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graphical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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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부모은중경언해(大報父母恩重經諺解)

※ 변상도해제
경기도 화산 용주사(龍珠寺)에서 간행한 부모은중경의 변상도이다. 변상도가 본문 중에 삽입되어 있는 다른 판본들과는 전혀 다른 14매의 도상이 권수(卷首)에 붙어있다. 각 도상은 반곽(半郭) 씩 모두 7매의 판에 14개 도상을 새겼는데 그림 마다 오른쪽 상단에 제목을 넣었다. 14장면의 내용은 여래정례도(如來頂禮圖)와 십은변상도(十恩變相圖), 이어서 8비유도(譬喩圖) 중 첫 번째 비유인 주요수미(周遶須彌)와 아비무간지옥도(阿鼻無間地獄圖)의 내용을 아비타고(阿鼻墮苦)와 상계쾌락(上界快樂)으로 나누어 도상화하였다.
1) 여래정례도(如來頂禮圖)
많은 비구들이 여래의 앞뒤로 둘러싸고 있고 여래는 고골(枯骨) 앞에서 본문에서 말한 대로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자세로 엎드려 예배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래의 두광(頭光) 밖으로 화염처럼 빛이 솟아오르고 거기에서 사방으로 광선이 뻗치고 있다. 제자들은 자유스런 자세로 합장하고 서있다. 이외에 화면 상부에 무기를 들고 있는 사천왕이 시립하고 있다. 동감있는 존상들의 자세와 표정,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옷주름과 구름의 표현 등 화면 전체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2)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ㄴ자로 이어지는 창을 통해서 방안의 정경이 보인다. 어머니가 바느질 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탁자에 팔을 얹고 몸을 기대어 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며, 곁에는 시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가옥의 사실적인 묘사, 마당에는 나무와 괴석의 모습이 새겨지고, 두 마리 학이 노닐고 있는 서정적인 표현이다.
3)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방안에는 만삭이 되어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곁에 앉은 여인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곁의 여인은 해산을 도와주러 온 듯한데 밖에서 풍로(風爐)를 부치고 있는 시녀에게 무언가를 채근하는 듯하다. 바깥채에는 한 사람이 어머니쪽을 근심스러운 얼굴로 내다 보고 있다. 두채의 집은 앞의 도상과는 달리 비스듬히 사선으로 놓여있어 구도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인물의 행동이 동감있게 묘사되어 있고 문, 담장, 건물, 소나무와 파초, 괴석, 마당의 닭과 병아리 등 모든 요소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4)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아기를 품에 안고 누워있는 어머니가 방 밖에서 약을 다리고 있는 하인을 내다보고 있다. 시녀가 아기를 씻기는 장면 대신 여기서는 하인이 약을 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대치되어 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해산의 고통은 사라지고 아기를 낳은 후의 안도감과 기쁨이 배어나는 듯한 평온한 모습이다. 배경으로 어머니가 누워있는 집 뒤로 뒷 채의 방과 나무, 괴석, 새 등이 묘사되어 있다.
5)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측면으로 표현된 집 안에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어우르는 듯한 모습이다. 기본 도상은 다른 판본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마당의 평상 위에 수석과 분재를 꽂은 화분 등이 놓여 있다.
6) 회건취습은(迴乾就濕恩)
정면으로 보이는 방 안쪽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고 어머니는 그 곁에 비스듬히 누워 아기를 보고 있다. 여기에는 기저귀를 빠는 시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붕은 다른 도상과는 달리 기와집이 아닌 초가로 묘사되어 변화를 주고 있다.
7)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방안의 침상 위에서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앞에 서있는 시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정겨운 모습이다. 마당에는 괴석, 나무, 파초 등이 표현되어 있고 집 뒤로 멀리 마을의 누각인 듯한 건물의 뾰족한 삼각형 지붕이 구름과 나무를 사이에 둔 채 遠景으로 묘사되어 있다.
8)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누각과 같은 육각형 구조의 누각과 같은 건물 안에서 아기를 씻기고 있는 모습이며, 그 뒤에는 시녀가 수건을 들고 서있다.
