悚惕
엎드려 바라건대 황제와 황후께서는 더욱 존귀해지시고 모든 별[合耀]들과 더불어 함께 밝아지시어, 온 백성들이 기쁜 마음을 맺게 하시고 만년 내내 봄날[萬春]을 이어 누리게 하소서.
세자[少海]130)께서는 더욱 맑고 밝게 닦으시어 조비(曹丕)와 조소(曹釗)의 영웅호걸의 기상을 취하여 그들을 뛰어 넘으시고, 번성하는 총애[寵蕃]를 받으시어 아름다움을 떨치시어 뛰어난 간평(間平)131)의 수레를 몰아서 달려 나가십시오.
032_0721_b_14L伏願皇帝皇后尊邁拱辰明兼合耀結歡心於兆庶享延齡於萬春少海澄輝掩丕釗而取儁寵蕃振美轥閒平以載馳
바라는 것은 불광왕께서는, 천 분 부처님[千佛]이 정수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백 가지 복[百福]이 몸에 모여서, 덕음(德音)132)이 날로 무르익어 일찍부터 큰 상(相)을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문을 받들어 아뢰옵니다.”
032_0721_b_17L所願佛光王千佛摩頂百福凝軀德音日茂曾規丕相不勝感荷奉表以聞
현경 2년(657) 봄 2월에 황제의 행차[車駕]가 낙양궁으로 행차했는데, 법사도 역시 배종(陪從)하였다. 법사와 함께 번역승 5명과 제자 각 1명도 따라갔는데, 그 경비는 모두 공급되었다.
불광왕은 거가의 앞에서 출발했는데, 법사는 왕자와 동행하였고 다른 승려들은 뒤에서 따라갔다. 도착한 다음에 적취궁(積翠宮)에서 묵게 되었다.
032_0721_b_19L二年春二月駕幸洛陽宮法師亦陪從翻經僧五人弟子各一人事事公給佛光王駕前而發法師與王子同去餘僧居後旣到安置積翠宮
032_0721_c_01L 여름 4월에 황제는 명덕궁(明德宮)에서 피서를 했는데 법사 역시 따라가서 비화전(飛花殿)에서 묵었다.
명덕궁 남쪽에는 조간(皂澗)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북쪽은 낙수(洛水) 강 언덕에 닿아 있는데, 이곳은 수(隋) 나라의 현인궁(顯仁宮)이었다.
032_0721_b_23L夏四月車駕避暑於明德宮法師又亦陪從安置飛花殿其宮南接皁㵎北跨洛則隋之顯仁宮也
5월에 법사에게 칙령을 내려 적취궁으로 돌아와서 번역하도록 하였다. 이때 법사는 황제의 뜻을 받들고 나아가 감사하는 표문을 올렸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엎드려 은혜로운 명령[恩旨]을 받자오니, 적취궁에서 경전을 번역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러러 크나큰 은혜를 입으니 마음 깊이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엎드려 생각하건대, 멀리 떠날 것을 생각하니 가련한 마음이 더욱 더할 뿐입니다.
032_0721_c_03L五月勅法師還於積翠宮翻譯法師旣奉帝旨進表辭曰沙門玄奘言伏蒙恩旨許令積翠宮翻經仰佩優渥情深喜戴伏念違離旋增憫然
현장은 공(功)은 훈부(勳府)에 두기에 미약하고 도(道)는 덕과(德科)에 못 미치는데도, 오랫동안 영화로운 표장[榮章]을 문란케 하면서 일찍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감당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물가에 다다르면 두려움을 알게 되었고 가파른 벼랑에 임하여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032_0721_c_07L玄奘功微勳府道謝德科而久紊榮章鎭荷曾覆循涯知臨谷匪危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와 황후께옵서는 성철(聖哲)의 거대한 뜻을 지니시고 인자(仁慈)로써 훈화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 가지 부류[萬類]로 하여금 만족을 얻게 하시고 한 가지 물건[一物]까지도 편안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미 가까이는 난제(蘭除)를 막고 천자의 방울[鑾]을 들어서 슬픔을 막도록 하셨으며, 비로소 자령(茨嶺)을 바라보며 많은 즐거움[多豫]을 생각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032_0721_c_09L伏惟皇帝皇后聖哲含仁慈亭育故使萬類取足一物獲旣而近隔蘭除聽揚鑾而悲結甫瞻茨嶺想多豫而欣然
엎드려 바라옵건대 옥우(玉宇)는 화평(和平)을 이어서 선도(仙桃)의 수명을 누리시고, 감천(甘泉)의 청서(淸署)에 오르시어 그 옛날 요수(瑤水)133)에서와 같은 아름다운 놀이를 즐기소서.
따뜻한 나무[溫樹]로 가을을 맞이하고 찬바람을 여름에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수레[歸軒]를 지맥(砥陌)에서 기다리고 아득한 석장[幽錫]을 교림(喬林)에서 삼가시어, 만년토록 봄날[萬春]을 경하하고 구서(九逝)를 기꺼이 따르기를 바랍니다.
032_0721_c_12L伏願玉宇延和仙桃薦壽邁甘泉之淸暑等瑤水之佳遊所冀溫樹迎秋涼飆造夏候歸軒於砥陌儼幽錫於喬林稱慶萬春甘從九逝
지극하게 그리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表)를 붙여 받들어 감사하며 문안 올립니다.
방자하고 외람됨[荒越]134)에 얼굴 둘 바를 모르겠기에 섬뜩하였다가 화끈하였다가[氷火] 생각이 교차합니다.”
032_0721_c_16L不勝感戀之極謹附表奉辭以聞荒越在顏冰火交慮
법사가 장안에 있을 때에 먼저 『발지론(發智論)』135) 30권을 번역하였고,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136)은 번역하기 시작했으나 완료하지는 못했다. 이 무렵 황제는 조칙을 내려 법사에게 이렇게 알렸다.
“법사가 번역하고자 하는 경론(經論)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없는 것을 먼저 번역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하도록 하라.”
032_0721_c_17L法師在京之日先翻『發智論』三十卷及『大毘婆沙』未了至是有 勅報法師曰所欲翻經無者先翻有者在後
032_0722_a_01L이에 법사는 다음과 같이 표를 올렸다.
“가만히 듣자오니 황제의 면류(冕旒)는 용렬한 속세의 중생이라면 누구나 다 먼저 가지려고[前修] 다투고, 문장의 저술[述作]은 정신을 다하여야 반드시 후에까지 통한다[睿后]고 하였습니다.
황제께서는 만물(萬物)을 만드시고 깊은 계책을 멀리 드날리시어, 왕성(王城)으로 제후의 땅[候甸]을 덮고 패엽(貝葉)의 경전으로 우릉(羽陵)137)을 빛내셨습니다.
곁에다 번역하는 신료[譯寮]를 두시어 번성의 서장[鴻序]을 이으셨고, 천고(千古)를 비추시어 그 광채를 만세토록[萬葉]138) 흘리셨습니다.
032_0721_c_20L師進表曰竊聞冕旒庸俗咸競前修述作窮神必歸 睿后皇帝造物猷遠暢掩王城於侯甸光貝葉於羽傍啓譯寮降緝鴻序騰照千古輝萬葉
폐하께서는 대업(大業)을 이어 받으시어 심원한 운치[遠韻]를 밝게 펴시었으며, 신묘한 등용[神用]으로 날로 새롭게 하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시기[賞鑑]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장은 외람되이 하늘이 만들어 주신[天造]139) 은혜를 입었고 삼가 영명하신 조칙[明詔]을 받들었으니, 매번 이 용렬한 몸을 위로하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은혜에 항상 깊은 두려움에 숨을 죽이곤 하였습니다.
032_0722_a_02L陛下纂承丕業光敷遠韻神用日新賞鑑無怠玄奘濫沐天造肅承明每撫庸躬恒深悚息
지난달에 조칙을 받들어 보니, 경론(經論)을 번역할 때에 이 땅에 없는 것은 마땅히 먼저 번역할 것이고,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뒤에 번역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발지(發智)』와 『비바사론(毘婆沙論)』 2백 권을 볼 것 같으면, 우리나라에 전부터 있었던 것은 그 중의 반뿐입니다. 단지 1백 권만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도 많이 난삽합니다.
032_0722_a_05L去月日奉所翻經論在此無者宜先翻舊有者在後翻但『發智毘婆沙論』有二百此土先唯有半但有百餘卷而文多舛雜
그래서 지금 다시 정돈하여 번역을 했는데, 지난 가을 이래로 이미 번역한 것이 70여 권이 되며 아직 130여 권은 번역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논은 학자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부디 번역을 마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머지 경론 가운데에서도 상세한 정도와 생략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나 오류가 심한 것도 역시 다시 번역하여 폐하의 성스러운 말씀[聖述]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이에 황제는 허락하였다.
032_0722_a_09L今更整頓翻之去秋以來已翻得七十餘卷尚有百三十卷未翻此『論』於學者甚要望聽翻了餘經論有詳略不同及尤舛誤者亦望隨翻以副聖述帝許焉
이 무렵 법사는 잠시 경락(京洛)을 떠났는데, 황제를 호종(扈從)하는 일 덕분에 잠시 향리에 돌아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 살던 집에도 가보고 친구들도 찾아보았으나 거의 모두 죽고 없었다. 오직 누님 한 분이 남아 있었는데 영주(瀛州)140)의 장씨(張氏)에게 시집가 있었으므로 사람을 보내 맞아 와서 서로 쳐다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누님에게 부모의 묘지가 있는 곳을 물어서 직접 찾아가 성묘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되어 묘가 황폐했으므로, 이에 좋은 자리[勝地]를 찾아서 관곽(棺槨)을 제대로 갖추어 개장(改葬)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비록 그런 마음을 갖고는 있었지만 감히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
032_0722_a_14L法師少離京洛因茲扈蹔得還鄕遊覽舊廛問訪親故喪將盡唯有姊一人適瀛州張氏迎相見悲喜問姊父母墳隴所在自掃謁爲歲久荒頹乃更詳勝地具棺椁而改葬雖有此心未敢專志
법사는 이에 표를 올려 다음과 같이 청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은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기에[不天]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으며[荼蓼]141), 게다가 또 수(隋) 나라의 난리를 만나는 바람에 부랴부랴 시신을 묻은 뒤 세월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이미 40여 년이 지나니 분묘가 무너지고 헐어서 거의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하니 영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032_0722_a_19L法師乃進表請曰沙門玄奘言玄奘不天夙鍾荼蓼兼復時逢隋亂殯掩倉卒日月不居已經四十餘載墳壟頹毀殆將滅夷追惟平昔情不自寧
032_0722_b_01L그래서 연로한 누님과 둘이서 유구(遺柩)를 거두어서 이전의 협소한 자리에서 서원(西原)으로 옮겨 개장(改葬)하여, 하늘에 보답하여 작으나마 망극한 마음을 펴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제 현장에게 삼양일(三兩日)에 검교(檢校)142)에 나가라고 분부하신 칙령을 받았습니다.
현장에게는 다른 형제가 없고 오직 연로한 누님과 둘뿐입니다. 그러니 먼 길을 떠나는데 이달 21일까지 도착하는 일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032_0722_a_23L謹與老姊二人收捧遺柩去彼狹陋改葬西原用荅昊天微申罔極昨日蒙 勅放玄奘出三兩日撿挍但玄奘更無兄弟唯老姊二人卜遠有期用此月二十一日安厝
지금 장사지내는 일도 쓸쓸하고 적막하여 아직 시작도 못 하였으니, 내려 주신 삼양일(三兩日)의 기한 안에는 다 마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천은(天恩)을 허락하시어 현장이 장사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십시오. 또 바라문의 상객(上客)143)이 지금 저와 함께 따라다니는데 너무 경솔하게 하면 비웃음을 살까 두렵기도 합니다. 촉박한 시간에 대한 극심한 근심을 견디지 못하여 삼가 표문을 올려 아뢰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은 덮고 구름은 감싸서 간절한 고청(孤請)을 어여삐 여겨 주십시오.”
032_0722_b_05L今觀葬事尚寥落未辦所賜三兩日恐不周帀乞 天恩聽玄奘葬事了還又婆羅門上客今相隨逐過爲率略恐將嗤不任纏迫憂慴之至謹附表以伏乞 天覆雲迴曲憐孤請
황제는 이 표(表)를 보고 법사가 청한 대로 윤허하고는 유사(有司)에게 칙명을 내려 법사가 개장(改葬)하는 데 쓰이는 물자를 공급하도록 하였다. 법사는 이 특별한 은택을 입고는 다시 다음과 같이 계사(啓辭)를 올렸다.
