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花嚴經探玄記卷第二

ABC_IT_K1513_T_002
047_0475_a_02L화엄경탐현기 제2권


위국 법장 한역
노혜남 번역


1. 세간정안품 ②

열 번째로 문장을 따라서 해석한다는 것은 이제 이 3만 6천 게송으로 이루어진 경에 7처(處) 8회(會)가 있다. 이를테면 사람 가운데 세 곳과 천상의 네 곳을 7처로 하고 중회(重會)의 보광(普光)을 8회로 한다. 그 가운데 34품이 있다.
처음의 한 품은 서분(序分)이다.
「노사나품」에서부터 그 아래는 정종(正宗)을 밝혔다.
유통(流通)의 유무(有無)는 네 가지 뜻[四義]으로써 해석한다.
첫째 ‘중생심 미진’ 이하의 두 게송으로써 유통을 삼으니 결탄권신(結歎勸信)하기 때문이다.
둘째 경이 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궐(闕)하여 유통이 없다.
셋째 이 경은 법계에 꼭 맞는 법문의 설이기 때문에 총괄적으로 유통이 없다.
【문】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서분이 있는가?
【답】 보고 들음이 있으면 통하여 나아가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이 있으므로 서(序)라 하고, 들어갈 곳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유통은 없다. 닦아야만 생기는 불과(佛果)에는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8회 가운데 하나하나의 모임[會]마다 끝에는 모두 유통이 없는가? 『대반야경』의 16회(會) 가운데는 저 회회(會會)의 마지막에 모두 별도로 유통이 있고, 『대집경』의 모든 회(會)의 끝에도 또한 모두 이것이 있는데 이 경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별의(別意)에 의해서 표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는 나머지 삼승법 등은 근기[機]의 차이에 따라 중생을 이익되게 함으로써 유통의 모습[相]을 삼는다.
또 대원(大遠) 법사는 이 경을 4분(分)으로 나누었다. 초품을 연기정기분(緣起淨機分)이라고 하고, 두 번째 「사나품(舍那品)」을 표종책지분(標宗策志分)이라고 하며, 세 번째 「명호품(名號品)」으로부터 아래로 제8회에 이르기까지를 현도책수분(顯道策修分)이라고 하고, 네 번째 끝에 보현이 설한 게송을 촉루유통분(囑累流通分)이라고 했다.
이제 다시 아래의 문장을 살펴보면, 총괄적으로 길게 나누어 다섯으로 만들 수 있다.
초품은 교기인연분(敎起因緣分)이다. 두 번째 「사나품」 가운데 일주(一周)의 문답을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이라고 하며, 세 번째 제2회로부터 제6회에 이르기까지 일주의 문답을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이라고 한다. 네 번째 제7회 가운데 일주의 문답을 탁법진수성행분(託法進修成行分)이라고 하며, 다섯 번째 제8회 가운데 일주의 문답을 의인입증성덕분(依人入證成德分)이라고 한다.
유통의 유무는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이 5분(分)은 모두 앞의 것을 의지하여 뒤를 일으키니, 문(文)이 차례로 서로 일어나서 의리(義理)가 두루 만족하다. 이러한 까닭에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처음 서분의 가운데로 나아가서 둘로 나누니, 처음은 이 땅[此土]에서 서분을 밝히고, 다음은 시방의 다함 없는 세계에서 서분을 밝힌다.
처음 가운데 셋이 있으니, 맨 앞의 네 자1)는 오직 증신(證信)이고 둘째 둘째 ‘일시(一時)’의 아래는 2서(序)2)와 통한다. 셋째 ‘동지(動地)’ 아래는 오직 발기(發起)일 뿐이다.
만약 뒤의 설에 통하면 4구(句)가 있는 것을 얻는다. 또한 오직 증신이니 이것은 곧 처음이요, 혹은 오직 발기이니 이것은 곧 뒤이다. 혹은 함께함이니 이것은 중간이요, 혹은 구비(俱非)니 아래의 정종(正宗)을 말한다.
또 처음 네 자는 뜻은 통하나 문(文)은 국한되었으니 문은 첫머리에 있지만 뜻은 8회를 통하기 때문이다. ‘일시(一時)’ 아래는 문은 통하지만 뜻은 국한되어 있다. 이하의 모든 회[諸會]에 다 ‘이시(爾時)’ 등이 있기 때문에 문은 통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은 처음에만 국한되어 있으므로 뜻도 국한된다. 또 『불지론』에 의하면 다섯으로 나누니, 첫째 총체적으로 ‘나는 들었다’는 것으로 나타냈고, 둘째는 교(敎)를 일으킨 시간이며, 셋째는 교의 주체를 나타내고, 넷째는 교를 일으킨 곳이요, 다섯째는 교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근기이다. 『법화론』 등에 의하면 6성취(成就)가 있다. 첫째는 신(信)이요 둘째는 문(聞)이며, 셋째는 시(時)요 넷째는 주(主)며, 다섯째는 처(處)요, 여섯째는 중(衆)이다.
이제 이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네 가지 문으로 만들겠다. 첫째는 이 여섯 가지 뜻이 안립(安立)하게 된 원인을 밝히고, 둘째는 친히 전한 말씀을 들은 것에 대하여 밝히며, 셋째는 전법(傳法)할 사람을 결정하고, 넷째는 문장을 해석한다.
첫 번째 가운데 여섯 구[六句]를 세운 데에는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부처님이 가르침을 안립하게 함이다. 『지론』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를 임하여 아난(阿難)에게 이르시되 “12부(部)의 경전을 너는 마땅히 유통해야 한다”라고 하시고, 또 우바리(優婆離)에게 이르시되 “일체의 계율은 네가 마땅히 수지(受持)하라”고 하셨다. 또 아나율(阿那律)에게 이르시되 “너는 천안(天眼)을 얻었으니 항상 사리를 수호하고 사람들에게 권하여 공양하게 하라”고 하시고, 대중에게 이르시되 “내가 만약 1겁(劫)을 더 머무르거나 1겁을 감하더라도 마침내 또한 마땅히 멸하리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시자 쌍림(雙林)에서 북으로 머리를 두고 누우셔서 열반에 들려고 하셨다. 아난은 친족의 사랑을 아직도 끊지 못하여 마음이 깊은 수심에 빠졌다. 아니로두(阿泥盧豆)가 아난에게 말했다.
“세존께서 오늘 비록 계신다 하더라도 내일에는 이미 없을 것이다. 너는 마땅히 미래의 요긴한 일을 물어서 결정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저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이와 같이 민절(悶絶)하는가.”
아난은 곧바로 일어나서 여쭈어 말하기를 “제가 지금 어떤 일을 청하여 물을까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노두(盧豆)가 가르쳐 말하되 “요긴한 일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친히 스스로 설법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믿고 받았지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 마땅히 무슨 말을 둘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며, 둘째 ‘여래께서 계실 때는 모든 비구 등이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았지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누구로써 스승을 삼아야 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며, 셋째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에 의지해서 머물렀지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누구를 의지해서 머물러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며, 넷째는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성질이 포악한 차익(車匿)도 부처님께서 스스로 이를 다스렸지만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어떻게 함께 머물 것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아난이 가르친 대로 청하여 물었다. 세존께서 답하여 이르시되 “경전의 첫머리에는 마땅히 여시(如是) 등 여섯 구절을 두어야 한다”고 하시고, 두 번째로 이르시되 “비구들은 모두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로써 스승을 삼아야 한다”고 하시며, 세 번째로 이르시되 “모두 4념처(念處)에 의지해서 머무르라”고 하시고, 네 번째로 이르시되 “악한 성품을 가진 비구는 범단(梵檀)으로 다스리라”고 하시니, 범단은 여기 말로는 이빈(哩擯)3)이다. 만약 마음을 조복받고자 하면 『가전연경(迦旃延經)』을 설하라. 여기 말로는 『이유무경(離有無經)』이라고 하나니, 아만심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또 『대비경(大悲經)』에서와 같다.
아난은 부처님에게 청하였다.
“어떻게 법안(法眼)을 결집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한 뒤에 대덕 비구는 마땅히 ‘세존은 어디[何處]에서 대아바타나(大阿波陀那) 등의 경을 설하셨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너는 마땅히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보리수 아래에 계실 때에[如是我聞 一時佛 在摩伽陀國菩提樹下]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신 후 설법하시고 나아가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설법하셨다.’”
이와 같은 등의 20여 곳에서 설하신 경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거듭 아난에게 가르쳐 결집하게 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이 6구(句)는 부처님이 가르침으로 정립한 것이다.
둘째, 의심을 끊기 위한 까닭으로 이 6구를 두었으니, 진제(眞諦) 삼장의 말과 같다.
『미세율(微細律)』에 의하면, “아난이 높은 자리에 올라서 법장(法臧)을 결집할 때를 당해서 그 몸은 부처와 같이 상호를 갖추고, 자리로부터 내려올 때는 도로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였다. 대중은 이러한 상서로움을 보고 마침내4) 세 가지 의심을 내었다. 첫 번째 의심은 부처님께서는 대사(大師)의 자비로써 열반으로부터 일어나서 다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실 것인가, 두 번째 의심은 부처님께서는 다른 곳[他方]으로부터 오셨는가, 세 번째 의심은 아난은 몸이 변하여 부처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라고 한다. 지금 이 세 가지 의심을 제거하기 위한 까닭으로 여섯 구를 두었다. 이러한 까닭에 아난은 스스로 ‘이와 같은 법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라고 말하였다. 분명히 알라. 이것은 부처님이 다시 일어나서 설한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곳의 부처님께서 오신 것도 아니며, 또한 아난 자신이 부처가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법력으로써 나로 하여금 부처님을 닮게 한 까닭이다.
셋째, 미래 세상에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지론』에 이르되 “모든 경의 첫머리에 시(時)ㆍ방(方)ㆍ인(人) 등을 둔 것은 신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넷째, 증감(增減)의 과실을 여의기 위한 때문이다. 『불지론(佛地論)』에 이르되 “마땅히 알라. 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을 설하신 뜻은 증감이분(增減異分)의 과실을 피하려 함이니, 이와 같은 법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으로서 다른 데로부터 옮겨와서 나타내 보인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은 여러 중생들이 들은 것을 감당할 수 있으므로 모두 증감이분의 과실을 여의게 되나니, 어리석은 범부가 모든 중생들이 들은 것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혹은 증감이분을 여읠 수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법을 결집할 때 불교를 전하는 자가 여래의 가르침에 의하여 처음에 이 말을 설한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믿어 받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고, 문(文)과 의(義)는 결정코 보태거나 줄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듣는 자는 마땅히 바르게 들어서 이치에 맞게 사유하고 마땅히 닦고 배우기를 권장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모든 쟁론을 쉬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만약 스스로 제작(制作)할 때는 곧 쟁론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론』에 의하여 밝혔다.
여섯째, 외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저 외도의 경론에는 “절벽이 무너졌다”고 말하고, 혹은 “청작(靑雀)이 물고 왔다”라고 말하였으나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갖추어 위곡(委曲)을 드러내어 법은 거짓됨이 없음을 밝혀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
둘째 아난 등의 직접 들은 것[親聞]과 전해들은 것[傳聞]이 같지 않음을 밝힌다는 것은 만약 소승에 의하면 두 가지 설이 있으니, 하나는 아난은 이미 부처님이 득도하신 날 밤에 태어나서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므로 20년 이후의 경은 곧 직접 들은 것이지만 그 이전은 전해들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법륜경(轉法輪經)』에 이르되 “아난은 결집할 때 스스로 게송을 설하여 말하되 부처님이 처음 법을 설하실 때 나는 듣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듣게 되었다. 부처님이 바라내(波羅奈)에 계시면서 다섯 비구들을 위해 4제(諦)의 법륜을 굴렸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그 이전의 것은 직접 들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이르되 모두가 곧 직접 들은 것이다. 『살바다론(薩婆多論)』에 이르기를 “아난이 부처님을 위하여 시자가 되려 할 때 청원하여 말하기를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20년 동안 설하신 경을 모두 다 저를 위하여 다시 설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는데, 『비니모론(毘尼母論)』에도 또한 이와 같은 설이 있다. 그러므로 총괄적으로 이것은 직접 들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대승에 의하면 일체가 다 직접 들은 것이다.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께서 거듭 설하심이니, 『승만경(勝鬘經)』 등에 부처님께서 본처에 돌아오셔서 거듭 아난을 위하여 설하신 것과 같다. 또 위의 『대비경』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거듭 설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는 곧 직접 들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난이 항상 들었기 때문이다. 『열반경(涅槃經)』에 이르되 “아난 다문(多聞)의 사(士)는 만약 있었거나 있지 않았었거나 간에 저절로 능히 상(常)과 무상(無常)의 뜻을 알았다”라고 하며, 또 이르되 “아난은 각의삼매(覺意三昧)를 얻어서 부처님이 설하신 경의 가깝고 먼 것을 항상 들었다”라고 하였다.
셋째 법을 전할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문】 “이 경을 설할 때 이승(二乘)의 사람 등은 모두가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았다. 어찌 아난으로써 내가 들었다고 말하게 할 수 있겠는가?”
【답】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설사 아난이라 할지라도 이 또한 허물은 안 된다. 왜냐하면 『아사세왕참회경(阿闍世王懺悔經)』에 의하면 세 가지 아난이 있다. 첫째는 아난타(阿難陀, Ānanda)이니 여기에서는 경희(慶喜)라고 하며 성문의 법장을 수지하였다. 위의 이승에서는 힘에 따르고 분(分)에 따른다. 둘째는 아난타발타라(阿難陀跋陀羅, Ānandabhadra)이니 여기서는 경희현(慶喜賢)이라고 하며 중승(中乘)의 법장을 수지하였다. 위의 대승에 있어서는 힘을 따르고 분을 따르지만 아래의 소승에 있어서는 용예겸지(容預兼持)하였다. 셋째는 아난타사가라(阿難陀娑伽羅, Ānandasāgara)이니 여기서는 경희해(慶喜海)라고 한다. 보살로써 대승의 법장을 수지하였다. 아래 이승에 대해서는 용예겸지한다고 하였다. 이 경문에 따르면 아난해는 큰 보살로써 능히 큰 법을 수지하는 것은 이치에 또한 어긋나지 않는다. 만일 원교에 의하면 아울러 이 노사나불의 해인삼매 안에 이 법을 전하는 사람 등을 나타낸 까닭에 곧 또한 부처이다.
두 번째로 말하기를 아난이 전한 것이 아니라는 말도 이치에 또한 어긋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론』에 이르되 “첫째 현시교(顯示敎)요, 둘째 비밀교(秘密敎)이다. 이 대품경은 곧 현시교이기 때문에 아난에게 부촉한 것이지만 『법화경』 같은 것은 곧 비밀교이기 때문에 희왕(喜王) 등에게 부촉하였다”라고 하였다. 또 『열반경』에 이르되 “아난이 아직 듣지 못한 경은 홍광(弘廣)보살이 마땅히 유통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준거해 보면 이 홍광보살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칭하였다. 또 『지론』에 준거하면 문수사리가 “아문(我聞)”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지론』에 “문수와 아난이 다른 청정한 곳에서 마하연장(摩訶衍藏)을 결집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문수사리반열반경(文殊師利般涅槃經)』 가운데 “부처님이 반열반한 후 4백 년이 지난 뒤에도 문수사리는 오히려 세간에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저들이 전한 법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문장을 해석한다.
『지론』에 의하면 여(如)는 순(順)이요. 시(是)는 신(信)이며, 또 인(印)이니 이는 곧 인순신수(印順信受)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시(如是)라고 하였다. 여시는 총괄적으로 일부의 문의(文義)를 거론한 것이니, 이를테면 내가 들은 법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여시’라고 말한다.
장이삼장(長耳三臧)에 의하면 삼보를 기준으로 해서 해석하였는데, 첫째 부처님을 기준하여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설한 것과 같다는 것은 곧 내가 들은 것이요, 내가 들은 것과 같다는 것은 곧 부처님이 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둘째 법을 기준하여 말하기를 “내가 들은 것과 같은 것은 곧 이치에 맞는 설(說)이요 이치에 맞는 가르침과 같으니 이는 곧 내가 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셋째 승(僧)을 기준하여 말하기를 “내가 들은 것과 같은 것은 곧 모든 보살이 같이 들은 것이요 모든 보살이 같이 들은 것과 같다는 것은 곧 내가 전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불지론』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 자가 ‘이와 같은 일은 내가 옛적에 일찍이 들었다’라고 말할 때의 여시(如是)는 총괄적으로 말하면 네 가지 뜻에 의해서 달라진다. 첫째는 비유에 의한 것이요, 둘째는 교회(敎誨)에 의한 것이며, 셋째는 문답에 의한 것이요, 넷째는 허가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세히 해석하면 저 논서에서와 같다.
‘나[我]’라는 것은 이를테면 5온(蘊)의 거짓된 것이다. 범론(汎論)에 ‘나’라는 것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진아(眞我)’이다. 즉 진여 가운데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 등을 말하며 진여를 성품으로 삼는다. 둘째 ‘자재아(自在我)’이니 여덟 가지 자재아 등을 말하며 지혜로써 성품을 삼는다. 셋째 ‘가아(假我)’로서 5온의 거짓됨을 말한다. 유식에서 나타낸 것으로써 주재(主宰)가 있는 것을 그 성품으로 삼는다. 넷째 ‘집아(執我)’로서 분별과 구생(俱生)과 소집(所執)을 성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또 아(我)를 반연하는 마음에도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견(見)’으로서 이를테면 모든 범부 등이 그것이다. 둘째 ‘만(慢)’으로서 이를테면 모든 학인(學人)이요, 셋째 ‘습(習)’으로서 이를테면 무학인(無學人)이며, 넷째 세상을 따라 유포하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모든 부처님이다.
이 가운데 ‘나’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가운데서 통괄적으로 처음의 세 가지가 있다. 교를 기준으로 하여 이것을 준거해 보라. 뒤의 네 가지 가운데 오직 하나이지만 또한 뒤의 세 가지와 통할 수 있다. 생각하여 여기에 준거해 보라. 무슨 까닭에 무아(無我)라고 설하지 않고 아(我)라고 설했는가. 이를테면 직접 들은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말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며, 세간을 따르기 때문이며, 무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론』에서 설하고 있는 것과 같다.
【문】 “법을 전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스스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我)라고 말하는가?”
【답】 같은 이름이 범람하는 과실이 있기 때문이다.
【문】 “아(我)라는 것이 왜 통하지 않는가?”
【답】 이미 ‘나’라고 칭함으로써 결정코 자기에게 속하기 때문이요, 다른 이를 간별하기 때문이다.
【문】 “어찌하여 ‘귀가 듣는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답】 총(總)으로써 별(別)을 거두어 들이기 때문이다.
【문】 “귀는 다만 소리만을 들을 뿐인데 어찌 능히 알겠는가?”
【답】 귀가 그 소리를 듣는 것과 뜻(意)이 문(文) 등을 아는 것은 화합하여 둘이 없기 때문에 직접 따라 ‘들음’을 말한다.
『살바다(薩婆多)』에는 감관[根]이 듣는다고 말하고, 『성실(成實)』에서는 식(識)이 듣는다고 말하며, 『지론』에는 화합하여 듣는다고 말하니, 곧 공무작(空無作)이다. 『열반』에 이르되, 네 가지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듣는다. 첫째 이근(耳根)이 무너지지 않음이요, 둘째 소리[聲]는 들을 만한 경계[境]에 있으며, 셋째 그 중간에 장애가 없음이요, 넷째 들으려고 하는 것이 있음이니 들으려고 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다.5) 이런 까닭에 이 문(聞)은 곧 듣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不聞聞].
또 열 가지 인연을 갖추나니, 첫째 본식(本識)을 근본의(根本依)로 삼고, 둘째 이식(耳識)의 종자를 인연의(因緣依)로 삼으며, 셋째 말나(末那)를 염오의(染汚依)로 삼고, 넷째 의식(意識)을 분별의(分別依)로 삼으며, 다섯째 자류이식(自類耳識)으로 등무간의(等無間依)를 삼고, 여섯째 이근(耳根)이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 동경근(同境根)을 삼으며, 일곱째 뜻을 일으켜 들으려고 하고, 여덟째 경계를 소연연(所緣緣)으로 삼으며, 아홉째 중간에 장애가 없고, 열째 경계가 가까워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또 나머지 법의 걸림이 없는 것 등도 통한다. 이런 까닭에 이 ‘문(聞)’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듣는 것을 듣지 못한다. 교를 기준으로 하여 준거해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일시(一時)’ 이하는 2서(序)에 통하니, 곧 이 여섯 구 안에 뒤의 네 구이다. 그 가운데 처음 셋은 함께 분별해야 하나니, 이를테면 시(時)와 주(主)와 처(處)이다. 뒤의 하나는 따로 분별하나니, 이를테면 함께 듣는 대중이다. 이것은 또한 3세간의 모양[相]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앞의 것 가운데에 또 둘이 있으니 먼저 통괄적으로 3상(相)을 표하고, 뒤의 ‘시성정각(始成正覺)’ 이하는 따로 세 가지 뜻을 해석한다. 무슨 까닭으로 이 두 문이 있다고 말하느냐 하면, 이른바 처(處)를 기준으로 하면 앞에서는 통괄적으로 염정(染淨)을 거론하고 뒤에서는 개별적으로 깨끗한 모습[淨相]을 나타낸 것이다. 또 앞에서는 더러움에 붙이고 뒤에서는 개별적으로 깨끗한 것을 분별하였다. 또 ‘시(時)’에는 시종(始終)이 있고 ‘처(處)’에는 염정이 있으며, 부처님에게는 얕고 깊음이 있는 까닭에 반드시 거듭 요간(料簡)해야 한다.
앞의 것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처음 ‘일시(一時)’라는 것은 『불지론』에 의하면 혹은 일찰나(一刹那)라 하며 혹은 다상속(多相續)이라 하였으니, 다만 설(說)과 청(聽)의 마지막 경지를 취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총괄적으로 이름하여 일시(一時)라고 임시로 세운 것이다. 소승은 실제의 시간[實時]6)이고, 대승은 가설(假說)이다.
만일 따로 해석하면 『양섭론』에서는 일시에 대하여 세 가지 뜻으로 나눈다. 첫째 평등의 때[時]이니 침부(沈浮)의 전도(顚倒)가 없기 때문이요, 둘째 화합의 때이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듣고 바로 듣게 함이며, 셋째 전법륜(轉法輪)의 때이니 바르게 설하고 바르게 받아들임이다.
두 번째 ‘부처님[佛]’이란 것은 ‘깨달음’이라는 뜻으로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이른바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다. 또 논(論)에 이르되 “연꽃이 피는 것과 같고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처음에는 소지(所知)를 깨닫는 것이요, 뒤에는 번뇌를 깨닫는 것이다. 혹은 세 가지 깨달음[三覺]이 있으니, 자(自)와 타(他)와 만(滿)이다. 곧 깨달은 사람을 각자(覺者)라고 한다.
혹은 바가바(婆伽婆)라고 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지론』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첫째는 덕이 있는 것을 말한다. 바가(婆伽)를 덕이라고 이름하고, 바(婆)를 유(有)라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교분별(巧分別)이라고 한다. 바가(婆伽)를 분별이라고 하고 바(婆)를 교(巧)라고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유명성(有名聲)이라고 한다. 바가(婆伽)를 명성(名聲)이라고 하고 바(婆)를 유(有)라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능파음노치(能破婬怒癡)라고 한다. 바가를 능파(能破)라 하고 바(婆)를 음노(婬怒) 등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넷 가운데 앞의 하나는 총(總)이고 뒤의 셋은 별(別)이다. 별(別) 가운데 처음은 지덕(智德)이요, 다음은 복덕(福德)이며, 세 번째는 단덕(斷德)이다. 또 『불지론』에 여섯 가지 뜻의 해석이 있으니, 저 게송에 이르되 “자재(自在)와 치성(熾盛)과 단엄(端嚴)과 명칭(名稱)과 길상(吉祥)과 존귀(尊貴), 이 여섯 가지 뜻의 차별을 갖추었다. 이런 까닭에 총괄적으로 이름하여 박가(薄伽)라고 한다”고 하였다. 자세한 해석은 그와 같다.
또 진제 삼장은 『진실론(眞實論)』을 인용하여 열 가지 뜻으로 해석한다고 하였다. “불(佛)이란 것은 각승천고(覺勝天鼓) 등등7)……”이라고 했다.
셋째 ‘처(處)’라는 것은 나라[國]는 통(通)이고 장(場)은 별(別)이다. 『지론』에 이르되 “마가타국(摩伽陀國)의 니련선하(尼連禪河)의 옆에 있는데 구루빈라(區樓頻螺)라는 부락 가운데서 아뇩보리(阿耨菩提) 등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불해국(不害國)이라고 한다. 이 나라에는 가지가지의 범죄가 있을 때에 다만 벌주는 일만 있고 죽이는 형벌[刑戮]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탁하여 대법자제(大法慈濟)의 모습을 표시한 것이다. 혹은 선승국(善勝國)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마가(摩伽)라고 하기도 하니, 이것은 별[星]의 이름이다. 여기에서는 불악(不惡)이라고 말하니 십이월을 주재하는 것이다. 타(陀)라는 것은 처소이다. 이름하여 불악처국(不惡處國)이라고 한다. 또는 성처국(星處國)이라고도 이름한다.
‘적멸(寂滅)’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장멸(障滅)로서 성멸(性滅)과 치멸(治滅)을 말하는 것이요, 둘째는 증멸(證滅)로서 멸의 이치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 멸덕(滅德)을 나타내는 것이니, “부처님의 십신과 보현 등의 법을 보인 것이다. 경에 이르되 “대반열반(大般涅槃)은 능히 큰 뜻[大義]을 세우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넷째는 물(物)을 이익되게 하는 것으로써 멸(滅)을 성취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니, 알 수 있는 것이다.
도량(道場)에도 또한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사처(事處)요. 둘째 행(行)이니 경에 ‘시(施)가 곧 도량’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셋째 이(理)니 『유마경(維摩經)』에서 “일체의 법이 곧 도량이다. 모든 법은 공(空)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 등과 같다. 넷째 일체 법을 통하니, 이를테면 인법(人法) 등의 일체를 여기에 준거해 보라.
모두가 도(道)를 얻는 곳을 도량이라고 하나니, 의주석(依主釋)이다. 또한 세간의 곡장(穀場)에서 쭉정이를 버리고 실하고 알찬 것을 취하는 것과 같이, 이 가운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혹(惑)을 멸하고 덕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도가 곧 량[道卽場]임을 얻기 때문에 지업석(持業釋)이라 하니, 여기에 준거하라.
사장(事場)이라는 것은 『구사론』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섬부주(剡浮洲)의 중앙에 금강지상(金剛地上)으로부터 금강좌를 일으켜 섬부주의 땅을 통치하며 상제(上際)를 평정하고 모든 보살은 다 그 가운데에서 금강삼마지(金剛三摩地)를 닦아 익힌다. 왜냐하면 다시 나머지 의지처가 능히 이 삼마지를 감당하여 받을 수 없다”라고 하니, 모든 보살이라 하는 것은 현겁(賢劫)의 천 명의 보살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始成正覺]’고 한 아래는 제2의 개별적으로 위의 셋을 요간(料簡)한 것이니, 처음에는 때[時]를 요간하고 다음에는 처소[處]이고 마지막은 주재[主]이다. 때 가운데에는 또 다섯 문(門)을 만드니, 첫째는 분제(分際)를 정하고, 둘째는 전후를 섭수하고, 셋째는 차별을 나타내고, 넷째는 법을 표시하고, 다섯째는 본문을 해석함이다.
처음 분제를 정한다는 것은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말하기를 “화엄 8회 가운데 앞의 5회는 곧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처음 칠일[初七日] 동안 설하신 것이고, 제6회 이후는 제이칠일(第二七日) 동안의 설이니, 『십지경(十地經)』 첫머리에서 ‘제이칠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제8회는 곧 최후의 시기에 설한 것이니, 저 경문 가운데 추자(鶖子) 등 5백 성문이 있어서 한꺼번에 최후의 시기에 제도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여러 판단은 아마도 경문에 따르지 않은 것 같다. 초칠일에는 결정코 설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지론』에 이르되 “무슨 까닭으로 초칠일 동안 설하지 않았는가. 인연행을 행하는 것을 사유한 까닭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미 사유라고 말함으로써 설법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설사 어떤 이가 구하여 “다만 십지만을 설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머지 법도 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곧 사유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 논에서도 해석하기를 “나의 법락(法樂)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까닭에 설하지 않았다”라고 하니, 그러므로 초칠일 동안에는 결정코 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제8회는 또한 최후의 시기도 아니다. 어찌하여 일부의 경에서는 앞에 이미 반을 설하고 중간에 나머지 경을 설하고 뒤에 비로소 다시 이을 수 있겠는가. 어찌 부처님으로 하여금 다라니의 힘이 없어 한 생각에 모든 법을 설할 수 없게 했겠는가. 기원(祇園)의 추자는 모두 합하면 곧 9세(世) 상입(相入)이다.
아래 경문에 이르되 “과거의 일체 겁을 미래와 현재에 안치하고 미래의 일체 겁을 돌려서 과거세에 둔다”라고 하며, 또 이르기를 “일념 가운데 삼세 일체의 불사를 건립한다. 나아가 나머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고 하니, 이와 같은 여러 글은 도처에 있다. 어찌 추자와 기원으로써 그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여기 이 경은 결정코 제이칠일 동안에 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전후를 섭수한다는 것은 세 가지 중첩된[三重]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칠일 동안에 곧 8회를 거두어서 동시에 설했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모임에 전후가 있겠는가. 인쇄된 문장을 읽을 때에는 전후가 있지만 종이에 찍을 때에는 동시인 것과 같다.
【문】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중회(重會)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답】 거듭함도 또한 동시이니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등불의 빛이 상입하는 등과 같다. 나머지 부동승천(不動昇天) 등에 대해서도 이에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다.
둘째는 그 때의 전후에 각각 한량없는 겁을 섭수하여 모두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부사의해탈의 때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중중무량의 염(念)과 겁을 섭수하니, 인타라망이 거듭 거두어 섭수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 차별을 나타낸다는 것은 『보요경(普曜經)』에 의하면 “제이칠일 동안 녹야원(鹿野園)에서 저 다섯 사람을 위하여 세 번이나 4제(諦)를 굴렸다”라고 하니, 이것은 곧 소승이다. 『밀적역사경(密迹力士經)』에 의하면 “제이칠일 동안 녹야원에서 한량없는 대중을 위하여 법륜을 굴릴 때에 나한(羅漢)ㆍ벽지(辟支)ㆍ보살의 도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 것 등은 곧 삼승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경에 의하면 “제이칠일 동안 수왕(樹王) 아래에서 큰 모임[海會]에 있던 보살을 위하여 다함 없는 법륜을 굴렸다”고 하니, 이것은 일승임이 분명하다.
위의 3동시(同時)라는 것은 법을 기준으로 하여 본말(本末) 동시를 표하고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기감(機感)이 각기 다름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에 의하면 삼칠일이요, 『사분율』에서는 육칠일이며, 『흥기행경(興起行經)』에는 칠칠일이요, 『오분율』에 의하면 팔칠일이며, 『지론』에는 오십칠일이요, 『십이유경(十二遊經)』에는 일 년이 걸려서야 비로소 설했다고 한다. 이것은 다 함께 말교(末敎)이니, 근기가 다르므로 들어야 할 것도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같지 않지만 본 교리는 근기가 정해진 까닭에 오직 이칠일뿐이다.
넷째 법을 표시한다는 것은 『십지론』에 이르되 시처(時處) 등을 교량(校量)하여 나타냄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 법이 뛰어나기 때문에 초시(初時)와 승처설(勝處說)에 있어서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이 경에서 초시에 의하여 본 법이 뛰어남을 나타냈기 때문이요, 둘째는 말교(末敎)도 함께 표시하였으니 이는 말(末)은 본(本)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본(本)을 나타내고 말(末)은 나타내지 않음이니 말시(末時)는 정해지지 않았고 본시(本時)는 정해졌기 때문이다. 시기는 이칠일 동안으로 정해졌으므로 다시는 다른 설이 있을 수 없다.
다섯째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에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고 한 뜻[意]은 초시(初始)의 뜻[義]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상(相)이 있으니, 첫째 초칠일 동안은 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둘째 제이칠일 동안은 곧 설법하기 시작한 처음이다. 이 가운데 정각을 이룬 때로부터 지금까지 7일을 지낸 까닭에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고 말하였다.
통틀어 다섯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소승을 기준으로 하면 생신(生身)의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에서 34심(心)의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어서 모든 나한과 같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성취한[實成] 것이요 화(化)가 아니다.
둘째 대승을 기준으로 하면 8상(相)의 화신이 이에 나타남을 보여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것이며, 셋째 보신을 기준으로 하면 10지(地)의 행이 원만하여 무간도(無間道)의 뒤에 과(果)가 나타나는 것이 원명(圓明)한 것을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고 한다. 넷째 법신을 기준으로 하면 처음으로 요인(了因)을 얻어서 최초에 둥글게 나타났기 때문에 초성(初成)이라고 한다. 이 위의 대승은 모두 다 처음이 없는 처음이다. 다섯째 십불을 기준으로 하면 일체 인타라망의 무변 세계에 두루하여 생각생각 가운데 모두 초초(初初)에 성불하여 주반(主伴)을 구족하여 3세간을 다한다. 이런 까닭에 이것을 갖추어 전후 무량겁의 처음을 섭수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바로 오직 제5만이 앞의 네 가지를 겸섭(兼攝)하므로 준하여 보면 알 수 있다. 이 5중(重)이 서로 여읠 수 없는 까닭이며 방편을 섭수하기 때문이다.
‘그 땅은 금강이다[其地金剛]’ 아래는 제2의 개별적으로 처소를 요간(料簡)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도 다섯 가지 문을 만드니, 첫째 그 처소를 정하고, 둘째 섭입(攝入)을 가리고, 셋째 차별을 나타내고, 넷째 법을 표시하고, 다섯째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그 처소를 정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 이 경을 설한 곳은 곧 정토인가, 아니면 염계(染界)인가? 설사 그렇다면 어떤 과실이 있는가? 둘 다 과실이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것이 곧 정토라면 무슨 까닭에 위의 글에서는 마갈제국(摩竭提國)이라고 말하고 아래 경문에서는 다시 이와 같이 사천하 염부제 등이라고 말했는가? 이것을 말미암아 마땅히 그곳은 정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염토라면 무슨 까닭에 아래 경문에서는 이 연화장세계해(蓮花藏世界海)가 6종(種)과 18상(相)으로 진동한 것 등을 말했는가? 분명히 이 경은 염토의 설이 아님을 알지니라.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난 일에 대하여 어떻게 지정(指定)하겠는가?
【답】 다만 이 경에만 의지하면 염정의 두 국토가 용융(鎔融)하여 상섭(相攝)함으로써 저 4구(句)가 있다. 혹은 오직 사바이니 본(本)으로써 말(末)에 따르기 때문이며, 혹은 오직 화장(花藏)이니 말로써 본을 따르기 때문이니, 이 두 가지는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혹은 둘 다 나타나는 것이니 화장에 의지해서 사바가 있기 때문이다. 염정(染淨)을 서로 나누지만 말은 본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아래 경문에서 화장세계 가운데 사바세계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혹은 염정이 쌍(雙)으로 끊어졌으니 과해(果海)의 불가설(不可說)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 위의 네 문을 합하여 일토(一土)를 만들면 용융무애하여 설함에 따라 모두가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섭입을 가리는 가운데 처음에 융섭을 밝힌다는 것은 또한 세 가지 중첩됨[三重]이 있다. 첫째는 이 각수(覺樹) 아래에서 있었던 8회의 인중(人中)과 천상(天上)을 섭수한다. 이런 까닭에 모두들 이를 여의지 못한다고 말한다.
둘째는 시방을 섭수하면 남은 찰토는 없고 다 이 수왕 아래를 여의지 못한다.
셋째는 털끝의 미진 속에 중중한 세계를 섭수함이 마치 제석천의 그물[帝網]이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는 다 이 연화장세계가 섭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융입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이 각수를 융합하여 앞의 3중(重) 소섭(所攝)의 곳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셋째 차별을 나타낸다는 것은 부처님이 경을 설하신 장소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오직 계내(界內)의 16대국이니 화신이 설법한 곳이다. 이는 소승과 삼승의 가르침에 통한다.
둘째 오직 계외(界外)의 모든 오묘한 정토의 열여덟 가지가 원만한 수용토(受用土) 가운데이니 보신불[報佛]이 설법한 곳으로서 『불지경(佛地經)』 등에서와 같다. “이 오묘한 정토란 삼계에 섭수되지 않지만 또한 여의지도 아니하여 모든 곳에 두루 가득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이것은 삼승과 일승의 설(說)에 통하는 것이다.
셋째 염정원융하고 제망무진한 연화장세계의 열 부처님이 설법한 곳으로 의(依)와 정(正)이 혼융하여 3세간을 갖춘 것이다. 이것은 오직 별교일승을 설한 곳이다.
이제 여기에서 분별하는 것은 바로 오직 뒤의 하나이고 앞의 두 가지를 겸섭하니, 그 본말이 서로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법을 표시한다는 것은 이 승처(勝處)에 의탁하여 법의 뛰어남을 표시함이다. 『지론』에 이르되 “이 법은 뛰어나기 때문에 승처에서 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 가지 중첩됨이 있으니, 첫째는 이 나무 아래에서 보리를 증득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어나지 않고 설하였던 것이다. 설한 것이 얻은 것과 같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다른 근기[異機]를 좇아서 변경하기 때문에 녹원에서 설한 것 등과 같지 아니한 것을 밝혔다. 둘째는 원융한 연화장세계에 의탁하여 설한 것이 원만하여 뛰어난 성품을 열어서 펼침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셋째 이 중중제망한 곳에 의탁하여 설한 것도 또한 중중무진함을 표시한 것이다. 『부사의해탈경』 등에서와 같다. 나머지 뜻은 아래의 세계장(世界章)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다섯째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은 문장 가운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는 도량의 지(地)를 밝히고, 두 번째는 지상에 보리수가 있고, 세 번째는 보리수 아래에 사자좌가 있으니 이것이 곧 지(地)는 행이 의존하는 근본이 되고, 나무는 행의 덕을 건립하는 것이 되며, 자리[座]는 행의 용[行用]이 이익을 섭수하는 것이 된다. 연기의 성품은 각각 온전히 융섭하여 법으로서 다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이 3위(位)는 문장 가운데 각각 열 가지 문(門)으로써 분별한다.
첫째는 장지(場地)를 해석하는 가운데 표(標)ㆍ석(釋)ㆍ결(結)이 있다. 표 가운데 ‘그 땅은 금강이다’라는 것은 그 땅의 체(體)를 표함이니, 이를테면 체가 단단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아래 경문에 “금강의 두터운 땅은 파괴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엄정을 구족한다’라고 한 것은 그 땅의 덕을 표한 것이니, 이를테면 상(相)으로써 장엄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곧 아래 경문에서 연화장세계지(蓮花藏界地) 아래 갖추어 풍륜(風輪)과 향해(香海)와 연화왕 등을 섭수하여 그것으로써 엄정하고, 지상에는 묘한 보배와 광명과 향하(香河)와 수망(樹網)이 갖추어져 있다. 이와 같이 상하에 청정한 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졌기 때문에 구족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때[垢]를 다하지 않음이 없음을 정(淨)이라고 하고, 덕이 원만하지 않음이 없음을 엄(嚴)이라고 한다. 둘째는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10구(句)가 있으니 열 가지의 엄정(嚴淨)을 나타낸다. 첫째 보화(寶花)의 엄정이요, 둘째 보륜(寶輪)의 엄정이며, 셋째 묘색(妙色)의 엄정이요, 넷째 당(幢) 등의 엄정이며, 다섯째 향만(香鬘)의 엄정이요, 여섯째 보배그물[寶網]의 엄정이며, 일곱째 보배를 비처럼 내리는[雨寶] 엄정이요, 여덟째 화수(花樹)의 엄정이며, 아홉째 불력(佛力)의 엄정이요, 열째 기특(奇特)의 엄정이다. 이 열 가지를 갖추었기 때문에 ‘엄정을 구족했다’고 말했다.
첫째 보화의 엄정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보배의 갖가지 꽃으로 네 가지 뜻을 갖추었기 때문이니, 첫째는 미묘의 뜻이요, 둘째는 열어 펼침의 뜻이며, 셋째는 출과(出菓)의 뜻이요, 넷째는 엄정의 뜻이다. 아래 경문에 이르되 “보화는 널리 모든 땅을 덮고 모두 능히 부처님의 공덕을 기른다”라고 하였다.
둘째 보륜의 엄정이라고 하는 것은 이 보륜은 다섯 가지 뜻[五義]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원만의 뜻으로서 결감(缺減)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덕을 섭수하는 뜻으로서 복망(輻輞) 등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굴러 움직인다[轉動]는 뜻으로서 이로부터 저기에 향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미혹을 꺾는다[摧惑]는 뜻으로서 맷돌에 갈아 부순다[碾碎]는 것 등과 같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항복의 뜻으로서 성왕의 윤보(輪寶)와 같기 때문이다. 또 보배는 곧 귀하다는 뜻이니, 아래 경문에서 말하기를 “보화의 성묘(成妙)한 색으로써 장엄하는 광명륜(光明輪)은 모든 법계에 충만하여 시방에 두루 가득하지 않은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셋째 색상(色相) 엄정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이 묘색에는 네 가지 뜻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밝게 나타낸다는 뜻으로서 형상과 빛깔을 갖추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즉공(卽空)의 뜻으로서 허(虛)를 머금고 서는 까닭이며, 셋째는 구덕(具德)의 뜻으로서 하나가 일체를 섭수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유용(有用)의 뜻으로서 중생이 보고 듣고 뛰어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는 너무도 많기 때문에 한량없다고 말하고, 꾸미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에 장엄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이 기해(器海)는 깊고도 넓어서 덕을 쌓아 포함하여 윤택하고 이익되게 함이 가없기 때문에 바다와 같다고 말했다. 큰 바다에 대해서도 열 가지 모습이 있으니, 여기에서 마땅히 분별하겠다. 아래 경문에서의 세계해의 이름도 이것을 따라서 세운 것이다.
넷째 당(幢) 등의 엄정이라는 것은 당(幢)과 번(幡)과 개(蓋)와 광(光)의 네 가지 뜻이 다른 까닭이다. 당에 대해서도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높이 솟아남이요, 다른 하나는 항복이니 제석의 당과 같다. 번에도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표치(標幟)이고 다른 하나는 수연(隨緣)이다. 개(蓋)에도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현승(顯勝)이요, 다른 하나는 음부(蔭覆)이다. 광(光)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어두움을 제거함이요, 다른 하나는 비추어 나타내는 것이다.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보당 가운데 광명이 있고 보배의 깃발과 번을 드리워서 장엄한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향만의 엄정이라는 것은 미묘한 향은 분복(芬馥)의 뜻이요, 미묘한 꽃이란 곧 개부(開敷)의 뜻이며 묘만(妙鬘)이란 꿰뚫는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 일로써 두루 펼쳐지고 두루 에워쌈으로써 공양을 이룬다. 또 미묘한 향의 꽃으로 꿰뚫어서 꽃다발을 만들고 당의 사면에 드리워서 장엄하는 것을 말한다.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잡화의 꽃다발을 달아서 장엄한다”라고 하였다.
여섯째 보배그물의 엄정이란 것은 그물로 은영(隱映)하여 장엄하는 것이다.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보륜의 그물이 그 위를 가득 덮었다”라고 하였으며, 『칭찬정토경(稱讚淨土經)』에 의하면 7보라는 것은 첫째는 금이요, 둘째는 은이며, 셋째는 폐유리(吠琉璃)요, 넷째는 파지가(頗胝迦)이며, 다섯째는 적진주요, 여섯째는 아스마게라바(阿濕摩揭拉波)이며, 일곱째는 모스타게라파(牟娑陀揭拉波)라고 한다.
