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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1. 개요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법(法, dharma)과 율(律, vinaya)로 나뉘고, 장(藏, pitaka)으로는 경장(經藏, sutrapitaka), 율장(律藏, vinayapitaka), 논장(論藏, abhidharmapitaka)의 3중(重)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법을 체계적인 형태로 모아 놓은 것이 경장이고, 승가에서 지켜야할 계율을 담고 있는 것이 율장이며, 경의 가르침을 깊이 연구하고 체계화한 것이 논장이다.
이 가운데 경장은 남방의 빨리어 전승에서는 니까야(nikaya) 즉, ‘부(部)’라고 부른다. 또한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의 5개의 부(部)로 나누고 있다. 북방 산스크리트어 전승에서는 경장을 아가마(agama, 阿含), 즉 ‘전승된 것’이라고 부르며,『장아함』,『중아함』,『잡아함』,『증일아함』의 4개의 아가마, 즉 4아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방 상좌부에서 전해 내려오는 빨리어 경전의 마지막 5번째 소부(小部)는 부파에 따라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대중부, 설산부, 화지부, 법장부 등의 몇몇 부파들은 이것을 잡장(雜藏, ksudrakapitaka)이라는 이름으로 경장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삼장을 보존하는데 많은 기여했던 설일체유부는『장아함』ㆍ『중아함』ㆍ잡아함』ㆍ『증일아함』의 4아함만을 정전(正典)으로 인정하였다. 비록 3장에 소부 경전들을 제외시키기는 하였지만, 소부에 포함되어 있는 몇몇 경들, 즉『법구경』ㆍ『경집』ㆍ『장로게』ㆍ『장로니게』ㆍ『본생담』 등의 몇몇 경들은 그대로 인정하였고, 이 경들을 소분아함(小分阿含,ksudraka gama)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인용했다. 이 설일체유부의 경전 체계를 계승한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기존의 삼장 체계에 별개의 장을 추가시켜서, 이 소분아함을 ‘잡장(雜藏)’이라는 이름으로 정전에 포함시켜왔다.
2. 성립과 한역
기원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사이에, 산스크리트 전승의 4아함이 중국에서 한역되었고, 빨리어 전승의 5부는 남방 상좌부라는 단일 부파에서 전승해온 것이 온전히 보존되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부파에서 전승되어온 경장은 대부분이 산실(散失)되었다. 기원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사이에 중국에서 한역된 4아함은 단일한 부파에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4아함은 법장부 소속의『장아함』, 설일체유부 소속의『중아함』과『잡아함』, 대중부 계통의 어떤 부파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되는『증일아함』 등, 몇몇 부파에서 전하는 아함이 따로따로 번역되어 하나의 경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전승해온 부파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교리적 바탕에 있어서는 놀라울 만큼 한결같은 일치를 보이고 있다.
『장아함』ㆍ『중아함』ㆍ『잡아함』ㆍ『증일아함』의 4아함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먼저 성립되었는지에 대한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승하는 초기의 방법은 암송에 의한 구전이었다. 암송해서 구전되던 것을 서사(書寫)하여 전하면서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되었다. 학자들에 따르면, 4아함 가운데 짧은 게송의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잡아함경』이 가장 오래 되었고, 법수에 따른 체계적이고 정연한 형태를 갖추었으며 대승불교적인 개념이 첨가되어 있는『증일아함경』이 가장 후대에 성립되었을 것이며, 그 사이에『중아함경』과『장아함경』이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소부와 잡장은 이보다 약간 더 늦게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전체적인 형태에 있어서 신, 구를 나눈 것일 뿐, 그 내용이나 경전 자체의 성립시기가 그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개의『아함경』에 속해 있는 각각의 소경에 있어서도 오래된 층과 새로운 층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증일아함(Ekottaragama)』은 산스크리트로 전승된 에콧따라아가마(Ekottaragama)를 한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 에코따라(ekottara, eka - uttarika)는 그 뜻을 옮겨 증일(增一)이라 하고, 아가마(agama)는 그 음을 아함(阿含)이라고 옮겨 경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증일아함』에 배대되는 팔리어 전승의 경은 증지부(增支部, Angut- taranikaya)이다. 이 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수(法數)에 따라 1법에서부터 11법까지 차례로 배열한 뒤 다시 각 품으로써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증일아함경』의 구성은 전체 51권 52품에 총 471개의 소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증지부 경전은 1에서 11까지 법수에 따라 배열하는 방식은 동일하지만, 소경의 전체 숫자는 9,557개로『증일아함경』보다 훨씬 더 많다. 소경의 수가 현저하게 많은 이유는 소경을 세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역『증일아함경』과 팔리어 증지부에서 서로 일치하는 소경의 수는 151개뿐이다. 두 경장의 성립 연대를 추정해보면 증지부보다『증일아함경』이 후대에 속한다. 그 서술양식에 있어서 대승불교적 색채가 뚜렷이 드러나는『증일아함경』의 서품을 통해서도 간단히 추정할 수 있다.