032_0722_b_10L帝覽表允其所請仍勅所司其法師營葬所須竝宜公給法師旣荷殊又進啓謝曰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은 재앙이 깊고 허물이 쌓여서, 영명한 신령[明靈]에게 벌을 받아 운명하지 못한 채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재는 회율(灰律)144)은 빠르게 바뀌어, 찼다가 기우는 것[盈缺]이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분묘는 허물어지고 풀과 가시나무가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택조(宅兆)145)를 바꾸려고 생각한 지 벌써 해가 지났으나 멀고 관산(關山)146)이 막혀 있어서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032_0722_b_13L沙門玄奘啓玄奘殃深舋積降罰明靈不能殞亡偸存今但灰律驟改盈缺匪居墳壟淪頹草棘荒蔓思易宅兆彌歷歲年直爲遠隔關山不能果遂
다행히 폐하의 난가(鑾駕)를 배종(陪從)하게 되어 고향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진실로 옛날부터 갖고 있던 뜻을 모아서 이에 개장(改葬)을 하기로 하고 필요한 것을 진설(陳設)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황제와 황후께서 하늘 같은 자비[天慈]를 내리시어 영좌(營佐)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 어찌 해와 달의 밝은 빛이 기와나 자갈까지도 두루 비치고 구름과 비의 은택이 쑥 같은 작은 풀까지도 반드시 적셔주는 것을 말함이 아니겠습니까? 은혜에 감격하여 두려움과 기쁨이 함께 몰려듭니다. 존망함패(存亡銜佩)의 지극함을 감당하지 못해 삼가 계(啓)를 올려 감사하며 아뢰옵니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나 현장의 능력이 미약하여 능히 다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032_0722_b_17L幸因陪從鑾駕得屆故鄕允會宿心遂茲改厝陳設所須復蒙皇帝皇后曲降天慈賜遣營佐不謂日月之光在瓦礫而猶照雲雨之澤雖蓬艾而必霑感戴屛營喜鯁兼集不任存亡銜佩之至謹附啓謝聞重人微不能宣盡
032_0722_c_01L법사는 이미 허락하는 칙명을 받았기 때문에 마침내 선친의 묘를 개장하였다. 그 장례의 의식에 드는 비용은 모두 왕실(王室)에서 지급되었다.
이때 낙양 부근의 도속(道俗)들로서 와서 참가한 이가 만여 명이나 되었다.
032_0722_c_01L法師旣蒙勅許遂改葬焉其營送威儀竝公家資給時洛下道俗赴者萬餘人
그런데 후위(後魏)의 효문황제(孝文皇帝)는 대군(岱郡)147)에서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기고, 소실산(少室山) 북쪽 기슭에 소림사(少林寺)를 건립하였다.
032_0722_c_03L後魏孝文皇帝自岱徙都洛陽於少室山北造少林伽藍
지세의 높고 낮음에 따라 소림상사(少林上寺)와 소림하사(少林下寺)라고 불렀는데, 모두 12원(院)이 있었다. 동쪽은 숭악(嵩岳)에 의지했고 남쪽은 작은 봉우리에 접해 있으며 북쪽은 높은 고개에 의지해 있었으며, 경내에는 세 줄기의 냇물이 흐르고 있다. 암석이 높게 솟아 있고 쏟아져 내리는 샘물[飛泉]148)에는 나무 그림자가 비치는데, 송라(松蘿)와 대나무와 칡나무가 엉겨 있다. 계수나무와 측백나무와 소태나무와 가래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루어, 그야말로 웅대하고 아름답고 맑고 고요하여 실로 중국 안에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032_0722_c_05L因地勢之高卑有上下方之稱都一十二院東據嵩嶽南面少峯北依高嶺兼帶三川聳石巉巖飛泉縈映松蘿共篔簹交葛柏與杞梓蕭森壯婉淸虛實域中之佳所
그 중에 서대(西臺)는 가장 수려한 곳으로, 일찍이 보리류지(菩提流支)149)가 경을 번역했던 곳이다. 또 이곳은 발타선사(跋陀禪師)150)가 참선[宴坐]151)하던 곳이기도 한데, 현재 유신(遺身)의 탑이 남아 있다.
수(隋) 나라 대업(大業) 말년에는 도적떼들이 불을 질렀으나 타지 않았기에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보고 참으로 신기하게 여겼다.
032_0722_c_10L其西臺最爲秀麗卽菩提流支譯經處又是跋陀禪師宴坐之所有遺身之塔大業之末群賊以火焚不然遠近珍異
소림사의 서북쪽 산 아래, 구씨현(緱氏縣)152) 동남쪽의 봉황곡진촌(鳳凰谷陳村)은 진보(陳堡)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이 바로 법사의 출생지이다.
그 해 가을 9월 20일에 법사는 소림사로 들어가서 번역하기를 청하며 다음과 같이 표를 올렸다.
032_0722_c_13L寺西北嶺下緱氏縣之東南鳳凰谷陳村亦名陳堡法師之生地也秋九月二十日法師請入少林寺翻譯表曰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이 듣기로는 보리(菩提)의 길은 멀어서 이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자량(資糧)이 있어야 하고, 생사(生死)의 강은 깊어서 이곳을 건너는 자는 반드시 배나 뗏목에 의지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량이라는 것은 바로 3학(學)153)과 3지(智)154)의 묘행(妙行)으로서 곡식 종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배나 뗏목이라는 것도 8인(忍) 8관(觀)의 정업(淨業)으로서 방주(方舟)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는 이것을 갖추었기에 피안(彼岸)에 오르고, 범부는 이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생사(生死)에 빠집니다.
032_0722_c_17L沙門玄奘言玄奘聞菩提路遠趣之者必假資糧生死河深渡之者須憑舩筏資糧者三學三智之妙行非宿舂之類也舩筏者八忍八觀之淨業非方舟之徒也是以諸佛具而升彼岸凡夫闕而沈生死
032_0723_a_01L이것으로 말미암아 망망한 삼계(界)에서 7루(漏)155)의 바다를 표류하며, 4생(生)156)으로 끝도 없이 10전(纏)157)의 물결에 빠지게 됩니다. 물결 따라 떠돌고 안개에 휘몰리면서 마음은 미혹되고 뜻은 몽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겁석(劫石)158)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위태로움이 없고 성안 가득한 겨자씨가 다 없어지도록[芥城] 갈수록 튼튼해질 텐데 3거(車)에 올라 불타는 집[火宅]을 빠져 나와서 8정(正)을 타고 보방(寶坊)159)에 나아갈 줄을 일찍이 알지 못했으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032_0722_c_22L由是茫茫三界俱漂七漏之河浩浩四生咸溺十纏之浪莫不波轉煙迴心迷意醉窮劫石而靡殆盡芥城而彌固曾不知駕三車而出火宅乘八正而適寶實可悲哉
어찌 가을 기운(氣運)이 돈다고 그저 탄식만 더하겠습니까? 그것이 어찌 공자[孔父]160)만의 한탄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찍부터 음식을 먹더라도 저녁밥은 먹지 않았으며 잠잘 때에도 놀라곤 하였던 것입니다.
032_0723_a_04L豈直秋之爲氣良增嘆寧惟孔父之情所以未嘗不臨食輟飡當寐而驚者也
현장은 늘 이 몸이 뭇 인연[衆緣]에 거짓으로 영합[假合]161)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생각 생각이 다 무상(無常)하였습니다. 비록 언덕 기슭의 나무나 우물[岸樹井]이라 한들 위태롭고 보잘것없기로는 이것과 견줄 수가 없고, 건달바가 공중에 지어놓은 건달바성[乾城]162)의 물거품도 견고하지 못함으로는 이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침저녁의 시간[朝夕]도 한정된 것이라 영원히 유구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032_0723_a_06L玄奘每惟此身衆緣假合念念無常雖岸樹井藤不足以儔危脆乾城水沫無以譬其不所以朝夕是期無望長久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현장도 어언 60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빠른 세월을 생각하면 이생의 끝[生涯]을 가히 알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또 젊어서는 법을 구하려고 스승과 선우[師友]를 찾으며, 내 나라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멀고 먼 길을 다니느라 체력이 쇠진하였던 차에, 근년에 들어 더욱 쇠약해졌습니다. 그늘[陰景]을 돌아 볼 수 있는 세월이 또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아직 자량을 충분히 쌓아놓지도 못했는데 앞길은 점점 촉박해지니, 그저 날마다 슬퍼하고 탄식하는 마음을 이 필묵으로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032_0723_a_09L而歲月如流六十之年颯焉已至念茲遄速則生涯可知加復少因求法尋訪師自他邦國無處不經塗路遐遙力疲竭頃年已來更增衰弱顧陰視能復幾何旣資糧未充前塗漸促無日不以此傷嗟筆墨陳之不能盡
그러나 저는 미약한 이생에 다행히도 영명하신 성군[明聖]을 만났습니다. 선조(先朝) 때에는 차례에 닿지 않는 커다란 은택을 입었고 또 폐하께서는 분에 넘치는 은혜를 베푸셨기에, 그 자애(慈愛)에 젖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폐하께서 보살펴 주신 덕택에 이름을 높여 가치를 더하고 명성을 얻어 소문을 드날리기에 이르니, 날개가 없이도 날아오르고 앉아서도 하늘을 웅비(雄飛)하면서, 4사(事)의 공양을 받는 것도 다른 도반[同輩]들보다 훨씬 넘치는 영화를 누렸습니다. 이것은 옛 사람들에게서 찾아보아도 그런 예가 아직 없었던 일입니다.
032_0723_a_16L然輕生多幸屬逢明聖蒙先朝不次之澤荷陛下非分之沐浴隆慈歲月久矣至於增名益發譽騰聲無翼而飛坐凌霄漢四事之供超倫輩之華求之古人所未有也
032_0723_b_01L그런데 현장이 무슨 덕과 무슨 공이 있기에 여기에 이르렀겠습니까? 이는 모두 폐하께서 드리운 은혜의 파도[天波]가 널리 윤택하게 하시고 일월(日月) 같은 은택이 속속들이 임하여[曲臨], 마침내 연석(燕石)163)을 보배로 만드시고 재주 없는 사람[駑駘]을 귀하게 취해 주신 덕분입니다. 스스로를 꾹 누르며 깊이 반성하고 있지만 오직 두려움만 깊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또 악(惡)이 가득 차는 것을 해롭게 여기는 것은 옛 철인[前哲]들의 바른 뜻[雅旨]이고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을 알게 하는 것은 모든 부처들이 경계하는 말씀[誡言]입니다.
032_0723_a_21L玄奘何德何功以至於此皆是天波廣潤日月曲臨遂使燕石爲珍駑駘取貴撫躬內省唯深慚恧且害盈惡滿寔前哲之雅旨少欲知足諸佛之誠言
현장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면 재주[藝業]가 공허하고 이름과 행실은 취할 것이 없으므로, 폐하의 사랑[天慈]과 폐하의 은택[聖澤]을 이렇게 오래 받는 것은 너무나 외람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해골이나마 이 몸의 목숨이 남아 있는 동안에 산림(山林)에 들어가 살면서 예송(禮誦)하고 경행(經行)하면서 보살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를 바랍니다.
032_0723_b_02L玄奘自揆藝業空虛行無取天慈聖澤無宜久冒望乞骸骨命山林禮誦經行以答提獎
폐하께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존귀함으로 법왕(法王)의 교화를 펴시어, 서역(西域)에서 얻어온 경본(經本)을 번역까지 하도록 하셨습니다. 달리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현장이 외람되게도 이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032_0723_b_05L又蒙陛下以輪王之尊布法王之化西域所得經本竝令翻譯玄奘猥承人乏濫當斯任
저는 폐하의 뜻[天旨]을 받들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번역하여 지금까지 이미 6백여 권을 번역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삼장(三藏)과 4함(含)164)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경전이며[宗要] 대승과 소승, 2승(乘)165)의 추축(樞軸)이 되는 것으로서, 범인과 성인의 행위(行位)의 자리[林藪]이고 팔만법문(八萬法門)의 바다 같은 은택[海澤]입니다.
032_0723_b_08L旣奉天旨夙夜匪寧今已翻出六百餘卷皆三藏四含之宗要小二乘之樞凡聖行位之林藪八萬法門之海
서역(西域)을 일컫고 노래함으로써 나라를 진압하는[鎭國鎭方] 법식으로 삼으며, 필요한 문장의 뜻[文義]은 모두 파헤쳐서 밝히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등림(鄧林)에서 나무를 택할 때에 작고 큰 것을 구하는 대로 따르고, 해포(海浦)에서 보배를 거두어들일 때에 모나거나 둥근 것을 마음대로 취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배우는 자의 종지(宗旨)도 이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032_0723_b_12L西域稱詠以爲鎭國鎭方之典須文義無披不得譬猶擇木鄧林求小大收珍海浦任取方圓學者之斯爲髣髴
현장은 이것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으나 정성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만이라도 보답이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번뇌를 끊고 항복 받으려면 반드시 정(定)과 혜(慧)가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이니,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없으면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경론을 연구하고 음미하는 것은 혜학(慧學)이며 산림(山林)에 의지하여 좌선[宴坐]하는 것은 정학(定學)입니다.