일곱째 보배를 비처럼 내리는 엄정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비내리는 곳은 넓고 많아서 다 법문의 작용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자재(自在)’라고 말한다. 곧 몸을 나투어 설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덟째 보수 엄정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온갖 덕을 건립한다는 뜻이다.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청정한 보수의 구름으로 장엄하여 널리 일체의 몸을 비추어 밝힌다”라고 하니, 그러므로 ‘빛이 무성하다’고 말한다.
아홉째 불력의 엄정이라는 것은 ‘부처님에게는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그 원인을 들어 이러한 것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루게 된 이유를 분별함이니, 첫째는 체를 넓게 함이고, 둘째는 모양을 장엄함이며, 셋째는 용을 비추게 하는 것이다.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모든 세계해에 한량없는 장엄이 있다. 보배 바퀴의 가없는 빛깔은 여래의 신비한 힘으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였다.
열째 기특의 엄정이라는 것은 『지론』에 의하면 “보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보(人寶)로서 윤왕의 보배구슬이 물건[物]을 비처럼 내릴 수 있는 작용이 있는 것과 같고, 둘째는 천보(天寶)로서 모든 하늘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불러 쓸 수 있는 것이며, 셋째는 보살보(菩薩寶)로서 법을 설하며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보살의 보배를 앞의 인천(人天)에게 비교해 보면 이미 기특한 보배가 된다. 하물며 여래께서 소유하신 다함 없는 선근이 만들어 낸 보배이겠는가. 아울러 매우 기특하다. 곧 이 법문은 또 이 사보(事寶)가 되는 까닭이다.
아래의 한 구절은 총괄적인 결론이다. 선근이 한량없는 까닭으로 장엄구[嚴具]를 출생하는 것도 또한 한량이 없다. 그러므로 “한량없는 선근으로써 도량을 장엄한다”고 말했다. 또 이 선근을 사용하여 장엄하는 것이니, 아래 경문에 “백만억의 바라밀 구름과 선근 구름 등으로써 보배 자리를 장엄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도 그와 같기 때문이다. ‘무량’이라는 것은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노사나불의 과거 행(行)은 부처님의 찰해를 매우 청정하게 하며 무수 무량하여 변제(邊際)가 없고 저 모든 곳에서 자재하게 옮겨 다닌다”라고 하였다. 나머지 뜻은 뒤의 품에서 자세히 밝히겠다.
이 가운데에도 또한 총(總)ㆍ별(別)ㆍ동(同)ㆍ이(異)ㆍ성(成)ㆍ괴(壞)의 6상(相)이 있으니 준거해보면 곧 통할 수 있다. 장지(場地)를 마친다.
두 번째로 각수(覺樹) 가운데에도 또한 10구(句)가 있다.
맨 처음의 한 구는 총괄적인 구절이다. 보리수에 대한 해석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인근(隣近)과 의주(依主)와 지업(持業)이다. 원교 가운데의 의정(依正)은 걸림이 없어서 인법(人法)이 상시(相是)인 까닭에 보리가 곧 나무[樹]일 수 있다. 높게는 여섯 하늘을 벗어나고 시방을 비추기 때문에 ‘수특(殊特)’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총체적인 구절이다.
아래 아홉 구는 개별적으로 수특함을 나타낸다. 첫째는 줄기의 수특이니, 이 나무의 몸은 밝고 깨끗하며 견고한 뜻이 있으므로 ‘정유리(淨瑠璃)’ 등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가지의 수특이니, 나무의 가지는 곧 방편이며 근기를 따라 차별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보배의 수특한 가지 등이라고 말한다.
셋째는 잎의 수특이니, 가지의 첫 잎은 이 기(機)를 덮어주는 이익을 이루는 뜻이 있으므로 보배 잎 등이라고 말한다. 중운(重雲)8)이란 곧 단악(斷齶)이라는 뜻이며, 또 중운9)은 애체(靉靆)라는 뜻이다.
넷째는 꽃의 수특이니, 이것은 많은 행으로써 꾸민다는 뜻이다. 곧 이익을 이루는 행이기 때문에 잡색(雜色) 등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열매의 수특이니, 이것은 행이 이루어져 열매를 감(感)하는 뜻이다.
‘여의(如意)’라는 것은 첫째 능화(能化)의 뜻과 같이 평등하게 구제하기 때문이요, 둘째 소화(所化)의 뜻과 같이 구하는 것을 다 얻기 때문이다. ‘마니(摩尼)’란 것은 곧 보배 구슬의 통명(通名)이니, 통을 간별하고 별을 취하기 때문에 여의마니(如意摩尼)라고 한다. 또 이 위의 다섯 구는 하나의 수체(樹體)를 이룬다. 이른바 정법계(淨法界)는 땅과 같으니 불신을 나타내는 것은 땅이 나무를 생하는 것과 같고, 기틀[機]을 봄에 따라서 다름이 있는 것은 나무의 가지가 나누어지는 것과 같으며, 보면 이익이 없지 않는 것은 잎이 그림자를 이루는 것과 같고, 이익됨으로 말미암아 행(行)을 이루는 것은 나무의 꽃이 피는 것과 같으며, 행이 원만하여 과를 얻는 것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이것은 교화를 일으켜 중생을 섭수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부처님의 나무에 나타나는 것이다. 또 해석하면 본식(本識)은 땅과 같고 식(識) 중의 보살 종성은 나무 씨[樹子]와 같으며,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나무의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바른 행[正行]을 더욱더 닦는 것은 나무의 몸을 기르는 것과 같고, 지위를 따라서 닦는 것은 나무가 가지를 늘어나게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자행(自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덮어서 다른 이를 이익되게 하는 것은 나뭇잎의 그림자와 같고 자신과 다른 이의 두 행위를 꾸미는 것은 꽃과 같으며, 인(因)이 원만하며 과(果)가 나타나는 것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이것은 수행의 차례를 기준으로 해서 부처님의 나무를 이루는 것이다.
이 위의 다섯 구절은 나무의 체가 온갖 덕[衆德]을 섭수함을 밝힌 것이다.
아래에 4구(句)가 있어서 이 각수(覺樹)의 묘한 작용[妙用]이 자재한 것을 밝힌 것이니, 제6구는 광명이 수특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른바 광명의 작용이 두루 이르는 것이다.
일곱째는 화현(化現)의 수특이니, 이르러야 할 처소를 따라서 불사(佛事)를 짓는 것이다. 가없는 까닭에 끝날 수 없으니 이는 곧 일체 처(處)이다. 쉼이 없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니 이는 곧 일체 시(時)이다.
여덟째는 법의 수특이니, 모든 처소에서 어떠한 불사를 짓는가. 널리 대승보살도의 가르침을 나타낸 것이다. 이 ‘아함’의 광명인 까닭에 능히 법을 나타낸다. 또 이 위의 세 구절은 그 차례와 같이 몸[身]ㆍ뜻[意]ㆍ말[語]의 3업에 섭수되는 것이다.
아홉째는 불력(佛力)의 수특이니, 불력으로 가지(加持)하여 소리를 내어 덕을 찬탄함이다. 만약 나무 가운데서 스스로 소리를 내어 찬탄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여래의 뛰어난 공덕을 아는 자가 없을 것이다.
이 10구 가운데 6상의 총별(總別)은 여기에 준거해 보면 알 수 있다. 각 수에 대하여 마친다.
셋째 보좌(寶座)의 뛰어남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에도 열 구가 있으니, 처음의 하나는 총괄적인 것이다. 『지론』에 의하면 “부처님은 사람 가운데 사자이시다. 부처님께서 앉는 곳이 만약 평상이거나 땅이거나 모두 사자좌라고 이름한다. 임금이 앉는 곳도 또한 그러하다.” 또 이 자리에 앉아서 두려움이 없는 사자후의 법을 설하신다. 이러한 까닭에 또한 사자좌라고 이름한다. 아래 「이세간품」에 열 가지의 자리를 밝힌 가운데 사자좌가 있다. 깊고 깊은 뜻을 분별하여 연설하는 것이다. 이상은 모두 의주석(依主釋)이며 또는 지업석(持業釋)이니, 의정(依正)이 혼융(渾融)하기 때문이다. 또 이 자리는 법계의 인법교의(人法敎義)의 모든 법과 저 시방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깊고 넓어 수특함을 포함하기 때문에 “불가사의함이 마치 큰 바다와 같다”고 말한다.
아래 아홉 구(句)로써 개별적으로 부사의를 나타내나니, 첫째는 엄식의 부사의이니 체(體)가 온갖 덕을 섭수하기 때문에 온갖 묘한 보배 꽃 등이라고 한 것이다.
둘째는 유광(流光)의 부사의이니, 묘한 작용은 방향이 없어서 구름과 같이 널리 두루 가득하기 때문에 유광 등이라고 한 것이다.
셋째는 함섭(含攝)의 부사의이니, 안에 무수한 보살 대해를 머금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한다.
넷째는 어업(語業)의 부사의이니, 큰 음성[大音]은 멀리까지 미치므로 이익을 이룸이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부사의라고 말한다. 또 이 위의 세 구절은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몸ㆍ뜻ㆍ말의 3업의 용(用)이 된다.
다섯째는 가지(加持)의 부사의이니, 이 자리를 유광이 널리 비춘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의 광명이 거듭 다시 두루 덮어 뛰어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마니주(摩尼珠)의 빛은 비추는 힘이 40유순에 미치므로 윤왕의 궁궐까지 덮는다. 이제 부처님의 광명은 널리 법계를 비춤으로써 이 자리를 가득 덮어 저 양을 초과한다. 그러므로 마니를 능가한다고 말했다.
여섯째는 변화의 부사의이니, 화(化)의 작용이 깨달음을 열게 하기 때문에 불사를 짓는다고 말한다.
일곱째는 응기(應機)의 부사의이니, 시방의 근기가 완숙한 사람이 일체를 다 볼 때에도 한자리에 앉아서 널리 응하여 걸림이 없다.
여덟째는 신속(迅速)의 부사의이니, 일념(一念)이라는 것은 가장 짧은 시간을 말한다. 일체의 변화라는 것은 나타내는 것이 많음이다. 법계에 충만하다는 것은 매우 깊고 넓은 것을 말한다. 이 일념에서 능히 하나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 이미 희유하거늘 하물며 일체를 나타낸 것이겠는가. 능히 일념에 일체를 화현함이 이미 매우 희유하거늘 하물며 나타낸 모든 것이 낱낱이 깊고 넓어서 법계에 충만하여 한 생각 동안에 신속하게 이 끝없는 큰 작용을 일으킴이겠는가. 나머지 생각생각 가운데에 대해서도 모두 여기에 준거해 보라.
아홉째는 진성(眞性)의 부사의이니, 여래장의 체는 널리 두루하기 때문에 앞의 묘용(妙用)으로 하여금 걸림이 없음을 신속히 이루게 한다. 또 이 위의 네 구절은 이 자리의 작용을 밝히고 차례로 서로 말미암는다. 첫째는 무슨 모양[相]이 있는가, 둘째는 어떻게 응할 것인가, 셋째는 어떻게 빨리 할 것인가, 넷째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룰 것인가. 다음과 같은 네 구절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래의 한 구절은 총체적인 결론이다. 개별적으로 말하면 두루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론지어 말하기를 “한량없는 온갖 보배 등”이라고 한다. 자리가 높이 드러나는 까닭에 또한 대(臺)라고도 칭한다.
【문】 이 사자좌에 무슨 의리(義理)가 있어서 부사의라고 하는가?
【답】 이미 부사의라고 이름하였는데, 뜻은 실로 다함 없지만 간략하게 논하면 열 가지가 있다. 유분(有分)으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법계와 같기 때문이다. 무분(無分)으로 생각할 수 없으니 기틀을 위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理)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보화(寶華)의 일로 장엄하기 때문이다. 즉사(卽事)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여래장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의보(依報)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보살 등이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正報)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이는 곧 부처님의 의과(依果)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소의(所依)의 법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법으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3업이 갖추어 있어서 사람을 위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과(果)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인위(因位)의 모든 보살을 구유(具有)한 까닭이다. 인(因)으로써 생각할 수 없으니 불과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 위의 열 가지는 그 뜻이 걸림이 없어서 상즉(相卽)한다. 말하자면 이 한 자리는 곧 총상이고 열 가지 뜻은 별상이다. 이 자리의 뜻을 가지런하게 하면 곧 동상이 되고, 열 가지 뜻이 섞이지 않으면 이상(異相)이 된다. 이 열 가지 뜻으로 말미암아 좌법(座法)으로 하여금 일어나게 하는 것은 곧 성상(成相)이고, 각각 자신의 법[自法]에 머무르는 것은 곧 괴상(壞相)이다.
【문】 이미 “기틀을 위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분량이 없지 않다. 알지 못하겠다. 그 양의 분제는 얼마나 되는가?
【답】 그렇다. 또한 알기 어렵다. 다만 비유로써만이 밝힐 수 있다. 「십지품」에서 말한 것과 같다. “십지 보살의 자리[座]의 양은 두루 원만하여 10아승기 백천 삼천대천세계의 양과 같다” 하니, 이 자리의 양으로써 여래좌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콩알만한 흙으로써 대천세계에 비유하는 것과 같다. 이는 여래좌의 양은 매우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에서부터 여기까지 3단(段)은 총괄적으로 기세간의 원만한 경지를 밝혀 마친 것이다.
여기서부터 아래로는 세 번째 지정각(智正覺) 세간의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그 가운데 간략히 다섯 문(門)을 만들어서 요간(料簡)하리니, 첫째는 불신(佛身)을 정하고, 둘째는 융섭(融攝)을 밝히며, 셋째는 차별을 나타내고, 넷째는 법을 표시하며, 다섯째는 본문을 해석한다.
첫째 불신을 정한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문】 이 8회의 부처님은 어떤 몸인가?
【답】 어떤 사람이 해석하여 말하되 “이는 화신불이니 보리수 아래에서 팔상 성도하신 분은 곧 화신이기 때문이며, 떠나지 않으시고 하늘에 오른 것은 곧 두 번째로 화하셨기[重化] 때문이며, 석가의 다른 이름을 노사나라고 하였으니 특별히 보신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어떤 이가 해석하여 말하되 “이 경을 설하신 부처님은 곧 진실한 보신[實報身]이다. 이는 곧 노사나 법계신(法界身)이기 때문이며, 연화장의 정토 가운데 머무르시기 때문이다. 아래 제7회의 처음에 부처님은 저 21가지 뛰어난 공덕을 갖추었다고 찬탄하였으니, 곧 진실한 보신이다. 다만 화(化)를 여의지 아니한 까닭으로 이 나무 아래를 포함하지만 곧 화신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제 해석하겠다. 이 부처님은 아래 경문 가운데 준거해 보면 곧 십불의 몸으로써 3세간에 통한다. 10신(信)과 3현(賢) 등의 지전(地前)에서 본 것이라고 설함으로써 실보(實報)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장세계에 머묾으로써 화신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요, 국토신 등은 앞의 둘이 아니기 때문이며, 갖추어 앞의 둘을 섭수해서 성품이 융통한 까닭이며, 주반(主伴)을 구족하여 제석천의 그물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이 주변 법계의 십불의 몸이다.
둘째 융섭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바로 모든 3세간을 섭수하여 다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을 갖추어야 비로소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 3신(身)과 2신(身)이라고 한 것은 다만 이 삼(三) 가운데 지정각을 섭수하고 묘정토(妙淨土)와 동생(同生)의 몸도 모두 그 가운데 섭수된 것이 아님이 없다. 다른 하나는 정보(正報)는 털구멍에, 의보(依報)는 티끌 속에 각각 거듭거듭 갖추어 3세간 등의 모든 법을 섭수하여 제석천의 그물과 같이 나타나는 것을 준하여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셋째 차별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 한 석가의 몸이 여러 근기를 따라서 응하는 차별은 여러 가지이다. 혹은 범부와 같아서 성인이 아니니, 3척(尺)10)과 흑상(黑象)의 다리와 몸11) 그리고 수신(樹神)의 몸 등을 나타냄과 같다. 이것은 인천(人天)의 지위에 있음이다. 혹은 곧 성인이고 범부가 아니니 나한(羅漢)과 같음으로써 성인의 몸이기 때문이다. 혹은 또 범부이고 또한 성인이니 이는 부모 소생의 실제 보신이기 때문이다. 4대(大)로 이루어진 까닭에 범부의 몸과 같고 5분법신(分法身)을 갖추어 모든 흐름[流]을 다한 까닭에 곧 성인의 몸이다. 혹은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니, 이는 대승의 3신에 섭수되기 때문이며 소승 나한의 성인과 같지 않은 까닭이다. 혹은 곧 화신[化]으로서 법신이나 보신[法報]이 아니니 8상(相)을 갖추어 염부에 있기 때문이며, 색계천 꼭대기[色頂]에서 특별히 실제의 보신[實報]을 성립했기 때문이다. 『범망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것은 초교(初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곧 보신이고 법신이나 화신이 아니니, 곧 이 몸에 21가지의 뛰어난 공덕을 갖춤으로써 수용신(受用身)이 되기 때문이다. 『불지경』 첫머리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것은 종교(終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곧 법신[法]이요 보신[報]이나 화신[化]이 아니니, 색(色)이 곧 여(如)이기 때문이다. 경에 이르되 “나의 지금 이 몸이 곧 법신이다”라고 하니, 이것은 돈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또한 법신이고 또한 보신이나 화신[報化]이기도 하니 앞의 세 설(說)과 같기 때문이다. 혹은 법신도 아니고 보신이나 화신도 아니니 이는 곧 십불이기 때문이며, 3세간에 통하기 때문이며, 주반을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이 경의 아래 글에서 설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원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석가모니의 몸은 원융무애하여 지극히 생각하기 어렵다.
넷째 법을 표시한다는 것은 설법하는 부처와 같나니, 총괄적으로 네 가지 지위[位]가 있다. 첫째는 나한의 몸과 같은 것이니 소승의 법을 설한 것을 표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화신불이니 삼승을 설함을 표한 것이다. 널리 지전(地前)을 설하고 간략히 지상(地上)을 설한다. 셋째는 보신불이니 삼승을 설함을 나타낸 것이다. 널리 지상을 설하고 간략히 지전을 설하였다. 넷째는 십신불이니 일승의 법을 표하였다. 6위를 함께 설하였으니 이렇게 설한 것은 주반을 구족하여 다함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10신(身)이 다함이 없다.
다섯째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은 글 가운데 이 지정각의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도리어 열 가지 문으로써 하였으니, 첫 번째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나머지 아홉은 개별적인 것이다. 총체적인 것 중에 먼저 몸이 보좌에서 편안하기 때문에 “여래는 이 보배로운 사자좌에 처한다”고 말한 것과 같고 뒤에 지혜가 진원(眞源)에 계합하기 때문에 “일체 법에서 최정각을 이룬다”고 말하였다.
또 여래란 것은 『지지론(地持論)』에 이르되 “언어로 설한 것이 ‘여(如)’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여래라고 이름한다”고 하였으며, 또 『전법륜론(轉法輪論)』에 이르되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여’라고 하고 정각(正覺)을 ‘래’라고 한다. 정각이 제일의제이기 때문에 여래라고 이름한다”고 하였으며, 또 경에 이르되 “6바라밀을 타고 와서 정각을 이룬 까닭에 여래라고 이름한다”고 하였으며, 또 논에 이르되 “여실한 도를 타고 와서 정각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문】 여기에서 이미 장애에서 벗어남을 여래라고 이름한다면 어찌하여 얽매임[纏]에 있는 것을 ‘여거(如去)’라고 이름하지 않는가?
【답】 또한 이러한 뜻도 있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법신이 5도(道)에 유전하는 것을 이름하여 중생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니, 이미 유전한다고 말함으로써 마땅히 감[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또한 감[去]이 없으니 비록 얽매임에 있다고 할지라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 “만일 그러하다면 장애에서 벗어남도 움직이지 아니함으로써 마땅히 옴이 있다고 할 수 없는가?”
【답】 정법(淨法)은 진(眞)을 따라서 진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옴은 있을 수 있지만, 염법(染法)은 이치에 어긋나서 곧 망법(妄法)이기 때문이니 감이 있을 수가 없다. 혹은 또한 옴도 없다. 시각(始覺)이 본각(本覺)과 같기 때문에 이미 시각의 다름도 없다. 이런 까닭에 오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여래라는 것은 좇아온 곳도 없고 좇아갈 곳도 없기 때문에 여래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일체 법이란 깨달아야 할 2제(諦)의 법이다.
‘최정각(最正覺)’이란 것은 능각의 묘한 지혜이다. 보살에게도 또한 수분(隨分)의 정각이 있지만 그러나 위(位)가 아직 다하지 않음으로써 ‘최(最)’라고 칭할 수 없다. 지금은 지극함에 나아가서 최정각이라고 이름한다.
아래는 아홉 문으로써 개별적으로 여래가 정각을 이룬 뜻을 밝혔으니, 여래의 한 법계의 몸이 인연을 따라 나타남에 3중(重)의 3업(業)이 있다.
첫째는 세 문이 있어 평등의 3업이 자재하게 중생을 섭수하는[攝生] 것을 밝힌다.
둘째는 ‘그 몸은 널리……앉아서’ 아래는 중생을 섭수하는 3업의 이익을 이루는 것이 헛되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다 능히 두루……나타낸다’라고 한 아래는 이익을 이루는 3업이 ‘용(用)’에 즉(卽)하여 ‘여(如)’에 돌아가는 것을 밝힌 것이다. 처음 가운데 나아가 먼저 신업을 밝히니, 그 가운데에 두 가지가 있다. 초구(初句)는 평등의 신업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두루 들어간다[普入]’고 한 데서부터 아래는 중생을 섭수하는 신업을 분별한 것이다. 또 위의 구절은 깊은 것을 나타내고 아래 구절은 넓은 것을 밝혔다. 또 위는 부즉(不卽)의 삼세를 밝힌 까닭에 평등이라고 말하고, 아래는 불리(不離)의 삼세를 분별하기 때문에 ‘두루 들어감’이라고 말한다. 또 처음은 불변(不變)의 뜻이요, 나중은 수연(隨緣)의 뜻이다. 또 처음은 ‘체(體)’요, 나중은 ‘용(用)’이다.
또 ‘요(了)’라는 것은 이른바 조요(照了)이다. 삼세의 법이란 앞의 일체 법을 나타낸 것이다. 평등이란 것은 첫째는 과거ㆍ미래는 현재와 평등하다고 요지(了知)하기 때문에 평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세속의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둘째는 삼세에 천류(遷流)하는 법을 없애고 일실(一實)에 돌아가서 삼(三)과 다름이 없음을 요지하기 때문에 평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경(眞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경문의 뜻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곧 사(事)에 머물지 않고 이(理)에 들어감이다. ‘두루 들어감’ 등이라는 것은 이 ‘이(理)’에 머물지 않고 ‘사(事)’를 따르는 것이다. 또 앞에 것은 곧 ‘사’를 허물지 않고 ‘이’를 나타냄으로 이는 곧 ‘이’요 ‘사’가 아니다. 뒤는 곧 ‘이’에 어긋나지 않고 ‘사’를 따름으로 이는 곧 ‘사’요 ‘이’가 아니다. ‘이’와 ‘사’가 서로 용납하고 화합하니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어서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다. 두 구절은 나머지 공덕과 더불어 의지(依止)를 짓는 뜻이 이 몸의 뜻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다음에는 평등한 어업(語業)을 밝히겠다. ‘묘음(妙音)이 널리……이른다’고 한 것은 여래의 원만한 음성이 연기성(緣起性)과 같이 모든 곳에서 두루 가득하되 또한 별별(別別)하게 전표(詮表)하는 것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밝힌 것이다. 만약 평등하게 두루 가득한 것을 말미암아 그 소리의 곡진함을 잃으면 곧 원(圓)이요 음(音)이 아니며, 만약 음성의 곡진함을 말미암아 널리 두루 가득한 것을 어기면 곧 음(音)이요 원(圓)이 아니다. 여기서는 곧 곡(曲)을 무너뜨리지 않고 평등하게 두루 가득하며, 두루 가득함을 움직이지 않고 차운(差韻)한다. 이것을 여래의 원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심식(心識)으로 사량하는 경계가 아니다. 허공과 같다는 것은, 허공에 다섯 가지의 뜻이 있어서 부처님의 원음과 닮았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비유한 것이다.
첫째 주변(周遍)의 뜻이니 부처님의 원음이 법계에 주변하여 곳마다 이르지 않음이 없는데 비유하니, 마치 목련(目連)이 멀리 부처님의 소리를 듣고 끝[涯畔]을 얻지 못한 것과 같다.
둘째 평등의 뜻이니, 이를테면 공(空)은 비록 널리 두루하지만 ‘체’가 항상 둘이 없음은 부처님의 원음이 평등하고 일미(一味)인 것에 비유한 것이다.
셋째 무애(無礙)의 뜻이니, 이를테면 저 허공은 장애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원음이 근기의 생(生)ㆍ숙(熟)을 따라서 듣고 듣지 못함이 함께 장애하지 않음을 비유했다.
넷째 대현(對現)의 뜻이니, 이를테면 일체 중생이 모두 허공은 그 앞에 대하더라도 공하여 현존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음도 또한 그러하다. 여러 가지 근기에 따라서 각각 홀로 듣더라도 음성에는 피차(彼此)가 없다.
다섯째 함수(含受)의 뜻이니, 이 허공이 모든 색법을 포함하여 수용하기 때문이다. 원음도 또한 그러하여 소전(所詮)의 모든 법의 뜻을 함섭(含攝)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뜻은 아래 「성기품」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아래 의업(意業)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평등 의업을 밝히고 ‘평등한 마음[等心]’ 아래는 중생을 섭수하는 의업을 밝혔다. 또 처음은 이(理)이고, 나중은 양(量)이다. 또 앞의 것은 지(智)이고 뒤의 것은 비(悲)이다. 또 두 가지 이익에 머무름이 없는 연(緣)이 서로 융합하여 두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또 평등법상(平等法相)이란 것은 마치 부처님의 지혜가 유이(遊履)하는 곳이기 때문에 행처(行處)라고 말한다. 허공과 같다고 한 것은 행해야 할 평등의 법을 비유한 것이다. 또 경계와 지혜의 모습은 여(如)함으로써 능소를 함께 없앤다. 공(空)과 같이 걸림이 없기 때문이며, 또 일미(一味)이기 때문이며, 널리 두루하기 때문이며, 함섭(含攝)인 까닭이며, 유용(有用)인 까닭이다. 또 혹은 오직 경계뿐이니 허공과 같다 하고, 혹은 오직 지(智)라 하며, 혹은 함께 한다고 하고, 혹은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하니, 여기에 준거해서 생각해 보라.
또 해석하건대 불과계(佛果戒) 등 공덕이 진성(眞性)과 같다고 말하기 때문에 평등이라고 한다. 오직 불지(佛智)만이 아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의 행처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한이 없는 까닭에 허공과 같다고 한다. 『불지론』 제4에 이르기를 “계경(契經)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아가 있는 바를 시설한 비유에 의해서 모든 여래가 가지고 있는 공덕을 비유한 것도 모두 다 모든 여래를 비방함이나 오직 하나의 비유만은 제외된다. 그 하나는 허공의 비유이다. 여래의 계(戒) 등의 한량없는 공덕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는 생략한다” 하였다. 아래 구절의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수순한다’고 한 것은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생각이 없이 중생[物]을 이익되게 하는 까닭에 등심(等心)이라고 하며, 둘째는 평등하게 원교를 입힘이요, 셋째는 평등하게 극과(極果)를 줌이요, 넷째는 평등하게 그 성품에 달하여 섭화(攝化)를 장애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이 앞의 허공과 같은 덕으로써 중생을 섭수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순(隨順)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평등의 3업에 대하여 마친다.
두 번째는 중생을 섭수하는 3업의 이익을 이루는 것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처음 1구는 총괄적으로 표하여 근기에 나아감이니, 이를테면 ‘그 몸이 널리……앉는다’라고 한 것은 3업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도량’이란 것은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 일체 수미산 세계에 두루하고, 둘째는 일체 수형(樹形) 등의 세계에 두루하며, 셋째는 일체 진도(塵道)에 두루하여 중중(重重)함이 제망의 경계와 같다. 그러므로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이 노사나불이 항상 법륜을 굴리던 곳이다”라고 하고, 또 아래의 통틀어 매듭 지음[結通]은 다 이 글에 의지한다.
별(別) 가운데 처음 두 구절은 먼저 의업(意業)을 밝혔다. 첫째는 중생을 섭수하는 의업이니, 이를테면 근기(根器)를 분명히 아는 까닭에 “일체 중생의 소행을 안다”는 것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둘째는 이익을 이룸이 헛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이를테면 지혜의 해[慧日]로써 중생의 어리석음의 어둠을 깨뜨리기 때문에 지혜일(智慧日)이라고 한다. 다음 세 구절은 신업을 밝혔다. 첫째는 토(土)에 의지하여 몸을 나타내기 때문에 ‘다 능히[悉能]’ 등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몸[身]에 의지하여 광명을 놓으니, 첫째는 광명의 체가 3제(際)에 통하는 까닭에 삼세광(三世光)이라고 한다. 둘째 광명이 삼세의 경계를 비춤으로써 또한 삼세광이라고 한다. 모두가 지혜의 큰 바다[大海]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까닭에 지혜의 광명이라고 한다. 비추어지는 기틀의 경계가 순숙한 까닭에 ‘정(淨)’이라고 이름한다. 셋째 ‘무량의 광명’이라는 것은 광명이 권속을 섭수함이다. 또한 많기 때문에 무량이라 하였고, 또 ‘청정한 경계를 비춘다[照淨]’는 것은 깊은 것을 나타내고 ‘무량’이라는 것은 넓은 것을 밝힌 것이다. 다음 두 구절은 어업을 밝힌 것이니, 처음 구절은 실교(實敎)에 고쳐 움직임[改動]이 없는 것을 밝히기 때문에 불괴(不壞)라고 한다. 두 번째 구절은 교(敎)가 의지할 인(因)을 밝히기 때문에 ‘역무외(力無畏)’ 등으로써 말한다. ‘이(以)’라는 것은 유(由)와 같은 뜻이다. 이것은 곧 앞을 대하여 인(因)의 뜻이 된다. 또 ‘이(以)’는 용(用)과도 같다. 이 역(力) 등을 써서 방편문을 열어 중생을 교화한다 함은 이 권교(權敎)를 성취함이다. 이런 까닭에 뒤의 권교를 대하여 또한 이것이 소의(所依)가 된다. 또 ‘자재력의 광명[自在力光]’이라는 것은 통용무애(通用無礙)해서 권실(權實)에 대하여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익을 이루는 3업을 마친다.
세 번째는 용(用)이 여(如) 가운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먼저 신업(身業)을 밝힌다는 것은 이를테면 비록 널리 많은 곳에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용에 즉하여 체를 함께 하기 때문에 허공과 같다고 하고 오고감이 없으니 널리 두루하기 때문이며 부동(不動)이기 때문이다. 『기신론(起信論)』에 이르되 “비록 대용(大用)을 일으킨다고 할지라도 또한 용상(用相)을 얻을 수 없다”라고 하니, 이것은 곧 용이면서도 항상 고요함이다. 다음 두 구절은 의업(意業)을 밝힘이니, 하나는 허망한 것을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참다움[眞]을 따르는 것이다. 또 처음은 성(性)에 회통하여 길이 무(無)임을 말하고 두 번째로는 실상이 멸하지 않음을 말한다. 또 앞에서는 있지 않음[不有]을 요달한 것이요, 뒤에서는 없지 않음[不無]을 증득한 것이다. 『중변론(中邊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둘이 없음과 이 무(無)의 있음과
이 둘을 공상(空相)이라고 한다.

또 이것은 역시 이 앞의 것에 대한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이를테면 무엇을 인하여 널리 나타나되 오고감이 없는가. 해석하여 이르되 무성(無性)을 요달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오고감이 있는데도 무성인가. 저 오고감은 평등하게 따르기 때문이며 평등하게 따르는 큰 작용[大用]은 무명의 어둠을 다하기 때문에 ‘일체 광명’이라고 이름하고, 큰 작용을 잃지 않기 때문에 ‘널리 모든 부처님의 행하시는 바[所行]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아래의 한 구절은 어업(語業)을 밝힌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세계’라는 것은 두루 가득한 모든 곳이요, ‘부사의한 음성’이란 순하게 따르는 것이 많고 번거롭기 때문에 부사의라고 한다.
이 위의 세 가지 3업은 각각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것이다. 또 처음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나머지 둘은 개별적인 것이다. 또 셋씩 셋인 아홉은 개별적인 것이고, 처음 최정각(最正覺)은 총체적인 것이다. 동(同)ㆍ이(異)ㆍ성(成)ㆍ괴(壞)도 이에 준하여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지정각에 대한 해석을 마친다.
대단(大段) 제2에서는 중생세간의 원만함을 밝힌다. 그 가운데 먼저는 총체적으로 요간하고 뒤에는 본문을 해석한다.
처음 가운데 간략히 열 가지 문을 만들어 분별하니, 첫째는 대중의 수를 밝히고, 둘째는 신구(新舊)이며, 셋째는 기(器)를 정하고, 넷째는 세간과 출세간이며, 다섯째는 계취(界趣)이고, 여섯째는 모든 승[諸乘]이며, 일곱째는 권실(權實)이고, 여덟째는 위지(位地)이며, 아홉째는 표법(表法)이고, 열째는 인과(因果)이다.
첫 번째 대중의 수라는 것은, 이를테면 이 초회(初會)에는 55대중[衆]이 있으니, 처음 보현으로부터 마혜(摩醯)의 대중에 이르기까지 34가지 종류가 되고 뒤에 선해(善海)로부터 돌이켜 보현에 이르기까지 18대중이 된다. 앞의 것을 합하여 모두 52대중이 되고 또 해혜(海慧)의 내중(內衆)과 아울러 새로 모인 시방과 승음중(勝音衆)을 앞의 것과 합하여 모두 55대중이라고 한다. 제2회 가운데 신구(新舊)의 2대중이 있으니, 앞의 것과 합하여 모두 57대중이 된다. 3ㆍ4 두 모임[會]에 각각 천왕과 보살 두 대중이 있다. 앞의 것과 합하여 모두 61대중이 된다. 제5회 가운데 「승천품(昇天品)」 안에 52대중과 운집한 한 대중이 있고, 제6회에 동생(同生)과 이생(異生)의 두 대중이 있으며, 제7회의 한 대중을 앞의 것과 합하여 모두 117대중이 된다. 제8회 가운데 보살과 성문과 천왕의 세 대중이 있으니, 앞의 것과 합하여 곧 120대중이 된다.
그 가운데 하나하나마다 혹은 십불 세계의 티끌 수처럼 많은 것으로 양을 삼으니,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분제(分齊)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8회는 이미 아울러 동시에 서로 융합하여 한 법계의 큰 모임을 이룬다. 곧 하나하나의 모임마다 그 가운데 각각 120대중이 있어서 분제의 모습[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선 이 한 세계의 8회 가운데를 기준으로 하여 말한 것이다. 만약 시방 허공 법계의 모든 세계를 통틀면 다 각각 이 끝없는 대중의 모임이 있어서 상입(相入)하여 중중함이 제석천왕의 그물이 무진(無盡)함과 같아서 곧 불가설 불가설이니, 이것을 화엄 해회(海會)의 대중 수라고 한다.
두 번째 모든 모임의 신구(新舊)라는 것은 혹은 오직 옛 것만 있고 새 것이 없는 것이니 6ㆍ7 두 모임에서와 같다. 혹은 오직 새 것만 있고 옛 것이 없는 것이니 3ㆍ4ㆍ5의 세 모임과 같다. 혹은 또한 새 것이고 또한 옛 것이니 1ㆍ2ㆍ8의 세 모임에서와 같다. 나머지 뜻은 각각 아래 경문에 모인 대중 가운데에서 설한 것과 같다.
세 번째 기(器)를 정한다는 것은 널리 열중(列衆)을 논함에 세 뜻이 있으니, 첫째는 곧 당기(當機)이고, 둘째는 곧 영향(影響)이며, 셋째는 곧 기법(寄法)이다. 이제 이 세 가지를 통한다.
네 번째 세간과 출세간이라는 것은 네 가지 뜻이 있으니, 혹은 모두가 이 세간이니 때[時]를 따라 현현하기 때문이다. 또 3세간 가운데 이 하나인 까닭이다. 혹은 모두가 출세간이니, 그 행덕과 같은 것은 세간에 섭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세간이기도 하고 또한 출세간이기도 하니, 앞의 두 뜻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 모양[相]에 따라서 논하면 처음 보현 등은 곧 출세간이고 나머지는 세간이기 때문이다. 혹은 세간도 아니요 출세간도 아니기 때문이니, 출세간을 벗어남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 대중은 그 3위(位)를 통하고 이 네 구절을 갖추었다.
다섯 번째 계취(界趣)란 삼계 가운데에 무색천(無色天)은 제외된다. 모양에 따라서 법을 붙임에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왕경(仁王經)』에서는 또한 무색천 등도 포함된다.
다섯 세계[五趣]에는 지옥중(地獄衆)은 제외된다. 그들은 지극히 괴로움으로써 모양에 붙여서 법을 나타낸다 해도 또한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등다라니경(方等陀羅尼經)』에서는 또한 이 대중도 포함된다. 또 인왕중(人王衆)이 없다. 모양[相]으로써 나타나서 기특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 보살은 곧 인중(人衆)이라고 한다. 혹은 왕중(王衆)만을 열거함이 마치 뒤의 18대중의 처소에서 설한 것과 같다. 법의 자재함을 표했기 때문이다. 혹은 왕과 신하를 통함이니, 이 34대중 가운데에서 설한 것과 같다. 주반(主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모든 승[諸乘]이란 것은 『대지론(大智論)』에 이르되 “만약 소승경이라면 처음에 오직 성문중만을 열거하였을 것이요, 만약 대승경이라면 처음에 보살과 성문 두 대중을 모두 갖추어 열거한다”라고 하니, 이 뜻으로써 준거해 보면 만약 일승 경전이라면 처음에 오직 보살만을 열거할 것이니, 그러함을 아는 까닭은 저 논에서 대품(大品) 등을 공교(共敎)라고 하고 별도로 화엄을 가리켜 불공교(不共敎)라고 하니, 성문과 함께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 위의 세 문에는 각각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가운데 둘이란 것은, 하나는 만약 소교(小敎)에서 소과(小果)를 얻는 것 등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직 성문만을 열거한다면 이것은 곧 우법(愚法) 소승이니 아함 등의 경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소승을 돌리기 위해서 입힐 바 근기를 나타내어 오직 성문만을 열거한 것이라면 이것은 대승회심교(大乘廻心敎)로서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에서 처음으로 분별한 것과 같다. 두 번째 두 대중을 갖춘 가운데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혹은 먼저 성문을 열거하고 나중에 보살을 열거한 것으로서, 이것은 시(始)ㆍ종(終)ㆍ돈(頓) 3교에 통하니 『정명경(淨名等)』 등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혹은 먼저 보살을 열거하고 뒤에 성문을 열거한 것으로서, 이것은 돈교와 동교(同敎)에 통하니 『라마가경(羅摩伽經)』ㆍ『유루왕경(惟樓王經)』ㆍ『화휴경(和休經)』 등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세 번째 오직 보살만을 열거한 가운데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록 보살만을 열거한다고 할지라도 주반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서, 이것은 동교일승이니 마치 『십일면경(十一面經)』 등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만약 주반을 구족하면 곧 별교일승이니, 이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일곱 번째 권실(權實)이라는 것은 만약 삼승을 기준으로 하면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계실 때에는 잡중(雜衆)은 곧 실(實)이니 실보(實報)로서 태어났기 때문이요, 보살은 곧 ‘권(權)’이니 방편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에 말한 것과 같이 “저 모든 보살은 한량없는 자재력을 숨긴다”고 하였으며, 혹은 보살은 곧 실이니 지전(地前)의 보살은 오히려 이 땅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잡중은 곧 권이니, 『대집경(大集經)』에 의하면 모두가 곧 타방의 큰 보살 등으로서 권(權)으로 형체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님이 정토에 계실 때에는 보살은 오직 실(實)뿐이니, 이는 실보(實報)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잡중은 곧 화(化)요 실유(實有)가 아니기 때문이다. 『섭론(攝論)』에 이르되 “수용하는 국토 가운데 실로 이와 같은 중생은 없지만 정토로 하여금 비지 않게 하는 까닭에 이와 같은 여러 종류[雜類]의 중생을 변화로써 만든다”라고 하였다.
만약 일승 가운데라면 부처님께서 이 화장 세계에 계실 때에는 보살과 잡중은 모두 실이니, 이 해인정(海印定)에 나타나는 실덕(實德)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혹은 모두가 권이라 하니 연(緣)을 따라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머지 뜻은 이에 준하여 생각해 보라.
여덟 번째 그 위(位)를 밝힌다는 것은 만약 삼승을 기준으로 하면 이 보현 등은 다 10지 이상의 보살이고 저 신왕(神王) 등은 대부분 모두 유(類)를 따르는 중생에 속하니 곧 8지 이상이다.
만약 일승 가운데라면 연기제(緣起際)와 같이 모든 지위는 다 똑같다. 이러한 까닭에 한 사람이 다섯 지위[五位]를 갖추었으며, 지위마다 다 널리 거두는 것은 여기에 준한다.
아홉 번째 표법(表法)이란 것은 만약 삼승 가운데라면 다만 사람에 붙여서 법을 나타낼 것이니, 곧 사람이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일승 가운데라면 이와 같은 모든 사람은 아울러 법계 연기의 법문(法門)이다. 또 이 한 대중은 곧 3세간에 통하니, 혹은 하지정천수(河池井泉水) 등의 국토신을 짓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열 번째 인과(因果)라는 것은 만약 삼승이라면 다만 인위(因位)뿐이다.
만약 일승 가운데라면 혹은 모두가 인(因)이니 아직 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모두 과(果)이니 모두 이 부처님 해인 가운데 나타났기 때문이요, 또 해탈력(解脫力)을 타고 불해(佛海)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혹은 인과에 통함이니 앞의 두 뜻을 말미암는 까닭이다. 혹은 모두 아니니 이성평등(離性平等)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래 탄덕(歎德) 가운데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다음으로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은 하나하나의 대중마다 그 가운데에 모두 네 가지의 원만이 있다. 첫째는 수의 원만이니 먼저 수를 든 것 등이요, 둘째는 행의 원만이며 이름을 열거한 것 등이니 이름은 행에 의해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덕의 원만이니 덕을 찬탄한 것 등이다. 넷째는 공양의 원만이니 아래의 3업 공양 등과 같다.
여기에서 대중의 원만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외중(外衆)을 밝힌 것이요, 뒤의 ‘해혜(海慧)’ 아래에서는 그 내중(內衆)을 밝힌 것이다.
‘외중’ 가운데 또한 둘이 있으니, 먼저는 34대중을 열거하여 앞의 세 가지 원만을 갖추고 나중에 이것을 합하여 18대중이 되고 제4 공양의 원만을 나타낸 것이다.
【문】 앞에 나열한 가운데 보현으로써 처음을 삼고 마혜(摩醯)를 마지막으로 하였는데, 나중의 공양을 일으키는 가운데에서는 무슨 까닭에 이것과 상반되는가?
【답】 고덕(古德)이 해석하여 이르기를 “처음은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서 진행하는 증미(增微)를 나타냈고 뒤에는 위로부터 아래로 향해서 존위(尊位)의 차례를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니, 이 모든 해석은 용납하기 어렵다. 어찌 보현을 가장 낮고 하열하다 하겠는가. 여기에서 해석하겠다. 앞에서는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을 향하므로 근본에 의지해서 지말을 일으키는 것을 표한 것이요, 뒤에는 먼 데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향하니 지말을 찾아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밝힌 것이다. 진실로 생각하건대 본과 말은 둘이 없고 멀고 가까움이 다르지 않으므로 두 문장을 서로 들더라도 장애될 것이 없다.
