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弘明集卷第一(幷序)

ABC_IT_K1080_T_001
033_0143_c_01L홍명집 서문1)
033_0143_c_01L弘明集卷第一(幷序)



깨달음의 바다는 한없이 넓고, 지혜의 거울2)은 걸림 없이 원만하게 비춘다. 불타의 신비한 교화는 전 세계에 두루 미치어서 도자기와 주조물을 만들 듯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만들어 내고,3) 그 가르침은 언어를 초월하여 전 세계에 널리 펼쳐져서 점토를 만들 듯이 주공과 공자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도는 위대할수록 믿기 어렵고, 명성이 높을수록 화합하는 경우가 적다. 수미산은 높이 솟아 있으므로 비람풍[藍風]4)이 불어오고, 보물 창고에 보물이 가득 쌓여 있으므로 원망하는 도둑이 생겨난다. 옛날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그 교화가 삼천대천세계5)를 진동시켰지만, 그 가운데에도 네 마군은 분노의 마음을 가슴에 쌓아 두었고, 육사외도六師外道들은 독한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6) 하물며 상법像法의 말기7)인 오늘날에 그러한 일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033_0143_c_02L梁楊都建初寺釋僧祐撰
夫覺海無涯慧境圓照化妙域中陶鑄於堯舜理擅繫表乃埏埴乎周孔矣然道大信難聲高和寡須彌峻而藍風起寶藏積而怨賊生昔如來在世化震大千猶有四魔稸忿六師懷毒況乎像其可勝哉
위대한 불법이 동쪽으로 전파된 지 5백 년 가까이 되었지만, 인연에 따라 각자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였고, 교화의 추세에도 성쇠가 있었다.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불교를 찬탄하였고, 사악하고 미혹한 사람은 비방하고 헐뜯었다. 문자에만 얽매인 유학자들은 불교를 다른 나라의 가르침이라고 거부하였고, 교묘한 말을 일삼는 도교의 무리들은 불교를 자신들과 동일한 가르침이라고 하여 끌어들이려 하였다. 불교를 거부하는 것에는 근본부터 뿌리 뽑아야 할 미망迷妄이 있고, 동일한 가르침이라고 끌어들이는 것에는 붉은색과 보라색을 분별하지 못하는 혼란이 있다.8) 그리하여 마침내 교묘한 궤변이 점점 복잡해졌고, 속임수 같은 말재주만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박쥐9)가 밤중에 울부짖는다고 해도 태양의 빛을 돌려놓을 수 없으며, 정위精衛10)가 바다를 메우려고 돌을 날라오더라도 저 푸른 바다의 형세를 조금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어두움이 빛을 어지럽히고 작은 것이 위대한 것을 혼란스럽게 하면, 털끝만한 미동도 없기는 하지만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거짓된 말에 휘말려서 언제까지나 헤매게 되고, 본말을 전도한 이들은 미혹된 말만 쫓아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더러운 진흙길에는 떨어지기 쉽고 정토淨土에는 올라와 걷기 어려운 이유이다.
033_0143_c_09L自大法東歲幾五百緣各信否運亦崇替見者敷讚邪惑者謗訕至於守文曲則拒爲異教巧言左道則引爲同拒有拔本之迷引有朱紫之亂令詭論稍繁訛辭孔熾夫鶡旦鳴夜不翻白日之光精衛銜石無損滄海之勢然以闇亂明以小罔大雖莫動毫髮而有塵眂聽將令弱植之徒僞辯而長迷倒置之倫逐邪說而永此幽塗所以易墜淨境所以難陟者也
033_0144_a_01L나는 학문이 깊지 못하지만 불법을 널리 알리고 호교護敎하는 일에 깊이 뜻을 두었고, 헛된 말11)과 부박한 세상사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분개하고 있다. 그래서 병을 치유하려고 산 속에 들어와 있는 중에 여가를 내어 고금의 훌륭한 작품을 고르고, 출가자나 재가자의 뛰어난 글들을 모았다. 그 중 삿된 것을 논파하려는 의도가 강한 문장이나 불법을 옹호하는 논의가 있으면, 작품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수록하여 제작하였다. 또 이전 세대의 뛰어난 인사들의 문학상의 저술에서도 삼보三寶에 유익한 것은 모두 편집해서 수록하고, 그것들을 종류별로 구분하여 14권으로 만들었다.
도는 원래 사람에 의해 넓혀지고[弘], 가르침은 문장에 의해 밝혀지는 것[明]이다. 도를 넓히고 가르침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홍명집弘明集』이라고 이름 붙이고, 아울러 나의 보잘것없는 소신도 권말에 덧붙여 두었다. 이 한 방울의 물과 티끌 하나는 비록 적은 것이지만, 대해大海와 태산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기 바란다. 다만 나의 학문이 깊지 못하고 시야가 좁은 것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박학하고 숙련된 군자가 이 책의 내용을 넓혀 주기 바란다.
033_0143_c_20L祐以末學志深弘護靜言浮俗憤慨于心遂以藥疾微閒山棲餘睱撰古今之明篇摠道俗之雅論其有刻意翦邪建言衛法製無大小莫不畢採又前代勝士書記文述有益皆編錄類聚區分列爲一十四卷道以人弘教以文明弘道明教故謂之『弘明集』兼率淺懷附論于末庶以涓埃微裨瀛岱但學孤識寡愧在褊 博練君子惠增廣焉



홍명집弘明集 제1권
033_0144_a_07L牟子理惑
正誣論


1. 모자이혹론牟子理惑論1)[창오蒼梧 태수太守 모자박牟子愽이 전했다고도 함]
033_0144_a_09L牟子理惑一云蒼梧太守牟子博傳

서문
모자牟子는 유학儒學의 경전과 제자諸子들의 서적을 다 섭렵하였고, 책은 대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였다. 병법의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것들도 읽었다. 불사不死를 말하는 신선도의 책들은 읽기는 하였지만 우습게 보고 믿지 않았고, 허황하고 거짓된 것이라고 여겼다.
033_0144_a_11L牟子旣脩經傳諸子書無大小靡不好之雖不樂兵法然猶讀焉雖讀神仙不死之書抑而不信以爲虛誕
이때 후한의 영제(靈帝, 168~189)2)가 승하한 뒤 천하가 혼란에 빠졌는데, 오직 교주交州3) 지방만 다소 평안하였으므로 북방의 도사들이 모두 이리로 모여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신선의 벽곡辟穀과 장생술長生術을 행하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 중 그것을 배우는 이가 많았다. 모자는 언제나 5경經의 입장에서 그들을 비난하였지만, 도가의 방술사들은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세간에서는 이를 맹자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4)을 물리친 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보다 앞서 모자는 모친을 따라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교주로 갔을 때인 26세 때, 창오蒼梧로 돌아가 결혼하였다. 창오의 태수는 모자가 학식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서 관리로 기용할 것을 청하였다. 그때 모자는 나이도 젊고 오로지 학문에만 뜻을 두었고, 더구나 세상의 혼란을 목격하고는 관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아가지 않았다.
033_0144_a_14L時靈帝崩後天下擾亂獨交州差安北方異人咸來在焉多爲神仙辟穀長生之術時人多有學者牟子常以五經難之道家術士莫敢對焉比之於孟軻距楊朱墨翟先是時牟子將母避世交趾年二十六歸蒼梧娶妻太守聞其守學謁請署吏時年方盛志精於學又見世亂無仕宦意竟遂不就
033_0144_b_01L이때는 각 주州와 군郡이 서로 의심하여 왕래도 두절되어 있었다. 태수는 모자가 박학다식하므로 형주荊州에 사절로 보내고자 하였다. 모자는 명예로운 직위를 사퇴하는 것은 쉽지만 사신으로서의 명령은 거절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행장을 차리고 출발하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주목州牧으로부터 문장에 뛰어난 처사로 기용하고 싶다는 부름이 있었으나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주목의 동생은 예장豫章의 태수였는데 중랑장中郞將인 책융苲融5)에게 살해당했다. 그러자 주목은 기도위騎都尉인 유언劉彦을 보내어 군대를 인솔해 나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다른 주와 군이 의심할 것을 걱정하여 군대를 진전시키지 못하였다.
033_0144_a_23L是時諸州郡相疑隔塞不通守以其博學多識使致敬荊州牟子以爲榮爵易讓使命難辭遂嚴當行會被州牧優文處士辟之復稱疾不牧弟爲豫章太守爲中郞將笮融所殺時牧遣騎都尉劉彦將兵赴之恐外界相疑兵不得進
그 때문에 주목은 모자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동생이 역적에게 살해되니 피를 나눈 형제로서 오장이 녹는 듯이 마음이 아프다. 유도위劉都尉를 보내고 싶지만, 다른 지방에서 그를 의심하여 병사들이 순조롭게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문무를 겸비하고 사신으로서 대처할 수 있는 재능도 갖추고 있으니, 이번에 나를 위해 생각을 바꾸어 영릉零陵과 계양桂陽으로 가서 그 지방을 통과하도록 허가를 받았으면 한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033_0144_b_06L牧乃請牟子弟爲逆賊所害骨肉之痛憤發肝當遣劉都尉行恐外界疑難行人不通君文武兼備有專對才今欲相之零陵桂陽假塗於通路何如
모자는 말하였다.
“여물을 받은 말이 마구간에서 먹고 쉬듯이, 저는 당신의 은혜를 받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열사烈士는 자신을 잊고 반드시 이길 것을 생각합니다. 마땅히 곧 출발하겠습니다.”
033_0144_b_10L子曰被秣服櫪見遇日久列士忘身期必騁效遂嚴當發
그런데 때마침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길을 떠날 수 없었다. 한참 지난 후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니, 말솜씨가 좋다는 이유로 사신의 중책을 맡게 되었으나 지금같이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자기를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노자老子는 성인의 지위를 끊고 지혜를 버리고, 자신을 수양하여 진리를 보존하였다. 만물도 뜻을 거스르지 못하였고 천하도 즐거움을 바꾸지 못하였다. 천자도 그를 신하로 삼지 못하였고, 제후도 그를 친구로 삼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귀하다고 할 만하다.”
033_0144_b_12L會其母卒亡不果行久之退念以辯達之故輒見使命方世擾攘非顯己之秋也乃歎老子絕聖棄智脩身保眞萬物不干其志天下不易其樂天子不得臣諸侯不得友故可貴也
이에 모자는 불교의 이치에 깊은 뜻을 두었고, 아울러 『노자』 5천 문文도 연구하였다. 현묘한 진리를 술과 장국을 마시듯이 함축하고, 5경經을 거문고나 피리처럼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 때문에 세속의 무리들 중에는 모자를 가리켜서 5경을 배반하고 다른 도로 향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과 맞서 싸우고자 하면 벌써 진리가 아니고, 침묵을 지키고자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붓을 들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성현의 말씀을 이곳저곳에서 인용하여 논증하고 해설하였다. 그리고 그 글을 「모자이혹론」이라고 불렀다.
033_0144_b_17L於是銳志於佛道兼硏『老子五千文』含玄妙爲酒漿翫五經爲琴簧世俗之徒多非之以爲背五經而向異道欲爭則非欲嘿則不能遂以筆墨之閒略引聖賢之言證解之名曰『牟子理惑』云

1) 부처님의 생애
[문] 부처님은 어디에서 출생하였고, 그 선조와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모두 무엇을 수행하였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6)
033_0144_b_22L或問曰佛從何出生寧有先祖及國邑不皆何施行狀何類乎
033_0144_c_01L[牟子] 참으로 훌륭한 질문이다.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 요점을 대략 말하겠다. 들은 바에 의하면, 부처님 화현의 모습은 도와 덕을 쌓아서 이루어졌고, 수천억 년 걸려도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이 될 때는 인도에서 태어났고, 형상은 백정왕白淨王 부인에게서 빌렸다. 부인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여섯 개의 치아를 가진 흰 코끼리에 타는 꿈을 꾸고 아주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는데, 그런 뒤에 잉태하게 되었다. 이듬해 4월 8일에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땅을 딛고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을 들고 “천상천하에서 나보다 뛰어난 이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때 천지는 크게 진동하였고, 궁중은 일제히 밝아졌다. 그날 왕가의 하녀도 어린애를 낳았고, 마구간의 흰 말도 하얀 새끼말을 낳았다. 하녀의 어린애는 차닉車匿이라고 불렸고, 말은 건척犍陟이라고 불렸는데,7) 백정왕은 이들이 언제나 태자의 뒤를 따르게 하였다. 태자에게는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갖추어져 있었다.8) 신장은 1길 6자[丈六]이고, 몸 전체는 금색이며,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가 있었다. 턱은 사자와 같이 단단하였고, 혀는 얼굴을 덮을 만큼 길었으며, 손바닥에는 천 개의 법륜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마에서 발하는 빛은 만 리를 비출 정도로 환하였다. 이것이 부처님의 모습을 대략 설명한 것이다.
033_0144_c_01L牟子曰哉問也請以不敏略說其要蓋聞佛化之爲狀也積累道德數千億載不可紀然臨得佛時生於天竺假形於白淨王夫人晝寢夢乘白象身有六牙欣然悅之遂感而孕以四月八日從母右脅而生墮地行七步擧右手曰天上天下靡有踰我者也時天地大宮中皆明其日王家靑衣復產一廏中白馬亦乳白駒奴字車匿曰揵陟王常使隨太子太子有三十二相八十種好身長丈六體皆金色頂有肉髻頰車如師子舌自覆面手把千輻輪項光照萬里此略說其
태자가 17세가 되자 왕은 그를 위해 태자비를 맞이하였는데, 이웃 나라 왕녀였다. 태자는 앉을 때는 자리를 띄워서 옮겨 앉았고, 잘 때는 다른 침대에서 잤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분명하여 음陰과 양陽이 서로 통하여 마침내 한 남자아이를 임신하였고, 6년9)이 지나 출산하였다. 부왕은 태자를 보기 드물게 위대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해 훌륭한 궁전을 지어 주었고, 기녀와 진기한 물건들을 그 앞에 늘어놓아 주었다. 그러나 태자는 세속적인 즐거움을 탐하지 않고, 도와 덕에만 마음을 두었다.
033_0144_c_15L年十七王爲納妃鄰國女也太子坐則遷座寢則異牀天道孔明陰陽而通遂懷一男六年乃生父王珍偉太子爲興宮觀妓女寶玩竝列於前太子不貪世樂意存道德
033_0145_a_01L19세가 되던 해 4월10) 8일, 한밤중에 태자는 차닉을 불러서 백마 건척에게 재갈을 물리고 올라탔다. 그러자 귀신이 들어 올려 날아서 궁전을 빠져 나왔다. 다음날 궁중은 텅 비어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부왕과 신하, 백성들 중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뒤를 쫓아서 교외에서 만나자, 부왕은 “네가 아직 태어나기 전에 나는 너를 얻게 해 달라고 귀신과 신들에게 기도하였다. 네가 태어난 뒤에는 금이야 옥이야 하고 소중히 키웠다. 너는 마땅히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데, 떠나면 어찌 하느냐?” 하고 물었다. 태자는 “만물은 무상하니,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없어집니다. 지금 도를 배워서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그 의지가 매우 굳센 것을 알고 일어나서 그대로 돌아갔고, 태자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태자는 도를 생각한 지 6년 만에 마침내 성불하였다.
033_0144_c_19L年十九月八日夜半呼車匿勒揵陟跨之神扶擧飛而出宮明日廓然不知所王及吏民莫不歔欷追之及田未有爾時禱請神祇今旣有爾玉如珪當續祿位而去何爲太子曰萬物無常有存當亡今欲學道度脫十方王知其彌堅遂起而還太子徑思道六年遂成佛焉
부처님께서 초여름의 달에 태어나신 것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때여서, 초목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겨울 가죽옷을 벗고 여름 갈옷을 입는 중려中呂11)의 좋은 계절이었다. 인도에서 태어나신 것은 그곳이 천지의 중앙으로서 중화中和를 얻은 곳이기 때문이다. 저술한 경전은 모두 12부로 분류되는데, 모두 합하여 8억 4천만 권이다.12) 그 가운데 장편은 만 글자 이하이고, 단편이라도 천 글자 이상이다. 부처님께서는 천하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셨고, 백성들을 제도하고 해탈하게 하셨다. 그러다가 2월 15일에 열반에 드시고 돌아가셨다.
033_0145_a_04L所以孟夏之月生者不寒不熱草木華英釋狐裘衣絺綌中呂之時也所以生天竺者天地之中處其中和也所著經凡有十二部合八億四千萬卷其大卷萬言以下小卷千言已上佛授教天下度脫人民因以二月十五日泥洹而
부처님의 경전과 계율은 계속 전승되어 왔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으면 또한 무위無爲13)를 얻어 복이 후세에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이다.
5계戒를 지니는 재가자는 한 달에 6재일齋日14)을 지키고, 재를 올리는 날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잘못을 반성하고 스스로 새로워져야 한다. 사문은 250계를 지키고 매일 재齋를 행하는데, 그 계율은 일반 신도가 섣불리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사문의 위의威儀와 행동거지는 중국의 옛 의례와 다름이 없다.15) 밤낮으로 하루 종일 설법하고 경을 읽으며, 세속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노자가 “위대한 덕이 있는 사람의 모습은 오직 도만을 좇는다”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033_0145_a_11L其經戒續存履能行之亦得無爲福流後世持五戒者一月六齋齋之專心一意悔過自新沙門持二百五十戒日日齋其戒非優婆塞所得聞也威儀進止與古之典禮無異終日竟夜講道誦經不預世事『老子』曰孔德之容唯道是從其斯之謂也

2) 부처[佛]는 무슨 의미인가?
[문] 무슨 이유로 부처님[佛]이라고 하는가? 부처님이란 어떤 의미인가?
033_0145_a_18L問曰何以正言佛佛爲何謂乎
033_0145_b_01L[牟子] 부처님은 시호16)이니, 삼황三皇을 신神이라고 하고, 오제五帝를 성聖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17) 부처님은 도와 덕의 원조이며 신명의 근원이다. 부처님이라는 말은 ‘깨달았다[覺]’는 뜻이다. 황홀하게 변화하여 자유롭게 여러 형태로 자신을 나누어 나타낸다. 그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고, 둥글기도 하고 네모나기도 하고, 노인도 될 수 있고 젊은이도 될 수 있고, 숨을 수도 있고 밖으로 잘 드러나기도 한다. 불을 밟아도 타지 않고, 칼 위를 걸어도 다치지 않으며, 더러움 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재난을 만나도 재액을 당하지 않는다. 가려고 하면 공중을 날아가고, 앉아서는 광명을 놓는다. 따라서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18)
033_0145_a_19L牟子佛者號謚也猶名三皇神五帝聖佛乃道德之元祖神明之宗緖之言覺也怳惚變化分身散體或存或亡能小能大能圓能方能老能少能隱能彰蹈火不燒履刃不傷在污不辱在禍無殃欲行則飛坐則揚光故號爲佛也

3) 도道는 무엇인가?
[문] 무엇을 도라고 하는가? 도는 어떤 종류에 속하는가?
033_0145_b_03L問曰何謂之爲道道何類也
[牟子] 도라는 말은 인도한다[導]는 뜻이다. 사람을 인도하여19) 무위無爲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 끌어도 나아가지 않고, 뒤에서 당겨도 물러나지 않으며, 위에서 들어 올려도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눌러도 내려가지 않는다. 쳐다보아도 형태가 없고, 귀를 기울여도 소리가 없다. 세계의 사방[四表]20)은 거대하지만 도는 그 바깥까지 감싸고, 털끝은 지극히 미세하지만 도는 그 속까지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033_0145_b_04L牟子曰道之言導人致於無爲牽之無引之無後擧之無上抑之無下之無形聽之無聲四表爲大蜿蜒其毫釐爲細閒關其內故謂之道

