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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朝鮮佛敎)

   
《조선불교朝鮮佛敎》는 일제 침략의 선발대로서 한국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던 일본불교의 각 종파가 후원하였던 불교계 외곽단체로 이해되는 조선불교단朝鮮佛敎團에서 간행한 기관지로서 편집 겸 발행인은 중촌건태랑中村健太郞이었다. 1924년 5월에 창간되어 현재는 1936년 6월 발행의 제 121호까지 전하고 있으며, 일제 말기까지는 팜플렛 형태로나마 간행되었다고 하나 그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한글과 일어를 병용하였으나, 13호부터는 일본어 전용으로 변경되었다.
조선불교단의 연원은 1920년의 ‘조선불교대회朝鮮佛敎大會’라는 단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불교대회는 친일파 한국인과 한국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던 불교계 일본인들이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 결성한 불교 외호단체였다. 주로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 강연회 개최 위주의 사업을 전개하였던 조선불교대회는 1924년경에 가서는 그 조직체를 재단법인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조직의 일대 혁신을 기해 그 이름을 ‘조선불교단’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조직의 확충이라는 여세하에서 나온 기관지가 바로 《조선불교》인 것이다. 조선불교단의 출범은 1925년 5월이었지만, 그 1년 전에 조선불교가 창간되었기 때문에 《조선불교》의 창간은 그 조직을 재단법인으로 본격 논의하면서 나왔던 것이다.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조선불교단의 간부는 이전 조선불교대회 당시와 같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공동 참여하였다. 또한 이 단체에서도 이윤용, 한창수, 권중현, 이완용, 박영효 등과 같은 친일파가 그 전면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 지부조직을 설치하였으며 심지어는 일본 국내에도 지부를 설치하였다. 조선불교단의 목적은 그 단체의 단칙團則에 ‘재내지조선인교화선도在內地朝鮮人敎化善導’라는 것에서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곧 일제 식민통치에 한국인들을 순응시키겠 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 이는 조선불교지의 강령綱領에 ‘국민정신의 작흥作興을 기함’이라고 한 것에서도 그 동질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조선불교단에서는 강연회 및 강습회의 개최, 일본 시찰단 파견, 일본 유학생 선발 및 교육, 교화 사업 등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포교사업이었다. 요컨대 식민통치에 불교를 활용하여 한국인들을 순응케 함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선불교단의 여러 활동은 당시 일제 당국자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음은 분명하였고, 또한 속성상 일제와 동질적인 일본불교 종파들의 후원도 매우 많았음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불교》지에는 위와 같은 조선불교단의 조직, 활동, 성격 등 전반적인 상황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불교》는 조선불교단의 여러 활동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 조선불교단을 매개체로 활용하여 한국인을 식민통치에 이용하려 한 일제의 불교정책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침략하여 포교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불교 각 종파들의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전하고 있다. 요컨대 일제 식민지 불교정책을 연구함에 있어서의 절대 필수불가결의 자료라고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잡지에는 조선불교단에 관여한 이완용, 권중현을 위시한 친일파들의 개요와 그들의 움직임을 통하여 부일배들의 연구의 지평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초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잡지의 기획기사 및 휘보 등에는 당시 한국불교계의 제반 움직임도 간혹 전하고 있어 일제하 불교사 연구에 있어서 자료의 한계를 보충할 수 있는 면도 적지 않다는 것을 부연하고자 한다. 또한 조선불교단의 개요 및 성격은 김순석金淳碩의 〈조선불교단 연구朝鮮佛敎團 硏究〉(한국 독립운동사연구 9집, 1995)를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