앞의 것에 나아가 둘이 있으니, 먼저는 동생(同生)을 분별하고 뒤에 이생(異生)을 밝혔다.
혹은 성문을 동생이라고 하고 보살과 신(神) 등을 모두 이생이라고 한다. 이것은 소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모양[相]에 기준하여 동(同)을 밝힌 까닭이니 동좌(同坐) 등과 같다. 혹은 출가한 보살과 성문 등을 동(同)으로 삼고 나머지는 모두 이(異)를 삼으니, 이것은 시교(始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보살로써 ‘동’을 삼고 성문 등을 ‘이’로 삼으니, 이것은 종교(終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지상의 보살만을 ‘동’이라고 하니, 함께 법성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라고 한다. 혹은 8지 이상을 ‘동’이라고 하니 모두 순숙하여 순무류(純無流)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시종의 두 교에 통한다. 또 혹은 보살만을 ‘동’이라고 하니 모든 위(位)에 통하기 때문이요, 신천(神天) 등을 ‘이’라고 하니 법계와 다른 덕이기 때문이다. 혹은 보살과 신 등은 모두 ‘동’이라 하니 법계는 둘이 없기 때문이요, 혹은 모두 ‘이’라 하니 법계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승을 기준으로 하여 분별한 것이다.
동생(同生) 속에 나아가 처음 수(數)의 원만 가운데 “대(大)라는 것에 여덟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수대(數大)이니 이른바 10찰진(刹塵) 등이요, 둘째는 덕대(德大)이니 위(位)가 일승법계의 덕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작업대(作業大)이니 중생의 매우 무거운 고통을 구원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경대(敬大)이니 천왕 등의 대인에게 공경을 받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승대(勝大)이니 일체의 대중 가운데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행대(行大)이니 2리(利)와 6위의 행을 닦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원대(願大)이니 열 가지 큰 서원에 10진구(盡句)가 있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시대(時大)이니 3무수겁(無數劫)이다. 혹은 무량승기(無量僧祇)에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살이라는 것은 『불지론』과 『무성섭론(無性攝論)』 등에 의하면 모두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보리(菩提)’라는 것은 여기 말로는 깨달음[覺]이라고 말하니 이는 구하는 것이요, ‘살타(薩埵)’라는 것은 여기 말로는 유정(有情)이라고 하니 이는 제도할 대상이다. 경계에 따라서 이름을 만든 것이다. 뜻을 말하면, 만약 마음을 따라서 말하자면 마땅히 비지(悲智)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보리는 앞과 같고 살타는 능구(能求)이니, 이른바 보리를 구하는 유정인 것이다. 이는 인법(人法)을 기준으로 하여 이름함이니, 또한 심경(心境)으로써 제목을 삼은 것이다.
셋째 보리는 앞과 같고 살타는 여기 말로는 용맹을 말하는 것이다. 지(志)와 능(能)이 있어서 큰 보리를 용맹스럽게 구하기 때문이요, 또 『지론』에 이르기를 “살타는 혹 중생이라고 말하고 혹은 대심(大心)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니, 곧 위의 두 뜻을 말한 것이다.
‘구(俱)’라는 것은 법을 전하는 보살은 더불어 함께 듣기 때문이며 여래께서 그와 더불어 설하셨기 때문이다. 또 『지론』에서 말하였다. “곳[處]을 하나로 하고, 때[時]를 하나로 하고, 마음[心]을 하나로 하고, 계(戒)를 하나로 하고, 견(見)을 하나로 하고, 도(道)를 하나로 하고, 해탈(解脫)을 하나로 한 것을 ‘공(共)’이라고 한다. 공(共)은 구(俱)와 같다.”
두 번째 행원만 가운데 보살의 이름이 섞인 것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아래 ‘추세(麤細)’ 등의 잡(雜)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까닭이요, 다른 하나는 그 대중들은 8회에 통하는 서두이기 때문이다.
덕이 법계에 두루 가득함을 ‘보(普)’라고 하고, 지순조선(至順調善)함을 ‘현(賢)’이라고 한다. 『지론』에서는 ‘변길(遍吉)’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보’라고 똑같이 이름한 것은 원만하고 두루하기 때문이요, 다음에 ‘월(月)’이라고 이름한 것은 덕이 청량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왕(王)’이라고 이름한 것은 덕이 자재하기 때문이요, 다음에 ‘광(光)’이라고 한 것은 어두움을 없애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견고한 덕이기 때문이요, 그 다음은 덕이 홀로 나왔기 때문이며, 또 다음은 청량한 가르침을 연설한 때문이요, 그 다음은 덕이 밝고 높기 때문이다.
『지론』에 말하였다.
【문】 보살이 매우 많은데 무엇 때문에 나열한 것은 적은가?
【답】 보살을 한량없이 설한다고 할지라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니, 만약에 전부를 나열한다면 문자에 다 싣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다음으로는 보살은 두 가지에 지나지 않으니, 이른바 재가와 출가이며 이 세계[此方]와 저 세계[他方]이다. ‘재가’라는 것은 발타라 등이고 ‘출가’라는 것은 묘덕(妙德) 등이다. ‘이 세계’라는 것은 자씨(慈氏) 등이고, ‘저 세계’라는 것은 관음 등이다. 만약 이 두 가지를 설하면 마땅히 알라. 모든 것을 섭수하여 다할 수 있다고 했다.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사바세계에 의해서 말한 것이다. 화장세계의 대중에 나아가면 경문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세 번째로 덕의 원만함을 찬탄한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뒤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처음 가운데 ‘벗[友]’이라는 것은 덕이 가지런함이니, 곧 ‘인’과 ‘과’가 둘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문(文)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불(佛)을 들어 덕을 나타냄이니, 그 사람을 보려고 한다면 먼저 그 벗을 보라는 말과 같다. 다른 하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모였는가. 이는 벗이기 때문에 서로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속서(俗書)에 이르기를 “뜻을 같이하는 것을 벗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 가운데 착한 친구[善友]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나보다 뛰어나다는 뜻이니 선재가 친구를 찾아 나선 것과 같고, 둘째는 덕이 가지런하다는 뜻이니 이런 사람으로 친구를 삼기 때문이며, 셋째는 조금 모자라는 뜻이니 보현 등을 제2 존도(尊導)라고 이름한 까닭이다.
다른 하나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그 가운데 처음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다. 모든 보살은 다 끝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깊고 넓음이 바다와 같으니, 10상(相)은 여기에 준한다.
아래에 따로 밝힌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자분(自分)의 공덕을 성취한 것이요, 뒤의 ‘무상지원(無上智願)’ 아래는 승진(勝進)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2분(分)을 통틀어 설함에 일곱 번 중첩됨이 있으니, 첫째는 한 행[一行]의 생과 숙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는 것이요, 둘째는 두 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시행(施行)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 계(戒) 등을 닦는 것과 같다. 셋째는 2리(利)에 의해서 나누는 것이요, 넷째는 행과 위(位)에 나아감이니 ‘위’를 얻음으로써 승진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비(比)와 증(證)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는 것이요, 여섯째는 2위(位)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전위(前位)가 이미 이루어짐을 자분(自分)이라 하고 후위(後位)에 취향(趣向)하는 것을 승진(勝進)이라고 한다. 일곱째는 인과에 나아감이니 ‘인’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분이고 ‘과’에 들어감은 승진이다. 이제 이 문 중에는 바로 말후에 나아가 둘을 겸해서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분’ 가운데 나아가 아홉 가지의 공덕을 성취한다. 첫째는 행만(行滿)의 공덕을 성취함이니,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에나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보시[施] 등 7도(度)를 행한 까닭에 모든 도가 널리 비춘다[諸度普照]라고 한다.
둘째는 혜안(慧眼)의 공덕을 성취함이니, 무슨 뜻으로써 이 도행(度行)을 원만하게 통할 수 있는가. 정혜안(淨慧眼)으로써 저 3제(際)와 같은 것을 평등하게 관하기 때문에 혜안 등이라고 한다.
셋째는 깊은 선정[深定]의 공덕을 이룸이니, 무엇에 의하여 이 혜안을 얻느냐 하면 깊은 선정에 의해서 발(發)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선정에서 맛보지 않기 때문에 정(淨)이라 하고 또 선정으로 뛰어난 지혜를 발하기 때문에 명(明)이라고 한다. 둘째 선정에 익숙하여 들고남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명정(明淨)이라고 한다. 아래 경문에 “동방에서 정수(正受)에 들어가면 서방에서 삼매에서 일어난다”고 한 것과 같다. 셋째 단박에 많은 선정[定]에 들어가서 일로 하여금 일체를 포함하게 하기 때문에 ‘명정(明淨)을 구족함’이라고 한다. 아래 경문에 이르되 “미진수의 모든 삼매에 들어가서 하나의 삼매마다 티끌 수와 같은 선정을 생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여기까지의 세 구절은 자리행(自利行)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묘변(妙辯)의 공덕을 이룸이니, 교묘하게 능히 저 설하기 어려운 법을 설하기 때문에 ‘변재(辯才)’라고 칭한다. 곧 아래의 40무애12)와 같다. 한 말로써 일체를 설하는 것을 ‘광(廣)’이라고 하고, 설한 것이 다 깊은 것을 ‘심(深)’이라고 한다. 이 ‘심’과 ‘광’은 모두 끝이 없고 밑이 없기 때문에 ‘무진(無盡)’이라고 말한다.
다섯째 ‘보요(普曜)’의 공덕을 이룸이니, 부처님의 공덕신의 광명이 널리 나타나서 여러 중생의 근기를 조요(照曜)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조화(調化)의 공덕을 이룸이니, 선교(善巧)로써 중생의 마음 그릇[心器]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니, 곧 마음과 행동이 조밀한 것이다. 근기에 맞추어서 법을 주고 조화하여 장애를 여의고 번뇌[使]를 조복받아 법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여응조복(如應調伏)’이라고 했다. 위의 세 구절은 곧 3업으로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행이다. 일곱째는 진지(眞智)의 공덕을 성취함이니, 금강의 지혜로써 널리 차별이 있는 모든 경계를 비추되 모두 똑같이 일미(一味) 평등한 법성이다.
여덟째는 양지(量智)의 공덕을 이룸이니, 광대한 슬기로써 심지(深智)가 알고 있는 경계를 밝게 통달함에 두루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밝게 통달하지 못함이 없다’라고 말한다. 위의 두 구절은 밝은 지혜가 2제(諦)를 비추는 덕을 밝힌 것이다.
이 위의 여덟 구절은 행을 기준으로 해서 덕을 나타낸 것이다.
아홉째는 섭위(攝位)의 공덕을 이룸이니, 여기에는 두 뜻이 있다. 하나는 앞의 여러 행을 섭수하여 신(信) 등 5위 가운데에 들게 함이요, 다른 하나는 한 위[一位]에 있을 적에 그것을 따라서 곧 전후 일체 모든 위[諸位]를 섭수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상입(相入)을 기준으로 해서 섭수하는 것을 밝히고, 다른 하나는 상즉(相卽)을 기준으로 해서 섭수하는 것을 밝혔다. 앞의 10문에서와 같으니, 여기에 준거해 보라. 이 10신(信) 만심(滿心)으로부터 이후의 여러 지위에 이 상섭(相攝)이 있다. 이러한 까닭에 아래 「현수품」에서 “신만(信滿)의 곳에서 곧 일체의 지위와 나아가 불과까지도 갖춘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상 자분(自分)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두 번째로 승진입과(勝進入果)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 열 구[十句]에서는 체덕(體德)의 원만을 밝히고, 다음 ‘변유(遍遺)’의 아래 여섯 구는 묘용의 자재를 나타낸 것이다.
앞의 것에서는 불과의 열 가지 공덕을 이룸이니, 첫째는 부처님의 지원(智願)의 덕을 얻음이니 ‘무상(無上)’이라고 한 것은 불과는 보탤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智)란 것은 큰 지혜[大智]로서 곧 네 가지 지혜와 열 가지 지혜 등이다. ‘원(願)’이란 것은 큰 서원으로서 곧 자체에 장애가 없기를 서원[願]하는 것이다. 큰 지혜가 이미 이루어지면 큰 서원은 이미 만족해진다. 아울러 지금 원만함을 성취하여 마쳤다. 이것은 당래에 성취할 것[當成]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다 원만함을 성취하였다”라고 말한다.
둘째는 부처님의 밀교(密敎)를 갖춘 덕이니, 여기에도 두 뜻이 있다. 하나는 말로 이치를 다할 수 없는 것을 비밀교라 하나니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미묘하여 알기 어려워서 하위(下位)에서는 능히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밀교라고 한다. 이와 같이 깊고 넓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후자에 의해서 설한다. 무엇이 깊은 것인가. 말이 곧 말이 아니기 때문이요 또 어떤 것이 넓음인가. 말로 할 수 없는 말이 법계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아래 경문에 “추자(鶖子)는 귀머거리와 같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깊고 넓은 가르침은 오직 부처님만의 소유이다. 이제 이 보살도 구족하여 부처님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였다.
셋째는 부처님의 과법(果法)의 덕을 얻음이니, 18불공(不共) 등은 과위의 공덕으로서 아래를 대해서는 모두 불공(不共)이라고 하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대하면 공법(共法)이라고 한다. 이는 보살과 한가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공법’이라고 말한다.
넷째는 과위와 같은 덕이니, 여기에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부처의 행과 같다는 것이니 대비의 행이기 때문이요, 둘째 부처님의 지혜와 같기 때문에 부처님의 10지를 얻음이니 비로자나(毘盧遮那)ㆍ지장(智臧)ㆍ대해지(大海地) 등이라고 말한다. 셋째 부처님의 덕과 같다는 것은 부처님의 끝없는 복지(福智)의 덕을 얻기 때문이요, 넷째 부처님의 힘과 같다는 것은 10력을 얻은 까닭이다. 또 열 가지 큰 힘[大力]을 얻는 것이니, 「부사의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삼매가 자재한 덕이니, 여기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출입이 자재한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서로 섭수함이 자재하기 때문이다. 위의 다섯 구[五句]는 부처님의 스스로를 유익하게 하는 덕을 얻는 것이다.
여섯째는 기감현형(機感現形)의 덕이니, 근기에 감응함이 매우 많기 때문에 생해(生海)라 하고, 원만한 몸이 널리 응하기 때문에 응현(應現)이라고 한다. 경에 이르되 “마땅히 불신(佛身)으로써 제도해야 할 사람에게는 곧 불신을 나타낸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수행섭생(隨行攝生)의 덕이니, 그 근행(根行)을 따라서 법문을 수여하여 바른 행[正行]을 더하기 때문에 건립(建立)이라고 한다. 위의 구(句)13)는 몸을 나타낸 것이고 이 구는 법을 설한 것이며, 이 2구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한 덕을 얻음이다.
여덟째는 교묘히 법해를 증득한 덕이니, 연기의 법은 매우 넓고 너무나 깊어서 포용함이 바다와 같다. 그러한 경지에 교묘하게 도달하기 때문에 선입(善入)이라고 한다.
아홉째는 바다에 들어가서 회전(廻轉)하는 덕이니, 연기다라니문에 잘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가 일체를 섭수하기 때문에 회전총지(廻轉總持)라고 한다.
열째는 과해(果海)가 몸에 충만한 덕이니, 연기의 법해에 교묘하게 회전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부처님의 끝없이 넓은 공덕의 법해를 모두 섭취하여 자기 몸에 충만하게 함이니, 이러한 까닭에 불과의 공덕을 얻는다는 뜻이 모두 이것을 말미암는 것이다. 아래 경문에 “보살이 인연 화합하는 가운데 자재하여 나아가 능히 뜻을 따라 불신을 시현한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두 번째 묘용자재 가운데 여섯이 있다. 첫째는 모든 세계에 두루 노니는[遍遊諸刹] 용(用)이니 이는 세계해를 다함이요, 둘째는 원해를 출생하는[出生願海] 용이니 이는 원력으로 말미암아 국토해에 들어감이다. 또한 앞 구절은 다른 불국토에 노니는 것이고, 이 구절은 원하여 자토(自土)를 장엄함이다. 셋째는 3달이 원만하고 밝은[三達圓明] 용이니 미래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한쪽만 들어 말하나 그 이치는 실로 세 가지를 모두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는 두루 공양하여 모시는[歷事供養] 용이요, 다섯째는 원해가 깊고 넓은[願海深廣] 용이니 그러므로 ‘보현원(普賢願)’이라고 말한다. 여섯째는 중생을 교화하여 지혜가 원만한[化物智圓] 용이니, 그러므로 ‘중생에게 지(智)가 만족했다’라고 말한다.
동생중(同生衆)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두 번째로 이생 중생 가운데 먼저 금강역사중(金剛力士衆)을 밝힌다. 부처님을 호위함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먼저 나열한다. 불덕(佛德)의 연기는 모습[相]을 무너뜨리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중행(衆行)으로서 의지할 금강의 경지와 같음을 나타낸 까닭이다. 곧 행의 권속인 나머지 대중도 또한 그러하다.
덕을 찬탄한 가운데 여덟 구가 있으니, 처음 1구는 총체적인 것으로 본원(本願)이 부처님을 시봉하는 것임을 밝혔고, 뒤의 7구는 별도로 그 덕을 나타내었다. 앞의 것 가운데 삼승교 같은 것이라면 8지(地)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형상을 나타내어 드러나게 호위하지만 그 이전은 비밀하게 호위한다. 일승 가운데서는 신만(信滿) 이후는 다 함께 드러나게 호위하니, 아래의 「현수품」과 「명법품」의 두 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 마음에 따라서 구하는 뜻을 원(願)이라고 하고 지극한 정성에 계합하기를 바라는 것을 서(誓)라고 한다. 아래의 따로 설명한 중에도 둘이 있으니 먼저는 내덕(內德)의 원만이요 뒤의 ‘무량신력(無量神力)’ 아래는 외용(外用)이 두루 가득함이다. 앞의 것 가운데 세 구절이 있으니 처음은 원행이 갖추어짐이요, 두 번째는 복지(福智)가 맑음이요 세 번째는 큰 선정[大定]이 깊음이다. 또 ‘외용’ 가운데에 네 구절이 있으니 첫째 힘이 과(果)와 같이 두루 가득함이요, 둘째 대소(大小)가 거듭 들어감이요, 셋째 몸이 대중보다 뛰어나서 대중을 두려워함이 없음을 나타냄이요, 넷째 유(類)를 따라 교묘히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연기의 경지에서와 같으니, 준거해 보라.
세 번째로 도량신(道場神)이란 것은 나무 밑에 있어서 가깝기 때문에 다음으로 이것을 열거하였다. 덕14) 가운데 간략하게 옛날의 인(因)을 들었다. 아래 선재(善財)의 제10회향의 지식처(知識處)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 도량을 수호함이 보계(寶髻) 등과 같고 또한 도량신이니 이것은 의주석(依主釋)이다. 혹은 도량이 곧 신이니 이는 지업석이라고 하기도 한다. 일승에서는 두 가지 해석 모두 통하며 아울러 법문이 되기 때문이다. 삼승에서는 오직 의주뿐이니, 사람과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 여러 신들의 이름에 대한 두 가지 해석도 여기에 준하라.
네 번째는 용이니 위에 거하며 음부(蔭覆)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법당을 장엄한다’라고 말한다. 아래의 보광당은 용이 지은 것이라는 등과 같다.
다섯 번째 지신은 아래에 거하니 운재(運載)의 뜻이다. 대부분 여자의 몸으로 나타나는 것은 견뇌(堅牢) 등과 같다.
여섯 번째 수신(樹神)은 가운데에 거한다. 건립의 뜻이니 덕수(德樹)는 적정(適情)15)하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다.
일곱 번째 약신(藥神)은 곧 대치(對治)의 뜻이다. 법약은 미혹을 없애버리는 것이니 이는 곧 비문(悲門)이다.
여덟 번째 곡신(穀神)이니 이는 자지(資持)의 뜻이니 백성을 양육해서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후직(后稷) 등의 사공(社公)과 같다.
아홉 번째 하신(河神)이니 이는 흘러 윤택하게 하는 뜻이다. 덕 가운데에서는 부지런함이 흐름의 뜻이고 이익은 곧 윤택의 뜻이다.
열 번째 해신(海神)이니 이는 구덕의 뜻으로서 아래 열 가지 모양 등과 같다. 덕 가운데서는 법이 사(事)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열한 번째 화신(火神)이니 이는 성숙의 뜻이며 조명의 뜻이며 분소(焚燒)의 뜻이며 어둠을 제거하는 뜻이다. 처음 둘은 두 가지 장엄을 이루고 뒤의 둘은 두 가지 장애를 멸한다. 여기에 준거해 보라.
열두 번째 풍신(風神)이니 이는 모으고 흩는다는 뜻이다. 풍재(風災)는 흩어 버리고 풍륜은 모으는 것과 같다. 미혹을 흩어버리고 덕을 모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곧 중생의 몸으로 하여금 분산시키지 않는 것도 모두 이 법계 연기의 노사나 풍신의 힘이다. 또 내풍(內風)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식풍(息風)이니 출입하는 숨이 배꼽으로부터 일어남이요, 둘째 소풍(消風)이니 아래로 향하여 음식을 소화함이며, 셋째 지풍(持風)이니 사람의 행동을 강건하게 함이요, 넷째 재풍(災風)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병을 이루게 함이며, 다섯째는 도풍(刀風)16)이니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 사람의 지절(持節)이 풀리게 한다. 죽음에 다다른 사람의 얼굴에 오색의 바람이 있으니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은 흑색이요, 축생에 태어나는 사람은 청색이며, 아귀에 태어나는 사람은 황색이요 겸하여 혀를 낸다. 또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낯이 보통 빛깔과 같고, 하늘에 태어나는 사람은 신선한 꽃빛의 맑은 광명이 사랑스러운 것과 같다.
열세 번째 공신(空神)이니 일곱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무변(無邊), 둘째 무애, 셋째 일미, 넷째 함섭(含攝), 다섯째 현시(顯示), 여섯째 이염(離染), 일곱째 견고이다. 앞의 다섯은 이름에 준하고 뒤의 둘은 덕에 나타난다.
열네 번째 주방신(主方神)이니 이는 현시의 뜻이다. 방우(方隅)를 현시하여 미혹한 것을 깨닫고 정(正)에 향하기 때문에 ‘잘 비춘다[善照]’고 한다. 조(照)는 시(示)와 같다.
열다섯 번째는 주야신(主夜神)이니 이는 성취를 돕는다는 뜻으로서 바른 때[正時]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어두운 밤중에 중생을 인도함이 아래 야천(夜天) 등과 같다. 여기에 준거해 보라.
열여섯 번째는 주주신(主晝神)이니 이것은 올바로 닦는다는 뜻으로서 바른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법을 믿어 즐긴다’라고 말한다. 또 밝게 꾸민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장엄’이라고 말한다.
열일곱 번째는 아수라(阿修羅)이니, 신역에서는 아소락(阿素洛, asura)이라고 한다. 『바사(婆娑)』에 의하면 비천(非天)이라 하고, 『불지론』에서는 천취(天趣)에 포함된다고 한다. 아첨과 사기를 많이 행하여 하늘의 실행이 없기 때문에 비천이라고 한다. 세상의 나쁜 행동을 이름하여 비인(非人)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혹은 비단정(非端正)이라고도 하며 혹은 부주(不酒)라고도 하니, 큰 바다 속에서 술을 빚더라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 등이다(운운). 혹은 이르기를 “비마(毘摩)17)의 어머니라는 것은 본래 하늘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에 열천(劣天)이라고 한다” 하였고, 『아함경』에 이르되 “겁이 처음 이루어질 때 광음천이 바다로 와야 비로소 목욕을 하였다. 물이 그 몸에 닿자 정기를 잃어 물 속에서 마침내는 육란(肉卵)을 이루어 8천 년을 지나서 한 여자를 낳으니 몸은 수미와 같고 999개의 머리가 있고 머리에는 천 개의 눈이 있으며, 999개의 입이 있고 입에는 네 개의 어금니가 있으며 어금니 위로부터 불을 뿜어냄이 마치 벽력과 같다. 24개의 손이 있으며 999개의 다리가 있어 바다에서 떠올라 물장난을 하니 그 정기가 몸 속에 들어가서 또 하나의 육란을 낳았는데 8천 년을 지나서 비마질다(毘摩質多)를 낳으니 몸에 9개의 머리가 있고 머리에는 천 개의 눈이 있으며 입에서는 물을 뿜었다. 또 999개의 손이 있고 8개의 다리가 있었으며, 그 형상은 수미산보다 네 배나 더 컸다. 순전히 진흙과 연뿌리만 먹었는데 하늘과 많이 싸운다”고 하였다. 더 자세한 것은 『정법념경(正法念經)』에 설한 것과 같다.
그러나 수라는 다섯 곳의 주처가 있으니, 첫째 지상으로서 중상산(衆相山)의 가운데이니 아래 경문에서 설한 것과 같다. 둘째 수미산 북쪽이니 아래로 큰 바다에 들어가기를 2만 1천 유순이며 그 수라왕을 나후(羅睺)라고 한다. 여기 말로는 장애라는 뜻이다. 손으로 일월 등을 막을 수 있어서 한량없는 대중을 거느린다. 셋째 여기서부터 또 2만 1천 유순을 더 내려가면 그곳의 왕을 용건(勇健)이라고 하는데 또한 많은 대중을 거느린다. 넷째 또 2만 1천 유순을 더 지나면 그곳의 왕을 화만(花鬘)이라고 하는데 또한 많은 대중을 거느린다. 다섯째 다시 이 수를 지나면 그곳의 왕을 비마질다라 하는데, 여기 말로는 향고(響高)이다. 이는 사지(舍脂)의 아버지이다. 몸은 다섯 개의 수미산과 같고 하늘과 싸울 때 바다 밑으로부터 일어나 소리를 질러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나는 비마질다이다. 나는 비마질다이다”라고 하니, 그때 염부의 산악은 일시에 진동한다. 또한 혈거(穴居)라고 이름하니, 그 가운데 광명성(光明城)이 있는데 그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혹은 천취에 포함되나니 위의 『불지론』에서와 같다. 혹은 『비담(毘曇)』에 의하면 귀취(鬼趣)에 포함되는데 첨곡(諂曲)으로 덮였기 때문이다. 『정법념경』에 의하면 귀신과 축생에 포함되니, 나후는 곧 사자의 새끼이기 때문이다. 『가타경(伽陀經)』에 의하면 하늘과 귀신과 축생에 포함되니, 위의 설에 말미암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오직 5도(道)만 있다. 만약 6도로 나누면 선(善)의 상ㆍ중ㆍ하를 하늘과 사람과 수라에 분배하고, 악(惡) 가운데 3품을 아래의 3도(塗:3악도)에 분배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지론』에 의하면 저 나후아수라왕은 곧 큰 보살이라고 한다.
열여덟 번째 가유라(迦留羅)이니, 신역에서는 게로다(揭路茶, garudda)라고 하고 여기서는 묘시조(妙翅鳥)라고 한다. 새의 날개에 가지가지 보배 빛깔의 장엄이 있으니 다만 금색뿐만이 아니다. 『해용왕경(海龍王經)』에 의하면 “그 새의 양 날개는 서로 거리가 336만 리이니 염부제는 한 다리를 수용하는 데에 그친다”고 하였고, 『열반경』에 의하면 “이 새는 용과 물고기ㆍ7보(寶) 등을 먹지만 오직 금강만은 제외되니, 소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마땅히 목숨을 마칠 용을 먹는다”라고 하고, 또 “과거에 삼귀의계[三歸]를 받은 이는 먹지 않으며 가사를 걸친 이도 먹지 않는다”라고 한다. 또 『증일경(增一經)』에 의하면 “4생(生)으로 말하면 금시(金翅)는 난생(卵生)의 새와 같으니 철차수(鐵叉樹)로부터 내려와서 바다에 들어가서 난생의 용을 취하여 물이 미처 합해지기 전에 본래의 나무 위에 돌아와서 이것을 먹는다. 만일 태생(胎生)의 용으로 향하면 새의 몸은 곧 죽는다. 만약 태생의 새라면 태ㆍ난의 용을 취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얻을 수 없다. 또 만약 습생(濕生)의 새라면 세 가지 생의 용을 취할 수 있지만 화생(化生)의 용은 취할 수 없다. 만약 화생의 새라면 4생의 용을 다 취할 수 있다. 또 하루에 하나의 큰 용왕과 5백의 작은 용을 먹는다. 사천하를 빙 돌면 다시 처음부터 차례로 이것을 먹는다. 명이 마치려 할 때 모든 용은 독을 뿜음으로 다시 먹을 수 없다. 주림의 불꽃에 태워져 날개를 솟구쳤다가 바로 내려와 풍륜의 경지에 이르므로 바람에 불려서 도리어 다시 올라갔다가 되돌아오기를 일곱 번 하니[七返], 다리를 붙일 곳이 없어 마침내 금강륜산(金剛輪山)의 정상에 이르러 목숨을 마치게 된다. 모든 용의 몸을 먹음으로써 그 살의 독기가 불을 일으켜 스스로를 태운다. 난타 용왕은 저 보배의 산을 태울까 두려워하여 비를 내려 불을 끄는데 그 물방울은 차축(車軸)과 같다. 몸의 살은 녹아 흩어지고 오직 심장만 남는데, 크기는 사람의 밥통18) 크기와 같다. 순청(純靑) 유리빛으로써 윤왕은 이것을 얻어 주보(珠寶)로 삼고 제석은 이것을 얻어 계중(髻中)의 구슬로 삼는다. 또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보살의 금시왕은 생사 대해 가운데에 천인(天人)의 용을 잡아다가 열반의 언덕에 안치한다”라고 하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열아홉 번째는 긴나라(緊那羅)이니, 신역에서는 긴나락(緊捺洛, kinara)이라고 하고 여기에서는 노래 부르는 신이라고 한다. 노래를 잘 불러 음악을 만든다. 『잡심론(雜心論)』에 의하면 축생도에 넣어서 말한다. 또 의신(疑神)이라고도 하니, 이는 축생도에 포함시키지만 형체는 사람과 비슷하고 낯은 극히 단정하며 정수리 위에 뿔이 하나 있어서 사람이 보면 의심을 하여 사람인지 귀신인지 축생인지 구분하지 못하므로 의(疑)라고 한다.
스무 번째 마후라가(摩睺羅伽)이니, 신역에서는 막호락가(莫呼洛迦, mahoraga)라고 하고, 여기에서는 대복(大腹)이라고 하며, 대망(大蟒), 또는 복행신(腹行神)이라고도 한다. 법을 잘 지키기 때문이며 의심을 잘 제거하기 때문이다.
스물한 번째는 구반다(鳩槃茶, kumbhānda)이니, 『정법화경(正法華經)』에 의하면 염미귀(厭媚鬼)라고 한다. 사람의 정기 등을 먹는다고 하고, 또 동과귀(冬瓜鬼)라고도 한다. 그 왕을 비루륵(毘樓勒, virūdhaka)이라고 하니, 여기에서는 증장(增長)이라고 하는데 이는 남방의 주인이다. 천왕은 2부(部)의 귀신을 거느리는데, 하나는 구반다(鳩槃荼)이고 다른 하나는 벽례다(薛荔多)라고 하니 거느린 대중을 쫓아서 이름한 것이다.
스물두 번째는 귀신왕(鬼神王)이니, 이는 북방의 비사문(毘沙門, vaiśravana)인데 여기에서는 다문(多門)이라고 한다. 이 또한 거느린 대중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니, 모든 악귀를 섭수하여 중생을 손해보이거나 괴롭히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삼가 보호한다고 말한다.
스물세 번째는 달[月]이니, 이는 청량(淸凉)의 뜻이다. 아래 경문에 ‘보살 청량의 달’이라고 한 것 등과 같다. 두 번째는 부발(敷發)의 뜻이니, 연꽃이 부발하는 것과 같다. 경문에서 ‘보배 마음을 발한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구사론』에 의하면 달은 땅에서 거리가 4만 유순, 넓이가 50유순으로 수정과 백은을 합하여 양면(兩面)으로 삼고 회전하며 서로 비추기 때문에 이지러졌다 찼다 한다고 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 의하면, 그 성(城)은 정사각형으로서 1천9백6십 리나 되고 높이도 또한 그러하다. 두 부분이 있으니 한 부분은 천금(天金)으로 되어 있고, 또 한 부분은 유리로 되어 있다. 왕의 자리는 20리이니 멀리서 보면 둥근 듯하다. 하늘의 수명은 5백 세이며 자손이 서로 세습하여 1겁을 지낸다”고 한다.
스물네 번째는 해[日]이니 너비가 51유순이다. 그 성(城)은 정사각형으로서 2천4십 리이고 높이도 또한 그러하다. 궁성은 순금이고 7보로 꾸며졌다. 왕의 자리는 20리이고 수명과 자손은 월천(月天)과 같다. 바람을 가져 수미산의 사면을 에워싼다. 위의 일월 천자는 모두 이 사천왕의 좌우에 있어서 초천(初天)에 섭수된다. 아울러 이 도력(道力)의 인연을 따라 형상을 달리하여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덕(德) 가운데에 처음 구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 뒤의 구절은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일(日)에는 성취의 뜻과 요익의 뜻이 있다. 『보성론(寶性論)』에 의하면 “일(日)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어둠을 깨뜨림이 혜(慧)와 같고, 둘째 비추어 나타냄이 지(智)와 같다. 셋째 윤정(輪淨)함이 해탈과 같고, 넷째 위의 셋이 서로 여의지 아니함이 동(同) 법계와 같다.
스물다섯 번째는 도리(忉利)이니, 여기 말로는 삼십삼천이라고 한다. 삼십삼천이란 『불지론』 제5권에 “묘고산(妙高山)의 사면에 각각 팔대천왕이 있고 제석은 그 가운데 머무른다. 그러므로 삼십삼이 된다”고 하였다. 만약에 갖추어 말하면 마땅히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라고 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능천주(能天主)라고 말하는데, 『삼법도경(三法度經)』에 의하면 그 가운데 천자의 신장은 1유순, 옷의 길이는 2유순, 또 너비는 1유순, 무게는 6주(銖)이며 수명은 1천 세라고 한다. 덕 가운데 두 가지 이익[二利]19)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스물여섯 번째는 야마(夜摩)이니, 여기에서는 시천(時天)이라고 한다. 때[時]란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써 주야를 가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불지론』에 이르되 “이 가운데 때를 따라서 낙을 받는 까닭에 시분이라고 이름한다”고 하니, 이 하늘의 신장은 2유순, 옷의 길이는 4유순, 너비는 2유순, 무게는 3주(銖)이며, 수명은 2천 세이다. 덕에 자분(自分)과 승진(勝進)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물일곱 번째는20) 신역에서는 도사다(覩史多)라고 하며, 여기에서는 희족(喜足)이라고 한다. 『불지론』에 이르되 “후신의 보살이 저기에서 교화되어 희족의 행을 많이 닦기 때문에 희족이라고 한다”고 한다. 『장아함경』에 의하면 신장은 4유순, 옷의 길이는 8유순, 너비는 4유순, 옷의 무게는 1주(銖) 반이며, 감로를 마시고 수명은 4천 세이다”라고 한다. 덕 가운데 혜(慧)와 정(定)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스물여덟 번째는 화락(化樂)이니, 『불지론』에서는 낙변화천(樂變化天)이라고 한다. 스스로 변화하기를 좋아하여 모든 즐거움의 기구[樂具]를 만들어 스스로 즐긴다. 또 스스로 낙구를 만들어서 도리어 스스로 수용하고 다른 이를 범하지 않기 때문에 선화(善化)라고 이름하며, 또한 화락(化樂)이라고도 한다. 『삼법도경』에 의하면 신장은 8유순, 옷의 길이는 16유순, 너비는 8유순, 옷의 무게는 1주(銖)이며, 감로를 먹고 수명은 8천 세라고 한다. 덕 가운데 두 가지 이익[二利]이 있다.
스물아홉 번째는 타화자재(他化自在)이니, 『불지론』에는 “다른 이로 하여금 모든 낙구를 화작(化作)하게 하여 스스로 자재를 나타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하였으며, 『삼법도경』에 의하면 “몸과 옷과 수명은 앞의 것보다 한 배나 더 된다”고 하였으니, 여기에 준거하라. 덕 가운데서는 법자재에 들어간다.
서른 번째는 범(梵)이니 신역에서는 이욕(離欲)이라고 하나니,21) 욕염(欲染)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정(淨) 가운데 가장 지극하므로 이욕이라고 한다. 『불지론』에서는 “욕을 여의고 적정하기 때문에 범(梵)이라고 하며 신(身)이란 중(衆)이다”라고 하였다. 『장아함』에 의하면 “범중(梵衆) 가운데 범음으로써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하늘(天, deva)’이란 자재의 뜻, 광명의 뜻, 정(淨)의 뜻이다. 『지론』에 의하면 “하늘에는 셋이 있으니, 첫째 인천(人天)으로서 제왕을 말하고, 둘째 생천(生天)으로서 욕색(欲色) 두 하늘을 말하며, 셋째 정천(淨天)으로서 불보살 등 제일의천(第一義天)을 말한다”고 하였다. 시기(尸棄)란 여기 말로는 화색(火色), 혹은 화정(火頂)이라고 하는데, 화재가 여기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만약 상선(上禪)을 닦으면 곧 이 하늘에 태어난다. 범중 가운데 대범음을 드러낼 때 모든 하늘은 각각 스스로 ‘오직 나만이 함께 말한다’고 한다. 대천계(大千界)에서 가장 자재함을 얻어 얼굴은 동자와 같고 몸은 백은(白銀) 빛깔이다. 길이는 반 유순이고, 옷은 금색이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선열(禪悅)을 식(食)으로 삼고, 수명은 1겁이다. 이것은 『장아함』에 의하여 분별한 것이다. 덕 가운데에 네 구가 있으니, 첫째 무엇으로써 제도하는가, 둘째 무엇을 제도할 것인가, 셋째 무엇을 제거할 것인가, 넷째 무슨 덕을 이룰 것인가이다. 경문에서와 같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초선(初禪)의 대소(大小) 등은 욕계의 1천 사천하와 같고, 1천의 초선은 거의 2선(禪)과 비슷하다. 2선을 화재(火災)의 우두머리[頂]라고 한다. 1천의 2선은 거의 3선과 비슷하며 3선을 수재(水災)의 우두머리라고 한다. 1천의 3선은 거의 4선과 비슷하니, 4선을 풍재(風災)의 우두머리라고 한다. 또 범마(梵摩)는 여기 말로는 적정청정정결(寂靜淸淨淨潔)을 다 얻었다는 말이다. 또한 범결(梵潔)이라고도 한다. 또 시기(尸棄)라는 것은 화재의 우두머리로서 초선의 주인이다. 또 지계(持髻)라고도 한다(운운).
서른한 번째는 광음(光音)이니, 『지론』에 의하면 제2선을 통틀어 광음이라고 한다. 저 하늘이 말할 때에는 입으로부터 깨끗한 광명을 내어 끝이 없다. 신장은 2유순이고, 수명은 2겁이다. 또 초선을 위해서 화광(火光)으로부터 소리를 발해서 인섭(引攝)하여 이 하늘에 태어나게 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덕 가운데 혜와 정이 있음을 알 것이다.
서른두 번째는 변정(遍淨)이니, 3선 가운데에서는 기쁨[喜]을 여읨으로써 신심(身心)이 두루 깨끗해진다. 『장아함』에 의하면 “위의 방편으로써 이 하늘에 태어난다. 왕은 정지(淨智)라고 하며 네 팔에 풍륜을 가졌으며 금시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덕 가운데는 곧 낙위(樂位)이기 때문에 진성(眞性)의 많은 즐거움을 얻게 된다.
서른세 번째는 과실(果實)이니, 제4선은 이 세간의 선과(善果) 가운데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또한 광과(廣果)라고도 한다. 덕 가운데는 부동위(不動位)이기 때문에 성적(性寂)에 들어간다.
서른네 번째 마혜수라(摩醯首羅)이니, 『지론』에 의하면 “여기서는 대자재천이라고 한다. 여덟 개의 팔과 세 개의 눈이 있어 대백우(大白牛)를 타고 다니며, 대천계의 빗방울의 수를 안다. 대천계 가운데 가장 지극한 자재로움이 이보다 더 지남이 없는 까닭에 그렇게 이름하였다”고 한다. 또 『지론』 제1에 의하면 “제4선은 여덟 가지가 있으니 다섯 가지는 곧 아나함(阿那含)22)의 주처이니 이것을 정거(淨居)라고 하고, 세 가지는 곧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다. 8처를 지나면 10주 보살의 주처이다. 또한 정거라고 하며 대자재천왕이라고도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정거의 이름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보(報)의 순정(純淨)을 기준으로 하면 이것은 범성(凡聖)에 통한다. 둘째 덕이 범보다 뛰어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이것은 오직 아나함 등이다. 셋째 인(因)을 기준으로 하면 10주의 보살이 있다고 한 것과 같다. 10주 보살이란 곧 10지를 말한다. 10지 가운데 제10지에 섭수되는 보과(報果)이다. 넷째 과를 기준으로 하면 이른바 이 삼승 가운데 보신의 정토 등이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또 『지론』에 준거하면 “8천(天)의 밖에 다시 특별히 10주 보살의 하늘이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덕을 찬탄함[歎德]이다. 이 글에 두 가지 해석이 있으니, 첫째는 다만 이 대중의 덕만을 나타내고, 둘째는 상래(上來) 이생중(異生衆)의 덕을 통틀어 밝혔다. 곧 의심을 풀어주는 것이니, 의심하여 이르되 “앞의 보현의 동생(同生)은 똑같이 과해(果海)에 있더라도 이 이생 중생은 이미 잡류이며 또 비말(卑末)이다. 어찌하여 또한 ‘과해’의 가운데 포함되겠는가. 해석은 글 가운데에서와 같다.
처음 두 구절은 총체적인 것이니, 안으로 모양 여읨을 닦아서 밖으로 승류(勝流)에 참예하기 때문에 연기과해(緣起果海) 가운데 있다. 아래는 개별적으로 밝힌 것이니, 그 가운데 둘이 있다. 처음은 그 덕을 들고 뒤의 ‘소이(所以)’ 아래는 과해(果海)와 같음을 해석한 것이다.
앞의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 한 구는 밖으로 교화가 널리 두루한 것이고 ,다음은 내덕(內德)이 영만(盈滿)함이다. 영만한 가운데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3업의 뛰어남이요, 둘째는 부처님의 수레를 함께 타는 것이며, 셋째는 단덕(斷德)의 이염(離染)이고, 넷째는 진원(眞源)을 조촉(照燭)함이다. 처음 가운데 먼저는 몸이 좋은 빛깔을 이루고 두 번째는 뜻이 편안히 잘 머무는 것이며, 세 번째는 말씨가 기울어지지 않음이다. 이 가운데 처음은 말로는 감당 못할 것을 여의기 때문에 대중에 있으면서도 기울어지지 않고, 나중에는 대답하지 못할 것을 여의었기 때문에 힐난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다. 이 뛰어난 3업을 갖춘 까닭은 부처님께서 수레를 타고 항상 현전하기 때문이다. 불승(佛乘)이 현전함을 얻은 까닭은 두 가지 장애[二障]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장애를 여읠 수 있는 까닭은 뛰어난 연[勝緣]을 보았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에 불해(佛海)에 들어간다. 이는 곧 뒤의 것으로 앞의 것을 해석한 것이다. 또 뜻은 앞의 것으로 뒤의 것을 해석한 것이다. 이 뛰어난 3업을 갖추었으므로 불승이 현전하고, 불승이 현전하는 까닭에 2장(障)을 여읠 수 있으며, 2장을 여읠 수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계신을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대중의 무리에 있을 수 있다. 만약 장애를 갖추면 해[日]를 보는 것조차 오히려 안광(眼光)을 잃어버릴 것이어든, 하물며 부처를 볼 수 있겠는가. 아래에 ‘장님과 같다’고 한 것 등과 같다. 또 단덕(斷德) 가운데 두 구절은 처음 습종(習種)을 온전히 없애고, 뒤의 구절은 정사(正使)를 오래도록 없애는 것이다. 나머지 경문은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동(同)을 해석하는 가운데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과(果)가 능히 인(因)을 포함하는 것이요, 둘째는 인이 능히 과에 들어감이다. 처음 것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질문[徵]이고 다음은 해석이다. 질문의 내용은 이 대중들이 불해 가운데 함께 있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고, 해석의 내용은 부처가 저를 성취시켜 준 까닭에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을 들어서 행의 연으로 삼은 것이요, 둘째 ‘갖가지 인연’ 아래는 연에 의하여 행을 이루는 것을 밝혔다. 셋째 ‘각각 본행에 따라서’ 아래는 행을 매듭 지어 연에 속하게 함이다. 앞의 것 가운데 세 구절이 있으니, 첫 번째는 왕시(往時)요, 두 번째는 왕행(往行)이며, 세 번째는 중생을 위하여 선근(善根)을 쌓은 것이다. 둘째 행을 이루는 가운데에는 다섯 구절이 있으니, 처음 1구는 3현위(賢位)를 얻게 함이요, 두 번째 1구는 지위(地位)를 증득함이며, 세 번째 ‘체득(逮得)’ 이하는 8지 이상의 위(位)를 밝힌 것이요, 네 번째 ‘개실(皆悉)’ 이하는 법운위(法雲位)를 성취한 것이다.