4) 도의 실체
[문] 공자는 5경經을 도의 가르침으로 삼으니, 그것을 받들어 독송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설명하는 도는 허무하고 황홀하여 그 의미를 모르겠고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성인의 말씀과 어찌 그리 다른가?
033_0145_b_08L問曰孔子以五經爲道教可拱而誦履而行今子說道虛無怳惚不見其不指其事何與聖人言異乎
[牟子] 평소에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중시하고 드물게 보는 일을 경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다 보면 겉치레에 현혹되어 중요한 감정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일을 이루는 데 도덕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은 현악기의 현을 조율할 때 5음의 음계[宮商]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천도는 사계절[四時]의 운행을 법칙으로 삼고, 인도人道는 5상常의 가르침을 법칙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지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어떤 사물이 혼재해 있었으니, 천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모르겠다. 억지로 이름 붙이자면 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라는 사물은 집안에 머물 때는 그것으로 부모를 섬길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릴 때는 그것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으며, 홀로 자립할 때는 그것으로 자신을 수양할 수 있다. 이 도를 실천해 가면 천지에 가득 차고, 가령 버리고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멸해서 그것과 분리될 수는 없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어찌 5경과 다른 점이 있겠는가?
033_0145_b_11L牟子不可以所習爲重所希爲輕或於外類失於中情立事不失道德猶調絃不失宮商天道法四時人道法五『老子』曰有物混成先天地生可以爲天下母吾不知其名强字之曰道道之爲物居家可以事親宰國可以治民獨立可以治身履而行之充乎天地廢而不用消而不離子不解之何異之有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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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교 경전의 광대함
[문] 지극한 진실은 화려하지 않고, 지극한 말은 수식이 없다. 말은 간략하지만 지극한 경우는 아름답고, 일이 적어도 통달한 경우는 명석하다. 따라서 주옥은 수가 적어서 귀중하고, 기와와 자갈은 수가 많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 성인은 근본 경전으로 7경經21)을 제작하였는데, 그 어휘는 3만 글자[言]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여러 가지 일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불교 경전은 권수가 만 권을 헤아리고, 글자 수는 억 개를 헤아려서 한 사람의 힘으로는 이를 다 감당할 수 없다.22) 나는 불경이 너무 번쇄하여 핵심을 얻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033_0145_b_20L問曰夫至實不華至辭不飾言約而至者麗事寡而達者明故珠玉少而瓦礫多而賤聖人制七經之本過三萬言衆事備焉今佛經卷以萬言以億數非一人力所能堪也以爲煩而不要矣
[牟子] 강과 바다가 길가의 웅덩이와 다른 것은 깊고도 넓기 때문이다. 5악岳23)이 언덕과 구별되는 것은 높고 크기 때문이다. 만약 높이가 산이나 언덕보다 탁월하게 높지 않다면, 절름발이 양도 그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깊이가 여울보다 현격히 깊지 않다면, 어린아이도 그 물에서 목욕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린은 동물원에서는 살지 않고, 배를 삼킬 정도의 큰 물고기는 몇 자밖에 되지 않는 냇물에서는 놀지 않는다. 크기가 세 치밖에 안 되는 대합을 쪼개서 보름달같이 큰 구슬을 구하고, 탱자나무나 가시나무 둥우리에서 봉황의 알을 찾는다면, 반드시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는 작은 것이 큰 것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은 수억 년 전의 일을 말할 뿐만 아니라 만 세대 뒤의 중요한 도까지 설명하고 있다. 태소太素가 아직 일어나지 않고 태시太始도 아직 생성되지 않았을 때24)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겨났지만, 그 미묘함은 파악할 수 없고, 그 섬세함은 파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그 광대한 우주의 밖까지 다 감싸고, 그 미묘한 속까지 다 분석하여 서술하지 않으신 것이 없다. 따라서 불교 경전의 권수가 만 권을 헤아리고 글자 수도 억을 헤아리는 것이다. 경전이 많을수록 내용이 더 잘 갖추어지고, 글자 수가 많을수록 그 내용이 더 풍부하기 마련이다. 어찌 핵심이 없다고 하겠는가? 비록 한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강물에서 물을 마실 때 한 모금이면 충분한 것에 비유25)할 수 있다. 그 외의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033_0145_c_03L牟子曰江海所以異於行潦者以其深廣也五嶽所以別於丘陵者以其高大也若高不絕山阜跛羊凌其顚深不絕涓流孺子浴其淵騏驥不處苑囿之中呑舟之魚不遊數仞之溪剖三寸之蚌求明月之珠探枳棘之巢求鳳皇之雛難獲也何者小不能容大也佛經前說億載之事卻道萬世之要太素未太始未生乾坤肇興其微不可握其纖不可入佛悉彌綸其廣大之外剖扸其窈妙之內靡不紀之故其經卷以萬計言以億數多多益具衆衆益富何不要之有雖非一人所堪若臨河飮水飽而自足焉知其餘哉

6) 불경의 요점
[문] 불교 경전은 방대하고 수가 많으므로 요점만 취하고 나머지 것은 버리고 싶다. 그 본질만 직접 설명하고 그 나머지는 없애면 좋겠다.
033_0145_c_17L問曰佛經衆多欲得其要而棄其餘直說其實而除其華
033_0146_a_01L[牟子] 그렇지 않다. 저 태양과 달은 모두 밝게 빛나지만 각기 비추는 대상이 있고, 하늘의 28수宿26)도 각각 주로 여기는 대상이 있다. 온갖 약초가 생겨나지만, 각각 치료하는 대상이 다르다. 여우 털로 만든 모피는 추위를 대비한 것이고, 여름 갈옷은 더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배와 수레는 가는 길이 다르지만 모두 다 여행자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공자가 5경에 다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춘추春秋』와 『효경孝經』을 제작한 것27)도 도덕 학술의 영역을 넓혀서 사람들의 기대에 자의대로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 경전은 수가 많지만 귀착하는 점은 하나이다. 이것은 7경經이 다 다르지만 도와 덕, 인仁과 의義를 똑같이 중요시하는 것과 같다. 공자가 효孝를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은 사람들의 행위에 맞추어서 가르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장子張과 자유子游가 똑같이 효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공자가 각기 다르게 대답한 것은 그들의 단점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찌 나머지를 버리는 일이 있겠는가?
033_0145_c_19L牟子曰夫日月俱明各有所照二十八宿各有所百藥竝生各有所愈狐裘備寒御暑舟輿異路俱致行旅孔子不以五經之備復作『春秋』『孝經』者欲博道術恣人意耳佛經雖多其歸爲一猶七典雖異其貴道德仁義亦一孝所以說多者隨人行而與之子張子游俱問一孝而仲尼答之各 攻其短也何棄之有哉

7) 불도佛道를 배우는 까닭
[문] 불도가 지극히 존귀하고 지극히 위대한 것이라면,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는 왜 불도를 닦지 않았는가? 또한 7경 속에도 불도와 관련된 말은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이미 『시경詩經』ㆍ『서경書經』을 즐겨 읽고 예禮와 악樂도 기쁘게 행하면서, 무엇 때문에 또 불도를 좋아하고 다른 이치를 기뻐하며 따르는가? 불도가 어떻게 유학의 경전에 나오는 훌륭한 성현의 업적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당신의 입장을 따르지 않겠다.
033_0146_a_05L問曰佛道至尊至大堯舜周孔曷不脩之乎七經之中不見其辭子旣耽『詩』『書』悅『禮』『樂』奚爲復好佛道喜異術能踰經傳美聖業哉竊爲吾子不取也
[牟子] 책이 반드시 공자의 말에 국한될 필요는 없고, 약이 반드시 편작扁鵲28)의 처방만 최고인 것은 아니다. 이치에 합당하면 따르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이면 좋은 약이다. 군자는 널리 착한 일들을 찾아서 자신의 수양을 돕는다. 따라서 자공子貢이 “우리 선생님에게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요임금은 윤수尹壽에게 사사하였고, 순임금은 무성務成을 섬겼고, 또 주공[旦]은 여망(呂望:太公)에게 배웠고, 공자는 노자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7경에 보이지 않는다.29) 네 사람의 스승이 모두 성인이기는 하지만, 부처님에게 비교하면 흰 사슴과 기린, 또는 제비와 봉황 같은 차이가 있다.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는 오히려 그에게 배울 수 있다. 하물며 부처님은 신체의 상호가 변화무쌍하고 신통력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인 데 있어서이겠는가? 어찌 이를 버리고 불도를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5경에 나오는 일의 도리는 혹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불도에 대한 기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찌 이상하게 여기고 의심하기에 충분하겠는가?
033_0146_a_09L牟子曰書不必孔丘之言藥不必扁鵲之方合義者從愈病者良君子博取衆善以輔其身子貢云夫子何常師之有乎堯事尹壽舜事務成且學呂丘學老聃亦俱不見於七經也師雖聖比之於佛猶白鹿之與麒麟燕鳥之與鳳凰也堯舜周孔且猶學況佛身相好變化神力無方焉能捨而不學乎五經事義或有所闕不見記何足怪疑哉

8) 부처님의 상호
[문] 부처님에게는 32상相 80종호種好가 있었다고 하지만, 어찌 보통 사람과 심하게 다른 모습이겠는가? 그것은 아마도 지어낸 이야기일 뿐 실제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033_0146_a_19L問曰云佛有三十二相八十種好其異於人之甚也殆富耳之語非實之云也
033_0146_b_01L[牟子] 전해 오는 말에 “식견이 좁은 사람은 의심하는 일이 많아, 낙타를 보고도 말 등에 혹이 생겼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요임금의 눈썹은 여덟 가지 색이었고, 순임금의 눈은 눈동자가 둘이었고, 고요皐陶의 입은 까마귀 부리와 같았고, 주나라 문왕은 젖꼭지가 네 개였고, 우왕의 귀는 귓구멍이 세 개였고, 주공은 꼽추였고, 복희伏羲는 용 같은 코를 가졌고, 공자는 절구통 같은 머리를 가졌고, 노자는 이마가 해처럼 튀어나왔고, 눈이 현묘하며 콧날이 두 개였고, 손바닥에는 열 개의 문양이 있었고, 발바닥의 문양은 두 개와 다섯 개였다고 한다. 이것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찌 부처님의 상호만 이상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한가?
033_0146_a_22L牟子曰諺云少所見多所怪睹馲駝言馬腫背堯眉八彩舜目重瞳皐陶馬喙文王四乳禹耳參漏周公背僂伏羲龍鼻仲尼反宇老子日角月玄鼻有雙柱手把十文足蹈二此非異於人乎佛之相好奚足疑哉

9) 사문의 삭발과 효도
[문] 『효경孝經』에는 “신체와 머리카락,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다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 증자曾子는 임종시에 “내 손을 펴 보아라. 내 발을 펴 보아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사문은 머리를 깎는데, 어찌 그리 성인의 말을 거스르고 효자의 도리에 합치하지 않는가? 당신은 항상 옳고 그름을 논하고,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을 가리기 좋아하면서 오히려 이런 일을 좋다고 여기는가?
033_0146_b_05L問曰『孝經』言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毀傷曾子臨沒啓予手啓予足今沙門剃頭何其違聖人之語不合孝子之道也吾子常好論是非平曲直而反善之乎
[牟子] 성인과 현인을 비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하고, 부당한 것을 옳다고 판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어질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면서 어떻게 덕을 세울 수 있는가? 덕이 확립되지 못한다면 완고하고 비뚤어진 인물인데 어찌 쉽게 논의할 수가 있겠는가? 옛날 제齊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다가 아버지가 물에 빠졌다.30) 아들은 팔을 걷고 아버지 머리를 붙잡아 거꾸로 세워서 물을 입에서 토하게 하였고, 그리하여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게 되었다. 부모의 머리를 붙잡아 거꾸로 세우는 것보다 더 심한 불효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의 목숨을 온전히 살릴 수 있었다. 만약 두 손을 모으고 평상시 효자의 도리를 다하는 자세로 있었다면, 아버지는 물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공자도 “함께 바른 길로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비상수단을 쓸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시의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033_0146_b_10L牟子曰夫訕聖賢不仁平不中不智也不仁不智何以樹德德將不樹頑嚚之儔也論何容易乎昔齊人乘舡渡江其父墮水其子攘臂捽頭顚倒使水從口出而父命得蘇捽頭顚倒不孝莫大然以全父之身若拱手脩孝子之常父命絕於水矣孔子曰可與適道未可與㩲所謂時宜施者也
033_0146_c_01L또 『효경』에는 “선왕은 지극한 덕과 중요한 도리를 갖추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태백泰伯은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새겼을 뿐 아니라 스스로 오나라와 월나라의 풍속을 좇아서 신체와 머리카락, 피부에 상처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거슬렀다.31) 그런데도 공자는 그를 지극한 덕을 갖추었다고 칭찬하였다. 즉 공자는 그가 머리를 잘랐다고 비난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큰 덕을 갖추기만 하면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문이 재산을 포기하고 처자를 버리고 음악을 듣지 않고 여색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지극한 최대의 겸양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성인의 말씀을 거스르고 효자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하겠는가? 예양豫讓32) 재를 삼키고 몸에 옻을 발라서 모습을 바꾸었고, 섭정聶政33)은 자기 얼굴 가죽을 벗겨서 자해하였으며, 백희伯姬34)는 불에 타 죽었고, 고행高行35)은 얼굴을 베어서 정조를 지켰다. 군자들은 모두 이들이 용기 있고 정의를 위해 죽은 사람들이라고 여겼지,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죽었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욱이 사문이 삭발하는 것을 이들 네 사람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와는 아주 먼 경우가 아닌가?
033_0146_b_18L且『孝經』曰先王有至德要而泰伯祝髮文身自從吳越之俗違於身體髮膚之義然孔子稱之可謂至德矣仲尼不以其祝髮毀之由是而觀茍有大德不拘於小門捐家財棄妻子不聽音視色可謂讓之至也何違聖語不合孝乎豫讓呑炭漆身聶政㓟面自刑伯姬蹈火高行截容君子以爲勇而死義不聞譏其自毀沒也沙門剔除鬚髮而比之於四人不已遠乎

10) 처자와 재산을 버리는 행위
[문] 후계자를 얻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고, 자손이 없는 것보다 더 큰 불효는 없다. 그런데 사문이 처자를 버리고 재산을 포기하거나 평생 결혼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복과 효도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지 기특한 일이 아니고, 자신을 궁지에 빠뜨리는 것이지 남다른 것이 아니다.36)
033_0146_c_05L問曰夫福莫踰於繼嗣不孝莫過於無後沙門棄妻子捐財貨或終身不何其違福孝之行也自苦而無奇自極而無異矣
[牟子] 원래 왼쪽이 길면 오른쪽은 반드시 짧기 마련이고, 앞이 크면 뒤는 반드시 좁기 마련이다. 맹공작孟公綽은 조趙나라나 위魏나라 같은 대국의 재상으로는 훌륭하지만, 승勝나라나 설薛나라 같은 소국의 대부로 삼을 수는 없다.37) 처자와 재산은 세속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무위無爲한 것이 미묘한 도이다. 따라서 노자는 “명예와 몸은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몸과 재화는 어느 편이 더 많은가?”38)라고 물었다.
033_0146_c_09L牟子曰夫長左者必短大前者必狹後孟公綽爲趙魏老則優不可以爲滕薛大夫妻子財物世之餘也淸躬無爲道之妙也『老子』名與身孰親身與貨孰多
모자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ㆍ은ㆍ주 3대의 유풍을 잘 관찰하고, 유학과 묵가의 도덕, 학술을 잘 살피고, 『시경』과 『서경』을 외우고 예절의 수양에 힘쓰며, 인의를 존중하고 청결함을 중시하는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모두 실행하는 것이다. 마음이 편안하여 욕심이 없는 사람은 그러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눈앞에 수나라의 진주가 놓여 있고 뒤에서 울부짖는 호랑이가 쫓아온다면, 그것을 본 사람이 진주를 줍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명을 우선으로 여기고 이익을 나중으로 보기 때문이다. 허유許由39)는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살았고,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지만, 성인인 공자는 그들의 현명함을 “인仁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고 칭찬하였다. 그들이 후손이 없고 재산이 없다고 비난하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문은 도와 덕을 닦는 일로 세속의 즐거움을 대신하고, 훌륭한 현자의 입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40) 처자와 함께 사는 기쁨에 등을 돌린다. 이 사람들을 기특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보고 기특하다고 하겠는가? 이 사람들을 보고 남다르다고 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보고 남다르다고 하겠는가?
033_0146_c_13L又曰三代之遺風覽乎儒墨之道術誦『詩』『書』脩禮節崇仁義視淸潔鄕人傳業名譽洋溢此中士所施行恬惔者所不恤故前有隨珠後有虓虎見之走而不敢取何也先其命而後其利也許由棲巢木齊餓首陽舜孔稱其賢曰求仁得仁者也不聞譏其無後無貨也沙門脩道德以易遊世之樂反淑賢以背妻子之歡是不爲奇與爲奇是不爲異孰與爲異哉
033_0147_a_01L
11) 복식의 예의
[문] 황제黃帝는 의상을 아래로 내려뜨려서 복식의 제도를 정하였고, 기자箕子는 홍범洪範을 제시하여 행동거지를 5사事41)의 제일로 삼았다. 공자는 『효경』을 지을 때 복장을 세 가지 덕42) 가운데 첫 번째라고 생각하여 “의복과 관을 바르게 하고, 보이는 외관을 중요시한다”고 하였다. 원헌原憲은 가난하였지만 화려한 관을 벗은 적이 없고,43) 자로子路는 조난을 당하였을 때도 갓끈 묶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사문은 머리를 깎고 붉은색 천으로 몸을 감고,44) 사람을 만나도 무릎을 꿇거나 일어서는 예의가 없으며, 올바로 대응하는 행동거지가 부족하다. 어찌 그리 용모나 복장의 제도에 어긋나고, 허리띠를 매는 선비의 복식에서 벗어나 있는가?45)
033_0146_c_23L問曰黃帝垂衣裳制服飾箕子陳『洪範』貌爲五事首孔子作『孝經』服爲三德始又曰正其衣冠尊其瞻視原憲雖不離華冠子路遇難不忘結纓沙門剃頭髮披赤布見人無跪起之儀無盤旋之容止何其違貌服之乖搢紳之飾也
[牟子] 노자는 “최상의 덕은 덕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덕이 있다. 저속한 덕은 자신의 덕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이 없다”46)고 말하였다. 삼황三皇 시대에는 고기를 먹고 가죽옷을 입으며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굴을 파서 사는 등 소박한 생활을 존중하였다. 어찌 장보章甫의 관47)과 곡구曲裘의 수식 등을 필요로 하였겠는가?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은 덕이 있고 인정이 많으며 신실하고 꾸밈이 없었다고 한다. 사문의 행위에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033_0147_a_07L牟子曰『老子』云德不德是以有德下德不失德是以無三皇之時食肉衣皮巢居穴處以崇質朴豈復須章甫之冠曲裘之飾然其人稱有德而敦厖允信而無沙門之行有似之矣
[문] 당신의 말대로라면 황제黃帝와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 등은 무시하는 일이 있고, 모범이 되기에 충분치 못한 인물이다.
033_0147_a_12L或曰如子之言則黃帝孔之棄而不足法也
[牟子] 보는 바가 넓으면 헤매지 않고, 귀가 밝으면 미혹되지 않는다.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는 세속의 일을 하였지만, 부처님과 노자는 무위에 뜻을 두었다. 공자는 70여 나라를 떠돌아다녔지만, 허유는 천하를 선양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냇물에 귀를 씻었다. 군자의 도는 벼슬을 하는 경우도 있고 물러나 은둔하는 경우도 있고 침묵하는 경우도 있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 행위가 자신의 감정을 넘어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의 본성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 도가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디에 활용하는가에 관련되어 있을 뿐이니, 어찌 무시하는 일이 있겠는가?
033_0147_a_14L牟子曰夫見博則不迷聽聰則不惑堯舜周孔脩世事佛與老子無爲志也仲尼拪拪十餘國許由聞禪洗耳於淵君子之或出或處或嘿或語不溢其情淫其性故其道爲貴在乎所用何棄之有乎
033_0147_b_01L
12) 정신[神]은 다시 태어나는가?
[문] 불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다시 태어난다”48)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다.
[牟子] 사람이 임종할 때 가족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49)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를 부르는 것인가?
[문] 혼백魂魄을 부르는 것이다.
[牟子] 정신이 돌아오면 소생하지만, 돌아오지 않으면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문] 귀신이 된다.
[牟子] 그렇다. 정신은 본래 불멸하고, 신체만 썩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신체는 오곡의 뿌리, 잎과 같고 영혼[魂神]은 오곡의 씨앗과 같은 것이다. 뿌리와 잎은 나오면 반드시 시들지만, 씨앗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 도를 체득한 사람도 신체는 소멸해 버릴 뿐이다. 노자도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은 나에게 신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신체가 없다면 무슨 고통이 있겠는가?”50)라고 말하였고, 또 “일을 완수한 후에 자신이 물러나는 것이 천도이다”51)라고 말하였다.
033_0147_a_20L問曰佛道言人死當復更生僕不信此之審也牟子曰人臨死其家上屋呼之死已復呼誰或曰呼其魂魄子曰神還則生不還神何之呼鬼神牟子曰是也魂神固不滅矣身自朽爛耳身譬如五穀之根葉神如五穀之種實根葉生必當死實豈有終已得道身滅耳『老子』曰所以有大患以吾有身也若吾無身吾有何患又曰功遂身退天之道也
[문] 도를 닦아도 죽고 닦지 않아도 죽는다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牟子] 그것이야말로 하루도 선행하지 않으면서 일생의 명예를 문제삼는 것과 같다. 도를 얻었다면 신체는 죽더라도 영혼은 천당[福堂]52)으로 가지만, 악한 일을 행하였다면 죽은 뒤에 영혼은 그 재앙을 받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도 어둡지만, 현인과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예견한다.53) 도를 체득한 것과 체득하지 못한 것은 마치 금을 잡초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 선행과 복의 관계는 마치 흰색을 검은색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 어찌 차이가 없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는가?
033_0147_b_07L或曰爲道亦死不爲亦死有何異乎牟子曰所謂無一日之善而問終身之譽者也有道雖死神歸福堂爲惡旣死神當其殃愚夫闇於成事賢智豫於未萌道與不道如金比草善之與福如白方黑焉得不異而言何異乎