『증일아함경』의 번역은 두 차례에 걸쳐 행해졌다. 먼저 도거룩국(兜佉勒國, Tukhara)에서 온 비구 담마난제(曇摩難題, Dharmanandi)가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건원(建元) 12년(376년)부터 요장(姚萇) 6년(389년)에 걸쳐 장안(長安) 성 안에서『중아함경』과『증일아함경』을 함께 번역하였다. 그 책에는 ‘난제가 범본을 외우고 축불념(竺佛念)이 번역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장(姚萇)이 쳐들어와 장안까지 침범하는 전란의 와중에 소실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계빈국(罽賓國, Kasmira)출신의 비구인 구담 승가제바(瞿曇僧伽提婆, 衆天, Gotama Samghadeva)의 번역이 그 두 번째이다. 승가제바는 설일체유부가 융성하였던 북인도 카슈미르 출신으로, 전란이 끝난 후에, 기주(冀州)의 사문 법화(法和)와 함께 낙양(洛陽)으로 들어가 거기서 4, 5년간 머물며 중국어를 배우고 경전을 강의했다. 그러던 중 그는 담마난제의 번역이 그 뜻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양주(楊洲)의 건강현(建康縣)에 있는 정사(精舍)에서 융안(隆安) 원년(397년) 11월부터 융안 2년(398년) 6월까지 약 7개월에 걸쳐『중아함경』과『증일아함경』을 개역을 하였다. 그러나 전란으로 인해 융안 5년(401년)에 가서야 비로소 출간하였다. 현재까지 전승되는 전체 51권 52품의『증일아함경』은 바로 승가제바의 번역본이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증일아함경』의 내용 가운데 일부 소경만 따로 옮겨서 전하는 이역본이 23종 있다.『불설아라한구덕경』,『불설사인출현세간경』,『수마제녀경』,『불설삼마갈경』,『불설급고장자녀득도인연경』,『불설바라문피사경』,『불설식시획오복보경』,『빈비사라왕예불공양경』,『불설장자자육과출가경』 등 23개의 경이 이역경에 이에 속한다. 주석서로는 팔리어본 증지부의 주석서가 한역되어 있다.『분별공덕론』4권이 바로 증지부의 주석서를 옮긴 것이지만 서품부터 제자품까지 일부만 그 내용이 있다.
4. 구성과 내용
『증일아함경』은 법수(法數)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제1 서품에서는 경이 설해진 인연과 경에 대한 소개를 개괄적으로 먼저 하고 있다. 그 후 제2품부터 제52품까지의 내용이 1법에서 11법의 각 법수에 배정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1법은 제2 십념품에서 제45 오계품까지, 2법은 제15 유무품부터 제20 선지식품까지, 3법은 제21 삼보품부터 제24 고당품까지, 4법은 제25 사제품부터 제31 증상품까지, 5법은 제31 선취품부터 제36 청법품까지, 6법은 제37 육중품과 제38 역품이 해당된다. 7법은 제39 등법품에서 제41 막외품까지, 8법은 제42 팔난품과 제43 마혈천자품이, 9법은 제44 구주앵거품과 제45 마왕품이 해당된다. 10법은 제46 결금품부터 제48 십불선품까지 이고, 11법은 제49 목우품부터 제52 대애도반열반품까지이다. 모두 52품 총 471개의 소경이 법수에 따라 배열되어 있고, 각각의 품은 1개 내지 13개의 소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품의 제목은 대부분 그 품의 첫 번째 소경의 내용이나 등장인물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각 품에 포함된 소경들의 소재가 항상 동일하지는 않다.
이상과 같이 법수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증일아함경』의 내용은 다른 아함경에서 담고 있는 내용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본 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처님의 법신 상주 사상과 他方 불토 사상 등은 나중에 대승 사상으로 결실을 맺는 맹아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점은『증일아함경』이 4아함 가운데서 가장 나중에 결집되었다는 논거가 되기도 한다.
『증일아함경』은 내용적인 면에서, 3법인, 4념처, 8정도, 37도품 등 기본 교리를 중심으로 하면서, 이에 더하여 3보, 4제, 5계, 6중, 8난, 10념, 안반, 결금 등 거의 모든 가르침을 다 포섭하고 있다. 그리고『장아함』ㆍ『중아함』ㆍ『잡아함』 3아함에 나타난 기본적인 흐름에 더하여 대승불교적인 색채가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승불교적 색채는 교리적인 정교함이나 논리를 갖추지 못하고 ‘단편적인 용어’를 통해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서품에서 6가지 도무극, 즉 6바라밀이 갑자기 등장하고, 보살(菩薩), 삼승(三乘), 여래장(如來藏), 방등대승(方等大乘) 등의 후기불교의 용어가 단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특히나 서품의 분위기는 다른『아함경』과는 달리 후기불교 특유의 상징적이고 방대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또한 사리불 존자와 마하 목건련 존자의 반열반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제26 사의단품 제9경에서는 ‘여래에게는 4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그것은 소승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소승과 대승에 대한 구별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더하여 대승불교로의 교리적 발달의 단초도 미약하지만 살펴볼 수 있다. 제10 호심품 제5경에 나타난 보시에 대한 개념은 다른 아함의 그것과 비교된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아나빈지 장자, 즉 급고독장자에게 ‘보살의 마음으로 한결같고 순수한 뜻으로 널리 보시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보시를 받는 대상에 따라 복덕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다른 3아함과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시론 외에도 ‘사문의 도리’나 ‘대자비’의 개념에 대아적(大我的)인 측면이 강조되는 부분들도 있다.