다섯 번째 ‘구족(具足)’이란 것은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總結]이다. 셋째 행을 매듭 지어 연에 속하는 가운데 처음에 각각 따라 나옴을 얻은 것은 행을 매듭 지음이다. ‘실유(悉由)’ 등이란 것은 연(緣)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과해’ 가운데 들어 있다.
둘째 인이 능히 과에 들어가는 것은 ‘승해탈(乘解脫)’ 등을 말한 것이다. 곧 인을 타고 과에 들어가기 때문이요, 별(別)을 타고 총(總)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문(門)을 타고 바다에 들어가는 까닭이다. 아래 경문에서 열 가지 해탈이 9세 상즉[九世相卽]하는 것과 같다. 이 힘을 타기 때문에 인(因)과 과(果)가 원만하여 동일한 경계[同一際]가 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의 과해 가운데의 법문에 있어서 모두 자재할 수 있다. 아래 경문에 법문을 찬탄한 것이 곧 그 일이다. 만약 삼승이라면 이와 같이 될 수 없다. 사(事)가 다르기 때문이며 스승과 제자가 구별되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대단(大段) 제2는 공양 원만이다. 멀리서부터 가까움으로 향하여 18대중[衆]을 가리는 가운데 앞의 삼십사(三十四) 안에 네 하늘 가운데 동서를 생략하고 남북을 들어 갖추어 여러 신(神)을 열거했다. 이제 이 흥공(興供) 가운데에서는 도량신으로부터 마후라가에 이르기까지 18대중은 생략하고 네 왕만을 갖추어 나타내었다. 무슨 까닭에 그렇게 했는가. 해석하여 이르되, 앞에서의 ‘용’ 등은 서방에 속하고 나머지 종류는 대부분 동방에 거두어짐으로써 이 두 종류가 거느린 것이 많기 때문에 왕을 나누었으니, 대중에 따라서 저 두 왕은 생략하고 18대중을 갖추어 나타내었다. 이제 여기서는 상수(上首)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을 밝히고자 하므로 대중을 거두어 왕에게 따르게 해서 동서를 수습하여 다했다. 이런 까닭에 저 18대중을 생략하고 두 왕을 더하여 열거했다. 남북을 거느린 것은 경문 가운데 자세하지 않음으로 동서에 머물지 않는 까닭에 개합(開合)이 없다. 이런 까닭에 삼십사 가운데 십팔은 생략하고 오직 십육만 거론한 것이다. 다시 2왕(王)을 보탠 까닭에 십팔을 이룬다.
그 가운데 앞에서는 먼저는 동(同)이고 뒤는 이(異)이며, 여기서는 먼저는 이(異)이고 뒤는 동(同)이다. 왜 그런가 하면 앞은 근본에 의하여 지말을 일으킴을 나타내었지만, 여기서는 지말을 섭수하여 근본에 돌아감을 밝혔다.
또 ‘이생’ 가운데 앞에서는 먼저는 하열하고 뒤는 뛰어나거니와, 여기서는 곧 먼저는 뛰어나고 뒤는 하열하다. 왜 그런가 하면 앞에서는 법의 증미(增微)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존위(尊位)의 차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해석하건대, 이것 등은 아울러 법계 연기는 역순에 자재하여 막힘도 걸림도 없으므로 총합하여 일대법계중(一大法界衆)이 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에 이러한 설(說)을 만든다.
이미 ‘흥공(興供)’이라 말하였으니, 무슨 까닭에 모든 사공양[事供]을 열거하지 않는가. 해석하되 사공은 기특하지 아니하므로 뛰어남을 나타낼 만한 것이 아니다. 경에 이르되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제일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런 까닭에 오직 법공양만을 나타낼 뿐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무슨 까닭에 아래 경문에서는 해혜(海慧)와 새로 모인 대중이 모두 사공을 열거하였는가? 해석하되 해혜 등의 대중이 자리에서 나와서 다시 사공을 가진 것은 기특함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이다. 다른 데서 온 객중(客衆)이 각각 본토로부터 저 사공을 가지고 온 것은 이와 같은 상수중(常隨衆)과 같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석가의 몸이 사리불 등으로써 상수중을 삼고 다만 수행하여 사람을 교화하는 것으로써 법공양을 삼으며, 또 나머지 사공 등은 밝히지 않음과 같이 이 노사나신의 권속도 또한 그러하다.
그 가운데 각각 법문에 들어가서 통달 자재함을 의업(意業)의 공양이라고 하고, 또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을 어업(語業)의 공양이라 하며, 모임에 있어서 공경하는 것을 신업(身業)의 공양이라 한다.
또 법공을 논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교리를 따라서 수행하여 법의 자재를 얻음이요, 다른 하나는 찬양하고 현발(顯發)하고 법으로 교화하여 전해서 유통시킴이다. 지금 이 3업에는 두 가지 행을 갖춘다.
경문 가운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처음 1구는 총표(總標)인 까닭에 “각각 부처님의 법문에서 자재를 얻었다”라고 말한 것이다. 아래는 개별적으로 분별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 둘이 있으니, 처음 17대중이 각각 한 법문에 자재한 것은 전체를 나누어 따로 만들어 ‘이생’이라고 한 것이요, 또 뒤에는 보현 한 사람만이 일체 법문에 자재한 것은 따로 분리된 것을 거두어 전체로 만들고 이(異)에 의지해서 보(普)에 돌아감이니 동생(同生)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두 대중은 동일연기(同一緣起)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경문 가운데에 18대중이 있으니 열여덟 단락이 된다. 하나하나마다 각각 둘씩이니, 먼저 장행(長行)에서 법을 얻은 것은 이 경을 성립한 사람의 순서를 나열한 것이고, 뒤에 게송으로 찬탄한 것은 당시의 문(文)이다.
처음은 수라중(首羅衆)에 열 하늘이 법을 얻었다. 그 가운데에 나아가 먼저 체(體)와 용(用)을 밝힌다. 체(體) 가운데에 ‘법계허공’이란 것은 경계이며, ‘적정’이란 것은 증득[證]이다. 용(用) 가운데 ‘방편’이란 것은 선교로써 중생[機]에 응하는 것이요, ‘광명’이란 것은 각조(覺照)하여 이익을 이루는 것이다. ‘법문’이란 것은 법에 대하여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자성(自性)과 궤칙(軌則)과 대치(對治)이다. 문(門)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표별(標別)의 뜻이니 이 문은 저것이 아닌 것과 같고, 둘째는 통지유입(通智遊入)의 뜻이며, 셋째는 수입(收入)의 뜻이니 일체를 하나에 들일 때 하나로써 문을 삼음이요, 넷째는 통출(通出)의 뜻이니 하나의 문 가운데 능히 일체를 내지만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은 곧 문이니 지업석(持業釋)이다. 법계 허공 등은 곧 법문이니, 이 또한 지업(持業)이다. 아래 여러 문은 모두 여기에 준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등은 모두가 곧 법계연기로서 부처님 경계 가운데 차별의 법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대중은 각각 한 문을 통달할 때 부처님의 법 바다에 들어가 부처님의 별덕(別德)에 속하는 까닭에 ‘자재’라고 칭한다. 또 이 하나의 문에 일체의 문을 거두어 작용이 다함 없는 까닭에 자재라고 한다. 아래는 모두 여기에 준하라.
둘째 일체 법이란 경계이다. ‘널리 노닌다’는 것은 지혜[智]이다. 또 처음은 교(敎)이고 나중은 의(義)이다. 송(頌) 가운데 뒤의 해석을 둔 것이다.
셋째 ‘불생멸(不生滅)’이란 곧 법신을 말한다. ‘방편’이란 곧 색신이다. 또 처음은 증도(證道)이고 나중은 교도(敎道)이다. 또 ‘불생멸’이란 열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진리는 유위의 상(相)을 여의는 까닭에 불생불멸이요, 둘째는 유위가 아니기 때문에 불생이니 이는 무위이기 때문에 불멸이다. 셋째는 성품[性]을 지키지 않는 까닭에 불생이요, 성품을 고치지 않는 까닭에 불멸이며, 넷째는 불변(不變)인 까닭에 불생이요, 수연(隨緣)인 까닭에 불멸이다(이상은 원성(圓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다섯째 연기는 무성(無性)인 까닭에 불생이요, 연기는 불실(不失)인 까닭에 불멸이다. 여섯째 연기는 불실인 까닭에 불생이니, 이성(理性)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요, 연기는 무성인 까닭에 불멸이니, 이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연기로 말미암는 까닭에 생멸에 거두어지지 않는다(이상은 의타(依他)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덟째 정집(情執)은 무(無)의 이치에 말미암는 까닭에 가히 생멸할 것이 없고, 아홉째는 소집(所執)인 까닭에 불생이요, 이는 무상관(無相觀)의 경계인 까닭에 불멸이다(이상은 소집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방편’이란 위의 모든 도리를 근기에 교묘히 나타낸 것이다. 열째는 세간에 머물지 않는 까닭에 불생이니 범부와 같지 않고, 열반에 머물지 않는 까닭에 불멸이니 이승과 같지 않다. 불생에 방편이 있기 때문에 열반에 머무르지 않으며, 불멸에 방편이 있기 때문에 세간에 머물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아니할진댄 범(凡)과 다르다면 소(小)와 같을 것이며, 소와 다르다면 마땅히 범과 같을 것이나 방편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둘 다 다름을 얻는다. 이상 열 가지 뜻에는 총과 별의 두 가지가 없다. 6상(相)으로써 용융(鎔融)함은 생각하라.
네 번째 교지(巧智)는 깊고 넓어서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빛[光]’이란 것은 어두운 것을 제거하기 때문이요, ‘유(遊)’라는 것은 승입(昇入)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문의 선(禪)에 의지하는 까닭에 ‘일체’라고 한다. 법계의 이불(理佛)을 보는 까닭에 미혹을 없앤다. 그러므로 ‘한량없는 즐거움[樂]’을 일으킨다.
여섯째는 염분(染分)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전전하여 멸하는 까닭이며, 정분(淨分)의 적정은 전전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遊)’라는 것은 곧 증득[證]이다.
일곱째 ‘경계’라는 것은 분제(分齊)이니, 화용(化用)이 두루한 까닭이다. ‘불기(不起)’라는 것은 작용하지 않음이니, 작용하더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미묘하게 3제(際)를 끊은 때문이다. 또 부처님의 덕은 근기[機]에 따르지만 오고가는 일이 없다.
아홉째는 진리의 적정함은 곧 부처님께서 반연할 경계이다.
열째는 부처님에게 많은 방편이 있는 것은 이 중생이 반연하기 때문이다.
이 열 가지 법문 가운데 초문(初門)을 총(總)이라 하고, 나머지 아홉을 별(別)이라 한다. 동(同)ㆍ이(異)ㆍ성(成)ㆍ괴(壞)는 이에 준하여 알 수 있다.
송(頌) 가운데 먼저 생기의 ‘불력으로써’라고 한 것은 자력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요, ‘일체 자재천중을 관찰함’이라는 것은 널리 섭수한 것을 보인 까닭이며 한가지로 설함을 나타낸 까닭이다.
무슨 까닭에 게(偈)로써 찬탄하는가. 『지론(地論)』에 이르기를 “적은 글자로써 많은 뜻을 포함하는 까닭이며, 찬탄하는 모든 사람이 많은 게송을 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송(頌)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숫자송(數字頌)이니, 이른바 범본에 의하면 32자(字)를 1송이라고 하며 장행(長行)과 게(偈)를 따지지 않는다. 둘째는 가타(伽陀)송이니, 여기 말로는 풍송(諷頌)이라고 하고, 혹은 직송(直頌)이라고도 하며 장행을 송하지 않는다. 셋째 기야(祇夜)송이니, 여기 말로는 응송(應頌)이라고 한다. 마땅히 거듭 장행의 법을 송하는 것이다. 넷째 온타남(慍陀南)송이니, 여기 말로는 집시(集施)라고 한다. 이를테면 적은 말로써 많은 뜻을 함섭하는 것을 ‘집’이라고 하며, 사용함으로써 사람에게 베풀어 수지하기 쉽게 하기 때문에 ‘집시’라고 한다. 이상 세 가지의 송은 7언(言), 혹은 5언, 혹은 4언, 혹은 3언으로 되어 있다. ‘처세간(處世間) 여허공(如虛空)’과 같은 것을 3언(言)이라고 하며, 모두 4구로써 한 송을 삼는다. 이것은 마땅히 제3 중송(重頌)의 게(偈)에 해당한다. 아래 경문의 모든 송(頌)도 여기에 준한다.
게(偈) 가운데 20행은 4구로 게를 이룸으로써 모두 10게가 된다. 1게는 앞의 한 법문을 송한다.
【문】 이것은 부처님을 찬탄하려고 함인데 무슨 까닭에 자기의 법문을 송하는가?
【답】 이 무리는 이미 부처님의 해인 가운데 나타나서 부처님의 특별한 덕[別德]에 속하기 때문에 자기의 법을 송함이 곧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덕은 현묘하여 다른 이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불덕(佛德)이 아니면 부처님을 나타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론(智論)』 제12에 이르되 “오직 부처님만이 마땅히 부처를 공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부처님의 덕을 알지 못한다”고 설한 것과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능히 지혜[智]를 공경하고 또한 지혜로운 논(論)인즉 지혜 있는 이가 기뻐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능히 지혜를 아는 것은 뱀이 뱀의 발을 아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송(頌) 가운데 처음 송은 처음의 법문을 송하였다. 처음 3구는 체(體)를 송하고, 뒤의 1구는 용(用)을 송하였다. 앞의 것 속에 처음 한 구는 경계를 송하고, 다음의 두 구는 증(證)을 송하였다. 혹은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하고, 혹은 법계가 몸에 가득하여 융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음이 고요한 까닭에 취할 것이 없고, 경계가 고요한 까닭에 일어날 것이 없다. 또 처음 구는 위의 법계를 송하고, 다음 구는 허공을 송하였다. 그 다음 구는 적정을 송하고, 아래 구는 방편을 송하였다.
두 번째 송 가운데 처음 두 구는 위의 일체 법을 송하고, 다음의 한 구는 위의 보유(普遊)를 송하며, 아래 구는 하늘[天]의 이름을 매듭 지었다.
세 번째 송 가운데 처음 한 구는 위의 불생멸을 송하니 증도(證道)요, 다음 두 구는 위의 방편을 송하니 교도(敎道)이다. 처음 구는 몸[身]의 방편이고, 뒤의 구는 입[口]의 방편이다. 아래 구는 천(天)을 매듭 지음이다. 법의 자재를 얻어서 이름을 세우는 것을 밝혔다.
네 번째 송 가운데 처음 두 구는 위의 방편 지해(智海)를 송했고, 다음 한 구는 위의 광명을 송하고, 아래 구는 ‘유(遊)’를 송하고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다섯 번째 송 가운데 처음 3구는 상선(上禪)의 무량한 즐거운 일을 송하고, 아래 1구는 보기(普起)와 즐거움의 이름을 송하였다.
여섯 번째 송 가운데 처음 구는 위의 어리석음과 두려움을 전(轉)함23)을 송하고, 다음 구는 유정(遊靜)을 송하고, 다음 구는 전(轉)을 송하였다. 이를테면 비추어 제거하는 것이다. 아래 구는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일곱 번째 송 가운데 처음 두 구는 한량없는 경계를 송하고, 다음 1구는 불기(不起)를 송하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 귀속시켰다.
여덟 번째 송 가운데 처음 두 구는 위의 일체 법을 송하고, 다음 1구는 오고감이 없음을 송하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게 귀속시켰다.
아홉 번째 송 가운데 처음 3구는 부처님의 경계가 적정한 것을 송하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게 귀속시켰다.
열 번째 송 가운데 처음 3구는 한량없는 경계를 송하였다. 한량없는 경계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무량(時無量)이니 상구(上句)는 이것을 나타내었고, 둘째는 경계무량이니 보리와 중생을 말하였는데 다음 구가 이것을 나타내었다. 셋째는 선교(善巧)무량이니 아래 구가 이를 나타내었다. 아래 구는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두 번째 제4선(禪)의 과실천(果實天)에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물(物)의 근기를 관하여 법운을 일으켜 법우를 내림으로써 전근(前根)을 이익되게 한다.
둘째 ‘묘색’이라는 것은 몸을 나타내기 때문이요, ‘방편’이라는 것은 법을 설하기 때문이니, 이 둘은 곧 능응(能應)이다. ‘염(念)’이라는 것은 법을 가질 것을 염하는 까닭이요, ‘관(觀)’이라는 것은 색신을 관하는 까닭이니, 이것은 곧 소응(所應)의 근기이다. 이 염관24)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을 멸하고 깨끗함을 이룬다.
셋째 인다라망과 같은 국토를 보는 것은 연기 무성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넷째 연기의 다라니에 들어가 1문 가운데 곧 원융한 법계를 포함한 까닭에 ‘보문(普門)’이라고 한다.
다섯째 ‘부전애(不轉愛)’라는 것은 스스로 의혹[惑]을 머물게 하기 때문에 다른 중생이 수생(受生)하는 사랑[愛]을 굴려서 길이 멸하게 함이다. 또 다른 이로 하여금 의혹을 멸하여 삼계의 처소에 태어나지 않게 함이다.
여섯째 ‘일체 세간의 경계’라는 것은 기(器)와 중생이다. 부처님은 가운데 들어가서 설법하지만 항상 고요함[寂]에 머무는 까닭에 ‘부사의(不思議)’라고 한다.
일곱째 2공(空)을 회통하여 2제(諦)를 나타냄이다. ‘중생과 법’이라는 것은 사람과 법을 거론한 것이요, ‘출요(出要)’라는 것은 진공(眞空)을 회통함이다.
여덟째 근기로 하여금 진원(眞源)을 증득하게 함이니 과해(果海)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송(頌) 가운데 19게(偈)가 있는데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처음 열일곱은 앞의 법문을 송하고 뒤의 둘은 인(因)을 들어서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앞의 것 가운데 처음 두 게는 처음의 법문을 송한 것이니, 그 가운데 처음의 게는 부처님의 덕이 깊음을 찬탄하여 위의 능관(能觀)을 송하고 뒤의 게는 위의 법운이 근욕(根欲)을 개윤(開潤)하는 것을 송한 것이다.
두 번째 송 가운데 또한 2게가 있으니, 처음 게는 묘색 방편을 송하고 뒤의 게는 염관(念觀)을 송했다.
세 번째 송도 또한 2게가 있으니, 처음의 게는 교묘하게 진리를 나타내고 뒤는 이(理)에 응하여 사(事)를 나타낸 것이다. 인다라망은 이사(理事)에 통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송도 또한 2게이니, 처음은 보문(普門)의 법계신을 나타내는 것을 송하고 뒤는 법계의 법을 나타낸 것이다.
다섯 번째 송에 3게가 있으니, 처음 게는 단덕(斷德)이 중생을 섭수해서 혹(惑)ㆍ업(業)ㆍ고(苦)를 전전하여 멸함이요, 다음 게는 복지(福智) 등을 전전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각각 인다라에 통한다. 뒤의 게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 귀속시켰다. 방편이라는 것은 곧 부전애(不轉愛)이다. 앞의 장행(長行) 가운데에서는 다만 처음의 게 가운데 사(事)만이 있음을 마땅히 알 것이다.
여섯 번째 송에 2게가 있으니, 처음 게는 위의 일체 세간의 경계에 들어감을 송한 것이요, 뒤의 게 가운데 3구는 부사의를 송하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 귀속시켰다.
일곱 번째 송도 2게가 있으니, 처음 게는 위의 중생의 출요를 송하고 무아를 알게 하여 속제(俗諦)를 나타내었고, 뒤의 게는 일체 법의 출요를 송하여 무아를 알게 하여 진제(眞諦)를 나타내었다.
여덟 번째의 2게는 위의 교화를 받을 사람이 부처님의 경계의 법문에 들어감을 송하였다. 처음 하나는 과로써 근기에 나아감이요, 뒤의 하나는 근기를 섭수하여 과에 들게 함이다. 뒤의 두 게 가운데 처음 하나는 인을 들어서 덕을 이루고, 뒤의 하나는 근기에 대하여 작용을 나타내었다.
또 해석하자면 이 게송은 거꾸로 앞의 법문을 송하였다. 처음 둘은 말후를 송하고, 다음 둘은 제7을 송하고, 다음 둘은 뛰어넘어서 제2를 송하고, 다음에 둘은 뛰어넘어서 제4를 송하고, 다음 셋은 제3을 송하고, 다음 둘은 도리어 제6을 송하고, 다음 둘은 도리어 제5를 송하고, 뒤의 넷은 제1을 송하니, 아울러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임방(任放)의 변재를 설함으로써 차례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제3선(禪)의 변정천(遍淨天)에 일곱이 있다.
첫째 모든 중생의 3품 선근을 관하여 자라나게 하는 까닭이다. 또 해석하자면 저 성문(城門)을 관함에 옛적에 들은 불명(佛名)의 선근을 추자(鶖子)는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둘째 ‘일체유(一切有)’란 것은 일체의 세계이다. 부처는 그 가운데에 나와서 중생을 깨닫게 한다. 모든 법을 비추어 나타내게 하는 까닭에 각조(覺照)라고 한다.
셋째 총지(總持)라는 것은 마음에 문의(文義)를 갖추었기 때문이니, 이것을 선설(宣說)할 때 말에 4변(辯)을 갖춘 까닭이다.
넷째 부처님의 출세에는 만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즐거움을 내고 나오기를 마치면 어려움을 제거하는 까닭에 ‘해탈’이라고 한다.
다섯째 중생은 곧 여(如)로써 연기의 경지[際]에 순하여 덕을 나타내는 것이 무궁하기 때문에 환희를 일으킨다.
여섯째 처음에 ‘보살을 교화한다’고 한 것은 뛰어난 작용이요, 다음 ‘덕상이 갖추어지고’ 뒤에 ‘무진에 들어간다’라고 한 것은 극체(極體)를 따른 것이다. 이는 모두 일승별교의 법이다.
일곱째 고(苦)의 중생이란 것은 곧 구제할 대상이고, 자비란 것은 곧 능히 구제하는 것이다. 지(智)란 모양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며, 만(滿)이란 교화의 덕이 갖추어진 까닭이며, 저 이익을 이룬 까닭이다.
송 가운데에 열하나가 있다.
처음 하나는 처음의 법문을 송한 것이니, 앞의 장행에는 소관(所觀)을 들었지만 여기에서는 능관의 덕을 나타내었다. 또 해석하건대 처음 두 구는 능관이니, 이른바 부처님의 지혜는 걸림이 없어서 보변(普遍)하다. 다음 1구는 선근의 알기 어려움을 밝혔으니, 이는 부처님의 경계이다. 아래 구는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두 번째 송에 4게가 있으니, 처음 둘은 위의 유(有)에 처함과 비춤[照]을 송했고 가운데에 앞의 하나는 체를 의지하여 용을 일으킴을 밝히고, 뒤의 하나는 용이 체에 돌아감을 밝혔다. 나중의 둘은 위의 각(覺)의 뜻을 송했다. 그 가운데에 처음 하나는 미혹[迷]을 열어서 깨달음[覺]을 나타내었고, 뒤의 하나는 깨달음은 생각[情]을 뛰어넘는 것임을 밝혔다.
세 번째에 한 송(頌)이 있으니, 처음 두 구는 총지[持]를 송하고, 다음 한 구는 변재[辯]를 송하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 귀속시켰다.
네 번째에 한 송이 있으니, 처음 두 구는 부처님이 출생하는 것을 좋아함을 송하였고 뒤의 두 구는 해탈을 송하였다.
다섯 번째에 한 송이 있으니, 처음 두 구는 중생의 매우 깊은 법을 송하였고 뒤의 두 구는 환희를 일으키는 것을 송하였다. 이치를 깨닫는 공덕으로써 하였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한 송이 있으니, 처음 두 구는 위의 보살을 교화하는 것을 송하고 뒤의 두 구는 위의 공덕이 두루 갖추어져 다함 없음에 들어가는 것을 송했다.
일곱 번째 두 송이 있으니, 처음 두 구는 구제할 대상을 송하고 뒤의 두 구는 능히 구제함과 지혜[智]를 송했다. 이른바 깨끗함을 보는 것은 곧 지혜이다. 아래 한 송은 만(滿)을 밝혔다. 이를테면 처음 두 구는 화신(化身)의 만(滿)이요, 뒤의 두 구는 화업(化業)의 만(滿)이다.
네 번째로 제2선(禪)의 광음천중(光音天衆)에 열 가지가 있다. 처음 ‘적정처(寂靜處)’라는 것은 첫째 이정(理靜), 둘째 사정(事靜), 셋째 전정(田靜)이다. ‘괴로움을 멸한다’라는 것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성멸(性滅)이요, 둘째는 지멸(智滅)이며, 셋째는 복멸(福滅)이다. 아래 송(頌) 가운데는 다만 전(田)과 복(福)만이 있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은 단덕(斷德)이니 마음이 깨끗하고 성품이 깨끗한 까닭이며, 때[垢]를 여의고 다스려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보성론(寶性論)』에 이르되 “하나는 자성정(自性淨)이요 다른 하나는 무구정(無垢淨)이다”라고 하였다. 다음은 지덕이니 이를테면 널리 닦는 것 등이다. 또 ‘심정(心淨)’이란 곧 기(器)25)이고, ‘이구(離垢)’라는 것은 곧 연(緣)26)이다. ‘덕해(德海)’라는 것은 곧 연에 의하여 닦는 것이다. 송에서는 뒤의 해석을 송하였다.
세 번째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길고 짧음이 상즉함이니 때[時]와 겁이 여여한 까닭이요, 다른 하나는 자재한 지위[位]와 부자재한 지위이니 덕에 우열이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세 가지 해석이 있으니, 처음에 이르되 “세간의 생주멸종종(生住滅種種)이란 것은 곧 염(染) 연기이다. ‘청정’이란 것은 염(染)에 물든 성정으로써 성정의 덕이기 때문에 공덕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다른 하나에 이르되 “이것은 정법(淨法) 연기이니 다만 진여를 가리는 까닭에 세간의 생(生) 등이라고 말하며, 염(染)의 과환(過患)을 가리기 때문에 정(淨)공덕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며, 또 하나에 이르되 “세간이란 것은 곧 처소[處]이고 생주멸이라는 것은 곧 부처님의 출생과 머무름[住]과 멸(滅) 등으로서 다문(多門)으로 사물을 이익되게 하여 염(染)을 멸하고 정(淨)을 성취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래 송 가운데는 뒤의 해석이 있다. 다만 뜻은 통하는 까닭에 나머지 해석도 겸한다.
다섯 번째 일생(一生)의 보살은 능공(能供) 가운데에서도 지극함으로써 저기에 나아가서 널리 설함을 나타내었다. 아래 백만억 등도 이와 같으니 여기에 준거해 보라.
여섯 번째 자재다라니력을 얻어서 일념에 능히 많이 받고 일념에 능히 많이 설한다.
일곱 번째 장처(場處)에 부처가 나옴을 장엄이라고 한다.
여덟 번째 신족이란 것은 곧 공덕이다. 또 신족이란 것은 곧 능익(能益)이요 공덕은 곧 소익의 성상(成相)이다.
아홉 번째 복과 지혜가 깊고 넓어서 근기와 더불어 경계가 된다.
열 번째 원력과 공덕력이란 것은 곧 인위(因位)의 원행으로서 능지(能持)이다. 희장(喜藏)은 과이니 곧 소지(所持)이다. 희(喜)는 곧 대지(大智)이고 지체(智體)를 함섭하는 까닭에 장(臧)이라고 한다.
송 가운데에 10게가 있으니 각각 한 법씩을 송한다.
처음 게는 정전(靜田)에 의하여 복을 생기게 하고 괴로움을 멸하는 것을 송했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이구(離垢)의 행연(行緣)을 송했고, 다음 구는 심정(心淨)의 행기(行器)를 송하고, 그 다음 구는 이룩해야 할 덕해(德海)를 송하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게 귀속시켰다. ‘장엄’이란 것은 곧 묘잡(妙雜) 천자의 광명이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방편의 넓음을 나타낸 까닭이며, 다음 구는 다겁에 닦은 것을 나타낸 때문이다. 그 다음 구는 성품이 걸림 없기 때문이니, 이 방편으로 말미암아 일념에 다겁의 공덕을 출생하는 것을 방편문이라고 한다. ‘법주음(法主音)’이란 곧 자재한 소리이기 때문이며, 사람이 법을 얻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네 번째 가운데에 처음 3구는 세간의 생(生)ㆍ주(住)ㆍ멸(滅)을 송하였으니, 곧 부처님의 흥세(興世) 등인 까닭이다. 아래 구에 ‘어리석음을 멸한다’고 한 것은 깨끗한 공덕을 송한 것이고, ‘승념(勝念)’이란 천자의 이름을 매듭 지은[結] 것이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밭의 넓음을, 다음 구는 능공(能供)의 넓음을, 다음 구는 공익(供益)의 넓음을 송한 것으로서, 위의 보살이 도솔천에 계시면서 널리 공양[供]을 설함을 총체적으로 송한 것이다. 아래 구는 법을 매듭지어 사람에게 귀속시켰다.
여섯 번째 가운데 처음 3구는 겁27) 동안 지(地)의 뜻을 설한 것을 송했고, 아래 구는 능히 일념에 설(說)을 받아들인 것을 송하였으니, 마음의 자재를 얻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능엄(能嚴)이요, 다음 두 구는 장엄의 모습[莊嚴相]을 나타냈고, 아래 구는 이름을 매듭 지은 것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두 구는 무진의 신족(神足)을 송했으니, 상구는 체이고 하구는 용이다. 아래 두 구는 이익을 성취하는 공덕해를 송했고, 상구는 지전(地前)의 6근(根) 청정을 얻게 하였으며, 아래 구는 지상의 매우 깊은 법에 이르게 한 것이다. 또한 이는 사람의 이름을 매듭 지은 것이다.
아홉 번째 가운데 처음 두 구는 공덕해를 송하니, 상구는 혜(慧)이고 하구는 복(福)이다. 다음 구는 경계를 송했고,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게 귀속시켰다.
열 번째 가운데 처음 두 구는 과거불의 공덕력을 송했고, 다음 한 구는 원력(願力)을 송했으며, 아래 구는 간직하고 있는 희장(喜藏)을 송했으니, 이는 곧 성취해야 할 과를 송한 것이다.
다섯 번째로 초선의 범천중(梵天衆)에 열 가지가 있다.
처음엔 진(眞)으로부터 응(應)을 일으키는 것을 ‘법을 조현(照現)한다’라고 하며, 응이 진과 다르지 않은 것을 ‘부사의에 든다’라고 하였다. 적(寂)에 즉하여 조(照)가 됨으로써 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고, 조(照)에 즉하여 적(寂)이 됨으로써 조라고 생각할 수 없다.
두 번째 ‘일체의 선으로써 평등하게 관한다’라는 것은 곧 법신의 이치[理]이니, 이것은 선(禪) 가운데 평등관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적정에 잘 머문다’는 것은 오묘한 지혜[妙智]가 증명하고 계합하는 것이다.
세 번째 처음은 본래의 지혜가 법을 비추고 나중에는 뒤의 지혜가 교묘히 화(化)함이다. 또 찰진(刹塵)의 법해(法海)를 ‘모든 법의 불가사의’라고 이름하고, 일음(一音)으로 연설하지만 진겁(塵劫)에 다할 수 없는 것을 ‘방편에 든다’고 한다. 게(偈) 가운데 뒤의 해석이 있다.
네 번째 부처님의 음성이 원만하게 응함을 ‘묘음해(妙音海)’라고 하고, 고르고 널리 계합함[齊均普契]을 ‘평등에 도입(度入)한다’고 한다.
다섯 번째 근기가 부드러운 사람[柔根者]을 섭취하고 강하고 굳센 사람[剛强者]을 복취(伏取)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편을 불신(佛身) 가운데 나타내기 때문에 최승(最勝)이라고 한다.
여섯 번째 불신이 널리 응하여 모든 국토 가운데 나타남을 ‘능히 일어나 머무른다’고 하며, 어업(語業)이 널리 두루 가득하고 청정한 음성으로 설법하는 것을 ‘법을 분별한다’고 한다.
일곱 번째 끝없는 3업은 교묘하게 중생을 교화한다.
여덟 번째 법이 정계(情計)를 여의는 것을 깨끗한 모양[淨相]이라 하고, 묘한 지혜[妙智]로 잘 증득하는 것을 ‘적행(寂行)에 머무른다’고 한다.
아홉 번째 과거와 미래에 오고감이 없고 현재에도 의지할 것이 없다. 또 태어남에 좇아온 곳이 없고 멸함에 가는 곳도 없으며 머무름에 의지할 것이 없다. 여기에 마음을 관하는 것을 ‘용맹’이라고 한다.
열 번째 일행(一行)이 있음을 따라서 곧 모두 널리 다함이 없는 법해를 비추는 것이다.
송(頌) 가운데 8게(偈)가 있다. 앞의 일곱은 각각 하나씩 송했다.
처음 가운데 처음 반은 모든 법을 조현하는 것을 송했고, 뒤의 반은 부사의에 드는 것을 송했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선(禪) 등으로써 관함을 송하고, 뒤의 반은 적정에 잘 머무르는 것을 송했다. 또 아래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게 귀속시켰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모든 법의 불사(不思)를 비추는 것을 송했고, 다음 두 구는 방편에 드는 것을 송했으며, 아래 한 구는 법을 매듭 지어 사람에게 귀속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3구는 묘음성해(妙音聲海)를 송했고, 아래 구는 평등에 도입(度入)하는 것을 송했으니, 이것도 또한 매듭 지음이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섭복(攝伏)을 송했고, 뒤의 반은 최승을 송했다.
여섯 번째 가운데 처음 3구는 일체의 국토를 일으켜 안주하는 것을 송했으니 이를테면 몸을 나타내는 것이요, 아래 구는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을 송했으니 이를테면 청정한 음성으로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한량없는 방편을 송했으니 이는 곧 3업륜(業輪)이요, 뒤의 반은 중생을 교화함을 송했으니 이를테면 자재하게 근기[機]를 비추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적행(寂行)에 머무름을 송했고, 뒤의 반은 모든 법의 깨끗한 모양을 송했다.
뒤의 두 구의 법문은 생략하여 송이 없고, 또 해석하면 총체적으로 제8송 가운데에 있다. 이를테면 처음 구는 제8의 법문을 송했고, 다음 구는 제10을 송했으며, 다음 구는 제9를 송했고, 아래 구는 이름을 매듭 지은 것이다. 즐거움[樂]은 곧 제9의 이름이요 음성[音]은 곧 제10의 이름이다.
여섯 번째로 타화천중(他化天衆)에 열 가지가 있다.
처음 가운데 중생의 2장(藏)이 있다. 첫째는 번뇌장(煩惱藏)이니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전전하여 다하게 함이요, 둘째는 여래장(如來藏)이니 교화하여 전전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둘이 아님으로 화합하여 융통하기 때문에 교화의 이익을 얻는다.
두 번째는 중생으로 하여금 큰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세 번째는 근기를 알아 교묘하게 이익되게 한다.
네 번째는 중생에게 3성(性)28)의 뜻이 있음을 분별한다. 또 부처는 중생을 위해서 일음(一音)에 광대한 법해를 나타내어 해석한다. 게송에서는 뒤의 해석을 송했다.
다섯 번째는 자념(慈念)이 근기를 덮고 혜안으로 관찰한다.
여섯 번째는 대자(大慈)의 10력(力)이 만(慢)의 악마[魔]29) 산을 부순다.
일곱 번째는 생각에 응하여 섭화(攝化)한다.
여덟 번째는 널리 모든 부처님을 염하며 미묘하게 부처님의 경계를 다한다.
아홉 번째 ‘부처님의 공덕 자재’라는 것은 능화(能化)의 덕을 나타내고, ‘각오(覺悟)는 염(念)에 충만하다’라는 것은 널리 많은 근기[群機]에 응하는 것이다. ‘수순’이라는 것은 첫째 근(根)과 연(緣)이 서로 순(順)하며, 둘째는 기(機)로 하여금 법에 들게 함이다.
열 번째 ‘불국토해’라는 것은 오직 부처님의 지혜 경계인 까닭에 ‘세간을 떠난다’고 한다.
송 가운데 열 가지가 있어서 각각 한 법씩을 송했다.
처음 가운데 앞의 반은 장(藏)을 송했고, 뒤의 반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송했으니 또한 통송(通頌)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가운데 3구는 앞의 법을 송하고, 아래 구는 사람을 매듭 지은 것이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중생을 해탈하게 함을 송했다. ‘의지고림(疑地枯林)’이라는 것은 성욕(性欲)을 송한 것이다. 나머지는 방편을 송하고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분별을 송했고, 다음 구는 의(義)를 송했으며, 그 다음 구는 의(疑)를 해석하였다. 의심하여 이르되 “무슨 까닭으로 한 음성으로 능히 많은 법을 연설할 수 있는가?” 해석하여 이르되 “두루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래 구는 매듭 지음이다. ‘승용(勝勇)’이란 곧 정진(精進)이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관찰을 송하니, 지혜[智]로 관하여 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부처님의 모공에 들어간다’고 한다. 아래 반은 자념(慈念)을 송하고 이름을 매듭 지은 것이다.
여섯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마군의 일[魔事]을 송했고, 다음 두 구는 초출(超出)을 송했으며, 아래 구는 매듭 지음이다.
일곱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염불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지(智)를 얻은 것을 송했고, ‘어리석음을 멸한다’고 말한 것은 염(染)의 원인을 여읜 것이다. 뒤의 반은 염의 과를 여읨과 이름을 매듭 지은 것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송하고 다음 구는 생각이 충만한 것을 송했으니, 그 생각을 채우기 때문이다. 뒤의 반은 염을 채우는 이익을 밝히고 이름을 매듭 지었다. 당(幢)은 바퀴[輪]와 같다.
아홉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부처님의 공덕이 자재함을 송하고, 다음 구는 각오(覺悟)와 염(念)의 수순을 송하며, 아래 반은 충만을 송하여 매듭 지었다.
열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세간을 여의는 것을 송하니, 곧 ‘국토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 구는 경계를 송하고, 그 다음 구는 세상을 여읜 원인을 밝혔으며, 세간의 모양이 다한 국토해는 넘을 것이 없는 까닭에 ‘무고심(無高心)’이라고 말하니 곧 무분별(無分別)이다. 아래는 이름을 매듭 지었다.
일곱 번째 화락천중(化樂天衆)에도 열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연기 무작(緣起無作)으로써 모든 법을 분별하였다.
두 번째 세 가지 해석이 있으니, 하나는 이르되 “3유(有)30)와 2아(我)31)의 실성(實性)을 관하는 때문이다”라고 하며, 또 하나는 이르되 “일체 유[一切有]라고 하는 것은 이유(理有)32)이고, 나[我]라는 것은 정계(情計)33)이다. 정(情)과 이(理)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불성론』에 이르되 “진제(眞諦)는 인법(人法)이 없는 까닭에 유(有)가 아니고, 2공(空)을 나타내는 까닭에 무(無)도 아니다. 또 인법은 무이면서 무가 아니고, 2공은 유이면서 유가 아니다. 속제(俗諦)에 있어서는 분별성(分別性)인 까닭에 유가 아니고 의타성(依他性)인 까닭에 무도 아니다. 또 분별은 정무(定無)가 아니고, 의타는 정유(定有)가 아니다”라고 하니, 이런 까닭에 2제(諦)는 함께 유ㆍ무를 떠나며, 또 『변중변론(辨中邊論)』에 “……”라고 하며, 또 이르되 “부처님은 비록 유(有)를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유에서 불(佛)을 구할 수 없으니 유는 진(眞)에 즉하되 실은 곧 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유의 진실을 관한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비록 나를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나로써 부처를 구할 수 없다. 나[我]는 진(眞)에 즉하니 곧 무아(無我)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나의 진실을 관한다’라고 말한다. 게송에서는 뒤의 것을 송했다.
세 번째 능히 중생의 어리석음[愚癡]을 멸하는 지혜란 원만함이 불과(佛果)에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원음(圓音)이 널리 기쁘게 하여 저 용맹스럽게 닦음[勇修]을 일으킴이다.
다섯 번째 10연화장 미진수 상해((相海)인 까닭에 ‘구족함이 무진하다’라고 말했으니, 「상해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호공덕(好功德)’이라는 것은 곧 작은 모양[小相]이니, 「소상공덕품」에 설한 것과 같다.
여섯 번째 삼세 겁의 사(事)는 불지(佛智) 가운데 있어서 비추어 잡란하지 않기 때문에 차제(次第)라고 말한다. 이는 치우치게 과거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게송 가운데에 갖추어져 있다.
일곱 번째 복지 무애(福智無涯)이니 중생을 이익되게 함이다. 또 중생 무변의 복지를 기르는 것[長養]이라 한다. 아래의 게송은 처음의 해석을 따른다[順].
여덟 번째 연기의 사신(事身)은 법성과 같아서 널리 두루함이다. 무애(無礙)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 질(質)34)이니 몸에 걸리지 않음이요, 둘째 신(身)이니 질에 걸리지 않음이며, 셋째 변(遍)이니 은(隱)에 걸리지 않음이며, 근기가 감(感)하지 못하는 것은 비록 두루하다 할지라도 감춰지기 때문이다. 넷째 만(滿)이니 분(分)에 걸리지 않음이며 근기에 응하여 장단(長短)을 나타낼지라도 허공에 가득하여 걸리지 않는다. 다섯째 좌(坐)는 행(行) 등에 걸리지 않음이요, 여섯째 일(一)이니 다(多)에 걸리지 않음이니 여러 방위에 다(多)를 나타낼지라도 항상 곧 일이다. 일곱째 이(理)이니 사(事)에 걸리지 않음이니 ‘공계(空界)’라는 것은 계(界)는 성(性)과 같다. ‘성’에 즉한 공은 ‘이’이고 ‘결가부좌[跏坐]’라는 것은 곧 ‘사’이다. 연기는 융통한 까닭에 무애(無礙)이다. 나머지 모든 근(根) 등은 여기에 준하라.
아홉 번째 업행(業行)이 연기하여 교묘히 ‘기(機)’를 위해 나타나는 것을 ‘방편’이라고 한다. ‘무진’이라는 것은 곧 ‘기’가 반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시 경(境)이라고도 말한다.
열 번째 일체 중생의 선악의 인과는 한가지로 법계에 있으면서 오고감이 없기 때문에 등관(等觀)이라고 한다.
