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

ABC_IT_K1506_T_002
047_0018_a_01L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 제2권 상


지엄 지음
박서연 번역


[제3회 불승수미정(佛昇須彌頂)]

9) 수미정품(須彌頂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으니,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불(佛)이란 교화의 주체[化主]이고, 승(昇)이란 위로 나아가는 것이며, 수미(須彌)란 묘고산(妙高山)이며, 정(頂)이란 뛰어나고 존귀한 상위에 거처하는 것이다.
【문】어째서 이 이하의 네 회상은 하늘[天]에서 설한 것인가?
【답】덕행의 지위가 성취되어서 장애를 없애고 청정함이 뛰어나기 때문에 천(天)에서 설했을 뿐이다. 이것은 앞에 나온 10주(住) 지위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어째서 왔는가?’라는 것은 믿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니, 이것은 처음에 회상의 온 뜻을 변별한 것이며, 또 ‘어째서 회상이 왔는가?’는 이미 과보의 체(體)를 이룬 것이다. 다음은 반드시 교화를 일으켜 기틀에 부응하기 때문에 온 것이니, 이를 인(因)해서 가르침을 일으켜 나타낸 바를 간략히 요간(料簡)한 것이다. 이제 모든 회상이 다만 본래의 처소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음은 곧 행1)이 과보의 체(體)를 이루어 견고하여 옮기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러나 지나간 모든 회상은 곧 용(用)을 일으켜 기틀에 따름을 나타낸 것이다. 이 해석은 수행의 체(體)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약 이해를 내어 믿음을 일으키는 문을 조망한다면 곧 행위(行位)가 더욱 미세함을 나타낼 뿐이요, 또한 문장을 풀이하는 가운데 부처님을 기준으로 하면 용(用)을 일으켜 기틀에 다다름으로써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선지식의 힘인 것이다. 만약 분위(分位) 등을 기준으로 하면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수행을 기준으로 해서 이해한 것이니,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또 이 회상 이하의 네 회상은 모두 위상(位相)이 증대하는 것이니, 앞의 신행(信行)과는 약간 다르다. 삼승법과 일승법의 뜻이 또한 모름지기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생각해서 준거하라. 나머지 회상은 모두 이러한 뜻과 동일하다. 품이 온 것은 먼저 신법(信法)을 설하고 나서 다음으로 나중의 설(說)에 나아가서 의거하는 바 처소를 변별하였을 뿐이다.
셋째, 종지라는 것은 회상을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둘은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람에는 교화의 주체[化主]와 교화를 돕는 이[助化]가 있어서 각기 체(體)의 덕용(德用)이 있는데, 단지 이 회상에 국한될 뿐이다. 둘째,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은 이른바 10해법(解法)을 말하는데 나중에 마땅히 변별하리라. 처음의 품을 종지라는 것은 만약 이타(利他)의 시기에 의지한다면 처소와 공양을 나타낸 것이 곧 법연(法緣)을 나타낸 것이다. 만약 자리(自利)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는 곧 기틀이 감응하여 서로 응하는 것이니 기연(機緣)의 체용이 이루어짐을 밝힌 것이다.
넷째,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회상에는 여섯 품이 있는데,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품은 방편을 발기(發起)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두 품은 정위(正位)의 상(相)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두 품은 나중에 만족을 이루는 행상(行相)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두 품은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용(用)을 일으켜서 사물에 따르는 것이며, 둘째 ‘제석천이 멀리서 보고’ 이하는 기틀이 감응해서 서로 응함을 변별한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依)와 정(正)이 서로 융섭함을 변별한 것이니, 곧 앞의 체(體)가 청정함을 나타낸 것이다. 둘째는 뒤의 용(用)이 청정함을 다시 나타낸 것이니, 자재하여 걸림 없음이 사(事)를 성취하는 근본이다. 모든 회상에 있는 경문은 다 이 해석과 동일하지만, 다만 뛰어남에 나아가는 것[進勝]이 다를 뿐이다.
【문】이 경문은 왜 처음 회상[初會]의 뒤에 있지 않고 나중 회상[後會]의 앞에 있는 것인가?
【답】만약 초회의 뒤라면 단지 법을 설하는 이익의 뜻을 드러냄을 밝히는 것이라서 나중의 화용(化用)과 더불어 체(體)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後會)의 앞에서 변별한 것일 뿐이다. 나머지 회상도 이와 동일하니, 어째서 제1회상의 뒤에 있지 않은 것인가? 요간(料簡)에서는 앞의 회상이 나머지 의의(義意)를 겸하여 저 해석에 있으며, 나중의 제6ㆍ7ㆍ8회상도 역시 따로 나머지 의의가 있음을 드러내었을 뿐이니, 체(體) 가운데 신(身)ㆍ구(口)ㆍ의(意) 셋인 것이다. 둘째 ‘이 때 세존께서’ 이하는 용(用)이 사물에 감응함을 밝힌 것이니, 곧 용의 청정함이다.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둘째2)의 상응하는 경문에는 다섯 가지 서(序)가 있다. 첫째는 처소에 머무는 서이니, 동정(動靜)의 걸림 없음으로써 이르지 않는 처소가 없다. 이는 법을 설하는 덕 때문이다. 둘째는 부처님에게 청하는 서(序)이고, 셋째는 대중을 모으는 서이며, 넷째는 광명을 놓는 서이며, 다섯째는 찬탄하는 서이다. 만약 아래의 「주품(住品)」을 통튼다면 곧 여덟 가지 서(序)가 있으니, 이른바 정(定)에 들어가는 것과 가피하여 권유하는 것과 정(定)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 품을 기준으로 경문을 나누는 것도 좋다. 처음의 처소에 머무는 서와 부처님께 청하는 서(序)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서 용(用)이 실(實)을 좇아 일어나는 것이니, 곧 발심(發心)의 연(緣)이다. 둘째 ‘곧 묘승전(妙勝殿)에서’ 이하는 천주(天主)가 장엄하여 공양함을 밝히기 때문에 부처님께 청하는 것이다. 해(解)를 좇아서 법공양의 행을 성취함을 갖추어 나타낸 것은 곧 근기[根]를 이루는 것이다. 셋째는 세존께서 곧 청3)을 받아들이셔서 감응에 부응해 교화를 베푸시는 것이다. 넷째는 제석천의 음악소리[釋音]가 적연(寂然)해짐은 혼란은 가라앉히고 진(眞)에 응함을 나타낸 것이다. 다섯째 ‘게송을 설한다’ 이하는 정(定)을 좇아서 혜(慧)를 발함을 나타낸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께서 법좌에 오르시다’ 이하는 화용(化用)의 사(事)가 이루어진 상(相)을 올바르게 밝힌 것이다.
장엄을 갖춘 경문은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 장엄을 갖춘 것은 곧 근기를 이루는 것이며, 둘째 청함은 곧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다. 첫째의 장엄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며, 두 번째는 좌구(坐具)를 장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에서 ‘이 때 제석천’ 이하는 부처님께 청함을 밝힌 것이니, 곧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게송의 경문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본행(本行)을 기억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게송으로 찬탄한 것이며, 세 번째는 시방을 통틀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여섯째의 ‘교화하여 성취함’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법좌에 앉으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용의 상[用相]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나머지 방위를 균등하게 통틀은 것이다.

10) 보살운집품(菩薩雲集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보살이란 사람이며, 운(雲)이란 윤택한 이익을 주기 때문이며, 또한 잇몸의 모습이다. 집(集)이란 한데 모이는 것이며, 묘승(妙勝) 등이란 별개의 처소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어째서 왔는가? 처소를 변별하고 나서 다음으로 모인 대중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모인 대중이 덕을 찬탄하고 법을 따르는 것을 종지로 삼는다.
넷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는 세 가지 서(序)가 있다. 첫째는 대중을 모으는 것이고, 둘째는 광명을 놓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을 찬탄한 것이다. 지금 이 이하의 세 회상에 모인 대중은 어째서 초품(初品)에 있지 않으며, 다시 어째서 하나하나의 방위에 각기 열 가지가 있는가? 또한 ‘광명을 놓음’ 이하에선 어째서 점진적으로 대중을 모으지 않는가?
【답】앞 회상은 위상(位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다만 행의 원만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초품에서 설한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행위(行位)가 갖추어져 성취됨으로써 행위가 이익을 주는 것을 똑같이 밝히기 때문에 함께 이 품에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방위가 열 가지를 갖춘 까닭은 해의 상[解相]이 분명하고 원융한 수(數) 등의 1방(方)이 곧 일체의 방(方)임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광명을 놓음’ 이하에서 점진적으로 대중을 모으지 않은 까닭은 행위(行位)가 원만히 성취되어서 늘거나 줄어드는 상(相)이 있지 않음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따로 늘거나 줄어듦이 있는 것은 그 뜻이 위를 준거하여 이루어 얻은 것이니, 상하를 마땅히 준거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제1 회상에서 모인 대중과 광명을 해석한 것은 역시 처음은 나중의 준칙이 됨을 준거하였을 뿐이다. 처음의, 대중을 모으는 서(序) 안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위를 가리켜서 수(數)를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하나하나의 방위’란 것은 혹은 위의 회상에 통하고, 혹은 위의 회상에 통하지 못하니, 신행(信行)이 또한 위상(位相)을 이루지 못한 것은 이 통하지 못함 때문이고, 아래의 세 회상은 지위[位]가 나타나기 때문에 뜻이 통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세계’ 이하에서 명칭을 열거한 것이다. 명칭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방 불국토의 보살을 밝힌 것이니, 세 종류의 세간4)이 곧 둘이 된다. 두 번째 ‘이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 이하는 모든 보살이 모이는 데 세 가지가 있음을 밝힌 것이니, 청정한 행을 닦고[淨行] 구름처럼 모여[雲集] 방위에 의거해서 앉음[依方坐]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이 세계에서와 같이’ 이하는 시방을 유비(類比)하여 법계의 회상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동일하게 월(月)인 것은 달에 의거해서 광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청량하기 때문이니, 법을 이해해서 준거하라. 보살의 명칭이 동일하게 혜(慧)인 것은 이해[解]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발가락에서 광명을 놓는 것은 해종(解種)5)에서 물러나지 않음을 나타내서 건립하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6)는 찬탄의 서(序)인데 경문에는 10보살이 있다. 서로 차례대로 찬탄을 낳는데, 해상(解相)이 명백하니 알 수 있다. 첫째, 법혜(法慧)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의 긴 행은 생기(生起)하는 것이며, 두 번째의 올바른 게송 이하는 아울러 준거하라.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게송은 대중이 모임[衆集]7)을 거듭 들어서 불력(佛力)의 성취한 바임을 밝혔으니, 곧 앞의 품 중 여섯 단락의 뜻을 매듭 지은 것이다. 다음의 세 게송은 뛰어나게 행하는 자는 부처님을 보게 되고 나머지는 알지 못함을 밝혔으니, 곧 앞의 사량하기 어려움을 통틀어 찬탄한 것이며, 이하 모든 사람의 게송은 모두 이(理)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일체혜(一切慧)의 게송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게송은 이른바 보더라도 참부처는 보지 못함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무생(無生)을 이해해서 법신이 항상 나타남을 드러낸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취하고 집착하는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슬기로 이해하는 자의 이익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부처님의 인연의 성취를 이해하는 것이 곧 어리석음과 미혹을 여의는 것임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功)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셋째, 승혜(勝慧)의 게송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게송은 망령되이 취하는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이해하는 자의 덕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법을 기준으로 해서 관(觀)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공이 부처님께 있음을 추궁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능히 청정한 슬기가 있는 자가 법신을 보는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넷째, 공덕혜(功德慧)의 게송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미혹된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이 한 게송은 뛰어난 방편을 제시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법성(法性)의 이익을 얻음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부처님의 중생을 이롭게 하시는 방편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다섯째, 정진혜(精進慧)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잘못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덕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여덟 게송은 관(觀)이 이루어져 이익을 얻는 상(相)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여덟 게송의 경문 안에서 앞의 네 게송은 서로 생기함이 없는 것이고, 나중의 네 게송은 진실한 성품이다.
여섯째, 선혜(善慧)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이해[解]가 자타(自他)를 제도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진실한 성품에 응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 반은 이해의 뛰어난 능력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 반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일곱째, 지혜(智慧)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가르침을 인(因)해서 올바른 이해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가르침의 이치[敎理]에 미혹한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이해의 덕[解德]을 거듭 성취한 것이다.
여덟째, 진실혜(眞實慧)의 게송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우수하고 열등함과 얻고 잃음을 교량(校量)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관(觀)하는 경계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이익을 들어서 배움을 권유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아는 자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그 관의(觀儀)를 제시한 것이다.
아홉째, 무상혜(無上慧)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사람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자리(自利)를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이타(利他)의 덕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열째, 견고혜(堅固慧)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부처님이 바로 참다운 귀의처[眞歸]임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덕을 들어서 의거하기를 권유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스스로를 인용해서 사물에 들어가도록 권유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뛰어난 사람을 들어 덕의 다함 없음을 나타냄으로써 의거하기를 권유한 것이다.

11) 십주품(十住品)
다섯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는 10주(住)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곧 온 뜻을 변별한 것이다. 십(十)이란 것은 수(數)이고, 주(住)라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位]이다. 어째서 왔는가? 올바로 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스리는 바를 밝힌 것이니, 이전의 백 가지 장애를 마땅히 이 지위에서 끊기 때문이다. 만약 삼승의 숙교(熟敎)라면 끊는 바가 외도(外道)의 아집(我執)이다. 셋째는 얻는 바이니, 광명이 증대한 정(定)과 정선근(頂善根)이다. 넷째는 성취하는 바이니, 10해(解)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삼승 숙교(熟敎)의 설이니, 바로 이 품의 종지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아래의 제3품부터는 나뉘어 올바른 종지가 된다. 이 중에서 두 품은 곧 두 가지가 되는데, 첫째는 도속(道俗)을 통틀은 것이고, 둘째 「범행품(梵行品)」은 출가의 별행법(別行法)이다. 초품은 만약 뜻으로 경문을 나눈다면 이 품의 처음에 세 가지 서(序)가 있다. 광사(光師)는 여덟 가지 서(序)가 있다고 말하는데 세 가지가 되니, 즉 초품의 둘을 합해서 이름하여 머무는 처소의 서[住處序]라 하고, 다음 품의 셋을 합쳐서 이름하여 대중을 모으는 서[集衆序]라 하고, 이 품의 셋을 합쳐서 설(說)을 일으키는 서[起說序]라고 하는 것이다.
또 「지품(地品)」에 의거하면 이 이하의 세 회상에는 각기 6분(分)이 있다. 첫째는 이름하여 삼매분(三昧分)이고, 둘째는 가분(加分)이고, 셋째는 기분(起分)이고, 넷째는 본분(本分)이고, 다섯째는 설분(說分)이고, 여섯째는 이익분(利益分)이다. 분제(分齊)는 경문에 이르면 마땅히 알 수 있다.
또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삼매의 서(序)를 밝힌 것이며, 다음 ‘온갖 보살에게 고하여 말하길[告衆菩薩言]’ 이하는 올바른 종지이다. 삼매의 서는 가의(加意) 위에서 이미 변별했으니, 정(定)의 명칭은 무량방편정이다. 방편은 지(智)이니, 정이 뛰어난 지혜를 이루어서 법을 알기 때문이다. 법혜보살이 정에 들어가고 설하는 까닭은 아래에서 논한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가서(加序)이니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동가(同加)를 변별한 것이니, 여기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몸을 나타냄을 밝힌 것과 동일한 명칭을 드러낸 것이니, 곧 두 가지가 된다. 둘째, 동일하게 찬탄한 것이니, 역시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유를 얻음을 해석한 것이니, 네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의 ‘그대로 하여금 자세히 설하게 하고자 한다[欲令汝廣說]’ 이하는 가(加)의 하는 바를 밝힌 것인데 열한 구(句)가 있다.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아홉은 개별적인 것이고, 나중의 하나는 매듭 지어서 지위를 성취한 것이다. 제2의 아홉 구 안에서 처음의 다섯 구는 자분(自分)이고, 다음의 네 구는 승진(勝進)일 뿐이다. 세 번째의 ‘선남자’ 이하는 가의 상[加相]을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3업(業)이다. 가상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선남자’ 이하는 구업의 가[口加]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여래께서 곧 수여하시길[如來卽與]’ 이하는 의업의 가[意加]이고, 셋째 ‘각기 펴서[各申]’ 이하는 신업의 가(加)이다.
어째서 의가(意加)라 하는가? 법과 더불어 동일한 연(緣)을 자량하기 때문이다. 의가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10지(智)를 열거한 것이며, 다음 ‘왜냐하면’ 이하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어째서 지자(智者)와 함께 하냐고 묻는 이유는 지(智)가 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起)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선정의 일[定事]을 마치는 것이고, 둘째는 뛰어난 힘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설하는 때가 이르렀음이며, 넷째는 정(定)에는 언설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정설(正說)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성(種性)이 매우 뛰어남을 찬탄한 것과 아울러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한 것이니, 곧 본분(本分)이다.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주(住)의 상(相)을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셋째 ‘이 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爾時佛神力故]’ 이하는 대지의 흔들림으로 실다움을 나타내고 증득하여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게송으로써 거듭 읊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종성의 뜻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니, 곧 성(性)과 습(習) 두 종성(種性)의 체(體)이다. 두 번째 ‘보살의 10주’ 이하는 10해(解)의 상(相)을 열거해서 부처님께서 동일하게 설하심을 밝힌 것이니, 곧 성과 습 두 종성의 상(相)이다. 이것은 극성(剋性)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만약 분위시(分位時)에 나아간다면 곧 여섯 가지 종성이 있다. 첫째는 습(習)종성이니, 10해(解)의 지위에 해당한다. 둘째는 성(性)종성이니, 10행(行)에 해당한다. 셋째는 도(道)종성이니, 10회향에 해당한다. 넷째는 성(聖)종성이니, 10지(地)에 해당한다. 다섯째는 등각(等覺)의 성품이니, 10지의 종심(終心)에 해당한다. 여섯째는 묘각(妙覺)의 성품이니, 불지(佛地)에 해당한다.
다시 이름하여 6견(堅)이 있다. 또한 견신(堅信)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법(堅法)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수(堅修)라 이름하고, 또한 견득(堅得)8)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정(堅頂)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각(堅覺)이라 이름한다. 또한 이름하여 6인(忍)이라 하니, 신인(信忍)ㆍ법인(法忍)ㆍ수인(修忍)ㆍ정인(正忍)ㆍ무구인(無垢忍)ㆍ일체지인(一切智忍)이다. 다시 이름하여 6혜(慧)라 하니,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ㆍ무상혜(無相慧)ㆍ조혜(照慧)ㆍ적조혜(寂照慧)이다. 또한 이름하여 6관(觀)이라 하니, 주관(住觀)ㆍ행관(行觀)ㆍ향관(向觀)ㆍ지관(地觀)ㆍ무상관(無相觀)ㆍ일체종지관(一切種智觀)이다. 이것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지위에 의탁해 말했을 뿐이다.
이 가운데 10해와 10행 중에서 6결정(決定) 안에 단지 대선결정(大善決定)이 없을 뿐이며, 10회향은 단지 관상(觀相)의 선(善)과 대선(大善) 및 겁약(怯弱)하지 않음이 있을 뿐이며, 나머지 셋은 모두 없다. 대선(大善)이 있고 나머지 셋이 없는 까닭은 회향이 방편사(方便事) 중에서 성취를 드러내기 때문에 대선이 나타나는 것이며, 나머지 셋이 없는 것은 뜻이 숨어 있기 때문에 설하지 않는 것이다. 관상 등은 알 수 있다. 10해와 10행 등은 어째서 대선이 없는 것인가? 해행(解行)이 스스로 행해서 뜻이 드러나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처음 체(體)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고한 것이고, 둘째는 6결정을 개별적으로 밝힌 것이다. 둘째, 해상(解相)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數)를 들어 이끌어 증명해서 종지를 세운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열거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셋째는 이끌어 증명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10해의 명칭이란 것에서 첫째 발심(發心)은 위를 기약하는 것이고, 둘째 치지(治地)는 미혹을 소멸해서 자타(自他)의 이익을 낳는 것이고, 셋째 수행(修行)은 정(定)이 앞의 둘을 성취하는 것이고, 넷째 생귀(生貴)는 행이 성취되어 불가(佛家)에 태어나는 것이고, 다섯째 방편구족은 자타의 행이 원만한 것이고, 여섯째 정심주(正心住)는 연기의 바른 이해를 얻는 것이고, 일곱째 불퇴(不退)는 이량(理量)에서 지(止)와 관(觀)을 쌍으로 행하는 것이고, 여덟째 동진(童眞)은 무생(無生)의 묘해(妙解)로써 몸을 건립하는 것이 마치 동자가 물듦이 없는 것과 같고, 아홉째 법왕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훌륭히 베풀기 때문이며, 열째 관정위(灌頂位)는 원만하게 직분을 받아서 상응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아래의 모든 지위의 행상(行相)이다.
둘째,9) 경문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니, 하나하나의 주(住)가 모두 네 단락이다. 첫째는 열거한 명칭을 묻는 것이다. 둘째는 해상을 변별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는 해석이고,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다. 셋째는 승진(勝進)의 조행(助行)을 우러러 닦음을 밝힌 것인데, 역시 세 가지가 있으니, 건립과 해석과 매듭 지음이다. 아래도 모두 이와 같아서 해당되는 지위에서 익힐 수 있다. 넷째 ‘왜냐하면’ 이하는 배우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오직 처음과 열째에만 여섯 구가 있다. 첫째는 질문에 의탁함을 거듭 든 것이고, 둘째는 발심의 연(緣)을 변별한 것인데 여섯 구가 있으며, 셋째는 행체(行體)를 변별한 것인데 여기엔 세 구가 있다.
첫째, 체(體)의 발심에는 4연(緣)ㆍ4인(因)ㆍ4력(力)이 있다. 4연이란, 첫째는 불보살의 신통대사(神通大事)를 보고 듣는 것이며, 둘째는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말세에 법을 수호하는 것이며, 넷째는 고통받는 중생을 보기 때문에 발심하는 것이다. 4인이란 첫째는 종성(種性)의 인연이며, 둘째는 부처님 등이 선우(善友)가 되는 것이고, 셋째는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넷째는 온갖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4력이란 자력(自力)과 타력(他力)과 인력(因力)과 방편력(方便力)이니, 마치 『지지(地持)』의 설과 같다. 두 번째는 나아갈 바이고, 세 번째는 물러나지 않는 것[不退]인데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만약 일승의 통교(通敎)를 기준으로 하면 10주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 곧 네 가지 물러남[四退] 등이 모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만약 삼승에 의거한다면 10지(地) 이후로는 염퇴(念退)가 있고, 지(地) 이전에는 행퇴(行退)와 위퇴(位退)가 있으니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는 것도 역시 물러남이며, 10신(信) 이전에 실퇴(實退)가 있고 이후에는 물러남을 나타냄이 있으니, 이는 지위를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네 번째는 얻은 바를 밝힌 것이고, 다섯 번째는 배움을 밝힌 것이며, 여섯 번째는 앞에서 배운 뜻을 변별한 것이다.
또 이 이하의 모든 경문에도 모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뛰어난 능력을 성취해서 행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따지는 것이고, 다음은 뜻을 변별한 것이며, 셋은 성취한 덕을 밝힌 것이다. 모든 지위도 다 이와 동일하므로 역시 통틀어 해석할 수 있다. 즉 스스로 이해를 연 자는 지위10)가 인과에 통하는데 그 뜻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자의 작은 가르침 등을 말미암지 않고서 이해하는 것이고, 둘째는 타자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서 경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셋째는 타자의 성품을 말미암지 않고서 밖에 따로 모으는 것이다. 나중의 경문이 하는 바는 각기 동이(同異)가 있으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치지주(治地住)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2지(地)의 열 가지 모임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과(果)를 모으는 것과 동일하니, 그 중에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전도(顚倒)됨을 버리고 정견(正見) 등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셋째, 수행주(修行住)의 내용에서 앞의 열은 3지의 번뇌행을 수호하는 것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소승을 수호하는 것과 동일하다.
넷째, 생귀주(生貴住)의 내용에서 처음 열의 상(相)은 4지의 열 가지 법지(法智)와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수도품(修道品)」 등과 동일하다.
다섯째,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5지의 대자(大慈) 등의 관(觀)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대비(大悲)로 깊고 무거운 고통을 관하는 것과 동일하다.
여섯째, 정심주(正心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6지의 열 가지 평등 가운데 제10구와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앞의 아홉 가지 평등과 동일하다.
일곱째, 불퇴주(不退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7지의 열 가지 낙무작대치(樂無作對治)와 동일하고, 나중의 열은 저 장애의 대치와 동일하며, 또한 쌍행분(雙行分)과 동일하다. 물러남[退]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지위[位]이고, 둘은 행(行)이고, 셋은 염(念)이고, 넷은 얻고 얻지 못함에 응하는 것[應得不得]이다. 여기에서는 네 가지 물러남이 없는 것이다.
여덟째, 동진주(童眞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8지 승행분(勝行分)에 있는 하등(何等)의 몸과 나아가 부처님을 공양하는 등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저 3세간의 자재함과 동일하다.
아홉째, 법왕자주(法王子住)에서 처음의 열은 9지에서 지혜[智]를 성취하여 행에 들어가는 등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저 구업(口業)과 법사(法師)가 성취하는 등의 경문과 동일하다.
열째, 관정주(灌頂住)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며, 세 번째는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며, 네 번째는 배움에 나아가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잠복해 있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처음의 열은 10지의 삼매분(三昧分)과 동일하며, 다음의 열은 저 수위분(受位分)과 동일하며, 다음의 10구는 저 대진분(大盡分)과 동일하니, 곧 들어가고 머물고 나가는 것이다.
이상은 일승의 믿음을 낳는 것에 의거해서 말을 삼은 것이다. 만약 삼승의 지위에 의탁해서 개별적으로 관(觀)하는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경전의 초주(初住) 가운데 서(序)는 일체의 선근을 모아서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이루어 아직 고(苦)를 제도하지 못한 이를 제도케 하고, 아직 집(集)을 이해하지 못한 이를 이해토록 하며, 아직 도(道)에 안주하지 못한 이를 안주하게 하고, 아직 멸(滅)을 얻지 못한 이에게 멸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2주(住) 중에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 이른바 4념관(念觀)11)으로서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의 이 네 가지가 다 공(空)한 것이다.
제3주 중에선 불도법(佛道法)을 훌륭히 모으는 것이니, 이른바 10일체입(一切入)12)의 4대(大)ㆍ4색(色)ㆍ공처(空處)ㆍ식처(識處)가 다 실상(實相)과 같음을 관하기 때문이다.
제4주 중에선 일체의 부처님 앞에서 법을 받아들여서 8승처(勝處)13)의 관(觀)을 행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실다운 5음(陰) 중에 있는 광상(廣相)과 약상(略相)의 두 가지 승처이고, 밖으로는 가탁된 중생의 법 중에 있는 광상과 약상의 두 가지 승처이며, 4대법(大法)의 광상과 약상의 네 가지 승처이니, 이처럼 일체의 법이 공(空)해서 무상(無相)임을 관하기 때문이다.
제5주 중에선 모든 청백법(淸白法)을 닦는 것이다. 이른바 8대인각(大人覺)14)으로서 소욕(少欲)ㆍ지족(知足)ㆍ적정(寂靜)ㆍ정진(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ㆍ정혜(正慧)ㆍ논쟁하지 않는 것[不諍論]이니, 일체법에 따르기 때문이다.
제6주 중에선 모든 부처님의 수호를 받게 되는 것이니, 8해탈(解脫)의 관(觀)으로 문혜(聞慧)를 얻지만 안으로 가탁된 것[內假]과 밖으로 가탁된 것[外假]의 두 상(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1해탈은 사혜(思慧)이니, 안으로 다섯 가지 법과 밖으로 일체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2해탈은 수혜(修慧)이니, 6관(觀)이 구족하고 색계의 5음이 공(空)하다. 3해탈은 4공(空)ㆍ5음(陰) 및 멸정관(滅定觀)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5해탈은 상(相)과 같기 때문이다.
제7주 중에선 정법을 자세히 하는 것이니, 이른바 6화경(和敬)15)이다. 3업(業)과 동계(同戒)ㆍ동견(同見)ㆍ동행(同行)이 이 법화(法和)에 들어가서 필경에는 공(空)하기 때문에 불퇴위(不退位)에 머무는 것이다.
제8주 중에선 대법(大法)을 믿고 기뻐하는 것이다. 이른바 3공(空)16)은 일체 인(因)이기 때문에 짓는 것이 없고, 일체 과(果)이기 때문에 상(相)이 없는 것이다. 인(因)이 공하고 과(果)도 공하고, 공도 다시 공하기 때문에 공공(空空)이니, 이처럼 법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제9주 중에선 네 가지 동등한 법에 머무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을 교화하는데 4제법(諦法)을 가르치는 것이다. 삼계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무명(無明)의 습인(習因)은 생(生)을 받아서 무궁하며, 3공(空)의 도품(道品)은 무위적멸(無爲寂滅)이니, 사제는 둘이 아닌 일합상(一合相)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이 바로 중생연(衆生緣)ㆍ법연(法緣)ㆍ무연(無緣)인 것이다.
제10주 중에선 부처님의 공덕을 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른바 6염(念)17)인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으로, 일체 부처님의 공덕을 얻어 생각생각마다 불환18)삼매(不幻三昧)에 들어가 항상 앞에서 닦기 때문이다.
이상은 삼승의 지위에 의탁해서 관(觀)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19) 실다움을 나타내고 증득하여 성취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지를 진동해서 실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 다시 말하기를 ’부처님의 신력’이라 한 이하는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대지가 진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꽃비가 내리는 것이며, 셋째는 나머지 시방세계 등과 동등한 것이다. 둘째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회상의 평등함이 법계에 광대하게 두루 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네 구가 있음은 알 수 있으며, 둘째의 회상을 매듭 지음 중에서도 두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넷째,20) 거듭 읊는 경문에는 203개의 게송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185게송은 10해(解)의 상(相)을 읊는 것이고, 둘째 ‘이처럼 10주의 모든 보살[如是十住諸菩薩]’ 이하는 열여덟 게송이 있는데, 총체적으로 10주를 읊어서 수행을 권유함을 찬탄하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 정송(正頌)의 경문에 열 가지가 있다. 처음의 90게송은 초주(初住)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제2 치지[第二治地]’ 이하는 제2주를 읊은 것이니,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있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35사(事)를 대(對)해서 발심의 체(體)를 자세히 성취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와 같이 발심하고는[菩薩如是發心已]’ 이하는 초주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것이 보살의 ≺발심주를≻ 설한 것으로[是說菩薩]’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치지주(治地住) 안에서 처음의 네 게송은 해(解)를 읊은 것이고, 나중의 여덟 게송은 배워서 행하는 바를 읊은 것이다. 수행주(修行住)에서 앞의 네 게송은 해(解)를 읊은 것이고, 나중의 여섯 게송은 배워서 행하는 바이다. 생귀주(生貴住)에서 앞의 여섯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여섯 게송은 행(行)이다.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에서 앞의 여섯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세 게송은 행(行)이다. 정심주(正心住)에서 앞의 여덟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두 게송은 행(行)이다. 불퇴주(不退住)에서 앞의 네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네 게송은 행(行)이다. 동진주(童眞住)에서 앞의 여섯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네 게송은 행(行)이다. 법왕자주(法王子住)에서 앞의 네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두 게송은 행(行)이다. 관정주(灌頂住)에서 앞의 열 게송은 덕의 체[德體]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주위(住位)의 상(相)을 읊은 것이며, 아래의 네 게송은 나중의 방편행이다.
둘째의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열네 게송은 10주의 알기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설함이 다함 없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12) 범행품(梵行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행(行) 가운데 최상의 청정이기 때문에 범행(梵行)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요컨대 범(梵)을 논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보(報)와 방편(方便)이다. 처음의 수행은 정(淨)이 되고, 성취는 범(梵)이 된다. 만약 보(報)라는 것에 의거한다면 욕천(欲天)은 정(淨)이 되고 색천(色天)은 범(梵)이 된다. 만약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리는 정(淨)이 되고 이타는 범(梵)이 된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는 “3학(學)은 뛰어난 성행(聖行)이 되고, 4무량(無量)은 범(梵)이 된다”고 하였다.
둘째는 온 뜻을 밝힌 것이다. 어째서 온 것인가? 그 도에 나아가는 데는 방편이 다양한데 상(相)에 따라서 둘로 나누니, 이른바 하나는 치(緇)이고, 하나는 소(素)이다. 소(素)는 이타를 따르면서 방소가 없이 사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분제(分齊)의 행에 머물지 않는다. 치(緇)는 자리(自利)를 따르기 때문에 세간을 벗어난 용의(容儀)를 가볍게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오직 내관(內觀)을 성취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품(地品)」에서는 출가인은 오직 삼매를 이룰 뿐이라고 변별하였다.
【문】앞의 모든 회상에서는 어째서 또한 이 품을 설하지 않았는가?
【답】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이 중에선 행이 열등한 것이며, 둘째는 처음이 마지막까지 통하기 때문이다.
【문】어째서 10신(信)에서 이 품을 밝히지 않았는가?
【답】이것의 올바른 종지는 법으로써 사람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지, 사람으로써 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이 법을 성취한다고 이름짓겠는가? 법은 높고 낮음이 없으니, 사람과 기물(器物)에 따라서 법의 정밀하고 거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0신의 법해(法解)는 아직 밝히지 못했으나, 법으로써 사람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신의 해(解)가 열등하기 때문에 다만 신근(信根)을 따라서 법을 정할 뿐이다. 만약 형국(形局)을 말하면, 곧 모든 견(見)이 더욱 증대해서 올바른 믿음[正信]을 이루지 못한다.
【문】범행의 발심은 법을 밝힌 것인데 어째서 아래의 세 회상에 통하지 못하는 것인가?
【답】이(理)가 있으니, 이것으로써 저것을 유비(類比)할 뿐이다.
셋째는 종지를 변별한 것이다. 무념(無念)의 이관(理觀)은 마땅히 자체(自體)의 과(果)인 열반의 원적행(圓寂行)이니, 곧 이 품의 종지가 된다.
【문】이 중에서 처음으로 10주 초발심의 인(因)을 밝혔는데 어째서 이를 과행(果行)이라고 말하는가?
【답】이는 자체의 참된 발심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후제(後際)에 계합해서 체(體)가 포함되어 밖이 없는[無外] 것이다. 또 이 자체의 발심[自體發] 가운데의 과(果)는 희론(戱論)의 행이 없을 뿐이니, 그러므로 이 품 아래에서 매듭 짓기를 “초발심 때에 문득 정각을 이루니, 혜신(慧身)을 구족해서 다른 사람이 깨우쳐 줌을 말미암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나중은 답이다. 정념(正念) 천자(天子)가 질문한 까닭은 정(定)이 이(理)를 드러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정념의 망령되지 않음은 청정한 과보를 감당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질문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질문이고, 둘째는 사(事)를 거듭 든 것이며, 셋째는 자분(自分)이 출가행을 성취한 것이고, 넷째 ‘속히 성취하다[速成]’ 이하는 승진이니, 타분(他分)과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감21)을 밝힌 것이다. 또 묻기를 “위의 「정행품」은 어째서 재가와 출가를 합쳐서 밝혔는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니, 위에서는 신근(信根)이 약하기 때문에 처음에 연(緣)과 수(修)가 서로 바뀌는 처소를 기준으로 해서 쌍으로 밝힌 것이다. 이 중에서 이미 지나간 회상의 법이 출가의 상(相)을 밝힌 것은 자체의 연기가 성품을 여의는 것은 끊음이 아니기 때문에 여읨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유마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답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앞의 자분에 답한 것이고, 둘째 ‘또한 증상의 10법을 닦아 익혀서[又復修習增上十法]’ 이하는 앞의 타분(他分)의 질문에 답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한다면[菩薩如是觀者]’ 이하는 범행(梵行)이 이익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심사(尋思: 곰곰이 생각함)를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정념’ 이하는 정관(正觀)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것을 이름하여[是名]’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심사를 변별한 것이고, 둘 ‘또한 과거를 안다[又知過去]’ 이하는 여실(如實)을 밝힌 것이다. 처음은 다시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10법을 들어서 소관(所觀)을 밝히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은 개별적인 것이다. 둘째 ‘마땅히 이와 같이[應如是]’ 이하는 올바르게 관(觀)을 밝힌 것이며, 셋째 ‘당연히 이와 같이[當如是]’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무엇이 범행의 체(體)인가? 이실(理實) 자체의 발심 가운데 정지(正智)가 그에 해당된다. 어째서 법혜보살이 설했는가? 원만히 통하는 성품의 덕은 법에 따르는 혜(慧)가 아니면 밝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 가운데 앞의 여섯은 행과 행연(行緣)이며, 뒤의 넷은 믿는 바의 경계이기 때문에 치우쳐 설한 것이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실(如實)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행(觀行)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이 범행법’ 이하는 반험(反驗)이다. 제2 보살의 정념에 장애가 없다는 것은 정관(正觀)을 변별한 것이니,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무상(無相)을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이와 같이 관한다면[如是觀者]’ 이하는 의타무생(依他無生)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일체의 부처님[一切佛]’ 이하는 진실무성(眞實無性)의 법을 변별한 것이니, 비유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승진(勝進)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자리(自利)에는 네 구가 있으니, 이른바 문답을 세워서 매듭 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와 같이 관찰하면[如是觀察]’ 이하는 이타(利他)에 다섯22) 구(句)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 ‘요술과 같고[如幻]’ 이하는 비유해서 설한 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체(體)가 없어서 허깨비와 같고, 실다움[實]을 나타냄이 꿈과 같으며, 용(用)을 일으킴이 번개와 같고, 연(緣)의 뭉침이 메아리와 같고, 사(事)를 이룸이 화(化)와 같다.
셋째, 자타를 이롭게 하는 경문을 매듭 지은 것이다. 또한 위의 속히 성취함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은 이익을 매듭 지음이다. 이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앞의 행은 적고 능(能)은 많음을 매듭 지은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초발심 때’ 이하는 빠름을 이루는 이유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보리에 즉(卽)한다고 말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곧 10해(解)의 보리이다. 두 번째는 해(解)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정리(正理)를 깨닫는 것이다. 나머지 신(信)ㆍ행(行)ㆍ증(證) 등은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또 보현에 즉하는 것은 자체의 원만히 밝고 궁극적인 인과를 증득하는 것이니, 이러한 해(解)는 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13) 발심공덕품(發心功德品)
이 이하는 이 주(住)의 승진의 덕을 변별한 것이다.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발심은 행의 체(體)를 거듭 든 것이고, 공덕행은 성취한 바의 공덕이니, 네23) 가지 뜻에 나아가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둘째, 온 뜻이다. 온 까닭은 앞의 행을 이미 성취하고 나서 이제 덕의 상(相)을 찬탄해서 변별했기 때문이다.
셋째, 공덕의 분량(分量)은 이 품의 종지가 된다.
넷째,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답이며, 세 번째는 증득해서 성취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게송이다.
제석[帝]이 질문한 까닭은 하늘[天]에 있기 때문이니, 또한 공덕의 자재로움에 즉한 것이며, 또 청정한 해(解)의 자재로움이 바야흐로 덕을 감당해서 받아들일 뿐이다. 법혜보살이 설한 까닭은 법에 칭합하는 혜(慧)가 바야흐로 공덕을 궁진(窮盡)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24) 답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간략함인데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분제를 허락하는 것이다. 가르침의 양[敎量]은 알기가 어렵고, 뜻의 심오함은 믿기가 어렵고, 사유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가르침에 응한 것은 설하기가 어렵고, 증득하고자 한 것은 통하기가 어렵고, 수(數)가 지극하기 때문에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음 ‘가령[假使]’ 이하는 자세히 답한 것이다. 자세함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열두 가지 비유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이 마음을 발하고 나서[發是心已]’ 이하는 합쳐서 비유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비유이고, 둘째는 징(徵)이고, 셋째는 답이고, 넷째는 교량(校量)이다. 나머지 경문은 정해지지 않았다. 열두 가지 비유 중에 다섯이 있다. 처음은 5계(戒)이고 둘째는 10선(善) 등이니, 이 둘은 이익된 바를 취해서 정황으로 삼는 것이며, 셋째는 신통(身通)이 곧 중생을 이롭게 하는 처소이며, 넷째는 생성과 파괴를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시(法時)를 아는 것이다. 이하의 근기와 희망 등 일곱 가지 비유는 근기를 이롭게 하는 바가 두텁고 엷음을 밝힌 것이며, 아래의 하나는 모든 행의 덕이 넓어서 뛰어난 지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제2의 합쳐진 경문은 길게 일곱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덕의 능력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처음이 열등하지 않으면 평등하고 뛰어남을 성취한다는 뜻을 따진 것이며, 셋째는 말미암는 바를 답한 것이고, 넷째 ‘어째서’ 이하는 처음과 마지막이 동일함을 거듭 따진 것이며, 다섯째 ‘이 초발심’ 이하는 마지막으로써 처음을 섭수한 것이며, 여섯째 ‘다 삼세의 모든 여래와 평등하며[悉與三世諸如來等]’ 이하는 자세히 변별한 것이고, 일곱째 ‘저 초발심’ 이하는 뛰어난 연(緣)의 말미암음을 인(因)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또 증득을 얻는다는 것은 행증(行證)이며, 신증(身證)이란 위증(位證)이다. 또 증득을 얻는 것은 지(智)가 상응하는 것이며, 신증이란 것은 신(身)이 상응하는 것이다. 여기에선 모두가 보현의 실다운 덕[實德]이다.
【문】모든 세계 등이 보살의 마음을 잘 따르면서 전(轉)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답】보살이 모든 인연의 화합인 자재한 마음을 얻은 것이 바로 모든 법의 인연이기 때문에 전(轉)을 따르는 것이니, 이는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위의 경문에서 열 가지 욕망[十欲] 등이라 한 것은 하나의 선한 욕망이 있음을 따라서 위의 열 가지 덕을 갖추는 것이니, 나머지는 준거할 수 있다. 또 신증(身證)으로써 삼세를 통하는 까닭은 아래 경문의 보살이 항상 삼세 부처님의 앞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3의 대지를 진동해서 증득을 성취하는 등의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등이며, 둘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동일하게 증명하시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이롭게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인데 세 가지가 있으며, 넷째는 동일하게 설함을 인용해서25) 앞의 뜻을 증명하여 성취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다섯째는 성취함의 말미암는 바를 변별한 것인데 열 가지가 있다.
【문】어째서 부처님께서 증명하시는가?
【답】승진을 위해서 과(果)를 들어 거두어 이룬 것이기 때문이며, 또 믿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며, 또 인과 과가 동일한 성품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나머지 사(事)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제4의 거듭 읊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생기(生起)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처음의 경문에 여덟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송의 경문은 241게송 반인데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발심이 공덕을 나타내 이룸을 자세히 찬탄한 것이며, 둘째 ‘시방세계 중에서’ 이하는 앞의 열두 가지 비유를 거듭 들어서 덕을 사량하기 어려움을 술회한 것이며, 셋째 ‘삼세 인간 중의 존귀한 이[三世人中尊]’ 이하는 해당되는 과[當果]를 능히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보살의 초발심’ 이하는 매듭 지은 것이다.
이 중에서는 상세한 과단[細科]을 얻지 못한다. 만약 상세히 한다면 곧 지취(旨趣)를 잃는 것이다. 또 해위(解位)26) 이후에 있는 해행(解行)ㆍ이사(理事)ㆍ교의(敎義) 등의 법문은 모두 다 항상 행하면서 간단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신위(信位)를 성취한 이후의 보현행과 나아가 8상(相)과 부처님 이후는 모두 차별이 없는 것이니, 이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삼승행의 뜻 등은 모두 개별적이라서 의심이 없다.