032_0723_b_15L玄奘用此奉報國恩不能盡雖然亦冀萬分之一也但斷伏煩惱必定慧相資如車二輪闕一不可至如硏味經論慧學也依林宴定學也
현장은 젊었을 때부터 교의(敎義)에 전념하여 정진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얻은 것이 있지만, 그러나 4선(禪)166) 9정(定)에 대해서는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은 생각을 선문(禪門)에 의탁하고 마음을 정수(定水)에 맑게 하여, 원숭이처럼 떠들며 돌아다니는 정(情)을 제압하고 분주히 달리는 마음을 묶어두는 일입니다. 만약 자취를 거두어 산중(山中)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일입니다.
032_0723_b_19L玄奘少來頗得專精教義唯於四禪九定未暇安心今願託慮禪門澄心定水制情猿之逸躁縶意象之奔馳若不斂迹山中不可成就
032_0723_c_01L제가 듣기로는 이 주(州)의 숭산에 있는 소실(少室)은 가파른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봉우리와 냇물은 기이한 절경이 많다고 합니다. 풍운(風雲)을 머금고 인지(仁智)를 감싸 안았으며, 과일과 약초가 풍성하고 쑥풀이 우거져 청허(淸虛)하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해내(海內)의 명산이고 역중(域中)의 신악(神岳)이라 할 만합니다.
그 안에 다시 소림사(少林寺)와 한거사(閒居寺) 등이 있는데, 모두 바위 골짜기에 걸쳐 있고 숲과 냇물이 둘러싸고 있어서 불사(佛事)가 존엄하고 방우(房宇)가 그윽하고 한가하다고 합니다.
032_0723_b_22L竊承此州嵩高少室嶺嶂重疊峯㵎多奇含孕風雲包蘊仁智果藥豐茂蘿薜淸虛實海內之名山域中之神其閒復有少林伽藍閑居寺等跨枕巖壑縈帶林泉佛事尊嚴房宇閑邃
이곳은 후위(後魏) 때의 삼장(三藏) 보리류지가 경전을 번역하던 곳입니다. 참으로 돌아가 의지하며 선관(禪觀)167)을 닦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또 한나라 때의 소광과 소수 같은[兩疎]168) 조정에서 벼슬하는 선비[朝士]도 오히려 바다로 돌아가 영화를 사양할 줄 알았고, 소부(巢父)와 허유(許由)169)같은 속인도 오히려 참[眞]에 깃들어서 마음 닦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현장은 출가하여 법을 위해 번역하느라 도시[闤中]에 머물면서 청풍(淸風)으로 사람을 격려하는 자가 아니옵니까? 이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더합니다.
032_0723_c_05L卽後魏三藏菩提留支譯經之處也實可依歸以修禪觀又兩疏朝士尚解歸海辭榮巢許俗人猶知拪眞蘊素況玄奘出家爲法翻滯闤中淸風激人念之增愧者也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밝음은 칠요(七曜)를 뛰어넘으시고 그 비춤은 9유(幽)170)를 다하셨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이 우직한 정성을 헤아리시어 특별히 청허(聽許)하심으로써 뭇 속세[衆俗]에서의 시끄러운 번뇌를 끊고 인간 세상에서 그림자와 자취를 감추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사슴 무리와 짝하고 학을 친구처럼 따르며, 한 조각 돌덩이 위에 육신을 깃들여서 한 나무 그늘에 그림자를 감추게 하여 주십시오. 원숭이처럼 간사한 마음을 잘 지켜 살피고 실상(實相)을 관조하여 법으로 삼아서, 4마(魔)와 9결(結) 같은 적이 천착하지 못하게 하고 5인(忍)171)과 10행(行)172)의 마음이 서로 따르고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032_0723_c_09L伏惟陛下明踰七曜照極九幽伏乞亮此愚特垂聽許使得絕囂塵於衆俗影迹於人間陪麋鹿之群隨鳧鶴之拪身片石之上庇影一樹之陰察心猿觀法實相令四魔九結之賊無所穿窬五忍十行之心相從引發
점차 보리(菩提)에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피안(彼岸)에 이르는 좋은 인[良因]을 삼음으로써, 밖으로는 항제 폐하의 풍교[皇風]에 누가 되지 않게 하고 안으로는 행업(行業)을 더하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032_0723_c_15L作菩提之由漸爲彼岸之良因外不累於皇風內有增於行業以此送終天之恩也
만약에 폐하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윤허를 내려 주신다면, 여산(廬山)의 혜원(慧遠)173)과 같이 바른 지조를 따르고, 염수(剡岫)의 도림(道林)174)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을 이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바라는 것은 선관(禪觀)을 닦는 여가에 경전을 번역하는 일입니다. 이 즐거운 발원(樂願)이 너무나 지극하여 삼가 조정에 나아가 표문을 받들며 아뢰옵니다. 가벼이 신위(宸威)를 범하여 두려움이 더욱 깊을 따름입니다.”
032_0723_c_18L儻蒙矜許則廬山慧遠雅操庶追剡岫道林淸徽望續仍冀禪觀之餘時間翻譯無任樂願之至詣闕奉表以聞輕觸宸威追深戰越
032_0724_a_01L황제는 이 표를 보고 허락하지 않고 그 달 21일에 신필(神筆)로써 직접 다음과 같이 답장하였다.
“그대가 올린 표문을 살펴보니, 법사가 종적을 바위와 샘물 사이에 감추어 도림과 혜원의 뒤를 따르고, 생각을 선적(禪寂)에 두어 불도징(佛圖澄)과 구마라집(鳩摩羅什)처럼 지금 세상의 지표가 되려는 마음을 알겠소. 아름다운 가르침[美風]을 우러러 추앙하는 모습은 진실로 아름답고 가상하오. 짐(朕)은 닦은 행업도 없고 학문도 보잘 것 없어서 높고 깊은 뜻을 연구하지는 못하였소. 그러나 학식이 얕고 들은 것이 적어서 법이라고 할 만한 것을 아직 보지도 못했소.
032_0723_c_21L帝覽表不許其月二十一日神筆自報書曰省表知欲晦迹巖泉追林遠而架往託慮禪寂軌澄什以摽今仰挹風徽寔所欽尚朕業空學寡究高深然以淺識薄聞未見其可
그런데 법사는 3계(界)를 제도하고 4생(生)을 이끌어서, 지혜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선정[定]으로 생각의 물[意水]을 얼어붙게 하였소. 결코 세속 티끌에 더럽혀지는 일이 없는데, 어찌 식(識)의 물결에 놀랄 일이 있겠소. 도와 덕[道德]이 어찌 반드시 태화산(太華山)175) 깊은 봉우리에만 있겠으며, 공허하고 적막함[空寂]이 어찌 소실(少室)의 첩첩 산중에만 있겠소. 아무쪼록 이런 말은 거두어들이고 다시는 청을 올리지 말기 바라오. 저잣거리나 조정에 나온 대은(大隱)176)이야말로 옛날 현인보다 귀하지 않겠소. 널리 보고 들어[見聞] 이익을 넓혀서 당대(當代)의 보배가 되기를 바라오.”
이렇게 칙서를 내려 표(表)를 물리치고 다시는 말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032_0724_a_03L師津梁三界汲引四生智皎心燈凝意水非情塵之所翳豈識浪之能道德可居何必太華疊嶺空寂可舍豈獨少室重巒幸戢來言復陳請則市朝大隱不獨貴於昔見聞弘益更可珍於卽代勅旣令斷表不敢復言
이에 법사는 칙서를 받들고 나아가 계사(啓謝)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사인(使人) 이군신(李君信)이 와서 수조(手詔)를 내려 주었습니다. 은빛 갈고리 같은 글[銀鉤]은 붉은 글씨[丹字]에 걸리었고 아름다운 문장[叡藻]은 저 하도(河圖)177)보다 성하십니다. 크나큰 뜻은 봉악(峰岳)의 형상을 띄었으며 만물을 적시는 윤택함은 풍운(風雲)의 기운을 제압하셨습니다. 저물어 가는 가을날에 봄꽃처럼 화려한 문장을 다시 보게 되니, 몸은 이수(伊水)178)와 낙수(洛水)179) 사이에 있으면서 갑자기 곤륜산(崑崙山)과 형산(荊山)의 보옥180)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받들어 대하니 너무 기뻐서 절로 춤이 나왔습니다.
032_0724_a_10L法師旣奉勅進啓謝曰沙門玄奘言使人李君信至垂賜 手詔銀鉤麗於丹字睿藻蔚彼河圖磊落帶峯嶽之形潤挹風雲之氣不謂白藏之暮更睹春葩之文身居伊洛之閒忽矚崑之寶捧對歡欣手舞足蹈
옛날에 계중(季重)이 위나라 군주[魏君]의 서찰181)을 받은 적이 있지만 위군은 그저 등지고 떠나는구나 말씀하셨을 뿐이고, 혜원(慧遠)이 진나라 황제[晋帝]의 서신을 받았지만 황제께서는 그저 쌀[米]만 내려 주셨을 뿐이었습니다. 공적(空寂)을 버리라는 뜻을 겸하여 말씀하시거나, 큰 은사(隱士)는 시정에 있다는 가르침을 내리신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성주(聖主)의 생각은 진속(眞俗)을 다하고 유무(有無)를 갖추시어, 복희(伏羲)와 헌원(軒轅)보다 더욱 뛰어나게 높으시고 위(魏) 나라 조씨(曹氏)182)나 진(晋) 나라의 사마(司馬)183)도 능가하신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032_0724_a_16L昔季重蒙魏君之札唯敍睽離慧遠辱晉帝之纔令給米未睹詞兼空寂可舍之誨示大隱朝市之情固知聖主之懷窮眞罄俗綜有該無超羲軒而更高駕曹馬而逾遠者矣
다만 현장은 흰 실처럼 아무것도 없는[素絲] 자질을 가졌기에 더욱 붉고 푸른 화려함[朱藍]이 두렵고, 칡넝쿨 같이 천한[葛虆] 몸을 가졌기에 이에 소나무나 구기자[松杞]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연하(烟霞)를 소실(少室)184)에 닿게 하고 석천(石泉)을 숭아(崇阿)185)에 짝하게 하시며, 침닉(沈溺)을 피하려는 마음을 승낙해 주시어 불길을 막으려는[防火] 뜻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032_0724_a_21L但玄奘素絲之質尤畏朱藍葛虆之身希松杞思願媲煙霞於少室偶泉石於嵩阿允避溺之情終防火之志
032_0724_b_01L 이런 연유로 어리석고 눈먼 몸을 다하여 감히 죽기를 무릅쓰고 개진(開陳)하였습니다.
바라건대 도견(陶甄)186)의 자비로 오리나 메추리도 버리지 마시고, 운우(雲雨)의 은택으로 거미 따위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영명하신 조칙이 급히 내려와 허락을 주시지는 않으시고 오히려 은혜로운 칭찬[恩獎]을 내리시어 간곡하게 영광[輝賁]을 보여 주셨으니, 5정(情)187)이 전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올린 말은 거두고 감히 다시는 청하지 말라 하셨기에 삼가 표를 올려 사죄하며 아뢰옵니다. 오직 두려움만 더할 뿐입니다.”
032_0724_b_01L以敢竭愚瞽眛死陳 聞庶陶甄之慈無遺鳧鴳雲雨之澤不棄鼄蝥明詔霈臨不垂亮許仍降恩獎曲存輝賁五情戰懼不知所守旣戢來不敢更請謹附表謝聞唯增悚越
그해 겨울 11월 5일은 불광왕의 첫돌이 되는 날이어서 법사는 또 법의(法衣) 한 벌을 갖추어 불광왕에게 바치면서 표를 올렸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현장이 듣건대 난초는 자완(紫畹)에서 피어나니 그곳을 지나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며, 계수(桂樹)는 청계(靑溪)에 무성하여 그것을 만나는 자가 역시 기뻐한다 하였습니다. 풀과 나무도 오히려 이러할진댄 하물며 인륜(人倫)은 어떻겠으며, 하물며 성윤(聖胤)에 있어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032_0724_b_06L冬十一月五日佛光王晬日法師又進法衣一具上佛光王表曰沙門玄奘言玄奘聞蘭榮紫畹過之者必歡桂茂靑溪逢之者斯悅卉木猶爾人倫乎況 聖胤乎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와 황후께서는 신기한 예지[神叡]의 자태를 타고 나시어 천지의 덕을 품으시었고, 구하(區夏)를 어루만져 편안히 하시어 군생(群生)을 자식처럼 기르셨습니다. 거기다 또 크게 가람(伽藍)을 세워 널리 복을 모으는[福聚] 불사를 일으키셨으니, 보배로운 지도[寶圖]를 영구불변하게 보존하는 유익한 업(業)이며 정명(鼎命)을 금강(金剛)처럼 견고하게 하는 도움이 되는 인(因)입니다.