송 가운데 열 가지가 있어 각각 하나씩을 송했다.
처음 가운데 화(化)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화가 일어나는 소의(所依)이고, 둘째 화의 체가 없음을 나타내며, 셋째 화현(化現)이 있는 듯함이다. 처음 반 게는 처음의 뜻을 송하였다. 이를테면 위의 구는 일체 법을 송하니 곧 의지할 대상이요, 아래 구는 화를 분별함을 송했으니 곧 일으키는 것이다. 다음 구는 무체(無體)를 송하고 아래 구는 유(有)를 나타내는 것을 송하니, 이를테면 부처와 중생은 서로 연기(緣起)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일체의 유(有)와 아(我)를 관하는 것을 송했다. 이를테면 함께 있는 것이 없다. 뒤의 반은 진실을 송하고 사람을 매듭 지었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을 송하고, 뒤의 반은 지혜가 충만함을 송하여 이름을 매듭 지었다. ‘역(力)’이라는 것은 곧 하늘의 이름이다.
네 번째 처음 반은 불음(佛音)을 송하고 아래 반은 희(喜)와 용(勇)을 발기하는 것을 송하고 또한 매듭 지었다.
다섯 번째 처음 반은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송하고 뒤의 반은 무진을 송한 것이며 또한 매듭 지음이다.
여섯 번째 처음 반은 과거 무량겁 등을 송하고 뒤의 반은 지혜가 억념하는 것을 송했다.
일곱 번째 처음 반은 갖가지의 공덕이 지혜를 체로 삼는 것임을 송하고 뒤의 반은 바로 복지(福智)를 송한 것이며 또한 매듭 지음이다. 나머지는 생략하여 송하지 않았다. 매듭 지음 가운데 ‘정지견(淨知見)’이라는 것은 ‘정광승천(淨光勝天)’이니 무슨 까닭에 여래라고 이름하느냐 하는 것은 이 하늘 등은 곧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밝힌 것과 같다.
여덟 번째 공계(空界)에 앉아서 무애를 송하는 가운데 앞의 장행(長行)에는 과(果)의 용(用)을 밝히고, 여기에서는 그 인행(因行)을 송하였다. 이를테면 처음 구는 때[時]가 많고 다음은 덕(德)이 충만하고 다음은 용맹스럽게 닦고 마지막은 이름을 매듭 지음이다.
아홉 번째 처음 반은 방편의 경계를 송하고 뒤의 반은 무진력(無盡力)을 송하고 또한 매듭 지었다. 이를테면 능히 법을 나타내는 힘이 두루하기 때문에 ‘무진’이라고 말한다.
열 번째 처음 반은 중생의 업행의 고락을 송하고, 다음 구는 ‘등관’을 송하며 아래 구는 매듭 지음이다. ‘조(照)’라는 것은 곧 화광(花光)35)이다. 또 이것은 아홉 번째 문(門)을 송하고 앞은 열 번째를 송하였으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여덟 번째로 도솔천중(兜率天衆)에 여덟 가지가 있다.
처음에 근기를 위하여 세상에 나타남을 이름하여 ‘성취’라고 하고, 욕(欲)을 따라서 법을 설함을 ‘전법륜’이라고 한다.
두 번째 혜광(慧光)이 진공(眞空)을 비춤이다. 또 공(空)은 체이고 정(淨)은 덕이며, 광(光)은 용(用)이다.
세 번째 걸림이 없는 원력 바다[願海]는 물(物)과 동체가 되기 때문에 ‘입(入)’이라고 하고, 자성은 모양을 여의는 까닭에 ‘적정’이라고 한다.
네 번째 차(遮)를 기준으로 하면 10상(相)이 함께 없어짐을 무량 무상(無量無相)이라고 이름하고, 표(表)를 기준으로 하면 항사(恒沙)의 성덕(性德)이 있음을 무량 무상이라고 한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관찰하고 수행하여 혹(惑)ㆍ업(業)의 장애를 멸하게 함을 ‘관행’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부처님의 경계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분제(分齊)이고 다른 하나는 소증(所證)이다. 초용(超踊)에도 둘이 있으니, 하나는 범소(凡小)보다 뛰어남이요 다른 하나는 사의(思議)를 초월함이다. 각력(覺力)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이(理)를 증하고 다른 하나는 기(機)를 비춤이다.
여섯 번째 부처님의 공덕으로써 중생을 훈습(熏習)하는 것을 희수집(喜修集)이라고 이름하고, 발심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기 때문에 무너짐이 없는 보리심이라고 말한다.
일곱 번째 양지(量智)가 근기를 조절함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은 무진의 연기이고, 다음은 빨리 참다운 성품으로 돌아감이다. 또한 이것은 법을 돌려 근기를 헤아리고, 뒤에는 근기에 들어가서 바르게 나타냄이다. 또 ‘가없는 마음의 바다[無邊心海]’라는 것은 근기(根器)이다. ‘생각생각마다 회향한다[念念廻向]’라는 것은 무간(無間)의 욕락이다. ‘그릇에 따라서 널리 나타낸다’는 것은 부처님이 능히 응현(應現)함이다. 송에서는 뒤의 해석을 따랐다.
송 가운데는 차례가 약간 맞지 않다.
처음 가운데 처음 구는 법륜의 체(體)이고, 다음 구는 소위(所爲)이며, 그 다음 구는 바르게 굴리는 것이고, 아래 구는 뛰어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또 처음 반은 성취를 송하고 뒤의 반은 전법륜을 송하였다. 두 번째는 뛰어넘어서 제3의 법문을 송했다. 처음 반은 넓은 원력의 바다를 송하고, 뒤의 반은 중생에 들어서 적정함을 송했다. 모든 법이란 곧 방편이요, ‘승(勝)’이란 하늘의 이름이다.
셋째는 앞으로 돌아가서 제2 법문을 송했다. 처음 반은 허공계를 송하고 뒤의 반은 정광(淨光)을 송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관(觀)을 송한 것이요, 다음 구는 무량 무상을 송했으니, 곧 관하는 경계이다. 아래 구는 관행으로 성취하는 것을 송했다.
다섯 번째는 뛰어넘어서 제7의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조복하는 방편의 법문을 송했다.
여섯 번째 다시 돌아와 제5의 법문을 송했다. 처음 반은 부처님의 경계가 뛰어남을 송했고, 뒤의 반은 깨달음의 힘을 송했다. 또 해석하건대 앞에서는 오(五)를 송하고 여기서는 칠(七)을 송했으니 경문과 같이 알아야 한다.
일곱 번째 가운데는 처음 반은 희수집(喜修集)을 송하고, 다음 구는 보리심을 송하며, 아래 구는 무너뜨릴 수 없음을 송했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가없는 마음의 바다를 송했다. ‘불자’라는 것은 ‘생각생각’이다. 회향(廻向)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운집의 뜻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향하여 공양을 일으킴이요, 셋째는 부처님을 향하여 법을 들음이다. 경에 “모두 와서 모이기 때문이며, 또 공양하는 까닭이며, 법을 청수(聽受)하는 까닭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아래 구는 근기에 따라서 널리 나타내는 것을 송했다.
아홉 번째로 야마천에도 열 가지가 있다.
처음은 중생으로 하여금 세상의 근심과 번뇌를 여의고 출세의 순체(順體)의 선(善)36)으로 향하는 것이다. 또 법신의 단덕을 ‘근심을 여읜다’고 하고, 중생에게 깨끗한 길을 가르치는 것을 ‘선근으로 향한다’라고 한다.
둘째 반연할 대상의 분제가 각각 하나가 아닌 까닭이다.
셋째 그 가운데 처음은 큰 지혜로 허물을 여읨으로써 생사에 머물지 않는다. 다음은 대비(大悲)로 중생을 섭수함으로써 열반에 머무르지 않음이요, 또 대비를 갖춤으로 말미암아 중생을 구제하여 괴로움을 끊게 한다. 송에서는 뒤의 해석을 따랐다.
넷째 신(信) 등의 선근 차별이 끝이 없음을 요달하나니, 이는 곧 근행주림(根行稠林)이다. 또 하나의 근[一根] 가운데 일체 근이 있어서 상즉상입하는 것이 중중무진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모든 근은 곧 진성(眞性)과 같지만 모든 근이 분명함[歷然]을 알기 때문에 ‘분별’이라고 말한다.
다섯째 다라니문은 법계를 다하는 까닭에 무량이라고 말하고, 모든 법을 총지하여 보는 것이 물과 거울과 같기 때문에 조명(照明)이라고 말한다. 『수능엄경(首楞嚴經)』에 의하면 “사바세계의 변반(邊畔)에 수미산이 있고, 그 위에 천왕이 있으니 지수미(持須彌)라고 이름한다. 수능엄삼매를 얻어 널리 백억의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궁 가운데에 머물지만 나머지는 그를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이제 여기서는 야마중(夜摩衆) 가운데에 보살이 자재하게 처처(處處)에 화현함으로써 족히 괴이할 것이 없다.
여섯째 가운데에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조업(造業)의 연이니 곧 신(身) 등을 반연으로 삼는 것이요, 둘째는 지을 바 업이니 곧 선과 악과 부동(不動)이다. 셋째 연기는 지음이 없으니[無作] 업의 성품은 곧 진(眞)이다. 넷째는 업(業)이 비록 곧 진(眞)이라 할지라도 과(果)를 생기게 하는 것을 잃지 않는다. 경에서 “경계인 까닭이며 업행인 까닭이며 진실인 까닭이며 부사의한 까닭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또 부처를 반연하여 경계로 삼아서 짓는 바 선업(善業)은 결정코 헛되지 않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말한다. 비록 적은 선을 심더라도 결정코 마땅히 큰 보리의 열매를 얻기 때문에 부사의라고 하나니, 니구타자(尼拘陀子) 등과 같다. 송에서는 뒤의 해석을 따랐다.
일곱째 처음에 일승과 삼승 등의 다함이 없는 법륜을 굴리고 다음에 근기를 이끌어 이익을 주기 때문에 조복(調伏)이라고 말한다. 또 처음은 윤(輪)의 체(體)이고, 다음은 윤의 이익이다. 이를테면 고르게 하여 법에 들게 하여 이미 지었던 악을 조복하여 제거하는 것이다.
여덟째 생계(生界)라는 것은 소견(所見)이고, 승안(勝眼)이란 것은 능견(能見)이며, 또 보관(普觀)이란 것은 정견(正見)이다. 이를테면 중생계를 봄이 지극히 넓은 까닭이며, 곧 진성(眞性)이기 때문이며, 하나 가운데 일체인 때문이며, 인과(因果)ㆍ교의(敎義)37) 등을 갖춘 까닭이며, 제망과 같기 때문에 ‘보(普)’라고 이름한다. 삼승에는 이러한 안목이 없는 까닭에 승(勝)이라고 말한다. 또 승안(勝眼)이란 근기를 관하여 널리 법우(法雨)를 비처럼 내림이다. 송에서는 이 말을 따랐다.
아홉째 보지(普智)로써 법을 비추어 나타나게 함이다. 또 법은 진실함으로써 널리 군기(群機)에 나타난다.
열째 ‘천중(天衆)’이란 것은 곧 중생[機]이다. 다음에 중생에 따라서 교화를 베풀고 마음에 미혹을 제거하는 까닭에 ‘마음을 깨끗이 한다[心淨]’라고 말했다. 이는 교화의 이익이다. 또 비록 교화하여도 능소(能所)를 보지 못함을 또한 마음을 깨끗이 한다고 하니 자기에 속한 것이다.
송 가운데 여덟 게는 각각 한 법문씩을 송했다.
처음 가운데 처음 반은 근심을 여의는 것을 송하고, 뒤의 반은 선근에 회향하는 것을 송했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바른 이치를 기준으로 해서 경계를 밝혔고, 다음 구는 큰 지혜[大智]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아래 구는 큰 선정[大定]을 기준으로 하였다. 또 처음 반은 소증(所證)이고, 다음 구는 능증(能證)이며, 아래 구는 정증(正證)이요, 또한 하늘의 이름을 매듭 지었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여의어야 할 모든 근심을 송하고, 다음 구는 대자비를 갖춘 것을 송하며, 아래 구는 하늘의 이름을 매듭 지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삼달무애(三達無礙)38)를 밝혔으니, 곧 위의 분별을 송했다. 다음 구는 제근(諸根)을 송하니, 행(行)이란 것은 곧 근행(根行)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 구는 근을 아는 뜻을 밝히니, 교화를 위한 까닭이다.
다섯 번째 가운데 제7 전법륜법문(轉法輪法門)39)을 겸하여 송했으니, 동(同)으로써 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구는 한량없는 총지를 송하고, 다음 구는 조명과 전법륜을 송했으며, 아래 구는 하늘의 이름을 매듭 지었다. 또 『지론』에 준하면 처음 구는 체(體)요, 다음 구는 인(因)이며, 그 다음 구는 과(果)이고, 아래 구는 매듭 지은 것이다.
여섯 번째 중에서는 뛰어넘어서 제8 법문을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 반은 묘신(妙身)의 승안(勝眼)이고, 다음 구는 관하여 마치고는 몸을 나타냄이며, 아래 구는 매듭 지음이다. 광명[光]이란 것은 곧 하늘의 이름이고, 승(勝)이란 것은 곧 눈의 이름이며, 경(境)이란 것은 보는 대상이다.
일곱 번째 가운데서 ‘한 번 여래의 몸을 본다’라는 것은 경계를 송한 것이다. 다음 두 구는 업행(業行)의 진실을 송했으니, 두 구 중 첫 번째 것은 염인(染因)을 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염연(染緣)을 여의는 것이다. 아래 구는 부사의를 송하니, 정묘(淨妙)의 경계를 증득한 때문이다.
여덟 번째 게송에서는 제9와 제10의 두 문을 통틀어서 송했다. 처음 반은 널리 나타남을 송하고, 다음 구는 시작(施作)을 송하고, 아래 구는 제10의 하늘의 이름을 매듭 지었다.
열 번째로 도리천에도 열 가지가 있다.
처음에 ‘삼세 부처님의 출흥(出興)'이라고 한 것은 곧 9세 가운데 삼세는 현재이기 때문에 기(機)에 나아가서 흥폐(興廢)한다. 의정(依正)에 통하는 까닭에 곧 관할 경계이다. 아래에서는 능관(能觀)을 밝혔으니, 이를테면 위의 흥폐에 미묘하게 승용(勝用)에 달함을 ‘결정지(決定智)’라고 하고, 이치에 따라서 잘 증득하는 것을 염희(念喜)라고 한다. 또 용(用)은 비록 일어나고 다함이 있을지라도 이치는 밝고 담연한 까닭에 ‘대지염희(大智念喜)’라고 말한다.
두 번째 가운데 두 가지 빛깔은 한가지로서 곧 여(如)이고 공덕은 본래 깨끗하다. 또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중생의 몸[色]과 한가지인 까닭에 중생색(衆生色)이라고 하고, 중생색은 곧 여(如)인 까닭에 또한 여래색(如來色)이라고도 한다. 체로부터 용을 일으키는 것을 공덕력(功德力)이라고 하여 처음 구를 매듭 짓는다. 용이 체와 다르지 아니함을 청정이라고 이름한다. 뒤의 구를 매듭 지었다.
세 번째 평등이라고 한 것은 동체인 까닭이며, 지혜가 인도하기 때문이며, 원친(怨親)을 가리지 않은 까닭이다. 구름이라고 한 것은 허공을 덮는 까닭이며, 윤택하고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며, 법수(法水)를 머금은 때문이며, 비를 뿌려 세상 만물을 적시는 까닭이다.
네 번째로 ‘염불’과 ‘광’이라고 한 것 등은 진산(塵算)을 벗어난 까닭에 ‘중(衆)’이라고 이름한다. 하나하나마다 다 갖추어 법계의 공덕을 포함하였기 때문에 ‘구족’이라고 이름한다. 따로따로의 작용이 모두 법계에 두루 가득하되 서로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을 ‘보세(普勢)’라고 이름한다.
다섯 번째로 업과(業果)의 차별을 요달함이다. 또 자기가 곧 여(如)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관(觀)’이라고 말한다. 또 부처님은 정업(淨業)으로써 반연을 삼아 중생[機]으로 하여금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을 ‘보(報)’라고 한다. 또 중생이 불종에 의해서 선근을 얻는 것을 ‘업(業)’이라 하고, 부처를 반연하여 볼 수 있는 것을 ‘보(報)’라고 한다.
여섯 번째로 ‘불토는 정(淨)을 갖춘다’는 것은 깨끗한 보배로 장엄하였기 때문이며, 수용하여 의혹을 멸하였기 때문이며, 깨끗한 사람이 거처하는 곳이기 때문이며, 본래 성품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세간의 연기를 ‘생(生)’이라고 하고, 작용 없는 것이 곧 참[眞]임을 멸이라고 하며, 둘이 없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생이 곧 멸이고 멸이 곧 생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처음 생할 때가 곧 멸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를 위하여 설하지 않는다. 일체 법이 불생(不生)이란 것은 나는 찰나의 뜻에 의하여 설한다”라고 한 것이요, 부처님의 지혜가 이것을 비춤을 ‘관(觀)’이라고 한다.
여덟 번째 연기의 모공에 대중의 행법을 나타냄을 ‘제행을 일으킨다’고 하며, ‘보살로 하여금 닦게 하는 것을 중생을 화하는 인(因)’이라고 하니, 사람마다 닦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修)가 이루어져 이(理)에 드는 것을 ‘생각을 일으킴’이라고 한다.
아홉 번째로 낙(樂)의 뜻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욕계의 산락(散樂)이요, 둘째는 정지(定地)의 낙이며, 셋째는 작은 열반의 낙이요, 넷째는 큰 열반과 큰 보리와 대비 등의 낙이다. 일승과 삼승 등의 낙은 모두 부처로 말미암아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처음에 의지했기 때문에 천락(天樂)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욕계천인 까닭이며, 이실(理實)에 통한다. 또 부처를 이름하여 제일의(第一義) 정천(淨天)이라고 한다. 곧 저들의 낙이다.
열 번째 모든 천자들을 교화할 때 한 생각으로 부처님을 염하면 가깝게는 악취(惡趣)를 여의고 멀리는 어리석음의 미혹[癡惑]을 멸하는 까닭에 유통의 선근이라고 이름한다.
송 가운데 첫 번째 송의 처음 반은 삼세불의 출흥과 대지를 송하고, 다음 구는 머무르고 멸함을 송했다. 부처님의 국토신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래 구는 ‘염희(念喜)’를 송했다.
두 번째에서 처음 반은 중생의 몸[色]과 여래의 몸을 송하고, 아래 반은 공덕력의 청정함을 송하며 아울러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또 처음 구는 청정을 나타냈고, 다음 구는 두 가지의 몸을 나타냈다. 이를테면 소응(所應)은 곧 중생의 몸이다. 그 다음 구는 공덕력을 나타냈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대자(大慈)를 송하고, 다음 구는 평등을 송하며, 다음 구는 음부(蔭覆)를 송하고, 아래 구는 사람이 법을 깨닫는 것을 매듭 지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염불과 보세(普勢)를 송하고, 아래의 반은 많은 광색(光色)을 구족함을 송하고 아울러 매듭 지었다.
다섯 번째 가운데서 처음 구는 총체적으로 업보임을 송하고, 다음 구는 보는 것[觀]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개별적으로 선업의 보와 아울러 관을 송했다.
여섯 번째 가운데서 처음 반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송하였으니 지정각이란 곧 기세간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반은 깨끗함[淨]을 갖춘 것을 송하니 이를테면 수용정(受用淨)이기 때문이며, 또한 매듭 지음이다. 이 하늘의 이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가운데서 처음 구는 관을 송하고, 다음 구는 세간을 송하고, 아래 두 구는 생멸을 송하니 이를테면 ‘기(機)’에 응하는 것은 곧 생멸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 지혜가 생겨서 의혹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묘음’은 이 하늘의 이름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모든 행을 일으킴을 송하고, 다음 구는 중생을 교화함을 송했다. 불자(佛子)는 인(因)과 같다. 아래의 반은 생각 일으킴을 송하고 또한 하늘의 이름을 매듭 지었다.
아홉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모든 하늘의 오락을 송하고, 다음 두 구는 낙의 원인이 되는 것을 송하고, 아래 구는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열 번째 가운데서 처음 반은 천처(天處)에서 교화하는 것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유통의 선근을 송했다. ‘혜일(慧日)’이란 곧 하늘의 이름이다.
열한 번째로 일천자(日天子)에도 열 가지가 있다.
첫째 혜일(慧日)이 광명을 펴서 중생 바다를 비출 때 성품[性]이 3제(際)를 다한다. 미래는 알기 어려운 까닭에 편벽되게 열거했을 뿐이다. 근본에 칭합하는 연기는 편안하고 견고하여 덕을 포함하기 때문에 ‘바로 장엄에 머무른다’고 말한다. 또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중생의 근기를 비추어 중생으로 하여금 미래제가 다하도록 바르게 수행의 장엄에 머물게 하려 한 까닭이다.
둘째 색을 비춤이 곧 살바야(薩婆若)40) 바다와 같다. 또 지혜의 바다[智海]로써 모든 색을 비추어 나타낸 것이다. 또 중생의 색을 비추어 그 마음을 앎이다. 또 심공(心孔)41) 가운데의 물의 빛을 비추어 보아서 심념(心念)을 알고 그로 하여금 개오(開悟)하게 하여 큰 지혜를 발생하게 하는 까닭에 이렇게 말한다. 송에서는 이것을 따른다[順].
셋째 부처가 증상연(增上緣)이 되어서 중생의 하열함[劣]을 버리고 뛰어남을 따라 더러움을 여의는 공덕을 발기하는 까닭에 전승(轉勝)이라고 말한다. 또 불신이 세상에 나온 것을 중생을 일으킨다고 하니, 부처는 곧 큰 몸을 지닌 중생이기 때문이다. 설법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함을 전전하는 뛰어나고 깨끗한 덕이라고 이름한다.
넷째 고행(苦行)이라는 것은 곧 인(因)이다. 도(度)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건넌다는 뜻이니, 이 인문(因門)은 고행의 끝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과(過)의 뜻이니 인을 넘어서 과를 얻기 때문이다.
다섯째 장애가 없다는 것은 곧 지혜의 체이고, 널리 비춘다[普照]는 것은 곧 지혜의 작용이다. 또 한 법을 비출 때 곧 일체를 나타내기 때문에 걸림이 없다고 하고, 이 걸림 없는 것이 곧 조(照)이므로 널리 비춘다고 한다. 또 다함이 없는 변재를 걸림이 없다 하고, 법을 연설할 때 두루 갖추는 것을 널리 비춘다고 한다. 송에서는 이것을 따른다.
여섯째 부처님의 광명이 중생의 근기를 비추어 도의 뜻[道意]을 발하게 하는 까닭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일곱째 부처님의 광명이 비춤으로 말미암아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증장하게 하는 것을 적집(積集)이라고 이름한다. 또 부처님이 다겁에 덕을 쌓았기 때문에 광명이 세간을 비출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능히 비춘다고 한다.
여덟째 성해(性海)는 덕을 갖추었으므로 가히 귀히 여길 만함으로 보(普)라고 이름하고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의정(依正)ㆍ교의(敎義)를 적절하게 나타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홉째 어리석음을 교묘하게 제거하는 것을 청정한 눈을 연다고 하고, 진리를 보게 하는 것을 법계장(法界藏)을 본다고 한다. ‘법계장’이라는 것은 『불성론』에서 5장(藏) 등(운운)을 말한 것과 같다.
열째 다근(多根)의 감득하는 바 5승(乘)이 마침내는 일규(一揆)에 돌아가 제승(諸乘)이 모두 깨끗해진 까닭에 정승(淨乘)이라고 한다. 또 하나를 나누어 다섯이 되어서 다시 나머지의 잡됨이 없는 까닭에 또한 정(淨)이라고 한다.
송은 열한 개가 있다.
첫 번째 안에서 처음 구는 미래제를 다하는 것을 송하고, 다음 구는 시방의 중생을 비추는 것을 송했다. 중생 세간은 곧 기(器)이기 때문이다. 두 경문을 서로 거론한 것이다. 다음 구는 바르게 머무름을 송하니, 기연(機緣)이 계합하는 까닭이다. 아래 구는 장엄을 송했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모든 색을 비춤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무상(無上)의 지해(智海)를 송했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중생을 일으킴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전전하는 뛰어나고 청정한 공덕을 송했다. 또한 이것은 중생을 일으킨 것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송하지 않았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고행을 송하니, 이른바 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행하기 어려움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난(時難)이니 경에서 ‘무수겁(無數劫)’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처난(處難)이니 경에서 ‘모든 중생[諸有]의 가운데’라고 말한 것과 같다. 셋째는 행하는 것이 어려움이니 경에서 ‘난행 고행’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넷째는 향하기 어려움이니 경에서 ‘중생을 위하여’라고 말한 것과 같은 까닭이다. 아래 반은 낙도(樂度)를 송하니 과(過)를 말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장애가 없음을 송하고, 나머지 셋은 널리 비춤을 송하였다.
여섯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청정한 일광(日光)이 비추는 것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비추어야 할 중생신과 아울러 이익의 모습을 송했다.
일곱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비추어야 할 세간을 송하고, 아래는 아울러 능조(能照)의 광명과 적집(積集)의 공덕을 송했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중보(衆寶)의 바다를 송하고, 아래는 아울러 갖가지 색의 경계를 나타냄을 송했다. 말하자면 성해(性海)가 중생의 근기를 인(印)쳐서 법대로 의정(依正)ㆍ교의(敎義)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법이 이와 같다[法如是]’라고 말한다.
아홉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모든 세계[一切趣]가 청정한 눈[淨眼]을 뜨는 것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법계장(法界藏)을 관하는 것을 송했다.
열 번째에 두 게(偈)가 있다. 처음 게는 모든 중생의 탈 것을 송하니 이를테면 5승(乘)의 방편이요, 아래 게는 청정[淨]을 송하니 이를테면 말(末)을 회통하여 본(本)에 돌아가게 한 것이다. 또 처음은 돈교이고 뒤는 별교이다. 둘이 없기 때문에 정(淨)이라 하였다.
열두 번째로 월천자(月天子)에 열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먼저 가행(加行)으로써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고, 다음은 정증(正證)하게 함을 ‘법계를 비춤’이라고 이름한다. 또 널리 비춘다는 것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빛[光]이 중생을 비추어서 부처님을 보게 하는 것이요, 둘째 치혹(癡惑)을 비추어 제거함이니 이 둘을 ‘중생을 조복함’이라고 이름한다. 셋째 법계를 조현(照現)하여 진리에 들게 함이다.
둘째 ‘널리 본다’는 것은 곧 능관의 지혜[智]요, 일체 등이라는 것은 곧 소관의 경계이다. 섭(攝)이라는 것은 이 보지(普智)로써 회통하여 모든 법을 섭수함에 저 보문에 동(同)함을 말한다. 다 이 보지의 경계가 아닌 것이 없다.
셋째 마음과 경계라는 것은 혹 마음은 변함이 있지만 경계는 변하지 아니함이다. 마치 10일체입(一切入) 등과 같다. 혹은 경계는 변하지만 마음은 변하지 아니함도 있다(운운). 혹은 구(俱)이다(운운). 또 심념(心念)이 번다함을 바다[海]라고 하니, 이는 부처님의 타심지(他心地)의 소연(所緣)이기 때문에 경계라고 말한다. 근기에 맞추어 법을 주어서 허망한 것을 버리고 참다운 것을 기뻐하게 함을 ‘전(轉)’이라고 이름한다. 송(頌)에서는 이것을 따랐다.
넷째 무분별지가 바르게 진리에 나아가는 것을 애락(愛樂)이라 하고, 이 애(愛)가 정(情)을 뛰어넘는 것을 부사의(不思議)라고 한다. 또 바른 지혜[正智]의 ‘애’는 저 부사의한 경계를 증득하는 까닭에 그렇게 이름한다. 이 지혜는 부처님의 청정한 법[淨法]으로 인하여 생기는 까닭에 능생(能生)이라고 한다. 또 세간의 의(猗) 등의 모든 낙(樂)이 다 부처님을 인하여 생기므로 모두 부사의라고 이름한다.
다섯째 부처님은 중생으로 하여금 2제(諦)의 도리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실견(實見)이라고 한다. 또 견(見)이 곧 실(實)이기 때문이며, 실을 보기 때문이다. 또 2제와 3성(性)과 3무성(無性)에 모두 실의 뜻이 있다. 낱낱이 이것을 가렸다.
여섯째 대자비라는 것은 『불성론』에 이르되 “이미 얻어진 괴로움을 구원하여 벗어나게 하는 까닭이며, 장차 얻어질 괴로움에서 보호하여 면하게 하는 까닭이며, 괴로움의 5식(識)에 있거나 번뇌의 의지(意地)에 있음을 모두 구제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또 괴로움을 구원하고 즐거움을 보호하여 잃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각각 인과에 통한다.
일곱째 법과 비유를 모두 들었다. 달[月]에는 네 가지 기특한 것이 있음을 아래와 같이 준하여 밝혔다.
여덟째 3성(性)으로써 모든 법을 관한다. 먼저 의타(依他)는 환(幻)과 화(化)와 같다고 관한다. 화는 물(物)에 의탁하지 않기 때문에 환과는 다르다. 의타(依他) 가운데 유력과 무력의 두 뜻을 갖춘 까닭이다. 또 무체(無體)는 환과 같고 유용(有用)은 화와 같다. 진여에는 공(空)과 불공(不空)의 두 뜻이 있다. 이제 우선 하나를 든 때문에 공(空)이라고 말한다. 변계에도 또한 두 뜻이 있으니, 이를테면 정유(情有)와 이무(理無)이다. 여기에서는 이(理)에 의해서 나타낸 까닭에 무(無)라고 말한다.
아홉째 소기(所起)에 두 뜻이 있다. 하나는 선악의 업이 훈습으로 말미암아 본식(本識)을 일으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과보를 생기(生起)함이다. 연(緣)에 따르는 까닭에 곧 일어나지 않더라도 미묘하게 이 경지[際]에 도달하는 까닭에 선해(善解)라고 한다. 또 어떤 경본에는 취(趣)라고 한 데도 있다. 이를테면 인이 과에 나아가는 까닭이며, 또한 사(邪)를 여의고 정(正)에 나아가는 까닭이다.
열째 이(理)를 비추어 의심을 끊어 혹염(惑染)을 초월하는 것이다.
송(頌)에 여덟 개의 게(偈)가 있다.
처음의 하나는 첫 법문을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 3구는 중생을 조복하는 것을 송하고, 뒤의 1구는 비추어야 할 대상인 법계를 송했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널리 관하여 섭수하는 것을 송하고, 다음 구는 일체의 모든 법을 송하고, 아래 구는 경계를 송했다. 이를테면 소화(所化)로써 경계를 삼았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중생심해(衆生心海)의 경계를 송하고, 뒤의 반은 다 전(轉)하게 함을 송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소위(所爲)를 나타내고, 뒤의 반은 올바로 부사의한 애락(愛樂)을 내는 것을 밝혔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중생으로 하여금[令衆生]’을 송하고, 다음 두 구는 실(實)을 송하고, 아래 구는 견(見)을 송하며, 또한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실(實) 가운데 처음 분별이라는 것은 추구(推求)함이니, 이를테면 세간을 추구함에 곧 무성(無性)인 까닭에 진(眞)을 본다. 다음 구는 업과(業果)가 없어지지 않음으로써 속(俗)을 본다.
여섯 번째 가운데서는 뛰어넘어 뒤의 두 법문을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 반은 앞의 제9의 법문을 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 뒤의 반은 앞의 제7의 법문을 송했다. 상구는 어리석음이 없음을 송하고, 하구는 깨끗한 달을 송했다. 이를테면 교묘한 지혜는 청량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에서는 돌아와서 제6의 법문을 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제8의 법문을 송하고, 뒤의 3구는 제10을 송하였다. 이를테면 처음 두 구는 조도(照度)함을 송하고, 아래 구는 의심을 없앰을 송했다. 의심의 혼탁을 여읨으로써 청정함을 본다고 말했다.
열세 번째로 동방의 천왕중(天王衆)에 열이 있다. 범어로는 제두뢰타(提頭賴吒)42)라고 하고, 여기 말로는 지국주(持國主)라고 한다. 거느리는 것에 따라서 이름하였다. 이 하늘의 신장은 반 유순(由旬), 옷의 길이는 1유순, 넓이는 반 유순, 옷의 무게는 2분(分)이고, 감로를 먹으며 인간 세계의 50년으로써 하루[一日夜]를 삼고, 또한 30일을 한 달로 삼고, 열두 달을 1년[세]으로 삼으며, 수명은 5백 세이다. 이 왕은 2부(部)의 귀신을 거느리는데, 하나는 건달바(乾闥婆)43)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비사사(毘舍闍)44)라고 이름한다. 건달바는 여기 말로는 심향(尋香)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모든 악아(樂兒)가 다른 집 음식의 향기를 찾아서 곧 그곳에 가서 다른 이를 위하여 풍류를 짓고 거기에서 음식을 얻는 까닭에 그렇게 이름하였다. 또 식향(食香)이라고도 하나니, 오직 세향(細香)만을 먹고 10보산(寶山) 중에 살면서 항상 모든 하늘을 위하여 풍류를 짓는다. 그 때에 몸에 이상(異相)이 있으면 곧 날아서 하늘로 올라간다.
법문 가운데 처음은 법음(法音)의 악(樂)으로써 교묘히 중생을 섭수한다. 또 정도(正道)의 법악(法樂)을 보여서 스스로 즐긴다.
둘째 복(福)과 지(智)가 기궤(綺繢)45)함이다. 또 열 가지 장엄을 갖춘 것은 「명법품(明法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
셋째 범부를 기준으로 해서 유(流)46)에 순(順)할 때는 기쁨을 내고 어기거나 잃을 때는 근심을 낸다. 이승(二乘)은 적멸에 대하여 기쁨을 내고 유(流)에 대하여 근심을 낸다. 여기에서는 함께 여의게 함이니 생각하여 준하라.
넷째 매우 깊은 법을 설하여 9결(結)47)과 10사(使)48) 등의 번뇌[垢]를 소멸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이를테면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그를 위하여 정토를 설해서 그 희망을 조절하고 이승(二乘)을 바라는 자에게는 모든 지혜로써 그 희망을 조절한다.
여섯째 부처님을 보아 다함 없는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일체락(一切樂)이라고 말한다. 이 수인(修因)에 의하여 능히 과를 섭수하는 까닭에 장(藏)이라고 이름하고, 과가 인에 칭합하여 일어남을 정주(正住)라고 이름하며, 용(用)은 정(情)에 맞는 까닭에 희광(喜光)이라고 말한다.
일곱째 시방 세계에 널리 청정한 법[淨法]을 뿌리는 것이다.
여덟째 원회(圓廻)의 미묘한 몸이 널리 무진에 응하는 까닭에 이렇게 이름한다. 광지(廣智)라는 것은 횡으로 10제(諦)에 미치고 수(竪)로 5승(乘)을 갖추는 까닭이다.
아홉째 수(樹)라는 것은 보리수이다. 부처님이 방편으로써 중생의 보리심을 증장하는 것을 ‘나무를 장양한다’고 이름하였다. 열매를 얻음을 ‘희(喜)’라고 하고, 승용(勝用)을 ‘광(光)’이라고 이름하였다.
열째 겁해(劫海)를 회동(廻動)한다 함은 곧 부처님의 경계에서 짓는 것이기 때문에 행이라고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서 고통을 쉬고 길이 편안하게 함을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受樂]’고 이름하였다. 또 어떤 본(本)에는 ‘애락(愛樂)’으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이것을 보고 바른 희망을 일으키게 하는 까닭에 그렇게 이름하였다.
송(頌)에 열 개의 게(偈)가 있으니 각각 한 법문씩을 송했다.
첫 번째 가운데 처음 3구는 방편을 송하니, 이를테면 처음 구는 다(多)이고 다음 구는 심(深)이며 뒤의 구는 광(廣)이다. 아래 구는 중생을 섭수하여 즐김을 송하였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불공덕해(佛功德海)의 장엄한 체(體)를 송하고, 다음 구는 덕상(德相)을 밝히고, 뒤의 두 구는 덕용(德用)을 밝혔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구는 중생의 근심과 기쁨을 송하고, 다음 구는 여읨[離]의 글자[字]를 송하고, 아래의 두 구는 여의는 데 말미암을 바를 밝혔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능멸(能滅)의 연을 밝히고, 다음 구는 바르게 번뇌[結使]를 멸하는 것을 송하고, 아래 구는 멸혹(滅惑)의 원인을 밝혔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정토로써 조복(調伏)하고, 나중 반은 종지(種智)로써 조복하였다.
여섯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일체의 즐거움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희광(喜光)의 정주(正住)를 송하였다.
일곱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입혀야 할 근기를 밝히니 곧 보배를 비처럼 내리는 곳으로서 일체의 방(方)을 송하였다. 아래의 반은 보배를 비처럼 내릴 장소를 밝혔다. 당(幢)이라는 것은 곧 천왕(天王)의 이름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묘신(妙身)을 나타내는 것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광지(廣智)를 송하였다.
아홉 번째 가운데 처음 3구는 여러 나무[諸樹]를 자라게 하는 것을 송하고, 아래 구는 희광(喜光)을 송하였다.
열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불경계(佛境界)의 행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함을 송하였다.
열네 번째로 남방의 천왕이니 거느리는 바에 따라서 이름하였다. 나머지는 위에서 밝힌 것과 같다. 열 가지가 있다.
첫째 인지력(忍智力)으로써 교만[慢]을 제거하여 싸움을 없앤다.
둘째 자타의 행해(行海)를 일체행이라고 이름하고, 자문(慈門)이 이것을 일으키는 까닭에 현전(現前)이라고 한다. 또 행이 능히 과를 얻을 때에도 또한 현전이라고 이름한다.
셋째 사집(邪執)의 5취(趣)는 자성 등으로부터 태어난다49)고 하지만 여기에서는 오로지 여러 세계[諸趣]에서는 자기 마음으로부터 변기(變起)하는 것을 밝히는 까닭에 정(正)이라고 말한다. 또 모든 중생을 조복하여 그 의취(意趣)를 바르게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송에서는 이것을 따랐다.
넷째 선악 평등이라고 한 것의 평등은 곧 무기(無記)이다. 이 3성(性)50)은 곧 여(如)인 까닭에 청정이라고 말한다. 또 선(善)은 곧 열반의 청정한 법[淨法]이고 악(惡)은 곧 생사의 더러운 법[染法]이다. 이 둘은 함께 무성(無性)으로서 융섭함이 걸림이 없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평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덕(性德)을 갖춘 까닭에 청정이라고 말한다. 또 선악 두 법은 아울러 법륜을 지을 수 있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평등이라고 말한다. 법륜은 물(物)을 이익되게 하는 까닭에 청정이라고 말한다. 송에서는 이것을 따랐다.
다섯째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바른 것을 봄을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고 이름하고, 영원히 고통을 여의게 하는 것을 안온(安隱)이라고 하며, 부처님의 청정한 지혜[淨智]를 얻는 것을 장엄(莊嚴)이라고 한다.
여섯째 애(愛)가 생사를 윤택하게 하여 깊고 넓기가 바다와 같고 사랑하는 마음이 맹렬히 왕성한 것은 불이 치솟아서 천사(天祠)51) 등을 태우는 것과 같다. 부처님은 신지(身智)로써 비추어 길이 다하게 하는 까닭에 제멸(除滅)이라고 말한다. 사라(娑羅)52)는 곧 열반으로서 애(愛)를 멸하는 곳이다.
일곱째 불신(佛身)이 널리 일체의 여러 세계[諸趣]에 응할 때 몸에 의하여 전광(電光)을 내는 것을 조명(照明)이라고 하고, 소리가 울려 법을 내리는 것을 구름[雲]이라고 한다.
여덟째 보(普)란 것은 빛의 체가 두루 가득한 것을 말하고, 조(照)란 것은 빛의 용이 혹(惑)을 제거함을 말한다.
아홉째 괴로움에서 구해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을 통틀어 대자(大慈)라 이름하고, 어김[違]을 만날지라도 고치지 않는 것을 불퇴전이라고 한다. 자비의 문[慈門]은 덕을 섭수함이 많은 까닭에 장(藏)이라고 하고, 여러 겁 동안 쌓아서 이것을 닦아 나타나게 하는 것을 기(起)라고 이름한다.
열째 몸을 나타내어 시방에 두루한 것을 기(起)라고 하며, 일체취에 있더라도 오고감이 없음을 소작(所作)이라고 한다. 또 저기에 태어나는 것을 섭수함을 또한 소작이라고 한다.
송(頌)에는 열 개의 게(偈)가 있어서 각각 한 법문씩을 송했다.
첫 번째 가운데 처음 3구는 능히 투쟁을 없앰을 송하고, 아래 구는 익상(益相)을 밝혔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일체의 행을 송하며 상구는 자행(自行)이고 하구는 이타(利他)이다. 뒤의 반은 현전(現前)을 송하니, 상구는 자(慈)가 능히 행(行)을 나타내고, 하구는 행이 능히 과(果)를 나타냄이다.
세 번째에서는 그 의취(意趣)를 바르게 하는 까닭에 환희하게 하는 것이다.
네 번째에서 처음 반은 선악의 법을 송하니, 이를테면 부처님의 힘이 악을 나타내는 까닭에 사의(思議)하기 어렵다. 다음 구는 평등을 송하고, 아래 구는 청정을 송했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중생의 두려움 없음을 송하고, 다음 구는 안온을 송하며, 아래 구는 장엄을 송하니, 청정한 지혜[淨智]를 말한 것이다.
여섯 번째에서 처음 구는 사랑의 바다[愛海]를 송하고, 다음 구는 제멸(除滅)을 송하고, 아래 반[下半]은 이익되는 모양을 밝혔다. 보수(寶樹)는 이 하늘의 이름이다.
일곱 번째에서 처음 구는 모든 세계에 응하고, 다음 구는 방편으로 중생[物]을 교화하는 것이니 조명이라고 한다. 다음 구는 구름을 송하고, 아래는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매듭 지었다.
여덟 번째에서 처음 구는 보(普)를 송하고, 다음 구는 조(照)를 송하고, 아래 반은 현현(顯現)하는 것을 송했다.
아홉 번째에서 처음 구는 대자(大慈)를 일으킴을 송했다. 앞의 것은 자(慈)이고 이것은 비(悲)이지만 경문에 서로 꾸밈이 있을 뿐이다. 다음 두 구는 불퇴전을 송했다.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없애는 일은 허황한 것이 아닌 까닭에 불퇴라고 한다. 아래 구는 장(藏)을 송하니, 이를테면 청정한 덕[淨德]을 출생(出生)하는 것은 꽃이 피어남과 같다.
열 번째에서 처음 반은 모든 세계를 일으키는 것을 송했다. 오고감이 없는 것도 또한 짓는 것이다. 다음 구도 또한 짓는 것이다. 아래 구는 곧 매듭 지음이니, 무량문(無量門)이라는 것은 곧 천왕을 말한다. 곧 이 부처님 바다[佛海]에 드는 까닭에 ‘부처님이 능히 본다’고 했다.
