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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제법본무경(佛說諸法本無經)

1. 개요
이 경은 반야 공의 입장에서 대승의 중도실상을 설한 경전으로, 모든 법은 본래 없다고 가르친다. 이 경의 산스크리트경명은 Sarvadharmapravṛttinirdeśa Sūtra이고, 티벳어경명은 Ḥphags pa chos thams cad ḥbyuṅ ba med par bstan pa shes bya ba theg pa chen poḥi mdo이다.
2. 성립과 한역
중국 수(隋)나라 때 사나굴다(闍那崛多, Jñānagupta)가 595년에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한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이역본으로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이 있으며, 고려대장경에 들어 있지 않은 이역본으로 『불설대승수전선설제법경(佛說大乘隨轉宣說諸法經』(T-652)이 있다.
4. 구성과 내용
이 경은 전체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은 모든 법은 본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즉 반야 공의 입장에서 불교의 모든 실천 덕목을 부정하고 대승의 궁극인 중도 실상을 설하는 것이다.
상권은 부처님이 왕사성 독수리봉에 머물 때, 사자유보(師子遊步) 보살이 법을 청한다. 그는 모든 것이 없다고 하니 견해가 어떻게 그대로 보리이며, 교만과 성냄과 질투와 탐욕이 어떻게 그대로 보리이고, 모든 법이 어떻게 열반과 같고 해탈과 같은가 등의 질문을 한다. 부처님은 초업(初業) 보살들이 공견, 무상견, 무원견, 무생견, 무유견, 무상모견(無相貌見), 열반견, 불타견, 보리견 등을 들으면 단견과 상견에 떨어지므로 초업 보살들 앞에서 이들 견해를 설하지 말 것을 먼저 당부하고 게송으로 설한다. 만일 보리를 깨닫고자 한다면, 탐욕의 허물을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중생의 성품이 보리이고, 보리의 성품이 중생이기 때문이다. 번뇌도 없고, 중생도 없고, 그 속에 부처도 없는데, 없는 법을 분별한 뒤 범부는 내가 부처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보리를 구하고자 하면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으며, 보리와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질 것이다. 계를 지키는 것과 계를 파하는 것은 하나의 모습이다. 문자에 집착하는 것은 범부의 깨달음이므로, 소리의 자성을 알지 못한다. 모든 말이 하나의 말인 것을 안다면 이름 또한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법을 소리로써 말하지만 모든 법이 한 모습이라는 도에 들어가면 무상 법인을 증득한다. 이와 같이 설하고 부처님은 제바달다가 선근을 갖추었으나 선근이 끊어져 지옥에 떨어진 것은 이러한 법도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정선행 비구와 선행의 비구의 예를 들어 보살의 행위는 오직 중생들을 교화에 있을 뿐, 지계와 훼계(毁戒)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설한다.
중권에서 문수사리가 보살은 어떻게 하여야 업장(業障)이 깨끗해지는가를 묻자, 부처님께서 설한다. 보살이 모든 법에 업도 없고 보도 없음을 알고, 중생이 바로 열반계임을 알면 업장이 깨끗해진다. 4성제를 바로 보지 못하는 중생은 유전(流轉)한다. 중생이 유전하는 이유는 나 즉 아(我)와 나의 것 즉 아소(我所)에 집착하기 때문이므로 계를 갖추고 청정한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4성제, 4념처, 8분도, 5근, 7각분을 바르게 보는 자는 도피안자이다. 이어서 부처님은 모든 법이 종자구(種子句)와 계라구(雞羅句)가 됨을 설한다. 중생들의 일심(一心) 등 모든 것은 부처가 되는 성품인 종자구인 동시에, 모든 법은 경계가 없고, 멸함이 없고, 주함이 없으므로 계라구, 즉 부동상(不動相)이다.
하권은 부처님과 문수사리가 문답 형식으로 중생의 계라구에 대하여 설한다. 모든 중생이 보리에 이르게 되는 것은 변지(遍智)에 의한 것이며, 변지를 갖춤은 모든 중생이 보리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 등이 부동상이다. 이때 연화 유희 지통 천자가 음성으로 지혜에 들어가는 법을 청하자, 부처님은 보살이 탐욕이라는 소리에 대하여 허물이나 죄라는 생각을 하고, 탐욕을 여의는 소리에 대하여는 찬탄하며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불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설한다. 이에 문수사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희근 보살과 승의 비구의 일화를 통하여 보인다. 희근 보살은 선악의 분별심을 갖고 있는 승의 비구에게 중생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이며, 일체의 집착과 교만은 모두 불법의 참된 뜻이 아님을 게송으로 설한다. 끝으로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이 법의 근본은 설제법부전(說諸法不轉)이라 이름하고 받아 지킬 것을 당부한다. 이상과 같이 반야 공에 입각한 부정의 논법으로 대승의 정신을 펼쳐 보이며, 부동상과 일상실상(一相實相)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후대에 화엄학과 천태학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