13) 생사와 귀신
[문] 공자는 “살아 있는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는가?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54)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성인이 단념한 문제이다. 지금 불교도들은 생사에 관한 일이나 귀신에 대한 제사를 수시로 말한다. 이것은 성인이나 철인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원래 도를 실천하는 자는 허무虛無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생사를 말하여 뜻을 혼란스럽게 하고 귀신의 쓸데없는 일까지 논하는가?
033_0147_b_14L問曰孔子云未能事人焉能事鬼知生焉知死此聖人之所絕也今佛家輒說生死之事鬼神之務此殆非聖哲之語也夫履道者當虛無惔怕歸志質朴何爲乃道生死以亂志鬼神之餘事乎
033_0147_c_01L[牟子] 당신의 말은 사물의 외양만 보고 내면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과 같다. 공자는 자로가 근본과 지엽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나무라서 이렇게 누른 것이다. 『효경』에는 “종묘를 세워서 귀신이 흠향을 받게 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서 때마다 부모를 추모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한 “살아 계실 때는 애정과 존경으로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애도와 슬픔으로 섬긴다”는 구절도 있다.55) 이것은 귀신을 섬기며 생사에 대해 알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겠는가?
033_0147_b_20L牟子曰若子之言謂見外未識內者也孔子疾子路不問本末以此抑之耳『孝經』曰爲之宗廟鬼享之春秋祭祀以時思之又曰事愛敬死事哀慼豈不教人事鬼神知生死哉
주공이 무왕을 위하여 생명을 달라고 부탁하며 “저는 다재다능하여 귀신을 잘 섬길 수 있다”56)고 말한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불경에서 말하는 생사에 대한 취지도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겠는가. 노자는 “그 자식을 알고 그 어머니를 지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다.57) 또한 “그 빛을 활용하고 그 밝음을 회복하면, 자신에게 재앙을 남기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생사의 귀추와 길흉이 머무는 곳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지극한 도의 요체는 실제로 적막한 경지를 중요하게 여길 뿐, 불교도가 논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종과 북이 어찌 저절로 소리가 나겠는가? 북채로 쳐야 비로소 소리가 나는 것이다.
033_0147_c_02L周公爲武王請命曰旦多才多藝能事鬼神夫何爲也佛經所說生死之趣非此類乎『老子』曰知其復守其母沒身不殆又曰用其光復其明無遺身殃此道生死之所趣吉凶之所住至道之要實貴寂寞家豈好言乎來問不得不對耳鍾鼓豈有自鳴者捊加而有聲矣

14) 오랑캐와 중국
[문] 공자는 “오랑캐에게 군주가 있더라도 중국에 군주가 없는 것보다 못하다”58)고 하였고, 맹자는 진상陳相이 다시 허행許行의 가르침을 배우려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중국의 문화로 오랑캐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랑캐의 문화로 중국을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59)고 비난하고 있다. 당신은 젊었을 때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의 가르침을 배웠는데, 지금 와서 그것을 버리고 다시 오랑캐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니, 너무 미혹하지 않은가?
033_0147_c_09L問曰孔子曰夷狄之有君不如諸夏之亡也孟子譏陳相更學許行之術吾聞用夏變夷未聞用夷變夏者也吾子弱冠學堯舜周孔之道而今捨更學夷狄之術不已惑乎
[牟子] 이는 내가 아직 위대한 도를 잘 몰랐을 때 한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와 같은 사람은 예제禮制의 화려함만 보고 도덕의 실질에는 어둡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횃불과 등불 같은 약한 빛만 보고 하늘의 햇빛은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공자의 말은 세상의 법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고, 맹자가 한 말도 한 가지에만 전념하는 것을 싫어한 것뿐이다. 옛날 공자는 오랑캐 땅에 살고자 하여 “군자가 사는 데에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60)라고 말하였다. 그때 공자는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등용되지 않았던 것이지, 어찌 오랑캐를 섬긴 것이겠는가? 우禹임금은 서쪽의 강족羗族 출신이었지만 지혜로운 성인이었고, 고수瞽叟는 순임금 같은 성인을 낳았지만 고집 센 바보였다. 유여由余는 적狄 땅에서 태어났지만 진秦나라를 도와 패자覇者가 되게 하였고, 관중管仲과 채숙蔡叔은 황하와 낙수 지역 출신이라고 하였지만 헛소문이었다.
033_0147_c_14L牟子曰此吾未解大道時之餘語耳若子可謂見禮制之華而闇道德之實窺炬燭之明未睹天庭之日也孔子所言矯世法矣孟軻所云疾專一耳昔孔子欲居九夷君子居之何陋之有及仲尼不容於魯衛孟軻不用於齊豈復仕於夷狄乎禹出西羌而聖瞽叟生舜而頑嚚由余產狄國而霸秦管蔡自河洛而流言
033_0148_a_01L전하는 말에 의하면, “북두칠성은 하늘의 중앙에 있고, 인간 세상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漢]이 반드시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상하 사방의 구석구석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부처님에게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불교를 존경하고 배우는 것일 뿐이다. 어찌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의 도를 버리려는 것이겠는가? 황금과 옥은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며, 수주隨珠와 벽옥碧玉은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가리켜서 미혹하다고 할 때 자기 자신이야말로 미혹한 것이 아닌가?
033_0147_c_23L傳曰北辰之星在天之中在人之北以此觀之漢地未必爲天中也佛經所說上下周極含血之類物皆屬佛焉是以吾復尊而學之何爲當捨堯舜周孔之金玉不相傷隨碧不相妨謂人爲惑時自惑乎

15) 보시
[문] 아버지의 재산을 가져다 길 가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은혜[惠]라고 할 수 없고, 양친이 아직 살아 계신데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죽는 것을 인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불교 경전에는 “수대나須大拏 태자61)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져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국보인 코끼리를 적에게 주었으며, 또한 아내와 자식을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구절이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예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남을 공경하는 것을 예에 어긋난다고 하고,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는 것을 덕에 위배된다고 한다.62) 그렇게 볼 때 수대나 태자는 불효자이며 어질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불교도들은 그를 존경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033_0148_a_06L問曰蓋以父之財乞路人不可謂惠二親尚存殺己代人不可謂仁今佛經云太子須大挐以父之財施與遠國之寶象以賜怨家妻子自與他不敬其親而敬他人者謂之悖禮不愛其親而愛他人者謂之悖德須大挐不孝不仁而佛家尊之豈不異哉
033_0148_b_01L[牟子] 5경經의 논의로는 후계자를 장남으로 세운다. 그런데 주나라 대왕은 창昌의 마음씨를 보고 맏아들 대신 막내를 후계자로 삼아서 주 왕조의 창업을 성취하고 태평성세를 실현하였다.63) 아내를 맞아들이는 예의로는 반드시 부모에게 먼저 말씀드려야 하는데, 순임금은 부모에게 먼저 말씀드리지 않고 장가를 들어 위대한 인륜을 성취하였다. 바른 선비는 반드시 초빙하기를 기다리고 나서야 벼슬을 하고, 현명한 신하는 부르는 명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임금에게 나아간다. 그러나 이윤伊尹은 먼저 솥을 짊어지고 탕왕湯王에게 가서 벼슬을 하였고, 영척寧戚은 소뿔을 두드리며 제나라 환공桓公에게 벼슬을 구하였다. 이렇게 해서 탕왕은 왕이 되었고, 환공은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또 예禮에서는 남녀가 물건을 직접 주고받는 것도 금하고 있는데, 형수가 강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위급할 때의 임시 조치이다.64)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파악하면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이 어찌 상식적인 것에 구애받겠는가? 수대나 태자는 세상의 무상함을 보고 재화를 자신의 보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대로 보시하여 대도를 성취하였다. 아버지와 국가는 그 보답을 받아 적이 침입할 수 없었다. 그가 성불하자 부모 형제들이 다 제도받았다. 이것이 효도가 아니고 이것이 인仁이 아니라면, 무엇을 가리켜서 인과 효라고 하겠는가?
033_0148_a_13L牟子曰五經之義立嫡以長大王見昌之志轉季爲嫡遂成周業以致太娶妻之義必告父母舜不告而娶以成大倫貞士須聘請賢臣待徵召伊尹負鼎干湯甯戚叩角要齊湯以致王齊以之霸男女不親授嫂溺則授之以手㩲其急也茍見其大不拘於小大人豈拘常也須大挐睹世之無常財貨非己寶故恣意布施以成大道父國受其祚怨家不得入至於成佛父母兄弟皆得度世是不爲孝是不爲仁孰爲仁孝哉

16) 술을 마시고 아내를 두는 것
[문] 불교의 도리는 무위를 중시하고, 보시를 즐거워하며, 계율을 지키는 일에 마치 깊은 못에 임하듯이 전전긍긍 매우 조심한다고 한다.65)66) 그런데 오늘날 사문들은 술 마시는 일에 탐닉하거나 처자식을 두고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등 오로지 속임수를 일삼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의 위선자들인데, 불교에서 이들을 무위하다고 할 수 있는가?
033_0148_b_02L問曰佛道重無爲樂施與持戒兢兢如臨深淵者今沙門耽好酒漿或畜妻子取賤賣貴專行詐紿此乃世之大僞而佛道謂之無爲耶
[牟子] 목수인 공수반公輸般은 사람들에게 큰 도끼, 작은 도끼, 먹줄은 줄 수 있어도 기술은 나누어 주지 못하였다.67) 성인은 사람들에게 도를 가르쳐 줄 수는 있어도 실천하게 만들 수는 없다. 고요皐陶는 도둑을 처벌할 수 있어도, 욕심 많은 사람을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청렴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5형刑으로는 패륜아를 주살할 수 있어도, 악한 사람을 증삼曾參이나 민자건閔子騫처럼 덕있는 이로 만들지는 못한다. 요임금도 단주丹朱68)를 교화하지 못하였고, 주공도 관숙과 채숙을 교육할 수 없었다. 이것이 어찌 요나라의 교화가 밝지 못하고 주나라의 도덕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는가? 그만큼 악인들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7경經에 통달했으면서도 재물과 여색에 빠졌다고 하여 6예藝를 사악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백河伯이 물의 신이더라도 육지의 인간을 물속에 빠뜨릴 수 없고, 회오리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깊은 물속의 티끌까지 집어 올리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지, 어찌 불교의 도리를 나쁘다고 할 수 있는가?
033_0148_b_06L牟子曰工輸能與人斧斤繩墨而不能使人功聖人能授人道不能使人履而行之也皐陶能罪盜人不能使貪夫爲夷齊五刑能誅無狀不能使惡子爲曾堯不能化丹朱周公不能訓管蔡豈唐教之不著周道之不備哉然無如惡人何也譬之世人學通七經而迷於財色可謂六藝之邪淫乎河伯雖神不溺陸地人飄風雖不能使湛水揚塵當患人不能行豈可謂佛道有惡乎

17) 보시와 복
[문] 공자는 “너무 사치하면 불손하고, 너무 검약하면 고루하다. 그래도 불손한 것보다는 고루한 편이 낫다”69)고 하였다. 숙손叔孫도 “검약은 덕을 공경하는 것이고, 사치는 큰 악이다”70)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지금 불교도는 재산을 통틀어 보시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재산을 모두 남에게 주는 것을 고귀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일에 어찌 복이 있겠는가?
033_0148_b_17L問曰孔子稱奢則不遜儉則固與其不遜也寧固叔孫曰儉者德之恭者惡之大也今佛家以空財布施爲盡貨與人爲貴豈有福哉
033_0148_c_01L[牟子]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71) 공자의 말은, 당시 사람들이 사치하고 무례한 것을 나무란 말이고, 숙손의 말도 노나라 장공莊公이 기둥에 조각을 새긴 것을 비난한 것이지, 보시를 금한 것은 아니다. 순임금이 처음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을 때 그의 은혜는 근방 마을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태공太公이 소를 도살하는 일을 할 때 처자도 먹여 살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에 등용되자 은혜가 팔방의 황폐한 곳에 퍼지고 혜택이 온 천하에 두루 미쳤다. 재산이 넉넉하고 돈이 많아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고, 생활이 가난하여 자주 쌀통이 비어도71) 도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허유는 천하를 욕심내지 않았고, 백이는 자기 나라를 편안히 여기지 않았으며, 우경虞卿은 만 호戶의 봉토를 포기하면서까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위급함을 구하였다. 이것은 그들 각자의 뜻이다. 희부기僖負羇는 한 항아리의 밥을 베푼 덕택으로 살고 있던 마을이 온전하게 되었고,72) 선맹宣孟은 밥 한 끼의 은혜로 둘도 없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73)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보시는 어떤 의도 없이 행해지지만, 그 과보는 한낮의 태양보다 분명하게 밖으로 드러난다.74) 하물며 자기 재산을 다 기울여서 선한 마음을 일으키면, 그 공덕은 숭산이나 태산처럼 높아지고 강이나 바다처럼 유유히 흐르게 될 것이다. 선한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는 복이 돌아오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재앙으로 보답된다. 볍씨를 뿌려서 보리가 수확되는 경우는 있어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재앙의 종자를 뿌리고 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033_0148_b_21L牟子曰彼一時也此一時也仲尼之言疾奢而無禮叔孫之論刺公之刻楹非禁布施也舜耕歷山恩不及州里公屠牛惠不逮妻子及其見用恩流八惠施四海饒財多貨貴其能與困屢空貴其履道許由不貪四海伯夷不甘其國虞卿捐萬戶之封救窮人之急各其志也僖負羈以壺飱之惠全其所居之閒宣孟以一飯之故其不訾之軀陰施出於不意陽報皎如白日況傾家財發善意其功德巍巍如嵩泰悠悠如江海矣懷善者應之以祚扶惡者報之以殃未有種稻而得麥作禍而獲福者乎

18) 비유는 도의 요체
[문] 성실보다 더 큰 일은 없고, 진실보다 더한 말은 없다. 노자는 화려한 수식어를 없애고, 질박한 말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불교 경전에서는 사실을 직접 지적하지 않고 널리 비유만 든다. 비유는 진리의 요체가 아니다. 또 서로 다른 것을 맞추어서 같다고 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아니다. 아무리 말이 많고 설명의 폭이 넓다 해도, 옥 부스러기가 한 수레 있어도 보석으로 여길 수 없는 경우와 같다.
033_0148_c_12L問曰夫事莫過於誠說莫過於實子除華飾之辭崇質䃼之語佛經說不指其事徒廣取譬喩譬喩非道之合異爲同非事之妙雖辭多語博猶玉屑一車不以爲寶矣
033_0149_a_01L[牟子] 어떤 사실을 함께 본 적이 있다면 그 실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본 적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 옛날 기린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기린을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어떤 종류의 동물인가를 물었다. 기린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기린은 기린과 같다”고 답하였다. 질문하는 사람은 “만약 내가 기린을 본 적이 있다면, 자네에게 묻지 않네. 그런데도 기린을 기린과 같다고 말하면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기린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기린은 큰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를 하고 사슴의 발굽에 말의 등을 하고 있네”라고 대답하자, 질문한 사람은 알 듯한 생각이 들었다. 공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가슴속에 쌓아 두지 않는다면, 참으로 군자답지 않은가?”75)라고 말하였다. 노자는 “천지의 자연은 마치 풀무와 같다”76)고 하였고, 또 “세상에서 도를 비유하면 마치 강이나 계곡의 물이 큰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77)고 하였다. 이들 말은 화려한 수식이 아닌가? 『논어』에서는 “덕에 근거하여 정치를 행하는 것은 북극성에 비유할 수 있다”78)고 하여 하늘을 끌어들여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 자하子夏는 “비유하면 초목을 구별하여 심는 것과 같다”79)고 하였고, 『시경』 3백 편은 여러 사물들을 끌어들여 한 종류로 합한 것이다. 제자諸子들의 사상과 참위설讖緯說 및 성인의 비언秘言ㆍ요어要語는 비유를 쓰지 않는 경우가 없다. 자네는 어찌 유독 불교 경전에서 비유를 쓰는 일만 싫어하는가?
033_0148_c_17L牟子曰嘗共見者可說以實一人見一人不見者難與誠言也昔人未見麟嘗見者麟何類乎見者曰麟如麟也問者曰若吾嘗見麟則不問子矣云麟如麟寧可解哉見者曰麏身牛尾鹿蹄馬背問者虛解孔子曰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老子』云地之閒其猶橐籥乎又曰譬道於天猶川谷與江海豈復華飾乎『論語』爲政以德譬如北辰引天以比人子夏曰譬諸草木區以別矣『詩』之三百牽物合類自諸子讖緯聖人秘要莫不引譬取喩子獨惡佛說經牽譬喩耶