9)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문 앞에서 저 멀리 짐을 지고 길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고 있다. 어머니는 한 손을 들어 아들에게 손짓하고 있는데 한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얼굴에는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다. 화면의 대부분은 문 밖의 들판과 길이 표현되어 있는데 아들은 멀리서 어머니를 돌아보고 있다.
10)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다른 본과는 전혀 다른 도상으로 어느새 어른이 된 아들이 짐을 지고 문을 나서고 있으며 어머니는 방문에 기대어 근심스런 표정으로 아들이 떠나는 모습을 내다보고 있다. 어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패인 중년의 모습이며 방안에는 시녀인 듯한 여인이 베를 짜고 있다.
11) 구경억념은(究竟憐愍恩)
구경연민은 역시 다른 본과는 전혀 다른 도상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맞는 듯한 장면이다. 아들이 허리를 굽혀 어머니에게 인사하는 듯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쓰다담고 있다. 아들은 이제는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중년이고, 어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12) 주요수미(周遶須彌)
화면 가득히 바다 가운데 높이 솟은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산꼭대기에는 천계의 전각 대신 여래삼존이 작게 묘사되어 있고, 산 아래에는 양 어깨에 부모를 메고 걸어가는 인물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 바위산으로 표현된 수미산은 『사인암(舍人巖)』을 비롯한 김홍도의 여러 그림에서 보여지는 암산의 모습과 같은 기법임을 알 수 있다. 빗질한 것 같이 촘촘한 물결과 바위에 면한 곳에서 동글동글하게 솟아오른 해면의 독특한 표현 역시 김홍도 특유의 수파묘(水波描)와 매우 유사한 기법이다.
13) 아비타고(阿鼻墮苦)
아비지옥의 모습으로 지옥 안에서 벌을 받는 장면이 아니라 지옥문 앞으로 끌려오는 장면이다. 화면의 상반부는 지옥의 입구인데 무서운 귀면(鬼面)이 새겨진 문의 좌우에는 무장형의 수문장이 지키고 있고 높은 담장 위에서는 뿔이난 옥졸(獄卒)들이 내다보고 있으며 그 안에는 무섭게 솟아나는 괴기스러운 광선 혹은 연기로 가득차 있다. 화면의 하단부는 손은 뒤로 묶이고 쇠사슬로 목이 엮어진 죄인들이 옥졸들에게 끌려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옥졸들은 칼, 창, 몽둥이와 같은 무기를 들고 죄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14) 상계쾌락(上界快樂)
상계쾌락은 용주사본에만 있는 도상이다. 다른 본에서는 지옥도 안에 하늘 위로 솟아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인물을 첨가하는 것으로 이 장면이 간략히 표현되어 있다. 화면 전체에 구름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오른쪽 상단에 작게 묘사된 천상의 전각 앞에는 한쌍의 부부인듯한 인물이 승천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들은 깃발(幡)을 든 천인, 천녀, 악기를 연주하는 동자들, 공양물을 받치고 있는 동자들로 싸여 있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4무리를 지어 구름 가운데 서있는데, 부부는 고개를 들어 저 앞에 있는 전각을 올려다보는 것 같고 그 앞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용주사본은 여러 점에서 다른 은중경 판본들과는 판이하다. 우선 각 장면의 구도가 다른데, 집의 모양과 배치, 배경 등을 모두 달리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건물은 축대, 지붕, 문짝 등 모두 지극히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으며, 마당에는 나무, 괴석, 가축 등을 적절히 묘사하여 각 장면은 모두 독립된 한폭의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화면이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의 자세나 표정 등이 각 장면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아기에서 성년을 지나 중년으로 변한 아들, 그에 따라 젊은 어머니에서 중년을 지나 노인으로 변한 어머니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각 도상은 마치 선묘화를 보는 듯 유려하고 활달한 선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판각 솜씨 또한 밑그림을 성공적으로 새겨낸 훌륭한 솜씨이다. 용주사 간행 은중경 판화는 도상, 밑그림, 판각의 양태 등 전반적으로 18세기 불교판화의 양상과는 전혀 다르며 마치 일반회화를 보는 듯하다. (기록은 없으나 김홍도가 밑그림을 그렸다는 설이 있는데 화풍상 그의 필치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문화재청 박도화