열다섯 번째로 서방은 비루파차(毘樓波叉)53)이니, 여기서는 잡어주(雜語主)라고 말한다. 신역에서는 추목(醜目)이라고 하며 2부(部)를 거느린다. 하나는 부다나(富多那)이니 여기 말로는 열병귀(熱病鬼)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일체의 용(龍)이다. 『수미장경(須彌藏經)』에 의하면, 용의 보(報)에 다섯 가지 모양[形]이 있다. 첫째는 선주(善住)용왕이니 모두 코끼리 모양[象形]의 용왕이다. 둘째는 난타(難陀)용왕이니 여기 말로는 환희라고 하고 모두 뱀 모양[蛇形]의 용왕이다. 셋째는 아나파달다(阿那婆達多)용왕이니 여기 말로는 무열뇌(無熱惱)라고 하며 또한 청량(淸涼)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말 모양[馬形]의 용왕이다. 『방불경(謗佛經)』에 의하면, 이 용왕은 모든 용의 세 가지 과환(過患)을 영원히 여의었으니, 첫째는 뜨거운 모래가 그 머리에 떨어지지 않고, 둘째는 뱀의 모습으로 욕구를 행하지 않고, 셋째는 가루라(伽樓羅)의 두려움이 없다. 또 염부제의 용들은 모두 네 가지 괴로움[四苦]이 있음을 든다. 이를테면 세 가지는 위와 같고 또 하나는 바람이 보의(寶衣)를 불어서 몸을 드러나게 하는 고통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오직 이 용왕만이 홀로 이러한 고뇌를 면하는 까닭에 청량이라고 말한다. 『지론(智論)』에 의하면, 이 용왕은 곧 7주(住)의 보살이다. 넷째는 파루나(婆樓那)용왕이니 여기 말로는 물[水]이라고 하며 모든 고기 모습의 용왕이다. 다섯째는 마나소파제(摩那蘇婆帝)용왕이니 또한 마나사(摩那斯)라고 하며 여기 말로는 자심(慈心)이라고도 하고 또한 고의(高意)라고도 이름한다. 올바로 말하면 마나(摩那)는 뜻[意]을 말한 것이고, 사(斯)는 높다[高]라는 의미이다. 이를테면 위덕이 있어 뜻이 나머지 용(龍)보다 높으니 일체 두꺼비 형상의 용왕이다”라고 했다. 또 율(律) 가운데에서 설한 것과 같다. 모든 용은 처음 태어날 때와 죽을 때와 잠잘 때와 욕구를 행할 때, 이 네 때[四時]에는 형상을 변할 수가 없지만 나머지 때에는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열 가지 가운데 첫째 안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모양[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치연(熾然)함을 멸한다’고 한 것은 용이 열사(熱沙)에서 고통받는 것을 구함이다. ‘공포를 구제한다’라고 한 것은 금시조의 고통을 구함이다.
다른 하나는 실(實)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악의 치연함을 멸한다는 것은 악취(惡趣)의 인을 구함이다. 아래 구는 악취의 과를 구제함이다.
둘째는 네 가지 해석이 있으니, 첫째 능히 용의 몸을 굴려서 기(機)에 응하는 색을 나타내는 것과 부처님의 청정한 덕[淨德]을 ‘부사의’라고 한다. 둘째는 능히 한 생각에 위의 일을 이루기 때문에 또한 불사(不思)라고 한다.
셋째는 한 털구멍[毛孔]에 나타나는 것이니 또한 불사라고 한다.
넷째는 용의 몸은 곧 부처님의 몸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의 털구멍에 나타남을 곧 용의 몸을 굴린다고 한다. 또한 이는 불사이다.
셋째는 소리가 깊은 법을 연설할 때 여러 세계[諸趣]가 똑같이 듣는다.
넷째 가운데 하나는 중생의 덕해(德海)를 부처님의 털구멍에서 보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중생을 섭수하여 큰 공덕해에 들게 함이다.
다섯째는 덕차가(德叉伽)이니 여기에서는 다설(多舌)이라고 한다. 혀를 많이 소유한 까닭이다. 혹은 말을 좋아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다설이라고 한다. 또 이르되 “능손해자(能損害者)”라고 한다. 이를테면 이 용왕이 만약 성냄을 일으킬 때에 세상 사람이 눈으로 본다면 기절하여 모두 목숨을 버리게 되는 까닭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부처님 지혜의 청정한 빛은 공포의 고통을 구한다.
여섯째는 부처님 몸에 시방의 불상을 나타내어 비를 머금어 모든 중생을 윤택하게 함은 무량운(無量雲)이라고 하고, 여러 겁에 국토[土]를 장엄하게 함을 초도(超度)라고 한다.
일곱째는 털구멍에 국토를 나타내는 것을 안립(安立)이라고 하고, 그 가운데 설법함을 분별이라고 한다.
여덟째는 법이 중생의 근기[物機]에 알맞기 때문에 환희하게 한다. 더러움을 여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족한 줄 아는 까닭이며 교묘히 증득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가운데 하나는 성품을 기준으로 하여 만(滿)에 등관(等觀)함이고, 다른 하나는 기틀을 위함을 기준으로 해서 제등(齊等)이라고 한다.
열째는 중생이 성냄에 덮이고 어리석음에 덮인 것을 비(悲)로써 도탈함을 고통을 여읜다고 한다. 또 이 용왕은 비늘 안에 모든 물을 유출하여 밤낮으로 다함이 없이 염부제의 중생을 구제하여 윤택하게 하는 까닭에 비(悲)라고 이름한다.
송의 차례가 맞지 않다.
처음 두 게는 앞의 처음 두 법문을 송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청정한 법륜을 송하고 뒤에는 소리를 들음을 송했다.
네 번째에서는 차례를 뛰어넘어 제10의 법을 송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에서는 두 법을 송했음을 알 수 있다.
일곱째 가운데 처음 반은 구름을 나타냄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수(壽)에 머무는 등을 송했다.
여덟째 가운데 처음 반은 계(界)를 안립하는 것을 송하고 아래의 반은 분별 등을 송하였다.
아홉째 가운데 처음 반은 왕인(往因)을 들고, 아래의 반은 선악의 음성을 송했다. 모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므로 평등이라고 한다.
열째에서는 앞의 제8의 법문을 송한 것을 알 수 있다.
열여섯 번째로 북방에 다문주(多聞主)가 2부(部)를 거느린다. 하나는 야차이니 여기서는 경첩귀(輕捷鬼)라고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나찰이니 여기서는 가외귀(可畏鬼)라고 이름한다. 나찰녀(羅刹女)가 사람의 정기를 빼앗을 때는 중생의 심공(心孔) 가운데 일곱 방울의 감로수[甘水]가 있다. 한 방울을 취할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아프게 하고 두 방울을 취할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절하게 하고 세 방울일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병들게 하고 네 방울 이상일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게 한다.
이 팔부 가운데 오직 긴나라와 용과 비사사만은 축생이고, 나머지 다섯은 모두 귀신이다. 야차와 나찰의 힘은 큰 까닭에 홀로 귀신의 이름을 주었다. 이런 까닭에 위의 글에 이것을 일러 귀왕(鬼王)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8왕(王)이 있다.
첫째 평등하게 본다는 것은 이지(理智)요, 방편이라는 것은 양지(量智)이다. 이것은 곧 능구(能救)이고 아래는 구(救)의 사(事)를 이룸이다. 처음은 악을 여의고 다음은 선을 보탬이다.
둘째 가운데 하나는 널리 기에 응하여 뛰어난 몸을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널리 중생을 구제하여 뛰어난 이익을 이룸이다.
셋째는 정기(精氣)에 둘이 있는데, 하나는 악기(惡氣)이니 이른바 번뇌와 업과 고(苦)이다. 이 가운데 이 법문의 야차인 까닭에 능히 저를 제거함이다. 다른 하나는 선기(善氣)이니, 『대집경』의 설에 의하면 “국내의 제왕이 3보를 공경히 받들 때는 이 나라로 하여금 세 가지의 정기를 더하게 한다. 첫째 지기(地氣)이니 이를테면 오곡이 숙성하는 것이요, 둘째 인기(人氣)이니 이를테면 번뇌는 가벼워지고 얼굴은 윤택해지는 것이다. 셋째 선근기(善根氣)이니 이를테면 항상 법륜을 굴려 3보가 치성한 것이다. 이 경문에 보리분(菩提分)의 선근을 생기게 함에 의거하여 생기(生氣)라고 한다.
넷째는 지(智)이니 부처님의 덕을 관하여 말로써 찬탄하여 법을 나타냄이다.
다섯째는 이지(理智)로써 중생을 관할 때는 곧 불법신(佛法身)이고 양지(量智)로써 시방 중생의 업과를 비추는 까닭에 이렇게 이름한다.
여섯째는 즐거움을 줌에 둘이 있으니, 처음은 곧 사(邪)를 배척하고 정(正)을 보이는 즐거움이고 마지막은 곧 교화를 받아 조복되는 즐거움이다.
일곱째 가운데 첫째 자체(自體)를 임지(任持)하는 역용(力用)이 중생을 구하고, 둘째 용(用)을 가지는 지혜의 힘이 중생을 구함이요, 셋째 부처님의 복지(福智)이다. 이것은 『지지론(地持論)』의 3지(持) 가운데 필경지(畢竟持)이다. 그러나 이 복지는 중생을 초과함이니, 이런 까닭에 유력(有力)하여 능히 저들을 구제한다. 송에서는 이것을 따랐다.
여덟째는 다겁에 인(因)을 닦음이다. 인이 능히 과에 순하는 까닭에 부처님은 10력(力)을 갖춘다고 말한다.
송에서는 차례로 각각 한 법씩을 송한다.
처음의 둘은 가히 알 수 있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정기를 뺏는 것을 송하고, 뒤의 반은 정기를 내는 것을 송했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옛적 여러 성인[諸聖]의 덕을 보고 찬탄하는 것을 밝히고, 뒤의 반은 지금 내가 덕을 이루어 다른 이로 하여금 보고 찬탄하게 함을 밝혔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은 이지(理智)이고 뒤는 양지(量智)이다.
여섯 번째 가운데 두 가지 즐거움[二樂]은 가히 알 수 있다.
일곱 번째 가운데 처음은 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제하는 까닭에 복을 뛰어나게 하고, 뒤는 지혜가 깊은 것이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반은 수순하여 일어남을 밝히고, 뒤의 반은 부처님의 힘을 밝혔다.
열일곱 번째로 역사중(力士衆)에 열 가지가 있다.
첫째 부처님의 색신이 세상에 나옴을 보인 것이다.
둘째 하나하나의 털구멍마다 거듭하여 광색(光色)을 나타냄이다.
셋째 법신(法身)의 무애(無涯)함을 이구(離垢)라고 이름하고, 용(用)을 일으켜 널리 응함을 자재라고 이름한다.
넷째 청정한 음성[淨音]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이른바 깊은 까닭이며, 넓은 까닭이며, 묘한 까닭이며, 더하는 까닭에 모두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아래 송 가운데 네 구는 차례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처(處)의 가운데 몸을 나타내고 뒤에서는 대중 가운데 설법함이다. 모두 많은 문이 있기 때문에 종종(種種)이라고 말한다. 아래 송 가운데 각각 두 구로써 차례와 같음을 마땅히 알 수 있다.
여섯째 중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모양[相]을 섭수하여 진(眞)에 돌아가는 까닭에 진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머지 모양이 없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진을 좇아서 용(用)을 일으키는 까닭에 진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머지 용(用)이 없다. 그러므로 그렇게 이름했다. 송 가운데 차례와 같이 각각 두 구가 있어서 나타냄을 가히 알 것이다.
일곱째 정(情)을 옮겨 법에 머물게 함을 거(擧)라고 이름한다. 사실은 일체에 통하지만 정(淨)에 나아가므로 하늘이라고 이름한다.
여덟째 가운데 처음은 공덕의 체로써 여기에 인과를 갖추었다. 송 가운데 처음 두 구는 인이고, 다음 한 구는 과이다. 널리 비춘다는 것은 곧 용이다. 송 가운데 뒤의 한 구가 나타내었다.
아홉째 부처님의 몸[身]과 국토를 나타내어 기(機)로 하여금 악을 멸하고 선에 머물게 함이다. 송 가운데 처음은 국토를 나타내고 뒤에는 몸을 나타내었다.
열째 광명의 구름이 세상에 두루하여 법보의 비를 뿌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하였다.
송 가운데 열 개의 게(偈)가 있어서 각각 한 법씩을 송함은 앞과 같음을 마땅히 알 수 있다.
열여덟 번째로 보현중(普賢衆) 가운데 무슨 까닭에 앞에서는 사람마다 각각 한 법을 얻고 여기에서는 한 사람이 다법(多法)을 갖추는가. 앞은 곧 총(總) 가운데 별(別)이기 때문이며 이생(異生)인 까닭이다. 여기서는 별(別) 가운데 총(總)이기 때문이며 동생(同生)인 까닭이다. 또 무슨 까닭에 앞에서는 많은 사람을 열거하였고 여기에서는 오직 한 사람 뿐인가. 이 사람은 형상은 도위(道位)에 거(居)하지만 덕은 보문(普門)을 표함으로써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을 밝힌 것이다. 보(普)로써 별(別)을 거두기 때문이다.
경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직설(直說)과 중송(重頌)이다.
앞의 것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총이고 뒤는 별이다. 총 가운데 처음은 자분(自分)이고, 뒤는 승진(勝進)이다. 별 가운데 10개의 문이 있다.
첫째는 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조복함이다. 이 둘은 서로 융합하여 네 구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부처님에 칭합하여 진사(塵沙)에 두루 가득하고 불덕(佛德)을 일으킴이다.
셋째는 5위(位)54)와 10원(願)55)의 두 가지 행을 알 수 있다.
넷째는 한 문(門)에 일체 문이 있음을 보문(普門)이라고 하고, 그 가운데 한 몸이 곧 일체 몸임을 나타내는 것을 법계신(法界身)이라고 하며, 몸이 모두 법우(法雨)를 뿌리는 까닭에 구름이라고 이름한다.
다섯째는 몸이 모든 세계를 만드는 것을 국토를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다시 3륜으로써 조화(調化)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였다.
여섯째는 모든 불국의 큰 모임에 두루하여 몸을 나타내는 것을 중중(衆中)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고, 이 일승(一乘) 보살의 본행을 설하는 것을 보살의 경계라고 한다.
일곱째 생멸이라는 것은 이 극촉(極促)이요, 삼세의 겁이라는 것은 곧 극장(極長)이다. 일념에 이와 같이 안다는 것은 지극히 빠른 것이다. 이 가운데 지(知)에 대하여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저[彼]의 장단의 끝을 다하는 것이요, 둘째는 저의 상즉상입[相卽入]함을 알고, 셋째는 저 평등성에 도달함이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없기 때문이다.
여덟째 보살의 근욕(根欲)이란 곧 능관(能觀)이요, 경계해(境界海)란 소관(所觀)이다. 이 둘의 다른 점[別]을 가리는 것을 ‘분별하여 나타낸다’고 한다. 이 가운데 혹은 경계를 들어서 근(根)을 밝히고, 혹은 근을 들어서 경계를 취하며, 혹은 함께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홉째는 몸[身]에 둘이 있다. 하나는 성(性)이고 다른 하나는 용(用)이다. 법계에도 또한 둘이니 하나는 이(理)이고 다른 하나는 사(事)이다. 다음과 같이 두 몸[二身]은 두 법계에 두루 가득하다. 두 세계와 두 몸[兩身]과는 스스로 서로 상즉하여 네 구가 모두 걸림이 없다. 이것을 생각하라.
열째 가운데 처음은 널리 인법(因法)을 밝히고, 뒤의 ‘입일체(入一切)’ 이하는 그 과에 계합하는 것을 밝혔다. 또 처음은 일언(一言)으로써 일체문(一切門)을 설함으로써 광(廣)이라고 했다. 뒤는 하나하나의 문마다 다시 일체의 법을 나타냄으로써 입(入)이라고 했다. 송에서는 뒤의 해석[後釋]을 따랐다.
송(頌) 가운데 20게(偈)가 있다. 두 게[兩偈]는 차례로 한 법문씩을 송했다. 인(因)과 과(果)는 둘이 없고 법체는 온전히 거두는 까닭에 직설(直說)은 인(因)을 나타내고 중송(重頌)은 과(果)를 밝혀 경문을 서로 꾸몄다.
처음 두 개의 게송 가운데 처음 하나는 국토를 장엄했고 뒤의 하나는 중생을 조복한 것이다.
두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모든 부처님께 참예(參詣)함이니, 이를테면 견(見)은 참예[詣]와 같다. 뒤의 하나는 공덕을 일으킴이다.
세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위(位)에 의하여 행(行)을 일으키고, 뒤의 하나는 행(行)에 의하여 증(證)에 들어감이다.
네 번째 가운데 처음 두 구는 보문(普門)을 송하고, 다음 네 구는 법계신을 송하고, 아래 두 구는 구름을 송하니, 법우(法雨)를 내리는 까닭에 교도(敎導)라고 이름한다.
다섯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불토를 가짐을 송하고, 뒤의 하나는 방편의 바퀴[輪]이다.
여섯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대중 가운데 현현(顯現)하는 것을 송하고, 뒤의 하나는 보살의 경계이다.
일곱 번째 가운데 두 개의 게송 안에 각각 상반(上半)은 소지(所知)이니 장단(長短)을 말하고, 각각 하반(下半)은 능지(能知)이니 진(眞)에 통달함을 말한다.
여덟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보살의 근욕(根欲)을 송하니, 이것과 장행(長行)은 경문에서 서로 꾸밈이 있다. 뒤는 경계해(境界海)를 밝힌 것이다.
아홉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체가 두루함이요, 뒤의 하나는 용이 충만함이다.
열 번째 가운데 처음 하나는 널리 보살의 법을 밝히고, 뒤의 하나는 모든 지혜에 들어가는 것을 밝혔다. 또한 통송(通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가운데 보현의 분제(分齊)를 해석한 것이 8문(門)으로써 인다라망을 밝혔으니 알 수 있다.
첫째는 이(理)요, 둘째는 토(土)요, 셋째는 신(身)이요, 넷째는 교(敎)요, 다섯째는 법(法)이요, 여섯째는 행(行)이요, 일곱째는 시(時)요, 여덟째는 사(事)이니, 사는 곧 티끌[塵]이다. 무릇 큰 뜻을 논한다면 경문을 기준으로 하여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만 사(使)ㆍ습(習)의 번뇌와 염업(染業)과 보(報) 등이 있으니, 모두 범경(凡境)에 들어가고 그 밖은 성경(聖境)에 들어간다. 성(聖)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이(理)와 양(量)이다. 이 둘에 각각 두 법씩 있으니, 인다라망의 경계는 곧 이(理) 중의 양(量)과 양 중의 일분(一分)이다. 가히 생각하여 준거하라.
제2 해혜(海慧) 등의 내중(內衆)을 밝힌다는 것은 인(因)과 과(果)가 동체(同體)임을 밝힌 까닭이며 의(依)와 정(正)이 걸림이 없음을 나타낸 까닭이며 경(境)과 지(智)가 둘이 없음을 나타낸 까닭이니, 연기의 누관(樓觀) 안은 인(因)이고 밖은 과(果)이니, 안이 곧 밖인 것을 나타낸 까닭에 보살을 내었다.
경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출처(出處)를 밝히고, 두 번째는 나온 사람[所出人]이며, 세 번째는 공양을 일으킨 것이다.
처음 가운데 첫째는 자리가 누관의 안에 있음이니, 이것은 이 여래의 별주처(別住處)인 까닭이며, 둘째는 누관이 곧 자리이니 위에서 보대(寶臺)라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두 번째 소출(所出)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수(數)를 표함과 이름을 열거함과 수를 매듭 지음이다.
세 번째 공양 가운데 셋이 있으니, 이른바 몸과 뜻과 입이다. 처음 하나는 재(財)이고, 뒤의 둘은 법(法)이다.
앞의 것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정공(正供)이요, 두 번째 ‘수소(隨所)’ 이하는 정(靜)에 돌아감이다. 처음 것 가운데 3대(大)가 있으니, 첫째는 공대(供大)요, 둘째는 심대(心大)이며, 셋째는 전대(田大)이다. 앞의 공대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에는 5사(事)가 있는데 꽃을 뿌림과 향을 태움과 빛을 놓음과 풍류를 지음과 보배를 비처럼 내림이니, 경문에서와 같다. 이것 등은 모두 이 연기 법문의 모습이다. 이른바 행(行)의 꽃과 계(戒)의 향과 지혜의 광명과 말의 소리와 설한 바 법보이다. 그러나 또한 꽃 등의 사상(事相)을 무너뜨리지 않음이다. 아래는 공양의 분량(分量)을 밝힌 것이다. 분량 가운데 처음은 공양의 많음을 밝히고, 뒤는 공양의 넓음을 밝혔다. 아래의 ‘다 크게 기뻐했다[皆大喜]’ 이하는 심(心)과 전(田)의 2대(大)를 밝힌 것이다. 전(田) 가운데 먼저는 부처이고, 나중은 대중임을 아울러 알 것이다.
【문】 무슨 까닭에 외중(外衆)에는 재공(財供)을 가리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설했는가?
【답】 외중의 재공은 승(勝)을 나타냄이 아닌 까닭이며, 내중(內衆)의 재공은 기특함을 나타낸 까닭에 여기에서는 별도로 나타내었다. 아래 경문에 공양구[供具]를 비처럼 내린 것 등은 곧 통론(通論)인 까닭이다.
둘째 의업(意業)의 법공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법이고 나중 것은 공양이다. 법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소득(所得)을 밝히고 뒤에 ‘구족(具足)’ 이하는 성만(成滿)을 매듭 지었다. 앞의 것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 구는 경계[境]를 기준으로 해서 문을 표하고, 아래 두 구는 두 가지 이익[二利]을 해석하여 나타낸 것이다. 둘째는 지혜[智]를 기준으로 해서 문을 표하니, 아래 두 구는 인과를 해석해 나타내었다. 뒤에는 성만(成滿)을 매듭지었다. 그 가운데 먼저는 인(因)의 원만함을 매듭 지었다. 경56)에 이르되 “사랑[愛]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아귀애(餓鬼愛)이고 다른 하나는 법애(法愛)이다. 여래께서는 아귀애는 없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법애가 있다”고 하니, 이 가운데 오묘한 지혜[妙智]가 교묘히 진리를 취한 까닭에 법애라고 한다. 애는 곧 모양이 없으되 그 이름은 대력(大力)이라고 한다. 뒤는 과(果)의 충만함을 매듭 지었다. 그 가운데 처음 구는 지덕(智德)이고, 뒤의 구는 단덕(斷德)이다. 또 처음 구는 수성(修成)이고, 뒤의 구는 입리(入理)이다. 또 처음은 무상(無常)의 덕이고, 나중 것은 상(常)의 덕이다. 또 처음은 유위(有爲)이고, 뒤는 무위(無爲)이다. 아래는 바르게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다.
【문】 무슨 까닭에 재공에서는 부처와 중생을 통틀어 공양하고 여기에서는 오직 부처만을 공양하는가?
【답】 법공은 깊고 세밀하여 오직 부처님만이 다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어업(語業)의 공양 가운데 먼저는 사람을 표하고, 나중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낱낱의 엄구(嚴具) 가운데 각각 ‘해혜(海慧)’ 등의 대중을 냄으로써 이제 모든 대중 가운데 각각 하나의 상수(上首)를 함께 해혜라고 이름함을 표하고 한 가지로 이 게(偈)를 설한 까닭에 일체 해혜라고 말한다.
송(頌) 가운데 열아홉 개의 게(偈)가 있다. 뜻으로써 나누면 아홉이 된다. 첫 번째 처음 하나는 체(體)의 깨끗함을 밝힘이니 경계와 지혜가 걸림이 없음을 말한다. 둘째 세 개의 게송은 모양[相]의 충만함을 밝힌 것이니, 3세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두 게송은 용(用)의 뛰어남을 밝힌 것이니, 처음은 신속함이요, 나중은 유익함이다. 네 번째 두 게송은 왕인(往因)의 심인(深因)임을 밝히고, 다섯 번째 한 게송은 대중이 보고 싫어함이 없음을 찬탄했다. 여섯 번째 네 게송은 엄숙한 자리를 찬탄한 것이다. 첫째는 주(主)이고, 둘째는 향(香)이며, 셋째는 만(鬘)이며, 넷째는 광(光)이다. 일곱 번째 두 게송은 설법을 찬탄한 것이고, 여덟 번째 두 게송은 처소[處]의 원만함을 찬탄한 것이다. 아홉 번째 두 게송은 부처님의 보변(普遍)함을 찬탄한 것이니, 통틀어 매듭 지음과 같다.
제2의 대단(大段)은 발기서이다. 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땅을 움직이고 둘째는 공양을 일으킴이다.
처음 가운데 셋이 있으니, 먼저 불신력(佛神力)이라는 것은 움직임의 인이요, 화장(花藏)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곳이요, 6종(種)이라는 것은 움직임의 모양이다. 이것을 네 구로써 분별한다. 처음은 움직이는 곳이고, 둘째는 움직이는 모양이며, 셋째는 하는 바[所爲]이고, 넷째는 무릇 움직이는 때[時]를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것에 대하여 말한다.
【문】 무슨 까닭에 이 마갈타국을 곧 화장세계라고 말하는가?
【답】 아래 경문에 준거해 보면 모두 네 구가 있다. 처음은 혹은 ‘이 세계는 오직 사바’라고 말하니, 이것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말한 것이다. 혹은 ‘곧 화장이다’라고 말하니, 별교일승을 기준으로 해서 밝힌 것이다. 혹은 ‘화장 가운데 사바 세계’라고 말하니, 이것은 돈교일승을 기준으로 해서 말한 것이다. 혹은 ‘화장도 아니고 사바도 아니다’라고 하니, 이는 국토해의 평등성을 기준으로 해서 말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설한 바 법을 따라서 처소를 차별되게 한 것이다.
이제 이 경문은 별교를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다.
둘째 움직이는 모양을 밝힌 것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6상(相)이니, 중용 변몰(中踊邊沒)이다. 중과 변과 사방을 여섯이라고 한다. 이것은 삼승과 돈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열여덟 가지 모양이니, 별교와 돈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동(動)이라는 것은 흔들려서 편안치 않은 것이니, 바람이 나무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열반경』에 의하면 “조금 움직이는 것을 지동(地動)이라고 하고 크게 움직이는 것을 대지동(大地動)이라고 하며, 조그만 소리가 있는 것을 지동이라고 하고 큰 소리가 있는 것을 대지동이라고 하며 홀로 땅만 움직이는 것을 지동이라고 하고, 산하 수목과 큰 바다 일체가 움직이는 것을 대지동이라고 한다. 또 동(動)을 지동(地動)이라고 이름하고, 또 움직일 때 능히 중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대지동이라고 한다”고 하니, 이것 등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다.
지금 이 동(同)에는 3품(品)이 있다. 첫째는 동이니 이를테면 한 방향[一方]이요, 둘째는 변동(遍動)이니 사방이며, 셋째는 등변동(等遍動)이니 이를테면 팔방마다 또 사방과 팔방과 시방이다. 또 처음은 홀로 한 방향만을 움직이고, 둘째는 시방을 차례로 움직이고, 셋째는 시방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또 『대반야(大般若)』에서는 “동(動)ㆍ등동(等動)ㆍ등극동(等極動)이다”라고 한다. 아래의 5상(相)은 모두 여기에 준하라. 각각 하ㆍ중ㆍ상이 있으며, 소ㆍ중ㆍ대라고도 이름한다. 그러므로 열여덟 가지가 있다. ‘기(起)’란 곧 흔들어 일어나는 것으로서 국수가 부풀어 일어나는 것[麵起]과 같다. 『동성경(同性經)』에서는 이름을 요(搖)라고 지었고, 『대반야』에서는 격(擊)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타(打)를 보탠 것이다. 각(覺)이라는 것은 곧 큰 소리로써 놀라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동성경』에서는 성(聲)이라고 하고, 『대반야』에서는 폭(爆)이라고 하며, 『지론(地論)』에서는 해석하여 상거(上去)라고 이름하였다. 진(振)이라는 것은 하성(下聲)으로서 은은함이다. 『지론』에서는 하거(下去)라고 이름하였다. 후(吼)라는 것은 곧 평성(平聲)으로서 효후(哮吼)함이다. 용(涌)은 곧 용출로서 봉우리가 솟아나고 샘이 솟아나는 것과 같다. 또 6방(方)에 솟아나고 몰(沒)함이니 동용 서몰(東涌西沒)을 말한다. 또 동(動)과 기(起)와 용(涌)의 셋은 곧 색(色)이고, 나머지 셋은 곧 성(聲)이다. 이 여섯을 모두 동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하나는 뛰어남에 나아가서 통명(通名)했고, 나머지 다섯은 별(別)을 따라서 제목을 붙인 것이다. 10색처(色處)를 한가지로 색처라고 이름하고, 처음 색처도 또한 색처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 동(動)이 하는 바를 밝힌다는 것은 『승사유범천경론(勝思惟梵天經論)』의 설에 의하면 “첫째 모든 마군에게 경포(驚怖)를 생하게 하는 까닭이며, 둘째 설법시에 대중에게 산란심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까닭이며, 셋째 방일한 자에게 각지(覺知)를 생하게 하는 까닭이며, 넷째 중생에게 법상(法相)을 염(念)하게 하는 까닭이며, 다섯째 중생에게 설법처(說法處)를 관하게 하는 까닭이며, 여섯째 성취하는 자에게 해탈을 얻게 하는 까닭이며, 일곱째 수순하여 정의(正義)를 묻게 하는 까닭이며, 여덟째 『지론(智論)』에 이르되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 법이 공하고 무상함을 알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라고 하며, 아홉째 고덕(古德)이 이르되 ‘집착하는 바를 움직이는 까닭이다’라고 하며, 열째 큰 법[大法]을 설하는 것을 표하려 하여 상서로운 일을 나타내는 까닭이다. 또 『지론(地論)』에 의하면 ‘네 가지 중생에 의하나니 첫째 착하지 못한 중생에 의하고, 둘째 갖가지 하늘을 믿는 중생에 의하며, 셋째 아만의 중생에 의하고, 넷째 주술의 중생에 의한다’는 등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네 번째 무릇 움직이는 때를 밝힌 것이다. 『지론(智論)』에서 설한 것과 같이 8시(時)가 있다. 『장아함』의 설과 같이 첫째는 큰 물[大水]이 움직일 때요, 둘째는 존신(尊神)이 신력(神力)을 시험할 때요, 셋째는 여래가 태(胎)에 들어갈 때요, 넷째는 출태(出胎)할 때요, 다섯째는 성도할 때요, 여섯째는 법륜을 굴릴 때요, 일곱째는 가르침을 쉴 때요, 여덟째는 열반에 들 때이다. 아홉째는 『증일경』 제28에 의할 것 같으면 또 대신족(大神足)을 더한다. 비구가 마음에 자재를 얻거나 나아가 땅의 무상(無相)을 관하는 까닭에 움직인다. 열째는 『지론(智論)』 제10에 의할 것 같으면, 모든 보살에게 수기를 주어 마땅히 부처님을 지음[作佛]을 얻어서 천지의 대주(大主)가 될 것이라고 말할 때 지신(地神)은 크게 기뻐하면서 ‘나는 지금부터 주(主)를 얻었다’고 생각하였으니, 이런 까닭에 땅을 움직임이 마치 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를 때 신민(臣民)이 경축하고 기뻐하여 만세를 부르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 등과 같다.
또 『열반경』에 의하면 “보살이 염부제에 화생할 때는 대지동이라고 이름하고, 보살이 출가하여 성도하고 법륜을 굴리며 반열반할 때는 대지가 6종(種)으로 진동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화생할 때는 욕색(欲色)의 모든 하늘과 모든 보살 등은 다 와서 전송(傳送)하고 큰 음성을 발하여 보살을 찬탄함에 입에서 바람이 부는 까닭에 대지로 하여금 진동하게 한다. 또 보살은 사람 가운데 상왕(象王)ㆍ용왕(龍王)이다. 용왕이 처음 입태(入胎)할 때 모든 용왕이 지하에서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겁을 낸다. 이런 까닭에 대지는 6종으로 진동한다.
두 번째 흥공(興供)의 경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차토(此土)이고 나중은 통틀어 매듭 지음이다. 앞의 것 가운데 세계의 모든 왕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앞에 열거한 왕중(王衆)이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시방 세계의 왕이니 이 둘을 통틀은 것이다. 그 가운데에 처음은 총이고, 다음은 별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임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는 오직 한 세계만이 3세간에 자재하는 모습을 밝혀 마쳤다.
제2 대단(大段)에 시방을 통틀어 매듭 지음을 밝혔다. 일회(一會)는 곧 일체회로서 교리가 원만하여 주반을 섭수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까닭이다. 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차토(此土) 3세간의 모습을 거듭 들었고[牒] 뒤는 올바로 통틀어 매듭 지었다.
앞의 것 가운데 ‘부처님이 도량에 앉았다’는 것은 지정각(智正覺)과 기(器)를 거듭 든 것이요, 두 번째는 과덕(果德)이 시방에 융변(融遍)해서 의상(義相)이 나타나는 까닭에 따로 해석하지 않는다. 중생 세간은 과(果)와 같이 보변(普遍)하여 의상(義相)이 숨는 까닭에 따로 해석했다.
무슨 까닭에 이 대중은 능히 불과(佛果)와 같아서 널리 두루한가. 해석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그 소인(所因)을 밝히고 뒤에는 올바로 과와 한가지로 두루함이다. 앞에 것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처음은 정혜력(定慧力)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법문력(法門力)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여래력(如來力)이기 때문이다. 처음 가운데 각각 이미 얻은 법문의 분제를 따르기 때문에 경계라고 이름하며, 삼매문(三昧門)에 의지하나 선정[定]에 맛들지 않은 때문이며, 용(用)을 폐하지 않은 까닭에 교묘히 법문을 섭수하여 보변(普遍)하게 하는 까닭에 ‘방편’이라고 이름한다. ‘기뻐하고 싫어함[欣厭]’이라는 것은 곧 혜(慧)이다. 두 번째 법력 가운데 원만한 법은 법대로 빨리 여러 방향에 두루하여 속히 과(果)에 이르게 함으로써 ‘용맹법’이라 이름하고, 보살은 이것을 증득하여 법에 따라서 널리 두루한[普周] 까닭에 통달이라고 한다. 이것은 위의 경문에서 ‘해탈력을 타서 여래해에 든다’고 한 것과 같다. 세 번째 불력(佛力) 가운데 불력으로써 부처님의 경계에 들게 하는 까닭에 능히 두루하다. 아래 구는 과해(果海)와 같음을 매듭 지었다. 도(度)는 곧 도(到)이며 철(徹)이다. 이것 등은 아울러 위의 경문에서 하나하나마다 얻은 한 법문이다. 다만 앞은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별(別)에 의거해서 널리 진술했지만 여기서는 위의 것을 거듭 들어 매듭 지워서 통(通)에 나아감을 간략하게 들었다.
아래는 유통(類通)이니 가히 알 것이다.
