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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엄유고(草广遺稿)

1. 저자
초엄 복초草广復初(생몰년 미상) 석전 정호石顚鼎鎬(1870~1948)가 을축년(1925)에 쓴 〈초엄유고서草广遺稿叙〉에 따르면 복초는 헌종ㆍ철종 시기에 활동했고, 또한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1824~1894)에게 경사經史를 배우고, 고환古懽 강위姜瑋(1820~1884)에게서 시도詩道를 배웠다 한다. 『초엄유고』에 근거할 때 이 밖에도 계차契此, 삼화三花, 장백 노인長白老人, 태옹蛻翁 등의 별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엄유고』 두주頭註에 따르면, ‘소태小蛻’라는 호를 가진 보연普淵이 혹시 복초의 이명異名이 아닐까 밝혀 놓기도 하였다.
2. 서지 사항
발행지 미상, 1925년경 필사. 필사본. 불분권 1책. 24.8×17.6cm.
3. 구성과 내용
발행지 미상, 1925년경 필사. 필사본. 불분권 1책. 24.8×17.6cm.권1에는 문文 15편이 실려 있고, 권2에 칠언율시 26편, 오언율시 4편, 칠언절구 8편, 오언절구 1편 등이 실려 있다. 문은 상량문上樑文과 서문序文이 비교적 많고, 시는 경향 각처를 다니며 느낀 소감을 위주로 하고 있다.<개행>특히 저자는 꿈이 현실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특징적이다. 이를테면 저자의 자서전인 〈삼화전三花傳〉에서는 남해 대사가 꿈속에서 준 꽃 세 송이의 의미를 중시했고, 〈지리산문수암기智異山文殊庵記〉와 같은 작품에서는 문수암을 지은 섭률攝律이 꿈에서 만난 늙은 비구가 예언했다는 몇 명의 조력자들의 존재와 그 의미를 추적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삼았다.<개행>현전하는 『초엄유고』의 시문은 매우 적은데, 이는 저자가 작품을 모아 두지 않은 까닭과 함께 승려가 문장 창작을 숭상하지 않았던 당대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서문에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 중에서 〈과공민왕릉過恭愍王陵〉, 〈만월대滿月臺〉, 〈대흥사완월루大興寺玩月樓〉 등 세 수의 칠언절구는 『대동시선大東詩選』(1918)에도 뽑혀 실려 있다. 창작 시기가 드러난 작품은 〈청운장로상찬유서聽雲長老像讚有序〉와 〈지리산문수암기〉 등 두 작품인데, 여기에 밝혀진 창작 연대인 기사년은 바로 1869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