또한 부처님의 법신(法身常住) 및 타방불토(他方佛土), 미륵불에 대한 언급 등을 통해서 대승불교 사상의 맹아적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제3 광연품 제1경에서 ‘여래의 본체는 금강(金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고, 제48 십불선품 제2경에서 ‘나 석가모니부처의 수명은 매우 길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죽지만 법신(法身)은 존재’한다는 구절 등에서 부처님의 법신상주(法身常住) 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제37 육중품 제2경에서는 목건련 존자는 ‘동쪽을 향하야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불토(佛土)의 기광여래(奇光如來)’ 곁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경의 곳곳에서 미래 세계에 오게 될 부처님으로 ‘미륵부처님’이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 특유의 ‘경전을 쓰고 베끼는 공덕’에 대한 칭송도 함께 나타난다.
제36 청법품 제5경에서는 초기불교와 구별되는 후기불교의 특징 중 하나인 불상(佛像) 조성의 경전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하여 설법하기 위해서 도리천으로 올라가셔서 세상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무치게 된 우전왕은 붉은 전단나무로 부처님의 상을 만들어서 공양을 올렸고, 파세나디 왕은 자마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평시와 똑같이 공양을 올렸다. 후에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돌아오시고 나서,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어 공양을 올린 사람이 받게 되는 여러 가지 복덕을 자세히 말씀하시고 있다.
『증일아함경』의 내용은 상당한 부분이『장아함』ㆍ『중아함』ㆍ『잡아함』의 세 아함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다른 3아함에 나온 소경들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거나 여러 소경들이 혼합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한 소경에 다른 일화가 끼어들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증일아함경』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도 많다.
대표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24 고당품 제5경에서 가섭 3형제가 부처님께 귀의한 이야기와 더불어, 성도(聖道)하신 부처님께서 고향 카필라 성에 가셔서 부왕(父王)과 친척을 만나 제도하신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제26 사의단품 제9경에서는 사리불 존자와 마하 목건련 존자의 반열반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제34 등견품 제2경에서는 부처님도 결국 막아내지 못하신 카필라성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제49 목우품 제9경에서 제바닷타가 5역죄를 범한 현장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52 대애도반열반품 제1경에서는 비구니승단을 대표하는 대애도 고타미와 500명의 비구니의 반열반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제2경에서, 마하가섭 존자의 아내였던 바타 비구니의 이야기가 있다. 제48 십불선품 제3경에서는 미륵부처님이 미래세에 나타나심과 관련된 부처님의 수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제28 성문품 제1경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구승에게 ‘지금부터 우바새들에게 5가지 계율과 3가지 귀의를 줄 것을 허락’하며, 그 자세한 내용과 방법도 함께 설하고 있다. 재가자에게 ‘계를 주려고 할 때에는 팔을 드러내어 합장하게 하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게 한 뒤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나이다”라고 두 번 세 번 부르게’ 한다. 그리고 다시 “나는 이제 이미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였나이다”라고 부르게 한다. 그리고 5계를 줌에 있어서 ‘그 중에서 한 가지 계율, 두 가지 계율, 세 가지 계율, 네 가지 계율 내지 5 가지 계율을 가질 수 있다면 다 가져야 하고 또 능히 가질 수 있다는 이에게는 두 번, 세 번 물어서 가지게’ 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제17 안반품 제11경에서는 정치지도자가 올발라야 백성이 올바르게 되고 편안해짐을 설하고 있다. 마치 소떼가 물을 건널 때처럼, 길잡이 소가 바로가지 못하면, 그 소떼가 모두 바로 가지 못하는 것처럼, 백성들이 모두 괴로움을 받는 것은 왕의 법이 바르지 못한 데 있다고 설하고 있다. 이 소경은『증일아함경』과 증지부에만 등장하고 있다.
제12 일입도품 제4경에서는 병자를 돌보는 이는 곧 나[부처님]를 돌보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고, 제44 구중생거품 제7경에서는 비구들에게 병든 다른 비구들 간호하라고 설법하시고 나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던 병든 비구를 부처님이 몸소 간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