047_0475_a_02L花嚴經探玄記卷第二 盡世間淨眼品 魏國西寺沙門 法藏 述第十隨文解釋者 今此三萬六千偈經有七處八會謂人中三處天上四處爲七重會普光爲八會於中有三十四品初一品是序分盧舍那品下明正宗流通有無以四義釋一以衆生心微塵下二頌爲流通以結歎勸信故二爲經來不盡闕無流通三爲此經是稱法界法門說摠無流通若爾何得便有序分以有見聞通趣入故有始爲序以所入無極故無終流如修生佛果有始無終若不爾者何故八會一一會末皆無流通大般若經十六會中彼會會後皆別有流通大集經中諸會末皆亦有之此經不爾故知別意有所表也四以餘三乘法等逐機差別利益衆生爲流通相又大遠法師分此經爲四分初品名緣起淨機分二舍那品名標宗策志分三名號品下至第八會來名顯道策修分四末後普賢所說偈名囑累流通分今更尋下文摠長分爲五初品是教起因緣分二舍那品中一周問答名擧果勸樂生信分從第二會至第六會來一周問答名修因契果生解分四第七會中一周問答名託法進修成行分五第八會中一周問答名依人入證成德流通有無已如上辨此五分皆依前起後文次相生義理周足是故不增減也 就初序分之中分爲二初明此土中序分二明十方無盡世界中序分初中有三初有四字唯是證信二一時下通二序三動地下唯是發起若通後說有四句或唯證信是初或唯發起是後或俱是中閒或俱非是下正宗又初四字義通而文局以文在初首義通八會故一時下文通而義局以下諸會皆有爾時等故文通也今此局初故義局也又依佛地論分爲五一摠顯已聞二教起時三顯教主四教起處五教所被機依法華論等有六成就一信二聞三時四主五處六衆今釋此義略作四門一明此六義安立所由辨聞之親傳三定傳法之人四釋文 初中立此六句所由有六一佛教安立依智論佛臨涅告阿難十二部經汝當流通復告優婆離切戒律汝當受持告阿那律汝得天眼常守護舍利勸人供養告大衆我若住一劫若減一劫會亦當滅語已雙林北首而臥欲入涅槃阿難親屬之愛未除心沒憂海阿泥盧豆語阿難尊今日雖在明日卽無汝宜問彼未來要事因同彼愚人如是悶絕阿難卽起問言我今不知請問何事盧豆教云要事有四一問如來在世親自說法人皆信受如來滅後一切經首當置何言二問如來在世諸比丘等以佛爲師來滅後以何爲師三問佛在世時諸比丘依佛而住如來滅後依誰而住四問如來在世惡性車匿佛自治之佛滅度後云何共住阿難如教請問世尊荅云經首當置如是等六句二云比丘皆以波羅提木叉爲師三云皆依四念處住四惡性比丘以梵檀治之此云哩擯若心耎伏爲說迦旃延經此云離有無經破我慢心也如大悲經中阿難請佛云何結集法眼佛告阿我滅度後大德比丘應如是問世尊何處說大阿波陁那等經汝應如是荅如是我聞一時佛在摩伽陁國菩提樹下初成正覺說法乃至云娑羅雙樹閒說法如是等二十餘處所說之佛自重教阿難結集是故此六句佛教立也二爲斷疑故安此六句如眞諦三藏云依微細律阿難當昇高座結集法藏之時其身如佛具諸相好若下座時還復本形衆見此瑞遂生三一疑佛大師慈悲從涅槃起更爲衆生說法二疑佛從他方來三疑阿難轉身成佛今爲除此三疑故安六句是故阿難自稱如是之法我從佛聞明知非是佛重起說亦非他方佛來非阿難自身成佛但以法力令我似佛故也爲未來生信故智論云一切經初置時方人等欲令生信心故四離增減過故佛地論云知說此如是我聞意避增減異分過失謂如是法我從佛聞非他展轉顯示聞者有所堪能諸有所聞皆離增減異分過失非如愚夫無所堪能諸有所聞或不能離增減異分結集法時傳佛教者依如來教初說此言爲令衆生恭敬信言如是法我從佛聞文義決定無所增減故聞者應正聞已如理思惟當懃脩學五爲息諸諍論故若自制作則諍論斯起故不然也依智論辨六異外道故彼外道經論或云石崖崩得或云靑雀銜來故不可信也是故今具顯委曲明法非謬令人信受 第二明阿難等親聞傳聞不同者若依小乘有二說一云阿難旣是佛得道夜生年二十方爲佛弟子其二十年已後經是親聞已前是傳聞故轉法輪經云難結集時自說偈云佛初說法時爾時我不見如是展轉聞佛遊波羅柰爲五比丘衆轉四諦法輪故知已前非親聞也二云皆是親聞故婆多論云阿難爲佛作侍者時請願言願佛二十年中所說之經盡爲我說比尼母論亦同此故知摠是親聞若依大乘一切皆親聞有二一佛重爲說如勝鬘經等佛還本處重爲阿難說又如大悲經中佛摠重說故是親聞二阿難常聞故涅槃經云阿難多聞士若在若不在自然能解了常與無常義又云阿難得覺意三佛所說經近遠常聞 三定傳法人者問說此經時二乘人等竝如聾盲豈得阿難而稱我有二義一設是阿難此亦無過何者依阿闍世王懺悔經有三種阿難一阿難陁此云慶持聲聞法藏於上二乘隨力隨分二名阿難陁跋陁羅此云慶喜賢持中乘法藏於上大乘隨力隨分於下小乘容預兼持三名阿難陁娑伽羅此云慶喜海菩薩持大乘法藏於下二乘容預兼持准此經文阿難海是大菩薩能持大法理亦無違若依圓教竝是盧舍那佛海印三昧內現此傳法人等故卽亦是佛也二云非是阿難所傳理亦無違何者智論云一顯示教秘密教此大品經是顯示教故付囑阿難如法華經是秘密教故付囑喜王等又涅槃經云難所未聞經弘廣菩薩當爲流通准此是弘廣菩薩稱如是我聞又准智論是文殊師利稱我以彼論云文殊與阿難在餘淸淨處結集摩訶衍藏又文殊師利般涅槃經中佛般涅槃後四百年時文殊師利猶在世閒故知是彼傳此法也 第四釋文依智論如順也是信也又是印也卽印順信受故言如是如是摠擧一部文謂指己所聞之法故云如是依長耳三藏三寶釋一約佛云謂如佛所說是我所聞如我所聞是佛所說二約法云如我所聞是稱理之如稱理之教是我所傳三約僧云如我所聞是諸菩薩之所同聞如諸菩薩之所同聞是我所傳故也依佛地論云傳佛教者言如是之事我昔曾聞如是摠言依四義轉一依譬喩二依教誨三依問荅四依許可廣釋如彼論中我者謂五蘊假者汎論我有四種一眞我謂眞如中常樂我淨等眞如爲性二自在我謂八自在我以智爲性三假我謂五薀假者以唯識所現似有主宰等以其爲性四執我謂分別俱生所執爲性又緣我之心亦有四種一見謂諸凡夫等二慢謂諸學人三習謂無學人四隨世流布諸佛此中我者於前四中通有初三約教准之後四中唯一亦可通後三思准之何故不說無我而說我耶謂顯親聞故語便故隨世間故無我故竝如智論說也傳法者何故不自稱而言我耶有濫同名失故我豈不通耶已稱我定屬自故簡別他故何不言耳聞以摠收別故耳但聞聲豈能解耶耳聞其聲意解文等和合無二從親說聞薩婆多根成實識聞智論和合聞卽空無作也涅槃云四因緣和合故聞一耳根不壞二聲在可聞境三中間無障㝵四有欲聞欲聞故得聞是故此聞則不聞聞也又具十緣一本識爲根本依耳識種子爲因緣依三末那爲染污依四意識爲分別依五自類耳識爲等無間依六耳根不壞爲同境根七作意欲聞八有境爲所緣緣中閒無障㝵十境近在可聞亦通餘法不㝵等是故此聞無自性故不聞聞也約教准辨之時以下通二序卽是六句之內後四句於中初三同辨謂時主及處後一別辨謂同聞衆此亦卽是三世間相應知前中亦二先通標三相始成正覺下別釋三義何故有此二門者謂約處前卽通擧染淨後卽別顯淨相又前寄染後別辨淨又以時有始終處有染淨佛有淺深故須重料簡也 前中三初一時者依佛地論一剎那或多相續但取說聽究竟是故摠名假立一時小乘實時大乘假說若別釋如梁攝論一時有三義一平等時謂無沈浮顚倒故二和合時謂令聞能聞正聞三轉法輪時謂正說正 二佛者覺義有二謂本覺始覺又論云蓮華開如睡悟等此初覺所知後覺煩惱或三覺謂自他滿卽有覺之者名爲覺者或名婆伽有四義如智論中一名有德謂婆伽名德婆名有故二巧分別婆伽名分別婆名巧故三名有名聲婆伽名聲婆名有故四名能破婬怒癡婆伽名能破婆名婬怒等故此四中初一摠後三別別中初智德次福德後斷德又佛地論有六義釋彼頌云自在熾盛及端嚴名稱吉祥與尊貴具斯六種義差別是故摠號爲薄伽廣釋如彼又眞諦三藏引眞實論有十義釋佛謂覺勝天鼓等云云三處者國通場別智論云於摩伽陁國尼連禪河側區樓頻螺聚落中得阿耨菩提等此名不害國以此國中諸有犯罪唯有擯無有刑戮故託此表示大法慈濟之相也名善勝國或云摩伽是星名此云不惡主十二陁者處也名爲不惡處國亦名星處國寂滅有四義一障滅謂性滅及治滅二證滅理故顯其滅德謂示佛十身及普賢等法經云大般涅槃能建大義故四益物成滅故可知道場亦一事處二行如經施是道場等三理如維摩經一切法是道場知諸法空故等四通一切法謂人法等一切准之皆得道之處名道場依主釋亦如世穀場簡去秕穢而擇取眞實此中亦滅惑成德亦得道卽場故持業准之事場者如俱舍論云於剡浮州中央從金剛地上起金剛座徹剡浮洲地與上際平一切菩薩皆於中脩習金剛三摩地何以故更無餘依止及能堪受此三摩地一切菩薩者謂賢劫千菩薩也始成正覺下第二別料簡上三義初簡時二處三主中且作五門一定分齊二攝前後顯差別四表示法五釋本文初定分齊者菩提流支云花嚴八會中前之五會是佛成道初七日說第六會後是第二七日說以十地經初云第二七日故又有人說第八會是後時說以彼文中有鶖子等五百聲聞竝後時度故此等所判恐不順文以初七日定不說法十地論云故不初七日說思惟行因緣行故旣言思惟知非說法設有救言只不說十地非不說餘法則不得言思惟也下論又釋爲顯己法樂故不說故知初七日定非說耳又第八會亦非後時何得於一部經前已說半中說餘經後方更續豈令佛無陁羅尼力不能一念說一切法祇園鶖子竝是九世相入下文云過去一切劫安置未來今未來一切劫迴置過去世又云一念中建立三世一切佛事乃至廣說如是等文處處皆有豈可所用鶖子祇園而非此類知此經定是第二七日所說二攝前後者有三一於此二七日之時卽攝八會同時而說爾何故會有前後如印文讀時前後印紙同若爾云何重會得成重亦同時以無㝵如燈光相入等餘不動昇天等准釋可知卽於此時攝彼前後各無量劫無不皆盡以是不思解脫時故三攝於重重無量念劫如因陁羅網重收攝故三顯差別者依普曜經第二七日於鹿野園爲彼五人三轉四諦此是小乘密迹力士經第二七日鹿園爲於無量大衆法輪時有得羅漢辟支菩薩道等此是三乘依此經第二七日於樹王下爲海會菩薩轉無盡法輪明是一乘上三同時者約法表本末同時約人顯機感各異依法華三七日四分律六七興起行經七七日依五分律八七日智論五十七日十二遊經一年方說此竝末教機異聞各別故致不同本教機定故唯二七四表示法者十地論云時處等校量顯示勝故此法勝在於初時及勝處說此有三義一此經約初時表本法勝故二末教亦同表末不離本故顯本非末故末時不定本時定故定二七更無異第五釋文者始成正覺者意顯初始之義有二相一初七日是現世之始二第二七日是說法之始此中是成正覺來經今七日故云始成正覺也通有五義一約小乘以生身佛於此樹下三十四心初成正覺同諸羅漢實成非化二約大乘八相化身示現於此初成正覺三約報身十地行滿無閒道後果現圓明名初成正四約法身謂創得了因最初圓現故曰初成此上大乘竝無初之初五約十佛謂遍一切因陁羅網無邊世界念念之中皆初初成佛具足主伴盡三世間是故此卽具攝前後無量劫初此中正唯第五兼攝前四准可知以此五重不相離故攝方便故 其地金剛下第二別料簡處於中亦作五門一定其處二弁攝入三顯差別四表示法五釋本文初定處者說此經處爲是淨土爲是染界設爾何失二俱有過者若是淨土何故上文云摩竭提國下文復云如此四天下閻浮提等由此當知非是淨土染土者何故下文此蓮花藏世界海六種十八相震動等明知此經非染土說如此相違云何指定但依此經染淨二土鎔融相攝有其四或唯娑婆以本從末故或唯花藏以末從本此二如上辨或雙現以依花藏而有娑婆染淨相分末依本故如下文云花藏界中娑婆世此之謂也或染淨雙絕以就果海不可說故此上四門合爲一土鎔融無㝵隨說皆得第二辨攝入中初明融攝者亦有三重一此覺樹下卽攝八會人中天上是故皆云不離此也二攝十方無餘剎土皆悉不離此樹王下三攝毛端微塵內等重重之剎猶如帝網無有窮盡以皆是此蓮花藏界之所攝故二融入亦三謂融此覺樹入前三重所攝處故第三顯差別者然佛說經處有三種一唯界內十六大國化身說處此通小乘及三乘教二唯界外諸妙淨土十八圓滿受用土中報佛說處如佛地經等此妙淨土非三界攝而亦不離以遍一切處故此通三乘及一乘說三染淨圓融帝網無盡蓮花藏界中十佛說處依正渾融具三世間此唯別教一乘說處今此所辨正唯後一兼攝前二以彼本末不相離故第四表示法者託此勝處表示法地論云此法勝故在勝處說然有三重一此樹下得菩提故不起此說明表所說如所得故非逐異機有改動故如鹿園說等二託圓融蓮花藏界表示所說圓滿殊勝性開敷故三託此重重帝網之處表示所說亦重重無盡如不思議解脫等餘義如下世界章說第五釋本文者文中有三初明道場地二地上有菩提樹三樹下有師子座此則地爲行所依本樹爲行德建座爲行用攝益如緣起性各全融攝法無不然此三位文中各以十門分別 初釋場地有標釋結標中其地金剛標其地體謂體無不堅下文言金剛厚地不可破壞此之謂也足嚴淨標其地德謂相無不嚴卽下文中蓮花藏界地下具攝風輪香海蓮華王等以爲嚴淨地上具有妙寶光明香河樹網如是上下淨德圓備故云具足此則垢無不盡曰淨德無不滿曰嚴二別釋中十句顯十種嚴淨一寶花嚴淨二寶輪嚴淨三妙色嚴淨四幢等嚴淨五香鬘嚴淨六寶網嚴淨七雨寶嚴淨八花樹嚴淨佛力嚴淨十奇特嚴淨具此十種故云具足嚴初寶花嚴淨者謂衆寶雜花具四義故一微妙義二開敷義三出菓義四嚴淨義下文言花遍覆一切地悉能長養佛功德二寶輪嚴淨謂此寶輪具足五義故一圓滿義離缺減故二攝德義輻輞等具故三轉動義從此向彼故四摧惑義如碾碎等故五降伏義如聖王輪寶又寶是可貴義下文言寶花成妙色莊嚴光明輪充滿諸法界十方靡不遍三色相嚴淨此妙色具四義故一炳著義具形顯故二卽空含虛而立故三具德義一攝一切故四有用衆生見聞獲勝益故此類多端故云無量無不交飾故云莊嚴謂此器海深而且廣薀德苞含潤益無邊故云如海大海十相於此應弁文世界海名從此而立四幢等嚴淨謂幢幡蓋光四義別故幢有二義一高出二降伏如帝釋幡有二義一標幟二隨緣蓋亦二義一顯勝二蔭覆光亦二義一除闇二照現下文云於寶幢中有光明垂寶旗幡而莊嚴五香鬘嚴淨妙香是芬馥義妙花是開敷義妙鬘是貫穿義以此三事遍布周圍以成供養又亦以妙香之穿以成鬘垂幢四面以成莊嚴下文云懸雜花爲莊嚴六寶網嚴淨網是隱映莊嚴下文云寶輪網彌覆其上依偁讚淨土經七寶者一金二銀三吠琉璃四頗胝迦五赤眞珠六阿濕摩揭拉波七牟娑陁揭拉波七雨寶嚴淨謂所雨廣多無不皆成法門之用故云自在卽現身說法之謂也八寶樹嚴淨謂衆德建立義也下文淸淨寶樹雲莊嚴普能照明一切身故云光荗也九佛力嚴淨謂佛神力故者擧其所因此等者弁其所成一令體廣二相嚴三用照下文一切世界海有無量莊嚴寶輪無邊色如來神力起十奇特嚴淨依智論寶有三種一人寶如輪王珠寶能雨物之用二天寶謂諸天所有竝堪使喚三菩薩寶堪令說法度人今此菩薩寶望前人天已爲奇特之寶況如來所有無盡善根所生之寶竝甚奇特以卽是法門復是事寶故也下一句摠結以善根無限量故出生嚴亦無限量故云無量善根莊嚴道場又亦以此善根卽用莊嚴如下文云百萬億波羅蜜雲及善根雲等以嚴寶座今亦同彼故也無量者下文云盧舍那佛過去行令佛剎海甚淸淨量無數無邊際彼一切處自在轉餘義至後品中廣明此中亦有摠別同異成壞六相可准通之場地竟 第二覺樹中亦十句初一摠句菩提樹有三釋謂鄰近依主及持業以圓教中依正無㝵人法相是故得菩提卽樹也高出六天顯曜十方故云殊特此是摠句下以九別顯殊一幹殊特謂是樹身明淨堅固義故云淨瑠璃等二枝殊特謂樹枝條是方便隨機差別義故云寶特枝等三葉殊特謂枝條頭葉是蔭機成益義故云寶葉等重平聲雲是齗齶義又重上聲雲是靉靆義四花殊特是衆行綺飾義卽益所成行也故云雜色等五菓殊特是行成感果義如意者一如能化意平等救故二如所化意求皆得故摩尼是珠寶通名簡通取別故云如意摩又此上五句成一樹體謂淨法界如地現顯佛身如地生樹隨機見異如樹枝分見無不益如葉成蔭由益成行如樹花敷行滿得果如樹生果此約起化攝生現於佛樹又釋本識如地識中菩薩種性如樹子發菩提心如生樹芽增修正行長養樹身隨位造修如樹分枝此約自行蔭覆利他如樹葉陰自他二行交飾如花因圓果現如樹成菓此約修行次第以成佛樹此上五句明樹體攝衆德下有四句明此覺樹妙用自在謂第六句顯光殊特謂光用遍至七化現殊特謂隨所至處現作佛事以無際故不可極卽一切處也無休故不可盡卽一切時也八法殊特謂於諸處作何佛事普現大乘菩薩道教以是阿含光明故能現法又此上三句如其次第是身意語三業所攝九佛力殊謂佛力加持出音讚德若不樹中自出音讚人無有能知如來勝功德者此十句中六相摠別可准知之覺樹竟也 第三寶座殊勝於中亦有十句初一是摠依智論佛爲人中師子佛所坐處若牀若地皆名師子座王坐處亦爾又坐此座說於無畏師子吼法是故亦名師子座下離世間品明十種座中師子座分別演說甚深義故此上皆依主釋或亦持業釋以依正渾融故又以此座苞含法界人法教義一切法故及彼十方諸佛世界深廣殊特故云不可思議謂如大海下以九句別顯不思議一嚴飾不思議謂體攝衆德故云衆妙寶花等二流光不思議謂妙用無方如雲普遍故云流光等三含攝不思議謂內含無數菩薩大海故云藏也四語業不思議謂大音遠振成益難量故云不思議此上三句隨其所應是身意語三業用也五加持不思議謂雖此座流光普照然佛光明重更彌覆顯殊勝故以摩尼珠光可有照及四十由旬覆輪王宮今佛光明遍照法界彌覆此座過彼量故云踰摩尼等六變化不思議謂化用開覺故云作佛事七應機不思議謂十方根熟一切悉睹一座普應無所罣㝵八迅速不思議謂一念者時極促也一切化者所現多也充法界者極深廣也於此一念能現一化已爲希有況現一切能於一念化現一切已甚希有況諸所現一一深廣充滿法界於一念頃迅速起此無邊大用餘念念中皆亦准此九眞性不思議謂如來藏體普遍故令前妙用速成無㝵又此上四句明此座用次第相由初有何相二云何三如何速四由何成如次四句答此四問知下一句摠結以別說難周故結云無量衆寶等以座高顯故亦稱臺此師子座有何義理不思議答旣名不思議義實無盡略論十種謂不可有分思以同法界故不可無分思爲機現故不可以理思寶花事嚴故不可卽事思如來藏性故不可依報思以菩薩等所成故不可正報思是佛依果故不可以人思所依法攝故不可以法思具有三業爲人用故不可以果思有因位諸菩薩故不可以因思佛果所有故上十義無㝵相卽謂一座是摠相十義是別相齊是座義是同相十義不雜是異相由此十義令座法起是成相各住自法是壞相旣云爲機現故非無分量未知其量分齊若爲然亦難知但可比況辨之如地品說十地菩薩座量周圓如十阿僧祇百千三千大千世界之量此座量比如來座其猶以豆許土比大千世界是知如來座量極難量也上來三段摠明器世閒圓滿竟 自下第三明智正覺世間圓滿中略作五門料簡一定佛身二明融攝三顯差四表示法五釋本文 初定佛身者此八會佛是何等身有人釋云是化身佛以菩提樹下八相成道是化身故不離昇天是重化故以釋迦異名名盧舍那非別報身故又有釋云說此經佛是實報身以是盧舍那法界身故蓮花藏淨土中故下第七會初歎佛具彼二十一種殊勝功德是實報也但以不離化故該此樹下非是化身今釋此佛准下文中是十佛之身通三世間以說十信及三賢等地前所見非實報故然居花藏非局化故國土身等非前二具攝前二性融通故具足主伴如帝網故故唯是周遍法界十佛之身 第二融攝者有二一直攝一切三世間盡以具此三事方爲故三身二身但是三中智正覺攝妙淨土及同生之身無不皆是此中所攝二亦正報毛孔依報塵中各重重具攝三世間等一切諸法如帝網現准思可見 第三顯差別者此一釋迦身隨應群機差別多種或同凡而非聖如見三尺黑象腳身及樹神身等此在人天位或是聖而非以同羅漢聖人身故或亦凡亦聖以是父母所生實報身故四大成故同凡身也具五分法諸流盡故是聖身也或非凡非聖以是大乘三身攝故非同小乘羅漢聖故或是化非法報具八相在閻浮故色頂別立彼實報故如梵網經等說此約初教或是報非法化卽此身具二十一種殊勝功德受用身故如佛地經初說約終教或是法非報化以色卽如故經云吾今此身卽是法身此約頓教或亦法亦報化如前三說故或非法非報化以是十佛故通三世間具足主伴故如此經下文說此約圓教是故此釋迦身圓融無㝵極難思也 第四表示法然說法之佛摠有四位一同羅漢身以表說小乘法故二化身佛表說三乘廣說地前略說地上三報身佛表說三乘廣說地上略說地前四十身佛表一乘法六位齊說以此所說具足主伴無盡法故佛亦同此十身無盡 第五釋文者文中釋此智正覺義還以十門初一摠餘九別摠中先身安寶座故云如來處此等後智契眞原故云於一切法成最正覺又如來者持論云言語所說不乖於如故名如來又轉法輪論云第一義諦名如正覺名來正覺第一義諦故名如來又經云乘六波羅蜜來成正覺故名如來又論云乘如實道來成正覺問此旣出得名如來何不在纏名爲如去答亦有是經云法身流轉五道名曰衆生旣云流轉當知有去或亦無去以雖在纏而不動故問若爾出障不動應無有來答淨法順眞從眞所起故得有來染法違理是妄法故不得有去或亦無來以始覺同本覺故旣無始覺之異是故無來故經云如來者無所從來亦無所去故曰如又一切法者所覺二諦之法最正覺者能覺之智以菩薩亦有隨分正覺然位未極不得稱最今就至極名最正覺下以九門別顯如來成正覺之義謂於如來一法界身隨緣顯現有三重三業初有三門一明平等三業自在攝生二其身遍坐下明攝生三業成益非虛三悉能普現下明成益三業卽用歸如就初中先明身業於中有二初句明平等身業次普入下辨攝生身業又上句顯深下句明廣又上明不卽三世云平等下辨不離三世故云普入又初不變後隨緣義又初體後用又了謂照了三世法者顯前一切法也平等者一了知過未等於現在故云平等此約俗境二了知三世遷流之泯歸一實無三之異故云平等此約眞境文意此斯則不住事而入理也普入等者是不理而隨事也又前則不壞事而顯理理而非事後則不乖理而隨事事而非理理事鎔融二而無二無障無㝵二句顯示與餘功德作依止義是身義次明平等語業妙音遍至者明如來圓音如緣起性遍一切處而亦不壞別別詮表若等遍失其音曲則圓非音若由音曲乖其普遍則音非圓今則不壞曲而等遍不動遍而差韻是謂如來圓音非是心識思量境界如虛空者以虛空有五種義似佛圓音故以爲喩一周遍義譬佛圓音遍周法界無處不至猶如目連遠尋佛聲不得涯畔二平等義謂空雖普遍體恒無二況佛圓音平等一味三無㝵義謂此虛空無所障㝵譬佛圓音隨根生熟聞與不聞俱無障㝵四對現義謂一切衆生皆謂虛空對其前而空無現前圓音亦爾隨種種機別別獨聞而音無彼此五含受義謂此虛空苞含容受諸色法故圓音亦爾含攝所詮諸法義故餘義如下性起品說下意業中二先明平等意業等心下䎳攝生意業又初理後量又先智後悲又二利無住緣起相融無二相故又平等法相猶是佛智遊履之所故云行處如空者喩此所行平等之法又以境智相如能所俱泯如空無㝵故一味故普遍故含攝故有用故又或唯境如空或唯智或俱或不俱思以准之又釋佛果戒等功德稱同眞性故云平等唯佛智所知故云智行處然無分限故如虛空佛地論第四云如契經言乃至所有施設譬喩喩諸如來所有功德一切皆是謗諸如來唯除一喩謂虛空喩如來戒等無量功德同虛空故乃至廣說下句等心隨順衆生者有四義一無思益物故云等心二等被圓教三等授極果四等達其性不㝵攝化此則是前如空之德堪以攝生故云隨順上來平等三業竟第二攝生三業成益不虛於中初一句摠標就機謂其身遍坐具三業故一切道場者有三類一遍一切須彌山界二遍一切樹形等界三遍一切塵道重重如帝網界故下文云是盧舍那佛常轉法輪處又下結通皆依此文別中初二句先明意業一攝生意業謂了知根器故云悉知一切等也二明成益不虛以惠日破衆生癡闇故云智惠日等次有三句明身業一依土現身故云悉能等二依身放光一光體通三際故云三世光二光照三世境云三世光皆從智惠大海中出故云智海光明所照機境熟故名淨無量光明者光攝眷屬亦多故無量又照淨顯深無量明廣次二句明語業初明實教無改動故云不壞二明教所依故云以力無畏等以者由也此卽望前爲因又以猶用也用此力等開方便門教化衆生成此㩲教是故望後權教亦是所依又自在力光者通用無㝵該於㩲實成益三業竟第三用歸如中先明身業謂雖普現多處卽用同體云如空而無來去以普遍故不動故起信論云雖起大用而亦無有用相可得此則用而常寂次二句明意業一遣妄二順眞又初會性永二實相不滅又前了其不有後證其不無邊論云無二有此無是二名空相斯之謂也此亦是釋成前義謂何因普現而無來去釋云以了達無性何以去來而是無性以彼去來順平等故順平等之大用無明闇盡名一切光明不失大用故云普現諸佛所行下一句明語業諸佛世界者語所遍處也不思議音者所順多故云不思此上三三業各一摠二別又初摠餘二別又三三九爲別初最正覺爲摠同異成壞准思可見智正覺竟大段第二明衆生世間圓滿於中先摠料簡釋本文初中略作十門分別 一明衆數二新舊三定器四世出世五界趣六諸乘七權實八位地 九表法 十因果初衆數者謂此初會有五十五衆始從普賢摩醯衆爲三十四類後從善海還至普賢爲十八衆牒前摠爲五十二衆海惠內衆幷新集十方及勝音衆牒前摠爲五十五衆第二會中有新舊二衆牒前摠爲五十七衆三四二會各有天王菩薩二衆牒前摠爲六十一衆第五會中昇天品內有五十二衆及雲集一衆第六會有同生異生二衆及第七會一衆牒前摠爲一百一十七衆第八會中菩薩聲聞及天王三衆牒前則爲一百二十衆於中一一或以十佛世界塵數爲量如是等皆無分齊然此等八會旣竝同時互相融成一法界大會卽知一一會中各有一百二十衆無分齊相此且約此一世界八會中說若通十方虛空法界一切世界皆各有此無邊衆會相入重重如帝網無盡則不可說不可說也是謂花嚴海會衆數 二諸會新舊或唯舊無新如六二會或唯新無舊如三三會或亦新亦舊如初二八三會餘意各如下文集衆中說 三定器者汎論列衆有三一是當機二是影響三是寄法今此通三也四世出世者有四義或俱是世間以時中顯現又三世間中是一故或俱是出世如其行德非世攝故或亦世亦出由具前二義故又隨相論初普賢等是出世餘是世故或非世非出世以是出出世攝故是故此衆通其三位具斯四句也 五界趣者於三界中除無色天以隨相寄法非殊勝故若仁王經亦有無色天等五趣中除地獄衆以彼極苦寄相顯法亦非勝故方等陁羅尼經亦有此衆又無人王衆以相顯非奇故或菩薩卽人衆也或唯列王衆如後十八衆說以表法自在故或通王臣如此三十四衆中說以具主伴故 六諸乘者大智論云小乘經初唯列聲聞衆若大乘經初具列菩薩聲聞二衆義准若一乘經初唯列菩薩所以知彼論以大品等爲共教別指華嚴爲不共教以不與聲聞共說故又此上三門各有二說中二者一若爲成小教得小果等唯列聲聞是愚法小乘如阿含等經說二爲迴小乘顯所被機唯列聲聞是大乘迴心教如金剛般若經初辨二具二衆中亦二一或先列聲聞後列菩此通始終頓三教如淨名等經辨二或先列菩薩後列聲聞此通頓教及同教如羅摩伽經惟樓王經和休經等辨三唯列菩薩中亦二雖唯列菩薩主伴不具是同教一乘如十一面經等辨二若主伴具足卽別教一乘如此經說七㩲實者若約三乘佛在此娑婆界雜衆是實以實報生故菩薩是㩲方便現故如經言彼諸菩薩隱其無量自在力等或菩薩是實以地前菩薩猶生此土故雜衆是㩲依大集經竝是他方大菩薩等㩲形所作故若佛在淨土菩薩唯實報生故雜衆是化非實有故攝論云受用土中實無此等衆生欲令淨土不空故化作如是雜類衆生若一乘中佛在此花藏界菩薩雜衆或竝是實以是海印定現實德攝故或俱是權以隨緣而現故餘義思准 八明其位者約三乘此普賢等皆是十地已上菩薩彼神王等多分竝是隨類生攝卽是八地已上若一乘中如緣起際諸位皆齊是故一人具五位位位皆遍收准之九表法者若三乘中但寄人顯法仍人非是法故若一乘中此等諸人竝是法界緣起法門又此一衆卽通三世間以或作河池井泉水等國土身故餘可知 十因果者若三乘但是因位若一乘中或皆是因以未是佛故或俱是果以竝是佛海印中現故又乘解脫力入佛海故或通因果由前二義故或俱非以離性平等故竝如下歎德中說 次釋文者一一衆中皆有四種圓滿一數圓滿謂先擧數等行圓滿謂列名等以名依行立故三德圓滿歎德等四供養圓滿如下三業供養等於此衆圓滿中有二先明外衆後海惠下明其內衆外衆中亦二先列三十四衆具前三種圓滿攝爲十八衆顯第四供養圓滿前列中以普賢爲首摩醯爲終後興供中何故反此古德釋云初從下向上表進行增微後從上向下尊位次第此釋難用豈令普賢最爲卑劣今釋前則從近向遠表依本起末後從遠向近明尋末歸本良以本末無二遠近不殊二文互擧無障㝵也就前中二先辨同生後明異生或以聲聞爲同菩薩神等竝爲異生此約小乘以約相明同故如同坐等或以出家菩薩及聲聞等爲餘竝爲異此約始教或以菩薩爲同聲聞等爲異此約終教或唯地上菩薩爲同以同證法性故餘悉爲異或八地以上爲同以俱純熟純無流此二通始終二教或唯菩薩爲同以通諸位神天等爲異是法界別德故或菩薩神等俱是同以法界無二故或俱異以法界差別故約一乘辨就同生內初數圓滿中大者有八義一數大謂十剎塵等也二德大謂位具一乘法界德故三作業大謂救衆生極重苦故四敬大謂天王等大人所敬故五勝大謂一切衆中最殊勝故六行大謂修二利六位行故七願大十種大願十盡句故八時大謂三無數劫或無量僧祇而修行故菩薩者依佛地論及無性攝論等摠有三釋一云菩提此云覺是所求也埵此云有情是所度也從境爲名義言若從心稱應云悲智二菩提如前薩埵是能求謂求菩提之有情也此約人法爲名亦是心境爲目菩提如前薩埵此云勇猛謂有志有能於大菩勇猛求故又智論云薩埵或云衆生或云大卽是上二義也俱者謂傳法菩薩與之俱聞如來與之俱說故又智論云一處一時一心一戒一見道解脫是名爲共共猶俱二也行圓滿中菩薩名雜者有二意一爲顯下麤細等雜世界二以此衆通八會序故德周法界曰普至順調善曰賢智論名遍吉也此中同名普者以圓遍故次名月者德淸涼故次名王者德自在故次名光者了闇用故次堅固德故次德獨出故次演淸涼教故次德明尊故智論云菩薩甚多何以列少菩薩無量說不可盡若都列者文字難載復次菩薩不過二種所謂在家出家此方他方在家謂颰陁羅等出家謂妙德等方謂慈氏等他方謂觀音等若說此二當知一切都以攝盡解云此娑婆世界說就花藏衆文可知 第三歎德圓滿中二先約人後約法初中友者德齊也卽顯因果無二也此文有二一擧佛顯德如云欲觀其人先觀其友等何故集此以是友故相成故俗書云同志曰友此中善友有三義一過己義如善財進友德齊義以是朋友故三小劣義以普賢等名第二尊導故二約法中初一句摠此一切菩薩皆悉成就無邊功德深廣如海十相准之下別弁中先成就自分功德後無上智願下成就勝進功德然此二分通說有七重一約一行生熟分二約二行如先施行已成後修戒等三約二利以分四就行位以得位爲勝進五約比證以分六約二位謂前位已成爲自分趣向後位爲勝七就因果因成自分入果勝進今此文中正就末後兼通可知就自分中成就九種功德一成行滿功德謂無處無時而不見行施等七度云諸度普照二成惠眼功德謂以何義令此度行而得圓遍以淨惠眼如彼三際而等觀故云惠眼等也三成深定功德謂依何得此惠眼依深定發故此中有三義一於定不味故云淨定發勝惠故云明二處於定純熟入出無㝵云明淨如下文東方入正受西方三昧起等頓入多定令一攝一切故云具足明淨下文云如入微塵數諸三昧一三昧生塵等定也上來三句明自利行四成妙辯功德謂巧能說彼難說之法故稱辯才卽下四十無㝵等以一言說一切名廣所說皆玄曰深此深及廣悉無涯無故云無盡五成普曜功德以佛功德身光普現照曜群機故六成調化功德謂善巧了知衆生心器卽心行稠林也稱根授法調令離障伏使入法故云如應調伏上三句卽三業化他行七成就眞智功德以金剛智普照一切差別境界悉同一味平等法性八成量智功德以廣大之惠明達深智所知之境無不周盡故云靡不明達也上二句明智照二諦德此上八句約行顯德九成攝位功德此有二義一攝前諸行入信等五位之中二隨在一位卽攝前後一切諸位此亦有二一約相入明攝二約相卽明攝如前十門處准之此從十信滿心已去諸位有此相攝是故下賢首品中信滿之處卽具一切位乃至佛果等是此義也上自分竟 第二勝進入果中二初十句明體德圓滿二遍遊下六句顯妙用自在前中成於佛果十種功德一得佛智願德無上者佛果無加故智謂大智則四十智等願謂大願卽自體無障㝵願大智已大願已滿竝皆現今成滿已訖非是當成云皆已成滿二具佛密教德此有二義一言不盡理名秘密教以非了義故二微妙難解非下位能測故名密教以是深廣故此中據後說何者深謂言卽不言故何者廣謂不言之言周法界故下文鶖子如聾等是也此深廣教唯佛所今此菩薩具足同佛故名也三得佛果法德謂十八不共等果位功德望下皆名不共佛佛相望名爲共法非是與菩薩共故云佛所共法四同果位德此有四義一同佛行者謂大悲行故二同佛地者得佛十地謂毘盧遮那智藏大海地等三同佛德者得佛無邊福智德故同佛力者得十力故又得十種大力等如不思品說五三昧自在德此有二義一出入自在故二相攝自在故上五句得佛自利德六機感現形德謂機感繁多故云生海圓身普應故云應如經云應以佛身得度者卽現佛身等七隨行攝生德謂隨其根行授與法門令增正行云建立上句現身此句說法此二句得佛化生八巧證法海德謂緣起法深廣繁奧苞含如巧達其際故云善入九入海迴轉德謂善入緣起陁羅尼門令一攝一切故云迴轉摠持也十果海充身德謂由於緣起法海巧迴轉故佛無邊功德法海皆悉攝取充滿己身是故皆得佛果功德意由此也下文云菩薩於因緣和合中自在乃至能隨意示現於佛身此之謂也第二妙用自在中有六一遍遊諸剎用此窮世界海二出生願海用謂由此願力入國土海前句遊他佛剎此句願嚴自土三三達圓明用以未來難知是故偏擧理實通三可知四歷事供養用五願海深廣用故云普賢願也六化物智圓用故云於衆生智滿也同生衆竟 第二異生衆中先弁金剛力士衆以衛佛近故先列表佛德緣起不壞相故衆行所依如金剛際卽行眷屬餘衆亦然歎德中八句初一句摠明本願侍佛後七句別顯其德前中若三乘教八地已上方乃現形顯衛已前密衛乘中信滿已去竝顯衛如下賢首明法二品說又隨心求義爲願要契至誠爲誓下別中二內德圓滿後無量神力下外用普周前中三句初願行具二福智淨三大定深外用中四句力同果遍二大小重入三身出衆表無大衆畏四隨類巧現皆如緣起際准之第三道場神在樹下近故次列之耳德中略擧往因如下善財第十迴向知識處說又守護道場如寶髻又道場之神此依主釋或道場卽神持業釋一乘通二釋以竝法門故三乘唯依主人法別下諸神名二釋准之第四龍居上蔭覆義云嚴法堂如下普光堂龍所造等第五地神居運載義多現女身如堅牢等第六樹神居中建立義德樹適情故喜也第七藥神是對治義法藥遣惑是悲門也第八穀神是資持義育養黎元令喜故也如后稷等社公云云第九河神流潤義德中懃是流義益是潤義第十海神是具德義如下辨十相等德中以法同事可知第十一火神是成熟義照明義焚燒義除闇義初二成二嚴後二滅二障准之第十二風神是聚散如風災爲散風輪持聚等散惑聚德可知卽令衆生身不分散皆是法界緣起舍那風神力也又內風有五種一息風謂出入息從臍輪二消風向下消食三持風令人行健四災風令人成病五力風人將死解人支節臨死人面有五色風入地獄者黑色生畜者靑色餓鬼黃兼以舌出生人面如常色生天鮮花色精光可愛第十三空神有七義一無邊二無礙一味四含攝五顯示六離染七堅固前五名中准後二德中彰第十四主方神是顯示義謂顯示方隅令達迷向正故云善照照猶示也第十五主夜神是助成義非正時故或闇夜中導引衆生如下夜天等准之第十六主晝神是正修是正時故故云信樂正法又是明飾義故云莊嚴第十七阿修羅新爲阿素洛依婆娑名非佛地論說天趣攝多作諂詐無天實行故名非天如世惡行名曰非人或名非端正或名不酒於大海中作酒不成等云云或云毘摩之母本從天生故云劣天阿含經云劫初成時光音天來海中洗浴水觸其身失精在水遂成肉卵八千歲乃生一女身若須彌有九百九十九頭頭有千眼有九百九十九口口有四牙牙上出猶如霹靂二十四手九百九十九腳在海浮戲水精入身生一肉卵經八千歲生毘摩質多身有九頭頭有千眼口中出水有九百九十九有其八腳其形四倍大須彌山純食淤泥及以藕根又多與天諍廣如正法念經說也然脩羅有五住處一地上衆相山中如下文說二須彌山北下入大海二萬一千由旬脩羅王名羅此云障礙能以手障日月等領無量衆三從此下更過二萬一千由旬王名勇健亦領多衆四復過二萬一千由旬王名花鬘亦領諸衆復過是數王名毘摩質多此云響高是舍脂父身如五須彌山與天帝戰時發自海底揚聲大叫云我是毘摩質多我是毘摩質多閻浮山嶽一時震動亦名穴居謂彼中有光明城於中住故或天趣攝如上佛地論或依毘曇鬼趣攝以諂曲所覆故或依正法念經鬼畜攝以羅侯是師子兒等故或依伽陁經天鬼畜攝由上說故唯有五道若分六道善中上中下配天人修羅惡中三品配下三塗可知依智論其羅睺脩羅王是大菩薩第十八迦留羅新名揭路茶此云妙翅鳥鳥翅有種種寶色莊嚴非但金色海龍王經其鳥兩翅相去三百三十六萬里浮提止容一足依涅槃經此鳥能食消龍魚七寶等唯除金剛以不能令消故又食應命終龍又過去受三歸者不食袈裟縷繫者亦不食依增一經四生金翅中如卵生鳥從鐵叉樹下入海取卵生龍水猶未合還至本樹上食之向胎生龍鳥身卽死若胎生鳥得取胎卵龍得餘二若濕生鳥得取三生龍不得取化生龍若化生鳥得取四生龍又日別食一大龍王五百小龍遶四天下周而復始次第食之命欲終時諸龍吐毒不能復食飢火所燒聳翅直下至風輪際爲風所吹還復上來往還七返無處停遂至金剛輪山頂上命終以食諸龍身肉毒氣發火自焚難陁龍王恐燒寶山降雨滅火如車軸身肉消散唯有心在其大如人䏶純靑瑠璃色輪王得之用爲珠寶帝釋得之爲髻中又下文云菩薩金翅王生死大海中搏撮天人龍安置涅槃岸此之謂也第十九緊那羅新云緊柰洛此云歌神能唱歌詠作樂依雜心畜生道攝亦名疑神謂是畜生道攝形貌似人面極端正頂上有一角人見生疑不知爲人爲鬼爲畜故云疑也第二十摩睺羅伽新名莫呼洛迦此云大腹亦云大蟒又云腹行神能護法能除疑也第二十一鳩槃茶依正法花經厭媚鬼噉人精氣等亦名冬瓜鬼王名毘樓勒此云增長主是南方天王領二部鬼一名鳩槃二名薜荔多從所領爲名第二十二鬼神王是北方毘沙門此云多聞亦是所領爲名以攝諸惡鬼不令損惱衆生故云懃護也第二十三月是淸涼義如下文菩薩淸涼月等二敷發義如敷發蓮花等如文發寶心等是也又依俱舍月去地四萬由旬廣五十由旬以水精白銀合爲兩面迴轉相影故有虧盈依長阿含經城正方一千九百六十里高亦爾二分一分天金作一分瑠璃作王坐二十里以遙看似圓壽五百歲子孫相襲一劫第二十四日廣五十一由旬其城正方二千四十里高亦爾宮城純金七寶瑩飾王坐二十里壽命子孫同月天風持故繞須彌山四面上日月天子俱是四天王左有初天所攝竝是道力隨緣殊形異現中初句自利後句利他如日有成就義饒益義又依寶性論說曰有四義一破闇如惠二照現如智三輪淨如解脫四上三不相離如同法界第二十五忉利此云三十三天三十三天者佛地論第五云妙高山四面各有八大天王釋居中故有三十三也若具應云釋迦提婆因陁羅此云能天主依三法度經此中天子身長一由旬衣長二由旬廣一由旬重六銖壽一千德中具二利可知第二十六夜摩此云時天以時花開合辯晝夜故名也佛地論云謂此中隨時受樂故名時分此天身長二由旬衣長四由旬廣二由旬重三銖壽二千歲德中自分勝進可知第二十七新名睹史多此云喜足佛地論云後身菩薩於彼教化多修喜足行故云喜足依長阿含身長四由旬衣長八由旬廣四由旬衣重一半食甘露壽四千歲德中惠定可知第二十八化樂者佛地論名樂變化天樂自變化作諸樂具以自娛樂也又自化樂具還自受用不犯故名善化亦名化樂依三法度經身長八由衣長十六由旬廣八由旬衣重一銖食甘露壽八千歲德中二利第二十九他化自在者地論令他化作諸樂具顯己自在故名也依三法度經身衣壽命過前一倍准之德中入法自在也第三十梵者新名離欲以離欲染故淨中之極名離欲也佛地論離欲寂靜故名梵身者衆也依長阿含於梵衆中以梵音語故名也天者自在義光明義淨義依智論天有三一人天謂帝二生天謂欲色天三淨天謂佛菩薩等第一義天也尸棄此云火色或云火頂以火災至此若修上禪卽生此天於梵衆中發大梵音天各自謂唯共我語於大千界最得自在顏如童子身白銀色長半由旬衣金色非男非女悅爲食壽一劫此依長阿含辨德中四句一以何度二何所度三何所除四成何德如文可知初禪大小等於欲界一千四天下一千初禪始等二禪二禪爲火災頂一千二禪始等三禪禪爲水災頂一千三禪始等四禪四禪爲風災又梵摩此云寂靜淸淨淨潔皆得亦云梵潔又尸棄者火災頂初禪主又云持髻云云第三十一光音者依智論第二禪通名光音彼天語時口出淨光無邊身長二由旬壽二劫又爲初禪火光發音引攝令生此天故名也德中惠定可第三十二遍淨者以三禪中離喜故身心遍依長阿含以上方便生此天王名淨智四臂持風輪御金翅鳥德中以是樂位故令得眞性廣樂也第三十三果實者以第四禪是世間善果中最勝故亦名廣果也德中以是不動位故入性寂也第三十四摩醯首羅者依智論此云大自在天有八臂三眼騎大白牛知大千界雨渧數以於大千界中最極自在更無過故立名又依智論第一云第四禪有八種五種是阿那含住處是淨居三種凡聖共居過八處有十住菩薩住處亦名淨居號大自在天王由此當知淨居之名有四種一約報純淨此通凡聖約德過凡此唯那含等三約因如云有十住菩十住菩薩卽是十地十地中是第十地攝報果也四約果謂此中有三乘中報身淨土等立此名也又准智論八天外更有別十住菩薩天也 第三歎德此文有二釋一但顯此衆德二通辨上來異生衆德便卽釋疑疑云前普賢同生可同在果海此異生衆旣雜類卑末如何亦在果海中攝釋如文中初二句摠標謂內脩離外預勝流故在緣起果海中也下別弁中二初擧其德後所以下釋同果海前中二初一句外化普周次內德盈滿盈滿中四初三業殊勝二同佛所乘三斷德離染四照燭眞源初中先身成妙色二意善安住三語辯不傾此中初離不勘說故在衆不傾後離不能答故難無能壞所以具此勝三業者由佛所乘常現前故所以佛乘得現前者由離二障故所以得離此二障由睹勝緣故是故入佛海也此卽以後釋前又義以前釋後謂由具此勝三業故佛乘現前佛乘現前故得離二障離二障故得見佛法界是故得在衆數以若具障者視日尚失眼光況得見佛如下如盲等又斷德中二句初習種令滅後句正使久除餘文可見釋同中二初果能攝因二因能入果初中二先徵次釋徵意所以此衆同在佛海中耶釋意以佛成彼故不別於中有三一擧佛爲行緣二種種因緣下䎳依緣成行三各隨下結行屬緣前中三句一往二往行三爲物集善根二成行中有五句一句令得三賢位二一句證地位三逮得下明八地已上位四皆悉下成法雲位五具足者摠結也三結行屬緣中初各隨得出結行也悉由等者屬緣也是故在果海中也二因能入果者謂乘解脫等卽乘因入果故乘別入摠故乘門入海故如下文中十種解脫九世相卽乘此力故得因果圓滿同一際也是故於佛果海中法悉得自在下文歎法門卽是其事若三乘則不得如此以事異故師第別故 自下大段第供養圓滿從遠向近辨十八衆中前三十四內於四天中略擧南北具列諸神今此興供之中從道場神至摩睺羅迦略此十八具顯四王何故爾耶釋云以前龍等屬西方攝餘類多分東方所收由此二類所領多故分王從衆略彼二王具顯十八今此欲明上首讚佛攝衆從王東西收盡是故略彼十八加列二王以南北所領文中不廣不類東西故無開合是故三十四中略卻十八唯有十六復加二王故成十八中前則先同後異今乃先異後同何故爾者前表依本起末今䎳攝末歸本又異生中前則先劣後勝今乃先勝後劣何故爾者謂前表法增微今顯尊位次第又釋此等竝顯法界緣起逆順自在無障無㝵摠合爲一大法界衆故作是旣云興供何故不列諸事供耶釋事供非奇不足顯勝經云諸供養中法供養最是故唯顯法供養耳若爾何故下文海惠及新集衆皆有事供釋海惠等衆從座中出復持事供爲顯奇故他方客衆各從本土持彼事供不類此等常隨之衆如釋迦身以舍利弗等爲常隨之衆以修行化人作法供養亦更不辨餘事供等舍那身眷屬亦爾於中各入法門洞達自在爲意業供說偈讚佛爲語業供在會虔敬爲身業又夫論法供有其二種一順教修行得法自二讚揚顯發法化傳通今此三業具斯二行文中有二初有一句摠標故云各於佛法門而得自在下別辨中二初十七衆各一法門自在分摠成別名爲異生後普賢一人一切法門自在者攝別成摠攬異歸普名爲同生是故二衆同一緣起思之文中十八衆卽爲十八段一各二先長行得法是經家序列後偈頌讚嘆是當時文也 