14) 명법품(明法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는 명칭을 변별한 것이다. 명법(明法)을 말한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르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아함법은 이(理)를 비추어 나타나기 때문에 명(明)이라 이름하였고, 법은 곧 뜻이다. 둘째는 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행의 더욱더 뛰어남을 말미암아서 나중 지위의 상(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이전 지위의 법의(法義)와 해행(解行) 등으로 명(明)을 삼고, 나중 지위의 교의 등으로 법을 삼는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흥기한 까닭은 이전의 행덕(行德)으로 다시 수행하고, 나중의 지(地)와 더불어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행교(行敎)ㆍ법의(法義) 등이 그대로 이 품의 종지가 된다.
넷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정진으로써 질문한 까닭은 만약 정진행이 아니면 능히 이 승진의 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혜보살이 답한 까닭은 법에 칭합하는 혜(慧)가 능히 이 가르침을 펴기 때문이다.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고, 세 번째 말후(末後)의 약간 긴 행은 유통(流通)을 대략 매듭 지은 것이다. 질문의 경문은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한 것이고, 다음은 거듭 읊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먼저 앞의 주위(住位) 가운데 행덕(行德)을 거듭 들어서 생(生)한 뒤의 차례로 삼은 것이며, 다음 ‘저 보살이 어떻게 닦아 익혀야[彼菩薩云何修習]’ 이하는 승진 가운데 선제(先際)의 행덕을 올바로 질문한 것이니, 처음에 경문을 거듭 든 것에 여섯 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승진의 선제(先際)를 질문한 것인데 경문에 열한 구가 있으니, 네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여섯 구는 자리(自利)이고, 다음의 ‘그를 따라서[隨其]’ 이하의 세 구는 이타행이며, 다음의 ‘일으켜 융성하게 하여[興隆]’ 이하의 한 구는 주지(住持)의 건립이고, 다음의 한 구는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은 것이다.
제3의 승진 중에서 후제(後際)의 이타분법(利他分法)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성숙한 덕을 밝히는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리의 성숙한 행덕(行德)이고, 두 번째 ‘불찰(佛刹)을 구족하고’ 이하는 이타의 성숙한 중생 행법(行法)이다. 처음의 자리분(自利分)에 네 구가 있다. 첫째는 장애를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체(體)를 이루는 것이며, 셋째는 덕을 성취하는 것이고, 넷째는 용(用)을 성취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이타(利他)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체(體)ㆍ덕(德)ㆍ용(用)이다. 체에는 12사(事)가 있으니, 이를 준거해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천왕(天王)’ 이하는 권속의 행법을 밝힌 것인데, 네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선근의 힘을 얻는다[得善根力]’ 이하는 자타의 덕을 원만히 성취해서 헛되지 않는 뜻을 변별한 것인데, 네 구가 있다.
둘째,27) 거듭 읊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22게송이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먼저 앞의 초발심 보살이 이전의 주위(住位)에서 모은28) 바 덕의 경문을 거듭 든 것이다. 다음 ‘무엇을 말하는가?[云何]’ 이하의 일곱 게송은 두 번째의 ‘저 보살’ 이하의 올바른 질문과 승진 중에 있는 선제(先際)의 정행(正行)을 읊은 것이다. 다음 ‘부처님[人雄]’ 이하의 열한 게송은 ‘착하도다[善哉]’ 이하에 있는 후제(後際)의 과덕(果德)인 이타의 경문을 읊은 것이다.
두 번째의 ‘무엇을 말하는가?’ 이하에 나아가면 선제의 자분(自分) 중에서 처음에 있는 세 게송은 위의 자리(自利)의 여섯 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이타행 가운데 세 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건립의 경문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과행(果行)의 성취되어 헛되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두 번째 답 중에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긴 행이고, 나중은 게송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한 바가 때에 맞아 이익이 많음을 찬탄한 것이니,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듣기를 명하고 설하기를 허락한 것이다. 셋째 ‘불자야, 이 보살’ 이하는 올바르게 답한 것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승진 중에 있는 선제(先際)의 자분(自分)의 올바른 행에 답한 것이며, 둘째 ‘보살마하살이 만약 성취하게 된다면’ 이하는 위의 승진 중에 있는 후제(後際)의 과행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는 170구가 있으며, 또한 180구라 할 수도 있는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110구는 위의 열한 구 중 처음의 여섯 구인 자리행(自利行)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40구는 이타행의 세 구에 답한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주지(住持)의 건립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10구는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은 것에 답한 것이다. 자리에 답한 경문 중에서 처음의 100구는 앞의 다섯 행(行)에 답한 것이며, 나중의 10구는 여섯 번째 행에 답한 것이다. 앞의 다섯 행에 답한 경문 가운데 하나하나는 모두 20구로 답한 것이다. 20구 중에서 앞의 10구는 스스로의 행이 상응하는 법이며, 다음의 10구는 승진의 수행법이다.
청정한 혜(慧) 등을 구족했다고 말한 것은 앞의 자리행이 나중의 이타를 생기함을 거듭 든 것이니, 형세[勢]가 서로 연결되게 한 것이다. 모든 10의 경문은 각기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질문이고, 셋째는 답이고, 넷째는 매듭 지음이다. ‘또한 정해지지 않음이 있다’는 것은 준거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이타(利他)의 앞의 질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 답 중에는 40구가 있고, 또한 50구라고 할 수도 있다. 처음의 20구는 세 가지 중의 초구(初句)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모든 바라밀을 버리지 않는다’는 10구는 앞의 제2구에 답한 것이며, 다음의 ‘불자야’ 이하의 10구는 앞의 제3구에 답한 것이다. 앞의 20구는 또한 30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처음의 다섯 구는 기(器)의 마땅한 바를 아는 것이고, 다음의 10구는 모든 병에 응해서 약을 주는 것이며, 다음의 열다섯 구는 기(器)에 응해서 법을 주는 것이다.
‘능히 이렇게 행하는 자라면 삼보를 일으켜 융성케 하는 것이다[能如是行者則興隆三寶]’라고 말한 것 아래29)에는 10구가 있는데, 제10구 안에 있는 주지(住持)의 건립에 답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이 개별적인 경문을 네 가지로 나눈다. 앞의 세 가지는 개별적인 것이고, 네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다. 앞의 세 가지의 경문에서 처음은 교도(敎道)에 의거한 것이고, 다음은 증도(證道)에 의거한 것이며, 나중은 부주도(不住道)에 의거한 것이다.
6화경(和敬)이란 것은 신자(身慈)ㆍ구자(口慈)ㆍ의자(意慈)30)와 동견(同見)ㆍ동계(同戒)ㆍ동시(同施)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삼보를 끊지 않는다[菩薩如是不斷三寶]’ 이하에 있는 10구는 위의 자분행(自分行)의 제11구인 행(行)이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음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째의 10은 행이 사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음을 변별한 것인데, 차례대로 앞의 다섯 구에 답한 것이다. 둘째에 있는 10은 덕으로써 스스로 장엄한 것이니, 곧 앞의 헛되지 않은 구(句)에 답한 것이다. 셋째에 있는 10은 스스로 장엄했기 때문에 능히 섭화(攝化)하여 헛되지 않은 것이니, 역시 한 구에 똑같이 답한 것이다. 이 가운데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가지 경문이 있다.
다음으로 ‘만약 성취함을 얻으면[若得成就]’ 이하의 제2는 후제(後際)의 과덕행(果德行)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보살마하살’ 이하는 먼저 어리석음의 어둠[癡闇]을 없앰으로써 과(果)가 성숙하는 덕행법에 답한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스스로 성숙하는 행을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차례의 방편[次第方便]’ 이하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밝힌 것이다. 둘째 ‘대중 중에서[於大衆中]’ 이하는 권속의 행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은 뛰어나고 오묘한 법을 성취하고 나서[成就如是勝妙法]’ 이하는 행의 성취가 헛되지 않음을 변별한 것이다. ‘오직 여래를 제외한다[唯除如來]’는 것은 아래가 위를 능가하는 것이다.
셋째, ‘행의 헛되지 않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건립이고, 둘째는 따지는 것이고, 셋째는 답하는 것이다. 답 중에는 열한 구가 있는데, 앞의 여섯 구는 인(因)이고 나중의 다섯31)은 과행(果行)이다. 제2의 거듭 읊음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올바르게 게송을 읊는 것이다.
승진 중에는 스무 게송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열세 게송은 선제(先際)의 연기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일곱 게송은 위의 답 중에서 승분(勝分)의 과덕과 자분(自分)의 행법을 읊은 것이다. 전자 중에서 처음의 여섯 게송 반은 자리행(自利行)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 반은 이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주지(住持)의 건립을 읊은 것이고, 아래의 두 게송은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나중의 일곱 게송 중에서 처음의 한 게송 반은 자리(自利)의 과(果)와 이타의 과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 반은 권속행을 읊은 것이며, 아래의 두 게송은 행의 성취가 헛되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제4회 불승야마천(佛僧夜摩天)]

15) 자재품(自在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불(佛)이란 교화의 주체[化主]이고, 승(昇)이란 위로 나아가는 것이며, 야마(夜摩)는 시천(時天)이라 하며 또한 희락(戱樂)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천(天)이란 밝기 때문이며, 자재(自在)란 공(空)에 노닐어 걸림이 없는 것이다. 행을 기준으로 준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니, 곧 위에 나온 10행(行)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온 까닭은 이해[解]에 의지해서 행(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회상이 온 뜻이고, 둘째는 품(品)이 온 뜻이다. 모두 제3회상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준거하라.
셋째, 종지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람을 기준으로 하고 법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위와 같으니, 준거해서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이 품의 종지는 처소와 공양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의 네 품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서(序)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하나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하나는 승진의 방편을 밝힌 것이다. 이 처음의 서문은 앞의 회상과 하나같이 동일하지만, 다만 더욱 뛰어나게[增勝] 전전(展轉)하는 위에서 법에 의탁함이 같지 않을 뿐이다.
‘이 때 여래의 위신력 때문에 시방 일체의 모든 부처님 세계와 모든 사천하와 하나하나의 염부제 나아가 현현하지 않음이 없는 등’이란 것은, 만약 삼승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 때라면 염부제[閻浮]는 고통이 공(空)하고 더러움을 싫어하며, 고통을 싫증내고 정(情)이 민감하며, 위를 흠모하는 뜻이 맹렬하기 때문에 염부에서 도를 이루니, 불신(佛身)은 출세간이 아니다. 만약 일승과 삼승의 공통된 가르침을 기준으로 할 때라면 염부는 실다움이 곧 공(空)이니, 이는 흡사 가(假)를 이룬 듯하여 사(事)의 얽힘이 되는 것이라서 성인은 항상 가엾이 여기고 부처님은 본원력으로써 중생을 가엾이 여겨 마땅히 세간의 처소에서 도를 성취하고, 불신(佛身)은 변화해서 나타나기[現化]32) 때문에 몸이 곧 출세간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만약 일승을 기준으로 할 때라면 이 염부의 처소는 곧 일심법계(一心法界)의 경계라서 부처님이거나 처소이거나 둘 다 물듦에 처하여 더러움이 없는 최고의 부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곳에 있으면서 도를 성취함을 나타낸 것이다. 다만 모든 응화(應化)의 사의(事義)는 모두 이에 준거해서 구별할 뿐이다.
두 번째, ‘공양이 기틀을 성취함’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양을 일으킴이 곧 근(根)임을 밝힌 것이며, 둘째 ‘합장(合掌)’ 이하는 부처님께 청함이 곧 욕망임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공양행(供養行)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장엄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에 23사(事)가 있으니, 첫째는 사(事)의 장엄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선근(善根)’ 이하는 행의 장엄이며, 셋째 ‘여래’ 이하는 부처님의 덕이 가(加)하여 공양을 장엄함으로써 인(因)이 과(果)와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나머지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문】10해(解)의 찬탄하는 게송은 개별적으로 부처님을 열거했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답】해(解)의 상(相)은 개별적으로 알지만 행은 곧 통틀어서 성취하기 때문이다.

