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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中阿含經)

1. 개요
이 경전은 동진(東晋) 때 승가제바(僧伽提婆)가 60권으로 번역한 것으로 산스크리트어로는 Madhyamagama(sutra), 팔리어로는 Majjhimanikaya라고 한다. 4부 아함의 하나로서 팔리어의 중부에 해당한다. 이 경을 ‘중아함’이라고 하는 이유는 『장아함경』처럼 긴 경도 아니고 『잡아함경』의 소경처럼 짧지도 않기 때문이다.
2. 성립과 한역
4부 아함은 원시불교 시대부터 부파불교 시대까지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구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문서화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각 부파마다 그 내용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잡아함경』은 계빈국의 정통 설일체유부의 송본(誦本)이고 『중아함경』은 그 방계인 건다라(犍陀羅) 지방 유부(有部)의 송본으로 추정된다.
한역은 동진 시대에 승가제바(僧伽提婆, Gautama Sanghadeva)가 397년 12월에서 398년 7월에 동정사(東亭寺)에서 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이역본은 도거륵국(兜擧勒國) 사문(沙門) 담마난제(曇摩難題)가 번역한 『중아함경』 59권과 부분 이역본 60여 부가 있다.
4. 구성과 내용
한역 『중아함경』은 전 60권 18품(品) 222경(經)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팔리경전 『중부(中部)』에는 152경이 수록(收錄)되어 있는데, 한역 222경에서 98경만 남전의 중부와 내용이 일치한다.
『중아함경』은 내용상 4성제(聖諦)ㆍ8정도(正道)ㆍ12연기(緣起) 등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법을 한다. 제17 「가미니경(伽彌尼經)」에서는 8정도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제31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에서는 4성제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자세히 드러내고 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에게 있는 정행설법(正行說法)이 바로 4성제이다. 여기서 정행설법(正行說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닦아야 할 바른 행업(行業)에 대한 설법을 말한다. 제221 「전유경(箭喩經)」에서는 독화살을 뽑아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4성제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 즉 법(法)의 요지가 무엇인 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방일함을 경계하고, 참괴심(慙愧心)을 지녀야 하는 이유 등 수행의 기본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장아함경』에서 간략한 법수(法數)로만 소개되었던 법들, 예를 들면 4념처(念處)ㆍ4무량심(無量)ㆍ16심(心)ㆍ5하분결(下分結)ㆍ10선계(善戒) 등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한다. 제98 「염처경(念處經)」에서는 부처님께서 4념처 수행에 대하여, 제79 「유승천경(有勝天經)」에서는 아니룻다 존자가 4무량심과 사람들의 근기의 차이에 대해서 설한다.
『중아함경』에는 부처님을 대신하는 제자들의 설법도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한 직제자들도 전법자(傳法者)로서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제121 「청청경(請請經)」에서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존자에게 “너는 진실한 지혜를 성취하였다. 마치 전륜왕의 태자가 부왕의 가르침을 빠뜨리지 않고 그 전하는 바를 받아 숭배하고 능히 다시 전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사리자여, 내가 굴리는 법의 수레바퀴[法輪]를 네가 다시 능히 굴렸다.”고 분명히 인가하고 계시다.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 4성제를 간략히 설하시자 사리불 존자는 다른 제자들을 위하여 4성제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제31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에서도 먼저 부처님께서 4성제를 말씀하신 후, 사리불 존자가 이를 자세히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제21 「등심경(等心經)」에서는 내결(內結)과 외결(外結)에 대한 사리불 존자의 설법이 먼저 있은 후 나중에 부처님께서 이것을 인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31 「항마경(降魔經)」은 마왕(魔王) 파순(波旬)을 교화하는 목련 존자의 설법만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이외의 다른 경에서도 부처님을 대신하는 전법자(傳法者)의 역할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중아함경』에서 특기할 만한 소경으로 제116 「구담미경(瞿曇彌經)」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비구니 승단이 구성된 과정과, 비구니 스님들이 지켜야 하는 8존사법(尊師法), 그리고 정법 5백 년 존속 등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여인의 출가를 원하지 않으셨지만 대애도 고타미의 은혜를 생각하여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시되, 그 조건으로 비구니가 지켜야 할 8존사법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후에 8존사법의 여덟 번째 조항, 즉 “비구니는 구족계를 받고서 백세가 되었더라도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향하여……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문안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하여 대애도 고타미는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 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인의 출가로 인하여 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부처님의 정법이 5백 년 앞당겨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경에서는 전하고 있다. 