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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연의술문찬(無量壽經連義述文贊)

1. 저자
경흥璟興(생몰년 미상) ‘경흥憬興’이라고도 한다. 7세기 중반~8세기 초반으로 추정. 백제 웅천주熊川州 출신.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이 즉위하여 선대 문무왕의 고명顧命을 받들어 경흥을 국로國老로 책봉하고 삼랑사三朗寺에 주석하도록 하였다. 병으로 고생할 때 관음觀音을 친견하고 말을 타고 다닐 때 문수文殊가 현전하여 경계한 일화 등이 전한다. 아비달마ㆍ유식ㆍ계율ㆍ정토ㆍ반야부 등에 속한 여러 경론과 『법화경』ㆍ『열반경』 등과 관련된 저술이 다수 있다. 저술 가운데 『금광명최승왕경약찬』은 대정신수대장경간행회에 대장경 미수록본으로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서지 사항
『속장경』 제1편 32투 4책 수록본을 저본으로 『신수대장경』 제37권의 수록본과 대조, 교감. 3권.
3. 구성과 내용
정토부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무량수경』에 대한 주석서. 경흥은 자신이 대본으로 삼은 것은 서진西晉 때 법호法護가 한역한 『무량수경』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역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흥의 주석에 인용된 경문經文을 분석해 보면 그가 대본으로 삼은 것은 강승개康僧鎧가 한역한 『무량수경』과 거의 일치한다. 이 때문에 강승개 역본을 법호 역본으로 혼동했다는 설이 있지만, 본문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본서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역시 정토부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관무량수경』을 먼저 설하고 『무량수경』을 설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둘째, 대본을 밝히고 본서의 제목을 풀이하였다. 셋째, 본문을 설경인기분說經因起分(서분)ㆍ문답광설분問答廣說分(정종분)ㆍ문설희행분聞說喜行分(유통분) 등의 셋으로 나누어 풀이했다. 분과와 관련해서 먼저 열 단락으로 분과한 입장을 제시한 후 조목조목 비판하였고, 다시 『무량수경』 주석서를 남긴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이 경흥과 다르게 끊어서 삼분三分한 내용을 제시한 후 역시 낱낱이 비판하였다.
본서의 두드러진 특성은 『무량수경』을 유식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에 있는데, 유식학 관련 논서인 『불지경론佛地經論』을 주석의 근거로 삼는 점, 정성이승定性二乘은 왕생할 수 없다고 하여 법상종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에 근접한 점, 유식학의 입장에서 정토사상을 건립한 회감懷感의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이나 법상종 학자인 규기窺基의 『법화현찬法華玄贊』 등에 실린 내용을 비판 없이 인용하고 있는 점 등이다. 정성이승은 왕생할 수 없다고 하는 견해는, 현일玄一ㆍ원효元曉ㆍ의적義寂 등과 같은 신라의 정토 관련 저술을 남긴 학자들이 모두 정성이승의 왕생을 허용한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