16) 보살설게품(菩薩說偈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처음은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자체(自體)의 묘인(妙因)과 행이 모인[行集] 경문의 지혜와 교칙(敎則)을 드러내 밝히므로 보살이 게송을 설한다[菩薩說偈]고 말한 것이니, 나머지 뜻은 알 수 있다.
온 뜻과 종지는 모두 위에서 준거한 것과 동일하다.
【문】만약 뜻이 차례대로 서로 생기한다면 뜻은 동일하나 다만 나타낸 바가 다른 것인데, 어째서 명목(名目)이 위와 더불어 동일하지 않은가?
【답】이것은 다만 서로 엇갈려 의의(義意)를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만 증승(增勝)과 법에 의탁함이 다른 것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내용에서 첫 번째인 대중을 모으는 서[集衆序] 중에서 세계가 동일한 혜(慧)인 것은 앞의 해혜(解慧)를 쓴 것이 행의 궤칙이 되기 때문이며, 부처님이 동일한 안(眼)인 것은 행하는 마음이 법을 보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며, 보살의 이름이 똑같이 임(林)인 것은 다만 이 행으로 사물을 이롭게 함이 치열해서 갖추어 모으는[備集] 상(相)을 모두 일으켜 나타내기 때문이다.
【문】두 번째 단락 중에서 발가락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앞의 회상과 어떻게 다른가?
【답】발가락에 행(行)과 주(住)의 두 가지 힘이 있음을 비유한 것인데, 앞에서는 주(住)를 밝혔고 여기서는 행을 나타냈기 때문에 비유가 다른 것이다.
세 번째의 게송을 설하는 서(序) 안에서는 열 사람이 각기 스스로 이미 연기의 진여법(眞如法)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함으로 인하여 곧 행상(行相)에 귀의하는 것이다.
처음 공덕림(功德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 ‘게송을 설한다’ 이하는 모두 준거한 것이다. 이 경문은 법신의 자재한 공덕을 찬탄한 것인데 열한 게송이 있다. 처음의 여섯 게송은 앞의 천(天)에 올라가 구름처럼 모이는 자재한 상(相)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법신의 자재로움이 매우 깊은 것이다.
둘째, 혜림(慧林)의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부처님께서 갖추신 덕[具德]을 만나기 어려움을 변별한 것이다. 다음의 여덟 게송은 앞의 갖추신 덕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 여덟 게송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위의 구덕문(具德門)을 밝힌 것이며, 둘째 ‘여래는 그와 동등한 이가 없거늘[如來無與等]’ 이하의 네 게송은 위의 만나기 어려움을 해석한 것이며, 셋째 ‘불가사의한 겁[不可思議劫]’ 이하의 두 게송은 양(量)을 계교해서 수행하길 권한 것이다.
셋째, 승림(勝林)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설함이 미묘하고 깊음을 비유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법에 맞는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깊은 까닭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그 뛰어난 용[勝用]을 찬탄한 것이다.
넷째, 무외림(無畏林)의 게송 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체(體)의 뛰어남을 든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용(用)의 뛰어남을 든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배우길 권유한 것이다. 처음의 체(體)와 용(用)의 두 경문에는 각기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의 깊음을 든 것이고, 둘째는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다섯째, 참괴림(慙愧林)의 게송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불법(佛法)의 뛰어난 이익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뛰어난 용의 상(相)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뛰어난 용의 소이(所以)를 반대로 성취한 것인데, 이 중에서 처음의 한 게송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개별적인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사람의 덕용(德用)을 성취함을 거듭 따르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사람이 보기 어려움을 매듭 지은 것이다. 반대로 성취하는 경문의 내용에서 처음의 한 게송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성품을 개별적으로 비유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똑같이 허망함을 이룬다는 비유이며, 세 번째는 두 성품이 서로 어긋나는 비유이고, 네 번째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연(緣)이 떨어져 있다는 비유이며, 다섯 번째는 용(用)이 서로 감응치 않는다는 비유이다.
여섯째, 정진림(精進林)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뛰어남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여덟 게송은 법을 들어서 사람을 성취함을 자세히 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사람과 법이 깊기 때문에 보기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여덟 게송 중에서 첫 번째는 법의 체(體)가 다르지 않다는 비유이고, 두 번째는 법의 체가 공하여 없다는 비유이며, 세 번째는 법의 체에 실(實)이 없다는 비유이고, 네 번째는 법의 체가 상(相)을 여읜 비유이며, 다섯 번째는 법의 체가 진(眞)을 성취하는 비유이고, 여섯 번째는 하나가 많음의 용(用)을 성취하는 비유이며, 일곱 번째는 용을 일으킴이 연(緣)에 의거하는 비유이고, 여덟 번째는 체(體)가 견고해서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비유이니, 처음에 준거해서 설한 것이다.
일곱째, 역성취림(力成就林)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의타연기(依他緣起)의 관(觀)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분별에 모양이 없는 것[分別無相]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마음을 기준으로 해서 용(用)을 찬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은 두 가지로 나누니, 처음의 두 게송은 법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관(觀)이다.
여덟째, 견고림(堅固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게송은 부처님의 성(性)과 상(相)의 두 몸이 의론하기 어려움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전자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비유는 성신(性身)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에 있는 다섯 비유와 합(合)은 응화(應化)를 찬탄함을 변별하는33) 것이다.
아홉째, 여래림(如來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아홉 게송은 법과 비유가 쌍으로 나타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배우길 권유한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다섯 비유는 전전(展轉)하여 다섯 가지 현묘(玄妙)한 의심에 답한 것이다. 하나는 법이 실답다고 의심하는 것을 첫 행에서 답한 것이고, 둘은 봄[見]에 다르다는 이해를 내어서 법이 인(因)을 여읜다고 의심하는 것이며, 셋은 분별의 실다운 법이 마음을 여의어서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고, 넷은 이미 마음이 지은 것이 어떻게 있음이 아님[非有]이 되느냐고 의심하는 것이며, 다섯은 이른바 마음이 법을 지어서 앎이 있다는 것이니,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다음의 네 게송은 법에 맞는 것이다. 여래를 짓는다는 것은 이른바 무작불(無作佛)을 말한다. 소이(所以)라는 것은 앞의 온 뜻을 타는 것이니, 유작불(有作佛)이 되질 못하기 때문이다.
열째, 지림(智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의 여덟 게송은 법신의 매우 깊음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찬탄을 매듭 지으면서 배우길 권유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세 게송은 체(體)를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용(用)을 찬탄한 것이다.

17) 공덕화취보살십행품(功德花聚菩薩十行品)
다섯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는 10행의 명칭과 온 뜻을 해석한 것이다. 둘째, 다스릴 바는 일승은 앞의 해석과 같고 삼승의 종교(終敎)는 성문이 고통과 장애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셋째, 얻은 바는 정(定)과 인(忍)의 선근을 통틀어 행하는 것이다. 넷째 성취할 바는 곧 10행의 지위이니, 곧 이 품의 종지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다. 공덕(功德)이란 것은 행의 체(體)이고, 화취(花聚)라는 것은 비유의 이름이니, 행이 뛰어나고 오묘해서 능히 과(果)와 더불어 온갖 행에 의지하여 모이게 됨을 찬탄하기 때문이다. 온갖 덕이 모여들어 능히 위없는 보리의 과를 장엄하니, 이 인(因) 때문에 보살이 안락한 것이다. 10행이란 것은 행(行)의 본래 상[本相]을 헤아렸기 때문이니, 경문에서는 “비유하자면 수법(數法)의 10과 같은 것이니, 하나를 더해서 무량(無量)에 이르기까지 다 이 본수(本數)이며, 지혜이기 때문에 차별된다”34)고 하였으니, 다섯 가지 뜻을 좇아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앞에서 대중은 이미 모였고, 다음으로 모름지기 설함을 밝혔기 때문에 다음에 온 것이다.
넷째는 이 품이 닦는 바의 행의 체(體)와 지위[位]로써 종지를 삼은 것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니, 이 경문은 일곱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삼매분(三昧分)이며, 두 번째는 가분(加分)이며, 세 번째는 기분(起分)이며, 네 번째는 본분(本分)이며, 다섯 번째는 설분(說分)이며, 여섯 번째는 이익분(利益分)이며, 일곱 번째는 게송을 읊는 것이다.
훌륭히 조복하는 정(定)이란 행의 힘이다. 가하여 권하는 서[加勸序]라는 것은 이 행법(行法)을 밝힌 것인데 그 지취가 매우 깊어서 분(分)이 비(非)에 있고 나서는 스스로 모든 부처님께서 도력(道力)을 가지(加持)하시는 것이 아니라서 이를 설하는데도 말미암음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 밝히는 것이다. 이 내용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加)의 소위(所爲)를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 ‘불자야, 마땅히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서[佛子當承佛]’35) 이하는 가상(加相)의 차별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의 가(加)를 찬탄함을 밝힌 것이고, 둘째 ‘시방’ 이하는 가(加)의 소이(所以)를 밝힌 것이며, 셋째 ‘그대로 하여금 자세히 설하게 하려는 것이니[欲令汝廣]’36) 이하는 가(加)의 소위를 변별한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는데 위의 회상과 동일하다. 소이(所以) 중에 네 구가 있는데 알 수 있다. 소위(所爲) 중에는 10구가 있다. 처음의 한 구인 ‘욕령(欲令)’ 등이란 것은 총체적인 것이다. 다음의 여덟 구는 자세한 것이고, 다음의 한 구는 차별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의 가상(加相)의 차별은 3업이니 알 수 있다.
【문】어째서 의가(意加)는 법과 함께 하는가?
【답】법이 올바른 행의 근본이기 때문에 법과 함께 하는 것이다.
【문】앞의 회상에선 어째서 법과 함께 하지 않고, 지혜와 함께 한 것인가?
【답】법은 지혜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몸소 능히 행을 성취하고, 지혜와 경계는 그대로 통하기 때문에 앞의 회상에선 다만 지혜와 함께 한 것이다. 이는 지(地) 이전을 기준한 것으로서 증위(證位)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지었을 뿐이다. 둘째의 의가(意加) 중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알 수 있는 것이다.
넷째,37) ‘모든 보살에게 고하여 말하길[告諸菩薩言]’ 이하는 곧 본분이니,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10행의 종본(宗本)이 광대함을 찬탄한 것이니 곧 체(體)이며, 둘째는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한 것이니 곧 상(相)이다. 여섯 가지 결정(決定)은 앞의 해석과 같지만 다만 행이 다를 뿐이다.
【문】앞에서는 상(相)을 관하는 데 성(性)을 기준으로 했는데, 지금 여기서는 행업(行業)을 기준으로 하니 무슨 까닭인가?
【답】앞의 해상(解相)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성(性)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여기서의 행상(行相)은 뛰어나기 때문에 상(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무상(無常)의 과인(果因)으로써 한 것은 유류(有流)의 인위(因位)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둘째38)의 본분의 상(相)에 나아가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간략히 답한 것이며, 셋째는 거듭 질문한 것이고, 넷째는 답한 것이며, 다섯째는 매듭 지음이다. 네 번째의 답 중에서 처음에 환희(歡喜)를 해석한 것은 보시가 자타의 기쁨을 이루는 것이고, 두 번째 요익(饒益)이란 것은 지계(持戒)가 이익을 섭수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 성냄이나 원한이 없는 것[無恚恨]은 인욕으로 자타의 한(恨)을 쉬기 때문이며, 네 번째 다함이 없다[無盡]는 것은 정진으로 무궁한 덕을 획득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 어리석음과 산란을 여읜다는 것[離癡亂]은 정(定)을 얻기 때문이며, 여섯 번째 선현(善現)이란 것은 지(智)가 연기법을 나타내는 것이며, 일곱 번째 집착이 없는 것[無着]은 곧 방편으로 제도하기 때문이며, 여덟 번째 존중(尊重)은 곧 원(願)을 이루는 것이며, 아홉 번째 선법(善法)이란 것은 역지(力智)로 훌륭히 설하는 것이며, 열 번째 진실(眞實)이란 것은 지(智)를 얻어서 이(理)에 따라 훌륭히 설하는 것이다.
다섯째,39) 설분(說分) 중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불자야, 어떤 것이[佛子何等]’란 것은 이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을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은 해석이며, 셋째는 해석을 매듭 지은 것이다.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보시의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행상에 열일곱 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보살이 환희행을 닦을 때[菩薩修歡喜行時]’ 이하는 행이 성숙하여 널리 섭수함으로써 남을 기쁘게 함을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의 의식[施儀]을 닦는 것이고, 둘째는 허물을 여의는 것이며, 셋째는 방편을 시설하는 것이고, 넷째는 소위(所爲)를 밝히는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구가 있으니, 이른바 스스로의 인과와 생(生)이 되는 것이다. 제3구에 있는 두 가지는 알 수 있다. 셋째 ‘모든 아상을 여의고[離諸我相]’ 이하는 3륜(輪)을 여의어서 단도(檀度: 布施波羅蜜)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 두 구가 있으니,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이다.
두 번째,40) 요익상(饒益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둘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품의 성취를 밝힌 것이고, 둘째는 계체(戒體)이니 여덟 구가 있다.
둘째,41) ‘보살이 이처럼 계를 지닐 때[菩薩如是持戒時]’ 이하는 연(緣)을 대해서 지니는 상(相)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계의 의식[持戒儀]이며, 둘째는 방편을 변별하는 것이다. 셋째는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여기엔 다섯 구가 있는데 초구를 둘로 나눈 것은 알 수 있다. 넷째는 성취한 바를 밝힌 것인데, 여기에 있는 두 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업이며[何以故是我業]’ 이하는 행이 상(相)을 여읨을 들어서 계도(戒度)를 성취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觀)을 밝힌 것인데 다섯 구가 있으며, 둘째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未度者]’ 이하는 의(意)를 밝힌 것이며, 셋째 ‘내가 마땅히[我當]’ 이하는 향할42) 바를 밝힌 것이다.
셋째, 무에(無恚)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행(忍行)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여덟 구가 있으며, 둘째 ‘보살이 이 같은 청정한 인욕43)을 성취하면[菩薩成就如是淨忍]’ 이하는 연(緣)을 대해서 인상(忍相)을 변별한 것이다. 상(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불요익인(他不饒益忍)인데 이것은 능소(能所)의 둘로 나누며, 능(能) 중에선 구(口)와 신(身)의 둘로 나눈다. 둘째 ‘보살이 이같이 사유한다[菩薩作是思惟]’ 이하는 안고인(安苦忍)44)인데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수립하고 따지고 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다시 또 사유하길[復更思惟]’ 이하는 법인(法忍)을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의 ‘그러므로[是故]’ 이하는 소위(所爲)인데 세 구가 있으며, 세 번째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법[佛所行法]’ 이하는 의심을 변별한 것이다.
넷째, 무진상(無盡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질문과 답과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진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곧 부지런히 용맹정진하는 것으로서 열한 구가 있다. 둘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菩薩復作是念]’ 이하는 가행(加行)의 나아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여의는 바를 밝힌 것이고, 둘은 향하는 바를 변별한 것이다. 셋째 ‘보살이 이 같음을 성취해서[菩薩成就如是]’ 이하는 난괴무족(難壞無足) 등을 변별한 것이니,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 있는 두 가지 문답은 난괴(難壞)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분제(分齊)를 해석한 것은 알 수가 있다.
다섯째, 어리석음을 여의는 상[離癡相]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理)에 들어가서 주(住)의 정(定)에 안주해서 즐김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보살이 적정을 성취하여 이하는 이끌어 정(定)에 통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능히 무너뜨림을 듣고서’ 이하는 이타(利他)의 정(定)을 따르는 것이다.
여기서 첫째의 내용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정체(定體)에 잘못이 없음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 ‘보살이 이 같은 등을 성취해서’ 이하는 정(定)의 업용(業用)을 변별한 것이니,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왜냐하면’ 이하는 까닭[所以]을 해석한 것이며, 세 번째 ‘이 보살’ 이하는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으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이고 다음은 인(因)을 대해서 밝힌 것이며, 네 번째 ‘이 같은 등’ 이하는 포괄적인 것으로 간략함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보살이 삼매 중에서’ 이하는 관행(觀行)의 앞의 자재로움을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상(相)과 성(性)이 다스림을 성취함은 세 가지로 나누니,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여섯째, 선현(善現)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행(加行)의 반야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의거하는 바도 없고 머무는 바도 없다’ 이하는 올바른 증지(證智)이며, 셋째 ‘일체의 세간법을 분별한다’ 이하는 후지(後智)의 반야이다.
첫째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지체(智體)를 밝힌 것이고, 다음의 ‘무소유(無所有)’ 이하는 앞의 뜻을 해석하여 이룬 것이다.
올바로 증득함의 경문에는 18구가 있는데 네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일곱 구는 지(智)와 이(理)가 서로 상응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업보를 여의어서’ 이하의 여섯 구는 올바른 증득이 모든 상(相)을 여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의지하여 머무는 바가 없다’ 이하의 두 구는 머무는 바의 분량(分量)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허망함을 여의는 데 들어간다’ 이하의 세 구는 관성분(觀成分)이 무성(無性)의 질문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후지(後智)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량지(如量智) 가운데 이(理)와 같음을 변별한 것이니, 곧 아는 바의 법을 나타낸 것이며, 둘째 ‘삼세의 평등에 안주한다’ 이하는 여량지 가운데 양(量)과 같음을 변별한 것이니, 곧 교화받는 바의 중생을 대(對)한 것이며, 셋째 ‘이 보살이 이 행에 머물 때’ 이하는 덕용(德用)이 자재한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일곱째, 집착이 없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리(自利)의 방편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처음으로 수기(受記)를 얻는다’ 이하는 이타의 방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같이 관찰한다’ 이하는 자리와 이타의 선교(善巧)가 만족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두 행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하는 까닭을 변별한 것이니, 알 수가 있다.
자분(自分)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분의 지위에서 닦는 것이며, 둘째 ‘보살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이하는 승분위(勝分位)의 수행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분의 지위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청정한 법 중에서 집착이 없는 행을 닦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청정하지 못한 국토[刹]를 본다’ 이하는 염행(念行) 중에서 청정하지 못한 수행을 보는 것이다.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앞의 무착(無着)의 까닭을 변별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문답은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자세히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대해서 허물을 여읨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45) 이타의 경문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대비(大悲) 방편으로 관(觀)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집착하지 않는 몸 등’ 이하는 집착하지 않는 행을 올바로 밝힌 것인데, 이 중에는 10구가 있다.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집착하지 않는 까닭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대비관(大悲觀)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대비가 깊고 중후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이 때 보살이 저 중생을 보고서’ 이하는 증상(增上)을 밝힌 것이며, 셋째 ‘이 때 보살이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 이하는 첫머리가 됨을 밝힌 것이다.
여덟째, 존중(尊重)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고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준수하는 바의 법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이 보살행 때에’ 이하는 향할 바를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취향함이고, 다음은 이익이다. 이익에는 세 가지 이익이 있다. 하나는 원(願)을 성취하는 것이고, 둘은 생(生)을 성취하는 것이고, 셋은 이(理)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理)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법(法)ㆍ비유[喩]ㆍ합(合)이니 곧 종지를 세운 것이고, 둘째는 두 가지 따지는 것[責]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셋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성취한 바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다. 법ㆍ비유ㆍ합에 세 가지 경문이 있다. 처음의 법 가운데 첫 행(行)은 행이 비(非)를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얻어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셋째는 공(功)을 이루어서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넷째 ‘보살마하살’ 이하는 행의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고, 다섯째 ‘이같이 보살이 성취한다’ 이하는 용(用)이 둘이 아님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네 번째 뜻의 답에서 법ㆍ유ㆍ합의 세 경문은 알 수 있다. 여섯째 ‘이 보살’ 이하는 행의 성취를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리이고, 둘은 이타이다. 이타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가르침이고, 둘은 자기 뜻을 펴서 의심을 제거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뜻을 펴는 것이고, 둘째는 두 가지 따지는 것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아홉째, 선법(善法)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이익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법을 드는 것으로써 부처님의 종지를 삼는 것이고, 둘째 ‘청정한 다라니’ 이하는 행의 체[行體]를 해석하여 이룬 것이며, 셋째 ‘보살이 선법의 행에 안주한다’ 이하는 수행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의 행의 체를 해석해 이룬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둘째 ‘이 때 보살’ 이하는 행의 작용을 밝힌 것인데 작용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세 번째의 수행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함을 변별한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인데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며, 다음의 ‘불자여’ 이하는 개별적인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 같은 열 가지 몸을 성취한다’ 이하는 행의 용[行用]을 맺어 이룬 것이다.
열째, 진실(眞實)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과 행이 상응하기 때문에 진실이며, 둘째 ‘이 보살’ 이하는 행이 상응하는 것이니, 이는 곧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다. 셋째 ‘보살이 중생을 성취한다’ 이하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건립이고, 다음의 ‘그러므로’ 이하는 뛰어남을 매듭지은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각기 따지는 것과 답을 건립한 것이다. 넷째 ‘버리지 않는다’ 이하는 행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신(身)ㆍ구(口)ㆍ의(意)가 곧 세 가지가 된다. 다섯째 ‘보살마하살이 대비에 머물러서’ 이하는 지위에 즉(卽)하여 인(因)으로써 과(果)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여섯째 ‘이 이름이’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일곱째 ‘이 보살이 안주해서’ 이하는 이익을 성취한 것이다.
이상은 일승의 신행(信行)의 상(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약 삼승의 지위에 의탁해서 개별적으로 관(觀)하는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경(經)과 같다.
처음의 행에서는 스스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기 때문에 네 가지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니, 두 가지 선(善)을 부지런히 닦고 두 가지 악(惡)을 부지런히 끊는 것은 불과(佛果)를 구하기 때문이다.
제2의 행에선 자신이 대력(大力)이 있음을 얻기 때문에 4여의족(如意足)이 되는 것이니, 염(念)으로 경계를 지키고, 정진으로 치열히 추구하며, 정(定)으로 단속하고 거두며, 혜(慧)로 경계를 비추어 법의 무생(無生)을 얻어서 자재롭기 때문이다.
제3의 행 중에선 무외(無畏)의 구족을 염원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5근(根)의 신(信)ㆍ진(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가 모두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제4의 행에선 3보의 구족을 구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5분법신(分法身)에서 계(戒)는 형체의 그릇됨[形非]을 제거하고, 정(定)은 마음의 산란을 없애며, 혜(慧)는 상(相)의 허망함을 깨닫고, 해탈은 누(累)가 없고, 지견(知見)은 일체 중생이 속박이 없고 해탈임을 알아보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허공 같아서 둘이 없기 때문이다.
제5의 행에선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8정도(正道)에서 스승을 좇아서 혜(慧)를 낳는 것을 이름하여 정지견(正知見)이라 하고, 법을 얻어서 사유를 낳음을 이름하여 정사유(正思惟)라 하며, 출가하여도 도(道)를 받아서 3도분(道分)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이라 하고, 법성의 공(空)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정정(正定)ㆍ정각(正覺)이라 하니, 남도 없고[無生] 둘도 없는[無二] 데서 일합상(一合相)을 관하기 때문이다.
제6의 행에선 대비(大悲)하기 때문에 7관(觀)을 일으키니, 택법(擇法)ㆍ염법(念法)ㆍ정진(精進法)ㆍ관법(觀法)ㆍ희법(喜法)ㆍ정법(定法)ㆍ혜법(慧法)이 하나의 상[一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7의 행에선 4무애(無礙)를 얻게 되기 때문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 선근의 정관(正觀)ㆍ난관(煖觀)ㆍ정관(頂觀)ㆍ인관(忍觀)ㆍ삼계공제일관(三界空第一觀)으로 능히 10지(地)의 상(相) 없는 크고 밝은 슬기를 낳아서 성인의 태(胎)가 제1공(空)의 평등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8의 행에선 일체 불국(佛國) 가운데 행을 행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4화법(化法)의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어변(語辯)ㆍ요설변(樂說辯)의 이 네 가지를 이름하여 슬기라 하니, 성품이 일체법의 무생(無生)을 비추어 제일의제(第一義諦) 중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제9의 행에선 일념 가운데 일체법을 비추니, 이른바 삼세의 12인연이 모두 임시로 합쳐 모여 성품을 이루어서 실제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10의 행에선 자재롭게 대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 이른바 보살의 3보는 지혜가 중도를 깨달아서 일체법이 무생(無生)인 것이 불보라면 용(用)은 법보가 되고, 항상 6도(道)에 다니면서 사물과 더불어 상응하는 것을 이름하여 승보라 하니, 모든 중생을 굴려서 불해(佛海)에 흘러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지위에 의탁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째,46) ‘이 때 부처님의 신력으로’라는 것은 설한 바를 증득하여 성취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등이다.
둘째 ‘이 같은 사천하(四天下)’ 이하는 회상의 평등을 매듭 지은 것이다.
셋째 ‘이 때 각기 지나’ 이하는 시방의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이 시방의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하는 경문으로써 곧 아는 것이다. 모든 회상의 뒤에는 단지 이 처소의 명칭이 동일하고, 불보살이 모두 증의(證義)가 되기 때문에 오는 것이고, 회상의 처음에서 시방이 동일한 명칭인 집(集)인 것은 단지 영향(影響)이라서 지위의 분제가 아직 증법(證法)이 아님을 표시한 것이니, 나머지는 준거할 수 있다.
넷째는 시방을 통틀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7중(重)의 염송하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게송을 설하는 뜻을 변별한 것이다.
【문】이 중에서 부처님의 종성(種性)과 보살의 종성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답】인위(因位)의 보살이 부처님을 말미암아서 이루면 곧 불성이고, 보살을 말미암아서 스스로 이루면 곧 보살의 성품이다. 이런 것 등은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게송을 설한 것에는 112게송이 있는데,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 일곱 자(字)의 게송은 총체적인 찬탄이고, 두 번째는 개별적인 찬탄이며, 세 번째 뒤에 있는 네 행은 대정(大情)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니, 생각하라. 또 이 온갖 덕은 위에서 10행의 하나하나의 지위 가운데 모두 갖추어져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 제2권 하