032_0724_b_11L伏惟皇帝皇后挹神睿之姿懷天地之德撫寧區夏子育群生兼復大建伽藍廣興福聚益寶圖常恒不變之業鼎命金剛堅固之因
이미 오묘한 선[妙善]을 닦으셨으므로 황태자는 신기(神機)가 날로 무성하실 것이며 노왕(潞王)188)은 아름답고 뛰어남을 더욱 밝아질 것이며, 불광왕은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명랑하게 되실 것입니다. 가히 주(周)를 넘고 상(商)을 뛰어넘어 황제(黃帝)189)와 숭고(崇高)함을 견주게 되실 것이니, 자자손손 만년토록 경하할 일입니다.
현장은 용렬하고 미약하오나 때를 만나 외람되게도 왕등(王等)을 참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사로운 마음에 뛸 듯이 참으로 기쁘고 참으로 즐겁습니다.
032_0724_b_15L旣妙善熏修使 皇大子機神日茂潞王懿傑逾佛光王岐嶷增朗可謂超周越商與黃比崇子子孫孫萬年之慶者也玄奘猥以庸微時得參見王等私心踊悅誠歡誠喜
오늘이 불광왕의 탄생일이기에 예(禮)를 바쳐 축하드리며, 경솔하고 어리석은 정성으로 삼가 법복 1구(具)를 올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왕자님은 모든 신[萬神]들이 보호하여 온갖 복[百福]을 거느리시어, 자나 깨나 편안하시고 수유도 순조로우시기를 빕니다. 삼보(三寶)를 이어서 융성하게 하시어 4마(魔)190)를 항복 받으시고, 보살행을 행하시어 여래사(如來事)를 이으소서.
032_0724_b_20L今是佛光王誕晬之日禮有獻賀輒率愚誠謹上法服一伏願王子萬神擁衛百福扶持寐安和乳哺調適紹隆三寶摧伏四行菩薩行繼如來事
032_0724_c_01L옥구슬로 된 꽃받침[瓊萼]과 하늘에서 내린 듯한 가지[天枝]에 화려한 꽃봉오리[英華]의 아름답고 무성함에 너무나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문과 아울러 의복을 올리며 아뢰옵니다. 가벼이 신엄(宸嚴)을 범하여 전율만 깊을 따름입니다.”
032_0724_c_01L不勝瓊萼天英華羙茂歡喜之至謹附表幷衣以 聞輕觸宸嚴追深戰越
이 당시 법사는 적취궁(積翠宮)에 머물면서 번역을 했는데, 잠시도 쉬는 일이 없었기에 건강을 해쳐 병을 얻었다.
032_0724_c_04L法師時在積翠宮翻無時暫輟積氣成疾
황제에게 이 소식을 아뢰자 황제가 듣고 걱정하여 즉시 공봉내의(供奉內醫) 여홍철(呂弘哲) 등을 보내서 법사를 위문하도록 조칙을 내렸다. 이때 법사는 기쁜 마음과 감격을 참지 못해 표를 올려 다음과 같이 사례하였다.
“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사인(使人) 여홍철 등이 와서 조칙을 전하며 현장의 질병을 위문해 주고, 아울러 밖으로 나가 쉬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자비로우신 뜻이 홀연히 임하시어 병든 해골이 일어나 면류(冕旒)를 대하자니 마치 얼음물[氷泉]을 밟는 듯 송구스럽습니다.
032_0724_c_05L帝聞之不悅卽遣供奉內醫呂弘哲宣 勅慰問法師法師悲喜不已進表謝曰沙門玄奘言使人呂弘哲等至宣 勅慰問玄奘所患許出外將息 慈旨忽臨尫骸用起若對旒冕如寘冰泉
현장은 섭생을 잘못하여 어그러지고 모가 나서 질병이 모여 들었습니다. 폐하의 자취[鑾躅]에서 멀어진 이후로 외로운 마음이 더욱 깊어졌는지,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여 뼈마디가 아프고 살도 아파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뚝 끊어져 기식(氣息)마저 희미해졌습니다.
생각으로야 궁궐[宮宇]에 더러운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밖으로 나가 스스로 몸을 구덩이에 던져버리기를 바랐습니다만, 그래도 폐하께서 들으시고 놀라실 일이 두려워 감히 곧이곧대로 아뢰지 않았었습니다.
032_0724_c_12L玄奘攝愼乖方疹瘵仍集自違離 鑾躅倍覺嬰纏心痛背悶骨酸肉楚食眠頓絕氣息漸微慮有不圖點穢宮宇思欲出外自屛溝壑仍恐驚動聖聽不敢卽事奏聞
그런데 드디어 문자(問藉) 덕택에 밖으로 나와 절[寺]에 이르니, 병은 이미 피로로 인하여 다시 위독하게 되고 마음도 또한 밝은 세상과는 격리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상약사의(尙藥司醫) 장덕지(張德志)로 하여금 침술로 다스리게 하여 가까스로 병이 수그러져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한 죄를 돌이켜 생각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기약합니다.
032_0724_c_17L遂依問藉出至寺所病旣因勞轉篤心亦分隔明時乃有尚藥司醫張德志爲其鍼療漸瘳降得存首領還顧專輒之罪期粉墨之誅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해처럼 달처럼 밝은 은혜로 오랜동안 이 우졸(愚拙)한 사람을 도와 주셨고, 강처럼 바다처럼 큰 은택으로 매번 포용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행운을 어찌 지극히 미천한 저[至微]에게로 옮겨서 상전(常典)의 법을 다하셨습니까?
032_0724_c_21L伏惟日月之明久諒愚江海之澤每肆含容豈可移幸於至微屈法於常典
032_0725_a_01L바라옵기는 공도(公道)를 폄으로써 헌사(憲司)를 화목하게 하시고 옥(獄)을 바로잡아 가볍게 줄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도끼날 아래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쇠잔한 혼백과 썩어가는 몸뚱이들이 이내 은혜의 광명을 입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회포를 말하고 뼈에 새기게 하여 주십시오.
스스로 생각하노라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또 심상하지가 않습니다. 설사 이것이 이 촌사람의 하잘 것 없는 근심이기는 하지만, 또한 온 생애를 다한 바람이기도 하였습니다. 단지 한스러운 것은 내려주신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채 남은 목숨이 먼저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032_0724_c_23L望申公道以穆憲枉獄爲輕伏鈇是俟而殘魂朽質仍被恩光撫臆言懷用銘肌骨自惟偃頓非復尋常縱微下里之憂亦盡生涯之冀但恨隆恩未荅末命先虧
우러러 생각하건대 황제께서는 친히 장수(蔣狩)에 마음을 쏟으시며, 열무(閱武)191)를 기약하시어 군대[戎]를 훈련하는 일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인(仁)을 밝혀 기린을 풀어놓으시고[放麟] 또 훈(勳)을 세워 봉황에 바치셨습니다[獻鳳]. 그리하여 멀고 가까운 데서 경사(慶事)가 모이니 상하(上下)가 함께 기뻐하며, 풍후(風后)192)는 티끌까지 맑게 하고 산기(山祇)는 들판을 보호하였습니다. 공경하고 사유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진실로 아름다움과 상서로움을 다하셨습니다. 십순(十旬) 동안 밝은 훈계(訓誡)를 펼치고 협신(浹辰)193)에 돌아오셨으며, 팔준(八駿)194)을 타고 선유(宣遊)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여[鄙] 가까이에서 돌아오셨습니다.
032_0725_a_04L仰惟帝勤親勞蔣狩期於閱武情在訓戎旣昭仁於放麟又策勳於獻鳳遐邇慶集上下歡幷風后淸塵山祇護野敬惟動止固極休禎申炯誡於十旬浹辰而返鄙宣遊於八駿密邇而旋
왕가(王駕)를 멈추시고는 오래 마음에 품어 위로하였으며, 일을 무마하시고도 근심하면서 마침내 운월(隕越)195)을 기약하셨습니다. 이 지극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를 받들어 대죄(待罪)하며 아뢰옵니다. 두려움에 정신을 잃고 엎드려 칙지(勅旨)를 들었습니다.”
032_0725_a_10L王駕可佇永懷以慰撫事恛惶終期隕越不勝荷懼之至謹奉表待罪以荒惴失圖伏聽 勅旨
황제는 이 표(表)를 보고 대단히 기뻐하여 3일 뒤에 사신을 보내서 법사를 맞아들이게 하여 4사(事)를 공양하고 여러 날을 머물게 하였다. 그 뒤 조칙을 내려 법사를 적취궁으로 돌아가게 하여 예전처럼 번역하도록 하였다.
032_0725_a_13L帝覽表甚歡經三日後遣使迎法師四事供養留連累日 勅送法師還積翠宮仍舊宣譯焉
겨울 12월에 황제는 낙양궁을 동도(東都)라 고쳐 부르기로 하였다. 이 땅이 너무 협소한 것을 염려하였기에, 곧 동쪽으로는 정주(鄭州)196)의 사수(汜水)197)와 회주(懷州)198)의 하양(河陽)199)을 나누고, 서쪽으로는 곡주(穀州)200)를 없애고 의양(宜陽)201)과 영녕(永寧)202), 신안(新安)203)과 승지(澠池)204) 등의 현을 다 예속시켰다. 그렇게 하여 낙양의 향읍(鄕邑)이 증가한 것을 보고 법사는 표를 올려 다음과 같이 축하하였다.
032_0725_a_16L冬十二月洛陽宮爲東都嫌封畿之褊隘乃東分鄭州之氾水懷州之河陽西廢穀取宜陽永寧新安澠池等縣皆隸屬焉法師以鄕邑增貴修表賀曰
032_0725_b_01L“사문 현장은 아뢰옵니다. 제가 듣자하니, 순수(鶉首)205)가 진(秦)에 머물러 상제(上帝)는 금성(金城)에 의거(依據)할 징조를 보였고, 구도(龜圖)206)를 하(夏)에 바치자 중기(中畿)는 옥천(玉泉)의 걸음을 디뎠다고 합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신령(神靈)이 내리시는 터전은 황제의 계책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으며, 창성한 칭송[昌誦]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멀리까지 점치며[卜遠] 높이 빛납니다. 그러므로 그 큰 자취[允迪]를 열어서 그 계책을 따른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032_0725_a_20L沙門玄奘言竊聞鶉首錫秦上帝兆金城之據龜圖薦夏中畿啓玉泉之窺是知靈貺所基皇猷顯屬昌誦由其卜遠高光所以闡期允迪厥猷率遵斯在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와 황후께서는 만물을 헤아리시어 일을 처리하시고 경중(輕重)을 고르게 하여 세상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국토의 중요한 구석구석[重隩] 자리에 나가시어 두루 나라를 순시하시고 어가를 머무셨으며, 옛 제도[舊制]가 빙 둘러싼[環偉] 바탕 위에 호경(鎬京)207)의 풍속을 본받아 외성[郛]을 세우셨습니다.
032_0725_b_02L伏惟皇帝皇后揆物裁務懸衡撫俗卽土中之重隩帀虞巡而駐蹕因舊制之瑰偉儀鎬京而建郛
이에 궁(宮)을 낮추는 데에 마음을 두시어 예전의 부역[曩役]을 고치는 수고를 하셨으며, 말을 달려 순시하는 데 생각을 두시어 편하게 거하시는 것[居逸]보다 새벽 일찍 일어나기에 진념하셨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중화와 오랑캐[華夷]를 절충하여 역사와 수입[徭輸]를 균일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성권(聖眷)을 머물게 하시고 윤언(綸言)을 빛낼 수 있었겠습니까?
