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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교((新)佛敎)

《신불교新佛敎》는 1924~1933년에 간행된 《불교佛敎》지의 속간지로서 일반적으로 《신불교》로 지칭되어 왔으나, 정식 잡지명은 《불교》였다. 1933년 7월 이후 휴간되었던 불교지는 4년 동안 속간되지 않았다가, 1937년 3월 1일 속간되었다. 불교지가 휴간되어, 불교계에서는 정식의 보도기관이 부재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1935년 중반에는 《불교시보佛敎時報》가 나왔으나, 교계의 기관지로서의 보도매체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교계의 모순을 극복하고 불교지가 속간된 것은 재단법인 중앙교무원에 의해서가 아니고 ‘경남이본산종무협회慶南二本山宗務協會’에 의해서였다. 경남삼본산 즉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는 본산 운영 및 불교계 진로에 대한 제반 문제를 공동 해결한다는 취지 아래 경남삼본산협회라는 상설기관을 두어 운영하였다. 그 협회는 3본산 공동의 사업(총무, 의식, 포교, 교육 등) 그리고 경남지방 불교계의 협조를 기하였지만 나아가서는 전 불교계 진로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대처해 왔다. 그러한 움직임의 결실이 예컨대 ‘역경원’ 사업은 그를 예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신불교는 1937년 3월 1일에 속간 제1집을 내고 1944년 12월 1일에 간행된 67집까지 나왔다. 이에 신불교는 경남삼본산협회에서 그 경영의 책임을 맡고, 간행소는 불교사에서 담당하였다. 그리고 편집 및 발행의 책임은 허영호許永鎬, 김삼도金三道, 임원길林原吉(임석진林錫珍) 등이 담당하였으며, 한용운韓龍雲은 불교사 고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편집의 원칙은 이전 《불교》지와 거의 같았다. 그런데 이 신불교지는 19집을 내고 1939년 일시 휴간된 후, 1940년 1월에 속간되었으며, 1941년 10월호인 31집부터는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사 태고사의 기관지로 전환되었다. 이는 불교계 통일운동의 산물로 등장한 조계종총본사 태고사가 불교계의 대표기관이 되면서 당시 일제 당 국도 불교계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이 결정은 1941년 6월 6일의 임시 중앙종회의 결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편집에는 ‘조선불교조계종 종보朝鮮佛敎曹溪宗 宗報’가 총본산 태고사 종무원의 이름으로 매집마다 첨부되면서, 종무일지도 함께 게재되었다.
이 잡지의 특성은 조계종의 기관지가 되었기에 1940년대 불교계 종단인 조계종의 동향을 살피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의 자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더욱 기억해야 할 것은 조계 종 종단이 결과적으로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굴절, 좌절되었기에 ‘친일불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당시 불교계의 사정 및 현실인식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