就初首羅衆內十天得法中明體用體中法界空境也寂靜證也用中方便者善巧應機光明者覺照成益法門者有三義謂自性軌則及對治也門有四義一標別義如此門非彼等二通智遊入義三收入義一切入一以一爲門四通出義於一門中能出一切不窮盡故此法卽門持業釋也法界虛空等卽法門亦持業下諸門竝准此知之此等竝是法界緣起佛境界中差別法門然此諸衆各洞一門入佛海內屬佛別德故稱自在又於此一門一切門作用無盡故名自在下竝准之二一切法者境也普遊者智也又初教後義頌中存後釋也三不生滅是法身方便是色身又初證道後教道又不生滅者有十義一眞理離有爲相故不生不滅二非有爲故不生是無爲故不滅三不守性故不生不改性故不滅四不變故不生隨緣故不滅此上約圓成五緣起無性故不生緣起不失故不滅六緣起不失故不生以理性不現緣起無性故不滅以理性顯故七由緣起故不可生滅取也此上約依他八由情執無理故無可生滅也九所執故不生是無相觀境故不滅此上約所執上來約境方便者上諸道理巧現於機也十不住世閒故不生不同凡夫不住涅槃故不滅同二乘以不生有方便故不住涅槃也以不滅有方便故不住世閒也若不爾者異凡應同小異小應同凡由方便故得雙異也此上十義摠別無二以六相鎔融思惟之四巧智深廣難測光者除闇故遊者昇入故五依普門禪故云一切也見法界理佛故滅惑故生起無量樂也六染分可怖轉滅故淨分寂靜轉現故遊是證七境界者分齊也化用遍故不起者不作也用而恒寂故八妙絕三際故又佛德應機而無往返九眞理寂靜是佛所緣境也十佛多方便是衆生所緣故也此十法門中初門爲摠餘九爲別同異成壞准可知之頌中先生起以佛力者顯非自力觀自衆者示普攝故顯同說故故偈讚者地論云小字攝多義故諸讚歎者多以偈頌故又頌有四種一數字頌謂依梵本十二字爲一頌不問長行及偈二伽陁頌此云諷頌或云直頌謂不頌長行也三祇夜頌此云應頌謂應重頌長行法也四慍陁南頌此云集謂以少言含攝多義云集用以施人令易受故云集施此上三種頌或七言或五言四言三言如處世界如虛空爲三言也皆以四句一頌此中當第三重頌之偈也下文諸頌准之偈中二十行四句成偈摠有十偈一偈頌前一法門此欲歎佛何故頌己法門此衆旣是佛海印中現屬佛別德故頌己法卽是歎佛佛德玄妙非餘所知若非佛德無以顯佛故論第十二云唯佛應供養佛餘人不知佛德說智人能敬智智論則智喜智人能知智蛇知蛇足頌中初頌頌初法門初三句頌體一句頌用前中初一句頌境次二句頌證或身滿法界或法界滿身融故也心寂故無取境寂故無起又初句頌上法界次句頌虛空次句頌寂靜下句頌方便二頌中初二句頌上一切法次一句頌上普遊下句結天名也三中初一句頌上不生滅證道次二句頌上方便教道初句身方便後句口方便下句約天明得法自在立名也四中初二句頌上方便智海次一句頌上下句頌遊及結人得法五中初三句頌上禪無量樂事下一句頌普起及樂名六中初句頌上轉癡畏次句頌遊靜次句頌轉謂照除也句結人得法七中初二句頌無量境界次一句頌不起下句結法屬人八中初二句頌上一切次一句頌不來去下句結法屬人九中初三句頌佛境寂靜下句結法屬人十中初三句頌無量境界無量境界有三一時無量上句顯之二境界無量謂菩提及衆生次句顯之三善巧無量下句顯之下句結人得法 二第四禪果實天有八一觀物根興法雲注法雨以逗前根二妙色者現身故方便者說法故此二是能應也念者念持法故觀者觀色身故此是所應機也由此念觀滅癡成淨三見如因陁羅網土由緣起無性故四入緣起陁羅尼一門中卽攝圓融法界故云普門也五不轉愛者自留惑故轉他衆生受生之愛令永滅也又令他滅惑不於三界處生六一切世間境者器及衆生也入中說法而恒住寂故云不思議也七會二空顯二諦衆生及法者擧人法也出要者會眞空八令機證眞源入果海故也頌中有十九偈有二初十七頌前法門後二擧因摠歎前中初二偈頌初法門於中初偈歎佛德深頌上能觀後偈頌上法雲開潤根欲二中亦二偈初偈頌妙色方便後偈頌念觀三亦二偈初偈巧現眞後依理現事因陁羅網通理事故四亦二偈初頌普門現法界身後顯法界法五有三偈偈斷德攝生轉滅惑業苦也次偈轉顯福智等然各通因陁羅後偈結法屬人方便卽是不轉愛也前長行中但有初偈中事應知六二偈初偈頌上入一切世間境界後偈中三句頌不思下句結法屬人七二偈初偈頌上衆生出要令知無我以顯俗諦後偈頌一切法出要令知無我以顯眞諦八二偈頌上受化者入佛境界法門初一以果就機後一攝機入果後二偈中初一擧因成德後一對機顯用又釋此偈逆次頌前法門初二頌末後次二頌第七次二超頌第二次二超頌第四次三頌第三次二卻頌第次二卻頌第五後四頌第一竝可知以是任放辯才說不待次故也 三第三禪遍淨天有一觀諸衆生三品善根令增長故又釋如觀城門昔所聞佛名善根鶖子不見等二一切有一切世界也佛於中出覺悟衆生照現諸法故云覺照也三摠持於心具文義故宣之於說具四辯故四佛出希逢故生樂出已除難故云解脫五衆生卽如順緣起際顯德無窮故生歡六初化菩薩勝用也次德相備後入無盡順極體竝是一乘別教法耳七苦衆生是所救悲是能救智者不取相故滿者化德具故成彼益故頌中十一初一頌初法門前長行擧所觀今顯能觀之德故也又釋初二句能觀謂佛智無㝵普遍也次一句明善根難知是佛境界句結人得法二有四偈初二頌上處有及照中初一明依體起用後一明用歸體後二頌上覺義於中初一開迷顯覺後一明覺超情三一初二句頌持次一句頌辯下句結法屬人一頌初二句頌樂佛出後二句頌解脫五一頌初二句頌衆生甚深法後二句頌生歡喜以見理功德故六一頌初二句頌上化菩薩後二句頌上功德周備入無盡也七二頌初二句頌所後二句頌能救及智謂見淨是智也下一頌明滿謂初二句化身滿後二句化業滿 四第二禪光音天衆有十初寂靜處者一理靜二事三田靜滅苦亦三一性滅二智滅三福滅下頌中但有田及福也二中初斷德心淨性淨離垢治淨故寶性論云一自性淨二無垢淨次智德謂廣脩等也又心淨是器離垢是緣海是依緣所修德也頌中存後釋三有二釋長短相卽以時劫如如故二自在位與不自在德優劣故四有三釋一云世間生住滅種種者是染緣起淸淨者卽染性淨性淨之德故云功一云是淨法緣起但簡眞如故云世間生等簡染過患故云淨功德一云世間是處也生住滅是佛出及住滅等多門益物滅染成淨故也下頌中存後釋但以義通故兼餘釋也五一生菩薩能供中極是故就彼顯廣說也如下百萬億等准之六得自在陁羅尼力一念能多受念能多說七場處佛出名曰莊嚴八神足卽功又神足是能益功德是所益成相九福智深廣與機爲境十願力功德力是因位願行卽能持也喜藏是果卽所持也喜是大智智體含攝故名藏頌中十偈各頌一法初偈頌依靜田福滅苦二中初句頌離垢行緣次句頌心淨行次句頌所成德海下句結法屬人莊嚴卽是妙雜光也三中初句顯方便廣故次句顯多劫修故次句性無礙故由此方便一念出生多劫功德名方便門法主音卽是自在音故結人得法也四中初三句頌世間生住滅卽佛興世等下句滅癡頌淨功德勝念結天名也五中初句田廣次句能供廣次句供益廣摠頌上菩薩在兜率廣說供也下句結法屬人六中初三句頌於劫說地義下句頌能一念受說以得心自在故七中初句能嚴次二句現莊嚴相下句結八中初二句頌無盡神足上句體下句用二句頌益成功德海上句令得地前六根淨句令至地上甚深法亦是結人名九中初二句頌功德海上句惠下句福次句頌境界下句結法屬人十中初二句頌過去佛功德力次一句頌願力下句頌所持喜藏卽所成果也 第五初禪梵天衆有十初從眞起應名照現法應不異眞名入不思以卽寂爲照不可寂思卽照爲寂不可照思二一切禪等觀者是法身理以此是禪中平等觀境故寂靜善住者妙智證契也三初本智照法後後智巧化又剎塵法海名諸法不思一音演說塵劫不盡名入方便偈中有後釋四佛音圓應名妙音海齊均普契名平等度入五柔根者攝取剛强者伏取然此方便佛身中現故名最勝六佛身普應諸剎中現名能起住語業普周淨音說法名分別法七無邊三業巧化衆生八法離情計名淨相妙智善證名住寂行九過未無來去現世無所依又生無從滅無所去住無所依止於此觀心名爲勇猛十隨有一行卽皆普照無盡法海頌中八偈七各頌一初中初半頌照現諸法後半頌入不思議二中初半頌禪等觀後半頌寂靜善住卽下句結法屬人三中初句頌照諸法不思二句頌入方便下一句結法屬人四中初三句頌妙音聲海下句頌平等度入亦是結也五中初半頌攝伏後半頌最勝六中初三句頌一切剎能起安住謂現身也下句頌分別諸法謂淨音說法故也七中初半頌無量方便卽三業輪後半頌化衆生謂自在照機故八中初半頌住寂行後半頌諸法淨相後二法門略無頌釋摠在第八頌中謂初句頌第八法門次句頌第十次句頌第九下句結名樂是第九名音是第十名 第六他化天衆有十初中衆生有二一煩惱藏化令轉盡二如來藏化令轉現二不二和合融通故得化益也二令衆生得大涅槃樂三知機巧益四分別衆生有三性義佛爲衆生一音顯析廣大法海偈中存後釋慈念覆機惠眼觀察六大慈十力碎慢魔山應念攝化八普念諸佛妙盡佛境九佛功德自在者顯能化之德覺悟滿念者普應群機隨順者一根緣相順二令機入法十佛國土海唯佛惠境故離世間也頌中有十各頌一法初中初半頌藏後半頌化衆生亦可通頌二中三句頌前法下句結人三中初句頌解衆生也疑地枯林頌性欲也餘頌方便及結人得法四中初句頌分別次句頌義次句釋疑疑云何故一音能演多法釋云遍故下句結勝勇是精進也五中初半頌觀察謂智觀納法名入佛毛等下半頌慈念及結名六中初句頌魔事次二句頌超出下句結七初半頌由念佛故得智滅癡離染因後半離染果及結名八中初句頌十方諸佛次句頌念充滿以滿其念故後半明滿念益及結名幢猶輪也九中初句頌佛功德自在次句頌覺悟及念隨順下半頌充滿及結十中初句頌離世間以是土海故次句頌境界次句明離世因以世間相盡土海無可超故云無高心無分別下結名 第七化樂天衆有十初以緣起無作分別諸法二有三釋一云觀三有二我之實性故一云一切有者理有也我者情計也情理不二故云眞實佛性論云眞諦無人法故不有顯二空故不無又人法無不無二空有不於俗諦分別性故不有依他性故不無又分別不定無依他不定有是故二諦俱離有無也又辨中邊論云云又云佛雖現有然於有求佛不以有卽眞實是無有故云觀一切有眞實雖現我然我求不得以我卽眞而是無我故觀我眞實偈中存後釋三能滅衆生愚癡之惠圓滿在於佛果故也四圓音普悅起彼勇修十蓮華藏微塵數相海故云具足無盡如相海品說好功德者是小相如小相功德品說六三世劫事在佛智中照不雜亂故云次第此偏約過去偈中具也七福智無涯利益衆生又長養衆生無邊福智下偈順初釋八緣起事身同法性普遍無礙者有七一質不礙身二身不礙質三遍不礙隱謂機不感處雖遍而隱四滿不礙分謂應機現長短而不礙滿虛空五坐不礙行六一不礙多謂諸方現多而恒卽一七理不礙事謂空界者界猶性也卽性空理跏坐是事緣起融通故無礙餘諸根等准之九業行緣起巧爲機現名方便無盡是機所緣故復云境一切衆生善惡因果同在法界而無來去故云等觀頌中十各頌一初中化有三義一化起所二顯化無體三化現似有初半偈頌初義上句頌一切法卽所依也下句頌分別化卽所起也次句頌無體下句頌現有謂佛與衆生爲緣起故也二中初半頌觀一切有及我謂俱無所有後半頌眞實及結人也三中初半頌離後半頌惠滿及結名力是天名四初半頌佛下半頌發起喜勇及結五初半頌佛相好半頌無盡及結六初半頌過去無量劫等後半頌智惠憶念七初半頌種種功德智惠體後半正頌福智及結餘略不頌結中淨知見旣是光勝天何故名如來者以此天等卽是佛故如上辨八頌空界坐無礙中前長行明果用此中頌彼因行謂初句時多次德滿次勇修下結名九初半頌方便境後半頌無盡力及結謂能現法之力周普故云無盡十初半頌衆生業行苦次句頌等觀下句結照是花光也又亦可此頌第九門前頌第十思之可見 第八兜率天衆有八初爲機現世名爲成就隨欲說法名轉法二惠光照眞空又空體也淨德也光用也無礙願海與物同體故云入自性離相故云寂四約遮十相俱無名無量無相約表恒沙性德名無量無相令諸衆生觀察修行滅惑業障名爲觀行五佛境有二一分齊二所證超踊有一過凡小二越思議覺力有二一證理二照六以佛功德熏習衆生名喜修集令發心不退故云不壞菩提心也七量智調機八中初無盡緣起次速歸眞性亦是迴法擬機後入機正又無邊心海根器也念念迴向無間欲樂也隨器普現佛能應現也頌中順後釋頌中少非初中初句法輪體次句所爲次句正輪下句結勝又初半頌成就後半頌轉法輪二超頌第三法門初半頌廣願海後半頌入衆生寂靜諸法方便是也勝是天名三卻頌第二法門半頌虛空界後半頌淨光四中初半觀所爲也次句頌無量無相卽觀境也下句頌觀行成也五超頌第七諸佛調伏衆生方便法門六卻頌第五法初半頌佛境超踊後半頌覺力又亦可前頌五此頌七如文可知七中初半頌喜集次句頌菩提心下句頌不可壞八中初半頌無邊心海謂佛子是念念迴向有三義一雲集義二向佛興供三向佛聽法如經悉來集供養故聽法故下句頌隨器普現 第九夜摩天有十初令衆生離世憂惱向出世順體之善又法身斷德名離憂教衆生淨道名向善根所緣分齊各非一故三中初大智離過不住生次大悲攝生不住涅槃又由具大悲救生離苦患頌中順後釋四了信等善根差別無邊卽根行稠林也又知一根中有一切根相卽入等重重無盡又知諸根卽同眞性而諸根歷然故云分別也五陁羅尼門窮盡法界故云無量摠持諸法矚同水鏡故云照明依首楞嚴經婆世界邊畔有須彌山上天王名持須彌得首楞嚴三昧遍在百億須彌頂上帝釋宮中住夫不見今此乃在夜摩衆中以菩薩自在處處現化未足怪也六中有四義一造業緣卽身等爲緣二所造業卽善惡不動三緣起無作業性卽眞四業雖卽眞而不失生果如經境界故行故眞實故不思議故又緣佛爲境所造善業決定不虛故云眞實雖種少善定能當得大菩提果故云不思議如尼拘陁子等頌中順後釋七初轉一乘三乘等無盡法輪次扣機成益故云調伏又初輪體次輪益謂調令入法伏除過惡故也八中生界所見勝眼能見普觀正見見衆生界極廣故卽眞性故一中一切故具因果教義等故如帝網故名爲普也三乘無此眼云勝也又勝眼觀機普雨法雨頌中順此九普智照法令現又以法實普現群機十中天衆是機次應機施化令除心惑故云心淨此益也又雖化不見能所亦名心淨屬自也頌中八偈各頌一法門初中初半頌離憂後半頌迴向善根二中初半約正理明境界次句約大智下句約大定又初半所證次句能證下句正證亦是結天名三中初半頌所離諸患次句頌具大慈悲下句結天名四中初半明三達無㝵頌上分別次句頌諸根謂行卽根行也下句明知根之意爲化故也五中兼頌第七轉法輪法以同故初句頌無量摠持次二句頌照明及轉法輪也下句結天名又准地論初句體次句次句果下結六中超頌第八法門於中初半妙身勝眼次句觀已現身下句結光是天名是眼名境是所觀也七中一見如來身頌境界次二句頌業行眞實一滅染因二離染緣句頌不思議以證得淨妙境故八中通頌第九第十二門初半頌普現次句頌施作下句結第十天名 第十忉利天有十初中三世佛出等是九世中三現世故就機興廢通依正故所觀境下辨能觀謂於上興廢妙達勝用名決定智順理善證名念喜又用雖起盡照理湛然故云大智念喜二中二色同如功德本淨又佛現同衆生之色故云衆生色而衆生色卽如故亦名如來色從體起用名功德力結初句也不異體名爲淸淨結後句也三平等者同體故智導故不簡怨親故雲者覆空故潤益故含法水故灑雨沾機故四念佛光等過於塵筭故名衆一一皆備攝法界功德故名具足別別用皆遍法界互不相妨名爲普勢五業果差別又達彼卽如故云觀等又佛以業爲緣令機見佛爲報又衆生依佛種得善根爲業緣佛得見爲報六佛土具淨者淨寶所莊故受用滅惑故淨者所居故則本性淨故七世間緣起名無作卽眞名滅由無二故生卽滅滅卽生故經云初生卽有滅不爲愚者說一切法不生我說剎那義等佛智照此名觀八緣起毛孔現衆行法名起諸行令菩薩修名化衆生因以是因人修故修成入理名爲超念九樂有四一欲界散樂二定地樂三小涅槃樂四大涅槃大菩提大悲等樂一乘三乘等樂皆由佛得成今據初故云天樂以此是欲天故理實通又名佛爲第一義淨天是彼樂也十化諸天子一念念佛近離惡遠滅癡惑故名流通善根頌中初內初半頌三世佛出興幷大智次句頌住滅謂約佛國土下句頌念喜二初半頌衆生色如來色下半頌功德力淸淨幷結人得法又初句顯淸淨句顯二色謂所應是衆生色次句顯功德力中初句頌大慈次句頌平等次句頌蔭覆下句結人見法四中初半頌念佛普勢下半頌衆光色具足幷結五中初句摠頌業報次句頌觀半別頌善業報幷觀六中初半頌諸佛國土智正覺卽器世間故下半頌具淨謂受用淨故及結以念是天名故七中初句頌觀次句頌世間下二句頌生滅謂應機是生滅義又令智生惑滅故妙音是天名八中初句頌起諸行次句頌化衆生佛子猶因也下半頌超念及結天九中初句頌一切天娛樂次二句頌樂所因下句結人得法十中初半頌天處化下半頌流通善根惠日是天名 第十一日天子有十初惠日舒光照衆生海性窮三際以未來難知故偏擧耳稱本緣起安固攝德故云正住莊嚴又佛惠光照機令衆生盡未來際正住修行莊嚴故也二照色卽同薩婆若海又以智海照現諸色又照衆生色而知其心又照見心孔中水亦知心念令其開悟發生大智故云也頌中順此三佛爲增上緣發起衆生捨劣從勝離染功德故云轉勝又佛身出世名起衆生以佛是大身衆生故說法益生名轉勝淨德四苦行是度有二義一是到義到此因門苦行際故是過義超因得果故五無礙是智體普照是智又照一法卽現一切故云無礙無礙卽照名普照又無盡辯才名無礙演法周滿名普照中順此六佛光照機令發道意故云也七由佛光照令衆生增長善根名積集等又由佛多劫積德故得光照世間是故能照八性海具德可貴名寶應機印現依正教義故云也九巧除癡曀名開淨眼令見眞理名觀法界藏法界藏者如佛性論云云五藏等云云十多根所感五乘終竟歸於一揆以諸乘皆淨故名淨乘又亦分一爲五更無餘雜故亦云淨頌有十一初內初句頌盡未來際次句頌照十方衆生衆生世間卽器故二文互擧次句頌正住以機緣契合故句頌莊嚴二中初半頌照諸色下半頌無智海三中初半頌起衆生下半頌轉勝淸淨功德又亦可所起衆生此中略無頌四中初半頌苦行謂難行故是難行有四種一時難如經無數劫故二處難如經諸有中故三所行難如經難行苦行故四所向難如經爲衆生故下半頌樂度謂果也五中初句頌無障礙餘三頌普照六中初半頌淨日光照下半頌所照衆生身幷益相七中初句頌所照世間下竝頌能照之光及積集功德八中初句頌衆寶海下竝頌現種種色境界謂性海印機法爾顯現依正教義云法如是九中初半頌一切趣開淨眼下半頌觀法界藏十有二偈初偈頌諸衆生乘謂五乘方便也下偈頌淨謂會末歸本等又初同教別教無二故淨也 第十二月天子有十初中先以加行調伏其心次令正證名照法界又普照有三種一光照衆生令見佛故二照除癡惑此二名調衆生三照現法界令入眞理二中普觀是能觀智也一切等是所觀境也攝者以此普智會攝諸法同彼普門無不皆是普智境界三中心及境界或有心轉境不轉如十一切入等或境轉心不轉云云或俱云云又心念繁多云海是佛他心智之所緣故云境界稱根授法令捨妄喜眞名轉頌中順此四無分別智正趣眞理名爲愛樂此愛超情名不思議又正智愛證彼不思境故名也此智因佛淨法而生故云能生又世間猗等諸樂皆因佛生悉名不思議佛令衆生見二諦道理故云實見又見卽實故又見之實故又二諦三性及三無性皆有實義一一辨之六中大慈悲者佛性論云於已得苦救令脫故於將得苦護令免故苦在五識惱在意地俱拔故又救苦護樂不令失故各通因果七法喩雙擧月四奇特如下准辨八中三性觀諸法先觀依他如幻化化不託物故異幻也依他中具有力無力二義故又無體如幻有用若化眞如有空不空二義今且擧一故云空也遍計亦二義謂情有理無今約理顯故云無也九中所起有二義一由善惡業熏起本識二生起果報以從緣故卽不起然妙達此際故云善又有經本作趣者謂因趣果故及離邪趣正十照理斷疑超度惑染頌中有八偈初一頌初法門於中初三句頌調伏衆生後一句頌所照法界二中初半頌普觀攝次句頌一切諸法下句頌境界謂以所化爲境也三中初半頌衆生心海境界後半頌皆悉令轉四中初半顯所後半正明能生不思議愛樂五中初句頌令衆生次二句頌實下句頌見亦是結人得法中初分別者推求也謂推求世閒卽無性故見眞也次句業果不亡見俗也六中超頌後二法於中初半頌前第九法門可知後半頌前第七法門上句頌無癡下句頌淨月謂巧惠淸涼七卻頌第六法門可知八中初句頌第八法後三句頌第十謂初二句頌照度下句頌滅以離疑濁故云淸淨見也 第十三東方天王衆有十梵名提頭賴咤此云持國主從所領爲名此天身長半由旬衣長一由旬廣半由旬重二分食甘露以人間五十年爲一日夜亦以三十日爲一月十二月爲一歲如是壽命五百此王領二部鬼一名乾闥婆二名毘舍闍達婆此云尋香謂諸樂兒尋於他家飮食之香卽便往彼爲他作樂而得彼食故以爲名亦名食香唯食細香居十寶山中常爲諸天作樂時身有異相卽飛上天法門中初者以法音樂攝衆生又令見正道法樂自娛二福智綺繢具十種莊嚴如明法品說三中約凡順流生喜乖失生憂二乘於滅生喜於流生憂今俱令離思准四說甚深法滅除九結十使等垢五中有謂悕生天者爲說淨土調其希望希二乘者以一切智調其希望六由見佛得無盡樂故云一切樂依此脩因能攝果故名藏果稱因起名正住有用愜情故云喜光七於十方界普灑淨法八圓迴妙身普應無盡故名也廣智者橫亘十豎該五乘故也九中樹者菩提樹也佛以方便增長衆生菩提心名長養樹得果名喜勝用名光十迴動劫海是佛境所作故云行令衆生見此息苦永安名爲受樂又亦有本作愛樂令睹此起正悕望故名也頌有十偈各頌一法初中初三句頌方便謂初句多次句深後句下句頌攝衆生娛樂二中初句顯佛功德海莊嚴體次句明德相後二句辨德用三中初句頌衆生憂喜次句頌離字下二句明離所由中初半明能滅之緣次句正頌滅結使下句明滅惑因五中初半以淨土調伏後半以種智調六中初半頌一切樂下半頌喜光正住七中初半明所被機卽雨寶處頌一切方也下半明所雨寶幢是天王名也八中初半頌現妙身半頌廣智九中初三句頌長養諸樹下句頌喜十中初半頌佛境界行下半頌悉令衆生受 第十四南方天王從所領爲名餘如上辨有十初者以忍智力除慢滅諍二自他行海名一切行慈門起此故云現前又行能得果亦名現前三耶執五趣從自性等生今專明諸趣自心變起故云正也又調諸衆生正其意趣故名頌中順此四善惡平等平等者是無記也此三性卽如故云淸淨又善是涅槃淨法惡是生死染法由二俱無性融攝無礙故云平等具性德故云淸淨又由善惡二法竝堪作法輪故云平等法輪利物故云淸淨頌中順此五除癡見正名無畏令永離苦名安隱得佛淨智莊嚴六愛潤生死深廣如海愛心猛盛如火熾如燒天祠等佛以身智照令永盡故云除滅娑羅是涅槃滅愛處也七佛身普應一切諸趣依身出電光名照明音雷雨法名雲也八普者光體遍周照者光用除惑九拔苦與樂通名大遇違不改名不退轉慈門攝德多故名藏劫修此令現名起十現身遍十方名起在一切而無去來名所作又於彼攝生亦名所作中十偈各頌一法門初中初三句頌能滅鬪諍下句明益相二初半頌一切行上句自行下句利他後半頌現前上句慈能顯行下句行能現三正其意趣故令歡喜四初半頌善惡法佛力現惡故難思議次句頌平等下句頌淸淨五中初半頌衆生無畏次句頌安隱下句頌莊謂淨智也六初句頌愛海次句頌除滅下半辨益相寶樹是天名也七初句應一切趣次句方便化物名照明次句頌雲下結人得法八初句頌普次句頌照下半頌所顯現九初句頌起大慈前慈此悲文綺互耳次二句頌不退轉樂滅苦事不虛故名不退也下句頌藏謂出生淨德如花開敷十初半頌起一切趣無去來亦是所作次句亦是所作下句結無量門是天王卽是入佛海故名佛能見也 第十五西方毘樓波叉此云雜語主新名醜目領二部一富多那此云熱病鬼二一切龍依須彌藏經龍報有五種形一善住龍王爲一切象形龍王二難陁龍王此云歡喜爲一切蛇形龍王三阿那婆達多龍王此云無熱惱亦名淸涼爲一切馬形龍依謗佛經此龍王遠離諸龍三種過患一熱沙不墮其頭二不以蛇形行欲三無伽樓羅畏又擧閻浮提龍皆有四苦謂三種如上更加風吹寶衣露身生苦唯此龍王獨免斯惱故曰淸依智論此龍王是七住菩薩四婆樓那龍王此云水爲一切魚形龍王五摩那蘇婆帝龍王亦名摩那斯此云慈心亦名高意正云摩那云意斯云高謂有威德意高餘龍爲一切蝦蟆形龍又如律中說諸龍初生及死時睡眠行欲此四時不能變形餘時皆能變十中初內二釋約相滅熾燃救龍熱沙苦也濟恐怖救金翅苦二約實滅惡熾燃救惡趣因下句濟惡趣果二中四釋一能轉龍身現應機色及佛淨德名不思議二能於一念成上事故亦名不思一毛孔現亦名不思四龍身卽佛身是故佛毛孔現卽名轉龍身亦是不思也三聲演深法趣齊聞四中一示衆生德海於佛毛孔二攝衆入大功德海五德叉伽此云多舌舌有多故或由嗜語故名多舌又云名能損害者謂此龍王若起瞋時於世間人目視氣歔皆令捨命故以爲名佛智淨光救恐怖苦六於佛身現十方佛像含雨潤機名無量雲多劫嚴土名超度等七毛孔現土名安立等於中說法名分別等法稱物機故令歡喜由離染故知足故巧證故九中一約性滿等觀二約爲機齊等十衆生爲瞋蓋癡覆以悲度脫名離苦又此龍王於鱗甲中流出諸水日夜不竭濟閻浮衆生故名悲頌中非次二頌前初二法門可知三中初半頌淨法輪後頌聞聲四超頌第十法可知六頌二法可知七中初半頌現雲下半頌住壽八中初半頌安立界下半頌分別等九中初半擧往因下半頌善惡音聲皆爲度生故名平十頌前第八法門可知 第十六北方多聞主領二部一夜叉此名輕捷鬼二羅剎此名可畏鬼如羅剎女奪人精氣衆生心孔中有七渧甘水取一渧令人頭痛二渧令人心悶三渧令人身病四諦已上令人死此八部中唯緊那羅毘舍闍是畜生餘五皆鬼以夜叉羅剎力大故獨與鬼名是故上文名此爲鬼王也此有八一等觀理智也方便量智也此是能救下成救事初離惡次益善二中一普應機現勝身普濟生成勝益三中精氣有二一惡氣謂煩惱業苦以此中是法門夜叉故能除彼也二善氣依大集經說國內帝王敬奉三寶令此國中三種精氣增一地氣謂五穀熟成等二人氣謂煩惱輕薄顏貌悅澤等三善根氣謂常轉法輪三寶熾盛等此文中據生菩提分善根名生氣也四智觀佛德言歎顯法五理智觀衆生卽佛法量智照十方衆生業果故名也六中與樂有初則斥耶示正樂終則堪化令調樂七中一任持自體力用救生二持用智力救生也三謂佛福智是地持論三持中畢竟持也然此福智超過衆生是故有力能救彼也頌中順此八多劫修因因能順果故佛具十力頌中次第各頌一法二可知三中初半頌奪精氣後半頌生精氣四中初半明往昔觀歎諸聖德後半明今成已德令他觀歎五中初理智後量智六中二樂可知七中初由有力救故令福勝後惠深中初半起隨順後半明佛力也 第十七力士衆有十一示佛色身出世二一一毛孔重現光三中法身無涯名離垢起用普應名自在等四中淨音有四義謂深故廣故妙故益故皆不可量也下頌中四句如次應知五中二初處中現身後衆中說法皆有多門故云種種下頌中各以二句如次應知六中二一攝相歸眞故不入眞之餘相二從眞起用故無不入眞之餘用故名也頌中如次各二句顯可知七中移情住法名擧也實通一切就淨名天八中初功德此具因果頌中初二句因次一句果廣照是頌中後一句顯也九中現佛身土令機滅惡住善頌中初現土後現身十光雲遍世灑法寶雨故名也頌中十偈各頌一法如前可知第十八普賢衆中何故前中人人各得一法中一人具多法耶以前是摠中別故異生故是別中摠故同生故又何故前列多人此唯一以此人是形居道位德標普門彰一卽一切一切卽一以普收別故也文中有二謂直說重前中二初摠後別摠中初自分後勝進別中十門一嚴土調生此二相卽融成四句可知稱佛遍塵沙起佛德三中五位十願二行可知四中一門有一切門名普門於中現一身卽一切身名法界身身皆灑法雨故名雲也五身作諸剎名護持土於中復以三輪調化故名也六遍諸佛國大會現身名衆中現說此一乘菩薩本行名菩薩境界七中生滅是極促也三世劫是極長也一念知是知極速也此中知有三義一窮彼長短際二知彼相卽入三達彼平等性此三無二故也八菩薩根欲是能觀境界海是所觀辨此二別名分別顯此中或擧境明根擧根取境或俱顯可知九中身有二一性二用法界亦二一理二事如次二身遍二法界二界兩身自互相卽四句無礙思之十中初廣明因後入一切下明其契果又初以一言說一切名廣等也後一一門中復顯一切法名入等頌中順後釋頌中二十偈兩偈次第頌一法由因果無二法體全收故直說顯因重頌明果文綺互耳初二偈中初一嚴土後一調生二中初一詣諸佛謂見猶詣也後一起功德三中初一依位起行後一依行入證四中初二句頌普門次四句頌法界身下二句頌雲以下法雨故名教導等也五中初一頌持佛土後一方便六中初一頌衆中顯現後一菩薩境界七中二偈內各上半所知謂長短也各下半能知謂達眞也八中初一頌菩薩根欲此與長行文綺互也後明境界海九中初一體遍後一用充中初一頌廣辨菩薩法後一明入一切智又亦可通頌此中釋普賢分齊以八門明因陁羅網可以知之一理二土三身四教五法六行七時八事事卽塵等也汎論大意約文有二一但有使習煩惱染業及報竝入凡境自外入聖境中有二謂理量此二各有二法因陁羅網境界是理中量及量中之一分耳可思准之第二明海惠等內衆者顯因果同體故依正無礙故境智無二故緣起樓觀內因外果內卽外故出菩薩也文中有三初明出處二所出人興供養初中一座在樓觀內此是如來別住處二樓觀卽座如上云寶臺是也二所出中有謂標數列名結數三供養中三謂身一財後二法前中二初正供後隨所下歸靜中三大一供大二心大三田大前中二初有五謂散花燒香放光作樂雨寶如文此等皆竝是緣起法門之狀所謂行花戒香智光語音及所說法寶然亦不壞花等事相下明供分量量中初明供多後明供廣下皆大喜下明心田二大田中先佛後大衆竝可知何故外衆不辨財供此中說耶外衆財供非顯勝故內衆財供顯奇特故此別顯也下文雨供具等是通論故二意業法供中二先法後供法中二先明所得後具足下結成滿前中二初句約境標門下二句釋顯二利二約智標門下二句釋顯因果成滿於中先結因圓經云愛有二種一餓鬼二法愛如來無餓鬼愛憐愍衆生故有法愛此中妙智巧取眞理故名法愛愛卽無相名大力也後結果滿於中初句智德後句斷德又初句修成後句入理又初無常德後常德又初有後無爲也下正以供佛何故財供中通供佛及衆此中唯供佛耶顯法供深細唯佛窮第三語業供中先標人後偈讚以一一嚴具中各出海惠等衆今摠標擧諸衆之中各一上首俱名海惠同說此偈故云一切海惠等也中十九偈義分有九一初一明體淨謂境智無二三偈明相滿謂三世間故#三二偈明用勝謂初速後益也四二偈明往因深固五一偈歎衆觀無厭六四偈歎嚴座一主二香三鬘四光七二偈歎說法八二偈歎處圓滿九二偈歎佛普遍如結通等 第二大段發起序於中有初動地二興供初中三先佛力動因也花藏動處六種等動相此中四句分別一動處二動三所爲四汎明動時初中問何故此摩竭國卽云是花藏界耶准下文中通有四句一或云此界唯是娑婆此約三乘說或云卽是花藏約別教一乘辨或云花藏中娑婆界此約同教一乘說或非花藏非娑婆此約國土海平等性是故隨所說法令處差別今此文約別教說二明動相有二一六相謂中踊邊沒等中邊四方爲六也此約三乘及同教二十八相約別教及同教動是掉颺不安如風動樹依涅槃經小動名地動大動名大地動有小聲名地動大聲名大地動獨地動名地動山河樹木及以大海一切動名大地動又動名地動動時能令衆生心動名大地動此等約三乘說今此中動有三品一動謂一方二遍動謂四方三等遍動謂八方又四方八方十方又初獨一方動二十方次第動三十方同時動又大般若中名動等動等極動下五相皆准此各有下中上亦名小中大故有十八也起是搖起如麪起同性經中名作搖大般若中名擊謂加打也覺是大聲驚同性中名聲大般若名爆地論釋名上去是下聲隱隱地論名下去吼是平聲哮吼涌是涌出峯捅如泉涌等又六方踊沒謂東踊西沒又動起涌三是色餘三是聲此六皆名動者初一就勝通名餘五從別爲目如十色處同名色處初色處亦名色處三明動所爲者依勝思惟梵天經論說一令諸魔生驚怖故二令說法時大衆不起散心故三令放逸者生覺知故令衆生念法相故五令衆生觀說法處故六令成就者得解脫故七令隨順問正義故八智論云欲令衆生知一切法空無常故九古德云動其所執故十表說大法現徵祥事故又依地論依四種衆生一依不善衆生二依信種種天衆三依我慢衆生四依呪術衆生等故也四汎明動時如智論說有八時如長阿含說一大水動時二尊神試神力時三如來入胎時四出胎時五成道時六轉法輪時七息教時八入涅槃九若依增一經第二十八中更加大神足丘心得自在乃至觀地無相故動也十若依智論第十授諸菩薩記當得作佛爲天地大主地神大喜我今得主是故地動如王初位臣民慶喜稱萬歲歌儛等也又依涅槃經菩薩下生閻浮提時名大地動菩薩出家成道轉法輪般涅槃是以大地六種震動何以故菩薩下生欲色諸天及諸菩薩等悉來侍送發大音聲嘆菩薩以口風氣吹故令大地振動又菩薩是人中象王龍王龍王初入胎時有諸龍王在地或怖或怯是故大地六種振動第二興供文中二初此土後結通前中世界諸王有二義一是前所列王衆二是餘十方世界中王通是二於中初摠次別三結可知上來唯明一世界三世間自在相竟第二大段明結通十方以一會卽一切會顯教圓滿攝主伴故於中有二初牒此土三世間相後正結通前中佛坐道場者牒智正覺及器此二果德融遍十方義相顯不別釋也衆生世間同果普遍義相隱故是故別釋何故此衆能同佛果而普遍耶釋中有二初辨其所因後正同果遍前中三初定惠力故二法門力故三如來力故初中各隨已得法門分齊故名境界依三昧門不味定故不廢用故巧攝法門令普遍故名方便也欣厭是惠也法力中圓法法爾速遍諸方速令至果名勇猛菩薩證此隨法普周故云通達此同上文乘解脫力入如來海等三佛力中佛力令入佛境界中故能遍也下句結同果海度是到也徹也此等竝是上文一一所得一法門但前爲顯德據別廣陳此爲牒結就通略擧下類通可知也花嚴經探玄記卷第二乙巳歲分司大藏都監開板
  1. 1)첫째 네 자란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네 글자이다.
  2. 2)2서(序)란 증신서(證信序)와 발기서(發起序)를 말한다. 증신서란 경전의 내용이 부처님의 친설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발기서는 그 경전이 설하여지게 된 연유를 밝힌 것이다.
  3. 3)신수대장경에는 ‘묵빈(黙擯)’으로 되어 있다.
  4. 4)고려대장경에는 ‘수(遂)’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환(還)’으로 되어 있다.
  5. 5)고려대장경에는 “유욕문욕문고득문(有欲聞欲聞故得聞)”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유욕문고득문(有欲聞故得聞)”으로 되어 있다.
  6. 6)실제의 시간[實時]이란 소승은 삼세가 실제로 있다고 함.
  7. 7)불(佛)의 열 가지 뜻이라는 것은 『화엄경현담』 제9권에 “열 가지 뜻이란 첫째는 각승천고(覺勝天鼓)요, 둘째는 불유타오(不由他悟)요, 셋째는 단이무지(斷二無知)요, 넷째는 이과수몽(已過睡夢)이요, 다섯째는 비여연화(譬如蓮花)요, 여섯째는 성정무염(性淨無染)이요, 일곱째는 구족삼의(具足三義)요, 여덟째는 구족삼덕(具足三德)이요, 아홉째는 구삼실성(具三實性)이요, 열째는 자지분타지(自知分他知)이다”라고 하였다.
  8. 8)이 때의 중(重)자는 평성(平聲)이다.
  9. 9)이 때의 중(重)자는 상성(上聲)이다.
  10. 10)『열반경』 제20권에 “여래가 구사라(瞿師羅) 장자를 위하여 3척(尺)의 몸을 보이셨다”는 말이 있다.
  11. 11)흑상의 각신[黑象脚身]이란, 『관불삼매경』 제3권에서 “부처님의 상호를 관하는 사람은 사람이 거울을 잡아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이 만약 때묻고 착하지 못한 마음을 내거나 만약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범한 사람은 마치 숯쟁이[炭人] 같았다.……우바새(優婆塞) 대중 가운데 16명이 있는데 부처님의 색신을 보니 마치 검은 코끼리의 다리와 같았다”라고 하였다.
  12. 12)「십지품」 제9권에 법(法)무애ㆍ의(義)무애ㆍ사(辭)무애ㆍ요설(樂說)무애의 4무애에 각각 10문을 나누어 논하고 있다.
  13. 13)고려대장경에는 ‘상구(上句)’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전구(前句)’로 되어 있다.
  14. 14)고려대장경에는 ‘덕(德)’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탄덕(歎德)’으로 되어 있다.
  15. 15)고려대장경에는 ‘적정(適情)’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고정(高情)’으로 되어 있다.
  16. 16)고려대장경에는 ‘도풍(刀風)’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역풍(力風)’으로 되어 있다.
  17. 17)비마(毘摩, vemacîta)는 아수라의 왕으로서 제석과 싸워서 패하였다.
  18. 18)고려대장경에는 ‘폐(䏶)’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비(髀)’로 되어 있다.
  19. 19)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말한다.
  20. 20)원문에는 없으나 도솔천(兜率天)을 말한다.
  21. 21)고려대장경에는 ‘신명리욕 이리욕염고(新名離欲 以離欲染故)’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신명리욕염고(新名離欲染故)’로 되어 있다.
  22. 22)아나함(阿那含, anāgāmin)은 불환과(不還果)의 성자이다.
  23. 23)고려대장경에는 ‘상전치외(上轉癡畏)’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상치외(上癡畏)’로 되어 있다.
  24. 24)고려대장경에는 ‘염관(念觀)’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염(念)’으로 되어 있다.
  25. 25)기(器)란 기기(機器)의 뜻으로서 곧 중생의 청정한 마음이 수행의 그릇이란 뜻이다.
  26. 26)연(緣)이란 여래의 티 없는 몸이 중생의 수행의 반연이 됨을 말한다.
  27. 27)고려대장경에는 ‘겁(劫)’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일겁(一劫)’으로 되어 있다.
  28. 28)중생의 근기에 상ㆍ중ㆍ하가 있음을 말한다.
  29. 29)고려대장경에는 ‘마(魔)’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고(高)’로 되어 있다.
  30. 30)3유(有)란 욕(欲)ㆍ색(色)ㆍ무색(無色)을 말한다.
  31. 31)2아(我)란 인아(人我)와 법아(法我)를 말한다.
  32. 32)이유(理有)란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유(有)를 말한다.
  33. 33)정계(情計)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유(有)를 말한다.
  34. 34)질(質)은 이성(理性)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본질(本質)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5. 35)화광(花光)이란 화광계천(華光髻天)을 말한다.
  36. 36)각체(覺體)에 순하는 선(善)이라는 뜻이다.
  37. 37)신수대장경에는 ‘승의(勝義)’로 되어 있다.
  38. 38)신수대장경에는 ‘요달무애(了達無礙)’로 되어 있다.
  39. 39)신수대장경에는 ‘전법문(轉法門)’으로 되어 있다.
  40. 40)살바야(薩婆若)란 여기서는 일체지(一切智)라고 한다.
  41. 41)심공의 가운데 물의 빛이 검을 때는 어리석음인 줄 알고, 노랑일 때는 탐냄인 줄 알고, 붉을 때는 성냄인 줄 알고, 청백(淸白)일 때는 선(善)인 줄 알고, 표색(縹色)일 때는 무기(無記)인 줄 안다.
  42. 42)제두뢰타(提頭賴吒)란 지국천왕을 말한다.
  43. 43)건달바(乾闥婆)는 음악신이다.
  44. 44)비사사(毘舍闍)는 피와 살을 먹는 귀신[食血肉鬼]이다.
  45. 45)기궤(綺繢)란 장엄(莊嚴)의 뜻이다.
  46. 46)유(流)는 생사의 흐름을 말한다.
  47. 47)9결(結)이란 애(愛), 에(恚), 만(慢), 무명(無明), 견(見), 취(取), 의(疑), 질(嫉), 간결(慳結) 등이다.
  48. 48)10사(使)란 탐(貪), 진(瞋), 치(癡), 만(慢), 의(疑), 유신견(有身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등이다.
  49. 49)수론 외도(數論外道) 등이 자성(自性)명제로부터 제법이 전변한다고 설함을 말함.
  50. 50)3성(性)은 선(善)ㆍ악(惡)ㆍ무기(無記)를 말한다.
  51. 51)천사(天祠)는 『지도론』 제14권에 의하면 “한 어부가 왕녀를 사모함에 왕녀가 이를 불쌍히 여겨 천사(天祠)의 천상(天像) 뒤에서 밀회를 약속했다. 그러자 천신(天神)은 왕녀를 지키기 위해 어부를 잠들게 하여 왕녀의 도착을 알지 못하게 했다. 뒤에 어부가 이를 알고 비통히 여겨 음욕의 불길이 솟아 스스로를 태워 죽고 말았다”고 한다.
  52. 52)사라(娑羅)는 정사라림(淨娑羅林). 구반다천(鳩槃茶天)의 사라(沙羅)를 말한다. 세 번째 게에서 그 의취를 바르게 하는 까닭에 환희하게 함이다.
  53. 53)비루파차(毘樓波叉)는 광목(廣目)이라고 번역한다.
  54. 54)5위(位)란 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ㆍ10지(地)의 다섯 위(位)를 말한다.
  55. 55)10원(願)이란 수지원(受持願)ㆍ수행이리원(修行二利願)ㆍ성숙중생원(成熟衆生願)ㆍ불리원(不離願)ㆍ공양원(供養願)ㆍ이익원(利益願)ㆍ전법륜원(轉法輪願)ㆍ정토원(淨土願)ㆍ승사원(承事願)ㆍ성정각원(成正覺願)을 말한다.
  56. 56)『열반경』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