19) 부귀와 빈천
[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부귀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빈천은 싫어하며, 유유자적하게 마음껏 노는 것은 즐기고 수고로운 것은 싫어한다. 황제黃帝는 본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 부식물[五肴]80)을 최상으로 여겼고, 공자도 “밥은 흴수록 좋고, 생선회는 얇을수록 좋다”81)고 말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사문들은 붉은 천을 몸에 두르고 하루 한 끼의 식사82)를 하고 사람의 여섯 가지 감정을 닫아 버린 채 일생을 마치고 있다. 이와 같다면 도대체 무슨 즐거움이 있는가?
033_0149_a_08L問曰人之處世莫不好富貴而惡貧樂歡逸而憚勞倦黃帝養性以五肴爲上孔子云食不厭精鱠不厭細今沙門被赤布日一食閉六情自畢於世若茲何聊之有
[牟子] 부귀는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빈천은 누구나 다 싫어하는 것이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다.83) 노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섯 가지 다양한 색채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다섯 가지 다양한 음의 음악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하며, 다섯 가지 다양한 맛의 음식은 사람의 입맛을 마비시킨다. 말 달리며 사냥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구하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방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腹]를 위하지 눈[目]을 위하지 않는다.”
033_0149_a_13L牟子云富與貴是人之所欲不以其道得之不處也與賤是人之所惡不以其道得之去也『老子』曰五色令人目盲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馳騁田獵令人心發狂難得之貨令人行妨聖人爲腹不爲目
이 말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유하혜柳下惠84)는 3공公의 지위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았고, 단간목段干木은 자신의 몸을 위나라 문공文公의 부와도 바꾸지 않았다. 허유許由와 소보巢父는 나무 위에서 살았지만 스스로 그곳을 제왕의 궁전보다 더 안락하게 생각하였고, 백이나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지만 스스로 주나라 문왕과 무왕보다 더 만족하다고 말하였다. 결국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할 뿐인데, 어찌 아무런 즐거움도 없겠는가?
033_0149_a_19L此言豈虛哉柳下惠不以三公之位易其行段干木不以其身易魏文之富許由巢父拪木而居自謂安於帝宇夷齊餓于首陽自謂飽於文武蓋各得其志而已何不聊之有乎
033_0149_b_01L
20) 경서를 배우다
[문] 만약 불교 경전이 그렇게 심원하고 화려한 것이라면,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조정에서 논하거나 주군과 부모에게 설명하고 가정에서 실천하고 친구에게 권하지 않는가? 어찌 또 유학의 경서를 배우고 제자백가의 책들을 읽는가?
033_0149_b_01L問曰若佛經深妙靡麗子胡不談之於朝廷論之於君父脩之於閨門之於朋友何復學經傳讀諸子乎
[牟子] 그대는 근원은 궁구하지 않고 지엽적인 것을 묻고 있다. 도마나 그릇 등의 제기를 보루의 문 앞에 벌여 놓고, 전시에 쓰는 깃발을 조정에 세우고, 한여름에 여우 가죽의 모피 옷을 입고, 동짓달을 베옷을 입고 맞이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장소에 어긋나고 올바른 계절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공자의 학문을 익혀서 법가法家인 상앙商鞅의 문하에 들어가고, 맹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패도覇道를 설하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를 찾아가도, 조그마한 공훈도 없고 큰 잘못만 저지르게 될 것이다. 노자는 “최고의 선비는 진리를 들으면 열심히 실천하고, 중급의 선비는 진리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며, 하급의 선비는 진리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이 크게 웃을 것을 염려하여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목마르다고 꼭 큰 강의 물만 마실 필요는 없다. 우물이나 샘물을 마시더라도 배불리 마실 수 없겠는가? 이와 같은 이치로 불교 이외의 경서도 배우는 것이다.
033_0149_b_04L牟子曰未達其源而問其流也夫陳俎豆於壘門建旌旗於朝堂衣狐裘以當蕤賓被絺綌以御黃鍾非不麗乖其處非其時也故持孔子之術入商鞅之門齎孟軻之說詣蘇張之功無分寸過有丈尺矣『老子』曰士聞道勤而行之中士聞道若存若下士聞道大而笑之吾懼大笑不爲談也渴不必待江河而飮井泉之水何所不飽是以復治經傳耳

21) 불교의 전래
[문] 한나라 땅(중국)에 처음 불교가 들어온 것은 언제부터인가?
033_0149_b_14L問曰漢地始聞佛道其所從出耶
033_0149_c_01L[牟子] 옛날 후한의 효명孝明 황제는 꿈에 신인神人을 보았다. 그는 신인의 몸에서 빛이 나고 궁전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이튿날 황제는 “이것은 어떠한 신인가?”라고 신하들에게 널리 의견을 구하였다. 이에 박식한 학자인 부의傅毅가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도를 깨달은 부처라는 사람이 인도에 있는데, 허공을 날아다니고 몸에서 빛이 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신일 듯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황제는 감동을 받고, 중랑中郞인 채음蔡愔과 우림랑중羽林郞中인 진경秦景, 그리고 박사 제자博士弟子인 왕준王遵 등 18인을 사절로 삼아서 파견하였다. 대월지국大月支國에서 불교 경전인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사경하였는데, 그것을 수도인 낙양洛陽의 난대 석실 제14실에 옮겨 소장하였다. 그때 낙양성 서쪽 옹문 밖에 불교 사원이 건립되었고, 그 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탑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남궁 청량대와 개양성문 위에도 불상이 모셔졌다. 명제는 미리 수릉을 짓고 있었는데 현절릉顯節陵이라 불렀고, 그곳에도 부처님 도상을 그렸다. 이 당시 나라가 풍요롭고 백성들이 편안하였기 때문에 먼 곳의 이민족들도 중국의 도의를 경모하였다. 불교를 배우는 이들이 이때부터 많아졌다.
033_0149_b_15L子曰昔孝明皇帝夢見神人身有日飛在殿前欣然悅之明日博問群此爲何神有通人傅毅曰臣聞天竺有得道者號曰佛飛行虛空身有日光殆將其神也於是上寤遣中郞蔡愔羽林郞中秦景博士弟子王遵等十八人於大月支寫佛經四十二藏在蘭臺石室第十四閒時於洛陽城西雍門外起佛寺於其壁畫千乘萬騎繞塔三帀又於南宮淸涼臺及開陽城門上作佛像明帝時豫脩造壽陵顯節亦於其上作佛圖像時國豐民寧遠夷慕義學者由此而滋

22) 말도 하고 실행할 수도 있는 사람은 보배이다
[문]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85)고 하였다. 또한 “위대한 논변은 눌변과 같고, 위대한 기술은 졸렬한 것같이 보인다”86)고도 하였다. 군자는 말이 행동에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87) 사문이 최고의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라면 어째서 앉아만 있고 실행하지 않는가? 또 어째서 일의 시비를 말하고, 옳고 그름을 논하는가? 나는 사문의 이 같은 행동이 덕을 해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88)
033_0149_c_06L問曰『老子』云智者不言言者不智大辯若訥大巧若拙君子恥言過設沙門有至道奚不坐而行之復談是非論曲直乎僕以爲此行德之賊也
[牟子] 내년 봄에 대기근이 든다고 올 가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거나 겨울에 한파가 온다고 여름부터 가죽옷을 걸쳐 입는 것은 준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바보 같은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자가 말한 것은 도를 얻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사람이 어찌 그 말뜻을 알겠는가? 위대한 진리는 한마디의 설명만으로도 천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한다. 이것이 어찌 위대한 논변이 아니겠는가? 노자도 “공을 이루고 자신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미 물러났는데,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늘날의 사문들은 아직 도를 얻은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자도 말을 하였다. 만약 말하지 않았다면, 어찌 『도덕경』 5천 어語를 기술하였겠는가? 도를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알지 못하면서 말까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따라서 할 말은 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의 스승이고, 실행하지만 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의 기둥이며, 실행할 수도 있고 할 말도 하는 사람은 나라의 보배이다.89) 세 사람은 각각의 수완이 다를 뿐이지 어찌 도를 해치는 사람[賊]일 수 있겠는가? 오직 할 말도 못하고 실행도 못하는 사람이 덕을 해치는 사람이다.
033_0149_c_11L牟子曰來春當大飢今秋不食黃鍾應寒蕤賓重裘備豫雖早不免於愚老子所云謂得道者耳未得道者何知之有乎大道一言而天下悅豈非大辯乎老子不云乎功遂身退天之道也身旣退矣又何言哉今之沙門未及得道何得不言老氏亦猶言也如其無言五千何述焉若知而不言可也旣不能知又不能言愚人也能言不能行國之師也能行不能言國之用也能行能言國之寶也三品各有所施何德之賊乎唯不能言又不能行是謂賊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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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담론
[문] 그대의 말대로라면 논변하는 것만 배우고 담론의 기술만 연마해야 할 것이다.90) 어째서 또한 마음을 수양하고 도덕을 실천할 필요가 있겠는가?
033_0150_a_01L問曰如子之言徒當學辯達脩言論豈復治情性履道德乎
[牟子] 어찌 그리 깨닫지 못하는가. 원래 말이나 담론에는 각각 때를 맞춘다는 것이 있다. 거원籧瑗은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을 때에는 직언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침묵을 지킨다고 하였다.91) 영무자寧武子는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을 때에는 지혜로운 자로 행동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어리석은 자로 행동하였다.92) 공자는 “더불어 말할 만한 사람과 함께 말하지 않으면 인재를 잃게 되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말하면 말을 잃게 된다”93)고 말하였다. 따라서 지혜와 어리석음은 각자 그 올바른 때가 있고, 담론에는 각각 그때마다의 의도가 있다. 어째서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033_0150_a_03L牟子曰何難悟之甚乎夫言語談論各有時也蘧瑗曰國有道則直國無道則卷而懷之甯武子國有道則智國無道則愚孔子曰可與言而不與失人不可與言而與言失言故智愚自有時談論各有意何爲當言論而不行哉

24) 위대한 도는 무위이다
[문] 어째서 불교의 도를 지극히 존귀하고 지극히 즐거우며 무위 담백하다고 말하는가? 세상 사람들과 학자들은 불도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학설이 텅 비어서 활용하기 어렵고, 허무하여 믿기 어렵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033_0150_a_10L問曰云何佛道至尊至快無爲憺怕世人學士多謗毀之云其辭說廓落難用虛無難信何乎
[牟子] 최고급 요리는 일반인의 입맛에 맞지 않고, 위대한 음악은 대중의 귀에는 친근하지 않다. 함지咸池의 곡을 연주하고 대장大章의 악곡을 베풀고94) 소소簫韶의 조율을 연주하여 아홉 번 반복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음악을 따라 부르지 못한다. 정나라와 위나라의 현弦을 연주하고 세속적 노래를 부르면 바라지 않아도 반드시 박수를 받을 것이다.95) 따라서 송옥宋玉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나그네가 정郢96)에서 노래 부르고 시골의 속된 곡을 연주하면 천 명의 사람들이 따라 부르지만, 상商과 각角은 아무리 연주해도 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이들은 모두 저속한 음악을 좋아하고 고상한 음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033_0150_a_13L牟子曰至味不合於衆口大音不比於衆耳咸池大章簫韶莫之和也張鄭衛之絃歌時俗之必不期而拊手也故宋玉云客歌於郢爲下里之曲和者千人引商激衆莫之應此皆悅邪聲不曉於大度者也
033_0150_b_01L한비자韓非子가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얕은 생각으로 요임금ㆍ순임금을 비난하고,97) 접여接輿가 좁은 소견으로 공자를 비난한 것98)은 모두 보잘것없는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여 위대한 성인을 소홀히 여긴 것이다. 원래 맑은 상의 소리를 듣고 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을 타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제대로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변화卞和의 벽옥을 보고 돌이라고 부르는 것도 벽옥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 제대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신기한 뱀은 몸이 절단되더라도 다시 이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절단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다. 영묘한 거북은 송원군宋元君의 꿈속에 나타날 수는 있지만 여차余且의 그물을 피할 수는 없다.99) 위대한 도는 무위로서, 세속의 견해로는 이해할 수 없다. 칭찬한다고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비난한다고 가치가 더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쓰이고 쓰이지 않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고, 실행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시운에 달려 있다.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이 운명이다.
033_0150_a_20L韓非以管闚之見而讓堯舜接輿以毛氂之分而刺仲尼皆耽小而忽大者也夫聞淸商而謂之角彈絃之過聽者之不聰矣見和璧而名之石非璧之賤也視者之不明矣神蛇能斷而復續不能使人不斷也靈龜發夢於宋元不能免豫苴之網大道無爲非俗所見不爲譽者貴爲毀者賤用不用自天也行不行乃時也信不信其命也

25) 오경과 불교의 도
[문] 당신은 경서를 통해 불교 학설을 해석하고 있다. 그 표현이 풍부하고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며, 문장이 뛰어나고 학설이 훌륭하다. 이것은 당신의 변론에 의해 그런 것이 아닌가?
[牟子] 내 변론 때문이 아니다. 시야가 넓기 때문에 미혹되지 않은 것뿐이다.
033_0150_b_06L問曰吾子以經傳理佛說其辭富而義顯其文熾而說美得無非其誠子之辯也牟子曰非吾辯也見博故不惑耳
[문] 시야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牟子] 불경 덕분이다. 내가 아직 불경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 자네보다 심하게 미혹되었다. 5경을 독송하면서도 화려하다고만 생각하였고, 실질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불경의 가르침과 노자 학설의 요체를 살펴보고 고요히 담담한 본성을 지키고 무위의 행을 파악하고 나서 세속의 일을 다시 보니, 마치 천정天井에서 계곡을 살펴보고 숭악과 대산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 낮은 구릉을 내려다보는 듯하였다. 5경은 다섯 가지 맛이고, 불교의 이치는 다섯 가지 곡식이다.100) 나는 도를 깨달은 이래 구름을 걷고 태양을 보고, 횃불을 밝히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되었다.
033_0150_b_10L問曰見博其有術乎牟子曰由佛經吾未解佛經之時惑甚於子雖誦五經適以爲華未成實矣旣吾睹佛經之說覽『老子』之要守恬憺之性無爲之行還視世事猶臨天井而闚溪谷登嵩岱而見丘垤矣五經則五佛道則五穀矣吾自聞道以來如開雲見白日炬火入冥室焉

26) 시서詩書를 인용하는 이유
[문] 그대는 불경이 강과 바다와 같이 광대하고, 그 문장이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의 질문에 불경을 가지고 대답하지 않고, 다시 『시경』과 『서경』을 인용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합쳐서 같은 것이라고 하는가?
033_0150_b_18L問曰子云經如江海其文如錦繡不以佛經答吾問而復引『詩』『書』合異爲同乎
033_0150_c_01L[牟子] 목마른 사람은 꼭 강과 바다의 물이 아니더라도 마시고, 배고픈 사람은 꼭 오창敖倉에 있는 많은 곡물이 아니더라도 먹는다. 도는 지혜로운 자를 위해 설명된 것이고, 변론은 통달한 사람에 의해 넓혀진다. 글은 깨달은 사람에 의해 전해지고, 일은 견식이 있는 사람에 의해 명백해진다. 나는 그대가 그 뜻 『시경』과 『서경』의 뜻을 알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일을 인용한 것이다. 만약 불경의 말로 설명하고 무위의 요체를 말한다면, 이것은 맹인에게 다양한 색을 설명하고, 귀머거리에게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광師曠은 음악 실력이 뛰어나지만 현이 없는 거문고를 연주할 수 없고, 여우와 너구리의 가죽은 따뜻하지만 죽은 이를 따뜻하게 할 수 없다. 공명의公明儀는 소를 위하여 맑은 각角의 음악을 연주하였지만, 소는 고개를 숙인 채 먹이를 먹을 뿐이었다. 소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소의 귀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음악을 바꾸어서 모기와 등에의 울음소리나 어미와 헤어진 송아지 울음소리를 내면, 소는 바로 꼬리를 흔들고 귀를 쫑긋하게 하여 열심히 들을 것이다. 따라서 『시경』과 『서경』을 인용하여 그대에게 설명하였을 뿐이다.
033_0150_b_21L牟子曰渴者不必須江海而飢者不必待敖倉而飽道爲智者辯爲達者通書爲曉者傳事爲見者明吾以子知其意故引其事若說佛經之語談無爲之要譬對盲者說五色爲聾者奏五音也師曠雖巧不能彈無絃之琴狐狢雖熅不能熱無氣之人公明義爲牛彈淸角之操伏食如故非牛不聞不合其耳矣轉爲蚊蝱之聲孤犢之鳴卽掉尾奮耳蹀躞而聽是以『詩』『書』理子耳

27) 하나를 지킨다는 것
[문] 내가 옛날에 도읍에 있을 때 동관東觀101)에 들어가 태학에서 배우면서 우수한 선비들이 법도로 삼는 내용을 살펴보고 유림의 많은 논의를 들었지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중히 여기고 스스로 삭발하는 것을 최상의 것으로 삼는 사람은 없었다. 그대는 어찌 불교에 심취하는가? 여행 중에 방향을 잃으면 길을 바꾸고, 막다른 길에서 막히면 원래의 길로 되돌아간다.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033_0150_c_08L問曰吾昔在京師入東觀遊太學俊士之所規聽儒林之所論未聞脩佛道以爲貴自損容以爲上也吾子曷爲耽之哉夫行迷則改路術窮則反故可不思與
033_0151_a_01L[牟子] 변화에 뛰어난 사람은 사기술로 속일 수 없고, 도에 통달한 사람은 괴상한 것을 가지고 놀라게 할 수 없다. 말을 잘 살피는 사람은 말로 현혹할 수 없고, 도의를 잘 분별하는 사람은 이익을 가지고 움직이게 할 수 없다. 노자는 “명예는 몸을 상하게 하고, 이익은 행동을 더럽힌다”102)고 하였고, 또한 “사기술을 가지고 임시방편으로 삼으면, 허무虛無는 저절로 귀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가정 내의 예의범절을 익혀 세속에 잘 영합하기 위해 애쓰고 빈틈을 타서 출세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하급 선비의 행동이어서 중급 선비조차 버리는 내용이다. 하물며 무한히 펼쳐지는 최고의 진리와 위대한 성인의 행동에 있어서이겠는가. 아득함이 하늘과 같고, 심연함이 바다와 같다. 울타리에서 엿보는 정도의 좁은 소견의 인간이나 수 척의 담장을 높다고 보는 이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그 문만 볼 뿐이지만 나는 방 안까지 들여다보는 것이고, 그들은 문장의 화려함을 찾지만 나는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며, 그들은 모두 갖추어진 것을 바라지만 나는 한 가지 도만을 지키는 것이다.103) 그대야말로 신속히 길을 바꾸어 불도佛道로 들어오기를 나는 바란다. 그대는 화복이 생겨나는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104)
033_0150_c_13L牟子曰夫長於變者不可示以詐通於道者不可驚以怪審於辭者不可惑以言達於義者不可動以利也『老子』曰名者身之害者行之穢又曰設詐立㩲虛無自貴脩閨門之禮術時俗之際會赴趣間務合當世此下士之所行中士之所廢也況至道之蕩蕩上聖之所行杳兮如天淵兮如海不合闚牆之數仞之夫固其宜也彼見其門睹其室彼採其華我取其實彼求其備我守其一子速改路吾請履之禍福之源未知何若矣

28) 부처님 덕의 위대함
[문] 당신은 경서의 문장과 화려한 말로 부처님의 행위를 찬양하고 그 덕을 칭찬한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푸른 하늘의 구름보다 더 높고, 대지의 넓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넓다고 한다. 이것은 본질을 벗어나 사실을 너무 과장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의 비판은 불교의 결점의 본질을 꿰뚫고, 그 약점을 찌른 것이다.
033_0151_a_02L問曰子以經傳之辭華麗之說襃讚佛稱譽其德高者凌淸雲廣者踰地得無踰其本過其實乎而僕譏刺頗得疹中而其病也
[牟子] 아아, 불덕에 대한 나의 찬사는 마치 티끌을 숭산과 태산에 보태고, 아침 이슬을 모아 강과 바다에 던지는 일과 같다. 그대가 불교를 비방하는 것도 표주박으로 강과 바닷물의 양을 줄이려 하고, 쟁기를 갈아서 곤륜산을 낮추려 하고, 손바닥 하나를 기울여서 태양빛을 가리려 하고, 흙덩이를 들어 올려 황하의 흐름을 막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찬양한다고 해서 불교를 높일 수 없고, 그대가 비난한다고 해서 불교가 낮아질 수 없다.
033_0151_a_06L牟子曰吾之所襃猶以塵埃附嵩泰收朝露投江子之所謗猶握瓢觚欲減江海耕耒欲損崑崙側一掌以翳日光土塊以塞河衝吾所襃不能使佛高子之毀不能令其下也

29) 불경과 선서仙書
[문] 왕교王喬나 적송자赤松子 등 8선仙의 부록과 신서神書 170권은 모두 장생長生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어찌 불경과 같은 종류이겠는가?
033_0151_a_11L問曰王喬赤松八仙之籙神書百七十卷長生之事與佛經豈同乎
[牟子] 이 신선의 책과 불경을 비교해 보면, 5패覇와 5제帝의 관계와 같고, 양화陽貨와 공자의 관계와 같다. 그 형태를 비교해 보면, 구릉과 화산華山과 항산恒山의 관계와 같고, 못과 강과 바다의 관계와 같다. 그 문장을 비교해 보면, 호랑이 가죽과 양 가죽의 관계와 같고, 모시와 수놓은 비단의 관계와 같다. 도에는 아흔여섯 종류105)가 있지만, 가장 위대한 것이라도 불교의 도보다 나은 것이 없다. 신선의 책은 들어보면 귀에 한가득 차지만, 실효를 살펴보면 마치 바람을 붙들고 그림자를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106) 따라서 위대한 도는 신선의 책을 상대하지 않고, 무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신선의 책에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동일할 수 있겠는가?
033_0151_a_13L牟子比其類猶五霸之與五帝陽貨之與仲尼比其形猶丘垤之與華恒瀆之與江海比其文猶虎鞹之與羊班紵之與錦繡也道有九十六種至於尊大莫尚佛道也神仙之書之則洋洋盈耳求其效猶握風而捕是以大道之所不取無爲之所不焉得同哉