지엄 지음
박서연 번역


18) 보살십무진장품(菩薩十無盡藏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보살이란 사람이고, 십이란 것은 본수(本數)이니 다함 없는 분제(分齊)이다. 장(藏)이란 것은 축적하는 것이다. 진실로 체(體)는 헤아려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행은 끝내 다함이 없어서 생하고 멸하여 바꿀 수 없는 바이기 때문에 다함 없음[無盡]이라 말하는 것이다. 하나가 일체를 섭수해서 밖이 없음[無外]을 전체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에 장(藏)이라 말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둘째는 온 뜻이다. 온 까닭은 정위(正位)의 자분(自分)이 이미 이루어지고, 다음으로 승진(勝進)이 나중의 지위에 들어감을 밝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앞의 질문이 회향의 뒤에 있는 까닭은 이제 앞에 있는 것에 답해서 행통(行通)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니, 또한 회향은 조방편(助方便)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장(藏)은 행의 근본을 따르기 때문에 처음의 앞에 있는 것이다.
셋째, 품(品)은 능소(能所)의 매우 깊은 공덕이 모든 뜻을 축적하는 것으로써 종지를 삼는다.
넷째, 경문을 변별하는 것이니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數)를 들어서 인증(引證)하고 간략히 찬탄하면서 명칭을 열거한 것이다. 둘째 ‘무엇 등이 보살이 되는가?’ 이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 장(藏)에 열 가지가 있다’ 이하는 찬탄하여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열 가지 명칭이란 것은, 첫째 신(信)은 곧 10지(地)의 첫 번째와 『섭론(攝論)』 중의 서지(書持)이며, 둘째 계(戒)는 곧 지(地) 중의 자비와 논(論) 중의 여섯 번째 다른 이로 하여금 얻게 하는 것이고, 셋째인 참(慙)과 넷째인 괴(愧)는 곧 지(地) 중의 행과 논 중의 아홉 번째인 독처(獨處)의 공한(空閑) 등이며, 다섯째 문(聞)은 곧 지 중에서 모든 경법(經法)을 아는 것과 논 중의 네 번째인 공경히 들어서 받아들이는 것이며, 여섯째 시(施)는 지에서 사(捨)라고 이름하는 것과 논 중의 타자에게 베풂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일곱째 혜(慧)는 곧 지(地) 가운데 열 번째인 법대로 닦는 것과 논(論) 중의 열 번째인 닦아서 서로 들어간다는 뜻이며, 여덟째 정념(正念)은 곧 지 중의 피로하고 게으르지 않은 것과 논 중의 스스로 독송하는 것이며, 아홉째 지(持)는 곧 지 중의 견고한 힘과 논 중의 일곱 번째인 설한 바대로 일심으로 익히는 것이며, 열째 변(辯)은 곧 지 중의 여섯 번째인 세간의 법을 잘 아는 것이니 곧 4변(辯)이며, 논 중의 여덟 번째인 타자를 위해 이치대로 자세히 해석하는 것이다. 『지론(地論)』과 『섭론』에는 모두 공양이 있는데, 어째서 이 가운데에는 없는 것인가? 여기에서는 참(慙)과 괴(愧)를 구분하여 둘이 되었기 때문이니, 또한 여기서의 장(藏)과 저곳의 한결같음의 뜻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자세히 변별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相)을 해석한 것이며, 둘째 ‘이것이……이다[是爲]’ 이하는 행용(行用)이 능히 대과(大果)를 성취함을 찬탄해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인 믿음의 창고[信藏]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두 번째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고, 네 번째는 행용(行用)을 거듭 찬탄한 것이다.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이 불성에 머무는 것이며, 둘째 ‘부처님께서 이렇게 아신다’ 이하는 과(果)의 성품에 이르게 됨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셋째 ‘이 보살이 이같이 성취해서’ 이하는 인출(引出)의 성품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첫째의 자성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理)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음은 신(信)의 견고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로 ‘왜냐하면’ 이하는 의심을 해결하는 것이다. 둘째1)인 과(果)에 이르게 된 경문에서 처음은 신(信)의 경계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보살이 성취해서’ 이하는 신해(信解)로 상(相)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인 인출(引出)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앞을 거듭 든 것이고, 다음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이하는 곧 신의 경계의 분제를 밝힌 것이며, 다음으로 ‘수호하여 지킨다’ 이하는 신행(信行)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계율의 창고[戒藏]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셋째 ‘시위(是爲)’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이하 모든 경문의 세 단락은 이에 준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2) 개별적으로 해석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열 가지 명칭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으로 ‘하등(何等)’ 이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 보살이 이 같은 등을 지닌다’ 이하는 대비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용(用)이다. 다투지 않는 계율[不諍戒] 가운데 나아가면 먼저 바로잡지 않음이 없어서 다시 조작하여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를 수순(隨順)하여 체(體)가 집기(集起)하지 않으며, 마음이 항상 수순하여 열반을 향하는 것이니, 일체의 모든 사(事)가 곧 열반의 상(相)이라서 다시 또 멸(滅)하지 않는 것이다.
참(慙)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은 앞과 같으니,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나간 허물을 아는 것이고, 둘째 ‘일체’ 이하는 중생에게 죄가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며, 셋째 ‘스스로 생각하길’ 이하는 상성(上聖)이 알아보는 것이며, 넷째 ‘그러므로’ 이하는 허물을 여의어서 부끄러운 마음[慙心]을 드러내는 것이다.
괴(愧)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은 앞과 같으니,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나간 허물을 아는 것이고, 둘째 ‘다시 짓는다’ 이하는 중생에게 죄가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며, 셋째 상성(上聖)이 알아보는 것이고, 넷째 ‘나는 반드시’ 이하는 허물을 여의어서 부끄러움(愧)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문(多聞)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 가운데 첫째는 들은 바 열 가지 사(事)를 열거한 것이며, 둘째는 열 가지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생각을 짓는다’ 이하는 타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12인연이 무위(無爲)’라는 것을 바사(婆沙)의 어느 스승은 “유위(有爲)는 자립하지 못하니 무위를 인(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중의 경문에는 여섯 가지 무위가 있다. 또 해석하길, 첫째 공(空)은 사상(事相)을 기준으로 하여 변별한 것이며, 둘째 열반은 지위를 기준으로 논한 것이며, 셋째 수(數)의 소멸은 성품이 흩어짐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넷째 수의 소멸이 아님은 사(事)의 흩어짐에 나아간 것이며, 다섯째 연생(緣生)은 이(理)가 사(事)를 따름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여섯째 법계의 이(理)는 사(事)를 대하지 않은 것이다. 정(情)을 대하면 곧 유위의 소이(所以)이니, 나머지 뜻은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등의 뜻은 모두 자체의 연기라서 섞여 있으면서도 잡란(雜亂)하지 않으니 사상(事相)으로써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승의 교상(敎相)은 만약 방편으로 깨달아 들어감을 논할 때면 모든 교상의 요체와 정황을 언전(言詮) 가운데에서 취한다. 만약 바르게 아는 것[正解]을 논할 때라면 반드시 비밀교의 언전이라야 바야흐로 대승의 의상(義相)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뜻을 얻어야지 그 소리에 미혹되지는 말라. 무기(無記)에는 60가지가 있다.
시(施)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것 가운데, 무릇 시(施)라 말한 것은 버리고 구제하는 자량의 이익으로 뜻을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문에서 말한 것과 나아가 스스로 자량의 용[資用]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施) 아님이 없다. 만약 사상(事相) 가운데 나아가 밝힐 때라면 경문에서 열거한 바와 같다. 만약 언전의 표현에 의거해서 밝힌다면 다만 원대하고 궁극적인 종지를 이해시키는 것이니, 함부로 현상(玄想)으로써 정지(正智)를 묻지 말라. 일단 정(情)을 열고 나서 3업에 이르기까지는 동(動)을 일으켜 나아가 섞여서 연(緣)을 따라 지은 바이니, 여실함[如實]과 무진장(無盡藏)을 수순해서 서로 응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능히 위없는 깨달음[無上菩提]의 근본 종자를 건립하는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열거하는 것이고, 나중은 자세히 변별하는 것이다. 앞의 시법(施法) 중에는 세 종류의 시법이 있으니,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나머지 경문의 상(相)의 나타남은 알 수 있다.
혜(慧)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구는 아는 바의 경계인데, 앞의 네 구에 각기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색고(色苦)이니 보색(報色)이며, 둘째는 색집(色集)이니 업색(業色)이며, 셋째는 색멸(色滅)이니 분별성색(分別性色)이며, 넷째는 색도(色道)이니 도공선색(道共善色)이다. 두 번째에서 색고라는 것은 색의 무상(無常)이며, 둘째의 색집은 나중을 낳는 것이며, 셋째의 색멸은 즉 여(如)이고, 넷째의 색도는 이른바 성도(成道)의 갖춤이니, 나머지는 준거하라.
성문과 보살 등이란, 처음은 사람을 아는 것이고, 다음은 궤칙의 법을 아는 것이며, 셋째는 도인(道因)을 아는 것이니 번뇌의 습기를 섞기 때문에 집(集)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이다. 넷째는 멸과(滅果)를 아는 것이다. 체상(體相)은 아래의 설과 같다. 다음으로 ‘어떻게 아는가?’ 이하는 가행(加行)이 모든 법을 관함을 변별한 것이니, 곧 자리(自利)에 질문과 답의 두 가지 경문이 있는 것이다. 답에 여섯 구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자세히 설한다’ 이하는 이타로서 다섯 구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문답으로 뜻의 분제를 밝힌 것이며, 셋째는 문답으로 설하는 의식[說儀]을 나타낸 것이며, 넷째는 따지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미암는 바를 답한 것인데 네 구가 있다. 네 번째 ‘보살이 성취하면’ 이하는 자타를 이롭게 하는 행이 상(相)을 성취함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 ‘이 지혜의 창고[智慧藏]에 열 가지가 있다’ 이하는 슬기로 거둠에 다함이 없음을 변별한 것인데, 네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염장(念藏)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하는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염(念)한 바의 청정한 법을 변별한 것이니, 염불이라 말한 것은 실다운 각(覺)을 수순하는 것이다. 수기(授記)라 말한 것은 실다운 각의 미묘한 궤칙[妙軌]이 이 마음의 회포를 나타낸 것이다. 수다라(修多羅)를 염하여 지닌다고 말한 것은 원각(圓覺) 등의 원만한 상(相)이 밖에 드러나는 것이니, 미묘한 궤칙이 때[時]를 갖추는 것으로써 세칙(世則)을 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보살이 이 같은 염(念)을 짓는다’ 이하는 10념(念)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 보살이 이런 염(念)에 머무른다[此菩薩住是]’ 이하는 염(念)의 견고하고 강함을 밝힌 것이다. 묘(妙)라고 말한 것은 미묘함이 나머지 사람을 넘어서는 것이며, 정념(淨念)이란 기(記)한 바가 분명한 것이다. 불탁(不濁)이란 어둠의 장애가 섞이지 않은 것이며, 청정을 두루 하는 염[遍淨念]이란 법에 대해 모두 밝은 것이다. 티끌을 여의는 염[離塵念]이란 염한 바의 사(事)에서 탐착의 염오[貪染]를 낳지 않는 것이며, 갖가지 티끌을 여의는 염[離種種塵念]이란 나머지 결박을 낳지 않는 것이다. 때를 여의는 염[離垢念]이란 나의 능함을 계교하지 않는 것이며, 광명이 비추는 염[光曜念]이란 널리 비추어 극(極)이 없는 것이다. 낙념(樂念)이라 말한 것은 수행을 즐겨서 쉬지 않는 것이며, 장애가 없다는 것은 뜻을 발하면 곧 알아서 사량 등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지(持)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상(相)을 변별하는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한 것이다.
상(相)을 변별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지니는 사람[持人]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은 부처님께서 들으신 바의 연처(緣處)를 밝힌 것이며, 셋째 ‘한 품을 들어 지니고[聞持一品]’ 이하는 들은 바의 법을 변별한 것이다.
변재로 상(相)을 해석한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거듭 든 것이고, 둘째는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한 것이다.
두 번째의 자세히 변별한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후지(後智)가 체(體)를 변별함을 밝힌 것이며, 둘째 ‘널리 위하여[廣爲]’ 이하는 변재의 공능(功能)을 밝힌 것이며,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해석해 이룬 것이며, 넷째 ‘이 장(藏)을 성취하기 때문에’ 이하는 변재의 덕이 성취한 사(事)를 자세히 밝힌 것이며, 다섯째 ‘이 보살이 백만(百萬)……성취하고는’ 이하는 변재의 다함 없는 용사(用事)를 성취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의 질문과 답은 의심을 제거한 것이다. ‘불자야, 이것은’이라 말한 것 이하는 덕용(德用)이 능히 대과(大果)를 성취해서 다함이 없음을 두 번째로 매듭 지은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장(藏)에 열 가지가 있다’ 이하는 변장(辯藏)의 심오함으로써 덕을 낳음이 다함 없음을 세 번째로 찬탄하여 매듭 지은 것이니, 네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제5회 불승도솔천궁(佛昇兜率天宮]

19) 일체보전품(一切寶殿品)
이것은 곧 위의 회향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지족천(知足天)은 행을 기준으로 해서 준거한 것이다. 또 앞의 제3회상은 다만 그 궁전[殿]을 설했을 뿐이며, 제4회상은 다만 장엄을 논했을 뿐이며, 제5회상은 일체보장엄(一切寶莊嚴)을 말했으며, 제6회상의 마니보(摩尼寶) 등은 자비의 덕상(德相)이 사물에 따라서 더욱 증대함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온 까닭은 만약 회향하지 않으면 진행하여 말미암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회상이 온 뜻이고, 둘째는 품이 온 뜻이니, 앞과 동일하게 준거하면 알 수 있다. 제3회상의 종지[宗]라는 것은 두 가지로 분별하니, 사람과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체(體)ㆍ상(相)ㆍ용(用)이 있는 것도 동일하니, 위를 준거하면 알 수 있다. 또 이 회상의 종체(宗體)를 인(因)해서 다시 상하의 모든 회상의 다름을 드는 것이다.
종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보현 성기(性起)의 실다운 덕이 차별의 연(緣)을 따름으로써 신심을 일으키기 때문에 설함을 든 것이다. 즉 첫 회상에서 세계해를 밝힌 것과 제2회상의 10신(信)과 제3회상의 10해(解)와 제4회상의 10행과 제5회상의 방편회향과 제6회상의 본래 갖춘[本有] 무루 인과의 두 행법(行法) 등을 닦아서 성취함을 밝힌 것이며, 제7회상은 법에 의거해서 인과의 행덕을 성취한 것이며, 제8회상은 사람에 의거해서 지위[位] 차별의 덕을 성취한 것이니, 이상은 모두 일승과 삼승이 함께 배우는 법이다.
둘은 차별의 연(緣)을 섭수하여 본래의 실(實)을 따르는 것이다. 즉 첫 회상은 뚜렷하고 밝은 5해(海)의 10지(智)를 관함으로써 설함을 일으키는 것이며, 제2회상의 신위(信位)는 본래의 실다운 인과의 분량(分量)의 덕을 성취하는 것이며, 제3회상의 해위(解位)는 성덕(性德)인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제4회상의 행위(行位)는 본성(本性)인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며, 제5회상의 방편회향위(方便廻向位)는 법계 진여의 상[法界如相]인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며, 제6회상의 증위(證位)는 성기(性起)의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며, 제7회상은 법에 의거함으로써 통교(通敎)의 보현인과의 행덕의 분제를 나타낸 것이며, 제8회상은 사람에 의거해서 보현인과 연기(緣起)의 이사(理事)의 덕위(德位) 분량(分量)의 차별된 뜻을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경문의 세 가지 품(品)은 둘로 나눈다. 처음의 두 품에서 앞은 방편의 서(序)이고, 나중의 한 품은 올바른 종지이다. 이 처음의 품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체용(體用)이고 둘째는 융체(融體)이다. 융(融)의 내용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신(身)ㆍ구(口)ㆍ의(意)이며 또한 인과가 상응하여 나중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상은 모두 이와 같을 뿐이다.
두 번째 ‘그 때 저 천왕은’ 이하는 연(緣)에 나아가 거두어 교화하는 것이다. 이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 ‘그 때 저 천왕’ 이하는 체(體)로부터 용(用)을 일으켜 섭화(攝化)의 연(緣)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 ‘즉어(卽於)’ 이하는 왕이 공양구를 닦아 곧 근(根)을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 때 세존께서는 부처님의 장엄으로써’ 이하는 부처님께서 청(請)을 받아들이시어 법좌에 오르심을 밝혀 기틀이 감응하는 상(相)을 밝힌 것이다. 넷째 ‘이 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천왕을 위하여’ 이하는 뛰어난 힘의 가피(加被)가 혼란을 가라앉혀 고요함에 머물게 함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이 때 천왕’ 이하는 정정(靜定)으로부터 지(智)를 발해서 게송으로 찬탄함을 밝힌 것이다. 여섯째 ‘이 때 세존께서는 일체의 보전(寶殿)에 오르셔서’ 이하는 부처님의 법신이 평등하게 이익을 섭수하시고 사(事)를 성취하심이 헛되지 않음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根)을 성취하는 것이고, 둘째 ‘이 때 천왕은 여래를 위해 자리를 펴고 나서’ 이하는 천왕이 나아가서 여래를 맞이한 것이니, 공경하는 의식을 변별한 것이다. 즉 근기가 성숙해서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다.
처음 공양구[供具]를 장엄하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장엄하여 종지를 세운 것이고, 둘째 ‘이른바[所謂]’ 이하는 수행해 들어가는 방의(方儀)를 개별적으로 자세히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 같은 사천하’ 이하는 동등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기틀이 법에 감응함을 나타냄에서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좌를 장엄함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둘째 ‘과거에 닦아 익혀서’ 이하는 인연을 변별한 것이다. 인연에는 13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나머지는 개별적인 것으로서 차례대로 의심을 제거함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에 나아가면 ‘이른바’ 이하는 보전(寶殿)에 있으면서 공양의 행을 닦아서 방의(方儀)를 성취함을 자세히 설한 것이니, 그 중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세간(器世間)의 장엄자재행(莊嚴自在行)을 설한 것이며, 둘째 ‘백만억의 모든 천신왕(天神王)’ 이하는 중생세간의 장엄자재행을 밝힌 것이니, 이는 능히 공양하는 사람이다. 셋째 ‘백만억의 모든 대보살’ 이하는 지정각(智正覺)의 장엄자재행이니, 이는 이(理)를 나누어 증득하기 때문에 다름이 있는 것이다. 해석에서는 ‘이 중에 58중(衆)이 있다’고 했는데, 알 수 있다.
처음 기(器)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외진(外塵)의 장엄구(莊嚴具)이며, 둘째 ‘백만억 신력(神力)의 자재로움으로’ 이하는 내법(內法)의 장엄을 밝힌 것이다. 지정각(智正覺) 중에서 처음의 13구는 사람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20구는 덕을 행한 것이니, 모든 대보살이란 것은 도량의 회상에 들어간 사람이며, 화수(華手) 등은 신해위(信解位)이다.
두 번째 부처님을 맞이하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나아가서 맞이함은 공경하는 의식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이른바 처음은 앞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은 나중을 낳는 것이다. 둘째는 공양을 시설하는 것이며, 셋째는 올바르게 청(請)을 드리는 것이다.
두 번째의 공양을 시설하는 경문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자분행(自分行)의 공양을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밖이고 다음은 안이란 걸 알 수 있다. 둘째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이하는 승진분행(勝進分行)의 공양을 밝힌 것이며, 셋째 ‘이 때 모든 천중(天衆)’ 이하는 두 행이 불계(佛界)에 들어감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 승분(勝分)의 덕 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허공을 장엄한 것이며, 셋째는 꽃을 내서 여래에게 공양한 것이다.
셋째 ‘이 때 모든 천중’ 이하는 불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타(利他)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그 때 모든 천(天)이 여래의 몸에 있는 하나하나의 털구멍을 보고서’ 이하는 자리(自利)의 덕이며, 셋째 ‘이 때 여래께서’ 이하는 자타의 평등과 원극(圓極)의 자재로움을 변별한 것이다.
앞의 단락에 나아가면 처음은 이타의 덕을 아는 것이고, 둘째 ‘이 같은 정념(正念)’ 이하의 10구는 관해(觀解)의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앎 속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웅(人雄) 등 보신의 덕이고, 둘째 ‘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불신(佛身)을 나타내게 된다’ 이하는 화신의 덕이다. 보신 중에서 처음은 신업(身業)의 덕이고, 다음의 ‘일체지(一切智)에 머문다’ 이하는 구업의 덕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부처님은 지혜의 달’ 이하는 의업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의 화불(化佛) 가운데 처음은 신업이고, 둘째 ‘항상 법시(法施)로써’ 이하는 구업을 밝힌 것이며, 셋째 ‘모두가 마음을 따라 일어남을 말미암아서’ 이하는 의업을 변별한 것이다. 이러한 높고 고원한 부처님의 경계가 곧 회향이니, 사람을 인(因)해서 사(事)를 쓰는 것은 준거할 수 있다.
둘째, 자리(自利)의 덕 중에는 여섯 구가 있다. 첫째는 광명을 놓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의 ‘자연(自然)’ 이하는 광명으로 게송을 설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아승기를 현현한다’ 이하는 장엄의 상(相)을 밝힌 것이며, 넷째 ‘불가사의를 현현한다’ 이하는 화신의 설법을 낸 것이며, 다섯째 ‘또 불신(佛身) 중에서’ 이하는 보배 광명을 내어서 그 인행(因行)을 나타낸 것이며, 여섯째 ‘또 자재한 신력을 본다’ 이하는 설법의 교화를 밝힌 것이다.
셋째, 자타의 평등과 원극(圓極)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자비로운 덕을 거듭 든 것이며, 둘째 ‘한량없게 하고자 한다’ 이하는 기틀에 따라 이익을 섭수하는 것이며, 셋째 ‘여래를 성취한다’ 이하는 불계에 들어가서 덕을 성취하는 것이며, 넷째 ‘여래께서 현현하신다’ 이하는 다하기 어려움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셋째의 연(緣)에 나아가 섭화(攝化)하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올바로 나아가는 것이며, 둘째는 나머지 방향과 동등한 것이며, 셋째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니, 알 수 있다.
다섯째인 지혜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억념(憶念)이 그대로 지체(智體)인 것이고, 둘째의 게송을 설함은 지상(智相)을 밝힌 것이다. ‘어떤 뜻으로 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가?’라는 것은 회향의 많은 방편이 하나의 자비선교(慈悲善巧)로 돌아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셋째는 나머지 방향에 동등하게 통하는 것이다.
여섯째인 섭화(攝化)가 사(事)를 성취하는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틀에 나아감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는 올바로 섭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익을 성취하는 것인데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이(理)를 따르는 것이며, 다음은 사(事)를 따르는 것이다. 다만 갖춰진 덕을 변별함으로써 전(殿)인 여래의 처소를 넓히지 않은 것은 방편의 개별적인 장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넷째는 시방에 동등하게 통하는 것이다.

20) 도솔천궁보살운집찬불품(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인데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처소이고, 둘째는 사람이며, 셋째는 신의(身儀)이며, 넷째는 구업이다. 혹 여섯 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온 뜻은 앞과 같으나 다만 소위(所爲)가 다를 뿐이다.
셋째, 종지는 앞과 같으니 준거하라. 다만 이 품에 돌이켜 들어가서 방편의 불행(佛行)을 찬탄함이 다를 뿐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품은 세 가지 서(序)가 있다. 처음 경문에 있는 대중을 모으는 서[集衆序]의 내용은 우선 부처님의 신력을 들어서 분제를 나타낸 것이고, 다음은 모인 대중을 변별한 것이며, 나중의 ‘이처럼’ 이하는 모인 대중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두 번째의 내용인 3세간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중생세간 중에는 다섯 구가 있다. 처음은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다음은 근본에 의거해서 행을 닦는 것이며, 셋째는 함께 온 것이며, 넷째는 방향에 의거해서 앉는 것이며, 다섯째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덕을 찬탄함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리(自利)의 행을 밝힌 것이고, 둘째 ‘모든 중생들이 보고 싫증냄[厭足]이 없으며’ 이하는 이타행이며, 셋째 ‘이 모든 보살’ 이하는 자타의 덕용(德用)이 자재로움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 광명을 놓는 서[放光序] 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광명의 출처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는 비추는 바의 처소를 밝힌 것이며, 셋째 ‘저 모든 보살’ 이하는 광명이 섭수하는 이익이니, 곧 덕을 찬탄한 것이다. 두 무릎으로 뛰어난 광명을 놓는 것은 법신의 행 가운데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뛰어나고 미묘한 상(相)을 증장하는 것이다. 무릎이란 것은 나아가는 방편의 상(相)을 표현한 것이다. 덕을 찬탄함 속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리(自利)이고, 둘째 ‘교화하여 성취한다’ 이하는 한 구의 이타(利他)이며, 셋째는 승진이니, 알 수 있다.
부처님을 찬탄한 서[讚佛序] 중에서 금강이란 것은 인행(因行)이 견고한 것이다. 당(幢)이란 것은 행이 고출(高出)함을 이룬 것이니, 또한 섭수하여 조복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또 열 보살 중에서 첫째의 명칭이 금강당(金剛幢)인 것은 자체가 진실하여 능히 상의 누[相累]를 소멸하고, 세간의 도를 초월하여 개별적으로 이기고 짐을 표방함을 밝히기 때문에 금강당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모든 게송은 다 회향의 방편을 기준으로 해서 그 부처님의 덕을 나타낸 것이니, 곧 이 가르침으로써 언전의 선교상(善巧相)을 삼은 것이다. 나머지는 준거해서 생각하라.
모든 게송의 경문은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생기(生起)이고, 둘째는 올바로 게송을 설한 것이다. 처음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다섯 구는 자리의 덕이고, 다음의 세 구는 이타이며, 다음의 두 구는 수행을 권하는 것이다.
견고(堅固)의 게송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구는 부처님의 자리(自利)가 견고함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네 구는 이타의 견고함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수행을 권한 것이다.
용맹(勇猛)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법계의 바다가 깊음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다섯 구는 이용(利用)이 광대함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체용(體用)이 원만하고 지극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야광(夜光)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구는 법신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 구는 화용(化用)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다.
지(智)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구는 즉위(卽位)의 덕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아홉 구는 보는 바[所見]의 뛰어남을 변별한 것이다. 소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여덟 구는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구는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네 구는 부처님의 수(數)를 여읜 상(相)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세간을 여읜 상을 변별한 것이다.
보(寶)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구는 화신이고, 다음의 두 구는 법신이며, 다음의 일곱 구는 보신이다.
【문】이 경문을 조목별로 분류하는데 삼승에 많이 의거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답】사람됨이 삼승인 자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일승의 뜻의 경문은 이에 준거하면 알 수 있다.
정진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여섯 구는 3신(身)의 자재로움을 통틀은 것이고, 다음의 네 구는 네 가지 비유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하여 성취한 것이다.
이구(離垢)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구는 지신(智身)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구는 법신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해석이다.
진실(眞實)의 게송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화신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법성신의 자재로움이며, 다음의 네 구는 앞의 화신을 거듭 성취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방의(方儀)에 취향함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몸이 상(相)을 여읨을 매듭 지어 이룬 것이다.
법(法)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분명한 과제를 닦는 자의 뜻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손해와 이익을 총체적으로 들어서 해석해 이룬 것이며, 다음의 네 구는 손해와 이익의 상을 자세히 변별함으로써 덕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덕의 상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이 열 보살의 덕을 찬탄함은 반드시 과(科)를 구별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나하나 구(句)의 뜻이 곧 하나의 방편법이다. 이는 일승의 뜻을 기준으로 해서 경문을 취한 것이다.