032_0725_b_05L仍以卑宮載懷改作勞於曩役馭奔在念軫居逸於晨興自非折中華夷均一傜輸豈能留連聖眷煥汗綸言
이러한 까닭에 영을 내리시자(令下) 비로소 산천(山川)은 막혔던 경관을 바꾸고 제도도 이에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자욱한 연운(烟雲)이 색(色)을 바꾸니, 나는 듯한 용마루에 햇빛이 아름다우며 황제가 거동하시는 길에는 바람이 맑고, 신심(神心)이 왕성하고 이륜(彛倫)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032_0725_b_09L是以令下之初山川鬱其改觀柘制爰始煙雲霏而動色飛甍日麗馳道風淸神期肸嚮彝倫郁穆
만약 무창(武昌)의 물고기[魚] 노래를 읊는다면 기꺼이 왕께서 다스리는 마을[王里]로 옮겨 갈 것이며, 운정(云亭)208)의 학(鶴)을 다투어 부르고자 한다면 거가(車駕)에 봉속(奉屬)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일찍이 진(晋)과 정(鄭)이 의거하였던 땅[依]을 작다고 여기셨고 유(劉)와 장(張)의 책략[策]을 좁다고[褊] 여기셨습니다. 전왕(前王)이 악착(齷齪)하여 풍(豊)과 낙(洛)이 번갈아 열리고 우리 황제[我后]께서 뇌롱(牢籠)하여 이(伊)와 함(咸)이 함께 세워졌습니다. 인종(麟宗)이 극히 무성하니 국운[鼎祚]은 멀리 쭉 뻗어 있습니다.
032_0725_b_12L若賦武昌之魚樂遷王里爭企云亭之鶴願奉屬車旣小晉鄭之依更褊劉張之策前王齷齪洛遞開我后牢籠咸竝建麟宗克茂鼎祚惟遠
그리하여 저절로 동(東)으로는 평락(平樂)209)에서 잔치를 벌이게 되고 서(西)로는 건장(建章)210)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피리[笙篁]를 불면서 오랫동안 수(壽)를 잡아 두시고 문장[藻]을 지으면서 편안하게 퍼뜨리고 노래하소서. 지극히 공변되어[至公] 넓고 넓으며[蕩蕩], 드물게 저술하는 문장[罕述]은 높고 높습니다[巍巍].
현장은 쓸모없는 재목이라 바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두려움만 더욱 깊습니다. 다만 3천(川)211)의 교외(郊外)에 있는 옛 동리[故里]까지 모두 적시어, 천 년의 행운이 새 고을[新邑]을 빽빽하게 만들었습니다.
032_0725_b_16L自可東宴平樂西臨建章佇吹笙而駐壽康在藻而流詠蕩蕩至公巍巍罕述奘散材莫效貽懼增深三川之郊猥霑故里千載之幸鬱爲新邑
032_0725_c_01L사립문[蓽門]212)이 비록 없어진다 해도 추명(芻命)은 아직 남아 있으니, 서울 땅[轂下]213)에 매인 것을 기뻐하지만 관외(關外)에 있더라도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천하를 밝게 다스리시는[光宅]214) 경사스런 일들을 멀고 가까이서 함께 기뻐하도록 폐하[聖上]께서 편안하게 허락해 주시니 용렬하고 한미한 저에게는 특별한 은혜이십니다. 지극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문을 받들어 감사를 아뢰옵니다.”
3년 봄 정월에 황제가 서경(西京)으로 돌아가게 되자 법사도 황제를 따라 돌아갔다.
032_0725_b_20L蓽門雖翳芻命猶存喜編轂下匪慚關外況光宅之慶遐邇所同歡聖上允安庸微所特荷不勝喜抃之謹奉表陳謝以三年春正月 駕還西京法師亦隨歸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卷第九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예의와 제사, 그리고 과거시험 등을 관장하는 관서인 예부(禮部)의 우두머리이다.
  2. 2)참조(參朝)ㆍ향연(饗宴)ㆍ알현(謁見)을 관장하는 관청(官廳)이다.
  3. 3)주나라 왕실의 공주 왕의(王姬)의 덕을 찬양한 것으로 보인다. 『시경』 「소남(召南)」 하피농의(何彼穠矣)에 “어찌 엄숙하면서 화기롭지 아니한가, 왕희의 저 수레[曷不肅雝 王姬之車]”라고 한 시가 있는데, 공주가 시집갈 때 귀한 신분임을 내세워 남편의 집에 교만을 부리지 않았던 것을 찬양한 시이다. 주왕(周王)의 딸은 모두 희성(姬姓)이기 때문에 왕희라고 한다.
  4. 4)책력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5. 5)유정(有情)의 몸과 마음을 가리킨다. 즉 중생이 거하는 장소인데, 모두 아홉 곳이 있다. 또는 9유정거(有情居)ㆍ9중생거(衆生居)ㆍ9문(門)ㆍ9거(居)라고도 한다. 즉 욕계(欲界)의 인천(人天)과 범중천(梵衆天)과 극광정천(極光淨天)과 편정천(遍淨天)과 무상천(無想天)과 4무색천(無色天) 등이다.
  6. 6)솔유(率由)는 전장제도(典章制度)를 완전히 옛날 법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가락(假樂)에 “잘못도 않고 잊지도 않는 것은 다 옛 법을 따르기 때문이다.[不愆不忘 率由舊章]”라도 하였다.
  7. 7)타고난 품성이 자연히 지성스럽다는 말이다.
  8. 8)천자나 임금이 지은 글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9. 9)3시(時)의 하나이다. 상(像)은 비슷하다는 뜻이며, 정법(正法) 시대와 비슷한 시기를 가리킨다. 부처님이 입멸한 뒤, 정법 시대인 5백 년이 지난 뒤, 다시 5백 년 또는 천 년 동안을 가리킨다. 그 시기는 정법 시대와 비슷한 시기라고 한다. 교(敎)ㆍ행(行)ㆍ증(證)이 모두 갖추어진 정법 시대에 비해서 증(證)은 없는 시기이다.
  10. 10)자는 맹덕(孟德),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패국(沛國)의 초(譙) 출생으로 환관의 양자의 아들인데, 황건란(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208년 손권(孫權)ㆍ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 이후도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11. 11)자는 자환(子桓), 시호는 문제(文帝), 조조(曹操)의 차자이다. 한(漢) 나라의 헌제를 옹립하고 화북(華北)을 평정한 조조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으나, 조비는 헌제에게서 양위 받는 형식으로 황제가 되어 도읍을 낙양(洛陽)에 두고, 국호를 위(魏)라 하였다. 즉위 후 한(漢)나라의 제도를 개혁하고 9품관인법(品官人法)을 시행하여 위나라의 세력을 증강시켜 오(吳)와 촉한(蜀漢)과 대항하였다. 동생 조식(曹植)과 함께 당대의 유수한 문인(文人)으로 명성이 높았고, 문학을 장려하는 한편, 『전론(典論)』ㆍ『시부(詩賦)』 등 백여 편을 저술하였다.
  12. 12)이 권의 뒤에 “한(漢) 원제(元帝)가 사서(史書)를 잘했다”는 글이 나온다. 여기서도 한 원제를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13. 13)곤륜산(崑崙山)에 있다는 전설상의 못으로, 주나라 목왕(周穆王)이 서쪽으로 요지 가에 이르러 서왕모를 만났다고 한다. 서왕모는 옛날의 선인(仙人)이다.
  14. 14)풍비(豐碑), 즉 공적을 기록한 거대한 석비(石碑)를 가리키는 말이다.
  15. 15)육영은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음악이다.
  16. 16)다섯 개의 별이라는 뜻으로, 5성(星), 5집(執)이라고도 한다. 즉 세성(歲星)인 목요(木曜), 형혹성(熒惑星)인 화요(火曜), 진성(鎭星)인 토요(土曜), 태백성(太白星)인 금요(金曜), 신성(辰星)인 수요(水曜)를 가리킨다. 이 다섯 별이 하늘을 한 번 도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람들은 각자의 명성(命星)에 따라 길흉이 달라진다고 한다.
  17. 17)글씨를 말한다. 잘 쓴 글씨를 은구(銀鉤)라 한다. 진(晋) 나라 색정(索靖)이 초서(草書)를 잘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글씨를 “은 갈퀴[銀鉤] 전갈의 꼬리[蠆尾]”라 칭하였다.
  18. 18)기룡예악(夔龍禮樂)을 말한다. 기(夔)와 룡(龍)은 우순(虞舜) 2신인데, 기는 악관(樂官)이고 용(龍)은 간관(諫官)이라고 전한다. 따라서 기룡예악은 규범이 되는 예악 제도를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19. 19)용궁(龍宮), 즉 용왕의 궁전을 말한다. 현세에 불법(佛法)이 유행하지 않게 될 때에는 용궁에서 불교의 경전을 수호한다고 한다.
  20. 20)중국 춘추 시대의 거문고의 명인으로,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즐겨 듣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이해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슬퍼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일생 동안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21. 21)사광은 춘추(春秋) 시대 진(晉) 나라의 태사(太師)로 5음(音)과 6률(律)을 다루는 데 있어 남보다 월등한 청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22. 22)요임금 때 역상(曆象)을 맡아서 역법을 제정하여, 후대 중국 역법의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이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시어 호천을 삼가 공경하고 따르며 일월성신을 역상으로 하여 사람에게 때를 알려주라 이르셨다”는 말이 있다.
  23. 23)홍범(洪範)의 구주(九疇)는 맨 처음 하우씨(夏禹氏)가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鬼)에게서 얻은 것이다.
  24. 24)당나라 장욱(張旭)이 초서(草書)을 잘 썼으므로, 사람들이 초성(草聖)이라 불렀다.
  25. 25)동한(東漢) 사람 장지(張芝)가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의 칭호를 얻었는데, 그가 글씨 공부를 할 때 못가에서 글씨를 익혀서 못물이 모두 새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26. 26)약목(若木)의 꽃, 즉 전설상의 꽃인데, 『초사(楚辭)』 「천문(天問)」에 “해가 뜨기도 전에 약화는 어찌 그리 빛나는가[羲和之未揚 若華何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7. 27)계영은 달 속에 들어 있다는 전설상의 계수나무를 말하는데, 달을 은궐[銀闕]이라고 하므로 은구(銀鉤), 즉 아름다운 황제의 글씨 속에 달에나 있을 계수나무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28. 28)불교의 교의가 공(空)을 극치로 하므로, 불문을 공문이라고 부른다.
  29. 29)중국 고대 황제(黃帝)의 이름으로, 헌원이라는 언덕에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으로 하였다. 포악한 짓을 하는 치우(蚩尤)와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싸워 죽였기 때문에 전쟁은 황제 헌원씨가 시작하였다 한다.
  30. 30)중국 상고시대의 이상적인 군주로서, 소호(少昊)ㆍ제곡(帝嚳)ㆍ제요(帝堯)ㆍ제순(帝舜)과 함께 5제(帝)에 들어간다.
  31. 31)물을 건너는 나루와 다리를 말하는 것으로, 전하여 불교에서는 부처가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것을 말한다.
  32. 32)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와 선조의 제사를 지낼 때 애통함과 경건함을 극진히 하는 것을 신종추원(愼終追遠)이라고 한다. 종(終)은 부모의 죽음을 뜻하고, 원(遠)은 선조를 뜻하는데,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나온다.
  33. 33)천상(天上)의 상제(上帝)가 있는 곳인데, 춘추 때에 진 목공(秦穆公)이 꿈에 가서 놀았다 한다.
  34. 34)윤왕(輪王)의 상투에 꽂은 구슬을 말한다.
  35. 35)필력이 웅장하고 튼튼한 문장을 말한다.
  36. 36)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연호(627-649)이다.
  37. 37)당나라 고종(高宗)이 사용한 연호로, 서기 650에서 655년까지를 말한다.
  38. 38)죄업을 갚는다는 뜻이다.
  39. 39)원소(園所)라고도 하는데, 왕세자나 세자빈 및 왕의 친척 등의 산소를 말한다.
  40. 40)종묘(宗廟)의 의식을 관장하는 관직명이다. 진(秦) 때에 태상(奉常)을 두었고 한(漢) 때에 태상(太常)으로 바꾸었는데, 시대가 지나도 이 이름이 계속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종묘 제악을 관장하던 기구인 태상시(太常寺)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41. 41)지혜는 능히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비추어 깨뜨려서, 중생으로 하여금 길이 험난한 것을 알게 하므로 등불로 비유하여 혜거라고 부른다.
  42. 42)공적을 기록한 거대한 석비(石碑)를 말한다.
  43. 43)중국 고대에 중국인들이 사용하던 여덟 가지의 괘로, 『주역(周易)』에서 자연계 및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음양(陰陽)을 겹치어서 여덟 가지의 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복희씨가 지었다고 하나, 실은 고대 중국인들이 점복에 사용하여 발전해 온 것이다. 곧 건(乾)ㆍ태(兌)ㆍ이(離)ㆍ진(震)ㆍ손(巽)ㆍ감(坎)ㆍ간(艮)ㆍ곤(坤)을 가리킨다.