30) 성전聖典에서 벽곡辟穀을 말하지 않음
[문]도를 닦는 사람 중에는 곡식을 피하여 먹지 않으면서도 술을 마시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것도 노자의 방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도에서는 술과 고기를 가장 금기로 여기고 도리어 곡식을 먹고 있다. 어찌 그렇게 다른가?
033_0151_a_21L問曰爲道者或辟穀不食而飮酒啖亦云老氏之術也然佛道以酒肉爲上誡而反食穀何其乖異乎
033_0151_b_01L[牟子] 도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을 종합해 보면 모두 아흔여섯 종류에 이르지만, 담백하고 무위하다는 점에서 불교보다 나은 것이 없다. 내가 노자의 『도덕경』 상권과 하권을 읽어 보니, 다섯 가지 다양한 맛을 금지하는 계戒107)는 있지만 곡식을 끊으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유학의 성인들은 일곱 가지 경전[七典]의 문장을 썼지만, 곡식을 먹지 않는 방술에 대한 것은 없다. 노자는 『도덕경』 5천 자를 지었지만, 오곡을 끊으라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인은 “곡식을 먹는 사람은 지혜롭고, 풀을 먹는 사람은 어리석으며, 고기를 먹는 사람은 무섭고, 기氣를 먹는 사람은 장수한다”고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 본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섯 가지 짐승[六禽]이 기를 막아 숨쉬지 않고108) 가을과 겨울의 계절에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본받아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물에는 각각의 본성이 있어서, 예를 들면 자석은 무거운 철을 끌어당기지만 가벼운 털끝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과 같다.
033_0151_b_01L牟子衆道叢殘凡有九十六種澹泊無莫尚於佛吾觀老氏上下之篇其禁五味之戒未睹其絕五穀之語聖人制七典之文無止糧之術老子著五千文無辟穀之事聖人云食穀者智食草者癡食肉者悍食氣者壽世人不達其事見六禽閉氣不息冬不食欲效而爲之不知物類各自有性猶磁石取鐵不能移毫毛矣

31) 벽곡辟穀과 장생長生
[문] 곡식을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033_0151_b_10L問曰穀寧可絕不乎
[牟子] 내가 아직 위대한 도를 이해하기 전에 배운 적이 있다. 벽곡의 방법에는 수천 수백 가지가 있는데, 아무리 실행해 보아도 효과가 없고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만두었을 뿐이다. 내가 스승으로 삼아서 배운 세 사람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자신이 7백 세, 5백 세, 또는 3백 세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 학문을 배운 지 3년이 지나기 전에 모두 죽어 버렸다. 그 이유는 곡식을 완전히 끊고 먹지 않으면서도 온갖 과일들은 다 맛보고, 고기는 먹었다 하면 여러 접시를 먹고, 술은 마셨다 하면 술통을 바닥낼 정도로 마셔서 정신이 혼란스럽고, 곡기가 충분하지 못하여 눈과 귀가 어지럽게 되고, 미혹하고 음란한 일들을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까닭을 질문하면, 그들은 “노자는 ‘줄이고 또 줄여서 무위까지 이른다’109)고 하였으니, 다만 체력을 날마다 줄여 가야만 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더할 뿐이고 줄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두 지천명[知命]의 나이에 이르기 전에 죽었다. 또한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도 모두 백 세까지 살지 못하였다. 하물며 말세의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들이 벽곡하는 방법으로 무한한 수명을 구하려고 하는 것110)은 애석한 일이 아닌가.
033_0151_b_11L牟子曰吾未解大道之時亦嘗學焉辟穀之法數千百行之無效爲之無徵故廢之耳吾所從學師三人或自稱七百五百百歲然吾從其學未三載閒各自殞所以然者蓋由絕穀不食而啖百享肉則重盤飮酒則傾樽精亂神穀氣不充耳目迷惑淫邪不禁問其故何答曰『老子』云損之又損之以至於無爲徒當日損耳然吾觀之但日益而不損也是以各不至知命而死矣且堯舜周孔各不能百載末世愚惑欲服食辟穀求無窮之哀哉
033_0151_c_01L
32) 불교도와 병
[문] 도를 행하는 사람은 질병을 물리치고 병에 걸리지 않으며, 침술과 약도 복용하지 않고 치유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째서 불교는 병에 걸리면 침술과 약을 사용하는가?
033_0151_c_01L問曰爲道之人云能卻疾不病不御鍼藥而愈有之乎何以佛家有病而進鍼藥耶
[牟子] 노자는 “사물이 장성하면 노쇠해지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가 아니면 일찍 죽는다”111)고 하였다. 오직 도를 얻은 사람만이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으므로 장성하지 않고, 장성하지 않으므로 노쇠하지도 않는다. 노쇠하지 않으므로 병들지 않고, 병들지 않으므로 죽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노자는 “몸이 있다는 것을 큰 근심거리로 여긴다”112)고 말한 것이다. 무왕이 병에 걸리자 주공은 목숨을 살려 주기를 기도하였고, 공자가 병에 걸리자 자로는 기도를 청하였다.113) 나는 성인들이 모두 병에 걸린 것을 보았고,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신농神農은 약초를 맛보다가 죽을 뻔한 적이 수십 번이었고,114) 황제黃帝는 머리를 조아리고 기백岐伯에게 침을 맞았다.115) 이 세 명의 성인이 어찌 오늘날의 도사보다 못하겠는가? 이 말을 잘 성찰해 보면 더 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033_0151_c_04L牟子曰『老子』云物壯則老謂之不道不道早已唯有得道者不生亦不壯不壯亦不老不老亦不不病亦不朽是以老子以身爲大患武王居病周公乞命仲尼病子路請禱吾見聖人皆有病矣未睹其無病也神農嘗草殆死者數十黃帝稽受鍼於歧伯此之三聖豈當不如今之道士乎察省斯言亦足以廢矣

33) 도는 종류가 같지만 성질은 달리한다
[문] 도는 모두 무위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 도를 구분하고 열거하여 다른 점을 말하는가? 그러한 것은 배우는 이들을 의심하게 한다. 나는 그것이 말을 낭비하는 것으로 무익하다고 생각한다.116)
033_0151_c_12L問曰道皆無爲一也子何以分別羅云其異乎更令學者狐疑僕以爲費而無益也
033_0152_a_01L[牟子] 모두가 풀이라고 해도, 그 많은 풀들의 성질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다. 모두가 금이라고 해도 그 많은 금의 성질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다. 같은 종류의 것이라도 성질이 각각 다른 것은 만물 전체가 모두 그렇다. 어찌 도의 경우만 그렇겠는가? 옛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이단의 학설을 말함으로써 많은 유학도의 길을 막아서 수레도 나아갈 수 없었고, 사람도 정도를 향해 나아갈 수 없었는데, 맹자가 막힌 길을 열어서 비로소 갈 길을 알게 되었다.117) 사광師曠은 거문고를 타서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이 후세에 나타나기를 기대하였고, 성인은 예법을 제정하여 후대에 군자가 이를 법칙으로 삼을 것을 바랐다. 옥과 돌이 같은 광주리에 넣어져 있음을 보고 기돈倚頓은 안색이 바뀌었고, 붉은색과 자주색이 서로의 위치를 빼앗기 쉬움을 보고 공자도 탄식하였다.118) 해와 달이 밝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구름이 그 빛을 가리고, 불교의 이치가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사로운 도가 그 공정함을 덮어 버린다. 그 때문에 내가 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장문중臧文仲의 지혜와 미생고微生高의 정직을 공자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119)은 모두 세속의 폐해를 바르게 하기 위한 말이다. 어찌 말을 낭비하는 것으로 무익하다고 할 수 있는가?
033_0151_c_15L牟子曰俱謂之草衆草之性不可勝言俱謂之金衆金之性不可勝言同類殊性萬物皆然豈徒道乎昔楊墨塞群儒之路車不得前人不得步孟軻闢之乃知所從師曠彈琴俟知音之在後聖人制法冀君子之將睹也玉石同匱猗頓爲之改色朱紫相奪仲尼爲之歎息日月非不衆陰蔽其光佛道非不正衆私掩其公是以吾分而別之臧文之智生之直仲尼不假者皆正世之語費而無益乎

34) 화려함을 보고 실질을 안다
[문] 그대가 신선을 비판하고 기이한 것을 억누르며 불사의 도가 있음을 믿지 않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유독 불교만을 믿어서 세상을 구제하고자120) 하는가? 부처는 외국 사람이다. 그대는 그 땅에 가 본 적도 없고 눈으로 그곳을 직접 본 적도 없다. 다만 그 글만 보고 그의 행동을 믿는 데 지나지 않는다. 표면의 화려함을 보아서는 그 실질을 알 수 없고, 그림자를 보아서는 그 형태를 상세히 알 수 없다. 그대가 믿고 있는 것은 아마도 참된 것이 아닐 것이다.
033_0152_a_03L問曰吾子訕神仙抑奇怪不信有不死之道是也何爲獨信佛道當得度世乎佛在異域子足未履其地目不見其所徒觀其文而信其行夫觀華者不能知實視影者不能審形殆其不誠乎
[牟子] 공자는 “그가 행동하는 이유를 보고 그가 따르는 길을 관찰하며, 그가 편안히 여기는 것을 잘 살피면, 사람이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121)라고 하였다. 옛날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과 주공은 정치에 대해 서로 자문을 구했는데, 제나라와 노나라가 뒤에 어떠한 결말에 이를까를 알았다.122) 안연顔淵은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에 타던 날, 동야필東野畢이 말 다루는 방법을 보고 그가 실패할 것을 예견하였다.123) 또한 자공은 주邾나라 은공隱公과 노나라 정공定公 간의 회합을 보고 그들이 죽을 것을 미리 밝혔다.124) 공자는 사광이 현을 조율하는 것을 듣고 문왕의 조율곡이라는 것을 알았고,125) 계찰季札은 음악을 듣고 여러 나라의 풍속을 살펴보았다. 어째서 반드시 발로 직접 가 보고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하는가?
033_0152_a_09L牟子曰孔子曰視其所以其所由察其所安人焉廋哉昔呂望周公問於施政各知其後所以終淵乘駟之日見東野畢之馭知其將子貢觀邾魯之會照其所以喪尼聞師曠之絃而識文王之操季子聽樂覽衆國之風何必足履目見乎

35) 소나무와 오동나무는 잘 시들지 않는다
[문] 내가 옛날 우전국[于塡之國]으로 여행하였을 때 사문과 도인道人을 여러 차례 만나서 내 입장에서 불교를 논박하였다. 그런데 모두 대응하지 못하고 물러났으며, 대부분 자신의 뜻을 바꾸어 견해를 옮겨 갔다. 그대만 유독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힘든가?
033_0152_a_15L問曰僕嘗遊于塡之國數與沙門人相見以吾事難之皆莫對而辭退多改志而移意子獨難改革乎
033_0152_b_01L[牟子] 가벼운 새털은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만나면 휘날리고, 작은 돌은 골짜기에서 물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태산만은 회오리바람에도 미동하지 않고, 반석은 급류라고 해서 휩쓸리지 않는다. 매화와 배나무는 서리를 맞으면 잎이 떨어지지만, 소나무와 오동나무만은 쉽게 시들지 않는다. 그대가 만난 도인은 학문이 미흡하고 식견이 넓지 못하기 때문에 굴복하여 후퇴한 것이 분명하다. 그대는 나와 같은 완고한 사람도 굴복시킬 수 없는데, 하물며 도를 밝힌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대는 자기 생각을 고치지 않고 타인의 생각만 고치려고 한다. 나는 공자가 도척盜跖126)을 추종하고, 탕왕湯王과 주 무왕武王이 하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본받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033_0152_a_18L牟子輕羽在高遇風則飛細石在谿流則轉唯泰山不爲飄風動磐石不爲疾流移梅李遇霜而落葉唯松柏之難凋矣子所見道人必學未洽未博故有屈退耳以吾之頑且不可況明道者乎子不自改而欲改人未聞仲尼追盜跖湯武法桀紂者矣

36) 신선술은 불교의 이치보다 못하다
[문] 신선술에서는 가을과 겨울 동안 먹지 않거나 두문불출하여 수십 일 동안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을 지극히 담백하다고 한다.127) 나는 이러한 신선술은 존중해야 할 귀한 것이지만, 불교의 도리는 이보다 못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033_0152_b_02L問曰神仙之術秋冬不食或入室累旬而不出可謂憺怕之至也僕以爲可尊而貴殆佛道之不若乎
[牟子] 남쪽을 가리켜서 북쪽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미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서쪽을 가리켜서 동쪽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몽매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올빼미의 분수로 봉황을 비웃고, 땅강아지와 지렁이를 붙잡아 거북과 용을 조롱한다. 매미가 먹지 않아도 군자는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개구리와 이무기가 동굴에서 동면을 하여도 성인은 중히 여기지 않는다. 공자는 “천지간에 성명性命을 가진 것들 중에서 인간이 가장 귀하다”128)고 하였지, 매미와 이무기를 존귀하게 여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중에는 본래 창포를 먹고 계피와 생강을 버리고, 감로를 덮어 버리고 식초나 간장을 마시는 이도 있다. 짐승의 털이 가늘다고 하지만 잘 관찰할 수 있고, 태산과 같이 큰 산이라도 등지고 서면 볼 수 없다. 뜻을 둘 것인가 아닌가는 예리하게 보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노나라에서는 계씨季氏를 존중하고 공자를 우습게 알았으며, 오나라에서는 태제 비嚭를 현자라고 하고 오자서伍子胥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다. 그대가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033_0152_b_05L牟子曰指南爲北自謂不惑以西爲東自謂不矇以鴟梟而笑鳳凰執螻蚓而調龜龍蟬之不食君子不貴蛙蟒穴藏聖人不重孔子曰天地之性人爲貴不聞尊蟬蟒也然世人固有啖菖蒲而棄桂薑覆甘露而啜酢漿者矣毛雖小視之可察太山之大背之不志有留與不留意有銳與不銳尊季氏卑仲尼吳賢宰嚭不肖子胥子之所疑不亦宜乎

37) 사람은 당연히 죽는다
[문] 도가에서는 요임금ㆍ순임금ㆍ주공ㆍ공자와 공자의 72명의 제자들은 모두 불사不死의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은 당연히 모두 죽게 되며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033_0152_b_15L問曰道家云七十二弟子皆不死而仙佛家云人皆當死莫能何哉
033_0152_c_01L[牟子] 이것은 요망한 말로서 성인의 말이 아니다. 노자는 “천지도 오히려 오래갈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129)라고 하였다. 공자는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하지만, 효성스러운 사람은 항상 있다”130)고 말하였다. 내가 6예藝의 책을 읽고 전해오는 기록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요堯임금은 죽은 것131)으로 되어 있고, 순舜임금은 창오蒼梧의 산에 묻혀 있다고 하며,132) 우임금은 회계 땅에 능이 있고,133)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에 묘가 있으며, 문왕文王은 주왕紂王을 주살하기 전에 죽었고, 무왕武王은 성왕成王이 어른으로 되기를 기다리지 못한 채 죽었다. 주공周公에게는 장지를 옮겼다[改葬]는 편이 있고,134) 공자에게는 두 기둥 사이에 안좌하는 꿈을 꾸었다는 기록이 있다.135) 백어伯漁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136) 자로子路는 소금절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으며,137) 염백우冉伯牛에게는 공자가 운명이라고 탄식한 기록이 있다.138) 증삼曾參에게는 죽음에 임박해서 내 발을 펴 보라는 기사가 있고, 안연顔淵에게는 불행히 단명하였다고 답한 기사139)와 모종에서 이삭을 맺지 못한 비유140)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들은 모두 경전에 명기되어 있고, 성인의 지극한 말씀이다. 나는 경전을 증거로 삼지만, 세상 사람들이 영험이 있다고 보고 불사를 말하는 것은 어찌 미혹한 일이 아니겠는가?
033_0152_b_18L牟子曰此妖妄之言非聖人所語也『老子』曰天地尚不得長久況人乎孔子曰更去辟世孝常在覽六藝觀傳記堯有殂落舜有蒼梧之山禹有會稽之陵伯夷叔齊有首陽之墓文王不及誅紂而歿武王不能待成王大而崩周公有改葬之篇仲尼有兩楹之夢伯魚有先父之年子路有葅醯之語伯牛有命矣之文曾參有啓足之辭顏淵有不幸短命之記苗而不秀之喩皆著在經典人至言也吾以經傳爲證世人爲驗而云不死豈不惑哉

후서後序
[문] 그대가 이해한 것은 참으로 더할 나위 없는 것으로, 원래부터 나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대의 설명은 어떻게 37개 조항에 이르며, 또한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033_0152_c_07L問曰子之所解誠悉備焉固非僕等之所聞也然子所理何以正著三十七亦有法乎
[牟子] 쑥이 바람에 휘몰아쳐 구르는 것을 보고 수레바퀴가 만들어졌고, 구멍 뚫린 나무가 강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노가 만들어졌으며,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을 보고 그물이 만들어졌고,141) 새의 발자취를 보고 문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어야 성취하기 쉽고, 기준으로 삼을 것이 없으면 성취하기 어렵다. 내가 불경의 요체를 살펴보니, 37조항의 도품142)이 있고, 노자 도경道經도 37편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를 본따 37개 조항으로 한 것이다.이에 미혹한 사람은 나의 설명을 듣고 놀라서 얼굴색이 변해서 손을 모으고 자리에서 일어나 머뭇거리며 엎드려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벽지에서 태어났는데 감히 어리석은 말을 하고 화와 복은 생각지도 않았다. 지금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눈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같이 의심이 녹아 버린다. 이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스스로 경계하고자 한다. 바라건대 5계戒를 받아 우바새優婆塞가 되고 싶다.”
033_0152_c_10L牟子曰夫轉蓬漂而車輪成窊木流而舟楫設蜘蛛布而罻羅陳鳥迹見而文字作故有法成易無法成難吾覽佛經之要有三十七老氏『道經』亦三十七篇故法之焉於是惑人聞之踧然失色叉手避席逡巡俯伏曰鄙人矇瞽生於幽仄出愚言不慮禍福今也聞命霍如蕩請得革情洒心自勅願受五戒優婆塞


