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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海東曹溪宓庵和尙雜著)

1. 저자
복암 충지宓庵冲止(1226~1292) 속명은 위원개魏元凱. 법명은 법환法桓이었는데 충지로 바꾸었다. 전남 장흥 출신. 아버지는 위소魏紹이며, 어머니는 원방 대부인原邦大夫人 송씨이다. 탑호는 보명寶明이며, 시호는 원감 국사. 9세에 경서經書와 자사子史를 외웠으며, 19세에 회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그 뒤 금직옥당禁直玉堂 등의 벼슬을 하다가 29세에 출가하여 조계 5세 원오 국사圓悟國師 문하에 들었다. 1286년 6월에 수선사修禪社의 제6세가 되었다.
2. 서지 사항
발행 사항 미상. 목판본. 2권 1책. 26.5×17.5cm. 고려 말 개간이고 조선 초기 후쇄본이라는 견해와, 조선 세종 29년(1447)에 전라도 나주목에서 『원감국사가송』을 판각했을 때 함께 간행한 판본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보물 제 1459호로 지정.
3. 구성과 내용
발행 사항 미상. 목판본. 2권 1책. 26.5×17.5cm. 고려 말 개간이고 조선 초기 후쇄본이라는 견해와, 조선 세종 29년(1447)에 전라도 나주목에서 『원감국사가송』을 판각했을 때 함께 간행한 판본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보물 제 1459호로 지정.표表 5편과 소䟽 47편, 편지 6편, 기타 6편으로 구성되었다. 표문은 5편인데, 국왕과 원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이 수록되었다. 소문은 47편으로 불교 의례 소문에 해당하며, 축수재ㆍ축성수ㆍ발원문ㆍ경찬ㆍ천도 등이다. 축수 의례는 국왕의 생일에 복을 비는 행사로서, 축성수재祝聖壽齋ㆍ축성祝聖ㆍ축상祝上 등으로 불리지만 동일한 불교 의례이다. 특히 충지는 요나라의 단본대장경을 보수하여 송광사로 이안하면서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불교 의례 경찬소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편지 6편은 관료와 승려에게 보낸 서간문이며, 청주 현암사玄巖寺에서 충청도 지휘사 곽 상서郭尙書에게 보낸 글 등이다. 끝으로 제문 4편과 안거원문安居願文 2편이 수록되었으니, 〈충경왕사제문冲鏡王師祭文〉과 〈감로사기사년동안거원문甘露社己巳年冬安居願文〉 등이다.<개행>충지의 『원감록圓鑑錄』은 일찍이 여러 문헌에서 간단히 기록은 되어 왔으나, ‘원감록’, ‘원감국사어록’, ‘복암집’,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 ‘원감국사가송’ 등 명칭에 있어 차이가 있고, 내용은 명확하지 않다. 이 가운데서 『원감국사가송』 및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 2책만이 전하고, 나머지 3책의 소재는 분명하지 않다. 본서는 충지의 문집 중에 잡저雜著만을 간행한 유일본이다. 『한국불교전서』 제6책에 수록된 『원감국사가송』이 충지의 시문을 중심으로 13세기 불교계의 상황, 사회상, 국가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면, 본서는 소문, 표문, 서간문을 통하여 『원감국사가송』의 속집의 표문과 소문을 보충하는 한편, 고려시대 원나라 간섭기에 충지의 대원 인식을 추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