  44. 44)중국의 제왕(帝王)이 천지를 제사지낸 의례로, 봉(封)이란 옥으로 만든 판에 원문(願文)을 적어 돌로 만든 상자에 봉하여 천신(天神)에게 비는 일이었고, 선(禪)이란 토단(土壇)을 만들어 지신(地神)에게 비는 일이었다. 최초로 봉선한 것은 진(秦) 나라 시황제(始皇帝)였는데, BC 219년 태산(泰山)의 산정에서 하늘을 제사지내고, 부근의 양부(梁父)라는 작은 동산에서 땅을 제사지냈다.
  45. 45)선왕들을 협제(祫祭)하는 것이며, 후에는 특별한 경축 행사에서 임금이 베풀던 성대한 잔치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46. 46)금(金)으로 된 악기, 즉 편종(編鐘)을 치는 일을 말한다.
  47. 47)순 임금의 음악이다.
  48. 48)①중국의 고전 『주역(周易)』, 『노자(老子)』, 『장자(莊子)』의 총칭이다. ②임제종(臨濟宗)의 법을 나타내는 세 강령으로, 현중현(玄中玄)은 그것으로서의 진실(眞實)을, 구중현(句中玄)은 말이나 인식상에 나타나는 진실을, 체중현(體中玄)은 실천 속에 나타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49. 49)제왕(帝王)의 서법을 칭송하는 말로, 두계(竇臮)의 「술서부(述書賦)」에 “용 같은 글 봉황 같은 글씨를 유문을 사랑하시어 내리시다[龍章鳳篆 寵錫儒門]”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50. 50)진(秦) 나라 때 쓰인 여러 가지 서체를 뜻하는 말로, 곧 대전(大篆)ㆍ소전(小篆)ㆍ각부(刻符)ㆍ충서(蟲書)ㆍ모인(摹印)ㆍ서서(署書)ㆍ수서(殳書)ㆍ예서(隸書)를 말한다. 8체서(體書) 라고 한다.
  51. 51)미언(微言)은 정미하고 오묘한 말이라는 뜻으로, 유교에 대해 불타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52. 52)왕사상(王舍城) 옆 가란타(迦蘭陀) 죽림에 있었던 정사이다. 가란타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한 뒤에 죽림을 부처님께 바쳤으므로 이곳에 정사를 세웠는데, 인도 사찰의 효시가 되는 것이다.
  53. 53)범어를 음역하여 보리살타(菩提薩埵)라고 한다. 또는 천사(闡士)라고도 한다. 개(開)는 밝게 통달하였다는 뜻으로, 정도를 열어서 중생을 인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특히 보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보살이란 일체 진리를 밝게 풀어서 중생들이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깨달아 들어가도록 개도하므로, 이런 존칭을 쓰는 것이다.
  54. 54)괴로움의 최후, 생사의 고를 받는 최후의 몸을 말한다.
  55. 55)후한(後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7년(62)에 명제는 밤중에 꿈속에서 금인(金人)을 보고 사신을 천축(天竺)으로 보내 불교(佛教)를 전수 받게 하였는데, 사신들은 월씨(月氏)국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두 사문을 만나 중국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그것이 중국에 불교가 전한 시초라는 설이 있다.
  56. 56)후한 명제(明帝) 때의 문인(文人)이다. 무릉 사람으로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였다. 명제가 구현하는 뜻은 없으면서도 은사(隱士)들에게 은자(恩資)가 많기 때문에 7격(激)을 지어 풍간했다. 장제 때 난대의 영사(令史)가 되어 낭중에 임명되고, 반고ㆍ가규와 같이 교서를 맡았고 뒤에 사마가 되었다.
  57. 57)온갖 글을 널리 알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불러 벼슬을 주어 중서령(中書令)까지 지냈다. 적오(赤烏) 5년(242)에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자신의 자(字)인 덕윤(德潤)을 붙여 덕윤사(德潤寺)를 개건하였다. 이 절은 지금의 남경(南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강남(江南) 제일의 고찰(古刹)이라고 할 수 있다.
  58. 58)도량(道場)을 말한다.
  59. 59)승노반(承露盤)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탑의 평두(平頭) 위에 겹겹으로 올린 윤반(輪盤) 모양의 건축을 가리킨다. 또는 반개(盤蓋)ㆍ축개(槃蓋)ㆍ윤개(輪蓋)ㆍ상륜(相輪) 등으로 부른다.
  60. 60)중국 서체의 한 가지로, 획의 가운데가 빈 것이다. 글씨의 점획이 새까맣게 써지지 않고 마치 빗자루로 쓴 것처럼 붓끝이 잘게 갈라져서 써지기 때문에 필세가 비동(飛動)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1. 61)당(唐) 고종(高宗) 7년(656)부터 11(66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이다. 고종의 재위 기간은 650년에서 683년까지이다.
  62. 62)문자 이전의 의사 전달 수단으로, 노끈으로 매듭을 맺어서 기억하기 편리하게 한 도구이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 티베트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하와이나 페루에서는 근대까지도 사용되었던 방법이다.
  63. 63)한자 서체의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대전(大篆)은 주(周) 나라 때 사주(史籀)가 만들었고, 소전(小篆)은 진(秦) 나라 때 이사(李斯)가 만든 것이다.
  64. 64)현침전(懸針篆)을 말한다. 후한 장제(後漢章帝) 때 조희(曹喜)가 만든 것인데 모양이 침을 달아맨 것 같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65. 65)서체의 하나이다. 『묵지편(墨池編)』에 “한(漢) 나라 조희(曹喜)가 글씨를 써서 주장(奏章)을 올리면 필법이 가벼운 이슬이 점철한 것 같았다”는 말이 나온다.
  66. 66)서체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모양이 마치 이어진 무늬 같으며, 고대 천자의 조서(詔書)에 쓰던 글씨체이다.
  67. 67)서체의 종류 가운데 예서(隷書)와 전서(篆書)를 절충하여 만든 서체인데 한대(漢代)의 예서(隷書)를 일컫는 말로, 이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예서에 전서의 형태가 팔분(八分) 남아 있고 이분(二分)이 변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컫는다고 한다. 진(秦) 나라 때 왕차중(王次仲)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68. 68)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서예가(151-230)로, 자는 원상(元常)이다. 영천(潁川) 장사(長社) 사람이다. 일설에는 허창[許昌] 사람이라고도 한다. 조조(曹操)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관중(關中) 지방을 수비했는데 그 공적이 탁월했다. 위나라가 한나라를 무너뜨린 후, 정위(廷尉)ㆍ 상국(相國)ㆍ 태위(太尉)ㆍ 태부(太傅)의 관직을 역임했다. 서예를 익히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는데, 조휘(曹喜)ㆍ 채옹(蔡邕)ㆍ 유덕승(劉德升) 등을 본받았으며, 여러 사람의 장점을 폭넓게 수용했다. 명석(銘石)ㆍ 장정(章程)ㆍ 행압(行押) 3체에 고루 뛰어났다.
  69. 69)전서[篆] 주문[籀]의 서체를 변형하여 예서(隸書)를 만든 사람이다. 전하는 말로, 진시황(秦始皇)이 사신을 보내 불렀으나 왕차중이 가지 않고, 큰 새로 변해서 서산에 이르러 깃촉 두 개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것이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아서 각기 떨어진 곳을 대핵산(大翮山), 소핵산(小翮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70. 70)후한(後漢)의 장지(張芝)를 가리킨다. 장지는 동한(東漢) 사람으로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고 불렸다.
  71. 71)후한의 최문(崔玟)을 가리킨다.
  72. 72)중국 진(晉) 나라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자경(子敬, 348-388)을 말한다. 부친의 서법을 이어받아 호기 있는 서풍을 완성한 사람이다. 젊어서 이름을 날려 관직은 건위(建威)장군 ㆍ오흥(吳興)태수를 거쳐 중서령(中書令)까지 역임하였다.
  73. 73)우군(右軍)은 진(晉) 나라 때 우군장군을 지낸 명필 왕희지(王羲之, 307-365)를 가리킨다. 중국 고금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고 있다. 해서 ㆍ행서 ㆍ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예술로서의 서예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예서(隸書)를 특히 잘 썼다.
  74. 74)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 부자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75. 75)직관명(職官名)으로, 당송(唐宋) 시대에는 동편장사(同平章事)를 두어 재상(宰相)이 직을 맡게 하였고, 원(元) 시대에는 평장(平章)을 두어 승상(丞相)의 보좌를 맡게 하였다.
  76. 76)범어 dharma-rāja이다. 불타의 존칭이다. 왕은 최승(最勝)과 자재(自在)의 뜻을 가지고 있다, 불타는 법문(法門)의 주인이며 자재롭게 중생을 교화하므로, 법왕이라고 칭한다.
  77. 77)상화(像化)란 상법시대(像法時代)의 교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는 불타가 입멸하고 5백 년이 지난 후에 중국에 전해졌는데, 그 때가 마침 상법시대(像法時代)였다. 그러므로 당시 불교의 교화를 상화(像化)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서(序)」에 나온다.
  78. 78)황제의 자리를 말한다.
  79. 79)현묘한 법문, 심오한 묘리라는 뜻으로, 불법을 가리키는 총칭이다. 불문, 공문(空門), 진문(眞門)이라고도 한다.
  80. 80)5제(渧), 혹은 5혼(渾)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겁탁(劫濁)ㆍ견탁(見濁)ㆍ번뇌탁(煩惱濁)ㆍ중생탁(衆生濁)ㆍ명탁(命濁)을 말한다.
  81. 81)불법에 가사(袈裟)가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3의(衣)라 한다.
  82. 82)금구옥설(金口玉說)을 줄인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설법을 말한다.
  83. 83)후한(後漢)의 명제(明帝)를 말한다. 영평(永平) 7년(62)에 명제는 밤중에 꿈속에서 금인(金人)을 보고 사신을 천축(天竺)으로 보내 불교(佛教)를 전수 받게 하였다. 그것이 중국에 불교가 전한 시초라는 설이 있다.
  84. 84)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현상 세계의 사물들은 물심(物心)ㆍ자타(自他)ㆍ선악(善惡)ㆍ고락(苦樂) 등으로 대립되어 상대적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인 본질은 둘로써 분열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절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는 뜻으로 불교를 가리키고 있다.
  85. 85)성감(聖鑑)이란 임금의 감식(鑑識)이라는 뜻이다.
  86. 86)중생(衆生)의 번뇌를 씻어버리는 것이 마치 물이 때를 씻는 것과 같으므로 불법(佛法)을 법수(法水)라 한다.
  87. 87)진단(震旦)을 말한다. 고대에 인도에서 중국을 칭할 때 진단이라고 하였다.
  88. 88)왕가(王家)의 큰아들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판(板) 편에 “종자(宗子)는 성(城)과 같다[宗子維城]” 하였다.
  89. 89)고종(高宗)의 황후무씨(皇后武氏), 뒤에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되었다.
  90. 90)당나라 두추랑(杜秋娘)이 부른 금루의곡(金縷衣曲)에 나오는 금사로 만든 옷으로, 노래에서는 “그대여, 금루의를 아끼지 말고 젊은 시절 아끼라. 꽃이 피어 꺾을 만하거든 곧 꺾을 것이요, 꽃이 없어진 뒤에 빈 가지만 꺾지는 마시라” 하였다.
  91. 91)국제(國齊)의 화가이다.
  92. 92)이루는 황제 때 사람이며 눈이 무척 밝아 백보 밖에서 가을 터럭의 끝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93. 93)동진(東晋)의 지도림(支道林)을 말한다. 자가 도림(道林)이며, 본성은 관씨(關氏)이다. 25세에 중이 되어 많은 명사들과 사귀고 한 평생을 산중에서 수도하며 후학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다.
  94. 94)『문헌통고(文獻通考)』에 “복생의 『서경』 망태서는 혹자가 말하기를 ‘한 선제 때에 하간의 여자가 얻었는데, 거기에 기재된 백어 화조의 상서는 사실 위서라’ 한다[伏生書 亡泰誓 或云 宣帝時河間女子得之 所載白魚火鳥之祥實僞書]”라고 보이고, 손유지(孫柔之)의 『서응도(瑞應圖)』에는 “백구가 성탕 때에 왔었다[白鳩成湯時來]”라고 보인다. 상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95. 95)주 문왕(周文王) 때에 붉은 참새가 단서(丹書)를 입에 물고 들어왔다는 상서(祥瑞)로운 일을 말하는 것으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문왕 때에 화조와 적조가 단서를 물고 주 문왕이 살고 있는 집 위에 모였으므로 주나라는 붉은 색을 숭상하였다[文王時見火鳥赤鳥 銜丹書 集于周社 故色尙赤]”라고 보이고, 『사기』에는 “무왕이 황하를 건너자 불이 위로부터 내려와 왕옥을 덮더니 변하여 까마귀가 되었는데, 빛깔은 붉었고 소리는 안정되었다[旣渡 有火自上復于下 至于王屋 流爲爲 其色赤 其聲魄云]”라고 보여 그 설이 각각 다르다.