2. 정무론正誣論143)
033_0152_c_19L正誣論
[작자 미상]
未詳作者
033_0153_a_01L
1
[誣] 한 기인[異人]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이 부처님을 비방하였다.“윤문자尹文子는 신통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호족의 오랑캐가 예를 몰라 수사슴 부자가 어미 사슴을 공유하는 것144)같이 행동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이익에 눈이 멀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를 반복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겸양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없고 말로 타이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도를 체득한 제자를 시켜 변화시켰고, 또한 살생을 못하게 하고 혼인을 금지하여 자손이 없게 하였다. 호족 오랑캐를 없애는 방법으로서 무엇이 이 방법보다 뛰어나겠는가?”
033_0152_c_20L有異人者誣佛曰尹文子有神通者愍彼胡狄父子聚塵貪婪忍害昧無恥侵害不厭屠裂群生不可遜讓厲不可談議喩故具諸事云云又令得道弟子變化云云又禁其殺斷其婚姻使無子孫伐胡之術孰良於此云云
[正] 논박하는 이는 이미 “부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윤문자는 신통력을 지닌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도를 체득한 제자가 있어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고 불가사의한 도리를 다하였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속없는 말이다. 저 윤문자는 노자의 제자이고, 노자는 바로 부처님의 제자이다. 따라서 경문에 “들은 바에 의하면 축건竺乾에 노스승이 계시는데, 그는 열반[泥洹]의 경지에 훌륭하게 들어가서 시종일관 영원히 그 속에 있다”145)는 구절이 있다. 축건은 인도를 가리킨다. 열반은 호족의 언어로서, 진나라 말로는 무위에 해당한다. 만약 부처님이 노자보다 먼저 태어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선생先生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노자가 윤문자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도덕경』을 청하고 들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부처님은 원래 윤문자의 조상이고, 많은 성인들의 원조이다. 어떻게 제자가 신통력으로 변화하는데 스승이 불가능하겠는가?
033_0153_a_04L正曰誣者旣云無佛復云文子有神復云有得道弟子能變化恢廓神妙之理此眞有無匈心之語也尹文子卽老子弟子也老子卽佛弟子也故其經云聞道竺乾有古先生善入泥洹不始不終永存緜緜竺乾者天竺也泥洹者胡語晉言無爲也佛不先老子何得稱先生老子不先尹文何故請道德之經卽以此推之佛故文子之祖宗衆聖之元始也有弟子神化而師不能乎
또 성인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반드시 도로써 임한다. 만약 멀리 있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학문과 도덕을 가지고 교화하고,146) 단지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무기를 사용한다.147) 폭력을 제거하고 분쟁을 그치게 하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려 할 때에는 적은 살생을 행하여 큰 살생을 방지한다. 따라서 춘추 시대에 제후가 다른 나라를 정벌할 때에는 올바르고 순순한 도리에 의해 행동하고, 적국에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북을 쳐서 그 잘못을 사방에 밝히고148) 정의의 병사를 모아서 죄인을 다스리지, 은밀히 주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가 복종하면 유연하게 대하고 위로하지, 형벌을 사사로이 가하거나 극도의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승리하게 되면 상례喪禮를 실행하고, 죄인을 주살하게 되면 슬픈 마음으로 목놓아 운다.149) 그러므로 유인하여 잡는 방법은 절대 금하고 절멸시키는 방식도 전적으로 취하지 않고 인정있게 대한다.
033_0153_a_15L且夫聖之宰世必以道莅之遠人不服則綏以文德不得已而用兵耳將以除暴止拯濟群生行小殺以息大殺者也春秋之世諸侯征伐動仗正順敵國有舋必鳴鼓以彰其過摠義兵以臨罪人不以闇昧而行誅也故服則柔而撫之不茍淫刑極武勝則以喪禮居之殺則以悲哀泣之是以深貶誘大杜絕滅之原
033_0153_b_01L 악한 자를 회유하여 불의한 자를 토벌하거나 길을 빌려서 폭정을 성취하는 것150)은 모두 경전의 좋은 방법을 변질시킨 것으로, 이에 대한 비난은 어디에나 자주 보인다. 그러므로 춘추 시대 조맹趙孟이 송나라 서문西門에서 제후와 모여 회맹의 약속을 하였을 때 초나라를 누르고 진나라를 앞세운 것은 초나라 사람이 옷 안에 갑옷을 입고 있는 거짓을 행한 것을 미워하고, 회맹의 신의를 잘 명심한다는 미덕을 중시한 것이다.151) 적에 대한 원한과 은혜는 자손에까지 미치지 말고, 나쁜 일은 그 자신에서 그치게 하고,152) 중한 벌을 함부로 가하지 않는다. 이것이 온갖 왕들이 실행하였던 밝은 제도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뛰어난 법제이다.
033_0153_b_01L若懷惡而討不義假道以成其暴皆結傳變文譏貶累故會宋之盟抑楚而先晉者疾辛錍之詐以崇咀信之美也夫敵之怨惠不及後嗣惡止其身重罪不濫百王之明制經國之令典也
그런데 말세의 장군이나 호전적인 무리들은 도덕이 쇠퇴하는 것을 걱정하는 척하며 마침내 사기술에 맡겨서 힘써 경쟁하고, 거짓 책략을 이용하여 적을 죽이고 해치는 마음을 키웠다. 산야에서 전쟁할 때에는 무력으로 살육을 감행하고, 도성을 정복하면 항복한 병사들을 남김없이 구덩이에 생매장하여 제거하였다. 따라서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백기白起는 두우杜郵에서 목이 베어졌고, 후한의 동탁董卓은 궁전의 궐문에서 도살되었다. 군자는 그와 같은 사람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알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주살되었음을 애통해 하였다. 무력의 폐해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참으로 마음 아프고 길게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찌 성인이면서 음모로 사람 죽이는 일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백성을 몰살하고자 하는 이가 있겠는가?
033_0153_b_06L至于季末之將佳兵之徒患道薄德衰始任詐力競以譎詭之計濟殘賊之心戰則肆鋒極殺屠城則盡坑無遺白起刎首於杜郵董卓屠身於宮門君子知其必亡擧世哀其就戮兵之弊也遂至于此此爲可痛心而長歎者矣何有聖人而欲大縱陰毒翦絕黎元者哉
033_0153_c_01L또한 10호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도 현인이 있는데,153) 하물며 만 리나 되는 넓은 지역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중화重華 순舜임금은 동쪽 오랑캐[東夷] 출신이고, 문명文命 우禹임금은 서강西羗 땅에서 태어났다.154) 성인과 철인이 출현하는 곳이 어찌 정해져 있겠는가? 어떤 경우에는 여기에서 음악으로 교화를 행하고, 다른 경우에는 저기에서 무언의 교화를 행하는 등 형태로 드러나는 교화 방법은 다양해도, 가르침의 핵심은 다르지 않다. 부처님께서 중인도에 자취를 남기고 서역에서 기적을 밝게 드러낸 이유를 살펴보면 깊은 의미가 있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열거할 수는 없다. 어찌 성인이 적이 강한 것을 싫어하여 상대를 모두 죽여서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쁜 병이 한번 유행하면 훌륭하고 깨끗한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고, 또한 들판에 불을 놓으면 난초와 누린내풀이 모두 타 버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걸왕ㆍ주왕의 폭정도 이와 같지 않은가? 예를 들면 호족 오랑캐 나라가 실로 악역무도한 일이 많더라도 폭력으로 폭력을 대신한다면,155) 이것은 방편으로 세상을 인도하려는 취지가 아니다. 이러한 내용을 끌어들여 말하는 것은 함부로 비방하는 것으로서 어리석은 자와 어린이를 속이기에는 충분하지만, 어찌 인정에 맞고 도리에 합당한 사려 깊은 사람의 비난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033_0153_b_14L且十室容賢而況萬里之重華生於東夷文命出乎西羌哲所興豈有常地或發音於此默化於彼形教萬方而理運不差原夫佛之所以夷迹於中天而曜奇於西域蓋有至趣不可得而縷陳矣有聖人疾歒之强而其欲覆滅使無孑遺哉此何異氣癘旣流不蠲良淑縱火中原蘭蕕俱焚桀紂之虐猶呼不然乎縱令胡國信多惡逆以暴易又非㩲通之旨也引此爲辭適足肆謗言眩愚豎豈允情合義有心之難乎

2
[誣] 윤문자는 “하늘에 32겹의 단층이 있다”156)고 속이고 있다. 또한 함부로 『누탄경樓炭經』을 인용하여 “여러 천궁들은 너비가 사방 24만 리가 된다. 한 면마다 백 개의 문이 열리고, 문의 너비가 만 리나 된다”157)고 한다.
033_0153_c_03L又誣云尹文子欺之天有三十二重云云又妄牽樓炭經經云諸天之宮廣長二十四萬里面開百門門廣萬里云云
[正]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천지의 경계에는 높고 낮은 계층이 있고, 하나하나의 부분에 일관되게 질서가 있으며 훌륭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도 비방하는 자는 과장하여 없는 말을 덧붙이고 거짓을 조작하거나 뒤죽박죽으로 어지럽혀서 핵심을 얻지 못하게 한다. 어찌 24만 리의 땅에 4백만 리의 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한 가지 일로만 보더라도, 그 잘못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 노비나 목동조차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물며 지식인은 어떠하겠는가? 그들은 박식함을 나타내려 하였지만,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만 드러냈을 뿐이다.
033_0153_c_06L答曰佛經說天地境界下階級悉條貫部分敍而有章而誣者或附著生長枉造僞說或顚倒淆不得要實何有二十四萬里之地而容四百萬里之門乎以一事覆之足明其錯謬者多矣藏獲牧豎猶將知其不然況有識乎欲以見博秖露其愚焉

3
[誣] 부처님도 두루 5도道를 윤회하면서158)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흉악한 일들을 자행하였지만, 그래도 부처님이 되었다. 이것은 악한 사람을 두렵게 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또한 생각해 보면, 착한 사람은 적지만 나쁜 사람은 많다. 나쁜 사람이 죽으면 6축畜의 세계가 가득 찰 것이다. 천지개벽 이래 오늘날까지 충분히 오랜 기간이 흘렀으니, 지금은 축생이 10분의 9를 차지하고 인간의 종은 드물어야 할 것이다.
033_0153_c_13L又誣云佛亦周遍五道備犯衆過行凶惡猶得佛此非悕爲惡者之法也又計生民善者少而惡者多惡人死輒充六畜爾則開闢至今足爲久矣今畜宜居十分之而人種已應希矣
033_0154_a_01L[正]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부처님도 일찍이 나쁜 일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악을 고쳐서 선을 좇았기 때문이다. 만약 악을 키우면서 개선하지 않고 미혹하게 그대로 갔다면, 긴긴 밤 동안159) 고통의 수레바퀴를 받고 5도를 전전하며 해탈의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부처님은 많은 악들의 뿌리를 굴복시키고 3독毒의 찌꺼기를 없애며 5계의 선행을 닦고 10덕德의 아름다움160)을 창출하였다. 이렇게 여러 겁 동안 행하면서 싫증이 나도 그만두지 않고, 본제本際를 분명히 이해하고 3세世가 공임을 밝혀내었다. 그리하여 생멸하는 허망한 세계를 해탈하여 무위의 입장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세상 곤충은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이 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한 올의 터럭이 말 몸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데, 어찌 10분의 9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천지의 본성은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161) 영기榮期가 세 가지 즐거움을 얻고 있는 이유162)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더욱이 스스로 인류라는 점에 구애받지 않고 축생을 추악하게 여기지 않으며, 여물과 물을 훌륭한 음식이라고 하고, 말의 굴레와 끈을 고통이라고 하지 않고 그 처지에 만족한다면, 행하여도 크게 비난할 것은 없다.
033_0153_c_18L正曰誠如所言佛亦曾爲惡耳今所以得佛者改惡從善故也若長惡不迷而後遂往則長夜受苦輪轉五道而無解脫之由矣今以其能掘衆惡之栽滅三毒之燼脩五戒之善書十德之美行之累劫倦而不已曉了本際暢三世空故能解生死之虛外無爲之場耳計天下蜫蟲之數不可稱人之在九州之內若毫末之在馬體十分之九豈所言哉故天地之以人爲貴榮期所以自得於三樂達貴賤之分明也今更不復自賴於人類不醜惡於畜生以芻水爲甘膳以羈絡爲非謫安則爲之無所多難也

4
[誣] 「무령하경無靈下經」163)이라는 도교 경전이 있다.
033_0154_a_09L又誣云有無靈下經
[正] 「무령하경」은 요괴한 책일 뿐이다. 삼황ㆍ오제의 책처럼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고, 재주있고 통달한 유학자가 아직 본 적이 없는 책이다. 이 삼대 조[三曾]ㆍ오대 조[五祖]의 말은 상주한 글과 매우 유사한데, 따져보지 않아도 허망한 점이 저절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잠깐 이에 대해 언급해 보자. 세속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라지고 영혼도 귀신도 없다고 항상 말한다. 그렇게 영혼이 없으면 천상의 재판관도 없고, 귀신이 없으면 거두어 갈 것도 없게 된다. 만약 자손이 불교를 신봉하고 선조를 찾아서 죄를 견책하게 되면, 가령 그 조상이 현인, 군자로 살아서 자손과 같이 한 적이 없다고 해도 천상의 재판관이 그를 붙잡아 거두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안회顔回와 염백우冉伯牛는 시신을 주륙하는 고통을 당하게 되고, 인자한 선조를 학대하여 귀한 신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이것이 어찌 총명하고 정직한 귀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우와 너구리, 요괴, 사나운 원귀일 것인데, 어찌 어질고 현명한 사람의 혼령을 제약하고 계를 지킨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가? 이 때문에 불교를 비난한다면 비천하고 더러운 책이라고 할 것이다.
033_0154_a_10L無靈下經妖怪之書耳非三墳五典訓誥之言也通才達儒所未究覽也三曾五祖之言似解奏之文此殆不誥而虛妄自露今具聊復應之凡俗人常謂人死則滅無靈無鬼然則無靈則無天曹無鬼則無所枚也若子孫奉佛而乃追譴祖先或是賢人君子平生之時必與子孫同事而天曹便收伐之顏冉之尸羅抂戮之痛仁慈祖考加虐毒於貴體此豈聰明正直之神乎若其非也則狐狢魍魎淫厲之鬼能反制仁賢之靈而困禁戒之人乎以此爲誣鄙醜書矣
033_0154_b_01L
5
[誣] 도인道人이 백성으로부터 돈을 빼앗아 탑과 사원을 크게 세우고 있다. 이렇게 화려하게 수식하고 사치하게 치장한 것은 낭비이고 무익한 일이 아닌가?
033_0154_a_23L又誣云道人聚斂百姓大搆塔寺飾奢靡費而無益云云
[正] 교화에는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고, 때에 따라 사물에 적절히 대응한다는 것은 서론에서 이미 서술하였다. 다시 이 내용을 거론하고자 한다. 저 공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은 요임금ㆍ순임금보다 더한 이가 없으며, 그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산룡山龍ㆍ화충華虫ㆍ보불黼黻ㆍ치수絺繡의 무늬가 있는 옷이 있었다.164) 따라서 『좌전左傳』에는 “석란錫鸞ㆍ화령和鈴은 소리로 그 덕행을 밝게 나타내는 것이고, 해ㆍ달ㆍ별을 깃발에 그리는 것은 그 명석함을 밝히는 것이며, 오색으로 비상比象을 칠하는 것은 그 사물을 밝히는 것이다”165)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왕이 거처하는 곳에는 반드시 금으로 만든 문과 옥계단과 영대靈臺와 봉궐鳳闕이 있어서 평민과 다름을 나타내고, 귀천의 구별을 분명히 한다.
033_0154_b_02L正曰夫教有深淺適時應物悉已備於首論矣請復申之夫恭儉之心過堯舜而山龍華虫黼黻絺繡故錫鸞和鈴昭其聲也三辰旂旗昭其明也五色比象昭其文也故王者之居必金門玉陛靈臺鳳闕將使異乎凡庶令貴賤有章也
원래 사람의 마음이란 보는 것에 따라서 감정이 일어나고 사그라진다. 그러므로 군대의 큰북이나 작은북의 소리를 듣고 지휘하는 깃발의 형상을 보면 장수와 여섯 대신을 사모하게 되고, 거문고의 음악 소리를 듣고 학교의 의례를 살펴보면 조정의 신하들을 사모하게 된다.166) 입장을 바꾸어 살펴보면, 보는 이의 기분과 용모가 모두 변하게 된다. 지금 세속의 무리로서 형태만 보고 도에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숭고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천한 것을 소홀히 한다. 따라서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의 유적을 숭배하고 마음속에 품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림과 불상을 진열하여 경건함을 다하고, 진귀한 보석을 희사하여 사찰에 대한 숭배를 더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급의 훌륭한 선비가 그곳에 가면 올가미와 통발167) 같은 수단은 잊고 심원한 취향을 맛보게 되고, 하급의 덕이 낮은 선비가 그곳에 가면 그 화려한 조각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 채색을 즐기게 된다. 먼저 그 이목을 즐겁게 해 주고, 점차 올바른 길로 따르게끔 하는 것이다. 3도塗의 중생들을 빠짐없이 이끌어 들이는 것은 마치 그릇이 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서 그릇의 용량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구멍이 뚫려 바닥이 없는 것만 아무것도 수용할 수 없다.
033_0154_b_09L夫人情從所睹而興感故聞鼓鼙之音睹羽麾之則思將帥之臣聽琴瑟之聲觀庠序之儀則思朝廷之臣遷地易觀則情貌俱變今悠悠之徒見形而不及道者莫不貴崇高而忽仄陋是以諸奉佛者仰慕遺迹思存髣髴故銘列圖象致其虔肅割珍玩以增崇靈故上士遊之則忘其蹄筌取諸遠味下士遊之則美其華藻玩其炳蔚悗其耳目漸率以義方三塗汲引莫有遺逸猶器之取水隨量多少唯穿底無當乃不受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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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난하는 자는 화복의 학설이 부처님께서 지으신 것이라고 전적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그 학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다시 해석해 보고자 한다. 길흉과 선악의 관계는 그림자나 메아리가 형태와 소리를 타고 저절로 그렇게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서로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행위도 자기 자신에서 유래하는 것이고, 이치는 신비하게 그것에 응할 뿐이다. 부처님과 주공, 공자는 모두 충忠ㆍ효孝ㆍ신信ㆍ순順을 밝혔을 뿐이다. 그 가르침에 따르는 자는 길하고, 이에 반하는 자는 흉하다. 물을 건너는 방법으로 말하자면, 배와 노의 힘을 빌어야 물을 건너는 것이 가능하고 걸어서 물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033_0154_b_21L又專誣以禍福爲佛所作可謂元不解矣聊復釋之夫吉凶之與善惡猶影響之乘形聲自然而然不得相免也行之由己而理玄應耳佛與周孔但共明忠孝信順從之者吉背之者凶示其度水之方則使資舟楫不能令步涉而得濟也
이와 같이 사람을 깨우쳐서 재액으로 죽는 데서 생명을 구하는 방법은 신농神農이 곡물을 씹어서 굶주림을 해소하고168) 황제黃帝가 옷을 드리워서 추위와 더위를 막은 것과 같다.169) 만약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배부를 것을 기대하거나 윗도리를 벗고서도 따뜻할 것을 바란다면, 억지로 베풀어 줄 필요가 없다. 과거에 편작扁鵲이 훌륭한 의사라고 칭찬받은 이유는 단지 병에 따라 약을 주며 그 마땅한 처방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죽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한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지 않았다. 또한 편작은 “나는 살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죽을 사람은 살릴 수 없다”170)고 말하였다. 비난하는 자의 입장은 자식으로서는 불효이고 신하로서는 불충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입장은 고질병의 폐해를 고수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좋은 약을 권하여도 쓰려고 하지 않다가 재화를 입어 죽음에 직면한 날 의사를 나무라는 것과 같다. 성인은 이를 깊이 한탄한다. 훌륭한 의사는 단지 미친 사람과 똑같이 동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171) 비난하는 이의 형세는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
033_0154_c_04L其誨人之生救厄死之術亦猶神農嘗粒食以充飢虛黃帝垂衣裳以御寒暑若閉口而望飽裸袒以求溫能强與之也夫和鵲之所以稱良醫以其應疾投藥不失其宜耳不責其令有不死之民也且扁鵲有云能令當生者不死不能令當死者必生也若夫爲子則不孝爲臣則不忠守膏肓而不悟進良藥而不御受禍臨死之日更多咎聖人深恨醫非徒東走其勢投穽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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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誣] 사문들 가운데 도읍과 낙양에 있는 자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천자의 수명을 더 연장하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불교는 위로는 음양을 조화롭게 하여 농사가 풍년이 들게 하고 백성이 부유해지고 재앙과 질병을 없애 화란을 종식시키는 일 등은 할 수 없고, 아래로는 곡식 먹는 일을 끊어 맑고 깨끗한 기를 호흡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여 액난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게 하는 일 등은 할 수 없다.172)
033_0154_c_15L又誣云沙門之在京洛者多矣而未曾聞能令主上延年益壽上不能調和陰陽使年豐民富消災卻疫克靜禍亂云云下不能休糧絕粒呼吸淸扶命度厄長生久視云云
033_0155_a_01L[正] 그렇지 않다. 장주莊周도 “운명의 실정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운명에 의해 아무리 하고자 하여도 할 수 없는 것에는 힘쓰지 않는다”〈173)고 하였다. 이것은 수명이라는 한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만약 성性과 명命이 지혜와 덕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왕과 주공 형제는 아버지인 문왕을 천 살까지 살게 하였을 것이다. 안연이 죽었을 때, 공자가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174)라고 말하면서 지극히 애석하게 여긴 것은 수명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033_0154_c_20L正曰莊周有云達命之情者不務命之所元奈何審期分之不可遷也若令性命可以智德求之者則發旦二子足令文父致千齡矣顏子死則稱天喪予惜之至也無以延之耳
또한 음양의 도수는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 106년의 재액은 때가 되면 이르는 것이다.175) 그 때문에 요임금 때에는 하늘까지 물이 차오르는 대홍수가 있었고,176) 탕임금 때에는 모든 초목이 말라죽는 한발의 재해가 있었으며, 황제는 치우蚩尤와 싸워 탁록涿鹿의 들에서 노가 표류할 정도의 유혈이 있었고,177) 염제와 싸워서는 판천阪泉의 들판에 많은 시체가 즐비하였다.178) 어찌 가만히 앉아서 그것을 없애서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였는가?
033_0155_a_02L且陰陽數度期運所當百六之極有時而臻故堯有滔天之洪湯有赤地之災涿鹿有漂槽之血阪泉有撗野之屍不坐而消之救其未然耶
또한 곰과 같이 나무에 오르고 새와 같이 발을 펴서 인도하고, 예전의 기운을 토하며 새로운 기운을 흡입하고,179) 수수를 먹는 것을 그만두고 꽃이나 수술을 권하기도 하고, 바람과 이슬을 먹고 건량乾糧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에 의해 장수하고자 하는 것도 아직 의지하는 바가 있는 부류이다. 이와 같이 해도 때가 오면 요절하는 경우가 있고, 무한히 살 수는 없다.
033_0155_a_06L且夫熊經鳥曳導引吐納輟黍稷而御英蕊風露以代糇糧俟此而壽有待之倫斯則有時可夭不能無窮者也
사문의 입장에서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 같은 신선들을 보면 아직 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와 같다. 뜻을 천지 밖에까지 펼치고, 나이를 불사의 영역까지 연장하려고 한다. 어째서 하찮은 것에 노심초사하고 비천한 방법으로 연자涓子나 팽조彭祖와 장수를 겨루려고 하는가? 불교를 비난하는 이는 자신의 잘못된 언변을 치장하여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거부하려 하지만, 그 말에는 음절의 리듬이 없고, 의미에는 궁宮ㆍ상商의 구별이 없다. 아, 북쪽 마을의 음란한 음악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을 탄식하고, 간색인 초록색이 정색인 노란색의 위치를 빼앗는 것을 미워한다.180) 그 나머지 하찮은 음악에는 기강이 없으니, 이에 대해서는 과거의 스승이 대답하지 않았던 것에 따르고자 한다.181)
033_0155_a_09L門之視松喬若未孩之兒耳方將汎志於二儀之表延祚於不死之鄕能屑心營近與涓彭爭長哉難者茍欲騁飾非之辯立距諌之强言無節奏義無宮商嗟夫北里之亂雅惡綠之奪黃也其餘嘇之音曾無紀網遵先師不答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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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誣] 한나라 말에 책융笮融이라는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서주徐州 자사刺史인 도겸陶謙 휘하에 자신을 의탁하였다. 도겸은 그에게 운수運輸를 감찰하게 하였다. 책융은 이전에 불교를 신봉하였으나, 관의 운수품을 횡령하여 자신의 이익을 차리고 큰 사찰을 세우는 불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길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뒤에 유요劉繇에게 공격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033_0155_a_16L又誣云漢末有笮融者合兵依徐州刺史陶謙謙使之督運而融先事佛遂斷盜官運以自利入大起佛寺云行人悉與酒食云云後爲劉繇所攻見殺云云
033_0155_b_01L[正] 이 비난은 자승자박의 결과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인자[慈仁]ㆍ살생하지 않음[不殺]ㆍ충신忠信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과시하지 않고 결백하며 도둑질하지 않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노자는 “무기[兵]는 상서롭지 않은 도구이다”182)라고 하였고, 이에 근접한 사람은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책융은 무력에만 의지하여 잔인한 짓을 태연하게183) 행하고 도적과 결탁하였다. 이것은 살생을 범하여 첫 번째 계를 어긴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사자로서의 명령을 받고도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주인에게 보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속이는 것으로 두 번째 계를 어긴 것이다. 관물을 횡령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였다. 이것은 도둑질하는 것으로 세 번째 계를 어긴 것이다. 불경에는 사람들에게 술을 주는 것을 보시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책융은 마음대로 그렇게 행하였다. 이것은 음주를 범하여 네 번째 계를 어긴 것이다. 이같이 계들을 모두 어기는 것은 노자도 지적하였듯이 자신을 죽을 곳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184) 이는 마치 관리가 인수를 풀고 관을 벗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난폭한 일을 마음대로 행하면, 키 작은 어린아이조차 그를 제지할 수 있는 경우와 같다. 책융이 비참한 죽임을 당한 것도 나쁜 일을 행하게 되면 재앙을 맞게 되는 충분히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033_0155_a_21L正曰此難不待繩約而自縛也夫佛教率以慈仁不殺忠信不衒廉貞不盜爲首老子云兵者不祥之器邇者融阻兵安忍結附寇逆犯殺一也受人使命取不報主犯欺二也斷割官物以自利入犯盜三也佛經云以酒爲惠施而融縱之犯酒四也戒盡犯則動之死地矣譬猶吏人解印脫冠而撗道肆暴五尺之童皆能制之矣笮氏不得其死適足助明惡之獲殃耳