21) 금강당보살회향품(金剛幢菩薩廻向品)
다섯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10회향의 명칭과 온 뜻을 해석한 것이다. 둘째는 다스리는 바를 변별한 것이다. 일승은 앞에서처럼 삼승에 준거하는데 독각(獨覺)이 대비의 장애를 버리는 것은 제외한다. 셋째는 얻을 바이며, 무간정(無間定)과 세간 제1의 선근이다. 넷째는 10회향의 행위(行位)를 성취한 것이니, 곧 종지의 체(體)인 것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회향이라는 것은 이전의 행을 돌이켜서 보리를 향하는 것이니, 또한 중생과 법성에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 등은 사람이고 회향 등은 법이니, 두 뜻에 나아가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온 뜻은 앞과 같다. 다만 법의 체만이 앞과 다를 뿐이다.
이제 이 논(論)에서 다스리는 바와 성취해 얻는 등은 모두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다. 만약 일승의 별교(別敎)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다면 다스리는 경우나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 등을 준거하여 생각해서 섭수할 수 있다.
넷째의 종지라는 것은 총체적인 상(相)은 알 수 있다. 자세히는 아래의 경문에 있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니, 이 경문에는 7분(分)이 있다. 첫째는 입정삼매분(入定三昧分)이며, 둘째는 가분(加分)이며, 셋째는 출정분(出定分)이며, 넷째는 본분(本分)이며, 다섯째는 설분(說分)이며, 여섯째는 이익분(利益分)이며, 일곱째는 게송을 읊는 것이다.
첫째에서 입정(入定)이라 말한 것은 법의 체가 사량의 경계가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명지정(明智定)이란 것은 행의 미혹이 없어서 밝음을 비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방편의 정지(淨智)가 다만 능히 정지를 이룸에 의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서(加序)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加)를 찬탄하는 인연의 상(相)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인데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모든 부처님의 현신(現身)과 동일한 명칭의 증법(證法)을 총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그 때 저’ 이하는 올바로 찬술(讚述)한 것이며, 셋째 ‘선남자’ 이하는 현정(現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加)로써 정(定)에 들어가는 것에 다섯 가지 인연이 있다. 첫 번째는 모든 불력(佛力)의 가(加)이며, 두 번째는 노사나의 본원력이며, 세 번째는 노사나의 금신력(今神力)이며, 네 번째는 금강당의 자지정력(自智淨力)이며, 다섯 번째는 나머지 보살의 선근력(善根力)이다.
둘째 ‘욕령(欲令)’ 이하는 가(加)의 소위(所爲)를 변별한 것인데, 이 중에 22구가 있다. 처음의 열두 구는 자분의 덕이며, 다음의 10구는 승진이다. 지금 이 22구 안에 있는 모든 경문과 상하의 의가(意加) 내에 있는 경문의 상(相)은 하나하나 갖추어 해석할 수는 없으나, 다만 오직 아래 「지품(地品)」의 처음 가분(加分)내에 있는 논주(論主)가 판단한 바에서 이 경문을 나누어 기준으로 한다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속에 있는 경문의 상(相)은 혹은 과(果)와 인(因)을 통틀은 것이고, 혹은 처음은 총체적이고 나중은 개별적이며, 혹은 자타의 이익이 다른 것이며, 혹은 동이성괴(同異成壞)이다. 이와 같이 일체와 위의 회상의 모든 경문이다. 『지론(地論)』의 처음 6상(相)을 준거해서 취한 것이라서 명료치 않음이 없으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선남자여, 그대는 반드시’ 이하는 3업의 가상(加相)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다. 그 중에서 첫째인 구(口)의 내용에 10구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의가(意加) 또한 10구가 있으니, 처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문】어째서 이 의가가 법과 더불어 섞여 있는 것인가?
【답】방편의 사(事)는 마음의 경계가 정해지지 않았고 아울러 이사(理事)가 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니, 준거하면 알 수 있다.
본분(本分)3)을 올바로 설한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체(體)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는 명칭을 열거하고 상(相)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둘째는 방편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니, 곧 6결정(決定)이다. 이 중에서 다만 관상(觀相)의 대선(大善)과 나약하지 않음만이 위를 말미암고 나서 변별한 것이다. 둘째, 상(相)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수(數)를 드는 것과 이끌어 증명한 것이며, 셋째는 거듭 질문한 것이며, 넷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며, 다섯째는 매듭 지음과 증득하여 성취함이다. 부사의한 대원(大願)이란 지(地) 위의 원인(願因)이니, 곧 10회향의 원(願)이다.
넷째,4)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한 것이다. 첫째는 모든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의 상(相)을 여의는 회향이니, 화사(化事)는 2아(我)를 여의는 것이다. 회향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중생에 회향하는 것이니, 사물과 더불어 똑같이 성취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니, 모든 세간의 소유를 버리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실제(實際)에 회향하는 것이니, 용(用)이 극체(極體)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세 가지 상(相)을 성취한다. ‘이 세 가지가 있음을 아는 까닭’ 이하는 미륵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보살을 보게 해서 세 종류의 회향을 닦게 한 것이다. 『반야경』 중에서도 이를 설했으니, 아래는 모두 이 뜻을 통틀은 것이다.
둘째, 불괴(不壞)라는 것은 스스로의 행이 견고한 것이다.
셋째, 일체의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은 자타가 부처님 경계에 동등하게 들어가는 것이니, 또한 양(量)이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일체 처소에 이른다는 것은 분(分)이 부처님의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다섯째, 다함 없는 공덕장이란 것은 닦아 쓰면서 생(生)을 낳는 것이 무궁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평등한 선근을 수순한다는 것은 또한 견고한 덕용(德用)이 다함이 없어서 3견고(堅固)를 획득하여 열반을 수순한다고 이름한다.
일곱째, 일체 중생을 동등하게 관(觀)함을 수순한다는 것은 대열반을 얻어도 세간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덟째, 여상(如相)이란 것은 행을 여(如)에 의거해서 닦기 때문이다.
아홉째, 해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理)로 동등하게 속박을 여의고, 탈(脫)에는 탈상(脫相)이 없기 때문이다.
열째, 법계의 한량없음이란 성품의 용(用)을 칭한 것이다.
이 열 가지 상(相)의 성취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10문으로써 모든 행의 회향을 섭수하는 것이니, 이 문을 기준으로 하면 곧 행이다. 둘째는 행이 10문에 의거함으로써 회향을 밝히는 것이다. 회향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실제와 보리와 중생의 회향이다. 실제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닦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곧 진여이며, 둘은 진여를 나타내게 되기 때문에 모든 행을 닦는 것이다. 중생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살행을 닦는 것이니 곧 중생의 도구(道具)이며, 둘은 보살이 성취한 바가 곧 중생의 소여(所與)인 것이다. 보리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닦은 것이 대과(大果)를 이루게 되는 것이고, 둘은 보살과 중생의 모든 행이 곧 보리의 아과(芽果)인 것이다. 하나하나의 회향에는 모두 이 문이 있으나 우선 총체적인 뜻을 서술하였으니, 준거해서 생각하라.
첫 번째5)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열거한 명칭을 물은 것이고, 둘째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시위(是爲)’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게송으로 거듭 읊은 것이다. 둘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행의 체(體)를 밝힌 것이고, 두 번째 ‘마하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보리심의 보배를 발하는 것은’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세 번째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일천자(日天子) 등은’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네 번째 ‘이 같은 등의 선근의 회향으로써’ 이하는 뛰어나고 미묘한 덕용(德用)의 자재로움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 번째의 체(體)를 변별한 내용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6도(度:6바라밀)와 4섭(攝) 등은 중생을 제도하는 법이 되고, 둘째 ‘선근을 닦는다’ 이하는 중생을 구호함을 밝힌 것이고, 셋째 ‘이 보살은 원수나 친한 이[怨親]를 위해’ 이하는 의탁함으로써 행을 일으킴을 밝힌 것인데, 이 중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중생의 상(相)을 여의게 되기 때문에 3회향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고, 둘은 중생을 여읨을 말미암기 때문에 3회향인 것이니, 이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중생을 올바로 구원하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등이고, 둘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법신의 즐거움을 얻는 것인데 이 중에서 인과는 둘로 나눈다. 셋째의 의탁함으로써 행을 일으키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중생에게 잘 회향함으로써 원친(怨親)을 가리지 않는 것이니, 여기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건립하는 것이고, 다음의 문답은 의심을 푸는 것이며, 셋째 ‘항상 사랑스런 눈[愛眼]으로써’ 이하는 연(緣)을 대하여 행을 성취한 것이다. 전전(展轉)에 네 가지 의심을 변별함이 있다. 네 번째 의심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건립이고, 다음은 따지는 것이며, 그 다음은 답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보살은 하나의 중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하는 뜻의 광대함을 나타낸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게 행하는 것과 마음의 구경(究竟)을 일으키는 것이니, 곧 둘이 된다. 이 두 개의 단락 중에서 다시 각기 둘이 됨은 알 수 있다.
둘째 ‘보살이 모든 선근으로써 회향할 때’ 이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갈래[趣]를 얻게 하는 것이다.
셋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선근으로써’ 이하는 중생에게 부처님을 보게 해서 이익을 얻게 한 것이다. 7재(財)의 청정한 만족이란 것은 이른바 신(信)ㆍ계(戒)ㆍ문(聞)ㆍ시(施)ㆍ지(智)ㆍ혜(慧)ㆍ참괴(慙愧)이다.
넷째 ‘이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일체의 고통을 대신 받는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사물을 대해서 마음을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왜냐하면’ 이하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며, 셋째 ‘큰 회향으로써[以大]’ 이하는 선교(善巧)를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이하는 중생을 위해 고통을 받음을 올바로 밝힌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고통을 대신해서 받는 것이다. 둘은 의심을 없애는 것인데,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두 번째 경문 가운데 네 가지가 있고, 세 번째의 경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의 ‘그러므로……않고[是故不以]’ 이하는 매듭 지음이니, 알 수 있는 것이다. 셋6)의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이하는 성취한 바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보살이 이 한량없음으로써’ 이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조도(助道)의 인연을 갖추게 하는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뜻을 일으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유의 정황이며, 세 번째는 합(合)이니, 알 수 있다.
세 번째 실제에 회향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두 회향을 간택하는 것이며, 둘째 ‘일체에 집착하지 않게 한다’ 등의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별의 모양 없음[分別無相]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허망한 인연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하는 의타의 생기하지 않음[依他不生]이며, 셋째 ‘일체 중생의 평등을 관찰한다’ 이하는 진실의 성품 없음[眞實無性]이니, 저것은 모든 법을 낳지도 않고 모든 법을 소멸하지도 않는다.
이 같은 등의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 곧 네 번째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이니,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수행’ 이하는 개별적인 것이며, 나중의 ‘보살’ 이하는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처음의 수행대치법 등은 초행(初行)의 체(體)를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일체를 관함’은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나중의 ‘저 선근에서 두 상(相)을 짓지 않는다’ 이하는 실제를 매듭 지은 것이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거듭 읊은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뜻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게송에 56게송이 있는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열두 게송은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이 개별적인 것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열한 게송은 행의 체(體)를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의 열세 게송은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매듭 짓는 경문이며, 다음의 열다섯 게송은 실제를 매듭 지은 것이다. 세 번째 나중의 여섯은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니, 준거해서 해석을 취할 수 있다.
둘째,7) 불괴(不壞)라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함이고,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에도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모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덕을 성취하신다’ 이하는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처럼 어리석음을 버리고 여의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다섯째 ‘이와 같이 보살이 선근을 성취한다’ 이하는 덕용(德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 체(體)의 경문8)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緣)을 대해서 신(信)을 성취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종지를 세우는 것이며, 두 번째 ‘왜냐하면’ 이하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둘째 ‘이같이 안주해서’ 이하는 신(信)에 의거해서 행인(行因)을 성취하는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등의 선(善)’ 이하는 행이 성취하는 과(果)를 변별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 같은 정근(精懃)으로’ 이하는 행을 흥기하는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섯째 ‘보살이 선근을 회향하고 나서’ 이하는 행에 의거해서 원사(願事)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불괴이기 때문에 3회향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고, 둘은 불괴이기 때문에 3회향인 것이니,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둘째,9) 중생에 회향하는 등의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실제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두 회향을 가려내는 것이며, 둘째 ‘평등을 관찰한다’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항상 모든 부처님을 위해서’ 이하는 공(功)이 성념(聖念)에 감응하는 것이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은 내용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행의 체(體)를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마하살이 이처럼’ 이하는 중생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구경(究竟)에 청정하여’ 이하는 보리에 회향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평등을 얻는다’ 이하는 실제의 경문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보살은 이렇게 행하고’ 이하는 뛰어나고 미묘함을 통틀어서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긴 행이며, 다음은 게송으로서 50게송이 있는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21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중생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보리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11게송은 실제의 경문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14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 등을 읊은 것이다.
셋째,10) 일체의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고,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함이고,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회향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동등하기 때문에 세 종류의 회향을 성취하는 것이며, 둘은 먼저 3회향에 응하게 되기 때문에 동등함을 얻는 것이니, 준거할 수 있다.
둘째,11) ‘이 보살이 이 같은 즐거움을 얻을 때’ 이하는 불보살과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인데,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을 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보살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고, 넷째 ‘보살이 섭수해서 취하여 행하되 평등하게 행하고’ 이하는 의식(儀式)을 밝힌 것이다. 보살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셋째의 중생에게 회향하는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의식에 회향하는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악(惡)을 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선(善)을 낳는 것이다.
셋째 ‘보살이 만약 집에 있을 때라면’ 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분제를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의 ‘이처럼 보살이 지금 모여서’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집에 있으면서 중생을 섭수하여 회향하는 것이며, 둘째 ‘보살이 이렇게 생각하고 나아가 개[小犬]에 이르기까지’ 이하는 대비가 깊고 중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연(緣)을 대해서 섭수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행을 이룸에 틈이 없는 것이 곧 지(智)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것임을 밝힌 것이며, 네 번째는 매듭 지음이다. 둘째의 깊고 중후한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고통을 여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니, 알 수 있다.
넷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가령 저’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인데,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두 회향을 거듭 든 것이고, 둘째 ‘그러나 집착하는 바가 없다’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한 것이며, 셋째 ‘마하살’ 이하는 부처님의 회향과 동등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실제에 올바로 회향한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관지(觀智)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해서 회향하는 것이며, 둘째 ‘항상 보문(普門)을 즐겨 습행(習行)하였다’ 이하는 관지에서 나옴으로써 회향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의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 중에서 첫째는 앞의 행체(行體)를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의 ‘제1의 회향’ 이하는 통틀어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인데 48게송이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34게송은 부처님과 중생 등에 회향하는 경문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덟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음이다.
넷째,12) 일체의 처소라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고, 셋째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덕을 찬탄함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은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이 같은 장엄’ 이하는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보살은 이렇게 선근을 회향하되 있는 바가 없음을 요달하여’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 같은 선근의 회향으로’ 이하는 덕용(德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체(體)는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밝힌 것인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법이고, 둘은 비유이며, 셋은 합(合)이고, 넷은 성취한 바를 변별한 것이다. 여기에 세 구가 있으니, 법유(法喩)와 합유(合喩)가 모든 천(天)과 같다는 것은 제일의천(第一義天)이며,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일체를 수순하기 때문에 3회향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3회향을 수순하기 때문에 일체의 처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둘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행상(行相)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의거하는 방토(方土)와 부처님을 밝힌 것이며, 두 번째 ‘보살이 모든 여래에게’ 이하는 행상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경계를 대해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곧 둘이 되는 것이니, 앞은 경계를 대해서 마음을 밝힌 것이요, 다음은 마음의 덕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경계를 대해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니, 곧 다시 둘이 될 뿐이다. ‘이 같은 장엄’ 이하는 중생에게 회향하는 경문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理)와 사(事)의 두 문을 열어서 종지를 세우는 것이며, 두 번째 ‘일체 등으로 하여금’ 이하는 일체의 처소에 이름을 성취하게 된 까닭을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인데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경문이 있으니, 알 수 있다.
셋째,13) 실제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행체(行體)와 두 회향을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의 ‘있는 바가 없음을 요달한다’ 이하는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며, 세 번째 ‘이와 같이 보살은 즐겨 관찰하고’ 이하는 회향이 성취하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다. 올바른 실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관지(觀智)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다음의 ‘이처럼 보살은 원만하게’ 이하는 관지에서 나옴을 말한 것이다. 일체 법중(法衆)의 인연지(因緣地)란 것은 인연에 의거해서 일체법을 알아 증득하기 때문이다.
넷째, 총체적으로 찬탄해서 매듭 지음 중에서 처음은 행의 체를 매듭 지은 것인데, ‘부처님의 자재로움을 얻는다’ 이하는 보리를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으로 중생을 교화함은 중생을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의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실제를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인데 22게송이 있다. 처음의 여덟 게송은 행의 체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보리와 중생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다섯째,14) 다함 없는 공덕장이란 것은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다함 없음을 낳은 것이고, 두 번째는 성취한 것이며, 세 번째는 자체(自體)이다. 이 세 가지로써 준거하면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변별한 것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의 모든 선근이 다’ 이하는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고, 넷째 ‘보살이 이 같은 선근으로’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행의 체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인데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참(懺)이고, 둘은 권하여 청한[勸請] 것이며, 셋은 수희(隨喜)이고, 넷은 회향이다. 수희에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불이고, 둘은 설법이며, 셋은 열반이고, 넷은 유통 등이다.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고, 둘째는 권청해서 수희하는 회향이다. 이 세 가지 뜻은 유위의 덕의 의분(義分)이 서로 교차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동일한 처소에서 합쳐서 설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다. 개별적인 것에서 수희의 네 가지 뜻에 의지하면 곧 네 단락이 된다.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행이 3회향을 수순하게 되기 때문에 무진장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 다함 없음을 성취하게 되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니, 이는 준거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땅을 장엄한 것이고, 둘째는 성취한 사람을 장엄한 것이다. 땅을 장엄하는 것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세계의 땅을 성취하는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뛰어난 선근을 닦아서’ 이하는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며, 세 번째 ‘저 모든 세계 속에서’ 이하는 삼세의 장엄이고, 네 번째 ‘마치 하나의 세계와 같아서’ 이하는 구경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두 번째의 ‘보살이 다시 이와 같이’ 이하는 사람을 장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한 것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변별함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이고, 두 번째 ‘이 모든 보살’ 이하는 간략한 도구로 덕을 나타낸 것이며, 세 번째 ‘성취’ 이하는 개별적으로 덕을 나타낸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네 번째 ‘성취 등’ 이하는 매듭 지음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가령 하나의 불찰(佛刹)’ 이하는 간략함을 매듭 지음으로써 자세함을 나타낸 것이니, 알 수 있다.