  96. 96)신(申)시는 보통 오후 3시에서 5시까지를 말하고, 유(酉)시는 호우 5시에서 7시까지를 말한다. 신시 이후 유시 이전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5시 가까운 시간을 뜻하는 것이다.
  97. 97)불(佛)ㆍ법(法)ㆍ승(僧)의 3보(寶)에 귀의함을 말한다.
  98. 98)뛰어나게 좋은 물건을 하사하는 일이다.
  99. 99)『시경』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이에 사내아이를 낳으면 평상 위에 재우고 긴 치마를 입히며 구슬을 갖고 놀게 한다. 우는 소리가 우렁차고 붉은 슬갑이 휘황찬란하여 실가를 두고 군왕이 되리로다.[乃生男子 載寢之牀 載衣之裳 載弄之璋 其泣喤喤 朱芾斯皇 室家君王]”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황세자가 태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100. 100)중생의 과보(果報)가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으므로 유(有)라고 이른다. 3유(有)ㆍ4유(有)ㆍ7유(有)ㆍ9유(有)ㆍ25유(有) 등의 구별이 있으며, 총괄하여 제유라고 한다. 다시 말해 삼계(三界) 중의 유정(中有)들이 즐겨 거주하는 지방에 아홉 장소를 말한다. 9유정거(有情居), 9중생거(众生居)라고도 하며,줄여서 9유(有)나 9거(居)라고도 부른다.
  101. 101)수류는 천자의 면류관(冕旒冠) 앞뒤로 드리운 구슬 줄을 말한다.
  102. 102)진실로서의 진리와 세속 생활상의 진리, 두 가지를 말한다. 진실의 입장에서 보는 진제(眞諦) 또는 승의제(勝義諦)와 세속 일반의 입장에서 보는 속제(俗諦) 또는 세속제가 그것이다. 진제는 성자의 시각, 속제는 범부의 시각을 가리킨다.
  103. 103)『시경(詩經)』 「대아(大雅)」 면(綿)에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시어, 강녀(姜女)와 더불어, 집터를 보시니, 주(周) 땅의 언덕 기름지고 비옥하네.[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援及姜女 聿來胥宇 周原膴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천자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04. 104)난초의 향기가 풍기는 궁전으로 후비(后妃)의 처소를 말한다.
  105. 105)범어 코티의 음역으로 구지(拘胝)라고도 쓴다. 고대 인도에서 쓰이던 수의 단위이며, 천만(千萬), 또는 억(億), 경(京) 등의 단위를 가리킨다.
  106. 106)석가모니가 성을 넘어 출가한 것을 유성출가(踰城出家)라고 표현한다.
  107. 107)궁중, 혹은 후비(后妃)가 거처하는 내전을 뜻한다.
  108. 108)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이 탄다는 신령한 동물이다. 또는 전설 중에 치수(治水)를 하였던 아홉 마리의 용을 말하기도 한다.
  109. 109)붓다가야의 보리수를 말한다.
  110. 110)영유(英猷)란 임금이 낸 영걸한 계책이라는 뜻이다.
  111. 111)주된 줄기[主幹]와 가지나 잎[枝葉]을 뜻하는 말로, 본종(本宗)과 자손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112. 112)유명한 인물의 자취를 뜻하는 말로, 사당이나 서원을 가리킨다.
  113. 113)도사(導師)가 깔고 앉는 자리를 이른다. 여래가 성도할 때에 길상초(吉祥草)를 금강좌(金剛座)에 폈던 고사를 가리킨다.
  114. 114)불교에서 서방 정토의 왕생을 위해 수행하는 것을 정업을 닦는다고 표현한다.
  115. 115)중국 황하강(黃河江) 중류에 있는 여울목으로, 잉어가 이곳에서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고 전한다.
  116. 116)『초사(楚辭)』의 「초은사(招隱士)」는 한(漢) 나라 회남왕(淮南王)의 문객이었던 소산(小山)이 지은 것인데, 거기에 “계수나무가 떨기로 남이여 산의 깊은 곳이로다. 아름답고도 무성함이여 가지가 서로 얽혔도다.[桂樹叢生兮山之幽 偃蹇連蜷兮枝相繆]”라는 말이 나온다.
  117. 117)고대 중국의 다섯 성군(聖君).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을 이르는데, 소호 대신 황제(黃帝)를 넣기도 한다.
  118. 118)부처님이 거하는 정토를 가리키며, 마음을 가리키는 비유로도 쓰인다.
  119. 119)월개장자(月蓋長者)를 가리킨다.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에 등장하는 인도의 장자이다.
  120. 120)범종(凡種)과 성종(聖種)을 말한다. 『법화안락행의(法華安樂行義)』에 의하면, 범종은 범부, 즉 범인을 말한다고 한다.
  121. 121)범어 śāstā deva-manuṣyāṃ, 파리어 satthā deva-manussānaṃ로, 여래십호(如來十號) 가운데 하나이다. 천인교사(天人敎師)라고도 한다. 불타가 제천(諸天)과 인류의 스승이 되어 일체 응작(應作)과 불응작(不應作)을 보여 이끌어 주시고 (善)과 불선(不善)을 알려 주시어, 만약 가르침에 따라 행하고 도법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번뇌를 해탈하는 과보를 받을 수 있으므로 천인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122. 122)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을 가리킨다.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아들이며 명제(明帝)의 동생이다.
  123. 123)삼국(三國) 때 위 무제(魏武帝)의 아들 조식(曹植)을 가리킨다. 진왕(陳王)에 봉해지고 시호가 사(思)이기 때문에 진사왕(陳思王)이라고 한다. 조식은 10세 때부터 뛰어난 글재주가 있어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다. 여기서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더라도 왕족으로서 속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왕의 총애나 받는 정도뿐이라는 뜻이다. 세자의 출가를 권유하기 위해 쓰인 말이다.
  124. 124)5정거천(淨居天)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거(淨居)란 범어로는 Śuddhāvāsa인데, 정업성인(淨業聖人)이 사는 곳이다.
  125. 125)신우(迅羽)란 매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126. 126)명협은 요 임금 때 조정 뜰에 났다는 서초(瑞草)로, 초하룻날부터 매일 한 잎씩 나서 자라다가 보름이 지나면 한 잎씩 지기 시작하여 그믐이 되면 말라 버린 까닭에 이것을 보고 달력을 만들었다 한다. 따라서 역초(曆草)라고도 한다. 이 설 외에 전반 보름 동안 한 잎이 나고, 후반 보름 동안 한 잎이 진다는 등 이설이 많다.
  127. 127)임금의 어머니를 이르던 말이다.
  128. 128)①천태종에서는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수행의 방법을 크게 나눈 네 문을 말하는데, 유문(有門)ㆍ공문(空門)ㆍ역유역공문ㆍ비유비공문이다. ②밀교에서는, 진언 다라니의 네 방위의 문을 말하며, 동쪽의 발심문ㆍ남쪽의 수행문ㆍ서쪽의 보리문ㆍ북쪽의 열반문이다.
  129. 129)쑥대로 만든 화살인데, 요사스러운 기운(氣運)을 쫓는다고 한다.
  130. 130)세자를 가리키는 말로 천자는 대해(大海)에 비유하고 태자는 소해(少海)에 비유한 것이다.
  131. 131)하간평왕(河間平王), 즉 진(晉) 나라의 사마홍(司馬洪)을 말한다. 무제(武帝)의 형으로 무제가 제위(帝位)에 오른 후 하간왕(河間王)에 봉해졌으며, 평(平)은 시호이다. 황제의 동기로서의 처신을 잘하는 것을 말한다.
  132. 132)백성에게 은덕을 펴는 교서(敎書)나 명령을 가리킨다.
  133. 133)신선이 산다는 곳으로 곤륜산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는데, 서주(西周)의 목왕(穆王)이 서왕모를 방문하여 요지(瑤池)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134. 134)방종하여 궤도를 벗어난 모양이다.
  135. 135)『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을 말한다.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가 지었고, 현장이 번역하였다.
  136. 136)『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毗達磨大毘婆沙論)』을 말하는 것으로, 협존자(脇尊者), 법구(法救) 외 5백 명이 지었고 현장이 한역하였다.
  137. 137)『목천자전(穆天子傳)』에 “우릉에서 좀 먹는 책을 볕에 쬐었다”는 말이 있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를 가리키는 말이다.
  138. 138)만대(萬代), 만세(萬世)의 뜻이다.
  139. 139)하늘의 만물(萬物) 창조(創造)를 이른다. 유신(庾信)의 소원부(小園賦)에 “진실로 하늘의 창조는 어리석구나, 아 백성들은 혼혼하구나.[諒天造兮昧昧 嗟生民兮渾渾]”라고 하였다.
  140. 140)중국 하북성(河北省) 하간현(河問縣) 지역이다.
  141. 141)부모의 사망을 말한다. 북제(北齊) 시대 안지추(顏之推)의 『안씨가훈(顏氏家訓)』 서문에 보면 “나이 겨우 아홉 살에 부모가 돌아가시니 집안사람들이 헤어져 길가로 흩어져 나갔는데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年始九歲 便丁荼蓼 家塗離散 百口索然]”고 하였다.
  142. 142)직관명으로 진(晉) 나라 때 처음 설치하였으며 원래 산관(散官)이었다. 당송(唐宋) 시대에는 검교관(檢校官)을 두었는데 그 지위가 정관(正官)보다 높았다. 원(元) 이후에는 속관(屬官)으로 원(元) 중서성(中書省)에 검교관을 두고 공사(公事)의 편지를 관리하고 검교하게 하였다.
  143. 143)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손님, 또는 상좌에 모실 만큼 중요하고 지위가 높은 손님을 가리킨다.
  144. 144)『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절후(節候)를 살피는 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갈대 속의 얇은 막을 태워 재로 만든 뒤 그것을 각각 율려(律呂)에 해당되는 여섯 개의 옥관(玉琯) 내단(內端)에다 넣어 두면 그 절후에 맞춰 재가 날아간다고 한다. 따라서 시간, 절기의 의미로 쓰인다.
  145. 145)무덤의 구덩이 속과 벽 안을 통틀어서 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무덤의 뜻으로 쓴다.
  146. 146)관애(關隘)와 산봉(山峰)의 뜻으로, 길이 멀어서 가기 어렵다는 비유로 쓰인다.
  147. 147)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이다.
  148. 148)곤륜산(崑崙山) 서남쪽에 비천곡(飛泉谷)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여기서는 단순히 절 안에 흐르는 샘물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49. 149)남인도 출신의 학승으로, 성은 가섭(迦葉)이었으며, 달마류지(達磨流支)라고도 불렸다.
  150. 150)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 때 천축에서 중국으로 온 승려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다. 그는 30년간 소림사에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151. 151)좌선을 말한다.
  152. 152)중국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 남쪽 20리 지점에 있다.
  153. 153)범어 tisraḥ śikkhā, 파리어 tisso sikkhā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계학(戒學)ㆍ정학(定學)ㆍ혜학(慧學)의 3학을 말한다.
  154. 154)『대지도론(大智度論)』 84권 「석삼혜품(釋三慧品)」에서 말하는 일체지(一切智)ㆍ도종지(道種智)ㆍ일체종지(一切種智)의 3지(智)를 말한다.
  155. 155)일곱 가지의 유루번뇌(有漏煩惱)를 말한다. 즉 견루(見漏)ㆍ수루(修漏)ㆍ근루(根漏)ㆍ악루(惡漏)ㆍ친근루(親近漏)ㆍ수루(受漏)ㆍ염루(念漏等) 등이다. 루(漏)라고 하는 것은 누설(漏泄)의 의미인데,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일체 번뇌가 흘러서 새는 것을 의미한다.
  156. 156)일체의 생물이 네 가지 방법으로 출생한다는 말이니, 즉 태로 나는 것[胎生], 알로 나는 것[卵生], 습기로 나는 것[濕生], 화생하는 것[火生]을 말한다.
  157. 157)열 가지 중생을 얽어매는 번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탐심과 같은 근본 번뇌를 따라 일어나는데, 오염된 마음과 서로 맞물려서 여러 가지 악행을 짓게 된다. 그리고 이런 속박이 유정들로 하여금 생사를 여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전(纏)이라고 하는 것이다.
  158. 158)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뜻이다. 겁석은 겁(劫)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한 사방 40리(里) 되는 석산(石山)으로, 1백 년마다 사람이 한 번씩 와서 옷깃을 살짝 스치기만 하여 그 석산이 다 닳아 없어지는 기간이 1겁(劫)이라 하였다.