9
[誣] 석숭石崇도 부처를 지극히 받들었지만, 일족이 주살 당하지 않았는가?
033_0155_b_09L又誣云石崇奉佛亦至而不免族誅云云
[正] 석숭의 사람됨은 내가 모두 알고 있다. 그는 교만하고 술에 빠지고 방탕하여 법도를 어기는 일이 많았다.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음에도 더욱 가렴주구하여 고아와 홀로 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재능은 남 못지않게 갖추고 있었지만,185) 덕으로는 전혀 취할 만한 것이 없었다. 명목상 불교를 신봉하였지만, 금계를 지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즉 그는 세상 사람과 같이 얼굴은 아름답지만 마음이 깨끗하지 않고, 표면은 위엄을 갖추고 있지만186) 내면은 유약하고, 입으로는 우왕ㆍ탕왕을 칭송하면서 행동은 걸왕ㆍ도척과 같은 무리이다. 그의 죽음은 자업자득인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033_0155_b_11L答曰石崇之爲人余所悉也驕盈耽放僭無度多藏厚斂不恤惸獨論才則有一割之利計德則盡無取焉託名事佛而了無禁戒卽如世人貇淸心穢色厲內荏口詠禹湯而行偶自貽伊禍又誰之咎乎

10
[誣] 주중지周仲智도 불교를 신봉하고 정진하였지만, 결국 복을 받지 못하지 않았는가?
033_0155_b_17L又誣云周仲智奉佛亦精進而竟復不蒙其福云云
033_0155_c_01L[正] 이 말을 생각해 볼 때, 다른 사람의 재난을 기회로 삼아 논의하는 것이지 조리가 통하는 말은 아니다. 주중지는 불교의 이치를 좋아하였지만 아직 계를 받아 불제자가 되지는 않았다. 솔직한 성정에 훌륭한 선비가 될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었지만, 강하고 억센187)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도가에서 말하는 어린아이188)의 단계에 아직 합치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고집 센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보다 뛰어난 인물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심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논박하는 자가 말한 것과 같이 정진하면서도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경우가 안연과 항고項槀가 일찍 죽었던 것과 백이ㆍ숙제가 굶어 죽었던 것, 비간比干이 주왕에게 충절을 다하면서도 심장을 도려내는 벌을 받았던 것, 신생申生이 어버이에게 간절하게 효성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는 고통을 받았던 것 등과 어찌 차이가 없겠는가? 이와 같은 예들은 이루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공자는 “어진 사람은 오래 살고, 정의로운 사람은 창성하게 된다”189)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숙명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지극하고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033_0155_b_19L正曰尋斯言似乎幸人之災非通言仲智雖有好道之意然意未受戒爲弟子也論其率情亮直見涉儁上自是可才而有强梁之累未合道家嬰兒之旨矣以此而遇忌勝之雄敗理耳縱如難者云精進而遭害者有矣此何異顏項夙夭夷叔餒死干盡忠而陷剖心之禍申生篤孝而致雉經之痛若此之比不可勝言子云仁者壽義者昌而復或有不免固知宿命之證至矣信矣

