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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론기(瑜加論記)

1. 저자
둔륜遁倫(생몰년 미상) 최근 연구에서는 ‘도륜道倫’이 바른 이름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확정되지는 않았다. 『유가론기瑜伽論記』에 신라 승이 많이 열거되는 점, 그 찬자 항목에 ‘해동흥륜사사문도륜집찬海東興輪寺沙門道倫集撰’이라고 한 점 등에 근거해서 신라 출신의 승려로 간주한다. 대략 650년에서 60~70여 년 정도 생존했거나, 경흥璟興과 태현太賢 중간에 위치하는 660~730년경의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2. 서지 사항
『신수대장경』 제42권 수록본을 저본으로 삼아, 금릉각경처본金陵刻經處本 및 속장경본과 대조, 교감. 『신수대장경』의 저본은 1733년에 발행되어 일본 슈쿄(宗敎)대학에 소장된 문헌이다. 전체 2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락 부분은 없지만, 송장유진宋藏遺珍에 수록된 『유가론기』와 대조해 보면 오탈자가 적지 않다.
3. 구성과 내용
둔륜의 『유가론기』 20권은 『유가사지론』 100권 전체에 대한 주석서이다. 『유가론기』의 전체 내용은 여섯 문으로 되어 있다. 첫째 문은 「서소위敍所爲」로서, 『유가사지론』을 지은 목적을 밝힌 것이다. 둘째 문은 「창소인彰所因」으로서, 처음 무착無著보살이 이 논을 짓게 된 유래와 현장玄奘 등에 의해 번역되기까지의 사연을 밝힌 것이다. 셋째 문은 「명종요明宗要」로서, 유가행자들이 수습해야 할 ‘17지地’가 이 논의 핵심 내용임을 밝힌 것이다. 넷째 문은 「현장섭顯藏攝」으로서, 이 논이 소속되는 장은 보살장아비달마菩薩藏阿毘達磨임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문은 「해제목解題目」으로서, ‘유가사지론’이라는 복합어를 어원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여섯째 문은 「석본문釋本文」으로서, 본격적으로 본문을 해석한 것이다.
둔륜에 따르면, 삼분과경三分科經의 학설에 따를 때 이 논에는 서분序分과 유통분流通分은 없고 정종분正宗分만 있다. 또 정종분은 크게 「본지분本地分」ㆍ「섭결택분攝決擇分」ㆍ「섭석분攝釋分」ㆍ「섭이문분攝異門分」ㆍ「섭사분攝事分」 등 다섯 분分으로 되어 있다. 이 중 ‘17지’에 대한 본격적이고 상세한 설명이 진술된 곳은 「본지분」이고, 둔륜의 해석도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유가사지론』은 17지로 나누어서 삼승三乘이 배우고 닦는 경境과 행行, 그리고 그에 의해 획득되는 과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방대한 교리서이기 때문에 『유가론기』 또한 그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도 매우 복잡하다. 17지에 대한 둔륜의 기본 해석은 그것을 경境ㆍ행行ㆍ과果의 구조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등 앞의 아홉 지는 삼승三乘이 학습해야 할 경境에 해당한다. 다음의 여섯 개는 행行에 해당하는데, 그중에 문소성지聞所成地 등 세 지는 삼승이 공통적으로 닦는 행行이고, 성문지聲聞地 등 세 지는 성문聲聞과 독각獨覺과 보살이 각기 별도로 닦는 행이다. 마지막의 유여의지有餘依地와 무여의지無餘依地는 앞의 경ㆍ행에 의해 획득되는 과果이다. 본문이 방대하기 때문에 둔륜의 주석에서는 가급적 축자적 해석을 지양하고, 대개 본문의 요지를 밝힌 다음에 특정 주제나 문구와 관련된 쟁점과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규기窺基의 『유가사지론약찬瑜伽師地論略纂』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또 당대 유식학자들의 다양한 학설들을 총망라하여 집대성한 것인데, 특이한 점은 경사景師ㆍ비사備師ㆍ측사測師 등 신라 승려로 추정되는 학자들의 학설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당대 유식 제가의 학설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문헌이 산실된 신라 출신 유식학자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