둘째,15)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계의 방편으로 두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 ‘이렇게 보살은 선근을’ 이하는 방편의 분제를 변별한 것이다.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회향으로 살바야제(薩婆若際)에 취향함을 거듭 든 것이며, 둘째 ‘보살이 이렇게 행하고’ 이하는 개별적으로 실제에 회향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관지(觀智)에 들어감으로써 회향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며, 두 번째 ‘보살은 이렇게 일으키고’ 이하는 관지에서 나온 회향이다.
‘생사가 섞여 어지럽지 않고 열반은 적정(寂靜)이 아니라는 것’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파상(破相)에 나아가는 것이니, 생사의 체(體)가 공(空)하기 때문에 섞여 어지럽지 않고, 열반의 체가 여(如)이기 때문에 적정이 아니다. 둘째는 적용(寂用)의 이해이니, 생사의 체가 고요하기 때문에 섞여 어지럽지 않다. 무엇을 체(體)라 하는가? 비근하게는 공(空)이 그것이라 설하고, 깊게는 불공(不空)의 여래장이 그것이다. 대열반이 능히 대의(大義)를 건립하고, 묘용(妙用)이 무성히 흥기해서 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에 적정이 아니다. 지금은 나중의 해석에 의거한다. 이 두 부처님의 경계와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의 도(道)를 이름하여 경계의 도라 하니, 따로 생사가 없기 때문에 타자의 지음[他作]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의 체(體)가 정해진 상[定相]이 없기 때문에 무법(無法)이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성인이 똑같이 의지해서 명칭이 동지(同止)가 되니, 저 뜻은 앞서의 해석과 같다.
넷째,16)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경문을 매듭 지음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의 ‘보살이 처음으로 발해서’ 이하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앞의 행체(行體)를 거듭 들어서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함을 맺어 이룬 것이다. 두 번째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앞의 중생에게 회향함을 거듭 들어서 실제를 맺어 이룬 것이다. 세 번째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눈은 끝내[菩薩如是迴向眼終]’ 이하는 얻은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며, 네 번째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이하는 행의 덕이 뛰어나고 미묘한 것이다. 네 번째의 덕용(德用)을 찬탄한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數)를 든 것이고, 둘째는 해석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임을 알 수 있다.
게송의 내용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의 게송에는 50게송이 있다. 처음의 18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4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12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여섯째,17) 일체의 견고한 선근을 수순하여 회향하는 것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나중의 ‘이 명칭’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덕용을 찬탄한 것이고, 다섯째는 게송을 설한 것이다.
두 번째인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문[施門] 중에서 행체(行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의 선근 회향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보살마하살이 이 선근으로써 회향할 때’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일체의 선근으로써 이같이 회향해서’ 이하는 덕용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윤왕(輪王)의 지위를 버림을 들어서 행덕(行德)의 체(體)를 성취함을 찬탄한 것이니,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만약 음식을 보시하면’ 이하는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이니,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한 모든 물건의 명칭을 간략히 열거한 것이고, 둘째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수행의 뜻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만약 마실 것을 보시할 때라면’ 이하는 보시의 의칙(儀則)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혹 넷ㆍ다섯ㆍ여섯은 정해지지 않았다. 넷이라는 것은 첫 번째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소유의 사(事)이며, 세 번째는 회향이고, 네 번째는 앞을 매듭 지음이다. 다섯이라는 것은 제3의 밭을 증장함이며, 여섯이란 것은 제3의 사(事)의 덕을 찬탄함을 증장한 것이니, 또한 보시의 마음을 성취한 것이다. 넷째 ‘이 보살이 이 같은 등의 한량없음으로써’ 이하는 이익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의 보시한 것의 명칭을 열거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60장문(章門)에서 보시한 재물을 열거한 것이고, 두 번째 ‘마음이 탐착하지 않았다’ 이하는 보시하는 마음의 물들지 않음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만약 모든 중생이’ 이하는 보시하는 밭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의 뜻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 회향의 뜻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하고 나서’ 이하는 성취한 바를 회향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의 자세한 경문은 비록 120사(事)가 있더라도 모두 60문(門)에서 섭수하지 않음이 없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3회향을 수순하기 때문에 견고함을 수순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견고함을 수순하기 때문에 3회향을 얻는 것이니, 이는 준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지금 여기서 버리는 바는 모두 세 가지 뜻을 통틀은 것이니, 첫째는 분단(分段)의 의정(依正)이며, 둘째는 변화의 의정이고, 셋째는 변역(變易)의 의정이다. 이는 준거해 생각해서 섭수할 수 있는 것이니, 지(地) 이전에 5생신(生身)을 갖추기 때문이다.
넷째, 윤승(輪乘)이란 8난(難)을 옮겨 제도하는 것이다. 첫째는 정국(正國)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3악도(惡道)ㆍ북단월(北單越) 및 장수천(長壽天)을 제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사(正士)가 부처님의 전후를 제도하는 것이며, 셋째는 본래의 공덕이 모든 근(根)이 갖추어지지 않음을 제도하는 것이며, 넷째는 평등원(平等願)이 세간의 지혜와 변재와 총명을 제도하는 것이다. 또 정국륜(正國輪)이란 진여의 법성토(法性土)이며, 정사륜(正士輪)에 의거한다는 것은 반야의 정관(正觀)이며, 본공덕륜(本功德輪)이란 보시 등의 5바라밀이며, 평등원륜(平等願輪)이란 보살의 열 가지 다함 없는 대원(大願)이니, 보살의 청정한 행은 이로 말미암아서 만족한다. 또 사(肆)라는 글자는 방자하다는 것이다.
넷째의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것 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익을 찬탄하는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 때’ 이하는 경사로 이익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경문에 각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구경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앞의 행체(行體)를 거듭 든 것이고, 둘째 ‘몸[身]ㆍ입[口]ㆍ뜻[意]의 업에서 속박과 집착이 없다’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다. 이 올바른 회향 중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지(觀智)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해서 행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안에도 집착하지 않고’ 이하는 여의는 바를 밝힌 것이며, 셋째 ‘보살이 만약 이 법 중에서’ 이하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왜냐하면’ 이하는 해석해 이룬 것이며, 다섯째 ‘보살이 이와 같이 법을 보아서’ 이하는 시비(是非)를 설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이 경문에 아홉 구가 있는데, 상생(相生)함을 알 수 있다. 앞의 경문에서 선두(禪頭)를 말한 것은 중생에게 형(形)이 있고 체(體)가 있는 것을 이름하여 선두라 한 것인데, 지금은 이런 상념이 없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음 중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보살 등은 체용(體用)을 총체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둘째 ‘회향이란 것은 무슨 뜻인가?’ 이하는 회향의 명칭과 뜻을 매듭 지은 것이며, 셋째 ‘보살이 만약 능히 이것으로써’ 이하는 회향의 덕을 행함을 찬탄한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하고 나서’ 이하는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82게송이 있다. 처음의 48게송은 행의 체와 두 가지 회향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보살이 관하기를’ 이하의 32게송은 실제의 경문을 읊은 것이며, 나중의 두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보리를 요달해서 연기를 따르면서도 법의 참성품에 대해 파괴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용(用)이 체(體)를 어기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18) 평등한 마음[等心]으로 일체 중생을 수순하는 것에서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덕용(德用)을 찬탄함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둘째인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의 때를 여읜[離垢] 청정’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선근을 수행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해서’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인 체(體)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이 같은 등을 행해서’ 이하는 행의 용(用)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악을 여의는 것이고, 둘은 덕을 낳는 것이다. 세 번째 ‘천(天)에 나기를 구하지 않는다’ 이하는 수행의 뜻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다른 중생이 지은 바의 선근을 따르는 것이니, 선(善)을 거스르지 않고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둘은 보살 스스로의 선근이 중생 근성(根性)의 3품을 따르는 것이니, 수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둘째인 중생과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행을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써’ 이하는 회향을 올바로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분(自分)이고, 둘째 ‘평등을 닦아서 익힌다’ 이하는 증상(增上)의 닦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의거하는 바의 연(緣)을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선근이다. 두 번째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연에 의거해서 마음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니, 이 중에서 세 가지로 나눈 것은 알 수 있다. 세 번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마음에 갖춘 덕을 나타낸 것이며, 네 번째는 시분(時分)을 변별한 것이고, 다섯 번째 ‘다시 또 보살이’ 이하는 보시한 물건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둘째19)의 증상의 보시[增上施] 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보시하는 마음을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마음에 갖춘 덕을 밝힌 것이다.
둘째20)의 올바른 회향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올바른 회향이고, 두 번째 ‘이처럼 보살은’ 이하는 덕의 자재로움을 매듭 지은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분(自分)이고, 다음의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승진이니, 알 수 있다.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이익을 거듭 든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 같은 등’ 이하는 실제를 올바르게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때를 여의는[離垢] 것이고, 두 번째는 얻은 바를 밝히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무등(無等)을 밝히는 것이며, 네 번째는 과(果)를 대해서 양(量)을 헤아리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다섯 번째는 덕을 갖춤을 맺어 이룬 것이다. 둘째는 법계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인데, 경문의 상(相)에 드러난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음의 경문은 알 수 있다.
다섯째,21)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42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17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일곱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16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이다.
여덟째,22) 여상(如相)이란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이익을 변별함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둘째의 답 중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행의 체이고, 두 번째 ‘보살이 이로써’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세 번째 ‘보살은 선근을 이렇게’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네 번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 번째인 체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근의 체를 모은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도움을 섭수해서 올바른 행을 성취하는 것이니, 또한 인(因)을 섭수해서 과(果)를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섭수하는 것이고 다음은 관상(觀相)을 변별하는 것이다. 세 번째 ‘보살이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3업의 대용(大用)이 자재로움을 성취한 것이다. 이 대용의 내용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이 나아갈 바를 밝힌 것이니, 곧 간략함[略]이다. 3업은 곧 셋이 되니, 처음의 한 구는 신(身)이고, 다음의 한 구는 구(口)이고, 다음으로 이하는 모두 의(意)일 뿐이다. 둘째 ‘하나의 부처님 세계’ 이하는 간략함을 매듭 지어 자세함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이 선근이 집의 상[家相]과 같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相) 등의 체(體)가 걸림이 없기 때문에 셋에 회향하는 것이다.
둘째,23)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회향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은 이렇게 회향하고 닦는다’ 이하는 행의 광대함과 구경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다시 또 보살’ 이하는 사(事)를 대해서 행의(行儀)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 있는 두 가지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보살은 선근을 이렇게’ 이하는 수행의 뜻을 변별한 것이며, 다섯 번째 ‘이처럼 보살이 길이 양육해서’ 이하는 공력(功力)의 성취한 바를 회향한 것이다.
셋째24)는 실제의 경문이니, 이 중에서 회향과 상하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모든 회향은 상(相)을 섭수해서 체(體)를 따르는 것인데 이 중에서는 상(相)을 섭수해서 상(相)을 따르는 것이니, 이것은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회향의 체용(體用)을 밝힌 것이며, 두 번째 ‘회향을 잘 이해한다’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성취하는 까닭이며, 세 번째 ‘여여(如如)’ 이하는 법을 기준으로 해서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첫 번째 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여래의 도(道)를 따른다’ 이하는 용(用)을 밝힌 것이며, 셋째 ‘적멸을 관찰한다’ 이하는 앞의 둘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두 번째의 뛰어난 용의 까닭 중에서 처음은 뜻을 든 것이고, 다음의 ‘이처럼 보살’ 이하는 해석이며, 셋째 ‘법문과 같이[如法門]’ 이하는 법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세 번째의 자세히 변별함 중에는 1백 구(句)의 경문이 있다. 처음의 한 구인 궤칙(軌則)인 바 이하는 모든 구가 회향에 의지하는 것이다. 또 자세히 변별한 경문 속에는 세 종류의 언설이 있다. 첫째는 집착 없음을 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시설함을 취하는 것이며, 셋째는 언설의 가르침의 일[敎事]을 올바로 취하는 것이다. 경문 중에서 세 종류의 시(時)라는 것은 첫째는 오직 법을 가려 시를 취한 것이고, 둘째는 시(時)를 가려내서 법을 논하는 것이며, 셋째는 시(時)와 법(法)을 쌍으로 논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경문의 차례에 의거한 것이니, 조사하면 곧 말미암는 바를 알 것이다.
‘과거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동일한 소멸이 아니라는 것이며, ‘미래가 아니기 때문에’라는 것은 현재의 뒤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전후의 2세(世)와 스스로의 동류법(同類法)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또한 외부의 사람이 보는 것과 반대이니,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음 중에서 처음의 세 구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모든 부처님을 동등하게 관(觀)함에 둘이 있지 않다’ 이하는 실제의 덕용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넷째25)의 이익을 성취하는 경문은 두 가지로 나뉘니, 처음은 덕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니, 알 수 있다.
다섯째,26) 게송을 거듭 읊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29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아홉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14게송은 이용(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아홉째27)는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의 마음이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변별한 것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두 번째,28)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마하살이 속박과 집착이 없음으로써’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마하살이 이 같은 속박 없음으로써’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며, 넷째 ‘마하살이 이 같이 회향할 때’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인 체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선(善)을 경시하지 않음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항상 즐겁게 섭수하고 받아들여서’ 이하는 돈(頓)을 경시하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행의 섭수에서 자재로움을 성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선근에 속박과 집착이 없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근으로 세 처소를 수순하기 때문에 집착이 없는 것이다.
둘째29)인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현의 3업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이 생(生)에서부터 미래제(未來際)의 생이 다하도록’ 이하는 개별적인 사(事)를 자세히 기준으로 해서 자재로움을 성취함을 나타낸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는 신(身)이며, 세 번째는 구(口)이고, 네 번째는 의(意)이니, 알 수 있다. 둘째의 자세히 나타낸 내용에는 3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과의 지위를 얻은 것이고, 두 번째는 방편을 얻은 것이며, 세 번째는 신업(身業)을 얻은 것이고, 네 번째는 구업(口業)을 얻은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의업(意業)을 얻은 것이고, 여섯 번째는 근(根)을 성취한 것이며, 일곱 번째는 신력(神力)을 얻은 것이고, 여덟 번째는 불찰(佛刹)에서 자재한 것이며, 아홉 번째는 집을 얻은 것이고, 열 번째는 인다라의 지(智)를 얻은 것이며, 열한 번째는 시(時)의 자재로움을 얻은 것이고, 열두 번째는 신(身)을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며, 열세 번째는 과위(果位)의 자재로움에 들어가는 것이고, 열네 번째는 세계의 자재로움에 들어가는 것이며, 열다섯 번째는 상(想)을 아는 것이고, 열여섯 번째는 마음을 아는 것이다. 이들 중에 각기 두 가지 경문이 있으니, 처음은 아는 것이고, 다음은 덕을 앎[知德]을 찬탄한 것이다. 열일곱 번째는 처소를 아는 것이고, 열여덟 번째는 업을 아는 것이며, 열아홉 번째는 법을 아는 것이고, 스무 번째는 성(聲)을 아는 것이며, 스물한 번째는 자재로움을 설하는 것이고, 스물두 번째는 근(根)의 자재로움을 아는 것이고, 스물세 번째는 지혜의 방편이 미세(微細)를 아는 것이다. 이 경문들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앞과 같음은 알 수 있다. 스물네 번째는 행의 방편이 미세를 아는 것이고, 스물다섯 번째는 해위(解位)에 들어가서 보살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스물여섯 번째는 초지(初地)의 미세를 아는 것이고, 스물일곱 번째는 중생 성품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스물여덟 번째는 세계의 미세를 아는 것이고, 스물아홉 번째는 법계지(法界智)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서른 번째는 겁지(劫智)의 미세를 아는 것이고, 서른한 번째는 법지(法智)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서른두 번째는 출생잡법(出生雜法)의 미세를 아는 것이다.
위의 미세를 아는 것 중에서 지(智)를 알면서도 법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지(智)가 능히 법을 성취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30)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觀)에 들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관에서 나옴을 기준으로 하였으니, 알 수 있다.
넷째,31)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음이다. 만족(滿足) 등이란 것은 인과의 행을 만족한 것이니, 지위를 기준으로 하면 이것과 같으나 만약 행을 기준으로 한다면 곧 일체에 통할 뿐이다.
게송의 경문32)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에는 102게송이 있다. 처음의 여섯 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70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이 같은 일체의 모든 법왕’ 이하의 18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덟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열째,33) 법계의 한량없음이니, 이 경문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한 것이며, 다섯째는 증득하여 성취한 것이며, 여섯째는 게송이니, 또한 이 두 단락은 회상의 첫 과(科)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인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룬 바 행의 체(體)이고, 둘째 ‘다시 또 보살이 법시(法施)로써’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다시 또 보살이 법계에 안주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이하는 뛰어난 이익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문】이 열 번째의 회향은 앞의 여덟 번째ㆍ아홉 번째와 어떻게 다른가?
【답】여덟 번째는 이(理)에 나아가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닦아서 성취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열 번째는 둘 다 통틀어 포함해서 지은 바의 사(事)에 미친 것이다.
첫째34)의 체(體)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장애를 제거해서 덕을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수기를 받아서 지위를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는 이익의 용(用)을 밝힌 것이다. 다음의 ‘보살이 법시(法施)를 행해서’ 이하는 수행해서 나아갈 바인 것이다. 세 번째로 ‘보살이 저 선근에서’ 이하는 행의 광대함을 변별한 것이니, 성취한 바의 자재로움은 복과 지혜의 장엄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행체(行體)의 회향이 법계에 의거함으로써 세 처소에 이른 것이며, 둘째는 있는 바의 행체가 곧 법계이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해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의 광대함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혜의 장엄을 행함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둘째 ‘모든 불보살이 찬탄한 바’ 이하는 장엄의 행을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스스로의 행을 성취하는 까닭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다시 ‘왜냐하면’ 이하는 스스로의 성취가 능히 사물을 이롭게 하는 연유를 해석한 것이다.