11
[誣] 불교를 신봉하는 집에서는 죽음을 즐겁게 여기고 삶을 싫어하며, 솜을 입과 코에 대서 임종을 확인하는 날을 복록이 도래한 것이라고 하여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033_0155_c_07L又誣云事佛之家樂死惡生屬纊待絕之日皆以爲福祿之來無復哀慼之容云云
[正] 논박하는 그대는 마음을 숨기고 사물에 대하는 태도가 없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리도 말하는 것과 정반대인가? 불경에는 “도를 얻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과 자신을 현묘히 하나로 보고 장단점을 나란히 통제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경지에 들어가면, 생사의 변화를 거쳐도 완전히 개의치 않고 화복의 영역을 거쳐도 마음이 편안하여 놀라지 않는다. 하늘의 이치를 즐기며, 성명性命을 알고,190) 오직 때에 따라 그대로 따른다.191) 이와 같은 경지를 체득하지 못한 자가 참으로 슬퍼하고 임종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192)은 부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자비의 마음으로 널리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원수가 죽었을 때에도 오히려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감정을 보태고, 덕으로 원수에 보답하고193) 옛날의 나쁜 일을 괘념하지 않는다.194) 하물며 가까운 가족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자연히 일어나는 것인데,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 감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195)은 자기와 남을 경계 짓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말이 자연스러운 감정을 거스르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033_0155_c_10L正曰難者得無隱心而居物不然言之逆乎夫佛經自謂得道者能玄同彼我渾齊脩短涉生死之變泯然無槪步禍福之地而夷心不怛樂天知命安時處順耳其未體之者哀哉愼終之心乃所以增其篤也故有大悲弘誓之義讎人之喪猶加哀矜德報怨不念舊惡況乎骨肉之痛情隆自然者而可以無哀慼之心者哉夫愛親者不敢惡於人恐疇己之深逆情違道於斯見矣
弘明集卷第一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1)이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장경大藏經의 모든 본本은 서문이 모두 권 앞에 붙어 있다. 만력萬曆 14년(1586)의 오유명吳惟明 각본刻本(四部叢刊本, 四部備要本)에서 승우僧祐의 서문이 아닌 왕도곤汪道昆의 서문을 붙인 것은 후세들의 오류 때문이다.(진단陳垣, 『중국불교사적개론中國佛敎史籍槪論』, pp. 44~45 참조) 승우가 편집한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12 「홍명집목록서弘明集目錄序」(대정장大正藏 55, 93 중~하)에는 “類聚區分 列爲十卷”이라고 되어 있다.
  2. 2)‘깨달음의 바다’는 깨달음의 깊이를 바다에 비유한 것이고, ‘지혜의 거울’은 부처님 지혜의 밝음을 거울에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당대唐代 이후에는 선禪 관계의 경전에도 자주 보이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상당히 오래된 용례이다. 「홍명론후서弘明論後序」(대정장 52, 95 상) 참조.
  3. 3)이것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於堯舜者也”에 기초한 것이다. 즉 신인神人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로도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 하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만들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천하 따위를 위해 애써 수고하려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즉 부처님의 덕화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데 장자의 말을 빌려서 설명한 것이다.
  4. 4)『대지도론大智度論』 11. 예를 들면 수미산의 사방에서 바람이 일어나도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겁大劫이 다할 때 비람풍이 일어나도 난초에게 부는 바람과 같은 정도이다.(대정장 25, 139 중~하) 비람풍은 세계가 생성되는 겁의 초기와 파괴되는 겁의 말기에 부는 대단히 거센 바람을 말한다.
  5. 5)수미산을 중심으로 주위에 사대주四大洲,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있는데, 이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계인 소세계小世界이다. 소세계×천千=소천세계小千世界, 소천세계×천=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천=대천세계大千世界, 대천세계×3=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이다. 삼천대천세계는 부처님의 교화가 미치는 범위이다.
  6. 6)네 마군은 온마蘊魔ㆍ번뇌마煩惱魔ㆍ사마死魔ㆍ천자마天子魔이다. 여래는 사람의 신명ㆍ혜명을 빼앗는 네 마군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삼계의 존尊으로 명명되는 것이다. 중생은 이들 네 마군으로 인해 번뇌를 겪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육사六師는 스스로를 일체지一切智라고 칭한 외도外道의 육사, 혹은 육군비구六群比丘(六衆比丘ㆍ六衆苾芻)를 지칭한 듯하다.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대정장 38, 351 상)에서는, “이 육사는 모두 사견邪見을 일으켜 나체로 고행하고 스스로 일체지라 칭한다. 대동소이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7. 7)불법佛法의 유통流通에 정법正法ㆍ상법像法ㆍ말법末法 등 3시時의 변천이 있다. 승우의 서문에서 ‘况乎像季其可勝哉’라고 하는 것은 양梁나라 초기에 이미 상법에 대한 의식이 일반에게 있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일례로서 흥미로운 것이다. 남악南岳 혜사慧思(515~577)의 「입서원문立誓願文」 중에서 이미 말법의 세상에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지만, 이 혜사의 출생 전후에 『홍명집』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규기窺基의 『의림장義林章』 제6권에서, “정법[敎ㆍ行ㆍ證]이 있고, 상법[敎ㆍ行]이 있으며, 말법[敎]뿐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하겠다.
  8. 8)『논어』 「양화陽和」. 붉은색은 정색正色인 반면에, 보라색은 간색間色이다.
  9. 9)『예기』 「월령月令」.
  10. 10)해변에 살고 있는 작은 새. 옛날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에서 빠져 죽은 후 새로 태어나서 언제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고 와서 동해를 메우고자 하였다는 고사에 근거한 것이다. 『산해경山海經』 북산경北山經 참조.
  11. 11)소인배의 교묘한 말을 일컫는다.(『서경書經』 「요전堯典」)
  12. 1)진탄陳坦에 의하면 원래는 「치혹론治惑論」이었으나 당 고종의 휘[李治]를 피하여 「이혹론理惑論」으로 하였다고 한다.(『중국불교사적개론中國佛敎史籍槪論』, 47) 이 「이혹론」에 대해서는 찬자撰者ㆍ편찬 연대 등에 대해 예전부터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도교의 기초적 연구(道敎の基礎的硏究)』(福井康順)에 수록된 「모자의 연구(牟子の硏究)」에서는 중국ㆍ일본ㆍ프랑스 등의 선학들의 모자에 대한 연구를 논하고 종래 후한後漢 말 성립설을 부정하여 삼국 시대 오吳나라 중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찬자인 모자에 대해서도 한漢의 태위太尉 모융牟融, 창오蒼梧의 태수太守 모자牟子, 모자박牟子博 등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모융은 후한 초의 사람이다.(『후한서後漢書』 65) 이미 『불조통기佛祖統紀』 35(대정장 49, 331 중) 등에도 “모자부득기명牟子不得其名”으로 기록하면서도 모융 찬撰이라고 하는 등 많은 모순이 보이고 있다. 모자와 「이혹론」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지만 참고할 만한 책은 다음과 같다. 梁啓超, 「牟子理惑論辨疑」(『梁任公近著』 제1집 所收). 胡適, 『與周叔迦論牟子書』, 北平圖書館刊 5~4. 余嘉錫, 『牟子理惑論檢討』, 燕京學報 10주년기념호. 山內晉卿, 「牟子について」, 『支那佛敎史之硏究』. 常盤大定, 「牟子の理惑論」, 『支那に於ける佛敎と儒敎道敎』. 神尾一春 편, 『道家論辨牟子理惑論附解說』, 1931. 福井康順, 「牟子の硏究」, 『道敎の基礎的硏究』, 1952.
  13. 2)환제桓帝가 후사가 없이 죽자 명제가 제12대 황제에 옹립되었다. 안으로 환관과 당인黨人의 격렬한 투쟁이 있었고, 황건적과 강호羗胡와 흉노의 반란 등 다사다난한 와중 속에서 3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14. 3)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남월南越을 평정한 후, 광동廣東에서부터 지금의 베트남 지역에 걸쳐 교주交州를 설치하였다. 『후한서』 33 「군국지郡國志」 5에서는 남해南海ㆍ창오蒼梧ㆍ울림鬱林ㆍ합포合浦ㆍ교지交趾ㆍ구진九眞ㆍ일남日南 등 7군 56현을 교주에 속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15. 4)양주는 위아주의爲我主義, 묵적[墨子]은 겸애주의兼愛主義였는데, 맹자는 이를 이단異端의 사상이라고 배척하였다. 『맹자孟子』 「승문공勝文公」 하에서 “나는 이 때문에 우려하여 선성先聖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자를 저지하여 문란한 말을 지껄이거나 삿된 말을 하는 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16. 5)『후한서』 103 「도겸전陶謙傳」에 보이는 실재 인물이다.(『삼국지』 「유요전劉繇傳」 참조) 광릉廣陵ㆍ하비下邳ㆍ팽성彭城 3군의 양식을 마음껏 불사에 투자하고, 성대한 욕불浴佛의 법회를 여는 등 중국불교 초기의 봉불자 중의 한 사람이다. 예장豫章의 태수 주호朱皓를 죽이고 대신하여 군사郡事를 관장하였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교주交州의 목모牧某의 동생이 주호가 된다. 『후한서』 101 「주준전朱儁傳」에는 “子皓亦有才行 官至豫章太守”라는 기록이 있다.
  17. 6)「모자이혹론」 37편 제1에 불전을 실었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불전의 자료가 된 것은 「이혹론」 찬술 당시의 불교계에서 유통되던 불전류佛傳類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후한의 축대력竺大力ㆍ강맹상康孟詳의 번역으로 전해지고 있는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과 오나라 지겸支謙의 번역이라는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 등에 의해 알려진 것과 같은 불전을 배경으로 했을 것이다. 육아六牙의 백상白象은 서진西晉의 축법호竺法護 번역의 『보요경普曜經』 권2에 “垂降威靈 化作白象 口有六牙 諸根寂定”(대정장 3, 491 상)이라고 되어 있다.
  18. 7)차닉(車匿, Chaṇḍaka)은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지만 악구惡口의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결국에는 육군비구六群比丘의 한 사람이 되었다. 부처님 열반 후 증과證果하였다고 한다. 건척(犍陟, Kanthaka)은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에 나오며,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서는 건특蹇特이라고 하였다.
  19. 8)32상相은 32대인상大人相이라고도 하고, 이 상을 갖춘 사람은 재가시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출가시에는 무상각無上覺을 얻는다. 또한 80종호種好는 32상을 더욱 세별한 것으로, 상호를 구비하는 사람이 무상각을 얻는데, 이때 보아서 금방 알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을 상相이라 하고, 미묘하여 알기 어려운 것을 호好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20. 9)『보요경』 2(대정장 3, 492).
  21. 10)송ㆍ원ㆍ명 세 본에는 2월로 되어 있다.
  22. 11)중국 고대 음악의 12음률은 각기 12개월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4월은 바로 중려仲呂의 음률에 해당하므로 음력 4월의 별명인 셈이다.
  23. 12)아육왕阿育王의 8만 4천의 보탑寶塔 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도에서는 8만 4천이 많은 수를 나타내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대지도론』 22(대정장 25, 222 하) “法有二種 一者佛所演說三藏十二部八萬四千法聚 二者佛所說法義 所謂持戒禪定智慧八聖道及解脫果涅槃等”에서 알 수 있듯이 ‘8만 4천의 법문法門’은 통상 설명되어 있지만, 여기서 ‘8억 4천만 권’이라는 것은, 『정도보살경淨度菩薩經』에서 “人生世間 凡經一日一夜 有八億四千萬念 一念起惡 受一惡身 十念念惡 得十生惡身”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인 듯하다. 『정도보살경』은 『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과 관련있는 육조六朝 시대의 의경疑經이다.
  24. 13)불교에서 설하는 ‘비전변非轉變의 세계’를 도가의 ‘무위’라는 말을 빌려 번역한 것은, 역경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약간의 오해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어의 유사성을 바로 사상 내용의 동의어로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25. 14)재齋는 청정의 의미로서 죄를 참회하고 스스로를 맑고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대지도론』 13 참조) 「이혹론」에서 설하는 6재齋는 아직 중국적 발상 이전의 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6재일에 해당하는 날짜는 8, 14, 15, 23, 29, 30일을 말한다.
  26. 15)사문이 250계를 엄수하여 자신의 매일의 행동, 진퇴를 규정하는 것은 유교에서 말하는 ‘예의삼백禮儀三百’과 거의 동일하다. 「이혹론」이 중국의 예禮와 인도의 계戒를 비교한 최초의 문헌이라 할 것이다.
  27. 16)『일주서逸周書』 시법해諡法解에서 “시諡란 행위의 자취이고, 호號란 공적의 표시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諡는 사후에 붙이는 이름이다.
  28. 17)『서경』 「대우모大禹謨」와 『맹자』 「진심장」에 보인다. 『한서漢書』 49 「조착전鼂錯傳」에는 “五帝神聖 其臣莫能及 故自親事”라고 되어 있다. 중국의 전설적 제왕을 부처님에 비유한 것은 이것이 아마도 최초라 할 것이다.
  29. 18)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설명한 것으로는 『열자列子』 「천서天瑞」 “能浮能沈能甘能苦能短能長能圓能方” 등의 말에 의해 보이는 것과 같은, 도道는 허무하여 형상이 없고, 무시無始ㆍ무종無終ㆍ무위無爲로 변화자재함을 서술한 점에서 통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30. 19)『논어』 「위정爲政」.
  31. 20)『서경』 「요전堯傳」.
  32. 21)『후한서』 65 「장순전張純傳」의 주에서는 『시경詩經』ㆍ『서경書經』ㆍ『예기禮記』ㆍ『악기樂記』ㆍ『역경易經』ㆍ『춘추春秋』ㆍ『논어論語』를 들고 있다.
  33. 22)이와 같은 표현으로는 사마괘司馬詿의 「논육가요지論六家要旨」에 “儒者博而寡要……六藝經傳以千萬數 累世不能通其學 當年不能究其禮”라는 구절이 있다.
  34. 23)중국의 대표적인 다섯 개의 산이다. 동태산東泰山ㆍ서화산西華山ㆍ남형산南衡山ㆍ북항산北恒山ㆍ중악숭산中岳嵩山.
  35. 24)『열자列子』 「천서天瑞」.
  36. 25)『장자』 「소요유」.
  37. 26)중국 고대의 천문학상의 태양을 중심으로 한 성좌. 인도의 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할 것이다.
  38. 27)「이혹론」에 5경經 외에 『춘추』와 『효경』을 명기한 것은 『후한서』 주에서 말하는 7경에는 『효경』이 들어가 있지 않고, 5경과 7경을 말하는 데도 이설異說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공자는 이 2서書를 중시했다고 한다. 하휴何休의 『공양전公羊傳』 주注의 서序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나의 뜻은 『춘추』에 있고, 행위는 『효경』에 있다”고 하였다.
  39. 28)전국 시대의 명의名醫.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이 있다.
  40. 29)『신서新序』 「잡사편雜事篇」. 요堯가 윤수尹壽에게, 순舜이 성무成務에게, 주공周公 단旦이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에게 사사한 것은 문왕과 형인 무왕이 사사한 점에서 유추가 되고, 공자가 노자에게 사사한 것 등은 7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고, 오로지 7경에 불경을 기록하지 않음을 지적한 질문자에 대한 반론으로 행한 것이다. 『예기』 「증자문曾子問」에는 장사를 치르는 중에 일식이 생겼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는 증자의 질문에 대해 공자는 옛날 노자가 장례의 행렬에 있을 때 일식이 시작되자 노자는 장례의 행렬을 멈추고 길 옆에서 일식이 마치기를 기다렸다는 말로써 답변하였다고 한다.
  41. 30)『회남자淮南子』 「범론훈范論訓」.
  42. 31)태백泰伯의 ‘단발문신斷髮文身’은 「사기」 권4 「주본기周本紀」와 권31의 「오태백세가吳泰伯世家」에 보인다. 주周의 고공古公이 장자인 태백을 제쳐 놓고 셋째인 계력季歷에게 양위하려고 하자, 그러한 아버지의 뜻을 알고 태백과 중옹은 주에서 형만荊蠻으로 도망가 오랑캐의 풍속으로 살며 양위하였다는 고사를 말한다.
  43. 32)『사기』 「자객열전」. 춘추전국 시대의 진晋나라 자객. 자신을 후대해 준 지백知伯이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음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 이처럼 하여 몸을 숨겼다고 한다.
  44. 33)전국 시대의 자객. 엄수嚴遂의 의뢰를 받고 대신인 협루俠累를 죽이고 자살했다고 한다.
  45. 34)노나라 선공宣公의 딸로서 송나라 공공恭公에게 시집을 갔다. 어느 날 밤에 불이 났는데 피난을 권유받고도 여인이 밤에 나다닐 수 없다고 하여 그대로 죽었다고 한다.
  46. 35)『고열녀전古烈女傳』. 젊어서 과부가 되었는데, 양왕梁王이 왕비로 맞이하려 하자 칼로 코를 베어서 정조를 지켰다고 한다.
  47. 36)『맹자』 「이루離樓」 상,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48. 37)『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맹공작은 체통을 지키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국에서 어른 노릇하기는 쉽지만, 소국에서 큰 나라의 공격을 막아가며 실무책임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한 뜻이다.
  49. 38)『노자』 44.
  50. 39)『장자』 「양왕讓王」. 요임금이 천하를 양위하려 하자, 허유는 산중에 은거해 버리고, 그후 9주의 장관으로 발탁하려 하자 영수穎水에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51. 40)불보살과 같은 출세간의 성현에 귀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52. 41)주나라 무왕은 은殷을 멸망시키고, 기자를 데려와 홍범상제가 우왕에게 내렸다는 9장의 대법에 대해 물었다. 바로 그 9장의 제2에, 5사事(용모ㆍ말ㆍ눈의 작용ㆍ귀의 작용ㆍ사려분별)를 바르게 운용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53. 42)『효경』 「경대부장卿大夫章」. 선왕의 법복法服이 아니면 입지 않고, 법언法言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덕행이 아니면 구태여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54. 43)『장자』 「잡편雜篇」 양왕襄王. 화려한 관은 나무의 껍질로 만든 관을 말한다.
  55. 44)『위서魏書』 114 「석로지釋老志」. 여기 「이혹론」에서 붉은 옷 가사를 입었다는 것은 「이혹론」의 찬술 연대를 추정하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56. 45)『진서晉書』 「여복지輿服志」.
  57. 46)『노자』 38.
  58. 47)은대殷代의 관으로서 공자가 이것을 사용함으로써 유자儒者의 관으로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장자』 「소요유」에는, 장보라는 관을 팔려고 전혀 관을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갔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예로 들어 융통성이 없는 것에 비유한다. 즉 하고자 하는 것과 목적으로 삼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59. 48)‘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는 것을 ‘갱생更生’이라고 부르는 것은 『홍명집』 5 유송劉宋의 나군장羅君章의 「갱생론」에서도 알 수 있다.
  60. 49)『예기』 「예운禮運」.
  61. 50)『노자』 13.
  62. 51)『노자』 9.
  63. 52)도가에서는 신선이 사는 곳으로 72복지福地가 있지만, 유가에서는 복당福堂이 천상계天上界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 불교에서는 천당이 극락이라는 명칭이 보급되기까지 특별히 행해지게 되었다.
  64. 53)『사기』 68 「공손앙전公孫鞅傳」.
  65. 54)『논어』 「선진先進」.
  66. 55)『효경』 「상친장喪親章」.
  67. 56)『상서尙書』 「주서周書」 ‘금등金縢.’ 주공이, 형인 무왕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자신을 대신 죽게 해 달라고 귀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68. 57)자식은 현상계이고, 그 어머니는 현상계의 배후에 있는 존재의 근원인 도道라는 실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69. 58)『논어』 「팔일八佾」.
  70. 59)『맹자』 「승문공勝文公」 상. 허행은 농가農家학파의 사상가이자 실천가인데, 유가의 학문을 하고 있던 진상이 허행에게 사사하여 공감하는 것을 비난한 말이다.
  71. 60)『논어』 「자한子罕」.
  72. 61)『본생담本生譚』에 나오는 태자 수대나須大挐는 선시善施ㆍ일체시一切施의 역譯이기도 하다. 오나라 강승회康僧會 역譯이라는 『육도집경六度集經』 권2 「수대나경」(대정장 3, 6)과 서진西晉의 성견聖堅 역이라는 『태자수대나경』(대정장 3, 418)에 보이는 구절이 생략된 것이라 할 것이다.
  73. 62)『효경』 「성치장聖治章」.
  74. 63)『맹자』 「만장萬章」.
  75. 64)『맹자』 「이루離婁」 상.
  76. 65)『시경』 「소아小雅」.
  77. 66)춘추 시대 노나라의 공인工人으로 현재 ‘대공大工’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초나라를 위해 운제雲梯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묵자』 50 「공수公輸」에 보인다.
  78. 67)요임금의 불효 아들.
  79. 68)『논어』 「술이述而」.
  80. 69)『좌전』 「장공莊公」 24년.
  81. 70)『맹자』 「공손추公孫丑」 하.
  82. 71)『논어』 「선진先進」.
  83. 71)『논어』 「선진先進」.
  84. 72)『좌전』 「희공僖公」 23년~24년조 구절 참조.
  85. 73)『좌전』 「선공宣公」 2년조 기사 참조.
  86. 74)『회남자』 「인한人閒」.
  87. 75)『논어』 「학이」.
  88. 76)『노자』 5.
  89. 77)『노자』 32.
  90. 78)『논어』 「위정爲政」.
  91. 79)『논어』 「자장子張」.
  92. 80)소ㆍ양ㆍ돼지ㆍ생선ㆍ사슴 등으로 곡물 이외의 부식물을 말한다.
  93. 81)『논어』 「향당鄕黨」.
  94. 82)『대승의장大乘義章』 15(대정장 44, 765 상)에서 12두타행 가운데 제5에 해당하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말한다. 즉 하루에 정오까지 한 번 식사하는 것을 말한다.
  95. 83)『논어』 「이인里仁」.
  96. 84)춘추 시대 노나라 현인으로 벼슬길에서 세 번이나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97. 85)『노자』 56.
  98. 86)『노자』 45.
  99. 87)『논어』 「헌문憲問」.
  100. 88)『논어』 「양화陽貨」.
  101. 89)『순자』 「대략大略」.
  102. 90)『논어』 「위령공衛靈公」.
  103. 91)『논어』 「위령공」.
  104. 92)『논어』 「공야장公冶長」.
  105. 93)『논어』 「위령공」.
  106. 94)『예기』 「악기」. 요堯의 악樂인 대장大章, 황제黃帝의 악樂인 함지咸池, 순舜의 악樂인 소韶, 우禹의 악樂인 하夏는, 모두 예禮로써 그 뜻을 펼쳤고, 악樂으로써 그 소리를 조율하였고, 정政으로써 그 행동을 하나로 하고, 형刑으로써 그 간함을 미연에 방지하여 예악정형禮樂政刑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음악이다.
  107. 95)『예기』 「악기」.
  108. 96)춘추 시대 초나라의 수도.
  109. 97)『한비자』 「충효忠孝」에서, 유가에서 말하는 충효에는 요순 등의 예를 들어 불철저한 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치국에는 법술法術과 상벌이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110. 98)『논어』 「미자微子」.
  111. 99)『장자』 「외물外物」.
  112. 100)‘5경經’을 ‘5미味’라 하고, 불경을 주식으로 오곡과 비유한 것은 저자의 불교 신앙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혹론」의 자서自序에 5경을 금황琴簧에 비교하는 것과 동시에 주목받는 것이다.
  113. 101)『후한서』 「안제본기安帝本紀」.
  114. 102)『노자』 44.
  115. 103)천문음양天文陰陽의 학學을 신봉하는 양해襄楷가 후한 환제 연희延熹 9년(166)에 낙양에 가서 상주上奏한 글에서 위와 같은 뜻을 말하고 있다.(『후한서』 60, 하) 또한 당시의 도교와 외래 불교와의 교류, 도교와 마찬가지로 신선神仙의 종교로서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116. 104)『노자』 58과 「삼보론三報論」 참조.
  117. 105)본래 아흔여섯 종류는 인도불교에서 볼 때, 불교 이외 외도의 총칭으로서 불교가 여기에 포함된다는 생각은 적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북본 『열반경』에서는 “일체의 외학外學에 아흔다섯 종류가 있으니 다 악도惡道에 나아간다”고 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아흔다섯 종류에 불교를 더하여 아흔여섯 종류라고 하였을 것이다.
  118. 106)『한서』 「교사지郊祀志」 상. 『홍명집』 6 「석박론釋駁論」 “계영포풍繫影捕風”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119. 107)『노자』 12.
  120. 108)『후한서』 112 하 「화타전華陀傳」.
  121. 109)『노자』 48.
  122. 110)『장자』 「소요유」.
  123. 111)『노자』 30.
  124. 112)『노자』 13.
  125. 113)『논어』 「술이」.
  126. 114)『회남자』 「수무훈修務訓」.
  127. 115)『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침해素問鍼解」.
  128. 116)『예기』 「치의緇衣」.
  129. 117)『맹자』 「등문공」 하.
  130. 118)『논어』 「양화」.
  131. 119)『논어』 「공야장」에서 노나라 대부 장손진이 가묘家廟에 천자의 예에 해당하는 문양을 조각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공자가 이것은 예를 어기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그를 지자라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132. 120)『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권상(대정장 12, 266).
  133. 121)『논어』 「위정爲政」..
  134. 122)『회남자』 「제속훈齊俗訓」.
  135. 123)『장자』 「달생達生」.
  136. 124)『공자가어孔子家語』 4.
  137. 125)『사기』 4 「공자세가孔子世家」.
  138. 126)『장자』 「도척盜跖」.
  139. 127)『노자』 35.
  140. 128)『효경』 「성치장聖治章」.
  141. 129)『노자』 23.
  142. 130)『논어』 「헌문憲問」.
  143. 131)『상서』 「요전堯典」.
  144. 132)『예기』 「단궁檀弓」 상.
  145. 133)『사기』 「하본기夏本紀」 .
  146. 134)『상서』 「주관周官」.
  147. 135)『예기』 「단궁」.
  148. 136)『논어』 「선진」.
  149. 137)『예기』 「단궁」 상.
  150. 138)『논어』 「옹야」.
  151. 139)『논어』 「선진」.
  152. 140)『논어』 「자한」.
  153. 141)『예기』 「왕제」.
  154. 142)37도품道品은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보리분菩提分ㆍ8성도분聖道分으로서 열반에 이르는 37조목의 수행방법이다.
  155. 143)이 논은 불교에 대한 비난에 대해 정론을 전개하는 측면에서 저술된 것이고, 앞으로의 11개 항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ㆍ『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 등 도교 측에서의 불교에 대한 비난을 의식하여 찬술된 것이다. 송宋 명제(明帝, 466~472)가 중서시랑中書侍郞 육징陸澄에게 영을 내려 찬술하게 한 『법론목록法論目錄』 제6질에 찬자를 명기하지 않은 「정무론」이 기록되어 있다.(『출삼장기집』 12)
  156. 144)『곡례曲禮』 상.
  157. 145)어느 경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논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당唐 법림法林의 『변정론辯正論』 6 「도교원황력道敎元皇曆」과 『변위록辯僞錄』 2 「모명참성위冒名僭聖僞」가 있다.
  158. 146)『논어』 「계씨季氏」.
  159. 147)『노자』 31.
  160. 148)『맹자』 「이루離樓」 상.
  161. 149)『노자』 31.
  162. 150)『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소공昭公」 11년.
  163. 151)『좌전』 「희공僖公」 5년.
  164. 152)『춘추공양전』 「소공」 20년.
  165. 153)『논어』 「공야장」.
  166. 154)『맹자』 「이루」.
  167. 155)『사기』 61 「백이전伯夷傳」.
  168. 156)도가에서는 제1 욕계欲界에 6천天, 제2 욕계에 18천, 제3 무색천無色界에 4천, 여기에 4범천梵天을 합쳐 32천이라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삼십삼천의 오역이 아닌가라는 설도 있다.
  169. 157)『대루탄경大樓炭經』 3 「사천왕품四天王品」(대정장 1, 393).
  170. 158)중생들이 여러 가지 업에 의하여 윤회하는 길이다. 지옥도地獄道ㆍ아귀도餓鬼道ㆍ축생도畜生道ㆍ인도人道ㆍ천도天道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축생도와 인간도 사이에 수라도修羅道를 두어 6도 윤회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대지도론』 권30)
  171. 159)범부가 생사 간을 유전하는 그 기간이 오래됨을 비유한 것.(『승만보굴勝鬘寶窟』)
  172. 160)『예기』 「빙례聘禮」에서 말하는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낙樂ㆍ충忠ㆍ신信ㆍ천天ㆍ지地ㆍ덕德의 10덕을 나타낸다는 설도 있지만 전후의 문맥에서 살펴볼 때, 불교에서 말하는 10선善[十善道ㆍ十善根本業道]을 말한다. 몸[身]ㆍ입[口]ㆍ뜻[意]의 3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불살생不殺生ㆍ불투도不偸盜ㆍ불사음不邪婬ㆍ불망어不妄語ㆍ불악구不惡口ㆍ불양설不兩舌ㆍ불기어不綺語ㆍ불탐욕不貪慾ㆍ부진에不瞋恚ㆍ불사견不邪見을 말한다.
  173. 161)『효경』 「성치장」.
  174. 162)공자의 질문에 영기가 답한 것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것, 남자인 것, 장수하는 것이 세 가지 즐거움이라고 하였다.(『열자』 「천서天瑞」)
  175. 163)현존하지 않는 도교의 책이다. 비난하는 자도 이 책의 이름만 거론할 뿐이며, 답변과 같이 자손봉불子孫奉佛의 화禍는 5조祖에까지 이른다고 쓰여 있고, 이에 대해 비난하는 자가 질문한 것이다.
  176. 164)『상서』 「익직益稷」.
  177. 165)『좌전』 「환공桓公」 2년.
  178. 166)『악기』.
  179. 167)『장자』 「외물外物」.
  180. 168)『보사기補史記』 「삼황본기三皇本紀」.
  181. 169)『주역』 「계사繫辭」.
  182. 170)『사기』 105 「편작扁鵲」.
  183. 171)『회남자』 「설산훈說山訓」.
  184. 172)『노자』 59.
  185. 173)『장자』 「달생達生」.
  186. 174)『논어』 「선진」.
  187. 175)『한서漢書』 21 「율력지律曆志」 상에 “百六陽九 三百十四陰九” 등의 숫자를 열거하여 음양가가 산출한 액운은 그 시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188. 176)『상서』 「요전」.
  189. 177)『장자』 「도척盜跖」.
  190. 178)『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
  191. 179)『장자』 「각의刻意」.
  192. 180)『사기』 「은본기殷本紀」.
  193. 181)『논어』 「선진」.
  194. 182)『노자』 31.
  195. 183)『좌전』 「은공隱公」.
  196. 184)『노자』 50.
  197. 185)『진서』 37 「민왕승전閔王承傳」.
  198. 186)『논어』 「양화」.
  199. 187)『노자』 42.
  200. 188)『노자』 10, 28.
  201. 189)『논어』 「옹야」.
  202. 190)『주역』 「계사」 상.
  203. 191)『장자』 「양생주養生主」.
  204. 192)『논어』 「학이」.
  205. 193)『논어』 「헌문」.
  206. 194)『논어』 「공야장」.
  207. 195)『효경』 「천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