  159. 159)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중간에 있는 대보방(大寶坊)으로, 불타가 일찍이 이곳에서 『대집경(大集經)』을 설하셨다고 한다.
  160. 160)공자(孔子)를 가리킨다. 『후한서』 「신도강전(申屠剛傳)」에 “손익을 따질 때에 공부가 한탄하였다.[損益之際 空父攸歎]”이라 하였다.
  161. 161)불교에서는 일체의 사물을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4대(大)가 잠시 합쳐져서 이루어진 가합지신(假合之身)이라 본다. 여기서는 잠시 합해지는 상황을 이른다.
  162. 162)간다르바의 음역인 건달바와 나가라의 뜻인 성(城)을 딴 복합어이다. 건달바가 교묘한 솜씨로 공중에 지어 낸 성을 가리키는 말로, 어떤 사물이 거짓된 환영으로 생겨났을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 쓰이는 비유적인 말이다.
  163. 163)연석은 연산(燕山)에서 나오는 돌로서 옥(玉)과 비슷하면서도 사실은 옥이 아니기 때문에 사이비(似而非)의 뜻으로 쓰인다.
  164. 164)4아함경(阿含經)을 말하는 것이다. 일체의 소승경(小乘經)을 4부로 분류하여, 첫째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51권에는 법문의 수(數)에 해당하는 것을 수집하였고 둘째 『장아함경(長阿含經)』 22권에는 경문(經文)이 긴 것을 모았으며, 셋째 『중아함경(中阿含經)』 60권에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경문을 모았고, 넷째 『잡아함경(雜阿含經)』 50권에는 앞의 세 종류를 섞어서 모아 놓았다. 이 4부의 이름은 경문의 체제에 따라 붙인 것이다.
  165. 165)대승과 소승을 가리킨다. 불타가 일생 동안 설한 교법을 크게 나누면 대승과 소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을 위해 설한 법을 소승이라고 하고, 부처님께서 보살(菩薩)에게 성불하는 법을 설한 것을 대승이라고 한다.
  166. 166)범어 catvāri dhyānāni, 파리어 cattāri jhānāni이다. 또는 4선정(禪定)ㆍ4정려(四靜慮)라고도 한다. 미혹을 다스리고 여러 공덕을 만드는 네 가지 근본 선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색계 중의 초선(初禪)ㆍ제2선(第二禪)ㆍ제3선(第三禪)ㆍ제4선(第四禪)을 가리키기도 하므로, 색계정(色界定)이라고도 부른다. 선(禪)이란 선나(禪那, 범어 dhyānna)를 줄여서 부르는 것으로, 의역하면 정려(靜慮)가 된다. 이 말은 곧 적정(寂靜)을 통해서 잘 살피고 생각하여 실제처럼 알게 된다는 뜻이다.
  167. 167)좌선(坐禪) 수행으로써 불법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168. 168)한나라 선제(宣帝) 때의 소광(疏廣)과 그 조카 소수(疏受)를 말한다. 소광은 태자태부(太子太傅)이고 소수는 태자소부(太子少傅)였는데, 소광이 태자태부가 된 지 5년 만에 스스로 성만(盛滿)을 경계하는 뜻에서 병을 핑계로 상소하여 사직하고 조카 소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천자는 황금 20근을, 태자는 50근을 각각 하사하였고, 공경대부 친구들은 동도문(東都門) 밖에서 전별연(餞別宴)을 베풀었다.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일가와 친구들과 잔치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169. 169)요(堯) 임금이 허유(許由)를 불러 구주(九洲)의 장(長)을 삼으려고 하였는데, 허유는 사양하면서 오히려 귀를 더럽혔다고 영수(潁水) 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 이때 소부(巢父)가 밭을 갈다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영수 가에 가서는,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 더러운 물을 나의 소에게 먹이지 않겠다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고사전(高士傳)』에 나온다. 소부(巢父)는 나무 위에서 살았으므로 소부라고 하였다고 한다.
  170. 170)9지(地)의 땅속을 말한다.
  171. 171)복(伏)ㆍ신(信)ㆍ순(順)ㆍ무생(無生)ㆍ적멸(寂滅)의 다섯 가지 인(忍)을 말하는데, 앞의 네 가지 인은 각기 상중하 3품(品)으로 나뉘고, 뒤의 하나의 인은 상하 2품(品)으로 나뉘어, 모두 14인이 된다.
  172. 172)보살이 수행하는 52계위(階位) 가운데 제21에서 제30위까지에서 닦는 열 가지 이타행(利他行)을 말한다. 10행심(行心)이라고도 한다. 환희행(歡喜行)ㆍ요익행(饒益行)ㆍ무진한행(無瞋恨行)ㆍ무진행(無盡行)ㆍ이치난행(離癡亂行)ㆍ선형행(善現行)ㆍ무착행(無著行)ㆍ존중행(尊重行)ㆍ선법행(善法行)ㆍ진실행(眞實行) 등을 말한다.
  173. 173)진(晉) 나라 때의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살았던 원공(遠公)을 가리킨다.
  174. 174)진(晉) 나라 고승(高僧) 지둔(支遁)을 말한다. 지둔의 자는 도림(道林)이다. 지둔이 일찍이 지형산(支硎山)에 은거하여 수도(修道)하였고, 뒤에는 여항산(餘杭山)에 은거하였다. 애제(哀帝)로부터 부름을 받고 금중(禁中)에서 불법(佛法)을 강론하기도 했다. 그는 누가 말[馬]을 보내주자 “내가 뛰어난 준마(駿馬)를 사랑한다”며 기르더니, 또 누가 학(鶴)을 보내주자 “하늘 높이 나는 새를 어찌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느냐”며 놓아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양고승전(梁高僧傳)』 4권에 나온다.
  175. 175)중국 섬서성(陜西省) 화음현(華陰縣) 남쪽에 있는 산이다.
  176. 176)진(晉) 나라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反招隱詩)」에 “소은(小隱)은 산 속에 숨고, 대은(大隱)은 저자거리나 조정에 숨는다.[小隱隱陵藪 大隱隱市朝]”고 하였다. 『문선(文選)』에 나온다.
  177. 177)하도는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으로, 이것이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178. 178)중국 하남성(河南省) 노씨현(盧氏縣) 동남쪽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으로, 안사현(偃師縣)에 이르러 낙수(洛水)로 흘러든다.
  179. 179)송 나라 정자(程子)가 살던 곳에 이수(伊水)와 낙수(洛水)의 두 물이 있다.
  180. 180)『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내용으로, 초인(楚人)인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갈지 않은 박옥(璞玉)을 캐서 초(楚) 여왕(厲王)에게 바쳤더니 왕은 돌멩이를 옥이라 한다 하여 변화의 왼쪽 발꿈치를 깎아버렸다.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또 바쳤더니, 속인다고 하여 이번에는 오른쪽 발꿈치를 깎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했을 때에 변화는 박옥을 안고 형산(荊山)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연유를 물으니 “보옥(寶玉)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속인다고 하는 것이 슬프다”고 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서 박옥을 다듬었더니 과연 좋은 옥이 나왔다.
  181. 181)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계중(季重)에게 보낸 편지를 말한다. 『문선(文選)』 21권에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가 실려 있는데, “정육점 문을 지나가며 크게 입맛을 다시나니, 비록 고기는 못 먹어도 기분만은 통쾌하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는 표현이 있다.
  182. 182)한 헌제(漢獻帝)를 몰아내고 천하를 차지한 위(魏)의 조조(曹操)ㆍ조비(曹丕)를 말한다.
  183. 183)위를 찬탈하고 진(晉)을 건국한 사마소(司馬昭)ㆍ사마염(司馬炎)을 가리킨다.
  184. 184)당(唐)의 이발(李渤)이 소실산(少室山)에 숨어 살면서 헌종(憲宗)이 좌습유(左拾遺)로 불렀는데도 응하지 않았다. 한유(韓愈)는 그에게 서신을 보내어 나오기를 간절히 권유하였다. 「여소실이습유서(與少室李拾遺書)」에서는 “조정의 선비들이 목을 쭉 빼고 동쪽으로 바라보기를 마치 상서로운 별이나 봉황이 처음 나타났을 적에 서로 다투어 먼저 보는 것을 유쾌하게 여기듯이 한다.[朝廷之士 引頸東望 若景星鳳凰之始見也 爭先覩之爲快]”라고 하였다.
  185. 185)중국 숭산(崇山)을 가리킨다. 숭산에 태실(太室)과 소실(少室) 두 산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두 산은 은거를 비유하는 뜻으로 쓰였다.
  186. 186)성인이 천하 다스리는 것을 그릇 굽는 사람이 그릇 만들 듯한다는 말이다.
  187. 187)중생의 5근(根)을 가리키는 말이다.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 등 5근이 정식(情識)을 만들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188. 188)후당(後唐) 제2대 임금 명제(明帝) 이사원(李嗣源)의 양자(養子) 노왕(潞王)을 가리킨다.
  189. 189)중국 신화 전설상의 제왕으로, 『사기(史記)』에 의하면 황제는 이름을 헌원(軒轅)이라고 하며 당시의 천자 신농씨(神農氏)를 대신하여 염제(炎帝), 치우(蚩尤) 등과 싸워 이겨 천자가 되었다고 한다.
  190. 190)범어 śima의 음역이다. 계장(戒場), 포살계(布薩界)를 말한다. 4마실(摩室)이라고도 한다. 4마란 계(界)이 뜻으로, 포살(布薩)과 같은 중요한 행사를 할 때에 비구가 모이는 계구(界區)를 뜻한다.
  191. 191)임금이 몸소 군대를 사열하는 것을 말한다.
  192. 192)상고시대 황제(黃帝) 헌원씨의 신하 이름이다. 황제가 일찍이 큰바람이 천하의 먼지와 때를 불어서 없애버리는 꿈을 꾸었다. 깨어나서 말하기를 “바람은 호령(號令)이요, 때[垢]는 흙이다. 흙이 사라진 뒤[后]에 있는 것이니, 천하에 성은 풍(風), 이름은 후(后)인 자가 있을 것이라” 하여 ‘풍후’를 바다 한 구석에서 구하여 재상으로 등용하였다 한다.
  193. 193)자일(子日)에서 해일(亥日)까지라는 말로 12일을 뜻한다.
  194. 194)주 목왕(周穆王)이 천하를 주류할 때에 8준마(駿馬)를 탔다고 한다.
  195. 195)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196. 196)중국 하남성(河南省) 정현(鄭縣) 지역이다.
  197. 197)지금의 하남성 형양(滎陽) 서쪽의 사수 및 그 주변 지역이다.
  198. 198)중국 하남성 심양현(沁陽縣) 지역이다.
  199. 199)지금의 하남성 맹현(孟縣) 남쪽 일대이다.
  200. 200)중국 하남성 지현(池縣) 지역이다.
  201. 201)지금의 하남성 의양(宜陽) 서쪽의 복창(福昌) 일대이다.
  202. 202)지금의 하남성 낙녕(洛寧) 동북 일대이다.
  203. 203)지금의 하남성 신안(新安)과 그 주변 지역을 말한다.
  204. 204)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승지(澠池) 서쪽 일대를 말한다.
  205. 205)남방에 있는 성수(星宿)의 이름이다. 고대의 천문학으로 진(秦) 나라의 분야(分野)에 해당한다 한다. 순수는 마치 메추리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므로 입부리를 가다듬는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국토를 뜻한다.
  206. 206)구복희씨(伏羲氏)가 천하를 다스리던 때 황하(黃河)에선 용마(龍馬)가 도(圖)를 지고 나타나고, 낙수(洛水)에선 신구(神龜)가 서(書)를 지고 나왔다 한다. 이것을 하도락서(河圖洛書)라고 한다. 용마가 가지고 나온 도는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본이 되었다.
  207. 207)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도읍한 서울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서안부(西安府)의 일부이다.
  208. 208)운운(云云)과 정정(亭亭) 두 산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고대 제왕이 봉선(封禪)하던 곳이다.
  209. 209)중국 광서성(廣西省) 장족(壯族) 자치구 북동쪽에 있는 도시로 수상 교통의 요지이다.
  210. 210)한(漢) 무제(武帝)가 장안성 밖에 세운 궁전이다. 궁궐의 의미로 쓰인다.
  211. 211)서주(西周)의 경수(涇水), 위수(渭水), 낙수(洛水)를 말하는 것이다.
  212. 212)사립문, 즉 가난한 사람의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문(篳門)이라고도 한다.
  213. 213)천자가 타는 수레의 아래라는 뜻으로 서울을 가리킨다.
  214. 214)천하를 밝게 다스림을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