둘째,35) 중생 등에 회향하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경함에 틈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3업이 항상 행하기 때문이다. 둘째 ‘보살이 이 법시(法施)로써’ 이하는 3업이 용(用)을 일으킴이 공(空)하지 않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의업(意業)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것이며, 두 번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다 구족하게 해서’ 이하는 구업(口業)이 공(空)하지 않은 것이며, 세 번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법신을 얻게 한다’ 이하는 신업(身業)이 공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의 의업 가운데 10문이 있는데, ‘법을 아는’ 등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자타로 하여금 부처님의 다함 없는 법문을 얻게 한 것인데, 이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종지를 건립한 것이고, 두 번째 ‘이로써[以此]’ 이하는 그 덕용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다 얻는다[悉得]’ 이하는 불법을 얻는 것이다. 네 번째 ‘하나하나에서’ 이하는 자기의 능력을 서술한 것인데, 그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10문을 총체적으로 연 것인데, 이 경문 가운데 10해(海)라는 것에서 첫째는 낳은 법을 이름하여 의상(義相)을 건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증의 상(相)이고, 셋째는 방언(方言)의 어칙(語則)이며, 넷째는 뜻에 대해 명칭을 시설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경문의 가르침이 궤칙을 이루는 것이며, 여섯째는 규칙을 설함이며, 일곱째는 의거하는 바의 문(門)이며, 여덟째는 능히 지(智)에 들어감이고, 아홉째는 경계와 지혜가 자량하여 성취하는 상(相)이고, 열째는 의주(義住)를 세워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보살의 선근이 이처럼’ 이하는 성취하는 바를 밝힌 것이다. 다음으로 자세히 변별하는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36) ‘다시 또 보살’ 이하는 스스로 회향해서 성취한 덕을 밝힌 것이다.
셋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자기와 동등함 등을 얻게 하는 것이다.
넷째 ‘다시 또 보살이 이러한 등으로써’ 이하는 연(緣)이 성품의 덕을 이루는 것이다.
다섯째 ‘다시 또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써’ 이하는 행의 성취로 부처님의 수희(隨喜)를 얻는 것이다.
여섯째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써 이처럼’ 이하는 회향이 의거하는 바를 변별한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과 법계임을 알 수 있다.
일곱째 ‘다시 또 보살’ 이하는 나아가는 바의 뜻을 변별한 것이다.
여덟째 ‘보살마하살’ 이하는 용(用)의 자재로움을 얻는 것이다.
아홉째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 이처럼 회향해서’ 이하는 행으로써 지위[位]를 성취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여읜 바를 밝힌 것이고 다음은 얻은 바를 변별함을 밝혔으니, 알 수 있다.
열째 ‘보살이 이 같은 평등한 마음으로’ 이하는 지위에 의거해서 승진의 행용(行用)을 성취하는 것인데,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행체(行體)에 회향함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회향의 뜻을 밝힌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 경문이 있다. 하나는 자분(自分)이고 둘은 승진이니, 알 수 있다. 세 번째 ‘보살의 선근이 이처럼’ 이하는 여읜 바를 밝힌 것인데,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건립이고, 다음은 따지는 것이며, 셋은 답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보살이 이처럼 회향할 때’ 이하는 행을 일으킨 이익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는 구업이니, 알 수 있다.
세 번째 신업에 나아가면 경문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은 신(身)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신의 덕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신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다. 이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둘째37)의 3업의 용(用)을 일으킴이 공(空)하지 않다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다시 또 보살이 선근을 닦아서’ 이하는 3업을 갖추어서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이처럼 보살이’ 이하는 행의 성취가 공(空)하지 않은 것이다.
첫 번째의 3업을 갖추어 밝힌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보배 장엄을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로 ‘향화(香華) 등을 자세히 설한다’ 이하는 10문의 장엄을 종류별로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양할 바의 경계를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부처님 등이며, 둘째 ‘저 하나하나의 찰(刹)’ 이하는 공양구이며, 셋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간략함으로써 자세함을 제시한 것이며, 넷째 ‘이것이 보살[是爲菩薩]’ 등의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에 있는 공양의 경계 중에서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의(依)과 정(正)의 둘로 나눈다.
둘째의 공양구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1백 구(句)의 개별적인 보배로 공양하는 것이며, 둘째 ‘보배 몸의 장엄’ 이하의 여덟 구는 3업의 행을 밝힌 것이며, 셋째 ‘보안(寶眼)’ 이하는 6근(根)의 묘용이며, 넷째 ‘보배 몸의 업’ 이하는 나중의 세 구로써 3업의 지용(智用)을 성취하는 것이다.
두 번째38)인 3업의 공하지 않은 행의 성취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분(自分)의 행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승분행(勝分行)을 성취하게 한 것이다. 이상은 각기 두 단락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셋째39) ‘다시 또 보살이 법계에 안주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니, 알 수 있다.
넷째,40) 이용(利用)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모든 행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의 ‘법계 등의 한량없는 청정한 몸에 안주해서’ 이하는 행에 의거해 뛰어난 3업을 성취하는 것이다. 대단락의 세 번째가 아래의 매듭 짓는 경문이 되니 알 수 있다.
넷째, 덕을 찬탄한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현의 광대한 온갖 덕을 이미 성취했음을 밝힌 것이고, 둘째 ‘생각생각 중에서’ 이하는 자타의 뛰어난 용이 일체 행의 사(事)를 이미 나누어 성취했음을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을 밝힌 것이다.
이상은 경전에 의거한 것이니, 이는 일승법을 통틀은 것이지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삼승의 지위에 의탁한 법을 밝히는 것은 경전과 같다.
처음의 회향하는 마음 안에 1, 2제(諦)의 정직은 이른바 제일의제(第一義諦)를 학습하여 일체법의 상(相)을 관하는 것이니, 얻을 수 없음과 같기 때문이다.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써 여섯 천인(天人)에게 가르쳐 주고, 머리를 깎고 3보의 옷을 입은 출가한 보살은 일체의 승(僧)ㆍ불(佛)ㆍ법(法)과 함께 하여 둘이 없으니, 제일의 청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회향 안의 제일의지(第一義智)에서 이른바 5신통은 슬기의 성품이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니, 곧 6통(通)으로 관(觀)의 경계를 삼는 것이다.
세 번째의 회향 중에서 남이 없는 슬기[無生慧] 안에는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청정이 있으니, 불ㆍ법ㆍ승의 계(戒) 가운데 신(信)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의 회향 중에선 양(量)이 불력(佛力)과 동일한 것이니, 이른바 세 가지 상(相)은 모든 법이 본래 없기 때문에 가짜로 생(生)이라 이름 붙이고, 이미 있던 것은 도로 무(無)가 되기 때문에 가짜로 멸(滅)이라 이름 붙이며, 공(空)하지 않은 법이 있기 때문에 가짜로 주(住)라 이름 붙인다. 그러므로 일체가 공(空)에 통하여 미치면서도 둘이 아닌 것을 이름하여 세제의 상[世諦相]이라 하니, 공도 공한 일제의 상[一諦相]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의 회향 중에서는 중생의 힘을 잘 계량하는 것이니, 이른바 5음(陰)이다. 색(色)이란 것은 공과 다르나 색이 모여 대색분(大色分)을 이루기 때문에 색상(色相)이 공하고, 찰나찰나가 마음을 이루기 때문에 심상(心相)이 공하다. 수(受)ㆍ상(想)ㆍ행(行)은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하나의 상[一相]은 상이 없기[無相] 때문이다.
여섯 번째의 회향 중에선 부처님의 교화하는 힘이니, 이른바 12입(入)이다. 외부의 6경(境)과 내부의 6근(根)이 식(識)이 들어가는 처소가 되기 때문에 입(入)이라 이름한다. 그 혜관(慧觀)이란 것은 외부에 있지도 않고 내부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으니, 일체법에 자타가 없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의 회향 중에선 걸림 없는 지(智)에 취향하는 것이니, 18불공법(不共法)이 된다. 6경(境)과 6근(根)과 6식(識)이 일합상(一合相)이니, 일체법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덟 번째의 회향 중에선 자연지(自然智)를 수순하는 것이니, 이른바 인과이다. 선악을 이름하여 인(因)이라 하고, 고통과 즐거움을 이름하여 과(果)라 한다. 말미암는 바는 인(因)이 되고, 일어나는 바는 과(果)가 된다. 인과 과는 둘 다 공(空)해서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니, 모두가 일합상이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의 회향 중에선 불ㆍ법ㆍ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2제(諦)가 공(空)한 것이다. 인연이 모이기 때문에 유(有)라 일컫는 것이지 유(有)를 유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무(無)라 일컫는 것이지 무(無)를 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두 상(相)이 없는 것이다.
열 번째의 회향 중에선 자재한 슬기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른바 중도의 제일의제이다. 반야가 중(中)에 처해서 일체법을 요달해서 두 상(相)이 없으니 더욱 증장하여 성지(聖地)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상사제일의제관(相似第一義諦觀)이라 하는데, 진제관(眞諦觀)은 아니다. 초지(初地) 이상이 바로 진관(眞觀)이니, 이는 삼승의 지위에 의탁한 설이다. 그것을 알게 된 까닭은 경 속에서 이전의 30심(心)이 모두 범부의 법이지 성위(聖位)가 아님을 밝혔기 때문이다. 초지 이상은 경에선 본래 삼승에 통함이 없이 그 교의를 세웠는데 경문의 상(相)이 다분히 동일하기 때문에 굳이 요간(料簡)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대지가 진동한다’ 등의 이하는 다섯 번째41)의 실(實)을 증명해서 성취함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등은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시방의 보살이 다 운집했다고 말한 것은 두 번째의 모든 성인이 증득하여 성취한 것과 믿음을 권해서 유통함을 밝힌 것이다. 두 경문에서도 각기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상(相)을 변별한 것과 나머지 방향을 맺어 통한 것이다.
여섯째,42) 게송에서 처음은 뜻이고 나중은 게송이다. 게송의 경문에는 94게송이 있다. 처음의 14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다. ‘무상(無相)의 미묘한 지혜가 법의 진상(眞相)을 관한다’는 것은 무용(無用)이 체에 의지한 것이니, 세간의 행을 궁진하기 때문에 가장 묘한 것이다. 다음의 ‘보살의 법시(法施)’ 이하의 68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비유하면 여여한[譬如如]’ 이하의 두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이와 같이 특출하고 미묘한[如是殊妙]’ 이하의 10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보리와 중생의 내용에 나아가면 처음의 여덟 게송은 3업이 지행(智行)을 따르는 것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시방의 일체’ 이하의 20게송은 신업의 공하지 않음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공경’ 이하의 22게송은 구업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중생의 수와 같은[衆生數等]’ 이하의 18게송은 의업 등을 읊은 것이다. 이 회상은 위의 회향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047_0018_a_01L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上終南山至相寺沙門 智儼 述第三會佛昇須彌頂品第九四門同前一釋名者佛者化主昇上進也須彌者妙高山頂者居勝尊上也何故此下四會在天說者德行位成除障淨勝故在天說耳此荅前十住位問也二來意何故來者信故解也此初辨會來意何故會來旣報體成已次須起化赴機故來也因此略料簡教興所表今諸會但不捨離本處卽表行報體堅固不移也而往諸會#卽表起用隨機此釋約修行體若望生解起信門卽顯行位增微耳又解文約佛起用赴機以解者卽善知識力也若約分位等解者卽約自修行解也可思准之又此會已下四會竝位相增與前信行少別於三乘一乘法義亦須交絡思准之餘會竝同此意品來者前說信法已辨赴後說所依處耳三宗者約會分別有二一約人二約法人有化主及助化各有體德用但局此會約法者謂十解法後當辨耳初品宗者若依利他時現處及供養卽顯法緣若約自利時此卽機感相應明機緣體用成也四辨文此會有六品分三初二品明方便發起次二品明正位相次二品明後成滿足行相初二品分二初起用隨物二帝釋遙見下辨機感相應前文有二初辨依正二融卽顯前體淨二復顯後用淨自在無㝵成事之本也諸會有文竝同此釋耳但進勝異也此文何故不在初會後乃在後會前若初會後卽但顯說法利益義明與後化用體義不顯故在後會前辨耳餘會同此何故不在第一會後料簡爲前會兼餘義意在彼釋後第六會亦顯別有餘義意耳體中身口意三也二爾時尊下彰用應物卽用淨也餘相可知第二相應文有五序一住處序以動靜無㝵無處不至爲此說法德二請佛序三集衆序四放光序五讚歎序若通下住品卽八序謂入定加勸及起定也又約品分文亦好也初住處序及請佛序有六一見佛來用從實起卽發心緣二卽於妙勝殿下#明天主嚴供養故請佛具顯從解成法供養行卽成根也三世尊卽受請赴感施化四釋音寂然表息亂應眞也五說偈下表從定發慧六佛昇座下正明化用事成相嚴具文分二初嚴具卽成根也二請卽成欲也初嚴中有三初摠次嚴座具三結二爾時帝釋下明其請佛卽表欲也偈文有三一憶本行二偈讚三結通十方六化成中有三初處座二辨用相三等通餘方也菩薩雲集品第十四門同上一釋名菩薩者是人雲者潤益故又齗齶貌也集者聚集妙勝等者別處也二來意者何故來辨處已次明集衆三集衆歎德順法爲宗四辨文者此文有三序#一集衆二放光三歎佛今此下三會集何故不在初品何故一一方各有十又放光下何以不漸集衆荅前會位相未成但顯行圓故在初品說今此行位俱成同彰行位利潤益故共在此品所以一一方具十者欲顯解相分明圓融數等一卽一切方也所以此放光下不漸集衆者欲顯行位圓成無有增減之相故也於中別有增減義用上成卽得也上下應可准思之上第一會釋集衆放光者亦是准初爲後則耳初集衆序內有二初指方辨數此中一一方者或通上會或不通上信行又不成位相爲此不通下三會位顯故通義也二其世下列名耳名有三初明十方佛土菩薩三種世間卽爲二也二此諸佛神力下明集諸菩薩有三淨行雲集依方坐可知三如此世界下結類十方成法界會同月者依月起光故淸涼故解法准之菩薩同名慧者之始故足指放光者表立解種不退故有二可知讚歎序文有十菩薩相生次第歎解相明白耳可知一法慧偈有二初長行生起二正偈頌下竝准之文有二初七牒衆集明是佛力所成卽結前品中六段義次三明勝行者得見佛餘莫知者卽通讚前難下諸人偈竝約理成也二一切慧偈有六初三明謂見之徒不見眞佛次三顯解無生法身常現次一明取著者失次一明慧解者益次一明解佛因緣成卽離癡惑次一推功在本三勝慧偈有六初三明妄取者失次一明有解者德次一約法辨觀益次三推功在佛次一能淨慧者見法身次一推功在本四功德慧偈有五四明迷者失次一示勝方便次三明得法性益次一歎佛利生方便次一推功在本五精進慧偈有三一彰失次一辨德次八廣辨觀成獲益相八文內前四無相生後四眞實性也六善慧偈有四初二明有解能度自他次五明無生故應眞實性次一半歎解勝能次一半推功在本七智慧偈有三初一明因教成正解次六明迷教理者失次三重成解德八眞實慧偈有五初二挍量勝劣得失次二辨所觀境次一擧益勸學次一釋知者名次四示其觀儀九無上慧偈有四初一釋人名次六歎自利次二歎利他德一推功在本十堅固慧偈有四初四歎佛是眞歸二擧德勸依次二引自勸物令入次二擧勝人顯德無盡以勸依也十住品第十一分別有五一釋十住名卽辨來意十者數住者不退位也何故來正說故二明所治是前百障應位斷故若三乘熟教所斷外道我執三所得光增定及頂善四所成卽十解成卽是三乘熟教說卽此品宗五釋文自下第三品分爲正宗此中二品卽爲二初通道俗二梵行品是出家別行法初品若義分文此初有三序光師云有八序爲三初品二合名住處序品三合名集衆序此品三合名起說序又依地品此下三會各有六分初名三昧分二加分三起分四本五說分六利益分分齊至文應知又此文有二明三昧序次告衆菩薩言下正宗三昧序加意上已定名名無量方便定方便是智定成勝智知法故所以法慧菩薩入定及說者如下論應知二加序有初辨同加此有三一明現身及顯同名卽爲二也二同讚亦有二可知三釋得所以有四可知二欲令汝廣說下明加所爲有十一句一摠九別後一結成位也第二九句內初五自分次四勝進耳三善男子下辨加相謂三業也加相文有三初善男子下辨口加二如來卽與下明意加三各申下身業加云何意加與法同緣資故也意加文有二初列十智次何以故下釋所以也問何故與智者爲智解法故也起有四一定事訖二得勝力三說時至四定無言說故也第二正說文有四初歎種性深勝幷列十名卽本分二何者下廣解住相三爾時佛神力故下明地動實證成四以偈重頌初文有二初摠歎種性義卽性習二種性體也二菩薩十住下列十解相明佛同說卽性習二種種性相也此約剋性爲語若就分位卽有六種性一習種性當十解位二性種性當十三道種性當十迴向四聖種性當十地五等覺性當十地終心六妙覺性當佛地復名六堅亦名堅信亦名堅法亦名堅修亦名堅得亦名堅頂亦名堅覺亦名六忍信忍法忍修忍正忍無垢忍一切智忍名六慧聞慧思慧修慧無相慧照慧寂照慧亦名六住觀行觀向觀地觀無相觀一切種智觀此約三寄位語耳此中十解十行中六決定內但無大善決定十迴向有觀相善大善及不怯弱餘三竝無所以有大善及無餘三者迴向是方便事中顯成故大善顯也餘三無者爲義隱故不說相等可知十解十行等何故無大善解行自行義顯故無餘者思之可知初體文有二初摠告二別明六決定也第二解相文有三初擧數引證立宗二別列有二可知三引證結也十解名者一發心上期二治地滅惑生自他利三修行定成前二耳四生貴行成生佛家五方便具足自他行滿六正心住得緣起正解七不退理量止觀雙行八童眞無生妙解以立身童無染九法王子善施佛教故十灌頂位滿受職相應故也此卽是下諸位行相也第二廣辨文一一住皆四段一問列名二辨解相有三初摠次釋三結明仰修勝進助行亦三立釋結下竝同此亦可當位所習四何以故下釋學意唯初及十有六句一牒寄二辨發心緣有六句三辨行體此有三句一體發有四緣四因四力四緣者一見聞佛菩薩神通大二聞法三末世護法四見苦衆生故發心四因者一種性因緣二佛等爲善友三起大悲心四不畏衆四力者自力他力因力方便力如地持說也二所三不退此有二義若約一乘通教入十住位卽四退等皆無二若依三乘十地已來有念退地前有行退位退不進退亦十信已前有實退已後有示現退此約位語四明所得五明學六辨前學意又此下諸文竝有三一問二荅三辨成行勝能也此文有三初責次辨意三明所成德也諸位竝同此亦可通釋卽自開解者位通因果其義有三一不由他小教等解二不由他教境成三不由他性外別集也後文所爲各同異思之可知耳二治地內初十同二地十種集後十同集果中令諸衆生捨倒住正見等三修行內前十同三地護煩惱行後十同護小乘四生貴初十相同四地十種法智後十同修道品等五具足方便內初十同五地大慈等觀後十同大悲觀深重苦六正心內初十同六地十平等中第十句後十同前九平等也七不退內初十同七地十種樂無作對治後十同彼障對治亦同雙行分退有四種一位二行三念四應得不得此中無四退等八童眞內十同八地勝行分何等身乃至供養佛等後十同彼三世間自在九法王子內初十同九地智成就入行後十同彼口業法師成就等文十灌頂有五初列二廣釋三顯勝四進學五除伏疑初十同十地三昧分次十同彼受位分三十句同彼大盡分卽入住出也上來依一乘生信爲言若約三乘寄位別觀時如經初住中厚集一切善根成四弘誓未度苦令度未解集令解未安道令安未得滅令得滅第二住中修習無量善行謂四念觀身受心法此四皆空第三住中善集佛道法謂觀十一切入四大四色空處識處皆如實相故第四住中一切佛前受法而行八勝處觀內實#五陰中廣相略相二勝處外假衆生法中廣相略相二勝處四大法廣略四勝處如是觀一法空無相故第五住中修諸淸白法謂八大人覺少知足寂靜精進正念正定正慧不諍論順一切故第六住中爲諸佛所護八解脫觀聞慧得內假外假二相不可得故一解脫思慧內五法外一切法不可得故二解脫修慧六觀具足色界五陰空三解四空五陰及滅定觀皆不可得故五解脫如相故第七住中廣正法謂六和敬三業同戒同見同行同此法和必竟空故#住不退位第八住中信喜大法謂三空一切因故無作一切果故無相因空果空空復空故空空如是法如虛空故第九住中住四等法謂化衆生教四諦法三界非樂爲苦無明習因受生無窮三空道品無爲寂滅四諦無二一合相故卽是衆生緣法緣無緣也第十住中好求佛功德謂六佛法僧戒捨天得一切佛功德念念入不幻三昧常前修故此約三乘寄位觀也第三顯實證成文有二初動地顯實二復云佛神力下菩薩證成前文有三一動地二雨花三等餘十方世界第二文有二初菩薩證成二結會平等廣周法界前文有四句可知二結會中有二可知第四重頌文有二百三偈有二初一百八十五頌十解相二如是十住諸菩薩下有十八摠頌十住結歎勸修初正頌文有十初九十頌初住次第二治地下頌第二住餘竝可知初文有三初對三十五事廣成發心體二菩薩如是發心已#下辨初住用三是說菩薩下結也治地內初四頌解八頌所學行修行前四頌解後六所學行生貴前六後六行方便具足前六解後三行正心前八解二行#不退前四解後四行童眞前六解後四行法王子前四解後二行灌頂前十德體次二頌住位相四頌後方便行第二結歎文有二初十四摠頌十住難知次四結說無盡也梵行品第十二四門同上一釋名者行中上淨故名梵行也要論梵有二謂報及方便始修爲淨成就爲梵若據報者天爲淨色天爲梵若約自利利他自利爲淨利他爲梵涅槃經云三學爲勝聖行四無量爲梵也二明來意何以來其進道多方便從相分二謂一緇一素素從利他無方利物故不住分齊行緇從自利故不可輕壞出世容儀故唯成內觀也故地品辨出家人唯成三昧問前諸會何不亦說此品荅有二意#一此中行二以始通終故也何不十信明此品荅此正宗彰以法成人不以人成法何名人成法者法無高下隨人器物顯法精麤故十信法解未明不可以法成人十信解劣故但隨信根定法若語形局卽諸見更增不成正信也梵行發心明何故不通下三會理有以此類彼耳三辨宗者無念理觀當是自體果涅槃圓寂行也卽爲此品宗又問此中始明十住初發心因何故乃言是果行也此明自體眞發心故契於後際體包無外也又是自體發中果無戲論行耳故品下結云初發心時便成正覺具足慧身不由他悟四釋文者此文有二後荅所以正念天子問者表定顯理故又正念不妄淨報堪受也問文有四初摠問次牒事三自分成出家行四速成下勝進明他分入佛境界又問上淨行品何故在家出家合明此卽不爾者上爲信根弱始約#緣修相易處雙明此中已去會法明出家相欲明自體緣起性離非斷故離也此如維摩經說荅文有三一荅前自分二又復修習增上十法下荅前他分問三菩薩如是觀者下結梵行成益耳初文有三初辨尋思二正念下辨正觀三是名下結初文有二初辨尋思二又知過去下明如實初復分三擧十法明所觀此有二初摠次別次應如是下正明三當如是下結何者梵行體理實自體發中正智是也何故法慧菩薩說者圓通性德非順法之慧不明十中前六是行及行緣後四所信境故偏說也相可知如實文有二初辨觀行二此梵行法下反驗第二菩薩正念無障㝵者辨正觀文有三初辨無相二如是觀者下辨依他無生三一切佛下辨眞實無性法喩可知第二勝進文有三一自利有四句謂立問荅結可知二如是觀察下明利他有五句三如幻下喩況前二無體如幻現實如夢起用如電緣聚如成事如化也第三結利自他文#亦可荅上速成問也有二初牒次結益益文有二初結前少行多能二可知二初發心時下成疾所以有二可知言卽菩提者有二一約位卽十解菩提二約解覺正理也證等准以知之又卽普賢證得自體圓明究竟因果此解約一乘耳發心功德品第十三此下辨此住勝進德四門同上一釋名發心牒行體功德行所成功德也就四義得名二來意所以來行已成今辨歎德相故三功德分量爲此品宗四辨此文有四初問次荅三證成四偈頌所以帝問者在天故亦卽功德自在也又淨解自在方堪受德耳所以法慧菩薩說者稱法之慧方窮功德二荅文有此中有三初摠次別三許分齊教量難知深難信思惟難解應教難說欲證難通數極故難分別也次假使下廣荅廣文有二初辨十二喩次發是心已下合喩初文有四初喩次徵三荅四挍量餘文不定十二喩中有五初五戒二十善等此二取所益爲況第三身通卽所利生處四知成壞五知法時也下根悕望等七喩明所利根器厚薄下一明諸行德廣入勝位也第二合文長分爲七初摠辨德能二何以故下責初非劣成等勝義三荅所由四何故下重責始同終五此初發心下以終攝始六悉與三世諸如來等下廣辨七彼初發心下結因勝由耳又得證者行證也身證者位證也又得證者智相應身證者身相應也此中竝是普賢實德也又問何故諸世界善順菩薩心轉者何也爲菩薩得諸因緣和合自在心是諸法因緣故隨轉也此可思准又上文十欲等者隨有一善欲卽具上十德也餘可准之又所以身證通三世者爲下文菩薩常不離三世佛前故第三動地成證等文有五初動地雨花等二諸佛同證有二可知三利生獲益有三耳四引同說證成前義有二可知五辨成所由有十耳問何故佛證荅爲因勝進擧果攝成又恐不信又表因與果同一餘事可知第四重頌有二初長行生起次偈頌初文有八可知偈文有二百四十一半分四初廣歎發心現成功德二十方世界中下重擧前十二喩述德難思三三世人中尊下辨能成當果四菩薩初發心下結此中不得細科若細卽失旨也又解位已去有解行理事教義等法門竝皆常行無間應知之從信位成已去普賢行及八相與佛已來竝無差別此可思之餘三乘行義等竝別不疑也明法品第十四四門同上一辨名言明法者有二一約教阿含法照理現故名明法卽義也二約行由行增勝後位相現卽用前位法義解行等爲明用後位教義等爲法二來意所以興者用前行德更修與後地爲方便故也三卽行教法義等爲此品宗四辨文者所以精進問者若不精進行不能受此勝進法也所以法慧菩薩荅者稱法之慧能申此教故文有三初問次荅末後少長行略結流通也問文有二初問次重頌文有三初先牒前住位中#行德爲生後次第#次彼菩薩云何修習下正問勝進中先際行德初牒文有六句可知次問勝進先際文有十一句分四初六自利次隨其下三利他行次興隆下一住持建立次一成事不虛第三勝進中後際利他分法有二初摠次別#別文有三初明成熟德此文有二初自利成熟行德二具足佛剎下利他成熟衆生行法初自利分有四一離障二成體三成德四成用也二利他中有三謂體體有十二事准比可解耳第二天王下明眷屬行法有四可知三得善根力下辨自他德滿成就不虛義有四句也第二重頌文有二初生起次偈頌偈有二十二偈初四頌前牒前初發心菩薩前住位中所集德文次云何下七頌第二彼菩薩下正問勝進中先際正行次人雄下十一頌善哉下後際果德利他文就第二云何下先際自分中初有三偈頌上自利六句次二頌利他行中三句次一頌建立文次一頌果行成就不虛第二荅中有二先長行後偈初文有三初歎所問合時多益有三可知二勅聽許說三佛子此菩薩下正荅荅文有二初荅勝進中先際自分正行二菩薩摩訶薩若得成就下荅上勝進中後際果行初文有一百七十句亦可百八十句耳有四初一百一十荅上十一句中初六句自利行#次四十荅利他行三句次十荅住持建立次十荅成事不虛荅自利文中初一百荅前五行後十荅第六荅前五文中一皆二十句荅之二十內前十自行相應法次十勝進修行法云具足淨慧等者牒前自利行生起後利他令勢相連也諸十文各有四生起次問三荅四結亦有不定者可准思之利他前問有三此荅中有四十亦可五十句此初二十荅三中初句#次不捨諸波羅蜜十句荅前第二句次佛子下十荅前第三句前二十句亦可三十句也初五知器所宜次十應諸病授藥次十五應器與法言能如是行者則興隆三寶者下有十荅第十句內住持建此中有二初摠次別此別文中分四前三別第四前三文初依教道次依證道後依不住道六和敬身口意慈及見戒施同也菩薩如是不斷三寶下有十句荅上自分行第十一句行成事不虛有三十辨行成事不虛次第荅前五句二有十以德自嚴卽荅前不虛句三有十以自嚴故能攝化不虛亦同荅一句於中法合三文次若得成就下第二荅後際果德行中有三初菩薩摩訶薩下荅前滅除癡闇熟德行法此文有二初辨自成熟行二次第方便下明利生行耳二於大衆中下辨眷屬行三成就如是勝妙法下辨行成不虛唯除如來者以下過上也第三行不虛文有三初立次責三荅荅中有十一句前六因後五果行第二重頌有二初長行生起二正頌偈勝進中有二十偈有二初十三頌先際緣起七頌上荅中勝分果德自分行法前中初六半頌自利行次三半頌利他次一頌住持建立下二頌成事不虛後七中初一半自利果及利他果次三半頌眷屬行下二頌行成不虛也第四會佛昇夜摩天自在品第十五四門同上一釋名佛者化主昇者上進夜摩者時亦云戲樂天者明故自在者遊空無㝵也約行准之可知卽荅上十行問二來意者所以來依解起行也有二意一會來意二品來意竝如第三會說准之宗者有二約人約法同上准思之可知也此品宗爲明處及興供養四辨文者此文四品分三初二辨序次一明行體次一明勝進方便也此初序文一同前但增勝轉上寄法不同耳爾時如來威神力故方一切諸佛世界諸四天下一一閻浮提乃至無不顯現等者若約三乘教辨時閻浮苦穢惡厭苦情忻上志猛故在閻浮成道佛身非出世若約一乘三乘共教時欲顯閻浮是實卽空是似成假爲事纏聖恒悲愍佛以本願力悲愍衆生應於世處成道佛身現化故身卽出世也若約一乘時此閻浮處一心法界境界若佛若處俱顯處染無穢之最佛故顯在此方成道也但諸應化事義竝皆准此別之二供養成機中有四初文有二初明興供養卽根也二合掌下明請佛卽欲也初供養行中有二初嚴初有二十三事初辨事嚴次善根下行嚴三如來下佛德加嚴供養顯因同果餘可知也何故十解讚偈別列佛此卽不者何也解相別知行卽通成故也菩薩說偈品第十六四門同上初釋名自體妙因行集文班教則顯彰故言菩薩說偈也餘義可知來意及宗竝同上准也問若義次第相生意同但所顯別者何故名目不與上同此但欲交絡顯義意故爾也但增勝及託法爲異者可知四釋文者此內第一集衆序中世界同慧者用前解慧卽爲行所軌故佛同眼者行心見法明白故菩薩同名林者但以此行益物熾燃俱興顯備集之相故也第二段中足指放光與前會何別況足指有行住二力前彰住此顯行故況別也第三說偈序內十人卽各以自已得緣起眞如法因歎佛卽歸行相也初功德林偈有二初長行生起第二說偈下竝准之此文歎法身自在功德有十一偈初六牒前昇天雲集自在之相次五法身自在甚深二慧林偈文有二初二辨佛具德難遇次八釋前具德難八中分三初二明上具德門二如來無與等下四釋上難遇三不可思議劫下二挍量勸修三勝林偈有四初二喩說微深次一法合次二辨深所以次五歎其勝用四無畏林內有三初二擧體勝次五擧用次三勸學初體用二文各有二初擧法深二歎勝五慚愧林偈有五初一摠歎佛法勝益次一歎佛勝用相次六反成勝用所以此中初一摠次五別次一重順成人德用五結人難見也反成文內初一愚智性別喩次一同成虛妄喩三二性乖違喩四愚智緣隔喩五用無相感喩也六精進林有三一摠歎人勝次八廣擧法成人次一明人法深故難見八中一法體無異喩二法體空無喩三法體無實喩四法體離相喩五法體成眞喩六一成多用喩七起用依緣喩八體堅難壞喩准初說之七力成就林有三初四依他緣起觀次五分別無相次一約心歎用也初文分初二法次二觀八堅固林有二初七辨佛性相身難議次三歎勝前有二初二喩辨性身次有五合辨歎應化也九如來林偈有二初九法喩雙顯一勸學前文有二初五喩展轉荅五玄疑一疑法是初行荅之二見生異解疑法離因三疑分別實法離心有之四疑旣是心作何爲非有五謂心作法有此可思准次四法合造如來者謂無作佛也所以者乘前來意不得爲有作佛故十智林有二前八歎法身甚深次二結歎勸學初文有二初三歎體次五歎用也功德花聚菩薩十行品第十七分別有五一釋十行名及來意二所治一乘如前解三乘終教者聲聞畏苦障三所得通行定及忍善根四所成卽十行位卽此品宗五釋文一釋名者功德者行體花聚者喩名也歎行勝妙能與果爲依衆行集故也衆德聚集能嚴無上菩提果是因故安菩薩十行者數行之本相故文云譬如數法十增一無量皆悉是本數智慧故差別從五義得名耳前衆旣集次須彰說故次來也四此品以所修行體及位爲宗五辨文者此文有七分初三昧分二加分三起四本分五說分六利益分七偈頌善伏定者行力加勸序者明此行法其旨甚深分在非已自非諸佛加其道力說之莫由故次明也此內有二初摠辨加所爲二佛子當承佛下明加相差別初文有三明佛加讚二十方下明加所以三欲令汝廣下辨加所爲初文有三同上會所以中有四句可知所爲中有十句初一欲令等者摠也次八句廣次一句結差二加相差別三業可知何故意加與法法是正行之本故與法也又問前會何以不與法乃與智法從智生故親能成行智境卽通故前會但與智也此約地前非證位故作此解耳二意加中有三可知四告諸菩薩言下卽本分文有二初歎十行宗本廣大卽體也二列十名卽相也六決定同前解行異耳何故前觀相約性今此約行業者前解相非勝故約性此行相卽勝故約相也此可思准以竝無常果因者爲顯在有流因位耳第二就本分相中有五初問次略荅三重問四荅五結也第四荅一釋歡喜者施成自他喜二饒益者持戒攝益故三無恚恨者忍息自他恨四無盡者精進獲無窮德五離癡亂者得定故也六善現者智現緣起法七無著卽方便度故八尊重卽成願九善法者力智善說十眞實者得智順理善說五說分中有十可知佛子何等者此初文有三初牒問次釋三結釋文有三辨布施行相有二初釋次結行相有十七句可知菩薩修歡喜行時下明行熟廣攝令他喜也此文有一修施儀二離過三設方便四明所爲此文三句謂自因果及爲生第三句有二可知三離諸我相下明離三輪成檀度也此有二句自利利他也二饒益相文有三初問次荅三結第二文有三初明性成戒體有八句二菩薩如是持戒時下對緣辨持相有四初持戒儀二辨方便三離過此有五句初句分二可知四明所成此有二句可知三何以故是我業下擧行離相成戒度也此中有二初問次荅荅文有初明觀有五句二未度者下明意三我當下明所三無恚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二初辨忍行體有八句二菩薩成就如是淨忍下對緣辨忍相相文有三一他不饒益忍此能所分二能中口身分二也二菩薩作是思惟下安苦忍有三謂立責荅可三復更思惟下辨法忍此中初法次是故下所爲有三句三佛所行法下辨疑也四無盡相文有三荅結荅文有三初辨精進體卽懃勇進有十一句二菩薩復作是念下加行進有二初明所二辨所三菩薩成就如是下辨難壞無足等也此有二有二問荅辨難壞二釋分齊可知五離癡相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三初辨入理安樂住定二是菩薩成就寂靜下引通定三菩薩聞此能壞下隨利他定此初內有三初辨定體無失二菩薩成就如是等下辨定業用此中有四初摠辨二何以故下釋所三此菩薩下別辨有二初辨次對因明也四如是等下以廣顯略也三菩薩於三昧中下辨觀行成前自在耳此中相性成治分三餘文可知也六善現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三初辨加行般若二無所依無所住下正證智三分別一切世閒法下後智般若初文有二初明智體二無所有下釋成前義證文有十八句有四初七辨智與理相應二離業報下六辨正證離諸相三無所依住下二句辨所住分四入離虛妄下三句明觀成分入無性問也後智文有三初辨如量智中如理卽顯所知法二安住三世平等下辨如量智中如量卽對所化生三是菩薩住此行時下德用自在餘文思之可知七無著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三初辨自利方便二初得受記下辨利他方便三菩薩如是觀察下自他二利善巧滿足有二初辨二行二所以者何下辨所以可知也自分文有二初自分位中修二不捨菩薩心下辨勝分位修有二可知自分位有三初於淨法中無著行有二可知二見不淨剎下於染行中見不淨三何以故下辨前無著所以有三初問荅摠辨廣辨三對生明離過二利他文分三初辨大悲方便二不著身等下正明不著行此中有十句三何以故下明不著所以初大悲觀有三初辨大悲深重爾時菩薩見彼生下明增上三爾時菩薩作如是念下明爲首耳八尊重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初辨所遵法二此菩薩行時下辨所趣此有二二益益有三益一成願二成生三顯理理中有二初法喩合卽立宗二有二責可知三菩薩如是下辨所成用有法合三文初法中初行行離非二得法爲人三成功入法界四而菩薩摩訶薩下明行自在五如是菩薩成就下辨用無二此文有四義第四義荅中法合三文可知六此菩薩下明行成就有二初自利二利他他文有二初教二申己意以去疑初申意二有二責可知也九善法文有四初問次三結四利益荅文有三初擧善法以爲佛種二淸淨陁羅尼下釋成行體三菩薩安住善法行下約修辨第二釋成行體文有二初辨行體有二可知二爾時菩薩下明行作用作用有二可知三約修辨成文有二初摠次別別文有三初摠次佛子下別有二可三成就如是十種身下結成行用十眞實文有二初問次荅荅文有七一言行相應故眞實二此菩薩下行相應此卽釋名三菩薩成就衆生下辨行體有二初立次是故下結勝前文有二各有立責荅不捨下辨行用謂身口意卽爲三也五菩薩摩訶薩住大悲下辨卽位以因成果六是名下結七此菩薩安住下成利益也上來約一乘信行相若約三乘寄位別觀時如經初行之中爲自得一切種智故起四精進懃修二善懃斷二惡爲求佛果故第二行中爲得自身有大力故爲四如意足念守境精進馳求撿攝慧照境得法無生自在故第三行中願無畏具足故謂五根信進皆無相故第四行中求具足三寶故謂五分法身戒除形非定無心亂慧悟相解脫無累知見一切衆生無縛知見解脫故諸法虛空無二故第五行中爲化一切衆生故謂八正道從師生慧名正知見得法生思名正思惟出家受道得三道分名正語正業正命入法性空名正定正覺於無生無二觀一合相故第六行中大悲故起七觀擇法念法精進法觀法喜法定法慧法入一相故七行中爲得四無㝵故謂五善根止觀煖觀頂觀忍三界空第一觀能生十地無相大明慧聖人胎未變第一空平等故第八行中一切佛國中行行故四化法法辯義辯語辯樂說辯此四名慧性照一切法無生第一義諦中行故第九行中於一念中照一切法謂三世十二因緣皆假合會以成性實不可得第十行中爲自在轉大法輪故謂菩薩三寶智覺中道一切法無生佛寶則用爲法寶常行六道與物相應名僧寶轉一切衆生流入佛海故此約三乘寄位語也六爾時佛神力故者證成所說此文有四動地雨花等二如是四天下結會平等三爾時各過下明十方菩薩證成以此十方菩薩證成文卽知會後但此處同名佛菩#薩竝爲證義故來會初十方同名集者但是影響標位分齊未是證法餘可准之四結通十方七重頌文有二初長行辨說偈意中佛種性菩薩種性何別因位菩薩由佛而成卽是佛性由菩薩自成卽菩薩性也此等可思准耳說偈有一百一十二偈此中有三初七字偈摠歎別歎三後有四行摠結大情思之又此衆德上十行一位中皆具有也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上乙巳歲分司大藏都監彫造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下文圭終南山至相寺沙門 