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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불교(慶北佛敎)

《경북불교慶北佛敎》는 경북불교협회에서 간행한 월간신문으로, 1936년 7월에 창간되었으며 현재까지는 1941년 7월의 48호가 전하고 있다. 경북불교협회는 고운사, 동화사, 기림사, 은해사, 김룡사 등 5개 사찰의 간부들이 1935년 일본 시찰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결성하였다. 경북불교협회가 시찰 종료 후 협회를 조직한 목적이 포교활동 강화 등의 불교의 대중화를 기하려는 바에서 출발하였기에, 《경북불교》의 간행의 성격도 동질적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경북불교》의 발행처는 경북불교협회였고, 편집 겸 발행인은 그 협회 서무 주임이었던 강유문이 겸임으로 담당하였다. 고운사 출신인 강유문은 중앙불전 졸업 후 일본유학을 다녀온 인물로서, 당시 불교청년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런데 1937년 중반에는 강유문이 중앙불전의 강사로 가게 됨에 따라, 그 후임으로 김해윤이 취임하여 제13호(1937. 10)부터 발행의 책임을 맡았다.
《경북불교》는 경북불교협회의 각종 정황, 그 협회 가입사찰의 동정 등의 1930년대 중반 이후 경북지방의 불교계 동향을 이해함에 필수적인 자료라 하겠다. 그러나 이 신문은 당시 중앙불교계의 움직임도 다수 전하고 있어, 그 사료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당시 중앙불교계의 불교지는 《불교佛敎》와 《불교시보佛敎時報》가 있어 불교계의 언론활동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언론지들이 보도하지 못한 사실도 《경북불교》에 소개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북불 교협회 동정 등 경북지방 불교계 동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전개발 운동, 불교청년운동, 이구오팔회二九五八會, 재단법인 회의, 육식대처론肉食帶妻論(연재물), 일제의 황민화 정책 등은 바로 그 실례라 하겠다. 요컨대《경북불교》는 일제하 불교계 관련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사료의 보고寶庫라 함도 무리한 지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