이 경은 분명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판하기에 앞서 그 당시에 여성을 남성과 함께 출가수행자로 인정하고 있는 종교가 없었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하고, 그리고 나서 출가수행자의 일원으로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현대적 함의를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 세부적인 면에서 주의할 점은, 『중아함경』의 연기설은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연기설과 구별하여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용어에 있어서, 12연기의 지분支分 가운데 촉(觸)ㆍ수(受)ㆍ취(取)를 각각 갱락(更樂)ㆍ각(覺)ㆍ수(受)로 표현하고 있다. 형태적인 면에서는, 제97 「대인경(大因經)」에서 나타나듯이 12연기설 외에 12지(支)를 다 갖추지 않은 형태, 12지가 다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 다른 지(支)를 첨가 한 형태, 12지가 완비된 형태에 다른 지(支)를 첨가한 형태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중아함경』의 연기설에는 4념처(念處)ㆍ7각의(覺意)ㆍ8정도(正道)와 같은 실천적인 교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종합적이며 실천지향적인 면모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실천지향적인 면모는 『중아함경』의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방일을 경계하고, 참괴심을 지니고, 계를 반드시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설법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42 「하의경(何義經)」, 제43「불사경(不思經)」, 제47, 48 「계경(戒經)」, 제82 「지리미리경(支離彌梨經)」에서 우리는 지계(持戒)의 참뜻을 배울 수 있다. 계(戒)를 지닌다는 것은 사람이 뉘우칠 만한 허물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허물을 범하지 않으므로 후회하지 않게 되고, 마음이 즐거워하며 기뻐하게 되고, 나아가 쉼[止]과 안락을 얻어 선정에 들게 되고, 선정에 들면 ‘있는 그대로를 보고[見如實] 있는 그대로를 알게[知如眞]’ 된다. 이러한 여실지견(如實知見)을 통하여 싫어하여 욕심을 떠나서 해탈하게 된다. 고통을 끊고 해탈하여 다시 윤회를 되풀이하지 않게 되는 그 첫걸음이 바로 계를 지키는 것에 있음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계는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계를 지키지 않고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나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중아함경』에서는 출가수행자뿐만 아니라 재가수행자를 대상으로 한 설법도 들어있다. 제126 「행욕경(行欲經)」에서는 재가자가 재물을 구하고 쓰는 열 가지 형태를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구하여 절약하여 쓰며 만족할 줄 알고, 부모ㆍ형제와 다른 이들을 위하여 유익하게 사용하고, 참다운 사문을 공경하고 공양하고, 나아가서는 그 재물에 대한 집착을 끊어 초탈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제128 「우바새경(優婆塞經)」에서 5법을 지키고 4증상심(增上心)을 얻은 재가자는 수다원(須{陀洹)을 얻어서 천상계와 인간계에서 일곱 번 태어난 뒤에 반드시 괴로움의 끝을 볼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수기하고 계신다. 5법을 지킨다는 것은 5계를 지킴을 말하고, 4증상심을 얻는다는 것은 불ㆍ법ㆍ승ㆍ계를 간절히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출가의 어려운 문을 넘지 못한 재가수행자라 할지라도 마침내는 고통의 종식,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수기인 것이다.
이 경은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4부중을 이루고 있는 재가수행자의 기본적인 요건이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5계를 지키는 것임을 역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202 「지재경(持齋經)」에서는, 재가수행자가 계를 지킴에 있어 그 실천적인 방식으로 8관재계(關齋戒)를 시설하고 있다. 높고 큰 평상을 버리고, 갖가지 장신구와 화장품으로 몸을 치장하기를 버리고, 하루에 한 끼만을 먹는 일종식을 지키는 세 가지를 5계에 더하여 여덟 가지로 재계의 내용을 시설하여 꼬박 하루 동안 받아 지키도록 권하고 있다. 또한 제15 「사경(思經)」에서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3업(業)의 상세한 내용과 4무량심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제133 「우바리경(優婆離經)」에서는 자이나 교도인 우바리 거사를 대상으로 하여 3업 가운데 의업(意業)이 가장 무거운 이유를 자세히 드러내고 있다. 부처님에게 설복당한 우바리는 즉시 삼보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자신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실을 널리 알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바리에게 이를 드러내지 말고, 잠자코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권유하시며, 부처님의 비구 승단 이외에 다른 외도 수행자들이 오더라도 똑같이 공양을 올리기를 권유하셨다. 당시의 다른 외도들과는 정반대되는 자비롭고 평등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오늘날의 재가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교설에 집중하고 있는 『중아함경』의 내용적 특징은 이외에도 다른 소경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제147 「문덕경(聞德經)」에서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다.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열심히 공부하는 까닭은 그 마음을 쉬게 하여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다. 사람의 근기와 노력의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작게는 마음이 평안해지는 공덕이 있고, 크게는 구경열반(究竟涅槃)을 얻게 됨을 다시 되살리고 있다. 제200 「아리타경(阿梨吒經)」에서는 법을 구하는 올바른 방법을 설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아리타 비구를 꾸짖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뱀을 잡을 때 꼬리를 잡음으로써 뱀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고 경계하고 계신다. 더 나아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을 버려야 함에도 방편에 집착하여 뗏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르고 완전하게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법조차도 집착하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