智儼 述菩薩十無盡藏品第十八四門同上菩薩者人十者本數無盡分齊也藏者蘊積也良以體非數分行無窮竭而生滅所不易故云無一攝一切統含無外故曰藏也餘可准知二來意所以來正位自分已成次明勝進入後位故來也以前問在迴向後今荅在前者欲顯行通故也亦可迴向屬助方便藏從行本故在初前耳三品以所甚深功德蘊積諸義爲宗四辨文者此文有三初擧數引證略歎列名二何等爲菩薩下辨相三此有十下結歎也初文有二可知十名者一信卽十地第一及攝論中書持二戒卽地中慈悲及論中第六教他得三慚四愧卽地中行及論中第九獨處空閑等五聞卽地中知諸經法及論中第四恭敬聽受六卽地名捨及論中名施他七慧卽地中第十如修卽論中第十修相入意八正念卽地中不疲倦及中自讀誦九持卽地中堅固力卽論中第七如說一心習#也十辯卽地中六善解世法卽四辯也卽第八爲他如理廣釋地論及攝論皆有供養此何故無者此中分慚愧爲二故也亦可此藏與彼一向義別也二廣辨文有二一釋相二是爲下結歎用能成大果初信藏文有四初列名二辨相三結四歎行用二辨相有三初自性住佛性二佛如是下約至得果性三此菩薩成就如是下約引出性初性文有三初入理次辨信堅固三何以故下決也第二至得果文初辨信境次菩薩成就下明信解成第三引出文有三初牒前次不退下卽明信境界分齊次護持下辨信行成戒藏有三初列名次別釋三是爲下結已下諸文三段准此可知二別釋文有初牒十名次何等下辨相#三此菩薩持如是等下大悲利物用就不諍戒中不非先制不更造立者順實際體非集起心常隨順向涅槃者一切諸事涅槃相不復更滅也慚文有三同前第二辨相內有初知已過二一切下識生有罪三自惟下上聖知四是故下離過顯慚心愧文三同前耳愧文第二辨相內有四初知已過二復作下知生有罪三上聖見知四我當下離過顯愧耳多聞第二辨相內初列所聞十種事二辨十相三菩薩作如是念下利他二因緣是無爲者婆沙一師云有爲不自立因無爲故此中文有六無爲又解一空約事相辨二涅槃約位論三數滅約性散四非數滅就事散五緣生約理從事六法界理不對事耳對情卽有爲所以及餘意思之可解也此等義竝是自體緣起參而不雜不可以事相論也是以大乘教相若論方便解入時一切教相要況詮中取也若論正解時要是祕密教詮得顯大乘義相也甚須得意勿惑其聲無記有六十施第二辨相夫言施者以捨濟資益爲義故文言乃至自受取資用無非是施若就事相中明時如文所列若據詮表以明但使解達窮宗莫問玄想之以正智一開情已乃至三業起動進參隨緣所作無不隨順如實與無盡藏相應故能建立無上菩提根本種子文有二初列名後廣辨前施法中有三種施法准可知餘文相顯可知慧第二辨相內有五初七句所知境前四各有二義一色苦是報色二色集是業三色滅是分別性色四色道是道共善色第二色苦者色無常二色集生後三色滅卽如四色道謂成道具也餘准之聲聞菩薩等者初知人次知所軌法三知道因雜煩惱習故得集名四知滅果也體相如下說次云何知下辨加行觀諸法卽自利有問荅二荅中有六句可知三廣爲說下利他有五句初摠二問荅明義分齊三問荅顯說儀四責五荅所由有四句耳四菩薩成就下辨利自他行成相有二可知五此智慧藏有十種下辨慧攝無盡有四可知念藏第二辨相文有三初辨所念淨法云念佛者隨順實覺也云授記者實覺妙軌顯此心懷也云念持脩多者圓覺等滿相彰於外妙軌備時以爲世則故也次菩薩作如是念下辨十念體三此菩薩住是下念堅强也言妙者妙過餘人淨念者所記分明不濁不雜闇障遍淨念者於法悉明離塵念者於所念不生貪染離種種塵念者不生餘結離垢念者計我能光曜念者廣照無極言樂念樂修不息無障㝵者發意卽知不待思量等也持文有四初問二辨三結四歎德耳辨相文有三初辨持人次佛明所聞緣處三聞持一品下辨所聞法辯釋相有四初牒次辨三結四歎德第二廣辨文有五初明後智辯體二廣爲下明辯功能三何故下釋成四成就此藏故下廣明辯德所成之事五此菩薩成就百萬下成辯無盡之用事也此文有二初釋次問荅去疑云佛子是爲下第二結德用能成大果無盡次此藏有十種第三結歎辯藏深奧生德無盡有四可知也第五會佛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第十九此卽荅上迴向問四門同上一釋名者知足天約行准之又前第三會但說其殿第四會但論莊嚴第五會云一切寶莊嚴第六會摩尼寶等者欲顯慈悲德相隨物轉增故也二來意者所以來者若不迴向進莫由故也一會來意二品來意同前准之可知三會宗者分別有二約人法同有體准上可知又因此會宗體更擧上下諸會別宗有二義一擧普賢性起實德隨差別緣以起信心故說卽初會明世界海第二會十信第三會十解第四會十行第五會方便迴向第六會明修成本有無漏因果二行法等第七會依法成因果行德第八會依人成位差別德此竝是一乘三乘共學法第二攝差別緣以從本卽初會觀圓明五海十智以起說第二會信位就本實因果分量德第三會解位顯證性德普賢因第四會行位顯證本性普賢因果第五會方便迴向位顯證法界如相普賢因果第六會證位顯證性起普賢因果第七會依法以顯通教普賢因果行德分齊第八會依人顯證普賢因果緣起理事德位分量差別義也四釋文者此文三品分二初二前方便後一正宗此初品有二初體用二融體融內有三謂身又因果相應爲後方便也上皆同此耳二時彼天王下赴緣攝化此文有六一時彼天王下從體起用爲攝化緣二卽於下辨王修供養具卽成就根三爾時世尊以佛莊嚴下明佛受請昇座明機感相四爾時佛神力爲天王故下明勝力加被息亂住靜五爾時天王下明從靜定發智偈歎也六爾時世尊昇一切寶殿下辨佛法身平等攝益成事不虛第二文有二初成根二爾時天王爲如來敷座竟天王出迎世尊辨敬儀也卽根熟成欲初嚴供具有三初摠嚴立宗二所謂下別廣辨修入方儀三如是四天下結歎同等顯機應法初文有二初摠明嚴二過去修習下辨因緣因緣有十三初一摠餘別次第除疑可知就第二所謂下廣說在殿上修供養行成方儀中大文有三初辨器世間莊嚴自在行百萬億諸天神王下明衆生世間莊嚴自在行此能供養人第三百萬億諸大菩薩下智正覺莊嚴自在此分證理故有異解云此中有五十八衆可知器文有二初外塵莊嚴具二百萬億神力自在下明內法莊嚴智正覺中初十三辨人次二十句行德大菩薩者入道場會人華手等信解位也第二迎佛文有三初出迎辨敬儀有二謂一結前二生後也設供養三正申請二設供文分三初明自分行供養有二二內可知二佛神力故下明勝進分行供三爾時一切諸天衆下辨二行入佛界也二勝分德中有三初摠二別莊嚴虛空三出花供養如來也三爾時一切諸天衆下明入佛界中有三初辨利他二時諸天見如來身一一毛孔下自利德三爾時來下辨自他平等圓極自在就前段中初知利他德二如是正念下十句結觀解益初知中有二初人雄等報身德二順衆生根爲現佛身下化身德報身中初身業德次住一切智下辨口業德三佛智慧月下明意業二化佛中初身業二常以法施下明口業皆由從心起下辨意業此等上達佛境卽是迴向因人用事可准之二自利德中有六句初辨放光相自然下辨光說偈三顯現阿僧祇下明莊嚴相四顯現不可思下出化身說法五又佛身中下出寶光明顯其因行六又睹自在神力下明說法教化三自他平等圓極文有四初牒前慈悲德二欲令無量下隨機攝益三成就如來下入佛界德成四如來顯現下結歎難盡第三赴緣攝化文有三初正赴二等餘方三辨益可知第五智文有三初長行憶念卽是智體二說偈明智相何意歎一佛德者爲彰迴向多方便歸一慈悲善巧也三等通餘方第六攝化成事文有初辨赴機二正攝化三成益文有二初二句順理次順事所以但辨具德不廣殿如處者爲顯方便別莊嚴也四等通十方也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第二十四門同上一釋名者有四義一處二人三身儀四口或六句可知二來意同前但所爲別耳三宗亦同前准之但迴入此品歎方便佛行爲異耳四釋文者此品三序初文集衆序內先擧佛神力顯分齊次辨所集衆後如此下結所集衆第二內三世間可知生世閒中有五句初列名次依本修行三俱來四依方而坐五歎德歎德有三初明自利行二一切衆生觀無厭足下利他行三此諸菩薩下辨自他德用自第二放光序中有三初辨光出處二明所照處彼諸菩薩下光所攝益卽歎德也兩膝放勝光者身行中入佛境界增長勝妙相也膝者表進方便相歎德中有三初摠次別三結別中有三初自利教化成就下一句利他三勝進可知耳讚佛序中金剛者因行堅也幢者行成高出也亦有攝伏義耳十菩薩中初名金剛幢者明自體眞實能消殄相累超世之道標別勝負故名金剛幢也餘相可知此中諸偈竝約迴向云便顯其佛德卽以此教爲詮善巧相也餘准思之諸偈文各有二初長行生起第二正說初偈有三初五自利德次三利他次二勸修也堅固偈有三初三歎佛自利堅固次四歎利他堅固次三勸修也勇猛偈有初二辨法界海深次五辨利用廣大次三結體用圓極也光偈有二初四歎法身自在次六歎化用自在智偈有二初一歎卽位德次九辨所見勝所見文有二初一摠次八別別文有三初二歎佛德次四明佛離數相二辨離世相耳寶偈有三初一化身次二法身次七報身又問何故科此經文多依三乘者何也所爲人三乘者多故爾也一乘義文准之可知精進偈有初六通三身自在次四約四喩辨成離垢偈有三初七歎智身次二歎法身次一摠釋眞實偈有五二歎化身自在次二法性身自在次四重成前化一辨趣方儀次一結成身離相法偈有四初二辨明策修者意次三摠擧損益釋成次四廣辨損益相歎德次一顯德相也又亦可此十菩薩德歎不須別一一句義卽一方便法也此約一乘意取文也金剛幢菩薩迴向品第二十一分別五門一釋十迴向名及來意二辨所治一乘如前准三乘除獨覺捨大悲障三所得無閒定及世閒第一善根四所成十迴向行位卽宗體也五釋文一釋名迴向者迴前行向菩提亦可通衆生及法性金剛等是人迴向等是法就二義得名也來意同前耳法體異前耳今此論所治及成得等竝約三乘說之若約一乘別教辨者卽或治或不治等可准思攝宗者摠相可知廣在下文五釋文者此文有七分入定三昧分二加分三出定分四本分五說分六利益分七偈頌初云入定者顯法體非思境也明智定顯行無惑照明故也亦可方便淨智依止能成淨加序有三初摠明讚加因緣相此文有三初摠諸佛現身及同名證法有二可知二時彼下正讚述善男子下得入現定所以加入定有五因緣一諸佛力加二盧舍那本願力三盧舍那今神力四金剛幢自智淨力五餘菩薩善根力也二欲令下辨加所爲有二十二句初十二自分德次十勝進今此二十二句內所有諸文及上下意加內所有文相不可一一具解但唯下地品初加分內論主所判約分此文意卽可知仍此中文相或通果及因或初摠後別自他利異或同異成壞如是一切及上會諸文竝准地論初六相取之無不明了餘相可知三善男子當下辨三業加相差別就中初口內有十句可知加亦十句初一摠次別問何故此意加與雜法者方便事不定境及理事非一法故也准之可知分正說文有二初摠辨體二列名辨相初文有二摠歎二辨方便體卽六決定於中但有觀相大善及不怯弱所由上已辨也二相文有五一問二擧數及引證三重問四列名五結及證成不思議大願者地上願因亦卽十迴向願也四列十名者一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者化事離二我也迴向有三一迴向衆生與物同成故二迴向菩提捨諸世有故三迴向實際用歸極體故此三相成所以知有此三下彌勒令善財見菩薩修三種迴向也般若經中說此也下竝通此意二不壞者自行堅固也三等一切佛者自他等入佛境亦可量等四至一切處者得佛力故五無盡功德藏者修用出生不窮盡故隨順平等善根者亦名堅固德用無盡獲得三堅固隨順涅槃也七隨順等觀一切衆生者得大涅槃不捨世閒故八如相者行依如修故九無著解脫者理等離縛脫無脫相故十法界無量者稱性用也十相成共有二一以十門攝諸行迴向約此門卽是二以行依十門明迴向也迴向有三所謂實際菩提及衆生迴向實際有二種一現修諸行卽是眞如二爲顯眞如故修諸行也衆生亦二種一爲度生故修菩薩行卽是衆生道具二菩薩所成卽衆生所與菩提亦二一所修諸行爲成大果二菩薩衆生諸行卽是菩提芽果一迴向竝有此門且述摠意准以思之第一中有四初問列名二辨相三是爲下結以偈重頌二辨相內有四初明行體二摩訶薩復作是念發菩提心寶下迴向衆生及菩提三菩薩復作是念如日天子等下迴向實際四以如是等根迴向下結歎勝妙德用自在初辨體內有三初以六度四攝等爲濟衆生法二修善根下明救護衆生三此菩薩爲怨親故下明託依起行此中有二意爲離衆生相故得成三迴向二由離衆生故是三迴向也此可思之二正救衆生文有二初令生不墮地獄等二復作是念下得法身樂於中因果分二也託依起行文有二初以善迴向衆生不揀怨親有三初立次問荅釋疑三常以愛眼下對緣成行展轉有四辨疑第四疑文有三初立次責三荅可知二菩薩不爲一衆生下顯意廣大有二可知第二迴向衆生及菩提有五一行等諸佛及起心究竟卽爲二也此二子段中復各爲二可知二菩薩以諸善根迴向時下令生得淸淨趣三復作是念以此善根下爲生得見佛獲益七財淨滿足者謂信戒聞施智慧慚愧四此菩薩復作是念下代受一切#苦此文有四初對物生心次何故下除疑三以大下明善巧有二可知復作是念我當爲下正明爲生受苦此中有三初代受苦二除疑此文有三第二文中有四第三文有三可知三是故不以下結可知三復作是念我當以下辨所成也有二可知五菩薩以是無量下令生得具助道因緣有三初起意二喩況三合可知也第三迴向實際文有二初簡擇前二迴向二令一切不著等下正迴向實際此文有三初辨分別無相二不起虛妄因緣下依他不生三觀察一切衆生平等下眞實無性彼不生諸法不滅諸法以如是等善根迴向者卽第四摠結文有三初摠次修行下別後菩薩下結別中初修行對治法等結初行體次觀一切結迴衆生及菩提後於彼善根不作二相下結實際餘相可知重頌有二初長行辨意次偈頌有五十六偈有初十二摠結此別有三初十一結行體次十三結迴衆生及菩提文次十五結實際第三後六㧾結之可准取解二不壞者#有五此中初問次荅三結四歎德五偈頌荅文中有五一辨行體二欲令一切衆下迴向衆生三諸佛成就無量德下迴向菩提菩薩如是捨離癡下迴向實際五如是菩薩成善根下結歎德用體文有五一對緣成信有二初立宗何故下除疑二如是安住下依信成行因三菩薩如是等善下辨行所成果四菩薩如是精懃下結興行五菩薩善根迴向已下辨依行成願事此有二意一爲不壞故得成三迴二爲不壞故是三迴也此可思准二迴衆生等文可知實際文有三初簡前二迴二觀察平等下正迴實際#三常爲諸佛下功感聖四結歎內有五初結行體次摩訶薩如是下結衆次究竟淸淨下結迴菩提次得平等下結實際文次菩薩行如是下通結勝妙偈文有二初長行次偈頌有五十有五初二十一頌行體次二頌衆生次二頌菩提次十一頌實際文次十四頌結歎文等三等一切佛者有五初問次荅三結四歎德五偈頌荅文有五初辨行體有二可知此迴向有二意一爲等故成迴三種二爲先應三迴故得等也可准之二此菩薩得如是樂時#下迴佛菩薩及衆生此文有四初向二迴菩薩三迴衆生四菩薩攝取行等行下明儀式也菩薩文有二可知第三迴衆生文中有三初迴儀式此有二可知二滅惡三生善三菩薩若在家時下辨起心分齊此文有二初釋次如是菩薩今集下初文有二初在家攝生迴向二菩薩作是念乃至小大下大悲深重初文有四初起心二對緣辨攝二可知三明成行無閒卽顯智堅固四結第二深重文有二初離苦二得樂可知四復作是念如彼下迴向實際文有三初牒前二迴向二而無所著下正迴實際三摩訶薩下結同佛迴正迴實際有二初約入觀智迴二常樂習行普門下出觀智以迴向第五㧾結中初牒前行體次第一迴向下通結偈有二初長次偈有四十八初二頌體次三十四頌迴佛衆生等文次四頌實際次八頌結歎四一切處者有五次荅三結四歎德五偈頌荅文分四初辨體二如是莊嚴下迴向菩提及衆生三菩薩如是善根迴向了無所下迴向實際四菩薩如是善根迴向下結歎德用初體中分二初明行體有四一法二喩三合辨所成此有三句喩如諸天者第一義天相可知也此有二意一爲順一切故得迴三二爲順三故得至一切處也二菩薩復作是念下廣明行相此文有二初明所依方土及佛二菩薩於諸如來下廣明行相此中有二初對境興心卽爲二也前對境明心次辨心德二復作是念下對境成行則復爲二如是莊嚴下迴衆生文有二初開理事二門立宗二令一切等#下別辨得成至一切處所以有法喩合三文可知三實際文有三初牒前行體及二迴向了無所有下正迴向三如是菩薩樂觀下結迴成益正實際有二初約入觀智次如是菩薩圓滿下出觀智辯也一切法衆因緣地者依因緣解證一切法故四㧾結歎中初結行體得佛自在下結菩提次教化衆生結衆生次菩薩如是下結實際偈文有二初長次頌偈文二十二初八頌行體次六頌菩提及衆次六頌實際次二頌結歎文五無盡功德藏者有三義一出生無盡二所成三自體以此三准之次荅三結四辨德五偈頌荅文有四初辨行體菩薩諸善根皆悉下迴向菩提及衆生三菩薩以如是等下迴向實際四菩薩如是善根下結歎勝用初行體文有二#初辨行體有四一懺二勸請三隨喜四迴向也隨喜有四一成佛二說法三涅槃四流通等文有二初悔過第二勸請隨喜迴向也此三義由是有爲德義分相交故同處合說此文有二初摠擧二別辨別中依隨喜四義卽爲四段耳此有二意爲行順三迴故得成無盡藏二爲成無盡故迴三處此可准之二菩薩作如是念下辨行相有二初嚴二嚴成人嚴土有四初成世界土二菩薩修勝善根下莊嚴佛國土三彼諸世界中下三世莊嚴四如一世界下結成究竟二菩薩復如是下嚴人有二辨次結辨中有四一人二此諸菩薩下略具顯德成就下別顯德有二可知四成就等下結有三可知二如一佛剎下以結略顯廣可知迴向菩提衆生有二初以法界方便迴向二處二如是菩薩善下辨方便分齊實際文有二初牒摠迴向趣向薩婆若際二菩薩行如是下別迴實際此文有二初入觀智以迴向此有二可知二菩薩如是起下出觀智迴生死非雜亂涅槃非寂靜者此有二解一就破相生死體空故非雜亂涅槃體如故非寂靜二寂用解生死體寂故非雜亂何者是體近說空是深則不空如來藏大涅槃能建大義妙用繁興無所不爲故非寂靜今依後釋此二佛境佛所行道名境界道無別生死非他作生死涅槃體無定相故曰無法諸聖同依名爲同止如義同先解第四結歎文有二初牒結前次菩薩初發下摠結初文有四初牒前行體結成迴向菩提及衆生二以如是等下牒前迴衆生結成實際三菩薩如是迴向眼終下結所得益四菩薩如是迴向時下行德勝妙第四歎德用文有三初擧數二釋三結可知偈內有二初長行生起次偈偈有五十偈初十八頌行體次六頌迴向衆生及菩提次十四頌實際次十二頌結歎文也第六隨順一切堅固善根迴向者#有五初問次荅後是名下結四歎德五說偈第二荅有四一施門中辨行體二菩薩善根迴向令一切衆生下迴衆生及菩提三菩薩摩訶薩以此善根迴向時下迴實際四菩薩以一切善根如是迴向下結歎德用初文有二初擧輪王位捨歎成行德體#有二可知二若施飮食下辨行相此文有一略列所施諸物名二作如是念下辨修行意若施飮時下廣辨施儀則於中或四六不定四者#一人二所有事三廻向四結前五者第三增田六者第三增歎事德又有成施心四此菩薩以如是等無量下摠結利益也初列所施名文有三初列六十章門所施財二心不貪著下辨施心無染三若諸衆生下辨所施田第二意文有二初辨施迴向意二菩薩如是迴向已下明迴所成三廣文雖有一百二十事無不皆在六十門攝也此有二意一爲順三迴向故得順堅固二爲順堅固故得三迴此可准之又今此所捨竝通三義一是分段依正二變化依正三是變易依正可準思攝也地前具五生身故四輪乘者度八難也一住正國此度三惡道北單越及長壽天二正士度佛前後三本功德度諸根不具四平等願度世智辯聰又正國輪者眞如法性土也依正士輪般若正觀也本功德輪者施等五波羅蜜也平等願輪者菩薩十種無盡大願也菩薩淨行由斯滿足又字肆者恣也第四結歎中有二初歎益二菩薩爾下慶得成益此二文各有二初釋次結成究竟也二實際文有二初牒前行體二於身口意業無縛著下正迴實際於此正向中有五初約入觀智辨行成二菩薩如是迴向時不著內下明所離三菩薩若於此法中下辨利益四何以故下釋成五菩薩如是見法下結說是非此文有九句相生可知前文言禪頭衆生有形有體名禪頭今無此想也四結歎中有初菩薩等摠釋體用二迴向者何義下結迴向名三菩薩若能以此下歎行迴向德四菩薩如是迴向已下結益偈有二初長行次偈偈有八十二初四十八頌行體及二種迴向次菩薩觀下三十二頌實際文後二頌結歎文了達菩提從緣起於法眞性無所壞者用不違體也七等心隨順一切衆生初問#次三結四歎德用五偈頌第二荅文有四初辨行體二菩薩離垢淸淨下迴向衆生及菩提三菩薩修行如是善根下迴實際四菩薩行如是下結歎勝用體文有三初辨行體二菩薩行如是等下辨行用有二離惡#二生德也三不求生天下辨修意此有二意一隨他衆生所作善根不逆善令進故二菩薩自善根隨衆生根性三品授與故此可思准之二衆生及菩提文有初辨修行二菩薩以此善根下正明迴向初文有初自分二修習平等下增上修也初文有五初辨所依之緣謂善根也二菩薩復作是念下明依緣起於中分三可知三菩薩如是下顯心具德四辨時五復次菩薩下廣辨所施之物第二增上施中有初辨施心二菩薩復作是念下明心具德二正迴向中有二初正迴向二如是菩薩下結德自在此有二初自分二以如是等下勝進可知也實際文有二初牒前利益二菩薩如是等下正明實際初文 有五初離垢二明所得三明無等四對果校量此有二初摠次別五結成具德也二正迴法界文相顯可四結歎文可知偈有二初長行次偈頌偈有四十初二頌體次十七頌衆生及菩提次七頌實際十六頌結歎文八如相者有五初問次荅三結四辨利益五偈頌第二荅中有四初行體二菩薩以此下迴向衆生及菩提三菩薩善根如是下迴實際四菩薩如是迴向時下結歎勝用初體文有三初集善根二菩薩如是下攝助成正行亦可攝因助果也中有二初攝次辨觀相三菩薩以如是等下成三業大用自在也此大用內有二初明心所趣卽略也業卽爲三也初一句身次一句口次下竝意耳二一佛世界下結略顯廣也此有二意一此善根是如家相故迴三處二以相等體無㝵故迴向三也二迴衆生及菩提文有五初摠明迴向二菩薩如是迴向修下辨行廣究竟三復次菩薩下對事辨成行儀此有二可知四菩薩善根如是下辨修意也五如是菩薩長養下迴向功力所成三實際文此中迴與上下異者#諸迴攝相從體此中攝相從相此可思准之有三初明迴向體二善解迴向下成勝用所以如如下約法廣辨初門有三初辨體二順如來道下明用三觀察寂滅下結前二第二勝用所以中初擧次如是菩薩下釋三如法門下約法辨成第三廣辨中有一百句文初一句所軌則下諸句依迴耳廣辨文中三種言說初取無著第二取施設法第三正取言說教事文中三種時者初唯揀法取時二揀時論法三時法雙論耳此等依文次第撿之卽知所過去非同者非同一滅也未來非故者非現後故現在非異者非異前後二世及自同類法也此亦反外人見思之可知四結歎中初三句結歎迴衆生及菩提次等觀諸佛無有二下結歎實際德用第四成益文分二初辨德二結可知第五重頌有二初長次偈頌偈有二十九初二頌行體次四頌生及菩次九頌實際次十四頌結歎利用九無縛無著脫心初問次荅三結四辨德五偈頌初荅文有四辨行體二摩訶薩以無縛著下迴衆生及菩提三摩訶薩以如此無縛下迴實際四摩訶薩如是迴向時下結歎勝用初體文有二初摠辨不輕衆善二菩薩常樂攝受下由不輕頓故於行攝成自在此有二意一爲善根無縛著故迴三處二以善根順三處故著也二迴衆生及菩提中有二初辨普賢三業二從此生盡未來際生下廣約別事顯成自在初文有四初摠次身三口四意可知二廣顯內有三十二一得因果位二得方便三得身業四得口業五得意業成根七得神力八於佛剎自在九得家十得因陁羅十一得時自在十二身容受十三入果位#自在四入世界自在十五知想十六知心此等中各有二初知二歎知德十七知處十八知業十九知法十知聲二十一說自在二十二知根自在二十三智方便知微細此文等有二如前可知二十四行方便知微細二十五知入解位#菩薩微細二十六知初地微細二十七知生性微細二十八知世界微細二十九知法界智微細三十知劫智微細三十一知法智微細三十二知出生雜法微細也上知微細中何故知智而不知法者爲智能顯成法故也三實際文有初入觀二約出觀可知耳四結歎勝用文滿足等滿因果行也約位如此若約行#卽通一切耳偈文有二初長行生起二正頌偈有一百二初六頌行體次七十頌衆生及菩提次如是一切諸法王下十八頌實際次八頌結歎文十法界無量者此文有六次荅三結四歎勝用五證成六偈頌亦可此二段從會初科第二荅文有四初所成行體二復次菩薩以法施下迴衆生及菩提三復次菩薩安住法界下迴向實際四菩薩如是迴向時下結歎勝利此第十迴向與前八九何別第八趣理第九約修成十二俱通含及所作事也初體有三初㧾除障顯德此文有二初受記辨位次明益用也次菩薩行法施下修行所趣三菩薩於彼善根下辨行廣大所成自在福智莊嚴也此有二意一以行體迴依法界至於三處二所有行體卽是法界故可迴至三處也此廣大文有四初摠明行智莊嚴二諸佛菩薩所讚下別辨莊嚴行三何以故下辨成自行所以四復何以故下釋自成能得利物所由也第二迴向衆生等文中有二初明恭敬無閒三業恒行故也二菩薩以此法施下三業起用不空初文有三初意業隨智慧行令一切衆生皆悉具足下口業不空三令一切衆生得淨法身下身業不空初意業中有十門#知法等可知一令自他得佛無盡法門此文有五初立宗以此下摠辨其德用三悉得不得佛法四於一一下述自能於中有二初摠開十門於此文中其十海者一名生法立義相二引證相三方言語則四施名於五文教成軌六說則七所依門八能入智九境智資成相十義住立不動也五菩薩善根如是下明所成也次廣辨文可知耳第二復次菩薩下明自迴向所成德三菩薩復作是念下令同己等得四復次薩以此等下緣成性德五復次菩薩以此善根下行成得佛隨喜六菩薩以此善根如是下辨迴向所依此文有二謂佛及法界可知七復次菩薩下辨所趣八菩薩摩訶薩下得用自在也九菩薩以此善根如是迴向下以行成位有二初明所離二明辨所得可知十菩薩如是平等心下依位成勝進行用此文有四初辨迴行體二令一切衆生下明迴意此有二一自分二勝進可知三菩薩善根如是下明所離此文有三初立次責三荅可知四菩薩如是迴向時下明起行益也第二口業可知第三就身業文分三初辨身體二明身德三辨身用此有三初摠次別二三業起用不空文有二初復次菩薩修善下具辨三業第二如是菩薩下不空行成初具明三業文有二初辨寶莊嚴二廣說香華等下類辨十門莊嚴初文有四初辨所供境謂佛等二彼一一剎下供養三菩薩復作是念下以略示廣四是爲菩薩等下初供境中初摠次別別中依正分二二供養具有初明百句別寶供養二寶身莊嚴下八句明三業三寶眼下六根妙用四寶身業下後以三句成三業智用二三業不空行成中有二初令生成自分行二菩薩復作是念下令成勝分行此上各有二段應三復次菩薩安住法界下迴實際可知也四利用文有二初牒前諸行也二安住法界等無量淨身下依行成勝三業大段第三是爲下結文可知四歎德文有二初明已成就普賢廣大衆德二於念念中明別歎已分成自他勝用一切行事也上來依經一乘法通而非局次明三乘寄位法者如經初向心一二諦正直所謂學習第一義諦觀一切法相不可得故以慈悲喜捨教授六天剃頭被三寶衣出家菩薩共一切僧法無二第一淸淨故第二向第一義智謂五神通是慧性差別用卽以六通觀境也第三向中於無生慧內四不壞淨於佛戒中信不可壞故於第四向中量同佛力所謂三相諸法本無故假名生已有還無假名滅不空有法名住是故一切通達空而不二名世諦相空空一諦相故第五向中善計量衆生力所謂五陰色者異空色集成大色分故色相空剎那剎那成心故心相空受想行無集無散一相無相故第六向中佛教化力所謂十二入外六境內六根爲識所入處故名爲入其慧觀者不在外不在內不在中閒一切法無自他第七向中趣無㝵智爲十八不共法六境六根一合相一切法亦爾第八向中隨順自然智所謂因果善惡名因苦樂名果所由爲因所起爲果二空無生無滅皆一合相故第九向中受佛僧故謂二諦空因緣集故謂之有非曰有是有因緣散故謂之無非曰無是無故有無無二相也第十向中自在慧化一切衆生所謂中道第一義諦般若處中而達一切法而無二相轉增入聖地名相似第一義諦觀非眞諦觀初地已上是眞觀此是三乘寄位說所以知者爲經中明已前三十心竝爲凡夫法非聖位故也初地已上經本無通三乘立其教義文相多同故不須料簡也爾時佛神力故動地等下第五明證實顯成此文有二初動地雨花等證成次云十方菩薩悉雲集者第二明諸聖證成勸信流通也於二各有二謂辨相及結通餘方也偈初意後頌頌文有九十四初十四頌行體云無相妙智觀法眞相者無用依體也世行窮故最妙次菩薩法施下六十八頌衆生及菩提次譬如如下二頌實際次如是殊妙下十頌結歎就菩提衆生內初八頌三業隨智行十方一切下二十頌身業不空次恭敬下二十二頌口業次衆生數等下十八頌意業等也此會荅上迴向問耳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下乙巳歲分司大藏都監彫造
  1. 1)신수대장경에는 ‘행(行)’ 앞에 ‘기(起)’자가 더 있다.
  2. 2)처음의 두 품을 둘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이다.
  3. 3)신수대장경에는 ‘청(請)’자가 없다.
  4. 4)3종세간이란 기세간(器世間)ㆍ중생세간(衆生世間)ㆍ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을 말한다.
  5. 5)신수대장경에는 ‘해위(解位)’로 되어 있다.
  6. 6)경문의 세 가지 서(序) 가운데 세 번째이다.
  7. 7)신수대장경에는 ‘집(集)’자가 없다.
  8. 8)신수대장경에는 ‘견덕(見德)’으로 되어 있다.
  9. 9)정설(正說)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이다.
  10. 10)신수대장경에는 ‘위(位)’자가 없다.
  11. 11)4념처(念處) 또는 4념주(念住)를 말한다. 37도품(道品) 중 첫 번째의 실천 수행하는 방법으로, 몸[身]은 부정(不淨)하고, 느낌[受]은 고(苦)이며, 마음[心]은 무상(無常)이고, 법(法)은 무아(無我)라고 관하는 것이다.
  12. 12)10일체처(一切處) 또는 10변처(遍處)라고도 한다.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공(空)ㆍ식(識)의 10가지를 말한다.
  13. 13)8제입(除入)ㆍ8제처(除處)라고도 한다. 욕계(欲界)의 색처(色處)를 관하고 이것을 이겨내서 탐심(貪心)을 제거하는 8단계의 과정을 가리킨다.
  14. 14)대인팔념(大人八念)이라고도 한다. 보살ㆍ연각ㆍ성문 등의 역량이 큰 이들이 일으키는 8가지의 생각으로서, 소욕각(少欲覺)은 얻지 못한 5욕법 가운데서 널리 구하려 하지 않는 생각이고, 지족각(知足覺)은 이미 얻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며, 적정각(寂靜覺)[또는 원리각(遠離覺)]은 세속의 번뇌를 여의고 적정한 곳을 좋아하는 생각이며, 정진각(精進覺)은 선법을 닦는데 용맹정진하여 그치지 않는 생각이고, 정념각(正念覺)은 바른 이치를 일심으로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섞지 않는 것이며, 정정각(正定覺)은 선정을 닦아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함을 얻어 삼매가 앞에 나타나는 것이며, 정혜각(正慧覺)은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를 닦아 참되고 바른 지혜가 발생하는 것이며, 무희론각(無戱論覺)은 쓸데없는 말을 멀리 여의고 정어(正語)에 머무는 것이다.
  15. 15)대승(大乘)에서는 보살이 중생과 화동(和同)하여 애경(愛敬)하는 데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즉 신업동(身業同)ㆍ구업동(口業同)ㆍ의업동(意業同)ㆍ동계(同戒)ㆍ동시(同施)ㆍ동견(同見)을 말한다. 또 동계화경(同戒和敬)ㆍ동견화경(同見和敬)ㆍ동행화경(同行和敬)ㆍ신자화경(身慈和敬)ㆍ구자화경(口慈和敬)ㆍ의자화경(意慈和敬)의 여섯 가지로도 말한다.
  16. 16)3삼매(三昧) 또는 3해탈(解脫)을 말한다. 삼매에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2가지가 있으며, 유루정(有漏定)을 3삼매라 하고 무루정(無漏定)을 3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한다. 공(空)삼매란 온갖 것은 모두 인연에 따라 생기는 것이므로 나[我]나 나의 것[我所]도 역시 그 실체와 자성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하는 삼매이고, 무상(無相)삼매란 열반은 상(相)이 없는 것이라고 관하는 행(行)과 함께 일어나는 정심(定心)이며, 무작(無作)삼매[또는 무원(無願)삼매]란 모든 법을 관하고서 원하고 바랄 것이 없다는 관혜(觀慧)와 함께 일어나는 정심(定心)이다. 신수대장경에는 ‘공(空)’자가 ‘처(處)’자로 되어 있다.
  17. 17)6념법(念法) 또는 6수념(隨念)이라고도 한다. 염불(念佛)이란 부처님은 10호(號)를 구족하고 대자대비의 광명을 갖추었으며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신통이 한량없는 분이므로 우리도 부처님과 같기를 염원하는 것이고, 염법(念法)이란 여래가 설한 3장(藏) 12부경(部經)은 큰 공덕이 있으므로 모든 중생들의 대묘약(大妙藥)이 되는데, 우리가 능히 이것을 깨달아서 중생들에게 베풀고자 염원하는 것이며, 염승(念僧)이란 스님은 여래의 제자로서 무루법(無漏法)을 얻었고 계(戒)ㆍ정(定)ㆍ혜(慧)를 구족해서 세간의 거룩한 복전(福田)이 되니 내가 스님의 행을 닦고자 염원하는 것이고, 염계(念戒)란 모든 계행(戒行)은 큰 위력이 있어서 중생의 악(惡)과 불선(不善)의 법을 없애주므로 나도 능히 그것을 호지(護持)하고 정진하고자 염원하는 것이며, 염시(念施)란 보시행의 큰 공덕이 중생들의 간탐(慳貪)하는 중병을 능히 없애므로 나도 보시하여 중생을 섭수하고자 염원하는 것이고, 염천(念天)이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하늘이 자연히 쾌락을 받는 것은 다 전세에 지계ㆍ보시의 선근을 쌓았기 때문이니 나도 이와 같은 공덕을 갖추어 저 하늘에 나고자 염원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염(念)을 닦으면 선정을 얻어 열반에 이른다고 한다.
  18. 18)신수대장경에는 ‘불약(不約)’으로 되어 있다.
  19. 19)정설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이다.
  20. 20)정성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네 번째이다.
  21. 21)여기서의 ‘입(入)’이 신수대장경에는 ‘우(又)’로 되어 있다.
  22. 22)신수대장경에는 ‘오(五)’자가 없다.
  23. 23)신수대장경에는 ‘이(二)’로 되어 있다.
  24. 24)경문을 변별하는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25. 25)고려대장경 원문의 ‘인동설(引同說)’이 신수대장경에는 ‘별불동설(別佛同說)’로 되어 있다.
  26. 26)신수대장경에는 ‘주위(住位)’로 되어 있다.
  27. 27)경문을 셋으로 나눈 가운데 처음의 질문에 둘이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28. 28)신수대장경에는 ‘진(進)’으로 되어 있다.
  29. 29)신수대장경에는 ‘하(下)’자가 없다.
  30. 30)고려대장경의 원문은 ‘신구의자(身口意慈)’로 되어 있는 반면에, 신수대장경에는 ‘신구의업(身口意業)’으로 되어 있다.
  31. 31)신수대장경에는 ‘오(五)’자가 없다.
  32. 32)신수대장경에는 ‘현불(現佛)’로 되어 있다.
  33. 33)고려대장경의 ‘변(辨)’이 신수대장경에는 ‘병(幷)’으로 되어 있다.
  34. 34)60권본 『화엄경』 「夜摩天宮菩薩說偈品」 (『대정장』 9, p.465 상).
  35. 35)60권 『화엄경』 원문에는 “불자당승불신력광설묘법(佛子當承佛神力廣說妙法)”으로 되어 있다.
  36. 36)60권 『화엄경』 원문에는 “욕령여광설심심법고(欲令汝廣說甚深法故)”로 되어 있다.
  37. 37)이 품을 다섯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 경문을 변별함에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38. 38)본분을 둘로 나눈 가운데 그 두 번째이다.
  39. 39)경문을 변별하는 일곱 가지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40. 40)본분의 상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 답 중에서 두 번째이다.
  41. 41)설분의 열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42. 42)고려대장경에는 ‘취(趣)’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기(起)’로 되어 있다.
  43. 43)신수대장경에는 ‘정혜인(淨慧忍)’으로 되어 있다.
  44. 44)신수대장경에는 ‘안인(安忍)’으로 되어 있다.
  45. 45)답의 경문 세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46. 46)경문을 변별하는 일곱 가지 가운데 여섯 번째이다.
  47. 1)신장(信藏)의 네 가지 경문에서 두 번째 상을 변별하는 경문 세 가지 중에 두 번째이다.
  48. 2)계장(戒藏)의 두 번째이다.
  49. 3)다섯째 경문을 해석하는 가운데 7분(分)이 있는데 그 중 네 번째이다.
  50. 4)상(相)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51. 5)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첫 번째이다.
  52. 6)넷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이하의 경문을 셋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이다.
  53. 7)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두 번째이다.
  54. 8)불괴의 다섯 가지 가운데 두 번째 답의 경문에도 다섯이 있는데 그 첫 번째이다.
  55. 9)불괴의 다섯 가지 가운데 두 번째 답의 경문에도 다섯이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56. 10)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세 번째이다.
  57. 11)일체의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58. 12)열 가지 명칭을 열거해서 가운데 네 번째이다.
  59. 13)일체의 처소를 다섯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 답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세 번째이다.
  60. 14)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61. 15)답의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62. 16)답의 네 가지 가운데 네 번째이다.
  63. 17)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여섯 번째이다.
  64. 18)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일곱 번째이다.
  65. 19)중생과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수행을 변별하는 것의 두 가지 중 그 두 번째이다.
  66. 20)중생과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67. 21)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수순함을 다섯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68. 22)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여덟 번째이다.
  69. 23)답 중의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70. 24)답 중의 네 가지 가운데 세 번째이다.
  71. 25)여상(如相)의 다섯 가지 가운데 네 번째이다.
  72. 26)여상의 다섯 가지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73. 27)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아홉 번째이다.
  74. 28)원문에는 ‘처음’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상 두 번째라야 하므로 이에 고친다.
  75. 29)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76. 30)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세 번째이다.
  77. 31)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78. 32)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의 마음에 다섯이 있는데 그 다섯 번째이다.
  79. 33)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열 번째이다.
  80. 34)답의 네 가지 가운데 첫 번째이다.
  81. 35)답의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82. 36)의업(意業)의 10【문】가운데 두 번째이다.
  83. 37)중생 등에 회향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84. 38)3업의 용을 일으킴이 공하지 않다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85. 39)답의 네 가지 경문 가운데 세 번째이다.
  86. 40)답의 네 가지 경문 가운데 네 번째이다.
  87. 41)법계의 한량없음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다섯 번째이다.
  88. 42)법계의 한량없음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여섯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