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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룡집(義龍集)

1. 저자
의룡 체훈義龍體訓(1822년경~1895년경) 19세기 후기에 범어사에 주석하며 시를 짓고 여러 불사에 기문을 쓴 스님으로 필사본 원고인 『의룡집義龍集』을 남겼다. 문집에 서문ㆍ발문이나 행장이 수록되지 않았고 다른 비문도 남아 있지 않아 작가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어렵다. 다만 문집과 『범어사지』를 참고할 때 대사는 침송 계언枕松戒彦(19세기 중후반)의 제자로서 대사의 법제자나 법손들이 1900년대 초 범어사의 근대적 불교 개혁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그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
2. 서지 사항
대성암大聖庵, 1895년(고종 32) 발행. 필사본. 1책.
3. 구성과 내용
대성암大聖庵, 1895년(고종 32) 발행. 필사본. 1책.시詩는 138편으로 칠언율시가 대부분이고, 제목마다 바로 밑에 그 시에 쓰인 운자韻字를 모아 놓았다. 문文은 글의 형식에 따른 분류가 이루어져 있지 않고 뒤섞여 있다. 문장 형식에 따라 분류하면, 기문記文 22편, 모연문募緣文 10편, 상량문上樑文 2편, 축문祝文 1편, 서序 2편, 등장等狀 1편이다.<개행>시편들은 감회시感懷詩와 영물시詠物詩, 유가들과 수창酬唱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소상瀟湘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소상팔경瀟湘八景〉 8수와 부처님의 탄생에서 열반까지를 읊은 〈영산팔상靈山八相〉 8수가 실려 있다.<개행>문文은 범어사梵魚寺와 그 말사에 관한 글이 많다. 〈폐막조건기弊瘼條件記〉는 당시 범어사가 직면한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산송山訟에 관한 일이다. 범어사는 지리적인 요지에 위치하여 사람들이 몰래 무덤을 쓰는 일이 많았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했다. 둘째는 경작자와 세금에 관한 문제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범어사에 금정산성金井山城을 축조하게 하고 승군僧軍을 두었다. 그 비용을 전답田畓을 주어 충당하게 하였지만 경작자와 세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사찰이 어떤 방식으로 경제 운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개행>〈임오갑헌답유공기壬午甲獻沓有功記〉와 〈종계서宗契序〉를 통하여 사찰에서 성행하던 계契의 성격과 역할을 알 수 있다. 〈범어사승군등장梵魚寺僧軍等狀〉은 이두吏讀가 섞인 소장訴狀 형식의 글로서, 승군의 역사와 문제점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